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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6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 세스지 / 전선영 : 별점 2점

영화까지 발표되었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의 작가 세스지의 신작입니다.

전작은 여러 형식의 기록들을 이어붙인 모큐멘터리 형식으로 괴이 현상의 실감을 높였는데, 이번에는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따릅니다. 때문에 형식은 유사하지만 별로 실감나지는 않았어요. 여러 기록들도 작중에서는 모두 심령 현상이 일어난 해당 장소와 관련된 괴담을 '날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괴이한 심령 현상들도 복수라고 볼 수 있는, 일종의 '윤회'라는 식으로 풀어가는데 깔끔한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등장인물들의 개별 서사도 이야기에 충분히 녹아들지 않고, 주어진 떡밥들 역시 모두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작가의 욕심이 지나쳐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섬찟한 부분도 있지만, 여러모로 전작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상세한 괴담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태 오두막

유튜버 이케다와 팬북을 출간을 진행 중이던 고바야시는 재생 횟수가 많았던 동영상에 그럴싸한 괴담을 날조해서 꾸며 넣기로 했다. 출판사가 혹하게 만들이 위해서였다. 첫 번째 대상은 '변태 오두막' 촬영 영상으로, 산 속의 이른바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 도촬한 듯한 사진이 널려있는 기묘한 곳이었다.
날조에도 리얼리티가 필요하다는 고바야시의 주장으로, 이케다는 '변태 오두막'처럼 '인형'을 버린 폐가를 취재했던 유튜버와의 인터뷰를, 고바야시는 '변태 오두막' 속에서 발견된 사진에 대한 추가 취재를 진행하는데..

괴담 내용은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변태 오두막은 누군가를 저주하려는 사람들이 저주의 대상 사진을 집어 넣는 곳이었습니다. 유키에는 불륜 상대의 아내 료코가 이혼해 주지 않아서 그녀를 저주하려고 오두막에 사진을 집어 넣었고, 이후 료코는 자살했습니다. 자살 후 유키에의 딸 유카에게 료코가 윤회하여 빙의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료코 사진이 '정화' 의식 때에는 부풀어 올라 있었다는 묘사는 확실히 섬찟했고요.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찾아낸 정보라고 설명되기 때문에, 현실감이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인터뷰,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드러내는건 전작과 비슷했지만 전작보다는 더 소설 느낌이 강했던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진상을 유키에의 독백으로 마무리한건 문제입니다. 유카가 마지막에 말한건 맥락 상 "용서 못해"일텐데, 이를 표현하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네요. 이 진상은 맥락적으로도 이상해요. 변태 오두막의 저주가 통해 료코가 죽었다면, 료코의 영혼 역시 저주로 죽는게 맞지 않을까요?

유키에의 독백말고 그냥 그녀가 딸을 방치하여 죽였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후일담 기사 정도로 마무리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천국 병원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괴담 작가 호조가 '천국 병원'에 대한 괴담을 찾아냈다. 폐암으로 연명 치료 중이던 할머니가 그만 편해지기를 바랬다는 한 소설가의 고교 시절 추억담으로, 이후 소설가는 자살했다...

앞부분 소설가의 회고는 괴담이라고 보기 어려운 담담한 이야기로 실망스럽지만, 뒤이은 청년들이 병원에서 벌인 담력 시험 체험기는 오싹합니다. 천국 병원의 막혀있던 병동에서 '괴이'를 마주쳤다가 쫓기는 과정의 서스펜스, 그리고 일행을 쫓던 머리가 커지던 괴이가 들고 있던 친구 휴대전화 번호로 아직도 전화가 걸려 온다는 후일담까지 완벽했던 덕분입니다.
마지막에 소설가의 회고를 틀어서 진상, 즉 소설가는 할머니가 미워했던 양녀였고, 소설가는 사신과 거래하여 할머니를 죽게 만들었다는 진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병원이 '제로 자기장'에 위치해서 괴현상이 많이 발생한다는 설명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합리적이거나 설득력이 높지는 않지만, 단순 괴담에 그치지 않으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니까요.

그러나 소설가가 할머니를 저주로 죽게 만든게 그리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문제입니다. 할머니는 나쁜 사람으로 그려진 탓에, 그냥 보면 정의구현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소설가가 저주의 역풍을 맞은 듯한 현실은 별로 와 닿지 않네요.

어리석은 세 사람

등장인물들의 과거 - 이케다는 과거에 호감을 품었던 유코를 저주로 죽게 만들어서 유령을 쫓는 유튜버를 하게 되었다, 호조가 유령을 볼 수 있어서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하다가 교생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등 -가 펼쳐집니다. 책 전체로 보면 징검다리 역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뒤에 이 과거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냥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윤회 러브 호텔

러브 호텔에 그려진 괴상한 벽화와 여러 소문에 대해 논의하는게 대부분인데, 대체로 굉장히 합리적으로 설명하며 마무리하는게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스토커 피해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죽은 여성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지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 여성은 순수한 피해자에 불과한데, 스스로 스토커 게이이치에게 뭔가 잘못했다고 여기는 묘사는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느낌이에요.

불확실한 괴이

앞서 날조를 위해 만들었던 이야기들 모두 고바야시의 음모였다는게 드러납니다. 유령을 믿지 않는 이케다가 유령에 홀리게 만드는게 목적이었지요. 이케다에게 뭔가 괴이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책을 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세사람"처럼 각자의 사정과 과거가 펼쳐지는 징검다리 이야기입니다.

한낱 패밀리 레스토랑

이케다에게 달력 일정에 유코의 기일이 기입되었고, 기분 나쁜 장난 전화가 걸려왔고, 움직일리 없는 유튜브 동영상 속에 괴이한 여성의 움직임이 나타났고, 자주 보던 버튜버의 화면이 기이하게 바뀌는 등의 괴이 현상이 일어났다...

이케다의 괴이 체험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앞서 선택되었던 괴담들 모두가 일종의 '윤회'를 다룬, 괴이가 다시 태어난다는 괴담이었다는게 설명되기 때문에, 책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부분이지요.

한낱 옛날 이야기

세 명 모두 누군가를 죽였었다, 그리고 죽였던 여자들이 유령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유령에 홀렸던 이케다가 신관인 호조 아버지의 도움으로 벗어나고, 책은 출간이 결정된다는 결말입니다. 앞서 그들이 각자 보았던 괴이들은 각자가 죽였던 피해자들이었다는게 밝혀지고요.

윤회에 관련된 로쿠부 살해 괴담을 이방인의 피가 필요했다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만큼은 참신했는데 회수가 안 된 떡밥이 너무 많고 - 이케다는 유코를 죽이지 않았는데 무엇에 홀린건가? 호조의 교생 선생은 어떻게 죽었는가? 윤회는 모든 저주의 대상에 해당하는가? 등 -, 등장인물들의 일이 모두 잘 풀린다는 결말은 허무합니다. 최소한 고바야시는 이케다를 괴이에 홀리게 만들려는 악의가 있었던게 분명하니, 이 작자만큼은 벌을 받으면 했는데 말이지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2025/12/13

피안장의 유령 - 아야사카 미쓰키 / 김은모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대 초반의 야마모토 히나타는 강력한 염동력으로 사고를 일으킨 뒤 가족과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소꿉친구 사라와 함께 기지마 그룹 후계자 렌의 의뢰를 받고 외딴 저택 '피안장'으로 향했다. 피안장에 일어나는 괴현상 조사에 협조해 달라는 의뢰였다. 조사에는 예지 능력자 시게키, 사이코메트러 미즈키, 정신감응 능력자 도시코, 자동서기 능력자 아키라, 일렉트로키네시스 나기도 함께 참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저택의 괴현상은 실재했고 첫날 밤 시게키가 소파 속 비밀 공간에서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일행은 저택의 의지에 의해 감금되어 버리고 마는데...

제미나이로 그려본 피안장

초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물임과 동시에 하우스 호러물과 정통 본격 미스터리도 결합되어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초능력과 저주받은 피안장 내 특수한 조건에 의해 일어난 괴사건을 정통 본격물처럼 논리적으로 추리하여 진상을 드러내거든요.

특히 나름대로 정통 본격물이라는 게 밝혀지는 마지막 히나타의 추리쇼가 빼어납니다. 논리적으로도 확실하며, 단서들과 추리에 대한 근거 모두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히나타의 추리에 따르면, 첫 번째 사건인 '혈액이 모두 사라진 채 전신이 찢긴' 시게키 사건은 사고였습니다. 시게키가 사라에게 장난치기 위해 소파 빈 공간에 들어갔는데, 근처에 있던 나기가 천둥번개와 정전으로 놀라서 일렉트로키네시스 능력을 발동했던 겁니다. 이 충격에 시게키가 휩쓸려 체내 혈액이 전기분해되어 피는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사라지고, 발생한 수증기 탓에 신체 표면이 파열되어 죽었습니다. 나기의 고의가 아닌 일종의 사고였기 때문에 도시코의 정신감응 능력으로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고요.

두 번째 사건인 도시코 추락 사건은 밤이 되면 옥상 테라스에는 한 명만 올라갈 수 있어서, 사람을 심리적으로 쫓기게 만드는 저택의 능력에 의한 자살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히나타는 과거 모녀가 테라스에서 뛰어내려 죽었던 기사를 통해 '의식을 잃은 사람'은 머릿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추리합니다. 즉, 누군가가 도시코를 때려 기절시킨 후 테라스로 끌어올려 떨어뜨려 죽였던 겁니다.
이는 미즈키의 사이코메트리로 도시코가 뒷통수를 가격당했다는 게 밝혀져 증명되고, 범인은 렌의 독살 미수 사건으로 드러납니다. 독이 든 와인잔은 아키라 앞에 놓여 있었는데, 아키라는 포도 알레르기라고 전날 아침에 밝혔습니다. 포도 알레르기인 사람을 와인으로 독살하는건 말이 안되니 범인은 그걸 모르는 사람이지요. 그때 자리에 없던건 렌, 가즈히사, 유토였고요. 이 중, 독을 마시고 죽을 뻔한 렌은 제외됩니다. 유토는 앞서 테라스 살인에 사용된 머릿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사를 볼 기회가 없었고요. 즉, 소거법으로 범인은 가즈히사입니다. 렌이 독으로 쓰러졌을 때 신속하게 위세척 등을 진행한 행동이 그가 독을 넣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주요 사건에 대한 본격물스러운 추리에 더해서 소소한 추리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재미를 더합니다. 렌의 이모부 부부가 자살했던 사건에 대한 추리 — 이모부가 렌에게 성적인 학대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이모가 이모부를 죽이고 자살했다 — 라든가, 사라의 염동력 힘의 원천이 히나타였다는 추리 등이 그러합니다.

정통 오컬트 호러 판타지 스타일의 마지막 박진감 넘치는 피안장 탈출 묘사는 꽤 볼만 했고, 히나타가 조사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연구 조수 유토와 사귀게 되어 결혼까지 이른다는 완벽한 결말과 에필로그도 마음에 듭니다. 최근 작품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깔끔한 마무리였어요. 수미쌍관식 구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꽃잎 묘사도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우선 렌이 초능력자들을 저택에 모은 이유부터 설명이 부족합니다. 저택을 깨우기 위해 초능력자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전무한 탓입니다.
또 조사 참가자들이 머문 사흘 동안의 사건은 확실히 진상이 밝혀지지만, 과거 피안장에서 일어났던 괴사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택 안에서 행방불명된 남자가 일주일 후 온몸의 피를 잃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이를 단지 저택의 저주라고 하기에는 애매합니다. 저택이 이런 능력이 있다면, 렌 일행을 모두 직접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고요..
첫날 밤 위기에 처했던 도시코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도 설명이 없으며, 가즈히사의 동기가 결국 ‘저택에 사로잡혔다’는 게 전부라는 것 등도 여러모로 납득하기가 힘듭니다. 뭔가 있어보였던, 아키라가 자동서기 능력으로 그렸던 '스페이드 모양 문고리가 달린 문' 설명도 흐지부지 넘어가고요.

전개 부분의 완성도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미즈키, 도시코, 아키라 등으로 시점을 전환하는 부분이 특히 별로입니다. 저택 괴현상 때문에 놀라는 심리 묘사 외에는 시점을 전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키라만 별도 설정을 풀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키라 시점 부분의 전개는 워낙 비호감으로 그려지는 탓에 짜증만 났습니다. 
그리고 예지 능력자 시게키의 죽음 이후에도 참가자들이 무방비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비현실적입니다. 도시코의 능력으로 시게키 사건의 범인이 조사 참가자들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면, 협력해서 움직이는 게 당연했을 겁니다. 왜 저주받은 저택에서 밤을 홀로 보내다가 위기에 처하는 걸까요? 이 부분의 설득력이 낮아서 감정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항상 그래왔지만, 거의 모든 묘사가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지나치게 쿨한 염동력 미소녀 사라, 입이 험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색기 넘치는 누님 미즈키 인물 묘사 및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피안장에 대한 묘사는 물론 저택 내에서 반복되는 괴현상 역시 식상한 헌티드 하우스 호러물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서 실망스럽습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하우스 호러와 본격 미스터리의 혼합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개성을 가진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5/10/26

디스펠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구수영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벽 신문 담당이 된 초등학교 6학년 사쓰키, 미나, 유스케는 마을 오쿠사토정에 전해 내려오는 ‘7대 불가사의’의 수수께끼를 풀어 기사로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쓰키에게는 1년 전 살해당한 사촌누나 마리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목적도 있었다. 마리코가 죽기 전 ‘6개의 불가사의’라는 괴담 글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쓰키는 벽 신문 취재를 핑계로 오컬트 애호가 유스케의 협조를 얻기 위해 벽 신문 담당으로 끌어들였다.

사쓰키는 논리적 관점, 유스케는 오컬트적 관점으로 괴담과 사건에 대해 추리하고, 추리 애호가 미나가 객관적으로 추리를 판단하기로 협의한 뒤 세 사람은 취재와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괴담이 오래 전 마을과 관련된 거대한 비밀, 그리고 '나즈테의 모임'이라는 조직에 대해 폭로한다는걸 알아내는데...

하무라-겐자키 컴비가 활약하는 특수설정 미스터리로 유명한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최신작입니다. 괴담, 호러 및 오컬트와 추리를 엮고 있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리커시블"도 유사하다고 느껴졌고요. 몰락해가는 시골 마을, 마을에 전해지는 전설과 현재의 사건이 엮이는 전개,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요. 

하여튼, 무슨 작품을 떠올렸건 이 작품만의 확실한 장점, 차이점은 명확합니다. 마리코 언니가 남긴 '6개의 불가사의' 이야기마다 숨겨진 진상을 알아내면, 마지막에 '일곱 번 째 불가사의'인 마을에 얽힌 비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6개의 불가사의 각각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오쿠사토정 ‘6개의 불가사의’

첫 번째 불가사의 - S 터널의 동승자 :
내용 : 산 중턱 S터널에 놀러간 학생들 중 터널 끝까지 걸어간 세 명을 제외한 한 명이 차 안에서 죽고 말았다.
숨겨진 진상 : S터널은 일찍부터 '소몬' 터널로 알려져 있었는데, 소몬 터널은 휘어져 있어서 터널 끝에서 차가 보이지 않는다. 즉, S터널은 소몬 터널이 아니라 쭉 뻗은 사쿠라즈카 터널이었다. 이야기는 마리코 언니가 죽기 전날 사쿠라즈카 터널 안 멈춰있는 차에서 급사한 진케이 대학 교수 사건을 의미한다.

두 번째 불가사의 - 영원한 생명 연구소 :
내용 : 폐허가 된 신흥 종교 시설을 방문했던 학생들이 차례대로 무언가에 씌워져 죽고 말았다.
숨겨진 진상 : 영원한 생명 연구소는 종교 단체 시설로 사용하기 전에는 반도 정신 병원 건물이었다.

세 번째 불가사의 - 미시사 고개의 목이 달린 지장보살 :
내용 : K가 저주받은 목이 잘린 지장보살을 본 뒤, 누군가 K의 집을 찾아왔고 그는 죽고 말았다.
숨겨진 진상 : '누군가'가 정사무소, 병원, 도서관, '나즈테'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말에서 '나즈테의 모임'과 그들이 근무하는 직장을 알려준다. 또한 이 이야기는 K의 시점과 '그림자 괴물'의 시점이 교차되는 서술 트릭물이기도 하다. 

네 번째 불가사의 - 자살 댐의 아이 :
F는 면허를 따자마자 자살의 명소인 댐 수문 전망대로 향했다. 그곳 전화부스 전화기에 적혀있던 번호에 장난삼아 전화를 걸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숨겨진 진상 : 916-7O62라는 전화 번호의 의미. 숫자 0이 아니라 영문 대문자 O라는게 핵심이다. 다섯 번째 불가사의와 연결하면, 이건 책의 분류번호와 페이지이다.

다섯 번째 불가사의 - 산할머니 마을 :
내용 : 시어머니를 산에 버려 죽게 만든 며느리 가족은 장례식에서 이상한 아이를 본 뒤, 한 명씩 차례대로 죽었다. 결국 의식을 주관하던 절의 주지스님까지 죽고 말았다.
숨겨진 진상 : 할머니가 쓴 관용구 - 날개 돋치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등을 지다 - 를 통해 '책'을 주목하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과거 계획을 무시했던 채굴 때문에 수십 명이 죽은 광산 사고가 있었고, 광산 마을에서도 연이어 사람이 죽거나 정신 이상이 생기는 비극이 있었다는게 드러난다.

여섯 번째 불가사의 - 우물이 있는 집 :
내용 : 오래 전, 후카자와무라라는 마을은 집마다 있는 우물을 통해 이상한 돌림병이 돌았다. 우물에서 무언가를 본 정사무소 직원에 의해 마을은 댐이 생긴 뒤 수몰당했다.
숨겨진 진상 : 정사무소 직원은 '열 가지 약속 중 단 한 가지'를 지키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를 '녹스의 십계'에 빗대면, 화자인 정사무소 직원이 범인이거나 오컬트적 존재인 신이 실존한다는걸 알려준다. 


이렇게 괴담들 진상을 풀어내면서 점점 스케일이 커져가는 전개도 흥미롭고, 단순히 증언의 오류를 찾아내는 수준을 넘어 서술 트릭이나 리들 스토리 형태, 심지어 녹스의 십계까지 활용하는 추리적 장치가 돋보입니다. 덕분에 추리물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어서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임에도 쉽게 읽힙니다.

괴담의 진상뿐 아니라 마리코가 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설득력 있었습니다. 괴이가 사람들의 찬미를 통해 힘을 얻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축제를 연기했다는건데, 앞부분에서 교수가 목공소에서 축제 용품을 부쉈던 장면, 시바타 할아버지가 북이 이상했다고 했던 말 등이 이를 뒷받침하는 단서로 공정하게 제시됩니다.

유스케의 시점으로 보여지는 오컬트적인 묘사 역시 인상적이며, ‘나즈테의 모임’이 은근히 아이들을 협박하고, 더 이상 진상 조사를 이어갈 수 없도록 만드는 장면은 꽤 섬뜩했습니다. 이야기 전반에 은근한 공포를 깔고가는게 꽤 매력적이었어요. 아이들 시점의 묘사들, 성장기로 보아도 흐뭇한 설정과 전개도 마음에 들고요. 아이들이라서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 - 늦은 시간까지 멀리 돌아다닐 수 없음,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음 등 - 도 적절히 활용됩니다.

하지만 일찍이 '괴이'가 후카자와무라 사람들을 희생시켜 힘을 모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마을의 신관 가문 출신 무녀, 정사무소 직원 등이 힘을 합쳐 '나즈테의 모임'을 결성했다, 조력자인줄 알았던 사쿠마가 괴이였다는 진상과 사쿠마와의 대결이 펼쳐지는 결말은 아쉽습니다. 정통 본격 추리물에서 이형 호러 괴담으로의 방향 전환이 급작스럽고,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괴이가 초등학생들을 포함한 인간들에게 패배한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왜 유튜버와 시바타 할아버지를 죽였는지 모르겠고, 인간의 모습으로 다녀야 한다는 제약 조건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제공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에 비하면 무게감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미쓰다 신조 쪽이 훨씬 더 무섭고, 그 존재에 대한 설명 역시 더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미쓰다 신조 작품에서 괴이의 존재는 여운을 남기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오히려 등장하는 모든 기묘한 사건을 괴이와 무관하게 어떻게든 설명하지요. 이 작품처럼 명백하게 괴이가 등장해서 모든걸 정리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나즈테의 모임'이 초등학생들을 방관하는 설정도 이상했습니다. 어느 정도 알아냈다면 바로 진상을 알려주었어야 합니다. 그걸 못해서 모두가 다 죽을 뻔 했잖아요? 초등학생들을 방관해서 죽은 사람이 정장, 도서관 직원에 유튜버 두 명, 시바타 할아버지까지 모두 네 명인데(유튜버 댓글에 사쿠마를 만났다고 쓴 두 명도 포함하면 일곱 명), 불필요한 희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괴담 풀이까지는 좋았지만 모든 진상과 반전이 드러나는 절정부와 결말이 아쉬움을 남깁니다. 직전에 읽었던 두 편의 추리 소설이 소설로의 기본적인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졸작이라서 읽는 내내 즐거웠지만, 단점도 없지 않아 감점합니다. 그래도 평균 이상의 재미는 전해주는 만큼, 추리와 호러 장르 애호가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5/04/20

사유리 - 오시키리 렌스케 : 별점 2점

[고화질] 사유리 (완전판) - 4점
오시키리 렌스케/대원씨아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누나와 남동생, 모두 7명으로 이루어진 노리오의 가족은 그동안 꿈꿔왔던 단독주택으로 이사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 뒤 남동생은 사라졌고, 할아버지도 급사하고 말았다. 누나와 어머니마저 자해, 자살하여 순식간에 노리오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만 남게 되는데...

오시기리 렌스케의 하우스 호러. "하이스코어 걸"이라는 레트로 청춘 연애 코미디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작가는 "미스미소우"로 대표되는 호러물로도 유명하지요. 이 작품도 호러물이고요. 이런 작품이 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여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북으로 출간되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한 권 분량이라 부담도 없었고요.

행복했던 7인 대가족이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온갖 괴현상을 겪으며 한 명씩 죽어나가는 과정은 귀신들린 집(Haunted mantiion) 설정 그대로, 하우스 호러물의 전형대로 진행됩니다. 가족이 이사한 집은 '사유리'라는 소녀가 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암매장된 곳이라, 사유리가 행복한 가족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던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이 차례로 죽고, 자살하고, 사라지는 과정의 묘사는 그렇게 뻔하지는 않습니다. 일견 자연사처럼 보이는 평범한 죽음이 점차 진화해 나가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웠거든요. 누나가 혼자 혀를 물어 뜯는 묘사는 굉장했어요.

그리고 노리오와 치매에 걸렸던 할머니를 제외한 전 가족이 죽은 상황에서, 할머니 정신이 돌아오는 부분부터는 아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강단있고 행동력 강한 할머니 캐릭터가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이지요.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피우는 모습은 와~ 정말 '핵간지'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귀신에게 지지않는 생명력을 갖추고, 오히려 복수를 위해 사유리를 죽인 사유리 가족을 모두 납치해서 죽이려 하는 모습은 광기어리면서도 통쾌했고요.

하지만 사유리가 자기를 죽인 가족도 가족이라고, 그들을 동정해서 약해진 탓에 노리오의 죽은 가족들에게 끌려가 성불하는 결말은 솔직히 영 아닙니다. 너무 급작스럽잖아요. 애초에 자기를 죽인 가족에게 원한을 품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할머니와 사유리의 제대로 된 대결이 펼쳐지지 않은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남편과 아들, 며느리에 손자, 손녀까지 5명이나 죽인 악령을 그냥 놓아준다는게 앞서의 할머니 캐릭터와는 영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죽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서 영혼이라도 갈기갈기 찢어버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전개를 특유의 스타일,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로 풀어낸건 좋았는데, 결말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감점합니다.

2024/08/17

계간 미스터리 2024.여름호 - 별점 2점

계간 미스터리 2024.여름호 - 4점
최희주 외 지음/나비클럽

구독 중인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 있기에 봄 호에 이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수록 단편들이 대체로 호러 성향을 띄는게 특징입니다. 더운 여름에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뻔한 설정과 전개를 답습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좀 더 신선한 발상과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딥페이크 업체 추적기
실제 있던 사건을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사진, 동영상 딥페이크 제작을 요청하면 건당 돈을 받고 결과물을 보내주며, 심지어는 업체의 API를 연결하여 직접 생성할 수도 있는 현실을 취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취재를 통해 딥 페이크 범죄가 널리 확산 중인데도 불구하고, 법 규제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범죄는 여성들 피해가 많은데, 저도 딸 아이의 아빠로서 좀 더 강한 처벌이 시행되면 좋겠네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취재라는 점에 더해, 이전 호보다 더 논픽션에 가깝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탁묘
작가 효진은 고등학교 동창 애희와 동네에서 오랫만에 재회한 뒤, 가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날, 손을 다친 애희가 찾아와 자기와 남편 지욱에게 닥친 이야기를 해 주는데...

이번 호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수상작. 두 여자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공포물인데, 수상이 당연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빼어난 흡입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되살아난 지욱이 효진에 대한 집착만 남아 그녀를 덮치는 결말도 강렬했고요.
 
그러나 애희가 살해한 지욱을 윗층 할머니가 되살려냈다는건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고양이를 되살린 것, 고양이를 죽게 만든 택시 운전 기사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등의 다른 설정들도 마찬가지에요. 기묘한 집안 물건들 정도로 이런 능력이 가능하다고 하는건 무리입니다. 주술이건, 부적이건, 조금이라도 설명을 덧붙여 주는게 좋았을겁니다.
또 효진이 지욱과 불륜관계라는 뻔한 설정도 별로입니다. 게다가 효진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이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건 반칙이에요. 특히 애희가 남편 불륜 상대와의 문자를 봤다고 했을 때, 놀라기는 커녕 제 3자처럼 "화양연화" 운운한건 말도 안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수상자 인터뷰에서 밝혔던 창작 동기 - 층간소음 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복수심으로 윗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훔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를 잘 살린 것 같지는 않네요.

메리
의대 진학을 앞둔 '나'는 아르바이트로 삼촌의 스마트 축산 건축업을 돕기 위해 한 시골 마을로 향했다가, 마을 사람들의 성적 노리개인 정신지체자 '메리'의 아기가 죽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아기의 죽음을 알게 된 메리는 처절한 복수에 나서는데...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의 결과로 빚어지는 복수극.
그러나 핵심인 '메리'의 복수심에 대한 빌드업보다는 '나'의 개인 심리 묘사에 치중한 탓에 복수극으로서의 맛은 다소 부족합니다. 도축 현장과 가축 축사 등이 어우러진 배경 묘사는 그럴듯하지만 지나치고요. 복수극이라면 그에 걸맞게 화끈하게 달려주는게 낫습니다. 괜한 문학적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어요.
메리의 복수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유사성이 짙다는 문제도 큽니다. 복수 장면도 독극물을 먹은 잔치 참석자들이 복통으로 몸부림치는걸 난도질로 끝장낸 상황인데, '나'가 창고에서 걸어나와 문을 나서는 중에 이 모든게 이루어진다는건 이상합니다. 최소한 사전에 독극물을 먹였다는 설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환상통
두 손이 잘려나간 환자가 자신의 손이 자기 목을 조르는 환상에 시달렸다. 그 상황에서 20여년 전 일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딸아이 이름을 불렀다. 딸은 백화점 붕괴사고로 환자 눈 앞에서 죽고 말았었다. 

환상통과 거울 치료 등 의학적인 부분에서의 디테일은 볼만했던 작품.
하지만 죽어가는 딸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는건 많이 뻔했고 이야기 전개에서 의외성도 별로 없습니다. 무섭지도 않고요. 이게 무슨 장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호러는 아닌데, 그렇다고 심리 스릴러도 아니고... 여튼 장르물로의 기대에는 전혀 값하지 못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수지
제주도의 물 빠진 저수지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 한 구는 박서현의 남편 시신이었다. 남편은 같은 마을 동우 엄마와 불륜 관계였고, 박서현도 요가 수강생 은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 사건이 등장하고,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힘든게,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경찰 수사에 의해 모든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모든건 조현병 환자인 박서현의 망상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고, 박서현도 은우와 불륜을 이어가지 않았습니다. 망상 때문에 은우와 남편을 살해했던 것이지요.
반전은 괜찮았지만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장화 홍련(영화)"와도 별로 다르지 않지요. 상황을 오해하고 있다가 블랙박스와 사진 등을 통해 현실이 드러나는건 영상물에 어울리지, 소설에는 잘 어울리는 작법이라 할 수도 없고요. 소설이라면 독자도 속일만한 디테일한 묘사가 많았어야 했습니다. 
또 이야기와는 별 관계없는 제주 무당(심방) 관련 설정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이야기의 본질만 흐립니다. 흥미롭기는 한데 작품에 잘 녹아들지는 못해요. 박서현이 귀신에 홀려 범행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흘러가는 결말도 억지스러웠고요. 제주 무당 관련하여 작가가 '내가 이렇게까지 자료조사를 했다!'는걸 과시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만 드는 탓에, 차라리 이 설정을 뺐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스트 하이커
휴직 중인 경찰 수연은 동료 태현을 쫓아 찾아온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길을 잃었다. 태현은 아내 살해 용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라진 상태였다.

수연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영원히 떠도는 - 제목 그대로 '고스트 하이커'가 되어 '부랑'을 하는 - 내용의 작품. 
솔직히 장르가 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는데, 진상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수연이 결혼한 태현에게 집착한 나머지, 태현의 아내는 자살했고 태현은 부랑자가 되었다던가, 수연이 베로나 실종 사건에서 알랭이 수상하다는걸 리즈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던가 하는건 모두 수연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런 애매한 사건들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 보다는 중간에 수연이 죽었다는걸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복선을 삽입한 뒤, 수연이 유령이라는걸 드러내는 전개가 더 좋았을거에요. 정교한 맛도 살리면서 말이지요. 여러모로 부족하고 애매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한국 미스터리를 읽는 네 가지 키워드 2 : 욕망과 갈등의 논리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에 대해 해석하여 설명해주는 연재물. 이번에는 '사연'과 '한'이라는 한국 미스터리만의 특별한 주제에 대해 "아홉 꼬리의 전설"과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라는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저 두 작품에 대한 해설과 비평에 가까와서 별로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저 두 작품이 한국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품도 아니니까요. 보다 보편 타당한 고전을 예로 들었어야 했어요. 그리고 이런 류의 비평과 해석이라면, 연대순으로 한국 미스터리의 특징을 당시 주요 사회 현상과 연결하여 통사적으로 설명하는게 더 와 닿았을것 같네요.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외 비평, 인터뷰, 추리 퀴즈 등은 점수를 주기 애매해서 생략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내용들도 아닙니다.

2024/06/07

리뎀션 - 안데슈 루슬룬드, 버리에 헬스트럼 / 이승재 : 별점 1.5점

리뎀션 - 4점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베트 그랜스 경정은 손님을 걷어차 뇌출혈을 일으키게 만든 밴드 가수를 체포했다. 그런데 존 슈워츠라는 가수의 여권은 위조였다. 가수의 정체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존 메이어 프레이였다. 존 메이어 프레이는 오하이오의 사형수였는데, 6년 전 탈옥했었다. 그가 무죄라고 믿었던 교도관 버논 및 사형 폐지 연합의 도움 덕분이었다. 버논은 식사에 독을 섞어 건강 이상을 유발시킨 뒤, 사형 폐지 연합 소속 의사가 마취제 등을 투여하여 존의 사망을 위장했었다. 시체 운반 부대를 통해 교도소에서 빠져나온 존은 러시아 등을 거쳐 위조 여권으로 스웨덴에 입국할 수 있었다.
존의 생존을 알아낸 미국 정부는 송환 후 사형 집행을 원했다. 스웨덴은 사형과 같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개인의 송환요구는 거부하고 있었지만, 미국과의 관계에 금이 갈까 우려하여 존을 러시아로 추방하는데 합의했다. 존은 러시아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끌려가 사형 집행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사형제를 반대하던 교도관 버논의 계획이었다...


모르는 스웨덴 컴비 작가의 범죄 스릴러. 에베트 그랜스 경정 시리즈 중 하나로 내용의 핵심은 교도관 버논이 엘리자베스 피니건을 살해하고 존이 사형 선고를 받도록 만든 음모입니다. 존이 사형 집행을 당한 다음에, 자신이 진범임을 밝혀 체제를 뒤흔들 생각으로요. 사형 제도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형과 같은 '동해보복'이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자살할 때 에드워드 피니건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조작하여 에드워드를 살인 사건의 피고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합니다.
버논이 계획을 밀고 나가던 중간에 존을 불쌍히 여겨 교도소에서 탈옥하게 만든 과정도 재미있었습니다. 약물로 심장에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킨 후, 교도소에 고용된 같은 편 의사들이 존을 언뜻 보기에 죽은 것처럼 마취시키도록 만들어서 사망 선고를 내렸고, 그 뒤에는 시체 안치실에 집어 넣었다가 부검 절차를 핑계로 시체 운반 부대에 넣고 빼돌리는 과정 모두가 설득력있게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송환되면 죽을게 뻔한 존의 처리(?)를 놓고 고민하는 스웨덴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도 흥미로왔습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딜레마는 항상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소재이니까요.

하지만 작품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살인 사건을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이 사형당하게 만든 뒤, 이를 폭로한다는 핵심 계획부터 영화 "데이비드 게일"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게일은 강간 살인죄로 사형을 당했는데, 알고보니 그가 살해했다는 피해자는 자살했었습니다. 피해자는 데이비드 게일의 공범이었고요. 이 사실은 게일의 사형 집행 직후에 드러납니다. 사형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였지요.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죠. 게다가 이 작품은 이보다도 훨씬 못합니다. 데이비드 게일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피해자로 알려진 콘스탄스도 불치병에 걸려 자살했던 공범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버논은 무려 세 명 - 사형 선고를 받은 에드워드까지 - 이나 죽게 만든 살인범입니다. 버논의 존재가 사형 제도가 유지되어야 하는 근거인 셈이지요. 살인마가 사형 제도 폐지를 논한다는건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큰 문제입니다. 누가 보아도 살해당했던 엘리자베스 피니건의 아버지 에드워드 피니건은 작 중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존에게 엄청난 복수심을 불태우는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작가들은 에드워드 피니건을 복수심 때문에 제 정신을 잃은 변태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버논은 꽃다운 청소년 두 명을 희생시킨 살인범입니다. 에드워드 피니건마저 자신을 죽인 살인자로 조작한건, 에드워드가 그가 사랑했던  앨리스와 결혼한 것에 대한 복수로 보이고요. 그런데 작 중 버논은 시종일관 나름의 정의와 신념을 굳게 지키는 정의로운 인물처럼 등장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에드워드가 사형 선고를 받고 존이 갇혔던 사형수 동에 감금되었다는 에필로그도 억지스럽습니다. 끈을 이용하여 자살 후 총이 튕겨 나가도록 만들고, 끈은 까마귀가 먹어치우도록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미국 경찰이 '초연 반응' 정도를 검사하지 않을리 없어요. 존이 자살한게 아니라 살해당했다는걸 입증하기는 쉽지 않았을겁니다. 설령 수사가 미비하여 에드워드가 버논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썼다고 치죠. 그래도 딸을 살해한 범인을 직접 처단한 아버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버논이 그의 딸을 살해했다는건 이미 밝혀진 다음입니다. 납득하기 어려워요.
다른 인물들도 엉망이거나 별볼일 없습니다. 기껏 목숨을 건진 존이 분노를 참지 못해 사건을 저질러 정체가 드러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솔직히 이렇게 멍청하다면 죽어도 싸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와 가족과의 이야기는 너무나 뻔해서 지루했고요.
에베트 그랜스도 영 마음에 드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하는게 거의 없습니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지 주변 인물들에게 화를 내는 것, 그리고 자신의 실수로 뇌손상이 온 아내(?) - 전작을 읽지 않아 이 설정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은 안 됩니다만 - 안니에 대해 신경쓰는 것 밖에는요. 나이 많고 화도 많은, 붙임성 없는 거구의 경찰이라는 인물 설정도 "메그레" 경감과 똑같습니다. 그나마 독특한건 스웨덴 가수 시브 말름크비스트의 광팬이라는 것 뿐입니다. 마리안나 헬만손 경위도 이런 상사 밑에서 일하는 미모의 여성 형사의 스테레오 타입에 그칩니다.

그리고 버논의 계획은 스웨덴 형사 에벤트 그랜스와 별 관계도 없습니다. 오히려 에베트 그랜스가 존의 무죄를 믿고 송환에 반대할 까닭도 없지요. 한 국가의 고위 경찰이 남의 나라 사법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니까요. 한마디로. 스웨덴 형사 에베트 그랜스 시리즈일 필요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에베트 그랜스의 등장 부분을 거의다 잘라내고, 존과 버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며도 충분했어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탈옥에 대한 디테일 외에는 전부 꽝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4/05/29

오드 택시 (2021) - 키노시타 바쿠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 완료한 애니메이션 시리즈입니다. "약사의 혼잣말"에 이어 올해 두 번째네요.
택시 운전사 오도카와가 이마이의 복권 당첨금을 손에 넣으려는 한구레(로 보이는) 도부와 야노 일당을 일망타진하는 와중에, 아이돌 '미스터리 키스' 멤버 살인 사건과 회사원 타나카의 복수(?)에 연루된다는 이야기로 1시즌 13화의 적당한 분량으로 깔끔하게 끝납니다.

가장 큰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살인 사건에 꽃뱀 사기, 납치와 현금 강탈, 권총 난동, 사체 훼손 및 유기, 일가족 동반 자살 등 온갖 강력 사건이 가득한 세계관을 산리오 캐릭터가 떠오르는 귀여운 동물들이 선보인다는게 이질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거든요. 귀여운 그림체로 잔혹한 이야기를 그려낸 사이바라 리에코의 "우리집"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초반부터 언급된, 오도카와가 태워주었던 '실종된 네리마구 여고생'이 알고보니 미스터리 키스 멤버로 살해당한 미츠야 유키였으며, 오디션에서 네 번째 입상자라 아쉽게 데뷰조에 속하지 못한 와다가키 사쿠라가 미츠야를 살해한 뒤 대역을 소화하고 있었다는 '미스터리 키스' 멤버 살인 사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꽤나 복잡하게 꼬아 놓았지만 복선도 나름대로 제시해주고 있을 뿐더러, 마지막 회에서 와다가키가 미츠야를 살해한다는 충격적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이 아주 볼 만 했기 때문입니다. 와다가키가 전화 통화로 자신의 야망을 밝힌 뒤, 오도카와의 택시에 타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네요. 추리 애호가 분들이라면 한 번 꼭 보셔야 된다 싶을 정도에요.
아울러 동물 캐릭터로 구현된 세계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도 신선했습니다. 알고보니 이는 어린 시절 사고로 뇌 손상을 입은 오도카와 시점에서 바라본 세계였습니다. 오도카와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뒤에는 모두가 제대로 사람으로 보이게 되고요. 이렇게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세계관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세계관으로 돌아온 뒤 오도카와 집에 있던 생명체(?)의 정체도 그냥 평범한 고양이로 밝혀지는 등, 작중 뿌려둔 복선들도 대체로 잘 회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곁가지 이야기가 과하게 많기는 합니다. 카바사와의 관종 유튜버 행태, 다나카와 게임 이야기, 인기없는 만담 컴비 '호모 사피엔스; 이야기 등은 메인 이야기와는 별 관계가 없는데도 비중이 높습니다. 오도카와의 친구 가키하나가 꽃뱀에게 걸려드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이보다는 도부가 오도카와를 범행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이유라던가, '말레이 맥' 아저씨가 오도카와를 선뜻 통 크게 도와준 이유를 좀 더 잘 설명해주는게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간만에 재미있게 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2/11

놀라운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들 - 북오프 칼럼

가끔 소개해드리는 이러저런 미스터리, 추리소설 추천 정보. 이번에는 북오프 온라인 칼럼 하나를 찾아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의역이 많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촘촘히 짜여진 수많은 복선, 상상할 수 없는 전개, 충격적인 결말 ...... 소름이 돋는 오싹함을 찾아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을겁니다.
그 중 '반전'이 뛰어난 미스터리 작품들을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들과 유명 작가들로 나눠 소개해 드립니다.
꼭 한번, 그 '반전'에 감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반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가
"가면병동" 치넨 미키토
"If의 비극" 우라가 가즈히로 (국내 미출간)
"신의 숨겨진 얼굴" 후지사키 쇼
"출판금지" 나가에 토시카즈 (국내 미출간)

유명 작가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 이치
"살인귀" 아야츠지 유키토

"가면 병동"
강도로 인해 밀실로 변한 병원, 숨 막히는 심리전의 막이 오른다!
요양병원에 강도가 침입해 자신이 쏜 여자의 치료를 요구한다. 사건에 휘말린 외과의사 하야미즈 슈고는 여자를 치료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중 병원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폐쇄된 병원에서 펼쳐지는 궁극의 심리전. 그리고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현직 의사가 그리는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는 '본격 미스터리×메디컬 서스펜스'. 저자 첫 문고판 장편소설!

인기 시리즈 제1탄.
의료 소설이라고 하면 난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알기 쉽고, 읽기 쉽습니다. 라이트 노벨 같은 경쾌한 터치로 독자를 쏙쏙 끌어당깁니다.
게다가 치넨 씨는 현직 내과 의사로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문적 견해를 바탕으로 집필되어 있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점도 매력적인 점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속편인 '시한부 병동'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If의 비극"
소설가 가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자살을 의심한다. 결국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오쿠츠의 불륜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오쿠츠를 불러내어 살해한다. 하지만 위장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노가 운전하는 차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A는 남자를 치어 죽인 경우, B는 아슬아슬하게 남자를 치지 않은 경우. 두 개의 평행세계가 하나로 연결될 때,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식인 작가(사람을 잡아먹는 소설을 많이 써서)로 알려져 '미스터리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우라가 카즈히로 씨의 작품. 경력이 거의 공개되지 않아 그 수수께끼 같은 부분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고 합니다.
"절대 속지 않는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작품이지만, 절대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 반전에 역시나 격침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의 숨겨진 얼굴"
신과 같은 청렴결백한 교사, 츠보이 세이조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통곡의 밤은 슬픔에 휩싸여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신'을 추모하는 가운데, 엄청난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 츠보이가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었을까...? 츠보이의 아름다운 딸, 후배 교사, 제자인 중년 남성과 요즘 여자, 이웃집 주부와 개그맨. 두 번, 세 번 뒤집어지는 그들의 추리는? 반전이 있는 결말이 화제!!!
제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대상' 수상작. 아리스카와 아리스, 온다 리쿠, 구로카와 히로유키, 미치오 슈스케라는 쟁쟁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를 받았다는 놀라운 작품입니다.
'웃음을 자아내는 절묘한 유머 감각이 있고, 서비스 정신이 넘친다 (온다 씨)', '개그맨으로 활동한 경험 때문인지, 말투가 매우 유쾌하고 유머 감각은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미치오 씨)'라는 심사평에서 알 수 있듯이, 어쨌든 유머가 넘치는 작품입니다. 반전도 훌륭하고요.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출판금지"
작가인 나가에 씨가 손에 쥔 것은 "카뮈의 자객"이라는 소문난 원고였다. 저자는 작가 와카바시 고세이. 내용은 유명 다큐멘터리 작가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신도우 나나오와의 단독 인터뷰였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산장, 동반 자살의 모든 것을 기록한 영상. 불륜의 끝에서 벌어진 비극인가? 왜 여자만 살아남은 것일까? 숨막히는 전개, 무서운 반전. 기형적인 걸작 미스터리.
작가인 나가에 씨는 원래 호러와 서스펜스를 전문으로 하는 TV 감독이었습니다.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프로그램 '방송금지'(후지TV)의 기획, 각본, 감독도 담당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그런 경력을 가진 나가에 씨가 가상의 사건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읽다 보면 마치 논픽션처럼 느껴져서, 도중에 공포에 질려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는, 스릴 있고 무서운 작품이라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
어느 도시에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시신은 아파트 13층에서 갈고리에 매달린 알몸의 여성이었다. 그런 시체 근처에는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히라가나로만 쓰여진 조악한 범행 진술서가 있었다. 이후 제2, 제3의 엽기 살인이 일어난다. 한 기자는 세상을 공포에 떨게 하는 범인에게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
이 작품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서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작품입니다. 기괴한 살인을 다룬 서스펜스 넘치는 미스터리지요.
마지막 반전에 이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반전은 볼만한 가치가 충분해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범인의 책임능력을 묻는 형법 제39조가 강하게 개입된 사회파 미스터리의 면모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스터리로서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미로관의 살인"
추리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에 의해 신예 작가 4명이 '미로관'이라는 기괴한 관에 모였다. 미야가키의 비서는 미야가키가 자살했다며 카세트 테이프를 대신 건네 주었다. 테이프에는 '미로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써달라', '가장 좋은 작품을 쓴 사람에게 유산의 절반을 주겠다'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도리없이 네 사람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관 시리즈'는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등 반전과 의외의 결말이 있는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다.
곳곳에 깔려있던 복선이 회수되고 여러 가지 장치가 차례로 밝혀지는 후반부 전개가 특히 압권입니다. 이 작품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걸작이에요.
참고로 이 작품은 시리즈 작품이지만, 이 작품만으로 독립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 권부터 읽어도 무방합니다.

"어둠 속의 기다림"
살인 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아키히로는 눈이 보이지 않는 미치루라는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숨어들었다. 미치루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며 아키히로의 기척을 느꼈지만 계속 모른척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맹인 여자와 살인 용의자인 남자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는데...
여자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살인 용의자인 남자가 무단으로 여자의 집에 숨어든다 - 이런 줄거리를 보면 앞으로 도대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점차 유대감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하거든요.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살인귀"
'TC멤버스'는 중학생부터 성인까지가 소속된 친목 단체다. 그런 TC멤버스 일행이 후타바산으로 캠핑을 떠난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캠프는 후타바산 살인마에 의해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변해가고, 한 명, 또 한 명씩 살해당하는데............
이 작품은 스플래터 호러 소설입니다. 그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상당히 그로테스크해서 이런 작품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부는 아닙니다. 후반부에는 아야쓰지 유키토다운 깜짝 놀랄만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으며, 거기서 그려지는 반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면역이 있는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2023/12/15

"우먼 인 윈도"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우먼 인 윈도" 속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목록입니다. 책 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0월 24일 일요일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도리스 데이 주연, 히치콕 감독이 자신이 1934년 만든 동명의 영화(영국) 를 리메이크한 작품, 휴가를 보내던 가족이 암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극중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른 'Que Sera, Sera'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길다(Gilda)
1946년. 미국. 찰스 비도르 감독, 리타 헤이워스, 글렌 포드 주연, 도박꾼 조니는 카지노 사장의 심복이 된다. 사장의 집에 초대받아간 조니는 사장의 부인이 된 전 애인 길다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강하게 이끌리고 선을 넘는다. 리타 헤이워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다.

10월 27일 수요일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년, 미국, 자크 투르뇌 감독. 로버트 미첨, 제인 그리어 주연, 왕년의 사설탐정으로, 지금은 은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제프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조용히 살아가려던 그의 앞날에 과거의 위험한 사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어플레인(Airplane)
1980년. 미국.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공동 감독 및 주연, 택시 기사인 테드 스트라이커는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기억 때문에 비행공포증을 앓는다. 어느 날, 비행 승무원인 여자친구 일레인이 결별을 선언하자 테드는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기장이 정신을 잃고, 테드가 조종간을 잡게 된다.

10월 29일 금요일
디아볼릭(Les Diaboliques)

1955년, 프랑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 시몬 시뇨레, 베라 클루조 주연, 폭력적인 남편인 미셸 때문에 괴로워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미셸의 정부인 니콜이 찾아와 함께 그를 죽이자고 제안한다.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미셸을 죽이고 시체를 수영장에 던지지만, 그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몰락한 우상(The Fallen Idol)
1948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랠프 리처드슨, 미셸 모건 주연,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대사관 집사의 아내가 죽고,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 소년 필립이다. 유럽 심리 스릴러의 고전.

공포의 내각(Ministry of Fear)
1944년, 미국, 프리츠 랑 감독, 레이 밀랜드, 마조리 레이놀즈 주연, 제2차 세계대전 중 출소한 닐이 뜻하지 않게 첩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0월 30일 토요일
39 계단(The 39 Steps)

193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버트 도넷, 매들린 캐럴 주연, 리처드는 자신이 첩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애너벨라를 돕는다. 다음 날 새벽, 애너벨라가 공격을 받아 죽고, 살인 혐의를 뒤집어쓴 리처드는 도망자가 된다.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년, 미국 빌리 와일더 감독, 프레드 맥머레이, 바버라 스탠윅 주연, 보험회사 직원인 월터는 고개인 디트리히슨의 집에 방문 했다가 그의 아내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간다. 두 사람은 디트리히 슨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수사에 들어간다.

가스등(Gaslight)
1944년, 미국. 조지 큐커 감독. 샤를르 보와이에, 잉그리드 버그먼, 조셉 코튼 주연. 폴라는 잘생긴 그레고리와 결혼해 상속받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외출을 막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관련이 있다.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프리실라 레인, 로버트 커밍스 주연, 공장에서 일하던 배리는 화재로 친한 친구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린다. 배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방화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려 한다.

빅 클락(The Big Clock)
1948년, 미국, 존 패로 감독, 레이 밀랜드, 찰스 로튼 주연, 어떤 이를 살해한 언론 재벌 얼은 무고한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남자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한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 시리즈
1934~1947년, 미국. 윌리엄 파월, 머나 로이 주연, 은퇴한 경찰인 닉 찰스와 그의 아내 노라 찰스가 사건을 풀어가는 코미디 탐정물, 은퇴한 형사인 닉 찰스는 부유한 집안의 딸 노라와 결혼한다. 닉은 느긋하게 은퇴 생활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스릴을 원하는 노라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에 뛰어든다. 대실 해밋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모두 6편이 있다.

도살자(The Butcher, Le Boucher)
1969년, 프랑스, 이탈리아. 클로드 샤브롤 감독, 스테파니 오드런, 장 얀느, 안토니오 파살리아 주연, 시골 학교에 부임한 교사 엘렌은 푸줏간 주인 포폴을 만난다. 포폴은 엘렌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엘렌은 거부한다. 한편 마을은 연쇄 강간, 살해 사건으로 흉흉해지고 엘렌은 포폴을 의심한다. 히치콕을 모방했으면서도 히치콕보다 더 히치콕답다는 평을 받았다.

다크패시지(Dark Passage)
1947년, 미국, 델머 데이브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로런 바콜 주연, 빈센트는 아내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까스로 감옥에서 탈옥한 빈센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하고 그런 그를 아이린이라는 여자가 돕는다.

나이아가라(Niagara)
1953년, 미국, 헨리 해서웨이 감독. 마릴린 먼로, 조셉 코튼, 진피터스 주연.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 온 신혼 부부가 다른 투숙객 부부의 갈등에 휘말린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 미국. 스탠리 도넌 감독. 오드리 헵번, 캐리 그랜트 주연, 남편의 재산을 노리는 남자들에게 쫓기는 여자 레지나와 이를 돕겠다고 나선 조슈아가 파리에서 겪는 일을 다룬다.

서든 피어(Sudden Fear)
1952년, 미국. 데이비드 밀러 감독, 조안 크로포드, 잭 팰런스 주연, 상속녀이자 극작가인 마이라는 배우인 레스터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레스터에게는 아이린이라는 정부가 있었다. 레스터는 아이린과 함께 마이라를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년, 미국, 테렌스 영 감독, 오드리 헵번, 알란 아킨 주연, 수지는 최근에 시력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은 비행기에서 인형을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인형 속에는 밀수된 마약이 있었고, 악당들은 수지에게 접근해 인형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려 한다.

배니싱(The Vanishing)
1988년, 프랑스, 네덜란드, 조지 슬루이저 감독. 버나드 피에르 도나디우, 기니 베르보에츠 주연, 연인인 렉스와 사스키아는 여행을 떠난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사스키아가 실종되고 렉스는 그녀를 찾아 주변을 뒤진다. 그리고 삼 년 후, 렉스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그는 평범한 교사로 보이지만 실은 정신병자였다.

실종자(Frantic)
198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해리슨 포드, 베티 버클리 주연, 파리로 여행을 온 부부, 리처드가 샤워를 하는 사이 호텔방에서 부인이 사라진다. 리처드는 아내의 실종이 바뀐 가방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
2013년, 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주드 로 주연, 우울증 환자 에밀리는 의사인 뱅크스가 처방해준 신약을 복용하고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모든 것이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 믿는다.

카사블랑카(Cassablanca)
1942년, 미국, 마이클 커티스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 모로코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릭은 우연히 옛 사랑인 일자를 만난다.

밤 그리고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년, 미국, 영국. 줄스 다신 감독, 리처드 워드마크, 진 티어니 주연,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는 해리는 은퇴한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음모에 휘말린다.

소용돌이(Whirlpool)
1949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리처드 콘트 주연. 마비 증상으로 고통받는 여자가 최면요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억에 없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고, 용의자가 된다.

안녕, 내사랑 (Murder, My Sweet)
1944년, 미국,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디 포웰, 클레어 트레버, 앤 셜리 주연, 전직 사기꾼의 여자친구를 찾는 일에 고용된 필립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미스터리에 빠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이트 머스트 폴(Night Must Fall)
1937년. 미국, 리처드 소프 감독. 로버트 몽고메리, 로사린드 러셀 주연, 브람슨 부인은 고립된 저택에 사는 자산가이다. 그녀는 저택을 돌봐달라며 대니를 고용한다. 그녀의 조카 올리비아는 그에게 끌리면서도 그를 의심한다.

로라(Laura)
1944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데이나 앤드루스 주연, 광고회사 디자이너인 로라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고, 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10월 31일 일요일
현기증(Vertigo)
195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주연, 고소공포증 때문에 은퇴한 경찰 스코티는 사립탐정이 된다.그는 사건을 맡았다가 마들레인이라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고, 마들레인이 자살한 이후 그녀를 너무나 닮은 주디라는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조셉 코튼, 알리다 발리 주연,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삼류 소설가 마틴스가 친구에게 일자리를 얻으려고 비엔나를 방문하지만, 친구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리피피 (Du Rififi Chez Lex Hommes)
1955년, 프랑스, 이탈리아. 줄스 다신 감독, 진 세바이스, 칼 모너 주연,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토니는 여전히 충성스러운 부하 조를 다시 만난다. 조는 토니에게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이 마지막 한탕을 끝으로 은퇴하자고 말이다.

11월 2일 화요일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고리 펙 주연, 정신병원의 의사로 근무하는 콘스탄스는 새로 부임한 의사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사실 에드워드가 아니었고, 죽은 친구의 이름임이 밝혀진다.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죽음의 항해 (Dead Calm)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필립 노이스 감독, 니콜 키드먼, 샘 닐주연,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요트 여행을 떠난다. 조용할 줄만 알았던 여행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 남자로 인해 흔들린다.

레베카(Rebecca)
1940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런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조앤 폰테인 주연, 수줍은 여자가 부인과 사별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대저택에 들어가지만, 남자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월 3일 수요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팔리 그레인저, 루스 로먼 주연, 프로 테니스 선수 가이는 아내를 두고 외도를 즐기며 이혼을 바라고 있다. 어느 날 가이는 기차 안에서 브루노를 만나고, 브루노는 그에게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영화 마지막에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장면이 등장한다.

위커 맨(The Wicker Man)
2006년, 미국, 닐 라부티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속도로 사고로 죽어가던 모자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경찰관 에드워드는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옛 연인의 편지를 받는다.

로프(Rope)
194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두대학생이 재미삼아 동급생을 밧줄로 목 졸라 죽인 후 그의 시체를 아파트에 숨긴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캐리 그랜트, 에바 마리 세인트 주연, 뉴욕의 광고업자가 외국첩보기관에 의해 정부요원으로 오해받아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숙녀 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마가렛 락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주연, 여행 중인 젊은 여성이 기차에서 한 부인의 도움을 받는다. 두통으로 잠이 들었던 여성은 깨어난 뒤 그 부인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 나선다. "반드리카 초특급"이라는 제목 으로도 알려졌다.

11월 4일 목요일
아담스 패밀리(The Adams Family)
1991년, 미국, 베리 소넨필드 감독,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 아, 크리스토퍼 로이드 주연, 아담스 가에 이십오 년간 행방불명이던 친척이 찾아온다. 1964년 TV 시리즈로 방영된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에드(Mister Ed)
1961~1966년, 미국, 저스터스 아디스 외(外) 감독. 앨런 영, 코니 하인즈 출연,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TV 시리즈. 말하는 말인 에드와 그 주인의 좌충우돌을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애나가 올리비아에게 언급한 물론(Of course)이라는 말이 주제가에서 말장난으로 반복된다.

11월 5일 금요일
무법자(The Outlaw)
1943년, 미국, 하워드 휴즈, 하워드 혹스 감독. 잭 부텔, 제인 러셀 주연, 서부의 무법자들이 리오 맥도날드라는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제인 러셀이 전형적인 핀업걸 이미지로 등장하는 포스터로 유명하다.

열정(Hot Blood)
1956년, 미국, 니콜라스 레이 감독, 제인 러셀, 코넬 와일드 주연, 열정적인 여성 애니와 정략결혼으로 얽힌 형제 이야기, 집시 스커트를 입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제인 러셀을 담은 포스터로 유명하다.

11월 7일 일요일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 스릴러,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테레사 라이트, 조셉 코튼 주연, 미국 소도시에 사는 찰리의 단조로운 삶은 이름이 같은 찰리 삼촌이 찾아오면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찰리는 삼촌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진다.

이창(Rear Window)
1954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가 이웃들을 엿보는 것으로 소일하던 중 한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신한다.

11월 8일 월요일
싸인(Sign)
2002년, 미국, 나이트 샤말란 감독. 멜 깁슨, 호아킨 피닉스 주연.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그레이엄은 어느날 원과 선으로 만들어진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미스터리 서클을 발견한다.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s Baby)
196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 주연, 새로운 아파 트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고, 부인이 임신한 후에 더욱 심각해진다.

침실의 표적(Body Double)
1984년, 미국.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크레그 워슨, 멜라니 그리피스 주연, 단역배우 제이크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배역을 잃는다. 애인에게서도 버림받은 제이크는 다른 사람의 집을 관리해주기로 하고, 그 집에서 이웃 여자를 훔쳐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에 휘말린다.

욕망(Blow-up)
1966년, 영국,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세러 마일스 주연, 런던의 사진작가가 황량한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중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2023/12/02

아내를 죽였습니까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김미정 : 별점 2점

아내를 죽였습니까 - 4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내용,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호사 월터는 신경질적인 아내 클라라 때문에 진절머리를 내던 중 어떤 여자가 고속도로 휴게소 인근 숲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살인 사건 기사를 읽게 되었다. 월터는 남편 키멜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기묘한 충동에 휩싸여 키멜의 가게를 찾아가기까지 했다.
클라라가 어머니 임종을 지키러 고속버스를 타고 떠난 날, 월터는 그가 상상했던 키멜의 행동대로 고속버스를 뒤쫓아 휴게소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클라라를 찾지 못해 배회하다가 그냥 돌아왔는데, 클라라가 휴게소 근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사를 맡은 경찰 코비의 추적으로 월터와 키멜은 연결되었고, 키멜을 고문하는 등 코비의 집요한 수사는 월터와 키멜의 정신을 무너트렸고, 결국 둘은 치명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범죄 심리 스릴러 장편.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데뷰작인 "열차 안의 낯선 자들"과 비슷합니다. 비교적 평범했던 주인공이 아내 때문에 범죄에 대한 꿈을 꾸다가 절대악에 가까운 파트너와 엮인 탓에 파멸한다는 점에서요. 다만 월터는 꽤 헌신적인 남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다는 점, 그리고 심리 묘사도 더 탁월하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다른 묘사들도 빼어납니다. 특히 클라라 묘사가 놀랍습니다. 월터가 클라라를 진작에 죽일 생각을 하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생생한 "결혼 지옥"을 잘 보여줍니다. 클라라가 죽은 뒤 월터와 키멜이 코비의 수사 탓에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과정의 묘사도 발군이고요. 여러모로 심리 묘사가 중심인, 순문학에 가까운 스릴러가 많은 '버티고 레이블'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은 꽤 기발했던 설정만큼은 높이 평가할만 했으나, 이 작품은 그런 부분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시종일관 월터가 구렁텅이에 빠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낼 뿐이라 지루했어요.
등장 인물 설정도 별로입니다. 키멜은 코비한테 맥없이 얻어맞고 범죄 계획도 잘 짜내지 못하는 등 악당으로서의 강력함을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찰 코비가 오히려 절대악에 가까운데, 악당처럼 보이지만 범죄자 체포라는 명분은 확실하고, 키멜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하긴 하나 키멜은 살인자가 맞으니 뭔가 좀 애매합니다. 악당도 아니고 안티 히어로도 아니고.... 보다 캐릭터를 선명하게 구체화하는게 나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코비가 키멜을 고문하고 월터를 압박해가면서 "사냥꾼"이라는걸 드러내는건 결국 월터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고 보입니다. 월터는 코비가 만든 출구없는 지옥에 빠진 셈이니까요.
물론 별로인 설정이라도 현실적이라는 장점은 있기는 합니다. 모두 빼어난 묘사가 뒷받침 된 덕입니다. 키멜은 목공예를 즐기는 서적상이라는 디테일이 아주 생생해서 손에 잡힐 듯 하며, 월터에 대해 살의를 품는 과정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코비도 용의자를 고문에 가깝게 구타하고, 폭언을 퍼붓는 경찰답지 않은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고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전반적인 아쉬움을 뒤집기는 부족했습니다.

깔끔하지 못한 결말도 아쉬웠어요. 클라라는 자살한 것인지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마지막에 월터가 죽인 사람은 누구인지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코비의 부하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넘어갈 장면은 아니었다 생각되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읽는 독자마저도 진저리치게 만드는 묘사는 인상적이지만 그리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2023/11/25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 스튜어트 터튼 / 최필원 : 별점 2점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 - 4점
스튜어트 터튼 지음, 최필원 옮김/책세상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년 전, 장남 토마스가 관리인 카버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던 하드캐슬가의 저택 블랙히스 하우스에서 그날의 손님들을 고스란히 다시 불러모은 파티가 열렸다.
손님 중 한 명인 의사 서배스천 밸은 팔에 큰 부상을 입고 숲에서 깨어나 애나가 괴한에게 살해당하는걸 목격했다. 기억을 잃은 그의 앞에 흑사병 의사 옷차림을 한 남자가 나타나 여러가지 경고를 날렸다. 이런 저런 경고와 조언 속에서 시간을 보내던 서배스천은 누군가 자기에게 죽은 토끼를 선물한걸 발견하고 실신했다. 그리고 정신이 들고난 뒤, '나'는 집사 콜린스로 깨어났다는걸 알게 되었다. 흑사병 의사는 '나' 에이든 비숍에게 그는 모두 여덟 명의 다른 사람으로 하루를 반복하게 되며, 무도회에서 살해당하는 하드캐슬의 장녀 에블린을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면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이 루프 속에 다른 두 명의 경쟁자가 있다는 말과 함께.
에이든 비숍은 하룻동안 8명 - 마약 판매상이기도 한 의사 서배스천 벨, 집사 스탠윈, 늙고 뚱뚱한 레이븐코트, 강간범 더비, 에드워드 댄스, 순경 짐 래시턴, 도널드 데이비스, 화가 그레고리 골드 - 의 몸을 오가며, 에블린 하드캐슬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본인과 애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미래는 경고가 아니야, 미래는 약속이라고. 그리고 그 약속은 우리가 결코 깨버릴 수 없어. 바로 그게 우리가 갇힌 이 덫의 본성이라고."

어딘가에서 추천하는 글을 읽고 알게 된 영국 대장편 판타지 미스터리. 무슨 리스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하루를 반복하는 루프물이라는 아이디어는 특별한건 아닙니다.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일곱 번 죽은 남자"는 제목처럼 계속 반복해 살해당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으려고 노력한다는 내용마저도 비슷하지요. 루프보다는 시간 여행에 가깝지만, 과거를 반복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사라진 세계", "리피트", "나만이 없는 거리", "타임 리프"등 수도 없이 많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설정에 딱 한 가지 차이를 두어 차별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바로 "한 명이 하루를 반복하는게 아니라, 8명을 통해 하루를 반복한다"는 설정입니다. 

루프에 갖힌걸 모른 채 에블린 사건의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설정이 드러나는 도입부는 신선하고 흥미로왔습니다. 사건 자체는 심플합니다. 에블린 하드캐슬이 자살한건 부모가 돈 때문에 레이븐코트 경과 억지로 결혼시키려는걸 막으려고 동생 마이클 등의 도움을 받아 벌인 연극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에블린으로 알고있던건 사기꾼 펄리시티 매덕스였습니다. 오랫만에 유럽에서 돌아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겁니다. 에블린은 하녀 마들렌으로 변장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마이클은 연극이라 믿고 있었던 펄리시티 매덕스를 살해해서 자살로 보이는 살인을 완성했습니다.
동기는 19년 전 토마스 살인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토마스를 죽였던건 에블린이었습니다. 토마스가 에블린과 마굿간지기 파커 사이의 부도덕한 관계를 눈치챘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이디 하드캐슬과 불륜 관계로 에블린의 진짜 부친이었던 카버는 딸 에블린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누명을 쓰고 교수대로 향했죠. 그러나 레이디 하드캐슬이 에블린이 진범이라는걸 알아채서 입막음 댓가로 가문을 위해 에블린에게 레이븐코트와 억지 결혼을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에블린은 부모도 죽이고, 자기 자신도 자살한걸로 위장하려 했던 겁니다.

에블린의 자살이 연극으로 위장한 살인이었다는걸 증명하는 단서도 제대로 제공됩니다. 대표적인게 "왜 권총 두 정을 모두 가져갔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마이클이 나머지 한 정으로 죽은 척하던 에블린 - 으로 변장한 펄리시티 매덕스 - 를 살해하기 위해서였던 겁니다. 그 외 발견된 신호용 피스톨 (총 소리만 내기 위함), 피를 담아둔 병도 자살 연극에 사용되었다는 추리로 잘 이어집니다.
루프를 오가는 중간중간마다 '체스말'같은 연결고리도 충실히 제공되고 있어서 잘 짜여졌다는 느낌을 전해주고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을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8명을 통해 하루를 반복한다는 설정은 참신하기는 한데, 이야기를 괜히 복잡하게 만드는 측면이 더 강해요.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각 인물별로 시간대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에이든 비숍이 얻는 정보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인 굉장히 복잡한 구성과 전개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한 정보와 단서는 전개 후반인 순경 짐 래시턴 시점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앞서 다른 사람들 - "호스트"라고 불리우는 - 의 정보들은 추리적으로 크게 의미를 두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8명의 '호스트' 들의 설정들도 불필요하게 장황합니다. 서배스천이 마약을 몰래 공급해왔다던가, 레이븐코트가 식탐이 엄청난 고도비만이었다던가, 더비가 성범죄자라던가하는건 에블린 살인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협박범 스탠윈, 하드캐슬 가문의 사생아 커닝햄, 또다른 루프 참여인물 대니얼 콜리지 등의 주변 인물들 설정과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장황하더라도 설명이 명확하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정작 중요한 설명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대니얼 콜리지가 에이든을 방해하는건 당연하지만 - 루프에서는 한 명만 탈출할 수 있어서 -, 애나가 에이든에게 협조하는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 못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루프의 정체 - 일종의 감옥 - 는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재소자들을 살인 사건 안에 가두고 그들에게 타인의 사건을 해결하는 것으로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속죄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저만 이해를 못하는걸까요? 그리고 에이든 비숍은 애나를 찾아 제발로 루프에 들어왔기 때문에 배석 판사 흑사병가면이 호스트 통제권 및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반 감옥이라고 치면, 감옥 재소자를 제 발로 찾아온 선량한 시민에게 감옥에서 지낼 수 있는 편의를 제공했다는 말과 같은데 이건 말도 안되죠. 그냥 일종의 "두뇌 게임"을 펼치기 위한 장을 억지로 만든 것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사악했던 괴물 애나벨 코커는 비숍의 여동생을 고문해 죽였지만, 그녀는 죽고 지금의 애나는 갱생했다! 비숍을 위해 자기를 희생함으로 증명했다! 며 두 명 모두 풀어주는 마지막의 해피 엔딩도 허무했습니다.

복잡하고 일견 치밀해 보이는 구성이지만 핵심 전개와 수수께끼를 풀어내기 위한 전개는 부족하고, 기본 설정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잡하지만 알고보니 알멩이 없는 미국 드라마같은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을 기대하신다면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023/08/26

명탐정의 제물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 2.5점

명탐정의 제물 - 6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오토야 다카시의 조수 리리코는 민박집에서 일어났던 밀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뒤,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사무실을 떠났다. 귀국 예정일이 지나도 리리코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오토야는 가이아나의 조든 타운으로 향했다. 알고보니 리리코는 짐 조든이 이끄는 종교의 광신도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 조든 타운을 조사하기 위해 찰스 클라크가 조직한 조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 직후 오토야와 동행했던 저널리스트 노기가 타운의 보안군에게 총살당했고, 뒤이어 클라크 조사단원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불가능 상황에서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리리코는 오토야와 함께 조사를 펼친 끝에 미국 하원의원 라일랜드가 조든 타운을 방문한 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고 불가능 상황이 된 건 신도들의 의지였다는 추리를 밝혔다.
그러나 라일랜드 일행을 타운 보안군이 사살하고 리리코마저 살해당한 날, 오토야는 대규모 자살쇼를 앞둔 조든과 신도들 앞에서 숨겨져 있었던 진상을 폭로하기 시작하는데....

최근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있는 일본 본격 추리물. 2023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고노미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등 유명 미스터리 어워드 상위권을 휩쓴 작품이지요.

유치해보이는 표지와 부제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화려한 수상 이력이 증명하듯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가 높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무려 4건의 불가능 범죄를 비롯하여, 도입부의 요코야부 요스케 밀실 살인 사건 등 사건도 풍성하고,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며, 오토야와 리리코를 통해 각 사건마다 여러가지 추리가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리리코가 왜 오토야에게 가짜 서명이 되어 있는 <<탐정 교과서>>를 가져왔었는지 등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추리들도 잘 짜여져 있고요.
특히 핵심이 되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불가능 범죄에 대한 트릭과 추리가 기발해서 만족도가 높습니다. 사건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데요.
  1. 전 FBI 조사관으로 인민교회 간부로 위장한 알프레드 덴트가 밀실인 자기 방에서 칼에 찔려 죽음.
  2. 조든 타운 요리반 멤버들과 티 타임을 갖던 사이비 과학 탐정 조디 랜디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었는데, 차는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들 모두가 같이 마셨음.
  3. 한국인 이하준이 상, 하반신이 토막난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이하준은 가방에 갇혀서 오토야와 리리코의 눈을 피해 빠져나갈 수 없었음.
  4. 묘지에서 리리코를 살해한건 아이였는데,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는 아이는 누구도 묘지에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고 단언함.
여기서 진상은 '조든 타운의 광신도들은 스스로 아무도 질병이나 몸의 이상이 없으며, 사람들을 이상이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 바라보지만 외부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현재 그대로 바라본다'는, 오토야의 표현을 빌자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를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덴트는 이미 칼에 수차례 찔린 채로 방에 들어간 뒤 문을 닫고 밀실을 만든 뒤 죽었습니다. 그러나 방에 가던 덴트를 목격했던 Q는 덴트의 치명상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조든 타운의 신도가 몸에 상처가 있을리 없기에, 기억에 왜곡을 일으켰던 겁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조디 랜디는 오른 손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의 입이 닿는 부분에 묻혀진 독을 먹고 죽었습니다.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 중 크리스티나는 오른 손이 없었고, 블랑카는 왼손잡이였으며 레이첼은 오른 손가락이 골절되어 오른 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오른 손으로 차를 마셨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범인은 사전에 레이첼의 오른 손가락을 부러뜨렸지만, 레이첼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레이첼이 다쳤다는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에서 범인은 감방에서 이하준을 살해한 뒤, 상하체를 토막내어 각각을 간수 프랭클린을 이용해 밖으로 옮겼습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다리가 있다고 믿었기에, 휠체어 하반신 쪽에 설치(?)된 사체 토막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시체를 옮길 때 마다 범인에 의해 기절했던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요. 
네 번째의 리리코 사건은 범인 레이 모튼이 어른이지만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던 탓에 아이같은 외모를 가졌던게 이유였습니다. 오토야는 실제 그대로 어린아이를 목격했지만,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의 눈에 레이 모튼은 정상적인 성인이었기에 상반된 증언에 의한 불가능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광신자 집단의 잘못된 믿음같은 일종의 대규모 집단 최면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서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이 대표적이지요. 특정 집단 전체에 걸려있는 일종의 최면으로 정보 자체가 왜곡된다는건 동일합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다카마가하라의 범죄>>는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다'라는, 종교 단체의 신앙으로 비롯된 현실 왜곡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예 똑같은 발상일테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과 트릭을 꽤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정신병자 교주가 주도하여 신도들이 집단 자살했던 가이아나 존스 타운 사건 (인민 사원 사건)을 사건의 바탕으로 삼고있는 덕분입니다. 실제 사건을 본격물로 풀어내어 다채로운 트릭을 선보인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다소 팩션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게 좋더라고요.

하지만 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 외의 추리들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리리코의 추리부터 살펴보자면, 그녀는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다고 - 덴트는 밀실에서 실수로 칼에 찔려 죽었고, 조디 랜디는 지병인 협심증으로 사망했으며, 이하준은 간수 프랭클린으로 변장하여 휠체어를 타고 급경사에서 고속으로 도주하다가 와이어에 걸려 토막이 났다 - 생각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조든 타운의 신도들이 '질병도 없고, 사고도 없는 조든 타운'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조작했다고 추리했고요. 
그런데 협심증이야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칼이 튀어 등에 찔려 죽었다? 고속 휠체어 이동으로 몸이 토막났다? 솔직히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이런 추리에 수긍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물론 이는 사건을 대충 수습해서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풀어낸 추리였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토야의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는 더 한심했습니다.
오토야는 덴트의 방을 밀실로 착각하게 만든 열쇠와 조디 랜디에게 다과회 시점에 녹아내리도록 독이 든 캡슐을 낮은 온도에서 녹는 저융점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은 별다른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든 타운에서도 어떻게든 가공할 수 있는 소재였을 수는 있어요. 문제는 이 합금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았을테고, 원하는 모양으로 딱 맞춰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때 맞춰 녹아내리도록 한다는건 더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이건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사용될 수준의 트릭이었어요. 그나마 3일 전 사망했던 오토야의 지인 노기의 사체를 토막내어 이하준 사체로 위장한 뒤 발견되도록 만든 다음에 이하준을 살해했다는 추리 정도만 괜찮았습니다. 이후 이하준 사체를 토막내서 공동묘지 관리 오두막의 노기 사체와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죠.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의 끝이 짐 조든이 범인이라는건 설득력이 더욱 약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을 사용할 수 있고, 이하준의 사체를 빼돌리기 위해 1감옥에 갇혀 있던 오토야와 리리코를 석방시킬 수 있었던건 짐 조든 밖에 없었다는게 근거인데, 애초에 저융점 합금을 사용했다는게 말도 안될 뿐더러, 짐 조든은 앞서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낮다는게 이미 언급되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조든이 카리스마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의 천벌같은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을거라는 동기도 미흡하기 짝이 없고요. 설령 조든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한들, 직접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수족같은 간부나 광신자를 이용하겠지요. 맨슨 패밀리의 찰스 맨슨이나, 오움 진리교의 이시하라 쇼코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애초에 '명탐정' 들이 다수 등장하는 설정부터가 별로에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괴사건 해결 전문 명탐정을 실체 있었던 사건과 결합하여 풀어나가니 괴리감만 크게 느껴집니다. 오토야와 리리코를 사이비 종교 전문가로 설정해서 조든 타운으로 향하게 만드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기는 하나, 너무 과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느낌도 들게 만듭니다. 대표적인게 덴트 방 옷장의 혈흔입니다. 등에 칼을 찔렸다고 혈흔이 저렇게나 튄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문이 어떻게 열리든 그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고요.

도입부의 밀실 살인 사건도 그닥입니다. 밀실 안에서 죽은 사람은 유명탐정 요코야부 유스케였고 사체에 남겨진 탄환 감식 결과, 그를 쏜 건 10여년 전 권총을 훔친 뒤 11명을 사살했던 108호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사건이지요. 오토야는 추운 날씨인데도 요코야부가 얆은 옷에 난방도 켜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는 범인이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갔으며, 그 이유는 겉옷에 총을 쏜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였고, 따라서 요코야부는 자살했다, 이유는 요코야부가 108호였기 때문으로, 실수로 권총이 오발된 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창 밖 바다에 총과 겉옷을 버렸고, 그 때 그걸 목격한 거리의 떠돌이 소년을 쏴 죽였으며, 문만 열어두면 침입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여겨졌겠지만 힘이 다해 문을 열기 전에 죽고 말았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리리코는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간 건 자기보다 큰 재킷을 입고 있었던 거리의 떠돌이 소년이며, 그가 바로 108호였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요코야부에게 원한을 품은 108호는 요코야부에게 총을 쏜 뒤 오토야의 추리처럼 그를 108호로 몰기 위해 총을 객실에 두고 나왔는데, 기력이 남아있던 요코야부가 창 밖의 108호를 쏴 죽인 뒤 108호로 오인받지 않으려고 권총을 던져버렸다면서요. 108호는 10년 전에도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는데 지금도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이유는, 성인이 되지 못하는 선천성 질환인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경찰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게 됩니다.
오토야와 리리코의 추리는 괜찮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켜지 않는 나방과 입지 않은 외투, 안에서 보기에 열릴 것 처럼 보이지 않는 바다로 향한 창, 다른 객실 투숙객이 들은 물 튀기는 소리 등 단서도 잘 제공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총을 훔쳐 11명이나 죽였던 범인이 알고보니 성장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는게 너무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오토야가 조든 타운 신도들을 모두 독살한 진범이었다는 마지막 진상으로 이어진다는건 해도 너무했습니다. 명탐정 리리코가 고작 세 명을 살해한 잡범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 - 요코야부는 11명을 죽인 108호에게 죽었는데! - 수백명을 참살하도록 만들었다는데, 정말 가관이었어요. 일본식 명탐정 허세의 극을 달리는, 정신줄 놓게 만드는 황당한 동기였습니다. "탐정은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탐정의 역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도 옥의 티이고요. <<유리탑의 살인>>도 그렇고, 왜 이렇게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기야 어쨌건 오토야가 독을 탔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루이스의 유서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신도 중 생존자였던 Q가 루이스가 이상했지만, 당시 조든 타운 신도였기에 이를 몰랐다는 주장을 펴는 것 역시 입증할 증거는 전무하고요. 오토야가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 체포되어 수감될 이유가 도저히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 실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추리와 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솜씨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만화같은 불필요한 설정, 그리고 추리에 사족이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건 분명하니, 추리 애호가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3/08/18

샘 호손 박사의 세 번째 불가능 사건집 - 에드워드 D. 호크 / 김예진 : 별점 1.5점

샘 호손 박사의 세 번째 불가능 사건집 - 4점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리드비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정통 본격 미스터리 단편 시리즈. 1, 2편 반응이 괜찮았었는지 3편까지 출간되었네요.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출간 자체야 반길 일이지만 솔직히 수준은 영 아니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아니 걸작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첫 번째 사건집에 비해 두 번째 사건집은 다소 처졌었는데, 3권은 아쉽게도 2권보다도 못했어요. 기대했던 불가능 범죄를 해결하는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낮은 탓이 가장 큽니다. 트릭부터가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변장, 자작극 트릭이 너무 많더라고요.수십편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아이디어가 고갈된게 아닌가 싶어요.
이야기 전개도 부실해서 대부분의 작품에서 동기가 헐겁습니다. 불륜과 질투가 너무 많아요. 고작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범죄를 저지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동기가 설득력이 떨어지니 불가능 범죄'를 일으킬 타당성도 결여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대부분 수록작들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 시리즈도 이젠 더 읽을 일이 없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묘지 소풍의 수수께끼>>
혼자 걸어가던 여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리에서 떨어진 뒤 사망한 사건이 등장하는데, 결론은 변장 트릭이었습니다. 피해자로 변장한 여자가 피해자인 척 물에 뛰어들은게 전부에요.
트릭도 변변찮지만, 이후 전개 과정도 문제입니다. 우선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옷을 갈아입는 여자를 보았다는 (변장 때문에) 술주정뱅이 묘지 관리인의 증언으로 유죄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거에요. 샘 호손이 직접 피해자 - 로 변장한 일당 - 가 샌드위치를 먹는걸 보았지만 피해자는 위장이 비어 있었다는 것도 증거로는 약합니다. 물에 빠진 뒤 토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단편집의 단점을 모조리 갖추고 있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유아 보호실의 수수께끼>>
밀실이었던 극장 내 유아 보호실에서 시장이 총에 맞은 사건인데, 트릭은 흔해빠진 자작극이라 특별한게 없을 뿐더러 동기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시장이 밀주 유통을 한다는걸 들켜서 협박범을 살해했다는건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총에 맞는 불가능 범죄로 자작극을 벌이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런 자작극을 벌인다고 협박범을 죽인 사건이 미해결이 될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죽은 사람이 시장을 쐈을리 없으니까요. 보안관의 수사만 시작될 뿐이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치명적인 불꽃놀이의 수수께끼>>
독립기념일, 폭죽놀이를 즐기려던 정비소 형제가 불을 붙인건 다이너마이트였다. 형은 즉사하고 동생은 화상을 입었다. 밀봉된 포장에서 꺼낸 폭죽을 어떻게 다이너마이트로 바꿔칠 수 있었을까?

범인은 동생이었습니다. 포장에서 폭죽을 꺼낸건 동생밖에 없으니, 형이 자살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범인은 너무 뻔하지요. 마침 동생이 불을 붙이는데 계속 실패했다는 설명까지 있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렌즈 보안관의 추리는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정부 요원으로 가방한 밀주업자가 폭죽을 검사하는 척 하면서 바꿔치기 했다는데, 동일한 포장의 폭죽 상자를 미리 준비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보안관으로는 너무 수준 미달의 인물이 아닌가 싶네요. 
여러모로 평균 이하 수준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미완성 그림의 수수께끼>>
밀실인 아틀리에에서 테스 웨인라이트가 살해되었다. 가정부 밥콕 부인은 그녀가 라디오를 켜고, 전화를 받았다는고 말했는데.....

문을 닫고 마지막에 나온건 남편이고, 가정부가 들은건 오로지 '소리' 뿐이니 범인이 누구인지는 자명합니다. 라디오를 밖에서 켜고, 전화벨이 한 번 울리고 끊기게 만든 것도 별로 어려운 트릭으로 보이지 않았고요. 전화는 건 사람이 바로 끊으면 되잖아요? 읽으면서 라디오를 켠 건 발명왕이라는 마을 주민 대령의 발명품 덕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보다도 간단한 트릭 - 창고에서 퓨즈를 연결 - 을 사용했더군요.

그래도 테스가 전화를 받았다면 라디오를 끄지 않았을리 없다 - 나중에 밥콕 부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끄러워서 라디오를 끈것처럼 - 는 디테일 만큼은 좋았고, 샘 호손이 환자들에게 집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등 전작들보다 눈여겨 볼 부분은 조금 있기는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밀봉된 병의 수수께끼>>
금주법이 폐지되는 달 축배를 들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크레슨 시장이 독을 마시고 죽었다. 배달된 한 상자의 셰리주 중 시장이 딴 한 병에만 청산가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술을 배달했던 주류업자 얀시도 총에 맞아 살해되는데......

금주법 폐지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여, 마을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인다는 묘사는 재미있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 하지요.
술 상자를 진작에 배달받았지만, 사건 당일 배달된 것 처럼 연극을 벌였다는 트릭도 수긍할만 했습니다. '파티'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라는건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있었어요. 샘 호손도 죽이려 했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황당한 수준입니다. 시장 등 별장에서 시간을 보낸 멤버들이 마약중독자들이었다는 설정, 마약에 중독돠어 자살한 남편의 복수였다는 동기 모두가 어이를 상실케했거든요.
사람이 하품을 한 정도로 마약에 중독되었다고 추리한 샘 호손의 추리도 어거지였고, 밀봉된 병에 주사기로 독을 넣었다는 트릭도 별로였어요. 시장이 무슨 병을 잡을지 알고 있어서 독을 한 병에만 넣을 수 있었다는 것 역시 억지스러웠습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라진 곡예사의 수수께끼>>
서커스단에서 공중 곡예 중이던 곡예사 한 명이 그물로 떨어지는 곡예를 한 뒤, 다시 기어올라갔지만 사라져버렸다. 그 뒤 서커스단 천막이 설치된 목장 주의 집에서 살해된채로 발견되는데....

곡예사가 사라진건 마캐팅으로, 분홍색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서 올라가는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트릭은 그럴싸했지만, 곡예사가 올라가기 전에 광대 무리가 몰려들었던걸 - 그래서 사라진 곡예사가 광대로 변장하고 빠져나갔다는걸 - 설명하지 않아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질투로 보이는 살해동기도 대충 얼버무리고 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담뱃잎 건조실의 수수께끼>>
제닝스 담배 회사 사장 재스퍼 제닝스의 아내 세라가 일꾼 로이 핸슨과 불륜관계라는 괴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재스퍼는 담배 건조실에서 날카로운 칼에 목이 베어 살해당했다. 주변에 있었던 두 명 - 프레스콧과 핸슨 - 은 모두 범행을 부인했고, 둘에게서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제스퍼를 살해했을까?

읽으면서 <<마스터 키튼>>에 나왔던, 주변 사물을 흉기로 쓰는 킬러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담뱃잎을 흉기로 쓴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읽어보니, 흉기인 면도칼을 풍선에 실어서 건조실의 천장에 숨겼다는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던데, <<마스터 키튼>>이 더 괜찮지 않았나 싶습니다. 트릭이 애들 장난같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서면 금방 드러날 트릭이기도 하고요.
어차피 범인은 함께 있었던 두 명 중 한 명인데, 가장 유력한 용의자 핸슨이 왜 이 때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눈에 갇힌 오두막의 수수께끼>>
새 차를 타고 에이프릴과 메인주로 드라이브 여행을 떠난 샘 호손은 하이킹 도중 오두막에 혼자 살고 있던 쇼터의 시체를 발견했다. 쇼터는 어떤 발자국도 없는 눈밭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서 칼에 찔려 죽은 상태였다.

밀실 살인 사건인데 전화 설치 기사로 변장한 범인이 철제 케이블을 설치한 뒤, 케이블을 타고 집 안으로 이동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어요. 행글라이더를 타고 날아들어왔다 수준입니다. 흉기를 두고가는걸 잊어서 자살로 위장하는데 실패했다는 상황도 황당했고요. 무슨 장난같은 느낌이에요.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도 아니고.... 중간에 앙드레가 범인일거라며 샘 호손이 펼치는 추리도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고요.

에이프릴이 휴양소 주인 앙드레와 결혼한다는 결말은 뜻밖이었고, 채광창에 햇빛이 들어온걸 단서로 - 눈이 쌓여있지 않았을 리 없다 - 그곳으로 범인이 들어왔을 것이라 여겨 추리를 시작하는건 좋았지만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천둥 방의 수수께끼>>
결혼한 에이프릴의 후임으로 고용된 간호사 메이는 이상할 정도로 천둥을 무서워했다. 어린 시절 천둥방(뉴잉글랜드의 오래된 가옥에 있는, 폭풍이 칠 때 가족이 대피하는 방)에 숨었던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폭풍이 찾아온 날, 행크 포스터가 살해당했는데, 그 아내는 범인이 메이라고 주장했다. 마침 메이는 폭풍이 칠 때진료실 안에서 혼자 쉬고 있었다. 샘 호손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건 단지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행크스라는 아내 브루나의 주장은 너무나 확고했고, 알고보니 메이의 부모님도 천둥방에서 행크처럼 망치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범인은 메이의 쌍둥이 남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풀어가는 전개가 말장난에 가깝습니다. 샘 호손은 메이에게 여동생이 있는지 물어보는데, 다들 없다고 하거든요. '남동생'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동생이 정신이상이라 살인을 저질렀다는 동기도 영 별로였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검은 로드스터의 수수께끼>>
노스몬트 은행에 강도들이 나타났다. 재빠른 대처로 강도들은 노스몬트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샘 호손은 처음에 중고차 판매원 행크가 범인이라고 추리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원들이 작당했던 자작극이었다는게 진상이에요. 은행원들이 감금되었던 방이 뒷 골목과 통해있었던게 핵심이고요.

다른 수록작들보다는 비교적 추리적으로 괜찮고, 동기도 합리이었습니다 (상대적입니다). 샘 호손이 한 번 실패한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은행강도 사건을 꾸며낸다는게 비현실적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메리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노스몬트에 남아 샘 호손의 간호사가 된다는건, 그녀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걸로 보이는데 두고 봐야겠네요.

<<두 출생 모반의 수수께끼>>
병원에 식붕독을 일으킨 스트리터가 입원했다. 샘은 메리와 함께 식중독의 원인을 찾고자 매그놀리아 식당을 방문했다가 누군가 망치로 복화술사 인형을 망가트린 현장을 보았다. 마침 그날, 병원에서는 누군가 스트리터를 살해하려 했고, 다음날에는 상근 간호사 중 한 명인 애나가 잠긴 수술실에서 살해당한채로 발견되었다. 수술실 열쇠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 의사 엔들와이즈만 갖고 있었다.

스트리터가 벌인 자작극이라는건데, 자작극 트릭은 수록작에서 너무 많이 나와서 식상했어요. 시체 은닉은 보안관도 어려운 일이라 말할 정도로 비현실적 - 이동거리가 너무 멀다 - 인데다가 양 쪽으로 열리는 미닫이 문 잠금 장치에 대란 트릭은 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정하게 정보가 제공되지 못합니다. 알고보니 애나와 스트리터는 이부형제였고 큰 땅을 상속받을 예정이었다는 동기도 억지로 가져다 붙인 느낌이고요. 무엇보다도 불가능한 상황을 억지로 만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빈사의 환자 수수께끼>>
샘 호손이 처방한 디기탈리스를 먹은 노부인이 사망했다. 샘이 실수를 했거나, 노부인을 안락사시켰을거라 생각한 의료협회는 의료 면허 박탈까지 1주일의 기한을 주었다.
샘 호손이 보는 앞에서 노부인은 어떻게 시안화합물을 먹였을까? 그리고 곧 죽을 사람이었는데 누가, 왜?


사탕이라는 증거가 비교적 초반에 제시된다는 점에서는 공정했지만, 그 외에는 딱히 언급할 부분이 없네요. 노부인이 유언장을 바꾸려고 해서 두려워했던 조카딸의 범행이라는 것도 진부했고요. 마을에서는 추리하는 의사로 유명한 샘 호손을 불러서 독살 과정을 지켜보게 만든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농가 요새의 수수께끼>>
농장을 요새처럼 꾸민 루디 프랑크푸르트가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잠긴 정문, 2미터 높이의 전류 울타리, 파수견, 게다가 집은 모든 문과 창문이 다 잠겨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에 높이뛰기 선수로 출전을 준비하는 빌 크롤리가 범인이 아닐까? 는 추리로 전개되다가, 배달부 폴이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 구성입니다. 추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꽤 합리적으로 사용된 덕분입니다. 폴은 루디를 죽이고 트럭에 실어 놓았었습니다. 그리고 샘 호손과 방문했을 때 집 안애 시체를 유기했던 것이지요. 루디가 배달을 지시한 물건들이 이미 집 안에 있었고, 개들이 폴의 트럭에서 짖어대었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그러나 동기는 영 와닿지 못합니다. 질투 때문에 빌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다? 지나치게 억지스럽습니다. 가문의 원수 정도는 되어야 저지를만한 범행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목적에 맞는 범행으로 보이지도 않아요. 그냥 묘한 불가능 범죄로 보일 뿐이니까요. 빌이 함정에 빠질 이유도 없습니다. 이 정도 트릭을 고안해 낼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면, 더 직접적으로 빌에게 죄를 물을만한 상황 - 최소한 빌의 운동화같은 증거라도 현장에 두는 등 - 을 꾸며냈어야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저주받은 티피의 수수께끼>>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카우보이 일을 했다는 벤 스노가 샘 호손을 찾아와 오래전 수 종족과 만났을 때 있었던 불가능 범죄를 이야기해 주었다.
일족의 추장이 머무는 티피에 저주가 걸려서 추장의 아내, 아들, 손자, 그리고 벤 스노가 보는 앞에서 또 다른 아들 흐르는 구름마저 죽고 말았다는 사건이었다.


진상은 티피에 사용되었던 협죽도 기둥 탓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겁니다. 흐르는 구름은 아내의 복수로 독살당했고요.
스쳐 지나가는 말로 '협죽도'라는 단어를 꺼낸다던가, 흐르는 구름의 아들에 대한 설명 등 주로 '말'로 단서가 제공되는데, 그렇게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늙은 추장 달리는 말이 죽지 않은건 단지 튼튼했다는 설명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파란 자전거의 수수께끼>>
차도 트럭도 아무것도 안 지나간 길에서, 앞질러 가서 모퉁이를 돌은 앤젤라가 사라져버렸다. 현장에는 그녀가 타던 자전거만 남아있었다.

앤젤라가 숨을 수 있었던 옥수수밭의 존재를 초반에 잘 설명하지 않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남자친구 필 브륵스와 도피하려고 했다는 동기도 영 아니었고요. 그냥 도망가는 것과, 이런 실종 사건을 떠들썩하게 일으키는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차피 경찰이 나서서 찾게 될 테니까요. 공들여 연극을 벌일 이유는 없어요. 차라리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가는게 나았을 겁니다.
필 브룩스의 말 실수가 단서가 되는 전개도 식상했으며, 브룩스가 앤젤라의 친구 주디마저 살해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친구라면 잘 설득해서 숨어있게 해 달라고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작 중 렌즈 보안관도 브룩스가 주디를 살해했다는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설득력없는 범행이었어요.
마지막 이야기라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졸작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3/07/01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19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19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전통의 시리즈. 하지만 이번 권은 굉장히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점.
두 편의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플갱어>>
마약 단속국 수사관 아처가 끔찍한 숯덩이 소사체로 발견되었다. 아처의 매형인 FBI 수사관 아스트로는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시채들이 발견된걸 계기로 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사건을 일으킨건 마약 조작에서 '마법사'라고 불리우는 남자라는걸 알아냈다. 마법사는 6명의 단계를 거치면 누구나 연결된다는 6단계 법칙도 무시하는 수수께끼의 존재로, 죽을 때 자신의 얼굴을 본다는 '도플갱어'라는 마법을 써서 사람을 죽여왔다.
마법사와의 연결고리라는 중학교 교사 크랩마저도 아스트로 앞에서 불타죽고 마는데....

국경 지대에서 소사체가 연달아 발견된 이유가, 미국 내 FBI를 움직이기 위한 마법사의 계획이었다는건 그럴싸했습니다. 마약 수사관 토러스가 정보를 마법사에게 넘겨주다가 도망쳐서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FBI가 움직여서 진상이 드러나면 토러스는 도망칠 수 밖에 없고, 그 때 토러스를 잡아 죽인다!는 간단한 계획이었던거지요. 언제나 말하지만, 간단한게 최곱니다.
마법에 걸린 자는 죽기 직전 자기 모습을 보는데 사인은 실혈사,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으며 사후 불태워져 마법 흔적이 남지 않는 마법 '도플갱어'의 정체도 놀라왔습니다. 피해자 얼굴 가죽을 벗겨 앞에 걸어 두었던겁니다. 비슷한 고문을 <<개의 힘>>에서 보긴 했었는데, 끔찍함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네요.

그러나 이외의 내용은 점수를 주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전개가 엉망인 탓이 큽니다. 마약단속국의 제이미 부장이 계획 - 끄나풀을 잡겠다 - 을 아스트로에게 밝히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 토마가 갑자가 나타나서 진상을 밝히는 것도 비상식적입니다. 마약 범죄로 5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은 강력 범죄에 일본 고등학생이 뛰어들어 수사를 돕는다는게 말이 될리가 없잖아요?
또 마약 수사국은 마법사의 끄나풀이 누구인지 알아내서, 위치추적기를 통해 마지막 위치에 폭격을 가해 모두 없애버릴 생각이었기에 끝까지 마법사가 누구였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데,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들거든요.

Q.E.D 특유의 현학적 장치로 6단계 법칙, 무한 연분수가 등장하는데, 이 역시 억지스러웠습니다. 특히 6단계 법칙이 절대적인 것처럼 설명되는건 어이가 없어요. 6단계 법칙이 성립하는건, 케빈 베이컨처럼 '골'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마법사'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연결되는 사람을 찾아봤자 아무 의미 없지요.
같은 이치로, 무한하게 이어져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사실은 식 속에서 같은 식이 반복되고 있을 뿐인 무한연분수를 몇 십명의 연결에 대치시킨 것도 말도 안됩니다. 중간 단계의 누군가가 동일 인물이라서 단계가 무한해진 것이라는데,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보다는 방정식에서 변수가 잘못되어 (지인인줄 알았는데 범인이더라) 오답이 나왔다는 것에 가깝습니다.
죽은 중학교 교사 크랩이 무한연분수를 죽기 전에 남겨 단서가 되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애매한 단서를 남기느니 토러스가 끄나풀이라는걸 어딘가에 적어놓는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여러모로 Q.E.D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졸작이었습니다.

<<봄바람>>
대부호인 점술가 기소 사쿠라가 요트에서 떨어져 죽은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스무살이나 어린 호스트 출신 남편 세이지였다. 사건이 일어났던 요트에서 함께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이지는 항해 도중 아내에게 떠밀러 바다에 빠졌었고, 아내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10km이상 떨어진 곳에서 구조되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사고사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세이지가 저지른 살인 사건처럼 여겨 조사한다는 설정이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기소 사쿠라 사체 후두부에 타박의 흔적이 있었고, 나중에 발견된 요트 활대에 혈흔이 있있다는건, 바람 탓에 활대에 머리를 맞고 바다에 빠졌다는 사고사로 보기에 충분한 증거입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던 것도 갑작스러운 사고였다면 충분히 설명되고요.
그래도 요트 안에 다른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로 사건은 조금 재미있어집니다. 이를 통해 세이지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 사쿠라가 상대방인 아카네를 살해해 요트에 사체를 숨겼다는 진상이 드러나거든요. 세이지도 살해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 때 바람 탓에 움직인 활대에 맞은 뒤 정신을 차리고 자살했던 겁니다. 이를 통해 세이지의 다소 이상했던 증언과 아카네의 행방불명 등이 모두 밝혀지는 전개는 깔끔했어요.

다만 사쿠라의 동생 모모코가 숨어있었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그럴 이유를 모르겠네요. 배에서 둘의 이혼 이야기를 듣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사고가 정황이 농후한데 요트를 저렇게나 샅샅이 조사할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사해서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다 한들, 그게 사건 당시일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특별한 증거로 보이지도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괜찮은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추가되어있는 이상한 설정은 마음에 들지 않네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좀 더 합리적인 전개를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2023/04/14

테스터 - 이희영 : 별점 2점

테스터 - 4점
이희영 지음/허블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방새가 있는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참혹하게 죽은 탓에 사람들은 동굴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전설 속 오방새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되살아났다. 빛나는 깃털을 지닌 '레인보드 버드'를 복원하여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려는 계획 덕분이었다. 하지만 레인보드 버드는 끔찍한 전설의 원인이었던 치명적인 RB 바이러스와 함께 되살아났고, 복원 계획은 곧바로 폐기되었다. 그러나 계획을 진행했던 호텔 회장의 손자 강마오가 사고로 RB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태어나고 말았다.
회장은 전력을 다해 바이러스를 치료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오가 16살이 될 때까지 실패하던 와중에, 마오는 자기 말고 다른 바이러스 감염자 하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외부로의 출입,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는 마오였지만 하라와 만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하라가 진짜 회장의 손자였고, 마오는 고아 출신으로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백신을 대신 투약받아왔던 '테스터' 일 뿐이었다.
다행히 백신은 성공하여 바이러스는 퇴치되었다. 하라는 마오를 꼭 치료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마오는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을 택한다.

한국 작가의 SF 소설. 딸이 다니는 학원 교재로 딸이 읽는걸 보고 읽어 보았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비인간적인,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동물들을 활용해서 표현한게 독특했습니다.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 멸종시켰다는 레인보드 버드를 관광상품으로 이용하려고 부활시켰지만 바이러스까지 함께 부활되어 위기에 봉착했다던가, 피부 이식을 위해서라며 만들어낸 인간 피부와 같은 성질의 피부를 가진 스킨 피기의 주 용도는 미용이라는 것처럼요. 동물을 이용한건 아니지만, 화성 이주자들을 모집하는 복권이 가난한 가족을 일종의 테스터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거라는 음모론도 비슷한 느낌이고요.
핵심 줄거리도 이런 황금만능주의 사상과 이어져 있습니다. 레인보드 버드에 의해 되살아난 RB 바이러스에 감염된 손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대기업 회장이 어린 고아들을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뒤 치료용 테스터로 삼았다는 내용이거든요.

여기서 서술 트릭을 활용한 반전이 하나 등장하는데, 회장의 손자인줄 알았던 마오가 테스터였고, 하라가 진짜 손자였다는 겁니다.
반전에 대한 복선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마오가 마시면 정신을 잃는 시계꽃 차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오는 차를 마시고 정신을 잃는데, 메이드 로봇 보보가 마오의 지시였다며 바이러스에 대한 검색 결과를 알려주지요. 이는 마오에게 바이러스의 정체와 하라의 존재를 알려주려는 외부의 움직임이 개입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외에도 마오의 기억이 뭔가 희미하다던가, 하라의 존재에 대해 주변 인물들이 은근슬쩍 정보를 알려주는 등도 마찬가지 복선입니다. 한마디로 꽤 괜찮은 반전이었어요. 
마오의 이름이 테스트용 고아 다섯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지막 다섯번째 아이"였다는 것도 제법 기발했고요.

허나 반전에 대한 설득력은 영 별로입니다. 회장이 마오를 자기 손자라고 속인 이유부터 도무지 모르겠어요. 마오가 그냥 바이러스에 걸려서 아픈 아이였다고 하면 뭐가 문제일까요? 하라를 위해 만든 설정을 마오에게 대입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삶에 대한 의지를 키워주기 위해서? 그럴 리가 없잖아요.
반전이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알고보니 무언가를 위해 길들여지고 만들어진 실험체였다!는 것도 SF에서 너무 많이 보아왔던, 지극히 뻔한 설정이라는 것도 단점입니다. 영화 <<아일랜드>>, <<네버 렛 미 고>>나 시미즈 레이코의 <<월광천녀>>처럼 알고보니 장기 제공용 복제 인간이었다는 설정과 흡사한 탓입니다.
또 마오에게 하라의 존재를 알려준건, 하라의 투쟁 때문이었다고 설명됩니다. 하지만 하라가 마오의 존재를 알게 된 것 역시 어느정도 할아버지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과정의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이왕 숨길거면 끝까지 숨기던가, 말해줄거면 대놓고 사실대로 말해주는게 당연했을텐데 말이죠.
마지막에 마오가 자살을 선택하는 결말도 납득이 가지는 않았어요. 알비노는 하라가 책임지고 치료해준다고 했고, RB 바이러스도 다 나았는데 무엇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걸까요? 작중에서 마오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습니다. 혼자 살아남은 것도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고요.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가지거나 미안해할 이유는 전무합니다. 일종의 PTSD 같은걸 걸려서 괴로와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설명도 없어요. 일종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바이러스 백신이 완성되기 전에 죽었어야 했고요.
마오만 컨트롤 할 수 있는 메이드 로봇 보보가 마오도 모르게 업데이트되는게 굉장히 중요한 단서처럼 묘사되는데, 알고보니 일종의 맥거핀이었다는 것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진솔 아저씨가 사람이 아닌 휴머노이드라서 가능했다는건데, 이야기의 핵심과는 무관한 주변부적인 설정일 뿐이었어요. "알고보니 로봇이었다!"도 흔해빠진 클리셰의 재활용에 불과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이런 암울한 분위기와 설정의 작품이 청소년용으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던건 수확이었고, 반전이 드러날 때의 맛은 괜찮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설정과 줄거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성인에게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23/03/25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3 톱니바퀴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3 톱니바퀴

토모히로의 집 앞에 고급 택시가 멈춰 섰다. 토모히로가 자신의 집에 들어선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운전기사가 대문 차임벨을 누르자 바로 토모히로가 나타났다. 그는 남색 바지와 코트를 입고 한 손에는 큰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토모히로의 뒤를 이어 마사오의 모습이 보였다. 트위드 소재의 하얀색 코트에 크림색 가방을 들고 있다. 마사오는 머리를 다시 묶고 있었다. 익숙한 은색 머리 장식이 보였다.

잘 단장한 마사오의 얼굴 윤곽이 멀리서부터 눈에 띄었다. 화장을 한 모양이었다. 운전기사가 토모히로의 가방과 마사오의 여행 가방을 뒤쪽 트렁크에 실어주었다.

"어떻게 봐도 여행 가는 모습이군. 그것도 꽤 긴 여행같은데........"

마이코가 혼잣말을 했다.

토모히로의 집에서 두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안은 노인이 나왔다. 얼굴이 마사오를 닮았다. 마사오는 노인에게서 옆으로 긴 검은색 가방을 받아든 뒤 아이의 뺨을 살짝 찔렀다. 아이가 입을 열었다. 충치가 보였다.

토모히로와 마사오는 차에 올라탔다. 노인과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차는 마이코의 에그를 지나갔다. 잠시 후, 토시오는 조용히 시동을 걸었다.

"미행하고 있는걸 알아채도 상관없어. 어차피 의뢰인의 차니까."

토시오는 마이코의 에그로 어떻게 택시를 놓치지 않고 미행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지만, 마이코의 말 한마디에 택시 뒤에 꼭 붙어 가기로 결심했다.

도로의 혼란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고, 택시의 운전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사이에 두세 대의 차량이 끼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토시오는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것일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 그랬다. 토모히로의 가방은 국내 여행치고는 너무 과했다. 마사오가 아침부터 소우지를 만난 것은 당분간 두 사람의 밀회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고속도로에 들어가면 계속 쫓아갈 자신이 없어요."

마이코는 시계를 보았다.

"걱정할 것 없어. 공항까지는 외길이니까. 그런데 만약 해외로 출국하는 거라면, 그 전에 내가 토모히로를 붙잡고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어."

고속도로 앞에서 큰 탱크로리 차량이 끼어들면서 마이코의 에그를 억지로 밀어붙였다. 정지 신호에서 마이코의 차는 유조차의 배기가스를 정통으로 맞았다. 오른쪽 도로변에는 '개와 고양이 병원' 간판이 큼지막하게 서 있다. 마이코는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정말 개 같은 일이네."

이것으로 이 일도 끝이겠구나, 라고 토시오는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토시오는 하늘에서 기괴한 물체를 목격했다. 색깔도 모양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차 전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유리창이 날아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토시오는 직감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의 탱크로리 차량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타원형 탱크가 눈에 띄게 커 보였다. 토시오는 뒤따라오는 차를 신경 쓰며 계속 브레이크를 밟았다.

에그가 멈추자 토시오는 반사적으로 차도로 뛰쳐나왔다. 서너 대 앞의 차가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토모히로와 마사오가 타고 있던 택시였다. 택시 뒤에는 또 다른 차량이 달려오고 있었다.

탱크로리 차의 문이 열리고 운전자가 튀어나왔다.

"도망쳐!"

누군가가 소리쳤다.

차도 위에서 하얀 코트가 날아갈 것 처럼 흩날렸다. 토시오는 코트로 뛰어들었다. 일어나보니 마사오는 피를 흘리며 눈을 감고 있었다. 토시오는 정신없이 마사오를 끌어안았다. 작은 신발 한 켤레가 옆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아도 그때의 행동은 설명하기 어려웠다. 토시오는 한 손으로 그 신발을 집어 들었다. 곧이어 신발 옆까지 불길이 다가왔다.

"엎드려!"

미친 듯이 외쳤다.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두 번째 차에 불이 붙은 것이다.

토시오는 에그에 마사오의 몸을 밀어 넣었다. 마이코의 모습은 차 안에 없었다. 마사오의 옆에 긴 가방 끈이 팔에 달라붙어 있었다. 토시오는 가방을 풀어 놓으려고 했다. 그때 마사오의 가슴에 손이 닿았다. 가슴의 부드러움에 토시오는 깜짝 놀랐다. 토시오는 가방을 뒷좌석에 던져 넣고 문을 닫자마자 U턴을 했다. 차체가 탱크로리 차량에 부딪힌 것 같았다.

반대편 차선의 차량이 멈춰 섰다. 뒤돌아보니 두 대의 차량이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사오의 이마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눈과 입을 굳게 다물고, 피부에 피가 묻어 투명할 정도로 하얗게 변했다.

병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몇 분 전에 보았던 '개와 고양이 병원' 간판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토시오는 동물 병원 앞에 차를 세웠다. 보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멀리 보이는 검은 연기를 보고 달려가고 있었다.

토시오는 차도로 내려와 차를 돌려 반대편 문을 열었다. 마사오는 반 쯤 쓰러진 채였다. 토시오는 조용히 마사오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사오는 곧 의식을 되찾았다.

".....나는........"

"사고를 당했어요. 곧바로 피신을 한게 다행입니다. 어디 아프신데는 없나요?"

마사오는 놀란 듯 온몸을 훑어보았다.

"병원 앞입니다. 상처를 확인하면 좋겠어요."

"사고를 당했나요 ......?"

토시오는 처음으로 마사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약간 코를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들렸다.

토시오는 에그에서 사고 현장에서 주운 신발을 꺼내 마사오의 발에 놓았다.

"당신은..."

마사오는 토시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당신 차, 서너 대 뒤에서 달리고 있었어요."

"도와주셨군요."

토시오는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이제 괜찮습니다."

마사오는 신발을 신고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사오는 토시오의 팔에 쓰러졌다.

"무리하면 안 돼요."

마사오의 머리카락이 눈앞에 있었다. 향수와는 다른, 기억에 남는 미묘한 향이 느껴졌다.

마사오는 토시오의 팔에 기대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세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마사오는 깜짝 놀라며 쥐고있던 토시오의 팔에 힘을 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엄청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와 불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유조차에 불이 났네요."

마사오는 갑자기 토시오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토시오는 놓아주지 않았다.

"남편이 있어요.......남편이 ......"

"남편?"

"저, 남편과 함께 그 차에 타고 있었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몸이 무언가에 부딪힌 것 같더니 눈 앞에 불이 났어요. 운전자가 밖으로 굴러가는 것이 보였어요. 남편이 문을 열고 저를 밖으로 내쫓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달려갔을 때 좌석에 불이 붙지 않았어요. 대피할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마사오의 다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신의 상처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토시오는 억지로 마사오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대기실에 있던 두세 사람이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한 여자는 가슴에 작은 개를 안고 있었다.

"급한 환자에요. 근처에서 사고가 났어요."

토시오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소방차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개가 짖어댔다. 일반 병실과는 다른 소독액 냄새가 났다.

의사는 온화한 얼굴의 노인이었다. 외투를 벗겨보니 안감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의사는 스타킹에 가위를 집어넣고 벗겨내어 상처 부위를 살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는 재빠르게 수액을 놓았다.

"다른 통증은 없습니까?"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맞았나요?"

"글쎄요."

의사는 마사오의 눈과 입안을 살폈다.

"다리의 상처는 출혈에 비하면 얕은 것 같군요. 나중에 반드시 전문의에게 뇌파를 검사받아야 합니다."

또 여러 대의 사이렌 소리가 지나갔다. 마사오의 침착함이 사라졌다.

"제발 부탁입니다. 제발 남편에게 데려다 주세요."

"남편이 함께 있었나요?"

의사는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토시오를 남편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맞습니다. 같은 차에 타고 있었어요."

"잠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저는 이제 괜찮아요. 남편이 걱정돼요."

마사오는 절망에 빠졌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간호사가 수화기를 들고 응대하다가 곧바로 토시오에게로 향했다.

"카츠 씨, 계십니까?"

"네."

토시오는 전화를 받았다.

"이, 이봐요!"

마이코가 소리쳤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디로 사라져 버리다니. 마사오는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큰 부상이야?"

"아니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걸을 수 있겠지?"

"네."

"토모히로가 더 큰일이야. 빨리 마사오를 데리고 와. 키타노 제일의원 외과. 알았지? 도로는 교통이 통제되어 있어. 멀리 돌아서 와야 해. 바로 와."

"잘도 여기가 어딘지 알았군요."

"방금 전 '개와 고양이' 병원 간판을 봤었고, 차가 달리는 방향이 그쪽이었으니까. 네가 생각한 것 정도는 알 수 있어."

마이코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남편이, 뭐라구요......."

마사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타노 제일의원이라는 곳으로 이송된 것 같습니다."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마사오는 피 묻은 외투에 손을 넣었다.

"내 차에 타세요."

토시오는 의사에게 키타노 제일의원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밖으로 나오니 구경꾼들이 인도로 가득 차 있었다. 소방차의 사이렌과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 헬리콥터 소리.

연기의 세기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가끔씩 주황색 불꽃이 연기 속에서 되살아났다.

멍하니 서 있는 마사오를 바라보며 토시오는 에그에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카츠 씨라고 말씀하셨죠?"

마사오는 운전대를 잡은 손을 보면서 말했다.

"네, 카츠 토시오라고 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큰 도움을 주셨네요. 저는 마와리라고 합니다."

"마와리……"

토시오는 그 이름을 감탄하듯 반복했다. 하지만 마사오는 다르게 해석한 것 같았다. 토시오의 얼굴을 보니,

"이름은 마사오입니다."

라고 말했다. 마사오는 남자다운 호칭에 대해 변명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카츠 씨의 주소를 알려주시겠습니까? 감사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

"감사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그런건 싫습니다."

거절하려던 말이 어느새 강한 어조로 변해버렸다. 마사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위안이 될 만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조급해지면서 좋은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에그는 그대로 키타노 제일의원 현관에 도착했다.

하얀색 2층짜리 병원이지만 안쪽은 훨씬 더 깊었다. 마사오는 현관 계단을 오를 때 다친 다리를 끌며 올라갔다.

접수처에서 이름을 말하자, 안내를 맡은 간호사가 두 사람을 2층으로 안내했다.

"무슨 일인가요?"

토시오가 물었다. 간호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2층 복도 의자에 마이코가 앉아 있었다.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고 일어섰다.

"수혈이 필요하다면 내 피를........"

마사오는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

마이코는 토시오에게 다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토시오는 못 본 척하며 걸어갔다. 간호사는 마사오의 다리를 보고 시선을 멈췄지만 걸음걸이를 늦추려고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간호사는 2층의 긴 복도 끝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뒤따라오는 것을 본 뒤 문을 두드렸다. 곧 문이 열리고 하얀 마스크를 쓴 의사가 나왔다.

"가족분들입니다."

간호사가 짧게 말했다. 의사는 마스크를 벗었다. 토시오는 부상자의 아내라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 온몸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아까부터 아내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제 때에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문을 열고 두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마사오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이성이 승리한 것일까.

토모히로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약간 튀어나온 코에 산소 흡입용 마스크를 씌우고 있었다. 수혈병에는 거품이 일고 있었다. 거꾸로 된 A라는 글자가 보였다.

"당신……"

마사오가 얼굴을 가까이 했다. 토모히로는 팔을 뻗으려 했지만 수혈을 위해 팔이 고정되어 있었다.

토모히로는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나는.......괜찮아."

고개를 움직여 입으로 마스크를 밀어내려고 했다.

"당신, 힘들겠지만, 힘내세요....... ......"

"나는, 괜찮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마사오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뺨을 문지르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 당장 출발해 ...... 지금이라면 아직 ...... 비행기에….. 늦지 않아 ......"

"하지만--"

토모히로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일 ...... 예정대로 호놀룰루에 있는 러더퍼드 데이비스 씨를 만나 ...... 마도죠를 ...... 건네줘."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지 마세요."

"쓸데없는 일 아니야 ...... 당장 출발해 ...... 마도죠를 ...... 반드시 ...... 내일 ......

"알았어."

마사오는 아이를 달래듯 토모히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 말대로 할게요. 안심해라. 그러니 조용히--"

"당장 출발해"

토모히로는 빨리 떠나라는 말을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눈을 감고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마사오는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토모히로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의사가 토모히로의 죽음을 알린 것은 그로부터 십오 분이 지난 후였다.


마이코는 2층 복도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불쾌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언제까지 멍청한 짓을 할거야?"

토시오의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토모히로가 죽었어요."

"알아. 아까 토모히로의 병실에서 산소호흡기가 꺼져 있는 걸 봤어. 내가 어려울 때 죽고 말았지 뭐야."

마이코는 토모히로의 죽음에 대해 매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넌 생각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군."

"그렇게 하는 것을 싫어할 정도로 배웠어요"

"그렇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돼."

토시오는 신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게, 도무지 모르겠어. 사고 직전에 여러 사람이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더군요."

"-그건 저도 봤어요."

"불덩어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연기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토시오 군, 토시오 군이 본건 뭐였어?"

"제 생각에는 하얀 연기 같았어요."

"어쨌든, 토모히로의 차에 낙하물이 부딪힌 것만은 확실한 것 같군."

"토모히로가 그렇게 큰 부상을 입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그것이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렇겠지. 택시 운전사도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채 도망칠 수 있었으니까. 택시와 부딛혔던 차의 사람들도 자기 차에 불이 나기 전에 피난할 수 있었고."

"그럼?"

"차에서 뛰어내린 후, 토모히로가 취한 행동이 문제였지. 그건 자살행위였어."

"우다이 씨는 그걸 보셨나요?"

"응, 똑똑히 봤어. 토모히로가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 반쯤 열린 차 트렁크에서 자신의 가방을 꺼내려고 했어."

"가방을?"

"응, 가방도 가죽이 찢어져 안의 물건이 튀어나온 상태였어. 그래도 토모히로는 가방을 꺼내려고 애썼지. 그러던 중 급속도로 택시가 불길에 휩싸여 버렸어. 결국 토모히로는 가방을 꺼내기는 했지만 도로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고. 다리가 엉켜서가 아니면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일거야. 그리고 그 순간, 토모히로는 삽시간에 불덩어리가 되고 말았어."

"사람이 그렇게 한순간에 불덩어리가 될 수 있나요?"

"그냥은 힘들지. 뭔가에 불이 붙었다는 느낌이 들었어. 내 생각에 그 가방 안에는 뭔가 인화성 액체가 담긴 병이 들어있었던 것 같아. 넘어지는 바람에 병이 깨지면서 토모히로는 그 안에 있던 액체를 뒤집어 썼고, 그 액체에 불이 옮겨붙었던게 아닐까."

"그 가방에는 꽤나 중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겠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 가방도 다 타버렸어."

하지만 해외여행을 갈 때 기름병 등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그래, 아직 마이코에게 해외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다이 씨 말이 맞았어요. 두 사람은 호놀룰루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마사오가 말했구나."

"두 사람은 하와이에서 로스엔젤레스, 플로리다를 거쳐 2주 후에 보스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고 했어요."

마이코는 가만히 천장을 쳐다보았다.

"..... 맞아, 생각났어. 보스턴에서 11월에 '국제 장난감 박람회'가 열릴 예정이야. 각국의 참가업체가 백 수십 개, 전 세계 바이어와 업계 관계자가 1만 명 이상 모일 것이라고 신문에 나와 있었어."

"두 사람은 그 국제 완구 박람회에 참가할 예정이었을까요?"

"그래, 아직은 좀 이르지만, 마사오 말대로 세계여행도 겸해서였겠지"

"해바라기 공예에서는 수출도 하고 있나요?"

"일본 장난감 생산액의 3분의 2 이상은 수출하고 있어."

마이코는 장난스럽게 토시오를 바라본다,

"장난감 수출액 1위는 어느 나라라고 생각해?"

토시오는 조금 당황했다.

"일본이야. 이것도 후쿠나가 씨가 가르쳐 준 건데, 수출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됐어. 메이지 초기에 이미 요코하마에 있는 외국 상관을 통해 장난감 수출이 시작되었어. 세계대전 이전에는 일본 전체 무역액의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수출품이었다고 하더라고. 일본 장난감의 인기 비결은 정교한 기술과 아이디어의 재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고. 종전 이후에 장난감은 빠르게 부활했어. 인간에게 장난감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인 것 같아. 주둔군이 버린 빈 깡통을 두드려서 만든 재료로 업체는 장난감 자동차를 만들어냈을 정도였다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나?"

"몰랐습니다."

"수출 회복도 빨랐어. 마찰 장난감의 개량을 계기로 일본 장난감은 다시 수출의 선두에 서게 되었어."

"마찰 장난감?"

"스프링을 사용하지 않고도 달리는 자동차를 말하지. 봐, 바퀴를 몇 번 돌리고 손을 놓으면 의외로 멀리 가는 자동차가 있을 거야. 이는 자동차 내부에 플라이휠이라는 무거운 톱니바퀴가 들어있기 때문이지. 자동차의 바퀴를 바닥에서 마찰시키면 플라이휠이 빠르게 회전하도록 되어 있어. 이 플라이휠의 관성으로 놀이기구는 꽤 멀리까지 달릴 수 있고. 원형은 메이지 초기에 하숙집 장인이 고안했다고 하더군. 이 마찰물을 시작으로 수출은 순조롭게 성장했어. 1951년에는 수출액이 3백억에 육박하며 세계 1위로 성장했고."

"해바라기 공예에서는 어떤 장난감을 수출하고 있나요?"

"아까 보여주었던 달그락달그락 새가 달러박스인 것 같아. 나머지는 비슷한 소품 장난감. 하지만 더 큰 시장을 노린 해바라기 공예는 스페이스 레이스에서 실패하고 말았지."

토모히로의 최후를 떠올렸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사오에게 끈질기게 '마도죠'라는 것을 어떤 외국인에게 건네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마도죠라는 것은 장난감의 상품명이 아니었을까.

"국제 박람회에선 여러 가지 신제품이 출품되겠지요?"

"물론이지. 바이어들은 눈을 부릅뜨고 좋은 제품을 찾아낼 거야. 국제 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 회사도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

토시오는 마이코에게 토모히로의 임종을 이야기했다.

"마도죠란 뭐야?"

"모르겠어요. 가방 안에 들어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마이코는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형사가 너랑 얘기하고 싶다고 했어"

"형사가?"

"에노키초 경찰서 교통과 형사야. 사고 경위를 듣고 싶다고 했어."

"우다이 씨는?"

"나는 싫어. 그 차에 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해 주면 좋겠어. 얼굴만 내밀고 오면 돼. 금방 끝나겠지."

그때 마사오가 복도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이코가 알아차렸다,

"나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마."

라고 말하면서 토시오의 곁을 슬그머니 떠났다.

마사오는 홀을 둘러보다가 토시오의 모습을 보고는 옆으로 다가왔다. 한쪽 다리는 여전히 끌고 다니고 있었다. 마사오는 토시오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하루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럴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평범하게 유감스럽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토시오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서둘러 글씨를 써서 찢어서 마사오에게 건네주었다.

"제 주소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곤란합니다."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싫으시다면........"

마사오는 종이 조각을 소중히 받았다.

"호놀룰루로 떠나실 건가요?"

"아니요."

마사오는 분명하게 말했다. 마이코가 뒤를 돌아보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편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남편의 부탁이 굉장히 강했는데도요?"

"평소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분명 의식이 정상적이지 않았겠지요. 데이비스 씨에게 회사에서 전화를 걸도록 하겠습니다."

마사오에게 아직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내용은 우연히 마사오를 구해서 차에 태워준, 지나가던 사람이 알고 싶어할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부인도 ...... 몸조심하세요"

"고마워요."

마사오는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가는 마사오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토시오는 허탈한 표정으로 마사오를 배웅했다.

"불행이란 것은 한순간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구나."

어느새 마이코도 마사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모히로가 죽으면 마사오는 소우지와 함께 할 수 있을까?"

마이코의 말은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라서 부도덕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소우지를 사랑하지는 않을 거예요."

"호오.......그렇구나."

마이코는 토시오의 눈빛에 놀란 듯했다.

"마와리 가문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어. 토시오 군이 마사오와 친분을 쌓은 것은 다행이야. 좀 더 편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어. ….. 사랑에 빠진 척 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토시오는 마지막 말을 못 들은 척했다.

토시오의 운전으로 두 사람은 에노키초 경찰서에 도착했다. 토시오만 에그에서 내렸고, 차는 마이코가 운전하며 멀어져 갔다. 토시오는 마이코의 차를 배웅하면서 마사오의 긴 가방이 뒷좌석에 놓여있던 것을 떠올렸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2 스페이스 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