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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

이상한 그림 - 우케쓰 / 김은모 : 별점 2.5점

이상한 그림 - 6점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북다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사키는 후배 쿠리하라의 도움으로 '나나시로 렌'이라는 블로거가 올린 이상한 내용과 그림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림의 크기를 원래대로 맞추고, 기준점(번호) 중심으로 정렬하자 나나시로 렌의 아내 유키가 출산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아들 유타와 둘이서 살고 있는 나오미는 어린이집 선생 하루오카로부터 유타가 그린 이상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다음날, 누군가가 나오미를 쫓다가 집의 위치를 알아낸 후 유타가 사라져버렸다. 하루오카 선생은 그림을 통해 유타가 학대받았다고 추리했지만, 유타가 그린 그림은 '묘비'였다. 묘비의 주인은 유타의 친모 유키였고, 알고보니 나오미는 유타의 할머니였다.
1992년, 고등학교 미술 교사 미우라 요시하루가 살해당했다. 3년 뒤,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위해 미우라의 제자였던 신문기자 이와타는 실제 사망 당일 미우리의 행동 그대로 등산에 나섰다. 그리고 미우라가 죽기 전 영수증에 그린 풍경 그림은, 미우라가 사망했다는 시각에는 역광이라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는걸 알아냈다. 이를 통해 미우라의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했지만, 그날 밤 이와타도 진범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상한 집"으로 유명한 우케쓰의 후속작. 크게 세 편의 단편이 연결된 연작 소설로, 모든 이야기에 미우라 요시하루의 아내 나오미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선, 책 서두에 등장하는, 모친을 살해했다는 소녀 - 그리고 이상한 그림을 그린 - 가 나오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블로그 속 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존재가 암시되어 있는 인물도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나나시로 렌의 친모이며, 유키를 죽게 만든 범인이기도 합니다. 유타의 모친처럼 보였지만 알고보니 할머니였다는 나오미도 바로 이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남편 미우라가 아들 다케시를 힘들게 하자 그를 살해했습니다.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당했던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키가 낳는 아기도 자신이 모친이라는 이상한 모성애가 발동하여 유키가 출산 중에 사망하도록 몸을 악화시켰고요.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케시가 자살했던 겁니다. 유타와 함께 살아가던 나오미를 쫓았던 건 이와타의 선배 구마이였습니다. 그는 이와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고 지난 10년간 고민하고 추리하여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제목처럼 '이상한 그림'을 가지고 펼치는 수수께끼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하나의 그림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림에 포함된 번호의 동그라미를 기준으로 크기를 맞추고, 번호대로 겹치면 무서운 그림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산모 배에서 아이를 억지로 꺼내는 듯한 그림이지요.
미우라 요시하루 사건에서의 그림도 흥미롭습니다. 보이지 않는 풍경 그림을 왜 그려서 남겼을까?라는 수수께끼인데, 이는 사망 시각이 조작되었을거라는 증거로 그림을 남겼다는 다이잉 메시지로 설명됩니다. 미우라가 먹은 하나야기 도시락의 소화 상태로 사망 시각이 추정되었는데, 그건 아침에 범인이 억지로 먹였던 것이고요.
그 외의 수수께끼들도 소소하지만 적절하게 사용됩니다. 나나시로 렌 블로그 속 글을 통해 드러나는 또다른 동거인, 미우라 사건에서 범인이 팥빵과 침낭을 가져간 이유 - 전날 저녁에 미우라가 먹은건 돈가스 샌드위치였고, 침낭으로 하룻밤을 보냈기에 범인은 이를 숨기기 위해 샌드위치와 함께 샀던 팥빵과 침낭을 가지고 사라졌던 것. 범인이 먹을걸 전부 가져갔다고 속이기 위해서, 그리고 침낭은 잤다는 흔적이 남아있어서 가져갈 수 밖에 없었다 -, 연약한 여자가 미우라와 이와타를 살해할 수 있었던 방법 - 침낭에서 자던 피해자들이 나올 수 없게 침낭 자체를 묶어버렸다 - 등이 그러합니다. 유타의 엄마로 보였던 나오미가 할머니라는게 밝혀지는 이야기는 서술트릭 기법이 사용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나오미가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앞서의 사건으로 설득력을 높여주며, 사뭇 달라 보이는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묶이는 구조도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전작은 인터넷에 올렸던 상상에 허황된 설정이 결합되어 있을 뿐인, 완성된 소설로는 보기 어려운 망작이었던 반면에 이 작품은 최소한 한 편의 완성된 소설입니다. 실력이 많이 늘었네요.

하지만 그림을 가지고 풀어내는 수수께끼 자체만큼은 주택 평면도에서 기묘한 범행을 추리해내는 전작이 더 괜찮기는 합니다. 이 작품에서의 그림 수수께끼는 재미는 있는데 상황 자체가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유키가 그린 그림을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아요.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게 그림을 남길 이유는 알기 힘듭니다. 그냥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하면 됐을 겁니다. 왜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요? 또 이 그림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낸들, '아이를 낳다가 죽는 미래'로만 보일 뿐입니다. 특별한 범죄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유키가 그린 기도하는 모습의 여성이 '나오미'였다는걸 남편이 눈치채지 못한 것도 설명되지 않고요. 유타가 묘비를 그리려다가 지운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우라 사건의 풍경화는 더 억지스럽습니다. 나오미가 풍경화를 눈치챘지만, 오히려 '알리바이가 있는 오전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로 삼기 위해 남겨두었다는게 특히 그러합니다. 용의자 중 그 시간에 알리바이가 없는건 유키 뿐인데, 애초에 유키가 알리바이가 없다는걸 이 시점에 나오미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흉폭하게 사체를 훼손했다 한 들, 1992년의 법의학이 사망 추정 시각을 단순히 소화 상태에만 의지해 발표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들은 있지만 흥미로운 소재를 잘 풀어냈다는건 분명합니다. 작가로서 실력이 일취월장했으니, 다음 작품도 기대되네요.

2016/06/05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 홍성욱 : 별점 2.5점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 6점
홍성욱 지음/책세상

제목 그대로 여러 가지 그림을 토대로 과학의 역사와 다양한 과학 이론을 알려주는 독특한 책입니다. 목차는 크게 세 부분 - "제 1부 근대 과학의 탄생, 제 2부 이성과 근대성, 제 3부 오래된 이야기와 현대 과학의 이미지" -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여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까지의 시대순리녀, 목차별로 다양한 소주제가 포함되어 있고요.

그림을 활용하여 설명해 주는 덕분에, 딱딱한 내용임에도 이해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르키메데스의 준정다면체와 케플러가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받아들여 플라톤의 다면체 다섯 개를 이용한 기하학적 원리를 여섯 개의 행성에 대입하는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주 좋았습니다(참고로, 케플러의 이론은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 이러한 수학적 조화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곤 하는군요).그림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나무"를 이용하여 진화론을 설명해주는 부분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시대순으로 조목조목 짚어주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본인의 그림 실력을 활용하여 자세한 달 그림을 남겼던 갈릴레오도 이후 서적에서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도형만 사용하였는데, 이유는 그가 메디치 궁정의 철학자가 된 뒤 예술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해석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학이 예술보다 더 신분이 높다"는건 갓 암흑시대를 벗어난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는 뜻이지요.
이 이야기를 갈릴레오가 관측한 달 그림이 로도비코 카르디 다 치콜리의 "성모 마리아" 그림에 활용되었다는 것과 엮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울퉁불퉁한 갈릴레오의 달 해석을 카톨릭 교회는 반대했지만, 달은 "타락의 결점"을 상징하므로 성모가 짓밟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해석되어 무사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정밀한 과학이 기존의 예술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예술이 받아들인 결과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술가들의 반격 역시 몇 가지 예로 설명됩니다. 백과전서의 권두화에 대한 항목, 예술가 블레이크가 "예술은 생명의 나무이고, 과학은 죽음의 나무이다"라고 과학을 비판했다는 항목 등으로요.
그런데 백과전서 권두화 이야기는 좀 과잉해석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 저자의 의도와 그림이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의도인지 아니면 그냥 그림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일환이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죠. 권두화를 창작한 화가가 이렇게까지 고민해서 만들었을 것 같지도 않고요.

그 외, 볼테르의 연인이었던 샤틀레 부인이 뛰어난 과학자였다, 라부아지에의 아내 역시 만만찮은 능력으로 라부아지에를 충실히 내조했다 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책의 특성상 도판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대체로 우수한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림에서 필요한 부분을 "확대" 해서 삽입하여 설명해주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큰 그림을 접이식으로 수록하는 것보다 훨씬 읽기 편했으니까요. "아테네 학당" 등 유명한 그림들이 사용된 것도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하지만 목차의 세 번째 부분인 "오래된 이야기와 현대 과학의 이미지"는 내용과 분위기 모두 다른 부분과는 분리되어 있는 듯 해서 아쉬웠습니다. 유명한 그림도 등장하지 않고, 과학사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좀 더 복잡한 이론에 치우친 느낌이 강했던 탓입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프리온 이야기는 완전히 생뚱맞은 내용이라 굉장히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상술한 단점들로 조금 감점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재미있는 과학 도서는 분명하기에, 읽기 편한 과학사 중심의 과학 도서를 찾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과학과 예술 두 분야가 영원히 양립할 수 없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현대의 미디어 아트 같은 것이 해답이 될 수 있을까요?

2013/01/15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이충렬 : 별점 3.5점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8점
이충렬 지음/김영사

구한말(1800년대 후반)부터 6.25 직후(1950년대)까지 시기에 그려진 한국 근현대 관련 그림을 소개하면서, 그림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식으로 구성된 근현대 미시사 서적.

개인적으로는 풍경화로 설명해 주는 당시 시대상이나 문물 이야기보다는, 인물화 이야기 쪽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자면,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민씨가의 규수" 그림을 통해 그림의 주인공 민용아가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까지 함께 공부한 옹주의 소꿉친구라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덕혜옹주의 학창 시절과 기구한 말년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식입니다.

모두 27개의 주제 중 특기할 만한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누가 마지막 황후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그림 : 엘리자베스 키스의 "궁중 예복을 입은 공주"

이 그림의 주인공은 유억겸(유길준의 아들)의 부인인 윤희섭일 것이라는 추정. 황후의 동생이기에 영문 제목에 Princess라고 명기하였을 것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윤희섭의 언니인 순정효황후와 그녀의 아버지인 조선 제일의 빚쟁이 '채무왕' 윤택영의 파란만장한 일생사, 순정효황후의 마지막 가는 길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에피소드들 하나하나가 무척 재미있고 새로웠습니다. 순정효황후가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해 인민군에게 둘러싸였지만 "내가 조선의 국모"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 등은 처음 알게 된 내용이었어요. (인민군 입장에서는 처단 대상 1순위이기에 신뢰성은 떨어지지만...)

"조선의 도공이여, 고려청자의 비색을 재현하라"

그림 : 폴 자쿨레의 "도공"

내용은 식민지 시기 일본에서 청자가 유행한 뒤, 조선시대 명맥이 끊겼던 고려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홀로 노력한 해강 유근형의 이야기입니다. 장인의 집념이 느껴지는 이야기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던걸 변동림과 천재 시인 이상의 뜨거운 사랑"

그림 :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구본웅이 그린 아주 유명한 이상의 초상화와 함께, 구본웅의 배다른 이모 변동림과 이상의 뜨거운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상 사후 변동림이 김환기와 다시 사랑에 빠져 개명까지 불사하며(김향안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결혼에 골인했다는 후일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변동림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지 처음 알았네요. 지금 드라마로 만들어도 그럴듯한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정말로 뜨거운 사랑 이야기 아닐까요?

"근대의 불치병 결핵과 크리스마스 실 운동"

그림 : 운보 김기창과 엘리자베스 키스의 크리스마스 실 도안들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과 함께 우리나라 결핵 박멸을 위한 셔우드 홀의 노력이 펼쳐집니다. 무엇보다도 1940년 도안이 일본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수정했다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6.25 동란의 참상과 시대상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인도교가 끊긴 뒤 피난을 가지 못한 시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역을 하였는데, 수복 이후 부역 정도에 따라 처단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일화(피난 가지 말라는 정부의 말을 듣지 않은 시민은 살아남고, 정부의 말을 들은 시민은 처단당한다?)라던가, 벽초 홍명희, 무희 최승희의 일생과 월북 이후 후일담을 관련된 그림과 함께 알려주는 부분 등이 좋았습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들에 대한 깨알 같은 소개도 마음에 들었고요.

각종 사료들(신문기사 등)도 디테일하게 실려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아주 높고, 도판의 질도 우수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참고로, 4점에서 0.5점 감점한 이유는 16,000원이라는 가격 탓입니다. 그림 때문에라도 풀컬러 인쇄가 필요했을 테고, 덕분에 가격이 비싸진 건 당연하지만, 너무 비싸긴 비싸네요. 요즈음은 정말 책 한 권 선뜻 사기도 겁나는 세상입니다. 아, 춥다...

2019/07/14

미술관에 간 화학자 1 - 전창림 : 별점 2점

미술관에 간 화학자 1 - 4점
전창림 지음/어바웃어북

화학 박사인 저자가 다양한 미술 작품에 사용된 화학에 대해 설명해주는 내용... 으로 알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초반부는 생각대로더군요. 특히 첫번째 장인 '마리아의 파란색 치마를 그린 물감'은 근거를 토대로 추리하는 맛까지 살아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리스도의 매장"은 미완성인데, 오른쪽 하단은 뭘 그리려고 했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내용이거든요.
저자는 성모 마리아를 그리려다 만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최후의 심판"에서처럼 성모 마리아의 치마는 울트라 마린으로 칠하려 했지만, 울트라 마린은 당시에 비싸고 귀한 재료라 칠하지 못했던 거라면서요. 그래서 더 싼 파란색 염료인 아주라이트로 막달라 마리아를 칠했는데, 아주라이트는 안정성이 떨어지는 탓에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어 칙칙해져 버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매장"의 사진을 통해 막달라 마리아 옷 색은 칙칙한 갈색이라는걸 보여주며 마무리합니다.

유화의 성분 (불포화지방산)을 알려주며 유화가 어떻게 단단한 도막을 형성하는지를 알려주는 '유화를 탄생시킨 불포화지방산'도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항상 수백년 된 유화가 어떻게 이렇게 잘 보존되는지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증이 풀렸거든요. 유화의 아마인유 (불포화지방산) 작용을 달걀노른자로 대신한 템페라, 석고 위에 수성 물감을 스미게 한 프레스코 모두 색감과 묘사에 있어 유화의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유화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설명도 좋았고요.

'화학에는 문외한이었던 천재 예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주인공입니다. 세계적인 천재로 알려진 그가 화학에는 문외한이었던 탓에, 납이나 구리를 함유한 흰색이나 녹색과 황을 함유한 버밀리온이나 울트라마린을 함께 사용해서 두 물질이 반응을 일으켜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 외에도 화학을 몰라 저지른 실수가 많던데 미켈란젤로가 일찍 유화를 시작하지 않은게 전 인류의 손실인 듯 해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물감의 변화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게 '화학 반응으로 바뀐 그림의 제목' 입니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원래 밤을 그린 어두운 그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후 그림 보존을 위해 바니시를 발랐을 때의 실수, 그리고 납을 포함한 안료를 사용한 탓으로 그림이 검게 변한 겁니다. 이 안료는 황과 만나면 흑변하는데, 19세기 산업 혁명으로 도시 공해가 심해졌을 때 대기 중의 황산화물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납이 들어간 색 중 연백 (lead white)를 즐겨 사용한 화가 휘슬러는 납 중독으로 죽었다니 무섭기도 합니다.
연금술에 관련된 그림을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연금술의 죽음'은 과연 화학자가 썼구나 싶었습니다. "인을 발견한 연금술사"라는 잘 알지도 못했던 그림까지 찾아내어 소개하는 등 열정도 대단하고요.

화학 외에 미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풀어낸 내용도 재미있는게 많았습니다.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 그림을 구석구석 상세하게 분석하여 어떤 사물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식의 설명이 특히 좋았어요. 이런 류의 설명은 '연금술의 죽음'에서 "프로크리스의 죽음", '밀랍과 수은'에서 "이카루스의 추락", 홀바인의 "대사들" 등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그림 설명도 설명인데 프랑스 혁명 당시 상황까지도 상세하게 알려주는 소개가 무척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인상파 작가들이 물감을 직접 섞으면 탁해지기 때문에 한정된 밝은 색 물감만 짧은 붓터치를 사용해서 사람의 눈에 섞여서 보이게끔 했다는게 아주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전혀 몰랐네요. 쇠라의 그림도 그렇다면 확실히 의미가 있겠지요. 실물을 꼭 한 번 보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화학, 과학보다는 점점 평범한 미술사 관련 책이 되어 버리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미술에 대한 설명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기대했던 내용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게다가 과학을 그림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억지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마티스의 그림과 색의 주기율 R.G.B를 연결시키는건 나쁘지는 않지만 딱 들어맞는다고 하기는 어려웠고, 마찬가지로 마티스의 그림이 색으로 입체를 표현했다는 설명도 그렇게 와 닿지 않습니다.
그 외에 인상파 관련된 글이 많은 점과 해부에 대한 그림, 과학 기기가 등장하는 그림에 챕터 하나를 할애하는 설명들도 앞 부분에 비하면 그닥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미술사 관련 서적으로 부족함은 없지만 기대한 내용은 아니라 감점합니다.화학 관련된 이야기가 더 많았어야 하니까요. 후속권이 있는 듯 한데 이대로라면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은 없습니다.

2023/07/21

우중괴담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점

우중괴담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미쓰다 신조가 직접 듣고 기록했다는 다섯 편의 괴담이 수록된 단편집. 다 그런건 아니지만, ' 이 이야기는 <<노조키메>> 1부의 바탕이 되었던 체험담을 이야기 해 주었던 작가가 해 주었던 이야기다'라는 식으로 설명되어 조금 더 현실감을 부여해 주는게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전해들은 괴담'인 탓에 이야기의 설명이 부족하고, 기승전결도 애매한게 많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완성된 단편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소설'로 완성하기는 시간이 걸리니, 괴담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간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드네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찾아온다는 것도 그간의 미쓰다 신조 과담들과 비슷해서 식상했고요. 무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런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은거의 집>>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시골의 외딴 집에 맡겨졌었다. 할머니 홀로 밭을 돌보며 생활하던 집은 주변에 기묘한 결계같은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주일을 머물며 일곱살이 되는걸 기다려야만 했다. 울타리 밖을 나가면 안되고, 본명이 아니라 '도리쓰바사'라 불리우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누군가와 절대 이야기를 나누어선 안되고, 휘파람을 불면 안되는 등의 몇가지 규칙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었던 '나'는 집을 찾아온 아이와 친해졌다. 아이의 필사적인 요청으로 '나'는 울타리를 넘어 아이를 따라갔다가 무언가에 잡힐 뻔했다. 할머니가 주었던 부적을 잃어버린 탓이 컸지만, 입고있던 기모노의 힘으로 겨우 탈출했다. 그러나 집 안에 '무언가'가 함께 따라 들어왔고, 결국 할머니마저 '무언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나'는 일곱살이 되는 날 아침을 맞아 아버지와 함께 돌아왔다....


전형적인 괴담입니다. 왜 일곱살이 될 때까지 이상한 규칙을 따르며 결계 안에 있어야 하는지, '무언가'의 정체는 무엇인지 , 할머니는 누구였고 어떻게 되었는지 등 핵심 설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고, 그냥 그런 체험을 했다는게 전부입니다.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었던 '나'가 미쓰다 신조에게, 자기 손자가 곧 일곱살이 되는데 밤마다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 - 즉 손자에게도 똑같은게 찾아올거라는 의미 - 로 마무리되는 일종의 에필로그도 설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리고 괴담치고 별로 무섭지도 않아요. '무언가'가 집 안에 들어와 와글와글하며 휘파람을 부는 장면, '나'를 밤새 지켜주던 할머니가 '무언가'에 사로잡힌 뒤 결계인 모기장 밖에서 나에게 얼굴을 쓱 들이미는 장면 등은 묘사에 심혈을 기울이기는 했는데 밋밋했습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휘파람을 분다던가, '무언가'의 실체를 좀 더 그려주었다면 더 나았을텐데 말이지요. 
설정도 어디선가 본 듯해서 신선하지도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예고화>>
미쓰다 신조는 아이들의 사망사고에 있어서, 아이들이 생전에 그린 그림들 중 사고사를 암시하는 그림 '예고화'에 관심을 가지던 중, 초등학교 교사 구보타 나오트의 체험담을 듣게 되었다.
구보타 나오토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는데, 다쓰토라는 학생이 그린 그림이 미래의 사고를 예지한다는걸 알아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다쓰토의 그림은 구보타 나오토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전 그림과는 다르게, 나오토의 시점으로 그려진 그림은 명백한 사고를 예고하고 있었다. 구보타 나오토는 그림 수업을 중지하는 식으로 저항했지만, 나오토가 개인적으로 그리는 그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오토는 살아남기 위해 온수풀 수업에서 다쓰토를 익사시킨 뒤 다른 학교로 옮겨갔다...

단순한 괴담은 아니고, 하나의 완성된 호러 단편입니다. 저주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기승전결도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 저주의 방법 - 다쓰토의 그림
  • 저주의 대상 - 다쓰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 : 통학로에서 사납게 짖는 개, 자기를 귀찮게 하는 반장, 어머니를 독차지하는 아픈 할머니, 그리고 구보타 나오토
  • 해결방법 - 그림을 고쳐서 대상자를 바꾼다
덕분에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 않고 대충 넘기는 괴담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야기를 들은 미쓰다 신조가 체험담 속 몇몇 단어와 변화 포인트를 짚어내어 다쓰토의 어머니와 구보타 나오토가 불륜관계라는걸 밝히는 부분은 추리 소설같은 느낌도 전해주고요.
'예고화'라는, 실재 존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초등학생이 그림으로 저주를 내린다는 발상, 그리고 피해자 시점으로 그려졌던 그림에 다쓰토를 그려넣어 저주의 대상을 바꾸었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쓰토가 죽은 뒤에도 나오토가 저주를 다시 겪었다는 일종의 에필로그는 불필요했습니다. 첫 번째 저주 - 물에 빠지는 것 - 는 다쓰토가 피해자가 되어 끝난 저주인데, 이게 다시 되풀이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설명이 부족했어요. 나오토는 저주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차라리 그림으로 싫은 사람을 없애게 되었다는 식으로 흘러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데스노트? 하지만 그림은 사람을 그려넣는게 제한적이니...) 이렇게되면 단편 분량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겠지만요.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였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모 시설의 야간 경비>>
센바는 신인상 수상 뒤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창작에 매진하기 위해 야간 경비원을 하게 된 센바는 종교시설 광배회의 야간 경비를 맡게 되었다. 기묘한 공원같은 '십계원' 순찰을 하다가 괴이한게 따라오는 체험을 한 뒤, 이에 대해 광배회 관계자와 이야기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십계원'에서 연달아 자살 사건이 일어나서 출입 금지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경비의 목적은 야간 경비들이 체험했던 괴현상을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센바에게 정식 임금 외 사례금까지 제안했고, 센바는 창작을 위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5일 째 순찰날, 센바는 '십계원'에 나타난게 경비원 연수 때 동기인 이사코라는걸 알게되는데...

미쓰다 신조가 작가 센바 아츠오에게 들은 전형적인 괴담으로, 센바 아츠오가 겪은 끔찍한 체험이 대부분입니다. 괴담답게 십계원 괴현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사코가 왜 십계원을 떠도는 괴이가 되었는지 등은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괴상한 오브제로 가득차있는 십계원의 묘사와 센바의 체험담도 박진감이 넘쳐서 읽는 재미는 있지만, 설명이 없으니 결국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무엇보다도 이전에 십계원 경비를 맡았던 경비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사코처럼 사라져버린 경비들이 있었다면 소문이 나지 않는게 불가능하니까요.
 
센바가 이사코를 처음 인지했던게 '보살계'였고, 뒷걸음질치다가 '불계'까지 들어왔다는게 뭔가 중요한 포인트처럼 묘사되는데 이것도 좀 이상했어요. 십계원의 끝이 '불계'라서, 괴이 이사코가 십계원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불계도 엄연히 십계원 내부이니, 여기서 쉽게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다른 '계'에 있어도 가능했겠지요. 물론 센바가 있었던 경비실이 불계 내부에 있어서, 괴이가 경비실을 들어오려고 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비실만 십계원 밖에 설치하면 경비원 보호 문제는 해결됩니다.
아울러 광배회가 사례금까지 지불하면서 야간 경비를 맡겼다면, 왜 2인 1조로 경비를 돌게 하지 않았을지?도 의문입니다. 괴현상 수집이 목적이었다면 괴현상을 수집하는 이유도 설명되었어야 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공간 덕분에 읽는 재미는 제법 괜찮았지만, 설명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부르러 오는 것>>
대학생 아이다 나나오는 매년 오봉 때 할머니가 홀로 다녀왔던, 나메라의 오이노쇼 씨 집에 향전 바치는 행사를 맡게 되었다. 할머니가 아팠던 탓이었다.
기차와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시골의 대저택에 찾아간 나나오는, 향전만 바치고 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약속을 어기고 창고를 찾아가 2층에 있는 사람을 불러달라는 한 노파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뒤, 오봉마다 나나오의 집에 '무언가'가 찾아와 나나오를 불렀고, 나나오가 없자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할머니, 어머니를 잃은 나나오는 결혼한 뒤 성이 바뀐 덕분에 더 이상 '무언가'의 부름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미쓰다 신조는 경찰 간부 출신으로 유령 따위는 없다는 철저한 현실주의자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 올렸다.
지역 유지 아마노가의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교사 부부가 이사를 간다며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부인만 홀로 집에 있을 때, 기분 나쁜 초인종 소리와 함께 누군가 찾아오는데 실제로는 아무도 벨을 누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척을 하자 부엌문을 노크하기 시작해서... 이사를 간다는 이야기였다.


본편인 아이다 나나오 이야기는 전형적인 괴담입니다. 나나오가 겪은 체험이 전부에요.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시골 마을에서 모시던 무언가에 씌워져서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식상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가 읽은 비슷한 이야기만해도 열 편은 넘을거에요.

그러나 아버지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답게 논리적인 추리를 내 놓거든요. 부인만 혼자 집에 있을 때 유령이 아니라 집주인 아마노 영감이 찾아왔다는 거지요. 그걸 피하려고 집에 없는 척을 하니 아예 문까지 두드리게 되었고요. 그래서 남편과 의논했지만, 집주인이고 지역 유지라 험담을 할 수도 없으니 이사를 하면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을 퍼트리려고 했다는 겁니다. 아주 그럴듯하지요? 
이런 식으로 '현실주의자 경찰이 괴담을 파헤친다!'는 이야기였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중괴담>>
미쓰다 신조는 예전에 알았던 장정가 마쓰오로부터 괴담을 들었다. 그는 장정을 맡은 교정지를 산책로에 있는 정자에서 읽곤 했는데, 그곳에서 비오는 날 한 노인으로부터 괴담을 듣게 되었다. 노인의 어렸을 때 이야기로, 당시 그는 사냥꾼 할아버지가 두고 간 도시락을 전해주러 사냥 오두막에 갔다가, 폭우가 쏟아질 때 오두막 밖에서 들여보내달라는 한 여인의 부탁을 받았었다. 여인이 들어오기 직전, 위기의 순간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구해주었지만, 그 뒤 할아버지는 사냥꾼 오두막에서 혀가 뽑힌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쓰오는 또다시 비오는 정자에서 이번에는 어린 여자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마쓰오에게 한 이야기는 아빠와의 그림자 놀이였다.
그 뒤는 아이 아빠가 학교 선생으로 학교 숙직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흰 형체를 쫓느라 시간가는줄 모르다가 숙직실에 돌아가니 아내가 와 있었고, 아내와 밤을 보내려고 했는데 숙직실로 집에 있던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고 그 뒤 아내가 임신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차례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마쓰오는, 다음날 가족과 관계된 누군가가 실제로 해를 입었다고 했다....

표제작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여러 명으로 부터 들은 괴담을 마쓰오가 겪은 체험과 합쳐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단순 괴담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담이 중심이라는건 다른 이야기들과 다를게 없지만, 다른 이야기들과는 조금 다르게 노인과 그 가족들이 마쓰오에게 이야기를 해 준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주기는 합니다. 마쓰오의 가족 구성이 노인의 가족 구성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인과 그 가족들이 마쓰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해 줄 때마다, 원래는 마쓰오 가족이 해를 당했어야 했지요. 그런데 마쓰오가 별거 중이라 홀로 나와 살고 있던 탓에 마쓰오 주변 사람들이 대신 해를 입게 된 겁니다.
마쓰오가 미쓰다 신조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고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준 이유도 그가 이미 괴이 쪽에 속해있었다고 설명해 줍니다. 마쓰오 사무실의 책들이 전부 낡은 것이었다는 단서로 이를 알아내는 미쓰다 신조의 추리도 돋보였고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해서 마쓰오 가족에게 해를 입히려고 한 이유는 설명이 없습니다. 누군가 마쓰오 가족에게 원한을 품고 저주를 내렸던 걸까요? 마쓰오가 미쓰다 신조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 줬어야 하는 이유도 없고요. 이 논리대로라면 미쓰다 신조 주변의 누군가도 해를 입었어야 했는데 (괴담을 들었으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마쓰오가 언제 괴이 쪽에 속하게 되었는지, 이후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이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단순 괴담보다는 낫지만, 뭔가 부족하고 애매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었습니다.

2016/04/07

세한도 - 박철상 : 별점 3점

세한도 - 6점 박철상 지음/문학동네

아마 대한민국 국민 중 "세한도"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한 그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림의 완성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이 책은 저 같은 무식자를 위한 책입니다. 왜 "세한도"가 대단한 그림인지를 설명해 주거든요.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한도"라는 작품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작품의 창작 배경을 이해시키기 위해 김정희의 일생과 그의 성취를 조명하는 부분으로요. 때문에 이 책은 예술, 문화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사 서적이기도 합니다.

그중 김정희의 일생은 정확하게 말하면 생애 전체는 아니고, 문과에 급제한 이후 중국 연행길에 올라 당대의 지식인들(특히 스승으로 모신 옹방강)과 교류하며 벼슬을 이어가다가 귀양을 가서 "세한도"를 그리게 될 때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의 분량이 약 100여 페이지인데, 그간 깊이 알지 못했던 만큼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귀양을 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유가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때문이었다는 점은 처음 알게 되었고, 또 윤상도의 상소로 촉발된 국문 과정이 소상하게 묘사된 부분은 마치 대하 사극을 보는 듯한 흥미를 준 덕분입니다.

이어지는 "세한도"라는 작품에 대한 해설 역시 마찬가지로 흥미로웠습니다. 처음 알게 된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지에 대한 이유 중 첫 번째는, 이 그림이 문인화의 정점으로, 이른바 ‘선비의 기상이 나타나는’ 그림이라는 겁니다. 묘사력보다는 품격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된 ‘구방고’ 고사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내면을 볼 수 있다면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고사인데, 이런 고사를 자연스럽게 인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쌓은 공부의 깊이가 엄청나며, 그 공부의 결실이 바로 "세한도"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추사의 편지들과 그가 소장했던 책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됩니다. 또한 "세한도"가 귀양 시절 자신을 위해 여러 책을 보내준 역관 이상적에게 감사의 뜻으로 그려진 작품이라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은 "세한도"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됩니다. 문인화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을 거듭한 거친 터치(적묵법, 초묵법)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특히 그림의 구도와 인장의 관계를 분석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그림에 쓰인 글, 그리고 인장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새로운 감상법은 기존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시각을 열어주었고요.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깊이 알지 못했던 주제를 상세하고도 깊이 있게 조명해 주는, 거의 리뷰에 가까운 연구서입니다.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도판이 생각만큼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인데, 책의 판형과 가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공부가 많이 되었고 느낀 점도 많았지만, "세한도"가 정말 그렇게까지 뛰어난 그림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글씨를 제외한 그림만 놓고 본다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아직도 어렵고, 선비의 기상이라는 것도 특별히 느껴지지는 않으니까요. 아울러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점이 작품의 완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내공의 깊이와 작품의 결과물이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2017/02/19

풍미 갤러리 - 문국진, 이주헌 : 별점 2점

풍미 갤러리 - 4점
문국진.이주헌 지음/이야기가있는집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처럼 그림에 그려진 음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림과 그려진 시대, 화가 등도 같이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집어든 책입니다.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소개하면서 당시 유럽에서 일반적인 젖소는 어떤 품종이었고, 그 젖소에서 따른 우유의 맛과 특징은 어떠했으며, 우유를 왜 따랐으며 어떻게 해서 먹었는지 등을 정리한 후 대표적인 요리와 먹은 사람, 관련된 문화나 역사, 혹은 풍습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음식과 식문화는 중요하게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음식은 음식물을 그린 정물화, 푸줏간이나 고기가 그려진 그림, 수확에 대한 그림, 부엌이 등장하는 그림 커피에 대한 그림, 빵이 그려진 그림 등으로 나누기 위한 카테고리 분류 기준에 불과해요.
물론 그림에 대한 미학적, 예술적인 분석 측면에서는 괜찮긴 합니다. 신선하게 느껴진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러나 미술평론가 이주헌씨 분량에 한합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법의학자 문국진씨 부분은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본인 주장이 많았던 탓입니다. 과일을 먹는 소년들을 그린 에스테반 무리요의 "과일 먹는 소년들"을 '식물의 카니발리즘으로 탄생되는 카니발 현장'이라고 주장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소박한 그림이 카니발리즘과 상관있다는 주장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어서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를 소개하며 식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전개로 이어지니 실로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몇몇 볼만한 부분은 있지만 제목과 제 기대에 어울리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이럴 바에야 문국진씨의 전문 분야를 살려 죽음에 대한 그림을 분석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눈 주변의 부종, 눈의 충혈, 술의 부작용으로 변형된 얼굴, 굳어진 표정'을 근거로 압생트를 과음한 것 같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훨씬 좋았거든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역시 소크라테스가 먹은 식사와 독에 관련해 상세하게 정리해서 전달해 주는 것이 괜찮았고요. 당시에는 독당근을 사용하여 사형을 집행했다, 독당근의 독성분은 코니인이다, 여름날 가뭄이 져 뜨거울 때에는 구름이 낀 날 보다 독성이 2배로 높아진다던가 하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2015/06/16

안자이 미즈마루 - 안자이 미즈마루 / 권남희 : 별점 4점

안자이 미즈마루 - 8점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씨네21북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한 책들로 잘 알려진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집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대표작은 물론, 그가 작업했던 만화와 캘리그래피(?), 그림책, 에세이까지 다양한 결과물들을 총 망라하여 소개해 줍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체를 좋아해서 구입하였는데, 기대에 충분히 값합니다. 특유의 자유분방하면서 대충 그린듯한 일러스트가 한가득 실려있기 때문이죠. 부제 그대로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인데 아.. 저는 이렇게 간단한 그림들이 너무 좋아요. 어떻게 보아도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라 그냥 조용히 보기만 해도 뿌둣해집니다. 단순히 년도별 대표작을 모아 놓은 것도 아니에요.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한 모든 작업들, 작가가 스스로 뽑은 베스트워크 30, 그가 그린 다양한 초상화들 등 주제별로 여러 작품들이 명확한 구분과 함께 정리되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인쇄의 질도 아주 훌륭한 편이고요. 책의 성격은 하나의 완성된 책보다는 도록에 가깝지만 그림만 보아도 좋다는 점에서는 아사오 하루밍의 "3시의 나"와 같은,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 외 짤막하게 실려있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글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없잖아 있습니다. 아니, 단점이라고 하기 보다는 안타까운 점들이죠. 첫번째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그가 작업했던 대표작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당연하겠지만 표지와 아주아주 약간의 내용만 소개될 뿐입니다. 그래서 내용도 궁금하고 꼭 읽어보고 싶은데 국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 이거 참 안타깝네요. 그리고 조금 조사해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안자이 미즈마루가 유명세를 얻게 된 작품이라고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중국행 슬로보트"의 일러스트가 국내판에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대체되어 있더라고요. 이렇게 국내 소개된 책이더라도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접하기는 또 어렵구나 싶은 것도 역시나 안타까운 일이죠. 덧붙이자면 그나마 소개된 책들도 디자인, 장정이 영 딴판이라 원본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것 같네요.

두번째는 한국어로 출판되면서 생긴 문제들입니다. 일본과의 제책방식의 차이 및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한 번역 내용이 그림 주변에 지저분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가독성 문제가 생긴 것, 그리고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같이 대충대충, 하지만 부드러운 손글씨를 활자로 내용을 읽어야 하는게 참으로 안타까왔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여러 에세이는 국내에 소개되기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안타까와요!

아울러 책의 비중이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컴비 작업에 많이 쏠려 있는 점, 별 관심없는 대담과 인터뷰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만스러웠습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글이 더 많았으면 하니까요. 물론 이 책이 안자이 미즈마루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추모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기에 주변인들의 회고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허나 안타까움과 불만은 사소할 뿐,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류의 성인을 위한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에요. 가격은 제법 되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한 만큼 저와 같은 취향의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은 바로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2007/12/26

고백 - 후쿠모토 노부유키 글 / 가와구치 카이지 그림 : 별점 3점

고백 Confession 1 - 6점
가와구치 가이지 그림, 후쿠모토 노부유키 글/삼양출판사(만화)

아사이는 대학 동창이자 같은 산악회 소속인 친구 이시쿠라와 함께 조난당했다. 죽올거라 생각한 이시쿠라는 자신을 버리고 가라며 아사이에게 과거 저질렀던 살인을 고백했다. 그러나 아사이가 곧바로 산장을 발견하여 둘은 무사해졌고, 이시쿠라는 과거 범죄를 들은 아사이에게 살의를 품었다. 아사이도 이시쿠라의 살의를 눈치챘지만,구조대가 도착할 다음날 아침까지는 충분히 피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시쿠라가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사이는 고산병에 걸려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데...

"카이지"로 유명한 후쿠모토의 글을 "침묵의 함대"의 가와구치 카이지가 그림으로 그린 단편 만화입니다. 국내판은 절판인데 북오프에서 원서를 싸게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폐쇄된 산장이라는, 오래되고 친숙한 무대에 등장인물이 단 두 명(!)이라는 심플한 설정 아래에서 서로의 살의와 추격이 처절하게 그려집니다.

후쿠모토씨 특유의 징글징글한 심리묘사는 물론, 자신이 처한 긴박한 위기를 순간순간 번득이는 두뇌로 해결해 나가는 재미는 잘 살아 있습니다. 합당한 동기에서 비롯된 두 남자의 사투도 설득력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해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요. 서스펜스 스릴러로는 1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백을 통해 촉발되는 살의라는 소재도 진부하지만 또다른 복선을 지니고 있다는게 괜찮아서 마음에 듭니다. 결말 부분의 반전도 명쾌했고요. 뻔한 결말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들어버린 녀석이 나빴어..."라는 처음의 독백이 결말에 반복되는 구성이 반전을 극대화하는게 좋았어요. 이런게 연출의 힘이겠지요.

하지만 기대했던 가와구치 카이지의 그림을 통한 재미의 상승효과는 생각보다 덜했습니다. 후쿠모토의 가장 큰 약점이 그림이니, 작화에 일가견이 있는 가와구치가 그림을 그리면 보다 놀라운 작품이 될거라 여겨 기획된 작품일텐데, 후쿠모토의 이야기 전개가 가와구치의 그림과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부조화가 심하고 그림과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었거든요. 나름 각색하여 자기 풍으로 전개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듯 싶은데 곧이곧대로 그린 탓으로 보입니다.  역시 자기 이야기는 자기가 그려야 제맛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림과 스토리의 부조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작품 자체만으로 놓고보면 역시 탁월한 구성력 때문에 빛이 나긴 합니다. 만화는 역시 그림보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0/10/24

명작순례 - 유홍준 : 별점 5점

명작순례 - 10점
유홍준 지음/눌와

우리 옛 그림, 글씨와 궁중미술 중 주목할만한 일품에 대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림이 책의 중심으로 총 32점이 조선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설명되며, 뒤이어 글씨 9점과 궁중미술 8점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그림에 대한 소개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 및 작가 관련 일화, 그림이 그려진 상황 및 시대 배경 등도 함께 평가하고 소개해주고 있지요.

제일 큰 장점은 시각적인 만족감, 그리고 읽기 쉽다는 점이었습니다. 시각적인 만족감은 도판이 화려하고 인쇄질이 좋은 덕입니다. 읽기 쉬운건 유홍준 교수의 쉽고 편안한 글 솜씨와 짤막한 분량 덕이고요. 이야기 한 편 당 4~5페이지 분량밖에 안 되거든요. 하루에 조금씩 읽다보니 금방 읽게 되더라고요. 시대별로 대표작가와 대표작들이 소개되는, 일종의 연대기 식 구성이라는 점도 좋았습니다. 조선 서화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었으니까요. 잘 몰랐던 대가와 작품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요. 수월헌 임희지가 그린 난초, 몽인 정학교가 그린 괴석 그림들은 지금 보아도 가히 일품이라 할 만 하더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오원 장승업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조선 문인화가 왜 좋은지 잘 모릅니다. 선비들이 그림을 그리는건, 글씨와 어우러질 때만 뭔가 있어보이지, 그림만 놓고 보았을 때 그 결과물이 대단한 감동을 주는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 속 오원 장승업 소개를 보니, 환재 박규수라는 분 생각이 저와 같더군요. 문인화가 극에 달한 탓에 아마추어리즘이 가득해져버렸다고요. 그래서 추사 이후 주눅들어있던 전문 화원들에게 '직업 화가라면 프로 의식을 찾으라!'고 호소했고,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나타난게 오원 장승업이라고 합니다. 요약하자면, 선비라는 한량들이 얼척없는 그림을 서로 돌려보며 뭔가 있어보이는 듯 자화자찬하던 상황에서, "진짜 프로는 이런거다!"라며 튀어나와 그들을 압살해버린 겁니다. 심지어 장승업은 일자무식이었다고 하는데에도 그림 하나로 당대를 평정했다니 그 실력은 두 말할 필요 없지요. 소개된 "수리"와 "고양이" 그림은 이를 잘 증명해주는 걸작이었습니다.
또 16세기 함경도 기생 홍랑이 임과 헤어지면서 쓴, 아주 오래전 교과서에서 보았던 "묏버들 가려 꺽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라는 시조를 직접 한글로 쓴 '절유시'는 글씨가 너무 예뻐서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이 시조가 아직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만약 수록되어 있다면, 홍랑이 직접 쓴 이 서예 작품도 함께 실어주면 참 좋을 듯 합니다. 학생들에게 우리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려줄 수 있을거에요.

물론 새로운 내용, 작품, 작가만 소개된건 아닙니다. 당연히 신사임당,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 등등 일찌기 잘 알고 있던 대가와 명작들도 함께 소개되고 있지요. 조선 서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가와 작품들이라 어쩔 수 없었을거에요.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좋은 책입니다. 편집과 디자인도 완벽한 수준이고요. 이런 책을 소장하지 않으면 무슨 책을 소장하겠습니까. 별점은 5점입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다보니, 제가 구입한 책은 2013년 초판 2쇄 버젼인데, 지금은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시리즈 두번째 권으로 표지까지 바뀌어서 재출간되었네요. 제가 예전에 구입했던 "국보순례"도 이 시리즈에 포함되어 재출간되었고요. 이럴거면 처음부터 시리즈로 출간하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가격을 올리려는 꼼수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2013/12/02

스틸 라이프 - 루이즈 페니 / 박웅희 : 별점 2점

스틸 라이프 - 4점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추리작가협회상, 캐나다추리작가협회상, 영미서점협회 딜리스상, 앤서니상, 배리상 5관왕에 빛나는 루이즈 페니의 데뷔작. 선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 스리 파인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이 곪아있다. 추수감사절 이른 아침 안개가 걷히고 스리 파인스의 집집마다 새로운 하루가 찾아든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천국이나 다름없는 캐나다 퀘벡주 시골 마을의 단풍나무 숲에서 노부인의 시체가 발견되자 마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것은 분명 사슴 사냥철 사냥꾼의 오발에 의한 사고였음이 틀림없다. 누가 온화하고 선량한 아마추어 화가의 죽음을 원하겠는가? 하지만 눈부신 경력의 퀘벡 경찰청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하얀 말뚝 울타리 너머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채는데…

자신의 그림 전시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숲 속에서 죽음을 맞은 제인 닐은 과연 사고사인가? 고의적인 살인인가? 제인의 그림 속에 숨겨진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도대체 무얼 말하려고 했던 것인가? 영어권과 불어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국적인 문화 배경을 토대로 목가적인 풍경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인터넷 서점 책 소개 인용>

퀘벡 경찰청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분량이 무려 450페이지나 됩니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후덜덜한 볼륨을 자랑하지요. 

스리 파인스 마을을 무대로 한 살인 사건을 그리는데, 최근의 현대적인 작품들에서는 보기 드문 크리스티 여사류의 전형적 후더닛 계열 미스터리물입니다. 폐쇄된 작은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딱 한 건의 사건, 그리고 범인은 누구이냐가 핵심입니다. 그러나 잘 짜여진 후더닛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책 해설에서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과 비교했는데 엄청난 무리수에요. 비교가 안되니까요.

가장 큰 이유는 추리적인 가치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마슈 경감은 명문장과 시를 외우고 다니는, 약간은 P.D 제임스의 달그리쉬 경부를 연상케 하는 지적이고 섬세한 인물인데 작품 내내 폼만 잡을 뿐 실상 추리를 하거나 탐정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습니다. 사건이 해결되는 결정적 계기도 클라라가 제인이 그린 그림의 이상을 발견한 덕분이고요. 이래서야 "명탐정 코난"의 멍청한 지방 현경(이름이 뭐더라?)과 별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범행 동기가 무의미하다는 것도 추리물로는 있을 수 없는 단점입니다. 이미 중반에 벤의 어머니 살해 사실을 증명하는건 불가능하다고 언급됩니다. 그런데 단지 그림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여 일을 키운다? 말도 안됩니다. 사실이 폭로되었다 해도 벤이 잃을 건 아무것도 없었을테니까요. 제인과 벤 사이의 인간관계가 약간 금이 갈 뿐이었겠지요. 증거가 없으니 무고죄로 물고 늘어지는 것도 가능했을 테고요. 이렇게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정통 후더닛 계열 작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동기로서는 반칙에 불과해요.

그림을 덧칠해서 수정한다는 것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쉬운 작업도 아니었을 텐데, 차라리 그냥 지우는게 당연했습니다. 또 그림을 이미 다섯 명이나 보았는데, 본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긴 이유도 모르겠고요. 최소한 피터와 클라라 부부가 지인들을 찾아봤다고 여기는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결국 진상을 눈치챈 클라라를 지하실에서 살해한 뒤, 피터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마지막 결말도 당황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마을에 상주한 경찰을 허수아비로 봐도 유분수지, 이미 경찰이 피터를 찾아가 클라라의 행방을 물은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저 같으면, 찾아온 클라라에게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 마을 잔치에 참석한 것으로 그려진 자신이 너무 싫어서 그림을 지웠다 정도로 우기고 끝냈을 겁니다. 제인을 살해한 것은 정황 증거밖에 없으니 빠져나가기도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또 왜 화살을 사용했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총을 사용했더라면 사냥꾼의 오발로 충분히 몰고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피터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목적이었더라 하더라도 적절치 못한 선택이었어요.

이외에도 어설픈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볼륨에 비하면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요. 피터와 클라라 부부, 벤, 욜랑드 가족, 크로프트 가족, 루스, 머나에 올리비에 - 가브리 커플이 다거든요. 물론 폐쇄된 공동체에 등장인물이 적다는건 전형적일 수 있습니다. 허나 등장인물들을 적절히 배분하여 누가 범인인지를 모르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텐데, 작가는 클라라 중심의 심리묘사에 더해 크로프트 가족을 중반에 용의자에서 리타이어시켜 버림으로써 용의자를 스스로 대폭 줄여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심리도 이해 불가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말도 안 되는 장식으로 벽을 뒤덮은 욜랑드의 행동이죠. 그 시점에서 어차피 자기 집인데 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이베트 니콜이라는 제가 여태까지 본 추리소설 등장인물 중 최고 수준의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것은 용서가 안되네요. 무능하고 사회성도 없는 캐릭터 자체가 짜증날 뿐 아니라 존재 의미 역시 전무합니다. 그녀의 등장을 전부 잘라내어도 전개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어요. 거진 100여 페이지를 재미도 없고 쓸데도 없는 멘토링에 낭비한 거나 다름없죠. 솔직히 이베트 니콜이 없는 버전으로 책이 한 권 더 나오는 게 판매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베트의 존재는 작가가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을 인상적으로 읽은 탓이 아닌가 의심스럽네요. 생각만 많은 고위 경찰에 사고뭉치 애송이 여자부하가 딸렸다는 설정은 판박이니까요.

물론 한 할머니가 혼자서만 간직하다가 발표하게 된 그림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발상만큼은 괜찮습니다. 무려 60년 동안 사람을 들이지 않은 거실은 할머니가 손수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림은 60년간을 기록한 하나의 역사였다는 설정도 찬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크로프트의 알 수 없는 행동을 여운을 남기면서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그리고 현대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고전적 후더닛 소설의 기본적 얼개를 갖추었다는 것도 분명 장점이기는 합니다. 초중반에 뿌려지는 떡밥도 공정하게 회수하고 있으며, 퀘벡의 불어권 - 영어권 주민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도 볼거리이고요.

그러나 장점보다 단점이 명확하고 방대하여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데뷔작임을 감안하더라도 부족함이 더 많았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대로 이베트 니콜 등장 부분을 싹 날려버리고, 가마슈 경감은 그냥 수사하러 나온 담당자로 역할을 최소화한 뒤 클라라를 탐정역으로 전개하여 250페이지 정도로 완결하였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거예요.

후속작이 어떨지 약간 궁금하긴 한데 이베트 니콜이 계속 등장한다면 읽게 될 것 같지 않군요.

2006/01/16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 우치다 야스오 원작 :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


프리랜서 라이터 아사미 미츠히코를 탐정으로 내세운, "여정 미스터리"라는 분야에서 유명한 우치다 야스오의 여러 작품들을 만화화하여 출판한 기획물. 현재 1권에서 11권까지 나와 있으며, 아사미 미츠히코 만이 아닌 다른 명탐정들, 이른바 우치다 야스오의 3대 명탐정이라는 시나노의 콜롬보 다케무라 이와오, 경시청의 오카베 경부 등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만화 시리즈화해서 출간하는 기획의 시도는 높이 살 만 하고,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탓에 만화로라도 번역된 것 역시 고마와 해야 할 일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작품의 수준만 본다면 오히려 돈이 아까운 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계속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것 참 고민되네요.

이유로는, 일단 권마다 다른 작가들을 쓰고 있는데 기획한 곳이 순정만화 전문지인지 대체로 작화가 순정체입니다. 순정체라는게 문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수준 자체가 낮은 작품이 많아요. 솔직히 작품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요.
또 우치다 야스오 소설은 한권밖에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추리" 보다는 이색적인 풍광에 왠지 더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만화 시리즈도 역시나 추리적인 요소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권 분량으로 페이지수가 제한된 탓에 축약이 너무 심한 것도 문제에요.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작품이 있을 정도니까요.

결론적으로, 만화화 자체에는 실패한 듯한 느낌입니다. 내용도 좀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 많아 21세기에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구식이 아닌가 싶은 작품이 많은 것도 감점 요인이고요.
만화 쪽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탄탄한 작가 혼자서 전체를 맡아 작업했더라면 더욱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쉽네요. 원작 작품 선정에서부터 만화적인 구성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을 볼 때, 좋은 기획을 살릴 수 있는 좋은 편집자를 구하지 못한 티도 많이 나서 더더욱 아쉽습니다.

저같은 매니아라면 구입하셔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3만원이 넘는 재앙이 되리라 생각되니 빌려서 보시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그나마 볼만한 책은 4권 "밀실 살인 사건",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9권 "시인의 망령", 10권 "여섯개의 숫자" 정도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정도?
권별 상세 리뷰는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1권 바람의 레퀴엠 - 책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관계로... 추후 추가하겠습니다.

2권 북쪽에서 온 남자 : 그림 히다카 료
가수 지망생 쇼코의 신변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 두 사건을 연결하는 "북쪽에서 온 남자" 란 과연 누구인가?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를 부대로 무녀의 예언을 등장시켜 이색적인 분위기를 전해주는 작품.. 이지만 결정적인 추리 부분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왜 두명을 죽였는지에 대한 당위성 자체가 없고 예언과 우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있으며 만화로 구성된 전개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별볼일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3권 장미의 살인 : 그림 토바 쇼코
여고생 유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먼 친척 동생 오가타 사토시가 의심받게 되자 아사미 미츠히코가 직접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여정보다는 "다카라즈카"라는 극단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등 예능계를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느낌과 재미를 전해 주더군요. 추리 부분에서도 맥락이나 단서를 하나씩 쫓아나가는 전개도 좋았고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결말이 너무 시시해서 결과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4권 밀실 살인 사건 : 그림 에구치 유
우에노 역사 재개발을 둘러싸고 상인회의 갈등이 팽배해 있던 중 개발 회사의 중역인 와다 후미오의 살인 용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테라야마 코지 마저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 전 테라야마의 사건 의뢰 편지를 받은 아사미 미츠히코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다.
우에노 역이라는 꽤 친숙한 소재를 등장시킨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그다지 기발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추리와 동기, 전개가 납득할 만 하고 결말까지 확실한 작품이었습니다.

5권 백화점 연쇄 살인 사건 : 그림 시토 료코
하카타의 백화점 경쟁 관계를 둘러 싼 기업간의 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우연히 사적 발굴현장에 참석한 아사미 미츠히코는 백골이 된 사체를 발견하고 사체의 정체가 밝혀진 후 자신의 옛 연인과 친구가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알게된 형이 직접 아사미 미츠히코에게 사건을 의뢰하는데...
일단 그림, 만화적인 수준에서 제일 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컷의 배열이나 전개가 도대체 알아먹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라 화가 날 정도더군요. 추리와 단서 등도 맥락에 맞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일단 내용 이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6권 나비부인의 눈물 : 그림 타마이 마키코
나가사키에서 악덕 카스테라 업자 야마오카 쇼지가 살해되고 전통 카스테라 업자 마츠나미가 용의자로 몰린다. 마츠나미의 딸인 하루카는 추리작가 우치다의 소개로 아사미 미츠히코를 알게 되고 그를 초청하게 된다. 이후 저명 유명인사가 2명이나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으로 발전하는데...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로 우치다 선생이라는 추리작가가 등장하는 것이 재미나네요. 그림도 꽤 마음에 들고 만화적으로는 나무랄데 없는 구성이라 읽기에는 편했습니다. 단지 "공원 나비부인 동상에 걸어놓은 펜던트"같이 정통파 미스테리 비스무리하게 거창하게 벌려놓은, 그것도 여러명이 죽어나가는 사건의 무게에 비해서 추리의 전개가 얄팍해서 아쉬울 뿐입니다.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 그림 츠키시마 츠구미
시오리는 살해당한 아버지가 최후로 남긴 단서인 "트럼프의 책"이라는 단어를 두고 고민하던 중 탐정이라는 아사미 미츠히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가 사건 해결을 위해 도와주면서 동분 서주 하던 중 아버지의 부하직원도 살해당하는 등 사건은 계속 커져만 가는데...
쿠슈 야나가와를 주로 하여 펼쳐지는 진정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쿠슈 야나가와"라는 지역 자체가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조로 진정한 여정 미스테리라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은 여정이라는 것이 사실 이색적 풍광을 보여주는 것 이외의 추리적 의미는 거의 없었거든요. 다이잉 메시지 해독 트릭이 주 트릭인데 괜찮은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높이 살 만 합니다. 만화로서도 그림은 그다지 잘 그린 건 아니지만 만화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8권 침묵의 돌 : 그림 히다카 료
신주쿠와 쿠라시키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을 연결하는 단서는 무엇인가? 명수사관 오카베 경위의 추리로 사건의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데...
경시청의 천재 오카베 경위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히카리라는 여대생이라 전개 방식이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주더군요. 두개의 살인사건이 벌어진 당위성 자체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주인공 히카리의 전문 지식을 이용한 결정적 단서 제공 같은 재미가 살아 있어서 결정적인 추리와 동기 부분에 비록 문제는 약간 있지만 저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뒤에 실린 단편 "잠자는 불꽃"도 치정극으로 보이는 전개속에 은근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 좋았고요.

9권 시인의 망령 : 그림 사토미 유
사쿠타로라는 작가의 시와 똑같이 구현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오카베 경위가 사건을 맡은 후 스가이 쿠니오라는 은퇴한 전직 형사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용의자에게 접근하던 중 스가이마저 살해당하게 되는데...
역시 오카베 경위 시리즈로 "시를 따라한 연쇄 살인"이라는 착상이 일단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도 괜찮은 편이었고 스토리 전개를 만화적으로 잘 구현해 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ABC 살인사건" 과 유사한 전개로 참신함보다는 의외성에 기대는 느낌이 강했으며 동기와 과정 역시지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한마디로 어렵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는,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뒤에 단편 "거울 속의 여인" 이 실려있는데 이 단편도 추천작입니다.

10권 여섯개의 숫자 : 그림 츠키시마 츠쿠미
동경 타마호반에서 의문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그가 남긴 것은 6개의 숫자가 적힌 종이 쪽지 뿐. 오카베 경위는 피해자의 딸 치아키에게서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한 "침없는 벌"이라는 의문의 단서를 접한다. 한편 치아키와 은퇴를 앞둔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의 컴비가 오카베 경위의 적극적 지원으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간다...
오카베 경위 시리즈이긴 한데 실제 탐정역은 치아키라는 소녀라 이색적이더군요. 치아키와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이라는 컴비가 꽤 재미난 설정이라 좋았습니다. 여섯개의 숫자와 "침없는 벌"이라는 단서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의 묘사 역시 합리적인, 이치에 맞는 깔끔한 전개를 보여주고요. 책 뒤의 해설을 보니 영상화도 두번이나 된 인기 작품으로 여기서 결성된 (?) 이 컴비 주연의 단편 시리즈도 있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도 기대되더군요. 어쨌거나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1권 여신의 저주 : 그림 나가오 후미코
귀신 모미지 전설의 마을 토가쿠시에서 전설을 모방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수사를 지휘하는 다케무라 경위는 사건의 그림자에 숨겨진 비참한 사연을 밝혀내게 된다.
나가노현 경찰 본부 수사1과 경위 다케무라 이와오 (시나노의 콜롬보)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내용만 놓고 본다면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와 비슷한 전통 무속과 살인 사건의 조합이라는 전개라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21세기에 읽기에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전통 신앙에 많은 것을 기대는 설정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용 역시 그냥 뻔한 복수극일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탐정을 만나는 재미 이외에 특기할 만한 점은 없는 작품이네요.

2024/04/19

미술관에 간 과학자 - 미우라 가요 / 지종익 : 별점 3점

미술관에 간 과학자 - 6점
미우라 가요 지음, 지종익 옮김/아트북스

과학자가 쓴 미술 작품 해설(?) 책은 전에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 역시 유명 작품을 저자의 전문 분야로 분석하는 책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는건 맞습니다. 다만 그게 화학이나 물리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더라고요.

심리학으로 그림을 분석한 책은 처음 보았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사진 등을 통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장면의 묘사가, 실제 눈을 통해 지각할 수는 없다는건 놀라왔어요. '초점'이 빛나간걸 확인할 수 없다는 것처럼요. 상식적으로 바라보는 사물에 초점이 맞을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인데, 여태까지 생각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시간과 날짜 등에 따라 다른 색의 변화를 그려낸 아래의 모네의 루앙 성당 연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이걸 눈으로 확인하는건 무척 어렵다는군요. 인간의 눈은 조명이나 그림자를 배제하고 원래의 색으로 보게끔 만들어져 있는 탓입니다. 즉, 모네는 '뇌'로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입니다! 여태까지 빛의 변화를 인상파 작가들처럼 느끼지 못했던 저의 둔감한 센스를 탓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당연한거라니, 위안이 됩니다.
잭슨 폴록의 그림이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연구도 신기했습니다. 프랙탈 차원 값은 1에서 2까지로 2로 갈 수록 복잡해지는데, 폴록의 초기작은 인간이 가장 기분 좋음을 느끼는 1.45 정도였다가 말년으로 갈 수록 수치가 상승해서 1950년 작품은 최대치라 할 수 있는 1.9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냥 물감을 뿌린게 아니라 굉장히 고민하고 연구하여 그렸다는건데 어떻게 연구해야 저런걸 물감을 뿌려 완성할 수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니네요. 이를 통해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예술이 아닌 이유도 알 수 있었고요. 연구와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그림에서 안정, 불안감을 느끼는 요인 - 광원이 왼쪽에 있는게 안정적임 - 이라던가 그림속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 방향 - 왼쪽에서 오른쪽 -,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방향에 따른 감상자의 생각들, 광택이 나는 장식품을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에 따른 '투명시' 설명 등 그림의 여러 요소들을 이용한 연구들이 가득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예시 작품들이 흔히 보지 못했던 독특한 것들이 많아 좋았습니다. 인간의 시각은 복수의 정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콜라주해서 얻었다는걸 호크니의 사진 콜라주를 통해 알려주는게 대표적이에요. 호크니는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 콜라주 작품도 발표했는지 몰랐네요.

다만 도판이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어렵고, 어떤 내용은 정보와 내용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설명도 제법 되고요. '인간의 눈에는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에 반응하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있다. 이중 빨간색을 지각하는 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전형적인 빨강에 해당하는 파장 760나노미터가량의 빛에 대한 시세포의 반응은 거의 0에 가깝다. 빨강은 눈길을 사로잡는 색이지만 눈의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색이라는 것이다. 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의 절정은 656나노미터 정도로, 우리에게는 황색으로 보인다. 즉,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의 세 시세포는 청, 녹, 적이라는 빛의 삼원색에 반응하는 수용기가 아니다. 어떤 색으로 보일지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반응하는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그 결과, 보일 리 없는 빨간색이 어떤 색보다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는 글처럼요. 빨간색이 왜 선명하게 보인다는건지, 저는 이 글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글 자체가 친절하게, 쉽게 쓰여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목차 구성도 불만스럽습니다. 앞서 광원 등의 위치로 심리적 안정감과 시간의 흐름이 정해진다는 설명은, 글을 반대로 읽는 일본이나 아랍권에서의 예를 비교해주면서 설명해 주는게 당연히 좋았을거에요. 하지만 일본의 예는 한참 뒤에 따로 소개되어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워낙 좋은 내용이 많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서구권, 그리고 일부 일본 작품만 연구에 활용되었는데, 우리 작품도 이런 시각으로 연구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5/10/25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정창 : 별점 2.5점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 4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열린책들

미술품 복원 전문가 훌리아는 곧 경매에 걸릴 플랑드르 시절 거장 반 호이스의 작품 "체스 게임" 복원 중,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그림 밑에 숨겨진 수수께끼의 메시지 "누가 기사를 죽였는가?"를 발견했다. 메시지가 그림의 모델인 오스텐부르크 대공과 로제 드 아라, 그리고 부르고뉴의 베아트리체의 관계와 관련된 내용임을 짐작한 훌리아는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훌리아는 후원자이자 아버지와 같은 골동품상 세사르의 도움을 받아, 체스 플레이어 무뇨스에게 그림 안에서 기사 (나이트)를 잡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 줄 것을 부탁했다. 체스 게임과 메시지의 연관성을 풀어내기 위해서였다.
기사를 잡은 말은 흑의 여왕이라는걸 알아는 뒤, 의문의 인물이 그림 속에서 중단된 체스게임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연쇄 살인과 그림의 도난 사건이 일어났고, 훌리아와 무뇨스는 범인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데....

레베르테의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추리 소설을 한 권 읽었네요.

이 작가 작품은 이전에 "뒤마클럽"을 읽어 보았지만, "뒤마클럽"은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었습니다. 실망이 더 컸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훨씬 낫더군요. 제법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현학적인 지식을 과시하는 특유의 문체는 여전하지만, 이야기의 맥락도 그런대로 명확한 편이고요. 체스를 통한 연쇄살인이란 아이디어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이야기에 나오는 체스의 행마를 따라가는 재미가 굉장합니다! 
참고로 체스를 소재로 삼은 작품은 캐더린 네빌의 "에이트 (8)"라는 작품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체스의 말을 움직이는 "행마"를 주요 소재로 삼아서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 추리"라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중반 정도에 흑녀가 기사를 잡은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역사속의 인물들과 사건은 별로 중요하게 되지 않거든요. 이후 발생하는 현실의 사건들과 과거의 사건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점도 역사 추리물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고요. 전체적으로 본다면 전반부는 역사 추리, 후반부는 평범한 추리 스릴러물로 양분되는데, 두 사건을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강합니다.
아울러 추리적으로도 단점이 큽니다. 살인의 동기가 비약이 심하다는 점, 그리고 전개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동기가 불분명해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건 작가 입장에서는 범인의 의외성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자에 대한 반칙이라 생각되네요.
즉, 추리소설이라고만 본다면 부족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도 작가 특유의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내용 전개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힘이 느껴집니다. 정말 이 사람은 "프로"작가다! 라는 것이 팍팍 와 닿는달까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덕분에,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흥미를 놓치지 않으며, 마지막 범인의 자백에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이끌어내는 부분도 괜찮았습니다. "강추"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읽어볼만 한 책이에요. "체스"라는 소재를 잘 알고 있다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좀 조사해 봤는데 피터 반 호이스라는 작가는 역시 가공의 인물인 것 같군요.

2017/08/20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 시노다 나오키 / 박정임 : 별점 2.5점

제목 그대로, 평범한 직장인 시노다 과장이 무려 23년간, 1990년 ~ 2013년까지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록한 일종의 그림 일기를 바탕으로 만든 책입니다. 알라딘의 신간 소개글을 인상적으로 읽고 기억에 담아 두었다가 구입하였습니다. 참고로, NHK의 "사라메시(샐러리맨 식사)"라는 프로그램에 투고하여 방송된 후, 우연찮게 출판사의 눈에 띄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내용은 정말 별게 없어요. 뭘 먹었는지에 대한 기록(가격을 포함해서)과 약간의 단상, 그림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라고는 전무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상의 기록을 위해 적은 것이니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림이 생각 이상으로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부터 아예 재능이 없던 사람이 아닌데, 이십여년간 꾸준히 그려오다 보니 정말로 그림이 좋아지더라고요.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10년 (1만시간)을 투자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을 증명한달까요? 물론 1만 시간의 법칙은 최근 그 실체가 부정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오랫동안 한우물을 파서 노력한 결과라는걸 직접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그림이라면, 컬러링을 조금만 보완한다면 음식을 소재로 한 책 삽화는 충분히 그릴 수 있을 듯 합니다.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실제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뷰도 한 모양인데, 시노다 과장이 정말 제대로 힘을 줘서 그린 그림이 보고 싶네요. 

그리고 직장인이고, 가정이 있고, 그날 그날 먹을 것에 대한 선택이 나름 원칙이 있다는 점(이번 달은 돈까스 덮밥이다! 라고 정하면 정말 돈까스 덮밥만 찾아다니면서 먹습니다!) 에서는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식사 방식"도 떠오르고, 가끔 엿보이는 소박한 일상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나고야 주민으로, 나고야 중심의 음식과 다양한 문화를 언급하는 것도 독특했고요. 주니치 드래곤즈의 팬으로 경기 관람 후 먹은 음식, 또 우승 축하를 기념하는 음식을 먹는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식탐 여행"에서도 언급되었던 명물 '안카케 스파게티'가 언급되는 것 역시 반가왔습니다. "배빵빵 일본 식탐 여행"에서와는 다르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게 기억에 남습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맛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23년간 외식을 경험한 인물답게 저자가 좋아하는 단골집 소개는 물론, 기차 여행에서의 에키벤 소개와 같은 노하우도 몇 가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신 오사카역의 팔각 도시락을 최고의 도시락으로 치는데, 오사카에 가면 한번 먹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손으로 쓴 느낌" 그대로 번역 출간한 국내 출판사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드라마가 없다는 점은 단점이지만 그래도 볼만한 점은 많습니다. 무언가 하나의 행동을 20년 이상 꾸준히 이어간 열정, 노력은 별점 따위로 평가할 수 없을 터이고요. 평범한 사람의 식도락을 멋드러진 그림으로 감상한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구루메 만화와 별 다를게 없지 않은 만큼, 이런 류의 만화, 서적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기분좋게 읽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이 블로그를 운영한지가 14년 째인데, 앞으로 6년 더 해서 20년이 지나면 책을 한 권 낼 수 있을까요? 누굴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글들은 아니지만...

2017/07/22

우리 가구 손수 짜기 (보급판) - 조화신 목수, 심조원 / 김시영 : 별점 3점

우리 가구 손수 짜기 (보급판) - 6점
조화신 목수, 심조원 지음, 김시영 그림/현암사

제목 그대로 우리 가구를 만드는 방법을 순서대로 그림과 함께 소개해 주는 책입니다. 나무 베기 등 재료에서부터 시작해서,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다양한 전문 용어들, 그리고 온갖 도구들과 도구들을 사용하는 방법, 가구를 조립하는 기법, 대표적인 가구 종류에 이어 판재의 종류 소개로 마무리합니다.

200페이지 초반에 불과한 얇은 분량이지만 대략의 개요를 파악하기에는 큰 무리는 없습니다. 재미도 있고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동안 톱질의 자르기와 켜기의 차이를 잘 몰랐는데 그런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잘 설명해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자르는 것은 나뭇결과 직각, 켜는 것은 나뭇결을 따라 세로로 쪼개는 것이라는데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각종 재료에 대해 소개하면서 감나무 속에 검은 무늬가 있으면 먹감 나무라 하여 귀하게 여기고, 열대 지방 나무는 나이테가 없다는(계절이 바뀌지 않으면 생기지 않음) 등의 새롭게 알게 된 정보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림이 정말 대박이에요. 얇은 분량임에도 내용 이해가 쉬운 것은 거의 모든 설명을 그림으로 하는 덕인데, 제가 여태까지 본 이런 부류의 국내 도서 중 일러스트의 질과 양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정성스러운 뎃셍과 터치에 수채 물감으로 채색한 느낌의 꼼꼼한 세밀화가 굉장히 미려하여 소장 가치를 높입니다.

물론 이 책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굉장히 간략한 내용에 불과해서 이 책만으로 우리 가구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정말 불필요한 책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즐거웠기에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정도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지 않을까 싶네요. 그림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2021/08/21

그리고, 또 그리고 1~5 - 히가시무라 아키코 / 정은서 : 별점 4점

그리고, 또 그리고 1 - 10점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애니북스

일본의 순정만화가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자전 만화입니다.

저는 만화가가 그린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의 길"이라던가 거장의 단편 "종이 요새"과 같은 고전은 물론, "아오이 호노오", "만화가 상경기",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 교실" 등 대부분의 작품은 제게 실망을 준 적이 없으니까요. 전기 만화인 "블랙잭 창작 비화", 아니면 만화가가 주인공인 "호에로 펜", "바쿠만"이나 "만화가의 사랑"같은 픽션들도 본전치기 이상은 충분했고요. 

이 작품도 제 지론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입니다.

고등학교에서 미대를 진학하여 졸업하고, 순정만화가로 데뷰하기까지의 삶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화실 선생님인 은사 히다카 켄조 선생과의 이야기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그리는데, 크게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대를 목표로 했던 미야자키 소녀 아키코의 입시 분투기, 대학에서 방탕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만화가를 꿈꾸던 시기의 이야기, 만화가로 데뷰한 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죽을 때 까지의 이야기로요. 히가시무라 아키코라는 작가가 미대에 진학하여, 만화가를 꿈꾸다가 데뷰하여 만화가가 되는 과정에 중요했던 인생의 변곡점만을 콕 찍어 그려낸 거지요.

이 중 초반부를 담당하는 입시 분투기와 헐레벌레한 대학 생활 이야기는 굉장히 웃겼습니다. 수험 공부가 아니라 문제 푸는 비결을 터득하여 고득점을 기록했다던가, 단지 게가 먹고 싶어서 가나자와 미대에 지원했다던가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이 많은 덕분이에요. 입시 대응 전략은 "수험의 제왕"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미대를 다녔기에 더 와 닿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풀자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빠져있었던 고등학교 당시의 저는 갑자기 미대 진학을 결심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 겨울 방학에요. 그런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렸던 충동적인 결정이었지요. 그래서 1년도 안 되는 짧은 미대 입시 준비 기간을 가졌었지만, 정말 운 좋게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지요. 평생 운을 거진 다 끌어 쓴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대학 입학 후에는 그 꿈을 바로 접었습니다 너무 힘들다는 걸 금방 알아버렀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내내 놀았던 기억 밖에는 없네요. 충동적인 대학 선택과 유흥과 음주밖에 기억에 남지 않은 대학 생활 모두가 이 책에 나오는 히가시무라 아키코와 똑같습니다... 미대에 대해 작가가 말한 아래의 비판은 정확합니다! 미대생 학부형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대학 졸업 이후 나름의 좌절을 겪다가 만화가가 되는 과정은 담담하게, 진지한 톤으로 전개됩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당시 자기는 핑계만 대며 도망치기만 했다는 아키코의 후회섞인 고백이 특히 그러했어요. 저도 많이 반성하게 만드네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고 대했던 그림 바보 켄조 선생과, 현실과 타협한 속물인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갈등도 재미 요소였고요. 

사실 미대 진학에 성공한 뒤에도, 켄조 선생이 아키코에게 집착하여 그림을 강요한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키코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건 은사 켄조 선생님 덕분인건 분명해요. 수백장, 수천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림과 만화와 삶에 대한 고민을 어린 나이에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았던 그림 바보인데, 그 순수함과 열정은 정말 놀랍고, 이런 분을 어린 시절에 만나 좋은 쪽으로 영향을 받은 아키코가 너무나 부럽기만 합니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별세하면섣, 끝까지 '그려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도 큰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켄조 선생님 장례식까지 담담하게 그려나가다가 마지막에 눈물샘을 터트리는 전개도 효과적이었고요. 죽는다는걸 알고 읽기는 했지만, 정말 뭉클했어요.

켄조 선생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아키코를 휘둘렀고, 아키코도 지나치게 죄의식이나 후회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묘사는 다소 아쉽지만, 재미와 성장기 측면에서, 그리고 감동 측면에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2015년 만화 대상을 수상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특히 미술 대학 쪽과 관련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도베르만 형사를 그렸던 하라마츠 신지의 "극도 만화가 이야기"는 제 지론이 틀렸던 실패작이었습니다. 만화가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그려낸 자전 만화인건 분명한데, 뒤로 가면 갈 수록 억지스러운 마쵸 세계관 설정이 삽입된 기묘한 판타지가 되어버렸지요.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졸작으로, 연재도 조기 종료된 듯 한데 다행히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되지는 않았습니다.

2020/02/02

그림엽서로 본 일본 근대 - 도미타 쇼지 / 유재연 : 별점 3점

그림엽서로 본 일본 근대 - 6점
도미타 쇼지 지음, 유재연 옮김/논형

1년여 전, "호텔"이라는 미시사 서적으로 접했던 도미타 쇼지의 또다른 미시사 서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메이지~다이쇼~쇼와 시대 일본의 그림 엽서들을 통하여 당대의 이슈, 인물, 유행과 명소 등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각 소재별 그림엽서 도판과 해당 그림 엽서에 보여지는 장면에 대한 소개가 한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론과 이런저런 대표 그림 엽서들을 컬러로 수록한 초반부를 지나서 1853년, 가에이 6년의 페리 제독 내항에서부터 본격적인 조망이 시작됩니다.

그 뒤 내용들은 실제 시간 흐름과 동일한 연대순입니다. 역사적 사건보다는 인력거 제조와 영업 허가, 신식 우편제도의 시작, 오사카에 설치된 조폐료, 육군성과 해군성 발족, 철도 개통, 군복을 입은 천황 등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생활 밀착형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는게 눈에 띄고요. 특히 많이 소개되는 것은 여러가지 새로운 건축물들입니다. 전작에서도 소개했던 호텔들은 물론이고 신식 다리, 각종 정부 기관 건물이나 역사, 박물관과 조선소, 세관 등 주요 건물은 거의 빠짐없이 다룹니다. 아무래도 당대 보기 힘들었던 '최첨단' 건물이 그림 엽서로 사용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겠지요. 유명 명승지 사진이 수록된 관광 안내 책자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 페이지씩 넘겨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모두 일본의 건물이고 역사이기는 하나 친숙한 지명이나 장소, 건물 등이 간혹 등장하며, 이에 대한 정보들 역시 꽤 흥미로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도 피서지로 유명한 가루이자와가 피서지로 발전하게 된 건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알렉산더 C.쇼와 영어 교사 제임스 M. 딕슨이 방문한게 계기라는 것 처럼요. 가루이자와가 피서지로 적합하다 생각한 쇼가 가루이자와에 별장을 갖춘 교회를 지은 뒤, 외국인들에게 가루이자와를 널리 알려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메이지 시대인 1900년대 초기의 긴자 거리와 아사쿠사의 풍경,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유원지 하나야시키의 개장 모습 등도 지금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자료들이며 그 외 다양한 박람회라던가, 라디오 방송의 시작과 같은 사회 뉴스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는 오페라 가수 후지와라 요시에, '아래향'으로 유명했던 일본계 가수 리코란 (이향란)의 엽서도 흥미로왔습니다. 사할린과 대만, 조선과 같은 당시 일본 식민지에 관련된 엽서도 많지는 않지만 충실히 수록된 편이고요.

이처럼 새로운 신문물이나 유행 관련된 엽서가 대부분이지만, 도고 헤이하치로나 히로세 중좌와 같은 전쟁 영웅들과 러일 전쟁 관련 엽서들, 다양한 개선문에 관련된 엽서들, 만주 점령 당시의 엽서 등 극우화되며 전쟁으로 치닫는 일본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엽서들을 통해 당시 분위기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메이지, 다이쇼 천황의 사망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엽서들에서는 천황의 신격화도 잘 알 수 있었고요. 그 외에도 도판이 풍부하며, 글의 양도 많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흥미 위주, 재미 위주가 아니라면 그렇게 큰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본과 그 주변국의 근대 시대 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이 없다면 크게 찾아볼 필요는 없는 책이죠. 저는 이 시기에 항상 흥미를 가지고 있기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5/10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 주영하 : 별점 3점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 6점
주영하 지음/사계절출판사

얼마전 읽었던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과 비슷한 형식의 미시사 책입니다. 하나의 주제마다 핵심이 되는 그림을 먼저 소개하고,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비슷합니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음식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음식은 이야깃거리의 하나일 뿐입니다. 대체로 조선 후기 역사에 대해 폭넓게 내용을 풀어갑니다. 어부들이 물고기찜을 둘러싸고 있는 김득신의 "강상회음"이라는 그림을 가지고 그림에 등장한 숭어찜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조선 후기의 숭어잡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던가, 권용정의 "등짐장수"라는 그림을 통해 음식보다 조선 후기 등짐장수들과 등짐이었던 그릇, 그리고 그릇의 제조방법과 생산과정 및 간단한 조선후기 ~ 일본강점기까지의 그릇의 역사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전해주는 식으로요.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으로는 19세기 초 왜관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인 고관, 역관들에게 대접한 음식 중 가장 인기있었던 "승가기 (勝歌妓)"에 대한 이야기를 들 수 있겠네요. 무슨 기생집 이름 같은데 이 음식의 정체는 바로 "스키야키" 였다고 합니다. 유사한 형태의 조선음식 신선로는 고관대작이나 먹을 수 있었기에 가난한 아전 등에게 인기폭발일 수 밖에 없었다는군요.

한마디로 재미있고 실용적인 정보가 가득한 책입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경성탐정록"에 써먹을만한 이야기가 없을까 싶어 본 책이기도 한데 몇개의 소재를 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러웠고요. 도판의 인쇄상태가 약간 부실한 것은 아쉽지만 평균이상은 충분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풍속화와 조선후기 역사에 대해 관심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15/06/24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 김난주 : 별점 2.5점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문학동네

얼마전 읽은 "안자이 미즈마루"를 통해 급 관심이 생겨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콤비의 에세이집.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들과 함께 두 페이지 남짓한 짤막한 에세이가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정성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은 역시나 최고였고, 별거 아닌 일상에서 재미와 독특함을 끌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기발랄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시절, 풍요롭고 여유로운 80년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I feel coke"와 같은 세련된 시티팝, 시티컬쳐 느낌이랄까요?

허나 두 콤비의 결과물이 모여 더 나아졌냐면 그건 아닙니다. 그림과 글이 하나로 묶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림과 글이 아예 구분되어 있거든요. 원래 잡지에 연재되었던 기획물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큰 판형에 이미지를 통으로 상단에 배치하고, 하단에 짤막한 글이 붙는 편집으로 구성되는 게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책 판형에 맞추느라 그림이 하나의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너무 크네요. 가로로 긴 그림이 양쪽 페이지로 나뉘어 가운데가 접혀버리는데 이거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도 있고 마음에도 들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의 화집으로는 앞서의 이유로 함량 미달임이기에 감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