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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0

세계추리명작단편선 - 하서출판사 : 별점 4점

하서출판사에서 70년대에 간행된 세계 추리 명작 전집 중 한권으로 여러 단편들을 모아놓은 단편집입니다. 추리소설 초창기 작품들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으로 재미와 수준이 아주 뛰어난 작품들로 엄선되어 있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어요. 지금은 좀 구하기 힘들어진 작가들의 비중이 높은 것 역시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소개된 초유명 작품들 몇편도 실려있는 것은 약간 아쉽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걸작들이니 납득할만 합니다. 오래된 낡은 책이기에 수반되는 편집, 장정, 번역 문제를 제외하고 수록작품들의 퀄리티만 따진다면 별점 5점은 충분하겠죠. 어쨌건 아주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개인적인 베스트를 꼽자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나 순수한 희소성 측면에서 최고 작품은 로버트 바의 "건망증 있는 사람들"과 윌키 콜린즈의 "사람이 오만하면", 그리고 로드 던세이니의 "두병의 소오스"를 꼽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희귀 고전 걸작을 새로 간행하면 어떨까 싶어서 저만의 리스트를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혹 출판사 관계자가 보신다면 한번 고려해 보셨으면 합니다. FTA 체결로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후 50년 이상이면 저작권이 풀리는 당장의 국내 현실에 맞춰본 것이죠. 이 단편집 위주이긴 하지만 몇몇 작품은 다른 작품에서 뽑아와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번역은 다시 해야겠지만요.
-추리소설의 여명기 걸작선-
토마스 버크 (1886~1945) "오터모울씨의 손"
로버트 바 (1850~1912) "건망증 있는 사람들"
윌키 콜린즈 (1824~1889) "사람이 오만하면"

-기묘한 맛, 추리소설의 색다른 재미-
로드 던세이니 (1878~1956) "두병의 소스"
도로시 L 세이어스 (1893~1957) "의혹"

-셜록홈즈의 라이벌들-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머 (1869~1942) "연립주택의 참극" (장님탐정 맥스 캐러더스) 또는 그외 (브룩밴드 장의 비극)
멜빈 데이비드 포스트 (1871~1930) "둠도프 사건" "나보테의 포도원" (서부개척시대 탐정 엉클 애브너) 또는 그외
로널드 A. 녹스(1888~1957) "밀실의 수행자" (비밀탐정 마일즈 브랜든)
체스터튼 (1874~1936) "날개달린 단검" (브라운 신부 시리즈) 또는 그외
오르치 백작부인 (1865~1945) 더블린 사건 (구석의 노인 시리즈) 또는 그외
잭 푸트렐 (1875~1912) "정보누설" (사고기계 반 두젠 시리즈) 또는 그외 (13호 독방의 문제)
아더 모리슨 (1863~1945) "렌턴관 도난 사건" (사립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크리스티 여사의 "야앵장"
한 여성의 의혹과 생존을 위한 속임수를 다룬 소품. 심리묘사가 정말로 흥미진진한 걸작입니다.
 
토마스 버크 "오터모울씨의 손"
추리소설 초창기 최고 걸작 중 하나. 이유는 아주 획기적인 트릭이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이후 여러 후대 작품들에 인용된 걸작 트릭이죠.

로버트 바아 "건망증 있는 사람들"
유머 미스테리. 은화 위조단 추적으로 비롯된 사건이 기발한 사기 사건으로 연결되는 구조도 신선하고 트릭과 전개 역시 유쾌하고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너 "브룩밴드 장의 비극"
장님탐정 맥스 캐러더스 시리즈. 시리즈 최고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과학적이고도 신선한 트릭이 등장한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단, 맥스 캐러더스가 장님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설정상 감점요소가 좀 있고 결말이 좀 개운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하여간 이 작가는 전개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로드 던세이니 "두병의 소오스"
로얄드 달이나 스텐리 엘린류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 지금 읽어도 굉장히 충격적이고 기발한 결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화자를 통해 전개하는 작품의 스토리텔링이 무척이나 빼어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멜빈 데이비슨 포스트 "둠도프 사건"
서부개척 탐정 엉클 애브너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은 동서 문고 시리즈로도 접할 수 있죠. 하나님 어쩌구 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전개는 짜증나지만 기발한 트릭만큼은 일품이었습니다.

G.K 체스터튼 "기묘한 발소리"
브라운 신부 시리즈. 지금은 정식 간행되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리즈 최고작이라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좋은 작품이죠.

로널드 K 녹스 "밀실의 신비주의자"
밀실 트릭의 새로운 지평을 열은 단편. "김전일" 시리즈 중 한편인 <이진간촌 살인사건>의 서브트릭으로 사용될 정도로 추리 소설계에 유명한 트릭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작품이죠. 지금 읽는다면 트릭이 좀 뻔해보이기도 합니다만...

휴 월폴 "은가면"
착한 부인이 자신의 선행에 의해 파멸해 나가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그린 독특한 작품. 이색적이고 좀 서늘한 유머가 있는 작품입니다.

윌키 콜린즈 "사람이 오만하면"
전체가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진행에 추리소설로 나무랄데 없는 전개를 가진 걸작입니다. 유머러스한 문체까지 곁들여진 초기 영국 추리 문학계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죠.

E.B 오르치 "더블린 사건"
구석의 노인 시리즈. 역시 동서문고로 간행되어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최고 걸작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발상의 역전이 기발한 작품으로 당대의 명탐정의 반열에 오른 구석의 노인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A.모리슨 "렌턴관 도난사건"
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역시나 추리소설 역사에 남을만한 멋진 트릭이 등장합니다. 또한 이 트릭을 풀어내기 위한 단서도 굉장히 합리적이라 단편 추리소설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덧붙이자면 아주 오래전 <세계의 명탐정 50인>에 등장했던 바로 그 트릭입니다. 전개가 조금 밋밋한 것이 약간 아쉽네요.

도로시 L 세이어즈 "의혹"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걸작.

2022/10/22

다양한 각도로 맛보는, 서로 다른 느낌의 걸작 시간 미스터리 소개

* 이전 소개드렸던 honto의 북트리 서비스에서 추천하는 시간 미스터리 소설들

시간 여행, 루프 등 SF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간물'. 거기에 미스터리를 더한 '시간 미스터리'. 시간 미스터리라고 해도 유머러스하거나, 감동적이거나 서스펜스가 넘치는 등 소설별로 그 느낌은 천차만별입니다. 다양한 시간 미스터리 중 각각의 느낌별로 걸작들을 소개해드립니다. SF나 미스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한때 잡화점이었던 폐가. 그곳에 과거로부터의 고민 상담 편지가 도착한다. 폐가에서 하룻밤을 지새게 된 3인조 빈집털이범이 그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현재와 과거가 연결되고, 마침내 훈훈한 결말을 맞이한다. '시간 미스터리 x 감동물' 걸작.

<<리피트>> 이누이 구루미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 주인공 모리는 여러 동행자와 함께 과거로 돌아간다. 미래를 아는 것으로 약속되었을 성공. 그러나 동행자들이 차례대로 죽어가고, 그 죽음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왜 그들은 죽었는가? 다음에는 내 차례가 아닐까? '시간 미스터리×서스펜스'의 걸작.

<<일곱번 죽은 남자>> 니시자와 야스히코
드물게 하루를 7회 반복해 버리는 체질을 가지는 나, 그리고 반복한 그 날 돌아가시는 할아버지. 원래의 하루에서는 죽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을까? 죽음을 다루면서도 코믹하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소설. '시간 미스터리×유머' 걸작.

<<삭제 보이스 0326>> 가타바미 다이시 (국내 미출간)
과거의 일을 없던 일로 만드는 장치 KMD. 주인공 소년은 가장 친한 친구의 사고, 형의 자살을 막기 위해 그 장치를 사용한다. 그러나 불화가 점차 생겨나고 소년은 그에 맞선다. 그리고 이야기는 씁쓸하면서도 상쾌한 결말을 맞이한다. 읽은 후 애틋한 여운이 남는 이 책은 '시간 미스터리X청춘'의 걸작이다.

<<공허의 상자와 제로의 마리아>>
1만 번 이상 같은 때를 반복하고 있는 소녀와 시간이 루프라는 것을 깨닫는 '나'. 고등학생인 '나'와 전학온 그 소녀가 시간 루프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무릎을 치는 전개, 치밀한 설정, 정교한 구성이 결합된 '시간 미스터리×라이트 노벨'의 걸작.

2020/04/26

우연한 걸작 - 마이클 키멜만 / 박상미 : 별점 2.5점

우연한 걸작 - 6점
마이클 키멜만 지음, 박상미 옮김/세미콜론

여러 예술가들의 걸작들을 전부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왜 그 작품이 걸작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책으로 예술에 대해 깊이있는 식견을 바탕으로 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하지만 전혀 쉽지는 않아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하는 느낌이거든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요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가지 기록해 볼 만 한 내용들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보나르의 작품들은 영원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현대 인상파'라 부를 수 있는 좋은 그림이기 때문에 걸작이라는군요. 도판만 보았을 때에는 인상파라기 보다는 좀 더 괴기 쪽에 가깝지 않나 싶지만요.
아마츄어리즘은 적은 노력으로 큰 만족을 얻는 쪽으로 발전했으며, 이는 밥 로스와 일맥상통하기에 밥 로스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츄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프로와 별 다를게 없다는 이유이기도 한데,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지요. 게다가 별다른 목적없이 그리거나 찍은 작품이 '우연과 실수'라는 측면에서 초현실주의와 연결되어 걸작으로 인정받게 된다는군요. 이유는, 이 책에 쓰여진대로라면 그 작품에서 무언가 놀랍거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걸작이라는 거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특히 현대 미술은 기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과정도 포함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해 보여요.
문제는 그런 평을 전문 비평가가 해야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는 진정한 아마추어리즘과는 좀 분리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드네요. 철학자이자 미술 평론가 아서 딘토는 아름다움은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했는데, 이 노력에 대한 설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수준이 판가름날 테니까요. 제가 '이게 걸작이야!'라고 제 딸 아이 그림을 평가해도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결국 다 평론가들 놀음이라는 점에서는 입맛이 좀 씁니다.

또 시대에 따라 경험이 변해서, 아름다움의 정의가 변한다는 것도 와 닿았습니다. 명확한 사실이니까요. 현대에 사는 우리가. 여러가지 매체에서 수없이 보았을 '모나리자'를 보고 놀라움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지요. '놀라움' 을 느낄 여지가 적어졌다는 점에서, 현대는 정말 예술을 하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존 케이지의 음악처럼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도 못할 기괴한 발상이 난무하고 있죠.
그래도 재미있는 작품과 발상들이 몇 가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저자의 친구 알렉스의 서재가 대표적입니다. 알렉스는 원룸 집 벽에 나무 책장을 들여 놓았는데, 책으로 가득차 책 한 권을 더 꽂으려면, 그 두께만큼 다른 책을 빼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서재는 자츰 진화하고, 가꾸는 물건이 되었으며 결국 알렉스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죠. 여기에 더해 가차없으면서도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기에 이는 예술이며 작품이 되었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합니다!
존 레넌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의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존 레넌을 유혹하는데 성공한 외국 여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상당한 수준의 교육과 깊이를 가진 여성이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수동성'을 표현했다는 그녀의 여러가지 작품들도 인상적이었고요.
 수집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집은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로, 감식안과 더불어 일종의 상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인데, 이유보다도 앨버트 C. 반스의 수집품이라는 실례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의 독특한 진열 방식으로 수집품이 진열되었는데, 덕분에 그림을 새롭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오노 요코 외에도 새로 알게된 사실은 많아요. 화가들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던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루이스 캐럴은 변태가 아니었다는 것, 보나르의 아내 마르트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 말이지요. 특히 보나르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옛 연인 르네를 그린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보나르 작품에 언제나 등장하는 마르트가 잘 보이지도 않게 등장해서, 화면 중앙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르네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보나르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만, 르네야말로 그의 마음 속 천사였고, 마르트는 그를 뒤에서 지배하는 움울한 지박령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르네가 마르트와 눈이 마주친건, 결국 지박령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암울한 그림이라 할 수 있고요. 아,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니 이런게 예술인거겠죠?

몇가지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굉장히 흥미로와서 인터넷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나치 포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은 유대인 아가씨 샬로트가 죽기 직전까지 몰두하여 만들었다는, 1300쪽에 이르는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인생? 혹은 연극?"이 대표적입니다. 그게 뭐든, 양이 많으면 일단 독보적인 무언가가 되는 듯 합니다.
자수로 프로야구 선수들 초상화를 만든 죄수 출신 작가 레이 매터슨의 작품들, 초창기 남극 탐험에서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으로 불멸의 이름을 남긴 프랭크 헐리의 기록 사진들도 찾아볼 만 하더군요. 저자가 작품 창작 과정을 직접 관찰한 화가 펄스타인의 작품들 역시 괜찮았습니다. 한 점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도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거대 작품, 해당 작품이 놓인 장소로 여행을 떠나야지만 볼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이상했습니다. 감상 순간의 주변 환경이 중요한 장소 특정적 예술이라는게 있다는 논리에서 시작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대의 이런 작품들은 그냥 크기로 승부하는, 크기로 놀라움을 주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전부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었어요. 거대 기념비와 별 다를게 없는데 이게 과연 예술인가요? 화가나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큰 돌덩어리가 예술이 되는건 아닐텐데 말이지요. 이에 비하면 일상 속 아름다움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샤르댕이나 티보의 작품들이 훨씬 예술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도판이 부실한건 굉장히 아쉽네요. 컬러로 수록된 도판도 부족할 뿐더러, 그나마 수록된 도판들도 저자가 설명하는 작품들을 전부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궁금한건 인터넷으로 직접 찾아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나마 수록된 도판도 흑백이 많아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고, 예술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니 좋은 독서임에는 분명합니다. 단지 제 취향과 맞지 않았을 뿐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7/09/15

빨간 고양이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 단편집) - 정태원 편역 : 별점 4점

빨간 고양이 - 8점
니키 에쓰코 외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이 책은 1회, 1948년 부터의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단편들을 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입니다. 나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구입 의욕에 불타던 단편집이었지요. 출간 즉시 구입, 완독하였습니다. 그만큼 저같은 일본 추리 소설, 그리고 단편소설 매니아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책입니다.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가도 많고, 유명하지만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도 수록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물론 아토다 다카시의 "손님"이라던가 니키 에쓰코의 표제작이기도 한 "빨간 고양이", 구사카 게이스케의 "휘파람새를 부르는 소년" 같이 다른 앤솔러지에서 이미 접한 작품도 있지만, 제 기준으로는 열 여섯 편의 수록작 중 세 편에 불과해서 납득할 만 했습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선정된 작품들은 괴이한 분위기의 "해만장 기담"이라거나 대하 역사물 같은 "매국노" 등 작품의 스펙트럼이 무지하게 넓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들이니 만큼 전부 추리소설들이기는 합니다.
또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풍취가 넘치는 작품이 많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상이라는 걸 타려면 문학적으로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어야 할테니 당연하겠지만요. 이런 부분은 저같은 고전 트릭물 애호가에게는 추리적으로 약간 부족해 보여서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덕분에 보다 폭넓은 층에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디 널리 알려져서 잘 팔려주면 좋겠습니다. 뒷부분 해설을 보니 2부도 기획중이던데 2부 출간을 위해서라도 꼭이요!

하여튼 전체 별점은 4점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만족했던것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유명한 걸작 "돌아오는 강의 정사 (회귀천 정사)" 였습니다. 일본 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이야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비록 일본시가 한국어로 번역되며 그 풍취를 많이 잃었다 하더라도 걸작은 역시 걸작이구나 싶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다 좋은데 좀 취향을 탈 것 같은 작품들은 몇개 있긴 했습니다.

아울러 책의 내용말고 다른 점을 좀 짚어보자면 오탈자가 가끔 있는 편이라 초판 이후에는 수정되었으면 하고, 책의 두께도 엄청난 편인데 양장으로 출간되어 무게를 가중시키는 것도 문제로 보입니다. 폰트를 좀 줄여 두께를 줄이고 양장대신 평범하게 제작하여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과거 다른 태동 출판사의 책들 수준의 크기와 가격이었더라면 만족도가 훨~씬 높았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초승달 - 기기 다카타로

부유한 호소다 에이스케와 아야코 부부는 30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야코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아야코 집안에서 살해 의혹을 들먹이며 변호사를 통해 위자료를 요구해 왔다. 사건의 진상은?

1948년의 첫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상 수상작입니다. 정태원 선생님 해설을 통해 작가가 작품에서의 문학적인 부분을 굉장히 강조했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순문학적인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사실 트릭이라는 것이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라 본격물로 보기에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느낌을 전해 주네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이 본편보다도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뭔가 환상특급 같은 느낌을 주었거든요.

2. 해만장기담 - 가야마 시게루

대 부호인 쓰가모토 박사는 지상에 지옥을 구현하였다는 해만장이라는 저택으로 유명했다. 박사의 외아들 고비오의 생일파티가 해만장에서 있던 밤, 박사의 딸인 마야와 고비오가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고지라의 원작자인 가야마 시게루의 작품으로 1948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가야마 시게루는 전에 "넹고넹고"라는 환상문학적인 작품을 이미 접해보긴 했는데, 이 작품 역시 설정 자체가 약간은 허구에 근거하고 있어서 정통 추리물보다는 환상 추리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의 방대한 박물학적 지식을 토대로 구현된 세계관은 압권입니다. 변격물과 정통파의 중간지점쯤에 위치했다고나 할까요? 과학적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제 생물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트릭은 6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작가의 지나치게 장황한 묘사는 부담스럽습니다.

3. 눈속의 악마 - 야마다 후타로

다마에라는 아름다운 무용수에게 반한 의대생 다치바나는 자신의 친구였던 부자 가타쿠라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좌절하고 말았다. 그러나 가타구라가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뒤, 다치바나는 우연히 알게된 다마에의 비밀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활용한 음모를 꾸미는데... 

유명한 고전 일본 추리작가 야마다 후타로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지만 작품 자체도 명불허전! 특히 예전 읽었던 "마지막 인사"에 비교해 본다면 추리적 요소가 많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순전히 다치바나의 1인칭. 그것도 서간문 형식으로만 구성된 전개 방식도 독특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새로왔을 의학적 트릭을 이용하고 있다는게 놀라왔던 작품입니다. 심리를 잘 이용한 교묘한 트릭이라서 마음에 드네요. 

4. 허상음락 - 야마다 후타로

음독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유미코는 시동생 우스케에게 치아키 의사가 있는, 자신이 과거에 근무했던 병원으로 옮겨줄 것을 부탁했다. 치아키 의사는 진료 중 유미코의 몸에 드러난 수많은 상처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데... 

위의 "눈속의 악마" 보다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작품은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탐미주의적 문학관이 짙게 옅보이는 심리극으로 보는게 맞습니다. 추리적 알맹이는 그다지 많지 않거든요. 

그러나 애증 관계의 색다른 해석과 덧없는 결말이 펼쳐지는 인물과 심리 묘사가 워낙 탁월하여 작품 자체로서 높이 평가받는 듯 합니다. 솔직히 추리물로 보이지는 않아서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건  의외이지만요.

5. 린치 - 오쓰보 쓰나오

10년만에 출옥한 전 야쿠자 세이기치. 그는 도난당한 금불상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알려진 탓에 야쿠자 조직의 표적이 되었다. 

과거의 금불상 도난 사건과 현재. 그리고 야쿠자 조직의 흥망성쇠가 얽힌 이야기로 복잡한 인간관계가 후반부에 가서 모두 밝혀지는 하드보일드적 작풍이 독특합니다. 사건이 트릭보다는 일종의 "해설"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 역시 비슷했고요. 하지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이 동양적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하드보일드 작품과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죠.

걸작까지는 아니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6. 어떤 결투 - 미즈타니 쥰

야스코를 놓고 경쟁하던 두 젊은이 시라사키와 구보타는 결국 권총 결투를 벌이는데 시라사키가 죽고 말았다. 친구 그룹은 사건 은폐를 위한 조작을 시도하는데... 

이 단편집에 드디어, 처음으로 등장한 정통 추리물입니다. 짤막하지만 권총 결투라는 소재를 도입한 이국적인 설정이 돋보입니다. 단지 이국적인 느낌만 전해주려고 등장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 사건에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트릭의 근간이 되는 설정이라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조작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경찰과의 두뇌싸움도 볼만 합니다. 

다른 작품들처럼 문학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추리물로 즐기기에는 부족함 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7. 매국노 - 나가세 산고

전쟁 (2차 세계 대전) 말기 중국 베이징에서 사토미야 료스케는 친일신문 사장 2명의 진상 조사를 체리라는 아가씨에게서 의뢰 받았다. 조사를 진행하던 중 그는 이 사건이 일본의 신기인 곡옥과 얽혀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실제 중국 거주민이었던 작가의 아주아주 디테일한 당시 묘사가 돋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건의 트릭 자체는 너무 보잘 것이 없습니다. 대하 역사극에 일부로 추리적 요소가 삽입되었다고 보여질 정도로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아요.

8. 여우의 닭 - 히가게 죠기치

신지는 나무를 하던 중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꾼 직후, 형수 모치의 시체를 발견했다.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 생각한 신지는 사건 은폐를 위해 시체를 숨겼지만,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의 표적이 되는데...

전쟁 직후 귀환병의 비참한 생활을 잘 묘사한 문학적 흥취도 뛰어나지만 실제로 사건, 동기, 트릭의 3박자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걸작입니다. 날짜별로 구분된 챕터는 조금 거슬렸지만 워낙 묘사와 전개가 뛰어나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결말 역시 인상적이에요.

9. 피리를 불면 사람이 죽는다 - 쓰노다 기쿠오

경찰청 담당 기자 료스케는 자신이 썼던 완전범죄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보냈던 에나라는 아가씨가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관계된 완전범죄를 실제로 목격하는데...

경찰과 관계자가 보는 앞에서 벌어지는 완전 범죄를 그린 단편입니다. 일반적인 범죄물로 그려지다가 한번의 반전을 통해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전해줍니다. 전후 일본의 혼란과 인간의 잔인합도 약간 그리는 사회파적인 특성도 조금 있고요.

10. 그린차의 아이 - 도이타 야스지

노배우 나카무라 가라쿠는 7년만에 무대 복귀를 결심하지만 복귀 무대의 아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다가 지인과 함께 신칸센 그린차를 타고 도쿄로 떠났다. 그리고 그린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소녀의 정체를 놓고 추리가 시작되는데..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라는 가부키 배우 나카무라 가라쿠가 등장하는 소품으로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소박한 내용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상 생활 속에서의 추리" 라는 점에서 정말이지 취향 저격이었어요. 아울러 가부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와 지식이 특히나 돋보였고요. 

그런데 설정과 캐릭터에 비한다면 추리적인 요소는 약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11. 시선 - 이시자와 에이타로

가지하라 형사는 자신의 조카와 결혼을 앞둔 후배 시바타 형사와 탐문수사에서 돌아오던 중, 한 결혼식을 바라보다가 신부가 지난 은행강도 사건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선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전개되는 짤막한 작품입니다. 단편에 최적화된 듯한 내용과 전개는 흡입력이 상당하더군요. 길이에 비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드라마틱 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전해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12. 손님 - 아토다 다카시

이전에 읽었던 "Y의 거리"에 포함되었던 작품으로 아토다 다카시 특유의 반전이 인상적인, 서늘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은 "나폴레옹광"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작품 역시 만만치 않은 전율을 가져다 주는 좋은 작품이죠.

13. 빨간 고양이 - 니키 에쓰코

역시 이전에 읽었었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포함되었던 작품입니다. "빨간 고양이"라는 인형에 함축된 중의적 의미를 풀어내는 트릭과 범인을 집어내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정통 안락의자형 추리물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처량하고 너무 착하게 끝나는 결말은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작가 니키 에쓰코의 작품군이 대체로 해피엔딩에 기반한 만큼, 작풍이라 보는 것이 맞겠죠. 어쨌건 정통 추리물 애호가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14. 돌아오는 강의 정사 - 렌조 미키히코

근대의 천재시인 소노다 가쿠요는 2번의 정사 미수 끝에 자살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리고 그의 전기를 쓰다가 중단한 "나"는 그의 2편의 정사 미수 후 발표된 "정가"와 "소생"이라는 시를 분석하여 그 사건의 진상을 알아챈다.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 9위로 선정된 "회귀천 정사". 바로 그 작품입니다. 천재 시인의 연작시를 토대로 과거를 밝혀내는 전개의 작품으로 시를 통해 발현되는 문학적 가치도 빼어나지만 사건 앞뒤에 포진한 단서와 복선을 가지고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 역시 이치에 합당하며 정교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 한편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여러배 높아지는, 그만큼 뛰어나면서도 항상 읽고 싶었던 작품이기에 무척 만족스럽네요. 

단 일본어 였을 때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느껴졌을 싯구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그 맛을 좀 잃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점이 있고 정통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의 과정이 심심한 편이긴 합니다. 그래도 걸작은 걸작입니다.

15. 나무에 오르는 개 - 구사카 게이스케

"나"는 동생 겐지가 유일한 친구 히데오와 개가 나무에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로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중재하다가 과거 헤어진 연인 마치코의 집까지 찾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 개가 우물에 빠지고  겐지마저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자 "나"는 모든 사고의 원인이 된 나무에 올라가 모든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낸다. 

제가 그간 읽었던 구사카 게이스케의 작품은 항상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서 소품 느낌을 주면서도 정교함과 더불어 독자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인상적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정교하게 현재 시점의 사건을 다루는 솜씨가 역시나 탁월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반전도 인상적이고요.

16. 휘파람 새를 부르는 소년

역시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수록되어 접해보았던 작품입니다. 거기서는 "꾀꼬리"라고 되어 있지만 같은 작품이죠. 위에 쓴 평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듭니다. 추리나 결말이 더 제 취향이었다고나 할까요?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18/02/04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시모쓰키 아오이 / 김은모 : 별점 4.5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10점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오랜 경력의 평론가가 "왜 크리스티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전부 읽어본 후 평을 기록한 평론집이자 리뷰집입니다.

리뷰의 수준은 최상급입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작품의 핵심을 콕 집어 지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추리 소설 리뷰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정도예요.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은 '불순물 하나 없는 본격 추리 소설의 원형'이고, "엔드하우스의 비극"'고명에 의존하지 않고 면발과 국물의 감칠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같은 작품'이라는 식입니다.
좋은 작품은 정말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소개하고 있으며,  전문가답게 유사하거나 참고해야 할 다른 작품들도 함께 언급, 소개하는 부분들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트릭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비뚤어진 집", "구름 속의 죽음" 정도는 저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골프장 살인 사건" 이 10년 뒤 발표된 역사적 명작과 같은 장치를 사용했다, "블랙커피" 속 장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2" 속 장치와 일맥상통한다, "맥긴티 부인의 죽음" 은 하드보일드 성향이라 우수하다는 등의 정보들은 정말 그 깊이와 수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뷰가 작품이 발표된 연대별로 이어지는 덕분에 여사님의 발전, 작법의 진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사님 특유의 섬세한 인간관계 묘사가 정교하게 쌓아 올려지고, 트릭보다 인간관계와 동기 등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여사님이 얼마나 많은 작품 스타일에 도전했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통 추리에서 시작해서 모험물, 신본격 스타일 서술 트릭, 스릴러, 법정극, 하드보일드, 오컬트 심령 괴기물, 심지어 코즈믹 호러(!) 까지 장르 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니까요. 왜 거장인지를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매우 낡아빠진 오래전 고전 작가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세번째 여인" 의 경우 1966년 발표된 작품으로 곧 '레드 제펠린' 이 결성될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는 시대가 확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읽은 여사님 작품에서 '스푸트니크' 호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지요. 참고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최첨단 추리 소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무모한 도전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증거라나요?

이렇게 리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게 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걸작'이기 때문인데, 걸작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지적하지요. 여사님의 걸작들은 요약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게 원인이고요.
즉 작품 전체가 트릭이자, 복선이자, 단서이자, 미스디렉션으로 소설 전체가 속이기 위해 짜여진 플랫폼일 뿐 아니라, 여사님은 트릭에 능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는 본격물에 비하면 그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는 게 최종 결론인데, 여사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리뷰를 통해 여사님의 특징적인 작법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은 그녀가 일종의 "연극"처럼 상황을 다룬 것이 비결로, 여사님 작품은 그림이나 동영상, 연극처럼 독자나 관객이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다의적" 이야기를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 내는지가 중심이라는 건데 아주 타당해 보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여사님 작품을 몇 편 떠올려 봐도 저자의 말대로 "여사님 머릿속에 상영되는 연극을 종이 위에 옮겼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겉보기를 만든 후, 겉보기와는 다른 진실에 그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방법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여행지라는 무대와 신원을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정말 그럴싸 하지요? 연극과 같은 상황을 접목하기 좋은건 당연히 일상과 분리된 장소일테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위장하는게 보다 손 쉬운 건 당연하니까요. 아울러 여사님은 독자가 어떤 때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어떤 때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지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던 덕분에 독자를 속이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흉내내기 어려운 솜씨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저자 스스로 모든 작품의 별점을 매기고 평가한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물론 평론, 리뷰 및 평가는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별점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걸작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이 많이 부여되고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별로였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다섯 마리 아기 돼지" 나 "끝없는 밤" 을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은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로 알고 있는 매리 웨스트매콧 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의아했던 점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정교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다의성' 이라는 항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슬픈 사이프러스" 등 몇몇 작품은 국내 번역명과 동떨어진 일본식 제목으로 소개되거나, 포와로와 마플 및 기타 장편 외 몇몇 작품들에 대한 국내 출간 여부가 체크되지 않은 점은 옥의 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이자 잘 쓰인 추리소설 리뷰 집으로 완벽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뛰어가서 사 오시길" 바랍니다. 저도 여사님같은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리뷰라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전체 베스트 10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서둘러,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네요.

  1. 커튼
  2.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끝없는 밤,
  4. 주머니 속의 호밀
  5. 봄에 나는 없었다
  6. 백주의 악마
  7. 깨어진 거울
  8.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9. 죽음과의 약속
  10. N 또는 M

그 외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할로 저택의 비극", "맥긴티 부인의 죽음", "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것만 해도 올해 여름까지는 충분하겠지요?

2021/09/03

리처드 매시슨 - 리처드 매시슨 / 최필원 : 별점 3점

리처드 매시슨 - 6점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현대문학

호러,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시슨의 걸작선. 이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단편집은 거의 모두 읽어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수록작들 대부분이 좋은 작품들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무려 33편이나 되는 볼륨도 풍성하고요. SF, 호러, 범죄물,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장르적인 스펙트럼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전부 걸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별점 5점, 4.5점, 4점의 걸작과 수작도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작품들인지는 궁금하네요.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 중 분명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져있기도 하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 

흉칙한 무언가가 부모님에 의해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읽기에는 많이 뻔합니다. 괴물이 다음 번에는 지하실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덮친다는 여운을 남기지만, 명확한 결말이 더 낫지않나 생각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감" 

아멜리아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 기묘한 인형을 샀다. 인형을 구속한다는 금줄이 풀리자, 인형은 아멜리아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일종의 크리쳐물로 20cm밖에 안되는 나무 인형과 사투를 벌이는 묘사가 압권이에요.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멋집니다. 

하지만 결말과 담고 있는 주제가 제 기억과 사뭇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아멜리아가 처참하게 희생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가 인형을 처단한 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이더라고요. 착각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를 구속하는게 살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사적이면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을 발표 시점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시의적절한 메시지였다 생각되네요. 이런 메시지를 돌직구로, 매력적으로 한 가운데 꽂아넣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요.

단, 결말에서 어머니를 죽일 결심을 한 아멜리아가 문의 빗장을 쉽게 연 건 좀 안일했습니다. 인형에게서 도망칠 때에는 여러번 실패했던 걸로 묘사되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회파' 크리쳐 호러라는 신경지를 장르 문학 초창기에 개척한 명작입니다.

"마녀 전쟁"

군에서 키우는 일곱 마녀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마법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마녀들이 각자 특기로 소환한 불과 물, 거대한 암석, 사자 등으로 적을 잔혹하게 몰살시키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단지 이런 파괴적인 묘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외에는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파괴 묘사만큼은 확실히 볼 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판본보다 번역이 훨씬 좋은 덕분이지요. 약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느낌도 드는데, 이런 설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요.

"깔끔한 집" 

소설가인 나는 아내 루시와 함께 굉장히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왔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아파트 지하실에 거대한 엔진이 있고, 관리인은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인을 미행하여 이 모든게 사실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친한 이웃 필, 마지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아파트가 이륙을 준비할 때 탈출에 성공하는데....

아파트가 로켓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마지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그녀가 말했던게 모두 사실이라는게 드러나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던 SF 단편입니다. 서스펜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블록 전체가 우주선이라서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침략하는게 아니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보디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독특한 설정, 아이디어와 함께 전개에서 긴장감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걸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피의 아들" 

기묘한 아이 쥴스는 드라큘라가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졌다. 쥴스는 학교도 그만두고 배회하다가 동물원에서 흡혈 박쥐를 훔쳐내는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단편으로, 분량과 흡혈 박쥐가 진짜 드라큘라였다는 반전으로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뜬금없었고, 리처드 매시슨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는 찾아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이야기는 쥴스가 정신병자인지, 진짜 흡혈귀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나는 잠에서 깬 뒤, 관에 갖혀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게 적들의 수작이라고 믿은 나는, 관을 탈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관 뚜껑을 부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나'가 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7개월 전 죽었고, 거울로 본 '나'는 썩은 시체였다는 반전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환상특급" 등의 원작으로도 잘 어울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 전환되는, 그래서 거울 속 모습에 좀비가 보이는 식의 카메라 워크가 곁들여지면 아주 멋지지 않았을까요?

재미와 충격 외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사소합니다. 얼마 전 읽었었던 좀비물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흔해빠지고 수준 이하였던 작품들 보다는 몇 배 뛰어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사막 카페"

밥과 진 부부는 여행 중 우연히 사막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밥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외딴 마을에서 맞이한, 남편 밥의 실종과 그에 따른 위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행하던 외지인이 외딴 마을에서 겪는 위기를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았고요. 이전 스티븐 킹의 "밴드가 엄청 많더군" 리뷰에서 언급했던 적도 있는데, 보통은 외딴 마을의 기묘한 집단 광기를 그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통 범죄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 진의 심리 묘사를 통해 순수한 공포,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희생자를 화장실에서 납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범죄인데다가, 보안관 등장 후 별다른 위기없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장르물이 주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제대로 달려주는 수작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위조지폐"

생계에 지쳐 일탈을 꿈꾸던 윌리엄 O. 쿡씨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온갖 귀찮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놀 생각으로요. 그러나 쿡씨의 복제인간답게, 복제인간도 놀고 싶어해서 결국 복제인간이 급증하게 된다는 블랙 코미디 콩트입니다.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이기도 하고요. 설정은 재미있는데 기계가 폭발하고 복제인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결말은 시시했습니다. 뭔가 반전이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선" 

로스 선장과 메이슨, 미키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우연히 목격한 인공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 우주선으로 밝혀진 인공물 속에서 발견한 건, 그들 세 명의 시체였다...

일행들이 자기들의 시체를 목격하고 느끼는 공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잘 그려진 SF 단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는 이미 죽었고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은 유령이라는 걸 깨닫는다는 결말은,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설정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체의 춤" 

대학 신입생 페기는 나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적으로 금지된 루피 춤을 보러 갔다가 충격에 기절하고 마는데...

세기말 감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SF. 예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그 때와 평가는 거의 동일합니다. 페기 시점으로 묘사된 광란의 루피 춤 공연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순진한 신입생이 거부하고 싶은 방탕과 쾌락도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일종의 좀비인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의 발작을 '춤'이라고 이름 붙여 공연한다는 끔찍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페기도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방탕함에 빠져버린다는 듯한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이 결말이 루피 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페기가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가 되었다던가, 같은 반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호기심으로 좀비를 보러 갔다 왔다. 무서웠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몽둥이를 든 남자" 

타임스퀘어에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쏴서 겨우 원시인을 제압했다.

조금 무식하고 무례한 젊은 마초 양아치 1인칭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화자 설정도 진부했고, 결말도 뻔했습니다. 핵심은 원시인이 온 곳이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에 문명이 퇴화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는 고전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지적인 노인네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시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건질게 없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버튼, 버튼" 

영화까지 나왔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부부 사이도 서로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기묘한 설정에 더해 서늘하고 섬찟한 느낌과 반전이 있는, '기묘한 맛'류의 쇼트쇼트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박한 평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묘한 맛' 류로는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작품이네요. 왜 나쁜 평가를 했었을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영화 데뷰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 격렬한 카 체이스를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면,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트럭에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 등이 아주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트럭 운전사의 분노가 잘 이해되지는 않고, 마지막 트럭의 최후가 너무 뜬금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확실한 급커브였다던가 등 속도를 반드시 줄여야 했다는걸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심판의 날" 

루크는 심부름을 왔다가 목이 잘린 과부 블랙웰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들 짐은 시체를 본 뒤, 극심한 공포로 광란 상태였다. 루크의 아버지 샘은 현장 조사를 통해 과부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미치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편을 죽게 만든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죽었음) 아들을 증오했었다....

과부 블랙웰이 증오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들 짐이 자신이 없으면 미쳐버리도록 차근차근 준비한 뒤,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끔찍한 공포가 짧은 분량 안에 모두 포함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작이에요. 블랙웰 부인이 목을 멘 칼이 어디 갔을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건 약간 아쉽지만, 단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이 단편 하나를 읽은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덧붙이자면, 엄청난 의지로 저지른 자살이라는 설정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걸작 심령 서스펜스 호러물인 "네번째 남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었지요.

"죄수" 

1944년, 비밀 연구소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던 핵물리학자 필립 존슨은 폭발 사고 후 눈을 뜨자, 자신이 2시간 뒤 사형당할 1954년의 사형수 존 라일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핵폭발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SF적인 발상을 담은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과연 필립 존슨이 자신이 사형수 존 라일리가 아니라는걸 2시간 안에 증명할 수 있을까?가 서스펜스의 핵심이고요.

그러나 필립 존슨의 노력은 신부를 한참 설득하다가 아내 전화번호를 주는 것 뿥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요. 덕분에 긴장감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신부가 그의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애매했습니다. 진짜 필립 존슨의 아내가 없었는지, 아니면 신부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필립 존슨이 모든걸 체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 별로였습니다. 곧 죽을 상황인데, 어떻게든 발버둥 쳐 봤어야죠..

아이디어, 설정은 좋았지만 끌고가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 

세상을 떠난 엄마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가 친구에게 몰래 엄마 방과 드레스를 보여주다가 폭주한다는 내용의, 미치광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혼란스러운 심리극입니다.

그런데 익히 보아왔던 설정과 내용이라 진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백이 많아서 완성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엄마는 못생겼고 드레스도 피투성이에 총 구멍이 나 있었다는게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엄마 사인은 무엇인지, 아이는 지금 어디 갇혀서 어떻게 된건지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발"

더운 여름날, 조는 기묘한 손님을 맞아 이발을 해 주었다. 손님은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등 혼잣말을 읆조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손님이 죽은 사람이었다는건 에상 가능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설정이네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을 때 흙이 떨어진게 아니라, 손은 뼈 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신선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윌슨은 출장을 위해 탑승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괴물이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있는걸 발견했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숨어버려서 윌슨 눈에만 보였다. 비행기 엔진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 윌슨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을 여는데...

영화판 "환상특급" 에피소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공포심, 신경증을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괴물'로 형상화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윌슨이 커튼을 열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자기를 노려보는 괴물을 처음 보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압권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등의 묘사에서는 시대를 느낄 수 있고요.

괴물에게 결국 총을 쏜 윌슨이 승객들에게 제압 당한 뒤 비행기 착륙 후 옮겨지는 결말은 다소 시시하지만, 아이디어와 묘사력이 발군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례식" 

클루니스 장례식장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에게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찾아와서 최고급 장례식 준비를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자신이라고 말했고, 장례식 날에는 하인인 곱추 이고르, 마녀, 늑대인간과 다른 흡혈귀들이 찾아 오는데...

드라큘라를 연상케하는 뱀파이어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스스로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 다른 괴물 손님이 찾아온다는 반전도 좋아서 '쇼트쇼트'로는 더할나위 없었던 작품입니다. 장례식에서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코미디의 정체성이 잘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거장은 뭘 써도 거장인 법이겠지요? 오래 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역시나 그 때도 좋은 평가를 했었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에서 세번째" 

우주 비행사가 세계 멸망을 앞두고, 다른 행성으로 처자식과 이웃 사람들까지 우주선에 몰래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이었다...

화자인 우주 비행사와 그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 전 겪는 마음 속 불안과 혼란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그들이 있던 곳이 지구가 아니라 향한 곳이 지구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짤막한 쇼트쇼트.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쇼트쇼트로서는 우수한 수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최후의 날" 

최후의 날을 맞아 음주, 난교, 광기어린 파괴 행위 등을 즐기던 리처드는, 가족의 소중함을 께닫고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 한다.

리처드가 어머니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걸 깨닫는다는 드라마. 여동생 가족이 죽음을 택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은 찡하면서도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소설보다는 "환상특급"과 같이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거리 전화" 

몸이 불편한 미스 킨에게 어느날 한 밤중, 폭풍우가 불어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에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속삭임과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이어 상대방으로부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전화 회사의 조사 결과 이 전화는 묘지에서 걸려온걸로 밝혀지는데...

정체 모를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다른 이야기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미스 킨의 불안부터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간호사의 말대로 전화를 그냥 끊던가, 수화기를 내려 놓던가, 전화선을 뽑아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제가 댁으로 갈게요." 라는 마지막 전화 목소리로 알려주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묘지에서 걸려왔다는게 드러났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설득력 낮은 진부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행복한 가정의 아빠인 회계사 로버트 카터는 어느날 면도를 하다가 깊숙하게 베였다. 그리고 상처 속 전선과 기계 장치를 보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충격에 거리를 배회하던 카터는 도시가 로봇들로 가득차 있었고, 음식들도 모두 기름이었다는 걸 알아 채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통상적인 의미, 즉 이야기를 모두 해결해 버리는 전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인 "기계 장치의 신"에서 가져온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네요.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흔한 설정을 독보적인 로버트 카터의 심리 묘사로 차별화시킨 솜씨도 거장다왔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터가 진짜 로봇인지, 아니면 죽은 뒤 환상을 보는 건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열린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보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고 반전도 있는 결말을 기대했거든요. 물론 로버트 카터가 쓰러지면서 떠올리는 성경 구절 -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 - 은 그가 기계라는걸 연상케 합니다만, 명확하게 증명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라고 한다면, 그들을 만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기계라고 믿는 주인공 이름이 '로버트'라는게 의미심장하네요. 우리나라로 변주한다면 '노보두 씨'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요?

"기록적인 사건" 

가방끈 짧은 쉰 아홉살의 대학교 건물 관리인 프레드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건물 청소 및 수리를 하면서 대학의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되는데....

갑자기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외계인들이 지구의 지식을 손에 쉽게 넣고자 프레드 머릿 속에 대학교 지식을 집어 넣은 뒤 그걸 한 방에 빼 먹은 것이지요. 한마디로 프레드를 일종의 외장 하드로 사용한 셈입니다. 좋은 쇼트쇼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안에서 죽다" 

돈과 베티 부부에게 '돈 타일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돈은 자기는 돈 마틴이라고 주장히먀 화를 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부부의 집에 침임했고, 돈을 제압한 침입자는 돈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와 배신에 대해 추궁하는데....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서 발을 빼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온지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서스펜스 범죄물. 돈이 침입자인 심슨과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이고, 모든걸 알게 된 아내 베티가 경찰에 빈집털이가 들어와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하는 결말까지 깔끔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약한 편입니다. 악당 심슨이 침입한 뒤 하는게 없는 탓이에요. 총으로 부부를 위협하고, 과거 이야기를 떠벌이는게 전부거든요. 서스펜스를 끌어올릴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코넬 울리치가 썼더라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복자" 

1871년, 그랜트빌 잡화상 주인인 나는 남북전쟁 때 죽은 아들 루와 닮은 젊은 청년과 역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그랜트빌 최고의 총잡이와 싸울 목적이었다. 라이커라는 청년은 그랜트빌의 총잡이 바스 셀커크를 깔끔하게 사살했지만, 습격해 온 셀커크의 부하들에게 난사당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느낌이 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허무한 서부극입니다. 라이커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서부극 총잡이들이 영웅이 아니라 허깨비라는걸 잘 보여주거든요. 어릴 때 부터 총잡이를 동경하여 연습을 거듭한 끝에 빠른 속사와 사격술을 익혔지만, 정신적으로는 애와 다름없는 철부지로, 1대 1 결투에서는 이겼지만 여섯 명의 악당이 습격하자 울며 애원하다가 총에 맞아서 꼴사납게 죽기 때문이지요. 풍자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좋았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홀리데이 맨" 

데이비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출근길에 나선다...

데이비드가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직업이 끔찍했던 탓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지켜보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데이비드의 심리 묘사가 그닥이었고, 업무의 끔찍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입니다. 이 업무가 아무리 끔찍해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전개가 밋밋하고 반전도 그닥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예전에도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뱀파이어란건 없다" 

루마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 솔타에 사는 게리아 부인은 어느날 밤,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을 물어 뜯겨 피를 빨린채 발견되었다. 게리아 박사는 다음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부인을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게리아 박사는 후배 미카엘 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크리쳐 호러물로 시작해서 깔끔한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작품입니다. 왜 범죄물이냐 하면, 뱀파이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리아 박사가 커피에 아편을 타서 아내를 재운 뒤, 목에서 피를 뽑아냈던 거지요. 이유는 그녀가 후배 바레스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은 바레스가 뱀파이어인 것 처럼 꾸민 뒤, 그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을 거라며 마무리됩니다. 

기발한 소재와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의외의 반전, 내용은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비교적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 등 전형적인 미국식 쇼트쇼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트릭도 조금 유치했지만, 뱀파이어 전설이 살아있는 루마니아라는 설정이라서 나름 설득력있고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가 특유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깜짝 선물"

늙은 호킨스 씨는 집 앞을 지나는 어린 소년들을 부르곤 했다. 소년들에게 "땅을 파면 깜짝 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주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에게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깜짝 선물이 금괴라고 확신한 어니와 친구들은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물이 뭔가 나쁜거라는 짐작은 되지요? 어니가 찾은건 일종의 관이었고, 그 안에서 호킨스 씨가 튀쳐 나온다는게 결말입니다. 그러나 결말의 반전은 약했으며 설득력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한 등 설명까지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니가 땅을 파게 만드는데 까지의 전개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 

켄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 리처드와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 헬렌은 차에 남겨둔 채였다. 사실 켄은 이 기회를 빌어 헬렌을 죽일 생각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는 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가는 동안, 그는 죄책감, 양심 등으로 심하게 갈등하는데...

아내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순간이 되자, 켄이 겪는 극심한 마음 속 갈등과 혼란이 핵심인 심리 스릴러. 심리 묘사가 아주 빼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 묘사야 말로 작가의 특기 중 특기지요. 살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특히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는 산타클로스와의 약속을 결말에서 제대로 써 먹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켄의 삶이 조금 더 비참해 졌다는 결말이니까요. 켄은 선물 (아내의 죽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현실적이기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강남길 씨가 아내를 죽이려고 노력하던 TV 단막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켄과 리처드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도록 차를 옮겨 놓겠다는 아내의 말에 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에서요. 하지만 강남길 씨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켄에게는 지옥이 열릴 거라는 결말은 천지차이이기는 합니다만, 이런게 미국과 한국의 감성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춤추는 손가락"

장거리 버스 여행 중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돌보미 여성에게 끊임없이 수화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다가 장애인 여성이 내 자리를 빼앗았고,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녀 자리에 앉은 나에게, 옆자리 돌보미 여성이 해준 이야기는 자신과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화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해서, 장애인 여성의 수화 수다로 돌보미 여성이 그녀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돌보미를 놓아주기 싫었던 장애인 여성이 괜찮은 남자를 물색해서 노리개로 던져준다는, 일종의 '남자 사냥' 으로 이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좋았던 작품.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를 유혹하던 여성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남자 사냥은 돌보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남자를 잡아 먹기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은 기승전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결이 너무 급작스럽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벙어리 소년" 

시골 마을에 살던 닐젠 부부가 화재로 죽고, 부부의 아들 팔은 보안관 해리와 코라 부부에게 위탁되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도 못했던 팔을 코라는 사랑으로 돌보고, 죽은 자기 아들 대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라는 남편이 시도했던 닐젠 부부 지인에게의 연락을 훼방놓았다. 그래서 닐젠 부부가 죽은 뒤 한참 뒤에야 부부의 지인 베르너 교수가 팔을 찾아 왔다. 그러나 그 사이, 학교를 다녔던 팔은 그가 가졌던 독특한 텔레파시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은 벙어리가 아니라 부모의 텔레파시 교육을 받았던 텔레파시 능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는 텔레파시 능력이 훼손될까봐 특정한 이미지, 단어로 설명되는, '말'을 익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단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발상은 꽤나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닐젠 부부의 사고, 코라가 팔을 양자로 들이고 학교에 보낸 것, 베르너 교수의 방문 등 여러가지 사건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탓이 큽니다. 닐젠 부부가 죽은 화재 사고의 원인도 결국 밝혀지지 않고요. 또 팔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건 엄연한 아동 학대입니다. 팔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할 이유도 없어요. 실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말 없이 생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게 전부인데, 이러느니 말로 하는게 더 낫잖아요? 근거리에서만 가능한 듯 싶으니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려면 글을 익혀야 하는건 당연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팔을 옭아맸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학교 교육이 팔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묘사도 불필요했습니다. 

팔이 말을 하기 시작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사라졌다는 결말도 맥빠집니다. 어차피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아쉬운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팔에게는 코라의 사랑이 더욱 필요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을테고요.

차라리 '사랑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감정이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멋진 설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팔이 능력의 편린을 유지한채 성인이 되어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능력자가 된다는 식으로요. 지금은 설정,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파" 

교체를 앞둔 교회 오르간이 폭주해서 교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작품.

늙고 낡아버려서, 사랑했고 필요로 했던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교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폭주는 상식적인 선에 그쳐서 크리쳐물로 보기도, 재난물로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9/01

본격 미스터리의 진수를 만끽! 흉내내기 (따라하기) 살인을 테마로 한 걸작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모두 국내 소개된 작품입니다.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고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일본 추리 소설 소개가 많은게 아쉽네요. <<옥문도>>나 <<묵시록의 여름>>은 소개되어도 무방한 수작이지만, <<명탐정에게 장미를>>은 참고 보기 어려운 졸작이었거든요. 이보다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 대신 선정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흉내내기 살인'은 동요나 시, 전설이나 이야기에 빗대어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인 현장에 장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범인은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는가? 그 동기와 목적이 핵심이며,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와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흉내내기 살인을 주제로 한 미스터리 소설의 명작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절해의 외딴섬이라는 폐쇄된 서클, 서로를 모르는 초대 손님들, 만찬 자리에서 밝혀지는 범죄, 마더구스의 가사대로 죽어가는 살인, 줄어드는 인형들.... 이 책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는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요소들을 확립했다. 미스터리 소설의 최고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금자탑 같은 작품이다.

"비숍 살인사건" - 반 다인
'누가 코크 로빈을 죽였지?'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 마더구스 동요에 빗대어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탐정 파일로 밴스가 도전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보다 먼저 발표되어 동요 살인, 흉내내기 살인의 효시로도 유명.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걸작으로 항상 손꼽히는 작품이다.

"명탐정에게 장미를" - 시로다이라 쿄
"메르헨 난쟁이 지옥"이라는 동화가 미디어에 소개된 뒤, 이를 모티브로 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만으로도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지만, 2부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2부부터가 메인이다. 기억에 남는 한 권이 될 것이 분명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명작이다.

"옥문도" - 요코미조 세이시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비숍 살인사건>>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영향을 받아 일본답게 '병풍에 쓰여진 하이쿠'를 바탕으로 완성시킨 추리 미스터리. 명탐정 긴다이치 고스케가 옥문도라는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도전한다. 작가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명작이다.

"묵시록의 여름" - 가사이 기요시
밀실 살인, 비보 전설 등 다양한 미스터리 요소가 산재되어 있는 현상학 탐정 야부키 카케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요한계시록에 빗댄 살인이 벌어진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포함한 독특한 분위기가 매우 매력적이어서 본격 미스터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리즈 1편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2007/05/13

여러가지 리스트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작품 리스트들

山口雅也 야마구치 마사야 -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生ける屍の死"
이런 저런 곳에서 걸작으로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라 번역되었으면 합니다. 제목 부터 범상치 않군요.

니키 에쓰코 단편선 - "고양이는 알고 있다"라는 장편으로 유명한 작가인데 단편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에츠코 남매의 단편집이 존재하는데 꼭 번역되었으면 합니다. 동화작가이기도 해서 추리소설이지만 좀 따뜻하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아 제법 괜찮을 것 같거든요. 전에 읽었던 다른 단편도 무척 좋았고요. 기대가 됩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 "쌍두의 악마"
일본 신본격 거장으로 신본격을 알리기도 한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국명"시리즈라고 하는 단편선도 유명한데 이 단편집 작품들은 편차가 좀 크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좀 있으리라 보이지만 국명시리즈 단편 베스트 걸작선이 만약 존재한다면 당장이라도 구입할 용의가 있습니다.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들 - 역시 신본격 작가로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어 추천합니다. 대표작은 "頼子のために" 인 듯 싶습니다.  "이콜 Y의 비극"이라는 단편 하나를 제가 졸속으로 아주 후지게(?) 번역해 놓았으니 작가의 스타일이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읽어 보세요.^^

쓰쓰이 야스타카 - "ロートレック荘事件 (로트렉장 사건)"
상당히 유명한 작품인데 저도 읽어보질 못해서.... 쓰쓰이 야스타카는 애니메이션화된 "파프리카"라는 SF 작품으로 이미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정통 본격물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무척이나 궁금한 작품이라서 번역되면 정말 반가울 것 같습니다.

기타무라 카오루 "하늘을 달리는 말" - 저도 잘 모르는 작품이지만.. 다들 걸작이라고 하더군요.


덧붙여,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지금은 구하기 힘든 과거 작품들 (무순)

다카키 아키미쓰 "파계재판"
"문신 살인사건"으로 유명한 본격 작가의 최대 걸작이라고 하죠. 저도 아직 읽어보질 못한 환상의 작품으로 꼭~! 다시 나와 주었으면 하는 리스트 넘버 원입니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도끼"
영국 미스테리 작가로 실직에 대한 서늘한 풍자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화 하려고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죠.

커트 캐년 "주정뱅이 탐정가를 가다" (국내 출간명 "주정꾼 탐정")

하라 료 "내가 죽인 소녀"
일본판 하드보일드 최고 걸작. (제가 읽은 것들 중에서는) 두말할 것 없는 강추 작품입니다. 대관절 왜 안 팔렸는지 모르겠다는...

윌리엄 벨린져 "이와 손톱"

2022/09/04

대단한 밀실 트릭! 신비로운 고전 걸작 5편 소개 (from 'honto')

일본의 전자책 서점 honto에는 책 전문가인 북 큐레이터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선정하여 소개해주는 서비스 '북트리'가 있습니다. 그 중 밀실 트릭 고전 걸작 소개입니다. '고전 걸작'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고전이면서도 트릭면에서 나무랄데없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류의 추천치고는 일본 작품 비중이 비교적 낮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이 서비스를 좀 더 이용해 보아야겠네요.

1. <<모르그 거리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밀실에서 일어난 범행이라는 수수께끼, 홈즈의 원형이라고 불리우는 명탐정 듀팽, 논리적인 해결, 의외의 범인 등의 요소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막을 연 작품.

2.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원작자로도 유명한 저자가 그려낸 '완벽한 밀실'인 노란 방에서의 범행, 거기에 두 개의 인간 소실 수수께끼까지 더해져 있다. 고전 모험 활극의 향기도 느껴지고, 밀실 추리물 최고의 걸작이라고 칭송받기도 하는, 올 타임 베스트에 단골 선정되는 명작.

3.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엘러리 퀸, 크리스티 여사님과 함께 황금 시대 (골든 에이지) 삼대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딕슨 카의 작품. 밀실의 거장이라고도 불리운 카의 작품답게 밀실 살인과 법정 미스터리가 결합되어 있다. 밀실에서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피고를 명탐정인 법정 변호사 헨리 메리베일경이 변호하는 내용으로, 아주 유명한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트릭을 알아채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

4. <<혼진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명탐정의 대명사 긴다이치 코스케의 데뷰작. 열쇠도 없고, 장지문으로 만들어져 밀실에는 적합하지 않은 일본 가옥을 무대로 한 최초의 밀실 추리물로도 유명한 불후의 명작.

5.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타카기 아키미츠의 데뷔작으로 명탐정 카미즈 교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유명 문신가의 문신을 한 3자매 중 한 명이 토막난 사체로 밀실에서 발견된다. 쌍둥이 자매, 토막난 시체, 욕실이라는 밀실에서의 살인이라는 본격 추리물의 재료가 가득한 작품. 트릭도 훌륭하다.

2015/10/21

특별요리 - 스텐리 엘린 / 김민수 : 별점 4점

특별 요리 - 8점
스탠리 엘린 지음, 김민수 옮김/엘릭시르

2003년에 동서 추리문고 출간본으로 읽고 폭풍 감동했던 스텐리 엘린의 걸작 단편선집입니다. 당시 별점은 5점이었지요. 이번에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엘릭시르에서 정식 번역본으로 재출간되었기에 다시 구입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작품들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번역에서도 차이가 나더군요. 제목부터요. 원제를 보니 엘릭시르 번역본이 확실히 제대로 된 번역이네요. "the best of everything"은 "최상의 것"이지 "너와 똑같다"일리 없으니까요. "배반자들 (The Betrayers)"의 경우는 동서판의 "벽 너머의 목격자"라는 제목이 더 와닿기는 했습니다만, 이는 최초 일어판의 초월번역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겠지요. 번역은 일단 원제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엘릭시르 버전 쪽에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유명한 스빌로스의 아밀스턴 양 요리도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역시 엘릭시르 쪽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작품들 자체는 10년도 더 전에, 그것도 이미 한 번 읽었기에 신선함이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네요. 아무래도 별점 5점을 줄 때만큼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오 헨리를 연상케 하는 반전의 맛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한 세계와 인물을 그려내는 설정 역시 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각 단편에 등장하는 악당들 대부분이 지옥으로 간다는 결말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한마디로 언제 읽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전해주는 걸작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4점. 이런 말은 좀 식상하지만,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부럽습니다.

각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특별 요리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 뭐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지요.

손발의 몫

"미생"이 "완생"이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랄까요. 비정한 고용인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본인은 그에 대한 자각 없이 하나의 기계로 동작한다는 작품. 지금의 한국 사회와 딱 어울리는 느낌이라 시대를 앞서간 듯 합니다. 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살해한다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걸작 "도끼"도 떠올랐습니다.

성탄 전야의 죽음

이십여 년에 걸친 무간지옥 이야기. 누가 제시를 죽였는지에 대해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다가 마지막 대사 하나로 놀라운 반전을 터트리는 작품. 이런 류의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는 반전 단편으로는 교과서라 해도 무방할 수작입니다.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아내를 여섯 명이나 죽여가며 자신의 골동품 가게를 지키려던 애플비 씨는 일곱 번째 여자와 결혼하는데, 정작 그녀는 그에 대한 모든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 조금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블랙 코미디 느낌의 반전 결말이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체스의 고수

체스에 몰두하다가 자신의 상대가 될 또 다른 인격을 분열시킨다는 내용.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아 아쉬웠지만 평범한 사람의 정신이 붕괴하는 과정 묘사는 탁월해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최상의 것

"리플리"의 또 다른 버전이랄까요. 자신과 닮은 부잣집 아들을 죽이고 그에게 오는 돈을 가로챈 젊은이에게 파국이 찾아온다는 이야기.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이어지는 설정, 그리고 반전 역시 좋았습니다.

배반자들

과거 읽었을 때에도 아주 좋았던 작품. 벽 너머에서 누군가 살해당하는 소리를 들은 이웃집 남자의 활약(?)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인데 역시 반전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하우스 파티

무간지옥 2탄. "사랑의 블랙홀"의 막장물 버전이지요. 반전은 없고 다소 뻔한 내용이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연극과 무한 반복되는 세계라는 감옥을 연결시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브로커 특급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고 불륜남 살인을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 다 좋은데 결말이 석연치는 않았습니다. 여자가 잘못한 게 뻔한데 진정한 사랑 운운하며 같이 죽는다는 건 납득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너무 보수적인 걸까요?

결단의 순간

태어나서 고민이라는 걸 한 번도 안 해본 남자가 일생일대의 고민을 앞둔다는 내용으로 열린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목숨을 건 딜레마라는 점에서,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피아니스트를 불타는 집에 수갑을 채워놓고 도끼인지 칼인지를 꽂아놓고 쿨하게 떠나는 남자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디서 읽었던 걸까요?

2022/12/10

도대체 무엇이 동기? 와이더닛을 만끽할 수 있는 걸작 미스터리들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국내 소개된 작품은 3편인데, 다 좋은 작품들입니다. '와이더닛'에 촛점이 맞춰졌다기 보다는, 서정적이면서도 깊이있는 문학적인 묘사에 촛점이 맞춰진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요.


'와이더닛', 즉 'Why done it'은 미스터리의 세계에서는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밝히는게 핵심인 미스터리 작품을 의미합니다. 불가능 범죄 상황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미스터리 작품의 장점을 모아 놓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와이더닛 걸작을 소개해 드립니다.

"토오미 사건, 사토 마코토는 왜 목을 절단했을까?" 요미사카 유지 : 국내 미출간
80개가 넘는 살인을 저지른 연쇄 살인범 킬러 사토 마코토의 이야기를 작가 요미사카 유지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쓴 미스터리. 다른 범행은 모두 완벽하게 저질렀는데 토우미 사건에서만 예외적으로 목을 자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플한 와이더닛이면서도 저자 특유의 비틀림이 더해진 작품.

"동기" 요코야마 히데오
"64" 등 장편 소설이 영화화되고 있는 요코야마 히데오는 단편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이 단편집에는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각자만의 '왜?"를 능숙한 인물과 심리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세계관이 가득 담긴 주옥과 같은 4편의 단편들을 즐겨 보시길.

"칼과 우산" 이부키 아몬 : 국내 미출간
에도 막부 말기에서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격동의 교토를 무대로, 실존인물이었던 에토 신페이와 가공의 무사를 탐정역으로 하여 전개하는 연작 역사 미스터리. 사형 집행 당일 왜 죄수가 살해되었는지를 쫓는 "감옥사의 살인", 도서 추리물이자 우수한 와이더닛물인 "벛꽃" 등의 걸작이 수록되어 있다. 시대 배경을 살린 두 주인공의 관계 변화에도 주목하면 좋을 단편집.

"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우
주인공이 방문한 이국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과 수수께끼를 밝혀나가는 5편의 단편이 이어지는 연작집. 걸작인 "사막을 달리는 뱃길"을 시작으로, 이국의 풍경과 문화를 서정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수록작 모두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매력적인 수수께끼로 가득 찬 좋은 와이더닛물이기도 하다.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다이쇼에서 쇼와 시대를 무대로, '꽃'을 모티브로 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작 모두 선명한 와이더닛물로 렌죠 미키히코의 요염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에 대한 평가도 높은, 미스터리의 틀에만 담기에는 아까운 불후의 명작.

2022/10/03

긴장감 넘치는 줄다리기는 참을 수 없다! 법정 추리 소설의 고전 걸작들.

* 이전 소개드렸던 honto의 북트리 서비스에서 추천하는 법정 추리 소설들


법정 추리 소설의 고전 걸작들을 소개해드립니다. 1950~60년대 작품들이지만, 검찰측과 변호측이 증인을 서로 심문하며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피고인은 무죄인지 유죄인지를 다투는 긴박감, 관계자들을 둘러 싼 복잡한 인간관계 등 작품의 핵심 매력들은 시대가 지났어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읽을 가치가 충분한 명작들이니, 한 번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사건>> 오오카 쇼헤이 (국내 미출간)
19세 소년이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건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법정에서 조금씩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일본의 재판 제도와 절차가 상세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치밀한 르포르타쥬로 보이기도 하는, 읽을만한 법정 추리 소설.

<<파계 재판>> 다카기 아키미쓰
일본 법정 추리 소설의 원점이라고 불리우는 걸작. 전편에 걸쳐 법정 장면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피고의 무죄를 믿는 변호사와 검사가 엮어내는 진검승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금씩 수수께끼가 밝혀지면서, 여러 복선이 회수되어 클라이막스로 이르는 과정은 꼭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외국 추리 소설 번역가로서 활약했던 저자의 데뷔작. 애거서 크리스티의 <<검찰측 증인>>을 의식하여 쓰여졌으며, 다카기 아키미쓰도 절찬했다는 법정 추리 소설. 과연 변호인 측 증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50년 전에 쓰여졌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한 복선과 트릭은 지금 읽어도 선명하게 그 가치를 내뿜는다.

<<검찰측 증인>> 애거서 크리스티
남편이 살인 혐의로 재판받는 법정에 증인으로 서게 된 아내. 그 곳에서 아내는 뜻밖의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원래 희곡으로 쓰여진 작품답게 전편이 대화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으로 마치 연극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도 전해준다. 숨쉴틈없이 휘몰아치며 결말로 향하는 진행으로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걸작.

<<유다의 창>> 카터 딕슨
'밀실의 거장'으로 유명하지만 법정 추리 소설도 집필하고 있었던 저자가 밀실물과 법정 추리 소설을 결합하여 만든 작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피고의 무죄 판결을 위해 헨리 메리베일 경이 파헤치는 진실은 무엇인지? 재판을 통해 상세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가설을 내놓고, 이를 입증해 나가는 과정이 훌륭하게 묘사된 본격물.

2013/03/12

잠복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3점

잠복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모비딕과 북스피어의 세이초 시리즈 중 처음으로 간행된 단편집. 표제작 포함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세련된 책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깔끔한 번역, 명쾌한 해설 등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시리즈의 한 권이며, 정통 추리물부터 순문학에 가까운 범죄드라마까지 실려있기 때문에 마츠모토 세이초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8편 중 4편이 이미 읽어보았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3편은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에 수록되어 있고요. 이 단편집을 구해서 읽을 정도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단편 컬렉션 정도는 모두 갖춰 읽었을 텐데, 중복되는 작품이 많은 것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이 책 자체만 놓고 본다면 4점도 충분하나 어쩔 수 없는 반쪽자리 책이기에 약간 감점하였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얼굴"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1"에서 예전에 읽었었던 작품이기는 한데, 이 책의 번역이 훨씬 좋아서 다시 읽는 맛은 충분했습니다. 이시오카에게 온 편지를 경찰이 의심하는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등 추리적인 요소도 담뿍 담겨있고요. 그러나 결말의 급작스러움은 여전히 조금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잠복"

강도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그의 옛 연인이 결혼 후 살고 있는 시골 소도시로 잠복 수사를 떠난 형사 유키의 이야기. 단순한 잠복 말고 별다른 내용은 없는 작품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어렵습니다. 

그래도 결혼 후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한 여인에게서 갑자기 불꽃이 튀는 전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워낙 잘 쓴 글이라서, 거장의 시작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귀축"

바람을 피우다 들통난 뒤 세 자녀를 떠안게 된 남자가 본처의 등쌀에 못 이겨 아이들을 제거해나간다는 내용의 작품. 제목 그대로 "귀축"스럽습니다. 자기 아들딸로 알고 있던 아이들을 버리고 죽인다는,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소름이 돋네요.

다만 추리적으로는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막내아들의 사망사고, 큰아들 리이치가 가지고 놀던 돌과 인쇄소를 연결하는 부분 정도만 눈여겨볼 만합니다.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범죄 드라마라고 보아야겠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투영"

시골 소도시의 부정부패에 맞서던 한 공무원의 사고사에 얽힌 진상을 추적해나가는 내용으로 정교한 원격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그러나 술에 취했다고 해도 용접 불빛과 카메라 플래쉬, 외등을 착각하고 아예 방향을 반대로 잡는다는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술에 취하면 착각보다는 몸에 익은 습관, 즉 원래 가던 방향으로 갔을텐데 말이지요.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파적인 분위기가 몰락한 신문기자 캐릭터인 주인공 다이치와 "요도신보" 관계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는 건 꽤 볼만했지만, 추리물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목소리"

실수로 강도살인사건 범인의 목소리를 들었던 전화교환수가 1년 뒤 범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뒤 살해당한다는 내용으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트릭이라서 정통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만족도는 높습니다.

그러나 도모코의 남편 시게오가 범인들과 엮인다는 설정부터 작위적입니다. 피해자 도모코가 제 발로 범인들에게 찾아간 이유도 석연치 않고요. 여러모로 전개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범인들이 석탄을 이용하여 복잡한 알리바이 트릭을 만든 이유도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일년반만 기다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에 실렸던 작품들입니다. 좋은 작품들이죠. 두 작품 모두 별점은 3점.

"카르네아데스의 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에 수록된 작품. 평가는 전과 동일합니다. 별점은 2점.

다시 읽어보아도 구무라라는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네요. 자기 말대로 협조해준 애인 스미코를 더럽혀졌다고 버릴 생각을 하다니...

2015/09/03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김명남 : 별점 4점

소름 - 8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명남 옮김/엘릭시르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강영길 : 별점 4.5점

하드보일드 삼대장의 한 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걸작입니다. 이미 십년도 더 전에 동서문화사 동서추리문고 출간본으로 읽어보았지만, 이번에 엘릭시르에서 재출간되었기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별점 4.5점을 주었는데, 다시 읽어도 흥미롭더군요. 확실히 걸작은 걸작이에요. 범인과 진상을 알고 읽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색다른 재미가 느껴졌습니다. 루 아처가 단서를 하나씩 짚어나가며 20년 전과 10년 전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사가 마지막에 어떻게 범인으로 연결되는지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읽는 터라 단점도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범인이 피해자들에게 경고 전화를 하고 방문해 살해한다는 설정이 그렇습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행위인데, 정작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헬렌과 로라 서덜랜드에게만 한 것도 이상해요. 콘스탄스에게는 왜 하지 않았을까요? 모든 것이 드러난 상황이라 체포되기 딱 좋은 마지막 순간에 굳이 "내가 너 죽이러 갈게"라고 전화를 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전화를 제외하더라도 범행이 지나치게 운에 의지한 부분이 많다는 약점도 있습니다. 헬렌 사건만 해도 루 아처가 그곳에 남아있지 않았던 건 우연이고, 저드슨 폴리가 조금만 빨리 방문했어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요.

또한 범인 티시가 로라 서덜랜드를 어느 시점에서든 살해했다면 사건은 사실상 거기서 끝입니다. 헬렌이 살아있었다면 진상을 폭로했을 것이고, 먼저 죽었다 하더라도 티시가 빠져나가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경찰 수사가 제대로 시작되면 로라 서덜랜드 살인 동기는 브래드쇼 부인에게 있다는 점이 밝혀졌을 테니 이야기는 끝이죠. 주요 용의자인 돌리, 맥기 모두 구류 상태였으니까요. 헬렌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맥기를 범인으로 몰기는 어려웠고, 아처가 수사기관에 저드슨에 대한 정보만 제공했어도 그를 옭아매어 헬렌이 누군가를 협박했음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사립탐정들은 공권력의 적이에요.
하여튼,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아처가 티시의 정체를 깨닫는 반전의 힘은 강하지만, 사건 해결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미 사건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 외에도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묘사나 설정이 분량을 제법 차지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헬렌이 창녀와 다름없었다는 증언이 대표적입니다. 과거 사건으로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한 것도 그때뿐이었고, 결국 그녀가 로이 브래드쇼 협박범이 되었다는 점은 씁쓸합니다. 팜므파탈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으로 캐릭터가 애매해지고 말았어요. 차라리 돌리처럼 어린 시절 겪었던 덜로니 사건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인물로 설정하는 편이 더 좋았을겁니다.

마지막으로 덜로니 부인이 동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산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로이 브래드쇼의 재산은 결국 부인의 재산이고, 합리적으로 재산이 이동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있었을 텐데 이를 전혀 모를 수는 없지요. 또 사건을 덮기 위해 능력을 동원한 덜로니 부인이 동생 티시의 사망증명서를 미리 떼어놓은 것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덜로니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으니 조작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사망증명서는 재혼을 계획하는 로이 브래드쇼에게만 좋은 일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쓰다 보니 단점만 잔뜩 언급하게 되었지만, 걸작인 것은 분명합니다. 서정적이면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는 독보적입니다. 맥기를 감옥의 무게에 짓눌린 성자로 묘사한다든가, 협박범에 불과한 헬렌에 대해 가엾음을 느끼는 아처의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남자는 첫 결혼에 신중해야 하고, 여자가 더 빨리 늙는다는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단지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언제 읽어도 여전한 흥분과 재미를 주는, 제 All-time best 10에 늘 포함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도 좋습니다.

2009/12/10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하 - 마쓰모토 세이초 / 미야베 미유키 / 이규원 : 별점 3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하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의 마지막권입니다. 이번권은 전부 3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조영일씨의 해설이 덧붙여져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두개의 장은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제 7장 "제목 짓기의 묘"는 작품을 읽기전에 제목을 보고 여사님이 내용을 먼저 상상해 보았다는 설명부분이, 제 9장의 마쓰모토 세이초 상 수상 작가에게 자신만의 마쓰모토 세이초 베스트 단편을 묻는 기획이 좋았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들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거장의 발자취를 착실하게 뒤쫓는 기획 의도는 당연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번권은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좀 아니다 싶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물론 작품의 수준은 높고 그 문학적 성취는 두말할 필요 없는 좋은 작품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단 제 기대하고 달랐다는 것이죠...
작품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7장 | 제목 짓기의 묘
과다 지불한 중매 사례비
시골 마을 지주의 딸 노처녀를 놓고 벌어지는 한판 사기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사님이 나름의 상상을 펼친 설명부분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제 개인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면 노처녀가 과연 잘생긴 부잣집 아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지조를 지켰다면? 이라는 이야기로 끌고가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조금은 유쾌한 소동극이 되겠군요^^

그리고 작품과 별개로, 당시 화폐 가치를 잘 모르겠지만 1960년 대졸 초임이 15,000엔이라고 하니 지금의 약 1/10로 치고, 요걸 기준으로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금액은 80만엔이니까 약 1억원. 큰 금액이긴 하지만 무려 4명의 사기꾼들이 장기간 공들인 작전에 비하면 좀 처지는 금액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네요.^^

살아 있는 파스칼
아내의 히스테리로 살의가 싹뜬 화가의 이야기로 도저히 "단편" 컬렉션에 들어갈 작품이 아닌 왠만한 중편 이상 길이의 기나긴 작품입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작품과 잘 결합시켜 전개하는 구성은 탄탄한 편이지만 내용에 알맹이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왜냐면 결국은 주인공 화가의 고단한 결혼생활과 그간 있었던 여성편력이 긴 내용의 대부분이라 결국 사건 자체에 관련된 내용은 너무나 짧고, 또 추리물로 보기에는 해결 부분이 합리적이지가 않아서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증거는 정말이지 너무나 빈약한게 아닌가 싶어요. 차라리 그림의 완성도를 놓고 따지는 심리적인 서스펜스로 결말부분을 끌어갔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뼈단지 풍경
마쓰모토 개인의 과거사를 다룬 듯한 서정적인 산문입니다. 할머니의 뼈단지를 찾기위한 고향 방문과 유년시절의 추억을 담담하게 펼쳐놓는 작품으로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거장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산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추리물은 아니지만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제8장 | 권력은 적인가
데이코쿠 은행 사건의 수수께끼─『일본의 검은 안개』에서
종전 직후 벌어진 데이코쿠 은행 강도사건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이 사건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해왔던 사건으로 은행 직원에게 해독제를 가장하여 독극물을 먹인 범행 방법도 놀랍지만 작가가 펼쳐놓는 배후에 731 부대가 있었다! 라는 음모이론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서술되어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나름의 근거에 기반한 추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구조는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어요.

까마귀
별볼일없는 인간으로 강경하게 노조활동을 하다가 모든 것을 잃은 인물과 엘리트 출신의 노조 간부로 회사와 타협한 인물. 두명의 이야기입니다. 격한 묘사를 걸쳐 의외의 결말로 귀결되는 작품으로 프레드릭 포사이스 단편집 "마지막 에이스"의 첫 단편을 연상케하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생뚱맞고 동기가 불투명하며 사건 자체의 설명이 전혀 되고 있지 않은 등의 약점도 많기에 범작으로 보입니다. 아마 작가 스스로도 "노동운동"의 양면성에 대한 고발 측면이 강한 글을 쓰고 싶었던 탓이 너무 컸던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제9장 | 마쓰모토 세이초 상 수상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사이고사쓰
사이고사쓰, 즉 사이고 다카모리가 만든 휴지조각과도 같은 지폐에 얽힌 사연을 그려낸 일종의 역사물로 시대의 혼란과 그 와중에 한몫을 챙기려는 암투,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작가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보통 이상의 흡입력을 가지는 좋은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은 이렇게 써라! 라는 교과서적인 텍스트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국화 베개─누이조 약력
한 하이쿠 여성 작가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인데 누이라는 작가가 광기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약간 부족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썩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 작품을 선정한 작가의 소갯글 처럼 "연극" (그것도 1인극 형식) 에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불의 기억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남자가 언뜻 떠올린 기억만으로 과거를 추리해내는 일상계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소품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높고 모든 과정이 합리적이라 이 단편집에 속한 추리물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은 작품입니다. 아주아주 간단하지만 깊이있는, 정말이지 원숙한 맛이 물씬 풍깁니다.

2018/05/18

악몽을 파는 가게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악몽을 파는 가게 1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작 단편집입니다.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는 "130"만 옛 작품을 연상케하는 자극과 속도감을 보여주며, 이외에는 대체로 자극이 부족합니다. 옛날 작품들이 불량 식품 같았다면, 이 책의 수록작들은 녹즙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모래 언덕", "못된 꼬맹이"와 같이 기발한 발상과 섬찟함을 겸비한 작품이 없는건 아닙니다. 순문학스러운 느낌이더라도 "죽음" 은 이런 류의 단편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걸작임에는 분명하고요. 거장다운 깊은 연륜도 작품마다 가득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얌전하고 재미도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최소한의 의외성은 가져갔어야 하지만 좀 쉽게 쓴 느낌으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별로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언제나 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0"

버려진 휴게소에 사람을 잡아먹는 자동차가 나타나 여러 사람들을 해치웠다. 그렇지만 몰래 숨어든 용감한 소년이 돋보기로 불을 붙여 괴물을 퇴치한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차의 등장과 묘사는 킹의 초기 크리쳐 단편 느낌 그대로입니다.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 만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에요. 처음 버려진 휴게소로 탐험을 떠난 소년의 묘사,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사람 잡아먹는 자동차와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로 이어지는 속도감도 대단하고요. 끝까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운운하며 희생된 첫 번째 희생자를 비롯한 죽은 사람들 모두가 "선의" 때문에 죽었다는 약간의 풍자도 젊은 시절 킹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안이한 결말로 이런 장점 모두가 희석됩니다. 10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소년이 불 좀 붙였다고 사라져 버리다니! 죽어나간 여러 명의 어른들은 대체 뭔가 싶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원래 결말도 이러했다면 아무리 마약 중독 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킹이 이 작품을 분실한 건 별로 아까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다시 썼다면 결말 정도는 고쳤어야 해요. 이렇게 대충 마무리 지을 내용은 절대로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흑인은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여자는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뭔가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이야기처럼 포장하는 등의 설정과 반전처럼 말이죠. 흑인은 잡아먹지 않아서 흑인 한 명이 살아남지만, 도착한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다! 는 "새벽의 저주" 스러운 이야기였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프리미엄 하모니" 

부부는 조카 선물을 사러 마트에 들렸는데, 남편은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조금 덤덤하고 건조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소개에서 킹이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고, 그의 스타일로 썼다고 말하는데, 레이먼드 카버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엄청나게 더운 날, 아내가 죽은 후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애견마저 차 안에서 쪄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결말까지 소소하게 읽을만 했습니다.

문제는 너무 순문학스럽고 의외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죽은 게 애견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조금 나았을지 모르겠네요. 상상하기는 싫지만, 그게 뭐든요.

하여튼 저는 킹의 작품을 읽고 싶지 킹이 쓴 카버 스타일 카피를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식사를 하는 60세 노인이 우연히 일으킨 차 사고로 트럭 운전사에게 구타당하다가, 아버지가 운전사를 칼로 찔러 살아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치매에 걸렸건, 나이가 들었건 아버지는 영원히 아들 앞에서는 슈퍼 히어로라는 주제 만큼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저도 끝까지 딸 아이를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좋은 작품은 아니에요. 무언가 복잡한 과거가 있는 듯 변죽을 울리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이야기가 바로 절정으로 치닫고 끝나버려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껏 고급차를 쓸고 닦아 광 내어 어렵게 시동을 걸지만 도착한 장소는 집 앞 편의점이랄까요? 그냥저냥한 평범 이하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모래 언덕"

아흔살이 넘은 하비 비처 판사는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변호사 앤서니 웨이런드를 불렀다. 그리고 유언장에 적혀 있는, 한 섬을 영구 야생지로 공표하는 사항을 두고 그 섬에 얽힌 오랜 비밀을 이야기 해 주는데...

짧은 분량, 섬뜩한 느낌, 여기에 반전까지 삼위일체를 이룬 '기묘한 맛', '쇼트쇼트' 계열의 작품입니다.

우선 아주 짧다는 점에서 '짧은 분량' 조건은 충족합니다. 그리고 섬의 모래 사장에 곧 죽을 사람 이름이 쓰여진다는 아이디어에서, 특히 비행기 추락 사고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는 묘사의 섬뜩함이 대단해서 두 번째 조건 역시 충족하고요. 마지막 조건도 유언장 작성을 서두른 이유에 대한 반전 때문에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특히 결말은 아주 좋은 수준으로 킹 역시나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자찬할 정도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기묘한 맛', '쇼트쇼트' 류 장르의 걸작만 모아 놓은 앤솔러지가 있다면 충분히 목록을 장식할만 한 교과서같은 작품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느 못된 꼬맹이"

사형수 헬러스가 국선 변호인이었던 브래들리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그가 아이에게 총알 여섯발을 쏜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장난꾸러기 어린 아이가 상황에 따라서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색적인 설정에 더해, 이러한 공포가 직접 닥쳤을 때 벌어지는 무간지옥의 묘사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읽는 내내 끔찍했고, 손에서 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또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뻔한 설정을 악마가 아이의 모습으로 위장했다는 약간의 변주만으로 차원이 다른 몰입감을 선사해주는건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저 역시 악마같은 아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굉징히 와 닿은 아이디어이기도 해요.

그런데 헬러스에게 이 악마가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은 좀 문제입니다. 그냥 아픈 것,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브래들리에게 이 꼬마가 나타날 이유는 또 없잖아요? 최소한의 설득력을 보장할 약간의 양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잘 나가다가 결말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느낌이라 감점합니다.

"죽음"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은 한 소녀를 죽이고 은화를 빼앗은 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보안관 바클레이는 그의 무죄를 확신하나 형은 집행되고, 이후 유일한 증거인 은화가 교수형당한 트러스데일의 분비물에서 발견되었다...

일종의 '딜레마' 를 다룬 심리 드라마인데 한마디로 걸작입니다.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이 무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로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반짝이는 은화가 분비물 속에서 발견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네요. 수감되어 있는 한 달 동안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똥으로 나올 때마다 다시 삼킨 거라는 진상도 기발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바클레이의 딜레마를 그리는 심리 묘사와 무엇보다도 어차피 교수형 당할거, 왜 자백을 하지 않았냐는 묵직함이 독자를 사로잡는 좋은 단편이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5점. 수록작 중 최고로 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트러스데일 시점의 번외편이 나와주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납골당"

정글 속 납골당으로 떠난 일행이 하나씩 죽어가는 과정을 술 먹은 사람의 독백으로 들려주는 특이한 작품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의 묘사는 킹 답습니다.

그런데 그 외에는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 행진하는 죽음의 윤회 이야기인지? 아니면 술 주정뱅이의 주정에 불과한지? 킹 본인은 산문적 해설을 제거한 형식만 보았을 때 훌륭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 보다는 훨씬 더 해설이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말하고 있는 술주정뱅이도 무슨 벌어졌는지는 모르는 듯 하고, 이게 더 현실적이기야 하겠지만 여러모로 일반 독자에게 잘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네요.

한마디로 소갯글처럼 학교 작문 시간에 발표했음직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습작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덕성"

가난한 부부에게 아내 노라가 간병하는 부유한 신부 위니로부터 이십만 달러의 유혹이 다가왔다. 죄를 짓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여달라는 유혹에 굴복한 채드와 노라 부부는, 노라가 변장하여 어린아이를 때리는걸 채드가 촬영하여 돈을 받고 말았다. 이후 채드의 작가로서의 미래, 그리고 부부의 결혼생활은 끝장나 버리는데...

일단 재미도 없고 여러가지 문제가 많아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네요. 일단 설득력 없는 등장인물들의 고민이 아쉽습니다. 얼척없는 도덕심보다는 돈이 더 이유를 가진다는 건 당연한 현실인데 이를 뭐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이를 때린 정도로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덕분에 위니를 통해 종교적인 시점에서 나쁜 짓, 회개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발상은 좋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소싯적 피를 팔고 리포트를 대신 써 주는 밥벌이를 했었는데 그 당시 자신을 매춘부라고 생각했다는 창작 비화가 더 인상적이었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를 유괴하는 등 더 강력하고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하는 범행으로 묘사하는게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사후세계"

대장암으로 죽은 빌은 기묘한 공간에서 해리스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과거 공장 문을 잠갔다가 화재로 146명의 여직원을 죽게 한 죄로 끝나지 않는 상담이라는 연옥에 갇힌 인물로, 빌에게 환생과 사라짐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시 태어나도 변하는 것은 없을 거라 말해 주었다. 그가 이곳에 온 게 다섯번 째이며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면서. 그러나 빌은 동생의 손가락을 잘랐던 실수 , 어렸을 때의 시계 절도, 성폭행 등의 실수 중 하나라도 막기를 바라며 환생을 선택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독특한 묘사와 설정, 그리고 동양적인 일종의 "윤회"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단, 묘사와 설정에 비하면 결말은 좀 평이한 편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르"

구식 영문학과 교수 웨슬리는 농구팀 감독인 애인 엘런과 헤어진 후 반쯤은 복수심에 킨들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가 구입한 킨들은 시판되지 않는 핑크빛 제품으로, '우르' 라는 일종의 평행우주로 접속하여 작품을 찾아 제공하는 능력이 있는 기기였다. 웨슬리 스미스는 헤밍웨이의 미발표작 등을 검색하는데...

아마존 킨들을 위해 집필했다는 소설인데, 한마디로 말해 광고를 위해 쓰여진 수준 이하의 졸작입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영문학과 교수가 핑크빛 킨들을 통해 다른 평행 세계에서 유명 작가들이 발표한, 이쪽 세계에서는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절반 이상까지 장황하게 펼쳐나가기 때문에 독자는 유명세를 위한 표절같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데, 정작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내일 뉴스" 와 같은 이야기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설정을 하나로 묶어놓은 느낌이라 영 별로입니다.
"내일 뉴스" 이야기라도 재미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뉴스를 어떤 식으로든 미리 알고, 그렇게 알게 된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쎄고 쎈 유사 작품 대비 특별한 부분도 없는 탓에 별다른 흥분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킹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지극히 극단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결말은 특이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는, 킨들 광고에 불과한 평균 이하의 범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9/07/22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 별점 3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중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간만에 읽어보는 신간입니다. 어차피 고전작품이니 신간이라 하기도 좀 어렵겠지만, 어쨌건 올 4월에 읽었던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이후 "선생" 생략)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이후 "여사" 생략)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중권입니다. 상권 출간 후 3개월만이네요.

상권은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권은 여자"와 "남자"라는 단순하면서도 쌍을 이루는 딱 2개의 주제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주제 모두 앞에 미야베 미유키의 해설이 붙어있다는 것은 상권과 같지만 해설이 너무 멋드러지게, 감칠맛나게 쓰여진 덕분에 작품 본편 내용보다도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짤막하게 작품별로 소개하자면 제 5장 "쓸쓸한 여인들의 초상" 에는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인 "멀리서 부르는 소리"는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된 여성의 감정을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종의 순애보와 같은 가슴 먹먹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사건이 없이 단지 숨겨진 감정의 단편만을 엿보는 구조라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솔직히 언니를 살해하는 전개로 진행될줄 알았거든요.

두 번째 작품 "권두시를 쓰는 여자"는 일상계 + 본격 미스터리가 결합된 좋은 단편입니다. 하이쿠 동인지에 열성적으로 시를 보내던 한 동호인의 시가 몇 달동안 오지 않자, 동인지 관계자들이 그 이유를 탐문하다가 뒤에 숨겨진 살인 사건을 밝혀낸다는 내용이거든요. 쉽게 지나칠법한 단순한 소재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이끌어내는 거장의 노련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이쿠 동인들이 오지랍이 너무 넓다 싶기는 한데, 이 정도야 허용범위 이내일 테지요. 시대를 떠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세 번째 작품 "서예강습"은 중편 이상 길이의, 이 책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긴 작품입니다. 일단 길이로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는 만큼 세부 묘사도 굉장히 치밀합니다.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요.
그러나 치밀한 디테일 묘사를 제외하고는 중편으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남자가 불륜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방을 살해한다는 단순하면서도 뻔한 이야기인 탓입니다. 상세한 설정, 특히 "서예 강습" 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로 포장한건 좋지만 지나치게 장황한 감이 있어요.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가 뒷받침 된 "사체 유기"도 썩 설득력이 있다고 보이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전체적인 수준을 평가하자면 범작 정도에 그칩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자이며 이야기도 여자에 대한 것 보다는 수렁에 빠지는 남자에 대한 내용이라서, 왜 "쓸쓸한 여인들의 초상"에 속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네 번째 작품 "결혼식장의 미소"는 짤막한 소품입니다. 기모노 입히기 자격증 (별게 다 있네요)를 소재로 하여 인간사에 있음직한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풀어냈지요. 유사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사원 시마"의 한 에피소드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냥 드라마성 짙은 꽁트로 보는게 적합하겠네요.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주제와 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저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별로 쓸쓸하다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 6장 "불쾌한 남자들의 초상" 도 역시 5장과 대칭을 이루듯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 "공범"은 아주 기발합니다. 공범과 함께 은행을 턴 뒤 그 돈으로 사업에 성공한 사업가가 공범이 혹시나 생계가 어려워져 자신을 협박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설정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마지막에 노숙자로 전락한 공범자가 서서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는 묘사는 미야베 미유키 말대로 "호러" 그 자체였고 말이죠. 

그러나 후반부의 급반전이 너무나 깜짝쇼 수준이라 차라리 반전없이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부분에서 끝내는 것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다카오카가 왜 사건에 집착하며 진상을 밝혀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는 것도 설득력을 너무 떨어트렸고요.

좋은 작품이라는건 확실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뒷끝이 개운치는 못합니다.

두 번째 작품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는 대학교수 구무라의 치밀한 완전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대학교수의 심리 묘사를 제외하고는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제목의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즉 형법상의 긴급피난과 같은 항목이 적용되는 사건도 아니고 말이죠. 결국 주인공의 복수조차 자신의 파멸을 담보로 한 것인데 이것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작품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역사학계를 무대로 한 학자들의 출세욕에 대한 이야기이지 결코 범죄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세 번째 작품 "공백의 디자인"은 추리 소설은 아니고 한 소규모 지방지의 광고부장의 눈물겨운 광고주 접대가 전편에 펼쳐지는 최루성 샐러리맨 드라마(?)입니다. 직장인으로 정말이지 공감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더라고요. 저도 슈퍼갑이라 불리우는 업체들의 횡포를 잘 알기에 눈물없이 볼 수 없었습니다.

단, 여기의 우에키 부장처럼 최후의 순간이 닥치면 한번 뒤집어 엎을 것 같은데, 그러한 마무리 없이 끝나버려 허무했습니다. 샐러리맨의 고충만 그려졌을 뿐 거기서 표출할 수 있는 분노,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없어서 드라마가 맥이 빠져버렸어요.

네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산"은 굉장히 특이한 범죄 스릴러물입니다. 뭐가 특이하냐 하면 피해자, 즉 협박을 받는 당사자의 심리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과 협박의 실질적인 과정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때문에 독자는 현재의 상황을 미루어 판단할 뿐입니다.
이색적일 뿐더러 탐정역을 맡고있는 작가 오카모토의 시선과 독자를 동일하게 위치시키는, 효과적이면서도 공들인 설정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외의 내용은 평이한 협박물 수준이며 탐정역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고 우연 (피해자 동생의 편지)에 기대고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운 평작입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기대했던 추리적인 요소가 그닥 녹아있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추리적인 요소로 만족스러웠던 작품은 개인적인 베스트이기도 한 "권두시를 쓰는 여자"가 거의 유일했거든요. 다른 작품들은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탐탁지 않은 요소들이 많아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대만큼" 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결코 재미없거나 수준 미달의 작품들이 아닙니다! 재미있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기에는 충분한, 거장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집임에는 분명하죠.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부록 형식으로 미야베 미유키가 독자들에게 묻는 최고의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가 실려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점과 선", "모래그릇", "제로의 촛점" 순이더군요. 제 마음 속 순위도 동일합니다.^^

2015/01/06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워싱턴 어빙 외 / 한동훈 : 별점 3점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6점 워싱턴 어빙 지음, 한동훈 옮김/태동출판사

이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서는 아마도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고전 본격 황금기, 클래식 미스터리는 사족을 못 쓰는 애호가입니다. 이런저런 고전들은 많이 읽은 편인데 평균적으로 괜찮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다 저의 취향 때문이죠.
 그러나 아주 오래전 읽었었던 예전에 읽었던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이 심하게 기대 이하라서 나름의 기준점을 최소한 19세기 말 이후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그 이전 작품들은 지금 읽기에는 심하게 낡았다고 여겼거든요. 이 책 역시 대부분 작품이 19세기 후반 발표된, 기준점 통과가 간당간당해서 그동안 읽지 않았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 완전 대박입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놀라움이 가득했어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과 견줄만한,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명탐정들 -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의뢰인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하는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과학 탐정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 시리즈 단편들은 완성도를 떠나 존재만으로도 반가웠을 뿐더러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결산", "위험천만한 게임"이라는 "걸작"이라 칭해도 부족함없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된 볼륨도 마음에 들고요. 발표된 시기를 감안할 때 지금 읽기에는 낡아버리거나 시대착오적인 작품도 있고, 고전적 작법으로 쓰여져 지금 기준의 완성도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운 작품도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고전을 읽을 때 감수해야 할 필연적인 세금과도 같은 것이죠. 가이 포크스나 보르시치와 같은 고유명사를 잘못 번역한 옥의 티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번역도 무난한 편입니다.

그래서 수록 작품 평균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본격물 미스터리 애호가에게는 놓칠 수 없는 책인데 고전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는 하네요. 그래도 최소한 걸작이라 말씀드린 저 세작품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본서는 절판되었으나 e-book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울버트 웨버, 혹은 황금의 꿈" 

"슬리피 할로우" 등으로 유명한,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명이라는 워싱턴 어빙의 작품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평범한 네덜란드 출신 배추농부 울버트 웨버가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는 내용인데, 떠벌이가 지껄이는 듯한 구전문학같은 묘사가 볼거리입니다. 울버트의 보물을 찾기 위한 헛된 노력이 해적들의 은밀한 행동과 결합되어 전개되는 독특한 전개, 블랙코미디 느낌도 많이 전해주는 유쾌함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울버트가 부동산 재벌이 된다는 난데없는 결말과 같은 두서없는 전개, 구전문학스러운 묘사 등은 너무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간 호러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장르 문학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하기도 하고요. 최소한 "미스터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부동산이 최고라는 교훈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차라리 시사풍자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길쭉한 궤짝"

에드거 엘런 포우의 단편. 친구가 애지중지 돌보는 궤짝 안에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낡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나 흥미로왔어요. 

다만 선장의 말을 빌어서 마무리하지 말고, 마지막 침몰 직전 상황에서 진상이 드러나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예를 들자면 관 뚜껑이 열리고 아내의 시체가 등장하는 "어셔가의 몰락" 식으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걸작 단편입입니다. 무허가 3류 도박장에서 주인공이 도박으로 거금을 딴 뒤 술에 취하고 몽롱한 채로 도박장 방 하나를 빌려 잠을 자다가 침대 천장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는 내용이지요. 

주인공이 술에 취하는 과정의 생생한 묘사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침대 지붕이 내려오는 묘사가 정말 대단합니다.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에요. 잠이 오지 않아 세밀하게 관찰했던 벽에 걸린 그림 속 인물의 깃털 유무에서 모골송연한 범죄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과정도 매끄럽고요. 짧은 글이지만 정교하게 복선이 짜여져 있는 덕분이지요. 

한마디로, 이 작품을 읽은 것 하나 만으로도 이 작품집을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근대 추리소설의 시조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거장의 작품다왔달까요. 별점은 5점입니다.

"꿈속의 여인"

조금 흔해빠진 괴담이랄까... 자신의 생일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타나는 여인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품고 살아가는 마부 아이작의 이야기입니다. 

별다른 극적 반전도 없고 여인의 정체도 알려주지 않는 등 불친절한 부분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앞선 작품은 걸작인데 이 작품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거장이라고 항상 걸작만 쓰는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아이작의 과거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우며 꿈과 현실을 잇는 과정의 묘사만큼은 볼만했던 만큼 별점은 2.5점입니다.

"공주의 복수"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에 "문간의 검은 가방"이라는 단편이 소개되었던 시리즈이지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루시에 쿠니에르라는 아가씨의 실종 사건을 그리는데 추리적으로는 별로였어요. 러브데이의 추리가 불완전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집사가 드루스 소령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지나친 억측입니다.
뭐 이 부분은 눈빛에서 살기를 느끼는 무림 고수와 같은 재주가 있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 쳐도, 사건 관계자들이 모인 상황에 난입하여 "모자 가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 정도의 비약입니다. 그녀를 빼돌린 드루스 부인과 그윈 부인이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며 모자를 쳐다보았다? 이게 모자 가게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냥 눈둘데가 없는 것인지도 불명확하고 그 모자 가게에서 산 모자인지도 확실치 않으니까요.

주로 관찰을 통해 추리하는 러브데이 브룩과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위 남자들을 매료시키는 루시에 캐릭터, 셜록 홈즈의 라이벌치고는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쓰여진 점 등은 특이하지만 추리적으로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천국의 물가에서"

아주아주 약간 고딕 호러 분위기가 나기는 하는데 실상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입니다. 주인공 케언공이 라마스 양에게 청혼할 때의 대사는 재미난데 그 외에는 별다른게 없는 고전 할리퀸 로맨스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목사 서재의 피웅덩이"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시리즈 단편입니다. 목사관 서재에 피웅덩이를 남긴채 목사가 사라진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충격적이면서도 기발한 인간 소실 트릭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상은 트릭이고 뭐고 없이 서재에서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 지하실에 숨겼다는게 결론이라서 맥이 빠집니다. 이래서야 명탐정이 딱히 등장할 필요도 없죠. 자세한 현장 조사가 이루어졌더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거에요. 아무리 피가 응고하였더라도 아무런 흔적없이 시체를 옮기는 작업을 성공했을리는 없으니까요.

그 외에도 사건 해결의 핵심 단서가 순전한 우연 - 범인이 시체를 옮길 때 우연히 팽이가 떨어져 그것을 돌리게 된 것 - 이라 추리적인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양치기 캐릭터는 전혀 등장할 필요가 없었고요. 

셜록 홈즈처럼 현장을 아주 철저하게 조사한 뒤 단서를 찾아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뮬러의 활약은 그럴듯했습니다만, 이러한 이유로 별점은 2점입니다. 홈즈 시대 추리소설의 단점만이 극대화된 작품이었어요.

"범죄구성 사실" 

엉클 애브너 시리즈로도 유명한 멜빈 데이비스 포스트의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사교계의 총아인 사무엘 월콧이 사실은 리차드 워렌이라는 인물로, 월콧의 아내와 공모하여 그를 죽인 뒤 신분을 가로챈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월콧 (워렌)이 아내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계획을 돕는다'는 나름 충격적인 설정으로 고객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랜돌프 메이슨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페리 메이슨의 선구자적인 캐릭터죠.

또 완벽하게 시체를 없앨 경우 범죄 사실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사망 사실과 그 사망을 가능케 한 폭력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서 무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당시에 소설로 발표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떠오르네요. 요새는 이 법의 헛점이 많이 알려진 덕인지 이런저런 정황 증거를 통해 범죄 사실이 입증된다면 유죄를 선고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시체를 없애는 과정의 디테일도 좋아요. 황산을 이용하여 시체를 녹여 없애는 방법인데 소설처럼 깔끔하게 모든 흔적을 단시간내에 없애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묘사가 잔혹하면서도 생생해서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부족함이 없지는 않으나,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쌍벽의 탐정"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작품으로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서사,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범죄 및 트릭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완성도는 좀 처집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치 스틸맨이 어머니를 버리고 모욕한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와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재능(냄새 맡기)을 어필하는 전반부와 호프 캐넌의 은광 부락에서 벌어진 폭사사고를 다룬 후반부로 나뉘는데, 두 이야기가 잘 결합되지도 않을 뿐더러 지루한 탓입니다. 

특히 전반부 이야기는 설득력도 낮고 이렇게 길게 설명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장황해요. 후반부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플린트 버크너에게 살의를 품은 노예와 같은 영국 소년 페트락 존스가 범행을 결심하는 과정, 거기에 아치 스틸맨이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여 실종된 아기를 찾아내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플린트 폭사사건 이후 페트락의 친척 아저씨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러가지 단서를 이용하여 범인을 지목하고 아치 스틸맨과 추리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난잡하게 전개됩니다. 

마크 트웨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정교한 과학적 트릭 - 초가 타는 시간을 이용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알리바이를 만듬 - 이 등장하는 것은 인상적이지만 아치 스틸맨이 현장 조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만큼 완전 범죄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아요.

물론 셜록 홈즈의 패러디물을 쓰기도 했던 작가의 작품답게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지없이 망가지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그 외에도 셜록 홈즈 스타일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 예를 들어 "탐정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탐정 곁에서 일을 꾸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은 인상적이고 재미있긴 했습니다. 미국적인 정취와 무식함 (집단 린치를 포함하여)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도 존재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더 부각되는 작품이라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더 짧게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작가의 욕심이 과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블랙 핸드"

제목을 한글로 풀이하면 "흑수단". 제목 그대로의 범죄단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과학 탐정"의 선구자적인 인물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자신이 직접 개발한 도청 장치를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죠.

셜록 홈즈 시리즈의 영향을 짙게 느껴지는데 1인칭 화자가 파트너로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기묘한 사건의 의뢰, 독자가 그 사용법을 알 수 없는 장치의 등장, 대단원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홈즈 시리즈를 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별게 없습니다. 유괴 사건에서 아이를 은닉한 장소를 도청 장치를 통해 듣고 경찰에게 알려준다는 방법이 전부니 말이죠.

그런대로 잘 쓰여지기는 했지만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탁상시계"

"독화살의 집"이라는 멋진 본격 추리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는데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내용이라 기대와 영 달랐습니다. 장르 구분을 하자면 판타지에 가까왔달까요. 시간을 불특정하게 14분간 멈추는 능력이 있는 탁상시계로 벌인 완전범죄 이야기로 시간이여 멈춰라! 류의 내용이라 추리적으로는 건질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시계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반전도 없어서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습니다. 

만년 2인자의 질투심이라는 동기는 충분히 설득력있기는 하고, 이런 류 아이디어의 원조인지도 궁금하긴 한데, 상술한 이유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결산"

퍼시벌 와일드의 단막극. 극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은 단편집 두 권밖에 없지요. 때문에 자료로서도 귀중한데 작품의 수준도 아주 높습니다. 딱 두명의 등장인물이 이발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빚어지는 극도의 서스펜스가 놀라울 정도에요. 이발사 킬번이 과연 그의 딸을 농락하고 버린 손님 존의 멱을 딸 것인가?와 존이 시간제한이 있는, 전 재산이 걸린 경매에 참석할 수 있는가?라는 두가지 드라마를 긴장감넘치게 선보이면서도 킬번이 존을 12년 동안 뒤쫓고 지금의 찬스를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솜씨도 탁월한 덕분입니다.

아울러 마지막 반전 - 존이 이야기한 경매시간과 이발소 시계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에 대한 대사 - 까지 확실하고요. 이런 작품이 1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니 고개가 숙여질 뿐이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위험천만한 게임"

프로 사냥꾼 레인스포드는 우연히 조난당하여 러시아 출신 부호 자로프 장군의 섬에 표류하였다. 자로프 장군은 사냥에 미친 인물로 극도의 긴장감을 위해 인간을 사냥하고 있었고 레인스포드도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생명을 건 게임에 참여하는데..... 

어딘가의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던 걸작입니다. 인간 사냥이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실제 사냥 게임에 대한 설정 - 3일이라는 시간 제한 및 자로프 장군이 사거리 짧은 피스톨을 장비했다는 핸디캡 등 - 이 탁월할 뿐 아니라 두 명의 대결에 대한 묘사가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반전도 기가 막혀요. 바다로 뛰어든 레인스포드의 목적은 탈출이 아니라 성까지의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인데 예상을 깨는 맛이 있었거든요. 별점은 5점입니다. 

한 남자가 협박 때문에 생명을 건 모험에 뛰어들어 성공한 뒤 협박자를 응징한다는 내용은 스티븐 킹의 단편 "벼랑 끝에 선 사나이"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새 출발"

잘 모르는 작가의 종말 이후를 그린 SF로 문명이 모두 사라진 뒤, 이전 문명의 기억을 지닌 자가 미개집단의 종교인과 충돌한다는 설정의 작품입니다. 

설정부터 많이 접해보았던 것으로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네요. 종교인이 믿는 신의 존재가 식기세척기였다는 반전은 있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하여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고요.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진부했어요. 시대가 너무 흐른 탓이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