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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0

체육관의 살인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5점

체육관의 살인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제가오카 고등학교의 밀실과도 같은, 체육관의 암막이 쳐진 무대 뒤에서 방송부 부장 아사지마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탁구부 부원 유나는 존경하는 선배 사가와 부장이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자 누명을 벗기기 위해 학교 제 1의 천재 우라조메 덴마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
10만엔을 받고 사가와의 누명을 벗겨준 우라주메는 추가요금 5만엔으로 사건을 해결해 줄 것을 약속했고, 사가와와 유나는 그것을 수락하는데...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신진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데뷰작.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죠. 작년에 출간되어 이런 저런 곳에서 평이 좋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전 황금기 본격물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니까요.

일단 작가의 별명이 허명은 아니더군요. 저는 본격물이라면

  1. 근사한 트릭이 등장해야 함
  2.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공유되는, 일견 사소해보이는 단서들로 사건이 해결되어야 함
  3. 트릭과 사건의 해결은 탐정의 추리를 통해야 함

정도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이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정도로 상당히 그럴듯한 본격물 얼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탐정인 우라조메가 정말로 사소해보이는 단서들 - 화장실에 버려진 우산, 젖지 않은 포스터, 주머니에 넣었을 때 균형이 맞지 않는 유류품, 바로 재생되는 DVD 플레이어 등등등 - 로 추리하는 과정이 대단합니다. 논리적일 뿐 아니라 이치에 합당해서 무릎을 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에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벌이는 추리쇼 역시 고전 본격물에 등장하는 그것이지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밀실 트릭도 현실적이고 그럴싸해서 재미를 더해 줍니다. 장벽이라고 생각했지만 원래는 운송수단이다! 라는 것인데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어요. 앞부분 프롤로그에서 일종의 서술 트릭과 같은 재미를 주는 것도 정말 기가 막혔고요.

그러나 단점도 명백합니다. 우선 사건의 현실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게 큰 문제에요. 고등학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입니다. 컨닝한게 들켰다고 사람을 죽인다는 동기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범인이 아사지마를 살해하고 증거를 회수했다 치더라도 아사지마가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전무합니다. 대표적으로 작중에서도 아사지마가 이전에 하리미야의 범행을 촬영한 것은 부원들이 모두 알고 있었잖아요?

게다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밀실 및 기타 증거는 계획적인게 아니라 대부분 우연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밀실이 된 것은 미호가 아사지마의 부탁으로 오른쪽 공간에 숨어있던 것이 시발점이었고(하필이면 가장 약한 미호에게 부탁한 것도 에러고), 연극부가 일찍 도구를 옮겨 오지 않았다면 성립되지 않는 밀실이니까요. 아울러 미호가 문에서 나와 문을 두드리고 달아나는 것을 사오토메가 목격했다는 마지막 증언도 맹점이에요. 만약 미호가 숨어있지 않았다면, 그 문으로 마사키가 나오는 것을 사오토메가 목격했을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완전범죄도 뭐도 아니죠. 이러한 점에서 정교하게 잘 짜여진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처음에 사가와가 미호를 알아채지 못한 것 역시 구태여 사건을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덧붙여 캐릭터의 매력도 많이 부족해요. 우라조메가 천재 오타쿠라는 것은 특이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십년 전에 등장했던 재수없는, 잘난척하는 천재 명탐정과 다를게 하나도 없는 탓입니다. 예컨데 반 다인이나 엘러리 퀸이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읆는 것과, 우라조메가 만화 대사를 인용하는 것의 차이는 출처의 차이일 뿐 동일합니다. 이런 천재형의 잘난척 대마왕 명탐정은 정말 싫어하는데 2010년 이후 또 보게될줄은 몰랐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고전 본격물의 얼개에 만화적인 설정을 덧붙여 꽤나 그럴듯한 본격물을 창조해낸 역량과 아이디어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본격물이라고 보기에는 앞서 말했듯 단점도 많습니다. 그래도 고전 본격물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야말로 "정통" 추리물이니까요. 데뷰작인 것도 감안해야 할 테고요. 후속작을 기대해 봐야 겠네요.

2014/09/15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오사카 케이키치 7가지 미스터리 - 오사카 케이키치 / 곽은숙 : 별점 2.5점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 오사카 케이키치 7가지 미스터리 - 6점
<오사카 케이키치> 저, <곽은숙> 역/그래출판

"감방"에서 이 작가의 "세 광인"이 마음에 들었다고 리뷰를 올렸었죠.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았는데, e-book으로 출간되어 있더군요. 퍼블릭 도메인 작품인 덕분이겠지요? 가격도 2,000원으로 착해서 주저 없이 구입했습니다.

참고로 "감방"에서는 오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오사카 케이키치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찾아보니 "오오사카" 쪽이 맞는 번역이네요. 그런데 위키를 보니 작가의 인생도 정말 드라마같습니다.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어 출정 전 은사인 고가 사부로에게 장편소설 원고를 맡겼는데, 오오사카는 루손 섬에서 병사했고 고가 사부로 역시 급사해 버린 탓에 원고가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하여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일상계 소품 한 편을 제외하고는 고전 황금기 스타일의 정통 본격물들입니다. 

수록작 전체의 별점 평균을 낸다면 2.5점 정도인데, 별점 3.5점 이상의 작품이 두 편이나 있으며 고전 황금기 스타일을 충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독서였습니다. 이런 작품이 전전(1945년 이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추리소설의 탄탄한 기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요. 고전 황금기 본격물 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보다 많이 소개되길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 리뷰에서는 항상 그렇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꼭두각시 재판"

20여 년 동안 법정 정리로 일해온 화자가 겪었던, 무려 세 건의 재판에서 핵심 증인으로 활약한 요정 여주인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법정물로 볼 수 있는데 요정 여주인이 사건 피해자나 용의자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면서도 유·무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증언을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재미있으면서도 설득력 넘치게 그리고 있습니다. 복선 및 단서 제공 역시 적절했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도박을 그린 작품은 본 적이 없는데 너무 가볍게 소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아이디어가 돋보였어요.

조금 낡은 구성과 언젠가는 꼬리가 밟힐게 분명했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야말로 숨어있는 보물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향수 신사"

여고생 구루미가 기차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신사가 은행강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을 알고 벌이는 작지만 용감한 행동을 그린 작품.

거의 대부분이 구루미의 심리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여행 중 앞좌석에 앉은 신사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2. 손가락이 하나 없다는 큰 특징을 알게 된 후 왜 그 사실을 숨길까?를 궁금해한다.
3.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은행강도 사건의 용의자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라는 순서로 전개됩니다.

여고생이다 보니 딱히 용감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된 사촌에게 줄 결혼 선물을 이용하여 명확한 증거를 남긴다는 재치가 돋보이네요. 딱히 대단한 트릭이나 추리가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귀여운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백화점의 교수형 집행인"

탐정역으로 아오야마 교스케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표제작.

노구치라는 백화점 점원이 교살된 채 추락사한 사건을 가지고 사체의 상태와 범행 현장에서 아래의 단서들

1. 범인은 힘이 셀 것이다.
2. 범행은 옥상에서 일어났다.
3. 흉기는 길고 거친 표면을 가진, 밧줄과 같은 것이다.
4. 동기가 없다.

을 끌어내어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주어진 증거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고전 황금기 시대 본격물 스타일에 충실한 작품이죠. 나름 과학적인 트릭이 사용된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트릭이 너무 작위적이었어요. 애드벌룬 안에 목걸이를 숨길 당위성도 좀 부족하고요. 이렇게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자유로웠다면 범인이 통제 가능한 다른 수를 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땅에다 파묻던가... 여튼 이래서야 트릭을 떠올리고 억지로 작품을 끼워 맞춘 결과물로 보일 뿐입니다.

전개에 있어서도 피해자 노구치가 목걸이를 훔치지 않았으리라 주장한 귀금속 코너 주임의 증언은 너무 심각한 오류를 독자에게 불러일으키기에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요. 아울러 번역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피해자의 사체에서 끌어낸 정보로 추리가 시작되는데 어려운 법의학 용어가 많이 등장할 뿐더러 주요 단서가 되는 특징도 지나치게 직역이라 이해가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조사해보니 작가의 데뷔작이던데, 뭔가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 기관차"

운행 중 유별나게 역살(사람을 치는 것) 사고가 많은 기관차가 어느 날부터 매주 돼지를 들이받는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는?

사고가 많은 기관차라는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동기가 결합된 본격물. 돼지 역살 사고가 결국 끔찍한 비극으로 끝나는 전개까지도 어떻게 보면 고전적인 작품이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추리, 진상 모두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단점이 조금 거슬렸습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도구를 이용하여 돼지를 선로에 잡아놓는 범인의 행동에서 범인이 이 도구를 판매한다는 추리를 끌어낸다든가, 범인의 동기가 역살 사고 때 "화환을 사러 오는" 오사센 기관사를 자주 보기 위해서라는 것 등입니다. 첫 번째 추리는 당연히 말도 안 되죠. 누구나 상상 가능한 쉬운 방법이 있는데 손에 넣기 쉽다고 구태여 복잡한 방법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두 번째의 동기도 범인이 스스로 움직여 자살이 가능했다면, 그게 불가능했더라도 아버지가 업고서라도 근처로 나가보는 식으로 오사센의 얼굴을 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고요.

형식과 전개는 마음에 들지만 이러한 비약 때문에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위키피디아에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해가 잘 되지는 않습니다...

"꽃다발 속의 벌레"

역시나 전형적인 고전 황금기 스타일 본격물. 한 재산가가 절벽에서 추락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홈즈 스타일의 탐정역인 오츠키 변호사의 활약이 볼거리인데 현장의 발자국을 조사하여 "범인은 여성"이라고 추리하고, 떨어져 있던 사과껍질은 범행 당시 떨어진 것이며 방향이 왼쪽이라 왼손잡이가 깎은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며, 경찰이 놓친 얇은 조각이라는 주요 증거를 발견하는 식입니다.

또 진짜 수수께끼라 할 수 있는, 체구도 작은 연약한 여성이 어떻게 격투 끝에 피해자를 절벽 밑으로 밀어 떨어뜨릴 수 있었는가?라는 것에 대한 해답이 위의 단서들로 밝혀지는 결말도 아주 좋았습니다. 깎는 위치에 따른 사과껍질의 방향성 같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농부라는 목격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인데 농부의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언급 정도를 해 주었더라면 더 나았을겁니다. 아울러 동기 역시도 썩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래서야 범인이 너무 명백하니까요. 사실 경찰이 원고 조각을 회수한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지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앞선 두 편의 본격물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합리적인, 추리의 과정과 트릭만큼은 수준 이상의 본격물로 고전 황금기 걸작과 겨룰 만한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칸칸충 살인사건"

아오야마 교스케가 재등장하는 단편.

앞선 작품들에 비하면 추리의 비중이 낮은 단순한 살인극이지만 피해자 키사부로의 시체 상태로 범행 장소는 물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리해내는 교스케의 모습은 명탐정이라 불러도 손색없어 보입니다. 조선소의 구조를 실제 추리에 응용한 디테일도 나쁘지 않았고요.

허나 내용이 워낙 단순해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별로 없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리고 G.Y라는 이니셜이 어떻게 "야마다 히로노스케"의 이니셜이죠? 번역 오류인가... 여튼 세세한 부분이 좀 아쉽네요.

"등대귀"

시오마키 등대의 불이 갑자기 꺼지고 당직인 도모다 간수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 성인 두 명이 들어도 움직이기 어려운 큰 바위를 등대 꼭대기로 옮긴 계획의 진상은?

임해시험소의 아즈마야 소장이 탐정역으로 등장하여 등대의 기계장치를 이용한 트릭을 밝혀내는데, 등대라는 장소의 특수성에 복잡한 장치 트릭이 더해진 것이라서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등대의 구조를 독자가 머릿속에 그리면서 추리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탓입니다. 동기도 정신병적인 것이라 너무 쉽게 간 느낌이고요.

완고한 옛날 사무라이 같은 카자마 간수의 거짓말을 잡아내는 소소한 활약은 좋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2/06/11

기만의 살의 - 미키 아키코 / 이연승 : 별점 1.5점

기만의 살의 - 4점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니레 가문의 당주 하루시게가 아내 사와코, 양자 요시오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의 자켓에서 독이 들어있던 초콜릿 포장지 조각이, 그리고 사와코의 서재에서 그가 불륜을 저지르는 사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범행을 인정한 하루시게가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40년 후, 가석방된 그는 사랑했던 니레 가문의 둘째 딸 도코에게 자신이 함정에 빠졌으며 사형 선고만을 피하려 거짓 자백을 했다며 40여년 간 고민해왔던 범인의 정체와 트릭을 알리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도코로부터 온 답장에는 그의 추리를 반박하는 도코의 추리가 담겨 있었다....

1947년 생이라는 노인 작가의 고전적인 정통파 본격 추리물입니다. 

콩가루 지역 유지 가문에서 발생한 의문의 독살 사건이라는 기본 설정부터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용 모두 본격물 황금기 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심지어 맨 앞 부분에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수록되어 있는 구성까지도요. 대부분의 전개가 하루시게와 도코 사이에 오간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건 독특한 요소지만, 손으로 써서 편지 봉투에 넣고 보냈다는 점에서도 고전적인 스타일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지금은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메신저 대화로 이루어지는 작품이 나오는 시대이니까요.

설정과 구성, 내용 외에 추리적인 부분도 고전 본격물 스타일을 충실히 따릅니다. '트릭' 이라는게 존재한다는 점에서요. 하루시게와 도코의 편지를 통해 같은 사건에 대해서 무려 4개의 추리가 펼쳐지는 풍성함도 좋고요. 특히 사와코의 자작극이었다는 추리와 사쿠라, 요헤이, 스미에가 공범이었다는 추리는 무릎을 칠 정도로 그럴듯했습니다. 사쿠라와 스미에의 관계에 대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써 먹는 부분, 그리고 마지막에 양복에 초콜릿 포장지 조각을 넣은 트릭도 괜찮습니다. 처음에 요헤이와 하루시게 자켓을 바꾸어 걸어 놓은 뒤, 라이터를 꺼내는 척 양복 주머니에 조각을 집어 넣었다는 건데 굉장히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맨 처음에 효도가 범인임을 주장했을 때, 흰 커피잔에 다량의 아비산을 넣고 그 위에 물엿 코팅을 했다는 장치 트릭 이야기는 조금 별로였어요. 하루시게는 이 장치를 만든건 요시오였을 거라고 추리했습니다. 효도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목숨을 맡기는 장치를 시킨다는건 그다지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독특한 장치 트릭인건 사실이고, 이외에도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하루시게가 죄를 인정했던 이유가 어쩔 수 없는 사형 선고를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정도, 변호사 출신 작가답게 잘 풀어내고 있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낡았을 뿐더러, 작위적이이라는 본격물 특유의 단점을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전개의 핵심인 둘 사이에 오간 편지와 결말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첫 번째 편지에서 하루시게는 양복 속 초콜릿 포장지 조각을 넣은 방법은 결국 알아낼 수 없었지만, 니레 가문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던 효도 유타카가 범인이라고 추리했습니다. 그러나 도코는 하루시게의 아내 사와코가 벌인 자작극이라는 자신의 추리를 보내옵니다.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그리고 남편 상복을 준비했기에 포장지 조각을 쉽게 넣을 수 있었다는게 증거라면서요.
다음 편지에서 하루시게는 도코의 남편 요헤이와 사쿠라, 그리고 가정부 스미에가 공범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와코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와 함께요. 그리고 도코가 사실은 요헤이를 사랑했던거 아니냐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도코는 요헤이는 사고사한게 아니며, 자신이 살해한 것과 다름없다는 편지를 보내옵니다.
하루시게의 마지막 편지는 도코가 요헤이와 공모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하루시게가 감옥 생활을 하게 한 진범이라는걸 밝히는 내용이었고요.
둘의 자살 이후 이 편지들이 발견되었고, 하루시게의 변호사이지 친우 기시가미의 도움으로 경찰은 도코가 하루시게를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42년 간의 수감 생활 중 도코가 진범임을 확신했던 하루시게의 복수였다는게 드러나며 마무리 되는데, 이 편지의 왕래 자체가 억지스럽고 작위적입니다. 첫 번째 편지를 보낸 뒤, 도코가 "맞아요, 효도가 범인일거에요" 라는 답장을 보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가 사와코가 범인이며, 사실 하루시게는 사와코를 사랑했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낼 이유는 없었습니다. 

설령 그런 답장을 보냈다 한들, 하루시게의 두 번째 편지 - 사쿠라, 요헤이, 스미에 공범설 - 에 응해 사실 자기가 요헤이를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편지를 보낸다는건 더 말이 안됩니다. 솔직히 도코가 이런 장문의 답장을 쓴 것 부터가 억지에요. 42년은 긴 세월입니다. 아무리 불같은 사랑을 했더라도 수십년간 연락도 뜸했던 남자가 저런 편지를 보내왔을 때, 도코가 기꺼이 반기며 열정적으로 답장을 보내면서 결국 다시 사랑에 불타오른다는건 별로, 아니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도코가 범인이라는걸 증명할 수 없다는, 본격 추리물로 보기 어려운 결함도 큽니다. 도코가 범인이라는 증거도, 자백도 없기에 이는 하루시게의 확신에 불과합니다. 즉, 하루시게의 사쿠라, 요헤이, 스미에 공범설이 진짜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루시게가 니레 가문의 당주가 된 시점에서, 도코가 사와코를 살해할 동기가 없는 탓이고요. 딸들도 아버지가 며느리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걸 묵인했을 정도로 니레 가문 당주의 위치는 확고했습니다. 불륜 따위로는 흔들리지 않았을거에요. 

물론 불륜 상대방이 자기 동생이라걸 사와코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하루시게가 당주가 된 직후에 도코가 사와코를 살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설령 도코가 요헤이와 공모했다 하더라도, 하루시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것 역시 이해하기 힘듭니다. 누가 봐도 가문의 사람이 아니고, 곧바로 야심을 드러낸 사쿠라나 효도의 양복 속에 초콜릿 포장지 조각을 넣는게 당연했을 테니까요. 사건을 무마하고, 이후 니레 가문의 터전을 다지는데도 훨씬 쉬웠을테고요. 

하루시게가 경찰에서 '사와코가 진범이다' 라고 주장했을 거라는게 도코의 바람이었다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당신 아내를 죽이고 당신에게 누명을 씌웠지만, 당신은 똑똑하니까 당신 아내 자작극이라고 경찰에 말하면 될꺼야!" 라는 건데, 뭐라 말하기도 힘든 억지 주장일 뿐이지요.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시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반전(?)도 딱히 인상적이라고 하기는 힘들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고전 본격 추리물 애호가로서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새롭게 출간된건 반가왔지만, 본격 추리물로는 함량 미달입니다. 사실 도코의 두 번째 답장부터는 읽으면서도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어요. 딱히 고전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2/06/13

변호 측 증인 - 고이즈미 기미코 / 권영주 : 별점 3점

변호 측 증인 - 6점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고아에 스트립댄서 출신인 나미코는 재벌가의 방탕한 외아들 야시마 스기히코와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녀의 시아버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형 선고를 받고 모든 것을 포기한 남편 스기히코에게 아내 나미코는 사건의 진상을 깨우쳤다고 공언한 뒤, 옛 동료가 소개한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데 이 작품이 데뷰작이자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잠깐 조사해봤더니 첫 남편이 "이쿠시마 지로"였다는 것, 만취하여 사고사로 죽었다는 것 등 작가의 일대기도 흥미롭더군요.

250여페이지라는 짤막한 길이도 적당하고 읽는 맛도 잘 살아있는 소품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고전적"인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1960년대에 발표된 작품인데 스타일은 그보다 더 이전의, 고전 본격물 황금기 시대를 연상케 하기 때문입니다.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괴퍅한 노인의 죽음과 난봉꾼 아들의 환영받지 못한 결혼의 조합이라는 설정부터가 고전 본격물스럽지요. 수많은 작품에서 익히 보아왔던 설정이기도 하고요. 거기에 더해 감옥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은 "처형 6일전"이나 "환상의 여인"이 떠오르며, 나미코의 시점과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한 전개는 코넬 울리치의 향기가 짙게 느껴집니다.
묘사도 그러합니다. 벽난로, 바 스툴, 프랑스식 창문, 테라스옆 골담초 덤불... 묘사 만으로도 영국 시골 마을 별장이 떠오를 정도거든요.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꾸면 고전 황금기 시대 작품이라고 해도 속아넘어갈 정도로 완벽한 고전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전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고전적인 본격 추리물이 아니라 주인공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반전을 그린, 서술 트릭의 원조격 작품이라는 의외성도 좋았습니다. "반드시 속는다!"라는 말 하나만큼은 적절하다 생각될만큼 트릭의 완성도도 높은 편이에요.

그러나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둘러싼 수많은 절찬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쓰여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걸작이라는 평가인 듯 싶고, 저 역시 이 평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재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반전만 해도 뭔가 한방 모아서 터트리기는 하는데, 폭발력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충격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심심하고, 기대했던 법정 장면에서의 드라마가 약한 탓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완성도는 높지만 지금 읽기에는 딱히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 것도 아닌데다가, 작중 변호사의 입을 통해 밝혀지듯 경찰의 부실한 수사도 사건을 키우는데 한몫 했다는 점에서 딱히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도 후대에 평가받을 만한 점은 분명 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꼭 시대를 초월할 필요는 없죠. 그 나름대로 즐길거리만 있으면 되니까요. 책도 이쁘게 잘 나온 편이라 마음에 드네요. 추리소설 입문자 분들에게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9/02/03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 안나 캐서린 그린 외 / 위즈덤커넥트 : 별점 2점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 4점
안나 캐서린 그린 외/위즈덤커넥트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고전 단편을 소개하는 e-book 레이블 Mystr 컬렉션 시리즈에서 "럭키팩" 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은 합본집 중 한 권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격 명탐정들이 등장하는 고전 본격물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하기에 읽게 되었네요. 고전 본격물은 영원한 제 favorite이니까요. 대부분 저작권이 만료된 저작권 free 판권물로 보이는데 딱 한 편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품들로 보입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경찰 뮐러라던가, 영국의 사립 탐정 존 벨은 탐정도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일 정도입니다. 희귀하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지요.

그러나 국내에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이유도 알겠습니다. 그냥 작품의 수준이 기대 이하입니다. 탐정들도 매력적이지 않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그냥 몰랐던 탐정, 몰랐던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가치를 느끼기 힘든 시리즈였습니다. 저렴한 가격 외에는 이 시리즈를 구해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금 총알 

혼 국장에게 펠너 교수의 집사 요한 더멜이 찾아왔다. 교수가 닫힌 서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혼 국장은 조 뮐러 형사와 함께 교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닫힌 문을 열고 살해된 교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였고, 흉기인 총알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기묘한 상황에서 조 뮐러는 이 사건이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데...

오스트리아 비밀 경찰국 소속의 자비심 많은 천재 형사 조 뮐러 시리즈 단편으로 밀실 살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지금 거의 잊혀진 시리즈가 된 이유는 명백합니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 평균 이하거든요. 핵심 트릭이라 할 수 있는 밀실 살인 트릭은 열쇠 구멍이 넓어서 빛이 새어나오고 안의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총알도 통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이디어인데, 발상은 신선하지만 대단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에 잘 녹아든 것도 아니고, 독자에게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지도 않고요.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뮐러가 이전에 맡았던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과의 관련성이 드러나는 부분 역시 작위적이라 아쉽습니다. '우연히' 옷이 찢어진 밀러가 요한으로부터 '우연히' 옷을 빌려입는데, 그 옷은 '우연하게도' 예전에 펠너 교수가 요한에게 선물한 것 중 하나였고, 그 때 '우연히' 트리스탄이라는 거대한 사냥개가 친근함을 표시한 상황에서 그 개의 주인이 니에프라는걸 알게 된다는 식으로 우연이 한 번은 몰라도 두 번 이상은 너무 많으니까요. 차라리 뮐러의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 수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니에프를 찾아갔다가 개가 친근하게 구는걸 알고, 그 옷의 주인이 사냥개와 친했다는걸 알게되었다는 전개가 훨씬 나았을겁니다.

불쌍한 범인 니에프가 자살할 시간을 벌어줄 정도로 자비심이 많다는 뮐러 캐릭터 역시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부치지 못한 편지 

그라우만 부인은 경찰을 찾아와 자신의 조카 알버트가 친구 사이더스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체포된 이유는 사이더스가 살해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며, 그의 권총이 흉기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감옥으로 자신을 찾아온 뮐러에게 알버트는 사이더스가 오래전 큰 돈을 훔쳤던 전과가 있어서 자신이 돌보는 아가씨와의 약혼을 거절했으며, 사건이 일어난 밤 사이더스가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방문했다는 증거를 남기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알버트가 후견인인 엘레노라는 오히려 알버트가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뮐러의 수사를 통해 사이더스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된, 친구에게 쓴 편지가 거짓으로 밝혀진 후 - 그에게 친구가 없었기 때문 - 이 모든 것은 사이더스의 정교한 자살 계획이라는 진상이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조 뮐러 시리즈인데 전편보다도 추리적으로는 더욱 별볼일 없습니다. 현대 독자라면 사이더스가 자살 계획을 꾸몄다는걸 너무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조 뮐러의 독백은 장황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어요. 게다가 자살자가 자기에게 총을 쏘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총을 멀리 던진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러나 정황 증거만으로 누군가를 유죄로 만드는 사법 체계의 모순, 그리고 전과자가 갱생할 수 없다고 믿는 일반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물로서의 가치는 높은 편입니다. 이런 부분은 오히려 시대를 많이 앞서간 느낌이에요. 사이더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고 했던 검찰청장 구스타프 슈미트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고, 알버트는 심장병으로 결국 몇 개월 뒤 죽는다는 씁쓸한 결말까지도 현대적이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기대했던 고전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지만, 기대 외의 사회파 추리물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아서 이전 작품보다는 좀 더 높이 평가받을만 합니다. 그래도 평균 이하 작품이라는건 변함은 없지만요...

아이비 코티지 살인 사건

예술가 개빈 킹스코트가 그의 저택 아이비 코티지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킹스코트는 머리에 난 상처로 죽었다. 현장을 방문해서 나무를 몇 그루 훔치려 했던 정원사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상황에서 "나"는 사건을 수사한다는 지인 마틴 휴이트와 함께 현장을 찾는데...

셜록 홈즈와 그의 라이벌 시대인 고전 본격 단편물 황금기 탐정 중 비교적 알려진 편인 사립 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킹스코트가 묶었던 하숙집에서 그가 꾸몄던 나무 장식품들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도망친 하숙인들 사건과 킹스코트 살인사건이 엮이는 전개가 꽤나 깔끔합니다. 하비 찰리트가 다이아몬드를 방에 숨긴 후, 킹스코트가 그 보석을 찾아내었다는 마틴 휴이트의 추리도 그럴싸하고요. 특히 도둑들이 킹스코트가 자고 있지 않을 때 만나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그들이 찾고 있는 건 서랍장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물건이었다는 설명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물론 옛 하숙집 주민 중 한 명이 찰리트라는게 밝혀진다면 사건이 쉽게 해결되었으리라는 점, 그리고 하비 찰리트의 급작스러운 등장과 사망은 완성도를 조금 떨어트리는 요소입니다. 그래도 별점은 2.5점은 충분한 무난한 작품이에요. 후대에도 잊혀지지 않은 시리즈와 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연쇄 보석 도난 사건

제임스 노리스 경이 마틴 휴이트를 자신의 렌튼 크로프트 저택으로 초대했다. 이유는 저택에서 벌어진 보석 절도 사건의 해결을 위함이었다. 11개월 전 부터 무려 3건의 연쇄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보석은 창문 외에는 모든 문이 잠긴 방 화장대에서 사라졌고, 남은 것은 불에 탄 성냥 하나 뿐이었다.
경은 방이 어두웠을 때 도둑이 성냥을 켜고 서둘러 화장대를 살핀 후 보석을 훔쳐 달아났을거라고 말했지만, 두 번째 사건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훨씬 귀한 반지를 남겨둔 채 싸구려 브로치가 도난당했다는 모순이 있었다.
그리고 
고가의 브로치가 사라졌던 세 번째 사건에서는 주인이었던 경의 처제가 방을 비운 것은 5분도 되지 않고,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으며 문은 열려 있었지만 바로 옆이 경의 딸 방이라 누군가 움직였다면 소리가 들렸어야 했다. 오직 남아있는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타버린 성냥 뿐이라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오래전 하서 추리문고 단편 모음집을 통해 읽었었던 걸작 "렌턴관 도난 사건"과 같은 작품입니다. 거의 밀실에 가까운, 사람은 드나들 수 없는 방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마틴 휴이트의 활약이 정말로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단서는 불에 탄 성냥개비 뿐이고요.
현장은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불을 밝히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게 드러난 후 성냥개비의 용도에 주목하여 추리하는 과정도 설득력 높고, 여기서 "앵무새"가 범죄에 사용되었다는 진상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 - 약간의 틈을 이용하여 방에 침입할 수 있는 건? 왜 한 번에 하나의 물건만 훔쳤는지? 왜 물건의 가치를 알 지 못했는지? 등등 - 도 상당히 공정한 편이라 이 정도면 홈즈 시대 고전 본격물 단편 중 최상급 수준의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미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으며, 이런 저런 추리 퀴즈에서 트릭이 소개되어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이는 시간이 오래 흐른 탓일 뿐 작품의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틴 휴이트라는 탐정의 매력이 떨어지는게 이 작품이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이유가 아닐까 싶기는 하군요. 이대로 잊혀지기는 아까운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둥근 방

존 벨은 친구인 변호사 에드콤비로 부터 웬트워스가의 유일한 상속인 아치볼드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진상 조사를 부탁받았다. 

아치볼드가 머물렀던 여관 주인 등의 증언으로 아치볼드의 방에서 유령이 나오며 그는 공포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이 드러났다. 존 벨은 수사를 통해 캐슬 여관에서 세 번이나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걸 알아냈고, 직접 캐슬 여관에 투숙할 계획을 세웠다. 캐슬 여관 주인 가족은 유령이 나와서 세 명이나 죽었다고 강하게 경고했지만 그는 결국 투숙에 성공했고, 하룻밤을 무사히 버텼다.
다음날 원래 제분소였던 여관 건물을 조사하던 존은 여관 주인 바인드로스와 부딪힌 뒤,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두번째 밤을 보내다가 방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런던의 유명 탐정 존 벨 시리즈입니다. 존 벨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게 독특합니다. 대부분의 셜록 홈즈의 라이벌 시리즈물은 화자가 별도로 있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읽다보니 탐정 스스로가 직접 위험에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라 1인칭으로 쓰여진게 이해는 되더군요. 무엇보다도 '회전하는 방'에 갖힌 묘사에는 아주 딱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약간은 고전 모험물 느낌도 났습니다. 스케일이 큰 기계 장치 트릭 역시 이런 느낌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고요.

하지만 제분소 건물, 회전하지 않지만 가동 가능한 물레방아 등의 조건이 무언가에 사용되었다는 내용은 좀 뻔했으며 회전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 아무 상처없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고속 회전이라면 원심력으로 어딘가에 부딛혀서 상처가 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작품 속에서처럼 완전 범죄가 가능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또 무언가 조작이 있는 방에서 기묘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 직접 방에 뛰어들어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내용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등장하는 이야기라 식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시대를 뛰어넘을 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말하는 시바신

존 벨은 로리에 박사로부터 시바신에 빠진 에드워드 더시거라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더시거의 조카딸 헬렌은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조카 재스퍼 베그웰과 결혼하려는 이유가 삼촌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이상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더시거가 벌이는 시바 신상 앞에서의 기괴한 의식을 목격한 로리에 박사는 그가 미쳤다는걸 확신한 나머지, 존 벨에게 무언가 음모가 있는게 아닌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강령술사로 변장하여 로리에 박사와 함께 더시거의 저택으로 향한 존 벨에게 베그웰은 더시거 삼촌이 미쳐서 헬렌을 죽이려 한다고 경고했고, 더시거 역시 존 벨에게 시바 신이 자신에게 끔찍한 일을 명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날 새벽 헬렌은 몰래 존 벨을 만나 재스퍼를 만난 두세달 전 부터 삼촌이 이상해졌다며, 재스퍼가 재산을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게 아니냐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타원형 회랑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구조를 응용한 과학 트릭이 등장합니다. 특정 위치에서 나는 소리가 회랑 반대쪽 특정 위치에서만 들린다는 것으로, 저도 언젠가 기사에서 보고 트릭에 써 먹어야 겠다! 고 생각했었던 내용이라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수십년 전 작품에 사용된지는 꿈에도 몰랐는데,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나 봅니다.

하지만 과학적 트릭이 사용된 것 외의 작품의 완성도, 가치는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리 소리의 "촛점"이 맞아야만 들린다고 하더라도 더시거 혼자 환청을 들은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존 벨이 단 몇 시간의 조사만으로 우연이더라도 이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전개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을 더욱 약화시키고요. 또 설령 환청을 들었다쳐도, 더시거 정도 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광기에 곧바로 사로잡혔다는 것 역시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과학적 트릭 외에는 건질게 없는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라면 좀 더 이 설정을 잘 활용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소모된게 아까울 뿐입니다.

동굴 속 유령

바이올렛 스트레인지는 뮤지컬을 보다가 특별한 한 명의 남자를 보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 너무나 뚜렷한 우울함이 나타나 그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 남자 로저 업존이 바이올렛에게 사건 하나를 의뢰했다. 도박 때문에 가정이 파탄날 위기에 몰려 이혼 절차를 진행하던 중, 아내가 침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죽음의 원인으로는 심장 질환이 거론되었지만, 시체 손목이 멍들어 있던 탓에 로저 업존에게 이런저런 추문이 덧붙여져 그는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된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바이올렛에게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털어놓는다. 첫 번째는 아내가 죽은 날 아이의 양육권을 걸고 아내와 도박을 벌였다는 것, 두 번째는 그녀에게 패배한 후 도박을 벌이던 해안 지대 동굴에서 홀로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얼마 전 동굴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아내를 묶어 죽음에 이르게 한 후 시체를 옮겨 놓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여성 작가가 쓴 작품답게 복잡하고 여성스러운 심리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정말이지 별로인 작품입니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로저 업존의 증언이 대부분이며 바이올렛은 단 하루, 저택을 방문한게 전부입니다. 현장 검증이나 별다른 수사는 이루어지지도 않아요.
바이올렛의 분장쇼 한 번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도 어처구니 없지만 이 분장쇼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아서 추리물이라고 부르기 민망합니다.

아울러 충직한 아버지의 하인이 진범이었다는 진상도 그렇게 와 닿지 않습니다. 누가 범인이든 어차피 별로 중요한 상황도 아니고요. 솔직히 아버지 로저가 범인이었다 하더라도 이야기 전개와 결말에 별 차이가 있지 않았을겁니다. 곧 죽을 사람이니까요.

탐정이 추리를 하지 않고, 진범이 누군지 중요하지도 않은 작품이 좋은 추리소설일 수 없겠죠. 완벽하게 건질게 없는 워스트 중의 워스트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눈먼 의사, 아내, 그리고 시계

하스브룩 씨는 5년 전 자신의 집 안에서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공격당해 총에 맞아 죽었다. 자기 전 집 안의 블라인드와 셔터는 철저하게 내려졌던 상태였다. 꾸준히 수사를 이어온 사립탐정 "나"는 당시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맹인 의사인 재브리스키가 하스브룩을 죽였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걸 알아낸다. 그러나 그의 미모의 아내는 그가 망상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결국 재브리스키는 경찰에 출두하지만 동기가 없다는 그의 말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고, 재브리스키는 스스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걸 경찰에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뛰어들지만 과녁인 시계를 품은 아내를 쏘고 말았다...

사립탐정인 "나"라는 화자에 의한 사건의 첫 수사 보고서와 바이올렛 스스로 "나"로 지칭하고 쓴 수사 보고서가 혼재되어 전개되는 구조가 독특합니다. 질투에 사로잡힌 재브리스키가 집을 잘못 알고 하스브룩 씨를 쏘아 죽였다는 진상도 괜찮고요. 이를 위해 재브리스키는 맹인이며 사건 당일 극도의 흥분에 사로잡혔다는 묘사를 통해 그가 집을 잘못 찾은 이유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과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술에 취했을 때 아파트를 착각해서 다른 아파트 현관문에 먹히지도 않는 비밀번호를 여러번 눌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하지만 진상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는 거의 없습니다. 재브리스키 부인에게 추근대던 남자가 현관문을 통해 도망쳤다는 정도? 그 외에 아무도 믿지 않는 재브리스키의 주장(권총은 길거리에 버렸는데 누가 주워간 것이다 등)이 사실이었다는건 너무 황당하고요. 또 바이올렛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이래서야 탐정 없이 재브리스키의 1인극으로 그의 자백으로 이야기를 끝맺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좋은 설정, 재미있는 사건을 억지스러운 전개와 탐정 캐릭터의 개입으로 망쳐버린게 아쉽습니다.

2015/05/28

광기의 왕국 -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 박원영 : 별점 2점

광기의 왕국 - 4점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지음, 박원영 옮김/레드박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 일부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퇴가 머지 않은 노형사 슈투더에게 갑작스러운 의뢰가 찾아왔다. 란트링겡 정신병원 원장 울리히가 사라진 날, 환자 피에털렌이 탈출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독일 추리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유럽 추리소설은 별로 취향이 아닌데다가 얼마 전 읽었던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딱히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었는데,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자리를 빌어 이벤트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스위스 베른 주 경찰청 소속으로 정년퇴직을 앞둔 노형사 슈투더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의 두 번째로, 최근에 발표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추리소설 황금기라 할 수 있는 1936~41년 사이에 발표된 고전이더군요. 제가 워낙 고전 황금기 걸작을 좋아하기에 읽기 전에는 굉장히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전 본격 황금기 시절 장편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정교한 플롯이나 트릭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간 심리에 바탕을 둔 일종의 수사물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북구 유럽 계열 작품이에요.

물론 이런 작품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슈투더 형사가 사건에 뛰어들어 진행되는 모든 수사 과정은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그냥 증언을 듣고, 그 증언에 따라 무언가를 수사하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리고 무언가를 또 찾아내고... 하는 전통적이고 우직한 수사만 있을 뿐이거든요.

사건 해결도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길겐 간호사의 집을 찾아간 것은 순전한 우연, 거기서 이르마 바젬과 피에털렌의 밀회를 목격한 것도 우연, 카플라운이 유츨러를 죽이려 하는 것을 목격한 것도 우연... 게다가 위험한 산길을 걷던 중 경비원 드라이어가 카플라운을 죽이고, 그 드라이어마저 체포 도중 차에 치어 죽는다는 마지막 결말은 무슨 개그물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또 슈투더가 라두너 박사와 그의 아내 앞에서 벌이는 추리쇼, 즉 마지막 상황과 카플라운의 증언 등을 통해 추리해 낸 결론은 진상이 아니며 라두너 박사가 말한 것이 진상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탐정은 수사관이자 정보제공자에 불과하며 진짜 탐정은 의뢰인!이라는 발상 자체는 혁신적이지만, 전혀 공정하지 않기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범인은 세속적인 동기, 즉 돈이 목적이었던 드라이어라는 진상도 문제입니다. 원장과 대립하며 환자에게 수상쩍은 치료를 하여 매일 밤 환자가 죽어나가게 만들고, 원장의 돈지갑까지 가지고 있으며 수족처럼 부리는 환자와 직원이 있는 악의 축 라두너 박사가 사실은 너무나 좋은 인물이었으며, 심지어는 탐정이었다! 라니 비약이 너무 심하잖아요.

내용, 설정 면에서의 오류도 눈에 뜨이는데 왜 라두너 박사가 슈투더를 불렀는지, 애초에 왜 경찰이 원장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는지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나 라두너 박사가 모든 진상을 꿰뚫었다는 점에서 슈투더를 부른 것은 불필요한 행동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길겐 등 불필요한 희생만 초래했을 뿐이거든요.

물론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정신병원이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작품답게 "광기의 왕국"으로 통칭하여 정신병에 대해 풀어놓는 부분은 좋았으며 그 중에서도 피에털렌의 설정만큼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본인만의 논리로 범죄를 저질렀는데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어서 정신병원에 수용된 뒤, 정말로 미쳐버렸다는 캐릭터인데 이렇게 주변인물로 소모되기 아깝더군요. 그 외의 정신병 관련 다양한 이론과 치료방법들의 디테일도 잘 살아 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인간 심리, 정신병에 대해서 고심한 작가의 노력은 느껴지지만 좋은 추리 소설로 보기는 어려워 감점합니다. 작중 슈투더 형사의 표현인 "아 도대체 언제 이 장광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대로 정신병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묘사가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게 묘사된 탓도 크고요. 인간 심리 묘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하겠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2022/03/18

완전살인 - 크리스토퍼 부시 / 남정현 : 별점 2점

완전살인 - 4점
크리스토퍼 부시 지음, 남정현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 런던의 주요 신문사와 경시청에 '마리우스'라고 자칭한 인물이 '완전 살인'을 예고하는 편지가 배달되었다. 폭발적인 대중의 관심 속에 마리우스가 지정한 날짜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부유한 독신 노인 토머스 리치레이였다. 토머스 리치레이가 결혼을 앞둔 탓에,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할 위기에 빠진 조카들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네 명 모두 알리바이가 완벽했었다. 줄랑고 회사 사장인 프랜시스 웨스튼 경은 회사의 새로운 중핵이 될 비밀 탐정부를 키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완전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회사의 두뇌 역할을 맡고 있는 수재 루드빅 트레버스와 전 형사부장 존 프랭클린을 투입하는데...

크리스토퍼 부시가 1929년에 발표했던 고전입니다. "고전 추리, 범죄 소설 100선"에서 추천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추리 소설의 초창기 황금기 발표작다운 면모를 과시합니다. 추천할만한 요소가 몇 가지 보이기도 하고요. 첫 번째는 트릭을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이 공정하다는 점입니다. 범인 프랭크 리치레이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었던 트릭은 변장한 대역을 내세웠던 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단서 모두는 작품 맨 앞 프롤로그 부분에서 제공됩니다. 대역이었던 플래이스가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와 영화배우 진 앨런의 대역을 찾는 오디션에 대한 묘사가 바로 그 단서거든요. 플래이스의 편지에서 사용되었던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암호 트릭도 인상적이고요. 

두 번째는 다양한 용의자를 드러내고,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계속 등장시켜서 독자의 흥미를 잡아 끄는 전개입니다. '마리우스'가 보낸 편지에서 시작해서, 범행이 일어나기 전 피해자 토머스 리치레이를 방문했던건 누구인지? 토머스 리치레이 주머니에 들어있던 협박장을 쓴 T.W.리처드는 누구인지? 등의 수수께끼가 계속 등장합니다. 수사 과정에서도 새로운 수수께끼가 드러나고요. 그야말로 고전 본격 황금기 작품의 기본은 해 줍니다. 

세 번째는 두뇌 역할의 부르주아 루드빅 트레버스와 발로 뛰는 유능한 수사관 존 프랭클린의 컴비 탐정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두 명이 컴비로 등장할 경우, 보통 한 명은 평범한 일반인 시각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두 명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꽤 신선했습니다. 이들이 사건에 뛰어든게 '회사 선전'을 위해서였다는 것도 굉장히 현대적인 동기였고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고전 명작이냐고 물으신다면, 제 답은 '아니오'입니다. 장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 된, 유통기한이 지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제목의 '완전 살인'을 예고한 마리우스의 편지입니다. 괜히 경찰의 주목을 끌 이유는 없는데, 프랭크 리치레이가 왜 이런 편지를 보내서 자신의 범행을 널리 알려야 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아요. 경찰의 시선이 분산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이왕 살인을 저지르니, 사회적인 반향도 불러 일으켜보자고 여겼던걸까요? 하지만 프랭크는 자신의 완전 살인을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불쌍한 대역 배우 플래이스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만 잔혹한 범죄자입니다. 이런 사명감같은걸 가질만한 인물이 아니에요. 또 이 때문에 여론이 크게 움직였다는 묘사도 딱히 없고, 경찰도 빨리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은 등, 한 마디로 흥미를 자아내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불필요한 설정이었습니다. 

핵심 알리바이 트릭이 단지 변장이었다는 것도 맥이 빠집니다. 또 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찰리 채플린 급의 유명 배우 대역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는 것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이 탓에 루드빅 트레버스의 주목을 끌고 말았으니까요. 프랭크가 자기와 꼭 닮은 누군가 - 플래이스 - 를 발견한 뒤 범행 계획을 꾸몄다는데 더 설득력 높았을 겁니다.

아무런 증거 없이 프랭크 리치레이를 몰아세운 뒤, 그가 자멸하는걸 노렸던 호워튼 총경과 존 프랭클린의 작전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플래이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프랭크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다는걸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플래이스가 프랭크에게 살해당했다는 거라도 증명했어야 했는데, 시체조차 찾지 못했으니 이 역시 불가능했고요. 

프랭크가 둘에게 추궁당한 직후 곧바로 범인임을 자백할 이유 역시 마땅치 않습니다. 프랭크 본인 말대로 시한부였다면 더더욱요. 어차피 오래 못 살텐데, 뭐하러 범행을 인정한단 말입니까? 도주 후 시체로 발견되는 과정도 쉽게 흘러간 느낌이라 별로였고요. 차라리 호워튼 총경과 존 프랭클린이 선량했던 프랭크를 물에 빠트려 죽인 뒤, 범인임을 자백했다며 죄를 뒤집어 씌우는게 더 현실적인 전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번역의 질이 심하게 떨어지는 동서 추리문고 출간 버젼이라 걱정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번역은 정말 끔찍한 수준이었습니다. 앞서 괜찮았다는 암호 트릭이 사용된 편지는 나쁜 번역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지요. 번역 때문에라도 도저히 권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고전'인건 분명한데,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기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작가와 작품이 잊혀진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이런 류의, 명성은 약간 남아있지만 지금은 그 생명을 고해버린 작품은 이젠 그만 읽어야겠습니다.

2010/01/14

두번째 총성 - 안소니 버클리 / 윤혜영 : 별점 3점

두 번째 총성 - 6점
안소니 버클리 지음, 윤혜영 옮김/크롭써클

유명한 탐정소설 작가 존은 자신의 교외 농장에 지인들을 초대했다. 그러나 초대객 에릭은 소문난 난봉꾼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어 갈 때, 초대객 전원이 참석하는 추리쇼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추리쇼의 피해자 역이었던 에릭이 진짜로 살해당하고 말았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살인자 역이었던 시릴 핀커튼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시절 친구였던 명탐정 로저 세링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좋아하는 작가인 안소니 버클리 (콕스)의 국내 초역된 따끈따끈한 신상입니다. 추리소설의 번역 열기에 힘입어 매니아조차 잘 몰랐던 이러한 작품까지 번역되다니 영어를 못하는 쩌리 추리 애호가로서는 무척 반가운 일이죠.

어쨌건 리뷰로 넘어가자면, 이 작품은 굉장히 새로운 시도가 가득찬 이색적인 장편입니다. 작가 스스로 "범죄 퍼즐" 보다는 캐릭터를 더욱 중시하고 새로운 전개 방법을 도입하여 더욱 복잡하게 이야기를 서술했다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지만, 캐릭터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각자의 사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부분은 고전 본격물 시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현대적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구성은 잘못한다면 복잡하기만 할 뿐 알맹이없이 지루해 질 수도 있는데,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전편에 걸쳐 녹아들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본격물 황금기 시대의 작가답게 스스로 "범죄 퍼즐"을 중시하지 않았다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수준의 트릭이 등장한다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독 초콜릿 사건"에서 미리 접했던, 여러 탐정마다 각기 다른 시각에서 범죄를 파악하는 방식을 약간 틀어서 모든 용의자들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추리쇼를 펼치는 것도 좋았고요. 마지막에 의외의 진상이 밝혀져서 독자의 뒤통수를 연달아 강타하는 놀라움이 숨어있다는 것 역시 고전 황금기 작품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작가의 시리즈 탐정 캐릭터인 로저 세링엄의 등장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세링엄의 묘사는 많지 않고, 활약 역시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황금기 명탐정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단점도 눈에 띕니다. 추리적으로는 위험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라는 설명이 계속 등장하긴 하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과연 가능했을지?라는 의문이 생기는게 가장 큰 단점입니다. 애시당초 작가의 의도가 그러했다고 하니 할 말은 없지만, 고전 퍼즐 트릭물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입니다.

또 인물들이 독특하고 입체적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다는 문제도 큽니다. 특히 화자 시릴 핀커튼은 거만하면서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 인물로 세세한 점 하나하나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그러한 부분에서 코믹함도 묻어나오기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대표작이 아닌 이유는 있었달까요. 그래도 거장의 평작은 범인의 걸작보다 나은 법이죠. 추리 애호가라면 정말 즐거워하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무엇보다도 대표작도 아닌 이 작품을 과감하게 출판해준 출판사 크롭써클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21/05/07

통 - 프리먼 월스 크로프츠 / 오형태 : 별점 2.5점

 - 6점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오형태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부두에서 포도주 통 하역 작업을 하던 해운회사 직원 보로턴은 통 한 개 안에 금화와 시체가 들어있다는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브로턴이 회사와 경찰에 신고하던 사이에 통을 누군가 가져가 버렸다. 번리 경감의 수사를 통해 통을 가져간 사람인 훼릭스 씨와 통, 그리고 통 속 금화와 시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번리 경감은 파리 경시청 경감 르빠르쥬와 함께 피해자 아네트, 피해자의 남편 보와라크 수사에 나서는데....

1920년에 발표된, 고전 본격 추리 소설 황금기 최고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작가 F.W.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의 데뷰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하고요. 유명세답게 이런저런 리스트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편입니다. '주간문춘에서 선정했던 동서미스터리 100'에서는 33위로, '에도가와 란포 본인 선정 미스터리'에서는 9위로 선정했었네요. '히치콕 매거진 선정 세계 10대 추리 소설' 중에서는 무려 2위이고요. 저도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모처럼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추리 소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용의자들 중 누가 진범인지를 밝혀내는 후더닛,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 알아내는 하우더닛과 같은 당대에 유행했던 '두뇌 게임', '퍼즐 미스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 피해자 아네트는 단순한 교살로 살해되어 추리의 여지는 없습니다. 범인은 훼릭스가 아니면 보와라크 씨일 수 밖에 없거든요.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말해서, 두뇌 게임이 아니라 '수사를 통한 현실감'이 주는 재미를 처음으로 독자에게 선사한 작품입니다. 그 덕분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겠지요.
1부에서 통을 누가 가져갔는지에 대한 수사도 볼 만 하지만 2부와 3부에 걸쳐 선보이는 본격적인 수사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2부는 번리 경감, 파리의 경시총감 쇼베 씨, 르빠르쥬 경감이 보와라크 씨의 알리바이가 완벽하고, 훼릭스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하여 그를 체포하는 내용이며 3부는 훼릭스의 변호사가 고용한 탐정 조르쥬 라튀슈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보와라크가 진범임을 밝히는 내용인데, 20세기 초반 시대상을 잘 반영하면서 당시 최신 문물과 단서들을 활용하여 멋지게 표현해 냅니다.

무언가를 수사, 조사하기 위해서는 추리를 통해 가설을 먼저 세우는 덕분에 아예 추리의 여지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이 역시 수사의 영역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사건 관계자의 증언을 듣고 이를 조사하여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탐문 수사가 대부분인 수사 과정은 추리할 부분이 많지 않고요. 2부에서 놓치거나, 간과했던 부분을 3부에서 검증, 보완하여 진상이 드러나게 될 뿐이거든요. 대표적인게 보와르크의 알리바이입니다. 보와르크는 파리에서 집사와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고 증언하고, 집사 등은 그 시간에 보와르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걸 보장합니다. 그러나 라튀슈의 조사로 이 전화는 파리가 아니라 칼레에서 걸려왔다는게 밝혀지게 됩니다. 확실히 추리가 아닌 수사를 통해 깰 수 있는건 범인의 알리바이 밖에 없지요. 이런 점에서 광고 문구 그대로 '리얼리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현실적인 수사 과정에 반해, 고전 본격물에서 흔히 봄직했던, 시체가 들어있던 불길하고 기묘한 '통'의 존재가 결합되어 흥미를 자아내는 설정도 좋습니다. 시체가 들어 있을 수도 있어서 경찰에 신고했지만, 관계자들이 여럿 얽혀 왔다가다 하는 과정이 긴장감넘치고 심지어 웃음까지 자아내는 1부는 아주 흥미로왔으며, 마지막에 시체가 발견되는 클라이막스는 그야말로 압권이었어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고전 중심의 리스트말고,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과 같은 최신 작품을 포괄하는 리스트에는 선정되어 있지 않은데 이 역시 당연합니다. 시대를 앞서나가고, 경향을 주도한 당대의 최신작이었지만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고, 문제도 많은 탓이에요. 보와르크 씨가 저지른 범죄부터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는 살해 후에 충분히 사체를 숨길 수 있었습니다. 훼릭스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이미 집사와 하녀가 믿은 상태니까요. 구태여 조각상을 한 개 더 주문하면서, 정체가 드러날걸 각오해가면서까지 통을 파리에서 영국으로, 다시 영국에서 파리로 옮길 수고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시체를 통 속에 넣어둔 뒤, 집사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는걸 고민하는게 당연하지요. 훼릭스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그랬다는데, 그럴거라면 파리에서 훼릭스가 아내를 살해하고 도주했다고 꾸미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훼릭스가 수상해 보이도록 만들어 누명을 씌울 생각이었다는데, 통이 깨져서 금화와 함께 시체가 살짝 드러나지 않았다면 사건이 커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훼릭스에게 누명을 제대로 씌우려면, 이 작품에서처럼 훼릭스가 찾기 전에 시체가 드러났어야 하지만 이는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그래도 통의 이동은 작품의 핵심이니 그렇다 치죠. 그러나 2부에서 보와라크의 알리바이가 확실하다고 의견을 모으는 장면은 여러모로 어설픕니다. 예를 들어 보와라크가 1시 쯤 내린 집중호우를 맞아서 옷이 젖었다는게 그 시간에 밖에 있었던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경시총감 쇼베의 말대로 부인이 1시 전에 집을 나갔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고요. 지나치게 보와라크를 무죄로 만드려는 억지로 보였습니다.
세부 설정들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훼릭스의 복권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이를 사건에 써먹을 생각을 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훼릭스와 친구 르 고티에 씨는 복권 이야기를 할 때 보와르크 씨가 있었다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이건 공정하지 않지요. 마지막에 보와르크 씨가 라튀슈에게 모든 범행을 고백한 뒤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자살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울러 가독성이 떨어지는 동서 추리문고의 번역도 역시나 문제가 많네요. '워타르 로드'는 '워털루 로드'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점 때문에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 작품을 평가한다는게 온당한 처사는 아니겠지만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부와 3부를 묶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23/06/08

걸작 밀실 미스터리 : 불가능 범죄 베스트 10


짧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역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추리 소설가 톰 미드(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네요)가 밀실 미스터리의 장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밀실 미스터리"라는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밀실 미스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불가능'이라는 요소입니다. 사실 저는 이 용어를 '불가능한 범죄'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범죄(보통 살인)가 저질러지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종 초자연적인 사건과 불길한 분위기로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기발한 추리와 합리적인 설명에 의해 눈부신 스타일로 풀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최초의 밀실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공포, 호러 소설에 가깝고 실제로 탐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몇 년 동안 장르의 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작품으로는 윌키 콜린스의 단편 소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가 있습니다 (물론 콜린스는 최초의 제대로 된 '탐정 소설'인 <<월장석>>을 쓴 작가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얼룩 띠>>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밀실 미스터리는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은 상승 궤도에 있던 장르의 초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탐정 소설의 황금기에는 밀실 미스터리의 인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퍼즐이 핵심인 '공정한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서 특히 도전적인 하위 장르이기도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 엘러리 퀸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독자가 가상의 범죄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와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밀실 미스터리의 주요 요소이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장르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존 딕슨 카가 문학계에 충격을 주며 등장한건 1930년대 초, 황금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카는 최고의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이자 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걸작을 연이어 썼으며, 그의 경력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놀라운 감각으로 풀어내는는 능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0년대와 40년대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영국 범죄소설 커뮤니티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영국 탐정 협회에 입회한 단 두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기가 하락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에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다시 운이 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Jonathan Creek, Monk, Death in Paradise와 같은 TV 쇼는 새로운 세대에게 불가능한 문제의 즐거움을 소개했습니다. 다니엘 스태샤워와 빌 프론지니 같은 작가들이 기억에 남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책으로도 계속 인기를 얻고 있고요. 하지만 이 장르를 처음 접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작을 돕기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밀실 미스터리 10편의 목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목록은 지난 세기 동안 정말 눈부신 작품을 만들어낸 장르의 최고를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당 한 권의 소설만 선정하였고 (그 자체로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죠), 매일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여 빠르게 늘어나는 책장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을 위해 역순으로 제 상위 10권을 소개합니다:

WHISTLE UP THE DEVIL : 데릭 스미스 (1953) (국내미출간)
데릭 스미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도 저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밀실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53년에 처음 출간된 WHISTLE UP THE DEVIL은 두 건의 불가능한 살인 사건으로 이 장르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비 오는 어느 날 밤, 로저 퀘린이라는 남자가 살해되면서 시작되지요.
슬프게도 이 소설은 스미스의 생애에서 출판 된 유일한 소설이었습니다. 스미스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걸작으로 칭송받은 WHISTLE UP THE DEVIL로 찬사를 받기 시작한지는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BLOODHOUNDS : 피터 러브시 (1996)
피터 러브시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퍼즐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고전 본격물의 공정함과 경찰 수사를 완벽하게 조화시켰습니다. BLOODHOUNDS는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 그룹이 실제 밀실 미스터리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따라서 존 딕슨 카의 이름이 자주 언급됩니다. 잠겨 있고 뚫을 수 없는 운하 바지선에서의 살인 사건이라는 매우 특이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이 장르가 처음이고,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INVISIBLE GREEN : 존 슬래덱 (1977)
존 슬래덱은 공상 과학 소설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뛰어난 불가능한 범죄 소설인 Black Aura와 INVISIBLE GREEN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어요. 특히 INVISIBLE GREEN은 작가의 다재다능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묘사, 예리한 논리를 보여줍니다. 고전 본격물의 황금기가 끝난 지 한참 지난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탐정 태커이 핀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저비스 펜과 같은 수준의 황금기 밀실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슬래덱이 공상 과학 소설을 위해 그를 버리기 전까지 핀은 단 두 편의 소설과 단편 소설에만 등장했을 뿐인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가 또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NINE TIMES NINE : H.H. 홈즈 (앤서니 부셰) (1940)
앤서니 부셰는 미스터리 장르의 진정한 학자였으며, 실제로는 미스터리를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Bouchercon' 덕분에 그의 명성은 계속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몇 편의 미스터리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NINE TIMES NINE에는 빛의 아이들이라는 사악한 종교가 등장합니다.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빛의 아이들을 이끄는, 수수께끼 같은 두건을 쓴 지도자에게 저주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란 가운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범죄 현장에서 목격된 후 사라지고요. 우르술라 수녀는 이 복잡한 사건의 여러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MR. SPLITFOOT : 헬렌 맥클로이 (1969)
밀실 미스터리에 관한 한, 헬렌 맥클로이의 <<어두운 거울 속에>>는 비평적 논의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심리학자 바질 윌링 박사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도플갱어의 출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다룬 멋진 작품입니다. 매우 불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잊혀지지 않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포함하기로 한 맥클로이 작품은 바질 윌링 시리즈의 후기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밀실 미스터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거울 속에>>와 마찬가지로 MR. SPLITFOOT 역시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제목은 다름 아닌 사탄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소설은 밤을 보낸 사람은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령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설을 시험해 보려는 자원자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1946)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에서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들어낸 전설적인 작가입니다. 혼진 살인 사건은 킨다이치가 요코미조의 소설에 출연한 77편의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결혼식 날 밤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 한 쌍의 신혼 부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1938)
마술과 문학을 결합하는걸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입니다. 그는 마술사이자 존 딕슨 카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카처럼 클레이튼 로슨도 해리 후디니와 같은 과거의 전설적인 마술사들을 존경했습니다. 로슨의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에는 분명히 후디니의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멀리니 이야기는 가장 순수한 '미스디렉션'을 보여줍니다.

THE CRIMSON FOG : 폴 할터 (1988)
폴 할터는 종종 존 딕슨 카의 후계자로 설명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독특한 문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소설을 강력히 추천하지만, 마술 쇼 중 무대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살인을 다룬 THE CRIMSON FOG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하니까요! 또 잭 더 리퍼가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RIM OF THE PIT : 해크 탤벗 (1944)
서프라이즈! 또 다른 마술사, 해크 탤벗은 프로 마술사 헤닝 넬름스가 두 편의 환상적인 밀실 미스터리인 The Hangman’s Handyman과 RIM OF THE PIT을 출간할 때 사용한 가명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모험가이자 탐정인 로건 킨케이드가 등장하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선보입니다. 
RIM OF THE PIT에서는 초현실적이고 악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눈 덮인 시골을 배회하는 섬뜩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물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정말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였습니다. 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책 <<녹색은 위험>>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작품입니다. 정말 위대한 황금기 미스터리지요. 
하지만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로는 <<제제벨의 죽음>>이 최고입니다. 시리즈 탐정 코크릴 경감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특히나 독특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노쇠하고 악연이 깊은 여배우가 무대에서 살해당한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지요. 퍼즐에 대한 해답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935)
각 작가가 하나의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존 딕슨 카는 "걸작"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책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목록을 쉽게 채울 수 있지요. <<세 개의 관>>은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며, 무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처음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기디온 펠 박사가 눈이 내리는 런던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범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디온 펠 미스터리를 썼지만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으로 다른 시리즈도 썼는데, 이 시리즈에는 친구들에게 H.M.으로 알려진, 거구의 탐정 헨리 메리벨 경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찾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디온 펠 이야기와 H.M. 작품들 중 일부는 불가능에 대한 힌트가 없는 단순한 후더닛이지만, 모두 눈부실 만큼 훌륭합니다! 존 딕슨 카와 그의 놀라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더글러스 그린의 전기 he Man Who Explained Miracles를 강력 추천합니다.

밀실 단편 소설
밀실 미스터리는 장편 소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같은 출판물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하고 기념하는 등 밀실 미스터리는 단편 소설 형식으로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편의 밀실 미스터리 단편 소설을 직접 썼기 때문에 (“The Indian Rope Trick”. “The Footless Phantom”은 모두 EQMM에 실렸어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몇 페이지 안에 공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드워드 D. 호크와 같은 작가를 깊이 존경합니다. 특별한 순서는 없지만,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 에드워드 D. 호크 (1978)
제가 단편 작품 섹션을 포함시킨 주된 이유는 호크 때문입니다. 그는 카에 필적할 만한 상상력을 가졌지만, 거의 전적으로 단편 소설을 전문으로 하여 평생 동안 1,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 중 단 한 편을 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작은 마을의 의사가 탐정으로 변신한 샘 호손이 등장하는 시리즈일 것입니다. 호손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는 독창성과 문학적 성취로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 아가사 크리스티 (1937)
황금기 미스터리 관련 글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밀실 추리 소설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포와로 시리즈 작품인 <<에르큘 포와로의 크리스마스>>와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는 교묘하게 고안된, 불가능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밀실 미스터리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걸작인건 분명합니다. 이 작품 대신 벨기에의 작은 회색 뇌세포가 꿈에서 예언된 밀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단편 소설 <<꿈>>을 선택했습니다.

<<붉은 밀실>> 아유카와 테츠야 (1954)
일본에서 밀실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신조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녹색 문은 위험>> 노리즈키 린타로 (1991)
완벽한 퍼즐 미스터리이자 신본격 장르의 주옥같은 작품.

<<The Name on the Window>> : 에드먼드 크리스핀 (1953)
크리스핀은 뛰어난 재치를 지닌 작가이자 저처럼 카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의 시리즈 탐정인 저비스 펜과 이 깔끔한 밀실 문제를 통해, 크리스핀은 자신이 거장의 제자임을 증명했습니다.

<<The House in Goblin Wood>> : 카터 딕슨(존 딕슨 카) (1947)
헨리 메리 베일 경은 이 진정으로 감각적인 작품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실종에 맞서 그의 재치를 발휘합니다.

<<The Border-Line Case>> : 마저리 앨링엄 (1936)
앨링엄은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밀실이나 불가능한 범죄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의 여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rder-Line Case은 이 장르의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성된 예입니다.

<<From Another World>> : 클레이튼 로슨 (1948)
강령회가 예상치 못한 기괴한 결과를 낳는 단편 걸작.

<<13호 독방의 문제>> : 자크 푸트렐 (1905)
장르의 초석을 다진 작품.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개의 신탁>> : G.K. 체스터턴 (1926)
체스터턴브라운 신부는 홈즈, 포와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탐정입니다. 체스터턴 자신이 존 딕슨 카의 기드온 펠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죠!

<<The X Street Murders>> : 조셉 커밍스 (1957)
조셉 커밍스는 슬프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작가로, 시리즈 캐릭터 브룩스 U. 배너 상원의원은 헨리 메리베일 경의 후계자라 할 수 있습니다.

<<The House of Haunts>> 엘러리 퀸 (1935)
엘러리 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사실 그는 두 명입니다. 사촌 프레드릭 다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만든 가명이었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밀실 미스터리를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들이 쓴 밀실 미스터리는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과 <<the Door between>>모두 밀실 문제를 다룬 훌륭한 소설이지만, 두 작품 모두 불가능성이 다른 더 눈부시고 기발한 플롯 요소에 가려져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우더닛보다는 후더닛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1966)
이 책도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죠! 마지막에 유쾌한 반전이 있는 멋진 블랙 코미디 작품입니다.

밀실 미스터리의 미래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행히도 밀실 미스터리 장르가 다시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매일 출간되고 있고, 이 장르에서 부당하게 외면받았던 고전이 재발간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최근 신작으로는 Gigi Pandian의 Under Lock과 Skeleton Key, 짐 노이의 <<붉은 죽음 살인 사건>>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매혹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제임스 스콧 번사이드의 <<배링턴 힐스 뱀파이어 사건>> 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마틴 에드워즈의 뛰어난 레이첼 새버네이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블랙스톤 펠>>은 밀실 요소가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고, 로버트 소로굿의 아늑한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말로우에 죽음이 찾아왔다>>도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가 계속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2015/01/06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워싱턴 어빙 외 / 한동훈 : 별점 3점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6점 워싱턴 어빙 지음, 한동훈 옮김/태동출판사

이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서는 아마도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고전 본격 황금기, 클래식 미스터리는 사족을 못 쓰는 애호가입니다. 이런저런 고전들은 많이 읽은 편인데 평균적으로 괜찮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다 저의 취향 때문이죠.
 그러나 아주 오래전 읽었었던 예전에 읽었던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이 심하게 기대 이하라서 나름의 기준점을 최소한 19세기 말 이후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그 이전 작품들은 지금 읽기에는 심하게 낡았다고 여겼거든요. 이 책 역시 대부분 작품이 19세기 후반 발표된, 기준점 통과가 간당간당해서 그동안 읽지 않았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 완전 대박입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놀라움이 가득했어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과 견줄만한,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명탐정들 -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의뢰인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하는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과학 탐정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 시리즈 단편들은 완성도를 떠나 존재만으로도 반가웠을 뿐더러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결산", "위험천만한 게임"이라는 "걸작"이라 칭해도 부족함없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된 볼륨도 마음에 들고요. 발표된 시기를 감안할 때 지금 읽기에는 낡아버리거나 시대착오적인 작품도 있고, 고전적 작법으로 쓰여져 지금 기준의 완성도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운 작품도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고전을 읽을 때 감수해야 할 필연적인 세금과도 같은 것이죠. 가이 포크스나 보르시치와 같은 고유명사를 잘못 번역한 옥의 티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번역도 무난한 편입니다.

그래서 수록 작품 평균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본격물 미스터리 애호가에게는 놓칠 수 없는 책인데 고전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는 하네요. 그래도 최소한 걸작이라 말씀드린 저 세작품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본서는 절판되었으나 e-book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울버트 웨버, 혹은 황금의 꿈" 

"슬리피 할로우" 등으로 유명한,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명이라는 워싱턴 어빙의 작품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평범한 네덜란드 출신 배추농부 울버트 웨버가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는 내용인데, 떠벌이가 지껄이는 듯한 구전문학같은 묘사가 볼거리입니다. 울버트의 보물을 찾기 위한 헛된 노력이 해적들의 은밀한 행동과 결합되어 전개되는 독특한 전개, 블랙코미디 느낌도 많이 전해주는 유쾌함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울버트가 부동산 재벌이 된다는 난데없는 결말과 같은 두서없는 전개, 구전문학스러운 묘사 등은 너무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간 호러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장르 문학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하기도 하고요. 최소한 "미스터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부동산이 최고라는 교훈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차라리 시사풍자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길쭉한 궤짝"

에드거 엘런 포우의 단편. 친구가 애지중지 돌보는 궤짝 안에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낡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나 흥미로왔어요. 

다만 선장의 말을 빌어서 마무리하지 말고, 마지막 침몰 직전 상황에서 진상이 드러나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예를 들자면 관 뚜껑이 열리고 아내의 시체가 등장하는 "어셔가의 몰락" 식으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걸작 단편입입니다. 무허가 3류 도박장에서 주인공이 도박으로 거금을 딴 뒤 술에 취하고 몽롱한 채로 도박장 방 하나를 빌려 잠을 자다가 침대 천장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는 내용이지요. 

주인공이 술에 취하는 과정의 생생한 묘사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침대 지붕이 내려오는 묘사가 정말 대단합니다.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에요. 잠이 오지 않아 세밀하게 관찰했던 벽에 걸린 그림 속 인물의 깃털 유무에서 모골송연한 범죄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과정도 매끄럽고요. 짧은 글이지만 정교하게 복선이 짜여져 있는 덕분이지요. 

한마디로, 이 작품을 읽은 것 하나 만으로도 이 작품집을 읽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근대 추리소설의 시조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거장의 작품다왔달까요. 별점은 5점입니다.

"꿈속의 여인"

조금 흔해빠진 괴담이랄까... 자신의 생일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타나는 여인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품고 살아가는 마부 아이작의 이야기입니다. 

별다른 극적 반전도 없고 여인의 정체도 알려주지 않는 등 불친절한 부분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앞선 작품은 걸작인데 이 작품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거장이라고 항상 걸작만 쓰는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아이작의 과거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우며 꿈과 현실을 잇는 과정의 묘사만큼은 볼만했던 만큼 별점은 2.5점입니다.

"공주의 복수"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에 "문간의 검은 가방"이라는 단편이 소개되었던 시리즈이지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루시에 쿠니에르라는 아가씨의 실종 사건을 그리는데 추리적으로는 별로였어요. 러브데이의 추리가 불완전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집사가 드루스 소령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지나친 억측입니다.
뭐 이 부분은 눈빛에서 살기를 느끼는 무림 고수와 같은 재주가 있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 쳐도, 사건 관계자들이 모인 상황에 난입하여 "모자 가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 정도의 비약입니다. 그녀를 빼돌린 드루스 부인과 그윈 부인이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며 모자를 쳐다보았다? 이게 모자 가게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냥 눈둘데가 없는 것인지도 불명확하고 그 모자 가게에서 산 모자인지도 확실치 않으니까요.

주로 관찰을 통해 추리하는 러브데이 브룩과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위 남자들을 매료시키는 루시에 캐릭터, 셜록 홈즈의 라이벌치고는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쓰여진 점 등은 특이하지만 추리적으로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천국의 물가에서"

아주아주 약간 고딕 호러 분위기가 나기는 하는데 실상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입니다. 주인공 케언공이 라마스 양에게 청혼할 때의 대사는 재미난데 그 외에는 별다른게 없는 고전 할리퀸 로맨스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목사 서재의 피웅덩이"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시리즈 단편입니다. 목사관 서재에 피웅덩이를 남긴채 목사가 사라진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충격적이면서도 기발한 인간 소실 트릭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상은 트릭이고 뭐고 없이 서재에서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 지하실에 숨겼다는게 결론이라서 맥이 빠집니다. 이래서야 명탐정이 딱히 등장할 필요도 없죠. 자세한 현장 조사가 이루어졌더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거에요. 아무리 피가 응고하였더라도 아무런 흔적없이 시체를 옮기는 작업을 성공했을리는 없으니까요.

그 외에도 사건 해결의 핵심 단서가 순전한 우연 - 범인이 시체를 옮길 때 우연히 팽이가 떨어져 그것을 돌리게 된 것 - 이라 추리적인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양치기 캐릭터는 전혀 등장할 필요가 없었고요. 

셜록 홈즈처럼 현장을 아주 철저하게 조사한 뒤 단서를 찾아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뮬러의 활약은 그럴듯했습니다만, 이러한 이유로 별점은 2점입니다. 홈즈 시대 추리소설의 단점만이 극대화된 작품이었어요.

"범죄구성 사실" 

엉클 애브너 시리즈로도 유명한 멜빈 데이비스 포스트의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사교계의 총아인 사무엘 월콧이 사실은 리차드 워렌이라는 인물로, 월콧의 아내와 공모하여 그를 죽인 뒤 신분을 가로챈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월콧 (워렌)이 아내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계획을 돕는다'는 나름 충격적인 설정으로 고객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랜돌프 메이슨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페리 메이슨의 선구자적인 캐릭터죠.

또 완벽하게 시체를 없앨 경우 범죄 사실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사망 사실과 그 사망을 가능케 한 폭력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서 무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당시에 소설로 발표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떠오르네요. 요새는 이 법의 헛점이 많이 알려진 덕인지 이런저런 정황 증거를 통해 범죄 사실이 입증된다면 유죄를 선고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시체를 없애는 과정의 디테일도 좋아요. 황산을 이용하여 시체를 녹여 없애는 방법인데 소설처럼 깔끔하게 모든 흔적을 단시간내에 없애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묘사가 잔혹하면서도 생생해서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부족함이 없지는 않으나,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쌍벽의 탐정"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작품으로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서사,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범죄 및 트릭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완성도는 좀 처집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치 스틸맨이 어머니를 버리고 모욕한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와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재능(냄새 맡기)을 어필하는 전반부와 호프 캐넌의 은광 부락에서 벌어진 폭사사고를 다룬 후반부로 나뉘는데, 두 이야기가 잘 결합되지도 않을 뿐더러 지루한 탓입니다. 

특히 전반부 이야기는 설득력도 낮고 이렇게 길게 설명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장황해요. 후반부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플린트 버크너에게 살의를 품은 노예와 같은 영국 소년 페트락 존스가 범행을 결심하는 과정, 거기에 아치 스틸맨이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여 실종된 아기를 찾아내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플린트 폭사사건 이후 페트락의 친척 아저씨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러가지 단서를 이용하여 범인을 지목하고 아치 스틸맨과 추리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난잡하게 전개됩니다. 

마크 트웨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정교한 과학적 트릭 - 초가 타는 시간을 이용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알리바이를 만듬 - 이 등장하는 것은 인상적이지만 아치 스틸맨이 현장 조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만큼 완전 범죄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아요.

물론 셜록 홈즈의 패러디물을 쓰기도 했던 작가의 작품답게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지없이 망가지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그 외에도 셜록 홈즈 스타일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 예를 들어 "탐정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탐정 곁에서 일을 꾸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은 인상적이고 재미있긴 했습니다. 미국적인 정취와 무식함 (집단 린치를 포함하여)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도 존재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더 부각되는 작품이라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더 짧게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작가의 욕심이 과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블랙 핸드"

제목을 한글로 풀이하면 "흑수단". 제목 그대로의 범죄단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과학 탐정"의 선구자적인 인물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자신이 직접 개발한 도청 장치를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죠.

셜록 홈즈 시리즈의 영향을 짙게 느껴지는데 1인칭 화자가 파트너로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기묘한 사건의 의뢰, 독자가 그 사용법을 알 수 없는 장치의 등장, 대단원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홈즈 시리즈를 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별게 없습니다. 유괴 사건에서 아이를 은닉한 장소를 도청 장치를 통해 듣고 경찰에게 알려준다는 방법이 전부니 말이죠.

그런대로 잘 쓰여지기는 했지만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탁상시계"

"독화살의 집"이라는 멋진 본격 추리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는데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내용이라 기대와 영 달랐습니다. 장르 구분을 하자면 판타지에 가까왔달까요. 시간을 불특정하게 14분간 멈추는 능력이 있는 탁상시계로 벌인 완전범죄 이야기로 시간이여 멈춰라! 류의 내용이라 추리적으로는 건질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시계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반전도 없어서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습니다. 

만년 2인자의 질투심이라는 동기는 충분히 설득력있기는 하고, 이런 류 아이디어의 원조인지도 궁금하긴 한데, 상술한 이유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결산"

퍼시벌 와일드의 단막극. 극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은 단편집 두 권밖에 없지요. 때문에 자료로서도 귀중한데 작품의 수준도 아주 높습니다. 딱 두명의 등장인물이 이발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빚어지는 극도의 서스펜스가 놀라울 정도에요. 이발사 킬번이 과연 그의 딸을 농락하고 버린 손님 존의 멱을 딸 것인가?와 존이 시간제한이 있는, 전 재산이 걸린 경매에 참석할 수 있는가?라는 두가지 드라마를 긴장감넘치게 선보이면서도 킬번이 존을 12년 동안 뒤쫓고 지금의 찬스를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솜씨도 탁월한 덕분입니다.

아울러 마지막 반전 - 존이 이야기한 경매시간과 이발소 시계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에 대한 대사 - 까지 확실하고요. 이런 작품이 1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니 고개가 숙여질 뿐이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위험천만한 게임"

프로 사냥꾼 레인스포드는 우연히 조난당하여 러시아 출신 부호 자로프 장군의 섬에 표류하였다. 자로프 장군은 사냥에 미친 인물로 극도의 긴장감을 위해 인간을 사냥하고 있었고 레인스포드도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생명을 건 게임에 참여하는데..... 

어딘가의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던 걸작입니다. 인간 사냥이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실제 사냥 게임에 대한 설정 - 3일이라는 시간 제한 및 자로프 장군이 사거리 짧은 피스톨을 장비했다는 핸디캡 등 - 이 탁월할 뿐 아니라 두 명의 대결에 대한 묘사가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반전도 기가 막혀요. 바다로 뛰어든 레인스포드의 목적은 탈출이 아니라 성까지의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인데 예상을 깨는 맛이 있었거든요. 별점은 5점입니다. 

한 남자가 협박 때문에 생명을 건 모험에 뛰어들어 성공한 뒤 협박자를 응징한다는 내용은 스티븐 킹의 단편 "벼랑 끝에 선 사나이"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새 출발"

잘 모르는 작가의 종말 이후를 그린 SF로 문명이 모두 사라진 뒤, 이전 문명의 기억을 지닌 자가 미개집단의 종교인과 충돌한다는 설정의 작품입니다. 

설정부터 많이 접해보았던 것으로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네요. 종교인이 믿는 신의 존재가 식기세척기였다는 반전은 있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하여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고요.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진부했어요. 시대가 너무 흐른 탓이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4/09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엘러리 퀸 / 정영목 : 별점 2점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 4점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던 백만장자 노부인 애비게일 도른이 수술 중 살해당했다. 범인은 병원 내에 있는게 확실했지만 수사는 난항에 빠졌고, 주요 사건 관계자였던 외과 과장 닥터 프랜시스 재니까지도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실마리를 잡지 못해 괴로워하던 엘러리는 친구인 네덜란드 병원 의료과장 존 민첸이 한 말 덕분에 범인을 추리해 내는데 성공한다.

엘러리 퀸국명 시리즈입니다. 국명 시리즈다운 본격 추리물로,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 게임이 펼쳐집니다. '독자에의 도전'도 적절한 위치에 삽입되어 있고요.

공정하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더해, 중요 단서는 엘러리 퀸이 중요하다고 콕 짚어 주기까지 하니까요. 때문에 추리 자체는 비교적 쉽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31년에 발표되었던, 비교적 초기작인 탓이겠지요. 가장 중요한 단서라고 언급하는 '구두'가 대표적입니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이미 엘러리는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구두 혀가죽'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며, 닥터 제니의 구두 사이즈를 물어봅니다. 키가 165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닥터 제니의 발 사이즈도 245밀리미터인데, 발견된 구두는 240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이를 통해 독자는 범인은 발이 240밀리미터보다 작은, 아마도 여성일거라는 추리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구두 끈을 수선했던 반창고도 마찬가지에요. 닥터 민첸이 "외부인들은 아무도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반면, 병원에서 이런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지"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범인은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일 거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동기도 쉽게 드러납니다. 애비게일 도른이 죽으면 이득을 얻는 사람은 많지만, 닥터 재니가 죽음으로써 이득을 얻는 사람은? 닥터 재니의 아들로 밝혀진 토머스 스완슨밖에 없습니다. 책을 함께 쓰고 있다고 밝힌 닥터 존 민첸이 책을 오롯이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엘러리 퀸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살인이라는 무리수를 둘 이유는 없습닌다. 즉 범인은 토머스 스완슨과 관계가 있는, 네덜란드 기념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인 거지요.

물론 그냥 이렇게 사건이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트릭도 적절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범인인 루실 프라이스가 어떻게 닥터 재니로 변장한 범인과 함께 범행 시각에 함께 있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트릭으로, 그녀가 닥터 재니로 변장하고, 목소리는 자기 목소리만 내었다는 간단한 1인 2역 트릭이지만 꽤 효과적으로 보였습니다. 트릭은 언제나 간단하면 간단할 수록 설득력이 높은 법이지요. 

범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추리쇼도 멋졌습니다. 속기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루실 프라이스를 모든 수사 관계자가 모여있는 범행 현장에 불러 경찰청장에게 보내는 메모를 쓰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을 눈치 챈 퀸 경감이 "‘도른 부인과 닥터 재니의 살인자는…….’ 토머스, 이 여자를 잡게! ‘루실 프라이스입니다!’”라고 외치는데, 셜록 홈즈"주홍색 연구"에서, 짐을 가져온 마부를 붙잡고 범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나중에 추리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그렇게 쉽고 단순하지만은 않고, 나름 여러가지 변수를 생각해서 추리를 했다는걸 잘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셜록 홈즈만큼 멋지지고,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주요한 부분에서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티가 물씬 나는 탓입니다. 가장 작위적이었던건 '사라진 캐비닛' 입니다. 원래 닥터 재니가 살해된 현장에는 캐비닛이 있었습니다. 등 뒤 캐비닛으로 향하는 사람을 닥터 재니가 의심하지 않아서 살해당했고, 이로써 닥터 민첸이 초반에 말했던 "그 기록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재니와 나 그리고 재니의 조수인 프라이스 양뿐일세. 프라이스 양은 훈련받은 간호사인데, 일반적인 사무를 본다네.”를 통해 범인이 드러나는 중요한 단서죠. 그러나 캐비닛의 존재는 마지막에서야 밝혀집니다. 함께 책을 쓰던 닥터 민첸이 모든 관련 서류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라면서요. 서류를 없앨 때 '캐비닛' 째로 가져가는게 말이나 될까요? 게다가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서류가 아니라 휴지 한 장을 가져가도 문제가 될 상황인데 캐비닛 째로 무언가를 가져가서 없앴다? 현장을 지키던 경찰이 허수아비도 아니고,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설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캐비닛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책상 틈을 통과하여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는데, 시체를 놔 둔 채로 캐비닛을 어떻게 치웠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또 앞서 구두와 반창고 때문에 범인이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라는건 이미 추리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병원에 있던 모든 관계자,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인적 사항을 낱낱이 파헤치는게 경찰의 할 일인데, 도대체 경찰은 뭐 하는지, 엘러리는 왜 이야기를 안 해 주었는지 모르겠어요. 

두 번째 사건이 벌어진 마침 그 시간에 모든 주요 관계자들 알리바이가 증명되지 못하는 것도 작위적이며, 제목 역시 마찬가지에요. '네덜란드' 는 이야기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사건 무대가 된 병원 이름이 네덜란드 기념 병원일 뿐이니까요. 국명 시리즈는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네요.

아울러 전개도 불만스럽니다. 수상한 용의자들을 잔뜩 만들기 위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는건 억지스럽고 짜증만 났어요.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 앞에서 모든 주요 관계자들이 뻔뻔하게 자신이 했던 일, 만났던 사람은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들이 사실만 이야기했어도 절반 분량의 이야기는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이런 억지는 고전 본격 추리의 황금기 시절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기는 합니다. "비숍 살인사건"에서 처럼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묘사였습니다. 

등장인물들도 억지스러워요. 정신나간 인물들이 태반이거든요. 정신병자이자 광신자인 사라 풀러, 누이 돈을 축내며 살아가는 기생충 헨드릭 도른은 고전 본격물에 등장하는 짜증나는 용의자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였고, 기묘한 합금을 발명한다는 헛똑똑이 모리츠 크나이젤은 엘러리 퀸이 호적수를 만났다 운운하면서 띄워줬는데, 바로 다음에 자신이 살인자의 목표라는 허황된 추리를 떠벌여서 왜 등장해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더군요. 아이가 죽고, 산모도 곧 죽을거라는 잔인한 대사를 서슴없이 내뱉는 산부인과 의사 닥터 펜니니도 사악함만 기억에 남을 뿐 등장할 이유가 없던건 마찬가지고요. 사라 풀러를 강간하다시피해서 훌다 도른을 낳게 한 내과 의사 루시우스 더닝은 그야말로 최악의 쓰레기였는데, 적절한 응징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엘러리 퀸이 인물 묘사에 약하기는 한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공정함' 측면에서는 백만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본격 추리물로서의 묘미를 잘 갖추고 있지만, 추리 자체는 추리 퀴즈 수준인데다가 작위적인 전개와 함량 미달의 인물들로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국명 시리즈는 저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세상에 읽어야 할 추리물은 많으니, 국명 시리즈는 이제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

2010/03/05

유다의 창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4점

유다의 창 - 8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부유한 청년 제임스 앤스웰은 예비 장인 에이버리 흄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흄이 권한 술을 먹고 정신을 잃었다. 그런데 정신이 든 그의 앞에 화살에 찔린 시체가 된 에이버리 흄이 놓여 있었고, 방은 방문과 창문이 모두 닫혀진 완벽한 밀실 상태였다.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그를 구하기 위해 헨리 메리베일경이 변호를 맡아 법정에서의 사투가 시작되는데...

드디어 나왔다! 오랜 시간 기다린 존 딕슨 카의 대표작이 드디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네요. 소식을 듣자마자 구입했습니다. 작품도 하루만에 읽어버릴 정도로, 그야말로 기다린 보람이 느껴지는 멋진 작품이었고요.

일단 밀실 트릭의 대가다운 솜씨가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두터운 문에 빗장이 질러지고 창문마저도 빗장쳐진, 틈 하나 없는 완벽한 밀실(검찰측 말대로 "봉인된 방"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죠)에서의 살인이라는 설정도 흥미롭고, 트릭도 추리 소설사에 길이남을 명트릭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트릭을 풀어내기 위한 여러가지 단서들도 굉장히 합리적이고요.

또 의외로 법정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게 대박입니다. 사건이 재판 과정을 통해서 증인들의 증언과 단서로 재구성되어 전개됨에 따라, 고전 추리물의 최대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완벽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독자가 머리속으로, 또는 손으로 그려야 하는 사건 시간표 같은 것도 전부 표로 제공해 주니 이보다 더 친절할 수는 없겠지요. 아울러 작가의 시리즈 탐정 캐릭터이기도 한 헨리 메리베일경의 왕실 고문 변호사로서의 활약을 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트릭이 영미권 독자들에게 친숙한 것이라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건의 동기가 취약하다는 것, 그리고 헨리 메리베일경이 극중에서 언급하듯 "범인이 누구인지 너무 뻔하다"는건 고전 본격 추리물로는 확실한 약점입니다. 헨리 경이 독자가 모르는 정보를 쥐고 있다는 설정도 약간 아쉬웠고요.
그래도 전개과정에서 나름 합리성을 보장하고 있기에 크게 흠 잡기는 어렵습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고전 황금기 시대 본격 추리물 및 법정 미스터리 걸작입니다. 동서 추리문고 스타일의 낡은 일어 중역본이 아닌 깔끔한 번역으로 소개된 것도 반갑고요. 추리 애호가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제가 읽은 존 딕슨 카 작품 목록 및 개인적인 순위를 예전 "세개의 관" 리뷰에 언급했는데 업데이트해 봅니다. 확인해 보니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하나만 아직 안 읽었는데, 일단 읽은 것 까지만 정리할께요.^^

"완독한 존 딕슨 카 작품 목록 : 순서는 무순"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 연속 살인사건 / 모자 수집광 사건 / 해골성 / 벨벳의 악마 / 화형법정 / 흑사장 살인사건 / 세개의 관 / 구부러진 경첩 / 감미로운 초대 (밤에 걷다) /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이 중 딱 세 작품만 꼽으라면 저의 영원한 베스트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정통 추리와 고딕 호러의 완벽한 결합체인 "해골성", 그리고 바로 이 작품인 "유다의 창" 을 꼽겠습니다.

2013/06/17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 장경현 : 별점 2.5점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6점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컬트 신봉자 세자르 사바트 박사가 완벽한 밀실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 등 유력한 용의자들은 모두 마술사였다. 개비건 경감은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마술사 그레이트 멀리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말로만 들었던 클레이튼 로슨의 마술사 멀리니 시리즈 대표작. 출간은 작년에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멀리니가 영 별로였습니다. '괴도 키드'와 같은 후배들의 원조답게 굉장히 개성적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직업만 특이할 뿐 고전 황금기 시대의 다른 명탐정들과 딱히 구분되는 점이 없는 스테레오 타입의 뻔한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스테레오 타입 형태도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 많은 천재형’이며, 그중에서도 최악인,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쓸데없는 말만 많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잘 알려주지 않는 타입(초기의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타입)이라 더 화가 나더라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면 증거나 단서를 잡기 전에 행동부터 좀 하란 말이죠! 하여간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개비건 경감이 어떻게 참고 있는지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트릭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걸작’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마술사라는 점에 너무 많이 의지한다는게 문제에요. 예를 들자면, 첫 번째 사건에서의 손수건 바꿔치기,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같은 건데, 이 정도 능력이면 거의 초능력 수준이라 일반적인 상황과 상식에서는 구현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마술에 의지한다는 점 때문에 독자와의 두뇌게임 역시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최면술 같은 것을 사전에 단서로 공유해주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이유는 멀리니도 말하듯 증거가 너무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살인계획을 짤 생각이었다면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니라, 범인으로 옭아맬 희생양도 필요했을 텐데 그냥 불가능 범죄를 연출했을 뿐이라는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들인 공에 비하면 별로 얻은 게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럴거라면 애초에 왜 밀실을 만들었을까요?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안도가 말했지만, 가장 완벽한 밀실 살인은 자살이어야 합니다. 그게 살인으로 밝혀지면 범인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마지막 이유는 경찰력의 무능함을 극대화시킨 전개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5만 달러나 되는 큰돈이라는 유력한 동기를 간과하고 멀리니에게만 기댄다?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에 주목해서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고전 황금기 시대 이름을 날린 작품다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술의 미스디렉션을 살인의 기법과 연결시키는 발상 하나만큼은 높이 쳐주고 싶고, 초반의 타로가 사라지는 간단한 마술 트릭이라든가 첫 번째 사건에서의 바꿔치기 트릭 하나만큼은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연 추리 소설사에 이름을 남길 만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딕슨 카의 밀실 추리 이론 등 다양한 작품과 이론에 대한 소개 역시 볼거리이고요.

그러나 저의 컸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더 컸다 생각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역 출간 자체는 반갑지만, 저 같은 고전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권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작품이었어요. 멀리니의 장광설만 좀 줄이고,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트릭 하나만 보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멀리니가 등장하는 단편집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은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는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만화적이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입니다.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는 좋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고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도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