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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6

나는야, 오타쿠 샐러리맨 - 요시타니 : 별점 2점

나는야, 오타쿠 샐러리맨 : 칠전팔기편 - 4점
요시타니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일본에서 히트쳤다는 웹툰 만화책입니다. 3억을 저자에게 벌어다 주었다는데, 한국식으로 책 가격 만원, 인세 후하게 20% 잡고 2000원 치면 15만부가 팔렸다는 이야기군요. 개인 취미가 3억을 벌어다 주었다면 확실히 대박은 대박. 부럽습니다.... 경성탐정록이 저거 1/10만 팔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나저나 책은 생각과는 좀 많이 달랐습니다. 오타쿠가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코믹함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할 줄 알았는데 주인공이 오타쿠라는 것이 그다지 내용에서 두드러지지 않거든요. 몇개의 명대사를 주워섬기기는 하고, 흔히 오타쿠의 모습이라 알고 있는 외로운 싱글이라는 이미지를 잘 그려내고 있기는 하지만, 업무나 생활에서 오타쿠이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아서 좀 실망스러웠어요. 오히려 작가의 체중 문제나 엔지니어로서의 모습이 더 비중이 크더군요.

물론 이러한 일상계 이야기가 작위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순 있겠죠. 그러나 제목에서 느껴지는 재미있을 것 같은 포쓰가 풍기지 않는 것은 확실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오타쿠가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전차남" 드라마 같이 억지스럽게, 과장해서 표현할 필요는 없겠지만 좋은 소재이며 이야깃거리인 오타쿠 샐러리맨이라는 것을 잘 살리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네요. 그나마 등장하는 오타쿠 관련 이야기보다 일상계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왜 히트쳤는지 알쏭달쏭하네요.  어차피 돈주고 사본책이 아니라 형한테 빌려읽은 책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요. 책가격도 비싼 편일 뿐더러 엔지니어인 작가의 개인 연재 웹툰이었기 때문에 그림도 썩 좋은 편은 아니고 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웹툰을 돈주고 사서 보는 일은 역시나 위험도가 높아요....^^

2009/10/26

나는야, 오타쿠 샐러리맨 : 일희일비편 - 요시타니

나는야, 오타쿠 샐러리맨 : 일희일비편 - 6점
요시타니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나는야, 오타쿠 샐러리맨 - 요시타니

전편에 이은 2권째. 주말에 형한테 빌려 읽은 책입니다.

1편이 그냥 그래서 그다지 땡기지는 않았는데 훨~씬 재미있어졌더군요! 웃음의 코드만 잘 짚어나가는 느낌이랄까요? 1편에서 불만스러웠던 요소, 즉 제목처럼 강렬한 오타쿠 냄새가 풍기지 않던 부분을 대폭 개선해서 일상생활 속에서의 오타쿠 생활과 더불어 오타구 역사가 시작되었던 과거의 일까지도 끄집어내어 오타쿠라는 소재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목 그대로 "오타쿠 샐러리맨"의 모습을 1편보다 더욱 잘 드러내고 있더군요.

아울러 샐러리맨 생활 이야기 역시 굉장히 리얼하게 그려지는데 유사 업종 종사자로서 공감이 많이 가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오타쿠 코드말고 이 샐러리맨으로서의 요시타니의 삶, 그러니까 리얼하게 그려진 일본 IT 종사자의 삶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선진국(?)이라 생각한 일본에서도 근로자의 혹사를 바탕에 깐 프로젝트 진행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거든요. 주구장창 야근에 주말 출근이 당연시 되고 있어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디가나 IT 종사자만 죽을 노릇이네요... 쩝

어쨌건 전편에 비하면 만족스러웠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제 추천 에피소드는 요시타니의 재수생때의 모습을 다룬 에피소드 (반다나의 놀라운 용도!)와 "꾸미기" 에피소드 (아키하바라에서의 좌충우돌 멋쟁이되기!)입니다. 호리에몬 이야기도 웃겼어요.^^

PS : 1편의 히트 이후 이런저런 방송을 탄 모양이네요아까짱님 블로그에 저자 사진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클릭! 그런데 생각보다 아주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라 놀랐습니다.

2011/05/08

올댓편의점 / 올댓오타쿠 / 올댓 영화 속 무기도감

SKT가 테더앤미디어와 손잡고 흥미로운 앱 기획을 진행하고 있더군요. 이름하여 올댓(All That)! 인기 블로거들과 협업해 블로거들의 가치 있는 콘텐츠를 앱으로 만든다는 발상은 꽤 괜찮아 보입니다. 블로거들에게 광고 수익을 배분해 준다는 점에서 블로거들도 반길 만한 전략으로 보이고요. 제가 받아본 것은 이글루스 블로거이기도 한 채다인님의 "올댓 편의점", 만화 리뷰로 잘 알려진 아까짱님의 "올댓 오타쿠", 그리고 고어핀드님의 "올댓 영화 속 무기도감"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하지만 사용해 보니 앱 자체는 딱히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각 블로거들의 콘텐츠를 그대로 앱으로 옮겨 놓았을 뿐, 앱만의 새로운 콘텐츠나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블로그 내용을 앱으로 포장한 것이라면, 그냥 블로그를 방문해서 보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웹 연동이 필수인 사용 환경 역시 이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Standalone으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굳이 다운로드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 외에도 "올댓 오타쿠"의 경우 실행할 때 세 번에 한 번꼴로 비정상적으로 종료되는 문제가 있어 완성도가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제목도 다소 의아하더군요. "올댓 오타쿠"라니? 단지 일본 만화에 대한 상세한 리뷰를 다루고 있을 뿐인데, '오타쿠'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또한, 세 개의 앱 모두 UI 구성이 제각각입니다.

  • "올댓 오타쿠" - 카테고리 게이트웨이 방식
  • "올댓 영화 속 무기도감" - 게이트웨이 방식이지만 내부 콘텐츠는 스크롤 없이 좌우 페이지 전환
  • "올댓 편의점" - 최상단에 카테고리 메뉴 배치

차라리 UI를 통일해 하나의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했더라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제작 과정도 더 수월했을 테고, 사용자 경험도 일관되었을 텐데 말이죠.

이 프로젝트 자체는 블로거들에게도 흥미로운 시도이고, 저 역시 블로거로서 관심이 가는 기획이지만, 현재로서는 잘 만든 RSS 리더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듯합니다. 다른 "올댓" 시리즈를 사용해 보진 않았지만, 독립적인 하나의 앱으로서 Standalone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면, 아직까지는 개별 블로그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각 2.5점입니다.

참고로 이 별점은 제가 다운로드한 앱의 콘텐츠를 이미 대부분 접해본 이유가 크며, 상기 블로거들의 재미있고 뛰어난 콘텐츠를 아직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4점 이상의 가치가 있으리라 보장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 설치해서 둘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 블로그에 들어와 이 글을 읽으실 정도의 분들이라면 상기 블로거들을 모르실 리 없겠지만요...

2008/01/02

동경산책 - 마치다 코우 / 정하연 : 별점 3.5점

동경산책 - 8점
마치다 코우 지음, 정하연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처음에 제목과 대략의 책 소개를 보았을 때에는 작가의 감수성 넘치는 여행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특이한 수필집(?)이더군요. 어떻게 보면 잡기장이기도 하고요. 물론 감수성이 넘치기는 합니다. 아주 독특한 방향으로요.
주요 내용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작가가 이른바 일상을 "표연"하게 살기 위해 문득 떠오른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는 몇번의 짧은 여행 이야기인데 첫 여행은 지하철과 기차를 갈아타며 생전 처음보는 거리로 간다는 이야기, 두번째 여행은 이웃집 친구 케이세이군과 차를 타고 가마쿠라로 여행을 떠난 뒤 이리저리 헤메다 조개구이를 먹고 돌아온다는 이야기, 세번째 여행은 오사카에서 꼬치까스를 먹기위해 돌아다니다가 실패한 후 동경에서 꼬치집을 찾다가 맥주나 마시고 집에 온다는 이야기, 마지막 여행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외치는 롹커로서의 정열을 불태우기 위해 라이브 하우스를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행의 중간 중간에 마주치는 온갖 상황을 "자기 식" 으로 해석하고 묘사하는 것이 정말 황당하고 코믹합니다. 애시당초 아무 생각 없이 떠나는 여행이 기본 소재이니 별다른 목적의식이 없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작가가 정말이지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코믹한 마인드의 소유자더군요. 만화가 "메가쇼킹" 이 연상될 정도의 황당무계하고 기발한 발상이 난무합니다. 예를 들면 지하철에서 오타쿠를 만났을때 작가는 오타쿠가 너무나 싫다! 고 외칩니다. 이유는 오타쿠들이 곳곳에 줄(?)을 늘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라면서요. 그러면서 줄을 눈 앞에 늘어뜨려 놓았을때의 심리 상태와 임상실험 까지 묘사하는 등 이야기의 폭주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 역시 "표연하게", "아무생각 없이" 고른 책이기도 하고, 저도 산책을 무척 좋아하기에 왠지 공감도 가서 가벼운 읽을 거리로는 무척이나 즐길만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단 책 선전 문구처럼 "작가가 포착한 환상적인 동경여행"을 꿈꾸며 구입하신다면 큰코 다치실 겁니다...

2017/03/18

도서관의 살인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도서관의 살인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기말 고사 기간 중에, 요코하마 시립 가제가오카 도서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이었던 피해자 시로미네 교스케는,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도서위원장 시로미네 아리사의 사촌오빠였다. 사건 현장에서 다이잉 메시지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고, "아노하나" 블루레이를 사기 위해 우라조메 덴마는 경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건에 협력하게 되는데...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가 등장하는 '관' 시리즈 제 3권입니다. 이번에는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이 무대인 이유는 잘 설명됩니다. 아리사가 쓴 "자물쇠의 별나라"를 몰래 도서관 책처럼 꾸며놓고 반응을 지켜봤다는, 자그마한 장난 때문으로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덕분에 문이 잠긴 도서관에 피해자 및 다른 인물들이 각자의 목적으로 잠입한다는 전개도 설득력 있고요.

그리고 트릭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주어진 정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하는 후더닛 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안경은 묘사 자체가 아예 노골적으로 "이건 정보야!"라고 알려주는 수준이에요.

라이트 노벨스러운 만화적인 캐릭터들도 여전히 볼거리입니다. 우라조메의 재수없음은 한결같고, 유노를 비롯한 다른 인물들은 유쾌합니다. 유노의 오빠 하카마다 유사쿠의 한결같은 오해, 우라조메를 타도하기 위한 야쓰하시 지즈루의 작전과 기말고사를 둘러싼 경쟁 등 소소한 이벤트도 즐거웠고요. 개인적으로는 유노의 팬티 엿보기 관련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여러모로 이전 작품에 비해 시시하며 완성도도 낮습니다. 트릭이 없는 탓도 크지만, 우라조메의 추리 역시 약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이잉 메시지가 조작되었을 거라는 추리입니다. 다이잉 메시지를 쓰기 위해서 손을 불빛으로 비추고 있어야 했다는 전제부터 납득하기 어려워요. 일본어 "구"와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불빛이 왜 필요할까요? 그리고 "구"가 아니라 숫자 7과 0을 쓴 것이라면 애초에 불빛은 필요도 없습니다. 소설 표지 등장인물에 동그라미가 쳐진 것은 우연일 수도 있는데 이 정도 추리로 조작이라고 단언하는건 잘못입니다. 이를 지적하지 못하는 경찰은 바보고요.

범인을 특정하는 중요한 단서인 "머리카락"을 드러내는 추리 역시 문제입니다. 머리카락에 피가 묻었다고 그 자리에서 잘라낼 생각을 한다는 것 부터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걸어서 몇 분 안되는 거리에 집이 있는데, 구태여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머리카락을 현장에서 자른다? 게다가 범인이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데 광적으로 집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말도 안됩니다. 대충 물로 씻고 집에 가서 정리하는게 당연합니다. 피묻은 머리카락이 "무선조종 형사"에 흔적을 남긴 정도로 끝냈어야 했는데, 머리카락임을 강조하기 위해 지나치게 억지를 부렸어요.

무엇보다도 동기는 최악입니다. 아니, 동기가 없습니다. 아들이 걱정되어 도서관에 따라간 어머니가 아들을 때려 죽인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잖아요. 현지에서도 동기 때문에 말이 많았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전작 "수족관의 살인" 리뷰에서 단점으로 어처구니없는 동기를 지적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동기가 없는 후속작을 발표한걸 보면 작가에게 동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네요. 아무리 다른 부분이 논리적이고 잘 쓰여졌다 하더라도 이 점 때문에 본격물로서 합격점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고전 본격물에 흔해빠진 유산 상속복수라는 동기가 반복되는건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동기도 본격물에서는 용의자를 특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니, 흔해빠져도 설득력있다면 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울러 모든 추리는 범인이 남긴 흔적을 통해 진행됩니다. 즉,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범인이 밝혀졌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단서가 나오지 않고 사건에 미궁에 빠진다는건, 여러모로 현실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라조메 덴마의 과거를 캐기 위해 유노가 나선다는 이야기도 별다른 흥미를 자아내지 못합니다. 솔직히 관심도 없어요. 그래봤자 중학생 때 있었던 사건, 뭐 그리 대단한게 있겠습니까. 설령 그럴듯하다고 해도 오타쿠라는 설정 외에 또 다른 설정을 추가하는건 반대입니다. 외려 오타쿠라는 캐릭터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게 문제로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유쾌하고 즐겁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계속 읽을 자신이 없네요. 이대로라면 구태여 더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25/07/27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이재원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신예 작가의 본격 추리 단편집으로,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 장르물이라는게 특징입니다. 표제작의 투명 인간과 "도청당한 살인"의 가공할 청력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다른 두 편도 아이돌 오타쿠들, 탈출 게임이라는 다소 특이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이런 특수 설정들은 단순 재미 요소가 아니라 추리와 트릭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표제작은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한 편인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따온 등 기존 추리 명작들의 패러디, 인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추리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설정이 과한 측면은 분명 있지만, 신선한 발상과 실험적인 구성에 본격 추리가 결합된 결과물은 썩 나쁘지 않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선함을 추구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일종의 병에 걸려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 투명인간 아야코는 투명인간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가와지 교수를 살해했다. 하지만 이를 안 탐정 자카제와 남편 나이토 등 관계자가 현장에 들이닥쳐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자카제의 치밀한 탐색에도 아야코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 숨었나? 

투명인간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트릭과 반전이 치밀하게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우선 밀실에서 아야코가 숨은 트릭은, 아야코가 살해된 교수의 시체 위에 올라가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시체를 난도질하고, 오른쪽 가슴에 꽂은 칼을 망치로 눌러 부러뜨린 상황같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된 단서를 통해 밝혀집니다. 멀리서 보아도 '확실하게 죽은 사람'으로 보이게끔(그래서 구태여 시신을 잘 확인하지 않게끔) 과한 상처를 입히고, 누울 자리에 칼이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트릭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아야코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되었고, 지금 투명한 상태로 움직이는 '아야코'는 이웃집 여성 와타베 요시코가 변장한 인물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이 반전 또한 이야기 중에 제시되는 여러 단서들 - 아야코(요시코)가 자택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하는 묘사, ‘보름달을 반지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집의 구조가 반대여야 했다는 점 등 - 로 설득력을 갖추게 됩니다. 교수를 살해한 동기도 이 반전을 통해 설명되고요. 투명인간이 치료되면 정체가 탄로나게 되니까요. 투명인간은 메이크업으로 외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요시코가 아야코로 변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대표적인 예입니다. 탐정 자카제 역시 투명인간이었다는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투명인간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은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시체 위에 올라가 숨는 트릭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아무리 투명하다 해도 경찰이 출동하면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고, 숨은 다음의 계획도 숨는 트릭에 비하면 허술한 탓입니다. 또한 투명인간 설정에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공을 들이고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물리적 모순을 무시한 점도 조금 거슬렸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

큐티 걸스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 두 명이 다투다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여섯 명의 재판원과 판사들이 평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재판원 전원이 큐티 걸스의 팬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들이 나누는 토론을 통해, 피고인이 범인이 아니며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가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데...

아이돌 팬들과 재판을 배경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트릭보다도 추리의 진행 방식입니다. 팬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단서들—응원봉의 컬러가 이상하다는 점, 울트라 오렌지 라이트 스틱이 현장에 과도하게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 타다 남은 종잇조각 등—을 통해, 범인이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였고 피고인은 우상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기로 마음먹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 그럴듯하게 진행되거든요. 시작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이었지만, 전개와 결말은 "키사라기 미키짱"인 셈인데, 오타쿠 팬심과 진지한 법정 추리물을 결합한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코믹한 오타쿠들 대화 중심의 구성도 재미있는 요소였고요. 

추리는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격 추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나, 부담 없이 읽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청당한 살인"

청력이 비상한 미미카는 오노 탐정에게서 살인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피해자의 집에 설치되어 있던 도청기에는 사건 당시의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고, 미미카는 이를 분석했다. 그녀는 녹음된 소리를 듣다가 이상한 불협화음을 느꼈다... 

핵심 단서는 불협 화음이 아니라 발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청기는 인형 속에 감춰져 있었고 고정된 위치에서 놓여 녹음되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발소리는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식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정하게 들렸다는 건 누군가가 인형을 들고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불협화음의 원인인 녹음된 팩스음이 매우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도청기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뒷받침하고요. 이를 통해 도청기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는 탐정사무소 조사원 후카자와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해 낼 수 있는 완벽한 후더닛물로,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미미카의 가공할 청력과 논리적 추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미미카의 비상한 청력이 일반 추리의 범주를 넘는 일종의 초능력처럼 느껴져, 약간은 추리 만화나 퀴즈물처럼 보인다는건 단점입니다. 사실 녹음된 소리를 듣고 분석하는 것이라면 이런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도입할 필요도 없었어요. 현실적으로는 음량 조절이나 소리 추출 장비를 활용하는 쪽이 더 설득력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재미와 퍼즐의 완성도 면에서는 추리 팬으로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수작입니다. 오노 탐정과 미미카 컴비의 티키타카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13호 선실에서의 탈출"

고등학생 가이토는 유명 추리작가 미도리카와 시로의 인기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탈출 게임에 초청받았다. 그 곳에서 게임 후원사 사장의 아들인 마사루와 마사루의 동생 스구루를 만났는데, 가이토와 스구루는 갑작스럽게 납치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납치범들의 본래 목표는 마사루 형제였고, 가이토는 마사루로 오인받아 함께 납치되었던 것이었다. ..

탈출 게임이 핵심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건의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해서, 목격 증언의 모순점을 밝히는 문제, 원고지에 남겨진 메시지를 해독하는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 모든 문제들은 그냥도 풀 수 있지만, 마지막 수수께끼를 통해 중요한건 '거울'이며 앞서의 수수께끼와 거울을 조합하여 진짜 범인이 ‘사쿠라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또한 ‘재교부’라는 게임 규칙—같은 문제에 정답을 두 번 낼 수 있다는 룰—자체도 하나의 트릭으로 작용합니다. 초반부 수수께끼의 해답이 두 가지였음을 이 룰을 통해 암시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중 게임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 설정 모두 현실적으로 잘 설명되고 있고요.

하지만 납치극 설정은 과했습니다. 가이토와 스구루를 납치한 흑막이 사실 마사루였다는 진상, 그리고 동생 스구루가 처음부터 형의 음모와 게임의 정답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입니다. 치밀한 퍼즐 추리에 비하면 완성도만 떨어트리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추리 게임이 잘 연출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은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는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만화적이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입니다.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는 좋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고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도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12/01/16

밀실살인게임 2.0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밀실살인게임 2.0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호인 다섯명. 반도젠 교수, 두광인, aXe, 쟌가, 044APD. 이 커뮤니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추리하는 '리얼탐정놀이' 커뮤니티였다.

저는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통파를 좋아하지요. 추리는 정통파 본격 미스터리, 야구는 정통파 강속구 완투형 에이스 투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멸종해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어쨌건 이러한 야구 시각으로 본다면, 우타노 쇼고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라기 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입니다. 잘 짜여진 플롯과 동기, 복잡한 인간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와중에 트릭을 통한 두뇌게임이 펼쳐지는 고전적인 본격물보다는 기발한 트릭과 그에 따르는 전개에 치중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트릭이 중심인 기교파 소품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쁜건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도 역대급 작품이 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같은 강력한 결정구가 있으니까요. 다른 구질(작품)들도 충분히 제 몫을 하며, 팬들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유형이니까요. 실제 야구에서도 이런 투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죠. 팔색조 조계현 선수처럼요.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비유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트릭이 풍성하고 설정을 독특하게 가져가며 등장인물 캐릭터에도 트릭이 숨어 있는 등 특유의 화려한 퍼즐러, 트리커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기교파로서의 단점 또한 도드라져서 안타깝습니다. 트릭, 즉 변화구의 각도와 위력은 좋았지만 동기와 설득력, 이야기 전개라 할 수 있는 제구가 영 꽝이었던 탓입니다. 온전히 트릭을 위해 짜맞춰진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였거든요. 트릭이 없다면 작품으로 성립이 힘들 정도입니다. 이래서야 소설보다는 추리 퀴즈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또한 아무리 사회부적응 잉여 오타쿠들이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합니다. 실제 범행 과정에 소요되는 돈과 노력,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디어에 보도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아마추어 추리 애호가들이 모여 추리한다거나, 각자 생각한 트릭을 문제로 낸 뒤 서로 해결하기위해 머리를 짜내는 이야기 쪽이 훨~씬 좋았을거에요. 이편이 보다 스트라이크에 가까웠겠죠. 지금의 결과물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헛스윙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공 자체는 볼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트릭이 비록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개면에서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완성도를 인정받을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볼의 위력이 좋아도 도망다니는 투수보다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진짜 투수인 처럼요. 그래도 트릭만큼은 괜찮은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음 투구에서는 보다 제구력이 동반된 피칭을 기대해 봅니다.

이하 에피소드 상세 소개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1.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

이야기의 시작. 다섯 명의 멤버가 접한 살인 사건 보도. 그들은 사건이 살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한 뒤 진상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살인게임 동호인이 많다는 설정 자체도 넌센스에다가 아무리 오타쿠 추리 매니아들이더라도 추리를 하는 과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편집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에피소드입니다. 트릭도 별다른 것은 없고 순수한 수사와 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의 공정한 참여가 차단되는 측면이 강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딱 한 가지, 달력에 예고를 남기는 것이 단지 날짜와 술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인 맨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달력처럼 구성된 맨션의 체크된 날짜와 호수를 일치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 게 솔직히 말이나 됩니까... 애시당초 일반인에 가까운 커뮤니티 멤버가 도출 가능했던 연관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모르고 넘겼을 가능성도 낮고요. 

놀라운건 이 에피소드가 멤버들의 범행이 아닌 조사와 추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Q2. 밀실 따위는 없다.

Q1에서 반도젠 교수가 낸 수수께끼와 그것을 응용한 두광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다루는 간단한 소품.

수수께끼 수준이라 딱히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밀실살인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성립한 것으로, 밀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aXe의 발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공감가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Q3. 살인마 잭 더 리퍼, 삼십 분의 고독

Q2에서 범행을 예고한 쟌가가 토막살인으로 밀실을 만든 뒤 그것을 모두가 추리하는 이야기.

다리 두 개를 문에 놓아둔 것만으로 밀실이라는 설정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두 쪽이 문에 기대어져 있다 한들 문을 여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핵심 트릭은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써봄직한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한 이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작품 속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온도계를 이용한 미끄럼틀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죠. 물론 트릭대로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시체 속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을 이용할 것이면 더 교묘한 밀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피해자와 딸만 가지고 있는 열쇠를 이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텐데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트릭은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Q4. 상당한 악마

Q3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두광인의 귀축 단두살인사건 예고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광인이 화상 채팅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특정 장소를 보여주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었고요. 커뮤니티 멤버가 일종의 증인이 되어 두광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걸 증명하게 된다는 발상의 전환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핵심 트릭이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잘 됐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피해자 루카가 통화 중 실수 한 번만 하더라도 모든 게 틀어질 테니까요. 또 두광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커뮤니티처럼 위험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과 반전이 합리적 전개보다 우선한 나쁜 사례죠. 별점은 2점입니다.

Q5. 세 개의 빗장

aXe군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다는 트릭을 이용하여 구현한 눈 속의 밀실살인이 수수께끼로 던져지는 에피소드.

눈이 그친 이후에도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제시되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발자국 하나 없는 쓰레기장 한가운데의 전화박스 형태의 박스였습니다. 박스는 세 개의 빗장이 걸려있는 이중밀실이었고요. 이를 위해 aXe군이 계속 이야기하는 정교한 장치 트릭이 선보입니다.

이런 류의 트릭은 극 중 aXe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어서 실효성이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트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정에는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소와 도구가 잘 맞아떨어진 괜찮은 트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치의 정교함에 대한 묘사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단서 제공이 필요해서 만화에 더 잘 어울렸겠지만, 평작 수준은 되는 에피소드라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추리 게임의 필요도 없이 진상은 이미 밝혀졌을 텐데,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Q6. 밀실이여. 잘 있거라

멤버 중 명탐정 역할을 담당한 044APD가 낸 수수께끼. 관리인과 현관 자물쇠로 잠긴 이중밀실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트릭은 범인이 피해자이며 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의 함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핵심 트릭인 밀실살인 외에도,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암호 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확실히 풍성합니다.

그러나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거기에다가 044APD와 마미야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상은 정말 트릭을 위한 것일 뿐, 동기 측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배달해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트릭은 화려하지만 그 외의 것은 뭐 하나 합리적인 것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트릭은 아닌데, 트릭이 아깝네요.

2016/04/22

수족관의 살인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수족관의 살인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신문부 부원들은 교내 신문 취재를 위해 '요코하마 마루미 수족관'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레몬 상어 수조에 사육사가 떨어져 잡아 먹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출동한 현경 수사1과의 센도와 하카마다 형사는 모든 용의자들이 확고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어쩔 수 없이 우라조메 덴마에게 사건 해결을 요청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려면 그만한 댓가를 지불하셔야죠 - 우라조메 덴마


아오사키 유고의 고교생 오타쿠 명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두번째 작품. 전편 이후 맞은 여름 방학, 수족관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시리즈답게 전작과 동일한 본격물이지만 전작보다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측면에서 트릭이나 별다른 복선, 반전이 없어서 정교함 면에서 많이 부족한 탓입니다. 이렇게까지 길게 쓸 이야기였나 의문이 생기기까지 합니다. 첫 현장 상황이 추리 근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물론 우라조메 덴마가 중반에 수의사 미도리카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등 추리를 펼치기는 합니다. 허나 별로 중요하게 설명되지 않아서 독자가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상세한 현장 묘사로 충분했을 정보 제공을 분량을 늘려 제공한 것에 불과하달까요.
또한 비교적 초반에 밝혀지는 두루마리 휴지를 활용한 시한 장치 알리바이 조작 트릭 역시 유치하고 설득력이 낮아서 실망스럽습니다. 이 정도 트릭을 경찰이 알아내지 못한 것은 거의 직무 유기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잡하며, 실제로 잘 되었을지도 의문이거든요. 그리고 이 트릭으로 범행 시각을 몇분 옮겨 놓는 것에 의해 모든 용의자들이 알리바이가 존재하게 됩니다. 즉, 범인에게 있어서는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시간 낭비였을 뿐이며 독자에게도 이 트릭의 유무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뭐 뒷부분에 화장실 휴지를 바꿔치기하는 시간을 특정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긴 합니다만 그냥 참고 수준이고요.
아울러 기존의 단점, 즉 사건이 비현실적이라는 한계 역시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동기는 최악으로 전편보다도 말이 더 안돼요. 전편도 동기가 어설프긴 했으나 그래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범행을 저지른 것인데 반해, 이번에는 단지 '돌고래'를 위해서라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수족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살짝 묘사함으로써 동기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죠.
게다가 아메미야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레몬 상어를 없애기 위함이었다는 동기를 좀 더 파고들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경찰 수사의 기본은 동기가 무엇인지를 조사하는 것이 아닐까요? 용의자들이 수족관 안에 있었던 사람들로 확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부분이 소홀하게 넘어간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사람을 죽이느니 두루마리 휴지를 이용한 장치를 만들어서 수조에 독을 타는게 나았을 텐데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아울러 레몬 상어가 피해자를 먹어버린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슬쩍 엿보이는 우라조메 덴마의 개인사도 솔직히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사회 부적응자 오타쿠보다는 건강미 넘치는 유노가 훨씬 마음에 드는데 말이죠. 유노 이야기나 좀 더 펼쳐줄 것이지.

그래도 '명탐정'의 '추리' 자체는 괜찮은 편이기는 합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다운 본격 추리물적인 요소는 분명히 살아있어요. 독자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할 뿐더러, 주어진 정보를 통해 마지막 추리쇼에서 범인을 밝히는 카타르시스만큼은 제대로거든요. 사건 현장에 있던 모든 단서들을 활용하는 추리의 과정 역시 기가 막힙니다. '수돗가 옆 피가 잔뜩 묻은 대걸레 모양 혈흔과 범인이 들고가던 양동이 속 핏물은 모순이다. (대걸레를 양동이에 넣고 씻었다면 혈흔이 이렇게나 짙게 남았을리 없다!) 이유는 무언가 피가 묻은 것을 양동이에 넣고 빨은 것이며 그것은 바로 수건이다. 즉, 범인은 수건을 들고 다니는 사육사 중 한명이다'라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공개된 단서를 통해 설명되기 때문에 설득력이 아주 높아요.
그러나 이 추리는 단지 용의자를 사육사로 특정하는 것 뿐이며, 정작 진범을 밝혀내는 것은 아메미야의 사체에서 발견된 손목시계가 핵심 단서가 되죠. 발상은 재미있지만 솔직히 억지스러워요. 아메미야의 시계는 방수 기능이 있는 특제라 범인이 자신의 것과 바꿔쳤을 것이라는 건데 말도 안되죠.... 저 같으면 시계를 푼 채로 나 뒀을 겁니다. 뭐하러 자기 것과 바꿔치기를 해서 증거를 남긴답니까?
마지막으로, 현장의 정보를 토대로 추리를 펼친다는 이야기를 '글'로 읽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양동이 속 핏물이 흘렀다와 같은 정보를 독자가 주의깊게 인지하는건 무리니까요. 추리 만화로 따지면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느낌인데, 이런 점에서는 소설보다는 영상물에 더 적합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현대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 그리고 경쾌하고 즐거워 읽기에는 편했습니다. 건강하고 활기찬 여주인공 유노의 상큼함과 발랄함도 기분 좋고요.  허나 이만한 길이의 장편으로 만들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추리적으로도 그닥이고요. 전편의 팬이시라면 읽어보실만 하겠지만 단순히 이 작품만의 가치는 낮으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저 역시 이후 소설로 계속 읽을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 영상물로 제작된다면 볼 용의는 있긴 합니다만...

2009/07/24

김시광의 공포영화관 - 김시광 : 별점 3점

김시광의 공포 영화관 - 6점
김시광 지음/장서가

이글루스에서 arborday라는 아이디로 영화에 대한, 특히 공포영화에 대한 다양한 리뷰를 남겼던 김시광님의 공포영화 리뷰 모음집입니다. (지금은 이사가셨지만요) 리뷰만 있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공포영화의 역사 등 여러가지 정보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번 렛츠리뷰를 통해 운좋게 당첨되어 읽을 수 있게 된 책입니다. 관계자 여러분들께 리뷰에 앞서 먼저 감사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김시광님과 그의 공포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풀어나간 Part 1, 그리고 주제별로 11개의 목차로 나눠 각 목차별 주요 공포영화를 소개하는 Part 2, 그리고 그 외의 간략한 정보를 다룬 Horror Tip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이 책의 핵심은 흡혈귀, 좀비, 몬스터, 오컬트, 망령, 귀신들린 집, 로맨스, 가족, 정체성, 이성의 한계, 기타의 목차로 나누어 41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는 Part 2입니다. 이 41편의 소개된 영화 중에서 제가 본 영화는 "드라큘라", "울프", "엔젤하트", "스크림", "식스센스", "신체강탈자의 침입" 의 달랑 6편 뿐이네요. 나름 영화를 많이보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유명작품을 이렇게까지 놓치고 보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 제 블로그에 쓴 적도 있지만 "공포영화"라는 쟝르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포"라는 감정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의사체험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 크고, "고어"라는 표현 방식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저같은 사람이 여기 등장하는 여러 영화들을 "보고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장르와 그 영화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묻어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교묘하게 스포일러가 될만한 부분을 피해가며 줄거리와 영화의 핵심에 대해 설명하는 글솜씨 역시 보통이 아니고 말이죠. 하여간 어떤 분야에 그야말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전문가적 식견이 돋보이는 책은 그 책이 어떤 주제를 다루건 (심지어는 꽃꽃이를 다루고 있더라도!) 항상 볼만한 법이죠. 이 책 역시 도착하자마자 하루만에 후딱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특정 하위 장르의 인기작들만 훝어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사 전반에 걸쳐 다양한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취미가 아니라 "학술적인" 깊이까지 느껴지기에 정말 대단하다고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개인적으로 저 역시도 "추리"라는 특정 장르에 많이 치우쳐진 애호가인 탓에 김시광님의 이러한 노력과 열정이 어떠한 것인지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기에 읽으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기도 했습니다 ㅠ.ㅠ 대한민국은 아직 이러한 쟝르에 대한 홀대가 여전하기에 저 역시도 추리문학을 좋아한다는 이유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오타쿠 취급을 받기 일쑤였으니까요. 난 오타쿠가 아니라 추리를 좋아하는 애호가일 뿐인데...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제가 재미있게 본 몇 안되는 공포영화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이벤트 호라이즌" 등등등) 과 얼마전 읽고 실망했던 김종일 씨의 소설에 대해 극찬을 하는 부분 등 저와는 취향이 맞지 않는 점도 눈에 뜨이긴 하지만, 이만큼의 전문가가 특별히 아는척이나 잘난척하지 않고 일반 독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지식을 쉽게, 알기쉽게 전달해 주는 국내에 보기드문 "호러영화 입문서"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앞으로 이러한 장르문화에 대한 다양한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죽기전에 꼭 봐야할 영화"나 "클래식 명반 100선" 같은 책이나 이 책이나 전문가가 해설하는 해당 문화에 대한 입문서라는 점에서는 다를게 하나 없잖아요?

별점은 평이하고 무난하기에 3점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현실이 더 호러이고 무섭기에 책으로 접하는 호러무비의 충격이 약한 점이 조금 아쉬운 점이었지만 재미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걸작이라고 단언하시면서 소개하신 "악마의 씨"와 "오디션", "큐어" 등은 아무리 취향이 아니더라도 꼭 챙겨봐야겠어요.

덧붙여, 추리소설에 대한 리뷰 - 입문서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가 있으시다면 저에게도 연락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워낙 인터넷 상에 거물들이 많으셔서 저한테까지 차례가 오지는 않겠지만요...

2011/11/23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 - 하야미 라센진 / 진정숙 : 별점 4점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 - 8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 진정숙 옮김/이미지프레임(길찾기)

1~2차 대전 당시를 주무대로 하여 가공의 국가와 병기를 선보이는 "마차마 전기"가 150여 페이지 분량으로, 그 외 암즈 매거진 연재 카툰 칼럼, TRPG 리플레이 만화, 기타 칼럼과 일러스트로 구성된 하야미 라센진 작품집입니다.

"마차마 전기"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잡상노트", 문효섭의 "강철의 대지"와 굉장히 유사한 가공의 밀리터리 역사 만화입니다. 실제로 있었음 직한 병기 - 두프르카프루 왕국의 왕립 장갑 코끼리 부대, 장갑취사차, 남미 소국의 늪지 장악을 위한 장갑 갤리선, 아프리카 바오밥 부대의 펄스제트 전투기 플라밍고, 이라크전에 참전한 장갑 3륜차 등 - 와 그 일화들을 그럴듯하게, 그것도 인간미 넘치는 유머러스함으로 그려낸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앞선 두 작품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인물과 무기들 묘사가 좋은 것은 물론이고, 오타쿠다운 디테일과 고증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1, 2차 대전 지식은 관련된 서적 몇 권 읽어본 것이 전부인 저 같은 풋내기 매니아에게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수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상의 제도 왕국 - 서방 공화제 전쟁 이야기보다는 2차 대전같은 실제 전사를 무대로 한 이야기가 훨씬 좋았습니다만, 이야기들 모두 평균 이상의 수준입니다.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TRPG 리플레이 만화는 게임 소개라는 취지에도 적합하지만, 만화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스테로이드 퀘스트"라든가 "바바리안 킹"은 게임 자체에도 꽤 흥미가 갔을 정도입니다. 이런 류의 스토리텔링 창작 게임들은 창작 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말이죠. 여튼, 그야말로 "소개" 만화의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좋겠네요.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그림 좀 그리는 오타쿠가 자신의 관심 분야를 궁극으로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정말 좋아하면서, 즐겨서 그렸구나 싶은 생각이 읽는 내내 드는 즐거운 작품이었어요. 아... 저도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부럽네요. 

번역도 아주 좋아서 오역 없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 없으며(번역가 진정숙 씨에게는 고료를 2~3배를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빼곡한 글들을 번역한 정성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손글씨를 한글화한 수준도 높습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중간중간 페이지 낭비스러운 짤막한 일러스트 등이 잉여스럽기에 약간 감점했지만,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해요. "잡상노트"가 이렇게 번역된다면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다만, 추천드리기에는 좀 어렵습니다. 밀리터리나 TRPG 쪽에 관심이 없다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책이거든요.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이 있다면 재미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2025/10/05

단다단 시즌 2 (2025) - 야마시로 후가 / 아벨 공고라 : 별점 2점

시즌 1에서 바로 이어지는, 전 12화 구성의 시리즈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전 시즌처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과 빌런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특히 '기대 밴드'는 이번 시즌을 대표하는 신스틸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성불굿 공연 장면은 연출, 음악, 분위기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라서,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시즌 2를 기억할 이유가 될 정도입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인물은 사카키 킨타입니다. 전형적인 비호감 오타쿠 캐릭터지만, 개그와 SF 오타쿠라는 설정이 적절히 어우러져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드는 덕분이지요.

액션 장면들도 다양한 스타일로 구성되어 시각적으로 풍성한 재미를 줍니다. 사안과의 맨몸 격투, 몽골리안 데스웜이라는 괴생명체와의 전투, 음악실에서 벌어지는 음악 유령들과의 결전, 대괴수 바모라와 거대 나노로봇의 충돌 등 격투 방식도 장르도 각기 달라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이러한 하이라이트 사이에 모모가 아르바이트하는 메이드 카페에 오카룽이 찾아가는 에피소드처럼, 잔잔한 일상의 감성을 살짝 끼워 넣은 구성도 좋았고요.

하지만 단점 역시 뚜렷합니다. 우선, 시즌 초반을 차지한 사안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분량이 깁니다. 무려 4화 분량을 할애했지만, 그 정도의 이야기 밀도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특정 에피소드와 인물에 집중한 탓에 아이라, 모모의 할머니, 터보 할멈 같은 기존 캐릭터들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점도 아쉬웠고요. 게다가 사안은 매력도 부족합니다. 그의 과거사는 시즌 1의 '아크로바틱 찰랑찰랑' 에피소드처럼 잘 연출되지 못했으며, 일상에서 펼치는 개그도 무리수처럼 느껴진 탓입니다.

작화도 전작보다 전반적인 퀄리티가 낮아진 느낌입니다. 작붕이라 느껴지는 장면들도 종종 발견되어 몰입을 방해하기까지 했습니다. 빼어난 속도감과 카메라 워크가 강점이었던 전 시즌에 비해, 오카룽의 스피드나 아이라의 아크로바틱 액션이 잘 드러나지 못하는 점도 문제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 시즌에서 보여주었던 장점은 여전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분명히 기복이 느껴집니다. 전작과 원작 팬이라면 당연히 감상할 가치가 있지만, 시즌 2만 따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합니다. 시즌 3에서는 전 시즌의 폼을 회복해 주면 좋겠네요.

2022/04/03

플레인 센스 - 김동현 : 별점 3점

플레인 센스 - 6점
김동현 지음/웨일북

비행기 개발의 역사가 아니라 '비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

개인적으로 범죄, 사건, 사고에 관심이 많은 탓에 사고 사례 소개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책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비행기 납치 사례들 소개부터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하이잭' 단어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해서, 보안승무원이 기내에서 테러범을 사살했던 1971년의 김상태 대한항공 월북 기도 사건, 베트남전에서 퍼플 하트 훈장을 수여받을 정도로 능력있는 해병대원이었던 라파엘 미니첼로가 월급 횡령에서 비롯된 실망감에 미국에서 비행기를 납치해 모국 이탈리아로 향했던 1969년 TWA 85편 납치 사건, 무려 넉 대의 여객기를 같은 시기 피랍했던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PFLP) 비행기 납치 사건, 일본 적군파가 평양으로 향하기 위해 납치했던 1979년의 요도호 사건, 평범한 오타쿠가 비행기 납치를 시도해서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 했던 1999년의 니시자와 사건 등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꼼꼼하게 수록되어 있는 후일담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예를 들어 라파엘 미니첼로는 미국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탈리아에서 국민적 영웅이 되어 곧바로 석방되었고 본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기까지 했다는군요.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 납치 사건이 일어난 후 미국은 정예 요원에게 사복을 입혀 비행기에 탑승시키는 스카이마샬 제도를 도입했고, 그 외에도 테러를 막기 위해 좌석에서 승객에게 독극물을 주사하는 인젝션 키트나 납치범을 쉽게 격리할 수 있는 부비트랩 플로어 등의 발명이 이어졌다고 하고요. 니시자와 사건도 결국 니시자와가 지적했던 하이재킹 방지 정책이 실행되었다네요. 911 이후에는 국가의 안전이 더 우선시되어 테러범에게 납치된 비행기의 영공 진입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모두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를 일종의 통사처럼 시대순으로 모아놓은 구성도 좋았습니다. 덕분에 어떻게 비행기 납치가 시작되어서,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를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끔찍했던 비행기 사고에 대한 사례 소개도 충실합니다. 저 역시 몇 년 전 까지는 출장 등으로 비행기를 자주 탔었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네요. 언제든 저에게도 닥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집중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과냉각된 적란운 속으로 비행기가 진입했을 때, 비행기가 거대한 응결핵이 되어 순식간에 얼어붙은 탓에 추락하고 만 에어프랑스 447편 사고는 정말 무섭더군요.
기내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15분 내로 긴급 착륙하지 못하면 다 죽는다는 이야기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많은 승객들이 타고있을 비행기 내에서의 화재 진압이 왜 어려운지가 궁금했었는데, 외부 공기를 유입하기 위한 여압 시스템 때문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연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어서 순식간에 일산화탄소 중독에 빠진다니 무섭습니다. 화재 현장을 빠져나가기도 불가능하니, 정말 죽을 수 밖에 없겠어요. 그동안 있었던 기내 화재로 인한 사고들은 많은 경우 기내 흡연 탓에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황당했고요. 저도 아주 오래전, 90년대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기내에서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나는데 얼마나 무식한 짓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리튬 배터리 폭발로 인한 화재 사고가 많다고도 하는데, 앞으로 편한 마음으로 비행기 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울러 비행기를 탈 때의 주의 사항도 몇 가지 알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건 산소 마스크가 내려왔을 때 바로 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압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산소 공급이 순식간에 끊어지므로 산소 마스크를 바로 쓰지 않으면 곧바로 의식을 잃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만약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면 재빨리 뒤집어 쓰고 볼 일입니다.
사고는 아니지만, 랜딩 기어에 숨어서 밀항하려다가 떨어져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끔찍하더군요. 14세 소년 키이스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우연히 찍혔다는 아래 사진 이야기가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 외에도 스튜어디스의 탄생이라던가 콜사인, 웨이포인트 등 여러가지 비행 관련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여기서는 기장 출신 실무 전문가다운 노하우가 빛납니다. 항공 통신에 대한 소소한 디테일들처럼요. 한국과 미국의 사고 방식의 차이를 들며 원할한 무선 교신을 위한 팁을 알려주고 있거든요. 이런건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겠지요.
여객기의 양대 산맥인 보잉사와 에어버스사의 간략한 역사와 콩코드 취항 등으로 알아보는 여객기의 발전 과정과 항공사별 대표 기종 소개도 흥미로운 정보였습니다. 도판도 충실하며, 보잉과 에어버스사 기종의 차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눈길을 끕니다. 두 회사의 차이도 인상적이에요. 보잉은 인간의 판단이 더욱 중요하다는 쪽이고, 에어버스는 반대로 인간의 조작을 컴퓨터가 모두 모니터링하고 제한한다는데, 앞으로는 에어버스 쪽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들었습니다.
링크 트레이너 등 다양한 비행기 시뮬레이터 개발의 역사를 이 책처럼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도 또 없으리라 생각되고요. 한마디로 비행에 관련된 모든 것을 모아 놓은 종합 선물 세트같은 책이에요. 간만에 좋은 독서를 했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좀 과하기는 했습니다. 위도, 경도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요약해서 풀어놓지는 못했고,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한 린드버그의 모험담도 억지로 수록한 느낌이었거든요. 이야기 목차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2013/06/23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 에드 멕베인 외 / 홍한별 : 별점 3점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 6점
에드 맥베인 외 지음, 린다 랜드리건 엮음, 홍한별 옮김/강

EQMM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쌍벽을 이루는 미스터리 잡지인 AHMM (앨프리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의 50주년 기념 선집.

과거 엘리너 설리번이 엮었던 같은 잡지 걸작선은 이미 접해보았는데, 이 선집은 서문에서 밝히듯 독자 투표가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인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진이 정말로 화려해요. 헨리 슬레서, 에드워드 D 호크, 에드 멕베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빌 프론지니, 로렌스 블록, 새러 패러츠키 등의 작품들이 실려 있으니까요. 그것도 32편이나! 작품들도 작가들의 유명 시리즈들 중심이라는 점도 반가운 요소였고요. (제가 아는 시리즈는 매튜 스커더와 워쇼스키 시리즈밖에는 없었습니다만)

그러나 수록작 모두 수준이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추리와는 동떨어진 작품도 많았고요.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문체가 딱딱해서 쉽게 읽기 힘들었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에드워드 D 호크의 "긴 추락"이 "내려가는 동안"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제가 취미삼아 번역했던 결과물이 더 읽기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워낙 다양한 작품이 많이 실려 있기에 평균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히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도 볼륨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만큼, 관심 있으신 분들은 큰 부담 느끼지 말고 한 번쯤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헨리 슬레서 "사형 집행일"

아내를 죽인 범인에게 사형 선고를 받게 만든 검사 셸비 앞에, 그 사건의 진범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노인이 나타났다...

단편의 명수답네요. 깔끔하고 짤막한 분량 안에 스릴과 범죄, 동기, 반전까지 모두 들어 있거든요. 이런 쇼트쇼트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제임스 홀딩 "살인요리법"

은퇴한 요리사가 자신의 전설적 요리인 포타주 프랑수아 프르미에 비법을 노리는 조카 부부에게 맞서는 이야기. 짤막하지만 적절한 전개 및 반전이 잘 짜여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계획을 눈치챈 뒤에 벌이는 반격이 과연 프로 요리사! 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기발했어요. 마지막의 한마디 - "포타주 드 볼라유 귀스타프 – 쥐약으로 간을 한 스프"- 까지 요리사다움을 잃지 않고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윌리엄 브리튼 "역사적 오류"

옛 풍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을에 역사학자 노먼이 억류된 뒤 고난을 맞는다는 이야기. 

폐쇄된 마을에 찾아온 이방인이 겪는 기이한 경험이라는 소재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보통 "인스머스의 그림자"처럼 마을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설정이 많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마을이 고증에 집착하는 오타쿠스러운 곳이라서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을 가져다 주는 이색작입니다. 데미 무어가 출연했던 코미디 영화 "난폭한 주말"이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물론 영화는 망작이었지만...)

S.J 로잔 "바디 잉글리쉬"

중국계 미국인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가 돋보이는 본격물입니다. 한국 막장드라마 같은 설정도 꽤 인상적이었어요.

캐럴 케일 "하수구"

궁지에 몰린 남자에 대한 일상계 서스펜스 심리 호러물. 전개가 뻔할 뿐더러, ‘미쳐버렸다’는 결말은 너무 쉽게 간 듯해서 아쉽지만, 뭔가 꽉 막힌, 그야말로 탈출구 없는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가 제대로라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2026/03/20

지뢰 글리코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3점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인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 아오사키 유고의 단편 연작집입니다. 2024~25년에 걸쳐 일본의 4대 미스터리 랭킹 1위를 휩쓸었던 작품이지요. 저 역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재미는 있었습니다.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유쾌함과 만화적인 설정, 그리고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본격 미스터리를 보다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게임’의 영역으로 끌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도 단점을 최소화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속에는 모두 다섯 가지 게임이 등장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일반적인 게임이지만, 여기에 약간의 변주를 더했다는 점에서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게임은 ‘정확하게 정해진 조건’ 아래에서 진행되며, 그 조건의 허점을 파악하고 상대를 교묘하게 속이는 플레이어가 승리하게 되고요. 이러한 점 덕분에 단순한 놀이를 넘어 두뇌 게임으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전해줍니다. 계단 오르기나 가위바위보에 더해진 약간의 변주만으로 순수한 두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니! 이 아이디어만으로도 여러 랭킹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어 보입니다.
축제 때 좋은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든가, 마음에 들지 않는 카페 주인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라든가 하는 등 비교적 일상적인 이유인 게임의 목적들도 마음에 듭니다.

주인공인 이모리야 마토도 꽤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놀라울 정도의 분석력을 지닌 천재이기는 하지만, 게임 이외의 부분에서는 그렇게 기이한 면모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사연이나 기묘한 습관도 없는,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여학생입니다. 구누기 선배에게 거는 장난스러운 모습이 본래 모습처럼 느껴질 정도에요. 아래 만화판 이미지처럼요.
친구이자 주요 화자인 고다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하며, 다른 등장인물들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충분히 현실에서 있을 법 합니다.

그러나 사립 세이에쓰 고교와 화폐처럼 유통되는 S칩을 걸고 게임을 벌이는 후반부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거의 1억 엔에 가까운 돈이 걸린 게임까지 등장하는데, 이는 도박 실력이 학교 내 서열을 결정한다는 "카케구루이" 수준의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처럼 느껴집니다.
세이에쓰 고교와 얽히면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예를 들어 학생회장 사부리나 이모리야와 비슷한 수준의 게임 천재인 우키타 에소라 등도 앞서 등장했던 평범한 학생들과는 상당히 다른, 다소 비현실적인 면모를 보여 마음에 들지 않네요. 마토가 세이에쓰의 용벙(?)처럼 활약한다는 여지를 남기는 에필로그도 영 별로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게임을 고도의 두뇌 게임 영역으로 끌어들인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등장하는 이야기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뢰 글리코 :

학원제 때 옥상의 사용권을 놓고 마토와 학생회의 구누기 선배가 ‘지뢰 글리코’라는 게임으로 대결합니다. 가위바위보로 이긴 플레이어가 3의 배수만큼 계단을 올라가는 게임인데, 서로 계단에 ‘지뢰’를 장치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마토가 장치한 지뢰에 걸린 구누기 선배가 3연타로 30계단을 미끄러져 패배하고 맙니다.

3의 배수로 올라가는 상황을 이용하는 초반부 전개, 그리고 설치한 지뢰 위치에 선배가 서도록 유도한 마지막 승부는 볼 만합니다. 그러나 구누기 선배가 마토의 지뢰를 모두 밟아 열다섯 계단 차이가 벌어진 뒤 바로 패배 선언이 이어지는 결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위나 보로 이기면 여섯 계단씩, 바위로 이기면 세 계단을 올라갈 수 있으니 3연승만 하면 따라잡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두뇌 게임이라면 모를까, 순수한 가위바위보 승부라면 3연승 정도는 그리 낮은 확률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님 쇠약 :

카루타 카페에 출입 금지당한 카루타부를 위해, 카페 사장과 마토가 백인일수 카루타와 ‘신경 쇠약’을 결합한 ‘스님 쇠약’ 게임으로 승부를 벌입니다.

그런데 ‘두뇌 게임’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장 아쉬운 이야기였습니다. 카페 사장은 카루타 카드에 몰래 표시를 하여 사기 게임을 하고 있었고, 이를 간파한 마토가 카드를 바꿔치기해 승리합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카드 마킹을 새로 한 뒤 바꿔치기한다는 방법 자체도 비현실적이고, 마지막 카드 조합 역시 운의 비중이 너무 큽니다.

차라리 사기를 고발해 망신을 주는 편이 학생들 입장에서는 더 현실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자유 규칙 가위바위보 :

마토를 마음에 들어 한 학생회장 사부리 선배가 ‘자유 규칙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리자고 제안합니다. 선배가 이기면 마토는 학생회에 들어가고, 마토가 이기면 선배가 마토의 중학교 동급생 에소라와의 진검 승부를 만들어 준다는 조건입니다.

‘자유 규칙 가위바위보’는 일반적인 가위바위보에 두 명의 플레이어가 각각 ‘독자손’을 추가해 7전 4선승제로 겨루는 게임입니다. 독자손은 형태와 이름을 정하고 그 효과를 설정할 수 있는데, 최소한 한 종류의 손에는 반드시 져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세부적인 설정들이 꽤 복잡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마토는 ‘형태가 일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교묘하게 활용해 마지막 대역전승을 이끌어냅니다. 핵심은 중반 이후 고다에게 부탁한 핫초콜릿을 마시기 위해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했던 장면입니다. 왼손과 오른손은 전혀 다른 손이므로 사실상 무효가 되어 그 판에서는 패배한 셈이었는데, 사부리 선배는 이를 독자손 설정의 효과로 오해해 마지막에 패배하고 맙니다.

이처럼 평범한 게임에 약간의 변주를 더해 두뇌 게임으로 만든 점이 인상적인 이야기이며, 주어진 조건을 정확히 파악해야 이길 수 있다는 전제도 가장 잘 구현된 작품입니다.

물론 사부리 선배가 이 게임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제안했던 ‘스네일’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편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달마 인형이 셈했습니다 :

에소라와의 진검 승부를 마련하기 위해, 먼저 사립 세이에쓰 고교 학생회와 게임을 벌입니다. 그들의 ‘S칩’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승부 게임은 ‘달마 인형이 셈했습니다’로, 방법은 한국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거의 같습니다. 다만 표적(술래)은 몇 개의 단어로 외칠지를 먼저 정하고, 암살자(공격자) 역시 몇 걸음을 움직일지를 미리 선언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사실 게임을 만든 스도는 그동안 잔꾀를 부려 ‘0’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숨겨 왔고, 그 덕분에 항상 승리해 왔습니다. 암살자는 최소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게 마련이니,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모리야는 이 트릭을 간파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표적에게 여러 가지 제한 조건을 걸어 둡니다. 예를 들어 떡갈나무 정면만 보고 움직여야 한다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그리고는 표적이 보지 못하는 공원 밖으로 돌아 나간 뒤, 떡갈나무 뒤편으로 걸어 들어가 표적을 붙잡는 데 성공합니다.

주어진 조건을 활용해 승리한다는 두뇌 게임 측면에서는 흠잡을 데 없습니다만, 세이에쓰의 오케가와가 엄청난 청력으로 숫자를 추측한다는 설정은 다소 과합니다. 또한 비현실적인 거액이 게임에 걸리는 전개 역시 마음에 들지 않고요. 게다가 스도의 필승법도 소문이 나면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점에서 그다지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4 Rooms Poker :

마토가 호적수 에소라와 S칩 전액을 걸고 세 장의 카드로만 패를 만들어 겨루는 포커 게임으로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처음 받은 카드는 버리고 한 번 다시 받을 수 있는데, 일반적인 포커와 다른 점은 플레이어가 제한된 시간 안에 카드를 가지러 네 개의 무늬 방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 방에 놓여 있는 카드 중 원하는 카드를 직접 가져오는 방식이지요.

등장하는 게임 중 조건이 가장 많고 복잡하며 여러 장치들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조건들 가운데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방에 불까지 지른다는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생각되네요.

마지막 승부 역시 아쉽습니다. 아무리 카드의 뒷면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에소라가 최후의 승부 순간까지 뒷면의 색깔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탓입니다. 만약 그녀가 마지막 순간에 뒷면을 보고 자신이 들고 있는 카드가 원래의 카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다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여기에 모든걸 걸기에는 너무 확률이 낮지 않나 싶어요.

무려 1억이라는 판돈을 쿨하게 포기하는 결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토의 성격이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은 몸을 팔 생각까지 했는데 그걸 이대로 퉁친다는건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9/03/22

최근 읽은 추리만화 감상

탐정이 되는 893가지방법 1 - 6점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사카모토 아키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살육에 이르는 병"으로 유명한 신본격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가 스토리를 담당한 추리만화입니다. 분위기 있는 표지와 작가의 전작 탓에 진지한 작품이 아닐까 싶었는데 내용은 의외로 코미디에 가까운 유쾌한 작품이더군요.

1권에는 "쓰레기 주택"과 "스토커"라는 두가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쓰레기 주택"은 동경대 출신의 자격증 오타쿠인 주인공 나카지마 마모루가 대학 선배 미쿠리야 진과 우연히 만나 미쿠리야가 운영하는 심부름 센터에 취직한다는 등의 기본 설정 소개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서 본편 이야기가 좀 길어진 감이 없잖아 있더군요. 그래도 "쓰레기를 모아놓아 인위적으로 조성된 밀실" 이라는 설정 자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쓰레기를 모아 놓은 동기라던가 트릭이 그다지 깔끔하지 못했다는 것은 좀 아쉽지만 추리만화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는 나름 합격점이랄까요. 결말도 괜찮았고요. 그런데 두번째 이야기 "스토커"는 사실 1권에 마무리 되지 않기에 잘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트릭이 나올법한 전개는 아닌데, 2권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총평하자면,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것 치고는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그냥저냥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유쾌한 분위기와 뭔가 미묘한 작화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앞으로를 기대해 볼 만할 것 같아 별점은 3점주겠습니다. 그나저나 제목은 대관절 무슨 뜻인지???


환영 박람회 2 - 8점
토우메 케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전에 읽고 마음에 들었던 다이쇼시대를 무대로 한 추리 단편 만화 "환영박람회" 2권입니다. 2권에는 "황천에서 온 자객" 과 "이중무대"라는 두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황천..."은 좀 짤막한 단편이고 "이중무대"는 중편 길이인데 "이중무대" 도 본편의 이야기보다는 마야라는 캐릭터에 숨겨진 비밀과 수수께끼를 서서히 드러내는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 많기에 실질적으로는 단편이라고 봐야겠죠. 추리적으로 본다면 "황천.."은 트릭은 별다를 것이 없지만 범인의 정체에 대한 설정이 꽤 그럴듯했고, "이중무대"는 상당히 잘 짜여진 복수극이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이중무대"의 경우 여러가지 약점 - 범인들의 행동이 예상대로 갈 것이라는 것을 특정하기 힘들고 실제로 범인들이 다가올지 안올지도 모른다는 등 - 이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신의 뜻" 이라고 끝맺기에 나름 설득력있게 이야기를 정리한 것 같아요. 좀 반칙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는 잘 어울렸거든요. 앞으로도 마야의 수수께끼 보다는 보다 추리적인 내용에 집중해 주었으면 합니다만, 3권을 지켜봐야겠죠. 별점은 4점입니다.

2015/10/09

라면이란 무엇인가 - 가와이 단 / 신은주 : 별점 1.5점

라면이란 무엇인가 - 4점
가와이 단 지음, 신은주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수많은 요리 만화 중에서 재미 면에서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라면 요리왕"의 작가 가와이 단이 새롭게 선보인 라면 만화라고 착각해서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맥이 풀릴 정도로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라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시공을 초월하며 출몰하는 주인공 '박학다식 선생' 운치쿠 유조의 입을 빌려 대사로 전달하는, 일종의 라면 설명 찌라시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있는 드라마라면, 라면 오타쿠인 운치쿠에게 반한 아이쓰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라면 공부를 시작한 남자친구 쇼짱 이야기 정도인데, 이조차도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아 사실상 이야기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고 라면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냥 대사 처리와 관련 라면 컷 한 장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장황한 설명이 함께 이어지고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라면의 뿌리는 중국, 1871년 청일수호조약으로 많은 중국인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일본으로 이주한 후 처음 만들어졌지. 1880년, 요코하마에 2172명, 고베에 516명, 나가사키에 594명의 중국인이 살고 있었지. 요코하마엔 난징 거리가 생겼고, 이곳을 다닐 수 있는 일본인은 무역, 해운, 세관 일을 하는 한정된 사람들뿐. 이 즈음 등장한 일본 최초의 라면은 담백하게 소금 간을 한 돼지고기 국물에 하얗고 부드러운 면을 넣은 것으로 '난징 소바'라고 불렀는데 요즘 라면과는 꽤 거리가 있었지."

이런 식의 설명이 한 페이지를 차지할 정도로 이어지며, 컵라면을 설명하는 챕터 역시 "기적의 프로젝트 X : 컵라면의 탄생" 쪽이 훨씬 드라마가 있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래도 작가가 정말로 라면을 사랑하는구나 싶기는 하더군요. 지루하긴 해도 라면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 수 있을 만큼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덕분입니다. "라면 요리왕"보다도 꼼꼼해서 완성도도 높고요. 무엇보다도 정보 전달이 중심이긴 하지만, 워낙 많은 정보를 소개하고 있어서 새롭게 안 사실도 많습니다.
덧붙이자면, 주인공 운치쿠 유조는 미디어 팩토리의 학습만화 고유 캐릭터라고 합니다. 이 학습만화 시리즈가 원래 이런 스타일이라면, 그러한 정보를 미리 알지 못했던 제 잘못도 분명 있겠지요.

그러나 별점은 1.5점입니다. '라면 만화'로서는 최악의 만화로, 성립을 위한 최소한의 이야기조차 없는 구성이었기에 도저히 점수를 더 줄 수 없었습니다. 단, "라면 정보" 부분에서 그나마 0.5점을 얹었습니다. 가격도 꽤 비싼 편이었는데 전혀 제값을 하지 못한, 근래 보기 드문 최악의 충동구매 서적입니다. 어떤 책인지 꼼꼼히 알아보지 않고 구입한 제 잘못이긴 하지만, 입맛이 씁니다.

2018/04/29

매스커레이드 이브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매스커레이드 이브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한국 한정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매스커레이드 호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몇 년 전 전편을 읽고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 단편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평을 남겼는데, 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던 걸까요? 이번에는 전편 시점에서 수년 전을 무대로 하고 있는 중, 단편집입니다. 전부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와 강력 사건이 적당히 섞여 있는 구성으로 모든 이야기가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주제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은 좋지만, 추리적으로는 영 별로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루키 형사의 등장" 편을 제외하면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힘든,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시리즈보다는 못한 범작입니다. 작가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면도 제각각"

신참 호텔리어 야마가시 나오미는 업무 때문에 투숙한 옛 연인 미야하라의 급작스러운 부탁으로, 그의 불륜 상대인 니시무라 미에코를 찾아 나서는데...

전편의 주역 중 한 명인 나오미가 신참 호텔리어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과거사, 신참으로서 호텔리어의 사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 전반적으로 젊음이 한껏 느껴집니다.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는 결말도 괜찮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미야하라의 보스인 전 프로야구 스타 "대장" *오야마가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걸 알아내는 장면은 그럴듯 했지만, 미에코가 현재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부분은 나오미가 우연히 본 룸서비스 주문 내용을 통한 것으로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탓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루키 형사의 등장"

전편에 나오미가 등장하니 이번에는 당연히 닛타 형사가 등장할 차례죠? 닛타가 신참 형사일 때 맡았단 요식업자 거부 다도코로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실제 사건만 놓고 보면 범인이 운이 좋아서 당장 체포되지 않은 것 뿐, 경찰 수사가 조금만 더 이루어졌더라면 금방 체포되었으리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도코로 미치요의 요리 학원 수강생들에 대해 수사만 진행했어도 요코모리 히토시를 유력 용의자로 끄집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범행 현장의 특수성에 따라 범인이 자전거를 탔다고 추리한다던가, 현장의 담배 꽁초는 위장이고 어딘가에서 입수한 것이라는 추리는 꽤 그럴듯 했으며, 무엇보다도 다도코로 미치요가 남편 살해를 사주한 진짜 악녀라는게 드러나는 마지막이 아주 괜찮았어요. "입술 틈새로 분홍빛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 표정은 사냥감을 노리는 뱀을 연상하게 했다"는 일본식 팜므파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묘사, 남자를 조종하여 완전 범죄를 성공시키는 모습은 한 편의 등장으로 그치는 게 아깝다 싶을 정도였어요. 다도코로 미치요 캐릭터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면과 복면"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에 유명 신인 복면 작가 다치바나 사쿠라가 작업 때문에 투숙하자,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오타쿠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데...

핵심 수수께끼인 다치바나 사쿠라의 정체가 중년 아저씨가 아니라 그녀의 딸이라는걸 비교적 쉽게 눈치챌 수 있다는 문제는 큽니다. 때문에 두 명이 투숙한 상황이라는 진상을 쉽게 눈치챌 수 있고, 중년 아저씨의 외근과 편집자와의 통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의 소소한 수수께끼 역시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품으로 쉬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호텔 퀸시" 의 또 다른 에피소드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매스커레이드 이브"

닛타는 공대 교수 오카지마 살인 사건 수사를 위해 교통과에서 지원나온 젊은 여경 호즈미 리사와 팀을 꾸렸다. 유력한 용의자는 특허 사용에 따른 거대 이권이 얽힌 준교수 난바라인데, 그는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 그러나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핑계와 함께 정작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는 제시하지 못했다. 사건 당일 난바라가 투숙한 호텔에서 일하는 나오미는 수사를 나온 호즈미 리사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이자 작품집의 핵심인 1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중편입니다. 하지만 대미를 담당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비하면 분량도 너무 길고요. 

우선, 범인이 난바라라는게 너무 명확한데 왜 구속 수사를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교환 살인" 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리 특별한 아이디어도 아닐 뿐더러, 난바라와 함께 투숙한 여성이 하타케야마 레이코라는 게 밝혀지면 구태여 교환 살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쉽게 해결될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전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 내부 DB에 남아 있지 않을리가 없잖아요? 경찰 내부에서 레이코가 유력한 용의자였던 이무라 유리 사건만 짚어내면 이 사건을 난바라와 엮어 생각하는 건 추리도 뭐도 아닙니다.
레이코 일당이 왜 약속한 날이 아니라 그 전날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하면 의심을 살 수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이럴거면 차를 옮겨 하루의 시간을 벌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두었더라면 호즈미 리사의 말대로 지갑을 가져간 강도의 소행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난바라가 투숙했던 오사카 호텔에서 근무하던 나오미가 난바라와 레이코를 엮어서 생각하게 되는 향수 이야기는 작위적이기 짝이 없어요. 짙은 향수 냄새로 두 명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는 설정이야 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타월을 무심코 가지고 나가다가 돌려준다는 건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닛타 형사와 함께 짝을 이룬 명랑하고 단순하면서도 의욕 넘치는 호즈미 리사 캐릭터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문제라면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 (오다 유지)와 별로 다를게 없는, 수사 본부에 지원 나온 교통 경찰 캐릭터라는 겁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보아 온 탓에 읽다보니 식상해 지더라고요. 차라리 호즈미 리사의 단순한 추리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끌어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이래서야 '캐리어'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패배 의식만 심어줄 뿐입니다.

이렇게 단점이 더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오미 - 닛타 컴비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억지만 없었더라도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5/12/26

월간순정 노자키 군 1~6 - 츠바키 이즈미 : 별점 3점

월간순정 노자키 군 6 - 6점
츠바키 이즈미 글.그림/학산문화사(만화)

추석 때 본가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형이 강추해서 덥석 빌려온 만화입니다. 읽은지 한 분기가 지났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올리네요. 

4컷에 가까운 짤막한 개그가 이어지는 개그 만화입니다. 캐릭터 의존 개그와 오해·착각에 기인한 개그로 나뉘는데, 캐릭터 개그는 이런 류의 만화에서는 정석이라 할 수 있어서 특별히 이야기할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190cm의 장신에 과묵하지만 실상은 월간 연재 순정만화가인 노자키군,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미남이지만 실상은 애니메이션 오타쿠에 수줍음 많은 미코시바 등, 비현실적이며 개그 만화답게 과장되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눈살 찌푸려질 정도로 억지스러운 설정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노자키와 주변 친구들은 뻔하지만, 상식적인 편집자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조합 자체는 "아즈망가 대왕" 시절 이래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대책 없는 어른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어른 컴비이기는 한데 선생님이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에요.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만화에서 어른 역할로 선생님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은 거의 처음 본 것 같기도 합니다.

평작 수준인 캐릭터 개그에 비해,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 개그는 정말 대박입니다. 사쿠라와 노자키의 첫 만남에서 노자키가 사쿠라를 자신의 팬으로 오해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로렐라이가 유즈키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와자키를 활용한 개그라든가, 동료 만화가 미요코와 노자키의 대화를 듣고 오해하는 미요코의 대학 친구들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6권까지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정말 재미있네요. 제 평생 이 설정이 실패한 적은 없어요. "바쿠만"이나 "아오이 호노오"가 대박 나기 전부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2015/10/11

퍼시픽 림 (2013) - 기예르모 델 토로 : 별점 3점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일본 특촬물을 헐리우드에서 구현해 낸 작품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포털을 통해 거대 괴수가 지구를 침략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 범지구적인 기술과 자본이 결집된 "예거"와 한판 승부를 벌입니다. 그러나 예거를 능가하도록 업그레이드된 괴수들이 침략을 이어가자 이를 막기 위한 일종의 결사대가 조직되어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내용은 별볼일 없습니다. 괴수의 침략을 예견한 박사가 등장하거나, 지구인들의 꿈과 희망을 모아 영웅에게 보내는 원기옥 클리셰 같은 것은 빠져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야기를 보기 위해 보는 영화가 아닙니다. 거대 괴수와 거대 로봇을 보기 위해 보는 영화니까요. 이 둘의 결전을 이만큼 박진감 있고 묵직하면서도 실감나게 구현한 영화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격투 신은 압도적입니다. 아이맥스로 감상하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습니다. 감독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확실히 오타쿠는 맞나 봐요.

이러저러한 설정 면에서의 구멍은 있지만, 제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킨 작품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비슷한 기획물로 "고질라"가 있지만, 이야기와 영상 모두 이 작품이 훨씬 낫다고 생각됩니다. 미국 내 흥행이 부진하여 후속편 기획이 무산될 위기에 있었으나, 해외 흥행으로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하는 만큼 속편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