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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3

피안장의 유령 - 아야사카 미쓰키 / 김은모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야마모토 히나타는 강력한 염동력으로 사고를 일으킨 뒤 가족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소꿉친구 사라와 함께 기지마 그룹 후계자 렌의 의뢰를 받고 외딴 저택 '피안장'으로 향했다. 피안장에 일어나는 괴현상 조사에 협조해 달라는 의뢰였다. 조사에는 예지 능력자 시게키, 사이코메트러 미즈키, 정신감응 능력자 도시코, 자동서기 능력자 아키라, 일렉트로키네시스 나기도 함께 참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저택의 괴현상은 실재했고 첫날 밤 시게키가 소파 속 비밀 공간에서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행은 저택의 의지에 의해 감금되어 버리고 마는데...

제미나이로 그려본 피안장

초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물임과 동시에 하우스 호러물과 정통 본격 미스터리도 결합되어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초능력과 저주받은 피안장 내 특수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괴사건을 정통 본격물처럼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진상을 드러내거든요.

특히 나름대로 정통 본격물이라는 게 밝혀지는 마지막 히나타의 추리쇼가 빼어납니다. 논리적으로도 확실하며, 단서들과 추리에 대한 근거 모두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히나타의 추리에 따르면, 첫 번째 사건인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시게키 사건은 사고였습니다. 시게키가 사라에게 장난치기 위해 소파 빈 공간에 들어갔는데, 근처에 있던 나기가 천둥번개와 정전으로 놀라서 일렉트로키네시스 능력을 발동했던 겁니다. 이 충격에 시게키가 휩쓸려 체내 혈액이 전기분해되어 피는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사라지고, 발생한 수증기 탓에 신체 표면이 파열되어 죽었습니다. 나기의 고의가 아닌 일종의 사고였기 때문에 도시코의 정신감응 능력으로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고요.

두 번째 사건인 도시코 추락 사건은 밤이 되면 옥상 테라스에는 한 명만 올라갈 수 있어서, 사람을 심리적으로 쫓기게 만드는 저택의 능력에 의한 자살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히나타는 과거 모녀가 테라스에서 뛰어내려 죽었던 기사를 통해 '의식을 잃은 사람'은 머릿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추리합니다. 즉, 누군가가 도시코를 때려 기절시킨 후 테라스로 끌어올려 떨어뜨려 죽였던 겁니다.
이는 미즈키의 사이코메트리로 도시코가 뒷통수를 가격당했다는 게 밝혀져 증명되고, 범인은 렌의 독살 미수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독이 든 와인잔은 아키라 앞에 놓여 있었는데, 아키라는 포도 알레르기라고 전날 아침에 밝혔습니다. 포도 알레르기인 사람을 와인으로 독살하는건 말이 안되니 범인은 그걸 모르는 사람이지요. 그때 자리에 없던건 렌, 가즈히사, 유토였고요. 이 중, 독을 마시고 죽을 뻔한 렌은 제외됩니다. 유토는 앞서 테라스 살인에 사용된 머릿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사를 볼 기회가 없었고요. 즉, 소거법으로 범인은 가즈히사입니다. 렌이 독으로 쓰러졌을 때 신속하게 위세척 등을 진행한 행동이 그가 독을 넣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주요 사건에 대한 본격물스러운 추리에 더해서 소소한 추리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재미를 더합니다. 렌의 이모부 부부가 자살했던 사건에 대한 추리 — 이모부가 렌에게 성적인 학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이모가 이모부를 죽이고 자살했다 — 라든가, 사라의 염동력 힘의 원천이 히나타였다는 추리 등이 그러합니다.

정통 오컬트 호러 판타지 스타일의 마지막 박진감 넘치는 피안장 탈출 묘사는 꽤 볼만 했고, 히나타가 조사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연구 조수 유토와 사귀게 되어 결혼까지 이른다는 완벽한 결말과 에필로그도 마음에 듭니다. 최근 작품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깔끔한 마무리였어요. 수미쌍관식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꽃잎 묘사도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우선 렌이 초능력자들을 저택에 모은 이유부터 설명이 부족합니다. 저택을 깨우기 위해 초능력자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전무한 탓입니다.
또 조사 참가자들이 머문 사흘 동안의 사건은 확실히 진상이 밝혀지지만, 과거 피안장에서 일어났던 괴사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택 안에서 행방불명된 남자가 일주일 후 온몸의 피를 잃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단지 저택의 저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합니다. 저택이 이런 능력이 있다면, 렌 일행을 모두 직접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고요..
첫날 밤 위기에 처했던 도시코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도 설명이 없으며, 가즈히사의 동기가 결국 ‘저택에 사로잡혔다’는 게 전부라는 것 등도 여러모로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뭔가 있어보였던, 아키라가 자동서기 능력으로 그렸던 '스페이드 모양 문고리가 달린 문' 설명도 흐지부지 넘어가고요.

전개 부분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미즈키, 도시코, 아키라 등으로 시점을 전환하는 부분이 특히 별로입니다. 저택 괴현상 때문에 놀라는 심리 묘사 외에는 시점을 전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키라만 별도 설정을 풀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키라 시점 부분의 전개는 워낙 비호감으로 그려지는 탓에 짜증만 났습니다. 
그리고 예지 능력자 시게키의 죽음 이후에도 참가자들이 무방비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입니다. 도시코의 능력으로 시게키 사건의 범인이 조사 참가자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면, 협력해서 움직이는 게 당연했을 겁니다. 왜 저주받은 저택에서 밤을 홀로 보내다가 위기에 처하는 걸까요? 이 부분의 설득력이 낮아서 감정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항상 그래왔지만, 거의 모든 묘사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지나치게 쿨한 염동력 미소녀 사라, 입이 험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색기 넘치는 누님 미즈키 인물 묘사 및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피안장에 대한 묘사는 물론 저택 내에서 반복되는 괴현상 역시 식상한 헌티드 하우스 호러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서 실망스럽습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하우스 호러와 본격 미스터리의 혼합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개성을 가진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5/04/20

사유리 - 오시키리 렌스케 : 별점 2점

[고화질] 사유리 (완전판) - 4점
오시키리 렌스케/대원씨아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누나와 남동생, 모두 7명으로 이루어진 노리오의 가족은 그동안 꿈꿔왔던 단독주택으로 이사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뒤 남동생은 사라졌고, 할아버지도 급사하고 말았다. 누나와 어머니마저 자해, 자살하여 순식간에 노리오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만 남게 되는데...

오시기리 렌스케의 하우스 호러. "하이스코어 걸"이라는 레트로 청춘 연애 코미디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작가는 "미스미소우"로 대표되는 호러물로도 유명하지요. 이 작품도 호러물이고요. 이런 작품이 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여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북으로 출간되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한 권 분량이라 부담도 없었고요.

행복했던 7인 대가족이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온갖 괴현상을 겪으며 한 명씩 죽어나가는 과정은 귀신들린 집(Haunted mantiion) 설정 그대로, 하우스 호러물의 전형대로 진행됩니다. 가족이 이사한 집은 '사유리'라는 소녀가 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암매장된 곳이라, 사유리가 행복한 가족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던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이 차례로 죽고, 자살하고, 사라지는 과정의 묘사는 그렇게 뻔하지는 않습니다. 일견 자연사처럼 보이는 평범한 죽음이 점차 진화해 나가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웠거든요. 누나가 혼자 혀를 물어 뜯는 묘사는 굉장했어요.

그리고 노리오와 치매에 걸렸던 할머니를 제외한 전 가족이 죽은 상황에서, 할머니 정신이 돌아오는 부분부터는 아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강단있고 행동력 강한 할머니 캐릭터가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이지요.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은 와~ 정말 '핵간지'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귀신에게 지지않는 생명력을 갖추고, 오히려 복수를 위해 사유리를 죽인 사유리 가족을 모두 납치해서 죽이려 하는 모습은 광기어리면서도 통쾌했고요.

하지만 사유리가 자기를 죽인 가족도 가족이라고, 그들을 동정해서 약해진 탓에 노리오의 죽은 가족들에게 끌려가 성불하는 결말은 솔직히 영 아닙니다. 너무 급작스럽잖아요. 애초에 자기를 죽인 가족에게 원한을 품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할머니와 사유리의 제대로 된 대결이 펼쳐지지 않은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남편과 아들,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5명이나 죽인 악령을 그냥 놓아준다는게 앞서의 할머니 캐릭터와는 영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죽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서 영혼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전개를 특유의 스타일,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로 풀어낸건 좋았는데, 결말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2026/07/24

203호실 - 가몬 나나미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 오키무라 기요미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도쿄 변두리의 작은 원룸 203호실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방을 꾸미며 자취 생활을 즐겼지만, 어느 날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 뒤 방 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계속되었고, 무너져 가던 기요미는 호감을 품었던 썸남 니이자토, 그리고 아르바이트 동료 유키코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도움은 미미했고, 결국 기요미는 203호실 안의 깊은 어둠에 삼켜지고 말았다... 

가몬 나나미의 "203호실"은 여대생이 기이한 원룸에 삼켜지는 과정을 그린 장편 호러 소설입니다. 원서로 읽었습니다.

흔히 대저택을 무대로 삼는 전형적인 ‘저주받은 집’ 이야기인데, 이를 가난한 대학 신입생의 원룸으로 축소한게 인상적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취, 천장에서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 사람이 앉았다 간 듯한 바닥의 온기, 기묘한 얼룩과 벌레, 갑자기 젖은 현관 매트처럼 일상적인 소재가 괴이현상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공포가 한층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천장 얼룩을 가리려고 붙인 외국 풍경 그림 속 창문을 누군가 긁는 듯한 장면처럼 섬뜩한 묘사도 제법 많고요.

기요미와 이전 세입자들이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결말 - '전에 살던 학생이 집세를 밀린 채 도망가 버렸을 뿐이다'. - 도 좋습니다. 극도의 외로움이 공포심으로 승화되어 스스로 파멸하고 말았다는 뜻도 되니까요.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비정한 현대 사회를 고발하기도 하는 멋진 설정입니다. 

그러나 사건이 203호실이라는 좁은 공간과 기요미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이야기의 규모가 작은 탓에 뒤로 가면 지루해집니다. 기요미의 행동도 답답합니다. 왜 진작에 방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부동산에 제시할 명확한 사유가 없다는 설명은 한국 독자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행동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가장 큰 아쉬움은 괴이현상의 원인이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3호실에 정체불명의 악의가 존재하고 거주자들을 삼킨다는 사실만 제시될 뿐, 그 기원이나 정체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처럼 괴이의 실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설명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극한 외로움으로 기요미가 미쳐버렸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식으로요.

그래도 독자를 섬찟하게 만드는 호러 소설로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분량도 적당한 편이고요. 헌티드 하우스와 저주받은 집 이야기, J호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08/25

테러호의 악몽 1, 2 - 댄 시먼스 / 김미정 : 별점 3점

테러호의 악몽 1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테러호의 악몽 2 - 6점
댄 시먼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1845년, 최신식 함정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를 타고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출발한 존 프랭클린 경 탐사대는 무리한 항해 끝에 얼음 속에 고립되고 말았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탐사대를 키가 4m가 넘는 하얀색 괴물이 습격하기 시작했고, 괴물과 추위, 식량 부족 등의 문제가 겹치며 프랭클린 경을 비롯한 탐사대원들이 하나씩 죽어가자 테러호의 함장 크로지어는 배를 버린 후 생존한 탐험대 전부와 함께 육로로 탈출을 결행했다.
그러나 계속된 괴물의 습격과 식량 부족은 생존자들을 계속 괴롭혔고, 누수방지공 히키를 중심으로 한 대원들의 반란까지 일어나는데...

"칼리의 노래"로 접했었던 댄 시몬즈의 장편 호러 팩션입니다. 실존했던 싱클레어 탐험대에게 닥친 비극과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이지요. 실존하는 미해결 미스터리를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코난 도일"J.하버쿡 젭슨의 진술"이 떠오릅니다.

이전부터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 2권 합쳐서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순식간에 읽어버렸을 정도로요. 재미의 가장 큰 요소는 끔찍한 초극한 상황의 생생한 묘사입니다. 이들에게 닥친 비극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다시피 포경선 에식스 호의 비극과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에식스 호는 십 수명의 선원들이 주로 '굶주림' 과 싸우며 그래도 다섯 명이나 생존했지만, 싱클레어 탐험대는 백명을 훌쩍 넘는 대원들이 아무 것도 잡지 못해 줄어드는 자원만으로 버텨야 해서 직면한 굶주림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몇 수 위입니다. 최고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져 맨 손으로 총을 잡으면 살갗이 벗겨질 정도니까요.

탐험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요소로는 괴혈병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묘사도 굉장합니다. 모공 등 모든 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이빨이 빠지고, 붓기가 심해지며 피부의 탄력도 사라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몇몇 선원들이 걸린 납중독 묘사도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죽어가는 핏제럴드 함장의 최후가 특히나 끔찍합니다. 

탐험대를 습격하는 거대 괴물 툰바크의 위협도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4m도 넘는다는 거대한 체구에 속도도 엄청나며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 괴물로 인간은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나마 탐험대의 발버둥은 테러 호의 항해장 블랭키가 괴물에 맞서 오랫동안 버티며 살아남는 정도에 불과해요. 참고로 블랭키의 사투는 박력이 넘쳐서 전체 내용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많은 어려움에서 드러나는, 인간 관계를 통한 드라마도 탄탄해서 재미를 더합니다. 작중 최고 악역인 누수방지공 코닐리우스 히키의 존재는 비교적 평범한 편이나, 다른 인물들의 묘사와 설정이 아주 빼어납니다. 실력은 없지만 운과 허세에 의존하는 존 프랭클린을 비롯, 실력은 뛰어나나 아일랜드인이라는 출신 성분 탓에 뼛 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사는 크로지어 함장, 순수한 군인이자 '인간' 인 어빙 소위, 체력이나 능력은 딱히 없지만 열정과 신념으로 무장한 해리 굿서 등 모든 인물들이 눈에 보이듯 그려져 정말 살아 숨쉬는 듯 합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다가 죽어가는 인물들과 인간임을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인간 군상들의 대비도 확실하고요. 사실 극한 상황에서 군율과 군기가 유지된다는게 처음에는 영 와 닿지 않았는데, 묘사를 통해 국가와 인간에 헌신적인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덕분에 나름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탐험대가 전멸할 때 이누이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히키가 어빙을 죽이고 이누이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탓이라는 설명이 더해진 것도 좋았습니다. 탐험대가 이누이트를 복수 명목으로 학살해서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탐험대의 생존 경쟁만 그렸으면 좋았을텐데,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탓입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툰바크, 그리고 툰바크와 관련된 벙어리 여인 실나의 정체입니다. 실존한다기 보다는 결국 이누이트 신화 속의 존재라는 진상은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크로지어 함장이 '천리안'을 갖춘 인물로 그 역시 실나와 결혼하고 이누이트 주술사로 거듭난다는 결말 역시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프레데터'와 총으로 싸우다가 나중에 부적을 붙여 퇴치한다는, 크리쳐 호러물이 갑작스러운 퇴마물로 전환되는 셈인데 영 개운치 못했거든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TV 시리즈에서는 툰바크가 실체가 있는 괴물로 그리고 있던데 그게 더 나은 선택인건 분명합니다.

그래도 워낙에 압도적인 내용이 많고 재미 또한 빠지지 않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결말만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내었더라면 4점도 아깝지 않았겠지만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밀리의 서재' 처음 한 달 무료 프로모션을 통해 읽게 되었는데, 아직 '밀리의 서재' 가입을 하지 않으셨다면 무료로 읽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TV 시리즈도 무척 땡기지만, 심하게 무서울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요. 호러 무비는 취향이 아니다보니...

2013/10/01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 공유드립니다.

[소식] 절판본 미스터리 박스(와우북)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다운 이벤트군요. 아이디어가 참 괜찮은 것 같아 공유드립니다.
이벤트에 포함된 절판도서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적색은 저도 소장한 작품들입니다)

정말 희귀한 작품도 있지만 고려원과 해문쪽 추리걸작선은 아직 구하려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증명 시리즈나 스카페타 시리즈같이 재간된 책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 <비밀일기>와 같이 전체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추첨에 참여해도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 확률이 더 높아보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제가 앞으로 출판사를 하게 된다면 꼭 따라해보고 싶은 이벤트네요. 저만의 절판본 리스트라도 만들어서 한번 관리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탐나는 작품은 아서 클라크의 "환상특급"과 P.D 제임스 시리즈이며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고르라면 "챔피언 시저의 죽음"과 "레이디킬러"를 꼽겠습니다.

  • 챔피언 시저의 죽음/ 렉스 스타우트/ 이춘열 옮김/ 시공사/ 1995.
  •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2004.
  • 낙원의 샘/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9.
  • 순간의 적/ 로스 맥도널드/ 김연남 옮김/ 홍원/ 1994.
  • 코스믹 러브/ 로저 젤라즈니 외/ 박상준 엮음/ 사울창작/ 1994.
  • 열흘간의 불가사의/ 엘러리 퀸/ 유명우 옮김/ 1994.
  • 앰버 연대기(1, 2, 3, 4, 5)/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예문/ 1999.
  • 에드가상수상작품집Ⅱ/ 엘러리 퀸 외/ 정태원 옮김/ 명지사/ 1998.
  • 두동강이 난 남과여/ 히가시노 게이고 외/ 봉성기획/ 1999.
  • 세계 심령 미스터리 사이키/ 로버트 실버버그 외/ 박상준 역음/ 서울창작/ 1994.
  • 숏컷/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집사재/ 1996.
  •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 하라 료 외/ 추리작가협회/ 고려원미디어/ 1993.
  • 환상특급/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4.
  • 디바/ 델라코르타/ 안선덕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스노우 크래쉬(1, 2) 닐 스티븐슨/ 김장환 옮김/ 새와물고기/1996.
  • 플레치/ 그레고리 맥도널드/ 정철호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어서 지킨 약속/ 러브 크래프트 외/ 한경희 편역/ 문학사/ 1994.
  • 인형의 눈(상, 하)/ 베리 우드/ 정영목 옮김/ 동아출판사/ 1994.
  • 천재들의 게임/ F. 폴 윌슨/ 고영휘 옮김/ 십일월출판사/ 1994.
  • 히치콕 서스펜스 걸작선/ 엘리너 설리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4.
  • 결혼해 주세요/ 존 업다이크/ 폴임 옮김/ 밝은세상/ 1993.
  • 죽음의 열립방정식/ 모리무라 세이치/ 정성호 옮김/ 모음사/ 1984.
  • 남아 있는 모든 것/ 패트리샤 콘웰/ 이정환 옮김/ 시공사/ 1994.
  • 두 얼굴의 여자/ 수 크라프튼/ 나채성 옮김/ 큰나무/ 1994.
  • 잔혹한 사랑/ 패트리샤 콘웰/ 정한솔 옮김/ 시공사/ 1993.
  • 검은 휘파람/ 로버트 러들럼/ 홍석연 옮김/ 문지사/ 1998.
  • 호텔 Q의 25시/ 모리무라 세이치/ 정태원 옮김/ 글사랑/ 1995.
  •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정성호 옮김/ 한겨레/ 2001.
  • 강철군화/ 잭 런던/ 차미례 옮김/ 1989.
  • 영원의 아이(상중하)/ 덴도 아라타/ 김난주 옮김/1999.
  • 샤바케/ 하타케나카 메구미/ 김소연 옮김/ 2005.
  • 인간 쓰레기/ 아이작 싱어/ 박원현 옮김/ 고려원/ 1992.
  • 인생을 훔친 여자/ 미야베 미유키/ 박영난 옮김/ 2000.
  • 재앙의 거리/ 엘러리 퀸/ 정태원 옮김/ 1994.
  • 호러 사일런스/ J. G. 발라드 외/ 김성화 옮김/ 1994.
  • 악마 다리/ 코난 도일/ 조용만 옮김/ 학원출판공사/ 1993.
  • 금요일 옷 벗는 도둑/ 마쓰모토 세이초 외/ 정태원 옮김/ 비전/ 1994.
  • 중국 오렌지의 비밀/ 엘러리 퀸/ 이원두 옮김/ 시공사/ 1994.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4.
  • 스나크 사냥/ 루이스 캐럴/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7.
  • 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2006.
  • 비밀일기/ 스우 타운센드/ 배현나 옮김/ 김영사/ 1986.
  • 야수는 죽어야 한다/ 오오야부 하루히코/ 박영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비밀의 문/ 김내성/ 명지사/ 1994.
  • 트리스트란과 별공주 이베인/ 닐 게이먼/ 김명렬 옮김/ 2000.
  •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마루야마 겐지/ 김춘미 옮김/ 하늘연못/ 200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별을 쫓는 자/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북스피어/ 2008.
  • 유년기의 끝/ 아서 클라크/ 정영목 옮김/ 시공사/ 2001.
  • 유령의 집/ 헨리 제임스/ 이채윤 옮김/ 데미안/ 2003.
  •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서 클라크/ 김종원 옮김/ 한양출판/ 1994.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로버트 하인라인/ 임창성 옮김/ 잎새/ 1992.
  • 울게 될 거야/ 야마모토 후미오/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2008.
  • 야수들의 밤/ 오시이 마모루/ 황상훈 옮김/ 황금가지/ 2002.
  • 어두컴컴한 물밑에서/ 스즈키 코지/ 윤덕주 옮김/ 씨엔씨미디어/ 1999.
  • 맥널리의 모험/ 로렌스 샌더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 1993.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리더스 다이제스트 걸작추리모음 3/ 존딕슨카 외/ 동아출판사/ 1993.
  • 사이코/ 딘 쿤츠/ 신영희 옮김/ 한뜻/ 1997.
  • 발렌타인의 유산/ 스탠리 엘린/ 고경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태양의 유산(1, 2)/ 아사다 지로/ 한은미 옮김/ 시아/ 2000.
  •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1, 2)/ 마루야마 겐지/ 박은주 옮김/ 책세상/ 2000.
  • A2Z/ 야마다 에이미/ 이유정 옮김/ 태동 출판사/ 2004.
  • 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이주혜 옮김/ 이레/ 2009.
  • 프로페셔널 킬러/ 토마스 페리/ 최인석 옮김/ 모음사/ 1984.
  • 미드나이트 시즌/ 스티븐 킹/ 공경희 옮김/ 대산/ 1999.
  • 나를 기억하라/ 메리 히긴스 클라크/ 임지현 옮김/ 문학사상사/ 1995.`
  • 흔적/ 패트리샤 콘웰/ 조성은 옮김/ 시공사/ 1996.
  • 마지막 대본/ 미키 스필레인/ 정다빈 옮김/ 홍원/ 1993.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김훈/ 문학동네/ 1995.
  • 지푸라기 여자/ 카트린 아를레/ 홍은주 옮김/ 북하우드/ 2006.
  • 메두사/ 이노우에 유케히토/ 송영인 옮김/ 시공사/ 1998.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문학동네/ 2001.
  • 플레이보이 SF걸작선[1]/ 필립 K. 딕 외/ 황금가지/ 2003.
  • 워터멜론 슈가에서/ 리차드 브라우티건/ 최승자 옮김/ 도서출판 민/ 1995.
  • 무서운 사람들/ 얼 스탠리 가드너/ 강성열 옮김/ 세진출판사/ 1991.
  • 파프리카/ 쓰쓰이 야스타카/ 최경희 옮김/ 영림카디털/ 1994.
  • 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정탄 옮김/ 끌림/ 2008.
  • 고독의 노랫소리/ 덴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5.
  • 소돔의 성자/ 오사와 아리마사/ 이원두 옮김/ 이성/ 1993.
  • 아이스바운드/ 딘 쿤츠/ 안정희 옮김/ 한뜻/ 1996.
  • 불야성/ 하세 세이슈/ 김은아 옮김/ 대원/ 1999.
  • 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 이승진 옮김/ 향연/ 2004.
  • 아내가 마법을 쓴다/ 프리츠 라이버/ 송경아 옮김/ 웅진/ 2007.
  • 어둠(1, 2)/ 제임스 허버트/ 김석희 옮김/ 정신세계사/ 1995.
  • 아웃(1, 2, 3)/ 기리노 나쓰오/ 홍영의 옮김/ 다리미디어/ 1999.
  • 대망(1~10)/ 야마오카 소하치/ 박재희 옮김/ 동서문화사/ 1975.
  • 속삭이는 사람들/ 마가리트 밀러/ 현재훈 옮김/해문/1983.
  • 디미트리오스의 관/ 에릭 앰블러/ 이가형 옮김/ 해문/1986.
  • 판사와 형리/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1988.
  • 부머랭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신용태 옮김/ 해문/ 1988.
  • 서재의 시체/ 애거서 크리스티/ 설영환 옮김/ 해문/ 1989.
  • 연성결(상,하)/ 김용/ 박영창 옮김/ 중원문화사/ 1989.
  •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 애거서 크리스티/ 김석환 옮김/ 해문/ 1989.
  • 중국 황금 살인 사건/ 로베르트 반 훌릭/ 이동진 옮김/ 삼신각/ 1990.
  • 내가 죽인 소녀/ 료 하라/ 박영 옮김/ 청림출판/ 1990.
  • 녹정기(1~11)/ 김용/ 박영창 옮김/중원문화사/1990.
  • 부자연스러운 주검/ P. D. 제임스/ 차근호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1.
  • 피부 밑의 두개골(1,2)/ P. D. 제임스/ 이명성 옮김/ 일시서적출판사/ 1992.
  •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찌/ 이원두 옮김/ 한길사/ 1991.
  • 제3의 사나이/ 그레엄 그린/ 안흥규 옮김/ 문예출판사/ 1991.
  •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 P. D. 제임스/ 박종원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타인의 목/ 조르쥬 심농/ 김수연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1992.
  • 열쇠 없는 집/ 얼 비거스/ 유명우 옮김/ 한길사/ 1992.
  • 타이태닉 호의 음모/ 도널드 A. 스탠우드/ 이인복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죽은 자와의 결혼/ 윌리엄 아이리시/ 김석환 옮김/ 해문출판사/ 1992.
  • 미드나이트/ 딘 R. 쿤츠/ 조석진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벌거벗은 얼굴/ 시드니 셀던/ 한번웅 옮김/ 신원문화사/ 1993.
  • 컴퓨터의 몸값/ 미요시 도오루/ 권자인 옮김/ 수목출판사/ 1993.
  • 마지막 모험/ 엘모어 레오나드/ 김명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한국 서스펜스 걸작선/ 이상우 외/ 고려원미디어/ 1993.
  • 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K. 르귄/ 윤소영 옮김/ 웅진출판/ 1993.
  • 여형사 K/ 수 그라프톤/ 정한솔 옮김/ 큰나무/ 1994.
  • 쇠못 세 개의 비밀/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4.
  • 경마장의 비밀/ 딕 프랜시스/ 이종인 옮김/ 고려원미디어/1994.
  • 레이디 킬러/ 도가와 마사꼬/ 김갑수 옮김/ 추리문학사/ 1994.
  •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미스터리 걸작선 추리특급/ 엘러리 퀸 엮음/ 정성호 옮김/ 제삼기획/ 1994.
  • 종소리를 삼킨 여자/ 로베르트 반 훌릭/ 이희재 옮김/ 디자인하우스/ 1995.
  • SF 시네피아/ 아서 클라크 외/ 박상준 엮음/ 서울창작/ 1995.
  • 죽음의 편지/ 보브 랜들/ 김훈 엮음/ 고려원미디어/ 1996.
  • 유니스의 비밀/ 루스 렌들/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카인의 아들/ 패트리샤 콘웰/ 이창식 옮김/ 시공사/ 1996.
  • 시귀(1,2,3)/ 오노 후유미/ 임희선 옮김/ 들녘/ 1999.
  • 자본론 범죄/ 칼 마르크스/ 이승은 옮김/ 생각의나무/ 2004.
  • 월간 판타스틱 2008/08 Vol.18/ 페이퍼하우스/ 2008.
  • 만연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박유하 옮김/ 고려원/ 2000.
  • 위대한 세월/ 오에 겐자부로/ 김난주 옮김/ 고려원/ 1995.
  • 핀치러너 조서/ 오에 겐자부로/ 허호 옮김/ 고려원/ 1996.
  • 펠리컨브리프/ 존 그리샴/ 정영목 옮김/ 시공사/ 1994.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정계춘 옮김/ 자유문학사/ 1993.
  • 마지막 파티/ 윌리엄 캐츠/ 정태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6.
  • 복수법정/ 헨리 덴커/ 이상곤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아이라 레빈/ 이일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
  • 보안관과 도박사/ 엘모어 레오나드/ 이종인 옮김/ 고려원/ 1994.
  • 죽음의 세레나데/ 유우제/ 고려원미디어/ 1994.
  • 맨해턴 특급을 찾아라/ 클라이브 커슬러/ 이원두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독수리는 날아오르다/ 잭 히긴스/ 박주동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3.
  • 라마(6,7)/ 아서 클라크 & 젠트리 리/ 안정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4.
  • 맥널리의 행운/ 로렌스 샌더스/ 이순주 옮김/ 고려원/ 1992.
  • 맥널리의 비밀/ 로렌스 샌더스/ 이일수 옮김/ 고려원/ 1992.
  • 어둠을 울리는 우울한 종소리/앤드루 박스/ 이창식 옮김/ 고려원미디어/1992.
  •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이희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2.
  • 석양에 빛나는 감(1,2)/ 다카무라 가오루/ 홍영의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5.
  • 무죄추정/ 스코트 터로우/ 최승자 옮김/ 대흥/ 1991.
  • 내가 심판한다/ 미키 스필레인/ 황해선 옮김/ 해문/ 1990
  • 거짓 예언자/ 숀 플레네리/ 김갑수 옮김/ 남도/ 1989.
  • 가족사냥/ 텐도 아라타/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2003.
  • 야성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김성재 옮김/ 책만드는집/ 1994.
  • 메인 스트리트/ 트리베니안/ 정태원 옮김/ 진음/ 1994.
  • 트럼프 살인사건/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시공사/ 1995.
  • 어둠의 목소리, 사나이의 목/ 이든 필포츠/ 조르주 심농/ 이가형 옮김/ 하서/ 1981.
  • 두 아내를 가진 남자/ 패트릭 퀜틴/ 심상곤 옮김/ 해문/ 1990.

2006/12/06

나는 전설이다 - 리쳐드 매드슨 / 조영학 : 별점 3.5점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표제작 중편 이외에 10편의 단편이 같이 실려 있는 중단편집. 이 바닥에서는 유명하지만 호러 계열은 취향이 아닌지라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형의 지인이 대여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게된 책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재미있더군요! 제 취향때문에 안 읽었더라면 큰일날뻔 했어요.
일단 표제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한 뱀파이어 호러물 "나는 전설이다"는 정말 대단한 작품으로 여러모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더군요.
중편이긴 하지만 하나의 긴 기둥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4개의 시즌으로 구분하여 각 에피소드별로 나뉘어져 있는 방식인데 개인적으로는 살아남은 강아지 에피소드가 제일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만 다른 에피소드들도 전부 보통 이상입니다.
바이러스가 일종의 공기로 전염되는 것이라는 것이라던가 주인공이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어느정도 면역이 있다는 등의 설정부터 쓰여진 시기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획기적이고 특이하며 홀로 집을 요새처럼 꾸며놓고 거의 좀비와 같은-사고(思考) 없는- 뱀파이어들과 싸운다는 설정은 후대 다른 많은 작품들, 특히 좀비물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또한 혼자서 뱀파이어들을 퇴치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의 리얼함이 정말 생생합니다. 읽다가 어느새 감정이입하게 될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뱀파이어라는 이질적 존재에 대한 나름의 과학적인 전개도 곁들여서 재미를 더하는데 주인공이 뱀파이어를 퇴치하기 위해 마늘과 십자가, 햇빛에 대해 여러가지 연구를 하는 부분, 또 그들의 라이프사이클(?)을 파악하고 낮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생존과 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구하고 만드는 부분 등은 리얼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칩니다.

딱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마지막 에피소드, 즉 작품 후반부에 중간존재(?) 격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영화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이었어요. 이 여성이 등장하지 않고 더 묵직하게 끝나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모두가 비정상인 곳에서 혼자만이 정상이면 그 혼자가 결국 비정상, 괴물이라는 주제는 묵직하게 전달됩니다. 외눈박이 마을에 두눈박이가 가면 안되는 것 처럼요. 제목 그대로의 주인공 네빌의 독백이 정말로 와닿는, 재미도 있으면서도 작가의 철학과 주제가 잘 전달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다른 단편들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덧1 : 영화 "오메가 맨"의 원작인지는 몰랐는데 확실히 영화는 많이 달랐었죠. 영화에서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등장해서 주인공의 고독을 극대화시키지 못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이번에 다시 영화화 한다는데 주인공 네빌의 절망과 음울한 분위기를 얼마만큼 잘 살릴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주인공 역으로 윌 스미스는 영 아니라는 생각이...
덧 2 : 읽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이마 이치코의 걸작 단편선 3권 "외딴섬의 아가씨"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침묵"이 생각나네요. 정상인인 듯(?)한 한 마을에 동굴을 통해 찾아온 이웃 마을 마법사의 이야기인데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주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던지기 놀이 :
작은 마을의 카니발. 탁구공을 던져 어항안에 집어넣으면 상품을 주는 코너에서 한 남자가 연달아 탁구공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사소한 작은 일상에서 점차 커져나가는 스릴과 공포를 잘 나타낸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결말이 약간 황당하긴 하지만 전개가 상당히 매끄럽고 탄탄하네요.

아내의 장례식 :
굉장히 짧은 꽁트 형식으로 내용 요약이 어렵지만 유머러스하고 섬뜩한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른바 "기묘한 맛" 류의 단편입니다.

죽음의 사냥꾼 :
아멜리아는 서른이 넘어서도 어머니에게 속박당한채 자유스럽지 못한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 아서에서 선물하기 위해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인형이 주술걸린 사슬이 벗겨져 그녀를 습격하는데...
스티븐 킹 느낌이 물씬 나는 호러물입니다. 약간의 배경 및 캐릭터 소개를 제외한다면 거의 전편에 걸쳐 주인공 아멜리아와 죽음의 인형의 사투를 다루고 있어서 깊이는 좀 없지만 내용 자체는 무척 재미납니다. 공포스럽기도 하고요. 그러나 마지막 결말에서의 반전은 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마녀의 전쟁 :
P.G 센터의 일곱명의 예쁜 소녀들은 사실 마녀로 적군을 마법으로 습격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굉장히 짧은 작품으로 마녀들의 저주와 술법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라 그다지 알맹이는 없습니다. 단지 아이디어만 좀 기발하달까... 작가의 이력에 TV시리즈 "환상특급" 원작을 여러편 썼다는 내용이 있는데 정말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영상화가 더 어울릴법한 소품이었습니다.

루피 댄스 :
순진한 소녀 페기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건달인 버드와 렌, 그리고 렌의 파트너 바바라와 같이 금지된 우범지역 세인트루이스로 놀러가 "루피댄스"를 처음 접한다.
뭔가 전쟁이나 다른 이유로 약간 맛이간 세계를 무대로 해서 황폐하고 무절제한 젊은이들을 그린 작품. 초반부의 맛간 젊은이들 묘사는 스티븐 킹 작품의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데 괴물이 등장하는 등의 공포로 이어지지는 않고 "루피댄스"라는 기묘한 춤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끝납니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SF적인 몇몇 설정과 대사는 재치있지만 그다지 생각보다 재미있진 않았습니다. 어차피 제가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건지 무절제한 청춘 이야기는 식상하기도 했지만요.

엄마의 방 :
짧기도 하고 내용 요약이 힘든 작품이지만 나름 반전이 있는 소품입니다. 역시 "기묘한 맛" 류일까요? 루스 렌들 여사의 단편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드 하우스 :
한때 작가를 꿈꾸던 크리스는 허름한 집에서 결코 끝나지도 못할 소설을 붙들고 사는 말단 영어 강사로 삶에 대한 그의 분노가 너무 커져 그의 아내 샐리가 그를 떠난다고 통보한다.
분노와 성질이 누적된다는 굉장히 이색적인 아이디어로 설득력있게 쓰인 작품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말까지 깔끔해서 무척 마음에 드네요.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장례식 :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 앞에 에스퍼라는 작자가 나타나 최고급 관을 주문한다...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소재이긴 하지만 무척 유머러스할 뿐더러 끝까지 유머의 끈을 놓지 않아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역시 영상이 더 설득력 있을 것 같은 "환상특급"류의 작품 이었습니다.

어둠의 주술 :
의학박사 제닝스는 자신의 딸 패트리시아와 약혼한 피터가 광분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피터가 주술에 걸렸다고 이야기 한 덕분에 자신의 친구이자 주술의 권위자인 대학교수 하월박사를 불러 그를 치료하려 하는데...
주주 주술이라는 정체불명의 주술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주술에 대한 상상력과 그것을 묘사하는 내용은 리얼하고 생동감있지만 그다지 알맹이는 없는, 이색적인 소재에 많이 기댄 범작입니다. 괜히 길기만 기네요.

전화벨 소리 :
밀만은 새벽 3시에 걸려오는 전화때문에 미칠 지경. 그의 정신과 의사 팔머 박사의 조언대로 전화를 받아보지만 상대방은 정부 요원이니, 발명가니, 아버지니 하는 헛소리를 계속 해 대는데...
이 작품 역시 호러라고 보기엔 약간 썰렁하지만 나름 서늘한 맛이 있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이색적이고 기발하면서도 서늘한 소재와 전개, 그리고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8/02/04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시모쓰키 아오이 / 김은모 : 별점 4.5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10점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오랜 경력의 평론가가 "왜 크리스티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작품이 발표된 순서대로 전부 읽어본 후 평을 기록한 평론집이자 리뷰집입니다.

리뷰의 수준은 최상급입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작품의 핵심을 콕 집어 지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추리 소설 리뷰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정도예요.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은 '불순물 하나 없는 본격 추리 소설의 원형'이고, "엔드하우스의 비극"'고명에 의존하지 않고 면발과 국물의 감칠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같은 작품'이라는 식입니다.
좋은 작품은 정말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소개하고 있으며,  전문가답게 유사하거나 참고해야 할 다른 작품들도 함께 언급, 소개하는 부분들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트릭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비뚤어진 집", "구름 속의 죽음" 정도는 저도 알고 있던 것이지만, "골프장 살인 사건" 이 10년 뒤 발표된 역사적 명작과 같은 장치를 사용했다, "블랙커피" 속 장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2" 속 장치와 일맥상통한다, "맥긴티 부인의 죽음" 은 하드보일드 성향이라 우수하다는 등의 정보들은 정말 그 깊이와 수준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뷰가 작품이 발표된 연대별로 이어지는 덕분에 여사님의 발전, 작법의 진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사님 특유의 섬세한 인간관계 묘사가 정교하게 쌓아 올려지고, 트릭보다 인간관계와 동기 등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여사님이 얼마나 많은 작품 스타일에 도전했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통 추리에서 시작해서 모험물, 신본격 스타일 서술 트릭, 스릴러, 법정극, 하드보일드, 오컬트 심령 괴기물, 심지어 코즈믹 호러(!) 까지 장르 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니까요. 왜 거장인지를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매우 낡아빠진 오래전 고전 작가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세번째 여인" 의 경우 1966년 발표된 작품으로 곧 '레드 제펠린' 이 결성될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는 시대가 확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읽은 여사님 작품에서 '스푸트니크' 호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었지요. 참고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최첨단 추리 소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무모한 도전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증거라나요?

이렇게 리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게 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걸작'이기 때문인데, 걸작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지적하지요. 여사님의 걸작들은 요약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게 원인이고요.
즉 작품 전체가 트릭이자, 복선이자, 단서이자, 미스디렉션으로 소설 전체가 속이기 위해 짜여진 플랫폼일 뿐 아니라, 여사님은 트릭에 능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는 본격물에 비하면 그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는 게 최종 결론인데, 여사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리뷰를 통해 여사님의 특징적인 작법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은 그녀가 일종의 "연극"처럼 상황을 다룬 것이 비결로, 여사님 작품은 그림이나 동영상, 연극처럼 독자나 관객이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다의적" 이야기를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 내는지가 중심이라는 건데 아주 타당해 보였습니다. 제가 읽었던 여사님 작품을 몇 편 떠올려 봐도 저자의 말대로 "여사님 머릿속에 상영되는 연극을 종이 위에 옮겼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겉보기를 만든 후, 겉보기와는 다른 진실에 그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방법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여행지라는 무대와 신원을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정말 그럴싸 하지요? 연극과 같은 상황을 접목하기 좋은건 당연히 일상과 분리된 장소일테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위장하는게 보다 손 쉬운 건 당연하니까요. 아울러 여사님은 독자가 어떤 때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어떤 때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지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던 덕분에 독자를 속이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흉내내기 어려운 솜씨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저자 스스로 모든 작품의 별점을 매기고 평가한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물론 평론, 리뷰 및 평가는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별점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걸작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이 많이 부여되고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별로였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다섯 마리 아기 돼지" 나 "끝없는 밤" 을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은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로 알고 있는 매리 웨스트매콧 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의아했던 점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정교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다의성' 이라는 항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슬픈 사이프러스" 등 몇몇 작품은 국내 번역명과 동떨어진 일본식 제목으로 소개되거나, 포와로와 마플 및 기타 장편 외 몇몇 작품들에 대한 국내 출간 여부가 체크되지 않은 점은 옥의 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이자 잘 쓰인 추리소설 리뷰 집으로 완벽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뛰어가서 사 오시길" 바랍니다. 저도 여사님같은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리뷰라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전체 베스트 10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서둘러,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네요.

  1. 커튼
  2.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끝없는 밤,
  4. 주머니 속의 호밀
  5. 봄에 나는 없었다
  6. 백주의 악마
  7. 깨어진 거울
  8.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9. 죽음과의 약속
  10. N 또는 M

그 외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할로 저택의 비극", "맥긴티 부인의 죽음", "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것만 해도 올해 여름까지는 충분하겠지요?

2020/06/27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으로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열 두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 범죄 액션 스릴러가 여섯 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으로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이 복수의 '과정'입니다.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서 인상적입니다.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 묘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인 천재 바비는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냈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통해 전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서 드디어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작품이지요.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으며,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