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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3

의혹 - 도로시 L 세이어스 / 김순택 : 별점 2.5점

의혹 - 4점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김순택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엘러리 퀸도 극찬했다는 걸작 단편 "의혹"과 세이어스 여사의 명탐정 피터 윔지경 단편 7편이 실려있는 단편집. 

"의혹"은 예전에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어서 별로 새롭진 않았습니다. 워낙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요. "비소독살"을 다룬 단편인데 로열드 달이나 스텐리 엘린이 생각날 정도로 서늘한 맛이 제법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귀족탐정 피터경 시리즈는 실망뿐입니다. 트릭도 별로지만 캐릭터가 정이 안 가더군요. 부유하고 돈많고 여자들한테 인기까지 많은 매너 좋은 귀족 탐정이라니.. 하이틴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 탐정같은 설정이라 감정이입이 안되더군요. 세이어스 여사 자신이 불행한 결혼생활때문에 환타지같은 설정을 도입해서 (심지어 피터경은 여류 추리소설 작가 헬리에트와 열애끝에 결혼한다는 설정까지 나옵니다...) 쓴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현실성이 부족하네요.
대강의 설정은 '피터 데스 브리든 윔지’라는 거창한 본명을 지녔지만 피터경(卿)이라는 호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890년 15대 덴버 공작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이튼학교를 거쳐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해 1차대전에 참전,정보장교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런던 피카딜리 110A플랫의 집에서 부관이었던 번터를 집사로 삼아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낸다.

6피트(약 180㎝)의 신장,소탈해 보이고 유머도 깃들인 인상이지만 별다른 특징이 없는 얼굴이며 식성은 까다로운 편이다. 게다가 식후에는 반드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의 집사 번터가 커피를 아주 잘 끓이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외눈 안경과 지팡이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단테를 좋아하고,바흐의 작품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등 예술가적인 감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고서 수집,크리켓 등 다양한 방면에 조예가 깊다.

범죄 연구에 취미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어 범죄학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외모와 행동으로 볼 때 전형적인 영국 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답게 윔지 집안의 문장은 눈에 띄는데,검은 바탕의 방패에 쥐 3마리가 달리는 그림이 있고,그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도약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양 옆에는 갑옷을 입은 두 기사가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기사가 발을 디디고 있는 받침대에는 ‘나,윔지를 지키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흐.. 너무 거창하지 않습니까? 재벌 2세 정도라면 모를까.. 귀족탐정이라니...

첫번째 단편 "거울의 영상"은 내장의 위치가 좌우가 서로 뒤바뀐 남자의 이야기인데 트릭이나 설정이 너무 우연에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마법사 피터 윔지 경"은 스페인 시골 산속에 은둔중인 의사와 그 부인의 이야기인데, 피터 윔지경이 순전히 (거의) 돈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할 뿐이고요. 게다가 의사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변화를 (놀랐다는 설정은 있지만) 이야기만 듣고 미루어 짐작하는 묘사는 좀 해도 너무하는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구리손가락 사나이의 비참한 이야기"는 도대체가 말도 안되는 작품이었어요. 일종의 공포-모험소설 분위기인데 왜 피터경이 등장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뭐 설정은 제법 흥미진진했지만 나머지는 다 불만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수록 작품인 "불화의 씨, 작은 마을의 멜로드라마"는 가장 길어서 거의 중편 분량입니다. 유산을 둘러싼 두 아들의 갈등과 유령 마차의 트릭에 관한 이야기인데 꽤 재미있긴 하지만 이왕이면 더 짧게 묘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이 제법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 형편없는 것은 아니라서 "도둑맞은 위"는 위트와 재기넘치는 단편으로 피터경을 싫어하게 된 저였지만 이 작품은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목 그대로의 단편인데 좀 직설적이고 쉽긴 하지만 꽤 유머러스한 맛이 좋았어요.
"완전한 알리바이"는 트릭면에서는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괜찮은 일종의 장소 이동 트릭이 등장하고요.
"유령에 흘린 경관"은 소품으로 제법 인상적인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피터경의 참견 좋아하는 성격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별로였기에 별점은 2점. 제가 워낙 단편집을 좋아하기도 하고, 피터 윔지경이 추리사에 족적을 남긴 탐정이기도 해서 구입하기는 했는데 실망감이 더 큽니다. "의혹"은 과연 걸작이지만 나머지 피터경 시리즈는 그만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네요. 개인적으로는 피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처럼 좀 고전적인 퍼즐 추리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하실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영국에서는 크리스티 여사와 거의 동급의 인기라던데... 과연 사실인가요?

2014/11/20

맹독 - 도로시 L. 세이어즈 / 박현주 : 별점 2.5점

맹독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추리소설가 해리엇 베인은 전 애인 필립 보이스를 비소로 독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녀에게 반한 피터 윔지경은 배심원 합의 실패로 생긴 한 달간의 유예 기간을 이용해 그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드는데...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36위로 선정되어 있지요.

시리즈가 워낙에 유명해서 이전에 두어 권 읽어본 적은 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작품은 예상 외로 재미있더군요. 그동안 제가 이 시리즈를 재미없게 느끼게 만들었던 가장 큰 원흉인 피터경이 이번에는 꽤 친근하게 다가온 덕이 큽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중간중간 유식한 티를 내는 인용 문구, 과시적인 소비 행태, 그리고 첫눈에 반했다는 이유 하나로 해리엇 베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사 중의 신사,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여성 판타지를 집대성해 놓은 비현실적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캐릭터 속성은 여전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꽤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되어서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보다는 훨씬 낫더라고요. 공부 잘하고 돈도 많은 엄마 친구 아들이지만, 허술한 데도 있고 유쾌해서 밉지 않은 친구처럼 느껴졌거든요. 연예인으로 따지자면 유희열 같은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여신님"의 베르단디를 여성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것일까 싶은데, 남성 독자인 제게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당대 인기 시리즈 주인공다운 매력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작품 뒤 해설을 보니, 도로시 세이어즈 여사 본인이 작중 해리엇 베인처럼 농락당하고 버려진 경험이 있었고, 이 작품에서 그 반대의 이상향을 심혈을 기울여 투영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수긍이 갑니다.
그 외 등장인물들도 인상적입니다. 못하는 게 없는 집사 번터의 활약도 눈에 띄였고, 종교로 개심한 전직 금고털이 빌은 완전 씬 스틸러 수준이었습니다. 이제 평범한 열쇠장수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인물인데, 피터경이 칭찬하자 “이런 승리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정말 유쾌했어요.
이러한 캐릭터 묘사는 번역의 힘도 커 보입니다. 이전에 "동서추리문고"로 읽었던 다른 작품들도 제대로 번역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들 외에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물로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마지막에 피터경이 "비소 과자"를 대접하며 벌이는 추리쇼는 꽤 기발하고 재미있지만, 그 외의 추리 전개는 고전 황금기 걸작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작품 초반에 드러나버리고 마니까요. 

경찰 수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피터경 홀로 사적인 네트워크와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한다는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결정적 역할은 머치슨양이나 클림슨양 같은 피터경의 부하들이 맡고, 단서를 밝혀내는 과정에서도 우연이 너무 많이 작용하는 문제도 큽니다. 머치슨양이 자물쇠 따기를 직접 배우는 디테일은 좋았지만, 클림슨양이 유언장을 발견하고, 머치슨양이 비밀 공간을 발견하는건 거의 우연에 의한 것이었거든요.

트릭은 "어떻게 비소를 먹였는가?"라는 한 가지 뿐인데, 이 역시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핵심은 독에 대한 내성을 키웠다는건데, 이런 이론이 실제로 가능한지 부터가 의문이에요. 오히려 몸에 독이 축적되어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실 해밋의 단편  "파리 종이"와 비교해도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몇몇 작위적인 설정도 눈에 거슬립니다. 몰래 어쿼트의 모발을 입수하여 비소 검사를 한다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미 유언장 위조라는 정황증거가 충분하기 때문에 당연히 체포 후 정식으로 모발 검사를 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피터경의 귀족 마인드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도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피터경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대표작이라는 점과, 여성 부하들의 활약을 여성 첩보원처럼 그려낸 부분은 인상적이며 007 시리즈처럼 경쾌한 진행은 시대를 앞서간 듯한 매력이 있지만, 추리적인 완성도 면에서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작품 수준만 놓고 보면 동 시기에 크리스티 여사와 자웅을 겨뤘다는 것이 솔직히 잘 믿기지 않네요. 귀족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인기의 비결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읽은 피터 윔지경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피터경 시리즈를 읽지 않으신 분들께는 입문작으로 추천드립니다. 특히 여성 독자분들에게는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22/03/12

부자연스러운 죽음 -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 별점 3점

부자연스러운 죽음 - 6점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블루프린트

아래 리뷰에는 동기, 진범 등을 밝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터 경과 파커 경위는 한 의사로부터 3년 전, 부유했던 도슨 부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던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사망 원인이 불명확했던 탓에 의사의 주장으로 부검도 진행되었었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자 오히려 마을 사람들은 도슨 부인의 유산을 물려받을 메리 위태커 양을 모함했다며 의사를 따돌렸다. 결국 의사는 병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의 냄새를 맡은 피터 경은 노처녀 클림슨 양을 투입했다. 그녀는 사건이 벌어졌던 햄프셔 주 리햄튼 시에 방을 구한 뒤,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집하여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피터 경은 사건 직전에 해고되었다는 도슨 부인의 하녀 고우트베드 자매가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여겼고, 그녀들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지만 자매 중 동생인 버사 고우트베드가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현장에서 발견한 단서들과 관련되어 있던 포레스트 부인에게서도 별다른 혐의를 찾아낼 수 없었고, 위태커 양은 절친 핀들레이터 양을 통해 버사 고우트베드가 살해되었을 당시 알리바이가 증명되었다. 무엇보다도 도슨 부인은 불치병인 암을 앓고 있어서 곧 죽을 예정이었는데 그녀의 죽음을 앞당길 이유가 없었고, 죽였다 해도 범행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으며, 버사 고우트베드 양 살해 방법도 밝혀낼 수 없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도로시 세이어즈피터 윔지경 장편(이하 피터 경)입니다. 사실 저는 피터 경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트릭 면에서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도 별로 없었고, 피터 경의 잘난척도 도가 지나쳐서 호감을 갖지 못했던 탓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미스테리아 35호"에서, 샌드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끔 쓰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 - 추리소설과 요리'라는 글에서 샌드위치를 다루어볼까 하던 차여서, 과연 어떻게 샌드위치가 사용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로 재미있어서 놀랐습니다. 트릭도 여러가지가 사용되고 있고, 피터 경의 추리도 눈부시며, 동기도 공들여 만들어져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아주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암에 걸려서 살 날이 머지 않았을 도슨 부인을 왜 위태커 양이 죽였는지?에 대한 동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설명하자면,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 유산의 유일한 상속자로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도슨 부인을 서둘러 살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슨 부인이 사실은 위태커 양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주려 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지 않았다는게 밝혀지며 이는 부정됩니다. 오히려 변호사와 위태커 양이 유언장을 쓰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슨 부인이 유언장을 쓰면 재수가 없어질까봐 극렬하게 거부했고요. 하지만 알고보니 명확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1926년 1월부터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어서, 유언장 없이 누군가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메리 위태커가 전부 물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던 겁니다! 그래서 위태커 양은 도슨 부인에게 유언장을 쓰게 만드는데 실패한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부인을 1925년 안에 살해했어야 했던 거지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동기였습니다.

독극물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범행의 트릭도 기발했습니다. 간호사였던 위태커 양이 피하주사로 '공기'를 주사하여, 일종의 공기 탄환으로 심장 마비를 일으켰던 거지요. 많이 알려져 있어서 지금은 조금 식상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는 굉장히 참신한 트릭이었을 겁니다. 메리 위태커가 런던에서 이런저런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 포레스트 부인으로 변장하여 살고 있었다는 트릭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포레스트 부인이 공범인 절친 핀들레이터 양이라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보다 더 과감한 아이디어더라고요. 이는 메리 위태커의 사진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메리 위태커는 일종의 동성애적인 관계에만 몰두했다 등의 복선으로 잘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고요. 확실히 유명 작가는 저 같은 일반인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 법이지요. 

마지막에 핀들레이터 양을 살해한 뒤, 도슨 부인의 먼 친척인 할렐루야 목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계획도 정교합니다. 특히 이 부분은 '흑인'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편견과 증오심을 잘 활용한게 눈에 뜨입니다. 범행 현장에서 여러 남자가 덮친듯한 현장 발자욱이 모두 동일인의 것이라는걸 알아내고 계획을 파헤쳐버린,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한 피터 경과 파커 경위의 추리도 괜찮고요. 일종의 데이트 폭력 범죄로만 여겨졌던 버사 고우트베드 사건을 명확한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만든게 '샌드위치'라는 것도 제 기대를 충족시킨 부분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작품 전개에 큰 역할을 한 요리라는걸 부정하기 힘들 정도에요. 이건 앞서 말씀드렸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미발표 원고"로 다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메리 위태커는 버사 고우트베드를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녀가 도슨 부인을 속여 유언장을 쓰게 만들려 했던 과거가 폭로될 수는 있었겠지만, 이건 죄가 아닙니다. 어차피 도슨 부인은 공식적인 부검을 통해 자연사로 확인되었고, 시체가 재발굴되어 검시되더라도 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을테니까요. 오히려 포레스트 부인이라는 존재가 드러났고, 결국 위증을 하게 만들었던 절친 핀들레이터까지 살해해서 사건을 키워버렸으니 안 하느니만 못한 범행이었습니다. 또 새로운 법률에 대해 상담했던 변호사 트리그를 살해하려 했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일을 벌렸다가, 트리그를 죽이지도 못해서 위기에 빠진 셈입니다. 트리그가 겁을 먹고 사건에 대해 입을 닫았기에 망정이지, 진작에 꼬리가 잡힐 뻔 했었지요.

그리고 메리 위태커가 포레스트 부인이라는걸 알아내는 마지막 장면을 클림슨 양의 탐문 수사를 통해서도 알려주는 부분은 전개에서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그냥 피터 경과 경찰들이 진작에 입수했던 포레스트 부인의 지문과 메리 위태커의 지문이 같다는걸 알게 되는 장면만으로 반전의 맛은 충분했어요. 정체만 알아내면 메리 위태커를 핀들레이터 살인범으로 체포하는건 어렵지 않았으니 전개에도 무리가 없었고요. 여성의 능력도 남성 못지 않게 뛰어나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기 위했던 장치라 여겨지는데,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식상했습니다. 피터 경 시리즈를 많이 읽었을 여성들에 대한 서비스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그동안의 제 편견을 모두 깨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저와 같은 이유로 피터 웜지 경 시리즈를 싫어하시는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0/01/09

나인 테일러스 - 도로시 L 세이어스 / 허문순 : 별점 3점

나인 테일러스 - 6점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허문순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피터 웜지경은 우연한 사고로 머물게 된 펜처치 세인트 폴이라는 마을 교회에서 8개의 종을 가지고 연주하는 15840 전좌의 켄트 트레블 봅 타종에 참여하게 된다. 그 몇개월 뒤, 펜처치 세인트 폴 교회 묘지의 한 부인 묘지에 남편을 같이 안장하기 위해 파헤치자 정체모를 남자의 시체가 묘지안에 있다는 것이 발견되고, 교회 목사 시어도어는 피터경에게 사건 해결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피터 웜지경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품 중에서 베스트라 칭할만큼 유명한 고전 명작이죠. 이전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해외편 본격물"에서 읽고 집어든 책입니다. 아... 저는 정말이지 이런류의 리스트에 너무 혹하는거 같아요.

사실 명성이야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선뜻 읽게되지 않은 이유는 이전에 접했던 피터 웜지경 시리즈가 저하고는 잘 안맞았던 탓이 큽니다. 돈많고 인기도 많고 매너도 좋은 귀족 탐정이라는 하이틴 로맨스같은 캐릭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작품들도 고전 본격물 치고는 트릭 등에서 미흡했다 생각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대표작다운 확실한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전좌명종술"이라는 것을 이용한 암호트릭으로 트릭 자체는 상당히 공들여 잘 만들었다 생각되네요. 종의 이름을 가지고 만든 말장난이라던가, 명문 등 여러가지 장치를 동원해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도 좋았고요. 수다쟁이 목사 등 캐릭터들도 확실하고 확실히 읽는 맛이 느껴지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앞서 이야기한 "전좌명종술"에 대한 현학적인 재미도 큽니다. "나인 테일러스"라고 해서 9명의 재봉사가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죽은 사람을 위해 치는 종을 "나인 테일러스"라고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죠.^^ 덕분에 "전좌명종술"에 대한 흥미도 생겼고 말이죠. 유튜브 통해 "Change ringing"으로 찾아보니 몇개 나오는데 (샘플) 뭐 생각만큼 듣기가 좋은 것 같지는 않네요^^
그러나 재미에도 불구하고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운게 기본적인 부분에서 설득력이 좀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만 나열해보자면
1. 가장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인 왜 시체를 구태여 수고스럽게 묘지에 다시 파묻었는지?
2. 에메랄드 목걸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숨겨둔 이유는?
3.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암호문을 남긴 이유.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특히나 3번 항목은 사실 작품에는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닌, 트릭을 위한 장치로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아무도 못 알아보는, 자기만 알아보는 암호가 대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그 외에도 제프리 디콘이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해서 도대체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모범수였다가 갑자기 탈옥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8년 형기 중 이미 4년을 보냈는데 왜 갑자기 탈옥을 했을까요? 때문에 작품을 읽으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초-중반에는 누명을 뒤집어쓴 불쌍한 피해자로 보이다가 갑자기 천하에 둘도없는 사악한 악당으로 돌변해 버리니 이거 참 읽으면서도 적응이 안되더군요. 아울러 위의 두번째 항목과도 연관이 있는 "완벽한 신분세탁" 이후에도 입국을 두려워한 이유 역시 그다지 와닿지 않았고요.
그리고 본격 추리소설 치고는 동기와 범인, 피해자가 죽은 방식 등 핵심 요소들이 빨리 드러나는 편입니다. 다른 작품들을 통해 많이 접했던 동기이기 때문에 알아낸 것이긴 한데 확실히 너무 뻔한게 아닌가 싶고, 개인적으로는 등장인물들 중 그 누구도 피해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죽었는지 모른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봐도 뻔한데...

명성에 비하면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너무 낡은게 아닐까 싶고, 볼때마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피터 웜지경 캐릭터 역시 제게는 확실히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장점이 더 많아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리스트에서 또 하나 작품을 클리어했다는 만족도 크고요.

2010/01/28

클로버의 악당들 - 퍼시벌 와일드 / 정태원 : 별점 4점

클로버의 악당들 - 8점
퍼시벌 와일드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을 무대로, 어렸을 때 집을 뛰쳐나와 6년간 프로도박사로 활동하다가 코네디컷에 농부로 눌러 앉은 25살의 빌 파믈리가 친구이자 주로 "사건"을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를 전담하는 토니 클랙혼과 함께 사기 도박을 밝혀낸다는 류의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유쾌한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퀸의 정원"의 "제 1기 근대"에 포와로, 뤼팽, 피터경 등과 함께 분류되어 있으며, 수록작 중 몇 안되는 국내 출간작이기도 합니다. "퀸의 정원" 분류표에서도 H.Q.S, 즉 역사적 중요성, 문학적 가치, 입수 곤란하다는 3관왕을 달성하고 있네요. 국내 출간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는데 저도 이번에야 알고 냉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퀸의 정원"에 선정된 작품답게 추리적인 내용이 상당히 비범한 편입니다. 사기 도박을 밝혀낸다는 것이 범죄자가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범죄를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탐정이 밝혀내는 추리의 과정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일 텐데요. (뭐 사기 도박이 아니라 사기라는 범죄를 밝혀내는 여러 작품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이러한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교한 사기"가 무려 100여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겠죠. 주로 다양한 장치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장치를 뒤집어 써먹는다던가 하는 두뇌싸움도 효과적으로 써먹고 있다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고요.

또한 1900년대 초반 발표된 작품이지만 뭔가 개척시대의 유쾌한 도박사 일당 이야기 - 매버릭 - 와 같은 시끌벅쩍 유쾌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더불어 젊지만 느물느물한 속을 알 수 없는 고수이자 장난꾸러기인 주인공 빌 파믈리, 사고뭉치에 주제를 파악할 줄도 모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멍청이인 토니 클랙혼 등 등장인물들도 톡톡 튀며 재치있는 대사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넘치는 것이 왠지 예전에 읽었던 "O.헨리의 미스터리 걸작선" 느낌을 가져다 주더군요.

추리 애호가 뿐만 아니라 오 헨리의 팬이시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것 같네요. 별점은 4점. (솔직히 희귀하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긴 했습니다^^)

아울러 국내 추리문학을 위해 노력하시는 정태원 선생님이 손수 구한 책을 가지고 번역하신 것이라 더욱 뜻깊은 작품이기도 한데, 앞으로도 이런 고전 명작들이 번역 출간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작품 해설을 통해 알려주신 이 작가의 다른 대표작인 검시재판이나 탐정 피트 모란 시리즈라면 더할나위 없겠죠.

심벌 (The Symbol)
집을 뛰쳐나와 도박사로 먹고살던 빌 파믈리가 고향 코네티컷에 돌아가 아버지와 포커 승부를 벌인 뒤 개심하여 농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시리즈의 서두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빌이라는 주인공의 성장 배경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핵심 이야기로 두건의 사기 도박이 등장합니다.
첫번째는 빌이 벌이는 사기도박으로 카드 바꿔치기에 대한 내용으로 별다른 건 없습니다. 두번째 아버지와의 승부는 빌이 카드를 조작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정직한 승부"에 패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갑작스러운 빌의 난조가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승부 자체도 재미있고 부자의 관계 회복도 설득력 있는 작품이죠.

사기꾼의 카드 (The Run of the Cards)
빌 파믈리가 토니 클랙혼과 만나는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 사기 도박으로 거액을 잃은 토니의 아내와 우연히 만나게 된 빌이 토니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를 도와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사기 방법에 대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포커 승부 자체가 굉장히 박진감있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죠. 마지막의 상대방의 사기를 역으로 공격하여 승리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마지막 공정한 승부에 대한 짤막한 반전도 인상적이고요. 별점 5점짜리 단편입니다.

포커 도그 (The Poker Dog)
토니가 또다시 처남 테드와 함께 사기에 걸려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빌은 슈워츠라는 그 사기꾼과 대결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가 정작 토니에게 부탁한 것은 개를 한마리 사달라고 한 것 뿐.
전보로 시작하는 유쾌한 서두 - 완벽한 사기꾼 슈워츠에 대한 묘사로 분위기 고조 -갑작스러운 빌의 강아지 찾기를 통한 의외성 도출 - 마지막 승부에서의 화끈한 결말 이라는 기-승-전-결 에 충실한 교과서같은 단편입니다. 운에 의지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게 완벽한 기승전결의 힘이겠죠.

레드 앤 블랙 (Red and Black)
부자이지만 천하의 싸가지 덩어리인 휘트니가 룰렛에서 큰 돈을 잃고 토니와 그의 친구 빌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하는 이야기.
이번편 부터 의뢰를 통한 본격적인 "사기꾼 박살내기" 시리즈로 돌입하게 됩니다. 전편들과는 달리 "룰렛"이 등장하고 이를 파헤치기 위한 도구 역시 카메라와 쌍안경을 조합한 장치라는 점이 특이하더군요. 사실 사기행각보다는 휘트니라는 싸가지의 행동거지와 말로를 보는게 더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양심의 문제 (A Case of Conscience)
유서깊은, 그래서 회원이라는 것이 명예인 "윈저클럽" 회원인 토니는 항상 있는 필 터너와 램지 폴웰의 카드게임에서 램지 폴웰이 언제나 일방적으로 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잘 모르는 "카지노"라는 카드 게임을 소재로 했기에 몰입하기가 약간은 힘들었지만 미덕이 넘치는 반전 탓에 (그래서 지나칠 정도로 오 헨리 스럽긴 했지만) 훈훈한 느낌이 전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역시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고 말이죠. 사고뭉치 토니의 캐릭터가 극단적일 정도로 부상하기에 짜증까지 나기는 했습니다만, 뭐 원래 이런 캐릭터니까요.^^

초보의 행운 (Beginner's Luck)
피트 커니라는 도박사의 사기를 밝혀달라는 앨런 그레이엄의 편지를 받은 빌과 토니. 빌은 자기 대신 토니를 보내며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준다.
캐릭터 바꿔치기의 묘미와 더불어 반전을 거듭하는 줄거리가 인상적인 좋은 작품입니다. 혼자 착각한 토니의 좌충우돌이 굉장히 웃기기도 하고요. 무적의 갬블러 피트의 비결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약간 아쉽지만 별점 4점은 너끈할 것 같네요.

불기둥 (The Pillar of Fire)
해변가에서 포커를 하는 특이한 섬 리그스에 빌과 토니가 참가한다. 하지만 빌 파믈리는 연이어 대패하고, 수영복만 입은 해변가에서 그 어떤 사기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는 난감함에 처하는데...
빌 파믈리가 한번 궁지에 몰리는 전개가 이색적인 단편입니다. 그런데 독자에게 너무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해 준 탓에 사기의 방법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결말이 화끈해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작품 내 등장하는 "최고의 독심술 마법"은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작품내에서 제대로 써먹었더군요.

붉은 느릅나무 (Slippery Elm)
J 햄프톤 후지스트라튼이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메트로폴리턴 체스 클럽에 입회한다. 그리고 그는 강자들을 차례로 꺽으며 강자로 부상하지만 모든 회원들은 그를 미워한다.
빌이 29달러 55센트의 사례금을 받고 뛰어든 이색 사건. 즉 후지스트라튼을 클럽에서 쫓아내기 위한 체스 사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창한 천국 입장을 다루며 시작하는 분위기부터 오 헨리 스타일의 작품인데 이후의 전개도 치밀하고 마지막 승부에 대한 조작 및 결말까지 완벽해서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역시나 별점 4점은 충분하겠죠.^^

타락 천사의 모험
브리지에서 항상 이기는 테리스를 조사해 달라는 친구들의 요청을 수락한 토니는 사기수법을 지적하지만 외려 역공을 당한다...
일단 이 작품은 원본 단편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국내 출판본만의 특전과 같은 작품입니다. 일단 정태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작품은 브리지 사기 수사에서 의외로 포커 클럽인 히말라야 클럽의 과거 사기사건으로 이동하여 전개되는 내용으로 사기꾼의 집념이 잘 그려진 독특한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정말 사기의 세계란 대단한 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테리스가 사기를 쳤는지 안 쳤는지도 불분명한 등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듯 싶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약간 처지긴 하더군요. 그냥저냥한 평작이었습니다.

2015/07/08

영국식 살인 - 시릴 헤어 / 이경아 : 별점 3점

영국식 살인 - 6점 시릴 헤어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병약한 워벡경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친지들을 초대했다. 초대된 사람들은 아들인 로버트, 가까운 친척이자 재무장관인 줄리어스 워벡, 로버트와 연인이었던 백작가의 딸 레이디 커밀라, 오래된 지인 카스테어스 부인, 그리고 워벡홀에서 사료를 연구하던 보트윙크 박사가 함께 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견해 차이, 로버트의 무례함 등 여러 이유로 참석자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던 중, 크리스마스 자정에 로버트가 모두의 앞에서 독살당하고 마는데...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누누이 이야기한 대로 저는 정통 고전물의 팬입니다. 허나 고전 퍼즐 미스터리의 팬일 뿐, 이른바 "영국식" 스타일은 취향이 아닙니다. 신사 숙녀라 불리는 귀족과 부르조아들이 등장하여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유머로 예법이다 뭐다 하며 장황하게 기이한 가식과 가증을 떠는 분위기가 싫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잘난척이 보기 싫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피터경 시리즈 역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러한, 제가 싫어하는 정통파 영국식 스타일의 종합 선물 세트입니다. 무대부터 전통 있는 워벡 가문의 오래된 저택이고, 정통 영국식 추리소설답게 눈으로 고립된 클로즈드 서클 상황에 놓이거든요. 범행 현장에 있던 인물도 워벡 가문의 후계자, 가문의 친척인 재무장관, 오래된 친구인 정치가의 아내이자 부유한 숙녀, 후계자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백작 가문의 딸, 충직한 집사, 마지막으로 가문에 연구차 방문해 있던 보트윙크 박사라는 구성입니다. 귀족, 신사, 숙녀, 하인에 손님까지 정말 완벽한 구성이지요. 게다가 하나같이 영국식 귀족, 부르조아 예법에 쩔어 있는 건 물론이고요. 덕분에 첫 피해자로 로버트가 독살당했을 때에는 쾌재를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재수 없고 짜증나는 극우 파시스트 귀족 떨거지였으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건, 이러한 정통 영국식 스타일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재미있다는 겁니다. 영국식 스타일이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의 핵심 장치로 사용된 덕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집사 브리그스가 자신의 딸과 로버트의 결혼 사실, 손자의 출생을 손님들에게 철저하게 비밀로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브리그스의 함구는 정통 영국식 부르조아 예법 덕분에 완벽한 설득력을 갖추었고, 사건의 동기, 전개, 결말이자 파국을 만드는 핵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 탐정역인 보트윙크 박사가 외국인이자 역사학자라는 설정도 뛰어납니다. 외국인이라는 설정은 영국식 관습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좌충우돌하며 깨닫는 과정과 사건의 핵심 동기가 과거 영국에 실존했던 사건과 동일하다는 것을 간파해 내는 것에 높은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별다른 단서나 증거가 있는건 아니라서 대단한 추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윌리엄 피트라는 실존 인물이 관련된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역사 추리물 같은 느낌도 전해줍니다. 동기 역시 정말로 "영국식"이라는 점에서 장르적 기대를 충족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문제도 분명합니다. 카스테어스 부인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와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독약병이 워벡 저택에 있었던 물건이라는 점에서 보면 범행은 즉흥적인 결심으로 보이는데, 재무장관이 경호 차원에서 형사까지 대동한 상황에서 독살을 결심하고 실행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심지어 저택이 고립된 상황이라, 방 안에 있는 누군가가 범인인 게 분명하고 누가 득을 보게 될지가 명확하다면 빠져나가는건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유일하게 배신이라는 동기가 있는 레이디 커밀라에게 뒤집어씌우려 했을 수도 있으나, 범행 시점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줄리어스를 설득해 자살로 몰아가려는 시도 역시 작중 묘사대로라면 잘 되지 않았을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작위를 이용한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기보다는 줄리어스를 직접적으로 독살하고 정치적으로 날선 대립을 보인 파시스트 로버트에게 뒤집어씌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심리겠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영국식 설정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낸 솜씨가 탁월하여 무척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작품이기는 하나, 상기 단점도 분명하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국식"이라는 설정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 분들이시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009/06/09

나폴리 특급 살인 - 랜달 개릿 / 김상훈 : 별점 4점

나폴리 특급 살인 - 8점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가상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대체역사 SF 소설이면서도, 탐정 다아시경이 활약하는 추리물이기도 한 독특한 작품집입니다. 전에 "세르부르의 저주"를 읽고 딱히 취향이 아닌듯 해 관심을 끊었던 시리즈지만 이번의 50% 할인 행사를 놓칠 수 없어 구매하여 읽게 되었네요.

그런데... 정말 안 읽었더라면 엄청 후회할뻔 했습니다. 일단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세계관이 아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과학적 마법 문명의 지배를 받는 영-불 제국을 무대로 하여 마법이 증기기관과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유사한 분위기의 일본 만화들의 원조격 작품이기도 하죠. 그러나 다른 파생 작품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가장 마음에 든 점은 이 세계관에서 "마법"은 일종의 보조적인 역할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마법은 "전문가" 가 행하는 "전문적인 행위" 이기는 한데, 현대 과학기술에서 관련된 전문가가 행하는 역할과 유사한 점이 있는 일종의 "기술" 처럼 그려질 뿐이거든요. 예를 들면 "방부처리" 라던가 "자물쇠 전문가" 같은 식이죠. 즉 수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에서의 검시관이나 감식관이 수행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정말 획기적 발상이 아닌가 싶어요.

또한(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마법이 사건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이 작품에서 마법은 단지 설정과 재미를 위해서 존재할 뿐이며, 각 사건들 마다 "마법이 개입된 사건이 아니다" 라는 것을 마법사들이 조사해서 먼저 알려주는 점 등으로 철저하게 추리의 영역과 마술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서 뻔하디 뻔한 SF-판타지가 될뻔한 작품을 추리물로서도 가치를 지닐 수 있게끔 중심을 잘 잡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약간 바람끼(?)도 보이는 카사노바 다아시경과 강의를 좋아하는 현학적이고도 호기심 많은 마술사 마스터 숀, 현명하고 비범한 결단력의 플랜태저넷 왕가 군주인 노르망디공 리처드 등 고정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뛰어나고, 작가가 상상해 낸 영불제국의 묘사 역시 비범한 편이라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기에 할인행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만족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전작에 비해 "추리" 요소가 더욱 풍성해 진 것에 가산점 하나 얹어서 별점은 4점입니다. 첫 단편 "중력의 문제" 는 정말이지 정통 추리팬도 탄복할만한 멋진 밀실 트릭물이에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만한 장치도 풍부하니 쟝르 문학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자 밀실 트릭 걸작 중 하나라는 "중력의 문제" 는 앞서도 말했듯 정말 빼어난, 추리적으로 아주 파헤치는 다아시경의 활약을 그린 단편인데,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멋진 작품입니다!

일단은 탑 꼭대기에 위치한 방 안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추락했지만 방은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무대 설정을 비롯, 유력한 동기를 지닌 것 처럼 보이는 아들에다가 광신도인 딸이라는 기묘한 가족구성, 가스등과 거대한 샹들리에로 대표되는 - 고딕호러스타일도 느껴지는- 배경 묘사가 굉장히 과학적, 합리적으로 잘 짜여진 트릭과 어우러지고 있으며, 동기 및 단서의 제공도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SF로 유명한 "다아시 경" 시리즈이기 때문에 추리적으로 손해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두 번째 작품인 "비터 엔드"도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다아시경의 부하인 마술사 마스터 숀이 우연찮게 말려드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마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특징도 있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인물이 모이는 카페에서 범인은 가까이 가지도 않은 상태로 피해자만 콕 집어 독살시킨다는 원격조정 트릭이 설득력있게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경찰이 약간만 디테일하게 수사한다면 범인은 곧바로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헛점은 존재하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세 번째 작품인 "입스위치의 비밀"은 좀 애매합니다. 한 남자의 시체가 해변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총에 맞아 죽은 남자 옆에 발자국은 첫 발견자의 발자국밖에 없었다! 라는 추리적으로 흥미진진한 화두를 던져놓지만, 죽은 남자의 신원이 정보부 소속의 노엘 스탠디쉬라는 것, 그리고 스탠디쉬는 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중요한 "입스위치 파이얼"이라는 물건을 폴란드 제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폴란드 제국의 비밀경찰 세르카 요원을 추적하던 중에 결국 시체로 발견된 거라는 내용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폴란드 제국과의 스파이 전쟁 첩보물로 확 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름 첩보전의 스릴과 더불어 흥미로운 요소 - 스탠디쉬의 다이잉 메시지라던가, 갑자기 별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이유를 알수없는 특이한 현상 등 - 이 많이 등장해서 지루하지는 않지만, 폴란드 제국과의 첩보전을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게 묘사해서 결과적으로는 추리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던 소재와 트릭이 첩보전에 파묻혀버려 아깝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폴란드의 미녀 스파이가 등장해서 꿍짝을 맞추는 결말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도 재미는 있고 추리적으로도 버려진 낡은 외투를 가지고 벌이는 추리와 해변가에서 시체가 발견된 트릭의 발상 자체는 좋았기에 평작 수준은 됩니다. 무엇보다도 카사노바 다아시경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폭소! 왠지 피터 웜지 경 같은 느낌을 전해주던 다아시경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마음에 듭니다.

네 번째 작품 "열여섯개의 열쇠"는 영불제국과 루멜리아제국과의 이른바 "해군조약"에 관련된 이야기로, 주 콘스탄티노플 대사였던 복스홀 경이 맺은 조약의 문서가 사라지고 복스홀 경은 엄청나게 나이를 많이 먹은 모습으로 완전 밀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아시경이 곧바로 출격(?) 하여 복스홀 경과 그만이 통과할 수 있는 그의 여름 별장 열쇠 16개를 단서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요.

조금 소품스러운 느낌이기도 한데, 하룻밤의 소동(?)을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이야기도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를 연상시키는 수학적 트릭과 더불어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유쾌한 느낌이 가득해서 좋았습니다. 사람이 기괴하게 죽어나가고 중요 문서가 없어졌는데도 이렇게 유쾌하다니 정말이지 모를 일이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트릭 자체는 설득력이 떨어지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해군조약"은 홈즈, 포와로 등 많은 탐정들이 활약한 전력이 있는 추리계의 완소 아이템 중 하나로, 이 작품에서도 역시나 국가의 명운을 건 중요 조약 문서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점이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중 하나겠지요.

마지막 작품 "나폴리 특급 살인"은 네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해군조약"을 극비리에 운송하는 특명을 띈 다아시경과 마스터 숀이 탑승한 나폴리행 특급 열차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비밀 임무이기에 정체가 발각되면 안되는 이 두 컴비는 열차가 로마에 도착하기전에 사건을 대신 해결해 주기로 마음먹고 서둘러 사건해결에 나서게 됩니다. 

제목 그대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패러디이자 오마주 성격의 작품입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트릭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정통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높지만, 추리 애호가가 즐길만한 장치가 가득해서 정말이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집의 표제작에 어울리는 좋은 작품이에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어서 완성도도 아주 높으니까요. "중력의 문제"와 더불어 이 단편집의 투탑, 쌍두마차라 할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 작품 덕분에 작가의 또다른 패러디 - 오마주 작품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당연히 오리저널은 "요리장이 너무 많다" 죠)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여, 절판도서임에도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겨우 한권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배송되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우리 형제의 안팔리는 판타지-추리 소설 "장미빛 인생" 도 유사 쟝르죠. 차이점이라면 우리 작품에서는 마법이 추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정통 추리물처럼 써내려갔으니... 그래서 안팔리는건가?

2011/11/27

계간 미스터리 2011.가을 -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별점 3점

계간 미스터리 2011.가을 - 6점
청어람M&B 편집부 엮음/청어람M&B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 커뮤니티 "하우미"에서 진행한 이벤트로 당첨된 도서입니다. 먼저 이벤트를 주최한 황금펜클럽 편집부와 하우미 담당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드립니다.

"계간 미스터리"는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 잡지이며 제목 그대로 계간지인데, 이번 호 특집은 김내성 선생님에 대한 새로운 연구 자료들과 선생님의 미발표 논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시, 김내성"이라는 제목의 자료입니다. 이 자료 하나만으로도 이번 "계간 미스터리"에 대한 만족도는 아주 높았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단편들과 연재작이 실려 있습니다. 간단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일석간 - 김내성

거금 2천 원의 분실 사건에 얽힌 유쾌한 연애물. "연문기담"과 유사한 일상계 로맨틱 코미디 추리물입니다. 단서가 너무 명확하고 우연이 많이 개입된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범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와 동기가 확실해서 깔끔하다는 장점도 돋보입니다. 변격물로 유명한 김내성의 새로운 면을 느낄 수 있었던 수작입니다. 귀여운 악녀 이미지의 미망인 전혜봉 여사 캐릭터도 인상적이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킬힐 (Kill Heel) - 정석화

시체와 함께 발견된 여인과 그녀를 취조하는 형사, 두 명의 대화와 심리 묘사로만 전개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설정은 평범하나 사소해 보이는 단서를 통해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위적인 알리바이 트릭, 경찰 수사로 비교적 손쉽게 드러난 범인들의 관계, 반전이기는 하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아버린 진짜 동기 등 자잘한 부분에서 정교함이 약간 아쉬웠어요. 특히 진짜 동기가 밝혀진 뒤가 그러합니다. "디아볼릭" 등 수십 년 된 작품과 유사했기 때문이죠. 또, 오타가 굉장히 많은데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 동네 살인마 - 정명섭

동네에서 벌어진 한 일가족의 집단 음독 사건을 수사하는 청년 백수의 모험담.

추리소설가를 꿈꾸는 추리 애호가이자 청년 백수인 탐정 캐릭터와 더불어 시종일관 유쾌한 전개가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국내에도 이런 작품이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개인적인 이번 "계간 미스터리"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딱 한 가지, 진범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게 단점인데, 작품 길이를 늘리더라도 이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게 좋았을 것 같네요.

막다른 골목 - 김이제

한적한 시골 마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 있다... 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작품.

문제는 설정은 그럴듯한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겠죠. 한국적 이차원 판타지랄까요? 나름 의미를 부여하자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장르문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네요. 재미도 그닥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The Whisper of Blood - 미지의 속삭임 (2부)

1부를 읽지 않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세계 지능체와 엮여 고생길에 접어드는 주인공을 그린 SF입니다.

독특한 이세계 지능체 캐릭터는 괜찮았는데, 세계관이 이런 류 작품치고는 많이 뻔한 편이었어요. "기생수"를 비롯한 근미래 SF에서는 많이 보아온 설정이었거든요.

그러나 아직 완결된 것도 아니고 일부만 읽었기에 속단하기는 이를 것 같습니다. 별점은 완독할 때까지 유보합니다.

위험한 호기심 - 홍성호

펜션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 살인 사건 수사가 시작되고, 형사 준영은 펜션에서 사라진 충전기에 주목하는데...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당선작입니다. 전개와 결말이 이치에 맞고,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를 거쳐 수사해 나가는 과정이 괜찮은 범죄-수사 스릴러물로, 첫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네요.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일단 지나친 성적 묘사가 거슬렸어요. 뭐, 사건이 성적인 관계에 기반한 만큼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외에도 의도하지 않은 알리바이의 작위성 등 우연이 많다는 점, 주인공 형사 캐릭터가 그야말로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데뷔작이기도 하고, 아이디어와 전개는 좋았던 만큼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정태원 추모글

한국 추리문단에 큰 공헌을 하신 고 정태원 선생님에 대한 추모글입니다. 소개된 선생님의 저작만 해도 정말 엄청나서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평이나 별점을 남길 글은 아니죠.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경의 부고 기사에서부터 시작되는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피터 웜지 경 시리즈 단편인데 "검은별"과 너무나 판박이였습니다. 설정부터 전개가 똑같아요.

덕분에 추리물이 아니라 모험물로 보일 뿐더러, 추리적인 요소가 거의 없고 아동 취향의 수준 낮은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작가의 명성과 시리즈의 후광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작품으로, 차라리 "검은별"을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그 외 노원 선생님의 장편 연재작은 연재물이라 이번 권만 읽어서는 이해가 힘들어서 뭐라 평가하기 어렵네요. 스케일이 큰 작품인데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추후 단행본이 나오면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별점은 그때까지 유보합니다.

이러한 단편들을 포함한 총 별점은 3점입니다.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지답게 미발표 외국 단편이 한두 편 정도 더 소개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약간은 들긴 하나, 앞부분 김내성 선생님의 다양한 글들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기에 큰 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한국 추리문학을 사랑하시는 몇 안 되는 모든 분께 추천드립니다.

2007/01/05

베이커가의 살인 - 코난 도일 외 / 정태원 : 별점 2.5점

베이커가의 살인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자음과모음

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후대 작가들이 쓴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앤솔러지. 홈즈의 팬을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서슴없이 구입했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존경을 나타내기 위한 책의 컨셉은 앨리스 피터스 추모 단편 앤솔러지 "독살에의 초대"와 유사하나 이 책은 전 작품이 모두 "홈즈"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컨셉뿐인 팬 서비스용 기획 도서가 아니라 내용도 풍성합니다. 일단 앞부분에는 유명한 셜로키언이라는 대니얼 스타샤워의 서문과 홈즈의 아버지인 코난 도일이 직접 쓴 "셜록 홈즈에 대해 말하다"라는 에세이가 실려있고 추리 단편도 11편이나 실려있습니다. 책의 뒷부분에는 셜록 홈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두개의 짤막한 에세이가 이어지고요.

일단 서문과 코난 도일의 에세이, 기타 에세이들은 재미도 재미지만 자료적 가치가 꽤 높은 글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단편은 작품들이 너무 천차만별이라 수준이 좀 고르지 못합니다. 물론 좋은 작품은 상당한 수준이라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솔직히 기대 이하인 작품도 몇개 있더군요. 단편을 쓴 11명의 작가들 중에서 제가 아는 작가는 에드워드 D 호크밖에는 없지만, 작가 소개를 보니 다들 한가닥 하는 작가들이라 나름 기대를 갖게 했는데 좀 예상외였어요.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홈즈 시리즈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인데 현대 작가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아쉽더군요. 캐릭터들은 원본 그대로를 거의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전개나 분위기가 별로 유사하지 않아서 왠지 이질감이 조금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추리물로서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트릭이나 전개는 깔끔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홈즈 시리즈 원작이 추리적으로는 좀 실망스러운 작품이 많은데 이 단편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네요. 저의 베스트는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과 "놀라운 벌레" 였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대부분 추리물로서는 완성도는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도 이번에는 뭔가 좀 이상하고 작품들 수준 편차도 있는 편이라 선뜻 권하기가 망설여지긴 하지만 홈즈 팬인 저는 즐겁게 읽은 편이며, 홈즈 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을만한 좋은 작품들이긴 합니다. 자료적 가치도 있고요. 뭐니뭐니해도 등장한지 한세기를 넘기는 늙은 명탐정이 후대 작가들에게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다음 번에는 설홍주도 이러한 작품집의 말석이나마 차지한다면 참 좋겠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케이프타운에서 온 남자 : 스튜어트 M. 카밍스키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앨프레드 도나베리라는 인물이 홈즈를 찾아오기로 한 날은 태풍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그의 이혼한 전처가 찾아와 자기의 새 남편 존과 그가 마주치지 않게 해 달라는 부탁을 홈즈에게 하고, 도나베리와의 만남이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존이 도나베리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저자는 일찌기 에드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홈즈의 추리법을 흉내만 내었을 뿐,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홈즈 시리즈의 특징도 잘 잡아내지 못했을 뿐더러 추리적 요소들도 적절히 사용되지 못한 범작입니다.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 : 하워드 엥겔
왓슨은 홈즈의 요청으로 같이 슈르즈버리행 기차를 탄다. 이유는 곧 교수형 당할 운명인 전 육군원수 윌리엄 경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것. 사건은 윌리엄 경이 아내를 독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홈즈는 슈르즈버리에 도착하자마자 왕성한 활동을 벌여 진상을 밝혀내게 된다.
홈즈와 왓슨의 여행, 당시의 판결제도와 교수형 집행인의 등장 등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으로 사건 전개도 깔끔하고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결말과 범인이 코난 도일스럽지 않다는 것과 홈즈가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이 "깜짝쇼"에 의존하고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제목과 사건과의 연관성이 참 마음에 드네요.

세넨 코브의 사이렌 : 피터 트레메인
요양차 콘월 반도의 폴두 베이 근처의 오두막에 왓슨과 머물던 홈즈는 고대 콘월어 연구를 취미삼아 논문을 집필하던 중 젤바트 트레보소 경이라는 인물의 방문을 받게 된다. 그는 근처 암초에서 사이렌에 이끌려 3척의 배가 좌초한 사건의 해결을 의뢰하며 홈즈는 곧바로 왓슨과 함께 트리벤스로 향한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묘사한 작품으로 상당히 진기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켈트 역사학자이기 때문인지 쓰잘데 없는 묘사가 너무 많은 것이 단점이네요. 코난 도일 경이었다면 똑같은 이야기를 보다 깔끔하고 함축적으로 썼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트릭 덕에 기본 이상은 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피 묻지 않은 양말 : 앤 페리
왓슨은 친구 헌트의 초대를 받는다. 그러나 도착한 직후 헌트의 딸 제니가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유괴의 뒤에 모리어티 교수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자 왓슨은 홈즈를 부르게 된다.
모리어티 교수가 등장한다는 것 이외에는 큰 사건은 없는 작품입니다. 트릭도 괜찮긴 한데 현실성이 좀 떨어져 보이고요. 제목대로 피묻은 양말 자체는 그런데로 괜찮았지만 단지 그 정도일 뿐이었습니다. 너무 긴듯한 느낌에 내용 전개도 깔끔하지 않은 것이 전통적인 홈즈 스타일에서 약간 빗겨난 듯해서 그냥저냥한 범작이라 생각되네요.

익명 작가 : 에드워드 D 호크
어느날 스트랜드 매거진의 편집인이 한 익명작가를 찾아줄 것을 의뢰하러 찾아온다. 홈즈는 곧바로 그 작가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나 그 뒤 그 작가의 집 근처에서 타살된 시체가 발견된 것을 알게된다.
단편의 명수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의 홈즈물은 아주 짧은 꽁트를 한편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작품은 제대로 된 단편이네요. 전통적 홈즈물의 분위기를 초중반에는 물씬 풍기는 것이 제대로 된 홈즈팬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끔 하는데 후반부에 약간 어설퍼져서 아쉽습니다. 제대로 멜로드라마를 구성했다면 정말 전통에 가까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흐지부지, 너무 서둘러 끝나는 경향이 있다 보여지거든요. 덕분에 애매한 결과물이 되어 버려 조금 아쉽습니다.

흡혈귀에 물린 자국 : 빌 크라이더
연극계의 거물 헨리 어빙경의 비서로 일하는 스토커라는 인물이 홈즈에게 무서운 사건을 의뢰한다. 여배우 릴리의 아들 로빈이 흡혈귀에 물린 것 같다는 것. 홈즈는 왓슨과 함께 서리주의 별장으로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브램 스토커가 사건 의뢰인으로 등장하는 이색작입니다. 또한 서두의 홈즈의 추리쇼에서 시작해서 영국의 전원풍경, 괴상한 사건, 기발한 트릭이 어우러진 전형적 홈즈물의 적자라 할 수 있는 재미난 작품이기도 하고요. 트릭은 억지성이 있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억이 있는게 단점이긴 한데 워낙 작품이 재미나고 전통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홈즈를 태운 마차 : 길리언 린스콧
홈즈를 우연히 태우고 셀러딘 스퀘어로 향한 마부는 사실 악당 조직에게서 런던 제일의 쥐잡는 개를 도박을 위해 훔쳐서 가지고 가고 있던 중으로 셀러딘 스퀘어에서 벌어진 대 소동의 한가운데에 말려 들어가게 되는데...
홈즈나 왓슨이 아닌 한 마부를 주인공으로 한 색다른 작품입니다. 마부의 성격 묘사나 심리 묘사가 디테일하고 대사들이 톡톡 튀는 재미를 전해주기는 하는데 덕분에 홈즈물이 아닌 전혀 다른 패러디 작품으로 보이더군요. 추리적으로도 크게 눈여겨 볼 점은 없었습니다. 주인공 마부 캐릭터 덕에 보는 내내 즐겁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다지 알맹이는 없네요.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 : 로렌 D 에슬먼
유명한 탐험가 리쳐드경이 찾아와 투탄카멘의 묘에 대해 적혀있는 중요한 양피지 사본을 찾아줄 것을 의뢰한다. 범인은 패터슨이라는 조수일 것이라는 심증이 강하지만 증거가 없는 상태.
"천일야화"를 쓴 리쳐드 프랜시스 버튼경이 사건의 의뢰인이고 투탄카멘의 묘에 대한 사본이 등장하는 등 역사 미스터리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품입니다. 뭐 역사적인 사건이야 이 작품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재미는 있더군요. 초반부 리쳐드 경의 변장이 좀 뜬금없어서 억지스러운 것이 좀 거슬리고 트릭 역시 별로 대단치는 않을 뿐더러 솔직히 헛점이 너무 많지만 당시 시대상황을 잘 묘사하여 그럴듯한 역사 미스터리물로 창조해 내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체셔 치즈 사건 : 존 L 브린
체셔 치즈라는 런던의 전통적인 술집. 한 미국인이 죽어가는 영국인 친구가 남긴 헌시를 가지고 체셔 치즈 안에서 모이는 "포틴 클럽" 에 찾아갔다가 봉변을 당한 뒤 홈즈를 찾아와 이유를 묻게 되는데....
순전히 죽어가는 영국인이 남긴 "헌시"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작품입니다. 각 행마다 숨겨져 있는 단서와 정보를 모으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은 무척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만 아쉽게도 가장 중요한 트릭이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함으로 인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쉽더군요. 그래도 상당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암흑의 황금 : L.B 그린우드
셜록 홈즈는 황금을 놓고 악한 탐험가 바커가 노리고 있는 피그미 족의 보호를 위해 애슐리 경의 콩고 여행에 보디가드로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왓슨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왓슨은 자신도 변장을 하고 뒤따라갈 결심을 하게 되는데...
단연코 이 앤솔러지 최악의 작품입니다! 홈즈 시리즈의 특징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캐릭터만 잠시 빌어온 아프리카 여행기 수준의 글입니다. 기껏 아프리카까지 갔는데도 불구하고 모험이라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고 페미니즘 성격이 강한 이상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게다가 추리적 요소도 전무하고 이야기도 맥락이 없어요. 솔직히 이 책에서 아예 빼 버리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놀라운 벌레 : 캐럴라인 휘트
마담 타소 밀랍인형 전시관에서 홈즈 인형을 만들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온다. 왓슨과 방문한 그 전시관에서 웨스트오버라는 인물의 인형을 보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그 뒤 신문에서 웨스트오버의 돌연사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살인혐의는 없어 잊고 살던 중 웨스트오버 가문의 한 하녀가 찾아오는데...
시골 부자의 독살사건에 더불어 마담 타소 밀랍인형관에 실제로 전시된 홈즈와 왓슨 인형에 대한 진짜같은 이야기가 잘 조합된 수작입니다. 동기가 확실한 살인이라는 측면에서 정통 추리물의 궤도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사건의 전개와 해결 모두 깔끔하고 홈즈스러움이 팍팍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약 분석 같은 것은 너무 현대적이라 조금 이질감이 느껴지긴 하더군요. 그래도 충분한 재미는 안겨다 줍니다.

2013/09/09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아놀드 베넷 외 : 별점 1.5점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4점 아놀드 베넷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도서출판 한스미디어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추리소설 앤솔러지. 유명 고전 작가들의 단편은 물론이고 초창기 추리 이론까지 풍성하게 실려있습니다.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1권은 읽은 작품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고전 취향이라 2권부터 구입하게 되었네요. 2권 역시 다른 책에서 읽어본 작품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워낙에 목차가 괜찮고 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전 황금기 작품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기에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번역입니다. 일본어 중역 느낌이 물씬 날 뿐더러 그 자체가 별로 매끄럽지 않아 읽기 힘들었어요. 악명 높은 동서 추리문고 최악의 번역도 이거보다는 좋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고전 황금기 걸작이 아닌 몇몇 현대 일본작가 작품이 섞여 있는 것도 기획 의도가 모호해 보여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기획의도만으로 3점은 충분하지만 번역은 용서가 안되네요. 좋은 기획의도가 번역 때문에 다 망가진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한스미디어의 다른 작품들은 괜찮았었던 것 같은데 대관절 영문을 모르겠군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지만 대부분 다른 책에서 훨씬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라진 기억" | 배리 퍼론

극작가 애닉스터가 완벽한 밀실살인 트릭을 생각했는데, 교통사고로 트릭을 잊어버린 탓에 술집에서 트릭을 알려주었던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

교통사고로 딱 필요한 기억만 상실한다는 작위적인 설정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꽤 그럴듯한 전개, 그리고 마지막에 애닉스터가 상황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애닉스터만이 유일한 위험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서늘한 반전류의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

"살인!" | 이넉 아놀드 베넷

명백한 살인사건인데, 경찰이 수사 결과 몇몇 남겨진 단서를 통해 자살로 결론 내린다는 내용의 소품. 솔직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리 묘사에 대한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번역으로 다시 읽고 싶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피트 모란, 다이아몬드 헌터" | 퍼시벌 와일드

"탐정 피트 모란"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그때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번역이 너무나 별로인 탓에 작품마저도 후지게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실망하신 분들께서는 "탐정 피트 모란"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 때문에 별점을 주기조차 어렵네요.

"골초는 빨리 죽는다" | 이자와 모토히코

"역설의 일본사" 말고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상을 많이 수상했던 유명 작가의 단편.

두 명의 대화로만 전개되는 형식과 담배로 촉발된 살의라는 설정은 독특한데, 결말이 너무 심하게 별로였습니다. 반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좀 어이없는 결말이었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먹이" | 토마스 테셔

이형 생물체가 등장하는 크리쳐 호러물. 스티븐 킹의 비슷했던 작품(한 소년의 아버지가 점액질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데, 이 작품은 "애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극적 결말이라는게 차이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라서 평하기는 어렵지만 공포도 아니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결말에서 반전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 그냥저냥한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콜 Y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제가 개인적으로 번역했던 작품이죠. 읽어보니 원작을 "직역"한 번역으로 읽기가 어렵더군요.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3점인 좋은 작품인데 안타깝네요. 솔직히 제 번역과도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들의 쇼핑" | 쓰쓰이 야스타카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해본 적 있는 이색작.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부들이 강도단을 조직한다는 내용입니다. 작품 자체의 수준은 그냥저냥이지만, 작가 특유의 섬뜩한 풍자 하나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가 백미!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살의" | 다카기 아키미쓰

역시나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했던 작품으로, 굉장한 걸작입니다. 이른바 "일사부재리" 원칙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마지막 반전까지 빼어난 단편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살의"라는 말이 들어간 작품들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은 하나같이 괜찮네요.

"아버지" | 토마스 H. 쿡

토마스 H. 쿡의 장편은 몇 권 읽어보았지만 단편은 처음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장편 못지않은 묵직함이 잘 전해지는 묘사가 아주 좋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무대 뒤의 살인" | 에드워드 D. 호크

총 3편의 초단편 Short-Short로 이루어진 작품.

예전에 읽었던 "4페이지 미스터리"와 유사하나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3편의 이야기 모두 논리정연하면서도 예상을 뒤집는 정통 추리물이거든요.

첫번째 작품은 사진 필름 원판을 가지고 협박하는 협박자가 살해된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런저런 논리 퍼즐에서 많이 보았던, 다섯 번째 남자마다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이집트 전시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입니다.

첫번째 작품은 에스터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돋보였어요. 특히나 1만 2500달러라는 애매한 비용과 30분이라는 시간 공백을 설명하는 게 제법이었거든요.
마지막 작품은 살인사건은 전혀 상관없는 동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명성에 걸맞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오번 가문의 비극" | 매슈 핍스 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단편 미스터리 시리즈인 "프린스 자레스키" 시리즈!

그러나 별로 건질 게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프린스 자레스키 설정은 너무나 만화 같았고 사건도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아버지가 광인이 된 것을 왜 숨겨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사건 현장 윗층에서 과학교실을 열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조작을 하는 것도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본인이 자살하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었을 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작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번역까지 별로라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불도그 앤드류" | 아서 체니 트레인

터니게이트 - 애플보이 사이의 영토 분쟁에서 불도그 앤드류가 지나가던 터니게이트를 문 뒤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는 법정극.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좀 무리지만 유머스러운 일상계 법정극으로는 충분히 읽을 만 했습니다. 재판장의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번역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내의 외출" | 자크 푸트렐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이 책에 수록된 제목은 "녹색눈의 괴물"이죠). 당대 보기 드문 일상계로 가치 높은 수작입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 민망할 정도로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서 도저히 읽을 맛이 나지 않네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A 분장실의 수수께끼" | 자크 푸트렐

역시나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것과 같은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 여배우의 증발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장치적으로는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가 선보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핵심이 "최면술"이라는 게 문젭니다. 당시 최면술이 마법처럼 받아들여진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물로 생각되는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번역 역시 수준 이하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윔지 경 단편.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던 "검은별"과 동일한 스타일의 모험극.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거의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오필리어 살해" | 오구리 무시타로

"흑사관 살인사건"의 오구리 무시타로가 쓴, 범죄학자이자 탐정 노리미즈 린타로가 등장하는 단편. 셰익스피어 스타일 연극 무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무대 장치를 이용한 기계장치 트릭에 더해 심리적 착각을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죠.

현실적이지 못한 트릭,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학적인 전개와 묘사, 거기에 동기까지 애매하여 전체적인 완성도가 낮습니다. 정통추리물로 보기도 어려웠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의 마음은 찢어졌어" | 크레이그 라이스

"스위트홈 살인사건"의 크레이그 라이스가 쓴 단편. 주인공인 술꾼 찌질이 변호사 말론은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네요.

의뢰인인 사형수 폴 파머 자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폴 파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끊어지지 않았어"를 단서로 마지막에 추리쇼까지 펼쳐 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추리물입니다.

정통파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반부 딕슨 의사와의 대화로 병원에서 탈옥한 죄수가 있다는 단서를 전해주는 등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좋았고요.

메들레인 스타가 그냥 폴 파머와 결혼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텐데 성공 확률이 낮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옥의 티이긴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4/05/12

poirot님 블로그에서 퍼온 25문 25답

25문 25답

01. 당신은 책을 좋아합니까? (좋든 싫든) 그럼 그 이유는 뭐죠?

☞좋아합니다. 부자의 법칙 중에 "책을 많이 읽어라! 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어쩌구.." 하는 글귀도 있잖아요. 물론 전 부자가 아니지만....

02. 한 달에 책을 몇 권 정도 읽나요?

☞음.. 많이 읽으면 15권 이상, 적게 읽으면 4권 정도....

03. 특별한 독서 취향이 있다면?

☞추리 단편집의 광적인 팬입니다.

04. 가장 최근에 읽은 책과 현재 읽고있는 책은?

☞읽은 책: 피터 크레머 "U-333"
☞읽고 있는 책: 제임스 레스턴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05.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거죠?

☞작가와 서지정보 정도랄까요...

06. 책은 사는 편인가요, 아니면 빌리는 편인가요? 빌린다면 어디에서 빌리죠?

☞사는 편이고 형이 사는 책을 공유하는 편입니다.

07.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뭐고요? (장르 불문하고)

☞좋아하는 작가 : 좋아한다기 보다는 일본 작가들 책을 많이 읽습니다.
☞싫어하는 작가 : 아카가와 지로(!), 제임스 페터슨, 조갑제(!),

08. 특히 좋아하는 장르와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어떤 거죠? 그 이유는 뭐고요?

☞좋아하는 장르: 미스터리, SF, 역사물, 전기물, 잡다구레한 상식서적 들, "세계의 불가사의"류같은 장르들....
☞싫어하는 장르: 싫다기 보다는 순문학 장편은 지루하더군요. 그리고 성적인 묘사로 점철된 의미없는 장편 들....

09.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좋아하는 인물: 뤼뺑(!), 홈즈, 다아시경, 류젠이(불야성), 모스주임
☞싫어하는 인물: 가타야마 형사(^^) 딱히 기억이.....

10. 일반적인 책말고 만화책도 좋아하시나요?

☞광적입니다.

11. 만화책 중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나 작가를 꼽아본다면요?

☞추리만화는 거의 대부분 좋아합니다. 스포츠 만화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두 장르이외에 인상적인것은 초중반의 "베르세르크"(미우라 켄타로), "바나나 피쉬"(요시다 아키미), 아사리 요시토오 작품은 다 좋아하고요. TONO씨도 거의 전작품이 좋고..."현시연"이야 당근 좋아하고.. "갤러리 페이크"는 요새 관심있게 보고 있고..."도박묵시록 카이지" 중반부까지, "건담 Origin" (야스히코 요시카즈)도 관심대상이고... 너무 많군요. SKip!

12. 만화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좋아하는 인물 : 너무 많아서...
☞싫어하는 인물 : 기억이....

13. 기억에 남는 대사나 문구가 있다면 말씀해보시겠어요?

☞"단순한 성욕보다 훨씬 고도의 지적활동이야!" (By 마다라메)

14. 특별히 게임, 영화 등 다른 매체로 제작됐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거죠?

☞"시민 쾌걸" 제작 진행중이라는데 왜 소식이 없는지...

15. 다른 매체로 제작된 것 중, 좋았던 작품과 나빴던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좋았던 것: 39계단 (히치콕영화), 올드보이, 스캔들 (최근 1년간만 쳐서요)
☞나빴던 것: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했던 아르센 뤼팽, "체포하겠어" 드라마 판, 소년탐정 김전일 영상버젼 (전부!). "퇴마록"(쓰레기), "모방범""39계단" (이 일본원작의 두 작품은 너무 영화가 재미없어서...) 등등등 엄청나죠....

16. 미스터리 소설 장르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실래요?

☞어렸을 적 팔았던 홈즈 단편 1편씩이 실려있는 단행본 문고 시리즈 (어디 출판사인지는 기억이 안나네요)를 하나씩 모으면서....

17. 그 당시 미스터리 소설 장르에 대한 느낌은 어땠어요?

☞홈즈 나이스!

18. 읽어본 것 중 가장 인상깊었던 미스터리 소설을 꼽아주실래요?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10개의 인디언 인형"

19. 읽어본 것 중 가장 최악이었던 미스터리 소설은 어떤 것이죠?

☞"미스코리아 살인사건" 글쓰기의 기본도 안 되어있는 작가가 장편을 내 놓다니...

20. 요즘의 미스터리 소설 시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

☞팬들의 사랑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21. 최근 읽은 작품 중 괜찮다 하는 미스터리 세 편을 꼽아보시겠어요?

☞ "얼굴에 흩날리는 비"-기리노 나츠오, "바리바"-모리스 르블랑, "엘러리 퀸의 모험"-엘러리 퀸

22. 미래의 미스터리 소설 장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밝지 않나요?

23. 게임, 영화 등등 소설 외 미스터리 장르 중 좋았다 생각하는 것을 꼽는다면?

☞ "QED" 최고!

24. 특별히 추천하는 게임을 들어보실래요?

☞ WWE SMACK!DOWN, 하지만 주로 하는 것은 워크래프트3 입니다.

25. 기획 중이거나 집필 중인 소설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를 해주실래요?

☞ 한국형 안락의자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습니다. "지식검색 탐정"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