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오스틴 프리먼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오스틴 프리먼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11/03/06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원은주 : 별점 3.5점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 8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시공사

귀금속 거래업자인 존 혼비는 자신이 금고에 넣어둔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증거는 금고 바닥 메모지에 선명한 피 묻은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수사 결과, 그 지문의 임자가 혼비 씨의 조카 루벤의 것으로 밝혀져 그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손다이크 박사는 사건 의뢰를 받은 뒤 루벤의 무죄를 확신하고 친구 저비스, 충직한 하인이자 기술자 풀턴과 함께 독자적인 과학 수사 기법을 활용하여 그를 돕는데...

1907년에 출간된 법의학의 선구자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첫 작품. 국내에는 동서에서 중단편집 "노래하는 백골"이 출간되어 있고, 국일미디어의 "암호 미스터리 걸작선"에 단편 한 편이 수록되어 있는 정도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인데 이렇게 소개되니 무척 반갑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지문'에 대해 깊게 탐구하고 있으며, 범인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단지 루벤 혼비의 누명을 벗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즉, '트릭' 자체에만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인 오스틴 프리먼의 지론이 "독자는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낀다"였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려 100년도 전에 나온 작품이니 만큼 대단한 추리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핵심 트릭 자체가 많이 낡은 발상이니까요. 또, 낡은 방식의 뻔한 전개 덕분에 독자는 범인이 누군지 쉽게 짐작하게 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아울러 화자인 저비스 박사의 애정 행각이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전통적인 추리 애호가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무척 재미있었지만요..)

하지만 범인이 쉽게 드러나고 트릭이 별 볼 일 없다고 해서 이 작품이 추리 소설적인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도 잘 모르는 '지문'에 대한 속성을 이미 이 시기에 작품으로 쓸 만큼 (그것도 재미있게!) 깊게 파고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거든요. 특히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기초하여 트릭을 파헤친 손다이크 박사가 마지막에 벌이는 법정에서의 반전쇼는 여타의 법정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벌어지는 손다이크 박사 암살 음모에 대한 디테일 역시 대단합니다. 기묘한 총알에 대한 설명, 불시에 날아온 소포의 포장만 보고도 범죄를 예감하는 추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펼쳐지는데, 그 아이디어가 10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반에 잠깐 등장하는 역장에 대한 추리 역시 당대 셜록 홈즈의 라이벌다운 풍모가 느껴졌고요.

앞서 말한 일부 단점들, 지금 읽기에는 낡은 전개는 감점 요소지만 그래도 이 작품의 장점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며 출간 자체만으로도 기쁜 일이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고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길.

덧붙여 아주 예쁜 디자인과 판형이라는 점과 함께 충실한 번역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서판은 특유의 일본어 중역 덕분인지 손다이크 박사의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웠는데, 이 작품에서는 과묵하지만 냉철한 지적인 미남자(!) (여기서 제일 놀랐습니다. 왜인지 할아버지 이미지였거든요)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니까요. 과거 불만이었던 "노래하는 백골"도 제대로 된 완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2013/12/06

오시리스의 눈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이경아 : 별점 3점

오시리스의 눈 - 6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이경아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만장자이자 이집트학의 권위자인 존 벨링엄이 친척집에 방문한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실종되었다. 근처에서 실종 당일 몸에 지니고 있었던 스카라베 장식만이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2년 후, 의사 버클리는 왕진 중에 존의 동생 고드프리를 진료하게 된 인연으로 그의 딸 루스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존의 실종과 그의 기이한 유언으로 인해 궁핍해진 고드프리와 루스를 돕기 위해, 그리고 불거진 유산 문제로 버클리는 은사인 손다이크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뒤이어 늪지대에서 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되는데...

오스틴 프리먼의 명탐정 손다이크 박사가 활약하는 장편. 1911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 책까지 나오다니 정말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국내 출간된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작품입니다(그래봤자 서너권이지만...). 대표작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네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미있거든요. 사건은 딱 한 개, 존 벨링엄 실종 사건 뿐인데 복잡한 유언장을 엮어서 흥미롭게 전개하고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두 개의 트릭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트릭 두 개 모두 지금은 널리 알려진 단순한 것이지만 사건에 딱 맞게 적절하게 쓰여 감탄을 자아내고요. 단순해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특히, 제목에서부터 중요하게 언급하는, 고대 이집트 유물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사체 은닉 트릭이 볼거리입니다. 지금은 흔한 수법이지만 작품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충분히 원조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하여 트릭을 파헤쳐 진상을 밝혀내는, 고전 "정통 본격물"다운 미덕도 장점입니다. 추리의 과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넘치는 것은 당연하고요. 과학 수사로 유명한 손다이크답게, 시대를 앞서간 증거 수집 방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X선을 이용하여 미라의 내부를 촬영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니까요.

아울러 중간중간에 버클리와 루스의 알콩달콩한 연애이야기가 적절하게 삽입되는 식의 완급조절도 아주 탁월합니다. 이러한 연애이야기는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과도 비슷해요. "붉은.."에서 화자였던 저비스가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격상(?)되었을 뿐, 그의 후배인 버클리가 동일한 역할로 등장하여 읽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드는 애정 행각을 큰 비중으로 펼친다는 점에서요. 저는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인 면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인데 출간 시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낸 것 같네요.

악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덕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똑똑한 소시오패스 캐릭터로, 출간 시대를 고려하면 상당히 독특하게 잘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의 동기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않은 점입니다. 유언장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언장의 맹점을 이용해 거금을 확보할 생각으로 잔꾀를 부렸다는 설정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의 말대로 사건의 발단이 애시당초 완전한 우연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유언장의 맹점을 활용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작중 손다이크 등의 입을 빌어 설명되듯 "그의 동생에게 유산을 남겨주기 위한" 목적의 유언장인데 말이죠. 벨링엄을 살해하고 시체를 다른 곳에 숨길 생각이었을까요?

또 이 동기를 독자는 마지막 순간에서나 알 수 있다는 점도 정통 본격물로는 약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동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 독자가 범인을 추리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으니까요. 손다이크 박사의 추리대로 범인은 그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혐의를 둘만한 설정이 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아울러 이집트 미라 안에 시체를 넣는다는 생각도 기발하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었을것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으로 묘사되는데 그러한 작업을 할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면, 다른 식으로 처리하는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었겠죠. 예를 들어 염산같은걸로 녹인다는 식으로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재미를 생각한다면 별점 3점은 충분하죠. 저와 같은 고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책도 예쁘게 잘 나왔지만 뒤의 해설 역시 꽤 풍성해서 좋네요. 무엇보다도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 연재로 유명한 유영규 기자가 쓴 글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2019/07/07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 민웅기 : 별점 2점

31번지 뉴 여인숙의 수수께끼 - 4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민웅기 옮김/바른번역(왓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용 의사로 일하던 저비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장소로 왕진을 나가서 모르핀 중독으로 보이던 환자 그레이브스를 치료했다. 이후 저비스는 감금되다시피 이동했던 상황, 심상치 않았던 환자의 상태 때문에 사건을 친구 손다이크와 상의했다. 손다이크는 그 집이 어딘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두 번째 왕진에서 저비스는 그레이브스가 거의 사망 직전이라는걸 알고나서 왕진 후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당장은 사건성이 없다며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후 저비스는 고용 의사를 그만두고 손다이크 박사와 일하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수임한 사건은 기묘한 유언장 사건이었다. 의뢰인은 사망한 제프리 할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게 된 스티븐이었다. 그는 별 것 아닌 삼촌의 유언장 수정으로 거액을 상속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사건을 조사한 손다이크 박사는 이 사건이 저비스가 접했던 기묘한 환자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 장편입니다. 저자 사후 70년이 지나 저작권이 풀려서 번역된 것 같네요. 저작권 만료된 작품이 주로 발매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왓북'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당연히 종이책은 없습니다.

읽기 전 기대가 컸습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고전 본격물이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명이었던 손다이크 박사의 장편으로, 이전에 읽었던 손다이크 박사 장편은 모두 괜찮았기도 했고요. 그러나 기대에는 살짝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다운 부분은 전부 장점입니다. 첫 번째는 현장을 방문하여 온갖 쓰레기를 샅샅이 뒤져 단서를 모으는 등 당시의 과학 수사가 치밀하게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특히 초반에 저비스가 철저하게 마차에 가두어진 채로 미지의 장소로 왕진나갈 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경로 추적도를 만드는 장면이 일품입니다. 단순한 나무판에 나침반을 부착하고 수첩을 곁들인 정도지만, 그래도 방향이 바뀔 때의 시간 및 상세한 정보를 수첩에 자세하게 기록하는 방법은 꽤나 유용해 보였습니다. 서명을 분석하기 위해 사진 확대를 이용하는 장면은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고요. 

두 번째는 본격 추리물로서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독자는 화자 저비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쫓아갑니다. 그래서 탐정과 독자에게 모든 정보와 단서는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디테일도 상당히 좋아요. 바이스 씨는 분명히 독일인이라고 했는데 집에 커피가 없고 차만 있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독일인은 보통 커피를 마시지 차를 마시지 않는다고 하네요.
물론 몇 가지 단서들(기묘하게 생긴 갈대, 깨진 유리 조각 등) 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 정체를 알기 힘들다는 문제는 있지만, 이 정도 단서는 없어도 진상에 이르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세 번째는 당연히 손다이크 박사의 팬으로 즐길거리가 많다는 점이죠. 저비스가 의사를 떼려 치우고 손다이크 박사의 조수로 일하게 된 첫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손다이크 박사가 법의학자가 아니라 변호사로 소개되는게 특이했습니다.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고 많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진상이 너무 알아차리기 쉬운데, 저비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점입니다. 당대 독자 수준이 저비스 수준이라 이렇게 썼겠지만 지금 읽기는 너무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미 독자는 초반부, 저비스가 왕진나가 진찰했던 환자 그레이브스가 시체로 발견된 제프리라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편에 취해 결국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다는 사인, 그리고 한 쪽 눈에 두드러진 실명에 가까운 증상 등의 단서 때문이지요. 과연 누가 그를 감금하여 살해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당연히 유일하게 이득을 보는 피해자의 형 존이 유력하고요. 그리고 존이 제프리와 꽤 닮았으며 배우로 활동했다는 이력을 듣고나면 그가 제프리로 변장해서 뉴 여인숙에 거주했다는걸 모르면 바보입니다. 설형문자 액자가 뒤집혀 있었다는 증거까지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저비스는 이런 점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저비스라는 인물의 설정에도 문제가 있어요. 초반부 저비스는 분명히 능력이 있는 걸로 묘사됩니다. 홀로 그레이브스에게 왕진갈 때가 좋은 예입니다. 그레이브스 코의 안경 자국을 보고 이건 얼마 전 까지 안경을 쓰고 있다는걸 나타내므로 오랜 기간 혼수상태였다는 바이스 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걸 추리해 내거든요. 그러나 두 번째 왕진부터 바보가 되어버립니다. 의식을 찾은 피해자는 저비스가 계속 "그레이브스 씨"라고 말을 걸 때마다 당황해합니다. 누가 봐도 자기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걸 계속 놓칩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표현을 빌겠습니다. "저비스, 자네는 정말 구제불능이군". 단지 바보일 뿐 아니라 제프리 죽음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이고 범죄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를 죽게 내버려둔 셈이거든요. 손다이크가 악당들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까지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핑계는 단지 바쁘다는 것 뿐이고요.
이래서야 아무리봐도 추리 소설의 사이드 킥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비스를 자신의 파트너로 불러온 손다이크도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추리에 있어서도 헛점이 눈에 뜨입니다. 바이스 박사가 은신처를 떠나면서 편지가 올까 두려워 열쇠를 가지고 자주 왕래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곧바로 다음 세입자가 입주해버리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변장용 안경에 반드시 돗수가 있어야 한다는 추리는 현 시점에서 보면 그닥 일리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경용도 아니고, 회중 시계용도 아닌 유리의 정체가 범인을 밝혀내는데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도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작위적인 우연, 불필요한 장치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저비스의 왕진이 사건과 겹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비스가 그레이브스 씨라고 불리운 제프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부분을 덜어내고 추리를 펼치는게 더 완성도는 높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바이스 씨의 부인이 사시였다던가, 바이스 씨와 마부는 동일인물이었다는 등의 장치는 불필요했고요.

마지막으로 사건이 밝혀지는 계기가 된 다시 쓴 유언장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확인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원래 존은 250 파운드만 받도록 되어 있었지만, 바뀐 유언장에 의해 '잔여 재산 수여자' 가 되어서 죽은 고모의 유산 3만파운드를 받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모든 유산의 수령인은 조카 스티븐인데, 왜 고모의 유산이 잔여 재산이 되어 존에게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너무 쉬운 내용이라 이렇게까지 길 필요가 없었고, 특히 저비스의 왕진 부분은 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손다이크 박사의 팬이시라면 모를까,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1/12/19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마틴 에드워즈 / 성소희 : 별점 2.5점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6점 마틴 에드워즈 지음, 성소희 옮김/시그마북스

영국 국립 도서관에서 발간한 고전 범죄소설 시리즈를 읽을 때 참고할 안내서입니다. 19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출간된 소설 중 범죄 소설에 초점을 맞춰 모두 102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시기별, 장르별, 특징별로 상세하게 범주를 구분하고, 범주별로 왜 그 작품을 선정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덕분에 소개된 작품만 읽어도, 고전 추리, 범죄 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황금기를 지나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통 고전 본격물'을 일컫는, 이른바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면 저자는 1차대전 이후 전쟁에 지친 대중이 현실 도피와 함께 흥미진진한 게임을 원했기 때문에 이 분야가 탄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점점 소설 속 탐정과 지혜를 겨루는 작품이 많아졌으며, 그 결과 오락거리로 즐기는 가벼운 문학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이른바 범죄 소설의 '황금기'가 바로 이 시기인겁니다. 복잡한 퍼즐, 이야기 속 단서 삽입, 독자를 현혹시키는 여러가지 장치들을 선보이기 위해 장편 형식이 유행하게 된 것도 필연이었고요. 

또 불가능 범죄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편 형식이 가장 잘 맞는다는 주장도 기억에 남습니다. 독자가 불신을 유예하는 시간, 즉 사실주의에 입각한 비판을 멈춰놓는 시간이 짧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저 역시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리뷰를 쓸 때는 "생각해보니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다'고는 해도, 최소한 읽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할 틈 없이 두뇌 게임만을 온전히 즐기려면 이야기가 길면 안 되겠지요.

이런 추리소설 통사적인 측면 말고도, 작품별 소개글도 수준이 높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진짜 흥미를 자아내는 선까지만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전혀 없는 내용 요약도 일품이며 소개된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도 충실히 수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상화 버젼에 대한 정보가 아주 디테일해요. 영화는 물론, TV 시리즈까지 모두 소개하고 있으며, 심지어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에서, 통제 불능 상태의 로터리와 마주치는 두 번째 추격 장면은 히치콕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각색한 영화에 활용했다는 이야기까지 소개될 정도니까요. 

비슷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그 방대함과 깊이가 남다른 수준이며 그 외 여러가지 토막 정보들도 충실합니다. 바로네스 오르치의 "미스 엘리엇 사건"은 1915년 어니스트 섀클턴 경이 남극 탐험을 떠날 때 챙겨갔던 책이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가 1979년, "독 초콜릿 사건" 재판본 서문을 쓰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일곱 번째 방법을 발표했다, 우드소프의 1932년 데뷔작 "사립학교 살인사건"은 1934년 미국 사립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들 처럼요. 1931년 발표되었던 에블린 엘더의 "흑백 살인"은 주인공 샘 호더가 그린 그림이, 프랜시스 비딩의 1935년 작 "노리치의 피해자들"에서는 용의자들 사진이 중요 단서로 사용되었다는 등의 추리 소설 관련된 아이디어가 이미 20세기 초엽에 정립되었다는 정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저자의 추리, 범죄 소설 분야에 대한 방대하면서 해박한 지식에는 감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추리 소설가들이 작품을 썼던 의도들도 볼만했던 정보입니다. A.E.W 메이슨이 "독화살의 집"을 쓸 때 목표로 했던 건, 미스터리가 모두 해결된 후 추가 설명해야 하는 내용을 가능한 없애겠다는 것처럼요. 페어플레이 추리 소설의 초창기 표본인 "밤중에"를 쓴 고렐 경의 목표는 모든 필수적인 정보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하며, 고렐 경의 이 작품에서 건물 평면도, 지도 등이 처음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A.A. 밀튼은 추리 소설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탐정이 독자보다 특별한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는데, 과연 곰돌이 푸를 쓴 작가답습니다. 

가장 마음에 든 건 마이클 이네스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추리 소설은 어쨌거나 순전한 오락물이니 독자를 당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즐겁게 해 주겠다는 야망을 저버려서는 안된다"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입니다! 빅터 로렌조 화이트처치가 "다이애나 웅덩이의 범죄"를 쓸 때, 본인 스스로 왜 범죄가 일어났고 누가 범인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창작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자 뿐 아니라 작가조차도 의미를 모르는 단서들을 살펴보며 수사를 하고 글을 썼다는 건데, 발상이 참 독특했어요.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안내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내에 따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이 턱없이 부족한 탓입니다. 총 102편 중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래의 29편에 불과합니다. 절판된 책도 포함한 것으로, 실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그보다도 훨씬 적을 거에요. 이래서야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많이 퇴색할 수 밖에 없지요.

  1. "배스커빌 가의 사냥개" - 아서 코난 도일
  2. "네 명의 의인" - 에드거 월리스
  3. "브라운 신부의 순진" - G.K. 체스터턴
  4. "오시리스의 눈" - R. 오스틴 프리먼
  5. "하숙인" - 마리 벨록 로운즈
  6.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어니스트 브래머
  7. "트렌트 마지막 사건" - E.C. 벤틀리
  8. "통" -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9. "붉은 저택의 비밀" - A.A. 밀른
  10.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1. "증인이 너무 많다" - 도로시 L. 세이어즈
  12. "독 초콜릿 사건" - 앤서니 버클리
  13. "목사관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4.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5.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 이든 필포츠
  16.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7. "시행착오" - 앤서니 버클리
  18. "완벽한 살인사건" - 크리스토퍼 부시
  19. "ABC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20. "막다른 사건 부서" - 로이 비커스
  21. "살의" - 프랜시스 아일즈
  22.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23. "데인 가의 저주" - 대실 해밋
  24.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25. "붉은 오른손" -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26.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27. "수상한 라트비아인" - 조르주 심농
  28.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 H. 부스토스 도메크
  29. "야수는 죽어야 한다" - 니콜라스 블레이크

자유 추리문고에서 출간된 "포튠을 불러라"는 이 책에서 소개한 "포춘 씨, 부탁입니다"와는 다른 단편집으로 생각됩니다. 언급되고 있는 "작은 집"이라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 외 수록작은 다르거든요. 그래서 정식으로 소개된 걸로 치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개된 작품은 한 3~4권 빼고 전부 읽었기에, 별 의미없는 소개였던 셈입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한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이런 이유로 감점하여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4/12/01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레이먼드 챈들러 / 안현주 : 별점 3점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6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북스피어

레이먼드 챈들러의 다양한 편지들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서간문집입니다. 창작관과 인생관은 물론 헐리우드에서의 생활, 고양이, 아내와의 사별과 그녀에 대한 사랑 같은 일상사와 농담들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한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창작론, 창작관에 대해 쓴 편지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작가 지망생이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 챈들러 스타일로 글을 쓰는 방법. 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쓰지 않는다.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고,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아주 간단한 두 가지 규칙. 첫째, 글을 안 써도 된다. 둘째,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 작가란 몹시 고된 직업이다.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다. 글로 먹고살 가능성은 아주 낮다.
  • 창작 교육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미 출간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알아낼 수 없는 건 하나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건 인정하고 때로는 필수적이기도 하나, 그걸 위해 돈을 내야 한다면 대체로 수상쩍은 것이다.
  • 나도 그저 그런 추리소설이 너무 많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엄밀히 보면 모든 종류의 책들이 다 그저 그렇다.
  • 내가 만난 어떤 추리소설가도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좀 더 잘 쓰고 싶어할 뿐.

다른 작가와 작품을 평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임스 케인에 대해 '문학계의 쓰레기', '매춘부의 집 같다'라고까지 엄청나게 비하하는게 눈에 띕니다. 선정적이고 날것의 문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게까지 비판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중배상"의 각본을 쓴 것이 몹쓸 경험이었던 걸까요? 또 편집자에게 쓴 이러한 돌직구 평가 편지 뒤에, 제임스 케인에게 직접 쓴 편지가 이어지는 책의 구성도 재미있었습니다. 뒷담화하다가 본인과 대면한 술자리 느낌이에요. 편지의 내용은 평범했습니다만.

로스 맥도널드의 '녹이 여드름처럼 돋아있다' 같은 문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허세라고 여기는 시각도 특이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서정적 문체가 맥도널드의 작품을 다른 하드보일드와 구분짓는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요. 아무래도 챈들러는 정직한 직구 승부로 일관해서 그랬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에 대해서도 싸구려 소설이라고 매도하는데, 이는 자신과 대실 해밋의 문장을 표절한 것에 대한 정당한 비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반대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건 서머싯 몸과 오스틴 프리먼, 피츠제럴드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호평을 아끼지 않더군요. 피츠제럴드는 그럴 줄 알았습니다만 펄프 픽션의 제왕 얼 스탠리 가드너와 페리 메이슨 시리즈를 엄청나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건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문학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그다지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들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가 아주 재미있게 본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시나리오 초고를 챈들러가 썼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챈들러의 막말 때문에 히치콕이 그를 해고했고, 초고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고 하네요. 초고 그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더라면, 범죄소설과 범죄영화의 거장이 손잡은 진정한 콜라보를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말조심 좀 하지... 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한 뒤, 편지로 구구절절 자기 해명을 늘어놓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고요.

"빅슬립" 시나리오 작업 중 언급된 최고의 멋진 장면에 대한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가트와 카멘이 가이거의 집에 갇힌 뒤의 이야기인데, 덕분에 "빅슬립" 영화를 다시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습니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편지에 언급된 대로라면 정말 멋진 장면이었을 것 같거든요.

하여튼,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고, 당대 헐리우드 및 추리문학계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과 재미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서간문집입니다. 가격 대비 분량이 짧다는 점에서 감점하지만,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국내에서는 하드보일드의 거장이라서가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팔린다니 괜히 서글퍼지네요.

2011/11/05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 아서 코난 도일 외 / 정태원 : 별점 3점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 6점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태원 옮김/비채

제목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 셜록 홈즈의 인기로 촉발된 20세기 초반까지의 단편 추리소설과 시리즈 탐정물 전성기에 발표되었던 작품들을 엄선하여 싣고 있는 단편 앤솔러지입니다. 고 정태원 선생님의 유작이기도 해서 고전 단편 본격 추리물의 애호가로서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출간과 동시에 구입하였으나, 여러모로 사정이 있어 완독에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일단 690여 페이지, 모두 10명의 작가 - 30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방대함은 독자를 압도할 만합니다. 번역도 훌륭하고 각종 주석도 공들여 삽입되었으며 ,당시 삽화도 충실하게 수록되는 등 책의 만듦새도 무척 뛰어나고요. 심지어는 서표용 끈이 검은색, 빨간색 두 개가 달려있는 부분에서는 역시 추리 애호가가 만든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이러한 앤솔로지 형태 단편집에서는 처음부터 차분히 읽기보다는 여러 작품을 동시에 읽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실려있는 작품들이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낡았다는 어쩔 수 없는 단점이 존재하며,국내 초역된 작품이 적다는건 감점 요소입니다. 기존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번역 덕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기는 했지만요. 아울러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던 오스틴 프리먼의 또 다른 필명 클리포드 애시다운의 작품이나 어네스트 윌리엄 호넝의 '괴도 래플스' 시리즈가 생각보다 별로였다는 것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방대하다는 수식어가 적합할 정도로 수록작이 많기에, 눈에 띄는 작품도 제법 됩니다. 해당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여탐정 러브데이 브룩 시리즈 중 한 편인 "문간의 검은 가방".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가방과 그 속의 메모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시대적 배경과 절묘하게 결합되어 합리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마음에 드는 작품입니다. 여류 작가다운 꼼꼼함이 이러한 전개 과정에서 빛나고요. 조금 작위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나 이 정도면 충분히 홈즈의 라이벌로 평가받을만 합니다.

아서 모리슨의 마틴 휴이트 시리즈인 "포갯 살인사건", "딕슨 어뢰 사건".

"포갯 살인사건"은 작품 서두에 언급되는,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특징'이라는 주제를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증명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굉장히 낡은 설정과 캐릭터이고 추리도 별게 없는데도 덕분에 꽤 재미있었어요.

"딕슨 어뢰 사건"은 사무실에서 없어진 어뢰 설계도에 대한 이야기. 당시 작품들에 왜 이렇게 비밀무기 설계도 이야기가 많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설계도 도난 사건 장르물(?)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작품입니다. 설계도를 살짝 빼돌리는 아이디어도 좋지만 범인을 옭아매기 위한 마틴 휴이트의 활약이 대단해서 이야기의 끝까지 긴장감을 갖게 만드는 전개 역시 일품이거든요.

재크 푸트렐의 생각하는 기계 밴 듀슨 시리즈인 "녹색눈의 괴물"

국내 출간된 단편집 "13호 독방의 문제"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라 반가웠는데, 내용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럴듯한 일상계로 지금 읽어도 낡지 않은, 영원히 한결같을 여성 심리를 이야기 속에 녹여낸 독특한 작품이거든요.

딱 한 가지, 밴 듀슨 교수 캐릭터도 잘 살아있지만 그닥 뛰어난 풍모를 보이지 않는 것 하나는 좀 아쉽네요. 여자에 대해 잘 모를 교수 캐릭터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브레트 하트의 "사라진 시가상자"

홈즈 패러디물로 햄록 존스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한마디로 최고입니다. 셜록 홈즈 패러디로는 그야말로 일급으로 이른바 셜록 홈즈식 귀납법 추리의 오류와 문제를 너무나 진지하게 풀어나가면서도 어떤 점이 개그의 포인트인지를 잘 짚고 있기 때문이에요. 추리물로도 패러디로도 개그로도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수작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추리 애호가들은 닥치고 읽어야 하는 작품!


시대를 초월하기 힘든 부분은 있기에 감점해서 별점은 3점입니다만 저와 같은 고전 정통 추리소설 애호가분들에게는 정말로 좋은 선물과 같은 단편집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작품들 이외의 작품들도 일독할 가치는 분명 있고 말이죠. 고전 정통 추리소설 애호가가 아니시더라도 최소한 "사라진 시가상자"는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고 정태원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리뷰를 마칩니다.

2007/06/28

추리소설의 논리 - 토마 나르스작 / 김중현 : 별점 1.5점

추리소설의 논리
토마 나르스작 지음, 김중현 옮김/예림기획

추리소설 "악마같은 여자"의 공동저자 중 한명인 토마 나르스작의 추리소설 이론서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는 물론이고 추리소설을 창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합니다.
이론서라면 쉽게 연상되는 단지 딱딱한 이론 전개 및 나열에 그치지 않고, 고전 추리소설 황금기의 저자와 작품들에서 다양한 사례를 선정하여 다양한 추리소설의 구조와 요소들을 풍부한 지식과 사례로 설명해주기 때문입니다.
선정한 작가와 작품은 오스틴 프리먼, 체스터튼, 딕슨 카, 크리스티, 엘러리 퀸 등으로 저자의 이론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작가와 작품들이라 즐길거리가 많아요. 거의 국내에 번역된 작품과 작가들이라 친숙하며, 이미 읽었던 작품들에서 논리적인 분석을 통해 다양한 요소들을 설명해 주는게 참 재미있거든요. 이러한 요소들이 추리소설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쓰이는지에 대한 분석은 작가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 생각되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번역이 엄청나게 별로라는 심각한 문제 탓에 책의 가치는 심각할 정도로 낮습니다. 문맥도 제대로 맞지 않고, 책의 원제와 저자까지 틀리는 오류가 많아서 짜증날 정도니까요. 원서의 가치는 정말 좋았을텐데,  국내의 허술한 번역 때문에 책이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별점도 1점 이하 수준입니다만, 가치를 생각해 1.5점 줍니다.
출판사의 의지가 있다면 한번 손을 더 본 뒤 개정판으로 다시 내어주었으면 하네요. 물론 저같은 기존 구입자에게는 무료로 교환을...^^;;

2020/10/0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 신예용 : 별점 2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4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코너스톤

1890년대 후반에서부터 1940년대 까지, 추리소설의 여명기와 황금기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여러가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이런 류의 앤솔러지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이 접해보았지만, 국내에 비교적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시리즈 작품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퀸의 정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를 느끼기는 함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인 탓입니다. 여러모로 설득력도 떨어졌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초창기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같은 사람이 많이 없는지 재정가로 가격이 3000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가격도 착하거든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터들리 농장의 공포" 

의사인 나에게 스터들리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병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스터들리 농장으로 찾아가 준남작과 만났는데, 준남작은 자신이 밤마다 유령을 보는 탓에 공포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준남작과 방을 바꾸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는데...

코난 도일이 "마지막 문제"를 발표하며 '스트랜드 매거진'에 셜록 홈즈 단편 연재를 중단했을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구멍을 메꾸고자 투입한게 바로 이 작품이 포함된 '어느 의사의 일기 시리즈' 였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의사'인 핼리팩스 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로 '퀸의 정원' 에서는 최초의 '의학 미스터리'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아쉽게도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품 발표 계기, 그리고 연재 시점을 보면 정통 본격물의 시조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여명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스터들리 준남작과 부인의 방은 옷장의 비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부인이 저승길 동행을 위해 준남작에게 밤마다 유령쇼를 펼쳤다는게 진상인데, '나' (핼리팩스 박사)가 침실을 바꾸고 유령을 목격한 뒤, 유령이 나타난 옷장을 수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변장만 하고 추리를 펼치지 않는다면, 이를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잖아요?

스터들리 부인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인은 '나'가 준남작에게 두뇌 질환으로 환영을 보는 걸로 이야기해줄걸 기대했다는데,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가 유령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을거라 생각한건 영 납득이 가지 않네요.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아울러 '의학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 초창기 단편 중 한 편을 만나 보았다는 기쁨, 그리고 오스틴 프리먼손다이크 박사 이전에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탐정이 있었다는 사료적 가치, 마지막으로 스터들리 부인이 유령을 만들어낸 장치가 배터리에 연결된 전등이라는 상당한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금고실의 다이아몬드" 

헤드와 친구 두프라이어는 둘의 세계적인 악녀 마담 콜루치가 다이아몬드 상인 칼튼의 파티에 초대된 걸 알고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마담 콜루치는 칼튼 부인의 전남편이 살아있다며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동시에, 칼튼 부인을 시켜 빼돌린 로체빌 다이아몬드를 칼튼의 철벽 그곳에서 훔쳐낼 계획이었다....

L.T. 미드와 로버트 유스터스가 합작하여 1890년대 후반 발표되었던 연작 단편집 "일곱왕 연맹" 수록작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악녀로 비밀 범죄 조직 '일곱 왕 연맹'의 총수인 마담 콜루치와 과학자이자 탐정 노먼 헤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네요.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역시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이 단편은 그 수준이 아주 미흡해요. 내용부터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헤드와 마담 콜루치와의 대결이 등장하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헤드의 활약이라고는 고작해야 칼튼 부인을 설득해서 전 남편에 대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도 실패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래서야 명탐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못하는게 없는 희대의 악녀인 마담 콜루치 캐릭터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됩니다. 또 열쇠를 돌리면 비상벨이 울리는데, 울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칼튼의 열쇠를 조작해서 열쇠의 머리 부분만 헛돌게 만든 거지요. 즉, 열쇠를 돌려도 잠기지 않은거고, 당연히 다시 열어도 벨이 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열쇠를 돌릴 때의 저항감, 소리, 마지막으로 금고가 정말 잠겼는지 확인을 왜 안했는지 등 딴지를 걸자면 끝도 없지만, 열쇠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걸 일이루어 낸, 대담한 발상의 트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작 단편을 이어서 다 읽는다면 모를까, 이 작품 하나만 읽고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욱 많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 스페이드" 

맥스 블리스가 협박 받고 있다는 전화를 스페이드에게 남긴 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샘 스페이드는 아는 형사 던디 등이 수사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대실 해밋이 쓴 샘 스페이드 단편입니다. 묵직하고 거친 사나이 매력을 담뿍 풍기는 이야기이며, 피해자의 딸이 몰래 만나던 불륜남, 광신도이면서 못생긴 가정부 에피 부인이 묘하게 엮여서 사건이 복잡해 지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는데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다는게 놀랍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피해자의 동생 시어도어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시체에 놓여져 있던 '새 넥타이' 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은 본격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요. 피해자는 옷을 벗던 중 살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럴 경우 매고 있던 넥타이가 아니라 새 넥타이가 놓여져 있는건 이상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발견한 스페이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요. 

샘 스페이드는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4시 5분전 쯤 받았는데, 시어도어는 4시에 법정에서 결혼을 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에 대한 트릭도 간단하고 깔끔합니다. 시어도어는 3시 30분 쯤 피해자를 죽이고 법원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전화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하고 전화를 걸은 겁니다.

물론 스페이드가 한 추리의 증거가 범인 시어도어 손에 난 상처 뿐이라는건 빈약합니다. 상처가 났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까요. 가정부 에피 부인도 손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이한 상처도 아니고요. 손의 상처보다는, 법원에서 전화를 건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대입해 보는 식으로 풀어갔더라면 더 깔끔했을 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시어도어에게 협박?의 댓가로 지불한 돈은 2만 5천불일텐데 2'억'으로 기입된 오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와의 결합에 성공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퀸의 정원'에 소개된 "샘 스페이드의 모험" 수록작으로 이 책은 역사적 중요성, 희소성은 물론 퀄리티까지 인정받고 있네요. 당연합니다.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계"

8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로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수록작과 동일합니다. 

당시에는 혹평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은 점도 많았습니다. 자브라스키 박사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른 과정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 덕분입니다. 흥분한 자브라스키 박사가 '층을 착각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우연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요. 번역의 차이 때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물론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범죄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는 물씬 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별점 1.5점을 줄 작품은 아니에요. 다시 매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총알"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사장'에게 고용되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하는 사립 탐정 바이올렛과, 부유하고 젊은 사교계의 꽃 바이올렛이라는 설정이 재미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해먼드 씨가 자신의 아기와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아기는 죽은 해먼드 씨의 손에 눌려 질식사했지요. 해먼드 씨 가슴의 총알은 그의 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근접 거리에서 손 총격은 아니었고, 해먼드 부인인 열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 해먼드 씨를 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해먼드 씨 몸 속 총알과 함께 해먼드 씨가 쏜 총알도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바이올렛이 이 두 번째 총알이 어디있는지 추리해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해먼드 씨 몸속 총알은 해먼드 씨의 총에서 발사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과학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앞서 거의 단언하다시피한 정황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본격 추리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총알을 아기가 삼켰고, 그것 때문에 질식한 것이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해먼드 씨가 아니라 총알이 후두를 막은게 질식사의 원인이 된 거지요. 어디론가 사라진 총알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손 꼽을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이 진상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참고로, '퀸의 정원'에서는 A.K 그린 (애나 캐서린 그린)의 "미스터리의 걸작들" 이라는 단편집을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아닌 듯 하네요. 가치가 크게 다를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급행열차 안 객실에서 르웰린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권총이 사라진 탓에 자살은 아니었는데, 객실 문은 1인치 정도 열린 채 쐐기로 고정되어 도저히 열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승무원과 승객의 신분도 모두 확실했으며, 그들이 범인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열차를 떠났을 텐데, 객차의 앞 쪽 침대칸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며, 뒷 쪽 3등칸에는 아이가 울어 달래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객실 문 옆 승객이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은 열차를 어떻게 떠났을까?

고전 본격물의 걸작 "통"과 '프렌치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운 내용을 F.W. 크로포츠 본인이 오랜 철도업 종사자라 쓸 수 있었을 상세한 기차 구조 설명에 할애하고 있지만, 열차의 구조와 얼마나 불가능한 범행이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런 기차 여행이 흔했던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기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 지금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더욱이 역부족이었어요. 차라리 만화라던가, 최소한 삽화 등으로 트릭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범행이 밝혀지는건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범인의 고백이라는 점에서도 추리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친구 르웰린에게 연인을 빼앗기자 복수심에 저지른 치정 범죄라 트릭은 알 수 없어도 동기만 확인되면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경찰은 도대체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퀸의 정원'에도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니 지금 와서 읽을 가치는 별로 없겠지요. "통"이나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살인자" 

서밋 이라는 도시에 찾아온 맥스와 알은 식당에서 식사를 시킨 뒤, 사장 조지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 닉을 협박하며 그들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올레 앤더슨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올레 앤더슨은 식당 단골로, 킬러들은 그를 기다리는데...

미국 현대 문학 거장인 헤밍웨이의 작품인데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느낌이 나는 드라마거든요. 킬러가 등장해서 식당 관계자들을 협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추리 애호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과 죽음을 의인화하여 드라마로 풀어낸 짤막한 꽁트라 생각됩니다. 2인조 킬러는 식당 관계자에게는 급작스러운 소나기와 다를게 없는 불운, 올레 앤더슨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닉은 불운과 죽음 모두를 맛 본 뒤, 서밋이라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는걸 보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지요.

짤막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닥없는 우물" 

전쟁 영웅인 노장 헤이스팅스 경이 고대 아랍 전설이 얽혀있는 오래된 바닥없는 우물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함께 있었던 보일 대위가 유력한 용의자로, 그는 헤이스팅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체스터튼의 단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한 편으로, 시리즈 제목 그대로인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혼 피셔가 주인공입니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영국 식민지 공무원이지요.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던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영국 제국 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영국 정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게 인상적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아니라 식민지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쓴 이유가 명확해 보였어요. 신부님이야 아무래도 용서와 화해를 권했을테니, 이런 류의 독설에는 적합하지 않았을테지요.

추리적으로도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일 대위가 범인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게 진상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득력있게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헤이스팅스 경이 먼저 보일 대위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가로 산책을 제의했다는게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게 좋았어요. 보일이 죽으면 시체를 우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보일은 범인이 아니기에 시체 앞에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고요.
범인이 독을 마신건 순전히 회전식 책꽂이 때문에 찻잔이 뒤바뀌어 일어난 사고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물론 충동적인 범행에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고라는건 합리적인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한 솜씨는 과연 거장의 그것이었어요.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시카고의 여성 상속인" 

롬니 프링글은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이상한 남자가 공들여 편지를 쓰는 광경을 본 뒤, 그의 편지 압지를 빼돌렸다. 암호와 같은 압지 문구 해독을 통해 '실링하머'라 자칭하는 남자가 런디 후작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손다이크 박사'로 잘 알려진, R.A. 오스틴 프리먼의 롬니 프링글 시리즈 단편입니다. '퀸의 정원' 분류에 따르면 엄청난 희귀본이라고 하네요. 롬니 프링글은 도둑이자 사기꾼인 안티 히어로인데, 이 작품에서는 협박자 실링하머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이 차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링하머가 후작을 협박하는게 모두 이미 발표되었던 신문 기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무슨 범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런디 후작이 형들과 아버지를 살해하고 작위를 물려받았을 줄 알았는데, 단지 그들이 '자살'했다는 진상도 협박거리가 될 걸로 보이지 않았고요.

롬니 프링글의 작전 역시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실링하머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마지막에 경찰을 자칭하여 그를 잡아서 돈 지갑을 빼앗는 것도 여러모로 어설퍼보였거든요. 압지의 글귀 해독도 논리가 뒷받침 되어있는 암호 해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요.
경찰을 자칭하고 후작을 찾아가, 협박자에게는 현금을 주는게 낫겠다는 조언을 하는 장면만 조금 그럴듯 했을 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역서적 가치', '희소성'에 '퀄리티' 가치까지 부여받은 3관왕인데, 동의하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