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교양서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교양서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21/05/21

n분의 1의 함정 - 하임 샤피라 / 이재경 : 별점 4점

n분의 1의 함정 - 8점
하임 샤피라 지음, 이재경 옮김/반니

여러가지 상황과 게임을 예로 들어 게임 이론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는 교양서입니다. 

게임 이론은 참가한 선수들간에서 누군가의 결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어떤 결정을 할지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선수들의 목표는 본인의 이득 최대화이고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여서 책 소개만 보고 흥미가 동했었는데, 읽다보니 의외로 수학 이론 책 치고는 재미까지 있어서 놀랐습니다.

재미있는 이유는 게임 이론에 대해 여러가지 실제 게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죄수의 딜레마'를 비롯하여 '공갈협박범 딜레마' '최후통첩 게임', '남의 떡 역설' 등 제목만 보아도 어떤 게임인지, 어떤 전략을 쓰는지 두근두근하게 만들거든요. 

'최후통첩 게임'은 두 사람이 정해진 돈을 나누는 게임입니다. A가 B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제안한 뒤, B가 수락하면 각자 제안대로 돈을 나눠 갖고, B가 거부하면 둘 다 한 푼도 못 받는 룰입니다. 재미있는건, 남자는 상대 여자가 미인이라고 해서 딱히 더 후하지 않았지만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에게 훨씬 후한 제안을 했다는 실험 결과였습니다. 저자는 여자들은 1회성 게임을 시리즈 게임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에서는 여성이 이런 성향 때문에 남성보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우위를 점한다고 하네요. 자신의 행동과 대처가 상대에게 장기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성향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서 매우 중요하고 각장 환영받는 자질이기 때문이랍니다. 한 번 만남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기일회 정신은 이미 낡아버려 시대에 맞지 않는 걸까요? 또 이른바 '뒷끝을 남기지 않는' 남자들 성향이 오히려 장기적 전략에는 해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추측 게임'을 통해 예상과 다른, 황당한 결과가 초래되는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0부터 100까지 숫자를 고르라고 한 뒤, 이 숫자의 평균을 내고 0.6을 곱한 결과에 가장 근접한 숫자를 고른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여기서 수학적으로, 전략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은 '0' 입니다! 사람들이 무작위로 숫자를 고른다고 한다면, 평균은 50이니 50에 0.6을 곱한 30이 정답이지요. 하지만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해서 30을 고른다면? 18을 선택해야 합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계속 진행되어 정답이 0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 참가자들이 모두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현명하고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감정이야말로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지요.

'내시 균형'에 대한 상세하고 다양한 설명도 흥미로왓씁니다. 내시 균형은 상대의 전략에 대응하는 나의 최적 전략과, 나의 전략에 대응하는 상대의 최적 전략이 일치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몇 명의 간수가 대량의 포로를 이송하는게 가능한 이유도 바로 내시 균형 덕분이라네요. 포로들이 단체로 탈추하거나 폭동을 일으켜 공격하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만 시도한 누군가는 죽거나 다치게 되겠지요. 즉, 내 입장에서 내시 균형은 탈주나 폭동이 일어날 경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죄수의 딜레마'야 말로 내시 균형의 가장 좋은 예입니다. 상황 종료 후 자신의 선택과 결과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배신을 선택하는게 최적의 전략이기 때문이에요. 상대가 침묵하거나 배신하거나, 배신한 쪽만 후회할 일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내시 균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표'를 명확히 세워야 한다는 내용은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사랑의 작대기와 같은 룰의 '쌍쌍 파티'를 통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나는 누가 봐도 최고인 A와 파트너가 되어야겠다!"라는게 목표면 무조건 A에게 표를 주어야 합니다. 대안은 없으니까요. 반대로 "나는 최악인 Z만 피하면 된다!"라는게 목표면 Z 바로 위의 Y에게 표를 주는게 최적의 전략이고요. 각자 무엇을 먹던, n분의 1로 식대를 지불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에요. 목표가 "나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겠다!"인지, "나는 A를 꼭 먹겠다!"인지, 아니면 "나는 무조건 돈을 적게 내겠다!"인지에 따라 주문하는 메뉴가 달라지게 되겠죠.

하지만 내시 균형 전략이 적용될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자원자 딜레마'가 그러합니다. 이는 n명의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있을 때, 최소 한 명이 자원자로 나서면 전원이 두둑한 상금을 받지만 자원자는 상금에서 위험 비용을 제한 금액을 받는 상황 속 딜레마를 뜻합니다. 이 게임에서 내시 균형 전략에 따라 자원하지 않는다면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혼합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네요. 또 내시 균형 전략에 따른 해법이 오히려 최적의 해법과 상극인 상황도 존재합니다. '여행자의 딜레마'라고 부르는데, 두 명에게 5달러에서 100달러까지 원하는 대로 돈을 써 내라고 하고, 둘이 같은 금액을 쓰면 같은 금액을 주지만 금액이 다를 경우는 낮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 5달러를 더 주고 높은 금액을 쓴 사람에게서 5달러를 공제한다는 딜레마입니다. 여기서 내시 균형에 따른 최적 전략은 5달러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를 극대화하는게 우선 목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99달러를 써야합니다. 99+5달러가 최선이니까요.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서 98달러를 쓰고... 이런 생각이 반복되어 결국 둘 다 5달러를 써 내는 선택만이 후회가 남지 않게 됩니다. 뭔가 익숙한 상황이 많이 떠오르네요.

죄수의 딜레마를 연장한 게임에서 필승 전략인 '팃포탯' 전략도 기억해 둘 만 합니다. 이 전략은 출발은 신사적으로, 두번째 게임부터 상대가 직전에 했던 행동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까가 아니라, 상대가 내게 먼저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해서 행동하라는건데, 실제 상황에서도 많이 통용될 수 있는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사슴 사냥 게임처럼 신뢰와 협력이라는, 그야말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게임 이야기라던가 통계 관련 이야기, 도박장에의 전략 등 눈여겨 볼 만 한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도박은 한 번에 과감하게 가는게 좋다네요. 내가 불리한 게임은 게임 횟수를 최대한 죽이는게 맞는 전략이라면서요. 나름대로 그럴듯합니다. 영국 정치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했다는 말대로인 거지요. “절벽 사이를 두 번에 나누어 뛰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다 단지 수학 이론서나 교양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필요한 전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좋은 독서였고요. 목차가 잘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드는건 아쉽지만, 그 외에 별로 흠잡을 부분은 없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마지막 장에 요약되어 있는, 주옥과 같은 게임이론 가이드라인 중 몇가지를 공유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 협상에 임할 때 유념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아무런 합의 없이 회담이 결렬될 가능성을 참작해야 한다.
둘째, 게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의 노선과 마지노선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

- 게임의 수학적 해법을 너무 믿지 말 것. 수학적 해법은 질투심, 모욕감 같은 중요한 감정들과 그것들이 만드는 변수를 간과하기 일쑤임.

- 어떤 결정이 됐든 의사결정을 하기 전에, 만약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한 번쯤 자문해볼 것. 동시에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기억할 것.

- 목표가 단순히 이기는 것이라면, 괜히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고 상황을 복잡하게 풀면서 곁길로 빠지지 말 것.

- 게임에서 내가 ‘불리한’ 입장에 있을 때는 되도록 게임의 횟수를 줄여야 함. 약자에게는 한판승이 가장 승산이 높다. 위험을 회피하려 애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다.

2024/09/29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 이광연 : 별점 2.5점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 6점
이광연 지음/한국문학사

인문학이 문학이나 철학 등 문과 계열 뿐 아니라 수학이나 건축 등 이과 계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걸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청소년용 교양서. 수학이 인간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학문이라는걸 여러가지 알기 쉬운 예제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딸 아이 논술 교재라서 겸사겸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중 수학 공부와 건축의 원리가 같다는 주장은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건물을 설계하는게 책의 목차라는 주장이요. 수학책에서 목차를 보면 앞으로 공부할 내용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조감도를 그릴 수 있고, 목차를 알면 이미 50%를 알고 들어간다는데 수학책에서 목차가 중요하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목차를 좀 더 꼼꼼히 보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또 기둥이 튼튼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데, 수학에서의 기둥은 기하와 대수이며 기하와 대수는 3,000년 전 고대 수학부터 통합되어 있었다는 주장과 매듭이론에 대한 쉬운 설명도 좋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왜 필요한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딸은 음악에 대한 설명을 좋아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피타고라스가 음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요. 저는 피보나치수는 장음정 6도와 단음정 6도로 귀로 들어도 아름답다는게 기억에 남습니다. 유튜브로 한 번 찾아보니 과연 그러하네요.
또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다양하게 피보나치수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악절을 황금비로 나누는 건데, 이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었을지 궁금해 집니다.
주식 시장의 엘리엇 파동 원리가 피보나치 수열이고, 블랙 숄즈 방정식은 확률 미적분 이론을 이용해 파생상품 옵션의 가격을 계산한 모델이라는걸 설명해 주는 부분에서는, 가난한 수학자가 이세계에 환생한 뒤, 그곳의 시장 경제를 가지고 노는 환생물이 떠올라 재미있었어요. 용(드래곤)을 파는 시장을 지배해서 수학자가 용왕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영화를 가지고 수학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설국열차 등을 예로 드는데, 이 중에서 바이러스 감염률 한계 이론에는 놀랐습니다. 100만 명으로 모수가 늘어나면, 정밀도 99%의 검사라도 무려 9,999 명이 잘못 판단된다는데 여태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에요.
그 외에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직선보다 훨씬 빠르게 특정 물체를 이동시킬 수 있어서 겅사면에는 사이클로이드를 적용한다, 동물들, 독수리나 매도 땅 위에 있는 사냥감을 잡을 때 사이클로이드에 가깝게 목표물을 향해 곡선 비행을 한다는 이야기,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전형적인 황금비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금강비(5:7)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서양인보다 상대적으로 동양인이 키가 작아서 황금비보다 작은 비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자 모양에서 중국에서 결승법 - 끈을 묶어 수를 표시하는 방법 - 을 썼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지만 뒷부분 이야기는 억지가 심해서 아쉬웠습니다. 대표적인건 삼국지 속 계륵이 암호이며, 이건 수학이는 주장입니다. 암호가 수학일 수는 있지만, 계륵은 수학과는 관련이 없는 심리적인 말장난에 가까우니까요. 또 그 뒤에 이어지는 암호에 대한 이야기는 수학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다른 책에서 지겹게 많이 접혔던 내용이 대부분이라 실망스러웠어요.
김삿갓, 이순신과 조선 수군 이야기도 수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수군에 훈도라는 수군직급이 있고 그들이 각종 계산을 담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수학자라는 말도 안되지요. 지금 육군의 관측병들이 모두 수학자인가요? 마방진 이야기도 분량에 비하면 별다른 알맹이는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그림 그리는 얘기도 황금비라든가 외상 예술 같은 건 뻔하고 대단한 수학적인 이론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카르타고를 세웠다는 디도의 문제라던가, 달리의 4차원 그림 같이 그림의 주제가 된 수학 문제를 설명하는게 훨씬 좋았습니다. 이런 쪽으로 방향을 잡있어야 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건질 내용이 없는건 아닙니다. 몇몇 주장은 와 닿기도 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학에 대해 어려워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2012/11/10

수학암살 - 클라우디 알시나 / 김영주 : 별점 2점

수학암살 - 4점
클라우디 알시나 지음, 김영주 옮김, 주소연 감수/사계절출판사

일상생활 속 수학의 힘을 보여준다는 취지로 다양한 생활 속 오류를 소개하는 책. 총 6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적인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사례들도 오타라든가 별거 아닌 과장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래서 별로 "중요한 오류"라 느껴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큽니다. 짤막짤막하게 이어지는 내용들 덕분에 읽기 쉽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그냥 그뿐이랄까요.

그래도 몇 가지 재미있었던 사례를 꼽아보자면

  • 아이 다섯 명이 감자 네 개를 나눠 가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자로 퓨레를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
  • 보통 면적이 두 배가 되면 길이는 2파이, 다시 말해 141%의 비율로 늘어나기 때문에 A4 크기는 A2로 확대해야 글자가 두 배가 된다는 것.
  • 샴페인 잔은 원뿔을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높이의 절반은 전체 부피의 1/8에 불과함.
  • 파스칼이 계산한 "주사위를 네 번 던졌을 때 6이 나올 확률"은 6이 나오지 않을 확률인 5/6의 4승을 1에서 뺀 값인 0.52라는 것.

등이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기대와는 너무 달랐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연령대가 낮은 청소년층에 적합한 교양서라 생각되네요.

2012/09/03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 별점 2점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 4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이덕환 옮김/까치글방

주로 확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학 교양서입니다. 확률, 패턴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 발견을 시대순으로 배열한 역사서적인 측면도 있고요.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는 사례나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내용들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요크셔의 면화공의 몬테카를로 대승부 이야기. 

당시에는 룰렛 기계 자체가 불균형해서 기계마다 나올 수 있는 숫자의 확률이 다르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숫자가 공평하게 1/37이 아니라 1/9의 확률이었다는 것인데, 기대이익을 한번 계산해 보고 싶네요.

측정과 오차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와인 평가에 대해 예를 든 부분.

한마디로 "신의 물방울은 구라다!" 라네요. 1990년의 실험 결과로는 전문가들도 감정의 성공률이 7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거든요. 어차피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감정 평가라 생각하기에 믿지도 않았지만, 예상보다도 성공률이 너무 낮아서 실망스럽더군요. 칸자키나 잇세도 별 거 아니군요.

푸앵카레가 제빵사의 범죄행위(?)를 알아차리게 된 계기.

케플러의 법칙입니다. 우연의 패턴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는 자료는 범죄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이른바 "범죄 경제학"을 다룬 이야기인데, 추리소설의 한 꼭지로 사용해도 괜찮겠더라고요.

우생학과 평균회귀의 원칙, 그리고 제목에도 사용된 춤추는 술고래의 패턴.

"과거의 성공은 미래의 성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펀드매니저 분석법은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들을 설명하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건 아쉽습니다. 제가 수학 실력이 젬병인 탓도 있겠지만 좀 더 쉬운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특히 공식이나 수식 설명에서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는데, 이건 명백히 번역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좀 긴 호흡의 역사서적인 구성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는 어렵지만, 유사한 주제를 다루었던 "1% 확률의 마술"이나 "기회를 만드는 확률의 법칙"보다는   재미나 실용적인 측면 (도박?)은 약하지만 깊이는 더 있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저와 같은 수학음치에게는 재미가 더 중요한 요소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깊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니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5/11/30

속임수의 심리학 - 김영헌 : 별점 2.5점

검찰 수사관으로 오랜 기간 일해온 저자가 다양한 사기 범죄를 심리학적으로 고찰한 범죄 인문·심리 교양서입니다. 각종 사기의 수법과 사람들의 심리적 허점을 교차 분석하며 ‘왜 사람은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가’에 대해 알려줍니다. "심리 조작의 비밀"과 약간 비슷한데, 더 우리나라 중심의 사례와 사기 범죄 위주의 내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선급금 사기’ 등 대표적인 수법을 비롯해 다양한 사기의 유형이 등장하는데, ‘경품 당첨’을 가장한 사기의 뿌리가 1800년대 후반 ‘스페인 죄수의 편지’에서 시작되었다는 등 그 소개가 무척 상세합니다. 사기 수법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형태만 바뀌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걸 잘 알려줍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지요.

그리고 사람들이 사기에 잘 걸리는 이유를 인간의 유전적 본성 때문이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본래 집단 내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이고, 집단의 의견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무리에서 떨어지는 것이 곧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생겨난 본능적인 성향이라고 하고요. 또한, 누구나 손실을 피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을 사기꾼들이 파고드는 겁니다. 대표적인게 댓글과 별점 조작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주식, 코인 투자 열풍과 연결되는 ‘FOMO(Fear of Missing Out, 놓칠까 봐 두려운 심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리딩방에서 쉽게 사기 행각이 일어나는건 당연합니다.

사기꾼들이 흔히 사용하는 심리 기법인 '콜드 리딩’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신뢰를 얻는 화법, 예를 들어 “당신은 외향적이면서도 내성적인 면이 있군요”처럼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모호한 표현을 하는 것으로 이런 애매한 화법은 점술가나 역술인이 자주 쓰는데, 이런 화법으로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점점 더 정보를 얻고 맞춰가는 구조라고 합니다. 특히 건강, 돈, 인간관계에 대해 넘겨짚어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은 사기성 상담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신흥 종교의 포교 방식도 다루고 있습니다. ‘미끼 – 끌어올리기 – 격리 – 사랑 – 헌신’이라는 5단계 전략을 통해 상대를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심리를 조작하고 세뇌하는 것입니다.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의 겐조의 수법도 이런 방식이었겠지요.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 이슈가 되는 사이비 종교들, 그리고 해외의 세뇌 범죄가 다 이런 방식이고요. 핵심은 '격리'라고 하니, 어딘가에서 합숙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단체 모임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 입니다. 

결혼 사기의 심리적 기제도 설명되는데, 여성은 대체로 사랑에 신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깊이 빠지는데, 그 시점이 되면 상대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남성의 경우는 성욕과 관련된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의 신호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사기에서 빈번히 이용되는 심리적 허점이니 역시 조심해야 할 부분이고요.

‘사기를 피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풍부합니다. 공짜에는 반드시 숨은 목적이 있다는 사실, 욕망이 클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는 조언, 후회라는 감정이 오히려 사기의 브레이크를 무디게 만든다는 설명 등은 관련된 사기 범죄와 함께 소개되어 굉장히 와 닿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반드시 조사하고, 정과 감정에 휘둘리지 말며, 거절은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당연하지만 실제로 행하기 어려운 것인데 명심해야 할 테고요.

이런 내용들이 가득 담겨있는데, 전반적으로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며, 목차 간 구성의 차이도 뚜렷하지 않아 중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사기라는 주제가 기본적으로 ‘속인다’는 공통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례 중심, 수법 중심, 예방 중심으로 명확히 분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사례도 실제 유명 사건보다는 소설처럼 각색된 예시가 많은데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고요.
사기를 피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전반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 상식적인 말들을 정리해 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같은 사기 과잉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잊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03/01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 코야마 켄지 외 / 김나나 외 : 별점 2.5점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 6점
코야마 켄지 외 지음, 김나나 외 옮김/홍익출판사

각종 조리법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하는 요리 과학 교양서. 크게는 조리, 음식 재료, 간, 물의 4 챕터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챕터별로 상세하게 항목을 다룹니다. 예를 들어 조리의 경우는 튀김과 볶음, 찜 등 모두 6개의 소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식이죠. 300여 페이지의 분량을 챕터별로 낭비없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행했던 조리법들이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게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이스크림 튀김은 아이스크림을 얇은 카스텔라나 스펀지 케이크로 감싸서 만든다. 기포가 많아서 열이 아이스크림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네요.
  • 볶음 요리 중 간을 맞출 수도 있지만 볶은 재료는 기름 막에 둘러 싸여 있어서 간을 제대로 맞추려면 재료에 밑간을 해 놓는게 좋다. 
  • 과학적인 맛있는 볶음밥을 만드는 방법 : 계란의 단백질은 열이 가해져 익을 때 기름과 수분을 감싸므로, 풀어놓은 계란은 맨 처음에 넣어야 한다. 볶음밥에 수분은 적이므로, 계란은 처음에 볶아 단단하게 만드는 것. 계란이 반숙이 되면 밥을 넣는다. 계란은 기름을 흡수하기 시작하지만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아서 계란의 기름이 밥에 달라붙게 된다. 이로써 밥이 뜨거운 기름에 코팅되어 고슬고슬한 볶음밥이 완성된다. 계란이 다 익은 후 넣으면 기름이 이동하지 않으므로 재빨리 해야 하며, 밥을 잘 풀어 계란과 섞은 뒤 고기와 채소를 넣고 마지막에 간을 맞추면 완성. 양념은 볶는 도중에 넣으면 소금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가 축축해지므로 금물이고, 채소도 수분이 적은 당근이나 피망, 고기도 구운 돼지고기나 햄이 좋다. 건더기가 많은 볶음밥을 먹으려면 따로 볶은 뒤 계란 볶음밥과 섞는 것과 방법임. 
  • 조릴 때 양념을 넣는 순서 : 소금은 설탕보다 분자량이 작아 그만큼 식품에 침투되기 쉬우므로 설탕을 먼저 넣고 소금을 넣으면 소금 맛이 나지만, 반대의 경우는 설탕의 분자량이 커 좀처럼 침투되지 않는다. 소금을 먼저 넣으면 재료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조직이 단단해져 다른 양념이 맛을 내기도 어렵다. 하지만 설탕을 먼저 넣더라도 양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설탕은 물에 대한 친화성이 커서 수분을 꼭 끼고 놔주지 않는 탓에 다른 양념 침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 이래저래 어려운게 조림 요리인 듯 싶습니다.
  • 찜의 비결은 찜기 안에 수증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료를 넣는 겁니다. 수증기와 달리 공기는 열의 전도율이 높지 않아서 미리 찜기 속에서 공기를 몰아내지 않으면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않는다. 온도가 낮을 때 재료를 넣으면 재료가 차가운 재료 표면에 수증기가 물방을로 맺혀 물을 뒤집어 쓴 것 처럼 축축해진다. 
  • 구멍이 송송 뚤리지 않는 계란찜의 비결은 온도. 계란 단백질은 60~70도에서 응고되기 때문에, 10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계란 단백질은 급격하게 응고되는데 수분은 수증기가 되려 해서 응고되어 가는 계란 속에 기포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일본에서 발표된 책이라 전자레인지의 활용도를 다양하게 선보이는게 독특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천천히 가열'같은 기능이 대표적이죠. 어차피 전자레인지 조리는 잘 하지 않지만 채소나 과일 등 데우고 싶지 않은걸 알루미늄 은박지에 포장하고 도시락을 데우는 아이디어는 눈길이 가네요. 마이크로파는 알루미늄을 통과하지 못하니까요.

재료 쪽에서도 몰랐던 내용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어는 붉은살 생선인줄 알았는데 실은 흰살 생선 쪽이라고 합니다. 살색은 먹이인 새우와 개의 적색색소로부터 물든 것이라는군요. 같은 이치로 연어에 흰살 생선을 먹이면 살이 하얗게 된다고 합니다. 또 밥을 가장 맛있게 보관하는 방법은 냉동 -> 냉장 -> 보온의 순서라고 합니다. 보온 밥통의 보온 기능은 실은 별 쓸모 없는 기능이네요. 차라리 "급속 냉동"이나"냉장" 으로 기능을 바꾸면 더 잘 팔릴지도 모르겠어요. 특허라도 내 볼까요? 이런 내용 외에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도움될 만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문제라면 너무 과학적이라 읽기에 지루하고 쉽게 지친다는 점, 그리고 번역에 오류와 오타가 많다는 점입니다. 조리법과 재료로 책을 나누더라도 조금 더 넉넉하고 실제 사례 중심의 재미있는 내용을 추가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고요, 조금 더 철저한 교정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제가 읽은 구판은 절판되었고 개정판이 나왔던데 개정판은 저의 바램이 조금이나마 반영되었기를 기대해봅니다.

2020/01/31

라멘이 과학이라면 - 가와구치 도모카즈 / 하진수 : 별점 3점

라멘이 과학이라면 - 6점
가와구치 도모카즈 지음, 하진수 옮김/부키

라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그 실체를 밝혀나가는 책입니다. 음식 관련 과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이 풀어낸 라멘에 관련된 내용은 크게 아래의 아홉 가지 항목입니다.

  • 1장_무엇이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가?
  • 2장_해장 라멘이 더 맛있는 이유
  • 3장_쫄깃쫄깃 면발의 과학
  • 4장_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라멘의 맛
  • 5장_화학조미료는 라멘의 친구인가, 적인가
  • 6장_기름과 건조 기술의 결정체, 인스턴트 라멘
  • 7장_라멘 명가의 맛을 과학으로 재현하다
  • 8장_라멘은 먹는 소리도 맛있다
  • 9장_사람들이 그 가게 앞에만 줄을 서는 이유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우선, 첫 번째 장에서는 라멘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감칠맛'을 꼽고 있으며, 이 감칠맛의 정체에 대해 상세히 분석해 줍니다. 일본의 맛국물은 보통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를 함께 사용하는데, 그래야 더욱 맛있어진다는군요. 이는 글루탐산의 단독 사용보다 이노신산과 조합할 경우 감칠맛이 7~8배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가쓰오부시나 다시마의 향 성분은 물에 녹아나서 라멘의 경우, 국물맛이 농후해진다고 하네요.

두 번째 장에서는 음주 후 숙취 해소를 위해 라멘이 땡기는 이유를 탐구합니다. 이 역시 과학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술을 마시면 당을 만드는 원료가 부족해져서 혈당이 떨어지는 탓에 당이 필요해져서 단 것이나 탄수화물을 먹고 싶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알코올이 뇌 신경에 작용하여 공복감을 증가시키기 때문이고요. 과음 후 단 것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행복한 기분이 되는데, 술 먹고 라면을 먹으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군요.
당연히 술을 먹고 라멘을 먹으면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문가가 추천하는 술 마시고 좋은 음식은 스포츠 음료에요. 이유는 당과 소금, 염분 모두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과즙 100% 오렌지 쥬스도 좋다는군요. 수분 섭취에 칼륨도 많아서 과하게 섭취한 나트륨을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으며, 지방과 당 분해를 촉진하는 비타민 B1, B2도 풍부하니까요. 앞으로 저도 음주 후에는 과즙 쥬스를 먹어봐야겠습니다.

세 번째 장은 제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라멘은 자가 제면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소바의 경우 풍미가 바로 날아가므로 그날그날 먹을 만큼만 만들며, 공장에서 만들 경우 배송 중 향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가게에서 직접 면을 만들어야 하지만 라면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게 이유입니다. 면의 꼬불꼬불한 정도가 국물 맛이 배는걸 좌우한다는 것도 결국은 호불호에 불과해 보이고요. 게다가 물과 밀가루가 완전하게 섞이는 수화 작용에 시간이 걸려서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자가 제면의 약점이에요. 공장에서 제대로 만든 면을 사용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 '간수'라는 말로 소개되었던 '간스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간스이는 라멘의 맛에 큰 영향을 주지만 단지 취향일 뿐이니, 가게와 손님들이 알아서 고르면 된다고 하네요.
이 장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면발 특성에 따른 팁입니다. 라멘을 밥과 함께 먹으려면 면은 부드럽게 삶아달라고 해야 한다네요. 그래야 간스이가 국물에 섞여 들지 않고 면도 퍼지지 않거든요. 면의 삶은 정도가 꼬들꼬들하면 면이 국물을 빨아들이고 국물에는 간스이 맛이 섞이게 됩니다.

네 번째 장은 라멘의 맛에 온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5미(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중 짠맛과 신맛은 온도에 따른 변화가 없지만 단맛, 쓴맛, 감칠맛은 온도에 따라 변화하므로 5미가 조합된 요리는 온도에 따라 맛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짠맛과 감칠맛의 밸런스가 온도에 따라 달라져서 제대로 맛을 느끼려면 적절한 온도로 먹어야 한답니다.

다섯 번째 장은 화학 조미료에 대한 이야기인데, 결론은 화학 조미료를 적당히 써야 맛있는 라멘이 된다는 겁니다. 화학조미료 사용 여부보다 식재료를 듬뿍 사용한 국물인지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는 팁도 좋았고요. 이유는 효모 추출물이나 단백가수분해물과 같은 첨가물은 '식품'으로 인정되어 화학조미료로 치지 않는데, 이런걸 많이 사용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또 라멘은 부족한 영양소가 있으니 제대로 만든 라멘에 무언가를 조금 더하면 아주 좋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쇼유 라멘을 먹은 후에 채소주스를, 그리고 돈코츠 라멘의 영양가는 볶은 깨 간 것을 더하는 것만으로 훨씬 높아지고 쇼유 라멘에는 구운 김을 올리면 좋다, 미네랄을 보충하고 싶다면 미네랄이 풍부한 미소 된장으로 만든 미소 라멘이나 탄탄멘을 주문하라는 식입니다.

여섯 번째 장은 인스턴트 라멘이 정말 몸에 좋지 않은지?를 조사한 결과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지금의 인스턴트 라멘은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염분이 많다고는 하나 국물을 남기면 되고, 기름 열화로 식중독을 일으켰던건 다 옛날 이야기이며 용기의 환경 호르몬 역시 위험성은 오해에 불과했다는 내용이거든요. 이 정도면 앞으로 컵라면을 먹을 때 건강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너무 자주 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초인 로크"로 유명한 만화가 히지리 유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구루구루박X"의 외계인들이 컵라면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로 "사람이 먹는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에요.

일곱 번째 장은 유명 가게, 노포의 라멘을 인스턴트로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들의 비법을 알려주는, 일종의 탐방 취재 스타일의 리포트입니다. 사실 이런저런 엑기스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최대한 비슷한 맛을 찾아내는게 전부라 딱히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라면의 염분 측정 결과가 더 재미있었어요. 돈코츠 라멘의 염분은 1.48퍼센트, 미소 라멘의 염분은 1.35퍼센트인데 소유 라멘의 염분은 1.58퍼센트로 소유 라멘이 가장 높았거든요. 세가지 라멘 중 가장 감칠맛이 적은게 소유 라멘이라는 점에서 맛을 증폭시키는 감칠맛의 효과로 염도를 낮출 수 있다는건 사실이라는 뜻이지요. 마찬가지 이유로 도쿄의 새까만 소바 국물과 간사이의 투명한 소바 국물을 비교할 때, 간사이 소바 국물의 염분이 더 높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장은 일본에서 라면을 먹을 때 주로 표현되는 의성어 "즈루즈루"에 대해 탐구합니다. 뭘 이런것까지 조사하나 싶었는데, AI까지 동원해서 의성어의 느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데에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후루룩"과의 비교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에요. 이 AI를 가지고 이런저런 작업을 하면 아주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비슷한 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마지막 장은 사람들이 라멘 가게에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약과 동일하게 뇌의 보상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뇌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모르핀이나 헤로인의 수용체이자 신경 전달 물질인 오피오이드에 작용하게 되거든요. 그러나 실제 마약과는 다르게 보상 회로 자극은 지극히 짧습니다. 그리고 실험 결과, 먹기 전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하네요. 즉 '기다리는 동안', '대기하는 동안' 음식을 곧 먹을거라는 생각에 쾌감이 최고조에 달하게 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포방터 돈가스집에 줄을 서서 먹는 것에 대한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는데, 실제 줄을 서는 과정에서 이런 뇌내 보상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장기간 줄을 서는 것도 한 번쯤은 해봄직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라멘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재미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주 유익했습니다. 라멘 그 자체보다는 주변 정보, 지식에 대해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난다는건 조금 아쉽습니다만, 재미와 교양 양쪽 측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본 라멘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1/12/09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 사쿠라이 스스무 / 전선영 : 별점 2점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 - 4점
사쿠라이 스스무 지음, 전선영 옮김/살림Math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것들에서 수학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어 소개한다는 취지의 교양서. 중고등학교 때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즉 "이걸 배워서 어디다 쓰지?"라는 질문에 대해 좋은 답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앞부분의 삼각함수, 지수와 로그를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감각 크기가 자극의 로그에 비례한다는 베버-페히너의 법칙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다소 식상하긴 했지만 컴퓨터 관련 설명에 등장했던 2진법 전환에 대한 새로운 공식이나 컴퓨터 작동의 기본 원리는 상당히 잘 설명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공식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최근 모 작품 때문에 벌였던 삽질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의 이야기들은 영 별로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GPS 이야기는 그냥 그랬고, 컴퓨터의 2진법 관련 이론과 암호에 대한 내용도 다른 곳에서 많이 접했기 때문입니다. 황금비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나마 황금비 이야기와 함께 소개된 일본 특유의 백은비에 대한 이야기는 괜찮았지만, 이어지는 단위, 움직임과 미적분 항목도 그냥저냥이었으며, 맨 마지막의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이라는 주제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숫자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동화에 불과해서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쪽 분야의 다른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도 있겠지만, 재미와 지적 호기심 양쪽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중고등학생에게 더 적합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2020/06/27

완벽한 커피 한 잔 - 래니 킹스턴 / 신소희 : 별점 3점

완벽한 커피 한 잔 - 6점
래니 킹스턴 지음, 신소희 옮김/벤치워머스

"완벽한 차 한 잔"과 대칭을 이루는 커피 관련 교양서로 구성 역시 "완벽한 차 한 잔"과 유사합니다. 역사, 원두에 대한 소개 및 커피 구성 요소에 대한 분석, 커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소개, 커피 추출법 및 각종 도구와 레시피 등이 잘 정리되어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구성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우선 1장 '원두'의 내용은 커피가 발견되어 전 세계로 퍼지게 되는 과정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서 시작해서 원두별 상세한 소개, 원두의 향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고도별 원두 향미 분석, 원두의 수확과 가공 방법까지입니다.

2장 '화학 작용'은 커피를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을 분석하고 소개합니다.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법 설명이 기억에 남으며, 커피에 추가되는 중요한 요소인 우유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것 역시 눈에 띄는 점이었어요. 순전히 커피에 추가되는 우유의 성질과 효과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3장은 커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로스팅과 분쇄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로스팅의 핵심이 고기 구울 때 등장하는 '마이야르 반응'과 관계가 깊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카페에서 가끔 보는 '강배전', '약배전'이 무슨 뜻인지도 잘 알 수 있었고요. 강배전은 고온 로스팅을 1차 크랙 현상 뒤 2차 크랙이 일어나기 전 까지 진행하는 것이고, 약배전은 1차 크랙 직후에 멈춘다는군요. 2차 크랙에 가까와질 수록 숯이나 재 같은 향미, 즉 '탄 맛'이 도드라기지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게 바리스타의 능력이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산미가 진한 커피보다는 조금 고소한 강배전 쪽이 입맛에 맞기는 합니다.
이러한 용어 설명 외에도 직접 로스팅하고 분쇄하기 위한 가이드적인 부분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각종 기구와 방법을 일러스트와 함께 단계별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프라이팬으로 원두를 로스팅하는 방법까지 소개될 정도니까요.

4장은 추출과 균형이라는 제목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역시 추출 방법은 물론이고 물의 종류. 온도까지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5장은 커피와 테크놀로지로 다양한 커피 메이커가 소개됩니다. 터키의 이브릭, 사이펀 / 진공식 커피메이커, 모카포트, 전동 커피 메이커, 캡슐 커피 머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기계가 일러스트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커피 메이커 외에도 우유 거품 내는 기구나 컵과 같은 커피를 위한 부가적인 기구도 모두 수록되어 있어요. 정교한 그림이 특히 볼거리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6장은 커피 만들기에 대한 내용으로 여러가지 커피 만드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주전자에 분쇄한 원두와 물을 넣고 대충 끓여 우려내는 '카우보이식 커피'에서 시작하여 거의 모든 커피 추출 방법을 망라합니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한 다양한 커피 음료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추출 방법에 대한 단계별 상세한 소개가 특히 압권으로, 기구만 있다면 도전해 봄직할 수준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커피를 맛있게 추출하는 방법에 대한 책은 많을겁니다. 다양한 커피 레시피 및 커피의 역사에 대한 책도 많고요. 하지만 딱 이런 내용들을 요약해서 딱 한 권으로 정리한다면 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책의 디자인, 가격도 적당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1/05/23

사이코패스 : 정상의 가면을 쓴 사람들 - 나카노 노부코 / 박진희 : 별점 3.5점

사이코패스: 정상의 가면을 쓴 사람들 - 8점
나카노 노부코 지음, 박진희 옮김/호메로스

제목 그대로, 사이코패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심리학, 과학, 인문학 교양서입니다. 사이코패스에 대해 그 존재 이유 및 특징, 문제점과 대처 방안, 치료 방법 등 거의 모든 관련 항목을 알게 도와주는데 분량도 부담이 없고, 설명도 쉬운 편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새롭게 접했던 정보들이 아주 많습니다. 대표적인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사이코패스의 신체적 특징으로 얼굴이 긴 남성보다는 얼굴 폭이 있고 완고한 인상의 남성이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의 농도가 높을수록 얼굴이 옆으로 넓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많으면 경쟁심과 공격성이 높아지니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설입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좋은 정보 같습니다. 단, 여성의 경우 얼굴 폭은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답니다.
그리고 심박수가 낮고 잘 높아지지 않는 사람일 수록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는건 당연합니다. 무언가 사건을 저지른 뒤 심박수가 높아지지 않으면 행동에 브레이크가 잘 걸리지 않을테니까요. 그런데 이게 남성이 여성보다 폭력성, 반사회성이 높은 근거가 될 수 있다는건 재미있었어요. 남성이 여성보다 심박이 1분간 약 6회 정도 늦은 탓일 수도 있다고 하거든요. 청중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이나 법정에서의 변론 등에서 긴장하지 않고, 냉정하게 행동하는 경영자나 변호사에게 사이코패스가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심박수가 낮아야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는 보통 'IQ 높은 천재 범죄자'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도 인상적입니다. 이런 착각이 생긴건 사이코패스가 사회 통념상 할 수 없는 일을 거리낌없이 해 버려서, 특별해 보인 것 뿐입니다. 한마디로 '돌아이'와 '천재'를 착각한 것에 불과한 거지요. 이는 사이코패스가 불안에 강한 특징 덕분이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면 불안을 느끼는 강도가 높아 위축되고,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 불안의 강도가 낮아 대범해지는 반면, 사이코패스는 불안의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거든요. 덕분에 검거하기 쉬운 사이코패스가 생겨난건 다행입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아 위험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그래서 회피가 힘들어지게 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스스로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타인의 심리를 읽어내는 재능이 뛰어나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정성은 낮지만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과 권위의 존중은 중요하게 생각한다 등이 소개됩니다. 허언증이 있을 경우도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고요. 거짓말에 죄의식이 없다, 타인의 아픔을 무시한 채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한다는 점은 사이코패스의 특징 그 자체지요. 사이코패스가 상대방의 신뢰를 잘 얻는건 이런 거짓말 능력도 한 몫 단단히 할 테고요. 실제로 허언증이 있던 사이코패스 사례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특징을 본다면, 사이코패스는 프로 도박사가 가장 적합한 직업이 아닐까 싶어요. 불안을 느끼지 않고, 위험한 순간에도 주도권을 쥐려고 노력하며, 거짓말을 잘하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읽으면서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니 말이지요. 이런 특징들에 더해 조직에 충성한다는 점에서는 킬러도 잘 어울릴 것 같네요.

그동안 궁금했었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차이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과학자들의 시각이냐, 사회학과 교육학자의 시각이냐의 차이더라고요. 이런 존재를 심리학, 생물학, 유전학적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라는 명칭을 선호하고, 이 존재가 사회의 영향력이나 유년기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시오패스'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니, 결국은 명칭의 차이일 뿐 큰 차이는 없는 셈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이 양쪽 모두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걸 알 수 있고요. 유전적인 이유에 어린 시절의 환경, 교육 등이 결합해야 사이코패스가 탄생한다는걸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통해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전에 읽었던 "n분의 1의 함정"에 등장했던 '최후 통첩 게임'을 사이코패스를 찾아내는데 사용하는 실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정해진 돈을 나눌 때, 분배자가 정한 비율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여 거부하는 사람 보다는,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거부하지 않는 사람이 사이코패시 성향이 높다는군요. 복수하듯 거절하기 보다, 단 돈 1엔이라도 받는게 이득이라고 냉철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라는데 그럴듯했습니다. 입사 면접에서 한 번 해볼만한 테스트가 아닐까 싶네요. 

사이코패스는 보통 사람과 뇌의 특정 부분의 문제와 차이점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뇌의 전두전피질 가운데 안와전두피질과 내측전두전피질의 양쪽 기능이 저하되어 있으면 반사회적 행동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사이코패스는, 편도체와 안와전두피질 혹은 내측전두전피질과의 연결성이 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등인데, 앞으로는 이를 통해 사이코패스의 구분이 의학적으로 가능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을 판별하는데 중요한 척도로 쓰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 책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유전의 영향이 어느정도 있다고 하니, 의학적인 결과와 혈통적인 계보가 결합하면 그 완성도는 더욱 높아질테니까요. 그런 세상이 좋은 세상일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또 각종 문헌을 통해, 사이코패스는 오래전부터 세계 각지에 있어왔다는 내용도 신기했습니다. 예를 들면 알래스카 북서부의 소수민족 유픽 (이른바 이누이트) 의 'kunlangeta'가 그러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것을 하지 않는다’= ‘반복해서 거짓말을 하며 속이거나 훔치는 남자’를 의미하는데, 500명에 한 명꼴로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무리들과 사냥에 나가지 않고 다른 남자들이 마을을 나서면 많은 여자들에게 섹스를 강요하며. 비난을 받아도 개의치 않으며, 장로의 앞에 끌려가 벌을 받아도 몸가짐을 고치지 못해서 결국 누군가 죽여버리고 만다는군요. '선천적이므로 고칠 수 없다'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지요. 아울러 승리자 그룹에 속하는 사이코패스도 많다며 오다 노부나가, 모택동, 표토르 대제 및 여러 미국 대통령들을 예로 들어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해주는데, 그럴 듯 했습니다. 이 중 가장 놀라왔던건 성녀 마더 테레사도 사이코패스일거라는 주장이었어요. 그녀가 보살폈던 아이들과 측근들에게 냉담했다는 여러 기록이 근거라네요. '박애주의자'는 특정 소수의 인간에게 깊은 애착을 가지지 못하므로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는 가설도 성립되는데, 좀 무서워지는군요.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인류 역사에서 사이코패스가 계속 나타나고 일정 비율로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이코패스가 생존에 유리했다면 그 수가 늘어났을 테고, 생존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면 자손을 남기지 못하여 도태되고 말았을텐데 말이지요. 이 책에서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개체가 일정 수 존재하는게 거시적인 시점에서 집단 생존에 유리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탐험가와 개척자도 사이코패스였을테고, 전쟁에서 아군의 피해에 눈 하나 깜짝않고 적을 죽이는 전쟁 영웅도 사이코패스였을테니까요. 이렇게 사이코패스가 필요한 상황이 많아서,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소실되지 않았다는 해석이지요. 필요에 더해, 사이코패스는 집단에서 배척당하고, 제거될 가능성이 높기도 하지만 반대로 집단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여 도리어 살아남기 용이했고, 복수의 이성을 홀려 유전자를 남겼을 가능성이 높았을 거라는 추론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이코패스 존재 이유를 설명하면서 소개된, "여성들이 나쁜 남자에게 빠지는 이유는?"에 대한 고찰도 재미있었습니다. 남성의 경우 인기있는 타입은 육아에 노력을 분배, 할애할 것 같은 남성과 사이코패스의 두 가지 타입이라고 합니다. 사이코패스는 거짓말을 잘 하고, 강함을 어필하여 번식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명화된 현대에서는 육아를 도와줄 남성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생리 주기에 의해 호르몬 밸런스가 원시적으로 변화할 경우 - 여성 호르몬과 세로토닌의 농도가 내려가는 배란기 전후 3일과 생리 전 일주일 -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남성이 선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사이코패스의 삶도 소개됩니다. 스티브 잡스가 사이코패스인 이유부터 상세히 설명된 이 장에서 가장 주목할만했던건, 면접을 중시한 채용 시험, 그리고 배심원 참여 재판의 문제입니다. 사이코패스는 거짓말을 잘하고, 항상 당당하며 불안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면접을 통과하거나, 배심원들을 설득해서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악덕 고용인, 악플러, 서클 크러셔 등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사이코패스 및 이들의 먹잇감이 되는 추종자들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왔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아나키"같은 여러 비합리적인 커뮤니티 멤버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이 책에 따르면 추종자들은 속았다는걸 알게 되더라도 '믿는 편이 기분이 좋기 때문에' 계속 추종자로 남게 된다는군요. 인지부하, 즉 스스로 판단하는건 부담스럽기에, 뇌의 부담을 덜기 위해 무언가를 믿는 쪽을 택하는 거지요. 종교와 별 다를게 없는 셈입니다. 

 마지막 장은 사이코패스 진단법과 분류, 그리고 치료 방법입니다. 치료를 위해서 사이코패스에게는 벌이 아닌 보상을 규칙으로 학습시킬 수 밖에 없다는 실험 결과가 기억에 남네요.

이렇게 사이코패스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던 좋은 독서였습니다. 목차가 다소 두서가 없다는 점, 그리고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는 점 등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빼어난 책이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사이코패스에 대해 궁금하셨던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21/04/10

대량살상수학무기 - 캐시 오닐 / 김정혜 : 별점 3점

대량살상수학무기 - 6점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흐름출판

수학박사이자 펀드회사 퀀트, 데이터 과학자 등으로 일하던 저자가 빅데이터 경제가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내용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쓴 수학, 과학, 인문학 교양서입니다. 빅데이터를 기반한 수학 모형 프로그램이 왜 대량살상수학무기 (이하 WMD)로 불릴만큼 위험한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 줍니다.

위험한 이유는, 인간의 편견과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으며 유해한 결론이 나오더라도 개인이 반박하거나 수정하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대체로 직접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대체 혹은 대리 데이터로 억지로 연관성을 도출하고요. 한 마디로, 가난한 동네에 살고, 신용이 낮고,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고 모두 범죄자가 되는건 아닌데 이런 식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이건 뭔가 있어보이지만 실상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은 논리라는 겁니다. 특정 피부색은 행실이 나쁘고, 그들과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거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굉장히 공감이 많이 됩니다.

또 이러한 WMD가 널리 사용됨으로 인해서,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차별받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신용을 측정하는 '신용평가점수'입니다. 신용평가점수는 대부분의 경우 업무 능력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평가점수가 낮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죠. 말 그대로 하향식 악순환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아요. 얼마전 대통령께서 신용도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을 더 많이 해줘야 하지 않느냐? 라는 말을 해서 엄청나게 욕을 먹었었습니다. 물론 원칙에 따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렇게 신용도로 대출을 하게 되면, 당연히 부자나 안정적인 직장인에게 더 유리할 수 밖에 없어요. 정작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은 고금리 사금융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어렵겠지만, 뭔가 대책은 필요한건 분명해요.

인간의 편견이 양형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여 범죄자들을 더욱 공정하게 대하자는 재범위험성모형 recidivism models 의 문제점도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양형의 일관성을 높이고, 판사의 기분이나 편견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이며, 평균 수감 기간도 줄여서 예산을 절약해 주는 획기적인 모델이라는데, 아쉽게도 이 역시 전형적인 WMD에 불과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대리 데이터가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은 일정한 직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가족과 친구가 많은 환경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죠. 그러면 이들은 재범 위험성 평가에서 받은 높은 점수가 더해져, 더욱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범죄자들에게 둘러싸인 감옥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수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수감 생활은 그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즉 재범 위험성을 확실히 증가시키고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더라도 예전에 살던 가난한 동네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전과자라는 별까지 단 상태라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결국 그는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이걸 재범위험성모형이 정확한 예측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냥 하향식 악순환의 또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단지 '현재의 범죄'만 놓고 판단을 해야지, 사건과 관계없는 주변 데이터들을 판단에 집어넣는건 잘못된 알고리즘이죠.

그 외, 취업 시장, 대학 입시 시장 등 다양한 곳에서 WMD가 사용되는 사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일정 관리 소프트웨어의 가혹한 일정 관리는 끔찍할 정도에요. 게다가 거의 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인데, 사실상 일반 개인이 반항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게 무섭네요. 거대하고 불투명하며, 무책임하다는 측면에서 최근 화두가 되는 마이크로 타기팅 광고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WMD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한 무리수도 몇 가지 있습니다. 경찰이 사용하는 범죄 예측 모형 프레드폴이 대표적입니다. 경범죄를 중시하도록 설계되어, 빈민가 중심의 순찰을 통해 검거율이 대폭 상승했지만 저자는 진짜 중범죄는 잡지 못한다고 역설하지요. 하지만 순찰 경관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경제사범을 체포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순찰이라는 행위가 거리에서의 범죄 단속이니까요. 저는 순찰 경관이 필요한 범죄 카테고리 중심으로 설계된 지금 모델은 충분히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력서 서류 심사에서, 깔끔한 것과 지저분한 것의 차이로 평가하는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이력서를 내는데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인 사람을 선발하는게 마땅하니까요.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배려심,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은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고요. 아, 이런 것도 대리 데이터에 따른 개인적 편견일까요?
비만인에게 건강 보험료를 많이 걷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비만이 병의 원인임이 분명하면, 그다지 잘못된 정책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또 비슷한 사례가 계속 이어지니 좀 식상한 측면도 있고, 목차 구성에서 'WMD가 무엇인지'를 좀 더 명확하 한 뒤, 뒤의 사례들을 소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각 사례 소개 때 마다 '이건 이러해서 WMD이다' 에 대한 설명이 동일한데도 불구하고 계속 등장하는데, 목차 구성을 통해 이런 부분은 최소화할 수 있었을걸로 보이거든요.

아울러 이런 프로그램을 통한 개인 평가가 과연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근본 고민이 부족하다는 것도 좀 아쉬웠습니다. 지난 수백년간 모든 모델, 즉 대출이나 재판, 고용, 입시 등 거의 모든 경우에서 '평가'라는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 평가는 그동안은 해당 상황을 통제하는 '사람'에 의해 진행되었고요. 과연 사람이 이런 프로그램보다 더 나을까? 라는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책에서는 대체, 대리 데이터가 문제가 있다고 계속 주장하지만, 사실 경험적으로 어느정도 성립하는 대체, 대리 데이터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고요. 예를 들면 예전 "신입사원"이라는 만화에서 보았던, '학력필터' 이론이 그러합니다. 부모님 노력이 아니라 순수하게 학생들끼리 '학력' 으로만 평가해서 순위가 높은 대학에 들어간거라면, 저라도 명문대생을 우선 뽑을 것 같네요.

그래도 오랫만에 굉장히 유익하고 좋은 독서를 한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인공지능의 문제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가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08/10/06

혼다 디자인 경영 - 이와쿠라 신야 외 / 박미옥 : 별점 1.5점

혼다 디자인 경영 - 4점
이와쿠라 신야.이와타니 마사키.나가사와 신야 지음, 박미옥 옮김/휴먼&북스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혼다의 디자인 경영의 역사와 그 사례를 주로 혼다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와 디자이너인 이와쿠라를 중심으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혼다의 다양한 차종과 그 디자인 철학, 그리고 “전략”이라고까지 부를 만한 디자인 중심 제품의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례 중심으로 소개하기에 전략에 관련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품이 상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디자인이라는 중요한 명제를 수십년전부터 생각하고 제품에 도입했던 혼다사의 경영진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요.

하지만 구세대적인 사장의 절대 독재와 상명하복이 지나치게 좋은 쪽으로만 해석된 것은 불만이며, 너무 사례 위주이기 때문인지 실제 전략에 도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많은 책이기도 합니다. 혼다사의 역대 차종들과 그 개발 과정을 접하는 재미 이외의 다른 실무적인 부분을 잡아내기는 어려웠거든요. 아무래도 재미와 실무라는 두마리 토끼를 결국 다 잡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약간의 참고와 약간의 재미를 지닌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한 책이었습니다. 뭔가 가치있는 교양서를 읽고 있다는 위안을 삼기에는 부족했어요. 그다지 남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혼다의 자동차 역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2016/05/29

음식의 별난 역사 - 이안 크로프턴 / 김시원 : 별점 2.5점

음식의 별난 역사 - 6점
이안 크로프턴 지음, 김시원 번역/레몬컬쳐

'한 권으로 맛있게 즐기는 음식 교양서'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음식에 대한 미시사 서적입니다. 선사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역사에 이름을 남긴 다양한 음식들과 음식에 관련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줍니다. 책의 분량이 300여 페이지에 불과해서, 이야기들은 굉장히 짤막하지만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좋았습니다.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음식과 관련된 유명인들의 명언이나 일화, 음식에 대한 다양한 저작물들의 인용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데다가,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아서 만족도가 높은 덕분입니다.
저자 이안 크로프턴은 일반인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는 도서를 주로 집필했다는데,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 요약하는 능력이 탁월해 보입니다. 정리와 요약의 달인이라 생각되네요. 국내 출간된 책은 이 책 포함 3권인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에요.

책에 소개된 일화 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프렌치 토스트"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346년 그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군에게 포박된 영국 기사들이 몸값 지급 때문에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후 독일에서 달걀물을 입힌 토스트를 '가난한 기사들'이라는 뜻의 '알메 리터'라 부르기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이를 '독일식 토스트'라고 부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국을 기리는 의미로 "프렌치 토스트"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콘은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페르시아식 패스추리를 팔던 시리아계 미국인 어니스트 함위가 접시가 떨어진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패스추리를 콘 모양으로 말아준 게 시초라고 합니다.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등장했었던 이야기인데 이 책을 참고한 것일까요?

저작물에서 인용된 이야기로는 1729년 조너선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이라는 단편 풍자 소설이 인상적입니다. 12만 명의 어린아이들 중 2만 명 정도를 식재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인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린아이 요리는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영주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요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라는 마지막 줄의 풍자로 마무리됩니다. 지금 제안해도 풍자로서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비슷한 풍자로는 기근에 고통받는 아일랜드 농부들에게 '배가 고프면 뜨거운 물에 커리 가루를 타서 마시면 된다'고 말한 노퍽 공작에 대한 것도 재미있습니다. 런던 비프스테이크 클럽 회원이 "타임스"에 기고한 레시피로 제목은 "노퍽 커리 요리!!!". '멍청한 정도에 관계없이 살이 통통하게 찐 공작을 잡아 후추와 여러 향신료로 뭉근히 끓인다. 농부들이 모이는 날 내어 놓으면 좋은데 누구나 달려들어 이 요리를 자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네요. 재미있죠?

명언들은 신랄한 것들이 많습니다. 1799년 나폴리 대사 프란체스코 카라시올로의 말이 대표적이죠. '영국에는 종교가 60개나 되지만 먹을 만한 소스는 오직 한 개밖에 없다'는 말인데 영국 요리가 형편없음을 알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먹을 만한 바로 그 한 개가 무슨 소스인지도 궁금해 집니다.
1880년 마크 트웨인이 "유럽 방랑기"에서 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인은 라인의 화이트 와인을 아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이 와인과 식초의 차이점이라곤 라벨이 다르다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돌직구 풍자의 대가 마크 트웨인답습니다.
좋은 말도 있습니다. 마티니를 찬양하는 말들이 그러한데 1949년 미국 소설가 버나드 디보토는 "키스보다도 좋은 게 바로 마티니다"라고 했고, 문예비평가 헨리 루이스 멩켄은 "영국 소네트에 견줄 수 있는 미국의 유일하게 완벽한 발명품"이라고 했으며, 동화작가 E.B. 화이트는 "평안함의 묘약"이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소련의 니키타 흐루시초프까지 "가장 치명적인 무기"라고 불렀다네요. 소련에는 보드카가 있으니 좋은 승부가 되었을 텐데 조금 의외군요.

레시피로는 록키 산맥에서 나는 굴,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가 돋보입니다. 당연히 록키 산맥에서 굴이 날 리가 없고, 재료는 바로 황소 고환입니다. 황소 고환을 물에 넣은 뒤 껍질을 벗겨 타원형 모양으로 자르고, 밀가루 + 옥수수가루 + 달걀로 만든 튀김옷을 두른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튀겨내는 요리이지요. 닭똥집 튀김과 비슷하리라 예상할 수 있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완전 맥주 도둑일 듯한 느낌!

그 외에도 벌레나 기묘한 재료들을 먹어본 사람들의 감상평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도판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주요한 항목이라도 도판을 곁들였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죠. 15,000원이라는 가격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성비가 좋다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놓치기 힘든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음식 관련 잡학, 미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0/11/16

셜록 홈스의 과학 - E.J 와그너 / 이한음 : 별점 4점

셜록 홈스의 과학 - 8점
E. J. 와그너 지음, 이한음 옮김/한승

제목만 보면 셜록 홈즈가 등장해 다양한 과학 상식을 설명하는 교양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일부를 인용하며 당시 과학 수사—즉, 법과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한마디로 법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총 1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주 자세한 내용까지 다루지는 않지만 과학 수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또한, 다양한 사건 사례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자료적 가치와 재미를 모두 충족시키는 보기 드문 책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내용을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등장했던 에피소드나 대사를 인용하며 설명하는 방식이 홈즈 팬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요소였습니다.

다만, 과학 수사 초창기에서 셜록 홈즈의 전성기, 즉 20세기 초반까지의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그 이후의 발전상을 심도 있게 알기는 어렵다는 점, 그리고 참고도서로 보기에는 도판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별점은 4점. 과학 수사의 역사에 대해 이만한 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학 수사에 관심 있으시거나 다양한 사건 사례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께 꼭 추천드립니다.

"사자와의 대화"

시체를 분석해 범죄를 해결하는 법과학의 역사를 다룹니다. 사망 시간의 추정, 부검 및 해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19세기 후반 헝가리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린 하녀가 실종된 후 유대인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박해받던 중, 익사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깨끗하게 보존되어 실종된 하녀가 아닐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밀한 부검을 통해 뼈의 성숙도로 나이를 판정한 결과, 시신이 깨끗했던 이유가 피부의 진피층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강물이 차가워 시신이 3개월 동안 잘 보존되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야수 이야기와 검은 개"

"바스커빌가의 개"를 토대로,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고대 민담과 전설에서 비롯된 수상한 사건들을 설명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했지만, 마지막에 소개된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사건에서 주인이 살해된 현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앵무새의 부리에서 살인자의 피를 채취해 범인을 잡았다는 내용이었는데, 용감한 앵무새가 범인을 공격한 덕분이었습니다!

"옥에 티"

곤충과 범죄 수사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이 왜 "옥에 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파리가 잡은 범인"을 함께 읽어보시면 더욱 흥미로울 것입니다.

"독살의 증거"

제목 그대로 독살 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또한, 시체에서 독을 검출하는 방법, 특히 비소 검출 기법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얼룩끈"에서 뱀의 이빨 자국을 통해 해결한 사건을 예로 들며, 피하 주사 흔적을 발견해 독살 사건을 해결한 사례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단서를 실제 사건과 연결해 설명해 주니 더욱 흥미로웠거든요.

"변장과 수사관"

비도크를 중심으로 변장과 관련된 실제 사례를 소개합니다. 비도크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가짜 경감 듀"로 유명한 크리픈 사건(정부를 아들로 변장시켜 도주했던 사건)도 다루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심하게 절뚝이는 범인을 잡기 위해 그의 변장을 간파하고, 범인이 특수 구두를 신었을 것이라고 추리한 사립탐정 헨리 고다드의 활약이었습니다.

"범죄자의 초상"

범죄자의 신원 파악을 위한 방법의 발전 과정을 소개합니다. 초기에는 문신이나 흉터를 기록하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이후 사진술, 베르티용 측정법을 거쳐 지문 감식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마지막에 소개된 사건이 인상적이었어요. 1920년대 리옹에서 대낮에 열린 창문을 통해 여러 물건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이랑이 모두 수직으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범인은? 놀랍게도 원숭이였습니다! 한 편의 추리 소설 같은 이야기였네요.

"오물"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는 먼지와 오물에 대한 법과학적 분석을 다룹니다. 1904년 독일에서 벌어진 재봉사 살인 사건에서는 범인의 손톱 밑 찌꺼기를 긁어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놀라운 사건은 자신을 흡혈귀라 주장한 영국의 존 조지 헤이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피해자를 황산에 녹여 증거를 없앴다고 확신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조약돌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조약돌은 피해자의 담석이었고, 담석은 황산에 녹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기막힌 반전이야말로 현실이 소설보다 놀랍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화, 의학, 살인"

19세기 범죄 수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기상천외한 이론들이 등장합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언급된 '골상학'이나 '범죄 유전 이론'을 비롯해, 자위행위가 해롭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등장한 황당한 치료법들, 흡혈귀에 대한 미신, 살해당한 사람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보존된다는 믿음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2021/10/03

법정에 선 수학 -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 김일선 : 별점 3점

법정에 선 수학 - 6점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지음, 김일선 옮김/아날로그(글담)

수학이 법정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재판에 대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숫자가 잘못 사용되어서 재판 결과가 왜곡된 경우가 많습니다. 독립적인 조건으로 판단하고 곱하면 안되는데, 곱해서 숫자가 엄청나게 커진 경우처럼 대부분 통계와 확률 계산의 오류들이고요. "루시아 더베르크 사건", "샐리 클라크 사건", "콜린스 부부 사건", "조 스니드 사건" 이 대표적입니다. 

루시아 더베르크는 2001년 네덜란드에서 아동 연쇄 살인마로 몰렸던 간호사입니다. 여러 아이가 심정지로 사망했을 때,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었지요. 그리고 그녀가 현장에 있었을 확률이 왜곡되어 재판에 사용되었습니다. 수학은 단지 거들었을 뿐이고, 사실 무리했던 기소와 수사, 그리고 무능했던 변호사의 환장의 콜라보였기에 그녀는 결국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오류가 일어난 이유는, 모두 개별적으로 보아야 하는 독립 사건을 곱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를 영아 돌연사로 연달아 잃은 뒤, 영아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샐리 클라크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샐리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명명한 메도 박사의 증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박사는 아이 두 명의 죽음을 모두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고 확률을 계산했었고요. 그러나 유전적일 경우 두 죽음은 독립적이지 않을 뿐더러, 설령 확률이 맞았다 하더라도 이게 샐리의 범행을 증명하는건 아닙니다. 운 나쁘게 불행한 죽음이 닥친 것에 불과하니까요. 여러모로 확률이 잘못 사용된 거지요.

콜린스 부부는 범인과 인상착의가 같을 확률 때문에 체포되었는데 검사측은 LA 시민 중 비슷한 특징을 지닌 커플이 존재할 확률을 계산해서 증거로 제시했었습니다. 부부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지만, 배심원은 유죄를 선고했고요. 그러나 이 확률 계산이야말로, 오류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우선 사용된 값이 문제였어요. "여성이 머리를 묶었을 확률" 은 통계학적 근거에서 나온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건이 독립적이라고 확정하고 곱한 것도 실수였고요. 마지막으로, 설령 그 숫자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건 샐리 클라크 사건처럼 실제 범인을 찾아낼 확률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에서 판결은 뒤집혔습니다. 이 재판에서 그나마 긍정적이었던건 검찰측 오류를 밝혀내는데 활약했던 트라이브가 법조계 유명인사가 되었고, 법정에서 수학 사용이 자제되도록 영향을 끼쳤다는 것 정도네요. 

"조 스니드 사건"은 1964년 뉴멕시코 실버시티에서 스니드 부부가 살해된 뒤, 용의자였던 아들 조 스니드 재판을 다루고 있는데 재판의 승패는 조 스니드와 권총을 구입했다는 로버트 크로셋이 동일 인물인지를 입증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갈리게 되었습니다. 검찰은 이를 수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권총을 구매한 사람의 특징 - 신장, 머리 색, 눈동자 색, 사서함 번호, 이름 등 - 을 독립적으로 보고 값을 뽑은 뒤 곱했는데, 이건 수학에 어두운 제가 봐도 설득력없는 숫자로 보입니다. 전체 인구에서 크로셋이라는 이름이 나올 확률을 추산했다? 가명을 썼다면서 그 이름이 존재할 확률을 계산한다는건 이상하지요. 다른 조건과 값도 비슷해서, 결국 이 확률 계산은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숫자일 뿐입니다. 설령 숫자가 어느정도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숫자는 조 스니드와 로버트 크로셋이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과는 상관도 없고요. 오히려 이런 검찰의 삽질이 드러나서, 수학이 사용되지 못했던 항소심 이후의 법정 공방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검찰은 다른 한 방을 준비해야 했기에, 변호인측과 드라마틱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니까요. 참고로, 여기서 검찰이 마지막 날린 한 방은 스니드의 전처를 증언대에 세웠던 겁니다. 그녀가 스니드의 폭력 성향을 입증했던 덕분에, 스니드는 종신형을 받게 되었지요.

이렇게 수학이 재판 결과를 왜곡시킨 사건도 있지만 수학이 잘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2007년 11월,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영국인 유학생 메러디스 커처가 살해된 뒤, 룸메이트였던 미국인 어맨다와 남자친구 라파엘이 체포되었던 "어맨다 녹스 사건"은 재판 결과야 어찌 되었건, 수학은 증거로 유의미하다는걸 나름대로 증명했습니다. 여기서 앞 뒤가 나올 확률이 다른 동전을 이용한 설명도 좋았어요.

그런데 몇몇 사건은 주제와 벗어나 좀 아쉬웠습니다 .폰지 사기의 원조 찰스 폰지 사건 재판은 그의 사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월가의 마녀로 불렸던 해티 부인 재판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드레퓌스 재판은 수학이 서명과 필적 위조를 입증하는데 사용되었지만, 실제 재판 결과와는 별 상관은 없었으니까요. 재판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었지만요. 드레퓌스 재판은 워낙 유명해서 이 책에서 따로 짚고 넘어갈 필요도 없어 보였고요. 저 같은 초보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이나 계산이 사용된 경우가 많은 점도 단점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수학 교양서로도 충분했고, 소개된 재판들 대부분이 한 편의 법정물을 읽는 듯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으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비슷한 책으로 "넘버스"가 있는데, 재미 면에서는 이 책의 압승입니다.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