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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5

방탄승! Bullet Proof Monk - 폴 헌터 : 별점 1.5점


주윤발... 윤발이 형이 한때 나의 우상이었던 때가 있었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사이였던것 같은데 주변 친구들이 유덕화다, 장국영이다 하고 빠져나갈때도 저는 윤발이 형을 적극 지지했었죠.
그런 윤발이형도 헐리우드에 진출한지 몇년 되어가는것 같은데 B급 영화에만 몇개 출연했을뿐이고 유일한 성공작이 오히려 정통 무협영화였던 "와호장룡"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윤발이형의 카리스마나 분위기는 헐리우드에서 인정하고 있는지 이번에 다시 정통 액션 영화로 복귀했네요. 이름하여 "방탄승! ( Bulletproof Monk )"

- 수백년 동안 티베트 고승들 사이에 전해 내려온 전설의 두루마리가 있다. 읽기만 하면 엄청난 힘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비기가 담긴 두루마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린 무명승(주윤발)은 악의 무리가 쏜 총에 맞아 천길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60년 뒤 뉴욕. 그때 그 무명승은 후계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지하철에서 위험에 처한 아기를 구한 소매치기 카(숀 윌리엄 스콧)를 발견한 무명승은 그를 후계자로 낙점하고 특별 훈련을 강요한다.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는 이들. 과연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입니다. 일단 저 스토리가 말이나 됩니까? 거기에다가 미국에서도 "와호장룡"의 성공에 너무 고무된것일까요? 예고편에서 나왔던 그나마 멋졌던 윤발이형이 쌍권총을 잡고 한바퀴 도는 장면은 그 장면이 전부였었고 오히려 와호장룡식의 무중력 경공같은 장면이 난무하고 악당들과는 쿵푸액션으로 대결합니다.

뭐..이런 액션장면은 B급 액션영화에서 무술을 배운 주인공 카라던가 러시마 마피아의 딸인 여주인공 제이드, 나찌의 잔당인 악당두목같은 설정이나 오로지 우연과 비약에만 의존하는 이야기 구성에 비하면 애교죠. 원작이 만화라서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원작이 만화라도 영화에서 이런 설정이 도대체 얼마나 용서가 되는건지 참 알 수 없네요. 더군다나 윤발이형은 절대 "방탄승" 이 아닙니다!!!

윤발이형은 왜 이런 영화에 출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망한것도 당연하죠. 별점은 1.5점입니다. 윤발이 형도 더 늙기 전에 어서 괜찮은 영화에 나와줘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2013/11/21

D의 복합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2점

D의 복합 - 4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명작가 이세에게 월간지 "구사마쿠라"의 편집차장 하마나카라가 찾아왔다. 고액의 원고료로 연재물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연재물은 '전설을 찾아가는 벽지 여행'이라는 민속학 테마를 가진 여행기 기획이었다. 돈과 독특한 주제에 끌린 이세는 첫 연재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이후 미마코라는 팬이 찾아와 여행기에 실린 장소에 대해 "35"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살해당했고, 이세는 하마나카와 함께 첫 연재 당시 취재 여행에서 휘말렸던 시체 발견 사건과 엮인 진상을 추적해 나간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소설. 이럭저럭 리뷰를 올린 세이초 작품도 열 편이 넘었네요.

무명작가가 거액의 원고료로 이름도 모르는 잡지의 연재를 맡게 된다는 설정은, 곧 이 작가가 누명을 쓰고 사건에 휘말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잡지도 제대로 된 잡지였고, 연재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전개로 이어져 조금 놀랐습니다. 의외의 요소가 신선하게 다가왔달까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결국 연재는 무언가에 이용된 것이었고 제대로 완결되지 못해서 작가가 스스로 사건에 뛰어들어 진상을 파헤치려 한다는 뻔한 내용으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의 연재물에 관련된 진상이 무엇인지가 이야기의 핵심이자 재미의 축이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축인 사건의 흑막은 작가의 입을 빌어, 하마나카가 뭔가 꾸미고 있다는게 초반에 드러나기니까요, 허나! 아쉽게도 실제 사건의 진상은 솔직히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한마디로 억지스럽기 때문이죠. 과거 아버지의 억울함을 복수하기 위한 행동치고는 전혀 와닿지도 않았고요.

35라는 숫자에 맞춰 여행지를 정하고 그것을 이용해 협박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민속학이라는 주제에 따라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조사하던 와중에 시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단순한 글을 가지고 나라바야시가 자신을 협박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작중에서도 보통 인물이 아닌 서번트 미마코만 알아낼 정도의 어려운 정보로, 비록 나라바야시가 전 뱃사람이란 설정이 있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무리입니다. 바다도 아니고 육지인데 누가 경도와 위도를 찾아볼까요? 당장 저만 해도 제가 살고 있는 곳의 경도와 위도도 모르는 판인데...

또 설령 협박 사실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공소시효도 지나고 증거도 없는 사건 때문에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억지 중의 억지였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 오해로 비롯된 거다. 미안하다 정도로 사과하고 하마나카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끝냈을 겁니다.

복수극으로도 완벽하게 수준 미달입니다. 대체 하마나카라는 친구는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공작을 꾸민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협박을 할 거면 증거를 모은 뒤 해당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암호보다 어려운 연재물로 은근하게 접근할 당위성 자체가 없으니까요. 어차피 죽일 것이었다면 정체를 숨기고 일하다가, 같이 식사도 하는 등 많이 친해졌으니 때를 봐서 죽이는 게 나았을 테고요. 나라바야시가 미마코를 죽이지 않고 위에 이야기한 대로 당당하게 처신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지도 궁금합니다.

이외에도 사회파적인 특성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평이한 내용, 작위적으로 얽히고 운이 많이 개입된 인간관계와 전개도 실망스러웠어요. 깊은 민속학적 소양을 보여주는 연재물과 여행지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하긴 했으나 현학적 측면 이외의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나 재미도 전무해서 지루했고요.

물론 건질 게 없진 않습니다. 실제 당시 잡지에 연재된 연재물답게 다음 단계,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으로 무명 작가에게 찾아온 수상한 의뢰에서 시작되어 그 의뢰에 따라 작성한 글에 대한 수수께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사건 등 착실하게 궁금증과 재미를 쌓아나가는 솜씨 하나만큼은 정말로 일품이었습니다. 확실히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만큼은 세이초라는 이름에 값하는 작품이에요.

아울러 35에 관련된 지명을 쭉 늘어놓고 각 지역의 풍광을 소개하는 여정 미스터리 같은 묘사도 좋았어요. 작가가 실제 장소를 전부 답사하는 모습이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세이초의 깊은 민속학 소양과 더불어 여정 미스터리라 해도 좋을만큼의 풍광 묘사는 분명 인상적이지만, 뭔가 핀트가 맞지 않고 방대한 분량이 낭비된 느낌이 강한 탓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태까지 읽은 '세이초 월드'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2012/03/03

추상오단장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5점

 

추상오단장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데도 책은 무선 제본되어 있었다."

무사시노의 헌책방 스고 서점에서 일하는 요시미츠에게 한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무명작가 카노 코쿠뱌쿠의 리들 스토리 단편이 실린 잡지를 찾고 있던, 본명이 기타자토였던 카노의 딸 기타자토 카나코였다. 그녀는 요시미츠에게 모두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작품 중 남은 네 편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기발한 일상계 추리물"과 장편 "인사이트 밀"로 좋은 인상을 남긴 요네자와 호노부의 연작 단편 형식의 장편 소설입니다. 스고 요시미츠가 단편 소설을 찾는 과정과 각 단편의 결말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가 교차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단순히 무명 작가의 작품을 찾는 일상계 미스터리처럼 보였지만, 점차 단편들의 수수께끼들이 기타자토와 관련된 과거 사건, 즉 그의 아내(카나코의 어머니)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앤트워프의 총성" 사건과 연결된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반전과 추리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리들 스토리의 결말이 실은 두 종류로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도 돋보였고, 모든 단편이 '앤트워프의 총성' 사건 기사의 수수께끼를 밝히고 있다는 것도 그럴듯 했어요.

"기적의 소녀" – 소녀는 자고 있었나? 깨어 있었나?
"환생의 땅" – 죽이고 심장을 찔렀는가? 죽이기 전이었나?
"어두운 터널" – 남자는 아내에게 달려갔는가? 그렇지 않은가?
"소비전래" – 남자는 아내를 죽였나? 그렇지 않나?

또한, 스고의 성장기같은 잔잔한 묘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일상계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강해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점도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단장, 기묘한 우화 같은 단편들의 완성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탓입니다. 작품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내용이 너무 쉽게 흘러간다는 느낌이랄까요.  리들 스토리, 즉 열린 결말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장르의 취지와 걸맞지도 않고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제대로 밝혀놓지도 않는 식이니까요. 

기타자토가 단편들을 리들 스토리로 만든 이유도 명확하지 않으며, 마지막에 밝혀지는 결말—즉, 단편들이 의도적으로 뒤섞여 구성되었다는 진상— 역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카나코가 진상을 아는 것이 두려웠다면 차라리 죽기 전에 모든 원고를 태워버리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스고가 이 모든 단편을 찾아낼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설정 자체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작품 "눈꽃"의 결말이 앞선 네 작품에 비해 의외성도 없고 다소 시시하게 마무리된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마무리를 감안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평도 좋고 인기도 높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아이디어와 결말을 먼저 정한 후, 그에 맞춰 설정과 전개를 조정한 느낌이에요. 조금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구성과 설정이 들어갔다면 더욱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을 텐데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리들 스토리의 대표작으로 클리브랜드 모펫의 "수수께끼 카드"가 언급되는데,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은 작품 같은데, 어떤 방법으로든 찾아서 읽어보고 싶네요.

2025/10/03

예스터데이 (2019) - 대니 보일 : 별점 2.5점

전 세계적인 정전이 12초 동안 벌어진 뒤, 무명 가수 잭 말릭은 자기 말고는 아무도 비틀즈를 알지 못한다는걸 깨달았다. 당황도 잠시, 잭은 자신이 기억하는 비틀즈의 곡들을 선보이며 화재를 불러 일으켰고, 세계적인 팝 스타 에드 시런의 눈에도 띄어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르며 명성을 쌓게 되었다. 

그러나 성공을 거둘 수록 양심, 그리고 엘리와의 사랑을 고민하던 잭은 모든 곡들은 '비틀즈'가 썼다는 진실을 고백한 뒤 사랑하는 엘리와 함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한 때의 귀재 대니 보일이 2019년 발표했던 청춘 로맨틱 음악 코미디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풍성한 비틀즈 음악을 스크린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스터데이", "Let it Be",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I Saw Her Standing There", "Back in the USSR", "Help!" 등의 명곡들이 이어지거든요. 몇몇 곡들은 장면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뮤지컬 같은 느낌까지 줍니다. 엘리가 잭에게 이별, 그리고 개빈과 만나고 있다는걸 고백한 직후 잭이 "Help!"를 열창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Help! I need somebody).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세상에서 비틀즈의 노래가 사라졌는데 나만 알고 있다!는 아이디어는 따지면 이세계 회귀물이나 전생물, 시간 여행물과 다를바 없지만 '음악'이라는 소재 선택이 아주 탁월한 덕분입니다. 만약 피카소의 그림을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발표했다면? 솔직히 성공하기 힘들겠지요. 셜록 홈즈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홈즈 시리즈도 지금 읽기에는 낡은 이야기들이 많은 탓입니다. 하지만 명곡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비틀즈'의 곡이라는 점에서 다시 성공한다는건 굉장한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음악은 유튜브 등 현재의 플랫폼 환경과 잘 맞아 떨어지기도 하니까요. 당연히 '영화'라는 매체와도 잘 어울리고요.

전반적으로 띠고 있는 가볍고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도 웃음을 주는 순간과 애틋한 감정을 담은 장면의 균형도 좋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건 캐스팅입니다. 어딘가 찌질하면서도 순수한 주인공 잭과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엘리 등 모든 인물들 캐스팅이 적절해서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우선 전체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집니다. 에드 시런의 출연의 경우,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하지는 않았는데 차라리 삭제하는게 나았을겁니다. 에드 시런의 도움이 없었어도 비틀즈 음악으로는 성공할 수 있었을테고, 에드 시런이 비틀즈에 대항해 '살리에리' 포지션을 차지하기는 역부족이니까요.
주인공 외에도 비틀즈를 기억하는 인물이 두 명 등장하는 장면, 존 레논과의 만남 장면은 사족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두 장면은 실제로 '비틀즈'가 존재했다는 의미라서 설정과 모순되는 탓입니다.

또 많은 비틀즈의 명곡이 등장하지만, 일부 곡은 선곡이 아쉽습니다. 에드 시런과의 작곡 대결에서 잭이 선보이는 "The Long and Winding Road"이 대표적입니다. 명곡이지만 일반 관객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이보다는 엔딩에 사용된 "Ob-La-Di, Ob-La-Da" 같은 친숙한 곡을 앞세우는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위대한 비틀즈 음악을 현대적인 로맨틱 코미디 속에 풀어낸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음악적 즐거움과 상큼한 러브스토리도 장점이고요.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비틀즈 음악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볼 만한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용필 노래를 모티프로 삼아 리메이크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2023/06/29

엘비스 (2022) - 바즈 루어만 : 별점 3.5점

미국 남부 멤피스에서 트럭을 몰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19살의 무명 가수 '엘비스'. 지역 라디오의 작은 무대에 서게 된 '엘비스'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몸짓과 퍼포먼스로 무대를 압도하고, 그에게 매료된 관객들에게 뜨거운 환호성을 받는다.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일하던 '톰 파커'는 이를 목격하고 '엘비스'에게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자신이 자라난 동네에서 보고 들은 흑인음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음색과 리듬, 강렬한 퍼포먼스, 화려한 패션까지 그의 모든 것이 대중을 사로잡으며 '엘비스'는 단숨에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나간 치명적이고 반항적인 존재감은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과 갈등을 빚게 되고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압박하는 '톰 파커'까지 가세해 '엘비스'는 그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평생을 함께한 매니저 '톰 파커'와의 관계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6월 초, 유럽에 갔다올 때 비행기에서 감상했습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영상이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어요. 솜씨가 여전하더군요.
엘비스 전기영화답게 엘비스의 여러가지 공연히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그 중 두 가지 공연씬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예고편에서도 비중있게 등장하는, 매니저가 엘비스를 처음 보는 첫 공연입니다. 이른바 '털기' 춤을 선보이며 여성 관객을 미치게 만드는걸 그야말로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아닌 저도 전율이 올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라스베가스 공연 장면입니다. 왜 엘비스가 공연의 황제인지, 그리고 그가 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공연이었어요. 거액 계약에 대한 당위성도 부여하고요. 리허설 장면을 통해서는 음악적인 재능도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엘비스의 마지막 공연을 보여준 것도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설명해 준 대로, 몸 상태가 어땠건간에 항상 공연에, 그리고 노래에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던 가수 엘비스의 모습을 모든 관객들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 역시 이렇게 멋진 목소리로 라이브를 소화하는 가수였다는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엘비스와 매니저 톰 파커 대령과의 악연이라는 드라마는 진부했습니다. 또 과연 그가 악당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엘비스의 모든 수익의 절반을 가져갔으니 악당이다! 라는 논리인데,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회사가 그 정도 수익은 가져가지 않나요? 영화에서도 설명되지만 엘비스가 가져간 수익도 천문학적이었습니다. 엘비스의 낭비벽이 심해서 발목을 잡혔을 뿐이지요. 
그래도 톰 파커 대령 역을 맡은 톰 행크스의 호연은 눈부셨습니다. 톰 행크스의 악역 연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얄미운 악당을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명배우는 명배우에요.
반면 주연 배우 오스틴 버틀러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젊은 시절의 연기는 충분히 그럴싸 했는데, 말년의 '거구'는 전혀 표현하지 못했거든요. 엘비스라는 인물의 분위기만큼은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어서, 당대 불세출의 스타라는 존재감만큼은 잘 표현하고 있어서 과거 명배우들의 메소드 연기처럼, '그 사람이 되는' 노력을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5점. 실존 슈퍼 스타를 영화화한 작품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멋지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엘비스만 좀 더 닮았어도 4점 이상은 충분했을 겁니다. 영화에서도 다루어진 유명한 컴백 스페셜 무대나 다시 정주행해 봐야겠네요.


2015/05/22

퍼펙트 게임 (2011) - 박희곤 : 별점 2점

2011년에 개봉한 야구 영화. 최동원, 선동렬이라는 두 대투수의 잊을 수 없는 15이닝 연장 무승부 완투 승부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BTV 설치 기념으로 감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완전 실망스럽더군요. 도대체 뭘 생각하고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는 탓입니다. 영화의 핵심은 두 대투수의 엄청난 투수전 한 경기입니다. 때문에 당연히 두 투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어야 합니다. 즉,

  • 선동렬 - 지금이 아마츄어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최동원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 때인가?
  • 최동원 - 고질적인 어깨부상, 이제 최고 투수는 선동렬인가? 아니면 아직 나인가?

이러한 고민이 보여지고, 이것들에 의해 괴로워하고 또 성장하는 모습이 나왔어야 합니다. 두 투수들이 이런 고민을 포함한 여러가지 문제에 시달리다가 치열한 승부를 통해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도약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면 충분했어요. 야구 팬들도 이러한 내용이면 만족했을테고요.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핵심 이야기는 뒷전이고 온갖 주변 에피소드에 시간을 낭비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박만수 캐릭터와 관련 에피소드입니다. 해태 타이거즈의 무명 백업 포수로 야구라는 꿈 하나만 가지고 최저 생활비에도 모자른 연봉을 받으며 버티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뜨기 전 백두산같은 인물인데 이 영화에 왜 나오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억지 신파, 억지 감동을 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에 불과하니까요. 실존인물도 아니고 말이죠. 물론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에 가상인물이 등장해서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 아주 없는 사례는 아니지만, 이렇게 흐름을 깨먹는건 큰 실수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박만수는 야구 선수로 영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동점홈런)을 담당하기라도 하는데, 스포츠지 여기자는 상당한 비중으로 온갖 장면에 출연하는데 당쵀 왜 나오는지를 알 수가 없더군요. 의상이나 분장도 80년대로 보이지 않아 영 몰입도 안 되었고요.

그 외에도 이 게임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하는 설정, 마지막에 영호남이 하나되는 감동의 도가니탕도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캐스팅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어요. 그 중에서도 양동근이 가장 문제입니다. 저는 양동근의 연기는 죤 웨인 스타일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에서든 그 인물이 된다는 메소드 액팅과 반대되는, 어떤 영화에서 어떤 인물을 연기하던 죤 웨인이라는 연기 스타일이지요. 제가 본 양동근 출연작에서의 양동근이 연기한 캐릭터는 모두 동일 인물이라 여겨질 정도의 외모와 발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의 사투리만 구사할 뿐 결국 양동근이더라고요. 문제는 그가 연기한게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선동렬"이라는거... 마찬가지 이유로 손병호의 김응룡 감독 연기도 완전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조승우의 최동원 연기와 최동원 중심의 롯데 이야기는 괜찮은 편입니다. 외모부터 발성 등 기본적인 캐릭터가 꽤 그럴듯하고 허구이기는 하나 팀 내에서 김용철과의 갈등,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인한 고민 등 야구 중심으로 드라마가 잘 잡혀 있거든요. 강현수라는 가상의 인물과 그의 아버지 강감독 에피소드도 뜬금없기는 하지만 최동원의 인간성을 부각시키고 김용철이 그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고요.

야구 시합의 열기, 긴장감은 잘 그려내었기에 이러한 롯데 - 최동원 이야기처럼 해태 - 선동렬 이야기를 구성했더라면 영화가 훨씬 좋았을텐데 안타깝기까지 하네요. 아니면 차라리 최동원이 모든 것을 불살랐던 1984년 한국시리즈를 영화로 만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야구 팬으로서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기본적인 영화 완성도의 문제가 있어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이 아직까지는 국내 야구 영화 중 최고인 것 같군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는데 저같은 가벼운 야구팬에게도 어필할 수 없는 야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건 애시당초 무리였으리라 생각됩니다.

2011/06/25

Q.E.D 정주행. 1권부터 30권까지 내맘대로 Best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한 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좋아하는 독서를 마음 편히 즐긴 것도 오래전 일인 것 같네요. 그래서 기분 전환 삼아 쌓아둔 "Q.E.D"를 1권부터 다시 정주행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장 어디를 펼쳐도 마음에 드는"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은 드니까요.

이왕 다시 정주행하는 김에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를 뽑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상계 작품이 적어서 좀 의외였어요. 다른 분들의 선택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베스트 5

4권 - 야곱의 사다리

오늘날 "Q.E.D" 장기 연재의 발판이 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캐릭터는 독특했지만, 다소 뻔했던 이전 에피소드들과 차별화되는, 이른바 수학·과학적 지식이 실제 사건과 잘 결합되면서 만화적 전개를 통해 그 시너지를 극대화시킨다는 "Q.E.D"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이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스케일도 적당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인공생명을 의인화하여 성경 속 이야기와 결합한 전개가 아주 절묘했어요.

10권 - 마녀의 손안에

역시나 "Q.E.D"스러운 명 에피소드입니다. 토마가 10살 때인 MIT 재학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인 샐럼 마녀재판과 현대의 살인사건을 접목한 전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범인이 1년여에 걸쳐 계획한 범죄와 트릭이 최고 수준입니다. 법정 드라마스러운 전개도 좋았고요.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도 최고로 꼽을 만 합니다.

16권 - 죽은 자의 눈물

핵심 트릭으로 시체 감추기 + 알리바이 위장 공작이 등장합니다. 본격물답지만 흔해빠진 설정인데, 트릭의 설득력도 높고 범인의 계획이 꼼꼼하게 짜여 있는 웰메이드 추리물입니다. 토마가 범인을 눈치챈 이유도 깔끔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만화로는 보기 드문 심리 서스펜스를 묘사가 베스트로 선정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마지막 토마의 '사기극(?)' 역시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20권 - 다망한 에나리 씨

탐정 동호회 회장 에나리의 할머니에게 닥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그린 전형적인 일상계 소품입니다. 정말로 별거 아닌 사건을 진지하게 본격 추리물로 구성한 일상계의 왕도! 그 와중에 웃음과 재치를 빼놓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베스트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한 에피소드입니다.

27권 - 입증 책임

학교 내 모의재판으로 배심원제도를 체험하는 행사에 참관하게 된 토마가 과거 실제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는 작품. 

배심원 제도를 이해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역시 "Q.E.D"의 장점인 학습만화스러운 전개가 빛나며, 사건의 맹점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법정물스러운 분위기도 합격점이고요. 마지막에 진상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검찰의 입증 책임 때문에 무죄 쪽에 힘을 실어준 토마의 행동이 역시나 토마답다는 것도 좋았어요. 캐릭터가 이렇게 일관되게 유지되기도 힘든 일이잖아요?

그리고 아래는 아쉬운 가작들. 좋은 작품들이지만 아주 약간 아쉬움이 남아 베스트 5에는 아깝게 선정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입니다.


아깝다, 가작!

9권 - 얼어붙은 철퇴

이미 잊혀진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밝혀낸다는 줄거리인데, 흡사 "용의자 X의 헌신"을 보는 듯한 두 천재 수학자의 대결이 볼만합니다(선·악의 캐릭터가 뒤바뀐 감은 있지만요). 특히 결말 부분에서 카치도키 다리가 다시 열리는 순간의 재회라는 극적 장치 덕분에 굉장히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핵심 트릭인 카치도키 다리 관 속에 시체를 넣는다는 트릭이 별로라서 가작이지만, 전개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11권 - 겨울 동물원

무명 추리작가가 자신이 고안한 트릭으로 사건을 저지른다는 일상계스러운 본격물입니다. 추리작가의 유령이 사건을 끌어가는 유머러스한 진행도 좋지만, 유치한 트릭을 한 번 더 포장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어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토마는 유령의 존재마저 눈치챘던 걸까요?

13권 - 재난의 사나이

로키와 에바 다음으로 출연 비중이 높은 토마의 대학 동기 알렌 브레이드와의 두뇌게임을 그린 에피소드.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장물이기도 한 그림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나 카이타니 시노부 같은 게임 만화 거장들의 작품처럼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17권 - 까마중

영화 촬영장을 무대로 한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트릭 자체는 경찰 수사로 밝혀질 수준이라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설정과 트릭이 작품 속 영화 "까마중"과 병렬로 진행되며 완벽하게 맞물리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트릭만 좀 더 정교했다면 만점을 받아도 될 만한 작품입니다.

24권 - 크리스마스 이브이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엄청나게 바쁜 노래방에서 벌어진 희한한 사건을 그린 일상계 에피소드. 소소하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와 함께 일종의 암호 트릭이 등장하는 등 풍성함이 좋았습니다.

25권 - 여름의 타임캡슐

가나가 초등학교 때 묻은 타임캡슐 속 보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사건의 동기가 설득력 있고,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추억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여운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2016/09/15

명품 가구의 비밀 - 조 스즈키 / 전선영 : 별점 3점

명품 가구의 비밀 - 6점 조 스즈키 지음, 전선영 옮김/디자인하우스

가구 역사상 길이 남을 디자인의 의자와 테이블, 조명을 엄선하여 그에 관련된 일화를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목차는 "전설적 명작의 비밀", "현대 디자인의 비밀", "디자인 신세대의 비밀", "경영자의 비밀"이라는 4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요. 이 중 디자인 회사 경영자 중심인 마지막 챕터를 제외하고, 총 3개 챕터에서 26개의 작품이 연대 순으로 소개됩니다.

20세기 초반부터의 가구 중에서 미적, 역사적 가치를 통틀어 엄선했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 해도 멋질 뿐더러, 작품별로 관련된 일화도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일린 그레이와 르 코르뷔지에에 얽힌 일화입니다. 아일린 그레이는 귀족 출신 여성으로, 독학으로 익힌 건축으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르 코르뷔지에와의 친분도 생겼고요.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가 그녀의 집인 E1027의 새하얀 벽에 원색적인 벽화를 그린 후 관계는 틀어지고, 그 뒤부터 르 코르뷔지에는 그녀를 매장시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참 어이가 없네요. 아일린 사후에 명예가 회복된건 다행이지만, 르 코르뷔지에를 다시 보게 되었네요. 거장이 전에 인간부터 되어야지요.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라는 윌리엄 모리스의 말인 "쓸모없는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은 집에 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좋은 예입니다. 그동안은 부르주아가 부를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속물 마인드에서 태어난 말이라 생각해 왔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자본가에 의해 조악한 품질의 대량 생산품이 보급되는 상황에서 이를 막고자 "미술 공예 운동"을 제창했던, 행동하는 디자이너의 명언이었더라고요.

1925년에 발표된 PH 램프가 로그 나선과 황금비를 활용한 제품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딱히 별다를 게 없는 디자인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이론적인 바탕이 뒷받침되었다는데 놀랐습니다. 그러니 시대를 초월해서 아직도 사랑받겠지요. 여담이지만 아내가 이사를 위해 식탁 등으로 비슷한 램프를 샀는데, 원작을 보고 나니 확실히 뭔가 품격이 달라 보이네요.

조명 "글로볼"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디자이너 모리슨의 기본 자세인 "평범함은 특별함을 능가한다"는 것이 잘 표현된 멋진 작품으로, '보통의 디자인'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줍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경영자의 비밀"은 디자인 회사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 중심이라 다른 챕터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역시 꼭 한 번 볼 만합니다. 특히 독일 가구 회사 발터 크놀이 유명 디자이너가 아닌 무명 디자이너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최우선으로 꼽았다는게 가장 와닿았습니다. 확실히 잘 나가는 회사는 다르구나 싶어요. 커뮤니케이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저 역시 이 바닥 생활 20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책의 특성상 반드시 뛰어나야 할 도판 역시 기대에 값하기에, 참 좋은 독서였습니다. 16,000원이라는 가격과 디자인 전문 서적다운 "여백의 미"가 과하기에 조금 감점합니다만, 디자인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런 류의 책이야말로 가까운 미래에 3D 이미지가 포함된 디지털 콘텐츠로 진화하기 용이하리라 생각됩니다. 다양한 각도, 환경에서 가구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3D로도 출력해서 소장하고... 와, 멋질 것 같아요!

2004/11/28

실화극장 죄와 벌 - 주병진 강간치상 사건 -

2000년 11월,(주)좋은사람들의 대표이사 겸 개그맨으로 유명한 주병진이 여대생을 강간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팬들은 물론 동료 연예인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받았던 그는 이 사건으로 그 동안 쌓아왔던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고 말았다.


#여대생,개그맨 주병진에게 강간당해 경찰 신고
2000년 11월 19일 새벽,한 여대생이 개그맨 주병진에게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신고를 했다. 경찰 진술서에서 강민지(당시 26세,실명)는 눈물로 호소를 했다.
H호텔 가라오케에서 평소 서로 알고 지내던 언니 김자영(예명),후배 신희수(예명)와 술자리를 갖던 중 민지는 호텔에서 나와 집에 가려는 자신을 주병진이 데려다주겠다며 호텔 주차장의 차로 끌고 가 뒷자석에 강제로 밀어 넣어 저항하는 자신을 폭행한 후 강간을 했다고 주장했다.

#벤츠 승용차 안에서의 진실
강간을 당했다는 강민지의 주장에 주병진 측은 다음과 같이 맞섰다. 자신의 차가 주차된 위치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호텔 현관 앞이었고, 또 강민지는 스스로 차 뒷자석에 탔으며 서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대립되면서 사건은 법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강민지는 재판 중에 진술을 여러 번 번복하고 주병진에게 합의금까지 받았음을 폭로한다. 그녀는 주병진이 2억으로 합의를 요구, 강간이 아니었다는 진술을 하기로 했으나 무고죄가 두려워 모든 사실을 밝힌다고 말했다

#합의금으로 강간사실 무마,주병진 징영선고
사건의 쟁점이 강민지가 스스로 조수석에 타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느냐는 것, 또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갖고 주병진이 그저 뺨을 두드려서 생긴 상처인가 폭행을 한 후 강간을 한 것인가를 두고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병진이 강민지에게 합의금을 준 사실은 결정적으로 불리한 작용을 했다. 실제 정액이 채취되지 않은 사실과 무죄를 증명하기 위한 호텔 벨맨 등의 증언이 있었다.그러나 재판부는 강간치상에 대한 합의금 사실을 인정하며 주병진에게 징역2년6개월, 집행유예4년을 선고한다.

#순진한 여대생이 술집 여 종업원? 강민지 꽃뱀의 의혹
그러나 1심 판결 후 강민지에 대한 소문과 제보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변호사 앞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강민지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녀는 순진한 여대생이 아닌 술집 종업원이고, 현재 술집에 종사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에 주병진의 동료,선,후배인 이휘재,이성미,김자옥은 강민지를 잠복 추적하며 진실을 밝히려 한다. 결국 강민지는 룸살롱에서 이휘재와 마주치게 된다.

#강민지의 정체는 무엇인가?
주병진은 항소심을 준비하던 중 변호사로부터 강민지가 학생이 아닌 룸살롱 여직원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변호인 측은 자긴의 신원에 대해 거짓 진술 한 것은 신빙성이 없음을 주장하며 강민지가 소속되어 있다는 룸살롱을 찾아가 주인을 증인으로 신청한다. 이에 검사 측은 강민지가 학교에서 제적당한 것을 몰랐기 때문에 학생인 줄 알았고, 피해자가 술집에 나가는 것은 개인 사생활일 뿐이고 프라이버시임을 주장하며 첨예한 대립을 한다.

#궁지에 몰린 강민지,자신의 동생과 비슷한 수법 사용
변호인 측은 당시 사건 현장을 재현하며 상황을 예로 들며 차 뒷좌석에서는 강간을 당하기가 힘들다는 점, 그리고 강제로 강간을 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옷이 찢어지지도 않은채 멀쩡했음을 증거로 들었다. 이에 검사 측은 피해자가 주병진과 동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면 가방을 맨 채로 있었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양측의 팽팽한 주장 가운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증인으로 출석한 한 룸살롱 주인 최범수(가명)의 증언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강민지의 동생(예명)에게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 강간범으로 몰렸다가 무명을 벗었다며 증언대에 섰다.

#재판정을 뒤흔든 충격적 폭로, 그리고 증거 조작
뿐만 아니라, 1심에서 증언을 했던 강민지 친구들의 증언 번복은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이들은 1심에서의 증언과는 달리, 피해자 강민지가 친구 신희수(예명)를 시켜 자신의 얼굴을 때리게 해 상처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강민지가 이 대가로 친구에게 이천만원의 돈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강민지가 위장 자살을 계획했다는 새로운 증언까지 내놓았다. 게다가 강민지는 처음 주병진으로부터 받은 합의금 2억을 법정 증인으로 출석한 친구들과 분배,이태리 명품 여행에 모두 탕진한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주병진은 무죄 판결을 받고 강민지는 해외 불법 체류로 행방이 묘연한 상태에서 지명 수배중이다.


집에서 주말에 뒹굴거리다가 우연히 케이블 TV를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 방송한 것이니 상당히 옛날 방송이군요.

1심과 항소심을 1, 2부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는데 상당히 드라마로서 긴박감이 있었고 실존 인물들이 실명으로 (물론 대역이지만) 등장하고 당시 자료화면을 많이 써서 사실감을 높인 것도 좋았습니다.

궁금했던 사건이었는데 결말을 잘 몰랐었기때문에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1차적으로 주병진이 거액으로 합의하려한 사실때문에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되었는데 항소심에서 여자측의 치밀한 작전이 서서히 드러나며 결국 무죄로 판명되게 되었습니다. 완전범죄(?)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여자측이 별로 득될것이 없었던 재판까지 끌고간 행동과 여자측의 숨겨진 과거가 밝혀진 것이 불리했고 결정적으로 친구들의 배신(?)이 치명타가 되어 버렸네요.

주병진의 문란한 사생활과 돈으로 해결하려한 처음의 행위는 분명! 잘못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상황을 몰고가면 멀쩡한 사람 강간범 되는게 정말 순식간일 것 같습니다. 어쨌건 꽃뱀한테 잘못 걸린 주병진씨는 앞으로 액땜한 셈 치고 열심히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

PS : 옛 듀스의 김성재 사건도 재 조명 되면 좋겠는데 말이죠... 전 아직도 그 애인이었던 여자의 범행이라 믿고 있습니다.

2020/06/14

빅 클락 - 케네스 피어링 / 이동윤 : 별점 2.5점

빅 클락 - 6점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지 스트라우드는 거대 출판업체 재노스 엔터프라이즈 산하의 잡지 "크라임웨이"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하다가, 한 파티에서 재노스의 연인 폴린 델로스를 만난 뒤 그녀와 불륜 관계에 빠졌다. 그러나 스트라우드와의 밀회 직후 그녀는 재노스를 게이라고 비난하다가 살해당했고, 재노스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고 희생양으로 내세우기 위해 그녀가 살해당하기 직전 만나고 있던 남자를 찾아 나섰다. 그를 찾기 위해서 출판사에서 선택한 인재는 바로 조지 스트라우드였다.

케네스 피어링이 1946년에 발표한 고전 범죄 소설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잘 알지 못하는 작품입니다만, "블러디 머더"에서 줄리언 시먼스가 추천했기 때문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국내 출간본에서는"커다란 시계"라고 언급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줄리언 시먼스의 말 그대로, 조지 스트라우드가 사주의 명령에 의해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자기라는 딜레마,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어떻게든 조사를 흐리지만 점차 궁지에 몰리는 과정입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와 잘 알고 있으며 유력한 용의자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는 덴젤 워싱턴이 주연이었던 "아웃 오브 타임"이 떠오르는데 이 작품은 이런 류 이야기의 원조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특이한건 "아웃 오브 타임"과 마찬가지로 앞 부분이 조금 지루하다는 점입니다. 출판, 잡지업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함께 조지 스트라우드와 폴린 델로스가 불륜에 빠지는 과정이 장황한 탓입니다. 특히 폴린과 함께 한 일종의 데이트 코스에 대한 디테일은 뭘 이런것까지 설명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 데이트 과정이 용의자를 찾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핵심과도 잘 맞아 떨어져서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이외의 디테일들의 독특함도 볼거리입니다. 손님이 원하는 그 어떤 물건도 보여준다는 골동, 고물상과 바가 합쳐져 있는 '길의 바'에서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무명화가 루이즈 패터슨과 그녀의 작품 때문에 빚어지는 서스펜스가 압권이에요. 조지 스트라우드가 '유다'라고 부르는 그녀의 작품을 골동품상에서 구입하는데, 구입을 경쟁했던 여자 손님이 루이즈 패터슨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지 스트라우드가 그녀의 팬이라 그림을 사무실에 걸어놓기까지 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설정도 재미있고, 조지 스트라우드를 찾기 위해 출판사는 루이즈 패터슨과 접촉하고, 결국 둘의 상봉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그를 본 순간 고함을 치려 했지만, 숨을 쉴 수 없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데, 정말 기가 막혔어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묘하게 '유다'라는 그림을 없앨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조지 스트라우드의 협박도 일품이고요. 이 그림은 마지막까지 등장합니다. 결국 '승리자'가 된 조지 스트라우드의 전리품으로요. 50달러주고 구입했지만 여러모로 화제가되어 최고 1만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다니, 나름 해피엔딩이기도 합니다. 조지가 얻은건 돈이 아니라 나름의 교훈이지만요.

그러나 조지 스트라우드에게 닥친 위기 탓에 서스펜스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해결하려는 노력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스스로 조사를 훼방놓는다고는 하지만, 그런 작전이 그닥 정교하게 드러나지 않거든요. 순전히 우연으로(출판사에서 일종의 현상금을 걸자 조지를 찾아나선 관계자가 미행해서 출판사 건물을 찾아냄) 점차 포위망이 좁혀지고, 결국 회사 건물 안에 범인이 있다!는 결론으로 직접 대면 수사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그러나 조지 스트라우드는 앞서 설명한 루이즈 패터슨과의 대면 시의 협박 외에는 별로 하는게 없어요. 뭘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빠져나가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위기 탈출은 출판사가 얼 재너스에게 닥친 문제 (수사 대상) 등으로 다른 회사에게 인수되어 조지 스트라우드를 찾는 노력이 바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맥이 빠질 정도로 시시합니다. 운, 우연 등이 겹친 결과일 뿐 조지 스트라우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지요.

또 이 인수합병으로 모든게 마무리된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지 스트라우드는 재너스가 진범이 아니라는게 밝혀지기 이전에는 진범일 가능성이 있으며, 진범이 아니더라도 주요 참고인이라는건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단지 출판사에서의 조사가 끝났다고 모든게 해결된다? 솔직히 억지스러워요. 경찰마저 나서서 찾고 있다는 설정이 있는 한 이렇게 대충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재너스의 투신 자살로 사건이 해결되는 듯한 결말도 마찬가지로 납득이 잘 되지 않았어요.

아울러 작가가 시인 출신이라는 경력 때문에 그런지, 지나치게 멋을 많이 부린 느낌도 많이 듭니다. 제목이기도 한 "빅 클락"이 대표적이에요. 시간은 뭘 해도 흐르고, 사람들은 모두 시계 속 부품일 뿐이라는 논리를 풀어내는 등으로 꽤나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있어보이게끔 하는 소재에 불과합니다.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범죄 스릴러로 쑥쑥 읽히는 맛은 좋고 비슷한 이야기 구조의 원조격이라는 역사적 가치는 크지만 잘 짜여진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노 웨이 아웃"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모래톱의 수수께끼"도 "블러디 머더" 추천으로 읽었지만 별로였었는데, 이런 류의 추천에도 그만 좀 낚여야 겠습니다.

2022/04/01

사장을 죽이고 싶나 - 원샨 / 정세경 : 별점 2점

사장을 죽이고 싶나 - 4점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아작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에서 무명 연극 배우로 살아가던 위바이통에게 중국의 유명 금융 엘리트 투자자 양안옌이 찾아왔다. 그는 위바이통 부모에게 은혜를 입었다며 바이통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였다. 6개월 안에 금융 엘리트로 만들어주겠다는 장담과 함께였다. 위바이통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호기심에 못 이겨 중국 강캉시로 향했다. 

강캉시에서 양안옌과 만나기로 한 곳은 그의 회사인 바나 금융 사무실이 있는 88층짜리 신축 바나 센터 건물로 개장하기 직전이었다. 악천후 탓에 꼭대기층 사무실에 조금 늦게 도착한 위바이통은 양안옌 사장이 여러 명의 사람들과 언쟁 끝에 격투를 벌이는 걸 목격했다. 바이통은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누군가 꺼낸 칼에 사장이 찔려 죽는걸 막을 수는 없었다. 현장에 있던 무리들은 사장이 강도 살해 당했다고 위장하려 했지만, 도망치려던 그들 앞에 류창융 등 금융계 거물 4명이 나타났다. 사장의 죽음을 숨기고 그들을 응대했지만, 곧이어 정전이 일어났고 비상 계단은 철문으로 잠겨있어서 일행은 88층 바나 은행 사무실 공간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숨겨놓았던 사장의 시체와 천뤄치가 깜쪽같이 사라진 다음날, 천뤄치, 리슈얼의 시체가 차례로 발견되는데...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집어 들게 된 중국 추리 소설로 급성장하는 중인 중국 금융업과 부동산업을 소재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88층 건물에 여러 명의 사람이 함께 갇힌 상황에서 벌어지는 본격적인 밀실 추리물이라는 점은 독특했습니다. 현대물에서는 보기 드문 설정이었는데, 악천후로 인해 개장 직전 건물에 정전이 되었고 그 탓에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꽤 그럴듯하게 상황을 연출한게 괜찮아요. 초반에 위바이통이 처음에 양안옌이 자신을 찾아왔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도 좋습니다. 위바이통의 출연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연극을 보러 왔었고, 또 다른 연극에서는 혼자 보기 적합하지 않고 오로지 위바이통을 찾기 쉬운 좌석을 골랐기 때문이었는데, 나름 추리력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생각되네요.

몇 가지 설정도 볼만합니다. 첫 번째는 양안옌이 연극 배우 위바이통을 스카웃하려던 까닭입니다. 처음에는 911 테러 때 양안옌이 위바이통의 친부모 대신 심부름을 한 덕분에 살아남아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위바이통이 중국 유학 시절 흠모했던 연극배우 리슈얼이 금융 엘리트 중 한 명이라는걸 알게 되고, 양안옌 살해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수상한 행동이 하나 둘 씩 드러나며 진상이 밝혀집니다. 양안엔은 '연기력' 때문에 배우들을 고용해서 금융 엘리트인척 시켰던 겁니다. 배우들은 모두 회사 AI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적절한 연기로 고객과 소통했고요. AI가 금융 엘리트의 거의 모든 실무를 대신하게 되면서, 사람 상대의 커뮤니케이션은 필요하니 저렴하게 배우를 고용했다는 건데 꽤 그럴싸 한 설정입니다. 

두 번째는 양안옌이 입체 영상 기술과 놀이공원용 차량 기술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이게 류창융 회장의 주택 건물 개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로 정답은 좁고, 가사 도우미가 필요한 현재의 다세대 주택 환경 개선을 위해서입니다. 창문에서 입체 영상을 만들어서 뿌리고, 엘리베이터는 놀이 공원용 차량 기술을 도입해 고층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주면, 주민들이 고층에서 넓고 쾌적하게 산다고 착각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지요. 비상 계단 벽에 숨겨진 문은 가사 도우미들이 단체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만들 셈이었고요. 이 역시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이런 설정을 풀어가면서 부동산에 목숨을 건 모습, AI 때문에 직업을 잃는 사람들 등 중국, 아니 우리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잘 그려낸 것도 인상적이에요.

그러나 이런 흥미로운 설정이 사건과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추리 소설로는 아예 함량 미달이고요. 일단 사건의 범인 쩡자웨이가 양안옌 사장을 살해한 동기부터가 불분명합니다. 그냥 충동적인 범죄로 그려지거든요.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는데서 몰래 칼을 꺼내 찌르다니, 상황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천뤄치와 리슈얼 살해는 사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저지른 범행으로 이 역시 직접적인 동기가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양안옌 - 천뤄치 - 리슈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범행 순환 구조가 완성되기는 했지만, 이는 등장인물들 시점에나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독자들은 위바이통 시점의 묘사를 통해 리슈얼이 불쌍한 피해자라는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등장인물들 생각대로, 양안옌 사장이 죽지 않았고 천뤄치가 배신자였으며 리슈얼이 사장의 스파이였다면, 천뤄치를 죽이고 시체를 공개할 이유도 없어요. 중요한 투자처 손님들을 초대한 마당에 사건을 키울 필요가 있었을리 만무하니까요.

밀실 트릭도 알고나니 너무나 한심합니다. '비밀 통로'를 사용한 것에 불과한 탓입니다. 비상 계단 벽에 아래 층으로 가는 입구가 숨겨져 있었을 뿐이니까요. 때문에 '밀실이 등장하는 추리물'이지, '밀실 트릭'이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차라리 창문에서 입체 영상을 뿌려서 88층으로 느끼게 했지만 사실은 3층이었다는 설정을 이용해서, 창문을 몰래 열고 지상으로 이동했다는 식으로 풀어가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사실 트릭에 쓸 생각도 없었다면 구태여 필요했던 설정도 아니었어요. 물론 이 역시 정전 상태에서 창문으로 어떻게 88층 영상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 설명이 부족해서 좋은 트릭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겠지만요. 

아울러 양안옌 사장이 사실은 위바이통을 죽이려고 했다는 일종의 반전과 에필로그도 별로였어요. 위바이통이 911 테러 희생자의 자식으로 거짓 인터뷰를 한 것 정도로 그를 죽이려 했다?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위바이통이 양안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설령 살의를 품었다 한들, 구태여 중국까지 불러들여 자기 건물에서 죽인다는건 말도 안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금융 엘리트에 대한 설정은 기발했지만, 전체적으로 별로라 구태여 권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9/08/04

행복의 건축 - 알랭 드 보통 / 정영목 : 별점 3점

행복의 건축 - 6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의 건축에 대한 책입니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전문적이고, 건축 전문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적 상념이 많이 담겨 있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책이겠죠.

저자가 건축가는 아니지만 건축에 대한 역사와 건축물 자체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풍성할 뿐더러, 본인 스스로도 많은 여행을 통해 다양한 유명, 혹은 무명 건축에 대한 정보를 축적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하여 미려한 문장력으로 맛깔나게 개인의 건축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목차는
  1. 행복을 위한 건축
  2.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
  3. 말하는 건축
  4.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
  5. 건물의 미덕
  6. 들의 미래
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파트별로 이해를 돕게 해 주는 다양한 예시와 도판의 사용이 적절해서 읽기도 쉽고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것 역시 저자의 방대한 지식, 그리고 뇌내 DB 덕분이겠죠.

개인적으로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거장으로 칭송받는 르 코르뷔지에의 현실감 없던 이상적 건축물에 대한 다양한 비판(?), 그리고 그 예시였습니다. 너무나 모던하게 설계하여 주인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외려 비가 새는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빌라 사부와" 이야기, 노동자들을 위해 극도의 단순함과 심플함으로 프뤼게 공장 주택 단지를 설계하였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똑같은 삭막한 환경에서 일했기에 이 주택단지에 그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일화, 그리고 이상으로만 가득찼던 파리를 위한 "부아쟁" 계획 같은 이야기들이 실려있는데, 저야 거장의 좋은 면만 바라보다가 이런 일화를 접하니 재미도 있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르 코르뷔지에의 안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밖의 다른 이야기들도 전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요.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것이 확실히 허언은 아닌것 같아요. 이만큼 지식과 상념을 맛깔나게 섞어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이지 부러운 재능이죠. 저도 추리 이야기를 잘 하고는 싶은데 이상하게 완성된 글은 제 생각과는 다르게 많이 흘러가거든요...

하지만 다 읽고 나서도 저는 제목이 의미하는 "행복의 건축"이 무엇인지는 솔직히 책을 읽고나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아름다움과 본인의 철학과 주변과의 어울림과 다양한 상징이 제대로 사용된 그러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상자같은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있는 제 입장에서는 꿈같은 일이기때문에 조금 화도 나고요. 앞으로 나이 들어 은퇴할 때가 되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검소하고 소박한, 하지만 저의 꿈이 담긴 전원 주택을 하나 짓고 싶기도 한데 그때쯤은 이 책이 제대로 참고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별점은 3점. 재미있었어요.

2011/04/16

트랙커 토우마 1 - 가나리 요자부로 / 노마 로쿠 : 별점 1.5점

트랙커 토우마 1 - 4점
가나리 요자부로 지음/서울문화사(만화)

마타기라는 일본 전통 수렵집단에게서 애니멀 트래킹을 전수받은 트래커 토우마가 주인공인 옴니버스 만화 단편집. 김전일로 유명한 가나리 요자부로 원작입니다. '발자국을 분석하라!'라고 쓰여진 띠지의 카피만 보고 혹해서 구입했습니다. 작화는 노마 로쿠인데 생판 무명이라 이유가 뭔가 했더니, 작품 후기를 보면 만화가 생활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먹고 산 세월이 제법 되는 듯 하더군요.

그래도 그림은 아주 괜찮은 편인 반면, 내용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실려있는 에피소드 거의 모두가 숲 속에서 사람을 찾는 이야기인데, 패턴이 너무 단순해서 쉽게 질리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기술로 묘사되는 트래킹도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 이상은 거의 등장하지도 않고요. 게다가 기대했던 추리적인 요소 역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여우 앞발이 뒷발보다 깊게 파인 이유가 입에 먹잇감을 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도가 그나마 괜찮아 보였을 뿐, 발자국으로 신장과 체중을 추정한다는 백년 이상된 설정이 주요한 기술로 등장하니 말 다했죠. 

지나친 감상주의도 거슬렸습니다. 도망친 흉악범이 사실은 자연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던가, 중학교 동창 모임을 통해 과거 그들이 미워했던 담임이 훌륭한 교사였다는 것을 알게된다던가 하는 식인데, 나쁘다고 할 수야 없지만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었고 교과서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부했습니다. 

주인공 토우마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뭔가 붕 떠 있는 느낌입니다. 자연과 숲을 사랑하는 순진한 전문가라는 점에서는 "산"의 '산포'와 비슷한데, '산포' 만큼의 전문성이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철학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작품의 무게 중심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그냥 착한 동네 아저씨와 다를게 없어 보였으니까요. 실력과 함께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흔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전문가 속성의 장르물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망작이지만 그림은 제법 괜찮았고, 유일하게 사람을 찾는 이야기가 아닌 개 '보가트'를 찾는 에피소드가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 조금 점수를 더 줍니다. 역시나 인기가 없었는지 전 3권 완결인데 뒷권을 더 이상 구입해 볼일은 없을 것 같네요...

덧붙이자면, 제목은 "트랙커 토우마"인데 작중 모든 대화에서 "트래커"라고 표시되더군요. 뭐가 맞는거야?

2014/09/25

인터뷰 - 루드비코 : 별점 4점

인터뷰 - 8점
루드비코 글.그림/세미콜론

긴 무명 시절을 거친 뒤 단 한 권의 책 "주황색 스카프"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져 아무런 영감을 얻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소설가를 삼류 기자가 찾아왔다. 원래 인터뷰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차기작을 구상하던 중 독자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던 작가는 구상 중인 소설을 듣고 감상을 말해달라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수락했다. 

"인터뷰"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대화 장면과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이 두 가지 틀로 이루어진 액자식 구성의 만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과 작가의 이야기는 서로를 반영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버리는데… (알라딘 책 소개 인용)

평상시에 자주 찾아보는 잠뿌리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후 독파한 웹툰.

미국 만화(혹자들이 그래픽노벨이라 칭하는)를 연상케하는 정교한 일러스트풍 작화도 좋지만, 내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가 자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온 기자에게 자신이 창작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며 평을 요구하는데, "헝가리 사진사", "작은 마을의 요괴", "양목장의 살인자"라는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목장의 살인자"는 그냥 이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잘 만든 호러 스릴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여졌더군요.
또 이야기가 개별적인 하나하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현실에서 비롯된 일종의 연작들이며 실화라는 것이 드러나는 전개 역시 굉장히 흡입력 있습니다. 정말이지 숨 돌릴 틈 없이 읽어버렸네요.

허나 하나하나의 이야기 완성도가 높은데 구태여 이걸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예를 들자면 "양목장의 살인자"가 앞의 "헝가리 사진사"와 이어진다는 마지막 장면은, "양목장의 살인자"라는 하나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완전한 사족이었던 탓입니다.

그래도 이러한 사족(?)도 "인터뷰"라는 작품 전체의 완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확실하며 작화, 내용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성도 높은 웹툰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추후 유료화되더라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어울리는 BGM 정도만 제공해 준다면 더욱 좋을 테고 말이죠. 아직 다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보지 못하신 분들은 서두르시길.

아울러 루드비코는 개그만화 그리는 엽기토끼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작가였다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을 많이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은 "부조리 만화"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작가가 언급한 "부조리극"은 연극적인 특수성이 강하기에 이 "인터뷰"라는 작품은 결과물만 놓고 보면 부조리극이 아니라 전형적인 스릴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18/09/16

Beck 1~34 해롤드 사쿠이시 : 별점 3.5점

벡 Beck 34 - 8점
사쿠이시 해럴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해롤드 사쿠이시의 장편 록 밴드 만화입니다. 요사이 답답한 일상이 이어지던 차에 다시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굉장히 단순합니다. 무명의 인디 밴드가 최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주인공 유키오의 성장과 함께 그리는데, '음악'을 정말 멋지게 그려내면서도 열혈 배틀물의 전개를 띄게 만든게 이 작품을 당대의 인기작으로 만든 이유라 생각됩니다. 최강자에게 짓밟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차분히 힘과 실력을 키우고, 타고난 재능이 뒷받침되어 결국 최고의 정점에 우뚝 선다는 전형적인 흙수저 성장기니까요. 이 과정에서 밴드 멤버들의 개성은 물론 경쟁 밴드의 캐릭터성도 확실히 구축되어 보는 재미를 더해 주며, 음악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유키오와 유우지의 모습 역시 언제 보아도 흐뭇하고 훈훈해서 마음에 듭니다.

물론 장기 연재작답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우선 유키오와 마호의 관계가 수시로 엇나가는 걸 들 수 있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는 허용 범위하고 할 수 있지만, 밴드에 닥치는 위기들은 선을 좀 많이 넘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읽다보면 짜증이 날 정도에요. 거의 모두 류스케가 가져오거나 자초했다는 것도 짜증의 요인 중 하나고요. 일본 굴지의 프로듀서 란의 눈밖에 난 이유는 캐릭터성 등을 놓고 보면 그렇다 치더라도, 레온 사익스의 개와 기타를 훔친 것은 명백한 범죄로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술 문제로 공연에 지장을 초래한 일탈도 마찬가지라서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어요.
이런걸 보면 아마 Beck 완전체도 오래 가지 못했을 겁니다. 원래는 류스케의 원맨 밴드에 가까왔지만 숨겨진 리더로 베이스 타이라가 급부상했고, 이후는 류스케보다 유키오의 천재성과 스타성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강하니 자존심 강한 류스케가 계속 버텼을리 없지요. 머지않아 타이라가 리더로 유키오와 유우지 3인 체제로 재편되었을테지요. 치바는 록 밴드에서 MC로서의 제약을 체감하고 독립해서 홀로서기를 하고요. 류스케는... 롤링 스톤스의 브라이언 존스처럼 마약, 알콜 중독으로 경력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급사해 버릴 가능성이 높겠지요. 이렇게 되면 아집을 벗어던진 Beck은 사이가 좋아진 란, 벨 암과 손잡고 앨범을 낸다는 고도의 상업화 방향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 OST를 들으며 리뷰를 쓰고 있는데 OST는 영 별로네요. "Toy"도 그랬고, 코우카 윤의 "어시안" OVA에서도 그랬지만, 음악을 다룬 만화 작품의 OST가 실제로 좋았던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화에서 표현된 전율의 보컬이 없는 탓이 큽니다. 게다가 가사에 대한 고민이 담긴 에피소드들에 부합하는 곡들, 'Out of Hall'이라던가, 작 중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Devil's way'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애니메이션 OST는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음악을 다룬 만화 중에서는 All time best 중 한편으로 꼽아도 무방할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읽다보니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과 여러모로 비교가 되어 재미있었습니다. 기타, 밴드, 록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물이 사뭇 다르기 때문인데 우선 주인공부터 비교해 볼까요? "고독한 기타맨"의 이강토는 자기를 파괴하면서까지 봄을 사랑한다는, 병적인 사랑에 집착하는 천재이고 유키오는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충분한 음악 소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키오 쪽이 설득력이 높죠. 이강토는 자기 파괴적인 사랑, 증오를 바탕으로 실력을 발휘하는 80년대~90년대 초반 한국 극화 주인공들과 똑같아요. 사랑을 위해 지면 안되는 경기를 고의로 망치고 실명한거나, 링에서 죽어 버리는 등 모두 다 마찬가지인 그 시절의 초상인데 유행이 지난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와 닿지 않습니다.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 해도 고등학생이 아폴네르의 시를 읆으며 누군가에게 목숨을 건다는 건 정신병이라고 봐야죠. 유키오처럼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건 당연합니다. "고독한 기타맨"에서 유일하게 사실적인건 봄이 강토를 거부하는 것 뿐이에요. 스토커처럼 자신을 쫓아다니는 무능력한 고아보다야 음반 회사 사장 아들로 장래가 보장된 푸른땅에게 마음이 가는게 뭐가 이상합니까? 심지어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자기를 사랑한다면 감동보다는 부담을 먼저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일 테고요. 그런데 푸른땅을 악당처럼 묘사한 내용은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어요.

게다가 두명 다 천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강토는 거의 지옥훈련과 같은 훈련을 받으며 기타를 익히지만 유키오는 꾸준한 연습, 라이브를 통해 실력을 키우죠. 이 역시 어느 쪽이 더 설득력 높은지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기타가 지옥훈련으로 실력이 는다는 것도 웃기는 발상이고요. 전미 최고의 밴드 다잉 브리드의 보컬 맷이 유키오의 보컬을 인정하는 것, 밥 딜런이 이강토의 기타 실력을 인정하고 앨범 제작을 돕는다는 설정도 어찌보면 같지만 밥 딜런이 너무 전능하게 그려지고 앨범 제작이 일사천리라 이 역시 Beck 쪽의 설득력이 훨씬 높습니다.

그나마 강타가 성장하여 세속을 초월한 음악의 신이 된다는 결말만큼은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봄에 대한 사랑도 모두 잊어버리고 음악에 모든 걸 바친 후 승천한다는 결말 외에 몇 달 같이 지냈을 뿐인 장애우 소녀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사족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야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고독한 기타맨"은 지금 읽기에는 시대 착오적인 코미디입니다. Beck은 아직 유통기한이 살아있는 생생한 작품이고요. 두 작품의 발표시기는 20년 차이가 나지 않는데, 앞으로 이 차이는 계속 벌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2019/08/11

브루투스의 심장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1.5점

브루투스의 심장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한정 일본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로, 1989년에 처음으로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범행이 먼저 등장하는 일종의 도서 추리 소설입니다.

작가 생활 초창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라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풍과는 사뭇 다른게 특징입니다. 흡사 70년대를 풍미했던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같았어요. 기차 시간표는 아니지만 상당히 정교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과 재벌 가문의 문란한 생활, 출세를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야심가, 등장인물마다 엮여 있는 콩가루같고 불우한 가정사 등 모든 설정이 흡사한 탓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거의 보기 힘든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도 마찬가지고요. 잘은 모르겠지만, 인기를 얻기 전 무명 작가 시절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 시대의 인기작을 분석하고 따라해서 어떻게든 인기를 얻어보려 했던 결과물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악녀 야스코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꽤나 공들인 정교한 트릭이 돋보입니다. 최초에 등장한, 3명이 실행하는 사체 이동 계획부터 꽤 흥미롭습니다. 오사카, 나고야, 도쿄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잘 계산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나오키의 말대로 2명이라면 모를까, 3명이 실행하는 계획은 경찰도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을테고요.
두 번째 범행인 만년필을 이용한 살인도 그럴듯합니다. 만년필 잉크를 넣는 곳에 청산가리 결정을 넣어 놓고 잉크를 넣으면 청산가스가 발생하여 사망한다는 트릭인데, 청색 잉크만 산성을 띄고 있어서 청산가스가 발생한다는 등의 과학적인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거든요. 이공계 출신 작가다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마지막에 다쿠야가 야스코를 살해한 방법도 기발하기는 뒤지지 않습니다. 미리 야스코의 방에 잠입해서 찻주전자 주둥이 안쪽에 청산가리를 발라 놓은 후, 저녁에 당당하게 방문해서 차를 직접 끓여마시게끔 유도하여 살해하는 계획으로 완벽하게 성공하니까요. 야스코도 이미 2명이나 살해된 상황이라 다쿠야를 조심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탄 차에 독이 들어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그러나 초기작인 탓인지 모두 헛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의 사체 이동 계획은 나오키가 나고야에서 오사카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신칸센을 탔어야 했고, 다쿠야 역시 이용한 차량을 처리할 때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다쿠야는 이 때문에 덜미를 잡히죠.
두 번째 청산가스 살인도 경찰이 현장 조사할 때 가스가 남아 있어서 들통난다는 점에서는 완벽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마지막 트릭 역시 다쿠야가 직접 야스코의 집을 방문했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운 좋게 들키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물론 사람이 만든 계획에 헛점이 있는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를 작중에서 형사들이 치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것도 볼거리로 이런게 도서 추리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고요. 정작 문제는 이야기 자체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3명의 사체 이동 계획부터 애매합니다. 애초에 나오키가 고로의 약점을 잡아 청부 살인까지 시킬 수 있었다면, 그냥 고로를 시키면 됩니다. 알리바이고 뭐고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적은게 낫잖아요? 이야기를 보면 고로와 나오키의 연결 고리는 그 누구도, 심지어 고로에게 청혼을 받은 나오키의 비서 유미에마저 모르니 완벽한 청부 살인이 되었을겁니다.

또 하시모토와 다쿠야를 끌어들이는 이유도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오키가 트럼프 카드 마술이 특기라는 설정도 고로의 존재 때문에 말이 안됩니다. 그냥 뽑으면 되죠. 최악인 살인이 걸린다면 고로를 시키면 되니까요. 다른 살인을 뽑은 관련자에게 빚을 지게 만들 수도 있고요. 이런걸 대단한 단서인 것 처럼 흘릴 이유는 없습니다.

진범 고로가 야스코 대신 나오키를 살해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살의를 품을 만큼 원한이 깊었다는 설명도 없을 뿐더러, 그랬다면 진작에 살인을 저질렀다면 모를까 왜 이 때 저질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사체 이동 계획에 대한 종이가 차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시체가 야스코가 아니라 나오키였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제대로 설명할만한 합리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나오키를 죽인건 살인까지 시켜서 살의가 폭발했다고 치죠. 그러면 시체 이동 계획에 참여한 하시모토와 다쿠야까지 죽이려 한 이유는 뭘까요?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었는지 먼저 간을 보는게 순서였을텐데 말이죠. 시체가 발견되어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 마당에, 연이어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아무리 봐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수사 와중에 직접 나서서 야스코를 죽이고 마지막에 고로까지 살해하려한 다쿠야의 정신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류의 설정이 너무 과한 것도 문제입니다. 주인공인 다쿠야가 온갖 어려움을 혼자 힘으로 이겨낸 자수성가형 엘리트이자 야심가라는건 흔해빠지긴 했어도 봐줄만은 합니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의 근거로는 타당하고요. 그러나 니시나 나오키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후계자가 되었으며, 아버지 도시키를 증오한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3인 살인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로봇이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위장한다는 설정도 말이 안됩니다. 실제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로봇 '나오미'는 바로 폐기되고, MM 중공은 그 뒤로도 잘 나가고 있으니 무의미한 복수였어요. 차라리 로봇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걸 널리 알리는게 더 효과적이었을겁니다.
니시나 가문의 딸 호시코의 방자한 행동이라던가, 니시나 도시키의 문란한 사생활 역시 콩가루 재벌집 설정을 드러내는 역할 뿐입니다. 특히 니시나 도시키와 야스코의 관계는 충분히 재미있게 가져갈 수 있는 소재였는데 이래저래 이상하게 소모된 느낌이에요. 

마지막의 열린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쿠야가 고로의 존재를 눈치챈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쿠야는 고로를 살해할 이유는 없었어요. 경찰에 고로가 나오키를 죽였다고 알리면 그만이죠. 다쿠야가 시체 운반을 맡았던 이유는 예비 처남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고 하면 문제 없었을겁니다. 설령 3인 살인 계획의 증거인 연판장이 남아있었더라도, 이미 2 명은 확실하게 살해한 고로보다는 다쿠야 쪽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죠. 오히려 야스코 살인까지 고로가 뒤집어 썼을 거에요. 어차피 누가 죽였는지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다쿠야가 만든 브루투스가 오작동하여 다쿠야를 죽인다는 결말은 솔직히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로봇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도 아닌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등장해서 이야기를 끝맺는건 이상하다 싶었어요. 인간보다 로봇이 우수하다고 주장했던 다쿠야의 죽음으로는 어울린다 싶기도 한데, 그동안 뛰어난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왔으니 마지막 로봇을 이용한 범행도 멋지게 성공하는게 더 설득력은 높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세세한 문제점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재벌 가문과 야심가, 알리바이 트릭이라는 3위 일체는 이미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질릴 정도로 써 먹기도 했고요. 거장이 되기 위해 겪었던 시행착오를 보여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9/03/24

매직아워 (The Magic Hour / 2008) - 미타니 코키 : 별점 2.5점

매직아워 - 6점
츠마부키 사토시 외, 미타니 코오키/CJ 엔터테인먼트

술집 주인 빙고는 보스의 여자와의 밀애 장면을 들켜버렸다. 목숨을 위협받던 그는 보스가 찾던 전설의 킬러 "데라 토가시"가 자신의 친구라며, 데라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겨우 살아났다. 그러나 데라 토가시를 모르던 탓에 보스가 정한 시간은 흘러만 갔고, 빙고는 어쩔 수 없이 무명 영화배우 무라타를 데라 토가시라고 소개했다. 무라타에게는 새로운 영화촬영이라 속였다.
대본도 없는 실험적인 영화라는 황당한 상황에서 무라타의 혼신의 연기는 계속되었고, 그러한 그의 연기에 반한 보스는 상대 조직과의 최종 결전을 준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라타를 속이던 빙고는 점차 양심때문에 고뇌하게 되는데...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각본 - 감독이었던 미타니 코키의 신작입니다. 역시 본지는 좀 되었지만 나름 1/4분기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사실은 최근 통 책 읽을 시간이 없기에 땜빵용으로) 포스팅합니다.

일단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일요일 낮에 방영하는 모 영화 소개 프로그램 때문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정말 너무나 재미있게 소개를 해 줬거든요. "배우는 영화 촬영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는 유명한 전설의 킬러로 포장되어 갱단에게 비추어 지고 있다"라는, 서로의 오해가 뒤섞여 웃음을 자아내는 핵심 장면만 잘 편집하여 소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앞뒤만 맞아 준다면 꽤 재미를 줄 수 있는 설정이라 생각했기에 곧바로 DVD를 빌려 보았지요. 
그러나... 영화는 생각만큼 웃기지 않았어요! 아주 제대로 낚인 기분이야! 아니, 제대로 낚였어!

재미가 부족한 이유는 영화속 현실도 굉장히 연극적이고 허구적인, 영화 세트장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캐릭터들의 설정 역시 만화적이라 현실성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그래서 현실과 영화 촬영이 뒤섞이는 부분의 감흥이 많이 떨어지고, 재미와 웃음의 요소가 많이 약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지한 현실이어야 할 킬러와 갱들의 이야기가 환상적인 공간에서의 동화처럼 느껴지니 어쩔 수 없지요. 만화 주인공들이 펼치는 만화속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더군다나 후반부는 완전히 막장이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반전과 더불어 진짜 전설의 킬러가 등장하지만, 그를 영화 촬영 트릭으로 퇴치한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자체를 알 수 없게 만들더군요. 만약 진짜 데라 토가시였다면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싹 쓸어버렸을 겁니다. 영화 촬영이 실제 진실보다 더 리얼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건지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적이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고 황당하기만 한 결말이었을 뿐입니다.

그 외에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왔다갔다하는 전개도 문제입니다. 빙고가 살아남기 위한 작전이 영화의 주된 내용인지, 아니면 3류배우 무라타의 열연과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려내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인지 헛갈릴 정도로 중심이 잡히지 않고 정리가 잘 안되어 있어요. (아, 물론 주인공은 무라타죠)

그래도 나름의 미덕과 장점은 분명히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비현실적이지만 따뜻했던 세트와 주연 배우의 설정과 캐릭터들- 특히 보스의 정부로 나온 후카츠 에리!- 은 충분히 즐거움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주인공 무라타의 소원 (단 한번이라도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자신의 모습) 이 이루어지는 과정, 이른바 "매직 아워"라는 시간에 대한 나름의 정의 같은 소박한 곳에 행복이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부분과 거의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은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장점만 가지고는 실망을 덮기에는 부족합니다. 물론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기대가 컸던 탓도 큽니다. 영화 소개만 보고 굉장히 웃길줄 알고 봤는데, 사실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영화라 실망하기도 했고요. 이런 류의 영화라면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대표작으로 들 수 있을텐데, "인생은 아름다워"를 목표로 해서 코미디에 대한 욕심보다는 무라타를 중심으로 하여 따뜻하고 소박한 부분을 더 끄집어 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빙고 관련 에피소드는 좀 들어내고요. 뭐 크게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영화 소개만 보면 별은 4점 이상이야! 영화 소개 프로그램의 대단한 편집 능력에 다시한번 감탄하며 글을 마칩니다.

2025/01/24

가을비 이야기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1.5점

가을비 이야기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비채

'현대 호러의 일인자 기시 유스케, 작품 하나하나에 들이는 공이 커서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그가 오랜만에 신작 《가을비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가을의 스산한 날씨를 배경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농락당하고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이 작품은 인간의 무기력과 절망감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공포를 극대화한 기담집이다.
호러에 미스터리 기법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1990년대 이후 일본 호러소설계를 이끌고 있는 일인자 자리에 오른 기시 유스케가, 이번에는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농락당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찾아온 것이다. 일상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 가지 공포담은 인간 근원의 감정을 건드리며 읽는 이로 하여금 좌절과 절망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게 하면서 진정한 공포를 선사한다.'
는 책 소갯글을 보고 집어든 작품.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소갯글에서는 공포, 호러 소설로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나 의외성이 전무한 탓입니다. 정말이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작가 명성만 놓고 보면 "엠브리오 기담" 정도의 결과물일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작품의 소재, 내용들도 "백조의 노래" 외에는 특별히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완성도도 그닥이라 좋은 점수는 못 주겠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기시 유스케의 단편들 - "도깨비불의 집", "미스터리 클락" - 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는데, 이 책도 역시나군요. 앞으로 기시 유스케 단편은 읽지 말아야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귀의 논"

아오타는 자기가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지만, 얻지는 못하는 아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미하루는 그 말을 들은 뒤 호감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미하루와 아오타가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미하루가 고백을 끝낸 아오타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걸 좀 더 극적으로 표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무섭지도 않고 의외의 반전도 없는 짤막한 소품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푸가"

작가 아오야마는 자다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이동하는 경험을 반복했다. 병원 의사는 마쓰나가에게 '푸가(해리성 전주)'라는 말을 꺼냈다. 자살 명소 수해로 이동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오야마는 영능력자에게 부탁해 침실에 강력한 결계를 쳤다. 그러나 결계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는 침실에서 대량의 물을 남기고 사라졌다. 편집자 마쓰나미는 얼마 후, 아오야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다. 침실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침대 안으로 이동했던 것이었다...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떠오르는 작품. 에메의 작품에서는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약의 부작용으로 벽에 갇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자면서 순간 이동을 하던 주인공이 결계 탓에 방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침대 속에 갇혀 죽게 됩니다. 특별한 이유로 이동을 못해서 중간에 갇힌다는 점에서 비슷하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짧았던 에메의 작품이 저는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아오야마 시점의 순간 이동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너무 길거든요. 읽다보면 비슷한 내용이라 지루해집니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의 공포심을 잘 표현하지 못한 탓입니다. 거미를 테마로 한 결계 등의 이야기도 지나치게 장황하며, 거미 꿈은 정말이지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오더라도 이렇게 길게 쓸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반면 순간 이동에 대한 설명은 제목의 '푸가' 뿐인데 극히 부족하고요. 분량 조절에 실패한 느낌이에요.

게다가 반전 소재로 사용된 물침대는 너무 생뚱맞았어요. 물침대가 그리 흔하게 사용되는 침구는 아니니까요. 순간 이동이라는 설정을 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억지 발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보다는 함께 자던 동거인 아키 몸 속으로 들어가버렸다는게 더 호러블하지 않았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백조의 노래"

인기없는 소설가 오니시 레이분은 대부호 사가로부터 미쓰코 존스라는 무명 가수의 전기를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녀는 인간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창법으로 부른 레코드를 남겼다.

탐정 로스의 보고를 통해, 미쓰코 존스의 창법은 사막에서 노래하다가 콕시디오이데스 이미티스라는 풍토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게 밝혀졌다. 이 병이 성대를 찢어 얇게 만들고, 분할 진동하게 만든 것이었다.

환상이 깨진 사가에게 로스는 자신도 이 병에 걸렸다고 보고했고, 레이분은 의뢰를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오디오와 음악에 대한 전문가적인 설명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콘덴서 스피커는 놀라운 기술이지만 저음이 나지 않는 단점이 있다거나, 스테레오 녹음은 3D 영화 같아서 진기함을 자랑하는 허세에 불과하다는 등 여러가지 내용은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소개된 노래들 - 메리 캠프가 무른 마농 레스코의 '홀로 외로이 버려져', 미쓰코 존스가 부른 라크메 중 '종의 노래' -도 실제로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고요. (아래와 같습니다)

전설적인 가수의 창법의 비결이 불치의 풍토병이라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구'를 던지는 투수의 비법이 제어할 수 없는 손가락 떨림이었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궁극의 비법을 손에 넣었지만, 짧은 영광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앞서의 오디오, 음악에 대한 상세 설명에 비하면, 풍토병에 대한 설명과 설정은 그리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반전을 위한 억지 설정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고쿠리 상"

2003년 11월 28일, 대형 사고를 쳐서 자살을 결심한 열두 살 다쿠야에게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친구 하루토가 함께 죽자며 어둠 버전의 고쿠리상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주술은 소원을 빈 네 명 중 세 명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지만, 한 명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했다. 다쿠야와 하루토는 친구 가에데와 신이치를 끌어들여 고쿠리상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고, 숨을 거둔 하루토 외 세 명은 고쿠리상의 조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11월 22일, 성공한 변호사가 된 다쿠야 앞에 주간지 기자 노구치가 나타나 18년 전 하루토의 돌연사, 가에데의 집 전소와 가족의 죽음 및 다쿠야가 저질렀던 사건을 언급하고 돈을 요구했다. 충동적으로 노구치를 살해하고 다급해진 다쿠야는 다시 한 번 고쿠리상을 부르기로 결심하고 가에데와 신이치 등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 아오모리현 도와다시의 쓰타나나누마로 가라는 답을 받은 다쿠야는 그곳으로 향하는데...

결말에서 밝혀진 사실은 이 주술이 소원을 빈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선사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쿠야는 쓰타나나누마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동한 뒤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작품은 명확한 주술의 조건과 이를 불러낸 존재에 의한 저주와 공포가 필수입니다. 고전 걸작인 스즈키 코지의 "링"처럼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어둠 버전의 고쿠리상은 조건, 목적은 물론 주술을 일으키는 존재에 대한 설명과 주술 결과 모두 애매하게 묘사되어 혼란스럽고, 전혀 무섭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안락사를 선사하는 주술이었다면, 18년 전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은걸까요? 

마지막 순간에 이미 사망한 하루토와의 대화도 무슨 맥락으로 등장하는지 모르겠고, 쓰타나나누마의 경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점도 뭐지 싶어요. 아오모리 현에서 돈이라도 받았나...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으니 점수를 줄래야 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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