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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3

법정에 선 수학 -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 김일선 : 별점 3점

법정에 선 수학 - 6점
레일라 슈넵스.코랄리 콜메즈 지음, 김일선 옮김/아날로그(글담)

수학이 법정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재판에 대해 소개하는 책. 대체로 숫자가 잘못 사용되어서 재판 결과가 왜곡된 재판이 많습니다. 대부분 통계와 확률 계산의 오류들이고요. 독립적인 조건으로 판단하고 곱하면 안되는데, 곱해서 숫자가 엄청나게 커진 경우처럼요. <<루시아 더베르크 사건>>, <<샐리 클라크 사건>>, <<콜린스 부부 사건>>, <<조 스니드 사건>> 이 대표적입니다.
루시아 더베르크는 2001년 네덜란드에서 아동 연쇄 살인마로 몰렸던 간호사입니다. 여러 아이가 심정지로 사망했을 때,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었지요. 그녀가 현장에 있었을 확률이 왜곡되어 재판에 사용되었고요. 수학은 단지 거들었을 뿐이고, 사실 무리했던 기소와 수사, 그리고 무능했던 변호사의 환장의 콜라보였고, 그녀는 결국 무죄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오류가 일어난 이유는, 모두 개별적으로 보아야 하는 독립 사건을 곱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를 영아 돌연사로 연달아 잃은 뒤, 영아 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던 샐리 클라크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샐리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명명한 메도 박사의 증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박사는 아이 두 명의 죽음을 모두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고 확률을 계산했었고요. 그러나 유전적일 경우 두 죽음은 독립적이지 않을 뿐더러, 설령 확률이 맞았다 하더라도 이게 샐리의 범행을 증명하는건 아닙니다. 운 나쁘게 불행한 죽임이 닥친 것에 불과하거든요. 여러모로 확률이 잘못 사용된 거지요.
콜린스 부부는 범인과 인상착의가 같을 확률 때문에 체포되었는데 검사측은 LA 시민 중 비슷한 특징을 지닌 커플이 존재할 확률을 계산해서 증거로 제시했었습니다. 부부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지만, 배심원은 유죄를 선고했고요. 그러나 이 확률 계산이야말로, 오류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우선 사용된 값이 문제였어요. "여성이 머리를 묶었을 확률" 은 통계학적 근거에서 나온게 아니니까요. 모든 조건이 독립적이라고 확정하고 곱한 것도 실수였고요. 마지막으로, 설령 그 숫자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건 샐리 클라크 사건처럼 실제 범인을 찾아낼 확률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에서 판결은 뒤집혔습니다. 이 재판에서 그나마 긍정적이었던건 검찰측 오류를 밝혀내는데 활약했던 트라이브가 법조계 유명인사가 되었고, 법정에서 수학 사용이 자제되도록 영향을 끼쳤다는 것 정도네요.
<<조 스니드 사건>>은 1964년 뉴멕시코 실버시티에서 스니드 부부가 살해된 뒤, 용의자였던 아들 조 스니드 재판을 다루고 있는데 재판의 승패는 조 스니드와 권총을 구입했다는 로버트 크로셋이 동일 인물인지를 입증할 수 있냐였습니다. 검찰은 이를 수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권총을 구매한 사람의 특징 - 신장, 머리 색, 눈동자 색, 사서함 번호, 이름 등 - 을 독립적으로 보고 값을 뽑은 뒤 곱했다는데, 이건 수학에 어두운 제가 봐도 설득력없는 숫자로 보였습니다. 전체 인구에서 크로셋이라는 이름이 나올 확률을 추산했다? 가명을 썼다면서 그 이름이 존재할 확률을 계산한다는건 이상하죠. 다른 조건과 값도 비슷해서, 결국 이 확률 계산은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숫자일 뿐입니다. 설령 숫자가 어느정도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숫자는 조 스니드와 로버트 크로셋이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과는 상관도 없고요. 오히려 이런 검찰의 삽질이 드러나며, 수학이 사용되지 못했던 항소심 이후의 법정 공방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검찰은 다른 한 방을 준비해야 했기에, 변호인측과 드라마틱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니까요. 참고로, 여기서 검찰이 마지막 날린 한 방은 스니드의 전처를 증언대에 세웠던 겁니다. 그녀가 스니드의 폭력 성향을 입증했던 덕분에, 스니드는 종신형을 받게 되었지요.

이렇게 수학이 재판 결과를 왜곡시킨 사건 외에도 <>처럼 수학이 잘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수학이 명백한 오류를 증명했던 사건입니다.
2007년 11월,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영국인 유학생 메러디스 커처가 살해된 뒤, 룸메이트였던 미국인 어맨다와 남자친구 라파엘이 체포되었던 <<어맨다 녹스 사건>>도 재판 결과야 어찌 되었건, 수학은 증거가 유의미하다는걸 나름대로 증명했던 사건이었고요. 여기서 앞 뒤가 나올 확률이 다른 동전을 이용한 설명도 좋았어요.

그런데 폰지 사기의 원조 찰스 폰지 사건 재판은 그의 사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월가의 마녀로 불렸던 해티 부인 재판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드레퓌스 재판은 수학이 서명과 필적 위조를 입증하는데 사용되었지만, 실제 재판 결과와는 별 상관은 없었습니다. 즉, 이 책의 주제와는 잘 어울리지 않았던 거지요. 재판 이야기는 굉장히 재미있었지만, 그래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드레퓌스 재판은 워낙 유명해서 이 책에서 따로 짚고 넘어갈 필요도 없어 보였고요.
저 같은 초보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이나 계산이 사용된 경우가 제법 많다는 점도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수학 교양서로도 충분했고, 소개된 재판들 대부분이 한 편의 법정물을 읽는 듯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으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비슷한 책으로 <<넘버스>>가 있는데, 재미 면에서는 이 책의 압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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