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SF 소설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SF 소설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0/07/28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 아이작 아시모프 / 김선형 : 별점 3.5점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 6점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선형 옮김/오멜라스(웅진)

SF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여러 에세이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죠.

1, 2부에는 과학소설 및 창작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에세이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적절한 유머를 갖추면서도 아시모프 자신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이 잘 녹아있어서 정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솔직히 작가의 소설보다도 재미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과학/SF) 소설의 창작 비법'에 대한 에세이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예로 들며 설득력있게 풀어가는 플롯에 대한 이야기

플롯은 곧 소설이 아니다. 플롯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드려면?
1. 아주 자세하고 복잡한 플롯을 만들어서 이야기 구축 작어에 많은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도록 한다.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도록 하는 것.
2. 극단적으로 플롯 자체를 폐기하고 작은 에피소드만 줄줄 늘어놓는 것.
3. 명쾌한 플롯의 제작
a. 플롯을 사용하여 유머나 풍자를 도입한다.
b.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통찰하는 방법으로 플롯을 사용한다. '등장인물의 성격창조'가 중요함
c. 어떤 사상을 개진하는 수단으로 플롯을 이용한다. 인생관이나 세계관 등.
"아시모프의 SF매거진" 1989.6
라던가 훌륭한 SF 작가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한 친절한 설명
1. 경력을 쌓기 위한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 - 작문법 등의 학습 / 거장의 작품에 대한 꼼꼼한 독서 등
2. 과학지식을 쌓아야 한다.
3. 글을 쓰면서 배워야 한다.
4.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아시모프의 SF매거진" 1979.3
등 거장의 비법을 알려주는 보석과도 같은 에세이가 듬뿍 실려있습니다.

또한 과학 / SF 소설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는데 인상적인 것을 하나 소개하자면

나는 퇴고하지 않고 초고를 최대한 빨리 쓴다. 그 뒤 다시 읽어보며 오자, 잘못된 문법 등을 고친다. 다음에는 두번째 원고를 다시 써나가면서 떠오르는대로 부분적으로 글을 수정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이 어떤 식으로 글을 쓰냐고 묻기에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두 번씩이나 타이핑을 한단 말이야? 처음부터 안 틀리고 타이핑하면 되잖아"
거장들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만 일반인하고는 참으로 다른 사고방식이죠?

이러한 에세이 이후 마지막 3부는 중, 단편 15편이 실려있는데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아시모프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점은 좀 들쭉날쭉하기는 하지만요.

이외의 국내 작가들의 서평과 이글루스 회원이시기도 한 잠본이님의 무지막지할 정도로 자세한 연표 역시 마음에 꼭 드는 부분이었어요. 아이작 아시모프가 '베이커 스트리트 일레귤러즈' 멤버였다는 것이라던가 AIDS로 사망했다는 것은 정말 처음 알았습니다. 잠본이님의 방대한 지식에도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추리작가'로의 아시모프도 좋아하는데 추리 소설 이야기가 없다는 것 뿐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에세이 부분만으로는 4점 주어도 충분하지만, 전체 평점 2.7점의 3부 중-단편 소설 부분 때문에 약간 감점했습니다. 그래도 워낙에 에세이 쪽이 탁월하기에 과학 / SF 소설 뿐 아니라 모든 장르문학 작가와 독자들이 한번쯤 읽을만한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나저나, "흑거미 클럽"의 다른 에피소드는 물론 다른 추리소설들이 좀 보고싶은데 과연 출간될 수 있을련지도 궁금해지는군요. 추리쪽은, 특히 장편은 별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지는 않지만요...

"칼"

작가가 되고 싶은 로봇 칼을 위해 주인 노스롭이 기술자를 불러 여러 기능을 업그레이드하여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칼이 쓴 작품을 읽고 위기 의식을 느낀 노스롭은 다시 기술자에게 칼을 초기화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

액자 소설같은 구성을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칼이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과 함께 단계별로 칼이 쓴 작품이 소개되고 있거든요. 마지막에 작가가 된 칼이 쓴 작품 "완벽한 정장차림"은 "조지와 아자즐"이라는 아시모프의 시리즈 작품이기도 하다는군요. 아시모프의 유명한 '로봇3원칙'보다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소망이 더 우위에 있다는 주제를 놓고 보자면, 아시모프 스스로 로봇 3원칙과 자기 자신에 대한 풍자와 비평을 담은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쇼트쇼트 단편. 좌우 역전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을 담고 있지만 반전은 말장난 유머입니다. 깔끔해서 볼만하네요. 책 뒤 잠본이님 해설을 통해 포워드 박사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더 웃깁니다. 포워드 박사는 이 작품을 보고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별점은 2.5점.

"낙심"

워게임 시뮬레이션을 다룬 단편입니다. 컴퓨터가 '자신이 정의롭다는 독선'이 없기 때문에, 완벽한 시뮬레이션을 도출할 수 없다는 내용이지요. 풍자가 세련되고 유머러스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환각" 

15살 샘 체이스는 중성자별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려는 에너지 플래닛에 배속된다. 그리고 기이한 환각현상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는데... 

작은 곤충(?)들이 연결되어 거대한 집단 지성을 이룬다는 설정과 텔레파시를 통한 의사소통이라는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기계에 대한 맹복적인 신뢰가 좀 거슬리기는 하는데 저연령을 타겟으로 한 것 같기에 납득할 만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불안정성"

빅뱅의 시작에 대한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긴 쇼트쇼트입니다. 그냥저냥 평범한 소품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2.5점.

"신이 되려 한 알렉산더" 

컴퓨터 천재 알렉산더가 뛰어난 컴퓨터 부세팔러스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주식 및 각종 사회 현상을 예측한다는 아이디어는 새로울게 없지만, 부세팔러스의 능력이 너무 막강하여 과거에 없었던 '변수'가 된 바람에 마지막에 다운된다는 결말은 신선했어요. 부세팔러스가 알렉산더를 대치하려는 야망을 품는다는 결말은 어땠을까 싶은데, 그럼 너무 뻔했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협곡에서" 

화성 협곡에 사는 화자가 보낸 편지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일상계 SF라고 할 수 있겠죠. 화성 협곡이 장래 화성 개발의 미래가 될 거라는 내용은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되어 향후 개발 과정에 대한 높은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재미는 없었어요. 드라마가 없으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지구여 안녕"

정착지라 불리우는 우주 식민지 주민이 지구에 던지는 경고, 즉 정착지 자체가 머나먼 우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시스템의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너무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송가"

화성에서의 하이퍼스페이스 실험을 원하는 지구정부가 반대파 화성 거주민을 설득시키기 위해 프랑스 국가를 이용한다는 황당한 내용이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유머러스한 작품입니다. 

화성 거주민이 프랑스 출신이 많다던가, 프랑스 국가가 승리의 이념을 담고있다던가 하는 식인데 결말은 '라 마르세예즈'를 이용한 말장난 '마르스 세이 예스!'로 끝나긴 하지만 위트가 넘쳐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5점.

"페그후트와 법정" 

미국 속담을 이용한 말장난 유머로 작품이라기 보다는 짧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만담선집에 수록된 작품이네요. 영어에 능통하다면 즐길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왠지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류 불허" 

컴퓨터 - 워드프로세서가 작가의 글쓰는 법을 터득하여 창작 기계로 거듭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칼"과 동일한 소재이지요. 

그런데 전개가 평이합니다. 기계가 학습을 통해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케케묵은 설정의 변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결말도 무덤덤했고요.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키드" 

산아제한이 있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죠. 하지만 이 작품은 아시모프 작품 답게 산아제한의 해결책으로 로봇형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결말에는 서늘한 반전까지 등장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SF작가로서의 아시모프와 추리작가로의 아시모프가 공존하는 작품이랄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우주공간의 나라들 : 현대의 우화" 

적대국가의 사람들로 짜여진 지구의 에너지원 핵심 조작 설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교훈적인 우화입니다. 그런데 너무 교훈적이라 재미도 없고 작품으로 보기도 민망했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칩퍼의 미소" 

타인의 생각을 조작할 수 있는 특수계층 칩퍼에 대한 짤막한 스릴러입니다. 두 칩퍼 중 더욱 뛰어난 능력자를 골라야 하는 테스트가 이야기의 핵심인데,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는 않더군요. 회사의 지위보다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의 여성과 사귀게 된다면 별로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죠. "스캐너즈" 정도의 피튀기는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설득력을 좀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골드" 

컴퓨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자칭 작가라는 러보리언이 컴퓨드라마 제작자 윌라드를 찾았다. 자신의 작품 "하나에 셋"을 제작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하나에 셋"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함께 컴퓨드라마 제작이 펼쳐지는데...

휴고상 중편 부문 수상작. 컴퓨드라마는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완벽한 풀3D 애니메이션 제작을 의미하는 듯 한데, 시간을 앞서간 아시모프의 빛나는 발상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솔직히 상을 탈만한 작품인지는 의문입니다. 번역자 해설에 따르면 세속적 하류 문화로 취급받는 장르 문학을 불멸로 만들기 위한 갈망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아시모프 정도 되는 지위의 작가가 이러한 갈망을 표현한다는 것이 좀 억지스러워 보였습니다. 제가 SF팬이 아니라서 그러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고,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친 탓입니다.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게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에요.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겁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었어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도 없고,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 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입니다.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트릭도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것이라서,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들고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성공한 결과물도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 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 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 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묘사도 아주 좋으며,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습니다.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요.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완성도는 더 높은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24/02/10

아이를 빌려드립니다 - 알렉스 쉬어러 / 이혜선 : 별점 2점

아이를 빌려드립니다 - 4점
알렉스 쉬어러 지음, 이혜선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인간이 노화를 극복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아이가 거의 태어나지 않게 된 미래. 태린은 그를 도박에서 땄다는 디트 삼촌에 의해 아이 대여 사업에 이용되어 왔다.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시간당 대여 후 돈을 받는 사업이었다. 디트는 태린이 영원히 아이의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불법인 '피피 수술'을 시킬 계획을 세웠다.
수술을 거부해왔던 태린은 수술 직전에 간신히 탈출했지만, 갈 곳이 없어 자살을 결심한 찰나 다행히 친부모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알렉스 쉬어러의 SF 소설. 인간이 과학과 의학의 도움으로 평균 수명을 200살 이상으로 늘리고, 외모 변화도 40이후 없는 세상이 되자 그 반동으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되었다는, "칠드런 오브 맨"과도 유사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나름대로의 상상력으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이가 귀해서 아이를 잠깐이나마 빌려주는 사업, 심지어 아이들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는 수술까지 성행한다는 핵심 설정은 재미있었고, 학교가 없어졌으며 산부인과 의사가 직업을 잃었으며 거리에 나온 갓난아기가 군중의 주목을 잡아 끈다는 등의 설정과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모습이 살짝 겹쳐지네요.
태린 시점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이루어지는 전개도 긴장감을 전해줍니다. 디트 삼촌에게 혹사당하며 '오후의 아이'가 되어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아이 행세를 하고, 심지어 거금에 팔려 애완동물처럼 지내다가 피피 수술을 받기 직전까지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F 소설로 보기에는 좀 부족합니다. 아이가 없어진 세상에 대한 설정을 과학적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탓입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과학과 의학이 발전했다면, 인공 수정으로 충분히 임신이 가능한데, 그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보다는 종교적인 사상이 근간이 된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감히 신의 영역을 건드려서 천벌을 받은 것이며, 노화 방지 시술을 받지 않은 태린의 부모는 임신과 출산이 가능했다는 설정이 이를 증명합니다. SF보다는 약간 이런 쪽(?) 계열 소설로 보이기도 하네요.
다른 설정들도 합리적이지 못한건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게 피피 수술입니다. 태린이 피피 수술을 받았다 한들, 태린이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디트 삼촌이 태린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 몇 년을 더 벌기 위해 거액의 수술비를 낸다는건 이해하기 힘들어요. 차라리 수술비를 모아서 정착하는게 나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출구를 잃은 태린 앞에 유괴범인줄 알았던 남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태린의 친부라서 태린을 가족이 있는 집으로 데려와 행복을 찾게 만든다는 결말인데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사전에 복선이라던가, 관련된 정보 제공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어요. 이 정도면 거의 "소드 마스터 야마토"급 결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개도 디트 삼촌의 사업과 관련된 태린의 심리 묘사는 반복적이라 지루한 등의 문제가 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지만, 결말까지 잘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청소년 소설로 유명하던데, 성인들이 읽을만한 장르 소설은 아닙니다.

2025/01/26

극한 상황에서의 탈출극 소설 추천

가끔 소개해드리는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이번에는 극한 상황에서의 탈출극 리스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티븐 킹의 "아주 비좁은 것"을 추천하고 싶네요.


지진이나 사고로 폐쇄된 공간에 갇힌 주인공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소설을 소개합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물론, VR 공간이나 우주 공간을 무대로 한 SF 작품까지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의 탈출극을 직접 체험해 보세요. 스릴 넘치는 스토리 전개에 손에 땀을 쥐게 될 것입니다.

"방주" 유키 하루오

지진으로 지하 건축물에 갇힌 남녀 10명. 심지어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한 명이 희생되면 나머지 전원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살인범을 찾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합니다. 탈출이냐 죽음이냐의 시간적 제약,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 아름답게 짜인 논리적 추리 등, 읽는 재미가 가득한 걸작 미스터리입니다.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이노우에 마기

지하 복합 시설에 남겨진 여성은 시각과 청각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하루오는 최첨단 드론을 사용해 그녀를 구조하려 하지만, 연이어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닥쳐옵니다. 시간 제한이 있는 고난도 탈출 미션극이자, 인간 드라마와 반전이 가득한 미스터리 요소를 갖춘 만족도가 높은 소설입니다.

"앨리스 살인게임"코야 게이이치

앨리스라 불리는 VR 공간에 갇혀 데스 게임에 강제 참가하게 된 주인공 하루가 탈출, 즉 로그아웃을 목표로 하는 이야기. 밀실 상황에서의 서바이벌, SF, 미스터리, 판타지 등 다양한 요소를 균형 있게 담은 오락 작품으로, VR이라는 설정을 활용한 전개가 탁월합니다.

"천애의 요새" 오가와 잇스이 (국내 미발간)

사고가 발생한 우주 정거장을 배경으로, 지구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군상극 형식으로 그린 SF. 하지만 SF임에도 현실 세계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읽힐 것입니다. 독특한 인간 묘사를 즐길 수 있으며, 우주 공간에서의 절망감과 긴장감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서바이벌 패닉 소설로 뛰어난 작품입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홀로 깨어난 라일랜드 그레이스. 자신이 있는 장소가 우주선 내부라는 것을 추측하며 조금씩 기억을 되찾아가자, 지구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엄청난 미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화성에서의 서바이벌을 다룬 영화화된 저자의 걸작 "마션"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은 SF의 재미가 응축된 소설입니다.

2009/10/17

일본 플레이보이지 선정 "미스테리 - 철야본을 찾아라!"

신촌 북오프에서 구입한 일본 플레이보이지 2008년 1월호에 실린 특집입니다. 평론가 5명이 선정한 일본 미스테리 올타임 베스트 100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추리소설 관련 기획이 실려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베스트 10까지만 소개해봅니다. (100작품 중 국내 출간된 작품은 추후 따로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 야마타 후타로 메이지소설전집 7 / 메이지단두대 - 야마타 후타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작품은 국내에는 소설은 소개된 적이 없는 야마다 후타로의 메이지 초기 시대를 무대로 한 단편집입니다. 정교한 트릭과 당시 시대상이 잘 결합된 좋은 작품이라고 하네요.

2. 화차 - 미야베 미유키
말이 필요없는 작품이죠.

3. 마이너스 제로 - 타다시 히로세
-도쿄 대공습의 날, 행방불명되었던 이웃집 딸이 18년 뒤 당시 모습 그대로 주인공 청년 앞에 나타난다-는 줄거리의 작품이네요. 일본 SF 미스테리사에 빛나는 타임 트러블 소설 불후의 명작!으로 하야카와 SF 매거진 선정 올타임 베스트 SF 일본편 4위에 선정되기도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국내 소개된적은 없는데 이정도 명성이면 언젠가 나와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네요.

4. 텐도 신 추리소설전집 6 / 죽음에의 초대 - 텐도 신
"대유괴"로 유명한 텐도신의 작품입니다. 5인의 남자에게 살인 초대장이 온다는 이야기라는데 무척 궁금하군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5. 달팽이에게 물어봐라 - 츠즈키 미치오
아버지가 통신교육으로 킬러를 양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주인공이 그 유산의 청산을 위해 여러 킬러들과 싸워나간다는 액션 모험소설로 시리즈이기도 하고 영화까지 등장했던 당대의 인기작. 국내 출간 가능성은 제로가 아닐까 싶군요...

6.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 아와사카 츠마오
추리 애호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아아이이치로 시리즈의 데뷰작인 본격추리 단편집. 국내 출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7. 봇코짱 -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시리즈의 개척자로 유명한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단편집.

8. 고향을 등지다 - 시미즈 다츠오
작품을 읽지 않아서 제목이 이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건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작가와 작품으로 모험소설에 가까운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9. 점성술 살인사건 - 시마다 쇼지
미타라이의 데뷰작인 유명작품.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10. 황토의 분류 - 이쿠시마 지로
국내에는 "끝없는 추적" 정도만 소개된 이쿠시마 지로의 "황토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다이쇼시대의 중국을 무대로 한 모험소설입니다. 일본 모험소설 불후불멸의 금자탑이라고 소개되고 있네요.

2014/03/07

심판의 날 - H.G 웰스 / 도서출판 불새 : 별점 2점

심판의 날 - 4점
H. G. 웰스/도서출판불새

"타임머신"으로 잘 알려진 SF소설의 선구자 H.G. 웰즈의 작품. 국내 미발표 SF를 엄선하여 번역 출간하는, 용기 있는 출판사 도서출판 불새의 e-book 단편집으로(날아오르라 주작이여~!) "심판의 날", "시간탐험대", "에피오르니스의 섬"이라는 총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재미는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SF 소설이 아니라 신학, 풍자소설이 아닌가 여겨지는 작품 성격 탓입니다. 소개된 홍보문구와 작가의 이름에서 기대한 결과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목요일의 남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심판의 날"은 최후의 날에 벌어지는 신의 심판을 우화처럼 풀어낸 작품인데, 아무리 착한 인물이라도 흠결이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장황하게 펼쳐 놓았을 뿐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시간탐험대"는 흉가로 이사 온 박사가 온갖 수상한 행동을 벌여 마을 사람들이 그를 타도(?)하기 위해 들고 일어나지만, 박사가 그들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는 타임머신을 발명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결말은 제목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박사가 살던 저택에서 있었던 살인사건의 괴이한 진상(사실은 박사가 범인일지도 모른다?)은 나름 여운을 남기지만, 반전으로 보기엔 약하고 설명도 부족해서 아쉬웠고요. 아울러 전개 역시도 너무나 장황하고 지루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에피오르니스의 알"은 그나마 재미 면에서 제일 괜찮았어요.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에피오르니스의 알을 발견한 모험가가 무인도에 표류한 뒤 알이 부화하고, 새가 커지면서 모험가를 위협하여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했다는 내용인데 나름 그럴듯했습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강대국과 식민지의 관계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렇게 별점 평균은 1.6점이나, 국내 초역되었다는 것과 역사적 의미를 더하여 별점은 2점으로 하겠습니다. 권해드리기는 조금 어렵습니다만 불새 출판사의 건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3/07/16

멸종 - 로버트 J.소여 / 김상훈 : 별점 2.5점

멸종 - 6점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오멜라스(웅진)

서기 2013년, 물리학자 칭-메이 황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했다. 두 명의 캐나다인 고생물학자 브랜디와 클릭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로 떠났다. 공룡 멸종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타임머신은 목표했던 시기에 안전하게 도착했고, 브랜디와 클릭스는 지구의 중력이 현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공룡의 몸집이 그토록 거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가벼운 중력 덕분이었다.

이후 그들은 점액질과 같은 기이한 생명체와 조우하고, 일련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들의 정체가 화성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니다. 클릭스는 예기된 멸종에 대비하여 이들을 현재로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브랜디는 조사 도중 화성인들이 사실은 호전적인 바이러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목격하여 이에 반대하는데....

로버트 J. 소여의 SF 소설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공룡 멸망 시기로 이동한 두 명의 고생물학자가, 화성에서 온 바이러스 형태의 지적 생명체와 조우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요. 긍정적인 평이 많았기에 기대를 품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서는 아쉬웠습니다. 기본 설정부터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졌고, 이야기 전개도 전형적인 일본 망가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분위기였던 탓입니다.

가령, 거의 달 착륙에 맞먹는 수준의 프로젝트임에도 예산 문제 등으로 너무 소규모로 묘사되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 두 명의 시간 여행자가 모두 고생물학자이며, 그것도 서로 연적 관계라는 설정부터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당연히 군인이나 생존 전문가, 엔지니어 같은 인물 한 명쯤은 포함됐어야 했습니다.

화성 바이러스들이 중력을 조절하여 자신들이 살아가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공룡을 병기로 진화시켰다는 설정도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클리셰였어요. 마찬가지로 바이러스들이 군체 형태로 하나의 생명체처럼 행동한다는 설정 역시 참신하다고 보기 어려웠고요.

무엇보다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정말 어처구니없었습니다. 생체병기임이 분명한 중력 조절 위성에, 미래의 지구산 무전기를 통해 해제 코드를 보내 위성을 추락시킨다? 솔직히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인 비행체를 지구의 컴퓨터 바이러스로 감염시킨다는 설정 수준의 유치하고 안이한 전개였습니다. 그걸 실행하는 장치가 도시바 팜탑이라는 묘사 부분에 이르르면, 일본 SF 만화의 영향력이 짙게 느껴져 더더욱 몰입하기 힘들어졌고요.

또한, 또 다른 미래의 브랜든 섀커리가 등장해 기묘한 일기를 통해 타임 패러독스를 정리하려다가, 이 모든 것이 절대자(창조주)의 의지로 귀결되는 결말도 SF적인 매력을 반감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나비효과"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룡 멸종 원인에 대해 대담한 가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 하나 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공룡의 거대한 체격과 그에 비해 다공질의 뼈 구조, 익룡이 빈약한 날개를 가졌음에도 비행이 가능했던 이유 모두가 당시 지구의 중력이 지금보다 작았기 때문이라는 가정은 매우 흥미롭고 설득력 있었던 덕분입니다. 디테일한 설명에서도 작가가 공룡에 대해 상당한 연구를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위기 순간, 중력 조절 위성이 기능을 멈춘 뒤 공룡들이 중력에 눌려 하나둘씩 쓰러지는 장면은 상당히 강렬했고, 영상으로 표현되었다면 굉장한 장면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SF 영화 같은 구성으로, 소개만큼의 걸작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였다면 훨씬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흥미나 속도감은 충분하기에, 더운 여름날 가볍게 읽을 만한 오락용 SF 소설로는 추천드릴 만합니다.

2004/02/06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로저 젤라즈니 / 김상훈 : 별점 4점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8점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열린책들

작가의 초기 중단편들로 구성된 작품집. 원래 집에 사두기는 꽤 오래 되었지만 무언가 어려워 보이는 제목과 거창한 작가 이름만 보고 지레 기죽어 모셔만 두고 있었던 책입니다. 하지만 형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한 “신들의 사회”가 워낙 괜찮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기 시작해서야 알아챘는데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중, 단편집”이더군요. 그것도 무려 17편!이나 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각 작품들 하나하나마다 일정수준 이상의 즐거움을 주는, 실로 주옥과도 같은 책이었습니다!

워낙 수록작품이 많아 전부 소개하는 것은 어려우니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짤막하게 소개해드리자면,

첫 단편 “12월의 열쇠”
“신”이 되어가는 한 피조물과 행성의 장대한 이야기를 짧게 풀어놓은 작품.
“신들의 사회”와 비스무레하게 장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작품이었습니다. 젤라즈니라는 작가에 대해 놀라운 것은, 이 단편의 주인공 캐릭터와 “행성의 환경을 변화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묘사는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충분히 과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이며, 또한 풍자적이라는 것입니다.

2번째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금성에 살고있는 100미터나 되는 “이키”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낚는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모험소설 SF로 분위기가 이색적이며 젤라즈니답지 않은 현실적이고 조금 허무주의적인 주인공도 좋았던 작품.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의 밀도는 조금 떨어진다 생각되더군요.

3번째 “악마차”
지성을 가진 자동차들이 인간을 습격한다는, 스티븐 킹의 “맥시멈 오브 드라이브”등과 비슷한 설정의 작품.
신선함은 좀 떨어졌지만 여러가지 성격의 인공지능 차량에 대한 묘사와 여운을 남기는 후반부 묘사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4번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표제작이기도 한 걸작 중편.
서두 부분의 고대 화성 문명과의 조우에서부터 결국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고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말까지, 장중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 나가는 젤라즈니의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러 부분에서 후대에 미친 영향이 상당할 것 같은데, 후대의 모방작들과는 전혀 다른 원전으로서의 품격과 가치를 잘 알려주는군요.

6번째 “이 죽음의 산에서”
외계의 100마일이나 되는 높이의 산을 등반하는 탐험가와 그들을 방해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
2번째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과 같은 모험소설 SF인데 모험소설 쪽으로 더 치중한 느낌의 작품. 약간의 SF적인 설정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냥 산악 모험담으로 보아도 좋을 작품입니다. 그만큼 모험소설로의 가치가 높아요.

9번째 “폭풍의 이 순간”
머나먼 외계의 한 행성을 무대로 한 “재난”드라마. SF적인 설정, 묘사보다는 긴박하고 스릴 넘치는 전개가 돋보이는 단편입니다.
그러나 뒷부분의 후일담은 조금 사족인 듯 싶긴 합니다.

14번째 “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
거대한 인간 냉동 창고의 묘지기(?)역할을 하고 있는 사이보그(?)와 화이올리라는 신화적 존재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독특한 작품.

16번째 “프로스트와 베타”
인류가 멸망한 이후의 새로운 신, 새로운 인류가 되어가는 컴퓨터의 이야기.
설정이나 스토리, 결말까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완벽한,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이런 작품을 걸작이라고 하는 것이겠죠.

결론내리자면, 수록작마다 편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작품이 많아 전체 평균 별점은 4점입니다.
SF와 환타지를 잘 조화시키며 거기에 나름의 독특한 설정과 이야기를 부여하는 젤라즈니라는 거장의 재능을 한껏 느낄 수 있게해준 좋은 작품집으로, 그간 이런저런 이유로 쉽게 접할 수 없었지만 한번 손을 댄 이후에는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모셔만 놓았던 다른 책들도 한번 손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5/05/02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이노우에 마기 / 이연승 : 별점 2점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 4점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론 사업 벤처기업 탈랄리아 직원 다카기 하루오는 어린 시절 형의 사고사를 방조했던 아픈 과거가 있다. 

다카기는 최첨단 조사용 드론 아리아드네의 3세대 모델인 SVR-3가 채택된 지하도시 WANOKUNI 개막식에 참석하는데, 마침 그날 지진이 일어났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붕괴와 침수가 계속되는 지하 5층에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는 이 생존자가 헬렌 켈러처럼 시각, 청각, 언어 모두에 장애가 있는 나카가와 히로미라는 점이었다. 물이 완전히 차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여섯 시간뿐으로, 다카기는 동료들과 함께 유일하게 지하에 접근할 수 있는 드론 아리아드네를 원격 조종해 생존자 수색과 구조에 나서는데....

일본 작가 이노우에 마기가 쓴 재난 구조 SF 소설입니다. 구조라는 테마에 첨단기술과 장애인이라는 소재를 결합한 매우 흥미로운 작품으로, 기존 재난소설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탈출극 추천'이라는 리스트에서 소개하길래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구조 과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듬뿍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드론'을 활용하여 헬렌 켈러와 똑같이 시력, 청력 및 대화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지하 도시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설정 때문이지요. 그래서 '드론'은 '촉각'과 '후각' 만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해야 해서 아리아드네는 향수를 내뿜어 도착을 알리고, 점자 카드가 포함된 구호 물품을 투척하며, 장착된 하네스(유도용 와이어)를 잡게하여 경로를 안내합니다. 또 이러한 설정들은 단순한 SF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가능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구조 과정의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작품의 배경인 지하도시 WANOKUNI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에너지 보존과 탄소 배출 감소, 지진 대응 등 다양한 측면에서 지하 건설의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드론을 활용한 물류 시스템, 개인 맞춤형 서비스, 광덕트를 통한 자연광 유입 등 매력적인 기술들이 상세하게 소개되는 덕분입니다. 특히 통신망이 단절된 상황에서도 드론 조종이 가능했던 원리, 드론의 무선 충전 방식 등이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는게 좋았습니다. 구조 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WANOKUNI가 정치적인 이유로 활성 단층 위에 건설되었다는 설정도 괜찮았고요. 

재난 구조 소설답게 구조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들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진으로 인해 구조용 드론이 추락하고, 지하 4층 스파 구역에서 발생하는 누전, 폭주하는 지게차들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긴박한 순간들, 그리고 다카기가 폭로 유튜버의 드론에 맞아 아리아드네의 통제권을 놓치는 장면까지, 하나하나의 위기들이 정교하게 쌓여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갑니다.

아울러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히로미가 조명 스위치를 작동시키거나, 쥐떼를 감지하고, 돌진하는 지게차를 스스로 피하는 등, 의아한 행동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녀가 정말 시각을 잃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고, 이 수수께끼는 마지막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상 - 히로미가 사실은 도시에 추락했던 다른 장애인 미도리를 업고 있었고, 모든 기이한 행동들이 그것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반전 - 은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요. 아울러 이 진상은 광덕트 붕괴와 발걸음이 갑자기 느려진 이유, 이유를 알 수 없는 배낭의 열기 등 여러 복선들과도 절묘하게 맞물려 있어서 정교함도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재난 생존물로서 치명적인 약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구조 대상자인 히로미가 아니라 드론 조종자인 다카기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인물의 긴박감을 그리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다카기는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원거리에서 드론을 조작하는 입장이라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래서야 일종의 1인칭 슈팅게임과 별다를게 없지요.

또한, 서사의 일부 전개는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예컨대, WANOKUNI 입주식 날 하필 지진이 발생한다는 설정은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끼워 맞춘 듯 합니다.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지진이 발생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구조 활동 중에 온갖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다카기, 그리고 계속해서 민폐를 끼치는 니라사와의 모습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동생을 계속 잃어버리는 니라사와의 행동은 짜증을 유발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장애인을 구조하는 독특한 설정과 드론 기술의 활용,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반전은 매력적이지만, 긴박감을 살리지 못한 시점 선택과 작위적인 전개는 아쉽습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6/10/30

블루 타워 - 이시다 이라 / 권남희 : 별점 1.5점

블루 타워
이시다 이라 지음, 권남희 옮김/문이당

21세기 신주쿠에 살고 있는 말기 암 환자 '세노 슈지'는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이 극심해진 어느 날, 자신이 200년 후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황마"로 인해 인류의 90퍼센트가 사망한 23세기의 '세노 슈'라는 인물이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세기의 그 땅은 살아남은 10퍼센트의 사람들이 지상에서 도망쳐 거대한 '블루 타워' 안에 모여 사는 세계였다. 세노 슈는 타워의 지도층으로 그는 자신이 빙의(?)한 몸의 권력을 이용하여 타워의 차별철폐와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제법 유명한 작가인 것 같은데 읽은 적은 처음인 이시다 이라의 2004년 작품입니다. SF 스타일이긴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고 비논리적인 부분이 많아 환타지 성향에 가까운 작품이더군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바이러스에 의해 세상이 피폐해지고 여러 게릴라와 세력이 기득권을 놓고 싸우는 전개는 "에덴", 타워의 층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어지고 땅에 사는 인간들이 가장 하위층이라는 개념은 "총몽", 멸망한 미래에서 거대 타워가 하나의 도시가 된다는 개념은 "강철도시"나 "불새" 등으로 이미 잘 알려진 것들로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들 뿐인 탓입니다.

때문에 전개를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전개 역시 만화와 다름 없이 뻔하고 식상해서 전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일단 어린 나이의 해방동맹 전사나 하층 계급이지만 주인공을 도와주는 여성 캐릭터, 전설의 용병으로 주인공의 보디가드를 맡은 캐릭터 등 모든 등장인물부터가 너무 뻔합니다. 그나마 주인공이 일종의 빙의(?)를 통해 두개의 세계를 오간다는 설정만 약간 특이하지만 이 중요한 설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전무해서 단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너무 글을 쉽게 쓴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물론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이라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도 안돼는 이유죠. 그나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만 나름의 자료조사가 바탕이 된 듯 그런대로 치밀할 뿐입니다.
정통 SF를 표방한 작품은 아니기에 이러한 비방이 옳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소설가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전개는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SF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황당무계한 공상 과학'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소설...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라는데 저에게는 "황당무계한 공상 과학"의 전형이었고 한 편의 유사한 만화를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만화 되었더라면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소설로 읽기에는 싼티가 물씬 나는 애매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말미의 어설픈 해피엔딩도 불만스러웠고요.

저도 일본 추리 계열 작품은 좋아하지만 왠지 전체적으로 가볍다.. 라고 느껴지는 편이었는데 다른 쟝르물을 읽으니 그러한 느낌이 더더욱 커지네요. 작가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 하겠지만 저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덴" 쪽이 비스무레한 세계관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보여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4/05/12

poirot님 블로그에서 퍼온 25문 25답

25문 25답

01. 당신은 책을 좋아합니까? (좋든 싫든) 그럼 그 이유는 뭐죠?

☞좋아합니다. 부자의 법칙 중에 "책을 많이 읽어라! 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어쩌구.." 하는 글귀도 있잖아요. 물론 전 부자가 아니지만....

02. 한 달에 책을 몇 권 정도 읽나요?

☞음.. 많이 읽으면 15권 이상, 적게 읽으면 4권 정도....

03. 특별한 독서 취향이 있다면?

☞추리 단편집의 광적인 팬입니다.

04. 가장 최근에 읽은 책과 현재 읽고있는 책은?

☞읽은 책: 피터 크레머 "U-333"
☞읽고 있는 책: 제임스 레스턴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05.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거죠?

☞작가와 서지정보 정도랄까요...

06. 책은 사는 편인가요, 아니면 빌리는 편인가요? 빌린다면 어디에서 빌리죠?

☞사는 편이고 형이 사는 책을 공유하는 편입니다.

07.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뭐고요? (장르 불문하고)

☞좋아하는 작가 : 좋아한다기 보다는 일본 작가들 책을 많이 읽습니다.
☞싫어하는 작가 : 아카가와 지로(!), 제임스 페터슨, 조갑제(!),

08. 특히 좋아하는 장르와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어떤 거죠? 그 이유는 뭐고요?

☞좋아하는 장르: 미스터리, SF, 역사물, 전기물, 잡다구레한 상식서적 들, "세계의 불가사의"류같은 장르들....
☞싫어하는 장르: 싫다기 보다는 순문학 장편은 지루하더군요. 그리고 성적인 묘사로 점철된 의미없는 장편 들....

09.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좋아하는 인물: 뤼뺑(!), 홈즈, 다아시경, 류젠이(불야성), 모스주임
☞싫어하는 인물: 가타야마 형사(^^) 딱히 기억이.....

10. 일반적인 책말고 만화책도 좋아하시나요?

☞광적입니다.

11. 만화책 중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나 작가를 꼽아본다면요?

☞추리만화는 거의 대부분 좋아합니다. 스포츠 만화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두 장르이외에 인상적인것은 초중반의 "베르세르크"(미우라 켄타로), "바나나 피쉬"(요시다 아키미), 아사리 요시토오 작품은 다 좋아하고요. TONO씨도 거의 전작품이 좋고..."현시연"이야 당근 좋아하고.. "갤러리 페이크"는 요새 관심있게 보고 있고..."도박묵시록 카이지" 중반부까지, "건담 Origin" (야스히코 요시카즈)도 관심대상이고... 너무 많군요. SKip!

12. 만화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좋아하는 인물 : 너무 많아서...
☞싫어하는 인물 : 기억이....

13. 기억에 남는 대사나 문구가 있다면 말씀해보시겠어요?

☞"단순한 성욕보다 훨씬 고도의 지적활동이야!" (By 마다라메)

14. 특별히 게임, 영화 등 다른 매체로 제작됐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거죠?

☞"시민 쾌걸" 제작 진행중이라는데 왜 소식이 없는지...

15. 다른 매체로 제작된 것 중, 좋았던 작품과 나빴던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좋았던 것: 39계단 (히치콕영화), 올드보이, 스캔들 (최근 1년간만 쳐서요)
☞나빴던 것: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했던 아르센 뤼팽, "체포하겠어" 드라마 판, 소년탐정 김전일 영상버젼 (전부!). "퇴마록"(쓰레기), "모방범""39계단" (이 일본원작의 두 작품은 너무 영화가 재미없어서...) 등등등 엄청나죠....

16. 미스터리 소설 장르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실래요?

☞어렸을 적 팔았던 홈즈 단편 1편씩이 실려있는 단행본 문고 시리즈 (어디 출판사인지는 기억이 안나네요)를 하나씩 모으면서....

17. 그 당시 미스터리 소설 장르에 대한 느낌은 어땠어요?

☞홈즈 나이스!

18. 읽어본 것 중 가장 인상깊었던 미스터리 소설을 꼽아주실래요?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10개의 인디언 인형"

19. 읽어본 것 중 가장 최악이었던 미스터리 소설은 어떤 것이죠?

☞"미스코리아 살인사건" 글쓰기의 기본도 안 되어있는 작가가 장편을 내 놓다니...

20. 요즘의 미스터리 소설 시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

☞팬들의 사랑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21. 최근 읽은 작품 중 괜찮다 하는 미스터리 세 편을 꼽아보시겠어요?

☞ "얼굴에 흩날리는 비"-기리노 나츠오, "바리바"-모리스 르블랑, "엘러리 퀸의 모험"-엘러리 퀸

22. 미래의 미스터리 소설 장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밝지 않나요?

23. 게임, 영화 등등 소설 외 미스터리 장르 중 좋았다 생각하는 것을 꼽는다면?

☞ "QED" 최고!

24. 특별히 추천하는 게임을 들어보실래요?

☞ WWE SMACK!DOWN, 하지만 주로 하는 것은 워크래프트3 입니다.

25. 기획 중이거나 집필 중인 소설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를 해주실래요?

☞ 한국형 안락의자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습니다. "지식검색 탐정" 하하하!

2015/03/16

SF 명예의 전당 1 - 아이작 아시모프 외 / 박병곤 : 별점 3점

SF 명예의 전당 1 - 6점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박병곤 외 옮김/오멜라스(웅진)

SFWA (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가 생긴 후인 1964년 12월 31일 이전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회원들이 투표를 진행하여 가려 뽑은 작품들을 모은 앤솔러지입니다. 1965년 이전 작품 15편과 30위까지의 작품 일부를 더한 구성이며, 1권과 2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4권 세트 e-book을 종이책 대비 엄청 저렴한 29,700원에 팔고 있어서 구입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SF라는 장르에는 e-book이 가장 적합한 콘텐츠 형태가 아닐까 싶네요.

1권을 먼저 읽었는데, 수록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 어스름 Twilight - 존 캠벨
  • 전설의 밤 Nightfall - 아이작 아시모프
  • 무기 상점 The Weapon Shop - A.E. 밴 보그트
  • 투기장 Arena - 프레드릭 브라운
  • 허들링 플레이스 Huddling Place - 클리포드 D. 시맥
  • 최초의 접촉 Firt Contact - 머레이 라인스터
  • 남자와 여자의 소산 Born of Man and Woman - 리처드 매디슨
  • 커밍 어트랙션 Coming Attraction - 프리츠 라이버
  • 작고 검은 가방 The Little Black Bag - 시릴 콘블루스
  • 성 아퀸을 찾아서 The Quest for Saint Aquin - 앤소니 바우처
  • 표면장력 Surface Tension - 제임스 블리시
  • 90억 가지 신의 이름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 아서 클라크
  • 차가운 방정식 The Cold Equations - 톰 고드윈

대충 봐도 SF계의 대가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작품의 수준도 당연히 높습니다. SF 작가들이 직접 선정한 고전 명작이니만큼, 작품의 수준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SF를 싫어하는 이유가 이 작품집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건 아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불필요하게 어렵게 쓴, 혹은 번역된 내용이 많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을 두고 굳이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역장", "정신인자", "윤충류" 등이 대표적입니다. 교황을 '로마 주교이자 사도 전승 카톨릭 성교회의 수장,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는 — 그러니까 교황은 —'이라고 장황하게 소개하는 묘사도 마찬가지고요. 배경이 되는 기본 설정 소개도 인색한 편입니다. "Coming Attraction" 같은 경우, 핵전쟁 이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가상 역사 SF인데, 단편적인 정보만 설명되는 탓에 전체적인 그림은 미루어 짐작만 가능할 뿐입니다.
SF가 장르적 특수성이 강해서 작가가 '독자가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작가의 잘난 척인지 모르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대중성은 떨어지고 읽기만 어려워지는 듯 한데 말이지요.

아울러 냉전 시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나 기계 문명과 신성을 빗대어 설명하는, 지금 읽기에는 낡은 소재가 많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먼 미래의 지구는 어떤 이유로든 멸망했고, 영원히 동작하는 기계가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다는 "Twilight", 앞서 말씀드린 "Coming Attraction", 가상 역사 SF이자 기계 문명과 신성을 이야기하는 "The Quest for Saint Aquin" 등이 그러합니다. "Nightfall", "The Cold Equations" 같이 다른 앤솔러지에서 익히 접했던 작품들이 제법 된다는 것도 아쉽고요. 물론 이 책의 취지가 시대를 초월한 걸작들을 모아놓은 것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그러나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도 시대를 뛰어넘는 멋진 작품도 많습니다. 그중 제 개인적인 베스트 작품을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The Weapon Shop"

"우주선 비글호" 시리즈로도 유명한 밴 보그트의 작품입니다. 독재 정권에 이용해왔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충성만 하던 서민이 우연한 계기로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 빗대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가진 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맹목적인 지지를 보낸다는게 정말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SF 뿐 아니라 정치 풍자극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일종의 먼치킨 같은 역할을 하는 "무기상점"이라는 아이디어도 참신하게 느껴졌고요. 시대를 초월한 걸작입니다.

"Arena"

외계의 두 종족 간 전면전이 벌어질 찰나, 지구인 주인공이 기묘한 장소로 소환됩니다. 그 이유는 전면전이 벌어지면 두 종족 모두 멸망하게 되므로, 신이 한 종족만이라도 남기기 위해 두 종족의 대표 전사를 소환해 생명을 건 전투를 벌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롤러 형태의 외계인과 1:1로 생명과 인류의 존망을 걸고 벌이는 전투라는 설정 자체가 매력적인데, 거장 프레더릭 브라운의 명성에 어울리는 전개도 압권입니다. 소환된 장소의 다양한 환경을 이용하는 과정과 마지막 승부에 활용되는 복선까지 잘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SF가 꼭 심오하게 인류의 미래, 신의 존재와 같은 주제를 다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미를 위해 쓰더라도 이만큼의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존재 이유는 충분하지요. 별점을 준다면 5점입니다.

"First Contact"

게 성운에서 우연히 조우한 지구인과 외계인 비행선. 서로 마음을 열어가면서도 결국 생명을 걸고 양쪽이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라는 묘한 상황에 빠집니다. 그러나 다행히 놀라운 아이디어로 싸우지 않고, 서로의 정보를 공평하게 가지고 귀환하게 되지요.

외계인을 만났을 때의 딜레마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완벽한 해피엔딩에 이르는 반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밝고 유쾌하게 쓰여졌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약간은 냉전 시대의 소산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시대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The Little Black Bag"

미래에서 온 마법의 의사 가방을 놓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러 가지 설정과 이야기가 한데 뒤섞여 있는데, 한 작품에 쓰이는 게 아깝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게 많습니다. 다만 미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바보"가 된다는 설정은 불필요해 보였어요. 그냥 미래에서 의사 가방이 보내지고, 그것이 사용되다가 살인 사건이 벌어져 동작이 취소된다는 정도만 등장해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작가의 욕심, 의욕이 지나쳤습니다. 

그래도 읽는 재미는 뛰어나고 마지막 마무리까지 완벽합니다.

"Surface Tension"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밤 이야기"가 연상되는 식민화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호시노 유키노부 작품보다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식민화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기는 한데, 그 별에 가장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작품의 무대가 된 행성에서는 미생물 — 윤충류! — 로 인류가 탄생하게 되거든요. 이후 이러한 미생물 인류가 이른바 "외계"로 나가기 위해 나름의 "우주선"을 만들고, 살고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는 내용은 인류의 우주 진출과 비교되며,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여러모로 잘 짜여진 SF 모험물입니다.


다른 작품에는 불만과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은 충분합니다. SF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도 최소한 "Arena"만큼은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책 서두에 소개되어 있는, SFWA에서 가장 표를 많이 받은 15위까지의 작품은 알려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그런데 영문으로만 소개되어 있는건 이해가 안 되네요. 책에는 한글 제목으로 실어놓았는데 말이죠. 또 3위인 "Flowers for Algernon"은 영문 제목이 잘못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거기에 더해 이 작품들을 어떻게 1, 2권으로 나누었는지도 설명되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세심한 배려가 아쉽습니다.

  • 1. "Nightfall" - 아이작 아시모프
  • 2. "A Martian Odyssey" - 스탠리 와인봄
  • 3. "Flowers for Algernon" - 대니얼 키스
  • 4. "Microcosmic God" - 테오도어 스터전
  • (동률) "First Contact" - 머레이 라인스터
  • 6. "A Rose for Ecclesiastes" - 로저 젤라즈니
  • 7. "The Roads Must Roll" - 로버트 하인라인
  • (동률) "Mimsy Were the Borogoves" - 루이스 패짓
  • (동률) "Coming Attraction" - 프리츠 라이버
  • (동률) "The Cold Equations" - 롬 고드윈
  • 11. "The Nine Billion Names of God" - 아서 클라크
  • 12. "Surface Tension" - 제임스 블리시
  • 13. "The Weapon Shop" - A.E. 밴 보그트
  • (동률) "Twilight" - 존 캠벨 
  • 15. "Arena" - 프레드릭 브라운

2009/11/09

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 이동진 : 별점 3.5점

별의 계승자 - 6점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오멜라스(웅진)

달에서 5만년이 경과된 것으로 보이는 우주비행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우주복 안의 유골은 인류와 똑같은 호모 사피엔스. "찰리"라고 불리우게 된 이 유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일전에 "해물파전" 님이 댓글로 추천해주신 책인데 이제서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해물파전님의 추천 그대로 엄청난 하드 SF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SF라는 쟝르에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 예체능과 출신입니다^^)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더군요! SF는 원래 취향이 아닌지라 해물파전님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작품과 같이 인류는 어떻게 유래되고 진화되었는가? 라던가, 진화상의 미싱링크의 이유는? 과 같은 인류의 발생과 진화에 대한 수수께끼를 밝혀나가는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죠.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있어서 외계인이 개입했다는 아이디어 역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21세기 달에서 발견된 5만년전 유골이 우주복을 갖춰입은 현생 인류와 동일한 호모사피엔스라는 이야기의 발단부터 무척 흥미진진하며 이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전개 과정이 굉장히 기발하면서도 내용도 대담하고 스케일이 무척 커서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추리소설로 보아도 괜찮을 정도로 공정한 단서와 치밀한 전개가 맞물려져 있기에 추리 애호가로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마지막의 반전도 좋았습니다. 유물 발굴에 대한 사족은 없는게 나았겠지만...^^;;

또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찰리가 남긴 유물(?)들을 토대로 제기되는 다양한 단서들, 예를 들면 "달력"과 지형지표, 각종 서류들에 대한 디테일한 언급과 그에 따르는 여러 묘사들 - 찰리의 유체를 토대로 인체에 미친 조석간만의 차를 연구해서 하루의 시간을 알아내어 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혀내려 한다던가, 언어를 파악하기 위하여 달력으로 보이는 문서와 개인 서류를 조사하여 공통된 단어를 찾아낸다던가 - 은 하드 SF답게 많은 이론들이 전개되지만 이 역시 추리적인 재미가 곁들여져 있었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70년대 쓰여졌지만 낡아보이지 않는 상상력 역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고 말이죠.

이러한 대단한 전개와 비교한다면 캐릭터가 너무 매력이 없는 무미건조한 인물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한데 어차피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큰 흠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취향을 좀 타기야 하겠지만 SF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일반 대중들을 만족시킬만한 재미가 있는 매력적인 작품임이 분명하기에 적극! 추천합니다.

PS : 책의 표지 디자인은 지나치게 전위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소한 제목은 좀 잘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울러 표지가 너무 구김이 많이 가는 소재로 제작된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2005/03/06

제 5 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 커트 보네거트 / 박웅희 : 별점 4점

제5도살장 - 8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주인공 빌리는 검안사로 성공하여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퇴원한 날 부터 자신이 예전 딸의 결혼식 날 머나먼 "트라팔마도어"행성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다니게 된다. 빌리는 "트라팔마도어"로 납치된 이후 유럽의 전장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초월적인 경험을 한다.

제목의 "제 5 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 당시의 미군 포로 수용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부제인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요.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장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SF나 반전소설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직접 경험했다는 2차 대전에서의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일화를 단순히 담아낸게 아니라 빌리라는 존재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닮아 있지만 결정적 파국, 즉 종말은 피할 수 없다는 종말론적 사고방식은 또한 기독교의 그것인데도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극중 주인공 빌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공 초월에 대한 소설적 접근은 엄청나게 새로우면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또한 재미도 있습니다. 짤막한 단상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소설을 이루는데 그 단상들의 등장인물들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사건들도 다양함에도, 또한 시간과 공간이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소설로 성립되는데 재미까지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정의!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에 대한 해답. 즉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지만 실은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하라"라고 가르친다라는 부분은 너무나 멋집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종말은 피할 수 없으니 가장 즐거운 시간을 즐겨라"라는 사고방식도 왠지 공감이 가네요. 채근담이었나요? 흡사 군대 훈련소 시절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 왠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긴, 이 책은 군대소설이기도 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명성에 충분히 어울리는 좋은 작품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 작가 어쩌구 하는 선전문구가 꼭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나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표현했던 "중간의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멋진 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정말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영화화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뒷 해설에 나오는데,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하네요.

2021/08/06

FoP 소설 : 산책하는 침략자 - 마에카와 도모히로 / 이홍이 : 별점 2점

FoP 소설 : 산책하는 침략자 - 4점
마에카와 도모히로 지음, 이홍이 옮김, 최재훈 그래픽/알마

축제에서 금붕어를 손에 넣은 할머니가 아들 부부를 살해하고 본인 몸도 난자하여 자살했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손녀 아키라는 심한 충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사건 취재 차 마을을 찾은 르포 기자 사쿠라이는 자기가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고교생 아마노를 만났고, 취재를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한편, 나루미는 남편 신지가 축제에 갔다가 금붕어 하나를 가진 채 병원에 입원한 뒤, 신지가 이전 남편과 전혀 다른 무엇이라는걸 알아챘다.

사람들로부터 '개념'을 빼앗는 외계인인 아마노와 아키라가 만나서 지구 정복을 계획하고, 이를 막기 위해 사쿠라이는 나루미, 신지와 함께 도망친다. 신지는 나루미로부터 '사랑'이라는 개념을 빼앗게 되는데...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SF 소설로 별다른 정보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입부는 정말 대박입니다. 정확하게는 할머니가 축제에서 낚은 금붕어를 집에서 '회'라고 하면서 산 채로 잡아 먹고, 그 다음날 아들 부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장면까지요. 굉장히 짧은 분량 속에서 공포심과 흥미를 모두 불러 일으킨 덕분입니다. 

중반부까지도 그런대로 재미있습니다. 이른바 '외계인'들이 선보이는 독특한 능력 덕입니다. 외계인들은 대화하는 상대방이 특정한 단어의 이미지를 머릿 속에 떠올리면, 그걸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빼앗긴 사람은 그게 뭔지를 잊어 버리게 되고요. '개념'을 수집한다는 목적을 위해서인데, 이를 통해서 여러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게 됩니다. 나루미의 동생 아스미로부터 신지가 '가족' 이라는 개념을 빼앗아 온 뒤, 아스미가 가족에 대해 모든걸 잊고 아빠를 변태로 생각해서 경찰에 신고한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결말까지는 완전 별로였습니다. 외계인의 지구 침략 계획을 막기 위한 르포 기자 사쿠라이의 노력이 그려지는데, 하는건 외계인 아마노가 외계인 아카리를 만난 뒤 도망친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하는 일들 거의 모두가 즉흥적이라 치밀한 느낌은 전무합니다. 제법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제대로 된 설명도 부족합니다. 신지를 다른 두 외계인과 못 만나도록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외계인들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 처럼요.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인 나루미와 신지 이야기는 잔잔한 사랑 이야기일 뿐이라 지루합니다. 사랑 이야기가 나쁜건 아닙니다. 저도 아주 좋아하고요. 하지만 나루미에게서 '사랑' 이라는 개념을 빼앗은 신지가 새롭게 태어나서, 나루미를 위해 살아갈 결심을 하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황당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잔혹한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 결말이 "사랑이 지구를 구한다"라니, 독서에 들인 시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핵심 설정인 "개념 빼앗기"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앞서 아스미는 "가족" 이라는 개념을 빼앗긴 뒤, 가족을 아예 기억하지 못했지요. 의사는 아예 폐인이 되어 버렸고요. 하지만 신지에 대한 "사랑"을 빼앗긴 나루미는 멀쩡한 채로 신지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건 전개를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을 바꾼, 편의적 발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볼 만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결론적으로는 수준 이하였습니다. 차라리 "기생수"처럼 개념을 빼앗는 외계인들의 냉혹한 행각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전개가 더 나았을거에요. 선한 마음을 가진 신지와 개념 빼앗기에 골몰하는 아마노, 아키라의 행각을 대비시키면서요. "개념" 빼앗기는 "죠죠" 시리즈에 등장했던 스탠드 능력과 흡사한만큼, "죠죠", 혹은 "기억파단자"처럼 두뇌 배틀처럼 그렸어도 괜찮았을 것 같고요.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메시지 전달이 핵심인 현재의 작품에는 전혀 맞지 않는 방향이었겠지만, 최소한 지금보다야 재미는 있었을 겁니다.

2007/05/08

월간 판타스틱 창간호

Fantastique 판타스틱 2007.5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페이퍼하우스(월간지)

우연찮게 기획을 담당하시는 분과 알게 되어 무상으로 받게된 창간호입니다. 선물해 주신 모 기자님께는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잡지도 괜찮은 판형과 두께에 국내 최초의 쟝르문학 전문 월간지를 표방한 제목과 카피 그대로 관련 소설과 만화, 그 외의 각종 기획기사들로 꽉 채워져 있어서 팬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 한 완성도를 보여줘서 기뻤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네요. 이유는 제가 일단 추리 장르를 선호하는데 반해 잡지는 다른 장르에 촛점이 많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만 해도 총 7편의 작품 중 추리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 작품 뿐이었거든요. 그리고 일견 많고 풍족해 보이는 기획기사들도 대부분 두페이지정도로 끝나는 알맹이 없는 기사들이어서 아쉬움이 큽니다.

개별적으로 좀더 자세히 훝어본다면, 

소설은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 듀나의 "너네 아빠 어딨니?", 김창규의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미야베 미유키의 "유월은 이름뿐인 달", 폴 윌슨의 "다이디타운-거짓말", 이윤하의 "이팅 하트", 그리고 루이스 캐럴의 "실비와 브루노"가 실려 있습니다. 
이 중 이미 다른 곳에 연재하다가 중단된 뒤 연재를 재개하였다는 복거일의 가상 역사 SF라 할 수 있는 "역사 속의 나그네"가 꽤 재미있었고, 폴 윌슨의 정통 하드보일드 SF라 할 수 있는 "다이디타운-거짓말"은 이 잡지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름 기대가 컸던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 "유월은 이름뿐인 달"은 유일한 정통 추리물이긴 하지만 트릭이 빈약해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 그 외의 작품들은 솔직히 언급할 정도의 재미조차 없었습니다. 특히 듀나의 "너네 아빠 어딨니?" 는 수록작 중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제가 무식하다면 할 수 없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도 잘 모르겠고, 제 취향도 전혀 아니었을 뿐더러 읽고나서 불쾌해지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뭔가 있어보일려고는 했지만 결국 좀비물의 안좋은 부분만 확대 해석했다는 느낌만 들었습니다.

만화는 유시진 특유의 "뭔가 있어 보이는" 환타지, 김태권의 창작기계 비스무레한 SF 두 편이 실려 있는데, 수준은 그럭저럭이지만 두 편 모두 그림과 내용이 제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김진태씨가 참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김진태님의 코믹 추리물을 보고 싶었는데...

기획기사는 앞서 이야기한대로 제목 만큼의 깊이에 미치지 못하는 얄팍한 분량으로 그다지 건질만한건 없습니다. "영화인 17명의 꿈의 프로젝트"라는 야심찬 대표 기획도 단지 영화화하고 싶은 작품과 그 이유만 짤막하게 나열할 뿐 작품에 대해 실제로 전해주는 정보가 거의 전무해서 참여한 영화인들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반쪽짜리 기획기사일 뿐이고요. 최소한 해당 작품의 정보와 판권 문제, 그리고 영화화된 적이 있는 작품이라면 과거 영화에 대한 소개 등 보다 자세한 조사가 바탕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와 기시 유스케의 무척 괜찮은 인터뷰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시나 분량이 너무 짧았다는 것은 아쉽지만 의미있고 좋은 기사였습니다.

전체적으로 평은 좀 안 좋게 썼지만 그동안 척박했던 국내 쟝르 문학계의 시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기에 계속~ 쭈욱~ 잘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추리쪽 비중도 차차 높아지길 바라고요. 이런 잡지가 많이 팔리고 시장과 독자가 확대된다면 제가 바라는 미스테리 전문 잡지도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되겠죠.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고자 합니다.

PS : 다음호에서 경성탐정록이나 실어주면 차~암 좋을텐데요^^ 연재 의향도 있는데...

2012/04/30

혹성 탈출 - 피에르 불 / 이원복 : 별점 3점

혹성 탈출 - 6점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주)태일소담출판사

베텔게우스 계로 우주여행을 떠난 기자 윌리스 메루 일행은 지구와 거의 흡사한 환경의 "소로르"라는 행성에 착륙하여 그곳의 인류와 만났다. 그러나 소로르의 인류는 지성은 없는 원시 상태였고, 윌리스 일행은 고릴라가 인류를 사냥하는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곧이어 윌리스도 고릴라들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데...

70년대를 풍미했고 2000년대를 거쳐 얼마 전 프리퀄(또는 리부트) 신작이 나와 히트한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 저야말로 이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세대입니다. 영화는 어렸을 때 TV에서 전편을 소개해 줄 때 감상하였고, 팀 버튼의 괴작도 극장에서 감상했거든요. 이렇게 워낙 많이 접하다 보니 원작 소설도 영화 올드 버전 1편의 내용과 거의 동일할 것이라 생각해서 썩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의 요소가 많더군요. 일단 제일 놀라웠던 것은 정통 SF라는 점이었습니다. 영화에서와 같은 모험물적인 속성은 거의 없는 작품으로, SF적인 디테일도 괜찮더군요. 항성 간 우주여행 등의 설정이 잘 묘사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문명의 진보에 대한 이론은 솔깃하기까지 했고요.
게다가 SF 세계관 속에 인류의 무기력한 미래에 대한 풍자를 녹여낸 솜씨는 지금 읽어도 대단했습니다.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생각되는 부분 ("넌 너무 못생겼어!")도 기가 막혔고요. 전혀 낡아 보이지도, 유치해 보이지도 않는, 시대를 초월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전개 면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가장 거슬렸던건 인류가 급격하게 몰락한 이유를 구태여 드러내려 한 부분이에요. "뇌 수술"을 통한 일종의 "빙의 현상"이라는 수단부터가 작가가 너무 쉽게 간 느낌이라 별로인데, 이유 자체도 단순한 무기력이라는 것이라서 와닿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설명하지 않는 게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죠.
두 번째는 앙텔 교수의 정신 붕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혼자 떨어져 몇 달 지냈다고 이 소설에서처럼 급격한 정신적인 퇴행이 이루어진다는건 말이 안 됩니다. 이 부분만큼은 영화에서처럼 뇌 수술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 외에 윌리스 메루의 이름부터 패러디의 의미가 있다는 등의 (이름은 율리시즈이지만 성은 물고기?) 원어 한정 풍자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도 조금은 안타까웠고요.

마지막 반전 두 개 (윌리스가 지구에 도착한 이후와 마지막 장면) 모두 상상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도 아쉽기는 한데, 이건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겠네요. 이 작품이 선구적인 작품이니까요. 단지 국내 정식 소개가 늦어서 손해를 본 것 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3점.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통할 만한 아이디어와 재미를 갖춘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이 바닥의 클래식으로, 장르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려요. 너무 늦게 출간된 것은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에는 감사해야겠죠.

2009/06/09

나폴리 특급 살인 - 랜달 개릿 / 김상훈 : 별점 4점

나폴리 특급 살인 - 8점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가상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대체역사 SF 소설이면서도, 탐정 다아시경이 활약하는 추리물이기도 한 독특한 작품집입니다. 전에 "세르부르의 저주"를 읽고 딱히 취향이 아닌듯 해 관심을 끊었던 시리즈지만 이번의 50% 할인 행사를 놓칠 수 없어 구매하여 읽게 되었네요.

그런데... 정말 안 읽었더라면 엄청 후회할뻔 했습니다. 일단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세계관이 아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과학적 마법 문명의 지배를 받는 영-불 제국을 무대로 하여 마법이 증기기관과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유사한 분위기의 일본 만화들의 원조격 작품이기도 하죠. 그러나 다른 파생 작품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가장 마음에 든 점은 이 세계관에서 "마법"은 일종의 보조적인 역할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마법은 "전문가" 가 행하는 "전문적인 행위" 이기는 한데, 현대 과학기술에서 관련된 전문가가 행하는 역할과 유사한 점이 있는 일종의 "기술" 처럼 그려질 뿐이거든요. 예를 들면 "방부처리" 라던가 "자물쇠 전문가" 같은 식이죠. 즉 수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에서의 검시관이나 감식관이 수행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정말 획기적 발상이 아닌가 싶어요.

또한(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마법이 사건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이 작품에서 마법은 단지 설정과 재미를 위해서 존재할 뿐이며, 각 사건들 마다 "마법이 개입된 사건이 아니다" 라는 것을 마법사들이 조사해서 먼저 알려주는 점 등으로 철저하게 추리의 영역과 마술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서 뻔하디 뻔한 SF-판타지가 될뻔한 작품을 추리물로서도 가치를 지닐 수 있게끔 중심을 잘 잡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약간 바람끼(?)도 보이는 카사노바 다아시경과 강의를 좋아하는 현학적이고도 호기심 많은 마술사 마스터 숀, 현명하고 비범한 결단력의 플랜태저넷 왕가 군주인 노르망디공 리처드 등 고정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뛰어나고, 작가가 상상해 낸 영불제국의 묘사 역시 비범한 편이라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기에 할인행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만족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전작에 비해 "추리" 요소가 더욱 풍성해 진 것에 가산점 하나 얹어서 별점은 4점입니다. 첫 단편 "중력의 문제" 는 정말이지 정통 추리팬도 탄복할만한 멋진 밀실 트릭물이에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만한 장치도 풍부하니 쟝르 문학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자 밀실 트릭 걸작 중 하나라는 "중력의 문제" 는 앞서도 말했듯 정말 빼어난, 추리적으로 아주 파헤치는 다아시경의 활약을 그린 단편인데,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멋진 작품입니다!

일단은 탑 꼭대기에 위치한 방 안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추락했지만 방은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무대 설정을 비롯, 유력한 동기를 지닌 것 처럼 보이는 아들에다가 광신도인 딸이라는 기묘한 가족구성, 가스등과 거대한 샹들리에로 대표되는 - 고딕호러스타일도 느껴지는- 배경 묘사가 굉장히 과학적, 합리적으로 잘 짜여진 트릭과 어우러지고 있으며, 동기 및 단서의 제공도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SF로 유명한 "다아시 경" 시리즈이기 때문에 추리적으로 손해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두 번째 작품인 "비터 엔드"도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다아시경의 부하인 마술사 마스터 숀이 우연찮게 말려드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마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특징도 있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인물이 모이는 카페에서 범인은 가까이 가지도 않은 상태로 피해자만 콕 집어 독살시킨다는 원격조정 트릭이 설득력있게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경찰이 약간만 디테일하게 수사한다면 범인은 곧바로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헛점은 존재하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세 번째 작품인 "입스위치의 비밀"은 좀 애매합니다. 한 남자의 시체가 해변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총에 맞아 죽은 남자 옆에 발자국은 첫 발견자의 발자국밖에 없었다! 라는 추리적으로 흥미진진한 화두를 던져놓지만, 죽은 남자의 신원이 정보부 소속의 노엘 스탠디쉬라는 것, 그리고 스탠디쉬는 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중요한 "입스위치 파이얼"이라는 물건을 폴란드 제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폴란드 제국의 비밀경찰 세르카 요원을 추적하던 중에 결국 시체로 발견된 거라는 내용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폴란드 제국과의 스파이 전쟁 첩보물로 확 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름 첩보전의 스릴과 더불어 흥미로운 요소 - 스탠디쉬의 다이잉 메시지라던가, 갑자기 별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이유를 알수없는 특이한 현상 등 - 이 많이 등장해서 지루하지는 않지만, 폴란드 제국과의 첩보전을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게 묘사해서 결과적으로는 추리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던 소재와 트릭이 첩보전에 파묻혀버려 아깝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폴란드의 미녀 스파이가 등장해서 꿍짝을 맞추는 결말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도 재미는 있고 추리적으로도 버려진 낡은 외투를 가지고 벌이는 추리와 해변가에서 시체가 발견된 트릭의 발상 자체는 좋았기에 평작 수준은 됩니다. 무엇보다도 카사노바 다아시경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폭소! 왠지 피터 웜지 경 같은 느낌을 전해주던 다아시경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마음에 듭니다.

네 번째 작품 "열여섯개의 열쇠"는 영불제국과 루멜리아제국과의 이른바 "해군조약"에 관련된 이야기로, 주 콘스탄티노플 대사였던 복스홀 경이 맺은 조약의 문서가 사라지고 복스홀 경은 엄청나게 나이를 많이 먹은 모습으로 완전 밀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아시경이 곧바로 출격(?) 하여 복스홀 경과 그만이 통과할 수 있는 그의 여름 별장 열쇠 16개를 단서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요.

조금 소품스러운 느낌이기도 한데, 하룻밤의 소동(?)을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이야기도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를 연상시키는 수학적 트릭과 더불어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유쾌한 느낌이 가득해서 좋았습니다. 사람이 기괴하게 죽어나가고 중요 문서가 없어졌는데도 이렇게 유쾌하다니 정말이지 모를 일이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트릭 자체는 설득력이 떨어지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해군조약"은 홈즈, 포와로 등 많은 탐정들이 활약한 전력이 있는 추리계의 완소 아이템 중 하나로, 이 작품에서도 역시나 국가의 명운을 건 중요 조약 문서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점이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중 하나겠지요.

마지막 작품 "나폴리 특급 살인"은 네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해군조약"을 극비리에 운송하는 특명을 띈 다아시경과 마스터 숀이 탑승한 나폴리행 특급 열차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비밀 임무이기에 정체가 발각되면 안되는 이 두 컴비는 열차가 로마에 도착하기전에 사건을 대신 해결해 주기로 마음먹고 서둘러 사건해결에 나서게 됩니다. 

제목 그대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패러디이자 오마주 성격의 작품입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트릭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정통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높지만, 추리 애호가가 즐길만한 장치가 가득해서 정말이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집의 표제작에 어울리는 좋은 작품이에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어서 완성도도 아주 높으니까요. "중력의 문제"와 더불어 이 단편집의 투탑, 쌍두마차라 할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 작품 덕분에 작가의 또다른 패러디 - 오마주 작품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당연히 오리저널은 "요리장이 너무 많다" 죠)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여, 절판도서임에도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겨우 한권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배송되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우리 형제의 안팔리는 판타지-추리 소설 "장미빛 인생" 도 유사 쟝르죠. 차이점이라면 우리 작품에서는 마법이 추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정통 추리물처럼 써내려갔으니... 그래서 안팔리는건가?

2014/09/12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 하시 몬도 외 / 페가나 : 별점 3점

감방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2 - 6점
하시 몬도/페가나

"심령 살인사건"에 이은 페가나북스의 두 번째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입니다. 건승을 기원한다는 글도 남겼었는데 출간된 지 1년도 더 되었네요. 조금 무안합니다.

작가의 명성보다는 추리소설의 형식과 완성도를 기준으로 일본 근대 추리 단편의 걸작을 골라 수록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확실히 그에 걸맞게 좋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나 작품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분량도 적절하고 완성도도 괜찮습니다. 번역도 깔끔하며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요. 최소한 2,000원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시금 페가나북스의 건승과 함께, 이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를 기원합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방" - 하시 몬도

전전 홋카이도의 가혹했던 노동 현장(일명 문어방)을 무대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관리가 파견되어 노동자들로부터 고충을 듣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내용입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지하 강제 노역장이 연상되는 독특한 무대가 인상적이며, 발표 시기에는 금기시되었을 듯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현장 묘사도 짧지만 꽤 괜찮은 편이고, 극적 반전—사실은 정부관리가 파견되기 전 불평분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쇼였다—도 좋았고요.

한 번 정도 더 비틀어 주인공 화자가 진짜 정부관리 앞에서 또다시 실태를 증언하고, 그것조차도 쇼인지 아닌지 독자가 고민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깔끔한 단편이라는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덤불 속"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 원작 중 하나. 영화는 소설 "라쇼몽"의 무대 설정에 이 "덤불 속" 서사를 혼합한 구조라고 하죠.

여러 증언을 통해 진상을 밝히려는 전통적 추리물 구조를 갖추고는 있으나,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피해자 타케히로의 마지막 증언—빙의를 통해 전달된—때문에 더더욱 그러하지요. 다른 인물들이 모두 자기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만큼, 피해자의 증언이야말로 진실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지기는 하지만요.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독창적 시도였음은 분명하겠지만, 지금의 독자에게는 그 울림이 약합니다. 유명세에 비해 감탄할 만한 요소도 많지는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세 광인" - 오오사카 케이키치

이전까지 몰랐던 작가인데 정말 인상적인 본격물이었습니다. 망해가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세 명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의 특징을 복선과 트릭에 훌륭히 녹여낸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토록 복잡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 인물이 과연 피해자의 주요한 특징을 간과했을까? 라는 의문은 들지만, 워낙 본격물로의 완성도가 높아서 이 단편집 중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의 저력을 느끼게 해주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진동마" - 운노 쥬자

화자인 "나"가 친구 카키오카 아키로의 기묘한 낙태 작전, 그리고 직후 닥친 폐질환에 대해 서술해나가는 이야기.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공명 현상을 이용해 자궁을 진동시켜 낙태를 유도한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매우 참신했습니다. SF 작가다운 상상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카키오카의 폐와 여성의 자궁 크기가 유사하다는 우연, 이를 기반으로 범죄를 계획하는 화자의 전개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이 갑자기 등장해 모든 진상을 설명하는 방식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사망보험금 수령이라는 단서도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느낌입니다.

아이디어는 뛰어났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구성과 전개가 부족한데 전문 추리작가가 썼다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되었을 듯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 - 하마오 시로

아내의 불륜 상대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된 인물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그 차량 운전자가 바로 첫 번째 피해자의 형이었다는 내용으로 치밀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반전에서 모든 사고가 우연이었음이 밝혀집니다.

다양한 복선(특히 자동차 교체)이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등, 여러모로 모범적인 범죄물 단편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국내에 작가의 장편인 "살인귀"가 번역되어 있다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네요.

2015/04/14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 이정 외 : 별점 2.5점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 6점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지음, 로버트 실버버그 엮음, 이정 외 옮김/오멜라스(웅진)

이전에 읽은 1권에 이어지는 2권. 마찬가지로 e-book으로 읽었습니다. 수록작품은 모두 13편입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화성의 오디세이 A Martian Odyssey" - 스탠리 와인봄 Stanley G. Weinbaum
"헬렌 올로이 Helen O' Loy" - 레스터 델 레이 Lester del Rey
"길은 움직여야 한다 The Roads Must Roll" -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A. Heinlein
"소우주의 신 Microcosmic God" - 테오도어 스터전 Theodore Sturgeon
"보로고브들은 밈지했네 Mimsy Were the Borogoves" - 루이스 패짓 Lewis Padgett
"오로지 엄마만이 That Only a Mother" - 주디스 메릴 Judith Merril
"스캐너의 허무한 삶 Scanners Live in Vain" - 코드웨이너 스미스 Cordwainer Smith
"화성은 천국! Mars is Heaven!" - 레이 브래드버리 Ray Bradbury
"즐거운 인생 It's a Good Life" - 제롬 빅스비 Jerome Bixby
"즐거운 기온 Fondly Fahrenheit" - 앨프리드 베스터 Alfred Bester
"친절한 이들의 나라 The Country of the Kind" - 데이머너 나이트 Damon Knight
"앨저넌에게 꽃다발을 Flowers for Algernon" - 대니얼 키스 Daniel Keyes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A Rose for Ecclesiastes" - 로저 젤라즈니 Roger Zelazny

SF계의 어마무시한 거장, 큰형님들의 대표 걸작이 수록되어 있는 것은 1권과 같습니다. 국내 소개 기준으로는 1권보다 이름값은 조금 떨어지지 않나 싶은데, 로버트 하인라인, 레이 브래드버리, 로저 젤라즈니가 묵직하니 중심을 잡아줍니다.

그런데 SF 작가들의 투표로 선정된 리스트이기 때문일까요? "최고작"을 모았다기보다는 역사적 의미까지 고려하여 선정된 느낌이에요.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가 그러합니다. 좋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동명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프로스트와 베타"를 꼽고 싶거든요. 디테일한 과학적인 설정, 냉전시대의 세계관 등 현실이 잔뜩 투영된 그간의 공상과학 소설과는 다른 서정적이고도 종교적인 주제를 미려한 문체로 그려낸, 순문학에 가까운 새로운 SF의 "효시"라는 장르 역사적 의미가 커서 선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에서도 "화성은 천국!"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죠.

위에서 예를 든 작품들을 비롯하여 제 All time best이기도 한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처럼 다른 곳에서 소개된 작품이 많다는 점, 지금 읽기에는 낡은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은 단점인데 이건 걸작선이라는 특징 및 작품 발표 시기를 볼 때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이상할 정도로 읽기 힘들었는데, 원작 자체가 어렵게 쓰이기는 했겠지만 번역하면서 조금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쓰는 배려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저런 감점요소가 제법 있는데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는 강력 추천드립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아래에 짤막하게 리뷰 남깁니다.


"화성의 오딧세이"

열흘간 소식이 두절되었던 화성 탐사대원 자비스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마크 트웨인이 화성을 무대로 한 SF를 쓰면 이런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유머러스한 분위기, 허풍 가득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모험, 거기에 지구인의 탐욕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는 결말에서의 풍자가 그야말로 마크 트웨인 스타일인 덕분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스타일만 모방한 파스티시가 아닙니다.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친구가 된 타조 외계인 "트윌"에 대한 묘사 같은 설정의 디테일도 뛰어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길은 움직여야 한다"

모든 도로를 움직이게 만들어 나라 전체를 발전시켰지만, 기술자들이 파업을 일으켜 대형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한 총감독관 게인스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분위기는 하드보일드 범죄물 스타일인데 게인스의 활약이 별다른 게 없으며 전개도 뻔하고, 결말도 허무해서 전체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도로가 움직인다는 황당한 설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굉장합니다. 도로에 대한 세밀한 설정과 묘사에서 그야말로 거장의 힘이 한껏 느껴집니다. 이런 매력적인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이야기는 아쉽습니다만 이 설정 묘사 하나만으로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소우주의 신"

천재 과학자를 이용해 먹는 은행가가 과학자에게 색다른 동력 전송기를 만들게 한 뒤, 그것을 이용해 국가를 협박하고 과학자를 죽이려 합니다. 다행히 과학자에게는 그가 만든 새로운 생명체 네오테릭스들이 있었고, 네오테릭스들이 더 뛰어난 발명을 해서 과학자를 구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가득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악덕 기업가는 물론 기이한 피조물까지 생생한 캐릭터 묘사 역시 아주 일품이고요. 흡입력도 대단해서 네오테릭스가 과학자가 요청한 "방어막"을 만든다는 결말까지 손을 떼기 힘들 정도 였습니다. 재미만 놓고 따지자면 1권의 "투기장"과 비교될 만큼 최고였어요. 제 별점은 5점입니다.

"오로지 엄마만이"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들이 태어난다는 내용으로 냉전시대 핵공포가 만연했을 때 쓰여진 듯 합니다. 아이가 팔, 다리가 없이 태어난 돌연변이인데, 엄마만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반전은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캐너의 허무한 삶"

우주(작중에서 "위와 밖") 여행 시 느끼는 거대한 고통을 잊고,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스캐너라는 전문 직업인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몸의 감각을 없애고 "하버맨" 상태가 되어 우주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크랜치"라고 불리는 행위를 통해 잠깐이나마 감각을 회복할 수 있고요.
그리고 이들은 고통 없이 우주를 여행하는 방법을 알아낸 애덤 스톤을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들 직업의 위대함이 흔들리게 되니까요. 그러나 스캐너 중 한 명인 마텔이 인류를 위해 그를 구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은 굉장히 간단한데 스캐너, 크랜치 등 작중 나오는 관련 설정이 아주 상세하게, 설득력 있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텔의 활약이 이러한 설정 묘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약하며, 결말이 허무할 정도로 시시하고 간단한 해피엔딩이라는건 단점이지만 압도적인 설득력에는 점수를 줄 수밖에 없네요. "길은 움직여야 한다"와 비슷하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즐거운 인생"

조물주급의 초능력을 지닌 아이 앤서니를 중심으로 가족, 마을사람들이 마을 통째로 이세계를 방황한다는 내용의 작품.

SF로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이 "아이"로 태어난다면 그것은 재앙일 것이라는 주제를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앤서니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고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전전긍긍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신 앞에 비굴한 현대인을 풍자한 것으로 보이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서운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즐거운 기온"

인간에 가까운 다기능 안드로이드가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를 추리물 스타일로 풀어낸 작품. 일종의 서술 트릭이 도입된 점도 특징입니다.

하지만 그냥 추리극 형태로만 풀어내는 게 깔끔했을 것 같아요. 밴덜루어와 안드로이드에게 서로를 구분할 수 없는 일종의 "투영" 현상이 일어났다는건 이야기에 넣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혼란스러워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좀 더 짧고 깔끔하게 전개했더라면 보기 드문 SF 추리물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