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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1

n분의 1의 함정 - 하임 샤피라 / 이재경 : 별점 4점

n분의 1의 함정 - 8점
하임 샤피라 지음, 이재경 옮김/반니

여러가지 상황과 게임을 예로 들어 게임 이론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는 교양서입니다. 

게임 이론은 참가한 선수들간에서 누군가의 결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어떤 결정을 할지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선수들의 목표는 본인의 이득 최대화이고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여서 책 소개만 보고 흥미가 동했었는데, 읽다보니 의외로 수학 이론 책 치고는 재미까지 있어서 놀랐습니다.

재미있는 이유는 게임 이론에 대해 여러가지 실제 게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를 비롯하여 '공갈협박범 딜레마' '최후통첩 게임', '남의 떡 역설' 등 제목만 보아도 어떤 게임인지, 어떤 전략을 쓰는지 두근두근하게 만들거든요. 

'최후통첩 게임'은 두 사람이 정해진 돈을 나누는 게임입니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제안한 뒤, B가 수락하면 각자 제안대로 돈을 나눠 갖고, B가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못 받는 룰입니다. 재미있는건, 남자는 상대 여자가 미인이라고 해서 딱히 더 후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에게 훨씬 후한 제안을 했다는 실험 결과였습니다. 저자는 여자들은 1회성 게임을 시리즈 게임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는 여성이 이런 성향 때문에 남성보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행동과 대처가 상대에게 장기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성향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매우 중요하고 각장 환영받는 자질이기 때문이랍니다. 한 번 만남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기일회 정신은 이미 낡아버려 시대에 맞지 않는 걸까요? 또 이른바 '뒷끝을 남기지 않는' 남자들 성향이 오히려 장기적 전략에는 해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추측 게임'을 통해 예상과 다른, 황당한 결과가 초래되는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0부터 100까지 숫자를 고르라고 한 뒤, 이 숫자의 평균을 내고 0.6을 곱한 결과에 가장 근접한 숫자를 고른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여기서 수학적으로, 전략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은 '0' 입니다! 사람들이 무작위로 숫자를 고른다고 한다면, 평균은 50이니 50에 0.6을 곱한 30이 정답이지요. 하지만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해서 30을 고른다면? 18을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계속 진행되어 정답이 0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 참가자들이 모두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현명하고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정이야말로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지요.

'내시 균형'에 대한 상세하고 다양한 설명도 흥미로왓씁니다. 내시 균형은 상대의 전략에 대응하는 나의 최적 전략과, 나의 전략에 대응하는 상대의 최적 전략이 일치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몇 명의 간수가 대량의 포로를 이송하는게 가능한 이유도 바로 내시 균형 덕분이라네요. 포로들이 단체로 탈추하거나 폭동을 일으켜 공격하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만 시도한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게 되겠지요. 즉, 내 입장에서 내시 균형은 탈주나 폭동이 일어날 경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죄수의 딜레마'야 말로 내시 균형의 가장 좋은 예입니다. 상황 종료 후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배신을 선택하는게 최적의 전략이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침묵하거나 배신하거나, 배신한 쪽만 후회할 일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내시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를 명확히 세워야 한다는 내용은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사랑의 작대기와 같은 룰의 '쌍쌍 파티'를 통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나는 누가 봐도 최고인 A와 파트너가 되어야겠다!"라는게 목표면 무조건 A에게 표를 주어야 합니다. 대안은 없으니까요. 반대로 "나는 최악인 Z만 피하면 된다!"라는게 목표면 Z 바로 위의 Y에게 표를 주는게 최적의 전략이고요. 각자 무엇을 먹던, n분의 1로 식대를 지불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에요. 목표가 "나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인지, "나는 A를 꼭 먹겠다!"인지, 아니면 "나는 무조건 돈을 적게 내겠다!"인지에 따라 주문하는 메뉴가 달라지게 되겠죠.

하지만 내시 균형 전략이 적용될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자원자 딜레마'가 그러합니다. 이는 n명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을 때, 최소 한 명이 자원자로 나서면 전원이 두둑한 상금을 받지만 자원자는 상금에서 위험 비용을 제한 금액을 받는 상황 속 딜레마를 뜻합니다. 이 게임에서 내시 균형 전략에 따라 자원하지 않는다면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혼합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네요. 또 내시 균형 전략에 따른 해법이 오히려 최적의 해법과 상극인 상황도 존재합니다. '여행자의 딜레마'라고 부르는데, 두 명에게 5달러에서 100달러까지 원하는 대로 돈을 써 내라고 하고, 둘이 같은 금액을 쓰면 같은 금액을 주지만 금액이 다를 경우는 낮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 5달러를 더 주고 높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서 5달러를 공제한다는 딜레마입니다. 여기서 내시 균형에 따른 최적 전략은 5달러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를 극대화하는게 우선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99달러를 써야합니다. 99+5달러가 최선이니까요.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서 98달러를 쓰고... 이런 생각이 반복되어 결국 둘 다 5달러를 써 내는 선택만이 후회가 남지 않게 됩니다. 뭔가 익숙한 상황이 많이 떠오르네요.

죄수의 딜레마를 연장한 게임에서 필승 전략인 '팃포탯' 전략도 기억해 둘 만 합니다. 이 전략은 출발은 신사적으로, 두번째 게임부터 상대가 직전에 했던 행동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까가 아니라, 상대가 내게 먼저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서 행동하라는건데, 실제 상황에서도 많이 통용될 수 있는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사슴 사냥 게임처럼 신뢰와 협력이라는, 그야말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게임 이야기라던가 통계 관련 이야기, 도박장에의 전략 등 눈여겨 볼 만 한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도박은 한 번에 과감하게 가는게 좋다네요. 내가 불리한 게임은 게임 횟수를 최대한 죽이는게 맞는 전략이라면서요. 나름대로 그럴듯합니다. 영국 정치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했다는 말대로인 거지요. “절벽 사이를 두 번에 나누어 뛰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다 단지 수학 이론서나 교양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필요한 전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좋은 독서였고요. 목차가 잘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드는건 아쉽지만, 그 외에 별로 흠잡을 부분은 없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마지막 장에 요약되어 있는, 주옥과 같은 게임이론 가이드라인 중 몇가지를 공유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 협상에 임할 때 유념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아무런 합의 없이 회담이 결렬될 가능성을 참작해야 한다.
둘째, 게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의 노선과 마지노선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

- 게임의 수학적 해법을 너무 믿지 말 것. 수학적 해법은 질투심, 모욕감 같은 중요한 감정들과 그것들이 만드는 변수를 간과하기 일쑤임.

- 어떤 결정이 됐든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만약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한 번쯤 자문해볼 것. 동시에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것.

- 목표가 단순히 이기는 것이라면, 괜히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고 상황을 복잡하게 풀면서 곁길로 빠지지 말 것.

- 게임에서 내가 ‘불리한’ 입장에 있을 때는 되도록 게임의 횟수를 줄여야 함. 약자에게는 한판승이 가장 승산이 높다. 위험을 회피하려 애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2009/12/23

별난 전쟁, 특별한 작전 - 조셉 커민스 / 채인택 : 별점 4점

별난 전쟁, 특별한 작전 - 8점
조셉 커민스 지음, 채인택 옮김/플래닛미디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쟁들 중에서의 기발한 전략과 전술을 되짚는 책입니다. 병력 숫자만으로 밀어붙이는 어택땅이 아니라, 천재들의 전략을 중심으로 세밀한 설명과 자세한 지도 등의 도판과 함께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설명이나 묘사도 감칠맛나는지라 총 4부 254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쑥쑥 읽히는 맛이 있더군요. 익히 알고있던 전투은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 당시 칸나에 전투와 데미스토클레스의 살라미스 해전에 불과할 정도로 새로운 정보가 가득하다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드는 점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천재적인 전략과 전술"을 중심으로 하는 책이니만큼 아무래도 약자 쪽에서의 위대한 승리를 기술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 아주 좋았는데 (전 루저들의 편이랍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일 먼저 꼽고싶은 이야기는 위대한 줄루족 지배자 샤카가 고안한 황소의 뿔 전략과 이 전략을 이용해 줄루족이 압도적인 장비의 영국군 분견대 천여명을 괴멸시킨 이산들와나 전투 이야기입니다. 빠른 이동과 부대지정이 전략의 핵심포인트였다는 점에서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를 마친 저글링이 시즈탱크 부대를 가공할 속도와 완벽한 부대지정으로 휩쓸어버리는 모양새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야말로 상상만 해도 전율이 올 정도죠. 더불어 카리스마 넘치는 샤카에 대한 묘사도 흥미진진해서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리고 섬도시 티레를 정복하기 위해 아예 섬까지 다리를 놓아버린 알렉산드로스의 티레 점령기도 빼놓기 어렵겠죠. 이 이야기는 막강한 절대자가 반항하는 섬도시를 뭉갠 이야기라 루저들의 승리라는 전체적인 감상 포인트 측면에서는 좀 어긋나긴 하지만 워낙 스케일과 발상이 황당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과연 과거의 절대자나 할 수 있었던 절대왕자다운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꼽고싶은것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오하에아와이 전투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최고의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용맹한 마오리족 전사들이 위대한 추장 헤케와 카위티의 지휘와 과학적이면서도 치밀한 구조물 파-벙커와 참호를 결합한 듯한 특이한 건물- 를 잘 활용하여 단 백명으로 이백오십명의 대포 등으로 중무장한 영국군을 격퇴했다는 내용으로 마오리족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울러 영국군의 멍청함은 부록삼아 즐길거리로 충분했고요.
저의 무지함탓에 야만인 정도로만 알고있었던 마오리족이었는데 정말 반성하고 사과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위의 전투들 외에도 당대 최정예 로마군이 숲속의 함정과 같은 완벽하고 치밀한 작전에 괴멸한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어이가 없어서 차라리 웃기기까지한 남북전쟁 때의 구덩이 전투, 제 3차 가자전쟁때의 여러 속임수 작전 등 상세히 언급하지 않은 내용들도 모두 재미있었습니다.

이렇듯 재미만 따져도 최고수준이지만 다양한 자료와 도판 등 책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기에 별점 4점은 충분하겠죠? 별 5점을 줄까도 했는데 사례로 든 전투들이 전부 서양쪽 시각에 가깝다는 단점이 약간 눈에 띄여서 감점했습니다. 어차피 학익진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면 하니발의 이야기 대신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끼워넣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뭐 그래도 4점도 굉장히 높은 점수죠!
전략과 전술에 관한 역사서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강추합니다.

2021/07/10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애덤 쿠하르스키 / 정훈직 : 별점 2.5점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6점 애덤 쿠하르스키 지음, 정훈직 옮김/북라이프

수학자는 과연 논리적인 게임을 잘 할까?는 제 오랜 궁금증 중 하나였었습니다. 이 책은 여기에 대한 어느 정도 합리적인 답을 제공해 주는 책입니다. 수학을 이용해서 룰렛, 복권, 경마, 블랙잭, 포커, 드래프트, 체스 등에서 이겼던, 혹은 이기려고 노력했던 여러가지 노력과 사례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자들이 이런 게임들에 도전해서 돈을 벌었던 실제 사례들이 특히 재미있더군요. 대표적인 예가 복권입니다. 복권 당첨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학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더라고요. "스크래치 복권"의 공정한 지역 분배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복권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여섯 개가 아니라 그보다 적은 숫자가 당첨된 사람에게 당첨금을 분배하는 '롤 다운' 제도의 헛점을 이용한 전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수학자가 계산해보니, 롤 다운 상황이 일어났을 때는 판매되는 2달러 복권 당 최소 2달러 30센트의 상금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비가 이끄는 MIT 그룹은 롤 다운 상황을 이용해서 무려 70만 달러에 당첨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아일랜드 회계사 스테판 클린세비치의 전략은 더 단순합니다. 모든 당첨 가능한 숫자를 조합해서 복권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이 100만 파운드 미만이라는 점을 알아낸 뒤, 당첨금이 100만 파운드를 훨씬 넘겼을 때 베팅을 시도한다는 전략입니다. 복권 구입에 품이 많이 든다는 점과 다른 사람이 당첨되면 당첨금을 나눠 가져야 하므로 이익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서 확실하다고만은 할 수 없겠습니다만....

블랙잭 전략은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등에 나왔던 카드 카운팅 외에도, 다양한 전략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카드 카운팅이 핵심이기는 하지만, 카드 섞는 과정에서 패턴을 추출하는 방식은 꽤 그럴듯해 보이네요.

경마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략은 출발 위치 등 여러가지 측정치를 통해 특정 말의 우승할 확률을 먼저 계산하는. 이른바 예측 모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갬블러들은 모델을 통해 얻어낸 데이터와 실제 배당률을 비교하여 베팅을 하고요. 축구 경기도 이러한 예측 모델이 존재합니다. 홈팀이 넣을 골의 기대치는 "홈팀의 공격 능력 * '원정팀의 수비 취약점 * 홈 그라운드 이점' 이다" 처럼요. 이 모델은 기초적인 상태에서도 베팅 업체를 능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니, 스포츠 토토를 한다면 관심을 한 번 가져볼만 하겠습니다. 선수 영입 시에는 득점할 골의 수 보다는, 만들어 낼 슈팅의 수를 예측해 봐야 한다는 말도 기억에 남고요.

스포츠 베팅은 제가 야구를 좋아하기에 관심있게 읽었는데, 잘 알려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징크스'에 대한 설명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 표지 모델이 되었던 선수들은 종종 그 뒤 성적 하락을 겪게 된다는 징크스인데, 통계학자들에 따르면 징크스가 아니라고 합니다. 선수들이 잡지 표지에 나올 수 있었던 건,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며, 이는 그들의 진짜 능력이라기 보다는 불규칙한 변동으로 보는게 타당하기에, 이후의 성적 하락은 단순히 평균 회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몬스터 시즌'을 보낸 뒤 성적이 급격하게 하락한 몇몇 선수들이 떠오르네요.

실제 베팅을 위해 유용한 정보도 가득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켈리 기준'입니다. 장기적으로 기대 수익을 이기면 받을 액수로 나눠서 나온 비율을 전체 자금에도 적용하여 그 만큼의 액수를 거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에서 1달러를 건 뒤, 뒷면이 나오면 2달러를 주는 도박이 있다면 절반의 경우 1달러를 잃고, 절반의 경우 2달러를 따니 기대 수입은 50센트 입니다. 얼마를 거는게 적절할까요? 켈리 기준 적용 시,기대 수입 50센트를 이겼을 때의 액수 2달러로 나눈 0.25, 즉 이용 가능한 자금의 1/4을 걸면 된다는군요. 참고로 켈리 기준은 블랙잭 등에는 적절하지만, 경마 등에서는 부적절합니다. 일어난 확률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계산이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마 예측 모델의 확률은 추정치에 불과하니, 이대로 계산할 경우 위험도가 증가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경마에 대한 이야기 뒤로는 주로 예측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예측 모델이 잘 만들어져 있을 경우, 나름대로 안정적인 투자처로 이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베팅 회사가 존재한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로 이 쪽 세계의 발전이 놀라운 것 같습니다. 불확실성이라는게 존재하는 세계인건 맞지만, 사람들은 놀라운 사건의 빈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 책의 말 처럼 너무 마음에 둘 필요는 없어요. 연 15~25%의 수익률을 올린다면 충분히 투자를 고려해 봄 직 하지요. 예측 모델도 유명한 IBM의 딥 블루나 왓슨처럼 점차 '인공 지능'에 가까운 연구들이 소개되는 식으로 최근(책이 쓰여진 기준으로)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건 포커를 이기는 모델이 굉장히 만들기 어렵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확률이 중요한 게임이니 수학자들에게 유리할 것 같은데 의외였거든요. 그런데 읽다보니 과연 그럴만 하더군요. "블러핑"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폰 노이만에 의해, 블러핑은 반드시 필요하다는게 수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최악의 카드를 가졌다면, 상대가 게임을 접지 않는 한 승리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블러핑 전략을 펼쳐야 하니까요. 그 외에도 '어떻게 하면 돈을 가장 많이 딸 수 있을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잃을 수 있을까?"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던가, 후회의 감정이 없어지면 위험 요인이 관련된 게임 숙달이 힘들다는 등 다양한 이론과 전략이 가득해서, 포커 자동 프로그램 제작은 쉽지 않았다네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프로 포커 플레이어도 원숭이에게 질 수 있는게 포커라는 뜻입니다!

또 각종 도박에 승리하기 위한 수학적 노력이 단지 돈벌이가 아니라 새로운 이론과 기술의 시작점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예를 들어 룰렛은 일반적인 패턴에서 무작위로 전환되는데, 이를 카오스적 전환의 실제 사례로 보고 여기서 카오스 이론이 파생되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예측 모델이 결국 인공 지능으로 발전한 것도 마찬가지일테고요.

하지만 기대했던건 수학자의 이론이 바탕이 된 '필승 전략'은 많이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기기 위한 여러가지 수학적 방법은 결국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카드 카운팅부터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지요. 그나마도 카지노에서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하니, 결국 카지노에 가는 것 보다는 탄탄한 예측 모델을 가지고 있는 베팅 그룹에 투자하는게 훨씬 나은 선택으로 보이네요. 또 수록된 내용들도 쉽게 쓰여져 있지는 않습니다. 노력은 한 것 같지만, 애초에 수학 초보자가 쉽게 이해하기는 워낙에 어려운 이론들이 등장하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기대와는 사뭇 달랐고,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장벽이 높기에 감점합니다. 수학적으로 저보다는 기초가 탄탄하신 분들이 읽으신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는 살짝 스쳐지나갔는데, "인기"에 대한 연구 결과가 기억에 남습니다.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 사람들을 그룹으로 나눈 실험을 통해, "대중적 인기와 유명세는 퍼트리는 사람에 더 관련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거든요. 여기서는 운과 실력, 갬블링과 투자는 명확하게 분리하기 어렵다는 근거로 이 결과를 활용하는데, 이 주제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를 읽고 싶어지네요.

2026/10/24

장국의 알타이르 1~27 -- 카토 코토노: 별점 2.5점

루메리아 대륙의 상업 국가 투르키에는 13인의 장군들에 의해 통치되는 '장국'이다. 17세의 나이로 장군에 오른 마흐무트는 12년 전, 빌트리안 제국과의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던 경험 때문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대륙의 패권을 노리는 발트라인 제국은 결국 전쟁을 일으켰고, 마흐무트는 주변국들과 '반제 동맹'을 결성하여 이에 맞섰다. 

초전, 카리르 장군의 대패에도 불구하고 마흐무트는 제국 육군을 패퇴시켰고, 독약의 자가노스 장군이 이끄는 동맹군이 제국의 수도 성 미하엘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국의 여장군 레레데릭이 일으킨 군대가 반대로 투르키에의 수도인 금색 도시를 향해 진격했고, 양측의 수도를 둘러싼 마지막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총 27권으로 완결된 장편 만화입니다. 가상의 대륙을 무대로 투르키에 장국의 젊은 장군 마흐무트가 발트라인 제국의 팽창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정치와 외교, 전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거의 15년 전에 1권을 접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간 읽지 않고 있다가 모처럼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를 연상시키는 투르키에 장국의 장군이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역사를 모방한 가상 역사물은 적지 않지만,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기했어요. 

그리고 거대한 대륙의 패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대하 서사물로 볼 수 있습니다. 등장하는 국가와 인물도 많고, 외교적 이해관계와 전쟁 양상도 제법 복잡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7권이라는 적당한 분량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비슷한 규모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분량을 늘리거나 마무리에 실패하는 작품도 적지 않은데, 적어도 이 작품은 결말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깔끔한 편이에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전투 묘사입니다. 주요 전투마다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가 비교적 명확하고, 특별한 기술과 신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4장국의 반란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입니다. 마흐무트는 압도적인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동궁(총)'이라는 신무기였습니다. 발트라인 제국의 수도를 방어하는 철벽의 성, 성 미하엘 공략에서도 거대한 대포인 '경고의 종'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요. 중해에서 펼쳐지는 해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베네딕크 함대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 만든 기동성 높은 갤리선과 꺼지지 않는 불인 '포이니크스의 등' 덕분이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무기와 기술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설정도 재미있지만, 단순히 무기의 위력만으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전투 상황과 지형, 병력의 특성을 이용하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4장국의 반란을 진압할 때 마흐무트가 나뭇가지를 이용했던 전략이나, 발트라인 제국의 피노 장군이 투르키에 장국의 카리르 장군을 섬멸할 때 펼쳤던 매복과 포위 방진이 좋은 예입니다. 무르물로 분지에서 벌어진 전투의 기병대 운용도 인상적이고, 제국 남령군을 따라잡기 위해 벌이는 기마 추격전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해안선을 달리는 장면은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전술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전투의 구성과 비교하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외교와 전략은 의외로 허술한 편입니다. 우선 마흐무트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역에 뛰어드는 전개는 억지입니다. 밀짚을 비롯한 상품의 교역으로 국가 간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 탓입니다. 물론 무역을 통해 국가 간 분쟁을 막는 전략은 현실에서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게 석유같은 거라면 모를까 짚단 정도로 전쟁을 막는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게다가 어차피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서 이러한 무역 이야기는 분량 낭비에 불과합니다.

마흐무트의 성공이 지나치게 운에 좌우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위기에 처하거나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나 물건이 등장하는 식입니다. 우라도 왕국의 비료처럼요. 이런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다 보니 천재라는 마흐무트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조직에 무한한 충성심을 보이며,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뿐 배신이나 개인적인 야심은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물론 군인이라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쟁과 권력 투쟁을 다루는 작품에서 거의 모든 인물이 이토록 단순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과 갈등이 부족하다 보니 정치극으로서의 깊이도 떨어지고요. 

인물의 기본적인 설정 역시 전형적입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천재 마흐무트부터 시작해서, 주변 인물들 역시 익숙한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방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국가 관계에 비해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방식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대하 서사물인데도 불구하고 군웅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전투에서 적의 지휘관을 제거하는 전략이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휘관을 잃은 군대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지휘관 제거를 노리는 작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대장만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도박수가 너무 많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규모와 양상이 달라져도 이런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정교한 전략보다는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모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후반부에 이르면 이런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지막 전쟁은 투르키에 장국의 자가노스 장군이 발트라인 제국의 수도 성 미하엘을 먼저 함락시키느냐, 아니면 레레데릭이 장국의 금색 도시를 먼저 점령하느냐의 시간 싸움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경쟁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레레데릭이 금색 도시를 함락시킨다고 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레데릭의 군대는 이미 투르키에 장국의 한복판까지 깊숙이 진격해 있습니다. 주변 동맹국들의 군대가 규합되어 포위망을 형성한다면 장기간 버티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무엇보다도 병력을 보충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포에니 전쟁 당시 이탈리아 깊숙이 진격해 여러 차례 로마군을 격파했지만 결국 전쟁 자체를 끝내지는 못했던 한니발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적국의 수도를 점령하는 것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성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쟁의 최종 승리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자가노스가 공격하는 성 미하엘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발트라인 제국은 이미 주요 영지를 모두 잃었고, 수도는 외부와의 통로도 거의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성 미하엘의 함락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두 전선의 전략적 상황이 이토록 다른데도 마치 어느 쪽이 먼저 상대의 수도를 점령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제국 황제의 항복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입니다. 성 미하엘에는 여전히 7만여 명의 상비군이 남아 있는데도 황제는 전면 항복을 선택합니다. 물론 수도가 고립되고 전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제국이 멸망하면 황제 자신도 목숨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남은 병력을 총동원해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적어도 그 정도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결전을 시도할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대장군까지 직접 전선에 나서 레레데릭과 맞서 싸우는 투르키에 장국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제국 황제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제국의 항복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족에 가깝습니다. 투르키에 장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후의 정세가 제시되지만, 전쟁이 끝난 뒤라 긴장감이 크게 떨어집니다. 새로운 국제 질서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별다른 흥미나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작품의 주된 갈등이 해소된 시점에서 굳이 이만큼의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국의 알타이르"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전쟁의 전체적인 흐름과 외교적 전략에는 허점이 많고 인물 묘사도 단순하지만, 개별 전투만큼은 상당히 공들여 구성했습니다. 실제 역사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배경으로 신무기, 기발한 전술, 대규모 회전과 공성전, 해전 등을 두루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대륙의 패권을 둘러싼 거대한 이야기를 27권으로 마무리했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치밀한 정치극이나 깊이 있는 인물 묘사를 기대한다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다양한 무기와 전략이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중세 전쟁 만화를 좋아한다면 추천드립니다.

2021/05/28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 크리스터 요르젠센 / 오태경 : 별점 2.5점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 6점
크리스터 요르젠센 지음, 오태경 옮김/플래닛미디어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의 평전... 이라고 생각하고 오래전에 구입했던 책입니다. 왠지 손이 가지 않아 몇 년 동안 묵혀두었다가 읽어 보았는데, '평전'이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출생과 죽음까지, 일대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책의 2/3 이상은 롬멜이 지휘했던 주요 전투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역사서 (전사)인 셈이지요. 

거의 모든 주요 전투에서 롬멜의 전략, 전술, 핵심 포인트와 승리, 패배 원인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게 장점입니다. 이전 "아틀라스 전차전" 등과는 다르게 전투 과정을 생동감넘치게, 일종의 대하 사극처럼 묘사하고 있어서 이해하기도 쉬웠고요. 이를 뒷받침해주는 도판도 아주 좋습니다. 전투 상황, 투입 부대와 경로를 상세히 기입한 지도를 다수 수록한게 특히 마음에 듭니다. 실감 가득한 여러 스냅 사진들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롬멜과 해당 전선에서의 사진만 골라서 수록해 놓았는데, 책의 내용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롬멜이 토브룩을 확보하기까지의 빛나는 승리와 결국 아프리카를 포기하기까지의 아프리카 전선 이야기가 굉장히 상세한데, 덕분에 대략적인 당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던게 개인적으로는 수확이었습니다. 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장비 등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전차대는 한 곳에 밀집대형으로 집중시키고, 사전에 슈튜카를 활용한 폭격을 활용하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전술과 속도전, 그리고 88미리 대공포를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극복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더군요. 말 그대로 '사막의 여우' 다왔달까요.

그리고 롬멜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롬멜이 히틀러에게 충성을 다했고, 본인의 능력도 컸지만 히틀러 덕분에 승승장구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큰 실망을 맛보고도, 복귀 후 히틀러와 만난 뒤 다시 충성심을 가졌다니 놀랍기만 할 뿐이에요. 히틀러가 확실히 뭔가 카리스마같은게 있긴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롬멜 만세! 시각으로 쓰여진건 단점입니다. 아프리카에서의 패퇴를 극복할 수 없었던 장비 부족이라면서, 상대적으로 몽고메리 장군의 승리를 연합군의 막대한 물량 덕분이라고 폄하하는 듯한 논조를 보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롬멜이 부족한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가 설명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어요. 트리폴리에 항구 토브룩까지 확보한 상황이었다면, 해상에서의 보급 문제는 변명에 가까와 보였고, 정말 보급품이 부족하니 최대한 빨리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겠다!가 목표였다면, 그 전략이 실패했을 때의 대책도 있어야 했어요. 엘 알라메인에서 패한 뒤 그냥 쭉 밀려서 아프리카를 내 주고 만 건 너무 허무했습니다. 

아울러 북아프리카 전선 최후의 순간, 새로 부임된 장군과의 알력으로 전선에 최신예 티거 탱크를 집중시키지 못했던 것, 마지막까지 총통의 명령을 받들어서 귀중한 병력을 낭비했던 것은 엄연히 롬멜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원수' 였으니까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히틀러에게 책임을 다 뒤집어 씌우고 있더군요. 공정한 시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전선을 떠난 뒤, 대서양 방벽 건설을 진두지휘했다는 부분도 왜곡이 많아 보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롬멜만이 노르망디가 연합군 상륙 장소일 거라고 예측해서 최대한 방비를 강화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롬멜도 상륙 장소를 칼레로 예상했다는 기록이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상륙 작전은 연합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으니, 실패한 작전 지휘관임은 명백하고요.

또 앞서 전투 상황을 상세히 다룬 지도가 좋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를 포괄하는 해당 지역의 큰 지도도 함께 수록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거 같아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전투가 벌어진 장소가 계속 바뀌는데, 이를 큰 흐름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큰 지도가 필요했거든요. 또 지도가 대체로 작다는 것도 조금 불만스럽네요. "아틀라스 전차전"이나 "세계 항공전사"가 전투 관련 지도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빼어납니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요.

롬멜과 2차대전에서의 독일군 전차부대 전략과 전투, 아프리카 전선에 대해 이 만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은 드물다는 장점은 크지만, 이렇게 문제도 없지 않기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3/01

해황기 1~45 : 카와하라 마사토시 - 별점 3점

해황기 45 - 6점
카와하라 마사토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몇 년 전부터 보아오던 작품이 드디어 완결되었습니다.

초반에는 중세 분위기의 이(異)세계에서 과학문명을 이용한 '숲지기'라는 존재와 그 이면의 흑막에 대해 그려가는 것 같더니, 어느새 장대한 대하 서사 군웅극으로 탈바꿈합니다. 이 중 흔해빠진 이세계 판타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초반부의 전개는 별로였습니다. 그러나 '월한'의 카자르 세이 론과 손을 잡고 그를 도와 세계를 정복하는 중후반부부터는 엄청난 재미를 선사합니다. 재미의 가장 큰 요인은 '범선'을 이용한 전략을 설득력 있게 그려가는 데 기인하고요. 이만큼 '범선'이라는 소재를 잘 활용한 만화가 또 있을까요? 상선학교 출신이라는 작가의 배경 덕분으로 생각되는데, 정말로 납득할 만한 멋진 전략들이 가득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해양 액션 - 전투물로는 최고 수준입니다.

또한, 약간 안티-히어로적인 면모를 지닌 주인공 판 감마 비젠의 매력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못하는 게 하나도 없는 엄친아 먼치킨이기는 하지만, 말투와 행동을 장난스럽게 그려 밉지 않은 캐릭터로 완성한 것 같습니다. 그 외의 다양한 인물들 역시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하나씩 어설픈 요소들을 집어넣은 것 같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결말이 약간 시시하기는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의 후일담을 꼼꼼히 알려주고 반전이라면 반전인 의외의 설정을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마지막까지 팬들을 사로잡는 요소는 충분했다 생각되네요.

물론 묘사가 그다지 정교하지 않고 시원한 배경이 대부분이라 작화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는 약점과 함께, 범선 전략 이외의 지상에서의 전략과 전투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점, 그리고 뒤로 갈수록 너무 전형적인 이야기로 흘러간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 창작 서사물로는 보기 드문 흡입력을 갖춘 작품임에는 분명하기에, 대하 서사 군웅극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길이도 적당하고 끝내야 할 때 끝내는 미덕을 갖춘 만화가 최근에는 드문데, 이 작품이 신호탄이 되어 적절하게 매듭짓는 작품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2026/09/27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2026) - 이우형, 김만희: 별점 2.5점

"흑백 요리사 시즌 2" 후 오랫만에 챙겨본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티빙을 통해 감상했습니다.

특징이라면 참가자들이 요리 실력만 겨루는게 아니라, 실제 손님을 상대로 음식을 판매하고 매출을 겨룬다는 점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장사할 장소와 찾아오는 손님을 분석한 뒤 어떤 메뉴를 얼마에 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요리 실력뿐 아니라 외식업 경영자로서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건데 이 설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심사도 특이합니다. 심사위원이 음식을 먹은 뒤 맛과 완성도를 평가하는 여타의 요리 서바이벌과는 다르게 실제로 손님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은 결과의 매출과 별점을 겨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가격이 비싸거나 장소에 어울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비교적 평범한 음식이라도 가격과 서비스 속도, 손님의 취향을 잘 맞추면 좋은 매출을 올릴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전문 셰프 못지않게 요식업 사업가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가 큽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연복 셰프의 활약도 반가웠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면서 경쟁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관록을 느낄 수 있었고, 결국 결승 문턱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참가자들이 앞서 설명드린대로 메뉴와 가격, 판매 전략을 치밀하게 고민하는 것과는 달리, 이연복 셰프는 그야말로 맛있는 중식을 만들어 파는 데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요.

예상과 실제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첫 대결에서 두끼 떡볶이 대표가 컵 떡볶이를 5,000원에 판매한다고 했을 때, 상당히 잘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가격 부담도 크지 않고 다른 음식을 먹은 손님이 입가심이나 간식처럼 추가로 구입하기에도 좋은 메뉴니까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판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장사와 실제 현장에서의 소비자 선택은 꽤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려줍니다. 확실히 장사가 쉽지 않네요.

다만 프로그램이 뒤로 갈수록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가'에 초점이 지나치게 맞춰지면서 초반의 재미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특히 데이터를 강조한 우승팀 Hungry가 마지막 전주 한옥마을 대결에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메뉴로 선택한게 대표적입니다. 전국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고, 최대한 빠르게 음식을 제공해 고객 회전율을 높이는 한편 여러 가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전략이었지요. 장사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실제로 승리까지 거두었지만,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메뉴 자체가 주는 의외성이나 참신함이 거의 없어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요리 경연이 아니라 장사 대결이기 때문에 이런 전략도 실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음식 프로그램에서 기대하게 되는 새로운 메뉴나 예상하지 못했던 조합을 구경하는 재미가 사라진다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제작진이 장사 능력을 평가하면서도 특정 전략이 지나치게 유리해지지 않도록 예상 가능한 핸디캡이나 조건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변수를 만들기 위해 고객의 별점을 반영한 방식도 취지 자체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특별히 불만이 크지 않으면 낮은 별점을 잘 주지 않는 편이고, 별점 자체도 사람마다 기준이 크게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음식이 별점 5점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음식도 4점에 그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제작진이 별점 기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면 평가의 의미가 커졌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맛과 양이 가격에 적절하면 3점, 현재 가격보다 2,000원을 더 지불해도 먹고 싶다면 4점, 5,000원을 더 내도 좋을 정도라면 5점처럼 가격 대비 만족도를 기준으로 안내하는 방법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정확한 기준이 있었다면 매출 경쟁과 별점 평가가 서로 보완되는 장치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대결에 실제 장사라는 요소를 결합했다는 점은 신선합니다. 그러나 독특한 음식과 셰프들의 창의적인 요리 대결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그런 면에서의 재미는 찾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요식업에서 메뉴, 가격, 회전율 같은 요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하다면 그럭저럭 볼 만합니다.

2025/06/13

아인 1~17 - 사쿠라이 가몬 : 별점 2.5점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단순한 콘셉트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내용은 꽤 독특한 밀리터리 액션물입니다. 주인공 나가이 케이와 아인 테러리스트 사토 간의 대립이 핵심인데, 사토가 군사 전략과 물리적 전투 능력 모두에 특화된 사이코패스라서 경찰 특공대, 자위대 군대와 교전을 벌이는 연출이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고증에 충실하게 잘 그려져 있는 덕분입니다. 

작품 속 '아인' 설정도 독특합니다. 아인은 단순한 불사의 존재가 아니고, 죽기 전까지는 보통 인간과 똑같기 때문에 마취제나 산소 결핍, 냉동 등으로 제압 가능합니다. 하지만 죽고 나면 놀랍도록 신속하게 부활하며, 이 부활은 원래의 신체 상태를 완벽히 복원함과 동시에 어떠한 물리적 장벽도 무시한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고요. 이 설정은 이야기 전개에 잘 활용되어 극적 긴장감을 더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복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빌런 사토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냉혹하고 잔인한 사이코패스지만, 단순히 광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투가이며, 리더십마저 갖춘 인물로, 작전의 구상과 실행 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거든요. 절단된 손을 튀겨 프라이드 치킨으로 위장하여 보안 업체로 보낸 뒤, 자신의 몸을 분쇄기에 갈아서 회사 내부에서 부활하는 침투 장면은 아인의 기묘한 설정 중 하나 - 몸이 조각나면 가장 큰 조각 기준으로 부활한다 - 를 활용하여 극대화한 명장면으로 기억될 만합니다. 공군 기지를 장악한 뒤 군용기를 직접 조종하여 정부 기관을 테러하는 장면도 사토라는 캐릭터가 가진 전략에 있어서 독보적인 창의성, 그리고 아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고요.
주인공 나가이 케이 역시 기존 소년 만화 주인공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인물입니다. 이타심이나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그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캐릭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격이 사토와의 대립 구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둘의 대결은 단순히 강함의 여부가 아니라 심리전과 전략의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케이와 사토의 대결 구도로 집중된 전개와 결말도 깔끔합니다. 인기에 영합해 불필요한 외전을 덧붙이거나 결말을 늘이지 않고, 처음 구상된 틀 안에서 완결을 짓는 모습은 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라 마음에 드네요.

"기생수"처럼 사회 풍자적 메시지가 곳곳에 녹아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생체 실험에 활용하여 거액을 번 제약 회사가 테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계속 근무하게 만드는 모습, 아인 차별법안을 만든 국회의원이 실제로는 아인이었다는 반전 등은 작품이 단순한 SF나 액션에 머물지 않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아인이 아니지만 테러에 가담한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한 무차별적인 메시지 전달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인이 조종할 수 있는 그림자형 존재 'IBM'은 표지에서도 적극 노출하는 등의 비중에 비하면 활용도가 너무 떨어집니다. 사토의 테러 장면 몇 군데 외에는 그다지 활용되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종의 초능력에 가까운 소년만화적인 발상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밀리터리 액션물인 작품 분위기와도 사뭇 차이를 보이고요. 

케이와 사토의 마지막 대결도 기대에 비해 밋밋합니다. 단순히 몸통 박치기(?)로 함께 물에 빠진 뒤 기절한 사토를 체포하는 식의 마무리는, 치열한 두뇌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이 결말보다는 사토의 잘라진 손을 놓고 벌이는 테러리스트와 케이 측의 대결이 훨씬 볼만했습니다.

이외에도 '플러드 발생', '일반인의 부활' 등 작품 내 여러 떡밥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고, 케이의 친구 카이토가 지나치게 무리하게 행동하는 이유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 점도 단점이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불사의 존재라는 콘셉트를 잘 활용했고, 무엇보다 강력한 빌런 사토의 존재와 그를 중심으로 한 치밀한 전개는 탁월합니다. 다만 일부 설정과 떡밥 설명이 부족하고 마지막 대결의 맥빠진 마무리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래도 당대의 인기작이었던 이유는 충분히 잘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2010/10/24

죄수의 딜레마 - 윌리엄 파운드스톤 / 박우석 : 별점 3점

죄수의 딜레마 - 6점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박우석 옮김/양문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로 대표되는 '게임이론'과 게임이론의 창시자인 존 폰 노이만을 다룬 책입니다. 그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존 폰 노이만의 일생과 함께, 게임이론의 기본 개념과 발전 과정을 병행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게임이론은 사회·경제적인 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특히 당시 핵 확산에 따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된 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게임이론은 상대방이 항상 최선의 전략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는 바로 어제 읽었던 "크림슨의 미궁"에서 주인공 후지키가 언급하기도 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딜레마 사례—기본적인 죄수의 딜레마를 비롯해 '누군가 하겠지'라는 지원자의 딜레마, 네 가지 유형의 사회적 딜레마 등—를 통해 협조와 배신을 기반으로 한 여러 게임을 소개하고 있어, 게임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평소 게임이론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많았는데, 이 책은 입문서로서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오는 말 가는 말 전략'—즉, 1회전에서는 협조하고 이후에는 상대방이 한 대로 따라 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설명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이 전략이 유효하려면 상대방이 항상 승리를 목표로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요.

게임이론에 대해 궁금한 분들께 추천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8/10/06

혼다 디자인 경영 - 이와쿠라 신야 외 / 박미옥 : 별점 1.5점

혼다 디자인 경영 - 4점
이와쿠라 신야.이와타니 마사키.나가사와 신야 지음, 박미옥 옮김/휴먼&북스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혼다의 디자인 경영의 역사와 그 사례를 주로 혼다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와 디자이너인 이와쿠라를 중심으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혼다의 다양한 차종과 그 디자인 철학, 그리고 “전략”이라고까지 부를 만한 디자인 중심 제품의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례 중심으로 소개하기에 전략에 관련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품이 상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디자인이라는 중요한 명제를 수십년전부터 생각하고 제품에 도입했던 혼다사의 경영진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요.

하지만 구세대적인 사장의 절대 독재와 상명하복이 지나치게 좋은 쪽으로만 해석된 것은 불만이며, 너무 사례 위주이기 때문인지 실제 전략에 도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많은 책이기도 합니다. 혼다사의 역대 차종들과 그 개발 과정을 접하는 재미 이외의 다른 실무적인 부분을 잡아내기는 어려웠거든요. 아무래도 재미와 실무라는 두마리 토끼를 결국 다 잡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약간의 참고와 약간의 재미를 지닌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한 책이었습니다. 뭔가 가치있는 교양서를 읽고 있다는 위안을 삼기에는 부족했어요. 그다지 남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혼다의 자동차 역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2025/12/07

단 3개의 미국 ETF로 은퇴하라 - 김지훈(포메뽀꼬) : 별점 1.5점

네이버 경제 전문 블로거 포메뽀꼬의 ETF 투자 안내서입니다. 최근 재테크에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은퇴 자금은 9억 원(연 생활비의 25배)이 필요합니다.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하려면 금융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6% 이상의 투자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평균 5~6%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매년 4% 정도를 생활비로 인출해도 자금은 감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한 투자 방법들은 별다른게 없습니다. S&P500에 장기간 복리 투자하라는 조언은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니까요. S&P500 외에도 투자 수익률을 위한 QQQ, 배당을 위한 SCHD에 투자하라는 조언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장기간 투자가 어려운 4050 세대를 위해 고배당주 투자를 권하는건 조금 눈에 띄었습니다. 특히 '커버드콜' 상품의 경우 많은 전문가들이 꺼리는 상품인데, 이 책에서는 꽤 강하게 추천하고 있더군요.
또한 S&P500, SCHD 외에도 저자가 실제 투자 중인 종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환율을 활용한 투자법이나 레버리지 투자 전략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저자가 IRP 계좌로 투자하고 있는 ETF는 아래와 같은데, 참고가 되네요.

  1. ACE 미국나스닥100채권혼합 액티브
  2. TIGER 미국테크TOP10채권혼합 액티브
  3. SOL 미국배당미국국채혼합50

노동력과 무관한 금융 소득을 따로 모아 일정 금액이 되면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매일 소수점 매수하는 적립식 투자의 성과가 좋다는 이야기도요. 뭐니뭐니해도 꾸준함이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그리고 저와는 관련 없지만, 신혼부부 재테크 전략이나 대출과 투자의 비중 조정에 대한 조언은 해당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어 보입니다.

다만 워낙 보편적으로 알려진 내용이 많아서, 이 책만의 차별적인 '비결'이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제목처럼 단 3개의 ETF만을 콕 집어 집중 소개하지도 않고요. 유튜브나 다른 재테크 블로그를 살펴봐도 이 정도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닙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09/07/12

빈볼 관련 단상

어제 SK 송은범 선수가 던진 공을 맞은 진갑용 선수가 아쉽게도 거의 시즌 아웃이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최근 이런 경기가 잦은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전에도 썼지만 미국식 해결책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죠. 우리팀 손시헌이 머리에 공을 맞는다면 나주환에게 헤드샷. 뭐 이런거요. 이런 전략이 모든 팀에게 공통적으로 통했다면 이런 논쟁 자체가 아마 사라졌을거에요.

* 생각과는 전혀 다른 본의 아닌 낚시글이 되어 글을 이동합니다. 이글루스라는 열린 공간에 올리기에는 너무 개인적인 표현이 많았네요. 삭제할까 했지만 댓글도 소중한 의견들이고 공감되는 것도 많아 삭제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울러 경박한 표현으로 실례를 끼친 특정 구단과 선수분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덧글 금지 설정이 적용이 안되네요.... 이후의 덧글은 윗글에 달아주세요.


프로야구 투수가 몸쪽 던지다가 공좀 맞출 수 있다! 뭐 이런 글도 봤는데 그건 동감입니다. 리오스가 두산 있을때 사구가 많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하지만 리오스 선수 사구 맞고 심각한 부상으로 결장한 선수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네요. 리오스 선수는 약빨이다 뭐다 말은 많지만 제구는 좋았거든요. 
그런 논리라면 제구가 개판인데 주구장창 몸쪽으로 찔러 넣는, 그것도 머리쪽으로 찔러 넣는 또라이가 프로야구 투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죠. 그러고 머리에 정통으로 때려먹이고 미안하다면 단가? 이런 또라이짓이 계속된다면 어쩔 수 없이 보복가야지 별 수 있겠습니까.
150km 넘는 광속구 이원재를 빨리 콜업해서 이럴때 써먹는게 좋지 않을가 싶기도 하네요. 제구력 안좋은 투수이기도 하니 변명하기도 좋을것 같습니다.

덧붙여, 두산 용덕한이 삼성선수 헤드샷 한건 사과안함? 뭐 이런 글도 어디서 봤는데 그건 삼성과 두산 문제지 두산과 SK 문제는 아닌데 왜 끌고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잘못한 플레이라 생각하며 앞서 말한 논리대로 당시 용덕한 선수가 공을 몸에 맞던가 했더라도 할 말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글을 쓴 이유는 진갑용 선수의 안타까운 부상때문이지만 애시당초 손시헌 선수 사구에대해 불만이 많았던 지라 글을 적게 된 것이니 만큼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작금의 상황에 대해 SK팬이라고 해서 무작정 피해의식 느끼지말고 이런 사건이 유독 SK와의 경기에서 최근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많이 나오는 점에 대해서 이유를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겁니다.

2024/10/19

채택되지 않은 아이디어 - 사토 오오키 / 이현욱 : 별점 3점

채택되지 않은 아이디어 - 6점
사토 오오키 지음, 이현욱 옮김/미디어샘

일본 디자인 오피스 '넨도'의 대표 사토 오오키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통해 그만의 디자인 방법론과 접근법을 알려주는 책.

제목처럼 채택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은 제 1장의 3가지 프로젝트 - 자동판매기용 쓰레기통, 롯데 껌 아쿠오, 클린룸 재배 양상추 판매용기 디자인 - 인데, 이는 별로 였습니다. 채택되지 않은게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 디자인들이 많았고, 접근법도 다소 평이했기 때문입니다. 채택되지 않을 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다카라벨몬트'의 의뢰로 진행한 미용업계의 비즈니스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작업은 굉장했습니다. 제품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야말로 '비즈니스'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모습도 놀라왔지만, 접근법도 타당했고 결과물도 설득력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기존 비즈니스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사업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 대부분의 기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상황에서, 사토 오오키는 자신의 역할은 '문제해결까지의 과정과 디자인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당연히 그 과정과 해결책은 하나가 아닙니다.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보고 하나하나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경쟁업체와 정면으로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가? 등 방향은 아주 다양하니까요. 그래서 기업이 어떤 경영전략을 취하는지에 따라 제안하는 아이디어나 디자인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사토 오오키는 이 때 극단적으로 방향성이 다른 방법을 다각적으로 제안한다고 합니다. 몇 가지 제안을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경영 전략이 공격적이라면 과감하고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반대로 방어적이라면 철저하게 안전한 옵션을 제시하는 식으로요.

다카라벨몬트에 닥친 현재의 문제는 저가격화, 고객방문 사이클이 장기화된 시장변화가 첫 번째, 노동환경 악화로 이직률이 증가하고 젊은 직원의 기술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낮아지는 인재 부족이 두 번째, 트렌드가 희박해지고 개인별 개성이 다양해져서 새로운 컨셉 서비스가 부족해지는 문제가 세 번째 였습니다.

사토 오오키가 제시한 첫 번째 컨셉은 '개인별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가변성'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고객이 팔걸이, 등받이 등을 고를 수 있는 의자와 색다른 공간, 화장품과 같은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제안했고요.

두 번째 컨셉은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입니다. 이를 위해 나란히 연결할 수 있는 의자, 개인별 공간을 제공하는 거울 등이 디자인되었습니다.

세 번째 컨셉은 비즈니스 모델 제안으로 '시간의 리디자인과 네트워크화'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고객이 바빠서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특정 서비스에 대한 전문 기술만 제공하는 매장을 운영한다는 것이지요. 커트만 하는 매장, 염색만 하는 매장이 있는 식으로요. 의자도 앉았다가 일어서서 스타일링을 확인하기 쉬운 형태로, 짧은 시간을 강조하기 위해 '신선도'가 돋보이도록 화장품을 냉장고에 넣는 컨셉 등이 제안되었습다.

이 세 번째 컨셉에서 발전시켜서 내 놓은 것이, 미용실 산업 트렌드 변화를 이겨내기 위한 3/30 (3주에 한 번, 30분) 컨셉입니다. 이게 진짜 와 닿았던게, 정말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저렴하더라도 짧은 시간만 서비스를 제공하니 저가격 문제 해결, 미용실을 자주 방문하게 되니 장기화된 방문 사이클 해결, 잘 하는 것만 하면 되니 직원 기술력 문제도 해결, 새로운 서비스 키워드로 '신선도'를 제시하여 새 컨셉 서비스 제안이라는 방식으로요. 정말로 디자이너가 비즈니스를 바꿀 수도 있다는게 실감이 나는, 좋은 프로젝트 경험담이었습니다.

반면 와세다 대학 럭비부 리브랜딩은 그리 인상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장황하게 설명은 하고 있지만, 결국 유니폼 디자인이 거의 전부였던 탓입니다. 팀의 방향성도 디자이너가 정했다는게 특이했지만 이 역시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스포츠팀이라면 디자인보다는 이기는게 더 중요하니까요. 유니폼이 멋있고, 캐치프레이즈가 좋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유니폼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 과정만큼은 돋보였습니다. 제가 꼬꼬마 신입 디자이너 시절에 두산 베어스 리브랜딩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런 접근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크게 반성하게 되네요.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디자인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그 뒤 IHI 브랜딩과 프로테카 가방 디자인도 그냥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라서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IHI 브랜딩에서 가장 손쉬웠을 로고 변경을 하지 않고 가능했던 커뮤니케이션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좋았습니다. 하나는 '중공업의 이미지를 좋은 의미로 배신하는 시도'였고, 또 다른 하나는 'IHI'라는 세 글자와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으로 이를 통해 여러가지 제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 제안을 할 때 '요구범위 확장형'이라고 불리우는 방식으로 접근한게 눈에 뜨입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르는 제안과 요구에서 조금 벗어난 제안, 크게 벗어난 제안을 제안하는 것으로 클라이언트가 자극을 받아 원래 생각했던 요구의 범위를 수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범위를 크게 넓히기도 한다니, 프로젝트를 외주로 받아 진행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시도해봄직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같이 회사 소속 디자이너에게는 불가능한 방식이겠지만요. (시키는 것만 잘하는 것도 벅찹니다..)

이렇게 수록 프로젝트가 전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유익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9/22

모략의 기술 - 장스완 / 유아이북스 : 별점 3점

모략의 기술 - 6점
장스완 지음/유아이북스

춘추 전국 시대 처세의 달인이었다는 귀곡자의 '모략' 을 현대 사회에 응용 및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처세술 - 자기 계발 서적입니다. 귀곡자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혀 몰랐지만, '모략' 이라는 제목이 왠지 모르게 와 닿아서 구입했습니다. 조금 찾아보니 그의 저서는 유세가들을 위한 처세를 다룬 책으로, 덕분에 당대에는 희대의 소인배라고까지 불리웠다네요. 그런데 이 정도 처세의 달인이 혼란했던 춘추 전국 시대 당시 한자리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조금 신뢰가 떨어지는군요.

하여튼, 책은 "1부 귀곡자와 생존 전략" 아래 총 네 장의 소주제, 그리고 "2부 귀곡자 핵심 구절 강설"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의 분량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특정 상황에 대한 중국 역사 속 실재 사례와 그 상황에 대한 귀곡자의 글을 연결시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고요.

하지만 1부 1장 '처세의 기술'과 2장 '현명한 조직 관리'의 경우는 그럴싸한 소주제와는 다르게 귀곡자의 말에 상황을 억지로 가져다 붙인 이야기가 많아서 실망스럽습니다. 송나라 군대가 금나라 군대 몰래 후퇴하는데 성공했던 필재우의 작전 사례에 '일의 변화가 심하여 어떻게 돌아갈지를 잘 알지 못할 때는 물러나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 큰 도리다." 라는 말을 연결시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필재우의 작전은 후퇴하여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결심이 중요한게 아니라서 전혀 맥락이 맞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3장 기업 경쟁령 높이기'부터는 읽을만 합니다. 실제 사례와 귀곡자의 말의 연결도 매끄럽고, 정말 현재 상황에 어울리는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쉐보레 자동차 회사의 세일즈맨 윌리엄의 부동산 구매 일화를 통해 '판매는 남의 비위만 맞추는게 아니라 세심히 관찰해 사용자가 원하는걸 알아내는게 더욱 중요하다'는 비결을 이끌어내고, 연이어 '칭찬으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귀곡자의 말을 설명해 주는 것 처럼요. 쉐보레 외에도 아마존의 사례가 등장하는 등 친숙한 주제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듭니다. 그 외에도 '욕쟁이 할머니' 같은 마케팅 비법도 고객 중심 경영의 하나로 이는 귀곡자의 '깊은 곳을 헤아려 속사정을 파악한다' 는 말과 같은 이치라던가, 일본 대표 세일즈맨 하이라치헤이의 일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자기 말을 듣게 하려면 같은 부류, 같은 욕망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는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 때에 균열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성실과 신용이 중요하다, 부자가 되려면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는 등 당연한 이야기들이 많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옛 지식이 아직도 통용될만한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반가웠어요.

다음에 이어지는 '4장 직장에서 살아남기'는 유용한 정보가 가득한 이 책의 하일라이트입니다. 소주제 명칭부터 아주아주 마음에 들어요. 우리네 평범한 직장인의 처세라면 직장에서 살아남는 정도가 고작일테니까요. 여기서 몇가지 귀곡자의 비결을 알려드리자면, 라이벌인 동료가 있다면 그에게 뭔가 부탁을 하던가 최소한 한번 쯤 그를 칭찬해보라는군요. 적보다는 친구가 생기는게 낫다는 논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가 한 말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3할만 말해야 한다는 등의 화법 관련 이야기는 모두 새겨들을만 합니다.
사내에서 내 진급 문제로 논의 중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기회를 잡고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는군요. 어차피 인간 세계는 모두 경쟁이니 모략을 이용해서라도 자리를 쟁취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아.. 정말 놀라운 식견입니다.
또 조직 관리를 위해서 엄격한 상벌은 필수라는 것도 굉장히 와 닿았던 부분이에요. 특히 벌의 목적은 교육이지 처벌이 아니며, 이는 투명하게 적용되고 공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만드네요. 

2부 "핵심 구절 강설" 은 처세의 달인 귀곡자의 엑기스만 정리한 60여 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내용으로 부록에 가까운데, 워낙 핵심 정보들이라 이 부분만 따로 정리하여 소개드리고 싶을 정도로 유용한 내용이었고요.

모든 내용이 재미있거나 가치가 있지는 않고, 책을 읽는다고 직장에서의 출세나 생존을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천년도 더 전 인물이 한 말이 현대에도 조금이나마 통용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는 의의가 컸던 독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 사람 사는 이치는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역사나 처세술 관련 서적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실 만 합니다.

2021/01/01

더 마블 맨 - 밥 배철러 / 송근아 : 별점 2.5점

더 마블 맨 - 6점
밥 배철러 지음, 송근아 옮김/한국경제신문

안녕하세요!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 첫 리뷰는 마블 슈퍼 히어로들을 탄생시킨, 슈퍼 히어로물의 아버지로 유명한 스탠 리의 전기입니다. 1922년 출생하여 2000년대 이후 마블 영화 카메오 출연까지 거의 전 생애가 설명되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어야하는 상황이 그를 만화 작가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대공황의 여파로 '직장'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고, 집안을 지탱할 가장 역할 수행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첫 직장 타임리 코믹스에 취직하게 된 건, 삼촌이 꽂아 주었던 덕분이었고 만화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잡일을 도맡았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사장인 굿맨이 만화 사업이 돈이 된다는걸 깨닫고 영입했던 편집자 사이먼과 당대 최고의 작가였던 '잭 커비' 가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켜서 큰 인기를 끌어 너무 바빠진 탓에, 스탠 리도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로 작가 데뷔를 할 수 있었다네요. 천재의 위대한 첫 발이 순전히 낙하산에 운이 결합된 결과였다니 재미있습니다. 세상 사 다 뜻대로 되는건 아니지만, 이런 우연도 참 갚지다 싶군요.

이 과정에서 보여지는 출판 업계의 거물이자 스탠 리의 보스였던 굿맨의 전략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인기 있는 유행에 편승해서 그 유행이 끝날 때 까지 융단폭격하는 방식으로, 거의 언제나 큰 성공을 거둔걸로 나옵니다. 결국 굿맨과 마블은 결국 업계의 제왕이었던 DC를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요. 삼성이 애플을 따라하는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인데, 역사가 증명하는 멋진 성공 사례인 셈입니다.

이후 굉장히 빠른 나이에 편집장이 되어 판타스틱 4,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등 인기 작들을 쏟아내며 자신과 마블의 독특한 창작법을 확립해 가는 과정도 흥미로왔습니다. 지금도 인기 많은 히어로들 탄생을 다루었으니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부분이었어요.
스탠 리의 방식을 요약하자면, 우선 이야기 개요 이전에 캐릭터를 확실히 설정하는 것, 그리고 이야기 뼈대만 구성하여 만화가들에게 주고, 그림 작업이 완성되면 글과 대사를 적어넣는 방식이 특징으로 설명됩니다. 엄청난 작업량을 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네요.

그런데 이 방식을 따르면 만화가들의 역할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초창기 판타스틱 4를 비롯한 대부분 인기 작품들은 천재 작가 잭 커비가 기여한 바가 스탠 리 못지 않은걸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스탠 리는 커비 계약 종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마블에서 그를 쫓아내는데 힘을 보탠 것으로 보입니다. 잭 커비를 배제하고 자기 혼자 오롯이 각광받을 수 있도록 수를 쓴 거지요. 이 책에서는 둘의 결별은 오해와 판단 착오였을 뿐이며 잭 커비가 지나치게 돈을 욕심내었다는 식으로 스탠 리를 변호하지만, 그가 동료의 노고를 은근슬쩍 묻어버리고 혼자 영광을 독차지한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잭 커비를 쫓아낸 것 이외에도 스탠 리가 마블의 '더 맨' 이 되기 위해, 자신을 마블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기 위한 가열찬 노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처음 출판사에 취직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결국 돈 때문이었다는 것도 씁쓸하고요. 회사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됨으로써 일자리를 보장받으려 했던 것이지요. 이는 군대에서 복무하면서도 타임리 코믹스 스토리 작업을 함께 해서 별도의 돈을 벌었던 등,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강하게 보인 에피소드들로 설명됩니다. 어린 시절 경험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만약 스탠 리가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면, 잭 커비와 마블에서 더 많은 걸작을 쏟아낼 수도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노력의 일환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마블의 '더 맨'이 되는데 성공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뒤 '작가'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더 큰 성공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은 모두 실패에 가깝다는게 이채롭더군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시도들은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만화를 만든다'는게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시도는 좋았지만 1960~70년대에 행하기에는 무리수였던 듯 합니다. 말년에 행했던 헐리우드 도전은 눈물없이는 보기 힘들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고요. 특히나 거대한 사기극이었던 SLM (Stanlee.net) 에 참여함으로서 거의 경력이 끝장날 뻔 했던 사건은 처음 알았네요. 그 외에도 실패하거나 사장된 기획은 수도 없고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성공하여 자리매김한건 어떻게보면 천운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한 장르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의 명암, 성공과 실패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그러나 스탠 리에 대한 지나치다 싶은 변명, 방어는 거슬렸습니다. 기대했던 캐릭터들의 창작 비화도 다른 콘텐츠에 소개된 내용과 다른 이야기가 별로 많지도 않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책 치고는 거의 없다시피한 도판은 분명한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탠 리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9/06/23

2009.6.23 두산베어스 대 롯데자이언츠 사직경기 요약 - 마음을 비우다

 2009.6.18 두산베어스 대 기아타이거즈 잠실경기 요약

<두산베어스의 여신 한채영! 파울볼 유저 Epilogue님의 사진>

흐... 두목곰과 광돈신이 빠지고 기계마저 1타석만에 물러난 두산베어스 타선이기에 오늘은 그냥 즐겼습니다. 붙박이 주전이라고 할 수 있는 멤버는 손시헌 선수가 유일한 미친 타선! 3-4-6 번이 우익수 주전자리를 놓고 싸우던 3명, 2-5-7-9번이 유격수 주전자리를 놓고 싸우던 S4 4인방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오늘 이성렬 선수가 1루수를 봤더라면 정말 재미있었을텐데 옥의 티네요. 게다가 이른바 1선발 에이스라는 전직 메이저리거는 나오자마자 쳐맞아서 기대를 초반에 접게 만들어줘서 마음은 편히 시청했습니다.

그래도 6회 찬스는 좀 뼈아프네요. 유재웅 선수의 어리버리 주루플레이로 무사 1-3루가 1사 3루가 되고 결국 한점도 못 뽑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때 한점만 뽑았더라도 롯데의 중간계투를 좀 더 일찍 끌어내서 내일부터의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나름 승부처였었는데... 그래도 3번 민병헌 선수는 좋았습니다. 오늘 모습만 놓고 보면 후반기 우익수 주전 자리는 굳히겠더군요. 주루는 좀 별로였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합격점!
아, 그리고 김명제 선수의 기대를 아예 접게 만드는 2실점도 사실 좋았어요. 중간계투를 아끼기도 했고 말이죠. 네... 지려면 이렇게 화끈하게 져야 해요. 롯데가 이겨야 프로야구 인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어쨌건 뭐 진건 진거고... 이왕 이렇게 된거 전반기에는 전략을 수정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이른바 "올인 / 올 K-I-L-L 전략!"
이재우 선수 선발때 이재우 4이닝 - 고창성 2이닝 - 임태훈 2이닝 - 이용찬 1이닝으로 때려박아 이기고, 나머지 경기는 좀 길게 던져줄 수 있는 노경은, 김성배, 박정배 선수 등으로 버티는거죠. 나머지 경기는 잡으면 땡큐고 놓쳐도 여러 투수들 두루두루 테스트해봐서 좋잖아요. 유희관 선수나 원용묵 선수 등 다 시험해보는거죠. 지는 경기라도 최주환 선수나 국해성 선수 모습을 보면 팬 입장에서는 반가울 것 같기도 하고요. 혹시 압니까? 난세에 정말 영웅이 강림할지도 모르잖아요. 하늘도 두산을 불쌍히 여긴다면 영웅이 금빛 찬란하게 나타나주겠죠. (설마 니코스키???)

덧붙이자면, 김명제 선수는 2군으로 내려서 좀 더 가다듬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모습은 아무리봐도 세데뇨보다도 못해보입니다. 선발진에 확실히 합류할 수 있도록 몸을 완벽하게 정비했으면 하네요. 배도협처럼 지옥훈련이나 갔다와서 가을 잔치때나 복귀해라.

2017/03/10

북로우의 도둑들 - 트래비스 맥데이드 / 노상미 : 별점 4점

북로우의 도둑들 - 8점 트래비스 맥데이드 지음, 노상미 옮김/책세상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대공황 직후 약 1930년대까지)까지 기승을 부렸던 책 전문 절도범들, 그리고 그들을 잡아 넣기 위한 도서관 특별 수사관들의 활약을 그린 논픽션입니다. 제목의 북로우는 맨해튼 애스터 플레이스에서 유니언 스퀘어까지 죽 이어진 4번가의 여섯 블록을 의미합니다. 책들이 늘어선 거리, Book Row라는 말에 걸맞게 책방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하네요. 도둑들은 북로우 일부 서적상들 및 그들이 지휘하는 도둑들(북 스카우트)을 의미하고요.

북로우에 터전을 잡고 활동하던 악덕 서적상 골드가 뉴욕 공공도서관 소장품인 에드거 앨런 포의 초판본 "알 아라프, 티무르" 초판본을 손에 넣은 뒤(정확하게는 골드 밑에서 북 스카우트로 일한 듀프리가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알 아라프, 티무르와 주홍 글씨 초판본, 백경 초판본을 훔친 뒤), 그를 잡기 위해 활약했던 공공도서관 특별 수사관 버그퀴스트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서적 절도 사건도 다수 언급되며, 희귀본 시장이 어떻게 커져갔는지와 그에 따라 도서관들이 어떻게 책 절도범들에게 노략질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배경 설명도 함께 합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논픽션다운 디테일입니다. 특히 당대 책 절도에 대한 설명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책 절도는 대단한 기술이나 전략이 필요치 않다, 도서관과 사서들의 부주의 탓에 절도가 쉬웠다, 필요한 것이라곤 훔친 책을 집어 넣을 수 있는 커다란 코트와 가끔 가다 쫓길 경우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다리 정도였다는, 시대를 연상케하는 언급부터 시작하여 책을 훔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눈에 띄는 마크나 도장 제거 등 - 와 북 스카우트라고 불리운 도서관 책 절도범들과 책서점 주인이 손을 잡고 사업을 키워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참고로, 이렇게 도서관 책 절도범이 기승을 부린 이유는 책 절도범을 잡더라도 치안판사들이 고소를 취하하는 등 심각하게 처벌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하네요. 리스크는 적고 수익은 높아지니 많은 사람들이 뛰어든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네 사고 방식인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과 서울대 출신 책도둑, 공시생 책도둑 등이 선처를 받고 훈방되었다는 뉴스가 떠오르네요.

도둑들을 잡기 위해 뉴욕 공공도서관 설립 된 후 특별 조사관으로 활동한 길야드, 버그퀴스트의 활약의 디테일도 못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면, 도서를 대출한 후 반납하지 않고 대출자가 사라진 사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길야드는 대출자가 살았던 우체국장에게 우편물을 전송하는 새 주소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개인정보 유출 방지 목적?), 옛 주소로 먹지 한 장을 숨긴 등기 서류를 보냈습니다. 등기 서류가 우체국에 도착하면 주소록이 고쳐질 것이라 생각하고, 봉투에 이사 간 곳의 새 주소가 쓰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송 되기 전 회수한다는 전략이었지요.
버그퀴스트는 뭐니뭐니해도 핵심 이야기인 골드 체포 작전의 활약이 가장 눈부십니다. 수사 권한이 없었기에 함정 수사를 펼치는 등 노력도 눈물겹지만, 끝까지 노력해서 결국 골드에게 실형을 선고받게 만드는 결말이 아주 통쾌한 덕분입니다. 그것도 싱싱 교도소에 수감시켰던만큼, 기쁨이 더 컸을 것 같네요. 이 과정에서(인간의 갱생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 태도를 갖추고 있는) 버그퀴스트의 진심어린 설득에 넘어가 책 절도 박멸에 동참하는 구 절도범 마호니, 윔스와의 인연은 시대를 느끼게 해 주고요. "자네도 볼장 다 봤잖아. 우리 쪽으로 오지그래?"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의리물이 떠오르는 낭만적인 이야기였거든요. 그런 시대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참고로, 후일담은 조금 씁쓸했습니다. 뻔뻔한 절도범 헤럴드, 절도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골드와 스미스 등 악덕 서적상들 모두 범죄가 밝혀진 이후 짤막한 재판과 수형 생활을 거치고나서 다시 떵떵거리면서 살았다니까요. 그나마 골드 사건이 마무리되고 희귀본과 값진 책들은 도난 당하지 않도록 따로 분리해 이용을 엄격히 제한하게 되었으며, 책을 수집하던 사람들도 죽으면서 소장품과 희귀본을 도서관과 대학에 기증하는 사람이 많아져 시장 자체가 사라진 덕에 현재는 이런 류의 절도가 거의 없어졌다고 하니 다행일 뿐입니다. 최근은 도서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는 것도 많이 어려워졌지요.

그 외에도 다양한 희귀본 관련 재미있는 이야기도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포의 작품 관련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뭉텅이로 팔린 책 더미에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 처음으로 발표된, 표지가 떨어져 나가고 없는 그레이엄스 매거진이 포함되어 있었다던가, 가난하게 살던 노파가 근방 서적상 존 루미스 씨에게 옛날 책을 팔려다가 포의 첫 시집 "알 아라프"를 팔게 되었다는 등입니다.

이렇게 햇수로는 40 ~ 50년에 걸친, 방대하고 자세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등장 인물과 사건도 많지만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내용도 재미있어서 쉽게 읽히는 멋진 책입니다. 잘 알지 못했던 20세기 초반 책 절도에 대한 지식도 상세하게 알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희귀본을 탐색하던 추억이 떠올라 더 공감이 갔습니다. 그때 구했던 책들 중 다수 - "점성술 살인사건", "불야성", "석양에 빛나는 감", "얼굴에 흩날리는 비", "내가 죽인 소녀" 등등등 - 거진 다 복간되어 이제는 의미가 없습니다만ㅡ 괜히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아 그립습니다.

다만 수사관들이 도둑들에 비하면 열세라 밀고 땡기는 맛이 부족하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도둑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후일담 역시 씁쓸한데 이 모두 실화에 기초한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겠지요. 논픽션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10/11/06

선택의 심리학 - 배리 슈워츠 / 형선호 : 별점 2.5점

선택의 심리학 - 6점
배리 슈워츠 지음, 형선호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제목 그대로의 책입니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선택들, 그에 따라 좌우되는 심리(주로 '후회'), 그리고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원칙까지 담긴, 그야말로 '선택의 심리학'에 대한 종합 선물세트 같은 책이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연하다', '뻔하다' 싶은 내용까지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심리학적으로 분석한건 지나쳤습니다. 지루하기도 했고요. 또,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원칙 역시 결국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동양철학적 사고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팅에 접목하면 유용할 법한 이론과 개념이 많다는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선택의 가짓수가 많아질수록 후회도 커진다는 것(대안이 많을수록 후회가 커진다), 자기 자신이 받는 비용보다 남보다 얼마나 더 받는지가 중요하다는 점 등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이 책에 따르면 결국 모든 것은 선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에 최적화된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요.

그러나 담고 있는 결론 자체가 뻔하기에, 아무리 이론이나 설명이 흥미롭고 유익하더라도 평이한 수준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책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9/25

2023.09.21 ~ 09.24 두산 베어스 감상


지난 주 삼성, NC 원정 2연전
성적 : 3승 1패

좋았던 점
  • 1패 후 3연승으로 4위 자리 유지

나빴던 점
  • 이승엽 감독의 이상한 투수 기용
  • 알칸타라 선수의 부상
  • 다시 침체에 빠진 타선, 특히 양석환 선수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3승 1패라는 성적은 지난주 기대와 같습니다. 하지만 4승을 거둘 수 있었는데, 일요일 경기의 패배는 뼈아프네요. 3위 경쟁은 거의 물건너 보낸 치명적인 패배였어요.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이승엽 감독의 투수 교체 실수입니다. 장원준 선수가 모처럼 3이닝 이상 던져주었으니, 최원준 선수에게 7회까지 맡길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게 첫 번째 실수, 연장에서 박치국 선수에게 믿고 맡긴게 두 번째 실수지요. 토요일 긴 이닝을 던진 이영하 선수, 3연투로 지친 정철원 선수가 등판하지 못하니 김명신, 홍건희, 김강률 선수를 필승조로 운영하는 전략은 당연했고, 김강률 선수의 급작스러운 퇴장은 변수였지만 박치국 선수는 중용하면 안됐습니다. 부상에서 제대로 조정을 거쳐 복귀하지도 않았는데 멀티 이닝을 맡긴다는건 무리였어요. 지더라도 최지강, 박신지 선수를 투입하는게 마땅했습니다.
대체 선발 장원준 선수 등판에 장승현 선수가 선발 포수로 임했던 경기라서 놓친게 더욱 아쉽습니다. 차라리 패디 선수가 등판해서 아예 진다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네요.
그래도 이 한 경기 말고는 투수진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덕분에 양의지 선수 홀로 고군분투했던 타선이 큰 점수를 내지 못했음에도 승리할 수 있었어요.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이번주는 SSG와 원정 2연전, LG와 홈 3연전이 이어집니다. 알칸타라 선수의 등판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 경기는 쉬어가는게 좋다고 생각되니 선발진은 김동주 (아마도?), 브랜든, 최승용, 투원준 순일겁니다. 대체 선발이 많은게 뼈아프지만 목요일 하루 휴식일이 있으니 불펜 투수 총력전으로 임하리라 생각되네요.
강승호 선수의 아름다운 1주일, 조수행 선수의 깜짝 활약은 모두 끝나버렸고 양석환 선수의 깊은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 앞서 말했듯 감독이 필승조의 배분, 그리고 버릴 경기를 확실히 버리는 전략으로 간다면 5할 이상 승률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SSG 경기가 중요해요. SSG전 두 경기를 모두 잡는다면 LG전은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테니까요. 마침 SSG가 요새 침체에 빠져있으니, 총력전으로 나서볼만 합니다. 모쪼록 3승 2패를 거두며 마음 편하게 가을 야구를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허슬 ~ 두!

2017/01/22

보석 천 개의 유혹 - 에이자 레이든 / 이가영 : 별점 4점

보석 천 개의 유혹 - 8점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다른

보석과 관련된 역사 속 일화를 소개하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미시사는 워낙에 좋아하는 분야이지만, 요새는 이쪽 책만 읽는 느낌이네요.

이 책은 크게 보석의 가치가 가상적이며 주관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첫 번째 장, 보석이라는 실체가 만들어 낸 감정의 좋거나 나쁜 결과를 다룬 두 번째 장, 보석을 갖기 위한 노력이 모종의 성과를 거둔다는 세 번째 장으로 나뉩니다. 

이 중 첫번째 장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세 가지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레나페 인디언이 네덜란드인에게 맨해튼을 유리 구슬 몇개에 판, 아직도 세계적인 비웃음거리인 거래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물건의 가치는 가상적, 상대적, 주관적이며 당시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당연한 생각을 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지경입니다. 인디언에 대한 저도 모를 편견과 차별이 제 마음 속에 있었기 때문이겠죠? 하여튼, 상세한 자료 조사를 통해 저자는 당시 인디언 기준으로 보았을 때 동그란 유리 구슬은 인디언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금이라고 해도 무방한 가치가 있었던 보석이며, 맨해튼은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슾지대로 그나마 굴을 채취하는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던 불모지였기에 이 거래는 충분히 타당했다고 알려줍니다. 게다가 레나페 인디언은 섬의 소유권자도 아니고 그냥 섬을 드나들며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니 거래를 마다할 이유도 없었고요. 마지막에 네덜란드인들도 '육두구'를 위해 이 섬을 영국에 넘겨버렸으니, 결국 가치는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이아몬드가 실상 그렇게까지 대단한 보석은 아니지만 독점기업인 드 비어스의 천재적인 책략으로 현재의 보석의 왕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특히나 '결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처럼 인식시키는 일련의 마케팅 작업이 대 성공을 거둔 결과라고 하네요. 드비어스가 만들어낸 것은 '욕망'이고 이것이 실제로 가치를 만들어 냈다는 것으로, 독점 기업이 채굴량을 조절하여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은 석유 산유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 정도로는 해결되지 않는 위기를 마케팅으로 타개한걸 보면 정말로 시대를 앞서간 회사로 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추후 보석을 사더라도 다이아몬든 왠만하면 사지 않는게 좋다는 팁도 함께 전해 줍니다. 살 여유는 없지만요.

세 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보석은 에메랄드입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하고는 정반대더군요. 에메랄드는 정말로 희귀한 성분들이 그야말로 '대격변'이라고 부를 만한 지구의 큰 움직임을 통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보석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보석'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에메랄드에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들이 쭉 소개되는데 핵심은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여왕, 콜롬버스로 대표되는 신세계 탐험과 여기서 발견된 에메랄드 광산 이야기로 에스파냐 왕조는 예상치 못한 성공 덕분에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지만, 이를 '성전'에 낭비해 전성기가 짧게 끝났다는 내용입니다. 이 와중에 에스파냐가 국채를 발행하는 등 현대 자본주의의 기초를 다지기도 했는데, 너무 막대한 양의 에메랄드가 수입되어 가치가 폭락하는, 이른바 네덜란드 튤립 폭락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무너져 버렸다는 등 여러모로 참고할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두 번째 장은 보석이라는 실체가 만들어 낸 감정의 좋거나 나쁜 결과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갖고 싶다는 욕망'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이 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인 유명한 마리 앙트와네트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제외하면 다른 두 편은 보석과 그에 대한 욕망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진주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진주를 좋아했고, 특히나 언니 메리에게 에스파니아 왕 펠리페가 선물한 진주에 반했다 하더라도 에스파냐의 무적 함대와 결전이 벌어진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니까요.
세 번째 이야기인 로마노프 왕가와 파베르제 달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능한 차르와 곪아가던 러시아 상황이 맞물려 폭동이 반란이 되는 일련의 과정은 파베르제 달걀과 무관한 탓입니다. 러시아 민중은 앙트와네트의 목걸이와는 다르게 이 달걀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요. 다만 이후 국제적인 장물아비 해머가 스탈린을 위해 러시아의 구 황실 소유 보석을 판매하며 드 비어스와 같은 천재적인 마케팅 책략을 구사했던게 파베르제 부활절 달걀의 전설을 만들어 내었다는 후일담은 재미있었습니다. "명탐정 코난" 초기 극장판의 소재 중 하나로 쓰일 정도로 유명해진건 다 해머 덕분인 것이지요. 그러나 보석 판매로 얻은 수익이 스탈린, 소련으로 흘러들어가 냉전 시대의 한 축을 만들게 되었다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마리 앙트와네트 이야기도 마리 앙트와네트가 꽤 괜찮은 왕비였다는 해석은 신선했지만,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에서 수없이 다루어 왔던 이야기로 별다른건 없습니다.

세 번째 장은 보석을 갖기 위한 노력이 긍정적 결과를 낳은 사례를 소개하는데 두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본의 진주왕 미키모토 코이치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손목 시계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입니다. 이 중 첫 번째 이야기가 흥미로왔습니다. 진주왕 미키모토의 이런저런 일화들이 아주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양식'임을 감추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하여 오히려 자신의 진주들 가치를 높인 전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손목 시계 이야기는 재미있기는 했지만 손목 시계가 널리 퍼지게 된 이유가 전쟁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 장황하게 풀어낸 듯 합니다. 어차피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큰 주제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솜씨도 괜찮습니다. 뭔가 큰 흐름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계속 덧붙이는데, 이게 이야기와 결국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큰 재미를 전해주거든요. 마리 앙트와네트 이야기에 소개된 호프 다이아몬드 이야기다 대표적입니다. 오래전 이런 저런 책을 통해 저주의 다이아몬드 이야기는 많이 접해보았는데, 이는 다이아몬드를 마지막에 소유했던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포장하여 소문낸 것에 불과하다는군요. 윈스턴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호프 다이아몬드를 기부한 것도 역시나 선의만은 아니었습니다. 소문 탓에 호프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하여 미국 국세청에서 역사에 남을 만한 경이로운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 진상이니까요.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이렇듯 재미도 있으면서도 이런저런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책입니다. 저자가 보석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역사와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경력이 허투른 것은 아니라 생각될 정도이며, 첫번째 장은 별점 5점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후 이야기들은 그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격에 비해 도판이 충실하지 못한 점 정도였달까요? 이런 류의 미시사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