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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2

Kimagure Orange Road!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

간만에 옛 추억이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이 만화-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저의 청춘기를 지배한 작품입니다. 중3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정말 미친 듯이 좋아했던 작품이거든요. 당시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관련 상품을 사 모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원작 만화는 초능력 가족의 장남인 주인공 카스카 쿄우스케(春日恭介), 이사 온 첫날의 산책 길에서 우연히 날아온 빨간 밀짚모자를 잡아준 인연으로 묘한 인연이 생기게 되는 아유카와 마도카 (鮎川まどか), 카스카가 우연히 초능력을 쓰는 것을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되는 후배 소녀 히야마 히카루 (檜山ひかる), 이 3명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한 청춘 러브 코미디입니다.
지금 보면 뻔한 설정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포맷으로 들쭉날쭉하는 작화는 짜증마저 불러 일으키지만, 초능력이라는 설정을 도입하여 작품에 감칠 맛을 주고 주인공 3명 이외에도 여러 다양한 캐릭터들의 유머스럽고도 디테일한 묘사로 상당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잔잔하고 진지한 사랑이야기를 다루며 또 다른 느낌을 전해 주고요.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은 80년대 후반을 강타한 TV 애니메이션입니다. 당시 작품들과 비교해서도(같은 시기에 “시티헌터” 1기가 시작했었지요) 뛰어난 작화와 다케다 아케미씨가 디자인한 캐릭터들, 그리고 국내 영화 “무사”의 음악 감독까지 맡았던 음악감독 사기스 시로(鷺巢詩郎)의 음악이 잘 조화된 수작입니다.
거기에 당대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여성 캐릭터 아유카와 마도카의 존재로 이 작품은 더욱 빛났습니다. 싸움과 운동, 공부, 거기에 음악성까지 뛰어나다는 초월적 캐릭터로, 다케다 아케미씨의 묘한 느낌의 성숙함까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당대의 아이돌이었지요.

만화 엔딩의 멋진 대사(Like or Love? Like! 한없이 Love에 가까운….)가 나오지 않던 TV 애니메이션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극장판에서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 흔드는 슬픈 사랑의 결말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더 리얼하고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캐릭터들로 저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메종 일각"과 더불어 80년대 청춘 러브 코미디의 양대 산맥이자, 미소녀는 긴머리와 단발머리 두명!이라는 공식을 정의하고 훗날 수많은 작품에서 패러디 되고 인용되는 작품 오렌지 로드….
이사가려고 짐을 정리하는데 우연히 몇 년전에 모 동호회에서 사 둔 미국판 오렌지로드 TV판 DVD 박스 셋트(라지만 LD버전을 그대로 옮긴 듯한)가 눈에 띄어 몇자 적어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저도 예전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이 작품을 보면 무언가 느껴질만큼 인상적이었던 제 청춘의 초상입니다.

2007/03/03

추억속의 애니메이션 명곡들 : 순서는 무순

1.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2기 Op : Orange Mystery : 나카시마 히데유키

제 추억에 항상 남아 있을 곡입니다. 한때 제 학창시절을 지배했던... 지금은 영화 음악으로 더욱 유명한 사가스 시로의 곡들로 모든 곡들이 다 좋았던 오렌지로드 OST 계열에서도 특히나 마음에 드는 곡으로 추천합니다.


2. City Hunter ED "Get Wild" - TM Network

프로듀서로 더욱 유명해진 코무로 데츠야의 곡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명곡이죠. 노래 가사와 분위기가 정말 시티헌터스러운 느낌이 물씬 묻어나기도 했지만 엔딩의 절제된 흑백톤 화면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었습니다.


3. 북두신권 극장판 : Heart Of Madness by kotomo band

아.. 이렇게 화면과 스토리, 음악이 완벽하게 삼위일체를 이루는 곡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던 곡입니다. 한마디로 최고죠.


4. SPT 레이즈너 1기 Op : 메로스처럼 by Airmail From Nagasaki

오프닝 화면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신나는 곡으로 제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당시 리얼로봇 붐 시기의 오프닝 곡 중에서도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여성 보컬 노래는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니라서....


5. 후르츠 바스켓 Op

원작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이 7만배는 더욱 좋았죠. DVD 박스셋이 있는 몇안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담담한 분위기가 오프닝에도 잘 어울리지만 중간중간 쓰이는 부분에 있어서도 효과적으로 잘 쓰인 부드럽고 조용한 멜로디가 너무 마음에 드는 곡입니다. 추억이 되긴 너무 이르긴 하지만 좋은 건 좋은거니까요.


6. 초인록크 OVA 로드레온 Op

사실 곡 보다는 오프닝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록크 팬이라면 누구나 반할 수 밖에 없는 멋진 오프닝이었죠. 곡도 분위기가 잘 어울려서 좋아합니다.


7. 메종일각 1st Op

러브코메디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걸작이죠. 오프닝 역시 깜찍발랄상큼하면서도 가사가 내용과 잘 어울리는 좋은 곡이었습니다.


8. 천년여왕 (Millenium Queen) movie - Angel Queen by Dara sedaka

천년여왕 극장판 오프닝으로 이 곡은 정말 추억이 깊은 것이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국내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에서 매년 연말 영화음악 베스트 100을 꼽아서 방송해 주었었는데 이 곡이 당당하게 순위에 포함된 적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갑고 기뻤었습니다. 저같은 애니메이션 팬에게는 정말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기도 했고요. 때맞춰 테이프에 녹음한 이 곡을 테이프가 늘어날때까지 듣던 그때 기억이 새롭네요. 곡도 일본의 유명 음악가 키타로가 작곡한 멜로디가 동양적이면서도 참 좋은 곡이죠. 물론 작품 자체는 갓뎀이었지만....


9. Transformer The Movie

80년대 극장판으로 등장하는 곡들이 다 좋았죠. 너무 마음에 들어서 DVD까지 아마존에서 구매하게 만들 정도로요. 작품은 좀 애매한 부분이 많이 있긴 했지만 어쨌건 좋은 곡,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10. 마크로스 -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이야기한다면 이 곡이 빠질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음악 그 자체가 스토리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쓰이면서도 80년대의 극한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화면과 잘 어우러진 명곡이죠. 다른 곡들도 좋은 곡들이 많은 마크로스이지만 역시 이곡이 최고가 아닐까....

2006/09/02

메종 잇코쿠 - 다카하시 루미코 : 별점 5점

메종일각 신장판 15 - 10점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김동욱 옮김/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메종일각 (메종 잇코쿠)라는 허름한 하숙집(?)을 무대로 하숙생(?)인 고다이와 관리인 오토나시 교우코의 사랑 이야기.

단순히 내용만 놓고 본다면 굉장히 뻔합니다. 별볼일 없는 주인공에게 계속 여자가 생겨서 3각, 4각관계로 까지 발전하는 전개와 캐릭터, 설정 모두요. 3류 대학 출신에 변변한 직장도 없고 그다지 잘생기지도 않은 주인공 고다이는 80 ~ 90년대를 넘어 현재진행형인 스테레오 타입 주인공의 원형에 가까우며 이 주인공이 그에게 과분한 여러 미녀들, 교우코를 비롯하여 고즈에, 야가미 등과 얽히는 과정과 전개 모두 뻔하기 그지 없거든요. 부잣집 아들이자 본인 자신마저 외모와 능력 모든 면에 있어 뛰어난 라이벌 미타카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면이 작품이 이러한 뻔한 설정의 원조격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기에 이러한 비난 자체가 타당하진 않겠죠. 외려 지금 발표되는 러브 코미디물과 비교해서도 뒤떨어 지지 않는 시대를 뛰어넘는 감각 같은것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주인공 고다이가 작품 끝까지 별볼일 없다는 것. 갑자원에 진출하는 것도 아니고 농구로 전국제패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지금 보아도 무척이나 현실적이면서도 신선합니다. 거기에 등장인물들 모두 약점이 있다는 전제하에 나름 현실감 있게 내용이 진행되는 것도 굉장히 와 닿고요. 그리고 전에 쓴 적이 있던 오렌지로드의 아유카와 마도카와 대립각에 서 있는 여주인공 -그야말로 "성인"인- 오토나시 교우코가 특히 인상깊었었죠. 미망인이라는 설정이 이러한 느낌을 주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했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현재의 귀여운 "누님" 캐릭터의 원형을 제시해 주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핸드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오로지 만남과 대화, 혹은 편지나 카세트 테이프를 통해서만 사랑이 진전되어 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세밀하고 루미코 여사 특유의 개그와 유머 속에서도 점차 가슴저린 느낌을 가져다 주는, 80년대 아날로그 러브 코메디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카하시 루미코 여사 작품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나보다 오래 살아요"는 정말이지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 80년대 베스트 명대사를 꼽으라면 분명 꼽힐만한.

21세기가 된 지금에야 많이 빛이 바래었을 수도 있지만 언제 어떤 편을 읽어도 저에게는 옛 추억과 더불어 항상 가슴 뭉클함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2015/11/12

수수께끼 그녀 X - 우에시바 리이치 : 별점 3점

수수께끼 그녀 X 12 - 6점 우에시바 리이치 지음/학산문화사(만화)

"가면 속의 수수께끼", "꿈의 사도"의 작가 우에시바 리이치의 만화. 전 12권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2014년 11월에 완결되었으니 비교적 최신작이죠. 우연찮게 읽기 시작했는데 꽤나 재미있어서 한 번에 읽어버렸네요.

1화는 이전 작들과 비슷했습니다. 타액을 이용하여 감정과 몸 상태를 공유한다는 등의 기묘한 설정, 너는 누구와 첫 섹스를 하게 될 것이다와 같은 충격 발언이 연이어 그려지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뒤로 갈수록 평범한 학원 러브 코미디로 변모해 버립니다! 둘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에 아이돌 가수의 난입, 학교 축제 등과 같은 대형 에피소드가 끼어드는 전형적인 스타일로요. 물론 작가가 작가이니만큼 아주 평범하지만은 않습니다. 에피소드별로 여전히 일상 속 비일상스러운 기묘함이 계속 감돌거든요. 서로 타액을 공유한다는 설정이 계속 사용되는 식으로요.
게다가 타액을 공유한다는 설정의 러브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두 커플이 끝까지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런 플라토닉한 러브스토리라니! 12권으로 깔끔하게 완결하면서 우라베의 입을 빌어 두 사람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준 결말도 아주 좋았고요.

또 히로인 우라베 미코토의 매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완벽한 외모에 운동신경 발군으로 온갖 체육 활동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슈퍼우먼인데다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관계자)에게만 따뜻한 나만의 여신이지요. 개인적 견해로 남성 판타지 궁극 히로인의 양대 산맥 - "오렌지로드"의 아유카와 마도카, "오! 나의 여신님"의 베르단디 - 중 아유카와 마도카의 적통 계승자로서 21세기에도 죽지 않는 생생한 매력을 뽐냅니다. 그만큼 비현실적인 슈퍼우먼은 아니지만 말이죠. 하긴 우라베 미코토도 항상 가위를 팬티 옆에 끼워 가지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자르고 파괴하는 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는 만화 같은 설정이 있으려니 동급이려나?

그리고 무색무취, 유유부단의 대명사 카스카 쿄우스케보다 남자답고 확실한 츠바키 아키라도 꽤 호감이 갑니다. 전형적인 하렘 루트를 타지 않고 우라베 일직선, 그러면서도 지킬 것은 멋진 녀석이거든요. 학교 동급생들 앞에서 "코이즈미 마이 러브"를 외치는 단순 일직선 바보와는 다르게 우라베가 입을 댔던 음료수를 마신 뒤 생긴 변화를 눈치채고 달려가 사과하는 섬세함도 돋보이고요.

그 외의 다른 캐릭터들, 안경 로리 거유 오카와 우에노, 스와노 등에게도 이야기를 할애해가며 조연으로의 역할을 주는 디테일도 좋았어요. 특히 오카와 우에노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로 있음직해 보이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이에 더해 화풍도 청춘 러브 코미디 스타일로 서서히 바뀐 덕분에 여성 캐릭터들의 작화가 아주 매력적이라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전작들에서는 좀 어리거나 빈약(빈유)했던 캐릭터들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여성을 예쁘게 그리는 건 만화가로서 상당히 중요한데 그야말로 포텐이 제대로 터진 느낌입니다. 청춘 러브 코미디답게 전작 스타일의 집요한 디테일 묘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등 작가의 스타일 자체가 변한 것은 호불호가 갈릴 듯하나, 저는 여성 캐릭터의 매력이 더 중요한 성격의 작품이라 생각하기에 "호"입니다.

딱 한 가지 문제라면 타액을 공유하는 설정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겠죠. 우라베와 츠바키 둘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설정으로 아, 여긴 원래 그런 세계구나... 싶은 정도로 넘어가기는 하는데 좀 대충대충인 감이 없잖아 있어요. 카자미다이 고교 축제에서 상영된 영화 "수수께끼의 그녀 Y"처럼 이유를 대략이라도 밝혀주고 끝을 내는 게 어땠을까 - 영화 속 설정은 이 모든 건 주인공의 착각으로 사실 지구는 멸망한 것이었다는 것 -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청춘 러브 코미디라는 정말이지 흔하디 흔한 장르에서 약간의 독특한 설정만으로 이만큼의 변주를 끌어낸 점은 정말이지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앞서 말했듯 근본적으로 "플라토닉"한 이야기라는 발상의 전환도 놀랍고 말이죠. 특히나 우라베 미코토의 존재만으로도 러브 코미디 계에서 일정 지분을 차지할 자격은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되는지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되었더군요. 이 역시 차분히 감상해봐야겠습니다.

2003/12/27

원조교제 - 이케테루 후타리


이번 새로 읽어 본 만화.
국내 번역본 제목은 촌스럽게도 "원조교제 (-.-;)"인데 원제는 "이케테루 후타리 - 잘나가는 두사람"입니다.
고급맨션에서 혼자 사는 수수께끼의 미소녀 코이즈미 아키라와 단순무식 열혈남 사지 케이스케를 주인공으로 그 친구들과 주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춘 러브 코미디이지요.

만화의 최대 장점은! 이런 청춘물의 기본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 "오렌지로드"나 "겨울이야기" 등에서 보여 주었던 주인공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전무하다는 겁니다. 주인공 사지 케이스케는 바보이기는 하지만, 코이즈미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극 중에서 어떤 난관이 있어도 (심지어 연예인이 러브호텔에서 유혹해도!) 흔들리긴 하지만... 초지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코이즈미 마이러브!"를 항상 외치며 심지어 스토커 수준의 집착을 보여주는 강한! 캐릭터지요.
항상 여자들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캐릭터만 보아오다 이런 캐릭터를 보니 독특해서 좋았습니다. 거기에 제법 웃기기까지 합니다.
서브 캐릭터들도 성격들이 확실하고 묘사도 잘 되어있는 편입니다. 그림도 꽤 좋고요.

하지만 국내에서는 성인 만화로 출간될 정도로 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만화도 좋아합니다. 뭐 재미만 있다면야 조금 야한것도 좋죠.^^ (고바야시 히요코나 니노미야 히카루 만화도 좋아합니다.^^)

단편 옴니버스물로 13권까지 출간되었으며, 꽤 오래전에 방영되었지만 애니메이션도 추천작 입니다. 짧은데 꽤 볼만했습니다.

2020/10/18

마쓰모토 이즈미 별세

제 청춘 시절 한 자락을 채워주셨던 것에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편히 쉬시길. 

R.I.P

Kimagure Orange Road!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

2003/12/15

10년만의 "겨울이야기" - 하라 히데노리

간만에 연휴라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책장과 방을 정리했습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만화책등을 사모으기 시작해서 그 숫자가 꽤 되는지라 1년에 한번 정도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수습하기가 힘들어지죠.

그래서 책장을 싹 비우고 정리하다가 10여년전에 사보았던 만화들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네요. 하라 히데노리의 겨울이야기...
제것은 정식 번역판이 아닌 OZON이라는 해적출판사의 해적판입니다. 쟝르는 일단 청춘 연애 드라마쯤 되겠죠. 주인공과 주인공이 첫눈에 반한 시오리, 그리고 주인공을 좋아하는 나오꼬의 3각관계를 축으로 2년간에 걸친 주인공 히까루의 재수생활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만화는 같은 청춘물이라도 다른 작품들, 아다치류나 아니면 오렌지로드, 최근의 보이류의 밝고 상큼한 이야기하고는 사뭇 거리가 있습니다. 어쩐지 우울한 주인공의 성격에서 서로 조금씩 엇나가는 사랑이야기가 읽으면 가슴이 조금씩 저려오는것 같은 기분을 준다고나 할까요?
연재당시의 환경 때문인지 내용이 썩 매끄러운 편은 아니고 주인공 캐릭터 때문에 많이 답답하고 짜증나기도 하지만 치밀한 심리묘사와 영화와 같은 장면 연출로 꽤 긴 내용을 잘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보게된것은 92년도쯤인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운좋게 현역으로 대학을 합격했지만 친구들은 여러명 재수를 하고 있을 때였고 그 당시 재수생 친구 중 한명이 "리얼한 재수생만화!"라고 적극 추천하여 읽게 되었었죠. 그것도 벌써 10년이나 되었네요.

친구들이 재수생이었던 시절도, 제 신입생 시절도 다 오래전 이야기가 되었지만 히까루와 시오리의 이야기는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좋은 추억이겠죠...

2010/01/29

심야식당 4 - 아베 야로 : 별점 2점

심야식당 4 - 4점
아베 야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항상 기본은 해 줬던 심야식당. 4권의 리뷰입니다. 곧 5권이 나온다는데 좀 늦긴 했네요.

4권은 이전권에 비하면 동어반복에 극단적인 설정이 강한, 좀 시트콤스러운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때문에 평범한 인간관계에서 보여지는 갈등과 드라마보다는 쉽게 보기 힘든 과장된 인물들과 그들의 인간관계가 주로 등장해서 심야식당이라는 작품의 매력이 많이 사라졌더군요.

예를 들자면 네번 결혼해서 네번 모두 남편이 곧바로 사망한 흡혈귀같은 미녀 치과의사라던가, 마음을 치료하는 벙어리 호스트라던가 (야왕이냐?), 발기가 안되는 호색가 스님이라던가 하는 캐릭터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죠. 그 외에도 캬바레 아가씨 이야기는 전작의 그라비아 모델 이야기와 결국 비스무레한 이야기라더라..하는 식으로 이야기의 새로움도 많이 사라졌고 우연에 의지하는 전개가 심해진 등 단점이 많이 부각되어 버렸습니다.

점점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요리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라는 주제에서 점점 벗어나는 듯 싶기에 팬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군요. 그나마 전작과 유사한 주제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으로는 남자들의 끝없는 우정(?)을 다룬 "꼬치튀김"과 항상 사진의 원안에 있었다는 아가씨가 등장하는 "동지의 호박" 정도를 꼽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다지 먹고 싶은 음식도 끌리는 이야기도 없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여전한 여유로운 그림과 전개는 마음에 들지만 더 이상은 구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덧붙이자면, 이전의 DAIN 님이 언젠가 제 블로그에 남겨주신 덧글처럼, 홍대 근처에 오덕들이 모여드는 심야의 만화방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각자 주인장에게 만화에 얽힌 사연 하나씩을 들려주며 드라마가 전개되는 오덕들의 가슴 따뜻한 훈훈한 이야기.
이런 만화방이 있다면 저는 오렌지로드와 아유카와 마도카에 대한 이야기를 컵라면을 전해주는 주인장에게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아저씨. 마도카도 이제 마흔이군여..."

2012/02/28

미스터리 심리학 - 리처드 와이즈먼 / 김영선 : 별점 3.5점

미스터리 심리학 - 8점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김영선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세상에 알려진 각종 기현상을 파헤치는 내용의 교양서적입니다. 마술의 비법을 밝히고 사기꾼들의 수법을 폭로하는 책들과 유사한데, 저도 전에 "신비의 사기꾼들"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한게 특징이며, "재미있게 쓰여졌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자체가 상당히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게 구성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어요.

또한, 각종 기현상을 꼭지별로 나누어 역사부터 소개하는 자세한 설명이 좋았으며, 심리학자 등이 전문적 능력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수수께끼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적인 재미도 느껴졌습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항상 기본 이상의 만족도를 주는 것 같습니다.

실려 있는 모든 내용이 흥미진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매나 점술가의 콜드 리딩을 설명하는 첫 번째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를 칭찬하며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듣는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데, 결국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뽑아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여러 실험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정말 무릎을 칠 만한 내용이었어요. 이건 단순한 콜드 리딩이 아니라 사기의 기법이기도 하니까요!

이왕이면 동양의 사주팔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사주팔자는 일종의 DB 개념으로 봐야 할까요?)

그 외에도 영화 제목으로까지 사용된 영혼의 무게, 강령술과 테이블 움직임, 위저보드에 대한 해석, 영혼과 유령에 대한 과학적 접근, "오렌지로드" 팬들에게는 익숙한 예지몽의 허구성, 독심술과 최면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한, 사기는 단순할수록 효과적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기도 했고요.

문체는 좋았지만, 이론적인 설명이 지나치게 직역에 가까워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뒤로 갈수록 주제 면에서 흥미와 몰입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 그래도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21/09/11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피터 스완슨 / 노진선 : 별점 1.5점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4점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푸른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조울증 환자인 판화가 헨은 남편 로이드와 함께 교외 전원 주택으로 이사했다. 친해진 이웃 부부의 저녁 초대를 받은 날, 헨은 이웃집 서재에서 더스틴 밀러 살인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던 펜싱 트로피를 발견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이웃집 남편 매슈라는걸 눈치채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헨이 정신병 때문에 저질렀던 과거 이력 탓에 경찰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매슈는 진범이 맞았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잔인하게 학대했던 아버지 때문에, 여성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자들을 응징해 왔었다. 그는 헨이 경찰에 신고한 뒤에도 밴드 보컬 스콧을 살해했고, 그 현장을 헨에게 들키고 마는데...

이전에 읽었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저자 피터 스완슨의 신작 범죄 스릴러입니다. 

"나는 범인을 알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상황을 이용한 작품은 많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작품 재미요소는, 주인공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겨져 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과정, 그리고 이 상황에서 주인공이 벌이는, 자신을 죽여 입막음을 하려는 범인과의 고독한 싸움이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사뭇 다릅니다. 주인공이 범인을 알게 된 뒤, 범인과 주인공이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다는 획기적인 전개로 나아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새로운 발상이 성공적인 건 아닙니다. 헨이 매슈에게 죽을리 없다는게 밝혀진 순간,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잦을 수 없게 되니까요. 서로간의 비밀을 공유하는, 정신병자 남녀의 기묘한 우정 드라마로 변해 버립니다. 게다가 이를 피하기 위해 작가가 매슈의 동생 리처드를 살인마로 등장시킨 건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원래 A는 B와의 관계로 위협을 받는게 정상인데, A와 B가 사이가 좋아져버리니 C가 등장하는 꼴이지요. 긴 머리 소녀와 단발 머리 소녀 두 명을 동시에 사귀는 일로 괴로워하다가(명백하게 "오렌지로드"의 카스가 쿄우스케!), 새로운 사랑인 안경 소녀를 찾는다는 오래전 "호에로 펜!" 이야기와 똑같지요. 문제는 이건 개그만화였다는거.... 

여자를 괴롭히는 악당 남자만 죽이는 매슈와는 다르게, 리처드는 남자들을 유혹하곤 하는 여자들을 죽이는 살인마라는 설정도 유치하기 짝이 없고 리처드는 사실 매슈의 이중인격이었다!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비슷한 작품을 워낙에 많이 접해보아서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어요. 이중인격은 이제 옛날 기억상실처럼 마구 가져다 쓰는 설정인 탓입니다. 

그나마 반전이 설득력있게 제공되지도 못합니다 애초부터 이중인격이었다면, 왜 매슈가 이전에 범행을 저질렀을 때에는 남자를 죽이지 않았던 걸까요? 이전에는 남자를 죽인 뒤 매슈에게 꼬리쳤던 여자가 없었다? 말이 안됩니다. 매슈는 데이트 폭력을 휘두르던 미라의 전 남자친구를 죽인 뒤, 미라와 교제해서 결혼까지 했으니, 꼬리치는 여자를 죽인다면 이 때 미라를 죽였어야 했어요.

매슈가 이중인격 연쇄 살인마가 된 이유가 형제 아버지가 어머니를 가혹하게 학대했었기 때문이라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뻔할 뿐더러 가정 폭력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정신병자 살인범이 된다는 시각을 강요하는 느낌이라서요. 

헨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설정도 식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왜 이런 류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들은 모두 정신이 온전치 못한 걸까요? 헨이 친구를 의심했던 탓에 사고를 일으켜 전과가 생겼다는 과거 역시 그녀의 정신병을 드러내서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걸 당연하게 만드려는 장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범죄 스릴러치고는 정교함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매슈가 스콧을 살해한 범행이 대표적이에요. 매슈는 헨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심지어 경찰의 방문 조사를 받은 직후 스콧을 살해합니다. 당장 죽였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범행 역시도 이런저런 도구와 준비를 갖추기는 하나, 결국 우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딱히 정교한 완전범죄로 볼 여지가 없어요. 실제로 헨이 범행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리처드의 범행은 더 엉망입니다. 미셸을 죽이고 헨을 죽이러 왔을 때 모두 범죄를 숨기려는 노력이 전무하거든요. 이중인격이 된다고 해서 바보가 되는건 아닐텐데 말이지요. 여러모로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나마 재미있었던건, 헨의 남편 로이드가 바람을 피웠다는 매슈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는 부분 정도였습니다. 헨이 로이드 옷의 냄새를 확인한 뒤, 친구에게 교묘하게 정보를 빼내어 바람 피운걸 증명하는 과정은 괜찮은 일상계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매슈의 말은 그냥 넘겨짚었던 것에 불과했고, 그 이유도 '모든 남자는 다른 여자랑 자지 못해 안달난 짐승들이다'는 매슈의 개인적인 지론 하나 뿐이라는건, 결국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인 성범죄자나 바람둥이, 아니면 살인자로 바라보는 사고 방식이라 영 별로지만요. 하긴, 이 작품이 마음에 안 드는건 이런 작가의 개인적인 사고 방식을 강요하는 탓도 큽니다. 남자는 대체로 악하고, 여자들은 대체로 마음이 병들어 있고, 가정 폭력이 있는 집 아이는 마음이 병든다는 그런 뻔한 논리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이 주인공인 양산형 여성 시점 스릴러물로 재미도 없고, 새로운 맛도 없으며 범행도 전혀 중요하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차별화할 만한 독특한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그런 요소들 모두 부정적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두 번 다시 이 작가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2019/04/07

일상기술연구소 - 제현주, 금정연 : 별점 1.5점

일상기술연구소 - 4점
제현주.금정연 지음/어크로스

제목이 흥미를 끌어 관심을 두다가 도서관에 있길래 읽어 보았습니다. 제법 유명한 팟캐스트 방송의 에피소드 몇 개가 수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저는 평범한 생활 속 기술 중 유용한 '꿀팁'을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했거든요. 청소의 비법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기술'이라는건 전혀 그런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아예 읽을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첫 번째 소개된 푸른 살림 박미정 대표 코치의 돈 관리 요령과 돈에 대한 시각은 꽤 괜찮습니다. 소비는 프라이버시, 돈을 정해주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어차피 하고 싶은 건 하게 되어 있으니 적당한 지점을 스스로 찾아 기준을 세워 소비하자, 돈 쓰는 감각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금으로만 사는 것, 결핍을 두려워 말고 일단 과감하게 끊어보자, 돈에 대해서는 정직해 져야 한다 등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은 덕분입니다. 특히나 무언가를 끊는 방법이 인상적입니다. 먼저 자기의 욕망을 먼저 수용하고 솔직하게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수용했으면 기한을 두고 참을 수 있는걸 끊어 보는거죠. 결핍을 겪어봐야 내가 얼마나 원하고 얼마나 댓가를 치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도저히 못 끊겠으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허용하고요. 마지막으로 이에 따라 내 중심의 생활 경제 질서를 만들자는데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합리화에는 괜찮은 조언이다 싶네요.

"검색, 사전을 삼키다"의 저자 정철의 정리 관련 기술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정리할 때는 '기타'를 잘 활용하자는 것과 찾기 쉽게 하는게 목표라는 것, 그리고 허용치 이상이 되면 버려야 한다는게 원칙인데 실제 책 정리에 유용하겠다 싶었어요. 사실 정리에 대한 비법보다는 요새와 같은 추천의 시대는 취향을 만들기가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긴 했지만요. 예전에는 CD 한 장 사면 별로여도 들을 수 밖에 없으니 마르고 닳도록, 가사를 외워가며 들었던 추억을 예로 들면서, 옛날에는 무언가를 고를 때 엄청나게 고민하고 노력했고, 좋아하는걸 골라내는 것도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공짜에 가깝게 계속 이어서 무한정 들을 수 있으니 이런 고민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공감이 많이 갑니다. 저 역시 제 중, 고등학교 생활을 지배했던 "오렌지 로드"의 극장판 LD를 몇 달 용돈을 모아 구입한 후, 재미를 떠나서 마르고 닳도록 본 기억이 나네요. 솔직히, 굉장히 재미 없었지만요.

하지만 그 외에는 기술이라고 부를만한게 솔직히 거의 없습니다. 일을 벌이는게 기술인가요? 배우고 가르치는 기술이라는 것도 내용만 보면 개인 경험담에 가깝습니다. 손으로 만드는 기술은 그 중에서도 최악으로 정작 내용은 손으로 만드는 뭔가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한 소개에 불과합니다. 그냥 건담 HG나 하나 사서 시작하면 될텐데 이걸 뭐 이리 장황하게 이야기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단지 기대와 다른 정도인데... "함께 살기의 기술"은 내용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예전 하숙집 느낌이라는 '우리 동네 사람들 (우동사)' 라는 공동 주택 시스템은 소개만 보면 상당히 그럴 듯 합니다. "프렌즈"나 "남자 셋, 여자 셋" 같은 느낌으로 함께 사는 재미도 있고, 가족같이 지내며 정말 오래전 대가족 느낌을 아이들에게도 줄 수 있어 보이니까요. 허나 이렇게 살거면 왜 진짜 가족과 함께 살지는 않는거죠? 가족과 함께 살지도 않는데 나와서 유사 가족을 만드는건 어불성설입니다. 집이 멀어서? 저렴해서 인천에 산다니 이 역시 성립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애초에 예를 든 "남자 셋, 여자 셋"은 대학 근처 하숙집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성립된 공동 생활이에요. 가족이 없어서 생겨난 게 아니란 말이죠. 제가 기성 세대를 넘어 꼰대가 된 탓이 크겠지만 최소한 제 딸은 절대 이런 생활로 보내고 싶지는 않네요.

본편 뒤에 부록처럼 이어지는 "독립 생활의 비법" 역시 제목만 그럴듯합니다. 게다가 나름 성공한 제빵사와 일거리가 제법 있는 프리랜서가 주인공이라 별 도움도 안될 듯 싶어요. 최저 임금으로 독립 생활을 하는 사람을 취재하는게 나았을겁니다. 아울러... 제빵사 박혜령님의 경우 30대 초반에 2,000만원 들여서 창업한 거라니 이 정도면 기성 세대 시각으로도 충분히 응원해 줄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큰 데미지는 아니고 충분히 남은 인생에서 재기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게다가 베이글이라는 아이템도 꽤 신선합니다. 온라인 주문 대응에 용이한 아이템이라는 선견지명이 돋보이고요. 이 정도면 운도 좋았지만 일단 실력으로 성공했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독립 생활의 비법"이라는 항목에 묶이기에는 역시나 말이 안됩니다. "성공의 비법" 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기대했던 내용과는 전혀 달라 실망이 큽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런 책을 읽고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에는 나이가 많은 탓이겠지만요. 그래도 주변 지인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는건 확실합니다. 저와 같이 정말 '일상 속 여러가지 생활 기술' 에 대한 내용이 있을거라 기대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0/08/05

80년대 패러디? The Cutting Crew와 오렌지로드

자주 놀러가는 야구커뮤니티 '파울볼'에서 '반짝하고 사라진 '쌍팔년도' 밴드들.... ' 이라는 제목으로 '스틸리댄' 님이 올리신 곡들을 감상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I Just) Died In Your Arms'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밴드 Cutting Crew의 "One For The Mockingbird"라는 곡의 MV인데요. 애니메이션 "Kimagure Orange Road (변덕쟁이Orange Road!)"의 2기 오프닝하고 판박이더라고요! 의외의 발견을 한 것 같아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처음 봤을때부터 정말 잘 만든 오프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표절패러디라는 것을 알게되니 좀 김이 새기도 하네요.

2015/11/05

더 스크랩 - 무라카미 하루키 / 권남희 : 별점 2.5점

더 스크랩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비채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국 잡지에서 읽은 인상적인 기사를 자신의 감상과 함께 소개하는 짤막한 칼럼 모음집입니다. 뒹굴거리며 잡지 페이지를 넘기다가, 재미있을 법한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서 일본어로 정리하여 원고를 쓰면 끝이지요. 솔직히 말해 정말로 거저먹기였다... 라고 머릿말에 작가 스스로 밝힐 만큼 거저먹는 기획물입니다. 기획부터가 풍요의 80년대다와요.

그래도 글 자체는 꽤나 재미있습니다. 특유의 고즈넉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여전히 독자에게 푸근함과 편안함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단 몇 줄, 심지어는 딱 한 줄이라도 본인의 감상을 적는 것에서 촌철살인의 묘미가 살아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80년대를 추억하고 자극할 만한 내용들이 제법 있어서 반가왔습니다. 제가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80년대 키드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 광고까지 소개해주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의 기억 속 80년대는 본 조비, 안전지대가 동급이었던, 그리고 "오렌지로드"가 현역이었던 80년대 후반에 가깝지만 "록키 3", "쿠조", "소피의 선택", "크리스틴" 같은 영화들이라든가 카렌 카펜터와 말론 브란도, 마리웰 헤밍웨이, 레지 잭슨, 빌 머레이, 휴이 루이스,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같은 유명인들, 스타워즈의 츄바카와 스크래블 게임과 같은 당대의 아이콘 등 제 기억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들은 읽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뒤에 실려 있는 도쿄 디즈니랜드가 오픈했을 때 방문했던 탐방기나 올림픽과 전혀 상관없는 올림픽 일기는 완전 부록, 사족 느낌이기는 하나 재미만큼은 충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돈 주고 구입해서 읽기에는 아깝지만 잡지에서 한 꼭지 읽기에는 그야말로 차고 넘치는 재미있는 글 모음집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콘셉트에 제대로 부합하는 글들이랄까요? 쉽게, 짤막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로 저와 같이 80년대를 추억하실 수 있는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16/12/16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 구이 료코 (쿠이 료코) / 김완 : 별점 3점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 쿠이 료코 작품집 - 8점
구이 료코 지음, 김완 옮김/㈜소미미디어

"용의 학교는 산 위에"만큼의 긴 제목을 지닌 쿠이 료코의 단편집으로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용의 학교는 산 위에"는 영 아니었지만, 그래도 팬심으로 구입했는데 다행히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발상도 기발하며, 모두 길이에 걸맞는 완결성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랍 속 테라리움"과 비교하자면, 의외성은 덜하지만 완성도가 더 높은 편이에요. 쇼트쇼트와 일반 단편의 차이점처럼요.

작품별 편차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쿠이 료코 팬들께는 적극 추천드립니다.

"용의 소탑"

바다 나라와 산 나라의 전쟁을 가로막는 국경 지대 용의 새끼가 부화하여 둥지를 떠날 때까지,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머물렀다. 교류가 끊긴 양국은 기본적인 물자 보급에도 문제가 생겼고, 마침 산 나라에 포로로 잡혔던 청년 '사난'은 소금을 가져다 준다는 약조 후 풀려나는데...

전형적인 중세풍 세계관에 ''이 등장하는 식으로 약간의 판타지가 결합된 시대물로, 막강하면서도 기묘한 존재 탓으로 적대하던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힘을 합치듯이), 왕도스러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쿠이 료코스러운 변주가 딱 하나 들어간 덕분에 독특한 매력을 전해 줍니다. 바로 '교역'입니다. 전형적인 이야기에 딱 한 가지의 설정 추가로 독특함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던전밥"과 똑같네요. 결국 사난과 유르카가 하나가 된다는 해피엔딩도 마음에 들었고요.

등장하는 크리쳐는 '용'이라기보다는 그리폰 같았다는건 조금 이해가 안되지만,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인어금렵구"

누가 봐도 인어인 기묘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무대로 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는 않아요. 인어가 멀리 떨어진 학교로 가고 싶어하고, 주인공은 그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그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라는, 한여름날 짧은 만남 이후 추억과 여운을 남기고 각자의 길을 간다는 전개는 전형적인 "보이 미트 어 걸" 그대로고요. 이 와중에 약간의 성장기 느낌을 전해주는 것 역시 동일합니다.

그러나 "용의 소탑"이나 "던전밥"처럼 '인어'라는 설정이 추가되어 독특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 설정에 더해 비교적 짧은 분량 안에서 '서로 다르기에 마음을 전하기 힘들다'는 주제를 설득력 넘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깔끔하면서도 흑백톤 위주의 작화 역시 이야기에 꼭 맞아 떨어져서 마음에 들었고요.

한마디로 익숙한 주제에 약간의 변주를 더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최고치로 발휘된 작품. 별점은 4점입니다.

"나의 신"

중학교 입시를 앞둔 소녀가 갈 곳을 잃은 물고기 신을 어항에서 키운다는 이야기로 신은 별다른 능력이 없고, 소녀는 입시에서 떨어진다는 현실적이면서 일상적인 결말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야기만 놓고 보면 딱히 대단할 것은 없는 소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늑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늑대인간이 주인공인 드라마로 남녀 관계가 아니라 모자 관계 설정이 신선했습니다. 늑대인간이 실제 인간 세계에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상세한 설정들도 인상적이고요.

단, 지나치게 일상계스러운 내용으로 주인공 케이타의 약간은 철없는 행동이 사건, 드라마의 전부라는 것은 조금 시시했습니다. 그만큼 설득력은 높았지만, 이만큼의 상세한 설정을 만들었다면 더 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해도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무일푼 뱌쿠로쿠"

천재 화가 타카가와 뱌쿠로쿠가 무일푼이 된 후, 자신이 그렸던 사자, 호랑이, 용 등을 실체화시켜 큰돈을 벌고자 한다는 시대극 판타지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일본화를 모티브로 한 작화입니다. 붓을 주로 사용한 듯한데 정말로 빼어나고 시원시원한 구도도 돋보인 덕분입니다. 뱌쿠로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위작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나중에 아들이 그린 그림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한마디로 쿠이 료코라는 작가의 넓은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 자식이 어여쁘다고 용은 운다"

왕자 준이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용의 비늘을 얻으려 나섰다. 길 안내를 맡은건 마을 이방인 준이었다.
용을 잡으러 가는 험한 길에서 병사들은 계속 낙오되었고, 결국 부상당한 왕자만 남았을 때 준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왕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기에 그것을 복수하려 한다는 것...

뻔한 복수극으로 의외성도 없고, 이야기도 좀 막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의 알과 자식을 동일시하는 전개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처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누타니 일족"

초능력 가문 이누타니 일족의 집에 소년 탐정 도다이치 코우스케가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실수로 일족의 초능력이 들통날 위기에 처해 그것을 숨기려 하나, 오히려 도다이치 코우스케는 연쇄 살인극으로 의심하며 겉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데...

제목(원전은 "이누가미 일족"이지요)과 설정부터 여러 작품을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으로 다양한 초능력을 지닌 가족들의 행동을 ‘살해당했다’고 오해해 진상을 추리하려는 탐정의 행동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을 정도로 기발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오렌지로드"에서 초능력을 감추려는 카스가 패밀리의 노력이 겹쳐져 왠지 모를 향수가 느껴진 건 덤이고요.
강대한 힘을 과신하다가 화를 부른 상황에서, 가장 쓸모없을 줄 알았던 아리사의 ‘입고 있는 옷을 파자마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반전도 돋보였습니다.

또 보통 소년 탐정이 사건에 뛰어드는 이유 — 자기와 관계도 없고 부탁한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애를 쓰지? — 에 대해 ‘자기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힘을 써야 할 때 쓴다’라는 슈퍼 히어로스러운 마인드로 알려주는 점도 괜찮았어요. 하기사 명탐정이 슈퍼 히어로와 다를 건 별로 없지요.
‘힘을 써야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쓴다, 그러나 힘을 과신하지 말라’는 주제 역시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다양한 장르물에 대한 깊은 이해에 더해 유쾌한 분위기, 적절한 반전, 심오한 주제까지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작입니다. 단점이라면 너무 짧다는 것과 결말이 약간 시시했다는 것 정도? 그래도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장르소설 애호가라면 이 작품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