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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9

알라딘 중고서적을 잘 찾아보면... 온라인 비블리아 고서당

여러모로 뒤숭숭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네요. 책도 손에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세월호 생존자 구조가 모쪼록 잘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번에는 읽은 책도 없고 하니,   오무라이스 잼잼 리뷰에서 언급했던 알라딘 중고서적에 대해 조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알라딘 중고도서 헌터인데 왠만한 책은 알라딘 직배송으로만 구입합니다. 회원 판매가격은 이해불가 가격도 많고 배송비가 얄짤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절판되었고 희귀본이라면? 당연히 회원 판매를 알아봐야죠. 알라딘 판매 회원 중에도 몇몇 절판 희귀본 전문 셀러가 있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온라인 버전인 셈이지요. 그 중 한 셀러의 판매 목록에 들어가서 훑어보니 참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절판되었다는데 놀랐습니다. 이런 책까지 나왔었나? 싶은 책도 있고요. 가장 놀라운 가격의 책은 요거입니다. 출간된 지 10년도 안 된 책인데 가격이 상당해요. 보통 절판 희귀본의 시세는 정가의 1.5~2배인데, 이 책은 3배에 달할 뿐더러 원래 정가도 고가의 책이라 높은 가격이 형성된 듯 싶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니 제가 가진 고서들의 가격이 궁금해져서 저만의 다카키 아키미쓰 컬렉션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다른 책은 아예 검색도 안 되고, 그나마 검색된 "제로의 밀월"은 2,000원... 그 외의 추리소설들 모두 가격이 형편없더군요. 재간되기 전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 "불야성" 등을 소장했을 때에는 중고가격이 상당했었는데... 다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아쉽...

제가 가진 책이야 망했지만, 그래도 잘 관심을 가지면 갖고 싶은 책을 건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중고도서 헌터짓은 계속할 예정입니다. 바로 오늘도 이 책을 5,000원 대에 건졌거든요! 이러니 헌터짓을 그만둘 수 없지요.

2023/05/11

돈이 되는 중고책에 대한 단상

얼마전 "중고책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라는 광고를 보고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20년 넘게 중고책을 구입해왔던 경험으로, 돈이 되는 중고책이 무엇일지?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되팔기 목적으로 중고책을 산 적은 없고, 단 한 번도 개인간 책 중고 거래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알라딘 등에 알라딘 매입가로 팔아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알라딘에 판 가격보다 중고가가 높으면 살짝 짜증이 나더라고요. (<<꿈의 화석>>은 3,200원에 팔았는데, 중고 가격이 거의 3만원 대네요). 그래서 이런 정보를 좀 알아두는게 좋겠다 싶어 적어봅니다. 여러분께도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이 될 중고책은 당연히 사람들이 찾는 책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래에 해당하는 책들일 것 같습니다.
  1. 구하기 힘듬. 책이 절판되었고, 이북으로도 출간되지 않음. 당분간 출간 예정도 없음.
  2. 1에 해당하는 책 중에서, 높은 지명도를 갖는 책. 유명한 명작이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이거나 다른 곳에서 많이 언급되는 책.
  3. 2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수집욕을 강하게 자극하는 책 (그림이 미려하다거나, 정말 희귀하다거나....).
  4. 1, 2, 3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다른 책으로 대체 불가능한 책
  5. 시리즈라면 전권 (중요 포인트)
이런 항목들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로 대표적인건 1980년대 ~ 2000년대까지의 만화입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 모두 해당되는걸 꼽자면 <<타임시커즈>>, <<환영박람회>> 입니다. 책 상태도 좋고, 모두 완결편까지 한 Set로 소장하고 있는터라 현재는 제법 값어치가 나갑니다. 단권이지만 <<외천루>>도 1 ~ 4조건을 모두 충족하기에 값이 꽤 비싸고요.




국내에서는 유명세에 비하면 많이 팔리지 않아서 초판 이후 절판된 작가들 - 예를 들어 모로호시 다이지로 - 작품 중 일부도 중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반면 이 시기 만화라도 당시 많이 팔려서 구하기 쉬운 탓에 1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책도 있습니다. <<어쩐지 좋은일이 생길것같은 저녁>>처럼요.

만화 외에도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고가를 형성하는 책들은 당연히 많습니다. 매니아 층이 탄탄한 장르 소설의 경우 꽤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재간되기 전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가 그러했었죠. SF도 비슷해서 재간 전 <<별의 계승자>>는 엄청났었습니다. 찾아보니 다아시 경 시리즈 <<마술사가 너무 많다>>도 3만원을 훌쩍 넘네요.
하지만 소설은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기는 꺼려집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작품은 많이 팔리기도 해서 공급도 많으며, 예상치못한 복간이나 전자책 출간이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비파괴 북스캔 후 OCR을 돌려 개인이 전자책처럼 만들 수도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인문서의 경우는 아주 유명하다면 절판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재간도 자주 되며,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있고요. 특히 역사책은 4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확실한 매니아층 -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 이 있는 책이 괜찮아 보입니다. 밀리터리물, 요리, 자동차나 각종 취미 분야 (예를 들자면 건담) 등에서 독보적(?)인 책은 가격이 괜찮습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는 <청설모의 자동차카툰>>이 대표적입니다. 투자는 소설보다는 이 쪽이 나은 선택일 듯 합니다.


아울러 구입하려면 업자가 아닌 알라딘 직접 배송 중고 등 플랫폼 이나 당근 등의 개인 판매본을 노리는게 좋습니다. 업자는 책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비싼 책을 싸게 구입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가격도 최소 3명 이상의 판매자가 책정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중고 구입 시에는 꼭 사전에 중고 플랫폼에서 검색해보세요 (팔 때도 마찬가지). 엄청난 고가라도 시장 가격과 다른 경우가 있거든요. 업자의 경우, 절판이라고 어마무시한 가격을 임의로 붙여놓고 '한 놈만 걸려라' 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기동전사 건담 일년 전쟁사>>는 상, 하권 낱권보다 두 권 세트 가격이 두배 가까이 비싼데 이런 경우도 주의해야 합니다.

허나 이 이론이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조건을 대충 충족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가격이 오르지 않는 책도 많아요.
그래서 너무 투자(?)에 연연하지 말고,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개념으로 접근하시는게 속은 편할겁니다. 그러다보면 가격은 오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지만 그동안 중고 시장에서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김진태 만화들도 결국 가격이 엄청 올랐더라고요. 결론내리자면, 존버는 승리한다!
 
그런데 과연 <<대지옥전 진광대왕>>이 얼마나 할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1, 4에 해당되기는 하는데....


2024/03/18

중고 만화, 정말로 돈이 되나?

예전에 돈이 되는 중고책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에서 돈이 되는 중고책의 대표로 1980년대 ~ 2000년대까지의 만화가 해당된다고 했었는데, 그런걸 증명하는 듯한 쇼핑몰을 발견했습니다. 안양에 위치한 헌책방 글모아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인데, 도서 분류에 "희귀"라는 카테고리에 고가의 중고 만화들이 다수 업로드되어 있네요. 알라딘 중고 서적에서는 취급하지 않았을 해적판도 엄연한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국내 작가 작품보다는 일본 번역본이 많다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그런데 고가인 희귀본들 중 납득이 안되는 책들이 꽤 많더군요. '한 놈만 걸려라' 마인드로 중고책에 황당한 가격을 붙여 팔던 알라딘 셀러보다는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을 갖춘 전문 사업자가 분류하여 가격을 책정했다는 점에서 보다 믿을만은 하겠지만, 정말로 저 가격에 팔리는걸까요? 몇가지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유령 하숙생 1~5" : 1,340,000원!
아로 히로시의 "유우 앤 미이"의 해적판. 지금은 잊혀졌지만, 80년대 잠깐이나마 '파천황 캐릭터 개그'를 대표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연재 당시 거의 실시간으로 접했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해적판으로 출간되었는지는 몰랐네요. 굉장히 좋아했고, 즐거웠던 추억이 있는 작품이지만 정식 출간본도 아닌 책에 이 가격이라니.... 말문이 막힙니다. 지금은 '만화도서관 Z'에서 원본을 무료로 볼 수 있는데 말이지요. 전 8권인데 왜 5권까지인지도 모르겠고요.

"노만 1~3" : 620,000원
데즈카 오사무 작품. 책 상태가 미개봉 소장품이라 가격이 올라간 측면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이미 e-book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반 독자는 저 가격을 주고 살 이유가 없는 셈이지요. 저 금액으로 구입하는게 누구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캔디 캔디"는 이 애장판 외에도 여러 버젼이 '희귀' 카테고리에 등록되어 상당한 가격이 붙어 있습니다. 이 4권짜리 애장판은 저도 소장하고 있는거라 가격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 서점 안에서만 "캔디 캔디"를 5~6 질은 보았는데 정말 '희귀'가 맞는걸까요? 우리나라의 "캔디캔디" 대부분이 이 서점에서 보유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이 가격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8권 : 150,000원
완결까지 전 시리즈를 갖춘 것도 아닌데 150,000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한, 두 권 정도만 빠진 셋트를 가지고 있는 수집가를 위한 듯 한데, 과연 수요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 외에도 대체로 이런 식이라 가격 책정이 무슨 기준인지 정말 알고 싶어졌습니다. 관심있으시면 사이트 한 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대지옥전진광대왕"은 얼마에 팔릴지 물어보고 싶어지는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가까운 시일에 한 번 방문해봐야겠습니다.


2014/07/01

알라딘 중고서적 헌팅 중....

알라딘 중고서적을 잘 찾아보면... 온라인 비블리아 고서당

알라딘 헌팅(?) 중 기이한 헌책방을 발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고가에 형성된 다양한 절판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쿼런틴"이 거의 20만 원! 소장 중인 형이 아주 좋아하겠군요. 그 외에도 얼마 전 읽었던 "반전"은 14만 원, "마술사가 너무 많다"는 거의 20만 원이고... 만화는 다이나믹프로 전성기 화백의 "돌아온 권법소년 1, 2"가 무려 80만 원! "로보트 킹과 별나라 왕녀", "우주의 전사대와 로보트 킹"은 각각 170만 원! 이건 제가 초등학생 때 구입한 책이 아직 본가에 있어서 더 두근두근합니다. 무척 낡고 헐긴 했지만 과연 얼마나 받을지 궁금해집니다.

본가를 뒤지면 절판된 책은 제법 많이 발굴할 수 있을 텐데, 이 헌책방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전에 과연 팔리는 책인지부터 알아봐야겠지만요.

2014/04/18

오무라이스 잼잼 2 - 조경규 : 별점 2.5점

오무라이스 잼잼 2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국내 최고의 일상계 요리만화로 이전에 읽었던 1권에 이어지는 이야기. 1권 리뷰에서 가성비를 언급하고 다음 권을 살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었지요. 그러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반값에 팔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가성비에 의한 착시 효과일 수도 있겠지만, 1권보다는 마음에 드네요. 웹툰 연재 시 읽었던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XO 소스 발명에 대한 일화, 작가의 미국 유학 생활 중 단골 중국집에서 Happy family~ 전가복!을 먹은 이야기, 작가의 산타페 여행기, 너무너무 맛있는 베이컨 이야기 등이 실려있고, 각종 부록도 1권보다는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XO소스를 이용한 볶음밥, 완벽한 계란후라이와 스크램블 에그와 같은 조리법 소개가 괜찮았던 덕분이지요. 무엇보다도 산타페 여행기 편에서 잠깐 그림으로 소개되기만 했던, 작가가 산타페에서 1회용 카메라로 찍었다는 당시 사진이 실려있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사진도 나름 감각적이더군요. 이왕 이 사진을 실을 생각이었다면 전가복 편에 등장한 메뉴판 등도 실어주었으면 했는데 조금 아쉽네요. 다만 작가의 아들 준영이를 주인공으로 한 짤막한 만화나 맛집 소개, 오래된 광고 소개 같은 잡스러운 정보들은 여전히 재미없고 쓸데없었습니다.

하여튼 별점은 2.5점. 정가로 구입했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것 같은데 반값에 구입했기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웹툰으로 이미 다 보신 분들이라면 구태여 구입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현재 판매가의 50% 금액의 중고서적을 구입했는데,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회원 판매 중고가는 배송비 포함하면 새책 가격보다도 비싸지네요. 절판된 책도 아닌데 이 미친 중고가격 책정은 대체 뭘까요?

2014/12/03

오무라이스 잼잼 4 - 조경규 : 별점 3점

오무라이스 잼잼 4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1, 2, 3권을 모두 구입하기는 했습니다만, 2, 3권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할인 가격에 구입했었습니다. 그래서 4권도 중고 서점 입고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도서정가제 이후에는 할인폭이 크지 않을테고 중고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새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이전 권 리뷰에서 '어차피 인터넷에서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을 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깝다'고 적었었는데,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요.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2,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풀컬러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는 괜찮으며, 인터넷과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정겹고 따뜻한 맛은 단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요리만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콘텐츠 자체의 가치가 무척 높다는 장점도 큽니다. 지금은 국내에도 요리 만화가 웹툰 중심으로 제법 많아졌지만, 단순히 요리가 등장하고 레시피가 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과 전개를 통해 요리와 에피소드가 어우러지는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은 여전히 발군입니다. 이번 권 역시 그러합니다. 미국 거주 시절 "인큐버스"라는 밴드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톨리도라는 무척 한적한 도시를 찾아간 에피소드가 대게 이야기로 연결된다든가, 자기와 닮은 Sasa 씨 이야기에서 소보로빵, 멜론빵, 파인애플빵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요리에 대한 그림과 소개 모두 당장 먹고 싶게 만드는 요리 만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하고요.
이러한 독특한 매력은 작가 조경규의 이색적인 이력 덕도 클 것입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중국에서도 수년간 거주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인데, 이시카와 쥰이 "만화의 시간"에서도 이야기했듯, 조금이라도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이 만화가로 유리하다고 하지요. 그 말대로라면 조경규 작가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인생을 산 셈입니다.

또 다양한 음식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부가적인 가치도 큽니다. 츄파춥스의 로고를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이나, 달리와 디즈니의 공동작업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외에도 닭갈비의 유래나 다양한 연근 요리 등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총 2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가장 구미가 당기던 음식은 "차계란"이었습니다. 계란 장조림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개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라 꼭 한번 따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이전 권들과 동일하게 명확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과 비교한 가치가 얼마나 크냐는 여전히 애매합니다. 이번 권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부록이 특히나 별로입니다. 본편에 소개된 내용의 보강이나 외전 형식의 이야기, 만화로 제작된 레시피 등이 훨씬 가치 있었을 텐데, 정작 수록된 것은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맛집 소개나 재미없는 가족 만화가 대부분이니까요.

또 작가의 가족, 특히 아이들 소재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몇 안 되는 부록 페이지까지 아이들 사진과 그림으로 채워진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재 면에서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발상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책을 구입한 독자를 위한 서비스에도 더 신경 써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작화는 물론 내용과 재미, 소개되는 요리의 가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국내 요리, 음식 만화의 대표작임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다시 읽었기에 돈이 아깝지도 않고요. 1, 2, 3권 모두 열 번 이상 읽었으니까요. 요리, 음식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이만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2018/03/17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1 - 반시연 : 별점 3점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1 - 6점
반시연 지음, 김경환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국내 장르 영화, 장르 문학 관련 리뷰의 거목이신 mrkwang님이 극찬하신 글을 어디선가 읽고 관심이 가던 차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했습니다. 어차피 절판 상태라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바로 전에 읽은 책에서 절판, 품절이라는 상황에 낚여 충동구매 하지 말라고 언급했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못 사는 것도 있으니까요.

책은 단편 연작물입니다. 주인공 호우가 과거 '셔터' 라 불리우는 일종의 해결사 일을 하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폐인이 된 후, 지인들의 도움으로 기묘한 중고 물품 가게 '헤브닝' 에서 일하기까지 각 시기별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구성이지요. 다행히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기도 했지만 추리적으로 꽤 괜찮은 덕분입니다. 큰 사건이 벌어진다기 보다는 일상계 추리에 가까운 소소한 추론이 대부분인데 전부 이치에 맞고, 설득력이 높거든요. 모든 정보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기도 하고요.

에피소드별로 간략하게 소개해드리자면, "로또 사모님" 사건이 등장하는 첫번째 에피소드 "우계"에서는, 단순히 캐릭터를 소개하기 위한 소품으로만 보였던 망사 스타킹,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라 당연해 보였던 엘리베이터 물기에 대한 묘사 등이 진상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로 사용되는게 좋았습니다. 의뢰받았던 아이의 행방 외에 남편이 어디에서 도박을 하는지까지 추론해낸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명확하게 캐릭터를 독자에게 알리는, 첫 작품으로 손색없는 이야기였습니다.

호우가 폐인이 된 이후 편의점에 나타난 성범죄자를 응징하는 "건기" 도 좋습니다. 주어진 정보들로 편의점의 안경남이 성범죄자였다는걸 알아내는 추리의 과정이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전직 복서이기도 한 호우의 강함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고요.
물론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가 편의점에서 여성을 희롱한다는게 과연 현실적이고 가능한 설정인지는 의심스럽습지만요.

"주마등"은 호우가 넘버원 셔터로 잘 나갈 때, 사야를 만나고 그 뒤 고지를 만나 사야의 스토커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사야와 고지라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설명을 위한 소품으로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일상계로는 괜찮은 수준이기는 해요. 그러나 고지 정도 되는 능력자가 스토커 한 명 붙잡지 못한다는게 말이 안되서 그렇지... 여튼,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헤브닝" 은 폐인이던 호우가 현재를 극복하고 비이와 '노예 계약'을 맺는 과정이 그려지는 이야기로 가장 많은 추론이 등장합니다. 물에 젖어 읽을 수 없는 주소 쪽지를 보고 어떻게 '헤브닝'을 찾아 갔는지, 작가 이름도 없고 출판사도 없는 책의 정체는 무엇인지, 비이가 핸드 크림을 계속 바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전거 변속기가 고장났다고 전화한 손님의 문제는 무엇인지, 책을 반품하며 다른 책과 다르다고 우기던 일의 진상은 무엇인지, 나무 바닥이 미끄러운 이유는 무엇인지, 동네를 배회하는 대학생들이 찾는 장소는 어디인지, 피아노 모양 오르골은 왜 고장이 났는지 등 수많은 추리를 순식간에 토해내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몇몇 이야기는 비약이 있고, 지나치게 끼워 맞춘 느낌도 들지만 추리들도 대체로 괜찮은 편입니다. 골고루 맛있는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이 연작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그러나 마지막 이야기 "셔터" 는 완전히 기대 이하입니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암호 트릭 같지도 않은 암호 트릭이 핵심인 탓입니다. 차라리 등장하지 아니함만 못했습니다. 그냥 호우와 다른 등장인물들이 어울리는 만화같은 상황을 그리는 묘사만이 볼거리였달까요. 자기 개발서를 혐오하는 호우의 성격은 저와 비슷해서 무척이나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뿐입니다.

그래도 대체로 추리 부분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제가 읽어왔던 국내 추리물 중에서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만화적인 설정은 문제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두뇌와 프랑켄슈타인의 육체를 지녔다는 주인공 호우, 대부호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남이자 호우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고지, 대식가 츤데레 미녀이자 호우의 전 애인이자 고지의 현 애인 사야, 고지의 약혼자이자 대부호로 호우에게 빠진 비야 등 모든 캐릭터 설정이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입니다. 이름들도 하나같이 만화 속 인물들 같잖아요?
"건기"에서 "헤브닝" 으로 이어지는 동안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폐인이 된 호우에 대한 묘사 역시 만화적이라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대사와 상황들도 만화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하고(케로로인가?) 비이를 '주인님' 이라고 부르는 잘 차려입은 호우에 대한 묘사가 그 정점이고요.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비현실적이라 아무리 현실적인 추리를 한다 하더라도 썩 와닿지는 않는 문제도 생기기 때문에, 좀 더 현실적인 캐릭터를 기반으로 쓰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학교 짱으로 공부는 못하지만 추리에 능한 호우, 소꼽친구 사야, 학생회장 고지, 부회장 비이였다면 어땠을까요?. 만화적인건 마찬가지지만 스케일을 줄임으로써 현실감을 조금이나마 더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고등학교를 무대로 해도 충분히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들이니까요. 아니면 아예 현실적이지 않은 판타지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던가요. 지금은 이래저래 어중간할 뿐이라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물로서의 성과는 뚜렷하나 묘사와 전개는 아쉽습니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2권을 읽게 될 지는 잘 모르겠어요. 작가의 만화적 설정 없는 정통 본격 일상계 추리물을 기대해 봅니다.

2023/04/15

다 덤벼! 1~8 - 고바야시 마코토 : 별점 3점

[중고] 다 덤벼 8 - 6점
고바야시 마코토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프로 레슬러 삼사랑 (산시로)은 미국 원정을 마치고 일본에 복귀한다. 그러나 몸담고 있던 단체가 망해버렸고, 동료들도 모두 뿔뿔히 흩어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삼사랑은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으로 일하며 생활에 안정을 찾지만, 어느날 과거 동료였던 오두가 찾아온다. 자신이 출범시키는 새로운 프로레슬링 단체 '드림팀'에 함께 참전하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오두의 처참한 패배 뒤 옛 동료들과의 만남을 통해 삼사랑은 다시 프로 레슬링의 세계로 뛰어들고, 오두를 망가트리고 레슬링 계의 질서를 어지럽힌 옛 후배이자 현재의 격투킹 적성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지금은 거의 잊혀진 만화가 고바야시 마코토의 작품. 이 작품이 처음 발간된 90년대 중, 후반에는 국내에서도 이런 저런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인기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스타일과 디테일 모두를 갖춘 작화 실력과 조금은 어설프고 황당한 개그로 즐겁게 볼 수 있는 만화들이었죠. 그 중 최고 인기작은 고양이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그린 <<What's Michael>>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만화가 더 좋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게 이 작품, <<다 덤벼!>>와 버블 경제 시절 긴자 호스테스의 일상과 사랑을 그렸던 - 심지어 순애물! - <<미스 헬로우>> 였어요. 

<<다 덤벼!>>는 일본에서는 꽤나 인기 있었다는 <<1,2,3 산시로>>의 후속작입니다. 연재 기간, 권수를 보면 <<1,2,3 산시로>>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고, 오히려 후속작인 이 작품과 <<격투 탐정단>>은 버젓이 소개된 상황이 조금은 웃깁니다. <<1,2,3 산시로>>가 80년대 초반 만화라 소개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던 탓이겠지요? 80년대를 풍미했던 다카하시 루미코의 대표작들 - <<시끌별 녀석들>> 등 - 이 국내에 정식 소개된 당시에 처참히 실패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나마 <<메종일각>>은 <<도레미 하우스>>라는 다소 괴이쩍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완전판으로 출간되었지만, 역시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요. 시대가 너무 많이 흐른 탓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보아도 꽤 재미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현재의 UFC 같은 이종 격투기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대체로 프로레슬링 경기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타격기, 관절기가 모두 실전처럼 사용되는 것으로 묘사되며, 적성과 대결하는 최종 클라이막스는 현재의 이종 격투기와 별로 다를게 없기 때문이에요. 레슬러들만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프로 유도'라는 단체의 리더 유정기와 적성의 대립도 치밀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리얼 이종 격투기라 할 수 있겠지요.
또 전개를 통해 ''프로 레슬링이야말로 최강의 격투기, 프로 레슬러 삼사랑은 지상 최강의 사나이"라는게 - 사실 여부를 떠나서 - 설득력있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브록 레스너가 UFC에서 - 약물 여부를 떠나 - 유의미한 활약을 했던게 충분히 그랬음직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를 뒷받침하는ㅡ 완숙의 경지에 달한 고바야시 마코토의 작화도 좋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들은 프로 레슬링 만화 중에서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을 다툴 만큼 멋져요. 


데스 매치, 시멘트(프로레슬링에서 승패가 정해진 연출된 시합이 아닌 실전 시합) 등의 전문 용어와 삼사랑의 피니쉬 '브레인 바스터 (위 이미지)' 등 - 일본식 표현이지만 - 관련 기술명도 비교적 (저먼 수플렉스를 더맨 수플렉스라고 표시하는 등 오류는 있습니다) 정확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존 유명 프로 레슬러들의 카메오 등장이라던가 작가 특유의 썰렁한 개그들도 볼거리입니다.
밑바닥에서 출발한 주인공이 한단계, 한단계씩 위로 나아가며 적을 쓰러트리고 결국 최종보스까지 물리치는 전형적인 왕도식 전개도 확실한 재미 요소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일본 이름의 한국식 독음을 비롯, 좌우반전 등의 문제가 있는 오래전 출간작이기는 하지만 프로레슬링 팬이라면 한 번 찾아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덧붙이자면, 알라딘 중고가가 마지막 권 (8권)은 무려 5만원이 넘는 가격에 등록된게 있는데 당연히 그 정도 가치가 있는건 아닙니다.....

2009/10/16

도서실의 바다 - 온다 리쿠 / 권영주 : 별점 2점

도서실의 바다 - 4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호감이 생견 차에 알라딘 중고책으로 싸게 팔길래 구입한 책입니다. 사실 꼭 사고싶었다기 보다는 다른 책을 사는데 어차피 배송비를 내야 하길래 판매자의 다른 책을 더 살까 하고 보다가 충동적으로 구입한 책이죠.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읽고나니 실망이 더 큽니다. 충동구매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알려주는 책이랄까요.

일단 "봄이여 오라", "수련", "노스탤지어" 같은 작품들은 내용을 일부러 이해하기 어렵게 꼬아놓은 듯 한데 영 적응이 되지 않더군요. 이야기의 맥락은 둘째치고서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행간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 제 잘못도 있겠지만 일부러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본편을 읽지 않으면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든 외전격의 작품인 ""수련", "도서실의 바다" 역시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품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성립하기는 하지만 세계관을 명확하게 알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애초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원체 "리세"라는 캐릭터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장편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 "피크닉 준비"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수준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예고편을 돈받고 판답니까? 똑같이 예고편격인 "이사오 오설리반을 찾아서"는 그나마 다행스럽게 이야기로 성립을 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돈주고 사서 읽기에는 힘든 성격의 작품이라 생각이 되네요. 이런 작품이 실려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제게는 크게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이 책의 꾸준한 인기를 대변하듯 작가의 잔잔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실려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영화의 기억"이라는 작품은 주인공이 작은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뒤 "청환기"라는 영화와 더불어 초등학교시절 겪었던 바닷가에서의 숙모 익사사건을 떠올린다는 이야기로 "청환기"라는 실존하는 작품을 잘 인용하는 것과 더불어 정통 추리물의 형식을 띄면서도 독특한 작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트릭이 현실성이 약간 떨어져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하죠. 비극적인 모자의 이야기로 실존한다는 "청환기" 영화와 소설도 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국경의 남쪽" 이라는 작품은 과거 한 카페에서 10년간 일하며 물에다가 비소를 풀어 손님들에게 대접한 웨이트리스에 대한 약간은 섬뜩한 이야기인데 치사량은 아니지만 많이 마시면 죽는다는 것, 그래서 웨이트리스가 "서비스"를 하면 할 수록 해당 손님은 죽어간다는 이율배반적인 설정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처럼 반 정도는 마음에 들고 반 정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문제는 마음에 안드는 반이 너무 심하게 마음에 안 들어서 전체적인 점수가 많이 낮아졌네요. 어쨌건 좋은 작품은 분명히 제 취향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셈이니 다음번에는 꼭! 이 작가의 장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PS : 장편 중 제 취향으로 보이는 작품 추천 부탁드립니다. 제 취향은 아무래도 추리물이겠죠?^^

2020/11/15

완전 범죄 연구 - 사노 요 / 김한경 : 별점 2.5점

일본 추리 작가 사노 요가 쓴 단편 6편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이전 "금색의 상장" 리뷰에서 언급해 드렸듯, "금색의 상장"과 함께 국내에 유이한, 사노 요 단행본이기도 하지요.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던 차에, 우연히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하였습니다. 가격은 배송료 제외하고 2만원으로, 1991년 발간 당시 정가는 210여 페이지에 3,500원이었지만 이 정도면 적절한 가격이라 생각합니다. 절판본 중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형성된 책도 많으니까요. 잠깐 찾아보니 "환영박람회" 1~4 권 셋트는 최소 160,000원에서 시작하네요.

하여튼, 읽어보니 그동안 구전되어 왔던 명성의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디어' 만큼은 확실히 좋았거든요.

그러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다소 아쉽습니다. 좀 더 길게, 설득력있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작품이 꽤 되거든요. 단편에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빼어나기 때문에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오랜 숙제를 끝낸듯한 후련한 기분은 보너스고요.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체이동" 

"중앙일보" S 지국 지방판에 기묘한 기사가 실린다. 누군가 자동차 3대에 벌거벗은 마네킹을 가득 담고 이동했던 사건이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오이카와는 기사에 흥미를 보이고, 기사를 쓴 젊은 기자 사쿠라이에게 사건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사쿠라이와 중앙일보 지국 조사를 통해, 자동차 3대에 실렸던 마네킹 18개 중 17개가 별장지인 '학자촌'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오이카와는 마네킹 사건은 친구인 심리학 교수 이나무라 가즈히코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눈치채고 그를 추궁하는데...

이야기는 이나무라가 참석했던 대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대담에서 문학 평론가 시노다는 차로 시체를 산 속에 버리는건 완전 범죄에 가깝지만, 불시 검문이나 불의의 사고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나무라는 이에 동의하지요. 

문제는, 여기에서 마네킹은 벌거벗은 여성 사체를 위장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되는데 이건 말도 안됩니다. 사체를 버리러 가면서 구태여 이상한 티를 낼 이유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마네킹 운반자들은 무려 2번이나 검문을 받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목격되어 이동 경로도 곧바로 밝혀지고요. 이럴 바에야 불시 검문, 불의의 사고와 같은 예상치 못한 불운은 무시하고, 혼자서 차 트렁크에 시체를 넣고 이동하는게 훨씬 상식적이고 납득이 가는 행동일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결말까지 허술하지는 않습니다. 마네킹 관련 사건은 오이카와가 날조했다는게 진상이거든요. 동기는 이나무라가 오이카와의 횡령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오이카와는 이나무라를 독살한 뒤, 이나무라가 범행이 드러날까 두려워 자살했다며 완전 범죄를 완성시키지요. 말 그대로 '완전 범죄 연구'라는 표제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입니다.

또 오이카와는 이나무라를 살인범처럼 보이도록 매스컴을 이용했는데 그 발상과 과정에 대한 묘사도 꽤 그럴듯했습니다. 기자가 기사로 자살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지만 기자가 기사를 만들어서 있지도 않은 범행을 엮은 뒤, 그걸 남에게 뒤집어씌워 자살을 위장한채 죽인다는 이야기는 처음 봤네요.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이나무라가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라는건, 오이카와의 주장 뿐입니다. 이나무라가 살해했다는 여대생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요. 앞서 이야기한대로 마네킹 작전은 어이가 없었을 뿐 아니라, 고용한 학생과 자동차 번호로 이나무라가 주도했음이 뻔하게 드러날 겁니다. 조금만 조사가 이루어져도 이나무라가 살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는건 금방 드러났을 거에요. 그런 점에서 치밀한 계획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사건을 풀어가는 전개에 문제가 너무 많아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위장 자살"

K시에서 부정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요 증인이었던 시장 비서 자살 후 수사는 중단되었고, 시장은 구속되지 않았었다. 얼마 뒤, 도쿄에서 살던 K시 출신 아키코는 자살했다는 비서를 긴자에서 목격한 후 비서 나카바야시가 국회의원인 삼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아키코의 이모 사에코는 애인인 전직 기자 다자키 류이치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자키는 비서가 비슷한 사람을 자신으로 위장하여 살해했다고 추리하는데...

다나카가 내놓은 추리는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은 나름 반전이 있어서 신선했어요. 우선, 다자키 때문에 근무하던 은행에서 횡령을 저지른 사에코는 이 트릭을 그대로 이용하여 도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침 자기와 꼭 닮은 카페 주인 도무라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도무라를 죽이고 자신이 자살한걸로 위장한 뒤, 다자키와 함께 도주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카바야시 비서건은 아예 조작이었고, 다자키와 아키코가 공모하여 사에코를 죽이려고 했다는 진상이자 반전이 드러납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나카바야시 비서 사건과 관련된 추리 모두가 아예 조작이었다는 발상이 인상적이에요. 아키코의 말 외에는 증거가 없는데,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어서 깜빡 속아 넘어갔습니다.

문제는 다자키와 아키코가 손을 잡고 사에코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에 의외성이 없다는 겁니다. 사진 한 장, 그리고 아키코와 다자키의 말 외에는 사에코와 꼭 닮았다는 도무라라는 여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거든요. 이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리도 없으니, 다자키와 아키코가 꾸민 계략이라는건 뻔합니다.
또 아키코와 사에코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사에코가 다자키에게 나카비야시 목격 증언을 이야기하게 해서 추리를 듣는 흐름도 좀 이상해요. 사에코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차라리 함께 사는 아키코와 사에코가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는게 더 설득력이 높지요.

모든게 거짓이라는 대담한 발상은 좋지만, 이렇게 전개에서 보이는 단점 때문에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증거 인멸" 

어느 날 작가인 나에게 미카미 노리코가 찾아 왔다. "반대급부" 라는 단편 속 주인공이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골 현청 만년 과장 구로카와가 간부후보생인 엘리트 다가가 저지른 음주 교통 사고를 자신이 낸걸로 뒤집어 쓰는 내용인데, 실제로 미카미 노리코의 아버지 미카미 조키치도 시골 현청 만년 과장으로 교통사고를 저지른 이력이 있었다. 미카미 조키치는 퇴직 후 일자리를 찾아 도쿄에 상경한 후 육교에서 투신 자살했고, 노리코는 아버지를 죽인건 교통사고를 실제 저지른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작가가 순수하게 창작한 작품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과 상당히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 우연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로 미카미 조키치 자살 사건이 아니라, 미카미 노리코가 살해당한게 진짜 핵심 사건이라는게 재미있었습니다. 

경찰이 이를 밝혀낸 추리도 합당합니다. 처음에 노리코는 원래 책을 읽지 않는 조키치 유품 속에서 이 책을 남편 유사쿠가 발견한 뒤 장인 어른 이야기 아니나며 건네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키치는 책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이 책 속 단편이 자기 이야기란걸 알았을까요?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조사한 결과, 책에는 조키치의 지문이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즉, 이건 노리코의 남편 유사쿠가 꾸민 거짓말이었습니다. 유사쿠는 장인어른이 자살한 사건을 이용하여 노리코를 움직이게 만든 뒤, 그녀를 살해하고 그 죄를 실제 작품 속 또다른 모델인 엘리트 공무원 이케다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겁니다.

'진짜처럼 보였던 이야기가 사실은 특정 인물의 말 외에는 증명할 도리가 없는 거짓말'이었다는건 이 단편집 수록작들 대부분에 해당되는 설정인데, 이 작품에서 특히 적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정말로 자기가 쓴 소설같은 과거가 있었으며, 조키치는 그 사실이 폭로되는걸 두려워한 이케다가 살해한게 아닐까 하는 화자인 작가 생각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인상적이고요.

그런데 유사쿠가 별다른 조작없이 살인을 저질러 체포된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앞서 이 정도로 꼼꼼히 조작한 증거를 내세울 정도였다면, 실제 범행도 본인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교묘하게 저질렀어야 했는데 알리바이 하나 없이 체포되자마자 자백한다는건 많이 시시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유사쿠가 저지르는 범행만 더 꼼꼼하게 그려낸, 중편 정도 분량이었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살인계약" 

재계의 거물인 후나사와 료스케가 살해당했다. 공개된 유언장에는 여류 추리 소설가 에모토 유리노에게 7천만엔을 상속한다고 적혀 있었다. 경찰은 7천만엔을 받기 위해 에모토 유리노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재판에 회부했다. 밀회를 위해 가명으로 호텔에 드나든 탓에 그녀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데...

무고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완전 범죄를 완성시키는 범죄극입니다. 후나사와 료스케가 살해당한건, 에모토 유리노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무효화 시키기 위해 저지른 자작극이라는게 진상이거든요. 회사를 손에 넣기 위해 비열한 수단을 동원했던 증거를 그녀가 몰래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노인성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료스케는 그녀를 살인범으로 몰고 죽습니다. 세상은 살인범이 가진 증거 따위는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고, 보기 좋게 성공합니다. 에모토 유리노가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 지옥에 빠졌다는 결말은 인상적이에요.

그러나 료스케가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건 좀 설득력이 없고, 살인범이 가진 증거라도 회사에 치명적일 수는 있다는 점에서는 헛점이 보입니다. 이 쪽 바닥 걸작인 카트린느 아를레가 쓴 "지푸라기 여자"와 비교한다면, 에모토 유리노가 정말 무고하다고 보기도 힘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완전 상속"

유산한 충격으로 아내가 자살한 미즈키에게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아내가 다카라이라는 남자 때문에 매춘을 하다가 자살했다고 알려 주었다. 미즈키는 경찰 시로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상담했고, 어떤 여성이 다카라이를 중상모략하는 전화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카라이가 정말로 살해당하는데...

중상모략하는 전화를 건 범인은 아내 아키요였습니다. 그녀는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서른 살 이상 차이나는 다카라이와 결혼했었습니다. 유산을 목적으로요.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린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다카라이보다 먼저 죽으면 아들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게 되기 때문에, 다카라이가 먼저 죽은 뒤 자신이 죽게끔 수를 쓴 겁니다. 억울한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다카라이가 범인이라고 전화를 걸다 보면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다카라이를 살해할걸로 생각한거지요. 다카라이가 살해되면, 그 유산은 아내인 본인이 상속받고, 본인이 죽으면 아들에게 모든 유산이 상속되게 되니까요. 이는 제목 그대로 '완전 상속' 범죄인 셈입니다. 당시 수사 기술로는 전화를 누가 걸었는지까지는 알아낼 수 없으니, 아키요가 전화를 걸었다는걸 밝혀내는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설령 전화를 걸었다는게 드러나더라도, 직접 범행을 저지른건 아니기도 하고요.

순전히 운에 의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아쉽지만, 계획만큼은 정말 비상했습니다. 약간의 설득력만 더하면 걸작이 될 수 있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심리 살인"

경찰인 나에게 조카딸 미나코가 찾아와 괴상한 편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나는 미나코의 남편인 신용금고 이사 하야마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의심했고, 하야마가 어떤 여성과 아이를 몰래 만난다는걸 알게 되었다. 장난은 더욱 심해져 미나코가 자살 미수까지 저지른 탓에 나는 하야마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킨 미나코가 하야마를 살해하는 사건을 저지르는데..

자신이 미친 걸로 위장해서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심신 미약 등으로 무죄 방면된 뒤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야마가 아니라 미나코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며, 불륜남이 전화를 거는 등으로 조작에 협력한거지요.

증거를 잡을 수 없는 완전 범죄이기는 한데, 좀 뻔했습니다. 미나코에게 장난을 걸 사람이 없다면, 장난 자체가 조작이라는건 당연하니까요. 미나코에게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이미 나온 상황이고요. 경찰이 불륜남을 조사하지 않은건 직무유기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네요. 불륜이라는 동기도 식상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수록작 중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2016/06/08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1 - 제프리 스타인가튼 / 이용재 : 별점 3점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1 - 6점
제프리 스타인가튼 지음, 이용재 옮김/북캐슬

"보그"지의 음식 평론가 제프리 스타인가튼의 글을 모아놓은 일종의 컬럼, 에세이집입니다. 음식 및 요리에 관련된 책들을 좋아라 하기에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책이지요. 이전에 2권 리뷰에서 말씀드렸듯, 1권은 절판 상태였는데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죠.

책의 구성 및 내용은 2권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2권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제프리 스타인가튼의 음식에 대한 무한 열정, 무한 도전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컬럼부터 도전입니다. 음식 컬럼을 쓰기 위해 자신이 싫어하는 음식(심지어 김치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을 정복해 나간다는 것이거든요. 그 다음에는 직접 천연 효모를 쓴 자연 발효빵을 만들기 위한 노력, 프랑스의 새로운 다이어트 비법이라는 몽티냐크 다이어트를 직접 한 달 동안 체험한 기록, 채식주의를 체험한 결과 등이 이어집니다.

식도락 여행기도 "도전기"에 가깝습니다. 직접 어떤 음식의 오리지널을 체험하고 요리 강습을 받아 오거나, 최소한 레시피라도 구해 와서 직접 재현한다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슈크르트를 만들어 먹어보기 위해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여러 전통 농가 식당을 돌아다닌 뒤, 뉴욕에서 그 요리를 구현한다는 이야기처럼요. 심지어는 오리지널 레시피를 구현하기 위해서 소금에 절인 안심이 없어서 직접 절이는 등 미국에서는 팔지도 않는 고기 부위까지 구하려 노력할 정도니 뭐 말 다했죠.

완벽한 프렌치 프라이를 만들기 위한 고난의 과정 역시 발군입니다. 알랑 파사르의 비법(말기름에 튀겨라!)에서 시작하여, 어떤 감자를 어떤 기름에 어떤 방식으로 튀겨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한 여정이 장황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참고로, 저자의 최적 프렌치 프라이 조리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 재료 : 땅콩기름 2~3리터, 아이다호 러셋-버벵크나 삶아먹는 감자 450~570g, 소금
  1. 땅콩기름을 전기 튀김기나 철제 튀김바구니가 들어가는 6리터짜리 우묵한 튀김팬에 붓는다. (전기 튀김기에는 사용설명서 추천량만큼, 화로에 올려놓는 튀김팬에는 3리터)
  2. 튀김용 온도계를 기름에 꽂아 온도를 130도까지 올린다.
  3. 감자를 씻고 껍질을 벗긴 뒤, 프렌치프라이 자르개나 부엌칼로 단면이 각각 1cm가 되도록 길게 썬다. 가장 작거나 불규칙한 조각은 버린다. 감자의 양은 340~450g이 되어야 한다.
  4. 감자를 헹구지는 말고, 종이 수건으로 신경 써서 말린다. 기름이 준비될 때까지 단단히 싸둔다.
  5. 감자를 튀김 바구니에 담아서 기름에 담근다. 기름 온도가 다시 125도로 오를 때까지 센 불에서 튀기다가, 불을 줄여 온도를 유지한 채 9~10분간 튀긴다.
  6. 바구니를 든 뒤 기름의 온도가 190도가 될 때까지 감자를 건져둔다. 불은 세게 올려 놓아야 하며 기름 온도는 195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7. 감자를 다시 기름에 담가 3분 동안 튀긴다.
  8. 튀김 바구니를 들어 올려 기름을 몇 번 털어내고, 종이 수건을 깐 접시에 뒤집어 기름기를 종이 수건으로 빨아들인다. 먹기 직전에 소금을 넉넉히 뿌린다.

또 과학적인 이론에 바탕을 둔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책 뒤 소갯글처럼 여행기와 레시피, 논문이 결합된 독특한 책이라는 것이 허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이에요. 특히 술이 심장질환의 요인이 아니고, 적절히 술을 마시는 사람은 마시지 않는 사람들보다 일반적으로 더 오래 산다는 컬럼은 아주 좋았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로서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컬럼 내용에 폭음은 위험하고 담배는 아주 좋지 않다고 쓰여 있어서 제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말이죠. 마셨다 하면 폭음이니... 야채가 사실은 여러 가지 자연 독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컬럼은 추리 소설에도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겠구나 싶었고요.

그 외에도 식욕 억제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검증한다던가, 소금에 대한 현재의 우려는 지나치다던가 (소금과 혈압의 관계는 증명되지 않았음) 하는 이야기들도 재미와 가치 모두 뛰어나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재미있는 주제들에 저자의 음식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과 확고한 견해, 그리고 유머러스한 글 솜씨가 더해져 풍성함을 한껏 전해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그"지에서 음식 평론가로 활동하며, "줄리아 차일드 도서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은 허언이 아닌 셈입니다.

단, 글이 쓰여진 시기가 90년대로 보여지는데 2010년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약간 유행을 따르는 주제들 (다이어트 방법)이라던가 과학적 이론에 기반한 글들이 특히 그러합니다. 이러한 점에서는 개정판이 최소 10년이 지난 뒤에는 나와주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은 사소할 뿐 이런 류의 컬럼으로는 최상급이라 생각되네요. 저도 이런 컬럼을 써 보고 싶어집니다.

2018/09/09

만물의 유래사 - 피에르 제르마 / 김혜경 : 별점 1.5점

사물의 기원을 다룬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피에르 제르마가 1980년에 간행한 책입니다.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발견했는데, 잡학 사전류의 책을 좋아해서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수록된 '만물'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백 개 항목에 대해 짧게는 몇 줄, 길게는 한두장 정도로 설명해 주는 구성입니다.
이 중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몇몇 사물들에 대한 정보는 고맙더군요. 비엔나 커피의 유래처럼요. 커피 찌꺼기를 싫어했던 비엔나인을 위해, 커피 찌꺼기를 걸러낸 후 커피액에 우유를 넣은 카페 주인 쿨크지스키의 아이디어였다네요. 익히 알려진 유래와 조금 달라서 기억에 남습니다. 비프 스테이크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전래된 요리로 워털루 전투 이해 유럽 전체에 퍼졌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프랑스 요리가 아니었다니 의외였어요.
이러한 정보들과 함께 하는 클래식한 도판들도 마음에 듭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삽화가 많은 덕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항목들이 관심만 있다면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기는 합니다. 백과사전이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라는걸 다시금 깨닫게 해 주네요. 그나마 그냥 백과사전이라면 한두 장씩 읽는 재미는 있었을텐데, 지나치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술이 더 큰 문제입니다. '라비올리'는 파스타의 한 종류일 뿐인데 구태여 프랑스식 이름을 갖추었다고 따로 항목을 만들어 설명하고, 민들레는 옛날부터 식용이었다는 설명 다음에 '프랑스에서 민들레 재배가 시작된건 18세기 말 부터이다' 등 프랑스에서의 설명만 이어지는 식으로요. 산업디자인의 창시자가 프랑스의 레이몽 뢰이라는 것은 오류를 넘어 왜곡 수준입니다. 이 바닥은 바우하우스가 앞선다는건 기본적인 상식이잖아요.

이렇게 프랑스인이 프랑스를 위해 만든 시대 착오적인 사전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따로 찾아 읽거나 옆에 둘 이유는 거의 없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런 책을 읽느니 그 시간에 네X버 지식 사전이나 뒤져보는게 나을거에요.

2014/12/04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 타카기 나오코 / 채다인 : 별점 2.5점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 6점
타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애니북스

알라딘 중고서적 산본점에서 발견하고 구입한 타카기 나오코의 구루메 에세이 만화입니다. 이글루스 유저분들께는 채다인님이 번역하신 것으로 더욱 유명하지요.

“처묵처묵 여행만화”라는 다인님 소개 그대로, 에세이 만화가로 유명한 저자가 일본 방방곡곡의 맛을 찾아 여행한 기록 만화입니다. 총 일곱 개 지방의 여행기가 실려 있습니다. 현재의 근거지인 관동의 도쿄와 사이타마, 관서는 작가의 고향인 미에현 근처의 와카야마, 오사카, 그리고 큐슈까지, 그야말로 방방곡곡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이런 곳들에 여행 가서 명물 요리들을 하나씩 전부 먹어보고 품평하는게 내용의 전부로, 아주 약간의 에피소드가 곁들여져 있지만 일상계스러운 것들이라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훈훈한 구루메 식도락 여행기로도 그런대로 볼 만했습니다. 해당 지역의 명물이 어떤 것이고 어디서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를 쉽게 알려주는 데 충실하거든요. 즉, 이런 류의 만화의 핵심인 정보 제공 측면에 매우 부합하는 만화라 할 수 있습니다. "맛의 달인"의 일본 맛기행인지 뭔지는 환경이나 전통 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과한 시도가 만화를 망치고 있는데, 이 작품은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여행기 분위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곱 개 지방의 많은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음식 베스트 3는 아래와 같습니다.

  • 1위 : 사이타마 히가시마츠야마의 닭꼬치. 닭꼬치라는 이름인데 돼지고기가 대부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뽈살, 간장, 혀 모두 맛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찾아가서 종류별로 전종목 재패를 해보고 싶어집니다. 돼지 생간 + 생파 조합의 꼬치도 있다는데 맛이 죽인다고 하니 이 역시 도전을! (그런데 돼지 생간은 기생충이 있지 않나요?)
  • 2위 : 다른 구루메 만화나 책에서 접했던 쿠마모토의 말고기 요리. 항상 먹고 싶었던 요리입니다.
  • 3위 : 야마가타의 냉메밀국수. 차가운 닭육수 국물이라는데 상상이 잘 안되네요. 식은 닭칼국수가 그렇게 맛있을리는 없을거 같은데... 괴식스럽기도 하지만 기대가 됩니다.

아울러 쉽게 그린 듯하지만 나름 정성이 엿보이는 그림(특히 음식 그림이 꽤 괜찮습니다)과, 뒷부분에 부록 만화와 사진,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의 베스트 음식을 선정하고 있는 구성도 정리 차원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정보"라는 목적에 충실한 만화로, 에세이 만화, 그중에서도 식도락 구루메 탐방기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10/01

변덕쟁이 로봇 - 호시 신이치 / 윤성규 : 별점 1.5점

변덕쟁이 로봇 - 4점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지식여행

호시 신이치는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핵으로 논리적인 줄거리와 함께 기상천외한 의외의 결말이 있는 초단편, 이른바 '쇼트쇼트'의 제왕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작품을 여럿 발표했고요.

하지만 문제라면 워낙 다작이었던 탓에 작품들 수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다른 쇼트쇼트 거장 아토다 다카시와 비교해 보아도 호시 신이치 작품 수준 편차가 훨씬 큽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발표되었던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모음인 '플라시보 시리즈'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지뢰작 모음일 가능성이 높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러했는지 시리즈는 금방 절판되고 말았지요. 그래도 이 시리즈 중 <<봇코짱>>은 괜찮은 작품이 많이 모여 있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일컬어지고 있어서 인기가 많습니다. 저도 한 권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으며 리뷰도 올린 적이 있는데, 소문대로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변덕쟁이 로봇>>이 <<봇코짱>>과 더불어 최고의 작품집으로 선정하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근거라기 보다는 어딘가의 리스트에 국한된 선정이기는 하지만, <<봇코짱>>이 워낙에 괜찮았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판된지 오래고, 인터넷 중고가가 비교적 높게 형성되어 있는 책이라 쉽게 구하지는 못했는데, 우연찮게 알라딘 온라인 중고 매물로 최상급 책이 정가의 절반 가격으로 등록된걸 발견하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쇼트쇼트 단편집답게 무려 50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후반부까지는 전형적인 쇼트쇼트인데, 마지막 몇 편은 10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단편들이었고요. 수록작은 제목처럼 로봇이 등장한다던가, 과학자가 (대체로 F 박사나 N 박사) 이상한 약이나 기계를 만들거나 와계인이 이상한 장치를 가지고 벌이는 소동 등 SF 설정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금 특이했던건, 엉터리 발명품이 오동작을 일으켜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보다는 발명품이 생각대로는 작동하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의외의 발명품으로 의표를 찌르거나, 아니면 생각대로 작동하는 탓에 문제를 일으키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전자는 화재를 없애기 위해 불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는 새를 만들었는데, 태양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는 <<불조심>>, 자면서 학습이 가능한 수면 학습 베개로 배운건 잘 때만 효과가 있다는 <<신 발명품 배게>>가, 후자는 벌레잡는 풀꽃을 만들어냈지만, 먹이를 줘야 해서 벌레를 키워야 한다는 <<편리한 풀꽃>>, 소리를 없애는 장치를 만들어 도둑질을 하려고 했지만 비상벨과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없앤 탓에 체포되어 버리는 <<실패>>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발명품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고양이를 돌보는게 아니라, 고양이가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이른바 '집사' 분들의 현실을 (?) 유쾌하게 그려낸 <<고양이>>, 그리고 불사신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정신만 살아있는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인 <<뼈>> 는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야기 전개와 반전이 기발한 작품을 찾기 힘들었던 탓이 큽니다. 책 뒤 후기를 보니 어린 아이들을 위해 쓴 작품이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소 유치하고 말장난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봇코짱>>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 이하의 작품들로, 고가로 구입하지 않은게 다행일 뿐입니다. 통상적인 중고가가 제가 구입한 가격보다 높기도 하니, 투자 개념으로 그냥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2016/06/10

삼국지 스피리츠 2 - 아라카와 히로무, 토코 준 / 김동욱 : 별점 2.5점

삼국지 스피리츠 2 - 6점
아라카와 히로무, 토코 준 지음, 김동욱 옮김/애니북스

"삼국지 스피리츠 1" - 아라카와 히로무, 토코 준 / 김동욱 : 별점 2.5점

1권에 이어 구입하여 읽게 된 2권. 정가로 구입할 책은 아니라 여겼기에 호시탐탐 알라딘 중고매장 매물을 노리다가 드디어 구입에 성공했습니다. 거의 반년 이상 소요되었으니 무척 감개무량하군요.

하지만 기다린 시간, 그리고 들인 노력에 비하면 책의 수준이나 가치는 낮습니다. 전편의 단점이 그대로인 탓입니다. 특히 아라카와 히로무의 만화가 별로 재미가 없다는건 치명적이에요. 조운의 대담함에 감탄한 유비가 그를 '온몸이 간으로 되어 있는 것 같구나!'라고 감탄하자 주위 장수들이 모두 조운을 '푸아그라 장군'이라고 부른다던가, 우금이 관우의 수공에 말려들은 상황에서의 유머, 'SES'를 육손이 모른다고 할 때의 반응 등은 피식할 만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해요.

만화보다는 아라카와 히로무와 토코 준의 대담 부분이 더 낫습니다. 강유의 잦은 북벌에 대해 비판하면서,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완고해지고 성미가 급해진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대표적이에요. 삼국지에 대해 잘 아는 동네 아줌마들 대화 같은데 나름 핵심을 꿰뚫는달까요? 제갈량의 아내 황월영같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을 나름 부각시키는 등의 특이한 부분도 눈에 뜨이고요.

아울러 정사 순서 그대로 책이 구성되어 있기에 삼국지 1세대라 할 수 있는 조조, 유비, 손권의 퇴장 이후 3국이 통일될 때 까지 이야기를 충실하게 끌어나가고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문제라면 최훈의 "삼국전투기"가 이 부분에 정말 한 획을 그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는 절반 가격에 구입했기에 나름 만족합니다만, 재미와 가치 모두 애매해서 추천하기는 어렵네요.

2014/06/08

오래된 책들 (3) - 이브

악녀 소설의 바이블 같은 작품. 고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본입니다. 역시나 본가에 오랜만에 갔다가 찍어보았습니다.

10여 년 전, 헌책방 헌터 생활 중 정말 어렵게 구한 책으로 보관 상태도 양호한 보기 드문 책이라 자부합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블로그 라이프를 할 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올렸다가 꽤나 고가에 양도 제의를 받기도 했었죠.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알라딘 중고가는 2,500원이네요. 구하기 힘든 것과 작품의 가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 그만큼 좋은 책이 아니라는 뜻도 되겠고요.

하도 오래전에 구한 책이라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다시 읽고 리뷰나 올려봐야겠습니다...

2018/04/28

클래식 음반세계의 끝 - 노먼 레브레히트 / 장호연 : 별점 4점

클래식 음반세계의 끝 - 8점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클래식 음반("음악"이 아니라!)의 상세한 역사, 그리고 클래식 음반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명반 100선과 똥반 20선을 소개하는 클래식 음반 관련 미시사 - 가이드 북입니다.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알라딘 중고 서점을 통해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전부 400여 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음반 역사와 명반, 똥반 소개가 정확하게 반, 반입니다.

이 중 클래식 음반의 역사 부분은 요약하자면, '녹음'이 실황 연주와 구별되는 독자적 음악 행위로 거듭난 1920년 빌헬름 켐프의 연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레코딩 산업이 기업 체제가 되어 EMI, RCA, CBS, 도이치그라모폰, 데카, 필립스라는 6대 메이저가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여러 천재들과 시장을 주도했던 1950~60년대 전성기, 팝 음악의 득세 및 후계자들의 부재로 서서히 몰락해가는 70~80 년대, 디지털 음원 발매와 '크로스오버'로 짧게 찾아온 80년대의 마지막 돈잔치, 마지막으로 90년대 몰락 이후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과정을 정말로 손에 잡힐 듯 상세하게 그리고 있는게 대단합니다. 역사서, 미시사 서적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새로운 시장이 시작되어 확대되고, 메이저 회사와 그에 속했던 천재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승부를 벌이다가 몰락해 버린다는 내용은, 신대륙을 발견한 여러 나라들이 정복을 위해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들과 다양한 신무기로 정면 승부를 벌이고, 서로 연합하기도 하며 싸우다가 같이 멸망한다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군웅극' 못지 않은 재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클래식 음악 몰락 이유도 많은 교훈을 전해 줍니다. 생각해보니 현대에 클래식 음악이 몰락한 건 당연해요. 이미 대단한 해석이 존재하는 고전을 다시 반복하는 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는 베토벤 5번 음반은 276 종이나 된다니 까요. 여러 천재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각을 찾으려 노력하고는 있겠지만, 이를 구태여 새롭게 비용을 들여 제작할 만한 시장은 이미 아닌 것이지요. 클래식 음반 산업을 궤도에 오르게 만든 토스카니니가 새로 작곡된 작품을 연주하고, 하이페츠나 메뉴인, 호로비츠, 루빈슈타인이 전성기 때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시벨리우스, 버르토크 등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했던 것처럼 현대에도 음악이 계속 작곡되어 흥행하지 않는 한, 시장은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은 끝없는 '새로움' 의 추구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게 만듭니다.
물론 '영화 음악' 이라는 비슷한 시장이 아직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영화 음악도 노래 없는 스코어 만으로는 시장이 굉장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죤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꼬네', '한스 짐머' 등 영화 음악 최전성기에 등장한 작곡가들 이후 등장한 유명 신진 작곡가가 딱히 없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상당한 위기가 아닐까 싶군요.

이러한 음반 역사 뒤에 이어지는 명반 소개도 재미있습니다. '최고의' 음반이 아니라 음반 산업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끼친 음반 대상이라는 선정 기준이 명확하고 엄격한 덕에, 익히 알고 있는 고전 음악가가 아니라 "바버의 녹스빌", "수크의 아스라엘 교항곡", "바일의 베를린과 미국의 극장 음악",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알캉의 피아노 음악", "코릴리아노의 교향곡 1번" 같은 비교적 현대에 발표된 곡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심지어 초기 영화 음악의 거장 "코른골트의 바다매" 까지 포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정말 최고 중의 최고인 완벽한 음반의 소개가 좀 부족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하네요. 대표적인 예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카라얀의 앨범이 한 개도 없습니다.
소개도 맛깔나서 모든 음반들이 관심이 가지만 그 중에서도 유시 비욜링과 로버트 메릴이 RCA 빅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오페라 이중창",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차이콥스키 : 교항곡 4~6번", 뒤 프레가 런던 심포니와 함께 한 "엘가 : 첼로 협주곡", "루소 : 거리 음악 ; 블루스 밴드와 교향악단을 위한 세 개의 작품" 등은 꼭 한 번 찾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똥반 소개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우리에게도 친숙한 안드레아 보첼리의 "베르디 : 레퀴엠" 처럼 연주나 노래가 잘못된 음반도 있지만 '기획' 자체가 실패한 음반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게 눈길을 끕니다. 스콜피언즈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Moment"가 대표적인 예인데, 저도 디자인 쪽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잘못된 기획이 모든걸 망친다' 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가치있는 내용이 가득하나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선 클래식 음반의 역사 부분이 통사적으로 쓰여지기 보다는 주요 이벤트, 사건과 주요 인물별로 구성되어 조금 혼란스럽다는 점, 그리고 도판 및 국내 출시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현지화 측면이 부족하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클래식 '음반' 에 대해서 A 부터 Z 까지 알려줄 뿐 아니라, 이 책에 나온 말대로 클래식 '음반' 은 이제 거의 죽은 시장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새롭게 업데이트 될 일도 많이 없을테니 그야말로 바이블이라고 해도 무방하기에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클래식 '음반' 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한 거대 산업이 몰락하는 과정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4/02/17

바다 한가운데서 - 나다니엘 필브릭 / 한영탁 : 별점 5점!

바다 한가운데서 - 10점
나다니엘 필브릭 지음, 한영탁 옮김/중심

1920년 실제로 일어났던 미국의 포경선 에식스호의 조난을 둘러싼 이야기로 아주 오래전, 딴지일보였었나... 에서 소갯글을 읽은 뒤 관심을 가지게 된 책입니다. 그러나 폭풍 절판되어서 얼마 전까지는 도저히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원하는 헌 책을 구입하는 노하우는 제법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헌책방은 물론 근처 도서관 어디에서도 구할 방법이 없었더랬죠. 그런데 얼마 전 알라딘에 중고도서 매물이, 심지어 "알라딘 직배송"으로 저렴하게 떴길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이 책을 찾아 헤맨 시간이 거의 10여 년이라 손에 들어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했습니다.

사실 이전의 책 소갯글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표류한 에식스호의 선원들이 결국 식인까지 저지르며 살아남는 과정에 대한 처절함, 그리고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최초 표류 시 보트의 방향을 "식인종"이 살고 있으리라 여겨진 소시에테 제도가 아니라 남아메리카 쪽으로 잡은 탓이 크다는 아이러니함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으로, 어떻게 보면 자극적인 소재에 끌린 탓입니다.

그러나 책 자체는 생각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총 300여 페이지의 분량 중 거의 절반은 에식스 호 선원들의 처절한 표류와 생존기이지만, 그 외의 약 절반은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디테일에 할애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19세기 초의 낸터컷이라는 포경의 도시와 포경이라는 조업에 대해 다큐멘터리와 같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점입니다. 당시 포경을 위한 원양 어업의 과정, 어장, 실제 포경의 방법, 잡은 고래의 처리 등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디테일이 한가득이에요. 지도와 사진 같은 도판도 기대 이상이고요.

그리고 에식스호가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침몰하게 되고 이후 처절한 표류가 허먼 멜빌의 굴지의 걸작 "백경"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허먼 멜빌은 "백경" 출간 1년 뒤에 실제로 낸터컷을 방문하여 에식스호의 선장이었던 폴라드와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니 이 사건과 사건을 다룬 회고록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물론 당연하게도 표류, 생존에 대한 디테일도 최고입니다. 생존자들이 다음에 먹힐 사람을 결정하기 위한 투표를 했다던가, 뼈만 남은 잔해를 뒤지고 빠개어 골수까지 빨아먹었다는 등의 처절한 행위뿐 아니라 가장 먼저 죽은 4명의 선원이 흑인이었다는 것, 결국 살아남은 최후의 5인은 이른바 "낸터컷 출신자"뿐이었다는 불편한 사실도 가득합니다. 그리고 굶주림과 갈증이 인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 및 굶주림으로 체지방이 극한으로 떨어진 살코기를 섭취하면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순 살코기보다는 적당히 기름이 낀, 마블링 좋은 고기가 더 맛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그 외에도 실제 바다에서 있었던 각종 사고들의 사례를 들어 함께 설명해 주는 것도 아주 좋았던 부분이에요. 유사한 조난자들이 시체를 다른 방법으로 활용(낚시의 미끼로 사용함)하여 전원 생존한 사례를 함께 설명해주는 식으로 말이죠. 덧붙이자면 바다 사나이들이 왜 바다에서 식재료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는 참으로 의아한 부분이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들이 조난하게 된 바다가 극단적으로 물고기들이 없는 해역이었다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재수가 없었던 거죠.

마지막으로 사건에 대한 에필로그도 충실합니다. 폴라드 선장이 조난 후에 다시 포경선의 선장이 되고 , 같이 조난당했던 2명의 선원이 함께 배를 타는 최대급의 신뢰를 얻지만 또 난파당하여 바다 사나이로서의 생명이 끝난 뒤, 낸터컷에서는 하위 계급인 자경단원을 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며 살았다, 1등 항해사로 조난 중에 나름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선보인 체이스는 이후 당당히 선장으로 활약했지만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는 등 모든 생존자들의 후일담도 빠짐없이 알려주거든요. 심지어 "낸터컷"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서술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나저나, 이런 사고를 겪고도 결국은 다시 바다로 나가다니...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삶이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명성에 걸맞는 가치와 재미를 가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간 이 책에 대한 갈망을 감추지 못하고 유사한 책을 몇 권 구해 읽어보았으나 모두 완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하거나 중반에 종교적인 내용 같은 삼천포로 빠지는 책들이었는데 확실히 원조는 다르네요. 10여 년을 기다려 입수했을 때의 기쁨까지 감안하여 별점은 5점! "2000년 최우수 논픽션" 등 여러 논픽션 관련 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은 허언이 아닙니다. 이런 좋은 책이 나오자마자 절판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아쉽기만 합니다. 해양 조난, 식인, 포경 (그리고 "백경")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어떻게든 구하셔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는 무한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저라면 어땠을까요? 저 역시 폴라드 선장처럼 조카를 잡아먹어서라도 살아 남았을 겁니다. 꼭 살아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니까요. 책 내용에서 밝혀지지는 않지만 저는 이러한 원초적인 생존 본능은 돌아갈 곳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2008/09/26

간만의 도서 구입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죠. 알라딘에 가지고 있던 중고 도서를 판매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확보한 돈으로 정말 오랫만에 책을 구입했습니다.


구입한 책은
  • 부랑청년 전성시대 - 소영현
  • 샤라쿠 살인사건 - 다카하시 가츠히코
  • 이누가미 일족 - 요코미조 세이시
  • 커피견문록 - 스튜어트 리 앨런
  • 하얀토끼가 도망친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 사랑이 없어도 먹고살수 있습니다 - 요시나가 후미
  • 연애의 시대 - 권보드래
  • 통곡 - 누쿠이 도코로
  • 사또인다하우스 - 김진태
  • 악마의 정원에서 - 스튜어트 리 앨런
입니다.

"부랑청년전성시대"와 "연애의 시대" 는 경성탐정록 자료 조사차 구입한 책. "커피견문록"과 "악마의 정원에서"는 저의 또다른 취미인 음식문화관련 저서라 구입한 책. "사또인다하우스"는 제가 흠모해 마지 않는 김진태 작가의 신작이라 구입하였으며 나머지는 다 추리관련 도서들입니다. "사랑이 없어도 먹고살수 있습니다"는 중고샵에서 팔길래 반쯤 충동구매한 책이고요. 
거의 30권에 가까운 책을 판매했는데 신간 구입은 10여권으로 그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10월까지는 뿌듯하게 즐길 만한 수량이라 무척 만족스럽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만화책부터 독파해 나가야 겠습니다.

2022/10/02

미로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권일영 : 별점 3점

미로관의 살인 - 6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는 환갑을 맞아 자신의 저택 '미로관'에 제자 작가 4명과 평론가, 담당 편집자, 친한 추리소설 애호가를 초대했다. 그리고 미로관에 모인 그들에게 미야가키의 비서 이노 미쓰오가 요타로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공개된 유언장에는 4명의 제자 중 한 명에게 거액의 유산을 줄 생각인데, 그 한 명은 앞으로 닷새 동안 미로관에서 그들이 각각 쓴 추리 소설을 함께 참석한 편집자, 평론가, 애호가들의 심사로 결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람이 죽기는 했지만, 워낙 거액이 걸려있는 탓에 작가들과 심사 위원들은 요타로의 유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작가 중 한 명인 스자키가 살해당했으며 나머지 생존자들 모두는 미로관에 갇혔다는걸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사라진건 비서 이노였다. 작가 중 한 명인 기요무라는 이노가 범인이라며, 유언에 따른 추리 소설 창작 대결을 속행할 것을 주장하는데....


신본격의 탄생을 알렸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일본에서는 1988년에 출간되었던 작품이지요.
사실 이 작품은 나름대로는 비교적 빠르게 국내에 소개되었던 편입니다. 1997년에 학산 문화사에서 정식 출간되었었으니까요. 하지만 절판은 더 빨랐었습니다. 이유는 인터넷이 발달했던 시대가 아니어서 정보가 전달되고 소개되는게 많이 늦었던 탓입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 애호가를 자처하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가 출간되었던 것 조차 잘 알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거든요. 인터넷 서점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절판 이후 인기가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지요. 덕분에 중고책 가격도 꽤나 올라가게 되었었고요. 그러고보면 이러한 프로세스 '1. 국내 출간 -> 2. 광속 절판 -> 3. 인터넷 등으로 유명세, 가치 상승 -> 4. 중고가 상승'을 거친 책들이 1990년대 후반에 꽤 많았었습니다. <<점성술 살인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래도 저는 절판 직후 연이 닿아서, 2000년대 초반에 <<십각관>>, <<수차관>>, <<시계관>>, 그리고 <<인형관>>을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도 대체로 기억나고요. 그런데<<미로관의 살인>> 만큼은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러던 차, 추리 소설 관련 정보를 조사하다가 한 랭킹에서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이 빼어난 작품으로 <<미로관의 살인>을 꼽고 있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도 생겼고, 오래된 숙제를 마치는 기분도 느낄 겸 해서 알라딘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 오래 전에 읽지 않았던 작품이 맞더군요. 모든 내용이 새로왔기 때문입니다. 당초에 왜 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게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각설하고 작품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이야기는 '시마다'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작가의 <<미로관의 살인>>을 선물받아 읽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미로관의 살인>>이라는 소설 속 소설이 곧바로 이어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로관의 살인>>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미로관'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고요. 시마다 기요시가 다른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탐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로관의 주인이자 추리 소설계의 거장인 미야가키 요타로가 자살하면서, 4명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에게 유산을 넘겨줄 생각으로 그들을 미로관에 불러 모았다는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이들을 닷새 동안 미로관에 가두고 작품을 쓰게한 뒤, 같이 초대했던 평론가와 편집자,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심사 위원 역할을 맡길 셈이었다는 계획은 꽤 그럴싸해 보였거든요. 뛰어난 신진기예 작가들의 실력을 극한으로, 하지만 공정하게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테니까요. 물론 공정함을 위해 현장에서 동일한 주제 - 무대는 미로관이며 피해자는 작가 본인으로 할 것 - 를 주기는 했지만, 작가 중 누구라도 자기가 쓰려고 했던 다른 작품에서의 획기적 트릭을 유용할 수 있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 실제로 다이잉 메시지를 쓰려고 했던 작가가 있었는데, 이는 장소와 피해자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트릭이니까요 - 아주 공정했다고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요.
이후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작업했던 작품에서처럼 살해당한다는 전개도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피해자들이 살해당한 현장 등 여러가지 단서들과 정보들 모두가 화자격인 우타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진상 역시 합리적이고요.
조금 상세히 설명드리자면, 가장 처음 살해당했던 스자키는 목이 거의 떨어져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목 부분에는 소 머리 박제가 놓여 있었고요. 하지만 왜 머리를 아예 잘라 놓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박제 머리를 올려놓지 않고 이렇게 어중간하게 현장을 만들었을까요?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는 범인이 현장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를 피로 덮기 위해서 목을 잘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사실로 판명되고요.
마찬가지로 하야시는 입구에 바리케이트까지 쳐 놓았을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었는데, 왜 범인은 쉽게 방 안으로 들여 보냈는지? 후나오카가 살해당한 방은 빗장까지 걸린 완벽한 밀실 상태였는데 범인은 어떻게 도주한 것인지? 에 대한 답은, 미로관의 각 방은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야시가 남겼던 다이잉 메시지, 후나오카가 죽기 직전 거울을 가리켰던 행위로 비밀 통로의 존재는 밝혀지고, 이로써 진범은 죽은 줄 알았던 미야가키 요타로였다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는 살인이 하고 싶어서 4명의 제자를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지요.
이렇게 기묘한 현장 조작과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 등이 함께 펼쳐져 추리의 여지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다면, 이 작품이 그렇게까지 추리적으로, 그리고 반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워드프로세서의 키보드 배치 문제, S가 하나 더 표기된 MINOSS 왕의 철자, 지속적으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축물은 특별한 장치가 있다며 시마다 기요시가 비밀 통로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는 등 다이잉 메시지와 비밀 통로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주어지고 있어서 아주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비밀 통로'는 트릭으로서는 반칙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반칙이라고 언급될 정도지요.
기요무라를 살해한 트릭을 제외하고는 '미로관'이라는 말 그대로 미로를 이용한 트릭이 부족한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기요무라 살해 트릭도 우타야마의 입을 통해 '통로에서의 위화감'이 계속 언급되고 있어서 특별히 대단한 추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요. 아울러 기요무라가 가면이 아니라 평면도를 통해 이동해서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 등 상세한 내용 설명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과 또다른 진상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작품 전체에서 당연히 남자인줄 알았던 사메지마가 여자였다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던 겁니다! 이로써 스자키의 목을 잘랐던건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가 맞았다는게 판명됩니다. 당시 현장에서 그 누구도 출혈을 일으킬만한 상처가 없어서 범인을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사메지마가 갑자기 생리가 터졌던게 출혈의 원인이라는게 밝혀지거든요. 그녀와 미야가키의 오래된 인연, 장애가 있는 그녀의 아이 등 사건의 동기 역시 모두 공정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자살을 위장해서 미야가키 요타로만 살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유산의 전부나 일부가 미야가키 요타로가 만들려고 했던 추리상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 그를 살인범으로 몰아 죽게 만들었다는건 충분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연쇄 살인마가 만든 추리상을 받고 싶은 작가는 없을테니까요. 액자 소설 형태를 취했던 이유도 알고보니 이 서술 트릭을 위해서였는데,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고 있어서 완성도도 높고요.
서술 트릭물답게 성별은 물론, 여성이라고 짐작 가능하게끔 사메지마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등 알고보면 억지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합니다. 이는 에필로그의 대화를 통해 '일부러 그렇게 썼다'는 작가의 말로 재치있게 빠져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사건의 무대인 미로관과 사람이 죽어나가는 중에 벌어지는 추리 소설 창작 대결 등 비현실적인 소재가 많다는 등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라나 신본격의 중흥을 이끌었던 작가의 당시 대표작다운 재미는 충분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기본 이상은 해 주며 그리 길지 않다는 미덕도 크고요.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