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중국사 - 장징 지음, 장은주 옮김/현대지성 |
물론 생각대로 당시 시대상과 역사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탄탄한 사료 기반 설명들 덕분입니다. 대표적인게 개고기에 대한 설명입니다. 중국 요리에 대해서는 "다리 4개 달린 건 책상과 의자 빼고 다 먹고 다리 둘 달린 건 사람빼고 다 먹으며 하늘의 전투기, 땅위의 탱크, 바닷속의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있을 정도로 온갖 식재료를 먹기 때문에 개고기도 식용으로 널리 퍼졌으리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오래 전에는 가장 많이 사육한 가축이자 춘추전국 시대에는 제사에 쓰였고, 심지어 유방의 부하 번쾌는 구도(개잡이)였을 정도로 널리 먹었지만 현재는 알려진 조리법이 극단적으로 적을 정도로 먹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북방 유목민이 개를 좋아했는데, 북망 유목민 세력이 강해지면서 서서히 개고기 식용 습관이 쇠퇴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육조시대 때부터 '개를 먹으면 벌이 내린다'는 동물관, 식습관이 등장했고 이후 당대, 송대에 지속적으로 쇠퇴하다가 유목민 왕조인 원대에는 심지어 개고기가 몸에 나쁘다는 이론마저 득세하여 개고기 식용 습관을 거의 끝장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명대 기록에 따르면 개고기는 천한 사람들만 먹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네요. 세력의 변화에 따라 식문화마저 변해버린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돼지고기 인기가 떨어지고 양고기 인기가 높아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노족의 남하, 그리고 거란의 요나라 세력이 중원에 미친게 원인이니까요. 거란족은 평소에 양고기를 많이 먹고 제사에도 사용할 정도라, 이 식문화가 중원에 전파된 것이지요.
원래 중국인들은 알곡을 먹었는데, 밀가루를 먹게된건 한대. 장건의 서역 방문으로 전래된게 아닐까라는 추측도 그럴싸 했습니다. 마르코폴로에 의해 국수 문화가 이탈리아에 전파되어 스파게티가 되었다는 설과 왠지 비슷하네요. 물론 이 설은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속설로 널리 퍼진건 그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인데 장건 서역방문설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특정 요리로 주요 세력이나 외교를 엿볼 수도 있고, 고대에 회가 많았던 이유에 대한 설명처럼 당시 시대 상황을 요리로 알려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음식을 가열하려면 손이 많이 갔으며, 고대에는 그릇도 전부 도기라서 찌거나 조리는 조리법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도기는 열 전도율이 낮아 가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생식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즉, 고대에는 '에너지'를 잘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는 겁니다(당연하지만요).
요리와 음식, 재료별 사료를 통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몇가지를 소개해드리자면,
'노나라 애공은 공자에게 복숭아, 기장법을 먹도록 권했다. 공자는 먼저 기장밥을 먹고 그 다음 복숭아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일동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다. 기장밥은 먹는게 아니라 복숭아털을 벗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자는 "기장은 오곡 중 가장 으뜸이라 조상의 제사를 모실 때도 최상의 제물로 쓰입니다. 하지만 복숭아는 여섯 가지 나무 열매 중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군자는 천한 물건으로 귀한 물건을 벗길 수는 있으나, 그 반대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공자의 말주변을 잘 알 수 있는 고사네요. 그런데 기장 밥으로 복숭아 껍질을 어떻게 벗기는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완탕과 교자의 차이도 재미있었습니다. 우선 교자피는 둥글고 완탕피는 사다리꼴입니다. 물교자는 삶아서 그대로 접시에 담아 먹지만, 완탕은 간을 한 국물에 넣어 먹고요. 완탕은 피에 간수를 넣지만 교자는 소금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자는 소를 넣고 피를 붙이지만 완탕은 먼저 붙이고 비튼다는데, 이 마지막 차이점은 그림으로 설명해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먹어본 완탕은 피에 소를 넣고 붙이는 방식은 똑같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갈공명의 만두 기원설은 속설이라고 합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교자는 당대 발굴된 것으로, 투루판 지역에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사료들에 등장하는 '혼돈'은 완탕으로 알려져 있지만 원대 문서에 나온 조리법을 보면 교자라고 하고요. 의외로 군교자(군만두)는 비교적 최근 음식입니다. 남송 중궤록에 언급되어있다고 합니다.
상어 지느러미는 연골 부위로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급 요리가 된 건 질 좋은 육수로 걸쭉함을 더해 육수의 진한 맛이 연골에 스며들고 지느러미 사이에 배게하여 만들어낸 농후한 맛과 독특한 혀의 감촉 때문입니다. 젤라틴같은 매끄러움과 야들야들함에,삶아도 남아있는 연골 탄력을 통해 환상적 식감을 제공하지요. 그러나 의외로 역사는 40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고, 전국에 퍼져 진미로 극찬받은건 청나라 중기로 겨우 300년 전이라고 합니다. 요리법이 고도로 발달해야 하는 요리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역사가 짧은건 북경오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경오리의 원형은 오래되어야 남송 시기이며, 재료인 진압이라는 품종 사육도 명대에나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북경오리를 만든 원조집 편선방은 1869년 개점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북경오리점 전취덕은 1901년 개업했고요. 흔하디 흔해서 오래되었을 것 같은 피단도 명 말기에나 등장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피단의 식용 역사는 고작 300여년 전에 그친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젓가락 사용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이라던가 -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지 않았다. 음식을 집을 때만 젓가락을 사용했다. 국도 채소가 든 것은 젓가락으로 먹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예기"에 쓰여 있다. - , 원래 다양한 요리법이 있었지만 '볶음'요리가 중화 요리의 대세가 된 조리법의 흐름과 같이 재미있는 주제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목차가 연대순이 아니고, 설명도 두서가 없는게 많은건 아쉽습니다. 이렇게 쓸 바에야 그냥 "중국요리 백과사전"처럼 특정 요리에 집중해서 설명해주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판이 거의 전무하다는 단점도 크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외에도 젓가락 사용에 대한 역사적인 흐름이라던가 - 춘추전국시대만 해도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지 않았다. 음식을 집을 때만 젓가락을 사용했다. 국도 채소가 든 것은 젓가락으로 먹지만,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예기"에 쓰여 있다. - , 원래 다양한 요리법이 있었지만 '볶음'요리가 중화 요리의 대세가 된 조리법의 흐름과 같이 재미있는 주제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목차가 연대순이 아니고, 설명도 두서가 없는게 많은건 아쉽습니다. 이렇게 쓸 바에야 그냥 "중국요리 백과사전"처럼 특정 요리에 집중해서 설명해주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판이 거의 전무하다는 단점도 크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