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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바텐더 - 윌리엄 래시너 / 김연우 : 별점 2.5점

바텐더 - 6점
윌리엄 래시너 지음, 김연우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떠돌이 바텐더 저스틴 앞에 정체불명의 노인 버디 그래클이 나타났다. 버디는 수 년 전 저스틴 어머니 살인 사건의 범인은 아버지가 아니었고, 자신이 청부를 받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가 의뢰했는지 알고 싶으면 1만불을 달라고 요구하는데....

바텐더가 오래전 살인 사건 진상을 찾아나선다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예전 어딘가에서 책 소갯글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이지요.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 소개가 상당히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법 두꺼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몰아쳐서 하룻만에 읽어버릴 정도로요.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의 살인범이 아버지라는걸 고발했던 기억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났는데,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나타나 사실은 자기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밝힌다!는 이야기를 짧은 도입부 안에서 긴장감 넘치게, 완벽하게 서술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정말로 어머니를 죽인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다음 장을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들 중 가장 괜찮았던 도입부였다 생각되네요. 

사건을 개인적으로 파고드는 바텐더 저스틴 나름의 수사 활동도 그럴싸합니다. 과거 로스쿨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우직한 인터뷰, 탐문 중심의 조사만 벌이는게 무척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시작한 후 의미있는 단서를 손에 쥐게 되는 것도 이모와 형과의 인터뷰부터 였다는 점 역시 설득력 높은 전개였고요.

또 이 작품만의 특징인데, 제목에 걸맞게 칵테일 활용이 아주 탁월해서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단락의 소제목을 칵테일과 다양한 술, 음료수 이름으로 구성한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마구잡이로 붙인 것이 아니라 단락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내용에도 술이 적절하게 인용됩니다. 알콜 중독자 버디(던)을 낚기 위해 조니 워커 블루 라벨로 유혹한다던가, 아버지의 옛 불륜 상대 애니를 찾아간 저스틴이 그녀의 냉장고 속 다이어트 진저에일, 썩어가는 딸기, 말라 비틀어진 라임, 싸구려 보드카로 스트로베리 뮬을 만들어 준다는 식으로요. 해고된 저스틴이 친구 코디에게 총을 구입해달라며 최고급 데킬라 테존 아녜호를 주는 장면도 빼 놓을 수 없겠군요.
제가 칵테일,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더 즐길거리가 많았던 것 같은데, 여튼 이러한 요소들은 던이 코디에게 보험 사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복선 등에서 활용되는 디테일과 함께 작품의 짜임새를 높여줍니다.

그러나 추리, 범죄 소설로 볼 때 너무 별 볼일 없다는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번째로, 아버지의 작전은 너무 별볼일 없습니다. 플린이 증언 철회를 하기 위해 그냥 두어도 되는데 왜 죽였을까요? 그를 죽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비밀이 있는 진범이 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게 과연 합리적인 시나리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단순 사고로 처리될 위험도 있고, 결국 사람을 더 죽여야 하는 위험부담을 짊어져야 하니까요. 이보다는 플린 증언 철회를 통한 재심을 일단 시도해보는게 더 낫지요. 

또 아내의 불륜과 그에 따른 범행 조작 역시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재닛 모스가 몇년이 지난 후 죄책감으로 자살했다? 죽일만큼 미워한 여자가 죽었으면 두다리 쭉 뻗고 자면 잤지 자살했을리가 없습니다. 설령 그랬더라도 살인을 청부했다는 증거는 절대로 찾을 수 없었을테고요. 한마디로, 유죄 판결을 뒤엎을만한 증거는 전무합니다.

두 번째로, 버디 그래클(던)의 모든 행동이 말이 안됩니다. 제이크를 찾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이야기하는 도입부부터요. 왜 데릭이라는 유능한 하수인을 두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 1만불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까요? 푼돈 벌이라도 하려는 의도였다고 칩시다. 그래도 저스틴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던이 협박, 회유 중에 데릭을 이용하여 제이크를 위협하는 것도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저스틴이 사건에 뭔가 있다는 생각을 굳히고 더 열심히 조사에 나서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했으니까요. 성과는 없고 뭘 기대했는지도 알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럴 바에야 데릭을 시켜 빈집을 터는게 훨씬 나았을테지요. 그나마 여기까지야 괜찮다쳐도, 던이 최후의 순간에 애니의 집에 침입해서 칼부림을 한건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역시나 없지만, 끔찍할 정도로 작위적인 탓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살인범이 침입하지만 백마탄 왕자가 구해준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의 반복에 불과해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되는 죽은 어머니의 장신구들도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사건이 현재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중요한 증거품인데 이게 어디서 났을까요? 이렇게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 좋은 작품이기는 힘들겠지요.

저스틴 캐릭터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냉소적인 성격과 입담은 나쁘지 않습니다. 허나 술이나 다른 자극적인 것 모두 입에 대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명상과 요가로 자신을 다스리는 구도자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장황합니다. 사실 작품과 별 상관도 없는 설정인데, 그냥 너무 멋을 부린 느낌이에요. 구도자처럼 사는데 불구하고 여자는 왜 이렇게 밝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그냥 아픈 과거가 있는 바텐더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요? "바텐더"의 사사쿠라 류 처럼 손님의 심리와 느낌을 잘 파악하는, 한마디로 '눈치'가 빠르다는 바텐더의 특기를 잘 살려 사건 수사와 연결했더라면 훨씬 더 제목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을텐데, 책 속 묘사로는 바텐더의 기술과는 무관한 저스틴의 수도승같은 생활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어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던과 다른 청부업자들의 힘 센 도구 역할을 하는 데릭은 도무지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않아요. 너무 눈에 띌 뿐더러 범행도 지나치게 많이 저지르는데 그냥 공기와 같은 인물이라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건에서 손쉽게 빠져나가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을 이야기에 개입시키는 것보다는, 던과 데릭을 합쳐 실제로 몸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보다 사악한 악당을 그려내는게 대결 구도에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지만 여러모로, 특히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킬링타임용으로는 적절한데, 개인적으로는 눈치빠른 바텐더와 미녀 단골 손님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 이야기가 더 좋지않았을까 싶네요. "구석의 노인"의 변주처럼요.

2025/08/03

베이비 드라이버 (2017) - 에드가 라이트 : 별점 2.5점

베이비는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박사가 계획한 범죄 계획에 전용 드라이버로 고용되어 왔다. 오래전 박사의 차를 훔쳤던 탓에 빚을 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빚을 다 갚고, 사랑하게 된 데보라와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는데 박사의 협박으로 새로운 범죄 계획에 합류하면서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결국 베이비는 작전을 망쳐버리고 마는데...

음악과 액션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몇 년 전 흥행작이지요. 에드가 라이트 감독 작품입니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음악과 화면의 완벽한 싱크에 있습니다. 베이비가 일종의 장애(귀울음)이 있어서 항상 음악을 들으며 생활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장면이 특정 곡의 리듬에 맞춰 편집되어 있습니다. 총격전, 도주 장면, 걷는 동작 하나하나까지도 음악에 맞춰 조율되어 있으며, 립싱크 장면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액션 영화임에도 마치 뮤지컬처럼 느껴질 만큼, 연출과 편집의 밀도가 높습니다.

제목에 걸맞게 수차례 등장하는 카 체이스 장면들도 일품입니다. 특히 시작과 동시에 펼쳐지는 카 체이스가 압권이에요. 도심을 질주하며 헬기까지 동원한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 과정을 생생함과 유쾌함, 그리고 약간의 치밀함이 곁들여진 리듬감있는 연출로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청춘 영화적인 감성도 좋습니다. 베이비와 웨이트리스 데보라 사이의 관계를 풋풋하면서도 선명하게 그려내기 때문입니다. 둘이 현실을 박차고 함께 떠나는 미래를 꿈꾸는 구조는 전형적인 청춘 로드무비 구성이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수감 중인 베이비가 데보라의 편지를 받은 뒤 석방되어 데보라와 키스를 나누고 떠난다는 씬은 이런 장르 판타지의 결정판입니다. 현실적으로는 25년형을 선고받은 뒤 최소 10년에서 15년 정도를 복역해야 가석방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장면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가까우며, 그래서 더 아련합니다.

다만 전체적인 서사는 아쉬움이 큽니다. 베이비가 범죄에서 손을 떼려다 계획이 틀어지고, 결국 조직원들과 충돌한 뒤 모두 죽고 베이비만 체포되는게 줄거리의 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그래도 범죄가 성공하고 베이비와 데보라의 관계도 잘 이루어지는 중반부까지는 유쾌해서 좋았는데, 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급작스럽게 진지하고 무거운 범죄극으로 돌변할 뿐더러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베이비와 버디의 대결도 단순한 육체적 충돌에 불과한 탓입니다. 별다른 전략이나 반전은 등장하지 않아요. 청춘 로맨스와 액션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트루 로맨스"가 떠올랐고, 최소한 그 정도의 드라마나 두뇌 게임을 기대했는데 실망했습니다. 최소한 베이비가 모든 말을 녹음한다는 설정이라도 잘 써먹어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인물 구성도 단조롭습니다. 베이비와 데보라는 그냥 '아이들'이고, 배츠는 단순무식한 폭력적인 악역이거든요. 버디 정도만 베이비를 따뜻하게 대하는 등 약간 입체적으로 보였는데, 그마저도 애인 모니카의 죽음 이후에는 복수심만으로 움직이는 전형적인 악역으로 퇴화해 버리고 맙니다. 유일하게 제대로 된 어른(?)이자 흑막으로 묘사되는 박사만 개성있게 등장하지만, 마지막에 베이비를 돕고 죽는건 급작스러우며 일관성을 해칩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청춘 감성과 감각적인 연출은 뛰어나지만, 이야기와 인물 구성은 아쉽습니다. 그래도 킬링타임용으로는 충분합니다.

2022/06/18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 최혁곤 : 별점 2점

은퇴 형사 동철수의 영광 - 4점
최혁곤 지음/시공사

서울 서촌에 자리한 서울 경찰청 내 '미수반'은 이미 일선에서는 물러난지 한참 된 동철수 반장이 이끌고 있는 조직으로, 미제 사건 수사반이 아니라 '미심쩍은 사건 조사반'이라는 뜻이었다. 동철수 반장은 현장에는 거의 나가보지 못했지만 타고난 운과 인맥으로 지방경찰청장까지 무사히 마친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경찰청 넘버 2인 경찰청장의 요청으로 기자 출신으로 특채 경찰이 된 박희윤, 경찰이었던 남편이 총격으로 사망한 뒤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주바리 두 명의 부하만 이끌고 미수반 반장을 맡아 여러가지 사건 수사에 나서는데...

“문제없다네. 그래서 뭔가? 범인은 여럿인가? 명섭 군 알리바이를 깼는가? 그리고 나 말일세,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말이 있다네. 그 긴 세월을 경찰로 보내면서도 못 해봤던.” 

"무슨?" 

“범인은 이 안에 있다!"

국내 작가 중에서도 꾸준히 완성도높은 작품을 발표해 왔던 최혁곤의 신작입니다. 제목의 동철수의 반장을 중심으로 '미수반'의 활약을 그려낸 연작 단편집입니다. 제가 접했던 작가의 전작은 심각한 범죄 스릴러 "B컷"이었는데, 이 작품은 유머가 가득해서 의외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로 시종일관 끝까지 달려주는 솜씨도 괜찮았고요. 무엇보다도 푼수 동철수 캐릭터가 최고였어요. 주위에서 흔히 봄직한 은퇴 직전 직장 상사를 정말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작가가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무능력한 상관과 유능하지만 떠벌이 몸종(?) 구도를 가진, 수많은 다른 버디 형사물 들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되는 부분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동철수가 능력은 없지만 착하고 의리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한국적인 설정을 제외하고는 말이지요. 

또 인물들이 지나치게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단점도 큽니다. 이름부터 동, 탁, 하, 사, 갈 등 희귀한 성을 써서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 목적이 불순하고 탁했던 '탁해서' 처럼 - 있으니까요. 미수반을 만든 경찰의 No.2 이름도 '최태평'인데다가 핵심 주인공 박희윤 이름은 fuck you에서 따온게 분명해서 여러모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추리적으로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미수반' 이라는 조직명에서 "미궁과 사건부"나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같은 정통 본격 추리 단편 시리즈를 기대했는데, 실상은 헐리우드 버디 형사물에 가까운 결과물인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추리 소설 애호가가 보기에는 애매했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립싱크의 왕" 

가수왕 출신 가수 하필이 죽었다. 췌장암을 비관한 자살로 보였지만, 사망 당일 수상한 사람이 목격되었다는 제보 탓에 미수반이 투입되었다. 박희윤은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동철수의 좌충우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수사에 집중해서 결국 진상을 밝혀내는데...

하필의 돈을 노렸던 매니저, 부동산 문제가 있어서 거짓 제보를 한 동네 경찰 - 하필이 자택을 사후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해서 이를 막기 위해 - 등이 차례로 등장하여 사건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범인은 초반부터 등장했던 예능 프로 "복면전설"과 관련된 인물이었습니다. 하필 모창자로 잘 나가던 짝퉁가수 하필 3호는, 하필이 죽으면 저작권이 회수되어 먹고 살 길이 막힐걸 걱정한 탓에 그를 찾아갔다가 갑작스럽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하필 3호가 범인이라는게 정교하게 짜여진 전개를 통해 드러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하필이 하필 3호를 만날 때 직접 커피를 대접하는 식으로 정성을 다했으며, 칼에 찔린 뒤 하필 3호를 위해 어떻게든 자살로 현장을 만들었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첫 작품답게 설정과 캐릭터 소개가 많은데,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동네 영감같은 동철수와 진짜 실력자(?) 박희윤 컴비의 티격태격 좌충우돌이 재미나게 묘사되어 이어질 시리즈 후속작들에 대한 기대도 높여줍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한 여름 밤의 해혼식" 

박희윤은 주말에 동철수 친구 탁해서가 유명 시인인 아내 사채원과 이혼한다는 '해혼식' 참석차 시골 마을을 방문했다. 탁해서는 170만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주인으로 원래 대지주의 아들로 부유하게 자랐지만 80년대 이후 가문이 몰락한 상태였다. 그래서 고향에서 유일하게 남은 거처 혜화당과 갈대밭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해혼식을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해혼식 피로연 다음날, 탁해서는 노천탕에서 중상을 입은채 발견되었다. 실수로 미끄러진 것으로 여겨졌지만, 박희윤은 현장에 탁해서의 가운이 없었던 이유를 캐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해혼식 참석자들이 전날 밤 저수지 건너편에서 이상한 불빛을 보았다는게 밝혀지는데...

'해혼식' 이라는 소재가 돋보입니다. 대형 유튜버가 자신의 구독자를 이용하여 자신의 땅을 이혼의 명소로 만들려고 했다는 아이디어도 좋고요. 정말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발한 아이디어였어요. 추리적으로도 노천탕에 당연히 있어야 했을 '가운'이 없었던 점에 주목했다는건 괜찮은 발상이었으며. 수상쩍은 용의자들로 군수 등을 등장시킨 것도 좋았습니다. 탁해서와 군수의 검은 거래라던가, 군수의 새 여자 친구 등 복잡한 인간 관계는 읽는 재미는 물론이고 동기로서도 충분히 설득력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외의 추리할 여지는 거의 없다시피하며, 진범의 정체 역시 당황스럽습니다 진범은 탁해서가 혜화당을 올 때 탔던 택시 기사였습니다. 그는 탁해서가 유명 유튜버라는걸 모르고 택시에 태웠다가, 자기 얼굴이 유튜브에 업로드 될까봐 카메라를 훔치려 했던게 사건의 원인이었던 겁니다. 기사는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범죄로 도주 중이었던 사기범이었거든요. 

문제는 이런 내용을 독자는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용의자들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동기가 있다쳐도 곧 선거를 앞둔 군수가 직접, 그것도 여러 명이 머무는 숙소에서 범행을 저지른다는 건 말도 안되니까요. 군수의 새 여자 친구인 약사가 얼굴 노출을 꺼렸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명 유튜버 해혼식에 참석한만큼 설득력없는 설정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실버타운, 하드보일드 파티"

동철수가 휴대 전화까지 두고 휴가를 떠난 뒤 복귀하지 않아서 애를 태우던 박희윤은 경찰청장 의 부름을 받았다. 알고보니 동철수의 휴가는 청장의 지시에 의한 잠입 수사였다. 유명 정치인 차진구가 백세그룹이 만든 고급 실버타운 힐링 힐에서 연달아 괴한의 습격을 받았던 사건 때문이었다...

반골 성향으로 정치계에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스스로가 더러운 밀약과 검은 돈으로 점철되어 있었던 차진구 캐릭터를 그려낸 묘사만큼은 좋습니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나이 먹은 꼰대의 전형인데다가, 그 꼰대가 나름대로 힘까지 갖추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 주니까요.

그러나 이외에 건질만한 요소는 없었습니다. 특히 추리적으로는 완전 꽝이에요. 진상은 첫 번째 습격은 차진구가 과거 받았던 불법 자금건을 뒤집어 쓰고 죽었던 보좌관의 아들의 복수였고, 두 번째 습격은 차진구의 자해였다는 건데, 이를 보좌관이 독특한 성이었다는 것으로 알아낸다는건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를 경찰, 그리고 보좌관 아들의 취업을 도운 백세그룹이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CCTV에 찍혔던 '맨발 축제' 참석자들을 통해 CCTV가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아냈다는건 나쁘지 않지만, 이건 독자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때문에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억지로 추리물을 만들기 위해 삽입된 단서라는 생각만 드네요. 두 번째 습격이 차진구의 자해였다는 것 역시 전개를 통해 너무 뻔하게 드러났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서촌 냉면집 살인사건" 

서촌의 유명 냉면집 "행복 면옥" 사장이 목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요리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거액을 투자했던 레스토랑을 말아먹어 가족 사업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었던 아들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그는 확고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아들은 오히려 미수반에 아버지가 가끔 밤마다 만나는 손님이 있었는데, 그 손님 정체를 알아내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아마도 세계 최초일, 냉면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추리 단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그것 뿐입니다. 전개부터 억지스럽습니다. 경찰이 흥신소도 아니고, 아들의 부탁을 받아줄 까닭이 없으니까요. 냉면을 좋아하는 대통령이 밤에 몰래 가게를 찾아 왔을거라는 기대를 품고 경찰에 조사를 요청했다는 아들 생각도 설득력이 낮아요. 배달을 안하기 때문에 냉면집에 몰래 찾아왔을지도 모른다는데, 이보다는 대통령을 위해 몰래 배달을 했다는게 더 설득력 높기 때문입니다. 라이벌이었던 이웃 "효자 면옥" 사장이 도와준 자살이었다는 진상도 너무 허무했어요.

맛집에 대해 비판하는 아들의 독설은 나름 와 닿는게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봤자 집안 돈을 날리고 아버지까지 죽게만든 기생충의 변명에 불과해서 별로 와 닿지도 않습니다. 식당 주인이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게 손님과 소문 탓을 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차라리 경찰한테까지 반말이나 해 대던 아들놈의 비참한 말로가 잘 그려졌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나비 클럽, 미로 게임"

미스테리아 5호에 수록되었던 단편을 이 작품 설정에 맞추어 개작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아예 빼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동철수 반장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작으로서의 가치가 한없이 낮은 탓입니다. 차라리 박희윤이 경찰이 되기 전 일화였다고 소개하며 수록했다면 개작하는 수고는 덜었을텐데 말이지요. 

개작된 결과물도 좋다고는 보기 어려웠습니다. 박희윤은 경찰인데 왜 갈호태가 나서서 예전 인맥을 이용해야 했을까요? 괜한 억지만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만, 1.5점에 더 가깝습니다.

"녹슨 총알이 지나간 자리" 

주바리 선배 남편 사건 수사를 부탁받은 박희윤은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고 경장에게 신분을 속이고 접촉했다. 고 경장은 유력한 증거라는 필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숨졌고, 필름을 가지고 도주하던 박희윤도 위기에 처하는데...

이십여년 전 사건에서 주바리 선배 남편이 총에 맞아 죽었던 사건 진상은 현재의 신아그룹 이사장이자 당시 여덟살이었던 아이가 떨어진 총을 들어 경찰을 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장 가족을 협박하던 운전사를 경찰이 사살했는데, 아이는 운전사 아저씨가 착한 사람인줄 알고 있어서 공격한 경찰을 총으로 쏴버렸던 거지요.

문제가 너무 많아서 뭐 부터 이야기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우선 이야기 속 핵심 단서인 고 경장이 가지고 있던 필름 속 사진부터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단지 총을 들고 있는게 찍혀있는 것에 불과한데, 이게 무슨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게 현장 사진인지, 당시 사진인지도 입증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건 물론이고, 아이가 총을 쐈다는걸 밝히는건 불가능했을텐데요.

또 신아 그룹이 당시에도 경찰의 입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필름이 조작되었다고 얼마든지 우길 수 있어요. 앞서 해혼식에 등장했던 동철수의 친구 탁해서가 자신의 170만 유튜버 채널을 통해 진상을 공개했다고는 하는데, 이 역시 신아 그룹에서 충분히 무마할 수 있는 범위로 보이고요. 

무엇보다도 여덟살짜리 아이가 친했던 운전 기사 아저씨가 총에 맞아 쓰러진 뒤, 총을 주워 복수했다는게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될까요? 고작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신아 그룹의 하수인들이 필름을 확보하기 위해 박희윤과 총격전, 그리고 차가 뒤집히기도 하는 자동차 추격전을 벌인다는게 더 말이 안됩니다. 그것도 백주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은 "다이하드" 세계관이라면 모를까, 뉴욕에서도 있기 힘든 일일겁니다. 작가가 지나치게 영상화를 신경쓴 듯 한데, 과욕이었습니다.

박희윤이 경찰을 그만두고 사립 탐정이 되며, 동철수가 그 사무소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를 꿈꾼다는 에필로그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이야기였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5/04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반시연 : 별점 3점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6점
반시연 지음, 김경환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시연 작가의 라이트 노벨 미스터리 두 번째 권입니다. 이전 권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걱정 반, 기대 반이라 읽어야 되나 망설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기 잘 했네요. 우려했던 만화적인 설정은 캐릭터 설명이 필요했던 이전 권에 비하면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는 편이며, 보다 현실 밀착형의 일상계 추리물로서 기본은 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만화 속 해결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셔터 시절의 이야기는 호우가 셔터가 되는, 아동 성폭행범을 찾아 나서는 토막토막난 일부 전개와 셔터를(아마도) 그만 둔 계기가 된 동생 백설과의 트러블 정도만 등장할 뿐이고요.

이야기는 크게 4개의 단락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완결되는 이야기들이 구유 시인과 시집 "밤벚꽃" 에 대해 다루는 긴 호흡의 이야기로 묶여 있습니다. "호접 "Bad Guy"" 는 과거 호우가 셔터로 인정받기 위한 퀘스트인 아동 성폭행범을 찾는 추론,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사야가 응모하려는 추리 게임 이벤트에 대한 추론이 중심인 이야기입니다. 구유 시인과 시집 "밤 벚꽃" 도 구유 본인이 "해브닝" 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추리적으로는 과거 셔터 시절 추론은 단편적이라 평가하기 어렵지만 추리 게임 이벤트는 상당히 그럴싸했습니다. 추론 및 이벤트에 대한 견해 모두 말이죠. 서두를 장식할 만 이야기에요.

"추억 "04:59"" 는 호우의 몸에 이상이 생겨 혹시나 금단증상이 아닐까 싶어 찾아간 금연 클리닉 선생님에 대한 추론, 그리고 기묘한 레미제라블을 사러 온 손님 예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핵심은 스트레스로 정신병에 걸린 예지에 대한 이야기로 탄탄한 묘사 덕분에 설득력도 높고 재미있었어요. 예지의 집 구조와 예지가 이야기한 회사 자리에 대한 설명이 일치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였고요. 호우의 추론이 아니더라도 드러난 단서만으로 예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좋은 에피소드임에는 분명합니다.

"버디 무비 "Bright lights"" 는 고지의 부탁으로 호우와 고지가 하루를 함께 하는, 말 그대로 버디 무비같은 이야기로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묘사가 대부분입니다. 브로맨스를 굉장히 강조하는게 눈에 띕니다. 호우가 있어야 할 장소에 대해 고민하자 분노하는 고지의 모습처럼요. 반면 추리적으로는 부족합니다. 고지의 단골 목욕탕 수아탕에 대한 추론과 상가 거리 여관집 아들 영조의 여자친구 소미가 들었던 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추론 정도만이 짤막하게 등장할 뿐입니다. 하지만 일상계 추리물로는 평균 이상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주며, 목욕탕에서 만난 만물박사의 시집 관련 묘사도 구유 시인 이야기의 중요 복선이기 때문에 빼 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에요.

"미싱 링크 "Someone to love you"" 는 여고생 가영과 혜윤이 가져온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호우가 동네 해결사로 나서는 설정도 이질적이고 내용도 딱히 특별할 건 없습니다. 진상인 '노는 척 하는 건 연기일 뿐이다' 는 이십여년 전 "시험의 제왕" 에 이미 등장했던 소재라 식상하고요. 무엇보다도 가영이 혜윤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더라면 모든 게 해결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권의 워스트, 구유 시인 관련 묘사를 제외하면 구태여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반대로 마지막 수록작 "데드맨 워킹 "Break the Wall"" 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하나 둘 씩 선보인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여관 주인 만조, 구유 시인과 상점가 만물박사에 얽힌 진상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데, 설득력도 높고 만물박사를 응징하는 호우의 모습은 권선징악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으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거든요.

이렇게 수록작들 대부분 재미도 있고 가치도 있지만 단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단점은 전편을 관통하는 주요 등장 인물인 구유 시인에 대한 설정입니다. 절망의 시집 "밤벚꽃" 을 희망 가득한 찬가로 광고한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실망하여 절필 선언, 잠적에 이어 자살까지 결심한다는 건 여러모로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스트셀러 시인이 그 정도의 자기 표현도 하지 못한다는 건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죠.
게다가 만물박사 홍기욱 설정은 더 별로에요. 그가 허세 가득한 거짓말장이라는 것 외에는 여러모로 '최종 보스' 로 보기에는 허술한 탓입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었으며, 특히 구유 시인이 그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다는 건 그다지 설득력있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구유 시인과 만물박사 모두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갈만한 캐릭터와 설정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구유 시인의 "밤 벚꽃" 이라는 시집에 관련된 긴 이야기를 축으로 연작 형태로 구성하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 일행과 '해브닝' 손님들 사이에서 일어난 소소한 추론만으로 끌고 가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니면 긴 연작이 아니라 하나의 단편 에피소드로 처리하던가요.

불필요한 묘사도 많습니다. 호우 시점에서의 독백, 완결되지 않는 과거사, 또 호우가 금단 현상인지 다른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는 등의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전후 일본 추리 소설에 봄직한 구태의연하면서도 불필요한 묘사들이었습니다. 아울러 호우가 넘버원 셔터와 해브닝의 셔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설정과 묘사도 캐릭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사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비교적 읽을만한 추리물이라는데 이견은 없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조금 독특한, 그리고 읽기 편한 가벼운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단, 앞서 말씀드린대로 묘사와 설정은 상당히 취향을 탈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7/06/18

미스테리아 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5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구하게 되면 읽곤 하는 장르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 5호입니다. 작년 초에 출간된 한참 전 과월호지요. 언제나처럼 특집 기사와 신간 소개, 이런 저런 연재 기사, 인터뷰, 수록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관심 있던건 특집입니다. "음식 미스터리"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속 요리'에 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좋은 비교, 혹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겁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해 빠진 내용이에요. 도입부의 식인 천재 범죄자 한니발 렉터,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대표적입니다. 그나마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일 뿐이고요. 정작 기대했던 내용은 실려있지도 않습니다. 저라면 한니발 렉터의 '전두엽 소테'나 네로 울프의 '소시스 미뉴이'를 소개할 때 최소한 해당 음식의 레시피와 조리 사진을 수록했을 겁니다.
이어지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 독약에 대한 소개는 '음식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기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같은 작품 소개가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작품 속 요리를 재현하는 코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제와 연결되는 요리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테리아 측에서 별다르게 창작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참고 도서 속 - 주로 "미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 -  요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그나마 셜록 홈즈가 '해군 조약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던 "해군 조약문" 속 치킨 커리 정도만 어느정도 주제에 값할 뿐, 재현한 요리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의 '10권의 맛있는 미스터리' 소개는 실망의 정점을 찍습니다. 기준, 근거를 알기 어려운 탓입니다. 일단 소개작 중 "스위트 홈 살인사건",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기나긴 이별"은 절대로 음식 미스터리로 포장할 수 없습니다. 억지에요. "어느 백만장자의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음식 미스터리 범주 안에는 들기는 한데,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추천 도서로 떡 하니 내미는 행위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빈말로도 좋은 작품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 작품들도 음식 미스터리로는 볼 만 하지만, 추천할만한 수준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특별 요리""맛" 외에는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주자면 1.5점 정도? 제 개인 프로젝트에 필적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조금 안심했지만,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힘든 기획입니다. 

다행히 특집 외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빼어난 리뷰가 많아서 "미스테리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간 소개 코너는 역시나,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좋은 리뷰들이 많더군요. 솔직히 읽어본 결과에 따르면 좀 과한 홍보의 결과물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번에 소개된 작품 중 마쓰모토 세이초의 "범죄자의 탄생"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원작,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신부""상복의 랑데뷰"보다 낭만적인 애상으로 넘쳐흐른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완성도 면에서 천지차이니까요. 영상화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연재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의 밀실에 대한 대담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써먹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다다미를 걷어내면 아마추어는 다시 깔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정보를 토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 놓는 아이디어 - 다양한 기술자들이 등장하는 탐정물 - 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로관을 예로 들며 전기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등 건축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여러 코멘트들도 기억에 남고요.

한국의 50~60년대 추리 소설을 발굴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 씨와의 인터뷰 역시 좋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재 사고와 관련된 논픽션, 폴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젊은 지식인 발라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특히 범인 크리스티안 발라와 그의 작품 "아목", 형사 브로블레브스키라는 키워드는 꼭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를 추적하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다는 기획물인 '동아시아 미스터리, 정치적 죄와 서스펜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대중 서사의 최고봉이라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 "별이 차가운 밤이면"과 김내성의 "청춘 열차"는 틈 나는 대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두 편의 단편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잡지이지만, 이번호는 특집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2편의 단편의 짤막한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나비 부인의 커튼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두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 건너편에 '나비 부인'이라는 카페가 개업했다. '나비 부인'은 가면을 쓰고 서빙하는 독특한 컨셉과 인테리어, 커피 맛이 입소문을 타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던 중, 기묘한 노인이 '나비 부인'에서 진상을 부린 다음 날 '나비 부인' 사장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최혁곤의 단편입니다. 시리즈 캐릭터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콤비가 등장하는 단편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의 버디물인데, 아쉽게도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별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초반에 나왔던 수상쩍은 노인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등 수수께끼의 여지도 없고요. 

특히 후더닛 물로는 영 아니올시다에요.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 사람을 공격하여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적 측면이 강하며, 이것이 동기로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와이더닛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사회파적 설정이 잘 어울리지는 않네요. 인터넷의 비방글로 자살을 한다는 것도 와 닿지 않고요. 또 고3 수험생 투신 사건도 불필요할 정도로 질질 끄는 느낌입니다. 동기 부분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와이더닛물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진범 검은 뿔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불분명하니까요. 남자 친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낮아요.
진소담의 가족 관계 증명서 정도만 나름 증거일 뿐, 추리가 모두 정황 증거에 기반한다는 약점도 크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던 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버디물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단편집은 한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기흥 보리산 자락에 있는 무당의 당집에서 처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완벽한 밀실 안에서 홀로 생존한 채 발견된 유홍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 그러나 판사에게 유홍석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물들을 발표하고 계신 도진기 판사님 - 현 시점에서 변호사가 되셨지만 - 의 스탠드얼론 단편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뼛속까지 고전 본격물 애호가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수기 형태로 전개되며, 끔찍한 사건이 초자연적인 현상과 얽혀 일어난다는 점이 완전 고전 스타일이었거든요. 비교하자면 코난 도일경의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이라던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에 수록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워낙 고전물을 좋아하기에, 완전 제 취향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단지 스타일을 따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당 '인문희'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덕분에 독특한 한국적 오컬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에요. 특히 그녀가 서상표의 집에 몰래 부적을 붙인게 드러나는 장면은 굉장히 섬찟합니다. 만약 영상화한다면 클라이막스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희에 비하면 서상표는 전형적인 한국 쓰레기 남자와 다를 바 없어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상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어요. 괜찮은 고전 오컬트물이 갑자기 크리쳐 호러로 변질되는데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게다가 잘린 목이 경동맥을 물어 뜯었다면 부검으로 밝혀지는게 당연한데 간과되고 있고, 유홍석이 현장 문을 잠가 밀실로 만든 이유도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등 디테일에서도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고전 스타일 오컬트 호러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굉장히 탈 텐데 저한테는 호 쪽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드린 부적이 드러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16/03/01

주토피아 (2016) -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 별점 3점

"굿 다이노"가 망하기는 했지만 최근 분위기 좋은 디즈니의 최신작 애니메이션입니다. 주말에 딸아이와 함께 감상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른들이 보아도 충분히 즐길 거리가 많은 괜찮은 작품입니다. 우선 전형적인 버디 액션 수사물의 형태로 시간 제한 있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벌어지는 긴장감이 제법입니다. 음모도 적절하게 구성되어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요. '공포'를 통해 특정 집단을 자신의 추종 세력으로 만든다는 정치적인 행동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설득력이 높지요.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그리고 이쪽 바닥의 전설적인 명가 디즈니의 작품다운 깨알같은 개그들도 마음에 듭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씬 스틸러는 엄청 빠른 나무늘보 반짝반짝 플래시겠지만, 그 외 다른 동물들 모두 원래 동물 특성이 잘 보이도록 구현되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토끼와 여우의 빠른 몸놀림을 적극 활용한 속도감 넘치는 액션씬도 아주 볼 만하고요. 주토피아의 디테일과 아트웍 역시 최고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동물을 소재로 민감한 부분인 "인종 차별"과 "선입견"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작중 편견의 희생양이 되는 동물은 토끼와 여우인데 토끼 쥬디는 작고 약하다는 편견으로 평생 소원인 경찰이 되지만 경찰 내부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합니다. 여우 닉은 포식자에다가 약삭빠르고 교활하다는 편견으로 모든 집단에게서 신뢰할 수 없는 동물로 낙인이 찍혀 있고요.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흑인은 무조건 잠재적인 범죄자로 생각하고, 중동 이슬람 교도는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편겸과 선입견 가득한 작금의 행태와 엮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중반부에 사라진 동물들이 야수화된 것에 대해 쥬디가 설명하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폭발합니다. 사실 작중의 포식자보다는 현실을 빗대어 생각하면 훨씬 와 닿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소녀 백인 경찰이 거리의 사기꾼인 흑인과 친해졌는데, 사건을 해결하고 인터뷰에서 흑인을 싸잡아 잠재적인 범죄자라고 말하는 꼴이니까요.

그러나 허술하게, 조금 쉽게 넘어간 부분이 눈에 띄긴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장 보좌관의 음모로, 포식자를 야수로 만드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를 어떻게 드러낼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어 보였습니다. 무려 12마리나 야수가 되었는데 그 시점까지는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며, 드러나게 된 것은 쥬디가 운 좋게 활약했을 뿐이잖아요? 공공장소에서 시장을 중독시키면 한방에 끝났을 텐데 왜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또 마지막에 닉이 경찰이 되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사기꾼이 경찰이 될 정도로 경찰이 만만한 조직은 아니죠. 이게 무슨 "폴리스 아카데미"도 아니고... 차라리 닉이 어렸을 적 레인저가 되려다 왕따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 경찰학교에 입학했었는데 주위의 편견으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더 설득력 높지 않았을까 싶네요.

허나 이런 부분들은 아이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지나치게 편견에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봐서 느낀 문제점들이죠. 작품에 큰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냥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와 더불어 생각할 거리를 전해 준다는 점에서 추천합니다. 후속편이 기대되네요.

2020/07/24

녹슨 도르래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3.5점

녹슨 도르래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 전문서점 ‘살인곰 서점’의 점장 도야마 야스유키를 만나, 서점 일을 도우며 탐정 일을 계속한 지 3년째. 하무라 아키라는 전에 없던 생활고로 고생 중이다. 살인곰 서점이 일주일에 사흘만 열게 되면서 수입이 대폭 줄어든 탓이다. 다른 대형 탐정사에서 하청을 받아 입에 풀칠을 해보지만, 이렇게 들어온 일들은 대개 위험 부담이 크고 돈도 되지 않는다. 그런 그녀에게 이번에야말로 편한 건수라며 일이 들어온다. 의뢰 내용은 일흔네 살 할머니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것.

거절하려 했지만 일당을 올려준다는 말에 하무라는 덜컥 의뢰를 받아들인다. 그렇다. 그 의뢰는 분명 손쉬운 의뢰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행을 하던 중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위를 올려다본 순간, 그 할머니가 하무라 아키라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그녀의 불운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그 끝에 과연 구원은 있을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와카타케 나나미사립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장편입니다. 여러가지 사건이 등장하지만, 하무라 아키라가 히로토의 의뢰를 받아들여 그가 '스카이랜드'에 간 이유를 밝혀내려는게 핵심입니다. 

완벽한 하드보일드 물이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인륜도 저버린 비정한 범죄가 연이어 벌어지며, 연관이 없어보였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이 전부 관련되어 있으며, 관계자들은 모두 선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전개 모두 완벽합니다. 아버지는 죽고, 자신은 겨우 살아남은 교통 사고 때, 왜 아버지와 '스카이랜드'에 갔는지?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히로토의 평범하고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의뢰가 하무라 아키라의 조사를 통해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도 하드보일드스럽고요. 제가 읽었던 이전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는 모두 단편이라 미쳐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장편으로 읽으니 확실히 하드보일드를 지향한다는게 잘 느껴졌습니다.

사건에 대해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로토가 아버지와 스카이랜드에 가게 되었던 이유는, 스카이랜드에서 대마를 흡입하고 난동을 피운걸 사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마 흡입은 친구 류지와 함께 했고, 이 일로 취직이 취소될까 겁낸 류지의 가족이 히로토 부자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부자를 브레이크와 엑셀을 헛갈려 차로 치었다는 노인 호리우치는 류지의 외할아버지였지요. 그러나 류지는 죽지 않고 살아났고, 치료를 받으며 탐정을 고용하자 사고를 위장하여 불을 질러 살해했던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까지 히로토의 죽음은 히로토의 아버지 미쓰타카가 각성제를 밀매했던 증거를 없애기 위함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실제로 이 각성제 밀매와 관련된 인물들의 범죄 행각도 하나 둘 씩 밝혀지고요. 그래서 독자는 하무라 아키라와 함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립니다. 일종의 미스디렉션인데 수법이 교묘해요. 읽으면서 히로토의 죽음이 흐릿해지고, 각성제가 진짜 범행 동기로 보이니까요.

복잡한 이야기 구조임에도 재미있게 써 내려간 작가의 필력도 대단합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생생함 덕이 큽니다. 본의아니게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며 마지막에는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온 류지의 모친 때문에 자신의 소유물 중 유일한 고급품인 오리털 이불과 다이쇼 시대 책장까지 망가져 버리는데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이라는 이명에 잘 어울립니다.
다만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고, 탐정으로서의 능력도 괜찮은 편입니다. 수사 방법도 설득력있고 등장하는 소소한 추리들도 좋아요. 히로토의 대학교 버디인 '분페이'의 정체나 마키무라 하나에의 정체를 알아내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여러가지 단서들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히로토의 친구 이즈시가 아이돌 콘서트에 참석했던 영상이 그를 협박하는 도구가 되는 식으로 복선도 잘 짜여져 있고요.

마지막에 수록된, "조용한 무더위"에서처럼 작 중 등장했던 여러 추리 소설들에 대해 소개해주는 '도야마 점장의 미스터리 소개'라는 부록도 반가왔습니다. "소년탐정 칼레"는 어린 시절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구입해봐야겠더군요. 그 외 작품은 엘러리 퀸 등 극소수 유명 작가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번역이라 슬프네요.

그러나 너무 복잡한 구성, 지나친 하드보일드 분위기를 따라해서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리카의 존재입니다. 그녀는 미쓰타카의 첫 사랑으로, 집안의 반대 때문에 부유한 의사 다쿠마와 결혼한 뒤에도 미쓰타카와 리미 사이를 방해하기 위해 골몰하다가 미쓰타카, 리미 부부가 공갈범 사토 가즈히코를 죽이게끔 유도하고, 이후 미쓰타카를 협박하여 마약 밀매의 길로 끌어들인 인물입니다. 그녀 때문에 여러 명이 죽고 파멸해버린, 한마디로 말해서 하드보일드 작품들에 흔하게 등장하는 절대악, 흑막, 팜므 파탈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존재가 현재의 사건 - 히로토가 죽은 화재 사건 - 에 영향을 미치는건 없거든요. 미쓰타카가 죽은 이후 그녀가 직접 히로토를 괴롭히러 나타날 이유도 없고요.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던, 히로토는 상관할바가 아니니까요.

또 하무라 아키라가 중요한 단서처럼 언급하는, 그녀의 병원에 전시된 사토 가즈히코의 해골도 과거 범죄의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미쓰타카에게 건네받은 일종의 선물이라고 주장하면 그뿐이거든요.
도비시마 이치코가 하무라 아키라에게 약을 먹여 교도소에 집어넣는 행동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마약 밀매에 대한 조사가 윗 선까지 닿아 있었다면, 구태여 이런 수작을 부릴 이유는 없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말대로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도 있었을테고요.
이런건 하드보일드에 흔하게 등장하는, 경찰 조직과 탐정의 알력, 다툼을 묘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나마 이치코를 응징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행동만 볼거리였어요.

물론 이 무서운 여자들의 행동은 이 작품만 놓고보면 말이 안되는건 아닙니다. 이 두 여자에 더해, 마지막에 하무라 아키라를 죽이려고 찾아온 류지의 모친 등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여성들 모두가 지나칠정도로 이기적이고, 극도의 자기 합리화가 가능한 인물들인 탓입니다. 모두들 자기 행동은 아무 문제가 없다, 잘못은 너 (하무라 아키라)와 피해자 (히로토 등) 가 저지른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게 별로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지요. 게다가 마리카와 이치코 모두 딱히 등장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한 무리수였어요.

마지막으로, 큰 문제는 아니지만 사랑의 도피로 사라졌다는 히로토의 어머니 리미의 정체가 히로토의 먼 친척이라고 자칭한 하나에라는 것도 뜬금없었어요. 미쓰타카가 죽고 히로토는 겨우 살아남은 상황에서, 자신이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거짓말을 유지해가며 먼 발치에서 아들을 지켜본다는건 설득력이 낮지요. 사토 가즈히코의 죽음이 지금에 와서 다시 드러날 이유도 없고요. 하나에의 정체에 대해서 던져주는 이런저런 단서들도 좀 부족한 편입니다. 이 역시 불행한 운명에 빠진 가족이라는 하드보일드 서사를 그냥 따라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를 현대 일본으로 끌고 온 작품들 중에서는 충분히 손에 꼽을만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가치는 재미에 있습니다. 단편인줄 알고 집어들었는데, 한 번에 몰입해서 읽을 정도였거든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조금 불필요한 곁가지들을 정리했더라면 별점 4점 이상도 충분했을겁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이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5/11/24

해롤드와 쿠마 (Harold & Kumar Go To White Castle, 2004) - 대니 레이너 : 별점 2.5점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해롤드 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백인 동료들이 일을 떠넘겨도 싫은 소리 못하는 소심한 친구로 일을 떠맡은 날 인도계 미국인 친구 쿠마와 같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TV에서 광고하는 "화이트캐슬"이라는 버거에 필받아 화이트캐슬 버거를 먹기 위해 밤길을 나선다. 하지만 버거를 먹으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 그들은 대학에서 마리화나를 사다가 경비에게 쫓기고 차는 두기 하우저의 인기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도난당하며 무단횡단 등으로 유치장 신세가 되었다가 탈옥하여 치타를 타고 버거를 먹으러 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데....

요새는 영화만 보고 사는 것 같네요. 어쨌건 한번 웃고 즐기자는 측면에서 선택한 예전에 보았던 무뇌계 코미디물 "내차 봤냐?"의 감독 대니 레이너의 작품입니다.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내차 봤냐?" 못지 않게 황당무계하고 내용도 똑같은 버디무비 형식의 코미디입니다. 전개 역시 중간중간에 여러 사건들이 차례로 벌어지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마지막에 어쨌건 깔끔하게 해결되며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역시 같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유색인종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코미디의 촛점을 맞추고 있어서 나름 진지한 구석도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물론 백인들에게 괄시받는 동양인이라는 설정은 진부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 백인들은 하나같이 주인공들을 무시하는데 그 과정은 정말 와 닿더군요.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오직 하나의 목표가 "White Castle" 이라는 것 역시 진부하지만 핵심적인 설정일테고요.

무엇보다도 두 주인공 중 한명이 한국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단순한 코미디물만이 아니라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계가 각본에 많은 입김을 불어 넣었을 것 같은데 주인공 해롤드의 성격이나 설정이 정말로 전형적인 한국인 같아 보입니다! 야채가게 주인이 아니라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는 수재로 모든일에 깔끔 및 정확성을 요구하고 일에 매달리는 모습, 소심한 모습 등이 굉장히 리얼합니다. 물론 진짜배기 한국인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과장된 측면도 분명 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그에 비해 인도계인 쿠마는 강한 캐릭터 성을 지니는 해롤드에 대비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캐릭터화 되어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 중에서도 의학의 천재지만 마리화나에 환장한 인물이라는 설정은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고요.

미국에서야 이국적이면서도 색다른 소재로 인기를 끌었을 작품이지만 그래도 단순히 웃고 즐기는 코미디로서가 아니라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영화를 보고나니 여러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계실 이민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차별이란 없어져야 될 것인데 유머의 소재로까지 쓰일 정도라는 것이 씁쓸하긴 합니다만....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천재소년 두기 하우저로 나왔던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의 연기변신(?)도 볼거리입니다.

2021/01/23

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 아서 코난 도일, 레슬리 S. 클링거 / 인트랜스 번역원 : 별점 2.5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6 - 6점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드뎌, 주석 달린 셜록 홈즈 마지막 권을 읽었습니다. 1권을 읽고 리뷰를 올렸던게 2009년 3월이니 11년 걸려서 다 읽은 셈이네요. 감개무량합니다. 물론 다른 판본으로 다 읽었던 작품들이기는 합니다.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11년 전에 이미 리뷰도 올렸었지요. 그래도 이 판본은 '주석'과 화려하고 다양한 도판을 보는 재미가 크니, 그런 관점에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작품 "바스커빌 씨네 사냥개"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작품 탓은 아니에요.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하기 충분한, 뛰어난 작품이니까요. 기대했던 주석과 삽화도 풍성하고요. 특히 모티머 박사가 런던에서 외과대학 박물관을 둘러보았다는 대사에 달린, 외과대학 박물관에 대한 긴 주석이 인상적이었어요. 존 헌터의 개인 수집품을 영국 정부가 구입하여 만들어진 장소라는데, 존 헌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의 대니얼 버턴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에 추가되어도 좋을 주석이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이니셜이 L.L인 여자 로라 라이언스가 처음 언급되는 장면에 달려있는, 로라 라이언스가 1976년 2월 '플레이보이' 모델이었다는 주석은 이 책 주석의 방대함을 상징하는 주석이기도 하고요.
아래와 같은 홈즈가 머물렀을 움막과 비슷한 움막 구조도 등 삽화 외의 도판도 흥미로운 자료였어요.

그렇다면 뭐가 문제냐, 바로 번역입니다. 제목부터가 조금 미묘해요. '바스커빌 씨' 라니요? '바스커빌 가문'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 외 사소하고 자잘하지만 미려하지 못한 번역들이 눈에 많이 거슬렸습니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우정에서 나온 필요성과 훌륭한 형사의 지배적인 성격 때문에 왓슨이 홈즈의 질문에 단순한 사실 진술로 대답하고 싶은 극도의 유혹에 굴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175번 주석의 긴 문장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대충 넘어간 설명도 너무 많습니다. 모티머와 헨리 바스커빌 경이 했다는 카드게임 에카르테에 대한 주석이 대표적입니다. 게임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기 때문입니다. "32장으로 된 피케 카드를 사용하며, 각 수트의 7부터 킹까지에 에이스를 더해서 구성되어 있다. 각 카드의 가치는 휘스트와 비슷하나 킹은 휘스트에서의 잭이나 에이스, 10보다 랭킹이 더 높다..." 라고 설명되는데, 수트는 뭐고, 휘스트는 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이래서야 '주석'이 '주석'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지요.

다행히 "공포의 계곡" 번역은 훨씬 낫더군요. 최소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별로 없었습니다. 전체 분량의 2/3를 차지하는 19세기 후반, '맥도너'가 '죽음의 계곡'에서 악당 조직을 붕괴시키기 위해 싸웠던 모험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고요. 19세기 후반 탄광 지대를 장악한 악의 조직, 주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정, 묘사가 상세하며, 더글러스이자 버디 에드워즈이자 맥머도인 주인공의 활약도 생생하게 잘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펜실배니아 탄광 지대에서 실재로 광부들을 좌지우지했던 '몰리 머과이어스'와, 그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해 활약한 핑커턴 탐정 사무서 탐정 제임스 맥팔런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각색한 덕이겠지요. 정황상 맥머도가 스코러즈를 붕괴시키기 위해 잠입한 탐정일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끝까지 숨겼다가 한 번에 터트리는 코난 도일 경의 솜씨도 돋보이고요. 핑커턴 탐정이 악당 조직을 괴멸시키기 위해 스스로 악당이 된다!는 이야기는 콘티넨털 옵과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 모험물의 원조로 보아도 무방할거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셜록 홈즈'라는 이름에서 기대해 봄직한 추리 측면에서 볼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모험 이야기는 물론,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앞부분 1/3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셜록 홈즈가 아령이 하나만 있는게 이상하다며 이를 통해 증거를 찾아내는, 추리적으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납득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어요. 바벨 플레이트 중 특정 무게가 한 개만 비어 있었다면 모를까, 아령이 한 개만 있어도 양쪽 근육을 단련하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잖아요? 2개를 한꺼번에 사용하는게 발표 당시의 상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해가 되는 추리는 아니었습니다. 주석에서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더글러스가 자기를 죽이려 온 테드 볼드윈을 죽인 뒤, 시체에 옷을 입히고 자기가 죽은걸로 위장했다는 진상도 지금 읽기에는 많이 진부했어요. 그리고 계속되는 악의 조직으로 부터의 암살 기도를 막기 위해 연극을 벌인 거라는데,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테드 볼드윈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조직도 이상하다고 생각할게 뻔하니까요.

그리고 실화 바탕으로 설득력이 넘치던 맥도너의 과거 활약에 비해, 배후에 악의 조직이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죽음의 계곡을 지배하는 악의 조직 '스코러즈'의 모태인 프리맨 조직의 다른 지부는 모두 정상적인 단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코러즈가 와해된 뒤에는, 조직적으로 복수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몰리 머과이어스에 잠입하여 붕괴시켰던 핑커턴 탐정 사무소 탐정 제임스 맥팔런은 은퇴한 뒤 편안히 천수를 누렸다고 하지요. 맥도너의 모험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 코난 도일 경이 만들어낸 설정이겠지만, 여러모로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테드 볼드윈의 개인적인 복수였다는게 더 설득력이 높았을 거에요.

아울러 이 시리즈에서 기대해 봄직했던 화려한 도판도 부족한 편입니다. 주석 외에는 다양한 출판물에 수록되었던 삽화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영국과 미국 버젼의 문장, 단어 차이에 대한 언급이 주석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두 편 모두 종합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공포의 계곡"은 추리적으로는 조금 아쉽지만 작품 완성도와 재미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별도로 '주석달린' 책을 구입할 만한 가치가 부족하기에 감점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부실한 번역들, 그리고 기대했던 부가적인 정보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입니다. 황금가지 등 일반 출판사의 제대로 된 번역본을 읽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2016/07/09

검은 수도사 - 올리퍼 푀치 / 김승욱 : 별점 3점

검은 수도사 - 6점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문예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숀가우 교구 알텐슈타트 성 로렌츠 성당의 신부 안드레아스 코프마이어가 독살당했다. 현장을 조사하던 지몬과 야콥 퀴슬은 성당 지하실에서 템플기사단장의 묘를 발견했다. 지몬은 신부의 여동생 베네딕타와 함께 암호 풀이를 통해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섰고, 야콥 퀴슬은 법원 서기 요한 레흐너의 지시로 도적단을 토벌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지몬과 베네딕타 사이를 질투하여 스스로 아우크스부르크로 여행을 떠나는데...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손에 쥔 걸로 만족하는 법이 없지. 하지만 조만간 다시 돌아온단다. 항상. -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 때문에 속상한 마리아에게 산파 스승 슈테흘린이 하는 말.

"왜 항상 그렇게 말이 많은 거야?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그냥 입 다물고 죽여." 나타니엘 수사를 죽이고 퀴슬이 하는 말. 나타니엘이 말이 좀 많기는 했습니다...

17세기 바바리아 지방을 무대로 한 역사 추리물 "사형 집행인의 딸"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그런데 시대와 배경이 다를 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느낌이 물씬 납니다. 오래된 유물에서 하나씩 단서를 얻어 보물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보물이 예수가 못 박혔다는 십자가라는 종교적 장치가 핵심이라는 점에서요. 성당의 수장이 흑막이라는 점은 "천사와 악마"가 떠오르고, 성물을 찾는 조직과 핵심 성물이 십자가라는 설정은 "용오"의 한 에피소드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우선 읽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지몬과 베네딕타 커플의 암호 풀이, 퀴슬의 강도단 추적, 마리아의 수도사 추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잡한 이야기가 지루함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됩니다. 결말에 이르러 모든 내용이 유기적으로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약 500페이지라는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17세기 독일 바바리아를 무대로 한 묘사도 빼어납니다. 시대와 장소, 다양한 인물, 민초들의 삶 등 모든 요소에서 철저한 고증과 설득력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네요.

전작에서 이어지는 캐릭터들의 개성도 여전합니다. 특히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야콥 퀴슬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집니다. 지성과 힘을 겸비한 먼치킨 캐릭터로 여전히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거든요. 특히 성 요한 예배당에서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결전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상상만으로도 전율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인간적인 매력도 더해져 있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도적단 두목 한스 셸러와의 대화 장면에서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정도지요.

지몬 프론비저도 미워할 수 없는 뺀질 캐릭터로 톡톡튀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암호 풀이에서 보이는 대단한 활약은 조금 놀랍기도 했고요. 헐리우드식 버디 무비에서 흔히 등장하는 친구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의 활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제목이기도 한 "사형 집행인의 딸" 마리아의 존재입니다. 아우크스부르크로 가는 여정에서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우연히 만난 수도사를 미행하다 붙잡히는 등 민폐 캐릭터로만 그려지는 탓입니다. 지몬과 베네딕타의 관계를 질투하는 장면들도 불쾌하게만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인 베네딕타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좋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묘사 등을 통해 마리아의 복제판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녀가 도적단의 일원이라는 반전은 굳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단순히 안드레아스 신부의 여동생으로 설정해도 충분했을 텐데, 이야기를 지나치게 확장시켜 오히려 주된 흐름에 방해가 되었어요.

우연에 의존한 전개도 다소 거슬립니다. 마리아가 야코부스를 우연히 만나 미행하고, 다시 우연히 지몬과 베네딕타를 구하게 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다른 인물들의 만남이나 사건 진행도 대부분 우연에 의존하고 있고, 결말에서는 곰팡이 슨 약초로 페니실린을 만들게 된다는 전개까지 등장하는데 이건 많이 억지였어요.

또한 암호 풀이는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그 해석도 흥미롭지만 독자가 함께 추리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지역 고유의 역사나 지명에 기반한 내용이기 때문인데, 이런 점은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역사 모험물로 보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5/08/24

스펜서 컨피덴셜 (2020) - 피터 버그 : 별점 1점

경찰 스펜서는 부패한 상관 보일런을 폭행했다가 5년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스펜서의 출소 직후 보일런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선량한 경찰 테렌스가 누명을 썼다는걸 알게 된 스펜서는 룸메이트 호크와 함께 잔상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범죄 조직과 함께 대량의 마약을 유통한 자금으로 카지노 '원더랜드'를 개장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버트 B. 파커가 창조한 보스턴 사립탐정 ‘스펜서’ 시리즈 중 하나인 에이스 앳킨스(로버트 B.파커 사후 원작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작가)의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장편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로 범죄 스릴러, 액션, 버디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범죄 스릴러, 수사물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일단,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수사는 전개상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은 스펜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제공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도청 파일을 피해자 테렌스의 아내가 스펜서에게 직접 전해주는 식으로요.
스펜서의 옛 파트너 드리스콜이 악당이라는 사실도 너무 쉽게 밝혀집니다. 초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이쑤시개 조각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감 있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패한 옛 파트너, 마약 조직, 조직 내부의 은폐 구조 등 설정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요.

전개 또한 뻔하고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간 보스급인 벤트우드에게 쳐들어가서 물고문을 통해 마약 운송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럴 거라면 은밀한 수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정보를 털어놓았다면 악당들도 운송 시간을 바꾸는건 당연한데, 예정대로 운송하다가 마약 트럭을 스펜서에게 탈취당하는건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스펜서 캐릭터도 원작 붕괴 수준입니다. 원작에서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시니컬한 말투, 심리 묘사 측면에서 복잡한 면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그냥 말빨(?)좋은 전형적인 마초 헐리우드 경찰, 형사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액션에서라도 화끈했어야 했는데, 작중 대부분 장면에서는 적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럴거라면 권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설정은 왜 덧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마크 월버그도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고요.

액션은 다른 부분에서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장면들 모두 속도감이나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탓에 맨손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호크가 덩치를 활용해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긴 하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워 액션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절정부입니다. 부패 경찰과 범죄 조직이 결탁한 악의 무리와 대단한 결전을 벌여야 할텐데, 스펜서가 트럭을 몰고 악당 본거지에 돌진한 뒤 호크가 몇 명을 때려눕히는 걸로 결전은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스펜서와 드리스콜의 1:1 맞짱은 너무 작위적이라 어이가 없더군요. 부패 경찰들 때문에 보도도 못하고 사건이 은폐되었었는데, 스펜서와 호크의 활약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된다는 결말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도 너무 바보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건 오히려 장점이기는 하네요. 몇몇 유머 코드는 피식 웃게 해 주기는 하고요. 거인 호크, 조력자 헨리 캐릭터는 캐스팅이 좋습니다. 완전한 권선징악 마무리도 후련했고요.

다만 이 정도 장점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보완해주기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범죄물로서도, 수사극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건질게 없는 졸작입니다. 원작인 탐정 스펜서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로 에필로그에서 후속작, 시리즈의 여운을 남기는데 어림도 없지요. 소리없이 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05/12/05

광식이 동생 광태 - 김현석 : 별점 1.5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 김주혁이 나오기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요새 꽤 팔리는 듯 하네요.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뻔하기도 하지만 별로 요약할게 없어서... 순진과 노골을 대표하는 두 형제의 버디무비랄까요?
일단 초반의 광식이 부분은 나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중반부터! 중반부터는 짜증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봉태규의 광태 파트로 영화가 넘어간 이후에는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불쾌했기 때문이에요.
광태라는 녀석은 만화나 인터넷 연재 소설에나 등장함직한 황당무계한, 비현실적인 캐릭터인 데다가 이후 전개도 현실성이나 타당성을 전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리비도로 뭉쳐있다는 점에서는 이전에 보았던 "연애의 목적"의 박해일과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는 캐릭터라 행동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에 짜증이 엄청나게 몰려오더군요. 여자를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 보는 사고방식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저를 열받게 했습니다. 매달리는 행동은 스토커나 성 추행범에 진배없는데 이후 떡치는 과정까지는 너무나 일사천리, 이거 여성부에서 항의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차라리 노골적으로 웃기기나 하던가.... 제가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그렇게 보수적인 것도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 생각되는, 도저히 즐길 수 없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진한 사랑을 키워온 광식이보다 원나잇 스탠드를 추구하는 광태쪽이 더 해피한(?) 엔딩을 맞는 영화의 결말 역시 끝까지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게 하더군요. 이게 감독이 추구하는 현실이라는 건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 동화도 아니고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도 아닌 어정쩡한 소속 불명의 영화가 되어 버리는데 이게 뭔가 싶네요.
혹시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무조건 대쉬하고 원나잇 스탠드를 적극적으로 하라는 계몽영화일지도? 여자가 싫다고 하는건 결국은 다 좋다는 표현이니 물고 늘어지라는 뜻? 이런 60년대 마쵸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니 영화가 마음에 들 턱이 있겠습니까...

여튼 개인적으로는 간만에 선택한 영화치고는 실패라 생각되네요. 이렇게 영화를 만들것이었다면 과장없이 솔직 담백하게 접근하는게 훨씬 쿨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싱글즈" 처럼 말이죠. 초반 광식이의 순진한 에피소드들과 마지막 결혼식장에서 영웅본색 "마크의 테마"와 함께 등장하는 광식이의 모습 등 몇몇 장면은 볼 만 하지만 이 정도야 아무리 후진 영화에서도 다 건질 수 있는 수준이겠죠. 제 생각에는 TV에서 봐도 충분한 영화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점을 주어도 시원치 않지만 광식이 파트 때문에 점수를 약간 더 얹습니다.

PS :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은 편입니다. 김아중이 예상외로 몸바쳐(?) 연기하더군요. 봉태규의 현실감을 완전히 상실한 연기만 제외한다면....

2009/06/01

삼월은 붉은 구렁을 - 온다 리쿠 / 권영주 : 별점 3점

삼월은 붉은 구렁을 - 6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이쪽 바닥(?)에서는 꽤 인기를 많이 모았던 작품이죠. 하지만 정통 추리물이 아니라고 들어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는데, 할인 행사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과 같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환상의 책을 소재로 한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인데, 소재가 같음에도 장르와 분위기가 작품별로 굉장히 다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분위기는 분명 유사하고, "의안의 남자" 와 같은 소재가 연결되어 있어서 "연작"이라는 냄새는 솔솔 풍기지만요. 나만 그런가..

어쨌건 읽고난 소감을 말하자면 "절반의 아쉬움" 입니다. 이 작품집에서 딱 반은 마음에 들었고, 나머지 반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마음에 든 작품은 앞의 두편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즈모 야상곡",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은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와 "회전목마" 였습니다. 제가 지나칠 정도로 추리 애호가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여성적인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아서 뒤의 두 작품은 취향에 잘 맞지 않더군요.

그러나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분위기를 잡아나가는 솜씨는 그야말로 탁월하고, 뭔가를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실력이 대단해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야말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작품이 아닌가 싶고 말이죠. 다음번에는 이 책 안에서 묘사된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흑과 다의 환상" 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작품별로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기다리는 사람들" :
평범한 샐러리맨 고이치는 취미가 "독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회장님이 주최하는 2박 3일간의 "봄의 다과회"에 초청됩니다. 다과회에 참석한 고이치는 회장님과 다른 3명의 손님들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책을 매개로 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죠. 회장은 고이치에게 이 환상속의 책이 다과회가 열리는 저택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 책을 찾는 키워드는 "석류 열매"라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독서광들이 찾아 해메는 환상의 책을 찾는 추리적인 재미와 함께, 실존하지 않는 책과 기묘한 저택의 묘사가 몽환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추리적인 요소도 괜찮지만 "소문"을 만들기 위한, 그리고 "소문"이 "전설"이 된다는 전개도 인상적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책 속에서 설명하는 또다른 환상의 책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책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고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이만큼 책 소개를 쓴다면 이 책을 사보지 않고는 못배기겠죠. 별점은 4점입니다.

"이즈모 야상곡"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는 다카코와 아카네는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실재 작가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단서는 다카코가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아버지의 젊은 시절 문집. 그리고 한 술병의 선전용 카드였습니다...

두 여성의 버디 무비이자 로드 무비와 같은 느낌을 풍기면서도, 전설의 책의 실재 작가를 찾기위한 이야기를 추리적으로 그럴싸하게 풀어놓는 작품입니다. 하룻밤 동안의 기차여행을 주로 다루고 있기에 "몽환적"인 느낌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이야기의 논리는 훨씬 더 날이 서 있는, 정교하면서도 치밀한 느낌을 전해주더군요. 또한 작가의 정체에 대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며, 다양한 복선이 반전이 포함된 결말로 잘 이끌고 있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두 고교생 소녀가 언덕 밑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사고사로 결론내려지지만 소녀의 전 가정교사와 남자친구는 이 죽음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소녀가 남긴 일기장을 근거로 조사에 착수하며, 소녀들에게 숨겨진 비밀을 알게됩니다...

고교생 소녀들의 심리가 주로 등장하는 하이틴 로맨스 백합물 같은 작품입니다. 그냥 하이틴 로맨스 같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전면, 후면에 배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건 자체도 너무 엽기적이라 뒷맛이 개운치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오츠 이치에게 더 잘 어울리는 소재가 아니었을까요? 오츠 이치가 이 소재로 작품을 썼다면 소녀들이 비밀을 알게 된 후에는 서로를 난도질한다는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어쨌건 저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전혀 취향이 아닙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회전목마"
이 이야기는 두개의 이야기, 즉 "3월의 나라"에 존재하는 "학원제국"에 전학온 여학생 미즈노 리세의 이야기 +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실제로 써 나가는 작가의 이야기가 결합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들이 왜 공존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가 없더군요. 재미있는 시도이긴 하지만 연관성도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 너무 강하거든요. "학원제국" 이야기는 만화나 판타지에 너무 흔히 등장하는 소재라서 큰 감흥이 없기도 했고 말이죠.

실제 작가가 책을 써 내려가는 부분의 이야기는 다양한 과거의 소품들 - 옛날 만화, 헨리 다거의 그림, 영화 "엘모의 모험", 소설 "컬렉터" 등 - 을 등장시키는 등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지나치게 뻔하고 지루한 "학원제국" 이야기가 중간중간 섞여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통에 맛난 것만 먹고 싶은데 제가 싫어하는 아이스크림이 담겨서 싫어도 섞어 먹게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읽지 못했거나 접하지 못한 컨텐츠를 소개하는 작가의 글빨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학원제국" 이야기는 빼고 읽죠 머....

2010/07/12

스켈리톤 맨 - 토니 힐러먼 / 설순봉 : 별점 2.5점

스켈리톤 맨 - 6점
토니 힐러먼 지음, 설순봉 옮김/강

이제는 고인이 되신 토니 힐러먼의 나바호 부족경찰 짐 치와 조 리프혼 시리즈. 국내 출간 기준으로는 최신작으로 국내 출간작은 이로써 독파를 완료하였습니다. "고스트웨이" 이후 6년만이네요.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것은 사건의 스케일입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비행기 사고, 그리고 그 비행기 사고에서 실종되었지만 시신의 일부라도 발견되면 수십 억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는 스케일 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조 리프혼이 은퇴한 이후의 이야기라 짐 치가 호피족 파트너 다쉬, 약혼자 버디와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조 리프혼은 사건 해결을 돕기 위하여 별도의 조사를 약간 진행하기만 할 뿐이라는 점도 차이점이고요.

그러나 사건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약점이 눈에 거슬리네요. 시신이 다이아몬드 가방을 손목에 수갑으로 엮어 놓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면 손 한쪽은 발견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세상에 어떤 미친 놈이 가방을 가진 뒤 손까지 보관하고 있을까요? 아무데나 버리지... 
그리고 이 시신 발견에 모든 것을 건 유산 상속자 조안나 크레이그에 대한 악당들의 소극적 방해 역시 와 닿지 않습니다. 수십 억 달러의 재산이 걸려있는데 한명의 인간 말종 스킵 트레이서에게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맡긴다는? 말도 안됩니다. 
인디언들은 서로 사돈의 팔촌까지 꿰고 살 정도로 유대관계가 대단한데 그랜드캐니언 밑에서 은둔생활하는 사람 하나를 모른고 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고요. 이는 '인디언 탐정' 시리즈의 정체성을 해치는 설정이었다 생각됩니다.

재미 측면에서도 아쉽습니다. 다이아몬드와 시체 조각을 찾기 위하여 그랜드 캐니언 밑바닥을 뒤진다는게 소설의 핵심인데, 다이아몬드와 시체 조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스켈리톤 맨'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찾아버리는 탓입니다. 찾는 과정에서 아무런 서스펜스도 느낄 수 없고, 결말도 너무 뻔하고요. 긴 분량으로 쓸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단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특유의 세밀한 묘사는 역시나 대단했고, 악당은 모조리 지옥으로 가며 선한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결말과 짐 치의 인디언적인 사고방식 또한 여전히 마음에 듭니다. 대표적인 것은 나바호의 자연적 조화 이론 - 모든 종은 서로 자연계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존중할 것 - 을 바탕으로 한 '애완용 동물'을 소유한다는 것이 인간 노예를 소유하는 것 보다 더 정당하다는 근거가 없다는 내용인데 참 그럴듯했어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만 더 재미가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설정의 추리 스릴러라는건 분명합니다. 전형적인 미국식 헐리우드 스릴러가 지겨우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전작들이 더 마음에 들기는 합니다. 

2014/04/16

라이징 임팩트 1~17 - 스즈키 나카바 : 별점 1.5점

라이징 임팩트 17 - 4점
스즈키 나카바 지음, 정선희 옮김/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완결된지 10년도 더 넘게 지났지만, 최근에 골프에 관심을 둔 친구가 많아져서 이런 저런 작품을 읽다가 만나게 된 작품입니다.

그런데 골프 만화는 아닙니다. 전형적인 왕도형 배틀 판타지 만화입니다. 초등학생이 400야드가 넘는 드라이버샷을 날리고, 수십미터짜리 버디 퍼팅과 칩인 어프로치를 당연하게 성공시키고, "기프트"라고도 불리우는 각자의 필살기("라이징 임팩트", "샤이닝 로드"…)를 가지고 있고, 주인공이 아무리봐도 초등학생 같지 않은 라이벌들과 싸워 나가고, 그 라이벌들과 한팀이 된 이후 다른 라이벌 팀과 싸워 나가고, 그 라이벌 팀과의 싸움이 끝난 뒤 진정한 라이벌 팀이 나타나고… 하는 식의 전형적인 배틀 판타지 액션 소년 만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만화에서 골프는 단지 소재일 뿐입니다. 골프 시합은 성투사들과의 전투, 라이징 임팩트는 페가수스 유성권으로 바꿔도 이야기는 가능하겠지요.

그래도 배틀 판타지로는 왕도형이라 기본적인 재미는 갖추고 있습니다. "점프"에서 단행본 17권 분량까지 연재되었다는게 증거이고요. 다양한 홀의 구성과 환경에 맞춰 서로의 필살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꽤 그럴듯한 덕분입니다. 몇몇 장면에서는 두뇌 싸움을 보는 맛도 약간 느껴지고요. 또 천연계 주인공 가웨인 캐릭터는 이런 류의 만화에서는 보기 드문 캐릭터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별다른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했지만요.

그러나 갈수록 너무 뻔해지는게 심상치 않았는데, 카멜롯과 그렐 킹덤과의 최종 결전에서 "자 이제 승부를 시작해볼까!"라는 말과 함께 바로 10년 후로 넘어가 후일담이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결말은 좀 황당했습니다. 편집부의 압력 ("당장 집어쳐!")이 느껴지더군요. 그나마 후일담으로 거의 모든 등장 인물들에 대해서 정리해준게 다행이에요.

여튼 기대와는 전혀 달랐던 전형적인 소년 만화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중년에 접어든 제가 읽기에는 너무 유치했어요. 킬링타임용으로 오래 기억될 작품은 아니네요.

덧붙이자면 주인공은 가웨인에 라이벌은 란슬롯, 끝판왕은 트리스탄, 다니는 학교는 카멜롯인 등 아더왕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 오기는 했으나 그냥 그뿐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최소한 끝판왕은 모드레드에 모르가나 정도는 나와줬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요. 일본이 무대인 만화에 왜 억지로 이런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2023/02/18

책과 열쇠의 계절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3점

책과 열쇠의 계절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요네자와 호노부청춘 학원 추리 단편집. '고전부'나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탐정의 역할입니다. 이 시리즈는 두 주인공인 호리카와와 마쓰쿠라가 각자 추리를 펼치며 서로를 보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약간 버디물스러운 느낌도 들어요. 뛰어난 관찰력과 독특한 발상의 추리력을 갖춘 호리카와는 뻔한 고등학생 탐정 캐릭터인 반면, 모든걸 의심하면서 추리를 시작하는 마쓰쿠라의 독특함은 나쁘지 않았고요.

또 두 주인공이 도서위원이라서 대부분의 이야기에 주제가 되는 책이 등장한다는 것도 차이점인데, 저 역시 독서 애호가(?)인지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상계로 한 획을 그은 작가답게 평범한 일상계로는 우수한 시리즈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13><913>>
도서위원 호리카와 지로와 마쓰쿠라 시몬은 선배 우라가미로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과거 둘이 에도가와 란포의 <<흑수조>> 속 암호를 풀었던 모습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일요일, 우라가미 선배 집에 방문한 둘은 할아버지 서재 방에 놓여져 있었던, 어울리지 않았던 책들이 단서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마쓰쿠라는 정보를 바로 공개하지 않고 따로 조사가 필요하다며 호리카와와 밖으로 나온 후, 그가 생각했던 의심을 털어놓는데...


등장하는 책은 많지만, 중요한건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가 되는 책들

마쓰쿠라의 의심은 우라가미 선배가 후배 둘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무엇인지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이 정당한 유산 상속인이라면 금고를 여는 전문가를 부르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마쓰쿠라는 우라가미 선배와 선배의 가족은 금고를 그렇게 쉽게 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추리합니다. 선배 집에서 대접받았던 차는 시판차와 똑같은 맛이었는데 그걸 끓여서 따로 찻주전자에 내 놓은 이유, 화장실을 간다고 했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 이유 등 기묘했던 행동은 그 집이 선배 가족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찻잎이 어디있는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는 척을 해야 해서 차를 끓여 내 놓았고,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건 집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까봐 걱정했던 것이었지요.
할아버지의 단서는 이상한 책의 분류 번호에 대한 것으로, 그것을 통해 금고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를 이용하여 선배 가족의 정체를 밝히는 작전을 펼친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책 4권의 3자리 분류 번호를 50음도로 변환하면 모두 6자, "타스케테쿠레 (살려줘)"라는 말이 된다고 조작하는 방식으로요. 이 작전으로 선배와 선배 가족의 눈을 돌린 틈에, 마쓰쿠라가 집 안을 조사하여 노인을 발견하고 구해내게 됩니다.
금고 안 내용물은 할아버지 그림과 가족 앨범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던건 서재방에 단서가 있고 그건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서재방의 책 중 다른 책들과 사뭇 다른 책이 있다는건 어른이 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금고 번호가 도서 분류 기호라는건 어른이 된다고 알 수 있는건 아니고요. 즉 할아버지가 말했던 단서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선배 가족이 금고를 열기 위해 후배를 부른 것도 이상했어요. 저 같으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정도로 끝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은 아쉬웠습니다.

<<록 온 로커>>
도서위원 컴비 둘은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 함께 가야 40% 할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점장이 "귀중품은 '반드시' 지참하실 것"을 말했고, 이걸 이발 중 이야기하는걸 저지했다, 그리고 곧 종료 시간이라고 말하고 난 뒤 염색이 필요해 보이는 손님을 받았다는 등의 단서를 조합하여 마쓰쿠라는 미용실에 최근 도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점장이 함정을 팠다는 추리를 펼칩니다. 호리카와는 마쓰쿠라의 도움으로 둘의 예약을 받았던 곤도가 범인이라는걸 알게 되고요. 이 작전을 모르는 사람을 점장이 의심하고 있으니, 그걸 모르고 예약을 받은 곤도가 범인이라는 추리로요. 이는 결국 사실로 밝혀집니다.
마쓰쿠라의 추리에 이어 호리카와의 추리가 이어지는 티키타카가 볼만했고, 마지막에 범인 곤도가 도주하는걸 저지할 수도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던건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평범한 일상계로는 적절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의 미용실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남자 둘이 미용실을 가는게 굉장한 금기인 것처럼 묘사되는게 신기했습니다.

<<금요일에 그는 무엇을 했나>>
기말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후배 도서위원 우에다 노보루가 호리카와와 마쓰쿠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 누군가 침입하여 교무실 앞 창문이 깨졌는데 그걸 보고 학생지도부 요코세 선생이 노보루의 형인 불량 학생 우에다 쇼가 시험 문제를 훔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요코세 선생은 이른바 '명탐정' 같은 사람으로, 무슨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학생 누군가를 아무런 근거없이 범인으로 지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에다 쇼가 그 날, 밤 늦게 돌아왔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둘은 우에노 쇼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형제가 같이 쓰는 방을 수색하는데...


등장하는 책은 <<파랑새>>. 유리창을 깬 원인이기도 한 새와 연결되는 장치. 헌책방에서 산 이름을 알 수 없는 애장판 만화도 중요한 단서 중 하나. 그 외에도 노보루가 관심있어하는 책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판타지 시리즈가 언급됨.

추리를 통해 밝혀낸 우에다 쇼의 알리바이는 가족과 별거 중인 아버지 병문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어서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이지요.
우에다 쇼의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라이켄'이라는 라면집 쿠폰을 찾아낸 뒤, 이상할 정도로 좁았던 집 등의 단서를 통해 아버지가 별거 중이라는 노보루의 답변을 끌어내어 우에다 쇼의 그날 행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완벽한 일상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사건을 맡아서 끌어가는 과정과 결말이 다소 석연치 않습니다. 우에다 노보루의 부탁부터 억지스럽습니다. 왜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어요. 작중에서도 우에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리바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호리카와에게 부탁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호리카와가 딱히 알리바이 찾기로 이름을 떨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친한것도 아니니까요.
호리카와가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초에 우에다 쇼는 증거가 집에 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설령 부탁을 받아들인다 해도 집을 뒤지느니 우에다 쇼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게 더 나은 해결책이었어요.

이에 대해 마쓰쿠라의 추리 - 우에다 노보루가 형의 퇴학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도 좁고 어차피 형은 아버지랑 살 터였기에. 그래서 알리바이 증거를 찾아내서 없애려고(형을 퇴학시키기 위해)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는 인간 관계가 깨져도 무방한 사람이었으니까 - 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형의 퇴학을 바란다면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이상적입니다. 구태여 알리바이를 찾아내고, 또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늘린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애초에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의 위기에 처한다면, 증거 유무와 관견없이 병문안 당사자였던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테고요. 모든 상황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마쓰카와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추리력과 상반될 정도의 비합리적인 주장이라서 오히려 캐릭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리창을 깬건 마쓰카와였다는 결말도 별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없는 책>>
3학년 선배 고다가 자살한 뒤, 자살한 선배의 친구 하세가와가 도서실에 나타났다. 그는 고다가 책 사이에 유서를 넣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며, 빌렸던 책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둘은 하세가와의 빌린 책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걸 알아채는데....


등장하는 책은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자살론>>.

극히 적은 정보만 가지고 원하는 책을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서점이나 도서관이 무대인 작품에서는 굉장히 많습니다. 아예 이런 내용이 핵심인 <<서점원 하야미>>라는 만화가 떠오르네요. 이번 이야기는 이런 류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반전과 함께 여운도 남기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세가와가 찾아달라고 하며 알려준 핵심 정보는 고다가 책을 읽다가 덮었는데 책 등이 보였고, 밑에 바코드 스티커가 있었다는 겁니다. 고다가 좋아했던건 소설책이고요. 그런데 현장 조사를 통해 하세가와는 고다의 오른쪽에 있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일본의 소설책은 대부분 세로쓰기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므로, 책을 읽다가 덮으면 하세가와의 위치에서 책 등과 스티커를 함께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즉, 하세가와의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이지요.
마쓰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를 날조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하세가와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호리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는 육필이라 위조할 수 없고, 오히려 유서를 받은 뒤 친구가 자살한 탓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은밀하게 유서를 드러내려고 했던 거라고 추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묵직한 내용에 추리적으로도 좋았으며, 두 주인공의 차이를 강하게 드러내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고, 무조건 나쁜 의도일 것이라 짐작한 마쓰카와의 잘못과 이를 반박하는 호리카와의 말이 대미를 장식하거든요.
선배 교실에 가서 불필요한 연극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는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줘>>
마쓰카와는 호리카와에게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숨겨두었던 현금을 함께 찾아보자고 부탁했다. 그간 호리카와의 추리력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내 놓았던 과거의 단서들를 함께 검토하다가 과거 마쓰카와 가족에게 차가 한 대 더 있었다는걸 추리해내었고, 둘은 결국 그 밴을 찾아내는데...


여러 책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아버지 밴 안에 있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

보물찾기 이야기인데 마쓰카와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호리카와가 잡아낸 마쓰카와의 이야기 속 단서 - 동생이 멀미를 했다는 것 - 라는 착안점은 좋았습니다. 그때까지 마쓰카와는 당시 탔던 차가 렌트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멀미는 담배 냄새 때문이라는걸 깨닫고 담배 냄새가 나는 차를 렌트할리가 없었다는걸 깨닫게 되거든요. 결국 그 차는 빌린 차가 아닌 아버지 차였다는 추론에 이르게 됩니다. 또 이 추리는 자동차로 여행을 가다가 동생이 심하게 멀미를 했었다는 별게 아닌 추억담이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는 점과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잊고있던 기억을 떠오르게끔 도와주는 정도의 도움을 줄 뿐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일상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뒤 차를 찾아내는 과정, 그리고 차 속에서 발견한 열쇠의 '501호'가 어디인지를 추리하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책'이 중요 단서로 사용된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차 안에 굴러다니던 헌 책이 도서관 '제적본' 책이라는걸 알아낸 뒤, 도서관이 위치한 도시의 5층 건물을 검색한다는 것으로 도서위원인 아이들의 특기가 발휘된 것은 물론이고, 그 도시는 차로만 갈 수 있다는 등의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서 여러모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일상계 보물 찾기로는 더할나위 없긴한데 딱 한가지 억지가 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라면 당연히 주차비를 냈을테니, 주차비를 내는 누군가는 차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누군가가 그렇게 했던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 그 누군가가 몇 년 동안 차를 뒤져 그 안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았을리도 없겠지요. 즉, 자동차가 주차장에 장기 주차되어 있었다는게 밝혀진 순간 보물찾기는 끝났어야 마땅합니다. 이걸 바로 떠올리지 못한건 이상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친구여, 알려 하지 마오>>
호리카와는 도서관 검색을 통해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돈을 도둑맞은 피해자가 아니라 돈을 훔쳤던 가해자였다는걸 알아낸다. 단서는 마쓰카와 시몬, 레이몬 형제 이름과 이에 대해서 마쓰카와가 '3/5이다'라고 했던 말이었다. 시와 예 (레이)는 중국 고전 5경에서 따왔으니 아버지 이름도 그럴 것이다라고 추리하여 아버지 이름을 검색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도 전편에서 독자가 가졌던 의문을 그대로 가지고, 자신의 추리 결과로 도서관에서 기사를 검색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월 정액 주차장에 남겨져 있었던건 누군가 돈을 계속 냈다는 의미라는 추리는 저와 같은데요, 호리카와는 왜 돈을 계속 냈을까?에서 또 다른 추론을 얻어냅니다. 주차장에 놓여진 차를 처분할 수 없었던건 그 안의 열쇠 때문이었고, 열쇠를 지금 당장은 회수할 수 없었다는 처지였다고요.
그리고 줄거리 요약처럼 '오경'의 한자를 통해 마쓰카와 아버지 이름을 추측하여 검색한 결과,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절도범이었다는걸 알게됩니다. 즉, 마쓰카와의 아버지는 지금 구속 수감 중이라 열쇠를 회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여기까지의 추리는 기가 막힌데 그 뒤는 특별히 추리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뒷부분은 마쓰카와가 돈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해 반론하는 호리카와 사이의 자기 주장 대결이 대부분이에요.
마쓰카와가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평소에 돈을 아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 등 약간 사회파스러운 분위기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 약점이란 건 그런 거야. 약점 하나로 세상은 변해….. - 어차피 고등학교 2학년 생이 하는 이야기니 그렇게 깊이있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호리카와 역시 이상론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뿐이고요.
이야기는 마쓰카와가 그 돈을 찾으러 후미쿠라 정에 가서 건물들을 뒤졌는지, 그래서 돈을 찾았는지 밝혀지지 않고,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마쓰카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호리카와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아무래도 마쓰카와가 돈을 찾으면 더 이상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을텐데, 어떻게든 마쓰카와가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돌아와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추리도 괜찮았고,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기에는 나무랄데 없는 깔끔한 전개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04/03/24

웰컴 투 더 정글! -The RunDown- 피터 버그 : 별점 2점

웰컴 투 더 정글 - 4점 피터 버그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을 지녔지만 언젠가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여는 게 꿈인 최고의 '회수전문가' 벡(드웨인 존슨). 단 한번의 실패도 없는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인 그에게 최고의 위기가 될지도 모르는 의뢰를 받게 된다. 베일에 쌓인 보물을 찾겠다고 정글로 간 트라비스(숀 윌리엄 스코트)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수락한 벡은 위험천만의 황금도시 '헬도라도'로 떠난다.
생각보다 쉽게 트라비스를 찾아내는데는 성공하지만 신비의 보물 '가토'의 존재를 아는 그는 동행을 거부하고 게다가 정글의 독재자 헷쳐(크리스토퍼 월켄)마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벡과 트라비스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신비의 여인 마리아나가 나타나면서 일은 점점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하는데…

인디아나 존스의 뒤를 잇는다! 라는 거창한 카피와 함께 분위기도 비스무레하게 흉내낸 액션영화. 개인적으로 “더 락 (드웨인 존슨)”의 팬이기때문에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슈퍼스타 프로레슬러인 더 락의 액션연기는 확실히 남다른 점이 있기는 하더군요. 이연걸류의 화려하지만 가벼운 액션이 아닌 묵직하고 중량감 느껴지는 정통 “스트롱스타일” 액션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런 액션 연기는 정말 간만에 보네요. 간간히 프로레슬링 기술도 섞어서 보여주는 것도 팬으로서의 재미였어요^^ (초반 나이트클럽 격투씬에서는 “락바텀”!까지 보여주더군요)
또한 “회수전문가”라는 직업이나 총을 절대 쓰지 않는다는 신념같은것으로 포장된 벡이라는 캐릭터가 꽤 멋집니다. 트라비스역의 숀 윌리엄 스콧도 허풍세고 말도 많지만 의외로 행동파인 촐랑이로서 괜찮은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친구 캐릭터는 영화마다 거의 다 비스무레 하군요.

하지만 캐릭터와 액션을 뺀 나머지가 너무 별로에요. 다른 모든 이야기는 그냥 액션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중간 다리로서나 존재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액션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정말로 부실합니다. 스토리의 밀도가 굉장히 떨어지는 문제 탓이 큰데, 벡부터가 왜 레스토랑을 열고싶어 하는지, 왜 총을 쓰기를 싫어하는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소개부터 빠져있고, 트라비스가 어떻게 가토가 있는 곳을 아는지 같은 보물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마저도 배재한체 영화가 진행됩니다. 암호풀이나 지도찾기 같은 기초적인 부분도 없는 보물찾기 영화라……  사실 마지막에 벡과 트라비스가 같이 떠나는 장면조차도 이해가 안되더라고요…..
정글의 독재자를 물리치는 정의의 히어로를 그릴 작정이었다면 보물찾기나 중간에 나오는 게릴라 이야기같은 것을 다 빼고 차라리 그 시간을 캐릭터 소개로 돌리는 것이 현명했을 듯 싶네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스트롱 근육맨과 대학중퇴 천재, 비쥬얼부터 차이가 나는 꽤 괜찮은 컴비의 그럴듯한 액션 버디 무비 한편이 나올 뻔! 하다가 말은 영화입니다. 별점은 2점. 그래도 락의 팬이라면 꼭 보시길. 초반부에 아놀드가 살짝쿵 우정출연 하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2003/12/15

위험한 사돈 - 앤드루 플레밍

회사에서 우연히 보게 된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영화입니다.

회사에 계시는 실장님이 넘 재밌다고 강추하기도 했었고 마이클 더글라스라는 배우를 좋아하시도 해서 그냥저냥 대충 봤는데 음... TV용 홈드라마 스준이더군요.

신경질적이고 결벽증인 무좀 전문 의사 제리는 딸의 결혼으로 예비 사돈 스티븐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돈은 "제록스 판매사원"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올가"라는 코드네임의 사라진 핵 잠수함의 위치를 손에 쥐고 있는 비밀 정보원이었죠. 그래서 FBI의 추격도 받고 무기상과도 엮이게 되면서 무좀 전문 의사 제리의 악몽의 한주가 시작됩니다......

전혀 다른 두명의 컴비를 이용한 일종의 버디무비로 그동안 너무 흔하게 나왔었던 코믹물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죄수와 형사컴비의 48시간이나 최근작이라면 홍콩경찰+흑인미국경찰 의 "러쉬아워" 등등 같은 장르겠죠.
이 장르는 두명의 문화적, 성격적 차이를 극대화 하는 캐릭터 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에 주연배우들의 캐릭터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일단 마이클 더글라스와 알버트 브룩스 두 명의 배우는 합격점을 줄 수 있긴 합니다. 관록을 보여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너무 뻔한 스토리와 극적 긴장감이 별로 없는 연출로 영화는 그냥저냥 시시한 TV물 수준으로 끝난것 같습니다. 액션을 많이 넣자니 주연들 나이가 많고, 코미디를 강화하자니 캐릭터가 좀 안 맞는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두가지 쟝르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심심한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극장가서 안보길 잘했다.. 정도의 영화였습니다. 마이클 더글라스도 많이 늙었더군요. 다음 영화는 조금 더 제대로 된 영화에 나오시길.

2017/02/18

갓 오브 이집트 (2016) - 알렉스 프로야스 : 별점 1.5점



'옥수수' 무료 영화로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최악의 영화입니다. 본 사람들이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제일 큰 문제는 각본입니다. 기둥이 되는 복수극 - 아버지 오시리스를 죽이고 자신의 두 눈을 가져간 삼촌 세트에게 호루스가 복수한다 - 은 뻔하지만, 원전인 이집트 신화 그대로인만큼 문제는 아닙니다. 호루스가 겪는 고통은 시련이며, 배려와 백성(?)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야 시련을 극복하고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극적 흐름도 나쁘는 않고요. 그러나 진행되는 과정이 엉망입니다. 이런 시나리오에 1억불이 넘는 돈을 투자한 제작진이 이해가 안됩니다. 라이언스 게이트가 망해가는 이유겠죠.
우선 인간 벡, 그는 죽은 연인 자야를 되살리기 위해 호루스의 복수를 돕는 인물입니다. 허나 극초반 호루스의 눈을 훔쳐낸 다음부터는 영화는 과묵한 액션 마초(호루스)와 떠벌이 재담꾼(벡)이 함께하는 전형적인 미국풍 버디 코미디 액션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연인은 죽고 세계는 멸망하기 직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세트가 가진 힘의 원천이라는, 불길이 있는 피라미드의 길을 안다는 유일한 장점도 불을 끄는데 실패함으로써 무위로 돌아갑니다. 그나마 마지막 호루스의 선택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장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긴 합니다만 그 전까지 보여준 존재감은 최악이에요.

최종 보스 세트도 엉망인건 마찬가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파워 밸런스 문제는 최악 중 최악으로 토트의 지혜, 호루스의 눈 , 오시리스의 심장, 네프티스의 날개에 라의 창까지 한 몸에 지닌 완전체인데 이 모든 것을 갖추기 전에 떡으로 만들었던 호루스에게 결딴나는 마지막 격투는 이게 뭔가 싶더군요. 시련을 극복한 호루스가 파워업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그랬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한번 더 변신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대사만으로도 - '새로운 힘이 느껴져!' 뭐 이런거요 - 강해졌다는 설명을 해 줬어야 합니다.

CG도 끔찍합니다. 번쩍번쩍할 뿐 일본 특촬물 과 다를게 없어요 . "세인트 세이야" 실사판이 나오면 이렇지 않을까요? 디자인이라도 괜찮았어야 했는데 뻔한 이집트 메타포를 활용, 복제한 수준에 머뭅니다. 호루스 변신 형태는 깡통 로보트를 보는 느낌이며 라의 거인 변신도 어이가 없었고요. 이 쯤 되면 이집트를 무대로, 이집트 신들과 인간이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백인이라는 문제는 문제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신은 인간보다 크다던가, 각 신들의 특수 능력을 떼어내면 일종의 오브제 (토트의 뇌와 호루스의 눈은 보석, 날개는 날개모양 판때기...)가 되는 등 몇몇 설정 외에는 건질게 하나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혹시나 공짜로 볼 수 있어도 피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시간은 가치있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니까요. 그게 뭐든 이 영화 감상보다는 가치가 있는 행동일 겁니다.

덧붙이자면, "300"처럼 어두운 다크 판타지로 만들면 좀 더 나았을 듯 합니다. 벡이라는 인간말고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으로요. 눈을 훔치는 것은 호루스를 위하여 세트에게 몸을 바친 하토르에게 맡기고, 하토르는 그 때문에 세트에게 죽음을 당하지만 그녀를 죽게 놔두고 백성을 택한 호루스의 각성으로 이집트가 평화를 되찾는다... 정도의 이야기였으면 깔끔했을 거에요. 마지막은 2편을 위해 하토르를 구하러 죽음의 나라로 떠나는 호루스를 그리는 것으로 화룡정점! 이렇게만 나왔으면 별점 2.5점은 줬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