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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 루스 렌들 / 홍성영 : 별점 3점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 6점
루스 렌들 지음, 홍성영 옮김/봄아필

루스 렌델이 쓴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중심의 단편집입니다.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무언가에 몰입, 집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상은 열쇠, 시계, 저택과 같은 사물도 있고, 여장이나 동물로 변장하는 등의 독특한 취미도 있지요. 주인공들은 결국 그 때문에 파국을 맞게 되는데, 파국을 맞는 장면이 마지막 몇 줄로 정리되는 반전 묘미가 빼어난 작품이 많습니다. 등골 서늘한 반전을 짤막한 문장으로 펼쳐보인다는 점에서 '기묘한 맛' 장르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정교하게 계획된 범죄가 등장하는 "휘파람 부는 남자"와 "늪지 저택, 펜 홀"은 등장 인물들 심리와 주변 배경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잘 짜여진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었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시대에 조금 뒤처진 느낌도 들고, 반전도 뻔한 작품들이 많다는건 아쉽습니다. 대표적인게 표제작인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겠지요. "헤어가 살던 집", "아버지의 날" 등도 예상하기 쉬운 내용이었고요. 

하지만 뻔하더라도 독자를 몰입시키는 구성과 전개, 묘사가 빼어나서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닌 거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남성 공포증이 있는 여자와 장난삼아 여장을 즐긴 남자가 겪는 파국을 그린 작품.

원제는 The New Girlfriend인데, 영화 때문에 제목이 바뀐걸가요? 여튼 여장한 데이빗을 진짜 여자로 생각하는 크리스틴의 심리 묘사가 볼거리였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데이빗이 크리스틴과 함께 하기(?) 위해 남자로 돌아오자, 그를 살해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크리스틴이 남편 외 남성에 대해 갖는 혐오가 앞서서 상세하게 설명된 탓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찾아보니 영화는 기본 설정만 따왔을 뿐,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각색했더군요. 저는 영화 결말보다는 원작 결말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푸른 히아신스 향기" 

아내 캐서린이 불륜 뒤 임신하자 이혼하고 40년간 해외를 떠돌던 남자가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 번 캐서린을 찾아 나섰고, 결국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남자는 다시 그녀를 찾아가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나 그가 죽인건 알고보니 그녀의 딸이었다.

남자가 캐서린에게 집착하는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일품입니다. 이를 통해 그녀에 대한 살의와 살인이라는 직접적 행위가 설명되고요. 죽인 여자가 캐서린이 아니라 그녀의 딸이었다는 반전 역시 대단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과수원 울타리"

나는 공습을 피해 엘라 이모가 사는 인치필드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엘라 이모가 남편이 징집된 틈에 병가를 받고 돌아온 조종사 데니스 클리프턴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걸 알아챘다.
밤에 총 소리를 들은 어느 날 아침, 나는 나무에 매달린 허수아비를 데니스 클리프턴의 시체로 오인해 소동을 일으킨 뒤 런던으로 쫓겨났다. 엘라 이모도 아이를 낳다가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곳에서 머리에 산탄총을 맞은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 작품도 '나'의 심리 묘사가 빼어난 작품입니다. 또 어린 시절 추억을 회고하면서 그려내는 영국 시골 풍경에 대한 묘사도 좋고요.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불륜으로 긴장감을 싹 틔우고, 이를 목 매달린 시체 (허수아비)로 터트리는 전개도 거장답습니다.

그런데 에필로그처럼 그려진 마지막 반전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발견된 유골은 데니스 클리프턴일겁니다. 그렇지만 데니스 클리프턴은 전시에 병가 중인 군인이었습니다. 그가 실종된게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을까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불륜을 알고 입을 맞췄다고 하더라도 전시라는 상황이면 문제가 되었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헤어가 살던 집" 

살인 사건이 일어난 탓에 싸게 나온 집을 구입한 노먼은 아내 리타와 함께 이사왔다. 10여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계속 신경을 쓰던 노먼과 리타는 욕실 창문이 자꾸 열리는걸 가지고 다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리타를 거의 죽일 뻔 한 노먼은 다시 이사를 마음먹은 뒤, 헤어 사건이 알고보니 자기와 같이 욕실 창문이 열린 탓이라는걸 알게 되는데...

스트레스와 긴장이 쌓이면 사소한 일로 살의가 폭발하는 심리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일상 속 이야기처럼 그려내었다는게 특징입니다. 살의가 우리 삶에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고 할 수 있네요. 일상 속 사소한 문제로 폭발한 살의라는 점에서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활자 잔혹극 (유니스의 비밀)"과도 비슷하고요.

하지만 전개와 결말은 다소 뻔했습니다. 별다른 반전도 없고요. 창문 문제가 살의를 촉발할 수 있다는걸 이웃은 알고 있던걸로 보이는데, 이웃에 대해서 반전 형식으로 풀어내었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뇌물과 부패" 

니컬러스는 여자에게 홀려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엄청난 덤터기를 쓸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아버지를 해고했던 아버지 회사의 보스 소렌슨이 식사비를 대신 지불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소렌슨이 아내가 아닌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걸 목격했던 탓으로 여긴 니컬러스는 식사비를 돌려주기 위해 다음날 소렌슨을 찾아갔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니컬러스를 협박범, 그리고 바보 취급을 할 뿐이었다.

며칠 뒤, 소렌슨의 아내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 소렌슨은 식당에서 그를 목격했던 니컬러스만이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상황에 처하는데....

소심한 소시민이지만 자존심만큼은 갖춘 니컬러스가 펼치는, 자신을 무시했던 소렌슨에 대한 복수극입니다. 독자가 니컬러스에게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니컬러스가 울분을 쌓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그려낸 전개가 돋보입니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빌드업'이 완벽해요. 이러한 빌드업을 완성하는 마지막 니컬러스의 한 마디, "보지 못했습니다. 절대로요."가 작품의 백미고요. 소시민의 잔혹 복수극이자 일상계라는 독특한 작품의 정체성도 인상적입니다.

식당에서 소렌슨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조금은 작위적인 설정은 아쉽지만, 그 외에는 단점을 찾아보기 힘든 수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휘파람 부는 남자"

매뉴얼 밑에서 페인트 공으로 일하는 제레미는 영국인 불법 체류자이자 좀도둑으로, 일하던 중 모르는 집 열쇠를 줍게 되었다. 이 집을 털어서 인생 역전을 꿈꾼 제레미는 집 열쇠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은 매뉴얼의 본가였고, 잽싸게 도망치던 제레미는 이 모든게 매뉴얼의 복수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매뉴얼이 결혼할 여자인 루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게 들켰기 때문이었다...

허술해 보이는 쿠바 이민자가 영국인 좀도둑을 가지고 놀면서 제대로 복수하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몇 줄로 드라마틱한 반전이 완성되는, 오 헨리 스타일의 반전물이기도 하고요. 반전을 통해 매뉴얼이 이상하게 돈이 많았다는 복선도 회수되지요. 

개인적으로는 호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느낄 수 없는 영국인 제레미가 죗값을 치룬다는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만큼 밉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묘사력은 정말이지 부럽네요.

그런데 제레미가 집을 터는 동안, 제레미 짐 속에 마약을 숨긴 뒤 세관에서 걸리게 만든것 자체는 엄청난 복수이기는 합니다만 너무 복잡하고 거창한 복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제레미가 집을 털 생각을 하지 않았거나, 집 주소를 알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물론 매뉴얼은 다른 복수를 준비했겠지만, 여러모로 손이 너무 많이 가는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나팔꽃 시계" 

트릭시는 데본셔에 사는 친구 시빌에게 놀러갔다가 그곳 갤러리인 아티팩트에서 충동적으로 나팔꽃 시계를 훔쳤다. 시계는 그녀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고, 시계를 알아본 친구 미비마저 사고를 위장해 살해했다. 시계를 몰래 돌려 놓으려는 시도마저 실패하자 트릭시는 순간적 광기로 시계를 부숴버리는데....

특정 물건에 대한 충동적인 집착이 파국을 불러온다는 심리 드라마입니다. 주인공이 노인이며, 시계 때문에 그녀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파국이 일상 속에서 전개되는 일상계 속성이라는 점을 주목할 만 합니다. 마지막에 쓰러진 트릭시가 "똑딱똑딱, 나팔꽃 시계 소리"라고 말하는 장면도 대단했어요. 그녀 정신이 붕괴했다는걸 이렇게 한 마디로 표현하는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전개와 결말은 다소 뻔하다는 단점은 어쩔 수 없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늑대탈" 

'나'는 임박한 결혼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연극에 쓰는 늑대탈을 쓰면 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걸 알아챘다. 같은 취미를 숨기고 살던 어머니와 함께 하게 되자, 늑대탈을 쓰는 행위와 늑대가 될 때 야생으로 깊이 들어가던 행위는 점점 폭주하게 되었다. 마침내 약혼녀 모이라가 양가죽 외투를 입고 찾아온 날, 야생동물 두 마리가 양을 덮치고 만다....

두 마리의 야생 동물이 바닥에 쓰러진 양을 덮쳤다는 것이다. 는 마지막 문구는 섬뜩했습니다. 전형적인 '기묘한 맛' 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모이라를 먹은 건지도 살짝 궁금해지고요.

그러나 정신병자가 쓰는 글이라는걸 계속 알려주고, 늑대탈을 쓰면 늑대가 된다는 행동 묘사가 상세해서 반전의 묘미는 약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분명 어딘가에서 읽었던 작품이라 신선함도 부족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늪지 저택, 펜 홀" 

프링글과 친구들은 아버지 친구 리던 씨가 사는 늪지 저택 펜 홀 근처로 캠핑 여행을 떠났다. 리던 씨는 저택 관리를 위해 모든걸 걸었지만 돈과 인력,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리던 씨 아내 플로라는 저택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물건에만 집착했다. 때문에 저택 내부는 쓰레기장같아 보였다.
태풍이 불어 포퓰러 나무가 쓰러진 다음날, 나무 구덩이에서 오래된 유물이 발견되고 이를 좋아하는 플로라는 발굴에 나섰다. 그러나 리던 씨가 해체하던 쓰러진 나무가 구덩이로 떨어져 그녀는 깔려 죽고 마는데...

서로 다른걸 원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사고로 죽어버립니다. 당연히 남편이 사고처럼 위장해서 저지른 범행이고요. 이렇게 내용은 굉장히 뻔합니다. 하지만 이를 어린 아이인 프링글 시점에서 은근히 드러내는 묘사만큼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직접적으로 죽이는걸 본건 아니지만,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을 묘사하는 식이거든요. 

그리고 본 편 이야기보다도 오히려 늪지 저택 펜 홀과 숲에 대한 묘사가 훨씬 굉장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작나무 줄기는 은색, 너도밤나무는 백랍색, 플라타너스는 회색과 노란색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굉장히 상세하면서도 맛깔나는 묘사였어요. 작가의 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버지의 날" 

테디는 처제 가족과 그리스 섬으로 여행왔다. 처제의 남편 마이클은 아내 린다가 아이들과 함께 자신을 떠나는걸 두려워하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이클이 아내를 처치하고 아이들을 독차지한다는 이야기인데, 절벽에 떨어질뻔했던 테디와 아내 앤의 사고를 묘사하여 이어지는 사고와 연결시키는 전개는 너무 뻔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가장 뻔한 이야기였달까요.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지만 이혼이 만연한 세상에 두려워하는 마이클의 강박증 설정은 괜찮았지만, 테디 시점에서 묘사해서 그렇게 극적으로 묘사되지는 못한 것도 아쉽고요. 더 광적인 에너지가 느껴졌으면 했는데, 지금의 작품은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본 탓에 조금 무미건조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케판다로 가는 초록길" 

나는 인기없는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 아서 케스트렐과 친구였다. 그러나 그가 발표했던 15권에 달하는 '칼리나스 연대기'는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아내 엘리자베스만 읽었을 뿐이었다. 아서는 어느날 '나'에게 런던 외곽선이 폐쇄되고 생긴 아름다운 산책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엘리자베스와 함께 산책을 나섰지만, 그가 이야기한 풍경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서는 혹독한 비평이 신문에 실린 뒤 자살을 택했다. 바로 그 날, '나'는 알 수 없는 사명감에 아서를 찾아왔다가 귀가하던 중 아서가 이야기했던 산책로를 발견하는데...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가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작가들이 꿈 꿔볼만한 일종의 판타지 작품. 장르 문학을 쓰는 작가에 대한 세간의 푸대접에 불만을 품고 쓴 글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서가 만들어낸 산책로의 아름다운 묘사가 빼어납니다.

하지만 다른 수록작들과 비교할 때 극적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특별한 반전도 없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5/02/23

아가페이즈 - 야마다 레이지 : 별점 3점

아가페이즈 6 - 6점
레이지 야마다 지음/세주문화

비쥬얼 록밴드 "에로스"의 리더인 미즈키 유리는 천재 기타리스트 및 작곡가로 언더그라운드의 카리스마로 까지 불리우는 인기인이지만 16년동안 자신이 호모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된 불량조직 카르마 레인의 리더 우즈메는 유리에게 연민을 느끼고 유리가 짝사랑하는 야구부 스타 카네다 토라키에게 사랑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유리를 도와주고자 한다. 

하지만 얇은 선수층과 콩가루같은 팀 분위기라는 악조건에서 큐세이 고교를 갑자원에 진출시키기 위해 홀로 팀에서 고군 분투하는 토라키를 위해 유리가 야구로 도와줄 생각을 하고 전설의 풍수사 "세이메이"를 찾아가게 되면서 부터 모두의 운명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풍수마구 5행 5종을 익히게 된 유리는 마구를 하나 던질때 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하나씩 잃게 된다는 계약을 하게되고 마구를 계속 던져간다. 기타 연주력, 작곡능력 등을 차례로 잃어가다가 최후의 마구 1개를 남기고 마지막 남은 계약대상인 유리의 목소리만이라도 지키기위해 우즈메와 토라키를 비롯한 팀원들이 힘을 합치지만 결국 지구대회 준결승에서 최후의 핀치에 몰린 유리는 토라키와의 대화끝에 마음을 정리하고 최후의 마구를 던지게 된다...

도대체 이 만화의 쟝르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인어공주에서 모티브를 얻은 비쥬얼 호모 열혈 고교야구 청춘 게이 애정 멜로 만화랄까요?

그동안 주류 만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모든 코드들을 조합해서 16세의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주면서도 실제적으로 드라마의 무대는 고교야구 지구 예선으로 설정하여 진행하는 엄청난(!) 만화입니다.

읽으면서 저는 아다치 테츠의 만화 "세븐틴 러브"가 일단 연상되더군요.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들과 그들의 앞뒤 가리지 않는 문란한 사생활, 거기에 현란한 대사와 독백이 난무하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제대로 된 어른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각각 어두운 가정환경과 주위 환경에 시달리며 여러 비정상적인 생활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도 비슷하네요. 그리고 대충 그린듯한 그림도요.

하지만 이러한 요소는 일부 막나가는 청춘물이나 성장물에서 끝없이 반복되어 왔던 점이라 이 작품만의 독특하거나 특별한 점으로 보기에는 힘듭니다. 결정적 차이점이자 이 작품만의 특징이 있다면 이른바 "청춘애정물"적인 성격이 강한 이 작품에서의 사랑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필연적인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풍수"와 "야구"라는 황당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매개체를 통해서 말이죠.

이 작품에서 이질적인, 제대로 된 어른이 유일하게 붙어있고 재능과 어느 정도 행복한 가정이 있는 존재인 토라키(와 토라키와 연결되는 야무) 만을 제외한다면 작품안에서 크게 진행되는 두개의 사랑의 흐름, 우즈메->유리->토라키->야무->유리 와 마츠오->다키니->류추다 라는 두개의 사랑 모두 당사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극으로 귀결됩니다. 첫번째는 주 당사자인 유리는 호모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특히 토라키) 노멀이라는 것 때문에, 두번째는 다키니의 죽음 때문에 당사자들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게 되지요.

또한 진정 자신에게 소중했던 모든것을 토라키를 위해 버린 유리의 경우를 비롯하여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풍수의 이론 (등가교환의 법칙?) 때문에 모두들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전개는 이들의 상처를 더욱 깊고 암울하게 합니다. 이렇게 흡사 인과율의 법칙처럼 정해진 파국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전개는 파국의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베르제르크"와도 유사한 전개로 비슷한 전율을 안겨다 줍니다.

혹시 어디서 본듯한 설정이라고요? 최관->현지->오혜성->엄지->마동탁 이 생각나지 않나요? 무엇보다 최근에 거의 찾아보기 힘든 주인공인 유리, 즉 오로지 사랑때문에 자신을 파괴해가는 모습은 흡사 엄지를 위해 장님이 되면서까지 시합에 져주기 위해 발광하는 오혜성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집니다. 그러나 오혜성과 미즈키 유리의 차이점은 오혜성은 사실상 더 잃을것이 없었지만 유리는 사랑을 위해서 가진 모든것을 잃게 된다는 것, 그리고 동료들도 결국 진출한 갑자원 1회전에서 엄청난 점수차로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모든것을 희생하여 진출한 갑자원 1회전에서 무참하게 패하는 큐세이의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당연했지만 너무나 어둡고 비극적인 끝맺음이었죠. 때문에 대충 그린듯한 그림체에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설정에도 불구하고 더 비장하고 더 암울한 이야기를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권에서 모든것을 잃게된 후 각자 스스로의 처지를 알게 되어 행복을 위해 다시 모인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기 파괴적인 유리의 마지막 피칭로 끝나는 8권정도에서 끝맺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후의 전개는 에필로그-후일담 형식의 후반 이야기가 너무 길어 상당히 처지는 편이라서요. 차라리 음악을 포기하고 말없는 풍수 마구 투수로 프로를 재패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데 음악에 대한 집념과 천재적인 음악성에 대한 묘사가 설득력이 부족해서 마지막 부분에서의 비장함이 약해 8권까지 꾸준히 달려주던 감성이 좀 무뎌지게 되거든요.

그래도 단점을 지적하기에는 너무나 독특한 고교 청춘 애정물이면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전편에 걸쳐 명장면과 명대사가 계속 등장하고 있으며 심각한 대사와 전개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특유의 개그와 과장을 계속 선보여서 이질적이고도 해괴한, 하지만 작품에는 너무나 어울리게 구성하는 센스는 놀랍습니다. 아쉽게도 야구만화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설정과 잘 조합된 마구의 특성과 던지는 법, 그리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라이벌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흡사 20여년전의 야구만화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더군요.

작품 자체도 스토리는 황당무계하지만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이 특출나서 몇번이고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굉장히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작품이긴 하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PS : 그림만 조금 더 좋았더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었을텐데 아쉽군요. 뭐 그나마 요새는 구하기도 힘든 절판도서가 되어버렸지만요... 

개인적인 명장면 베스트...최후의 투구를 앞두고 토라키와 유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너 이 시합전에 자신이 게이라고 얘기했어.. 대답해 유리... 너...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싸워온거냐..?"
"핫 핫 하" 
[물론이야...] "바보-" 
[아주 좋아하고 있어] "시시껄렁한 소리 다 듣겠다" 
[너는...] "미안하지만..." 
[나의 전부야..]"내 타입이 아니야"

2022/09/24

앨리스 살인게임 - 가코야 게이이치 / 김현화 : 별점 2점

앨리스 살인게임 - 4점
가코야 게이이치 지음, 김현화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량 부족으로 파국을 맞은 2061년의 지구, 하루는 돈을 벌기 위해 VR로 가상 현실 세계 '앨리스'에 접속했다가 정체불명의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 때문에 로그 아웃도, 다른 곳으로 이동도 불가능하며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시스템 컨트롤 불가 영역으로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피노키오'라고 불리우는 이 새로운 공간에서 가이드를 따라 목숨을 걸고 '빨간 새우의 집'에 도착한 하루는, 자기와 같이 끌려온 다른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죽을 때마다 집의 잠겨진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들은 마지막 생존자가 되기 위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가상 공간을 무대로 한 액션 스릴러입니다. '피노키오'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녀'는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도 있어서 약간의 추리물적인 성향도 갖추고 있고요. 

액션 스릴러적인 성향은 "빨간 새우의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강을 건널 때 그 편린을 살짝 보여준 뒤, 빨간 새우의 집 안에서 생존자들이 목숨을 건 생존 게임을 벌일 때 절정에 달합니다. 하루가 LK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그 중에서도 절정부이고요. 

여기서 가상 현실을 잘 이용한 두뇌 게임은 상당한 볼거리입니다. 하루가 시스템 내에서 아바타 외모를 다른 사람처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아낸 뒤 시체를 자기로 위장시키고, 공간에 자기처럼 보이는 영상을 투영한 뒤 급습한다는 등으로 꽤 그럴듯했어요. 

가상 공간 피노키오에 대한 진상도 신선했습니다. 앨리스 시스템 내의 다른 공간이 아니라, 앨리스에서 접속할 수 있는 또다른 가상 공간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현실에서 앨리스에 접속했을 뿐인 하루 등은 어떻게 피노키오에 접속할 수 있었나? 라는 수수께끼가 새로 불거지는데, 이는 하루가 앨리스 내에서 활동하는 인공지능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즉, 하루는 현실에서 앨리스에 접속한게 아니라, 앨리스에서 피노키오에 접속했었던 겁니다. '푸른 머리의 소녀'는 하루를 만들어낸, 진짜 현실의 인공지능 연구자였고요. 앨리스 안에서 인공지능을 만들어냈던건 현실 세계에서 대파국 이후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대신해 앨리스 안에서 생활할 인공지능이 필요했다는 거지요. 이렇게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려 했던 이유는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터무니없다는 점입니다. 극한의 상황에 밀어 넣지 않으면 본성을 알 수 없어서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특정 공간에 가두었다는 발상부터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런다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날리가 없지요. 설령 그렇다쳐도, 구태여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불필요한 설정들을 따 오면서, 이상한 공간에서 생존 게임을 벌이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생존 게임으로 알 수 있는건 가장 싸움을 잘하고 강한 인공지능이 누구인지일 뿐이니까요. 극한 상황이 필요했다면 앨리스 시스템 내의 문제로 시스템 컨트롤을 할 수 없는 특정 클러스터 - 현실의 무인도같은 - 에 갇히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충분했을 겁니다.
생존자들에게 '푸른 머리의 소녀'라는 수수께끼를 던져준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추리력은 인간 본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피노키오'를 가져다 붙인 것도 억지스럽고요. 

생존 게임도 앞서 소개했던 배틀 자체는 그럴싸하지만, 설정은 진부합니다.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는 탓입니다. 과묵한 전사, 쎈 언니, 이해심 높은 조력자, 양아치 (?) 등 등장 인물들도 진부한데다가, 설정상 오류가 크게 느껴집니다. 이 등장 인물들은 모두 앨리스 내부에서 활동할 인공지능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평범한 인물들이었어야 했습니다. 문신충 앗슈라던가, 사교성없고 폭력적인 LK는 인공지능 프로토타입으로는 지극히 비상식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테스트를 반복해서 하루에게 부담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스템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기화 후 업데이트된 버젼으로 테스트했다면 이전 히스토리를 알 수 없는게 당연할텐데요. 찬호께이의 "S.T.E.P"에서의 시뮬레이션처럼, 각 테스트는 모두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결과라는 설정이 더 이치에 맞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좋았던 아이디어와 설정에 기묘한 생존 게임을 더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 버린 작품입니다. 아이디어를 잘 살렸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은데 많이 아쉽습니다.

2005/06/24

제 6계명 - 로렌스 샌더스 : 별점 3.5점

제6계명 1 로렌스 샌더스/고려원(고려원미디어)

빙햄 투자기관의 조사원 샘 토드는 손데커 박사라는 인물이 백만불의 후원금을 얻기 위해 신청한 연구의 조사를 위해 오지와 같은 시골마을 코번으로 떠난다. 손데커 박사는 그가 운영하는 요양기관과 연구소만이 마을을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탓에 쇠락해 가는 코번 마을을 그나마 지탱하는 유일한 인물로 남다른 카리스마와 설득력을 지닌 천재였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토드는 그가 하는 연구는 세포의 노화를 유발하는 X라는 요소를 배재하여 인간을 불멸, 불사의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토드는 요양소에서 불분명하게 사망한 인물들이 여럿 있다는 것과 요양소에서 일하던 노인이 어느날 알 수 없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등 손데커 박사의 매력 뒤에 감추어진 수수께끼와 같은 여러 사건을 접한 뒤 박사와 그의 연구에 대한 의심이 깊어 가는데....


로렌스 센더스의 유명한 작품 "제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전에 이미 "앤더슨의 테이프"와 "피터 S의 유혹"이라는 작품 2개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특히 "피터 S의 유혹이)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고 시드니 셀던과 비슷한 통속소설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그래서인지 유명한 작품이고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헌책방 쇼핑 도중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물건이네요!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한번에 쭉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먼저 시니컬하면서도 냉정한 판단력의 주인공이 주로 탐문과 조사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과거 전성기 시절의 하드보일드 공식에 충실한 묵직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리적인 부분과 스타일까지도 거의 유사하더군요. 그러나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기존 하드보일드의 사립 탐정이나 형사와 다른 다른 특이한 직업의 탐정이 주인공일 뿐더러 의학 스릴러라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가 더해져서 현대적이고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그리고 하드보일드 분위기의 작품치고는 그다지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원래대로의 공식이라면 중요 증인들이 중간중간 계속 죽어나가면서 이야기가 연결되겠지만 이 작품은 중요 증인 한명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짐과 동시에 주범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한번에 죽어버린다는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내용 전개도 보다 깔끔하게 느껴졌어요.

미친 과학자가 불멸, 불사의 존재를 연구하다가 파국을 맞는다는 전형적인 줄거리 역시 나름의 과학적, 의학적 설득력을 지니는 요소들을 첨가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특히 미지의 세포 조직인 "X"라는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과정과 그 결과물은 나름 쇼킹합니다. 아주 옛날에 읽었었던 "엔젤딕"이라는 이현세 만화의 "미완의 변태"편의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이현세씨가 이 작품을 읽고 모티브를 얻었으리라는 강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복잡한 인간관계를 묘사함으로써 (물론 이러한 사소하고 큰 상관없은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가 재미있어서 그다지 늘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만) 소설이 필요이상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는 하며 제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적 묘사가 제법 등장한다는 것은 좀 아쉽네요. 뭐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어쨌건 결론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로렌스 센더스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전에 읽었던 작품들만 보더라도 실망스러운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글재주는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작품은 전작들의 아쉬운 부분을 거진 걷어내고 재미까지 덧붙여졌을 때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네요. 그야말로 포텐터진 유망주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또다른 걸작 시리즈라는 "대죄" 시리즈도 한번 구해봐야겠습니다.

PS : 저는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이 애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엔딩과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연상이네요...^^

2017/03/03

심연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홍성영 : 별점 2점

심연 - 4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오픈하우스

자기 자신을 속이는게 최고의 속임수지. 자신을 굳건히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 토스토옙스키. "악령"에서 표토르 스테파노비치 

빅터는 윌슨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세상은 나 덕분에 돌아간다는 음울하고 회한에 찬 윌슨의 얼굴 뒤에는 보잘 것 없고 멍청한 생각뿐이었다. 빅터는 그의 얼굴과 그 얼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저주했다. 아무 말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남은 온 힘을 다해 저주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의 범죄 소설입니다. 평범한 지역 유지 빅터가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펼쳐나갑니다. 조금 고급진 범죄, 장르문학을 다루는 출판사 오픈하우스의 버티고 레이블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심연"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에는 주인공 빅터가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살의를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건의 살인이 모두 '물'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읽어보니 독자를 심연에 빠트리겠다는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빅터와 멜라니, 두 주역의 심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탓이 크고요.
빅터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질책이나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딱히 너그럽고 관대해서 그런게 아닙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 까지는 아니라고 애써 위안을 삼으며 작은 마을 공동체 내에서 평판을 유지하는데 골몰할 뿐이지요. 결국 순간적인 분노로 찰리 드 리슬, 캐머런을 차례로 살해하고 마지막에는 아내까지 죽이지만, 이 모든건 먼저 이혼을 했다면 해결되었을 문제입니다. 결혼 생활에 별다른 애정이 느껴지지도 않는데 왜 이혼을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어요. 딸을 위해서 이혼을 하지 않는다던가, 이혼을 하면 지역 사회에서 매장을 당한다던가 등 설득력있는 이유가 등장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작중에서도 이혼은 별로 어렵지 않고 양육권 역시 빅터가 보유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설명되기까지 하는데 말이지요. 파국이 닥치기 전에 그것을 해결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데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비슷한 상황에서 아내가 이혼을 해 주지 않아 살의를 품는 "낯선 승객" 쪽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아내 멜라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돈으로 여유롭게 살면서 남편이 바로 옆에 있어도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데, 뻔뻔함이 도를 지나칩니다. 솔직히 이래서야 남편한테 죽어도 싸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게다가 찰리 드 리슬이 죽은 후 남편이 죽은 것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심지어 남편 돈으로 탐정까지 고용한 정신머리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에 대한 디테일하게 묘사는 읽는 내내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한마디로 발암유발 소설이랄까요.

재미도 별로입니다. 범죄물이기는 하지만 모든 범행은 우발적, 즉흥적이며 뒷수습은 운에 맡기는 부분이 많아서 짜임새가 낮기 때문입니다. 범행보다 심리 묘사를 디테일하게 그리는데 주력하고 있어서인데, 이러한 점에서는 "리플리"와 비슷합니다. 차이점이라면 빅터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정도고요. 빅터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도 분명한 애정을 보이거든요. 걸인 칼라일을 출판사에 잡역부로 고용한 것처럼요. 또 주변 평판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그것을 위한 배려 역시 아끼지 않습니다. 책 뒤 소갯글 - 사이코패스의 일상과 그의 머릿속을 소름 끼칠 만큼 담담하게 그려낸 걸작 - 은 제가 봤을 때 잘못 쓰여진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가 재미나 완성도에 영향을 끼치는건 아니기도 하지만요.
혹시 작가의 의도는 평범한 중산층이 급작스럽게 살의를 품는 과정을 그려서 충격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살인 전에 충분히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이혼)이 있었기에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그래도 캐머런의 사체가 발견된 이후 마지막 몇 페이지는 그런대로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야기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사람을 거북하게 만드는 묘사력은 발군으로 셜리 잭슨과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 정도지만, 불쾌하기만 할 뿐 그 외 다른 가치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여사님의 순문학스러운 작품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5/07/08

영국식 살인 - 시릴 헤어 / 이경아 : 별점 3점

영국식 살인 - 6점 시릴 헤어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병약한 워벡경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친지들을 초대했다. 초대된 사람들은 아들인 로버트, 가까운 친척이자 재무장관인 줄리어스 워벡, 로버트와 연인이었던 백작가의 딸 레이디 커밀라, 오래된 지인 카스테어스 부인, 그리고 워벡홀에서 사료를 연구하던 보트윙크 박사가 함께 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 차이, 로버트의 무례함 등 여러 이유로 참석자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던 중, 크리스마스 자정에 로버트가 모두의 앞에서 독살당하고 마는데...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누누이 이야기한 대로 저는 정통 고전물의 팬입니다. 허나 고전 퍼즐 미스터리의 팬일 뿐, 이른바 "영국식" 스타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신사 숙녀라 불리는 귀족과 부르조아들이 등장하여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유머로 예법이다 뭐다 하며 장황하게 기이한 가식과 가증을 떠는 분위기가 싫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잘난척이 보기 싫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피터경 시리즈 역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러한, 제가 싫어하는 정통파 영국식 스타일의 종합 선물 세트입니다. 무대부터 전통 있는 워벡 가문의 오래된 저택이고, 정통 영국식 추리소설답게 눈으로 고립된 클로즈드 서클 상황에 놓이거든요. 범행 현장에 있던 인물도 워벡 가문의 후계자, 가문의 친척인 재무장관, 오래된 친구인 정치가의 아내이자 부유한 숙녀, 후계자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백작 가문의 딸, 충직한 집사, 마지막으로 가문에 연구차 방문해 있던 보트윙크 박사라는 구성입니다. 귀족, 신사, 숙녀, 하인에 손님까지 정말 완벽한 구성이지요. 게다가 하나같이 영국식 귀족, 부르조아 예법에 쩔어 있는 건 물론이고요. 덕분에 첫 피해자로 로버트가 독살당했을 때에는 쾌재를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재수 없고 짜증나는 극우 파시스트 귀족 떨거지였으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건, 이러한 정통 영국식 스타일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재미있다는 겁니다. 영국식 스타일이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의 핵심 장치로 사용된 덕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집사 브리그스가 자신의 딸과 로버트의 결혼 사실, 손자의 출생을 손님들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브리그스의 함구는 정통 영국식 부르조아 예법 덕분에 완벽한 설득력을 갖추었고, 사건의 동기, 전개, 결말이자 파국을 만드는 핵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 탐정역인 보트윙크 박사가 외국인이자 역사학자라는 설정도 뛰어납니다. 외국인이라는 설정은 영국식 관습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좌충우돌하며 깨닫는 과정과 사건의 핵심 동기가 과거 영국에 실존했던 사건과 동일하다는 것을 간파해 내는 것에 높은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별다른 단서나 증거가 있는건 아니라서 대단한 추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윌리엄 피트라는 실존 인물이 관련된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역사 추리물 같은 느낌도 전해줍니다. 동기 역시 정말로 "영국식"이라는 점에서 장르적 기대를 충족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문제도 분명합니다. 카스테어스 부인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와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독약병이 워벡 저택에 있었던 물건이라는 점에서 보면 범행은 즉흥적인 결심으로 보이는데, 재무장관이 경호 차원에서 형사까지 대동한 상황에서 독살을 결심하고 실행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심지어 저택이 고립된 상황이라, 방 안에 있는 누군가가 범인인 게 분명하고 누가 득을 보게 될지가 명확하다면 빠져나가는건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유일하게 배신이라는 동기가 있는 레이디 커밀라에게 뒤집어씌우려 했을 수도 있으나, 범행 시점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줄리어스를 설득해 자살로 몰아가려는 시도 역시 작중 묘사대로라면 잘 되지 않았을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작위를 이용한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기보다는 줄리어스를 직접적으로 독살하고 정치적으로 날선 대립을 보인 파시스트 로버트에게 뒤집어씌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심리겠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영국식 설정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낸 솜씨가 탁월하여 무척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작품이기는 하나, 상기 단점도 분명하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국식"이라는 설정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 분들이시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015/10/21

특별요리 - 스텐리 엘린 / 김민수 : 별점 4점

특별 요리 - 8점
스탠리 엘린 지음, 김민수 옮김/엘릭시르

2003년에 동서 추리문고 출간본으로 읽고 폭풍 감동했던 스텐리 엘린의 걸작 단편선집입니다. 당시 별점은 5점이었지요. 이번에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엘릭시르에서 정식 번역본으로 재출간되었기에 다시 구입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작품들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번역에서도 차이가 나더군요. 제목부터요. 원제를 보니 엘릭시르 번역본이 확실히 제대로 된 번역이네요. "the best of everything"은 "최상의 것"이지 "너와 똑같다"일리 없으니까요. "배반자들 (The Betrayers)"의 경우는 동서판의 "벽 너머의 목격자"라는 제목이 더 와닿기는 했습니다만, 이는 최초 일어판의 초월번역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겠지요. 번역은 일단 원제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엘릭시르 버전 쪽에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유명한 스빌로스의 아밀스턴 양 요리도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역시 엘릭시르 쪽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작품들 자체는 10년도 더 전에, 그것도 이미 한 번 읽었기에 신선함이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네요. 아무래도 별점 5점을 줄 때만큼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오 헨리를 연상케 하는 반전의 맛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한 세계와 인물을 그려내는 설정 역시 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각 단편에 등장하는 악당들 대부분이 지옥으로 간다는 결말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한마디로 언제 읽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전해주는 걸작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4점. 이런 말은 좀 식상하지만,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부럽습니다.

각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특별 요리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 뭐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지요.

손발의 몫

"미생"이 "완생"이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랄까요. 비정한 고용인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본인은 그에 대한 자각 없이 하나의 기계로 동작한다는 작품. 지금의 한국 사회와 딱 어울리는 느낌이라 시대를 앞서간 듯 합니다. 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살해한다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걸작 "도끼"도 떠올랐습니다.

성탄 전야의 죽음

이십여 년에 걸친 무간지옥 이야기. 누가 제시를 죽였는지에 대해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다가 마지막 대사 하나로 놀라운 반전을 터트리는 작품. 이런 류의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는 반전 단편으로는 교과서라 해도 무방할 수작입니다.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아내를 여섯 명이나 죽여가며 자신의 골동품 가게를 지키려던 애플비 씨는 일곱 번째 여자와 결혼하는데, 정작 그녀는 그에 대한 모든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 조금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블랙 코미디 느낌의 반전 결말이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체스의 고수

체스에 몰두하다가 자신의 상대가 될 또 다른 인격을 분열시킨다는 내용.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아 아쉬웠지만 평범한 사람의 정신이 붕괴하는 과정 묘사는 탁월해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최상의 것

"리플리"의 또 다른 버전이랄까요. 자신과 닮은 부잣집 아들을 죽이고 그에게 오는 돈을 가로챈 젊은이에게 파국이 찾아온다는 이야기.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이어지는 설정, 그리고 반전 역시 좋았습니다.

배반자들

과거 읽었을 때에도 아주 좋았던 작품. 벽 너머에서 누군가 살해당하는 소리를 들은 이웃집 남자의 활약(?)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인데 역시 반전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하우스 파티

무간지옥 2탄. "사랑의 블랙홀"의 막장물 버전이지요. 반전은 없고 다소 뻔한 내용이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연극과 무한 반복되는 세계라는 감옥을 연결시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브로커 특급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고 불륜남 살인을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 다 좋은데 결말이 석연치는 않았습니다. 여자가 잘못한 게 뻔한데 진정한 사랑 운운하며 같이 죽는다는 건 납득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너무 보수적인 걸까요?

결단의 순간

태어나서 고민이라는 걸 한 번도 안 해본 남자가 일생일대의 고민을 앞둔다는 내용으로 열린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목숨을 건 딜레마라는 점에서,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피아니스트를 불타는 집에 수갑을 채워놓고 도끼인지 칼인지를 꽂아놓고 쿨하게 떠나는 남자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디서 읽었던 걸까요?

2010/03/22

차일드 44 - 톰 롭 스미스 / 박산호 : 나에게는 별점 3점

차일드 44 - 6점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노블마인

스탈린 치하 러시아 비밀경찰인 MGA (KGB의 전신)의 유능한 요원인 레오는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출신으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인물. 그러나 자신의 임무와 가족에 대한 깊은 갈등 끝에 부하 바실리의 음모로 민병대로 좌천된다. 그러나 좌천된 후 알게된 한 아동 살인사건일 계기로 사건의 연쇄성과 중요성을 깨달은 뒤, 아내 라이사와 함께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걸고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 소설을 알게된 것은 추리소설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2009 올해의 추리소설> 투표 때문이었습니다.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이거든요. 때문에 제가 이런류의 리스트에 굉장히 잘 혹하는지라 결국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1위를 차지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2009년도에 읽었다 하더라도 저는 이 작품에 투표했을 것 같지는 않네요.
일단 설정부터 제가 좋아하는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와 굉장히 유사해서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음모가 있는 사건이라기 보다는 체제때문에 파국에 휩싸인다는 것과 시대적인 차이는 있지만 구 소련 독재치하의 국가 조직에 몸담고 있는 주인공이 사건과 더불어 숙청 등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이 정말 비슷해요. 우리나라도 유신독재 - 전두환 독재 시절이 있었던 만큼 별로 신선한 설정도 아니고요.

게다가 추리적으로는 그야말로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실존하는 러시아의 연쇄살인범 안드레이 치카노프 사건에서 따왔다는 살인범 캐릭터와 범죄행각은 디테일하긴 한데 수사 과정은 그야말로 탐문과 증언 몇개일 뿐이거든요. 범행 장소를 통해 범인이 기차를 자주 이용한다는 것을 유추해내고, 당시 사회분위기에서 기차를 자주 이용하는 직업이 몇개 없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기차역을 통해 용의자를 추리해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뻔할 뻔자였고 말이죠. 아울러 범인의 동기가 납득하기 어려운 정신질환이라는 것 역시 추리적으로는 낙제점에 가깝다 생각됩니다.

전개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이 설득력이 떨어져서 가장 중요한 악역인 바실리가 레오를 미워하는 이유가 뭔지부터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으며, 여러가지 위기가 레오와 라이사에게 닥칠때마다 정말 "운"으로 그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너무 쉽게 간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야기 서두를 통하여 독자가 살인범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도 추리소설로는 큰 약점이 아닐까 생각되며 후반부의 아주 약간의 반전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굉장히 흥미진진한 레오와 라이사의 모험 등 독자를 몰입시키는 재미와 함께 레닌그라드 기근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탈린 독재시대와 그 직후의 시대상에 대한 디테일 등 건질거리는 분명 있습니다. "범죄가 없는 이상적인 나라"를 표방하는 구소련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라는 딜레마에 대한 고찰은 굉장히 이색적이고요. 그러나 이러한 특이성 이외에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에 불과했다 여겨지네요. 차라리 실제 안드레이 치카노프를 다룬 논픽션으로 작업되는 것이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는 컨텐츠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지금 보니 추리 / 호러관련 독서 400번째 포스트군요! 참 많이도 읽긴 읽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조촐하게 집에가서 맥주나 한잔 할 생각인데, 500권을 돌파하는 그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마한 자축연이라도 마련해야겠어요.^^

2004/01/04

시미즈 레이코 걸작선 9 - Magic

매직 - 8점
시미즈 레이코 지음/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물속의 달 내 손안에는 있지만 영원히 잡을 수 없다. 영원히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전할 수 없겠지"

저~ 아래 썼었던 "비밀" 의 작가 시미즈 레이코의 예전 단편집입니다.
시미즈 레이코 걸작선으로 출간되었던 9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죠. 비밀을 읽다가 다시 생각 나기도 했고 오늘 집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다 다시 발견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표제작 "Magic"과 고등학생 범죄물 "Silent"두편이 실려있는데, "Magic"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까 합니다. (Silent도 좋은 작품이지만 평이한 수준이거든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를...
14년 전 변두리 행성인 샤샤에서 일어난 우주선 추락사고, 그 우주선에는 은하계 최고의 모델 KANA가 타고 있었는데 결국 KANA의 딸 카나만이 기적적으로 구조됩니다. KANA의 25살이나 연하였던 연인 토르의 딸로 키워진 카나는 14년이 지나, 모델 사진 촬영을 위해 다시 샤샤를 찾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자기폭풍으로 인한 우주선 사고가 일어나고 일행은 구조대를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딸인 샤샤의 토르에 대한 감정은 깊어만 가고 토르도 점점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어 집니다. 자기폭풍이 걷히고 구조대가 도착할 때 드디어 파국이 찾아옵니다...

딸로 키우는 "카나"에 대한 2번, 아니 3번에 걸친, 평생에 걸친 토르의 사랑과 행성 "샤샤"의 특수한 조건 -오래 있으면 퇴화된다!- 가 시미즈 레이코의 미려한 그림과 맞물려진 보기 드물게 완성도 높은 SF 순정 러브스토리입니다. 제가 읽었던 SF단편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에요.
특히 딸로 키워왔던 카나가 사실은 14년전에 조난당했었던 "KANA"가 퇴화되어 어려진 것이었다는 반전과, 10년뒤 다시 어려진 카나를 데려다 키우는 토르의 모습이 묘하게 마음을 울리네요.

이 만화는 듣자 하니 국내 한 영화감독(이현승씨였죠 아마..)이 영화화를 시도했다는 소문이 들렸었죠. 미려한 그림으로 구성된 이야기인 만큼 캐스팅이나 비쥬얼이 심히 걱정되었었는데, 다행히(!) 취소 되었나 보더군요.^^

현재 절판되었지만, 많이 팔린 만큼 구하기도 쉬우리라 생각됩니다. 추천작입니다.

2021/07/17

THE 좀비스 - 중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THE 좀비스 - 중 - 4점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북로드

THE 좀비스 - 상 - 스티븐 킹 외, 존 조지프 애덤스 / 최필원 : 별점 2점 

좀비가 핵심인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설러지 두 번째 권인데, 전에 읽었던 상권보다 별로입니다. 어디선가 보았던 이야기에 좀비를 끼워넣었거나, 좀비가 왜 등장하는지도 모를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게끔 노력했지만, 의도가 뻔히 들여다보이고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도 많고요.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어요. 차라리 정통 좀비 아포칼립스물이라면 평작은 될 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권 남았는데,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톡홀름 증후군"

좀비 떼로 둘러쌓인 집에 갖힌 나는 아들과 닮아서 '빌리'라고 이름지은 좀비 관찰에 재미를 붙였다. 빌리는 이웃집 침입을 위해 판자를 뜯어내는 일에 골몰하는데...

제목 그대로 가해자인 좀비와 동질화되어, 좀비가 사람을 죽이는걸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을 통해, '살아있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작품. 그냥 버티기만 할 뿐, 이렇게 살아가는건 좀비와 다를게 없다는 거지요. 동질화된다는 측면에서는 전권의 "나처럼 죽어봐"와 조금 비슷한데, 이 작품에서는 절박함이나 처절함은 다소 부족한 반면, 조금 더 설득력이 높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웃집을 좀비떼가 습격하는 장면 묘사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주인공 사고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더군요. 일반적으로는 총알이 딱 한 발 남을 때 까지 살아남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차라리 거리로 뛰어들어 좀비가 되어 버리던가....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저런 상황들이 있는 법이기는 하지만, 이런 사고 방식과 행동은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난극" 

페스트로부터 구해진 오버라머가우 마을 전통의, 10년에 한 번 진행되는 예수 수난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위해, 좀비를 분장시켜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을 생각이었다. 마이어 신부는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했고, 결국 마지막에 신의 저주와 함께 파국이 찾아오고 만다.

마이어 신부는 좀비도 영혼이 있어서, 인간이 그들을 잔혹하게 이용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좀비에게 영혼은 있을리 없습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종교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여지도 없어요. 좀비를 연극 소품으로 잔혹하게 대하는 행동은 조금 거슬렸지만, 좀비들은 그동안 더 잔혹한 행동을 보여 왔으니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게 문제라면 가축 도살이 더 큰 문제아닐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마이어 신부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할 수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좀비를 구해주려는 신부의 행동에 분노한 관객들이 신의 저주로 좀비가 된다는 결말은 너무 뻔했습니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페스트 유행 당시를 배경으로 했던 영화가 떠오릅니다. 페스트에서 안전했던 성에서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잔혹한 행동을 보이지만, 결국 성주에게 페스트가 전염된다는 결말이었는데, 페스트가 좀비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맥락이지요. 아니, 그보다도 못해요. 페스트는 어쨌건 공기로도 전염될 수 있지만, 좀비 바이러스가 급작스럽게 사람들에게 퍼진다는건 아무런 설명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종교를 끌어들인 전개는 무리수였을 뿐더러 새로움도 없고, 잔혹함도 덜합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점수를 줄 여지가 별로 없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름다운 것" 

테러로 희생된 러스티는 시체 소생 기술로 되살아났다. 정치인이 그의 희생을 선거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연설 당일, 러스티는 정치인 요구와는 다르게 죽음은 아프니, 삶을 즐기라는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죽은 사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행태는 우리도 익히, 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이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좀비로 비판한다는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이렇게 되살아난 테러범과 희생자 모두가 정치인 생각과 전혀 다른 진심을 털어 놓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그들의 진심이 "죽기 전에 즐겨라!" 라니? 황당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별로 다르지도 않지요. 좀비들이 이런저런 소품들에 환장한다는 설정도 기발했지만, 이 황당한 메시지 전달에 활용될 뿐이고요. 또 딱히 좀비가 등장할 필요도 없었어요. 유령이라던가, 빙의한 영혼이라던가, 뭐든 좋을 그런 이야기거든요. 진짜 아이디어가 아까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좀비들이 연극을 한다는 이야기로 공포 문학의 거장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좀비물에서 기대할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기묘한 이야기였어요. 좀비들이 나름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특이했지만, 그들은 연극 외에 다른 목적이 없거든요. 식인 따위는 원하지도 않고요. 죽은 여배우가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이라던가, 사악한 제작자를 죽이는 장면 정도가 조금 섬찟했습니다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좀비들이 벌이는 연극으로 현재의 연극계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로 보는게 맞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렇다면 더 웃기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으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체의 길" 

신으로부터 이 땅에서 악을 몰아내라고 명 받은 총잡이 목사 제비디아는 보안관보가 체포한 악당 빌을 호송하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중간에 괴물이 나온다는 '시체의 길'을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일행은 괴물이 된 양봉업자 기멧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기멧이 괴물이 된 이유는?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납치했던 소녀가 죽은 뒤, 소녀 어머니가 저주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주로 죽기는 했지만, 기멧이 이내 벌통이 가슴 속에 위치한 괴물로 되살아났다는건 좀 이상하더군요. 이게 저주가 맞나요? 어차피 악당이었으니, 무적의 괴물이 되면 더 좋은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요. 

또 괴물의 설정도 죽은 자가 돌아온 것이지만, 벌 떼와 함께 이동하며, 초인적인 힘과 빠르기를 갖추고 있어서 일반적인 좀비와는 전혀 다릅니다. 식인이 목적도 아니고요. 그래서 좀비물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크리쳐물에 가깝습니다. 악을 없애기 위해 악을 접하면 불타는 성서, 악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은총알 등의 설정이 곁들여진 것도 크리처물 설정일테고요. 이야기 전개도 고생 끝에 괴물을 처치하는 크리처물 그대로라 특별한건 없습니다.

그래도 제비디아 목사의 활약은 화끈합니다. 괴물의 잔혹함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덕분에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읽는 킬링 타임 물로는 나름 적당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부 개척 시대를 무대로 악을 멸하는 총잡이 신부가 등장하는 크리쳐물이라는 점에서는 "프리스트"가 연상되더군요. "프리스트"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되었던 만큼, 나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바비 콘로이, 살아 오다" 

바비 콘로이는 배우로서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서 맡은건 조지 로메로라는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이라는 영화의 좀비역이었다. 톰 새비니가 해 준 좀비 분장을 한 바비는, 촬영장에서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 해리엇과 재회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들과 함께 분장하고 영화에 참여 중이었다...

좀비가 주제이기는 한데 방향이 굉장히 독특했던 작품입니다. 좀비가 아니라,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거든요. 아 이런 발상, 아주 마음에 들어요. 좀비를 주제로 단편을 써와! 라고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가이드에 맞춰서 첫사랑과 현재에 대한 달달하면서도 아련한 이야기를 써 온 셈이니까요.

하지만 행복한 해리엇 가족에게 바비가 나타나서 훼방을 놓는 결말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바비는 해리엇 가족, 특히 그 아들에게는 좀비보다 더한 괴물이 되는, 좀비물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지금 이야기는 발상에 비해 평이하고, 조금 뻔한 그런 이야기라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들" 

칼라는 메레디스를 찾아와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 아서의 소생을 부탁했다. 그녀가 바람피운걸 사과하고자 하기 위해서였다지만, 되살려보니 아서는 칼라가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던 것이었다. 살해된 좀비는 살인범을 죽이는게 본능으로, 칼라는 죄책감때문에 자살할 생각이었다...

작가의 인기 캐릭터라는 시체 소생 전문가 메레디스가 등장하는 작품. 살인자가 죄책감으로 피해자에게 죽기를 원한다는 설정과 시체 소생에 대한 이런저런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서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걸 알고 난 후, 칼라가 죽는 결말까지는 좀 시시합니다. 예상대로의 이야기였거든요. 뭔가 좀 의외성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은 2.5점은 충분합니다.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농학자 닥 프리먼은 좀비 떼를 피해 콜로니를 만들고 생존자들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수립했다. 콜로니는 안전했지만, 생산과 성장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출산은 금지되어 있었다. 아이가 생긴 톰 부부는 낙태를 지시받고, 콜로니 외부 클리닉으로 수술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좀비 때문에 격리된 폐쇄 공간은 생산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출산까지 관리한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있었습니다. 낙태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부 수술실로 향하는 아이러니도 기발했고요. 무엇보다도 낙태한 태아가 살아돌아오지 않는 걸로 보아, 그들은 생명이 아니라는 시각은 아주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 좀비가 된 낙태 반대주의자를 날려버리는 결말을 더하니, 저자가 낙태를 찬성한다는건 잘 알겠더라고요. 

내용도 신선했고, 여러가지 볼 거리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서두에 소개된 저자가 주제를 찾은 방법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의 좀비 주체 작품이 극단적 섹스 장면을 등장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어진 적이 없는 터부를 고민해보다가 정치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 하네요.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 이슈가 '낙태' 였다면서요. 우리나라도 따지면 '부동산'을 주제로 좀비물을 쓴 격이겠지요? 아 이거 재미있겠네요.

"죽은 아이" 

동네 깡패 루크 브래들리의 무리에 가입하고 싶었던 나에게 브래들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살아있는 아이 시체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소년이 희생양인 좀비 아이를 악으로부터 구해주고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작품.

주인공 설정과 분위기 등은 모두 스티븐 킹의 "그것"이나 "스탠 바이 미"를 연상케합니다. 특히나 시골 마을에서 또래 깡패와 맞서 싸우는 아이의 성장기이며, 아이 시체가 중요한 소재라는건 "스탠 바이 미"의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아류작이면서도 "스탠 바이 미" 보다 훨씬 못하다는 겁니다. 주인공과 동생 앨버트는 좀비 시체를 상자에서 꺼내준 정도 밖에 한 게 없고, 이들의 여정도 하룻밤 나들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뭔가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과정이지요. 이 과정도 환상 소설처럼 모호하게 처리해서 고생스러움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단편 분량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최소한 브래들리의 패악질만큼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해요. 루크 브래들리의 깡패짓 말고는 드라마라고 부를 내용도 없고요. 게다가 아이 시체가 좀비일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시체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거든요.

좀비 소재 단편을 의뢰받고 "스탠 바이 미"에 좀비를 우겨넣은 만들어낸, 졸속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졸작. 별점은 1점입니다.

"좀비들과 함께라면" 

중 2병에 걸린 소녀의 성장기랄까요. 서정적인 1인칭 묘사는 괜찮았고, 좀비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 현실은 가혹하다는 메시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 후반의, 직장 생활도 20년차가 넘은 아저씨에게는 별로 와 닿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가혹하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게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현실은 최소한 좀비보다는 낫습니다. 아울러 아무리 봐도 좀비물로 보기는 힘드네요. 작품에서 좀비가 진짜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좀비만도 못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날 마약과 술에 취한 채로 이상한 클럽을 찾았다. 좀비를 학대하고 죽이는 스너프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들은 일행이었던 제인을 죽이고 마는데...

변호사인 저자가 쓴, 브렛 이스턴 앨리스 소설의 패러디라는 작품. 원작을 모르니 뭘 어떻게 패러디했는지 모르겠는데, 내용도 잘 모르겠어요. 젊은이들의 타락과 방황을 묘사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게 좀비물인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좀비인건가요? 설령 그들이 좀비라 해도 그게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뭔가 있어보이게끔 한 묘사들도, 결국은 별다른 알맹이는 없고요.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내용이 뭔지 이해할 수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미트하우스 맨" 

시체 취급자들이 시체를 조종해서 온갖 일을 하는 시대. 유능한 시체 취급자 트래거는 사랑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전전하게 되는데...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의 작품. 사랑없는, 자극만이 넘쳐나는 미래 세계에서 사랑을 찾아 떠도는 트래거의 모습은 "쿄시로 2030"의 쿄시로가 살짝 연상되더군요. 순정으로 접근하던 트래거가 여자에게 배신당한 뒤, 뒷골목 깡패나 하는 시체 검투 경기에 참여하게 되는건 곽철용의 명대사 "니가 이런 식으로 내 순정을 짓밟으면은,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가 떠올라서 좀 웃겼고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며, 별다른 드라마도 없는 탓입니다. 요약하면 "사랑을 믿었던 트래거가 배신당한 뒤, 돈과 향락을 택했다"는 지극히 뻔하고 뻔한 이야기가 전부에요. 작가가 쓸 때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고 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왠만한 단편보다는 긴 분량을 갖춘만큼, 소개되는 방대한 설정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제목의 '미트하우스' 관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체를 살아있는 것 처럼 조종해서 성욕을 채워주는 곳인데, 시체 취급자가 아니라 피드백 회로를 통해 조종되고 있다는 등 이런저런 디테일이 빼어나거든요. 시체 취급자 (스트레커)와 관련된 설정들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가 별로라면, 좋은 설정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6/14

유리병 속 지옥 - 유메노 큐사쿠 / 이현희 : 별점 1점

유리병 속 지옥 - 2점
유메노 큐사쿠 지음, 이현희 옮김/이상미디어

이 책은 데뷰작 "기괴한 북"을 비롯하여 11편의 단편과 단편 모음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시골 마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모아 짤막하게 소개하는 "시골의 사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였다면 섬찟했겠다 싶은 이야기들이 몇 편 있었던 덕분입니다. 못생긴 과부가 딸의 연인을 자신의 것으로 취했다가 파국을 맞는 "오래된 냄비"가 대표적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로 황당무계한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 작품들도 눈에 띕니다. 중국 최고의 진귀한 차 '곤륜차'를 마시는 방법을 장황하게 펼쳐놓는 "미치광이는 웃는다", 사람을 마약으로 취하게 만든 뒤 레코드를 들려주어 그대로 재생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한 "인간 레코드"와 같은 이야기들이 그렇습니다. 로마노프 왕가의 아나스타샤 공주가 살아남아 탈출했다는 설정의 단편 "사후의 사랑"은 나름 시대를 앞서간 느낌을 줍니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가 치정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갱"의 당시 탄광 분위기 묘사와 같은 디테일들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전개가 황당해서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거나, 비슷한 설정과 전개가 반복되는 탓이 큽니다. 정신병자가 나오는 몇 편의 이야기들이 특히 그러했어요. 에도가와 란포의 변격물적 분위기가 짙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대부분으로,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완독하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더 이상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05/06/21

세계 미스터리 명작여행 악성인자 - 정태원, 최진섭 편역 : 별점 2점

지난주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입니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단편집이라 주말동안 한 번에 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수록작들이 기존에 잘 알려져 있던 걸작들이 대부분으로, 제가 이미 읽었던 단편이 상당수더군요. 홈즈 단편과 브라운 신부 단편, 포와로 단편은 너무 안이한 선정이었습니다. 단편의 거장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앤솔로지에 포함된 작품들이 대부분인 헨리 슬레사 작품이 3편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대충 선정한 느낌이고요. 이런 책에는 보다 마이너하고, 국내 독자가 접하기 힘든 작품들 위주로 선정되어야 했습니다. 메그레 경감의 단편과 더쉴 해미트의 컨티넨털 옵 단편만 이런 선정 기준에 부합하네요.

또 앤솔로지로서의 정체성 문제도 큽니다. 일단 작품 선정에 있어서 기준이 모호해요. 연도별 베스트나 작가 중심 선정도 아니고, 장르도 정통 추리물에서부터 서스펜스 스릴러, 꽁트, 마지막에는 SF 분위기의 단편까지 실려 있습니다. 기준이 물건 기왕 선정했다면, 연도별로 배치하는게 더욱 좋았을텐데 그것도 아니라 혼란스러웠어요.

전체적으로 초심자들이 즐기기 좋은 선정이기는 하나 너무 평범하고 무난하달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던 "세계 서스펜스 명작여행" 보다는 독자를 흥분시키는 맛이 없네요. 제가 이런저런 작품을 너무 많이 읽은 탓도 있겠지만...

베스트는 제가 안 읽었던 작품 중에서만 뽑아보겠습니다. 메그레 경감의 정통 추리물 "다섯명의 용의자"와 독 초콜릿 사건의 단편 버젼이라는 앤소니 버클리의 "무서운 초콜릿" 입니다. 더쉴 해미트의 "파리 종이"도 괜찮았어요.

작품별 간략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돼지와 피아노 - 헨리 슬레사

폭력적인 남편에게 괴롭힘 당하며 사는 한 여인이 숙면을 취하는 유일한 방법이 등장하는 단편. 심리 드라마에 가까운 소품입니다.

2. 헬로 자스민 - 헨리 슬레사 

로봇 개발에 취미가 있는 해리는 아내 자스민을 죽이기 위해 자신이 만든 로봇 맥더프를 프로그래밍 하는데.... 

 단편의 거장 중 하나인 헨리 슬레사의 독특한 단편. 다른 앤솔로지에도 많이 실려있는 작품이죠. 반전의 묘미가 탁월합니다.

3. 세 여인의 공통분모 - 빌 프론지니 

30대의 금발 머리, 그리고 영업을 위해 자주 출장을 떠나는 세 여인이 차례로 살해당했고, 한 남자가 자수했는데 동기는? 

단편으로 더 유명한 작가인 빌 프론지니의 괜찮은 작품입니다. 역시 다른 앤솔로지에도 실려있는 작품이죠. 짧지만 강렬한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4. 한낮의 정사 - 브루노 피셔

앞집에 사는 노마가 살해당한 뒤, 불륜 관계에 있었던 TV 수리기사 래리 포레스트가 구속되었다. 그러나 브린 형사는 새로운 단서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데...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단편으로 짧은 길이 안에서 꼼꼼하면서도 공정한 전개, 그리고 화자가 남편이라는 독특함까지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놀라운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가 참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역시나 다른 앤솔로지에 수록된 작품이긴 하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5. 색다른 토끼 스튜 - 윌리엄 아이리쉬 

수많은 앤솔로지에 실려있는 걸작 단편. 지금은 낡아 보이지만 괜찮은 증거 인멸 트릭이 등장하는 고전입니다.

6. 미인과 초콜릿 - 로버트 블록 

아내 메어리를 죽이고 애인 프란시스와 새로운 생활을 꿈꾸는 존은 약제사로서의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직접 독을 넣은 초콜릿을 제조하여 아내에게 선물로 주는데... 

역시 다른 앤솔로지에서 본 작품입니다. 살인을 계획하는 과정을 주 내용으로 하되 반전을 통한 파국으로 끝나는 미국 추리 단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런 전개는 "헬로 자스민"하고도 똑같죠.

7. 살아있는 라디오 - 존 딕슨 카

중요한 연구를 진행 중이던 두 남녀가 허름한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에 괴로워하다가 유령이 나온다는 방에서 라디오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시체가 놓여 있었다... 

꽤 장황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나름 명쾌한 해석과 결말이 있는 잘 짜여진 고전적인 추리 단편입니다. 특히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거장의 정통 본격 추리물다운 작품이었습니다.

8. 사랑의 도박 -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작가 데이비드의 비서로 일하는 펜은 데이비드의 아내 지니와 사랑에 빠졌다. 데이비드는 펜을 조롱하고 지니와의 사랑을 확고히 하기 위해 실종 사건을 연출하는데... 

스릴러라고 봐야 할까요? 마지막 한줄로 사건을 정리하는 솜씨가 놀랍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지막 한줄의 증언이 실제 수사단계에서 얼마나 확신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9. 초록색 벌레 - G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 단편입니다. 굉장한 힘을 가진 인물이 조그만 흉기를 써서 광포한 살인을 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하지만 브라운 신부 특유의 화법으로 설명하는 작품으로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는 단편입니다.

10. 마음 돌리기 - 도널드 마틴

그래디 부인은 자신의 수표를 훔치려다 다리를 삔 토빈이라는 젊은이를 치료해 주며 그를 개심시키려 한다. 하지만 토빈은 부인의 보석을 가지고 달아나게 된다... 

추리물로서 보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마지막 반전이 괜찮은 소품입니다.

11, 파리종이 - 더쉴 해미트

건달과 사랑에 빠진 명문가 막내딸이 송금을 부탁하자 컨티넨털 옵이 수표를 가지고 출동했다. 하지만 아가씨는 간데없고 송금 요청은 조작된 것이었는데... 

컨티넨털 옵 시리즈로 길이도 길고 내용도 풍성합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책이 단서가 되는 등 트릭과 전개도 꽤 잘 짜여진 편이고요. 특히나 하드보일드이면서도 사람이 많이 죽지 않고 추리적으로도 알차다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12. 위험한 초보운전 - 프레드 S 토비

굉장히 짤막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여운을 남기는 작품으로 짧은 길이 탓인지 사건의 동기가 미흡한 것은 아쉽네요.

13. 사라진 열쇠 - 애거서 크리스티

포와로 단편.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죠.

14. 다섯 명의 용의자 - 죠르즈 시므농

벨기에 국경 밖으로 나가는 열차에서 한 부자가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같은 객차안에 있었던 다양한 직업과 국적의 다섯 명 뿐이었다.

메그레 경감 시리즈로 이 단편집 최대의 수확입니다. 정통 추리물로 동기와 단서가 완벽하네요. 트릭 자체는 별게 없는 완전범죄 스타일의 작품은 아니지만 메그레 경감의 수사방식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15. 무서운 교배 - 죤 콜리어

예전에 호러 앤솔로지에서 본 기억이 나는 짤막한 호러단편입니다. 왜 이 단편선에 실려 있는지 의문이네요. 전혀 성격이 맞지 않거든요.

16. 무서운 초콜릿 - 앤소니 버클리

클럽 회원인 윌리엄 경에게 선물로 배달된 초콜릿을 같은 클럽 회원인 버레스포드가 아내에게 주려고 대신 받았는데, 초콜릿을 먹은 아내가 독으로 죽고 말았다.

역시 이 단편집에서 베스트 중 한편입니다. "독 초콜릿 사건"의 단편버젼이라고 하는데 정통 추리물로 동기와 전개가 나무랄데 없네요. 불특정 다수를 노린 듯한 트릭도 굉장히 우수하고 독창적입니다.

17. 약속의 그늘 - M.레버

모파상 단편같은 지독하게 잔인한 인생사를 다룬 소품. 그러나 15편 "무서운 교배"와 같이 왜 이 단편선에 실려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18. 빨간 머리와 지하실 - 코난 도일

"붉은 머리 클럽"입니다. 설명은 필요 없겠죠?

19. 매력적인 안드로이드 신부 - 헨리 스레사

SF취향의 소품으로 전 아시모프 작품인줄 알았습니다....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설정만 독특한 작품으로 이 작품도 이 단편선 성격과는 잘 맞지 않는 선정인것 같네요.

2023/03/25

삼성퇴의 청동문명 1, 2 - 웨난 / 심규호 : 별점 2점

삼성퇴의 청동문명 1 - 4점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삼성퇴의 청동문명 2 - 4점
웨난 지음, 심규호 외 옮김/일빛
중국 촉 지방에서 발견되어서 고대 문명 중 하나로 유명한 삼성퇴 문명의 발굴에 대한 이야기. 
고대 유물 발굴에 대한 괜찮은 논픽션을 많이 발표했던 웨난의 저작입니다. 제가 읽었었던 작가의 다른 논픽션들 모두 기본 이상은 했기에 이 책도 진작부터 읽고 싶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절판된 탓에 구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서야 읽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드리자면,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유는 제 기대와 많이 달랐던 탓이에요.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삼성퇴 문명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이 유물들을 남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두 권 분량의 책에 가득 담겨있을 것으로 기대했지요. 화려한 도판은 물론이고요. 
그런데 정작 책에는 삼성퇴의 문명 발굴에 대한 에피소드만 넘쳐날 뿐입니다. 게다가 그 설명도 무척이나 장황합니다. 처음 삼성퇴에서 의미있는 유물을 발굴했다는 연도성의 일화만 보아도 그러해요. 연도성이 청나라 시기 지방 관직을 맡았지만 이후 민국이 되면서 자리를 잃었다는 설명이 3~4페이지 씩이나 길게 이어질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설명보다는 실제 발굴이 진행되었던 삼성퇴 지역에 대한 상세한 지도와 도판이 추가되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연도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뭐가 중요하단 말입니까. 
이후 연씨 일가가 보물을 하나씩 풀면서 그 정보가 학계에 알려지는 과정, 2차 대전과 문화혁명을 거친 뒤 삼성퇴에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벽돌 공장이 세워져 유적 일대가 훼손되지만, 학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결국 1호갱, 2호갱이라는 두 차례의 큰 발굴 성과를 내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너무 길어요. 저는 삼성퇴 문명의 수수께끼가 궁금했을 뿐, 이런 발굴 이야기가 궁금했던건 아닙니다. 성과 현에서 출토된 유물 소유권을 둘러싸고 싸우는 이야기는 반복이 지나쳐서 짜증이 날 정도였고요. 
물론 이런 발굴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재미가 없던건 아닙니다. 길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거에요. 그나마 한가지 웃겼던건 성 고고연구소에서 현과의 협상을 위해 진덕안을 보낼 때 두 청장이 삼국지 고사를 인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갈량의 출사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진덕안을 파견하여 삼성퇴에 주둔하도록 했고, 현에서 변화가 있을 때 그가 나가서 단기필마로 응대한다, 그 뒤 우리와 같은 대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지원한다고 말하는데 이게 대체 뭔가 싶더라고요. 고고학 연구원들이라 이런 인용이 자연스러운건지, 아니면 중국인 특유의 허풍인지 감이 오지 않네요. 

이런 발굴 에피소드들 중심의 1권보다는 2권은 그래도 삼성퇴 문명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많이 있어서 좀 낫기는 합니다. 
그런데 가장 현실적이고 이치에 맞는 이론을 엄선하여, 요약 설명해주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이론을 정제하지 않고 모두 수록하고 있어서 다소 복잡했습니다. 대충 제가 판단한 바로는, 고대 사천 지역에 여러 개의 부족 국가(마을)가 있었고, 이 마을의 왕들이 잠총, 백관, 어부, 두우, 개명 등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즉 파국이 고대 기록에서처럼 수도가 사방으로 천도했던게 아니라 애초에 나라가 여러개 있었던 겁니다. 시초라 할 수 있는 잠총 부족은 이유가 무엇이었건 중원에서 남하하여 나라를 만들게 된 것이고요. 이후 두우 시기에 초나라에서 도망쳐 온 별령이 치수 기술을 활용하여 민심을 장악한 뒤 스스로 왕이 되어 개명 왕조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 왕조는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진나라에 제압당하고 '촉군'이 되고 말았고요. 이후 청동기 문명이었던 촉도 철기 문명인 진나라에 융합된게 간략한 이 지역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퇴의 1호갱, 2호갱에 보물들이 부장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단순 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근거는 갱내 기물이 모두 불에 탔다는 사실이죠. 하지만 화장한 왕의 유골이 없다는 점에서 화장묘라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재사갱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출토 유물이 모두 제사에 사용되는 기물이고, 불에 탔다는건 불을 이용한 제사에 사용되었다는 논리죠. 그런데 출토된 유물의 양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낮아요. 한 나라의 재력을 모두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유물들이라서, 제사에 한 번 쓰고 버리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삼성퇴 유적은 어부 왕조 당시 수도로 두우 왕의 공격으로 멸망할 때 마지막 제사를 벌이고 전멸한 흔적이다, 거대한 홍수 탓이었다는 등의 이론들이 발표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쟁으로 전멸하고 남은 유산이라는 설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승리한 국가가 망한 국가의 신묘에 있는 제사용 보기들을 훼손하여 묻어버리는건 충분히 있음직했으리라 생각되거든요. 이 책에서도 이른바 '망국 보기 매장갱' 과 '상서롭지 못한 보기 매장갱' 이라는 해석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있고요. 
그리고 주요 출토 유물의 형태와 용도에 대한 설명, 다른 국가 유물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특유의 안구 형태와 대담한 문양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허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앞서 말씀드렸듯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는게 가장 큰 감점 요소입니다. 기이할 정도로 잡다한 주변 이야기가 많은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웨난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독자에게 그리 친절하지도 않고요. 2권 내용을 보다 결론 중심적으로 요약 정리하고, 1권 내용은 에피소드 중 중요한 것만 짧게 인용하는 식으로 분량을 조절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05/04/20

낯선 승객 - 패트리셔 하이스미스 / 심상곤 : 별점 2점

낯선 승객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심상곤 옮김/해문출판사

촉망받는 건축가 거이는 문란하고 애정없는 아내 미리엄이 이혼조차 해 주지 않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 기차에서 만난 브루노에게서 "내가 당신 아내를 죽일테니 당신은 나의 아버지를 죽여달라"라는 완벽한 범죄 시나리오를 듣지만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브루노가 정말로 미리엄을 살해한 후 아버지 살해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협박까지 하게되자 거이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결국 범행을 저지른다.

두건의 범죄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보장된 완전범죄로 남게되나 브루노의 아버지가 고용한 사립탐정 제러드의 집요한 추적이 이어지면서 거이의 인생은 파국을 맞게 되는데....

 "태양은 가득히"의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데뷰작. 기차에서 사람 한명 잘못 만난 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게 된다는 작품이죠.
서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2명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원수를 바꿔서 죽여준다는 설정은 프레데릭 브라운의 "교환살인"과도 거의 동일한 아이디어죠. 또 예전에 히치콕 감독 영화로 먼저 접하기도 해서 그동안은 손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왠걸! 영화와 소설이 굉장히 딴판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중반부까지는 같은데 그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해서 결말은 아예 반대더군요. 영화에서 테니스 선수였던 주인공 거이는 건축사로 나오며 영화에서는 결국 교환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데 반해 소설에서는 브루노의 협박에 의해 심신 상실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니까요.
때문에 영화는 거이가 아내 살인범이 자기가 아니라 브루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을, 소설은 범죄 이후 두명의 주인공이 심리적으로 붕괴하는 과정을 (주로 거이 중심이지만) 중반부 이후부터 굉장히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비교해서 보니 보다 색다른 재미가 있네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나 완성도, 재미 모두 영화쪽이 더 낫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설은 두 사람이 우연히 과거에 서로 만나서 서로가 원하는 사람들을 각각 살해했다..라는 것을 사립탐정이 추리해내지만, 이후 검거 과정에서는 아무런 물증을 제시하지도, 찾아내지도 못하고 단지 마지막에 미행에 의한 도청으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식이라 별로 정교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그러나 영화에서는 거이가 발버둥치면서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브루노가 결국 아내를 살해했다는 것을 타당하게 밝혀내기 때문에 훨씬 세련되게 전개되었다 생각합니다.

물론 소설도 심리묘사 하나만은 치밀하면서도 극적이므로 충분히 읽으면서 즐길 수 있기는 합니다. 허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며 해피 엔딩인 영화가 전개나 결말이 더욱 마음에 드네요. 거이라는 친구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에 더더욱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12/01/01

심플 플랜 - 스콧 스미스 / 조동섭 : 별점 3점

심플 플랜 - 6점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비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기 일 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눈으로 가득한 촌 마을에서 출산을 앞둔 아내와 함께 사는 평범한 가장 행크는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형 제이콥, 형의 친구 루와 함께 묘지 참배를 떠났다. 이동 중 그들은 추락한 비행기 잔해와 4백여만 달러의 거금을 발견했다. 행크는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6개월을 기다리자고 제의하는데...

먼저 사과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고 이 작품에 대해 터무니없는 편견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작가 스스로 썼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영화보다 확실히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후속작 "폐허"의 출구 없는 지옥, 절망의 도가니의 리얼 버전이라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까요. 읽는 내내 불편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지만 흡입력이 굉장했습니다. 눈으로 가득한 춥고 삭막하고 볼품없는 촌동네를 무대로, 전형적인 소시민이자 평범했던 주인공 행크가 우연히 발견한 거액의 돈 때문에 무려 여섯 명을 죽이는(이외에도 보안관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살인자로 변해가는 과정이 설득력 넘치는 덕분입니다. 살육의 과정도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우발적인 사건으로 이어지다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기 때문에 읽는 내내 긴장감이 극대화됩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다소 찌질하고 애처롭게 그려졌던 형 제이콥의 최후와 어설펐던 마무리 등이 소설에서는 훨씬 더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특히 살육의 과정이 평범한 행크의 1인칭 심리 묘사로 전개되기 때문에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 에필로그에서 묘사되는 행크의 모습 역시 강렬합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할 뿐이라는 무간지옥 같은 삶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하지만 데뷔작이라서 그런지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띕니다. 형의 죽음 이후 등장하는 FBI 요원의 이야기는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한 장치로 필요하긴 했으나,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행크의 딸 아만다에게 닥친 사고 역시 작위적이었고요.

또한, 돈을 처리하는 방식도 다소 비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1/10의 확률이라면 모험을 걸어보거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일반적이지 않았을까요? 사라의 말처럼 도망 다니면서 사는 삶도 가능했을 텐데 말입니다. 어차피 돈의 일련번호가 일부 기록되어 있었다면, 세 명의 계획대로 잘 풀렸더라도 결국 결과는 뻔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결말이 공정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흑막처럼 보였던 아내 사라 캐릭터는 영화 쪽이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사라 역의 브리짓 폰다가 워낙 적역이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행크가 위안을 구하고 의지하는 존재일 뿐, 사건을 주도하는 역할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사라 캐릭터가 너무 약해졌고, 범죄를 공유한다는 느낌도 희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끼"라든가 "유니스의 비밀" 같은, 평범한 인물이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 걸작들과 견줄 만한 뛰어난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데뷔작이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며, 성공은 당연해 보입니다. 확실히 이 장르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면 그 완성도도 보장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이 작품의 교훈은 "루저나 찌질이는 거액이 생겨도 루저이고 찌질이다"라는 것이겠죠?

2005/03/06

제 5 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 커트 보네거트 / 박웅희 : 별점 4점

제5도살장 - 8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주인공 빌리는 검안사로 성공하여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퇴원한 날 부터 자신이 예전 딸의 결혼식 날 머나먼 "트라팔마도어"행성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다니게 된다. 빌리는 "트라팔마도어"로 납치된 이후 유럽의 전장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초월적인 경험을 한다.

제목의 "제 5 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 당시의 미군 포로 수용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부제인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요.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장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SF나 반전소설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직접 경험했다는 2차 대전에서의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일화를 단순히 담아낸게 아니라 빌리라는 존재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닮아 있지만 결정적 파국, 즉 종말은 피할 수 없다는 종말론적 사고방식은 또한 기독교의 그것인데도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극중 주인공 빌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공 초월에 대한 소설적 접근은 엄청나게 새로우면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또한 재미도 있습니다. 짤막한 단상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소설을 이루는데 그 단상들의 등장인물들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사건들도 다양함에도, 또한 시간과 공간이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소설로 성립되는데 재미까지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정의!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에 대한 해답. 즉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지만 실은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하라"라고 가르친다라는 부분은 너무나 멋집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종말은 피할 수 없으니 가장 즐거운 시간을 즐겨라"라는 사고방식도 왠지 공감이 가네요. 채근담이었나요? 흡사 군대 훈련소 시절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 왠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긴, 이 책은 군대소설이기도 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명성에 충분히 어울리는 좋은 작품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 작가 어쩌구 하는 선전문구가 꼭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나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표현했던 "중간의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멋진 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정말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영화화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뒷 해설에 나오는데,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하네요.

2014/07/29

풍장의 교실 - 야마다 에이미 / 박유하 : 별점 2.5점

풍장의 교실 - 6점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민음사

표제작을 포함하여 3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작품집. 이유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 여류 작가의 작품이구나!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고이케 마리코나 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일상 생활 속 악의와 살의를 상세한 심리묘사로 그린 소품들이라는 점에서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작품들이 일종의 "성장기"라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그래서 두 작가 작품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범죄물적인 재미는 고이케 마리코보다 못하고, 일상 속 서늘한 심리묘사는 가쿠타 미쓰요보다 못한 느낌이 듭니다. 딱 세 편만 실렸다는 점에서 풍성함도 부족하고요.

그래도 "풍장의 교실"만큼은 확실한 수작일 뿐더러, "제시의 등뼈"를 제외한 두 편의 이야기는 나름 극적 반전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일본 여류작가의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풍장의 교실"

잦은 이사를 통해 어떻게 주변에 녹아드는지를 깨우친 어린 소녀가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극복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 소녀 모토미야 안의 1인칭 심리묘사가 엄청나게 상세하고 집요해서 읽으면서 내내 감정 이입하게 만드는 솜씨가 발군입니다. 특히 왕따를 당하는 과정의 몰입감은 장난이 아닙니다. "악의"라는 것을 이렇게나 구체화시켜 묘사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할 뿐이에요. 안이 왕따를 설명하며 그냥 가려운 느낌, 누군가가 긁으면 정말로 가려워져서 또 긁고, 더는 참을 수 없어져 일제히 손톱을 세운 뒤 긁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이유도 모른 채 손가락을 움직인다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또 단순한 왕따 이야기가 아니라 극적 반전을 갖추었다는 매력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가족들의 대화를 듣고 모든 것을 이겨낸 뒤 오히려 "경멸"을 무기로 반격한다는 결말이거든요. 더욱이 왕따의 원인이 된 특정 선생님의 애정을 오히려 이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더욱 어필한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안의 편인 듯 보이지만 딱히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는 "악코"라는 학생의 존재는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고, 이런저런 곁가지 이야기로 길어진 감은 없잖아 있으나 충분한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나비의 전족"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함께 했지만 그녀의 배경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소녀가 친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를 만나고, 육체 관계를 가진 뒤 벌어지는 파국과 그 이후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풍장의 교실"과 마찬가지로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작품으로, 심리묘사는 역시나 대단합니다. 하지만 너무 완벽한 친구 에리코를 차버리기 위해(?) 남자와의 관계를 선택한다는 전개는 크게 와닿지는 않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히토미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가치 없게 내버렸는지를...

마지막에 "친구"가 아니라 정말로 "이성"으로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괜찮았지만, 설명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이래저래 조금 애매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시의 등뼈"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 제시를 돌봐주게 된 코코의 이야기.

애정 없는 부모 아래에서 어리광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제시, 그리고 아이 없이 남자와의 애정만으로 살아가는 코코의 대립과 성장, 관계 회복이 그려지는데,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제시라는 아이의 등뼈가 증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마지막 부분이 살짝 감동을 주긴 했지만, 워낙에 예상했던 그대로의 결말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9/11/29

회색 인간 - 김동식 : 별점 2점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꾸준히 업로드한 글이 인기를 얻은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결과물입니다. 과거 하이텔 시기에나 존재했을 법한 이야기의 재림이네요. 올린 글의 분량만 따지만 거의 "태백산맥"에 육박한다니 그 열정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이텔 시기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등과는 명확히 다른 점은, 굉장히 짧은 꽁트, 아니 쇼트쇼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야기들이 표제작을 포함하여 무려 스물 네 편이나 수록된 단편집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이야기로의 완성도가 부족한 탓입니다. 게다가 모든 이야기들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단점도 큽니다.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 기묘한 설정 때문에 인간들의 집단 이기주의나 탐욕이 생겨나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는 결말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에요.
기묘한 설정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지만, 그냥 기묘하다는 상황에만 매몰되어버린 이야기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건물이 급작스럽게 식인 괴물로 변하여 밖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식인 빌딩", 인간이 녹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완벽한 컨디션이 된다는 기적의 물 정화수가 대유행한다는 "흐르는 물이 되어"가 대표적이에요.
또 기묘한 설정에 기댈 뿐,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반전도 뻔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우팅"에서 인류 모두가 인조인간이라는게 밝혀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차라리 연구소 경비병들만 진짜 인간이었다는 반전이라도 넣어 주었어야 했어요. 그나마 조금 신선한 반전들도 대체로 기존 상식이나 그때까지의 현실을 반대로 뒤집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괜찮아 보여도 읽으면 읽을 수록 식상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에서 나이를 먹지 않게 만드는 영원의 구가 사실은 저주였다던가,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에서 좀비 바이러스는 무적의 재생력을 안겨다주는 선물로 사람들은 다시 인간이 되려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피노키오의 꿈"에서 피노키오의 소원이 인간이 되는게 아니라 건강한 소나무가 되는 것이었다는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반전이라도 있는 이야기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특별한 반전 없이 인간미, 감동 쪽에 방점을 찍으려 노력한 이야기들은 더 엉망이에요. 표제작인 "회색 인간"이 대표적입니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납치되어 땅을 파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립니다. 먹을게 부족해서 문화는 사치였지만, 어느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결말입니다. 문화가 사라지면 인간도 아니라는 주제인데, 솔직히 억지스럽죠. 이런 상황이라면 집단이 생기고, 자체적인 법률이 생기는게 타당한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이 그냥 살기 힘든 상황만 길게 묘사되는 것도 지루하고요.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도 추구하는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간미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외전 반장의 일일 외출록" 에서 훨씬 더 재미있게 잘 그려졌다 생각됩니다.
손가락 여섯개인 신인류를 낳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계획이 비선 실세의 농간으로 밝혀진 후, 손가락 여섯개인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생각이 모든 차별을 없앤다는 꿈같은 이야기도 황당하기 그지 없고요. 괴물이지만 또 인간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접했었던 설정도 많습니다. 어설픈 풍자, 별 것 아닌 내용을 길게 늘려쓴 이야기도 눈에 거슬렸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답게 반짝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들이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노인에게 나누어주기를 거부하자 노인이 자신이 부자라면서 통조림을 500만원에 사겠다고 제의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무인도의 부자 노인", 신에게 소원을 빌 당사자로 선택되는 개인에게 닥치는 집단 광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준 "신의 소원", 노인을 가상 세계에 모신다는 발상이 그럴싸 했던 "디지털 고려장" 등이 그러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후의 전개가 뻔하고 결말의 반전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거나 아예 없다는 단점은 그대로라는 점입니다 .

다행히 설정도 좋고, 전개도 괜찮으며 결말과 반전도 완성도 높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재활용" 입니다. 돈만을 위해 살아온 두석구가 딸이 교통사고로 죽자, 13일 내 시체 세 구를 섞어 넣으면 한 명이 부활한다는 주술을 시도합니다. 그런데 생존은 랜덤이라 딸이 살아나지 못하자 두석구는 전 재산을 투자해서 13일 동안 이 주술을 계속 시도하고요.
그런데 영혼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영혼들은 두석구의 딸 부터 영혼을 찢어발긴다는 마지막 반전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두석구는 딸이 살아날 때 까지 주술을 시도할테니 영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딸부터 처치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이를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마지막 대사도 좋았고요.
쇼트쇼트로는 그야말로 완벽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입니다. 이 정도면 호시 신이치의 대표작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합니다.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도 평균 이상입니다. 정대리가 가진 보물인 쇠구슬은 손을 대면 비가 오게 만듭니다. 김대리는 이를 훔쳐내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아무리 손을 대도 비는 오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흐려지기만 할 뿐이고요. 그런데 아기가 손을 대자 지진이 발생하여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원리는 비가 오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날이 실현된다는 이야기지요. 기묘한 설정도 좋지만 제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 모녀, 한 사내와 협곡에 갇힌 김남우가 극심한 굶주림 끝에 식량으로 희생될 사람을 뽑는 제비뽑기에 참여하는 "협곡에서의 식인"도 기묘한 맛 측면에서는 꽤 괜찮습니다. 김남우의 편인줄 알았던 사내가 놀랍게도 급작스럽게 김남우를 살해하는데, 알고보니 그들 4명은 모두 가족이었던 반전 덕분입니다. 김남우가 가족을 경계하고 오히려 위협할까 두려워 남인척 김남우 편에 섰다가 배신을 했던 거지요. 살아난 가족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는 마지막 한 방도 묵직하고요.
아쉬운건 에이즈가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좀 더 '천벌'에 가까운 병에 걸리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런 면에서는 "살인단백질 이야기"에 나왔던 프리온을 활용한 병이 어땠을까 싶네요. 식인으로 전염되고, 치사율 100%이니까요.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도 반전이 좋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두석구가 지옥에서 악마들의 부탁으로 죄인들에게 환생을 약속하는 환생교를 만들어 포교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 통제를 잘 하려는 악마들의 계획으로 생각하고요. 그러나 1년 뒤, 절대자가 강림하여 두석구를 찢어 발기고 죄인들의 희망을 끝냅니다. 죄인들에게 어설프게 희망을 주었다가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말인데 아주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하여튼, 전체 평균해서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 모든 수록작 중 세네 편 정도가 중간 수준, 세 편 정도가 중간 이상, 한 편이 수작이고 나머지가 모두 기대 이하이니 이 정도가 적당해 보입니다. 반 타작도 하지 못한 셈이니 전반적으로 좋은 단편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네요.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일하면서, 전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창작하여 발표한 작가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등단도 한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음에는 보다 완성도있게 다듬어 발표해 주기를 바랍니다.

2022/05/14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 별점 2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 - 4점
이미예 지음/팩토리나인

백만부가 넘게 판매된 초 베스트셀러지요. 꿈을 만들고 판매하는 세계가 있고, 여기서 어떤 꿈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만들고 누가 그 꿈을 사가는지, 그리고 그 꿈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점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었던 세계관인데 독특한 설정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판타지 설정에 더해 수록된 이야기들 모두 착하고 긍정적이라는 점도 좋아요. 여러모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인기를 끈 이유도 이 때문일 걸로 짐작되네요. 팍팍한 현실에 지친 어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착한 힐링물이니까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일본 작품에 많은데, 한국 작가가 한국인들을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는게 좋은 평가를 받는데 큰 도움을 주었겠지요.

꿈을 소재로 한 판타지는 많지만, 보통 꿈을 조종하거나, 꿈이 현실이 되거나 하는 식인데 반해, 꿈은 꾸는게 아니라 '사는 것' 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마음에 듭니다. 아울러 IoT라던가 자율 주행 자동차, 업데이트 관련 설명이 살짝 지나가는 부분이 묘하게 디테일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인 덕분이겠죠.

하지만 저는 선뜻 추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일단 기본 설정부터가 '기묘한 물건을 파는 독특한 가게의 이상한 주인'이라는 널리고 널린 설정의 변주에 불과합니다. "펫숍 오브 호러즈" 등에서는 기묘한 물건을 사 간 사람들이 기묘한 물건 덕을 보다가,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지 못해 파국이 닥치는 식인데 이 작품은 그런 반전도 없어요. 그냥 사간 물건의 효과를 이용하는게 전부입니다. 달러구트 등 등장인물들도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설정을 재탕한 느낌이고요. 

그리고 장편 소설이라고 홍보하는 것 치고는 담겨 있는 이야기도 빈약합니다. 꿈 백화점과 달러구트를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한 설정 소개가 거의 1/3에 이르며, 꿈에 대한 이야기들은 에피소드들처럼 짧게 지나갈 뿐이니까요. 그나마도 대체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그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어른들이 읽을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청소년용이었다면 더 좋은 점수를 주었을 거에요. 나중에 조금 더 짧게 요약하고, 설명대신 일러스트를 곁들인 청소년용 버젼이 출간된다면 제 딸에게는 권해주고 싶네요.

2010/12/25

밀린 만화를 몰아보다

최근 개인 사정으로 만화만 보게 되네요. 오래되었지만 완결이 되지 않아서 놓아두고 있던 작품 몇 개를 완독했습니다.

"양의 노래 7" - 6점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환영박람회" 외에는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토우메 케이의 보기 드문 완결작. 혈족 간에 유전되는 특이 질환을 주제로 근친상간, 친족 살해 등과 같은 금기와 비극적 로맨스를 섞어 표현한 작품입니다.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히로인 치즈나의 매력과 더불어 작가 특유의 거친 뎃셍이 시너지를 잘 일으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주인공인 카즈나, 그리고 그의 상대역인 야에가시의 고민과 갈등은 그닥 효과적으로 표현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반전과 극적 결말에서 "봉인된 기억"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너무 많이 쓴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조금 더 짧게 압축했더라면, 그리고 보다 더 비극적이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엠마 Emma 10" - 6점

카오루 모리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모리 카오루의 달리 말이 필요 없는 유명한 작품이죠. 중간까지 읽다가 손을 놨었는데 이번에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손에 잡힐 것처럼 그려낸 디테일한 그림과 굉장히 감성적이고 미려한 감정 묘사들, 그리고 진지함 속에서도 적절한 유머가 가미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놀라울 정도로 등장인물 거의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 역시 이 작품의 강점이며, 안경 끼고 참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학교 여선생님 같은 캐릭터를 메인 히로인으로 전격적으로 배치한 과감성이 이 작품을 더욱 특이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러나 기본적인 주제가 결국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것은 좀 진부했고, 그 사랑이 시작된 계기가 "엠마"라는 히로인의 미모에 기인한다는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나이를 좀 많이 먹은 것 같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