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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6

브라운 신부 전집 3,4,5 : 의심-비밀-스캔들 - G.K 체스터튼 : 별점 3점

의심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북하우스
비밀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북하우스
스캔들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단편 추리소설의 황금기의 최고의 명탐정이자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탐정 브라운 신부. 명성에 비하면 국내 소개가 잘 안된 편이었지만 북하우스에서 전집이 몇년 전 출간되었었죠. 구입한지는 제법 된 것 같은데 읽는게 좀 늦었습니다. 그 중 1,2권인 결백과 지혜편은 예전 자유추리문고본으로 먼저 읽어 보았기에 3,4,5권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먼저 각 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말씀드리자면,
3편 의심에서는 일종의 알리바이 깨기 트릭인 “기드온 와이즈의 망령”과 불가해한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역시 밀실 트릭의 일종이지만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개의 심리를 사건과 결부시키는 걸작 “개의 계시”, 괴기스러운 느낌의 복수극으로 완전범죄를 완성하려는 살인범의 트릭을 파헤치는 “날개달린 단검” 이,

4편 비밀에서는 브라운 신부가 자신의 추리의 비밀을 털어놓는 “브라운 신부의 비밀”, 광기의 복수극을 그린 “보드리 경 실종사건”, 연극에 관련된 밀실 살인 사건인 “배우와 알리바이”, 3편의 “날개달린 단검”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최악의 범죄”, 범인으로 몰린 시인의 누명을 벗겨주는 한편 다른 동기에서 진범을 찾아내는 “판사의 거울” 편이,

5편 스캔들에서는 사람의 인상과 기억의 오류를 바탕으로 한 장난인 “폭발하는 책”과 텅빈 술집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퀵 원”, 살인자와 피해자에 대한 오류를 바탕으로 한 “블루 씨를 쫒아서”, 명망있는 제독의 살인사건을 범인의 말 한마디로 파헤치는 “그린맨”, 조그만 마을에 파란을 몰고온 목사 아들의 패륜행위의 뒤에 숨겨진 범죄를 밝혀내는 “마을의 흡혈귀”, 기발한 시체 은닉 트릭이 등장하는 “핀 끝이 가리킨 것”이
좋았습니다.

그외에도 대체로의 단편들이 하나하나가 전부 일정 수준이상을 넘어서는 작품들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탐정들과는 다르게 직관과 인상, 정황에 주력하여 자신의 느낌으로만 사건을 꿰뚫어보는 브라운 신부의 특징도 전편에 걸쳐 잘 살아있고요. (참고로 브라운 신부의 추리의 비밀이 4편 “브라운 신부의 비밀”에서 설명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참으로 읽기는 힘든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단편집이란 모름지기 쭉쭉 읽어나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 법인데 대사나 묘사가 장황하여 한번에 읽어내리기 어려웠어요. 체스터튼이 워낙 당대의 유명 문인이었던 만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에서도 뭔가 독특한 자신만의 문체를 도입하여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예전 다른 문고본에서 읽고 느꼈던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본다면 번역 문제인것 같기도 한데 여튼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또 다른 단편집들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는 한데, 하나의 트릭을 변형하여 여러 곳에 쓰고 있는 편입니다. 특히나 “살인자”<>”피해자”의 역할 바꾸기 라던가 잘못된 증언의 오류를 짚어내는 방식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뭐 등장하는 단편마다 다른 상황에서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어서 큰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읽는 재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전집으로 출간된 것에 대해서는 고맙기만 할 따름이라 점수를 조금 더 얹어 봅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유머스러운 브라운 신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번역이 조금 수정되면 더욱 좋겠네요.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합니다.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인데 이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작가 취향이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듯 하네요.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다른 앤솔러지를 통해 읽었던 작품입니다.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이 납득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건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에요.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데,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거든요.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005/06/21

세계 미스터리 명작여행 악성인자 - 정태원, 최진섭 편역 : 별점 2점

지난주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입니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단편집이라 주말동안 한 번에 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수록작들이 기존에 잘 알려져 있던 걸작들이 대부분으로, 제가 이미 읽었던 단편이 상당수더군요. 홈즈 단편과 브라운 신부 단편, 포와로 단편은 너무 안이한 선정이었습니다. 단편의 거장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앤솔로지에 포함된 작품들이 대부분인 헨리 슬레사 작품이 3편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대충 선정한 느낌이고요. 이런 책에는 보다 마이너하고, 국내 독자가 접하기 힘든 작품들 위주로 선정되어야 했습니다. 메그레 경감의 단편과 더쉴 해미트의 컨티넨털 옵 단편만 이런 선정 기준에 부합하네요.

또 앤솔로지로서의 정체성 문제도 큽니다. 일단 작품 선정에 있어서 기준이 모호해요. 연도별 베스트나 작가 중심 선정도 아니고, 장르도 정통 추리물에서부터 서스펜스 스릴러, 꽁트, 마지막에는 SF 분위기의 단편까지 실려 있습니다. 기준이 물건 기왕 선정했다면, 연도별로 배치하는게 더욱 좋았을텐데 그것도 아니라 혼란스러웠어요.

전체적으로 초심자들이 즐기기 좋은 선정이기는 하나 너무 평범하고 무난하달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던 "세계 서스펜스 명작여행" 보다는 독자를 흥분시키는 맛이 없네요. 제가 이런저런 작품을 너무 많이 읽은 탓도 있겠지만...

베스트는 제가 안 읽었던 작품 중에서만 뽑아보겠습니다. 메그레 경감의 정통 추리물 "다섯명의 용의자"와 독 초콜릿 사건의 단편 버젼이라는 앤소니 버클리의 "무서운 초콜릿" 입니다. 더쉴 해미트의 "파리 종이"도 괜찮았어요.

작품별 간략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돼지와 피아노 - 헨리 슬레사

폭력적인 남편에게 괴롭힘 당하며 사는 한 여인이 숙면을 취하는 유일한 방법이 등장하는 단편. 심리 드라마에 가까운 소품입니다.

2. 헬로 자스민 - 헨리 슬레사 

로봇 개발에 취미가 있는 해리는 아내 자스민을 죽이기 위해 자신이 만든 로봇 맥더프를 프로그래밍 하는데.... 

 단편의 거장 중 하나인 헨리 슬레사의 독특한 단편. 다른 앤솔로지에도 많이 실려있는 작품이죠. 반전의 묘미가 탁월합니다.

3. 세 여인의 공통분모 - 빌 프론지니 

30대의 금발 머리, 그리고 영업을 위해 자주 출장을 떠나는 세 여인이 차례로 살해당했고, 한 남자가 자수했는데 동기는? 

단편으로 더 유명한 작가인 빌 프론지니의 괜찮은 작품입니다. 역시 다른 앤솔로지에도 실려있는 작품이죠. 짧지만 강렬한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4. 한낮의 정사 - 브루노 피셔

앞집에 사는 노마가 살해당한 뒤, 불륜 관계에 있었던 TV 수리기사 래리 포레스트가 구속되었다. 그러나 브린 형사는 새로운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데...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단편으로 짧은 길이 안에서 꼼꼼하면서도 공정한 전개, 그리고 화자가 남편이라는 독특함까지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놀라운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가 참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역시나 다른 앤솔로지에 수록된 작품이긴 하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5. 색다른 토끼 스튜 - 윌리엄 아이리쉬 

수많은 앤솔로지에 실려있는 걸작 단편. 지금은 낡아 보이지만 괜찮은 증거 인멸 트릭이 등장하는 고전입니다.

6. 미인과 초콜릿 - 로버트 블록 

아내 메어리를 죽이고 애인 프란시스와 새로운 생활을 꿈꾸는 존은 약제사로서의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직접 독을 넣은 초콜릿을 제조하여 아내에게 선물로 주는데... 

역시 다른 앤솔로지에서 본 작품입니다. 살인을 계획하는 과정을 주 내용으로 하되 반전을 통한 파국으로 끝나는 미국 추리 단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런 전개는 "헬로 자스민"하고도 똑같죠.

7. 살아있는 라디오 - 존 딕슨 카

중요한 연구를 진행 중이던 두 남녀가 허름한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괴로워하다가 유령이 나온다는 방에서 라디오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시체가 놓여 있었다... 

꽤 장황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나름 명쾌한 해석과 결말이 있는 잘 짜여진 고전적인 추리 단편입니다. 특히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거장의 정통 본격 추리물다운 작품이었습니다.

8. 사랑의 도박 -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작가 데이비드의 비서로 일하는 펜은 데이비드의 아내 지니와 사랑에 빠졌다. 데이비드는 펜을 조롱하고 지니와의 사랑을 확고히 하기 위해 실종 사건을 연출하는데... 

스릴러라고 봐야 할까요? 마지막 한줄로 사건을 정리하는 솜씨가 놀랍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줄의 증언이 실제 수사단계에서 얼마나 확신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9. 초록색 벌레 - G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단편입니다. 굉장한 힘을 가진 인물이 조그만 흉기를 써서 광포한 살인을 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하지만 브라운 신부 특유의 화법으로 설명하는 작품으로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 단편입니다.

10. 마음 돌리기 - 도널드 마틴

그래디 부인은 자신의 수표를 훔치려다 다리를 삔 토빈이라는 젊은이를 치료해 주며 그를 개심시키려 한다. 하지만 토빈은 부인의 보석을 가지고 달아나게 된다... 

추리물로서 보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마지막 반전이 괜찮은 소품입니다.

11, 파리종이 - 더쉴 해미트

건달과 사랑에 빠진 명문가 막내딸이 송금을 부탁하자 컨티넨털 옵이 수표를 가지고 출동했다. 하지만 아가씨는 간데없고 송금 요청은 조작된 것이었는데... 

컨티넨털 옵 시리즈로 길이도 길고 내용도 풍성합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책이 단서가 되는 등 트릭과 전개도 꽤 잘 짜여진 편이고요. 특히나 하드보일드이면서도 사람이 많이 죽지 않고 추리적으로도 알차다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12. 위험한 초보운전 - 프레드 S 토비

굉장히 짤막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여운을 남기는 작품으로 짧은 길이 탓인지 사건의 동기가 미흡한 것은 아쉽네요.

13. 사라진 열쇠 - 애거서 크리스티

포와로 단편.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죠.

14. 다섯 명의 용의자 - 죠르즈 시므농

벨기에 국경 밖으로 나가는 열차에서 한 부자가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같은 객차안에 있었던 다양한 직업과 국적의 다섯 명 뿐이었다.

메그레 경감 시리즈로 이 단편집 최대의 수확입니다. 정통 추리물로 동기와 단서가 완벽하네요. 트릭 자체는 별게 없는 완전범죄 스타일의 작품은 아니지만 메그레 경감의 수사방식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15. 무서운 교배 - 죤 콜리어

예전에 호러 앤솔로지에서 본 기억이 나는 짤막한 호러단편입니다. 왜 이 단편선에 실려 있는지 의문이네요. 전혀 성격이 맞지 않거든요.

16. 무서운 초콜릿 - 앤소니 버클리

클럽 회원인 윌리엄 경에게 선물로 배달된 초콜릿을 같은 클럽 회원인 버레스포드가 아내에게 주려고 대신 받았는데, 초콜릿을 먹은 아내가 독으로 죽고 말았다.

역시 이 단편집에서 베스트 중 한편입니다. "독 초콜릿 사건"의 단편버젼이라고 하는데 정통 추리물로 동기와 전개가 나무랄데 없네요. 불특정 다수를 노린 듯한 트릭도 굉장히 우수하고 독창적입니다.

17. 약속의 그늘 - M.레버

모파상 단편같은 지독하게 잔인한 인생사를 다룬 소품. 그러나 15편 "무서운 교배"와 같이 왜 이 단편선에 실려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18. 빨간 머리와 지하실 - 코난 도일

"붉은 머리 클럽"입니다. 설명은 필요 없겠죠?

19. 매력적인 안드로이드 신부 - 헨리 스레사

SF취향의 소품으로 전 아시모프 작품인줄 알았습니다....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설정만 독특한 작품으로 이 작품도 이 단편선 성격과는 잘 맞지 않는 선정인것 같네요.

2004/07/13

사쿠라 신부의 사건 노트 - 영광관 / 고도관 살인사건 : 별점 2점 / 3.5점

사쿠라 신부의 사건노트 1 - 6점
고로 아오키 글, 고신 오가와 그림/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사쿠라 신부의 사건노트 2 - 8점
고로 아오키 글, 고신 오가와 그림/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이사와 더불어 발굴한 잊혀진 추리만화. 원작은 Goro Aoki, 그림은 Koshin Ogawa입니다.
국내에 2권까지 출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 대로 “사쿠라 소이치로”라는 카톨릭 신부가 탐정이며, 두 권 모두 토코요다 마나미가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1권 영광관 살인사건
“영광관”이라는 대 저택에서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던 토코요다 코우스케가 살해당했다. 장녀 리쯔코의 결혼식을 얼마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리쯔코의 약혼자 토쿠다 토오루마저 살해하고 말았다.
영광관에 거주하고 있는 토코요다 패밀리는 콩가루에 애정결핍 증상을 심하게 보이고 있는 인물들로, 그 중 코우스케와 싸우고 실종 중인 리쯔코와 차녀 마나미의 아버지 켄스케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경찰 조사로 켄스케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2권 고도관 살인사건
이찌노세 가문의 소유인 외딴섬 코모라 섬의 “고도관”에 찾아온 손님들. 그들은 모두 이찌노세 카오리라는 여성을 알고 있던 사람들로 초대장을 보고 찾아왔다. 하지만 섬과 고도관에는 카오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고, 냉동실 안에서 그녀의 자살한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정기 연락선이 올 때까지 섬에 고립된 손님들은 “묵시록”의 글귀와 같이 한명씩 살해당했고, 결국 그들 중 카오리와 알고 지내던 프리랜서 카메라멘 카노우 에리카의 조수로 이 섬에 우연히 찾아온 마나미만 살아남았다. 
그녀는 사쿠라 신부에게 진상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는데...

1,2권 다 제목에서 보이는 것 처럼 “관 시리즈”를 상당히 의식한 듯 싶고, 내용도 "관 시리즈"와 유사하게 특정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그 중에서도 밀실 트릭이 핵심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1권 “영광관 살인사건”은 길이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트릭과 내용이었습니다. 만화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고, 만화적인 전개도 내용을 잘 뒷받침 해 주지 못한 탓입니다. 소설로 썼으면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사쿠라 신부”의 캐릭터가 너무 눈에 띄지 않는 점도 아쉬웠고요.
그래도 “독자에게 도전”하는 식으로 페이지를 분할해서 완벽한 퍼즐 미스터리 물로의 의지를 보여 주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고 싶네요. 중요 알리바이 트릭 자체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니까요.

2권 “고도관 살인사건”은 훨씬 낫습니다. 보통 만화책이라면 2권으로 나옴직한, 3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인데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는 재미가 상당하거든요. 1권에 비해 스케일도 클 뿐더러 “묵시록”의 글귀에 따라 사람을 살해하는 패턴은 “장미의 이름”에서도 이미 써먹은 방식이지만, 만화에서 보여지는 시각 효과 때문에 그 맛이 훨씬 더 잘 살아납니다. 트릭 자체도 흠잡을 데 없을 만큼 괜찮고요. 중간 중간 물론 약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추리 만화에서 오리지널로 이 수준의 트릭이라면 “김전일”의 최고 에피소드하고도 견줄 만 합니다. 1권과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도전”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사쿠라 신부

하지만 이야기의 주요 화자가 “마나미”라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코모라 섬과 고도관에서의 이야기에 “사쿠라 신부”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나마도 희박했던 사쿠라 신부의 캐릭터가 더욱 약해져 버린건 아쉽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카톨릭 신부”라는 특성을 그다지 잘 살린 것 못한 점도 감점 요인이네요. 세례명이나 카톨릭의 장례 습관 등 전문 지식이 어느 정도 나오기는 하지만 “신부”라는 캐릭터에 걸맞는 수준이라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브라운 신부”와 비교해 보면 그 수준이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작화도 나름의 스타일은 있고 열심히 그리기는 했지만 뎃생력이 미흡하고 지나친 펜선 남용으로 지저분해 보이는 등 부족함이 더 눈에 뜨입니다. 배경이나 묘사 같은 디테일은 좋지만 보다 인물과 작화에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을 주자면 1권은 2점, 2권은 3.5점입니다. 두 작품 모두 위의 단점, 즉 부족한 캐릭터와 작화 때문에 0.5점 정도 감점합니다.
그래도 원작의 수준이 상당한 만큼 꽤 괜찮은 추리 만화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이기에 후속작을 기대했는데 2권 이후 별 소식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제목에 "Afternoon Detective Series"라고 찍혀 있는 걸 보면 다른 시리즈도 있을 법 한데 말이죠... 서울 문화사에서 다시 한번 출간해 주었으면, 후속편이 없다면 "Afternoon"의 다른 시리즈라도 계속 발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2009/01/22

저명작가가 뽑은 미스터리 / SF 베스트 5

쇼켄 추리문고 창간 40주년을 맞아 저명작가들이 쇼켄 추리 / SF 문고 출간본들 중 재미있는 작품들 5편을 꼽은 리스트로 출처는 "미스터리베스트" 입니다. 추리작가 위주로만 번역해서 올립니다.


'2013.06.24. 링크 추가'
'2025.01.05 링크 추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1. Y의 비극 : 엘러리 퀸
2. 브라운 신부의 동심 : G.K 체스터튼
3. 구부러진 경첩 : 딕슨 카
4. 그린 살인사건 : 반 다인
5. 독초콜릿 사건 : 안소니 버클리 콕스

기타무라 카오루
1. 일본탐정소설전집2 에도가와란포
2.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 아와사카 츠마오
3. 브라운 신부의 동심 : G.K 체스터튼
4. 불청객들의 뷔페 : 크리스티나 브랜드
5. 새하얀 거짓말 : 프레드릭 브라운

교코쿠 나츠히코
1. 흡혈귀 드랴큐라 : 브램 스토커
2. 기암성 : 모리스 르블랑
3. 현자의 돌 : 콜린 윌슨
4. 일본탐정소설전집10 사카구치안고
5. 키드 피스톨즈의 모험 : 야마구치 마사야

고이케 마리코
1. 신데렐라의 함정 :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2. 이천만달러와 물고기 한마리 : 카트리느 아를레
3. 실루엣 - 아이리쉬 단편집 4 : 윌리엄 아이리쉬
4. 악녀 이브 : 바틀리 체이스
5. 두명의 아내를 가진 남자 : 패트릭 퀜틴
 
미야베 미유키
1. 어둠의 스캐너 : 필립 K 딕
2. 브라운 신부의 동심 : G.K 체스터튼
3. 미스 마플과 13개의 수수께끼 : 애거서 크리스티
4. 매드 사이언티스트 : 스튜어트 D 시프 편저
5. 7명의 아줌마 : 패트리시아 맥거

에도가와 란포
1. 빨간머리 레드메인즈 : 이든 필포츠
2. 노란방의 비밀 : 가스통 르루
3. 승정(비숍)살인사건 : 반 다인
4. Y의 비극 : 엘러리 퀸
5. 트렌트 최후의 사건 : E.C 벤틀리
6.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7. 모자수집광 사건 : 딕슨 카
8. 붉은 집의 수수께끼 : A.A 밀른
9. 통 : F.W 크로포츠
10. 나인 테일러스 : 도로시 L 세이어스

란포 혼자 10편의 작품을 선정하는 것도 눈에 띄는데 역시 거장은 거장인가 봅니다. 여튼 간략하게 평하자면, 유명작가들은 대부분 고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몇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전이 국내에 번역되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요. 저도 이 리스트를 보다가 다시 읽고 싶어진 책이 몇권 생겼는데, 이번 연휴때 들춰봐야겠습니다.

2012/04/01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 아와사카 쓰마오 / 권영주 : 별점 2점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 4점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시공사

전작에 이은 '아 아이이치로' 두번째 단편집.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탐정역의 카메라맨 아 아이이치로 주변에서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일어나며, 아 아이이치로가 아니라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여 사건을 바라보는 약간은 관조적인 전개를 통해 공정한 정보제공이 가능하다는 특징은 여전합니다. 얼굴이 세모꼴이고 양장을 한 노부인이 매 단편마다 계속 등장하여 연작이나 시리즈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아이디어도 괜찮았어요. 슬랩스틱같은 행동들도 전작과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전작에서 좋은 트릭과 전개를 모두 사용해 버린 탓일까요? 수록작 모두 실망스러웠습니다. 기상천외한 상황은 기발하지만, 트릭의 현실성도 없고 동기도 억지스러운 작위적인 이야기들이었던 탓입니다. 슬랩스틱 코미디, 아의 황당한 대사들도 식상했고요.

물론 전부 형편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작품 "지푸라기 고양이"의 상황 설정에 대한 아이디어는 굉장히 참신했고 "사부로정 노상"은 사건과 특정 장소를 이용한 트릭이 돋보였습니다. 문제는 이 두 작품마저도 다른 문제들 때문에 전체적인 별점을 높이 쳐 줄 수 없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별점은 반올림을 약간 해서 2점 밖에는 못 주겠네요. 너무 함량미달이라 고전 정통본격 추리물의 열광적 애호가라 자부하는 저로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시리즈를 이어가지 말고 전작 1권으로 끝내는게 좋았을겁니다. 이래서야 시리즈 다음 작품도 전혀 기대가 안되니까요. 특별히 이 시리즈에 애정을 느끼시는 분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괜히 걸작 대접을 받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군요.

수록작별 간단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지푸라기 고양이"

완벽주의자 도쿄의 그림에서 발견된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묘사들 -손가락이 여섯인 소녀, 열리지 않는 문 등 - 을 토대로 숨겨진 죽음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

초정밀묘사 그림 속의 현실과 다른 요소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화가 도쿄의 출신지와 엮어서 일종의 주술적인 의미를 끄집어내는 발상과 전개는 좋았는데 진상이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완전한 결혼이 세상에 어디있다고... 또 그만큼 유명한 작가 그림의 오류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스나가 가의 증발"

길을 잃고 헤메던 아 일행은 그 고장에 전설로 전해지는 스나가 집안 후예의 집을 발견했다. 하룻밤을 보낸 뒤, 일행은 전날 목격한 집 한 채가 다음날 아침 사라진 것을 알고 경악하는데...

엘러리 퀸의 걸작 중편 "신의 등불"에서도 사용된 건물 소실 트릭의 재구성입니다. 일본 전통가옥이라는 소재와 시도는 좋았고 여러가지 단서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하는 노력도 돋보입니다.

문제는 트릭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옛날 가옥이라도 단시간에 홀랑 타버린다는 것, 그리고 잔해를 하룻만에 정리한다는 것 모두가 비현실적이니까요. 세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꼬박 하루를 더 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이럴바에야 스나가가 그냥 세명을 죽여버리고 묻어버리는게 더 설득력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모든 면에서 "신의 등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졸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스즈코의 치장"

사고사한 유명 여가수 가모 스즈코의 닮은 꼴을 찾는 대회에 얽힌 이야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주특기인 기묘한 비일상 - 닮은 꼴을 찾는 대회에서 의도적으로 닮지 않으려 노력했다 - 을 끄집어내어 접근한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상이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 비하면 뻔해서 아쉬웠어요. 중간까지만 읽어도 이유가 뭐건간에 진상은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앞선 작품들 보다는 동기, 기묘한 설정까지의 설득력은 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뜻밖의 유해"

외딴 온천마을에서 동요 가사대로 삶고 구워진 채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

한마디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경찰 흉내를 좋아하는 찐따인 주인공 사쿠라이 캐릭터도 짜증스러웠지만 동남아 여행 후 걸린 콜레라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진상이 정말 어이가 없었으니까요. 선거 때문이라는 동기도 납득할 수 없었어요. 선거 때문이라면 엽기 살인사건도 큰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요?

그야말로 트릭을 위해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비뚤어진 모자"

주차장에서 우연히 습득한 모자의 주인을 찾아나선다는 코믹 일상계 단편.

이 작품 역시 평균 이하입니다. "뜻밖의 유해"처럼 트릭을 위해 만든 이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별점은 똑같이 1.5점입니다.

2010/08/02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 아와사카 쓰마오 / 권영주 : 별점 4점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 8점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시공사

“아 아이이치로”라는 독특한 이름의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의 첫 단편집입니다. 여러 일본 미스터리 추천 리스트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은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등장하며, 황당한 사건이 연이어 펼쳐지는 가운데 유머와 슬랩스틱을 연상케 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황당한 사건들에도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존재하며, 독자에게도 탐정 아이이치로와 동일한 수준의 정보가 제공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고전 본격 추리물의 원칙과 상당히 유사한데, 작품의 수준 역시 절대 뒤처지지 않습니다.

8편의 단편들은 심리 트릭, 밀실 트릭, 공간 이동 트릭, 암호 트릭, 원격 살인 트릭 등 다양한 유형의 트릭을 활용하고 있어 고전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특히 매력적입니다. 잘생기고 번듯하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주인공 아 아이이치로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마치 현대에 환생한 브라운 신부와도 같은 느낌인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방심할 때 의외의 한 방을 날리는 모습이 닮아 있습니다.

시리즈물이지만, 아 아이이치로를 제외한 모든 단편들이 각기 다른 공간과 장소에서 다른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을 내세운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상천외한 사건과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새롭게 창작된 브라운 신부 파스티쉬 작품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밝혀낸다는 설정은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게 독특한 등장인물, 황당한 사건, 공정한 추리, 그리고 의외의 결말이라는 고전적인 요소들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정교한 추리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좋은 작품집입니다. 고전 추리 단편집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며, 유쾌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1978년에 발표된 작품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고전적인 느낌이 강해,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부분도 존재합니다. 솔직히 말해, 해설을 읽기 전까지는 2차대전 전 작품인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것이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취향에 맞지 않는 독자라면 다소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별점은 4점입니다.

2011/07/09

목요일의 남자 - G.K 체스터튼 / 유슬기 : 별점 2점

 

목요일의 남자 - 4점
G. K. 체스터튼 지음, 유슬기 옮김/이숲에올빼미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인 가브리엘 사임은 무정부주의자 조직을 수사하는 비밀경찰이라는 또다른 정체가 있었다. 그는 ‘일요일’이라는 명칭의 위원장이 통솔하는 무정부주의 조직에 잠입한 뒤, 조직의 간부인 ‘목요일’이 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직의 다른 간부들과 만나며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한 G.K. 체스터튼의 장편입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책 소개에서도 ‘20세기 추리소설의 걸작’, ‘환상적 추리소설’이라는 표현이 있어 기대가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책은 제 기대를 완벽하게 깨버렸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정통 추리소설’은 아닌 탓입니다.

각 요일별로 구분되어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무정부주의 조직 간부들 설정은 상당히 기발했고, 중반부까지 사임이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추격전 - 특히 사임과 교수의 추격전, 서기가 이끄는 기마병과의 추격전 - 은 박진감이 대단했습니다. 추리소설은 아니더라도 근사한 첩보·모험물 분위기를 물씬 풍길 정도였죠.

그러나 종반부는 기대와 너무 달랐습니다. 가공할 존재인 ‘일요일’과의 어이없는 추격전에서 시작해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 선문답,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이한 파티로 끝나는 결말은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였어요. 오묘한 종교적 상상력과 시대를 앞선 느낌도 들고, 신적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고급스러운 재치와 풍자로 표현한 것은 분명하지만,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는 묘사—“이 마을 부자 다섯 명 중 네 명은 사기꾼이오. 아마 이 비율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비슷할 것이오.”—와 전개는 과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저자가 맞구나 싶게 만들지만, 작품의 성격 자체가 예상과 너무 달라서 평가하기가 쉽지 않네요.

고전임은 분명하고, 발상 자체는 경이로운 부분도 있지만, 종교적 요소와 거리가 있는 저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굳이 평가하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저처럼 고전 정통 본격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분명 실망하실 겁니다.

2006/12/04

전설의 자유 추리 문고

원래 제가 중학교때까지 가끔 눈에 띄면 모으던 문고 시리즈였습니다만, 최근 우연찮게 3번 구입하게 되고 책 뒤의 다른 책 소개를 보니 정말 눈이 뒤집히네요.

뭐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나친 반 다인 취향과 뜬금없이 끼어 있는 어슐러 K 르귄의 "암흑의 왼손"을 제외하고는 정말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고전 명작을 거진 다 소화하고 있어서 나무랄데 없는 선정으로 보입니다. 크리스티 여사님 책이 한권도 없긴 하지만 여사님 책은 당시부터도 해문 빨간책 시리즈로 전권이 나오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뺀 것이 아닌가 싶네요. 현명한 판단인 것이 사실 저는 여러 추리 문고 시리즈에 여사님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직도 불만이거든요. 해문 빨간책이 여사님 책 시장은 평정하다시피 했으니 다른 시리즈로 구입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기에 차라리 그 책을 내 놓을 바에야 다른 멋진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이 분명 나은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 시리즈는 당연히 일어 중역본인 듯 하지만 번역도 의외로 매끄럽고 좋은 편입니다. 교정을 여러본 보았는지 오탈자도 거의 없고 문체도 좋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최근 출간되었던 정식판보다 이쪽이 외려 번역이 좋았습니다. 정식판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지루하게 번역했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다시금 목록을 보니 어렸을 적에 많이 구입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그 당시 용돈을 쪼개서 사던 즐거움 중 하나가 추리소설을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사지는 못했더라고요. 돈이 좀 없더라도 몇권 더 사는건데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를때 지르지 않으면 훗날 후회가 오나 봅니다)

제가 지금 제일 읽고 싶은 책은 시리즈 26 "눈먼 탐정 캐러더스", 27 "포튠을 불러라", 28 "이와 손톱", 그리고 50번째인 "주정꾼 탐정" 입니다. 헌책방 순례도 어언 10여년 짼데 아직도 발견 못했습니다.

고가 매입...은 힘들겠지만 도움주실 분 계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꼭 읽고 싶습니다!

1~2 : 셜록 홈즈의 모험  - 코넌 도일
3 : 뤼뺑의 고백 - 모르스 르블랑
4 : 브라운 신부의 지혜 - 체스터튼
5 : 팔점종 - 모리스 르블랑
7 : 벤슨 살인사건 - 반 다인
11 : 딱정벌레 살인사건 - 반 다인
14 ~ 15 : 클로이든발 12시 30분 - 크로포츠
18 : 새벽의 데드라인 - 윌리엄 아이리쉬

19 : 미궁과 사건부 - 로이 비커즈
20 : 어두운 거울 속에 - 엘런 매클로이 (헬렌 맥클로이)
21 : 즐거운 살인 - 크리스핀
22 : 강철도시 - 아시모프
23 : 움직이는 타깃 - 로스 맥도널드
24 ~ 25 : 카나리아 살인사건 - 반 다인
26 : 눈먼 탐정 캐러더스 - 브래머
27 : 포튠을 불러라 - 베일리
28 : 이와 손톱 - 윌리엄 벨린저
29 ~ 30 : 위험한 여로 - 브랜드
31 : 작은 독약병 - 샬럿 암스트롱
32 : 제 8지옥 - 스텐리 엘린
33 : 케닐 살인사건 - 반 다인
34 : 법정 밖 재판 - 헨리 세실
35 ~ 36 :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37 : 싸이코 - 로버트 블록
38 : 흑거미 클럽 - 아시모프
39 ~ 40 : 여자 살인 이야기 - 아일즈
41 : 살인급행 침대열차 - 자프리조
42 : 암흑의 왼손 - 어슐러 르귄
43 ~ 44 : 검은 탑 - P.D 제임스
45 : 가든 살인 사건 - 반 다인
46 : 스카이 잭 - 토니 켄릭
47 : 사람의 덫 - 로저 사이먼
48 : 사라진 시간 - 윌리엄 벨린저
49 : 르윈터 망명 - 로버트 리델
50 : 주정꾼 탐정 - 에반 헌터

자유추리문고 소장중 / 다른 판본으로 소장중 / 못구함, 혹은 안구함...
* 2021.01.02. 리뷰가 있는 작품은 링크 추가합니다. 전부 자유 추리 문고는 아니지만요.

2007/04/10

세계추리명작단편선 - 하서출판사 : 별점 4점

하서출판사에서 70년대에 간행된 세계 추리 명작 전집 중 한권으로 여러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입니다. 추리소설 초창기 작품들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재미와 수준이 아주 뛰어난 작품들로 엄선되어 있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어요. 지금은 좀 구하기 힘들어진 작가들의 비중이 높은 것 역시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소개된 초유명 작품들 몇편도 실려있는 것은 약간 아쉽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걸작들이니 납득할만 합니다. 오래된 낡은 책이기에 수반되는 편집, 장정, 번역 문제를 제외하고 수록작품들의 퀄리티만 따진다면 별점 5점은 충분하겠죠. 어쨌건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개인적인 베스트를 꼽자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나 순수한 희소성 측면에서 최고 작품은 로버트 바의 "건망증 있는 사람들"과 윌키 콜린즈의 "사람이 오만하면", 그리고 로드 던세이니의 "두병의 소오스"를 꼽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희귀 고전 걸작을 새로 간행하면 어떨까 싶어서 저만의 리스트를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혹 출판사 관계자가 보신다면 한번 고려해 보셨으면 합니다. FTA 체결로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후 50년 이상이면 저작권이 풀리는 당장의 국내 현실에 맞춰본 것이죠. 이 단편집 위주이긴 하지만 몇몇 작품은 다른 작품에서 뽑아와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번역은 다시 해야겠지만요.
-추리소설의 여명기 걸작선-
토마스 버크 (1886~1945) "오터모울씨의 손"
로버트 바 (1850~1912) "건망증 있는 사람들"
윌키 콜린즈 (1824~1889) "사람이 오만하면"

-기묘한 맛, 추리소설의 색다른 재미-
로드 던세이니 (1878~1956) "두병의 소스"
도로시 L 세이어스 (1893~1957) "의혹"

-셜록홈즈의 라이벌들-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머 (1869~1942) "연립주택의 참극" (장님탐정 맥스 캐러더스) 또는 그외 (브룩밴드 장의 비극)
멜빈 데이비드 포스트 (1871~1930) "둠도프 사건" "나보테의 포도원" (서부개척시대 탐정 엉클 애브너) 또는 그외
로널드 A. 녹스(1888~1957) "밀실의 수행자" (비밀탐정 마일즈 브랜든)
체스터튼 (1874~1936) "날개달린 단검" (브라운 신부 시리즈) 또는 그외
오르치 백작부인 (1865~1945) 더블린 사건 (구석의 노인 시리즈) 또는 그외
잭 푸트렐 (1875~1912) "정보누설" (사고기계 반 두젠 시리즈) 또는 그외 (13호 독방의 문제)
아더 모리슨 (1863~1945) "렌턴관 도난 사건" (사립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크리스티 여사의 "야앵장"
한 여성의 의혹과 생존을 위한 속임수를 다룬 소품. 심리묘사가 정말로 흥미진진한 걸작입니다.
 
토마스 버크 "오터모울씨의 손"
추리소설 초창기 최고 걸작 중 하나. 이유는 아주 획기적인 트릭이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이후 여러 후대 작품들에 인용된 걸작 트릭이죠.

로버트 바아 "건망증 있는 사람들"
유머 미스테리. 은화 위조단 추적으로 비롯된 사건이 기발한 사기 사건으로 연결되는 구조도 신선하고 트릭과 전개 역시 유쾌하고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너 "브룩밴드 장의 비극"
장님탐정 맥스 캐러더스 시리즈. 시리즈 최고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과학적이고도 신선한 트릭이 등장한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단, 맥스 캐러더스가 장님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설정상 감점요소가 좀 있고 결말이 좀 개운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하여간 이 작가는 전개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로드 던세이니 "두병의 소오스"
로얄드 달이나 스텐리 엘린류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 지금 읽어도 굉장히 충격적이고 기발한 결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화자를 통해 전개하는 작품의 스토리텔링이 무척이나 빼어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멜빈 데이비슨 포스트 "둠도프 사건"
서부개척 탐정 엉클 애브너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은 동서 문고 시리즈로도 접할 수 있죠. 하나님 어쩌구 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전개는 짜증나지만 기발한 트릭만큼은 일품이었습니다.

G.K 체스터튼 "기묘한 발소리"
브라운 신부 시리즈. 지금은 정식 간행되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리즈 최고작이라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좋은 작품이죠.

로널드 K 녹스 "밀실의 신비주의자"
밀실 트릭의 새로운 지평을 열은 단편. "김전일" 시리즈 중 한편인 <이진간촌 살인사건>의 서브트릭으로 사용될 정도로 추리 소설계에 유명한 트릭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작품이죠. 지금 읽는다면 트릭이 좀 뻔해보이기도 합니다만...

휴 월폴 "은가면"
착한 부인이 자신의 선행에 의해 파멸해 나가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그린 독특한 작품. 이색적이고 좀 서늘한 유머가 있는 작품입니다.

윌키 콜린즈 "사람이 오만하면"
전체가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진행에 추리소설로 나무랄데 없는 전개를 가진 걸작입니다. 유머러스한 문체까지 곁들여진 초기 영국 추리 문학계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죠.

E.B 오르치 "더블린 사건"
구석의 노인 시리즈. 역시 동서문고로 간행되어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최고 걸작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발상의 역전이 기발한 작품으로 당대의 명탐정의 반열에 오른 구석의 노인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A.모리슨 "렌턴관 도난사건"
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역시나 추리소설 역사에 남을만한 멋진 트릭이 등장합니다. 또한 이 트릭을 풀어내기 위한 단서도 굉장히 합리적이라 단편 추리소설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덧붙이자면 아주 오래전 <세계의 명탐정 50인>에 등장했던 바로 그 트릭입니다. 전개가 조금 밋밋한 것이 약간 아쉽네요.

도로시 L 세이어즈 "의혹"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걸작.

2015/05/20

멀리 돌아가는 히나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멀리 돌아가는 히나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고전부 시리즈" 네번째.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단편집입니다. 가을, 겨울을 거쳐 봄방학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죠.

각 이야기별 줄거리 및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가미야마 고등학교 7대 불가사의 중 첫 번째라는 "비밀클럽의 권유 메모"를 찾는 내용입니다. 소박한 학교 관련 일상계 소품으로 추리적으로도 별다른건 없습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시체를 숨기려면 전쟁터에"라는, 브라운 신부 단편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에서도 인용되었던 격언이 핵심이지요.

그래도 이야기 서두에 등장하는 음악실 괴담에서부터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호타로의 행동이 잘 연결되는 결말 부분의 반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상계도 이런 반전이 가능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에요. 사토시도 의외로 정곡을 찔러서 만만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요. 여기에 음악실 괴담까지 해결해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풍성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추리지만 이런 게 고등학교 무대에 적합한 트릭이겠죠. 여기가 뭐 부동고교도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일상계 왕도를 걷는 작품이에요. 시리즈 팬에게 여러 가지 재미를 선사해 주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대죄를 짓다"

수학선생님이 진도를 착각한 이유에 대한 아주 짤막한 이야기. 진상은 소문자 a와 d를 착각했다는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입니다. 그냥 화를 낸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지탄다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그것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과연 화를 내는 것도 에너지 낭비인 건지 좀 궁금하네요. 별 내용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정체 알고 보니"

고전부원들이 온천 여행을 떠나는데 숙소인 여관에서 지탄다와 마야카가 목매달아 죽은 시체의 유령을 본다는 이야기. "고전부" 시리즈 추리의 핵심, 즉 "신경쓰이는" 지탄다를 납득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게 잘 드러납니다. 진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추리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전달되는 단서들을 조합하여 나름의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기는 합니다. 유카타를 말리기 위해 헤어드라이어를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뭐 그런 변수까지 다 등장시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겠지요.

"고전부" 시리즈의 핵심을 꿴다는 측면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기억이 있는 자는"

"10월 31일, 역 앞 고분도에서 물건을 산 기억이 있는 자는 지금 즉시 교무실 시바자키한테 와라." 라는 교내 방송에 대한 호타로의 추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누군가가 한 말을 추리해서 의외로 숨겨져 있는 범죄에 대한 진상을 파헤친다는 건 "9마일은 너무 멀다"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호타로가 지탄다를 납득시켜 승부에 이기기 위한, 순수한 추론일 뿐이거든요. 몇 가지 증거, 즉 방과 후에 호출 방송을 한 것, 학생지도부가 아니라 교감이 불렀다는 것, 10월 31일이라고 날짜를 지칭한 것, 방송을 두 번 반복하지 않은 것 등만 가지고 추론을 이끌어내는 호타로의 솜씨는 인상적이지만 진상이 위조지폐와 관련된 범죄라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새해 문 많이 열려라"

새해 참배에서 창고에 갇히게 된 호타로와 지탄다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소동극. 너무 추운 날에 남녀 단 둘이서 신사 창고에 갇힌다는 설정은 만화스럽습니다. 궁지에 몰리고 별다른 수단이 없는 둘이 가진 몇 가지의 소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펼쳐지는 과정은 일종의 모험담이라고 봐도 될 테고요. 이전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팥을 담은 주머니 양 끝을 묶어 전달했다"는 고사를 효과적으로 써먹는건 좋았습니다. Side라는 부제로 구분하여 이바라와 사토시 시점, 호타로와 지탄다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이니시에이션 러브" 같은 전개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유실물이 무녀 아르바이트 중인 마야카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운에 의지한 작전이라는 것, 창고에 갇힌 시점에서 지탄다의 체면을 그렇게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을지 잘 납득이 안 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고전부" 시리즈의 핵심인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계로 보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제 초콜릿 사건"

이바라 마야카가 사토시에게 주려던 초콜릿이 고전부실에서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별 건 없지만 고등학생의 순진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 즉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면 더 편한 마음으로 지내던 사토시가 마야카에게 집착해야 하는 딜레마를 다룬 이야기라 생각하고 보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별로라 잘 와닿지는 않더군요. 특이한 캐릭터를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이런 류의 평범한 일상계 사랑이야기에는 적합한 캐릭터들은 아닌 탓입니다. 일상계라면 보다 일상계다운 주인공이 나와 주는 것이 훨씬 좋았을 거예요. 또 에너지 절약 주의, 즉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는다는 호타로만큼이나 특이한 사상을 가진 사토시 같은 고등학생이 실존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멀리 돌아가는 히나"

표제작. 제목 그대로 히나 축제에서 히나 인형(으로 분장한 지탄다)이 다리에 생긴 문제로 멀리 돌아가게 된 경위를 밝혀내는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그러나 이 추리는 곁가지일 뿐이고 내용은 히나 인형 옆에서 우산을 받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호타로와,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 지탄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전 편의 사토시의 심리묘사보다는 호타로 묘사가 괜찮아서 그런대로 괜찮게 읽혔습니다. 사토시는 3인칭이고 호타로는 1인칭인 덕분입니다. 훨씬 말랑말랑하고 귀엽고, 여튼 좋았어요.

아울러 히나 인형이 돌아가게 된 계기 역시 일상계답게 괜찮았습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럴듯했거든요. 공정한 정보 제공도 돋보였고 말이죠. 별점은 3점. 묘사, 전개, 추리적인 부분 모두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일상계 작품다운, 평범하게 재미있는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챙겨볼 만한 시리즈임에는 분명해요. 이 시리즈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호타로와 지탄다의 관계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해집니다. 후속권이 빨리 나와주면 좋겠네요.

2004/08/26

부부탐정 - 애거서 크리스티 : 별점 2.5점

부부탐정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기원 옮김/해문출판사

토미와 터펜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 토미와 터펜스 부부 시리즈는 부부탐정이라는 설정과 부부가 함께 하는 모험이라는 이야기 구조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걸작 시리즈죠.

장편 "비밀결사"에서 등장하여 결혼에 이른 부부 토미와 터펜스. 그들은 토미 숙부의 유산으로 넉넉하게 살아가지만 이전의 모험적인 삶을 그리워 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정부의 카터라는 인물로부터 데어도어 블런트라는 탐정의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에 주목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내용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마 연재때문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해 봅니다) 모두 23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후편으로 나뉘어진 작품도 많고 부부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게 된 경위가 나오는 첫번째 작품은 제외한다면 총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트릭이 가미된 유머스러운 추리 모험 활극으로 토미와 터펜스라는 부부의 유머와 재치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무엇보다 여러 명탐정을 각 편마다 인용하며 나름의 경의를 표한 크리스티 여사에게 감탄했습니다. 현재는 잊혀진 탐정들도 있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탐정들도 있지만 이런 인용으로 보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네요.

때문에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 굉장한 논리나 사건은 없지만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만큼, 부부탐정 팬 분들에게는 강추드립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작품 "차라도 한잔" 은 파리를 날리는 사무소의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터펜스의 사기극(?)으로 부부의 익살과 접수 소년의 재치 등 유쾌함이 넘치는 소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 가치는 빵점이네요...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죠.

두번째 작품 "분홍색 진주 사건"은 첫번째 사건에서 만족한 의뢰인이 소개한 의뢰인이 자신의 집에서 사라진 값비싼 진주를 찾아 줄 것을 요청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은밀한 조사를 의뢰받는데 손다이크 박사를 흉내내는 토미가 단순한 사실에서 진상을 꿰뚫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수수께끼가 모두 풀린 것 같지는 않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세번째 작품 "이상한 불청객 사건"은 첫머리에 등장하는 블런트라는 원래 인물이 연루된 국제적인 범죄조직에 납치된 토미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나는 이야기로 첫부분에 등장하는 담배갑과 연관된 재치가 상당히 돋보이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토미가 인용하는 불독 드러먼드라는 캐릭터는 조금 궁금하더군요.

네번째 작품 "킹을 조심할것 & 신문지 옷을 입은 신사"는 초반에 토미와 터펜스가 이야기하는 신문지의 인쇄오류와 가장 무도회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연관시켜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으로 변장 트릭이 등장합니다. 조금 흔한 트릭이긴 하지만 재치와 유머가 넘쳐 꽤 재미있습니다. 전형적인 크리스티 여사의 트릭과 전개방식이지만 캐릭터를 달리 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만드는 이야기 구성력이 돋보였어요.

다섯번째 작품 "부인 실종 사건"은 유명한 탐험가에게서 실종된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뒤 그녀가 사라진 마을에 찾아가 악덕 의사의 소굴에 잠입하여 진상을 밝혀내는 부부의 활약이 그려집니다. 서두에 토미의 셜록 홈즈 흉내가 굉장히 인상적이며 웃깁니다.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복선으로 인용하는 막판 반전이 꽤 재미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여섯번째 작품 "장님 놀이"는 제목 그대로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가 아니라 콜튼이라는 모르는 탐정이더군요)을 흉내내기 시작한 토미가 안대를 착용하고 다니다가 세번째 작품의 조직에게 다시 위협받는데 요리 주문할때의 숨겨진 암호문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긴박감이 좀 떨어지고 토미의 안대에 대한 비밀이 말 한마디로 끝나는 구조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범작입니다.

일곱번째 작품 "안개속의 남자"에서는 토미가 브라운 신부를 흉내내네요. 하지만 이야기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크리스티 여사의 전형적 구조로 진행됩니다. 안개에 묻혀 통행이 뜸한, 입구에서는 경찰이 서 있었던 밀실과 같은 집에서 한 여배우가 살해당한 후 진범을 잡는 내용으로 트릭이나 범인은 후대 작품에서 비슷하게 써먹은 것이 많아 신선하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연대를 볼 때는 분명 여사님이 시대를 앞서 가신 것이죠. 여사님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여덟번째 작품 "위조지폐범을 찾아라"는 제목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범인역도 신선했고 모험소설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있어서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홉번째 작품 "서닝데일의 수수께끼"에서는 "구석의 노인"까지 등장합니다! 구석의 노인 흉내를 내던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신문을 읽으며 미궁에 빠진 서닝데일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안락의자형 탐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구석의 노인의 이야기 진행방식까지 유사하게 차용한 재치가 돋보이며 추리적으로도 상당히 완성도 있는 작품입니다.

열번째 작품 "죽음이 숨어있는 집"에서는 꽤 재미있게 읽었던 "독화살의 집"의 아노 탐정이 인용되네요. "독화살의 집" 탐정의 인용작품 답게 저택에서 독살당한 가족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구성과 마무리까지 깔끔한 수작입니다만 모처럼 찾아온 미인 의뢰인이 독살당해 죽는다는 설정은 조금 마음에 안 들더군요....

열한번째 작품 "철벽의 알리바이"는 동시에 두곳에 존재한 한 여인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트릭인데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 프렌치 경감이 인용됩니다. 하지만 트릭 자체는 실망스러운 범작이었어요.

열두번째 작품 "목사의 딸 & 레드하우스"는 암호해독 트릭입니다. 부유한 아버지의 백모로부터 돈은 없이 저택만 상속받은 목사의 딸이 집을 팔라는 끊임없는 권유와 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으로 괴로워 하다가 토미와 터펜스에게 조사를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미 이 부분부터 눈치빠른 독자들은 "저택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라고 느끼실 것 같은데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일종의 보물찾기로 꽤 괜찮은 암호문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잘 만든 암호문입니다)이 재미있습니다.

열세번째 작품 "대사의 구두"는 설정이 상당히 기발합니다. 자신의 구두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가진 사람과 가방이 바뀌었던 미국 대사가 가방이 바뀌었다고 하며 되찾아간 사람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토미와 터펜스 부부를 찾아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거든요.
가방안에 들어있던 것은 대사의 구두 뿐이었기 때문에 토미와 터펜스는 구두 안에 무언가 다른것이 숨겨져 밀수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범인을 밝혀내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포튠이라는 탐정이 인용되는데 아직 작품을 읽지 못해서 아쉽더군요. 트릭은 대단치 않지만 워낙 설정이 독특하고 모험소설적인 부분이 많아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작품 "16호 였던 남자"는 작품집 초반에 등장했던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스파이로 경찰이 체포를 노리는 수수께끼의 16호를 잡기 위한 마지막 모험이 벌어지는 내용으로 첩보물 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트릭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2004/11/07

식인 달팽이 - 정태원 엮음 : 별점 3점

추리소설 매니아이자 번역가로 잘 알려진 정태원 선생이 직접 엮은, 도서출판 동숭동에서 발간한 정체불명의 환상문학 단편 앤솔러지. 어느 앤솔로지를 번역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꽤 괜찮은 작품들과 작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입은 꽤 오래전에 했는데 이제야 독파하게 되었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프레데릭 브라운 -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
  2. 오거스트 덜레스 - 또 하나의 아이
  3. 로버트 블록 - 변심
  4. 레슬리 폴스 하트레이 - 주말의 손님
  5. 레이 브레드버리 - 장의사
  6. 헨리 슬레사 - 신의 은총
  7. 존 콜리어 - 특별 배달
  8.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 - 식인 달팽이
  9. 잭 요네 - 암코양이 미나
  10. 재럴드 커슈 - 바다로 가는 슬픈 길
  11. 브랫리 스트릭랜드 - 묘비명
  12. 찰즈 보몬트 - 자장가
  13. 리차드 마티슨 - 나의 꿈꾸는 여자

제법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만족도가 상당했어요.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여, 개인적인 베스트 5는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 "변심", "신의 은총", "바다로 가는 슬픈 길", "나의 꿈꾸는 여자"를 꼽고 싶네요. "식인 달팽이"는 스릴과 서스펜스 면에서는 괜찮긴 했지만 좀 뻔한 내용이었고 "장의사"는 공포와 기발함에서는 다른 작품에 뒤지지 않지만 결말이 약간 시시한 것 같아 아쉽게 뺐습니다. 작품별 간단 리뷰는 아래를 참고하시길.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
거장 프레데릭 브라운 작품입니다. 한 기묘한 피리 ("오보아"라고 하더군요)를 둘러싼 한 음악인의 집요함에 대한 묘사와 특히 "하메룬의 사나이"까지 인용한 반전이 무척 괜찮은 소품입니다.

<또 한명의 아이>
한 그림속에서 환상을 본 노인이 결국 그림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인데 TV시리즈 같은 곳에서 보아왔던 소재라 그런지 신선함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동화적인 분위기는 괜찮았어요.

<변심>
이런저런 앤솔로지에 가끔 소개되는 로버트 블록의 작품으로 한 청년과 시계수리공 노인, 그리고 노인의 병약한 딸을 둘러싼 이야기인데 마지막 결말이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공포소설로도 읽힐 수 있지만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상당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주말의 손님>
유명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극중 인물에게 위협받는다는 내용으로 두번째 작품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이미 보아왔던 약간은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그닥 참신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장의사>
역시나 거장인 레이 브레드버리의 단편입니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장의사와 그에게 놀아난 시체(?)들의 복수극으로 기괴하고 섬뜩하긴 한데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뭔가 조금 아쉬웠달까요. 클라이브 바커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바커 스타일의 적나라한 고어 호러가 더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신의 은총>
꽤 유명한 작가 헨리 슬레사의 단편으로 한 신부와 경마 도박꾼의 약간 기묘한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승부에서 이긴다!"라는 이유로 성당에 계속 헌금하는 도박꾼과, 그것을 말리면서도 결국 세속적인 감정에 흔들리는 신부의 아이러니컬 하면서도 유머스러운 묘사가 상당히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특별배달>
영화 "마네킹"의 원안쯤 되는 작픔입니다. 마네킹에 연정을 느끼는 한 청년에 대한 집요한 묘사는 돋보이지만 그닥 재미도 없고 튀는 부분도 없는 작품이네요.

<식인 달팽이>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 여사의 작품이긴 하지만 스티븐 킹 작품이라고 해도 통할만큼 여사 작품치고는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입니다. 식인 달팽이와 한 과학자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데 "괴물"과 미약한 투쟁을 벌이는 인간에 대한 묘사는 스티븐 킹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바로 그것이더군요. 거장의 작품답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재미도 상당하고요.

<암코양이 미나>
이 작품집 중에서 가장 처지는, 워스트 작품입니다. 뻔한 소재에 뻔한 결말.... 반전도 그닥 없고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로 보여집니다.

<바다로 가는 슬픈 길>
현대판 "죄와 벌". 삶에 지친 한 남자가 수금원의 독촉에 시달리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후 항상 꿈꿔왔던 바다로의 도피를 시도한다는 내용인데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을 다루는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문학적 수준도 상당한 편이고요. 왠지 다른 순문학 단편선에 실려야 할 작품이 잘못 온 것처럼 약간 쟝르가 맞지 않는 느낌도 주지만 완성도는 굉장히 뛰어난 작품입니다.

<묘비명>
남북전쟁 후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한 청년이 느끼는 한 묘비에 대한 의문과 공포를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마무리 한 소품으로 그다지 언급할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자장가>
한 어머니의 광기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소품입니다. 역시 다른 곳에서 많이 인용된 소재라 그런지 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나의 꿈꾸는 여자>
필립 K 딕과 쌍벽을 이룬다는 (하지만 들어본 적은 없는) 리차드 마티슨의 SF적인 단편입니다. 예지능력을 가진 여자를 이용한 협박자가 협박에 실패한 분노로 여자를 죽이는데 여자가 죽어가며 그 협박자가 죽게되는 상황을 예언한다는 내용으로 짧지만 인상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였습니다.

2020/10/0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 신예용 : 별점 2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4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코너스톤

1890년대 후반에서부터 1940년대 까지, 추리소설의 여명기와 황금기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여러가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이런 류의 앤솔러지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이 접해보았지만, 국내에 비교적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시리즈 작품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퀸의 정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를 느끼기는 함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인 탓입니다. 여러모로 설득력도 떨어졌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초창기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같은 사람이 많이 없는지 재정가로 가격이 3000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가격도 착하거든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터들리 농장의 공포" 

의사인 나에게 스터들리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병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스터들리 농장으로 찾아가 준남작과 만났는데, 준남작은 자신이 밤마다 유령을 보는 탓에 공포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준남작과 방을 바꾸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는데...

코난 도일이 "마지막 문제"를 발표하며 '스트랜드 매거진'에 셜록 홈즈 단편 연재를 중단했을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구멍을 메꾸고자 투입한게 바로 이 작품이 포함된 '어느 의사의 일기 시리즈' 였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의사'인 핼리팩스 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로 '퀸의 정원' 에서는 최초의 '의학 미스터리'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아쉽게도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품 발표 계기, 그리고 연재 시점을 보면 정통 본격물의 시조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여명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스터들리 준남작과 부인의 방은 옷장의 비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부인이 저승길 동행을 위해 준남작에게 밤마다 유령쇼를 펼쳤다는게 진상인데, '나' (핼리팩스 박사)가 침실을 바꾸고 유령을 목격한 뒤, 유령이 나타난 옷장을 수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변장만 하고 추리를 펼치지 않는다면, 이를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잖아요?

스터들리 부인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인은 '나'가 준남작에게 두뇌 질환으로 환영을 보는 걸로 이야기해줄걸 기대했다는데,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가 유령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을거라 생각한건 영 납득이 가지 않네요.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아울러 '의학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 초창기 단편 중 한 편을 만나 보았다는 기쁨, 그리고 오스틴 프리먼손다이크 박사 이전에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탐정이 있었다는 사료적 가치, 마지막으로 스터들리 부인이 유령을 만들어낸 장치가 배터리에 연결된 전등이라는 상당한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금고실의 다이아몬드" 

헤드와 친구 두프라이어는 둘의 세계적인 악녀 마담 콜루치가 다이아몬드 상인 칼튼의 파티에 초대된 걸 알고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마담 콜루치는 칼튼 부인의 전남편이 살아있다며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동시에, 칼튼 부인을 시켜 빼돌린 로체빌 다이아몬드를 칼튼의 철벽 그곳에서 훔쳐낼 계획이었다....

L.T. 미드와 로버트 유스터스가 합작하여 1890년대 후반 발표되었던 연작 단편집 "일곱왕 연맹" 수록작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악녀로 비밀 범죄 조직 '일곱 왕 연맹'의 총수인 마담 콜루치와 과학자이자 탐정 노먼 헤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네요.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역시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이 단편은 그 수준이 아주 미흡해요. 내용부터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헤드와 마담 콜루치와의 대결이 등장하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헤드의 활약이라고는 고작해야 칼튼 부인을 설득해서 전 남편에 대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도 실패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래서야 명탐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못하는게 없는 희대의 악녀인 마담 콜루치 캐릭터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됩니다. 또 열쇠를 돌리면 비상벨이 울리는데, 울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칼튼의 열쇠를 조작해서 열쇠의 머리 부분만 헛돌게 만든 거지요. 즉, 열쇠를 돌려도 잠기지 않은거고, 당연히 다시 열어도 벨이 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열쇠를 돌릴 때의 저항감, 소리, 마지막으로 금고가 정말 잠겼는지 확인을 왜 안했는지 등 딴지를 걸자면 끝도 없지만, 열쇠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걸 일이루어 낸, 대담한 발상의 트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작 단편을 이어서 다 읽는다면 모를까, 이 작품 하나만 읽고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욱 많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 스페이드" 

맥스 블리스가 협박 받고 있다는 전화를 스페이드에게 남긴 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샘 스페이드는 아는 형사 던디 등이 수사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대실 해밋이 쓴 샘 스페이드 단편입니다. 묵직하고 거친 사나이 매력을 담뿍 풍기는 이야기이며, 피해자의 딸이 몰래 만나던 불륜남, 광신도이면서 못생긴 가정부 에피 부인이 묘하게 엮여서 사건이 복잡해 지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는데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다는게 놀랍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피해자의 동생 시어도어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시체에 놓여져 있던 '새 넥타이' 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은 본격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요. 피해자는 옷을 벗던 중 살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럴 경우 매고 있던 넥타이가 아니라 새 넥타이가 놓여져 있는건 이상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발견한 스페이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요. 

샘 스페이드는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4시 5분전 쯤 받았는데, 시어도어는 4시에 법정에서 결혼을 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에 대한 트릭도 간단하고 깔끔합니다. 시어도어는 3시 30분 쯤 피해자를 죽이고 법원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전화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하고 전화를 걸은 겁니다.

물론 스페이드가 한 추리의 증거가 범인 시어도어 손에 난 상처 뿐이라는건 빈약합니다. 상처가 났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까요. 가정부 에피 부인도 손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이한 상처도 아니고요. 손의 상처보다는, 법원에서 전화를 건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대입해 보는 식으로 풀어갔더라면 더 깔끔했을 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시어도어에게 협박?의 댓가로 지불한 돈은 2만 5천불일텐데 2'억'으로 기입된 오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와의 결합에 성공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퀸의 정원'에 소개된 "샘 스페이드의 모험" 수록작으로 이 책은 역사적 중요성, 희소성은 물론 퀄리티까지 인정받고 있네요. 당연합니다.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계"

8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로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수록작과 동일합니다. 

당시에는 혹평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은 점도 많았습니다. 자브라스키 박사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른 과정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 덕분입니다. 흥분한 자브라스키 박사가 '층을 착각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우연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요. 번역의 차이 때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물론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범죄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는 물씬 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별점 1.5점을 줄 작품은 아니에요. 다시 매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총알"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사장'에게 고용되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하는 사립 탐정 바이올렛과, 부유하고 젊은 사교계의 꽃 바이올렛이라는 설정이 재미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해먼드 씨가 자신의 아기와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아기는 죽은 해먼드 씨의 손에 눌려 질식사했지요. 해먼드 씨 가슴의 총알은 그의 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근접 거리에서 손 총격은 아니었고, 해먼드 부인인 열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 해먼드 씨를 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해먼드 씨 몸 속 총알과 함께 해먼드 씨가 쏜 총알도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바이올렛이 이 두 번째 총알이 어디있는지 추리해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해먼드 씨 몸속 총알은 해먼드 씨의 총에서 발사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과학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앞서 거의 단언하다시피한 정황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본격 추리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총알을 아기가 삼켰고, 그것 때문에 질식한 것이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해먼드 씨가 아니라 총알이 후두를 막은게 질식사의 원인이 된 거지요. 어디론가 사라진 총알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손 꼽을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이 진상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참고로, '퀸의 정원'에서는 A.K 그린 (애나 캐서린 그린)의 "미스터리의 걸작들" 이라는 단편집을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아닌 듯 하네요. 가치가 크게 다를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급행열차 안 객실에서 르웰린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권총이 사라진 탓에 자살은 아니었는데, 객실 문은 1인치 정도 열린 채 쐐기로 고정되어 도저히 열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승무원과 승객의 신분도 모두 확실했으며, 그들이 범인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열차를 떠났을 텐데, 객차의 앞 쪽 침대칸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며, 뒷 쪽 3등칸에는 아이가 울어 달래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객실 문 옆 승객이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은 열차를 어떻게 떠났을까?

고전 본격물의 걸작 "통"과 '프렌치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운 내용을 F.W. 크로포츠 본인이 오랜 철도업 종사자라 쓸 수 있었을 상세한 기차 구조 설명에 할애하고 있지만, 열차의 구조와 얼마나 불가능한 범행이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런 기차 여행이 흔했던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기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 지금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더욱이 역부족이었어요. 차라리 만화라던가, 최소한 삽화 등으로 트릭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범행이 밝혀지는건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범인의 고백이라는 점에서도 추리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친구 르웰린에게 연인을 빼앗기자 복수심에 저지른 치정 범죄라 트릭은 알 수 없어도 동기만 확인되면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경찰은 도대체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퀸의 정원'에도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니 지금 와서 읽을 가치는 별로 없겠지요. "통"이나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살인자" 

서밋 이라는 도시에 찾아온 맥스와 알은 식당에서 식사를 시킨 뒤, 사장 조지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 닉을 협박하며 그들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올레 앤더슨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올레 앤더슨은 식당 단골로, 킬러들은 그를 기다리는데...

미국 현대 문학 거장인 헤밍웨이의 작품인데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느낌이 나는 드라마거든요. 킬러가 등장해서 식당 관계자들을 협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추리 애호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과 죽음을 의인화하여 드라마로 풀어낸 짤막한 꽁트라 생각됩니다. 2인조 킬러는 식당 관계자에게는 급작스러운 소나기와 다를게 없는 불운, 올레 앤더슨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닉은 불운과 죽음 모두를 맛 본 뒤, 서밋이라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는걸 보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지요.

짤막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닥없는 우물" 

전쟁 영웅인 노장 헤이스팅스 경이 고대 아랍 전설이 얽혀있는 오래된 바닥없는 우물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함께 있었던 보일 대위가 유력한 용의자로, 그는 헤이스팅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체스터튼의 단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한 편으로, 시리즈 제목 그대로인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혼 피셔가 주인공입니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영국 식민지 공무원이지요.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던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영국 제국 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영국 정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게 인상적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아니라 식민지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쓴 이유가 명확해 보였어요. 신부님이야 아무래도 용서와 화해를 권했을테니, 이런 류의 독설에는 적합하지 않았을테지요.

추리적으로도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일 대위가 범인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게 진상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득력있게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헤이스팅스 경이 먼저 보일 대위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가로 산책을 제의했다는게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게 좋았어요. 보일이 죽으면 시체를 우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보일은 범인이 아니기에 시체 앞에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고요.
범인이 독을 마신건 순전히 회전식 책꽂이 때문에 찻잔이 뒤바뀌어 일어난 사고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물론 충동적인 범행에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고라는건 합리적인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한 솜씨는 과연 거장의 그것이었어요.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시카고의 여성 상속인" 

롬니 프링글은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이상한 남자가 공들여 편지를 쓰는 광경을 본 뒤, 그의 편지 압지를 빼돌렸다. 암호와 같은 압지 문구 해독을 통해 '실링하머'라 자칭하는 남자가 런디 후작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손다이크 박사'로 잘 알려진, R.A. 오스틴 프리먼의 롬니 프링글 시리즈 단편입니다. '퀸의 정원' 분류에 따르면 엄청난 희귀본이라고 하네요. 롬니 프링글은 도둑이자 사기꾼인 안티 히어로인데, 이 작품에서는 협박자 실링하머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이 차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링하머가 후작을 협박하는게 모두 이미 발표되었던 신문 기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무슨 범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런디 후작이 형들과 아버지를 살해하고 작위를 물려받았을 줄 알았는데, 단지 그들이 '자살'했다는 진상도 협박거리가 될 걸로 보이지 않았고요.

롬니 프링글의 작전 역시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실링하머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마지막에 경찰을 자칭하여 그를 잡아서 돈 지갑을 빼앗는 것도 여러모로 어설퍼보였거든요. 압지의 글귀 해독도 논리가 뒷받침 되어있는 암호 해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요.
경찰을 자칭하고 후작을 찾아가, 협박자에게는 현금을 주는게 낫겠다는 조언을 하는 장면만 조금 그럴듯 했을 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역서적 가치', '희소성'에 '퀄리티' 가치까지 부여받은 3관왕인데, 동의하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04/07/26

트렌트 마지막 사건 -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 손정원 : 별점 2점

트렌트 마지막 사건 - 6점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미국의 대부호이자 제계의 거물인 시그즈비 맨더슨이 영국의 자택 근처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의상을 갖춰 입었지만 틀니를 하지 않았고, 자살로 보기에는 근처에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집 가까이에서 살해되었는데 아침까지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 점 등으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사건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위해 런던의 신문사 레코오드지의 주필 모로이경은 화가이면서도 민완 탐정으로 뛰어난 지혜를 발휘해 온 필립 트렌트를 고용했다. 트렌트는 맨더슨의 전날의 행적을 시간대별로 추적하여 유력한 용의자를 알아냈지만, 미망인 메이벨을 위해 사건을 공표하지 않고 사건은 맨더슨의 미국에서의 원한 때문에 만든 적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행으로 일단락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건이 1년 정도 지난 후에 트렌트는 메이벨을 우연히 다시 만나 사건을 다시 되짚은 뒤 모든 진상을 알게 되는데….

브라운 신부의 저자 체스터튼의 절친한 친구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필립 트렌트라는 명탐정을 등장시켜 수수께끼 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죠.

제목이 마지막 사건이라 저는 처음에는 필립 트렌트 시리즈 중 완결편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뒷 부분의 해설을 보니 저자 벤틀리의 장편 데뷰작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데뷰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에다가, 탐정의 캐릭터도 상당히 명확한 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 한명만 살해되고, 용의자로 압축될 수 있는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데 비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어서 읽기에 좀 지루합니다. 사건과 관계없는 부분의 묘사가 많지는 않지만 대체로 장황하고 서술적이라 더욱 그랬어요. 초반부터 등장해서 트렌트와 굉장한 두뇌싸움을 보여줄 것 같았던 마아치 경감은 중반 이후 등장하지도 않는 등, 쓸데없는 캐릭터까지 등장해서 소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지루함을 가중시키고요. 
더군다나 탐정인 필립 트렌트는 화가이자 신문기자, 탐정이라는 설정으로 사건에 투입되는 과정은 “노란방의 비밀”의 룰르타뷔유가 연상되는데, 탐정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감정 과잉인 캐릭터로 별 볼일 없는 유머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듯한 언행을 일삼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미인 미망인 메이벨과의 사랑이 결국 이루어지는 로맨틱한 설정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바로 전에 읽은 “빨간 머리 레드메인즈”와 정반대의 설정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거기에 보기 드물게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인 마무리는 제법 괜찮은 편입니다. 정통파답게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트릭이나 막판 만전 같은 것은 굉장히 좋거든요. 물론 여기까지 읽어 가는 과정이 무척 힘들지만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발표된 시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루한 부분이 많은 편이라 감점합니다. 정통파 고전 추리물의 원형에 가까운 작품으로 완독한 작품 목록에 추가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로써 구입하고 읽지 않고 남겨두었던 책들을 거의 모두 정리한 것 같습니다. 첫 인상에 “지루하다!”라고 느껴지는 작품들은 백발백중 지루한 편이라 한번 날 잡아서 읽어주지 않으면 사실 계속 읽기가 힘든 편인데, 이번에 뭔가 숙제를 끝낸 것 같아 개운하네요. 요사이 좋은 추리 장편들이 상당히 많이 번역되어 나오는 계절이지만 다음에는 기분 전환 겸 해서 가벼운 추리 단편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2005/07/11

제리코의 죽음 - 콜린 덱스터 / 이정인 : 별점 3.5점

제리코의 죽음 - 8점 콜린 덱스터 지음, 장정선.이정인 옮김/해문출판사

모스경감은 한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호감을 느낀 후 옥스퍼드 근처 제리코 거리에 있는 그녀의 집에 우연히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집은 텅 비어있는 상태였고 사실 그녀는 부엌에서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알게된 모스는 스스로 개인적인 수사에 나서서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기 시작하나 그녀의 이웃인 조지 잭슨이라는 동네의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수리공마저도 잔인하게 살해된채 발견되고 사건은 점차 미궁에 빠지게 되는데...


영국 추리 작가협회의 실버 대거상 수상작으로 해문의 모스경감 시리즈 4번째 작품입니다. 3, 4권이 동시 출간되었는데 형이 전부 구입해서 저는 4권부터 읽게 되었네요^^
전개는 다른 모스경감 시리즈와 비슷한 스타일입니다. "작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서 이어진다는 점이 그러하죠. 이 작품에서도 사건은 한 여인의 자살사건과 늙은 수리공 살인사건, 딱 두개만 등장하지만 주변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증언에 거짓말과 진실이 교묘하게 섞여 있으며,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건의 핵심인 것이라는 점도 다른 시리즈와 유사하네요.

그러나 다른 시리즈와 구별되는 특이한 점도 존재합니다. 특히 제가 읽었던 모스 경감 시리즈 중에서는 유일하게 "트릭"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이 등장하는 것이 아주 이채로왔어요. 범인이 정말 머리를 써서 만든 알리바이 공작 트릭인데 기발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작품과 잘 어울릴 뿐더러 기대하지 않고 읽어서인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첫번째 사건인 자살사건의 당사자와 모스 경감이 약간의 교분(?)이 있기 때문에 모스가 정식으로 수사를 지휘하기 전부터 스스로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도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었고요.
그리고 단락이 끝나고 독자에게 힌트를 주듯이 "그러나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였다."라는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 점도 특징인데 이게 제법 감칠맛 있더군요. 중요한 사실임에는 틀림없고, 머리를 싸매며 연구하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경험치를 쌓아가는 느낌이랄까요? 복잡한 설명들을 쌓아올려 막판에 가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요소들이라 후반부가 궁금해져서 열심히 읽게 만드는, 양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모스 경감의 캐릭터도 언제나의 즐거움을 주며 루이스 역시 감초같은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도록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는 등 시리즈 작품으로서의 매력도 확실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추천작. 전형적이지만 독특한 매력의 작품으로 캐릭터를 즐기더라도 재미있고, 정통 추리 독자에게도 만족감을 심어주는 시리즈 작품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단, 이전 "브라운 신부" 완전 번역판때에서도 느꼈었는데, 번역이 지나치게 딱딱합니다. 몰입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영국식 문체 탓일까요?

2016/07/09

검은 수도사 - 올리퍼 푀치 / 김승욱 : 별점 3점

검은 수도사 - 6점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숀가우 교구 알텐슈타트 성 로렌츠 성당의 신부 안드레아스 코프마이어가 독살당했다. 현장을 조사하던 지몬과 야콥 퀴슬은 성당 지하실에서 템플기사단장의 묘를 발견했다. 지몬은 신부의 여동생 베네딕타와 함께 암호 풀이를 통해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섰고, 야콥 퀴슬은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지시로 도적단을 토벌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지몬과 베네딕타 사이를 질투하여 스스로 아우크스부르크로 여행을 떠나는데...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손에 쥔 걸로 만족하는 법이 없지. 하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온단다. 항상. -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 때문에 속상한 마리아에게 산파 스승 슈테흘린이 하는 말.

"왜 항상 그렇게 말이 많은 거야?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죽여." 나타니엘 수사를 죽이고 퀴슬이 하는 말. 나타니엘이 말이 좀 많기는 했습니다...

17세기 바바리아 지방을 무대로 한 역사 추리물 "사형 집행인의 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그런데 시대와 배경이 다를 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느낌이 물씬 납니다. 오래된 유물에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 보물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보물이 예수가 못 박혔다는 십자가라는 종교적 장치가 핵심이라는 점에서요. 성당의 수장이 흑막이라는 점은 "천사와 악마"가 떠오르고, 성물을 찾는 조직과 핵심 성물이 십자가라는 설정은 "용오"의 한 에피소드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우선 읽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지몬과 베네딕타 커플의 암호 풀이, 퀴슬의 강도단 추적, 마리아의 수도사 추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잡한 이야기가 지루함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내용이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약 500페이지라는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17세기 독일 바바리아를 무대로 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시대와 장소, 다양한 인물, 민초들의 삶 등 모든 요소에서 철저한 고증과 설득력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네요.

전작에서 이어지는 캐릭터들의 개성도 여전합니다. 특히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야콥 퀴슬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지성과 힘을 겸비한 먼치킨 캐릭터로 여전히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거든요. 특히 성 요한 예배당에서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결전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매력도 더해져 있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도적단 두목 한스 셸러와의 대화 장면에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정도지요.

지몬 프론비저도 미워할 수 없는 뺀질 캐릭터로 톡톡튀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암호 풀이에서 보이는 대단한 활약은 조금 놀랍기도 했고요. 헐리우드식 버디 무비에서 흔히 등장하는 친구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활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사형 집행인의 딸" 마리아의 존재입니다. 아우크스부르크로 가는 여정에서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우연히 만난 수도사를 미행하다 붙잡히는 등 민폐 캐릭터로만 그려지는 탓입니다.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를 질투하는 장면들도 불쾌하게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인 베네딕타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좋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묘사 등을 통해 마리아의 복제판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녀가 도적단의 일원이라는 반전은 굳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안드레아스 신부의 여동생으로 설정해도 충분했을 텐데, 이야기를 지나치게 확장시켜 오히려 주된 흐름에 방해가 되었어요.

우연에 의존한 전개도 다소 거슬립니다. 마리아가 야코부스를 우연히 만나 미행하고, 다시 우연히 지몬과 베네딕타를 구하게 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다른 인물들의 만남이나 사건 진행도 대부분 우연에 의존하고 있고, 결말에서는 곰팡이 슨 약초로 페니실린을 만들게 된다는 전개까지 등장하는데 이건 많이 억지였어요.

또한 암호 풀이는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해석도 흥미롭지만 독자가 함께 추리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지역 고유의 역사나 지명에 기반한 내용이기 때문인데, 이런 점은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역사 모험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06/11/23

A 사이즈 살인사건 - 아토다 다카시 : 별점 3점

북오프에서 구입한 책. 저자 아토다 다카시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죠. 약간 로얄드 달 분위기도 나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추리물로도 상당히 유명하나 국내에 소개된 것은 없어서 아쉽던 차였는데 우연찮게 북오프에서 발견하여 서슴없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정통 추리 단편집이라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일어 원서다 보니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잡은지 1주일만에 겨우 대충이나마 다 읽게 되어 포스팅합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탐정역의 캐릭터로 탐정이 "묘법사"라는 절의 주지승입니다. 즉, 스님 탐정이죠.(만화 "잇큐"도 있지만 워낙 허접한 만화라...) 작중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시체 때문에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것은 형사- 스님이 똑같다라는 점이 와닿기도 하네요. 어쩐지 "브라운 신부"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단지 직업이 독특한 것에 그치지않고 작품이 진행되어 나가면서 하나씩 성격과 매력이 드러나는데 세속의 여러 풍습과 문화에 굉장히 밝고 술과 고기도 즐기는 괴승으로 주인공 형사와 바둑을 두며 선문답 형식으로 추리를 전개해 나간다는 설정이 이색적이고 새로왔습니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잘 살아있는, 유머러스하게 묘사된 성격 역시 딱 제 스타일이더군요. 한마디로 이런 독특한 탐정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이 스님이 바둑친구이자 형사인 사사무라가 미해결 사건을 들고오면 사건 이야기를 듣고 추리하며 바둑을 둔다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 추리물로 추리가 잘 풀리면 바둑이 강해진다는 디테일도 좋고 연재 당시의 계절과 세월의 흐름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 부분이고요. 또한 트릭들 역시 본격에 가까운 정통적인 퍼즐 미스터리라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트릭에 큰 무리가 없으며 인간 심리를 이용하여 범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재구성도 꽤나 합리적이었고요.

물론 스님이 던지는 질문과 그것을 통해 추리를 이어나가는 과정의 설득력이 약간 떨어진다는 점은 약간 아쉽습니다. 그리고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 선문답으로 추리를 진행한다는 설정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용의자 중 이과대학 출신의 인물은?" 이라는 질문을 "용의자 중 가장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이라고 물어보는 식이니까요. 너무 추리물에 어울리게 빙빙 꼬아 놓았다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도 대체로 작품 모두가 단편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이야기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결론내리자면 아토다 다카시라는 작가의 재발견이랄까요? 기존에 많이 접했던 섬뜩한 느낌의, 또는 기발한 상상력의 중단편보다 저는 이 추리 단편들이 훨씬 마1음에 들었습니다. 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제 허접스러운 일본어 실력으로도 독해가 가능할 정도로 짤막짤막한 대사들로 구성된, 짤막하게 압축된 작품들이라는 것도 좋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저의 베스트는 트릭이 절묘한 표제작 "A 사이즈 살인사건", 그리고 기묘한 상황과 설득력 있는 트릭이 잘 부합하는 "2LDK 개미지옥" 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한번 번역해보고 싶네요.

그런데 문예춘추사 문고본인데 한자에 독음이 달려 있지 않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을 잘 알아보기 힘들더군요. 아쉽...

PS : 무려 24년전에 발간된 책이긴 하지만 단돈 2천원으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북오프 만세!)


1. A 사이즈 살인사건 :
호텔 뒷편 저수조에서 젊은 여자의 사체가 발견된다. 인적이 뜸한 곳이며 동기 등을 본다면 여자가 속해 있던 학생 오케스트라 멤버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과도 같은 상태.
표제작으로 사사무라가 묘법사에 바둑을 빙자한 사건 의뢰를 하는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관련된 설명이 조금 길게 실려 있긴 하나 무리없이 깔끔하게 흘러갑니다. 무엇보다도 트릭이 상당한 수준이며 정통적인 방법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단, 제목이 내용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트릭과 별 상관없는 것이라 약간 맥이 빠지긴 합니다. 단편집을 출간하면서 제목을 바꾼 모양인데 원제였던 "A 컵 살인사건" 쪽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게 그거지만. 어쨌건 좋은 작품. 별점은 3.5점입니다.

2. 2LDK 개미지옥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 돌아오는데 모르는 남자가 알몸으로 욕조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남자는 신혼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인물.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살해 되었는가?
모르는 남자가 집 욕조 안에서 죽어 있다...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하나 사건 자체는 합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매력적인 작품. 트릭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이 남자를 살해하는 과정의 재구성이 정말 딱딱 들어맞거든요. 딱 한가지 문제점이라면 경찰 수사로도 충분한 내용이었다는 것인데 사사무라가 너무 스님에 의존하는 것 같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3. 구두와 미약과 3인의 여자
한 남자가 독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결혼했지만 3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플레이보이. 3명의 여성을 조사하지만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동기도 명확하지 않다. 스님은 그 남자의 넥타이와 구두에 주목하는데...
독살 이야기인데 깔끔하게 전개되고 스님의 선문답도 이 작품에서는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완성도도 높지만 무엇보다도 진상이 정말 의표를 찌르는 것이라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좀 시시한 편이라 약간 소품같은 느낌이 들긴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4. 이중 인격의 죽음
한 기업 기숙사의 가장파티에 손님으로 참석했던 남자가 창고에서 목을 매단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로 보이지만 사사무라 형사는 자살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타살이 아닐까 생각하나 유력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 그는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묘법사로 찾아온다.
자살을 가장한 타살은 살인의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추리소설에서 이러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이 작품은 그러한 맹점을 잘 파고들은 괜찮은 단편입니다. "가장파티"라는 특정 상황을 이용한 효과적인 트릭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5. 맨발로 천국에
한 남자가 맨션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러나 사사무라는 죽은 남자가 구두를 정돈하지 않고 엉망으로 해 놓은 점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투신 자살할 때 왜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해 놓는가? 라는 것을 주제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이 명제 자체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단 트릭이 약간 비현실적이고 스님의 선문답 물음의 하나인 "비와호" 관련 질문은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아 아쉽더군요. 너무 문답을 어렵게 만들려는 속셈이 빤히 들여다 보인달까요? 그래도 작품은 하나의 단편으로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6. 고물취향의 사체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한량 대학원생이 자기 방에서 화약으로 머리 반쪽이 날아간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폭발을 일으킨 흉기는 없는 상태. 용의자도 애매한 상황에서 사사무라는 다시 묘법사로 찾아가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문의하게 된다.
이 단편은 일종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장치의 조잡함은 둘째치고서라도 우연(?)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흉기를 숨기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좋았지만 사소한 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한다면 많이 처져 보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7. 벛꽃잎의 미로
황실과 친척관계인 명문집안에 협박장이 날아온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긴장한 경찰은 사사무라를 비롯한 형사들을 수사에 투입한다. 그러나 협박 자체 부터가 애매할 뿐더러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사사무라는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털어놓고 추리를 부탁한다.
소품입니다. 몇통의 협박장만 가지고 이야기가 이루어지거든요. 그렇지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소재이기에 공감이 많이 가더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8. 하프-문 살인사건
초등학교 교사가 살해당한다. 그녀는 너무나 형편없는 실력으로 학부모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독신 여성. 사사무라는 결정적 단서가 포착되지 않자 다시 묘법사로 찾아간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트릭이 쓰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별로 전해주진 않고 오히려 주지스님이 본사로 영전하게 되어 작품이 마무리 되는 시리즈의 최종장적인 설명이 더 중심인 듯 싶네요. 그래도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고 전개와 추리의 과정이 깔끔하며 합리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