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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5

침대특급살인사건 - 니시무라 교타로 / 윤정규 : 별점 2.5점

침대특급살인사건 - 6점
西村京太郞 지음/추리문학사

총기사고로 면직된 전직 경찰 다나베가 사립탐정 업무를 시작한 뒤 어느 날, 한 부인이 자신의 임신한 딸을 에스코트해 줄 것을 의뢰했다. 그는 부인의 딸 유미꼬와 같이 오사카에서 사세베까지의 여행을 떠났지만 그가 의뢰를 완수한 직후, 공갈범 전과가 있는 기구찌 이사오가 살해당했고 피해자의 책상 서랍에서 다나베가 에스코트 의뢰를 수락한 뒤 작성했던 영수증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영수증을 확보한 뒤 전직 경찰관 다나베가 기구찌를 협박한 증거로 삼아 다나베를 검거했다.
 다나베는 사건 당일 사세베까지의 여행했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후미꼬와 유미꼬 모녀에게 증언을 요구했지만 모녀는 다나베를 모르는 사람으로, 오히려 유미꼬를 귀찮게 쫓아 다니던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다. 다나베에게 걸린 혐의는 점점 깊어지던 와중에, 과거 다나베의 상사였던 도쿄 경찰청 수사 1과의 토츠가와 경부가 옛 부하를 구해주기 위해 사건에 뛰어드는데... 

여정 미스터리의 달인이라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입니다. 기차 시간표 트릭이라는 전통적 소재를 등장시킨 대표작을 작가별로 따져본다면 마츠모토 세이쵸에게는 "점과 선"이, 모리무라 세이이치에게는 "신간센 살인사건"이 있고 니시무라 교타로에게는 이 작품이 있는 것이겠죠. 예전에 읽었었지만 책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분명 예전 처음 읽었을 때에는 괜찮았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띄거든요. 물론 장점도 존재합니다. 저자가 기차 시간표를 늘어놓고 알리바이를 구상하는 장면이 상상될 정도로 소설의 가장 중요한 트릭인 기차 시간표 트릭은 아주 괜찮고, 모녀에 의해 다나베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궁지에 몰리게 되는 상황은 꽤 치밀해서 설득력이 높거든요.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연상케 하는 재미도 느껴졌고요.
토츠카와 경부가 직접 발로 뛰면서 수사하여 오로지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는 전개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약간 사회파스러운 분위기로 불필요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굉장한 악녀들인 두 모녀의 설정은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과거의 불우한 경험때문에 돈에 대한 엄청난 집착과 인간성이 상실되었다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떠오르는데, 훨씬 앞선 시기에 손에 잡힐 듯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그러나 단점도 너무 명확합니다. 우선 어수룩한 사립탐정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하는 모녀가 그 사립탐정이 전직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워요. 이 때문에 그가 예전에 근무했던 도쿄 경찰이 사건에 뛰어들며, 이후 범행 사실이 쉽게 발각되는 이유가 되어 버리거든요. 작전의 핵심은 마나베를 옭아매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치밀한 사전 조사와 준비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전직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기구찌 이사오와 모녀와의 관계도 조금만 조사하면 쉽게 드러나는 동기가 있고, 결국 밝혀진 동기와 과거 때문에 다른 살인 사건들마저 발각된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또 관련자들을 전부 죽이다보니 이래저래 너무 많이 죽이게 되는데, 모녀가 살인을 통해 어느 정도 이상의 재력을 손에 넣었다면 청부 살인쪽을 고려하는게 당연합니다. 복잡한 알리바이 트릭을 써가며 몸으로 직접 해결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워요. 누군가를 시킨다면 그 누군가의 입을 막아야 할 필요가 생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요. 

덧붙이자면 기차 시간표 트릭 자체는 괜찮긴 한데 결국 기차를 경찰관들이 "한번만" 타 보고 바로 진상을 꿰뚫는다는 점에서는 좀 허무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에 나오는 27분 밖에 없는 시간의 갭이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오기에 별로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약점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역도 깔끔하고 어느정도 재미도 있지만 저자가 알리바이 트릭을 먼저 개발(?)하고 그 이후에 플롯을 가져다 붙인 듯한 어색함도 느껴지는, 범작 수준에 머무른 작품입니다. 허나 이런 정통 기차 시간표 트릭의 교과서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한 만큼 이쪽 장르물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25/03/14

기차 시간표 전쟁 - A.J.P. 테일러 / 유영수 : 별점 4점

기차 시간표 전쟁 - 8점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페이퍼로드

이 책은 1914년 7월 위기 속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원인을 독창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전쟁사 - 미시사 서적입니다. 

저자는 전쟁이 단순한 외교적 실수나 강대국들의 야망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된 기차 시간표와 병력 동원 계획의 불가피한 결과였다고 주장합니다. 주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 각국은 철도를 활용한 신속한 군대 동원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동원을 빠르게 마쳐야 했고, 이에 따라 병력과 군수물자를 정해진 시간과 경로에 따라 이동시키는 계획이 점점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병력과 수천 대의 열차가 동원되는 만큼, 계획이 한 번 실행되면 중단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가 암살되면서 유럽 각국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고, 각국은 병력 동원을 상대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는데, 일종의 힘을 과시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동원이 시작되면 이를 멈출 방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독일은 양면전 가능성을 고려해 먼저 프랑스를 공격해야 했고, 다른 나라들도 부분 동원만으로는 전면전에 대비할 수 없어 연쇄적으로 동원에 돌입했습니다. 결국, 상대를 위협하려던 동원 계획이 오히려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당시의 복잡했던 동맹 및 외교 관계도 전쟁 발발의 한 원인입니다. 유럽 열강 간의 동맹 구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가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삼으려 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독일은 이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프랑스는 독일과의 타협을 원했으나, 영국이 이를 반대하며 개입했습니다. 결국 독일과 프랑스는 영국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이루었는데, 이 과정에서 영국의 영향력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 문제를 놓고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다른 열강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먼저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명확한 대응 방침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는 발칸 문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독일이 터키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며 세르비아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점차 기울었습니다.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였고, 영국은 세르비아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으며,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세르비아 정부는 발칸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러시아의 지지를 확인하기 위해 더욱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군을 동원하면서 전쟁 위기가 현실화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전쟁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했습니다. 독일 황제는 세르비아가 제시한 조건을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전쟁 준비가 진행된 후였습니다. 결국 1914년의 전쟁 위기는 단순히 사라예보 사건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외교적 계산과 강대국들의 경직된 대응으로 인해 확대된 것입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대규모의 군사 동원이 곧바로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각국의 황당하고 순진했던 생각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탁상공론과 연구만 오갔던 무능했던 각국 군사 작전 계획들도 한 몫 단단히 했고요. 다들 말도 안되는 동원 계획 등으로 꿈만 꾸고 있었다는걸 잘 알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슐리펜이 여러 해 고심했던 슐리펜 계획 - 독일 제국군이 벨기에를 통과하여 북부 프랑스로 진격하는 계획 - 은 프랑스도 이미 알고 있었다던가, 슐리펜이 오랫동안 연구를 했음에도 프랑스가 어느 때인가 알아차리고 길을 막을 거라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웃음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생각과는 다르게 전쟁이 일어난건 외교를 맡은 관료들 책임이 크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연합국이 전범으로 지목했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야말로 '베오그라도 정지'를 제안하는 등 전쟁을 피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시도를 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더라고요. 소위 군국주의 군주들을 온화하고 선의를 가진 이들이었으며, 정치가들이 말한 바를 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모든 결정권이 군주들에게 맡겨졌다면 전쟁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게 아이러니합니다. 

1차 대전 불씨를 당긴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 사건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왜 암살을 시도했는지 - 독일인과 마자르인들이 나머지 민족을 지배했는데, 마침 세르비아가 터키에 대항해 독립 전쟁을 일으켜 승리했었기 때문에 - 부터, 세르비아 장교들의 비밀 결사 '검은 손'이 암살범 프린치프에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었고 -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왕국의 수상 파시치를 실각시키기 위하여 -, 처음 폭탄 투척 사건에서는 암살에 실패했었지만 대공이 부상자들을 방문하려고 병원으로 갈 때 암살당했다는 사건의 진행 과정과 결과는 물론 범인 일당에 대한 재판 결과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일당은 사형당했지만, 미성년자였던 프린치프는 사형을 면했다고 하네요. 수백만 명이 죽은 미증유의 전쟁을 일으켰다는 책임감을 안고 여생을 보냈을지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이유를 색다른 시각으로 풀어주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도판도 충실하고, 책의 장정과 디자인 모두 빼어납니다. 다만 '기차 시간표'가 중요한 핵심 소재는 아니고 일종의 키워드로 사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전쟁의 시작까지만 다루고 있어서 관련된 인물들과 국가들의 결말은 다른 경로로 알아 보아야 한다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1차 세계 대전에 대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3/08/21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 시마다 소지 / 이연승 : 별점 2.5점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이연승 옮김/해문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즈코라는 여성이 얼굴 가죽이 벗겨진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수사에 의해, 살해 추정 시각 이후에, 지즈코는 도쿄에서 출발하는 침대특급 하야부사에서 목격되고 사진까지 찍혔다는게 드러났다. 사건을 담당하는 요시키 형사는 일본을 종단하며 사건의 해결과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지즈코의 불우한 가정환경에 대해 알아내는데...

그간 격조했네요. 이번 회사에 입사한 이후 가장 긴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이 작품은 미타라이에 이은 작가의 두 번째 시리즈 캐릭터 요시키 형사 시리즈입니다. 딱히 취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작가인데, 제목을 볼 때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물로 생각되어 휴가 중 읽을거리로 선택한 작품입니다. 이 장르,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읽어보니 단순한 알리바이 트릭물은 아니더군요. 9시 37분에 나고야에 도착하는 하야부사가 겨우 6분의 차이로 마지막 상경 신칸센을 도쿄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게다가 승객의 대다수가 슬슬 잠자리에 드는 시각에 잡을 수 있는 유일한 1인 침대 객실까지 달린 블루트레인이라는 것을 이용한 전형적인 알리바이 트릭으로 시작하지만, 알리바이를 계획한 지즈코가 되려 살해당하면서 사건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마다 소지의 야심(?)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마츠모토 세이초, 모리무라 세이이치, 니시무라 교타로 같은 선배들과는 다른, 뻔한 기차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어!

그러나 야심은 컸으나 문제도 역시 큽니다. 먼저 지즈코의 동기는 딱히 와닿지 않아요. 어머니와 두 자매를 모두 농락한 소메야는 죽어도 싼 놈이기는 하나, 이렇게 복잡한 트릭까지 써가며 살인을 계획하느니 공론화시켜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게 일반적인 방향이겠죠.

게다가 이후 소메야의 행동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즈코의 얼굴 피부를 벗긴 이유입니다. 시체의 정체를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 행위로 바뀐 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덕분에 쌍둥이설 같은 곁가지 추리만 난무하며 작품만 쓸데없이 길어지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소메야가 정말로 천재적인 직관력으로 지즈코의 알리바이 트릭을 한 번에 간파했다면, 그래서 준코를 이용하여 지즈코의 행적을 남길 의도였다면, 본인의 알리바이를 확실하게 한 다음에 지즈코의 시체를 철저하게 은닉하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었을 겁니다. 여행 중 실종, 사망한 것으로 처리될 가능성도 높잖아요?

마지막의 진상과 약간의 반전은 그야말로 작위적인 추리쇼에 불과해서 더욱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러한 쇼를 벌인 이유가 철저하게 집을 수색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그야말로 억지였고 말이죠.

그래도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철도 시간표를 철저하게 연구한 알리바이 트릭은 교과서적으로 잘 짜여진 트릭입니다. 이후의 작위적인 전개도 순수한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고요.

일본을 거의 종단하다시피하면서 사건을 추적하는 요시키의 모습에서, 니시무라 교타로의 아사미 미츠히코로 대표되는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많이 나는 것도 괜찮았어요. 도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여정 미스터리가 되는 과정이 신기한데, 잘 그려낸 것 같습니다.

각 지역의 형사들과 연계하여 단서를 얻어가며 수사하는 장면에서의 고전적인 형사물 분위기 역시 좋았고요.

덧붙이자면, 비인간적으로 여겨지는 미타라이보다는 출중한 외모 외에는 평범한 형사로 보이는 요시키 형사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작위적인 부분은 아쉬우나 읽는 재미는 충분했어요. 더운 여름 읽을거리로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생각됩니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추리물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3/08/12

철교 살인 사건 - 로날드 녹스 / 김예진 : 별점 2점

철교 살인 사건 - 4점
로날드 녹스 지음, 김예진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스턴 오트빌에서 골프로 친해진 4인방은 어느날 라운딩 중 시체를 발견했다. 피해자는 골프 클럽 멤버 중 하나인 브라더후드로, 파산한 뒤 도주하다가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 같았다.
사체에 여러가지 수상한 점 - 모자가 시체 옆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점, 시계를 두 개나 들고 있었던 점, 소지하고 있던 이상한 메모 등 - 이 있었기 때문에, 4인방 중 전 군사정보부 소속 군인이었던 모던트 리브스는 고든과 함께 사건 수사에 뛰어들었다. 
메모의 기묘한 숫자가 암호라는건 알아냈지만, 열쇠가 될 책의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던 중, 또다른 골프동료 카마이클이 브라더후드와 대브넌트가 동일인물이라는 대담한 추리를 내 놓았고, 뒤이어 리브스의 방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것까지 꿰뚫어보았다. 비밀 통로에 숨어 있던건 바로 대브넌트였다!

'녹스의 십계'로 유명한 추리 작가 로널드 녹스의 장편. 제목 그대로 철교에서 떨어진 사체에 대해서 등장인물들이 여러가지 추리를 펼치는 고전 본격물입니다. 리브스, 고든, 카미이클과 매리어트 4인방이 각자의 추리를 추리쇼처럼 선보이는데 상당히 논리적이며, 중간중간에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 등 볼거리도 많습니다. 몇 대 없는 기차를 가지고도 시간을 잘 이용해서 그럴듯한 트릭(?)을 만들어 낸 솜씨는 확실히 비범했어요. 단서들 역시 공정하게 제공되는 편이고요.

탐정인양 사건에 뛰어들어 이상한 단서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남겨진 메모가 암호라는걸 알아내는건 모던트 리브스인데, 브라더후드와 대브넌트가 동일인물이라던가, 리브스 방에 누군가 침입해서 암호문을 훔쳐간건 비밀 통로를 통해서였다는 등주요 추리를 내 놓는건 카마이클이라는 캐릭터 설정도 재미있었습니다거든요. 이 중에서도 리브스 방에 어떻게 침입했는지를 껌으로 알아내는 장면은 백미였습니다.
리브스도 데브넌트가 체포된 후, 렌들스미스 양의 꼬임(?)에 넘어가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리를 펼친다던가, 4인방 중 한명인 목사 매리어트가 범인일거라는 대담한 추리를 선보이기는 합니다만, 두 가지 추리 모두 무리수가 많다는 점에서 카마이클의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추리와 함께 선보이는 영국식 유머도 재미납니다. <<사키>>같은 유머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두 번째 문단에서 특정 지역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작가는 결코 신뢰해서는 안 된다.", "자넨 아일랜드 인이 평범한 의문문에 '예'나 '아니오'로 대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나?", "캐디들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잘 알잖나.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도덕의식이 결핍되는 법이지." 등 영국 부르주아들의 고집과 편견(그리고 싸가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골프에 미친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신랄합니다. 클럽 멤버였던 브라더후드 장례식 순간에도 "오후 라운드를 돌아야 하니까 시간을 맞춰달라"고 요구한다던가, "땅을 공 치기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밖에 평가하지 않는다"는 등으로요. 심지어 리브스는 매리어트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다가 큰 실수를 할 뻔 한 뒤, "미래의 나를 골프에 바치려고, 골프만 할 거야. 오로지 골프." 라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이 정도 되면 유머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낡은 소설임은 분명합니다. 핵심 줄거리가 모호해서 소설적인 완성도도 낮고요. 전개 과정에서 작위적인 요소도 많습니다. 갓 조사를 시작한 아마츄어 리브스와 고든이 온갖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렌들스미스 양이 피해자 브라더후드의 숨겨진 부인이며, 데브넌트가 그녀를 흠모하고 있었다는 인물 설정도 지금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낡아 빠졌어요.
 쓸데없는 이야기도 너무 많습니다. 앞서의 영국식 유머도 재미있다고 했지만, 너무 과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단서를 그러모아 공들인 추리를 펼친다기보다는 그냥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하나씩 툭 툭 던지는 느낌이에요. 별다른 근거없이 각자 그럴듯한 가정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추리들도 재미있다기 보다는, 그냥 기차 시간표가 있어서 내 놓는 아이디어에 불과해 보여요. 복잡하기만 할 뿐 작품에 잘 녹아들어 뭔가 재미를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데브넌트가 범인이라는 진상도 좀 어이가 없었어요. 일단 범행의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데브넌트는 암호로 된 협박문을 보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브라더후드가 파산한건 명백한 사실이라 그가 자살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여전히 유효하고요. 그래도 데브넌트는 동기도 확실했고 행적도 수상했던건 맞습니다. 그래서 그가 체포된 시점에서 이야기는 끝난거나 다름없어요. 매리어트 범인설과 같은 황당한 추리는 무의미한 사족이었습니다.
추리쇼 중심이라 드라마도 별 재미가 없습니다. 중간에 리브스와 고든이 함께하는 비밀통로 탐색, 이후 도주하는 데브넌트 추격, 마지막에 매리어트가 범인인지 알아내기 위해 리브스 방으로 유인한 뒤 이를 몰래 지켜보는 장면 정도에서만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알려지지 않았던 옛 고전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은 크지만, 시대를 뛰어넘을만한 걸작은 아니었습니다. 잊혀진 작품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2014/03/05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5점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시공사

아사쿠사의 건어물 가게에서 소비세 12엔을 내려 하지 않던 노인이 가게 주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범인이 명확해서 사건은 쉽게 종결될 수 있었지만, 노인의 범행 동기에 석연치 않은 점을 느낀 요시키 형사는 수사 끝에 사건이 30여 년 전 있었던 기이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사회 고발 의식이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범인인 나메카와 — 여태영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된 조선인으로 본인과 가족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걸 드러내는게 작품의 핵심이라는 점이에서요. 여태영의 인생은 일본 때문에 그야말로 기구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꼬일 대로 꼬여서 불행의 극을 달리기에 굉장히 처절한 느낌을 전해줄 뿐 아니라, 작중에서 "전쟁 탓이라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도리에 어긋난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진정한 일등 국가가 못 될 것이다"라고 일갈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심각한 상황인데, 일본인이 사죄해야 한다는 글을 보니 작품 완성도와는 별개로 무척 반갑더군요.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감정이입이 용이하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또 "누명"이란 무리한 질서 유지 혹은 치안 유지의 결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지 않기 위한, 이른바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정의라는 명목의 불합리한 폭력'이며, 데이코쿠 은행 사건, 시마다 사건, 마루쇼 사건, 무레 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누명을 썼다고 확신한다고 작중 인물인 하타노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점, 일종의 파시즘적인 광기를 비판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파적 사회 고발로 볼 수 있습니다. 단체로 광기를 벌이지 않으면 일본인은 타인을 죽이는 전쟁을 거국적으로 행할 기력을 일으킬 수 없는 인종이라고 단정짓는데 상당히 그럴듯했어요.

그리고 요시키 형사 시리즈가 다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준다는 게 특이했는데, 홋카이도나 센다이는 물론이고 도쿄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감성으로 접할 수 있으니까요. 첫 사건이 벌어지는 아사쿠사라던가 요시와라, 구레시타 노인의 산책길인 세이로카 병원 – 쓰쿠타오하시 다리 근처에 대한 묘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사쿠사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한 번 가 보고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여행도 갔다 온 지 참 오래되었군요.

아울러 거의 50여 페이지에 걸쳐 에도시대 요시와라 유흥 문화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도 현학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시키 형사가 피해자의 과거 근무처였던 요시와라를 탐문하며 요시와라와 에도시대 유곽 문화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식인데, 디테일이 상당한 수준이었거든요. "에도 일본"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상세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사회파, 여정 미스터리, 현학적 요소 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명성에서 기대했던 신본격 추리소설로의 가치는 기대 이하라 아쉽습니다.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사건만 놓고 보면 스케일 크고 전개도 꽤 흥미롭긴 합니다. 열차 안에서 피에로가 화장실에 틀어박혀 권총 자살을 하였는데 그 직후 시체가 사라졌다, 투신 자살로 머리가 잘린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다,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가 기차가 탈선했다는 등의 상상하기 어려운 불가능 범죄가 연이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가능 상황에 여름벌레의 날갯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빨간 색으로 눈이 빛나는 거인이 보였다는 등의 기이함도 더해져 있고요.

하지만 밝혀진 진상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피에로 사건만 해도 여태영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는게 동기라는고 설명되데, 여태영은 그냥 도망쳤어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여태명과 아라마사의 시체가 함께 발견되면 서로 싸우다 죽은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을 테니까요. 아니면 여태명의 시체만 중간에 숨기고 그냥 삿쇼선을 타고 도주하면 되잖아요? 어릿광대가 여태영이라는 게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 여튼 들인 노력에 비하면 얻은 게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아라마사 사건의 경우 여태영은 용의선상에조차 오르지 않았으니 완벽한 뻘짓이었어요.

게다가 열차의 탈선은 순전히 우연이었고 거인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중에서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인 결과"라고 설명될 정도로 우연에 기인한 현상으로, 불필요한 장치였습니다. 이야기의 복잡성을 더하기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에요. 어차피 독자가 여태영 – 여태명 형제의 존재를 알게 되면 투신 자살한 시체와 트릭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기차 시간표가 등장하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고, 오히려 공정한 추리를 방해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지도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핵심 트릭이 뒤늦게 밝혀지는데, 그 동네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법한 트릭이라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게 외려 더 이상했습니다. 참고로, 조금 이채로웠던 것은 우시코시 형사가 요시키와 만나기 위한 편지에서 기차 시간표를 보고 어떤 기차 몇 호를 타라고 지정하는 문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뼛속까지 기차 시간표 형사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좀 웃겼어요.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지니 나메카와(여태영)가 처음에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것도 그닥입니다. 소비세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하거나, 과거 사건의 복수 때문으로 밝혀지거나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아라마사를 죽인 것 때문이라면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상황은 충분히 정상 참작을 받을 만한 것인데... 왜 치매에 걸린 것처럼 위장해서 입을 다물었는지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초절정 미소녀였던 사쿠라이가 30년이 지난 뒤 폭삭 삭아버린 것에 대해서 설명이 없는 것도 조금 의아한 점이었고요.

그리고 일본 연호로 연도를 표시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국내 독자를 위해 모두 현대의 서력을 병기하여 주는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은 어색한 문체, 예를 들자면 "신호에 멈추어 섰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강이었다. 바람에 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벚꽃 냄새와 비슷했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학생처럼 보이는 옆에 선 젊은이의 어깨 밑에 가려질 정도로 키가 작았다"와 같은 묘사는 신호에 멈춘 것과 벚꽃 냄새, 노인의 체구를 두서없이 나열한 느낌이고요. 보다 깔끔하게 "신호가 빨강이라 멈추어 섰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가 느껴지는 봄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라는 식으로 정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뭐 제가 문체를 지적할 수준의 전문성이 있는건 아닙니다만.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사회고발적인 성격은 높이 평가할 만하고 특히 강제 징용 조선인에 대한 부분은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시마다 소지의 또 다른 면을 접한 것도 반가왔고요.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가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치고는 알맹이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일본인 작가가 반성의 의미로 쓴 "강제 징용된 조선인"에 대한 텍스트로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시마다 소지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2/12/04

"시간표 트릭"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확립한, 만족도 높은 철도 미스터리 걸작들.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입니다. 그런데 소개작 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기차 시간표 트릭이 사용된건 아니니, 제목은 조금 잘못된 셈입니다. 기차가 주요 무대이자 소재인 작품들이라고 하는게 맞았을거에요. 아니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빼고, 니시무라 교타로 작품을 넣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움직이는 밀실'이라고 하는 점이 소재로서도 다루기 쉽기 때문일까요? 열차는 미스터리의 무대로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초 단위의 정확한 운행을 이용한 '시간표 트릭' 이라는 독자적인 미스터리 문화도 탄생했지요. 차내에 숨어있는 범인, 시간표가 만들어내는 알리바이...... 여행의 과정보다는 수수께끼 풀이에 비중을 두고 있는 철도 미스터리, 그 걸작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의 수많은 대표작 중에서도 여러 번 영상화된 덕분에 특히 유명한 작품. 터키에서 프랑스행 오리엔트 특급을 탄 명탐정 푸아로가 열차 안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우한다는 이야기. 푸아로는 용의자들의 철벽 알리바이를 대화라는 무기로 무너뜨린다. 수수께끼 풀이의 순도가 높은 미스터리 작품.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초
일본 미스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시간표를 사용한 '알리바이 트릭', 그리고 현실적인 배경과 사회성을 가진 사건을 그린 '사회파 미스터리'의 융합은 이후 미스터리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60년 이상 전에 쓰여진, 고전 중 고전인 철도 미스터리.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인형을 이용한 연쇄 예고 살인에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도전하는 다카기 아키미츠의 대표작 중 하나. 첫 사건은 단두대에서 인형의 목이 잘린 후, 두 번째 사건은 열차에 인형이 치인 뒤 똑같이 실행된다. 제목인 '인형이 왜 살해되는지?'가 작품의 핵심이며, '독자에 대한 도전장'까지 포함되어 있는, 범인 찾기의 흥취를 즐길 수 있는 걸작.

<<검은 백조>> 아유카와 데쓰야 : 국내 미출간
철도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알리바이 트릭을 이용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창조한 '오니츠라 경부' 시리즈 중 하나. 살인 사건 수사선상에 떠오른 용의자를 오느츠라 경부가 꾸준한 수사를 통해 조금씩 몰아붙인다. 맹점을 찌르는 시간표 트릭에 논리적인 추리가 합쳐진 추천작.

<<신칸센 살인사건>> 모리무라 세이이치
<<인간의 증명>>, <<고층의 사각>> 등으로 알려진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발표한 첫 번째 철도 미스터리. 신칸센 열차내에서 발견된 시체는 엑스포 이권을 두고 다투고 있던 연예 프로덕션 실력자였다. 용의자는 후속 차량에 승차하고 있어 범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연예계의 어두운 부분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

2024/06/15

살인의 쌍곡선 - 니시무라 교타로 / 이연승 : 별점 2.5점

살인의 쌍곡선 - 6점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야카와 혼자서 운영하는 도호쿠의 외딴 호텔 '관설장'에 회사원인 예비 부부 교코와 가쓰로, 역시 회사원인 야베,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아야코, 범죄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이가라시, 택시 운전사 다지마가 초대되었다. 누군가 설상차를 망가트리고 전화선을 끊어서 고립된 상태에서, 야베를 시작으로 한 명씩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범행 현장에는 복수가 이루어졌다는 메시지와 함께 원에 사선을 그은 기묘한 부호가 그려진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하야카와, 교코, 아야코만 살아남은 상태에서 운 좋게 전화가 연결되어 경찰과 취재 기자들이 곧바로 찾아왔지만, 관설장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으로 유명한, '여정 미스터리'의 거장 니시무라 교타로의 초기 장편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은 명성에 걸맞는 여정 미스터리, 기차 시간표 트릭이 활용되었었던 반면, 이 작품은 비교적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에 가깝습니다. 특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많이 의식하고 있다는게 눈에 뜨이네요. 고립된 공간에서 한 명씩 차례대로 살해당한다는 점, 그 때마다 볼링핀이 사라지고 메시지가 남겨져 있다는 설정은 거의 똑같거든요.

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오마쥬했다는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와 같은 질낮은 졸작은 아닙니다.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은 덕분입니다. 특히 '고립된 호텔에서 범인은 투숙객들을 전부 죽이고 어떻게 도망쳤는지?'에 대한 트릭이 일품이었습니다. 설명드리자면, 범인 하야카와 형제는 쌍둥이였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이 호텔 지배인으로 변장하고 투숙객들을 살해했지요. 그리고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보를 외부에 흘려 경찰과 기자들이 출동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기자로, 처음에는 경찰과 다른 기자들과 함께 호텔로 달려왔지만 호텔 앞에서 은근슬쩍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호텔에 남아있던 범인이 기자인 척 했던 겁니다. 지금 읽어도 그럴싸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앞서 작가가 '쌍둥이를 활용한 트릭을 사용했다'고 직접 밝히고, 본문에서도 쌍둥이 고시바 형제가 강도 행각을 벌이지만 경찰이 체포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호텔 연쇄 살인 사건과 겹쳐 진행시켜 트릭을 독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전개도 괜찮았습니다. 작가가 활용한 쌍둥이 트릭 이야기는 하야카와 형제 탈출 트릭이 아니라 고시바 형제 사건에 사용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시바 형제의 강도 행각과 형제를 뒤쫓는 경찰과의 밀땅도 재미있었고요. 
참고로, 이 트릭은 도진기 작가의 "악마의 증명"에 사용되었던 트릭과 같습니다. 당시 모 드라마와 표절 시비가 있었던 듯 한데, 애초에 특별히 오리지널임을 내세울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이네요....

여기에 더해, 아야코가 범인임을 의심하게 만든 초대장 필적과 유서 - 초대장은 이가라시가 필적 감정을 한다며 모두에게 쓰게했고, 유서는 첫 날 일종의 내기 결과에 따른 자필 문장이었을 뿐 -를 확보한 방법, 다지마가 스키를 부쉈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 등도 괜찮았습니다. 아야코 범인설을 보도하여 하야카와가 기자를 사직하게 만든 결말-진짜 기자가 아닌 가짜였으니-까지 안배한건 보통 솜씨가 아니에요.

하지만 추리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낮습니다. 작가의 묘사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호텔에 갇혀 살해당하는 피해자들의 심리가 그려지지 않아서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교코는 약혼자가 눈 앞에서 살해당하기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각 등장인물들의 매력도 제대로 그려져있지 못합니다. 깔끔하고 담백한건 좋지만, 이 작품은 너무 과했습니다.
범인 하야카와 형제가 이런 거창한 범행을 벌인 동기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만원 전철에서 쓰러진 어머니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을 살해했다는게 말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무려 6명(정확하게는 7명이지만요)을 살해할 정도의 동기인지는 설명해 주었어야 합니다. "상복의 랑데뷰"처럼요. "상복의 랑데뷰"는 짤막하게나마 연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알려주고, 그 뒤 이어지는 복수극 과정에서도 1인칭 심리 묘사를 삽입하여 복수와 범행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었지요. 이 작품도 그런 묘사가 반드시 나와 주었어야 했습니다.

고시바 형제가 벌인 강도 행각도 소소한 부분들은 억지스러웠습니다. 괜히 얼굴을 드러내고 범행을 저지를 필요는 당연히 없었습니다. 얼굴을 드러내서 형제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게 밝혀졌으니까요. 쌍둥이라서 당장 체포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체포는 시간문제에 불과했습니다.
고시바 형제도 복수 대상이어서 강도짓을 제안하고 체포되게 만든다는 전개도 억지스러웠으며, 고시바 형제 사건에 휘말린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하야카와의 가면을 벗기는 마무리도 작위적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추리적으로는 나무랄데없지만, 완성도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작가의 다른 졸작들에 비하면 눈이 부실 정도의 좋은 작품입니다. 명성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네요. 분량도 짧은 편이니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08/04/18

너를 노린다 - 마쓰모토 세이쵸 / 문호 : 별점 3점

너를 노린다 - 6점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문호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쇼와 전기 제작소 과장 다쓰오는 어음 사기에 말려들어 자살한 직장 상사의 복수를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어음사기단 조사에 착수했다. 몇 안되는 단서 중 최초 어음 사기단과 차장을 연결해 준 야마스기 상사, 그 중에서 연락책 역할을 담당하는 듯한 우에자키 에쓰코라는 여성에게 주목한 다쓰오는 몇번의 미행 끝에 우익의 신예 거물 후네자카가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친구인 신문사 기자 다무라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사건에 깊숙히 개입한 둘, 그리고 회사의 부탁으로 나름의 사건 조사를 진행하던 세누마 변호사와 그의 부하 다루마가 납치-살해되는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결국 놀라운 진실을 마주하는데...

사회파의 시작이자 거두 마츠모토 세이쵸의 장편 소설입니다. 원제는 "눈의 벽"입니다. 번역 제목이 굉장히 난데없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건, 나름 대표작 취급을 받고 있기도 하고, 정통 사회파 추리물에는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라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이쵸 같이 다작 작가는 초기작이 후기작보다 훨씬 뛰어난데 이 작품의 경우는 실질적인 장편 데뷰작이라서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일단 일반적인 사회파 작품들과는 다르게 경찰(또는 경찰 출신 인물)이 아닌 일반 직장인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수사"에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있는 사회파 작품들에 비한다면 아무래도 "수사" 부분에서의 정교함이 떨어지는 느낌이 많이 든다는건 단점입니다. 또한 다쓰오가 초반부터 단 한번의 미행으로 사건의 배후 인물을 눈치챈다는 설정, 여러가지 단서가 우연에 기반하고 있는 전개는 솔직히 너무 쉽게 간 느낌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다쓰오의 시점에서 프로와 아마츄어를 언급하며 일반인의 한계를 자주 묘사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도 상당히 답답해 하며 작품을 써 나간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역시 거장다운 부분도 존재합니다. 일종의 시체 조작 트릭, 그리고 몇가지 사소한 단서에서 진정한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는 부분이 그러한데, 복선도 확실하고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뭐 거의 반세기 이전의 작품이기에 법의학적인 면으로 본다면 좀 말이 안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시대를 감안해야겠죠. 아울러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 역시 꽤 인상적이에요. 정교한 복선 덕에 합리적이면서도 상당한 놀라움을 가져다 주거든요. 도쿄역에서 시작하여 나가노현의 촌까지 확장되는 방대한 작중 무대를 역시나 사회파다운 꼼꼼한 자료조사를 통해 상세하게 묘사한 것 역시 치밀하고 좋았고요. 이 방대한 무대 덕분에 기차 시간표와 지명을 계속 언급함으로써 작가의 전작인 "점과 선" 같은 기차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 저는 제대로 한대 먹긴 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본다면 기대에 값하는 아주 흡족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분량이 꽤 되는 장편이지만 전체적으로 꽉 짜여진 느낌을 별로 전해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 작가의 데뷰작에 가까운 작품이라 하더라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점 과 선"과 "제로의 촛점"이나 "모래 그릇" 과 같은 초기작 보다는 약간 처지고, "나비성" 이나 "적색등" 과 같은 후기작보다는 나은 중간정도의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물론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여 짜여져 있는 만큼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합니다. 평작이긴 한데 몰입시키는 맛은 뛰어났달까요? 뭐 이런 것이 거장의 실력이겠죠. 저의 별점으로는 3점 되겠습니다.

2013/11/18

종착역 살인사건 - 니시무라 교타로 / 이연승 : 별점 2.5점

종착역 살인사건 - 6점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레드박스

도호쿠 아오모리 출신의 미야모토는 7년 만에 고교 동창생들과 함께 귀향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편지와 함께 기차표를 보냈다. 7명의 멤버는 모두 우에노 역에 모이기로 약속했는데, 공무원이 된 야스다만이 오지 않아 6명의 멤버만 고향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 직후 야스다는 역 화장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1주간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격조했네요. 간만에 리뷰를 올립니다. "귀동냥"에 이어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운 좋게 읽게 된 작품입니다. 리뷰 전에 자리를 빌어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줄거리 소개대로 7년 만에 모인 고교 동창생들이 하나씩 살해당한다는 연쇄살인물로, 그간 서너 편의 작품으로 접했던 니시무라 교타로의 도쓰가와 (토츠가와) 경부 - 가메이 형사 시리즈입니다. 작가의 수많은 작품 중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죠. 그나저나 "일본 미스터리계의 거인 니시무라 교타로가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라고 홍보하던데, 제가 읽었던 국내 소개된 몇몇 작품들은 모두 정식 계약된 번역본이 아니었나 보네요.

어쨌거나 작품의 장점으로는 흡입력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여섯 명이나 살해당하는 거창한 사건이 그야말로 숨 쉴 틈 없이 벌어지는 덕분입니다. 재미 하나만큼은 제가 읽었던 작가 작품 중에서 최고로 치고 싶네요. 트릭도 상당히 풍성합니다. 특히 작가의 주특기인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이 상당히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심리를 이용한 원격 살인 트릭과 밀실 살인 트릭도 등장할 정도로요.

아울러 "여정 미스터리"의 거장다운 풍모를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좀 의외였습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 중 한 곳이 도호쿠 지방의 아오모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아오모리에 대한 묘사나 설명을 등장시키는 대신에, 도호쿠 출신으로 도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심리묘사를 역이용하여 향수를 자아낸다는 점에서 넓은 범위의 여정 미스터리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외지인이 느끼는 우에노 역에 대한 심도 깊은 묘사가 대표적인 예겠죠. 귀향에 대한 애잔함을 살인사건과 교차하여 보여주는 묘사도 괜찮았고 말이죠.

그러나 단점 역시 명확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슷하게 범행 동기에 대한 설득력이 낮다는 점입니다. 범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당위성이 너무나 부족해요. 7년 동안 참고 지내다가 편지 한 통으로 촉발된 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살의니까요. 살의를 불러일으켰다는 편지 내용도 솔직히 별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편지 한 통 받았다고 여섯 명이나 살해하다니, 이건 사이코패스의 정도를 넘어선 중증 정신병자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또 우연과 작위적인 전개도 두드러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메이의 동창인 고교 교사 모리시타에 관련된 에피소드로, 그가 나쁜 마음으로 건드린 옛 제자 마쓰키 노리코를 다시 찾아나선 발단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데, 거기에 더해 노리코가 현재 마치다의 연인으로 알리바이 공작을 완성하기 위해 모리시타를 이용하여 가메이를 속여 기차 시간을 착각하게 만든다는건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토츠가와 - 가메이가 그때 그 트릭을 눈치채고 실험을 한다는 타이밍과, 그 실험을 가메이가 진행한 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나마도 일반인인 도쓰가와 경부의 아내가 눈치챌 정도로 허술한 시간표 트릭이라서, 경찰이 속아 넘어간 것부터가 운이 좋았던 것 뿐이었고요.

뭐 작위적인 전개야 이런 류의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점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결국 트릭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네요... 애써 어렵게, 연인까지 동원해가며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이어지는 범행은 '내가 범인이다'라는 것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야스다를 살해하고 가와시마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을 때 살인을 일단 중지했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하시구치 마유미의 자살로 위장한 살인까지만 벌이던가요. 결국 트릭을 풀 필요도 없이 마지막 미야모토 살해에서 마치다는 범인으로 확정되어 버리는데, 이럴 거면 뭐하러 어렵게 트릭 따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다 같이 탄 기차에 불이라도 지르고 도망가던가.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이 명확해서 감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중반부의 긴장감만 잘 살렸더라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중반 이후 범인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도 니시무라 교타로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07/11/26

문호춘추 - 이시이 히사이치 : 별점 2.5점

"이웃집 야마다군"으로 유명한 4컷 만화의 전설 이시이 히사이치의 작품. 

일본 문단의 원로인 "히로오카" 선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문필가의 세계를 개그스럽게 그리고 있으며, 그외의 부가 캐릭터로 담당 편집인 야스다와 가정부, 후배 작가인 중견 추리작가 다부치 코스케 등이 등장하여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대표작은 아니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에 소개했던 "Comical Mystery Tour"는 추리 매니아들이 아니라면 즐길 거리가 좀 적은 편인데, 이 작품은 이른바 "팔리지 않는 원로" 히로오카 선생의 독특함이 정말 재치있게 그려져서 추천하고 싶네요. 추리 작가인 다부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추리팬으로서는 더욱 즐거운 에피소드였고요. 
추리 에피소드를 한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다부치가 새로운 알리바이 트릭을 고안합니다. 한 지방 역에서 교묘하게 얽힌 기차 시간표를 이용해 기차를 갈아타는 트릭인데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해당 역에 문의를 하죠. 그러자 역장은 "가능하긴 한데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라고 답합니다. 이유는 그 역이 워낙 노인들밖에 없어서 1분만에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면 "너무 눈에 뜨인다" 라고 이야기하죠^^ 매니아적이긴 하지만 재미있죠?

모든 에피소드가 재미있는건 아니고, 취향을 탈 고그도 많아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그래도 제가 읽은 이시이 히사이치 작품 중에서는 최고였습니다. 국내에도 4컷 만화가 요새 많이 나오는데 이런 연령대 높은 작품도 내어 주었으면 합니다. 

2013/07/13

점과 선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4.5점

점과 선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카사카의 요정 '고유키'에서 일하던 두 명의 종업원은 단골손님인 기계 공구상 야스다 다쓰오를 바래다주기 위해 도쿄역 13번 플랫폼에 섰다. 그곳에서는 15번 플랫폼이 보였다. 둘은 동료 종업원인 오토키가 낯선 남자와 함께 하카타행 침대 특급 '아사카제'에 오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남자는 최근 부정부패 사건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OO성의 과장대리, 사야마 겐이치였다.

6일 뒤, 오토키와 사야마 겐이치의 시신이 후쿠오카 가시이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은 청산가리가 든 주스를 마시고 동반 자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후쿠오카 경찰서의 베테랑 형사 도리카이 준타로는 사야마가 가지고 있던 열차 식당의 영수증이 1인분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동반 자살을 하러 가는 남자가 정말 여성을 두고 혼자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마쓰모토 세이초의 첫 장편이자, 발표 당시 대히트를 기록하며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저도 약 20여 년 전 해적판 번역본으로 처음 접했었는데, 이번에 모비딕과 북스피어가 함께한 ‘세이초 월드 시리즈’의 일환으로 정식 출간되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미하라 형사가 야스다의 알리바이를 깨뜨리기 위한 집요한 수사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거나 거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구성을 뛰어난 트릭과 현실감 넘치는 수사 전개로 탁월하게 끌고 가는 점에서, 고전 명작다운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도쿄에서 거의 존재할 수 없는, '4분의 공백'을 이용하여 사야마와 오토키를 목격하도록 만드는 공작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하면서도 멋진 트릭이고, 규슈와 홋카이도를 오가는 알리바이 공작의 큰 스케일, 그리고 그것을 차근차근 파헤쳐가는 수사 과정 모두 지금 다시 읽어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도 압도적입니다. 단순한 정사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을 각각 살해한 후 마치 함께 동반 자살한 것처럼 꾸몄다는 진상은 그야말로 ‘두 개의 점을 잘못된 선으로 연결한 것’이라는 제목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상식이라는 맹점을 찌르는 이 반전 트릭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이전 번역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사회파적인 요소들과 사건 이후의 씁쓸한 여운도 정식판에서는 더욱 두드러지더군요. 관청의 비리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 결국 자살한 야스다는 잊혀지고, 비리에 연루되었던 부장은 오히려 더 잘나가게 되었다는 후일담은 무척 씁쓸하면서도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200여 페이지라는 부담 없는 분량, 알리바이 트릭을 이해하기 위한 표와 도식들, 적절하게 삽입된 일러스트도 독서의 재미를 더해주고요.

물론 약간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야스다의 동기, 그리고 실제 흑막이라 할 수 있는 야스다 료코의 캐릭터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은 사건 외적인 묘사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지나치게 사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병약했던 탓에 기차 시간표를 탐독하다가, 어느새 그것을 활용한 알리바이 조작의 달인이 된 야스다 료코라는 캐릭터가 좀 더 부각되었더라면 훨씬 풍성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변함없는 흥분을 안겨주는 훌륭한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명작은 역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별점은 4.5점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13/07/22

일본의 검은 안개 (상)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2.5점

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가 발표하여 일세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논픽션이 드디어 정식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런 책까지 읽을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 작품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에는 모두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의 검은 안개』를 헤쳐가는 방법 - 모비딕 편집부 서문
  • 1장: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 시모야마 국철총재 모살론
  • 2장: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 목성호 추락 사건
  • 3장: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 시라토리 사건
  • 4장: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 라스트보로프 사건
  • 5장: 혁명을 파는 남자 - 이토 리쓰 사건
  • 6장: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 2대 부정부패 사건

사회파 추리소설은 사회 고발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실제 언론인이기도 했던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논픽션이, 단순한 사건 추적을 넘어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해 주는건 그렇기 때문이겠지요.

다만, 이 책에 실린 사건들은 발표 당시 일본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겠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저 역시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건은 ‘시모야마 국철총재 사건’ 하나뿐이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물론 거장의 대표 논픽션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같은 논픽션이라면 국내 추리 애호가 분들께는 다루는 사건 자체가 좀 더 흥미로운 "미스터리의 계보"를 먼저 추천드립니다.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빌리 배트’에도 등장했던, 시모야마 국철총재가 실종 후 열차에 치인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수사는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를 미군정 G2와 GS 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모략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정황과 증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특히 시모야마 총재의 속옷에만 묻어 있던 기름, 절단된 시신과 멀쩡한 겉옷, 사체에서 나온 색색의 가루 등은 모두 치밀하게 분석되며, 그가 어디에 감금되었는지를 추리하는 장면이나 기차 시간표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은 마치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논픽션으로도, 재미로도 뛰어난 이야기로,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1952년, 33명의 승객을 태운 채 추락한 ‘목성호’ 항공기의 사고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유일한 여성 승객이었던 오하라인 요코가 다이아몬드 밀수 공작의 희생양이라는 가설도 등장하지만, 점령기 미군의 실수였을 가능성으로 마무리되어 결말은 다소 싱거웠습니다. 분량도 25페이지 남짓으로 짧은 탓에, 여러모로 큰 인상을 주지는 못하네요.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삿포로에서 발생한 경찰관 시라토리 사살 사건의 전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산당 조직을 해체하려는 모략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지만, 사건 자체가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그리 흥미롭지 않아 몰입이 어려웠습니다.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는 자주 벌어졌던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주일 소련 대표부의 라스트보로프가 실종 후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을 추적합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인물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이렇다 할 정보도 없는 인물로 밝혀져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냉전기의 일본이 미·소 간의 첩보 충돌 지대였다는 역사적 의미는 느껴졌지만,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큰 흥미를 주기 어렵습니다.

"혁명을 파는 남자"
일본 공산당 내 실력자였던 이토 리쓰의 제명 사건을 통해 그의 이중 스파이 행위를 조명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 욕심과 비겁함으로 인해 좌우를 오가며 배신을 일삼는 인물의 행보는 읽는 재미가 있었으나, 스파이 행위 자체는 단순한 이간질에 불과해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는 후일담은 충격적이지만, 그만큼의 무게감 있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쇼덴 사건과 조선 사건이라는 두 건의 부정부패 사건을 다룹니다. 쇼덴 사건은 GHQ와 관련된 정치적 공작이 얽혀 있어 흥미보다는 복잡한 뒷사정 중심으로 흐르고, 오히려 평범한 고발에서 시작된 조선 사건 쪽이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수사는 정치적 이유로 흐지부지 마무리되며,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과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2009/06/29

히다다까야마(飛馬單高山)에서 사라진 여인 - 니시무라 교타로 : 별점 3점

히다다까야마에서 시라이시 유까라는 스케치를 잘하던 여관 투숙객이 급작스럽게 동경으로 떠난 10일 뒤 근처 북알프스에서 한 여인의 교살 사체가 발견되고, 몇가지 단서를 토대로 시라이시 유끼와의 관계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다. 시라이시 유까의 거주지인 동경의 수사1과 토츠가와 경부가 사건 수사에 협력하게 되지만 그녀가 가명을 썼다는 것이 밝혀진 뒤, 시라이시 유까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스케치가 현장에 남겨지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토츠가와 경부와 부하 가메이 형사 등은 사건해결에는 시라이시 유까를 자칭한 여성의 진짜 정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양한 수사활동을 통해 그녀의 정체가 고노데라 유미코라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녀의 행적은 알 수가 없는데....


"침대특급살인사건"을 비롯, 국내에 소개된 몇권의 책으로 접했던 일본의 추리작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은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작품이었던 반면, 이 작품은 흡사 우치다 야스오를 연상케 하는 "여정 미스터리"더군요.

추리적으로 대단한 트릭이 선보이는 트릭물은 아니며, 여러명의 경찰과 형사들이 각각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와중에 발굴해내는 몇가지 안되는 단서들에서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를 잘 가공한 치밀한 수사물이라고 하는게 맞겠죠.
제목의 히다다까야마의 여러 명소들은 물론, 이즈 온천 등 일본의 명승지가 대거 등장하여 "여정 미스터리"로의 컨셉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어서 이색적이라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히다다까야마 그림엽서를 놓고 이야기를 구상하는 작가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하기도 하고요. 도쿄에서 전철로 한 4시간 정도 걸리는 마을인 것 같은데 다음번에 갈 기회가 생기면 좋겠네요.
아울러 시리즈 캐릭터 동경 경시청 수사1과의 토츠가와 - 가메이 컴비의 등장도 반가운 점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시리즈물이니까요. 토츠가와 경부의 상상의 나래를 펴는, 비약하는 추리법도 여전하고 말이죠. 명탐정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건의 전모를 먼저 추리한 뒤, 그에 적합한 단서를 다양한 방법으로 치밀하게 수집하는 수사법도 현실에 어울리기도 하고 설득력이 넘쳐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지나치게 우연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예를 들면 고노데라 유미코가 "가명"을 쓴 이유는 사실상 우연에 기인한 것이라 그녀가 본명을 썼을 경우에는 사건이 보다 빨리 해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정체불명의 여성 사체 주변에서 우연하게! 목탄 조각이 발견된 것에 주목하여 시라이시 유까와의 관계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는 점 등입니다.
또한 설명이 부족하고 전개에 필요한 부분으로만 이야기가 비약하고 있는 것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죠. 스케치를 한 다른 여인에 대한 존재가 쉽게 밝혀지지 않은 이유라던가 스케치를 바꿔친 목적을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것 등이 특히 그렇습니다. 스케치가 중요한 요소로 불거지지 않았다면 토츠가와 경부가 사실상 "시라이시 유까"를 자칭한 여성의 정체를 알아내기 어려웠을 텐데 왜 범인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경찰의 수사선상에서 진범인 시라이시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너무나 거창한 위조사업을 벌였잖아요) 도 설명이 미흡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정 미스터리의 단점이기도 한, "이색적인 풍광" 말고는 "히다다까야마"라는 배경 설정의 존재가치가 전무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죠. 한마디로 "설악산 흔들바위 살인사건" 정도 되는 사건인데 정작 흔들바위는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내용이니까요.

때문에 쉽게쉽게 재미있게 읽히는 맛도 넘치고 "히다다까야마"에 대한 관광 가이드 역할도 충실한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그냥저냥한 수준의 평작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정식으로 번역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구한 txt 파일로 읽은 것이라 좀 기분이 꽁기꽁기합니다. 아무리 뒤져도 국내에 정식 출간된 것 같지는 않지만, 책은 빌려서도 읽지 않고 무조건 사서 읽는것이 원칙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터라 마음이 불편하네요. 번역도 제대로 마무리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파일인데, 앞으로 정식 출간되면 꼭 사볼 것을 다짐해 봅니다.

2019/08/11

브루투스의 심장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1.5점

브루투스의 심장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한정 일본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로, 1989년에 처음으로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범행이 먼저 등장하는 일종의 도서 추리 소설입니다.

작가 생활 초창기에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라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풍과는 사뭇 다른게 특징입니다. 흡사 70년대를 풍미했던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같았어요. 기차 시간표는 아니지만 상당히 정교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과 재벌 가문의 문란한 생활, 출세를 위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야심가, 등장인물마다 엮여 있는 콩가루같고 불우한 가정사 등 모든 설정이 흡사한 탓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거의 보기 힘든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도 마찬가지고요. 잘은 모르겠지만, 인기를 얻기 전 무명 작가 시절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 시대의 인기작을 분석하고 따라해서 어떻게든 인기를 얻어보려 했던 결과물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답다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악녀 야스코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꽤나 공들인 정교한 트릭이 돋보입니다. 최초에 등장한, 3명이 실행하는 사체 이동 계획부터 꽤 흥미롭습니다. 오사카, 나고야, 도쿄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잘 계산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나오키의 말대로 2명이라면 모를까, 3명이 실행하는 계획은 경찰도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을테고요.
두 번째 범행인 만년필을 이용한 살인도 그럴듯합니다. 만년필 잉크를 넣는 곳에 청산가리 결정을 넣어 놓고 잉크를 넣으면 청산가스가 발생하여 사망한다는 트릭인데, 청색 잉크만 산성을 띄고 있어서 청산가스가 발생한다는 등의 과학적인 설명이 뒷받침되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거든요. 이공계 출신 작가다운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마지막에 다쿠야가 야스코를 살해한 방법도 기발하기는 뒤지지 않습니다. 미리 야스코의 방에 잠입해서 찻주전자 주둥이 안쪽에 청산가리를 발라 놓은 후, 저녁에 당당하게 방문해서 차를 직접 끓여마시게끔 유도하여 살해하는 계획으로 완벽하게 성공하니까요. 야스코도 이미 2명이나 살해된 상황이라 다쿠야를 조심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탄 차에 독이 들어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지요.

그러나 초기작인 탓인지 모두 헛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의 사체 이동 계획은 나오키가 나고야에서 오사카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신칸센을 탔어야 했고, 다쿠야 역시 이용한 차량을 처리할 때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다쿠야는 이 때문에 덜미를 잡히죠.
두 번째 청산가스 살인도 경찰이 현장 조사할 때 가스가 남아 있어서 들통난다는 점에서는 완벽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마지막 트릭 역시 다쿠야가 직접 야스코의 집을 방문했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운 좋게 들키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물론 사람이 만든 계획에 헛점이 있는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를 작중에서 형사들이 치밀한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것도 볼거리로 이런게 도서 추리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고요. 정작 문제는 이야기 자체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3명의 사체 이동 계획부터 애매합니다. 애초에 나오키가 고로의 약점을 잡아 청부 살인까지 시킬 수 있었다면, 그냥 고로를 시키면 됩니다. 알리바이고 뭐고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적은게 낫잖아요? 이야기를 보면 고로와 나오키의 연결 고리는 그 누구도, 심지어 고로에게 청혼을 받은 나오키의 비서 유미에마저 모르니 완벽한 청부 살인이 되었을겁니다.

또 하시모토와 다쿠야를 끌어들이는 이유도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오키가 트럼프 카드 마술이 특기라는 설정도 고로의 존재 때문에 말이 안됩니다. 그냥 뽑으면 되죠. 최악인 살인이 걸린다면 고로를 시키면 되니까요. 다른 살인을 뽑은 관련자에게 빚을 지게 만들 수도 있고요. 이런걸 대단한 단서인 것 처럼 흘릴 이유는 없습니다.

진범 고로가 야스코 대신 나오키를 살해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살의를 품을 만큼 원한이 깊었다는 설명도 없을 뿐더러, 그랬다면 진작에 살인을 저질렀다면 모를까 왜 이 때 저질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사체 이동 계획에 대한 종이가 차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시체가 야스코가 아니라 나오키였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제대로 설명할만한 합리적인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나오키를 죽인건 살인까지 시켜서 살의가 폭발했다고 치죠. 그러면 시체 이동 계획에 참여한 하시모토와 다쿠야까지 죽이려 한 이유는 뭘까요?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었는지 먼저 간을 보는게 순서였을텐데 말이죠. 시체가 발견되어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 마당에, 연이어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아무리 봐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수사 와중에 직접 나서서 야스코를 죽이고 마지막에 고로까지 살해하려한 다쿠야의 정신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류의 설정이 너무 과한 것도 문제입니다. 주인공인 다쿠야가 온갖 어려움을 혼자 힘으로 이겨낸 자수성가형 엘리트이자 야심가라는건 흔해빠지긴 했어도 봐줄만은 합니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의 근거로는 타당하고요. 그러나 니시나 나오키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후계자가 되었으며, 아버지 도시키를 증오한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3인 살인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로봇이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위장한다는 설정도 말이 안됩니다. 실제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로봇 '나오미'는 바로 폐기되고, MM 중공은 그 뒤로도 잘 나가고 있으니 무의미한 복수였어요. 차라리 로봇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걸 널리 알리는게 더 효과적이었을겁니다.
니시나 가문의 딸 호시코의 방자한 행동이라던가, 니시나 도시키의 문란한 사생활 역시 콩가루 재벌집 설정을 드러내는 역할 뿐입니다. 특히 니시나 도시키와 야스코의 관계는 충분히 재미있게 가져갈 수 있는 소재였는데 이래저래 이상하게 소모된 느낌이에요. 

마지막의 열린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다쿠야가 고로의 존재를 눈치챈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쿠야는 고로를 살해할 이유는 없었어요. 경찰에 고로가 나오키를 죽였다고 알리면 그만이죠. 다쿠야가 시체 운반을 맡았던 이유는 예비 처남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고 하면 문제 없었을겁니다. 설령 3인 살인 계획의 증거인 연판장이 남아있었더라도, 이미 2 명은 확실하게 살해한 고로보다는 다쿠야 쪽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죠. 오히려 야스코 살인까지 고로가 뒤집어 썼을 거에요. 어차피 누가 죽였는지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다쿠야가 만든 브루투스가 오작동하여 다쿠야를 죽인다는 결말은 솔직히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로봇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 소재도 아닌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등장해서 이야기를 끝맺는건 이상하다 싶었어요. 인간보다 로봇이 우수하다고 주장했던 다쿠야의 죽음으로는 어울린다 싶기도 한데, 그동안 뛰어난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왔으니 마지막 로봇을 이용한 범행도 멋지게 성공하는게 더 설득력은 높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세세한 문제점들이 많아서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재벌 가문과 야심가, 알리바이 트릭이라는 3위 일체는 이미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질릴 정도로 써 먹기도 했고요. 거장이 되기 위해 겪었던 시행착오를 보여주는 그런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5/07/29

비밀의 백화점 (추리소설 특급 가이드) - 한겨레21 별책부록

한겨레 21의 여름 특집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입니다.

별책부록이라고는 하지만 분량으로는 100여페이지 정도이고 폰트 크기도 작은 편이니 외견보다는 많은 내용을 담고는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저자들을 섭외해서 여러 종류의 글들을 짧게 짧게 실어놓은 책으로 김탁환씨와 성귀수씨와 같은 메이저 작가, 번역가에서 영화평론가들, 그리고 Howmystery.com과 화요추리클럽 분들을 비롯해서 알라딘 전설의 리뷰어 물만두님까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기고자들이 면면이 화려하고 워낙 많아서 다양한 취향을 음미하는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짤막한 만화까지 포함되어 다양한 쟝르를 포괄하고 있는 점도 좋은 기획으로 보입니다. 척박한 국내 만화계에서 비교적 정통파 추리 만화를 그렸던 한혜연과 석동연씨가 작가진에 있는것이 반가우며 추리 매니아이신 김진태씨도 짧지만 재미있는 만화를 개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워낙 짧다보니 글의 테마와 종류에 비한다면 그다지 깊이가 없긴 합니다. 조금 페이지를 늘리더라도, 아니면 기고자를 조금 줄이더라도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물론 별책부록인 만큼 자금과 페이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지금 상태는 좋은 기획의도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는 팜플렛에 가까운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온라인 추리 동호인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척박한 풍토에서 고생해온 국내 추리작가들의 비중이 너무 없는 것은 불만스럽습니다. 이젠 원로축에 끼시는 김성종 선생님이나 정건섭 선생님에게는 최소한 한페이지 이상은 의뢰드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번역계에서도 국내 추리계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신 정태원 선생님의 이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권말의 추리소설 목록은 솔직히 불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이고요. 어차피 다 싣지 못할 바에야 올해 신간만 리스트업하는게 더욱 좋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손을 본다면, 그리고 출판사의 의지가 작용한다면 장래에는 국내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수준의 책을 뽑아 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던져 주는 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작가의 비중이 보다 높아져야 하리라 생각되고 국내 추리소설계도 분발해야 겠지요. 부디 내년에는 보다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차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포함되어 있는 앙케이트 한번 해  봅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어떻게 다섯개만 뽑을 수 있겠습니까만은, 현재의 베스트는
미야베 미유키 "화차", PD 제임스 "어떤 살의", 피터 러브시 "밀랍인형", 로스 맥도널드 "소름", 크리스티 "화요일 클럽의 살인"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명성이라는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요.

3. 최고의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 두말할 필요 없겠죠...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모스 경감. 나름 약점도 많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 마음에 듭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유니스의 비밀"의 유니스 파치먼.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고 평범한 하녀에서 폭발하는 광기에의 감정 이동이 놀라왔던, 그래서 더욱 무서웠던 인물입니다.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훌륭한 결말 - 피터 러브시 "가짜 경감 듀"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복선과 사건이 완벽하게 정리되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멋진 엔딩이라 추천합니다.
어처구니 - 사카구치 안고 "불연속 살인사건" 이렇게 모두 죽어나가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밖에 없잖아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 범죄자의 자기 합리화를 독자에게도 공유하게끔 하는 설정이 놀랍습니다.

8. 가장 멋진 대사
"정말 잘 가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정말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 걸세"
 레이몬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마초이즘과 서정성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명대사.

9. 배신하지 않는 작가 (가장 믿을 만한 작가)
로스 맥도널드, 국내 출간된 작품을 다 읽은 유일한 작가일 뿐더러 작품이 전부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영화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구관이 명관, 명불허전의 작품입니다.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
비교적 소개된 것이 적은 일본 고전 본격물과 신 본격물의 다양한 소개를 기원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나 노리츠키 린타로. 다카키 아키미쓰 등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 추리소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라면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
초보자에게는 단편이 더욱 어울리리라 생각됩니다. 세 편이라면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의 모험" 두 단편집과 황금시대 정통 본격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를 추천합니다.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항상 저를 지적인 흥분상태로 몰고 가는 두근두근한 긴장감이 좋습니다. 또 혹시 압니까? 향후 요긴하게 써먹게 될지도.....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나 한번 만들어 볼까나!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아 있다.
추리 독자의 저변이 더욱 넓어져서 제가 군침만 삼키던 작품들이 더욱 많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뭔가 기획해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한데, 저변과 시장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기회가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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