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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저지먼트 - 고바야시 유카 / 이영미 : 별점 1.5점

저지먼트 - 4점
고바야시 유카 지음, 이영미 옮김/예문아카이브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XX년, 급증해가던 범죄를 막기 위해 일본에서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가한 폭력이나 가학 행위를 똑같이 형벌로 집행할 권리를 피해자 측에 주는 '복수법'이 제정되었다. 단, 복수법을 선택한 경우 피해자 측이 직접 형벌을 집행해야 한다. 도리타니 아야노는 복수법 집행자를 보호하고, 집행 현장을 감찰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복수 감찰관'으로, 복수 현장을 지켜보면서 복수법의 존재 의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되는데...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으로 일본 신인 작가 고바야시 유카의 데뷔작입니다.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 별로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법률, 그리고 화자가 이 법률을 수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만화 '이키가미'와 비슷한데,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키가미'에서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는데 반해, 이 작품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탓입니다. 과연 이런 복수가 정당한지, 그리고 복수 때문에 선량한 집행자들이 살인자가 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묻는데, 등장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라서 별로 고민할 게 없거든요.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조선, 평택 아동 암매장 사건의 원영이 부모같은 인간 말종들을 단죄하는게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이렌'에서 복수가 복수를 낳는 장면도 같은 이유로 전혀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범죄자라 하더라도 그를 아끼는 어머니가 있어서 자식의 복수를 한다는 건 말이 되지만, 워낙에 지은 죄가 커서 적반하장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범죄자 가족이 판사에게 복수한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서 불합리하기도 하고요.

억지 설정도 많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저지먼트'에서 복수자 하야토가 죽는 게 대표적입니다. 여동생을 아사시킨 부모에게 복수법을 집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니 여동생을 학대의 희생양으로 내세웠던 자신에게 벌을 가해 굶어 죽는다는 건데, 공공기관에서 소년이 죽어가는 걸 방치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소년의 죽음이 복수법 반대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복수법 반대에 활용하려면, 집행 대상인 범죄자가 사실은 무고한 인물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했습니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야기마다 약간의 반전이 있는 건 좋습니다. '사이렌'에서 피해자의 아버지도 피해자에 대해 잘 몰랐었다라든가, '앵커'에서 엔도는 피해자 리오와 결혼할 생각을 접었던 상태였다든가, '페이크'에서 피해자의 엄마가 피해자를 학대하고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런 반전이 일종의 조사와 추리로 밝혀진다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특히 어머니를 살해한 딸 엘레나를 어머니가 복수법으로 죽이려 했지만, 알고 보니 딸 엘레나는 가스라이팅당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고, 이 사실이 밝혀지자 어머니가 유아 퇴행 현상을 일으켰다는 '보더'는 추리적으로, 그리고 결말의 의외성 측면에서 제일 괜찮았습니다. 물론 엘레나의 행동이 친구 나쓰키의 편지 하나로 밝혀진다는 점에서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으며, 할머니의 가스라이팅도 복선은 잘 짜여져 있지만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과대평가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선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화자 아야노를 내세워 어설픈 휴머니즘 드라마로 만들기보다는, 복수의 쾌감이 느껴지는 하드고어 복수 포르노로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을 겁니다. 아야노 대신 처절한 복수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인물을 등장시켜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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