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탐정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기원 옮김/해문출판사 |
토미와 터펜스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 토미와 터펜스 부부 시리즈는 부부탐정이라는 설정과 부부가 함께 하는 모험이라는 이야기 구조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걸작 시리즈죠.
장편 "비밀결사"에서 등장하여 결혼에 이른 부부 토미와 터펜스. 그들은 토미 숙부의 유산으로 넉넉하게 살아가지만 이전의 모험적인 삶을 그리워 하며 지루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정부의 카터라는 인물로부터 데어도어 블런트라는 탐정의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에 주목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이 펼쳐지는 내용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마 연재때문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해 봅니다) 모두 23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후편으로 나뉘어진 작품도 많고 부부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게 된 경위가 나오는 첫번째 작품은 제외한다면 총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약간의 트릭이 가미된 유머스러운 추리 모험 활극으로 토미와 터펜스라는 부부의 유머와 재치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무엇보다 여러 명탐정을 각 편마다 인용하며 나름의 경의를 표한 크리스티 여사에게 감탄했습니다. 현재는 잊혀진 탐정들도 있고 아직 접해보지 못한 탐정들도 있지만 이런 인용으로 보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네요.
때문에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 굉장한 논리나 사건은 없지만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만큼, 부부탐정 팬 분들에게는 강추드립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첫번째 작품 "차라도 한잔" 은 파리를 날리는 사무소의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터펜스의 사기극(?)으로 부부의 익살과 접수 소년의 재치 등 유쾌함이 넘치는 소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 가치는 빵점이네요...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죠.
두번째 작품 "분홍색 진주 사건"은 첫번째 사건에서 만족한 의뢰인이 소개한 의뢰인이 자신의 집에서 사라진 값비싼 진주를 찾아 줄 것을 요청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은밀한 조사를 의뢰받는데 손다이크 박사를 흉내내는 토미가 단순한 사실에서 진상을 꿰뚫고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등장하는 수수께끼가 모두 풀린 것 같지는 않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단점입니다.
세번째 작품 "이상한 불청객 사건"은 첫머리에 등장하는 블런트라는 원래 인물이 연루된 국제적인 범죄조직에 납치된 토미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벗어나는 이야기로 첫부분에 등장하는 담배갑과 연관된 재치가 상당히 돋보이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토미가 인용하는 불독 드러먼드라는 캐릭터는 조금 궁금하더군요.
네번째 작품 "킹을 조심할것 & 신문지 옷을 입은 신사"는 초반에 토미와 터펜스가 이야기하는 신문지의 인쇄오류와 가장 무도회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연관시켜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으로 변장 트릭이 등장합니다. 조금 흔한 트릭이긴 하지만 재치와 유머가 넘쳐 꽤 재미있습니다. 전형적인 크리스티 여사의 트릭과 전개방식이지만 캐릭터를 달리 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만드는 이야기 구성력이 돋보였어요.
다섯번째 작품 "부인 실종 사건"은 유명한 탐험가에게서 실종된 약혼녀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뒤 그녀가 사라진 마을에 찾아가 악덕 의사의 소굴에 잠입하여 진상을 밝혀내는 부부의 활약이 그려집니다. 서두에 토미의 셜록 홈즈 흉내가 굉장히 인상적이며 웃깁니다.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복선으로 인용하는 막판 반전이 꽤 재미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여섯번째 작품 "장님 놀이"는 제목 그대로 장님 탐정 (맥스 캐러도스가 아니라 콜튼이라는 모르는 탐정이더군요)을 흉내내기 시작한 토미가 안대를 착용하고 다니다가 세번째 작품의 조직에게 다시 위협받는데 요리 주문할때의 숨겨진 암호문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 긴박감이 좀 떨어지고 토미의 안대에 대한 비밀이 말 한마디로 끝나는 구조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범작입니다.
일곱번째 작품 "안개속의 남자"에서는 토미가 브라운 신부를 흉내내네요. 하지만 이야기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크리스티 여사의 전형적 구조로 진행됩니다. 안개에 묻혀 통행이 뜸한, 입구에서는 경찰이 서 있었던 밀실과 같은 집에서 한 여배우가 살해당한 후 진범을 잡는 내용으로 트릭이나 범인은 후대 작품에서 비슷하게 써먹은 것이 많아 신선하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연대를 볼 때는 분명 여사님이 시대를 앞서 가신 것이죠. 여사님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여덟번째 작품 "위조지폐범을 찾아라"는 제목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범인역도 신선했고 모험소설적인 분위기도 잘 살아있어서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홉번째 작품 "서닝데일의 수수께끼"에서는 "구석의 노인"까지 등장합니다! 구석의 노인 흉내를 내던 토미와 터펜스 부부가 신문을 읽으며 미궁에 빠진 서닝데일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안락의자형 탐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구석의 노인의 이야기 진행방식까지 유사하게 차용한 재치가 돋보이며 추리적으로도 상당히 완성도 있는 작품입니다.
열번째 작품 "죽음이 숨어있는 집"에서는 꽤 재미있게 읽었던 "독화살의 집"의 아노 탐정이 인용되네요. "독화살의 집" 탐정의 인용작품 답게 저택에서 독살당한 가족의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구성과 마무리까지 깔끔한 수작입니다만 모처럼 찾아온 미인 의뢰인이 독살당해 죽는다는 설정은 조금 마음에 안 들더군요....
열한번째 작품 "철벽의 알리바이"는 동시에 두곳에 존재한 한 여인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트릭인데 알리바이 깨기의 명수 프렌치 경감이 인용됩니다. 하지만 트릭 자체는 실망스러운 범작이었어요.
열두번째 작품 "목사의 딸 & 레드하우스"는 암호해독 트릭입니다. 부유한 아버지의 백모로부터 돈은 없이 저택만 상속받은 목사의 딸이 집을 팔라는 끊임없는 권유와 집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으로 괴로워 하다가 토미와 터펜스에게 조사를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미 이 부분부터 눈치빠른 독자들은 "저택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라고 느끼실 것 같은데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갑니다.^^ 일종의 보물찾기로 꽤 괜찮은 암호문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잘 만든 암호문입니다)이 재미있습니다.
열세번째 작품 "대사의 구두"는 설정이 상당히 기발합니다. 자신의 구두 가방과 똑같은 가방을 가진 사람과 가방이 바뀌었던 미국 대사가 가방이 바뀌었다고 하며 되찾아간 사람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 토미와 터펜스 부부를 찾아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거든요.
가방안에 들어있던 것은 대사의 구두 뿐이었기 때문에 토미와 터펜스는 구두 안에 무언가 다른것이 숨겨져 밀수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범인을 밝혀내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포튠이라는 탐정이 인용되는데 아직 작품을 읽지 못해서 아쉽더군요. 트릭은 대단치 않지만 워낙 설정이 독특하고 모험소설적인 부분이 많아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작품입니다.
마지막 작품 "16호 였던 남자"는 작품집 초반에 등장했던 수수께끼의 "16"이라는 숫자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스파이로 경찰이 체포를 노리는 수수께끼의 16호를 잡기 위한 마지막 모험이 벌어지는 내용으로 첩보물 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트릭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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