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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2

흉인저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5점

흉인저의 살인 - 6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핵심 트릭과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무라와 겐자키는 나루시마의 의뢰로 폐허 놀이동산으로 유명한 드림 시티로 향했다. 드림 시티의 대표 후기 겐스케로부터 구 마다라메 기관에서 연구했던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나루시마는 용병들까지 고용하여 만전을 기했다. 드림 시티 안에 있는, 후기 겐스케가 거주하는 흉인저는 매달 종업원 한 명이 불려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입한 일행은 흉인저 안에서 후기를 제압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모두 갇힌 채 외팔이 살인마 거인을 만나 도륙당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거인이 햇빛을 싫어하여 낮에는 비교적 안전하게 탈출을 고민할 수 있었다. 폐쇄된 문을 부수는건 거인이 밖으로 나가 더 큰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기에, 첫 날 살해당한 코치맨이 가지고 있던 열쇠를 어떻게든 회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탈출을 준비하던 중 생존한 일행 내부에 또다른 살인자가 있다는게 드러났다. 후기와 흉인저 고용인 사이가가 살해당한 탓이었다. 뒤이어 거인을 유인하여 열쇠를 회수하는 작전도 실패했고 나루시마마저 거인에게 살해당했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하무라와 겐자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마다라메 기관이라는 연구 기관에서 비롯된 괴물, 괴인들이 핵심 소재인 '특수 설정'이 여전히 작품의 중심입니다. 이번에는 강화된 신체를 얻은 살인마가 등장합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임에도 쉽게 읽힙니다. "13일의 금요일"과 유사한, 초강력 살인마가 등장하는 슬래셔 호러물로 기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주는 덕분입니다. 살인마를 피해 탈출하기 위한 작전과 쫓고 쫓기는 상황에 대한 묘사도 흥미진진하고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후기를 살해한 범인이 고리키 미야코라는걸 밝히는 겐자키의 추리부터 깔끔했습니다. '거인이 거주구역을 오가는 철문을 연 건 딱 한 번 뿐이었다, 거인은 외팔이라 머리 두 개를 들 수 없었다, 머리를 잠깐 내려 놓았을 수는 있지만 후기의 머리는 먼지가 묻지 않고 깔끔했다' 등의 근거를 통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모든 단서와 근거들은 독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고양이 장식 눈에 박혀있던 '알렉산드라이트'에 대한 말실수는 좀 오버스럽긴 했지만요.
사이가를 살해하고, 살해된 사이가의 머리를 머리 무덤으로 옮겨 놓은 사건은 불가능 범죄라 더 흥미롭습니다. 아침이 되기까지 사이가의 시체가 놓여있던 부구획에 드나든 건 거인밖에 없었습니다. 부구획은 하무라와 아울이, 주구획은 보스가 밤새 감시를 했었지요. 주구획 쪽에서 창문 너머로 목을 절단하기도 불가능했습니다. 밤이 되기 전 사이가의 목을 미리 잘라놓은게 아닐까?라는 것도 현장에 있던 중식도는 거인이 깨어난 뒤 나루시마가 후기의 방에서 가지고 나간 물건이었다는 점에서 부정되고요. 시신 주변에 고인 피가 굳은 상태로 보면 목이 절단되고 아홉 시간 가까이 지났기에 거인이 아침에 자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어떻게 사이가의 목을 절단했을까요? 겐자키는 '목이 야간에 절단되었다'는걸 증명하는건 피가 굳은 상태 뿐이라는데 주목해서 거인과 같은 특수 능력을 갖춘 '생존자'가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자신의 피를 뿌려 굳혔다는 트릭을 밝혀냅니다. '생존자'는 경이적인 생명력과 치유력을 갖춘 덕분에, 피를 많이 흘리고도 멀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인이 아침에 거처로 돌아가면서 시신의 목을 절단했던겁니다. 이렇게 특수 설정이 트릭으로 활용된건, 정통 본격물로는 반칙이겠지만 이 작품에는 굉장히 잘 어울렸다고 생각됩니다. 재미도 있었고요.
반드시 피해자 목을 절단한 뒤 '머리 무덤'에 버리는 거인의 버릇을 이용해서 열쇠를 회수한 마지막 장면도 감탄스러웠습니다. '생존자' 우라이는 코치맨의 시체에서 열쇠를 회수한 뒤 열쇠를 입 안에 넣었고, 머리 무덤 안에 숨어있던 겐자키가 거인이 가져다 버린 우라이 머리에서 열쇠를 회수했다는건데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머리 무덤'의 존재와 거인의 버릇이라는 특수 설정을 활용했다는건 두 번째 살인 사건 트릭과 유사한데, 이런게 이 작품의 묘미겠지요.
미스터리 애호회에 가입하려는 친구들에게 테스트를 하는 도입부도 "9마일은 너무 멀다"가 떠오르는 소소한 재미가 좋았으며, 그 외 안락의자 탐정에 대한 의견이나 탐정과 범인의 역할에 대한 담론 및 기타 추리들도 풍성한 편입니다.

그러나 '특수 설정'을 위한 여러 설명들이 유치하고 작위적이라는 문제는 큽니다. 거인의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케이라는 소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녀가 거인이며, 살육은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을 원숭이 괴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반전은 뻔하면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미쳐버린 케이를 후기가 그동안 어떻게 돌봐왔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생존자'는 거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능력을 얻었는데, 유사한 생명력과 치유력을 갖췄다는 것도 지극히 편의적인 설정이었으며, 우라이 고타가 무려 30년 전에 케이와 했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함께'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쓸데없는 살인 (사이가 살해)을 저지른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 사건은 작품의 핵심이라서, 이렇게 동기가 부실하다는건 추리물로는 큰 약점일 수 밖에 없어요.

작위적인 설정은 그 밖에도 넘쳐납니다. 사회 생활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고용하고, 이들 중 한 명을 매달 거인에게 산제물로 바친다는 설정은 이게 과연 21세기의 이야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가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마다라메 기관의 연구 성과를 노린다는 나루시마, 사고를 불러오는 명문가의 영애 겐자키 설정도 한결같이 만화스러웠고요. "13일의 금요일"이 떠오르는 거인 케이 설정 역시 뻔해서 고민한 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런 점들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고질적인, 당연한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2차 대전 때 생체 실험을 하다가 괴물을 만들었고, 전후 공습으로 폐허가 된 연구소 내에서 생존한 연구원이 괴물을 데리고 연구를 이어왔지만 괴물의 친구가 모든걸 끝내기 위해 찾아왔다는 정도로 끌어나가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이가도 단순 고용인이 아니라, 연구소 내 연구원 중 한명이었다고 설명하면 동기가 설명되었을거고요. 너무 "경성크리처"스러웠을까요?
아울러 '흉인저''의 복잡한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장황한 것도 별로였습니다. 계속 앞 부분에 수록된 약도를 찾아 읽게끔 하는 상세한 묘사가 이어지는데, 사건과 추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니었던 탓입니다. 일종의 맥거핀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단점이 적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는건 감안해야겠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최소한 "마안갑의 살인"보다는 좋았습니다.

2025/07/27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이재원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신예 작가의 본격 추리 단편집으로,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 장르물이라는게 특징입니다. 표제작의 투명 인간과 "도청당한 살인"의 가공할 청력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다른 두 편도 아이돌 오타쿠들, 탈출 게임이라는 다소 특이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이런 특수 설정들은 단순 재미 요소가 아니라 추리와 트릭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표제작은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한 편인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따온 등 기존 추리 명작들의 패러디, 인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추리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설정이 과한 측면은 분명 있지만, 신선한 발상과 실험적인 구성에 본격 추리가 결합된 결과물은 썩 나쁘지 않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선함을 추구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일종의 병에 걸려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 투명인간 아야코는 투명인간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가와지 교수를 살해했다. 하지만 이를 안 탐정 자카제와 남편 나이토 등 관계자가 현장에 들이닥쳐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자카제의 치밀한 탐색에도 아야코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 숨었나? 

투명인간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트릭과 반전이 치밀하게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우선 밀실에서 아야코가 숨은 트릭은, 아야코가 살해된 교수의 시체 위에 올라가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시체를 난도질하고, 오른쪽 가슴에 꽂은 칼을 망치로 눌러 부러뜨린 상황같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된 단서를 통해 밝혀집니다. 멀리서 보아도 '확실하게 죽은 사람'으로 보이게끔(그래서 구태여 시신을 잘 확인하지 않게끔) 과한 상처를 입히고, 누울 자리에 칼이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트릭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아야코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되었고, 지금 투명한 상태로 움직이는 '아야코'는 이웃집 여성 와타베 요시코가 변장한 인물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이 반전 또한 이야기 중에 제시되는 여러 단서들 - 아야코(요시코)가 자택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하는 묘사, ‘보름달을 반지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집의 구조가 반대여야 했다는 점 등 - 로 설득력을 갖추게 됩니다. 교수를 살해한 동기도 이 반전을 통해 설명되고요. 투명인간이 치료되면 정체가 탄로나게 되니까요. 투명인간은 메이크업으로 외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요시코가 아야코로 변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대표적인 예입니다. 탐정 자카제 역시 투명인간이었다는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투명인간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은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시체 위에 올라가 숨는 트릭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아무리 투명하다 해도 경찰이 출동하면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고, 숨은 다음의 계획도 숨는 트릭에 비하면 허술한 탓입니다. 또한 투명인간 설정에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공을 들이고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물리적 모순을 무시한 점도 조금 거슬렸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

큐티 걸스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 두 명이 다투다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여섯 명의 재판원과 판사들이 평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재판원 전원이 큐티 걸스의 팬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들이 나누는 토론을 통해, 피고인이 범인이 아니며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가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데...

아이돌 팬들과 재판을 배경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트릭보다도 추리의 진행 방식입니다. 팬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단서들—응원봉의 컬러가 이상하다는 점, 울트라 오렌지 라이트 스틱이 현장에 과도하게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 타다 남은 종잇조각 등—을 통해, 범인이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였고 피고인은 우상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기로 마음먹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 그럴듯하게 진행되거든요. 시작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이었지만, 전개와 결말은 "키사라기 미키짱"인 셈인데, 오타쿠 팬심과 진지한 법정 추리물을 결합한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코믹한 오타쿠들 대화 중심의 구성도 재미있는 요소였고요. 

추리는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격 추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나, 부담 없이 읽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청당한 살인"

청력이 비상한 미미카는 오노 탐정에게서 살인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피해자의 집에 설치되어 있던 도청기에는 사건 당시의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고, 미미카는 이를 분석했다. 그녀는 녹음된 소리를 듣다가 이상한 불협화음을 느꼈다... 

핵심 단서는 불협 화음이 아니라 발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청기는 인형 속에 감춰져 있었고 고정된 위치에서 놓여 녹음되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발소리는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식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정하게 들렸다는 건 누군가가 인형을 들고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불협화음의 원인인 녹음된 팩스음이 매우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도청기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뒷받침하고요. 이를 통해 도청기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는 탐정사무소 조사원 후카자와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해 낼 수 있는 완벽한 후더닛물로,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미미카의 가공할 청력과 논리적 추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미미카의 비상한 청력이 일반 추리의 범주를 넘는 일종의 초능력처럼 느껴져, 약간은 추리 만화나 퀴즈물처럼 보인다는건 단점입니다. 사실 녹음된 소리를 듣고 분석하는 것이라면 이런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도입할 필요도 없었어요. 현실적으로는 음량 조절이나 소리 추출 장비를 활용하는 쪽이 더 설득력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재미와 퍼즐의 완성도 면에서는 추리 팬으로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수작입니다. 오노 탐정과 미미카 컴비의 티키타카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13호 선실에서의 탈출"

고등학생 가이토는 유명 추리작가 미도리카와 시로의 인기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탈출 게임에 초청받았다. 그 곳에서 게임 후원사 사장의 아들인 마사루와 마사루의 동생 스구루를 만났는데, 가이토와 스구루는 갑작스럽게 납치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납치범들의 본래 목표는 마사루 형제였고, 가이토는 마사루로 오인받아 함께 납치되었던 것이었다. ..

탈출 게임이 핵심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건의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해서, 목격 증언의 모순점을 밝히는 문제, 원고지에 남겨진 메시지를 해독하는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 모든 문제들은 그냥도 풀 수 있지만, 마지막 수수께끼를 통해 중요한건 '거울'이며 앞서의 수수께끼와 거울을 조합하여 진짜 범인이 ‘사쿠라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또한 ‘재교부’라는 게임 규칙—같은 문제에 정답을 두 번 낼 수 있다는 룰—자체도 하나의 트릭으로 작용합니다. 초반부 수수께끼의 해답이 두 가지였음을 이 룰을 통해 암시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중 게임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 설정 모두 현실적으로 잘 설명되고 있고요.

하지만 납치극 설정은 과했습니다. 가이토와 스구루를 납치한 흑막이 사실 마사루였다는 진상, 그리고 동생 스구루가 처음부터 형의 음모와 게임의 정답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입니다. 치밀한 퍼즐 추리에 비하면 완성도만 떨어트리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추리 게임이 잘 연출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7/30

이런 설정은 있을리 없다! 트릭이 변화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오랫만에 소개드리네요. 국내 소개된 작품은 3편입니다. 이 중 '사쿠라다 리셋 3부작'은 라이트 노벨 같은데, 이미 절판되었고 중고 시세는 사악하네요. 구해 읽기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만,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지요.
그나저나 지나치게 일본 작품 위주라는건 좀 거슬립니다. 이런 류라면 '다아시 경 시리즈'를 빼 놓을 수 없었을텐데 말이죠


특수 설정 미스터리란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처음부터 설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미스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현실과 다른 물리법칙, 심령현상이나 초능력, 판타지나 공상과학과 같은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스터리의 트릭과 추리 논리에 특수한 설정으로 인한 구속력이 더해지는 것이 매력이다.

"마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 가모우 다츠야
19세기 영국을 연상시키는,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총 6편의 연작 미스터리. 이 세계의 마법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며, 결코 무법천지가 아니다. 마법이 개입된 세계의 법칙에 따라 왕립 마법원 수사관인 데이븐포트가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마스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의 주민이 된 꿈을 꾸는 주인공들. 꿈속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꿈속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꿈과 현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은 파격적이지만, 세계관은 매우 논리적이다.

"일곱 번 죽은 남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주인공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같은 하루를 9번 반복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진 소년. 그에게는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루프에 빠진 두 번째 바퀴에서, 첫 바퀴에서는 무사했던 할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말았기 때문. 주인공은 루프의 법칙에 따라 할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혀낸다.

"명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탐정이 경찰 아래 움직이는 조직이 되어버린 세상. 증거를 조작해 죄를 면했다는 의혹으로 명탐정의 탄핵 재판이 열리는데........ 이 책의 특수 설정은 탐정 조직의 존재 뿐 아니라, 특수한 조건에서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환생한다는 것. 환생자도 참여하는 탄핵 재판의 행방과 사건의 진실이 복잡하게 펼쳐진다.

"고양이와 유령과 일요일의 혁명 (사쿠라다 리셋 3부작)" - 코노 유타카
주민의 절반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 '사쿠라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주인공은 기억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그리고 여주인공은 세상을 3일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능력자들로 가득한 마을에서 두 사람이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능력끼리 조합하는 퍼즐 같은 논리성이 매력적.

2024/04/05

명탐정의 창자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 2점

명탐정의 창자 - 4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우라노 큐와 조수 와타루(별명 하라와타(창자))는 기묘한 화재 사건 조사를 위해 기지타니 마을로 향했다. 진범을 체포했지만, 우라노 큐는 상처로 죽고 말았다. 기지타니 마을에서 행해졌던 소나 의식 때문에 과거 흉악범들이 '인귀'로 부활했는데, 그 중 한 명에게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저승에서 인귀들을 잡기 위해 과거의 명탐정 고조 린도를 우라노 큐의 몸에 부활시켰다. 고조 린도는 와타루와 함께 인귀들을 없애기 위해 활약하게 되는데...


2023년 국내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던 "명탐정의 제물"의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의 신간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명탐정의 제물"보다는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에 가깝습니다. 추리적인 장치가 엄청나게 많지만, 기본적으로 '특수 설정'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래도 망작에 가까왔던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특수 설정이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작용하고는 있지만, 추리와 트릭은 특수 설정과 거리를 두고 비교적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딱 한 가지, 인귀가 상대를 물고 뜯어 타액과 피를 접촉하는 방법으로 혼을 옮길 수 있다는 특수 설정만 핵심 트릭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에요. 이 트릭도 정보 제공은 충분하고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나쁘지 않았고요.

인귀들이 벌인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일종의 연작 단편 형식이라 많은 사건이 등장하는데, 범인이 과거의 기억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인귀이기 때문에, 동기가 없어서 주어진 단서만 가지고 추리해야하기 때문에 '추리 퀴즈' 느낌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래처럼요.

1. 기지타니 마을 사찰 간노지 화재 사건.
Q : 청년 6명이 죽고 한 명이 중태에 빠졌다. 피해자들은 묶여 있지도 않았고 별다른 상처도 없었는데, 왜 화재 당시에 잠겨 있지도 않았던 본당에 머무른 채 죽음을 맞이했을까?
A : (우라노 큐의 추리) 방화를 이용하여 알리바이를 만든 뒤, 화재 현장에서 절도를 했던 자료관장 로쿠구루마 다카시가 범인이었다. 청년들은 마을에 원한이 있는 무나카타 다다시의 후손 스즈무라에게 이끌려 '인귀'를 불러내는 소나 의식에 동참한 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졌었다. 이를 본 로쿠구루마는 청년들 지갑을 훔친 뒤 그들에게 등유를 붇고 불을 붙이고 도주했다. 증거는 로쿠구루마가 최근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던 것 등.
2. 아예 사다 사건
Q : 1936년, 애인 이시모토를 살해하고 국부를 잘라 달아났던 아예 사다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A : 80년 전, 이시모토를 살해했던건 명탐정 고조 린도였다. 원래 고조 린도를 끌어들여 살해하려던 이시모토와 아예 사다의 계획이었다. 아예 사다가 국부를 처음에 신문지로 감싸고 있었지만, 체포되었을 때 지저분한 잡지 종이로 감쌌던게 증거. 처음에 신문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중에 2층에 있던 이시모토로 부터 절단한 국부를 건네받다가 떨어트려 지저분해진걸 감추기 위해서였다.
3. 농약 콜라 사건
Q : 클럽 D-Mouse에서 독이 든 음료를 마신 손님들이 쓰러져 한 명이 죽고 세 명이 중태에 빠졌다. 범인은 현장을 촬영하던 '아리스'의 눈을 피해 어떻게 빠져나갔을까?
A : 범인은 사건 당시 술 취했던 친구를 부축해 주었던 '어깨녀'였다. 인귀 '체셔'가 미리 여자 하나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녀에게 혼을 옮긴 뒤 죽은 '체셔'를 부축해서 옮기는 척을 했던 것이었다.
4.쓰케야마 사건
Q : 마을 자료관에 보관하고 있던 칼(마도 아카고코로시)을 손에 넣기 위해 자료관을 습격해 직원 니시나를 살해하고, 고조 린도에게도 중상을 입힌 무카이 도키오는 누구인가?
A (와타루의 추리) : 78년 전 무카이 도키오는 칼을 두 자루 준비했었다. 칼은 기지타니에서 마카타로 향하는 도중에 숨겨두었었다. 비가 오는 오늘, 산에 올라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내려온건 사냥꾼 이구치 미쓰오 뿐으로 그가 범인이다.

퀴즈들에 대한 증거, 단서는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어 정답에 대한 설득력은 높습니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답게 퀴즈별로 함께 제시되는 '오답' 추리들도 볼거리입니다. 오답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간노지 화재 사건에서 와타루의 오답 :
사건은 자연 재해였다. 사건 당일, 경내에 곰이 나타나 청년들은 창문이 없는 본당으로 이동했었다. 현장에 '오고령'이라는 종이 그걸 증명한다. 종으로 곰을 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패해서 냄새로 곰을 쫓기 위해 몸에 등유를 끼얹었는데 하필 본당 화염보주에 벼락이 내리쳐 화재가 나 모두 죽고 말았다.
2, 쓰케야마 사건 :
와타루의 오답 : 무카이 도키오는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정면 입구를 이용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지팡이가 떨어져 있었다. 즉, 창문으로 들어올 수 없고 지팡이를 사용하던 환자 스즈무라가 범인이다(칼을 손에 넣은 뒤 칼을 지팡이로 이용했다).
고조 린도의 오답 : 무카이 도키오가 정면 입구를 이용했던건 와타루들과 똑같이 통나무 다리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료관 TV가 부서지지 않은걸 보면 범행 시각은 7시 이후이다. 이건 고조 린도가 습격당한 이후이므로, 범인은 자료관에서 칼을 손에 넣은게 아니었다. 칼은 와타루의 애인 미요코로부터 건네받았다. 미요코는 야쿠자 보스의 딸로 칼을 구하기 쉬웠다.

이런 사건들에 대한 추리 외에도 농약 콜라 사건 범인은 당시 증거를 보면 왼손잡이였는데 체셔는 그렇지 않았았기 때문에, 체셔는 보석점 세이긴도에 나타나 후생성 직원을 가장하여 직원들에게 독약을 먹인 사건의 범인이었다!라던가, 와타루가 어린 시절 히로세 순경에게 폭행당했다는걸 밝혀내는 우라노 큐의 추리, 아리스가 간호사로 대학 병원에서 일한다는걸 맞춘 방법에 대한 추리 등 전체적으로 소소한 추리들이 가득합니다. 모두 공정한 정보 제공 및 합리적 추리라는 본격물의 기본 전개를 잘 따르고 있고요.

과거 흉악범들이 소나 의식으로 '인귀'로 부활한다는 설정을 통해 예전 실제 범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모두 조금씩 각색되어 있는데, '아예 사다 사건'은 영화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아베 사다 사건'이 원조이고, '농약 콜라 사건'은 아마도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쓰케야마 사건은 "팔묘촌"에서도 인용했던 '츠야마 사건'이 원조일테고요. 하지만 이 설정이 유치하다는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유명인이 부활해서 뭔가를 한다는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설정에 바탕을 둔 이야기 전개도 대충 넘어가는게 너무 많아요. 대표적인게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우라노 큐로 보이지만, 사실은 되살아난 고조 린도다'라는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경찰 고위 간부까지 이를 쉽게 믿는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와타루의 여자 친구 미요코의 아버지가 야쿠자 보스라는 것도 비현실적인 설정이었고요. 고조 린도 역시 독특함을 찾기 힘듭니다. 건방지고 철없는 천재 탐정의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모두 좋은건 아닙니다. 추리를 정답에 끼워맞추고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에요. 고조 린도를 살해하기 위해 국부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는 아예 사다 사건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이 논리면 '피를 많이 흘리고 죽은 척'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상처 부위는 '국부'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국부를 자른다'가 '고조 린도를 죽인다'보다 앞 선에 있는 이유처럼 보이는데 이래서야 말이 안되지요. '괴상한 성적 취향'으로 대충 수습하고 넘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고조 린도의 추리도 억지가 많습니다. 아리스가 현장에 돌아왔다고 바로 그녀가 관계자라는걸 알아챈 것, 쓰케야마 사건에서 미요코가 공범이라고 추리한 것 등이 그러합니다. 고조 린도 대신 팬인 긴다이치 고스케를 부활시키기 위해 고조 린도를 죽이려 했다는 미요코의 동기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한 탓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추리'의 재미는 잘 살리고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명탐정의 제물"보다는 확실히 못했습니다. 만화로 각색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24/10/12

세상 끝의 살인 - 아라키 아카네 / 이규원 : 별점 1.5점

세상 끝의 살인 - 4점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및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4년 9월 7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뉴스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충돌 날짜는 정확히 반년 뒤인 2025년 3월 7일이었다. 그 뒤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루의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도망갔고, 아버지는 자살했기 때문이었다. 남동생 세이고는 뉴스 전부터 중학교 때 학교 폭력을 저지른 탓에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었다. 매일을 운전 면허 교습을 받으며 소일하고 있던 하루는 고속도로 실습날인 12월 31일에 운전학원 실습차 트렁크에서 칼에 찔려 죽은 여성 사체를 발견했다. 
전직 형사였던 운전학원 강사 이사가와와 함께 얼떨결에 사건 수사에 나선 하루는,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피해자들이 있는 하카타와 이토시마에서 펼친 끈질긴 수사로 사건에 NARU라는 인물이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런데 NARU는 하루의 동생 세이고였다. 모든건 세이고가 중학생 때 다른 친구들과 나카노 이쓰키라는 동급생을 심하게 이지메하고 괴롭혔던 과거와 관련되어 있었다.

제 68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얼마 뒤 지구는 멸망하는데 운전학원에 다니는 여자와 운전을 가르치는 여자 교관이 차 트렁크에서 시체를 발견한 뒤, 연쇄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선다는 기발한 설정이 돋보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상황도 그럴듯합니다. 세이고는 유이치, 준야와 함께 지구 멸망 전, 자기가 괴롭혔던 이쓰키에게 사과하려고 변호사 히츠미의 도움으로 그를 불러냈던 겁니다. 그런데 마침 불러낸 현장이 폭주 택시 연쇄 살인마인 경찰 이치무라가 시체를 버리던 초등학교였지요. 범행이 들통났다고 여긴 이치무라는 우선 세이고를 현장에서 살해했고, 도주한 유이치, 준야, 히쓰미를 차례대로 살해했던 겁니다. 이 때 세이고의 차를 유이치가 타고 달아나서 범인의 동선이 기묘해졌던 것이고요. 
피해자들이 방심한 상황 - 왜 차 안에서 창문을 열어서 범인이 손쉽게 찌를 수 있게 했는지 - 을 통해 범인이 경찰이라는걸 은근히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의감이 너무 넘치는 탓에 범죄자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사가와 강사 캐릭터도 강렬합니다. 그외 멸망을 앞둔 상황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도 다채롭고요.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히쓰미의 신원을 알아내어 사건 파일을 입수하고, 피해자 준야를 처음 발견했다는 료도 형제와 우연찮게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듣고 동행하고, 세이고의 '마지막 사과'와 그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장에 있었던 이쓰키가 하루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알려주고, 이치무라가 직접 나타나서 하루 등을 납치하지만 료도 형제와 중간에 만났던 소녀 나나코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구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는 탓입니다. 이 과정에서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이사가와 강사의 추리력이 번득이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본 사건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리고 범인이 경찰 이치무라라는건 떠올리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경찰차 범퍼에 가해진 손상이 비중있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폭주 택시'가 경찰차라는걸 목격자들이 놓쳤다는게 더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높은 가드레일 탓에 경찰차 특유의 도장을 확인할 수 없었던 탓이라고 설명되는데, 지극히 운과 우연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치무라의 동기가 작품의 핵심인 '지구가 곧 멸망하는데 사람들을 죽이는 까닭이 뭔지?'를 잘 설명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무대 설정만 기발할 뿐, 결국 뻔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극과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면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작품처럼 그 설정이 추리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다른 후보작이 어땠기에 이 작품이 만장일치 수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란포상 수상작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망작이었습니다. 추리물도 아니고, 특수 설정도 이야기에 잘 녹여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도저히 줄 수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점에 가까운 1.5점입니다.

2026/01/23

수상탑의 살인 - 김영민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년간의 연구 끝에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지구환경과학부 전 교수 박종호는 거액의 돈을 들여 동해 바다에 스스로 떠 있일 수 있는 거대 건물인 수상탑을 만들었다. 

종호는 특별히 선정한 몇몇 사람들을 수상탑으로 초대했는데, 초대한 당일 수상탑에 폭우와 강풍이 덮쳤고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유일한 탈출 수단인 배마저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탑 정원 벤치에서 무언가에 찔려 죽은 종호의 딸 가온의 사체가, 종호의 잠긴 방 안에서 종호가 목이 베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마침 지도 교수와 함께 수상탑에 방문한 이론입자물리학 전공 대학원생 한규현이 탐정으로 나서는데...

"법의 체면"에 이어 한국 추리 소설은 올해 벌써 두 번째네요.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제41회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국내 작품 중에서는 보기 드문, 정통 본격 미스터리를 정면으로 내세우는게 특징입니다. 특히 트릭은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밀실 트릭과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플랫폼과 밸러스트 등을 이용해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기묘한 구조의 수상탑 설정과 잘 결합되어 있거든요. 이 설정과 수상탑 방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단단한 문, 기묘한 발코니 여닫이 구조가 트릭의 핵심이고요. 

박종호 사건에서 범인 가온은 범행 당시 수상탑을 바다 밑으로 가라 앉힌 뒤, 자기 방에서 5층 종호 방 발코니로 떠 갔습니다. 종호가 놀라 발코니로 나왔을 때 종호의 목을 칼로 그어 살해했고요. 한규현 등이 현장 조사를 했을 때 발코니 문은 열려 있었지만, 5층에서 아래로 내려갈 방법이 없어서 밀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1층과 다름 없었던 상황이었던 겁니다.
종호의 애인 승희 살인 사건은 더 대담합니다. 가온은 약간의 조작(화약 폭발?)으로 승희 방문이 열리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승희는 욕실 비상구로 탈출하려고 했는데, 위층인 3층 내부는 탑이 가라앉은 탓에 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상구를 열자, 4m의 물기둥이 승희를 직격해 사망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약간의 특수 설정을 활용한 본격물적인 트릭은 꽤 괜찮습니다. 추리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수상탑도 본격물 무대로는 완벽합니다. 외부와 단절된 클로즈드 써클이며 그 자체가 트릭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요. 이런 설정은 그간 한국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분이라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단점도 명확합니다. 소설로 잘 읽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개가 느리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약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입니다. 주인공 한규현은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너무 평범합니다. 심약하고 수동적인 성격이고, 유머 감각도 전무하다시피해서 이야기를 이끌 만한 매력이 없어요. 독특한 공간과 어울리는 인물이 하나 쯤은 필요했지만, 그런 역할을 해주는 캐릭터는 끝내 등장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도 과도하게 많습니다. 석승준 교수, 대학원생 박규리, 음모론자 태용제는 이야기에서 실질적인 역할이 거의 없습니다. 사건 해결에도, 긴장감 조성에도 기여하는 바가 없고요. 분량만 늘리는 인물들로 빼는게 더 나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습니다. 범행 동기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자신이 후원하던 아이가 아버지의 실험으로 죽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의를 품는다?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종호와 승희가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차별했다는 설정도 앞부분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동기는 뒤늦게 억지로 덧붙여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트릭은 나쁘지 않은데, 세세한 부분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아요. 우선 승희 사건은 가온이 사망한 뒤 일어났는데 누가, 어떻게 수상탑을 침수시켜 트릭에 사용될 상황을 만들었을까요? 물론 가온이 종호 사건을 일으킬 때 3층도 침수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다음날 범행이 발각될 우려가 있습니다. 생존자들이 범인을 찾기 위해 탑 전체를 수색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종호가 수상탑이 아예 가라앉을걸 예상하고 수상탑의 발코니와 문을 침수에 대비하는 형태로 만들었다는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수상탑이 가라앉은 건 가온이 완전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억지로 만든 상황입니다. 극한 상황을 고려하여 첫 방문한 한규현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의 설비를 갖출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거대 구조물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가 손쉽게 휴대폰 앱으로 가라앉히고, 폭탄으로 보트를 폭파시키고 단단한 문을 봉쇄했다는 등의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아무리 천재라는 설정이 있다 하더라도 비현실적이에요.

무엇보다도 범인 가온이 종호 방에서 탈출하다가 청새치의 습격으로 죽었다는 진상은 솔직히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니까요. 실제 사례를 좀 찾아보아도, 낚시 중이거나 배 위에서 잡은 청새치의 몸부림에 찔려 죽은 경우는 있어도 바다에서 공격받아 죽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불빛에 돌격한다는 습성도 없고요. 불가능 범죄를 위해 억지로 만든 설정에 불과합니다.
이후 가온의 시신이 부서진 수상탑의 정원 벤치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결과도 우연입니다. 시체가 떠내려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트릭을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한건 큰 감점 요소입니다.

정보 제공이 지나치게 공정한 탓에 독자가 진상을 추리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수상탑'의 기묘한 설정이 트릭에 사용되었으리라는걸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과 지적인 쾌감을 오래 느끼기는 힘듭니다. "유리탑의 살인"처럼 나름의 반전이라도 선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한국 추리 소설로는 보기 드문 본격물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낮습니다. 분량을 줄이고 밀도를 높였다면 훨씬 나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2024/10/27

종이학 살인사건 - 치넨 미키토 / 권하영 : 별점 2점

종이학 살인사건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권하영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범인 및 진상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준세이 의대 부속 병원 조직 검사실 병리의 치하야의 아버지 미노루가 지병으로 사망했다. 병리해부를 유언으로 남겨서 치하야는 동기이자 지도의 시오리의 보조로 해부에 참석했다. 그런데, 아버지 위에는 암호가 새겨져 있었다. 암호는 28년 전 어린 아이들을 노렸던 미제 연쇄살인극 '종이학 살인사건'의 마지막 피해자 진나이 양의 시신이 숨겨진 곳을 의미했다.
둘은 이를 몰래 알리려 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28년 전 형사였던 아버지의 동료 사쿠라이 형사와 진범을 찾아내려 나섰다. 그와 함께 다시 연쇄 살인극이 일어났고, 현장에는 28년 전과 똑같이 '종이학 살인사건' 범인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유리탑의 살인"으로 이름을 날린 치넨 미키토의 장편 소설. "유리탑의 살인"처럼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그래도 아래와 같이 '위 속에 암호를 새겼다.'는 독특한 설정은 흥미로왔어요. 덕분에 이야기 중반까지 흥미를 잘 잡아줍니다. 
치하야, 시오리가 의사이며 특히 시오리가 병리해부를 맡은 병리의라는 설정도 잘 써먹고 있습니다. 미노루가 생전 유전병인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요.

뼈가 약해지는 구루병은 X염색체 변이가 원인으로 100% 딸에게 유전됩니다. 즉, 키도 크며 격투기 동아리 활동을 할 정도로 튼튼해서 구루병을 앓지 않는 치하야는 미노루의 친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노루의 친 딸은? 목이 부러진채 발견된, 28년 전의 피해자 진나이 양으로 알려진 시신의 진짜 주인공이었습니다. 구루병 탓에 급작스럽게 딸이 죽어 혼란에 빠졌던 미노루의 아내가 진나이 양을 유괴했고, 범인이었던 야기누마(타치바나) 와카코가 이 사건을 연쇄 살인극이 하나로 위장했던 겁니다. 알리바이를 통해 혐의를 벗기 위해서요. 마침 유괴 사건을 엮어 미노루를 협박하기도 해서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요. 범인을 놓아준 죄책감에 경찰을 그만 둔 미노루는 더 이상의 범행을 막기 위해 와카코를 계속 감시해왔고, 미노루가 죽자마자 와카코는 범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여러모로 전작보다 못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범인을 추리할 만한 단서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미노루가 경찰을 그만둔 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무언가를 감시했다' 정도만 의미있는 단서입니다. 그 외의 단서들은 모두 쓸모가 없어요. 핵심 증거와 단서들은 모두 마지막에 범인이 치하야를 납치하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낸 후 독자에게 공개됩니다. 시오리가 알아낸 아버지의 유전병이라는 단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특했던 '위에 암호를 새긴다는 설정'도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작품에서처럼 위궤양으로 암호가 지워질 수도 있는 등 변수도 많아요. 차라리 변호사에게 사쿠라이 형사에게 전해주라고 편지를 남겼으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암호로 남길 이유도 없었고, 암호의 내용도 불합리합니다. 마지막 사건의 시신 위치를 알린다 한 들, 이는 진상과 연결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냥 범인 이름을 써 놓지 않았을까요? 범인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에 피해자도 두 명이나 생겼는데 말이지요. 암호 해독도 특별한게 없고요.

전개도 어이가 없습니다. 둘이 암호를 곧바로 경찰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 시신 발굴 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 사쿠라이와 비밀 수사를 하는 이유 모두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경찰 수사도 많이 어설픕니다. 특히 가장 어이가 없었던건, 이전 수사 담당자 이노하라가 타치바나 사장의 자식이 마지막 사건에서만 알리바이가 없었다고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모든 연쇄 살인이 단독범의 소행일리 없는데, 마지막 알리바이가 없다고 유력한 용의자를 그냥 풀어주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려 다섯 명의 아이가 살해된 사건인데, 경찰이 너무 안이한거 아닙니까? 범인이 유괴한 아이를 자기 아이로 키운다는 설정도 많이 접했던것이라 식상합니다. 이에 대한 정보도 많이 전해주고요.

이렇게 위에 새긴 암호, 병리의, 유전병 정도의 소재를 제외하면 연쇄 살인범과 형사의 대결을 그리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와 흡사합니다. 범인의 정체도 반전처럼 등장하지만 굉장히 뜬금없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은 흥미롭지만 그 뒤의 이야기들은 모두 설득력낮고 억지스러우며, 뻔했다는 점에서 위에 암호를 새기는 상황을 떠올리고, 전체적인 얼개없이 재미있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써 내려간게 아닌가 싶네요. 

2024/09/01

정말로 추천하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 (オモコロ(Omocoro)bros)

유머러스한 기사들로 인기가 많은 일본 웹 사이트인 オモコロ(Omocoro)bros 편집부 멤버들이 추천하는 미스터리 소설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은 세 편 뿐이라는게 아쉽네요.

브로스 편집부입니다.
8월의 일요일마다 다양한 장르의 "추천 소설"을 소개하는 기사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주는... "추천 미스터리 소설"! 다양한 미스터리를 즐겨보세요.

**다빈치 오시야마의 추천 호러 소설**
《우주 탐정 노그레이》 (타나카 히로부미)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한 미스터리 작품을 "특수 설정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마법이 있는 세계"나 "타임루프가 있는 세계"와 같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수 설정이라도 "아무거나 가능"한 것은 아니란 점이 중요합니다. 마법이 있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는 워프 마법을 범인만 사용할 수 있었다"라고 하면 흥이 깨지겠죠. 비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말에도 논리적인 납득이 필요합니다.
《우주 탐정 노그레이》는 다섯 편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우주를 무대로 하는 능력 있는 탐정 "노그레이"가 기묘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단, 이 행성들이 모두 매우 특이합니다.
  •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만 사는 "괴수 행성 킹고지"
  • 주민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천국 행성 파라이스"
  • 주민 수가 항상 일정하며,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 "윤회 행성 텐쇼우"
  • 모두가 대본대로 연극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연극 행성 엔게키"
……등, 독특한 행성들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미스터리에서 "목 없는 시체"는 흔한 미스터리지만, 그 시체가 무적의 거대 괴수라면? 유쾌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더욱 불가사의한 사건들. 그 해결도 역시 행성의 특수한 성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마치 모든 것이 가능한 듯 보이면서도 마지막에 피스가 맞아 떨어지며 규칙의 전체 그림이 보이는 그 기분은 미스터리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장난감 상자를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가 있는 한 권입니다.

**카마도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명탐정의 제물: 인민교회 살인사건》 (시라이 토모유키)

플롯부터 너무 멋진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최고입니다!!!!!!!
미스터리 작품 중에 "다중 해결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개념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으로, "추리 결과, 여러 진실이 존재한다"라는 것이 이 장르의 특징입니다. 이 시라이 토모유키 선생님의 다중 해결물은 탁월합니다. 미스터리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물은 매우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추리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도중에 "이게 뭐야... 방금 추리는 뭐였지?" 또는 "피곤해... 결론만 말해줘..."라는 상황이 될 수 있지만, 이 《명탐정의 제물》에서는 제시된 여러 추리가 모두 강력한 임팩트를 줍니다. 압도적인 해설 파트를 읽으면서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고 감탄하게 될 정도입니다. 장인의 기술에 감탄할 정도로 멋진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의 구조적 약점을 없애면서, 동시에 "다중 해결"이라는 장르 자체에 새로운 빛을 불어넣는 듯한 훌륭한 플롯을 꼭 경험해 보세요.
다른 작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며, 이 《명탐정의 제물》을 시작으로 깊이 빠져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작품인 《엘리펀트 헤드》는 정말 최악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지만, 진짜 최악입니다. 사람이 이런 걸 써도 되나? 여러 의미에서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습니다.

**나시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이야기》 (스기이 미츠루)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손이 떨리다니" 라는 경험을 한 건,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일종의 상쾌함까지 느낄 정도로, 기분 좋게 압도당했습니다.
훌륭한 독서 체험을 보장하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꼭 서점에서 구입하시길 권합니다.
아니면 Amazon 카트에 담아주세요.
"전자책은 없나요?"라고 낙담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마키노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아사쿠라 아키나리)

취업을 위해 양산된 듯한 여섯 명의 우수한 대학생들이, 모두 내심 내정받고 싶은 대기업의 최종 면접에 남았으나, 전원이 내정받는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한 명만 내정된다고 변경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최종 토론 중에 우등생들의 "뒷모습"을 폭로하는 고발장이 나오면서, 한 사람씩 가면이 벗겨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책의 재미 순위를 석권하고, 만화화, 영화화, 라디오 드라마화까지 이루어졌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드러난 좋은 면과 고발을 위해 드러난 나쁜 면이 교차하며, 사람의 인상이 전혀 믿을 수 없다는 스릴 넘치는 구성에 책을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게다가 엄청 읽기 쉽습니다!).
여러 번 뒤집히는 대학생들의 의혹에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교묘한 미스리드, 마지막에 남겨진 고발문의 놀라운 결말,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선명한 복선 회수... 말할 것이 없는 소설의 완전체였습니다. 11월에 영화도 개봉된다고 합니다. 꼭 보세요!

**가미죠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나오키상을 받은 화제작을 지금 와서 추천하는 것도 뭐하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배경은 전국시대로,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 전국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입니다.
…잠깐만요, 이 시점에서 "역사물인가, 흥미 없네"라고 생각한 분들,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 소설은 등장인물과 배경만 역사물일 뿐, 내용은 완벽한 미스터리입니다.
주인공 무라시게는 어느 계기로 상사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성에 틀어박힙니다. 그곳에 쿠로다 칸베이라는 엄청나게 뛰어난 지장이 찾아와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성 안에서 둘이 나눈 이야기가 지금으로 치면 실제로 있었던 "밀실 토크"처럼 느껴져, 이 두 사람의 생각을 예상해가며 즐기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설마, 이런 전개가 가능하다니!"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요네자와 호노부 선생님의 《흑뢰성》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다시 한번,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2025/04/26

엘리펀트 헤드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2점

엘리펀트 헤드 - 4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가조 의과대학 부속 병원 정신과 의사 기사야마는 배우인 아내 기키, 대학생이자 가수인 큰 딸 마후유, 고등학생 둘째 딸 아야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가족의 행복이 쉽게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아픈 기억 탓이었다. 그래서 기사야마는 가족의 행복을 망치려는 원흉을 사전에 제거해 왔고, 최근에는 딸을 취재 목적으로 스토킹하던 방송인 이즈미를 살해했다. 그러나 마후유가 애인 하루를 가족에게 소개시켜 주는 날, 하루가 기사야마에게 돈을 받고 관계를 가졌다는걸 폭로해서 가족은 붕괴되고 말았다. 자포자기한 기사야마는 마약상 에덴으로부터 건네받은 '시스마'를 주사했다. 그런데 시스마가 이상한 효과를 일으켜 시간을 역행한 기사야마는, 하루를 습격해서 입을 막고 가족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 시간 역행이 아니라 시간 분기였다. 결국 두 개의 시스마를 사용해 사태를 해결한 행운아, 한 번 실패해서 시간 역행 효과만 확인한 복원자와 공격받아 입원한 산송장, 모두 실패한 도망자라는 다중 시간축이 생겨났다. 기사야마들은 어느 시간 축에서라도 사람이 죽으면(기사야마가 살해하면), 모든 시간 축 사람이 죽는다는걸 알아내고 나름대로 규칙을 세워 살인을 막으려 했지만, 마후유와 기키, 아야카가 차례대로 끔찍하게 살해되고 마는데....

신예 작가 중 '추리' 장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시라이 도모유키의 최신작.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추리하는 구성이 특징인데, 이번에는 각기 다른 시간축(멀티버스)에 존재하는 동일 인물이 사건을 파헤친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이처럼 다중 시간축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시간축이 달라도 죽음의 순간은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설정에서 일종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탐정역을 소화하는 기사야마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점도 큰 특징입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방해물로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소시오패스거든요. 아내의 스토커를 잡아다가 능욕하고, 딸 스토커는 살해하는 초반부 단계를 지나 후반부로 갈 수록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데 그 수준이 정말 어마무시합니다. 

그러나 참신함, 독특함은 설정에 국한될 뿐, 정작 추리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큽니다. 여러 명의 기사야마가 가족의 죽음을 놓고 펼치는 대부분의 추리는 결국 ‘추리를 위한 추리’에 불과해 억지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아야카가 폭발한 이유가 알약에 숨겨진 소형 폭탄 때문이라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사람이 산산조각이 나고, 신체 조각이 날아갈 정도라면 알약 크기 폭탄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요. 다중 시간축에 있던 복수의 가족들이 동시에 죽었는데, 죽은 상태가 서로 극과 극이라 사망한 원인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저절로 폭발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 자체는 그럴싸한데, 상황이 너무 말도 안돼요. 추운 차를 운전하다가 동사하고, 두꺼운 탈을 쓰고 공연하다가 열사병에 걸려 죽는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여러 명이 추리를 펼쳐봤자 다 억지스럽고 말이 안된다면, 이건 그냥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이런 류의 대표 걸작 "독 초콜릿 사건"처럼, 모든 추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진상 또한 억지스럽습니다. 기사야마들은 가족들이 죽는 순간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범인 기사야마는 피해자가 죽는 순간에는 손을 대지 않는 '시한 장치 트릭' 더하기 '원격 조종 트릭'을 사용했는데, 상황을 극단적으로 정교하게 맞춰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후유는 '행운아'가 죽였습니다. '행운아'는 마후유가 하루와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는걸 알게된 뒤, '산송장'의 손을 빌어 하루를 죽게 만듭니다. '산송장'의 시간축에서 하루가 죽자, '행운아'의 시간축 하루도 죽는데 마침 운전 중이라 교통사고가 일어나게 되고요. 사고로 차밖으로 튕겨나간 마후유는 공교롭게 지나가던 차량에 머리가 으깨져 죽습니다. 즉, 이 모든건 말 그대로 ‘기적의 타이밍’에 의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던 마후유가 왜 튕겨나갔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야카 폭사에 대한 진상은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도망자' 기사야마가 그녀를 성폭행해 임신시킨 뒤 태아를 불법으로 적출해 폭사시키고, 임신을 유지하던 '두더지' 시간대의 아야카의 뱃 속 아기가 폭발하자 다른 시간축의 아야카들 모두 폭사했다는건데, 이건 추리의 수준을 떠나 인간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이렇게 반인륜적인 이야기를 트릭으로 포장한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도 추리물로는 치명적입니다. 행운아는 마후유를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행운아의 시간축에서는 마후유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소시오패스라서, 자신에게도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서 죽였다? 정신병자의 과대망상이 동기인 작품이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또 이게 동기라면, 행운아가 마후유를 살해했다는걸 숨길 이유는 없어요. 약속대로 다른 시간 축의 기사야마들이 가족을 죽이면, 손 안대고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할 수 있으니까요. 

설정도 편의적이고 작위적입니다. 죽음만 동일하게 적용될 뿐, 상처 등은 시간축에서 공유되지 않는다는게 대표적이에요. 상식적으로는 상처도 동기화되어야지요. 산송장이 중상을 입었을 때, 다른 시간축의 기사야마들도 모두 동일한 상처를 입고 쓰러졌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더지가 도망자를 죽이려고 배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에필로그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도망자를 죽이려면 그냥 자살하면 됩니다. 시간축에 있는 모든 기사야마가 동일한 운명을 맞을테니까요. 또 에필로그에서처럼 한 시간축에서 터진 폭탄이 다른 모든 시간축에 영향을 미친다면, 앞서의 현란하고 복잡했던 시한 장치 및 원격 조종 트릭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그냥 하루와 마후유가 탔던 차에 폭탄을 설치하면 되잖아요?

기사야마에 대한 묘사도 이상해요. 기사야마들은 시간축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시간축마다 별개의 인격을 가진듯 보이는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아야카 폭사 때 두더지는 도망자의 부탁을 받아 아야카의 아이를 살려주기까지 하는데, 이건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시스마를 잔뜩 맞은 탓에 시간축을 오가는 절대자가 된 우라시마도 사건 진상을 추리하기 위한 탐정역이 필요해서, 기사야마를 뛰어넘는 절대자가 필요해서 등장시킨 듯 한데, 인물 설정이나 등장 과정, 묘사 모두가 과장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스마를 맞은 복원자가 첫 번째 시스마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축을 한 번 더 분기시켜 ‘두더지’가 생겨났다는 설정은 참신했습니다. 이즈미 사키와 페페코 등 단순한 희생양으로 보였던 인물들을 활용하여 독자에게 시간 이동을 착각하게 만든 디테일도 눈에 띄었고요. 여러 시간축의 기사야마들이 추리를 펼칠 때, 사이렌 소리와 기키와의 과거사 등을 근거로 산송장이 사실은 아파서 누워있는 척 했다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참신한 설정과 캐릭터 구도는 흥미로웠지만,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비윤리적인 트릭과 없다시피한 동기, 개연성 부족의 삼박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전에 보았던 한 추천 리스트에서 언급했듯, 재미는 있지만 최악이에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2023/09/29

방주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별점 2.5점

방주 - 6점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이치는 대학 동창들, 그리고 사촌형 쇼타로와 함께 유야의 별장에 놀라왔다가 유야가 발견했다는, '방주'라 불리우는 거대한 지하 시설을 찾았다. 일행은 버섯을 따러 왔다가 길을 잃었다는 야자키 가족과 하룻밤을 '방주'에서 보냈는데, 지진 탓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 
지하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일주일 안에 탈출해야 했지만, 방법은 입구를 막은 돌을 떨어트리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돌을 떨어트린 사람 혼자 방주에 남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마침 유야가 살해되었고, 일행은 유야를 죽인 범인을 방주에 남도록 하자는 암묵적인 동의를 이뤘다. 
그러나 증거가 없어 시간이 흘러가던 차에, 사야카와 야자키도 차례로 살해당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쇼타로가 추리쇼를 벌여 범인을 밝혀냈다.

2022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23년 '본격미스터리 10' 2위에 선정되는 등 최근 가장 뜨거운 작품. 추석 연휴를 맞아 읽어보았습니다. 찬사를 받은 이유는 바로 알겠더군요. 일반적인 클로즈드 써클 (클로즈드서클) 장르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덕분입니다. 이렇게 닫힌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이야기는 한, 두편이 아닙니다. 산장이나 섬같은 고전적인 장소에서 현대적인 빌딩이나 기묘한 이공간 등으로 장소도 확장되어 왔고, 고립되는 이유도 폭설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서 정전 등의 현대적인 이유, 특수한 집단이 납치하여 게임을 벌이거나 좀비가 등장하는 식의 특수 설정까지 다양한 상황을 선보여 왔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고립된 장소도 독특하지만, '범행을 벌이는 동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범인 마이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원한따위가 아닙니다. 오로지 "고립된 장소에서 탈출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에요. 게다가 이를 위해서 범행이 결국 밝혀지도록 유도하기까지 하고요. 전에 보지 못한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고립된 장소인 '방주' 설정도 좋습니다. 출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이유는 물론, 반전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출입구와 비상구를 감시하는 카메라의 존재를 오래전 과격 분자나 사이비 종교 단체가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방주 내에 이런저런 시설과 장비, 음식 등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같은 이유로 말이 됩니다. 지하 3층에서부터 물이 차오르고 있어서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방주'의 존재감이 너무 확실해서 초, 중반부까지는 방주가 주인공인 느낌마저 전해줍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습니다. 첫 번째는 '범인'에게 닻감개로 바위를 치우고 홀로 고립될 역할을 맡긴다는 암묵적인 동의입니다. 범인이 누구든간에 자기 범행이 드러났다고 그런걸 순순히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만약 범인이 피트니스 센터 강사 류헤이였다면? 완력으로 제압하여 굴복시키기도 어려웠을테지요. 그리고 침수 중이라 시간 제한이 있다면 범인을 찾아서 희생하라고 설득하느니, 누구든 빨리 돌을 치워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구조를 기다리는게 빨랐을겁니다. 아무리 산사태가 일어났어도 한나절 만에 올라온 산을 내려가는데 1주일이나 걸릴리가 없잖아요? 기본적인 상식을 부정하는 설정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아무도 공기통을 활용하여 지하 3층을 지나 비상구로의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범인을 밝히는 것 외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건 설득력이 약합니다.

마이가 범행을 저지르는 일련의 과정도 작위적입니다. 물론 마이가 곧바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제비뽑기 같은 것으로 희생자(?)를 고르기 전에 상황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라는건 어느정도 말은 됩니다. 전에 '방주'에 왔던 경험이 있는 유야는 출입구와 비상구가 바뀐걸 눈치챘을지도 몰랐기에 제일 먼저 죽였다는 것, 유야 사건에 증거가 남지 않고 모두가 범행이 가능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납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야카의 핸드폰 속 사진이 출입구와 비상구가 바뀐걸 나타낼 수 있어서 죽였고, 사야카가 핸드폰을 분실해서 어쩔 수 없이 목을 잘랐다 - 핸드폰이 안면인식으로 잠금 해제가 되는 모델이라 - 는 것까지는 그렇다쳐도, 애써 종이 타월을 가져오면서까지 증거 인멸을 위해 노력했다는건 설명이 안됩니다. 어차피 범인임을 드러내어 희생양이 될 목적이었다면 시체의 목을 자르다가 들통나는게 더 확실했을거에요. 제한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범행을 드러내는 것 보다는 말이지요. 사체의 목을 자르는 행동이 의심을 불러 일으킬까봐 그랬다? 그래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을겁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고립된 사람들 앞에서는요. 마지막 쇼타로의 추리쇼에서 어떤 사진 때문에 사야카를 죽였는지에 대해 마이가 설명한걸 아무도 부정하거나 지적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또 마지막 추리쇼에서 마이가 범인이라는건 증명하지만, 앞서 쇼타로가 말했듯 "동기가 없다"는 이유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했다던가, 유야가 방주로 일행을 억지로 데리고 왔다는 등의 설정을 덧붙였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마이가 탈출에 성공했다 한들, 이후 다른 사람들의 실종과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려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테이프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이 범인이라던가 유야의 손톱깎기와 지퍼백을 범인이 가지고 왔던 이유는 핸드폰이 방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테이프 정도야 잊어버릴 수도 있지요. 지퍼백의 용도도 지나치게 국한되어 있고, 발표 시점에 생활 방수가 되지 않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MZ 세대가 있을걸로 보이지도 않고요. 

이렇게 장점도 확실하고 단점 또한 확실한 그런 작품입니다. 돌직구 하나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변화구도 적절하게 섞어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듭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그래도 한 가지 장점으로 정면 승부를 벌일만큼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슷한 설정들에 지친 추리 소설 애호가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덧붙이자면, 10명에 불과한 등장인물 - 심지어 3명은 중간에 살해당함 - 과 폐쇄된 공간, 일주일의 시간 제한 등의 설정은 '무대'에 잘 어울릴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각색해도 괜찮은 연극이 될 수 있을것 같네요.

2016/06/18

매듭과 십자가 - 이언 랜킨 / 최필원 : 별점 1.5점

매듭과 십자가 - 4점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딘버러에서 소녀들을 유괴하여 살해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혼한 전 SAS 특수부대 출신 경사 존 리버스에게 기묘한 협박장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존 리버스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싸우며 사건 수사에 나섰고,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범인이 정말로 노리는 것이 자신이었다는게 밝혀진다...

"'타탄 느와르의 제왕'이라는 작가 이언 랜킨이 창조한 존 리버스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홍보 문구에 더해 적절한 분량과 괜찮은 책 디자인으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기있는 소재들 몇 개를 나열한 펄프 픽션에 불과한 탓입니다. 우선 주인공 존 리버스부터 살펴보죠.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못나가는 경찰, 전직 SAS 출신, 골초, 이혼남, 고독한 늑대, 트라우마..." 이 키워드 몇 가지를 섞어 만든 캐릭터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겁니다. 그냥 현대 하드보일드범죄물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스테레오 타입이니까요. SAS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것으로 관련된 트라우마로 괴로워한다는 묘사가 자주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이 바닥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한다는 것 역시 뻔하디 뻔한 설정이고요. SAS에서의 훈련과 경험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도 불만입니다. 차라리 트라우마 없고 군대 경력을 활용하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마스터 키튼"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그다지 잘생기거나 몸이 좋지도 않고, 다른 매력도 없는데 여자들과의 원나잇이 쉽게 그려지는 것 역시 불만입니다. 이게 영국적인 문화라서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조직 내 동료들끼리 스스럼없이 원나잇을 즐긴다는건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리버스의 전처가 리버스와 티격태격하는 상관 앤더슨의 새파랗게 어린 아들과 사귄다는 막장 설정은 도무지 왜 나왔는지 모르겠고요. 딱 한가지 마음에 드는 설정은 딸바보라는 점 뿐입니다. 특히 딸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리의 건방진 수컷들을 하이에나 떼 보듯이 하는 장면만큼은 딸 아이 아빠로서 공감이 가더군요. 그러나 이는 사건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범죄 스릴러로서의 가치도 형편없습니다. 범인이 지속적으로 존 리버스에 메시지를 보내지만 리버스는 살인마가 SAS 당시의 전우 고든 리브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는게 핵심인데, 이유는 트라우마로 과거의 기억을 봉인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막장 드라마기억 상실증에 버금가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의적인 설정이 아니었다면 매듭을 통해 고든 리브를 쉽게 떠올렸을 거라는건 자명합니다. 당연히 체포도 손쉬웠을테고요. 최소한 사만다가 유괴되기 전에는 잡을 수 있었겠지요.

게다가 기억을 되찾는 것도 최면술사인 동생 덕분이라니 이 역시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나마 첫 만남에서 동생 마이클이 최면으로 전생도 끄집어낼 수 있다 운운하는 복선을 깔아놓기는 했지만, 절대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어요. 지독히 편의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또 작중 리브스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처의 애인이 죽고, 전처는 중상을 입고 딸까지 유괴당한 후에도 하는건 집에서 술이나 먹는 것에 불과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자책하는 것은 덤이고요. 범인을 알아낸 것은 앞서 말했듯 동생 마이클의 최면술 덕분이며, 범인의 흔적도 경찰에서 피해 아동들이 같은 도서관(중앙도서관)에 다녔다는 단서를 포착한 것을 토대로 잡아냅니다. 그나마 마지막 추격전에서 아주 약간의 활약을 하기는 하지만 대단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거기에 더해 급작스러운 결말과 두페이지 분량도 채 되지 않는 에필로그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리브스의 트라우마는 극복되었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마이클은 어떻게 되었는지, 앤더슨은 어떻게 되었는지, 질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건지 등등등....

물론 몇가지 건질만한 재미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피해 아동들 이름의 머릿글자를 연결하면 리버스의 딸 사만다의 이름이 표시된다던가, "죄와 벌"에 대한 과거 대화를 언급하며 책 속에서 총을 꺼낸다던가 하는 요소는 제법 괜찮았어요. 기자 짐 스티븐스가 마이클 리버스의 마약 거래를 뒤쫓는 이야기가 병행해서 펼쳐지는 것도 흥미를 자아냅니다.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무대가 되는 에딘버러에 대한 묘사는 특히 좋아요. 유괴 사건에 대한 지루하고 기나긴 탐문, 자료 조사에 대한 끔찍함에 대한 묘사는 놀라운 수준이고요. 모든 내용이 250페이지 안쪽의 짤막한 분량이라는 것도 4~500페이지 짜리 장편이 넘쳐나는 시대에 보기 힘든 미덕이지요. 아울러 출판사 오픈하우스가 새롭게 런칭한 장르문학 전문 브랜드 Vertigo 이름으로 출간되었는데 성격을 확실히 보여주는 장정과 디자인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장점에 비해 단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관심이 가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후속권을 읽을 생각이 없고요. 이런 싸구려 펄프픽션을 뭔가 있어보이게 "느와르"라는 표현을 써가며 홍보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습니다.

2004/11/17

꿈의 사도 - Riichi Ueshiba

"가면속의 수수께끼"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의 작품.

전작 "가면속의 수수께끼"는 주위의 매니아도 많고 볼 기회도 많았지만 저는 제대로 보기가 상당히 힘든 만화였습니다. 독특한 설정과 묘사들은 눈여겨 봐둘만 했지만 스토리와 주제 의식에서 공감을 느끼기는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 "꿈의 사도"도 특유의 성적인 상상력은 여전합니다. (장점이 될 수도 있겠고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일단은 전작보다 유쾌한 액션물적인 성격을 많이 취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줄거리만 보면 여러명 있는 (9명이 있다고 묘사됩니다) "꿈의 사도"라는 "꿈의 힘을 다루는 자"들이 의뢰받은 괴사건을 해결한다는 흔한 전대 액션물의 설정으로 각 사도들이 각각의 특수 능력으로 악당들과 맞서 싸운다는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한 내용입니다.

허나 흔한 액션물로 생각하고 본다면 대략 낭패! 이 작품은 오히려 야릇하고 이색적인 러브스토리(첫번째 편은 중학생 소녀들의 레즈비언 경향의 러브 스토리를, 두번째 편은 기계와 인간의 사랑)로 보는게 타당한 작품이에요.
사실 저는 첫번째 이야기부터 이 만화에 반해버렸습니다. 명문 사립 여자 중학교인 "하나비라자카 여학원"에서 발생한 24명의 소녀들의 상상임신 사건... 그 아이들은 이전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백합반 동창생들로 사건은 2년전 여자로 꾸미고 학교를 다녔지만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남자아이 "요코"와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했는데 일본의 "만엽집", "고사기"의 히루코 전설까지 엮어서 보여주는 이야기 전개가 정말로 탁월해요. 모든 이들이 영생하고 모든 이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이 성취되는 "히루코의 나라"라는 큰 배경을 깔고 작가 자신이 추구하던 소년 소녀에 대한 야한 상상력 + 액션물의 성격까지 짬뽕하여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만든 능력에는 감탄밖에는 할게 없더군요. 특히 마지막에 밝혀지는 "히루코의 나라"의 정체가 돋보입니다.
위와 같이 특유의 지나칠정도로 집요한 디테일의 그림도 여전하고요.

두번째 작품 "광물의 성모"편은 "긴쥬"라는 주인공 소년이 아버지가 만들어 준 인형인 "루루"와 사랑을 엮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루루"에게 생명을 넣기 위한 "돌의 심장", 즉 "현자의 돌"을 노리는 집단인 "헤르메스 교단"이 등장하고 이들에게 "루루"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꿈의 사도"들의 도움으로 그들과 맞서던 긴쥬는 결국 아버지가 "루루"를 자신에게 만들어 준 이유를 알게 된다는 내용이죠. 요새 유행인(?) "현자의 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지만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차용한 설정이나 무한의 사랑을 반복해 나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좋습니다.

물론 아직 5편까지 밖에 나오지 않은 듯 해서 전반적인 품평을 하기는 아직 어렵긴 합니다.
또 앞서 장점만 언급했지만 딱! 한가지 지적하자면 탁월한 스토리텔링에 비하면 오히려 너무 만화적이고 작위적인 설정들로 이루어진 "꿈의 사도"들의 존재감이 희박해 보여 아쉽더군요. 심리학 이론에 근거한 여러 디테일하고 자잘한 설정들("상자 정원" 요법 등)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에 잘 섞이지가 않고 오히려 "만화 캐릭터나 완구의 무기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라는 설정의 액션장면만 눈에 띄게 과장되게 묘사되어 겉도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그래도 작가 특유의 일러스트에 가까운 디테일한 묘사와 성적 상상력 (훗^^)에 덧붙여진 독특한,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로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울러 보다 귀여워지고 다듬어진 캐릭터까지 있으니 흐뭇하네요. 별점을 주기는 아직이기는 하지면 여태까지는 3.5점입니다.

2021/05/01

스텝 - 찬호께이, 미스터 펫 / 강초아 : 별점 2.5점

스텝 - 6점
찬호께이.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알마

'사보타주'라고 불리우는, 범죄자 형량을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결정하는 시스템을 주제로 한 4편의 중편이 모여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루는 연작 소설집입니다. "13.76"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중국 추리작가 찬호께이가 타이완의 추리 작가인 미스터 펫과 함께 쓴 작품이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저' 방식은 아닙니다. 기둥 줄거리와 기본 설정은 함께 생각했을테지만, 미국을 무대로 한 첫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찬호께이가, 일본을 무대로 한 두 번째, 네 번째 이야기를 미스터 펫이 써서 합쳤거든요. 

그래서 각각의 이야기는 분위기와 전개가 사뭇 다른데, 찬호께이가 쓴 작품들은 정교한 구성, 반전 모두 어느 정도 기대에 값합니다. 하지만 미스터 펫의 작품은 별로였습니다.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왜 일본을 무대로 했는지도 모르겠고요. 특히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그 수준이 가히 처참한 수준입니다. 미스터 펫이 맡았던 이야기들은 작 중에서 인공 지능의 시뮬레이션 시나리오라고 설명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처지는 완성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어요. 찬호께이가 맡았던 첫 번째 이야기 속 매슈 프레드 범죄극도 마찬가지로 시뮬레이션이지만 범죄물로는 차고 넘치는 좋은 작품이었으니까요. 추리물, 범죄물이 아닌 SF 측면으로도 사보타주 시스템 등 상세 설정도 찬호께이 이야기에서 더 잘 설명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찬호께이 부분은 별점 3.5점, 미스터펫 부분은 별점 1.5점인데 찬호께이가 이야기 전부를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P.1 SA.BO.TA.GE. /찬호께이 : 

미국을 무대로 매슈 프레드라는 범죄자가 저지르는 여러가지 범죄를 그려낸 작품. 이 중 마지막 범죄는 꽤 완성도가 높아요. 술집에서 만난 E와 의기투합해 그의 전처를 응징한다는건데, 아내나 불륜남이 아니라 E를 죽이고 아내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다는 반전이 괜찮았거든요. 매슈 프레드가 저지른 모든 범죄는 사보타주가 시뮬레이션한 내용이라는 큰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E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정비공에게 시세보다 훨씬 큰 돈을 주고 자동차 정비를 맡기는 등 약간의 헛점은 있지만, 이 모든게 시뮬레이션이라면 어느정도 납득할 만 합니다.

EP.2 T&E /미스터 펫 : 

탐정 메이구가 정부 의뢰로 사보타주 시스템을 일본에 이식한 '선인장' 시스템을 해킹한 범인을 찾아낸다는, 일본을 무대로 한 독특한 SF 추리물입니다. 

수사는 미행, 도청, 해킹이 전부라 추리의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메이구가 가진 특수 능력이 무엇인지가 수수께끼의 핵심입니다. 사건 수사를 여러가지로 시도하면서, 실패할 때 마다 사건을 의뢰받은 시점으로 기억과 함께 돌아오는 능력이지요. 실패하지 않아도, 5일이 지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요. 이 능력 덕분에 메이구는 의뢰받은 사건을 5일 안에 밝혀낼 수 있었던 겁니다. 

이야기는 중간에 의뢰인이 사망하는 등의 깜짝 전개를 거쳐, 특수 능력이 밝혀지고 범인이 타케우치라는게 드러나며 타케우치와 메이구의 격투로 끝맺습니다. 지금 전개되는 현실은 메이구가 만들어낸 가상 현실로, 이 가상 현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일종의 열린 결말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타임 리프물, 타임 슬립물과는 다른 설정에 더해, 메이구가 리셋할 때마다 료코의 1인칭, 3인칭으로 시점이 변하는 묘사도 독특했습니다. 처음 읽을 때에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생각과는 사뭇 달라서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하려면 료코 뿐만이 아니라 메이구로의 시점 전환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료코만의 시점 변화는 진짜가 아닌 가상 현실이라는걸 보여주기위한 장치로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EP.3 E PLURIBUS UNUM /찬호께이 : 

석방된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최악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본 법무부의 사보타주 시스템 총 책임자인 앤드루 키팅이 범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범인이 누구인줄 알지만, 시스템 비밀을 밝히기 어려워 전전긍긍하는 담당자의 고뇌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범죄 현장에서 마주치는 클라이막스 까지의 전개도 긴장감이 넘치고요, 마지막에 키팅이 읽은건 단순한 시뮬레이션 결과일 뿐, 실제 예측이 아니었다는 반전도 설득력있게 묘사됩니다. 

문제는 전개와 결과가 예상가능했고, 운과 우연에 지나치게 의지한다는 점입니다. 시뮬레이션과 비슷하게 애덤스가 현장에 나타나서 희생된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보타주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데 너무 치중한 결과물이었어요. 키팅이 범인 애덤스를 죽이고 그냥 잡혀갈 생각을 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밝혀지는 두 번째 이야기 속 기묘한 설정만큼은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키팅은 범죄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인공지능이 시뮬레이션 도중 일정 조건이 만족되면 자동으로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가 변수를 변화시켜 시뮬레이션을 계속하는 '가젯'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점을 되돌리는 방식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버려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렸고 가젯이 유출되어 해커가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요. 이렇게 가상 세계 속에서 시간 회귀, 변수 수정, 데이터 기록의 능력을 갖게 되는 '머니퓰레이터' 를 잡기 위해 프로그래머 프랭크는 '에스코트'라는 존재를 만들었습니다. 에스코트는 머니퓰레이터를 확인하면, 소멸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지요. 즉, 두 번째 이야기에서 머니퓰레이터가 메이구, 에스코트는 다케우치였던 겁니다. 이런 점에서 다케우치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시스템만 놓고 보면 다케우치는 백혈구와 같은, 정의로운 존재인데 말이지요. 

그리고 머니퓰레이터로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는 방법은 인공지능 딥 러닝 학습법의 하나인 GAN 모델이 연상되어 더욱 그럴듯하게 여겨졌습니다. GAN 모델은 학습이 필요한 인공 지능을 Discriminator라고 부르며, 여기에 가짜 데이터를 만드는 Generator가 생성한 결과물을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Generator의 위조가 정교해 질 수록, 이를 판별하는 Discriminator의 능력도 올라가는 방식이지요. 이 이야기로 따지면 메이구가 이런저런 가상 시나리오를 시도하는 Generator이고, 사보타주 시스템 속 인공 지능이 Discriminator인 셈입니다.

EP.4 PROCESS SYNCHRONIZATION /미스터 펫 : 

두 번째 이야기가 비롯된 원인인, 선인장 시스템에 침입하여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면서, 실제 현실의 메이구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 완성도가 절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완벽한 보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중앙 처리실에 두 시간 이상 머물려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한 방법에 대한 트릭부터 억지입니다. 뭔가 엄청난 시스템인 것 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그냥 데이터 조작과 별로 다르지 않거든요. 

과거 일본에서 실행되었던, 기억을 조작하는 수술인 HIMIKO 프로젝트도 뜬금없었습니다. 수술을 받았던 메이구가 수술에 대한 비밀 서류를 손에 넣고, 관계자들의 정체를 밝히는 전개는 유치하고 작위적이고요. 아무리 이야기가 모두 시뮬레이션 결과에 불과했다고는 해도, 앞서의 다른 시뮬레이션들보다 현격히 낮은 완성도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에필로그 : 

사보타주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인권을 무시하는 부분이 있어서, 결국 형법 제도가 옛날 방식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인데 솔직히 사족에 불과합니다. 개인적으로 범죄자가 수형 시설에서 교정, 교화가 될 수 있다는걸 믿지 않습니다. 때문에 제대로 반성하지 않으면, 절대로 풀어주지 않겠다!는 정서가 깔린 사보타주 시스템의 형량 결정 시스템이 지금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됩니다.

2017/02/17

네버 고 백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5점

네버 고 백 - 6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잭 리처는 전화 통화로 호감을 느낀 수잔 터너를 만나기 위해 110 특수부대를 찾았다. 110 특수부대는 과거 잭 리처가 부대장이었으며, 수잔 터너가 현재 부대장을 맡고 있는 부대였다. 그러나 잭 리처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16년 전 폭행 치사 사건과 친부 확인 소송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수잔 캐런은 반역죄 혐의로 수감되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 모든게 음모라는걸 깨달은 잭 리처는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한 후,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나서는데...

잭 리처 시리즈는 최근 가장 인기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톰 크루즈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요. 그러나 딱히 끌리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다가, 마침 읽을 책이 없기에 집어 들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신작 영화의 원작인데, 영화화될 정도라면 시리즈 중에서도 재미와 인기가 최고 수준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잭 리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서 전작을 읽어가면서 배경 설명을 익힐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읽어보니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재미만 놓고 보면 어디 내 놓아도 꿀리지 않는 덕이 큽니다. 거대한 음모가 있고, 음모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 그 와중에 닥치는 여러 위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고 있거든요. 하나 씩 단서가 밝혀지며 음모가 드러나는 전개도 괜찮습니다. 16년전 살인 사건과 문란한 생활이라는 누명으로 수감된 후,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하여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관련된 음모라는 것을 알아내고, 단서를 변호인 설리번과 에드먼즈에게 정당하게 요청하여 하나씩 단서를 수집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결국 음모의 실체에 도달하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있습니다.
음모의 핵심인 아편 밀수를 ''무기'를 밀거래한 것이 아니라면 미국의 병참부대원들을 데리고 무엇으로 어떻게 장사를 한 것일까?'라는 수수께끼와 함께 주어진 복선(예를 들어 에밀 자드란의 형들이 양귀비를 재배한다는)을 통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이 과정에서 시발점이 되는 탈옥에 대한 묘사도 훌륭합니다. 우연을 적절히 활용하여 당직 대위와 변호사 설리번을 감옥에 가둔 후, 변호사들의 신분증을 이용하여 탈옥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높은 덕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인 우연이 겹친 상황인데, 이를 잭 리처 시점에서 동전 던지기를 인용하며 최대한 가능성 있게 설명하는 것도 좋았어요.
음모와는 상관없이 단돈 30달러로 탈주를 이어갈 수 없어서 산속 오지 마약상 빌리 밥 재산 강탈 (ATM?) 설정을 집어 넣었는데 이 과정 역시 볼만합니다. 사만다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나름의 반전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아이 엄마를 알아보지 못함!-도 그럴듯하고요.

잭 리처 캐릭터도 나쁘지 않습니다. 쿨하고 냉소적인 한마리 고독한 늑대 해결사라는건 전형적이긴 합니다. 입담도 특별하지는 않고요. 그러나 엄청난 거구에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최강자라는 독특함을 그럴듯하게 , 생생하게 그려낸게 인기의 비결인 듯 합니다. 옷은 세탁을 하지 않고 버리고, 운전을 잘 못한다는 디테일도 묘하게 캐릭터에 실체감을 더해주는 요소였습니다. 워즈워스의 시를 알고 클럽 '도브 코티지''의 어원을 꿰뚫을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있다는건 좀 오버스러웠습니다만...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왜 처음에 잭 리처를 죽이지 않았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부터 해결사를 보낼 때 경고가 아니라 제거를 목표로 움직였어야 해요. 그들 말대로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인물을 뭐하러 경고까지 해 가면서 도망가게끔 유도하나요? 있지도 않은 가짜 사건을 억지로 만드느니 없애는게 깔끔한데 말이지요.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을 죽이는건 주저하지 않았기에 손을 더럽히기 싫었다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리처와 수잔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권력을 소유한 악당이 전투력 부족한 단 4명의 인력만으로 잭 리처를 추격한다는 점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리처 표현을 빌면 아마추어급인데 말이지요 . 구태여 LA로 가서 딸로 알려진 아이를 만나려는 설정도 이해하기 어려운건 마찬가지입니다. 본 음모와 하등의 상관도 없고요.

잭 리처의 먼치킨 설정도 조금 불만입니다.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위기를 별로 어렵지 않게 뛰어넘어서 가면 갈 수록 긴장이 풀리고 말거든요. 그 중에서도 마지막, '결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쉬라고와의 일기토가 주먹 2방으로 끝나는 묘사는 허무할 정도입니다. 쉬라고가 왜 총을 꺼내지 않았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그리고 단점은 아니지만 같이 도망가는 남녀가 하루만에 눈이 맞아서 위기의 순간에 정사를 벌인다는 미국식 설정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킬링 타임용으로는 충분합니다. 다른 시리즈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2020/10/11

개의 힘 1,2 - 돈 윈슬로 / 김경숙 : 별점 2.5점

개의 힘 1 - 6점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황금가지
개의 힘 2 - 6점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 윈슬로의 대장편 범죄 소설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30주년 기념 킹 오브 킹 순위'에 해외편 무려 2위로 선정되어 있어서 관심을 두던 책입니다. 하지만 1, 2권 합쳐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기가 죽어 손대지 않고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추석 연휴 집콕 동안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쉽게 읽히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맛이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마약 단속 국장 아트 켈러,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파트론 아단 바레라의 20여년에 걸친 악연과 대결을 그리는데, 실제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대한 역사를 거의 그대로 각색했습니다. 여러 카르텔, 여러 보스가 얽힌 이야기를 바레라 가족 중심으로 풀어내었을 뿐입니다.

우선 작품 내에서 콘도르 작전 당시 마리화나 재배지가 초토화되고, 당시 보스였던 돈 페드로의 사망, 뒤이어 티오 미겔 앙헬 바레라가 사업을 코카인 운송으로 바꾸며 조직 보스인 파트론이 되면서 조직을 3개로 나누는 건, 실제로 시날로아 카르텔이 아마도를 보스로 하는 후아레스 카르텔, 아레나요가 보스인 티후아나 카르텔, 그리고 엘차포가 보스인 시날로아 카르텔로 분리된 역사와 거의 흡사합니다.
여기에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이 생산한 코카인 유통을 도맡게 된 걸프 카르텔이 급성장하여 4대 조직이 되는데, 작품에서는 티오의 조카 아단 바레라가 지능적인 코카인 유통 혁신을 통해 카르텔 실권을 손에 쥐는 모습으로 그려지고요. 1985년 미국 요원 키키 카마레나 고문 살해 사건도 작품 안에서 어니 요원이 납치되어 고문받다가 살해되는 이야기로 거의 그대로 등장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아단, 라울 바레라 형제와 게로 멘데스 사이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항쟁은 시날로아 카르텔 보스 엘차포와 티후아나 카르텔 보스 아레나요 형제 간에 실제로 벌어졌던 전쟁을 거의 그대로 따 왔습니다. 대표적인게 아레나요 형제가 잘생긴 킬러 클라벨을 시켜서 시날로아 카르텔 2인자 엘구에로의 아내 레이하를 유혹하게 만든 겁니다. 레이하는 유혹에 넘어가 클라벨, 어린 아들, 딸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떠나지만 클라벨에게 모두 살해되고 맙니다. 그 뒤 엘구에로는 레이하의 목과 아들, 딸이 다리에서 내던져지는 장면이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받게 되지요. 이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만 바뀐 채 거의 그대로 등장합니다. 아단 바레라가 사주한 킬러 파비안이 게로 멘데스의 아내 필라르를 유혹한 뒤 그녀와 아이들을 살해하는 이야기로요.

작품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후안 신부 살해 사건 - 공항에서 바레라에게 살해당하지만, 바레라와 게로 멘데스간 전쟁에 휘말려 죽은걸로 처리되는 - 도 아레나요 형제와 엘차포 간 총격전에서 티후아나 대교구장 포사다스 오캄포 추기경이 휘말려 사살된 사건과 똑같습니다. 작품에서는 후안 신부가 멕시코 정부와 여러 관계자가 마약 조직과 관계된 증거를 가지고 있어서 살해된 걸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실제로 오캄포 추기경 역시 티후아나 카르텔과 살리나스 대통령간 결탁에 대해 폭로하려다 살해된 걸로 알려졌지요. 게로 멘데스가 성형 수술을 받고 모습을 바꾸어 재기하려다가 아단 바레라 측 킬러에 의해 살해되는 이야기도, 후아레스 카르텔 보스 아마도가 1997년 성형수슬을 받다가 사망한 역사를 따 온 듯 하고요.

NAFTA 이후 멕시코 경제가 파탄나고, 마약 사범들이 나라를 거덜내는 과정도 실제 역사와 거의 동일합니다. 차이점이라면 실제 카르텔간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된 엘차포는 체포된 뒤 멕시코 감옥에서 7년여간 편안하게 수감생활을 하다가 탈옥했다는 정도입니다. 작품에서 아단 바레라는 미국 정부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연방 감옥에서 복역하는 결말이거든요.
그 외의 모든 디테일들, 예를 들어 은이냐 납이냐, 코카 콜라냐 펩시 콜라냐와 같은 협박 문구라던가, 마약 수송용 지하 땅굴, 대형 여객기 수송 등도 모두 실제 조직 이야기에서 따 왔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이렇게 실제 마약 카르텔 이야기를 극화했기 때문에 설득력 하나 만큼은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이럴거면 아트 켈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구태여 소설로 만들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마약 전쟁 이야기 외의 이야기는 모두 재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바레라를 뒤쫓는 아트 켈러 이야기만 해도 간단한 도청, 정보원에 의지할 뿐이고 기껏 티오와 아단을 체포해봤자 모두들 기가 막히게 빠져나가는 탓에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하니까요.
또 소설로 만들면서 추가된 요소들도 거의 대부분 지루하고 뻔합니다. 이런 마약 전쟁의 뒷 배경에 중남미 지역에 공산주의 세력이 확산되는걸 경계한 미국의 자금 투입과 원조가 있었다는 음모론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그랬으리라 짐작되는 설득력있는 설정인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식상하지요. '케르베로스'. '레드 미스트' 운운하며 뭔가 있어보이게끔 노력은 하지만, 다른 이야기에서 흔히 보아왔던, 미국이 돈을 주고 키워낸 용병단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CIA 국장 존 홉스가 이게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은폐하려고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미국은 이미 그 이상의 추문을 수도 없이 들켰잖아요.
또 이 설정이 사실이라면, 아단 바레라가 콜롬비아 반군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댓가로 마약을 손에 넣으려는건, 파멸의 지름길에 발을 담근 셈입니다. 구태여 들쑤셔서 체포할 필요도 없었어요. 아울러 어차피 미국이 돈을 대지 않아도, 바레라 가문이 멸족해 버려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은 누군가 권력을 잡고 마약을 여전히 유통할 겁니다. 실제로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요. 흑막이니, 음모니 하는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후안 신부와 유일하게 정의로운 멕시코 폭력 경찰 라모스 정도만 독특함과 생생함이 느껴질 뿐, 다른 인물들은 평면적이며 단순한 탓입니다. 특히 실제 인물을 따오지 않은 창작 캐릭터들 문제가 심각해요. 고급 매춘부 노라를 한 번 볼까요? 그녀는 멕시코 대 지진 때 '우연히' 알게 된 후안 신부와 친분을 맺습니다. 그 뒤 '우연히' 만난 아단의 정부가 되는데 아단의 사주로 후안 신부가 살해된 뒤, 여러가지 정보를 아트에게 제공한다는 설정입니다. 아단이 노라에게서 푹 빠져서 온갖 사업상 기밀을 전해주고, 심지어 사업 이야기에 동참시키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노라 설정에만도 우연이 여러개 겹쳐있지만, 티오와 게로 멘데스, 아단 바레라 모두 여자에게 푹 빠져서 파멸한다는 설정은 황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아일랜드 낭만 킬러 칼란도 한 번 볼까요? 그는 우연히 킬러가 된 뒤, 멕시코에서 아단의 목숨을 '우연히' 구해주고, 아단과 게로 멘데스 전쟁에 끼어들어 아단의 사주로 후안 신부가 살해되는걸 '우연히' 목격하게 됩니다. 그 뒤 '우연히' 받은 청부로 정보원이 된 노라를 보호하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에요. 마지막에는 아트를 죽이는 킬러로 고용되었다가 노라의 진심을 알고 고용주들을 쓸어버리고요. 이렇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거라면 솔직히 안 나오니만 못했습니다.
게다가 칼란도 그렇고, 엘 티부론 파비안도 그렇고, 청소년 때 이미 타고난 킬러라는게 증명되었다는데 이 역시 설득력이 없습니다. 특수 훈련 한 번 받지 않은 애송이들인데 말이지요.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어야 할 아트 켈러도 이런 류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스테레오 타입에 그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마약 전쟁에 대한 사명감으로 가족을 저버리고 일에 몰두한다는 설정인데, 별다른 매력이나 특이함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노라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는 정도만이 의외였어요. CIA 국장 존 홉스와 그의 오른팔인 인간 백정 군인 살 스카키 이런 작품에 나오는 악덕 CIA 국장과 그 부하와 전혀 다를 바 없어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지만 실화에 끼얹은 부분이 대부분 기대 이하, 함량 미달이라는 감점합니다. 흔하디 흔한 미국 음모론과 헐리우드식 설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일각에 존재하는 높은 평가를 이해하기는 힘드네요. 이 작품보다 실화 논픽션이 훨씬 재미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일종의 종교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엘차요와 '라 파밀라이' 이야기를 소설로 만드는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요? "돈을 위해 살인하지 않고, 여성과 어린아이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민간인을 약탈하지 않을 것이지만, 죽어 마땅한 놈들은 모두 죽이겠다"고 선언하고, 마약을 재배하고 만들지만 절대로 마을과 멕시코 내부에는 판매하지 않고 미국에만 판다는 나름의 정의를 가진 기묘한 세력이거든요.

2015/04/06

사상학 탐정 1 - 미쓰다 신조 / 이연승 : 별점 3점

사상학 탐정 1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레드박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에게 나타난 사상(死相)을 보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 쓰루야 슌이치로가 탐정 사무소를 개업한 날, 사야카라는 여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청년 IT 재벌 아키라와 약혼했지만, 약혼자가 급작스럽게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한 후 자신의 주변에 떠도는 죽음에 이유가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아무런 사상도 보지 못한 쓰루야는 의뢰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가 약혼자의 본가인 이리야가에 함께 살게 된 후, 기이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고 그녀는 다시 쓰루야를 찾았다. 쓰루야는 그녀를 뒤덮은 섬뜩한 사상을 확인한 뒤 사건의 조사를 위해 이리야가를 방문했다. 그러나 기이한 사건은 멈추지 않고 아키라의 이복형 나쓰키부터 한 명씩, 차례대로 가족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타인에게 나타난 사상(死相)을 볼 수 있다는 특수 능력의 소유자가 주인공으로, 주인공 쓰루야 슌이치로는 탐정이라는 직함을 걸고 있지만 별다른 추리력은 없습니다. 자신의 특수 능력과 일본 최고의 무녀인 할머니 아이젠에게서 배운 지식과 경험에 의존할 뿐입니다. 사건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주술’의 영역에서 벌어지고요. 이런 점에서 정통 추리물보다는 일본식 퇴마 판타지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만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퇴마 배틀물은 아닙니다. 쓰루야의 능력은 사상을 보는게 전부로 다른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백귀야행"의 리쓰가 탐정 사무소를 열었다고 해도 될 정도에요. 쓰루야와 리쓰는 능력치도 거의 비슷하니까요. 실제 스물스물 움직이는 저주의 실체를 보고도 도망치는 게 고작이거든요. 주술, 저주가 정말 일상 속에 있을 법한 것으로 그럴듯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 역시 "백귀야행"스럽습니다. 이렇게 설득력 넘치는 괴이 묘사는 민속 탐정 시리즈를 써왔던 미쓰다 신조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 특유의, "백귀야행"과는 다른 섬뜩한 묘사들도 볼거리이고요.

이러한 설득력 넘치며 섬뜩한 분위기에 더해 작가의 명성과 "탐정"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추리적인 부분도 나름 볼 만 합니다. 비과학적인 영역이기는 하지만, 주술과 저주에 적용된 일종의 법칙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덕분입니다. 부제 그대로 '13'에 관련된 법칙인데, 정교하게 짜인 복선과 함께 쓰루야의 메모를 중심으로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여 두뇌 싸움을 벌이게 만드는 솜씨가 돋보입니다. 이리야가 전 당주 및 가족들의 취미와 엮은 자잘한 설정들도 흥미로웠고요.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점은 굉장히 빠르게 전개되는 현대적인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지루할 틈 없이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면서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게 만듭니다. 사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고작 두 권 읽은 게 전부지만, 어렵고 복잡한 일본 민속 관련 지식을 고풍스럽고 무겁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탓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읽고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흡사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요.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젊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 젊은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 운운하며 누벨바그 운동(장 뤽 고다르로 대표되는)이 일어났을 때, 거장 르네 끌레망이 정말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태양은 가득히"를 발표한 일화가 떠올랐어요.

이렇듯 독특함과 재미를 모두 갖춘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13'에 관련된 법칙이 재미는 있지만, 합리적인 구조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설정에 맞춰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해 보였어요. 숫자만 들어가면 무엇이든 되기 때문에 단서들의 비약이 심하고, 억지스러운 전개도 제법 있고요. 작중에서도 언급되듯 나이 든 사람들만, 그것도 일본이라는 환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쉽게 공감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입니다. 사야카가 쓰루야에게 단서를 전해주려 애쓴다는 설정도 쓰루야의 무능함만 돋보이며, 혹 쓰루야가 정말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단점입니다.

아울러 동기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작품에서처럼 사야카가 모든 저주의 흑막이라면, 그녀는 아키라 재산의 60%로 왜 만족하지 못했을까요? 설령 아키라의 배다른 형제를 모두 죽였다 치더라도 60%가 80%가 될 뿐 - 20%는 죽이고 싶지 않았던 아키라의 어머니 도시코의 몫이기에 - , 예를 들어 유산이 한 40억이라고 한다면 24억이 32억이된다... 본인까지 저주를 걸 정도로 의미가 있는 금액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설령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방법적으로 무리수가 너무 많습니다. 저 같으면 그냥 형제들에게 저주를 걸고 어디 외국이라도 가 있었을겁니다. 사인이야 어차피 급성 심부전이니 수상하기는 해도, 증거는 없었을테니까요. 구태여 같이 저주에 걸려가며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과 동거할 이유는 없습니다.
쓰루야에게 사건을 의뢰한 이유도 사건이 언젠가 쓰루야나 아이젠 귀에 들어갈까봐 의뢰했다는 것인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요. 설령 귀에 들어갔다손 치더라도, 주인공이나 주인공 할머니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리야 가문의 설정, 판에 박은 의붓형제 캐릭터인 나쓰키, 하루미 등은 고민이 부족해 보여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자 미쓰다 시존의 새로운 모습을 알리는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무엇보다도 몰입해서 읽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에스프레소라면 달달한 카푸치노같은, 아주 무섭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은 작품이니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궁금하신 입문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5/12/13

피안장의 유령 - 아야사카 미쓰키 / 김은모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야마모토 히나타는 강력한 염동력으로 사고를 일으킨 뒤 가족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소꿉친구 사라와 함께 기지마 그룹 후계자 렌의 의뢰를 받고 외딴 저택 '피안장'으로 향했다. 피안장에 일어나는 괴현상 조사에 협조해 달라는 의뢰였다. 조사에는 예지 능력자 시게키, 사이코메트러 미즈키, 정신감응 능력자 도시코, 자동서기 능력자 아키라, 일렉트로키네시스 나기도 함께 참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저택의 괴현상은 실재했고 첫날 밤 시게키가 소파 속 비밀 공간에서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행은 저택의 의지에 의해 감금되어 버리고 마는데...

제미나이로 그려본 피안장

초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물임과 동시에 하우스 호러물과 정통 본격 미스터리도 결합되어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초능력과 저주받은 피안장 내 특수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괴사건을 정통 본격물처럼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진상을 드러내거든요.

특히 나름대로 정통 본격물이라는 게 밝혀지는 마지막 히나타의 추리쇼가 빼어납니다. 논리적으로도 확실하며, 단서들과 추리에 대한 근거 모두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히나타의 추리에 따르면, 첫 번째 사건인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시게키 사건은 사고였습니다. 시게키가 사라에게 장난치기 위해 소파 빈 공간에 들어갔는데, 근처에 있던 나기가 천둥번개와 정전으로 놀라서 일렉트로키네시스 능력을 발동했던 겁니다. 이 충격에 시게키가 휩쓸려 체내 혈액이 전기분해되어 피는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사라지고, 발생한 수증기 탓에 신체 표면이 파열되어 죽었습니다. 나기의 고의가 아닌 일종의 사고였기 때문에 도시코의 정신감응 능력으로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고요.

두 번째 사건인 도시코 추락 사건은 밤이 되면 옥상 테라스에는 한 명만 올라갈 수 있어서, 사람을 심리적으로 쫓기게 만드는 저택의 능력에 의한 자살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히나타는 과거 모녀가 테라스에서 뛰어내려 죽었던 기사를 통해 '의식을 잃은 사람'은 머릿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추리합니다. 즉, 누군가가 도시코를 때려 기절시킨 후 테라스로 끌어올려 떨어뜨려 죽였던 겁니다.
이는 미즈키의 사이코메트리로 도시코가 뒷통수를 가격당했다는 게 밝혀져 증명되고, 범인은 렌의 독살 미수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독이 든 와인잔은 아키라 앞에 놓여 있었는데, 아키라는 포도 알레르기라고 전날 아침에 밝혔습니다. 포도 알레르기인 사람을 와인으로 독살하는건 말이 안되니 범인은 그걸 모르는 사람이지요. 그때 자리에 없던건 렌, 가즈히사, 유토였고요. 이 중, 독을 마시고 죽을 뻔한 렌은 제외됩니다. 유토는 앞서 테라스 살인에 사용된 머릿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사를 볼 기회가 없었고요. 즉, 소거법으로 범인은 가즈히사입니다. 렌이 독으로 쓰러졌을 때 신속하게 위세척 등을 진행한 행동이 그가 독을 넣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주요 사건에 대한 본격물스러운 추리에 더해서 소소한 추리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재미를 더합니다. 렌의 이모부 부부가 자살했던 사건에 대한 추리 — 이모부가 렌에게 성적인 학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이모가 이모부를 죽이고 자살했다 — 라든가, 사라의 염동력 힘의 원천이 히나타였다는 추리 등이 그러합니다.

정통 오컬트 호러 판타지 스타일의 마지막 박진감 넘치는 피안장 탈출 묘사는 꽤 볼만 했고, 히나타가 조사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연구 조수 유토와 사귀게 되어 결혼까지 이른다는 완벽한 결말과 에필로그도 마음에 듭니다. 최근 작품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깔끔한 마무리였어요. 수미쌍관식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꽃잎 묘사도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우선 렌이 초능력자들을 저택에 모은 이유부터 설명이 부족합니다. 저택을 깨우기 위해 초능력자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전무한 탓입니다.
또 조사 참가자들이 머문 사흘 동안의 사건은 확실히 진상이 밝혀지지만, 과거 피안장에서 일어났던 괴사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택 안에서 행방불명된 남자가 일주일 후 온몸의 피를 잃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단지 저택의 저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합니다. 저택이 이런 능력이 있다면, 렌 일행을 모두 직접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고요..
첫날 밤 위기에 처했던 도시코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도 설명이 없으며, 가즈히사의 동기가 결국 ‘저택에 사로잡혔다’는 게 전부라는 것 등도 여러모로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뭔가 있어보였던, 아키라가 자동서기 능력으로 그렸던 '스페이드 모양 문고리가 달린 문' 설명도 흐지부지 넘어가고요.

전개 부분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미즈키, 도시코, 아키라 등으로 시점을 전환하는 부분이 특히 별로입니다. 저택 괴현상 때문에 놀라는 심리 묘사 외에는 시점을 전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키라만 별도 설정을 풀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키라 시점 부분의 전개는 워낙 비호감으로 그려지는 탓에 짜증만 났습니다. 
그리고 예지 능력자 시게키의 죽음 이후에도 참가자들이 무방비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입니다. 도시코의 능력으로 시게키 사건의 범인이 조사 참가자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면, 협력해서 움직이는 게 당연했을 겁니다. 왜 저주받은 저택에서 밤을 홀로 보내다가 위기에 처하는 걸까요? 이 부분의 설득력이 낮아서 감정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항상 그래왔지만, 거의 모든 묘사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지나치게 쿨한 염동력 미소녀 사라, 입이 험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색기 넘치는 누님 미즈키 인물 묘사 및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피안장에 대한 묘사는 물론 저택 내에서 반복되는 괴현상 역시 식상한 헌티드 하우스 호러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서 실망스럽습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하우스 호러와 본격 미스터리의 혼합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개성을 가진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0/07/09

오래된 책들 (9) - JOKER

딱히 포스팅꺼리가 없을 때 업로드하려고 모아놓은 오래된 책들 이야기 아홉 번째 글입니다. 

이 작품은 "은하영웅전설"의 만화판 작가로 유명한 미치하라 카츠미의 SF 추리물입니다. 소설가 마키 유우의 글을 만화화한 작품이지요.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아 보이지만, SF와 추리 양쪽 모두에서 나쁘지 않은 구성을 보여주었던 작품입니다. 특히 "특무사법관"으로 초법적인 활동을 펼치는 은빛 눈동자의 자웅동체(?) 합성인간 Joker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범죄자를 처단할 때에는 그 어떤 연민도 보이지 않는 냉혹함과, 린 앞에서는 어린 소녀처럼 변하는 성격의 차이를 남성 - 여성을 자유롭게 오가는 변형과 함께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거든요. 이러한 차이에서 오는 잔재미도 잘 살아있고요. 다양한 특수능력 등의 설정도 잘 짜여져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런데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조사하다가 몰랐던 사실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국내판은 전 7권인데 일본판은 전 8권으로 진작에 완결되었다는 겁니다. 8권이 7권 출간 후 무려 7년 후인 2004년에 출간되었는데, 국내 출간을 진행하던 세주 문화사가 이 때 폐업했기 때문에 완결되지 못한거지요. 어찌보면 세주 폐업의 피해작인데, 출판사를 옮겨 완결될만큼 인기를 얻지도 못하긴 했습니다. 저도 구하느라 고생 좀 했을 정도로 팔린 물량 자체가 적거든요. 국내에서 재출간될 가능성도 없으니, 일본어 e-book으로 8권만 구입해 봐야겠습니다.

두 번째는 애니메이션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런 비인기 작품까지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니 확실히 80~90년대 초반은 OVA 전성시대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OVA는 원작의 장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블레이드 러너"의 설정을 차용한 망작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80년대 테이스트가 과하고, 완성도도 낮아서 도저히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에요. 남, 녀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주인공 린을 농락하는 Joker의 매력 정도만이 눈에 뜨일 뿐이지요. 하지만 만화책은 절판된지 오래된 탓에 특수사법관 Joker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이 애니메이션밖에는 없는게 현실입니다. 특수사법관 Joker가 궁금하시다면,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업로드 동영상은 저작권 문제로 언제 내려갈지 모르니까요.

2023/09/16

[소설가 감수] 미스터리 소설 추천 인기 랭킹 33선 (2023년 최신판)

NTT에서 운영하는, 리서치 설문조사와 접속수를 바탕으로 모든 장르의 랭킹을 망라한 종합 랭킹 사이트인 goo 랭킹에서 선정했던 랭킹입니다.
전부 33편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랭킹을 감수했다는 소설가 OO씨가 선정한 작품 5개만 소개해드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결말을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스릴은 미스터리의 묘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세계에서도 미스터리는 인기 있는 장르이지요.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이번에는 소설가 OO 씨의 감수를 받아 '읽고 싶다! '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추천해 드립니다. 수상작과 영상화된 작품, 그리고 선택 방법도 함께 소개하니 꼭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설가가 알려드립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고르는 방법
취재 협조 소설가 OO :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작품을 출간하고 있는 소설가. 일반 소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을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작품도 창작에 활용하기 위해 열심히 보고 읽는다.
OO 씨에게 미스터리 소설을 고를 때 중요한 포인트를 물어보았다.

POINT① :
각종 랭킹 상위권이나 문학상 수상작은 수준이 높다! 그런 작품인지 체크!
화제작이나 실력파 작가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읽고 싶은 분들에게는 '고노미스', '서점대상', '나오키상' 등 각종 미스터리 랭킹 상위권 작품이나 문학상 수상작을 추천합니다. 매년 진행되는 랭킹에 오른 작품들은 수준이 높고 읽기 쉬운 작품도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발표될 때마다 체크해서 소설을 쓸 때 참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골라 읽다 보면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작품들의 줄거리를 확인하고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골라보세요.

POINT②
깜짝 놀랄 만한 트릭과 논리가 충분히 전개되는 본격 미스터리 작품인지 확인하자.
미스터리라고 하면 예상치 못한 트릭이나 논리적인 구조가 재미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본격 미스터리 대상'은 본격만을 다루는 상이므로 트릭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POINT③
숨 막히는 전개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 작품인지 확인하자
서스펜스 요소가 있는 작품은 독자로서 비일상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경찰 소설이나 모험 소설, 하드보일드 소설 중에서 미스터리 요소가 있는 작품이 많으니 그 중에서 고르는 것도 추천합니다.

POINT④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싫다면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인지 확인하자.
'사람이 죽거나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는 이야기는 싫다'는 분들에게는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을 추천합니다. 가게나 학교 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수수께끼와 궁금증을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여운이 남는 작품이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편집부
미스터리 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피했던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나 선택 포인트가 있을까요?

OO 씨
사회파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는 트릭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읽을 수 있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등은 좋은 작품입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와 같은 가벼운 미스터리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요.
그중에서도 첫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입니다. 본격 미스터리 붐의 시발점이 된 작품으로, 다양한 정수가 응축된 작품이거든요. 이 작품을 발판 삼아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편집부
반대로 '대부분의 작품은 다 읽었다'는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의 종류와 선택 방법이 있나요?

OO 씨
미스터리 계열의 신인상은 많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스타일이나 설정 등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고, 보다 폭넓게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 트렌드 장르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입니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들어 그 안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으로, '시인장의 살인', '젤리피쉬는 얼어붙지 않는다' 등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설가 OO 씨 추천! 미스터리 소설 5선
<<까마귀의 엄지>>
사기가 생업인 중년의 두 남자의 이야기. 점차 동거인이 늘어나면서 인생을 건 거대한 계획이 시작된다. 충격적인 전개와 감동적인 결말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걸작.
'고노미스'의 단골손님인 미치오 슈스케의 첫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제62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상쾌한 느낌의 초인기 작품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OO 씨 comment :
사기꾼인 중년 2인조가 동거인들과 함께 사기 계획을 세웁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에 '당했다!'는 놀라움과 함께 짜릿한 쾌감도 느낄 수 있는 명작입니다.

<<13계단>>
가석방 중인 청년과 정년을 앞둔 교도관 두 사람은 10년 전 살인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조사를 하게 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은 범행 당시의 기억이 없고, '계단을 올라갔다'는 단서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무고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데뷰작이자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품. 2003년에는 영화화되기도 했다. 서스펜스를 충분히 맛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OO 씨 comment
사형수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는 주인공 교도관. 단서 몇 개와 사형 집행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과연 그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숨 막히는 서스펜스와 함께 독서 후의 만족감도 큰 작품입니다.

<<제 3의 시효>>
F현 경찰 수사 제1과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집으로, 등장하는 형사들의 개성이 강하고 경찰 내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현장감 넘치는 걸작. 제16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작으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독서 후의 충격과 고양감을 맛보고 싶은 분이나 형사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OO 씨 comment :
살인사건의 공소시효에 얽힌 '제3의 공소시효'를 파헤쳐 나가는 형사들. 시효 성립 직전의 범인을 체포할 수 있을까? 경찰소설이자 단편소설의 대가인 저자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단편소설집입니다.

<<최후의 증인>>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인 주인공이 불리한 상황에 도전하는 법정 미스터리 작품. 점차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과 충격적인 전개에 빠져들게 된다. 2015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시리즈도 방영되었으니, 소설을 읽고 흥미가 생겼다면 확인해 볼 것.
OO 씨 comment :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가 활약하는 법정 미스터리. 반전이 있는 법정 장면은 물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데, 꼭 시리즈 전부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하늘을 나는 말>>
사람이 죽지 않는 '일상계 수수께끼'의 명작으로 여대생과 만담가가 '일상 속 수수께끼'를 추리해 나가는 연작 단편집. 살인 사건이나 흉악 범죄와 같은 무서운 소재가 아닌, 일상에 숨어 있는 위화감을 풀어간다. 미스터리 추리의 짜릿함을 맛보고 싶은 분이나 따뜻한 소설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두 사람의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와 곳곳에 등장하는 라쿠고(만담) 이야기 등 전체적으로 느긋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내용의 이야기나 인간의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묘사도 존재.
OO 씨 comment :
여대생과 만담가가 일상 속에 숨어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본격 미스터리로, '일상계 수수께끼' 장르의 선구자격 작품입니다. 살인 사건 등 흉악 범죄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미스터리이면서도 안심하고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