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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6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 별점 3.5점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8점
고영 지음/포도밭출판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대로, 음식문헌 연구자인 저자가 본인이 경험했고, 맛보았던 식문화먹거리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크게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그리고 "온전한 밥 한 그릇"이라는 세 개의 대 분류로 구분됩니다.
이 중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 가치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인 "온전한 밥 한 그릇"은 주로 저자의 '느낌'과 단상이 가득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주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식문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탓이지요. 단순히 이미 널리 알려져있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가 음식문헌 연구자인 덕분에 본인의 연구가 바탕이 된,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오래전 한시와 옛 문헌의 한 토막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첫 글인 "융도, 두 자의 뭉클함"를 보자면, 김려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의 소개와 해설을 토대로 당시 먹거리에 대해 일람하다가 '융도'라는 두 글자에 주목합니다. 융도는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의 접경지대에서 나는 벼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조생종 벼인데, 보리를 먹어 치우고 벼를 수확하기 전 식량의 징검다리 역할과 냉해를 견디는 품종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은 세종 때 도입 육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합니다. 시 한 구절에서 이러한 전문적인 역사 관련 지식까지 풀어내는 그 식견이 사뭇 놀랍습니다.

이 책 덕분에 옛 문헌 속 이런저런 몰랐던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세종 때의 문헌 "산가요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찍이 다양한 김치가 있었다는 소개처럼요. 복숭아 김치, 살구 김치, 수박 김치 등이 있었다는데,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네요.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 수필집 "침초자"에 소개된 아마즈라와 13~14세기 원나라의 갈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빙수의 원형 이야기, 제빙 기술이 발달하여 1910년대 조선에서도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나 빙수 먹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빙수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도 빙수를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와인에 대해 최초로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1720년 북경 천주당에서 와인을 맛보고 "소림과 대진현이 또 나를 어떤 방으로 이끌었다. 탁자에 수정병이 하나 있는데, 높이는 세 자(약 30.3cm)쯤이고 술이 떠 있는 듯 담겨 있었다.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데 술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상쾌하고 이채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이고 취하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이기지가 이후 와인 제조법을 물어보아 남긴 기록을 보면, 이 와인은 '포트 와인' 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북경 천주당의 예수회 신부들이 먼 북경까지 포도주를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설명됩니다. 도수가 높아야 쉽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포트 와인은 높으면 도수가 2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라 마시고 나면 취할텐데, 이기지는 술이 꽤 셌나 봅니다. 이 뒤 다른 자리에서 포도주 세 잔을 거푸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글은 뒤에 조선 땅에 상륙한 여러가지 외국 술에 대한 글로 이어집니다. 각 글이 항목별로 분리가 되어 있기는 해도, 와인과 브랜디 등 각종 서양 술, 맥주, 사케와 정종, 청주 등의 일본 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만 따로 떼어 놓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술에 대한 미시사 문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성한 사료를 통해 깊이를 더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냉면 먹방"에서 소개되는 냉면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당대 여러 기사들을 통해 냉면 먹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망해 주기 때문입니다. 단지 '겨울에 평양 냉면'을 먹었다는게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936년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냉면 미각의 절정은 삼복 (더위) 이전' 임이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일신보" 1936년 기사에서도 여름 관청, 회사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는 불이 날 지경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지금과 다른 점은, '경성 냉면은 평양 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냉면을 주문하면 20분은 기다릴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니었던 겁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을 통해 풀어놓는 우리나라 소금 산업의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굽는 방식의 제법을 사용하였는데, 일본이 조선 강점 시기에 한국 해안에 대단위 천일 염전을 조성한게 대단위 소금 산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을 만드는 염호가 옛부터 고단하고, 노비나 군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파업, 퇴사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고되고 힘든데다가 사회적 인식까지 부족한, 지금의 염전 노예 사건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된 천일염 제조 산업 초창기부터 있었다는게 참 가슴 아픈 사실이네요.

그러나 이렇게 정보 전달 측면에서 우수하며,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글들에 비해 저자의 느낌,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은 좀 별로입니다. 저자의 생각 - 식문화와 먹거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한다 - 도 옛 문헌을 통해 먹거리가 빈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격차가 그나마 평등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알려주는데 비슷한 주장의 반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러한 격차가 현대에도 이어지는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지나치게 과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보 전달 측면의 글들은 별점 4점도 아깝지 않으나, 비슷비슷한 에세이 류의 글로 약간 감점합니다. 저자의 음식 관련 미시사, 문화사 전문 서적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

2012/04/15

뜻밖의 음식사 - 김경훈 : 별점 3점

뜻밖의 음식사 - 6점
김경훈 지음/오늘의책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먹어온 먹거리들을 음식 색깔에 따라 블루, 레드, 옐로우, 블랙 & 화이트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책. 우리의 오랜 먹거리 목차를 구태여 영어로 한 이유는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건 역사와 요리, 음식이라는 저의 미시사적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주제의 책이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요리가 아니라 먹거리가 되는 재료 자체에 주목했기 때문에 다른 유사 서적에서 많이 보아왔던 주제들 - 김치나 갈비 같은 - 이 없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순히 재료의 역사에만 치중하지 않고, 주요 요리들의 레시피를 소개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그림이 곁들여진 것은 아니나 꽤 구체적이라 한 번 해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이러한 점들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몇 개 소개해드리자면,

  1. 매실을 예전에는 국의 조미료로도 썼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제호탕 만드는 법도 눈여겨봐 둘 만했습니다.
  2. 박하로 박하주와 박하차 만드는 법은 꼭 한 번 따라 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박하잎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박하주 - 소주 1리터에 잘게 썬 박하잎 50그램을 넣어 2개월 밀봉 후 마심. 박하차 - 깨끗이 씻은 박하잎을 물에 넣고 오래 끓인 다음 체로 찌꺼기는 걸러내고 꿀이나 설탕을 섞어 마심.
  3. 오미자로 만드는 중국 사천성의 태수 여경대의 전설적인 정력제 독계산! 나이 70에 자식을 여럿 낳고, 결국 버린 약을 수탉이 먹고는 암탉 등에 올라 내리지 않아 암탉의 벼슬이 다 벗겨져 독계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하는데, 육종용 3푼, 오미자 3푼, 토사자 3푼, 원지 3푼, 사상자 4푼을 빻아서 체에 받혀 분말로 만든 것을 하루에 한 스푼씩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 재료들, 갖고 싶다...
  4. 산수유는 남자 몸에 참 좋은 게 맞더군요. 그중 정력 증강에 탁월하다는 산수유주! 산수유 열매를 잘 말린 뒤 5~6배 정도의 소주를 붓고 3개월간 그늘에서 보관하면 된답니다. 와우!

그 외의 다른 먹거리들도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으니, 이런 류의 미시사 서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7/06/03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이시야마 아즈사 / 김은모 : 별점 3점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6점
이시야마 아즈사 지음, 김은모 옮김/북폴리오

구루메, 미식, 음식 관련 만화 홍수의 시대입니다. 꾸준히 사 모으는 몇몇 작품들("술 한잔 인생 한입" 등)을 제외하면 눈길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조금 피로감도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한 권으로 끝나며, 풀 컬러에 동화 일러스트같은 따뜻한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 구입해 보았습니다.

그림 관련 일과 아르바이트로 나날을 보내는(듯한) 평범한 처녀 작가의 하루하루의 끼니 소개 만화로, 주로 야식이 많이 등장합니다. 대단한 드라마 없이 먹거리에 집중하는게 특징이고요. 먹거리에 관련된 짤막한 추억, 에피소드와 그날 그날 만든 먹거리에 대해 소개하고 맛있게 먹는 게 전부거든요. 

하지만 꽤 재미있었어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뭐 그리 큰 드라마가 있겠습니까. 이 작품처럼 야식으로 뭘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 그날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게 현실적이지요. 맛있는 걸로 세계 평화가 찾아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마음에 듭니다. 유사 작품들과 비교하면 '혼밥', '집밥'이 주요 소재라는 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라는 점, 레시피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차별화 요소도 확실하며 작화도 좋은 편이에요.

레시피들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집에서 해 먹음직한 것들이 대부분인 덕분입니다. 오븐 등 거창한 도구도 쓰지 않고 전자레인지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설거지가 귀찮아 알루미늄 호일을 적극 사용하는 것도 제 스타일이고요. 두께 있는 재료도 넣을 수 있는 '토스터'를 사용하는 레시피가 간혹 있기는 한데, 이 역시 프라이팬으로 대체 가능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저자도 그렇게 소개하더군요.
등장 레시피 중에서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우동 겉을 물로 적시고 사발에 넣어 랩을 씌운 후 전자렌지에 5분 돌려 맛국물 + 참깨 + 파 + 후리카케 + 날계란 조합으로 먹는 간단 우동! 입니다.

혼밥 야식 이야기 외에도 "여러 가지 야식 편"이라는 제목으로 밖에서 사 먹었던 음식들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뒷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데,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흔해 빠진 형식이지만 역시나 따뜻한 그림이 잘 어울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컬러 일러스트 느낌을 주는 먹거리 이야기와는 다르게 모두 펜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만화 작화인데, 약간 "카페 알파" 느낌도 나서 저는 이 쪽 작화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구루메, 미식, 음식 만화의 홍수 속에서 소박하게 자신의 위치를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4/05/01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4 - 토마토수프 / 문기업 : 별점 2점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4 - 4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댐피어는 데이비스 선장을 떠나 스완 선장의 배 시그넛 호로 옮겨 탔다. 멕시코 일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별 수확없이 몇개월을 보내다 말라리아에 걸렸고, 링로즈는 식량을 구하려다가 스페인 군에게 죽었다.
멕시코를 떠나 동인도 제도로 향한 일행은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도착했다. 독립 왕조를 유지하던 민다나오 술탄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맞서기 위해 댐피어 일행의 배와 대포를 원했다. 풍부한 식량, 섬의 환대에 일행은 남기로 했지만 댐피어는 영어로 쓰여진 수상한 문구 - 그들은 모두 도둑이다 - 에 미심쩍어했다.
반년의 체류 기간 동안 스완 선장은 섬에 푹 빠져버렸고, 결국 사략선 활동을 계속하려는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켜 선장과 몇몇 선원들을 두고 섬을 떠났다.
댐피어는 해적질을 하기 위한 은둔처를 요구받았고 캄보디아 풀로콘도르 섬을 제안했다.


4권은 이전 권들과는 다르게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동인도 제도를 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대항해 시대를 무대론 한 던전밥' 느낌이었던 1~3권보다는 확연히 재미가 떨어집니다. 가장 큰 장점이었던 새로운 장소와 문화, 먹거리에 대한 소개가 줄어든 탓입니다. 특히 새로운 먹거리 소개가 부실합니다. 앞부분의 쥬피시를 이용한 민스파이는 그냥 물고기 파이이며, 옥수수가루로 만든 푸딩도 그리 특별하지 않지요. 새로운건 이야기 절반 정도가 경과한 시점에서야 처음으로 '빵나무 열매'가 소개될 정도입니다. 마지막 민다나오 섬 탈출 직전의 멧돼지 요리는 그냥 bbq일 뿐이며, 구아바나 망고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이라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민다나오' 섬에서 빈랑, 사고 등이 소개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제목부터가 '맛있는 모험'인데, 맛이 없어어야 되겠습니까.....
또 댐피어가 병에 걸리고 링로즈가 죽으며, 민다나오 섬에서 기묘한 탈출과 그 이후 면허도 없는 사략선 생활은 이전과 다르게 무겁고 심각해서 이전 권들에서의 느슨하며 여유로왔던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 단점도 큽니다.

물론 아예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대항해시대 당시의 동인도 제도, 특히 민다나오 섬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볼 만 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내용이었으니까요. 관련된 설명도 충실한 편입니다.

새로운 먹거리와 요리도 양이 문제지 소개 자체는 재미있어요.
이 중에서는 사고 요리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요.
구아바 크리스마스 푸딩은 Panpanya의 "구야아바노 홀리데이"가 떠올랐고요.

하지만 앞서의 단점에 더해, 특유의 둥글둥글한 작화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다음 목적지인 풀로콘도르 섬은 궁금한 만큼, 다음 권은 구입해 볼 예정입니다.

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 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5/01/17

도쿄의 가장 밑바닥 - 겐콘 이치호이 / 김소운 : 별점 2.5점

도쿄의 가장 밑바닥 - 6점
겐콘 이치호이 지음, 김소운 옮김/글항아리

1893년, 저자 겐콘 이치호이(본명: 마쓰바라 이와고로)가 빈민가로 알려진 시타야 만넨정, 요쓰야 사메가하시, 시바 신아미정 등 3대 빈민굴을 직접 찾아 하층민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이를 생생하게 글로 옮긴 논픽션입니다. 일본 근대 르포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하네요.

특징이라면 단순히 빈곤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빈민들의 식생활, 일상적인 노동, 그리고 지역 경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구체적이며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차부'(인력거꾼)에 대한 상세한 설명처럼요. 그들의 영업과 업무 행태, 하루 벌이, 주요 먹거리, 생활상과 나이 들었을 때의 비참한 모습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독자는 그들의 생존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드리운 가난의 무게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 초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참고가 되리라 생각되고요. "경성탐정록"의 "운수 좋은 날"을 쓰기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차부 외에도 고물상, 경매 시장, 일용직과 도급 인부들, 아침장과 야시장 등 다양한 하층민 직업에 대한 설명 및 하층민들의 생계 방식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잔반을 모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잔반야'의 존재와 그들이 판매하는 잔반들에 대한 묘사는 당시의 생존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음식들 설명도 많은데, '후카가와 메시'가 차부들을 대표하는 식사 중 하나로 바다 비린내가 심해서 먹기 힘들다는게 새롭더군요. 지금은 지역 먹거리로 유명한 음식이니까요. 조리법의 문제였을까요? 원래는 꿀꿀이죽과 다를게 없었던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의 유래와 현재 위치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 시점에 읽어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망하면 3년을 못 간다는 '좌식산공'에 대한 언급, 전당포와 고리대금업자들의 무자비한 행태, 가증스러운 도급업자들에 대한 서술은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막걸리는 1홉(0.18리터)에 2센이며 잘 마시는 사람은 한 번에 5동이에서 7동이를 해치운다. 그중에는 옷가지를 잡히고 홧술로 10동이 이상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는 설명은 더 말할 것도 없을테고요.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 모두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으며,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당시 사회의 모순과 빈민들의 고단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책입니다. 인간의 생존 본능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12/28

사카나와 일본 - 서영찬 : 별점 3점

사카나와 일본 - 6점
서영찬 지음/동아시아

에도시대부터 현대까지 해산물이 일본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다루며,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의미까지 조명하는 책. 총 570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6장 34항목으로 나누어, 항목별로 해당되는 해산물, 어식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정어리는 에도 시대 서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생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급 무사 사카이 반시로의 일기에서도 모두 42회 나올 정도로 서민들이 가장 자주 소비하던 음식이자, 당시 가난과 서민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재료였습니다. '서민이 자주 먹는 밥반찬은 무엇인가'라는 테마의 '반즈케'에서도 생선 부문 1위는 이와시(정어리)였다고 하고요.
단순히 식탁 위의 먹거리일 뿐만 아니라, 어비(생선 비료)로 활용되어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력의 증가는 화폐 경제를 발달시켰고, 쌀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무라이 정권 체제 기반인 석고제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정어리의 활용은 단순한 생선을 넘어 일본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지요.

다시마는 일본 경제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중요한 해산물로, ‘다시마 길’이라 불리는 무역 루트를 통해 일본 상업 경제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홋카이도의 다시마가 교토와 오사카로 수송되던 이 루트는 일본 자본주의의 씨앗을 뿌린 경제적 기초였습니다. 한 차례 항해로 현재 화폐 가치로 따지면 1억 엔 정도를 벌어들였다니 대단하네요. 사쓰마번은 불법적인 대중국 다시마 무역으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무기류를 수입하며, 이 무기가 훗날 막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즉,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일본 역사를 바꾼 거대한 동력이었던 것이지요. 조금 과장된 느낌이지만 재미있는 발상이었어요.

쿠사야는 독특한 냄새와 풍미를 가진 일본 전통 발효 생선입니다. "어시장 삼대째"를 통해 단순한 건어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쿠사야액'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그리고 쿠사야는 해산물이 사회에 영향을 끼친 사례와는 달리, 당시 열악한 환경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생존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근대 이전 유배지로 알려진 이즈제도와 고토열도에서는 자원이 부족해 소금물을 재활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쿠사야액이 만들어지고 쿠사야가 탄생하게 되었거든요. 이는 단순히 발효 음식을 넘어, 생존 전략으로서의 음식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덴푸라는 에도 시대에 스시, 소바와 함께 미식을 대표하던 외식 메뉴였습니다. 값이 싸고 맛이 좋아 에도의 삼미(三味)로 꼽힐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요. 덴푸라와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적 일화 중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습니다. 건강을 중시하던 이에야스는 교토에서 유행하던 도미튀김을 처음 맛보고 지나치게 많이 먹는 바람에 복통을 겪었고, 이후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군요. 그 외 덴푸라가 =일본 음식 문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다수 소개됩니다.

명절 음식으로 서일본에서는 방어가, 동일본에서는 연어가 명절 요리로 소비되며, 이는 지역적, 계절적 특성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방어는 도야마만에서 잡혀 염장되어 집합지인 내륙의 히다, 그리고 주요 소비처로 운송되었으며 귀족과 무사 계급에게 주로 소비되었습니다. 도야마 - 히다 - 다카야마 - 마쓰모토 - 니가타를 이은 U자 모양 지역이 서일본 방어와 동일본 연어를 구획하는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두 갈래 방어 길은 수백 년간 지탱되면서, 각자 고유한 문화가 나뉘는 경계선으로 자리매김하였고요.

가쓰오부시는 2차 대전 당시 남태평양에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가쓰오부시의 본고장 야이즈는 어선이 징발되면서 마을 기간산업이 존폐 위기에 몰린 탓에, 남태평양의 마리아나제도, 팔라우 공화국,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를 포함하는 남양군도로 집단 이주해 가다랑어 잡이와 가쓰오부시 제조를 이어나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난요부시'가 이때 탄생한 것이지요. 야이즈부시와 태평양전쟁 군납에 얽힌 일화도 있습니다. 1942년 해군은 항공대 식량으로 쓰려고 가쓰오부시 가루를 압축해 만든 사각형 조각에 대해 야이즈 업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업자는 습기와 기온에 따라 부스러질 수 있으니 캐러멜처럼 말캉말캉하게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제안대로 납품 계약이 체결되었고요. 군납 제품명은 '반키리 가쓰오부시'로 '적군 만 명을 벤다'는 의미였습니다.
한편 난요부시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전황이 악화하면서 남양군도의 야이즈 주민은 수시로 징집돼 전장에 투입되어 죽어갔습니다. 결국 야이즈 주민 620명이 남양군도로 건너가 286명이 전사했고, 46%는 영영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패망은 자업자득이지만, 어민들은 좀 안됐군요.

그 외에도, "술 한잔 인생 한입"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장어 먹는 날 '도요노우시노히'의 유래, '청어 소바'의 유래 등 재미있는 정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도판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생선의 생김새, 특징과 소개된 요리들의 실제 모습과 조리법을 그림과 사진으로 설명해주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겁니다. 방어길과 다시마길은 지도가 함께 있었더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테고요.

또 해산물을 단순한 식재료로 다룬 내용도 많은데, 이 경우는 스시, 타코야키, 사시미나 라멘의 유래처럼 이미 잘 알려진 게 많아서 다소 지루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짚어주는 부분도 애매한 게 제법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동과 서를 나누는 방어길입니다. 히다에서 왜 동쪽으로는 방어를 옮기지 않았을까요? 나가노에서 니가타까지의 거리와 도쿄까지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요. 단순히 동쪽에서는 연어를 먹는 걸로 정해져 있었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 주제 하나를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면,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에 버금가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보였는데 아쉬웠어요.

그래도 일본의 해산물과 엮인 문화사 서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읽을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해산물이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5/03/16

나홀로 온천 여행 - 다카기 나오코 / 이소담 : 별점 2점

나홀로 온천 여행 - 4점
다카기 나오코 지음, 이소담 옮김/살림
일본의 에세이 만화 작가 다카기 나오코의 "나홀로 여행" 후속작. 이번에는 혼자 떠나는 온천 여행을 중심으로 일본의 다양한 온천지와 그곳에서의 경험을 특유의 여유로운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큰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전개 없이도 일상의 여행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게 언제나처럼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정말 쉬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에요.

작가의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이라면 여행 과정(특히 기차 중심)과 온천욕이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지역의 맛있는 먹거리 먹부림이나 유명한 장소 관광이 없는건 아니지만, 다른 "나홀로 여행"이나 "식탐 만세" 시리즈와 같은 비중은 아니에요. 문제는 기차 여행은 이미 "에키벤" 시리즈에서 철저하게 파고든 부분이 있어서 새롭거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등장하는 에키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고 제목처럼 '온천욕' 이야기가 많지도 않습니다. 어느 온천에 갔더니 물이 어떻다 정도로 끝나서 실망스러웠어요. 온천과 먹거리에 대해 "낮의 목욕탕과 술" 정도로는 이야기를 풀어줬어야 햤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온천 여행'에 딱히 매력을 느끼지 않아서 더 재미가 없었던 것 같은데, 딱히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2025/04/04

미친 항해 - 마이크 대쉬 / 김성준, 김주식 : 별점 4점

미친 항해 - 8점
마이크 대쉬 지음, 김성준.김주식 옮김/혜안

마이크 대쉬가 집필한 역사 논픽션입니다. 1628년, 암스테르담을 출항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 바타비아 호가 이듬해 6월, 현재의 소호주 해안 인근 암초에 충돌하여 난파한 뒤 생존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벌어진 대규모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2002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BBC History Magazine과 History Today 등의 권위 있는 역사 전문 매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항해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선장이었지만, 직급상 최고 책임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관리인 '대상인' 프란시스 펠사아르트였습니다. 선장 야콥스와 펠사아르트 사이의 갈등은 여자 문제 등으로 항해 중부터 깊어졌고, 이러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가 바로 '부상인'이자 전직 약제사였던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였습니다. 그는 선장을 꼬드겨 선상 반란을 모의했는데, 바타비아 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면서 계획이 꼬이게 됩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펠사아르트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자바섬으로 떠난 틈을 타서 코르넬리스는 생존자들의 리더가 된 후, 체계적인 학살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식량과 식수를 가지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면서, 반항할만한 불순분자들을 없애기 위해서였지요. 펠사아르트가 구조대를 이끌고 보물을 회수하러 돌아오면, 그 배를 점령해 해적 생활을 하려는 계획으로요. 그래서 병자와 노약자, 반대 세력을 중심으로 약 115명에 달하는 이들을 죽였습니다. 

계획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회수할 보물이 많기에 구조대 인원이 많지 않을거라는 코르넬리스 생각대로 구조대가 움직였거든요. 그러나 말라 죽으라는 의도로 다른 섬으로 보내졌던 위이버 헤이스와 건장한 남성들이 우물을 발견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생존에 성공하고, 코르넬리스의 학살을 알게된 후 방어 거점을 구축하자 상황은 급변합니다. 코르넬리스는 친위대를 이끌고 위이버 헤이스를 속이려다가 사로잡혔고, 코르넬리스의 후임이 일당들과 함께 위이버 헤이스 섬을 공격하여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대상인 펠사아르트의 구조선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나 소설이라고 해도 억지스럽다고 할 것 같은데,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놀라웠어요. 여튼, 위이버 헤이스와 코르넬리스 세력은 각각 펠사아르트의 구조선으로 사람을 보냈고, 빨리 도착하는 쪽이 승리하는 싸움에서 위이버 헤이스가 이겨서 폭도들을 모두 사로잡으며 코르넬리스의 음모는 막을 내립니다.

이러한 난파 후 서사만으로도 영화나 소설로 각색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코르넬리스가 생존자들의 리더가 된 후 학살을 지시하며 독재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이세계 전생물'로 바꾸어 보아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종교와 조직(동인도 회사)가 절대적인 사회에서 독자적이면서도 설득력있는 종교론과 조직에서의 직위를 무기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다는게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저자 마이크 대쉬는 방대한 사료 조사와 기록 분석을 통해, 사고 외에도 각 인물의 생애와 심리, 사회 구조적 배경까지 책에 촘촘히 담아냅니다.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가 처한 시대와 개인적 몰락, 종교적 배경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기업 구조와 식민 경영 방식에 대한 설명 역시 뛰어납니다. 실제로 코르넬리스의 생애만 따로 정리한 분량이 35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깊이 있는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관련 인물들의 후일담이 꼼꼼하게 조사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놀라운 수준입니다. 코르넬리스의 아내에 대해서까지 최대한 조사해서 수록했을 정도니까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무역, 당시 항해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설명 역시 상세합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항해 중 먹거리 설명을 예로 들자면, 우선 바다 고기를 낚으면, 누가 고기를 낚든 매일 맨 처음 낚은 고기는 선장의 몫이었고 그 다음 12마리 정도는 상인과 사관들의 몫으로 돌아갔으며, 전례에 의거하여 인정된 순서에 따라 고기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선원들은 신선한 음식을 먹는게 거의 불가능했겠지요. 그래서 선원들은 거의 전적으로 통조림에 든 고기와 콩, 건빵으로 알려진 딱딱한 빵인 비스킷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경우는 음식의 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갓 도축한 돼지와 소를 사들여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피도 빼내지 않은 채 바닷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에 넣어 보존 처리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리된 고기는 쌌지만, 아주 짜서 조리를 하려면 청수에 담가 짠 맛을 빼내야 했는데, 항해 중에는 한정된 식수를 절약하기 위해 바닷물에 넣어 끓였다는군요. 얼마나 짰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말린 생선도 싣고 다녔는데, 대구가 대부분이었다네요. 말린 대구는 스튜로 끓여서 역 시 말린 완두콩이나 강낭콩과 함께 먹었고요. 그 외 먹거리들 모두 형편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타비아 호 선원들은 당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잘 먹고 잘 마신 편이라는게 충격적입니다. 부과된 노동을 충분히 감내할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 외에도 가혹했던 항해에 대한 설명 등 재미있는 정보가 그야말로 넘쳐납니다.

이렇게 재미와 역사적, 자료적인 가치 모두 빼어난데, 코르넬리스가 이단 사상에 빠지게 된 과정에 대한 추측이라던가, 후일담 이후 코르넬리스가 정신병자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 비중이 지나치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백인들 후예가 살고 있을거라는 추측도 마찬가지고요. 섬에서의 학살도 논픽션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극적인 이야기를 그렇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또 책의 디자인과 구성도 옛스러워서 읽기 불편했고, 도판도 좋은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충격적인 실화를 방대한 자료로 치밀하게 재구성한 뛰어난 논픽션입니다. 난파에 대한 논픽션을 세 권째 읽게 되었는데 - "바다 한가운데서", "메두사 호의 조난" - 대체로 기본 이상은 해주는 장르인 것 같네요.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06/04

왕도둑 호첸플로츠 1 -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 김경연 : 별점 4점

왕도둑 호첸플로츠 1 - 8점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글, 요제프 트립 그림, 김경연 옮김/비룡소

카스페를과 제펠은 할머니에게 돌리면 노래가 나오는 커피콩 가는 기계를 선물했다. 그런데 왕도둑 호첸플로츠가 기계를 훔쳐갔다. 호첸플로츠를 잡기 위해 카스페를과 제펠은 작전을 짰지만, 오히려 호첸플로츠에게 사로잡혔다. 카스페를은 악당 마법사 츠바켈만에게 하인으로 팔려가는데...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에 이은 딸아이를 위한 동화 시리즈 제2탄. 호첸플로츠가 훔쳐간 할머니의 커피콩 가는 기계를 되찾기 위한 카스페를과 제펠의 모험물입니다. 역시 제가 어렸을 때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읽고 나니 딸아이에게는 잘 안 맞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읽어보니 단순히 애들 장난이 아니라 나름 '목숨을 건' 모험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중반 이후 악당 마법사 츠바켈만은 사람 목숨을 가지고 노는, 정말이지 심한 악당이기도 했고요.

그래도 고전 명작의 향취는 영원한 법!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초반부 카스페를과 제펠이 서로 변장을 하기 위해 모자를 바꿔 쓴다는 복선이 이야기 끝에서 제대로 활용되어 위기를 넘긴다는 꼼꼼한 설정이 특히 좋았습니다. 요정으로부터 얻은 반지를 이용한 유쾌한 결말, 츠바켈만이 하인을 필요로 하는 이유 (감자 껍질 벗기는 마법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아직 성공하지 못해서) 등 코믹한 즐길거리도 아주 많습니다.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짐 크노프"에서도 인상적이었던 프란츠 요제프 트립의 일러스트 역시 굉장히 뛰어나고요.

츠바켈만의 감자요리나 소시지, 자두 과자와 같은 디테일한 먹거리들의 묘사도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작품들에 나오는 요리들만 모아서 책 한 권 만들어보고 싶어지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지금 읽어도 빼어난 재미를 갖춘 명작 동화라 생각됩니다.

여자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긴 하지만, 루아야. 아빠는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너도 조금 더 나이 들어서 꼭 읽어봐!

2012/05/16

음식전쟁 문화전쟁 - 주영하 : 별점 2점

음식전쟁 문화전쟁 - 4점
주영하 지음/사계절출판사

문화인류학적인 시각에서 음식의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분석했다는 책으로 도서관에서 충동 대여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먹거리 관련 책으로 잘 알려진 주영하 씨의 책이더군요. 저자의 책은 아직 "차폰 잔폰 짬뽕""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두 권밖에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구태여 비교하자면 "차폰 잔폰 짬뽕"과 좀 비슷합니다. 음식에 대해 문화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 음식보다는 다른 부분에서의 문제 제기가 많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주제 하나만큼은 명확했던 "차폰 잔폰 짬뽕"보다 훨씬 많은, 다양한 음식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이야기가 많이 혼란스럽고, 주제가 명확하다기보다는 희석되는 측면이 많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물론 "맛의 달인"에도 등장했었던 희석식 소주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한국인의 폭음은 막걸리를 마시듯 소주를 마셨기 때문에 생겼다는 문화적인 이유가 크다는 점 같이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실려있긴 합니다. (소수민족 롤로족이 도수 4~5%의 옥수수술을 마시다가 중국에 병합된 후 도수 50%에 육박하는 저렴한 바이쥐우로 술이 대체되었으나, 여전히 바이쥐우를 옥수수술 마시듯 하는 사례 소개)
요릿집의 역사와 유명 요릿집 태화관에서 벌어진 "독립선언서 낭독", 식도원에서의 "조선 공산당 결성식"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나 요정에 대해 소개한 부분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우리 음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문화적 측면에서의 고찰이라는 점에서는 건질 게 있기는 한데, 저는 "음식" 그 자체에 좀 더 집중된 책이 더 좋은 것 같네요.

2018/09/16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 윌리엄 시트웰 / 안지은 : 별점 2.5점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 6점
윌리엄 시트웰 지음, 안지은 옮김/에쎄

제목 그대로 특정 역사를 대표하는 요리사 - 미시사 서적입니다. 레시피 소개에 이어, 해당 레시피가 어떤 역사를 만들었는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상상 속 레시피는 아니며 모든 레시피가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레시피인 고대 이집트의 빵은 룩소르 세네트 묘실 벽 기록이 근거이며, 두 번째인 바빌로니아의 카나수 수프는 설형문자 점토판이 출처라고 하네요.

레시피만 보면 이게 뭔가 싶기도 한데, 읽어보면 "역사"를 만들었다는 제목에 수긍이 갑니다. 인류사, 아니면 최소한 요리계에 영향을 준 것들 중심으로 수록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고대 로마 카토의 햄 레시피는 그 자체가 특별한건 아니지만 이를 '염장 보관' 과 연결하여 그 중요성을 드러내며, 로마 문화의 절정은 소스가 가장 맛있었던 시대였다는 해석처럼 설명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소개되는 소스는 후추, 로바지, 파슬리, 말린 박하, 회향, 포도주에 적신 꽃, 구운 견과류나 편도 열매, 소량의 꿀, 포도주, 식초를 섞은 수프를 가열하여 휘젖다가 녹색 셀러리 씨와 개박하를 넣는 소스인데, 이 정도의 재료를 갖추어 요리할 정도의 문명이라면 대단히 번성한건 분명할테니까요.
그 외에도 샌드위치가 이동이 잦아진 시대에 유행했다는 해석, 키치너 박사의 레시피와 책을 통해 영국의 쓸데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형식주의를 드러내고, 카렘의 유명한 과자 레시피로 프랑스 요리의 화려함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레시피를 통해 새로운 식재료가 전파된 것, 그리고 요리가 국가와 대륙 사이로 이동이 이루어 졌다는걸 당대 문화 교류사와 엮어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콜릿의 전파와 식민주의를 연결하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근대 이후는 라디오 방송에서 시작된 쿡방으로 레시피가 널리 알려지고, 전자 레인지로 대표되는 여러 도구들의 도입을 통해 획기적으로 식생활이 변하는 과정, 전쟁 당시 배급제로 빚어진 열악한 레시피들, 풍요의 시대를 거쳐 즉석 식품의 유행, 그리고 방송과 언론, 미슐랭 가이드를 통해 연예인 수준의 유명인이 된 셰프들의 등장, 각종 먹거리의 범람에 대한 반동과 환경 운동으로 등장한 채식주의와 슬로 푸드 운동, 인터넷과 앱으로 매체가 변하고 마지막에는 다시 중세의 레시피 재해석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실제 역사의 흐름과 요리, 레시피가 특별한 해석 없이도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는게 재미있어요. 브리아 샤바랭의 말 처럼 "무엇을 먹는지"를 통해 그 사람과 시대를 알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나저나, 다시금 중세 요리로 복귀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라면 중세의 그 으리으리하고 시끌벅적했던 쇼와 같은 만찬이 다시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네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직접 연출을 지휘하기도 했다는 르네상스 연회는 항상 궁금했었는데, 곧 실제로 보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세계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레시피를 다루고 있기에 당연히 범위도 넓습니다. 고대의 경우는 중국을 포함해 모든 고대 문명의 레시피가 수록된건 물론이고 역사적으로도 고대 - 중세를 거쳐 타이방 이후 체계를 갖추는 과정, 중세 이후 근대, 현대,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를 대표하는 레시피가 소개됩니다. 타이방과 카렘에서 줄리아 차일드, 제이미 올리버 등 유명 셰프들의 레시피도 많으며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이 먹는 에그 베네딕트, 흘렌다이즈 소스, 피치 멜바 등 친숙한 요리 소개도 반가왔어요.

하지만 주로 "영국" 기준으로 쓰여진건 아쉬웠습니다. 세계사와 관련된 요리를 다루는 것도 앞부분의 잠깐일 뿐 결국 영국의 요리, 영국의 요리사, 영국의 식당이 관련된 레시피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근대 이후에는 동양권 요리는 찾아보기도 힘들고요. 그리 큰 비중은 아니더라도 일본의 제국주의의 시작과 "고기 감자 볶음" 정도는 연결해서 설명해줄 만 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 쉬운 글도 아니었습니다. 도판이 부실하여 글만으로 요리와 그 맛에 대해 상상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딱딱하고 단순한 번역투 문체가 상당히 거슬렸어요.
아울러 정말로 역사적인 레시피이냐? 라고 할 때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레시피도 제법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약점이에요. 어떤 역사를 대표한다거나, 요리 역사에 있어서 변곡점이 되었다거나 하는 레시피가 많은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기획 자체의 아이디어는 좋고 소장 가치가 있는 단락도 있지만 600페이지 가까운 분량 모두가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요리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지만,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닌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5/01/05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사이토 미나코 / 손지연 : 별점 3.5점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8점
사이토 미나코 지음, 손지연 옮김/소명출판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주부의 벗' 등 일본 여성지에 실린 요리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이 일본 가정의 식탁에 미친 영향을 알려주는 미시사,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잡지에 실린 요리 정보로 그 시대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며, 전쟁 시기 일본인의 먹거리 변화도 굉장히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전쟁의 실상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시대 순으로 보자면 1940년부터 '절미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가뭄과 흉작 탓으로, 일본이 쌀을 절약하기 위해 대체 음식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흥아빵'이라는 레시피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빵은 밀가루에 콩가루, 해초 가루, 말린 생선 가루를 넣어 만들었는데, 맛이 있을리가 없지요=.

1941년에는 국민의 영양을 고려한 '국민식 운동'이 도입되었으나, 배급제가 본격화되면서 이상에 그치고 맙니다. 배급제에서는 단백질이 특히 부족했는데 오징어와 조개가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되었고, 콩비지도 다양하게 요리되었습니다.
과달카날 패전 이후인 1943년에는 생쌀을 볶아 양을 늘리거나, 겨를 사용하는 레시피까지 등장하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런데 레시피에 설탕, 버터, 달걀과 같은 재료가 포함된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비현실적이었거든요.

1944년, 공습이 심화되면서 죽과 집에서 키운 고구마, 호박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길가의 잡초, 들풀, 곤충을 식용으로 권장하고, 심지어 차 찌꺼기를 채소로 먹으라는 권고까지 실리게 됩니다. 저자가 표현대로 '최후의 발악'이지요. 이런 쓰레기 레시피 중 하나가 '민들레 칼슘 무침'입니다. 

들풀 먹는 법 1 민들레 칼슘 무침

민들레 어린잎을 살짝 열탕한 후 물에 헹궈둡니다. 구운 생선 머리와 뼈, 달걀 껍데기 등을 갈아 으깨고, 다시마가 있으면 구운 후 갈아서 기호에 따라 맛을 내어 무쳐줍니다.

민들레의 쓴맛을 제거하려면 데친 후 얼마 동안 물에 담가 둡니다. 민들레의 쓴맛은 국화과 식물 특유의 영양소이므로 제거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전후에는 미국에서 제공된 밀가루 중심의 레시피가 많아졌고, 식량 사정이 안정되기 시작한 1949년 이후로는 점차 다양한 요리가 복원됩니다. 195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식탁은 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의 실상을 독특하면서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독서였는데,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요리를 현재 구현한 컬러 사진이 몇 장 실려 있지만, 더 많은 요리를 재현하거나 당시 잡지 자체의 도판을 함께 수록했다면 책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실생활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6/09/15

술친구 밥친구 - 아베 야로 / 장지연 : 별점 2점

술친구 밥친구 - 4점 아베 야로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심야식당" 작가 아베 야로가 쓴 여러 가지 요리와 안주들, 그리고 그가 만났던 좋은 여인들에 대한 에세이집입니다. 

저자 스스로 대단한 미식가도 아니고, 요리 솜씨가 뛰어나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리 대단한 음식들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허나 일상적이고 서민적이라서 더 마음에 들더군요. 고향인 토사 - 시만토 강의 별미 요리를 주로 소개해 주는 것도 독특했고요.

대표적인 것이 가다랑어 타타키입니다. 이런저런 요리만화를 통해 제법 알려져 있는 요리죠. "맛의 달인"에서는 완벽한 타타키가 뭔지 정의까지 내린 상태고요. 허나 저자는 가다랑어가 안 보일 정도로 쪽파와 양파, 마늘을 듬뿍 올리고 계절에 따라선 차조기잎이나 양하, 산초잎까지 뿌려주는 게 토사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고명이 너무 많으면 가다랑어 본연의 맛이..." 하는 미식가 티 내는 불평 따위는 무시하라고 합니다. 토사 술꾼은 가다랑어는 다 먹어버리고 양념 배인 고명을 찔끔찔끔 집어먹으며 주구장창 마시고 떠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니까요. 부어라 마셔라 하는 자리에 미식은 사치! 아, 토사의 대범한 풍모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요리 솜씨는 별로 없다지만, 간혹 등장하는 먹거리 레시피들도 인상적입니다. 개인적으로 먹어보고 싶었던건 저자 스타일의 "하나가츠오"입니다. 하나가츠오는 국물용으로 깎아놓은 가다랑어포인데, 그릇에 하나가츠오를 담고 간장을 부은 뒤, 그 위에 팔팔 끓은 물이나 녹차를 스윽 뿌려줍니다. 그 뒤 숨이 죽은 하나가츠오를 밥 위에 얹고 그릇에 고여 있는 국물을 말아서 먹는다고 하네요. 하나가츠오는 구하기 힘드니, 다시마로라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심야식당"에서도 등장했던 어묵탕도 소개됩니다. 쇠힘줄과 무와 삶은 달걀만 들어가는 바로 그 어묵탕이요. 우선 쇠힘줄을 500~600g 정도 큼직하게 나눠 썰고 펄펄 끓는 물에 5분 정도 삶은 후, 물로 헹궈 거품과 찌꺼기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큰 냄비에 물을 담고 중간 크기 무 한 개, 삶은 달걀, 쇠힘줄을 넣은 후 끓어오르면 시중에서 파는 어묵탕 가루를 넣어주고 3시간 정도 더 끓이는 게 전부입니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동네 정육점에서 "스지"를 조금 구입해서 바로 도전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그 외 이러한 음식과 함께 떠올린 그의 가족과 친구들, 나고 자란 동네의 이야기들도 따뜻하고 정감 넘칩니다. 그야말로 "심야식당" 그대로예요. 그만큼 부드럽고 편안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글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끔 등장하는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술친구 밥친구" 류의 글 이후 이어지는 절반 분량의 "~여인" 시리즈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딱히 관심이 가는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음식 관련 에세이집으로 생각했던 터라 제 기대와 많이 다른 탓도 크고요. "심야식당" 만화에 어울릴 법한, 곁들인 그림도 좋고 나름 드라마가 펼쳐지는 이야기도 많고 재미가 없지도 않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도 애매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왠지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냥 앞부분의 "술친구 밥친구" 이야기만 조금 더 신경 쓴 그림과 함께 출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심야식당" 관련 에세이집도 이로써 3권째인데, 가면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군요. 아쉽지만 이제 그만 읽을 때가 된 듯 합니다.

2014/12/02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박상현 : 별점 3점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 6점
박상현 지음/따비

저자가 규슈 지역을 다년간 수차례 방문하여 직접 발로 뛰면서 맛본 다양한 요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책입니다. 

요리들의 과거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주는 부분은 만화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간략한 미시사, 통사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요리들의 현재는 현재의 맛이 어떠하며, 대표적인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가 중심입니다. 때문에 일종의 맛집 탐방기이자 여행기로 읽히기도 하는데, 지금 해당 요리가 해당 지역에서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지를 설명하는 식문화 해설서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특히 요리의 발전 과정에서 일본, 그리고 규슈라는 지역 및 문화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 부분을 짚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메밀국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가 '고도의 숙련'이라서 단순한 반복작업에서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에 열광하고, 장인들이 대접받는다는 것입니다. 반복작업이 핵심인 탓에 재료가 천차만별이고 아이디어가 많이 가미될 수 있는 스시나 라멘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까지 소개하니 정말 장인의 메밀국수를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또 새롭게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여러 가지 요리들이나 상품들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요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이자 '상품'으로, 저자의 말대로 '스토리'와 '경험'을 파는 것들입니다. 온천 마을에서 명물 음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온타마란돈"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온천 달걀만 올려서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기획 상품으로, 온타마란돈을 찾아다니는 여행 코스마저 개발되었다는군요. 현대에 새롭게 발굴한 식문화 상품인 셈이지요. "맛의 달인"이나 "신장개업" 등의 만화에 흔히 나오는 단순한 지역 특산 별미 음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제 직업이 일종의 경험 디자인이라 그런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그 외에 문체도 깔끔하고 사진과 편집도 완벽한 수준이라 읽는 재미를 더해주며, 저자가 맥주를 사랑한다는 것이 글 전반에 묻어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술 한잔이 빠질 수 없지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맛집 소개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거의 절반 정도의 분량이 평범한 블로거의 일본 맛집 탐방기와 다를게 없거든요. 사진만 봐도 맛있어 보이고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나 황교익, 주영하의 책들처럼 음식에 대한 통사나 미시사적인 시각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지기를 바랬는데 말이지요.

또 제목 그대로 "규슈"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지방에 대한 소개는 부족합니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규슈만 돌아다녀도 일본의 식문화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목부터가 "규슈를 먹다"인데 다른 지방 먹거리가 없다는 단점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일 수 있고요. 하지만 그래도 진짜 맛있는 음식은 도쿄에 많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도 진짜 맛있는 회는 산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또 도쿄 쪽이 실제 방문할 기회나 가능성이 더 높기도 하고요.

아울러 가격 역시 쉽게 권해드리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책의 완성도와 만듦새는 훌륭하나, 비례해서 만만치 않은 가격을 자랑합니다. 조금만 더 저렴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와 의미, 자료적 가치를 모두 포함하는 책이기에 식문화나 음식 역사 관련 서적, 혹은 맛집 구루메 기행과 같은 책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이 책을 통해 스시장인 지로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로의 스시를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26/05/31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5) 사람먹는 장르 문학

추리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에는 식인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소재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한 번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독자에게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작품 속 식인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사람을 말 그대로 ‘먹이’나 ‘식량’으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사람이 평범한 먹잇감으로 취급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좀비물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클라이브 바커의 "한밤의 식육 열차", 그러니까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조금 다릅니다. 작품 속 빌런인 푸주한 마호가니가 깊은 밤 지하철 승객들을 도살해 인육으로 만드는 이유는 직접 먹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미지의 절대자에게 대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먹이’가 아니라 ‘미식’의 영역으로 발전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전에 소개드렸던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계보를 잇는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인육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끔찍하지만, 장르 문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사람을 먹이로 삼는 경우 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다시 재료의 정체를 숨기고 먹느냐, 대놓고 먹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대표작은 고전 SF "소일렌트 그린"입니다. 작품 속 “소일렌트 그린”은 인구 폭발과 환경 오염으로 식량이 사라져가는 미래 세계에 등장한 먹거리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플랑크톤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되지만 그 정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대사 “Soylent Green is people!”로 밝혀집니다.

반대로 살기 위해 대놓고 사람을 먹는 작품 중에서는 스티븐 킹의 "서바이버 타입"을 끝판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조금씩 먹어버린다는 엽기적인 이야기인데, 스티븐 킹답게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묘하게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두 번째는 범죄 목적으로 식인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증거 인멸을 위한 식인일 것입니다. 로드 던세이니의 "두 개의 양념병"은 한 남자가 거처를 떠나지 않은 채, 함께 살던 동거녀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든 사건을 다룹니다. 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장작 패기라는 적절한 운동, 그리고 입맛을 돋우기 위한 ‘두 개의 양념병’뿐이었다는 내용이지요.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호러 "오메가의 성찬"은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아예 전문적으로 시체를 ‘먹어서’ 폐기하는 괴인이 등장하니까요. 증거 인멸이라는 범죄 목적과 식인이라는 혐오 소재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기괴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범죄 목적은 복수입니다. “원수의 간을 씹어 먹는다”는 옛말처럼, 식인은 복수심의 극단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카니발리즘 소론"에 등장하는 식인이 바로 이런 목적에 가깝습니다. 다만 시각은 조금 독특합니다. 범인이 동거녀를 죽이고 먹은 이유가, 그녀를 ‘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니까요. 혐오스럽지만,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발상입니다.

세 번째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속설이 구전되어 왔고, 실제 사건도 존재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경성 죽첨정 단두여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간질병의 특효약이 아이의 뇌수라는 속설을 믿은 범인이,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아이의 사체에서 뇌수를 긁어낸 사건이었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우혁의 단편 "손가락"은 ‘문둥이가 아이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마리 유키코의 "여자친구"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낙태한 태아의 사체를 섭취함으로써 극한에 이른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치료라기보다는 병적인 해소에 가깝지만, 몸과 질병, 치유에 대한 왜곡된 믿음이 식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식인을 특별한 의미 없이, 캐릭터 형성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식인만큼 ‘광기’를 즉각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소재도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해낸 한니발 렉터 박사가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사실 한니발의 식인 행위는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니발이 평범한 인간의 윤리와 감각을 초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저는 아직도 “내 오랜 친구를 먹으러 가야 하거든”이라는 한니발의 대사만큼 유머러스하면서도 잔혹하게, 동시에 절대자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문장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식인이 캐릭터의 기괴함과 매력을 동시에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장르 문학 속 식인은 여러 목적과 형태로 변주되어 왔습니다. 먹이, 미식, 생존, 증거 인멸, 복수, 의학적 속설, 캐릭터의 광기까지.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드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더 새로운 설정이나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처럼, 제 분류로는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도입된 작품이 발표되는 걸 보면 여전히 놀랍습니다. 저도 언젠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 보고 싶은 주제이지만, 러시아의 ‘인육을 먹었다는 살인마 부부 사건’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네요. 과연 실화를 뛰어넘는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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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0

만족을 알다 - 애즈비 브라운 / 정보희 : 별점 2.5점

만족을 알다 - 6점
애즈비 브라운 지음, 정보희 옮김/달팽이

1798년, 일본 연호로 간세이 9년에 일본 에도 주변의 농가와 에도 시내 간다의 나가야, 이치가야의 무사 저택 3 곳을 방문하여 당시 농민과 상공인, 무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가상의 기행, 탐방문이자 미시사 서적입니다. 주로 농민은 자급자족, 상인은 편리함과 협력 중심으로 생활이 이루어지고 무사는 농민과 상인의 중간 정도의 삶으로 상당히 검소한 삶을 추구했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책이 쓰여진 목적은 당시 에도와 그 주변의 삶이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적이었는지를 설명하며 이를 현대 사회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네요. 실제로 이 정도였나? 싶은 의문이 생길만큼 당대 에도 주민들의 친환경 에코 라이프에 대한 칭송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류의 이야기로 그치는 건 아닙니다. 이러한 삶을 현대 생활에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잘 정리되어 있고, 현 시점에 새겨들어야 하는 내용이 많은 덕분입니다. 다양한 주택 건설에 응용된 친환경 소재에 대한 이야기 및 에너지 절약과 폐기물 제로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 산림 자원 보호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식생활마저도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육류 중심의 식생활 대신 에도 시민들처럼 벼농사와 다양하게 자연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수확물, 그리고 어패류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런데 당시 농민들은 소출의 50%를 바쳐야 했고 아이들도 2명 이상 키우기는 힘들었다던가, 솜씨있는 목수라도 다다미 6장 정도에 불과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었고 무사마저도 텃밭을 가꾸어 어느정도 자급자족해야 했다는 팍팍한 삶에 대한 설명은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아끼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도 결국 삶의 질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면 뭘 위해 아끼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현실은 가혹한 법이겠지만 좀 너무한 수준이에요.

하여튼, 이러한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설명도 나쁘지 않지만 당시 에도의 삶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디테일들도 최고입니다. 당시 주택이 어떻게 생겼고, 각 방들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집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수리하는지, 당시 거리 풍경과 행상인들에 대한 소개 및 무사 저택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도 깔끔하지는 않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하고요. 궁금하시다면 이 링크로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 중에서는 무사 저택의 구조가 아주 그럴듯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통풍과 환기에도 치중하며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는 일본 주거 공간의 진수라는 구조는 한 번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였거든요. 문제는 이 책에 나온대로 문을 열고 살면 겨울에는 정말 추울 것 같아 보인다는건데, 일본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던 걸까요? 하긴 지금도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추위에 강해 보이는걸 보면 예전부터 단련된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에도 시대 삶에 대한 디테일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았던 독서였습니다. 친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장황해서 지루한 면은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근대 직전 에도 주민들의 삶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특히 에도 문화를 좋아라하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타츠에게는 필독서라 생각됩니다. 먹거리에 대한 소개도 자급자족하는 농산물에서 시작하여 밥 짓는 방법이라던가 각종 절임과 같은 반찬, 장류, 행상인이 파는 음식들까지 상세하지는 않으나 적당한 수준으로 실려 있기도 하니까 말이죠. 아울러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저자의 주장대로 항상 편하게만 살려는 생각을 좀 버려야 할 때니까요.

덧붙이자면, 다음에 일본에 가게 되면 이 책에 나온대로 다카나와 관문을 지나 니혼바시까지 7Km 정도 된다는 상가거리를 한 번 걸어서 지나가보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16/12/25

하나씨의 간단요리 1,2 - 쿠스미 마사유키 / 미즈사와 에츠코 : 별점 2.5점

하나씨의 간단요리 1 - 6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미즈사와 에츠코 그림/미우(대원씨아이)
하나씨의 간단요리 2 - 6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미즈사와 에츠코 그림/미우(대원씨아이)

"고독한 미식가"로 잘 알려진 쿠스미 마사유키가 원작을, 미즈사와 에츠코가 만화를 맡은 일상계 구루메 만화입니다.

쿠스미 마사유키의 작품들을 보면, 대체로 일상계와 평범한 먹거리 들을 조합하여 친숙함으로 어필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독신자가 이런저런 상점가 가게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사 먹는 "고독한 미식가", 은퇴한 직장인이 혼자서 이런저런 음식을 사먹거나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는 "방랑의 미식가", 샐러리맨이 주로 혼자 이자카야를 돌아다니며 술을 먹는 "황야의 미식가" 모두 그렇지요. 이 작품 역시 남편의 단신 부임 탓에, 가정 주부 혼자 생활하고 식사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주로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30세의 젊은 여성이며, 말버릇이나 호들갑스러운 행동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덕분에 주로 아저씨 대상의 일상계스러운 소소한 매력으로 승부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주인공 하나코씨의 귀여운 매력과 적절한 개그, 유머가 더해져 있지요. 특정 장면만 보면 '개그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요.
하나씨 주변 인물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차이점도 큽니다. 친구 미즈키를 비롯해서 하나씨의 친정 부모님,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서점 사장님, 이웃집 동거인 죤 & 요코 등등 모든 주변 인물들이 나름의 존재감을 가지고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든요. 덕분에 이야기도 풍성해질 뿐 아니라 보다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또 다른 주역인 음식들 역시 밖에서 먹는 한 끼 식사나 술안주 가 주로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정말 혼자 사는 여성이 먹음직한 음식들이 소개된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집에서 해 먹는 과정이 대충이라는 현실적 감성도 잘 살립니다. 단팥죽에 떡을 구태여 넣어 먹고,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은 명란 덮밥 레시피에 가다랑어포를 추가는 약간의 어레인지는 확실히 주부스러웠고요. "포만감과 만족감이 죄책감과 패배감으로 돌변해 가는 오후..."라는 대사와 같이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장면과 같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어요. 몇몇 밖에서 사 먹는 음식들도 주부, 30대 젊은 여성 분위기가 물씬 묻어납니다.

그러나 작화 면에서는 좀 아쉽습니다. 그림으로는 세계 챔피언급인 다니구치 지로, 음식 만화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츠지야마 시게루에 비교하면 확실히 묘사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는 하나씨 표현에 어울리지만, 또 다른 주인공인 '음식'에는 적합하지 않았고요. 대체로 사먹거나 정말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 중심이기는 하지만, 딱히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음식이 없던 건 작화 문제가 컸습니다. 맛있는걸 먹고 행복해하는 하나씨 표정만으로는 많이 부족하지요. 이게 얼굴만 잡히는 포르노도 아니고...
또 어쩔 수는 없었겠지만 하나씨의 수다에 대한 번역이 부실해 보이는 것도 눈에 거슬렸어요. 뭔가 라임을 활용한 아재개그 스타일 말장난이 중심인데, 적절히 번역하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조금 더 맛을 살려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음식만화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스토리적인 재미가 결합되어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확실히 많아요. 나름의 매력이 있기도 하고요. 요리 만화를 좋아하신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에 이런저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드라마, 거기에 더해진 여러가지 음식 이야기.라는 주요 키워드만 놓고 보면 "아빠는 요리사"와 똑같습니다. 본인의 히트작 "고독한 미식가"를 벤치마킹한 "방랑의 미식가"나 "황야의 미식가" - 이쪽은 "술한잔 인생한입"도 많이 참조한 것 같습니다만 - 도 그러한데, 인기 히트작을 참조하여 새로운 파생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결과물만 좋다면야 뭐 나쁘지야 않죠.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까요. 허나 "아빠는 요리사"가 수십년간 이어온 장기 연재작으로 가족 구성과 분위기가 전통적인데 반해, 이 작품은 남편의 단신 부임으로 강제 독신 신세가 된 하나씨를 비롯, 옆집에서 동거하는 존과 요코, 결혼도 하지 않고 애인과 아기부터 가지게 된 친구 미스즈 등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2005/01/18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 현태준, 이우일 : 별점 2.5점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 6점
현태준. 이우일 지음/시공사

조만간 일본 여행계획을 잡고 있던 차에 관심가던 책이라 덜컥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담배를 끊은 후에는 여러가지 책에 손이 많이 가네요.

이 책은 만화 등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출신 저자 두명이 반씩 여행기를 써서 모아놓은 책입니다. 약 1주일간의 도쿄 여행이라 그다지 정보가 많은 전문 여행기가 아닌 일종의 꽁트형식의 재치있는 단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자 두명이 전문분야를 활용하여 실어놓은 사진과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2명의 기행문이라 비교해서 보는 맛도 있고 길이도 짤막짤막한 편이라 보기도 편하더군요.

앞부분의 이우일씨의 글들은 일종의 대중문화 매니아, 만화가,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용이 많아서 참 좋았습니다. 시부야와 나카노 브로드웨이에 대한 설명은 꼭 이번에 써먹고 싶어졌으며 추천한 잡지 Best도 몇권 구입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더군요. 그 밖의 미술관과 넌센스 머신, 롯폰기 힐스 등에 관련된 독특한 시각과 묘사로 이루어진 글들은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현태준씨의 글은 반대로 너무나! 특이했습니다. 문체부터 이색적이긴 하지만 크게 3부분 "물건 싸게사기", "먹거리", "빠찡코"에 집중되어 있는 내용이라 이우일씨와 확실히 구분되더군요. 벼룩시장을 중심으로 한 "싸게사는" 나름의 노하우는 퍽 유용할 것 같긴 했습니다.

실용성 여부에 있어서는 여타 여행 안내서에 비해 떨어지겠지만 어차피 이 책을 사는 제일의 목적은 "재미"일 테고 저같이 나름의 쓸만한 정보를 발견하는 독자도 있을테니 한번쯤 구입을 고려해 볼 만 하겠네요. 하지만 약간 취향이 매니아적인 부분에 편중되어 있긴 합니다.

단 한가지! 올컬러라 값이 비싼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어차피 절반씩 나눠서 작업한 만큼 이우일-현태준 버젼을 구분하여 독자가 골라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아이디어가 아쉽더군요 (사실 전 현태준씨 버젼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3/29

딜리셔스 - 롭 던. 모니카 산체스 / 김수진 : 별점 4점

딜리셔스 - 8점
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김수진 옮김/까치

진화생물학과 인류학 관점에서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과학, 식문화사, 인문학 서적.

이 책에 따르면 동물들의 거주지가 제한되는건, 동물들의 미각 수용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입맛에 맞는 먹이가 있는 장소를 떠나기 힘들지요. 그러나 인류는 조리를 통해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료를 자기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도 불로 조리한 음식이 더 맛있어졌기 때문이고요.
음식 조리는 음식 소화 시간도 단축시켰습니다. 침팬지는 깨어 있는 시간의 40%를 먹이를 씹는데 씁니다. 하지만 인류 조상들은 이 시간을 대폭 줄였고(현재는 평균 하루의 4.7%를 씹는데 소모),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조리가 문명을 발달시킨 한 요인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맛있는 요리에 대한 집착은 수렵 채집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조사한 결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선호하는 음식 - 1위는 꿀 - 을 구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거든요.
이런 집착은 북아메리아에서는 거대 동물(매머드 등)의 멸종도 불러왔습니다. 불법이지만 코끼리 고기를 먹어본 사람들에 따르면 엄청나게 맛있다니까요. 특히 코끼리는 발 요리가 최고라고 합니다. 당연히 매머드도 맛있었을테고, 그래서 크로비스인들도 멸종할 때까지 매머드를 집중적으로 노렸던 것이지요.
맛있는 동물만 사냥하는건 지금도 수렵인들을 통해 증명됩니다. 현실적으로는 찾아서 죽이기 쉽고, 가공하기 쉽고 많은 열량을 제공하는 동물을 잡아 먹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연구 결과 사냥꾼들은 맛있는 동물들을 발견하면 무조건 추격한다고 합니다. 사냥하기 쉬운 동물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맛없는 동물들은 아예 사냥 대상에서 배제되고요.

향미에 대한 추구는 향신료의 사용도 불러왔습니다. 처음에는 항균제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쾌락적 경험을 불러오는 효과 때문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는 고추의 캡사이신을 조금씩 늘려 제공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가장 매운 맛이 가장 맛있다고 골랐다는 연구 결과로도 증명됩니다. 통각을 자극하는 맛은 실제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도 위험을 피할 때의 황홀감을 느끼게 해 주는게 아닌가 싶네요.
발효도 항균제 효과와 같은 이치로 생겨났을 겁니다. 장기 보관을 위해서요. 같은 이치로 염장, 훈제, 건조도 발명되었고요.
참고로 이 부분에서 아예 고기를 물에 담궈놓는 일종의 습식 숙성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말 한마리를 호숫물에 담궜던 실험이 소개되는데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진공 포장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장기 보존되었다는데 이유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일종의 발효같은 과정이 일어난 것이겠지요?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숙성 연성 치즈가 만들어진 것도 맛에 대한 추구때문이라는 이론도 흥미로왔습니다. 노동과 근면을 장려하고, 재료는 모자람이 없었지만 먹는건 제한적이었던(고기를 먹지 못햇던) 수도사들이 심혈을 기율여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치즈를 제조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는게 숙성 연성 치즈 제조의 원인이라는데 참 그럴듯했어요. 이 이론은 숙성 연성 치즈의 맛은 고기와 흡사하다는걸로 증명될 수 있고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 요리에 대한 추구가 문명 발전과 인류 진화를 이끌었다는걸 알려주는데, 목차 구성이 다소 정리가 불충분한 느낌이 드는건 아쉬웠습니다. 주제에 맞게끔 통사적으로 구성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도판과 등장 레시피 소개도 부실합니다. 

그래도 맛에 대한 집착이 진화를 이루어냈고, 식문화의 발달을 만들었다는걸 여러가지 연구 결과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이 책을 보니 맛에 대한 집착이 많은걸 이루어낸건 분명한 만큼, 맛에는 다소 엄격해져도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