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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30

위철리가의 여인 - 로스 맥도날드 / 이원경 : 별점 3점

위철리가의 여인 - 6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이원경 옮김/시작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석유개발회사의 사장 호머 위철리는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뒤, 자신의 딸 피비가 실종된걸 알고 사립탐정 루 아처에게 딸을 찾아줄 것을 의뢰했다. 루 아처는 실종이 호머의 전처 캐서린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호머는 캐서린이 수사에 개입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다. 이에 아처는 피비의 남자친구 보비, 캐서린 등을 차례로 만나 사건의 전모를 서서히 알아가는데...

대실 해밋, 레이몬드 챈들러와 함께 하드보일드의 삼두마차 중 한 명인 하드보일드의 서정시인 로스 맥도날드(왜 맥도널드가 아닐까요?)의 루 아처 시리즈 장편입니다. 이전에 다른 버전으로 여러 번 읽어보았던 작품입니다. 새로운 번역이 어떨까 궁금하여 읽어보게 되었네요. 마침 리뷰도 그동안은 남기지 않았었으니까요.

그런데 읽고 나니 좀 의외였습니다. 상당한 걸작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사건이 쉽게 연결되고, 지나치게 작위적인 부분이 눈에 많이 뜨이는 탓입니다. 사건 수사도 일사천리로 진행되고요. 예를 들면 캐서린, 피비를 협박하던 협박범 메리먼을 알게 된 건 캐서린이 집을 내놓은 부동산 업자이기 때문이며, 그와 컴비를 이룬 악당 스탠리는 벤의 처남이자 캐서린-피비가 잠시 머문 아파트 옆집에 거주했다는 식입니다. 덕분에 빠르고 쉽게 전개되긴 하지만 정교한 느낌은 받기 힘듭니다. 등장인물들은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게임의 NPC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메리먼과 스탠리가 처음에 캐서린을 협박하게 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크게 다가옵니다. 캐서린의 놀이 상대였을 수도 있다는 정도의 정보로는 부족했습니다.

또 제목의 "여인"의 원제가 복수인 women이 아니라 단수 woman이라는 점에서 강하게 시사하는, 위철리 가의 여인은 딱 한 명밖에 없다는 비교적 괜찮은 서술 트릭도 루 아처가 직접 그녀를 만나보았음에도 어색하거나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묘사 때문에 설득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엄마와 딸인데 아무리 화장을 떡칠하고 피곤과 스트레스로 엉망이 되었다 하더라도 못 알아보았다? 루 아처의 직업적인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 때문에 루 아처가 그렇게 뛰어난 탐정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동기 역시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트레버의 마음가짐이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못한 탓이 큽니다. 무려 이십여 년을 참고 지냈을 뿐더러 나이도 먹고 병도 있다면 어떤 협박이나 어려움이 있더라도 초월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이 정도면 아예 자포자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랬다면 애초에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죠?

또 "소름"과 유사하다고 느껴진 점도 아쉽습니다. 물론 이 작품이 "소름"보다 먼저 발표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가족의 현재 위치를 뒤집는 설정'이 핵심이라는게 똑같으니까요. 그런데 "소름"만큼의 충격을 가져다주지 못해서 "소름" 대비 여러모로 2%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피비가 가진 아이의 아버지가 칼 트레버였다던가 정도의 충격은 전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평가절하하기는 어려운 고전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순문학에 가까운 미려한 문체는 여전한 볼거리예요. 일어 중역본에서 느끼지 못했던 명문들도 가득하고 루 아처의 캐릭터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편이니까요. 특히 "연민"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루 아처의 심리 묘사를 통해 당대 다른 하드보일드 탐정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개성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순수한 욕망의 몸부림으로 시작해 살인으로 끝난다는 칼 트레버의 고백이 내용의 전부라는 심플한 구성도 마음에 듭니다. 대부분의 하드보일드가 그러하지만 "돈"보다는 "욕망"이라는 포인트가 괜찮았어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과 가진 것을 지켜야 하는 욕망이 교차하는 동기는 언제나 설득력 있기 마련이죠.
피비가 호머 위철리가 아니라 칼 트레버의 딸이었다는 반전도 캐서린이 죽으면서 남긴 다잉 메시지를 잘 설명해주면서도 칼 트레버가 왜 이렇게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여 고뇌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주변 남성들을 모두 파멸로 몰고 가는 독특한 팜므파탈 캐서린 위철리의 존재감도 대단하며, 작품 내에서 단 한 번도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과거형으로 묘사하는 방식도 신기하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걸작은 아니지만 하드보일드 거장의 솜씨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가작입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처럼 좋은 추억만을 간직할 것을 괜시레 다시 읽었다가 평점만 깎은 것 같아 내심 미안하기도 하군요. 제 올타임 베스트 중 한 편인 "소름"도 지금 다시 읽으면 별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데, 시간 나면 한번 뒤적여 봐야겠습니다.

2014/06/28

브루넬레스키의 돔 - 로스 킹 / 이희재 : 별점 3점

브루넬레스키의 돔 - 6점
로스 킹 지음, 이희재 옮김/세미콜론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을 완성한 천재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를 다룬 논픽션. 1418년 진행되던 돔 공사가 부딪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공모전에 참여한 필리포가 내놓은 기상천외하고 대담한 해결책은 중심틀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는, 그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방식이었으며 이 방식이 선정된 뒤, 건축장이 된 필리포가 천재성을 발휘하여 거대한 권양기와 기중기 카스텔로를 만들어 내고 돔을 쌓는 데 있어서도 혁신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을 당시 시대 상황 및 주변 인물들의 모습과 함께 드라마틱하게 그려냅니다. 단순한 위인전이라기보다는, 돔 공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다룬 일종의 건축 역사서라고 보아야 할 것 같네요.

장점이라면 공사 과정 드라마 자체의 재미와 더불어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현학적인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겁니다. 이 건축물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방법으로 건축되었다는건 전혀 몰랐었거든요. 당연히 필리포라는 당대의 천재 역시 들어보지 못했었고요. 이 책에서의 모습만 본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뒤지지 않는 대단한 르네상스의 천재인데, 돔 공사에 올인한 나머지 천재성을 발휘하여 명성을 널리 알릴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좀 안타깝기도 하네요.

다른 발명품 중에서는 침몰해버린 디딜바퀴로 돌아가는 외륜선 일 바달로네, 이웃 도시 루카를 수공으로 위협하려던 댐이 무너져 되려 아군이 피해를 보는 등의 실패 사례가 등장하는데, 이는 현실성을 더 높여줍니다. 다빈치의 스케치도 결국 실제로 제작되었더라도 제대로 성공했을지 장담할 수 없고, 딱히 대단한 위력이나 효용성이 있었으리라 보기 어려운 것도 있으니까요. 그가 이룩한 돔 공사의 성공에 비교한다면 큰 흠이라 보기도 어렵고요.

그러나 브루넬레스키의 혁신적인 공법, 즉 중심틀을 사용하지 않고 돔을 쌓아나가는 과정에 대한 묘사가 이 책만 가지고는 알기 어렵다는건 단점입니다. 압력을 버텨낸다는 여러 개의 사슬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식으로 틀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었는지 등이 설명되기는 하지만 도판이나 내용만으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보다 종합적인 도판, 즉 건축 순서대로 핵심 포인트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좀 큰 도판 하나가 들어가는 게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되네요.
또한, 현재 실려 있는 도판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도 큽니다. 이런 점에서는 책 보다는 적절하게 이해를 돕는 화면이 삽입된 영상 다큐멘터리가 더욱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그래도 단점은 있으나 재미와 자료적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는 보기 드문 책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도판 이외에는 책의 디자인과 편집 모두 미려하여 완성도도 높고요. 무엇보다도 저는 알라딘에서 50% 할인 금액에 구입했기에 도저히 감점할 수가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4/06/24

아이스 - 에드 멕베인 / 이동윤 : 별점 2점

아이스 - 4점
에드 맥베인 지음, 이동윤 옮김/검은숲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무용수 샐리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흉기는 조무라기 마약상 로페즈를 살해한 것과 같은 권총임이 밝혀졌다. 카렐라와 동료들은 두 피해자의 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들 앞에서 차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87분서 시리즈'로, 1983년에 발표된 시리즈의 36번째 작품입니다. 피니스 아프리카에에서 출간되었던 전작 시리즈와는 달리 검은숲에서 독립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으로, 조무라기 마약상이자 양아치인 로페즈, 대히트 뮤지컬 "팻백"의 댄서 샐리 앤더슨, 보석판매상 에덜먼이 동일한 권총으로 살해당했는데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왜 차례로 희생되었는지를 밝혀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 와중에 잔인한 폭력배 엔터니 수사와 팻레이드 에마 커플이 마약 거래로 한몫 잡으려 끼어들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본 사건과 무관한 사건들 에서 주로 미끼로 활동하는 여자 형사 아일린의 활약, 버트 클링 형사의 어려운 가정사 등이 복합적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준은 평균 이하였습니다. 책 뒤 소개에서 ‘중기 걸작’이라 칭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설정의 설득력이 거의 없으며, 추리적 요소도 거의 부재한 탓입니다. 로페즈와 샐리가 과거 동거했다는 설정은 처음 등장 시의 묘사만 봐도 상상하기 힘들고, 결국 경찰 수사로 관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독자가 추리를 해볼 여지조차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샐리가 성공한 후에도 로페즈와 섹스 파트너로 관계를 유지했다는 설정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진짜 흑막인 티모시의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마이애미에서 한 꼬마의 생명을 구하고, 그 대가로 그의 아버지로부터 코카인을 구매해 큰돈을 번다는 황당한 시작부터 엉망입니다. 부유한 의대생이 코카인에 거금을 투자해 돈을 불리려 했다는 설정도 비현실적이고요. 이런게 진상인 작품의 완성도가 높게 느껴지기는 어렵지요. 에마에 의해 난자당하는 티모시의 최후 역시 예상 가능한 전개였고요.

여형사 아일린 버크가 맡은 개별 사건들, 버트 클링 형사가 이혼 후 다시 아일린과 관계를 맺는 과정 등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많이 삽입되어 있는 점도 의아합니다. 카렐라 형사와 테디의 발렌타인 이벤트처럼 본 사건과 큰 연관이 없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서비스로 보이지만, 이 때문에 분량이 늘어나며 지루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펄프 픽션의 제왕다운 흡입력은 유지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잔혹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는 전개는 몰입감을 줍니다. 아일린이 맡은 세탁소 팬티 도둑이나 간호사 강간범 사건도 그 자체로는 흥미롭고요. "아이스"라는 단어의 중의적인 의미나, 티모시가 권총의 소유주를 속여 핵심 혐의에서 벗어나는 과정 등에는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특히 권총의 실소유자를 피해자로 위장하여 자신이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많이 본 이야기이지만("헤드헌터" 등)잘 써먹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원조인지 여부는 조금 궁금해집니다. 탄도분석이나 탄조흔 검사의 시작 시점을 알면 원조 여부를 추정할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또한 "노상강도"에서 사랑에 빠진 클레어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고, 잘나가는 모델과 결혼했지만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이혼하게 되었다는 버트 클링의 파란만장한 연애사 역시 팬으로서는 흥미로운 요소였습니다. 주변 여성들을 모두 자기 곁으로 끌어들이는 옴므파탈로서의 클링의 모습이 빛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본편 줄거리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팬심으로 점수를 조금 더했지만, 팬서비스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묘사가 가득한 뻔한 펄프 픽션에 불과합니다. 시리즈 최고작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는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드 맥베인의 작품은 역시 초기작 외에는 건질 것이 많지 않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2014/06/23

지구 속 여행 - 쥘 베른 / 김석희 : 별점 2점

지구 속 여행 - 4점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열림원

리덴브로크 교수는 조카 악셀과 지구 속까지 뚫여 있다는 아이슬란드 화산으로 향했다. 우연히 발견한 연금술사 사쿠누셈이 남긴 룬 문자 암호를 해독한 덕분이었다. 현지에서 채용한 길안내인 한스까지 포함한 세 사람은 분화구에서 입구를 발견하고 지구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쥘 베른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열림원의 "쥘 베른 컬렉션" 시리즈 제1권이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제대로 된 번역본으로는 처음 접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초반, 즉 전체 분량의 1/3 정도는 아이슬란드까지의 여정에 집중되어 있고, 지구 속에 들어간 이후에도 지층과 광물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모험 소설로의 정체성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탓입니다. 책 뒤 해설에 따르면 본작은 청소년들을 위한 교양 학습과 오락을 결합한 기획물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연재되었던 잡지명이 "교육과 오락"이었다니, 이런 내용이 된 게 어느정도 수긍은 갑니다.

또한 지나치게 오락가락하는 악셀의 심리 묘사가 반복되는 점도 불만스럽습니다. 실제 모험의 주인공은 오히려 묵묵히 헌신하는 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수나 악셀은 정작 결정적인 행동을 보여주지도 않으니까요.
책의 완성도도 흠잡을 데 없지만, 삽입된 발표 당시의 판화 삽화는 감흥을 크게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시드니 파젯의 셜록 홈즈 삽화와 비교하면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부 아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길을 잃은 악셀과 교수가 목소리의 전달 시간을 이용해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면처럼 과학적 요소가 이야기와 잘 결합된 장면은 꽤 깊은 인상을 심어줍니다. 지구 중심부가 뜨겁지 않다는 가설, 아이슬란드에서 출발해 스트롬볼리 화산을 통해 탈출하게 되는 모험의 루트 또한 꽤 그럴듯하게 짜여져 있고요.

모험소설적인 재미도 실제로 묘사될 때는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길을 잘못 들어 탈진 직전까지 갔던 일행이 지하수, 이른바 "한스천"을 발견하고 생존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지저의 바다 근처에서 마주치는 기묘한 동식물들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왔고 초반에 등장하는 암호문 역시 무척 반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고,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릴 적 읽었던 학습만화 중, 재미도 애매하고 교육적 가치도 크지 않았던 이른바 "뚱딴지"류 학습 만화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학습성을 배제하고 "잃어버린 세계"처럼 정통 모험소설로 구성되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과물은 아무래도 여러모로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2014/06/21

연합함대 - 남창훈, 박재석 : 별점 3점

연합함대 - 6점
남창훈.박재석 지음/가람기획

제목 그대로 일본 연합함대의 시작과 끝을 다룬 전쟁사 서적입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구축된 일본의 연합함대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몰락해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장점이라면, 그동안의 관련 전쟁사 서적이 서양인이 쓴 탓에 외부인의 시각에서 일본 해군을 바라본 내용이 많았던 반면, 이 책은 일본 연합함대 그 자체를 굉장히 상세하게 들여다보았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일본군의 당시 상황을 더 쉽게 알 수 있었으며, 각종 해전 설명 부분에서는 일본군과 미군의 피해 상황까지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흡사 소설처럼 흥미롭게 이야기를 구성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준 점도 좋았고요.

또한 각종 무기(항공기)의 제원, 유명 지휘관들의 소개, 몰랐던 전황이나 일화들이 포함된 것도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산소어뢰가 실제로 당시 대단한 신무기였다는 점, 불침함 "유키카제" 이야기, 일본 본토 항공전에서 자살특공이 아닌 엘리트들로 구성된 항공부대가 존재했다는 것 등은 처음 알게 된 내용이었습니다. 본토 엘리트 항공단은 작품에서 비유된 것처럼 아돌프 갈란드와 그의 마지막 전투 비행단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ME262 같은 신무기도 없고, 패전에 임박한 암울한 상황에서 낙후된 장비로 싸운다는 점에서는 지온 잔당(데라즈 말고 사막 애들)과 유사한 조직이었겠지만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전쟁사 서적으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인데, 지도 등 핵심 도판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저것 뒤섞인 편집도 조금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 중인 "전쟁과 평화" 기획물의 태평양 전쟁 관련 기사들로도 대략적인 이해가 가능한 내용들이라서 지금은 자료적 가치가 다소 떨어지기도 합니다.

아울러 특공 비판글과 같은 논조의 일부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급강하폭격기에서 거의 음속에 가깝게 떨어지는 폭탄 대비, 폭탄 무게로 느려진 기체가 충돌할 때의 충격이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제시했는데, 무게는 속도와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은 갈릴레오 이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더 무거운 것이 더 큰 충격을 준다는 건 당연한 사실 아닐까요? 다소 의아한 주장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전쟁사 서적 중 하나로,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은 충족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현재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긴 하지만, 네이버 등에서 도판을 추가해 다시 기사화한다면 많은 독자들이 유익하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4/06/18

오래된 책들 (4) - 아니메쥬 1987년 3월호

딱히 포스팅꺼리가 없을 때 업로드하려고 모아 놓은, 오래된 책들 이야기 네 번째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책은 도쿠마쇼덴의 애니메이션 전문지 아니메쥬 1987년 3월호입니다. 이 정도면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왠만한 분들보다 나이가 많지 않을까 싶네요.

연식만 놓고 보면 소장도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헌책방을 통해 구입했던 다른 오래된 책들과는 다르게 새 책을 발매 월에 제대로 구입했던 책입니다. 저희 형제가 최초로 구입했던 애니메이션 전문지이기도 했지요.

내용을 훝어보니 당시 개봉했던 "더티페어 극장판"을 중심으로 "왕립우주군"과 기타 세계 애니메이션이 비중있게 소개되는, 그야말로 애니메이션 전문지라 할 수 있는 알찬 구성이더군요. 최초 구입했을 때에는 유럽 애니메이션이 개제된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는데, 지금 보니 참 괜찮다 싶은게 저도 나이를 많이 먹었나 봅니다.

일본어도 모르던 시절에 정말 그림 하나만 보려고 샀던 잡지인데 다시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기분이 묘하네요. 다음번에는 옆에 꽂혀있는 다른 책들도 다시 뒤져봐야겠습니다.

2014/06/17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드디어 최신권까지 따라잡았습니다! 

이번 권에는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한 개를 빼고는 모두 일상계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약간 쉬어가는 느낌도 듭니다. 덕분에 편안한 맛도 나쁘지 않았고요. 반면 추리적인 정교함이나 짜임새는 부족했고, C.M.B에서 기대해봄직한 박물학적인 지식 공유는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도 충분히 볼만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타츠키가 완벽하게 공기화되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타츠키가 "Q.E.D"의 토마에게 첫눈에 반해서 가나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한, 어떻게해도 구제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신라와 정신연령 등 전체적인 수준에서는 마우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탓에 신라하고는 커플로 엮기도 어려우니까요. "Q.E.D"는 그래도 커플링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가끔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등장하는데 "C.M.B"는 점점 꼬마 천재 추리극에 머무는 듯 하여 아쉽습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뜻밖의 보물"

항상 뭔가 사건을 가져오곤 하는 동급생 친구(네코아리였나요?)의 부탁으로, 그의 사촌이 거금을 빌려가 짓고 있는 펜션에 숨어 있다는 보물을 찾는 이야기.

사촌이 펜션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보물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던 아가씨가 그 시골 마을로 귀향했기 때문입니다. 보물의 존재보다는 이러한 사촌의 사업 동기를 밝혀내는걸 좀 더 추리적으로 꾸미는게 좋았을 겁니다. 보물은 그냥 핑계일 뿐, 없어도 바뀔 게 없으니까 말이죠.

또 보물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는 맥락상 부동산 아저씨는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목욕탕 물을 대기 위해서는 수맥을 끊어야 했을 테고, 그러면 언젠가 밝혀졌을 텐데 괜히 이야기만 복잡해졌어요.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잔잔하면서도 유쾌한 드라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으며 C.M.B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 전달 역시 마지막 버섯 이야기가 잠깐 등장하는 것 말고는 없어서 감점합니다.

"백 스토리"

"활피가죽"으로 장인이 만든 가방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맞추는 경쟁을 한다는 이야기.

온갖 지식에는 통달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신라가 패배한다는 드라마가 제법 괜찮은 소품입니다. 그동안 건방진 꼬마 아이라는 인상이었기에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네요.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서 어른들의 결말(가방 판매)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고요. 가죽 무두질 방법과 단테의 신곡에 대한 정보 제공도 마음에 듭니다.

추리적으로는 눈여겨볼 부분이 전무하지만 깔끔한 완성도는 인상적으로, 이번 권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 아침, 8시 13분"

아침 출근길마다 실종된 것으로 알고 있는 여성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

기묘한 상황 설정과 여성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트릭은 나쁘지 않으나, 용의자가 명백한 실종 사건을 연극으로 꾸며서 진상을 밝혀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지만, 그래도 너무 비현실적인 설정이었어요. 게다가 신라에게 의지해서 작전을 꾸미다니 이래서야 경찰은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네요. 실종된 여성의 이름으로 장난친 것도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요. 

이번 권 최악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향목"

향도를 배우는 남성이 유령을 목격한 사건의 진상.

간단한 장난에 가까운 일상계 소품으로 두 개의 수수께끼가 등장합니다. 유령 목격담과 향목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죠.
두 가지 모두 괜찮았습니다. 유령 목격담은 인간 심리를 잘 활용한 드라마인데, 최초 목격담은 거짓이었다는걸 제대로 설명해 주면서 두 번째 목격담의 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향목의 정체도 C.M.B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 전달과 함께 의외의 진상을 밝혀주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사실 이렇게 사용되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딱 한 가지, 두 번째 유령 목격담이 과연 잘 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이 조금 들기는 하나,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즐길 거리가 많은 이야기였어요.

2014/06/16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3 - 게임관 살인사건 : 별점 1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3 - 4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유원지에 놀러간 김전일과 미유키는 일행과 떨어져 지나가던 버스를 잡아탔다. 그러나 버스는 통째로 납치당했고, 승객들은 기이한 생존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최근에는 이상하게 만화만 읽게 되네요. 여러모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튼 간만에 읽은 김전일 시리즈입니다. 발표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제 기준으로는 가장 최신작이죠.

특징이라면 특정한 일련의 사람들을 특정 장소에 모아놓고 펼치는 일종의 '게임'을 다루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를 김전일 시리즈에 결합시켰다는 점입니다. 한창 유행했던 장르로 "큐브", "극한추리 콜로세움", "인사이트 밀", "크림슨의 미궁", "페르마의 밀실", "24시간 7일", "쏘우 1", "다우트", "누가 울새를 죽였나", "라이어 게임", "살해하는 운명카드", "다크 존" 등 관련 콘텐츠도 엄청나게 많은데, 김전일 시리즈답게 게임보다는 추리물적인 접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실패였습니다. 범인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는 탓입니다. 마지막 증언에서 버스가 어두워 일행을 못 찾았다는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일행인 딸이나 바텐더가 버스를 한 번도 훑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될까요? 승객이 열 명도 안 되는데!

또 게임을 벌이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한 동기인 100억의 유산도 그다지 와닿지 않습니다. 거액이기는 하지만 외딴 곳에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춰 놓고 살인 게임쇼를 벌일 정도의 재력과 노력이라면 딸에게 전해주기에 충분했을텐데, 뭐 하러 사람까지 죽이는지 모르겠거든요. 이보다는 사람을 고용해서 그냥 한 명씩 교통사고 같은 걸로 죽이는 게 훨씬 쉽고 싸게 먹혔을 겁니다.

그리고 게임을 벌이는 이유가 밝혀지다 보니, 내용도 어처구니 없어져 버립니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 중 2명을 원하는 순서로 살해하기 위해서라면,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게임쇼를 벌이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요새같이 검시가 발달한 상황에서 목격자 증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엇보다도 바텐더와 딸까지 끌어들인 이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참여한 피해자들의 관계만 조사해도 동기가 손쉽게 들통날테니까요. 아니,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무기 마담 주변 인물의 조사만으로도 드러날 동기였기에 애초부터 게임쇼 자체가 불필요했던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 재미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첫 번째만 게임이고, 두 번째의 고리 풀기, 세 번째의 컵라면과 마지막의 에티켓은 게임이라 부를 수도 없으니까요. 또 에티켓에서의 와인 라벨은 와인에 취미가 없어도 알 수 있는 정보인데 너무 1차원적으로 접근한 듯 합니다. 첫 번째를 제외한 모든 게임에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고요.

물론 아주 건질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트릭과 잘 결합된 첫 번째의 네 자리 숫자 맞추기 게임은 나름 괜찮았습니다. 두 번째 컵라면 이야기에서 컵라면 밑바닥에 열쇠가 없는 상황을 추리에 접목시킨 것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첫 번째 게임의 경우 재미있는 추리일 뿐 '증명할 수 없다'는 큰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 장점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기대 이하였고, 추리적으로도 별로이며 마지막 결말까지 용서하기 힘들 정도로 억지스러워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군요. 별점은 1점입니다.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의 재미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김전일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시켜준 망작입니다. 돈 주고 사지 않은 게 다행일 뿐입니다.

2014/06/14

청설모의 자동차카툰 (cartoon) 2 - 청설모 : 별점 3점

청설모의 자동차카툰(cartoon) 2 - 6점
청설모 지음/이미지프레임(길찾기)

"청설모의 자동차카툰(cartoon)"

만화가 청설모 박상준 씨의 자동차 만화 두 번째 권.

국산차 중심이라는 장점은 여전합니다. 이번에도 아시아 피아트, 기아 브리사, 현대 스쿠프, 기아 콩코드, 쌍용 칼리스타, 지엠코리아의 레코드 1900, 대우 로얄살롱, 기아 스포티지, 현대 액셀 등 다양한 국산차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기아 스포티지 출시에 얽혔던 기아차 엔지니어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 대우 로얄 시리즈의 흥망성쇠 등은 정말 재미있더군요. 로얄 시리즈가 오랫동안 브랜드를 유지하면서도 기술 개발에 소홀했다는 등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많았고, 작가 특유의 디테일한 그림과 깨알 같은 유머도 여전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허나 전편보다는 만족도는 조금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첫 권과 비교하면 새로움이 떨어져 조금 식상하게 느껴진 탓이 큽니다. 유사한 내용과 개그가 많으니까요. 또 데포르메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던 전편과는 다르게 몇몇 차는 하나의 일러스트처럼 정성 들여 그린 이미지를 이야기 말미에 배치하는데, 이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정성 들여 그렸다는 것은 알겠지만 재미도 없고 구태의연한 스타일의 그림이기 때문이에요. 그냥 깔끔하게 실차를 묘사하고 상세한 특징만 덧붙여 주는 게 더 좋았을겁니다.

아울러 전권에서도 단점으로 지적했던 요소도 여전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실차의 상세한 이미지와 제원이 소개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최훈의 삼국전투기의 장료 캐릭터를 기아차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사용한 점입니다. 현대차는 현대의 당시 회사 심볼을 캐릭터화했고 대우는 "로열"이라는 브랜드에서 따온 독창적인 갑옷 기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기아와 장료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뜬금없어서 볼 때마다 어색합니다. 불필요한 정보들, 예를 들자면 소개된 차의 국내에 존재하는 실차 취재기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그래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만원이 넘는 가격은 부담스럽지만 풀컬러인 만큼 납득할 만 합니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06/12

오무라이스 잼잼 3 - 조경규 : 별점 2.5점

오무라이스 잼잼 3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단언컨대 현재 시점에서 국내 일상계 음식 만화 중에서는 최고인 "오무라이스 잼잼"의 세 번째 권입니다.

작가의 일상생활에서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음식으로 전개되는 과정이 독특하다는 특징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이번 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딸아이의 귀여운 아는 척에서 녹차 라떼로 넘어가고, 처음 중국에 발을 디뎠을 때 배고픈 가족을 위해 방황하던 경험이 게맛살로 넘어가는 등의 이야기가 많거든요. 편안하면서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그림도 여전해서 마음에 들고요.
소개되는 요리들도 언제나처럼 엄청나게 맛있게 그려집니다. 그 중에서도 따뜻하고 몰캉몰캉하면서도 달콤해 보이는 전설의 중국 디저트 "삼불점"은 꼭 먹어보고 싶네요.

그러나 과연 공짜로 볼 수 있는 웹툰을 만 원 넘는 거금을 지불하여 구입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사용자에게 웹툰보다 더한 가치를 주기 위한 노력은 엿보이지만, 지난 권들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정보들(단순한 맛집 탐방이나 작가 아이들 사진 같은)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레시피나 괜찮은 인터뷰가 실려 있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는 많이 부족하죠.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웹툰을 안 보고 단행본만 본다면 별점 4점도 충분한 작품인데, 현재의 형태는 확실히 애매합니다. 웹툰을 단행본화 할 때의 추가적인 가치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2014/06/10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24권 리뷰입니다. 최신권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25권이 나와있네요.

여튼, 24권에는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잔잔한 일상계 없이 네편 모두 사람이 죽는 등 심각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점은 동시기 발표된 <Q.E.D 45>와 같군요. 작업 당시 작가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수록작 2편의 <Q.E.D>, 3~4편의 <C.M.B>로 목차도 굳어져가는 느낌이네요.

전체 별점은 반올림해서 2.5점. 두편은 괜찮고 두편은 평범했습니다.

상세한 에피소드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니쇼테이>
"니쇼테이"라는 실존했던 기묘한 건축물을 재현하는 괴짜에 대한 이야기. 진상은 과거 있었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였는지를 밝히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쇼테이를 재건하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아서 본 줄거리와 그렇게 잘 연결된다고 볼 수 없고 내용도 작위적인 부분이 한가득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니쇼테이 재건은 단지 "돈을 물쓰듯 쓰는"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라도 상관없는 것이니 별 관계도 없고 진범이라는 이모부부가 구태여 그 건축물안에서 여보란듯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당쵀 없으니까요. 니쇼테이라는 건축물에 대해 접한 작가가 기묘한 부분이 좋아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짓지 못한 느낌으로 이상의 독특한 시를 주제로 추리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까지는 좋았으나 그 결과물은 실제 시와는 유기적으로, 논리적으로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희대의 졸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래도 아예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니쇼테이는 지금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영화 세트"로 허가를 받았다는 것을 추리해내어 곁가지 진상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 하나만큼은 괜찮았고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의 전달 측면에서도 니쇼테이라는 건축물을 알게 해 주었다는 점은 좋았으니까요. 관심이 생겨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는데 확실히 신기하긴 하군요.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충분히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여튼, 별점은 2점입니다.

<다이아몬드 도둑>
미술관에서 사라진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찾는 이야기.
도둑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전개도 깔끔하고 진상도 그럴듯한 작품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진범이 새롭게 드러나는 반전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신라가 진범을 깨닫게 되는 사소한 범인의 실수가 저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더군요. 자포자기를 했을 수도 있고 다른 경로로 명확하게 진품이 아니라는 정보를 이미 입수한 상태일 수도 있는데 너무 지레짐작이 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확실히 깔끔해서 이번 권에서 베스트로 꼽을 만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레이스>
아버지와 삼촌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내용만 놓고보면 추리물로 보기 어려운,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딱히 재미가 없어요. 막장드라마의 제국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 정도야 뭐 장난 수준이니까요. 총을 쏘았던 경비원의 증언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너무나도 쉬운 전개라는 것도 불만이고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옷장 속의 유령>
C.M.B가 아닌 M.A.U로 제목이 달려있는, '암시장의 마녀' 마우가 주인공인 사건목록 번외편.
마우가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강령회 도중 쇠사슬로 묶인 옷장 안에서 영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

조작된 랩소리라던가 강령회에서 들려왔던 유령의 목소리, 어떻게 밀실과 같은 옷장 문을 열었는지 등 트릭만큼은 풍성했습니다. 대저택, 강령회, 밀실 등의 고전적인 설정과 맞물려 잘 짜여진 고전 본격물을 즐기는 기분이 들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괜찮았어요. 구태여 이런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설정상의 헛점과 랩소리, 빗을 이용한 유령 목소리 등이 실제 가능했을지와 같은 장치 트릭의 문제점도 고전적이라 저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마우를 주인공으로 또 스핀오프를 벌려놓았냐는 것입니다. 솔직히 마우라는 캐릭터는 너무 만화적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계속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것도 의외에요. 차라리 타츠키를 더욱 잘 활용하면 좋을텐데 말이죠. 이래서야 진히로인은 마우라고 해도 할말 없겠어요. 이 작품에서 마우의 활약은 나쁘지는 않지만 "고전적"이라는 설정에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니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토마가 주인공이었으면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4/06/09

Q.E.D 큐이디 4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큐이디 Q.E.D 45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큐이디 4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46권부터 읽어서 45권을 찾아 읽었는데 어느새 47권이 나와버렸네요... 

45권은 Q.E.D의 전통이라고 해도 무방한 스타일 -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며 한편은 강력 사건 범죄물, 다른 한편은 잔잔한 일상계 - 에서 벗어났다는게 특징입니다. 수록작 두 편 모두 살인 사건이 등장하거든요.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학교와 학생이 무대인 전형적 Q.E.D 일상계 설정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러나 솔직히 아쉬움이 더 큽니다. Q.E.D만의 장점이자 김전일, 코난 등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장점은 풋풋한 일상계 이야기들인데 그런 맛을 느끼기 힘들었으니까요. 고등학교가 무대일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합니다. 앞으로는 일상계 쪽으로도 신경을 더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별점은 대충 반올림해서 2.5점 정도. 그냥저냥한 평작 수준이었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금성"

일종의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데,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옷장 거울을 이용한 핵심 트릭 외에는 논할게 없습니다. 트릭도 본편에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아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동기도 살의를 품을 만큼 설득력있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또 태양계의 여러 행성에 대해 설명해주는 과학만화가 본편과 함께 전개되는데,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작품과 잘 결합되어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범인이 이 책 때문에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편 살인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지도 않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잘 알 수 없거든요. 제목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 뒤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주제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는게 좋았을겁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첫사랑"

모두의 여신이라 할 수 있는 여학생과 사귀게 된 뒤 살인사건에까지 휘말리게 된 동급생을 도와주는 토마의 이야기.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과 살인사건을 결합시킨 전개는 그럴듯하지만, 살인 사건이 등장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기본 설정이 이전 Q.E.D 초창기의 농구부 주장 - 검도부 부장 - 신문부 기자 친구의 삼각관계 설정과 굉장히 흡사한걸 보면, 작가 스스로 이전 이야기의 간단한 "장난"을 "살인"으로 업그레이드해서 변주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이 정도면 좀 달라보이겠지?하는 심정으로요. 하지만 고교생이 장난을 치는 것은 그럴듯해도 살인을 저지르는건 지나쳤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풍성한 편이라는건 장점입니다. 트릭도 두 가지나 등장합니다. 하나는 건너편 옥상에서 시체를 던지는 장치 트릭이고, 또 하나는 시체 바꿔치기 트릭입니다. 다만 이 중에서 시체 바꿔치기 트릭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시체를 잠깐 들춰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일 뿐더러, 변수가 너무 많은 탓입니다. 예를 들어 핸드폰으로 사진 정도는 찍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시체 주변에서 자리를 비울 것이라는 것도 확신하기 어려우며, 짧은 시간 동안 눈치채지 못하게 바꿔치기 하는 것도 과연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베란다의 통로가 이미 제시된 만큼, 경찰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졌으리라 생각되기도 하고요. 현장 감식을 통해 시체 이동 경로만 알아내면 게임은 끝이니까요.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조금 부족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에서 46권의 만담가 사건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다음 권 이야기를 앞서 설명해주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단행본에서 추가된 부분일까요? 아니면 앞부분의 내용을 작가가 미리 구상해 놓고 반영한 것일까요? 궁금하네요.

: DSmk2님께서 댓글로 알려주신 내용 덧붙입니다. 현재 Q.E.D.는 일본 잡지에서 월간소년매거진과 월간소년매거진 플러스라는 두 잡지에서 연재 중인데, 45권에 들어간 "첫사랑"과 46권에 들어간 "실연"은 각각 월간소년매거진 2013년 7월호(6월 6일 발매), 월간소년매거진 플러스 06호(6월 20일 발매)라서 동시기 작업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또 이 두 에피소드는 제목에서부터 일본어로 初恋, 失恋이라 딱 보면 느낌이 오는데, 한국말로 해놓으니까 느낌이 안 사는 게 아쉽다고도 하셨고요.

"실연"에서 아야메라는 캐릭터가 나와서 '실연'이라는 결말을 맞게 만든 것은 불필요한 장치로 보인다고 리뷰를 남겼는데, 제목에서부터 이어지도록 한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DSmk2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14/06/08

오래된 책들 (3) - 이브

악녀 소설의 바이블 같은 작품. 고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본입니다. 역시나 본가에 오랜만에 갔다가 찍어보았습니다.

10여 년 전, 헌책방 헌터 생활 중 정말 어렵게 구한 책으로 보관 상태도 양호한 보기 드문 책이라 자부합니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블로그 라이프를 할 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올렸다가 꽤나 고가에 양도 제의를 받기도 했었죠.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알라딘 중고가는 2,500원이네요. 구하기 힘든 것과 작품의 가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 그만큼 좋은 책이 아니라는 뜻도 되겠고요.

하도 오래전에 구한 책이라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다시 읽고 리뷰나 올려봐야겠습니다...

2014/06/07

오래된 책들 (2) - 드래곤과 조지

본가에서 찍어온 오래전 구입한 책 이야기 두 번째 소개작은 "드래곤과 조지"입니다.

고든 R 딕슨의 판타지 소설로, 추억의 "그리폰 북스" 레이블로 출간되었던 책입니다. 애니메이션 "용이여 불을 뿜어라"의 원작이기도 하죠. 

1999년 출간되었는데, 제가 구했던 2005년 당시 이미 절판 상태였으니 인기가 없어도 정말 엄청나게 없었던 작품이겠죠. 그래도 지금은 매니아 분들 사이에서 나름 가치를 인정받는지 중고 시세는 약 10,000~20,000원 정도(최상 기준)로 형성되어 있긴 합니다. 대단한 가격은 아니고,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수준이지요. 뭐,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다 그렇지만요.

2014/06/05

군화와 전선 1 - 하야미 라센진 / 성동현 : 별점 4점

군화와 전선 1 - 8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 성동현 옮김/이미지프레임(길찾기)

곰의 신 보로스의 가호를 받는 러시아 마녀 바셴카와 NKVD 장교 나디아가 컴비를 이루어 동부전선에서 여러 활약을 한다는 내용의 밀리터리 판타지 옴니버스 만화입니다. 작가의 전작 "육해공 대작전"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주저 없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몇몇 영화 외에는 제대로 접하기 힘들었던 2차대전 당시의 소련군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라는 점도 특이하지만, 주인공 중 한 명이 "마녀"라는 점은 정말 최고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마녀 바셴카 덕분에 여러 가지 판타지 요소들이 어우러지면서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지거든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러시아의 산타클로스인 "데트 마로스"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독일군에게 납치되어 하루 만에 러시아 전역을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 심문받는 데트 마로스를 구해낸다는 내용이지요. 제3제국의 SS 소속 마녀 디케 베르타의 등장도 상당히 신선한 설정이었고요.

아울러 작가의 장점인 정감 넘치는 캐릭터들, 특유의 펜선으로 구현한 꼼꼼하면서도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작화도 마음에 듭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케 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데에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밀리터리 마니아를 매료시킬 만한 디테일도 여전하고요. 각 에피소드별로 3꼭지 정도 할애하는 컬럼 "나사의 속삭임"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 컬럼들만 따로 단행본이 출간되기를 바랄 정도로요.

그러나 실존했던 전쟁을 다룬 작품인 만큼 잔인한 묘사도 제법 등장합니다. "강철의 소녀들"만큼은 아니지만,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묵직한 이야기도 몇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단점은 아니지만 조금 기대와는 달랐어요. 또 굳이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지만, 당시 소련군을 너무 좋게만 그린 점은 약간 불만이었습니다.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고로도크 쪽이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결론을 내리자면 추천작입니다. 만화로서의 재미와 더불어 지식욕까지 충족시켜주는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꼼꼼한 번역과 한글화도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었고요. 이런 책을 사지 않으면 무슨 책을 사겠습니까? 별점은 4점입니다.

2014/06/02

탐정사전 - 김봉석, 윤영천, 장경현 : 별점 1.5점

탐정사전 - 4점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프로파간다

제가 어렸을 적,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출판사였던 해문은 "세계의 명탐정 50인"(이후 일본 탐정을 뺀 44인으로 축약 재간)이라는 책을 출간했었습니다. 명탐정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 퀴즈를 한 개 선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었죠. 이런 핵심 내용 외 일러스트, 수록된 여러가지 추리 관련 정보도 인상적이었고요. "스포일러"라는 점에서는 비난받을 수 있지만, 추리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추리 키드에게는 정말로 좋은 선물 같은 책이었습니다. "세계의 위인은 명탐정"이라는 동일 구성의 유사 도서가 연이어 출간되었던 걸로 보면 꽤 인기를 끌었던 것 같네요.

이 책 "탐정 사전"의 출간 정보를 들었을 때에는 "세계의 명탐정 50인"의 현대적인 재구성이 될 걸로 예상했습니다. 스포일러 문제 및 저작권 이슈로 추리 퀴즈 부분이 빠지더라도 그만큼 잘 만들어진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할 수밖에 없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출간과 거의 동시에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솔직히 실망이 큽니다. 이 책이 대체 누구를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는지 알 수가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 문학 초보자를 위한 책이라면 정말로 추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엄선하여, 그중 등장한 탐정들을 중심으로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애호가를 위한 책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탐정을 소개하거나, 기존에 소개된 탐정이라도 다양한 정보를 충실히 실었어야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뷔페에서 맛이나 코스 구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음식을 얹어놓은 쟁반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일단, 어떤 기준으로 탐정들이 선정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탐정을 담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선정 기준은 막연하게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출판물이라면 판매 부수나 시리즈 권수, 방송물이라면 시청률이나 방영 횟수, 또는 역사적 의의 등의 기준이 있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솔직히 선정 기준은 그냥 저자들의 팬심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IWGP"의 마시마 마코토, "트릭"의 야마다 나오코와 우에다 지로, 니시오 이신의 이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일본의 3대 탐정 중 하나인 가미즈 교스케, 다카기 아키미쓰의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우치다 야스오의 시나노의 콜롬보 다케무라 이와오나 경시청의 오카베 경부,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도쓰가와 경부 등을 제치고 소개될 만큼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꼭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걸작에서 활약했으며 추리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탐정들 중 소개되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프렌치 경감, 커크릴(콕크릴) 경감, 방코랑은 그렇다쳐도, 대체 뤼뺑은 왜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명 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기엔, 그 외의 황금기 명탐정은 거의 수록되어 있으니까요.

"차일드 44"의 레오 데미노프와 같은 스탠드얼론 작품의 주인공이 포함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작품이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레오 데미노프가 전통적인 ‘탐정’ 역할에 충실한 인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소련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평가하고 싶었다면, 시리즈 캐릭터인 아르카디 렌코가 더 타당했을 것입니다. "토로스 & 토르소"의 헥터 라시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즈라고는 하나 국내에선 한 권만 소개되어 있어 스탠드얼론으로 보이고, 탐정 같지도 않은 인물인데 뤼뺑마저 빠진 명단에 포함되었다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탐정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가 실려 있는 부분은 어이없음의 극치입니다. "지뢰진"의 이이다 쿄야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요. 굳이 추리만화에서 뽑고 싶었다면 "Nervous Breakdown"의 두 컴비나 "절대미각 식탐정"의 다카노 세이야를 꼽는 게 나았을 겁니다. 완성도를 떠나 최소한 ‘추리 만화’이긴 하니까요. 대중문화적 아이콘으로 넣고 싶었다면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가 더 적절했을테고요.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절판본이나 국내 미출간작에 등장한 탐정을 소개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카렐 차페크의 메이즈리크 시리즈를 소개하며 국내 절판이라 언급했는데, 이런 식이면 독자보고 어쩌라는 건가요? 커트 캐넌 시리즈도 한 권만 출간되었는데, 현재 절판입니다. 뒤렌마트의 베르라하(베를락) 경감 시리즈, 모돌이 탐정도요.

캐릭터별 글 수준이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사전이라면 구성 면에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캐릭터는 단순히 정보만 나열하는 반면, 어떤 경우는 작품 분석과 작가 소개까지 이어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 항목도 많습니다. 반 두젠(밴 듀슨) 교수의 경우, '생각하는 기계'라는 별명과 대표작 "13호 독방의 문제" 언급만으로 그치는데, 이런 내용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개 작성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주요 작품과 그 속에서의 활약상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에요. 

그 외, 탐정들의 배열도 시대순이나 장르순이 아니라 이름순이라는 점도 의아했으며 실제 캐릭터가 묘사된 일러스트조차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건질 만한 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결과물 자체는 아쉬웠지만, 고전 본격물부터 하드보일드, 현대물, 대체역사 판타지, SF, 만화, 드라마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범위는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하라 료의 사와자키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게 읽었고, 미야베 미유키의 스가무라 사부로 시리즈, 센도 타카시의 "폐허에 바라다"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로버의 악당들"의 빌 파믈리, 토니 힐러만의 인디언 탐정 조 리프혼과 짐 치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Q.E.D"의 토마 소같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의외로 아는 사람이 적은 탐정 소개도 반가왔던 점입니다. "Q.E.D" 소개글은 작품의 매력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크게 느껴졌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괜찮았던 몇몇 항목에 비해 전체적인 만족도가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방향성이 없는 기획과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정보들이 대다수인 탓이지요. 30여 년 전 읽었던 "세계의 명탐정 50인"과 비교해 특별히 나은 점도 없고요. 가격까지 고려하면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덧붙여 눈에 띈 몇 가지 오류를 정리해봅니다. 엉클 애브너 항목에서 "나보테(나봇)의 포도원"을 "나보프의 포도밭"이라 오기한 부분, "차이나타운" 작가 소개 영역에서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표기된 점(각본가가 언급되었어야 함), 유불란의 후속작이 없다고 언급한 점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