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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전자책 사업의 미래에 대한 소고

몇몇 업체에서, 심지어 삼성에서도 이북 뷰어를 내 놓는 등 얼마전까지 전자책 관련 사업이 붐을 이루었었죠. 지금도 여러 업체에서 다양한 신규 단말과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긴 하나 최근에는 관련 사업 전체가 아이패드와 아이폰4, 안드로이드 폰 등으로 화제의 중심에서 밀려난 상황입니다.


저 역시도 향후 전자책 사업에서 이북 뷰어라는 전용 디바이스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출판시장은 단말별로 제공되는 앱으로 통합되고 저작권자, 즉 콘텐츠 소유자가 곧바로 소비자와 연결되는 구조로 개편될 것으로 생각되거든요. 즉 거의 모든 단말에 동일한 뷰어앱이 설치되며, 이 뷰어를 통해 볼 수 있는 전자책 콘텐츠는 해당 뷰어 전용 마켓 플레이스에 저자가 직접 생성해서 올리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거죠.

물론 이 뷰어앱을 배포하는 업체가 얼마나 파괴력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작가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겠지만 어차피 투자의 크기에 따라 움직이는 규모의 경제임에는 분명합니다. KT에서 동일한 컨셉의 전자책 마켓을 오픈한다고도 하니 필연적인 흐름이 아닐까 보여지네요.

만약 이렇게 된다면 멀티미디어 기능이 강한 일부 콘텐츠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설이나 논픽션, 웹툰류는 거의 모두 이러한 전용 마켓으로 제공될 것입니다. 최소한의 검열이라던가 교정 등을 위한 최소한의 인력은 업체쪽에 필요할테고, 관련해서는 당연히 판매 금액의 일부를 쪼개줘야 하겠지만 소비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으며, 작가입장에서도 보안이 확실하고 투명한 인세 확보가 가능한 등 (다운로드 베이스일테니 당연하죠) 작가와 소비자 모두에게는 Win-Win이 될테니까요.

예를 들어 지금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의 경우 종이책은 12,000원이고 전자책은 7,200원입니다. 영화 콘텐츠와 비교해 보면 영화 감상 비용은 8,000원인데 유료 다운로드 시 2,000 ~ 3,500원 정도로 (오래된 콘텐츠는 그 이하!) 다운로드 받아서 감상할 수 있죠. 때문에 국내 시장 기준으로 전자책 콘텐츠의 비용은 오리지널 콘텐츠에 비해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 정액 서비스 등으로 가격을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책을 월 정액으로 구독할 대상은 영화나 음악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을테니 당장의 시장성은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직접 작가가 이러한 온라인 판매처에 직접 올릴 경우에는 책 값을 2,000원으로 책정하여 유통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유통사에게 60%를 떼어준다고 해도 보통 작가가 10%를 가져가는 인세보다도 마진이 작가에게 더욱 크기 때문이죠. 경성탐정록의 경우 전자책 인세가 720원이라면 온라인 판매처에 직판할 경우 상기 비율에 따르면 마진이 800원이 됩니다. 만약 작가가 전자책 개발용 툴을 좀 잘 다룰 줄 알거나 전자책 개발용 툴 자체가 편리하게 개발되어 있다면 여러가지 다양한 기능의 추가 (하이퍼 링크, 오디오 삽입 등)로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도 가능할테고요.

이렇게 소비자와 작가 모두에게 유리한 구조가 될 수 있으며, 이 구조라면 전자책 시장에서 전용 디바이스업체나 출판업체가 재미를 볼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뷰어"는 단순 앱, 하나의 솔루션일 뿐 전용 디바이스가 필요치 않은 제품이 될 테고 (어차피 시장 자체가 특정 전용 디바이스가 불필요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출판사가 중간의 유통과정을 점유해서 마진을 가져갈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어질 테니 말이죠.

모든 사람들이 전자책을 소비하지는 않을테고 시장이 급작스럽게 커지지는 않을테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결국은 작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그 날이 올테고, 그날은 일반적인 개념의 출판시장이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시장으로 나아갈 날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장에 맞춘 특색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기회가 되려나 모르겠네요...

2017/03/26

전자 출판에 대비하는 나의 자세

저는 전자 출판에 대해 환영하는 편입니다. 물론 아직 책이 보유한 가치는 유효합니다. 소유만으로도 즐겁고, 인쇄 기법과 다양한 종이, 재료를 활용하여 시인성과 가독성을 높이며 눈을 편안하게 해 주니까요. 헌책 판매 등 재화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하지만 공간과 무게를 차지하며, 시간이 지나면 낡고 훼손된다는 단점도 명확합니다.

전자 출판은 책과는 반대로 휴대와 소유가 간편하고 시간의 흐름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검색과 메모 추가가 용이하며 독서와 관리에 있어 다양한 설정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죠.
단점도 책과는 정반대입니다. 우선 그림이 많은 책은 디자인과 구성이 종이 책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디자인의 기준이 종이책에 있는 탓으로, 덕분에 팝업북같이 종이책의 특성을 살린 편집은 전혀 살릴 수 없습니다. 포맷도 ePub, PDF로 나뉘어져 있으며, DRM이 판매 서점별로 적용되어 개인별로 하나의 플랫폼을 쓰도록 강제하는 단점도 큽니다. 책은 어느 서점에서도 구입하더라도 하나의 책장에 꽂아 놓고 누구나 볼 수 있는데, 전자 출판된 서적은 서점별로 혼자서만 볼 수 있는 책장을 구성해야만 하니까요. 저만해도 소소하지만 그동안 알라딘에서 약 50~60권, 리디북스에서 그 절반 정도 되는 전자 출판물을 구입했는데, 이 두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하나의 뷰어에서 관리하고 읽는건 불가능합니다. 결국 하나의 플랫폼, 서비스(제 경우는 알라딘)로 갈 수 밖에 없어요. 자신만 읽을 수 있기에 대여나 공유, 증여, 재판매도 불가하고요. 이러한 문제는 관리의 불편함과 함께 소장에 대한 만족감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아울러 플랫폼 종속은 플랫폼 존폐 여부에 따라 개인 소유 전자책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IT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낡은 포맷이 되어 읽기 힘들거나 읽기가 불가능해 질 수 있다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무엇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가격입니다. 제작원가, 유통 등 비용을 모두 감안하면 종이책 정가보다는 40% 이상 저렴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서 말씀드렸듯 전자 출판물은 구입 후에 재화로서 일체의 기능을 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전자책은 각종 이벤트가 종이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벤트를 할거면 정가를 싸게 내 놓으란 말이지요.

이렇듯 장, 단점이 서로 명확하여 아직 어느쪽에 더 힘이 실린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거의 전국민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이니 만큼, 전자책이 보다 확산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디지털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이 성장하면 할 수록 더욱더요. 개인적으로는 적절한 가격에 더해 독자가 구매한 컨텐츠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된다면 전자책 확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전자 출판된 컨텐츠 판매자들이 개인에게 ePub 형태로 판매하고, 개인 인증이 된 단말에서만 사용하는 정도로만 DRM 정책을 가져가는 식으로요. 이 경우에는 앞서 말씀드린 플랫폼 종속에서 벗어나 어디에서 구입한 것이건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플렉서블 디스플레이"가 결합된다면 거의 게임은 끝나지 않을까 싶네요.

반대로 저렴한 가격, 합리적인 관리 방법이 선행되지 않으면 당장 확산되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저만해도 현재 시점에서 모든 도서 구입을 전자 출판된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무리에요. 제가 원하는 책이 모두 전자 출판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책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시기가 왔고, 언젠가는 전자 출판으로 이동할 것은 분명하기에 나름 준비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생각하고 있는 방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는 종이책 선구매 후 개인적으로 데이터화(예)하는 것입니다. 제 것으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현존 유일한 방법이죠. 완벽한 텍스트 형태 추출이 불가하다는 문제는 있지만 이 부분은 데이터화만 하면 언젠가는 되리라 생각합니다. 유일한 문제는 시간 정도입니다.

두번째는 개인적으로 '데이터화가 힘들고, 엄청난 분량이 예상되는 책들은 하나의 인터넷 서점 플랫폼을 정한 후(제 경우는 알라딘입니다) 이벤트와 쿠폰을 적극 활용하여 구매한다'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만화책이 되겠습니다.

일단 이렇게 책장의 디지털화를 꾀할 생각인데, 보다 미래에는 모든 책들이 전자 출판으로 동시 출간되고, 전자 출판물을 구입하면 어떠한 플랫폼과 서비스에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돈 주고 산 내 책이니까요!

2025/01/19

(번역) 컬럼 : 책 모형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전에 읽었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속에 등장하는 츠즈키 미치오의 책에 대한 재미있는 컬럼을 발견해서 소개드립니다. 원문은 이 곳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관심있게 읽을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합니다. 저는 전자책 버전으로 읽었는데, 책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는걸 전혀 몰랐습니다. 이런건 - 빌 벨린저의 "이와 손톱"도 마찬가지겠지요? - 정말 전자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인데, 기술 발전과 전자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책 모형이란 무엇인가?

책 모형(束見本)은 대량으로 인쇄 및 제본을 시작하기 전에 실제 사용될 종이를 이용해 시험적으로 제작된 책입니다. 몇 부 정도만 인쇄소에 의뢰하여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완성된 책의 외형과 특징을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두께(등 너비), 무게, 열림 정도, 촉감 등을 사전에 검토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죠.

이 책 모형은 인쇄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표지와 본문 모두 하얗게 비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점에서도 이러한 백지 책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일기장, 메모장, 혹은 그림책으로 활용하는 등 용도가 다양합니다.

책의 구성은 편집자가 페이지를 배치하고, 디자이너나 책 제작자가 종이를 지정하여 완성됩니다. 특히 고급 제본(上製本)의 경우에는 세부적인 제본 양식을 지정해야 하며, 이 단계에서 속지, 책갈피(스핀), 꽃무늬 천(花布) 등도 결정됩니다. 그러나 책 모형은 대량 생산 과정과는 달라서 최종 완성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상자를 제작할 때는 실제 제작된 책의 크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있죠.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이러한 책 모형을 소재로 한 독특한 추리소설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츠즈키 미치오(都筑道夫, 1929~2003)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는 1961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이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책 모형의 구조를 활용한 독창적인 트릭과 기발한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인 아와지 에이이치(淡路瑛一)는 잡지에 잡문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집에는 책 모형이 있었고, 주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책 모형을 일기처럼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읽으며 사건을 따라가게 됩니다.

경찰은 주인공을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진범을 찾기 위해 직접 탐정 역할을 맡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용의자, 탐정, 피해자의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릭과 결말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몇 장의 공백 페이지가 등장합니다. 책 모형에서 공백 페이지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당시 독자들은 이를 인쇄 사고로 오해하여 반품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특히 초판본은 페이지 번호도 없어서 더 혼란을 주었습니다.

갑자기 공백 페이지가 나타난다. 공백 페이지가 가장 많은 책은 헤이안쇼텐(平安書店) 판본으로 9페이지이며,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는 6페이지, 고분샤 문고(光文社文庫)는 5페이지이다. 이는 접지 방식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책 속 깊숙한 부분에 몇 줄로 조판된 글자가 있다. 그곳에 사건의 진상이 적혀 있다.

소설의 진상은 공백 페이지의 깊숙한 부분에 적혀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넘기기만 해서는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든 주인공의 의도였죠. 이러한 트릭은 소설의 물리적 형식을 활용한 뛰어난 장치로 평가받습니다.

작품이 남긴 의미

저는 대학생 시절 이 작품을 통해 책 모형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편집자로 일하게 되면서 이 책이 제게 미친 영향을 실감하게 되었죠. 이야기의 플롯과 책 제작의 물리적 구조가 서로 맞물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큰 반응을 얻지 못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작품의 배경이 된 신주쿠, 이케부쿠로, 고이시카와 등 익숙한 장소들을 떠올리며 가끔 이 책을 다시 읽곤 합니다. 책 속에 담긴 일본 에도 시대 문화와 언어유희 역시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입니다.

추가 이야기 (2016년 2월 27일)

오랫동안 꿈꾸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의 초판본을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페이지 번호가 없는 공백 페이지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죠. 당시 이 페이지는 독자들로부터 반품 요청이 빗발쳤던 악명 높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초판본은 제 서재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고, 다른 희귀 서적과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이 작품의 전자책 버전도 출간되었습니다. 공백 페이지가 어떻게 디지털화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2018/11/11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 별점 2점

책 정리하는 법 - 4점
조경국 지음/유유

저는 독서가 취미인 애서가입니다. 그 탓에 쌓이는 책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 계획 때문에 최근에는 고민이 더욱 늘었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인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제만 보면 딱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그런 책이라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완벽하게 기대를 배신당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요. 저자가 이 책의 독자가 누구인지를 망각한 탓입니다. 머리말 서두에서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특별한 책 정리법이 있을 겁니다."라고 쓴 걸 보면, 저자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책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독자라는걸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으로서 저자만의 특별한 노하우 공유를 기대했고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정말이지 '초보자' 수준의 지식을 설명하고 나열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그나마 제목과 연결고리를 가질만한 내용은 4부인 "서가의 다양한 형태들" 정도입니다. 직접 만드는게 최고라며 사이즈 등 여러가지 팁을 소개해 주고 경량랙 등 기성품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 덕분입니다.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이라며 추천하는 이케아 빌리 시리즈도 눈여겨 볼 만 하더군요. 다음에 이사갈 때 저도 한 번 고려해 봐야겠다 싶을 정도로요.
7부인 "책을 싸는 이유와 노하우"에서 맥도날드의 포장용 봉투가 완벽한 책싸개라고 알려주는 부분도 실용적인 팁이라 인상적이었어요. 튼튼하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색깔도 무난하니 괜찮다는 이유인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애용할 듯?

하지만 괜찮은 팁과 노하우 공유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다른 내용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수준에는 걸맞지 않는 초심자용 내용이 많아요. 예를 들어 4부인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만 놓고 보면 책의 핵심인데, 책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자신만의 정리법이 있을테고 저 역시 그러한만큼 딱히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냥 헨리 페트로스키의 방식, 십진분류법, 분야별 분류, 작가별 정리, 출판사별 정리 등 다양한 방식만 나열될 뿐입니다. 책 목록 정리법도 '비블리'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하며 마무리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내용도 아니며 딱히 땡기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에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소개되는 다양한 책 처분법 역시 새로운 내용은 전무합니다. 기증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팔거나 헌책방에 파는 등의 방법이 소개되는데 책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는 애서가라면 당연히, 누구나 알 내용이에요.

저자 본인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서재의 조건 중 180*80 센티미터 크기의 책상이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입니다. 서재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허나 그런 것 치고는 책상이 너무 크잖아요! 차라리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애서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방 안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의자 주변의 반경 1미터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완벽한 서재 쪽이 더 공감갑니다. 공간을 좁게 구성하는게 책을 보관하는 기능에는 훨씬 유용한게 당연하니까요. 이어지는 자신의 책상, 독서대, 스탠드, 커튼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모두 저자의 기준일 뿐이고요.
제목과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은 것도 문제인데 2부인 "남의 서재 엿보기"는 저자가 과거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의 서재를 찾아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쓴 내용으로 책 정리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의 헌책방을 열기까지의 과정도 재미는 있지만 단순한 개인사 에세이라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어요.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유유의 책 답게 내용과 분량에 비하면 높은 가격도 매력을 떨어트립니다. 저는 전자책으로 약 7,000여원에 구입했는데 종이책은 200쪽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정가가 무려 12,000원입니다! 도판도 모두 흑백에다가 특별한 일러스트가 사용되지도 않았고, 양장본도 아닌데 이 가격은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어요. 종이책은 모르겠지만 전자책은 1/3 분량이 유유 출판사 책 소개에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또 뭔가 싶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점, 그리고 드물지만 유용한 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가격과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한다면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사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저자의 머릿글에 모두 나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쓸 필요도 없었어요. 책 정리법의 핵심은 "책 욕심을 버리는 것" 이며, 그렇지 못하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내 정리법은 공간을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서가별로 여러가지 기준을 세워서 정리한다... 는 짤막한 글인데 이게 정말 전부입니다. 이 책 본문에 소개되는 실제 책 정리에 대한 디테일은 그만큼 별 볼일이 없습니다.

2023/05/11

돈이 되는 중고책에 대한 단상

얼마전 "중고책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라는 광고를 보고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20년 넘게 중고책을 구입해왔던 경험으로, 돈이 되는 중고책이 무엇일지?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되팔기 목적으로 중고책을 산 적은 없고, 단 한 번도 개인간 책 중고 거래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알라딘 등에 알라딘 매입가로 팔아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알라딘에 판 가격보다 중고가가 높으면 살짝 짜증이 나더라고요. (<<꿈의 화석>>은 3,200원에 팔았는데, 중고 가격이 거의 3만원 대네요). 그래서 이런 정보를 좀 알아두는게 좋겠다 싶어 적어봅니다. 여러분께도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이 될 중고책은 당연히 사람들이 찾는 책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래에 해당하는 책들일 것 같습니다.
  1. 구하기 힘듬. 책이 절판되었고, 이북으로도 출간되지 않음. 당분간 출간 예정도 없음.
  2. 1에 해당하는 책 중에서, 높은 지명도를 갖는 책. 유명한 명작이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이거나 다른 곳에서 많이 언급되는 책.
  3. 2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수집욕을 강하게 자극하는 책 (그림이 미려하다거나, 정말 희귀하다거나....).
  4. 1, 2, 3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다른 책으로 대체 불가능한 책
  5. 시리즈라면 전권 (중요 포인트)
이런 항목들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로 대표적인건 1980년대 ~ 2000년대까지의 만화입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 모두 해당되는걸 꼽자면 <<타임시커즈>>, <<환영박람회>> 입니다. 책 상태도 좋고, 모두 완결편까지 한 Set로 소장하고 있는터라 현재는 제법 값어치가 나갑니다. 단권이지만 <<외천루>>도 1 ~ 4조건을 모두 충족하기에 값이 꽤 비싸고요.




국내에서는 유명세에 비하면 많이 팔리지 않아서 초판 이후 절판된 작가들 - 예를 들어 모로호시 다이지로 - 작품 중 일부도 중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반면 이 시기 만화라도 당시 많이 팔려서 구하기 쉬운 탓에 1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책도 있습니다. <<어쩐지 좋은일이 생길것같은 저녁>>처럼요.

만화 외에도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고가를 형성하는 책들은 당연히 많습니다. 매니아 층이 탄탄한 장르 소설의 경우 꽤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재간되기 전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가 그러했었죠. SF도 비슷해서 재간 전 <<별의 계승자>>는 엄청났었습니다. 찾아보니 다아시 경 시리즈 <<마술사가 너무 많다>>도 3만원을 훌쩍 넘네요.
하지만 소설은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기는 꺼려집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작품은 많이 팔리기도 해서 공급도 많으며, 예상치못한 복간이나 전자책 출간이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비파괴 북스캔 후 OCR을 돌려 개인이 전자책처럼 만들 수도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인문서의 경우는 아주 유명하다면 절판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재간도 자주 되며,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있고요. 특히 역사책은 4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확실한 매니아층 -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 이 있는 책이 괜찮아 보입니다. 밀리터리물, 요리, 자동차나 각종 취미 분야 (예를 들자면 건담) 등에서 독보적(?)인 책은 가격이 괜찮습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는 <청설모의 자동차카툰>>이 대표적입니다. 투자는 소설보다는 이 쪽이 나은 선택일 듯 합니다.


아울러 구입하려면 업자가 아닌 알라딘 직접 배송 중고 등 플랫폼 이나 당근 등의 개인 판매본을 노리는게 좋습니다. 업자는 책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비싼 책을 싸게 구입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가격도 최소 3명 이상의 판매자가 책정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중고 구입 시에는 꼭 사전에 중고 플랫폼에서 검색해보세요 (팔 때도 마찬가지). 엄청난 고가라도 시장 가격과 다른 경우가 있거든요. 업자의 경우, 절판이라고 어마무시한 가격을 임의로 붙여놓고 '한 놈만 걸려라' 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기동전사 건담 일년 전쟁사>>는 상, 하권 낱권보다 두 권 세트 가격이 두배 가까이 비싼데 이런 경우도 주의해야 합니다.

허나 이 이론이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조건을 대충 충족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가격이 오르지 않는 책도 많아요.
그래서 너무 투자(?)에 연연하지 말고,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개념으로 접근하시는게 속은 편할겁니다. 그러다보면 가격은 오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지만 그동안 중고 시장에서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김진태 만화들도 결국 가격이 엄청 올랐더라고요. 결론내리자면, 존버는 승리한다!
 
그런데 과연 <<대지옥전 진광대왕>>이 얼마나 할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1, 4에 해당되기는 하는데....


2016/12/01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 정수윤 : 별점 3점

장서의 괴로움 - 6점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정은문고

유명한 장서가로 수 만권(2~3만 권 정도?)의 책을 보유한 저자가 장서 보유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개인 경험담과 이런저런 생각을 펼쳐보이는 에세이지만, 장서 구입과 관리 등 다양한 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실용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의 성격만 보면 얼마 전 읽은 "책장의 정석"과 비교됩니다. 차이점이라면 "책장의 정석"은 가지고 있는 책을 '관리'하는 팁을 제공한다면(심지어 관리할 수 있는 분량만 보유하도록 적절한 처분법마저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이 책은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의 장서가를 위한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관리'를 위해 책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저자 스스로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고 하는데, 이는 "책장의 정석"과 일치합니다.

다양한 일화가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개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아주 실감나고요. 헌책방, 고서를 찾거나 구입하는 것에 얽힌 본인의 경험담, 그리고 책을 정리하는 방법과 팁 등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 합니다.

다른 장서가들과의 인터뷰라던가 그들만의 책 보관 방법, 장서가가 등장하는 여러 가지 영화와 콘텐츠 등 장서에 얽힌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이 사는 집"을 지은 장서가 네기시 씨의 인터뷰였습니다. 이유는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죠.

책을 줄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소개하면서도, 결국 주체하지 못하고 책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서관을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원고를 쓰다가 어쩌다 보니 도서관에 대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는데, 정말이지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장서가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자가 소개하는 이 분야의 베스트는 오다 미쓰오의 "도서관 산책"입니다.

그리고 책을 줄이는데 제일 효과적일 수 있는 전자 서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눈에 띕니다. 책은 단순히 내용물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동의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앞으로 전자 서적의 발전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아울러 장서가답게 이런저런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이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 정리법(책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을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시필에 나온 '명창정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햇빛 잘 드는 창 아래 깨끗한 책상, 그 위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지 않냐는건데, 이를 12세기 일본의 가인 가모노 조메이의 움막과 연결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걸 보면 학식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어요. 책을 많이 읽으면 저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인용과 연결이 가능할지 궁금해지네요.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인용이 많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문필가 요시다 겐이치의 말인 "책장에 책이 5백 권쯤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루에 세 권씩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와 닿습니다.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도 비슷합니다.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것인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당연하지만 이런저런 책들도 제법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는 영화 속 서점과 도서관이라는, 영화 속에 책이나 책장이 나오는 영화를 엮어놓은 책이 가장 끌립니다. 영화 언젠가 책 읽는 날의 후일담을 엮은 동명의 책에서 영화 속 주인공인 독서가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도 마찬가지예요. 아는 책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과 앤 모로우 린드버그의 "바다로부터의 선물"밖에는 없는데, 저자 역시 극찬하고 있는 "티보 가의 사람들"은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책은 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이지만요. 수집가로서의 장서가를 다룬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 챕터에서 소개된 "소년소녀 쇼와 미스터리미술관"이라는 책도 꼭 읽어보고 싶고요.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일본'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이런저런 유용한 팁이 많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한국의 거주 문화와 책에 대한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보면 그렇게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말로 책을 좋아한다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보장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본인이 장서가시라면 한 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500권도 안 되는, 장서라고 하기는 초라한 수준의 책만 갖추고 있지만 책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더 늘리면 안 될 것 같긴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티보 가의 사람들 - 마르탱 뒤 가르 (국내 출간)

안녕, 콜럼버스 - 필립 로스 (국내 출간, 굿바이 콜럼버스)

아름다운 여름 - 체사레 파베세 (국내 출간)

바다로부터의 선물 - 앤 모로우 린드버그 (국내 출간)

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 - 요시야마 히로시 / 이시카와 미에코

여자 - 카터 브라운

미국의 송어낚시 - 리처드 브라우티건 (국내 출간)

열두 달 반찬 - 고지마 신페이

하늘을 나는 교실 - 에리히 케스트너 (국내 출간)

사이좋은 부부 - 오다 사쿠노스케

2010/10/25

책 사냥꾼 - 존 백스터 / 서민아 : 별점 4점

책 사냥꾼 - 8점
존 백스터 지음, 서민아 옮김/동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언론인이며 영화인이며, 스스로를 '책 사냥꾼'이라 부르는 존 백스터의 '책 수집'과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취미이자 직업이기도 한 '책 수집'이 중심이며, 존 백스터라는 인물의 저작이나 주요 활동은 언급되지 않아 자서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책을 읽고 수집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사람답게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시골 마을 출신으로 철도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책의 세계에 빠져들고, SF 팬이 된 후 언론인과 작가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닌 그의 일생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책 수집'이라는 분야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명입니다. 관련자들과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책을 구했는지를 상세하게 들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다양한 문학작품에 빗대어 이야기하거나 실제 작가들과의 일화를 통해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지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합니다.

특히, 저자의 인생을 바꿔 놓은 몇몇 작품들은 저도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은 이미 읽었지만,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나 제임스 블리시의 "지구인, 고향에 오다" 같은 SF 작품, 그리고 트루먼 커포티의 단편집 같은 것들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먼 린지의 그림이나 앨런 존스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삶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책 사냥'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다양한 경험까지 아우릅니다. 심지어 '난교 파티' 경험까지 언급할 정도이니, 솔직한 수다라는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단순히 책을 수집하는 것이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책을 구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저 역시 오랜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절판되었던 구 동서출판사의 책을 선물받았을 때의 기쁨,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신촌 '숨어있는 책'에서 발견했을 때의 희열,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을 고속터미널 재고떨이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의 전율을 잘 알기에, 저자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또한, 형이 과거 로저 코먼이 방한했을 때, 모 영화제에서 그의 사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있을 때 해당 작가의 책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책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를 떠나, 좋은 기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과거 이벤트를 통해 증정된 저자 사인본 "경성탐정록"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입니다. 번역 자체는 좋은 편이고, 작품별로 국내 출간된 정보를 알려주는 세심한 주석도 돋보였지만,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이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어메이징 스토리즈'를 '놀라운 이야기들'로 번역하는 식이었는데, 물론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문 잡지명은 고유명사인 만큼 그대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 한 개인의 장황한 수다가 이토록 재미있고 유익할 수 있을까요? 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가까운 미래에는 전자책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씨 451"과 같은 사회가 구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책'을 소장한다는 것이 단순히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우표 수집과 같은 취미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겠죠. 그렇다면 이런 책 사냥꾼들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요? 그 부분도 궁금해집니다.

2017/07/21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니시야마 마사코 / 김연한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 6점
니시야마 마사코, 김연한/유유

제목 그대로 일본 1인 출판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며 일본 출판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는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오랜 꿈이 있고, 이 책에서 소개된 것 같은 1인 출판사가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내고 싶은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과 독특한 요리 관련 서적이고요. 이런 저의 꿈과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는 점이 있을거라고 여겨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번역하신 김연한 씨도 1인 출판사 그리조아 대표이시고, 출판사도 우리나라에서도 소형 출판사라 할 수 있는 유유 출판사라는 점에서도 뭔가 통하는게 느껴졌고요.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읽다 보면 꿈같은 이야기가 많아서, 읽는 내내 두근두근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좋아하는 동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한다, 늘 칭찬을 자주한다는 미르의 대표 후지와라의 말도 가슴에 콕 박히고, 1인 출판사에 필요한 첫 번째는 빠른 결단력, 두 번째는 용기였다는 치이사이 쇼보의 야스나가 노리코 대표의 인터뷰, 해보니 혼자서도 할 수 있고 그 날 부터 세상이 넓어졌다는 타바북스의 미야카와 미키 대표의 인터뷰 모두 감명깊었습니다. 치이사이쇼보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책 (어른들을 위한 동화)을 만드는 출판사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기억에 많이 남네요. "셸 실버스타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도 제 생각과 일치하고요.

또한 1인 출판사라고 해도 원하는 책을 대충대충 주먹구구식으로 만드는게 아니라, 대표들 모두 내고 싶은 책과 삶의 목표, 방향이 명확하여 내놓는 결과물(책)의 완성도 역시 살벌할 정도로 높다는 것에는 정말 탄복했습니다. 소개된 책들이 사뭇 궁금한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은 "계획과 무계획 사이(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 "밤의 나무(나무들의 맘)" 등 몇 권 되지 않더군요. 1인 출판사 책이니 만큼 아주 대중적인 책들이 아니고, 심지어 대표가 '내고 싶어서 낸' 책들이라서 어쩔 수 없겠지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대중적이지 않은 책들도 천 부에서 많게는 삼천 부까지 판매할 수 있다는 시장 환경이 참으로 부럽네요.

그러나 명확한 방향, 지침을 가지고 움직이는 회사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1인 출판사가 되었다거나 하는 출판사도 등장하기는 합니다. 온가쿠노토모샤의 대표 다니카와 메구미가 대표적입니다. 유명 시인의 며느리이자 유명 작곡가의 아내로 출판사는 어쩌도보니 하게 된 일종의 취미 활동처럼 묘사됩니다. 꼭 다니카와 메구미 대표 급은 아니더라도, 소개된 1인 출판사들 중 상당수가 과거 자리를 잡는 과정 설명을 보면 나름 운이 좌우한 경우도 많이 있더군요. 결단력과 용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점도 있는데, 인터넷 서점이 주도하는 현 시장에 대한 방책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그냥 전자책 대응에 대한 이야기만 조금 풀어낼 뿐이에요. 서점의 이익을 올려주는 대신 반품이 불가한 미시마샤의 "커피와 한 권"시리즈라던가, 이런 독립 출판사들이 연합하여 주문 출고제와 같은 방식을 도입한건 소극적이고도 과도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합니다. 더 크게, 아예 인터넷 상에 플랫폼을 꾸리던가 최소한 연합체 주도로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등의 방법론이 고민되었어야 하는데 전혀 언급이 없어서 의아할 정도였어요.

아울러 인터뷰를 통해 현실을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단점도 큽니다. 실제로 '1인 출판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심도 깊게 소개하는건 좋았지만, 권 말에서라도 실제로 1인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출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거나, 최소한 제목 그대로 일하는 방식이라도 좀 더 상세하게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1인 출판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잘 알려주는 책으로 재미도 충분했습니다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마지막으로, 유유 출판사 책은 이전에도 몇 권 읽어보았고, 솔직히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지만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이북 행사 중인 가격으로 구입하면 가격도 괜찮으니 만큼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글귀 몇개 인용하며 글을 마칩니다.

  • 편집자가 의견을 내어 좋은 방향으로 끌고가는 것이 필요할까? 이쪽이 끄집어내야만 나오는 것은 필요 없다. 자기 내부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내보내도록 하자.
  • 이상 같은 걸 좇으면 안된다. 먹고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시대와 함께하는 일을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할 수는 없다.
  • 효율적으로 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은 피폐해진다.

2017/03/14

훈민스캔 후기

집의 책이 넘쳐난지는 제법 되었습니다. 이사하고 더 늘리지 않겠다 결심했는데 정말 순식간이더라고요. 

그래도 여태 버티고는 있었습니다만, 결국 북스캔을 해야 할 결정적 이유가 생겼습니다. 알라딘에 책 몇권을 팔려고 했는데 몇 권에 책 곰팡이가 생겼다는 이유로 매입불가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읽지도 않는데 끌어안고 있어봤자, 결국 내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거죠. 고서, 희귀본까지는 아니지만 출간된지 20년을 넘어가는 책들이다보니 어쩔 수 없나 보네요.

어쩔 수 없이 오래전 책들 중 몇권을 골라 시범적으로 북 스캔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름의 기준은

  1. 20년 이상 된 책
  2. 최근 3년 안에 읽은 적이 없는 책
  3. 너무 두껍거나 무겁지 않은 반 양장본
  4. 현재 중고가 5,000원 이하
  5. 절판 등 이유로 전자책이 출간되지 않았거나, 가능성이 없는 책

입니다.

이 기준으로 선정된 7권의 도서를 들고 찾은 곳은 훈민스캔입니다. 검색 결과 셀프 북스캔 업체로는 가장 저명한 듯 싶었기 때문입니다. 후기도 괜찮았고요. 사당역 근처로 회사에서 가깝다는 이유도 컸습니다. 보통 지하철로 많이 가시던데 저는 회사 앞에 직통 버스가 있어서 버스 편으로 이동했습니다. 입구는 아래와 같습니다.

2시쯤 도착하였는데 피크 타임이었는지 30여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둘러보니 두꺼운 전공 서적을 스캔받는 학생들이 많더군요.

기다리는 동안 재단, 표지 스캔을 진행하였고, 스캐너를 배당받은 후 간단한 교육을 받고 셀프 북스캔을 진행하였습니다. 7권 모두 스캔하는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시간 지연의 원인은 가끔 발생하는 이중 급지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스캔 데이터는 jpeg이며 해상도는 300dpi였습니다. 그림이 전무해 흑백 스캔받았고요. 레티나 스캔이라는 옵션이 있는데 가격이 추가되지만 테스트 결과 큰 차이가 없어서 뺐습니다. 결과물은 그냥 책 그 자체로 일체의 후보정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오래된 책이라 변색된 것까지 그대로 스캔되었네요.

데이터는 이메일로 받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원본과 PDF 제작본이 전송되는데 PDF는 후보정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무의미합니다. 직접 후보정 할 것이므로 OCR 옵션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스캔받은 책은 복원도 가능하고 가져올 수 있지만 목적이 데이터화하고 치워버리자는 것이라 버리고 왔습니다. 별도 폐기비는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격은 재단비 (권당 1,000원)까지 14,000원이었습니다. 권당 2,000원 꼴인데 숙련된다고 해도 비용이 드라마틱하게 줄지는 않을 것 같네요. 

북스캔이라는 목적은 달성했고 금액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직원분들 모두 친절하시고요. 그러나 오고가는 수고와 시간을 감안하면, 스캔받은 데이터를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일이 후보정해야 하는 것까지 감안하면 여러모로 조금 애매한 금액입니다. 스캔받을 책이 몇 권인지, 다른 부대 비용은 없는지 등을 철저히 따져보고 앞으로의 북스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덧붙여, 혹 좋은 윈도우즈용 무료 후보정 툴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책 형태는 의미가 없고 Text만 잘 추출되는 것이 최고인데, 그런 툴 없을까요?

2010/10/08

아이패드용 전자책 "우주전쟁"

아이패드용 전자책 "우주전쟁"입니다. 독특한 인터페이스로 사용자가 즐기면서 읽을 수 있게 만들었더군요.

과거 국내에서 플래시 기반 영화 사이트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아이디어들이기는 한데 재미요소로 끝나지 않고 책의 내용과 잘 녹여서 가치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도록 잘 만들었습니다. 이젠 '전자책'의 개념도 멀티미디어와 인터랙티브가 조화된 쪽으로 바뀔 것 같네요. 정말 세상이 변하는게 실감납니다.

아무래도 장르소설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방식인데, 김용 선생님 작품이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다면 좋겠네요.

2013/01/02

그림자 없는 범인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 사카구치 안고 외 : 별점 2점

그림자 없는 범인 - 일본 추리소설 단편집 - 4점
사카구치 안고 외/유페이퍼

장르문학 전자책 전문 독립 출판이라는 미증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페가나 북스의 책. 현재까지 페가나 북스 출간작 중 최고의 베스트셀러 (페가나 북스 자료 참조)라고 합니다.

저자 사후 50년이 지난, 총 5편의 퍼블릭 도메인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불연속 살인사건"의 사카구치 안고, "도구라 마구라"의 유메노 큐사쿠, 나오키상 수상작가 히사오 주란, "연애곡선"의 코사카이 후보쿠, "혈액형 살인사건"의 코가 사부로로 구성된 저자 목록은 꽤 화려한 편이라 할 수 있죠.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첫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사카구치 안고의 "그림자 없는 범인"은 마에야마 이사쿠라는 재산가의 죽음 뒤 벌어진, 이해관계자들의 좌충우돌 군상극입니다. 그런데 누가 진범인지도 드러나지 않는 등, 사건만 있고 추리의 과정이 없어서 추리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좀 더 과장되게 묘사했더라면 시대를 앞서간 괜찮은 블랙코미디가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범죄소설도 아니고 풍자소설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두 번째 작품인 유메노 큐사쿠의 "S곳 교살사건 서양부인"은 기이한 상황에서 벌어진 문신녀 마리 부인 살인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혀나가는 내용으로, 그로테스크한 범행 현장, 종잡을 수 없는 증언, 명탐정 이누타 박사의 등장 등 고전 정통파 분위기를 한껏 내 주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밝혀진 진상이 영 아니라는 점과, 추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비현실적이면서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점이죠. 예를 들면 문신은 설득력 없는 설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소도구일 뿐이고(비밀 정보를 숨기기 위한 문신이라는 설정이 과연 말이 될까요? 어떤 멍청한 정보원이 핵심 증거를 몸에다 새긴답니까?), 수수께끼의 핵심인 토사쿠 노인의 증언—보름달을 보았다—은 단지 각성 상태에서의 착각일 뿐이라는 것 등이 있겠습니다. 이런 점을 전부 걷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작품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세 번째 작품인 히사오 주란의 "곤충도"는 변격물 분위기의 초단편 호러 판타지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았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오싹한 맛을 전해주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 외에는 너무 짧아서 별로 이야기할 건 없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네 번째 작품인 코사카이 후보쿠의 "바보의 독"은 정통 추리 단편으로, 잘 짜여진 설정과 복선에 의외의 반전까지 등장하는 통쾌한 소품입니다. 오쿠다 부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한 사건을 놓고 부인의 아들인 켄키치, 야스이치에게 혐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게 전개하다가, 부인 죽음의 진상과 야마모토 의사의 살의를 밝혀내는 결말이 아주 깔끔하거든요. 야마모토 의사가 켄키치의 연적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밝히는 것이 약간 반칙 같기는 하나, 그 외에는 완벽한 좋은 의학 미스터리물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별점은 3.5점입니다.

마지막 작품은 코가 사부로의 "호박 파이프"로, 이전에 읽었던 "혈액형 살인사건"에도 수록된 작품입니다. 작품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링크로 대신합니다. 별점은 역시나 2점.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쳤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코사카이 후보쿠의 "바보의 독" 한 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되기에 초창기 일본 추리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네요.

물론 단편 5편(그중 1편은 초단편) 수록된, 일반 책으로 친다면 문고판 100여 페이지짜리 전자책 가격이 2,000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것 같긴 하나, 최소한 저는 돈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우려했었던 번역 문제도 크지 않았으니 만족합니다.

덧붙여 페가나 북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점이 있는데, 첫 번째로 출판사명으로 책들이 검색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알라딘에서는 유페이퍼가 출판사로 잡혀 있어서 검색이 안되더군요. 두 번째로는 네이버북스에서도 구입할 수 있었으면 하고요.

마지막으로, 국내 장르문학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페가나 북스의 도전이 성공을 거두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퐈이팅~!

2017/12/03

대포와 스탬프 03, 04권 - 하야미 라센진 : 별점 2.5점

[고화질] 대포와 스탬프 03권 - 6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고화질] 대포와 스탬프 04권 - 6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출간된 지 제법 되었지만 리뷰가 늦었네요. "대포와 스탬프" 제3, 4권입니다.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이번 권들에는 단편 에피소드도 있지만,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비중이 더 큽니다. 특히 헌병대 이중 스파이 시난 중위를 핵심으로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보입니다. 물론 짤막하게 소모될 캐릭터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가면 갈수록 그 스케일이 정말로 커져서(마약밀매 조직의 운영이라던가, 비행선 테러 등) 당황스럽네요. 덕분에 밀리터리 물로서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문제도 생기고요. 특히 공화국, 공국에 걸쳐 있는 범죄 조직을 다룬 에피소드는 군대 이야기하고는 상관이 없었으니까요. 이는 사라진 보고서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는 4권 마지막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그림체와 어울리지 않는 잔혹함, 성적인 묘사도 별로였습니다. 형무소 내 세력 다툼과 그에 따른 희생, 잔혹한 현실을 그린 아네티카 주인공의 번외편 "북극 번외지" 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작화로 다루기에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물론 단점만 있는건 아닙니다. 전편부터 이어지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 장갑 열차 부대의 재등장, 대령이 나름 SF 작가로서 확고부동한 위치가 있다는 등 - 은 즐거웠으며 캐릭터들을 꼼꼼하게 만드는 관련 에피소드도 나쁘지 않았어요. 보이코 상사의 부인 등장, 마르티나 중위의 고향과 가족 이야기 등 처럼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림체하고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아네티카 병장이 과거 형무소에 있었던 죄수였다는 과거도 이야기만큼은 마음에 들었고요. 작화와 어울리는 귀엽고 유쾌한 이야기도 없지는 않습니다.

또 비중은 작아졌지만 특유의 집요한 밀리터리 관련 설정도 여전히 즐길 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구소련군이 모티브인 독특함에 더해진 묘사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이니까요.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있었음 직한' 메카닉들도 마찬가지로 반가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팬이 아니라면 조금 애매할 수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전자책으로는 2페이지 양 쪽을 사용하여 에피소드별 주력 등장 메카닉을 소개하는 부분 편집이 영 괴상하더군요. 전자책으로 출간한다면 이런 부분에 대한 세세한 수정을 해 주면 좋겠습니다.

2017/05/14

한국 미라 - 전승민 : 별점 3점

한국 미라 - 6점
전승민 지음, 김한겸 감수/휴먼앤북스(Human&Books)

제목 그대로 한국에서 발굴된 미라에 대해 심층 분석하고 있는 책입니다. 과학동아 기자로 한국 미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던 저자의 그동안 취재 결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지요. 그런데, '한국 미라'는 말 부터가 굉장히 생소했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라가 많은 미라 국가더군요! 고온다습한 여름에 장마철까지 있어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이는 모두 조선 시대의 독특한 장례 문화인 '회곽묘' 덕분이라고 합니다.

목차 순으로 보자면, 오산 산업단지 개발 전 답사 과정에서 발견된 미라를 분석하는 과정에 저자가 직접 참여하여 취재한 글로 시작합니다. 이 항목을 통해 미라 발굴 및 수습, 그리고 미라를 통해 무슨 연구를 하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해 줍니다.

그 다음은 한국 미라가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회곽묘가 중심인데, 회곽묘는 바닥에 숯을 깔고 목곽 주위에 생석회, 모래, 황토를 2:1:1의 비율로 섞어 만든 삼물을 부어 굳힌 것으로, 삼물이 굳으면 공기가 완벽하게 차단될 뿐 아니라 삼물이 물과 섞일 경우 높은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종의 '열소독'을 통한 살균 처리가 이루어져서 미라가 만들어 진다고 하네요. 물론 3일장, 5일장, 7일장이라던가 '초분' 후 다시 매장하는 등 다양한 장묘 절차가 있어서 회곽묘에 안장된 모든 시신이 미라가 되지는 못했지만요. 그리고 이 회곽묘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는지를 심층 분석하여 알려줍니다.

다음은 저자가 중국 취재를 떠나 유명한 '마왕퇴 미라' 등을 취재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관련해서는 "마왕퇴의 귀부인"이라는 집대성에 가까운 책이 있기는 한데, 이 책에서는 순수하게 '미라'에 집중한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마왕퇴 무덤과 한국 회곽묘의 유사성을 논하는 부분은 새로웠고요. 형태적으로는 유사하나 회곽이 아니라 '백고니'라는 점토로 밀봉했다는 차이점이 있고, 때문에 고온 살균이 불가능했지만 마왕퇴 미라가 발견된 이유는 '수은'을 써서 살균했을 것이다! 라는 추론도 재미있었어요. 그 외 몇몇 유명 중국 미라가 함께 소개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세계 미라에 대해 총 정리하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나라 미라는 주요 발견 사례별로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세계 미라는 이집트 등 주로 제조 방식(?) 중심으로 소개됩니다. 미라는 일종의 타임 캡슐로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소중하지만, 선조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특성 상 연구자료로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재매장 또는 화장된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2002년 발견된 삼도통제사 남오성의 미라는 키가 190센티 미터 가량의 거인으로 연구 가치가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후손들이 바로 화장했다니까요. 물론 저라도 선조의 미라가 발굴되면 기꺼이 연구를 위해 내어놓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건 정말 뭔가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무조건 2년은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되 2년 후 화장, 혹은 재매장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해주는 식으로요.

아울러 이러한 목차들 사이에 미라와 부장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여러가지 정보도 함께 소개됩니다. 현대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 충치 환자가 적었다는 것 처럼요. 충치가 있는 미라는 전체의 34.1%로 현대인의 충치 발생률 35%보다 낮다고 합니다.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이 치약과 칫솔로 이를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테지요. 현대인들이 섭취하는 설탕 및 각종 인스턴트, 가공 음식이 그만큼 치아에 해롭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미라의 사망 원인을 통해 밝혀지는 여러가지 정보라던가, 각종 분석을 통해 얻는 소중한 정보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기자가 '과학동아'를 위해 취재하여 정리한 1인칭 시점의 기사와 연구자료를 인용한 상세 내용이 혼재되어 있는 구성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취재한 결과를 가지고 한번 더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되거든요. 도판도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대부분인데 많이 부실한 편입니다.

그래도 국내 미라에 대한 책으로는 딱히 경쟁자를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러한 정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셔야 하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당연히 관심이 없으시다면 가치는 한없이 '0'에 수렴하겠지만요. 

덧붙이자면, 알라딘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었는데 도판과 텍스트가 결합된 형태로 삽입된 이미지는 확대가 불가능해서 텍스트를 알아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도판+텍스트를 선택하면 별도 팝업이 표시되어 사이즈를 사용자가 임의로 확대하여 볼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아쉽네요.

2016/11/26

검색, 사전을 삼키다 - 정철 : 별점 2.5점

검색, 사전을 삼키다 - 6점
정철 지음/사계절

네이버, 다음 카카오에서 웹 사전을 만들고 있는 정철씨가 쓴 사전과 검색에 대한 책입니다. 사전에 대한 개괄 및 간략한 사전의 역사, 사전 역사에 있어 활약했던 유명 편집인과 저자들이 소개된 후 사전과 검색의 차이와 검색을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이론과 저자의 경험, 그리고 검색의 문제와 미래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사전의 역사는 분량상 큰 변곡점만 짚어주지만, 개요를 이해하기에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검색 전문가로서 사전을 만드는 방법을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실체를 감잡기 어려웠던 '말뭉치(코퍼스)'를 활용하여 어떻게 사전을 만드는데 응용하는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말뭉치는 빈도와 분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예문을 뽑기도 좋고, 저빈도 사용례를 찾아 사전에서 제시하는게 가능해졌다는군요. 그러면서 서울대학교의 꼬꼬마 세종 말뭉치 활용 시스템과 같은 사이트도 알려주는 식으로 제공되는 정보도 풍성해서 마음에 듭니다.

과거 '백과전서'와 현대의 '위키 백과' 모두 마찬가지로 토론과 논쟁이 사전 편찬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는 것도 새겨 봄직 합니다. 실시간성, 정보의 진위 여부, 언론 통제 등을 극복하기 위해 당연한 방법이고, 앞으로의 사전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게 당연해 보이네요.

검색 엔진의 검색 방법론인 '색인'에 대한 설명은 이런 저런 컨텐츠에서 많이 접해보기는 했지만 '넘나드며 읽기' 방식을 극대화했다는 이론은 독특했습니다. 책은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고, 무의미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 매체이다. 검색 역시 지식을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지식과 지식 사이를 점프하며 둘러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라는 발상이 신선했던 덕분입니다. 이게 정답이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요.

이후 검색이 진화하면서 랭킹 시스템이 도입되고, 야후에서 다단계 트리를 만들어 수작업 랭킹 시스템을 만든 후, 구글이 페이지랭크로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많이 인용된 논문이 좋은 논문이듯이 많이 링크된 페이지가 좋은 페이지라는 아이디어였다는데 참 그럴듯해요. 물론 지금은 단순 링크는 많이 사라졌고 다른 복잡한 방법론이 도입되었으나, 누구나 알 수 있고 그럴듯하며 아날로그 시대로부터 증명된 것이야말로 진실 그 자체라는건 변함없는 사실인 듯 합니다.

아울러 검색과 큐레이션 서비스의 비교는 제 현업에서의 고민거리와 조금 유사한 부분이라서 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큐레이션은 검색보다는 우연, 세렌디피티와 인스퍼레이션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은 공감이 갑니다. 실제 개발을 위한 알고리즘, 서비스 방식에 있어 단순히 이렇게만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리고 네이버, 다음카카오 모두에서 검색 서비스를 기획 개발한 개발자로서의 경험담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네이버 사전을 쓰지만 다음에는 다음 사전도 한번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전의 미래와 좋은 검색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요.

이렇듯 재미있는 부분도 많고, 또 개인적으로 '백과사전'과 같은 형태의 책을 좋아하며(사전, 시대를 엮다와 같은 책을 찾아 읽을 정도로), 예전에 전자사전 제조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서의 완성도가 부족한 탓입니다. 저자의 개인 블로그, 개인 글을 두서없이 편집한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스스로 아카이브를 만들고 DB화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차, 순서는 그닥 정리되어 있지 못합니다. 사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검색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유명 사전 편집자를 소개하는 식입니다.

수록된 내용도 검색 방법론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비전문가가 쓴 티가 난다는 것도 역력합니다. 특히 사전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심한 편이에요. 전문 사학자가 아닌 만큼 한계는 명확했겠지만, 이럴 바에야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해서 책을 쓰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저자가 제기한 문제점, 국내에서 종이 사전이 사라지고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만 제기할 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개인으로서 한계야 있었다 하더라도 이 정도 책을 출간할 만한 위치와 경력의 소유자가 현실적인 문제만 이야기하는 것은 좀 부족했다 생각되네요. 특히 이 문제는 제가 전자사전 업체에서 근무했던 거의 10여 년 전부터 불거진 문제인데 해결책이 전혀 없이 현재까지 흘러왔다는 점에서는 심각해 보이는데 말이지요.

결론내리자면 재미도 있고 건질 거리도 있지만, 아무래도 보다 심도 깊은 지식을 얻기 위한 시작점, 진입점 역할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2/21

게임북 전용 e-Ink 게임기

자주 찾는 블로그인 자그니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기기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게임북을 즐길 수 있는 휴대용 e-Ink 게임기입니다. 
게임북은 제가 초등학교 때 인기를 끌었던 책입니다. 페이지마다 선택지가 있고, 선택에 따라 페이지를 이동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었지요. 이러한 게임북만을 위한 전용 e-Ink 게임기로 전자책 리더기와 비슷한 형태네요. 화면 크기는 7.5인치에 800*400해상도이고 게임은 SD카드로 별도 판매할 계획인 듯 합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아들에게 책을 읽힐 목적으로 만든걸 사업 모델로 확장한 것이더군요. 아직 양산된건 아니고, 시제품이 준비된 정도고요. 곧(3월 1일)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현 시점까지 게임북이 20개 밖에 준비되지 않은건 문제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 플랫폼이 정착되어 누구나 게임북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건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이보다는 일반 모바일 플랫폼 용으로 아이들을 위한 게임북 앱을 만드는게 더 시장성이 있을겁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응원하고 싶습니다. 게임북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 추억 탓도 있지만, 과거 게임북의 단점이었던 한정된 분량(책 한권)을 극복하고, IT 기기에 맞는 재미(인터랙티브한 동작과 사운드 효과 등)으로 재미를 선사해 준다면 어느 정도 반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거든요. 아이들 영어 교육용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 깡통 전자 사전이 다시 뜨는 것처럼 말이지요. 

과연 시장 반응이 어떨지,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되면 눈여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0/12/02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 아서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 승영조 : 별점 3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 6점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승영조 옮김/북폴리오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권"에 이어 드디어 2권마저도 완독했습니다. 1권 못지않은 무게와 두께 덕분에 들고 다니기는 어려워서 침대에 모셔두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에 한 편씩 읽었습니다. 한 달 정도 걸렸네요.

2권 역시 1권과 마찬가지로 단편집 "돌아온 셜록 홈즈", "그의 마지막 인사", "셜록 홈즈의 사건집"에 실린 작품들을 상세한 주석과 자료를 추가하여 편집해 놓았습니다. 단편들은 이미 이전에 다 읽었지만, 관련된 다양한 주석과 해설, 여러 자료가 곁들여지니 보다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해서 좋았어요.

그러나 1권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너무 '셜록 홈즈'와 관련된 사건 및 등장인물을 실존 인물인 것처럼 해석하는 주석은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화는 신화대로 두면 좋을 텐데,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정체를 분석하고 다양한 학설을 덧붙이고 있거든요. 덕분에 불필요하게 내용이 길어지기도 했고요. 물론 이런 부분이야말로 이 책의 존재 이유이자 주요 재미 요소이니 비판은 온당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요. 저 역시 한 달 동안 즐겁게 읽었으니 만족합니다.

그래도 1권에 비해 자료적 가치가 높은 주석이나 해설은 다소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1권은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는데 2권은 정가로 구매했다는 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물론 제 개인적인 기분 문제이긴 합니다만...) 별점은 3점입니다. 셜록 홈즈의 팬이시라면 장식용으로라도 추천드립니다. 두 권이 나란히 책장에 꽂히니 보기만 해도 풍성하니까요.

덧붙이자면, 셜록 홈즈의 열렬한 팬이 아니라면 일반 단편집 세트를 구입하시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책 한 권의 가격이면 전집 9권 풀세트를 장만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으며, 방대한 주석도 어떤 면에서는 허황된 논의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셜록키언'을 위한 책입니다. 그리고 주석이 많은 만큼 찾기도 어렵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이러한 스타일의 주석·해설서는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네요. 검색의 용이성과 하이퍼링크 활용도가 훨씬 높아질 테니까요.

2010/10/26

거인과 싸우는 법 - 이기형 : 별점 2.5점

거인과 싸우는 법 - 6점
이기형 지음/링거스그룹

제조업으로 신화를 일군 거의 유일무이한 벤처기업, 아이리버의 일대기를 창업자인 양덕준 사장을 중심으로 다룬 책입니다.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50년 전자시장을 지배한 Sony 4인의 CEO"와 유사하며, 전성기에 비해 현재는 많이 침체된 상태라는 점에서는 "소니 침몰"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책에서 집중하는 '양덕준'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지나치게 찬양 위주라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런 인물 중심의 책이라면 "icon" 처럼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루는 것이 좋았을 텐데 말이죠.

특히, 아이리버가 실패하게 된 원인과 회사의 급격한 부침을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했어야 했습니다. 이 책만 읽고서는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아이리버의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H10의 실패와 이어진 애플의 가격 공세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H10의 실패는 명백한 제품 불량이 더 큰 원인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 경영진이 이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해결책을 마련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책의 주요 인터뷰 대상자가 대부분 경영진 및 관계자들이어서, 이러한 부분을 공정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위해 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더 많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평가는 제가 아이리버 몰락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된 '미래전략연구소'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고, 아이리버의 2인자였던 이래환 사장이 창업한 '에이트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다양한 내부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아이리버가 저물어 가던 시기에 근무했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기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많은 분들과 이런저런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또한, 실제로 몇 번 뵙지는 못했지만, 양 사장님은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책이 지나치게 양덕준 사장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차 있으며, 공정한 시각을 견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두께와 분량에 비해 적절하지 않은 가격 등을 고려하면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책에서 등장하는 '개발자들이 회사에 침낭을 가져다 놓고 몰두하여 회사가 성공했다' 라는 이야기도 개인적으로는 미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이건 박통시절 공돌이 공순이 쥐어짜서 재벌들이 성장했다는 논리하고 똑같잖아요. 저 역시 일이 많고 바쁘면 야근도 하고 밤도 세우지만 이건 별도의 보답이 없다면 어디까지나 회사에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걸 '당연시' 하는 행태는 반드시 고쳐졌으면 좋겠네요. 아니, 고쳐져야 합니다.

2024/09/01

정말로 추천하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 (オモコロ(Omocoro)bros)

유머러스한 기사들로 인기가 많은 일본 웹 사이트인 オモコロ(Omocoro)bros 편집부 멤버들이 추천하는 미스터리 소설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은 세 편 뿐이라는게 아쉽네요.

브로스 편집부입니다.
8월의 일요일마다 다양한 장르의 "추천 소설"을 소개하는 기사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주는... "추천 미스터리 소설"! 다양한 미스터리를 즐겨보세요.

**다빈치 오시야마의 추천 호러 소설**
《우주 탐정 노그레이》 (타나카 히로부미)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한 미스터리 작품을 "특수 설정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마법이 있는 세계"나 "타임루프가 있는 세계"와 같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수 설정이라도 "아무거나 가능"한 것은 아니란 점이 중요합니다. 마법이 있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는 워프 마법을 범인만 사용할 수 있었다"라고 하면 흥이 깨지겠죠. 비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말에도 논리적인 납득이 필요합니다.
《우주 탐정 노그레이》는 다섯 편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우주를 무대로 하는 능력 있는 탐정 "노그레이"가 기묘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단, 이 행성들이 모두 매우 특이합니다.
  •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만 사는 "괴수 행성 킹고지"
  • 주민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천국 행성 파라이스"
  • 주민 수가 항상 일정하며,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 "윤회 행성 텐쇼우"
  • 모두가 대본대로 연극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연극 행성 엔게키"
……등, 독특한 행성들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미스터리에서 "목 없는 시체"는 흔한 미스터리지만, 그 시체가 무적의 거대 괴수라면? 유쾌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더욱 불가사의한 사건들. 그 해결도 역시 행성의 특수한 성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마치 모든 것이 가능한 듯 보이면서도 마지막에 피스가 맞아 떨어지며 규칙의 전체 그림이 보이는 그 기분은 미스터리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장난감 상자를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가 있는 한 권입니다.

**카마도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명탐정의 제물: 인민교회 살인사건》 (시라이 토모유키)

플롯부터 너무 멋진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최고입니다!!!!!!!
미스터리 작품 중에 "다중 해결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개념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으로, "추리 결과, 여러 진실이 존재한다"라는 것이 이 장르의 특징입니다. 이 시라이 토모유키 선생님의 다중 해결물은 탁월합니다. 미스터리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물은 매우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추리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도중에 "이게 뭐야... 방금 추리는 뭐였지?" 또는 "피곤해... 결론만 말해줘..."라는 상황이 될 수 있지만, 이 《명탐정의 제물》에서는 제시된 여러 추리가 모두 강력한 임팩트를 줍니다. 압도적인 해설 파트를 읽으면서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고 감탄하게 될 정도입니다. 장인의 기술에 감탄할 정도로 멋진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의 구조적 약점을 없애면서, 동시에 "다중 해결"이라는 장르 자체에 새로운 빛을 불어넣는 듯한 훌륭한 플롯을 꼭 경험해 보세요.
다른 작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며, 이 《명탐정의 제물》을 시작으로 깊이 빠져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작품인 《엘리펀트 헤드》는 정말 최악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지만, 진짜 최악입니다. 사람이 이런 걸 써도 되나? 여러 의미에서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습니다.

**나시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이야기》 (스기이 미츠루)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손이 떨리다니" 라는 경험을 한 건,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일종의 상쾌함까지 느낄 정도로, 기분 좋게 압도당했습니다.
훌륭한 독서 체험을 보장하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꼭 서점에서 구입하시길 권합니다.
아니면 Amazon 카트에 담아주세요.
"전자책은 없나요?"라고 낙담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마키노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아사쿠라 아키나리)

취업을 위해 양산된 듯한 여섯 명의 우수한 대학생들이, 모두 내심 내정받고 싶은 대기업의 최종 면접에 남았으나, 전원이 내정받는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한 명만 내정된다고 변경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최종 토론 중에 우등생들의 "뒷모습"을 폭로하는 고발장이 나오면서, 한 사람씩 가면이 벗겨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책의 재미 순위를 석권하고, 만화화, 영화화, 라디오 드라마화까지 이루어졌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드러난 좋은 면과 고발을 위해 드러난 나쁜 면이 교차하며, 사람의 인상이 전혀 믿을 수 없다는 스릴 넘치는 구성에 책을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게다가 엄청 읽기 쉽습니다!).
여러 번 뒤집히는 대학생들의 의혹에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교묘한 미스리드, 마지막에 남겨진 고발문의 놀라운 결말,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선명한 복선 회수... 말할 것이 없는 소설의 완전체였습니다. 11월에 영화도 개봉된다고 합니다. 꼭 보세요!

**가미죠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나오키상을 받은 화제작을 지금 와서 추천하는 것도 뭐하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배경은 전국시대로,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 전국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입니다.
…잠깐만요, 이 시점에서 "역사물인가, 흥미 없네"라고 생각한 분들,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 소설은 등장인물과 배경만 역사물일 뿐, 내용은 완벽한 미스터리입니다.
주인공 무라시게는 어느 계기로 상사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성에 틀어박힙니다. 그곳에 쿠로다 칸베이라는 엄청나게 뛰어난 지장이 찾아와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성 안에서 둘이 나눈 이야기가 지금으로 치면 실제로 있었던 "밀실 토크"처럼 느껴져, 이 두 사람의 생각을 예상해가며 즐기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설마, 이런 전개가 가능하다니!"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요네자와 호노부 선생님의 《흑뢰성》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다시 한번,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2021/10/17

호빵책 : 디 아카이브 Since 1971 - 삼립호빵.어반북스 : 별점 2점

호빵책 : 디 아카이브 Since 1971 - 4점
삼립호빵.어반북스 지음/어반북스

삼립 호빵에 대한 현재까지의 모든 것을 담은 책입니다. 호빵의 역사를 요약하여 설명해 주는 짤막한 만화에서 시작해서, 호빵이 어떻게 개발되어 판매되었고, 현재까지 어떤 신제품들이 개발되었는지에 대한 소개, 호빵을 주제로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인터뷰, 호빵 광고의 역사, 호빵 로고 및 패키지 디자인, 호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장비들 소개. 호빵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호빵에 대한 인포그라피가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멋진 디자인입니다. 책 띠지를 호빵끼리 달라붙는걸 방지하기 위해 빵 밑에 붙였던 유산지를 그대로 사용한게 정말 취향 저격이었어요. 내용에서의 사진, 일러스트, 편집도 모두 빼어납니다. 호빵 특유의 쫀득한 생지에 대한 이야기, 호빵의 인기를 견인했던건 전용 찜기의 보급이었지만 지금은 전자레인지 조리도 가능한 1입 스팀팩도 출시되는 시대라는 것, 단팥만해도 무려 4종류에 소다 등 다양한 디저트, 맥앤치즈와 같은 요리까지 안에 집어넣은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는 등 재미있는 내용도 제법 되고요.

하지만 "호빵책"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디테일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중간에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인터뷰가 특히 실망스러웠어요. 호빵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가까왔거든요. 이런 내용은 줄이고, 호빵 신제품이 개발되는 과정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정리해 주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예쁜 디자인에 매몰되어 내용에 깊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여러모로 '디 아카이브'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삼립 식품의 호빵 홍보용 책이라고 봐야해요. 호빵을 예쁘게 포장해서 대략적으로 좋고, 아름다운 부분만 알려준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이런 기업 홍보용 책자가 유료로 팔린다는게 조금 신기하기도 합니다.

2022/10/02

미로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권일영 : 별점 3점

미로관의 살인 - 6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는 환갑을 맞아 자신의 저택 '미로관'에 제자 작가 4명과 평론가, 담당 편집자, 친한 추리소설 애호가를 초대했다. 그리고 미로관에 모인 그들에게 미야가키의 비서 이노 미쓰오가 요타로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공개된 유언장에는 4명의 제자 중 한 명에게 거액의 유산을 줄 생각인데, 그 한 명은 앞으로 닷새 동안 미로관에서 그들이 각각 쓴 추리 소설을 함께 참석한 편집자, 평론가, 애호가들의 심사로 결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람이 죽기는 했지만, 워낙 거액이 걸려있는 탓에 작가들과 심사 위원들은 요타로의 유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작가 중 한 명인 스자키가 살해당했으며 나머지 생존자들 모두는 미로관에 갇혔다는걸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사라진건 비서 이노였다. 작가 중 한 명인 기요무라는 이노가 범인이라며, 유언에 따른 추리 소설 창작 대결을 속행할 것을 주장하는데....


신본격의 탄생을 알렸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일본에서는 1988년에 출간되었던 작품이지요.
사실 이 작품은 나름대로는 비교적 빠르게 국내에 소개되었던 편입니다. 1997년에 학산 문화사에서 정식 출간되었었으니까요. 하지만 절판은 더 빨랐었습니다. 이유는 인터넷이 발달했던 시대가 아니어서 정보가 전달되고 소개되는게 많이 늦었던 탓입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 애호가를 자처하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가 출간되었던 것 조차 잘 알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거든요. 인터넷 서점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절판 이후 인기가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지요. 덕분에 중고책 가격도 꽤나 올라가게 되었었고요. 그러고보면 이러한 프로세스 '1. 국내 출간 -> 2. 광속 절판 -> 3. 인터넷 등으로 유명세, 가치 상승 -> 4. 중고가 상승'을 거친 책들이 1990년대 후반에 꽤 많았었습니다. <<점성술 살인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래도 저는 절판 직후 연이 닿아서, 2000년대 초반에 <<십각관>>, <<수차관>>, <<시계관>>, 그리고 <<인형관>>을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도 대체로 기억나고요. 그런데<<미로관의 살인>> 만큼은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러던 차, 추리 소설 관련 정보를 조사하다가 한 랭킹에서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이 빼어난 작품으로 <<미로관의 살인>을 꼽고 있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도 생겼고, 오래된 숙제를 마치는 기분도 느낄 겸 해서 알라딘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 오래 전에 읽지 않았던 작품이 맞더군요. 모든 내용이 새로왔기 때문입니다. 당초에 왜 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게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각설하고 작품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이야기는 '시마다'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작가의 <<미로관의 살인>>을 선물받아 읽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미로관의 살인>>이라는 소설 속 소설이 곧바로 이어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로관의 살인>>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미로관'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고요. 시마다 기요시가 다른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탐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로관의 주인이자 추리 소설계의 거장인 미야가키 요타로가 자살하면서, 4명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에게 유산을 넘겨줄 생각으로 그들을 미로관에 불러 모았다는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이들을 닷새 동안 미로관에 가두고 작품을 쓰게한 뒤, 같이 초대했던 평론가와 편집자,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심사 위원 역할을 맡길 셈이었다는 계획은 꽤 그럴싸해 보였거든요. 뛰어난 신진기예 작가들의 실력을 극한으로, 하지만 공정하게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테니까요. 물론 공정함을 위해 현장에서 동일한 주제 - 무대는 미로관이며 피해자는 작가 본인으로 할 것 - 를 주기는 했지만, 작가 중 누구라도 자기가 쓰려고 했던 다른 작품에서의 획기적 트릭을 유용할 수 있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 실제로 다이잉 메시지를 쓰려고 했던 작가가 있었는데, 이는 장소와 피해자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트릭이니까요 - 아주 공정했다고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요.
이후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작업했던 작품에서처럼 살해당한다는 전개도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피해자들이 살해당한 현장 등 여러가지 단서들과 정보들 모두가 화자격인 우타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진상 역시 합리적이고요.
조금 상세히 설명드리자면, 가장 처음 살해당했던 스자키는 목이 거의 떨어져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목 부분에는 소 머리 박제가 놓여 있었고요. 하지만 왜 머리를 아예 잘라 놓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박제 머리를 올려놓지 않고 이렇게 어중간하게 현장을 만들었을까요?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는 범인이 현장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를 피로 덮기 위해서 목을 잘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사실로 판명되고요.
마찬가지로 하야시는 입구에 바리케이트까지 쳐 놓았을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었는데, 왜 범인은 쉽게 방 안으로 들여 보냈는지? 후나오카가 살해당한 방은 빗장까지 걸린 완벽한 밀실 상태였는데 범인은 어떻게 도주한 것인지? 에 대한 답은, 미로관의 각 방은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야시가 남겼던 다이잉 메시지, 후나오카가 죽기 직전 거울을 가리켰던 행위로 비밀 통로의 존재는 밝혀지고, 이로써 진범은 죽은 줄 알았던 미야가키 요타로였다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는 살인이 하고 싶어서 4명의 제자를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지요.
이렇게 기묘한 현장 조작과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 등이 함께 펼쳐져 추리의 여지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다면, 이 작품이 그렇게까지 추리적으로, 그리고 반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워드프로세서의 키보드 배치 문제, S가 하나 더 표기된 MINOSS 왕의 철자, 지속적으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축물은 특별한 장치가 있다며 시마다 기요시가 비밀 통로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는 등 다이잉 메시지와 비밀 통로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주어지고 있어서 아주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비밀 통로'는 트릭으로서는 반칙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반칙이라고 언급될 정도지요.
기요무라를 살해한 트릭을 제외하고는 '미로관'이라는 말 그대로 미로를 이용한 트릭이 부족한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기요무라 살해 트릭도 우타야마의 입을 통해 '통로에서의 위화감'이 계속 언급되고 있어서 특별히 대단한 추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요. 아울러 기요무라가 가면이 아니라 평면도를 통해 이동해서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 등 상세한 내용 설명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과 또다른 진상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작품 전체에서 당연히 남자인줄 알았던 사메지마가 여자였다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던 겁니다! 이로써 스자키의 목을 잘랐던건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가 맞았다는게 판명됩니다. 당시 현장에서 그 누구도 출혈을 일으킬만한 상처가 없어서 범인을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사메지마가 갑자기 생리가 터졌던게 출혈의 원인이라는게 밝혀지거든요. 그녀와 미야가키의 오래된 인연, 장애가 있는 그녀의 아이 등 사건의 동기 역시 모두 공정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자살을 위장해서 미야가키 요타로만 살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유산의 전부나 일부가 미야가키 요타로가 만들려고 했던 추리상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 그를 살인범으로 몰아 죽게 만들었다는건 충분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연쇄 살인마가 만든 추리상을 받고 싶은 작가는 없을테니까요. 액자 소설 형태를 취했던 이유도 알고보니 이 서술 트릭을 위해서였는데,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고 있어서 완성도도 높고요.
서술 트릭물답게 성별은 물론, 여성이라고 짐작 가능하게끔 사메지마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등 알고보면 억지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합니다. 이는 에필로그의 대화를 통해 '일부러 그렇게 썼다'는 작가의 말로 재치있게 빠져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사건의 무대인 미로관과 사람이 죽어나가는 중에 벌어지는 추리 소설 창작 대결 등 비현실적인 소재가 많다는 등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라나 신본격의 중흥을 이끌었던 작가의 당시 대표작다운 재미는 충분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기본 이상은 해 주며 그리 길지 않다는 미덕도 크고요.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