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갤리온 |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유명 변호사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가 직접 맡았던 11건의 기막힌 사건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논픽션. 현실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욱 놀랍다는 명제를 잘 보여줍니다. 책에 실린 모든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막힌 이야기들이거든요. 혼인 서약을 지키기 위해 악처의 잔소리를 40년이나 참아온 존경받는 의사가 아내를 도끼로 무자비하게 살해한 사건, 일본인 사업가 타나타의 금고를 털려다 오히려 범죄 조직 보스까지 엮이며 모두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 교통사고로 폐인이 된 동생을 살해한 누나의 이야기 등이 그렇습니다.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보다도 더 놀라운 이야기로 설정도 극단적이고 묘사 역시 끔찍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픽션이라 의심될 정도였습니다.
그중에서 추리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 세 가지를 꼽자면, 첫 번째는 ‘고슴도치’ 편입니다. 범죄자들로만 이루어진 가족에서 유일하게 똑똑했던 주인공 카림이 뛰어난 작전으로 형을 무죄로 만드는 재판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작전이 대단히 교묘하지는 않지만, 형제들의 얼굴이 비슷하다는 점을 잘 이용한 현실적으로도 와닿는 내용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변호를 진행한 저자도 사실 썩 양심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손해 본 사람이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만족한 사건이었겠죠.
두 번째는 콜걸로 일하는 여대생 살인 사건 재판을 다룬 ‘서머타임’입니다. 제목 그대로 서머타임을 이용해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무죄로 만드는 극적인 재판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검찰 측의 결정적 사진 증거, 즉 용의자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 찍힌 사진에서 손목시계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은 한 편의 영화 클라이맥스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용의자가 여대생을 돈으로 산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점은 문제지만, 이후 이혼 소송을 당하는 등의 결말이 나오니 나름대로 죗값을 치른 셈이겠죠?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칼과 야구방망이로 협박하던 네오나치 양아치를 단 한 번의 반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정체불명의 인물 변호를 다룬 ‘정당방위’입니다. 스티븐 시걸 영화에서나 봄직한,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두 명의 건달을 쓰러뜨린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는 도입부부터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이 인물을 위해 국제적인 조직이 움직이며 결국 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가 정체를 숨긴 채 또 다른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반전이 더해지면서 이야기가 끝을 맺죠. 현실 세계의 "자칼"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놀라운 사건들이 가득해 읽는 재미도 뛰어나지만, 법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모든 범죄가 일률적으로 같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지기도 하고요.
재미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2권이 출간되어 있던데, 빨리 구해서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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