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살림 |
업계 최고의 헤드헌터 로게르 브론은 사실 자신에게 찾아온 고객의 정보를 이용하여 그들이 가진 귀한 그림을 훔치는 도둑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익이 시원치 않아 고민하던 그는 GPS회사 CEO로 영입대상인 클라스 그레베가 루벤스의 그림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엇다. 곧바로 그림을 훔치기 위해 클라스 그레베의 집에 잠입한 로게르는 그림을 훔쳐내는데 성공했는데, 그의 귀에 아내의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보기 힘든 북유럽,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범죄 스릴러 소설입니다. 도서출판 살림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읽게 되었네요. 리뷰에 앞서 살림 출판사와 담당자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노르웨이 작품이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 형식이기에 북유럽이나 노르웨이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어요. 작가 이름과 무대만 바꾸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요.
물론 '전형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잘 먹히는 요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 편입니다. 그야말로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에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로게르 브론이 점점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 숨 쉴 틈 없이 진행되며, 사건의 진상이 중반부에 밝혀짐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로게르 브론의 두뇌 싸움이 살벌하게 펼쳐져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거든요.
이러한 스릴러적 속성과 함께 정교하게 짜인 구조는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전개 도중에 별것 아닌 것처럼 던져진 단서들이 모두 의미가 있고,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두뇌게임도 적절하게 구성되어 결말도 무척 깔끔했습니다.
또 로게르 브론이라는 초엘리트 헤드헌터이자 미술품 절도범이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잘 형상화한 점도 작품의 재미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시내 거리를 바라보며 "이것이야말로 산업노동자들을 짓누른 서비스업의 승리, 주택 부족 현상을 덮어 버린 디자인의 승리 그리고 현실을 가린 허구의 승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만나는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홍대 거리에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 "나는 내 시각대로 삶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 그러니까 파울로 코엘료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솜씨가 꽤 좋았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조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짜증만 안겨주는 그런 식 말이다."라는 대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헤드헌터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심문 기술, 미술품 절도 행각에서의 세세한 묘사는 굉장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반면 단점도 확실합니다. 클라스 그레베가 로게르를 옭아매는 이유가 영 현실성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로게르가 변심했지만, 클라스 그레베의 능력이라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우연에 의지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초·중반부 두 번의 위기(우베의 외딴 은신처와 도로에서의 교통사고)에서 로게르가 살아남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마지막 반전에서 로게르가 클라스 그레베를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클라스 그레베가 전날 디아나를 찾아갔다는 점과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기초한 것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이야기 구조 자체가 너무 의도적으로 짜였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앞서 정교하게 짜인 구조가 좋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완벽한 구성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몇몇 단서는 너무 노골적으로 배치되고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게르 브론이 그림 도둑이라는 설정은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디아나의 불륜을 눈치채는 계기가 된 것 외에는 딱히 필요한 설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잘 짜인 두뇌 싸움이 서스펜스 스릴러와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별점은 3점. 이번 휴가 때 챙겨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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