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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고,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친 탓입니다.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게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에요.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했을 겁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었어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도 없고,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 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입니다.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트릭도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것이라서,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들고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성공한 결과물도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 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 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 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묘사도 아주 좋으며,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습니다.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요.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완성도는 더 높은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12/01/25

명탐정의 저주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3점

명탐정의 저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 본격 추리물을 비웃는 블랙코미디였던 시리즈 전작과는 다르게, 작가인 주인공이 일종의 유체이탈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작품 속 세계에서 활약한다는 동화 같은 설정의 독특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전작과의 공통분모는 제목,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본격 추리에 대한 비꼼이 약간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동화 같은 설정은 "시미가의 붕괴"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점은 비교적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동화적인 설정임에도 동기와 전개, 트릭 모두 확실한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무차별한 비난이 즐거웠던 전작이 더 취향에 맞았지만, 본격 추리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번 작품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쪽 장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하지만, 전작보다는 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가깝다는 것도 확실한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전체적으로 평균하여 3점입니다.

수록작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념관

주인공이 덴카이치가 되어 이상한 마을로 소환된 뒤, 의뢰받은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과 여러 등장인물들, 사건의 무대가 되는 기이한 마을에 대해 소개하는 도입부 역할이 강한 에피소드입니다. 짧은 분량 안에서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추리적으로 특별히 눈여겨볼 점은 없습니다. 덴카이치가 기념관 수위의 팔뚝에 난 자국을 보고 그가 낮잠을 자고 있었으리라 추리하는 부분 정도가 유일할 정도죠.

그러나 동화 같은 마을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마을의 크리에이터라는 미이라, 미이라 발굴 직후 도난당한 30c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Who done it?"이라는 문구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산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이자 마을 제일의 자산가 미즈시마 유이치로를 찾아갔다가, 그가 밀실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밀실 추리극이 펼쳐지는데, "명탐정의 저주"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덴카이치 시리즈 특유의 추리소설 비꼬기가 다수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피해자의 아들 아키오가 "먼저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린 뒤,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의심해 보라고 한다"는 밀실 트릭의 문제를 비판하는 부분이겠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밀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자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니까요. 걸작 추리만화 "nervous breakdown"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라 반가웠습니다.

이렇듯 밀실을 비꼬고는 있지만, 트릭 자체는 합리적이기에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간단한 트릭이지만, 사건의 무대가 효과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또한, 밀실의 일곱 가지 종류라는 덴카이치의 이론도 추리 애호가로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부터 이 마을이 '본격 추리'라는 개념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 마을 자체가 짜여진 무대장치 같은 설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보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소설가

덴카이치 탐정이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인 소설가 히다를 방문한 직후, 히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범인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간 소실' 트릭이 펼쳐집니다.

본격 추리물에 대한 나름의 작가론이 담겨 있는 점은 인상적이지만, 트릭이 너무 쉽다는 점과 "자산가" 에피소드와 유사한 느낌이 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그냥저냥 평작 수준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위원회

남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들이 시장의 별장에 모인 뒤, 벼락으로 인해 고립된 후 한 명씩 살해되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연쇄살인극입니다. 고립된 별장, 요일에 해당하는 이름을 가진 참석자들,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예언한 듯한 살인마의 장치 등, 설정만 봐도 작가의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마치 "이게 왕도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패기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작위성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이기에 단점은 아니며, 오히려 진부하고 뻔한 클리셰를 동화적인 설정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구현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트릭 역시 예측 가능하지만, 작품과 잘 어우러져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본격 추리에 대한 작가의 향수와 애정이 잘 느껴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낡고 오래된 장르라 하더라도, 추리물의 원류는 본격 추리물이기 마련이고,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은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20/11/13

날개 달린 어둠 - 마야 유타카 / 박춘상 : 별점 1.5점

날개 달린 어둠 - 4점
마야 유타카 지음, 박춘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작가 고즈키는 친구인 명탐정 기사라즈와 함께 이마가카미 가문의 대저택 '창아관'으로 향했다. 가문의 맏형 이토로부터 받은 의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이토가 살해되고, 그 뒤 이마가카미 가문 일종이 한 명씩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기사라즈는 죽었다고 알려진 당주 다지마가 범인이라는 추리를 펼쳤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실의에 빠진 기사라즈가 창아관을 떠난 사이, 새롭게 나타난 명탐정 메르카토르 아유가 기사라즈가 범인이라는 추리쇼를 펼쳤고, 이는 고즈키가 흔들릴 정도로 명추리였지만 돌아온 기사라즈에 의해 논파당했다. 그 뒤 메르카토르마저 범인에게 살해당하는데...

마야 유타카가 쓴 신본격 추리 소설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작가, 작품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일본 본격 추리 100선'에 꽤 높은 순위(39위)로 랭크되어 있어서, 정통 본격물이 땡기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본격 추리물은 제 몸의 필수 영양소니까요.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이라는 불가능 범죄, 피해자 목을 베어버리는 기묘한 엽기 범죄에 무려 11명이나 죽어나가는 연쇄 살인극이며, 누가 범인인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를 탐구해 나가는 후더닛, 하우더닛 물이라는 점에서 본격 추리물인건 맞습니다.무대가 되는 고성 창아관, 피해자들이 피에 물든 저주받은 재벌 가문이라는 소재도 아주 전형적인 본격물 스타일이고요.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당연하게도 개성 넘치는 명탐정도 무려 두 명이나 등장하며, 이 탐정들 - 메르카토르 아유, 기사라즈 - 이 차례대로 펼치는 추리쇼도 볼 만 합니다. 이런 부분들만 보면 딕슨 카가 쓴 초기 방코랑 시리즈 느낌도 살짝 듭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딕슨 카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후더닛, 하우더닛 측면은 현대 시점에 맞지 않고 설정은 유치하지만 나름 괜찮아요. 문제는 와이더닛, 즉 왜 범행을 저질렀나? 왜 이렇게 저질렀나?에 대한 설명이 엉망진창인 탓입니다. 명탐정이라는 기사라즈의 추리도 황당하고요.
우선 기사라즈가 추리한 범인 기리에의 동기부터 살펴 보지요. 그녀의 일그러진 일렉트라 컴플렉스가 동기로, 아버지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지른 범행이라고 추리합니다. 일단,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게 저 뿐만일까요? '죽음의 세례'니 뭐니 있어보이는 말을 장황하게 털어놓지만, 증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궤변일 뿐이에요. 이런 말에 넘어가는 주변 인물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고요. 차라리 어린 자신을 방치했던 아버지 스가히코와 이마카가미 가문을 향한 복수심 때문이었다면 그나마 말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범행이 엘러리 퀸이 발표했던 '국명 시리즈'에 맞게끔 연출되었다는 추리는 실소를 자아냅니다. 스가히코를 신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동기에 적합한 방법도 아닌데다가, 십자가에 매다는 연출이 필요했다면 그냥 스가히코만 죽여서 매달면 됩니다. 다른 가문 사람들을 살해해서 엘러리 퀸 작품 제목처럼 전시할 이유는 없어요. 범인 기리에가 자살로 이 사건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면 더욱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기보다 방법이 앞서는, 주객이 전도된 추리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토, 아리마가 죽은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추리는 최악이었습니다. 두 명의 목을 한 번에 벨 때, 머리가 밀려서 한 쪽 머리가 떨어진 목에 두 번째 머리가 붙어서 잠시 살아나 움직였답니다! 그 뒤 문을 잠그고, 열쇠를 쥔 상태에서 목이 떨어져 죽은다네요! 이게 명탐정이라는 작자가 할 소리입니까? 이걸 추리라고 믿고 수긍하는 경찰은 대체 뭐하는 인간들일까요?

그나마 명탐정스러웠던건 기리에가 '일본어를 읽지 못한다'는걸 드러내는 추리 딱 하납니다. 하지만 가문 직계 후예 중 남은게 기리에 밖에 없으니, 범인이 그녀인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의미없는 추리에요. 무려 11명, 아니 12명이나 되는 가문 일족이 몰살당할 때 까지 방관하는 인간이 명탐정인지도 의심스럽네요.

그나마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진짜 진상 덕분에 본격물로서 체면 치례는 합니다. 범인은 가정부 히사로 변장한, 2년전 사망한 걸로 알려진 가문의 여주인 이마카가미 기누요라는 거지요. 이를 통해 "일본 어치의 수수께끼"는 일본에서만 발표된 제목이라,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기리에가 그 작품처럼 자살한건 이상하다는 맹점은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해요. 기누요는 버젓이 놓여 있는 여벌 열쇠를 써서 밀실을 만든 겁니다. 여벌 열쇠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본인이 강하게 주장해서 밀실처럼 보인 것일 뿐이죠.
우네비 살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도 그녀의 증언으로 성립될 뿐이며, 처음에 야마베가 보고 놀란 머리는 우네비 머리가 아니라 다지마 머리였다는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일꾼 야마베는 우네비를 몇 번 보지 못했고, 얼굴에 화장이 되어 있어 다지마의 머리를 우네비로 착각했다는건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리고 야마베가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뛰쳐나갔을 때 머리를 우네비로 바꿔치기 해서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아울러 '머리'를 자른 이유로도 타당한 트릭이라 마음에 드네요.

그러나 그녀가 아나스타샤 공주라서 '퀸'이 쓴 작품을 토대로 사건을 저질렀다는건 기사라즈의 추리만큼이나 억지스럽습니다. 뜬금없는 아나스타샤 울궈먹기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수십 년을 살아오며 일군 가족을 자기 손으로 이렇게 파멸시킨 이유가 단지 피가 황인종과 섞였다는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떨어져요.
범행 역시 마찬가입니다. 90이 넘은 그녀가 무려 11명이나 차례로 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범인임을 생각도 못한 피해자들이나 여성들이야 그렇다쳐도, 메르카토르라던가 스가히코는 이렇게 맥없이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은 가정부 히사가 이미 살해된걸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나타나면 당연히 경계하고 조심했었겁니다. 스가히코를 죽이고 십자가에 매다는 등 힘과 체력이 필요한 범행을 저지른 방법도 설명이 없고요.
2년 전 자신이 죽었다고 위장하고 가정부 히사로 변장하여 가족 앞에 나타났을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상황 역시 대충 넘어가고 있습니다만,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에요. 90이 넘은 러시아 할머니가 변장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니, 억지도 정도껏이어야죠.
추리 작가이자 화자인 고즈키가 자신이 가문에서 쫓겨난 시이쓰키의 아들로 메르카토르의 이란성 쌍동이 형제라는걸 밝히는 반전도 솔직히 불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교과서적인 본격 추리물러 '추리'라는 부분에서 볼 만한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일본' 교과서라는 거지요. 일본 특유의 억지와 무리수 설정, 전개가 난무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추리만을 위해 쌓아올린 작위적이며 어설픈 이야기로 읽어보실 필요 없는 졸작입니다. 이런 작품이 이름을 올린 리스트는 더 이상 참고하지 않으렵니다.

2023/05/14

미스터리 아레나 - 후카미 레이이치로 / 김은모 : 별점 2점

미스터리 아레나 - 4점
후카미 레이이치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년 연말 방송되는 인기 TV쇼 <<미스터리 아레나>>는 출제되는 문제를 맞추면 거액의 상금을 얻는 쇼였다. 대신 틀린 답을 제시한 참가자는 자신의 장기를 이식용으로 기부해야 했다. 
올해 문제는 '클로즈드 서클 추리물'로, 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동창생들은 매년 모임을 갖는 동창 마리코의 별장에 모였지만, 마리코는 4층 자기 방에서 칼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방송에서 이야기가 조금씩 진행될 때 마다, 자신의 추리에 확신을 가진 참가자는 벨을 눌러 범인이 누구인지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추리 뒤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앞서의 추리는 부정되며 계속 변형되어 나가는데...

후카미 레이이치로의 장편. 여러 명의 참가자들이 각자의 추리를 이야기한다는건 <<독 초콜릿 사건>> 등을 연상케도 하지만,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가지고 추리를 펼치는게 아니라 본편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추리를 펼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일종의 배틀이라서 같은 답을 내 놓으면 먼저 답한 사람이 이기는 규칙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여러가지 변수가 발생하는게 재미있었습니다.
수많은 추리가 등장하는데 대체로 성별 오인이라던가, 이름이나 묘사 등으로 같은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거나 한 사람을 두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등의 서술 트릭이 많습니다. 꽤 그럴듯한 추리도 등장합니다. "마루모가 범인이고,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왜 마루모가 여자이며, 실제로 범행을 어떻게 저질렀는지에 대한 추리를 여러가지 단서로 뒷받침하여 주장하는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거든요.
피해자 마리코가 남자였다는 추리도 상황 - 마리코는 드레스를 입고 죽어 있었음 - 을 보면 억지스러우나, 마리코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었다는 주장은 꽤 합리적이었어요. 앞서 본편 문제 이야기에 마리코의 본가가 안도 히로시게의 <도카이도 53역참>에 그려져 있고, 마리코의 집은 마덮밥 체인점을 한다는 단서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도카이도 53역참> 스무 번째 역참이 마리코 역참으로 마죽 가게에서 마죽을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걸 근거로 "마리코"는 성이라는 추리지요. 이를 통해 '피해자 마리코와 다른, 범인인 여성 "마리코"가 있다, 그건 '아키'였다'는 추리로 이어지는 과정도 깔끔합니다. 
이름을 활용한 서술 트릭은 관리인 히데가 사야카 시점일 때만 英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등 그 외에도 많습니다. 
다른 추리들도 볼만한게 몇 가지 있습니다. '범행 현장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인 나선계단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실제로는 통로가 2개였다', '다이잉 메시지는 S가 아니라 적분 기호로 등장인물 중 세키 분타 (세키분 - 적분)를 가리킨다' 등이 그러했습니다. 앞서 히데 씨와의 대화에서 택시비에 대한 언급을 통해, 실제 별장에 온 사람이 몇 명인지 추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단서들도 곳곳에 잘 삽입되어 있고요.
이런 점들만 보면 장르에 깊은 이해를 가진 작가가 썼다는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에 오르고 '본격 미스터리 대상' 2위에 등극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엄밀하게 본격 추리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본격 추리물과 그 장르를 비틀고, 풍자하고 조롱하는 성격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 중에서도 참가자의 입을 빌려 "성별 오인 트릭 자체는 이제 낡을 대로 낡았잖아. 한때 미스터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작품에 '마유미'라는 이름이 나오면 거의 백 퍼센트 성별 오인 트릭이 사용됐다고 의심하는게 상식이었을 정도야"라는 말이 나오는 등, 본격 추리물의 작위성을 대놓고 놀립니다. 추리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 보다는 이른바 "바카미스 (게임성, 오락성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의외성을 주기 위한 목적이 큰 작품들)" 류의 추리가 더 많아요. 고양이 다마가 알고보니 사람으로 발레리나였다던가, 사부로가 바라보았던 창 밖의 "가로수"가 사실은 사람 - "나미키 (가로수)"라는 이름의 - 이었을거라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정답을 조작했다", 즉 이야기의 분기를 다수 만들어서 누군가 그럴듯한 추리로 정답을 내 놓을 경우, 다른 분기로 이어지도록 조작했다는 게 '미스터리 아레나' 방송의 정체라서 애초에 공정한 추리가 이루어지는건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정답이라고 내 놓는건 앞서 알멩이를 다 뽑아먹어서 억지로 그렇게 만들 수 밖에 없는 황당한 결과일 수 밖에 없고요. 등장인물이자 피해자인 "다이라 사부로"와 다른, "다이라사부로"라는 이름의 인물이 별장에 있었다는 식인데 너무 억지스러워서 할 말이 없을 정도였어요. 이래서야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지요.

설정도 만화적이고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알고보니 <<미스터리 아레나>> 참가자들은 모두 특수 요원으로 방송이 거짓이라는걸 폭로하기 위해 투입되어 관계자들을 일망타진한다는 결말이기 때문입니다. 전개도 마찬가지라 본편 문제 이야기는 괜찮았지만, 퀴즈쇼 진행 부분은 과장되고 만화적인 묘사가 넘쳐나 읽기 불편했습니다. 풍자와 조롱을 위해 일부러 더욱 과장되게 쓴 듯 하지만, 보다 진지한 분위기로 추리 애호가들의 문답이 이루어지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오답자는 장기 이식 운운하며 생명을 건 추리 배틀을 벌인다는 TV 쇼 설정보다는 말이죠. 아니면 아예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처럼 가볍게 접근하던가요. 지금의 결과물은 진지한건지, 말도 안되는 농담인건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즐길거리가 없지는 않으나, '소설'보다는 '장난'에 가깝습니다. 여러모로 과했어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비슷한 소재라도 히가시고 게이고의 덴카이치 탐정 시리즈 (<<명탐정의 규칙>>, <<명탐정의 저주>>)가 훨씬 괜찮습니다.

덧붙이자면, 작가 이력을 보니 게이오 대학교 문학부 졸업에 파리 부르고뉴 대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사람이더군요. 1963년 생으로 이 작품을 발표한 2016년에는 50대 중반이었고요. 그런 사람이 이런 만화같은 작품을 발표했다는게 의외인데, 한 편으로는 일본식 문화의 저변이 정말 넓고 깊구나 싶은 생각이,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정도 나이와 위치니 이런 본격 추리물을 조롱하는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겠구나 싶네요.

2010/06/28

허무에의 제물 - 나카이 히데오 / 허문순 : 별점 3점

허무에의 제물 - 6점
나카이 히데오 지음, 허문순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히누마 집안에서 일어나는 연쇄 밀실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 저자 나카이 히데오가 작명하고 창안한 '안티 미스터리'의 첫 작품으로 추리 장르문학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한 고전이기도 하죠. 관심은 많았지만 두께와 악명높은 동서문화사의 번역탓에 읽기를 꺼렸었는데 국내 최대 추리동호회 "하우미스터리"에서 발기한 독서클럽 "고등고등열매" 에서 읽어야 할 첫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안티 미스터리'에 대해 찾아보았더니 아래와 같더군요.
  1. 미스터리 속에 미스터리가 존재
  2. 스토리의 반전이 많다.
  3. 결국 미해결 사건이 되거나 뒷맛 씁쓸한 결말로 끝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이 과연 이 작품안에서 등장인물인 무레타가 쓴 소설인지, 아니면 다른 등장인물들의 추리를 통해서만 펼쳐지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추리를 쏟아내기 때문에 추리와 트릭이 난무할 뿐 아니라 추리마다 새롭게 이야기가 반전되기 때문에 결국 뭐가 진상인지도 헛갈리거든요. 마지막 결말이 씁쓸한것 역시 공식대로고요.
또한 '안티 미스터리'라는 이름답게 정통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반대되는, 어떻게 보면 고전 본격물의 패러디같은 느낌을 강한게 전해주는건 특이했습니다. "수수께끼의 인물"이라던가 "밀실",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악연", "증오가 넘치는 가족관계", "색깔로 형상화된 범행" 등과 같은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 본격물의 요소들을 모조리 도입하여 작품안에서 정말 작위적으로 녹여내는 점이라던가, '녹스의 추리소설 10계'나 란포의 '속 환영성'같은 추리소설의 교과서적인 룰들을 따라 추리쇼를 진행하는 것 모두가 본격물에 대한 비틀기, 패러디로 보였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비틀기와 패러디가 좋은 쪽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라 앞과 뒤가 연결이 잘 안되는 것도 있었지만, 비틀기와 패러디를 위한 작가의 의도가 지나쳐서 뒤로 갈수록 몰입하기 힘들었거든요. 작위적 설정이 한두번 정도 양념으로 쓰인다면 모를까 전편에 걸쳐 벌어지니 지루할 수 밖에요. 하나의 사건이 벌어질때마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자신만의 장황한 추리를 펼치는 추리쇼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책의 구성도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였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는 사람이 아는 독자들을 위해 맘먹고 비틀고 패러디한 희대의 괴작' 입니다. 중반까지는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교적 괜찮은 추리와 트릭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본격 추리소설의 얼개를 제대로 갖추고 있기는 해서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기는 합니다만 패러디와 비틀기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면 지루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어떻게보면 미완성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해괴한 작품이네요.

아는 사람이 읽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기도 쉽지 않으며, 보는 시각에 따라 5점 ~ 1점을 오갈 수 있어서 별점으로 평가하기가 정말로 어려운 작품인데 제 개인적인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악명높은 동서문화사의 번역본이라 걱정했는데 역시나 뒤로 갈수록 번역이 거슬리더군요. 아쉽습니다.

2025/07/27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이재원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신예 작가의 본격 추리 단편집으로, 총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수 설정 미스터리' 장르물이라는게 특징입니다. 표제작의 투명 인간과 "도청당한 살인"의 가공할 청력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다른 두 편도 아이돌 오타쿠들, 탈출 게임이라는 다소 특이한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요. 이런 특수 설정들은 단순 재미 요소가 아니라 추리와 트릭에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표제작은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한 편인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 따온 등 기존 추리 명작들의 패러디, 인용이 많다는 점입니다. 작가의 추리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설정이 과한 측면은 분명 있지만, 신선한 발상과 실험적인 구성에 본격 추리가 결합된 결과물은 썩 나쁘지 않습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신선함을 추구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

일종의 병에 걸려 투명인간이 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시대, 투명인간 아야코는 투명인간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가와지 교수를 살해했다. 하지만 이를 안 탐정 자카제와 남편 나이토 등 관계자가 현장에 들이닥쳐 갇히고 말았다. 하지만 자카제의 치밀한 탐색에도 아야코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에 숨었나? 

투명인간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트릭과 반전이 치밀하게 펼쳐지는 작품입니다. 

우선 밀실에서 아야코가 숨은 트릭은, 아야코가 살해된 교수의 시체 위에 올라가 누워 있었다는 겁니다. 이는 시체를 난도질하고, 오른쪽 가슴에 꽂은 칼을 망치로 눌러 부러뜨린 상황같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된 단서를 통해 밝혀집니다. 멀리서 보아도 '확실하게 죽은 사람'으로 보이게끔(그래서 구태여 시신을 잘 확인하지 않게끔) 과한 상처를 입히고, 누울 자리에 칼이 튀어나오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트릭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아야코는 이미 누군가에게 살해되었고, 지금 투명한 상태로 움직이는 '아야코'는 이웃집 여성 와타베 요시코가 변장한 인물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이 반전 또한 이야기 중에 제시되는 여러 단서들 - 아야코(요시코)가 자택에서 오른쪽과 왼쪽을 혼동하는 묘사, ‘보름달을 반지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집의 구조가 반대여야 했다는 점 등 - 로 설득력을 갖추게 됩니다. 교수를 살해한 동기도 이 반전을 통해 설명되고요. 투명인간이 치료되면 정체가 탄로나게 되니까요. 투명인간은 메이크업으로 외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요시코가 아야코로 변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대표적인 예입니다. 탐정 자카제 역시 투명인간이었다는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투명인간이라는 만화적인 설정은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시체 위에 올라가 숨는 트릭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아무리 투명하다 해도 경찰이 출동하면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고, 숨은 다음의 계획도 숨는 트릭에 비하면 허술한 탓입니다. 또한 투명인간 설정에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공을 들이고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물리적 모순을 무시한 점도 조금 거슬렸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6명의 열광하는 일본인들"

큐티 걸스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 두 명이 다투다 한 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여섯 명의 재판원과 판사들이 평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재판원 전원이 큐티 걸스의 팬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들이 나누는 토론을 통해, 피고인이 범인이 아니며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가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데...

아이돌 팬들과 재판을 배경으로 한 코믹 미스터리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트릭보다도 추리의 진행 방식입니다. 팬들만이 눈치챌 수 있는 단서들—응원봉의 컬러가 이상하다는 점, 울트라 오렌지 라이트 스틱이 현장에 과도하게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 타다 남은 종잇조각 등—을 통해, 범인이 큐티 걸스의 멤버 사키였고 피고인은 우상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쓰기로 마음먹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꽤 그럴듯하게 진행되거든요. 시작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이었지만, 전개와 결말은 "키사라기 미키짱"인 셈인데, 오타쿠 팬심과 진지한 법정 추리물을 결합한 방식이 신선했습니다. 코믹한 오타쿠들 대화 중심의 구성도 재미있는 요소였고요. 

추리는 얼마든지 반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본격 추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나, 부담 없이 읽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청당한 살인"

청력이 비상한 미미카는 오노 탐정에게서 살인사건의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피해자의 집에 설치되어 있던 도청기에는 사건 당시의 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었고, 미미카는 이를 분석했다. 그녀는 녹음된 소리를 듣다가 이상한 불협화음을 느꼈다... 

핵심 단서는 불협 화음이 아니라 발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청기는 인형 속에 감춰져 있었고 고정된 위치에서 놓여 녹음되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발소리는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식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일정하게 들렸다는 건 누군가가 인형을 들고 이동했다는 뜻입니다. 불협화음의 원인인 녹음된 팩스음이 매우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도청기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뒷받침하고요. 이를 통해 도청기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는 탐정사무소 조사원 후카자와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주어진 단서만으로 범인을 추리해 낼 수 있는 완벽한 후더닛물로,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보여줍니다. 미미카의 가공할 청력과 논리적 추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미미카의 비상한 청력이 일반 추리의 범주를 넘는 일종의 초능력처럼 느껴져, 약간은 추리 만화나 퀴즈물처럼 보인다는건 단점입니다. 사실 녹음된 소리를 듣고 분석하는 것이라면 이런 특수 설정을 이야기에 도입할 필요도 없었어요. 현실적으로는 음량 조절이나 소리 추출 장비를 활용하는 쪽이 더 설득력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재미와 퍼즐의 완성도 면에서는 추리 팬으로서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수작입니다. 오노 탐정과 미미카 컴비의 티키타카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13호 선실에서의 탈출"

고등학생 가이토는 유명 추리작가 미도리카와 시로의 인기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탈출 게임에 초청받았다. 그 곳에서 게임 후원사 사장의 아들인 마사루와 마사루의 동생 스구루를 만났는데, 가이토와 스구루는 갑작스럽게 납치되고 말았다. 알고 보니 납치범들의 본래 목표는 마사루 형제였고, 가이토는 마사루로 오인받아 함께 납치되었던 것이었다. ..

탈출 게임이 핵심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건의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에 대한 문제에서 시작해서, 목격 증언의 모순점을 밝히는 문제, 원고지에 남겨진 메시지를 해독하는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 모든 문제들은 그냥도 풀 수 있지만, 마지막 수수께끼를 통해 중요한건 '거울'이며 앞서의 수수께끼와 거울을 조합하여 진짜 범인이 ‘사쿠라기’라는 사실이 밝혀지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또한 ‘재교부’라는 게임 규칙—같은 문제에 정답을 두 번 낼 수 있다는 룰—자체도 하나의 트릭으로 작용합니다. 초반부 수수께끼의 해답이 두 가지였음을 이 룰을 통해 암시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중 게임의 구성과 배우들의 연기, 설정 모두 현실적으로 잘 설명되고 있고요.

하지만 납치극 설정은 과했습니다. 가이토와 스구루를 납치한 흑막이 사실 마사루였다는 진상, 그리고 동생 스구루가 처음부터 형의 음모와 게임의 정답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작위적입니다. 치밀한 퍼즐 추리에 비하면 완성도만 떨어트리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추리 게임이 잘 연출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08/27

영매탐정 조즈카 - 아이자와 사코 / 김수지 : 별점 2.5점

영매탐정 조즈카 - 6점
아이자와 사코 지음, 김수지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20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등 온갖 상을 휩쓸고, 자주 가던 추리 소설 커뮤니티에도 극찬하는 분들이 많으시길래 구입해서 읽어본 작품입니다. 아래의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화. 우는 여자 살인" 

추리소설가 고게쓰는 대학 후배 구라모치 유이카의 부탁으로 영매 조즈카 히스이를 찾았다. 우는 여자에 관련된 이상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조즈카는 조사를 위해 고게쓰와 함께 유이카의 자택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유이카의 집을 찾은 둘은, 그녀의 시체를 발견했다. 조스카는 유이카의 혼을 자신에게 빙의시켜, 경찰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데...

"2화. 수경장 살인"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추리소설가 구로고시 아쓰시의 별장 '수경장'의 바비큐 파티에 초대되었다. 수경장에서 발생하는 심령현상의 조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바비큐 파티가 있던 날 밤, 구로고시 아쓰시는 살해되었다. 조즈카는 범인이 벳쇼라는걸 영능력으로 알아냈지만, 경찰은 구로고시와 불륜 관계였던 신타니를 체포하고 말았다. 고게쓰는 유일한 단서였던 조즈카가 꾼 꿈을 토대로 범인이 벳쇼라는걸 경찰이 믿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3화. 여고생 연쇄 교살 사건"

고게쓰의 팬이라는 여고생 후지미 나쓰키가 자기 학교 여학생들이 살해된 사건 조사를 부탁했다. 고게쓰는 조즈카와 함께, 경찰의 도움을 얻어 사건 현장 및 학교를 방문해서 조사에 나섰다. 조즈카의 영시를 통해 범인이 여자 아이라는걸 알게 된 고게쓰는, 프로파일링을 지어내서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지미 나쓰키까지 살해되고 마는데....

"최종화. VS엘리미네이터"

그런데 구성이 독특합니다. 1~3화는 각각 완성된 단편들인데, 네번째인 "최종화. VS엘리미네이터"를 통해 앞서 3개의 이야기를 뒤집는 반전과 앞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여러가지 추리적인 장치들이 정리되고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장점이라면, 최근 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할 만 하더군요. 

우선 조즈카가 영능력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진범을 알아내고, 트릭을 밝혀내는 1~3화에서의 고게쓰의 추리와 활약은 꽤 설득력 있습니다. "수경장 살인"에서 조즈카의 꿈을 캐비닛 거울과 연결시켰던 추리, "여고생 연쇄 교살 사건"에서 나쓰키가 살해되었을 때 범인이 카메라에서 필름을 가져갔고, 렌즈캡을 떨어트렸던걸 단서로 하스미 아야코는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추리 등은 설득력이 높거든요. 

그러나 이 정도였다면 흔해빠진, 그냥저냥한 추리물 수준에 그쳤을거에요. 조즈카가 던져주는 단서가 워낙 명확해서 고게쓰가 대단한 명탐정일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4화 덕분에 이 작품이 한 단계 수준을 뛰어넘는 완벽한 본격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4화에서 조즈카는 영매가 아니라, 천재 탐정으로 사건 현장을 쓱 보고 추리했던 걸, 영능력인양 고게쓰에게 단서를 던져주었다는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앞서 세 건의 사건에서 그녀가 어떻게 모든걸 추리해 내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데, 이 추리들이 정말 대박입니다. 합리적이며 설득력 있는건 물론, 모두 독자에게도 주어졌던 공정한 단서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왠만한 고전 걸작 본격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추리적 쾌감을 선사해주는 덕분입니다. 여고생 교살 사건에서 핵심 단서로 쓰였던 스카프 고리와 같은 디테일을 조즈카의 대사로 스쳐지나가듯 드러냈던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즈카가 추리력을 선 보일 때 셜록 홈즈라던가, 일상계의 정의 같은 지식을 피로하는 것도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부분이고요.

하지만 걸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다지 새로운 느낌이 없는 탓입니다. 1~3화 까지의 설정인, 영매가 영능력으로 탐정과 컴비를 이루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쎄고 쎘으니까요. 귀신이 알려준 단서로 사건을 해결한다는건 이미 만화 "카코와 가짜 탐정"에서 써먹었었지요. 고전 "싸이코메틀러 에지"라던가, 미쓰다 신조의 "사상학 탐정" 도 비슷한 류일테고요.

4화의 반전과 본격물로의 전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능력자로 알려진 순진한 미녀가 알고보니 추리력이 뛰어난 닳고 닳은 아가씨였다는건 "영능력자 오다기리 쿄코의 거짓말"과 똑같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하기 어려워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천사에서, 마지막에 정체가 밝혀지고 나서는 고게쓰를 저 위에서 내려다보며 비웃는, 닳고 닳은 건방진 아가씨로 변모한다는 조즈카 캐릭터도 오다기리 쿄코 판박이고요. 

지나친 과장과 억지도 불만스럽습니다. 캐릭터부터 만화같아요. 어린 나이에 천재적인 영능력(?)과 추리력을 갖춘 절세의 미소녀 조즈카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그녀가 영능력(?)을 발휘할 때의 과장된 연기, 고게쓰와의 알콩달콩한 로맨스 묘사는 읽으면서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였습니다. 작가의 묘사력이 영 부족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일개 추리 소설가가 경찰과 협력한다는 편의적인 설정이야 본격물이니 그렇다고 쳐도, 현장을 쓱 보고 진상을 모두 추리해냈다는 것도 과장이 지나칩니다. 말로 설명하는데 50분이나 걸리는 추리를 단 몇 초만에 끝냈다는게 말이 될까요? 이 정도면 영능력보다 더한 초능력이지요. 

추리도 설명은 그럴싸하지만, 결론에 단서를 끼워 맞춘 느낌이 강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2화입니다. 구로고시의 신작이 정확하게 몇 권 배달되었는지, 구로고시가 여분의 책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구로고시 서재에 책을 따로 둘 곳이 없었다는 걸 잠깐의 관찰 후 추리하여 단정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에요. 이럴 바에야 그냥 뛰어난 영능력자라는게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겁니다. 

그 외에, 고게쓰가 여대생 연쇄 살인마 쓰루오카 후미키였다는 것과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된 이후를 그린 에필로그도 뻔하고, 억지스러운 사족에 불과했습니다. 여대생들을 칼로 찌르며 '아프지 않았지?'라고 물어보던 이유가 과거 누나를 잃은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동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애초에 설득력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요. 고게쓰에게 납치된 조즈카가 탈출하는 과정도 작위적이고요.

분명 좋은 평가를 받을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저에게는 일본 서브 컬쳐 특유의 과장된 묘사, 어디서 많이 보았던 뻔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들로 가득차 있다는 단점이 더 크게 느껴졌던 작품입니다. "사쿠라코 씨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처럼요. 추리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잘 짜여진 본격물이기는 하나, 제게는 소문만큼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차라리 만화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만화에 가깝게, 가볍게 쓰여진 작품이 먹히는걸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변한 듯 합니다..

2025/09/26

돈돈 다리, 떨어졌다 - 아야츠지 유키토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쓴 단편집으로,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독자에의 도전장' 삽입 작품으로 추천받았지만, 국내 번역 출간되지 않은 탓에 원서를 구해 읽었습니다. 수록작 중 표제작은 작년에 번역해서 소개해 드렸던 바 있는데, 아무래도 번역을 해서 읽어야 해서 완독은 좀 늦었네요.

특징이라면 앞서 말한 '독자에의 도전장'이 삽입될 정도로 본격 추리 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되어 '후더닛' 물로는 완벽한 수준이에요. 본격물답게 여러가지 트릭도 사용되며, 다섯 편의 작품을 하나의 연작처럼 묶기 위한 디테일들도 인상적입니다. 등장하는 동물들 이름에 모두 '다케마루'가 사용된다는 점 처럼요.

그리고 작가가 조금 가벼운 마음을 쓴 팬 서비스용 작품인지는 몰라도, 약간은 장난스러운 센스도 가미되어 있습니다. 주요 화자가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인데 건방진 후배 U군의 도전에 패배하는 등 스스로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고, 어떤 작품에서는 범인으로 등장하기까지 하니까요. 이런 부분은 작가의 팬이라면 크게 반길 요소라 생각됩니다.

다섯 편 모두 이야기의 밀도나 묘사는 가벼운 편이며, 한 편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보다는 '후더닛'에 집중한 탓에 추리 퀴즈적인 느낌이 들게 만든건 조금 아쉽습니다. 그래도 독자에게 정정당당하게 단서를 제시하고, 그로부터 추리를 유도하는 정통 본격 추리의 맛을 선명하게 전해주기 때문에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충분히 즐길 만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돈돈 다리 떨어졌다"

서술 트릭을 사용해 범인의 정체를 감추는데, 비교적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유명 추리 작가의 이름을 딴 것 부터가 도무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요. 작가 후기를 보면 1984년 교토대 추리소설연구회 합숙에서 했던 ‘범인 맞히기’의 단편이 원형이라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탓이라 생각됩니다. 심지어 지금 시점에서는 40년 전 트릭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보우보우 숲 불탔다"

"돈돈 다리"와 유사한 서술 트릭이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이를 반대로 사용했습니다. 확실히 아이디어는 참신합니다.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돈돈 다리"도 작위적이었지만 이 작품은 그보다도 심하니까요. 이런 점에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보다는 추리 퀴즈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페라리는 보고 있었다"

아야츠지 유키토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색작입니다. 실존하는 편집자 등이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하는걸 보면, 의뢰처와 웃고 떠들고 즐기기 위한 친목적인 성격의 작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실제 사건 추리는 억지스럽고, 그냥 이런 것도 가능하다 수준으로 끝나며 진상은 그야말로 '현실'이었다는 것도 일상계 느낌이고요. 그래서인지 이 작품만 '독자에의 도전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페라리'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역시 서술 트릭으로 교묘하게 정체를 가리고 있기 때문인데, 단서는 마찬가지로 공정하게 제공하고 있어서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소노 가의 붕괴"

밀실 살인으로 보였던 사건이 사실은 자살 사건이었음을 밝혀내는 추리가 아주 그럴싸합니다. 흉기를 사라지게 만든 트릭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요.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 제공도 지극히 공정하며,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동기도 설득력 있습니다. 하나의 작품으로의 완성도만 따지자면 수록작 중 최고입니다. 아야츠지 유키토 본인의 '본격 이론'이 꽤 길게 펼쳐지는 것도 볼거리였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의외의 범인"

수년 전 아야츠지 유키토가 참여했던 TV 기획물의 대본이라는 설정으로, 드라마 대본 형식으로 쓰여 독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진범은 화면 내가 아닌 밖에 있는 카메라맨이었다는 아이디어는 지금 보기에 새롭지는 않지만 작품에는 잘 어울렸어요. 게다가 단순히 카메라맨이 범인이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 카메라맨이 바로 아야츠지 유키토였다는 점이 밝혀지는 반전이 아주 신선했습니다. 이를 위한 정보 제공 역시 바람직했고요. 영상물로 실제로 만들어도 좋을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9/08/24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외 / 한동훈 : 별점 1.5점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4점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하늘연못
하아.... 오랫만에 추리소설 포스팅입니다. 최근 바쁘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도 통 책 읽을 시간이 없었네요. 이 책도 읽는데 1주일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럼 리뷰를 시작할께요.

일단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골든에이지" 가 과연 어떤 시기인지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는 단편 중심의 추리소설의 시대인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여명기를 지나 1913년 벤틀리가 "트렌트 마지막 사건" 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 이후 이든 필포츠의"빨간머리 레드메인즈". 메이슨의 "독화살의 집", 버클리의 "독초콜릿 사건" 등 장편 추리소설 명작들이 속속 발표되고 곧바로 크리스티, 반다인, 엘러리 퀸, 딕슨 카, 크로포츠 등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들이 데뷰를 하기 시작한 시기, 즉 1차대전 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거장들의 데뷰가 이어지고 본격 추리소설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황금시대 (골든에이지)"라고 하는 것이죠.

때문에 1차대전 이전의 소설만 담고있는 이 책의 "골든에이지"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책 소갯글을 보면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다섯 작가의 소설을 담은 책" 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소갯글에 이어지는 바로 다음 문장인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개척기에 활동한..." 이라고 설명되는 것이 더욱 적당한, "개척기 (여명기) 미스터리 중편선" 이 더 합당한 표현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잘못된 제목이라면 과장광고를 넘어서서 거의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제대로 목차나 내용을 살펴보지 않은 제가 죽일 놈이지만요.

그래서인지 사실 책 내용은 기대와는 많이 달라서 실망이 컸습니다. 이 "골든에이지"라는 시기에 나온 작품들을 제가 워낙 좋아라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흥미진진한 본격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이 책에 실린 중편들은 실제 추리물로 보기에는 힘든, 추리물 성향을 띈 드라마들로 단지 오래되었다라는 가치 밖에는 없는 탓입니다. 더군다나 5편의 작품들 중 한작품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 을 다룬 것이 아닌 일종의 "창작극"이나 "자작극" 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몰입하기도 어렵고 지루했습니다. 이럴바에야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나 번역해 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아노 탐정 중단편이 하나 실려있긴 하지만 많이 부족해요. 작품도 별로였고요.

물론 역사적인 의미는 크고 책 자체의 번역이나 장정, 디자인도 훌륭한 편이라 과장된 제목으로 현혹만 시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물론 그랬더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겠지만요. 별점은 1.5점입니다(솔직히 1점 주려다 책 자체의 가치를 생각해서 참습니다.).

3층 살인사건 / 프랭크 보스퍼 

런던 블룸즈베리의 한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목 그대로 하숙집 3층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몇몇 인물들만 등장하여 주로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연극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배우 출신인 탓이 크겠죠.

그러나... 제목과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과는 달리 추리소설로 보기는 애매했습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확립되지도 않았고 특히나 퍼즐 미스터리는 등장하지도 않았던 때에 쓰여진 작품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물로 정의하기는 확실히 무리였어요. 가장 중요한 목격자의 증언이 범인의 변장을 통해 유도된 것이라던가 하는 간단한 트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유치한 수준의 트릭이며, 경찰의 수사 역시 너무 대충이고 전개도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등 범죄와 관련된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약했거든요. 더군다나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추리소설이나 장르문학에 대한 홀대(?)가 묻어나는 것 역시 조금은 불쾌한 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추리소설 초창기의 추리물의 성격을 띈 소설이다.. 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네요. 영국 하숙집과 거주민들의 생생한 묘사,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재기발랄하면서도 요란한 대사들은 재미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뻔하기도 하고요.

애시당초 이 작품 하나밖에 작품이 없는 작가를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라고 선전하는 출판사 행태가 더욱 문제겠죠.

데드 얼라이브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영국인 변호사가 미국의 외딴 농장에 휴양차 체류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하네요. 피해자가 사실은 살아있었다... 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법정 장면에서의 증거를 둘러싼 공방과 감형을 위한 거래로 거짓된 자백이 속출하는 등 드라마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시나 추리물은 아닙니다. 사건이 결국 범인(?)의 자백으로 해결된다던가 - 아니 애시당초 사건 자체가 없었지만 - 주요 증인을 찾아 나서는 것도 신문 광고를 통한 제보에 의지한다던가 등으로,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추리라는 발상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초창기 법정 드라마 정도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역사적 가치 이외의 재미를 찾아보기도 힘들고요.

안개속에서 /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 

초면인 사람들도 친구가 되는 영국의 한 클럽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용인데, 등장인물들의 "증언 (목격담 / 경험담)" 으로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미국인이 간밤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한 경험담을 이야기하자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러시아 공주를 자칭하는 여자도둑과의 인연을 다른 회원이 이야기하고, 살인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귀족의 변호사가 살인사건의 다른 진상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식으로 증언과 증언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거든요.

결국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사건에 관심을 보인 클럽회원 준남작이 하원에서의 연설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약간의 반전이 밝혀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앞선 두 작품에 비하면 확실히 추리라는 과정이 묘사된, 때문에 그나마 "추리 소설" 로는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두 번째 다이아몬드 사건 이야기는 내용에 별반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추리의 과정은 있지만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그 진상이 밝혀지는 뻔한 추리라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쓰여진 시대를 생각하면 너무 박하게 굴 필요는 없겠죠?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입니다. 그런데 엘러리 퀸의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에 선정된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이유를 통 모르겠네요. 그만큼 가치있는 작품은 아닌듯 싶은데...

버클 핸드백 /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나선계단의 비밀"로 유명한 서스펜스 소설의 대모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작품입니다. 시리즈 캐릭터이기도 한 간호사 "힐더 애덤스" 시리즈의 한편으로 국내에는 처음 번역된 시리즈 같네요. 작가의 간호사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듯한 디테일한 묘사와 별명에 걸맞는 서스펜스, 스릴의 묘사가 일품인 작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이야기 전개가 치밀하고 결말도 합당해서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너무 급작스럽게 사건이 해결되는 점, 주요 등장인물의 고백(?)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 만 하죠. 무엇보다도 소설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이 좋았으니까 말이죠. 이 책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습니다.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 /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

"독화살의 집"에 등장했던 명탐정 아노 탐정의 중단편입니다. 상당히 좋아하는 캐릭터라 기대가 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 별로네요. 본격물스러운 맛이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의 핵심인 여주인공이 우연히 본 범인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심리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심리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아노 탐정의 캐릭터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등 실망스러운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초반부 마약을 발견하는 과정과 추리가 여러 단계로 발전하는 부분, 그리고 범인의 이상한(?) 행동과 장물을 숨겨놓는 곳에 대한 아이디어 정도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함량 미달입니다. 다른 중단편들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25/05/23

여왕국의 성 1,2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 연구회 EMC 회원인 모치즈키, 오다, 아리스가와, 마리아 네 명은 렌트카로 가미쿠라로 향했다. 가미쿠라에 위치한, 외계인을 믿는다는 신흥종교집단 '인류협회' 본거지로 떠났던 에가미 선배의 연락이 끊긴 탓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가미 선배를 만나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은 인류협회의 '성'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하지만 인류협회는 경찰을 부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감금하였고, 에가미 선배와 일행은 성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시마다 소지의 계보를 잇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이지요. 국내에도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유명 시리즈 중 하나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또 다른 시리즈는 명탐정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장편입니다. 신흥 종교집단의 본거지인 ‘성’을 배경으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1권과 2권을 합쳐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완독에 1주일 정도 걸렸네요.

명성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2008년 '주간분슌 선정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위", '제 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는게 이해가 될 정도로요.
우선, 공정한 단서 제공이 단연 돋보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제공해 줍니다. 마지막 추리쇼 직전에는 ‘독자에의 도전장’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고요. 전통적인 본격 추리물 애호가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구성이지요.

사건과 트릭, 추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11년 전 총기 실종 사건 트릭은 단순하면서도 현실적인 조건을 이용하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밀실인 현장에서 자살한 피해자의 총기를 가져간 범인은 어린아이로, 아이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쓰러져있던 사체 뒤에 숨어 창 밖에서 바라보던 쓰바키 등 목격자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왔을 때는 문 뒤에 숨었고요. 그리고 쓰바키가 경찰이 올 때 까지 정문 앞을 지킬 때 총을 가지고 뒷문으로 탈출했던 겁니다. 복잡한 장치를 활용한 트릭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을 정교하게 활용한 현실적인 트릭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고, 어린 아이라는 범인 특징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현재 시점의 연쇄 살인 사건은 전형적인 후더닛 추리인데, 아래 의문이 핵심입니다. 

  • 첫째, 총기는 어떻게 삼엄한 보안이 이뤄진 인류협회 본부로 반입되었는가? 
  • 둘째, 어떻게 총기가 11년전 사라졌던 그 총일 수가 있었는가? 

이에 대한 추리는 아래와 같고요.

  • 첫째, 총기는 성스러운 동굴 안에 숨겨져 있었는데, 인류협회 쪽이 아닌 마을에서 들어오는 입구는 좁아서 어린 아이만 들어올 수 있었다. 즉, 총기를 숨긴건 어린 아이였다. 
  • 둘째, 총기가 11년 전 사건의 흉기였던 권총이기 때문에, 범인은 11년 전 사건에서 총기를 훔쳤던 사람이다. 

이렇게 범인은 11년 전 마을에 살고 있던 어린 아이라는게 밝혀집니다. 현재 인류 협회 소속 인원 중에서 이에 해당되면서, 사건 당시에 알라바이가 없는건 아오타밖에 없고요. 즉 아오타가 범인입니다!

이런 추리적 요소와 더불어 사건들이 벌어지는 배경인 인류협회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외계인을 신으로 믿는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의 교리, 협회의 구성, 생활 방식과 본거지 '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교주 노사키 기미코가 유괴당해서 에가미 일행이 감금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진상 역시 그럴듯했어요.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팀워크도 돋보입니다. EMC 멤버인 모치츠키, 오다, 아리스, 마리아 모두 톡톡 튀는 매력을 갖추고 있으며 중반부에 '성'에서 탈출하려는 모험도 풋풋하고 귀엽게 그려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보다는 이 작품 쪽이 더 "청춘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맞는게 아닌가 싶네요. 버블 경제 몰락 직전의 분위기에 대한 언급, 그리고 멤버들을 통해 중간중간 등장하는 문학, 드라마, 영화에 대한 인용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카프카의 "성"을 이렇게 읽어보고 싶게 만들게끔 소개한 글은 정말이지 처음 봅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움도 있습니다. 우선, 전체 분량이 과합니다. 거의 900페이지 분량 중 인류협회와 '성'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분량이 할애되는데 이렇게까지 길 필요는 없었습니다. 특히 '성'의 경우, 내부 구조도까지 곁들인 상세한 묘사로 과다한 정보를 주지만 이는 실제 사건과 거의 관계가 없어서 허무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야기 중간에 마리아의 시점으로 전환되는 장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점 변경이 새로운 정보나 심리적 깊이를 제공하기보다는 서사 전개의 리듬을 끊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지루함도 가중시키고요.

그리고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절묘한 우연이 개입되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번역자도 후기를 통해 언급한 문제인데, 범인이 5시 경에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던 도이를 살해한 뒤 곧바로 동굴에 들어가 총기를 꺼냈다면, 지즈루와 일정 시간 동굴 내부에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이 인기척이나 이상한 낌새를 느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인이 마주친 지즈루마저 살해하여 사체를 숨겼다가 발각된 후, 지즈루가 동굴 안에 있던 시간을 여러가지 증거(깨진 시계라던가, 할아버지 증언이라던가...)로 알아내어 범인을 특정한다는 이야기가 추리적으로는 더 나았을 겁니다. 잔혹하긴 하지만요.

아울러 에가미의 추리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어린아이만 동굴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특히 그러합니다. 입구 측에서 총을 종이와 비닐 등으로 공 모양으로 감싸 던진 뒤 출구 쪽('성'의 동굴)에서 회수하거나, 개에 묶어서 들여보내는 등 여러가지 대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저 권총을 흉기로 써서 꼬리를 밟힐 이유부터 설명이 부족합니다. 인류협회에 대한 원한으로 예언을 망치기 위해 살인을 저지렀다는 동기부터 비현실적이지만, 정말로 이게 목적이었다면 둔기나 칼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아오타가 사체 강직을 이용해 총을 쏘게 만든 이상한 알리바이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앞서의 동기가 진짜라면, 에가미의 말대로 자기가 범행을 저질렀다며 세상에 진상을 드러내는게 더 좋은 방법입니다. 알리바이 트릭을 써 가며 은폐를 기도할 이유는 없어요. 심지어 제대로 동작할지도 모르는 애매한 방식의 트릭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정통 본격 추리의 규칙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감성과 설정을 조화롭게 결합한 신본격 추리 소설이 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일단 재미는 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본격 추리물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겁니다.

2010/10/28

도깨비불의 집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2점

도깨비불의 집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시작

기시 유스케의 단편집입니다. 총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편으로만 잘 알려진 기시 유스케가 단편집을 출간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이 "유리망치" 의 에노모토와 준코 콤비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주저 없이 집어 들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읽고 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선,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매력이 부족했습니다. 수록된 4편의 중·단편 모두 트릭이 별로였으며, 작품 전체의 테마인 '밀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둔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트릭이 다소 부족하다면, 이야기나 캐릭터의 매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유리망치"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괴도 탐정' 에노모토와 츤데레 변호사 준코 콤비도 이 작품에서는 표면적인 묘사로만 일관하며 개성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기시 유스케는 본격 추리보다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강점으로 하는 작가라 그런지, 이야기의 길이와 묘사가 제한되는 단편에서는 매력이 반감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유리망치"도 본격 추리적인 측면에서는 평범한 수준이었죠.) 미치오 슈스케처럼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도깨비불의 집

나가노의 한 시골 마을에서 지역 유지인 니시노 마사유키의 딸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출동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집이 완벽한 밀실 상태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첫 발견자인 니시노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한다. 이에 니시노의 변호사는 '밀실' 사건의 권위자로 알려진 준코 변호사를 초빙하고, 준코는 사건 해결을 위해 이전 사건의 진짜 해결사였던 에노모토를 호출하는데...

범인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도망갈 수 없는 완벽한 밀실 사건이 등장하는 표제작으로, "유리망치"처럼 다양한 가설이 등장하고 이후 진상을 밝혀내는 전개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측면에서는 개운치 않았습니다. 경찰이 화장실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점, 밀실 자체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점, 그리고 용의자가 특정되어 있어 증거 없이도 '심문'만으로 진상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에서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동기도 억지스러웠고요.

오히려 에노모토가 제시한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설이나 캐릭터의 매력은 그나마 살아 있는 편이라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검은 이빨

준코는 의뢰인 후루미조와 함께 사고로 죽은 구와시마의 애완동물 사육용 별장을 방문한다. 구와시마가 키우던 거미를 관리하고 후루미조의 거미를 받아오기 위한 것이었지만, 구와시마의 미망인의 태도와 그의 사망 사건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된 준코는 진상을 밝혀내기로 한다.

'거미'라는 설정 자체는 특이하지만, 트릭이 너무나도 별로였습니다. 일반인이 과연 이런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성이 떨어졌고, 애초에 이렇게까지 해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거든요. 게다가 에노모토의 '가설'도 별로였기에, 준코가 혼자 활약하는 점 외에는 건질 것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장기판의 미궁

밀실에서 살해당한 프로 장기 기사 신페이 5단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은 에노모토를 부른다. 장기 팬이기도 한 에노모토는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진상을 눈치채게 된다.

밀실 트릭이 너무나 어이없는 수준이라 황당했던 작품입니다. 이런 유형의 트릭은 "노란 방의 비밀"에서부터 수없이 등장했던 것이지만, 그마저도 설득력 있게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범인을 특정하는 과정도 어설펐습니다. 체인에 피해자의 혈흔과 손자국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서 이렇게까지 사건이 꼬일 이유도 없고요. 경찰이 조금만 수사를 진행했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라 생각됩니다.

다행히도 '장기'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그에 따른 범인의 동기에 대한 설명은 흥미로운 편이었지만, 그것이 본격 추리 소설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주지는 못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개는 알고 있다

연극 극단의 극단주 헥터가 살해된 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사야카는 진상 규명을 위해 준코를 찾아온다. 준코는 헥터의 자택 앞에 모인 극단원들에게 진범을 밝혀낼 것을 선포하고, 에노모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왁자지껄한 블랙 코미디이며, 설정과 전개는 연극에 가까운 작품. 살인 사건이 등장하고, '돈류고'라는 개가 만들어낸 밀실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 밀실 트릭은 에노모토의 말처럼 '너무나 손쉬운' 간단한 트릭이었습니다. 동기가 너무나 확실한 용의자가 있어서 사건 해결도 쉽고요.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유쾌하고 독특한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기존 기시 유스케의 작품과도 사뭇 다른데, 이런 작품도 잘 쓰는 작가라는게 놀랍더군요. 적절한 분량도 마음에 들었고요. 평작 수준은 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은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는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만화적이라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입니다.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는 좋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고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도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2/07/02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윌리엄 브리튼 / 배지은 : 별점 3점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 6점
윌리엄 브리튼 지음, 배지은 옮김/현대문학

인기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답습하는 작품은 많습니다. 탐정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셜록 홈즈의 경우는 작가 사후에도 다른 작가들에 의한 시리즈가 계속되었고, 에놀라 홈즈와 같은 가족이 등장하는 스핀 오프에 각종 패러디와 파스티슈 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저 역시 "경성 탐정록"이라는 파스티슈 물로 숟가락을 얹었었지요. 

문제는 누구나 다 아는 탐정이 등장하기에 별다른 변주를 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셜록 홈즈가 21세기에 환생을 하든, 이세계로 전생을 하든간에 그는 셜록 홈즈니까요. 하지만 이 단편 시리즈는 이런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그 탐정이 등장하는 시리즈 작품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가 흠모하는 탐정을 따라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탐정역에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합니다. 고전 정통 본격물 탐정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모든 이야기들이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인데 이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작가 취향이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듯 하네요.

물론 몇몇 작품들은 원래 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고전 정통 본격물 애호가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좋은 시리즈라는건 분명합니다. 뒤이은 수록된, 저자의 다른 시리즈인 스트랭 씨 시리즈 역시 고전 정통 본격물로서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겪고 있었던 고전 정통 본격물 금단 현상이 조금이나마 해소된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11편이나 되는 "~를 읽은 남자" 리뷰를 쓰다보니 힘이 빠져서, 스트렝 씨 시리즈는 제일 괜찮았던 한 편만 소개드립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에드거는 존 딕슨 카 소설에 나오는 것같은 밀실을 만들어 삼촌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계획의 핵심은 벽난로였다. 삼촌을 살해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벽난로 굴뚝으로 빠져나온 뒤 난로에 불을 붙여 밀실로 만들 셈이었다...

아주 오래 전 다른 앤솔러지를 통해 읽었던 작품입니다. 존 딕슨 카하면 떠오를 '밀실'을 소재로 만든 작가의 처녀작입니다. 범인이 범행 계획을 앞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도서 추리물' 형식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블랙 코미디에 가깝지요. 그래도 재미만큼은 나무랄데 없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엘러리 퀸의 광팬 아서 민디가 머무는 양로원에서 위책 노인이 애지중지하던 10달러 금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일한 용의자 데니슨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기까지 했지만, 금화는 찾을 수 없었다...

엘러리 퀸 광팬이 "퀸 수사국" 속 "마약 부서 검은 장부"라는 작품을 인용해가며 추리를 펼친다는건 시리즈 설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데, 사실 아서 민디는 별로 엘러리 퀸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장부"에서의 트릭과도 아무 관련이 없고요. 

그러나 다행히도 원전보다 추리적인 부분은 훨씬 낫습니다. 아서 민디는 데니슨의 뺨 상처가 벌어진 이유, 계단을 끔찍히 싫어하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추리하여 진상을 밝혀내는데, 설득력 높은 완벽한 추리였기 때문입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제 별점은 5점입니다. Hall of Fame!

"읽지 않은 남자" 

몬티는 친구 포드에게 벽돌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암실용 방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포드는 몬티의 아내 헬렌이 죽은 교통사고를 일으켰지만, 몬티는 그건 사고였다며 포드를 달랬다. 두 남자는 곧바로 벽을 쌓기 시작했고, 몬티는 포드에게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코노서스 초이스 반 병을 건넸다...

포드는 헬렌이 갑자기 도로 한 복판으로 뛰어나와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몬티는 집 앞 우편함에 포드 차 페인트가 묻었다는 것, 그리고 현장 근처에서 버려진 위스키 병을 찾아낸 뒤, 포드가 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헬렌을 덮쳤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복수를 위해 포드를 불러 벽을 쌓는 척 하고 암실 안에 가둬 버리고 말지요.

그런데 차 안에서 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고 당시 포드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판단한 수사 결과는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고를 일으킨게 분명한 포드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몬티를 당당하게 찾아온 경위, 그리고 제 발로 갇힌 방을 만드는데 참여한 것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요. 몬티는 포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티야도 술통"을 읽지 않아서 이 함정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이건 책을 읽고 안 읽고의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애초에 위험한 상황에 제 발로 들어간게 문제거든요.

읽지 않은 남자라는 변주는 좋은 발상이었는데,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렉스 스타우트를 읽은 여자" 

카니발에서 "뚱뚱녀" 역할을 맡은 거트루드는 연기를 위해 렉스 스타우트 작품을 탐독하다가 빠져들게 되었다. 쇼 단원 중 거트루드가 딸같이 아끼던 뱀 조련사 릴리가 살해된채 발견되자, 거트루드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는데...

렉스 스타우트네로 울프와 뚱뚱하다는 점, 그리고 아치와 같은 조수(?)가 있다는 연결 고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렉스 스타우트, 그리고 네로 울프와 별 관계는 없습니다. 평범한 추리물이에요.

그러나 정통파 본격물로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핵심 단서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반쪽짜리 메달에 적힌 BY-BY라는 글귀에 대한 단서 제공이 전무한 탓입니다. '비실이'라는 별명을 들으면 불같이 화낸다는 설정도 너무 후반부에서나 드러나서, 전개 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은 소년" 

시골 마을 라킨스코너에 벨기에 교환학생인 열 살짜리 천재 자크 뒤몽드가 찾아왔다. 자크는 마을 경찰 맥스 코리와 친구가 되는데, 어느날 라킨스코너에 수 명의 대학생들이 찾아와 기묘한 장난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학생들이 노린건 희귀 우표였는데, 이걸 사다가 혹시 발각될까봐 다른 기묘한 사건을 벌였다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진상이 납득되지 않아서 도무지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마을을 들 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러 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차례대로 원하는 우표가 나올 때 까지 우표를 그냥 사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났을테니까요. 독자가 뭔가 희귀 우표 관련된 사건이라고 쉽게 짐작 할 수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탐정역인 자크가 벨기에인으로 대화하다가 프랑스어를 섞으며, 심지어 10살 짜리가 있지도 않은 콧수염을 만지는 시늉을 한다는 식으로 포와로를 따라한다는 묘사는 심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학생들이 노리던 우표는 인쇄 오류로 '콧수염'이 생긴 것 처럼 인쇄되었다는건 이러한 억지 포와로 따라하기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추리도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시리즈 최악의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코난 도일을 읽은 남자" 

테리 왓슨에게 대학 후배 대니얼 블래싱검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인데다가, 뚱딴지같은 내용이어서 이유를 알기 위해 왓슨은 편지 속에서 언급된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건 뒤, 워싱턴으로 호출되었다. 알고보니 블래싱검은 타국 대사관에서 암약하는 스파이로, 중요한 목록이 담긴 상자의 비밀 번호를 편지 속에 숨겨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는지는 모른채 시간은 흘러만 가는데...

왓슨에게 보내진 엉뚱한 편지에 암호가 감추어져 있다는 설정은 흥미로왔습니다. 세개의 이어진 영어 알파벳이라는 암호도 단순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암호 때문에 테리 왓슨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결말이 아주 유쾌했어요. 암호는 "LMN"으로 이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대사 - '엘레멘터리 왓슨 - 그건 기본이야 왓슨' - 를 떠올리면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LMN 테리 왓슨" 이 되니까요. 말장난이기는 해도,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어야만 풀 수 있는 암호라는 점에서 시리즈 취지에도 잘 부합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애독자 케니 신부는 추찹한 사진을 밀매하다가 자살했다는 교구민 팀 해링턴의 장례 미사 문제로 주임 시부 고거티 신부와 언쟁을 벌였다. 그 뒤 고거티 신부는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내 보라며 케니 신부에게 하룻 동안의 유예를 주었다. 그리고 케니 신부는 사건 담당인 깐깐한 언셀 형사와 함께 방문한 사건 현장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데....

브라운 신부 스타일의 탐정물이라기 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가치 있는 작품이라는걸 증명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특히 팀 해링턴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에요. 차에 반사되는 햇살을 보고, 추잡한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려면 '커튼'을 쳤어야 했는데 현장이 그렇지 않은걸 눈치채는게 아주 자연스러웠거든요. 깐깐한 언셀 형사가 설득당한게 일리가 있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추리였습니다. 사진 배달부의 실수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동기도 짧은 분량에 잘 드러나있고요. 여러가지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대사를 장황하게 펼치며 쉬운 말도 한번 더 꼬아서 말하는 브라운 신부와는 전혀 다른 신세대(?) 신부지만, 애정하는 브라운 신부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케니 신부 캐릭터도 마음에 드네요.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 작품에 푹 빠졌다는 건 "~를 읽은 남자" 시리즈에 속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좋은 단편 추리물로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대실 해밋을 읽은 남자" 

정년 퇴직 후 도서관에서 책 정리하는 잡무를 하게 된 프리처드는 어느날 도서관장 디컨 씨의 부름을 받았다. 추리소설 애호가 패러것이 도서관 이사회 회장 앤드루 킹과 건 내기 때문이었다. 패러것이 도서관 어딘가에 감추어 둔 책을 찾으면 그가 추리소설 초판본 컬렉션을 도서관에 기증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추리소설 매니아 프리처드가 앤드루 킹을 도와 패러것이 준 간단한 단서로 한 시간 안에 책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는데....

아르바이트하는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취미를 이용해서 도서관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다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꿈 같은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추리 소설 매니아 프리처드 씨에게도 행운이 닥치는 결말까지도 아주 환상적이에요.

이야기의 핵심인 보물찾기 게임도 꽤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독자는 풀이 과정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3.14"가 적힌 봉투 안에 "더블 더즌", 그리고 "몰타의 매"라고 적힌 카드가 한 장씩 들어있는게 힌트였는데, "3.14" -> 파이는 "Pie"로 바꿀 수 있고, "더블 더즌"은 24, "몰타의 매"는 "매"가 소문자라서 말 그대로의 새를 의미하므로 "검은 새"가 되고, 이게 "파이 안에서 구워지는 스물 네 마리 검은 새"라는 동요로 이어지는데, 한국 독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추리인 탓입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르주 심농을 읽은 남자" 

친구 해럴드와 함께 고가의 화물을 나르는 바니는 조르주 심몽의 메그레 시리즈를 탐독해왔다. 그들은 대저택에서 '라이트풋' 래리 쇼필드라는 고용인 앞에서 싣고 온 화물을 내려놓았다. 그는 별명 그대로 알록달록 화려한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러나 바니는 메그레 경감의 활약을 떠올리며,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메그레 경감은 사실 대단한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좀 우직하고,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죠. 그러나 성실하고 꼼꼼한데다가 관찰력이 뛰어난데, 이 작품 속 바니 역시 관찰을 통해 래리 쇼필드가 가짜라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그는 래리 쇼필드가 절대로 다리를 꼬지 않고, 발바닥을 계속 땅에 대고 있는걸 눈치채거든요. 부츠를 갈아신었는데, 새것이라는게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단지 부츠가 새 것이라는게 그가 가짜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래리 쇼필드가 자기 입으로 흙길을 걸어 왔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부츠는 얼마든지 갈아 신을 수 있잖아요? 바니가 오지랖을 떨어서 쇼필드의 정체를 폭로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설령 눈치를 챘더라도, 현장을 벗어나 경찰에 신고하는게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든 상대방을 위협해가며 추리쇼를 펼칠게 아니라요.

이렇게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며, 메그레 경감의 특징을 잘 살린 것도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에밀 프랫은 오랫만에 겨우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담당하고 있는 도킨스 사건 때문이었다. 영국인 도킨스는 미국으로 여행을 왔었는데,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도박으로 땄던 3천 달러 정도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는 죽기 전 경찰에게 "올드 피싱.."과 비슷한 말을 남겼다. 에밀 프랫의 딸 메릴리는 최근에 읽고 있는 존 크리시의 기디온 경정 시리즈에 나온 영국 코크니 말투가 해결의 실마리라는걸 아빠에게 알려준다....

기디온 경정의 활약보다는, 작품에 등장했던 영국 런던 토박이 코크니들의 은어가 단서가 된다는건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잉 메시지라는 억지스러운 설정에 더해 죽어가면서 은어를 써서 단서를 남길 이유가 설명되고 있지 않은 등,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다는건 아쉬웠어요. 당연히 한국인 독자로서는 추리하기도 힘든 내용이었고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역사 교사 폴 해스킬, 전화선 보수 기술자 재스퍼 지머먼, 대장장이 가브리엘 둔, 은행장 시드니 워윅과 메리 팅커 술집 주인 핀들레이의 다섯 명은 모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팬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리 팅커 술집에 모여 "흑거미 클럽" 처럼 수수께끼 풀이 놀이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진짜 작은 마을 홀컴밀스에서는 별다른 사건이 없어서 놀이 속 수수께끼는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기자 에드거 바시가 진짜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마을 최대의 백화점 '밸류 투데이'의 사장인 마케팅 귀재 데이비 로터스가 천 달러가 들어있는 금고를 전시장에 공개하고, 금고를 열면 누구나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비밀번호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수께끼였다. 아시모프 팬들은 각자 자신만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에 대한 일종의 파스티슈 작품입니다. 

참석자들이 각자 내 놓는 추리들이 눈길을 끕니다. 감히 '흑거미 클럽'을 운운할 수 없는, 여러모로 부족한 추리들이었지만 각자의 직업과 전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잘 와 닿기는 했거든요. 마지막에 집사 헨리의 포지션인 술집 주인 핀들레이가 정답을 맞추고 천 달러를 얻는 결말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밸류 투데이는 데이비 로터스의 철자를 가지고 만든 애너그램으로, 이를 이용하면 금고 번호를 알아낼 수 있다는 진상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한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정통 본격 고전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인 독자에게는 쉽게 추리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했지만요.

여러모로 아시모프의 원전인 걸작을 잘 이해하고 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 2부 스트랭 씨 이야기 - "스트랭 씨 여행가다" 

스트랭 씨는 단체 버스 투어로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그의 옆 자리에 앉게 된 건 제리 수녀였다. 그리고 여행 도중 제리는 가판대에서 나무로 된 십자가를 구입했는데, 그 십자가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스트랭 씨는 귀국 직전 십자가 사건과 퀘벡에서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의 연관성을 추리해 내고, 버스에서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작가의 또 다른 시리즈인 고교 과학 교사 스트랭 씨 시리즈의 수록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십자가를 '길포일' 이라는 여행객으로 변장한 은행강도 르클레어가 훔쳤던 이유는, 십자가를 포장했던 신문지 때문이었다는 추리가 특히 좋습니다. 신문에 르클레어 사진이 실려 있었다는 이유는 십자가를 훔칠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비록 프랑스어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고요.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중요하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왠지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해서, "~를 읽은 남자" 시리즈로 썼어도 좋았을 것 같네요. 은행강도가 도주를 위해 미국인 단체 여행객으로 변장한다는 아이디어도 국경에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이렇듯 추리물로서 상당한 수작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못했고, 국내 소개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4편만으로 끝난게 못내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2021/10/15

미스테리아 34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4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아는 주제가 흥미로울때만 가끔 읽곤 합니다. 34호는 일본 본격 추리 소설이 특집이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나름 고전 본격물의 팬을 자부하고 있으니까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요. "니가 범인이야!" 라는 느낌이니까요. 강렬합니다.

특집은 일본 본격물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본격과 변격이라는 말의 유래, 그리고 본격이라는 말의 정의, 최초의 본격물에서 신본격, 그리고 근래 라이트 노벨류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대표작, 대표 작가들이 소개되지요. 큰 흐름으로는 본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가 사부로에서 시작하여 에도가와 란포"D언덕의 살인사건", 하마오 시로의 "그 남자가 죽였을까", 요코미조 세이시"혼진 살인사건",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사회파 미스터리의 대 유행에 이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니시자와 야스히코"일곱 번 죽은 남자", 모리 히로시"모든 것이 F가 된다"신본격 전국 시대를 넘어 우타노 쇼고"벛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식입니다. 

뒤로는 본격물이 일본에 받아들여진 당시 일본 추리 문단에 대한 상세 설명, 여러가지 유명 작품 속 트릭에 대한 소개, 점점 캐쥬얼화 되어가는 신본격 장르물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자료 조사도 탄탄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풍성한 편이었어요.

두 번째 특집 기사 '체인질링'은 인간의 아이와 바꿔치기된 요정 아이에 관련된 민담을 분석하는데, 중세 유럽에서 왜 아이가 바뀐 것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졌는지를 당시 역사적 배경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형일 수도 있고, 아이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탓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관련된 다른 전설, 우리 나라의 예도 들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홍한별 번역가와 곽재식 작가의 옛 사건 탐구도 흥미로왔어요. 특히 명동 한복판에 일제 강점기 시절 빼돌리지 못했던 보물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없어 보였습니다. 레이철 쿠시너의 "마스 룸" 속 등장하는 요리들을 소개한 컬럼은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글을 써 온 저로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요리들도 아주 신기하더군요.

그런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본격물 관련 특집은, 이미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로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도 쓸 수 있었을 기사였달까요? 물론 캐쥬얼화 되어가는 최근의 흐름은 잘 몰랐던 내용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쪽 작품들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거에요.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가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습니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아동 학대 흔적에 대한 컬럼, 이은의 변호사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속 법적 대응 방법 등 다른 기사, 컬럼들은 볼륨이 대체로 빈약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와 별다를게 없는 수준이에요. 반대로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포제서" 평론은 볼륭은 풍성했지만 글의 가독성이 너무 낮아서 지루했고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평론만 봐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가독성이 낮은 글은 이외에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짤막한 리뷰들 하나하나까지 모두요.

마지막에 수록된 3편의 단편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관심있는 특집이더라도 더 이상은 구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은지, 홍한별, 곽재식의 컬럼과 논픽션 기사나 추후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해 볼 생각입니다.

수록 단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리뷰를 마칩니다.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알이를 지켜라!" 

자신이 창조해 낸 인기 동화책 콩알이가 인생의 전부인 일러스트레이터 지혜정의 남편 김진석 교수가 살해되었다. 범인은 제자 최은비였다. 진석이 그녀를 강간하려 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혜정은 은비를 꼬드겨 시체를 강원도 의천에 있는 별장에 유기하러 출발했다. 콩알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별장에는 진석의 변태 친구 한동철이 머무르고 있었고, 혜정은 동철마저 살해한 뒤 시체 두 구를 함께 유기해 버렸다.

듀나범죄 스릴러 단편인데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졸작입니다. 

우선 범죄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 낮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쓰레기였다 한들, 피해자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와 함께 시체 유기를 한다는걸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콩알이'의 존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부족해서, 그다지 절박한 이유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혜정이 처음부터 한동철을 죽이려 했고, 이를 위해 앞서 시체 유기를 일부러 훤히 드러나게 시도했다는 식으로 범죄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기라도 했다면, 범죄물로 볼 만한 여지가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전개도 혼란스럽습니다. 진석이 제자의 고백을 녹화하여 한동철과 공유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다는 진상이 드러나는건 뜬금없었고, 이 때문에 한동철을 죽였다는 것도 급작스러워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애초에 진석은 여태 은비의 고백을 녹화해서 잘 쓰다가, 왜 갑자기 강간을 저지르려고 한걸까요? 문학하는 남자들을 모두 성범죄자로 단정짓는 설정도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듀나의 특기이자 장점인 기발한 설정이 빠져버리니, 뭐 하나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웃는 탐정" 

초월탐정 김재건과 미소년 조수 마곤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집주인 여사와 김재건 사이에 택배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망진창이에요. 마곤이 초능력자로 일종의 투명 인간이 되어 집주인 여사가 가지고 있던 김재건의 택배를 훔쳐내는게 이야기의 거의 전부인데, 마곤이 이 택배를 왜 훔쳐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월탐정 어쩌구하는 김재건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경박하고 유치찬란한 김재건 묘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초월 탐정' 이 뭘 뜻하는 별명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군요. 서두의 시점을 가지고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메타 미스터리' 운운했던 앤솔로지 "Y의 비극"에서 니카이도 레이토가 썼던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도 엄청난 졸작이었지요.

마곤이 할머니와 김재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추리하는 일상계 추리스러운 부분은 괜찮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저 그랬어요.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세트장" 

배우 잭 하터가 영화 촬영용 세트장에서 살해당했다. 사건 당시 21번 방음 세트장 안에는 현장 제작자 조 캐츠키와 감독 샘 매스터퍼드 등 모두 열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193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단편인데 옛스러운 영화 촬영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낸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잭 하터와 마리 플레밍, 두 주연 배우 간에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마지막 촬영 장면 묘사가 특히 그럴싸 했어요. 이 부분은 여배우를 연모하고 있었던 감독 샘의 살인 동기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기도 했는데, 잘 그려냈습니다.

'스크립터'가 탐정역을 소화한다는 설정도, 과연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썼구나! 싶더군요. 스크립터는 씬마다 있는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사람으로, 당연히 관찰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관찰력을 바탕으로, 일종의 닫힌 공간인 촬영 스튜디오에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과정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거의 대부분 목격 증언으로 소거되는 덕분이에요. 결국 조 캐츠키와 샘 매스터퍼드만 남는데, 발소리를 듣지 못해서 샘이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조 캐츠키의 발소리는 독특했고, 샘은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별다르게 제공되는건 없어서 본격물로 보기 힘들며, 추리도 일사천리라 의외성은 없습니다. 사실 샘이 범인이라는 스크립터의 추리는 증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서, 경찰 수사가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생각되네요. 그래도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최소한 읽을만한 수준의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9/06/18

[옛날 신문 검색] 불황 소설가 추리소설 바람 - 의외의 작가, 의외의 작품

네이버 옛날 뉴스로 검색을 즐기다가 발견한 1983년 12월 12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추리소설 전문 부정기 잡지 [미스터리]의 소개로 시작하는 기사는 이어서 순수소설 작가들의 추리소설 작품을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본격 추리소설로 이병주씨의 "미완의 극"과 "황백의 문", 황석영씨의 "심판의 집", 박범신씨의 "형장의 신", 조해일씨의 "갈수없는 나라", 표성흠씨의 "낙동강 오리알"을 들고 있으며, 시인인 정건섭씨의 "덫"도 포함되어 있네요. 저는 정건섭 선생님을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 당시에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셨나 봅니다.^^

그리고 작가 조정래씨의 추리소설 붐에 대한 짤막한 의견 (우리사회가 산업사회화 함에 따라 지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추리소설을 찾는다는 의견), 국내 추리소설의 문제점 (엽기적 제목과 지나치게 통속적인 내용 등) 도 이야기하는 등 상당히 풍성한 기사네요.

무엇보다도 본격 추리소설로 소개된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어떤 작품들인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작품들도 모르고 "내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 같은 글을 썼다니 창피할 뿐이네요. 곧바로 조사해봤는데 아뿔싸, 대부분 절판이군요... 빌어먹을 이땅의 장르문학 홀대가 유명작가한테까지 이르렀을 줄이야!!! 그나마 황석영의 "심판의 집" 만 "객지"라는 황석영 중단편전집 3권에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병주의 "미완의 극"은 최은희 납치사건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는 것 정도만 확인했을 뿐인데 다른 작품들은 과연 어떤 작품들일까요? 헌책방에서 대부분의 작품은 구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심판의 집"부터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2010/06/19

쌍두의 악마 1,2 - 아리스가와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쌍두의 악마 2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외딴섬 퍼즐'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예술가들의 촌락 기사라 마을에 은둔해 버렸다.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에이토 대학 추리연구회 일동이 출동했다. 하지만 기사라 마을은 여러가지 이유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탓에, 추리연구회는 심야에 침투작전을 벌여 에가미 선배 홀로 겨우 침투에 성공했다. 아리스를 비롯한 나머지 연구회원들은 예술가 마을 바로 옆의 나쓰모리 촌락으로 후퇴한 뒤 선배와 마리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사라 마을의 화가 오노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잠시 남기로 한 에가미 선배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기사라 - 나쓰모리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폭우로 유실되고 전기와 전화마저 끊겼다. 뒤이어 나쓰모리 마을에서도 카메라맨 아이하라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작가의 두개의 시리즈 중 - 하나는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 회원인 대학생 아리스가 화자로 등장하고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의 대선배인 에가미 지로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학생 아리스"시리즈. 그리고 또 하나는 추리소설가 아리스가 화자이며 그의 친구이자 임상병리학자로 유명한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시리즈 -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긴, 800여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시리즈 작품답게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전작 설정과 유사하면서도, 신본격 작가다운 고전적인 설정과 전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골 마을의 폐쇄적 공동체와 이 공동체가 천재지변으로 고립된다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거든요. 그리고 연쇄 살인극이라는 것도 전작들과 유사하고요.

그동안 예닐곱편의 작품을 읽어온 것에 따르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정한 단서 제공과 합리적인 추리라는 장점과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점이라 생각했던 추리적인 부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표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첫번째 사건부터 문제에요.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 야기사와 뿐이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우산 안이라면 접혀져 있을때 향기가 나지 않아서 은폐가 가능했을테니까요.
향수를 뿌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동굴 안에서 살해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작중에서 설명되듯 그냥 동굴 입구에서 살해해도 되잖아요. 입구가 2개라서 어디서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향기에 의지해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가능하더라도 피해자에게 발각될 위험성이 너무 높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50% 확률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 설정도 무리수였습니다. 여자 힘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가정일 뿐, 현실적인 단서가 되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이럴 바에야 확고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증거로 귀를 잘라낸다는 발상도 썩 와 닿지 않았고요. 차라리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으면 모든 것이 깔끔했을텐데, 이래서야 범행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계약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귀"는 무가치하며 외려 범인에게는 불리한 증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두번째 사건인 사진작가 아이하라 살인사건은 그래도 깔끔한 편이지만, 이 사건은 저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 만큼 너무 간단하고 명쾌하다는게 문제입니다.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재미가 너무 부족했어요. 핵심 단서에 대한 정보 제공이 너무나 공정한 탓에, 용의자의 직업만 가지고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로키의 팔레 이데알 이야기도 너무 많이 나와서 뭔가 사건에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트릭이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과 동일한 트릭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나마도 중간 과정을 너무 대충대충 넘기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면에서도 오노야 당연히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인물이라 열외이지만 (종유동에 벽화따위나 그리는 놈은 죽어도 싸지) 야기사와의 살의는 살인 말고라도 여러가지 방법 - 돈이나 필름을 회수하거나 하는 방법 - 이 있었을테고 세번째 살인 역시 무로키가 체포된다면 불필요한 살인이기에 무의미해 보여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고립된 기사라 마을에서 한정된 인물들 대상으로 범인이 결국 밝혀졌을테고 말이죠.

아울러 작가의 전통적인 단점 역시나 그대로입니다. 고립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중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특히나 몇몇 한정된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외딴 마을의 예술가 공동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죠. 예술가들이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서 버틴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나칠 정도로 "고립"에 집착하는 모습은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물론 기사라 마을 - 나쓰모리 마을 두개로 나뉘어져 전개되는 방식은 상당히 재미있고, 이렇게 두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결국 하나로 엮인다는 결말도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합니다. 사건도 모두 3건이나 등장해서 대장편다운 풍성함을 전해주고요.
또한 세번째 사건인 음악가 야기사와 살인사건은 주요 단서가 명쾌하고 설득력 넘치게 짜여진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트릭이라기 보다는 왜 X가 범인인가? 에 대한 설명이 핵심이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더러, 고전적이며 본격 추리소설같은 느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 구태여 변명하려면 변명할 수 있는 단서이기는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공정한 단서제공과 본격 추리소설다운 지적인 재미는 존재하나 하나의 장편으로서의 완성도는 그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벌려놓은 것에 비하면 알맹이는 빈약한 편이니까요. 엄청나게 긴 분량 역시 감점 요소였어요. 분량에 걸맞게 디테일하지도 못한데 차라리 조금 더 짧았더라면 훨씬 좋았을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조금은 더 나아 보이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현대 사회에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물을 만들고자 노력한 작 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합니다만 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작가가 트릭과 추리적인 발상에 비하면, 소설가로서의 글 쓰는 능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2020/10/04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 신예용 : 별점 2점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 : 살인자 외 - 4점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코너스톤

1890년대 후반에서부터 1940년대 까지, 추리소설의 여명기와 황금기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여러가지 단편들을 모아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이런 류의 앤솔러지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을 비롯하여 그동안 많이 접해보았지만, 국내에 비교적 소개되지 않았던 유명 시리즈 작품들 위주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절반 정도는 '퀸의 정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역사적 가치는 확실히 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를 느끼기는 함들었습니다. 너무 오래 전 작품인 탓입니다. 여러모로 설득력도 떨어졌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고전 본격 추리 애호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초창기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같은 사람이 많이 없는지 재정가로 가격이 3000원 수준으로 떨어져서 가격도 착하거든요.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터들리 농장의 공포" 

의사인 나에게 스터들리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병을 치료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스터들리 농장으로 찾아가 준남작과 만났는데, 준남작은 자신이 밤마다 유령을 보는 탓에 공포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준남작과 방을 바꾸어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 하는데...

코난 도일이 "마지막 문제"를 발표하며 '스트랜드 매거진'에 셜록 홈즈 단편 연재를 중단했을 때, '스트랜드 매거진'이 구멍을 메꾸고자 투입한게 바로 이 작품이 포함된 '어느 의사의 일기 시리즈' 였다고 합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 의사'인 핼리팩스 박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시리즈로 '퀸의 정원' 에서는 최초의 '의학 미스터리'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아쉽게도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품 발표 계기, 그리고 연재 시점을 보면 정통 본격물의 시조 중 하나로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추리 소설의 여명기 작품이기 때문인지 완성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스터들리 준남작과 부인의 방은 옷장의 비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폐결핵으로 죽어가던 부인이 저승길 동행을 위해 준남작에게 밤마다 유령쇼를 펼쳤다는게 진상인데, '나' (핼리팩스 박사)가 침실을 바꾸고 유령을 목격한 뒤, 유령이 나타난 옷장을 수색한 것 외에는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변장만 하고 추리를 펼치지 않는다면, 이를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잖아요?

스터들리 부인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부인은 '나'가 준남작에게 두뇌 질환으로 환영을 보는 걸로 이야기해줄걸 기대했다는데,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가 유령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을거라 생각한건 영 납득이 가지 않네요. 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아울러 '의학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본격 추리 소설 초창기 단편 중 한 편을 만나 보았다는 기쁨, 그리고 오스틴 프리먼손다이크 박사 이전에 '과학을 신봉하는' 의사 탐정이 있었다는 사료적 가치, 마지막으로 스터들리 부인이 유령을 만들어낸 장치가 배터리에 연결된 전등이라는 상당한 하이테크 제품이라는 점 등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금고실의 다이아몬드" 

헤드와 친구 두프라이어는 둘의 세계적인 악녀 마담 콜루치가 다이아몬드 상인 칼튼의 파티에 초대된 걸 알고 파티 초대를 받아들였다. 마담 콜루치는 칼튼 부인의 전남편이 살아있다며 그녀를 협박하는 것과 동시에, 칼튼 부인을 시켜 빼돌린 로체빌 다이아몬드를 칼튼의 철벽 그곳에서 훔쳐낼 계획이었다....

L.T. 미드와 로버트 유스터스가 합작하여 1890년대 후반 발표되었던 연작 단편집 "일곱왕 연맹" 수록작이라고 합니다. 희대의 악녀로 비밀 범죄 조직 '일곱 왕 연맹'의 총수인 마담 콜루치와 과학자이자 탐정 노먼 헤드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시리즈라고 하네요. '퀸의 정원'에서 매긴 가치는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 가치'고요.

역시 '퀄리티' 점수는 받지 못했는데, 이해가 갑니다. 특히 이 단편은 그 수준이 아주 미흡해요. 내용부터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헤드와 마담 콜루치와의 대결이 등장하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헤드의 활약이라고는 고작해야 칼튼 부인을 설득해서 전 남편에 대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이야기하는게 전부거든요. 그나마도 실패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도 놓쳐버리기 때문에 이래서야 명탐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못하는게 없는 희대의 악녀인 마담 콜루치 캐릭터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됩니다. 또 열쇠를 돌리면 비상벨이 울리는데, 울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칼튼의 열쇠를 조작해서 열쇠의 머리 부분만 헛돌게 만든 거지요. 즉, 열쇠를 돌려도 잠기지 않은거고, 당연히 다시 열어도 벨이 울리지 않은 것입니다. 열쇠를 돌릴 때의 저항감, 소리, 마지막으로 금고가 정말 잠겼는지 확인을 왜 안했는지 등 딴지를 걸자면 끝도 없지만, 열쇠 하나의 조작으로 모든걸 일이루어 낸, 대담한 발상의 트릭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연작 단편을 이어서 다 읽는다면 모를까, 이 작품 하나만 읽고 점수를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욱 많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 스페이드" 

맥스 블리스가 협박 받고 있다는 전화를 스페이드에게 남긴 뒤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샘 스페이드는 아는 형사 던디 등이 수사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대실 해밋이 쓴 샘 스페이드 단편입니다. 묵직하고 거친 사나이 매력을 담뿍 풍기는 이야기이며, 피해자의 딸이 몰래 만나던 불륜남, 광신도이면서 못생긴 가정부 에피 부인이 묘하게 엮여서 사건이 복잡해 지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소설과 다를게 없는데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다는게 놀랍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피해자의 동생 시어도어가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며, 시체에 놓여져 있던 '새 넥타이' 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 등은 본격 추리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거든요. 피해자는 옷을 벗던 중 살해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그럴 경우 매고 있던 넥타이가 아니라 새 넥타이가 놓여져 있는건 이상하다는 이유입니다. 이를 발견한 스페이드의 눈썰미도 대단하지요. 

샘 스페이드는 피해자로부터 전화를 4시 5분전 쯤 받았는데, 시어도어는 4시에 법정에서 결혼을 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에 대한 트릭도 간단하고 깔끔합니다. 시어도어는 3시 30분 쯤 피해자를 죽이고 법원으로 가서, 그 곳에 있는 전화로 자신이 피해자인 척 하고 전화를 걸은 겁니다.

물론 스페이드가 한 추리의 증거가 범인 시어도어 손에 난 상처 뿐이라는건 빈약합니다. 상처가 났다고 범인이라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까요. 가정부 에피 부인도 손에 상처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특이한 상처도 아니고요. 손의 상처보다는, 법원에서 전화를 건 기록을 찾아서 시간을 대입해 보는 식으로 풀어갔더라면 더 깔끔했을 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시어도어에게 협박?의 댓가로 지불한 돈은 2만 5천불일텐데 2'억'으로 기입된 오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와 본격 추리와의 결합에 성공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퀸의 정원'에 소개된 "샘 스페이드의 모험" 수록작으로 이 책은 역사적 중요성, 희소성은 물론 퀄리티까지 인정받고 있네요. 당연합니다.

"의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시계"

8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로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수록작과 동일합니다. 

당시에는 혹평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꽤 괜찮은 점도 많았습니다. 자브라스키 박사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을 저지른 과정이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온 덕분입니다. 흥분한 자브라스키 박사가 '층을 착각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우연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고요. 번역의 차이 때문이었을지 궁금하네요. 

물론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범죄라는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오래된 작품이라는 티는 물씬 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별점 1.5점을 줄 작품은 아니에요. 다시 매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총알" 

여성 탐정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사장'에게 고용되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일하는 사립 탐정 바이올렛과, 부유하고 젊은 사교계의 꽃 바이올렛이라는 설정이 재미나게 묘사된 작품입니다.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서 해먼드 씨가 자신의 아기와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슴에 총을 맞았으며, 아기는 죽은 해먼드 씨의 손에 눌려 질식사했지요. 해먼드 씨 가슴의 총알은 그의 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러나 근접 거리에서 손 총격은 아니었고, 해먼드 부인인 열린 창문을 통해 누군가 해먼드 씨를 쏘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라면, 해먼드 씨 몸 속 총알과 함께 해먼드 씨가 쏜 총알도 발견되었어야 했습니다. 바이올렛이 이 두 번째 총알이 어디있는지 추리해내는게 주요 내용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해먼드 씨 몸속 총알은 해먼드 씨의 총에서 발사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과학의 수준은 많이 부족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앞서 거의 단언하다시피한 정황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뒤집는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본격 추리물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총알을 아기가 삼켰고, 그것 때문에 질식한 것이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해먼드 씨가 아니라 총알이 후두를 막은게 질식사의 원인이 된 거지요. 어디론가 사라진 총알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손 꼽을만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이 진상 덕분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참고로, '퀸의 정원'에서는 A.K 그린 (애나 캐서린 그린)의 "미스터리의 걸작들" 이라는 단편집을 '역사적 중요성'과 '희소성'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소개하고 있는데, 바이올렛 스트레인지 시리즈는 아닌 듯 하네요. 가치가 크게 다를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급행열차 안 객실에서 르웰린 부부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권총이 사라진 탓에 자살은 아니었는데, 객실 문은 1인치 정도 열린 채 쐐기로 고정되어 도저히 열 수 없었다. 남아 있던 승무원과 승객의 신분도 모두 확실했으며, 그들이 범인일리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열차를 떠났을 텐데, 객차의 앞 쪽 침대칸은 승객과 승무원 모두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며, 뒷 쪽 3등칸에는 아이가 울어 달래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객실 문 옆 승객이 바라보고 있었다. 범인은 열차를 어떻게 떠났을까?

고전 본격물의 걸작 "통"과 '프렌치 경감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절반 가까운 내용을 F.W. 크로포츠 본인이 오랜 철도업 종사자라 쓸 수 있었을 상세한 기차 구조 설명에 할애하고 있지만, 열차의 구조와 얼마나 불가능한 범행이었는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던 탓입니다. 이런 기차 여행이 흔했던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기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 지금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더욱이 역부족이었어요. 차라리 만화라던가, 최소한 삽화 등으로 트릭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범행이 밝혀지는건 추리의 결과가 아니라 범인의 고백이라는 점에서도 추리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범인이 친구 르웰린에게 연인을 빼앗기자 복수심에 저지른 치정 범죄라 트릭은 알 수 없어도 동기만 확인되면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경찰은 도대체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마디로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지금 시점에서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웠던 작품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퀸의 정원'에도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니 지금 와서 읽을 가치는 별로 없겠지요. "통"이나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살인자" 

서밋 이라는 도시에 찾아온 맥스와 알은 식당에서 식사를 시킨 뒤, 사장 조지와 요리사, 그리고 손님 닉을 협박하며 그들의 목적을 말해 주었다. 그들은 올레 앤더슨을 죽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올레 앤더슨은 식당 단골로, 킬러들은 그를 기다리는데...

미국 현대 문학 거장인 헤밍웨이의 작품인데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하드보일드 느낌이 나는 드라마거든요. 킬러가 등장해서 식당 관계자들을 협박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추리 애호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운과 죽음을 의인화하여 드라마로 풀어낸 짤막한 꽁트라 생각됩니다. 2인조 킬러는 식당 관계자에게는 급작스러운 소나기와 다를게 없는 불운, 올레 앤더슨에게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닉은 불운과 죽음 모두를 맛 본 뒤, 서밋이라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는걸 보면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일종의 이단자인 셈이지요.

짤막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닥없는 우물" 

전쟁 영웅인 노장 헤이스팅스 경이 고대 아랍 전설이 얽혀있는 오래된 바닥없는 우물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함께 있었던 보일 대위가 유력한 용의자로, 그는 헤이스팅스 부인과 불륜 관계였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체스터튼의 단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사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된 연작 단편 중 한 편으로, 시리즈 제목 그대로인 '너무 많이 아는 남자' 혼 피셔가 주인공입니다. 중동 어딘가에 있는 영국 식민지 공무원이지요.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던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영국 제국 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영국 정부가 국가와 국민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게 인상적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아니라 식민지 공무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쓴 이유가 명확해 보였어요. 신부님이야 아무래도 용서와 화해를 권했을테니, 이런 류의 독설에는 적합하지 않았을테지요.

추리적으로도 작가의 명성에 값합니다. 누가 보아도 보일 대위가 범인으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게 진상인데, 그 이유와 방법이 설득력있게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특히 헤이스팅스 경이 먼저 보일 대위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가로 산책을 제의했다는게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게 좋았어요. 보일이 죽으면 시체를 우물로 던져넣을 생각이었던 거지요. 보일은 범인이 아니기에 시체 앞에서 멍하니 있을 수 밖에 없었고요.
범인이 독을 마신건 순전히 회전식 책꽂이 때문에 찻잔이 뒤바뀌어 일어난 사고라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 물론 충동적인 범행에 우연에 의해 벌어진 사고라는건 합리적인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를 설득력있게 포장한 솜씨는 과연 거장의 그것이었어요.
'너무 많이 아는 남자' 시리즈를 더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시카고의 여성 상속인" 

롬니 프링글은 대영 박물관 열람실에서 이상한 남자가 공들여 편지를 쓰는 광경을 본 뒤, 그의 편지 압지를 빼돌렸다. 암호와 같은 압지 문구 해독을 통해 '실링하머'라 자칭하는 남자가 런디 후작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손다이크 박사'로 잘 알려진, R.A. 오스틴 프리먼의 롬니 프링글 시리즈 단편입니다. '퀸의 정원' 분류에 따르면 엄청난 희귀본이라고 하네요. 롬니 프링글은 도둑이자 사기꾼인 안티 히어로인데, 이 작품에서는 협박자 실링하머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이 차분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링하머가 후작을 협박하는게 모두 이미 발표되었던 신문 기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무슨 범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당연히 런디 후작이 형들과 아버지를 살해하고 작위를 물려받았을 줄 알았는데, 단지 그들이 '자살'했다는 진상도 협박거리가 될 걸로 보이지 않았고요.

롬니 프링글의 작전 역시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가 실링하머에게서 범죄의 냄새를 맡은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마지막에 경찰을 자칭하여 그를 잡아서 돈 지갑을 빼앗는 것도 여러모로 어설퍼보였거든요. 압지의 글귀 해독도 논리가 뒷받침 되어있는 암호 해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요.
경찰을 자칭하고 후작을 찾아가, 협박자에게는 현금을 주는게 낫겠다는 조언을 하는 장면만 조금 그럴듯 했을 뿐입니다. 

'퀸의 정원'에서 '역서적 가치', '희소성'에 '퀄리티' 가치까지 부여받은 3관왕인데, 동의하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