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 - 금태섭 지음/궁리 |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검사 근무 후, 유학을 거쳐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저자의 법률 수필집입니다. 신변잡기스러운 글이 아니라 철저하게 판례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참여했던 국내 판례가 많이 실려 있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특히 히로뽕 강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까지 있었습니다. 얼굴이 비슷한 형제라는 점을 이용한 나름의 트릭도 등장하는데, 조금만 다듬으면 꽤 그럴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습니다.
가끔 화제가 되는,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의 여성을 구해줬는데, 여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상대방 남성이 폭행죄로 고소한 상황'이 저자의 실제 경험담으로 실려 있다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항상 궁금했었는데 현실은 역시 냉정하더군요. 상대 여성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합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친구인 서울대 법대 출신 사법연수생마저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고 하니, 평범한 일반인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국내 판례뿐만 아니라 유학파답게 해외 판례도 실려 있는데, LA 자신의 슈퍼에서 미성년자를 사살했던 두순자 사건이 자세하게 소개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설명되는 피상적인 텍스트와 실제 사건 간의 괴리감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서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라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그 외에도 미란다 원칙의 유래와 그 후일담, 그리고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탄산음료처럼 상큼한 느낌을 주는 미란다가, 사실은 인간쓰레기 연쇄 강간범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하지만 이러한 판례들이 책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하다는건 아쉽습니다. 개인적인 생각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필집이기도 해서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또한 법에 대한 비판보다는 긍정적인 요소만 강조하는 것도 편향된 시각이었다 생각되고요.
그래도 장점이 확실한 책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추리소설들의 명장면이 각 항목 서두에 실려 있다는 점도 반가웠습니다. 특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인용된 점이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만, 법률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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