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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9

예지몽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억관 : 별점 3점

예지몽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재인

"용의자 X의 헌신""탐정 갈릴레오"의 물리학자 갈릴레오 유가와 - 형사 구사나기 컴비가 활약하는 단편집입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반적인 본격 추리물에 가까운 정통파 작품이었죠. 그러나 단편집인 "탐정 갈릴레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괴현상"을 이야기의 핵심 소재로 등장시켜 그 수수께끼를 과학적으로 해명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에피소드가 중심인, 그러니까 괴현상에 이어지는 과학적인 해설이 핵심인 작품집이라 본격 추리적인 맛은 좀 덜했습니다. 과학적 해설도 일상적인 것이 아닌 너무 전문적인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잘 와 닿지도 않았고요.

이 책은 단편집이라 그런지 "탐정 갈릴레오"의 성격에 좀 더 가깝긴 합니다. 그러나 전편의 단점을 확실히 보완했더군요. 과학적인 설명이 지나치지 않고 상식선에서 설명되고 있으며 특별히 심오한 이론이나 소재가 등장하지 않아 내용이 현실적이었거든요. 괴현상도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상황들로 채워져 있고요. 또한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말랑말랑한 연애감정 묘사가 전무하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전편보다는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작품마다 편차가 조금 있기는 한데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영을 보다>를 꼽고 싶네요. 별점은 평균 2.7점인데 반올림하여 3점입니다.

꿈에서 본 소녀
괴기현상 : 일종의 예언
사건 : 모리사카 레이미라는 이름에 얽매여 17년동안 그 이름의 소녀와 결혼할 것을 믿고 살던 청년 사카기가 실존하는 모리사카 레이미라는 여고생 집에 침입하려던 사건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녀와 결혼할 것이라는 것을 믿던 청년에 대한 이야기로 유가와의 물리학적 지식은 사건해결과는 무관한 작품입니다. 좀 아쉬운 것이 "모라시카 레이미"라는 이름이 굉장히 드문 이름이라는 배경 설명이 보강되었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을 안다고 해도 그 이름이 흔하다면 트릭이고 뭐고 필요없는 거니까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전제조건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면 사카기가 그녀에 대한 꿈을 어떻게 꿀 수 있었는지에 대한 추리는 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사건과 잘 결합되어 있어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단서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영을 보다
괴기현상 : 유체이탈
사건 : 기요미라는 호스테스가 살해되던 순간에 다른 곳에 나타난 "영"으로 나타난 사건

역시나 물리학은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영이라는 존재를 현실의 살인사건으로 끌어와 해결하는 유가와의 추리가 아주 일품인 작품입니다. 특히나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실패한 트릭"이 꼬여서 빚어낸 상황이라는 것이었어요. 그 외의 CD플레이어의 잡음과 같은 사소한 단서를 취합하는 능력 역시 고전적이라 좋았습니다. 그야말로 고전 황금기 시절의 단편의 맛이 느껴질 정도로 마음에 쏙 들더군요. 별점은 4점입니다.

떠드는 영혼
괴기현상 : 폴터가이스트 현상
사건 : 실종자를 찾기 위해 용의자의 집에 침입한 구사나기가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맞부닥치게 된다.

사건이 너무 간단해서 추리의 여지가 없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대한 진상규명이 더욱 볼거리였어야 하는데 과학적이기는 하나 재미는 없는 편이었어요. 공진현상이 그렇게 대단하게 일어난다는 것도 크게 와 닿지 않았고 말이죠. 또한 상식적이라면 시체를 파묻은 뒤 괴현상이 일어난 것을 알았을테고, 이 괴현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시체를 다른 곳에 버리고 원상복구 시키지 않았을까요?
이 단편집의 워스트 단편으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단 이야기 앞부분에서 시체를 숨겨야 한다는 유카와의 의견은 마음에 들더군요. 그러니 갱들이 희생자들 다리에 콘크리트 신발을 신겨 물속에 버리는 것이겠죠.

그녀의 알리바이
괴기현상 : 도깨비불
사건 : 빚에 쪼들리던 영세공장 사장이 교살된 사체로 발견됨

이 작품은 TV 드라마 "갈릴레오"에서 이미 봤던 작품이더군요. 주요 트릭과 내용은 동일했습니다. 도구를 지나칠 정도로 사용하며 결국 공범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버젼과 결말이 다르다는 점이 특이했어요. 드라마쪽이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각색되어 있는데, 힌트를 드리자면 현실에서는 해피엔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지몽
괴기현상 : 예지몽
사건 : 한 여성의 자살이 목격되는데 그녀의 죽음 이틀전 똑같은 꿈을 꿨다는 소녀가 등장한다!

예지몽이 예지몽이 아닌 현실이었을 것이다는 가정하에 입각하여 추리가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제 트릭이 전문가만 알 수 있는 특정 소재를 이용한 복잡한 장치트릭이라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전기장치 등에 대한 설명도 너무 대충 넘어가고 있고요.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워낙에 상황이 재미있고 독특할 뿐 아니라 마지막의 예지몽 소녀 도모카의 다른 예지몽이라는 서늘한 결말은 인상적이었기에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2020/07/12

붉은 눈 - 미쓰다 신조 / 이연승 : 별점 3점

붉은 눈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레드박스

여덟 편의 단편과 작가가 수집한 네 편의 짤막한 실제 괴담이 수록된 공포 단편집입니다. 즐겨찾는 블로거이신 각시수련님이 올리신 미쓰다 신조 관련 글을 읽고 구해 읽었습니다. 여름에는 역시 공포 소설이지요.

미쓰다 신조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제가 읽었던 작품들과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모두 집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무섭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집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 이어, 이런 집에 대한 사는게 정상적인 무언가일리가 없다는 식으로 긴장감을 끌어냅니다. 그러나 다른 장편과의 차이점이라면, 수록작들 대부분인 작가이자 편집자인 미쓰다 신조가 직접 수집했거나 경험했던 '괴담'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현실감이 더해져 무섭고 오싹하기는 한데,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소설로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괴담으로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본연의 목적에는 충실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붉은 눈"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동급생이었던 마도 다카리가 사람에게 찾아와 죽음을 선사하는 붉은 눈을 지닌 무언가였다는 이야기.

마도 다카리가 이상하다는 묘사에서 시작하며, '나'와 함께 마도 다카리의 집을 찾아갔던 요네쿠라가 병으로 죽어버리고, '나'를 무당이었던 할머니가 지켜주었다는 결말까지 전개는 일직선입니다. 사악한 뭔가에 씌워져, 친구는 죽고 나는 할머니 덕분에 겨우 살아남는다가 이야기의 전부니까요. 마도 다카리의 정체라던가 퇴치 방법이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특별한 반전 역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덕분에 읽기 쉽고, 전개도 깔끔하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더군요. 

고전적인 설정과 내용인 탓도 큽니다. 무언가에 씌워지면 죽는다는 설정부터 고전적이잖아요? 꿈을 통해 마도 다카리가 근처에 있다는걸 느끼게 되면, 그 사실을 빨리 다른 사람에게 알리라는 결말은 "링"과 흡사하고요. 마도 다카리가 이상한 아이라는게 초반부터 드러나서 별다른 의외성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괴담 성격에는 충실하나 그렇게 무섭지 않고 새롭지도 않아서 감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경험했던 괴담'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괴담 사진 작가" 

월간지 부편집장인 '나'는 특집 기사 때문에 사이언 마스든이라는 괴기 사진 작가 사진집을 출간한 출판사 트레빌을 찾았다. 그리고 업무 후 귀가 중에 트레빌에서 일하는 미즈키 요리코라는 여성을 만나 모쿠노 요시미라는 사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모쿠노 요시미의 자택을 찾는데, 그 곳은 화마가 휩쓸고 간 흉가였다....

괴기 사진 작가가 온갖 괴기스러운 사진을 찍고 현상하다가, 그 현장에 있던 '무언가'를 집으로 데려온 꼴이 되어 결국 본인은 죽고, 여동생은 무언가에 사로잡힌 광인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오래전, 사진이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사람들이 사진 찍기를 기피했었습니다. 사진이 영혼을 빼 내어 간다는 소문때문에요. 간단한 조작으로 사람을 그대로 종이로 옮겨버리니 그런 소문이 돈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지요. 만약 이 소문이 소문이 아니라면, 피사체의 영혼과 사진이 찍히는 장소에 있는 '무언가'도 빼 내어 갈 수 있다는 뜻도 될 테고요. 이런 발상을 토대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그리 많이 보지는 못한 설정도 신선했고 모쿠노 요시미의 자택, 비서를 자칭하는 여동생, 자택 가득한 모쿠노 요시미의 사진들 모두 괴기스러운 묘사로 가득차 있어서 흥미진진합니다. 모쿠노 요시미와 그 여동생의 정체가 드러나는 클라이막스까지의 전개도 깔끔해요. 

편집자 미쓰다 신조 시점의 경험담으로 쓰여졌다는 것도 공포를 배가시킵니다. 엄청난 현실감을 가져다 주는 덕분이죠. 그 중에서도 '나'가 발견한 모쿠노 요시미는 등신대 사진을 잘라놓은 종이 인형에 불과했고, 여동생이 '나'를 이 곳으로 끌어들인 미즈키 요리코였다는게 드러나는 클라이막스 묘사는 백미입니다.
또 이 클라이막스 반전을 위해 앞 부분에 뿌려놓은 복선, 단서도 적절하고 공정합니다. 번역자가 공들여 이 단서를 설명하기 위해 이름 부분만 공들여 한자를 병기하여 표기한 탓에 이게 뭔가 의미가 있다는 티가 물씬 났던건 문제였지만요. 어차피 한국 독자가 해석하기는 무리였고요.

그런데 미즈키 요리코가 '나'를 이 집으로 끌어들여 뭘 어떻게 하려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연 미즈키 요리코는 그 저택에서 어떻게 되는건지, '나'가 저택에 남아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등도 마찬가지고요. 속 시원하게 밝혀진게 전무한 탓에 완성된 이야기로는 약간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공포만큼은 확실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영상화에 적합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미쓰다 신조 시점의 현재와, 괴기 심령 사진을 찍다가 데려온 무언가가 여동생에게 씌워져 파멸하는 모쿠노 요시미 시점을 오가며 모쿠노 요시미에게 씌워진 무언가가 현재, 과거에서 동시에 '개화'하는 장면을 클라이막스로 만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내려다 보는 집"

어린 시절, 교차로 벼랑 위쪽에 지어져 '나'를 내려다 보는 느낌을 가져다 주었던 집이 있었다. 흉가는 아니었지만, 지어진지 오래 되었지만 아무도 사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 집 때문에 기묘한 느낌을 받던 나와 친구 K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집을 조사해 볼 계획을 세운다. 마침 함께 있었던 K의 어린 동생과 함께 4~5명의 아이들은 집 수색에 나서는데...

작가 미쓰다 신조로 보이는 '나'의 어린 시절 있었던 추억 괴담으로 "괴담 사진 작가"와 마찬가지로 작가 본인이 경험했었던 정말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식의 묘사가 탁월하며, 작품과 잘 어울립니다. '내려다 보는 집'에서 K의 동생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자를 만나 사람 얼굴이 그려진 유리 구슬을 받고 놀았다는 상황도 상당히 공포스럽고요.

그러나 '공포'를 전해줄만한 실체는 친구 K의 동생의 이상한 행동과 증언 뿐이며, '내려다 보는 집'에 대해서는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빍혀지는게 없는 결말은 많이 답답합니다. 이야기의 현실감을 유지하면서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결말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듯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조금 기묘한 이웃집을 무단 침입한 아이들 이야기 정도니까요. 덕분에 현실감넘친다는 장점도 있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한밤중의 전화"

공포 소설가인 '나'에게 새벽 2시에 전화가 걸려왔다. 어린 시절 친구가 5년전 취한 채로 찾아갔던 심령 스폿에 방문해 있다는 전화였다...

친구인줄 알고 긴 통화를 이어가는데, 알고보니 친구가 아니고 이형의 존재였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전형적인 괴담입니다.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건 고전 괴담 '너는 내가 아직 니 엄마로 보이니?'와 다를게 없지요.

하지만 심령 스폿인 묘지에 있는 괴상한 집에 대한 묘사 - 코 앞에 늪이 있는, 연한 빨간색에 집 안은 붉은 벽돌로 되어 있고 온갖 불쾌한 쓰레기가 가득한, 창무하나 없으며 대문의 위치도 기묘한, 기분 나쁜 그림이 붙어있고 안 쪽에서 회반죽이 칠해져 입구가 봉해진 - 는 아주 빼어납니다. 전작들인 "화가", "기관"는 물론 이 단편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 모두 마찬가지인데, 미쓰다 신조는 공포스러운 공간을 그려내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는게 분명합니다. 불현듯, 미쓰다 신조가 개포동 은마 아파트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쓰면, 그 자체가 바로 괴담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단지 무서운 공간 묘사에 그치지 않고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되니까.' "다 왔다.."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섬찟합니다. 뻔하지만 이야기로서도 잘 완결되기는 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나방 남자의 공포"

'나', 즉 미쓰다 신조는 S 지방의 어느 온천 마을에 머무르던 중, 온천 여관 뒷 쪽에 있는 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산책을 나섰다. 그 길의 끝에서 이런저런 정체 불명의 폐가와 폐허를 목격하고 돌아온 뒤, 자정이 넘은 시간 노천탕을 찾았다가 낯선 남자를 만났다. 그는 여관 선선대 부인의 오빠라면서, 미쓰다 신조에게 과거 '재나방 남자'라는 살인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재나방 남자 사건은 가즈오라는 소년이 기묘하게 살해된 사건입니다. 낯선 남자는 당시 용의자로 몰렸지만 곧바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곤도 순경의 증언 덕분에요. 그는 가즈오와 헤어진 5분 뒤, 곤도 순경과 스쳐 지나갔는데 곤도 순경은 시체가 발견된 연못 옆에서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연못을 지나 반대쪽 길로 향하던 순경은 두부 장수 오누키와 마주쳤고, 바로 뒤 오누키가 시체를 발견했고요. 그래서 낯선 남자는 범인이 될 수 없다는게 증명된 것입니다.

이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게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에, 여관 뒤 오솔길에서 발견한 폐허와 박쥐 남자, 재나방 남자라는 기묘한 살인귀 이야기가 덧씌우져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본격 추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인 미쓰다 신조의 추리도 대담하며 그럴듯합니다. 범인은 곤도 순경이거나, 낯선 남자일 것이라는 추리인데, 낯선 남자가 범인일 경우 가즈오의 시체를 감춘 트릭을 파헤치는게 특히 인상적이에요. 낯선 남자는 사건 당시가 절분이라 가지고 있던 콩을 곤도 순경이 나타나기 직전 순간적으로 시체 위에 뿌린겁니다. 비둘기를 불러모아 시체를 숨기 위해서라는데, 주어진 정보 제공도 공정한 편이며, 실현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살짝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현실감있게 잘 포장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괴담으로서의 역할도 그리 빠지지는 않습니다. 결말에서 낯선 남자는 살인귀 재나방 남자로 오래전 죽었으며, 지금도 가끔 노천탕에 출몰한다는 마무리는 뻔하지만 확실해서 이야기 완성도 측면으로는 마음에 들고요.

한마디로 공포와 추리 양쪽 모두 기본 이상의 재미를 전해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뒷골목의 상가"

미쓰다 신조는 E씨에 대한 으스스한 이야기를 "백사당" 안에 녹여내려다가, 무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오싹한 바람 소리와 함께 하는 누군가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쓰다 신조는 원고 속 E씨 체험담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 뒤 취재원이었단 야카게 씨가 E씨가 죽었다며, 괴담에 대한 섬뜩한 원고를 보내오는데...

도입부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모두 E씨 시점의, E씨가 겪었다는 괴담입니다. E씨가 어린 시절 야반도주하여 숨어 살게 된 교토 '뒷골목' 집에서 공포스러운 존재와 마주한다는 내용이죠.

어떤 거리, 공간이 특정 시간이나 특정 조건에서 이계와 연결되어 그 곳의 이형과 조우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많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작품에서도 보아왔던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는 어떤 조건에서 이계와 연결되는지, 이형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형이 노리는게 무엇인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냥 공포스러운 존재로만 묘사될 뿐입니다. 공포의 핵심도 E씨가 '지이이이이잇.....' 소리를 내는 소름끼치는 여자에게 쫓기는 과정이고요.

하지만 이 여자가 E씨의 뒤를 쫓고, 집 안으로 숨어들어오는 과정의 묘사는 가히 일품이라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우 드나들 틈새를 지나 뒤로 나타나서 뒷쪽 창틀을 움켜쥐는 장면 묘사는 특히 압권이었습니다.
E씨는 아직 그 곳에 살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데, E씨 원고의 결말은 E씨가 그 곳에서 이사를 갔다는 모순 가득한 결말도 인상적입니다. 아예 아무 것도 드러내지 못할 바에야, 모든 걸 이렇게 모호하게 풀어내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네요.
괴담으로서는 최고 수준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맞거울의 지옥"

미쓰다 신조가 젊은 시절 교토에 있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할 때, 도쿄 출장 중 캡슐 호텔 화장실에서 맞거울을 보며 에도가와 란포의 "거울 지옥"을 떠올리다가 다른 손님을 만났다. 그도 괴담을 좋아해서 의기투합한 미쓰다 신조는 함께 호텔 로비에서 캔 맥주를 나누며 괴담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그 남자의 동생과 맞거울에 얽힌 괴담을 듣게 되는데...

거울과 거울 사이, 맞거울의 무한 공간에는 귀신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작품. 작품은 그다지 의외성이 없지만 겹쳐진 거울 속 어딘가에 있는 귀신이 거울을 건너뛰면서 나이를 먹고, 결국 나 자신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나타난다는 클라이막스는 아주 근사합니다. 소설로도 멋지지만 영상화한다면 정말 환상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클라이막스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죽음이 으뜸이다. 사상학 탐정" 

사람에게 나타나는 죽음의 상, 즉 사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슌이치로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사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죽음 그 자체로 보였기에 슌이치로는 쫓아내지 않았다. 이누마는 자기처럼 괴담을 좋아하는 친구 가이즈카, 요코가와, 이와세와 함께 한 밤중에 인터넷 상에 유명한 오드아이 소녀가 얽힌 괴담이 있는 폐가를 찾았다가, 친구들이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이 단편집 표제작이자 첫 번째 작품인 "붉은 눈"의 마도 다카리와 그녀의 집이 또 다시 등장하는 작품. 그리고 친구들과 무모한 심령 스폿 탐험을 나선다는 설정은 "한밤중의 전화"와 같습니다. 거기에 주인공이 사상학 탐정 슌이치로이고, 마도 다카리가 거주하는 흉가에 대한 오싹한 묘사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가히 미쓰다 신조 월드를 집대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집대성 작품답게 오싹한 묘사는 역시나 대단합니다. 무너져가는 집을 탐험하는 과정부터 오싹해요. 불당 안의 불상 눈이 파내어져 있었다는 묘사가 특히 기억에 남네요. 무엇보다도 차로 돌아가던 4명에게 닥친 공포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폐가 방문을 거절하고 차 안에 남아있던 이와세가 "그 여자애가 왔다. 계속 차에 들여보내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들였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지요. 등골이 서늘해 집니다! 친구들이 절규하기 시작했다는 직후 묘사도 오싹합니다. 대체 무엇을 본 걸까요?

본인 경험 괴담이 아니라 소설적인 구성을 갖추어서 그런지 기승전결 구조도 좋습니다. 슌이치로를 찾아온 이누마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또는 그에 가까운 상태였다)는 결말이 특히 좋아요. 이누마에게 사상이 보이지 않은 이유, 슌이치로의 고양이 보쿠가 이누마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되니까요.

중반부의 오싹한 장소를 뒤지는 전개는 담력 시험 수준이라 특별한건 없고, 마도 다카리의 정체와 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죽게 만드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건 여전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7/08/19

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 - 김지영 : 별점 2점

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 - 4점
김지영 지음/돌베개

부제는 '개념사로 읽는 근대의 일상과 문학' 입니다. 제목과 부제, 대충의 목차만 보고 근대 관련 미시사 서적이라 생각하여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생각과는 좀 다릅니다. 신문화사와 일상 개념이라는 분야에 대한 학술적인 흐름을 더듬는 "개념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앞부분 거의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탓입니다.
문제는 전혀 관심이 없는 학문인데다가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재미도 없고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은 연구원이 아니라면 읽을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 뒤에 이어지는, 문학에 자주 쓰인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시대를 분석하는 부분은 나쁘지 않습니다. "연애", "청춘", "탐정", "괴기", "명랑"이라는 단어들이 근대에 어떻게 도입되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다양한 문학 작품이나 사료를 통해 알려주는데, 개인적으로 관심이 컸던 "탐정"과 "괴기" 두 부분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탐정 소설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기대는 "계몽"이라는 측면, 즉 다방면의 지식에 통달하여야 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이건 심층적인게 아니라 표피적인 것이었다는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은 지금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저 역시 마찬가지라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도판도 괜찮았고요.
또 "괴기" 편에 소개된 다양한 엽기 사건들에 대한 기사와 소설들은 간략한 소개나 인용문만 보아도 - 예를 들어 유기된 상자 안에서 사람의 다리가 발견된 사건이라던가 - 내용이나 진상이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항목 외에는 그냥저냥하며, 다른 미시사 서적에서 많이 접했던 내용들입니다. 결국 전체 분량에서 관심이 있고 읽을만한 부분이 1/3에도 못 미치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17,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이요. 게다가 "탐정"과 "괴기"에 관련된 항목 역시 "대중 서사의 모든 것 3 : 추리물"에서 소개한 것들과 별 차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04/01/08

공포서클 - 아카가와 지로 : 별점 1점

가타야마 형사는 가스폭발사고 현장에서 목졸린 여고생의 시체를 발견했다. 경찰은 피해자 남자친구가 상지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들어갔고, 여러 제보와 정황으로 괴기클럽의 멤버들에게 수사를 집중해 나갔다. 그런데 클럽에는 신비의 미소녀가 새로 가입했고, 다른 여러 사건들과 문화제의 연극부 공연이 겹치며 사건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사립 상지 고등학교의 "괴기클럽"이라는 동호회(제목은 "공포서클"인데 등장하는 동호회는 "괴기클럽"입니다... 이거참...) 멤버 4명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일본의 인기작가 아카가와 지로의 "얼룩고양이 홈즈의 추리" 시리즈 중 한 권이지요.
이 시리즈는 홈즈라는 이름의 삼색털 얼룩 고양이가 나와서 단서를 찾아준다던가, 어떤 방향을 인도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주인공 가타야마 형사와 하루미 남매에게 도움을 주어 사건을 해결하게 하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문화사에서 출간된 시리즈 중 4번째 책으로, 우연히 자주 가는 헌 책방에서 전권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전 6권 중 5권이 이미 가지고 있던 책과 겹쳐서, 이 작품만 처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 시리즈를 비롯해서 아카가와 지로의 작품은 여럿("레몬트리" 나 "1주일 시한의 추적" 등등...) 읽어 보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좋게 말하면 대중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싸구려 느낌이에요. 이 작품 역시 만화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들(피만 보면 기절하는 숫기없는 형사 가타야마, 오빠 사건에 무조건 뛰어드는 동생 하루미, 먹보이고 바보인 동료 형사 이스즈)과 말도 안되는 상황 설정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내용면에서 독특하거나 치밀한 부분도 없습니다. 고양이가 추리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아이디어에 너무 끌려다니는 탓입니다. 추리적인 부분에서도, 독자에게 단서를 전해주는 부분이 빈약하고, 단편에도 못 써먹을것 같은 별 볼일 없는 트릭 뿐입니다. 사건도 우연에 의해 해결되는, 막판에 단 한번에 사건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왜 이런 책이 일본에서는 많이 팔리는 걸까요? 그만큼 추리 시장의 저변이 넓다는 이야기일까요? 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재미 없었습니다. 이 얼룩 고양이 시리즈도 제가 읽은 것 중 건질만한건 1편 "고양이의 추리"와 6편 "고양이 저택"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헌책이라 싸게 샀다는 것 정도입니다. 아울러, 이 작가 작품은 조심하라! 는 교훈도 받았으니 다행이랄까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13/08/14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 2 - 구마 겐고 외 / 권은희 : 별점 2.5점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 이야기 2 - 6점
구마 겐고 외 지음, 권은희 옮김/까치

건물 하나당 한 장 분량의 짤막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된 전편에 이어지는 건축물 관련 서적. 몰랐는데 아사히 신문 연재 컬럼이라고 하네요.

이 책의 장점은 아주 확실합니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진이 굉장히 멋지다는 점이죠. 글들은 4명의 작가가 나누어 썼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움이나 기묘함만을 설명하는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게 그 건축물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보는 후지모리 데루노부의 글이 가장 좋았습니다. 일본에 라이트 등 유명 건축가들의 건물이 제법 있다는 정보는 솔깃했고요. 여행 갔을 때 좀 알고 돌아볼걸...

그러나 건축물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점, 전편보다 참신함과 재미가 부족하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정보 부족의 경우, 이 책을 사진과 함께 하는 일종의 건축물에 대한 감상 중심의 에세이로 규정한다면 단점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두 번째 단점은 심각합니다. 에펠탑이나 런던의 유리 달걀 같은 관광지화된 유명 유적에다가 가우디, 르 코르뷔지에, 반 데어 로에, 라이트 등 유명 건축가의 대표작들은 이런저런 다른 매체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것들로, 이 책의 제목인 "불가사의한"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아트북 같은 책의 성격은 마음에 들지만 전편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에 든 건축물들을 몇 개 꼽아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카이딘 황릉

베트남 최후의 황제 바오다이 바로 직전의 황제인 카이딘 황제의 능. 철근 콘크리트와 가우디 취향의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지만 슬프고 품위가 없는 분위기라는 기묘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긴타이쿄

그야말로 우키요에의 풍경 그림 같은 독특한 다리.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마구치현, 이와쿠니번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르세 미술관

1970년대 초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1968년 5월 혁명 후 이의가 제기되어 보존이 결정되고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건물.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내용은 잘 알고 있었지만, 20세기에 대한 이의제기가 관광 명소 만들기에 불과했다는 씁쓸한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이탈리아의 몬테마르티니 박물관

히틀러의 전체주의와는 다르게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는 미래파를 후원하는 등 디자인 선진국다운 미의식의 소산이 보였다죠. 그래서인지 다른 국가의 오래된 건물을 박물관화하는 프로젝트는 모두 오르세 미술관처럼 역사적 건물 안에 근현대 미술품을 전시한 의외성이 특징이나, 이 미술관은 고대 조각을 수용했다는 독특함이 돋보입니다. 책에서는 이러한 것이 영원한 디자인 대국다운 면모라고 하네요.

스트로베리힐 빌라

고딕 호러 오트란트 성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이 자신의 고딕 취미를 반영하여 건축한 자택. 당시 기준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잔뜩 집어넣으려 노력한 것 같은데 사진만 보면 괴기스럽다기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 느껴집니다. 시대가 많이 변한 탓이겠죠.

긴자 라이온

1934년에 개업한 맥주 마니아의 성지. 건축적인 의미보다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보고 싶더군요. 사진만 보면 뭐... 그냥 강남 지하에 있는 맥주집 같긴 하지만요. 참고로 이 "긴자 라이온"은 대일본맥주의 직영 맥주홀로 1934년 개장하였으며, 연중무휴로 생맥주 한 잔은 25전이었다고 합니다.

2024/05/03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 별점 2점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4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기소설가 도조 겐야가 괴담 수집 취재를 위해 향한 가가구시촌은 신사를 맡은 '백'의 '가미구시가', 뱀 신을 모시는 '흑'의 '가가치가'라는 두 가문 세력으로 나뉘어진 곳이었다. 도조 겐야가 도착한 직후,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수행승 젠토쿠 도사가 교살당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가가치가 어른들이 잇달하 살해당했다. 사체는 모두 허수아비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건들이 일종의 밀실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탓에 수사는 미궁에 빠졌지만, 도조 겐야는 추리쇼를 펄쳐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데....


"처음부터 생각해 보지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세상의 모든 일은 흑백을 명확히 가릴 수 있는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안 돼."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제 1작. 시리즈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읽고나서 14년만에 읽게 되네요. 
550페이지를 넘기는 대장편으로 일본의 괴담을 섬찟하게 그리면서, 괴담과 관련된 괴사건이 일어나지만 이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추리해서 해결한다는 아이디어를 잘 살린 작품이지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전개와 설정 모두 나무랄데 없습니다. 후속권이 계속 이어지는 인기 시리즈가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일단 미쓰다 신조 작품답게 괴기 현상에 대한 묘사가 좋습니다. 어린 시절 렌자부로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렌타로가 사라졌던 사건이 특히 굉장했어요. 귀기어린 구구산의 분위기, 기묘한 계단을 통해 이어지는 당집과 지하실, 뒷 계단을 통해 나왔을 때 뒤를 쫓아온 괴이 등이 렌자부로의 시점으로 설명되는데, 한 편의 괴담으로도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오래전 벌어졌던. '신령 납치'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시즈에 실종 사건은 '시즈에가 스스로 몸을 숨겼던게 아니었을까?'라는 추리에서 시작해서, 마을을 덮친 괴이한 연쇄 살인 사건까지 추리해 내는 도조 겐야의 추리도 볼거리입니다. 등장하는 괴담, 괴이 현상에 가까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수수께끼 중 주요한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지요가 지장갈림길에서 목격했던 사기리 생령의 정체는?
  • 누가 숨어있기 힘들었던 나루터에서 가쓰토라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 구니하루 찻잔에 독을 넣고, 잠깐 사이에 피해자를 허수아비처럼 꾸민 방법은?
  • 기누코를 살해하고 오솔길에서 사기리, 렌자부로, 도조 겐야 눈을 피해 달아난 방법은?
이에 대해서 도조 겐야는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추리를 내 놓고, 실패를 반복하는데 왠지 모르게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 놓는 추리들도 아예 말이 안되지 않고요. 예를 들어 맨 처음 '범인은 사기리 할머니의 시종인 구로코다!'라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구로코는 젠토쿠 도사 범행 당시 무신당 안에 있었고, 구니하루 범행 때에도 현장에 있었으며 맨 처음 장소를 이탈했기에 옆 방에 숨어들 수 있었고, 기누코 사건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터부시하는 허수아비님 속에 숨어 렌자부로의 눈을 피했으며, 이는 구로코가 마을 사람이 아니어서 가능했다는 등의 내 놓는 근거 역시 꽤 탄탄한 편입니다. 이는 구로코의 정체는 렌자부로의 형 렌지로라는 추리로 이어지고요. 이 역시 나름대로 근거를 잘 제시해줍니다.
구구의례라는 의식을 행하며 할머니가 조제했던 약을 먹은 사기리가 좌반신에 마비가 남고 잘 걷지 못하게 된걸 보고, 그녀가 뇌경색에 의한 시야협착 증세를 가지고 있어서 왼쪽을 돌아볼 때 뒤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추리, 그리고 범인이 사기리의 쌍둥이 언니 사기리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처음부터 사기리는 2명이 아닐까라는 단서를 계속 던져주고 있기도 하고요. 애초에 도조 겐야의 취재 노트, 렌자부로의 수기와 함께 작품을 전개하는 축인 '사기리의 일기'가 주인공인 동생 사기리가 아니라 언니 사기리의 일기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모든게 허수아비 속에 숨어 있었던 사기리 시점이었던 거지요.
아울러 언니 사기리가 모든 범행을 허수아비 속에 숨어서 행할 수 있었던건, 그녀가 구구의례 뒤 허수아비님과 같은 산신님이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핵심 트릭이야말로 괴담과 추리가 잘 결합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이외에도 젠토쿠 도사를 살해한 범행은 이모 사기리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서 특별한 수수께끼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다른 범인이 있었다는게 드러나며 이 사건에서의 목격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잘 짜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작답게 부족한 부분도 느껴집니다. 일단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상당히 지루합니다. 가미카쿠시 촌을 양분하고 있는 흑, 백 세력의 필두 가가치가, 가미구시가 양 가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족 관계를 엄청나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문제는 이 설정은 미쓰다 신조 작품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신선하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우선 '뱀 신'을 모시면서 떠받드는 가가치가의 묘사는 "백사당", "사관장", "흉가" 등 다른 작품 속 가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행해지는 의식 역시도 비슷하고요. 
물론 이건 이 작품이 작가의 초기작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다소 부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불필요한 내용이 과하다는건 분명합니다. 마을 이름의 유래 등을 통한 마을 마귀 신앙 설명처럼요. 사건과 별로 관계가 없는 부분을 모두 쳐 내었더라면, 200페이지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을겁니다. 

도조 겐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외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온 긴다이치 코스케와 별다를게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화적으로 독특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이렇게 무색무취한 것도 문제네요. 게다가 괴담을 무척 좋아한다는 설정은 관련된 설명이 늘어지게 만들 뿐이라 오히려 감점 요소였다 생각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사건은 풍성하고,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는 후더닛 측면으로는 볼만하나 본격 추리물에서 가장 중요한 트릭면에서는 아쉽습니다.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던 허수아비 속에 숨는 트릭인데, 이는 이미 도조 겐야로부터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렌자부로 등이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부인해서 흐지부지 넘어가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극단적 상황에서 심리적 거부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던것 아니었을까요? 렌자부로와 마을 사람들 의견으로 불가능하다고 쉽게 단정지을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설령 도죠 겐야는 그랬다쳐도, 경찰이 이를 쉽게 납득하고 넘어간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사기리가 떠내려보낸 주물을 쌍둥이 언니가 몰래 다시 어깨에 얹은 이유라던가, 기타 등장하는 괴이와 괴담 모두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렌타로 실종 사건입니다. 할아버지가 찾으러 갔을 때 사당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도조 겐야의 추리는 그럴싸 했지만, 누가 왜 렌타로를 납치했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으니까요. 이도저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정리된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아이디어는 돋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어차피 같은 설정이라면 "백사장", "사관장"같은 후기작을 읽는게 더 낫습니다. 외딴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 저주와 엮인 사건에 대한 추리 소설이라면 "흑사의 섬"도 나쁘지 않고요.

2010/07/08

밤 산책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5점

밤 산책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번째로 읽은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입니다.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로, 요코미조 작품의 전형, 그러니까 "부유한 명문가이지만 실상 내용을 알고보면 콩가루 집안"을 무대로 한 "연쇄살인극"입니다. 여기에 뭔가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덧칠한 것 역시 여전해서 이 작품에서는 "꼽추"와 "몽유병",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요도 "무라마사"가 주요 소재로 쓰이고 있죠.
다만 콩가루 집안의 상황을 이전 작품들보다 한층 업그레이드해서 표현하고, 3류 탐정 소설가 야시로를 화자로 내세워 야시로가 직접 쓴 소설처럼 진행되는 액자 소설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 1인칭 시점인 "팔묘촌"과 비교하자면, "팔묘촌"은 단순한 수기 형태였던 것에 반해 이 작품은 작중 작품이라는 형식도 독특하지만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처럼 화자가 범인이라는 일종의 서술 트릭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고요.
하지만 본격 추리 소설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무려 3명이나 살해당하는데 트릭은 보잘 것 없고, 그 외에도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탓입니다. 특히 첫 번째 하치야 사건의 경우, 하녀 후지의 결정적 증언 - 12시에 하치야가 방에서 자고 있었다 – 가 번복된 순간에 이미 사건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증언 번복으로 야치요의 시간 조작이 곧바로 드러나 버리게 되니까요. 때문에 이후의 설명이나 사건은 사족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애당초 하녀 후지가 처음에 거짓 증언을 한 것 자체가 단순한 운이었다는 등, 운에 의지한 부분도 너무 많아요.
그 외에도 나오키가 칼을 둔 장소를 야시로는 어떻게 알았는지, 왜 나오키가 시즈카를 감금하여 돌봐주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모리에가 지시한대로 얌전히 독을 먹고 죽은 부분과 두 꼽추의 동일한 총상 역시 억지가 지나쳤습니다. 과장된 몽유병 설정도 거슬렸고요. (심지어 몽유병 환자가 물속에 들어가 무언가를 찾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도 동기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화자가 범인이고, 또 소설의 작가이기 때문에 다른 등장인물 – 특히 나오키 – 에게 혐의를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하지만, “내가 범인이다!” 라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겨우 실질적인 동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공정하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앞 부분에 야시로와 나오키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시즈카에 대한 설명을 조금이나마 복선으로 등장시켰어야 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재미는 있다는 겁니다. 이 작품의 매력 요소는 괴기스럽고 기괴한 분위기와 묘사에 있기 때문이죠. 추리적으로도 이런저런 불만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그럴듯한 트릭과 단서들이 계속 등장해서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 하나는 확실하고요. 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같이 해 줄 추리 괴담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3/12/15

밀랍인형 - 가스통 르루 / 정태원 : 별점 2점

밀랍인형 - 6점 가스통 르루 지음, 정태원 옮김/출판시대
'노란방의 비밀'의 가스통 르루의 단편집.추리라기 보다는 "오페라의 유령"류의 괴기 환상 문학에 더욱 가까운, 그 중에서도 예기치 못한 반전으로 인한 공포외 괴기스러움을 전달해 주는 작품들과 평범한 괴담류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반 작품이어서 그런지 지금 보기에는 이야기가 조금 순진합니다. 약간만 더 묘사와 상상력이 발휘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전체적으로 2% 부족한 느낌이 드네요. 몇몇 작품은 보다 충격적인 반전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찬가지 이유로 조금 약하게 느껴지는게 아쉽습니다. 이 정도 설정과 아이디어라면 충분히 스텐리 엘린의 "특별요리"수준의 재미를 줄 수 있었을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금도끼", "흉상들의 만찬", "노트람프" 정도가 괜찮았습니다.

추리의 맛이나 괴담류의 모골 송연한 느낌을 원하신다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네요. 개인적 생각이지만 가스통 르루는 장편에 더욱 소질이 있는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7/26

여름맞이, 최고의 호러 컨텐츠 소개 : BRUTUS 2023년 9월 호러 특집

주제 한 가지를 정해 집중 탐구하는 일본 잡지 BRUTUS의 2023년 9월 주제가 '호러' 였었습니다. 여러 기사가 실려 있는데, 메인을 장식한 기사가 호러 순위였고요. 14명의 호러 매니아가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괴담, 소설, 만화, 게임, 유튜브에 심지어 폐가까지 호러 컨텐츠 전 분야에 걸쳐 모두 444펀을 선정한 뒤, 1.0점부터 5.0점까지 41단계로 판정하여 순위를 매겼습니다. 이 중 최고점인 별점 5점을 받은 작품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그런데 영화 몇 편 빼고는 거의 모르겠네요. 만화의 경우는 굉장히 마이너한 단편 작품만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요. '호러 매니아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라는 과시욕이 느껴져서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그냥 참고만 하는게 좋겠습니다.

영화 :
  • 노로이(ノロイノロイ) - 시라이시 코지 / 2005년
  • 다크 앤드 더 위키드 (The Dark and the Wicked) - 브라이언 베르티노 / 2020년
  • 먼고 호수 (lake mungo) - 죠엘 앤더슨 / 2008년
  • 링 - 나카다 히데오 / 1998년
  • 새 - 알프레드 히치콕 / 1963년
  • 텍사스 전기톱 학살 - 토브 후퍼 / 1974년

소설 :
  • 잔예 - 오노 후유미 / 2012년 : 작가인 주인공이 도쿄 교외 맨션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을 쫓는 페이크 다큐 형식의 소설.

만화 :
  • "저주의 초상화 (呪いの肖像画)" - 아오키 토모코 青木智子/ 1996년 : 『학교에 전해지는 무서운 소문 3』 수록작. 미술부 선배를 짝사랑하는 소녀가 사고로 죽고, 그 영혼이 자신이 그린 초상화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그림에 다가간 후배의 몸에 초상화가 감겨 소녀가 빙의한다.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일념으로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녀가 진정한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 무섭다.
  • 'get lost' - 이노우에 유미いのうえゆみ / 1988년 : 『마이코믹스 호러 오컬트 공모대전 HELP 5』 수록작.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의 충격적인 작품. 아이와 떨어질 수 없는 아버지와 딸의 코믹한 교감이 그려지는 도입부에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구하기 어렵지만, 아버지의 망상이 불러일으키는 최악의 기적을 목격해 보길 바란다.
  • "TVO" 오챠즈케노리 (御茶漬海苔) / 1989년 : 심야에 갑자기 시작되는 「공포의 TVO」. 거기에 비춰지는 것은 인간의 어둠. 인간의 날카로워진 어둠이 깊고 담담하게 그려진 사이코 호러의 걸작. 작가의 초기 작품은 그 표현이 특히 뛰어나서 화면이 고요한데도 소름이 돋는다. 읽으면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라는 촌철살인의 문구가 빛을 발한다. (*1권은 무료로 읽을 수 있네요. 그렇게 무서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괴담 :
  • '가엾은 웃음' - 梨 / 2022년. 책 : 괴담 중심으로 활약하는 신세대 괴담 작가 梨의 첫 번째 단독 저서. 자신이 그동안 인터넷에서 수집한 괴담을 바탕으로 쓴 '독자 참여형' 호러큐멘터리로, 작품 속에는 출처로 연결되는 QR 코드가 있는 등 독자를 현실적인 공포 체험에 참여시킨다. "괴담에서 가장 귀를 막고 싶은 주제인 '사람의 악의'를 현대 독자들이 가장 체감하기 쉬운 형태로 소설화했다. 발명이라고 해도 좋다. 책 자체에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 「1㎜의 여인」 / DVD 『사쿠라금조의 TV에서 말할 수 없는 무서운 이야기』 수록 : 무단결근한 친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사쿠라 씨는 그의 집으로 향한다. 그가 가리키는 다다미의 뒷면을 들여다보니 벽과 벽 사이의 불과 1, 2mm 틈새에 여자가 있었다. 사쿠라 씨는 탄탄한 괴담의 명수. 이야기꾼이기에 가능한 이상한 세계 이야기. 이것은 영상화 불가능.
  • 이나가와 준지 「살아있는 인형」 / YouTube에서 시청 가능 (youtub e.com/watch?v=7Bmlfx8iEQo). 18:09경 : 어느 날 밤, 이나가와 씨는 택시 안에서 소녀 같은 인물을 본다. 나중에 좌장으로 임명된 인형극에서 사용할 인형이 소녀와 똑같았다. 관련자들은 연이어 불행을 겪게 된다 ....... 지금도 계속되는 전설의 열여덟 번째.

게임 :
  • 'MADiSON' Steam, Xbox, PS4 PS5 외 / 2022년 / BLOODIOUS GAMES : 16세 소년을 조종해 저택에서 계속되는 사악한 의식을 끝내기 위해 탐험하는 서바이벌 호러.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만큼 공포도 일품이다. 어두운 복도를 카메라 스트로브를 비추며 걷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에 용기가 필요하다. 그야말로 5무의 최강의 공포 작품.

다큐멘터리 :
  • '어둠의 동영상' 감독: 코다마 와다마 감독/토/일/2012년~/프롬노트 : 심령과 오컬트에서 그로테스크한 묘사까지, 온갖 금기에 과감히 도전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축축하고 습한 습도 높은 공포의 영상.

귀신의 집 :
  • '다이바 괴기학교 나고야교' 메이커스피아/아이치현 나고야/평일 휴무/도쿄 다이바 : '다이바 괴기학교'의 계열점. 학교의 참극에서 비롯된 전개는 본교와 같지만, 이쪽이 더 넓고, 더 오래 공포를 즐길 수 있다. 또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무섭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의 연속으로 공간, 이야기, 연출에 있어 가장 무서운 귀신의 집.

유튜브 :
  • "페이크 다큐멘터리 'Q' 제작: 미나구치 다이치, 테라 우치 야스타로 외 / 일 / 2022년 : 봉인된 프로그램 녹화 데이터 등 단편 공포 다큐멘터리 영상을 올리는 채널. "영상에 허구성이 전혀 없다는 점이 무서운 점입니다. 사색에 잠기게 하는 장치도 곳곳에 숨겨져 있어 보면 볼수록 매력과 공포가 더해집니다."

2010/07/16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3점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 6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이 작품은 경찰 관계자 3명 - 아일랜드인 존 캐러더스 형사 / 잉글랜드인 부국장 허버트 암스트롱 경 / 스코틀랜드인 데이비드 해들리 총경 - 각자가 한꼭지씩 맡아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의 형식부터 시작해서 그동안의 존 딕슨 카 작품과는 성격이 아주 다른, 굉장히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유로는 첫번째로 코믹하고 왁자지껄한 블랙코미디 군상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한 것을 꼽고 싶습니다. 설정부터가 황당하고 코믹하죠. 가짜 수염을 단 인물이 나타나 경관을 습격하고, 가짜 수염을 단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고, 흉기인 단검이 놓여있던 장식장 안에 가짜 수염이 놓여있고... 이렇듯 <멋지다 마사루> 수염부 일동이 일생 일대의 걸작으로 지목할만큼 많은 수염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주요 관계인들의 행색과 행동 하나하나도 실소를 자아내죠. 예를 들자면 사건이 벌어진 박물관 경비원이 나무상자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던가, 주요 관계인 한명이 경찰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두번째로는 다른 딕슨 카 작품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고딕 호러 스타일의 괴기성도 찾아보기 어렵고 과거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과 사건이 얽히는 팩션 느낌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죠. 기드온 펠 (기디온 펠) 박사나 헨리 메리벨 (헨리 메리베일) 경 시리즈는 방코랑 시리즈나 딕슨 카의 다른 팩션 작품들 보다야 고딕 호러 느낌이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처럼 찾아보기 힘든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동방의 물품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사건 현장 때문에 "아라비안나이트"를 약간 가져다 붙이는 정도에서 끝나니까요. 그나마도 박물관의 구조 이외에 사건에 필요한 요소는 전무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점은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오히려 이 작품의 문제는 전개 과정에 있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3인의 화자에 의해 전개되는 방식은 어차피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기 때문에 독특함 이외에는 혼란만 가져다 줄 뿐, 1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진행하는 방식에 비해 나은 점을 찾기 어렵거든요. 솔직히 중간부분에서는 지루해서 깜빡 졸기까지 했습니다. 사건도 동기는 확실하지만 너무나 많은 우연이 겹쳐져서 일어난 것이라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고요. (여러가지로 이유를 설명하고는 있지만 사족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아울러 증거도, 증인도 없다는 결말도 좀 허무했습니다.
때문에 작품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편이지만 딕슨 카라는 작가와 기드온 펠 박사라는 명탐정이 등장하는 작품 치고는 너무 평범한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그래도 거장답게 별다른 트릭없이 수수께끼같은 사건을 펼쳐나가는 이야기솜씨는 일품이며 합리적인 추리에 따른 반전까지 갖춘 완성도 높은 추리소설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딕슨 카의 고딕 호러 스타일은 아무래도 좀 취향을 탈만한 내용이기도 하니 즐겁고 신나는 이러한 작품으로 딕슨 카라는 작가를 알게 되는 것도 괜찮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존 딕슨 카 작품 완독에 도전하기 위해 읽은 작품으로 다 읽고나서 완독이라고 좋아했더니 신작 <초록캡슐의 수수께끼>가 또 출간되었네요. 이 작품도 빨리 읽어야 겠습니다.

<완독한 존 딕슨 카 작품 목록>

2007/12/03

걷는 식물 트리피드 - 존 윈담 / 이영재 : 별점 2.5점

걷는 식물 트리피드 - 6점
존 윈덤 지음, 신영희 옮김/고려원(고려원미디어)

 빌 메이슨은 식량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재배하는 식물 트리피드의 연구원으로 트리피드의 독채찍때문에 눈을 다쳐 병원에 입원한다. 그가 눈 치료를 받던 어느날 밤, 화려한 유성우가 나타나고 그 다음날, 유성우를 본 모든 인간들은 모두 실명하게 된다. 세계는 붕괴하고 트리피드가 인간을 습격하는 세기말의 상황. 빌은 장님들의 세계에서 앞을 보는 몇몇 인물들과 조우하고, 그들 중 여류 소설가 조젤라와 함께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꿈꾼다.

세기말을 다룬 근미래 디스토피아 SF입니다. 아주 예전에 읽은 기억은 있었지만, 회사 동료들과 잡담을 하다가 화제가 되어 다시 읽게 되었네요.
그나저나... 아동용으로 국내에 출간된 책을 읽었는데 다시 읽다보니 아동용으로 보기에는 무척 문제가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세기말적인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는 차치하고서라도, 유성우를 본 뒤 장님이 된 사람들이 벌이는 행각은 "나는 전설이다"의 좀비들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군중심리와 자기합리화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살벌한 묘사도 많은 편이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장님이 되건, 좀비가 되건, 결과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주제, 즉 "나만이 정상인 사회"에 대한 묘사라는 점에서 "나는 전설이다"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이 작품은 정상인 사람들이 제법 많이 살아남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해피엔딩이라는 차이는 있지만요. 
이렇게 세기말적 상황에 대한 묘사, 그리고 함께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 당시 유사 SF들의 특징이기도 해서 유별난건 없지만, 이 작품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두가지, 유성우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님이 된 독특한 상황 설정과 더불어 이러한 파괴된 세계의 인간들에게 가장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식인식물 "트리피드"의 묘사 덕분입니다. 세다리로 이동하며 독째찍으로 사람을 습격하는, 그리고 서서히 지능을 갖춰 나가는 이 괴기식물에 대한 묘사가 워낙 강렬하여 아직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싶네요.

1950년대에 발표된 것이라 작품 자체는 지금 읽기에는 낡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 작품은 "식물"을 주 적으로 내세운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직도 신선함을 안겨주는 고전이라 생각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동용이 아닌 정식 완역본으로 나오면 묘사가 더 살벌할 것 같은데, 궁금해지는군요.

덧붙이자면 영화화하기 아주 좋은 소재라 생각되어 조사해 봤더니, 진작에 영화화되었으나 트리피드를 일종의 "괴수화" 한 몬스터물로 각색한 듯 합니다. 그만큼 강렬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덕분에 영화는 별로 기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2020/09/12

괴담의 테이프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3점

괴담의 테이프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미쓰다 신조)는 편집자 도키토 미나미로부터 녹음된 괴이담을 기초로 한 단편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녹음한 카세트나 MD는 많아도 대부분 써먹기 힘든 탓에 거절했지만, 도키토 미나미는 자기가 듣고 소재를 찾아보겠다며 카세트와 MD를 빌려갔다. 이렇게 해서 완성한 작품이 "빈 집을 지키던 밤"이었다. 

도키토는 후속 작품도 정기적으로 써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연작 단편 구성을 취하기 위해 실제 괴담을 겪은 사람들의 체험담을 듣고 쓴 글이라는 머릿말을 추가했다. 그런데 도키토는 녹취를 시작한 이후, 기묘한 걸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침마다 마시던 홍차 속 기묘한 반원형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나날이 바뀌어 결국 작은 사람의 모습이 되었고, 도키토는 이후 홍차 마시기를 그만두었다. 이외에도 샤워할 때 빗소리가 들리는 등의 괴이 현상이 그녀 옆에서 계속 일어나자 나는 그녀에게 녹취를 그만두라고 이야기했다.

작품 연재를 마무리한 나는, 도토키 미나미로 부터 회수한 MD와 카세트 중에서 예전에 듣다가 무서워진 나머지 꽁꽁 봉해놓고 처분했던 기류 마사히코의 카세트를 다시 발견했다. 충동적으로 카세트를 듣다가 그 목소리가 물 속에서 들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괴기 현상이 '물'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깨닫는데...

실제 사연들을 소설화 했다는 설정의 생활 괴담 단편들이 미쓰다 신조가 괴담 단편을 창작하는 과정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는 연작 단편집입니다. 수록작 모두가 '물'과 관련되어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또 저자의 '작가 시리즈'와 유사하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쓰여진 덕분에 실제감, 현실감이 아주 높습니다. 어떤 작품은 논픽션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니 말 다했지요. 이야기 한 편, 한 편의 완성도도 빼어나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미쓰다 신조 장편이 두께 때문에 손대기 어려우셨던 분들이라면, 이 책으로 발을 들여놓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 

나 (미쓰다 신조)는 자살 명소에 대한 글을 의뢰하기 위해 프리랜서 작가 기류 요시히코를 만났다. "호러 재피니스크 총서" 기획 때문이었다. 기류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자살자가 죽기 직전 남긴 테이프를 여러개 가지고 있다며, 그 테이프 녹취를 출간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3개월 뒤, 기류는 3개의 테이프를 듣고 기록한 샘플 원고를 보내 오는데...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생생함입니다. 특히 진짜 자살자가 죽기 직전 남긴 듯한, 생생한 테이프 녹취가 아주 일품이에요. 그 처절한 죽음의 순간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섬찟합니다. 생생함은 미쓰다 신조 1인칭으로 쓰여지고, 미쓰다 신조의 과거 펀집자 경험을 작품 속에 녹여낸 덕분이기도 합니다. "붉은 눈"에 수록되었던 1인칭 괴담과 같은 계열이지요.

또 3개의 괴담 테이프 녹취 중 앞의 2개는 호텔에서 목을 매거나, 자동차로 절벽을 향하는 등 일반적인 자살에 대한 단순한 녹취이지만, 마지막 녹취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드러냅니다. 그리고 기류가 마지막으로 자신이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미쓰다 신조에게 보내고, 미쓰다 신조가 기류의 테이프를 잠시 틀어보고는 바로 봉인해 버리는 결말이지요.
무엇 하나 드러나지 않은 듯 하지만 기류는 죽었고, 기류가 녹음한 테이프는 누군가 회수해서 미쓰다 신조에게 보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테이프를 받은 사람이 듣기를 원했을테고요. 즉, "링"과 같은 일종의 저주, 죽음의 연쇄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소설로서의 얼개는 갖춰진 셈이지요. (*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지막 이야기에서 어느정도는 비슷하게 마무리 됩니다)

이렇게 여러가지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입니다. 르포르타쥬 형식의 작가 1인칭으로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생생함도 대단했고요. 무서워야 한다는 괴담의 조건도 아주 잘 충족하고 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빈집을 지키던 밤"

마이코는 대학 문예부 선배 오다기리로부터 기묘한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젊은 부부가 백모와 함께 살고 있는 시골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었다. 부부가 집을 비운 동안 백모를 혼자 둘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아르바이트 내용이 소개되는 시작부터 흥미를 잡아 끕니다. 여대생이 선뜻 수락하기에는 너무 수상한 아르바이트잖아요? 역에서 저택까지 거리도 멀고, 인기척도 없는 곳에 홀로 찾아가 하룻밤을 보낸다니, 이래서야 바로 납치되어 이상한 비디오 주인공이 되는 전개도 어색하지 않죠. 당연히 이야기도 그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마이코가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하지만, 겨우 탈출한다는 내용이거든요.

그러나 뻔한 설정과 전개임에도 여러가지 복선과 디테일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택에 대한 묘사부터 그러합니다. 기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아치 장식 등을 통해 위화감과 뒤틀림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거든요. 하여튼, 미쓰다 신조의 무서운 집 묘사는 정말이지 최고에요.
또 저택에서 느낀 위화감과 뒤틀림을 젊은 부부에게서도 느끼게 된다는 연계도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부가 서로 다른 말을 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백모님을 숭배하고 있으며, 백모님은 낯선 사람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 집을 지킬 때 백모님이 계신 3층에는 올라가지 말아달라고 당부합니다. 하지만 부인은 백모님은 이미 죽었으며 남편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요. 아, 정말 섬찟합니다.

단순한 체험 괴담이 아니라 한 편의 완성된 소설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3층에 있던건 백모님이 아니라 젊은 남편 미쓰노부였으며, 그가 이전 아르바이트 생들을 살해했다는 명확한 결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결말에 앞서 마이코는 팔 다리가 길었고, 저택 근처에서 양팔만 잘라 가슴께에 평행하게 올려놓은 기묘한 토막 살인 사체가 발견되었었고, 부부가 저택 안을 오갈 때에 복도 한 가운데로는 지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등의 복선과 단서를 통해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앞서 위화감을 느꼈던 아치는 '도리이'이며, 도리이 아래 길은 신이 지나가는 길이다, 이 길은 백모의 방과 통해 있다, 사체의 토막은 도리이를 나타내고, 그래서 긴 다리를 지닌 피해자가 필요했다... 는 내용으로 마무리 되니까요.

젊은 부부의 광기, 백모님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 설명이 부족하고 마지막 미쓰노부가 살인마라는 반전은 뻔하지만 정교하면서도 하나의 완성된 호러, 공포 소설로 나무랄데 없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영상화해도 좋을 것 같은데,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우연히 모인 네 사람"

오쿠아먀 가쓰야는 가쿠 마사노부의 하이킹 계획에 동참했는데 정작 가쿠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쿠야마가 리더가 되어 하이킹을 이끌어 달라는 휴대전화의 부재 중 메시지 탓에 가쓰야는 모르는 세 사람과 하이킹을 떠나는데...

네가히산이 실존하는 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정 미스터리를 보는 듯한 상세한 묘사도 좋고, 가쿠씨가 오지 못한 이유로 불안이 쌓여가는 전개도 멋집니다. 가쿠씨가 보낸 메시지 등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소들이 서서히 하나씩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하이킹을 일렬로 가야 하는 상황도 불안하고요. 그러다가 숨겨진 길로 발을 들이는건 그야말로 화룡정점입니다. 알 수 없이 무서운 공간에 대한 묘사도 좋지만, 길에 남아있는 발자국 오른쪽보다 왼 쪽이 더 먼저 찍힌것으로 보인다는 묘사가 아주 기가 막혔어요. 방 구석에 있는 사람을 차례로 터치하는 게임처럼, 가쿠가 오지 못한다고 했지만 특급 열차에 네 명이 탈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한 의심을 품는 장면도 오싹합니다. 가쿠가 오지 못한다는건 미리 알지 못했다면, 표가 모자랐을테니까요!

하지만 괴이한 존재였던 이마이 쇼조의 정체가 무엇인지, 가쿠는 어떻게 되었는지, 산에서 주은 계란돌은 무엇인지 등 수수께끼만 남긴채 이야기는 마무리되기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완결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생생한 묘사만큼은 발군이었습니다.

"시체와 잠들지 마라"

'나'에게 중학교 동창 K가 자기 어머니와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었다는 기묘한 노인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입원해있던 요양병동에서는 밤마다 희미한 비명 소리나 남자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리고 뒤 이어 입원한 노인 로쿠바 히로는 K의 뒤에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거의 정신을 잃은 노인이 혼자서 중얼중얼하는 이야기를 모아 놓았더니 무서운 이야기였더라....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습니다. 로쿠바 히로가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독자를 궁금하게 만드는 전개는 그야말로 엄청나고요.

로쿠바 히로 노인의 이야기를 설명드리자면, 누군지도 모르는 친척이 상을 당했는데, 다른 가족들이 다치거나 상황이 어려워 부의금을 가지고 상가에 혼자 방문하게 된 소년이 주인공입니다.
소년은 출발 전 할머니와 함께 한 곳쿠리님에서 '시체와 함께 자지 마라'는 계시를 받죠. 그러나 기차에서 소년은 이상한 노인을 만나서 노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집에서 잠을 깨고, 누군지도 모르는 친척의 부고를 받는다... 는 루프물입니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로운 요소는 없어요. '나'를 통해서 노인의 괴이한 행동은 노인이 젊은 아이의 몸을 빼앗는 과정이라 설명되는데 이 역시도 뻔한 설정입니다. 또 이야기만 놓고 보면 K에게 시카바네 히로(로쿠바 히로)가 뒤집어 씌여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았는지도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쿠바 히로가 한 말 중 '휴대'와 '뉴루우스'라는 말 뜻을 몰라 궁금해 하는 장면이 있어서 충격적인 진상과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용도 전혀 없어서 실망스러웠고요.

흥미로운 설정이었고, 전개도 대단했지만 결과물은 그냥저냥한 평작이라 아쉽습니다. 이 설정으로 이야기를 다르게 풀어내었더라면 분명 걸작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잡지의 편집자인 '나'는 점성술사 취재를 하다가, 그들은 '자신의 죽을 날'이 언제냐는 질문에 절대로 답하지 않는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답을 알려준 적이 있다는 점성술사에게 '나'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대학 시절 연인이었단 사토루와 '기우메' 이야기로 답해 주었다.

기우메는 사토루 자취방에서 학교 통학로에서 목격된, 비가 오지 않는데 우산과 레인코트, 장화, 우천용 모자를 노란색으로 전부 갖춰입은 여자였다. 사토루는 어느 날 그녀와 눈을 마주친 뒤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히지만 선배의 조언으로 기우메를 무시했다. 그리고 여름 방학, 점성술사는 사토루와 헤어져 아르바이트로 나날을 보내며 편지로 근황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사토루의 마지막 편지는 폭우가 쏟아지는 날, 기우메가 수로에 휩쓸려며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사토루의 자취방을 찾아간 점성술사는 빈 방에서 쓰다만 편지를 읽었다. 사토루가 기우메의 시체를 발견하기까지 했지만, 계속 기우메를 통학로에서 목격했는데 그녀가 볼 때마다 점점 자취방으로 다가왔으며 마지막에는 폭우와 함께 문을 두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토루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초반에 비중있게 설명되는 '나'가 과거 고교 시절 겪었던 기묘한 유령 체험은 본 편인 기우메 이야기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점성술사의 기우메 이야기도 그녀가 왜 죽을 날을 손님에게 이야기해 주었는지와 크게 관련이 없고요. 괜히 이야기만 두서없이 전개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도 기우메 이야기는 충분히 무섭기는 했습니다. 괴이한 무언가를 눈치챈 후 '그것'이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온다는걸 알게되는 이야기는 몇 편 읽어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말이지요.

실화 괴담이라는 주제에 충실한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것"

도쿄에서 직장에 다니며 혼자 사는 유나는 어느날 집을 나서다가 문 앞에 꽃이 꽂혀 있는 작은 유리병이 놓여져 있는걸 발견했다. 그 뒤 유나는 출근길에서 검은 이상한 형체를 보기 시작했다. 검은 형체는 출근길을 거슬러 점점 유나의 집으로 다가왔고, 유나는 집 앞에 놓였던 꽃이 검은 형체를 불러오는 매개체가 되었던게 아닌가 싶어 공포에 떨었다.

드디어 어느 월요일 아침, 유나의 집 앞에 검은 형체가 도착해 인터폰을 누르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유나가 도움을 요청한 친구 히나타가 도착하자 이상한 형체는 사라졌지만, 이후 히나타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전 기우메와 비슷하게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에 대한 괴담입니다. 마지막 유나의 집 문을 두드리는 장면, 히나타에게 무언가 씌워진다는 결말은 상당히 오싹합니다. 이전 작품과 유사하기는 한데, 정확히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애매한 공포라서 실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차별화 요소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왜 유나의 집 앞에 그것이 다가오는지, 대체 그건 무엇인지 등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조금 답답하기는 합니다. 유나의 집 앞에 놓였던 꽃이 건널목 근처 사고 현장에 놓여진 공양물이었고, 어린 아이가 장난으로 이를 가져다 유나의 집 앞에 놓았기 때문에 원령이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식의 추리가 살짝 등장하는데,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작은 유리병과 꽃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으며, 왜 유나의 집 앞에 놓여 있는지도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기승전결은 있고, 오싹한 맛도 괜찮았습니다.

2026/01/31

아사토호 - 니이나 사토시 / 김진아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나쓰히의 쌍둥이 동생 아오바가 나쓰히와 아키토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나쓰히의 지도 교수 후지에다가 실종되었고, 교수를 찾던 친구 아즈사도 자살했다. 다른 실종 사건이 여럿 있었으며, 이 모든 사건은 '아사토호'라는 책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낸 나쓰히는 다시 재회한 아키토와 함께 '아사토호'의 정체에 대해 찾아 나섰다. 이 모든건 사람을 하나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천과 관련이 있었다...

신예 작가 니이나 사토시의 장편 소설입니다. 미스터리 호러 장르물이지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펼쳐져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쓰히와 아키토 앞에서 아오바가 신비한 천에 의해 사라진 뒤, 둘 말고는 아무도 아오바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 대학생이 된 나쓰히의 지도교수 후지에다의 실종과 교수를 찾던 아즈사의 기묘한 자살, 이 모든 것과 얽힌 책 '아사토호'에 관련된 수수께끼가 이어지는데 손을 떼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나쓰히와 아키토가 여러 자료를 토대로 아사토호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 소설을 방불케합니다. 아사토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마쓰무라의 자서전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마쓰무라의 산장 위치를 추적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아키토는 기록의 증기 기관차에 탔던 시간과 버스를 탄 거리를 토대로 대략의 위치를 특정해내는 데 성공하고, 그 장소에서 결국 기요하라 병원까지 이어지는 단서들을 수집해 내어 진상에 도달하게 되니까요.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아사토호'에 대한 상세한 설정들도 굉장히 설득력 높습니다. 저자가 실제로 문학사 전공인 덕분이겠지요. 정말로 이런 책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연구자가 연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실감납니다.

추리적으로는 그 외에도 괜찮은 부분이 제법 많아요. 아키토가 영매사로서 선보이는 짤막한 에피소드처럼요. 일종의 콜드 리딩, 사전 답사와 의뢰인의 현황—신혼부부가 굳이 교외에 있는 단독 주택을 산 이유는?—을 토대로 추리를 통해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하지요.

호러 장르물로서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아즈사가 남긴 논문이 유서처럼 이어지는 장면이라던가, 후지에다 교수의 아내 미나미의 등장, 그리고 나쓰히가 사라지고 아오바가 나타난 시점에서 '아사토호'라는 책이 고전 걸작으로 널리 퍼졌고 결말까지 달라진 - 원래는 온나니노미야가 추녀였다는 한심한 결말이었는데, 아오바처럼 얼굴에 큰 상처가 있었다는 결말로 - 세계관으로 전환되는 부분 등은 꽤 섬찟했습니다.

모든 건 앞뒤가 딱 맞게 말이 되는 패턴이고, 이런 패턴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는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쓰히의 생각이 이 모든 것의 원인인 '천'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라는 진상도 잘 풀어냈습니다. 단순 괴기현상으로 풀어낸 게 아니라,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고 말이 되는 설정을 집어넣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만 해요. 나쓰히는 아오바와 아키토의 환상 속 존재였다는 진상과 이에 따른 시점 변화도 적절했고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천이, 천을 함께 본 사람들이 원하고 빠져드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야기의 결말을 잘 설명하지는 못하거든요.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아키토가 일으킨 사고로 크게 다쳐 흉터가 생긴 아오바가 상처 없는 나쓰히로 거듭난 건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굳이 아오바에 대해 나쓰히와 아키토가 이상한 기억을 공유하고, 새롭게 추적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아즈사가 원한 건 연구자로서의 성공이었는데, 천이 심어준 건 좌절감이었고, 그녀는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말이 되는 건 원했던 후지에다 교수를 차지한 미나미 이야기뿐입니다.

천을 본 사람들이 하나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일종의 다중 우주 세계관이라서 하나의 우주에 천을 본 사람들이 여럿 얽힌다는 것도 이상했어요. 하나의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들이 개입하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니까요. '천'이 만든 이야기에서 '천'의 진상을 밝히는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요. 기껏 꿈 속에 데리고 왔는데, 이게 꿈이라는걸 밝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탓입니다.

마지막으로 천의 정체가 밝혀진 뒤의 분량은 많이 길고 애매했습니다. 아오바가 천과 일체화되어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는 장면이 특히 길었어요. 감정 과잉이라 여겨지기도 했고요. 이런 부분을 조금 더 정리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예를 들자면, "메두사"처럼 환상은 환상처럼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보실 만한 작품으로 추천드립니다.

2004/04/26

브라운 신부 전집 3,4,5 : 의심-비밀-스캔들 - G.K 체스터튼 : 별점 3점

의심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북하우스
비밀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북하우스
스캔들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단편 추리소설의 황금기의 최고의 명탐정이자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탐정 브라운 신부. 명성에 비하면 국내 소개가 잘 안된 편이었지만 북하우스에서 전집이 몇년 전 출간되었었죠. 구입한지는 제법 된 것 같은데 읽는게 좀 늦었습니다. 그 중 1,2권인 결백과 지혜편은 예전 자유추리문고본으로 먼저 읽어 보았기에 3,4,5권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먼저 각 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말씀드리자면,
3편 의심에서는 일종의 알리바이 깨기 트릭인 “기드온 와이즈의 망령”과 불가해한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역시 밀실 트릭의 일종이지만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개의 심리를 사건과 결부시키는 걸작 “개의 계시”, 괴기스러운 느낌의 복수극으로 완전범죄를 완성하려는 살인범의 트릭을 파헤치는 “날개달린 단검” 이,

4편 비밀에서는 브라운 신부가 자신의 추리의 비밀을 털어놓는 “브라운 신부의 비밀”, 광기의 복수극을 그린 “보드리 경 실종사건”, 연극에 관련된 밀실 살인 사건인 “배우와 알리바이”, 3편의 “날개달린 단검”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최악의 범죄”, 범인으로 몰린 시인의 누명을 벗겨주는 한편 다른 동기에서 진범을 찾아내는 “판사의 거울” 편이,

5편 스캔들에서는 사람의 인상과 기억의 오류를 바탕으로 한 장난인 “폭발하는 책”과 텅빈 술집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퀵 원”, 살인자와 피해자에 대한 오류를 바탕으로 한 “블루 씨를 쫒아서”, 명망있는 제독의 살인사건을 범인의 말 한마디로 파헤치는 “그린맨”, 조그만 마을에 파란을 몰고온 목사 아들의 패륜행위의 뒤에 숨겨진 범죄를 밝혀내는 “마을의 흡혈귀”, 기발한 시체 은닉 트릭이 등장하는 “핀 끝이 가리킨 것”이
좋았습니다.

그외에도 대체로의 단편들이 하나하나가 전부 일정 수준이상을 넘어서는 작품들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탐정들과는 다르게 직관과 인상, 정황에 주력하여 자신의 느낌으로만 사건을 꿰뚫어보는 브라운 신부의 특징도 전편에 걸쳐 잘 살아있고요. (참고로 브라운 신부의 추리의 비밀이 4편 “브라운 신부의 비밀”에서 설명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참으로 읽기는 힘든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단편집이란 모름지기 쭉쭉 읽어나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 법인데 대사나 묘사가 장황하여 한번에 읽어내리기 어려웠어요. 체스터튼이 워낙 당대의 유명 문인이었던 만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에서도 뭔가 독특한 자신만의 문체를 도입하여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예전 다른 문고본에서 읽고 느꼈던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본다면 번역 문제인것 같기도 한데 여튼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또 다른 단편집들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는 한데, 하나의 트릭을 변형하여 여러 곳에 쓰고 있는 편입니다. 특히나 “살인자”<>”피해자”의 역할 바꾸기 라던가 잘못된 증언의 오류를 짚어내는 방식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뭐 등장하는 단편마다 다른 상황에서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어서 큰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읽는 재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전집으로 출간된 것에 대해서는 고맙기만 할 따름이라 점수를 조금 더 얹어 봅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유머스러운 브라운 신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번역이 조금 수정되면 더욱 좋겠네요.

2009/12/07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해외편 - 본격물 목차 소개

이전에 읽었던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 일본편" 에 이은 해외편입니다. 형이 구입했기에 빌려서 읽게 되었죠^^ (땡쓰~)

무려 100편이나 되는 작품이 총 7편의 큰 주제로 나뉘어 소개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본격물, 두번째가 하드보일드, 세번째가 경찰소설, 네번째가 법정 미스터리, 다섯번째가 서스펜스 스릴러, 여섯번째가 모험 & 스파이물, 일곱번째가 괴기환상 & 패러디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리뷰 전에 이 중 본격물부터 먼저 간략하게 정리해서 목차만이라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읽은 것은 적색 (그중 리뷰가 있는 것은 링크), 번역 자체가 안된 것은 녹색, 번역되었지만 땡기지 않거나 절판 등의 이유로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은 파란색입니다. 총 30편 중 6편이 번역되지 않았고, 남은 24편 중 4편을 읽지 않았으니 84% 독파니까 나름 선방한 편이군요. 나머지도 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미스터리라고 한다면 본격물! 저릿저릿한 무서움을 만끽해라!
1. 모든 것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에드가 알란 포우 - 모르그가의 살인
2. 영국 미스터리의 기념비적 대작 - 월장석

3.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홈즈 시리즈, 그 중 최고봉은 "바스커빌가의 개"
4. 준비된 의외의 비장의 카드! 실속이 빛나는 "구석의 노인"
5. "심리적 밀실" 스타일을 창출한 불후의 명저 "노란방의 비밀"
6. 소년의 꿈. 괴도 뤼뺑의 진면목이 떠오르는 "813"
7.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의 동심"을 읽지 않은 독자는 가짜다!
8. 큰 논쟁을 불러 일으킨 추리소설중의 추리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9. 크리스티와 인기를 양분했던 도로시 세이어스의 "나인 테일러스"
10. 일본의 여정 미스터리 붐에 불을 당긴 F.W 크로포츠의 "통"
11. 미국 미스터리 중흥의 시조. 회심의 역작 "그린 살인사건"

12. 30년간 베스트 원의 자리를 독점.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13. "세개의 관"으로 불가능범죄를 풀어나가는 놀라운 쾌감을!
14. 개성파탐정의 필두는 "독사"로 데뷰한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
15. 변호사물의 원조 "기막힌 살인사건"은 최고의 유머 미스터리.
16. "본격단편"에 반드시 꼽히는 실력파 "9마일은 너무 멀다"
17. 안락의자 탐정의 고독한 자리를 지키는 브롱크스의 "엄마는 뭐든지 알고 있다"
18. 현재의 쥴리안 소렐이 더욱 숙달시킨 완전범죄.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
19. 전통과 참신한 모험소설의 융합이 호평받은 "사이먼은 누구?"
20. 사상 최저의 무능한 탐정이 책 속으로! "도버 4 / 절단"
21. 순도높은 영국 본격파의 맛. 레지널드 힐의 "뼈와 침묵"
22. 중후하고 고귀한 향기. P.D 제임스 "욕망과 음모"
23. 수많은 상을 모두 획득! 루스 랜들 "장미의 살의"
24. SF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펼쳐놓는 고도의 수수께끼 "흑거미 클럽 1"
25. 아 이런 방법이 아직 있었다니! 본격 팬들이 감탄한 "호그 연속살인"
26. "숲을 지나가는 길"은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듯이 읽는 것으로도 충분
27. 희대의 명 요리장이 팔을 걷어올리고 만든 일품요리 "초대받지않은 손님들의 뷰페"
28. MWA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백골의 판타지. 엘킨즈의 "오래된 뼈"

29.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궁극의 역사 미스터리 "장미의 이름"
30. 수도사를 탐정으로! 성인들의 역사 미스터리 "수도사 캐드펠"

2022/06/12

시시리바의 집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시시리바의 집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 유다이의 전근으로 도쿄로 이사왔지만, 도시에 적응하지 못해 외로워하던 가호는 고향친구 도시아키를 우연히 만나 그의 집에 초대 받았다. 그런데 집에서 만난 도시아키의 아내 아즈사는 공포에 질려있였다. 집에 원령이 출몰하기 때문이었다. 도시아키 불륜 상대의 저주 탓이라는 걸 알고 난 후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두 부부가 집 안 가득한 모래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건 문제였다. 

가호는 도시아키 집이 이상하다고 확신했지만 잃어버린 결혼 반지를 찾으려 그 집에 방문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도시아키가 모시고 사는 할머니가 친할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놀라 달아나던 중, 도시아키 부부의 공격으로 남편 유다이는 살해당했다. 가호는 도주와 격투 끝에 아즈사를 죽이는데 성공하나, 집 안에 있는 '무언가'가 모래로 변해 가호를 덮쳐 버리고 말았다. 

과거 버려졌던 도시아키 집을 탐험하다가 머리에 이상이 생겨버린 데쓰야는, 같이 탐험했다가 퇴마사로 각성해버린 히가와 함께 도시아키 집에 있는 '무언가'인 '시시리바'를 제령하기 위해 찾아오는데....

"보기왕이 온다"로 데뷰했던 작가 사와무라 이치의 최신작 호러 장편 소설입니다. 

집에 깃든 지박령(?) 탓에 벌어지는 공포와 그에 맞서 싸우는 퇴마사의 활약을 그린 전형적인 일본식 퇴마물입니다. 퇴마사 히가 자매가 주인공인 일련의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보이는데 다른 작품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군요. 이 작품만 읽어도 내용 이해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작품에서 핵심은 평범한 가정주부 가호 시점에서 그려지는 도시아키 가(家)의 괴이 현상입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깜짝쇼를 통해 섬찟함을 가중시키는 솜씨가 돋보이는데, 맨 첫 번째 에피소드의 깜짝쇼는 바로 '모래'입니다. 에피소드 내내 괴현상은 도시아키의 불륜 상대가 저주한 탓에 벌어졌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해결된 뒤에도 가장 눈에 보이는 괴현상인 '모래'는 없어지지 않았고 도시아키와 그 아내 아즈사 모두 모래를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상당히 섬찟했어요.
그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도시아키가 모시고 살던 할머니가 알고보니 친할머니가 아니었다는 반전으로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도시아키의 “필요 없어? 그럼 죽일 거야? 이제 마리는 필요 없다고? 그렇구나..."라는 대사도 인상적이고요. 

또다른 화자인 '나', 이가라시 데쓰야 시점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지금 도시아키가 살고 있기 전, 하시구치 가족이 살고 있을 때 놀라갔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프롤로그는 짧지만 꽤 놀라왔거든요. 마지막에 엉망인 글로 채워버리는 센스 덕분입니다.
하시구치가 이사간 뒤 폐가 탐험을 하다가 '시시리바'라는 무언가를 만나 모두가 망가져버리고 만다는,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탐험 에피소드도 뻔하지만 흥미롭습니다. 스멀스멀하게 불쾌한 느낌이 차오르게 만드는데 확실히 재주가 있는 작가에요.

원래는 영적(靈的)인 가정 보안시스템, 즉 수호신으로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안전한 집안, 원만한 가정, 번창하는 가족을 지키는 존재가 2차 대전 때 폭탄을 맞고 이상이 생겨 폭주하고 말았다는 '시시리바'에 대한 설정도 그럴 듯 했습니다. 폭주한 나머지 죽은 할머니 대신 도시아키가 동네 다른 할머니를 모시며 살게 만들었고, 임신했던 아즈사가 죽자 가호를 임신시켜 도시아키 집에 살게 만드는 식으로 지킬 집을 설정대로 만드는데 집착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 역시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결국 제령에 성공해서 가호와 도시아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가호가 아이를 죽게 만든다는 에필로그는 가장 섬찟했던 부분 중 하나였고요. 그동안 다른 괴담물에서 보지 못했던, '모래'를 주요 도구로 삼는 능력에 대해서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상화하면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누가 봐도 이상하고 괴기한 집에, 심지어 남편이 증거를 찾아서 알려주며 가지 말라고 하는데 구태여 방문해서 화를 자초하는 가호의 몰상식적인 행동은 답답함을 자아냅니다.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진 뒤, 도시아키 집에서 시시리바를 제령하는 데쓰야와 히가의 활약이 펼쳐지는 결말 부분도 진부했고요. 시시리바가 모래를 조종하여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집에 있는 사람들을 조종하여 공격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미 앞 에피소드에서 써먹었기 때문입니다. 

히가의 능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고작 담배 연기를 내 뿜는 정도로 수백년 이어온 지박령을 이길 수 있을거라고는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시시리바가 '개'를 무서워 한다는걸 알아낸 뒤 데쓰야의 애견 긴의 활약으로 제령에 성공하는 마무리도 너무 쉽게 간 느낌이에요.

마지막으로, 히가와 데쓰야가 도시아키 집을 찾은 건 가호가 도시아키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집에 살게된 몇 개월 후로 묘사됩니다. 가호의 배가 제법 나왔다고 설명되니까요. 그렇다면 왜 이전에 경찰이 이 집을 찾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살해당한 가호의 남편 유다이는 주말에도 출근할 정도로 바쁜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 유다이가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게 말이 될까요? 심지어 유다이는 도시아키 집에 대해 근처에 사는 동료에게 물어보기까지 했으니, 경찰에 신고했다면 분명 바로 조사가 들어왔어야 마땅합니다. 이런 류의 퇴마물이 경찰력을 지나치게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아예 등장시키지 않는건 좀 아니지 않나 싶네요.

그래도 전체적인 설정과 구성이 꽤 잘 갖추어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섬찟함 만큼은 충분히 제공하고 있어서 호러, 공포물 본연의 가치에 충실하다는게 마음에 드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제격이에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2/04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시모쓰키 아오이 / 김은모 : 별점 4.5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10점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오랜 경력의 평론가가 "왜 크리스티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전부 읽어본 후 평을 기록한 평론집이자 리뷰집입니다.

리뷰의 수준은 최상급입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작품의 핵심을 콕 집어 지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추리 소설 리뷰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정도예요.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은 '불순물 하나 없는 본격 추리 소설의 원형'이고, "엔드하우스의 비극"'고명에 의존하지 않고 면발과 국물의 감칠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같은 작품'이라는 식입니다.
좋은 작품은 정말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소개하고 있으며,  전문가답게 유사하거나 참고해야 할 다른 작품들도 함께 언급, 소개하는 부분들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트릭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비뚤어진 집", "구름 속의 죽음" 정도는 저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골프장 살인 사건" 이 10년 뒤 발표된 역사적 명작과 같은 장치를 사용했다, "블랙커피" 속 장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2" 속 장치와 일맥상통한다, "맥긴티 부인의 죽음" 은 하드보일드 성향이라 우수하다는 등의 정보들은 정말 그 깊이와 수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뷰가 작품이 발표된 연대별로 이어지는 덕분에 여사님의 발전, 작법의 진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사님 특유의 섬세한 인간관계 묘사가 정교하게 쌓아 올려지고, 트릭보다 인간관계와 동기 등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여사님이 얼마나 많은 작품 스타일에 도전했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통 추리에서 시작해서 모험물, 신본격 스타일 서술 트릭, 스릴러, 법정극, 하드보일드, 오컬트 심령 괴기물, 심지어 코즈믹 호러(!) 까지 장르 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니까요. 왜 거장인지를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매우 낡아빠진 오래전 고전 작가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세번째 여인" 의 경우 1966년 발표된 작품으로 곧 '레드 제펠린' 이 결성될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는 시대가 확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읽은 여사님 작품에서 '스푸트니크' 호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지요. 참고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최첨단 추리 소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무모한 도전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증거라나요?

이렇게 리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게 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걸작'이기 때문인데, 걸작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지적하지요. 여사님의 걸작들은 요약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게 원인이고요.
즉 작품 전체가 트릭이자, 복선이자, 단서이자, 미스디렉션으로 소설 전체가 속이기 위해 짜여진 플랫폼일 뿐 아니라, 여사님은 트릭에 능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는 본격물에 비하면 그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는 게 최종 결론인데, 여사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리뷰를 통해 여사님의 특징적인 작법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은 그녀가 일종의 "연극"처럼 상황을 다룬 것이 비결로, 여사님 작품은 그림이나 동영상, 연극처럼 독자나 관객이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다의적" 이야기를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 내는지가 중심이라는 건데 아주 타당해 보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여사님 작품을 몇 편 떠올려 봐도 저자의 말대로 "여사님 머릿속에 상영되는 연극을 종이 위에 옮겼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겉보기를 만든 후, 겉보기와는 다른 진실에 그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방법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여행지라는 무대와 신원을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정말 그럴싸 하지요? 연극과 같은 상황을 접목하기 좋은건 당연히 일상과 분리된 장소일테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위장하는게 보다 손 쉬운 건 당연하니까요. 아울러 여사님은 독자가 어떤 때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어떤 때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지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던 덕분에 독자를 속이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흉내내기 어려운 솜씨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저자 스스로 모든 작품의 별점을 매기고 평가한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물론 평론, 리뷰 및 평가는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별점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걸작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이 많이 부여되고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별로였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다섯 마리 아기 돼지" 나 "끝없는 밤" 을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은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로 알고 있는 매리 웨스트매콧 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의아했던 점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정교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다의성' 이라는 항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슬픈 사이프러스" 등 몇몇 작품은 국내 번역명과 동떨어진 일본식 제목으로 소개되거나, 포와로와 마플 및 기타 장편 외 몇몇 작품들에 대한 국내 출간 여부가 체크되지 않은 점은 옥의 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이자 잘 쓰인 추리소설 리뷰 집으로 완벽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뛰어가서 사 오시길" 바랍니다. 저도 여사님같은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리뷰라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전체 베스트 10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서둘러,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네요.

  1. 커튼
  2.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끝없는 밤,
  4. 주머니 속의 호밀
  5. 봄에 나는 없었다
  6. 백주의 악마
  7. 깨어진 거울
  8.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9. 죽음과의 약속
  10. N 또는 M

그 외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할로 저택의 비극", "맥긴티 부인의 죽음", "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것만 해도 올해 여름까지는 충분하겠지요?

2008/11/08

흑사장 살인사건 - 존 딕슨 카 / 맹은빈 (자유추리문고 12) : 별점 4점

黑死莊の殺人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カ-タ-·ディクスン/東京創元社

* 자유 추리 문고는 절판이라, 일본판 서적 정보를 올립니다.
블레이크는 자칭 심령학자인 로저 다워스가 주관하는 의심스러운 강령회의 정체를 밝혀달라는 친구 헐리데이의 부탁으로 강령술에 관심이 많은 지인인 런던 경시청 경감 매스터즈와 함께 헐리데이 가문의 저택 흑사장으로 초대받는다. 그런데 그날 밤, 로저 다워스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완전 밀실인 상태에서 과거 교수형 집행인 루이스 플레이지의 단검으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블레이크는 매스터즈 경감과 함께 알고 지내던 육군성 정보부장인 헨리 메리벨 경을 찾아가 사건 해결을 의뢰하는데...

요새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돈도 없어 책도 구입하기 어려운 차에 응모한 모든 이벤트에 다 탈락해서 어쩔 수 없이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꺼내어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출간된지 22년된 자유 추리 문고의 한권입니다. 첫 직장의 사장님이 제가 추리소설 팬인것을 알고 선물해 주신 책이죠.

이 작품은 존 딕슨 카의 카터 딕슨 필명 사용 시의 명탐정 캐릭터 헨리 메리벨 경, 통칭 H M 이 등장하는 작품이며, 딕슨 카 특유의 불가능 범죄의 향연이 벌어짐은 물론, 괴기스럽고 오컬트적인 설정이 도입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오컬트적인 색채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다는 "강령술"을 중심으로 한껏 펼쳐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티 여사님도 가끔 가져다 쓴 소재이기도 해서 미스터리 애호가들에게는 꽤 친숙한 소재이기도 하죠.

또한 추리적으로는 불가능 범죄 중 "밀실 살인" 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밀실의 달인 딕슨 카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도 공정하여 흥미진진한 두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요 사건인 밀실 살인 말고도 추가적인 살인사건 한건과 소소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주 사건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모든 사건들이 합리적으로 타당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역시 거장의 솜씨를 느끼게 해 줍니다. 특히 흉기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사용되는 걸작 트릭이 도입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 모든 추리적 요소에 앞서 말한 오컬트적인 이야기가 잘 결합되어 독자의 시선을 끝까지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주요 트릭 중 하나인 "변장" 트릭의 현실성이 무척 떨어진다는 점과 그에 따르는 부연 설명이 약간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있긴 하며, 실질적으로 "위증"에 의존하여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약간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나름대로는 설득력넘치는 해결책이기에 단점으로 꼽기는 좀 어렵겠죠.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이후에 유사한 트릭이 많이 등장한 탓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건 고전 황금기 시대의 걸작으로 퍼즐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당대 최상급의 불가능 범죄의 향연을 맛보는 재미는 다시 읽어도 아주아주 각별한 작품이었습니다. 특유의 오컬트적인 색채는 덤이고요. 몇가지 아쉬운 점 때문에 별점은 4점입니다만 앞서 말했듯 아쉬운 점들은 다 시대가 너무 오래 흘렀기 때문이지 작품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들은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이 아직 재간되지 않는 것은 의아한데, 속히 황금기 시대 걸작들이 다시 출간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마이크로포트"로도 불리우는 괴짜 명탐정 H M의 캐릭터가 잘 묘사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H M 과 또다른 딕슨 카의 명탐정 기데온 펠 박사의 캐릭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왜 이렇게 창작을 했는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제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2005/04/04

해골성 - 존 딕슨 카 / 전형기 : 별점 4점

해골성 - 6점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라인 강변의 대 마법사 메이르쟈가 기차에서 사라지는 사건으로부터 17년 후, 메이르쟈의 친구로 그가 기거하던 해골성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던 당대의 명배우 마일런 아리슨이 총에 맞고 불에 타 성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파리의 명탐정 방코랑은 이 사건을 메이르쟈와 아리슨의 친구인 대부호 드오네이로부터 의뢰 받아, 아리슨이 거처하던 해골성 옆 별장으로 조수겸 화자인 소설가 제프리 마르와 함께 떠났다. 방코랑은 그곳에서 사건을 정식으로 담당한 독일의 명탐정 폰 아른하임 남작과 추리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이전에 읽었었던 "밤에 걷다" 이후 2번째로 읽은 딕슨 카의 방코랑 시리즈입니다. 딕슨 카의 3번째 작품이라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딕슨 카 작품은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정통 본격물로서의 가치가 높아 굉장히 선호하는 편인데, 우연찮게 일신 추리문고 출간본을 헌책방에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동서에서 나온 책도 있지만 최근 자금의 압박이 심해서....(개인적으로 일신 추리문고 판본이 더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작가의 다른 시리즈인 펠박사와 헨리 메리베일 경 시리즈와는 다르게, 방코랑 시리즈는 오컬트를 넘어서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전해주는게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밤에 걷다"는 흡혈귀 괴담, 이 작품은 "마술"을 배경 설정으로 다루고 있는데, 고딕 호러 스타일이 작품 전체에 굉장히 짙고 뭔가 약간 일본 변격물 같은 느낌도 듭니다.

그러나 단순히 괴담 분위기로만 끝나지 않고, 추리적으로도 우수해서 각종 단서가 독자에게 충실하게,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다는게 대단합니다. 굉장히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클로우즈 써클 타입 - "고립된 별장" 타입 - 의 미스터리인지라 용의자도 한정되어 있는 탓에 진부해 질 수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무엇보다도 "올드보이" 못지 않은 반전과 이어지는 결말은 저의 예상을 초월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로 만들면 굉장히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주인공의 "라이벌"격인 탐정이 등장해서 만만찮은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보통 주인공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라이벌을 "찐따"로 만드는 이 바닥의 상식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비교적 공평한 시각으로 두명의 능력을 표현하고 있거든요.

방코랑은 유머도 부족하고 잘난척도 심하며, 혼자만의 꿍꿍이가 많아서 주인공 탐정으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단점은 있지만, 거장의 황금기 걸작다운 충분한 재미와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명작입니다. 저는 무척 즐겁게 읽었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해골성의 도해와 구조를 설명한 사이트가 있더군요. 아주아주 약간의 트릭이 밝혀지니 만큼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읽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둘러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해골 모양이네요^^

PS : 한가지 의문은 미국 작가가 왜 프랑스 탐정을 주인공으로 독일 라인강을 무대로 한 작품을 썼는 지는 조금 궁금합니다. 이렇게 설정하는게 더 있어보였을려나?

2017/07/01

기면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박수지 : 별점 2점

기면관의 살인 - 4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 '기면관'은 진기한 가면을 모아 놓은 것으로 유명했다.
추리 소설가 시시야 가도미는 자신을 닮은 환상, 괴기 소설가 휴가 교스케의 부탁으로 기면관에서 열리는 기묘한 의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기면관의 주인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자신과 생일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을 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또 하나의 자신'을 찾는 의식이었는데, 참석자에게 200만엔이라는 거액의 보상이 주어졌다. 마침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휴가는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시시야에게 부탁했고, 시시야 역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물이라서 호기심으로 참석하였다.
의식에는 모두 6명의 닮은 꼴들이 모였고, 그들 모두 가게야마 이쓰시와 개인 면담을 진행했지만 다음날 가게야마 이쓰시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 '기면관'은 폭설로 고립되는데...

아야츠지 유키토의 대표 시리즈인 관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이자 현재(2017년 7월)까지는 마지막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의 장, 단점이 모두 최대치로 드러나 있지요. 

장점으로는 신본격의 대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이름에 걸맞는 본격물이라는 점이 가장 큽니다. 모든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되며, 추리 과정도 합리적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설정 - 범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기면관의 2대 주인이고, 살해당한 가게야마 이쓰시는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찾던 3대 주인이었다 - 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교묘한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수면제를 먹이고 가면을 씌운 이유'라는 기묘한 상황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건 과연 '관 시리즈' 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요.

또 탐정역인 시시야 가도미의 추리를 사건의 핵심 3요소를 꼭 집어 알려주는 부분처럼 진행에 따라 전개에 녹여내어 독자가 이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아르바이트생 도코는 사실 신게츠류 유술의 달인이라던가, 환희의 가면이 콘택트렌즈에 대해 조언을 하는 장면, 미네르바라는 잡지 로고에 대한 이야기 등 전개하면서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건 추리 작가 지망생으로서 배울 만 했습니다.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정한 정보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 '관 시리즈'에서 느껴지던 변격물적인,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덜하다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이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은데 저는 '호' 쪽이었습니다. 읽기가 훨씬 깔끔했고 내용도 보다 합리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범행도 나름대로 상식적(?) 으로 그려지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라는 것입니다. 본질을 찾는다 어쩌구 하면서 생일이 같은 동명이인을 불러모아 가면을 씌워놓고 하룻밤 보낸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이지요.
관 시리즈에 등장하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비밀 장치도 작위적이라는 점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최악은 별관으로 탈출하기 위해 이용한 비밀 통로입니다. 이를 열기 위해서는 '기면의 가면'을 대고 균등하게 눌러야 하기 때문에 기면의 가면을 쓰고 있던 가게야마 이쓰시의 시체 목을 잘랐어야 했다는데, 눈이 이렇게나 많이 왔으면 눈을 뭉쳐서 가져다대고 눌러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애초에 가면을 대고 누른다고 힘이 균등하게 들어간다는 것도 넌센스고요.
참석자가 모두 동명이인이라는 것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도범행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래의 가면'과 열쇠를 훔치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뭐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기껏 훔쳐봤자 폭설로 고립된 상황에서 어쩔 생각이었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가게야마 이쓰시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도, 다음날이면 범행이 밝혀졌을 테니까요. 이럴거라면 참석자와 하인들까지 모두 죽이고 도망가는게 도주에는 훨씬 유리했을 겁니다.
오니마루와 도코 등 참석자 외 관계자에게 수면제를 먹이지 않은 이유도 알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라도 모두 재우는게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관계자들 모두가 범행 시각에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탓에 범행도 많이 틀어져 버렸으니까요.
도쿄 근처에서 폭설로 고립되고, 구조를 요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너무나 명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장, 단점 모두 신본격이라는 장르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신본격물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교과서이기는 합니다. 신본격이라는 장르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습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여러모로 '소설' 보다는 '만화'나 '영화'같은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 매체에 더 적합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