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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8

거울 속 외딴 성 - 츠지무라 미즈키 / 서혜영 : 별점 2점

거울 속 외딴 성 - 4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코로는 중학교 입학 직후, 반 친구의 왕따 때문에 등교 거부를 하다가 방의 거울을 통해 기묘한 외딴 성으로 갈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 곳에 모인 일곱 명의 아이들 앞에 늑대 머리 탈을 쓴 소녀가 나타나 오늘부터 내년3월까지, 성 안에서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은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 준다는 것. 다만 매일 성이 열리는건 일본 시간으로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뿐이며. 그 이후까지 성에 누군가 남아있으면 그날 성에 왔던 다른 아이들 모두가 늑대에게 잡아 먹히는 무서운 벌칙을 받게 된다는 조건이었다.
중학교 1학년 ~ 3학년 사이의 아이들은 서로 친해지면서 그들 대부분이 똑같은 중학교 학생이며,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는 등 서로의 비밀을 하나 씩 알게 되는데....


신간을 취급하는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꼽는 '서점 대상'이라는 상이 있습니다. 다른 상들보다는 '재미'가 어느정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비교적 일반적이고 공정한 시각의 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작품은 2018년 서점 대상 1위를 2위와 300점 넘는 차이를 보이며 수상했다는 점에서, 2018년 출간 소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고,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소개해드렸던 모 랭킹에서 최고의 초보자용 미스터리 중 한 권으로 추천하기도 했었고요. 츠지무라 미즈키는 과거 한 권 밖에 읽어보지 않았었고 평가도 딱히 높지 않았지만 다른 여러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특별한 곳으로 이동하여 미션을 수행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왕따를 겪던 아이가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성장기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들 캐릭터가 잘 묘사되어 있고, 약간의 추리적이면서도 의외의 요소들이 설정에 녹아들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리온이 알고보니 하와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 처럼요. 이들 각자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고코로에게 닥쳤던 왕따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딸 아이 아빠로서 감정 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모자 미오리, 담임 이다 선생의 뻔뻔하고 무책임한 언행에 대해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이에 대한 기타지마 선생님의 이야기도 새겨 들을 만 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왕따 가해자 미오리가 고코로에게 뜬금없이 편지를 보낸 뒤, 그 편지에 대한 답을 받지 못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분개하던 고코로에게 '미오리의 생각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고코로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무리도 멋졌습니다.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전학생 리온이 고코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장면인데, 서두에서부터 수미쌍관 식으로 이어지는 멋진 마무리였어요. 애니메이션이 발표된다고 하는데, 이 장면만큼은 기대가 크네요. <<너의 이름은>>의 마지막 장면 느낌이 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냐?면 그렇지는 못합니다. 여러 명이 폐쇄된 장소에서 특정 미션을 수행하고 1등은 그에 따른 보상을 얻는다는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 설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용과 전개는 그런 장르적 속성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탓에, 추리 소설이나 이쪽 장르물로 보기는 힘든 탓입니다.
우선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거울 속 외딴 성에 오고 가는건 순전히 개인의 자유이며, 미션을 성공하지 못해도 아무런 벌칙이 없는 탓입니다. '열쇠'와 '소원의 방'을 찾아야 한다는 미션 자체도 그렇게 비중있게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를 찾는 묘사는 아이들의 말 뿐, 극중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을 정도에요. 그렇게 절박하게 찾는 아이들도 딱히 없고요. 오히려 아이들은 성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기만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은 안하고 서로 대기만 하다가 이야기가 끝나는 셈이에요. 갇힌 것도 아니고, 미션에 실패해도 죽는게 아니니 긴장감이 생길 턱이 없지요.

미션 자체의 흥미도 떨어집니다. '열쇠'와 '소원의 방'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별 볼일 없기 때문입니다. 아키가 돌아가지 않아서 늑대에게 잡아 먹히게 된 리온이 마지막으로 고코로에게 했던 '빨간 모자가 아니야' 라는 말 하나로 해결될 정도로 말이죠. 이 성은 <<늑대와 일곱 마리 어린 양>> 이라는 동화의 세계였고, 그래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양이 숨었던 벽시계속에 열쇠, 그리고 소원의 방 입구가 있었다는게 전부거든요. 뭔가 고민하거나,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이 동화 자체가 너무나 직접적인 해답입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쉬워요. 이렇게 동화를 소재로 삼을 경우, 복잡한 설정을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그에 더한 고민은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벽시계 안에 있는게 전부라면, 사실 동화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도 됩니다. 그냥 성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만 했어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테니까요. 이를 열심히 찾아보았다는 아키 등이 발견하지 못한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동화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리온이 진작에 찾아내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요.
외딴 성의 정체가 리온의 누나 미오가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진상도 뜬금없었습니다. 유이한 단서는 전기만 들어오는 인형의 집과 7의 배수로 소환된 아이들 사이에 빠져있던 미오의 나이가 전부입니다. 추리의 여지가 없으며, 미오가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어서 작가가 마지막에 대충 추가한 설정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어요.

그나마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만했던건 약간의 서술 트릭스러운 구성입니다만, 이 역시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아이들 대화를 통해 서로가 사는 세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건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스바루가 듣는 워크맨, 마사무네가 가지고 노는 차세대 게임기, 기타지마 선생님에 대한 시각이 미묘하게 다른 등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요. 게다가 서로 같은 중학교에 다녀서 모두 근처에 살 텐데 서로 본 적이 없다면? 아이들이 사는 시대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건 너무 뻔하지요. 주어진 정보를 시각화하기 어려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모를까, 명백하게 다른 사물들을 직접 보고 느꼈을 작품 속 아이들이 진상을 빨리 깨닫지 못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울러 아이들이 학교, 그리고 기타지마 선생님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기타지마 선생님이 미래의 '아키'일 것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고코로가 여러가지 아픔이 있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왕따를 극복해 나가는 성장기로 보기에도 조금 애매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타인의 언행에 신경쓰며 소심한 탓에 읽는 내내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고코로의 행동이야 왕따를 당했던 경험때문에 그렇다 쳐도, 정작 왕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외딴 성과 친구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극복의 핵심은 모에가 해 주었던 '그래봤자 학교'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즉, 고코로가 왕따를 극복하는데에는 기타지마 선생님과 친구 모에만 있었다면 충분했습니다. 외딴 성과 친구들은 필요가 없었어요. 오히려 아키가 기타지마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외딴 성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는 측면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왕따와 등교 거부에 대한 과거도 대체로 전형적이라 딱히 새로울게 없었고요. 특별히 재능이 우위에 있지 않은데도 엄마가 사력을 다해 피아노를 치게 한 후카 이야기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허나 기대했던 추리물로의 가치는 전무하기에 감점합니다. 이쪽 장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점수를 준다면 더 줄 수도 있겠지만, 왕따 소녀의 성장기에 청춘 모험물을 더한 이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곧 개봉할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7/05

콜드게임 - 오기와라 히로시 / 신유희 : 별점 1점

콜드게임 - 2점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예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3 여름, 복수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중2 때 동급생들이 한 명 한 명 습격당하기 시작하고 결국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다. 범행 예고에서부터 토로요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4년 전, 학급 내 집단 따돌림의 표적이었던 토로요시. 하지만, 전학 간 토로요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츠야를 비롯해 뜻을 같이 하는 아이들은 ‘기타중학 방위대’를 결성, 토로요시를 찾아 나서는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경악할 만한 반전,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상처로 남을 슬픈 이야기. 고3의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을 그린 오기와라 히로시 스타일의 청춘미스터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오기와라 히로시는 개인적으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다른 그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작가입니다. 장르를 막론하고 기묘할 정도로 유쾌한 분위기와 함께 달릴 때 달려주는 화끈함이 아주 일품이지요. 이 작품은 존재를 전혀 몰랐었는데,,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순전히 작가 이름만 보고 대여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장점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입시를 앞둔 중학교 2학년 동창들이 모여, 시덥잖은 농담과 옛 추억담 등을 털어놓고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들은 상황과는 걸맞지 않게 유쾌하며, 토로요시를 쫓는 과정과 마지막 습격과 위기는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화끈하고 박진감 넘치거든요. 토로요시의 타겟이 료타 한 명으로 좁혀지고, 료타와 미츠야가 위기에 처하는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전개도 직구 승부로 일관하고 있어서 화끈함을 더해줍니다. 누군가 습격당하고, 그걸 막기 위해 노력하고, 현장을 목격하고 추격을 벌이지만 실패하고.... 의 반복인데 회를 거듭할 수록 폭력의 수위도 업그레이드 되고요. 오로지 직구로만 승부하는 오기와라 히로시 작품답더군요. 

마지막 결정구로 토로요시는 이미 죽었고, 그의 부모가 진짜 복수귀였다! 는 반전도 묵직하게 스트라이크로 꽂힙니다.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출만한, 그런 이야기였어요. 이런 장점들 덕분에 읽는 맛 하나만큼은 기대에 값합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삽시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은 빼어납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소재와 설정이 굉장히 불쾌한 탓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토로요시에게 가해진 왕따 행위는 처참하기 이를데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전개에서 그에 대한 반성, 속죄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왕따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고, 친구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타중학 방위대' 라는 이름의 친목 자경단(?)을 조직해서 자기들끼리 자경단 놀이를 하는게 내용의 대부분으로 이들에게 닥치는 토로요시의 위협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하는 난관, 토로요시는 최종 보스인거죠. 이래서야 주객이 전도된 셈입니다. 왕따 피해자가 과거의 가해자였던 인간 쓰레기들을 하나씩 쓰러트리면서 최종 보스인 료타를 해치우는 토로요시 시점의 이야기였어야 했는데 말이죠. 최소한 절대악 료타 시점에서 닥쳐오는 복수를 느끼며 두려워하다가 왕따 가해자들이 모두 파멸하는 이야기였어야 했습니다. 

토로요시 부모가 그 집요한 복수의 행각으로 욕을 먹고, 죽다 살아난 료타가 불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를 다짐하는 마지막 장면은 불쾌함의 정점을 찍어 줍니다. 피해자는 자살하고, 가족은 몰락했지만 가해자 우두머리는 뉘우침도없이 불사조처럼 살아남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건데 이건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악몽일거에요.

아울러 이야기가 미츠야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도 이상합니다. 왕따 가해자는 아니라는 식으로 대충 빠져나가고 있는데,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라 치더라도 피해자 토로요시 시점에서는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악질 가해자와 별다를게 없잖아요? 진솔한 반성의 모습도 드러나지 않고요. 이런 놈이 위험을 딛고 성장하여 어른이 된다는 성장기처럼 이야기를 포장하고 있으니 참 염치도 없다 싶었습니다. 야구 소년다운 관련 묘사들은 재기발랄하지만 그 뿐이고요.

마지막으로 토로요시의 부모가 아들을 대신해 복수극을 벌였다는 반전도 설득력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무기, 그 중에서 스턴건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평범한 중년 아저씨가 고3 싸움꾼들을 차례대로 손쉽게 제압한다는건 잘 와 닿지 않았거든요. 높은 굽의 구두로 변장한 것 역시 활동성이 떨어지는건 당연할터라 이유를 알기 어려워서 좀 이상했고요. 차라리 원래 미츠야들이 생각했던 것 처럼, "홀리랜드"처럼 토로요시가 급작스럽게 거구가 되었고, 꾸준한 노력으로 힘과 여러가지 기술을 손에 넣었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읽는 재미만큼은 높이 평가하지만, 왕따 가해자 옹호를 위한 작품이 아닌가 싶을 생각이 들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제 기준으로는 콜드 게임이 아니라 몰수 게임입니다. 왕따라는 소재가 이렇게 소비되는 작품은 두번 다시는 읽고 싶지 않습니다.

2018/09/29

그것 1~3 - 스티븐 킹 / 정진영 : 별점 2점

그것 세트 - 전3권 - 4점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메인 주 데리 시에는 수십년 주기로 대형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왔다. 정체모를 '그것'에게 동생 조지가 희생당한 소년 빌 덴브로는 절친 '악동 클럽' 멤버들과 함께 '그것'을 퇴치했지만, 대신 그것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이십 여년이 지난 후, '그것' 이 돌아오자 악동 클럽 멤버는 이전의 약속대로 다시 모여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나서는데...

스티븐 킹의 장편 호러 모험 소설입니다. 얼마전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요. 예전부터 관심이 가던 차에 새롭게 셋트 버젼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긴 탓입니다. 초반 빌 덴브로의 동생 조지의 죽음 이후, 데리에 다시 광대 귀신이 나타났다는 전개까지는 괜찮아요.

하지만 그 뒤 38살 성인이 된 빌 덴브로와 어린 시절 왕따 클럽 친구들 모두의 시점을 바꾸어가며 과거의 기억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전개부터는 걷잡을 수 없습니다. 재미가 없는건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묘사가 너무 많습니다. 캐릭터들도 비슷하고요. 빌 덴브로와 벤, 에디와 리처드는 서로 캐릭터가 많이 겹치니까요. 분량 정리를 위해서라도 캐릭터는 좀 줄였어야 했습니다. 스탠리가 공포에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는 설정은 공포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던 만큼 스탠리는 등장시키더라도 리더(인간 기사) 빌 덴브로, 떠벌이(음유시인, 힐러) 리처드, 행동파이자 과묵한 덩치(몸빵 탱커이자 장인) 벤 한스컴, 홍일점이자 명사수인(원거리 딜러) 비벌리 마시의 4인 파티면 충분했습니다.
'그것' 페니와이즈에 얽힌 이야기만 풀어나가도 충분한데 11살 때 왕따 클럽이 모이고 뭉치게 된 계기인 헨리 바워스 패거리와의 충돌에 관련된 묘사도 너무 길고 많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골 마을에 만연한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왕따, 인종 차별 등의 묘사도 천편일률적이라 지루함을 가중시키고요. 이런 건 "시체 (스탠 바이 미)"로도 충분했어요. "시체 (스탠 바이 미)"의 등장 인물들을 가지고 공포 소설을 써 보려고 한 시도라고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분량은 확실히 더 줄였어야 합니다.

그리고 별로 무섭지 않다는 문제도 큽니다. 페니와이즈라는 초월적 존재인 절대악이 가진 능력에 비하면 하는 행동이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뜯어버리는 괴력에 자연 현상을 거스르고, 변신 자재에 공간 이동까지 할 수 있으며 데리라는 중형 도시를 지배하여 희생자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안겨주는 존재가 하는 짓이라곤 주로 약한 어린 아이를 환각에 빠트리고, 꾀어 내 죽이는 정도라니 밸런스가 심하게 안 맞습니다. 살짝 언급되는 대로 초기 데리 마을 정착자 480 여명을 한 번에 휩쓸어 사라지게 만든 정도의 위력은 보여 줬어야 합니다. 페니와이즈보다는 차라리 바워스나 헨리와 같은 개막장 정신병자 인간들이 더 무서웠어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건 불변의 진리지요.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까지 섞여 쓸데없이 길어진건 역시나 문제입니다.
게다가 최후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꽤나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던 광대 모습 대신에 흔해 빠지고 식상한(지금 시점이기는 하지만요) '거미' 형태를 취하고, 리처드에게 휘둘려 패배하고 마는 결말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야말로 "소드마스터 야마토" 급이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사람의 의지와 상상력으로 악을 없앨 수 있다는 주제야 나쁘지 않지만, 고작 리처드 한 명에게 휘둘려 무너질 정도라면 성인이 된 악동 클럽을 다시 불러 대결을 벌일 이유가 있었을까요?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헨리 바워스 한 명 보다도 떨어지는 전투력으로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헛 웃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페니와이즈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현란한 환각에 대한 묘사는 그나마 괜찮지만, 쓰여진지 이제 삽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건 무리입니다. 지금은 워낙 자극적인 컨텐츠가 많으니까요. 페니와이즈 자체가 혐오스럽고 무섭다는 묘사라면 모를까, 동상이 움직이고 개수대에서 피가 솟구치는 등은 화려하긴 하나 무섭다는 느낌은 딱히 받기 어렵습니다.
또 이러한 묘사를 위해 불필요한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도 불만스러워요. 왕따 클럽이 다시 모인 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이유로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개인 행동을 하면서 각자 무서운 환각을 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 같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친구와 함께 했을겁니다.

전개도 너무 쉽게 쉽게 흘러갑니다. 모든 건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것들이 모두 딱딱 들어맞으며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전개의 정점은 인터넷 상에서도 논란거리인 베벌리와 왕따클럽 멤버들 간의 성관계지요. 이야기 전개와는 큰 상관도 없으며, 이유도 베벌리가 '우리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 생각했을 뿐이거든요. 생각한걸 실천하면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느낌이에요.

물론 30년이 지난 후 다시 영화화가 될 정도로 매력이 없지는 않아요. 성장기스러운 부분은 나름 가치가 있고, 어린 시절 왕따 클럽 멤버들이 다시 모여 페니와이즈를 상대한다는 전형적인 모험물 서사도 재미는 있습니다.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어린 시절 친구들이 고향에 깃든 악마를 퇴치한다는 설정도 매력적이고요.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점의 교차 전개도 절묘한 부분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은 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상한 현상을 삶 속에 잘 받아 들이지만, 어른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신경망이 마비되고 결국에는 미치거나 죽는다는 것인데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아이들 때에는 페니와이즈와의 대결을 용감하게 준비했지만, 능력있고 부자가 된 어른 시점에서는 그를 두려워 하며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것이겠지요. 그 뒤 다시 하나로 뭉쳐 옛 기억을 떠올린 후에나 맞서 싸울 결심을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낡았으며 별로 무섭지 않아 감점합니다. 무엇보다 큰 감점 요소는 페니와이스의 허무한 결말입니다. 등장인물을 쳐내서 한 권 분량으로 줄이기라도 했더라면 조금은 좋았을텐데,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혹 궁금하시더라도 영화만 보셔도 충분할 듯 싶네요.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야 할 가치는 없습니다.

2015/02/06

목소리의 형태 - 오이마 요시토키 : 별점 3.5점

[세트] 목소리의 형태 1~7 (완결) - 전7권 - 8점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대원씨아이(만화)

"그때,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새 회사에서 하던 업무가 바뀌어서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책을 읽을 짬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요. 덕분에 블로깅이 뜸한데, 그나마 짬짬이 읽어서 완결까지 본 만화입니다. 짤막하게 포스팅 남깁니다.

고3이자 왕따인 이시다 소야가 초등학생 때 왕따를 시키다가 자신이 왕따가 된 시발점이 되었던 니시미야 쇼코를 다시 만나 사과를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왕따가 얼마나 가볍게 시작되고, 얼마나 사람을 잘못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발과 함께 장애라는 것,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를 무겁게만 풀어내는게 아니라 나름의 드라마와 함께 펼치고 있어서 읽는 재미까지 함께 전해준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고요. 작가의 섬세한 심리 묘사도 빛을 발합니다. 소년지 연재물에서 이러한 깊이 있는 주제를 완결까지 긴 호흡으로 우직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을 만나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다만, 심리 묘사가 조금은 과하고 극단적이라 읽기 불편한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살아 있는 천사와 다름없는 니시미야 쇼코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요. 사실 굉장히 예쁘게 그려진게 가장 큰 문제에요. 이 정도 미모라면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딱히 왕따의 대상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청춘물로도 우수하고 성장기로도 우수한, 무엇보다도 장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014/07/29

풍장의 교실 - 야마다 에이미 / 박유하 : 별점 2.5점

풍장의 교실 - 6점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민음사

표제작을 포함하여 3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작품집. 이유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 여류 작가의 작품이구나!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고이케 마리코가쿠타 미쓰요의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일상 생활 속 악의와 살의를 상세한 심리묘사로 그린 소품들이라는 점에서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작품들이 일종의 "성장기"라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그래서 두 작가 작품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범죄물적인 재미는 고이케 마리코보다 못하고, 일상 속 서늘한 심리묘사는 가쿠타 미쓰요보다 못한 느낌이 듭니다. 딱 세 편만 실렸다는 점에서 풍성함도 부족하고요.

그래도 "풍장의 교실"만큼은 확실한 수작일 뿐더러, "제시의 등뼈"를 제외한 두 편의 이야기는 나름 극적 반전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일본 여류작가의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풍장의 교실"

잦은 이사를 통해 어떻게 주변에 녹아드는지를 깨우친 어린 소녀가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 놓이지만, 극복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 소녀 모토미야 안의 1인칭 심리묘사가 엄청나게 상세하고 집요해서 읽으면서 내내 감정 이입하게 만드는 솜씨가 발군입니다. 특히 왕따를 당하는 과정의 몰입감은 장난이 아닙니다. "악의"라는 것을 이렇게나 구체화시켜 묘사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할 뿐이에요. 안이 왕따를 설명하며 그냥 가려운 느낌, 누군가가 긁으면 정말로 가려워져서 또 긁고, 더는 참을 수 없어져 일제히 손톱을 세운 뒤 긁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겨 이유도 모른 채 손가락을 움직인다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또 단순한 왕따 이야기가 아니라 극적 반전을 갖추었다는 매력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가족들의 대화를 듣고 모든 것을 이겨낸 뒤 오히려 "경멸"을 무기로 반격한다는 결말이거든요. 더욱이 왕따의 원인이 된 특정 선생님의 애정을 오히려 이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더욱 어필한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안의 편인 듯 보이지만 딱히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는 "악코"라는 학생의 존재는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고, 이런저런 곁가지 이야기로 길어진 감은 없잖아 있으나 충분한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나비의 전족"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함께 했지만 그녀의 배경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소녀가 친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를 만나고, 육체 관계를 가진 뒤 벌어지는 파국과 그 이후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풍장의 교실"과 마찬가지로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지는 작품으로, 심리묘사는 역시나 대단합니다. 하지만 너무 완벽한 친구 에리코를 차버리기 위해(?) 남자와의 관계를 선택한다는 전개는 크게 와닿지는 않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히토미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가치 없게 내버렸는지를...

마지막에 "친구"가 아니라 정말로 "이성"으로 좋아했을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괜찮았지만, 설명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이래저래 조금 애매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시의 등뼈"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 제시를 돌봐주게 된 코코의 이야기.

애정 없는 부모 아래에서 어리광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제시, 그리고 아이 없이 남자와의 애정만으로 살아가는 코코의 대립과 성장, 관계 회복이 그려지는데,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제시라는 아이의 등뼈가 증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마지막 부분이 살짝 감동을 주긴 했지만, 워낙에 예상했던 그대로의 결말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05/01/21

분신사바 - 이종호 : 별점 2.5점

분신사바 - 6점 이종호 지음/황금가지

서울에서 아버지의 고향인 Y시로 전학온 유진은 왕따때문에 고통받다가 자신과 더불어 "왕따패밀리"인 희선, 정섭과 같이 한밤중에 교실에서 "분신사바" 주문으로 귀신을 불러 자기들을 괴롭히는 4명을 죽여달라는 소원을 빈다. 한편 아이들의 담임인 한재훈은 새로 근무하게된 미모의 여성교사 은주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은주는 자신과 가까이 한 사람에게는 모두 불행이 닥친다고 경고한다.
이후 4명의 학생이 차례로 자살같지만 자살이 아닌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고, 계속되는 괴이한 현상을 통해 유진과 은주는 각자 자기 자신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무언가 사건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사끝에 아이들의 죽음에 30년전 마을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재훈은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점차 마을은 두려움과 공포로 광기에 휩싸이게 되며 드디어 폭주하게 되는데...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의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꽤 알려진 호러소설가 이종호씨의 작품입니다. 원작에 대한 평이 좋았던 기억, 그리고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되는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의 한권으로 나오기도 했고 책의 장정과 디자인도 깔끔한 편이라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다 읽고 떠올린 첫 단어는 아쉽게도... "진부함"이라는 말이었습니다. 호러라는 쟝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이제 나오기 힘든걸까요? 전체적으로 어디선가 본듯한 내용과 장면으로 구성된 책으로 신선한 느낌 보다는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강하더군요.
이야기 배경에서 "여고"와 "왕따"를 중심으로 흘러가며 일종의 "한"을 다루고 있는 것은 기존 호러물(여고괴담 등)에서 많이 보여졌던 요소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왕따 학생이 귀신을 불러 저주를 걸다가 스스로 자멸해 나가는 설정 역시 너무나 흔하디 흔한 설정이죠. 다만 "분신사바"라는 주문으로 귀신을 부르는 방법이 약간 독특할 뿐이에요.
또 "Y시"라는 폐쇄적인 한 마을, 그리고 마을에서 30년전에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한 과거의 업보를 짊어지고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외딴 마을에서의 마을내 좀비들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와 폭주 이야기인 오노 후유미의 "시귀" 등에 를 연상케 하고요.

물론 "Y시"를 떠나서는 불행한 죽음을 맞게되어 "Y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저주같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여 점차 공포를 더해가고 과거의 비밀이 겹쳐지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구조는 괜찮아요. 현재와 과거를 잘 접목하면서도 혼란스럽지도 않고 깔끔하게 진행되니까요.
하지만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은주가 춘희로 돌변하여 살인귀로 변신하는 장면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섹스에 칼부림 난도질까지 등장하는 식으로 강도가 점점 더 세지면서 사람이 죽어나가야 진정한 공포물이 되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죠. 저는 잔잔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평생 쫓아다니는 저주가 더 공포스럽지 않았나 생각되거든요. 또 30년동안 환생과 빙의를 하며 유지해 온 복수의 한이 풀리는 것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호러물식 엔딩같이 너무 쉽고 작위적이었다고 보입니다. 허무하기도 하고요. 거기에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나올 필요도 없었던 안일한 끝맺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작품이라고 보기 힘든 세련된 문체와 깔끔한 장면묘사로 이루어져 있어 더 흥미진진했던 것 같네요. 이러한 점은 작가가 PD출신인 덕이라 생각됩니다. 장면묘사에 대해 상당히 강점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영화적인 서술방식으로 구체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읽기가 무척 편하고 즐거웠던 것도 좋았어요.
또 첫 머리의 상당히 영화적이지만 충격적이었던 "분신사바하는 펜을 잡은 또 다른 손!"에 대한 묘사, 여타 호러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씌운 후 불에 태워 질식사 시킨다는 굉장히 참신한 살인방법, 그리고 무당 춘희와 딸 인숙의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의사소통 방법 등이 차례로 등장하며 공포와 함께 읽는 재미를 전해줍니다.

한마디로! 한번 손에 잡으니 한번에 읽게 되는 정도의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소설 그대로 콘티를 짜서 찍었어도 보통 이상은 해 줬을 것 같은데 영화가 너무나 평이 안좋고 어설픈 장면이 많아 우스개로까지 전락해버린것이 불가사의합니다. 감독도 호러계에선 나름 유명한 안병기 감독이라 한번 보고싶긴 하지만 너무나 무참한 평들을 보고 참는 중이죠.^^ 저자가 PD출신인데 직접 감독을 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PS :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이라는 기획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만 종이를 좀 가벼운걸 썼으면 책 두께가 2/3으로 줄었을것 같은 아쉬움이 살짝쿵 생깁니다.^^

2015/11/07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악의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발견자 중 한 명인 노노구치 오사무는 히다카의 오랜 친구인 아동 소설가이자 전직은 교사였다. 마침 사건을 맡은 형사인 가가 교이치로의 교사 시절 동료이기도 했다. 노노구치는 자신의 직업을 살려 사건에 대한 견해를 일종의 수기로 작성했고, 가가는 이 수기를 빌려 읽으면서 진범이 누구인지를 추리해 내는데....

가가 형사 시리즈입니다. 1996년 발표된 작품이네요.

범인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와 가가 형사의 기록이 교차 편집되는 전개 방식과, 진범과 알리바이 조작 트릭이 앞부분 1/3 지점에서 밝혀진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렇게 진범이 빨리 밝혀지는 전개는 작품을 완벽한 와이더닛 계열로 만들고요.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아니라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작품의 나머지 2/3는 온전히 노노구치의 동기와 숨겨진 진상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왜?"가 정말로 대박입니다. 충격도 충격이지만 노노구치가 교묘하게 수기와 증언을 조작해서 수사의 방향을 의도한 대로 흐르게 만드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제일 첫 부분의 고양이 죽이기에서부터 히다카의 캐릭터 형성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는게 좋은 예입니다.

또 노노구치가 고스트 라이터가 아니며 그의 증언이 모두 거짓이라는건 눈치채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히다카의 작품은 사실 자신이 쓴 것이다!라는 명예욕이 아니라, 오래전 중학생 때 있었던 여학생 성폭행 사건과 왕따 사건이 진짜 동기라는 결말은 상당히 놀라웠어요. 이 동기를 밝히는 데 가가가 수집하는 여러 가지 증언들이 토대가 되는 식으로 등장하는 장치와 단서들이 교묘하게 짜여져 있고요. 결정적 단서가 나이든 폭죽 장인의 증언이었다는 것 처럼요.
진범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숨기는 노노구치의 수기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작품 전체가 거대한 서술 트릭이라는 것도 비슷하네요. 여튼, 한 편의 추리물로의 완성도가 아주 높은 편입니다.

아울러 가가가 고등학교 교사를 2년 했는데 그만두게 된 계기가 왕따 사건이었으며, 그 왕따 사건이 본편 이야기와 슬쩍 엮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졸업"에서는 분명히 교사를 지망했었는데, 왜 갑자기 형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린 거죠. 개인적으로는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을 억지로 등교시킨 가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역시나 선생에는 맞지 않는 캐릭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단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계획이 지나치게 노노구치의 시점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히다카 하츠미의 사진을 경찰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렇지 않고 경찰이 멍청해서 노노구치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의 대비책이 없거든요.

또 베껴 쓴 노트만 가지고 자신이 작품을 썼다고 주장하는건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오래 활동한 프로 작가가 아무런 증거나 데이터 없이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테고, 그만큼 많은 작품이라면 충분히 히다카가 썼다는 증거나 관련해서 증언할 인물은 여럿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도 히다카 리에가 그렇게 증언하기도 했죠. 아내라는 것 때문에 증언의 가치가 폄하된 감이 없잖아 있는데 이런 증언 몇 개만 모여도 노노구치의 급조한(?) 데이터 정도는 눌러버릴 힘은 충분했을겁니다.

마지막으로 노노구치의 수기에 오류가 많다는 것을 독자에게 공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은 점도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물론 이 점은 이 작품이 후더닛 계열의 정통 본격물이 아닌 만큼 큰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그 외로, 가장 큰 동기인 "악의"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긴 합니다. 노노구치의 속내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탓이 큰데 독자가 읽은 그의 속내, 즉 수기는 모두 거짓이라 딱히 와닿을 수가 없거든요. 오랜 시절 쌓아온 열등감과 거기에서 비롯된 악의라는 게 아주 설득력 없지는 않지만 본인이 아닌 남의 입으로 듣는 정보일 뿐이니까요. 또 아무리 "악의"가 쌓였다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요? 어차피 자신이 시한부 인생으로 얼마 살지 못하면 과거 사건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니 이렇게 복잡한 계획을 짤 필요도 없었을 테고 말이죠.

물론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는 헤아릴 수 없는 법이니 딱히 단점은 아닙니다. 시티헌터 사에바 료의 아버지이자 유니온 데오페의 총수도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 어차피 이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했었죠 (아마도.... ).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앞서 말해드린 노노구치의 계획에 지나치게 의존한 플롯에 약간 감점합니다만 여태까지 읽었던 가가 형사 시리즈, 아니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도 최고 수준의 재미와 깊이가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추리 애호가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런 걸 보면 어린 시절 나쁜 놈은 커서도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군요.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힌 놈을 옛 동창이자 친구였기 때문에 다시 받아준 히다카의 말로를 보면 역시나, 확실히 사람은 가려서 사귀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16/01/08

테두리 없는 거울 - 츠지무라 미즈키 / 박현미 : 별점 2점

테두리 없는 거울 - 4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arte(아르테)

'감성 호러'라는 마케팅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읽게 된 작품. 대체 호러가 어떻게 감성적일 수 있을까 아주 궁금했거든요.

허나 한마디로 기대 이하였습니다. 소녀 취향 감성은 넘쳐나지만 호러의 비중은 지나치게 낮은 탓입니다. 전혀 무섭지 않아요. 때문에 볼만한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호러 소설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도 "계단의 하나코" 외에는 범죄물이나 일상계에 가까와서 호러로 보기 어렵고요.

또 수록작 5편 중 2편이나 내용 파악이 어렵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아빠, 시체가 있어요"는 대부분 같은 의견이더군요) =. 독자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정답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계단의 하나코"

  • 첫 번째. 이 학교의 하나코는 계단에 산다.
  • 두 번째. 하나코와 만나고 싶으면 하나코가 사는 계단을 진심을 다해 열심히 청소할 것.
  • 세 번째. 하나코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는다.
  • 네 번째. 하나코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 다섯 번째. 하나코가 상자를 줘도 받으면 안 된다.
  • 여섯 번째. 하나코에게 부탁할 때는 하나코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 일곱 번째. 하나코가 내리는 벌은 계단에 갇히는 무한 계단의 형벌.

학교의 왕따 사유리 자살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이야기로 일본 괴담의 메이저 중 메이저인 하나코가 등장합니다. 화장실이 아니라 계단에서 나타나는 하나코를 그리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굳이 '하나코'였을 필요는 없었을 것 같네요.

하여튼,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하나코에 얽힌 일곱 가지 불가사의를 엮어 진상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아이카와의 후배 지사코로 변장한 하나코가 나타난 후, 그녀가 나타난 이유는 아이카와가 간절히 계단을 청소한 덕분(핏자욱을 지우기 위해)이며, 하나코가 주는 음식을 먹으면 저주를 받는데 다행히 아이카와는 지사코가 선물한 케잌과 사탕을 먹지 않아서 운 좋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결국 '거짓말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에 걸려서 무한 계단 지옥에 갇히게 되지요. 이러한 과정의 긴박감은 일품입니다. 아이카와의 심리 묘사 역시 발군이고요. 마더 구즈 동요에 맞추어 살인극이 벌어지는 고전 본격 추리물이 떠올랐습니다.

문제라면 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부분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하나코는 부탁을 들어 주는 역할도 있는 듯한데 여기서는 벌만 내린다는 점입니다. 좀 의아했어요.
아이카와 앞에 하나코가 나타난 게 사유리의 죽기 직전 부탁이 아니라 아이카와의 간절한 소망때문이라면, 사유리의 죽음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복수자 역할을 수행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죽기 직전 사유리가 계단에서 "살려줘!"라고 외쳤다는 묘사 정도는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아이카와의 범행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독자 상상에 기대는 부분과 사유리를 왕따시킨 학교 아이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 결말도 답답하고 찜찜했습니다.

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네를 타는 다리"

애니메이션 하이디의 그네 속도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왕따 이야기와 분신사바를 엮는 과정과 '큐피트님'이라는 유령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인기없던 미노리가 인기 있는 가오리 그룹에 들기 위해 분신사바 놀이를 하다가 유령을 화나게 했다... 그런데 그 유령 때문에 미노리가 죽었다? 유령의 정체도 모호하고, 아카네의 상상이 미노리와 겹치는 마지막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려면 최소한 유령의 정체, 혹은 죽음의 이유는 명확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아빠, 시체가 있어요"

쓰쓰지와 엄마, 아빠가 치매가 있는 시골 할머니 집 청소를 나섰다가 집안 곳곳에서 시체를 발견한다는 내용으로 시체가 왜 나왔으며 시간이 지나면 쓰쓰지를 제외한 사람들은 왜 모른 척을 하는지, 연달아 시체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에필로그는 누구의 제사 장면인지 등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대체로 제 감상과 동일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잠깐 고민해 본 결과로는, 앞서 청소 시작 전 아버지가 5월 내내 청소해야 된다는 말을 하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의 일력은 5월 5일이라는 것이 핵심인 듯 합니다. 즉, 에필로그는 사실 청소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것이지요. 앞서 2주에 걸쳐 시체를 치우고 집배원까지 죽인 뒤, 방문 간병인이 오게 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한 달은 걸렸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앞서 묘사된 청소와 시체 은닉은 모두 쓰쓰지의 상상이 아닐까요? 집에서 발견한 것은 시체가 아니라 쓰쓰지의 오래된 나쁜 기억, 예를 들자면 과거 이 집에서 죽은 것으로 묘사된 주민들에게 몹쓸 짓이라도 당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야 매주 어머니, 아버지가 시체에 대해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설명이 되고요. 아니면 히로후미의 수건이 놓여져 있는 제사상을 볼 때 히로후미가 죽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가족 모두가 관계되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진상은 도무지 알 길이 없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블랙코미디스러운 전개는 그럴듯했지만 내용도 모를 글에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테두리 없는 거울"

표제작입니다. 거울에서 본 미래(아이)가 악몽으로 구체화되고, 이 미래를 죽이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저주를 다중인격 범죄와 엮은 작품이지요.

사건의 원인과 동기, 결말까지 깔끔합니다. 약간 추리적인 성향을 띠는 것도 좋았고요. 가나코 시점에서 다카하타 도야 - 다카하타 유이치로를 뒤섞는 심리 묘사는 일종의 서술 트릭으로 보아도 무방하고요. 트릭이 약간 반칙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8월의 천재지변"

신지는 병약한 친구 교스케와 더불어 왕따를 당하다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공의 친구 "유짱"을 창조하여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거짓말이 밝혀지고,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데, 그 때 "유짱"이 나타나났다...

거짓말이 현실이 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가 핵심으로, 초등학생들 사이의 우정과 비밀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추리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지가 유짱의 정체가 사실은 매미가 아닐까 고민하는 과정, 교스케가 진료소에서 친구를 사귀었다는 복선과 함께 밝혀지는 마지막 결말도 아주 괜찮았어요.

하지만 이 작가 스타일일까요? 결국 유짱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 불명확한 게 옥의 티입니다.. 초등학교에서의 왕따가 주요 동기로 계속 등장하는 것도 지루한 요소였고요.

그래도 평작 이상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떠올랐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여름을 무대로 초등학생들이 등장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건 설정이 반대라는 점입니다. 유짱이 매미의 화신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알고보니 실존 인물이라는 결말이거든요. "해바라기..."는 죽은 친구가 거미로 환생하는데 알고 보니 주인공의 환상이었다는 것이니 완벽하게 반대입니다.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2025/01/04

이세계에서 치트 스킬을 얻은 나는 현실 세계에서도 무쌍한다 ~레벨업이 인생을 바꿨다~ (2023) - 이타가키 신 : 별점 2점

얼마 전 "전생 귀족, 감정 스킬로 성공하다"를 보았기 때문인지, 알고리즘으로 추천되었길래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전생 귀족~"보다는 낫더군요. 이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설정을 통해 기존 이고깽 장르에 차별화를 시도한 덕분입니다. 이세계에서 얻은 능력이 현실에서도 적용되어, 왕따를 당하던 추남 주인공이 초인기 초미남이 된다는 설정, 즉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는 찐따가 현실에서도 게임에서의 레벨업을 통해 같은 능력을 얻는다는 이야기는 진짜 판타지가 뭔지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설정이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닐겁니다. 따지고보면 "간츠"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테고요. 하지만 이 설정을 조금 더 차별화 시켜주는건 주인공 유야입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끝없이 선행만 베풀던 착한 인물이거든요. '선행을 베풀면 보답받는다'는 고전 동화 속 명제를 이세계 이고깽 판타지에 잘 녹여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현재 외모와 능력이 일종의 '반칙'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먼치킨이 된 유야가 겪는 여러 학교 생활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요리' 특기를 얻은 덕분에 캠프에서 멋진 요리를 선보여 담임의 프로포즈를 받는다는 등으로 훈훈하고 좋은 에피소드들이었어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왕따와 외모 콤플렉스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진부합니다. 왕따 과정에서의 과장된 연출도 별로였고요. 레벨업한 뒤 자신의 외모와 능력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설정도 반복된다는건 설득력이 너무 약합니다.
유야의 레벨업은 단순히 마물을 물리치는 데 집중되어 있어 흥미를 유지하기 어렵고, 후반부의 파워 인플레도 뻔했습니다. 영웅과 마왕의 대결과 다를바 없는 설정이었으니까요. 이를 그려내는 작화, 연출도 좋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캐릭터 간 관계나 서사도 전형적이라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판타지 세계가 특히 그러한데, 차라리 현실 세계 속 이야기를 더 길게 끌어가는게 재미있었을겁니다.
그리고 이건 넷플릭스의 문제인데, 서비스 신(?)을 모두 블러처리한 까닭을 잘 모르겠네요. 엄연히 15세 이상 관람가 작품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이고깽 장르물로는 나름의 매력이 있기는 한데,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시즌 2는 방영되면 볼 생각입니다. 저 역시 인기없던 학창생활을 보냈던터라, 이런 판타지에 감정이입하게 되네요. 

덧붙이자면, 유야 할렘이 시작되었지만 진 히로인은 호죠 카오리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유야가 먼치킨이 되기 전 모습을 알고도 유야를 흠모하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2016/02/01

홀리랜드 1~18 - 모리 코지 : 별점 2.5점

홀리랜드 18 - 6점
모리 코지 지음/학산문화사(만화)

그간 격조했네요. 설 전에 고향에 다녀오느라... 오랫만에 리뷰 남깁니다.

이 작품은 처음 접한 게 10년도 더 전이었습니다. 완결까지 읽지는 못하고 놓고 있던 차에, 우연찮게 읽고 싶어져서 완독하였습니다. 

내용은 흔해 빠졌습니다. 왕따가 짱이 된다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실제 격투기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만화에 잘 녹여내어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실제 격투기를 수련했던 경험을 톡톡히 살린 셈이지요. 10여 년 전 불었던 이종격투기 인기도 잘 활용했고요.

뻔한 내용도 긴 호흡으로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거리의 카리스마 이자와 마사키가 주인공의 조력자이자 진정한 끝판왕으로 존재하고, 주인공 카미시로 유우가 계속된 수련을 거쳐 결국 이자와 마사키를 쓰러트리는데, 이를 중간중간에 도전하는 다양한 격투가들과의 1:1 승부를 곁들여 흥미와 재미를 유지시키거든요. 이자와 마사키가 쓰러진 뒤에라도 또 다른 강자들이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고, 이 경우 파워 인플레 역시 걷잡을 수 없었을 텐데 마무리도 적절했습니다. 요새 같은 세상에 끝내야 할 때 끝내는 것은 정말이지 미덕이니까요. 다만 마지막의 "킹"은 완전 사족 느낌이라 별로이긴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원 폭력물들처럼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결국 거리에서 서로 싸워서 뭔가 증명하려 해 봤자 한때일 뿐, 결국 거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작품의 주제인데 확실히 와 닿더라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의 매력과 설득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겁니다. 주인공 카미시로 유우는 수련(?)으로 강자가 되는 왕따의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라서 설정부터 지루합니다. 강해진 뒤에도 왕따일 때의 순진함과 나약함을 지니고 있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스즈란 고교의 깡패들같이 폭력과 강함을 숭배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이런 점에서는 강함에 대한 동경, 유우에 대한 질투로 무너져 가는 친구 가라데카 쇼고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외의 등장인물들, 마사키 동생 마이는 왜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고, 친구 신이치 역시 싸움은 못하면서 주인공 옆에 붙어다니는 전형적인 떨거지라 별다른 매력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리얼 학원 폭력물(?)이라는 독특함은 독보적이라 충분히 가치는 있습니다. 분량도 적절하고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요.

2023/09/15

꽃밥 - 슈카와 미나토 / 김난주 : 별점 2점

꽃밥 - 4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사

공포 소설에 가까운 환상 소설 <<도시전설 세피아>>로 접했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몰랐는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상 이력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주인공 화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오사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서민가 뒷골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웃간 소통이 많고, 아이들끼리는 항상 어울려 놀곤 했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정 고무신>>이 떠오르는 그런 시대 그런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접하게 된 다소 기이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이 그려지는데, 환생, 성불하지 못한 영혼과 같이 뻔한 것도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는 나오키 상을 수상할만하다 싶고요.

그런데 소년, 소녀가 묘한 경험을 한 뒤 한 뼘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기억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래서 어쩌라고?'처럼 기승전결없는 단순한 추억담이에요. 그들이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려던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기승전결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괴담물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결말은 명확해서 괴담물보다는 이야기로서 완성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결말은 모두 추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닙니다. 장르 문학 팬이 평가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알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요.

<<꽃밥>>
초등학생인 여동생 후미코가 열병을 앓고 난 뒤, 스물 한 살 때 살해당한 시게타 기요미라는 여자의 환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요미의 집을 보러가자고 졸라서, 나는 후미코를 데리고 히코네라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요미의 아버지가 딸이 살해당할 때 튀김을 먹고 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곡기를 끊었다는걸 알게 된 후미코는 기요미가 어릴 때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밥을 기요미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표제작. 후미코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초, 중반부는 사뭇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미코가 노트에 시게타 기요미 가족 이름을 써 둔 것, 어린 아이임에도 보이는 기묘한 행동들로 공포물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약간 <<오멘>>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아직 어리지만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고 가족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과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하지만 환생임을 밝히고 난 뒤, 아버지에게 꽃밥을 전해준다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뻔했어요! 결말도 예상대로였고요. 뻔하고 무난한 탓에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도까비의 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쿄에서 오사카 서민촌으로 이사온 나 (유키오)의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중 모두가 은근히 따돌리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나는 형제 중 동생 정호와 친해졌지만 몸이 약했던 정호는 그 해 여름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에 정호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국인 형제가 있다는 설정은 반가왔습니다. 도까비 라는 제목도 도깨비에서 따 왔으며,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고추를 문에 걸어둔다는 한국적인 설정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작가 유년 시절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여튼 읽으면서, 정호 귀신 소동은 몸이 튼튼하고 강했던 정호의 형 준지가 자기들을 왕따시킨 마을에 대한 작은 복수극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호의 도까비가 소동을 일으켰고, 이유는 원래 정호의 몸 상태 - 몸이 아프고 약해서 방에만 있었다 - 때문이었다는건 의외였어요. 그래도 죽은 뒤 아프지 않고 자유로와져서 온 마을을 싸돌아다녔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유키오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논 뒤, 드디어 성불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그러나 진짜 도까비였다는건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복수극으로 생각했던 탓입니다. 너무 추리, 범죄 소설에 뇌가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요정 생물>>
오사카 변두리 주택가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세쓰코는 정체불명의 상인으로부터 '요정 생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키우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처럼, 아빠의 부하로 잘생긴 훈남 다이스케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엄마와 함께 도망가 버렸고, 세쓰코는 요정 생물을 죽여서 버렸지만, 그 뒤 아빠의 다른 부하 지로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요정 생물이라는 기묘한 존재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요정 생물의 계란 프라이같은 생김새와 키우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물은 사흘에 한 번 갈아줄 것. 물에 티스푼 절반 정도의 설탕을 풀 것. 강한 햇볕을 쬐면 안되고, 더운 곳에 두어도 안됨. 병을 바꿀 때는 같은 크기로. 병이 커지면 덩치도 커진다 - 등을 통해 <<그렘린>>과 비슷한 크리쳐 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알고보니 어린 소녀가 '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요정 생물'과의 접촉에 직접적으로 비유하여 전개하는 작품이더군요.

디테일한 설정이 뒷받침된 요정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습니다. 엄마와 다이스케가 불륜을 저지를거라는건 너무 뻔했으며, 성적인 소재를 일본 특유의 변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느낌이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세쓰코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도 와 닿지 않았고요. 왜 요정 생물이 세쓰코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은걸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참 묘한 세상>>
아키라의 백수 삼촌이 죽었다. 술에 취해 육교를 건너다 계단에서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후 화장터로 향하던 영구차가 멈춰버렸고, 관을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어른들은 당황했는데, '나'는 삼촌의 애인이었던 가오루 씨를 부르면 될 것이라 여겼다...

장례식에서 난봉꾼 망자의 관 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사실혼 관계의 아내 외의 애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는 반전은 살짝 깼고, 이 여자들이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유쾌합니다. 제목 그대로 참 묘한 세상이에요.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쿠린바>>
40년 전, 나는 어린 나이로 '오쿠린바'인 먼 친척 할머니의 조수가 되었다. 오쿠린바는 주문으로 사람의 혼과 몸의 연결을 끊어 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임종하면서 나에게 주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잇지 않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요약은 단순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오쿠린바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화가 여러개 소개되며, 주문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문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듣게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며, 중간까지 들려주면 살아있지만 나머지를 듣게되면 바로 죽는다는 등으로요. 
하지만 일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고, 설정도 작 중 그렇게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그냥 오쿠린바 할머니의 또다른 회고로만 설명되며, 주인공 화자 미사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로 끌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얼음 나비>>
수십년 전, 오사카 변두리 거리 동네에 살았던 나(미치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 친구가 없는 탓에 묘지에 놀러갔다가 18살이라는 누나 미와와 친해졌다. 그녀는 아픈 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타지로 나와 일하고 있다고 해다. 그리고 겨울에도 살아남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나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과 사라져버린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신비로운 상황이라는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겨울 나비를 보고 미와와 헤어지는 미치오의 모습은, 청춘의 환영인 메텔을 떠나보내는 테츠로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서정적인 버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겨울 나비에 대한 묘사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미와가 유령이 아니라면 몸을 팔고 있을 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결말은 둘의 파국이라는게 너무 뻔해서 의외성도 없었고 진부했습니다.
환상 소설 측면으로 보아도 '겨울 나비'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기에 딱히 언급할게 없네요. 마지막에 함께 본 나비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특별히 장르 문학적으로 바라볼 부분은 없어요.
그 외에도 미치오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미와와의 이별 후 급작스럽게 마사히코가 친구가 되자고 이야기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왕따 설정은 빼고 그냥 외로운 아이였다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8/13

로켓맨 1~1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로켓맨 1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중학생 미즈나시 요우는 정보상 R의 일을 돕게 된다. 어린 시절 잊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서였다. 악당인줄 알았던 R은, 알고보니 스스로 로켓을 만들어서 우주로 가려는 꿈을 이루려 정보를 팔아 돈을 모으고 있었다.
R은 자기 사건을 도와준 댓가로 요우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지만, 요우의 과거는 R이 속한 정보조직 T.E의 핵심 비밀 슈타지 파일과 관련된 중요한 비밀이었다. 파일은 오래전, 요우의 어머니가 가지고 사라진 채였다.T.E의 우두머리 아이에네스의 명령으로 R과 싸워 이긴 요우는 R의 로켓을 대신 맡아 완성하는 조건으로 조직에서 일하게 되었다.

Q.E.D로 유명한 카토 모토히로의 초기 옴니버스 연작 단편 모험물.
Boy meet a Rocket man이라는 부제처럼,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남자 R과 만난 왕따 소년 요우의 모험과 성장이 핵심입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R과 엮여 R이 속한 조직인 T.E의 에이전트가 된 요우가 이런 저런 사건들을 맡아 해결하는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추리적으로 괜찮은 에피소드들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 밀실 트릭 두어가지는 꽤 잘 만들어졌습니다. 아래와 같이 문이 잠겨진 '느낌'을 전해주는 장치 트릭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안경테의 다리를 쏘았을리 없다는 점에 착안해 일종의 밀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도 좋았고요.
Q.E.D 작가답게 과학과 트릭을 결합한 이야기도 있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전 아래에 사는 외딴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한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유전에서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여 배출하다가 의도치않게 유출 사고가 났다는걸 설득력있게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Q.E.D 비슷하게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학습 만화로서의 가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판매하는게 주 업무인 덕분이지요. 그래서 당대 세계 정세 및 주요 사건에 대한 언급도 많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20여년 전 작품임에도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이슈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그리드 컴퓨팅을 활용한 해킹,수정란 밀매 등이 그러합니다. 무기 상인들의 행각이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중, 후반부는 R이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이유와 T.E라는 조직에 얽힌 수수께끼를 알려주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결국 T.E와 거대 무기 거래 조직 도미니온 재단 사이에서 전면전이 벌어지고요. 그러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수수께끼부터 살펴보면, 도미니온 재단은 과거 자동 무인 레이저 공격용 위성을 팔려고 했습니다.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는데 말이죠.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던 시점이라 더 늦어지면 판매가 불가능해 질 수 있었기 때문에 도미니온 재단은 사람을 위성에 남겨두고, 자동화 위성인 것처럼 속이는 쇼를 벌였고 그 사람은 다시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R의 부친이었고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큰 스캔들이 될게 뻔하니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전쟁 무기 상인이 한 명의 우주인을 위성에 남겨둔게 뭐가 그리 큰 스캔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유해를 찾기 위해 우주로 가려는 R과 T.E를 저지하기 위해 희생시킨 군인들 수가 훨씬 많아요. 그 희생은 왜 괜찮은걸까요?
이외에도 설득력 부족한 설정은 많습니다. 하긴, 애초에 13살 중학생인 미즈나시 요우가 T.E의 에이전트가 된다는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우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까.... Q.E.D의 토마는 MIT를 조기 졸업한 천재이고, 친구 중 한 명은 거대 IT 재벌 총수인 등 인맥도 화려합니다. 본인의 재산도 많다고 설명되고요. 하지만 미즈나시 요우는 학교에서조차 왕따를 당하는 평범 이하의 중학생입니다. 어머니가 T.E의 S급 요원이었고, 요우도 자질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Q.E.D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아동향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도미니온 재단에서 다른 위성을 구입해서 원래 위성에 추돌시킨다는 계획은 참고 보아온 독자의 의식을 아득하게 날려버립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T.E와 전투를 벌일 이유도 없습니다. 진작에 추돌시켜서 위성만 날려버렸으면 됐잖아요? 여태까지의 전투와 작전은 모두 헛짓거리였습니다!
아울러 도미니온 재단이 고용한 3인의 킬러 프랙탈, 제로, 인피니티와 아이에네스를 지키는 수호자 지하에 대한 설정은 지극히 유치했습니다. 프랙탈과 지하가 총기가 널린 전쟁터에서 칼과 기묘한 와이어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 장면을 포함한 마지막 대결전은 이 작가가 액션 연출과 묘사에는 정말 재능이 없다는걸 깨닫게 해 주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10권 정도로 연재가 마무리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절판된 탓에 중고 가격이 어마무시한데,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는 없습니다. Q.E.D에서 활용하면 더 좋았을 트릭이 아까울 따름입니다.

2014/09/17

낮비 1~6 - 후루야 미노루 : 별점 2.5점

너무나 외롭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무것도 없는 하루하루에 불만인 주인공 오카다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직장 동료 안도에게 말을 걸고,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안도가 짝사랑하는 유카와의 만남, 그리고 유카를 죽이려는 연쇄살인마이자 고교 동창 모리타의 등장...

후루야 미노루의 우울 + 심각 계열 작품으로 전작인 "시가테라"와 굉장히 유사합니다. 루저에 가까운 주인공에게 미모의 여자친구가 먼저 대시한다는 판타지, 고교 동창인 사이코패스와 주변 인물들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이상한 상황에 처한다는 이야기 구조가 거의 판박이거든요. 왕따 이야기 역시 빠지지 않고요.

그러나 "시가테라"와 가장 큰 차이점은 "시가테라"의 주인공 오기노는 왕따 피해자라서 핵심 사건에서 주변에만 있기 힘든 탓에 이런저런 일에 계속 휩쓸리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 커플인 오카다와 유카의 연애담과 비일상적인 연쇄살인마 모리타의 살인 행각이 분리되어 교차 전개(물론 나중에 합쳐지지만)된다는 점입니다. 오기노 캐릭터의 평범한 부분과 피해자 부분을 둘로 나눈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오카다와 유카 커플, 그리고 안도가 등장하여 양념을 쳐주는 일상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만들고 고집하는 상남자 안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나중 탁구부", "그린힐"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개그 센스가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하고요. 안도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이 나와도 참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에 반해 모리타의 폭주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환상을 확실히 깨준다는 측면에서는 성공하고 있으며, 막판까지 사이코 범죄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맛도 있지만 너무나 몰상식한 연쇄살인마로 묘사되기에 과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시가테라" 정도로—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난 꼴통이 살인마더라, 중퇴당한 고교 동창은 야쿠자가 되었더라—마무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아니면 차라리 모리타가 오카다와 유카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고 끝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무계획으로 막 나가는 모리타가 유일하게 목표하고 계획한 것이 바로 둘의 살해인데, 다른 우발적인 살인은 잘도 저지르면서 정작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다는 점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풍자한 걸까요?
마지막으로, 모리타가 학생 때 자신이 비정상임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 그리고 그의 체포로 이어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갑자기 '모리타도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에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뜬금없기도 했고요.

그래도 "시가테라"보다는 마무리가 깔끔할 뿐더러 나름 해피엔딩—어쨌든 오카다 커플은 목숨을 건지고, 안도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여성이 생기고, 모리타는 체포되니 만큼—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로 묶이게 되는 구성도 괜찮았고요. 두 작품의 장점만 하나로 합쳤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오카다와 유카의 미래에 행복만 있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칩니다.

2012/11/17

죽이러 갑니다 - 가쿠타 미쓰요 / 송현수 : 별점 3점

죽이러 갑니다 - 6점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Media2.0(미디어 2.0)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살의'를 테마로 쓴 단편집.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잘 모르는 작가로 독특한 범죄 스릴러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죽이러 갑니다"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과거 초등학교 때 자신을 가혹한 악의로 대했던 선생이 떠올라 찾아간다는 표제작 "죽이러 갑니다" 같이 일상 속 소소한 살의와 그것에 대처하는 일반인의 모습을 그린 소품들이더군요. 여성 작가가 일상 속 살의를 주제로 썼다는 점, 주제를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통해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고이케 마리코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이케 마리코 작품과 가장 큰 차이점은 살의는 그냥 살의로 끝날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나 적극적인 행동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살의를 품은 이유가 확실하고,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체력을 키우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던 "잘 자, 나쁜 꿈 꾸지 말고"의 사오리조차도 살의의 대상인 전 남친 고타와 마주치자 아무런 액션 없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과를 하고 도망칠 뿐이에요. 여기서 범죄를 저지르면 고이케 마리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살의와 절망이 끝없이 업그레이드될 뿐이라면 기리노 나쓰오가 되겠지만... 이런 비겁함이 보통 현실인 거죠.

또 약간 독특했던 것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성을 주요 매개체의 하나로 등장시키고,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식이라서 하나로 이어진 연작이 아닌가 생각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독특했어요.

그런데 아주 일상스러운 느낌을 주기에는 극단적인 상황과 설정이 많다는 점은 좀 아쉽더군요. 일본에서는 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히키코모리, 왕따, 학대, 이유 없는 증오 등이 등장하고 그에 따르는 트라우마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자주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일상스러우면서도 오싹한, 서늘한 느낌을 주면서도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되네요. 대부분 "살의"를 어떻게든 극복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멀어져 가는 부부관계를 몇몇 대사로 표현하는 "스위트 칠리소스"와, 어렸을 적 동경의 대상이던 친구가 사소한 왕따 등의 증오를 스스로의 내부에서 키워나가다가 붕괴하는 모습을 회상하는 "우리의 도망"이 개인적으로는 베스트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소설도 아니고 장르문학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소소한 일상 속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즐기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5/11/11

마술은 속삭인다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1.5점

마술은 속삭인다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마모루는 공무원이었지만 거금을 횡령하고 사라진 아버지 때문에 고향에서 갖은 수모를 당하고 살아왔다. 어머니 사후 이모댁에 얹혀 살며 잠시 평화로운 시기롤 보냈지만, 택시 운전을 하던 이모부가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고 말았다. 이모 가족을 돕기 위해 특기인 열쇠 따기 기술로 피해자 요코의 방에 잠입한 마모루는 그녀의 죽음에 수상한 흑막이 있음을 눈치채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1989년작 장편소설. 도입부부터 중반 전개까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젊은 여성들의 연쇄적인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그녀들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재미나거든요. 특히나 책 뒤 해설에서도 잠깐 언급되듯, 마모루가 이 사건에 얽히게 되는 계기가 마모루가 얹혀 사는 이모부의 택시에 요코가 추돌한 사고사라는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자연스럽게 두 사건이 만나 마모루가 사건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될 뿐더러, 이 추돌사고로 마모루의 뒤를 봐 주는 요시타케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니까요.

그러나 중반부까지의 흡입력 있던 전개는 뒤로 가면 갈수록 힘을 잃고 맙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핵심 트릭이 하라사와 노인이 구사하는 최면술인 탓입니다. 간단한 암시만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 몇 마디 걸어서 최면을 걸게 만들다니! 누가 봐도 수상합니다. 더군다나 쫓기는 입장이거나 뒤가 켕긴다면 더더욱 말려들지 않으려 할 텐데 당치도 않지요. 어떻게 죽은 여자들에게 최면을 걸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아울러 작중 꽤나 중요하게 언급되는 암시에 의한 서브리미널 효과도 최근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아니, 뭐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작품 속 내용처럼 뒤가 켕기는 사람들이 삽입된 영상을 보고 폭주할 정도는 아닐 겁니다.
한마디로 - 본 작품의 영상물을 감상하셨다는 각시수련님 말을 빌어 - 요약하자면 "트릭을 양념으로 치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 정도 최면술이면 이미 추리가 아니라 SF라 생각됩니다.

전개 역시도 마모루 시점이라 약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코의 죽음 이후, 왜 그녀의 가족은 응답 메시지 테이프를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한 번 듣고 평범한 중학생이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았으니, 가족들 역시 간단하게 그녀가 어떤 범죄에 연루되었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요?
게다가 이렇게까지 치밀하고 간단하게 원격 조종 살인을 범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구태여 남긴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최면술사일 뿐인 하라사와가 다카기 가즈코가 숨은 곳을 알아낸 방법도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대충 쓴 느낌이에요.

또 진짜 사건의 원흉인 다카기 가즈코가 살아남은 뒤 구원을 얻는다는 결말도 석연치 않으며, 마모루의 열쇠 따기 능력이 몇몇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는 합니다만 필살기가 아닌 잔재주 정도에 그치는 것도 아쉽습니다. 마술사와의 한판 승부에서 큰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개인기 정도에 그치니까요.

아울러 마모루의 아버지가 공금을 횡령하고 바람을 피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자수를 했느냐, 도망을 쳤느냐가 가정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다 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과 기다림이 헛되었다는 것 때문에 마모루가 분노했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만, 매장당해도 싼 인물이이라서 딱히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게다가 어떻게든 마모루를 돌봐주려는 요시타케와 비교하면, 요시타케를 매도하는 하라사와 노인이야말로 사악한 연쇄 살인마인데 뭐 잘났다고 훈계를 늘어놓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복수해야 할 대상인 다카기 가즈코가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 취재를 한 것에 불과한 하시모토까지 죽인, 용서의 여지가 없는 악당이잖아요? 그가 말하는 정의나 마모루에 대한 충고 모두가 와닿을 리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모루와 미야시타 요이치의 왕따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고 전형적이라 할 말이 없습니다. 성장기 스타일의 일본 소설들은 왕따 이야기를 빼면 쓸 수가 없는걸까요? 이 정도 시련을 겪지 못하면 어른이 못 된다는 뜻인가? 여튼,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초중반부 전개는 나쁘지 않고 흡입력도 제법입니다. 그러나 엉성한 설정 탓에 잘 짜여진 작품으로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낡은 최면 이론을 가지고 너무 진지하게 작품을 쓴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에테르 세계관 시절에 쓰여진 SF가 떠오르고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피하시길 바랍니다.
1989년 일본 추리 서스펜스 대상 수상작인데, 최면술에 대해서 무지했던 시대였나봅니다.

2018/07/22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어마어마한 별명의 일본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단편집입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트릭과 추리의 과정만큼은 괜찮았던 정통 본격물임에는 분명했습니다. 별명이 허언만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동기, 전개 등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아서 이야기를 충실하게 쌓아올리고 만들어가야 하는 장편보다는 트릭 중심의 단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왔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단편집이 발표되었네요. 작품 해설을 보니 이 단편집으로 가제가오카의 우라조메 탐정 시리즈 1기가 마무리된다는군요.

이전 장편들이 "~관" 시리즈였던 것에 반해 단편들 제목이 상당히 소박한게 눈에 띕니다. 표제작은 엘러리 퀸의 패러디이지만요.
그런데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추리들 모두가 비약이 심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장편에서 긴 호흡으로 쌓아올릴 수 있었던 논리가 단편 분량에서는 효과적으로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학원 무대 일상계 청춘물인데,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소시민" 시리즈나 "빙과"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나 캐릭터 측면으로나 모두 미치지 못하는 범작입니다. 시리즈의 팬이시라면 한번 쯤 읽어볼만 하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차라리 빠른 호흡으로,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해가며 전개하는게 용이한 만화였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원플러스원 덮밥"

학교 식당에서 금지된 식기 반출을 한 범인이 누군지 찾아낸다는 설정만큼은 학교를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느낌입니다. 정말 있음직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니까요. 우라조메 추리의 댓가가 식권 20장이라는 점도 역시나 일상계스럽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추리보다는 비약에 가까운 탓입니다. 남겨진 트레이에 머리카락이 묻었다? 식판과 식기에 머리카락이 묻을 이유가 있을까요? 머리를 처박고 먹는 것도 아니고... 소스 개봉부를 얌전히 자주 쓰는 손 방향으로 놓아 둘테니 왼손잡이라는 추리도 비약입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거나 옮겨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식욕 때문에 운동계 동아리일 것이다 역시 지나친 비약입니다. 작은 체구의 사나에도 한그릇 뚝딱하는 덮밥이라고 묘사되기도 했고요. 점심 시간에 중요한 회의를 한 동아리를 찾는다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약속일 수도 있고, 정말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만 했을 수도 있어서 이 역시 비약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의 진상 - 여자친구가 돈가스 도시락을 주었는데 먹지 못하고 버린 후, 원플러스원으로 좋아하는 것 반, 돈가스 반을 시켜 젓가락만 지저분하게 해서 주었다 - 도 비약입니다. 제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먹던가 아니면 돈가스는 빼고 다 먹었을 겁니다. 왜 도시락을 버리고 구태여 식사를 또 시켰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아울러 키에 대한 추리는 추리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180cm 이상, 아니면 160cm 이하 등 용의자 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숫자면 모를까, 180 m이하의 학생이라는 건 가제가오카. 재학생의 90% 이상을 차지할 거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평범한 일상계지만 소설보다는 만화에 더욱 적합한 이야기입니다. 비약이 심한 내용으로 빠르게 전개하기 보다는, 단서가 조금 더 적더라도 정교하게 이야기를 쌓아나갔어야 했습니다.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표제작으로 왜 신사 축제 노점에서 거스름돈을 50엔 짜리로만 주는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는 내용이 이야기의 2/3 이상을 차지하며, 추리적인 부분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잔돈 숫자를 증가시켜 사람들이 분실을 더 많이 하게 만드려는 의도였다는 진상 역시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일본식 유타카 차림으로는 잔돈을 보관하기 어렵다는, 일본식 사고방식이 깔려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 역시나 정보의 제공이 시각적이며 전개와 호흡이 빠른 만화가 더 어울렸을 이야기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여름 축제가 무대라 더 그런 느낌이 드네요.

"하리미야 리에코의 서드 임팩트"

전작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던 하리미야 리에코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일상계 청춘 미스터리입니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귀여운 후배 사오토메가 취주악부에서 왕따를 당하는 듯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우라조메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지요.

유노와 우라조메가 아니라 하리미야 시점의 이야기라는게 독특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추리가 펼쳐집니다. 더위와 싸우며 연습하는 상황에 대한 강조, 취주악부 연습실에 널부러진 다양한 쓰레기들, 연습하는 곡과 독주 파트에 대한 언급 등 독자에 대한 정보도 굉장히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또 불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순진한 하리미야 리에코의 성장기 성격도 있고,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우라조메 덴마의 모습도 상당히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뭔가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커플이라고 느꼈던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진상, 그리고 결말이 썩 개운치는 않습니다. 취주악부의 야마부키가 자신의 독주 연습을 위해서 사오토메를 일부로 쫓아내고 연습실로 쉽게 들이지 않은 상황은 일종의 왕따라고 해도 무방하니까요, 협주 파트를 모두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독주 파트는 시간을 정해 따로 연습하자고 하거나, 최소한 선풍기를 빌리려는 시도를 먼저 해 보는게 당연한데 말이죠. 이를 하리미야가 쉽게 납득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천사들의 늦더위 인사"

5년전 졸업한 시시도 선배의 노트에 적혀있던 두 소녀 소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서두에 유노와 사나에에게 노트에 묘사된, 일종의 백합 연애물같은 포즈를 취하게 하는 개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는 범작입니다. 너무 작위적인 탓입니다. 

우선, 아무리 학교 일에 관심이 없어도 모두가 대피 훈련을 하는 상황을 몰랐다는 것부터 말이 안됩니다. 우라조메의 추리도 두 소녀의 연극과는 무관하게 9월 1일이라는 날짜에 기인한 것인데, 날짜까지 적은 일기 같은 글에서 정말로 진상을 깨우치지 못한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예전에 매월 15일마다 실시했던 우리나라 민방위 훈련같은 거니까요. 소녀들의 소실은 사다리차를 이용한 탈출 훈련 때문이었다는 진상도 그럴 수 있었겠다 싶기는 하지만 장비에 준비가 필요하고, 탈출 순간의 환성도 있었을텐데 외부 상황을 몰랐다는 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두 소녀가 껴안는 연극에 대한 유노의 반응은 여러모로 재미있고, 우라조메가 가오리 외에도 연극부 부장 가지와라 같은 지인이 있고 나름 학교 생활을 잘 한다는 묘사도 팬이라면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 꽃병에는 주의를"

가제가오카가 아닌, 사립 히텐 학원 중등부를 무대로 우라조메의 동생 교카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일상계 소품으로 복도에 놓인 꽃병을 깬 범인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나름 정교한 무대 설정으로 범인을 특정하고, 왜 범인이 꽃병을 가져왔는지 추리하여 동기를 밝혀내고, 그 결과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게 괜찮습니다. 특히 "물"의 사용법에 대한 추리 두 가지가 아주 그럴듯했어요. 구태여 생수를 구입한 건 화분이 깨진 장소를 위장하기 위해서!라는 추리에서,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화병의 물이 필요했던 것! 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설득력이 높았던 덕분입니다.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았던 교카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및 범인 야가라스의 논리적인 반박, 비야냥에 분노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성격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문제는 야가라스의 말대로 나카자와와 소프트볼 부 아이들의 증언을 믿을 이유도 없고, 2층 교실에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이렇게 한 방 먹은 다음에 재차 휴지통을 뒤져 폭죽을 찾아내는건 어설펐고,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카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굉장히 만화적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백합계 쿨데레? 친구 센도 히메마리도 만화 등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학생회 캐릭터라 너무 뻔했어요. 묘사를 디테일하게 하더라도 이렇게 뻔하면 딱히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말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음직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라는 점, 교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 형식의 성격은 마음에 들었지만 중반부 전개와 앞서 말씀드린 전형적인 캐릭터 묘사로 감점합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만화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짤막한 부록은 우라조메와 그의 아버지가 우연하게 사우나에서 마주친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라조메 남매의 추리력은 아버지로부터의 유전임을 드러내는 이야기인데 추리에 있어 비약이 심한건 마찬가지며 워낙에 짧아 점수를 줄 만 한 부분도 없습니다.

2020/11/28

형사의 눈빛 - 야쿠마루 가쿠 / 최재호 : 별점 2점

형사의 눈빛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야쿠마루 가쿠가 쓴 단편집으로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한 편 한 편이 완결되는 이야기이지만, 긴 이야기가 포함된 연작 구성이라는 점입니다. 긴 이야기는 주인공이자 탐정역인 나츠메 노부히코가 형사가 된 계기가 된, 나츠메 딸의 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편별로 사건이 조금씩 설명되며 마지막 수록작인 "형사의 눈물"에서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이지요. 나츠메 노부히코는 범죄 아동을 담당하는 법무부 직원이었지만, 30세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보고 6년간 파출소에서 일한 뒤 형사가 된 집념의 사나이죠. 추리력도 만만치 않고요. 작품 내내 '인간미'를 느끼게 만든다는게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사건들 대부분 증거가 명확하고, 범인들의 자백도 잘 이루어지고 있어서 추리할 여지가 많지 않은 탓입니다. 나츠메 형사가 펼치는 약간의 추리는 볼거리이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 추리가 사건 해결에 영향을 미치는건 별로 없다는 거지요. 오히려 이렇게 추리력을 드러내기 위해 억지스럽게 전개한 이야기들이 많은 편입니다.
설정과 동기가 극단적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려 한다던가, 아동 대상 잔혹 범죄가 등장하는 극단적인 이야기가 절반에 가깝거든요. 흥미를 잡아 끄는 설정에 능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족했던 작가의 전작들이 떠오른데 전작들보다도 못해요. 설정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분량이 덕없이 부족한 단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무라이스" 

방화로 히데아키가 죽었다. 그러나 사실혼 배우자인 케이코의 아들 유우마는 덤덤했다. 친아빠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연립 주택 근처에서 벌어졌던 연쇄 방화 사건 범인 소행으로 의심되었지만, 나츠메 형사는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의외의 진상을 추리해내는데...

케이코가 진범이며, 원래는 아들 유우마가 목표였다는 반전은 인상적입니다. 정부의 육체에 빠져 재혼에 걸림돌이 된 아들을 살해하려 한 거지요.

그러나 반전을 드러내는 추리는 모두 억지스럽습니다. 현장에 남아있던 오므라이스가 단서가 된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나츠메 형사는 케이코가 히데아키가 집을 비운다는걸 이미 알고 있어서 수면제가 든 오무라이스를 유우마 용으로 한 개만 준비했다고 추리합니다.
그러나 히데아키가 애인 시즈카에게 만나자는 보낸 문자 메시지를 케이코가 봤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케이코에게 그날 늦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면 모를까요. 즉, 히데아키가 집을 비울거라는걸 알았다는건 순전한 상상입니다.
또 유우마는 히데아키를 싫어해서 그가 있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녁을 한 명분만 준비한게 이치에 맞지요. 아들 유우마가 어머니의 살의를 눈치채었을거라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수면제 오므라이스가 자기 몫이었다는걸 유우마가 확신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케이크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한 환자 야스오카 씨 손에 서툰 주사자국이 많았던게 단서가 된다는 묘사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주입구(?) 역할을 하는 주사 바늘은 고정시키고, 링겔액만 바꾸는게 일반적이지 않나요? 마지막에 케이코가 흔들려 진상을 고백하는 장면도 영 설득력이 없었어요. 끝까지 버텨 정상참작을 받는게 현실적이니까요. "일년 반만 기다려"처럼요. 아울러 젊은 새 애인의 육체에 빠진 탓이라는 일본 AV스러운 동기도 그저 그랬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추리적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빨간 줄" 

코이데 신이치는 일하던 이자카야에서 막 해고되었다. 11년 전 삼촌을 살해했던 전과자였기 때문이었다. 그 뒤 함께 사는 조카 하루나의 친구 요코세의 아빠가 살해되는데...

범인은 신이치의 누나 나오코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던 요코세를 구해주려다가 살인을 저질렀던 겁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추리는 약합니다. 별다른 단서가 없는 탓입니다. 누나 나오코가 요코세의 집에서 벌어진 사망 소식을 듣고, 피해자가 요코세가 아니라 그 아빠임을 확신하고 반문한게 증거다? 턱도 없는 주장입니다. 어차피 나오코가 자수해서 범행이 드러나서 추리의 여지도 거의 없고요.
11년 전 사건도 누나가 진범이었고, 신이치가 위증했다는 반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딱히 증거도 없고, 작위적이에요. 모든 남자가 아동 성범죄자에 아내와 딸을 구타하는 인간 말종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물론 누나 나오코를 위해 거짓으로 자수한 신이치의 위증을 나츠메 형사가 곧바로 밝혀내는 장면은 괜찮았습니다. 신이치가 인형 뽑기에서 뽑았다는 인형이 결정적 증거가 되지요. 신이치가 말했던 시간에는 기계 안에 없는 인형이었거든요. 인형 뽑기 경품 교체 시간은 수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정보로, 꼼꼼한 수사가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심장"

마츠시타 마사유키는 7개월 전, 아들 토모키를 사고로 잃었다. 그 뒤 아내 사에코를 질책하다가 이혼 서류를 남겨 놓고 그 길로 출근하던 회사를 지나치고 노숙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속한 노숙인 무리의 리더 쇼우가 살해당하는데...

쇼우에게는 오래 전 괴롭히던 학우를 죽였던 과거가 있었는데, 얼마전 TV에 나왔을 때 피해자 가족에게 발견되어 타겟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범인은 같은 노숙자인 나카 씨였고요.

그런데 그닥 신선하지는 않았습니다. 흉기인 술병에 나카 씨 지문이 묻어 있었기 때문에 추리할 여지도 없고요. '힛츠미'라는 요리를 나카 씨가 모르는걸 보고, 나카 씨로 변장한 가짜라는걸 알아채는 "절대미각 식탐정"스러운 추리만이 볼거리였습니다. 이 추리는 사건 해결에 딱히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요. 

여러모로 추리물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존심"

수사 1과 형사 나가미 와타루는 나츠메 형사와 파트너가 되어 연립주택 살인 사건 해결에 나섰다. 둘은 피해자 사쿠라이 아야노가 다녔던 직장에서 몇 가지를 알아냈다. 그녀가 직장을 옮긴건 전 남자 친구가 괴롭혔기 때문이며, 지금은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며 번민했다는데....

수사 과정에서 두 형사는 피해자 친구라는 아가씨 미우를 만납니다. 남자같은 화물 운송업을 하고, 복싱 도장까지 다니는 남자같은 아가씨였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범인은 그녀였습니다. 미우는 성정체성 장애로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야노와도 '남자로서' 진지하게 사귀었고요. 그러나 육체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어서, '바람을 피우던' 아야노를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살해한거지요. 설정은 꽤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추리는 역시나 억지스럽습니다. 나츠메 형사는 미우가 '남성적'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한걸 보고 그녀가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있다는걸 눈치챘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여자 치고는 남자같다는 의미의 말을 들어서 흥분한거라면서요. 그러나 그냥 끼워맞춘 이야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싫다던가, 남자 자체를 싫어했다던가, 남자같다는 말을 듣고 불쾌할 이유는 수도없이 많은데, 하필이면 가장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을 추리한다는건 이상하지요. 게다가 권투 스파링을 통해 그녀가 마음만큼은 남자라는걸 알아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만화에나 나옴직한 발상이에요.

'카이'라는 피해자 애인 이름에 대한 추리는 나쁘지 않아요. 미우라는 이름을 뒤집어 우미 (海), 그리고 카이로 이어졌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 역시 미우가 범인임을 밝혀낸 다음 끼워맞춘거라 대단한 추리로 보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아버지의 휴일" 

요시자와 아츠로는 아내 아키코가 7년 전 병으로 죽은 뒤, 아들 류타와 함께 살아왔다. 어느날, 그는 귀가하다가 류타가 수상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걸 목격했다. 그리고 류타가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한게 아닌가 의심스러운 증거들이 집에서 발견되었다. 요시자와는 친구 나츠메와 상담한 뒤, 나츠메와 함께 류타를 미행하는데...

결국 경찰에 의해 류타는 체포됩니다. 류타는 진짜로 금속 케이블 절도단에 속해 있던 거지요. 류타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약간의 반전은 있습니다. 이는 집에 단서를 보란 듯이 놔 두었으며, 공중 전화로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는 정황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공중 전화 신고는 시간과 장소만 특정되면 별다른 추리가 필요한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운, 나츠메 형사가 왜 형사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연작 단편의 가교 역할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 딸 에미가 연쇄 테러 사건으로 식물인간이 된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모습이 어떻든 미래의 가능성을 믿으라면서"며 자기 딸 에미도 지금 누워 있지만, 언젠가는 일어날거라는 희망을 드러내는 나츠메의 말은 울림을 남기고요.

하지만 별점은 1.5점입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군요.

"흉터" 

고등학교 상담 교사 타나베 쿠미코는 결석, 자해를 반복해 온 유카가 걱정이었다. 결국 유카는 자살 시도를 하고 입원하는데, 다음날 학교로 나츠메 형사가 찾아 왔다. 학교 학생이 상해 치사 사건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해 치사 사건 피해자인 사와무라는 유카의 몹쓸 사진을 찍고 협박해 왔습니다. 유카는 지하철에서 무고한 사람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고, 돈을 갈취하는 사기에 가담했지만 그 때마다 죄책감에 자해를 했습니다. 그러다 이 범행의 피해자로 모든 걸 잃은 이와사키 씨가 진상을 알게 되어 상해 치사 사건을 일으켰던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건 유카와 이와사키 씨가 한 자백으로 설명됩니다. 계속 반복되듯, 나츠메 형사가 특별히 추리력을 발휘할 부분이 없어요. 이래서야 추리물은 아닌 셈이지요. 나츠메가 형사가 된 건 딸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은 아니었다... 는 심리 묘사 정도만 볼만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형사의 눈물"

츠카모토 세이지와 쿄코 부부는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세이지는 자기가 괴롭혔던 오오타를 만났다. 오오타는 세이지가 어린 아이를 망치로 때리는걸 목격했다며 협박하기 시작하는데....

작품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나츠메 형사 딸이 식물인간이 된 사건의 범인이 밝혀집니다. 불량 학생이었던 세이지는 나츠메로부터 진심어린 충고를 듣지만, 오히려 짜증과 증오가 일어나 그 딸을 테러했던 겁니다. 오오타는 이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 협박했고요.
하지만 사진에 함께 찍혀 있었던 여성 목격자가 쿄코라는 진상은 조금 의외였어요. 그녀는 세이지를 좋아해서 신고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오오타가 일으킨 모방 범죄로 여동생 야스코를 잃고 만 거지요. 이를 통해 오오타에게 협박당해 농락당하다가, 야스코를 죽인건 오오타라는걸 알고 그를 살해한게 오오타 사건의 진상입니다. 

자기가 신고만 했다면 동생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쿄코가 놓인 기구한 상황만큼은 인상적입니다. 빠져나가기 힘든 생지옥 상황은 야쿠마루 가쿠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불쾌했습니다. 세이지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탓입니다. 세이지가 현재 시점에서 개과천선한 괜찮은 청년처럼 묘사되고 있는데, 그가 과거 오오타를 괴롭혀서 히키코모리로 만들었고, 에미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범행을 저지른건 사실입니다. 이런 놈이 최소한 죗값을 치루지 않고 행복하게 살 자격 따위는 없어요. 오오타를 만나 협박당하는 정도는 형벌로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자수할 생각 없이 살해할 결심을 한다는건 쓰레기라는걸 재차 인증한 셈입니다.
물론 오오타 역시 죽어 마땅한 범죄자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오오타가 범죄를 저지른건 세이지 탓이 큽니다. 세이지가 저지른 테러를 모방한 범죄니까요. 그런데 오오타와는 다르게 세이지는 나쁜 녀석이 아니고, 그냥 궁지에 몰렸던 것에 불과하다고 전개하니, 영 와 닿지 않아요. 가혹한 왕따 가해자들 시점으로 그들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묘사한 "콜드 게임"만큼 불쾌한 묘사였습니다.
오오타를 죽인 진범인 쿄코 역시 딱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신고하지 않아서 여동생이 죽은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두 부부가 각각 살인과 과거 폭행으로 형을 받는다면, 남겨진 딸은 어떻게 하나요? 끝까지 무책임한 모습에서 일말의 연민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이지는 어린 아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계획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동기도 보복 목적에 가깝고요. 이는 비난 동기 살인 미수에 해당되며, 가중 처벌 요소가 많습니다. 18년 이상에서 무기 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어요. 그나마 나츠메 형사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던가, 초범이며 진지하게 반성한다는 등의 감경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15년 이상은 선고받을 중범죄죠. 쿄코는 피해자가 친족을 살해했다는 명확한 귀책 사유가 있어서 참작 요소가 많기는 하나 최소 3년은 복역해야 할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역하고 나와서 정상적인 직업을 갖고, 정상적으로 딸을 양육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모두 살인자인 셈인데, 왕따나 안 당하면 다행일겁니다. "편지"에서처럼, 살인자 가족이 피해를 받고 사는건 당연하고요.

전개도 우연, 억지가 많이 겹쳐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마침 세이지가 오오타를 살해 결심한 날, 쿄코가 오오타를 살해했다는 것 부터 그러합니다. 애초에 오오타가 쿄코를 농락하고 있었다면 구태여 세이지를 찾아가 협박을 할 필요도 없었어요. 얻을게 없으니까요. 과거 세이지가 범행을 저지르던 순간과 목격자를 적절하게 사진에 담았다는 설정도 작위적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쿄코가 놓인 생지옥 상황만큼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좋은 부분이 없네요. 아니, 불쾌하고 불편한 이야기였습니다. 나츠메 형사가 세이지를 사살하는 결말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6/03/01

주토피아 (2016) -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 별점 3점

"굿 다이노"가 망하기는 했지만 최근 분위기 좋은 디즈니의 최신작 애니메이션입니다. 주말에 딸아이와 함께 감상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른들이 보아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많은 괜찮은 작품입니다. 우선 전형적인 버디 액션 수사물의 형태로 시간 제한 있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이 제법입니다. 음모도 적절하게 구성되어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요. '공포'를 통해 특정 집단을 자신의 추종 세력으로 만든다는 정치적인 행동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설득력이 높지요.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그리고 이쪽 바닥의 전설적인 명가 디즈니의 작품다운 깨알같은 개그들도 마음에 듭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씬 스틸러는 엄청 빠른 나무늘보 반짝반짝 플래시겠지만, 그 외 다른 동물들 모두 원래 동물 특성이 잘 보이도록 구현되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토끼와 여우의 빠른 몸놀림을 적극 활용한 속도감 넘치는 액션씬도 아주 볼 만하고요. 주토피아의 디테일과 아트웍 역시 최고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동물을 소재로 민감한 부분인 "인종 차별"과 "선입견"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작중 편견의 희생양이 되는 동물은 토끼와 여우인데 토끼 쥬디는 작고 약하다는 편견으로 평생 소원인 경찰이 되지만 경찰 내부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합니다. 여우 닉은 포식자에다가 약삭빠르고 교활하다는 편견으로 모든 집단에게서 신뢰할 수 없는 동물로 낙인이 찍혀 있고요.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흑인은 무조건 잠재적인 범죄자로 생각하고, 중동 이슬람 교도는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편겸과 선입견 가득한 작금의 행태와 엮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중반부에 사라진 동물들이 야수화된 것에 대해 쥬디가 설명하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폭발합니다. 사실 작중의 포식자보다는 현실을 빗대어 생각하면 훨씬 와 닿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소녀 백인 경찰이 거리의 사기꾼인 흑인과 친해졌는데, 사건을 해결하고 인터뷰에서 흑인을 싸잡아 잠재적인 범죄자라고 말하는 꼴이니까요.

그러나 허술하게, 조금 쉽게 넘어간 부분이 눈에 띄긴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 보좌관의 음모로, 포식자를 야수로 만드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를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어 보였습니다. 무려 12마리나 야수가 되었는데 그 시점까지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며, 드러나게 된 것은 쥬디가 운 좋게 활약했을 뿐이잖아요? 공공장소에서 시장을 중독시키면 한방에 끝났을 텐데 왜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또 마지막에 닉이 경찰이 되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사기꾼이 경찰이 될 정도로 경찰이 만만한 조직은 아니죠. 이게 무슨 "폴리스 아카데미"도 아니고... 차라리 닉이 어렸을 적 레인저가 되려다 왕따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 경찰학교에 입학했었는데 주위의 편견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더 설득력 높지 않았을까 싶네요.

허나 이런 부분들은 아이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지나치게 편견에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서 느낀 문제점들이죠. 작품에 큰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냥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전해 준다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후속편이 기대되네요.

2010/08/26

데드트릭 1,2 - 카린펜 (華倫変) : 별점 3점


나나모토서에 근무하는 순사장 이치모리 잇페이, 과학수사 연구소 수사관 도쿠가와 도쿠코, 그리고 변태 명탐정인 경시청 수사1과 경부 하다케야마 미치아키가 나나모토서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기상천외한 범죄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하는 정통파 수사 추리만화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고 원서로 구해봤죠.

슥 한번 훝어봤을때는 작화나 전개가 왠지 어설픈 부분이 많이 보여서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권을 읽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평범한 추리만화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추리강국 일본의 힘이겠죠?
범인이 앞부분에서 살짝 드러나는 도서 추리물 형태임에도 진상트릭은 끝까지 숨겨놓고 수사가 중심이 되는 본격 추리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제법이지만 독자가 추리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와 단서를 수사과정과 맞물려 제공하는 전개방식 역시 정통 본격 추리물에 걸맞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어요. 곳곳에서 느껴지는 추리라는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과학수사에 대한 세밀한 자료조사 역시 돋보이는 부분이었고요.

작화, 컷 구성 등 만화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며 캐릭터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점 (주역인 도쿠코조차 전개에 사실 큰 필요가 없습니다), 1권에 비해 2권은 완성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아쉬우나 기대 이상의 신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카린펜 (華倫変 かりんぺん)은 에로망가 출신 작가로 5권의 작품만 남기고 2003년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젊은 나이에 사망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출간은 어려워 보이지만, 이 작품이라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권 : "연속자궁 강탈 살인사건"
나나모토 고교 여고생과 양호 교사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두 사체 모두 자궁이 적출된 상태였다. 경찰은 나나모토 고교에서 발견된 육망성 표식 등을 근거로 '악마 숭배' 의식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왕따이자 저주와 주술 등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2학년생 츠지모토 가즈야였다.

제목 그대로 '자궁 적출'이라는 잭 더 리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연쇄살인극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연쇄살인극이 단지 악마 숭배나 잔혹함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진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용의자에게 사건을 뒤집어 씌우기 위한 주도면밀한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공정하게 독자를 속인다는 점에서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 성향을 잘 따른다고 할 수 있고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를 사로잡을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잭 더 리퍼 사건의 가설 중 하나를 채용한 진상이라던가, 탐정역인 하다케야마가 진범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진상을 풀어낸다는 결말은 형사 콜롬보를 연상케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증거를 제시하라는 범인 앞에서 범인의 통화 녹음을 듣고 주변 소음으로 위치를 추적한 뒤, '공중전화'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공중전화에서 범인의 지문이 묻은 동전을 찾아내는 등의 과학에 기반한 철저한 수사도 볼거리였고요.

과연 자궁 적출이라는 행위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 등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유머 등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 작화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2권 : "도쿠코의 범죄"
연휴에 도쿠코에게 친구 미에가 찾아온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 잠들어버린 도쿠코는 자신의 옷이 피에 젖어 있다는 것, 그리고 피로 물든 칼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4일 후 다카이라는 청년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고, 도쿠코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도쿠코 옷과 칼의 피가 피해자의 것이었고 그녀의 모발이 피해자 방에서 발견된 것!
도쿠코를 구하기 위해 이치모리는 하다케야마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도쿠코가 범인일리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미에가 범인임을 확실히 알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시각에 교통사고로 체포되었는데, 체포장소에서 범행장소까지는 차로 2시간이 걸려서 그녀는 범인일리 없다'알리바이 트릭을 어떻게 깰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촛점을 맞추게 되고요.

그러나 이 트릭은 특별한 조작이 있던건 아니었고,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철벽의 알리바이가 생겼다라는 설정이라 좀 별로였습니다.
오히려 도쿠코가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철저한 과학 수사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모발의 상태와 헤어 스프레이의 성분조사를 통한 오류 증명 -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은 두종류의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기에 같은날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 , '곤약'은 위에서의 소화시간이 길기 때문에 사망시간 추정할 때 감안해야 한다는 것, 이문(耳紋)의 채집을 통해 범인 미에가 현장에 있었다는걸 증명하는 것 모두가 철저한 과학 수사에 기반합니다. 이런 류의 다른 컨텐츠들에 못지 않은 수준으로요.

설정과 내용에 비하면 지나치게 길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알리바이가 핵심이고, 범인의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도 평작은 충분히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대로 된 편집자가 붙어서 보강했더라면 아주아주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이치모리군의 도전장"
이치모리가 자신이 신참때 해결한 사건을 도쿠코에게 풀어보라고 소개하는 이야기. 
밀실에서 소녀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열쇠를 가진 사람은 경비원 뿐이었고, 처음에 아이 어머니와 조사할 때 방은 비어있었다. 다시 조사할 때 시체를 발견하였으나 경비원은 항상 아이 어머니와 함께였다. 범인은 경비원인데 어떻게 살해했나? 라는 문제였다. 
단서는 처음 시체 발견 시에는 모포가 뒹굴고 있었으나, 구급차를 부르고 돌아왔을 때에는 모포가 사라졌다는 것 뿐.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추리소설담이 펼쳐지는 소품으로 쩌리 이치모리가 낸 문제답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습니다. 작중 토쿠코가 이야기하듯 흔해빠진 거울 트릭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장황한 이야기가 나름 재미를 줍니다. 특히나 본격물은 프로레슬링, 사회파는 아마레슬링이라고 비유하는게 기억에 남네요. 아마레슬링이 각본없는 진정한 승부지만 작위적인 프로레슬링이 훨씬 재미있다는 논리죠. '바보같지만 재미있어!'랄까요.

또 사건의 동기와 이후 이야기를 작위적으로 짜맞추는 이치모리의 모습에서 최근 추리만화를 풍자하는 느낌이 풍기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0/11/24

꽁트 - 우리 동네 이야기

이거 참 황당해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 얘기 좀 들어봐.

우리 동네에 인간말종 노숙자 같은 동네왕따 상거지가 한 명 살고 있어. 근데 얘가 내 친척이야. 오래전에 대판 싸우고 의절하기는 했지만. 어쨌건 그래서 우리 옆집에 터 잡고 살고 있어. 문제는 담뱃값 좀 달라, 소주 먹고 싶다, 이러면서 가끔 행패를 부리는 거야. 고성방가는 물론이고 우리 집에 돌을 던지든가 빈병을 던지든가 하는 식으로.

그래도 얼마 전까지 불쌍하기도 해서 좀 챙겨줬기 때문에 조용했었어. 그런데 최근에는 화가 나기도 하고 돈도 아까워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거든? 그랬더니 역시나 다시 뒤숭숭하더라고. 최근에는 가족문제도 좀 있는 모양이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는 아예 작정하고 소주병을 나한테 바로 던지더라고! 정통으로 맞아서 피도 나고 눈이 핑 돌데? 이건 좀 심하잖아! 나도 열받아서 병을 바로 집어던지는 식으로 맞섰지. 녀석도 맞은 것 같긴 한데 얼마나 다쳤는지는 잘 모르겠고... 솔직히 지금 아파 죽겠고 마음 같아서는 아예 잘근잘근 밟아서 반 죽여버린 다음에 동네에서 영원히 쫓아내고 싶어. 자랑은 아니지만 싸우면 당연히 내가 이길 것 같긴 하거든.

그런데 싸워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문제야. 일단 쟤 칼 갖고 있어. 나도 다칠지 몰라. 게다가 얘가 가끔 동네 사람들한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빈 통 안에 휘발유 들어 있다. 나 건드리면 확 불 싸지르고 나도 죽을 거다 하는 식으로 얘기하고 다니곤 했거든. 동네 경찰 아저씨가 몇 번 확인하고 수거도 해 가기는 했는데 아직도 저 통 안에 뭐가 있는거 같아. 혹 쫓겨나기 전에 불이라도 확 싸지르면 어떡해? 우리 집과 내 가족은 물론이고 최신식 삼성 TV와 현대차, 기타 등등 전재산이 날아가면 나도 망하는 거잖아.

그렇잖아도 어제 한판 싸웠다는 소문 도니까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근처에 가지 말라고, 우리 집 애랑 놀지 말라고 주의주는 판이라 동네에서 큰소리 좀 치는 형님들에게 도움은 청해봤는데 별 소용 없더군. 가끔 저 상거지 깡패 돌봐주는 옆집 중국집하는 형님도 웬만하면 좋게좋게 넘기라고 하고 있고 우리 집 앞에 CCTV 설치해준 쌀집 아저씨 (별로 고맙진 않아. 관리비나 전기료는 내가 내니깐) 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느냐고 하더라고. 하긴 그동안 경찰이나 형님들도 어쩌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뭐가 바뀔리는 없겠지.

하아~ 이럴 거면 속은 엄청 쓰리지만, 그냥 담뱃값이나 주면서 달래줄걸 그랬나 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노숙자 깡패 원수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