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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7

도쿄의 가장 밑바닥 - 겐콘 이치호이 / 김소운 : 별점 2.5점

도쿄의 가장 밑바닥 - 6점
겐콘 이치호이 지음, 김소운 옮김/글항아리

1893년, 저자 겐콘 이치호이(본명: 마쓰바라 이와고로)가 빈민가로 알려진 시타야 만넨정, 요쓰야 사메가하시, 시바 신아미정 등 3대 빈민굴을 직접 찾아 하층민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이를 생생하게 글로 옮긴 논픽션입니다. 일본 근대 르포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하네요.

특징이라면 단순히 빈곤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빈민들의 식생활, 일상적인 노동, 그리고 지역 경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구체적이며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차부'(인력거꾼)에 대한 상세한 설명처럼요. 그들의 영업과 업무 행태, 하루 벌이, 주요 먹거리, 생활상과 나이 들었을 때의 비참한 모습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독자는 그들의 생존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드리운 가난의 무게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 초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참고가 되리라 생각되고요. "경성탐정록"의 "운수 좋은 날"을 쓰기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차부 외에도 고물상, 경매 시장, 일용직과 도급 인부들, 아침장과 야시장 등 다양한 하층민 직업에 대한 설명 및 하층민들의 생계 방식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잔반을 모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잔반야'의 존재와 그들이 판매하는 잔반들에 대한 묘사는 당시의 생존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음식들 설명도 많은데, '후카가와 메시'가 차부들을 대표하는 식사 중 하나로 바다 비린내가 심해서 먹기 힘들다는게 새롭더군요. 지금은 지역 먹거리로 유명한 음식이니까요. 조리법의 문제였을까요? 원래는 꿀꿀이죽과 다를게 없었던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의 유래와 현재 위치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 시점에 읽어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망하면 3년을 못 간다는 '좌식산공'에 대한 언급, 전당포와 고리대금업자들의 무자비한 행태, 가증스러운 도급업자들에 대한 서술은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막걸리는 1홉(0.18리터)에 2센이며 잘 마시는 사람은 한 번에 5동이에서 7동이를 해치운다. 그중에는 옷가지를 잡히고 홧술로 10동이 이상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는 설명은 더 말할 것도 없을테고요.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 모두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으며,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당시 사회의 모순과 빈민들의 고단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책입니다. 인간의 생존 본능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1/14

[단상] 현실로 다가온 모듈러 하우스 기사를 읽고.

오늘, 건축 기술의 혁신을 보여주는 ‘모듈러 하우스’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는 건물의 주요 부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여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모듈러 공법으로 지은 세종시 산율동 행복주택 아파트는 416가구 규모로, 주거 공간의 약 80% 이상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했습니다. 이후 현장에서는 모듈을 크레인으로 옮겨 조립해 공사를 마쳤고, 약 100일 만에 모든 적층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이 공법은 공사 기간을 크게 단축하고 현장 인력을 줄이는 동시에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떠오른 것은 1974년에 발표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흑마술의 여자"입니다. 작품 속에서 모듈러 공법과 흡사한 ‘유니트 하우스’로 이루어진 별장촌에서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밀실이었던 2층은 사실 옆 별장 유니트로, 범행 후 방만 통째로 이웃집과 교체하지 않았을까?라는 추리가 펼쳐집니다. 모듈별로 끼워 맞출 수 있는 유니트 하우스라서 가능한 추리입니다. 

이렇게 50년 전 작품에서 상상으로 그려졌던 기술이 이제야 현실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된다는게 신기하네요. 또 상용화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해졌는데, 지금도 이 공법은 기존 방식보다 공사비가 약 30% 더 든다고 하니 비용 문제일까요? 그래도 재미있는 기술이고, 획일화된 아파트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식이니 보다 기술이 최적화되어 널리 퍼지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밀실 살인을 위한건 아닙니다...

2025/01/12

장송의 프리렌 : season 1 (2023~2004) - 사이토 케이이치로 : 별점 4점

용사 힘멜 일행이 마왕을 물리치고 80년이 지난 후, 엘프 마법사 프리렌이 용사 힘멜의 죽음을 계기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총 28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정통 판타지 설정의 잔잔한 힐링물이라는 점입니다. 프리렌이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운 기억을 쌓는 여행 와중에 드러나는 소소한 추억들 - 힘멜이 동상을 세우는 이유, 프리렌이 꽃밭을 만드는 마법을 좋아하는 이유 등 - 은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힘멜이 경련화 반지를 선물하는 장면은 정말 희대의 명장면이었고요.
장명종 종족이 단명종 종족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던전밥"의 마르실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슬픔을 극복하기 어려워하는 마르실과는 다르게 프리렌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더군요. 장명종으로 시간을 개의치 않는 성격도 곳곳에서 드러나서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단순한 레벨업 구조를 벗어나, 캐릭터들의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돋보입니다. 괴물 한, 두 마리 잡았다고 레벨이 오르는게 아닙니다.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실력이 오르는 것이지요. 당연히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성공하기는 하지만, 그건 현실도 그러하니 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계관 최강의 마법사 중 한 명인 프리렌조차 마족을 쉽게 이기기 위해 마력을 숨기는 속임수를 쓰는 등, 마법사들의 대결에서는 레벨 대결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걸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도 좋았고요.

힐링물임에도 액션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슈타르크와 홍경룡의 격투나 마족 단두대 아우라 일당과의 전투는 강렬한 작화와 연출로 박진감을 더해 줍니다.
소소한 개그씬들, 귀여운 캐릭터들 역시 매력적이에요. 특히 어린 시절의 페른은 너무 귀여웠어요. 피규어가 출시되면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수천년을 살아왔지만 귀여운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프리렌도 독특한 매력을 뽐냅니다.

다만 중반 이후의 1급 마법사 시험 이야기는 아쉬웠습니다. 정통 판타지의 힐링물이라는 방향성이 흐려지고, 배틀물로 변질된 느낌이 드는 탓입니다. 마법사의 등급 구조나 마법 상성 설정, 마법사들이 주요 마법 하나에 의존한다는 설정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왜 다른 마법을 배우지 않는걸까요? '닌자물'도 아닌데 말이지요. 

"오징어 게임"이 떠오르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시험을 이렇게 길게 끌고갈 필요도 없었고, 마력의 양으로 승부가 나는 상황도 시험의 필요성을 떨어트린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이럴 거라면 목숨까지 걸어가며 시험을 치룰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마력 순으로 줄세우기를 하면 되니까요. 애초에 프리렌이 1급 마법사 시험을 치루는 상황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북부 제국은 위험해서 1급 마법사만 갈 수 있다는 이유인데, 현 시점에서 마족을 가장 많이 죽인 마법사는 프리렌입니다. 시험을 보는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보내주는게 타당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누가 보아도 재미있을 작품입니다. 제 딸 아이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5/01/11

커피 일가 - 가바야마 사토루 / 임윤정 : 별점 2점

커피 일가 - 6점
가바야마 사토루 지음, 임윤정 옮김/앨리스

3대에 걸쳐 오쿠노 가문이 운영하고 있는 일본 교토의 작은 찻집 로쿠요샤(六曜社)의 이야기를 다룬 책입니다. 로쿠요샤는 단순한 찻집을 넘어 교토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는데, 교토신문 기자 가바야마 사토루가 창업주 미노루부터 2대 오사무, 3대 군페이에 이르기까지 가족이 가게를 어떻게 운영하고 발전시켰는지 알려줍니다.

3대에 걸친 교토 명물 카페의 일대기는 흥미로왔습니다.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한 경영 철학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창업주인 1대 미노루는 최고의 접객 서비스 - 손님 자리를 향해 서서 끊임없이 살펴 본다. 밀크 저그는 손님이 쓰러뜨리는 일이 없도록 컵에서 5센티미터 정도 떨어뜨린 곳에 둔다. 빈 그릇, 빨대 포장지나 밀크 저그는 바로 치운다. 손님 테이블에 놓인 물컵이 비면 바로바로 채운다. 담배꽁초가 쌓이기 전에 새로운 재떨이로 바꾼다. 등 - 에 집중했으며, 2대 오사무는 자가배전 커피를 도입해 찻집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현재 3대 군페이는 보다 자유로운 발상으로 운영 방식을 새롭게 하고 있고요. 이 과정에서의 세세한 디테일들도 눈여겨볼만 했습니다. 전전의 유명 카페들 목록, 1950년대 징병되었다가 라바울에서 커피맛을 알게되었다는 커피 도매상, 1971년 베스트셀러 "스무 살의 원점"에 등장하는 로쿠요사 이야기, 당시 커피 가격 등 여러가지 정보가 가득합니다. 

로쿠요사 성공의 비결로 작용한 '운'도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창업 초기 로쿠요샤가 위치한 거리가 번화가로 발전하거나, 오사무의 포크 가수로서의 유명세가 가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점 등이 그 예입니다. 특히 오사무가 70년대 일본 록의 태동기에서 버블에 이르기까지 구가했던 자유로운 인생은 그 자체로서 상당히 볼만 했어요. 음악적 성취도 상당한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몇 곡 찾아서 들어보았는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좋았습니다. "자기 실력 이상의 일을 하려고 애쓰지 않고,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큼의 벌이면 된다. 찻집의 마스터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오사무 씨의 이상과 비슷한 곡이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오사무의 뮤지션으로서의 유명세와 더불어, 80년대 중반에 이미 자가배전한 자신만의 맛을 찾아내어 커피를 제공했다는, 시대를 앞서간 감각이 현재 로쿠요샤 인기의 핵심으로 생각되네요. 오사무가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점이기도 합니다. 3대를 이어갔다고는 하지만, 오사무가 없었다면 과연 로쿠요샤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지 솔직히 의문이거든요. 미노루는 커피 장인으로 보기는 어려운 접객 특화 사장이고, 군페이는 스스로 이룬게 없고 철학도 없으니까요. 
오사무의 커피조차도 80년대에는 특이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자가배전 스페셜티 커피'는 꽤 흔하게 마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카페의 핵심은 커피 맛일 텐데, 로쿠요샤의 커피맛이 좋다는 묘사는 전무합니다. 명물로 언급되는 수제 도넛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요. 이래서야 카페 소개로는 영 별로지요. 교토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설령 간다한들 딱히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앞으로 10년 뒤, 과연 이 카페가 남아있을지 조금 궁금해집니다.

2025/01/10

메이지 단두대(明治斷頭台) - 야마다 후타로 : 별점 3점

明治斷頭台 山田風太郞ベストコレクション (角川文庫) (文庫) - 6점
山田 風太郞/角川書店(角川グル-プパブリッシング)

아래 리뷰에는 트릭,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이지 단두대"는 일본 소설가 야마다 후타로가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쓴 단편집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메이지 시대의 사회적 혼란과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탐구합니다. 일본 플레이보이지 선정 "미스테리 - 철야본을 찾아라!"에서 당당히 1위로 선정되었기에 계속 궁금했던 작품인데, 이번 기회에 원서를 ChatGPT의 도움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호평에 걸맞는 장점들이 눈에 띕니다. 첫 번째 장점은 실존 인물과 메이지 시대 풍광을 활용한 팩션적 재미입니다. 츠키지 호텔관, 에이타이바시 다리, 코덴마초 감옥 등 메이지 시대의 상징적인 장소들이 사건 속 배경으로 등장하고, 사회적 변화와 증기선같은 기술 발전이 트릭의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주역 중 한 명으로 근대 경찰의 아버지 카와지 토시요시가 등장하고, 그 외에도 사이고 다카모리라던가 '마지막 사무라이' 키리노 토시아키, 일본 육군 창설자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실존 인물들이 다수 등장해서 독자들에게 현실감과 역사적 몰입감을 전해줍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가공의 이야기와 결합해 당시 시대적 풍광을 생생히 재현하며, 작품의 팩션적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두 번째 장점은 추리적 재미와 정교한 트릭의 사용입니다. "괴담 츠키지 호텔관"에서는 일본도 양 끝에 게다를 고정시키고, 게다 굽을 나선형 계단 난간에 걸쳐 위에서 미끄러트린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범인 나카사카 큐우치는 이를 이용해 자신은 옥상 전망대에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래층에서 올라오던 피해자를 공격해 살해했지요.
"미국에서 보내는 사랑"에서 범인은 인력거를 혼자서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진상은 인력거 두 대를 묶어서 일종의 4륜 차량으로 만들었던 겁니다. 이를 언덕 위에서 밀어서 굴러내려가게 한건데, 굉장히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트릭이었다 생각됩니다. 다만 라소츠(나졸)들의 위증(?)과 마지막 현장에서 인력거가 묶여 있지 않았던 점(얇은 끈으로 묶여 풀렸다?) 등이 애매했던 점인데, 이는 라소츠들이 진범의 도우미였다는 마지막 단편을 통해 잘 설명되고요.
"에이타이바시의 교수형"에서는 밧줄과 배의 움직임을 이용해 자살로 위장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범인 테라니시 진주로는 피해자를 강 위 증기선으로 유괴한 뒤, 미리 에이타이바시에 설치해 두었던 밧줄 고리에 목을 밀어넣고, 반대쪽 끝을 자신이 잡아당겨 자살처럼 보이게 위장했습니다. 증기선을 타고 있어서 당시 상식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도 만들 수 있었고요. 앞서 설명드렸던 사회적 변화와 기술적 발전이 사용된 멋진 트릭입니다.
"자신의 목을 안고 있는 시체"에서는 범인이 아리사카 이헤이를 살해한 뒤, 그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의 몸과 처형된 죄수의 목을 붙여 위장한 사건입니다. 핵심은 '어떻게 죄수의 목을 빼돌렸는지?'인데, 이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라소츠의 속임수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앞서 모든 작품에서 라소츠가 한 몫했다는 걸 결정적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장점은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마지막 단편 "정의로운 정부는 존재할 수 있는가"에서 '탄정대 대순찰 케이시로가 모든 사건의 흑막이었다'는 놀라운 반전이 드러나는 덕분입니다. 그는 정의를 위해 악인들을 처단하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라소츠들의 협력을 얻었던 겁니다. 사실 사건 대부분에서 라소츠들의 부정부패와 속임수가 바탕이 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답답함을 유발했는데, 알고 보니 과거 무사였던 라소츠들은 탄정대 대순찰 케이시로의 이상에 공감하며 범죄에 협력했고, 케이시로는 이들의 범죄를 묵인하며 자신의 계획을 이어갔던 것이었지요. 모든 걸 밝힌 케이시로가 스스로 단두대를 사용해 자살하는 장면도 충격적이며, 정의와 권력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전해줍니다. 이후 체포하는 척했던 라소츠들이 에스메랄다를 탈옥시키며 막을 내리는데, 이 역시 괜찮은 결말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작품의 배경인 일본 메이지 시대는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츠마와 조슈번의 갈등과 같은 역사적 맥락이 주요 요소로 등장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추리 소설로 기대했는데, 실제로 트릭이 활용된 본격 추리 단편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 "탄정대 대순찰"은 케이시로와 라소츠들, 탄정대와 단두대의 배경 설명에 치중되어 있고, 이어지는 "무녀 에스메랄다"는 에스메랄다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이거든요. 마지막 "정당한 정부는 가능한가"는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는 자백을 통해서일 뿐입니다. 그리고 추리보다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있고요. 따라서 본격적인 추리 요소는 부족한 편입니다.

케이시로가 정의를 추구하며 폭주하는 이유, 라소츠들이 케이시로에게 충성을 바치며 목숨까지 거는 이유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합니다. 이는 작품 전체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소소한 악행을 저지르는 평균 이하 범죄자들인 라소츠들의 심경 변화가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떤 식으로든 설명이 필요했어요. 반대로 에스메랄다가 프랑스의 사형 집행인 상송 가문의 후예로, 일본에서는 '무녀'로 활약한다는 설정은 너무 과했고요. 만화적이라서 영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 팩션으로서의 재미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바실리스크"같은 닌자 액션물(?) 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작가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2025/01/05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사이토 미나코 / 손지연 : 별점 3.5점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8점
사이토 미나코 지음, 손지연 옮김/소명출판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주부의 벗' 등 일본 여성지에 실린 요리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이 일본 가정의 식탁에 미친 영향을 알려주는 미시사,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잡지에 실린 요리 정보로 그 시대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며, 전쟁 시기 일본인의 먹거리 변화도 굉장히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전쟁의 실상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시대 순으로 보자면 1940년부터 '절미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가뭄과 흉작 탓으로, 일본이 쌀을 절약하기 위해 대체 음식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흥아빵'이라는 레시피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빵은 밀가루에 콩가루, 해초 가루, 말린 생선 가루를 넣어 만들었는데, 맛이 있을리가 없지요=.

1941년에는 국민의 영양을 고려한 '국민식 운동'이 도입되었으나, 배급제가 본격화되면서 이상에 그치고 맙니다. 배급제에서는 단백질이 특히 부족했는데 오징어와 조개가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되었고, 콩비지도 다양하게 요리되었습니다.
과달카날 패전 이후인 1943년에는 생쌀을 볶아 양을 늘리거나, 겨를 사용하는 레시피까지 등장하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런데 레시피에 설탕, 버터, 달걀과 같은 재료가 포함된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비현실적이었거든요.

1944년, 공습이 심화되면서 죽과 집에서 키운 고구마, 호박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길가의 잡초, 들풀, 곤충을 식용으로 권장하고, 심지어 차 찌꺼기를 채소로 먹으라는 권고까지 실리게 됩니다. 저자가 표현대로 '최후의 발악'이지요. 이런 쓰레기 레시피 중 하나가 '민들레 칼슘 무침'입니다. 

들풀 먹는 법 1 민들레 칼슘 무침

민들레 어린잎을 살짝 열탕한 후 물에 헹궈둡니다. 구운 생선 머리와 뼈, 달걀 껍데기 등을 갈아 으깨고, 다시마가 있으면 구운 후 갈아서 기호에 따라 맛을 내어 무쳐줍니다.

민들레의 쓴맛을 제거하려면 데친 후 얼마 동안 물에 담가 둡니다. 민들레의 쓴맛은 국화과 식물 특유의 영양소이므로 제거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전후에는 미국에서 제공된 밀가루 중심의 레시피가 많아졌고, 식량 사정이 안정되기 시작한 1949년 이후로는 점차 다양한 요리가 복원됩니다. 195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식탁은 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의 실상을 독특하면서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독서였는데,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요리를 현재 구현한 컬러 사진이 몇 장 실려 있지만, 더 많은 요리를 재현하거나 당시 잡지 자체의 도판을 함께 수록했다면 책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실생활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5/01/04

이세계에서 치트 스킬을 얻은 나는 현실 세계에서도 무쌍한다 ~레벨업이 인생을 바꿨다~ (2023) - 이타가키 신 : 별점 2점

얼마 전 "전생 귀족, 감정 스킬로 성공하다"를 보았기 때문인지, 알고리즘으로 추천되었길래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전생 귀족~"보다는 낫더군요. 이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설정을 통해 기존 이고깽 장르에 차별화를 시도한 덕분입니다. 이세계에서 얻은 능력이 현실에서도 적용되어, 왕따를 당하던 추남 주인공이 초인기 초미남이 된다는 설정, 즉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는 찐따가 현실에서도 게임에서의 레벨업을 통해 같은 능력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진짜 판타지가 뭔지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설정이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닐겁니다. 따지고보면 "간츠"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테고요. 하지만 이 설정을 조금 더 차별화 시켜주는건 주인공 유야입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끝없이 선행만 베풀던 착한 인물이거든요. '선행을 베풀면 보답받는다'는 고전 동화 속 명제를 이세계 이고깽 판타지에 잘 녹여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현재 외모와 능력이 일종의 '반칙'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먼치킨이 된 유야가 겪는 여러 학교 생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요리' 특기를 얻은 덕분에 캠프에서 멋진 요리를 선보여 담임의 프로포즈를 받는다는 등으로 훈훈하고 좋은 에피소드들이었어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왕따와 외모 콤플렉스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진부합니다. 왕따 과정에서의 과장된 연출도 별로였고요. 레벨업한 뒤 자신의 외모와 능력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설정도 반복된다는건 설득력이 너무 약합니다.
유야의 레벨업은 단순히 마물을 물리치는 데 집중되어 있어 흥미를 유지하기 어렵고, 후반부의 파워 인플레도 뻔했습니다. 영웅과 마왕의 대결과 다를바 없는 설정이었으니까요. 이를 그려내는 작화, 연출도 좋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캐릭터 간 관계나 서사도 전형적이라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판타지 세계가 특히 그러한데, 차라리 현실 세계 속 이야기를 더 길게 끌어가는게 재미있었을겁니다.
그리고 이건 넷플릭스의 문제인데, 서비스 신(?)을 모두 블러처리한 까닭을 잘 모르겠네요. 엄연히 15세 이상 관람가 작품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이고깽 장르물로는 나름의 매력이 있기는 한데,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시즌 2는 방영되면 볼 생각입니다. 저 역시 인기없던 학창생활을 보냈던터라, 이런 판타지에 감정이입하게 되네요. 

덧붙이자면, 유야 할렘이 시작되었지만 진 히로인은 호죠 카오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유야가 먼치킨이 되기 전 모습을 알고도 유야를 흠모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2025/01/03

오징어게임 2 (2024) - 황동혁 : 별점 2점

전작의 성공을 기반으로 돌아온 작품. 전체 7부작입니다. 새해를 맞아 하루만에 모두 감상해버렸네요.

장점은 등장하는 전통 게임들이 드라마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5인 6각’ 게임은 팀워크를 강조하며 참가자들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짝짓기 게임’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이기심과 잔인함을 되새기게 만들고요. 특히 박용식 모자가 찢어지는 장면이나 래퍼 타노스 팀의 분열은 이러한 주제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앞서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장면이라 더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다른 장면으로, 오영일(이병헌 분)이 방에 먼저 들어와 있던 참가자를 살해하는 장면은 그의 잔인함을 부각시키며 이 게임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데스게임’임을 새삼 각인시켜줍니다.
그 외 게임과 참가자들 이야기도 소소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성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가하는 과정에서의 딱지남과의 러시안 룰렛 장면도 높은 몰입도를 선사하고요.

그러나 성기훈의 계획이 전혀 치밀하지 않다는 단점은 너무 큽니다. 밖에서 오랜 시간 준비하고 큰 돈을 들여왔음에도, 다시 게임에 참가한 뒤에는 별다른 계획 없이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할 뿐이니까요. 그나마 준비했던, 고용한 용병들의 게임장 난입이라는 계획도 쓸만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임장을 찾지도 못했지만, 난입이 성공했더라도 병력 차이로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임 측의 저격수들까지 고려하면 더욱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요. 저격수의 존재나 병력 규모를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이 세운 계획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해요.

이러한 무계획은 성기훈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최악의 결말로 이어집니다. 성기훈은 초반에는 참가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게임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가 5:5로 갈린 이후에는, 밤에 습격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면서도 희생자들을 방치합니다. 게임 주최측을 습격하기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는데, 앞서의 행동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어요.
기훈의 반란 계획에 동참하는 다른 참가자들의 태도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살아남기만 하면 수억 원의 돈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던 성기훈의 말에 따라 돈을 포기하고 사지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캐릭터의 매력 또한 시즌 1에 비하면 떨어집니다. 특히 빌런 캐릭터의 부재가 아쉽습니다. 시즌 1의 장덕수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없어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줄어들었습니다. 래퍼 타노스는 배우부터 비호감이었을 뿐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가 짜증을 유발해서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연기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소규모라도 조직(?)을 이끌만한 인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임정대(송영창)도 마찬가지입니다. 빚이 많을 뿐, 완력이나 지력,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해서 빌런 우두머리로는 영 아니었습니다. 박수무당 역시 과장된 설정과 연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이렇게 과장된 인물들이 드라마에 꼭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코인 투자 실패자들이 많은건 세태를 반영했겠지만, 너무 많아서 뻔하다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설득력과 캐릭터의 매력 측면에서 부족했습니다. 다음 시즌은 모쪼록 짧게 끝나기만을 바랍니다.

2025/01/01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하세요, 2025년이 밝았습니다.

2024년 연말에 발생한 계엄령 선포로 나라가 큰 혼란을 겪었고, 아직도 수습 중인 상황에서 제주 항공 사고라는 큰 비극이 더해졌습니다.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2025년부터는 우리나라와 국민 여러분 모두에게 좋은 일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울러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