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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1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구리하라 유이치로 / 문승준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6점
구리하라 유이치로 엮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제목 그대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저런 곡들에 대해 해설해 주는 책입니다.
몇 년 전 "애프터 다크"를 읽었을 때, 이런저런 곡들이 무척 많이 소개되어 리뷰에 따로 적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이런 책이 나올 정도로 다른 작품 역시 많은 곡들이 쓰였네요. 하긴,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제목부터가 비틀즈의 곡 제목일 정도이니 당연하겠지요? 책은 1960년대적 가치관 소멸을 상징한다는 1980년대 이후의 음악들 (주로 팝), 록, , 클래식, 재즈의 5가지 장르로 하루키 작품 속 곡들을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는 곡 역시 그리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짤막한 해설들이 꽤 재미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는 작품, 아는 곡의 경우는 더욱 반갑더군요.

특히 좋았던건, 곡이 특별한 '상징'이나 '메타포'로 사용된 경우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이었습니다. 냇 킹 콜이 불렀다는 'South of border'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노래 속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멕시코'가 실재하지 않듯이, 이 노래를 냇 킹 콜이 부른 버젼도 실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지만 이상하게 현실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판타지를 상징한다는데 이 정보를 알고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부분은 팝 보다는 클래식, 재즈 쪽 소개에 많은 편입니다. 클래식은 저자의 전공 분야인듯 싶고, 재즈는 하루키가 소싯적, 재즈 카페를 운영했을 정도의 재즈 매니아인 덕분이겠지요.

특히 클래식은 곡 마다의 소개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비교적 긴 편이며 내용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일례로, "태엽갑는 새" 1부의 부제인 "도둑까치"를 통해, 까치의 장난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마지막에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오페라 "도둑까치"와 작품의 내용이 연결되며, 각 부마다의 부제 모두 해당되는 오페라와 일맥상통한다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단지 곡 뿐만이 아니라, 누가 연주했는지에 따라 각 버젼별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디테일도 아주 좋았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속 호시노가 듣고 반한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제 7번 대공"은 야샤 하이페츠 등 '백만불 트리오' 세 명이 조화따위는 무시하고 제멋대로 연주하는 버젼인데, 오시마 씨가 좋아하는건 앙상블에 주축을 둔 수크 트리오의 잘 정돈된 연주라는게 대표적이지요. 정말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네요.

재즈의 경우는 곡 자체보다는 그 곡의 발표된 배경이나 연주자의 특징 등 좀 더 깊고 디테일한 정보를 작품과 엮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깊이가 느껴집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A gal in calico'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하지 않은 1950년대 (1955년) 앨범의 유명하지 않은 곡으로,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배경인 1970년대에서는 이미 잊혀진 앨범입니다. 때문에 이 앨범을 찾는 '나'의 모습은 '나'의 허영심과, 1970년대 은퇴 선언 후 칩거에 들어간 마일스 데이비스의 모습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대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정말 작가의 의도인건지, 꿈보다 해몽이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은 참 좋네요. 저도 음식과 추리 소설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런 내용을 많이 담고 싶었습니다.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 외에도, 하루키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이런저런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하루키 작품에서 유독 많이 등장했다는 보비 다린이라는 가수는, 이 책에서 소개한 가정사가 아주 놀라왔어요. 키워준 어머니가 사실은 외할머니이고, 누나가 친어머니였다는데, 하드보일드 막장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설정이지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등 그 자신의 인생도 파란만장해서, 이 책에서 소개된 대표곡 'Beyond the sea'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게 당연하다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듀란듀란과 보이 조지에 대한 신랄한 비평 - 특히 "댄스 댄스 댄스"에서 '끔찍하다'의 대명사처럼 인용되었다니 - 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밴드이고, 특히 컬쳐 클럽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는 많이 들었던 곡이었기 때문이거든요. 진짜 팝 애호가라면 좋아하기 힘든 곡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신랄한 평을 들어야 할 밴드는 아닐텐데, 조금 슬펐습니다.

아는 가수와 곡으로는 밥 딜런, 비치 보이스 소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밥 딜런이야 시대의 총아였으니 그렇다 쳐도, 비치 보이스는 좀 의외죠? 비치 보이스의 최고 명반인 'Pet sounds'의 일본 소개 당시 야마시타 타츠로가 라이너 노트를 썼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싶네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공통점이 느껴진다며 시작된 소개와 해설은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비치 보이스의 음악은 죽음, 상실과 연관되는 내용이 많다는데, 이는 밴드의 운명과 브라이언 윌슨의 생애와는 별로 관계없는 작가의 기호일 뿐이라 생각되니까요.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비치 보이스의 곡에 관련된 작품으로는 도리 미키의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단편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비치 보이스의 불운한 싱글인 'Child of winter'를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비치 보이스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계기로 대학교 동창과 썸을 타는 관계가 되는데, 그녀는 다른 친구의 연인이 됩니다. 그 뒤 졸업을 앞 둔 겨울 방학의 어느날, 그녀가 자취방에 찾아오지만 나는 그녀를 내쫓습니다. 오해받기 싫다는 이유로요. 떠나면서 그녀는 "비치 보이스는 별로 좋아한게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는, 83년도 단편입니다.

당연히 하루키 작품에 대한 소개, 평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이 멋지게 마무리된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사랑이 이루어졌는지, 아니 '나'의 미도리에 대한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를 애매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하루키 작품 속 이런저런 곡들을 100곡 채우겠다! 는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무리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보비 비의 'Rubber ball'에 대한 설명은 지나쳤어요. "1973"에서 이 노래가 1960년을 상징하는 것 처럼 - 1960년, 보비 비가 'Rubber ball'을 부른 해다' - 언급되지만, 1960년 최대의 히트곡은 다른 곡이라고 알려주죠. 이로써 객관적인 의미의 히트곡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적인 선곡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는 독자가 각자의 경험에 근거한 곡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여 공감의 회로가 발생한다는데, 설명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을 뿐더러, 이렇게 오타쿠, 매니아만 알 수 있는 기호가 어떻게 공감을 일으킨다는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배경 음악에 지나지 않는 곡에 대한 침소봉대식 소개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곡들은 그냥 제목, 아티스트만 소개하고 작품 소개 및 기타 주변적인 요소에 집중하는데 책의 취지에는 벗어나는 듯 하여 여러모로 별로였습니다. "춤추는 난쟁이" 속 프랭크 시나트라의 "Night and day'가 대표적이죠. 곡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도 없이 4줄 정도의 소개로 그치고, 나머지는 전부 작품에 대한 줄거리와 인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에서 나쁘지 않고,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설명도 적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절반 정도 됩니다. 설명도 곡의 장르에 따라 편차가 있는 편이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셔야 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애매한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곡들이 궁금해서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곡들의 연주자, 발표 버젼이 일치하는건 아닙니다만 대체로 비슷은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링크는 여기 입니다.

2015/06/30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 이영미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비채

무라카미 하루키가 온갖 곳에 발표했던 다양한 글을 - 심지어 수상 소감까지! - 모아놓은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잡문집이지요. 본인 스스로도 그닥 가치를 두지 않는 짤막한 요청 원고들에다가 어디에 발표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글들, 여러가지 모종의 이유로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이 대부분일 터인데 이런 글들을 모아놓은 책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다시금 탄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잡문이라도 워낙 글솜씨가 뛰어나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음악, 번역 등 특정 컨텐츠를 소개하는 글들은 인상적이기까지 했어요. 프로작가가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일종의 기준점이랄까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는 글을 읽으며 바로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 보고,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인터넷 서점 보관함에 바로 담아 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소갯글에서는 작품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일체 설명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피츠제럴드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멸망의 미학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해 지네요. 뒤에 서술한 "밤은 부드러워"는 정말이지 꼭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어떻게하면 이런 리뷰글을 쓸 수 있을지 정말로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꼭 읽어보게 만드는 리뷰를 저도 쓰고 싶네요.

또 읽다가 느낀 것인데 비유가 정말 뛰어납니다. 화려한 문체는 아니지만 비유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게 가장 쉽게 이해시킵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신체균형을 위해 바하의 인벤션을 쳤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요.

일종의 창작론이랄까, 글쓰기에 리듬이 중요하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해서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리듬과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즉 적확한 어휘의 배열, 그리고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인 하모니와 자유로이 솟구쳐오르는 이야기의 흐름을 타는 즉흥연주, 그리고 고양된 성취... 뭐 그러하답니다. 따라하기는 힘들겠지만요.

잡문이기에 모든 글들이 빼어나거나 재미있거나 인상적인건 아닙니다. 허나 리뷰, 소갯글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히 가치있는 독서였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10/21

해변의 카프카 상/하 - 무라카미 하루키 / 김춘미 : 별점 4점

해변의 카프카 -상 (양장본)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문학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죠. 1990년대 이후 하루키의 장편 소설을 완독한건 처음이네요. 1Q85는 2권까지는 읽었는데 완독에는 실패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상징과 은유, 그리고 정확하게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모호한 부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모험 소설같은 재미를 가져다 주는 덕분이지요.

많은 분들이 각자 다른 줄거리와 해석을 내 놓고 있는데, 저는 다른 분들처럼 이 책에 대해 저만의 해석을 내 놓을 정도로 깊이있게 읽지 못했기에 뭔가 설명드리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합니다. 따로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개인적인 기록 차원에서 제 해석과 상상의 결과물을 짤막하게 정리해봅니다.
제 생각에는 다무라 카프카는 사에키 씨의 첫사랑 그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죽은 뒤 사에키 씨는 소년의 환생(?)을 위해 문을 열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그 댓가(?)로 소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결국 둘이 다시 만났지만 다무라가 문 안 세계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사에키 씨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즉,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결말인 셈입니다. '문' 안의 세계에서 세상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문 안에서 통제할 수 있었던 나카타 노인을 이용하여 '문'을 열고 닫으며, 사에키 씨에게 끝맺음을 알리는 등의 과업을 시켰고요.

'문' 안에서의 의지는 누구의 것인지, '문' 안의 세계를 위협하는 '피리부는 남자'는 누구인지 등은 아직도 모르갰습니다. 다무라 카프카의 아버지인건 분명한데, 왜 '죠니 워커'가 되어서 나카타 노인에게 살해당하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거든요. 마지막에 문 안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던 괴이한 생명체와 같은 존재라면, '문' 밖으로 나와 사에키 씨를 만나 다무라를 낳았지만 '문' 안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상 노력해왔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같은 존재인 거지요. 차이라면 자식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이 되는게 아니라, 자식을 이용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려 했던 것 같고요. 이건 다 제 상상일 뿐입니다만.... 그래도 잘 모를 이야기를 이렇게 뭔가 있는 듯,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내는건 분명 놀라운 재능입니다. 감탄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은 읽다보면 별로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도 전부 '어떻게든 되겠지'하면서 일을 저지르고,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특히 호시노 군의 활약이 놀랍습니다. 양아치 출신 트럭 운전사였지만 나카타 노인과 함께 했던 짧은 모험을 통해 그는 인간적으로, 정서적으로 분명한 성장을 보여줍니다. 베토벤의 '대공 소나타'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식입니다.

다만 '사랑의 완성' 이라던가 '관계의 끝맺음'을 '섹스'라는 형태로만 풀어낸건 아쉬웠습니다. <<노르웨이의 숲>>도 그랬었지만, 이 작품은 어머니일 수 있는 사에키 씨와 다무라 카프카가 관계를 갖는 묘사가 등장하는 등 그 수준이 한층 더 과했습니다. 좀 변태적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제 딸에게 권해주지도 못하겠어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상 속 비일상적인 상황과 다무라 카프카, 나카타 노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엄청난 개성, 각 장면마다 빚어지는 상세한 묘사들은 대단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15/06/16

안자이 미즈마루 - 안자이 미즈마루 / 권남희 : 별점 4점

안자이 미즈마루 - 8점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씨네21북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한 책들로 잘 알려진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집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대표작은 물론, 그가 작업했던 만화와 캘리그래피(?), 그림책, 에세이까지 다양한 결과물들을 총 망라하여 소개해 줍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체를 좋아해서 구입하였는데, 기대에 충분히 값합니다. 특유의 자유분방하면서 대충 그린듯한 일러스트가 한가득 실려있기 때문이죠. 부제 그대로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인데 아.. 저는 이렇게 간단한 그림들이 너무 좋아요. 어떻게 보아도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라 그냥 조용히 보기만 해도 뿌둣해집니다. 단순히 년도별 대표작을 모아 놓은 것도 아니에요.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한 모든 작업들, 작가가 스스로 뽑은 베스트워크 30, 그가 그린 다양한 초상화들 등 주제별로 여러 작품들이 명확한 구분과 함께 정리되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인쇄의 질도 아주 훌륭한 편이고요. 책의 성격은 하나의 완성된 책보다는 도록에 가깝지만 그림만 보아도 좋다는 점에서는 아사오 하루밍의 "3시의 나"와 같은,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 외 짤막하게 실려있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글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없잖아 있습니다. 아니, 단점이라고 하기 보다는 안타까운 점들이죠. 첫번째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그가 작업했던 대표작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당연하겠지만 표지와 아주아주 약간의 내용만 소개될 뿐입니다. 그래서 내용도 궁금하고 꼭 읽어보고 싶은데 국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 이거 참 안타깝네요. 그리고 조금 조사해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안자이 미즈마루가 유명세를 얻게 된 작품이라고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중국행 슬로보트"의 일러스트가 국내판에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대체되어 있더라고요. 이렇게 국내 소개된 책이더라도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접하기는 또 어렵구나 싶은 것도 역시나 안타까운 일이죠. 덧붙이자면 그나마 소개된 책들도 디자인, 장정이 영 딴판이라 원본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것 같네요.

두번째는 한국어로 출판되면서 생긴 문제들입니다. 일본과의 제책방식의 차이 및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한 번역 내용이 그림 주변에 지저분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가독성 문제가 생긴 것, 그리고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같이 대충대충, 하지만 부드러운 손글씨를 활자로 내용을 읽어야 하는게 참으로 안타까왔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여러 에세이는 국내에 소개되기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안타까와요!

아울러 책의 비중이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컴비 작업에 많이 쏠려 있는 점, 별 관심없는 대담과 인터뷰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만스러웠습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글이 더 많았으면 하니까요. 물론 이 책이 안자이 미즈마루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추모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기에 주변인들의 회고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허나 안타까움과 불만은 사소할 뿐,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류의 성인을 위한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에요. 가격은 제법 되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한 만큼 저와 같은 취향의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은 바로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2015/06/24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 김난주 : 별점 2.5점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문학동네

얼마전 읽은 "안자이 미즈마루"를 통해 급 관심이 생겨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콤비의 에세이집.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들과 함께 두 페이지 남짓한 짤막한 에세이가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정성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은 역시나 최고였고, 별거 아닌 일상에서 재미와 독특함을 끌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기발랄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시절, 풍요롭고 여유로운 80년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I feel coke"와 같은 세련된 시티팝, 시티컬쳐 느낌이랄까요?

허나 두 콤비의 결과물이 모여 더 나아졌냐면 그건 아닙니다. 그림과 글이 하나로 묶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림과 글이 아예 구분되어 있거든요. 원래 잡지에 연재되었던 기획물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큰 판형에 이미지를 통으로 상단에 배치하고, 하단에 짤막한 글이 붙는 편집으로 구성되는 게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책 판형에 맞추느라 그림이 하나의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너무 크네요. 가로로 긴 그림이 양쪽 페이지로 나뉘어 가운데가 접혀버리는데 이거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도 있고 마음에도 들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의 화집으로는 앞서의 이유로 함량 미달임이기에 감점합니다.

2015/10/28

애프터 다크 - 무라카미 하루키 / 권영주 : 별점 2점

애프터 다크 - 4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한밤중 데니스에서 책을 읽던 아사이 마리는 밤샘 밴드 연습을 준비하는 다카하시라는 청년을 만났다. 그는 과거 언니 에리와 더블 데이트할 때 만났던 인물인데, 그를 통해 마리는 전 프로레슬러 가오루가 매니저로 있는 러브 호텔의 중국인 매춘부 폭행 사건을 도와주게 되었다. 중국인 매춘부를 폭행한 것은 프로그래머 시라카와로 그는 근처 사무실에서 새벽 근무 중이었다. 한편, 아사이 마리의 언니 아사이 에리는 2개월 동안 끝없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4년작. 장편이라고는 하는데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만 놓고 보면 중편이라고 해야겠지요. 길이도 적당하지만 읽기 편해서 집어들고 한번에 읽을 수 있었네요. 빼어난 세부 디테일 묘사와 청춘들의 잘 알 수 없는 고뇌에 대한 설득력 있는 묘사라는 장점도 여전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실험적인 묘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일종의 방백처럼 독자가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하고 설명하는 아시이 에리의 침실과 TV에 대한 묘사가 그러해요.

그러나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사여구로 치장하여 보기에는 풍성하지만, 결국 정리되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탓입니다. 에리의 잠은 깰 것인지, 마리와 다카하시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을 배경으로 눈 속에서 데아트를 할 것인지, 시라카와는 중국인 조직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등 뭐 하나 설명되는게 없어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정도면 열린 결말도 뭐도 아니고 작가의 직무 유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책 소갯글을 보면 어둠의 감촉, 고독의 질감을 담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만큼 이미지 묘사에 주력했을 뿐입니다. 이야기만 놓고보면 성공적인 결과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거면 마리와 다카하시의 청소년 이상 성인 미만 청춘의 하룻밤 만남 이야기를 깔끔하게 그리는 것이 훨씬 쉽고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가 스스로도 한밤중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있는 소녀에게 말을 거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구상했다는 말 그대로 말이죠. 섹스 없는, 그냥 이야기만 있지만 묘하게 감정을 사로잡는 그런 이야기로요.
특히나 "상실의 시대"(저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공중전화로 전화하는 마지막 묘사 스타일로 마지막 둘의 이별을 그렸으면 정말 좋았을 거에요. 과연 마리는 맛있는 계란말이를 먹으러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설레면서도 두근거리는 여운을 남기는 식으로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분위기 묘사는 최고지만 독자에게는 아주 불친절한 작품이었다 생각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전방위적인 호평이 쏟아진 작품이라고는 하는데, 저는 이해하기 쉽고 보다 친절한 작품이 좋습니다.

덧 1 : 도서출판 비채의 추리소설 레이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로 출간되었는데, 이게 추리소설이라는 의미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전혀 아닌데, 제 분류로는 "기타"입니다.

덧 2 : 매 장면마다 배경 음악이 소개되는 것이 특이한데, 잊기 전에 적어봅니다.

11:56 데니스

퍼시 페이스 고 어웨이 리틀걸

다카하시가 등장하여 파이브 스폿 애프터 다크 허밍

버트 배커랙 에이프릴 풀

12:25 데니스

마틴 데니 악단 모어

01:18. 작은 바

벤 웹스터 마이 아이디얼

듀크 엘링턴 소피스티케이티드 레이디

01:56 스카이락

펫 숍 보이스 젤러시

홀 앤 오츠 아이 캔트 고 포 댓

02:43 시라카와의 사무실

이보 포고렐리치 영국 모음곡

03:58 시라카와의 사무실

브라이언 아사와가 부르는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칸타타

집으로 가던 중 들른 세븐일레븐에서는 서던 올 스타스 신곡

04:52 연습실

소니 롤린스 소니문 포 투 (다카하시 밴드 연주)

05:10 세븐일레븐

스가 시카오 폭탄 주스

2007/01/29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은 이것!

포스팅꺼리가 없어서 요새 블로깅이 좀 시들했는데 밸리에서 괜찮은 주제를 보고 몇자 적게 되네요.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했던 책은 사실 없지만, 만약 있다면 성문 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이겠지만 (^^;) 그래도 아직도 기억에 남고 생각날때마다 인용하는 책은
  1. 김용 - 영웅문, 소오강호
  2. 무라카미 하루키 - 노르웨이의 숲
  3. 코넌 도일 - 홈즈 시리즈
입니다.

김용은 웅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하루키는 달콤하고 말랑말랑하면서 허무적인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도일의 홈즈는 추리라는 세계를 저에게 전해 준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게 김용 덕분에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도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져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 신경쓰지 않고 살게 되었고, 하루키 덕분에 대학 시절은 대충대충 술로 나날을 보내고 비슷한 일본 문학에 빠져 살았었고, 도일 덕분에 추리 소설 사는 취미가 생겨 버리더군요. 뭐 작가들이 전해주고 싶은건 이런건 아니었겠지만.

다른 분들은 어떤 책들에 영향을 받았을지 궁금하네요.

2015/11/05

더 스크랩 - 무라카미 하루키 / 권남희 : 별점 2.5점

더 스크랩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비채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국 잡지에서 읽은 인상적인 기사를 자신의 감상과 함께 소개하는 짤막한 칼럼 모음집입니다. 뒹굴거리며 잡지 페이지를 넘기다가, 재미있을 법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일본어로 정리하여 원고를 쓰면 끝이지요. 솔직히 말해 정말로 거저먹기였다... 라고 머릿말에 작가 스스로 밝힐 만큼 거저먹는 기획물입니다. 기획부터가 풍요의 80년대다와요.

그래도 글 자체는 꽤나 재미있습니다. 특유의 고즈넉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여전히 독자에게 푸근함과 편안함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단 몇 줄, 심지어는 딱 한 줄이라도 본인의 감상을 적는 것에서 촌철살인의 묘미가 살아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80년대를 추억하고 자극할 만한 내용들이 제법 있어서 반가왔습니다. 제가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80년대 키드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 광고까지 소개해주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의 기억 속 80년대는 본 조비, 안전지대가 동급이었던, 그리고 "오렌지로드"가 현역이었던 80년대 후반에 가깝지만 "록키 3", "쿠조", "소피의 선택", "크리스틴" 같은 영화들이라든가 카렌 카펜터와 말론 브란도, 마리웰 헤밍웨이, 레지 잭슨, 빌 머레이, 휴이 루이스,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같은 유명인들, 스타워즈의 츄바카와 스크래블 게임과 같은 당대의 아이콘 등 제 기억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들은 읽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뒤에 실려 있는 도쿄 디즈니랜드가 오픈했을 때 방문했던 탐방기나 올림픽과 전혀 상관없는 올림픽 일기는 완전 부록, 사족 느낌이기는 하나 재미만큼은 충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돈 주고 구입해서 읽기에는 아깝지만 잡지에서 한 꼭지 읽기에는 그야말로 차고 넘치는 재미있는 글 모음집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콘셉트에 제대로 부합하는 글들이랄까요? 쉽게, 짤막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로 저와 같이 80년대를 추억하실 수 있는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05/03/06

제 5 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 커트 보네거트 / 박웅희 : 별점 4점

제5도살장 - 8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주인공 빌리는 검안사로 성공하여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퇴원한 날 부터 자신이 예전 딸의 결혼식 날 머나먼 "트라팔마도어"행성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다니게 된다. 빌리는 "트라팔마도어"로 납치된 이후 유럽의 전장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초월적인 경험을 한다.

제목의 "제 5 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 당시의 미군 포로 수용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부제인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요.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장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SF나 반전소설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직접 경험했다는 2차 대전에서의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일화를 단순히 담아낸게 아니라 빌리라는 존재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닮아 있지만 결정적 파국, 즉 종말은 피할 수 없다는 종말론적 사고방식은 또한 기독교의 그것인데도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극중 주인공 빌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공 초월에 대한 소설적 접근은 엄청나게 새로우면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또한 재미도 있습니다. 짤막한 단상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소설을 이루는데 그 단상들의 등장인물들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사건들도 다양함에도, 또한 시간과 공간이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소설로 성립되는데 재미까지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정의!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에 대한 해답. 즉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지만 실은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하라"라고 가르친다라는 부분은 너무나 멋집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종말은 피할 수 없으니 가장 즐거운 시간을 즐겨라"라는 사고방식도 왠지 공감이 가네요. 채근담이었나요? 흡사 군대 훈련소 시절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 왠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긴, 이 책은 군대소설이기도 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명성에 충분히 어울리는 좋은 작품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 작가 어쩌구 하는 선전문구가 꼭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나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표현했던 "중간의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멋진 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정말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영화화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뒷 해설에 나오는데,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하네요.

2010/02/28

황금을 안고 튀어라 - 다카무라 가오루 / 권일영 : 별점 2.5점

황금을 안고 튀어라 - 6점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권일영 옮김/노블마인

대학때부터의 친구인 기타가와와 고다는 오사카의 스미타은행 본점 지하에 잠들어 있는 금괴 6톤을 훔치기를 결의한다. 금괴강탈 작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기타가와는 대기업 빌딩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컴퓨터 유지보수 업체 직원 노다를 끌어들이고, 고다는 폭탄 제조 전문가 모모를 설득해 팀에 합류시킨다. 작전에 꼭 필요한 엘리베이터 조작을 위하여 엘리베이터 서비스 회사에 다니는 '영감'에게 침투에 대한 조언을 받기로 하고, 우연찮게 작전 계획을 엿들은 기타가와의 동생 하루키도 합류하면서 총 여섯명의 금괴탈취작전 팀이 완성된다...

"마크스의 산""석양에 빛나는 감"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다카무라 가오루의 데뷰작입니다. 정통 미스터리는 아니라고 알고 있어서 크게 관심은 없었는데, 알라딘 할인행사에 혹해서 구입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은행 지하에 보관된 금괴를 강탈한다는 계획 자체는 스케일도 크고,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이 잘 살아있긴 합니다. 그러나 금괴 강탈 이외의 곁가지 묘사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예를 들면 금괴 강탈 작전과는 별개로 북조선 공작원인 모모와 그를 노리는 좌익집단 - 일본 공안 - 북조선 / 남한 정보국의 암투가 벌어진다던가, 일당의 리더격인 기타가와와 그의 동생 하루키가 작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폭주족과의 싸움에 말려든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이런 거창한 범죄를 계획하는 놈들이 뭐 이렇게 트러블이 많은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주인공 고다와 모모간의 우정을 뛰어넘은(?) 묘한 분위기, 고다의 과거사 같은 묘사 역시 불필요했습니다. 이런 세세하면서도 불필요한 이야기를 다 들어내고, 금괴 강탈 작전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는 것이 더 나았을 겁니다.
또한 1990년에 이미 월급을 60만엔 받는 성공한 직장인과 엘리트 회사원이 왜 살인까지 저질러가며 금괴 강탈이라는 무모한 작전을 같이 실행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도 전무하고, 사건을 전개하는 과정도 빈틈이 너무나 많이 보입니다. 이 문제는 데뷰작이라 이것저것 쓰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만, 지나친 것 역시 부족한 것 못지않게 작품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걸 다시금 느끼게 해 주네요.

그래도 본격적인 금괴강탈 작전에 대한 약 150페이지 분량 만큼은 정말 재미있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현대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계획과 실제 실행 단계에서 분초를 다투는 긴박함이 잘 살아있는 전개는 정말이지 인상적이었어요. 앞서 언급한 불필요한 분량을 줄이고 압축했더라면, 그리고 설득력있고 깔끔한 악당들의 성공적인 범죄극으로 창작되었더라면 데뷰작으로 전설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물론 작가 스스로는 이미 전설이 되긴 했지만...

2020/11/21

편지 - 히가시노 게이고 / 권일영 : 별점 1.5점

편지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다케시마 츠요시는 빈집 털이에 나섰다. 동생 나오키를 대학교에 보내려는 의도였었다. 그러나 집 주인을 만나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뒤, 체포된 츠요시는 15년 형을 선고 받고 수감되었고, 동생 나오키는 대학에 대한 꿈을 접은 채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급급한 삶을 이어 나가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입니다. 추리 소설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살인 강도라는 중범죄가 초반에 자세히 서술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 뒤에는 별다른 사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오키가 흉악범 가족으로 불행한 (?) 삶을 사는 과정을 그린 인간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알라딘에도 추리 소설로 분류되어 있어서 완전히 낚였네요. 솔직히 이런 장르인줄 알았다면 읽어보지 않았을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이 아닌 작품은 몇 편 읽어보았지만, 대체로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고 지루했었으니까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류라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뻔한 이야기가 이어질 뿐이거든요. 흉악범인 형 때문에 가수가 되는 꿈, 사랑하는 여자를 모두 놓치는 과정은 그만큼 진부했습니다. 나오키가 보컬로 밴드 스페시움에 합류하고, 밴드가 성장하는 과정 모두 그러합니다.
작품을 끌어가는 주인공 나오키도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짜증나는 스타일이에요. 결단력이 있어 보이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항상 유유부단하기 때문입니다. 형 때문에 피해를 보면서 살아왔다고 하면 진작에 손절했어야 하고,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면 진작에 면회라도 갔었어야죠. 나오키는 끝까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행동만 반복할 뿐입니다. 노래에도 재능이 있고, 외모도 평균 이상이라는 설정이 있는데 이는 잘 활용되지도 못합니다. 솔직히 이 설정은 왜 나오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나오키의 청춘은 버블 시기 대학생들의 청춘과 고민, 그리고. 사랑과 방황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웬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와 유사한 느낌을 전해 주는데, 무언가 독특하고 새로운, 세련된 맛을 풍겼던 하루키와는 다르게 뻔한 묘사만 가득했습니다. 전개도 그닥입니다. 심포 유이치의 "추신"처럼 '편지'를 잘 활용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핵심 설정도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츠요시가 저지른 범죄는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돈을 훔치려다가 무고한 노인을 죽인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집안 환경이 아무리 어려웠다고 한들, 목적이 동생을 대학에 보내려는 선한 의도였다고 한들 그 죄가 변할건 없습니다. 그래서 나오키가 불쌍하다! 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죗값의 하나로 당연히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작중에 나오는 말 그대로 "자신이 죄를 지으면 가족도 고통을 받게 된다는 걸 모든 범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인 거지요. 또 형이 살인 강도라 하더라도, 그게 대학 진학이나 직장을 구하는데 문제될건 없습니다. 연예인 활동은 조금 어려웠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지는 직업이 아니라면 뭘 해도 크게 상관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우연한 사고로 형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에는 취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요. 그래서 나오키가 필요 이상으로 형을 의식하고, 피해 의식에 시달리는건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울러 형의 존재가 드러나는 장면들은 모두가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웠어요.

자기 딸마저 따돌림당해서 아예 형을 인생에서 지워버릴 결심을 한다는 마지막도 영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동기는 알겠지만 구태여 이제 와서?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회사를 옮기고 이사를 하면, 형의 존재는 주위로부터 쉽게 감출 수 있어요. 직접 선을 그을 필요는 없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위문 공연으로 형을 찾는다는 결말은 정말 난데 없더군요. '이래도 안 울거야?'라며 독자를 마지막에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트리겠다!는 억지 의도가 훤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항상 최루성 신파를 막판에 넣곤 하는 한국 영화의 병폐와 별다를게 없는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물이 아니라서 실망이 컸던 탓도 있지만, 여러모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네요.

2005/06/24

제 6계명 - 로렌스 샌더스 : 별점 3.5점

제6계명 1 로렌스 샌더스/고려원(고려원미디어)

빙햄 투자기관의 조사원 샘 토드는 손데커 박사라는 인물이 백만불의 후원금을 얻기 위해 신청한 연구의 조사를 위해 오지와 같은 시골마을 코번으로 떠난다. 손데커 박사는 그가 운영하는 요양기관과 연구소만이 마을을 먹여살리다시피 하는 탓에 쇠락해 가는 코번 마을을 그나마 지탱하는 유일한 인물로 남다른 카리스마와 설득력을 지닌 천재였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토드는 그가 하는 연구는 세포의 노화를 유발하는 X라는 요소를 배재하여 인간을 불멸, 불사의 존재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토드는 요양소에서 불분명하게 사망한 인물들이 여럿 있다는 것과 요양소에서 일하던 노인이 어느날 알 수 없이 실종되었다는 사실 등 손데커 박사의 매력 뒤에 감추어진 수수께끼와 같은 여러 사건을 접한 뒤 박사와 그의 연구에 대한 의심이 깊어 가는데....


로렌스 센더스의 유명한 작품 "제 6계명" -살인하지 말라- 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전에 이미 "앤더슨의 테이프"와 "피터 S의 유혹"이라는 작품 2개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특히 "피터 S의 유혹이)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고 시드니 셀던과 비슷한 통속소설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그래서인지 유명한 작품이고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헌책방 쇼핑 도중 충동적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물건이네요!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어서 한번에 쭉 읽어버리고 말았어요.

먼저 시니컬하면서도 냉정한 판단력의 주인공이 주로 탐문과 조사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과거 전성기 시절의 하드보일드 공식에 충실한 묵직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추리적인 부분과 스타일까지도 거의 유사하더군요. 그러나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기존 하드보일드의 사립 탐정이나 형사와 다른 다른 특이한 직업의 탐정이 주인공일 뿐더러 의학 스릴러라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가 더해져서 현대적이고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그리고 하드보일드 분위기의 작품치고는 그다지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원래대로의 공식이라면 중요 증인들이 중간중간 계속 죽어나가면서 이야기가 연결되겠지만 이 작품은 중요 증인 한명을 제외한다면 마지막 부분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짐과 동시에 주범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한번에 죽어버린다는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내용 전개도 보다 깔끔하게 느껴졌어요.

미친 과학자가 불멸, 불사의 존재를 연구하다가 파국을 맞는다는 전형적인 줄거리 역시 나름의 과학적, 의학적 설득력을 지니는 요소들을 첨가하고 있어서 좋았는데 특히 미지의 세포 조직인 "X"라는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과정과 그 결과물은 나름 쇼킹합니다. 아주 옛날에 읽었었던 "엔젤딕"이라는 이현세 만화의 "미완의 변태"편의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이현세씨가 이 작품을 읽고 모티브를 얻었으리라는 강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복잡한 인간관계를 묘사함으로써 (물론 이러한 사소하고 큰 상관없은 인물들의 캐릭터 묘사가 재미있어서 그다지 늘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만) 소설이 필요이상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는 하며 제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성적 묘사가 제법 등장한다는 것은 좀 아쉽네요. 뭐 그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요.

어쨌건 결론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습니다. 로렌스 센더스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전에 읽었던 작품들만 보더라도 실망스러운 부분은 많지만 그래도 "글재주는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 작품은 전작들의 아쉬운 부분을 거진 걷어내고 재미까지 덧붙여졌을 때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네요. 그야말로 포텐터진 유망주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또다른 걸작 시리즈라는 "대죄" 시리즈도 한번 구해봐야겠습니다.

PS : 저는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이 애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에서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엔딩과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연상이네요...^^

2013/10/01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 공유드립니다.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다운 이벤트군요. 아이디어가 참 괜찮은 것 같아 공유드립니다.
이벤트에 포함된 절판도서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적색은 저도 소장한 작품들입니다)

정말 희귀한 작품도 있지만 고려원과 해문쪽 추리걸작선은 아직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증명 시리즈나 스카페타 시리즈같이 재간된 책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 <비밀일기>와 같이 전체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추첨에 참여해도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아보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제가 앞으로 출판사를 하게 된다면 꼭 따라해보고 싶은 이벤트네요. 저만의 절판본 리스트라도 만들어서 한번 관리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탐나는 작품은 아서 클라크의 "환상특급"과 P.D 제임스 시리즈이며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르라면 "챔피언 시저의 죽음"과 "레이디킬러"를 꼽겠습니다.

  • 챔피언 시저의 죽음/ 렉스 스타우트/ 이춘열 옮김/ 시공사/ 1995.
  •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2004.
  • 낙원의 샘/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9.
  • 순간의 적/ 로스 맥도널드/ 김연남 옮김/ 홍원/ 1994.
  • 코스믹 러브/ 로저 젤라즈니 외/ 박상준 엮음/ 사울창작/ 1994.
  • 열흘간의 불가사의/ 엘러리 퀸/ 유명우 옮김/ 1994.
  • 앰버 연대기(1, 2, 3, 4, 5)/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예문/ 1999.
  • 에드가상수상작품집Ⅱ/ 엘러리 퀸 외/ 정태원 옮김/ 명지사/ 1998.
  • 두동강이 난 남과여/ 히가시노 게이고 외/ 봉성기획/ 1999.
  • 세계 심령 미스터리 사이키/ 로버트 실버버그 외/ 박상준 역음/ 서울창작/ 1994.
  • 숏컷/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집사재/ 1996.
  •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 하라 료 외/ 추리작가협회/ 고려원미디어/ 1993.
  • 환상특급/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4.
  • 디바/ 델라코르타/ 안선덕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스노우 크래쉬(1, 2) 닐 스티븐슨/ 김장환 옮김/ 새와물고기/1996.
  • 플레치/ 그레고리 맥도널드/ 정철호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어서 지킨 약속/ 러브 크래프트 외/ 한경희 편역/ 문학사/ 1994.
  • 인형의 눈(상, 하)/ 베리 우드/ 정영목 옮김/ 동아출판사/ 1994.
  • 천재들의 게임/ F. 폴 윌슨/ 고영휘 옮김/ 십일월출판사/ 1994.
  • 히치콕 서스펜스 걸작선/ 엘리너 설리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4.
  • 결혼해 주세요/ 존 업다이크/ 폴임 옮김/ 밝은세상/ 1993.
  • 죽음의 열립방정식/ 모리무라 세이치/ 정성호 옮김/ 모음사/ 1984.
  • 남아 있는 모든 것/ 패트리샤 콘웰/ 이정환 옮김/ 시공사/ 1994.
  • 두 얼굴의 여자/ 수 크라프튼/ 나채성 옮김/ 큰나무/ 1994.
  • 잔혹한 사랑/ 패트리샤 콘웰/ 정한솔 옮김/ 시공사/ 1993.
  • 검은 휘파람/ 로버트 러들럼/ 홍석연 옮김/ 문지사/ 1998.
  • 호텔 Q의 25시/ 모리무라 세이치/ 정태원 옮김/ 글사랑/ 1995.
  •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정성호 옮김/ 한겨레/ 2001.
  • 강철군화/ 잭 런던/ 차미례 옮김/ 1989.
  • 영원의 아이(상중하)/ 덴도 아라타/ 김난주 옮김/1999.
  • 샤바케/ 하타케나카 메구미/ 김소연 옮김/ 2005.
  • 인간 쓰레기/ 아이작 싱어/ 박원현 옮김/ 고려원/ 1992.
  • 인생을 훔친 여자/ 미야베 미유키/ 박영난 옮김/ 2000.
  • 재앙의 거리/ 엘러리 퀸/ 정태원 옮김/ 1994.
  • 호러 사일런스/ J. G. 발라드 외/ 김성화 옮김/ 1994.
  • 악마 다리/ 코난 도일/ 조용만 옮김/ 학원출판공사/ 1993.
  • 금요일 옷 벗는 도둑/ 마쓰모토 세이초 외/ 정태원 옮김/ 비전/ 1994.
  • 중국 오렌지의 비밀/ 엘러리 퀸/ 이원두 옮김/ 시공사/ 1994.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4.
  • 스나크 사냥/ 루이스 캐럴/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7.
  • 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6.
  • 비밀일기/ 스우 타운센드/ 배현나 옮김/ 김영사/ 1986.
  • 야수는 죽어야 한다/ 오오야부 하루히코/ 박영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비밀의 문/ 김내성/ 명지사/ 1994.
  • 트리스트란과 별공주 이베인/ 닐 게이먼/ 김명렬 옮김/ 2000.
  •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마루야마 겐지/ 김춘미 옮김/ 하늘연못/ 200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북스피어/ 2008.
  • 유년기의 끝/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2001.
  • 유령의 집/ 헨리 제임스/ 이채윤 옮김/ 데미안/ 2003.
  •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서 클라크/ 김종원 옮김/ 한양출판/ 1994.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로버트 하인라인/ 임창성 옮김/ 잎새/ 1992.
  • 울게 될 거야/ 야마모토 후미오/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8.
  • 야수들의 밤/ 오시이 마모루/ 황상훈 옮김/ 황금가지/ 2002.
  • 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스즈키 코지/ 윤덕주 옮김/ 씨엔씨미디어/ 1999.
  • 맥널리의 모험/ 로렌스 샌더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 1993.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리더스 다이제스트 걸작추리모음 3/ 존딕슨카 외/ 동아출판사/ 1993.
  • 사이코/ 딘 쿤츠/ 신영희 옮김/ 한뜻/ 1997.
  • 발렌타인의 유산/ 스탠리 엘린/ 고경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태양의 유산(1, 2)/ 아사다 지로/ 한은미 옮김/ 시아/ 2000.
  •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1, 2)/ 마루야마 겐지/ 박은주 옮김/ 책세상/ 2000.
  • A2Z/ 야마다 에이미/ 이유정 옮김/ 태동 출판사/ 2004.
  • 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이주혜 옮김/ 이레/ 2009.
  • 프로페셔널 킬러/ 토마스 페리/ 최인석 옮김/ 모음사/ 1984.
  • 미드나이트 시즌/ 스티븐 킹/ 공경희 옮김/ 대산/ 1999.
  • 나를 기억하라/ 메리 히긴스 클라크/ 임지현 옮김/ 문학사상사/ 1995.`
  • 흔적/ 패트리샤 콘웰/ 조성은 옮김/ 시공사/ 1996.
  • 마지막 대본/ 미키 스필레인/ 정다빈 옮김/ 홍원/ 1993.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김훈/ 문학동네/ 1995.
  • 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홍은주 옮김/ 북하우드/ 2006.
  • 메두사/ 이노우에 유케히토/ 송영인 옮김/ 시공사/ 1998.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문학동네/ 2001.
  • 플레이보이 SF걸작선[1]/ 필립 K. 딕 외/ 황금가지/ 2003.
  • 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 최승자 옮김/ 도서출판 민/ 1995.
  • 무서운 사람들/ 얼 스탠리 가드너/ 강성열 옮김/ 세진출판사/ 1991.
  • 파프리카/ 쓰쓰이 야스타카/ 최경희 옮김/ 영림카디털/ 1994.
  • 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정탄 옮김/ 끌림/ 2008.
  • 고독의 노랫소리/ 덴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5.
  • 소돔의 성자/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3.
  • 아이스바운드/ 딘 쿤츠/ 안정희 옮김/ 한뜻/ 1996.
  • 불야성/ 하세 세이슈/ 김은아 옮김/ 대원/ 1999.
  • 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이승진 옮김/ 향연/ 2004.
  • 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송경아 옮김/ 웅진/ 2007.
  • 어둠(1, 2)/ 제임스 허버트/ 김석희 옮김/ 정신세계사/ 1995.
  • 아웃(1, 2, 3)/ 기리노 나쓰오/ 홍영의 옮김/ 다리미디어/ 1999.
  • 대망(1~10)/ 야마오카 소하치/ 박재희 옮김/ 동서문화사/ 1975.
  • 속삭이는 사람들/ 마가리트 밀러/ 현재훈 옮김/해문/1983.
  • 디미트리오스의 관/ 에릭 앰블러/ 이가형 옮김/ 해문/1986.
  • 판사와 형리/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1988.
  • 부머랭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신용태 옮김/ 해문/ 1988.
  • 서재의 시체/ 애거서 크리스티/ 설영환 옮김/ 해문/ 1989.
  • 연성결(상,하)/ 김용/ 박영창 옮김/ 중원문화사/ 1989.
  •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 애거서 크리스티/ 김석환 옮김/ 해문/ 1989.
  • 중국 황금 살인 사건/ 로베르트 반 훌릭/ 이동진 옮김/ 삼신각/ 1990.
  • 내가 죽인 소녀/ 료 하라/ 박영 옮김/ 청림출판/ 1990.
  • 녹정기(1~11)/ 김용/ 박영창 옮김/중원문화사/1990.
  • 부자연스러운 주검/ P. D. 제임스/ 차근호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1.
  • 피부 밑의 두개골(1,2)/ P. D. 제임스/ 이명성 옮김/ 일시서적출판사/ 1992.
  •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찌/ 이원두 옮김/ 한길사/ 1991.
  • 제3의 사나이/ 그레엄 그린/ 안흥규 옮김/ 문예출판사/ 1991.
  •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 P. D. 제임스/ 박종원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타인의 목/ 조르쥬 심농/ 김수연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열쇠 없는 집/ 얼 비거스/ 유명우 옮김/ 한길사/ 1992.
  • 타이태닉 호의 음모/ 도널드 A. 스탠우드/ 이인복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은 자와의 결혼/ 윌리엄 아이리시/ 김석환 옮김/ 해문출판사/ 1992.
  • 미드나이트/ 딘 R. 쿤츠/ 조석진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벌거벗은 얼굴/ 시드니 셀던/ 한번웅 옮김/ 신원문화사/ 1993.
  • 컴퓨터의 몸값/ 미요시 도오루/ 권자인 옮김/ 수목출판사/ 1993.
  • 마지막 모험/ 엘모어 레오나드/ 김명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한국 서스펜스 걸작선/ 이상우 외/ 고려원미디어/ 1993.
  • 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K. 르귄/ 윤소영 옮김/ 웅진출판/ 1993.
  • 여형사 K/ 수 그라프톤/ 정한솔 옮김/ 큰나무/ 1994.
  • 쇠못 세 개의 비밀/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4.
  • 경마장의 비밀/ 딕 프랜시스/ 이종인 옮김/ 고려원미디어/1994.
  • 레이디 킬러/ 도가와 마사꼬/ 김갑수 옮김/ 추리문학사/ 1994.
  •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미스터리 걸작선 추리특급/ 엘러리 퀸 엮음/ 정성호 옮김/ 제삼기획/ 1994.
  • 종소리를 삼킨 여자/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5.
  • SF 시네피아/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5.
  • 죽음의 편지/ 보브 랜들/ 김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6.
  • 유니스의 비밀/ 루스 렌들/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카인의 아들/ 패트리샤 콘웰/ 이창식 옮김/ 시공사/ 1996.
  • 시귀(1,2,3)/ 오노 후유미/ 임희선 옮김/ 들녘/ 1999.
  • 자본론 범죄/ 칼 마르크스/ 이승은 옮김/ 생각의나무/ 2004.
  • 월간 판타스틱 2008/08 Vol.18/ 페이퍼하우스/ 2008.
  •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박유하 옮김/ 고려원/ 2000.
  • 위대한 세월/ 오에 겐자부로/ 김난주 옮김/ 고려원/ 1995.
  • 핀치러너 조서/ 오에 겐자부로/ 허호 옮김/ 고려원/ 1996.
  • 펠리컨브리프/ 존 그리샴/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4.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정계춘 옮김/ 자유문학사/ 1993.
  • 마지막 파티/ 윌리엄 캐츠/ 정태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복수법정/ 헨리 덴커/ 이상곤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아이라 레빈/ 이일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죽음의 세레나데/ 유우제/ 고려원미디어/ 1994.
  • 맨해턴 특급을 찾아라/ 클라이브 커슬러/ 이원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독수리는 날아오르다/ 잭 히긴스/ 박주동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라마(6,7)/ 아서 클라크 & 젠트리 리/ 안정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4.
  • 맥널리의 행운/ 로렌스 샌더스/ 이순주 옮김/ 고려원/ 1992.
  • 맥널리의 비밀/ 로렌스 샌더스/ 이일수 옮김/ 고려원/ 1992.
  • 어둠을 울리는 우울한 종소리/앤드루 박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석양에 빛나는 감(1,2)/ 다카무라 가오루/ 홍영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5.
  • 무죄추정/ 스코트 터로우/ 최승자 옮김/ 대흥/ 1991.
  • 내가 심판한다/ 미키 스필레인/ 황해선 옮김/ 해문/ 1990
  • 거짓 예언자/ 숀 플레네리/ 김갑수 옮김/ 남도/ 1989.
  • 가족사냥/ 텐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3.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메인 스트리트/ 트리베니안/ 정태원 옮김/ 진음/ 1994.
  • 트럼프 살인사건/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시공사/ 1995.
  • 어둠의 목소리, 사나이의 목/ 이든 필포츠/ 조르주 심농/ 이가형 옮김/ 하서/ 1981.
  • 두 아내를 가진 남자/ 패트릭 퀜틴/ 심상곤 옮김/ 해문/ 1990.

2015/05/18

어이없게도 국수 - 강종희 : 별점 2점

어이없게도 국수 - 4점
강종희 지음/비아북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임원까지 될 정도로 잘나가는 워킹맘이었다가 집에 눌러 앉은 저자가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국수들에 대해 한토막씩 써 내려간 음식 관련 수필집.

요리사도 아니고 음식 전문가도 아닌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국수별로 짤막하게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라던가 관련된 자신만의 일화를 써 내려간 글들이에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음식 관련 내용 대신에 조경규 일화가 중심인 만화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의 국수 삽화도 조경규씨가 그렸네요. 인연이라면 인연이랄까. 몇몇 글들은 - 대표적으로는 짜장면, 구포 국수, 니신 소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관련된 시까지 인용하는 등 관련된 설명도 충실한데, 비중으로 따지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과 국수를 엮은 구성이나 저자의 글솜씨가 나쁘지는 않아 재미있게 읽히며, 무엇보다도 누구나 떠올릴법한 평범한 국수들이기에 해당 국수에 대해 저만의 경험과 추억 등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 아주 좋았어요. 마침 생각나는대로 저만의 국수 일대기를 몇개 적어본다면,

  1. 시원한 국물하면 - 안양 관양동 바지락 칼국수.
  2. 더운 여름은 냉면이 최고지. 딸아이가 좋아하는 - 산본 투데이몰 지하 "후원" 물냉면과 육수.
  3. 아버지 학생 시절부터도 유명했다는, 하지만 별 맛은 없더라 - 부산 보수동 완탕.
  4. 밤에 아내와 야식으로 먹는 시원한 국물에 계란 하나 깨넣은 라면.
  5. 아내가 딸아이를 위해 만드는 -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6. 돈내고 먹는거보다 뛰어난, 회사 식당 진리 메뉴 - 해장에는 얼큰 백짬뽕.
  7. 예전 회사 앞 중국집에서 점심마다 먹었더랬지 - 사천탕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꽤 재미난 주제이니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 봐야겠군요.

그런데 그냥 바쁜 직장 생활 관련 이야기라면 모를까, 어린 시절이나 특정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같이 작가의 개인적인 일화들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워킹맘의 비애가 저한테 와 닿을리 없는건 당연하지요. 직장 생활 이야기도 잡지사 기자나 마케터라는 전문성이 필요한 특이한 업종에서 근무했던 탓에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없었고요.

또 국수들에 대해 설명들도 거의 대부분이 유명 서적에 의존하고 있어서 새롭거나 인상적이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진주냉면 이야기처럼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낸 정보나, 접해보지 못한 서적을 바탕으로 한 글들도 몇편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도 본인 경험 위주의 일기, 신변잡기류의 글들이라서 저자의 명성이나 경력에 많이 기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불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제가 굴짬뽕을 먹은 경험에 대한 수필을 각각 썼을 때 일반 대중 독자들이 어떤 글을 선택할지도 자명하잖아요? 글의 수준이나 완성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빼어난 글로 보이지도 않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벼운 읽을거리, 소일거리로 본다면 괜찮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수 관련, 아니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 같은 다른 음식 관련 수필과 비교해 볼 때 국수 관련 컨텐츠면 무엇이든 찾아보는 매니아가 아니라면 구태여 선택할만한 가치나 재미는 없습니다.

덧 : "구포 국수"가 정말 맛있다고 소개되고 있더군요! 아버님 고향이자 현재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신 곳인데 전혀 몰랐네요. 다음에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 겠습니다.

2015/12/20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수십 년 전, 80년대 초반 고민 상담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빈집이 된 지 오래인 나미야 잡화점에 3인조 빈집털이들이 숨어들었다. 그런데 잡화점에 고민 상담을 위한 편지가 들어왔다. 상담에 응하게 된 3인조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현재의 나미야 잡화점이 1980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일상계 판타지 연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로 알고 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재미있더군요. 3인조 어설픈 빈집털이범들이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숨어든 잡화점에서 고민 상담글을 받은 뒤, 그 공간이 30여 년 전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첫 번째 이야기부터 눈길을 사로잡아 마지막 이야기까지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읽어버렸습니다.

사실 특정 공간이 시공을 초월해 연결된다는 아이디어는 그동안 많이 있어 왔습니다. 편지만 시간을 넘어 전달된다는 설정도 영화 "시월애"와 똑같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5편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시대 배경이 거의 모두 다르지만, 나미야 잡화점 고민 상담과 아동 복지시설 "환광원"을 중심으로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독특한 구성으로 차별화됩니다.

상담이 중심인 작품답게 상담 과정의 디테일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특히 상담이 일종의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건 나쁘지 않았어요. 의뢰인이 상담 결과에 따르던, 따르지 않던 모두 나름의 행복을 찾는다는 점도 와 닿았습니다. 상담은 참고일 뿐, 답은 결국 자신이 찾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아울러 80년대 배경의 이야기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잔올스타즈의 음악 등 세부 묘사는 아련하면서도 추억을 불러일으켰거든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3인조 얼치기 범죄자들이 1장, 2장, 5장에 걸쳐 주요 상담자로 등장한다는 겁니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얄팍한 상담글들이라 감동이나 깊이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상담이 성공하는 것도 애초에 미래를 알고 있기에 가능했을 뿐이고요 — 일본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다, 가쓰로는 사고로 죽지만 명곡을 남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80년대에 시작되어 90년대 초에 끝난다 등 —. 이래서야 제대로 된 상담이라고 보기 어렵지요.

이에 반해 4장에서의 나미야 할아버지의 직접 상담은 따뜻한 애정과 진지한 고민이 묻어나 확실히 비교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4장의 이야기만큼은 별점 5점을 줘도 될 만큼 마음에 들었어요. 상담에 따르지 않고 부모를 떠난 고스케가 나미야 잡화점 부활의 날에 동네를 방문한 뒤 우연히 부모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 뒤 감사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이야기를 비틀즈와 영화 "Let It Be"와 엮어 풀어내는 솜씨 또한 너무나 탁월했습니다. 70~80년대 감성에 더해진 감정을 건드리는 디테일한 묘사는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케 하더군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새롭지만은 않은 설정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변주하고 새롭게 풀어낸 솜씨는 탁월하며,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잘 팔리는 작품은 역시 이유가 있네요. 가슴 따뜻해질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이야기별 간략한 요약 및 연결고리는 아래에 설명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제1장 답장은 우유 상자에

얼치기 빈집털이 3인조는 잠시 숨어지내기 위해 찾아든 빈집 "나미야 잡화점"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달토끼"라는 닉네임의 의뢰인의 상담글을 받은 뒤, 나미야 잡화점이 뒤틀린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에 응하게 됩니다.

의뢰인의 고민은 암에 걸린 연인을 간호할 것인가, 아니면 둘의 꿈이었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노력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일본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보이콧)을 알기에 연인 옆에 있기를 강조하는 3인조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의뢰인 달토끼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들인 뒤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결말 이어집니다. 

이야기의 시작으로는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무엇보다 3인조의 답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결심을 굳히고, 결국 모든 것을 잃었지만(올림픽 선수 선발 탈락과 연인의 죽음), 오히려 스스로 더욱 값진 것을 얻었기에 감사한다는 달토끼의 말이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제2장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3인조가 아닌 가수 지망생 가쓰로(생선 가게 예술가) 시점의 이야기. 그의 고민은 가수가 되고 싶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있는 겁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명제에 어울리는 이야기랄까요. 뭔가 세상에 남겼다면 그 자체가 의미있는 삶이었다는, 약간은 고전적 사고방식이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본인이 뭔가를 남긴다는 자각이 있었을 것 같지 않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이 더 클 것 같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긴 했습니다만, 뭐 이런 삶도 있는 것이겠죠.

참고로 작품 전체의 관계도로 보자면, 1장의 3인조가 환광원 출신인데 2장의 가쓰로가 작곡한 노래가 환광원 출신 유명 가수 세리가 부른 노래의 오리지널이고, 가쓰로는 환광원 화재 당시 숨을 거둡니다. 이러한 사실을 3인조는 환광원 출신이라 잘 알고 있었기에 음악을 듣기 전에는 현실적이고 신랄하게 답변하지만(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듣고 난 후에는 전력으로 상담에 응하지요.

제3장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

나미야 할아버지와 아들 다카유키의 이야기로 나미야 할아버지는 자신이 상담한 미혼모의 사고사를 접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죽기 직전 나미야 잡화점이 시공을 초월해서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상담한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는데, 그 중 미혼모가 낳은 아이의 편지를 통해 안식을 얻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나미야 할아버지의 인격이 묻어나는 좋은 이야기. 잔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야기 중 가장 시공 이동을 잘 활용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 관계도로는 여기서 나미야 할아버지가 백지 편지에 대한 상담글을 쓰는데 이 백지 편지는 5장에서 3인조가 시험삼아 넣은 편지입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는 환광원 출신으로 2장에 등장하는 유명가수 세리의 친구이자 현재는 그녀의 매니저고요.

제4장 묵도는 비틀스로

비틀즈 매니아 폴 레논 고스케가 야반도주하는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

앞서 말씀드렸듯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오사카 만박이 열리고 비틀즈가 해체한 1970년대를 무대로 하여 비틀즈 매니아인 주인공 고스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요.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배경 묘사도 좋지만 고스케(폴 레논)의 고민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글이 정말로 심금을 울립니다. 저 역시 아이 하나를 키우는 가장이기에 더욱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온 가족이 같은 배에 타고 있기만 하면 언젠가 함께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멋진 날이 되리라.' 맞아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 가족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한 배에 타고 계속 항해해 나가야죠.

관계도로 보자면, 고스케가 위탁된 보육시설은 당연히 환광원이며, 환광원 화재 사건때 5장의 주인공 하루미를 만나게 됩니다.

제5장 하늘 위에서 기도를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환광원 출신의 하루미가 성공하는 내용입니다. 그녀는 3인조의 예언으로 큰 돈을 벌게 되지요.

그런데 3인조의 성장, 백지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변 - 백지이기에 모든 것은 너 마음먹기에 달렸다 - 은 너무 뻔해서 좀 지루합니다.

그래도 하루미와 3인조가 결국 엮이고, 3인조가 나미야 할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대단원까지 깔끔하게 이어지는건 괜찮더군요.

관계도로는 하루미는 1장의 상담자 시즈코의 이웃사촌이자 3인조 강도행각의 피해자입니다. 또 환광원의 설립자와 나미야 할아버지가 과거의 연인이었다는 연결고리가 밝혀지며, 3장에서 쓴 나미야 할아버지의 백지 편지 답변을 3인조가 받게 됩니다.

2013/12/17

나의 로라 - 비라 캐스퍼리 / 이은선 : 별점 3점

나의 로라 - 6점
비라 캐스퍼리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모의 유명 여성 카피라이터 로라 헌트가 자택에서 총살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연인 셸비와 결혼을 앞둔 상태였다. 사건을 맡게 된 형사 마크 맥퍼슨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에게 빠져드는데...

원제는 "로라(Laura)". 여성 작가 비라 캐스퍼리의 작품입니다. 여성 작가가 쓴 하드보일드물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에도 당당히 선정된 고전으로, 챈들러와 말로우가 모두 소개된 현 시점에서 본다면 국내 출간은 외려 늦어보이기까지 합니다(챈들러 완역은 하루키가 팬이라는 것이 잘 알려진 탓도 클 것 같긴 하지만요).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팜므파탈과 마초 탐정(또는 형사)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서사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형사 마크는 본인 스스로 무식하다고 여기지만,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이지적인 면을 갖춘 노력가입니다. 여성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혐오하지도 않고요. 강렬한 폭력 충동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인물입니다. 여성 주인공 로라 역시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남자를 농락하고 벗겨먹으려는 악녀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현재의 지위를 차지했고, 남자를 고르는 것도 본인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하는 독립적 여성입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너무 빛나서 주변 남자들이 나방처럼 몰려들고, 그래서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궁극의 팜므파탈일 수도 있겠지만, 여튼 이렇게 등장 인물들부터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대적으로 느껴질 정도에요.

또한, 이러한 등장 인물들이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로 그려져 설득력을 더해 줍니다. 영화 각본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상황별로 장면이 연상되는 묘사력도 빼어나며, 등장 인물들에게 딱 들어맞는 명대사가 잘 어우러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명곡 "Smoke Gets in Your Eyes"가 초연되었던 뮤지컬 "로버타"의 언급 등 당대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묘사 역시 깨알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화자가 월도 - 마크 - 로라 순으로 바뀌며 전개되는 것도 좋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서술 트릭같이 이야기를 꼬아놓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확실하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1인칭 시점 덕분에 각 캐릭터들에 대해 독자가 더 깊게, 상세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월도가 얼마나 현학적이고 자기 과시욕으로 똘똘 뭉친 질투의 화신인지, 마초 경찰로 보였던 마크가 피해자로 알았던 로라에 대해 알아갈수록 왜 흔들리는지, 로라는 대체 어떤 여자인지에 대해서 이보다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요. 아울러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동기, 즉 월도 스스로 영원히 조종할 수 있었던 로라가 자신의 품을 벗어나게 되자 격렬한 살의를 품게 되었다는 것도 꽤 그럴듯하게 설명됩니다.

그 외에 셸비가 잃어버린 금담배갑, 그가 산 싸구려 술이 단서가 된다는 복선도 나름 잘 짜여져 있는 등 전체적인 전개도 충실합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사건이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이앤이 로라의 집에 머물게 된 것, 셸비가 바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 모두 우연입니다. 최소한 경찰 신고만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도 월도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건 어려웠을 거에요. 아울러 로라의 유죄가 강하게 시사되는 상황에서 마크가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그녀의 무죄를 믿는다는건, 기존 하드보일드에서 팜므파탈에게 사로잡혀 진실을 망각하는 남성 피해자 역할이 반복되는 것에 불과해 이 작품의 장점을 퇴색시키는 듯하여 아쉬웠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앞서 이야기한 복선 이외에는 별다른 인과관계 없이 사건이 벌어지는 편이라 눈여겨볼 부분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낭비된 복선이 거슬립니다. 예를 들면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던 왈도의 골동품 사랑이 실상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로라에게 선물한 화병은 좀 더 비중 있게 다루어졌어야 하는데, 전형적인 맥거핀에 불과해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왈도와의 사투를 다룬 결말도 헐리우드스러워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차라리 본인의 의지는 아니지만 모두가 불행해지는, 운명대로의 결말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점도 확실하고 읽는 재미도 뛰어난 고전임에는 분명합니다. '엘릭시르' 시리즈다운 예쁜 디자인과 일러스트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형적인 남성향 하드보일드물에 식상하신 분들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영화화되어 큰 히트를 치고 하드보일드 영화 걸작선에 이름을 올렸다는데, 영화도 꼭 한번 구해보고 싶어지네요. 호러 영화로 더 알려진 빈센트 프라이스가 잘생긴 매력덩어리 셸비 역으로 출연한다니 더더욱이요!

2026/05/15

친구가 사라졌다 - 가네시로 가즈키 / 양억관 : 별점 1점

화려한(?) 고교 생활을 보냈지만 지금은 평범한 생활을 보내던 대학생 미나가타에게 동급생 유토가 찾아왔다.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타자와가 푹 빠졌었다는 연합서클 ESSC와 관련된 문제로 생각한 미나가타는 ESSC의 리더 시다와 대면했지만, 오히려 기타자와가 강간과 대마 밀매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가 사라졌다는걸 알게되는데...

"GO"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장편입니다. 몰랐는데 미나가타가 고등학교 때 활약했던 전작이 있습니다. 작 중에서도 전작의 활약이 자주 언급되고요. 하지만 이 작품만 읽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내용은 그대로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미나가타가 해결사처럼 움직이며 사건의 배후를 파고드는 전개로, 정통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청춘 범죄 활극에 가깝습니다.

장점은 분명합니다. 쉽게 읽힙니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좋은 책입니다. 문장은 빠르고, 장면 전환도 가벼우며, 크게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넘어갑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금방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독성 외에는 전부 단점에 가깝습니다. 우선 설정부터 빈약합니다. 주인공 미나가타부터 그러합니다. 무언가 그럴듯한 과거가 있고 지금은 혼자 살면서 휴대폰과 TV도 없이 LP로 음악을 듣는 취미가 있으며, 유명 탤런트와 친구라는 등의 설정은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입니다. 현 시점에 맞지도 않고요. 80~90년대 하루키 작품 주인공이 액션 영화 주인공이 된 느낌인데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맛 쓴맛 다 본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기껏해야 대학생인 주제에 무슨 대단한 경험을 했나 싶거든요. 이보다는 군대 갔다 와서 취업전선에 뛰어든 우리나라 20대 청년 경험이 더 화려할 겁니다.

미나가타 주변 인물들의 설정은 더 황당합니다. 미나가타에게 취미삼아 살인 격투술을 가르치는 노숙자 람보와 윌, 대학생으로 연합 서클 ESSC를 이끌며 군림하지만 이면에서는 개인정보를 이용해 협박과 조종을 일삼는 시다, 친구들을 돕다가 사적 복수 활동까지 시작한 여고생 리츠 등 만화로 보기에도 황당한 설정이 넘쳐납니다. 이들 모두 미나가타와 함께 이야기의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만 합니다.

이야기도 허술합니다. 핵심인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 실종 사건의 원인이 된, 유명 대학 서클 멤버의 음주 강간 사건은 와세다 대학 슈퍼 프리 사건을 그대로 따왔으며,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치밀한 추리나 강한 긴장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 탓입니다. 기타자와를 되찾는 작전도 별볼일없습니다. 결국은 미나가타의 개인기와 인맥에 의존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리츠의 도움으로 야쿠자를 제압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재미가 있을 수 없지요. 별로 통쾌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가장 불쾌했던 건 납치된 기타자와를 불쌍한 피해자처럼 그려내는 묘사입니다. 고바야시에게 성폭행당했던 과거가 현재의 그가 저지른 여대생 강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탓에 그랬다면서 기타자와를 불쌍하게 보이도록 묘사합니다. 본인이 피해자였다고 해서 가해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놈은 "사채꾼 우시지마"의 이벤트 서클 에피소드에서처럼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완성도도 별로이지만,  "콜드 게임"처럼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더 이상의 점수는 못 주겠네요. 가네시로 가즈키의 광팬이라면, 그리고 전작을 읽었다면 참고 삼아 읽어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4/08/10

열린 어둠 - 렌조 미키히코 / 양윤옥 : 별점 2.5점

열린 어둠 - 6점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모모

"회귀천 정사"로 유명한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 원제는 "夜よ鼠たちのために (밤이여, 쥐들을 위해)".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3년에 출간된 나름 고전(?)으로 일본에서도 꽤 오래 절판 상태였었는데,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2014년 판에서 '복각(재출간) 희망! 환상의 명작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한 덕분에 2014년에 복간된 이력이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래와 같이 극찬하는 인터뷰와 글을 남겼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 미스터리의 재미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하면, 역시 마지막의 반전,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편에서 그걸 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모든 작품이 놀라운 반전 구조를 그립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전개를 실현한 작품들입니다. 마치 네거티브 필름이 포지티브로 바뀌는 것처럼, 결말에서 흑백이 뒤바뀝니다. 모든 작품에서 완전히 속아버릴 수 밖에 없어요. 전후 미스터리 단편집 중에서, 저는 이 책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표제작입니다. 미스터리라는 성격상,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삼가겠습니다만, 제가 만약 단편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an・an」 1990년 11월 23일호, 아야츠지 유키토 「나의, 한 권. 멋진 반전의 구조. 전후 최고의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 아야츠지: 렌조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연애소설 『연문』이 유명합니다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역시 먼저, 『회귀천 정사』, 『은밀한 상복』 등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지금은 고분사 문고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밤이여, 쥐들을 위해』입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실업지일본사에서 신서판으로 나왔고, 신초문고와 하루키 문고로 차례로 옮겨졌는데, 현재는 절판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서술 트릭 계열 단편집의 최고봉인데......아깝네요. (「작가의 독서도 제150회: 아야츠지 유키토」에서)

읽어보니 이 정도 극찬을 받을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호평은 이해가 됩니다. 서정성과 트릭이 잘 결합되어 있던 작가 최전성기 시절("회귀천 정사" 시절)답게,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트릭이 사용된 정통 본격 추리물에서 유괴극, 복수극, 서술 트릭 반전극, 느와르 등 수록작의 장르도 다양합니다. 과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묘사도 다른 후기작에 비하면 절제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요.
모든 수록작이 다 괜찮은건 아니지만, 더운 여름, 한 번 읽어볼만하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하다는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개의 얼굴"
화가 마사키 유스케는 아내 게이코가 신주쿠 호텔에서 살해당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택 침실에서 유스케가 살해해 뒷마당에 파묻었다. 호텔 사건의 여자가 게이코라면, 유스케가 집에서 죽인 여자는 누구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유스케는 죽인 여자의 얼굴을 그날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유스케는 호텔 사건에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발견된 여자를 게이코로 만들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진상은 유스케의 범행을 목격한 동생 신지가 자신을 협박하던 꽃뱀 여자를 함께 처치해 버렸던 겁니다. 마침 몸매가 비슷해서 속일 수 있었지요. 이 때 집 안에 전화가 두 대 있는 것을 이용해서 '순간 이동' 트릭을 선보입니다. 전화가 걸려와 안부를 물으면 당연히 외부에서 전화를 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같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유스케가 살해한 아내의 사체가 이동한 이유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사건에 대한 유스케의 심리묘사도 독자의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입니다. 서스펜스가 제법이었어요.
하지만 단편이라서 설명이 부족하며, 작위적으로 전개한 부분은 눈에 거슬립니다. 우선 신지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건 너무 뻔했습니다. 신지를 협박하던 꽃뱀 여자가 유스케 집까지 찾아와 지문을 남긴건 억지스러웠고요, 마지막 신지의 장난도 이유를 알기 어럽습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7인 1역"과 유사하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나'는 금수저 출신으로 형사일을 견디다 못해 2년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그만 둔 이유에 대해 강 선배에게 편지를 썼다.
1년 전, 전일항공 부사장 야마후지 다케히코의 외아들 가즈히코 유괴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부인을 전화기에 붙잡아 놓은 상태에서, 담을 뛰어넘어 아이를 유괴했다. 경찰은 몸값을 확보하고 도주하던 범인을 미행하다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몸값을 받은 범인은 아이를 무사히 풀어주었고, 이후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난 범인 오카다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괴범에게 동정심을 느낀 '나'는 당시 일부러 범인이 도주하도록 수사를 방해했다. 유괴범 중 한 명이 강 선배라는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건 범인이 '내일'이 금요일인지 토요일인지 정하지 못했던 상황을 통해, 범인이 두 명이며 둘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않다는걸 추리해 내는건 아주 좋았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이 아이를 유괴당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아들을 유괴해 몸값을 받아내려 했다는 발상도 재미있었어요. 실행범은 자기 아이를 유괴한 범인의 요구사항을 자기가 유괴한 사건 피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만하면 된다는 아이디어인데,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강 선배가 오카다를 살해했을거라는 결말도 합리적입니다. 오카다가 체포되면 진상이 드러날 수 있으니, 경찰이 체포하기 전 정보를 흘려 유인한 뒤 살해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러나 유괴가 이렇게 겹쳐서 강 선배가 피해자이자 범인이 된다는건 다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나'가 강 선배의 눈에서 이십 년 전 범인 눈빛을 떠올린 덕에 진상을 깨달았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나'가 집 안에 있는 신이치가 사실은 유괴당한 가즈히코라는걸 눈치챈건 앞선 복선으로 설명되지만, 독자는 눈치채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괴 피해자가 몸값 마련을 위해 유괴범이 된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던만큼, 이를 확장한 장편으로 묵직하게 썼다면 "킹의 몸값"과는 또 다른 딜레마를 안겨다주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래도 아이디어만으로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화석의 열쇠"
하반신 마비 소녀 지즈가 목이 졸려 죽을 뻔 했다. 피해자 집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고, 출입구는 현관문밖에 없는데 열쇠는 관리인 사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지즈가 엄마를 집에 들이기 위해 자물쇠 바꾸는 청년을 속여 헌 자물쇠를 달게 했고, 엄마와 아빠 모두 지즈가 부담되어 살해하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한 정보 제공은 공정합니다. 지즈가 자물쇠 바꾸는 청년에게 상황에 맞지 않는 초콜릿 부탁을 한 것, 관리인 사와가 엄청나게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등 상황에 대한 공유는 확실하니까요. '열쇠 화석'이라는 말도 단서로서는 좋았습니다. 사와가 이 모든걸 깨닫는 전개는 일상계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 둘이 동시에 딸을 살해할 생각을 한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자기가 빠져나갈 생각을 할까요? 신파적인 결말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의뢰"
신소에서 일하는 나에게 쓰치야 마사하루라는 의뢰인이 찾아왔다. 아내 동향 조사 의뢰를 위해서였다. 아내 사야코는 하릴없이 이곳 저곳에서 시간만 보냈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의 미행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나에게 오히려 남편 쓰치야의 행적 조사를 부탁했다. 알고보니 나를 이용해서 몰래 불륜 행각을 저지르기 위함이었다. 이 역시 쓰치야에게 들켜버렸고, 쓰치야는 자기 행적 조사를 거짓으로 전달하라고 했다. 전달하기 위한 쓰치야의 행적은 애인 유리의 맨션 주소와 연락처로 받으려 했는데, 그 뒤 유리가 살해되었다...

쓰치야는 유리의 다른 애인으로, '나'와 유리의 관계를 알고 유리를 살해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조사를 맡긴건 유리와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

나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리고 냉소적인 심리묘사가 대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딱히 눈에 뜨이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묘사로 '나'의 별로인 모습만 드러나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다는게 문제입니다. 쓰치야 부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무능력했고, 유리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쓰치야에게 농락당한 것에 불과하다는걸 알아 버렸지만, 그냥 그대로 끝나버리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야기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밤이여, 쥐들을 위해"
어린 시절 불우했던 나는 교정을 받아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은 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복수를 결심했다. 
병원 원장 요코즈미 다다오는 '나'의 협박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선 뒤 살해당했다. 경찰은 백만엔이라는 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나'의 원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원장 사위이자 내과 부장 이시즈의 사체도 발견되었다.

'나'인 쓰무라의 아내는 불치병 뇌종양이었고, 병원의 과실로 죽은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백만엔이라는 돈을 건네려고 했을까요? 이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알고보니 이하라의 아내 후미요에 대한 오진을 숨기려고 원장과 내과 부장이 그녀가 백혈병에 걸리게 만들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쓰무라와 이하라의 정체가 독자가 알고 있던 것과 정 반대라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잘 짜여진 서술 트릭물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단 둘의 흉터는 너무 노골적으로 속이겠다!는 의도가 보여 좀 별로였고, 어린 시절 쥐를 죽였던 원한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하라는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밖에 없었으니 억지스럽더라도 죽일 수 밖에 없는 동기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되지만, 억지는 억지에요. 그래도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에 생각보다는 잘 설명되는 편이라 다행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중생활"
마키코는 열 여섯살 많은 슈헤이에게 젊음을 바쳤지만, 자신을 버리려하는 슈헤이에게 증오를 느꼈다.

정부인줄 알았던 마키코가 진짜 아내이고, 반대로 나이많은 시즈코가 정부이자 불륜녀라는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 반전을 결말 부분까지 잘 숨기면서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서술 트릭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마키코가 남편 슈헤이와 불륜녀 시즈코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해당한 것처럼 자살한다는 반전, 그리고 이를 위해 데쓰오와 시즈코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방법도 잘 짜여져 있어서 범죄물로도 우수한 수준이고요.

그런데 마키코가 정부 데쓰오를 범행에 끌어들인건 억지스럽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다가 살해당한 모양새이니, 마지막 순간치고는 영 폼이 나지 않으니까요. 데쓰오 없이도 현장 상황 - 슈헤이가 받아온 수면제가 들어있는, 슈헤이가 즐겨 마시던 와인 - 과 스토브 지문으로 슈헤이에게 누명을 씌우는건 가능했을것 같거든요. 시즈코마저 옭아매기 위해 데쓰오를 이용했다고보면 말은 돼지만, 이 역시 나이든 시즈코와 데쓰오가 불륜 관계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위적입니다. 조건이 갖춰진 뒤에야 실행 가능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고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었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인간 관계를 쌓아올리는게 가능했다는 측면에서, 조금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대역"
인기 배우 하세쿠라 슌은 아내 료코와의 이혼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자신과 꼭 닮은 남자 다카쓰 신야를 찾아냈다. 그러나 료코가 슌의 불륜을 알고 있었으며, 이혼할 생각도 없다는걸 알게된 뒤 료코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다카쓰 신야를 이용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서였다. 오사카에서 다카쓰를 자신인 척 연기시킨 뒤, 자신은 변장하고 도쿄로 가서 살해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료코는 없었고, 오사카로 돌아간 뒤 자신의 방에 죽어있는 기누에를 발견했다. 이 모든건 료코와 다카쓰의 음모였었다.


하세쿠라 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완전 범죄물로는 볼만합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세큐라 슌의 대타가 다카쓰 신야가 아니라, 료코와 기누에 입장에서는 그 반대였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현실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애초에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 주위에 같은 여자들이 엮이게 된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했는데, 말이 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베이 시티에서 죽다"
동거녀와 믿었던 아우에게 배신당한 조직원이 출소 후, 둘이 함께 도망친 항구 도시로 찾아가 모두 죽여버린다는 느와르.. 묘사도 멋있고 배신의 진상 - 없던 죄를 뒤집어 쓴게 아니라 원래 내가 지은 죄였다는 - 도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맛은 거의 없고, 내용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그냥 서정적인 '사나이' 이야기를 한 편 쓰고 싶어 쓴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열린 어둠"
불량 학생들만 다니는 사립 세이에이 고등학교 음악교사인 미즈키 마사는 '마더'라는 별명으로 학생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어느날 퇴학당한 폭주족 블랙호크스 멤버 중 한 명인 노리코가 긴급한 도움 요청을 해 왔다. 리더 다카기가 살해당했다고 했다. 노리코와 함께 현장에 온 마사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노리코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고 한 시간만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카기의 죽음이 학교 체육 교사 아카자와 다케시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카자와는 동성애자였다.

불량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학생과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열혈 신입 교사가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청춘 미스터리'의 영향이 가득 느껴집니다. 동성애로 인한 삼각관계가 원인이라는 점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신선한 편이고요. 요새 이런 설정이 유행이라는데, 나도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쓴 듯한데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카기가 폐소 공포증이라는게 핵심 단서인데 - 아카자와 선생의 차는 비가 오는데도 창문이 열려있었다 -, 이는 여러가지 단서로 독자에게도 공유됩니다. 노리코가 아침에 다카기의 방에서 쫓겨난 건 창문을 닫으려고 해서, 다카기가 초고층 맨션에서 뛰쳐나온건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서, 다카기가 폭주족이 된 건 차를 타기 싫어서였다는 식으로요. 
미즈키 마사가 학생들 앞에서 추리쇼를 펼쳐 진상을 밝히는 전개도 정통 본격 추리물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다카기가 스즈타에게 아카자와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현장을 조작했기에, 스즈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걸 증명하려고 다카기를 살해하고 노리코에게 혐의를 씌웠다는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후더닛 물로는 괜찮았지만,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좋다고 하기 어렵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12/31

2023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이글루스 사망으로 구글 이사 후 첫 결산이자, 스무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인생 첫 블로그였던 블로그인에서 시작해 꾸준히 달려왔네요.
 
올해 읽은 책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는 작년)
추리 / 호러 장르문학 61 (71)권, 기타 장르문학 4 (5)권, 역사서 7(5)권, 디자인 or 스터디 4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3 (4)권, 기타 도서 15 (13)권
이렇게 모두 94 (102) 권입니다. 100권을 넘기지 못했고, 작년과 비교해도 약 10% 정도 줄었네요. 만화 관련 포스팅을 39건이나 올렸을 정도로 만화를 많이 읽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많이 본 탓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는 시간은 머리를 비우며 가볍게 보내고 싶어지는데 반성해야 겠습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아울러 5권 이하로 읽은 분야는 특별한 걸작이나 망작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베스트 추리소설 :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의 고전. 구관이 명관. 별점 5점.

2023년 워스트 추리소설 :
"전래 미스터리"
완성품으로 보기 어려운 별점 1점짜리 망작.

2023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마션"
재미와 지식 전달 모두 훌륭.

2023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신의 기록"
all time으로 쳐도 베스트 중 한 권일 수준.

2023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산척, 조선의 사냥꾼"
정작 사냥꾼 이야기는 별로 없음.

2023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딕 브루너"
별점 5점! 
그 외의 디자인 관련 도서 3권도 모두 별점 3점 이상.

2023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식민지의 식탁"
소설들로 알아보는 일제 강점기 식문화

2023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는 역시.

2023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없음.

2023년 베스트 Movie :
"서울의 봄"
두말할 나위없는 올해의 베스트.
참고로, 애니메이션 베스트는 "천국대마경".
 
2023년 워스트 Movie :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
아동용은 이 정도 수준이라도 괜찮나?

2023년 베스트 Comic :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헌터 / 아웃핏"
미국 카툰의 힘.

2023년 워스트 Comic :
"체셔 크로싱"
돈 받고 팔 수준이 아니었음.

이 글을 마지막으로 2023년을 마무리합니다. 24년 갑진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들 모두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2025/06/27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하여 - 오가와 사토시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소설가의 평범한 일상을 풀어낸 작품집입니다. 소설가 생활을 시작한 뒤, '야마모토 슈고로 상' 후보가 되기까지를 아우르는 여섯 편의 연작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가와 사토시 특유의 독특한 발상들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 별다를 것 없는 일상들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걸 잘 보여줍니다. 이와 동시에 소설이란 무엇인지, 창작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작가적 성찰도 좋았고요. 

이야기마다 밀도나 완성도의 편차가 존재하며, 일부 수록작에서는 특유의 발상이 부족해 다소 평이하게 흘러간다는 단점은 있지만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팬이시라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프롤로그

독서광 대학원생인 '나'는 '당신의 인생을 원 그래프로 표현하시오'라는 입사지원서 항목을 높고 고민하다가, 여자친구 미리의 조언으로 입사 지원서에 자신의 인생을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구직을 위한 동기와 목적이 이야기로서 부족하다고 느낀 탓에 자신의 인생을 소설처럼 바꾸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진짜 소설 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가가 되기 위해 미리와 이별한 나는 6년 후 소설가가 되었고 미리는 결혼했다.

연작 단편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입사 지원서의 항목 하나를 두고 주인공과 여자친구가 나누는 진지한 토론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여자친구 미리의 조언입니다. '입사 지원서에는 진실을 쓸 필요가 없고, 구직 활동 자체가 하나의 소설과 같으니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라'는 말로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적이고 참신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생각도 되고요. 결국 주인공이 가짜 인생을 그럴듯하게 써 내려가려고 노력하다가 진짜 소설가가 되고 만다는 결말도 횡당하지만 좋았습니다.

작가 오가와 사토시 특유의 기발한 발상과, 일상을 다루면서도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특성이 잘 살아 있는 단편입니다. 미리와의 건조하면서 담백한 관계와 헤어짐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케도 하고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3월 10일

대지진 3년 후인 3월 11일, 고등학교 동창 네 명이 모여 술을 마셨다. 다들 지진이 일어난 날에는 무엇을 했는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바로 전날인 3월 10일에 뭘 했는지 모두 잊어버렸다. 이걸 계기로, 나는 인생의 대부분은 기억에도 남지 않는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3월 10일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나는 예전에 썼던 핸드폰까지 찾아내어 조사했다. 바로 기억을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당시 문자를 통해 홍차와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릴 적 기억을 세세한 것까지 떠올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결국 그날 나는 아카네와 사귀기 위해 영화 초대권을 이용한 수작을 부렸었다는걸 알아냈고, 지금 아카네는 이별을 고했다.

4년 전의 평범한 하루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일상 속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마치 추리 소설처럼 긴장감 있게 전개됩니다. 사소한 단서들을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듯 과거를 되짚는 흐름이 꽤 흥미롭고, 일상계 추리물로도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주인공이 약속에 늦잠을 자고는 부끄러워 그 이유를 '숙취'라고 꾸며낸 뒤, 그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이 자신도 그게 사실이라고 믿게 되는 장면이었습니다. 거짓이 반복되며 진실처럼 굳어지는 과정은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잊힌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연결한 구성도 눈에 띄었습니다. 주인공이 아카네와 가까워지기 위해 인용한 질베르트의 이야기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전체 구조 속에서 유기적으로 활용되는 점이 돋보였거든요. 처음엔 지나쳤던 대사나 행동들이 나중에 의미를 드러내며, 이야기 전체에 짜임새를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인공의 친구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기억을 왜곡했던 경험을 고백하면서,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주관적인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단한 사건 없어도 일상을 이렇게 깊이 있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소설가의 본보기

'나'의 친구 니시가키는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인물로, 마음에 들었던 여성 에리카와 가까워지기 위해 작가인 나를 이용하여 결국 결혼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결혼 후 니시가키는 나에게 에리카가 소설가가 되겠다며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에리카는 오라 리딩이라는 점술에 빠져 소설가가 되려고 했고, 니시가키는 그것이 사기라는걸 나와 함께 밝히기로 했다. 처음에는 니시가키가 점술가를 직접 찾아가 사기 행각을 증명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내가 직접 소설 속 인물을 빌려 점술가에게 접근해서 어느 정도 거짓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 역시 점술가의 말에서 분명 무언가를 느꼈다.

'소설을 써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나는 겁니까? 내 경험을 말하면 지금까지 소설의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디어는 퍼즐 조각 같은 것이어서 늘 내 마음속에 몇가지씩 존재한다. 그 조각들을 끼워 맞추면 비로서 소설의 아이디어가 된다. 작품을 구상하는 기간의 태반은 딱딱 들어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을 억지로 겹쳐놓고 겹친 부분을 잘라내거나 공백 부분을 채워넣으면서 모양새를 다듬어 가는데 시간을 쏟는다. 이기고 치대는 사이에 점점 아이디어의 형태를 갖춰 간다.'

점술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실적인 의심과 믿음, 그리고 창작의 과정을 교차시키는 구성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오라 리딩이라는 점술이 어떻게 사람을 현혹하는지, 콜드 리딩이라는 간단한 사기 수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이 재미의 핵심이었습니다. 상대의 반응을 보며 교묘하게 말을 끌어가는 방식은 실제 사례로도 있을 법해서 몰입감 있게 읽혔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소설은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이디어는 갑자기 떠오르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끼워 맞춰 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은 매우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작가로서 겪는 고유의 고민과 구상의 실제적인 측면이 잘 전해졌습니다.

다만 이야기 자체는 결국 에리카가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않기로 하면서 비교적 평이하게 마무리됩니다. 앞선 단편들에 비해 기묘한 전개나 파격적인 발상은 덜해서, 그런 부분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하여

나는 남이 내 일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타인에게도 참견하지 않는 반면 고등학교 동창 가타기리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대로 거리낌 없이 타인의 일에 개입해왔다. 나는 그를 경멸했지만, 완전히 미워하지는 않았고 종종 괜찮은 행동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졸업 후 가타기리는 사기성 있는 투자로 동창들에게 피해를 입혔지만 나에게는 연락하지 않았고 2년 뒤 잠깐 만나 목욕탕을 함께 간게 전부였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잘 나가는 줄 알았던 가타기리는 다시 나를 찾아와 악성 댓글 대응법을 물어보았다. 알고보니 그는 폰지 사기를 벌이던 중이었고, 결국 모든게 밝혀져 파산하고 말았다.

가타기리는 실제로 돈을 벌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빌린 돈으로 배당금을 주며 허상만 유지해왔다. 나는 그가 단순히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껴왔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그만의 ‘황금률’ 실천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가짜 황금을 좇는 점에서는 가타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재능 없음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서 발길을 멈추고 마는 굼뜬 성격,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은 것에 집착하는완고함, 강박적으로 타인과 똑같은 걸 하기 싫어하는 비뚤어진 심사.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이처럼 인간으로서의 결손, 일종의 우매함이 필요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술술 풀리고 갈등이라곤 없는 인생에 창작은 필요 없다.

표제작.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소설가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작가는 소설가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재능 없음’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나칠 일에 괜히 발을 멈추는 둔한 성격,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 완고함, 타인과 똑같은 것을 하길 극도로 꺼리는 비뚤어진 심사—이런 결손이야말로 소설을 쓰기 위한 조건이라는 설명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갈등 없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인생에는 애초에 창작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고요.

또 하나 마음에 남았던 건 학창 시절,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던 친구와도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완전히 연락이 끊기는 현실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친구들이 제법 있어 더욱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만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더는 서로의 삶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반면, 가타기리의 사기가 그저 흔한 폰지 사기였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기발한 반전이나 의외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터라, 전개가 다소 평이하게 흘러간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마지막 결말 부분—즉, 소설가인 ‘나’가 가타기리와 마찬가지로 ‘가짜 황금’을 좇는 사람이라는 식의 연결도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타기리의 행동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요. 이런 범죄 행위와, 자기 안의 무언가를 꺼내어 소설로 표현하는 창작 행위를 단순히 동일선상에 놓는게 과연 타당할까요? 이를 비교하려면 이보다는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연결 고리 - 예를 들어 '나' 역시 다른 사람의 글이나 아이디어를 도용한 적이 있었다는 식으로 - 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즉, 이 작품 설정보다는 바로 이어지는 "가짜"의 바바 이야기가 비교 대상이 되었어야 합니다.

황금률 등 이런저런 설정을 도입하고, 비교적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특유의 기발하고 기묘한 발상보다는 현실에 많이 매몰되어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가짜

나는 교토에서 귀가하던 신칸센에서 만화가 바바 류지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났던건 1년 전 설 연휴 즈음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술자리였다. 동창 가토가 그를 데려왔다. 바바는 "일본 고등학교 옛날 이야기"라는 만화를 준비 중이었고, 이는 동창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추억담을 수집하는 형식이라 취재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창 도도로키는 바바가 짝퉁 시계를 차고 다닌다며 그를 신뢰하지 않았고,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바바의 만화는 물론 인생 자체가 전부 남의 이야기와 재능을 빌린 표절이었다. 만화조차도 실제로는 그의 아내가 그린 것이었다.

끝없이 표절을 반복하는 바바라는 인물도 인상적이지만, 바바가 표절하게 만든 '나'의 기발한 발상들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나'가 이야기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범인 맞추기 방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독자에게 놀라움을 안겨야 하므로, 언뜻 보아서는 동기가 없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사람이 유력한 범인 후보이다. 마찬가지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요소는 모두 고려한다. 미스터리 소설에 시력을 잃은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이 실은 눈이 보일 가능성을 고려한다던가, 범행 현장 창문 유리가 깨져 있다면 범인은 외부에서 침입하지도 않았고, 외부로 도망가지도 않았다. 유리가 깨진 건 침입, 도망과는 관계없는 이유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범행 시에 깨져버린 안경 파편을 감추기 위해서라던가' 등 재미있는 발상이 가득하거든요. 이 정도 이야기를 들으면 표절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이와 함께 창작이라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는 듯한 내용 전개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바바가 워낙에 독특한 인물이니만큼, 이 인물에 대해 보다 깊숙하게 파고든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재미면에서는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여러가지 독특한 아이디어가 가득한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수상 에세이

나는 신용카드 도용과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가 된 상황에서 자기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소설가로서의 자기를 되돌아보며 일종의 마침표를 찍는 글입니다. 왜 소설을 쓰는지에 대한 해답같은 내용이 등장하거든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내가 감히 닿을 수 없는 소설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감동. 우리는 매일 지금까지 물렸던 것을 접한다. 크든 작든 그것들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여전히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지요. 이를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첫 문장에 대한 감상을 통해 펼쳐보이는데 여기서는 확실히 작가만의 색다른 발상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얼음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얼음이 항상 주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인터넷이 처음 연결된 날의 기억에 의존하여 얼음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는데, 이런 발상은 정말이지 부럽습니다.

그러나 한 편의 소설로 완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만 별점을 주기는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