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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3

봉래동의 연구 - 다나카 히로후미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봉래동의 연구"

사립 덴키 학원 뒤 상세의 숲에는 ‘봉래동’이라는 동굴이 있는데, 이 동굴을 지나면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배고픔도 없는 낙원 ‘봉래향’으로 이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다. 그러나 봉래를 찾으러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고, 동굴에는 용이 산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도 있었다. 
신입생 모로보시 히카루는 왕따 학생 미쓰메 토오루가 누군가로부터 봉래향의 존재를 들은 뒤 실종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이런 정보에 정통한 민속학 연구회에 가입하여 회원들과 함께 상세의 숲으로 향했다. 수색은 실패로 끝났지만, 동급생 호시노가 봉래동의 정체를 알아내어 실종된 학생들 구출에 성공한다.

"대남무아미동의 연구"

모로보시 히카루는 학교 축제인 '히루메야마'제에서 연구회 대표로 뽑혀 오코노미야키 조리에 나섰지만 절망적인 요리 실력으로 처참히 실패했다. 팔지 못하고 남은 600장의 오코노미야키를 버리려던 히카루는 상세의 숲에 살고 있던 괴수를 만나게 되었다...

"검은 동굴의 연구"

민속학 연구회는 합숙을 위해 동북 지방의 작은 마을 기가시라 마을로 향했다. 숙소에서 모신다는 일종의 신인 '오시라사마'를 볼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낙뢰가 포함된 폭풍우로 발이 묶인 상황에서 숙소 여관의 여종업원과 주인 아들, 여주인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했다. 연구회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옛날 어떤 고귀한 인물이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검은 동굴’로 도망쳤다. 그리고 사건의 원흉인, 하자쿠라 기미코가 불러낸 악의 근원 스토쿠 상황과 마주쳤다...

일본 작가 다나카 히로후미(田中啓文)의 ‘학원 전기(伝奇) 미스터리 소설’인 “사립 덴키 학원 민속학 연구회(私立伝奇学園高等学校民俗学研究会)”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최근에 읽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원서로 읽었습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덴키 학원의 정식 명칭은 사립 덴나카 기하치 학원 고등학교입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개성이 강한 학생들이 모이는 학교이며, 학교 행사와 규칙 역시 상당히 기묘합니다. 게다가 학교 옆에는 ‘상세의 숲’이라 불리는 거대한 밀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교장의 개인 소유지로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덴키 학원 민속학 연구회에 신입생 모로보시 히카루가 가입하면서 시작됩니다. 히카루는 개성 넘치는 연구회 멤버들과 함께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고요.
이 사건들이 ‘전기(伝奇) 미스터리’라는 명칭에 걸맞게 전설과 신화, 민속과 초자연적 존재들과 관련되어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첫 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봉래동의 연구”입니다.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다는 낙원 ‘봉래향’과 이어진 동굴이라는 전설이 등장하고, 민속학 연구회 멤버들은 이 전설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그 중 하나가 봉래동에 산다는 ‘용’은 ‘출세소라’라는 겁니다. 조개인 법라패(호라카이)가 수천 년을 살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데, 용이 빠져나간 구멍이 동굴이 되었는 해석이지요.
이후 히카루가 발견한 동굴은 도자기처럼 매끈한 재질이었고, 근처에서는 괴물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처음에는 실제 괴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히카루의 동급생 호시노가 밝혀낸 진상은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그 동굴은 사실 거대한 조개 껍데기였으며, 실제로 출세소라의 껍데기였습니다! 괴물의 울음소리 역시 소라 껍데기를 불 때 나는 소리와 같은 원리였습니다. 거대한 껍데기 내부를 통과하는 바람이 울림을 만들어냈고, 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괴물의 포효처럼 들렸던 거지요.
진상은 작품 속에 제시된 여러 단서와도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히카루가 발견한 작살은 고둥류인 이모가이가 쏘아내는 치설과 같은 것이고, 사무라이가 뱀의 몸이 되었다는 전설도 치설에 의한 피부 손상이었다는 식으로요.

이처럼 전설과 신화를 해석하는 과정이 실제 괴물의 존재와 이어지는 구조는 꽤 흥미롭습니다. 앞서 제시된 단서들이 결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 하고요. 이 작품만큼은 이런 '전기 미스터리'의 마스터라 할 수 있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최고작과도 견줄만합니다. 별점 3점 이상도 충분해요.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작품들은 영 별로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대남무아미동의 연구”는 상세의 숲에 오래전에 멸종된 거대 나무늘보가 살아 있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문제는 괴물이 극 초반부터 등장해 버리는 탓에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이나 추리의 재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왕 나무늘보를 뜻하는 일본어 ‘오오나마케모노’를 일본 신화의 신 ‘오오나무치’와 연결하고, 나아가 아마테라스가 대왕 나무늘보를 길렀을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해석도 근거가 발음의 유사성뿐이라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고요. 그나마도 일본 독자라면 어느 정도 흥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한국 독자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설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작품인 “검은 동굴의 연구”는 더욱 실망스럽습니다. 이야기 전반이 비슷한 발음에서 비롯된 말장난 위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하자쿠라 기미코가 불러낸 ‘스토쿠 상황’은 ‘스토쿠인’이라는 원호로 추존되었는데, ‘스토쿠인’과 ‘스타킹’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스타킹이 흉기로 사용되었다는 식입니다. 이후 호시노가 설명하는 여러 진상 역시 비슷한 방식이라 설득력이 부족해요. 스토쿠 상황에 대한 역사적 설명도 그 자체는 흥미롭지만,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요.

만화적인 설정과 분위기도 감점 요소입니다. 배경이 되는 덴키 학원부터 시작해서 고무술 ‘코마’의 후계자이자 엄청난 대식가인 모로보시 히카루, 천재이지만 흥분하면 반말을 하는 호시노, 미신 때문에 머리를 절대 자르지 않는 연구회 부장 이즈미야, 역사광이자 스모 도장의 후계자로 촌마게 머리를 하고 다니는 부부장 시라카베, 미모의 여장남자 이누즈카 등 주요 인물들의 설정 모두 만화적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언행 역시 현실적인 느낌보다는 과하게 코믹해서 만화적이기는 마찬가지고요.
여러모로 전반적인 분위기도 가볍기 그지 없는 탓에, 전설과 고전, 역사 이야기를 풍부하게 끌어다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은 본격 미스터리보다는 라이트 노벨에 가까운 장르물이라는 느낌을 전해 줍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봉래동의 연구”만큼은 괜찮지만, 뒤의 두 편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만화적인 정서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만약 번역되어도 “봉래동의 연구” 한 편만 읽어 보아도 충분합니다.

2025/06/29

복면 작가는 두 사람 있다 (覆面作家は二人いる) - 기타무라 카오루 : 별점 2점

"하늘을 나는 말" 등 만담가 '엔시 씨와 나'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일상계 추리물의 창시자 기타무라 가오루(카오루)의 또다른 시리즈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필명이 복면 작가인 이중인격 아가씨 니이즈마 치아키와 편집자 오카베 료스케 컴비가 여러가지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지요. 국내에는 아직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았는데, 작가의 팬인 탓에 원서를 번역해서 읽어보았습니다.

특징이라면 기타무라 카오루 작품답지 않은 가볍고 만화적인 설정입니다. 엄청난 가문의 영애로 미모와 추리력, 거기에 집 밖을 나서면 성격이 야성적으로 변하는 이중 인격 탐정 니이즈마 치아키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설정은 아주 많이 별로였습니다. 다른건 다 그렇다쳐도,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성격이 변한다는건 납득하기 힘드네요. 설득력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며, 작품에서 별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하니까요. 그냥 집 밖을 나가지 못하는 귀한 집 아가씨라는 설정의 안락의자 탐정물로 만드는게 훨씬 더 나았을 겁니다.
추리적으로도 평범합니다. 사소한 정보와 단서에서 진상을 끌어내는 전개 솜씨는 여전하나, 동기면에서 설득력을 가져가고 있지 못한 탓이 큽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요. 국내에 정식 소개되더라도 시리즈를 더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미노 미즈호의 만화가 조금 유명한 듯 한데(제 기억에 해적판으로 오래전에 소개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만화로 소개되는게 더 나을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트릭, 진상 및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면작가의 크리스마스

잡지 '추리세계' 편집자 오카베 료스케는 신인 작가 ‘니이즈마 치아키’를 만나러 갔다. 치아키는 엄청난 집의 아가씨로 귀족적인 외모에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문을 나서는 순간 전혀 다른 인격으로 변해버리는 특징이 있었다.
그 무렵, 근처 여고 기숙사에서 한 여학생이 살해당한다. 단서는 딱 하나, 피해자가 선물받았지만 사라져버린 ‘토끼 오르골’이었다. 치아키는 오르골 포장이 뜯어져 있었는지에 주목한 뒤, 범인을 밝혀낸다.

편집자 오카베 료스케, 쌍둥이 형이자 경찰인 오카베 유스케, 그리고 복면작가 치아키 등 주요 등장인물과 치아키의 기묘한 특징이 소개되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았어요. 료스케와 치아키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어떤 여성이 가지고 있던 검은 트렁크 안에서 채찍이 나온 이유에 대한 추리는 좋은 일상계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며, 기숙사 살인 사건에서는 핵심 단서인 '오르골의 포장이 뜯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자 째 사라진 이유는?'를 통한 치아키의 추리 결과 - '포장된 선물이 방 안에 흩어져 있었다면, 산타클로스가 범인이라는걸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 -가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이 여고 기숙사는 산타가 돌아다니며 선물을 나눠주는 전통이 있었고, 산타가 범행을 저지를 때 선물이 흩어져 그걸 주워 담다가 피해자의 개인적인 선물까지 가져갔다는 것이지요. 사소한 단서에서 진상을 끌어내는 과정은 설득력 높고, 모든 정보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소개되어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범행 동기가 너무 사소했다는 문제는 있지만 일종의 사고같은 밤행이기도 하니,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잠자는 복면작가

오카베 료스케는 치아키에게 원고료를 주기 위해 수족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고 말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인근에서 유괴당한 아이 수사를 하고 있던 오카베의 쌍동이 형 유스케가 있었고, 서로의 오해가 겹쳐 치아키가 범인으로 의심받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고, 이후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들은 치아키는 유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낸다.

초반, 치아키가 잠복 중이던 유스케를 료스케로 착각하고 '돈 내놔'라고 이야기해서 유괴범으로 오인된다는 전개는 제법 웃겼습니다. 치아키는 원고료를 달라는 말이었는데, 유스케는 몸값으로 오해했던 거지요.
유괴범이 유괴당한 유우코의 언니였다는 진상, 그리고 아빠의 재혼으로 새로 생긴 의붓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는 동기도 괜찮았어요. 이에 대한 정보 제공도 충실하고요. 

하지만 유괴 당일 언니가 쿠키를 따로 가져갔다는 등의 정보는 너무 과했습니다. 이를 통해 범인이 쉽게 드러나 버렸어요. '불에 태워버린다' 등의 이상한 협박과 특수 효과(?)를 이용한 불타는 소리같은 정보는 아예 쓸데가 없었고요.

무엇보다도 아이들 장난이라지만, 유괴라는 중대한 범죄를 가볍게 마무리하는 결말은 영 별로였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면 작가는 두 명 있다

료스케의 선배 사콘의 언니가 일하는 가게에서 연쇄 CD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유스케는 치아키가 집 밖에 나오면 성격이 변하는게 아니라, 자기들처럼 쌍둥이 두 명일 거라고 추리했다. CD 도난 사건과 치아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료스케는 치아키를 데리고 사콘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치아키가 사실은 두 명이 아닐까?'라는 추리는 료스케가 치아키와 함께 집 밖으로 나오면서 손쉽게 드러납니다. 수수께끼라고 할 수도 없어요. CD를 훔친 방법은 범인들이 사전에 걸리지 않는 '동선 확인'을 했다는게 진상이라서 영 실망스러웠고요. 이를 위해 스티커만 몰래 빼돌렸다는 등의 상세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기는 하나 딱히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수록작 중에서 가장 처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8/04

저지먼트 - 고바야시 유카 / 이영미 : 별점 1.5점

저지먼트 - 4점
고바야시 유카 지음, 이영미 옮김/예문아카이브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XX년, 급증해가던 범죄를 막기 위해 일본에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가한 폭력이나 가학 행위를 똑같이 형벌로 집행할 권리를 피해자 측에 주는 '복수법'이 제정되었다. 단, 복수법을 선택한 경우 피해자 측이 직접 형벌을 집행해야 한다. 도리타니 아야노는 복수법 집행자를 보호하고, 집행 현장을 감찰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복수 감찰관'으로, 복수 현장을 지켜보면서 복수법의 존재 의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되는데...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으로 일본 신인 작가 고바야시 유카의 데뷔작입니다.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 별로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법률, 그리고 화자가 이 법률을 수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만화 '이키가미'와 비슷한데,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키가미'에서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는데 반해, 이 작품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탓입니다. 과연 이런 복수가 정당한지, 그리고 복수 때문에 선량한 집행자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묻는데, 등장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라서 별로 고민할 게 없거든요.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조선, 평택 아동 암매장 사건의 원영이 부모같은 인간 말종들을 단죄하는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이렌'에서 복수가 복수를 낳는 장면도 같은 이유로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를 아끼는 어머니가 있어서 자식의 복수를 한다는 건 말이 되지만, 워낙에 지은 죄가 커서 적반하장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 가족이 판사에게 복수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서 불합리하기도 하고요.

억지 설정도 많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저지먼트'에서 복수자 하야토가 죽는 게 대표적입니다. 여동생을 아사시킨 부모에게 복수법을 집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여동생을 학대의 희생양으로 내세웠던 자신에게 벌을 가해 굶어 죽는다는 건데, 공공기관에서 소년이 죽어가는 걸 방치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소년의 죽음이 복수법 반대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복수법 반대에 활용하려면, 집행 대상인 범죄자가 사실은 무고한 인물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마다 약간의 반전이 있는 건 좋습니다. '사이렌'에서 피해자의 아버지도 피해자에 대해 잘 몰랐었다라든가, '앵커'에서 엔도는 피해자 리오와 결혼할 생각을 접었던 상태였다든가, '페이크'에서 피해자의 엄마가 피해자를 학대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런 반전이 일종의 조사와 추리로 밝혀진다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특히 어머니를 살해한 딸 엘레나를 어머니가 복수법으로 죽이려 했지만, 알고 보니 딸 엘레나는 가스라이팅당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고, 이 사실이 밝혀지자 어머니가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켰다는 '보더'는 추리적으로, 그리고 결말의 의외성 측면에서 제일 괜찮았습니다. 물론 엘레나의 행동이 친구 나쓰키의 편지 하나로 밝혀진다는 점에서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으며, 할머니의 가스라이팅도 복선은 잘 짜여져 있지만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과대평가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선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화자 아야노를 내세워 어설픈 휴머니즘 드라마로 만들기보다는, 복수의 쾌감이 느껴지는 하드고어 복수 포르노로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을 겁니다. 아야노 대신 처절한 복수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인물을 등장시켜서요.

2024/07/07

이브의 대관람차 - 유우야 토시오 / 김진환 : 별점 1.5점

이브의 대관람차 - 4점
유우야 토시오 지음, 김진환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직 경찰관 나카야마 히데오는 이혼 후 전처가 키우던 딸 린과 오랫만에 만났다. 화제가 되고 있는 대관람차인 '드림아이' 탑승권이 당첨되어 함께 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드림아이는 '난장이'라는 괴한에게 통제권을 탈취당했고, 탑승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난장이는 나카야마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경찰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나카야마는 드림아이 테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경시청 수사 1과 형사 카이자키와 연락을 시작했다. 사실 나카야마와 카이자키는 경찰학교 동기이자 5년 전 후카 살인 사건으로 멀어진 사이였다.
곤돌라가 연이어 떨어지고, 범인의 8엔억 요구 등으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지면 결국 드림아이 통제권을 회수하여 남은 승객들을 구출하고 범인을 체포했다. 범인은 5년 전 후카 살인 사건 때문에 이 테러 사건을 계획했었다....


일본 신인 작가의 데뷰작품. 버티고 레이블에서 일본 작품으로 소개되는 첫 번째 작품이라 호기심을 자아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천재적(?)인 범인이 장교하게 설계한 범죄에 맞서, 탐정역의 주인공이 여러 사람의 생명을 걸고 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 두뇌 배틀 장르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르물이 성공하려면, 범인의 도전적인 계획과 이를 막기 위한 주인공의 두뇌 싸움이 탄탄하게 연결돼야 합니다. 또한 범인의 동기가 명확하게 설명되어야 하며,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과정도 타당성 있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범인이 그런 행동을 취한 이유도 제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영화 "스피드"를 보자면 범인은 버스 속도계와 연동된 폭탄으로 거액을 요구합니다. 구출 시도는 CCTV로 감시하며 대응하고요. 범인의 정체는 FBI 수사로 나름 그럴듯하게 밝혀집니다. 동기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런 요소들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드림아이의 장악과 곤돌라를 떨어트린 범행부터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드림아이의 제어권을 아르바이트생이 훔친 카드키 입력만으로 빼앗을 수 있는 점부터 이상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복수의 관리자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곤돌라를 어떻게 떨어트렸는지, 통신망에 어떻게 장애를 일으켰는지 등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범인 중 한 명인 타키구치가 공대생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범인들의 몸값 요구도 매우 이상합니다. 후카가 죽은건 제국부동산 비자금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범인 카나모리가 체포되지 않은건, 제국부동산으로부터 돈을 받은 카이자키가 증거 인멸을 하며 그를 보호한 결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범인들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진범이 카나모리라는걸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설명이 없고요. 만약  이들 모두를 알고 있다면, 대관람차로 다른 피해자들을 불러모을 까닭도 없습니다. 핵심 원흉과 범인에게는 손도 대지 않고 단순 방관자들에게만 지옥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또 범인들이 제국부동산의 비자금을 폭로할 이유, 비자금 관리자 미야우치를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야우치는 후카 사건과는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무고한 인물이었으니까요. 범인들은 그냥 무작정 살인을 저질렀다는건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비자금 위치를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조부모와 언니가 동생의 죽음으로 이런 거대한 테러를 벌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고, 조부모가 언니를 끌어들인 이유도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죽은 손녀를 위한 복수로 산 손녀를 살인범으로 만든다는게 말이 될리가 없잖아요?

카이자키가 후카 사건에서 정액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남겼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증거를 인멸하려면 시신을 불태워버렸어야죠. 어설픈 처리로 시간만 낭비한데다가, 제국 부동산 비자금을 맡았던 카츠라기가 누명을 쓰고 죽게 만들었고, 카츠라기가 나카야마에게 했던 증언으로 꼬리마저 밟히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허술함은 작 중 냉정하고 뱀같이 묘사되는 카이자키 분위기와도 맞지 않습니다.
후카 살인 사건의 진범이 카나모리라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앞서 아무런 단서를 제공해주지 않는 탓입니다. 너무 뜬금없어서 황당할 지경이었어요.

다른 설정과 전개도 이해가 되지 않는게 많습니다. 나카야마가 카츠라기의 증언을 숨기고 경찰을 떠나고 이혼까지 했다는 과거가 대표적입니다. 나카야마가 의심을 받아서 그만 두었나? 그런 설명은 없습니다. 약간 수상하다는 것만 묘사될 뿐입니다. 별도의 조사나 수사도 받지 않았고요. 내사를 받은건 후카 사건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면 카이지키를 범인이라고 고발해서 경찰 내 공공의 적이 되었나? 아닙니다. 카이자키는 용의선상에 오른 적도 없습니다. 나카야마가 당시 카이자키를 봤을 때 몸이 젖어 있었다(긴 시간 동안 증거를 인멸하느라)는 정도로는 고발도 불가능했을테고요. 
관할 내 친했던 소녀가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에 가책을 느껴 경찰을 그만 두었다는 정도가 말이 되는 설명인데, 이 정도로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이혼까지 하는건 말이 안되지요. 카이자키가 지속적으로 나카야마를 범인으로 몰고 있었다면 모르겠지만요.
나카야마가 사건을 미리 예지한다던가, 편집증같이 계획을 짜는데 몰입한다는 등의 설정도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름이 '나카야마 히데오'라는게 좀 재미있었던 정도입니다. 요코야마 히데오에서 따왔겠지요?

괜찮은 부분이 없는건 아닙니다. 대관람차를 탈취한다는 설정은 꽤 기발했고, 놀이공원을 찾은 손님들이 관객이 되어 피해자들을 바라보게 한 이유가 동기와 연결되는 - 후카를 방조한 피해자들 - 건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범인 난쟁이가 드림아이 곤돌라 중 하나에 탑승했다는걸 밝혀내는건 좋았어요. 곤돌라 승객들은 핸드폰을 버리게 한 탓에 현재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시계탑 시계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쟁이가 정해진 시간보다 전화를 늦게 걸어서 위치가 탄로나게 됩니다. 경찰이 시계탑 시계를 늦춰 놓있기 때문입니다. 범인 시계가 망가진 이유도 복선으로 제시해 주고 있고요.

그러나 좋은 점수를 주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인기있을만한 소재만 잔뜩 끌어와서 어설프게 조립한 치기어린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3/09/30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도진기 : 별점 2점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 4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룸살롱에서 일하던 정유미, 그리고 그녀를 스토킹하던 아래층 남자 이필호가 함께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정유미의 집에 침입한 이필호가 정유미를 찌른 뒤, 정유미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이필호를 살해한 것 처럼 보였지만 이유현 반장은 아파트 경비 조판걸을 기소했다. 조판걸이 고진의 도움으로 풀려난 후 고진은 진범이 따로 있을거라며 자기 추리를 들려주었다. 이유현 반장은 고진의 추리대로 정유미의 애인 김형빈에 대한 수사에 나섰지만 김형빈의 탄탄한 알리바이는 풀어낼 방법이 없었다....

전작에 이어 읽은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범인이 아랫층 이필호 집 베란다를 통해 이필호 집으로 들어간 뒤, 내부 계단으로 정유미 집에 들어가 정유미를 살해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이필호가 죽기 전 했다는 말 - 정유미를 자기 것으로 하겠다 - 과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 등으로 설득력있게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고요. 윗층 남자가 들었던 '쨍그랑' 소리는 이필호의 열쇠를 베란다를 통해 던져 넣을 때 났던 소리라는 추리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열쇠의 존재가 이필호 범인설을 무력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도 잘 짜여진 트릭이라 생각되네요.
무엇보다도 김형빈은 '노인 성애자'로 그 대상이 정유미의 가정부인 할머니 황금순이었으며, 질투에 눈이 먼 황금순이 정유미를 살해했다는 진상과 반전이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비현실적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김형빈의 이상한 성적 취향은 정유미의 룸살롱 동료들 증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도록 전개됩니다. 김형빈 모친 집에 강도가 침입했던 사건도 황금순의 질투 - 모친을 또 다른 애인으로 오해 - 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요.

그러나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아쉬움을 많이 남깁니다. 우선 이유현 반장이 아무리 보아도 타당한 이필호 범인설을 놔두고 왜 제 3자 범인설을 포기하지 않는지부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형사들의 대화로 어떻게든 수사의 당위성을 펼쳐보려 하지만, 이필호가 범인이라는 심증만 굳게 만듭니다. 근거라는게 예를 들면 피해자가 죽기전 "강도!"라고 외쳤기 때문이라는데, 복면을 하고 침입했다면 누군지 모르는게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 외의 주장들 역시 일고의 가치가 없습니다. 이보다는 이필호가 범인이겠지만 뭔지 모를 찜찜함이 느껴졌던 이유현이 고진에게 의견을 물었고, 고진이 사건 이야기를 들은 뒤 이필호 집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다른 누군가가 상황을 조작했을 거라고 알려주는게 훨씬 바람직했습니다.
외부인이 범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이필호가 범인일텐데, 경비원 조판걸을 범인으로 기소한다는 것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증거가 없다고 이유현 스스로도 인정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건 공권력을 가장한 폭력입니다. 고진의 몇 가지 주장에 반론도 하지 못하는 이유현의 모습은 한심과 무능 그 자체였고요.

이후 고진이 개입하여 김형빈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추리를 들려주면서부터는 더 기가 찹니다. 누가 봐도 김형빈이 가장 수상합니다. 정유미가 번 적지 않은 돈은 김형빈에게 흘러들어갔고, 김형빈은 현관 비밀 번호를 알고 있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유현의 수사를 통해 김형빈이 범인이 아니라는게 너무 빨리 밝혀져서 전개가 이상해집니다.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는 이유현의 무리한 수사와 김형빈의 반론으로 이유현이 망신당하는 과정이 반복될 뿐이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신인 작가라는 티가 물씬 나더군요.

"조판걸", "황금순"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이름들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 아래 <<아오이 호노오>>에서처럼 이름만 가지고도 캐릭터 이미지가 떠오르도록 해야 했습니다.

"굉장해! 이름만 읽어도 이미지가 떠오른다! 네이밍 능력이 장난아니야! 
이것이 일류 원작자의 힘이다!!"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은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다소 변태적이면서 엽기적인 동기가 엮여 있다는 점에서는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와 같은 일본 변격물 느낌도 전해주는데, 이런 작품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테고요. 그러나 전개면에서는 미숙한 티가 많이 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9/16

[소설가 감수] 미스터리 소설 추천 인기 랭킹 33선 (2023년 최신판)

NTT에서 운영하는, 리서치 설문조사와 접속수를 바탕으로 모든 장르의 랭킹을 망라한 종합 랭킹 사이트인 goo 랭킹에서 선정했던 랭킹입니다.
전부 33편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랭킹을 감수했다는 소설가 OO씨가 선정한 작품 5개만 소개해드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결말을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스릴은 미스터리의 묘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세계에서도 미스터리는 인기 있는 장르이지요.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이번에는 소설가 OO 씨의 감수를 받아 '읽고 싶다! '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추천해 드립니다. 수상작과 영상화된 작품, 그리고 선택 방법도 함께 소개하니 꼭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설가가 알려드립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고르는 방법
취재 협조 소설가 OO :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작품을 출간하고 있는 소설가. 일반 소설, 미스터리 소설을 즐겨 읽을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작품도 창작에 활용하기 위해 열심히 보고 읽는다.
OO 씨에게 미스터리 소설을 고를 때 중요한 포인트를 물어보았다.

POINT① :
각종 랭킹 상위권이나 문학상 수상작은 수준이 높다! 그런 작품인지 체크!
화제작이나 실력파 작가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읽고 싶은 분들에게는 '고노미스', '서점대상', '나오키상' 등 각종 미스터리 랭킹 상위권 작품이나 문학상 수상작을 추천합니다. 매년 진행되는 랭킹에 오른 작품들은 수준이 높고 읽기 쉬운 작품도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발표될 때마다 체크해서 소설을 쓸 때 참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골라 읽다 보면 '최고의 미스터리 소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작품들의 줄거리를 확인하고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골라보세요.

POINT②
깜짝 놀랄 만한 트릭과 논리가 충분히 전개되는 본격 미스터리 작품인지 확인하자.
미스터리라고 하면 예상치 못한 트릭이나 논리적인 구조가 재미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본격 미스터리 대상'은 본격만을 다루는 상이므로 트릭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POINT③
숨 막히는 전개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 작품인지 확인하자
서스펜스 요소가 있는 작품은 독자로서 비일상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경찰 소설이나 모험 소설, 하드보일드 소설 중에서 미스터리 요소가 있는 작품이 많으니 그 중에서 고르는 것도 추천합니다.

POINT④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싫다면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인지 확인하자.
'사람이 죽거나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는 이야기는 싫다'는 분들에게는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을 추천합니다. 가게나 학교 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수수께끼와 궁금증을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여운이 남는 작품이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편집부
미스터리 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로 피했던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나 선택 포인트가 있을까요?

OO 씨
사회파 미스터리나 서스펜스는 트릭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읽을 수 있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등은 좋은 작품입니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와 같은 가벼운 미스터리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요.
그중에서도 첫 책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입니다. 본격 미스터리 붐의 시발점이 된 작품으로, 다양한 정수가 응축된 작품이거든요. 이 작품을 발판 삼아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편집부
반대로 '대부분의 작품은 다 읽었다'는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의 종류와 선택 방법이 있나요?

OO 씨
미스터리 계열의 신인상은 많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스타일이나 설정 등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고, 보다 폭넓게 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 트렌드 장르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입니다.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들어 그 안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으로, '시인장의 살인', '젤리피쉬는 얼어붙지 않는다' 등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설가 OO 씨 추천! 미스터리 소설 5선
<<까마귀의 엄지>>
사기가 생업인 중년의 두 남자의 이야기. 점차 동거인이 늘어나면서 인생을 건 거대한 계획이 시작된다. 충격적인 전개와 감동적인 결말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걸작.
'고노미스'의 단골손님인 미치오 슈스케의 첫 나오키상 후보작으로, 제62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상쾌한 느낌의 초인기 작품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OO 씨 comment :
사기꾼인 중년 2인조가 동거인들과 함께 사기 계획을 세웁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에 '당했다!'는 놀라움과 함께 짜릿한 쾌감도 느낄 수 있는 명작입니다.

<<13계단>>
가석방 중인 청년과 정년을 앞둔 교도관 두 사람은 10년 전 살인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조사를 하게 된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은 범행 당시의 기억이 없고, '계단을 올라갔다'는 단서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무고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데뷰작이자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품. 2003년에는 영화화되기도 했다. 서스펜스를 충분히 맛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OO 씨 comment
사형수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는 주인공 교도관. 단서 몇 개와 사형 집행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과연 그는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숨 막히는 서스펜스와 함께 독서 후의 만족감도 큰 작품입니다.

<<제 3의 시효>>
F현 경찰 수사 제1과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집으로, 등장하는 형사들의 개성이 강하고 경찰 내부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현장감 넘치는 걸작. 제16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후보작으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독서 후의 충격과 고양감을 맛보고 싶은 분이나 형사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OO 씨 comment :
살인사건의 공소시효에 얽힌 '제3의 공소시효'를 파헤쳐 나가는 형사들. 시효 성립 직전의 범인을 체포할 수 있을까? 경찰소설이자 단편소설의 대가인 저자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단편소설집입니다.

<<최후의 증인>>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인 주인공이 불리한 상황에 도전하는 법정 미스터리 작품. 점차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과 충격적인 전개에 빠져들게 된다. 2015년에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시리즈도 방영되었으니, 소설을 읽고 흥미가 생겼다면 확인해 볼 것.
OO 씨 comment :
전직 검사 출신 변호사가 활약하는 법정 미스터리. 반전이 있는 법정 장면은 물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데, 꼭 시리즈 전부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하늘을 나는 말>>
사람이 죽지 않는 '일상계 수수께끼'의 명작으로 여대생과 만담가가 '일상 속 수수께끼'를 추리해 나가는 연작 단편집. 살인 사건이나 흉악 범죄와 같은 무서운 소재가 아닌, 일상에 숨어 있는 위화감을 풀어간다. 미스터리 추리의 짜릿함을 맛보고 싶은 분이나 따뜻한 소설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두 사람의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와 곳곳에 등장하는 라쿠고(만담) 이야기 등 전체적으로 느긋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내용의 이야기나 인간의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묘사도 존재.
OO 씨 comment :
여대생과 만담가가 일상 속에 숨어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본격 미스터리로, '일상계 수수께끼' 장르의 선구자격 작품입니다. 살인 사건 등 흉악 범죄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미스터리이면서도 안심하고 이야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2023/07/25

'젊은 모색 2023' 관람

지난 달의 '게임사회' 전시에 이어, 이번달에 관람한 전시입니다. 회사에서 매달 실시하는 문화 행사를 이용하였습니다.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집에서 가까워서 딸 아이가 어릴 때 자주 데리고 갔었던, 여러가지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평일에 혼자서 방문한건 처음이네요. 이렇게 또 추억이 하나 쌓여 갑니다.

언제나 방문하면 찾아보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과 큰 화분을 둘러보고 전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저 큰 화분 위에 뭐가 있나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살짝 봤더니, 평면에 올록볼록하게 뭔가 나와 있는 형태더군요. 싹이 나기 직전의 무언가를 입체화한 것일까요? 살짝 궁금해집니다.
이번에 찾은 전시는 '젊은 모색 2023' 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정례전이라고 하네요.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번 전시는 주제가 전시의 무대가 되는 '국립 현대 미술관 과천'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순수 미술 뿐 아니라 건축가, 가구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등 다양한 직군의 작가들이 포진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고요. 같은 이유로 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도 굉장히 직관적으로 쉽게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었고, 제 이해 수용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작품도 있었고요.

아무래도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인 작품들에 더 눈길이 많이 갔는데요, 대표적인건 과천 현대 미술관이 주제라면 누구나 생각해봄직한, 미술관 자체를 미니어쳐로 해석한 작품입니다. 공간 및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인 씨오엠 COM의 작품입니다. 누가 보아도 미술관임을 알 수 있는, 원뿔모양의 형태가 돋보이는 미니어쳐가 특히 귀여웠는데, 더 작게 만들어서 뮤지엄 샵에서 팔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미술관이라는 공간 내에서 가장 존재감이 있는 사물인 기둥에 초점을 맞춘 작가가 여러명 있는건 신기했습니다. 작가들도 깊은 연구와 고민보다는,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사물에서부터 아이디어를 발산하는게 더 용이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오브젝트 자체로도 괜찮았으니 선택했겠지만요. 당연히 작품들 수준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시에서 시작하여 사진, 조각, 설치 미술 등 작품들이 보여주는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도 보는 재미를 더해 주었고요. 이 중에서는 개인적으로는 건축가인 김현종 작가의 <<범위의 확장>>이 가장 좋았습니다. 기둥을 손대지 않고 감싸서 새로운 무언가로 어색하지 않게 만들었다는게 좋았어요. 건축가답게 건축의 핵심 구조이지만, 전시장에서는 애물단지인 기둥에 대한 애정이 담뿍 느껴졌습니다.
미술관의 공간과 환경에 집중한 작품도 인상적이었는데, 아래 황동욱 작가의 작품이 대표적입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빛과 바람의 흐름, 움직임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키네틱 아트인데, 정말로 자연이 느껴지는 듯한 부드러운 움직임과 효과가 좋았어요.
 

그런데 이런 결과물이라면, 구조물 없이 원통 공간 안 360도를 커버할 수 있도록 빔 프로젝터 여러대를 설치하여 보여줄 수도 있어 보였어요. 원통형 공간에 적합한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제품이 나와도 괜찮겠어요.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제 베스트는 추미림 작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평면 작업이지만 빔 프로젝터를 활용하여 시간의 이미지를 씌운 <<횃불과 경사로>>도 인상적이었고, 과천 미술관을 단순하게 시각화한 평면 작업들도 모두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려한 그래픽으로 과전 현대 미술관을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한 점 정도 집에 걸어두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래와 같이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며 오랫만에 여유를 즐기며, 힐링하고 감성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관람을 마치며 제가 '국립 현대 미술관 과천'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라면 뭘 만들었을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라면 과천관의 가장 유명한 소장품인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가지고 새로운 미디어 아트를 만드는 시도를 해 보았을 것 같아요. VR로 다다익선을 뒤집어서, 감상하는 사람이 TV가 안쪽으로 쌓여진 탑 안에 들어가 있는 형태로 감상할 수 있도록요. 과연 어떤 광경을 보게 될까요? 거울로 된 구 안에 사람이 들어가 발광한다는 에도가와 란포 작품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2023/06/04

아유카와 테츠야 상과 국내 출간된 작품들 소개 (2023년 6월 기준)


아유카와 테츠야 상 국내 출간작 완독 기념 포스팅입니다.

아유카와 테츠야 상(鮎川哲也賞)은 도쿄 소겐샤(東京創元社)가 주최하는, 신인 대상으로 공모하여 뽑는 문학상입니다. '독창성과 열정이 넘치는 강렬한 추리 장편'을 모집한다고 하지요. 1988년 도쿄 소겐샤가 총 13권으로 구성된 추리소설 시리즈 '아유카와 테츠야와 열세 개의 수수께끼'를 출간할 당시 마지막 권을 '열세 번째 의자'라는 제목으로 일반 공모했었는데, 그 다음 해 기획을 발전시킨 형태로 창설된게 아유카와 테츠야상입니다. 상은 코난 도일의 동상을 수여하며, 상금으로 인세 전액을 주고 있습니다. 수상작은 매년 10월 전후에 도쿄 소겐샤에서 출판되고요.
다른 미스터리 문학상과의 차이점이라면 본격적인 추리물을 지향하는 작품이 많다는 점입니다. 2022년까지의 수상작 27편 중 국내 출간된 작품은 모두 6편으로, 일상계 추리물 (<<일곱 가지 이야기>>,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두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4편은 모두 밀실 중심의 불가능 범죄트릭이 등장하며, 이를 풀어내는 정통 본격 추리물이거든요. 일상계 두 편도 일정 수준 이상의 추리를 보여주고요.

이렇게 요새 보기드문 본격 추리물을 지향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신인의 데뷰작인 탓인지 소설적인 완성도가 떨어지고, 비현실적인 설정이 난무하는 등의 단점이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목록을 보면 수상 이후 철저하게 잊혀진 작가가 많다는걸 알 수 있는데, 일생일대의 트릭을 사용한 첫 작품 발표 뒤 바로 벽에 부딪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역시 본격물은 어려운 법이지요. 덕분에 국내 출간도 요원해 보입니다. 작가가 계속 작품을 발표하면서 지명도를 얻어나가야 그 유명세가 조금이나마 전해져야 판매에 도움이 될 텐데, 데뷰작 수상 후 잊혀진다면 소개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그나마 <<체육관의 살인>> 처럼 나름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면 모르겠지만.... 작가도 잊혀지고 작품도 그리 유명하지 않은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가 국내 출간된건 기적에 가깝습니다. 잘 팔리지는 않았을테지만요.

그동안의 수상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국내 출간된 작품은 옆에 표기하였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국내 출간작만 놓고 보면 <<얼어붙은 섬>>이 최고였고,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는 평균 이하 수준의 최악으로 꼽습니다.

  • 1회 (1990년) : 이시베 타쿠, <<살인 희극의 13인>>
  • 2회 (1991년) : 石川真介, <<不連続線>>
  • 3회 (1992년) : 가노 도모코, <<일곱 가지 이야기>> (국내출간)
  • 4회 (1993년) : 곤도 후미에, <<얼어붙은 섬>> (국내출간)
  • 5회 (1994년) : 愛川晶, <<化身>>
  • 6회 (1995년) : 기타모리 고, <<광란사계절>>
  • 7회 (1996년) : 満坂太郎, <<海賊丸漂着異聞>>
  • 8회 (1997년) : 谺健二, <<未明の悪夢>>
  • 9회 (1998년) : 飛鳥部勝則, <<殉教カテリナ車輪>>
  • 10회 (1999년) : 수상작 없음
  • 11회 (2001년) : 門前典之, <<人を喰らう建物>>
  • 12회 (2002년) : 後藤均, <<スクリプトリウムの迷宮>>
  • 13회 (2003년) : 森谷明子, <<異本・源氏藤式部の書き侍りける物語>>
  • 14회 (2004년) : 神津慶次朗, <<月夜が丘>>
  • 15회 (2005년) : 수상작 없음
  • 16회 (2006년) : 麻見和史, <<ヴェサリウスの柩>>
  • 17회 (2007년) : 山口芳宏, <<雲上都市の怪事件>>
  • 18회 (2008년) : 나나카와 카난, <<일곱 바다를 비추는 별>> (국내출간)
  • 19회 (2009년) : 아이자와 사코, <<오전 0시의 상드리용>> (국내출간)
  • 20회 (2010년) : 安萬純一, <<ボディ・メタ>>
  • 21회 (2011년) : 山田彩人, <<眼鏡屋は消えた>>
  • 22회 (2012년) : 아오사키 유고, <<체육관의 살인>> (국내출간)
  • 23회 (2013년) : 市川哲也, <<名探偵 The Detective>>
  • 24회 (2014년) : 内山純, Bハナブサへようこそ>>
  • 25회 (2015년) : 수상작 없음
  • 26회 (2016년) : 이치카와 유토,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국내출간)
  • 27회 (2017년) : 이마무라 마사히로, <<시인장의 살인>> (국내출간)
  • 28회 (2018년) : 川澄浩平, <<学校に行かない探偵>>
  • 29회 (2019년) : 方丈貴恵, <<時空旅行者の砂時計>>
  • 30회 (2020년) : 千田理緒, <<誤認五色>>
  • 31회 (2021년) : 수상작 없음
  • 32회 (2022년) : 수상작 없음

2023/05/25

에도가와 란포상 베스트 10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부르는 미스터리로의 초대장 - 柳町正蔵

일본의 주간지 MONO에서 연재되는 柳町正蔵의 미스터리 관련 칼럼인 '미스터리 캐스킷 (ミステリー・キャスケット)' 지난 과월호를 읽다보니 재미있는 주제가 있어 번역해 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엉망인 번역이지만, 모쪼록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매년 여름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는 9월 중순, 「에도가와 란포상」수상작이 서점에 진열된다 (올해는 제반 사정으로 9월 말이었다). 내 생일 가까운 날짜인 탓에, 발표와 동시에 일찌감치 수상작을 사서 읽는건 매년 개인적인 행사로 삼고 있다. 만약 그 해 작품이 별로라면 그 해 전체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올해로 제66회를 헤아리는 이 상은 1954년 에도가와 란포가 창설했으며, 3회부터 신작 장편소설을 모집해서 최종 후보 4, 5편 중 베테랑 작가 5명이 선정한 최고 작품에 상을 수여한다는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반 모집 형태라 이미 작가로서 데뷔한 사람도 응모할 수 있으므로, 특정 해에는 고급스러운 작품이 많이 응모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신인 추리작가의 등용문적 성격이 강하다. 주요 수상작가로는 니시무라 쿄타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쿠리모토 카오루, 히가시노 게이고, 이케이도 준 등 당대의 빅네임이 줄을 잇는다. 야마무라 미사나츠키 시즈코는 몇 번이나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고, 나카이 히데오의 대표작 「허무에의 제물」도 수상을 놓쳤을 정도이다. 지금은 예전만큼 주목도가 높지는 않지만 수상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건 분명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미스터리계 최고의 어워드 중 하나이다.
그럼 여기서 2020년까지의 수상작 총 71편 중 (1957년~2020년. 수상작 없음이 4회. 2편 수상이 11회)  완전히 개인적인 「란포상 수상작 베스트 10」을 선정해본다.

「란포상 수상작 베스트 10」
  • 제10위 「고양이는 알고 있다니키 에츠코 (제3회/1957년). 쇼와 30년 당시, 추리 소설 팬을 10배로 불렸다는 일본의 크리스티의 라이트 미스터리.
  • 제9위 「천사의 나이프야쿠마루 가쿠 (제51회/2005년). 예선부터 최종 심사까지 거의 일사천리로 수상한, 소년법 본연의 자세를 묻는 사회파 문제작.
  • 제8위 「어둠 속에 풍기는 거짓말」시모무라 아츠시 (제60회 / 2014년). 시력을 잃은 남자가 친형 출생의 비밀을 쫓는 서스펜스. 10년에 한 번 있는 걸작이라는 평판.
  • 제7위「암갈색 파스텔」오카지마 후타리 (제28회/1982년). 2인조 작가의 경마 미스터리. 아마추어 여성 탐정 콤비의 활약이 신선!
  • 제6위 「샤라쿠 살인 사건」타카하시 카쓰히코 (제29회/1983년). 수수께끼에 싸인 전설의 우키요에 화가 샤라쿠의 정체를 밝히는 와중에, 학계에 소용돌이치는 권력과 욕망을 그리다.
  • 제5위 「거대한 환영」 도가와 마사코(제8회/1962년). 남자 엄금의 아파트에서 전개되는 인간군상. 란포상 사상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스릴러.
  • 제4위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19회/1973년).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작가를 지향하는 계기가 된, 어두우면서도 경쾌한 청춘 추리물의 금자탑.
  • 제3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회/1995년). 일본인 감성의 하드보일드. 주인공 바텐더가 만드는 핫도그가 맛있을 것 같다.
  • 제2위「13계단」타카노 카즈아키 (제44회 / 2001년).  가석방중인 청년과 고독한 교도관이 사형수의 누명 벗기기에 도전하다. 긴박한 타임 리미트가 존재.
  • 제1위「사루마루 환시행」이자와 모토히코 (제26회/1980년) 현대의 대학생이 젊은 날의 오리구치 노부오와 함께 펼쳐나가는 SF+역사+암호가 뒤섞인 전기 미스테리.
'사루마루 환시행'은 그 시마다 쇼지의 명작 '점성술 살인사건'을 이긴 수상이라는 훈장도 받았다.
일본 추리 작가 협회의 사이트에는 심사위원의 선정평이 실려 있어, 선택된 포인트를 잘 알 수 있다 (단 스포 주의). 선정평이 매서운 것은 매번 있는 일로, 특히 낙선작에는 "추리소설로 통하지 않는다.", "설명이 너무 서툴다." "응모자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등 재기불능이 될 것 같은 신랄한 코멘트가 많다. 수상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은 물론이고 심사위원과의 궁합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2022/06/24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잇폰기 도루 / 김은모 : 별점 2점

그래서 죽일 수 없었다 - 4점
잇폰기 도루 지음, 김은모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세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단서가 없어서 수사가 난항을 겪던 와중에 진범 '백신'이 다이요 신문의 기자 잇폰기 도루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인간은 바이러스이며 자신은 백신이라며 잇폰기 도루와 다이요 신문 지면을 빌린 토론을 제안했다. 잇폰기 도루는 범인의 체포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토론에 응했고, 적자로 치닫던 다이요 신문의 경영도 급속도로 회복했다. 그리고 백신이 불특정 다수에게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발표된 뒤, 잇폰기에게 에바라 요이치로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자신의 집에 배달되었던 예고장을 들고....

신인작가 잇폰기 도루의 작품입니다. 제 27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에서 "시인장의 살인"에 뒤이은 우수상 수상작이었다고 하네요. 드라마로까지 제작될 정도니 꽤 인기를 끈 듯 합니다. 정통 본격물 애호가로서 '아유카와 데쓰야 상'의 권위를 잘 알고 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신문사 내의 조직 체계와 구성, 신문이 제작되는 과정, 신문사의 경영 상황 등 신문에 관련된 디테일한 묘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가가 61년 생으로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데뷰했다는데, 분명 신문사에서 일했을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전성기 정통 사회파 추리물이 연상될 정도로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며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대조'를 통해 양 쪽 모두를 극대화시키는 수법을 사용한게 독특했어요. 신문이 수행해야만 하는 사회적인 역할과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과의 대조, 백신의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는 주장과 그걸 뒷받침하는 여러가지 광기와 추악함 설명과 함께 에바라 요이치로 시점에서 에바라 가족의 끈끈한 사랑을 대조시키는 식입니다. 아울러 연쇄살인범이 신문 기자와 신문 지면을 통해 토론을 벌인다는 아이디어도 흥미로왔으며, 살인범 에바라가 잇폰기 도루에게 집착한 이유가 아들 요이치로의 친부였기 때문이었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요소를 잘 살렸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개의 핵심인 '토론' 부터가 문제니까요. 비슷한 주장이 반복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인 내용까지 인용해가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척은 하지만, 길게 묘사될 내용은 아니었어요. 신문에 실렸을거라 생각되는 글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이보다는 백신의 성명을 기자와 각계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식의 기사 형태가 더 설득력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전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왜 토론을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부터 부족합니다. 에바라가 잇폰기에게 구태여 연락을 해서 요이치로의 친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이 부분을 뺀다 하더라도 전개에 별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에바라가 과거 아동 학대의 피해자로 잘 성장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암에 걸린 아내의 사망으로 갑자기 분노가 폭발했다는 동기도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여러 등장 인물들이 모두 가정 생활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는 것도 불필요한 일종의 맥거핀일 뿐입니다.

아유카와 데쓰야 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에 기대해 볼 만한 정통 본격물적인 요소도 기대 이하입니다. 진범이 에바라였다는 반전 자체만큼은 나쁘지 않아요. 잇폰기에게 보낼 편지를 아들 요이치로가 봤다고 착각한 나머지, 살인 예고장을 보냈다는 식으로 둘러댔지만 자기가 받은 예고장과 실제 보낸 예고장의 시기가 일치하지 않은게 발목을 잡는다는 상황도 나름대로 설득력있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예고장을 언제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게 문제에요. 이 탓에 독자들은 공정하게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이래서야 정통 본격물로 보기는 힘들지요. 

불특정 다수라 생각했던 피해자들의 연결고리가 '상수리 나무집'이라는 아동 보호 센터에 맡겨진 아이가 있었다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과 취재한 기자들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가족들 신상부터 파악하는게 수사와 취재의 기본이 아닐까요? 물론 저 단서만 가지고 진범 에바라를 찾아내는건 힘들었겠지만, 최소한 동기만큼은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에바라가 게가사와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행했던 여러가지 공작은 눈여겨볼만 했지만, 교수의 알리바이가 없었던건 어떻게보면 '운'의 영역이고, 신문사에서 협박 전화를 걸었던게 발각되지 않은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벽하게 누명을 씌웠는데, 잇폰기 도루의 추리만 듣고 경찰도 에바라가 범인이라고 여긴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범행 현장에 남겨졌던 담배 꽁초의 DNA는 게가사와 교수의 것이었고, 게가사와 교수 연구실에서 백신이 편지를 보낼 때 썼던 봉랍과 스탬프가 발견되었으며 그 외 여러가지 증거들 모두가 게가사와 교수가 범인임을 가리키니까요. 백신의 편지보다 훨씬 명확한 증거잖아요?

또 사회파 추리물같았던 부분도 변죽만 올리고 끝나서 아쉽습니다. 특히 적자를 보던 다이요 신문이 살인범과의 토론으로 돈을 벌어서 기사회생한다는 딜레마를 잘 끝맺지 못한 탓이 커요. 괜히 다이요 신문 관계자가 범인이 아닐까하는 분위기만 살짝 풍기는게 전부거든요. 이런 사회파스러운 내용과 정통 본격물스러운 내용이 잘 결합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아니, 완벽하게 분리된 다른 이야기라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아예 사회파다운 이야기로 풀어내던가, 아니면 보다 본격적인 요소를 도입하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양 쪽 모두에서 기대 이하인 이도저도 못한 결과물일 뿐입니다.

2022/02/06

디오게네스 변주곡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3.5점

디오게네스 변주곡 - 8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중화권 추리 소설의 대표작가 찬호께이의 단편집입니다. 본격적인 작가 데뷰 초창기에서부터 최근작까지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했던 결과물을 모아 놓았는데 본격 추리는 물론 호러, SF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있어서 찬호께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책 뒤에 실려있는 작가의 작품별 후기도 굉장히 좋습니다.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생각으로 그 작품을 썼는지를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습작 1,2,3"가 쓰여진 방법이 아주 대박이었습니다. 임의로 키워드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 가서 다섯 개의 단어를 얻은 뒤, 그 키워드를 순서대로 연결해서 아주 짤막한 엽편 소설을 쓴 결과물이라고 하거든요. 읽을 때는 이런걸 뭐하러 실어 놓았나? 싶었는데, 쓰여진 방법을 알고나니 달라 보이더라고요. 특히 "습작 1"이 놀라와요. 이런 키워드로 어떻게든 말이 되는, 그것도 반전까지 있음직한 엽편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과연 잘 나가는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이 방법은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어지네요.

전체적으로 작품들 수준이 고르지는 않지만, 장르문학 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범인, 진상 등을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랑을 엿보는 파랑"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란유웨이는 겉보기에는 유능하고, 사회성 좋은 청년이지만, '삼람소옥'이라는 블로그를 엿보며, 다크 웹에 접속하는 은밀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삼람소옥'의 운영자 샤오란의 가족 관계, 거주지, 체형, 취미 등 모든걸 알아낸 그는, 결국 샤오란의 집에 침입하여 여자를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데.... 

초기작으로 제 7회 타이완추리작가협회 공모전 결선작입니다. 고작 사흘 걸려서 썼다는데, 그렇게는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란유웨이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이 시작부터 상세하게 설명되는 도서 추리물로도 뛰어나지만, 란유웨이가 살해한게 샤오란이 아니라 이웃에 사는 린치칭이라는 반전의 서술 트릭물이라는 복잡한 구성을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린치칭이 샤오란을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고를 위장해서 죽였다는 설정인데, 이러한 반전이 다크 웹에서의 회원들 사이 의견 교환, 삼람소옥의 글 들을 통해 교묘하게 등장해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삼람소옥 글만으로 사용자를 추리해내고, 감시하는 과정은 "망내인"을 연상케하는 점도 작가의 팬이라면 즐길 수 있는 재미 요소고요.

린치칭이 연쇄 살인마는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부족한 등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금융 위기로 전재산을 잃은 테일러는 가족을 떠나 노숙자가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른 노숙자 샘을 만나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이브날, 산타의 집에 산타클로스를 살해하겠다는 살인 예고 편지가 날아온 뒤 산타가 머리 없는 시체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짤막한 꽁트인데, 나름 추리물로 제 역할을 다 합니다. 존의 짤막한 이야기의 몇몇 디테일을 통해 펼치는 테일러의 추리가 일품인 덕분입니다. 그는 썰매 위에 흰 수염이 흩어져 있었다는 설명을 듣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때 피아노줄로 목을 잘리게 만든 트릭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그러나 죽은 뒤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산타클로스가 대역이 살해당한 걸로 꾸미고 숨었다는 진상을 밝혀냅니다. 존이 산타클로스였고, 일련의 이야기는 테일러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길이를 조금 더 줄였더라면 좋았겠지만 지금 이 정도도 아주 좋았던, 크리스마스에 적합한 소품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참고로 왜 무대가 미국 뉴욕일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가 후기를 보니 '존'이라는 이름을 '존 도'에서 따 왔다는 복선을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정수리" 

아홍은 어느날부터 사람들 정수리 위에 떠 있는 '그것'을 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머리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모두가 똑같은걸 보지만 못 본채 해 왔던 것이었다! 지친 아홍이 결국 현실에 순응하기로 결정하자 아홍의 머리 위 천 뭉치가 열리고 도마뱀같은 괴물이 나타났다... 

2018년에 발표된 비교적 최신작입니다. 한 매체로부터 '귀신'이라는 주제로 단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썼다고 합니다. 쓰여진 이유답게 판타지 일상계 호러물로 볼 수 있습니다. "환상특급"에 나오면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획일화되고, 개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관련된 언급은 없네요.

그러나 흥미로왔던 도입부를 지나 뒤로 갈 수록 재미를 찾기는 힘듭니다. '왜'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탓입니다. 결국 머리 위 이상한 물체들에 대한 묘사 외에는 건질게 없었어요. 작가 후기를 보니 의도적으로 논리나 추리 요소보다는 황당무계한 현실이 주는 스릴에 집중했다는데, 이래서야 고어 포르노와 크게 다를바 없는 셈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간이 곧 금" 

리원은 시간 거래 센터를 방문하여 자기 시간을 팔게 되었다. 고통을 잊고, 돈과 성공을 빠르게 누리기 위해서였다... 

2010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으로 이 역시 "환상특급"이 떠오르는 단편입니다. 

제일 재미있던건 시간 거래에 대한 설정입니다. 시간을 팔면, 해당 시간이 곧바로 지나가고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남지만 현실감은 사라집니다. 시간을 사면 시간이 길어졌다고 느끼게 되고요. 돈 벌이, 그리고 힘든 기억과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적극적으로 판 리원, 그리고 필요한 시간을 조금씩 사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 연적 아리의 대비가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아리가 시간을 샀다는걸 마지막에 반전처럼 등장시켜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전개가 일품입니다. 아리의 말대로 인생에 고통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법이지요.

하지만 지나치게 양비론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극단적으로 팔거나 살 필요는 없고, 적당히 사고 팔면서 인생을 사는게 합리적일테니까요. 예를 들어, 군대에 가게되면 이 시간은 당연히 파는게 낫잖아요? 좋은 설정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유명 편집장이 작품을 가져온 신인 작가에게 사람을 죽여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신인 작가는 등단을 위해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사람을 죽일 결심을 했다. 그녀가 추리 소설, 특히 밀실 살인을 비난했기 때문에, 완벽한 밀실 트릭을 만들어 살해하는데... 

초반의 편집자의 주장은 아주 와 닿았습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고민해야 현실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을거라는 취지는 공감하거든요. 주인공 신인 작가의 범행도 그래서 설득력있었습니다. 신인 작가라면 혹할만한 주장인건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밀실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는 없지만 창이 있었는데, 이 창을 통해서 끈만 집어넣어 피해자를 교살했다는 트릭이 특히 좋아요. 피해자가 직접 목을 집어 넣어야 하기에 '이게 가능하겠어?'라고 생각이 들게 하지만, 피해자가 참가했던 연극 연습을 위해 스스로 밧줄 안에 목을 집어 넣었다는걸 꽤 설득력있게 풀어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과학 수사를 통해 경찰이 진상을 밝힌다는 결말도 좋았습니다. 이런 밀실 트릭이 21세기에 먹힌다는건 사실 말도 안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이 모든걸 뒤집는 반전이 놀랍습니다. 편집장은 가짜였고, 유명 작가가 신인 작가를 부추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든 후, 진상을 듣고 자기가 사건을 해결한 것 처럼 꾸며 경찰에 제보했다는건데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반전이 너무 많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수작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필요한 침묵" 

지옥의 수용소에 처 넣어진지 10년만에, '나'는 친구 라오왕이 죽은 뒤 과거에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나'는 킬러였다는 짤막한 꽁트. 특기할 만한 점은 없습니다. 설명도 너무 부족하고요. 작가 후기에서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작품 내용도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영화 "언디스퓨디드" 시리즈처럼 화끈하게 풀어내는게 더 재미있었을겁니다. 별점을 따로 줄 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가라 행성 제 9호 사건" 

가라 행성에서 아홉번째 (제 9호) 사고가 일어났다. 이전의 사고들을 일으켰던 316형 중력 붕괴 엔진의 문제를 해결한 신형 317형 엔진을 탑재한 카로카호는 정상 작동 중이었다. 그러나 3명의 승무원은 상륙정으로 가라 행성에 상륙했다가, 끔찍하게 죽고 말았다. 사고 당시, 장거리 통신 시스템만 분해되어 상륙정에 실려 있었다. 

사건 조사 중 승무원이 최후를 맞는 동영상에서,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을 위해 통제와 소수 희생을 강요하는 발전파의 거두 모모코 사령관이 범인임을 암시하는 파우스타 함장의 발언이 녹화되어 있다는게 밝혀지자, 조사 위원회는 탐정 두핀핀을 불렀다. 맥켄넨 총독은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SF 추리물인데 추리적으로는 본격 추리물로 보아도 될 정도로 수준이 높습니다. 단순하지 않고, 반전과 함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우선 함장의 발언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승무원들을 매수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추리가 먼저 선보입니다. 모든 주민 행동을 녹화하는 시스템 '눈'으로 모모코 사령관이 통신병을 만났다는게 증거고요.

그러나 사건은 맥켄넨 총독이 일으켰다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는 선체 엔진이 316형 엔진인 것 처럼 조작했던 겁니다. 함장은 폭발할까봐 카로카호를 버리고 탈출했고요. 장거리 통신 시스템은 상륙 후 본성과의 통신을 위해 떼어 갔던 겁니다. 그러나 사고로 승무원들 모두가 사망했고, 총독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스스로 두핀핀 탐정을 불러 이 모든걸 밝히끔 유도했다고 설명됩니다. 개인을 통제하고, 오로지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만 경주하는 발전파도 '탐정'이라는 쓸데없는 직업의 도움을 받은 셈이라 보수파도 나름의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요. 추리와 전개 모두 합리적이며,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세운 설정 중심이라 추리가 쉽지 않다는 단점은 있지만요.

무엇보다도 작가 후기를 통해 드러난 작가의 의도가 놀라왔습니다. '후기 문제'로 인한 본격 추리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본격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는데 그 의도에 완벽하게 부합하거든요. 후기 퀸 문제는, 소설 속 탐정은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가 전부이고 자기의 결론이 유일무이한 진실인지 여부를 작품 속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것, 즉 작가와 독자 사이의 공정함은 탐정에게는 해당되지 않는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러리 퀸도 후기작에서는 독자에의 도전을 없앴다지요. 찬호께이는 완벽한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단서는 '눈' 시스템에 기록된 내용을 기준으로 합니다. 두핀핀 탐정은 아예 사건과 무관한 탐정으로 이 기록만 가지고 추리를 진행하며, 무엇보다도 탐정 스스로가 '사건의 이유'가 되기까지 합니다! 

SF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어요. 특히 가라 성 거주 생명체 바보우에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수명은 인간에 비하면 극도로 짧은데, 이렇게 모든건 서로 상대적이라는걸 지구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재해를 빗대는 부분이 특히요. 이 부분만 따로 떼어서, 제대로 된 하드 SF를 써도 좋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지루한 설정만 참는다면, 그 이상의 보답을 얻을 수 있는 걸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내 사랑 엘리" 

나는 처제 수와 그 남편 토니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아내 엘리는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은 2층에서 시체로 누워 있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수와 토니 앞에서 만드는 '나'의 작전이 먼저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알리바이 트릭의 핵심은 시체를 끈을 당겨 움직이게 만드는 정도로 현실적이라서 괜찮았어요. 수를 죽인게 토니였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엘리와 토니가 불륜 관계였다는걸 입증하는 증거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둘이 불륜 관계로 함께 도망갔다고 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말이지요. 단순 실종으로 수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뒤집힐 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점에서 좋은 추리,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습작 2" 

고독을 주제로 한 짤막한 꽁트. 전염병 숙주인 남자 혼자 세상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그다지 의외성도 없고 너무 짧아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커피와 담배" 

시사 잡지 포커스의 기자인 나는 일요일 오전 10시 8분에 모르는 공원 벤치에서 정신을 차렸다. 지난 수요일 이후 기억은 잃은 상태였다. 몸은 간절히 커피를 원했고, 커피를 마시고자 편의점과 여러 가게를 돌아다닌 나는 지금 세상은 담배가 합법이고 커피가 불법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결국 몰래 커피를 판다는 약국에서 커피를 입수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나는 난동을 부리다가 기절해 버리고 마는데.... 

모든건 흡연자였단 '나'의 금연 치료를 위해 루 박사가 행했던 IC 금연 치료 실험 탓에 벌어진 착각이었다는게 진상인 이야기입니다. 측두엽, 후두엽, 전두엽 간 관계 문제로 '나'는 담배를 커피로 인지했고, 이를 언어로 구성할 때는 '마약'으로 말했던 겁니다. 루 박사의 시계를 붕대로 착각하고 있어서, '나'의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고요. 

기묘한 상황을 나름대로 잘 설명하고 이는 독특한 SF이자 판타지로, 이 작품도 "환상특급"에 사용되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자매" 

'나'는 여자친구 아쉐가 기생충인 언니 아신을 죽여서 시체를 숨길 계획을 세웠다. 우선 중고 냉장고를 구입하여 아쉐 집으로 옮긴 뒤, 원래 집에 있던 냉장고에 아신의 시체를 담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컨테이너 화물차 안에서 시체를 꺼냈고 냉장고는 버렸다. 아신으로 변장한 아쉐가 경비원에게 눈도장을 찍고 외출하도록 시켰고, 아신의 시체는 밤에 바다에 버렸다... 

시체를 바다에 버리는 범행 과정만큼은 그럴싸하게 그려진 범죄물입니다. 그런데 '나'가 아쉐와 결혼할 경우. 600만 홍콩 달러에 달하는 집 명의자에 추가되고 아이가 생기면 아예 상속자가 되어버려 아신은 집 상속권을 잃게 되기 때문에 아신이 먼저 아쉐를 죽일 계획을 꾸몄었고, 이를 알아챈 '나'가 아신을 죽였다는 반전은 뜬금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악마당 괴인 살해 사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던,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마당 본부에서 간부 감자 괴인이 머리가 으깬 감자가 되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우두머리 바다 대왕과 살아남은 간부인 양파, 사마귀, 해삼 괴인 앞에서 코작 참모는 사건이 감자 괴인의 자작극이라는 추리를 펼치는데... 

일본 전대물 설정을 본격 추리물에 끌어들였는데, 의외로 수준이 높아서 깜짝 놀랐던 작품입니다. 감자 괴인의 목을 자를 수 있었던건 사마귀 괴인과 가면전사 1호의 무기였다는 단서가 앞 부분에 제공되고, 코작 참모의 기묘한 행동을 통해 코작 참모가 가면전사 1호였다는게 드러나는 반전이 아주 일품인 덕분입니다. 코작 참모가 이를 가자 괴인 자작극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설득력 높은 추리였고요. 재미와 추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걸작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영혼을 보는 눈"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 노인은 자신이 잘나갔던 영매였지만, 30년 전 사건으로 몰락했다며 그 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프로그래머 A씨 아내가 몸을 열 번 넘게 칼에 찔려 살해되었던 사건이었다. 아내의 영혼은 A씨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A씨 지문이 묻은 흉기를 찾는 것도 도왔기에 결국 A씨는 사형당했다. 그러나 다른 사건이 벌어졌고, 진범은 시체를 발견했던 가정부였다는게 밝혀졌다. A씨 아내 영혼은 A씨가 불륜녀와 행복하게 살 까봐 거짓말을 했던 것이었다.... 

잡지 요청으로 귀신을 주제로 썼다는 점은 "정수리"와 비슷하네요. 하지만 공포 자체에 집중했던 "정수리"보다 못했습니다. 무섭지도 않고, 그리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영혼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처음 접했는데,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킬러였으며 노인은 방금 죽인 타겟의 영혼이 '나'의 뒤에 있는걸 보았다는 결말도 진부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숨어있는 X" '

나'는 강의 후 급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진 탓에 옆 강의실의 '추리소설의 감상, 창작, 그리고 분석'이라는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다. 강의 시작 후, 학생들과 대화를 하던 교수 '수염남'은 학생들에게 추리 게임을 제안했다. 지금 강의실에 조교가 학생인 척 숨어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이유와 증거를 제시해 보라는 게임이었다. 정답을 맞춘 한 명에게 무조건 A학점을 주겠다는 말에, 강의실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게 되는데.... 

찬호께이는 후더닛물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클리셰를 벗어날 수 없고(아마 가장 수상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라던가, 그런걸 의미하는 말 같습니다), 독자가 직감으로 범인을 지목할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는 후더닛물의 변주를 고민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창작 의도에 걸맞게 클리셰는 먹히기 힘듭니다. 애초에 강의실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각자의 별명. 그리고 생김새와 성격 묘사만 있을 뿐이니까요. 이 정도 단서로는 수수께끼를 풀어내기에 벅차지요. 범죄도 아니기에 동기나 범행 수법으로 당사자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지목받은 사람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야 하고, 지목에 실패한 사람은 탈락한다는 게임의 기본 룰과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수수께끼는 풀리며, 교수인 줄 알았던 수염남이 조교였고 학생인 줄 알았던 '코다 쿠미'가 교수였다는 진상도 깜짝 놀랄만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화자이자 주인공 '냉커피' 역시 학생이 아니라 교수여서 수수께끼를 풀어냈다는 반전섞인 결말도 아주 깔끔했고요. 눈으로 고립된 산장에 초대받아 방문한 서로를 모르는 투숙객들 중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을 찾아내는 정통 추리물을 현실감있게, 그리고 완성도높게 구현한 수작이에요.

물론 게임이 이렇게 강의 시간안에 딱 맞게 잘 끝났을지는 사실 의문이에요. 교수가 수수께끼를 마지막까지 숨기려는 의도가 더 많았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무조건 차례대로 한 명씩 지목하면,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한 명 생기고 그 사람이 진상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결정적 약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게임'이 작위적이라고 감점하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2/01/16

작가 형사 부스지마 - 나카야마 시치리 / 김윤수 : 별점 2점

작가 형사 부스지마 - 4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북로드

제목처럼 전직 형사이지만 은퇴 후 작가로 데뷰해 인기를 얻으면서, 형사 지도원으로 복귀한 부스지마가 신참 형사 아스카와 함께 작가들이 관련된 여러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단편 모음집입니다. 이런 저런 작품들로 많이 접해 보았었던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지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극히 만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작가로 문학계에 정통하며 온갖 냉소와 비난을 사정없이 날리는 작가 형사 부스지마의 설정부터가 만화적이니까요. "부호 형사"와 별다를게 없는 과장된 설정입니다. 등장하는 편집자와 작가들에 대한 설정들도 억지가 느껴질만큼 과장되어 있다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사회파에 가까운, 묵직한 작품들을 선보였던 작가답게 마냥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출판계, 특히 작가들에 대해서 부스지마의 입을 빌어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건 나름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좀 부족했고, 이야기 구성이 대체로 한가지 패턴이라는 단점은 큽니다. 전체 평균한 별점은 (간당간당한)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트릭과 진상, 범인을 모두 까발리는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라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워너비의 심리 테스트" 소설 스메라기 신인상 1차 심사위원이었던 도메키가 자루없는 날카로운 알루미늄 송곳에 꿰뚫려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도메키가 심사평을 험하게 썼던 신인상 출품 작가들 3명 - 다다노 구스오, 오우미 히데오, 아이카와 시오리 - 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의 심문에 넌더리가 났던 아소 반장과 이누카이 형사는 신참 아스카에게 형사 지도원 부스지마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사건 설명을 들은 부스지마는 3명을 각각 만나, 그들 면전에서 더욱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데....

주요 설정과 등장인물들이 소개되는 시리즈 제 1작. 이 시리즈가 어떤 작품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스지마가 얼척도 없이 자기 작품에 대해 자신감만 가득차 있는 신인 작가들을 통렬하게 깨부시는 장면이 가장 핵심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추리적으로 빈약하다는 특징도 두드러집니다. "자루가 없는 알루미늄 송곳"이 화살인건 너무 명백하니까요. 이를 초반에 알아채서 이야기하지 않는게 더 이상했습니다. 부스지마가 용의자들을 도발해서 재차 범행을 시도하도록 만드는데, 범인이 이에 넘어가 부스지마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도 다소 유치했고요. 오우미 히데오가 기계 공작 회사를 다니다가 정년 퇴직했다는 정보를 이용하여 흉기를 추리해 낸 뒤, 가택 수사로 증거를 잡는게 더 추리물다왔을겁니다. 부스지마가 직접 표적이 되어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한다는 과장된 추리쇼는 불필요했을 뿐더러,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을 입었다고 한 들, 화살을 머리에 맞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신인 작가들에 대한 비난도 나름 새겨들을 부분은 있지만, 대상자인 3인이 안 좋은 신인 작가의 단점만 극대화하여 합쳐놓은 인물들이라는 것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만화적인 느낌을 부각시킬 뿐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편집자(編集者)는 편집자(偏執者)" 

편집자 마다라메 아키라에게 신인 작가들이 연이어 찾아왔다. 하고로모 사야는 데뷰 전 동인 작품의 출간을 막고자, 그리고 그녀 원고 속 트릭 아이디어를 반강제로 중견 작가에게 넘긴걸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덴도 구이치로 역시 항의가 목적이었다. 데뷰작에서 사용하라고 마다라메가 전해 준 트릭과 반전이 인기작가 아야메 작품을 베낀 것이어서, 덴도는 표절 작가로 낙인찍혀 작가 인생을 망쳤기 때문이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출판, 문학계를 통렬히 비판합니다. 신인 작가들 약점을 쥐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폭언을 내뱉는 악덕 편집자 마다라메, 그리고 제대로 된 작가도 아니면서 자기 작품과 소설가라는 직업에 헛된 신념을 품은 신인 작가를 통해서요. 문단에서 라이트노벨 작가는 일회용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등의 업계인스러운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카야마 시치리 시선을 보자면, 편집자보다는 작가 문제가 훨씬 큰 것으로 그려져 이채롭더군요. 편집자가 작가와 이인삼각으로 작품을 완성해 나가면 좋지만, 수익을 중시하는 편집자도 당연히 필요하다는게 나카야마 시치리의 논리거든요. 출판도 시장이니까요. 마다라메도 문제는 있지만,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측면으로는 우수한 직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작가들은 일반인의 상식도 갖추지 못한, 자의식에만 쩌든 괴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덴도 구이치로는 아예 동정도 가지 않을 정도에요. 소설가라는 놈이 편집자가 제공한 트릭과 반전으로 글을 썼다면, 이건 작가가 아니라 그냥 대필 기계일 뿐이니까요. 이런 주제에 자기가 창작자다 뭐다 운운하며 뭔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욕을 먹어도 쌉니다. 조금 낫기는 하지만 하고로모 사야도 마찬가지에요. 또 이런 작가들이 단순한 비지니스 파트너에 불과한 편집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도 통렬하게 꼬집습니다.

다행히 이 작품은 비판 외에도 추리물로도 볼 만했습니다. 사용된 알리바이 트릭이 꽤 괜찮았거든요. 우선 하고로모가 흉기를 준비하고, 범행 현장인 호텔 지하 주차장까지 마다라메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범행 시각에는 너무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던 덴도가 화장실을 가는 척 잠깐 자리를 비운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트렁크 안에 가두었던 마다라메를 찔러 죽이고 바로 돌아온 겁니다. 나중에 하고로모가 차를 회수하면서, 시체도 유기했고요. 꽤 그럴듯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호텔은 CCTV가 완벽하게 존재하는 곳이라는 거지요. 지하로 향하는 모든 입구, 엘리베이터와 주차장 CCTV만 조사해도 트릭이 드러나는건 순식간이었을 겁니다. 덴도가 호텔 바에 있었다는걸 검증하기 위해 경찰이 철저하게 수사했을테니 빠져나가기는 힘들었을테고요. 그런 점에서 정교한 계획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는 수사의 문제일 뿐, 트릭을 폄하하기는 힘들고 독자가 추리하기 위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는 만큼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상을 받긴 했지만" 

신인상 수상작가들에게 쓴 소리를 하던 노 작가가 살해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쓴 소리를 들은 작가들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의식 과잉으로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애송이들에 불과하고요. 부스지마가 풋내기들 정신 교육을 시킨다는 전개도 앞서 이야기들과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으로 일관하는 자기 복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에요. 트릭이나 단서, 증거같은건 등장하지도 않거든요. 부스지마의 정신 공격(?)에 무너진 범인이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는게 전부니까요. 작가들을 쓴 소리로 비판하면서, 본인은 이런 작품을 버젓이 발표하는건 무슨 정신머리인지 모르겠네요. 최악 중 최악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애독자" 

작가 다카모리 교헤이 토크쇼 간담회에 3명의 독자가 참석했다. 한 명은 인터넷에 혹독한 비판만 올리며 즐거워하는 일종의 악플러인 구와에 도모미.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강하게 연심을 품은 정신병자 스토커 마키시마 히나코. 마지막 한 명은 다카모리 교헤이에게 어떻게든 자기 작품을 보여주려고 발악하는 작가 지망생 가노 이쿠였다. 그리고 간담회 직후 다카모리 교헤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여러모로 앞서의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는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에게 비틀린 애정을 품은 독자들이 주요 용의자라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부스지마가 이 독자들에게는 독설을 날리지 않는다는 점이고요. 마지막 세 번째는, 범인이 따로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카모리 교헤이는 여자 관계가 복잡해서, 아내가 그를 살해했던게 진상이었습니다. 최신간 속지 부분을 뜯어내어 현장에 두었던건, 사인을 받았을 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것이고요. 이 페이지만 뜯어진 채 시체 밑에 책이 놓여져 있던 것, 사인이 번지는걸 막기 위함인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 것, 그리고 현장에 있던 책은 2쇄본이었는데, 2쇄본이 작가 서재에 없었던 걸로 보아 서재에서 꺼내온 책이라는 결정적 증거 등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이 중 간지가 현장에 없었던게 증거가 되기는 힘들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 내용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원 패턴이었던 전개를 탈피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스포일러 가득한 악담을 리뷰랍시고 올리는 구와에 도모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등장하는데, 살짝 찔리더군요. 저도 거의 모든 리뷰에 스포일러를 가득 담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리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있다는걸 더 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원작과 드라마 사이에는 깊고 어두운 강이 있다" 

부스지마의 트리콜로 시리즈의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듀서 소네는 원작의 인지도만 원했기에, 주인공도 여자로 바꾸고 없던 러브라인, 해피엔딩을 추가했으며 핵심인 보험금 살인도 스폰서 눈치를 보느라 치정 살인으로 바꾸고 말았다. 결국 부스지마와 편집자 신보는 방송사 관계자와 담판을 짓는 자리를 갖고, 부스지마는 언제나의 말투로 이 모든걸 소설이나 기사 형태로 폭로하겠다며 관계자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소네는 살해당했고 부스지마도 용의자로 떠올랐다.

작가 지망생들보다는 TV 드라마 관계자들을 비웃고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비판할 악당의 악행을 먼저 묘사해서 독자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킨 뒤, 부스지마가 면전에서 한 방 먹이는 방식은 전작들과 거의 같습니다. 한마디로 원 패턴이라 식상했어요.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별로 없습니다. 부스지마가 시나리오 작가 후세가 소네를 공격한 방법을 과거 드라마에서 찾아내는 등의 활약은 하지만, 후세와 신보의 발자욱을 현장에서 입수했기 때문에 추리로 범인을 밝혀낼 여지는 전무하니까요. 후세는 단순 폭행이었고, 실제로 질식사하게 만든건 편집자 신보였다는 추리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보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범행을 증명하기 쉽지 않았을겁니다. 기절한 사람을 돌려 놓으면 질식사 할 수 있다는 책을 함께 작업했다는 것 정도가 증거가 될 수는 없을테니까요.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2인 3각으로 작품을 만든 신보를 직접 고발하는 부스지마가 자기는 작가 이전에 형사였다는 멋진 말을 한 직후, 이를 소재로 작품 하나를 쓸 수 있겠다고 하는 장면은 부스지마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드러내기는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져서 별로 자연스럽게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1/04/24

삼귀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삼귀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괴담듣는 아가씨 오치카가 주인공인 미야베 미유키의 미시마야 시리즈 네 번째 작품입니다. 대충 읽다보니 순서를 건너 뛰었네요. 그래도 읽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살짝 안 읽은 이야기가 소개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괴담 이야기 한 개가 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원래도 연재물이기도 하고요. 

별로 무섭지 않았고, 다른 곳에서 접해 보았던 설정이 많았다는건 전작과 동일합니다. 그래도 나름의 변형이나 상세한 설정, 묘사가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단, 새로운 등장인물과 함께 시리즈의 큰 변화를 암시하는 마무리는 여러모로 불길합니다. 다음 권에서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해주면 좋겠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미망의 여관" 

고모리, 오사키, 요노 세 마을은 매년 봄, 마을에서 모시는 신인 아카리님을 깨우는 초롱 축제를 열어왔다. 하지만 영주님이 세살짜리 딸을 잃었다는 이유로 축제를 금지하자, 농사를 위해 축제를 멈출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누시의 손님으로 마을에 머물고 있던 화가 이와이 세키조의 제안을 따르기로 뜻을 모았다. 나누시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유폐시켰던 별채를 초롱으로 만들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이와이 세키조의 진짜 계획은 따로 있었다. 그는 죽은 자신의 어린 아들과 아내에 대한 회한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초롱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축제날, 별채에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그림이 어우러져 초롱처럼 밝혀지자 저승과의 문이 열리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별채에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만든다는 괴담은 많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돌아온다는 식의 전개가 대부분이고요. 고전 "원숭이 손",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도 기본 설정은 동일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덕분에 단순한 아류작들과는 수준을 달리 합니다.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만드려는 이와이 세키조의 계획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실제로 돌아온 뒤 벌어지는 대소동, 그리고 돌아온 망자들을 극락으로 돌려보내는 마무리까지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회한, 애정과 연민이 절절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들도 감동적이었고요. '집착하지말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와이의 계획이 '여러 지방에서 지내는 제사를 조사해봤는데,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열심이었다'는 데에서 착안했다는건 좀 이상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사는 망자를 잘 먹여서 돌려보내는게 목적이니 그럴듯한 착안인건 맞아요. 그런데 이건 죽은 사람, 망자들이 잘 돌아온다는 뜻이잖아요? 이전에 죽은 사람의 그림을 아무리 열심히 그려봤자,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는다는 이야기와는 정반대인거지요. 이 말 때문에 3개의 마을을 동원해가면서, 마을 축제급으로 애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아카리 님의 신통력이 뭔가 작용했다는 식으로 조금 설득력을 갖추어 주었더라면 완벽했을텐데 아쉽습니다. 작품에서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 망자들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일 뿐이에요. 망자들에게 저승으로 가는 통행증을 주는걸로 만사해결되는 결말도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한건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 만큼은 확실했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식객 히다루가미" 

후사고로는 십년만에 방문했던 고향에서 에도로 돌아오는 길에서 아귀 히다루가미에게 씌워진 뒤, 히다루가미에게 먹을걸 주기 위해 과식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히다루가미는 중요한 손님을 끌어들이는 능력으로 후사고로가 도시락 장사로 성공하도록 도왔고, 후사고로는 '다루미야'라는 도시락 가게를 크게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과식으로 히다루가미가 살이 찐 탓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다루미야는 여름에는 가게를 접고 휴식 기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십년 뒤, 다시 후사고로가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히다루가미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장례식에서 들었던 스님의 독경 탓이었으리라...

열심히 일하면 도깨비도 도와줘서 복이 온다는 전래 동화같은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괴담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후사고로가 도시락 가게 다루미야의 주인인 덕분에, 여러가지 요리들이 등장해서 즐거웠습니다. 이야기도 뻔하지만, 히다루가미가 살이 쪄서 집이 무너질뻔하는 등 위기를 불러와서 '다이어트'를 위해 가게를 쉰다는 설정은 조금 특이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좀 극단적이다 싶기는 했습니다만, 한번 뭔가를 한다면 극단적으로 하는게 에도 마인드?라는 생각도 드네요. 소품같지만 여러 볼거리가 많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삼귀" 

구리야마 번의 에도 가로였던 무라이 세이자에몬이 오치카를 찾았다. 대략 이십여년전, 그가 겪었던 괴상했던 일을 이야기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가 죗값으로 깊은 산 속 호라가모리 마을 산지를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살기 힘든 호라가모리 마을은 위, 아래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마을에서 수습하기 어려운 환자를 솎아낼 때, 다른 마을 손을 빌릴 목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 '오니'가 나타나 솎아내기를 맡게 되었다. 동료 산지기 스가의 아내와 아이가 솎아내기를 당한 뒤, 무라이와 스가는 오니를 쫓게 되는데...

무라이가 산지기가 되기 전 서두는 장황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구리야마 번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은 특히 과했고요. 다행히 진짜 괴담인 호라가모리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윗 마을과 아랫 마을로 나뉜 이유가 섬뜩하더군요. 기근이 닥친 마을에서 아이들을 잡아 먹기로 했는데, 자기 아이는 잡아 먹을 수 없어서 나무 상자에 넣고 교환했다는 중국 괴담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보통 이런 경우, 죽음을 도맡는 '처형인'이 있는게 일반적이지 않을까요? 단지 입을 줄이는 정도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끈질기게 가혹한 삶을 이어나간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무엇보다도 오니의 정체가 설명되지 않은건 아쉬웠습니다. 단지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산의 분노라고 하기에는 애매했습니다. 오니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윗 마을에 환자가 생기면 아랫 마을 촌장이 가서 죽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계속 이어졌을겁니다. 오니는 아무런 댓가 없이 촌장들의 죄책감만 줄여준 셈으로, 오니는 그나마 마을이 유지되도록 도운, 유익한 지박령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형편좋은 요물이 있을리 없지요. 마을 사람들의 원념이 모인 결정체였다던가 같은 설명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무라이와 스가가 오니를 추격하다가 마지막에 오니가 빈 껍데기라는걸 알게 되는 정도에 그칩니다. 무라이가 '이 슬픔과 분노를 어찌할까'라고 생각하는건 그냥 멋드러질 뿐, 설명되는건 없어요. 오니가 뭔가 이유라도 외치며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도 - 사라졌다면 더 나았을텐데 말이죠.

호라가모리 마을 묘사가 탁월하고, 윗 마을과 아랫 마을에 얽힌 비밀에 대한 진상은 흥미로왔지만 오니의 정체 등 상세 설정이 개운하게 설명되지 않는 단점은 큽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오쿠라님" 

흑백의 방에 찾아온 손님은 향료가게 비젠야 미녀 3자매의 막내 오우메였다. 그녀는 오치카에게 자기 가게에서 모시는 수호신 오쿠라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오쿠라님은 가게의 안녕을 돕고, 화재와 같은 재앙에서 가게를 지키며 가게 여주인과 딸들이 모두 미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신이었다. 그러나 큰 재앙에서 가게를 지킨 뒤에는 딸 들 중에서 한 명이 오쿠라님이 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그 말대로 오우메가 15세가 되었을 때, 큰 화재에서 비젠야가 무사한 뒤 오우메의 언니 오기쿠가 새로운 오쿠라님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집의 수호신이 사실은 신이 아니라 불행을 가져다 주는 요물이었다는 괴담은 많습니다. 그래도 설득력있게 수호신을 그려낸 묘사도 좋고, '수호신'의 존재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젠야의 오쿠라님은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거든요. 집을 지켜준건 분명하니까요. 이를 위해 오쿠라님이 딸 중 한 명이라는 진상도 으스스했는데, 생각해보면 딸 중의 한 명을 무조건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몇 대에 걸쳐 큰 재앙이 닥쳤을 때 바치는 정도라면 꽤 합리적인 거래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약간의 설정 변주 외에 재미를 느낄만한 부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결말도 뻔했고요. 이 이야기를 해 준 오우에는 사실 '생령'이 찾아온 거라는 진상도 별로였습니다. 비젠야의 마지막 데릴사위가 딸을 잃는건 참을 수 없다며 스스로 오쿠라님의 가호를 끊어버린 결과도 영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행동 자체는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비호를 잃자 그간의 재난들이 모두 한꺼번에 몰려와 비젠야가 삽시간에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는데, 이런 기본적인 정보가 비젠야에서는 전승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이런 점에서 오쿠라님 괴담보다는 미시마야의 둘째 도미지로와 세책점 후계자 간이치를 비중있게 등장시키기 위한 발판 역할의 작품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문제는 새 등장인물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특히 한량으로 재미삼아 괴담에 관심을 가지는 도미지로는 최악입니다. 괴담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로 접근할건 아닌데 말이죠. 그나마 간이치가 과자 종류를 맞출 때 추리력을 살짝 선보이는건 인상적이었지만, 오우메와 비젠야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는 딱히 두드러지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새로운 인물들과는 반대로 반대로 이전에 오치카 상대역으로 보였던 아오노 리이치로가 결혼과 귀향이라는 이유로 퇴장하는 결말도 급작스러워서 당황스럽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쉬어가는 느낌의 작품이었습니다.

2020/08/29

흑사의 섬 - 오노 후유미 / 추지나 : 별점 3점

흑사의 섬 - 6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시키부는 오랜 고객인 논픽션 작가 카츠라기의 행방을 쫓아 그녀의 고향인 '야차도'라는 섬을 찾았다. 그녀가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탄 것은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섬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보지 못했으며, 마을에는 카츠라기의 원래 성인 하세가와라는 집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의 방해라는걸 알아낸 시키부는 혼자만의 조사와 조력자인 마을 의사 야스다를 통해 시호가 참혹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시호가 '마두야차'의 심판을 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유는 그녀가 마을 영주인 진료 가문의 후계자 히데아키를 살해한 범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섬 특유의 종교와 풍습에 시호가 죽었다면 그녀와 동행한 나가사키 마리라는 여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가사키 마리가 진료 가문의 마지막 남은 후계자라면 시호를 죽인 이유는 무엇인지? 마두야차와 진료 가문의 '슈고'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등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계속 더해지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현재의 '슈고'인 진료 아사히에 의해 모든 진상이 빍혀지는데...

"시귀"와 이런저런 괴담 단편집으로 호러, 공포 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던 오노 후유미본격 추리물입니다. 

외떨어지고 고립된 마을을 지배하는 가문과 그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토대로 풀어낸 본격 추리물은 일찌기 많이 접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이라면 요코미조 세이시가 떠오르네요. "이누가미 일족" 등이 그러하니까요. 가문의 저주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가문의 상속자들을 죽게 만드는 "바스커빌 가의 개"도 마찬가지고요. 그만큼 고전적인 설정인데, 지금도 도조 겐야 시리즈, 민속 탐정 야쿠모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인기 설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기간에 걸친 전통 관습의 과정이 핵심 트릭(의도한 건 아니지만)의 하나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됩니다. 전설을 직접적인 트릭으로 이용한게 아니라 일종의 심리 트릭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고요.

마을만의 신앙과 전설, 관습, 그리고 트릭을 조금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우선 마을에서는 '마두야차'님을 신으로 모십니다. 마두야차는 죄 지은 자를 심판하며, 마을을 지배하는 진료 가문은 오래전 야차산에 사는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응징한 행자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귀신인 '마두님'은 아직도 진료 가에 붙잡혀 있어서, 진료 가문에서는 대대로 후계자가 아닌 셋째 아들이나 딸에게 마두님이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인 '슈고'를 맡게 해 왔습니다. 슈고는 어렸을 때 정해지고, 한 번 슈고가 되면 그만둘 때 까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게 관례입니다. 심지어 슈고로 있는 동안은 호적이 없어서 학교도 가지 않았습니다. 없는 사람인거에요. 그렇게 이십여년 정도 슈고를 맡다가 성인이 되면, 다음 대 슈고에게 자리를 넘긴 뒤 신관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 관습을 이용하여 전 대 슈고이자 현재 진료 신사의 신관인 모리에가 슈고였을 때인 19년 전 나가사키 마리의 어머니 히로코를 깜쪽같이 살해했습니다. 섬 사람들이 '낯선 사람'을 목격했는데, 모리에는 슈고였던 탓에 집에 갇혀 있어서 사람들이 그 존재를 잘 몰랐던 덕분이었지요. 모리에는 사건의 진상을 감추기 위해 히로코와 결혼할 예정이었던 시호의 아버지 노부오도 잔인하게 토막 살해했습니다.
이는 섬의 마두 신앙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섬 마을 사람들은 노부오의 잔혹한 시체를 보고 이를 마두야차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사건을 끝난 일로 치부하여 그냥 덮어버리고 말거든요. 단지 신사에 심판을 의미하는 화살촉 한 대만 놓아두면 끝이었던 거지요. 

그 뒤 현재에 이르러, 모리에는 진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던 히데아키를 살해했습니다. 히데아키가 없으면 분가인 자신의 집이 종가를 잇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인 나가사키 마리가 종가를 잇게 될 수 있다는걸 알고난 뒤, 그녀마저 죽이고 완전범죄를 위해 19년 전 사건처럼 참혹하게 시체를 훼손했습니다. 섬 마을 사람들은 역시나 관례대로, 나가사키 마리가 히데아키를 죽여서 심판받았다 생각하고 대충 사건을 수습해 버렸고요.
이렇게 '슈고' 라는 관습을 활용해서 섬 사람이지만 낯선 사람이었다는 상황을 만든 트릭(우연이었지만), 그리고 마두 신앙을 활용하여 살인이라는 큰 범죄를 대충 수습하게 만든 일종의 심리 트릭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동기가 확실해서 범인을 특정하기 쉬운데, 비교적 초반에 발견된 시체가 카츠라기 시호라는게 증명되어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전개도 좋습니다. 시호와 동행했지만 사라진 나가사키 마리가 진료 가문의 후예라는걸 알게된 후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진료 가문의 부를 노리는 종가의 범행이라면 카츠라기 시호를 죽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이와 함께 이런저런 용의자들도 부상하면서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일종의 '바꿔치기' 트릭도 잘 사용되어서 추리적으로 큰 만족감을 전해줍니다. 진상은 카츠라기 시호와 나가사키 마리가 고등학생이 되어 섬을 나갈 때 서로의 신분을 바꾸었던 겁니다. 여관에서 '나가사키 마리'를 찾는 전화를 받고 나가 살해된 건 섬에서는 시호였던 여자 마리였고, 섬에서 마리였던 시키부의 지인 '카츠라기 시호'는 당연히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도주했고요. 그리고 이 때문에 폐가가 된 시호의 옛 집에서 채취한 지문은 시체와 일치했습니다.
바꿔치기는 현재의 슈고이자 해결자 역할을 맡고 있는 아사히의 추리와도 연결됩니다. 섬 사람들은 모두 시호와 마리를 알아봤다고 합니다. 둘 다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냈으니까요. 그러나 범인은 시호와 마리를 구분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시호를 죽였다고 생각했지요. 이에 아사히는 범인은 두 사람이 고등학생이 되어 섬을 떠난 뒤 태어났거나, 아니면 두 사람과 엇갈려 섬을 나갔다 돌아온 이로 한정된다고 추리합니다. 이런 섬 사람은 없으니, 범인은 당시 슈고였던 모리에일 수 밖에 없고요. 진료 가문의 정보를 이용하여 마리의 현재 신상을 캐 내어 후쿠오카에서 얼굴을 확인까지 했으니, 충분히 착각할 만 했습니다.

주인공인 시키부도 꽤 인상적입니다. 보통 폐쇄된 마을 공동체가 꺼리는 조사를 하는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공격당하는 탓에 어떻게든 도망다니면서 기회를 엿 봐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었죠. 그러나 시키부는 마을 사람들과 당당하게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돋보입니다. 여관 주인 오에가 자신의 짐을 손댄걸 알고, 일부러 수첩을 비닐 봉투에 넣은 뒤 현금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며 협박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분명 범인의 지문이 남아있을거라고 장담하면서요.
옛 하세가와 집에서 담배를 피다가, 가츠라기 시호가 버린 듯한 캐빈 꽁초를 줍는 장면처럼 탐정 역할도 충실하며, 범인은 이 섬 신앙을 잘 알고 있지만 섬 사람은 아닐 거라는 등 추리력도 쓸만합니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면 마두님에게 심판받을 걸 두려워하는 섬 사람이 범행을 저지를리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그럴싸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한 몸은 충분히 지킬법한 능력과 기본 이상의 추리력은 갖춘 능력자입니다. 2000년대 이후 작품인 만큼 고전들처럼 마을 사람들도 섣불리 그를 건드릴 수는 없었겠지만,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시키부의 캐릭터가 명확한 탓도 있을겁니다.

황량한 섬도 실제하는 듯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특히 핵심 트릭으로 사용되는 마두야차 신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놀라운 수준입니다. 시키부가 이런 쪽에 관심이 많고 주술과 음양 오행에 박식한 나머지 섬에서 모시는 신인 '마두야차 (마두관음상에 뿔이 난 형태)'가 '해치'라는걸 깨닫는다는건 무리수로 보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시키부 시점에서 이런저런 상세한 정보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잘 전해줍니다. 한 마디로 기대보다 훨씬 좋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인 섬과 마두야차 신앙, 그리소 슈고 등 진료 가문과 관련된 풍습 모두 이야기를 위해 만들어진,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물론 오노 후유미가 공들여 설정을 잘 쌓아올려 놓은 덕분에 읽다보면 실제로 있음직하다는 설득력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는 중반까지고, 아쉽게도 어린 소녀인 슈고 아사히가 후리소데 차림으로 나타나 모리에를 직접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마지막 장면 탓에 심혈을 기울였던 설득력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이건 정말이지 만화에서나 쓰임직한 장면이었어요.
물론 마두, 해치의 심판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노력은 가상합니다. 진료 가문의 행자가 사람 잡아먹는 귀신을 응징하고 가둔게 아니라, 귀신이 진료 가문의 핏줄이라서 슈고는 그러한 핏줄을 타고난 후예를 가두어 놓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사히가 슈고 입장에서 추리를 들려주는 정도로 충분했으니까요. 아니면 감히 해치를 사칭한 모리에에게 천벌을 내린건 슈고로서의 임무였다고 하던가요. 또 이렇게 마두를 사칭한 자에게 천벌을 내린 거라면, 대체 19년전 사건은 왜 가만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서?
슈고 전통의 진상 역시 그다지 의외성없고 만화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진료 가문에서 아사하기 살인귀의 핏줄을 타고 났다는걸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한 묘사도 없어서 그나마의 설득력도 존재하지 않고요. 이럴 바에야 차라리 "부러진 용골"이라던가, "인어 공주", "앨리스 죽이기" 등 처럼 판타지 속 이야기로 풀어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철가면" 이야기를 응용했더라면 괜찮지 않았을까요?
그 외 야스다가 나가사키 가문의 아들이었다는 등의 자잘한 설정은 나오지 않는게 좋았습니다. 너무 관련된 인물이 많이 엮여 작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용의자를 늘리려는 의도였다는건 알겠는데, 지나쳤어요.

그래도 오노 후유미가 본격 추리물 작가로도 충분한 실력을 갖췄다는건 여실히 보여준다는건 분명합니다. 남편 아야츠지 유키토도 긴장할만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손에 땀을 쥐고 읽을만한 서스펜스와 치밀한 두뇌 게임 모두를 갖춘 만큼, 더운 여름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