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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4

죽은 자의 윤무(死者の輪舞) - 아와사카 쓰마오: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수 범죄 수사과 형사 신스케는 경마장에서 우연히 살해당한 사체와 접촉하면서 연쇄 살인극 수사에 빠져들었다. 신스케의 파트너인 고참 형사 우미카타는 연쇄 살인극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추리해 내었고, 모든 피해자들이 사망한 뒤 가쓰하타 병원 원장이 자신이 주도하여 벌인 일이라는걸 고백한 유서가 발견되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우미카타가 신스케, 그리고 원장 조카인 야나기다와 함께 한 자리에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자 야나기다는 우미카타와 신스케를 죽여 입을 막으려 하는데...

아와사카 쓰마오의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최근 이 작가 작품만 읽고 있네요. 원서로 읽었습니다.

무려 여덟 명의 죽음이 이어지는데, 이들은 모두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순환 구조가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래서 제목에도 '윤무가 들어간거 같네요.

탐정역 형사 우미카타도 신선합니다. 경력이 많아 형사부장조차 어려워하는 인물로, 게으르고 거만한 데다 도박까지 좋아하는 평소 행동만 보면 좋은 형사라고 하기 어렵지만 사건을 대하는 능력만큼은 뛰어나다는 설정 덕분입니다. 빼어난 관찰력과 비상한 추리력을 갖추고 있으며, 명품 브랜드와 미식에도 이상할 정도로 해박하여 수사에 큰 도움을 주거든요. 문제 많은 비호감 인물이지만 형사로서는 유능하다는 상반된 설정을 잘 결합했습니다. 호색한에 기묘한 취미(?)가 있고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가급 형사 명탐정이라는 점에서 모스 경감이 연상되기도 하네요.

비상한 추리력은 쓰쓰미 준의 사체가 발견된 집을 조사할 때부터 드러납니다. 집에서 광고지가 발견되었는데, 살림집이 아니라서 신문도 구독하지 않고 광고지에는 접힌 흔적조차 없습니다. 따라서 신문에 끼워져 배달되거나 우편함에 꽂혀 있던 물건이 아니라, 영업사원이 직접 집을 방문해 건넨 것이라고 추리하지요.

쓰쓰미 준의 방에서 인기 없는 만담가 다쓰다 이치엔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증언 처리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찰 조사 결과 당시 어떤 방송에서도 이치엔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우미카타는 곧바로 이치엔 본인이 방 안에 있었다고 판단하거든요.
피해자의 벨트가 채워진 모양을 보고 경찰의가 왼손잡이라고 판단한 것과 달리, 여러 정황을 통해 오른손잡이인 다른 사람이 피해자에게 옷을 입히고 벨트를 채웠다고 알아내는 장면도 좋고요.

추리는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집니다. 가쓰하타 병원 원장은 유서를 통해 여덟 명의 죽음이 서로 이어진 연쇄 살인이자 자살극이었다고 밝힙니다. 이는 모든 사건을 설명하는 완벽한 해답처럼 보였지만 우미카타는 유서의 내용과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비교하면서 여러 모순을 찾아낸 뒤 유서에 적힌 진상이 조작되었다고 추리합니다. 모순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우미카타와 신스케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원장은 D호실에 입원했던 환자들의 이름을 직접 입에 올렸다. 하지만 유서에는 이들의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유서가 사실이라면 원장이 처음부터 그 원칙을 스스로 어겼다는 이야기이므로 이는 모순이다.
  • 오쿠 후사의 집 문손잡이에 남아 있던 지문은 이상하다. 다섯 손가락의 지문이 모두 남아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문을 열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야나기다는 앞선 탐문 수사에서는 만담가 이치엔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신스케가 다쓰다 이치엔이라는 이름의 환자를 찾았을 때는 그런 환자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는 야나기다가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미 등장했던 여러 단서들, 증언의 모순을 근거로 진범을 추리해내는건 굉장히 본격 추리물 스러워서 마음에 듭니다. 마지막에 야나기다 앞에서 펼치는 추리는 고전적인 추리쇼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고요. D호실이라는 연결고리와 유서의 오류, 야나기다의 말실수까지 포함한 정보 모두 사전에 제공된다는 점도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높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건 다쓰다 이치엔의 죽음입니다. 그는 매가 물고 가다가 떨어뜨린 식칼에 찔려 죽는데,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너무 작위적입니다. 이치엔이 죽지 않고 경찰에 체포되었다면 사건의 진상이 훨씬 일찍 밝혀졌을 테니 작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퇴장시킬 필요가 있었겠지만, 굳이 이렇게 우연에 의존하는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여덟 명이 얽힌 연쇄 살인과 자살극도 아이디어에 비해 조금 길게 느껴집니다. 특히 동반 자살까지 시도했던 후나미즈와 고노 아유미 커플은 빠졌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신스케와 사오리의 관계도 불필요하게 느껴졌고요. 마지막에 우니카타와 신스케가 야나기다에게 죽을 뻔 하지만, 로쿠야마가 설치한 장치에 의해 야나기다가 죽고 만다는 결말도 뻔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여덟 명의 연쇄살인을 피해자와 가해자가 계속 뒤바뀌는 순환 구조로 만든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이들을 가쓰하타 병원 외과 D호실이라는 하나의 접점으로 묶으면서 제공되는 단서들도 모두 공정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현대 경찰 수사물과 본격 추리물이 잘 결합되어 있는 추천작입니다.

2026/05/1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3) 무덤 위 에로그로 식탁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이단자의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이던 1934년에 단편 "타원형의 거울"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단편입니다. 저는 절판된 지 오래된 단편집 "비밀의 문"을 통해 이 작품을 접했는데, 다행히 최근 복간되어 이제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으니 참고하세요.

의사 김철하는 애련과 약혼했지만, 1년에 한 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녀를 시인 추강에게 양보합니다. 추강이 그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련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추강은 그녀의 묘 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습니다. 애련의 살과 피로 자라난 복숭아 열매를 김철하가 보는 앞에서 홀로 독점해 맛보기 위해서였지요. 추강은 김철하가 찾아오는 날마다 복숭아를 따 먹으며 그의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과시합니다.

이 장면은 추강의 광기 어린 독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탐미적이면서도 에로틱하고, 변태스러우면서도 그 과즙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을 줄 정도로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미녀의 무덤에서 자란 과일로는 복숭아만 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복숭아는 원래 미녀를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니까요.

복숭아는 본래 "손오공"에 등장하는 천도복숭아처럼 장수의 상징이자 귀신을 쫓는 신령스러운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농밀한 여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는데, 복숭아의 특성과 맛 때문일 겁니다. 맛있는 복숭아를 뜻하는 '수밀도'라는 단어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달콤한 맛'이라는 뜻이 미녀와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뜻 뿐만이 아니라,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저칼로리에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비타민도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좋으며, 피부의 멜라닌 생성을 촉진하는 타이로시나아제라는 성분을 억제해서 피부 미백 효과도 볼 수 있다니, 미인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과일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추강은 한여름 날 복숭아를 따서 껍질째 먹는데, 이 방식이야말로 복숭아를 제대로 먹는 방법입니다. 껍질에 비타민 E 등 유익한 성분이 많고, 높은 온도에서 단맛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강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철하는 복숭아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고래고기 통조림만 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고기의 정체를 알아챈 추강에게 김철하가 "고래고기다!"라고 외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3년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입니다. 당시 고래고기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고기였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도 전쟁 전후에 고래고기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자주 언급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포획량이 많아 흔한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포경 금지로 인해 귀하고 비싼 음식이 되었지만요.

고래고기는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 맛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나 수육으로 먹었고 일본에서는 스테이크나 꼬치 요리로도 소비되었습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모비 딕"에서는 스테이크로 먹는 묘사가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에는 고래고기 꼬치가 전통 요리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네요.

콜레스테롤 없는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온갖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가도 뛰어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철 성분이 많은 고래의 피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인데, 고래는 죽자마자 바로 피가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육지 동물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은 탓이지요.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이라 곧바로 썩거든요. 그런데 고래는 정식으로 잡을 수 없어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 등에 한해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피를 곧바로 뺄 수 없어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작품에서처럼 통조림으로 만들 때는 냄새가 심한 싸구려 고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한 양념을 사용해 냄새를 잡고 맛을 균일화하는 조림 방식으로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야마토 조림' 고래고기 통조림이 있습니다. 설탕, 생강, 간장 등으로 조린 이 요리는 냄새를 잡고 고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다만 고기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짐작하시듯, 작품 속 고래고기 통조림 속의 고기는 고래고기가 아닙니다. 조리 방식도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뒤 말렸을 뿐이지요.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포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 수록작 "지옥"에도 등장합니다. 산적들에게 잡힌 주인공이 구덩이에 갇혀, 산적들이 던져 준 육포로 연명하다가 함께 갇혔던 신혼부부 중 신부가 도망친 날, 신선한 고기가 던져졌다는 내용이 압권이지요. 지옥 구덩이에서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해 산적 일가를 구덩이에 가둔 뒤 벌어진 참상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참고로 야마시로 아사코는 "ZOO""GOTH"의 작가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입니다. 작품도 과연 오츠 이치구나 싶어요.

"이단자의 사랑"은 지금 기준으로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에로그로' 코드가 과도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짙으며, 흔한 삼각관계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과학자의 대결 구도도 다소 부자연스럽고요. 그러나 반전만큼은 강렬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약 5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으셨는데도 이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실 정도입니다. 반전을 위해 사용된 복숭아와 고래고기의 대조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복숭아는 농밀하고 탐미적인 에로스를, 고래고기는 거칠고 냉혹한 그로테스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에로그로'라는 키워드를 음식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통조림이 적합할까요? 저는 골뱅이 통조림을 떠올렸지만, 고기 형태가 너무 달라 쉽게 들통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통조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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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3

피안장의 유령 - 아야사카 미쓰키 / 김은모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야마모토 히나타는 강력한 염동력으로 사고를 일으킨 뒤 가족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소꿉친구 사라와 함께 기지마 그룹 후계자 렌의 의뢰를 받고 외딴 저택 '피안장'으로 향했다. 피안장에 일어나는 괴현상 조사에 협조해 달라는 의뢰였다. 조사에는 예지 능력자 시게키, 사이코메트러 미즈키, 정신감응 능력자 도시코, 자동서기 능력자 아키라, 일렉트로키네시스 나기도 함께 참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저택의 괴현상은 실재했고 첫날 밤 시게키가 소파 속 비밀 공간에서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행은 저택의 의지에 의해 감금되어 버리고 마는데...

제미나이로 그려본 피안장

초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물임과 동시에 하우스 호러물과 정통 본격 미스터리도 결합되어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초능력과 저주받은 피안장 내 특수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괴사건을 정통 본격물처럼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진상을 드러내거든요.

특히 나름대로 정통 본격물이라는 게 밝혀지는 마지막 히나타의 추리쇼가 빼어납니다. 논리적으로도 확실하며, 단서들과 추리에 대한 근거 모두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히나타의 추리에 따르면, 첫 번째 사건인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시게키 사건은 사고였습니다. 시게키가 사라에게 장난치기 위해 소파 빈 공간에 들어갔는데, 근처에 있던 나기가 천둥번개와 정전으로 놀라서 일렉트로키네시스 능력을 발동했던 겁니다. 이 충격에 시게키가 휩쓸려 체내 혈액이 전기분해되어 피는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사라지고, 발생한 수증기 탓에 신체 표면이 파열되어 죽었습니다. 나기의 고의가 아닌 일종의 사고였기 때문에 도시코의 정신감응 능력으로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고요.

두 번째 사건인 도시코 추락 사건은 밤이 되면 옥상 테라스에는 한 명만 올라갈 수 있어서, 사람을 심리적으로 쫓기게 만드는 저택의 능력에 의한 자살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히나타는 과거 모녀가 테라스에서 뛰어내려 죽었던 기사를 통해 '의식을 잃은 사람'은 머릿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추리합니다. 즉, 누군가가 도시코를 때려 기절시킨 후 테라스로 끌어올려 떨어뜨려 죽였던 겁니다.
이는 미즈키의 사이코메트리로 도시코가 뒷통수를 가격당했다는 게 밝혀져 증명되고, 범인은 렌의 독살 미수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독이 든 와인잔은 아키라 앞에 놓여 있었는데, 아키라는 포도 알레르기라고 전날 아침에 밝혔습니다. 포도 알레르기인 사람을 와인으로 독살하는건 말이 안되니 범인은 그걸 모르는 사람이지요. 그때 자리에 없던건 렌, 가즈히사, 유토였고요. 이 중, 독을 마시고 죽을 뻔한 렌은 제외됩니다. 유토는 앞서 테라스 살인에 사용된 머릿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사를 볼 기회가 없었고요. 즉, 소거법으로 범인은 가즈히사입니다. 렌이 독으로 쓰러졌을 때 신속하게 위세척 등을 진행한 행동이 그가 독을 넣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주요 사건에 대한 본격물스러운 추리에 더해서 소소한 추리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재미를 더합니다. 렌의 이모부 부부가 자살했던 사건에 대한 추리 — 이모부가 렌에게 성적인 학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이모가 이모부를 죽이고 자살했다 — 라든가, 사라의 염동력 힘의 원천이 히나타였다는 추리 등이 그러합니다.

정통 오컬트 호러 판타지 스타일의 마지막 박진감 넘치는 피안장 탈출 묘사는 꽤 볼만 했고, 히나타가 조사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연구 조수 유토와 사귀게 되어 결혼까지 이른다는 완벽한 결말과 에필로그도 마음에 듭니다. 최근 작품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깔끔한 마무리였어요. 수미쌍관식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꽃잎 묘사도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우선 렌이 초능력자들을 저택에 모은 이유부터 설명이 부족합니다. 저택을 깨우기 위해 초능력자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전무한 탓입니다.
또 조사 참가자들이 머문 사흘 동안의 사건은 확실히 진상이 밝혀지지만, 과거 피안장에서 일어났던 괴사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택 안에서 행방불명된 남자가 일주일 후 온몸의 피를 잃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단지 저택의 저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합니다. 저택이 이런 능력이 있다면, 렌 일행을 모두 직접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고요..
첫날 밤 위기에 처했던 도시코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도 설명이 없으며, 가즈히사의 동기가 결국 ‘저택에 사로잡혔다’는 게 전부라는 것 등도 여러모로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뭔가 있어보였던, 아키라가 자동서기 능력으로 그렸던 '스페이드 모양 문고리가 달린 문' 설명도 흐지부지 넘어가고요.

전개 부분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미즈키, 도시코, 아키라 등으로 시점을 전환하는 부분이 특히 별로입니다. 저택 괴현상 때문에 놀라는 심리 묘사 외에는 시점을 전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키라만 별도 설정을 풀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키라 시점 부분의 전개는 워낙 비호감으로 그려지는 탓에 짜증만 났습니다. 
그리고 예지 능력자 시게키의 죽음 이후에도 참가자들이 무방비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입니다. 도시코의 능력으로 시게키 사건의 범인이 조사 참가자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면, 협력해서 움직이는 게 당연했을 겁니다. 왜 저주받은 저택에서 밤을 홀로 보내다가 위기에 처하는 걸까요? 이 부분의 설득력이 낮아서 감정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항상 그래왔지만, 거의 모든 묘사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지나치게 쿨한 염동력 미소녀 사라, 입이 험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색기 넘치는 누님 미즈키 인물 묘사 및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피안장에 대한 묘사는 물론 저택 내에서 반복되는 괴현상 역시 식상한 헌티드 하우스 호러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서 실망스럽습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하우스 호러와 본격 미스터리의 혼합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개성을 가진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5/10/24

그거 사전 - 홍성윤 : 별점 3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지만 명칭이나 유래를 잘 알지 못했던 물건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주는 책입니다. 원래는 매일경제 연재물입니다. 접할 때마다 흥미롭게 읽었는데, 책 한 권으로 묶여 나와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습니다. 

단순한 사물 설명을 넘어, 그것들이 가진 인문학적 의미까지 함께 풀어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집 반찬으로 자주 나오는 자차이를 소개하면서, 중국에서는 자차이의 지역별 판매량이 도시화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소비되는 반찬으로 도시 거주 인구수와 비례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지표 역할을 하는 음식이 놀랍게도 커피라고 하네요. 이처럼 단순한 사물에서 출발해, 관련된 사회적 맥락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성이 돋보입니다.
배달 음식 포장을 벗길 때 사용하는 랩칼을 다루면서는, 우리나라 배달 음식 문화의 역사가 함께 소개되고요. 과거 젓가락으로 그릇과 랩이 닿은 부분을 문질러 벗겨내던 '젓가락 신공' 소개는 저에게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초밥 사이에 넣는 인조 대잎에 대한 설명이 조지 오웰의 소설 "엽란을 날려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저자의 넓은 식견을 느낄 수 있었으며, 상표나 가격이 적힌 꼬리표를 고정하는 택핀 항목에서는 과거 서태지가 유행시키기도 했던, 흑인 문화에서 상표 태그를 떼지 않았던 이유에 대한 문화적 배경 설명도 인상적입니다. 여러가지 설 중에서도 '난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새걸로 가지고 있다'는걸 자랑하고 과시하는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건 확실히 그럴 듯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부심의 표현이었다는 것이지요.

도어 스토퍼를 다루며 엘러리 퀸의 "용 조각 문 버팀쇠의 비밀"을 언급한 대목은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반가왔습니다. 참고로, 원래 문 버팀쇠는 여닫이창을 열린 상태로 고정하기 위해 받쳐 세우는 막대를 뜻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오역이라고 하네요. 문이 천천히 닫히도록 하는 현관문 위에 달린 장치는 도어 체크, 혹은 도어 클로저라는 것도 도어 스토퍼 설명에서 소개되고요.

뚫어뻥의 어원은 흥미로운데, 1980년대 백광산업이 출시한 '백광 트래펑'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수구 트랩에 펑크를 내는 도구라는 의미의 '트래펑'에, ‘뚫어’와 ‘뻥’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이 더해진 멋진 네이밍인데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게 오히려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어원이라면 사이펀 펌프로 알고 있던 기름 펌프의 정식 명칭이 '간장 츄르츄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정보입니다.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일본의 기발한 발명가 닥터 나카마츠로, 그의 엉뚱하면서도 놀라운 발명 인생에 대한 짧은 소개도 인상 깊었어요.

여러 익숙한 물건들의 명칭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수확입니다. 예를 들자면 중식당 회전 테이블의 '레이지 수잔', 신발끈 끝의 '애글릿', 끈이 통과하는 구멍인 '아일릿', 창문 잠금장치인 '크리센트', 마트 계산대에서 사용하는 막대는 '체크아웃 디바이더', 겨울 가로수에 묶는 볏짚은 '잠복소', 사원증 목걸이 끈은 '랜야드'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바람에 춤을 추는 풍선 인형에도 이름이 있었는데, '스카이댄서'입니다. 원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예술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를 낸 예술가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민셜, 하지만 특허는 협업했던 풍선 예술가 가짓이 등록했다고 합니다. 가짓은 유대인이었다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습니다.

그 외에도 과일을 감싸는 포장재인 팬캡이나 과일망이 재활용이 안 된다는 사실, 회 밑에 깔린 천사채의 한자가 '천사(天使)'가 아닌 '하늘이 내린 채소(天賜)'였다는 등 짧지만 밀도 있는 정보가 가득하고, 단순한 설명을 넘어 인문학적인 부분도 전해준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핵심이 되는 '그거' 말고는 도판이 부실하다는건 단점입니다. 연재물로 접했던 독자에게 별다르게 새롭게 전해주는 정보도 별로 없고요. '그거' 종류에 따라 분량도 조금씩 다르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인문학, 잡학 서적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볍게, 하지만 의미도 있는 독서를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5/10/10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 가모사키 단로 / 김예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은 제목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섯 개의 밀실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입니다. 수수께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설백관 밀실사건(간자키 살인 재현)
— 수수께끼: 잠긴 방문, 유일한 열쇠는 시체 옆 닫힌 플라스틱 뚜껑 달린 병 안에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으나 촘촘한 창살 때문에 방 안으로 병을 던져 넣을 수 없었다. 
— 해답: 고무줄-추-식칼을 연동한 장치 트릭. 고무줄을 병 뚜껑 고리에 꿴 뒤 방 안에서 창살을 통과시켜 투입 → 추를 창밖 고무줄 끝에 달아 장력 형성 → 사체에 꽂힌 식칼 주위를 통과하도록 병을 잡아 당겨 문을 나선다 →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병에 넣고 병을 문 아래 카펫 속에 은닉 → 강제 개방하면 장력으로 병이 실내로 튕기고, 식칼에 의해 고무줄은 절단된다. 추에 의해 고무줄은 창밖으로 떨어진다.

시하이 씨 식당 살인
— 수수께끼: 사망 추정 시각에 누구도 식당동 출입 없음. 피해자는 모조 핼버드에 반복 찔림.
— 해답: 리모컨 슬라이드 식기장을 이용했다. 식기장이 비밀 통로의 숨은 출입구 겸 레일 구조 → 핼버드를 고정한 채,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식기장을 왕복 이동시켜 살해 → 핼버드는 액체 질소로 고정되어 시간이 지나자 녹아 떨어졌다.

사구리오카 방 내 사망
— 수수께끼: 내부 잠금 상태에서,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 해답: 시한 폭발 탄환 장치에 의한 것. 침대 밑에 놓였던 장치를 발견한 피해자가 장치 확인을 위해 수면등 아래로 옮기다가 폭발해 사망했다.

마네이 도미노 밀실 사건
— 수수께끼: 피해자 주변을 감싼 채 문까지 잇는 도미노 띠가 놓여 있었고, 문은 잠김. 열쇠는 시체 옆에 놓여 있었다.
— 해답: 액체질소 얼음 고정틀 + 데드볼트 임시 고정을 사용. 문에 얼음틀로 고정한 도미노를 붙임  → 데드볼트 일부를 잘라냄  → 도어 레버를 소폭만 돌린 상태에서 얼음으로 고정 → 문을 닫으면 도미노 얼음틀은 시체 주위와 문을 잇게 됨  → 도어 레버 얼음이 녹으면 도어락 자동 잠김  → 얼음틀 소멸로 도미노만 남음.

야시로 씨 도서실 밀실 사건
— 수수께끼: 문 잠김, 도서실의 유일한 열쇠인 동쪽 동 마스터 키는 시체 옆 꽉 닫힌 잼병 안에서 발견됨, 문 내부 레버엔 가샤폰 돔 커버가 덮여 있었음.
— 해답: 문짝 바꿔치기. 시신을 도서실로 옮김  → 마스터 키를 잼병에 넣고 시체 옆에 놓음  →  자신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환 → 안쪽 레버에 가샤폰 돔 커버 설치  → 문을 닫고 나가서 자기 방 열쇠로 문을 잠금.

미쓰무라의 과거 완전 밀실
— 수수께끼: 완전하게 잠긴 방문과 고정식 창으로 완전 밀폐된 현장, 스페어 키 없는 유일한 방 열쇠는 시체 옆 서랍 속(서랍은 시체 주머니 열쇠로 잠김).
— 해답: 문짝 바꿔치기 + 다른 방 스페어 키를 이용. 현장 외 다른 방에는 스페어 키가 있었음. 범행 후 현장과 다른 방의 문짝 교환 → 다른 방 열쇠를 현장에 남기고 스페어 키로 외부에서 잠금 것.


이렇게 여섯 개의 사건과 트릭이 펼쳐지는데, 이 중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의 맛을 잘 살린 몇몇 사건들은 볼 만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설백관 밀실사건과 다섯 번째 야시로 씨 도서실 사건이었습니다. 설백관 사건은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사용된 도구는 물론 현장 상황까지가 모두 실제로 범행에 필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녹음기나 불 꺼진 방 같은 설정이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트릭의 일부라는 것도 대단했어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복잡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느낌을 주며, 독자가 충분히 추리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요.

도서실 사건 트릭은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체하는 트릭은 앞서 구즈시로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충분히 추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단서 제공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도서실만이 마스터 키로만 열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현장이 다른 방이었다면 문 안에 두 개의 열쇠(마스터 키, 방 열쇠)를 남기게 되고, 그 때 방 열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섯 개의 트릭 모두 완성도 높게 제공하는 건 어려웠던 듯 합니다. 특히 시하이 씨 사건의 핼버드 트릭과 사구리오카 사건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이었어요. 사구리오카 사건에서 탄환을 발사한 시한 장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액체질소를 만능 도구처럼 쓴 트릭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네이 사건의 도미노 트릭입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미노 설치를 위한 얼음판을 만들려면, AI의 확인 결과 약 7.3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얼음이 녹아 흐른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재가 물이 스며드는 소재였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몰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요. 데드볼트 잠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밀실을 만들 수 있어서 도미노까지 이용한 이중 밀실을 구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쓰무라 과거 사건에서 사건 현장 외 다른 방의 열쇠는 스페어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서술 트릭처럼 숨긴건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이런걸 경찰이 알아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밀실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트릭을 풀어낸 뒤, 이걸 저지를 수 있는건 ooo뿐이야!는건 워낙에 용의자가 적은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꽤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트럼프 연쇄 살인과 ‘녹스의 십계’, 그리고 단순한 십계 설정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이를 통해 어떻게든 살인의 타당성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희생자들이 죽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에 과정을 꿰어 맞추는 느낌이라서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설정의 완성도는 더 문제입니다. 밀실을 풀 수 없으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핵심 세계관 설정부터가 성립하기 힘든 탓입니다. 마스터 키나 스페어 키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으며, 21세기에 열쇠 복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작품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으니,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주요 인물들 역시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무죄를 받은 미소녀 미쓰무라 시쓰리, 아이돌이자 밀실 제조사로 범행을 저지르는 리리아, 살인 현장을 숭배한다는 종교단체 ‘새벽의 탑’과 17세 소녀 주교 펜릴 앨리스해저드 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들의 언행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빙해' 어쩌구하는 대사는 제가 다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몇몇 밀실 트릭은 고전 본격물의 정수를 잘 살려 볼 만합니다. 하지만 억지 설정과 조악한 추리 요소, 몰입을 방해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치명적인 탓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망작이에요. 밀실 트릭물의 광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작이라는데, 이 정도까지 수준이 떨어졌는지 몰랐네요.

2025/07/19

이상한 집 2 - 우케쓰 / 김은모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한 집 2"는 기묘한 평면도를 가지고 기상천외한 추리를 펼쳤던 전작에 이은 우케쓰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과는 다르게 연작 단편집으로, 11편의 개별 단편들은 제각기 다른 사건과 인물을 다루지만 이야기 말미에 하나의 결말로 수렴되는 구조를 가집니다. 대부분의 수록작 모두에 기묘한 평면도를 가진 집이 등장하며, 이들 사이에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는게 조금씩 드러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우선, “갈 곳 없는 복도”는 어머니로부터 과보호와 냉대를 동시에 받으며 자란 네기시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살던 집에는 막힌 복도가 있었는데, 네기시 씨는 태어날 당시 자신의 쌍둥이 자매가 죽은 탓에 자매 방이 철거되었다는 추리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진상은, 건설 당시 사고로 아이가 사망한 장소가 원래 현관이었던 탓에 현관 위치를 바꿨고 그로 인해 복도가 막혔다는 것으로 드러나지요.

“어둠을 키우는 집”은 가족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쓰하라라는 소년이 가족을 살해한 사건인데, 그 원인이 엉터리로 설계된 집 구조 때문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평면도를 통해 그 집이 생활에 적합하지 않고, 쓰하라 소년의 고립을 유발하는 구조였는걸 조목조목 드러내며 공간이 범죄를 유발했을 수도 있다고 추리하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재생의 성역”은 컬트 종교단체 ‘재생회’의 수행 공간인 '성역'에 잠입한 기자의 리포트입니다. 성역은 나가노 현에 있는데, 수행은 신도들에게 숙면을 취하게 하는 기묘한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신자들이 신성시하는 성모가 왼팔과 오른다리가 없는 신체를 가졌다고 했는데, 나는 그 장소의 평면도를 조합해 ‘재생의 성역’ 건물 자체가 그 성모의 육체를 본뜬 구조임을 밝혀냅니다. 이렇게 평면도를 조합하는건 작가의 전작 "이상한 그림"도 연상되는데,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이 리포트는 전편만 발표되었고, 세뇌 방식이나 수행의 실체가 담긴 후편은 결국 발표되지 못했다며 수수께끼를 남기는 결말도 좋았고요.

“방을 잇는 실 전화기”는 어린 시절 실 전화기로 아버지와 대화하던 기억을 가진 가사하라 지에의 이야기입니다. 이웃 마쓰에 집 화재 사건 이후 아버지가 떠난 뒤, 지에는 실 전화기의 줄 길이가 이상하게 길고, 실 끝은 아버지 침실이 아니라 예전에 옆집 마쓰에 부인이 분신 자살했던 방으로 이어진다는걸 알게 됩니다. 지에는 그날 밤 아버지가 횡설수설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가 마쓰에 부인을 살해했을지도 모른다고 추리합니다. 실 전화기 길이로 이어지는 추리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달아날 수 없는 연립주택”은 과거 사채 때문에 어린 아들과 함께 조직의 감시 아래 연립주택 ‘오키토’에서 매춘을 강요당했던 아케미 씨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같은 처지였던 옆 방의 왼팔이 없는 야에코 씨와 친해졌는데, 야에코는 아케미의 아들 미쓰루를 구하려다 교통사고로 오른다리마저 잃고 말았지요.
여기서는 평면도나 주택 구조는 그리 특이할건 없습니다. 그러나 아케미는 당시 한 번의 매춘에 십만 엔을 받았다고 회상했는데, 그 금액은 터무니없는 고액입니다. 2층에 고작 네 명만 거주했고, 1층은 감시조였다는 구조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고요. 여기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11편의 이야기 모두 컬트 종교단체 ‘재생회’와 그 본거지인 ‘재생의 성역’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는게 밝혀집니다. 우선 재생회의 기묘한 수행은 성역 구조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모의 몸을 딴 성역에서 신자들은 자궁 위치에서 숙면을 취합니다. 이는 성모의 몸속에 있는 태아와, 출산을 은유한 과정으로 신자들은 모두 성모의 자식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각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이한 집 구조들도 모두 재생회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성역'과 똑같이 개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재생회의 주 수익원도 성역처럼 집을 개축하는 공사였습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인물은 히쿠라 하우스의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재생회의 간부이기도 했으니까요. 대표적인건 “딱 한 번 나타난 방”에서 드러난 이루마의 집 구조입니다. 이루마의 부모는 이루마의 죄를 씻기 위해 집을 성역처럼 만든 것입니다. 

이런 흐름은 다른 사건들도 마찬가지에요. 지에의 아버지는 마쓰에 부인과 불륜 관계였습니다. 실 전화기 길이와 방해물이 없어야 하는 특징을 생각하면, 그는 발화 현장이 아니라 부인 침실에서 전화를 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진상은, 지에 아버지는 그날 부인을 살해한게 아니라 사체를 발견했던 겁니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유서를 읽는 소리였고요. 부인이 자살했던 이유는 불륜으로 인한 임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쓰에 씨 남편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불륜을 감추기 위해 아내 시신을 벽장 안에 넣고 태웠는데, 이 때 불이 번져 죽고 말았던 것이지요. 지에의 아버지는 이후 죄책감으로 재생회에 들어간 뒤, 또 다른 불륜으로 태어난 미쓰루를 위해 집을 개축까지 했지만, 결국 미쓰루가 학대로 죽자 재생회의 사상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심장 위치 방문을 잠그고 자살했습니다. '성모'의 죽음을 실제로 행동을 보여주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재생회 신자들은 대부분 ‘죄를 물려받은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즉, 불륜으로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네기시 씨 어머니의 냉대와 집 개축 이유도 이해가 됩니다. 네기시 씨는 어머니의 불륜으로 태어났고, 미숙아였기 때문에 출산 당시 혈액형 검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혹시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해 혈액형이 드러날까 봐, 딸이 사고를 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보호하면서도 동시에 냉정했던 것이고, 집을 성역에 가깝게 개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방의 배치를 보면, 어머니가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걸로 보이는데 이 역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아울러, ‘물레방앗간’은 기요치카가 딸 오키누를 낳기 위한 장소로 만든 공간이었습니다. 그 안의 움푹 팬 부분은 아이를 숨겨두기 위한 임시 대피소였고, 그 딸이 바로 야에코였습니다. 오랜 시간 그 안에 숨어 있다가 팔이 끼어 괴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중에 미쓰코가 음모로 죽게 만든 인물 역시 야에코였습니다. 야에코가 숨기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의족이었지요.

또한 ‘오키토’의 이야기에서 남겨진 수수께끼를 통해, 실제로 매춘을 했던 사람들은 어머니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히쿠라 하우스 사장은 야에코의 딸을 매춘 상대로 삼았다가 결국 결혼까지 했던 겁니다. 

결국 이 모든건 야에코의 딸이 어린 시절 자신을 매춘에 내몬 어머니를 증오했으며, 그 복수로 어머니의 신체 결함을 본떠 전국에 같은 구조의 집들을 퍼뜨리기 위해서 벌어진 일이었다는 진상으로 마무리됩니다. 히쿠라 하우스 사장은 죄책감 탓에 아내의 요구에 따라 야에코를 ‘성모’로 삼고 재생회를 만들었고, 이후 신도들의 집을 성역처럼 개축하는 등의 행위에도 군말없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딸을 조종해 야에코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고요

이렇게 각각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고 쉽게 읽힙니다. 무엇보다 집의 평면도를 소재로 이런 서사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특징적인 여성의 몸을 가진 집의 평면도'를 구상한 뒤, 이 설정과 진상에서부터 역순으로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싶은데 창작 과정이 궁금해 집니다.

단편 하나하나도 추리물로서 수준이 높은 이야기가 제법 되고요. 각 단편마다 추리적으로도 인상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어둠을 키우는 집”에서는 쓰하라 소년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엉망으로 설계된 집 구조 때문이라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평면도만 보고 그런 추리를 이끌어낸 전개도 흥미로웠고, 진상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소년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할머니를 해치려는 걸 막으려다 우발적인 사고가 벌어졌다는 점—도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소년 혼자 칼에 상처를 입었던 점, 할머니가 어머니의 비명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 등 다양한 단서를 조합하며 추리의 실마리를 만들어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숲 속의 물레방앗간”에서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면 내벽이 움직이는 구조에 대한 미즈나시 우키의 추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오른쪽 방의 벽에 있던 움푹 팬 공간 쪽으로 벽을 조이게 하여, 안에 있는 사람이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는 자세가 되도록 만든 구조였는데, 이는 마치 죄인이 참회하는 자세와 닮아 있었습니다. 실제 그 방향에 사당이 있었다는 점도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딱 한 번 나타난 방”에서는 비밀방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네 가지 단서—① 갑작스러운 현기증 이후 문이 보였다는 점, ② 문을 열자 작은 방이 나왔다는 점, ③ 그 방의 바닥이 다다미 반 장 크기의 정사각형이었다는 점, ④ 상자 안에 무언가 무서운 것이 있었다는 점—와 함께 이루마 씨 아버지의 직업, 2004년의 지진, 미닫이문의 구조 같은 현실적인 단서들이 함께 제시되면서, 평면도를 기반으로 직접 추리하는 재미가 잘 살아 있었습니다.

다만 11편의 단편들은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편차가 있습니다. 일부 이야기는 독립된 단편으로서 완결되지 않고, 결말에서 쓰일 단서 제공에 그치기 때문에 연작 ‘단편집’이라 보기엔 다소 애매한 구성이 됩니다. 물론 결말에서 이 단점이 일정 부분 해소되기는 하지만, 전편이 모두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쥐덫의 집”에서는 히쿠라 하우스 사장의 딸 미쓰코가 하야사카와 억지로 친구가 되어, 할머니 야에코를 죽음으로 이끈 음모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미쓰코와 만화 취향이 전혀 맞지 않았고, 책장이 잠겨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 추리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하야사카를 굳이 끌어들일 이유도 명확하지 않으며, 건설회사 사장의 어머니가 자사 설계로 인해 사고사했다면 그 자체로 큰 스캔들일 텐데도 이런 위험성 큰 일을 벌인다는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거기 있었던 사고 물건”에서는 물레방앗간에서 발견된 ‘백로’가 사실은 오키누의 시신이었다는 추리가 제시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고 해도 시체 발견이라는 큰 사건이 지역 신문 기사나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지 않았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아저씨의 집”은 학대받다 굶어 죽은 소년의 일기라는 설정인데, 그 일기가 죽기 직전까지 어떻게 쓰였고 어떻게 세상에 나와 발표까지 되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살인 현장으로 향하는 발소리”에서 아내 사체를 불태운 마쓰이 씨가 왜 미처 도망치지 못했는지도 납득이 어렵고요.

또한 몇몇 단편은 전체 흐름상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아저씨의 집”은 “딱 한 번 나타난 방”에서 신도들이 집을 개축하고 감축했다는 정보가 이미 충분히 제시되기 때문에 굳이 추가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거기 있었던 사고 물건” 역시 “숲 속의 물레방앗간”에 정보를 보완하는 정도로 대체할 수 있었고, “살인 현장으로 향하는 발소리”도 전편인 “방을 잇는 실 전화기”의 내용을 시점만 바꿔 반복한 것에 가까워 정보의 추가는 거의 없었습니다. 단지 마쓰이 씨에게 30분의 여유가 있었다는 점 외에는 새로운 내용이 없거든요.

몇몇 이야기는 설정이 지나치게 과합니다. "숲 속의 물레방앗간"이 대표적입니다. 지역 유지였던 아즈마 키요치카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숨기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이런 거대하고 수상한 건물을 만든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야에코가 팔을 잃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도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재생회 신도들이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이라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억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핵심 인물인 야에코의 딸이 끝까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녀의 증오가 이야기의 중심 동기인데도, 구체적인 내면 묘사나 행동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독자가 감정적으로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야에코가 자신의 장애를 숨기려 했던 인물인데, 그런 야에코의 몸을 본떠 건물을 전국에 짓게 만들었다는 것도 그리 와 닿지는 않습니다. 복수가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건물 외형만 보고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탓입니다. 치부를 아무도 모르게 전국에 설치했다!는게 과연 복수가 될까요? 잘 모르겠네요.

이렇게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야기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이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평면도를 바탕으로 한 개별 단편의 아이디어와 추리는 충분히 인상적이니까요. 몇몇 이야기는 제법 서늘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추천드립니다.

2025/05/18

시계 도둑과 악인들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별점 2점

시계 도둑과 악인들 - 4점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방주", "십계"로 유명한 신예작가 유키 하루오의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 전직 도둑 하스노가 탐정역을 맡고, 그의 동료로 화가 이구치가 등장하는 다이쇼 시대 무대의 단편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 작품은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등장인물과 배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느슨한 연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단편집의 가장 큰 장점은 기발한 트릭과 추리 구조에 있습니다. 불가능 범죄로 보였던 사건이 논리적으로 해결되는데, 이를 위한 단서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말 그대로 '정통파 추리물'인 셈이지요. 유괴, 밀실 살인, 연쇄살인, 보석 도난, 일상계스러운 편지에 얽힌 과거의 비밀 등 사건의 종류도 다양해서 흥미를 더해주며,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린 묘사, 인물 간의 대화들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하스노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엘리트 출신의 전직 도둑으로, 굉장히 독특한 사고 방식을 갖춘 천재 탐정이라는 비현실적인 인물을 묘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단편 전반에 걸쳐 범인의 동기가 전반적으로 약한 탓에, 와이더닛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억지로 만든 설정이 눈에 띄며, 일부 트릭 역시 과정은 흥미로우나 실행 가능성이나 현실성 면에서 허술함이 느껴지고요. 또한 장황한 묘사로 인해 리듬이 끊기거나, 인물의 심리가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아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하스노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데, 화자가 이구치가 아닌 단편들에서는 하스노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본격 추리물로 트릭과 분위기는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이야기 전체의 완성도는 다소 부족한 편입니다. 작가의 팬이시라면 추천드리지만, 그렇지 않다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에몬 씨의 미술관"

화가 이구치는 친구 하스노에게 시계 바꿔치기를 부탁했다. 이구치의 아버지가 자산가 가에몬 씨에게 판 시계가 사실은 모조품이었고, 가에몬 씨가 그것을 미술관에 전시하려 하자 일이 커지기 전에 진품으로 되돌리려는 목적이었다. 말로 설득하는걸 포기한 두 사람은 미술관에 잠입해서 직접 바꿔치기를 시도하는데...

이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도입부로는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전직 은행원이자 도둑 출신인 미남자 하스노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좋습니다. 다이쇼 시대를 충실히 그려낸 시대 묘사도 매력적이고요. 별 거 아닌 것처럼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모아 진상을 추리해내는 정통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도 괜찮은 편입니다. 가에몬 씨의 알 수 없는 언행 - 왜 미술관을 촌 동네에 만들었는지, 왜 미술관을 세우려는데 전시할 그림을 판매할 사람은 불신하는지, 본인은 그림을 보는 눈이 없다고 했으면서 왜 미술관에 소장품을 전시하려 하는지 - 와, 기묘한 미술관의 구조 - 긴 통로 위의 초가 지붕, 두꺼운 벽돌 담장, 화풍이나 시대순이 아닌 뒤죽박죽 전시 배치 - 등은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한 하스노의 추리도 합리적이에요. 미술관은 마음에 안 드는, 진위가 의심되는 소장품을 화재를 위장해 태워버리려고 만든 건물이었다는 것이지요. 하스노가 화재가 일어날 시점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논리적이라 마음에 들고요.

하지만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진위가 의심된다면 단순히 폐기하거나 감추면 되는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고 복잡한 과정을 택했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캐릭터, 추리는 나쁘지 않지만 동기 부분의 설득력이 낮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악인 일가의 밀실" 

미노다 가의 차남 아키마사가 밀실에서 살해당했다. 미노다 저택에는 장남 유키마사, 장녀 미치에, 막내 아쓰요시, 당숙 아키히코 등 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는 막장 가족이었다. 아키마사는 가족 중 유일하게 하녀 아쓰코와 함께 상식인처럼 보였으나, 실은 사기를 일삼던 악인이었다. 사기 피해 배상을 위해 저택을 찾은 하스노와 이구치는 하녀 아쓰코를 도와 밀실 살인의 진상을 밝혀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밀실 트릭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빗장으로 굳게 잠긴 문이지만, 사실 빗장은 애초에 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문은 밀실에 굴러다니던 공구(끌)를 열쇠 구멍으로 실을 넣어 끌어 올린 뒤, 고정쇠에 걸어 잠갔습니다. 문을 부술 때 공구는 바닥으로 떨어져 증거가 인멸되었지요. '고정쇠에 꽉 끼어 외부에서 실 정도로는 움직일 수 없는 빗장'이라는 맹점을 깨고 현실적으로도 구현 가능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또 하나의 장점은 피해자가 유키마사였던 이유입니다. 이 막장 가족 내에서는 죽었을 때 곧바로 신고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 유키마사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족이라면 죽든말든 아침까지 내버려 두었을거라는 거지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증오로 뭉친 가족을 묘사한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 역시 동기의 설득력에 큰 결함이 있습니다. 범행 동기가 고작 '성질 고약한 아버지가 보낸 빗장을 망가뜨린 것을 숨기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 문을 부술 때 망가진 걸로 위장하느라 밀실 살인을 저질렀다는데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문을 부수기 위해 밀폐했다'는게 목적이면, 그냥 불을 지르고 밀실을 만드는게 더 손쉬웠을거에요. 또한, 이따위 동기를 위해 이렇게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윤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워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인물 묘사도 지나치게 1차원적이라, 악한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만화 속 등장인물처럼 느껴집니다. 화자 역할을 맡은 하녀 아쓰코도 엿듣기 능력자라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해 존재 이유가 애매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은 인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동기와 평면적인 인물 묘사는 끔찍한 수준입니다.

"유괴와 대설 - 유괴의 장 / 대설의 장" 

이구치의 처형 부부의 딸, 미네코가 유괴되었다. 이구치는 하스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유괴범들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둘은 여러가지 단서를 확보하여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 결국 둘은 미네코를 구해내고 범인 일당을 일망타진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의 백미는 하스노의 추리 과정입니다. 하스노는 범인들이 남긴 몇 안 되는 단서, 예컨대 은행 영업시간 이후에 편지를 보낸 점, 자정에 몸값을 요구한 점, 현금으로만 요구한 점 등을 근거로 범행의 목적이 ‘집에 있는 특정한 현금’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 결과 집안의 돈 중 위조지폐가 섞여 있음을 밝혀내지요.
범인들이 몸값을 받기 위해 장인을 커다란 굴뚝 위로 유도하고, 올라간 틈을 노려 짐을 훔쳐낸다는 설정은 몸값 회수의 현실적 대안으로 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범인들이 숨겨놓은 돈을 위조지폐 사이에 넣기 위해 위조지폐를 직접 제작했다는 발상도 참신했고요. 

하스노와 이구치가 좁은 은신처 공간에서 강도 일당을 하나씩 제압해 나가는 장면도 긴장감과 함께 재미를 전해 줍니다. 제한된 환경 안에서 도구를 활용해 열세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은 영화 "나홀로 집에"를 연상케 하고요. 

하지만 동기에 대한 설득력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범인들이 유괴를 실행한 이유는 위조지폐의 출처가 드러나면서 은신처가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리에를 살해했고, 일본을 떠날 계획까지 세운 상황에서 굳이 유괴라는 위험한 수를 둘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강도 경험이 풍부한 일당이 원래 방식대로 범행을 저지르고 돈을 마련해 떠나게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니까요. 
아울러, 위조지폐를 만들어 돈을 숨겼다는 것도 참신하지만 설득력이 낮습니다. 

또한, 범인 일당이 두 패로 나뉘어 있었고, 아키야마가 만다를 살해한 뒤 미네코가 범인인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이미 돈을 확보한 상황에서 만다 일당을 제거하려 했다면, 더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와 활극은 인상적인 부분이 있지만, 범행 동기와 일부 전개는 여전히 무리수가 많아 감점합니다.

"하루미 씨의 외국 편지" 

이구치와 하스노는 은인인 하루노 사장을 만났다. 하루노 사장은 하스노에게,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도착한 프랑스어 편지를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그는 자신과 자매 사이였던 세 명의 여자가 얽힌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하스노는 과거를 조사하여 편지에 담긴 진실을 밝혀낸다.

이 작품은 앞선 단편들과는 결이 다른, 잔잔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지닌 일상계 힐링물입니다. 사람 사이의 은혜와 보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 인상적이네요. 하루노 사장이 겪은 삶의 굴곡 — 처음 교제했던 하루미의 사고사, 이어 그녀의 여동생 쓰키요와의 결혼, 그리고 다시 쓰키요의 여동생 야요이와의 결혼 — 은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설득력있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하루미를 구하려다 불구가 되어버린 프랑스인 샹플랭에게 하루미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하루미의 동생들이 하루미의 삶을 대신 살아갔다는 이야기인데 아주 그럴싸했습니다. 다이쇼 시대라면 더욱 '보은'에 신경썼으리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루노 사장이 쓰키요 사후 겪었던 도난 사건은 야요이와 결혼하려는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추리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해 줍니다.

다만, 아무리 보은이라도 일생을 바쳐 편지를 보냈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죽기 직전까지 야요이가 하루미인 척하며 샹플랭에게 편지를 썼다는건 감동적이기보다는 억지로 보였고요. 야요이가 하루노 사장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조금 더 뚜렷하게 드러냈더라면 감정선이 훨씬 명확해졌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따뜻한 이야기와 독특한 진상 설정은 좋았어요. 마무리만 여운을 남겨주었더라면 더 좋은 점수를 주었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미쓰카와마루호의 요사스러운 만찬"

전쟁통에 돈을 번 졸부 히로카와는 '흑조회'라는 괴상한 회합을 열어 왔는데, 이번에는 화물선 미쓰카와마루호에서 호랑이를 요리해 먹기로 했다. 만찬 직전에 고용인 데루에는 손님 미나미의 처참하게 훼손된 시체를 발견하고 히로카와에게 알렸지만, 사체는 사라졌고 히로카와는 이를 함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데루에는 하스노 일행에게 사실을 고백했고, 이들은 함께 배 안을 재조사해 나갔다. 

그들은 미나미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던 신문기자로, 손님 중 누군가를 체포하려다 오히려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또 다른 손님 히라이가 살해된 후 하스노는 히라이의 시체 유기 방식을 단서로 삼아 범인을 밝혀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수수께끼 풀이의 정석을 따르는 정통 추리물로서의 재미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스노와 독자 모두에게 동일한 단서가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호랑이가 있는 창고를 여는 열쇠 주머니를 옮길 수 있었던 인물, 그리고 사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쇠밧줄의 위치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 진범이라는건 독자들도 모두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의미해 보였던 요소들이 모두 퍼즐의 일부였다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예를 들어, 미나미의 시신에서 살덩이를 베어낸 행위는 단순히 연쇄살인의 특징으로 여겨졌지만, 실은 그것으로 호랑이를 유인해 창고 안 석탄 자루를 꺼내기 위한 장치였거든요. 배라는 폐쇄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건 전개와, 배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비들을 트릭과 연결시킨 설정은 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빛을 발하고요.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구리야마의 의도 — 승객 전원을 살해한 뒤 인육으로 식량을 조달하며 도주할 계획이었다는 설정 — 는 작품에 섬뜩한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화가 이구치와 그의 친구 오쓰키가 나누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대화도 이 작품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입니다. 여성 시신을 훼손해 예술품처럼 연출한 범인을 예술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이구치는 '예술은 완전히 무의미하면서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쓰키는 여성 시신을 훼손한 결과물이야말로 '무의미하고 가치있는 물품'이라서 예술일 수 있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구치는 성적 욕구 때문에 이렇게 저지른거라면, 배가 고파서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만든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고 대꾸하지요. 목적이 있는건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요. 그리고 성욕과 외설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끝나기는 다소 아깝다 싶을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아예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리야마의 범행 계획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전원을 한꺼번에 죽이려 했다는 설정은 독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인육을 식량으로 삼으려는 계획과는 모순됩니다. 굳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었는지도 설명이 부족해요. 추리적으로는 공정함 측면에서는 완벽하지만, 이 탓에 범인을 특정하기 쉬워진다는 약점도 존재하고요. 

아울러 전반적으로 묘사가 장황하게 이어지는 구간이 많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밀도에 비해 분량이 과도하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완벽한 구성과 재미있는 주제의 대화는 돋보이지만, 범인의 계획과 이야기 구성의 일부는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보석 도둑과 괘종시계"

이구치는 집에서 괘종 시계를 도난당하고 친구 하스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최근 주변에서 일어난 루비 도난 사건과 이 사건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전말을 들려주었다. 하스노는 이구치의 설명을 바탕으로 관계자들을 만난 뒤, 치밀한 추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전작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사건이 펼쳐지는 작품으로, 장점이라면 많은 수수께기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첫째, 범인은 어떻게 이구치가 철저히 숨겨놓았던 괘종시계의 위치를 알 수 있었는가? 둘째, 범인은 어떻게 미쓰에의 드레스 세 벌 중 진짜 루비가 달린 드레스만을 알아냈는가? 셋째, 수많은 꾸러미 중 어떻게 루비 팔찌가 들어 있는 꾸러미만 골라서 훔쳐낼 수 있었는가?인데 마치 불가능 범죄처럼 보이지만, 모두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트릭이 밝혀지며 독자에게 추리의 쾌감을 선사합니다.

가장 인상 깊은 트릭은 루비 팔찌를 훔친 방식입니다. 범인은 팔찌가 들어 있는 상자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자 하나만 강제로 열린 것처럼 만들어 미쓰에의 눈에 띄게 했습니다. 이를 보고 미쓰에는 팔찌가 도난당했다고 착각했고요. 이후 고리짝 안에서 상자가 담긴 귤색 꾸러미가 사라졌다고 매니저 미즈타니가 보고했으니, 결국 그가 범인이라는 결론까지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또한 이전 단편에서 등장했던 괘종시계나 인물 미네코가 다시 등장해 연작의 흐름을 이어가는 느낌도 좋습니다. 단편집 안에서 세계관이 공유되는건 확실히 읽는 재미를 더해주니까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괘종 시계를 발견한 방법입니다. 옷본을 찾다 우연히 시계를 발견했다는게 진상이라 시시했어요.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고요. 거대한 시계를 훔치는 것 보다 루비만 떼어가는게 빨랐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드레스에 달린 진짜 루비를 판별한 트릭도 역시 완성도가 부족합니다. 해당 드레스만 기장을 늘렸다는 트릭이 핵심인데, 범인이 옷본을 바꿔치기한 방법이나 드레스 수선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무엇보다 범행 동기가 약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범인 미즈타니는 대신 보관하던 귀중한 루비를 가문 장남이 팔아치워서 루비를 훔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비의 디자인과 크기까지 완전히 똑같지 않다면, 단순히 같은 보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진짜 루비만 골라 훔친 이유도 불명확해요. 겉으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면, 가짜 루비로 대신해도 되잖아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수수께끼와 트릭의 구성은 기발했지만, 동기와 설정 면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해 완성도를 떨어뜨립니다.

2025/04/11

거짓과 정전 - 오가와 사토시 / 권영주 : 별점 4점

거짓과 정전 - 8점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SF 대상을 수상했던 떠오르는 작가 오가와 사토시의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인 "거짓과 정전" 외에도 "마술사", "시간의 문", "한 줄기 빛", "무지카 문다나", "마지막 불량배" 등 현실과 환상, 과학과 감성이 절묘하게 섞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SF적 설정과 기발한 아이디어와 만나 매우 신선한 재미를 준다는 점입니다. 시간 여행을 마술 무대와 연결한 "마술사"부터 그러합니다. 마술에 대해 현실적이며 설득력있게 묘사하다가, 시간을 넘나드는 마술을 '타임머신'과 결합시켜 의외의 결말로 이끄는 솜씨가 정말 탁월합니다.

유행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행의 의미를 되짚는 "마지막 불량배", 과거로 정보를 보내 세계를 조정하는 냉전 시대의 첩보극 "거짓과 정전"도 모두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불량배"는 유행과 취향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소비에 대해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예전처럼 하나의 앨범도 신중하게 고민하고 구입한 뒤, 그 앨범을 반복해 들으며 취향을 만들던 시대를 지나, 지금은 그런 고민없이 모든걸 쉽게 소비하는 세상이 되어 '취향'이라는게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다는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거든요. 지금의 취향은 내가 아니라 인터넷이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SF 외에도, 일상 속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도 돋보입니다. "한 줄기 빛"은 아버지가 남긴 경주마의 계보를 따라가며 자아를 발견하는 성장물인데, “서러브레드가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 이유는 생명의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문장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깁니다.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안도현 시인의 시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무지카 문다나"에서는 음악이 화폐인 섬을 배경으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감성적으로 풀어냅니다. 다이가의 아버지는 훌륭한 음악(다이가)을 듣기 위해 자신의 최고 걸작을 남겼지만, 다이가를 들은 뒤에는 음악을 포기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이가는, 스스로 '다이가'를 듣기 위해 포기했던 음악을 다시 시작할걸 결심하고요. 음악을 포기한 다이가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면 음악을 다시 시작하리라 여겼던 아버지의 배려(?), 그리고 미워했던 아버지의 속셈을 알면서도 속는 다이가의 모습이 짠합니다. 이처럼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밀도 높게 다루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뛰어납니다. "마술사"에서 시간여행은 실제로 일어났는지, "한 줄기 빛"에서 아버지의 꿈은 이루어졌는지, 템페스트, 레티시아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등을 따라가면서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추리적인 요소도 흥미롭습니다. "시간의 문"에서 오펜하임이 1932년 7월 31일, 나치당에 투표했을지?를 물어보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전날밤 오펜하임은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켄타우루스 자리를 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독일 본토로 돌아가 투표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건 교묘한 전개 능력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결합되어 의외의 결론으로 향하는 "거짓과 정전" 처럼요. 작품은 엥겔스의 재판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바로 다음에 80년대 CIA 모스크바 지국 정보원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결국 두 이야기가 결합되며 마무리되는데 기발하고 교묘하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수록된 모든 작품이 동일한 수준은 아닙니다. "시간의 문"은 우화에 가까운 작품으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개나 반전이 평이해 다소 뻔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또한 SF적 설정으로 보자면, "거짓과 정전"을 제외하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단지 상징적인 장치로 사용된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의 문"에서의 기억 조작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우화적 도구에 가까우며, 인물의 존재가 사라지는 설정도 설득력 있는 논리로 뒷받침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몇몇 명쾌하지 않은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술사"에서 정말 타임머신을 만들었는지, 시간여행의 모순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거짓과 정전"의 '정전의 수호자'들이 역사 수정을 방지한다는 진상도 방법적으로는 잘 모르겠고, 설정도 과거 "타임캅"류의 타임 패러독스 방지물과 별다르지 않아서 시시했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SF적인 상상력과 서정적 감성이 잘 결합된 작품들입니다. 일부 아쉬운 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몰입감 있고, 인상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합니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3/16

전기인간의 공포 - 요미사카 유지 / 주자덕 : 별점 2.5점

전기인간의 공포 - 4점
요미사카 유지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아카토리 미하루는 민속학 리포트를 위해 고향 토오미 시를 찾았다. 도시괴담 '전기인간'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모교인 나사카 초등학교에서 용무원으로 일했던 다케미네 노인의 도움으로 전쟁 전 방공호까지 둘러본 뒤, 전기인간 도시괴담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던 호텔에서 죽었다.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미하루의 연하 섹스 파트너였던 고등학생 토오루는 홀로 사건 조사에 나섰다. 미하루가 남긴 리포트와 유품으로 토오미 시로 찾아간 그는 다케미네 노인까지 욕실에서 급사했다는걸 알아내었다 토오루는 노인의 집에서 열쇠를 훔쳐 방공호 안 잠겨진 방까지 침입했지만 4개월 뒤, 나사카 초등학교 6학년인 니라사와와 켄자키에 의해 방공호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일련의 사건 뒤, 비디오 게임지 "프레스타"의 작가 사쿠마는 편집장의 부탁으로 전기인간의 실체를 밝히는 기사를 쓰기로 수락했다. 사쿠마는 후배 작가 요미사카 유지와 함께 토오미 시 방공호 수색에 나섰고, 그곳에서 요미사카 유지는 미하루, 다카미네, 토오루 사건에 대한 기상천외한 추리를 내 놓는데....


'전기인간'이라는 도시 괴담과 관련된 괴사건을 그린 작품.
괴담 자체에 대해 탐구하는 부분과 의외로 본격적인 추리를 펼치는 부분으로 나뉘는데 두 부분 모두 괜찮았습니다. 제목이 유치해서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었는데, 기대 이상이었어요.

괴담 탐구는 주로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펼쳐지는데, '전기인간' 괴담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속성들에 대한 분석은 물론이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지면 괴이는 죽습니다. 육체를 가지지 않는 괴이의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는 한 괴이는 몇 번이고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라는 이론을 이야기에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전기인간'은 실제로 있었고, '도시괴담'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질러 도시괴담의 수명을 연장시켰다는게 진상이거든요. 이렇게 괴담 분석을 통해 사건의 동기를 밝혀내는건 추리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피해자들은 '전기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국한된다는건 신선했습니다. 교수는 이 정도 이야기라면 전기인간은 당연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최초에 기사를 가져왔던 선배 기자 루카와 역시 "만약 호러 분위기로 쓸 거라면 진짜로 자신이 무서워야 합니다. 쓰는 사람이 무섭지 않은 호러는 형편없습니다. 그 존재에 대해서 말하면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러면 말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터무니없어도 규칙은 존중해야 합니다."라며 그 존재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요. 그래서 두 명은 죽지 않았던 겁니다. 사쿠마는 딱히 믿지는 않지만, 전기인간이 실존한다는 기사를 써야 하니 살려두었고요. 피해자가 전기인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건 경찰은 알 수 없고, 1인칭 심리 묘사를 읽은 독자만 알 수 있는 장치라는 점에서도 재미있는 요소였습니다. 소설 속 경찰보다 독자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셈이니까요.

추리 부분도 정통 추리, 범죄 소설 느낌을 전해줍니다. 작가와 동일한 이름의 추리 소설가 요미사카 유지가 등장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한데,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세 명이 죽은 사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추리였습니다. 범인은 다카미네 노인으로 그는 구 일본군 관계자였습니다. 연구했던 전기 병기를 숨기고 있었고요. 그래서 비밀을 지키려고 조사에 나선 미하루를 살해했던 겁니다. 전기 병기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요. 호텔 방은 비상계단을 통해 들어와서 미하루가 문을 열어주면 아무도 모르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자동 잠금 장치가 되어 있으니 살해 후에는 그냥 나가면 되고요. 미하루에게는 뭔가 알려줄게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들어가는데는 문제가 없었을테지요. 
이후 노인이 욕실에서 사망한건 진짜 사고였고, 그래서 토오루의 죽음 이후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겁니다. 범인이 죽어버렸으니까요. 토오루는 노인이 방공호의 잠긴 문에 숨겨 놓았던 전기 장치에 감전되어 죽었습니다. 문이 빡빡하게 잘 열리지 않아서 한 손은 손잡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은 문 틀에 대고 버티는 과정에서감전된 것이지요. 
이렇게 '전기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범행이 가능했다는걸 설명하는데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말은 되니까요.

물론 증거가 하나도 없을 뿐더러, 토오루의 죽음에 대한 추리만큼은 확실히 비현실적입니다. 아무리 노인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뒤라 하더라도, 사람을 감전시켜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 유지되고 있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 경찰의 수사도 간과하고 있습니다. 미하루의 죽음은 단순 변사로 처리하여 수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토오루의 죽음은 철저한 현장 조사가 수반되었을겁니다. 만약 장치가 있었다면 여기서 드러났어야 합니다. 비슷한 트릭이 사용되었던 "네 명의 의인"은 20세기 초엽이 무대로 그렇다쳐도, 현대 배경의 작품에서는 숨기기 어려웠을거에요.

어차피 이 추리는 작품 안에서도 단순한 아이디어 피력 정도로만 받아들여져서 별 문제는 없는데, 진짜 문제는 전기인간이 실제로 있다는 진상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전기인간을 볼 수 있는 초등학생 니라사와가 전기인간과 휴대폰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이 모든게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설명되는데 여러모로 별로였어요. 미궁에 빠진 괴사건에서 범인이 마지막에 나타나 스스로 범행을 고백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세련되게 풀어나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전개에 있어 정리도 다소 부족했습니다. 교수의 말은 반복적이고, 니라사와와 켄자키의 관계와 묘사도 불필요하게 느껴졌던 탓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년에 출간되었던 "전기인간"의 리커버 버젼인데, 리커버 버젼이 나올 정도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생각보다는 괜찮았어요.

2023/09/15

꽃밥 - 슈카와 미나토 / 김난주 : 별점 2점

꽃밥 - 4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사

공포 소설에 가까운 환상 소설 <<도시전설 세피아>>로 접했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몰랐는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상 이력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주인공 화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오사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서민가 뒷골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웃간 소통이 많고, 아이들끼리는 항상 어울려 놀곤 했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정 고무신>>이 떠오르는 그런 시대 그런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접하게 된 다소 기이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이 그려지는데, 환생, 성불하지 못한 영혼과 같이 뻔한 것도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는 나오키 상을 수상할만하다 싶고요.

그런데 소년, 소녀가 묘한 경험을 한 뒤 한 뼘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기억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래서 어쩌라고?'처럼 기승전결없는 단순한 추억담이에요. 그들이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려던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기승전결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괴담물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결말은 명확해서 괴담물보다는 이야기로서 완성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결말은 모두 추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닙니다. 장르 문학 팬이 평가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알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요.

<<꽃밥>>
초등학생인 여동생 후미코가 열병을 앓고 난 뒤, 스물 한 살 때 살해당한 시게타 기요미라는 여자의 환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요미의 집을 보러가자고 졸라서, 나는 후미코를 데리고 히코네라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요미의 아버지가 딸이 살해당할 때 튀김을 먹고 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곡기를 끊었다는걸 알게 된 후미코는 기요미가 어릴 때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밥을 기요미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표제작. 후미코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초, 중반부는 사뭇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미코가 노트에 시게타 기요미 가족 이름을 써 둔 것, 어린 아이임에도 보이는 기묘한 행동들로 공포물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약간 <<오멘>>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아직 어리지만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고 가족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과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하지만 환생임을 밝히고 난 뒤, 아버지에게 꽃밥을 전해준다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뻔했어요! 결말도 예상대로였고요. 뻔하고 무난한 탓에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도까비의 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쿄에서 오사카 서민촌으로 이사온 나 (유키오)의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중 모두가 은근히 따돌리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나는 형제 중 동생 정호와 친해졌지만 몸이 약했던 정호는 그 해 여름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에 정호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국인 형제가 있다는 설정은 반가왔습니다. 도까비 라는 제목도 도깨비에서 따 왔으며,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고추를 문에 걸어둔다는 한국적인 설정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작가 유년 시절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여튼 읽으면서, 정호 귀신 소동은 몸이 튼튼하고 강했던 정호의 형 준지가 자기들을 왕따시킨 마을에 대한 작은 복수극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호의 도까비가 소동을 일으켰고, 이유는 원래 정호의 몸 상태 - 몸이 아프고 약해서 방에만 있었다 - 때문이었다는건 의외였어요. 그래도 죽은 뒤 아프지 않고 자유로와져서 온 마을을 싸돌아다녔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유키오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논 뒤, 드디어 성불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그러나 진짜 도까비였다는건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복수극으로 생각했던 탓입니다. 너무 추리, 범죄 소설에 뇌가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요정 생물>>
오사카 변두리 주택가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세쓰코는 정체불명의 상인으로부터 '요정 생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키우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처럼, 아빠의 부하로 잘생긴 훈남 다이스케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엄마와 함께 도망가 버렸고, 세쓰코는 요정 생물을 죽여서 버렸지만, 그 뒤 아빠의 다른 부하 지로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요정 생물이라는 기묘한 존재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요정 생물의 계란 프라이같은 생김새와 키우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물은 사흘에 한 번 갈아줄 것. 물에 티스푼 절반 정도의 설탕을 풀 것. 강한 햇볕을 쬐면 안되고, 더운 곳에 두어도 안됨. 병을 바꿀 때는 같은 크기로. 병이 커지면 덩치도 커진다 - 등을 통해 <<그렘린>>과 비슷한 크리쳐 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알고보니 어린 소녀가 '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요정 생물'과의 접촉에 직접적으로 비유하여 전개하는 작품이더군요.

디테일한 설정이 뒷받침된 요정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습니다. 엄마와 다이스케가 불륜을 저지를거라는건 너무 뻔했으며, 성적인 소재를 일본 특유의 변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느낌이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세쓰코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도 와 닿지 않았고요. 왜 요정 생물이 세쓰코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은걸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참 묘한 세상>>
아키라의 백수 삼촌이 죽었다. 술에 취해 육교를 건너다 계단에서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후 화장터로 향하던 영구차가 멈춰버렸고, 관을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어른들은 당황했는데, '나'는 삼촌의 애인이었던 가오루 씨를 부르면 될 것이라 여겼다...

장례식에서 난봉꾼 망자의 관 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사실혼 관계의 아내 외의 애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는 반전은 살짝 깼고, 이 여자들이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유쾌합니다. 제목 그대로 참 묘한 세상이에요.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쿠린바>>
40년 전, 나는 어린 나이로 '오쿠린바'인 먼 친척 할머니의 조수가 되었다. 오쿠린바는 주문으로 사람의 혼과 몸의 연결을 끊어 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임종하면서 나에게 주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잇지 않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요약은 단순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오쿠린바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화가 여러개 소개되며, 주문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문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듣게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며, 중간까지 들려주면 살아있지만 나머지를 듣게되면 바로 죽는다는 등으로요. 
하지만 일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고, 설정도 작 중 그렇게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그냥 오쿠린바 할머니의 또다른 회고로만 설명되며, 주인공 화자 미사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로 끌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얼음 나비>>
수십년 전, 오사카 변두리 거리 동네에 살았던 나(미치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 친구가 없는 탓에 묘지에 놀러갔다가 18살이라는 누나 미와와 친해졌다. 그녀는 아픈 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타지로 나와 일하고 있다고 해다. 그리고 겨울에도 살아남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나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과 사라져버린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신비로운 상황이라는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겨울 나비를 보고 미와와 헤어지는 미치오의 모습은, 청춘의 환영인 메텔을 떠나보내는 테츠로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서정적인 버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겨울 나비에 대한 묘사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미와가 유령이 아니라면 몸을 팔고 있을 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결말은 둘의 파국이라는게 너무 뻔해서 의외성도 없었고 진부했습니다.
환상 소설 측면으로 보아도 '겨울 나비'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기에 딱히 언급할게 없네요. 마지막에 함께 본 나비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특별히 장르 문학적으로 바라볼 부분은 없어요.
그 외에도 미치오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미와와의 이별 후 급작스럽게 마사히코가 친구가 되자고 이야기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왕따 설정은 빼고 그냥 외로운 아이였다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8/13

로켓맨 1~1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로켓맨 1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중학생 미즈나시 요우는 정보상 R의 일을 돕게 된다. 어린 시절 잊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서였다. 악당인줄 알았던 R은, 알고보니 스스로 로켓을 만들어서 우주로 가려는 꿈을 이루려 정보를 팔아 돈을 모으고 있었다.
R은 자기 사건을 도와준 댓가로 요우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지만, 요우의 과거는 R이 속한 정보조직 T.E의 핵심 비밀 슈타지 파일과 관련된 중요한 비밀이었다. 파일은 오래전, 요우의 어머니가 가지고 사라진 채였다.T.E의 우두머리 아이에네스의 명령으로 R과 싸워 이긴 요우는 R의 로켓을 대신 맡아 완성하는 조건으로 조직에서 일하게 되었다.

Q.E.D로 유명한 카토 모토히로의 초기 옴니버스 연작 단편 모험물.
Boy meet a Rocket man이라는 부제처럼,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남자 R과 만난 왕따 소년 요우의 모험과 성장이 핵심입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R과 엮여 R이 속한 조직인 T.E의 에이전트가 된 요우가 이런 저런 사건들을 맡아 해결하는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추리적으로 괜찮은 에피소드들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 밀실 트릭 두어가지는 꽤 잘 만들어졌습니다. 아래와 같이 문이 잠겨진 '느낌'을 전해주는 장치 트릭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안경테의 다리를 쏘았을리 없다는 점에 착안해 일종의 밀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도 좋았고요.
Q.E.D 작가답게 과학과 트릭을 결합한 이야기도 있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전 아래에 사는 외딴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한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유전에서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여 배출하다가 의도치않게 유출 사고가 났다는걸 설득력있게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Q.E.D 비슷하게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학습 만화로서의 가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판매하는게 주 업무인 덕분이지요. 그래서 당대 세계 정세 및 주요 사건에 대한 언급도 많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20여년 전 작품임에도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이슈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그리드 컴퓨팅을 활용한 해킹,수정란 밀매 등이 그러합니다. 무기 상인들의 행각이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중, 후반부는 R이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이유와 T.E라는 조직에 얽힌 수수께끼를 알려주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결국 T.E와 거대 무기 거래 조직 도미니온 재단 사이에서 전면전이 벌어지고요. 그러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수수께끼부터 살펴보면, 도미니온 재단은 과거 자동 무인 레이저 공격용 위성을 팔려고 했습니다.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는데 말이죠.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던 시점이라 더 늦어지면 판매가 불가능해 질 수 있었기 때문에 도미니온 재단은 사람을 위성에 남겨두고, 자동화 위성인 것처럼 속이는 쇼를 벌였고 그 사람은 다시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R의 부친이었고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큰 스캔들이 될게 뻔하니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전쟁 무기 상인이 한 명의 우주인을 위성에 남겨둔게 뭐가 그리 큰 스캔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유해를 찾기 위해 우주로 가려는 R과 T.E를 저지하기 위해 희생시킨 군인들 수가 훨씬 많아요. 그 희생은 왜 괜찮은걸까요?
이외에도 설득력 부족한 설정은 많습니다. 하긴, 애초에 13살 중학생인 미즈나시 요우가 T.E의 에이전트가 된다는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우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까.... Q.E.D의 토마는 MIT를 조기 졸업한 천재이고, 친구 중 한 명은 거대 IT 재벌 총수인 등 인맥도 화려합니다. 본인의 재산도 많다고 설명되고요. 하지만 미즈나시 요우는 학교에서조차 왕따를 당하는 평범 이하의 중학생입니다. 어머니가 T.E의 S급 요원이었고, 요우도 자질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Q.E.D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아동향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도미니온 재단에서 다른 위성을 구입해서 원래 위성에 추돌시킨다는 계획은 참고 보아온 독자의 의식을 아득하게 날려버립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T.E와 전투를 벌일 이유도 없습니다. 진작에 추돌시켜서 위성만 날려버렸으면 됐잖아요? 여태까지의 전투와 작전은 모두 헛짓거리였습니다!
아울러 도미니온 재단이 고용한 3인의 킬러 프랙탈, 제로, 인피니티와 아이에네스를 지키는 수호자 지하에 대한 설정은 지극히 유치했습니다. 프랙탈과 지하가 총기가 널린 전쟁터에서 칼과 기묘한 와이어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 장면을 포함한 마지막 대결전은 이 작가가 액션 연출과 묘사에는 정말 재능이 없다는걸 깨닫게 해 주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10권 정도로 연재가 마무리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절판된 탓에 중고 가격이 어마무시한데,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는 없습니다. Q.E.D에서 활용하면 더 좋았을 트릭이 아까울 따름입니다.

2023/07/09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5. 즌부리코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5. 즌부리코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마사오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주면 먹고, 차를 내밀면 조용히 마셨다. 목적지도 신경 쓰지 않는듯 했다. 마이코의 코트에 감싸여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기차 여행 내내, 약한 비가 모든 곳에서 끝없이 내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객들은 언제나 익숙한 표정과 모습으로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둘만 이질적인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타미의 바다는 하늘과 같은 회색으로 저 멀리에서 그대로 하늘과 이어져 있었다. 후지산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의 후지산이 보이지 않는게 이 여행에 더 어울렸다.

토시오는 미시마에 내려 곧바로 공중전화로 에토를 불렀다. 에토는 상대가 토시오라는 것을 알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카츠? 라디오 들었어?"
"안 들었어."
에토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너, 살인 용의자와 함께 도망쳤다는 게 정말이야? 방금 뉴스에서 들었어."
오랜만에 듣는 에토의 억양에는 사투리가 돌아와 있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 그보다 여관 방 하나만 잡아줘."
"그건 맡겨 둬, 지금 어디야?"
"미시마 역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거야? 되도록이면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말라고."
"...... 슈젠지까지 갈 수 있을까?"
"야, 잠깐만. 사람이 많은 곳은 위험해. 이렇게 해. 오히토(大仁)에서 내려서 상가를 지나 가노가와(狩野川)의 오히토 다리 쪽으로 걸어가. 그러면 내가 차로 데리러 갈게."
전화를 끊자 마사오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친구에게 폐를 끼치는 건가요?"
"당신이 신경쓰실 일은 없습니다."
토시오는 그렇게 말하고 걸어 나갔다.
미시마에서 이즈 하코네 철도를 탔다. 차 안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에토의 말에 따르면, 자신도 뉴스에 보도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토시오는 전철 구석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마사오의 모습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전철은 느리고 정차역이 많았다. 오히토까지는 삼십 분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멀게만 느껴졌다.
오히토에서 내리는 승객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눈에 띌 정도로 적지도 않았다. 토시오는 에토의 배려를 알게된게 기뻤다.
오히토 역을 나와 앞에 있는 짧은 언덕을 오르면, 옆 쪽으로 상가가 펼쳐져 있었다. 상가를 오른쪽으로 가면 가노가와 강이 나온다고 에토는 말했다. 상가에 들어서자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차가운 비바람이 거세게 두 사람을 감쌌다.
우산을 샀다. 비는 약하게 내렸지만, 우산을 쓰는게 사람들 시선으로부터 훨씬 안전할 것 같았다.
상점가는 길지 않았다. 상점가 끝에서 제방으로 이어지는 길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걷고 있던 두 사람 곁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푸른색 경트럭이었다. 운전석에서 에토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로 봐서는 아주 건강해 보이네."
에토는 두 사람을 차에 태우며 말했다. 차 안은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미안해…."
토시오가 말했다.
"아냐, 오히려 날 기억해줘서 고마운걸."
에토는 뻣뻣한 얼굴의 수염 사이로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구마사카에 친숙한 여관이 하나 있어. 작지만 조용하지. 그곳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차는 가노강을 건넜다. 넓고 깊은 강바닥은 검은 돌로 채워져 있고, 물은 그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가노강을 건너자 차는 좌회전해 제방 위를 달렸다. 건너편 제방 위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작게 이어졌다.
여관으로 향하면서 에토는 자기 얘기만 했다. 약혼녀가 미인이라는 것, 일이 바쁘다는 것 등이었다.
제방을 내려와 밭을 지나 낮은 산자락을 돌았다. 산 중턱에 성처럼 생긴 건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히토 산이야. 아무리 채굴해도 더 이상은 광물이 나오지 않지만 폐광은 남아 있어. 여름에도 그 안은 시원하지."
좁은 길을 한참 달리다 '섬집'이라고 적힌, 불이 켜진 작은 간판 아래에 차를 세웠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전화해줘."
에토가 말했다.
"그리고 너 이름은 야마다 타로야. 한심한 이름이지만 워낙 급했으니 참아줘."
작지만 잘 정돈된 숙소였다. 이름을 말하자 두 사람은 별채로 안내되었다. 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조용하네."
마사오가 중얼거렸다.
토시오는 유카타와 단젠 (*일본의 남성용 겨울 실내복)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식판이 정리되자 마사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거짓말 같네요........ ......"
마사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도망칠 수 있었던 건 당신 덕분이에요. 하지만 카츠 씨까지 도망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당신이 곤경에 처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어요. 어떤 행운이 닥쳐오더라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당신이 체포되더라도요?"
"그래요."
"사형에 처해지더라도요?"
"그래요."
"사형에 처해지면 죽습니다."
"사형에 처해지지 않아도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거예요. 같은 거에요. 사람을 죽여도, 안 죽여도 마찬가지에요."
마사오는 멍하니 말했다.
"당신이 죄가 있다는게 오히려 나에게는 다행입니다."
마사오의 침착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시오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을 경찰의 손에서 구해냈고, 앞으로도 운명을 함께 할 겁니다."
".... 내가 살인자라고요?"
마사오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한 일을 모두 알고 있어요. 나한테만 숨기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면요?"
마사오는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은 너무 똑똑하고 아름다워요. 나 같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괜찮아요......"
마사오는 천천히 일어선 뒤, 등을 돌려 미닫이 문을 열었다. 옆 방은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마사오는 전등을 껐다. 침대 옆 스탠드만 켜져 방을 살짝 붉게 물들였다.
단젠이 마사오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마사오는 유카타의 끈을 뒤로 풀고 바닥에 떨어트렸다.
"......데츠바의 약병에 독을 넣은 것은 나에요."
마사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사오는 인형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마사오에 대한 애정은 가까워질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광기 어린 격정으로 변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온몸을 휘감았다. 그 격정을 마사오는 조용히 받아들였다.
몸을 떼어내자 마사오는 눈을 떴다.
"...... 나, 이제 안 되겠어요."
목소리를 담은 숨결이 토시오의 어깨에 닿았다.
"안 된다는 말은 싫어요. 슬퍼지니까요. 우리는 이제 막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은 것 아닙니까?"
토시오가 말했다.
"그랬군요. 미안해요."
마사오는 다시 한 번 사과했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미로 속에 있는 것 같아요."
"...... 나사 저택의 동굴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군요."
"토모히로에게 들었어요. 토모히로는 동굴의 지도까지 만들어 놓았어요."
토시오는 문득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 동굴 어딘가에 제니야 고헤에의 은닉 재산이 있다는 것도?"
"그것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꿈같은 일은….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실제로 동굴에 들어갔었잖아요?"
"그야 저도 호기심은 있었으니까요. 토모히로가 죽고, 토모히로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제니야 고헤에의 재산 이야기가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토모히로의 지도를 믿고 동굴에 들어갔는데, 도중에 겁이 났어요. 캄캄한 동굴의 맞은편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
"폭포 소리예요."
"맞아요, 살아있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동굴 안에서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는 폭포를 보고 순간 겁이 났어요. 나는 중간에 돌아섰지만, 저렇게 큰 무대가 있는 걸 보니 토모히로가 말하는 숨겨진 재산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소우지, 카오리, 데츠바 씨 등은?"
"소우지 씨가 알았다면 바로 손을 대서 써버렸을 거에요. 카오리 씨가 알았다면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 것 같고요. 데츠바 씨가 알았다면 사업을 더 확장했을테죠."
"즉, 숨겨진 재산이 있다는 건 당신과 남편, 두 사람만 알고 있었다는 거군요"
"그런 것 같아요."
"토모히로 씨는 그 재산을 혼자서만 갖고 싶었던 것이고요."
마사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 토모히로 씨의 유지를 당신이 이어받으려 한 것이군요."
마사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목구멍에 걸려서 마치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렸다.
"당신은 소우지와 인연을 끊지 못한 탓에, 토모히로 씨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속에 무겁게 쌓여 있었어요. 이번 여행에서 토모히로 씨에게 고백과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토모히로 씨가 기이한 사고를 당해 그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버려서 당신의 마음속에는 죄책감만 무겁게 남아 버렸죠."
"맞아요......."
"토모히로 씨의 죽음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토우이치 군까지 죽었죠. 토우이치 군의 죽음은 자신의 실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사고였고요. 이 사고는 토모히로씨에 대한 죄책감을 더욱 더 키워서 당신이 짊어지기 버거울 정도로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지요."
"나는 계속 남편을 외면하고 있었어요. 미안한 마음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당신은 미쳤어요. 마음의 평형을 잃고 자신을 잃고 말았죠. 지금 당신은 사람을 죽여도 괜찮을 것 같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토모히로 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그의 유지를 이어받기로 결심했죠."
마사오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귀로 흘러내렸다.
"당신의 마음속에 토모히로 씨의 인격이 들어갔습니다. 항상 토모히로 씨를 경멸하던 소우지가 미웠습니다. 소우지는 토모히로 씨의 아내까지 빼앗아 농락하고 있었으니 소우지의 죽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나는 소우지 씨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마사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오노 벤키치의 역립인
형에 독침을 장치했어요. 그 인형은 오직 소우지만이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우지가 당신에게 태엽을 감게 하려고 했습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곤란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기계를 잘 모른다는 핑계를 대고 거절할 수 있었어요."
마사오는 조용히 토시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역립인형에 독침을 장치했을 때, 당신은 이미 소우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대담해진 당신은 카오리 씨를 총으로 쏴 죽였어요. 총소리가 났을 때 나는 미로 속에 있었지요. 우다이 씨는 테츠바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요. 소우지는 방에서 막 뛰쳐나온 참이었습니다. 당신만이 카오리 씨 곁에 서 있었어요........"
"맞아요, 나만 카오리 씨 곁에 서 있었죠."
"그때 나는 절대로 당신을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고 믿고 있었죠. 그 범인은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고,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했어요. 그런데 당신을 범인으로 생각하니 모든 것이 설명이 되더라고요. 또 당신이 다가왔다면 카오리 씨도 경계를 하지 않았을테죠."
"카오리 씨를 쏜 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트릭이 사용됐어요. 나사 저택에서 일어난 세 건의 살인 사건은 모두 교활한 트릭이 사용된게 가장 큰 특징이죠. 소우지를 죽이기 위해 역립 인형을 이용했듯이, 카오리 씨를 죽인 흉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카라쿠리 즌부리코가 사용되었어요."
"즌부리코?"
"예전에 길거리나 장터 등에서 장난감으로 만든 움직이는 오리를 팔았어요. 오리는 일반 셀룰로이드 재질로 만들어졌지만, 움직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장난감 오리 목에 실을 묶고 그 끝에 미꾸라지를 연결해 탁한 물이 담긴 수조에 넣는 거지요. 그러면 장난감 오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헤엄쳐 다니거나 먹이를 잡아먹는 듯한 동작을 하게 됩니다. 카오리 씨를 죽인 흉기는 없앤 방식은 이와 같아요. 그때 당신 곁에는 연못의 오리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카오리 씨를 쏜 후 바로 종이끈으로 권총을 오리에 묶어 놓았습니다. 오리는 곧장 연못으로 돌아갔고요. 종이끈은 물에 녹아내리고 권총은 연못 바닥에 가라앉게 된 겁니다."
마사오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토시오는 그것을 패배자의 웃음으로 해석했다. 자신도 권투에서 패하고 나서 마사오처럼 웃은 적이 있었다.
"데츠바 씨의 약병에 독을 넣는 데에도 트릭이 필요했죠. 데츠바 씨는 두 자식가 죽고 나서 극도로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방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그 누구라도 거의 접근하지 못하게 했죠. 그 데츠바 씨의 약을 독약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요. 아무도 그 약병에 손도 대지 못했죠.”
"그래서 트릭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번 트릭에 사용된건 아무도 모르는 동굴이었고요. 당신은 데츠바 씨가 살해당하기 전날 밤, 미로에서 이어진 동굴로 데츠바 씨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잠든 사이, 약병의 캡슐을 독이 든 캡슐로 바꿔치기했고요. 당신은 자신말고는 나사 저택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다이 씨는 동굴을 찾아냈어요. 만약 동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누구도 당신의 범행을 입증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마사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세 가지 범행은 모두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산에서 벗어난,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났어요. 그 중 첫 번째는 우다이 씨가 동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데츠바 씨의 약병 속 캡슐을 바꿔치기한건 당신 외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소우지가 그 장소에서 역립인형을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서 소우지는 카라쿠리를 움직이려고 했고 당신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어요. 억지로 막으면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되니까요. 그 결과 우리는 범인의 수법을 알게 된 겁니다. 역립인형 안에 독침을 장치해 둔 범인의 수법 말이에요. 범인은 역립인형으로 소우지를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텐데 말이죠.”
"알려지는걸 원치 않았다고요?"
마사오의 눈빛이 한 곳을 응시하며 멈췄다.
"그렇습니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소우지의 시신은 무수한 장난감들 속에서 발견됐을 거예요. 역립인형은 다른 장난감들 속에 섞여 있고, 안에 장치된 독침은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테고요. 당신은 범인이 외부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외부인?"
"그래요, 그래서 당신은 또 다른 미끼 주사기를 준비해서 나사 저택 밖에 떨어뜨려 놓았던 것이겠죠."
"미끼 주사기......."
"그것도 오늘 우다이 씨가 찾아냈어요. 주사기 안에는 액체가 남아 있었고요. 분명 소우지를 죽인 독극물과 같은 것으로 밝혀질테죠. 바늘에는 소우지의 피가 묻어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겠지만, 소우지에게 주사를 놓아본 당신에게 불가능한 공작은 아니였겠죠."
마사오의 눈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얼굴을 손가락 끝으로 들어 올린 뒤 입술을 탐했다.
"...... 내 말에 틀린 점이 있습니까?"
마사오는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은 사라졌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 괜찮아요."
"다른 부분? 어디가요?"
"괜찮아요."
마사오는 팔을 뻗어 토시오의 손을 잡았다.
"부탁이 있어요."
마사오는 토시오의 손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 이대로, 힘을 주세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아요."
토시오는 마사오의 팔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마사오의 상체가 드러났다.
토시오 밑에서 마사오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마사오는 토시오의 등에 팔을 두르고 몇 번이나 하얀 목을 내밀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냄새를 맡았다.

반쯤 깨어난 상태에서 토시오는 팔을 뻗었다. 토시오는 그렇게 하면서 마사오의 몸을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토시오의 팔은 하늘을 향해 뻗어 버렸다. 토시오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마사오는 없었다.
방은 밝아져 있었다. 옆의 침구류가 가지런히 접혀서 쌓여 있었다. 토시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시오는 옆방을 열었다. 정리된 책상 위에는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 종이 위에는 빨갛고 하얀 눈을 드러낸 마도죠가 문진으로 놓여져 있었다. 토시오는 마도죠를 치우고 종이를 손에 쥐었다.
"카츠 씨의 호의가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있을 수 없습니다.
부디 저를 찾으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마사오”

…….죽으려고 하는구나. 토시오는 직감했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마사오가 숙소를 떠난 시간은 7시였다. 한 시간 전이었다.
"어디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토시오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물었다. 물론 마사오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 뒤 전화가 걸려왔다. 에토였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에토가 물었다.
"......그게, 사라져버렸어."
토시오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망쳤지?"
"그래."
"이거 참… 도망가는게 유행도 아니고. 그럼 너는 어떻게 할거야?"
"......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
"하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사라져버리는게 괜찮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정말 여자는 알 수가 없군."
토시오는 우스갯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에토의 말에 의심이 생겨났다.
“...정말 여자는 알 수 없네…. 라고?”
마사오는 나사 저택으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어제는 자기가 방해가 된 것이다. 마사오는 다시 한 번 동굴에 숨겨져 있는 비밀 재산을 되찾으러 나간 것이다. 그 때문에 마사오는 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무일푼으로 마사오가 따라올 거라 생각한 자신의 생각은 얄팍했다.
여종업원이 와서 아침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토시오는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종업원이 가지고 온 새 손전등을 방 안의 비상용이라고 적힌 꼬리표 아래에 걸려고 했다.
"그건?"
토시오는 무심코 물었다.
"어머, 모르셨나요? 먼저 가신 손님분께서 실수로 떨어뜨려서 망가뜨렸다고 하셔서 ...... 네, 대금은 받았습니다."
마사오는 손전등을 들고 떠났다. 마사오의 행선지는 나사 저택의 동굴이다. 확실하다.
토시오는 옷을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여전히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저녁에 산 우산은 그대로였다.
마이코의 코트를 입고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마사오의 작은 등이 보이는 듯했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1. 베이지 않는 말 

2023/06/08

걸작 밀실 미스터리 : 불가능 범죄 베스트 10


짧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역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추리 소설가 톰 미드(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네요)가 밀실 미스터리의 장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밀실 미스터리"라는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밀실 미스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불가능'이라는 요소입니다. 사실 저는 이 용어를 '불가능한 범죄'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범죄(보통 살인)가 저질러지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종 초자연적인 사건과 불길한 분위기로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기발한 추리와 합리적인 설명에 의해 눈부신 스타일로 풀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최초의 밀실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공포, 호러 소설에 가깝고 실제로 탐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몇 년 동안 장르의 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작품으로는 윌키 콜린스의 단편 소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가 있습니다 (물론 콜린스는 최초의 제대로 된 '탐정 소설'인 <<월장석>>을 쓴 작가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얼룩 띠>>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밀실 미스터리는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은 상승 궤도에 있던 장르의 초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탐정 소설의 황금기에는 밀실 미스터리의 인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퍼즐이 핵심인 '공정한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서 특히 도전적인 하위 장르이기도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 엘러리 퀸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독자가 가상의 범죄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와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밀실 미스터리의 주요 요소이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장르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존 딕슨 카가 문학계에 충격을 주며 등장한건 1930년대 초, 황금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카는 최고의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이자 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걸작을 연이어 썼으며, 그의 경력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놀라운 감각으로 풀어내는는 능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0년대와 40년대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영국 범죄소설 커뮤니티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영국 탐정 협회에 입회한 단 두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기가 하락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에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다시 운이 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Jonathan Creek, Monk, Death in Paradise와 같은 TV 쇼는 새로운 세대에게 불가능한 문제의 즐거움을 소개했습니다. 다니엘 스태샤워와 빌 프론지니 같은 작가들이 기억에 남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책으로도 계속 인기를 얻고 있고요. 하지만 이 장르를 처음 접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작을 돕기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밀실 미스터리 10편의 목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목록은 지난 세기 동안 정말 눈부신 작품을 만들어낸 장르의 최고를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당 한 권의 소설만 선정하였고 (그 자체로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죠), 매일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여 빠르게 늘어나는 책장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을 위해 역순으로 제 상위 10권을 소개합니다:

WHISTLE UP THE DEVIL : 데릭 스미스 (1953) (국내미출간)
데릭 스미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도 저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밀실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53년에 처음 출간된 WHISTLE UP THE DEVIL은 두 건의 불가능한 살인 사건으로 이 장르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비 오는 어느 날 밤, 로저 퀘린이라는 남자가 살해되면서 시작되지요.
슬프게도 이 소설은 스미스의 생애에서 출판 된 유일한 소설이었습니다. 스미스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걸작으로 칭송받은 WHISTLE UP THE DEVIL로 찬사를 받기 시작한지는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BLOODHOUNDS : 피터 러브시 (1996)
피터 러브시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퍼즐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고전 본격물의 공정함과 경찰 수사를 완벽하게 조화시켰습니다. BLOODHOUNDS는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 그룹이 실제 밀실 미스터리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따라서 존 딕슨 카의 이름이 자주 언급됩니다. 잠겨 있고 뚫을 수 없는 운하 바지선에서의 살인 사건이라는 매우 특이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이 장르가 처음이고,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INVISIBLE GREEN : 존 슬래덱 (1977)
존 슬래덱은 공상 과학 소설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뛰어난 불가능한 범죄 소설인 Black Aura와 INVISIBLE GREEN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어요. 특히 INVISIBLE GREEN은 작가의 다재다능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묘사, 예리한 논리를 보여줍니다. 고전 본격물의 황금기가 끝난 지 한참 지난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탐정 태커이 핀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저비스 펜과 같은 수준의 황금기 밀실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슬래덱이 공상 과학 소설을 위해 그를 버리기 전까지 핀은 단 두 편의 소설과 단편 소설에만 등장했을 뿐인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가 또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NINE TIMES NINE : H.H. 홈즈 (앤서니 부셰) (1940)
앤서니 부셰는 미스터리 장르의 진정한 학자였으며, 실제로는 미스터리를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Bouchercon' 덕분에 그의 명성은 계속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몇 편의 미스터리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NINE TIMES NINE에는 빛의 아이들이라는 사악한 종교가 등장합니다.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빛의 아이들을 이끄는, 수수께끼 같은 두건을 쓴 지도자에게 저주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란 가운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범죄 현장에서 목격된 후 사라지고요. 우르술라 수녀는 이 복잡한 사건의 여러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MR. SPLITFOOT : 헬렌 맥클로이 (1969)
밀실 미스터리에 관한 한, 헬렌 맥클로이의 <<어두운 거울 속에>>는 비평적 논의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심리학자 바질 윌링 박사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도플갱어의 출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다룬 멋진 작품입니다. 매우 불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잊혀지지 않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포함하기로 한 맥클로이 작품은 바질 윌링 시리즈의 후기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밀실 미스터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거울 속에>>와 마찬가지로 MR. SPLITFOOT 역시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제목은 다름 아닌 사탄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소설은 밤을 보낸 사람은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령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설을 시험해 보려는 자원자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1946)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에서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들어낸 전설적인 작가입니다. 혼진 살인 사건은 킨다이치가 요코미조의 소설에 출연한 77편의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결혼식 날 밤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 한 쌍의 신혼 부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1938)
마술과 문학을 결합하는걸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입니다. 그는 마술사이자 존 딕슨 카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카처럼 클레이튼 로슨도 해리 후디니와 같은 과거의 전설적인 마술사들을 존경했습니다. 로슨의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에는 분명히 후디니의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멀리니 이야기는 가장 순수한 '미스디렉션'을 보여줍니다.

THE CRIMSON FOG : 폴 할터 (1988)
폴 할터는 종종 존 딕슨 카의 후계자로 설명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독특한 문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소설을 강력히 추천하지만, 마술 쇼 중 무대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살인을 다룬 THE CRIMSON FOG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하니까요! 또 잭 더 리퍼가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RIM OF THE PIT : 해크 탤벗 (1944)
서프라이즈! 또 다른 마술사, 해크 탤벗은 프로 마술사 헤닝 넬름스가 두 편의 환상적인 밀실 미스터리인 The Hangman’s Handyman과 RIM OF THE PIT을 출간할 때 사용한 가명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모험가이자 탐정인 로건 킨케이드가 등장하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선보입니다. 
RIM OF THE PIT에서는 초현실적이고 악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눈 덮인 시골을 배회하는 섬뜩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물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정말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였습니다. 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책 <<녹색은 위험>>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작품입니다. 정말 위대한 황금기 미스터리지요. 
하지만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로는 <<제제벨의 죽음>>이 최고입니다. 시리즈 탐정 코크릴 경감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특히나 독특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노쇠하고 악연이 깊은 여배우가 무대에서 살해당한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지요. 퍼즐에 대한 해답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935)
각 작가가 하나의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존 딕슨 카는 "걸작"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책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목록을 쉽게 채울 수 있지요. <<세 개의 관>>은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며, 무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처음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기디온 펠 박사가 눈이 내리는 런던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범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디온 펠 미스터리를 썼지만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으로 다른 시리즈도 썼는데, 이 시리즈에는 친구들에게 H.M.으로 알려진, 거구의 탐정 헨리 메리벨 경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찾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디온 펠 이야기와 H.M. 작품들 중 일부는 불가능에 대한 힌트가 없는 단순한 후더닛이지만, 모두 눈부실 만큼 훌륭합니다! 존 딕슨 카와 그의 놀라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더글러스 그린의 전기 he Man Who Explained Miracles를 강력 추천합니다.

밀실 단편 소설
밀실 미스터리는 장편 소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같은 출판물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하고 기념하는 등 밀실 미스터리는 단편 소설 형식으로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편의 밀실 미스터리 단편 소설을 직접 썼기 때문에 (“The Indian Rope Trick”. “The Footless Phantom”은 모두 EQMM에 실렸어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몇 페이지 안에 공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드워드 D. 호크와 같은 작가를 깊이 존경합니다. 특별한 순서는 없지만,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 에드워드 D. 호크 (1978)
제가 단편 작품 섹션을 포함시킨 주된 이유는 호크 때문입니다. 그는 카에 필적할 만한 상상력을 가졌지만, 거의 전적으로 단편 소설을 전문으로 하여 평생 동안 1,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 중 단 한 편을 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작은 마을의 의사가 탐정으로 변신한 샘 호손이 등장하는 시리즈일 것입니다. 호손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는 독창성과 문학적 성취로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 아가사 크리스티 (1937)
황금기 미스터리 관련 글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밀실 추리 소설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포와로 시리즈 작품인 <<에르큘 포와로의 크리스마스>>와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는 교묘하게 고안된, 불가능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밀실 미스터리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걸작인건 분명합니다. 이 작품 대신 벨기에의 작은 회색 뇌세포가 꿈에서 예언된 밀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단편 소설 <<꿈>>을 선택했습니다.

<<붉은 밀실>> 아유카와 테츠야 (1954)
일본에서 밀실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신조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녹색 문은 위험>> 노리즈키 린타로 (1991)
완벽한 퍼즐 미스터리이자 신본격 장르의 주옥같은 작품.

<<The Name on the Window>> : 에드먼드 크리스핀 (1953)
크리스핀은 뛰어난 재치를 지닌 작가이자 저처럼 카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의 시리즈 탐정인 저비스 펜과 이 깔끔한 밀실 문제를 통해, 크리스핀은 자신이 거장의 제자임을 증명했습니다.

<<The House in Goblin Wood>> : 카터 딕슨(존 딕슨 카) (1947)
헨리 메리 베일 경은 이 진정으로 감각적인 작품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실종에 맞서 그의 재치를 발휘합니다.

<<The Border-Line Case>> : 마저리 앨링엄 (1936)
앨링엄은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밀실이나 불가능한 범죄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의 여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rder-Line Case은 이 장르의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성된 예입니다.

<<From Another World>> : 클레이튼 로슨 (1948)
강령회가 예상치 못한 기괴한 결과를 낳는 단편 걸작.

<<13호 독방의 문제>> : 자크 푸트렐 (1905)
장르의 초석을 다진 작품.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개의 신탁>> : G.K. 체스터턴 (1926)
체스터턴브라운 신부는 홈즈, 포와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탐정입니다. 체스터턴 자신이 존 딕슨 카의 기드온 펠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죠!

<<The X Street Murders>> : 조셉 커밍스 (1957)
조셉 커밍스는 슬프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작가로, 시리즈 캐릭터 브룩스 U. 배너 상원의원은 헨리 메리베일 경의 후계자라 할 수 있습니다.

<<The House of Haunts>> 엘러리 퀸 (1935)
엘러리 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사실 그는 두 명입니다. 사촌 프레드릭 다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만든 가명이었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밀실 미스터리를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들이 쓴 밀실 미스터리는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과 <<the Door between>>모두 밀실 문제를 다룬 훌륭한 소설이지만, 두 작품 모두 불가능성이 다른 더 눈부시고 기발한 플롯 요소에 가려져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우더닛보다는 후더닛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1966)
이 책도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죠! 마지막에 유쾌한 반전이 있는 멋진 블랙 코미디 작품입니다.

밀실 미스터리의 미래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행히도 밀실 미스터리 장르가 다시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매일 출간되고 있고, 이 장르에서 부당하게 외면받았던 고전이 재발간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최근 신작으로는 Gigi Pandian의 Under Lock과 Skeleton Key, 짐 노이의 <<붉은 죽음 살인 사건>>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매혹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제임스 스콧 번사이드의 <<배링턴 힐스 뱀파이어 사건>> 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마틴 에드워즈의 뛰어난 레이첼 새버네이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블랙스톤 펠>>은 밀실 요소가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고, 로버트 소로굿의 아늑한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말로우에 죽음이 찾아왔다>>도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가 계속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2023/05/20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 나나카와 카난 / 박춘상 : 별점 2점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 4점
나나카와 카난 지음, 박춘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키타자와 하루나는 아동 복지법에 근거해 설립된 아동양호시설 나나미 학원에서 일하는 2년차 신참 보육사이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알게 된 학원생들의 이런저런 수수께끼나 비밀을 아동상담소 상담사 카이오, 친구 카논 등의 도움으로 풀어내고, 어떻게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결책을 내 놓는 해결사이기도 하다.

아동 양호 시설을 무대로 이런저런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일상계 추리물. 이런 작품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알고보니 아유카와 데츠야 상 수상작이라서 놀랐네요. 트릭의 기발함에 점수를 많이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 작품의 트릭은 그리 대단한건 없거든요. 그러고보면 2회 수상작인 가노 도모코의 <<일곱 가지 이야기>>도 이 작품과 유사한, 전형적인 소소한 일상계이기는 했지요. 고정관념이라는게 무섭네요. 반성해야겠습니다.
생각해왔던 아유카와 데츠야 상 수상작답다운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한 일상 속 사건들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이야기에서 앞서의 이야기 모두를 아우르는 진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진상을 위한 소소한 단서의 삽입도 적절하고요.

하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었어요. 사건이 너무 소소하고, 등장인물들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던 탓입니다. 읽으면서 지루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추리적으로도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별 것도 아닌 상황을 억지로 수수께끼처럼 만든게 많습니다. 이를 풀어내기 위한 단서도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고요. 특히 아동 복지법이라던가, 아동 양호 시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풀 수 없는 사건은 공정 여부를 떠나서 반칙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서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 1화 지금은 사라져버린 별빛도
중학생인 학원생 요코는 학원의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말썽꾸러기였다. 어느날 별을 보면서 요코는 하루나에게 한 가지 비밀을 털어놓는다. 예전 자신을 지켜줬던 거칠었던 학원생 레이야가 나쁜 원생들을 수감하는 교호원으로 옮기자마자 죽었는데, 죽은 뒤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자기를 찾아와서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상담사 카이오는 요코가 본 레이야는 유령이 아니었다는걸 밝혀냈다. 레이나는 원래 몸이 약해서 요양 시설로 옮겨진 뒤 사망했는데, 공식적으로 옮겨진 날짜보다 뒤에 옮겨갔고, 그래서 죽기 전 요코를 우연히 찾아왔던게 진상이었다.

레이야가 이동한 날짜가 서류상 날짜보다는 뒤였을거라는 추리는 괜찮았어요. 입소 아동에 대한 행정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 이런 시설에 대한 꼼꼼한 자료 조사도 돋보였고요.
문제는 이런 정보를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는 추리하기 힘든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레이야가 원래 몸이 약했다는걸 추리하기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몇몇 단서를 배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창백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과한 화장을 했다던가, 몸이 약한 탓에 '선수필승' 공격법을 익혔다는 등 억지와 비약이 대부분입니다. 곧 죽을 정도로 몸이 약한 아이가 선빵을 날린다고 여러 명을 대적한다는건 납득하기 힘들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이야기의 무대와 등장인물, 각종 설정에 대한 소개와 함께하는 연작 단편집의 도입부로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추리적으로는 딱히 언급할 부분이 없기에 감점합니다.

제 2화 절대 반지
어머니의 학대 탓에 호적도 없이 가출하여 홀로 지내던 아사다 유키는 경찰을 통해 나나미 학원에서 생활하게 된 소녀로 고등학교 졸업과 시설 퇴소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진로로 잡은 전문 학원은 입학에 거액이 필요했다. 학원 관계자들이 난처해하자 유키는 자신이 모았다는 거금이 들은 통장을 보여주었다.
하루나는 거액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카이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카이오는 유키와 과거 이야기를 조금 나눈 뒤 진상을 알려주었다. 유키의 정체는 '산소 미스즈', 유키가 신분을 사칭했다는 부잣집 아이였고 돈은 산소 가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가출했던 산소 미스즈와 우연히 폐가에서 만난 학대아동 유키가 의기투합하여 서로 신분을 바꾸어 살아 왔다는 내용입니다. 수록작 중 스케일 면에서는 가장 큰 편인데, 나름대로 설득력은 있습니다. 유키의 과거에 대한 추억담 -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려고 했다는 등 - 과 몇몇 사소한 단서들 - 에리히 캐스트너의 대표작으로 <<쌍둥이 로테>>를 언급하지 않은 등 - 을 통해 추리해가는 카이오의 추리도 상당히 볼 만 하고요.

하지만 산소 미스즈가 된 유키가 아빠와 연인?이 되었다는 듯한 결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돈이 목적인지, 복수가 목적인지도 모르겠고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 3화 피 맺힌 단자쿠
사라와 켄토에게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다정한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아이 씨와 재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어느날 사라는 아빠가 '난 사라가 싫어'라고 말하는 전화 통화를 듣고 실의에 빠졌다.
하루나의 친구 카논은 이야기를 듣고, 사라와 켄토의 아빠는 외국인이며, 그가 전화로 말했던건 I hate가 아니라 Ai hates라는걸 추리해 내었다.

사라의 영어 실력이라던가, 그 외 디테일을 통해 그녀가 외국계이며 아빠가 외국인이라는걸 추리해 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서술 트릭물입니다. 
그러나 아빠와 사라 남매를 항상 보아왔던 하루나에게는 서술 트릭일 수 없고, 그 결과 하루나의 추리 실력이 상대적으로 별로라는 것만 두드러집니다. 애초에 하루나가 카논에게 사건 이야기를 해 줄 때 사라의 가장 큰 특징인 혼혈아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전형적인 일상계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딱히 눈에 뜨이는 점도 없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제 4화 여름캠프
결혼을 앞둔 학원 졸업생 토시키와 미카가 하루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12년 전 토시키의 추억이 꺼내어졌다. 토시키가 초등학교 5학년일 때 학원 여름캠프에서 만났던 환상의 소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함께 여름캠프를 보낸 소녀 나오는 캠프에 찾아온 어른을 피해 비상계단을 올라간 뒤 사라져버리고 말았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그런 소녀는 없었다고 토시키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하루나는 그 아이는 '소년' 이었고, 함께 여름캠프를 진행했던 지쓰세이 학원 생도였을 거라고 추리했다. 나오는 비상계단을 올라간 뒤 개천으로 뛰어들었고, 개천에서 놀고 있던 지쓰세이 학원 생도들 사이로 숨어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토시키가 찾던 '나나미 학원 생도인 여자아이'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으며, 나나미 학원 선생님들이 나오를 몰랐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초등학교 남자아이, 여자아이의 애틋하면서도 정감어린 추억담은 항상 기본 이상은 뽑아주는 소재지요. 마지막 추격전도 긴박감이 넘쳐서 여러모로 볼거리는 많았던 이야기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오가 남자아이였을거라는 추리는 일반 독자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고요. 단서가 많지 않고, 어떤건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나나미 학원과 지쓰세이 학원의 관계라던가, 임시보호위탁 등의 권한은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아주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 5화 뒤뜰
나나미 학원 뒤뜰에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문에는 2미터 정도 되는 높이에 자물쇠가 달려 있어서 보통 사람은 열 수 없는데, 이 문을 드나드는 '우키히메'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아키 등 몇몇 생도는 흰 손이 두둥실 떠올라 자물쇠를 여는걸 보았다고 말했다.
한편 나나미 학원 생도 아키라와 동급생 미즈에의 교제 문제로 예정되었던 운동회 등이 취소되자 원생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자치연합회 임원인 카나코가 나서서 상황이 정리되었지만 아키라와 미즈에는 헤어지게 되었다.
카이오는 이 모든게 아키라의 '배려' 때문에 벌어진 소동이었다고 추리했다. 실제로 교제를 했던건 카나코와 스기야마였고, 둘의 교제가 문제가 될거라 우려했던 아키라가 이성 교제를 하는 척 했었던 것이었다. 두둥실 떠오른 손은,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도록 시기야마가 카나코를 안아서 들어 올렸던게 진상이었다.


학원에서의 이성 교제가 핵심 소재인 일상계 청춘 학원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재답게 추리적으로 특기할만한 점은 별로 없어요. 흰 손이 두둥실 떠올랐다는건 대단한 추리가 필요한하지 않습니다. 발판이 없었다 해도, 두 명이상이면 어떻게든 가능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는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카나코와 스기야마의 교제는 독자에게 아무런 단서를 주고 있지 못합니다. 추리의 여지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그냥저냥한 평작이었습니다.

제 6화 암흑의 천사
나나미 학원생들이 임시로 통학할 때 이용하는 터널은 여자아이 6명이 지나가면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 15년전, 6명이서 지나가다가 유령 목소리를 들었던 원생도 있었다.
얼마 뒤 초등학생 마이가 터널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고, 여러 아이들이 엮인 소동으로 번졌다. 실제로 천사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누구도 여자가 터널안에서 나오는걸 보지 못했던 채였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트렌스젠더 
터널 감시원이었다....

15년 전 유령의 목소리는 터널 안으로 연결된 배관을 통해 목소리를 보낸 장난이었고, 지금의 천사 목소리는 트랜스젠더 터널 경비원의 목소리였다는 이야기. 경비원은 외모는 남자여서 오해가 생겼던 것이지요. 동일한 사건에 두 가지 트릭을 사용하고 있으며, 트릭이 합리적이라는건 좋았습니다. 

그러나 15년전 사건에 비해 현재의 사건은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경비원이 평상시에 목소리를 위장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거든요. 진실을 그 자리에서 밝히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 7화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하루나는 과거 카논이 했던 여러가지 거짓말을 추궁했다. 그러자 카논은 고의는 아니었다며 자신이 사실은 <<여름캠프>> 때의 환상의 소녀 고마츠카와 나오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알고보니 그녀는 앞서 모든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1화에서 유키가 보았던 또다른 레이야는 카논이었고, 2화에서 유키가 살던 폐가에서 그 전에 살던 소녀도 카논이었고, 3화에서 단자쿠에 살해될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적었던 것도 카논이었고, 5화에서 학원 뒷문으로 들어왔던 소녀도 카논, 6화에서 15년 전 배관을 통해 장난을 쳤던 소녀도 카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도망쳤어야 했는지 아픈 과거를 하루나에게 털어 놓았다. 양아버지의 성폭행 등 학대 탓이었다.


연작 단편집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작품. 앞서 있었던 이야기들 속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를 마지막에 정리해 주는 구성입니다. 앞서 작품들 모두가 한 명의 인물 - 카논 - 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설득력있게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았고요. 등장하는 회문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나오 - 카논 - 의 특기인 '회문' - 거꾸로 읽어도 똑같이 읽는 말 - 이라서 한국 독자는 풀어낼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나오의 본명은 '오아나 나오' 이고, 카논은 '노나카 카논', 둘 다 거꾸로 읽어도 똑같으며, 그래서 둘은 동일인물이다'는게 핵심인데, 번역에서는 '오아나'가 아니라 '코아나'로 소개하고 있어서 한국 독자로서는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어요.

별점은 2점. 이 작품 한 편만으로는 가치가 없고, 앞 부분 이야기들을 읽어야만 완성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보기는 힘들어 감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