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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1

아주 오래된 서점 - 가쿠다 미츠요, 오카자키 다케시 / 이지수 : 별점 4점

아주 오래된 서점 - 8점
가쿠타 미츠요.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이지수 옮김/문학동네

원제는 "古本道場"입니다. 제목에 걸맞게 작가 가쿠다 미쓰요가 헌책 전문가 오카자키 다케시로부터 헌책에 대한 수련을 받는다는 에세이 모음으로, 오카자키 다케시가 지정한 특정 지역 헌책방에서 '미션' 에 따른 헌 책을 구입하는 여덟 번의 '수련'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션에 따른 가쿠다 미쓰요의 헌책방 투어와 그 결과를 평하는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이 한 세트이고요. 

가쿠다 미쓰요와 오카자키 다케시의 에세이들은 모두 재미있게 읽어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기사,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써 버렸으니 이거 참,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두 명의 저자 중 오카자키 다케시는 헌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론과 의견을 전해주는 '선생님' 역할이고, 가쿠다 미쓰요는 가르침을 받아 따르는 '학생' 역할입니다. 그래서인지 헌책 관련한 이야기는 오카자키 다케시 쪽 글이 더 기억에 남는 게 많네요.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일단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장서'라는 주장입니다. 일반 서점의 책은 반품이 되지만 헌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한 권 한 권 구입한 그야말로 '남의 책'이라는 의미로요. 여태껏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딱히 신경 써서 책을 다루지도 않았었는데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헌책을 가격으로 보지 말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꾼이 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최우선으로 고르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인데 정말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요. 헌책방 투어를 실제 다녀본 경험으로는 절판된 책이나 비싸게 팔 수 있는 희귀본에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필요없는 책을 사곤 하니까요. 저도 집에 왠지 귀할 것 같아서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많은데, 이 역시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고 싶을 때 안 사면 다음은 없다!' 라고도 하니 결국 사는 사람이 신중하게 생각하여 판단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헌책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데, 사진집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를 설명한 글도 근사합니다. '다양한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더욱 올바르고 깊게 세계를 이해하려는 무한에 가까운 시도다'라는 소설가 겸 사진작가 가타오카 요시오의 글과 함께, 좁은 시야를 넓히기 위한 용도로 산다고 하는데 그럴듯했어요. 물론 이 정도 의도라면 요새는 인터넷으로 보아도 충분할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러한 정보 중심의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과는 다르게 가쿠다 미쓰요의 글은 헌책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 정보보다는 개인 감상 위주입니다. 그런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묘하게 정확해서 놀랐습니다. 특히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는 데 능숙해서 확실히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어요.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 역시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 참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책들도 볼거리입니다. 일본에서도 오래전에 절판된 책들도 많은 등 국내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국내 출간된 책들도 절판 상태가 많고요. 하지만 소개가 멋진 몇몇 책들은 구해보고 싶어지더군요. 헌책방을 소개한 글에 소개된 헌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야 한다는 것도 뭔가 낭만적이고요.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대충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시가 제가 찾아본 국내 출간작인데, 8권이 전부입니다).

진보초 - 이구치 분슈의 그림책 2권, 에토 준 "개와 나", *"싫어싫어 유치원", *"꼬마 모모", 다나카 고미마사 "야시의 여행", 노사카 아키유키 "서서 읽으면 안 되는 책", "비록 가와시마 요시코"
다이칸야마, 시부야 - 노미야마 고지 "사백 자의 데셍", "셀피시", *"그레이엄 그린 선집 9 (제 3의 사나이, 떨어진 우상, 패자가 모두 가진다", *콜린 윌슨 "현대 살인 백과", 이토 히로미 & 우에노 지즈코 "노로와 사니와", 다네무라 스에히로 "사기꾼 칼리오스트로의 대모험"
도쿄 역, 긴자 - 팀 오브라이언 "실종", 홋타 요시에 "다리 위의 환상", 무라마쓰 쇼후 "여경", 기시다 리오 "롱 굿바이", 구사카베 엔타 "정말로 사랑했다면", 스다 사카에 "전후 풍속 천일 야화", 쿠사마 야요이 "신주 사쿠라가쓰카"
와세다 - 가이코 다케시 "베트남 전기", 요시다 겐이치 "기묘한 이야기", *하야시 후미코 "삼등 여행기", 단 가즈오 "풍랑의 여행", 고보리 진지 "요괴를 보았다", 다나카 고미마사 "간음문답", 한스 헤니 얀 "열세 가지 으스스한 이야기", *"엘리엇 시집", 가이코 다케시 "시부이", "대화록, 현대 만화 비가"
아오야마, 덴엔초후 - "인민 사원", 도요시마 요시오 "에밀리안의 여행", *앙드레 지드 "여인들의 학교", 기무라 모토노리 "영혼이 고요한 때에", *"타고르 시집", 오야 소이치 "세계의 뒷길을 가다 - 남북 아메리카편"
니시오기쿠보 - 세토우치 하루미 "다무라 도시코", *마르케스 "사랑과 다른 악마들", 다케다 유리코 "말의 식탁", "도시에 널리 퍼진 기묘한 소문", 아유카와 노부오 "시대를 읽다", "하쿠슈 가요집", 나카가미 겐지 "이야기 서울", 다나카 고미마사 "아아, 수면 부족이다"
가마쿠라 - 가이코 다케시 "최후의 만찬", 후카자와 시치로 "고슈 자장가", "브로마이드 쇼와사", 오카베 이쓰코 "부처님과의 대화", 다쓰미 하마코 "손수 기른 나의 요리", 다무라 류이치 "저스트 예스터데이", 나가이 다쓰오 "홍차의 시간", 오사라기 지로 "시인"
다시 한번 진보초 - 미시마 유키오 "무예를 숭상하는 마음", 쇼와 전쟁문학 전집 11 "전시하의 하이틴", 가미사카 후유코 "스가모 프리즌 13호 철문", 요시카와 에이지 "남방기행"
그 외에 확실히 '일반인' 으로서 헌책방을 대하는 시선도 남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노라쿠로" 전 권을 사는 노년의 신사를 보며, 늙어서 "유리 가면" 이나 "더 파이팅" 전 권을 한 번에 살 것을 꿈꾸는 장면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일반인 취향이 짙게 느껴져서 더욱 반가왔거든요.

이렇게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고, 무엇보다 헌책방과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일본 도쿄 소재 헌책방을 주로 소개하고 있으며, 소개된 책방들도 지금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는 지역적, 시기적 한계와 소개된 책들 대부분이 미 출간작이라는 이유로 약간 감점했지만, 저와 같은 취향의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저 역시 한때 결혼 전에는 홍대 입구의 '숨어있는 책'을 비롯한 헌책방 투어를 정기적으로 떠났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많이 샀었죠. 지금은 결혼 후 이사도 했고, 근처에 헌책방도 없으며, 그나마 가는 곳도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알라딘 헌책방이 전부라 예전과 같은 보물찾기 느낌이 들기는 힘든데 옛날이 그립기도 합니다.

2024/12/06

헌책방 기담 수집가 - 윤성근 : 별점 2점

헌책방 기담 수집가 - 4점
윤성근 지음/프시케의숲

헌책방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인 윤성근 작가가 특별한 책을 구하려는 손님의 사연을 수집한 뒤, ‘사랑’, ‘가족’, ‘기담’, ‘인생’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쓴 29의 꽁트가 수록된 책입니다. 

헌책방을 사랑하기에 관심이 많았던 책으로 소재, 그리고 이야기 전개 방식은 추억 속 요리를 재현해주고 관련된 사연을 들려주는 만화 "추억을 파는 식당"과 똑같은데, 이를 '헌책'으로 대신했다는게 특징입니다. 짧고 간결한 이야기들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크고요. 자주 찾았던 헌책방인 '공씨책방'이나 '숨어있는 책' 등이 언급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특정 책의 정체를 추리하고, 당시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 영업 사원은 책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등 책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했습니다. 

하지만 무려 29편이나 되는 이야기가 수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재미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남는건 단 한 편도 없고, 읽다가 졸릴 정도였어요.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꼬마 니꼴라"를 보고 흉내를 내다보니 학교의 인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학교 분위기와 상황이 아예 다른데 뭘 흉내내서 인기를 끈단 말입니까?
등장하는 책들도 오래전에 절판된 잊혀진 소설이거나, 지금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인 경우가 많아 희귀함이나 새로움을 느끼기도 어렵고, 책의 매력도 잘 전해주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아이디어는 좋은데 전혀 살리지 못했습니다. 후속작이 있는 듯 한데,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13/12/26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12.24일이 회사의 대체휴무일이었습니다. 연휴가 생긴 덕에 폭풍 독서를 진행했네요. 

이 작품은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에 책을 팔러 온 손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일상계 중단편 연작집입니다. 단편이라고 보기는 조금 긴 호흡인, 총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작 별로 주제가 되는 책이 있고 그 책에 관련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책과 관련된 사건이 책과 인물과 연계선상에 놓이고요. 이를 충분히 있음직한 소소한 일상계로 그려내고 있는게 특징인데, 방식은 미야베 미유키의 "쓸쓸한 사냥꾼"과 동일하지만, 이 작품 쪽이 보다 일상계스럽고 책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헌책방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몇 년 전 추리소설 절판본을 찾아 인터넷과 오프라인 헌책방을 유람하던 때가 떠올랐거든요. 원하던 책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은 잊기 힘들지요. (이런 것들이죠) 당시 귀했던 절판본이 속속 재간되고 있어서 지금은 빛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요.

하지만 비현실적인 설정과 등장인물은 조금 거슬렸고, 추리도 비약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등장인물의 비현실성이 심한 편입니다. 추리력 뛰어난 고서점 점장은 "명탐정 홈즈걸"과 같이 유사한 전례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긴 생머리 - 거유 - 중증의 독서 중독자라는 설정은 "R.O.D"의 요미코 리드맨과 똑같은데 너무 만화스럽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책을 못 읽게 된 고우라는 더 와닿지 않았고요. 그냥 운동계열 근육 백수가 시오리코의 미모에 끌렸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었을텐데 말이죠. 아니면 차라리 일본어를 잘 못 읽는 외국인이라고 하던가... "더 리더"를 반대로 비튼 설정인데, 영화만큼의 설득력을 보이지 못해 유감스러웠어요. 아울러 마지막 에피소드는 작품과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고요.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헌책방과 추리, 그리고 일상계를 사랑하는 저에게는 딱 맞는 성격의 작품이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약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니만큼 추리소설 입문자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만화나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에 더 적합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있다면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생각난 김에 자주 가던 헌책방 사이트나 한번 둘러봐야겠습니다.

2008/04/15

쓸쓸한 사냥꾼 - 미야베 미유키 / 권일영 : 별점 2점

쓸쓸한 사냥꾼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북스피어

헌책방 다나베 서점의 사장인 이와씨와 이와씨의 손자인 미노루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단편집입니다. 예전 "판타스틱" 창간호를 통해 이미 접해본 작품이기도 하죠.
특징은 중간의 딱 한편을 제외한 나머지 5편이 "책"을 주요 소재로 하여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편은 실제 존재하는 책, 나머지 3편은 작가의 창작물로 보이는데 헌책방이라는 무대 설정과 잘 어울리는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의욕과는 관계없이 두번째 작품 "말없이 죽다"를 제외하고는 이 멋진 설정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과히 인상적이지 못했고요. 물론 이와씨와 미노루 및 매 편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헌책방을 중심으로 한 여러 설정들은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평작 이상은 아닌 수준이었어요.
사실 '평작 수준'이라는건 나쁘지는 않지요. 이 단편집도 실려있는 모든 작품들은 일반적 단편 수준에 값하기는 하고요.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다른 작품들에 비교한다면 부족한 부분만 눈에 많이 띄는게 문제입니다. 이게 바로 거장이 감내해야 할 불이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별로 추천할 요소는 없습니다. 재미도 그냥저냥하고,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기 때문입니다. 책 덕분에 벨린저의 대표작인 "이와 손톱"이 국내 정식 재출간되는 길이 열렸다는 의의 이외에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힘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과 착각해서 구입한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가 훨씬 좋았기에 주객이 전도된 느낌마저 드네요.

개인적인 베스트는 추리적 요소와 재미, 완성도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유일한 작품 "말없이 죽다"를 꼽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고 크게 재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딱 한편 때문에 취향도 아닌 다른 작품들을 사 본 격이니 전체 책의 별점도 2개밖에 못 주겠습니다....

"6월은 이름뿐인 달"
잡지 "판타스틱" 창간호에 실려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때는 별로 좋은 평을 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책으로 엮여져 나와 따로 읽으니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말이죠... 어쨌건 어떤 작품이건 역시 "책"으로 읽어야 제 맛이 사는거 같네요. 전혀 다른 작품들이 섞여 있던 잡지와 다르게,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우직하게 밀고나가는 맛이 더 좋았거든요.
하지만 주요한 단서로 묘사되는 "이와 손톱"은 사실상 어떤 단서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역시나 앞서 이야기한, '설정을 위한 설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봉인" 부분에 대한 것 때문에 "이와 손톱"이 소재로 쓰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죽다"
헌책방 다나베 서점의 이와씨 시점이 아닌 작품으로 이와씨와 미노루의 비중이 한없이 낮은, 독립적으로까지 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연작으로의 느낌이 많이 줄어들며 나름의 설정이 힘을 받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발한 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굉장히 황당한 상황에서, 작중 화자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기도 했지만 작품 자체가 물 흐르듯 전개되어 극중의 상상과 현실이 조화롭게 완결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 단편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책"이라는 소재와 "사건" 이 가장 잘 들어 맞기도 하고요.
추리보다는 상상력에 기대는 부분이 많고 우연에 의한 전개가 등장하는 등 정교한 부분은 조금 부족하지만,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무정한 세월"
유일하게 "책"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 단편입니다. 작품의 중요한 소재인 "유령 이야기"가  일본의 과거사가 얽혀 약간 섬뜩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여러가지 면으로 비추어 볼 때 이 작품집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추리적인 요소도 거의 없고요. 더 섬뜩하게 달려주거나 아니면 과거사에 대한 다른 시각을 좀 더 디테일하게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느낌입니다. 도대체 작가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거짓말쟁이 나팔"
"거짓말쟁이 나팔"이라는 일종의 잔혹동화와 아동 학대의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조화된 작품. 전개도 합리적이며 나름 잘 짜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 요소가 거의 없고 사건도 너무 쉽게 해결되어 버려서 좀 맥이 빠지네요. 

"일그러진 거울"
여성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리는 맛이 일품입니다. 한장의 명함으로 비롯된 심리 묘사, 그리고 마지막의 끝맺음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추리물은 아닐 뿐더러 이와씨와 미노루의 다툼이 작품과 잘 융합되지 못해서 평작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여성 심리 묘사 빼고는 남는게 없습니다.

"쓸쓸한 사냥꾼"
제일 큰 사건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미완의 추리소설"이라는 추리 소설에 가장 적합한 소재를 지니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작품이 되어 버린 "졸작" 입니다. 추리적으로 뭔가 있을거 같은데, 단지 사건의 몇가지 나열 이외에는 볼게 없습니다. 범인도 제발로 찾아오는건 기껏 만들어 놓은 설정을 다 무너트리는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끝마무리도 개운치 않습니다. 가족의 화합을 다시 그리는 설정인가 싶긴 합니다만, 설득력 없는 전개로만 가득차 있어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네요. 이 작품집의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는 것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2005/06/17

헌책방 쇼핑

간만에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몇권 구입했습니다.

사실 우연찮게 찾아간 헌책방 사이트에서 정태원 선생님이 편역한 "악성인자"라는 단편집을 보고 구매한 것이고 다른 책들은 거의 충동구매로 구입했습니다.
'악성인자"는 정말 꼭 보고 싶었던 단편집인데 구해서 기쁘네요.

다른 책들로는 먼저 정태원 선생님이 편역한 "공포특급 6", 일본 작가들의 공포 단편이 실려있는데 정태원 선생님이 편역하신 만큼 기대가 됩니다. 유치찬란 싸구려 책 표지 디자인은 용서가 용납되지 않는 수준이지만요.
로렌스 센더스의 "제 6계명",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평이 좋은 작품이라 싼 맛에...
윌리엄 캐츠의 "마지막 파티", 리뷰들만 보면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역시 싼 맛에...
그리고 김성종 선생님의 "최후의 증인", 얼마전에 관련 리스트를 보기도 했지만 한국 추리소설중에서도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일 듯 해서 구입했습니다.

이렇게 사도 2만원도 안 들었으니 헌책방은 역시 이런 재미에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들만 읽어도 다음주도 즐겁게 보낼 수 있겠네요.

2026/08/23

책이라면 팔 만큼 - 코지마 아오: 별점 3점

헌책방을 중심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화입니다. 2025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성편 <1위>, 2026년 일본 만화대상 <1위>라는 수상 실적에 혹해서 충동구매하여 읽었습니다. '서점'이나 '헌책방'이 등장하는 작품들 대부분이 재미있었다는 이유도 컸고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습니다. 이런 소재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지스러운 신파나 감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충분한 드라마를 갖추고 담백하면서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서 좋았어요.

모든 에피소드가 실제 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커피에 별사탕"의 경우, 남편과 사별한 노부인이 남편이 좋아했던 컵과 커피, 꽃에 대해 이야기하자 헌책방 주인은 그것들이 데라다 도라히코의 시에 나오며, 그 시에 따르면 노부인이 '미인'이라는걸 알려줍니다. 책과 한 사람의 추억 연결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따스해서, 저도 이런 이야기를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헌책방 '시월당'을 중심으로 전개되다가 점차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구성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월당 자체의 이야기보다 책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책을 읽지는 않지만 수집을 좋아하는 '조지 씨' 이야기처럼요.

물론 소재와 설정, 전개는 뻔하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전문가나 특정 직종을 테마로 하는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인 탓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신선함은 부족하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새롭지는 않아도 담백한 분위기와 책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추천작입니다. 다음 권에서는 실제 책과 사람들의 사연을 연결하는 매력 포인트를 더 잘 살려주면 좋겠네요.

2010/10/02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3.5점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 8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편집자로 일하던 아이자와 마코토는 실직 후 바다를 찾아왔다가 익사체를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하츠키시에 머물게 된 마코토는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주인 베니코의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한 뒤, 그녀의 취업 제의를 받아들였다.

한편 그녀가 발견한 익사체는 하츠키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에다 가문의 히데하루로 밝혀져 장례 준비가 진행되는데, 그 와중에 마에다 가문의 현 주인 마치코마저도 어제일리어에서 살해되고 마는데...

소도시 하자키를 무대로 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라 주저 없이 선택했는데, 읽고 나서야 두 번째 작품이라는걸 알았네요. 

그런데 이 작품, 정말 재미있습니다!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가득한 것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수사와 추리의 과정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범인과 동기가 이치에 맞는 등 본격 추리적인 요소에 아주 충실합니다.

거기에 더해, 아이자와 마코토가 초반에 겪는 호텔 화재 사건이나 마코토와 치아키의 전화 통화, 베니코 여사의 옛날 이야기 같은 사소한 단서들이 모두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덕분에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거나 복잡한 느낌 없이 추리 소설의 재미를 가득 느낄 수 있었어요.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역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시끌벅적하면서도 황당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만, 적절히 수위와 템포를 조절하며 작품과 어울리도록 녹이는 부분에서 작가의 내공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코토가 처음 어제일리어를 방문한 뒤, 베니코 여사와 펼치는 '고딕 로맨스 퀴즈' 등 고딕 로맨스 소설에 얽힌 다양한 떡밥들은 매니아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해 더욱 흥미로웠고요.

하지만 주요 사건의 깔끔한 해결에 비해 다른 사건들은 정리가 다소 부족하다는건 아쉬웠습니다. 특히 마치코-구도가 얽힌 하쓰호 살해 및 유기 사건이 그렇습니다. 구도가 하쓰호를 죽인 이유도 명쾌하지 않았고, 시체 유기에 대한 진상은 다소 억지스러웠거든요. 이 때문에 마치코 역시 유언장을 폐기하려면 차라리 불을 지르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하거든요. 유언장도 없애고, 생사가 불분명한 하쓰호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어 재산 상속에 문제가 없어지니 1석 2조가 되니까요. 어차피 자신이 직접 죽인 것이 아니니, 마치코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구도가 마코토를 습격하면서까지 사체를 처리하려 했던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사건은 종결된 상태였으니까요. 이런 행동은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고마지 반장의 추리로 밝혀내는 식으로 처리하는게 더 나았을 거에요.

덧붙이자면, 히데하루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와 그가 복수를 결심한 이후의 행동들 역시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복수 방법도 어설펐지만, 마이와 시노부가 얽히는 과정이 순전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점은 앞선 정교한 장치들과 비교한다면 너무 쉽게 처리된 듯 합니다.

하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5점! 이상하게 단점을 리뷰에 상세하게 적기는 했는데, 장점이 훨씬 더 월등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빨리 1권을 구해 읽어야겠네요.

PS: '코지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치고는 너무 강력한 사건이 등장하며, 전형적인 일본의 콩가루 집안 재산 싸움이 펼쳐지는 점이 의외였습니다. 이런 작품도 코지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2005/04/07

간만에 책 구입 2004.04.07

자주 가는 인터넷 헌책방인 "신고서점"에 어떤 분이신지 소장하시고 계신 추리소설을 왕창 풀은 것 같더군요. 애거서 해문 빨간책 시리즈는 정말 엄청난 양이 올라왔고 최신간도 눈에 띕니다. 저는 이미 구입했지만 최신간 모스 경감 시리즈와 "펠리데" 까지 올라와 있으니 어떤 분이신지 정말 가슴 아프셨을 것 같네요.

대충 훝어보고 해문의 반다인 시리즈 "가든 살인사건"과 해문 미스테리 베스트 "낯선 승객", 그리고 애거서 빨간책 시리즈로 "움직이는 손가락", "삼나무관", "비뚤어진 집", "앤드하우스의 비극"을 구입했습니다.

새책 사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선택인데, 헌책방에서는 이렇게 구입도 2만원 안쪽이니 굉장히 뿌듯합니다.
가든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이래서 헌책방을 자주 간다니까요...^^

2010/12/15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3점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하자키 시에 위치한 주택지 '빌라 하자키 매그놀리아'의 비어있는 3호실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얼굴과 손이 뭉개져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빌라 주민들의 다양한 생각이 오가던 와중 '중요한 단서'를 잡았다고 떠벌이고 다닌 5호의 아케미마저 다음날 살해된 채 발견되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시(市) 시리즈" 1탄입니다. 바다 옆 작은 소도시 하자키 시를 무대로 한, 이른바 "코지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으로 2탄인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를 먼저 읽었더랬죠.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력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쨌건, 이 작품도 역시나 "헌책방..."과 마찬가지로 수다스럽고 왁자지껄한, 유머러스한 추리물로 읽는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탐정역인 형사반장 고마지와 부하 형사 히토쓰바시의 대화가 특히 압권이죠.

사소한 대화와 에피소드들 모두가 결국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교묘하게 사건의 내용과 단서가 엮인 전개도 좋습니다. 산길에서 발견된 "팬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에요. 그냥 날려간 빨래인 줄 알았는데, 나름 사건과 연관이 있었거든요. 이노 게이코의 협박 사건 등 두 개의 사건을 하나로 묶어서 전개하다가, 결국 결말에서 두 건의 사건이 전혀 별개라는게 밝혀지는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작가의 장점이 잘 부각된 작품입니다. 유머러스한 분위기, 교묘하게 배치된 복선과 단서에 따라 결말에 이르는 복잡하면서도 명쾌한 구성이라는 장점 말이죠. 덧붙이자면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여자" 캐릭터를 만드는 솜씨는 확실히 와카타케 나나미를 따라올 작가가 없을 것 같아요. 그만큼 묘사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부분에서 살짝 기대에 미치지 못한건 조금 아쉽습니다. 두 건의 살인이 벌어지는데, 빌라에서 의문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은 너무 뜬금없었을 뿐더러 '사고'에 가까운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인 아케미 살인 사건은 범인의 알리바이에 우연과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마쓰무라 켄에게 어머니가 전화를 걸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첫 번째 사건은 경찰이 가지고 있는 정보 없이는 해결하기가 불가능했고, 아케미 살인사건 역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마지막에서야 제공된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썩 공정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의 두 개의 반전도 지나친 사족으로 여겨졌고요.

그래도 앞서 말한 장점과 더불어 책의 구성과 번역도 훌륭하고, 시리즈답게 이어지는 캐릭터들, 그리고 헌책방 '기토당'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하무라'라는 직원이 등장하는 등 작가의 팬으로서 즐길 거리도 많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지치고 무료한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그야말로 '킬링 타임용' 재미에 최적화된 작품입니다.

2014/07/01

알라딘 중고서적 헌팅 중....

알라딘 중고서적을 잘 찾아보면... 온라인 비블리아 고서당

알라딘 헌팅(?) 중 기이한 헌책방을 발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고가에 형성된 다양한 절판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쿼런틴"이 거의 20만 원! 소장 중인 형이 아주 좋아하겠군요. 그 외에도 얼마 전 읽었던 "반전"은 14만 원, "마술사가 너무 많다"는 거의 20만 원이고... 만화는 다이나믹프로 전성기 화백의 "돌아온 권법소년 1, 2"가 무려 80만 원! "로보트 킹과 별나라 왕녀", "우주의 전사대와 로보트 킹"은 각각 170만 원! 이건 제가 초등학생 때 구입한 책이 아직 본가에 있어서 더 두근두근합니다. 무척 낡고 헐긴 했지만 과연 얼마나 받을지 궁금해집니다.

본가를 뒤지면 절판된 책은 제법 많이 발굴할 수 있을 텐데, 이 헌책방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전에 과연 팔리는 책인지부터 알아봐야겠지만요.

2005/03/26

Y의 거리 - 아토다 다카시 / 이경재, 정태원 : 별점 3점

이전부터 눈여겨 보아 왔던 작가인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집.
이 작가의 작품은 앤솔로지에서 "나폴레옹 광"을. 일한대역 문고 및 기타 등등에서 몇몇 단편을 읽은 것이 전부였었죠. 이 책은 국내에 정식 번역된 유일한 단편집이지만 절판된 관계로 구하기 힘들었었습니다. 계속 찾아다닌지 몇 해, 그런데 얼마전 집안일로 본가인 부산에 내려갔다가 보수동 헌책방 거리 탐방을 하다가 아주 운좋게! 구하게 되었습니다. (보수동 헌책방 거리는 다음에 또 가게 되면 자세히 포스트를 남기겠습니다) 이제부터 부산에 가게 된다면 꼭 보수동에 한번씩 들려봐야겠어요. 역시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오기 마련이겠죠^^

그런데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도 있지만 정통 "추리" 단편선은 아니더라고요. 여러가지 작품들이 섞여 있습니다. 사건과 범죄가 등장하여 강한 반전으로 독자에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들도 있고, 인간 드라마를 묘하게 여운을 남기게끔 구성한 작품들도 있고 ,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죠. 그래서 작품의 폭이 넓으면서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합니다. 물론 글 자체도 굉장히 잘 쓰는 편이고 문장력도 있어서 (번역이 좋기도 합니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개인적인 베스트를 뽑자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인 "나폴레옹광", 섬뜩한 반전이 돋보이는 "뻔뻔한 손님", 추리적 요소가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인 "꽃병" 을 뽑고 싶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여러 사건과 범죄가 등장하고 반전의 맛이 상당해서 이쪽 장르 애독자라면 놓치기 힘든 작품들이 가득해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제목도 깔끔하고 인상적인 편으로 좀 과장된 묘사가 거슬리는 부분이 약간 있지만 발상 하나는 기가 막힌 작품들이 많으므로 어렵게 구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치찬란 3류 스릴러스러운 표지 하나만큼은 용서가 안되는군요....

수록작을 조금 소개해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나폴레옹 광
이 작가의 대표작이죠. 나폴레옹에 미친 사나이와 자신이 나폴레옹의 환생이라고 믿는 사나이에 얽힌 이야기인데 굉장히 섬찟하면서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전에 비슷한 설정을 다른 단편 (루스 렌들이었나...기억이...)에서 읽은 기억은 나긴 합니다만, 동서양 관점차이를 떠나서도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뻔뻔한 손님
우리나라 소설 "생인손"과 유사한 섬뜩한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밑바닥 인생이 좋은 가문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 주는군요.

프로와 프로가 만나다
혼인빙자 사기범이 제대로 된 "프로"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소재로 평이한 수준.

꽃병
1년여전 죽은 언니의 살인범을 추리해 내는 동생의 이야기로 재미있는 사건 전개를 보여주는 추리 단편입니다. 트릭은 없지만 범인을 유추해 내는 과정이 괜찮습니다.

Y의 거리 : 우연히 만난 인생 막바지에 몰린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Y의 거리"란 갈림길을 뜻하는 말이더군요. 표제작이긴 한데 그다지 높은 평가를 주기는 어렵군요. 여운을 주는 인생 드라마라는 느낌입니다.

투명고기
자신도 투명하며 같은 어항속에 물고기들도 투명하게 만드는 물고기에 관련된 짤막한 이야기. 뭐 그냥저냥입니다.

딱정벌레의 푸가
자신의 승용차 폭스바겐(딱정벌레)과 대화하는 한 입원 환자의 이야기로 기발한 전개와 구성은 물론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사랑은 알 수 없어
유괴범이 돈을 받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유괴물입니다. 괜찮은 편이었는데 마지막에 좀 무리한 반전으로 아쉬움을 주더군요.

장미의 문
도대체 내용을 알기가 힘들었던 심리물. 노리코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요?

산책학 입문
여자를 낚기 위한 한 플레이보이의 "산책 코스"를 학문으로 까지 끌어올리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였던 작품. "산책학"이 내용대로 원래 있는 학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만의 산책 코스를 하나쯤 개발하고 싶어지더군요.

냄비와 엘리베이터
살인사건이 있었던 고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의 층수 이동을 보고 범인을 유추해 내는 독특한 과정이 인상적인 추리 단편. 평이한 수준입니다.

지구의 뒤쪽
환상 단편.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주인공은 아내가 집밖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렇다면 아내가 간 곳은 어디인가?

비뚤어진 밤
이른바 "인생극장"같은 환상단편으로 2번의 인생을 살게되는 주인공의 이야기.

수상한 가방
여체를 "서랍"으로 묘사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독특합니다.

2018/11/11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 별점 2점

책 정리하는 법 - 4점
조경국 지음/유유

저는 독서가 취미인 애서가입니다. 그 탓에 쌓이는 책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 계획 때문에 최근에는 고민이 더욱 늘었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인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제만 보면 딱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그런 책이라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완벽하게 기대를 배신당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요. 저자가 이 책의 독자가 누구인지를 망각한 탓입니다. 머리말 서두에서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특별한 책 정리법이 있을 겁니다."라고 쓴 걸 보면, 저자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책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독자라는걸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으로서 저자만의 특별한 노하우 공유를 기대했고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정말이지 '초보자' 수준의 지식을 설명하고 나열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그나마 제목과 연결고리를 가질만한 내용은 4부인 "서가의 다양한 형태들" 정도입니다. 직접 만드는게 최고라며 사이즈 등 여러가지 팁을 소개해 주고 경량랙 등 기성품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 덕분입니다.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이라며 추천하는 이케아 빌리 시리즈도 눈여겨 볼 만 하더군요. 다음에 이사갈 때 저도 한 번 고려해 봐야겠다 싶을 정도로요.
7부인 "책을 싸는 이유와 노하우"에서 맥도날드의 포장용 봉투가 완벽한 책싸개라고 알려주는 부분도 실용적인 팁이라 인상적이었어요. 튼튼하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색깔도 무난하니 괜찮다는 이유인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애용할 듯?

하지만 괜찮은 팁과 노하우 공유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다른 내용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수준에는 걸맞지 않는 초심자용 내용이 많아요. 예를 들어 4부인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만 놓고 보면 책의 핵심인데, 책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자신만의 정리법이 있을테고 저 역시 그러한만큼 딱히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냥 헨리 페트로스키의 방식, 십진분류법, 분야별 분류, 작가별 정리, 출판사별 정리 등 다양한 방식만 나열될 뿐입니다. 책 목록 정리법도 '비블리'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하며 마무리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내용도 아니며 딱히 땡기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에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소개되는 다양한 책 처분법 역시 새로운 내용은 전무합니다. 기증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팔거나 헌책방에 파는 등의 방법이 소개되는데 책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는 애서가라면 당연히, 누구나 알 내용이에요.

저자 본인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서재의 조건 중 180*80 센티미터 크기의 책상이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입니다. 서재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허나 그런 것 치고는 책상이 너무 크잖아요! 차라리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애서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방 안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의자 주변의 반경 1미터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완벽한 서재 쪽이 더 공감갑니다. 공간을 좁게 구성하는게 책을 보관하는 기능에는 훨씬 유용한게 당연하니까요. 이어지는 자신의 책상, 독서대, 스탠드, 커튼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모두 저자의 기준일 뿐이고요.
제목과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은 것도 문제인데 2부인 "남의 서재 엿보기"는 저자가 과거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의 서재를 찾아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쓴 내용으로 책 정리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의 헌책방을 열기까지의 과정도 재미는 있지만 단순한 개인사 에세이라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어요.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유유의 책 답게 내용과 분량에 비하면 높은 가격도 매력을 떨어트립니다. 저는 전자책으로 약 7,000여원에 구입했는데 종이책은 200쪽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정가가 무려 12,000원입니다! 도판도 모두 흑백에다가 특별한 일러스트가 사용되지도 않았고, 양장본도 아닌데 이 가격은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어요. 종이책은 모르겠지만 전자책은 1/3 분량이 유유 출판사 책 소개에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또 뭔가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점, 그리고 드물지만 유용한 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가격과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한다면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사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저자의 머릿글에 모두 나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쓸 필요도 없었어요. 책 정리법의 핵심은 "책 욕심을 버리는 것" 이며, 그렇지 못하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내 정리법은 공간을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서가별로 여러가지 기준을 세워서 정리한다... 는 짤막한 글인데 이게 정말 전부입니다. 이 책 본문에 소개되는 실제 책 정리에 대한 디테일은 그만큼 별 볼일이 없습니다.

2025/03/21

마트료시카의 밤 - 아쓰카와 다쓰미 / 이재원 : 별점 2.5점

마트료시카의 밤 - 6점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리드비

94년에 출생하여 2017년 데뷰한 추리 소설계의 신성이 발표한 두 번째 책입니다. 신예 작가의 재기넘치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단편 네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마지막 수록작 외의 수록작 모두에서 추리 소설 매니아의 향취를 짙게 풍긴다는 점입니다. 모두 코로나 시기를 무대로 하고 있어서, 등장인물들이 철저하게 마스크를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추리적으로도 볼만했고, 기발한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고, 너무 트릭과 반전에 열중한 느낌이 드는건 좀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험한 도박 - 사립 탐정 와카쓰키 하루미"

제목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연상시킵니다. 서점과 관련된 여탐정이 등장한다는 설정도 비슷하고요. 헌책방이 주요 무대라는 점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 중 핵심 소재인 유가미 유즈류의 "얼룩무늬 눈밭"은 가공의 작품이지만, 이외에는 모두 실존하는 유명 작품들이 대거 언급되어 재미를 더해 줍니다. "병든 대형견들의 밤"이라는 작품을 극찬하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 외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고요. 책 소개만 써도 먹고 살겠다 싶을 정도로 잘 쓰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마키무라 신이치의 뒤바뀐 가방을 찾던 탐정 '와카쓰키 하루미'가 알고보니 신이치를 살해한 범인이었다는게 진상인데, 이를 서술 트릭을 도입해서 효과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를 와카쓰키 하루미의 명함이 단 한 장 뿐이었다는 핵심 증거를 통해 잘 알려주고요. 와카쓰키 하루미가 추리작가 히루마 다카하루와 동일인이라는 반전도 괜찮았어요.

그러나 마침 마키무라를 죽인 날, 범인의 살인 증거가 담긴 가방이 뒤바뀌었다는 상황은 억지스럽고, 명함이 한 장이라는게 증거라는 주장은 빈약합니다. 명함이 정말 한 장 밖에 안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명함은 얼마든지 추가로 만들 수 있는데 탐정 명함 한 장으로 탐문 수사를 이어나가는 모습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경찰 신분증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헌책방, 고전 추리 명작, 추리 매니아 등 좋아하는 소재는 한 가득인데,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1년도 입시’라는 제목의 추리소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꿈꿀만한 작품. 대학교 입시에 추리 소설의 진범 찾기가 출제된다는 설정이거든요. 출제 범위로 아유카와 데쓰야, 다카기 아키미쓰, 엘러리 퀸, 아야쓰지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이 언급되며, 실제 시험 문제도 한 편의 추리 소설의 문제 편입니다. 이런 대학이 있다면 꼭 한 번 시험에 응시해 봐야 겠습니다. 

전통적인 소설 구성이 아니라 뉴스, 인터뷰, 각종 보도 자료와 커뮤니티 의견들로 진행되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여러 명이 각자의 추리를 펼치는데 효과적이었다 생각되네요. 해답으로는 유명 학원 강사, 수험생 및 대학 측의 제시되어 추리적으로도 풍성하고요.

이 중 학원 강사는 6분할 화면, 생일 선물이 놓여진 탁자 위에 놓여진 사물의 개수가 6개라는 점에 착안하여, 원격 생일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5명이 아니라 6명이었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이 친구는 왕따라 모두가 없는 사람이라 여겼는데, 범인이 선물한 탁상 선풍기가 현장의 연기를 흩날리게 만들어 컴퓨터 위치를 알아냈다면서요.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여 제대로 된 추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착안점은 재미있었습니다. 범인 이름까지 소설 내에서 짚어내는 발상은 놀라왔고요. 확실히 카리스마 학원 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수험생의 추리는 범인은 코드를 더듬어 컴퓨터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렇다면 범인은 피해자 방에서 나타났으며, 범인은 에나미 에리라고 추리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도 앞의 지문을 통해 상세하게 들고 있고요. 이 정도면 합격을 시켜도 무방한 좋은 추리였습니다.

이 둘에 비하면 대학 측에서 제기한 해답은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피해자가 쓰러진건 연극이었고,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달려갔던 친구 오우가 범인이었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간단한 답이거든요. 이런걸 해답이라고 제시하고, 앞서 지문에 있던 단서들 중 불리하거나 오독할 수 있는걸 멋대로 삭제해 버렸으니 이 수험을 주도한 기자키 교지로 교수가 짤리는건 당연합니다. 제가 수험생이더라도 가만 두지 않았을거에요.

이렇게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잘 펼쳐놓고는 있는데, 딱 한 가지가 아쉽습니다. '무한대'라는 대학 내 동아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를 찍어내기 위해 이런 입시 시험을 기획했고, 시험에 통과했던 신입생을 낚아챈다는 진상이자 반전입니다. 이는 완전히 불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개 동아리가 입시를 의도한대로 진행시킬 수 있다는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차라리 획기적인 새로운 대학 입학 시험이 도입되었다는 설정으로 문제편, 여러 사람의 해답편을 소개하고 결말로 정말 좋은 제도였다!며 추리 시험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는 결말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마트료시카의 밤"

무대에서 2인극을 펼치면서, 과거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드러낸다는 내용으로 작가가 편집자에게 연극을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편집자는 작가의 부인과 불륜 관계였고, 작가는 편집자의 지문을 과도에 묻히기 위해 연극을 벌였습니다. 이미 아내를 과도로 살해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편집자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협박에 나섭니다. 궁지에 몰린 작가는 편집자가 진짜 범인이라는걸 추리해내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가 재미있었습니다. 까면 깔 수록, 열면 열 수록 계속 새로운 진상이 밝혀진다는 것에서 제목이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이를 '양파형'이라고 부르는데, "발자국"이라는 영화를 참고한 모양이네요. 

작 중 금고 다이얼을 여는 암호로 "심장과 왼손", "요도妖盜 S 79호", "붉은 오른손", "대여 보트 13호", "화려한 유괴", "다이얼 7을 돌릴 때"이 언급되는건 과연 추리 매니아구나 싶었고요. 이 작품들의 구성도 작가의 장치 중 하나라는 것, 그 외 사소한 대사들이 모두 단서가 된다는 구성도 치밀한 편입니다.

하지만 원작자인 소설가가 진짜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연극 연출가가 알아채 협박하기 위해 무대를 꾸몄고, 소설가가 이를 이용해 연출가와 손을 잡고 다른 작가들을 협박할 계획을 세운다는 결말은 억지스럽습니다. 소설가가 아내를 죽였던 사건의 진상을 무대에서 폭로한다고 해도 그게 소설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까요? 이미 십여년 전 사건인데다가 증거도 없는데 말이지요. 저는 오히려 연출가가 무고죄로 고소당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는 과거 사건을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용하면 되니 일석이조일거에요. 게다가 이 뒤에 이어지는, 이건 전부 영화였다는 반전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나치게 '까서' 오히려 감점이 되어 버리고 말았네요.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입니다. 그냥 앞부분 연극으로만 끝내는게 좋았을겁니다. 실제로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었을 이야기니까요. 

"6명의 격앙된 마스크맨"

대학교 복면 레슬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뛰어났던 레슬러 '센론 마스크 49세(하자마 지로)'가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복면 레슬러의 마스크가 찢어져 있었던 것, 그리고 마스크 내부 혈흔에 주목하여 진범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추리는 좋습니다. 앞서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은 구성도 마음에 듭니다. 사람들이 하자마 지로로 알고 있던 '센론 마스크 49세'의 정체는 지로의 형 가즈토시였고, 피해자 하자마 지로가 가즈토시를 죽이려다 되려 죽고 말았으며 이 탓에 복면을 찢을 수 밖에 없었다는 진상은  '복면 레슬러'가 범인이자 피해자였기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여러가지 설정 - 마람프와 지로가 전날 술을 마셨던 영수증 등 - 도 단서로 활용될 수 있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유쾌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도 잘 어울리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프로 레슬링 팬으로서, 세계 최초라고 해도 무방할 복면 레슬러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에는 나쁜 점수를 주기 어렵지요. 수록작 중에서 완성도로는 가장 좋기도 하고요.

2015/05/12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 두 번째 권입니다. 이번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두 편은 중학생 소녀의 독후감, 헌책 출장 감정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는 전형적인 일상계입니다. 시오리코씨 어머니와 수백만엔에 이르는 책 도난 사건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의 과거편은 단순 일상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편은 책을 팔려고 내 놓은 뒤 사라진 손님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일상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일상계 추리물인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고, 독서와 헌책방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시오리코씨 어머니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게 좋았을겁니다. 최종보스 느낌인데 작품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책을 좋아하는 미녀 시오리코씨, 그녀를 흠모하는 근육 알바 고우라 다이스케의 순진무구한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주변, 동네의 소소한 책 관련 사건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 건질게 별로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당사자 중 한 명이라서 추리라고 부르기 애매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책을 확인하지 못했던 실수가 더 크게 다가오는 탓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추리적으로는 가장 괜찮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재와 설정이었고요.

덧붙여, 시리즈 다른 편들과는 다르게 등장하는 책들 중 딱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든 책이 없다는 점, 그리고 책의 완성도는 좋지만 각 단락별로 추가된 일러스트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책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점도 실망한 부분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만 놓고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아주 좋지도 않은,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중 한권으로는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각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1권에서도 등장했었던 고스가 나오가 자신의 똑똑한 여동생 유이가 쓴 "시계태엽 오렌지"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를 고우라에게 의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라니! 책 관련 추리 소설 중 이 정도까지 사건성을 낮춘 일상계가 있었을까요? 여튼, 소재는 정말이지 참신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로 잘 알려진 내용은 '불완전판'이며, 원래는 알렉스가 개과천선하여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는 결말이 '완전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사실이 내용과 잘 어우러지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독후감은 상당히 잘 쓴 내용으로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외려 주위의 설레발이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원칙적으로는 중학생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은 것 부터가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런건 지적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고요.

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치밀해서 괜찮기는 하지만, 결국 원본은 시오리코씨가 썼다는 일종의 반전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뭐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습니다. 결말을 알고 나서 단서를 짜맞추는 방식과 다를게 없으니까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의 왕도를 걷는 점에서는 별점 4점도 충분하지만 추리적 요소가 약해 약간 감점합니다.

후쿠다 데이치 "명언수필 샐러리맨"

고우라 다이스케가 대학교 1학년때까지 사귀었던 옛 동창 아키호로부터, 그녀의 돌아가신 부친의 수집 도서 정리를 의뢰받은 뒤의 이야기.

고우라의 과거사, 그리고 현재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푸근한 이야기로, 첫 시작에서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팩스와 전화가 온 사실과 아키호가 출장 감정을 의뢰한 이유가 연결되는 치밀한 구성도 괜찮습니다.
알 수 없는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그것을 드러내는 묘사들, 그리고 후쿠다 데이치가 유명작가 시바 료타로의 본명이며, "명언수필 샐러리맨"은 성공 전에 발표한 책이라는 잡학 지식도 좋았고요.

그러나 내용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아무리 엿듣는 사람이 많았고, 부녀가 만날 때마다 싸우는 등 복잡한 가정 사정이 있었다지만, 귀중한 책을 몰래 물려주려 했다는 설정이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려줘봤자 받는 사람이 그 가치를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에피소드가 사건으로 성립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출장 감정을 나선 시오리코가 귀중한 책을 놓쳤다는 것인데, 이건 큰 문제입니다. 아팠다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도 그간 보여주었던 책에 관련해서는 너무나 완벽했던 캐릭터성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감기로 인해 시오리코씨는 출장 감정을 나서지 않고 고우라에게 원격으로 지시했기 때문에 책을 놓쳤다... 라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시즈카 후지오 "utopia"

시오리코씨의 어머니 이야기가 첫 등장하는 에피소드.

일단은 시오리코씨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수상한 손님이 판매를 의뢰한 책만 가지고 주소를 짐작하여 찾아오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려주며, 이후 깨우친 진상을 가지고 협박하여 손에 넣기 어려웠던 휘귀본을 입수한다는 부분에서는 사악함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아울러 "선의의 제삼자"가 되기 위한 교묘한 장치, 즉 장물인 "최후의 세계대전"에 2,000엔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책을 판매, 구입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이 없게끔 안배하는 '악마의 술책' 역시도 돋보였어요.
개인적으로는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를 좋아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오리코 씨의 어머니가 이렇게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그야말로 최종보스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치고는 너무 거창하잖아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훨씬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03/01

오늘 산 책입니다.

간만에 집에서 쉬면서 근처 헌책방에서 몇권 구입했습니다.

요사이 화제가 되고있는 그라닌의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하지만 제가 구입한것은 새로 출간된 것이 아닌 이전 정신세계사 판본이더군요.
알렉산드라 마리니나의 "낯선 들판에서의 유희", 그동안 한번쯤 꼭 보고 싶었는데 마침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고리키 파크", 인상적이었던 "북극성"이라는 작품의 전작으로 아르카디 렌코가 주인공이더군요. 기대되는 책입니다.
그리고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1권, 호러는 원래 좋아하진 않지만 단편집이고 해서 한권 구입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꿈을 빌려 드립니다" 중단편이 포함된 산문집입니다. 오래전에 "백년동안의 고독"을 너무나 인상적으로 읽었었는데 마침 눈에 띄더군요.

이렇게 해서 10,000원 미만입니다. 이래서 헌책방 찾기를 그만둘 수 없는 것 같아요^^

2008/11/24

보험과 범죄 - 쯔키타리 카즈키요 / 황남일, 이홍미, 이미영 : 별점 3점

보험과 범죄 - 6점
쯔키타리 카즈키요/두남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서 구입한 책. 보험 범죄 사례를 역사별, 유형별로 소개해 줍니다.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일본 사례가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 몇개도 감초처럼 추가되어 있어서 얄팍하게나마 보험 범죄라는 것에 대한 시각을 많이 넓혀줍니다. 특히나 1762년 영국의 "이네스 사건" 부터 보험이 태동한 초기부터 이미 현재까지 계속되어오는 다양한 범죄들이 있어 왔다는 것에서 많이 놀랐습니다. 역시 인간은 무서워요...
이 책에서는 보험 범죄를 생명 보험 범죄와 상해 보험 범죄로 크게 구분짓고 있는데, 생명 보험 범죄는 역시 바이블과도 같은 보험금 살인, 즉 보험금 수취인인 범인이 피보험자를 제 3자의 살인으로 보이게끔 위장한 범죄와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고나 타살로 위장한 자살, 그리고 사망사고의 날조, 기타 사기에 의한 보험사고를 다루고 있고, 상해 보험 범죄는 자기 상해, 그리고 사고의 날조로 나누어 다룹니다.
이렇게 구분되어 실린 사례가 무려 100여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비정한 범죄에서 부터 시체도굴까지 다양한 사례가 등장해서 읽는 동안 무척이나 흥미진진했습니다. 분량도 짧아서 읽기도 편했고요.
이 중에서 1982년에 일어난 "하천부지 아들 살해사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해 왔던 범인이 새로운 결혼 상대자와의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새로운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살해한 사건-과 1932년의 이른바 "철인 마로이 사건" - 백수건달 마로이의 단골 술집 주인 토니 마리노가 마로이에게 생명보험을 가입시키고 살해하려 했으나, 부동액, 다량의 메틸알콜, 썩은 통조림을 먹이거나 추운 겨울에 바깥에 술을 먹이고 방치하는 등 여러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로이가 그때마다 끈질기게 살아난 사건 (결국 죽었지만) -. 그리고 미국인 칼라일이 자신의 습관성 어깨탈구를 이용하여 상해 보험을 청구한 1950년의 "칼라일 사건"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독살 귀부인 마르타 마레크나 가짜의사 홈즈 사건과 같은 유명 범죄도 실려 있는 등 풍성한 사례만으로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초반부와 마지막 부분에서는 보험 회사에 대한 상세한, 그러나 지금은 좀 낡아버린 법적인 내용을 길게 다루고 있어서 흥미가 떨어지며, 번역자가 2명에 감수까지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책의 장정과 디자인 역시 80년대스럽고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래도 보험 범죄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면 충분히 제 값을 하는 책이긴 합니다. 저야 헌책방에서 구입했으니 더욱 만족스럽고요. 추천하기엔 좀 미묘하지만 혹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5/02/01

간만에 책 구입

인터넷 헌책방 훈민정음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고르는 것이 아니라 웹사이트의 리스트에서 제목과 작가만 보고 선택한 책의 포장을 뜯어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은 즐거우면서도 흥미진진, 스릴이 넘치는 작업입니다.

이번에 구입한 책들 소개를 하자면

먼저 피터 러브제이의 "밀랍인형", 이번 구매는 이 책 때문에 다른 책들을 구색 맞추기 식으로 구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초 기대작입니다. "마지막 형사"와 "가짜경감 듀" 단 두권만 읽은 작가이지만 항상 실망을 주지 않고 기대하게 만들었던 피터 러브제이의 작품이고 책 상태도 좋아서 무척 만족스럽네요.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근데 피터 러브시가 맞는지 러브제이가 맞는지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마쓰오카 게스케의 "최면", 몇개의 서평만 보고 충동구매하듯 구입했는데 책 상태는 1,2권 모두 최상급이라 만족스럽네요. 기대도 조금 됩니다.

에버하르트 로사의 "심심풀이로 읽는 화학"은 그야말로 충동구매입니다. 하지만 약간 흥미가 가는 것도 사실이고 조금 넘겨봤는데 쉽고 재미있게 쓴 것 같아 마음에 듭니다. 쉽고 재미난 이론서적도 무척 좋아하니 만큼 즐겁게 읽을 수 있을것 같네요.

고광석의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 이 책은 서점에서 서서 띄엄띄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막상 사서 보기에는 조금 아깝다 싶던 차에 헌책방 리스트에 올라와 있어 구입했습니다. 대충 읽어본 바로는 꽤 재미있었는데 제대로 다시 읽어봐야죠.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두권은 실패작이네요.

마쓰모토 세이쵸의 "땅의 손가락", 이 책은 이미 가지고 있고 전에 포스트도 올린 "적색등"과 같은 작품이며 쓰치야 다카오의 "미완의 종지부"역시 전에 포스트 올렸던 "호메로스 살인사건"과 같은책입니다.

그동안 국내 번역된 세이쵸 작품은 거의 다 읽지 않았나 싶기도 해서 주저 주저 하다가 구입했는데 역시나였고 쓰치야 다카오 책 역시 마이너 작가이긴 하지만 치구사 시리즈의 다른 작품이 번역되었길 바라는 일말의 기대와 함께 선택했는데 아쉽습니다. (그러니까 의역하지 말고 원제를 번역한 제목만 쓰란 말이다!)

이 중 세이쵸의 작품은 거의 재난급이지만 쓰치야 다카오의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수작이니 만큼 필요하신 분께 드리고 싶네요.

그래도 당분간 무슨책을 읽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즐겁습니다.

2005/06/24

제 6계명 - 로렌스 샌더스 : 별점 3.5점

제6계명 1 로렌스 샌더스/고려원(고려원미디어)

빙햄 투자기관의 조사원 샘 토드는 손데커 박사라는 인물이 백만불의 후원금을 얻기 위해 신청한 연구의 조사를 위해 오지와 같은 시골마을 코번으로 떠난다. 손데커 박사는 그가 운영하는 요양기관과 연구소만이 마을을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탓에 쇠락해 가는 코번 마을을 그나마 지탱하는 유일한 인물로 남다른 카리스마와 설득력을 지닌 천재였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토드는 그가 하는 연구는 세포의 노화를 유발하는 X라는 요소를 배재하여 인간을 불멸, 불사의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토드는 요양소에서 불분명하게 사망한 인물들이 여럿 있다는 것과 요양소에서 일하던 노인이 어느날 알 수 없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등 손데커 박사의 매력 뒤에 감추어진 수수께끼와 같은 여러 사건을 접한 뒤 박사와 그의 연구에 대한 의심이 깊어 가는데....


로렌스 센더스의 유명한 작품 "제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전에 이미 "앤더슨의 테이프"와 "피터 S의 유혹"이라는 작품 2개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특히 "피터 S의 유혹이)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고 시드니 셀던과 비슷한 통속소설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그래서인지 유명한 작품이고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헌책방 쇼핑 도중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물건이네요!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한번에 쭉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먼저 시니컬하면서도 냉정한 판단력의 주인공이 주로 탐문과 조사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과거 전성기 시절의 하드보일드 공식에 충실한 묵직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리적인 부분과 스타일까지도 거의 유사하더군요. 그러나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기존 하드보일드의 사립 탐정이나 형사와 다른 다른 특이한 직업의 탐정이 주인공일 뿐더러 의학 스릴러라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가 더해져서 현대적이고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그리고 하드보일드 분위기의 작품치고는 그다지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원래대로의 공식이라면 중요 증인들이 중간중간 계속 죽어나가면서 이야기가 연결되겠지만 이 작품은 중요 증인 한명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짐과 동시에 주범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한번에 죽어버린다는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내용 전개도 보다 깔끔하게 느껴졌어요.

미친 과학자가 불멸, 불사의 존재를 연구하다가 파국을 맞는다는 전형적인 줄거리 역시 나름의 과학적, 의학적 설득력을 지니는 요소들을 첨가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특히 미지의 세포 조직인 "X"라는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과정과 그 결과물은 나름 쇼킹합니다. 아주 옛날에 읽었었던 "엔젤딕"이라는 이현세 만화의 "미완의 변태"편의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이현세씨가 이 작품을 읽고 모티브를 얻었으리라는 강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복잡한 인간관계를 묘사함으로써 (물론 이러한 사소하고 큰 상관없은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가 재미있어서 그다지 늘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만) 소설이 필요이상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는 하며 제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적 묘사가 제법 등장한다는 것은 좀 아쉽네요. 뭐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어쨌건 결론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로렌스 센더스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전에 읽었던 작품들만 보더라도 실망스러운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글재주는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작품은 전작들의 아쉬운 부분을 거진 걷어내고 재미까지 덧붙여졌을 때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네요. 그야말로 포텐터진 유망주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또다른 걸작 시리즈라는 "대죄" 시리즈도 한번 구해봐야겠습니다.

PS : 저는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이 애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엔딩과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연상이네요...^^

2005/07/13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EQMM) 1,2 : 각권 별점 3점


유명한 단편 추리 전문 잡지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EQMM) 한국판 1, 2호.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발견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죠? 짧게만 소개해 드리자면, 추리작가 엘러리 퀸이 간행하기 시작한 잡지로 유명한 단편 앤솔로지나 단편집, 단편 작가들은 거의 다 여기를 통해서 알려지고 배출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드가상 단편 부분 수상작으로도 선정된 작품도 많은, 그야말로 단편의 보물창고 같은 잡지죠.

각 권별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제가 뽑은 베스트는 1호에서는 "여행중에 생긴 일". 2호에서는 "평생동안의 기다림"과 "클레머티스의 향기" 입니다. 2호보다는 1호가 좀 더 고전파에 가깝다 보이는데 취향에 맞춰 골라보는 재미도 쏠솔하네요. 그러나 한국판은 제가 알기로는 2호가 마지막인듯 싶군요. 좋은 기획인데 역시나 판매부수가 문제였을테죠. 단편 추리물 팬으로서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이 정도 두께와 가격에 이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잡지라면 계속 구입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후에도 계속 출간되었으면 합니다만... 힘들겠죠?

수록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호 수록작
"욕실살인"
나름대로 개인적 인연이 약간 (아주 약간!) 있는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으로 아무도 없는 욕실 안에서 단검에 찔려 살해된 시체때문에 범인으로 몰리는 백화점 직원 수잔 홀트의 이야기입니다. 수잔 홀트는 수많은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중 한명인 모양이네요. 에드워드 D 호크 특유의 "불가능 범죄"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기는 하나 트릭은 좀 시시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

"여행중에 생긴 일"
보험 조사원 숀 콜란 (마스터 키튼? ^^)이 우연히 여행 중 사고를 당해 한 농장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농장 여주인 남편의 교통 사고를 알고나서 나름의 호감과 정의감으로 보험금을 받게 해 주려고 애쓰던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습격을 받게 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이런저런 앤솔로지에서 몇번 접해보았던 도그 앨린의 작품으로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길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편의 영화처럼 서스펜스 가득한, 긴박감이 넘치는 묘사가 일품이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부분에 공격받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는 부분도 아주 좋았고요. 그야말로 무릎을 칠 만 했달까요. 별점은 4점!  1호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여자의 행복조건"
생소한 작가 도날드 올슨의 작품. 유산을 둘러싸고 조카딸의 도박꾼 남편 윌리와 베스타 이모가 대결한다는 일종의 완전범죄물로 도박꾼이자 인간 쓰레기인 윌리라는 인물과의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놀라운 돼지들"
역시나 생소한 작가 조지 체스브로의 작품.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는 갈쓰 프레더릭슨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돼지를 둘러싼 소송때문에 갈쓰가 머리를 써서 소송을 낸 사기꾼 어크맨을 속여먹는 부분은 좋았는데 후반부가 황당해서 점수를 다 깎아먹네요. 상상력은 기발한데...글쎄요, 저는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계산 착오"
완전 범죄를 노리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여성작가 캔디스 앨리엇의 작품으로 '현대 범죄에서 동기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거나 분석되지 않는다'는 뒷부분 작품 해설처럼 동기보다는 완전 범죄를 위한 주인공의 계획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나름 설득력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되네요.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 처럼 결국 완전 범죄는 실패로 돌아가는게 문제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다쟁이의 질투"
존 몰티머의 작품으로 원래는 TV용 시나리오였다고 합니다. 짧지만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긴박감있는 법정 장면까지 보여주는 알차고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호 수록작
"비상을 꿈꾸며"
클라크 하워드의 작품으로 악당 조직의 두목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인물을 없애기 위해 항공기 관제사 제드의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는 인질극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서스펜스와 스릴이 확실해서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전개는 대단하더군요. 허나 마지막이 너무 허무한 편이라 아쉽습니다. 단편의 한계였던 것일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번엔 진짜 실탄?"
윌리엄 뱅키어의 작품입니다. 30여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조 헉은 보험 사기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현재 도피중인 인물이라는 이야기로 두번의 반전이 돋보입니다. 충격적이거나 놀랍다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소품같은 느낌이 좋고,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악녀의 죽음"
피터 턴블의 드라마에 가까운 소품. 우연하게 순찰경관이 발견한 방치된 차에서 범죄가 드러나는 과정, 그리고 범인의 심리를 밝히는 결말부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평생동안의 기다림"
1호에도 실려있는 도날드 올슨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 EQMM과 인연이 깊나 보네요. 두명의 노파가 등장하여 갈등관계를 보여주다가 한 노파가 고향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한 내용인데 범죄와 드라마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깊이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보다는 드라마가 중시되는 현대 추리 단편의 좋은 예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페트라코브와 고릴라"
러시아에서 망명한 병리학자 일리아 페트라코브 시리즈로 벤 클라인의 작품입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 고릴라 우리에서 굉장한 힘으로 짓이겨져 타이어에 쑤셔넣어져 있는 시체로 발견되고 범인으로 의심받는 고릴라가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로 캐릭터 측면에서는 손다이크 박사가, 수사 측면에서는 CSI 느낌이 많이 나는 단편이었습니다. 괜찮긴한데 시리즈 캐릭터라는 병리학자 일리아의 매력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단점으로 보입니다.별점은 2.5점입니다.

"콜럼버스의 얼굴을 훔친 사나이"
에드워드 D 호크의 괴도 닉 벨벳 시리즈로 거대한 콜럼버스 동상의 11톤이나 되는 머리 부분만 훔쳐내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시리즈이긴하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이 잘 가지 않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와 시리즈 명성에 비하면 무척 실망스럽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밀을 털어 놓은 남자"
H.R.F 키팅의 인도 봄베이 경찰국의 가니쉬 고케 경감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시리즈라고 하는군요. 일종의 "윤회"를 테마로 하고 있는 지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단편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별로 눈여겨 볼 것은 없지만 문체와 전개방식이 독특해서 읽는 맛은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클레머티스의 향기"
미뇽 F 발라드의 작품으로 한 노처녀의 의문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통 추리에 가까운 작품으로 애거서 여사의 단편같은 느낌의, 영국 정통 추리물의 명맥을 잇는 듯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럼 비지니스"
마가렛 요크의 그랜트 교수가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 내용과 전개방식은 고전적이고 정통 추리물에 가까우나 사건의 해결 방식이 쉽게 납득 되지 않고 그다지 공정한 편은 아니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마약 밀매로 이야기가 급진전 되는 것도 문제있는 설정으로 보이네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2/09

타르트 타탱의 꿈 - 곤도 후미에 / 문기업 : 별점 2.5점

타르트 타탱의 꿈 - 6점
곤도 후미에 지음, RYO 그림, 문기업 옮김/영상출판미디어(주)

비스트로 "파 말"은 미후네 셰프와 요리사 시무라, 소믈리에 가네코 씨와 갸르송인 다카쓰키 도모유키 4명만으로 운영되는, 카운터 일곱 석, 테이블이 다섯 개 뿐인 상점가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 내 놓아 인기가 많은 가게.
이 곳에 온 손님들이 이런저런 경험담, 과거 일화를 이야기하면, 무뚝뚝한 미후네 셰프는 항상 그만의 추리로 손님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곤도 후미에의 프렌치 비스트로를 무대로 한 일상계 미스터리 연작 단편집입니다.

저자 곤도 후미에의 일상계는 이전에 "샤를로트의 우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딱히 좋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디테일한 묘사와 번득이는 재치는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프렌치 비스트로를 무대로 여러가지 요리들이 주요 소재라는 점에서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책을 쓴 작가라면 읽어봐야 할 것 같아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특정 가게의 주인이나 능력있는 종업원이 방문한 손님들의 수수께끼를 해결해 준다는 일상계 추리물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가게도 서점, 헌책방, 사진관, 중고매장이나 골동잡화점과 같이 다양하지요. 하지만 절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술집이나 음식점입니다. 화과자점니혼슈 바도 포함해서요. 아무래도 주인과 손님과의 대화가 다른 가게들보다는 더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음식보다는 손님이 가져온 수수께끼가 중심인 작품들이 많은데 반해, 이 작품은 프렌치 비스토로라는 장소와 요리의 특징을 살린 이야기가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몇몇 이야기는 아이디어도 돋보였고요.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좋은 수준이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 "파 말"의 손님들이 주인에게 고민거리를 이야기하지 못해 안달난 것 처럼 보이는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어요. 추리를 시작하기 전에 고민거리가 있는 손님들에게 셰프 특제 뱅쇼를 서비스하는 단계 역시 폼은 나지만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뻔한 캐릭터도 감점 요소에요.

그래도 이 정도면 다음 권도 찾아서 읽어볼 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가벼운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타르트 타탱의 꿈"

다카라즈카 연극 배우인 나쓰미, 아니 구시모토 씨가 니시다 씨와 결혼한 뒤 연기를 그만둔다고 하자, 그녀의 팬이었던 여자아이는 앙심을 품었다. 마침 약혼자 니시다 씨가 프랑스 요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자, 요리 학원에 다니던 여자 아이는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나쓰미가 만들었다고 하고 대접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나쓰미는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러나 이는 함정으로, 여자 아이는 니시다 몫의 전채 주키니와 게 갈레트에 날달걀 껍데기를 갈아 넣었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표제작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소재는 제목 그대로 타르트 타탱으로, 미후네 셰프는 배탈이 났다는 손님 니시다 씨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먹은 타르트 타탱이 이상하다는걸 간파하고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이상한건 오븐에서 구워지던 타르트 타탱의 캐러멜색이었지요.

그러나 추리와 전개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범인인 소녀를 바로 잡아온 것도 작위적이지만, 핵심 단서인 캐러멜리제 된 타르트 타탱이 오븐에서 보였던게 저는 그리 이상하다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니시다씨가 다 구워져서 먹기 직전인 상태를 봤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구시모토 씨가 향신료 강한 음식을 싫어한다는 복선이 등장하기는 하나, 니시다 씨와 확실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게 절대적이지 않았으리라는 점도 아쉬웠어요. 곧 결혼할 연인과 둘만 나누어 먹는 식사에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지나치게 프렌치 비스트로를 염두에 둔 작위적인 이야기입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로뇽 드 보의 결의"

편식이 심한 가스야 씨는 "파 말"의 골칫덩이 손님으로 항상 똑같은 미녀와 함께 찾아와 온갖 투정을 부려 셰프를 곤란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어느날 셰프가 만든 특선 요리에 감탄하고, 그 모습을 본 동행했던 미녀 오케타니 유리코는 따로 시간을 내어 미후네 셰프를 만나 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스야 씨와 불륜 관계인데, 아내와 맞서 싸울 용기를 얻었다고. 이유는 그의 아내 요리는 정말로 심각했고, 재료를 맛있게 하려는 고민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기에 유리코는 아내가 가스야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후네 셰프는 이를 반박하고, 얼마 뒤 사랑에 실패하여 찾아온 유리코에게 자신이 생각한 진상을 들려주는데...

가스야씨의 극단적인 편식부터가 작위적이지만, 가스야 씨가 맛없는 아내의 요리를 먹는게 사랑이라는 진상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랑한다면 영양소가 풍부한 맛있는 요리를 해 주면 되잖아요? 하다못해 먹을 수 있는 재료에서나마 많은 영양소를 얻었으면 하고 바랬다면 말이지요. 양파나 토란을 물에 담근다고 영양소가 유의미할 정도로 빠질 것 같지도 않고요. 게다가 불륜녀가 자신의 불륜과 결심을 비스트로 셰프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어떤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졸작으로 수록작 중 워스트입니다.

"갈레트 데 루아의 비밀"

크리스마스에 요리사 시무라의 부인인 샹송 가수 아사미의 공연이 취소되자 "파 말"의 셰프 미후네는 자신의 가게에서 공연할 것을 부탁했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영업 후 관계자들만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가졌다. 미후네 셰프가 신 메뉴로 개발한 갈레트 드 루아를 내 놓자, 아사미는 예전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에 있었던 미스터리를 풀어 놓는데...

오래전, 시무라가 만들었던 갈레트 데 루아 속 페브(도자기 인형)가 사라진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아사미를 마음에 들어했던 티에리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시무라가 페브가 자신이나 그녀에게 가도록 케이크를 구워냈고 자기가 당첨되자 몰래 먹어버렸다는게 진상입니다. 파티에 참석했던 파트리스, 파트리스의 여자 친구인 주디, 시무라에게 티에리가 페브 당첨 시 테이블 아래 쪽으로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지요. 당첨되면 그날의 왕이 될 수 있어서 티에리는 그 기회를 이용해 아사미와의 사랑을 성사시키려 했거든요.

그러나 유일한 단서는 갈레트 데 루아가 '못 생겼다'는 것 정도라서, 이걸로 추리를 이끌어내는건 과장이 심합니다. 또 페브가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아몬드 크림이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오븐의 쟁반을 기울여 놓아서) 조금 부풀어 있는 곳을 찾으면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이를 몸수색까지 감행한 모든 파티 참석자들이 무심히 넘겼다는 것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자기 인형'을 삼키는게 과연 가능했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파티와 특별한 케이크라는 주제는 좋고, 사랑 이야기에 해피 엔딩이기까지 하니 마음은 푸근해지네요. 젊은 청춘이라면 사랑을 위해서 도자기 인형정도 소화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최소한 전작들보다는 나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소 이라티를 둘러싼 불화"

와키타라는 손님이 이틀 연속 "파 말"을 찾아와서, 아내가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고 한탄했다. 이유를 물어보지만, 잼 한 통을 지인에게 준 것 밖에는 모르겠다는 와키타에게 미후네 셰프는 한 번 더 가게를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시 "파 말"을 찾은 와키타에게 바스크 지방의 요리들을 대접한 후, 마지막으로 프로마쥬 서비스 단계에서 하드 치즈 한 개만을 내어 놓았다. 그것은 바스크 지방의 양젖 치즈 브르비였다. 그리고 미후네 셰프는 브르비에 검은 체리 잼을 발라 먹는 방법을 알려주며, 와키타 씨의 부인이 가출한 이유를 알려주는데...

이전 부부가 가게를 방문했을 때, 부인의 말을 와키타 씨는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고 잼도 이전에 이야기했지만 와키타 씨가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추리의 전부입니다.

그래도 단지 잼 한 통을 선물한 것 때문이 아니라, 과거 와키타가 "파 말"에서 부인과 함께 있을 때 보였던 무관심을 토대로 부인이 실망하여 가출한 이유를 밝혀낸다는 전개는 나쁘지 않아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계속 누적된 불만이라는걸 효과적으로 전해주니까요. 잼을 곁들여 먹어야 맛있는 바스크 지방의 양젖 치즈 오소 이라티를 통해 이 과정을 드러내는 방식도 그럴듯했고요.

여러모로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라면 비스트로를 무대로 특정 요리가 활약하는 일상계 추리물로는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불가사의한 술주정뱅이"

젊은 화과자 가게 주인 하기노 씨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파 말"에서 식사를 즐겼다. 그러면서 그들은 학창 시절, 갑자원을 노리고 분투하던 야구부였는데 불미스러운 사고로 출장이 취소되었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말썽꾼이었던 2학년 '야마다'가 합숙소에서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신체 검사 및 소지품 검사, 출입 통제 및 감시로 술을 입수하기가 불가능했었는데 야마다가 술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방법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미후네 셰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틀 뒤 가게를 다시 방문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틀 뒤 세 명에게 미후네 셰프가 내어 놓은 것은 냉장고에 들어있던 수박이었다.

수박에 구멍을 뚫어 독주를 집어 넣은 뒤 밀봉하고, 이를 배달시켰다는게 진상으로 설득력있는 동기, 그리고 충분히 실현 가능한 트릭이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요리가 중요하게 활용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미후네 셰프가 이 트릭에서 영감을 얻어 '술주정뱅이 수박 프루트 샐러드'라는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기는 하지만, 정통 프렌치도 아닐 뿐더러, 딱히 새로운 요리로 보이지도 않으니까요. 오히려 하기노 씨가 만든다는 '매실주 수박이 들어간 미쓰마메' 가 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일상계 추리물로는 거의 완벽합니다. 이 단편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트릭다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별점은 3.5점입니다.

"텅빈 카슐레"

단골인 편집자 미키모토 씨가 유명 에세이스트 데라카도 고유키 씨와의 식사 예약을 하며, 거위 콩피로 만든 카슐레를 주문했다. 미후네 셰프는 데라카도 고유키 씨가 실연했던 과거를 그린 에세이 "최악의 카슐레"를 통해, 그녀가 맛 보았던 최악의 카슐레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식사 당일, 셰프는 요리와 함께 5년 전 그녀의 애인 앙리가 준비했던 거위 콩피 카슐레의 진상에 대해 알려준다. 

최악의 거위 콩피 요리는, 메인인 푸아그라를 빼 내고 남은 오리로 만든거라 맛이 없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앙리는 푸아그라를 이용하여 제대로 고유키 씨 생일을 축하해줄 생각이었던거죠. 우리나라 식이라면, 메인인 생선 요리를 준비할 때 딸려온 서더리로 먼저 매운탕을 끓여 내 놓았다는 식으로 변주할 수 있겠죠? 이렇게 특정 요리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으며, 이야기의 설득력도 높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손님이 고민거리를 자의적으로 털어놓는게 아니라, 고유키 씨의 기묘한 주문과 그 이유를 전해듣고 미후네 셰프가 그녀가 썼던 에세이를 읽어본 뒤 추리를 펼친다는 전개도 설득력있고요.

앙리가 무려 5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는건 인터넷과 SNS가 널리 활성화 된 작금의 상황에 잘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수록작 중 최고로 별점은 4점입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초콜릿"

"파 말"에 방문한 커플이 서로 싸우는 심각한 상황에서, 남자는 "파 말"에서 내 놓은 봉봉 오 쇼콜라가 맛없다고 지적했다. 쇼콜라는 외부에서 구입한 제품으로 실제로 맛이 변했던게 맞았기 때문에, 미후네 셰프는 남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차에 잡지 기사를 통해 그 남자가 최근 유명한 쇼콜라티에 쓰루오카 다다시라는걸 알게 되었다.

갸르송 다카쓰키 토모유키는 쓰루오카의 가게 "놈브르 프르미에"를 방문하여 셋트 메뉴를 구입해 오고, "파 말" 관계자 모두 맛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리플릿을 통해 특이한 사실을 알게 된다. 세트 메뉴의 구성이 2개, 3개, 5개, 7개......에서 41개로 불규칙한 숫자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었다. 요리사 시무라 씨는 이 숫자들이 소수라는걸 알아낸다. 그런데 왜 세트 메뉴를 소수로 구성했을까? 

쓰루오카와 싸우던 여자는 그의 동생으로, 암에 걸려 임종을 앞 둔 어머니 병문안을 오빠에게 부탁하고 있지만 거절당해서 울었던 겁니다. 그러나 쓰루오카가 불효막심해서 그런건 아닙니다. 어머니를 사랑한 탓에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던거죠. 이는 세트 메뉴 구성으로 밝혀집니다. 어머니가 쓰루오카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주고 딱 한 개만 남았을 때만 먹었다는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즉, 쓰루오카는 어머니가 어떻게 초콜릿을 나누어 주어도 꼭 먹을 수 있도록, 어떤 숫자로 나누어도 1이 남게끔 소수로 구성한 것입니다.

일단, 소수라는 숫자를 이런 이야기에 활용한건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여태까지 보았던 일상계와 수학 관련 아이디어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 세트 메뉴 구성이 어머니에 대한 쓰루오카의 애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건 대충 이해가 되지만, 정작 당장 병문안을 가지 않는걸 단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것이다'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건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한다면 중간 과정이야 어쨌건, 만사 젖혀두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야 맞는거잖아요?

한마디로 빼어난 아이디어를 이야기가 잘 받쳐주지는 못한 작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