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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이토록 아찔한 경성 - 김병희 외 / 한성환 외 엮음 : 별점 2점

이토록 아찔한 경성 - 4점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꿈결


"OBS의 특별기획 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라는 특강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이 강의한 내용을 선별하여 글로 옮긴 책입니다. 여섯 개의 주제를 가지고 근대 경성의 삶과 그것이 현재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개인적으로 근대 경성, 일제 강점기 시기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내용들 대부분이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 탓입니다. 주제들 각각이 한 권의 책으로 이미 많이 출간된 탓도 크고요. 제가 읽은 것만도 광고는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대중 음악은 "오빠는 풍각쟁이야", 문화재는 "명품의 탄생"으로 이미 접했던 내용이니까요.

또 원래가 TV 방송이라 내용들 대부분이 에피소드 중심으로 쉽게쉽게 접근한다는 점, 각 챕터를 담당한 전문가가 다른 탓에 전체 챕터 내용, 구성 방향, 문체 등 모든 면에서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물론 쉽게 쓰여졌다는 것을 단점이라고 부르기 어렵기는 하겠죠. 몇몇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이 없지는 않고요. 풀 컬러로 이루어진 책의 구성과 도판, 디자인도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정도의 내용이라면 방송으로 보는 게 훨씬 빠르고 유익했을 것 같고, 어차피 깊이 있는 내용을 얻으려면 결국은 제가 언급한 다른 책을 찾아봐야 할 터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챕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부 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근대 광고는 다른 책으로도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태동 정착기 - 성숙기 - 쇠퇴기로 3분하여 설명하고 있는 점, 천연당 사진관의 90도로 돌려놓은 기묘한 광고같이 시기별 대표 광고에 대해 "광고 전문가"의 시각으로 설명해 주는 부분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 광고에 대해 타자적 욕망 운운하는 결론은 무리수로 보입니다. 시기가 어찌 되었건 광고의 본질은 다 똑같을 테니까요. 식민지 시기라고 다르게 설명할 이유는 없습니다.

"2부 대중음악으로 본 근대의 풍경"

역시나 다른 책에서 본 내용으로 특기할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트로트와 신파를 엮는 것이 핵심 내용인데 딱히 새롭지 않았거든요. 또 라시도미파의 5음계를 가지고 트로트의 음계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아무래도 TV 같은 매체가 아니면 와닿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3부 사법제도로 본 근대의 풍경"

일제시대 때 순사로 대표되는 경찰조직이 강력한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순사"가 공포의 대명사처럼 쓰였는지 알게 되었다는 점도 좋았고요. 결국 비용 문제로 판사와 검사의 수가 적기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었는데, '범죄즉결례'라는 것으로 3개월 이내의 형은 경찰이 내릴 수도 있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소설가 김동인의 단편소설 "태형"과 특정 재판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어서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구성도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후진적인 당시 체제를 해방 이후 상황까지 이어서 설명해 주는 것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제 관심 밖 영역인 탓도 있지만 저자인 김인회 씨의 정치적 배경이 글에 개입된 느낌도 강했기 때문이에요.

"4부 문화재로 본 근대의 풍경"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 수집 활동 이야기 외에는 우리나라의 반출된 문화재를 어떻게 하면 잘 회수할 수 있을지가 결론인 내용으로,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와 비슷한 주제입니다. 생각해볼 만한 주제이지만 기대했던 내용은 아닌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5부 미디어로 본 근대의 풍경"

근대 미디어, 그 중에서도 신문과 라디오를 중심으로 설명해 줍니다. 신문의 역사는 국사책에도 나올 법한 내용이 전부라 대단한건 없습니다. 그래도 선조 때 있었다는 "조보"라는 매체가 민간 신문이었다는 저자의 이론은 재미있더군요. 경성방송국 직원이 "미국의 소리" 방송을 몰래 들은 "밀청 사건"도 제 공부가 부족한 탓에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기억에 남고요.

"6부 철도로 본 근대의 풍경"

이수광 씨의 다른 근대 관련 서적은 한 권 읽어보았었는데 문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더랬죠.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게 소설적인, 그리고 과장된 문체로 일관하고 있거든요. 덕분에 다른 챕터와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불만스러웠으며, 본인 스스로의 해석이 많이 가미된 것도 영 별로였습니다. 곡산군이 폐허가 된 이유라는 철도 공사 역부 차출에 관련된 민중 봉기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컸어요.

2010/07/11

경성상계 - 박상하 : 별점은 3점

경성상계 - 6점
박상하 지음/생각의나무

일제 강점기 근대 경성의 상업 활동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 미시사 서적. 
시대별로 나뉜 5개의 목차로 구분되는데, 1부는 종로 육의전의 붕괴, 2부는 한성에서 경성으로 변해가는 시기의 유행 상품들, 3부는 젊은 조선 상인들의 활약, 4부는 조선 백화점왕 화신의 박흥식, 5부는 광복 이후의 상계 판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제도 재미있고 내용도 재미있는 소재들이죠? 하지만 다른 책에서 접했던 내용이 너무 많아서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대의 수입 구조라던가 백화점을 다룬 주요 내용들은 "경성리포트" 등에서, 레코드 업계 이야기는 "오빠는 풍각쟁이야", 금광왕 최창학과 방응모 이야기는 "황금광시대"에서 이미 접한 내용이죠. 이는 당대의 "별건곤"이나 "삼천리" 등의 사료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경성 관련 미시사 서적의 한계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고무신의 기원이라던가 안경 사업, 명월관과 식도원의 요릿집 경쟁과 같은 처음 접하는 에피소드도 많이 실려 있으며 왕족 출신 사업가 이재현, 경성 자동차왕 방의석, 조선 3대 재벌, 호텔 여사장 김옥교, 그리고 화신 백화점의 박흥식 같은 상인 중심의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해당 인물의 처음과 끝을 상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식민지 경성 상인들의 이야기야말로 조선인과 경성상계 그 자체일테니까 말이죠. 특히 4부의 박흥식 이야기는 상세할 뿐 아니라 굉장히 드라마틱하더라고요. 바로 소설화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울러 다른 책들 보다 "숫자"를 표기하는데 철저해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는 것 역시 장점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8/10/11

부랑청년 전성시대 - 소영현 : 별점 3점

부랑청년 전성시대 - 6점
소영현 지음/푸른역사

한창 추리소설로 달리다가 숨을 좀 고를겸 예전에 구입한 자료용 도서를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역사관련 도서는 오랫만이네요.

이 책은 부제의 “근대 청년의 문화 풍경”이라는 말 그대로 근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주로 1900년대 전후반에서 1920년대에 걸쳐) 조선의 “청년” 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적, 사상적 배경을 분석하여 다루고 있는 책으로, 주제는 크게 근대 청년 / 경성풍경 / 근대화와 여성들 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큰 주제를 지루하지 않도록 단락별로 짤막하게 구성하여 서술하고 있고요. 확실한 것은 최근 1~2년 사이의 "경성붐"에 편성한 책은 아닌, 제대로 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근대화와 근대적 청년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집중하고 있기에 관련 내용이 굉장히 자세할 뿐더러, 해당 시대와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자료로서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이기도 합니다. 근대 조선에서의 입신 출세를 위한 조선 유학생의 숫자라던가, 유학생들이 유학을 떠난 학교와 출신 지역은 어디인가 라던가, 근대 조선에서의 이혼율, 여성학교와 재학생 숫자와 같은 통계자료를 비롯하여 다양한 도판 및 인용된 당대의 많은 소설 및 시, 잡지 등의 기고문 등 자료만 해도 한 가득이거든요.

애초에는 창작중인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을 위한 자료로서 구입한 책으로 재미를 위해 구입한 책은 아니었고, 책 내용도 아주 재미있다고 보기는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인상적이었고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은 근대 조선에서 에스페란티스토가 많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벽초 홍명희 선생이 에스페란티스토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말이죠. 다음 경성탐정록에는 에스페란토어 암호가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당대 청년들의 근대화 과정과 그들의 내면에 있는 고정관념과 근대화에 대한 딜레마, 예를 들자면 정혼자가 있거나 혼약한 상태에서 근대 교육을 받은 뒤 이혼을 결심하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해설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가격이 제법 되는 편이라 선뜻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별 3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자료적 가치가 더 크긴 하지만 예상외의 재미도 느낀 만큼, 사람에 따라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네요.

2010/01/24

경성리포트 - 예지숙 외 : 나에게는 별점 4점

경성리포트 - 8점
예지숙 외 지음/시공사

경성에 관련된 도서는 "경성탐정록" 때문에 그동안 자료삼아 많이 읽어 보았었죠. 하지만 특정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어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기가 좀 어렵다거나, 아니면 정말 학술적인 부분에 치우쳐서 자료적 가치 이외의 재미를 찾아보기 힘든 책이 많았는데 이 책은 정말 경성의 "실생활"에 연관된 내용이 많고 재미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일단 크게 3개의 챕터, "사라리맨의 일상, 반도에 분 바람", "근대 소비문화의 풍경", "가난의 시대, 소외의 시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사라리맨"에 관련된 첫번째 챕터는 사라리맨의 종류와 월급, 보너스, 사라리맨이 되기 위한 방법과 조선의 교육열과 여러 학교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1930년대 경성에서 남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는 매월 4~50원의 돈이 필요하다던가, 쌀 한가마니가 18 ~ 20원 정도 했다던가 라던가, 은행과 신문사 월급은 좋았지만 다른 곳은 30원 수준이었다던가, 상여금은 400% 가까이 나올때도 있다던가 하는 실용적 정보가 가득합니다. 좋은 직장을 들어가기 위한 근간인 교육열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는 물론 경성 제국 대학 1925년 조선인 신입생이 51명 밖에 안되었다는 등의 자료적 가치가 풍부하고요. 여러 중등, 보통학교에 대한 내용도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챕터 "근대 소비문화의 풍경"은 주로 백화점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미쓰코시와 미나카이 등 일본 자본 백화점과 화신, 동아라는 조선인 자본 백화점의 상권전쟁. 경품 추첨과 같은 판촉 전략과 쇼프껄, 승강긔와 같은 당대의 문화현상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뒤에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유행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성기 시대 조선의 스타 가수와 같은 항목 등으로 말이죠. 단지 소개된 항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질 정도로 흥미진진하죠? 실제로 재미도 넘칩니다.

마지막 챕터 "가난의 시대, 소외의 시대"는 당시 경성의 조선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토막촌"같은 앞부분에서 짤막하게 설명된 내용이 또 등장한다던가 특정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등 재미는 있지만 자료적인 가치는 조금 떨어지는 편이라 약간 아쉽더군요. 북촌과 남촌 이야기로 끝맺는데 마무리도 뭔가 제대로 이루어진것 같지 않고요. 

어쨌건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재미있었고 자료적인 가치도 충분해서 만족스러운 도서였습니다. 저같이 경성에 관심있고 자료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별점 4점짜리 책이라 생각되네요. 재미까지 있으니 소장가치 충분합니다! 단, 별 관심이 없으시다면 안 읽으셔도 상관은 없는 책입니다. 괜찮은 정보는 경성탐정록에 다 나올테니 기다려주시길^^

2017/06/17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 김경민 : 별점 3점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 6점
김경민 지음/이마

일제 강점기 시절, 폭발적으로 경성 인구가 증가하던 때 일본인들의 북촌 진출을 저지하고 조선인들을 위한 거리와 가옥을 만들어 공급했다는 건축왕 기농 정세권에 대한 책입니다. 

책은 크게 경성을 개발한 부동산왕, 이 책 표현에 따르면 '디벨로퍼'로서의 정세권을 그린 전반부와 조선 물산 장려운동, 조선어학회 활동을 통한 민족 운동가로서의 정세권을 그리는 후반부로 구분됩니다. 

일단 용비어천가 같은 위인전스러운 소개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당시 경성 상황과 부동산 개발에 대해 현 시점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해 주는 덕이 큽니다. 정세권이 부동산 대폭락 상황에서 살아남아 재기할 수 있었던걸 '부동산 부실자산의 즉각적 손절매'라는 현 시점 경제 이론으로 설명해 준다던가, 1930년대 후반 심한 주택난에도 건축 재료 등의 폭등으로 이전과 같은 마진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때 '임대 주택 시장 진출'이라는 큰 의사 결정을 한 이유를 현대의 민간 주택 임대 사업과 연결하여 설명해 주는 식으로요.
한옥을 개량하여 근대 한옥, 지금의 '북촌 한옥 마을' 주택들의 모태가 된 건양사의 건양 주택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옥의 개량이 어떤 생각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양 주택이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형태로 구성된 근대 단독 주택의 모태가 되었다는데, 이렇게 건축의 역사를 일람해 보아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정세권이 왕십리에 주목했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1930년대 정세권의 왕십리 토지 매입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토지를 매입하는 것이었지만, 이는 일제의 경성 도시 계획을 이해하고 뉴타운 개발이 시작된다는걸 예측한 선견지명이었다는 해석이거든요. 용산과 왕십리를 연결하는 남산 주회 도로 건설, 더 나아가 여기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동부축'의 건설을 내다 본 것이지요. 역시 부동산왕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일본이 일본인 경성 이주를 위해 현 일본인 거주지의 도시 미화 운동과 지금의 뉴타운 정책과 같은 빈 공간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두 가지 전략을 썼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1937년의 대경성 중심 100년 계획이 그것으로, 경성 인구 성장 억제를 위해 수원, 인천, 김포, 개성, 의정부, 춘천, 이천, 김량장 등 경성 주변 8개 도시를 신도시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고 하네요. 경성과 이 도시들을 남대문 등 6개 문에서부터 방사형 도로로 연결하고 완상형 도로로 각 도시를 서로 연결시킨다는, 지금 바라보아도 엄청난 스케일이라 눈길이 절로 갑니다. 큰 스케일 탓에 결국 실현 되지 못했지만 꽤나 그럴듯해요. 지금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도 크고 말이죠.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와 '교통' 이라는 것이니까요.

후반부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활동에 대한 기록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잘 살고, 독립 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이미 당대 조선에서는 탑 클래스의 기업가가 적극적으로 민족 운동을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런 선각자가 독립 운동으로 막대한 재산과 건강까지 잃었음에도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금의 현실은 정말이지 개탄을 금하기 어렵군요. 조선어학회 활동으로 일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이 때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 씨의 덕분으로 치료될 수 있었다는건 나름 귀중한 에피소드라 생각됩니다.

이어서 정세권의 말년 등을 다룬 일종의 에필로그 형태로 마무리되는데, 말년에는 일종의 '주택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가족수는 줄어들며, 월급쟁이로 살면서 생활비와 식비가 많이 들 터라 주택은 적정 크기여야 하고 대지에서 소출을 얻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발상인데, 지금은 상식이 된 흐름을 미리 읽어내었다는 점은 과연 부동산 왕 답습니다. 자급자족에 대한 이론도 단지 농경이 아니라 태양광 발전 등 현대 기술을 접목하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니까요.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실패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성공했더라면 잃었던 재산을 복구하고 다시 대한민국의 부동산 왕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렇게 좋은 내용들인데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격에 비하면 양이 부실한 탓이 큽니다. 정세권의 부동산 왕으로서의 행적과 독립 운동이라는 두 가지 축만 다룰 뿐, 정작 출생부터 출세할 때 까지는 대충 넘기기도 하고요. 이런 부분까지 보충했더라면 전형적인 위인전이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출생 및 성장 과정이 궁금한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정세권의 일대기가 드라마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덧붙이자면, 앞으로는 독립 운동한 분들이 대접받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소한 친일파보다는 잘 살아야죠...

2009/03/08

경성 자살 클럽 - 전봉관 : 별점 3점

경성 자살 클럽 - 6점
전봉관 지음/살림

황금광시대, 경성기담럭키경성에 이어지는 전봉관의 경성 관련 서적 네번째 작품입니다. 출간된지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고 구입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고 1부는 "근대 조선의 사랑과 전쟁", 2부는 "근대 조선 잔혹사" 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재미와 사료적 가치는 좀 떨어진다 생각됩니다.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등 유사 도서에서 이미 접했던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죠. 1부에서 많이 다룬 연인들의 "정사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러한데, 대표적인 것은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정사와 평양 명기 강명화 정사사건, 그리고 2부의 홍옥임, 김용주 동성애 정사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또 몇몇 이야기의 경우에는 새롭고 재미있긴 했지만 관련 기사 한두건의 내용을 통하여 이야기를 재조명하고 있기에 탄탄한 느낌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고요. 예를 들자면 "상하이 국제 삼각연애 살인사건" 의 경우는 내용 전체가 "개벽" 1934년 12월호 "국제 삼객애의 혈제"에서 발쵀한 내용이더군요.

물론 전봉관씨의 몇 안되는 자료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능력은 여전히 돋보이고 다른 책들에서도 많이 접했던 사건들의 이면을 설명한다던가 - 윤심덕, 김우진 사건의 경우 후일담이라 할 수 있는 "생존설"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 하는 부분은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으며 입시 지옥에 관련된 내용 같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기에 책 자체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 외에 독립운동에 관련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요.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등장하는 것은 경성 관련 도서를 많이 읽다보니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좀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새롭게 알게된 내용이 많았더라면 4점은 충분히 줄 수 있는 책인데 아쉽네요. 그래도 경성을 무대로 한 창작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군말하기 어려운, 참으로 고마운 책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2017/08/1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박유희 외 : 별점 3점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6점
대중서사장르연구회.박유희 외 지음/이론과실천

한국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매체에 등장했던 추리물의 역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인문학, 문화사 서적입니다. 

"아랑 전설"에서 밀양 부사가 빨간 깃대를 흔들고 가는 아랑에 대해 꿈꾼 후, 범인이 '朱旗'라는 사람임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에서 '한각사중계월침, 붕월반월원무심'이라는 점 글귀의 뜻 풀이 같은 것이 소개되는 등, 고전 설화와 각종 야담, 역사서 등에 등장했던 추리 서사부터 소개하고 있기에 그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근대적인 추리 소설, 즉 '정탐 소설'이 처음 등장한 "쌍옥적" 이후의 자료는 더욱 풍부합니다. 처음 알게 된 건 "쌍옥적" 시기에 발표되었던 "박쥐우산"이라는 작품입니다. "르루주 사건"을 번안한 "누구의 죄"를 표절한 느낌이지만, 소개를 보니 범행 동기와 범인 설정을 당시 국내 실정에 잘 맞도록 나름 개선, 발전시킨 부분이 있는 덕분에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근대 초기에 셜록 홈즈와 같은 정통파 추리물이 아니라 '에밀 가보리오'의 프랑스 소설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근대에 추리 소설이 번안되어 소개되면서 이른바 '탐정 소설'이 높은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독자들이 읽는 지적인 작품으로 어필했다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항상 싸구려 문학의 대명사로 알려진 80년대 이후를 살아온 저에게는 이해가 안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독서라는 취미 자체가 어느정도 지적 수준이 있는 계층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을테고, 그 중에서 추리 소설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 된 이해력이 필요하니까요. 근대에는 그러한 독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이렇게 초창기 추리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주 괜찮은 듯 싶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정탐', '탐정'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당대 분위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인용되는 자료들을 보니 각종 신문 기사 헤드라인에서 이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대구에 사는 한 소년이 10세 아동을 납치 살해한 후 협박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범행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년이 '탐정소설만 매일 탐독'했다고 소개되거든요. 이렇게 탐정소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죠. 가슴아프게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 앞서 말씀드린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 거기에 '그로(그로테스크)'로 대표되는 새로운 유행의 결합 등으로 한국 추리 문학이 서서히 선정성, 엽기성이 강조된 싸구려 펄프 픽션화하는 과정이 해방 이후 현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울러 지적인 영역,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수사 외에도 서구 물질 문명의 유혹 역시 지식인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 후대에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만 확대, 발전해 버린 탓입니다.

그래도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이라는 기적으로 대표되는 김성종 시대에서 현재(이 책이 발표된 2010년 기준)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마지막 부분 덕분에 아직 한국 추리 문학에 희망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 추리문학의 미래로 "경성탐정록"이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경성탐정록"이야 말로 한국 현대 추리문학이 이룬 놀라운 성취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선정성, 엽기성이 사라지고 정통 추리 서사에 기반한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원점에 회귀한다는 측면은 분명히 있죠. 이를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추리문학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반은 농담인거 아시죠?).

"경성탐정록" 외에도 고전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추리 문학 발전 와중에 등장한 수많은 작품이 소개되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문학의 홍수 속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추리 서사를 보여주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친일 문학이기에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사면에서는 흥미로와 보이는 김내성의 "태풍", 해방 후 추리 문학계의 1인자였다는 방인근의 작품들(그 중에서도 사립탐정 장비호 시리즈), 허문영의 번개 탐정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방인근, 허문영의 작품들은 소개만 보아도 앞서 말씀드린 펄프 픽션들에 다름없기에 구태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인근 작품들에 등장하는 해방 이후 주요 설정들 - 일본인이 해방 후 강제로 쫓겨가며 챙기지 못했던 재산을 되찾으려고 한다던가, 국가 혼란기에 국보를 훔친다던가 등등 - 은 한번 연구해 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추리 문학 뿐 아니라 추리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 및 주요 작품의 소개 또한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007 시리즈의 여러 모방작들 등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스파이물, 액션 스릴러, 느와르 등 다루는 폭도 넓고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놓치시기 힘들 내용들이었어요.

그런데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건 단점입니다. 기껏 흥미를 자아내는데,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지요. 지금 구하기 쉬운 작품들도 아니니까요. 도판도 부실한 편이고요.

그래도 얻은 것이 훨씬 많은 독서였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만원이라는 가격도 마음에 들고요.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가 식민지 시대 추리 문학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다루는 폭과 기간이 훨씬 넓다는 차이가 있기에 비교해 읽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읽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추리 애호가지만 이런 것 까지 찾아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 정도면 모든 추리 문학, 장르 애호가분들께 권해드릴 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4/20

오빠는 풍각쟁이야 : 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 장유정 : 별점 3점

오빠는 풍각쟁이야 - 6점
장유정 지음/민음인

"경성탐정록"의 자료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는 식민지 경성을 다룬 미시사 서적 중 한권으로, 이 책은 제목과 부제에서 연상되듯이 19~20세기 초반까지의 국내 "음반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1899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국내 음반 역사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을 년도별로 다양한 자료를 통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것이겠죠. 다른 경성관련 서적들에 비해 한가지 분야만 집요할 정도로 파 들어갔기에 확실히 그만큼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인 분석에 더하여 굉장히 흥미진진한 소재들을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게 대박!이에요. 예를 들자면 "국내 최초의 얼굴없는 가수는 누구인가?" 라던가 "조선 최초의 재즈 공연은?" 같은 것들인데, 그 자체로서도 굉장히 재미있지만 추리 소설의 소재로 삼아도 될 정도로 매력적인 내용들이라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거든요. 경성의 유명한 얼굴없는 가수 "미스 리갈"의 정체를 둘러싸고 여러명의 기생이 등장하여 자신이 진짜라고 우기는 와중에 기생과 가수 연쇄살인사건 발생! 음반사간 전속 경쟁이 불러온 참극! 흥미진진할 것 같지 않나요?

물론 단점도 몇가지 있습니다. 재미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접근하였기에 읽기에 약간 딱딱한 부분이 있다는 것과 생각보다 비싼 가격은 확실히 옥의 티죠. 그래도 자료적 가치와 재미가 동시에 있는 저작물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경성과 경성의 가요계, 음반계를 무대로 한 창작물을 기획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 생각되네요. 단 이러한 창작물이 많이 있지는 않다는게 이 책이 가진 유일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6/08/10

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스캔들 - 전봉관 : 별점 4점

경성기담 - 8점
전봉관 지음/살림

 조선말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에 있었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괴사건들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역사와 추리를 모두 좋아하는 저로서는 흥미가 안갈래야 안갈 수 없는 책이었는데 마침 형이 구입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쌩유!)

책은 크게 2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1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미스터리 살인사건"이고 두번째가 "2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입니다. 두가지 주제 모두 흥미롭고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 지지만 역시 저같은 미스터리 팬에게는 첫번째 주제가 더 와 닿더군요.

1부에는 총 4개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사건인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대낮 경성거리에서 발견된 아이 머리를 둘러싼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이고 두번째 사건"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은 안동에서 피살되어 발견된 일본인 순사 가와카미와 용의자로 붙잡힌 조선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세번째 사건은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으로 부산의 조선인 하녀 마리아가 주인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다루고 있고 네번째 사건은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으로 지금도 유명한 사교집단 백백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단순히 흥미거리위주로 수록된 사건들이라기 보다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역학관계를 논할만한 주제가 많아 의미 있는 선정이었다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의 용의자인 조선 청년들의 억울함과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다카하시 부인에 대한 수사와 처우, 처벌이 너무나 달라서 한번쯤 비교해 보며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거든요. 특히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이끌어낸 순사 살해사건의 경우는 그 수사의 방법이 너무 원시적이고 황당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쩐지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용의자 동생의 증언인 "형이 목을 졸라 죽이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봤지만 그 다음은 졸려서 잤기때문에 모른다"라는 증언은 폭소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 남아들은 형이 살인해도 졸리면 잔다는 이야긴지 원...

또한"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문둥이가 아기 간을 먹으면 낫는다"라는 토속적인 주술적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어서 역시 인상적이었고 법의학자로 경성제대 교수까지 등장하는 등 당시 수사 방식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상당합니다. 사건의 엽기성과 내용에서 최근 유명한 "프랑스 영아 유기 사건"을 떠올리게도 하더군요. (이 주술적 믿음을 소재로 퇴마록의 이우혁씨가 쓴 괜찮은 단편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1부의 마지막 사건인 백백교 사건은 다른 매체에서 많이 접해서 크게 새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역사적" 측면에서 선정한 것이겠죠? 이만한 대형 사건은 정말 드물테니 말이죠. 뭐 뻔한 내용이지만 그런대로 도판과 자세한 재판과정의 수록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2부는 "스캔들"이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내용적으로나 사건 측면으로나 1부에 비하면 아무래도 임팩트가 떨어지긴 하지만 역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전부 6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인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의 여제자 정조유린 사건"은 3.1 운동때 민족대표 중 한명이었던 교육자 박희도의 여제자 성추행(?)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번째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 수난기"는 순종의 장인으로 매국노였던 윤택영 후작의 어마어마한 빚과 그 최후를 상세하게 그리고 있고요. 세번째 "이인용 남작 집안 부부싸움"은 역시나 매국노였던 이인용 남작 부부의 재산을 둘러싼 의미없는, 허무한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이화여전 안기영 교수의 애정도피행각"으로 조선 제일의 테너로 불렸다는 음악가 안기영 교수가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 이야기, 다섯번째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 사건"으로 당시 국내 제일의 신여성이었던 박인덕의 이혼에 관련된 이야기, 마지막 여섯번째는"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로 최영숙이라는 스웨덴 유학생의 비참한 최후를 서술한 내용입니다.

제가 제일 흥미롭게 읽은 것은 매국노들 대부분이 가산을 탕진하여 외려 총독부에 구걸(?)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두편의 이야기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 이야기와 "이인용 남작 부부싸움" 이야기였습니다. 친일파들이 다 떵떵거리면서 한자리 차지하고 살아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부분 당대에 가산을 탕진했다는 통쾌한(!) 이야기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들끼리 싸우는 이야기도 신났고요. 특히 저자의 덧붙인 코멘트, 요사이 매국노들의 후손이 땅 반환 소송을 한다는데 과연 그들에게 남은 재산이 있었는지 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습니다.

그 외의 남녀간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는 요사이 연예면에 나올만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져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여성과 전형적 조선 남자와의 결혼이 "돈"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사건"은 읽다보니 요사이 모 아나운서 결혼 이야기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 재미있더군요.

마지막 이야기인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는 당시 조선에서의 여자의 존재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으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보아도 5개국어에 능통한 수재 여성이 국내에서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콩나물 장사나 하다가 혼혈아를 낙태한 것 때문에 외려 탕녀 취급이나 받다니....저자가 하인스워드의 예를 들어 설명한 것과 같이 지금도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안타깝네요.

기획만으로도 무척 특이한 역사-인문 서적이지만 읽는 재미도 충분히 전해주는 책이었습니다. 현재 30대 중반의 나이로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의 글 답게 고루한 역사관을 논하는 것이 아닌, 요사이의 시사적인 문제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재미난 내용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거든요. 저 스스로도 반성하고 한번 생각해 볼만한 주제도 많았고요.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의 또 다른 측면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울러 구상중인 일제 강점기 배경의 추리 소설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기쁨 두배였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단 가격이 12,000원이라는 것은 확실히 문제네요. 책의 내용은 재미있고 가치도 있지만 사진도 거의 없고 그다지 많은 분량의 이야기도 아닌데 솔직히 너무 비쌉니다! 한 8000원 정도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날 까지 팍팍 밀어줄만 한 책인데 가격이 좀 많이 걸리네요.

2012/12/18

사라진 직업의 역사 - 이승원 : 별점 3점

사라진 직업의 역사 - 6점
이승원 지음/자음과모음(이룸)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에 걸친 근대 초기에 생성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9개의 직업의 흥망성쇠에 대해 다룬 인문 교양, 미시사 서적입니다. 소개하고 있는 9개의 직업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소리의 네트워커, 전화교환수
2. 모던 엔터테이너, 변사
3. 문화계의 이슈 메이커, 기생
4. 이야기의 메신저, 전기수
5. 트랜스 마더, 유모
6. 바닥 민심의 바로미터, 인력거꾼
7. 러시아워의 스피드 메이커, 여차장
8. 토털 헬스 케어? 물장수
9. 메디컬 트릭스터, 약장수

목차만 보아도 너무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저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단순히 어떻게 생겼고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졌는지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당시 자료들을 통해 실존했던 인물들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도 풍부하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변사였으나 유성영화 도입과 마약 중독으로 몰락한 변사 서상호에 대한 이야기와 "물장수"에 대해 다룬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서상호 이야기는 그간 궁금했던 점을 시원하게 긁어준 느낌이 들었어요. 중간중간 실려 있는 실제 변사의 대사(서상호의 "암굴왕" 등)도 좋은 참고가 되었고요. 아울러 물장수 관련 이야기는 다른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실려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장수들의 조합에서부터 물을 어디서 퍼 왔는지, 수도가 생긴 후 어떻게 되었는지 등…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잘 다루어주고 있으니까요.

"경성탐정록"의 첫 단편인 "운수 좋은 날"의 주요 설정 중 하나가 인력거꾼이었기에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책을 보니 "경성탐정록"의 시대적 배경인 1930년대에는 인력거가 이미 거의 사멸한 상태였더군요. 고증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기는 합니다. 근대, 특히 일제강점기에 집중된 이야기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전기수"와 "유모"에 대한 이야기는 보다 이전 시대 이야기라 기대와는 좀 달랐다는 점을 먼저 들고 싶네요.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확실히 예상과는 달랐어요. 특히 "전기수" 이야기는 내용과 자료적인 가치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고요.
"약장수" 편은 실제 약장수 이야기보다는 양약의 도입과 약 광고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책의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습니다. 실제 약장수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다루는데 그치니까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약장수에 대해 소개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아울러 도판 등 자료적인 부분에서 다른 유사 도서에 비해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단점이었고요.

이러한 약간의 단점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래도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를 갖춘 책으로, 근대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2016/04/24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 장유정 : 별점 2점

살림지식총서 342권. 제목 그대로 근대 경성"다방""카페"에 대해 서술한 미시사 서적입니다. 경성을 무대로 한 소설을 창작하고 있는터라 자료 삼아 구입했습니다.

처음 생겨난 이후, 속속 개업한 다양한 다방과 카페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었던 점은 좋았습니다. 카페 여급의 월 수입이라든가 여급들의 전직, 그녀들의 생각 등도 확인할 수 있었고요.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모호했던 다방과 카페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습니다. 다방은 문화인들의 문화 공간이었으며, 카페는 여급과 술을 마시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환락의 공간이었다는 점을 상세한 사료와 함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쓴 책이라 그런지 발터 벤야민 등을 인용하며 시대를 분석하는 부분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대 다방과 카페에 대한 사료적 접근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굳이 이론적 분석을 덧붙인건 아쉬웠어요. 100쪽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는 깊이 있는 논의가 무리이기도 했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 아주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2/11/03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김태수 : 별점 4점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8점
김태수 지음/황소자리

신문광고를 중심으로 근대에 대해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근대 조선의 생활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큽니다. 그래서 관련된 책을 제법 많이 읽어 왔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리뷰한 것만 열 권이 넘을 정도로요. 그런데 어느 정도 읽으니, 주제와 내용면에서 겹치는게 많이 눈에 뜨이더군요. 주요한 일상생활사를 주로 별건곤에서 인용하는 책들이 많은 탓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명확한 차별화 포인트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문광고라는 주제가 아주 좋아요. 당대의 사회상과 관심사를 한눈에 보여주는데 광고만한 것이 또 있을까요? 여러가지 자료를 토대로 해당 광고에 대해 설명해 주는 방식인 덕분에 다른 근대 미시사 서적과 겹치는 주제가 있기는 하지만, 내용면에서 "다르다"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해줍니다. 각 꼭지별로 상세한 자료조사를 통해 당시 광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등, 자료적 가치도 뛰어나고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기생|개쌍놈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이라
  • 고무신|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 성병약|화류병은 문명의 병이다
  • 영어|입신의 기초이며 출세의 자본이라
  • 아지노모도|끄내라, 끄내! 밥상 드러온다
  • 과자|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
  • 산아제한|'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 전쟁|캬라멜도 싸우고 있다
  • 창씨개명|나의 조선 이름은 촌티가 나서......
  • 영화|촤뿌린씨의 눈물과 웃음, 거리의 등불은 빛난다
  • 자동차|제갈량의 목우유마냐 옥황상제의 용마냐
  • 라디오|문명이 운다 조선의 라듸오!
  • 위생|건전하고 매력 있는 살바탕을 맨드러야
  • 박가분|부인 화장계의 패왕
  • 백화점|백화점 승강긔 바람에 억개가 읏슥하다
  • 술|맥주는, 가로대 자양품이라
  • 커피|양탕국이냐, 독아편이냐
  • 손기정|축! 마라손 왕 손남 양군 만세
  • 전당포|훈장 3원, 요강 50전
  • 바리캉|경제계의 대복음, 이발계의 혁명
  • 양장|유방을 해방하자
  • 포르노그래피|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에 권함

목차만 읽어도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전부 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항목은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라는 현란한 카피가 돋보이는 별표 고무의 광고 등이 실린 고무신, 화류병 (매독) 치료를 위한 다양한 제품의 광고를 선보이며 당시 성병의 전파 경로 등을 고찰하는 성병약, 당대의 피임약과 아들낳는 약 등을 소개한 산아제한, 창씨개명을 위한 개명에 돈을 받은 작명소 광고에서 부터 창씨개명에 대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창씨개명 등이 있습니다. 전병하라는 농부가 성을 "전농"으로, 이름의 병하를 한자를 바꾸어 일본 발음으로 "덴노 헤이카"가 되었다는 등의 사연이 참 재미있더군요. 현재 두산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의 "박가분"이 조선 화장품의 패왕이 되었다가, 연독 (납) 중독이 발견 및 보도됨으로 사멸했다는 내역이 기록된 박가분도 흥미로왔고요.

결론내리자면 최근 읽은 관련 미시사 서적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 생각됩니다. 흥미로운 주제, 주제에 대한 소개 및 설명. 충실한 도판 등을 통한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근대 조선, 경성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

2018/12/09

호텔 - 도미타 쇼지 / 유재연 : 별점 2.5점

근대 일본에서 호텔이 형성되는 과정을 당시 분위기와 함께 소개하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근대 일본 호텔의 역사에서는 크게 3개의 키워드가 도출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 그건 바로 외국인과 서구화, 그리고 철도죠.

우선 외국인은 호텔의 역사에서 떼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최초에 호텔이 생긴 이유도 외국인들 대상의 숙박 업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나라만 해도 최초의 호텔로 유명한건 "손탁 호텔" 이기도 하지요. 이후 요리가 유명한 작은 호텔들이 한, 두 개씩 생기다가 정부 주도의 영빈관 호텔이 들어서면서부터 "서구화"가 추진됩니다. 일본이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은 이후라서 외교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서구화"를 강하게 추진한게 그 이유로, 당시 도쿄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독일인 의사 베르츠는 일본인들이 고유 문화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렇게 서구화가 국가의 핵심 과제인 상황에서 외국인 손님들, 특히 영국 황태자같은 외국 왕실 일가가 방문을 하게 되면서 서양식 호텔을 서둘러 건축하고, 이는 각 지방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됩니다. 천황 일가의 방문도 겹쳐서 더욱 영빈관스러운 분위기를 추구하게 된 것이고요. 아울러 서구화는 단지 건축 양식 뿐 아니라 식사 및 호텔의 각종 운영 방식 모두가 포함되어 서비스됨으로써 전통 "료칸"과 더욱 차별화되게 됩니다. 결과야 어쨌건 결국 이를 통해 서구 문화를 접하게 되었기에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비싼 가격으로 "고급" 이미지가 함께 형성된 건 덤이라 할 수 있겠죠.

이후 각 지역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관광지와 함께 생겨난 호텔이 소개됩니다. 이러한 관광지는 교통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 휴양지 중 하나인 가루이자도 요코가와와 가루이자와 간 아프트식 철도 개통으로 피서객이 급증한게 발전의 가장 큰 이유라네요. 이렇게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숙소가 필요해져 호텔이 속속 도입되게 되었고요. 비슷한 내용은 "에키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철도 회사가 호텔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식민지 만주에서는 주요 철도역마다 "만철"이 운영하는 거대 호텔이 들어섭니다. 서구화 단계를 지나선 일본이 식민지 사람들이 외경심을 갖게끔 거대하고 웅장한 호텔을 짓기 위해서였다는데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심지어 부산과 경성에 세웠던 호텔마저 소개되니까요. 다행히 이 책의 저자는 식민지에서의 호텔 산업은 식민지 주민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고 쓰고는 있습니다만, 씁쓸합니다.

이 세 개의 큰 키워드를 중심으로 실제로 세워졌던 다양한 호텔들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는게 주요 내용인데 지금은 사진으로 밖에 남아있지 않은 호텔이 대부분이며, 호텔 건설 및 운영에 참여한 인물들 소개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는 등 조금은 불필요한 내용이 많은건 아쉽습니다.
특히나 여러 인물 소개는 영 별로입니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으로 실제로 뭘 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단순히 호텔을 세우거나 운영한 사람들이 많아서 뭐 이렇게까지 소개했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또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등 유명 인사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재미있기는 했지만 분량에 비하면 소개되는 호텔과 인물이 과한 편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에요. 이럴 바에야 이전에 읽었던 "우아함과 탁월함의 역사" 처럼 주요 호텔에 보다 촛점을 맞추어 소개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근대 일본의 분위기, 시대상을 호텔이라는 소재로 잘 드러낸 내용은 마음에 들고 당대 문화(특히 숙박업과 관광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사료적 가치가 크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나름의 가치는 확실하니 근대 일본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0/05/06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 이구열 : 별점 3점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 4점
이구열 지음/돌베개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조선 - 한국 회화와 미술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미시사 서적. 한국 최초로 소개된 유화와 초상화의 주인공같은 회화 관련 수수께끼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 다루고 있는 범위의 폭이 아주 넓습니다. 신문에 실린 목판화나 만평까지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요. 덕분에 내용이 아주 풍성합니다. 
또한 단순히 자료를 취합하여 정리하지도 않았습니다.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낸 이야기들이며,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과정까지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거든요. 충실하게 실려있는 관련된 도판 역시 아주 좋았고요

이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조선 최초의 누드 미술에 대한 항목이었습니다. 1916년 김관호의 "해질녘"이 최초의 누드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후 도쿄 예술 대학을 졸업한 조선인 유학생의 졸업 작품은 누드화나 누드 조각상이 굉장히 많았다던가, 모델은 학교 전속의 직업 모델이었으며 광복까지 조선에는 직업적 누드 모델이 없었다는 내용들은 처음 알았네요. 이 중에서도 김복진이라는 화가가 1938년 한 좌담회에서 누드화를 그리기 위해 색주가집 여성을 2백원에 대여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왕가의 후예였던 이은이 유럽 여행 중 파리에서 야수파 계열 표현주의 화가 반 동겐의 그림을 직접 구입하는 등 미술품 수집 활동을 하였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왔으며, 그 외에도 한 미술가의 친일 행적을 다룬 이야기, 광복 후 사라진 왕가나 개인 소유였던 여러가지 귀중 미술품의 행방 등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소재에 비하면 글 자체의 재미는 부족한 편입니다. 재미로 읽는 책은 아니겠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재미까지 전해 주었더라면 누구에게나 권해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먼저 읽었더라면 경성탐정록의 "광화사" 이야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다른 이야기에라도 써먹어야겠네요.

2010/08/03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 허영섭 : 별점 2.5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 6점
허영섭 지음/채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과정을 '조선총독부' 건축의 역사와 연결시켜 풀어나간 미시사 서적. "경성탐정록" 자료로 쓸까 하고 읽어보았습니다. 

단순하고 지루하게 역사를 나열하지 않고, 주제별로 재미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총독부 건축 설계라는 주제에서는 설계를 최초로 진행했던 건축가 라란데는 프로이센의 식민지 폴란드 출신의 일본 건축가로 그의 아내 에디타는 라란데의 사후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와 재혼했는데, 도고 시게노리는 '박무덕'이라는 이름의 조선 도공의 후예였다... 라는 3국을 넘나드는 장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입니다.
경복궁 철거 부분에서는 고종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아놓았다는 비자금인 85만냥의 금항아리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비화를 풀어놓기도 하고요. '~카더라' 수준에 그치지 않고, 고종의 비자금 출처는 북진 금광의 사용료와 사례비를 모아 놓은 것이었다는걸 밝혀주는 것도 돋보였어요.

무엇보다도 조선총독부라는 건축물의 규모와 시설 등에 대한 자료로는 기대 이상입니다. 건축 기간, 주요 인물, 비용 및 설계와 내 / 외장에 대한 설명은 물론, 마지막에는 전구와 설치된 시계의 갯수까지 망라하는 등 무시무시할 정도로 자세한 덕분입니다. '조선총독부'를 소재로 한 컨텐츠를 창작하려면 필독서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총독부 외에도 다른 조선의 근대 건축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합니다. 때문에 자료적 가치는 높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에피소드와 총독부, 근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말고는 조선이 식민지가 되어가는 이야기의 재반복일 뿐이라 아쉽습니다. 차라리 건축물에 대한 에피소드에만 포커스를 맞추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미시사 서적이라고 보기에는 저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듯한 느낌을 주는 문체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1/17

도쿄의 가장 밑바닥 - 겐콘 이치호이 / 김소운 : 별점 2.5점

도쿄의 가장 밑바닥 - 6점
겐콘 이치호이 지음, 김소운 옮김/글항아리

1893년, 저자 겐콘 이치호이(본명: 마쓰바라 이와고로)가 빈민가로 알려진 시타야 만넨정, 요쓰야 사메가하시, 시바 신아미정 등 3대 빈민굴을 직접 찾아 하층민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이를 생생하게 글로 옮긴 논픽션입니다. 일본 근대 르포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하네요.

특징이라면 단순히 빈곤의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빈민들의 식생활, 일상적인 노동, 그리고 지역 경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구체적이며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차부'(인력거꾼)에 대한 상세한 설명처럼요. 그들의 영업과 업무 행태, 하루 벌이, 주요 먹거리, 생활상과 나이 들었을 때의 비참한 모습까지, 뭐 하나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독자는 그들의 생존 방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에 드리운 가난의 무게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근대 초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참고가 되리라 생각되고요. "경성탐정록"의 "운수 좋은 날"을 쓰기 전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차부 외에도 고물상, 경매 시장, 일용직과 도급 인부들, 아침장과 야시장 등 다양한 하층민 직업에 대한 설명 및 하층민들의 생계 방식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잔반을 모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잔반야'의 존재와 그들이 판매하는 잔반들에 대한 묘사는 당시의 생존 환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음식들 설명도 많은데, '후카가와 메시'가 차부들을 대표하는 식사 중 하나로 바다 비린내가 심해서 먹기 힘들다는게 새롭더군요. 지금은 지역 먹거리로 유명한 음식이니까요. 조리법의 문제였을까요? 원래는 꿀꿀이죽과 다를게 없었던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의 유래와 현재 위치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 시점에 읽어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망하면 3년을 못 간다는 '좌식산공'에 대한 언급, 전당포와 고리대금업자들의 무자비한 행태, 가증스러운 도급업자들에 대한 서술은 지금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막걸리는 1홉(0.18리터)에 2센이며 잘 마시는 사람은 한 번에 5동이에서 7동이를 해치운다. 그중에는 옷가지를 잡히고 홧술로 10동이 이상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는 설명은 더 말할 것도 없을테고요.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특성 모두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으며,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해 잘 모른다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당시 사회의 모순과 빈민들의 고단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책입니다. 인간의 생존 본능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05/31

박물관 보는 법 - 황윤 : 별점 3점

박물관 보는 법 - 6점
황윤 지음, 손광산 그림/유유

부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입니다. 간략한 책 소개와 부제를 보고, 다양한 박물관에 대해 어떤걸 관람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실용서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우리나라 박물관과 유물 수집가의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을 정도로요.

책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도굴꾼이 창궐했다는 1909년 "대한매일신보"의 기사에서 시작합니다. 다행히 1908년 왕립 이왕가 박물관이 세워진 이후, 시장에 나도는 유물들을 웃돈을 얹어 구매함으로써 유물의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1908~1917년까지 왕실이 수집한 유물의 규모는 무려 1만 122점, 구입비만 21만원이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1원이 5만원 정도라고 한다면 100억원 정도 쓴 거니까요. 특히나 국립 중앙 박물관의 핵심 유물인 "금동반가사유상"을 1912년 2,600원이라는 거금에 구입한 것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매자 일본인 고미술상은 경주 남산 기슭에 있는 어느 절에서 찾아낸 이 유물을 40원이라는 금액에 사들였다고 하니 정말 남는 장사 했네요. 천벌이나 받아라! 여튼 이왕가 박물관 덕에 해외로 유출되지 않았으며 지금 보험 평가액만 500억원 수준이라는게 다행일 뿐입니다.

다음에 설립된 것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입니다. 식민 통치의 일환인데 총독부의 권력을 앞세워 1930년대 말에는 1만 4천점이 넘는 막대한 전시품을 유치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본국 총리로 임명되어 귀국할 때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기증했는데 여기 포함된 것이 또 다른 금동반가사유상이었습니다! 본인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그나마 좋은 일을 해 준 것은 고맙네요.

그 뒤에는 유물 수집가와 그들이 수집한 유물들 이야기입니다. 간송 전형필 이야기는 너무 많이 접해보아서 조금은 식상했습니다만, 이외의 인물들도 소상하게 소개해 줍니다. 악명 높은 유물 반출범 오구라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 조선 최상류층의 친일파 의사 박창훈과 서민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산 성모 병원을 세운 박병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박창훈은 치부의 대상으로 유물을 수집했고, 1940~41년 사이 소장품 전부를 경성미술구락부에 모두 팔았습니다. 거의 600점 가까운 소장품을 4000~7000원 사이의 고액에 매각했다니 어마어마한 돈이죠.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했다는 후일담은 입맛을 씁쓸하게 만드네요. 반면 박병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백자 중심의 수집을 이어간 뒤 후일 소장품 전부를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서 유물 카드에 '수정 (박병래의 호)'가 적힌 유물은 관심 있게 봐 두어야겠어요.

또한 출신 대학이 아니라면 쉽게 가보지 못할 대학 박물관에 대한 상세한 정리도 눈길을 끕니다. 친일파로 유명한 김활란이 이화여대 박물관을 위해서는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는 일화가 특히 재미납니다. 박물관의 상징인 국보 백화철화포도문 항아리를 1960년대 1,500만원 (현재 시세로 30억 이상)에 구입한 것이 그것인데, 이 항아리는 장택상의 소유로 그가 야당 지도자로 활동할 때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내놓았다는건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어서 사립 박물관과 사립 미술관이 소개됩니다. 미국의 게티 미술관을 소개하며 진정한 문화재단의 역할을 알려주는데, 한국 기업 휘하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아무래도 요원한 일이겠죠.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호림 박물관이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제 공부가 부족한 탓에 호림 박물관은 가본 적이 없는데 근시일 내에 꼭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마지막은 근대 미술 및 천안의 씨킴과 아라리오 프로젝트, 아라리오 뮤지엄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이 부분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는데 한눈에, 책 한 권을 통해 읽게 되니 뭔가 통사적인 흐름이 느껴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이러한 미시사적 이야기는 물론, 박물관별로 주요 소장품도 함께 소개됩니다. 주요 소장품이야말로 관람할 때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할 테니 소개되는건 당연합니다. 이 부분은 책에 대해 가졌던 원래의 제 생각과 비슷하네요. 부록으로 국립 중앙박물관의 경우, 간략한 약도와 최적의 동선도 수록되어 있고요.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황윤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 박물관과 유물에 대한 애정만큼은 깊이 느껴지는 글들도 좋았습니다. 230여 페이지라는 적절한 분량, 책날개도 없는 오래전 문고본 형태의 심플한 디자인에 적절히 삽입된 정밀한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고요.

단 불필요한 장식, 군더더기를 덜어내어(심지어 표지조차 2도 인쇄에 불과합니다) 보급형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9,000원이라는 정가가 적합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더 저렴하던가, 아니면 조금만 가격을 올려서 표지 정도라도 딴딴하게 (?)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박물관을 좋아하시고 우리 유물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한번 보실 만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실린 박물관별 꼭 보아야 할 유물 목록을 요약하며 글을 마칩니다.

  • 국립 중앙 박물관 - 금동반가사유상, 2층 기증 전시실의 수정 박병래가 기증한 백자들
  •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 호암미술관 - 15~16세기 초기 청화백자, "수월관음도" 등
  • 플라토 미술관 - 로댕의 "지옥의 문", "깔레의 시민"
  • 부암동 서울 미술관 - 이중섭의 "황소" 외 근현대 작품

2026/06/05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 최지혜 : 별점 2.5점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딜쿠샤"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다룬 인문학, 미시사, 근대미술사 서적입니다.

책은 우선 "딜쿠샤"의 역사부터 짚습니다. 테일러 부부가 이 집을 지은 과정, 화재 이후 다시 보수한 과정, 그 뒤 누가 이 집에 살았고 누가 이곳에서 일했는지를 차례로 알려주거든요. "딜쿠샤"는 이른바 문화 주택 열풍의 출발점처럼 볼 수 있는 집으로, 이 집의 건축 과정 소개를 통해 당시 조선에 방갈로를 비롯한 서양식 주택이 어떻게 들어오고 퍼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핵심인 복원 과정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기준으로 실내의 세부 요소를 하나씩 찾아내고, 그것을 다시 재현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전등이 몇 개였는지 같은 고증은 물론, 복원에 필요한 물품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어떻게 제작했는지도 설명됩니다. 이를 통해 복원이라는 일이 단순히 낡은 건물을 고치는 수준에 그치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사진과 온갖 자료들을 조사하여 물건의 쓰임을 확인하고, 없어진 것은 다시 만드는 굉장히 치밀한 작업이더군요. 그 정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어요.

그리고 복원 과정에서 구하거나 만든 여러 소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좋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비연호는 코담뱃가루를 담는 작은 병입니다. 청나라 때부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청에서는 담배는 금지했지만,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는 감기, 두통, 위장병 같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약으로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담뱃가루는 습기에 약했기 때문에, 공기에 덜 닿도록 입구가 작은 병을 만들었고요. 그 병이 비연호입니다.

딜쿠샤 벽난로 옆에 놓인 둥근 그릇은 히바치로 일본 전통 화로입니다. 나무, 도자기, 동으로 만들었는데, 특징이라면 난방용으로만 쓰인건 아니라는 점 입니다. 방 안에서 차나 국을 데우거나, 김을 굽고, 찰떡을 구워 먹고, 깨를 볶는 데에도 썼다고 하네요.

2층 거실 탁자는 상판과 다리까지 조각 장식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건 일본의 닛코보리 탁자입니다. 닛코보리는 일본 닛코 지역의 공예품입니다. 1643년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닛코의 도쇼구를 크게 고치면서 많은 조각 장인들이 모였고, 공사가 끝난 뒤 이들이 그 지역에 정착해 방문객을 대상으로 쟁반과 가구 같은 기념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유래라고 합니다.

서양인의 서양식 주택이지만, 당시 조선의 가구와 소품들도 갖추어져 있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확실합니다. 조선의 돈궤를 서양인들이 캐시박스라고 불렀고, 우리나라 전통 가구 중 장은 분리되지 않지만 농은 층층이 분리되는걸 의미하며, 당시 서양인들에게 삼층장은 조선 가구의 대표였는데 1920~30년대 조선을 찾은 미국인들은 화려한 것을 좋아해서, 번쩍거리는 장식이 많이 붙은 삼층장을 선호했다는 등의 정보가 가득한 덕분입니다. 

이런 정보들과 함께하는 도판도 좋습니다. "딜쿠샤" 복원에 관련된 소품과 세부 디테일 사진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소품과 관련된 도판, 당시 분위기를 알려주는 사진도 충실합니다. 이런 책은 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사진 자료가 많아서 읽기 편했습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특히 문장이 아쉽습니다. 이런 저런 명언과 미학 이론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멋스럽게 쓰려는 표현이 많은 탓입니다. 책의 소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오래된 사진을 보고, 사라진 물건을 찾고, 공간을 다시 만드는 과정만 담백하게 쓰는게 좋았을 것입니다. 괜히 문장을 꾸미려는 부분이 오히려 정보 전달을 방해한다고 느껴집니다.

또 다른 단점은 일부 정보의 근거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전문분야인 건축, 미술, 복원 외의 생활문화 부분은 다소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이 홍차를 좋아한 이유를 영국 물의 미네랄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차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역사, 무역, 계급, 식민지, 기호품 소비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처럼 한, 두 페이지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9/02/17

화형법정 - 존 딕슨 카 / 오정환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별점 4점

화형법정 - 8점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출판계에서 꽤 잘나가는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에게 주말 별장 이웃인 마크 데스파드가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그리고 얼마전 죽은 마크의 백부 마일즈가 사실은 독살당했다며 시체 발굴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마크와 그의 친구인 전직 의사 파팅턴, 마크의 고용인 헨더슨 노인과 스티븐스 네 명은 한밤중에 납골당 입구를 뜯어내는 대 공사를 진행했지만, 마일즈 백부의 시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스티븐스는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여러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10여년전 다른 구판 동서 추리문고 몇권과 함께 제 첫 직장의 여사장님께서 하사하여 주셨던 구판 동서 추리문고로 읽었습니다. 지금은 복간되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구판 동서 추리문고로 밖에는 구할 수 없는 책이라 너무나 감사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고전 추리물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샘솟던 차에 읽게 되었네요.

줄거리 요약부터 하자면, 위에 대충 써 놓기도 했지만 미모의 정체불명 아내와 못난 이웃 사촌때문에 벌어진 3일 동안의 대소동... 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써버리면 흡사 "어니스트 캠프 대소동"같은 코미디 영화가 연상되는데 딕슨 카 선생님 작품이니 당연히 코미디는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 그것도 흑마술 관련된 고딕 호러같은 이야기를 근대에 벌어진 사건과 절묘하게 결합시킨 딕슨 카 류 모던 고딕 호러 오컬트 추리물의 결정판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달랑 3일에 걸친 이야기 -그것도 대부분은 이틀 동안 벌어진- 를 장대한 장편으로 풀어낸 딕슨 카의 탁월한 글 솜씨는 역시나 탁월합니다. 또한 이틀동안 몇 안되는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스케일을 커버하기 위해 앞서 말했듯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던 역사적인 사실, 즉 17세기 사형당했던 유명한 독살범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마리 도브리)과 생 클르와, 데프레와 같은 인물들을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는 현재와 쌍으로 엮어서 색다른 맛과 다채로움을 더해주는 전개도 좋았고요. 덕분에 최근 유행하는 팩션같은 형태를 띄는데, 이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탁월한 퍼즐러, 고전 미스터리 황금기의 거장답게 불가능 범죄 2건을 전면에 배치하여 대담하게 독자와 승부하는 맛이 잘 살아있어서 추리 애호가로서 너무나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런게 진정한 고전 추리물의 맛이겠죠.
두 개의 범죄 -꽉 막힌 납골당에서 어떻게 시체가 사라졌는지와 마일즈 백부의 방에서 문을 뚫고 나가듯이 사라진 백부에게 독약을 먹인 여인의 정체- 모두 신선하면서도 예측을 뛰어넘는 전개와 더불어 고딕 호러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사건과 어우러진 작품과 너무 잘 어울리는지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별것 아닌 듯 했던 여러가지 복선들이 나중에 사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고전적 전개의 효과적인 사용 역시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알리바이에 대한 참신하면서도 거장다운 대담한 발상과 전개(응?) 등 추리적으로는 즐길 거리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딕슨 카 선생 최 전성기에 발표된 작품답지 않게 좀 지나칠 정도로 오컬트 쪽에 치우친 나머지 전개의 설득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사건에 뛰어들어 탐정 역할을 하는 고던 클로스의 생뚱맞은 등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크의 도주, 오그덴의 돌출행동 같은 것들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에필로그가 지나칠 정도로 사족의 느낌이 강해서 무척 불만스러운데요. 왜 이런 에필로그를 구태여 집어넣어서 잘 마무리 된 정통 고전 추리물을 오컬트로 덧칠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에필로그 때문에 사건의 진범과 범행의 방법 등 모든 요소가 헝크러져 버리거든요. 아무래도 작가의 욕심이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과거에 벌어진 역사와 맞물리는 현대에 벌어지는 괴사건, 그리고 놀라운 진상! 덧붙여 반전까지 있는 저도 이런 작품을 한번 써보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읽은 딕슨 카 작품 중에서는 충분히 상위권을 점할 작품으로(해골성,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연속 살인사건 등이 상위권입니다),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멋진 요소가 많고 재미 역시 확실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아직도 이 작품을 읽지 않는 추리 애호가가 있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김내성 선생님의 "진주탑" 처럼 이 작품도 번안하면 무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 말기에 벌어진 살인사건과 얽힌, 경성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참극! 조선 총독부 주재원인 옆집 일본인 후루따(가칭^^) 의 부탁으로 우연찮게 사건에 뛰어든 조선인 변호사(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고도일, 그리고 그의 미모의 부인에 얽힌 놀라운 진상! 어쩌구 저쩌구...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2020/04/12

밀크의 지구사 - 해나 벨튼 / 강경이 : 별점 2.5점

밀크의 지구사 - 6점
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oo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책이 워낙 예뻐서 눈에 뜨이는 대로 한 권씩 구입해 두기는 했는데, 처음에 읽었던 몇 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카레왕추천으로 읽은 "커리의 지구사"가 아주 좋아서, 나머지도 계속 읽어볼까 하여 집어들게 되었네요.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처럼 밀크, 즉 우유가 우리 식문화에 자리잡은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일 첫 단락은 왜 인류가 동물의 젖을 먹어야 했으며, 언제부터 젖을 먹기 시작했는지입니다. 동물의 젖을 먹게 된 이유는, 가축을 키우면 그 젖을 식량으로 쓰는건 타당한 이치라고 설명됩니다. 쥐와 고양이, 돼지 젖을 먹지 않은 이유는 먹을 만큼 젖을 짜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고요.
이후 알려주는건 인류가 언제부터, 어디서 우유를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최근 연구결과로는 기원전 7,000년 또는 그 이전에 현재의 터키 지역 쪽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각종 문명, 문화권에서 젖을 어떻게 짜서 먹었는지 등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문화권에 있었던 독특한 레시피, 유제품에 대해서도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우유를 끓여먹으면 소화하기가 훨씬 숴워져서 고대 인도에서는 뭉근하게 끓인 뒤 강황가루나 후춧가루, 계피 조각, 생강 가루를 넣어서 먹었다는군요. 몽골의 말젖 발효주 아이락 만드는 법, 베두인의 낙타젖은 물과 1대 3의 비율로 희석하면 맛이 좋다는 대 플리니우스의 레시피 등도 수록되어 있고요.
참고로 동물의 젖을 요리의 재료로 쓴 역사도 당연히 오래 되었습니다. 기원전 1750년 경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기록에 따르면 밀크나 신 밀크를 새끼 염소 스튜 등에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고기와 밀크를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라는데, 나름 타당하네요. 이러한 고대 문명에서의 우유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고대 로마까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가 서두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뒤에서부터는 근대 이후부터의 시기가 핵심으로 다루어집니다. 우유 수요가 증가하여 현대적인 우유 산업이 생성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 위함이지요. 우선 17세기 이후부터 시골 동네에서 우유를 꾸준히 먹고, 도시에서도 우유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이는 인구 증가와 시장 활성화 덕분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우유 시장이 커진 19세기의 우유는 위험한 식품이었다고 하네요. 지저분한 낙농장에서 비위생적인 운송 과정을 거쳐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유의 양을 늘리고 색깔, 맛, 향을 위해 온갖 첨가물을 넣어 더욱 위험했어요. 이후 19세기 후반 저온 살균법이 보균되면서 겨우 현대적인 우유 보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우유 시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듭니다. 탄산음료 시장이 성장했고, 우유가 사실은 해롭다는 이야기도 계속 확산된 탓이지요. 우유의 유해성에 대한 담론은 우유가 여러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불거진 이야기로, 처리 전의 생유를 마시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긴 하나 당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군요. 여기서 "은수저"에서 하치겐이 생유를 먹고 맛있음에 전율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우유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야쿠르트, 밀크티 등 각종 음료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만 낙농업은 환경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우유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흔하게 먹는 우유 한 잔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민이 담겨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네요. 앞으로의 고민까지 말이죠.

뒤에는 언제나처럼 부록으로 주영하가 쓴 한국에서의 우유 문화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놀랐던 점은, 한국 우유 산업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1년에 이미 생산과 판매 모두 법령으로 확립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본 열도의 우유업이 한반도에 그대로 투입되었기 때문이죠. 일본에 우유 산업이 발전한건 일찌기 산업화된 유럽과 미국의 우유 기술을 도입하여 홋카이도 개척 당시 낙농 사업을 펼쳤으며, 19세기 후반에 서구화를 위한 서구 추종 분위기에 육식과 함께 편승한 탓이었고요. 심지어 조선총독부에서 젖소를 직접 도입할 정도로 우유 공급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조선 국민들을 전쟁에 써먹기 위한 육체 개조 목적이었지요. 하여튼 이렇게 근대적인 우유 산업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우유협동조합부터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으로 시작했다고 하니까요. 우유에 대한 식문화 만큼은 다른 서방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유 소비량은 1997년 이후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유와 마찬가지겠죠. 젊은 층 인구 감소를 보면, 앞으로는 더 줄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애초에 근대화, 서구화를 위해 도입되었다는 목적을 돌이켜 보면, 이미 서구 문화권과 다름없는 현재 시점에서 우유 소비량이 더 증가한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뒤 마지막은 우유에 대한 몇 가지 레시피가 실려있는데 수 페이지에 불과하고, 내용도 별다를건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유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단한 깊이는 없지만, 가볍게 읽기도 좋았고요. 충실한 도판과 함께 해당 음식의 역사에 대해 한 번 훝어준다는 이 시리즈 컨셉에 충실하거든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