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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밀실살인게임 2.0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밀실살인게임 2.0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호인 다섯명. 반도젠 교수, 두광인, aXe, 쟌가, 044APD. 이 커뮤니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추리하는 '리얼탐정놀이' 커뮤니티였다.

저는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통파를 좋아하지요. 추리는 정통파 본격 미스터리, 야구는 정통파 강속구 완투형 에이스 투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멸종해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어쨌건 이러한 야구 시각으로 본다면, 우타노 쇼고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라기 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입니다. 잘 짜여진 플롯과 동기, 복잡한 인간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와중에 트릭을 통한 두뇌게임이 펼쳐지는 고전적인 본격물보다는 기발한 트릭과 그에 따르는 전개에 치중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트릭이 중심인 기교파 소품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쁜건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도 역대급 작품이 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같은 강력한 결정구가 있으니까요. 다른 구질(작품)들도 충분히 제 몫을 하며, 팬들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유형이니까요. 실제 야구에서도 이런 투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죠. 팔색조 조계현 선수처럼요.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비유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트릭이 풍성하고 설정을 독특하게 가져가며 등장인물 캐릭터에도 트릭이 숨어 있는 등 특유의 화려한 퍼즐러, 트리커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기교파로서의 단점 또한 도드라져서 안타깝습니다. 트릭, 즉 변화구의 각도와 위력은 좋았지만 동기와 설득력, 이야기 전개라 할 수 있는 제구가 영 꽝이었던 탓입니다. 온전히 트릭을 위해 짜맞춰진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였거든요. 트릭이 없다면 작품으로 성립이 힘들 정도입니다. 이래서야 소설보다는 추리 퀴즈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또한 아무리 사회부적응 잉여 오타쿠들이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합니다. 실제 범행 과정에 소요되는 돈과 노력,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디어에 보도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아마추어 추리 애호가들이 모여 추리한다거나, 각자 생각한 트릭을 문제로 낸 뒤 서로 해결하기위해 머리를 짜내는 이야기 쪽이 훨~씬 좋았을거에요. 이편이 보다 스트라이크에 가까웠겠죠. 지금의 결과물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헛스윙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공 자체는 볼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트릭이 비록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개면에서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완성도를 인정받을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볼의 위력이 좋아도 도망다니는 투수보다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진짜 투수인 처럼요. 그래도 트릭만큼은 괜찮은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음 투구에서는 보다 제구력이 동반된 피칭을 기대해 봅니다.

이하 에피소드 상세 소개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1.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

이야기의 시작. 다섯 명의 멤버가 접한 살인 사건 보도. 그들은 사건이 살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한 뒤 진상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살인게임 동호인이 많다는 설정 자체도 넌센스에다가 아무리 오타쿠 추리 매니아들이더라도 추리를 하는 과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편집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에피소드입니다. 트릭도 별다른 것은 없고 순수한 수사와 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의 공정한 참여가 차단되는 측면이 강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딱 한 가지, 달력에 예고를 남기는 것이 단지 날짜와 술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인 맨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달력처럼 구성된 맨션의 체크된 날짜와 호수를 일치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 게 솔직히 말이나 됩니까... 애시당초 일반인에 가까운 커뮤니티 멤버가 도출 가능했던 연관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모르고 넘겼을 가능성도 낮고요. 

놀라운건 이 에피소드가 멤버들의 범행이 아닌 조사와 추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Q2. 밀실 따위는 없다.

Q1에서 반도젠 교수가 낸 수수께끼와 그것을 응용한 두광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다루는 간단한 소품.

수수께끼 수준이라 딱히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밀실살인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성립한 것으로, 밀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aXe의 발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공감가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Q3. 살인마 잭 더 리퍼, 삼십 분의 고독

Q2에서 범행을 예고한 쟌가가 토막살인으로 밀실을 만든 뒤 그것을 모두가 추리하는 이야기.

다리 두 개를 문에 놓아둔 것만으로 밀실이라는 설정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두 쪽이 문에 기대어져 있다 한들 문을 여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핵심 트릭은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써봄직한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한 이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작품 속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온도계를 이용한 미끄럼틀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죠. 물론 트릭대로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시체 속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을 이용할 것이면 더 교묘한 밀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피해자와 딸만 가지고 있는 열쇠를 이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텐데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트릭은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Q4. 상당한 악마

Q3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두광인의 귀축 단두살인사건 예고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광인이 화상 채팅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특정 장소를 보여주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었고요. 커뮤니티 멤버가 일종의 증인이 되어 두광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걸 증명하게 된다는 발상의 전환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핵심 트릭이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잘 됐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피해자 루카가 통화 중 실수 한 번만 하더라도 모든 게 틀어질 테니까요. 또 두광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커뮤니티처럼 위험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과 반전이 합리적 전개보다 우선한 나쁜 사례죠. 별점은 2점입니다.

Q5. 세 개의 빗장

aXe군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다는 트릭을 이용하여 구현한 눈 속의 밀실살인이 수수께끼로 던져지는 에피소드.

눈이 그친 이후에도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제시되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발자국 하나 없는 쓰레기장 한가운데의 전화박스 형태의 박스였습니다. 박스는 세 개의 빗장이 걸려있는 이중밀실이었고요. 이를 위해 aXe군이 계속 이야기하는 정교한 장치 트릭이 선보입니다.

이런 류의 트릭은 극 중 aXe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어서 실효성이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트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정에는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소와 도구가 잘 맞아떨어진 괜찮은 트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치의 정교함에 대한 묘사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단서 제공이 필요해서 만화에 더 잘 어울렸겠지만, 평작 수준은 되는 에피소드라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추리 게임의 필요도 없이 진상은 이미 밝혀졌을 텐데,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Q6. 밀실이여. 잘 있거라

멤버 중 명탐정 역할을 담당한 044APD가 낸 수수께끼. 관리인과 현관 자물쇠로 잠긴 이중밀실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트릭은 범인이 피해자이며 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의 함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핵심 트릭인 밀실살인 외에도,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암호 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확실히 풍성합니다.

그러나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거기에다가 044APD와 마미야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상은 정말 트릭을 위한 것일 뿐, 동기 측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배달해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트릭은 화려하지만 그 외의 것은 뭐 하나 합리적인 것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트릭은 아닌데, 트릭이 아깝네요.

2004/07/26

트렌트 마지막 사건 -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 손정원 : 별점 2점

트렌트 마지막 사건 - 6점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미국의 대부호이자 제계의 거물인 시그즈비 맨더슨이 영국의 자택 근처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의상을 갖춰 입었지만 틀니를 하지 않았고, 자살로 보기에는 근처에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집 가까이에서 살해되었는데 아침까지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 점 등으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사건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위해 런던의 신문사 레코오드지의 주필 모로이경은 화가이면서도 민완 탐정으로 뛰어난 지혜를 발휘해 온 필립 트렌트를 고용했다. 트렌트는 맨더슨의 전날의 행적을 시간대별로 추적하여 유력한 용의자를 알아냈지만, 미망인 메이벨을 위해 사건을 공표하지 않고 사건은 맨더슨의 미국에서의 원한 때문에 만든 적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행으로 일단락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건이 1년 정도 지난 후에 트렌트는 메이벨을 우연히 다시 만나 사건을 다시 되짚은 뒤 모든 진상을 알게 되는데….

브라운 신부의 저자 체스터튼의 절친한 친구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필립 트렌트라는 명탐정을 등장시켜 수수께끼 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죠.

제목이 마지막 사건이라 저는 처음에는 필립 트렌트 시리즈 중 완결편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뒷 부분의 해설을 보니 저자 벤틀리의 장편 데뷰작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데뷰작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에다가, 탐정의 캐릭터도 상당히 명확한 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 한명만 살해되고, 용의자로 압축될 수 있는 인물이 한정되어 있는데 비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어서 읽기에 좀 지루합니다. 사건과 관계없는 부분의 묘사가 많지는 않지만 대체로 장황하고 서술적이라 더욱 그랬어요. 초반부터 등장해서 트렌트와 굉장한 두뇌싸움을 보여줄 것 같았던 마아치 경감은 중반 이후 등장하지도 않는 등, 쓸데없는 캐릭터까지 등장해서 소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지루함을 가중시키고요. 
더군다나 탐정인 필립 트렌트는 화가이자 신문기자, 탐정이라는 설정으로 사건에 투입되는 과정은 “노란방의 비밀”의 룰르타뷔유가 연상되는데, 탐정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감정 과잉인 캐릭터로 별 볼일 없는 유머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는 듯한 언행을 일삼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미인 미망인 메이벨과의 사랑이 결국 이루어지는 로맨틱한 설정은 상당히 독특했습니다. 바로 전에 읽은 “빨간 머리 레드메인즈”와 정반대의 설정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거기에 보기 드물게 결과적으로 해피엔딩인 마무리는 제법 괜찮은 편입니다. 정통파답게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트릭이나 막판 만전 같은 것은 굉장히 좋거든요. 물론 여기까지 읽어 가는 과정이 무척 힘들지만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발표된 시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루한 부분이 많은 편이라 감점합니다. 정통파 고전 추리물의 원형에 가까운 작품으로 완독한 작품 목록에 추가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로써 구입하고 읽지 않고 남겨두었던 책들을 거의 모두 정리한 것 같습니다. 첫 인상에 “지루하다!”라고 느껴지는 작품들은 백발백중 지루한 편이라 한번 날 잡아서 읽어주지 않으면 사실 계속 읽기가 힘든 편인데, 이번에 뭔가 숙제를 끝낸 것 같아 개운하네요. 요사이 좋은 추리 장편들이 상당히 많이 번역되어 나오는 계절이지만 다음에는 기분 전환 겸 해서 가벼운 추리 단편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2004/09/27

중국 오렌지의 비밀 - 엘러리 퀸 : 별점 2.5점

 
중국 오렌지의 비밀 - 6점 엘러리 퀸/시공사

뉴욕 챈슬러 호텔 22층에 있는 맨더린 출판사 사장 도널드 커크의 사무실에 찾아온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인 대기실의 모든 집기에서부터 피살자의 복장까지 거꾸로 뒤집혀 있는 괴상한 상황에 더해 밀실에 가까운 대기실의 존재 탓에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도널드 커크의 친구인 엘러리 퀸은 우연히 사건에 뛰어들게 되고, 피살자의 복장에서 단 하나 빠져있던 "넥타이"를 주목하며 특유의 추리력으로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엘러리 퀸의 국명시리즈의 하나로 초기작이라 볼 수 있는 작품.
개인적으로 엘러리 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를 어려운 인용구를 남발하는 식의 잘난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죠. 그래서 우연찮게 구했던 몇몇 작품만 읽고 애써 구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블로거 "옥수수밭"님의 도움으로 구해서 읽게된 이 작품은...! 엘러리 퀸의 잘난척과 인용구는 역시나 가득하지만 고전 추리로서의 미덕과 정통파로서의 품격과 내용을 모두 갖추고 있는 좋은 작품이더군요. 역시 선입견을 가지면 안되요... 반성, 반성합니다. 

여튼, 누가 뭐래도 정통파는 의외의 상황, 정교한 트릭, 의외의 범인 이 세가지가 잘 짜여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거의 밀실에 가까운" 방에서 모든것이 뒤집혀진채로 죽은 피해자 (입고있는 옷과 방의 모든 가구들, 심지어 그림까지!)라는 의외의 상황과 이 상황을 잘 이용한 트릭, 그리고 가장 범인 같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 까지 정통파의 플롯과 내용을 그대로, 하지만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부분으로 독자에게 지적 게임을 유도한다던가 후반부의 엘러리가 관련자 전원을 모아놓고 추리쇼를 펼치는 부분은 김전일과 코난류의 일본 추리 만화의 마지막 장면과 무척이나 흡사하여 왠지 친근감마저 느껴졌고요. (특히나 김전일과 굉장히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범인이 갑자기 닥친 상황에서 급하게 짜낸 트릭으로 완벽한 알리바이를 구축할 수 있었다라는 부분의 설득력이 약한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이런 트릭으로 방을 밀실로 만들고 알리바이를 만드느니 시체를 잠깐 동안만 숨겨놓고 나중에 태워버린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처리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방을 밀실로 만드는 방법은 약간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감히 잠깐 생각했던 트릭으로 엘러리 퀸에게 대결하다니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마음에 들은 부분이 많고 내용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국명 시리즈는 "이집트 십자가", "그리스관" 에 이어 이로써 세 작품 째인데 기회가 된다면 더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책을 주신 옥수수밭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PS : 그런데.. "중국 오렌지"라는 제목은 억지네요. 국명시리즈라는 타이틀에 엘러리가 너무 집착한 듯 싶어요^^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19/04/06

블러디 머더 - 줄리안 시먼스 / 김명남 : 별점 2.5점

블러디 머더 - 6점
줄리안 시먼스 지음, 김명남 옮김/을유문화사

추리 작가인 줄리언 시먼스가 쓴 추리, 범죄 장르 문학 역사서입니다. 이쪽 바닥(?)에서는 확고한 명성을 다지고 있는 책이지요. 1794년 출간된 윌리엄 고드윈의 "칼렙 윌리엄스" 부터 시작해서 비도크, 에드거 앨런 포와 찰스 디킨스, 월키 콜린스, 에밀 가보리오로 이어진 범죄 문학이 셜록 홈즈로 대표되는 단편 추리물로 만개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스, 앤서니 버클리 콕스, 반 다인 등 거장들에 의해 추리 문학 "황금기"인 1920~30년대에 이른 후 정통파에서 하드보일드 등으로 변주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범죄 문학 역사의 주요 변곡점과 주요 작품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및 기타 국가의 추리, 범죄 소설도 비중있게 언급됩니다. 뒤렌마트의 범죄 소설들이라던가 부알로 - 나르스자크,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작품들이 그러하죠. 스웨덴의 페르 - 마이셰발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특히나 페르 - 마이셰발 작품이 좌파적 견해를 드러낸다는 시각이 독특한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확실히 그런 느낌이 떠오르기는 하네요. 저는 이런게 유럽 스타일이구나 싶었는데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스파이 소설은 아예 한 단락을 할애합니다. 대부분 아는 작가와 작품들인데 이 중에서도 문학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최초의 스파이 소설인 어스킨 칠더스의 "사막의 수수께끼"야 말로 모든 스파이 소설과 모험 소설 중 최고작의 반열에 오를만 하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번역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북이 저렴하게 나와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략적인 추리, 범죄 문학의 역사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내용이라 딱히 새롭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눈길이 간 건 저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러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저자 본인이 추리 소설 작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트릭에 대해서는 평가가 박하고 문학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추리 소설은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를 선호합니다만, 작가의 주장처럼 수수께끼 풀이는 그냥 핏기없고 인물없는 게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수수께끼 없이 범죄와 인물에만 기댄 작품도 반쪽짜리일텐데, 그런 부분에 관대한건 좀 이해가 되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 해밋의 "유리 열쇠"를 당대 최고작이라 극찬하는데, 그 이유는 캐릭터 묘사로 대표되는 문학적 성취 때문입니다. 트릭은 부차적이고요. 하지만 단지 캐릭터와 인간관계만으로 최고 성과라니 평이 과하다 싶습니다.
스펜서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B 파커를 챈들러의 후계자로 언급된다고 소개한 단락도 뭔가 싶었네요. 전형적인 펄프 픽션 작가로 좋은 평을 줄 만한 부분이 전혀 없는데 말이지요.

반대로 윌리엄 아이리쉬를 플롯이 한심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는 이유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박한 평가를 받을 작가는 아닙니다. 평가 절하된 작가는 또 있습니다. 조세핀 테이가 대표적이에요. 지루하다는 이유인데 역시 수긍하기 힘듭니다. 그 외에도 존 르 카레, 제임스 엘로이 등도 평이 좋지 않더군요. 

작가 특성상 단편에 좋은 평을 주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러리 퀸의 초기 단편집에 좋은 평가를 한 건 눈에 뜨입니다. 암, 좋은 작품이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비슷한 수준으로 여기는 푸아로미스 마플 단편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주지 않는건 의외였습니다. 장편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진다는게 그 이유인데 말도 안됩니다!

이렇게 평가는 좀 갈리지만, 잘 몰랐던 작품들에 대해 스포일러 없이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개는 일품입니다. 몇 몇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해봅니다.
우선 1920년대 작가인 필립 맥도널드가 있습니다. "줄"에서 엔서니 게스린 대령을 소개했다는데 최고작은 "리녹스"와 <> 두편이라는군요. 존 딕슨 카는 저 역시 좋아하는 작가인데 줄리언 시몬스는 최고 작품으로 "할로 맨"을 꼽습니다.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으로, 1980년대 전문가 집단의 최고의 밀실 소설 투표에서 카의 다른 작품들 - "구부러진 경첩", "유다의 창", "열개의 찻잔" - 보다 두배 가까운 표를 얻었다고 하며 "환각과 위장에서 문제를 끌어낸" 소설이라니 궁금해서 미치겠네요. 마찬가지로 황금기 작품인 C.데일리 킹이 쓴 세 편의 "오벨리스트" 시리즈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학파의 심리학자들이 함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완벽하게 공정한 정통파 추리소설이라니까요.
황금기 이후 작품 중에서는 페트릭 퀜틴의 "두 아내를 가진 남자"와 "로널드 셸던의 아내",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와 "피 흘리는 사랑"에 대한 평이 괜찮고요. 시릴 헤어의 "법정의 비극"은 코미디적 감각과 인물에 대한 진실된 감정으로 순회 재판 판사의 삶이 잘 묘사된 그의 최고작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소개된 에드거 러스트가튼의 "대답해야 할 사건", 케네스 피어링의 "커다란 시계", 헬렌 유스티스의 "수평의 남자", 존 프랭클린 바딘의 "악마의 푸른 꼬리 파리" 모두 한 번 읽고 싶어 집니다. 국내 소개된건 아쉽게도 "커다란 시계"밖에 없지만요. 

이후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범죄 소설가 중 가장 중요하다며 소개하는 단락은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작가라 무척 반갑기도 했고요. 이어서 소개되는 마고 베넷의 작품들도 굉장히 흥미로운데, "비행하는 남자들"은 국내에 소개되면 참 좋겠습니다. 로스 맥도널드에 대한 호평도 좋았고요. 마거릿 밀러의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지만, 여기서 최고로 치는 "천사처럼"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으니 이 작품까지는 읽어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작품 소개만 흥미롭다면 인터넷 서점 리뷰보다 나을게 없죠. 아니, 국내 소개된 작품이 드물다는 점에서는 인터넷 서점보다도 못합니다. 전문가적인 시각이 반영되었다고는 하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느낌이 강해서 마음에 들지 않고요. 명성에 비하면 조금은 실망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7/08/24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 김민영 (자유추리문고 35-36) : 별점 2.5점

중간지점의 집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10여년만에 우연히 변호사인 친구 빌 에인절을 만난 엘러리 퀸은 빌 에인절의 처남이 살해되는 사건에 휘말렸다. 엘러리 퀸은 기억을 더듬어 빌의 처남 조지프가 사실은 이중결혼 생활 중인 사기꾼(?)이라는걸 밝혀 냈지만, 그의 생명보험 및 이중결혼에 대한 배신감이라는 동기가 부각되어 빌의 여동생 루시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빌은 루시의 재판에서 스스로 변론을 맡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지만 재판에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엘러리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 수사를 계속 하는데...

엘러리 퀸 시리즈에서 중간정도 시점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약간 긴 장편으로 독자에게의 도전이 담겨있는 등 정통 추리물을 표방한 작품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몇번 이야기했지만 잘난척 하는 탐정을 싫어해서 엘러리 퀸 시리즈는 썩 좋아하지는 않으나(물론 반 다인에 비한다면야 장난 수준이지만) 그래도 정통의 맛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는 제 취향이라서 구할 수 있으면 대체로 읽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완독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네요. 그닥 유명하지도 않고 해서 애써 구해보지 않은 탓이죠.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잘난척 하는 모습이나 유식함을 자랑하는 미사여구가 남발하는 등 여전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엘러리 퀸의 조금은 색다른 면모 (플레이보이?) 가 보이며, 엘러리의 친구 빌의 로맨스에 대한 묘사가 특이하긴 합니다. 작품에 크게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 그다지 잘 표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엘러리 퀸 작품에서 보기 힘든 "법정 드라마" 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당시 법정물이 유행은 유행이었던 모양이네요. 어쨌건 법정씬이 중반부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분량도 많지만 변호사와 검사간의 논리대결 역시 타 법정물에 그다지 밀리는 수준이 아니라서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유력한 증거"와 "상황 증거"의 차이를 가지고 벌어지는 한판 승부가 무척 재미있었던 덕분입니다. 배심원 제도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고요. 그리고 추리적으로는 이름난 정통파 답게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런데 엘러리 퀸 답지 않게 결정적인 단서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물론 교묘하게 단서를 숨겨놓기는 했지만 조금만 찬찬히 읽어본다면 확인할 수 있기에 숨겨놓는 방법에서 조금 실패한 느낌이거든요. e-Book 시대가 되어 검색이 용이해진다면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울러 범인을 밝히는 "추리쇼"가 너무 작위적이었다는 것 역시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여전한 고전 정통파적인 면모는 느껴지며 작품의 수준 역시 범작 수준은 되는, 재미있게 읽을 만 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목도 멋드러지고 번역이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번역자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제 취향은 아니라는 것 하나만 문제였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12/22

독초콜릿 사건 - 앤소니 버클리 콕스 / 김선옥 (자유추리문고 10) : 별점 4점

독초콜릿사건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손정원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유명한 난봉꾼 유스티스 펜퍼더 경은 선물로 도착한 초콜릿을 같은 클럽 회원 벤딕스씨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초콜릿을 먹은 벤딕스씨의 부인이 초콜릿에 들어있던 독 때문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런던 경시청의 수사는 난항에 빠졌고, 경시청 주임경감 모리스비는 친분이 있는 소설가 로저 셀링검에게 그가 회장으로 있는 범죄 연구회에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뒤, 그들의 추론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경시청에 보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범죄 연구회 멤버 6인은 순번을 정해 차례로 자신들의 추리를 발표하는데...

이번에 구입한 자유추리문고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아주 유명한 고전 명작이지요. 너무 늦게 읽은 감은 있네요.

이 작품 전에 발표되었다는 단편 버젼은 이미 읽어봤지만 이 작품은 단편 버젼의 사건과 상황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6명의 범죄 연구회 회원들이 각자의 추리를 펼친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독자에게 다양하고 화려한 추리의 향연을 느끼게 해 줍니다. 추리 클럽 회원들의 추론 및 결과 하나 하나가 각각 추리소설로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이런 설정은 흡사 단편 연작을 읽는 듯한 느낌도 전해 줍니다.
전에 읽었던 "시행착오"의 치터윅씨의 등장도 반가왔고, 각 회원들이 자기 차례가 될 때마다 이전의 추론을 뒤집고 새로운 결론을 발표하는 전개로 독자가 회원들과 동일한 정보를 입수하여 끝까지 함께 두뇌 게임을 펼치게끔 하는 구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공정한 승부야말로 정통파 고전 미스테리로서의 최고 미덕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작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그동안의 추리소설의 탐정들의 추리방식, 즉 하나의 단서만 가지고 단 하나의 추론만 내세우며 그것이 바로 결과가 되는 방식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소설이면서도 추리 소설의 헛점을 제대로 꼬집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보완하여 다양한 추론이 등장하게 한 아이디어가 이 작품을 당시의 기존 추리 소설보다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지니게 만든 힘이었다 생각되네요.

단 너무 복잡하게 꼬아놓은 나머지 결론이 조금 황당하다기는 합니다. 한두발짝만 더 나아가면 좋았을 것을 대여섯걸음 더 나아간 느낌에요. 그런 면에서는 단편 버젼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다 생각됩니다. 물론 단편 버젼의 추리도 주요 추론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역시 추리소설사에 이름을 남긴게 당연할 정도로 기발하면서도 재치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좋은 작품은 몇년, 아니 몇십년이 지나도 재미있고 좋은 작품인거죠. 별점은 4점입니다. 고전 정통파 추리물 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5/05/18

시계 도둑과 악인들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별점 2점

시계 도둑과 악인들 - 4점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방주", "십계"로 유명한 신예작가 유키 하루오의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 전직 도둑 하스노가 탐정역을 맡고, 그의 동료로 화가 이구치가 등장하는 다이쇼 시대 무대의 단편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 작품은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등장인물과 배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느슨한 연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단편집의 가장 큰 장점은 기발한 트릭과 추리 구조에 있습니다. 불가능 범죄로 보였던 사건이 논리적으로 해결되는데, 이를 위한 단서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말 그대로 '정통파 추리물'인 셈이지요. 유괴, 밀실 살인, 연쇄살인, 보석 도난, 일상계스러운 편지에 얽힌 과거의 비밀 등 사건의 종류도 다양해서 흥미를 더해주며,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린 묘사, 인물 간의 대화들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하스노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엘리트 출신의 전직 도둑으로, 굉장히 독특한 사고 방식을 갖춘 천재 탐정이라는 비현실적인 인물을 묘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단편 전반에 걸쳐 범인의 동기가 전반적으로 약한 탓에, 와이더닛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억지로 만든 설정이 눈에 띄며, 일부 트릭 역시 과정은 흥미로우나 실행 가능성이나 현실성 면에서 허술함이 느껴지고요. 또한 장황한 묘사로 인해 리듬이 끊기거나, 인물의 심리가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아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하스노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데, 화자가 이구치가 아닌 단편들에서는 하스노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본격 추리물로 트릭과 분위기는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이야기 전체의 완성도는 다소 부족한 편입니다. 작가의 팬이시라면 추천드리지만, 그렇지 않다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에몬 씨의 미술관"

화가 이구치는 친구 하스노에게 시계 바꿔치기를 부탁했다. 이구치의 아버지가 자산가 가에몬 씨에게 판 시계가 사실은 모조품이었고, 가에몬 씨가 그것을 미술관에 전시하려 하자 일이 커지기 전에 진품으로 되돌리려는 목적이었다. 말로 설득하는걸 포기한 두 사람은 미술관에 잠입해서 직접 바꿔치기를 시도하는데...

이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도입부로는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전직 은행원이자 도둑 출신인 미남자 하스노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좋습니다. 다이쇼 시대를 충실히 그려낸 시대 묘사도 매력적이고요. 별 거 아닌 것처럼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모아 진상을 추리해내는 정통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도 괜찮은 편입니다. 가에몬 씨의 알 수 없는 언행 - 왜 미술관을 촌 동네에 만들었는지, 왜 미술관을 세우려는데 전시할 그림을 판매할 사람은 불신하는지, 본인은 그림을 보는 눈이 없다고 했으면서 왜 미술관에 소장품을 전시하려 하는지 - 와, 기묘한 미술관의 구조 - 긴 통로 위의 초가 지붕, 두꺼운 벽돌 담장, 화풍이나 시대순이 아닌 뒤죽박죽 전시 배치 - 등은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한 하스노의 추리도 합리적이에요. 미술관은 마음에 안 드는, 진위가 의심되는 소장품을 화재를 위장해 태워버리려고 만든 건물이었다는 것이지요. 하스노가 화재가 일어날 시점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논리적이라 마음에 들고요.

하지만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진위가 의심된다면 단순히 폐기하거나 감추면 되는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고 복잡한 과정을 택했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캐릭터, 추리는 나쁘지 않지만 동기 부분의 설득력이 낮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악인 일가의 밀실" 

미노다 가의 차남 아키마사가 밀실에서 살해당했다. 미노다 저택에는 장남 유키마사, 장녀 미치에, 막내 아쓰요시, 당숙 아키히코 등 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는 막장 가족이었다. 아키마사는 가족 중 유일하게 하녀 아쓰코와 함께 상식인처럼 보였으나, 실은 사기를 일삼던 악인이었다. 사기 피해 배상을 위해 저택을 찾은 하스노와 이구치는 하녀 아쓰코를 도와 밀실 살인의 진상을 밝혀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밀실 트릭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빗장으로 굳게 잠긴 문이지만, 사실 빗장은 애초에 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문은 밀실에 굴러다니던 공구(끌)를 열쇠 구멍으로 실을 넣어 끌어 올린 뒤, 고정쇠에 걸어 잠갔습니다. 문을 부술 때 공구는 바닥으로 떨어져 증거가 인멸되었지요. '고정쇠에 꽉 끼어 외부에서 실 정도로는 움직일 수 없는 빗장'이라는 맹점을 깨고 현실적으로도 구현 가능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또 하나의 장점은 피해자가 유키마사였던 이유입니다. 이 막장 가족 내에서는 죽었을 때 곧바로 신고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 유키마사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족이라면 죽든말든 아침까지 내버려 두었을거라는 거지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증오로 뭉친 가족을 묘사한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 역시 동기의 설득력에 큰 결함이 있습니다. 범행 동기가 고작 '성질 고약한 아버지가 보낸 빗장을 망가뜨린 것을 숨기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 문을 부술 때 망가진 걸로 위장하느라 밀실 살인을 저질렀다는데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문을 부수기 위해 밀폐했다'는게 목적이면, 그냥 불을 지르고 밀실을 만드는게 더 손쉬웠을거에요. 또한, 이따위 동기를 위해 이렇게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윤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워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인물 묘사도 지나치게 1차원적이라, 악한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만화 속 등장인물처럼 느껴집니다. 화자 역할을 맡은 하녀 아쓰코도 엿듣기 능력자라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해 존재 이유가 애매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은 인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동기와 평면적인 인물 묘사는 끔찍한 수준입니다.

"유괴와 대설 - 유괴의 장 / 대설의 장" 

이구치의 처형 부부의 딸, 미네코가 유괴되었다. 이구치는 하스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유괴범들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둘은 여러가지 단서를 확보하여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 결국 둘은 미네코를 구해내고 범인 일당을 일망타진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의 백미는 하스노의 추리 과정입니다. 하스노는 범인들이 남긴 몇 안 되는 단서, 예컨대 은행 영업시간 이후에 편지를 보낸 점, 자정에 몸값을 요구한 점, 현금으로만 요구한 점 등을 근거로 범행의 목적이 ‘집에 있는 특정한 현금’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 결과 집안의 돈 중 위조지폐가 섞여 있음을 밝혀내지요.
범인들이 몸값을 받기 위해 장인을 커다란 굴뚝 위로 유도하고, 올라간 틈을 노려 짐을 훔쳐낸다는 설정은 몸값 회수의 현실적 대안으로 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범인들이 숨겨놓은 돈을 위조지폐 사이에 넣기 위해 위조지폐를 직접 제작했다는 발상도 참신했고요. 

하스노와 이구치가 좁은 은신처 공간에서 강도 일당을 하나씩 제압해 나가는 장면도 긴장감과 함께 재미를 전해 줍니다. 제한된 환경 안에서 도구를 활용해 열세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은 영화 "나홀로 집에"를 연상케 하고요. 

하지만 동기에 대한 설득력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범인들이 유괴를 실행한 이유는 위조지폐의 출처가 드러나면서 은신처가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리에를 살해했고, 일본을 떠날 계획까지 세운 상황에서 굳이 유괴라는 위험한 수를 둘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강도 경험이 풍부한 일당이 원래 방식대로 범행을 저지르고 돈을 마련해 떠나게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니까요. 
아울러, 위조지폐를 만들어 돈을 숨겼다는 것도 참신하지만 설득력이 낮습니다. 

또한, 범인 일당이 두 패로 나뉘어 있었고, 아키야마가 만다를 살해한 뒤 미네코가 범인인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이미 돈을 확보한 상황에서 만다 일당을 제거하려 했다면, 더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와 활극은 인상적인 부분이 있지만, 범행 동기와 일부 전개는 여전히 무리수가 많아 감점합니다.

"하루미 씨의 외국 편지" 

이구치와 하스노는 은인인 하루노 사장을 만났다. 하루노 사장은 하스노에게,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도착한 프랑스어 편지를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그는 자신과 자매 사이였던 세 명의 여자가 얽힌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하스노는 과거를 조사하여 편지에 담긴 진실을 밝혀낸다.

이 작품은 앞선 단편들과는 결이 다른, 잔잔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지닌 일상계 힐링물입니다. 사람 사이의 은혜와 보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 인상적이네요. 하루노 사장이 겪은 삶의 굴곡 — 처음 교제했던 하루미의 사고사, 이어 그녀의 여동생 쓰키요와의 결혼, 그리고 다시 쓰키요의 여동생 야요이와의 결혼 — 은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설득력있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하루미를 구하려다 불구가 되어버린 프랑스인 샹플랭에게 하루미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하루미의 동생들이 하루미의 삶을 대신 살아갔다는 이야기인데 아주 그럴싸했습니다. 다이쇼 시대라면 더욱 '보은'에 신경썼으리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루노 사장이 쓰키요 사후 겪었던 도난 사건은 야요이와 결혼하려는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추리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해 줍니다.

다만, 아무리 보은이라도 일생을 바쳐 편지를 보냈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죽기 직전까지 야요이가 하루미인 척하며 샹플랭에게 편지를 썼다는건 감동적이기보다는 억지로 보였고요. 야요이가 하루노 사장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조금 더 뚜렷하게 드러냈더라면 감정선이 훨씬 명확해졌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따뜻한 이야기와 독특한 진상 설정은 좋았어요. 마무리만 여운을 남겨주었더라면 더 좋은 점수를 주었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미쓰카와마루호의 요사스러운 만찬"

전쟁통에 돈을 번 졸부 히로카와는 '흑조회'라는 괴상한 회합을 열어 왔는데, 이번에는 화물선 미쓰카와마루호에서 호랑이를 요리해 먹기로 했다. 만찬 직전에 고용인 데루에는 손님 미나미의 처참하게 훼손된 시체를 발견하고 히로카와에게 알렸지만, 사체는 사라졌고 히로카와는 이를 함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데루에는 하스노 일행에게 사실을 고백했고, 이들은 함께 배 안을 재조사해 나갔다. 

그들은 미나미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던 신문기자로, 손님 중 누군가를 체포하려다 오히려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또 다른 손님 히라이가 살해된 후 하스노는 히라이의 시체 유기 방식을 단서로 삼아 범인을 밝혀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수수께끼 풀이의 정석을 따르는 정통 추리물로서의 재미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스노와 독자 모두에게 동일한 단서가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호랑이가 있는 창고를 여는 열쇠 주머니를 옮길 수 있었던 인물, 그리고 사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쇠밧줄의 위치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 진범이라는건 독자들도 모두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의미해 보였던 요소들이 모두 퍼즐의 일부였다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예를 들어, 미나미의 시신에서 살덩이를 베어낸 행위는 단순히 연쇄살인의 특징으로 여겨졌지만, 실은 그것으로 호랑이를 유인해 창고 안 석탄 자루를 꺼내기 위한 장치였거든요. 배라는 폐쇄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건 전개와, 배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비들을 트릭과 연결시킨 설정은 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빛을 발하고요.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구리야마의 의도 — 승객 전원을 살해한 뒤 인육으로 식량을 조달하며 도주할 계획이었다는 설정 — 는 작품에 섬뜩한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화가 이구치와 그의 친구 오쓰키가 나누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대화도 이 작품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입니다. 여성 시신을 훼손해 예술품처럼 연출한 범인을 예술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이구치는 '예술은 완전히 무의미하면서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쓰키는 여성 시신을 훼손한 결과물이야말로 '무의미하고 가치있는 물품'이라서 예술일 수 있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구치는 성적 욕구 때문에 이렇게 저지른거라면, 배가 고파서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만든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고 대꾸하지요. 목적이 있는건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요. 그리고 성욕과 외설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끝나기는 다소 아깝다 싶을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아예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리야마의 범행 계획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전원을 한꺼번에 죽이려 했다는 설정은 독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인육을 식량으로 삼으려는 계획과는 모순됩니다. 굳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었는지도 설명이 부족해요. 추리적으로는 공정함 측면에서는 완벽하지만, 이 탓에 범인을 특정하기 쉬워진다는 약점도 존재하고요. 

아울러 전반적으로 묘사가 장황하게 이어지는 구간이 많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밀도에 비해 분량이 과도하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완벽한 구성과 재미있는 주제의 대화는 돋보이지만, 범인의 계획과 이야기 구성의 일부는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보석 도둑과 괘종시계"

이구치는 집에서 괘종 시계를 도난당하고 친구 하스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최근 주변에서 일어난 루비 도난 사건과 이 사건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전말을 들려주었다. 하스노는 이구치의 설명을 바탕으로 관계자들을 만난 뒤, 치밀한 추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전작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사건이 펼쳐지는 작품으로, 장점이라면 많은 수수께기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첫째, 범인은 어떻게 이구치가 철저히 숨겨놓았던 괘종시계의 위치를 알 수 있었는가? 둘째, 범인은 어떻게 미쓰에의 드레스 세 벌 중 진짜 루비가 달린 드레스만을 알아냈는가? 셋째, 수많은 꾸러미 중 어떻게 루비 팔찌가 들어 있는 꾸러미만 골라서 훔쳐낼 수 있었는가?인데 마치 불가능 범죄처럼 보이지만, 모두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트릭이 밝혀지며 독자에게 추리의 쾌감을 선사합니다.

가장 인상 깊은 트릭은 루비 팔찌를 훔친 방식입니다. 범인은 팔찌가 들어 있는 상자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자 하나만 강제로 열린 것처럼 만들어 미쓰에의 눈에 띄게 했습니다. 이를 보고 미쓰에는 팔찌가 도난당했다고 착각했고요. 이후 고리짝 안에서 상자가 담긴 귤색 꾸러미가 사라졌다고 매니저 미즈타니가 보고했으니, 결국 그가 범인이라는 결론까지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또한 이전 단편에서 등장했던 괘종시계나 인물 미네코가 다시 등장해 연작의 흐름을 이어가는 느낌도 좋습니다. 단편집 안에서 세계관이 공유되는건 확실히 읽는 재미를 더해주니까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괘종 시계를 발견한 방법입니다. 옷본을 찾다 우연히 시계를 발견했다는게 진상이라 시시했어요.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고요. 거대한 시계를 훔치는 것 보다 루비만 떼어가는게 빨랐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드레스에 달린 진짜 루비를 판별한 트릭도 역시 완성도가 부족합니다. 해당 드레스만 기장을 늘렸다는 트릭이 핵심인데, 범인이 옷본을 바꿔치기한 방법이나 드레스 수선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무엇보다 범행 동기가 약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범인 미즈타니는 대신 보관하던 귀중한 루비를 가문 장남이 팔아치워서 루비를 훔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비의 디자인과 크기까지 완전히 똑같지 않다면, 단순히 같은 보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진짜 루비만 골라 훔친 이유도 불명확해요. 겉으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면, 가짜 루비로 대신해도 되잖아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수수께끼와 트릭의 구성은 기발했지만, 동기와 설정 면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해 완성도를 떨어뜨립니다.

2010/09/20

붉은 오른손 -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 정태원 : 별점 3점

붉은 오른손 - 6점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지음, 정태원 옮김/해문출판사
-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커뮤니티 하우미에서 주도하는 독서클럽 "고등고등열매"에서, "허무에의 제물"에 이어 두 번째로 읽어야 할 작품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평도 좋았지만, 에드워드 D. 호크의 멋진 서문, "만일 당신이 지금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의 '붉은 오른손'을 처음 접하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부터 당신이 겪을 경험에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문장 때문에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 작품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는데, 반전 스릴러적인 성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스릴러적인 성향은 화자인 해리 리들의 수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해리 리들이 처한 위기 상황에 독자가 쉽게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서스펜스와 스릴러적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와 진상이 상당히 놀라와서, 작품을 반전 스릴러로 평가해도 무방하도록 해 줍니다. 메모 하나하나, 대화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을 정도로 결말을 위한 복선도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고요.

그러나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로 보기에는 범행이 지나치게 우발적이며 우연에 의지하는 요소가 많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우선, 마을에서의 폭주 장면 자체가 다소 무리한 설정이었습니다. 경찰이 존재하는 작은 마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졌고, 이후 세인트에이메의 시체가 발견되었지만, 그 시체가 사실은 다른 사람(두 손가락 피트)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또한, '두 손가락 피트'의 눈 색깔이 우연히 검은색이었다는 설정도 개연성이 부족했고, 범인이 해리 리들 앞에서 우니스테어를 살해했는데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시체가 한 구 더 필요했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해리 리들이 사실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유도하는 방식도 작위적입니다. 한두 번 정도 암시하는 수준이었다면 효과적이었겠지만,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반전의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전개와 묘사 전반에서 낡은 느낌이 드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시대적 한계를 감안해야겠지만, 오늘날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구식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분명 시작부터 마지막 반전과 진상까지 잘 짜인 작품이며, 적당한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퍼즐 미스터리'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여러 존경할 만한 작가들과 평론가, 애호가 선배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작품인지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제 내공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해문 출판사와 정태원 씨가 고전 추리 소설을 발굴해 준 노력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단, 최근 본 책들 중에서도 돋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후진데 다음에는 책의 디자인도 신경을 좀 써 준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06/09/26

헤이즐무어 살인사건 (The Sittaford Mystery) - 애거서 크리스티 / 장말희 : 별점 4점

헤이즐무어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장말희 옮김/해문출판사

황량한 지방 다트무어에 있는 시타퍼드 저택 파티에 모인 참석자들이 우연찮게 테이블 터닝을 벌였다. 그런데 시타퍼드 저택의 주인이자 지금은 헤이즐무어 저택에 사는 트레블리언 대령이 5시 25분(현재)에 살해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대령의 절친한 친구 버너비 소령이 눈길을 뚫고 대령을 찾아갔지만, 대령은 서재에서 살해된 상태였다.

대령의 유언장을 조사한 결과, 그의 조카인 짐 피어슨이 사건 직전 (혹은 직후) 대령을 방문했다는 것이 밝혀져 곧바로 체포되었다. 이에 짐 피어슨의 약혼자 에밀리 트레푸시스가 진범을 잡기 위해 직접 사건에 뛰어들었고, 그녀는 신문기자 찰스 앤더비의 협조(혹은 맹목적인 봉사)에 힘입어 진상을 알아내고 만다...

크리스티 여사님의 11번째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역시 헌책방에서 싸게 팔길래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포와로나 마플양이 나오는 작품은 좀 식상해서 아닌걸로 골라잡았는데, 기대이상이라 대어를 낚은 기분입니다.
일단 여사님 작품에서 잘 보지 못했던 장치인 초반부 테이블 터닝(일종의 강령술?)에서 전해지는 살인 메시지가 굉장히 기발했으며, 이 메시지와 실제 살인이 결합되는 부분이 교묘해서 여사님의 뛰어난 필력을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살인사건 말고도 탈옥 사건 등 곁가지 사건과 뜬금없이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주민들처럼 독자의 흥미를 유지시키는 요소들도 많고요. 
또 사건과 설정이 결말에서 결국 하나로 엮이는 구성도 탄탄해서 감탄을 자아냅니다. 
무엇보다도 여사님이 즐기면서 쓴 듯 적당히 유쾌한 분위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부부탐정"이나 "비밀결사"같은 로맨틱한 요소도 적절한 수준입니다.

추리적인 부분도 동기나 단서 모두 공정하게 독자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그야말로 정통파답습니다. 트릭도 상당히 괜찮았고요. 상식선에서 복잡한 설정이나 장치 없이 실행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지금 읽어도 별로 식상하지 않은 트릭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정교하지만 작위적이고, 딱히 신뢰도 가지않는 장치를 이용하는 식의 최근 경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해 주네요.

마지막으로 특기할 만한 점은 여주인공이자 탐정역인 에밀리입니다. 미모에 행동력과 과감성까지 갖추고 똑똑하기까지 한 호감도 100%의 주인공이거든요. 여사님이 자기가 바라는 여성상을 투영해서 묘사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찰스 앤더비를 조종(?)하는 등 남자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부분에서는 시대를 앞서갔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시리즈 캐릭터로 삼아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물론 전형적인 돈많은 숙모 캐릭터나 비굴한 조카, 기자같은 평면적인 캐릭터들 등 쉽게 간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다른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워낙 확실해서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여사님스러운 정통파 고전 트릭 미스테리였달까요? 미스 마플과 포와로에 가려진 여사님의 작품들 중에서도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여사님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제법 있는데 부지런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구관이 명관인 법이겠죠.

PS : 원제가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등장하는 저택의 이름을 바꾸어 놓은 번역 의도가 좀 궁금합니다.

2006/01/06

후루하타 닌자부로(古畑任三郞) 1,2기 및 스페셜

최근 보고 있는 일본 드라마들 속에서 눈에 띄는 추리 드라마라 소개합니다. 10년도 넘은 시리즈라 아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요.
경시청 수사 1과 경부보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주인공으로 형사 콜롬보식의 도서식 추리물 옴니버스 시리즈입니다. 도서 추리물답게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범인의 계획을 하나씩 밝혀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식인데 마지막에는 "시청자에 대한 도전" 같은 장면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정통파 추리 시리즈물은 보통 추리 매니아 등 특정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비해, 이 시리즈는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자만심 넘치고 안하무인에 범인을 괴롭히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비롯해서, 부하 이마이즈미의 코믹한 설정과 연기 등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넘쳐나고, 내용상의 트릭도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전개가 논리적이라 추리물을 많이 접하지 않은 일반 시청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점입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형태면에서는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다고나 할까요? 쉬운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작품 그 자체에요.
그 외에도 작품 전체를 통해 "완전범죄는 없다!" 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아울러 정통파 퍼즐 미스터리 추리물로 트릭자체가 꽤 괜찮은 작품도 많이 있는 편이에요.
또한 게스트 (주로 범인역)으로 유명 스타들이 등장해 주는 것도 상당히 이색적인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워낙 오래된 시리즈이고 젊은 스타의 비중이 적어 제가 아는 배우는 나카모리 아키나와 스즈키 호나미, 기무라 타쿠야, 그리고 범인은 아닌 중요 참고인 역이었던 마츠 다카코 정도지만 일본 영상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많은 친숙한 얼굴을 찾을 수도 있겠더군요.

다만 마지막에 범인에게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고 범행을 인정케 하는 결론 부분에서 드러나는 증거가 빈약한 편이 많은 것이 약간 약점이긴 합니다. 실질적인 눈에 드러나는 증거보다는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말빨"로 범인을 옭아매는 편이 좀 많거든요.

그래도 다른걸 다 떠나서라도 타무라 마사카즈가 연기하는 후루하타 닌자부로라는 멋진 캐릭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리즈였습니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대사가 꽤 쉬운 편이라 일본어 공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더욱 좋더군요. 저는 1, 2기와 1,2기 스페셜만 구해 볼 수 있었는데 3기는 물론 인기 탓에 번외편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고 하네요. 빨리 3기와 다른 시리즈도 어떻게든 구해 보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제가 본 1, 2기와 스페셜 내용의 간단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출처는 토끼님의 블로그 입니다.

후루하타 닌자부로 1기(1994.04.13 ~ 06.29)
01. 죽은 자로부터의 메시지(나카모리 아키나) : 인기 순정만화가의 애인?살인사건
02. 움직이는 시체(사카이 마사아키) : 가부키 배우의 경비원 살인사건
03. 웃는 시체(코테가와 유코): 정신과 의사의 애인 살인사건
04. 살인 팩스(쇼호쿠테 츠루베): 추리소설작가의 부인 살인사건
05. 더럽혀진 장기말(반도 야소스케): 일본장기기사의 살인사건
06. 피아노 레슨(키노미 나나): 피아니스트의 살인사건
07. 살인 리허설(코바야시 넨지): 시대극 배우의 촬영소사장 살인사건
08. 살인특급(카가 다케시): 치과의사의 흥신소사장 살인사건
09. 살인공개방송(이시쿠로 켄): 초능력자가 일으킨 살인사건
10. 모순투성이의 시체(코사카이 카즈키): 대의원 비서의 살인사건
11. 잘있어요, DJ(모모이 카오리): 인기 DJ의 살인사건
12. 마지막 인사(스가와라 분타): 손녀를 잃은 형사의 복수 살인



후루하타 닌자부로 스페셜1(1995.04.12)
웃는 캥거루(진나이 다카노리/미즈노 마키): 수학자의 파트너 살인사건



후루하타 닌자부로 2기(1996.01.10 ~ 03.13)
01. 너무 많이 말한 남자(아카시야 산마): 변호사의 정부 살인사건 上, 下
02. 웃지 않는 여자(사와구치 야스코): 기숙사 여사감의 동료 살인사건
03. 게임의 달인(쿠사가리 마사오): 주치의의 추리소설작가 부부살인사건
04. 파랑인가, 빨강인가(키무라 타쿠야): 대학조교의 유원지폭파미수사건
05. 위선의 보수(가토 하루코): 인기각본가의 여동생 살인사건
06. Vs 퀴즈왕(카라사와 토시아키): 퀴즈왕의 방송스탭 살인사건
07. 動機鑑定(사와무라 토쥬로): 골동품 가게 주인의 살인사건
08. 마술사의 선택(야마시로 신고): 마술사의 젊은 조수 살인사건(마츠 다카코도 나와요)
09. 실수한 남자(카자마 모리오): 잡지 편집장의 호텔 도어맨 살인사건
10. 뉴욕에서의 사건(스즈키 호나미): 남편을 살해하고 무죄판명된 여자의 이야기



후루하타 닌자부로 스페셜 2(1996.03.27)
잠깐의 이별(야마구치 토모코): 전위 화예가의 가주(이에모토) 살인사건


2004/01/14

Y의 비극 - 엘러리 퀸 / 강호걸 : 별점 4점

Y의 비극 - 8점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엘러리 퀸의 또 다른 탐정 드루리 레인 시리즈의 대표작이자 세계 3대 추리소설로 알려진 그 작품입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어느날, 뉴욕만의 한적한 바다에서 처참한 시체가 발견됩니다. 조사결과 밝혀진 시체의 정체는 미치광이 해터 집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치광이 모자”의 패러디)으로 알려진 부호 해터 가문의 가장인 요크 해터로 방수 지갑안에 “나는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자살한다”라는 짤막한 유서도 있었죠. 그리고 몇 주 후, 해터 집안의 딸인 벙어리이자 장님이고 귀머거리인 루이자 해터의 독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수사에 나섭니다. 내부의 인물 누구든 동기가 있고, 독을 넣을 수 있었던 상태.
어느날 밤, 실질적인 해터 가문의 주인인 에밀리 헤터 여사의 살인과 루이자 독살 미수가 다시 발생하고 드루리 레인은 친구 샘 경감의 요청으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됩니다...

저는 사실 X,Y,Z 시리즈 중에서 Z부터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Z”에 굉장히 실망했던 터라 이 작품에도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읽다보니, 과연 엘러리 퀸!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위의 줄거리 처럼 일단 콩가루 부잣집의 살인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악과 음모의 상징 같은 콩가루 저택에서 살인이 달랑 한번 (두번이긴 하지만 두번째는 응징..에 가까우니) 밖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인데 일본풍 (특히 “아마기 세이마루” 풍) 이라면 거의 전가족이 몰살당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긴 장편을 흥미진진하게 끌어나가고 있으며 특유의 “독자와의 대결”도 공정한, 정통 추리소설로서의 미덕을 잃지 않습니다. 복선이나 트릭 역시 큰 줄기에서 파생된, 완벽한 형태로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범인역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는 것이겠죠. 발표당시에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범인이었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충격이 많이 퇴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단서 자체가 너무 상식 가능한 선인 것 같습니다. 중간 부분의 루이자의 증언으로 거의 밝혀지거든요… 사실 이 이후의 후반부는 레인이 범죄의 동기나 실제로 이미 죽어버린 “실체”를 찾기 위한 활동이지 범인을 드러나게 하는 트릭면에서는 별 비중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분명한 정보를 두루뭉실하게 표현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삽화나 사진 등으로 직접 눈으로 보게된다면 보다 쉽게 진범을 알아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은 현장 묘사에 의한 트릭이 많아서 공감하기 쉽지 않았어요. 번역본이라 더 심하게 느껴진것 같기는 한데 특히 “만돌린”을 흉기로 쓴 타당성에 관한 묘사는 영문학적인 지식 없이는, 그래서 국내 독자에게는 조금 이해 불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또 탐정인 드루리 레인 역시 불만스러웠어요. 원래 세익스피어극의 명배우 출신으로 부유하다는 설정까지는 이해해도 왜 귀머거리라는 설정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귀머거리라서 더 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당시, 추리소설 황금기의 명탐정들이 워낙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던 탓에 나름 색다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인 것은 알겠지만 단순한 설정에 불과하여 반세기 이상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목 역시도 불만스럽습니다. 말장난 같은데 이 “Y”라는 제목의 의미가 전~혀! 거~의! 내용과 상관없는 부분이거든요. 차라리 단편 “미친 티 파티” 처럼 아예 앨리스를 가져다 쓴 제목을 붙이던가…. 일부러 X,Y,Z로 글자를 맞추고 싶어한 의도는 알겠지만 너무 억지로 갖다 붙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허나 이러한 단점들은 소소할 뿐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정통파 고전의 품격을 갖춘 명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른바 “세계 3대 추리소설” 중 하나라는 명성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번역도 괜찮은만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PS : 전 이렇게 순위 매기는 것,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객관적 근거 없는 "세계 3대 어쩌구..."하는 말에는 거부감이 있네요. 사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나 “환상의 여인”은 정통파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거리가 있지 않나요?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합니다.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인데 이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작가 취향이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듯 하네요.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다른 앤솔러지를 통해 읽었던 작품입니다.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이 납득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건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에요.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데,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거든요.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021/12/26

대실 해밋 - 대실 해밋 / 변용란 : 별점 2.5점

대실 해밋 - 6점
대실 해밋 지음, 변용란 옮김/현대문학

하드보일드의 거장 대실 해밋이 쓴,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작가 인생 초기작들로 유명한 컨티넨털 탐정사 탐정이 등장합니다. 

대체로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우며,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몇몇 작품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배신의 거미줄" 

외과의사 에스텝 박사가 죽고 부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박사가 숨겨왔던 첫 번째 부인이 찾아온 직후 사건이 일어났던 탓이었다. 변호사 리치먼드의 의뢰로 탐정은 의사가 죽기 전 보냈다는 편지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부인을 미행한 끝에 탐정은 사건 배후에 사기꾼 제이콥 레드위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제이콥을 미행하는 또 다른 인물의 존재를 알아챘는데...

"의심이 든다면 미행해라"라는 말 처럼 미행을 통한 단서 찾기와 그 외 탐정 사무소를 통한 조사 및 다른 탐정들과의 분담과 협력 등 탐정의 진짜 업무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탐정으로 일했던 대실 해밋의 생생한 경험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행 과정을 통해 당대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거리와 풍경들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좋았고요. 이 때부터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종의 "바꿔치기"트릭이 사용된 덕분입니다. 에스텝 박사는 가짜로, 진짜 에스텝 박사의 의사 면허를 제이콥에게서 구입하여 의사 행세를 해 왔던 겁니다. 첫 번째 부인이라며 나타났던건 진짜 에스텝 박사의 부인이었고요. 제이콥은 에스텝 박사를 수십년 동안 뜯어먹다가, 크게 한 탕 저지를 생각으로 사건을 꾸몄던겁니다. 

제이콥의 계획도 괜찮았어요. 그는 거액을 요구하면, 박사가 자살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는 유산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의도는 아니었지만, 현 부인이 남편을 살해했다고 인정된다면 유산 전부를요!

그러나 계획을 밝혀내는데 있어서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탐정이 제이콥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단서를 잡은 뒤, 협박해서 그의 입으로부터 진상을 듣는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행과 감시로 진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기는 합니다. 허나 제이콥이 탐정에게 진상을 술술 이야기할 이유는 없었다는게 문제에요. 증거품인 에스텝 박사의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순순히 내 준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탐정과 제이콥 모두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제이콥이 이렇게까지 설설 길 이유는 없잖아요? 도주하던 제이콥이 오가르 경위에게 사살당한다는 마지막 장면도 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탄 얼굴"

탐정은 밴브룩의 두 딸 가출 사건 조사 중 잠깐 만났던 코렐 부인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둘째딸 루스 밴브룩마저 시체로 발견되었고 탐정은 사건들이 다른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을거라 확신했다. 탐정과 팻 형사의 조사 결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유사했던 여성들이 자살했던 사건들이 여러 건 있었고, 모두 레이먼드 엘우드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실종되고, 자살했던 여성들 사건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관계된 사건을 모두 조사해 보겠다는 수사 방침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외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하드보일드라기 보다는,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운 탓입니다. 탐정과 팻 형사가 레이먼드 엘우드가 자주 방문했던 저택에 침입한 이후부터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저택에서 사이비 종교와 마약에 빠진 여자들이 난교 파티를 벌이던 사진을 찍어서 협박해 왔다는 진상도 허무하며, 탐정이 팻을 설득해서 주요 증거물인 사진을 모두 소각한다는 결말도 낭만적인 모험 활극과 다를게 없습니다. 팻의 백만장자 아내도 사진에 찍혀있었다는 약간의 반전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중국 여인들의 죽음"

릴리언 샨은 하녀 한 명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취소하고 급작스럽게 귀가했던 날, 낯선 중국인 청년에게 습격당했다. 릴리언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하녀는 죽고 말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은 지하실에서 요리사 완란의 시체도 발견하였다. 탐정은 사건을 의뢰받은 뒤 정보를 캐내다가 사건 배후에 어빙턴 호텔 소유주 코니어스와 차아니타운의 실력자 창리칭이 관계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하는데 단지 이국적인 배경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중국을 배신하고 한 몫 단단히 잡은 이민자의 딸이 주인공 중 한명이며,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중국인 독립운동가의 무기 밀수에 편승해서 악당들이 한 몫 잡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의 핵심 설정과 전개 모두가 설득력있게 활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릴리언의 저택은 해변과 맞닿아 있었는데, 밀수를 위해서는 해변과 맞닿아 있는 저택이 필요했다는 진상도 그럴듯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탐정이 정말로 하는게 별로 없고 전개는 우연과 억지에 의한게 많은 탓입니다. 탐정이 조사원 중 한명이었던 마약중독자 얼이 수상하다는걸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걸 알아챈건 순전히 넘겨 짚은 것에 불과하니까요. 동공? 눈빛? 모두 설득력이 약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필요할 때마다 만나서, 필요한 증언을 얻는다는 전개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휘슬러가 일본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고 조작했던 사진을 결정적 순간에 주머니에서 꺼내는 장면처럼요. 탐정이 이 사진을 가지고 다닐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의뢰인인 릴리언을 무사히 사건에서 빼내고 휘슬러를 포함한 악당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결말은 전혀 하드보일드스럽지 않더군요. 릴리언은 선량했고 선의에 가득찬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해주는 기사가 활약하는 영웅담이자 낭만적인 모험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아울러 당시 중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판타지를 반영한 듯한 창리칭 저택의 복잡한 구조와 기묘한 보디가드들, 은밀하면서도 잔혹한 공격과 미모의 노예 소녀 슈슈에 대한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망설이게 만드는 지루했던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쿠피냘 섬의 약탈" 

탐정은 결혼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쿠피냘 섬에서 열린 헨드릭슨 가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 밤, 폭풍우와 함께 강도단이 섬의 은행과 보석상을 습격했다. 결혼식 하객 중 한명이었던 러시아 공주로부터 이 사건 소식을 들은 탐정은,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헨드릭슨 저택 집사와 운전수에게 맡기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강도단의 도주를 막는데는 실패했고, 헨드릭슨 저택으 복귀 후에 집사와 운전사가 살해당했으며, 결혼 선물은 도난당했다는게 밝혀지는데....

오래 전에 읽었었던 작품인데 내용 자체를 잊어버려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완전 무장한 강도단과 맞서 싸우는 탐정의 활약을 그린 영웅담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정통파 추리물과 하드보일드가 잘 결합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말이지요. 

특히 합리적인 추리가 볼만합니다. 탐정은 강도들이 외부에서 왔다면 일당과 무기 운반을 위해 자동차나 배가 필요했을텐데, 섬 주민의 자동차와 배를 탈취했던 상황에 주목합니다. 그 외의 여러가지 단서를 조합하여 러시아 장군과 공주 일행이 강도라는걸 알아내고 맙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망명한 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공주 일당의 범행 동기도 시대를 감안해보면 충분히 그럴듯했고요. 이런 추리를 일종의 추리쇼를 통해 선보이는 장면은 정통파 고전 본격 추리물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리고 추리쇼에서 이어지는, 돈 보다 범죄를 해결하는게 더 재미있다며 뱀 같은 공주의 유혹은 무시하고, 심지어 여자를 쏘지 않을거라 믿으며 도망가려는 공주 다리를 쏘아 맞추는 탐정의 모습은 고전 본격 추리물을 넘어선, 하드보일드 장르의 도래를 알리는 명장면이었다 생각됩니다. "난 장애인한테서도 목발을 훔쳤던 사람 아닌가?"라는 말도 희대의 명대사였고요. 구 시대의 화려했던 부르주아들은 모두 현실에 몰락해 버렸고, 이들을 악전고투끝에 살아남은 플로레탈리아가 짓밟는 구성은 시대가 변했음을 잘 느끼게 해 주네요. 마지막에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던 잔챙이 범죄자 플리포를 탐정과 공주가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려 설득하는 클라이막스도 재미있었습니다. 작위적이라는건 부인하기 어렵지만요.

물론 공주가 탐정을 살려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가장 위협이 될 인물이라는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듯 한데 말이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 여명기, 장르의 초석을 다졌을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크게 한탕"

탐정은 어느날 밤 술집에 패디 더 맥스, 블루포인트 밴스, 해피 짐 해커, 빅 버드 레드 오리어리 등 유명한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맨스 은행이 습격당할거라는 정보를 전해 준 정보원 비노가 살해당한 다음날 아침, 시맨스 내셔널 은행과 골든게이트 신탁회사가 약탈당했다. 무려 150여명의 프로 범죄자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2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현금 수백만달러를 훔쳤고, 경찰 포함 3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던 대참사였다. 그런데 강도 일당 수십 명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죽은 강도 중 한 명이 '빅 플로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생존자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쫓던 탐정은 밴스를 비롯한 다른 강도들의 습격에서 그를 데리고 겨우 탈출했다. 부상당했던 레드 오리어리가 탐정을 이끈 곳은 빅 플로라가 몸을 숨기고 있는 은신처였다....

백명이 넘는 강도단, 수백만 달러의 강탈, 수십명의 죽음 등 어처구니없는 스케일을 보여주는 범죄물. 은신처에 있던 연약해 보였던 노인이 사건의 흑막 파파도풀로스였으며, 경찰에게 은신처가 포위되었기에 무사 탈출을 위해 탐정을 이용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탐정사무소 소장인 '영감'이 사건 배후에는 굉장히 머리 좋은 인물이 있을거라고 말했었고, 빅 플로라가 탐정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 등 이런저런 복선이 잘 배치되어 있던 덕분입니다.

하지만 설정에 비하면 내용은 비교적 수수한 편입니다. 탐정도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를 쫓는 것 말고는 하는게 없어요. 빅 플로라의 은신처에서 벌이는 목숨을 건 연극도 유치했고요. 빅 플로라가 노인을 하인 대하듯 하는 장면같은 억지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빅 플로라가 우두머리이며 노인은 거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유능한 탐정마저도 속아넘어간 것에 대해 변명거리를 만들 속셈이었을텐데,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보였어요. 이런 점에서 하드보일드 추리물로 건질만했던건 별로 없었던 작품입니다. 단순 화끈한 마쵸 모험 액션물에 가까운 이야기였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거액을 강탈한 뒤, 공모자들을 죽이고 독차지하려고 했던 계획을 망쳐버린 사랑꾼 빅 레드 오리어리를 징벌하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파파도풀로스 입장에서는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피 묻은 포상금 106,000달러" 

탐정에게 패디 더 멕스의 동생 톰-톰 캐리가 찾아와 파파도풀로스에게 걸려있는 거액의 현상금에 대해 물어보았다. 몇 건의 살인과 습격이 이어진 끝에, 탐정들과 캐리는 백만장자 뉴홀 저택에 은신하고 있던 파파도풀로스를 잡는데 성공하는데...

시원치않았던 전편에서 이어지는 후편인데, 이 작품은 아주 좋았습니다. 탐정의 냉혈한스러운 면모가 빛나거든요. 탐정은 신참 탐정 잭이 파파도풀로스의 꼬임에 넘어가 한 패가 되었다는걸 진작에 눈치챘습니다. 아마도 그리스인 거주지 습격 사건 때 눈치챘겠지요. 그래서 마지막 습격 때 잭을 일부러 대동한 뒤, 모든 진상을 까발려서 잭은 캐리의 손에 의해, 캐리는 다른 탐정이 사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배신자를 징벌하고 탐정 사무소의 평판을 지켜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 거지요. 이 와중에 탐정 사무소 다른 탐정들을 동원하고, 잭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안배를 하는 꼼꼼함도 볼만했고요. 

잭이 배신하게 된 계기가 빅 레드 오리어리의 연인 낸시가 사실 백만장자 뉴홀의 딸이었다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반전도 상당한 놀라움을 가져다 준 좋은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끝판왕격인 파파도풀로스의 허무했던 최후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탐정이 잭의 배신을 언제 눈치챘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도 설명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낸시의 이상했던 시선, 잭의 이상했던 눈빛은 증거가 될 수 없었는데 말이지요. 잭이 별다른 증거도 없는데 스스로 자포자기해서 자백을 한 것도 다소 편의적인 전개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교함과 냉혹함이 잘 살아있는 하드보일드 여명기를 대표할만한 수작이라 생각되네요.

"메인의 죽음" 

메인이 출장을 다녀온 날 새벽, 2인조 강도가 습격하여 그를 죽이고 지갑 안의 2만 달러를 강탈해 사라졌다. 현장 근처에서는 흉기인 권총과, 여성 손수건이 들어있는 지갑이 발견되었다. 메인의 보스 군겐에게 고용된 탐정은 손수건이 군겐의 젊은 아내 것이며, 아내의 하녀가 범죄자와 어울린다는걸 알아낸 뒤, 아내로부터 사건 진상을 고백받았다. 그녀와 메인은 불륜 관계였으며, 2만 달러는 불륜을 저지르던 당일 오후에 강탈당했던 것이었다. 범인은 하녀의 애인이었다.

젊은 아내를 옭아맬 속셈으로 사건 수사를 의뢰한 군겐,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보스의 아내까지 건드리다 파멸한 메인,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한 젊은 아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들이 얽히고 섥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건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마음에 들었고요. 불륜 남녀가 돈을 빼앗긴걸 쉽게 털어놓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범인들의 잔꾀도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하지만 범인 일당의 부주의한 행동이 미행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진상을 고백받은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탐정 수사' 물인데, 미행으로 진범이 누구인지 바로 밝혀내는건 너무 쉬운 전개였습니다. 메인이 좌절한 나머지 자살했고, 보험금 때문에 메인의 아내가 이를 강도 사건으로 꾸몄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보스에게 사실대로 고백하는게 훨씬 낫다는 점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메인을 죽이고 강도 살해 당한 것 처럼 꾸몄다는게 더 타당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메인의 아내를 비롯, 군겐의 아내까지 사건에 관련 여성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일종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던걸까요? 여튼, 작품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수사물로는 괜찮았던 깔끔한 소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국왕 놀음" 

탐정은 미국인 청년 라이오넬 그랜덤을 찾아 유럽의 소국 모리비아로 향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어머니의 과보호로부터 탈출한 그는, 유럽에서 무려 3백만달러나 되는 돈을 현금화했다. 탐정은 라이오넬이 군대를 장악한 실력자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모리비아에 혁명을 일으키고 스스로 왕이 될 생각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3백만 달러는 혁명을 위한 군자금이었다.

유럽 소국 모리비아를 무대로 한 일종의 군웅물이랄까, 여튼 왕이 되려는 사람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작품. 설정은 기발했고, 왕위를 놓고 여러 세력이 벌이는 암투가 짤막한 분량안에서 잘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았어요. 일단 에이나르손 대령이 왜 미국인을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군대를 장악했고, 인기도 많았다면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서 왕이 되면 그만이었을텐데 말이지요. 3백만 달러는 분명 거액이지만, 일국의 왕이 된다면 그 정도 돈이 문제가 될까요? 

대통령 비서 마흐무드가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혁명을 모의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현 대통령의 통치를 못마땅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한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 비서가 이를 쉽게 포기하고 혁명에 바로 몸을 맡기고 급작스럽게 에이나르손을 암살하려고 한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에이나르손이 군대를 장악하여 기껏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탐정의 총에 굴복해서 순순히 라이오넬의 대관식을 치룬 것도 그의 야망과 노력을 생각하면 많이 허무합니다. 최후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낭만적인 중세 시대 모험 활극이라면 모를까, 20세기를 무대로 한 이야기에는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파리잡는 끈끈이" 

뉴욕의 명문가 햄블턴 가문의 막내딸 수는 범죄자와 도망친 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1년 후, 돈 1,000달러를 요구하는 전보가 날라왔고 탐정은 돈을 가지고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꾼 홀리 조의 계획으로 수는 가짜였었다. 

홀리 조로부터 캐낸 수와 베이브의 거처를 찾은 탐정은 그곳에서 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부검 결과 수는 만성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는게 밝혀졌다. 비소는 파리잡는 끈끈이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다시 협잡꾼 홀리 조를 심문해서, 그가 수와 도주할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갑자기 나타난 베이브가 홀리 조를 사살하고 달아나는데....

부잣집 철부지 딸의 비참한 죽음, 얽히고 섥혀 서로를 죽이고 마는 애증 관계가 그려진 정통 하드보일드 작품입니다. 

그런데 탐정이 베이브를 추격해서 사로잡는 부분은 액션 활극 느낌도 강하지만, "누가 수를 죽였나?"라는 후더닛 측면에서도 볼만한 추리물입니다. 일단 홀리 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인 수를 죽일리 없었어요. 수와 도망칠 계획이었으니까요. 베이브도 오랫동안 비소를 수에게 먹여 죽일만한 인물은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수가 자살했다고 하기에는, 만성 비소 중독은 여러모로 이치에 맞지 않지요. 그렇다면 진상은? 수는 비소를 오랫동안 조금씩 먹어 내성을 키운 뒤, 한번에 많은 양의 비소를 함께 먹어 베이브를 해치울 생각이었던겁니다. "맹독"에도 나오는 트릭이지요.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 소장 영감이 이건 체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비웃는 장면, 그리고 파리잡는 끈끈이가 숨겨져 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이 방법이 나와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개가 아주 매끄럽지는 않아요. 베이브가 마침 탐정이 심문하던 도중에 나타나 홀리 조를 사살했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애초에 수와 조가 베이브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깔끔하게 사살하는게 나았을겁니다. 비소 내성을 키워 독살하려 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범행을 저지른다고 살인죄가 덮이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추리적인 부분에서 볼만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이전 리뷰에서도 그 부분을 좋게 언급했었지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3/09/09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아놀드 베넷 외 : 별점 1.5점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4점 아놀드 베넷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도서출판 한스미디어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추리소설 앤솔러지. 유명 고전 작가들의 단편은 물론이고 초창기 추리 이론까지 풍성하게 실려있습니다.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1권은 읽은 작품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고전 취향이라 2권부터 구입하게 되었네요. 2권 역시 다른 책에서 읽어본 작품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워낙에 목차가 괜찮고 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전 황금기 작품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기에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번역입니다. 일본어 중역 느낌이 물씬 날 뿐더러 그 자체가 별로 매끄럽지 않아 읽기 힘들었어요. 악명 높은 동서 추리문고 최악의 번역도 이거보다는 좋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고전 황금기 걸작이 아닌 몇몇 현대 일본작가 작품이 섞여 있는 것도 기획 의도가 모호해 보여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기획의도만으로 3점은 충분하지만 번역은 용서가 안되네요. 좋은 기획의도가 번역 때문에 다 망가진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한스미디어의 다른 작품들은 괜찮았었던 것 같은데 대관절 영문을 모르겠군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지만 대부분 다른 책에서 훨씬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라진 기억" | 배리 퍼론

극작가 애닉스터가 완벽한 밀실살인 트릭을 생각했는데, 교통사고로 트릭을 잊어버린 탓에 술집에서 트릭을 알려주었던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

교통사고로 딱 필요한 기억만 상실한다는 작위적인 설정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꽤 그럴듯한 전개, 그리고 마지막에 애닉스터가 상황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애닉스터만이 유일한 위험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서늘한 반전류의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

"살인!" | 이넉 아놀드 베넷

명백한 살인사건인데, 경찰이 수사 결과 몇몇 남겨진 단서를 통해 자살로 결론 내린다는 내용의 소품. 솔직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리 묘사에 대한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번역으로 다시 읽고 싶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피트 모란, 다이아몬드 헌터" | 퍼시벌 와일드

"탐정 피트 모란"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그때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번역이 너무나 별로인 탓에 작품마저도 후지게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실망하신 분들께서는 "탐정 피트 모란"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 때문에 별점을 주기조차 어렵네요.

"골초는 빨리 죽는다" | 이자와 모토히코

"역설의 일본사" 말고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상을 많이 수상했던 유명 작가의 단편.

두 명의 대화로만 전개되는 형식과 담배로 촉발된 살의라는 설정은 독특한데, 결말이 너무 심하게 별로였습니다. 반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좀 어이없는 결말이었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먹이" | 토마스 테셔

이형 생물체가 등장하는 크리쳐 호러물. 스티븐 킹의 비슷했던 작품(한 소년의 아버지가 점액질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데, 이 작품은 "애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극적 결말이라는게 차이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라서 평하기는 어렵지만 공포도 아니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결말에서 반전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 그냥저냥한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콜 Y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제가 개인적으로 번역했던 작품이죠. 읽어보니 원작을 "직역"한 번역으로 읽기가 어렵더군요.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3점인 좋은 작품인데 안타깝네요. 솔직히 제 번역과도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들의 쇼핑" | 쓰쓰이 야스타카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해본 적 있는 이색작.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부들이 강도단을 조직한다는 내용입니다. 작품 자체의 수준은 그냥저냥이지만, 작가 특유의 섬뜩한 풍자 하나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가 백미!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살의" | 다카기 아키미쓰

역시나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했던 작품으로, 굉장한 걸작입니다. 이른바 "일사부재리" 원칙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마지막 반전까지 빼어난 단편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살의"라는 말이 들어간 작품들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은 하나같이 괜찮네요.

"아버지" | 토마스 H. 쿡

토마스 H. 쿡의 장편은 몇 권 읽어보았지만 단편은 처음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장편 못지않은 묵직함이 잘 전해지는 묘사가 아주 좋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무대 뒤의 살인" | 에드워드 D. 호크

총 3편의 초단편 Short-Short로 이루어진 작품.

예전에 읽었던 "4페이지 미스터리"와 유사하나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3편의 이야기 모두 논리정연하면서도 예상을 뒤집는 정통 추리물이거든요.

첫번째 작품은 사진 필름 원판을 가지고 협박하는 협박자가 살해된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런저런 논리 퍼즐에서 많이 보았던, 다섯 번째 남자마다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이집트 전시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입니다.

첫번째 작품은 에스터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돋보였어요. 특히나 1만 2500달러라는 애매한 비용과 30분이라는 시간 공백을 설명하는 게 제법이었거든요.
마지막 작품은 살인사건은 전혀 상관없는 동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명성에 걸맞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오번 가문의 비극" | 매슈 핍스 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단편 미스터리 시리즈인 "프린스 자레스키" 시리즈!

그러나 별로 건질 게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프린스 자레스키 설정은 너무나 만화 같았고 사건도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아버지가 광인이 된 것을 왜 숨겨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사건 현장 윗층에서 과학교실을 열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조작을 하는 것도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본인이 자살하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었을 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작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번역까지 별로라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불도그 앤드류" | 아서 체니 트레인

터니게이트 - 애플보이 사이의 영토 분쟁에서 불도그 앤드류가 지나가던 터니게이트를 문 뒤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는 법정극.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좀 무리지만 유머스러운 일상계 법정극으로는 충분히 읽을 만 했습니다. 재판장의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번역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내의 외출" | 자크 푸트렐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이 책에 수록된 제목은 "녹색눈의 괴물"이죠). 당대 보기 드문 일상계로 가치 높은 수작입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 민망할 정도로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서 도저히 읽을 맛이 나지 않네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A 분장실의 수수께끼" | 자크 푸트렐

역시나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것과 같은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 여배우의 증발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장치적으로는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가 선보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핵심이 "최면술"이라는 게 문젭니다. 당시 최면술이 마법처럼 받아들여진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물로 생각되는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번역 역시 수준 이하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윔지 경 단편.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던 "검은별"과 동일한 스타일의 모험극.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거의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오필리어 살해" | 오구리 무시타로

"흑사관 살인사건"의 오구리 무시타로가 쓴, 범죄학자이자 탐정 노리미즈 린타로가 등장하는 단편. 셰익스피어 스타일 연극 무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무대 장치를 이용한 기계장치 트릭에 더해 심리적 착각을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죠.

현실적이지 못한 트릭,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학적인 전개와 묘사, 거기에 동기까지 애매하여 전체적인 완성도가 낮습니다. 정통추리물로 보기도 어려웠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의 마음은 찢어졌어" | 크레이그 라이스

"스위트홈 살인사건"의 크레이그 라이스가 쓴 단편. 주인공인 술꾼 찌질이 변호사 말론은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네요.

의뢰인인 사형수 폴 파머 자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폴 파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끊어지지 않았어"를 단서로 마지막에 추리쇼까지 펼쳐 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추리물입니다.

정통파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반부 딕슨 의사와의 대화로 병원에서 탈옥한 죄수가 있다는 단서를 전해주는 등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좋았고요.

메들레인 스타가 그냥 폴 파머와 결혼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텐데 성공 확률이 낮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옥의 티이긴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7/08/10

대답은 필요없어 - 미야베 미유키 / 한희선 : 별점 3.5점

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입니다. 잡지 "판타스틱"에서 읽었던 단편이 별로였으며 같은 여성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 역시나 그냥저냥이었기에 그닥 기대하고 구입한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상당히 물건입니다! 단편들의 수준도 높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정통파적인 맛이 느껴진 덕분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미야베 미유키의 해피엔딩은 익숙치 않았는데 의외로 아주 좋았어요. 바로 직전에 읽은 "백기도연대"와 정 반대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같이 사무실을 차려서 일할 만큼 서로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이긴 하지만 제 취향은 아무래도 저는 쿄고쿠 보다는 미야베 미유키 쪽이라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추리적인 요소가 잘 살아있는 "배신하지 마"인데 다른 작품들도 다 재미있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 대답은 필요없습니다.^^ 미야베 월드 입문작으로 추천합니다.

작품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답은 필요없어" 

일종의 은행사기를 다룬 단편으로 의외성은 없지만 사건 수사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비밀번호"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분의 맹점을 팍!하고 찔러주기 때문입니다. 보험사기 등 현대 신용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구성하는 작가의 전공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요.

"말없이 있어줘"

난데없는 교통사고가 완전범죄와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일본 추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의 수사극"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지만, 결말의 의외성이 독특했습니다. 너무 의외성을 강조한 점, 그리고 우연에 의지한 전개가 보이는 점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는 운이 없어"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종의 사기극을 다룬 소품입니다.
그런데 작품의 설정이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너무 극단적인 복수극인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장난이지만 너무 심한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결말부의 약간의 반전 역시 별로였고요. 주인공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에는 다 별로라서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선정합니다.

"들리세요"

어머니와 할머니의 불화끝에 이사를 오게 된 초등학생이 우연찮게 도청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노인의 외로움과 의심 등을 잔잔하지만 나름 충격적으로 담아낸 소품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서정적이면서도 주제를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잘 드러나는 수작입니다.

"배신하지 마"

빚더미에 올라 앉은 신세대 여성의 추락사를 수사하는 내용으로 가장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는 부분이 너무 "감"과 "우연"에 의지하는 것은 단점이나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여성작가답게 심리를 파고드는 점은 괜찮았어요. 씁쓸한 결말의 조화도 마음에 들었고요.

"둘시네아에 어서 오세요"

최고급 디스코텍 둘시네아에 관한 메모를 남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고학생 속기 아르바이트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설정이 일상적이면서도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잔잔하나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2015/01/19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카렐 차페크 / 정찬형 : 모비딕 : 별점 2.5점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6점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모비딕

카렐 차페크의 단편집. 고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단편집인데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쇼트쇼트'가 연상되는, 조금 희한한 상상력이 발휘된 초단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호시 신이치보다는 추리적인 색채가 짙다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이런 장르도 좋아해서 즐겁게 읽기는 했지만, 실려 있는 작품들의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전개가 낡고 지루하며 결말의 의외성이 없는 등의 단점은 아쉬웠습니다. 쓰여진 시기를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막 나가는 전개의 몇 작품은 의도인지 아니면 습작들이 이상하게 뭉쳐져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탈영병이 거름더미 속에 몇 달 숨어 있다가 잡혀온 이야기와,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상이용사 연금을 받던 로이지크가 양심 때문인지 정말로 불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 있는 "실종된 다리"가 좋은 예입니다. 어차피 초단편이라면 나누어 수록했어도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로 묶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쓰여진 시기 탓인지 "양심"에 대한 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들이 근본적으로 너무 선해서,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에 의해 갈등을 겪는 내용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좋았던 시기에 착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묘하고 기발한 발상은 좋지만, 지금 읽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수록작 일부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추리물 성향을 지닌 작품부터 소개해 드리자면,

"도둑맞은 선인장"

식물원에서 귀한 선인장이 도난당하자 선인장에 치명적인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조작하여 발표한 뒤, 약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잠복하다가 범인을 체포한다는 내용입니다. 식물원에서 훔친 방법도 기발한데, 나이든 여자로 변장하고 가슴에 화분을 숨겨 나왔다는 것이죠.

"하르쉬의 실종"

아르메니아인들이 하르쉬를 어떻게 죽이고 시체를 옮겼는지에 대한, 즉 시체의 순간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굉장히 쉬운 트릭이기는 하지만 범행 당일 비가 왔다는 점, 카펫 속에 시체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시체의 기묘한 반점을 연결하는 부분은 괜찮았어요. 명탐정 메이즈리크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고요.

"도난당한 살인사건"

범인들이 경찰로 위장한 뒤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뒷수습한다는 이야기. 목격자는 많았지만 경찰 복장을 한 범인을 보고는 단지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죠. "오터모울씨의 손"이 떠오르는데, 이런 트릭의 원조격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영아 납치 사건"

사라진 영아를 찾기 위한 바르토세크 반장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경찰들에게 아기를 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군요. 몇 개월 됐나요?"라고 말하라고 시키고, 그 말에 과민반응을 보인 어머니를 체포한다는 내용이지요. 모든 어머니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심리를 이용한 트릭과 전반적으로 유쾌한, 블랙 코미디스러운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정물도 있습니다.

"하브레나의 판결"

기자들이 법정 소식을 실으려고 노력하던 중, 실제 법정에서의 사건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창조하는 하브레나라는 인물에게 창작의 댓가를 지불하고 이야기를 전해받는다. 하브레나는 스스로 법에 대해 통달했다고 여기는데 어느날 그가 창작한 이야기, 즉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자를 볼 때 마다 "화냥년"이라고 말하게 만든 늙은 독신남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가 실제 법조인들에게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자 하브레나는 자신의 이야기 속 판결이 정당하다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인에게 욕설을 하게끔 만들고 법정에 서게 되는데...

설정부터 흥미롭지만 진행 과정 역시나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법의학물의 선구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바늘"

롤빵 속에 들어간 바늘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국립화학연구소의 우헤르 박사가 빵과 바늘에 대한 모든 상황을 검토한 끝에 롤빵이 만들어진 뒤에야 바늘이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 그리고 바늘을 누가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 빵을 찾기 위해 화학자들이 빵을 수도 없이 만들어본다는 과정에서 법의학물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반전이 괜찮은 작품도 있습니다.

"우표 수집"

한 노인이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하층민인 로이지크와 절친이 되었고, 우표 수집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성홍열로 앓아 눕고 얼마 뒤, 둘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둔 우표가 사라지자 로이지크를 의심하여 그와의 우정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도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표를 숨긴게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는 내용의 작품.

"고해"

너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탓에 마음이 무거워진 범죄자가 신부, 변호사를 찾아가 죄를 털어놓는다는 이야기. 신부와 의사가 이러한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죠. 반전은 마지막에 그에게서 고백을 들은 의사가 모르핀 주사 2방을 추가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게 말이죠.

블랙코미디 스타일의 유쾌한 범죄극도 있습니다.

"여의주와 새"

진귀한 카페트를 훔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엄청난 슬랩스틱으로 묘사된 작품입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의 연출감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발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도둑"

도둑이 범행 후 남긴 시가 지역 신문에서 극찬받자,  도둑의 창작욕이 폭발하여 도둑질은 시를 발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풍자와 유머가 돋보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영어를 못하는 지휘자가 영국에서 우연히 남녀의 대화를 몰래 듣게 되는데, 그 속에 담긴 범행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는 이야기. '남자의 사악한 말은 묵직한 베이스'같은 식으로 악기의 음색과 범행의 느낌을 연결한 설정이 대단히 인상적으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습니다.

2004/08/23

어쩌다 찾은 필독 추리소설 리스트...

추리소설 초심자를 위한 필독 작품 리스트 by 화요추리클럽 in 싸이월드

개인적으로는 이런 리스트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워낙 사람들마다 취향들이 다르니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 리스트는 초심자를 위해서 리스트를 선정하셨다고 하는 원 저자분의 노고가 엿보이는 리스트라 돋보입니다.
추리사적으로 인상적인 작품들과 정통파-하드보일드-첩보물 등 쟝르를 골고루 섞은 노력과 꽤 최근까지 올라오는 연대 등 여러모로 알찬 리스트인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일본 작품이 좀 적다는 것이 불만이긴 하지만...

그래서 저만의 리스트를 몇개 적어 보았습니다.

  • 크리스티 - 포와로 수사집 / 화요일 클럽의 살인 (걸작 단편집 2권 추려보았습니다. 단편이고 유명 탐정이 등장하니 초심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케멜먼 - 9마일은 너무 멀다 (역시 단편집을....^^)
  • 엘러리 퀸 - 엘러리 퀸의 모험 / 새로운 모험 / Y의 비극 (역시 엘러리 퀸의 걸작 중단편집과 그 유명한 Y의 비극, 빼놓을 수 없겠죠)
  • 도일 - 홈즈 시리즈 전집 (단편집을 더욱 추천합니다)
  • 르블랑 - 뤼뺑 시리즈 (역시 단편집을 더욱 추천합니다)
  • 엘린 - 특별요리
  • 해미트 - 말타의 매
  • 챈들러 - 기나긴 이별
  • 에도가와 란포 - 고도의 마인 (외딴섬 악마)
  • 마츠모토 세이쵸 - 점과 선
  • 피터 러브시 - 가짜 경감 듀
  • 마지막으로...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써 놓고 보니 단편집 투성이네요. 그래도 크게 살인사건이나 엽기 사건이 벌어지지 않고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골랐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에도가와 란포는 가부가 좀 갈릴 것 같긴 하네요.

이것도 투표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2008/12/03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하라 료 / 권일영 : 별점 4점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8점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사립탐정 사와자키는 1억엔, 그리고 그만한 양의 각성제를 가지고 도주한 전 파트너 와타나베 때문에 야쿠자와 경찰 양쪽 모두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가 찾아와 르포라이터 사에키라는 인물에 대해 문의를 했다. 그 뒤 사에키의 아내가 실종된 사에키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하였다. 알고보니 사에키는 도신 그룹 가문의 사위였다. 
곧바로 조사에 착수한 사와자키는 사에키가 작성하고 있던 기사를 보고, 그가 도쿄 도지사 저격 사건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자신을 찾아왔던 정체불명의 남자가 저격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하라 료사와자키 탐정 시리즈 첫 작품으로 기다린 보람이 있던지 드디어 출간되었군요. 생일선물로 형에게 늦게나마 전달받아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입니다. 비록 일본 작가가 일본을 무대로 쓴 일본인 탐정의 이야기이지만, 탐정의 캐릭터와 소설의 전개 모두 미국의 정통파에 못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내가 죽인 소녀" 때와 감상이 좀 비슷한데 장점이 그만큼 똑같을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폐차직전의 똥차 블루버드, 필터없는 담배로 대표되는 사와자키의 캐릭터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굉장히 스케일이 큰 사건이 연달아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현실감을 느끼게 해 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예를 들자면 탐정의 조사가 대부분 탐문, 주변인물 조사 같은 형태로만 이루어진다는 거라던가, 탐정 자신이 커버하는 일에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등이 있겠죠.
마지막 순간에 터트리는 진상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솔직히 추리적으로 완벽하게 앞뒤가 딱 들어맞는다던가, 증거가 완벽하게 준비된다는 것은 없이 사와자키의 말로만 설명된다는 약점은 있지만 이러한 탐정의 말빨에 의한 추리쇼도 하드보일드 소설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니 만큼 비난하기는 어렵겠죠. 어쨌건 충분히 설득력도 있고 재미도 있는 결말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2004년 대만 천수이볜 총통 저격 사건과 유사점도 느껴졌기에 더욱 재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하드보일드 소설의 단점도 그대로 지니고 있어서 약간 아쉬운데, 일단 모든 사건이 "우연"이 겹쳐져 계속 순차적으로 일어나고, 해결되어 나간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사에키나 그의 아내 사에코나 의문의 사나이 가이후 등등 모든 인물이 사와자키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 것도 우연. 사와자키 사무실에 침입한 인물의 차 넘버를 알게되는 것도 우연. 애시당초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물이라는 설정이 굉장히 작위적인 우연이니 뭐 할말이 더 있겠습니까... 본토박이 하드보일드의 자취가 너무 곳곳에 있어서 일본작품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것 역시 장점보다는 아무래도 단점쪽에 더 가깝겠죠. 그 외에도 이건 책 자체의 문제인데 오타가 몇개 있는 것도 약간 몰입을 저해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회장이 행복해서 (원래 문맥상은 회복해서)" 는 정말 코미디였어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앞서 설명했듯 장점이 더욱 많고 재미도 있기에, 또한 하드보일드의 완벽한 적자 사와자키라는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하드보일드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적극 추천할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서야 소개되는 것이 사실 의아한 작품이기도 한데 좀 잘 팔려서 국내에서도 이런 좋은 작품을 보다 자주 만나보게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개인적인 별점은 4점입니다. 5점 만점을 주기에는 단점이 약간 있긴 합니다..^^ 4점도 높은 점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