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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1

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 - 미야지마 미나 / 민경욱 : 별점 2.5점

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 - 6점
미야지마 미나 지음, 민경욱 옮김/㈜소미미디어

"왜 매일 가려는 거야?"
"올여름의 추억 만들기랄까?"


평이 좋길래 읽어본 최신 일본 단편 연작 소설. 2024 제 21회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입니다. 서점 대상은 서점 직원들 투표로 선정되기 때문에, 독자에게 먹힐만한 오락성이 보장된 작품이 많은 편이지요. 이 작품도 확실히 읽는 재미만큼은 전혀 빠지지 않더군요. 재미있게,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루세 아카리의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까지를 다루는 6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청춘 소설로 나루세 아카리가 작품의 핵심입니다. 나루세는 공부와 운동 모두를 잘하는 슈퍼 우먼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엄청난 마이 페이스 소녀입니다. '다,나,까'에 가까운 딱딱한 말투도 독특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특징은, 한 번 세운 목표는 몸과 마음을 다해 전념한다는 겁니다. 천하를 잡을 목표를 세우면 정말로 잡을지도 모를 정도로요. 
이러한 특징은 "고마웠어! 오쓰 세이부 백화점!"과 "제제에서 왔습니다"라는 두 편의 단편에서 제대로 선보입니다. "고마웠어! 오쓰 세이부 백화점!"에서는 곧 문을 닫는 도시의 유일한 백화점에 폐점 때까지 매일 방문해서 지역 방송에 매일 나오겠다는 여름 방학 계획, "제제에서 왔습니다"는 만담 경연대회인 M1 그랑프리 예선전 출전이라는 계획과 실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견 황당무계한 계획이 점차 틀을 갖춰가는 과정이 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 등과 얽혀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아울러 이 두 편에서 화자 역할로 등장하는 나루세의 유일한 친구 시마자키 미유키가 불러일으키는 재미도 큽니다. 만담의 보케 - 츳코미 관계와 비슷하거든요. 황당한 계획을 세우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를 강행하는 나루세가 보케, 상식인으로 계획의 황당함을 지적하는 미유키는 츳코미 역할이라 할 수 있는데, 둘의 티키타카가 정말 볼만합니다! 미유키가 결국 어느새 말려들어가서 계획의 일부분이 된다는 전개도 뭔가 만담스러웠고요. 정작 M1 그랑프리 출전은 보케가 미유키, 츳코미를 나루세가 맡는다는 의외성도 좋았어요. 
이렇게 황당함이 강한 캐릭터를 바라보는 평범한 주변 사람을 소재로 한 작품은 "멋쟁이 마사루"를 비롯하여 엄청나게 많습니다. 1년 전에 소개해드렸던 "유가미군은 친구가 없다"도 별다를게 없죠. 그러나 이 작품은 소녀 청춘물스러운 분위기로 '개그'보다 추억 만들기같은 '일상'에 주력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황당 캐릭터를 여성 작가가 여성의 마음으로 바라본 따뜻한 묘사로 소녀스럽게 그려내니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시가현'이라는 무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중요한게 빠져있는 동네이지만 비와호라던가 빅쿠리돈키 등 나름의 매력이 가득하다는게 잘 그려져 있는 덕분입니다. 오래전 시가현 출신 일본 개그맨의 히트곡 '시가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세븐 일레븐도 없어' 같은 가사가 있었는데....
"레츠 고 미시간"은 화자가 미유키가 아니라 나루세에게 호감을 가진 남학생 니시우라로 바뀝니다. 미유키처럼 분석적이 아니라 그냥 순수한 애정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츳코미'보다는 단순 관객으로 보이는데, 이것도 나름의 맛이 있더군요. 나루세의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녀가 깊이 고민하고 니시우라의 마음에 어렵게 거절 의사를 밝히는 장면은 아주 상큼했어요. 이 작품이 영상화된다면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외의 다른 세 단편들은 재미가 덜합니다. 화자가 바뀌는 탓이 큽니다. "선이 이어지다"가 특히 별로였어요. 나루세와 정 반대로 어떻게든 평볌함을 연기하려는 동급생 오누키가 화자인데, 그녀의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루세의 기이함만 강조되는 듯한 전개가 영 별로였기 때문입니다. 끝 부분에서 약간의 이해 정도로 수습하고 넘어가기는 하는데, 너무 무난한 결말이라 썩 개운치는 않았어요. 마지막 "도키메키 고슈온도"는 화자가 나루세 본인인데, 타인이 바라본 그녀의 독특함을 잘 느끼기 어려워 아쉬웠고요. 유일한 친구 시마자키 미유키와의 우정과 제제카라의 존속을 그리며 끝맺는 마무리도 지나치게 평범했습니다. 천하를 잡으러 가는 소녀 이야기의 결말로는 너무 부족하잖아요!
"계단에서는 달리지 않아"는 아예 나루세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아저씨들이 주인공이라 붕 뜹니다. 첫 단편과 엮이기는 하는데 다소 작위적이며, 구태여 엮을 이유도 없었고요. 내용도 흔해 빠져서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루세와 시마자키 컴비의 캐미가 폭발하는 앞의 두 편은 별점 5점도 아깝지 않은데, 뒤이은 단편들이 평균을 많이 깎아 먹었습니다. 혹시라도 후속작이 나온다면, 미유키 시점으로 나루세의 황당한 계획을 계속 그려주었으면 합니다.

2024/05/29

오드 택시 (2021) - 키노시타 바쿠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 완료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약사의 혼잣말"에 이어 올해 두 번째네요.
택시 운전사 오도카와가 이마이의 복권 당첨금을 손에 넣으려는 한구레(로 보이는) 도부와 야노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와중에, 아이돌 '미스터리 키스' 멤버 살인 사건과 회사원 타나카의 복수(?)에 연루된다는 이야기로 1시즌 13화의 적당한 분량으로 깔끔하게 끝납니다.

가장 큰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살인 사건에 꽃뱀 사기, 납치와 현금 강탈, 권총 난동, 사체 훼손 및 유기, 일가족 동반 자살 등 온갖 강력 사건이 가득한 세계관을 산리오 캐릭터가 떠오르는 귀여운 동물들이 선보인다는게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거든요. 귀여운 그림체로 잔혹한 이야기를 그려낸 사이바라 리에코의 "우리집"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초반부터 언급된, 오도카와가 태워주었던 '실종된 네리마구 여고생'이 알고보니 미스터리 키스 멤버로 살해당한 미츠야 유키였으며, 오디션에서 네 번째 입상자라 아쉽게 데뷰조에 속하지 못한 와다가키 사쿠라가 미츠야를 살해한 뒤 대역을 소화하고 있었다는 '미스터리 키스' 멤버 살인 사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꽤나 복잡하게 꼬아 놓았지만 복선도 나름대로 제시해주고 있을 뿐더러, 마지막 회에서 와다가키가 미츠야를 살해한다는 충격적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이 아주 볼 만 했기 때문입니다. 와다가키가 전화 통화로 자신의 야망을 밝힌 뒤, 오도카와의 택시에 타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네요. 추리 애호가 분들이라면 한 번 꼭 보셔야 된다 싶을 정도에요.
아울러 동물 캐릭터로 구현된 세계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도 신선했습니다. 알고보니 이는 어린 시절 사고로 뇌 손상을 입은 오도카와 시점에서 바라본 세계였습니다. 오도카와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뒤에는 모두가 제대로 사람으로 보이게 되고요. 이렇게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세계관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세계관으로 돌아온 뒤 오도카와 집에 있던 생명체(?)의 정체도 그냥 평범한 고양이로 밝혀지는 등, 작중 뿌려둔 복선들도 대체로 잘 회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곁가지 이야기가 과하게 많기는 합니다. 카바사와의 관종 유튜버 행태, 다나카와 게임 이야기, 인기없는 만담 컴비 '호모 사피엔스; 이야기 등은 메인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는데도 비중이 높습니다. 오도카와의 친구 가키하나가 꽃뱀에게 걸려드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이보다는 도부가 오도카와를 범행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이유라던가, '말레이 맥' 아저씨가 오도카와를 선뜻 통 크게 도와준 이유를 좀 더 잘 설명해주는게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간만에 재미있게 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5/27

05.21 ~ 05.26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SSG - 기아 홈 - 원정 6연전
성적 : 4승 2패

좋았던 점
  • 홈 극강 모드 유지
  • 기아전 극적인 기적의 역전승!

나빴던 점
  • 믿었던 외국인 원투펀치 부진
  • 피로가 쌓여가는 선수단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최원준,  김민규, 최준호 선수가 출격했던 SSG전에서 스윕을 거두어 기대를 갖게 만들었지만, 기아와의 경기는 1승 2패의 루징으로 마무리한게 아쉬웠던 한 주입니다. 특히 기아전은 상대 마무리와 필승조인 정해영, 장현식 선수를 9회 초 홈런 두 방으로 무너트리며 첫 승을 거두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네요.
기아전 2연패의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원투 펀치 브랜든, 알칸타라 선수의 부진입니다. 선발 투수가 3이닝에 5실점 이상씩을 하면 끌려갈 수 밖에 없지요. 양현종, 네일이라는 에이스급 투수가 상대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브랜든 선수야 실책 3개가 동반되어 무너졌지만, 알칸타라 선수는 걱정이 될 정도로 힘들어했습니다. 선발 투수 외 다른 선수들도 좋지 못했던건 마찬가지에요. 안타도 거의 산발이었고요. 전반적으로 선수들이 지쳐보입니다. 3연투까지 했던 김택연 선수는 물론, 초반 타선을 불꽃 캐리했던 강승호 선수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120%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던 백업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도 이교훈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점, 그리고 계투진이 무실점으로 버텨 9회에 정해영 선수를 등판하게 만들며 쉽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건 수확입니다. 선발이 초반에 무너지니 필승조가 가동될 필요가 없었던 점도 좋았고요.

이번 주는 KT, LG와의 홈 6연전입니다. 홈 극강 모드를 이어가고 있고, 올 시즌 두 팀 상대 전적이 좋기는 하지만 두 팀 모두 이전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서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네요. 특히 최원준, 최준호, 곽빈 선수가 연이어 나오는 KT전은 위닝 시리즈를 장담하기 어렵지요. 최원준, 최준호 선수 경기 때 투입할 수 있는 롱 릴리프 선수가 필요해보입니다. 김민규 선수를 왜 내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엔트리가 부족하다면, 박치국 선수를 내리는게 좋아 보여요.
브랜든, 알칸타라 선수가 출격하는 LG전은 조금 낫겠지만, 알칸타라 선수의 회복 여부가 관건이라 생각되네요. 이번 주 등판도 부진하다면, 교체도 심각하게 고려해 볼 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 예상(혹은 기대)는 3승 3패입니다. 언제나 하는 이야기지만 질만한 경기는 무리하지 않고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는 방향으로 운영하기를 바랍니다. 반타작만 하면서 버티면 알칸타라 선수가 본 궤도에 오르고, 안경민, 박준영 선수 등이 복귀할 때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으리라 생각되니까요.

여튼, 더 이상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허슬~ 두!!

2024/05/26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하마모토 다카시 외 / 노경아 : 별점 1.5점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4점
하마모토 다카시 외 지음, 노경아 옮김/레드리버

제목 그대로 결투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유럽 중심으로 결투사를 개관하고,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발전되었고, 왜 사라졌는지를 알려줍니다.

이 책 저자는 근대와 현대의 결투는 '명예 회복을 위한 도전이자 심판'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전쟁에서의 일기토,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로 볼 수 없다고 하고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결투가 이렇게 '심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게 중세, 근대까지 왕과 귀족의 법을 따르는 '결투 재판'이 주류를 이루게 된 원인이라는 설명은 와 닿았습니다.
결투 재판은 판결의 신뢰성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반면, 기사도가 확산되는 바람에 명예 결투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과정 설명도 그럴싸 했습니다. 기사들은 사회적인 명예가 존재 기반의 하나였으니, 명예 훼손은 그들의 존재를 뒤흔드는 큰 위협이었겠지요. 그래서 당연히 명예 결투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을테고요.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건, 명예 결투의 시작이 이탈리아라는 설입니다. 보통 이런 '귀족'의 '결투'는 프랑스를 떠올리기 쉬운데, 왕의 권위가 막강한 프랑스에서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하네요. 왕이 재판을 하는게 당연하고, 또 그래야 권위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충분히 납득할 만 했어요. 심지어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추기경이 결투를 없애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일화는 놀라왔습니다. "삼총사"에서 달타냥이 하루에 세 번의 결투 약속을 잡을 정도로 결투가 일반화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지배 계급은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만약 그랬다면, 리슐리외는 눈의 가시였던 총사대 핵심 멤버들을 모두 사형대로 보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군요. 왜 그러지 않았는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결국 기사도와 관련이 깊은 결투를 아예 막는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유럽 대륙 전체에 결투 문화가 전파되었습니다. 심지어 북유럽을 넘어 그린란드까지요. 그런데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은 결투를 사람들 앞에서 노래 대결로 승부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모욕당한 자는 사람들 앞에서 상대를 비웃는 노래를 불렀고, 혹시라도 가사를 잊어버리면 친구들이 그 대목을 대신 불러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결투 신청을 받은 자가 위트 넘치는 통렬한 가사로 반격했고요. 한 마디로 래퍼들의 디스 프리스타일 랩 배틀인 셈입니다! 

뒤이어 결투가 사라지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사라진 이유는 당연히 왕들이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절대 왕정 군주들은 앞서 설명드린대로 결투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겼으며, 이후 계몽 군주들은 생명을 중시했기 때문에 결투를 금지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신사도'가 유행하고 신사들이 품위를 중시하면서 결투를 야만적으로 여긴 탓도 있지만, 왕권이 약화된 대신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며 근대적인 재판 시스템이 갖추어진 덕분에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은 군국주의의 득세로 장교들이 과거의 귀족처럼 특권을 인정받고, 명예를 중시하는 계급이 되었기 때문에 19세기까지 결투가 만연하였다고 하네요. 확실히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사회가 무식해지는게 사실인것 같습니다.
이런 결투의 전통은 현대에도 약간의 스포츠 형태로 바뀐 '멘주어'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결론으로 결투의 역사 서술은 마무리됩니다.

이런 결투의 역사적인 큰 흐름 설명은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목차가 통사적으로, 연대순으로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미국에서의 결투 설명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일화 중심으로 소개되는 등 글의 형식도 통일되지 못했고요. 여러 저자의 글을 모은 탓으로 여겨지는데, 누군가 통일성있게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감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감수할만한데, 더 큰 문제는 결투와 스포츠를 엮는 후반부입니다. 스포츠는 재미, 오락일 뿐입니다. 오락으로서의 스포츠는 고대에서부터 존재했고요. 그런데 두 개가 어떻게 엮인단 말일까요? "헝거 게임"처럼 나라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시합을 벌인다면야 모를까, 현대의 스포츠를 결투라고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언급한다면 칼싸움에서 발전한 펜싱 정도? 하지만 펜싱도 전쟁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탄생한 무술일 뿐입니다. 결투라고 보는건 무리에요. 
게다가 앞서 저자는 '심판'의 의미가 없다면 결투가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포츠는 절대로 결투가 될 수 없어요. '결투와 스포츠는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도 매우 중요하다는 특성을 공유하는 표리일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라면서 넘어가는데, 미적,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요소가 중요한 모든게 다 표리일체의 관계가 되는걸까요? 어림도 없지요. 심지어 스포츠가 사람들의 투쟁심과 승부욕을 흡수해서 결투가 사라졌다!는 주장은 앞서의 본인들의 설명, 즉 근대화와 사회 분위기, 제도의 변화로 결투가 사라졌다는 설명에도 맞지 않습니다. 나치의 올림픽을 이용한 국민 통합(?)과 고양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요. 이는 결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책 부제가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인데, 저자들 스스로 검투사들의 싸움은 결투가 아니라고 했고, 축구가 결투일리는 없으니 이 부제는 애초에 이 책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에요. 이 정도면 사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후반부는 완전히 분량 낭비였습니다. 별로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4/05/25

내가 읽었던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분석

제 멋대로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라고 이름 붙힌 장르가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힘(또는 조직)에 의해 모인 뒤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정의 작품을 뜻합니다. 특별한 게임에서 이기거나,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정해진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 게임, 혹은 찾아내야 하는 특별한 조건이 재미의 핵심입니다. 아래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면, 누가 뭐래도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1. 게임, 혹은 특별한 조건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합리적이고 공평한가?
  2. 게임, 혹은 특별한 조건은 독자도 쉽게 이해해서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는가?
  3. 게임, 혹은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걸작은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첫 에피소드인 '한정 가위바위보'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2번과 3번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지만 1번 측면에서는 다소 아쉽지요. 운과 체력이 중요한 게임이 많으니까요.
이 기준으로 제가 읽었던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소설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영화와 만화도 많지만 그런 작품들은 워낙에 유명하니.... 작품별 상세 리뷰는 링크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미야베 미유키
  • 누가 모이는가? 죄를 지은 여섯 명의 사람들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생존,유일한 생존자만 가능.

"거울 속 외딴 성" - 츠지무라 미즈키
  • 누가 모이는가? 왕따를 당하는 일곱 명의 아이들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 줌, 조건은 정해진 시간 내에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낼 것.

"앨리스 살인게임" - 가코야 게이이치
  • 누가 모이는가? 가상 공간 '앨리스'에 갇힌 사람들.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생존, 조건은 다른 생존자들을 죽일 것.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 누가 모이는가? 일주일간 진행되는 실험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12명.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돈. 살아남으면 복잡한 조건에 따라 돈을 수령하게 됨.

"살해하는 운명카드" - 윤현승
  • 누가 모이는가? 게임의 승자가 되면 거액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참가한 5명.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돈. 각자 받은 운명 카드의 운명을 거스르면 승리.

"24시간 7일" - 짐 브라운 : 별점 2점
  • 누가 모이는가? 미국 방송사 리얼리티 쇼 참가자 12명.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생존, 조건은 시청자들 투표를 통해 살아남을 것.

"크림슨의 미궁" - 기시 유스케
  • 누가 모이는가? 아르바이트에 응모한 10명의 플레이어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상금 500만엔. 조건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것.

2024/05/24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2015) - 죠지 밀러 : 별점 4점


후속편이자 프리퀄이라는 "퓨리오사"가 엊그제 개봉했지요. 하지만 저는 이제서야 전작을 감상했습니다. 발표되고 거의 10년 만이네요.

저는 오래 전, 죠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 시리즈를 거의 실시간으로 감상했던 세대입니다. 80년대 당시에는 정말 충격적인 세계관이었어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자동차 폭주족' 무리가 지배하는 지옥으로 그려낸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놀라왔어요. 이를 뒷받침해주는 여러가지 무대 장치와 미술들도 굉장한 볼거리였습니다. 멜 깁슨의 상마초 카리스마도 대단했었고요.
후대에 미친 영향도 엄청났습니다. 단적인 예로, 여기서 모든걸 다 가져다 쓰면서 '폭주'만 '권법'으로 바꿔치기한게 바로 "북두의 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으로 바꾸면 "패미코만도 류"일테고.... "워터 월드"도 사막화 된 세상을 침수된 세상으로, 자동차 폭주를 해양 액션으로 바꾸는 등으로 정 반대 방식으로 베껴낸 표절작입니다. 그 외의 아류작들은 한 둘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원조의 창조자가 노구를 이끌고 직접 감독하여 만들어 낸 신작은 확실히 다르긴 다르더군요. 무엇보다도 80년대에는 예산, 기술의 문제로 구현하지 못했을 화면을 마음껏 그려낸 액션! 액션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폭주'와 기묘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결합을 제대로 선보이면서도, 화끈함을 잃지 않는 멋진 장면들이었어요.
전작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진화한 설정도 멋졌습니다. 임모탈 조와 그를 숭배하는 워보이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세계에서는 당연하다 싶을, 자동차와 엔진 등을 숭배하며 '8기통'을 외치는 모습이 아주 그럴싸 했습니다. '밈'으로 유명해져서 보기는 봤지만 맥락을 몰랐던 "기억할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주민들과 워보이들이 불치병과 선천성 기형에 시달리는 탓에, 건강한 육체와 몸을 원한다는 전개의 핵심 동기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새로운 설정에 걸맞는 비쥬얼도 역시나 멋졌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전개도 우직하면서도 간단해서 마음에 들었고요. 이런 영화에서 깊이 고민할 이유를 만들 필요는 없지요. 퓨리오사가 살아남는 엔딩도 좋았습니다.
 
눅스가 급작스럽게 전향한 까닭이라던가, 빌런이자 최종 보스 임모탈 조의 최후가 다소 허무한 등은 조금 아쉬웠지만 큰 흠은 아닙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퓨리오사"도 빨리 보고 싶네요. 언제 보게 될 지는 기약이 없지만...

2024/05/22

아하렌 양은 알 수가 없어 1~17 - 미즈 아사토 : 별점 2.5점

아하렌 양은 알 수가 없어 17 - 6점
미즈 아사토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오랫만에 완결까지 감상한 러브 코미디 만화.
기본 설정은 "코미 양은 커뮤증입니다"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라이도가 같은 반 옆자리인, 커뮤니케이션이 서투른(작 중에서는 사람과의 거리감 조절을 잘 못한다고 하는) 아하렌 양과 가까와진 뒤 사귀게 된다는 기본 설정과 전개는 판박이라 해도 무방하거든요. 아하렌 양과 코미 양은 비쥬얼 외의 성격도 굉장히 비슷하고요.

그래도 단순 아류, 표절작은 아닌 독특한 요소도 갖추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아하렌 양은 코미 양처럼 단지 외모로 어필하는 존재는 아니고 뭐든 척척 잘하는 능력자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코미 양처럼 친구 사귀기 정도에 그치지 않는 여러가지 도전(?)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굉장히 귀여우면서도 할 때는 하는, 한마디로 '천연 팔색조' 매력을 뿜어내지요. 이런 아하렌 양이 작품의 핵심 매력 포인트입니다.
또 초반 이후에는 라이도가 아하렌 양이 하는걸 보고 망상에 빠져드는게 주요 소재가 되는데, 이게 또 재미있었습니다. 망상 개그는 "누나 로그" 등 흔하디 흔한 편이지만 보통 성적인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라이도의 망상은 엄청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스케일 큰 거대한 스토리를 보여줍니다. 망상만으로도 하나의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가 뚝딱 만들어질 정도로요. 망상 속 아하렌 양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온갖 기술을 습득하여 성장한다는 성장물스러운 전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지식을 갖춘 라이도가 학년에서 겨우 평균을 웃도는 성적을 기록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외의 등장인물들도 개그만화다운 독특한 설정을 통해 재미를 가져다줍니다. 똑같이 생긴 아하렌 남매, 꽁냥꽁냥하는 모습을 보면 피를 토하는 토바루 선생님, 소심한 갸루 타마나하 리쿠 등이 그러합니다. 모두 어디선가 봤음직한 인물들이라는건 단점이지만,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개그를 펼쳐주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고등학교 1학년에서 3학년까지의 시간 흐름 속에서 아하렌 양과 라이도가 연인이 되고, 축제와 학원제, 운동회, 캠프와 여름 바다 등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 즐기는 등의 과정을 거쳐 결국 대학생, 직장인, 결혼까지 이르는 결말로 완벽하게 마무리했다는 점입니다. 에필로그가 다소 과하다 싶기는 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말이었어요. 이런 깔끔한 끝맺음은 "아즈망가"와 비교될만한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캐릭터 설정에 의존한 개그가 대부분이라 반복적인게 많고 - 대표적인게 토바루 선생 -, 동성간 사랑(?)에 대한 설정이 자주 등장하는건 별로이기는 했습니다. 한 5권 정도 분량은 빼더라도 무방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이 정도면 재미와 더불어 마무리도 괜찮았기에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애니메이션 화도 되었다길래 유튜브를 통해 요약본을 잠깐 찾아 보았는데, 잘 만들기는 했지만 원작 속 아하렌 양의 매력을 잘 살리지는 못한 듯 싶더군요. 그냥 만화로 만족해야겠습니다.

2024/05/20

05.14 ~ 05.19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기아 - 롯데 원정, 홈 6연전
성적 : 2승 2무 2패

좋았던 점
  • 최준호 선수의 연이은 호투
  • 다소 살아나는 양석환 선수
  • 이영하 선수의 무리섞인 쾌투

나빴던 점
  • 허경민 선수 부상
  • 어처구니없는 감독의 짜내기 작전
  • 실책에 이은 실점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 주에는 1위팀과 최하위 팀과의 시리즈를 모두 1승 1무 1패로 마무리하였습니다. 1위팀 기아와의 경기는 브랜든 선수의 호투와 적절한 타선 지원으로 1승은 쉽게 거두었지만, 나머지 두 경기는 선발이었던 최원준 선수와 땜빵 선발 김동주 선수의 부진으로 어렵게 가져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김동주 선수 선발 경기는 타선이 폭발하여 잡을 수도 있었는데, 오랫만에 불펜진이 실점하며 결국 헛힘만 쓰고 말았네요. 게다가 팀내 타선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허경민 선수마저 부상으로 엔트리 말소된, 최악의 결과를 낳았지요.
이어진 롯데전 첫 경기는 데뷰 후 첫 4일 휴식 경기임에도 최준호 선수가 6이닝 1실점의 쾌투를 선보였으나, 전날 12회 연장 승부의 피로와 허경민 선수의 부재 등이 겹친 타선 침체로 패했습니다. 다행히 바로 다음 경기는 양석환 선수가 2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5타점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고요. 그러나 위닝 시리즈의 분수령이었던 3차전은 실책이 모두 실점과 연결되며 승리를 이어가지 못했네요.
이 과정에서 가장 볼성 사나왔던건 무사 2루에서 팀 내 최고 타자인 강승호 선수에게 번트를 시킨 이승엽 감독의 작전이었습니다 (번저강!). 이런 어이없는 작전은 정말 야구 관전하면서 처음 보는거 같습니다. 비기는 경기에서 김택연, 최지강 선수의 연투도 보기에 좋지 않았고요.

이번 주는 SSG와의 홈, 기아와의 원정 경기가 이어집니다. 강팀과의 경기라 어려운 경기가 예상됩니다. 1선발 알칸타라 선수와 타선과 수비의 핵 허경민 선수가 부상으로 빠졌고, 양의지 선수도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등 어려움도 많으니까요. 알칸타라 선수가 이번 주에도 복귀하지 못한다면 선발 투수진은 썩 좋지 못합니다. 최원준, 땜빵, 최준호, 곽빈, 브랜든, 최원준 선수 순인데 최원준, 땜빵 선수는 별로 기대가 되지 않거든요. 계투진의 힘이 서서히 떨어져가는 것도 눈에 보이고요. 야수진도 구멍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수행 선수는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유격수 자리는 누가 나오든 수비와 공격 모두 좋지 못한 상황이에요. 최준호, 곽빈, 브랜든 선수 경기에 총력을 다해서 3승이라도 거두는 작전으로 나가는게 좋아 보입니다. 제발 지는 경기는 필승조를 쓰지 말고 깔끔하게 졌으면 합니다. 아니, 이교훈 선수가 깔끔하게 막아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번 주 예상(이라고 쓰고 본 뜻은 기대)은 3승 3패입니다. 언제나처럼 무리하지 말고, 더 이상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허슬~ 두!!

2024/05/19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 후루이치 노리토시 / 서혜영 : 별점 2점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 4점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흐름출판

도쿄의 고층 빌딩 유리창 닦는 일을 하고 있는 스물셋 청년 쇼타. 대학교 시절까지 순탄하게 살아왔지만 취업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낙심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우연히 거리의 고층 빌딩을 올려다보던 쇼타는 그곳에 위태롭게 매달려 유리창을 닦는 사람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그 일에 뛰어든다. 친구들, 가족들과 관계를 단절한 채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쇼타에게 반짝거리는 고층 빌딩의 유리창 너머의 부유하고 안정된 삶은 멀기만 하다.
어느 날 고급스러운 고층 맨션에서 작업하던 중에 상자만 가득 쌓여 있는 3706호에 사는 노부인과 눈이 마주치고, 쇼타는 그녀로부터 이상한 초대를 받는다. 호기심에 낯선 노부인의 집을 찾아간 쇼타에게 노부인은 위험하지만 거부하기 힘든 제안을 하는데, 바로 쇼타가 일하는 고층 빌딩 안쪽의 사진을 찍어와 달라는 것! 위험천만한 제안을 수락해버린 쇼타가 들여다본 높은 곳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고층 건물 유리창 닦는 우울한 청춘이 한 노부인의 요청으로 건물 내부 도촬 사진을 공유하면서 성장해 나간다는 청춘 성장기.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기 힘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끼리 무언가 공감가는 일을 하다가 이별을 겪고 성장해 나간다는건 일본 소설에서는 굉장히 뻔한 소재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작품들에서 숱하게 보아왔었지요. 이런 소재가 아직도 발표되고, 심지어 아쿠타카와 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먹힌다는 것에 놀랐어요. 유통기한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이런거야말로 일본식 감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재미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감성은 익숙할 뿐더러, 과거에는 찾아 읽을 정도로 푹 빠지기도 했었으니까요.
기발한 상황과 설정이 모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노부인이 집 안에 빈 상자를 쌓아두는 행동이 대표적입니다. 그녀는 창 밖의 재미없는 풍경이 싫어서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상자를 쌓아올렸습니다. 여기에 도촬한 사진을 창문처럼 붙여 실감나는 경치로 바꾸게 됩니다. 즉, 도촬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의외로 추리적인 요소가 담겨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해, 그리고 사진 속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추리를 계속 내어 놓거든요. 노부인이 한 사진 속 여성이 독신이라고 추리하는 식으로요. '사진의 벽지가 검정 베이스의 다마스크 무늬인걸로 볼 때 그녀는 주장이 강하다. 놓여있는 가구도 제대로 된 걸로 보아 경제력이 있다. 남자들은 기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추리인데, 꼰대스럽기는 하지만 재미있지요? 교실 칠판에 적힌 '선생님, 잊지 않을테니까요. 히나코'라는 글을 경고라고 생각하는 발상도 기발했고요. 일상계 추리물로 승화시켜도 될 법한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또 이런 류의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한 디테일도 좋은 편입니다. 초반, 딸기의 가격과 맛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노부인의 경제력, 그리고 돈이 많더라도 우리는 별로 다르지 않다(?)는걸 드러내는 묘사처럼요. 고프로를 활용한 도촬에 대한 디테일도 마찬가지로 일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부인이 급작스럽게 떠나고, 주인공은 사진의 매력에 눈을 뜬다는 결말은 지나치게 평면적이었습니다. 여러 관계와 설정에 대한 설명도 전부 이루어지지 못해 깔끔한 느낌도 들지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마무리지었는지 궁금하네요.

2024/05/18

무너진 세상에서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무너진 세상에서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리브 바이 나이트"로부터 10여년 뒤, 조는 탬파 일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여전히 조직 최상위 멤버였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조를 노렸던건 거짓말로 모든건 조직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고 했던 부하 리코의 음모였다. 리코는 소문을 통해 조를 조직 거점에서 떼어놓고, 보스 디온을 습격해 죽이려했다. 마지막 순간에 음모를 깨달은 조는 보스 디온을 구해내고, 위원회를 통해 리코마저도 없애버렸지만 디온이 조직원들을 FBI에 팔아먹고 있었던 사실을 알아채서 디온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 자신도 위원회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리브 바이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10여년 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사업가로 보이지만 조직의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거물이 된 조가 누군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걸 알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조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파헤치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죽고 마는데, 깔끔하고 명확한 서사 덕분에 빚어진 장점은 명확합니다. 누가 조의 목숨을 노리는지? 조직의 배신자는 누구인지?의 수수께끼를 서로 죽고 죽이는 조직의 암투와 함께 긴장감있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펼쳐주기 때문입니다. 암흑가 조직원이 정점에서 신뢰따위는 없는 지옥 구렁텅이로 떨어지면서 믿었던 친구에 자기 생명까지 모두 잃는 결말도 일품이었고요. 깡패가 성공하는 이야기는 필요없습니다. 조폭을 미화하는 작품들은 모두 불에 태워버려야 마땅해요!
또 "리브 바이 나이트"보다는 조의 두뇌를 이용한 활약이 많은 것도 장점이에요. 그 중에서도 '두뇌'를 써서 리코를 옭아매는건 무릎을 칠 만 했습니다. 죽어가는 디온과 함께 탈출하려면 한 시가 급한 상황에서 '위조 전문가'를 수배했는데, 그건 리코의 장부를 위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지요. 위원회와의 담판에서 위조 장부를 이용하여 리코를 없애는데 성공하고요. 과연 '두뇌파'라 부를만한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별도로 쌓아올리면서 이런저런 곁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많지는 않지만 볼 만 했습니다. 조직의 의사 네드의 아내와 장인 관련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단편 한 편은 뚝딱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흑인 지역의 보수 먼투스 딕스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았고요. 프레디 패거리로부터 살아남는 장면도 멋드러지지만, 남자 대 남자로서 조와 면담을 나눈 뒤 이왕이면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경쟁자를 쓸어버리려고 완전무장한채 출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나이' 기운을 뿜어내거든요. 이런 멋진 사나이가 배신자 리코따위에게 폭탄으로 죽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설명이 리코의 몇 마디에 그친다는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요. 먼투스 딕스가 주인공인 외전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는 다르게, 이 책 한 권만으로 충분히 완결이 된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입니다. 다만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고 이 작품만 읽어보라고 권해 드리기 어렵긴 합니다. 디온과 조의 관계와 조가 성공한 이유, 작중 자주 언급되는 '학살의 밤' 등은 모두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즉, 두 권을 합쳐서 읽어야 온전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 한 권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아울러 워낙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리브 바이 나이트"만큼의 드라마도 없다는 단점도 있고요.

그래도 단순명쾌한 범죄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 합쳐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5/17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 8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거물 앨버트의 애인 에마와 사랑에 빠진, 갓 스무살이 된 조는 경찰관 세 명이 죽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조는 도주 중에 에마의 배신으로 경찰에 체포되어 찰스타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도소에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앨버트의 라이벌인 마소의 생명을 구해주었고, 출소 뒤  마소의 명령으로 탬파 지역으로 향했다. 지역 밀주 사업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써서 밀주 원료를 독점하게 된 조는 앨버트를 지역에서 축출한 뒤, 탬파 지역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마소가 조의 구역을 아들에게 넘겨주려한 탓에 두 세력은 엄청난 격돌을 벌였고, 큰 희생끝에 마소를 제압한 조는 조직을 이탈리아인인 부하 디온에게 넘기고 은퇴한 뒤 조직의 자문역으로 표면적으로 합법적인 사업에만 관여하였다. 하지만 조 때문에 딸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미쳐버린 전 경찰서장 어빙의 총격으로 아내 그라시엘라를 잃고 마는데...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네가 세상에 뿌린 씨앗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경찰의 아들로 템파 지역 밀주 사업을 장악해 거물이 된 조지프(조) 커글란이 은퇴(?)하기까지의 반생을 그린 범죄 스릴러.

기본 뼈대는 흔해빠진 밀주시대 암흑가 거물 성공담입니다. 1990년대 영화 "몹스터즈" 등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몹스터즈"의 주인공이었던 실존 인물 찰리 '럭키' 루치아노가 임팩트있게 등장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자의 필력은 이야기를 아주 뻔하지 않게 만듭니다. 방대한 분량으로 쌓아올린 등장인물들의 서사는 모두 일품이며, 조에게 닥치는 온갖 위험과 역경이 워낙에 창의적이고 생생해서 독자를 몰입시키기 때문입니다. 찰스타운 교도소에서 자기 아버지의 힘을 이용하려는 마소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운 좋게 마소의 생명을 구해주는 것부터 나름대로 기발했습니다. 탬파 지역 밀주 사업을 장악하기 위해서 군함의 무기를 털어야했던 작전도 그럴듯했고요. 조가 사업을 위해 흑인들과 손을 잡은걸 꺼림직하게 여겼던 KKK단의 훼방도 신선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박 사업을 일으키려다가, 서장의딸 로레타의 광적인 전도 활동 탓에 꿈을 접는건 창의적인 역경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살짝 웃기기까지 했어요.
또 이런 일련의 서사와 역경을 통해 소개된 여러가지 복선들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마지막에 마소가 조의 사업을 통째로 자기 아들에게 주려고 조를 죽이려했던 부분에서 이런 복선들이 특히 잘 활용됩니다. 조의 거짓말 - 나를 배반한건 디온이 아니라 그의 형이다 - 을 밝히기 위해 초반에 무대에서 사라졌던 앨버트가 다시 나타나고, 시멘트 구두를 신고 수장당할 위기에 놓인 조가 죽은줄 알았던 에마가 찍힌 사진으로 시간을 끌고, 마지막에 조를 구해낸건 사업 초기부터 언급되었던 '기관총이 장착된 운송용 비행기' 덕분이라는 식입니다.

묘사도 출중합니다. 총격전은 많이 벌어지지 않고, 벌어져도 담담한 편이지만 '처단' 장면만큼은 인상적으로 잘 쓰여져 있습니다. 조와 마소 조직원들이 격돌하는 클라이막스에서 개틀링 기관포를 무력화 시키는 비행기의 공격도 화끈했고요. 배경 묘사도 뒤지지 않아서 찰스타운 교도소의 끔찍함과 탬파 지역의 무더위, 쿠바 담배 농장의 풍광 등은 모두 손에 잡힐 듯 생생했습니다. 읽으면서 '냄새'가 느껴질 정도도 말이지요. 이는 실존했던 금주법 시기 일화 및 인물들, 역사적인 배경과 결합되어 일종의 '팩션'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조 커글란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건 운이라고 해도 지나쳤습니다. 두뇌파 범죄자로 금주법이 끝나는걸 대비해 정상적인 양조 사업을 미리 준비하는 등 사업(?)에 있어서는 상당한 식견과 비젼을 지닌 것으로 보이지만, 위기 상황은 운으로만 모면한다는건 그리 좋은 설정은 아니었어요. 마소가 조를 불렀을 때, 별다른 준비없이 호랑이굴로 들어간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소가 호텔방에서 조의 거짓말 - 디온이 배신했다! - 를 밝혀낸 뒤 바로 조를 죽이지 않은 것 처럼요. 괜시리 시멘트 구두를 신겨 수장시킬 이유는 없었습니다.
또 앞서 인물들의 서사는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했는데, 과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로레타의 자살과 그의 아버지 어빙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부분은 많이 거슬렸고요. 이왕 이렇게 갈 거였다면 좀 더 확실히 상황을 드러내던가.... 
서로를 미워하던 토머스와 조 부자가 조가 큰 부상을 입고 회복한 뒤, 갑자기 친밀해지는 것처럼 인간 관계의 변화도 급작스러운게 많습니다. 이 시점에서 토머스는 조 때문에 모든걸 잃었기 때문에 미움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가까와질 이유는 없어 보였는데 말이지요. 아내 그라시엘라가 죽은 이후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조 커글란이 사랑에 목숨거는 순정남이라는건 어린 시절 에마와의 에피소드에서는 충분히 먹힐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애송이였으니까요. 그러나 나이도 먹은데다가 큰 조직의 수장이 된 현재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조가 쿠바 농장을 대하는 태도는 총칼을 앞세우고 약간의 호의만 제공했을 뿐인데, 이를 의미있는 것처럼 포장하는건 전형적인 식민지 지배자의 논리라 불쾌했고요.
무엇보다도 아내가 죽은 뒤 조는 범죄 세계를 떠났다는 한 페이지의 에필로그가 전부인 결말은 이 책만의 평가를 어렵게 만듭니다. 이 작품이 3부작의 가운데 권인 탓인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혀 몰랐으나, 이 정도로 후속권과 이어진다면 각 권을 별개로 출간하지 말고 1~3권의 긴 장편으로 출간하는게 맞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속았다'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래서 이 책만의 별점은 3점입니다. 묘사와 전개 모두 좋은 1급 범죄 스릴러이지만, 이 책만으로는 온전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2024/05/15

DC : 더 뉴 프런티어 1,2 - 다윈 쿡 / 임태현 : 별점 2점

DC : 더 뉴 프런티어 - 4점
다윈 쿡 지음, 임태현 옮김/시공사(만화)
DC : 더 뉴 프런티어 2 - 4점
다윈 쿡 지음, 임태현 옮김, 데이브 스튜어트 그림/시공사(만화)

"파커" 시리즈를 통해 기억해 두었던 작가 다윈 쿡이 만들어낸 새로운 DC 히어로 세계관 이야기. 1950~50년대를 무대로, 실제 역사와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섞어 선보이고 있습니다.

다윈 쿡의 작화는 역시나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DC 히어로물을 자신만의 세계에 당시 시대 분위기에 잘 녹아들도록 구현했거든요. 흑백 뉴스, 신문 기사, 심지어 그림책 등을 곳곳에 삽입하는 구성도 일품이었고요.

그러나 내용은 그닥이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와치맨"을 연상케하는 것도 문제고요. '매카시즘'과 같은 당시 정치적인 환경을 주요 배경으로 삼으면서, 정부측 히어로(슈퍼맨과 수어사이드 스쿼드, 챌린저스 오브 디 언노운 | 닥터 맨해튼과 코미디언)와 숨어서 활동하는 히어로(배트맨 | 로어샤크)가 나뉘고, 아에 은퇴 상태로 본업에 종사하게 된다던가(원더우먼 | 2세대 나이트 아울), 정부의 탄압 속에 체포되고 사망하는 히어로(아워맨 |모스맨)와 폭도들에 의해 사망하는 히어로(스틸 | 1세대 나이트 아울)가 생기는 등의 캐릭터 설정은 거의 판박이에요.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적의 침략으로 모든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대항하게 된다는 결말부는 "와치맨"에서 '오지만디아스'의 계획이 이루어진 세계관과 똑같다는 생각만 들었고요. 게다가 "와치맨" 만큼의 정치적인 메시지나 사회 비판 요소는 포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는 판에 박힌 내용이에요.
결론적으로, 약간 팩션 느낌으로 가공한 히어로물의 한 변주일 뿐입니다. 

마션 맨헌터 존 존스와 그린 랜턴 할 조단, 그리고 플래시 배리 앨런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 역시 "와치맨"가 비교하면 많이 별로였습니다. 존 존스와 할 조단은 영웅으로 거듭나기 이전의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의 고민이라던가, 현재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의 갈등은 거의 그려지지 않아서 이야기 주제와 따로 노는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플래시 배리 앨런이 히어로를 은퇴하기로 결심한 장면은 너무 뻔했고요.
현재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상황 중 하나인 인종 차별로 인해 탄생한 히어로 스틸 존 헨리 이야기가 그나마 주제와 가장 잘 맞아 떨어졌는데,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짤막한 소품일 뿐이라 아쉬웠습니다. 이 이야기만 단편으로 따로 내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결말까지 완벽한 걸작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기대만큼 신선하거나 새롭지는 않아서 감점합니다. 애니메이션이나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2024/05/13

05.07 ~ 05.12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키움 - KT 원정 - 홈 6연전
성적 : 6승! (8연승!)

좋았던 점
  • 견고했던 선발진 (땜빵 선발 게임 제외 모두 5이닝 이상, 4경기 6이닝 퀄리티 스타트)
  • 더 견고했던 필승조 (이병헌, 김택연, 최지강, 홍건희 선수 모두 무실점)
  • 터질만큼 터져준 타선 (외쳐, 갓모스!)
  • 납득이 가는 선수 기용

나빴던 점
  • 퐁당퐁당 투환스 (재환, 석환. 특히 갑자기 차게 식은 양석환 선수)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놀랍게도 6경기 모두를 잡아내면서 8연승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키움 상대로는 좋은 승부를 기대했지만, 상승세였던 KT에게는 전통적으로 약하기도 해서 어렵게 갈 거라 예상했는데 완승을 거두었네요.

전승의 고비였던건 팽팽한 투수전이 벌어졌던 목요일 키움전과 땜빵 선발 김유성 선수가 2회에 무너졌던 금요일 KT전이었습니다. 두 경기를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계투진이었습니다. 특히 금요일 경기는 김유성 선수 이후에 투입된 7명의 투수 모두가 제 몫을 해 주었지요. 다른 경기들은 모두 선발 투수들이 6이닝을 버텨주며 초반 득점으로 비교적 쉽게 가져왔는데, 결정적이었던건 일요일 더블헤더 1차전에서 최준호 선수의 6이닝 2실점 호투였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는게 이런 것이겠지요.
타선도 지난주 팀타율 3할 이상으로 폭발하며 모든 경기를 5점 이상 득점하여 힘을 내 주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타격에 눈을 뜬 허경민 선수와 강승호, 양의지 선수의 꾸준한 활약에 더해 라모스 선수가 쳤다하면 장타로 타선을 이끌었고, 김기연, 조수행 선수 등 백업과 하위 타선도 맹타를 선보였습니다. 조수행 선수가 3할을 치는건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주중에 김택연 선수가 3연투를 하는 등 필승조가 무리했지만, 토요일 우천 휴식과 일요일 더블 헤더 초반 대량 득점으로 이병헌, 김택연 선수가 쉴 수 있었던 것도 수확입니다. 이병헌 선수는 출장, 이닝 모두 전체 1위였는데 다행입니다. 선수 기용도 적절했어요. 양의지 선수도 두 경기 지명타자로만 출전했고, 내, 외야 모두 선수들을 고루 기용했으니까요.

하지만 KT의 더블 헤더 두 경기를 이겼던 건 벤자민 선수의 급작스러운 부상과 고졸 신인 선발 투수의 난조 덕으로 운이 좋았던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키움전도 상대 신인 4, 5선발이 상대였고요. 지난주 공격력에는 다소 허수가 끼어있다고 보는게 맞겠죠. 때문에 연승은 다음주 초 1위팀인 기아와의 원정 3연전에서 마감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브랜든, 최원준, 땜빵 선수 순서로 선발이 운용되는데, 다른 경기는 몰라도 김유성 선수를 대신할 땜빵 대체 선발 경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것 같지가 않군요. 
기아와의 원정 경기를 마치면, 최하위에 처져있는 롯데와의 홈 3연전인데 김태형 감독은 두산을 너무나 잘 아는 분이니 이 역시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되고요. 최준호 선수가 계속된 호투를 보여준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브랜든, 최원준, 곽빈 선수 경기에 주력하여 3승 3패 정도의 성적만 거두면 좋겠습니다. 만약 알칸타라 선수가 복귀하지 않는다면 더더욱이요. 아울러 질만한 경기는 무리하지 않고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는 방향으로 운영하면 좋겠습니다. 이기면 당연히 좋지만, 지더라도 잘 지는게 중요하니까요. 지난 시즌도 11연승 후 6연패로 고꾸라진 기억이 있으니, 연승에 무리하지말고 시즌을 길게 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계투진도 지는 경기에 필승조를 내지 말고 여러 선수들을 시험해보았으면 합니다. 이영하, 박치국 선수가 좀 올라와준다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요....

여튼, 더 이상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허슬~ 두!!

2024/05/12

문라이트 마일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2점

문라이트 마일 - 4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하지만 옛날처럼 살면 우린 벌써 죽었을 거야."

아내와 딸의 부양을 위해 위험한 일은 지양하고, 양심에 반하는 일까지 닥치는대로 하면서 살고 있던 켄지 앞에 베아트리체가 나타났다. 그녀는 12년 전, 켄지가 찾아주었던 소녀 아만다의 숙모였다. 켄지는 아만다를 사랑했던 납치범 삼촌으로부터 소녀를 되찾아 알콜 중독에 빠진 형편없는 엄마에게 돌려주었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아만다가 또 사라졌다고 말했고, 켄지는 돈 한 푼 받을 수 없지만 과거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로 아만다를 다시 찾아나섰다.
그러나 아만다의 실종은 러시아 갱단과 관련이 있었고, 갱단은 켄지의 주소까지 알아내어 아만다가 가지고 사라진 아이와 '벨라루스 십자가'를 찾아오라는 협박을 시작했다...

데니스 루헤인을 대표하는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완결편. 책 소개를 보니 "가라, 아이야, 가라"의 후속작 성격이라고 하네요.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답게 납치, 절도에 살인과 폭력 등 각종 범죄가 난무합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갱들이 도박으로 수렁에 빠트린 의사 드레를 아동가족부에 취업시킨 뒤, 어린 임산부들에게 몰래 아이를 낳게 한 뒤 팔아치워왔다는 범죄 행각이 독특하더군요.
범죄들과 관련된 여러가지 죽음들이 끔찍한 시리즈 특징도 여전하고, 돈 때문에 기본적인 인간성을 저버리는 등장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들도 여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니 한 술 더 뜹니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켄지마저도 돈과 가족 때문에 양심을 파니까요. 이런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기는 한데, 역시나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켄지와 제나로, 딸 가비의 사랑과 유대감, 신뢰에 대한 묘사도 많습니다. 완결편인 덕분이겠지요? 이는 켄지가 탐정일을 완전히 은퇴하는 시리즈 결말에 대한 설득력도 높여 줍니다. 본인이 양심을 팔고 돈을 택했던 몇몇 사건들에 대한 회한과 함께 더 이상 위험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지켜야 할 가족보다 완벽한건 없겠지요. 아만다가 딸(?) 클레어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이런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한 결말도 깔끔합니다. 러시아 갱 예핌이 약에 중독된 두목 키릴 등과 인간 쓰레기 아만다의 의붓아버지 케니를 모두 죽이고 켄지와 아만다, 납치했던 소피와 기타 등등을 풀어주고 끝나거든요.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 시점도 완벽한 셈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앞서의 해피엔딩은 대미를 장식하기는 하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제는 커요. 예핌이 왜 이들을 살려주는지 설명이 없는 탓입니다. 어차피 네 명을 죽인 상황에서 세 명을 더 죽이는게 별 문제도 아니었을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중요 목격자인데요. 다른 악당이라면 다 죽이고 켄지의 집으로 찾아가 가족도 다 죽였을 겁니다.
드레를 아만다가 의도적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기차가 달려오는 것도 모르고 십자가를 주으러 달려갈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을겁니다. 직전에 약에 취했다는 묘사가 있기는 한데, 이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마침 기차가 달려오는 순간을 딱 맞췄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대체로 우연이나 특별한 기회를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개도 그닥입니다. 예를 들자면, 켄지가 아만다의 집을 몰래 들어가 수색하다가 아만다의 가족들과 소피를 만나는데, 그 때 마침 러시아 갱단이 습격해서 소피를 납치해갑니다! 갱을 추격하던 켄지는 면허증을 빼앗겨서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요. 이런 전개는 독자가 무언가 추리할 여지를 아예 없게 만듭니다.
그나마 아만다가 보스턴 레드삭스 19번 유니폼을 애지중지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레드삭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부분은 약간 추리물 성격을 보이기는 합니다. 알고보니 아만다가 어린 시절 유괴당했을 때 살았던 마을 이름이 '베켓' 이었던 거지요. 좋은 추억만 가득했기에 레드삭스 19번 조쉬 베켓의 유니폼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켄지와 제나로는 베켓에서 아만다를 찾아내지요. 하지만 이 역시, 아만다의 행적을 뒤쫓는데 그리 중요한 단서가 되지는 못해요. 19번 유니폼이 없어도 '베켓'을 찾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니까요.
핵심 인물인 아만다도 와 닿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혹독한 경험을 했다고 모두가 천재가 되는건 아닙니다. 친구의 아기를 자기 딸인양 돌볼 이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아만다의 현재는 켄지의 심경 묘사 정도의 비중은 할애해서 설명해 줘야 했습니다. 지금은 치기어리고 겁없는 사춘기 10대인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복잡한 내면을 갖춘 인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펄프 픽션입니다. 시리즈 팬이시라면 '완결편' 이라는 의미도 있고하니 읽어볼만 하겠지만,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4/05/11

우리 미술 이야기 2 : 영원한 현재 - 고려 - 최경원 : 별점 2.5점


우리 문화 유산의 아름다움과 자랑거리, 그리고 알아두면 좋을 이런저런 내용을 소개해 주는 책. 저자의 "한류 미학 1"을 재미있게 읽어서 뒤이어 읽게 된 후속 권입니다. 절판 후 재출간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네요.

2권은 고려 청자 중심으로 고려 문화 예술만 소개하고 있는데, '고려의 청자를 비롯한 문화 예술품은 '대량 생산'되었기에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장인이 모든 것을 다하는게 '공예', 산업 혁명 이후 기계적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며 생산품 형태를 고안하는 일이 '디자인'인데, 국가 주도로 대량 생산된 청자는 '디자인'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표준화' 경향으로 증명된다며 대체로 유사한 청자의 형태 등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꽤 그럴듯 했습니다. 디자인에 의한 대량 생산품의 우수함은 문화의 우수함을 증명한다는 주장도 아주 억지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고요.

다양한 청자를 가지고 청자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설명해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도입부의 '청자의 색' 설명부터 눈길을 끕니다. 고려 청자의 다소 칙칙한 색이 찬양되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데, 고려청자는 '옥'의 색을 겨냥해 만들어진, '비취' 색이었기 때문입니. 옥은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보석 중의 보석으로, 송나라에서 처음으로 옥의 색과 질감을 유사하게 재현했었지만 고려 청자가 진짜 비취색을 구현해서 당대의 명물이 되었다고 하네요.

명품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해 주는 여러가지 발견과 정보도 볼 만 했습니다. 사진이 아니라 스케치를 통해 그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도판도 매력적이고요. 아래와같이 돋을새김 상감으로 이루어진 문양은 사진으로는 그 형태를 온전히 보기 어려운데, 스케치로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도자기는 3차원적 형태에 잘 어울리도록 그려지고, 이어진 형태로 감상해야 하는 그림이 많아서 전체를 돌려가며 보아야 된다는 착안도 좋았습니다. 이런건 박물관에서도 전시 시에 활용해주면 참 좋을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천천히 돌려서 전시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자만의 주장도 눈길을 끄는게 많은데, 그 중 두 가지가 인상적입니다. 첫 번째는 황금 비례는 수학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시대의 정신적 습관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특정한 하나의 양식이자 독특한 미적 가설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황금 비례가 많이 사용되는건 사람의 눈의 구조가 똑같고, 보편적인 감정이 있어서 대체로 2:3이나 3:4 정도의 비례를 좋다고 느끼기에 그런 조형 결과물들이 많은 것 뿐이라서 특별히 대단한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청자를 만들 수 없었던 조선은 문화가 낙후된게 아니라는 일련의 주장입니다. 조선 왕조 500년을 문화 퇴행기로 보는 건 일제 강점기 시기 총독부 소속의 일본 학자 세키노 타다시의 역사 왜곡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문신들은 삼강오륜을 앞세운 근엄한 도덕적 생활을 해서 정서가 발달하지 못했고, 경제력도 보잘것 없어서 미술이나 미적 감각을 발전시킬 힘과 여유가 없었다는 김원룡의 시각도 마찬가지로 악의적 편견인 것이지요. 저자는 조선의 경향은 조형 예술 역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추상'이라는 개념의 경향일 뿐이라며, 이를 맨 마지막에 소개된 '은진미륵'을 통해 설명해줍니다. 은진미륵은 세계에 관한 관심이 달라진 데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미적 감각의 표현으로, 인자한 보살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단순화시킨 조형으로 특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걸 여러가지 분석으로 알려주거든요. 이러한 경향이 조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일테고요. 또한 청자가 만들어지지 않은건 옥의 모조품이라는 목표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장은 재미는 있는데 완벽하게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황금비례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이론화 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은진미륵에서도 추상성에 따른 아름다움은 솔직히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예가 좀 잘못된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외에도 많은 아름다운 유물을 보는건 좋았지만 청자가 대부분이고, 내용도 비슷한게 많아서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청자의 형태가 유기적으로 이는 최신 디자인 경향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반복되는 탓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지적했지만 문헌, 사료적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자는 문헌을 분석하는 것 보다 유물 자체를 관찰하고 추론하는게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자신의 추론을 문헌을 통해 뒷받침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 주는게 보기가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유물 중심으로 분량을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2024/05/10

건널목의 유령 - 다카노 가즈아키 / 박춘상 : 별점 2점

건널목의 유령 - 4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난 사회부 기자였던 마쓰다는 지금은 여성 잡지 계약직 기자로, 편집부에서 맡긴 '심령 특집' 기사 취재에 나섰다. 열차 건널목 사진에 찍힌 유령의 정체와 진상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취재를 통해 여성은 광역 폭력단 반도파의 사주에 의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라는게 밝혀졌다. 거물 정치가 노구치 스스무에게 상납된 뇌물이라서, 입막음을 당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피해자 신원은 밝히지 못했고, 살인사건도 범인 시마지가 급사하여 종결되었다. 시마지 외에도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관계자들이 잇달아 사망했고, 마쓰다는 용한 영매의 도움으로 '쓰구미노'라는 지명을 알아내어 그녀의 신원을 밝히는데 성공한다...

"제노사이드"의 작가 다카노 가즈아키의 11년만의 신작. 광역 폭력단과 부패한 정치인이 엮인 스캔들을 소재로 한, 약간의 사회파 분위기 물씬나는 취재 수사극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건널목에 나타나는 유령이 누구인지?를 추적해나가는 취재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경찰이 아닌 기자 신분으로, '취재'라는 활동을 통해 얼마나 진상에 가까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캬바쿠라를 탐문하여 그녀와 동거했던 종업원 에미를 찾아내고, 에미를 통해 옛 집 주소를 알아내어 클럽과 거주지가 모두 폭력단 반도파와 연관되어 있다는걸 떠올리는 식으로요. 또 옛 집에서 발견되었던 피해자 어린 시절 사진의 확대 및 가공 작업으로 배경 건물에 적힌 이름을 알아내어 조사하는건 사진 전문가가 있는 잡지사에 딱 어울리는 수사 방식이었다 생각됩니다. 사회부 기자 시절, 그리고 현재의 잡지사 등 모든 연줄과 방법을 동원하여 단서를 그러모으는 묘사도 현실적이면서 설득력 넘쳤고요.
'유령'이 된 피해 여성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몸을 팔았다는 등의 충격적인 이야기도 사회파 분위기에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건널목의 유령이 진짜 유령이었다는 진상은 황당했습니다. 현실감넘치는 수사극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요. 유령이 된 그녀가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복수에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는지도 설명하지 못하고요. 유령으로 대충 수습하지 말고, 미쓰다 신조의 작품("노조키메" 등)이나 "전기인간의 공포"처럼 최대한 추리를 통해 괴사건과 심령 현상을 설명해주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유령과 함께 살았던 접대부 에미가 건네준 종이접기 - 피해자가 가르쳐 주었다는 - 와 철도 건널목의 위치 - 그녀 고향으로 향하는 길 - 를 단서로 활용하여 '쓰구미노'라는 지명을 끌어내는 식으로요.
같은 이유로, 취재 과정에서 벽에 부딪힌 마쓰다가 영매의 도움으로 그녀의 고향과 신원을 알아내는 부분도 영 별로였습니다. 유령의 등장부터가 실망스러운데 영매라니! 앞서의 설득력넘치는 취재와 수사를 모두 걷어차버리는 설정이에요. 영매가 이리 용하다면 개인 돈과 시간까지 써가며 취재를 행한 마쓰다의 노력은 무의미한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영매의 등장과 뒤이어 진짜 유령이 나타났을 때의 묘사도 없느니만 못했습니다. 차라리 무섭기라도 했다면 조금 나았을텐데, 그렇지도 않았고요.

유령이 된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게 왜 이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고, 부패한 정치가와 폭력단 조합과 성상납이라는 소재도 지금 읽기에는 너무나 낡았습니다. 2020년대 발표하려면 최소한 비트 코인 정도는 가지고 왔어야지요. 진부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05/08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1 - 아라키 히로히코 : 별점 2.5점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1 - 6점
아라키 히로히코 지음/문학동네

애니메이션을 보고 뒤늦게 찾아본 원작.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3작품 - "고해소", "무츠카베자카", "부호촌" - 외에 "밀어해안"과 아주 짤막한 소품인 "키시베 로한 구찌에 가다"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밀어해안"은 전복을 밀어하다가 생명을 잃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몰리는 이야기입니다. 캐릭터와 잘 어울렸어요. 특유의 작화도 좋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야기에서 위기 상황을 모두 '헤븐스 도어'를 활용해서 간단하게 빠져나가는건 시시했습니다. 공들인 설정에 비하면 지나치게 쉽게 간 느낌이에요. '헤븐스 도어'가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기까지 한다는건 억지스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키시베 로한'이나 '스탠드 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과 출판물을 비교해서 생각해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만화 버젼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시각 테러에 가까웠던 색감의 애니메이션보다는, 흑백의 만화 작화가 작품에 더 잘 어울렸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괴상하다면 괴상한 패션과 헤어스타일도 만화에서는 크게 이질감을 느끼기 어려웠고요.
물론 각종 음향 효과와 성우들의 연기 덕분에 서스펜스, 스릴은 애니메이션 쪽이 더 나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무츠카베자카"에서 시체를 숨기는 장면이라던가, "부호촌"에서 예절 승부를 펼치는 장면은 확실히 애니메이션이 괜찮았어요. 애니메이션도 흑백으로, 아예 거친 펜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작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후속작은 그렇게 제작되기를 기원합니다.

2024/05/06

04.30 ~ 05.05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삼성 - LG 홈 - 원정 5연전
성적 : 3승 2패

좋았던 점
  • 곽빈 선수 첫 승, 브랜든 선수 복귀와 최원준 선수 쾌투로 안정을 찾아가는 선발진
  • LG전 연승

나빴던 점
  • 실책에 이은 실점의 반복
  • 압도적인 최하위 외국인 타자 라모스 선수
  • 김재환 선수의 깊은 침체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과거 싸대기 동맹(?)은 어디갔는지, 상승세의 삼성에게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며 좋지 않게 출발했지만 주말 LG전 연승으로 한 숨 돌린 한 주였습니다.
삼성전 루징의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든 선수 경기에서의 실책 퍼레이드와 원태인 선수에게 꽁꽁 묶인 타선 탓입니다. 최원준 선수도 두 경기 연속 잘 던져주었지만 타선이 4안타밖에 기록하지 못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지요. 중심 타선 중 한 명만 터져주어도 좋을텐데 올 시즌은 단체로 삽을 푸는 경기가 많습니다. 기복이 너무 심해요. 타 팀처럼 외국인 타자 덕을 보지도 못하고 있고요. 이래서야 작년의 로하스 선수와 재계약하는게 훨씬 나았을거에요. 이런 타선 침체에도 곽빈 선수 경기를 잡은건 그야말로 천운이었습니다. 올 시즌 대 삼성전 전적이 심하게 좋지 않은데, 이건 코칭 스태프에서 조치를 취해줘야겠죠.

반면 뒤이은 LG전은 모두 땜빵 선발(?)이 등판했고, 심지어 토요일 경기는 주전 야수들마저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두 경기 모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째 작년과는 반대로요. 승리의 이유는 테이블 세터진, 하위 타선의 분전과 실책이 없었던 덕분이 컸습니다. 중심 타선에 위치한 양의지 선수의 활약도 좋았고요. 두 경기 합쳐 10이닝 이상을 나누어 책임지며 2승, 2홀드, 2세이브를 거둔 계투진의 역할도 빼 놓을 수 없겠지요. 이병헌 선수가 연투로 멀티 이닝을 소화하는 등 무리가 있었지만, LG전은 무리를 좀 해서라도 잡아내야 하는 경기가 맞습니다. 일요일 우천 순연되어 휴식을 취할 시간을 다행히 벌기도 했고요.

그러나 타선보다는 투수진, 그것도 계투진 힘으로 버티는 현 상황이 길어지는건 분명 문제입니다. 이대로 땜빵 선발이 한 주에 두 경기나 등판할 수는 없습니다. 알칸타라 선수의 공백이 메꾸어질 향후 몇 주간은 최준호 + 김유성 선수를 묶어서 한 경기를 가져가는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기거나 지는 경기는 필승조를 내지 말고, 별로 쓰임새도 없는 야수를 내리고 중간 계투를 보강해야 하는건 물론입니다. 김동주 선수와 김호준 선수의 콜업이 있었는데, 잘 운용하면 좋겠네요.
또 소중한 선발 투수들이 이닝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서는 실책을 반드시 줄여야 합니다. 올 시즌은 실책이 전염되듯 이어지는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번 주는 키움, KT 상대의 원정 - 홈 6연전입니다. 비로 귀중한 휴식을 얻은데다가 모두 서울 경기라는게 좋네요. 모두 중요한 경기지만 곽빈, 브랜든, 최원준 선수가 등판하는 키움전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키움도 에이스 헤이수스 선수가 등판하지만 시즌 초보다는 하락세이니 꼭 잡아내야 해요. 그래야 땜빵 선발 등판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KT 상대로 여유를 가지고 승부를 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번 주 예상(이라고 쓰고 본 뜻은 기대)은 3승 3패입니다. 언제나처럼 무리하지 말고,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허슬~ 두!!

2024/05/05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이장주 : 별점 2점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4점
이장주 지음/사람의무늬

제목 그대로 우리 역사 속 수학에 대해 소개해주는 수학사 서적. 조선 이후 역사 속 유명 수학자를 소개하는 1부와 삼국시대부터 수학을 통해 이루어진 여러가지 성취를 알려주는 2부 구성입니다. 이를 통해 서양 중심의 수학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옛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는걸 알려줍니다.

1부는 세종대왕이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실제로 수학 서적을 펴내거나 수학 관련 활동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역관 등 중인 계층이 수학을 공부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세종이 공자의 말을 빌어 수학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수학적인 사고가 위대한 사상과 발명의 큰 축이자 기초이니, 위대한 발명가가 수학자이기도 했다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헤이그 밀사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이상설이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구한말에서 개화기에 이르는 시기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수학 교육과 보급에 노력했다는건, 그가 얼마나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지요. 확실히 당대 조선 제일의 천재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나 봅니다.
2부는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과 여러가지 문헌을 통해 우리 수학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 알려주며, 문헌에 소개된 문제들을 현대적으로 풀어 소개해줍니다. 덕분에 함께 따라 푸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죠.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신라 포석정의 주사위 주령구에요. 6개의 사각형 면과 8개의 육각형 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로, 굴려서 나온 벌칙을 따라 해야 한다는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두 종류 이상의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꼭짓점에 모인 면의 배치가 서로 같은 준정다면체'로 각 면의 넓이가 모두 동일하다고 합니다! 주사위는 모든 면의 확률이 공평해야 하지만, 애써 14개의 면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을텐데 이를 적용한 주사위를 놀이기구로 썼다는건 신라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일 겁니다. 지금도 이를 손으로 만드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조선 시대 수학 서적을 통해, 당시에 어떻게 방정식과 제곱근을 푸는지를 알려주는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이치에 맞게 풀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도판도 충실합니다. 청소년용 도서답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2부에서 문체가 들쭉날쭉한건 아쉬웠습니다. 3인칭으로 '소개'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1인칭으로 강의하듯 문체가 바뀌는 부분이 있는데 거슬렸어요. 계속 출간되려면 교정이 필요해보입니다.
역사 속 수학을 바라보기에는 내용 구성이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20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신라 이야기 약간 외에는 전부 조선의 이야기라면 '우리 역사 속'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애매하잖아요? 그나마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역사 속 수학 소개보다는 수학 문제 풀이의 비중이 높아지고요.

그래도 청소년들이 가볍게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라고는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5/04

설계자들 - 김언수 : 별점 1.5점

설계자들 - 4점
김언수 지음/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아 출신 래생은 설계자들의 설계를 수행하는 암살을 업으로 삼고 있다. 래생이 속한 도서관이 신흥세력 한자에게 서서히 밀려나는 와중에, 설계자 중 한명인 미토를 만났다. 그녀는 과거 설계 탓에 부모님이 죽고 동생은 불구가 된 것에 대한 복수로 설계자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려고 비밀 장부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래생에게 한자와 도서관의 비밀 장부, 서류를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다...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이라는 목록을 소개해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 중 유일한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서 관심을 두고 있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래생'이라는 시적인 이름의 암살자가 암살 대상자인 '장군'과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설계자의 명령을 어긴 동료 '추'와 술잔을 나누는 장면, 래생을 노린 흑막 미토 자매와 처음 만나는 장면, 최고의 암살자 '이발사'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 상대편 보스인 '한자'와 담판을 지으며 생명을 내 놓는 장면 등에서 선보이는 묘사, 분위기는 굉장히 멋드러집니다. 음모와 살인이 난무하는데도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게 인상적이에요. "잭 리처" 시리즈와 같은 미국식 범죄 스릴러는 '화끈함'을 강조하는 선명한 색채의 팝 아트라면, 이 작품은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흑백 수묵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독특함 때문에 타임지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나 싶네요.
애완동물 화장장에서 암살한 사체를 태워 은닉한다는 설정에 대한 묘사도 좋았어요. 화장장 주인 털보가 세 딸의 아버지로 생활고를 겪고 있으며, 사체를 태우기 전에 나름의 제사를 진행한다는 기묘한 현실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위기 외에 건질건 별로 없습니다. 기본 설정이 굉장히 유치하고, 내용이라고 부를만한게 없기 때문입니다.
기본 설정은 기본적으로 '설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완벽한 설계를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설계대로 암살을 실행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래생이 속한 '도서관'의 관장이 '설계자들'의 사주를 받아 암살을 자행하는 조직의 우두머리였고, 그 자리는 지금 관장의 후계자였던 한자가 세운 회사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유치하지요? 차라리 대 놓고 이건 현실이 아니다, 만화와 다를게 없다는 식으로 독자를 설득시키는게 차라리 나았을텐데, 앞서 설명드린대로 묵직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잡으니 굉장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협 영화의 탈을 쓴 예술 영화였던 왕가위의 "동사서독"이 떠오르네요.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고아 출신으로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다는 시니컬하고 허무주의적인 암살자 '래생', 설계자들에게 희생된 가족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설계일을 하면서 음모를 꾸미는 '미토' 등의 캐릭터도 비현실적이며 모두 다른 작품에서 너무 많이 봐서 신선한 맛도 없습니다. 대표적인게 반시연의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입니다. 해결사 출신 호우는 래생과 아주아주 흡사하고, 건방지고 무신경한 여성 캐릭터들 성격도 판박이였어요. 친구 추가 대상자 창녀에게 연민을 느끼고 살려주었다가 표적이 된다는건 "장미빛 인생"이고요. 고아들에게 살인 기술을 가르쳐 킬러로 키운다는 '시티 헌터' 류의 설정은 이젠 지겹습니다.

내용도 별다른게 없습니다. 대단한 실력자로 보였던 미토가 하는게 없는 탓이 큽니다. 그녀는 설계자 중 한 명으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설계의 세계를 없애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래생의 힘을 빌어 조직의 비밀 장부를 손에 넣는 것 밖에는 하는게 없습니다. 그것도 치밀한 설계가 아니라, 단순하게 정면으로 조직 금고가 있는 곳에 쳐들어가서 빼앗아올 뿐이며, 활용하는 방법도 일반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게 한다는게 전부입니다. 즉, '설계자'라는 명칭에 걸맞는 계획이나 설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400페이지 분량에서 래생과 세계관에 대한 설명에 절반 이상을 할애하고, 실제 미토의 계획이 진행되는 분량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뭔가를 풀어낼 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래생이 죽음을 택하는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죽는다고 미토 일당이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미토의 계획대로 법이 나서서 조직을 수사하고 심판받게 하려면, 그녀의 음모와 존재는 조직에게 발견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한자의 숨통이라도 확실히 끊은 것도 아니고.... 죽기 전에 새 옷을 사고 단장하는 등으로 분위기는 한껏 끌어올리지만, 이건 그냥 개죽음입니다. 작가가 분위기에 취해서 그냥 써내려간 느낌이랄까요.
시대에 뒤처진 도서관이 한자의 세력에 의해 몰락해 간다는 것도 너무 뻔한 이야기라 식상했습니다. 시대 흐름을 타지 못한 깡패들이 신흥 세력에게 무너져버린다는건 "영웅본색" 이후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었죠.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서구권에서는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겠지만, 우리 시각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독특함을 불러 일으킨 요소를 걷어내면 뻔한 설정과 이야기에요.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05/03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미쓰다 신조 / 권영주 : 별점 2점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4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기소설가 도조 겐야가 괴담 수집 취재를 위해 향한 가가구시촌은 신사를 맡은 '백'의 '가미구시가', 뱀 신을 모시는 '흑'의 '가가치가'라는 두 가문 세력으로 나뉘어진 곳이었다. 도조 겐야가 도착한 직후,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수행승 젠토쿠 도사가 교살당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가가치가 어른들이 잇달하 살해당했다. 사체는 모두 허수아비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건들이 일종의 밀실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탓에 수사는 미궁에 빠졌지만, 도조 겐야는 추리쇼를 펄쳐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데....


"처음부터 생각해 보지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세상의 모든 일은 흑백을 명확히 가릴 수 있는게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안 돼."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제 1작. 시리즈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읽고나서 14년만에 읽게 되네요. 
550페이지를 넘기는 대장편으로 일본의 괴담을 섬찟하게 그리면서, 괴담과 관련된 괴사건이 일어나지만 이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추리해서 해결한다는 아이디어를 잘 살린 작품이지요. 아이디어도 좋았지만 전개와 설정 모두 나무랄데 없습니다. 후속권이 계속 이어지는 인기 시리즈가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일단 미쓰다 신조 작품답게 괴기 현상에 대한 묘사가 좋습니다. 어린 시절 렌자부로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렌타로가 사라졌던 사건이 특히 굉장했어요. 귀기어린 구구산의 분위기, 기묘한 계단을 통해 이어지는 당집과 지하실, 뒷 계단을 통해 나왔을 때 뒤를 쫓아온 괴이 등이 렌자부로의 시점으로 설명되는데, 한 편의 괴담으로도 완벽한 수준이었습니다.

오래전 벌어졌던. '신령 납치'라는 소문이 파다했던 시즈에 실종 사건은 '시즈에가 스스로 몸을 숨겼던게 아니었을까?'라는 추리에서 시작해서, 마을을 덮친 괴이한 연쇄 살인 사건까지 추리해 내는 도조 겐야의 추리도 볼거리입니다. 등장하는 괴담, 괴이 현상에 가까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수수께끼 중 주요한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지요가 지장갈림길에서 목격했던 사기리 생령의 정체는?
  • 누가 숨어있기 힘들었던 나루터에서 가쓰토라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 구니하루 찻잔에 독을 넣고, 잠깐 사이에 피해자를 허수아비처럼 꾸민 방법은?
  • 기누코를 살해하고 오솔길에서 사기리, 렌자부로, 도조 겐야 눈을 피해 달아난 방법은?
이에 대해서 도조 겐야는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추리를 내 놓고, 실패를 반복하는데 왠지 모르게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 놓는 추리들도 아예 말이 안되지 않고요. 예를 들어 맨 처음 '범인은 사기리 할머니의 시종인 구로코다!'라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구로코는 젠토쿠 도사 범행 당시 무신당 안에 있었고, 구니하루 범행 때에도 현장에 있었으며 맨 처음 장소를 이탈했기에 옆 방에 숨어들 수 있었고, 기누코 사건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터부시하는 허수아비님 속에 숨어 렌자부로의 눈을 피했으며, 이는 구로코가 마을 사람이 아니어서 가능했다는 등의 내 놓는 근거 역시 꽤 탄탄한 편입니다. 이는 구로코의 정체는 렌자부로의 형 렌지로라는 추리로 이어지고요. 이 역시 나름대로 근거를 잘 제시해줍니다.
구구의례라는 의식을 행하며 할머니가 조제했던 약을 먹은 사기리가 좌반신에 마비가 남고 잘 걷지 못하게 된걸 보고, 그녀가 뇌경색에 의한 시야협착 증세를 가지고 있어서 왼쪽을 돌아볼 때 뒤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추리, 그리고 범인이 사기리의 쌍둥이 언니 사기리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처음부터 사기리는 2명이 아닐까라는 단서를 계속 던져주고 있기도 하고요. 애초에 도조 겐야의 취재 노트, 렌자부로의 수기와 함께 작품을 전개하는 축인 '사기리의 일기'가 주인공인 동생 사기리가 아니라 언니 사기리의 일기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모든게 허수아비 속에 숨어 있었던 사기리 시점이었던 거지요.
아울러 언니 사기리가 모든 범행을 허수아비 속에 숨어서 행할 수 있었던건, 그녀가 구구의례 뒤 허수아비님과 같은 산신님이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핵심 트릭이야말로 괴담과 추리가 잘 결합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이외에도 젠토쿠 도사를 살해한 범행은 이모 사기리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서 특별한 수수께끼가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다른 범인이 있었다는게 드러나며 이 사건에서의 목격 증언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잘 짜여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작답게 부족한 부분도 느껴집니다. 일단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상당히 지루합니다. 가미카쿠시 촌을 양분하고 있는 흑, 백 세력의 필두 가가치가, 가미구시가 양 가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가족 관계를 엄청나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문제는 이 설정은 미쓰다 신조 작품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신선하지도 않다는 점입니다. 
우선 '뱀 신'을 모시면서 떠받드는 가가치가의 묘사는 "백사당", "사관장", "흉가" 등 다른 작품 속 가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가치가 무신당에서 행해지는 의식 역시도 비슷하고요. 
물론 이건 이 작품이 작가의 초기작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다소 부당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불필요한 내용이 과하다는건 분명합니다. 마을 이름의 유래 등을 통한 마을 마귀 신앙 설명처럼요. 사건과 별로 관계가 없는 부분을 모두 쳐 내었더라면, 200페이지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을겁니다. 

도조 겐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외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온 긴다이치 코스케와 별다를게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만화적으로 독특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이렇게 무색무취한 것도 문제네요. 게다가 괴담을 무척 좋아한다는 설정은 관련된 설명이 늘어지게 만들 뿐이라 오히려 감점 요소였다 생각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사건은 풍성하고,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는 후더닛 측면으로는 볼만하나 본격 추리물에서 가장 중요한 트릭면에서는 아쉽습니다.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던 허수아비 속에 숨는 트릭인데, 이는 이미 도조 겐야로부터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렌자부로 등이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강하게 부인해서 흐지부지 넘어가버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극단적 상황에서 심리적 거부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던것 아니었을까요? 렌자부로와 마을 사람들 의견으로 불가능하다고 쉽게 단정지을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설령 도죠 겐야는 그랬다쳐도, 경찰이 이를 쉽게 납득하고 넘어간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사기리가 떠내려보낸 주물을 쌍둥이 언니가 몰래 다시 어깨에 얹은 이유라던가, 기타 등장하는 괴이와 괴담 모두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렌타로 실종 사건입니다. 할아버지가 찾으러 갔을 때 사당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도조 겐야의 추리는 그럴싸 했지만, 누가 왜 렌타로를 납치했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으니까요. 이도저도 아니게, 어정쩡하게 정리된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아이디어는 돋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어차피 같은 설정이라면 "백사장", "사관장"같은 후기작을 읽는게 더 낫습니다. 외딴 지역에 전승되는 전설, 저주와 엮인 사건에 대한 추리 소설이라면 "흑사의 섬"도 나쁘지 않고요.

2024/05/01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4 - 토마토수프 / 문기업 : 별점 2점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4 - 4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댐피어는 데이비스 선장을 떠나 스완 선장의 배 시그넛 호로 옮겨 탔다. 멕시코 일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별 수확없이 몇개월을 보내다 말라리아에 걸렸고, 링로즈는 식량을 구하려다가 스페인 군에게 죽었다.
멕시코를 떠나 동인도 제도로 향한 일행은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도착했다. 독립 왕조를 유지하던 민다나오 술탄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맞서기 위해 댐피어 일행의 배와 대포를 원했다. 풍부한 식량, 섬의 환대에 일행은 남기로 했지만 댐피어는 영어로 쓰여진 수상한 문구 - 그들은 모두 도둑이다 - 에 미심쩍어했다.
반년의 체류 기간 동안 스완 선장은 섬에 푹 빠져버렸고, 결국 사략선 활동을 계속하려는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켜 선장과 몇몇 선원들을 두고 섬을 떠났다.
댐피어는 해적질을 하기 위한 은둔처를 요구받았고 캄보디아 풀로콘도르 섬을 제안했다.


4권은 이전 권들과는 다르게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동인도 제도를 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대항해 시대를 무대론 한 던전밥' 느낌이었던 1~3권보다는 확연히 재미가 떨어집니다. 가장 큰 장점이었던 새로운 장소와 문화, 먹거리에 대한 소개가 줄어든 탓입니다. 특히 새로운 먹거리 소개가 부실합니다. 앞부분의 쥬피시를 이용한 민스파이는 그냥 물고기 파이이며, 옥수수가루로 만든 푸딩도 그리 특별하지 않지요. 새로운건 이야기 절반 정도가 경과한 시점에서야 처음으로 '빵나무 열매'가 소개될 정도입니다. 마지막 민다나오 섬 탈출 직전의 멧돼지 요리는 그냥 bbq일 뿐이며, 구아바나 망고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이라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민다나오' 섬에서 빈랑, 사고 등이 소개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제목부터가 '맛있는 모험'인데, 맛이 없어어야 되겠습니까.....
또 댐피어가 병에 걸리고 링로즈가 죽으며, 민다나오 섬에서 기묘한 탈출과 그 이후 면허도 없는 사략선 생활은 이전과 다르게 무겁고 심각해서 이전 권들에서의 느슨하며 여유로왔던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 단점도 큽니다.

물론 아예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대항해시대 당시의 동인도 제도, 특히 민다나오 섬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볼 만 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내용이었으니까요. 관련된 설명도 충실한 편입니다.

새로운 먹거리와 요리도 양이 문제지 소개 자체는 재미있어요.
이 중에서는 사고 요리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요.
구아바 크리스마스 푸딩은 Panpanya의 "구야아바노 홀리데이"가 떠올랐고요.

하지만 앞서의 단점에 더해, 특유의 둥글둥글한 작화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다음 목적지인 풀로콘도르 섬은 궁금한 만큼, 다음 권은 구입해 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