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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9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 이광연 : 별점 2.5점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 6점
이광연 지음/한국문학사

인문학이 문학이나 철학 등 문과 계열 뿐 아니라 수학이나 건축 등 이과 계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걸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청소년용 교양서. 수학이 인간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학문이라는걸 여러가지 알기 쉬운 예제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딸 아이 논술 교재라서 겸사겸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중 수학 공부와 건축의 원리가 같다는 주장은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건물을 설계하는게 책의 목차라는 주장이요. 수학책에서 목차를 보면 앞으로 공부할 내용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조감도를 그릴 수 있고, 목차를 알면 이미 50%를 알고 들어간다는데 수학책에서 목차가 중요하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목차를 좀 더 꼼꼼히 보는 습관을 들여야겠어요.
또 기둥이 튼튼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데, 수학에서의 기둥은 기하와 대수이며 기하와 대수는 3,000년 전 고대 수학부터 통합되어 있었다는 주장과 매듭이론에 대한 쉬운 설명도 좋았습니다. 이론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왜 필요한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딸은 음악에 대한 설명을 좋아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피타고라스가 음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요. 저는 피보나치수는 장음정 6도와 단음정 6도로 귀로 들어도 아름답다는게 기억에 남습니다. 유튜브로 한 번 찾아보니 과연 그러하네요.
또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다양하게 피보나치수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악절을 황금비로 나누는 건데, 이건 과연 무슨 효과가 있었을지 궁금해 집니다.
주식 시장의 엘리엇 파동 원리가 피보나치 수열이고, 블랙 숄즈 방정식은 확률 미적분 이론을 이용해 파생상품 옵션의 가격을 계산한 모델이라는걸 설명해 주는 부분에서는, 가난한 수학자가 이세계에 환생한 뒤, 그곳의 시장 경제를 가지고 노는 환생물이 떠올라 재미있었어요. 용(드래곤)을 파는 시장을 지배해서 수학자가 용왕이 된다!는 그런 이야기,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영화를 가지고 수학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설국열차 등을 예로 드는데, 이 중에서 바이러스 감염률 한계 이론에는 놀랐습니다. 100만 명으로 모수가 늘어나면, 정밀도 99%의 검사라도 무려 9,999 명이 잘못 판단된다는데 여태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에요.
그 외에도 사이클로이드 곡선은 직선보다 훨씬 빠르게 특정 물체를 이동시킬 수 있어서 겅사면에는 사이클로이드를 적용한다, 동물들, 독수리나 매도 땅 위에 있는 사냥감을 잡을 때 사이클로이드에 가깝게 목표물을 향해 곡선 비행을 한다는 이야기,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전형적인 황금비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금강비(5:7)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서양인보다 상대적으로 동양인이 키가 작아서 황금비보다 작은 비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자 모양에서 중국에서 결승법 - 끈을 묶어 수를 표시하는 방법 - 을 썼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지만 뒷부분 이야기는 억지가 심해서 아쉬웠습니다. 대표적인건 삼국지 속 계륵이 암호이며, 이건 수학이는 주장입니다. 암호가 수학일 수는 있지만, 계륵은 수학과는 관련이 없는 심리적인 말장난에 가까우니까요. 또 그 뒤에 이어지는 암호에 대한 이야기는 수학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서 다른 책에서 지겹게 많이 접혔던 내용이 대부분이라 실망스러웠어요.
김삿갓, 이순신과 조선 수군 이야기도 수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수군에 훈도라는 수군직급이 있고 그들이 각종 계산을 담당했다고 해서 그들이 수학자라는 말도 안되지요. 지금 육군의 관측병들이 모두 수학자인가요? 마방진 이야기도 분량에 비하면 별다른 알맹이는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그림 그리는 얘기도 황금비라든가 외상 예술 같은 건 뻔하고 대단한 수학적인 이론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카르타고를 세웠다는 디도의 문제라던가, 달리의 4차원 그림 같이 그림의 주제가 된 수학 문제를 설명하는게 훨씬 좋았습니다. 이런 쪽으로 방향을 잡있어야 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건질 내용이 없는건 아닙니다. 몇몇 주장은 와 닿기도 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학에 대해 어려워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2024/09/21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의사 데지마 하쿠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암으로 잃었었다. 어머니 데이코는 병원 재벌 야가미가 후계자 야스하루와 결혼해서 이복동생 아키토를 낳았다. 이후 하쿠로는 야가미가와 연을 끊고 데지마 성을 쓰게 되었고, 어머니마저 16년 전 고향 집에서 사고로 죽고나서는 가족과 아예 멀어졌다.
그런데 동생 아키토의 아내라는 미녀 가에데가 나타나 아키토가 실종되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쿠로는 가에데를 도와 오랫만에 야가미 가문 사람들과 이모 준코 등 친척들을 만나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에 수수께끼가 얽혀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2016년에 발표했던 장편. 적당한 분량에 꽤 많은 수수께끼를 담아내고 있는게 특징입니다. 대충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성공한 사업가인 아키토의 실종
  2. 가즈키요의 기묘한 추상화와 야스하루의 연구
  3. 데이코 살해 사건의 진상
  4. 데이코가 물려받았다는 귀한 유산의 정체
여기에 야가미 가문의 유산 상속 문제, 그리고 데이코가 고향집의 존재가 더해져 이야기는 아주 풍성합니다.

핵심 수수께끼 중 하나인 가즈키요의 그림과 야스하루의 연구에는 뇌과학, 그 중에서도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사용되어 재미를 더해줍니다. 과학과 관련된 최신 소재를 작품에 녹여내는데 능숙한 히가시노 게이고답더군요. 뇌를 자극하여 의도적으로 서번트와 같은 천재를 만들어내는게 가능하다는 이론으로 하쿠로의 친부 가즈키요는 뇌종양에 걸린 뒤, 야스하루의 생체 실험에 가까운 치료를 받고나서 '서번트 증후군'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소수의 분포에 법칙성이 있음을 증명'하는 그림 '관서의 망'을 그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진상은 세 번째 수수께끼인 데이코 살해 사건의 진상, 그리고 네 번째 수수께끼인 데이코가 받은 유산과 곧바로 연결됩니다. 수학자였던 데이코의 동서(하쿠로의 이모부) 겐조가 그림을 알아보고 탐냈고, 이를 알아챈 데이코의 입을 막으려 그녀를 살해했던겁니다. 마지막 데이코가 받은 유산은 '관서의 망' 이고요.

또 겐조가 범인으로 드러날 때, 최소한 야스하루의 보고서를 고향집에 가져다 놓을 수 있었던건 겐조밖에 없다는 추리는 아주 괜찮습니다. 유마가 보고서를 발견하기 전, 하쿠로가 왔을 때 보고서는 없었습니다. 보고서를 가져다 놓은 범인은 왜 진작에 가져다 두지 않있을까요? 그 이유는 고향집이 있다는걸 그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겐조밖에 없습니다. 하쿠로가 방문하여 진작에 어머니로부터 받았다는 거짓말과 함께, 준코 이모에게 어머니의 유품인 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겐조는 16년전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기에 앨범이 고향 집에 있었다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이코가 하쿠로에게 앨범을 줄 수는 없으니, 하쿠로는 고향 집에서 앨범을 가져왔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겐조는 고향집이 그대로 있다는걸 그날 알아챘고, 보고서를 건네주어 하쿠로 일행이 고향집에서 손을 떼게 만든 뒤 '관서의 망'을 독차지할 속셈이었던 겁니다. 꽤 잘 짜여진 추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첫 번째 수수께끼와 이와 관련된 설정들은 모두 별로입니다. 아키토가 실종된 이유부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겐조가 아키토를 납치하려 했는데 그걸 사전에 알아챈 경찰이 아키토가 실종된 척 하고 아키토의 아내를 가장한 수사관 가에데를 사건에 투입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공개 수사로 전환해서 주모자를 체포했어야죠. 그랬다면 데이코의 고향집과 '관서의 망'도 불타지 않고 남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수수께끼는 거의 모두 겐조의 자백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추리 소설로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드는건 주인공 하쿠로입니다. 첫 눈에 가에데에게 반했다치더라도, 엄연히 동생의 아내입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은 최악이에요. 심지어 동생은 실종 상태인데 말이지요. 야가미 가문의 유마가 가에데에게 추근거리는걸 불쾌해하고 방해하지만, 하쿠로도 그에 뒤지지 않게 추근거리는 상황이라는걸 본인만 모르더라고요. 동물 병원에서 일하는 가게야마와의 관계도 뭔가 싶고요. 한마디로 '발암' 캐릭터였습니다.
가에데도 만만치 않아요. 비현실적이며 애매한 탓입니다. 팜므 파탈도 아니고,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활약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목의 '위험한 비너스'는 가에데를 의미하는 듯 한데, 그 정도 비중과 현실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하쿠로라면, 그녀의 주장을 절대 믿지 않았을겁니다.
이런 별로인데다가 비현실적인 커플을 주인공으로 삼느니 아키토를 주인공으로 해서, 아키토가 재력과 힘을 손에 넣기 전인 중학생 쯤 시기에 어머니 살해 사건과 아버지 그림의 행방을 쫓는 이야기를 그려내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키도 크고 미남인데다가 천재이니까요. 하쿠로는 조력자가 어울리는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기본적인 재미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주인공과 기본 설정이 문제일 뿐이지요. 당연히 영상화되었던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네요. 영상물에 더 어울리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주연이 츠마부키 사토시!

2024/05/05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이장주 : 별점 2점

우리 역사 속 수학 이야기 - 4점
이장주 지음/사람의무늬

제목 그대로 우리 역사 속 수학에 대해 소개해주는 수학사 서적. 조선 이후 역사 속 유명 수학자를 소개하는 1부와 삼국시대부터 수학을 통해 이루어진 여러가지 성취를 알려주는 2부 구성입니다. 이를 통해 서양 중심의 수학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옛부터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는걸 알려줍니다.

1부는 세종대왕이 수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실제로 수학 서적을 펴내거나 수학 관련 활동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역관 등 중인 계층이 수학을 공부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세종이 공자의 말을 빌어 수학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수학적인 사고가 위대한 사상과 발명의 큰 축이자 기초이니, 위대한 발명가가 수학자이기도 했다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헤이그 밀사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이상설이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구한말에서 개화기에 이르는 시기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수학 교육과 보급에 노력했다는건, 그가 얼마나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지요. 확실히 당대 조선 제일의 천재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나 봅니다.
2부는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과 여러가지 문헌을 통해 우리 수학이 얼마나 높은 수준이었는지 알려주며, 문헌에 소개된 문제들을 현대적으로 풀어 소개해줍니다. 덕분에 함께 따라 푸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죠.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신라 포석정의 주사위 주령구에요. 6개의 사각형 면과 8개의 육각형 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로, 굴려서 나온 벌칙을 따라 해야 한다는건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두 종류 이상의 정다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꼭짓점에 모인 면의 배치가 서로 같은 준정다면체'로 각 면의 넓이가 모두 동일하다고 합니다! 주사위는 모든 면의 확률이 공평해야 하지만, 애써 14개의 면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을텐데 이를 적용한 주사위를 놀이기구로 썼다는건 신라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일 겁니다. 지금도 이를 손으로 만드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조선 시대 수학 서적을 통해, 당시에 어떻게 방정식과 제곱근을 푸는지를 알려주는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이치에 맞게 풀도록 되어 있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도판도 충실합니다. 청소년용 도서답게 최대한 쉽게 설명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2부에서 문체가 들쭉날쭉한건 아쉬웠습니다. 3인칭으로 '소개'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1인칭으로 강의하듯 문체가 바뀌는 부분이 있는데 거슬렸어요. 계속 출간되려면 교정이 필요해보입니다.
역사 속 수학을 바라보기에는 내용 구성이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20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신라 이야기 약간 외에는 전부 조선의 이야기라면 '우리 역사 속'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애매하잖아요? 그나마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역사 속 수학 소개보다는 수학 문제 풀이의 비중이 높아지고요.

그래도 청소년들이 가볍게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라고는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2/10/22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애덤 쿠하르스키 / 정훈직 : 별점 3.5점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8점 애덤 쿠하르스키 지음, 정훈직 옮김/북라이프

여러가지 도박에 대해 수학적으로 연구된, 여러가지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
리처드 파인만의 책 도입부 일화부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파인만은 도박은 잃을 수 밖에 없다는걸 계산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 프로 갬블러를 만나고 혼란에 빠집니다. 수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프로 갬블러 닉은 파인만에게 “베팅 판에 돈을 거는 게 아니라, 베팅 판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돈을 거는 것." 이라는 비결을 말해 주었답니다. 암요, 호구는 타짜의 먹잇감에 불과하지요.

뒤이어 각종 도박 및 베팅에 대해 수학자들이 연구한 방대한 사례들이 소개되는데, 뭐 하나 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맨 먼저 소개되는 무작위여야 할 룰렛에서 거금을 땄던 일화부터 말이죠. 룰렛이 마모 등의 사소한 결함으로 특정 숫자가 다른 숫자들보다 자주 나온다면, 상황이 갬블러에게 유리하게 바뀔 수 있다는게 비결입니다. 하지만 바퀴가 문제가 있어도 어느 숫자에 돈을 걸어야 하는지 알아내는게 문제인데, 물리학에다가 컴퓨터까지 동원해서 최대 20% 정도의 적중률을 확보했던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임의의 배팅일 경우의 확률은 2% 미만이라니 그 차이가 실로 엄청나네요. 휴대폰 등을 이용해서 2004년에도 130만 파운드를 따 간 일당이 있었다고 하고요. 이런 계산을 할 수 있을 사람이라면 저 돈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여튼 대단합니다.

운이 지배한다고 생각했던 복권에서도 수학자들의 성취는 눈부십니다. 제일 간단한건 로또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구입하는 비용이 상금보다 적을 경우 모든 숫자를 다 사버리는 '브룻 포스 공격'법입니다. 문제는 모든 조합을 구매하는 수고, 그리고 공동 당첨자가 있을 때 상금을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는건 정말 큰일일거에요.
경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적인 예측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조직이 있으며, 그 적중률이 높다는 것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포인트는 잘하는 말은 배당이 낮고 못하는 말은 배당이 높아서 공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이 못하는 말의 확률을 후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우승 확률이 가장 높은 말의 예상 성적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고요.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고배당으로 한 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잘하는 말에 돈을 거는 것 만으로 돈을 무조건 딸 수는 없겠죠. 수수료 문제도 있고요. (이 책에 의하면19%) 그래서 여러가지 수학 기법이 적용된 경마 우승 확률 분석 프로그램이 많이 나타났는데, 대체로 프로그램 결과와 현재의 배당률을 조합하여 베팅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축구 경기도 수학 기법이 도입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1970년대에 몇몇 학자들은 축구 한 경기는 거의 전적으로 우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예측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적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수학의 발달로 이런 제약도 무너져버리고 말았는데, 예를 들어 팀이 골을 넣는 실력, 골을 얼마나 못 막는지를 뽑으면 골을 넣을 확률을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군요.
홈팀의 공격 능력 × 원정팀의 수비 취약점 × 홈그라운드 이점
이를 기반으로 만든 모델을 통한 예측 결과가 베팅 업체 배당률보다 10퍼센트 이상 가능성이 높았다니 놀랍습니다.
이렇게 모든 스포츠 도박은 이제 과학적인 분석 대상이 되었기에, 심지어 투자 회사까지 생겨 투자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도 놀라왔어요. 주식과 다를바 없다는건데, 이 정도로 고도화된 분석에 따른 결과라면 수긍할 만 합니다. 물론 저는 제 돈을 이런데 투자하지는 않겠지만요.

책은 이런 수학 이론들을 통해 인공 지능 단계까지 나아가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포커에서 블러핑까지 구사한다는건 놀랍습니다. 이는 냉정한 논리에 따른, 최적의 포커 전략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경기나 룰렛에 돈을 거는 행동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포커 선수들은 베팅으로 게임의 결과를 바꿀 수 있어서 선수인 셈이니까요.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절대로 지지않는 포커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다고 하네요. 온라인으로 포커 게임을 하면 절대로 안되겠습니다.

블랙잭과 카드 카운팅은 많은 책에서 소개되어서 새로운건 없었지만, 카지노가 유리한 이유는 기억에 남습니다. 참가자의 차례가 항상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참가자가 카드 한 장을 쓸데없이 더 요청했다가 목표치를 넘어가면, 딜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이기니까요. 그래도 딜러의 카드 숫자가 작으면 딜러가 카드 몇 장을 더 뽑아야 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합계가 21이 넘어갈 위험이 커진다고는 합니다. 예를 들어 딜러의 카드가 6이면 딜러 쪽이 21을 넘어버릴 확률이 40퍼센트라는군요! 10의 경우에는 그 확률이 반으로 줄어들고요. 따라서 딜러가 6을 갖고 있으면 자신의 카드 합계가 작더라도 가만히 있어야 결과가 좋을 수 있다는군요. 잘 기억해 두어야겠어요.

곁들여 소개되는 이런저런 정보들도 흥미롭습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징크스’처럼요. 이 잡지의 표지에 나온 선수들은 종종 그 후 성적 하락을 겪게 된다는데, 통계학자들은 실제로는 징크스가 아니라고 합니다. 선수들이 잡지 표지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로 그 선수들이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시즌을 보냈기 때문인데, 이는 진정한 실력보다 비정상적인 변동에 의한 것으로 이듬해 성적 하락은 단순히 원래 실력으로 돌아간 것 뿐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현곤 선수의 타격왕 획득같은 경우겠죠.
갬블, 베팅에 관련된 정보도 많습니다. 카지노와의 대결에서 정해진 액수만큼 더 벌 수 있다고 기대될 때 걸어야 할 최적의 액수는 얼마일까요? ‘켈리 기준’이라고 알려진 수학 공식을 따르면 됩니다. 기대 수익을 이기면 받게 될 액수로 나눠서 나온 비율을 전체 자금에도 적용해서 그만큼의 액수를 걸어야 한다는군요.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에서 뒷면이 나오면 2달러를 주는 내기가 있다고 한다면, 켈리 기준은 기대되는 당첨금 50센트를 이겼을 때의 액수인 2달러로 나눈 것이다. 계산 결과는 0. 25로, 이는 이용 가능한 자금의 4분의 1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론상으로는 이만큼을 걸면 적절한 수익이 보장되는 동시에 자금 손실의 위험성이 제한된다는 겁니다.

이런 류의 책답게 번역이 그렇게 좋지는 못하고, 아무래도 내용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도판은 아예 없다시피하고요.
그래도 재미와 정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도박을 좋아하고, 이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읽는다고 따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21/07/10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애덤 쿠하르스키 / 정훈직 : 별점 2.5점

수학자는 행운을 믿지 않는다 - 6점 애덤 쿠하르스키 지음, 정훈직 옮김/북라이프

수학자는 과연 논리적인 게임을 잘 할까?는 제 오랜 궁금증 중 하나였었습니다. 이 책은 여기에 대한 어느 정도 합리적인 답을 제공해 주는 책입니다. 수학을 이용해서 룰렛, 복권, 경마, 블랙잭, 포커, 드래프트, 체스 등에서 이겼던, 혹은 이기려고 노력했던 여러가지 노력과 사례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자들이 이런 게임들에 도전해서 돈을 벌었던 실제 사례들이 특히 재미있더군요. 대표적인 예가 복권입니다. 복권 당첨은 순전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학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더라고요. "스크래치 복권"의 공정한 지역 분배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복권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여섯 개가 아니라 그보다 적은 숫자가 당첨된 사람에게 당첨금을 분배하는 '롤 다운' 제도의 헛점을 이용한 전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수학자가 계산해보니, 롤 다운 상황이 일어났을 때는 판매되는 2달러 복권 당 최소 2달러 30센트의 상금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비가 이끄는 MIT 그룹은 롤 다운 상황을 이용해서 무려 70만 달러에 당첨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아일랜드 회계사 스테판 클린세비치의 전략은 더 단순합니다. 모든 당첨 가능한 숫자를 조합해서 복권을 구입하는데 드는 비용이 100만 파운드 미만이라는 점을 알아낸 뒤, 당첨금이 100만 파운드를 훨씬 넘겼을 때 베팅을 시도한다는 전략입니다. 복권 구입에 품이 많이 든다는 점과 다른 사람이 당첨되면 당첨금을 나눠 가져야 하므로 이익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어서 확실하다고만은 할 수 없겠습니다만....

블랙잭 전략은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등에 나왔던 카드 카운팅 외에도, 다양한 전략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카드 카운팅이 핵심이기는 하지만, 카드 섞는 과정에서 패턴을 추출하는 방식은 꽤 그럴듯해 보이네요.

경마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략은 출발 위치 등 여러가지 측정치를 통해 특정 말의 우승할 확률을 먼저 계산하는. 이른바 예측 모델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갬블러들은 모델을 통해 얻어낸 데이터와 실제 배당률을 비교하여 베팅을 하고요. 축구 경기도 이러한 예측 모델이 존재합니다. 홈팀이 넣을 골의 기대치는 "홈팀의 공격 능력 * '원정팀의 수비 취약점 * 홈 그라운드 이점' 이다" 처럼요. 이 모델은 기초적인 상태에서도 베팅 업체를 능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니, 스포츠 토토를 한다면 관심을 한 번 가져볼만 하겠습니다. 선수 영입 시에는 득점할 골의 수 보다는, 만들어 낼 슈팅의 수를 예측해 봐야 한다는 말도 기억에 남고요.

스포츠 베팅은 제가 야구를 좋아하기에 관심있게 읽었는데, 잘 알려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징크스'에 대한 설명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 표지 모델이 되었던 선수들은 종종 그 뒤 성적 하락을 겪게 된다는 징크스인데, 통계학자들에 따르면 징크스가 아니라고 합니다. 선수들이 잡지 표지에 나올 수 있었던 건,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며, 이는 그들의 진짜 능력이라기 보다는 불규칙한 변동으로 보는게 타당하기에, 이후의 성적 하락은 단순히 평균 회귀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몬스터 시즌'을 보낸 뒤 성적이 급격하게 하락한 몇몇 선수들이 떠오르네요.

실제 베팅을 위해 유용한 정보도 가득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켈리 기준'입니다. 장기적으로 기대 수익을 이기면 받을 액수로 나눠서 나온 비율을 전체 자금에도 적용하여 그 만큼의 액수를 거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에서 1달러를 건 뒤, 뒷면이 나오면 2달러를 주는 도박이 있다면 절반의 경우 1달러를 잃고, 절반의 경우 2달러를 따니 기대 수입은 50센트 입니다. 얼마를 거는게 적절할까요? 켈리 기준 적용 시,기대 수입 50센트를 이겼을 때의 액수 2달러로 나눈 0.25, 즉 이용 가능한 자금의 1/4을 걸면 된다는군요. 참고로 켈리 기준은 블랙잭 등에는 적절하지만, 경마 등에서는 부적절합니다. 일어난 확률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계산이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마 예측 모델의 확률은 추정치에 불과하니, 이대로 계산할 경우 위험도가 증가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경마에 대한 이야기 뒤로는 주로 예측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예측 모델이 잘 만들어져 있을 경우, 나름대로 안정적인 투자처로 이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베팅 회사가 존재한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로 이 쪽 세계의 발전이 놀라운 것 같습니다. 불확실성이라는게 존재하는 세계인건 맞지만, 사람들은 놀라운 사건의 빈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 책의 말 처럼 너무 마음에 둘 필요는 없어요. 연 15~25%의 수익률을 올린다면 충분히 투자를 고려해 봄 직 하지요. 예측 모델도 유명한 IBM의 딥 블루나 왓슨처럼 점차 '인공 지능'에 가까운 연구들이 소개되는 식으로 최근(책이 쓰여진 기준으로)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건 포커를 이기는 모델이 굉장히 만들기 어렵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확률이 중요한 게임이니 수학자들에게 유리할 것 같은데 의외였거든요. 그런데 읽다보니 과연 그럴만 하더군요. "블러핑"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폰 노이만에 의해, 블러핑은 반드시 필요하다는게 수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최악의 카드를 가졌다면, 상대가 게임을 접지 않는 한 승리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블러핑 전략을 펼쳐야 하니까요. 그 외에도 '어떻게 하면 돈을 가장 많이 딸 수 있을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잃을 수 있을까?"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던가, 후회의 감정이 없어지면 위험 요인이 관련된 게임 숙달이 힘들다는 등 다양한 이론과 전략이 가득해서, 포커 자동 프로그램 제작은 쉽지 않았다네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프로 포커 플레이어도 원숭이에게 질 수 있는게 포커라는 뜻입니다!

또 각종 도박에 승리하기 위한 수학적 노력이 단지 돈벌이가 아니라 새로운 이론과 기술의 시작점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예를 들어 룰렛은 일반적인 패턴에서 무작위로 전환되는데, 이를 카오스적 전환의 실제 사례로 보고 여기서 카오스 이론이 파생되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예측 모델이 결국 인공 지능으로 발전한 것도 마찬가지일테고요.

하지만 기대했던건 수학자의 이론이 바탕이 된 '필승 전략'은 많이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기기 위한 여러가지 수학적 방법은 결국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카드 카운팅부터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지요. 그나마도 카지노에서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하니, 결국 카지노에 가는 것 보다는 탄탄한 예측 모델을 가지고 있는 베팅 그룹에 투자하는게 훨씬 나은 선택으로 보이네요. 또 수록된 내용들도 쉽게 쓰여져 있지는 않습니다. 노력은 한 것 같지만, 애초에 수학 초보자가 쉽게 이해하기는 워낙에 어려운 이론들이 등장하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기대와는 사뭇 달랐고,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장벽이 높기에 감점합니다. 수학적으로 저보다는 기초가 탄탄하신 분들이 읽으신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는 살짝 스쳐지나갔는데, "인기"에 대한 연구 결과가 기억에 남습니다.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 사람들을 그룹으로 나눈 실험을 통해, "대중적 인기와 유명세는 퍼트리는 사람에 더 관련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거든요. 여기서는 운과 실력, 갬블링과 투자는 명확하게 분리하기 어렵다는 근거로 이 결과를 활용하는데, 이 주제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를 읽고 싶어지네요.

2021/06/25

Q.E.D Iff 증명종료 14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14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각 걸작과 졸작으로 극명하게 수준이 갈립니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났던 권은 많지 않았었는데 말이지요.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억엔과 여행하는 남자" 

파자마 차림으로 1억엔을 든 채 배회하던 남자가 발견되었다. 기억을 잃은 그는 '우라시마 타로'라는 남자로 밝혀졌다. 교통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였는데 아내가 죽은 뒤 의식을 회복했으며, 1억엔은 사고 배상금으로 집에 놓여져 있던 돈이었다. 

타로는 아내 나오코가 언제나 오르골로 쇼팽의 이별의 곡을 울렸으며, '오토구치를 찾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겼다는 걸 기억해내었고, 토마의 조사로 오토구치 마사요시는 실존 인물로, 그가 지방검사 시절에 담당했던 우라시마 긴지 살인 사건 피고인이 우라시마 타로였다는게 밝혀졌다. 그는 나오코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 주장을 했지만 오토구치 검사가 가져온 CCTV 영상으로 거짓이 밝혀져 15년 형을 선고받았었다. 12년 뒤 석방된 그는 4년만에 자살을 시도해서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오래전 있었던,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의 범죄 드라마이자 본격 추리물이자 복수극입니다.

우선 토마는 우라시마 긴지 사건 재판의 진상에 대해 추리해냅니다. 우라시마 타로가 갔던 에비스 카페 주차장이 범행 현장 주차장과 같은 형태였던걸 이용하여, 우라시마 타로가 현장에 있었다고 오토쿠치 검사는 증거를 조작했던 겁니다. 토마는 사진 속 가로등과 그림자 위치로 이 추리를 증명해 내고요. 그리고 이를 통해 지금의 수수께끼, "우라시마 타로에게 일어난 일은 정확하게 무엇이며, 1억엔이 왜 남겨져 있었고, 나오코는 왜 오토구치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남겼는지"를 풀어냅니다. 그 답은, 이 모든건 오토구치의 증거 조작을 알아낸 나오코의 복수였다는 겁니다. 

지금의 우라시마 타로는 오토구치 검사였고, 나오코는 오토구치가 조작으로 이겼던 재판에서의 형량만큼 그가 형을 살도록 하기 위해 26년간 약을 먹여 재운 겁니다! 1억엔은, 국가에서 죄가 없는 사람이 형을 살았을 때 보상금에 기초한 금액이고요. 하루에 대략 1만엔이니, 365일 곱하기 26년하면 대충 1억엔인거지요. 나오코가 마지막에 남긴 메시지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떠올려 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오토구치가 검사 시절 선고했던 형량의 총합인 26년과, 오토구치가 기록에서 사라진지 올해가 26년 째라는 점 등으로 증명됩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라서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반전이 드러나는, 우라시마 타로가 사진을 보고 자기가 오토구치였다는걸 깨닫는 장면도 아주 좋았습니다. 사진 중심이라는 점에서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자기 딸이 미도라는걸 깨닫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만화라는 매체에 어울리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이 끔찍한 진상을 담담하게, 웃는 얼굴로 밝히다가 가나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토마의 모습은, 토마 소라는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잘 드러난 명장면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소중한건 가나 뿐이라는 이야기니까요. 가끔 보면 이 친구는 정말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싶어요. 사회적인 공감이 결여되어 있는걸로 느껴지거든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전개 과정에서 약간의 헛점은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헛점은 오토구치의 실종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냥 기록에서 사라졌다고만 언급되고 있거든요. 아무리 옷을 벗었어도 전직 검사인데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건 말도 안되지요.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닐테고요. 또 26년간 약으로 잠들어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오토구치였다는 '기억'을 잃은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의 우라시마 타로는 자살했는데, 그 역할을 오토구치에게 맡길 때 시체를 어떻게 했는지도 설명되지 않아서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완성도는 손색이 없는 좋은 작품입니다. 타나바타 형사의 재등장도 반가왔고요.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메모리" 

MIT 출신 수학자 황성이 사망 후, 양자 암호에 대한 핵심 기술을 남겼는데, 이 기술을 러시아와 중국, 미국 정부가 노려서 대 소동극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작이 아주 빼어나서 기대가 컸는데, 아쉽게도 부응하지는 못했습니다. 세계 초 강대국 3개국이 가담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유치한 첩보전이 그려지는 탓입니다. 토마와 가나의 변장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던가, 가나가 강대국 정보부원들의 습격을 격투와 함정(?)으로 저지한다던가, 3개국이 USB를 확보하기 위해 유원지에서 대소동을 벌인다던가 하는 전개 모두 유치하기 짝이 없네요. 토마가 애초에 가짜 USB를 넘겨줘서, 3개국 정보기관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진상도 유치하기는 마찬가지고요.

약간 등장하는 추리적인 요소도 실망스럽습니다. 황성이 토마의 데이터를 훔치려고 했지만 훔치지 못했던 방식에 대한 소소한 트릭 - 몰래 작은 USB를 노트북 후면에 꽂아 두고, 누군가 USB를 연결하면 그쪽 연결은 없이 후면 USB가 연결되게 함 - 은 일견 그럴듯해보이지만 설득력은 낮아요. 노트북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탐색하여 USB로 복사하는 과정에서 보통은 자기 USB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니까요. 황성이 사망전 머물렀던 산장 벽걸이 시계에서, 멈춘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장소에서 USB를 발견한다는 일종의 암호 트릭도 유치합니다. 구태여 암호 트릭을 풀지 않았더라도, 주변만 수색했어도 정보기관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을테고요.

황성이 러시아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중국 칭화대에서 공부했으며 여동생 황해심이 한국의 친척에게 보내졌다는, 우리에게는 비교적 친숙한 설정의 인물이라는건 재미있었습니다. 일본도 토마가 손에 넣은 USB를 입수하기 위해 움직이는데, 이 과정에서 전작에 등장했었던, 단맛을 좋아하는 내각 조사실 소속 나시다가 재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고요.

하지만 대체로 점수를 줄 부분은 없는 졸작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21/01/03

비숍 살인 사건 - S.S. 밴 다인 / 최인자 : 별점 1.5점

비숍 살인 사건 - 4점
S. S. 밴 다인 지음, 최인자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딜러드 교수 자택에서 조셉 코크레인 로빈이 화살에 찔려 죽었다. 범인이 비숍이라고 서명하여 보낸 마더 구스 동요 편지가 발견된 뒤, 동요대로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마저 살해당했다. 체스 연구가 파디가 자살하여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어린 소녀 매들린 모팻마저 유괴되자 파일로 밴스는 행동에 나서는데....

'마더 구스' 동요에 따른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내용으로 반 다인 최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추리작가 협회가 선정한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9위,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18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밴 다인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치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몇 권 읽어 보기는 했는데, 명성과는 다르게 추리적으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던 탓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무려 다섯 번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만, 마더 구스 동요에 맞춰서 일어났다는 특징 외에는 별다른 트릭은 없습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진 건 범인이 지나치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범인 딜러드 교수가 코크 로빈을 살해했을 때 드러커 부인에게 들키지 않은 것, 드러커를 살해할 때 미행하던 경찰에게 들키지 않은 것 모두 운에 불과하니까요.
드러커 부인 앞에서 드러커 살해를 이야기하여 심장마비로 사망케 한 것도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도박입니다. 부인이 큰 소리를 질러 교수가 범인이라고 외쳤다면, 아래 층에 있던 요리사까지 살해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범행 전개 과정도 정교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딜러드 교수는 드러커가 연구하던 노트를 훔치고, 아르네손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서 전기 의자로 보내버릴 생각이었습니다. 젊은 아르네손의 재능에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코크 로빈과 조니 스프리그는 죽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드러커만 험프티 덤프티라고 해서 죽이고 '비숍' 이라는 서명을 남기면 되니까요. 왜냐하면 비숍이 헨리크 입센이 쓴 "왕위를 노리는 자들" 속 악당 니콜라스 아르네손에서 유래되었다는걸 경찰이 눈치챌 수 있고, 그렇다면 이후 드러커가 쓴 연구 노트를 훔치기 전에 아르네손이 체포되고 사건이 끝나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장은 증거가 없어서 풀려나더라도, 경찰이 엄중 감시했을테니 나중에 죄를 뒤집어 씌우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같은 이유로 코크 로빈,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 드러커 부인을 살해한 뒤 파디가 자살한걸로 꾸며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범인은 아르네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파디가 진범이라고 경찰이 착각했던 탓에 교수는 매들린 모팻을 유괴해서 죽이려는 번잡스러운 추가 범행을 벌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아르네손에게는 드러커 부인을 비숍이 습격한 날,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동행했던 벨 양이 시계를 보지 않았어도, 연극을 봤다면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알리바이를 깨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 소거법으로 모든 피해자들 스케쥴과 집 안팎을 꿰고 있는건 범인 딜러드 교수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전개도 짜증납니다. 특히 수사, 심문 과정이 그러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제대로 경찰에게 협조하는 인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탓입니다. 딜러드 교수, 드러커, 드러커 부인이 모두요. 요리사 비들은 심문도 아니고 단순한 사정 청취에 지독한 반감을 드러낼 정도입니다.
게다가 드러커나 드러커 부인이 한 말은 거짓말 투성이인데, 이를 추궁하지 않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컴 검사와 경찰은 드러커 부인이 불쌍한 여자라며 그냥 수수방관합니다. 그녀가 범인을 목격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또 드러커 부인을 살해하려고 온 범인이 비숍 말을 남겨두면 부인이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할거라고 여겼다는 추리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매컴 검사가 이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건 말이 안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컴 검사는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모르는 느낌입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탐정 역을 자처했던 아르네손은 입센의 광팬이라 비숍의 뜻을 처음부터 눈치챘을텐데,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은 이유처럼요. 파디가 루빈슈타인과 대국을 하던 중에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45분 정도 시간이 빈 틈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었겠지만, 루빈슈타인이 45분동안 숙고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루빈슈타인이 45분 숙고 시간을 요청했다는 설명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그나마 밴스가 인간 정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 범죄는 수학자의 범죄라고 추리하는 정도가 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거는 빈약하고 설득력도 낮습니다. '장기간 심하고 지속적인 정신 노동을 하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폭발을 낳으며, 아르네손은 균형 유지를 위해 항상 남을 비하하고 비웃는 식으로 감정 표출을 해서 범인이 아니니, 범인은 딜러드 교수일 수 밖에 없다'는게 전부거든요. 당연하게도, 스트레스가 심하면 가학적 본능에 따른 기괴한 범죄를 행한다는건 근거가 없습니다. 수학자들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주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그리고 이 논리라면, 항상 아이들과 놀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드러커도 범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밴스는 드러커를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었죠. 자기 추리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이외에도 파일로 밴스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장황하게 떠드는 묘사도 너무 많고 지루합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묘사로만 줄여도 길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이런 현학적 과시가 작품 특징이기는 한데, 저에게는 불필요하고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 아르네손을 몰래 살해하려던 교수를 술잔 바꿔치기로 대신 살해한 밴스의 행동만큼은 괜찮았어요. 매컴 검사는 "하지만 그건 살인이야!"라고 화를 내지만, 범인이 아르네손인지, 교수인지 증명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어차피 술은 둘 중 누군가가 먹게 될 테니, 이왕이면 범인이 먹는게 낫겠죠.
그러나 이 정도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절망적인 수준이며 마더 구스 동요를 잘 녹여내었다는 선구적인 아이디어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추리 소설 속 트릭의 비밀"에서 이 작품에 대해 '동요와 살인의 소름돋는 일치가 최대의 스릴이며, 그 절묘한 스릴을 제외하면 이 작품이 가진 대부분의 매력을 잃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 그대로에요. 그러한 특이점 외에는 매력이 없습니다.

2020/11/20

움직이는 집의 살인 - 우타노 쇼고 / 박재현 : 별점 2점

움직이는 집의 살인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자마 아키라가 이끄는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는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공연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 공연은 6년 전 무대에서 사고로 죽은 이자와 기요미 추모 공연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유명 건축가 이지와 야스노리가 직접 만든 극장인 시어터 KI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시어터 KI는 계란 형태로 생겨서, 가운데 노른자 부분인 무대가 회전하는 독특한 극장이었다. 

시나노 조지는 이 공연 제작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단원인 모리 쿄코와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연극 공연 당일 배우 스미요시 가즈오가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품인 칼이 진짜 칼로 바꿔치기 된 탓이었다. 그럼에도 단원들은 공연을 강행하는데, 마지막 공연에서 각본가 겸 배우 다키가와 요스케가 무대에서 똑같은 소품용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다. 경찰은 칼을 바꿔치기 할 수 있던 단원들을 의심하고, 단원들은 내분에 휩싸이지만 시나노 조지는 극장 구조를 검토한 뒤 외부 인물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태동하여 대 유행한 본격 미스터리를 '신본격'이라고 부릅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성과 게임성을 중시하는 작품들이지요. 문제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트릭이 많다는 점이고요.

이 작품은 전형적인 신본격물입니다. 설정과 캐릭터, 트릭 등 모든게 비현실적, 만화적이며 과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연극을 공연하는 무대에서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핵심 등장 인물들인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인물들도 마찬가지에요. 연극에 미쳐 다른 건 돌아보지도 않는 성격에, 대체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비인간적이며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극단적인 캐릭터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대마초를 재배해서 피우고, 민폐 끼치기가 일쑤인 탐정 시나노 조지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무대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도 비현실적입니다. 애초에 소품을 잘못 써서 사고가 일어났다면, 장난감이나 가짜로 바꾸는게 당연한거 아닐까요? 또 연극용 소품으로 만들어진, 몸에 닿으면 쑥 들어가는 장치가 된 칼을 진짜 등산용 칼로 바꿔치기 하여 사건이 벌어진다던가, 한 명이 부상을 입은 뒤, 또 다른 한 명이 같은 흉기로 살해된다는 전개는 너무 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무엇보다도 시나노 조지가 진상이라고 설명하는, 객석이 무대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는 거대한 장치 트릭이야말로 과장된 이야기의 정점입니다. 무대가 회전하는 줄 알았지만 반대였다는건데 "웃지 않는 수학자"같은 트릭이지요. 이를 통해 건축가 이자와가 나갔을 때 문은, 원래 방향과 정 반대로 분장실과 이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당연히 현실성이 낮습니다. "웃지 않는 수학자"는 개인 건물에서 단 몇 명만 속이면 됐지만, 그리고 천문대가 회전하는건 말이 되는데 거대한 극장 객석이 회전한다는건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300명의 관객이 좌석이 회전한다는걸 모두 몰랐다던가, 중간에 아무도 화장실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건 아무리 신본격이라 하더라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생각이에요. 문을 빠져나가 칼을 바꿔치기 하고 다시 돌아오려면, 객석이 회전하고 있으므로 문 위치가 틀어졌을텐데 그 해결 방법도 설명되지 않고요.
또 이자와 혼자만이 아니라 극장을 만든 모든 사람들, 그리고 범행 당시 무대 조작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경찰이 조금만 조사해도 금방 알 수 있다는 문제도 큽니다.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 트릭은 사실이 아니었다는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객석은 회전하지 않았고, 이자와는 무죄로 풀려나게 되지요.

이후 시나노 조지는 피해자 다키가와가 자살했다고 추리하는데, 좀 시시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앞서 추리보다는 낫더군요. 연극에 미친 사나이가 자신이 직접 쓴 연극 무대를 자살 장소로 삼았다는건 과장된 캐릭터성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나, 미래에 대해 절망한 차에 옛 연인 기요미 추모 공연이 도화선이 되었다는 등, 여러가지 동기에 대한 설명이 꽤 설득력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살이라서 별다른 트릭이 없다는 문제는 존재합니다. 앞서 가즈가 다친건 우연한 사고에 불과했다는 설명이지요. '신본격'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는 있는데, 이래서야 '신본격'이라고 부르기는 또 애매한, 그런 기묘한 장르물이 되어 버렸네요.

작가도 뭔가 트릭에 대한 사명감을 느꼈는지, 연극 무대 살인 사건과는 별개로 핵심 트릭이 따로 등장하기는 합니다.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제작 담당으로 일했던, 주인공인 시나노 조지가 사실은 시나노 조지가 아니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그것입니다. 그는 소극장을 상대로 일 년에 한 두번 씩 5년 동안 수익금을 빼돌려 왔던 사기꾼 오니쓰카 도시였지요. 시나노 조지가 등장하는 전작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전작을 읽었던 사람들은 놀랄만한 트릭일거에요. 변장을 위해 착용했던 선글라스와 마스크, 수염을 기르는 행위 등을 절묘하게 드러내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고보니 제목도 트릭이네요. '움직이는 집' 에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짜 시나노 조지가 사기꾼이라는걸 눈치챈 배우 사이키와 다투다가 머리를 부딪혀 죽은 뒤, 트릭이 밝혀지면서 나름 추리력을 보여준 가짜 시나노 조지 캐릭터가 엉망이 된건 아쉽습니다. 그의 말대로 5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씩 극단 상대로 사기를 쳤다면 최소 5번에서 10번 정도 반복했다는건데 진작에 들키지 않았을 이유가 없습니다. 연극계가 발이 좁다는 묘사는 작품에 넘쳐나니까요. 진짜로부터 신분을 훔친 방법도 '우연히' 보험증을 손에 넣은게 전부고요. 이래서야 나름대로 추리력을 보여 주었던 치밀한 범죄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시한 죽음을 맞은건 당연해 보입니다. 서술 트릭도 곱씹어보면 이야기와는 무관한 곁가지 이야기에 불과하고요.

그나마 가짜가 죽은 뒤 진짜 시나노 조지는 대마 불법 소지 및 재배 혐의로 체포되고, 모리 쿄코가 투신하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건 좀 괜찮았습니다 . 과장된 세계에 종지부를 찍는 작가 나름의 의식으로 보였기 때문이에요. 모든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죽음, 아니면 감옥으로 현실의 굴레에 갖혀버리고 만 셈이니까요. 작가가 쓴 서문을 보면 본격 추리물을 쓰기 위해 등장시켰던 시나노 조지를 퇴장시키기로 결심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결심에 어울리는 결말이라 생각됩니다. 더 제대로 쓰려면, 시나노 조지를 진짜로 죽여버리는게 나았겠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본격 추리, 신본격 소설이면서도 트릭은 별볼일 없는데다가, 신본격 소설들이 갖춘 단점들도 두드러지는 탓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0/06/21

Q.E.D Iff 증명종료 7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7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6권에서의 실망을 뒤로 하고 새롭게 읽은 7권. 간만에 로키, 에바와 뭉쳐 인도에서 수학 천재 소년을 찾고 학교 선생님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무지개 너머의 라마누잔", 그리고 전후 오사카 흥행계에서 벌어졌던 수수께끼와 같은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는 "어떤 흥행사"라는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강력 범죄와 일상계 구성이 아니라서 조금 특이했는데, 전권보다는 대체로 괜찮더군요. 다행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dlqslek. 아주 빼어나지는 않더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무지개 너머의 라마누잔" 

인도에서 아이들을 가르키는 라비는 아르쟌이라는 천재 소년을 발견하고 대학 이사장에게 장학금을 요청했지만,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아르쟌에게 장학금을 주어서 제 2의 라마누잔 (인도의 천재 수학자)으로 만들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려는 에바의 부탁으로 로키, 토마, 가나는 인도로 향하는데...

초반부 전개와는 다르게 아르쟌을 찾는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라비 선생이 살해당한 이유, 그리고 대학 이사장이 장학금 주는걸 주저한 이유를 밝히는 것입니다. 

일단, 라비 선생이 살해당한건 이사장의 대학 진학 뒷거래 증거를 가지고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사장이 뇌물과 뒷 돈 운운하는 장면 등의 복선으로 설명됩니다만 공정함, 정교함 측면에서는 좀 약해요. 고의는 아니었다는 이사장의 설명도 구차하고요. 

그러나 장학금 주는걸 주저한 이유는 놀랍습니다. 라비 선생이 찾은 수학 천재 소년은 아르쟌이 무려 6번째인데, 그 전의 아이들은 천재가 아니라 단지 조숙했을 뿐이라는거죠. 결국 중압감으로 인해 2명은 자퇴하고, 1명은 자살해버려서 이사장은 아이들이 짊어질 부담에 대해 고민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와 닿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재능으로 승부하는 세계에서는 재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탓에 조금 뒤떨어지면 금방 좌절할 수 밖에 없다'는건 저 역시 미술 대학교를 별볼일 없는 능력으로 겨우 졸업한 탓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아울러 인도 수학자 라마누잔과 그의 발견을 테마로 하고 있고, 라비 선생이 이사장 비리의 증거가 어디있는지를 남긴 '4번째 쌍동이'라는 소수 관련 정보도 Q.E.D 스러워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르쟌에게 너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라는 토마의 모습도 토마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냉정해 보일 수는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누군가의 말, 혹은 유품(라비 선생의 반지)은 아무 도움이나 보증도 되지 않는건 당연하니까요.

그러나 아르쟌이 갱단에게 살해당한 라비 선생의 복수를 위해 갱단 사이의 항쟁을 일부러 일으킨 사건은 영 별로였어요. 위에서 좋다고 이야기한 내용 정도로 끝냈으면 좋았을텐데, 아이들 장난같은 행위로 7명이 죽고, 수십명이 중상을 입는 갱단 항쟁이 벌어진다는건 너무 막 나간게 아닌가 싶거든요. 항쟁을 일으킨 결정적 방법인 라비 선생의 유령 모습 조작도 너무 유치해서, 이게 과연 가능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수학적인 정보 전달과 천재 소년의 장학금 관련 이야기는 여러모로 볼 만 했지만, 이에 얽힌 갱단 이야기는 나오지 않느니만 못했습니다. 갱단 이야기를 빼고 일상계처럼 정리했다면 별점 3점 이상도 충분했을겁니다.

"어떤 흥행사"

1964년, 오사카 흥행계의 큰손 유메다가 분신 자살했지만 불에 탄 차만 발견되고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유메다 사건을 추적하는 역사 학자이자 소설가 후지와라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유메다와 친했던 야쿠자 야마가와의 일기가 경매에 나온걸 알고 경매에 참가했다. 그 곳에서 우연히 유메다와 관련된 기녀 츠루코에 대해 조사하는 프리라이터 가네모리와 토마, 가나와 만났고, 토마는 작가들의 이야기와 일기 내용을 들은 뒤 유메다 사건의 진상을 말해준다.

사건의 핵심 수수께끼는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흥행사 유메다 메지로에 대한 이미지가 왜 말하는 사람마다 달랐는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야망과 배포가 큰 쾌남아인데, 어떤 사람 (특히 야마가와)에게는 무능력하고 소심한 인물로 비추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지요.
두 번째는 유메다와 만담가 츠바메, 그리고 기녀 츠루코 3명의 관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떼 놓을 수 없는 사이였고, 어떤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안 보는 사이라고 했는데 진상은 무엇인지? 입니다.
세 번째는 차에서 사체가 사라진 수수께끼에 대한 것이고요. 

이에 대한 토마의 추리는 대담합니다. 유메다와 츠바메, 그리고 기녀 츠루코가 동일인물이었다는 겁니다. 유메다와 츠바메가 떼 놓을 수 없었지만 서로 얼굴도 보지 않았다는 수수께끼는 그렇게 해결됩니다. 츠루코가 모두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유메다와 츠루코가 후대 작가가 추적할만큼의 무용담을 남긴 것도, 가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반대로, 이들을 깊게 알게 된 야마가와에게는 그들의 진실된 능력이 보인것이고요.

하지만 이 트릭을 밝혀낸 핵심 단서인 야마가와의 일기 속 묘사 - '어두웠던 극장에서 야마가와 옆에 유메다가 나타날 수 있었던 건 밝은 무대 위에서 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메다는 무대 위에 있었던 츠바메와 동일인물이다' - 는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 유메다와 츠바메가 동일 인물이라는건 그렇다 쳐도, 후대 작가가 추적할만큼 그 매력과 인기가 남달랐던 츠루코마저 남자가 변장했다는 건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이 정도의 변장 능력이 있었다면, 흥행사로는 실패했더라도 먹고사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빚에 허덕이다가 야마가와의 일기마저 훔쳐 팔아넘길 정도로 몰락했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네요. 때문에 대담한 추리에 걸맞는 완성도를 지녔다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도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전후 고도 성장기 오사카 흥행계를 그린 묘사는 괜찮거든요. 특히 유메다, 아니 츠바메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흥행업에 대한 미련으로 친절을 배푼 배포 큰 야쿠자 야마가와는 꽤나 멋지게 그려집니다. "타이거 & 드래곤"의 야쿠자 야마자키와 좀 비슷한데, 그보다는 훨씬 큰 남자인 셈이지요.

결론적으로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하고 트릭반전도 남다른 점은 있습니다. 설득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평작 수준은 됩니다.

2019/12/10

Q.E.D. iff 2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02 - 4점
MOTOHIRO KATOU/학산문화사

C.M.B 도 좋지만, 저는 Q.E.D 를 훨씬 좋아하는 편입니다. Q.E.D의 season 2라고 할 수 있는 iff 시리즈도 이제 e-book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더라고요. 기쁜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권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2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는데 추리적으로 대단치 않고, 이야기도 여러모로 헛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편 모두 내용에 비하면 분량이 지나치게 길고요.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 수학적인 정보의 제공도 그리 대단치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다음 권은 조금 더 분발해주면 좋겠네요.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토마와 가나의 동급생 유바리 미츠키의 오빠 유우키는 인기없는 만담가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담아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희극 각본을 썼다. 이를 1인극으로 공연한 뒤 연예계를 은퇴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선배 개그맨 스즈카와 매니저 아카시의 농간으로 각본을 빼앗기고, 주역 자리에서 밀려나 고생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고 마는데...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계약 관계를 둘러싼 비즈니스 물입니다. 토마의 계략으로 아카시는 유우키가 스즈카의 회사에 고용되었다는 계약서를 작성한게 반격의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즈카의 회사는 모회사인 이시즈치 흥업과는 무관하지만, 유우키가 쓰러진 뒤 벌어진 인터넷 상에서의 코멘트와 크라우드 펀딩이 이시즈치 흥업 소속 연예인들이 얽히게 되어서 약점을 잡히게 되지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더라고요. 딱히 큰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정확하게 어떤 상황이 문제가 되는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건 처음에 스즈카 산타가 유우키의 대본을 훔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잘한 트릭 뿐이지만 개그에 가까운, 그야말로 개그맨이 생각해 낼 법한 트릭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Q.E.D 특유의 학습만화스러운 재미도 전무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이렇게 길게 끌고갈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살인의 모양"

지중해 몰타 섬에서 수학자 알프 레츠의 아내 카밀라가 열쇠로 잠겨진 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강도 소행으로 결론내렸지만, 반발한 알프는 무려 4개월 동안 개인적인 조사를 이어갔다. 유력한 용의자는 알프의 친구 데릭과 그의 아내 플라니로, 이유는 카밀라가 데릭에게 추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몰타섬을 무대로 로키까지 등장하는 제법 긴 이야기인데, 핵심 트릭은 단순합니다. 호텔 방의 디자인을 이용하여 깨진 유리창을 보이지 않게 만든 것에 불과하거든요. 물론 간단한 트릭이 현실성 높은건 당연하니 단점은 아닙니다.
또 알프가 데릭을 범인으로 옭아매기 위해 세운 계획 역시 상당히 합리적이에요. 호텔의 열쇠는 모두 똑같이 생겨서 충분히 바꿔칠 수 있었고, 플라니의 알리바이가 없어서 이를 데릭이 함께 위증한 것 역시 사실이었으니까요.
문제는 경찰이 강도의 범행으로 단정지었기 때문에, 플라니의 위증을 증명할 증인을 찾는데 4개월이나 걸렸다는거죠. 그 와중에 토마가 나타나 진상을 파헤쳐버렸고요.

범인의 계획대로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 못한 탓에 범행이 드러난다는건 꽤 신선한 발상인데, 문제는 너무 쉽게 마무리되는 결말입니다. 알프가 진범이며, 그 증거는 달의 방 창문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깨진 것이다라는 토마의 추리가 과연 데릭이 진범이라는 알프의 작전과 비교했을 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유리창은 언제든 깨질 수 있지만, 플라니와 데릭이 위증을 한건 엄연한 사실이잖아요?

게다가 알프가 범인이라는걸 알아낸건 데릭 부부 둘 중 누가 체포되어도 상관없게 된 것이라는 알프의 말 때문이라는데 이 역시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게 누구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되었다면 충분히 할 법한 말 가지고 말꼬리를 잡은 거에 불과해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결말의 비약이 심해서 감점합니다.

2018/11/02

수학의 역사 - 지즈강 / 권수철 : 별점 2점

수학의 역사 - 4점 지즈강 지음, 권수철 옮김, 계영희 감수/더숲

중국 교수가 쓴 수학 역사책입니다. 딸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구입해 보았습니다.

장점이라면 서양 위주의 수학 역사서가 아니라 동양에서(중국 한정이지만) 어떻게 수학이 발전했는지를 잘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아예 "중국 수학의 고고한 품격" 이라고 따로 분량을 할애해서 소개할 정도인데, 내용도 아주 새롭고 재미있었어요. 중국판 피타고라스의 정리인 "구고의 정리"가 어떻게 쓰여져 있는지에서 시작해서, 중국 수학을 대표하는 문건인 "구장산술"에 대한 소개, 유명한 중국의 수학자들에 대한 소개, 당나라 때 관리 승진 시험 문제로 출제된 "영부족 계산법" 등 처음 알게 된 내용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중국의 고차연립방정식을 의미하는 '천원술'과 '사원술'을 소개하며 김용의 "사조영웅전"에 인용된 부분을 함께 소개해 주는 부분에서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읽을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수학적인 해석이 함께 해 주니 황용이 얼마나 똑똑한 소녀인지를 더욱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용의 고증과 역사적 깊이에 탄복한 건 덤이고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한데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인, 특히 학생 상대로 적합한 책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정도에요. 수학사를 대표하는 여러 이론, 그리고 그 예를 소개하고 있는데 설명이 너무 부족해서 이해하기 힘듭니다. 유명 수학적 이론과 수학자 소개에 그치는 다른 수학 역사서에 비해 실제 이론과 문제를 소개한다는 측면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설명이 부족해서 득보다는 실이 큽니다. 물론 제 수학적 깊이와 사고가 유치한 수준에 그치는게 문제겠지만, 그래도 책 한 권으로 설명되었던 "페르마의 정리" 해법을 2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으로 소개하는 식으로 요약이 과한 탓도 분명히 있습니다. 실려있는 각종 수식, 공식도 "왜 그런지?" 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수학 역사서로는 괜찮지만 지금보다는 이해하게 쉽게 소개된 문제를 다루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대로는 너무 어려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차라리 중국 수학 쪽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18/06/30

정의 - 하마오 시로 외 / 페가나 : 별점 2점

정의 - 4점
하마오 시로 외/페가나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컨텐츠들을 번역 소개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 페가나의 일본 단편 추리소설 모음집입니다. 비교적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임에도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번역의 질도 괜찮다는 점에서 가끔 생각이 나면 구입해 읽곤 합니다.

이번에는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전 모음집에 비하면 별로였습니다. 추리물도 아니고 한 편의 이야기로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두 편("촬영장 살인사건", "병사와 배우")에다가, 다른 작품들도 딱히 새롭거나 신선하지 않은 고전 본격물의 재탕이거나 심각한 단점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는 탓입니다. 표제작인 "정의"만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주탑의 비밀" 코가 사부로

일본 작가 코가 사부로의 명탐정 하시모토 빈이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이전 읽었던 "혈액형 살인사건" 에 수록되었던 작품으로 전람회장에서 거액의 진주탑이 가짜로 바꿔치기 된 사건을 다룹니다.

12Kg 정도 되는 탑을 5미터 높이의 창으로는 가지고 나갈 수 없고, 범행 당시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침입할 때가 아닌 도망갈 때 들렸다는 점, 그리고 진주탑이 바꿔치기 되었다는 증언은 사세 주임 단 한 명이 확인했다는 단서를 모아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내는데, 여기까지 읽으면 다 아시겠지만 진주탑이 바꿔치기 된 게 아니라 가장 비싼 진주 한 개만 바꿔치기 된 것이지요...

몇몇 단서들을 토대로 진상을 밝혀내는 전개는 전형적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로 단서, 추리, 진상 모두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딱히 흠을 찾기는 어렵지만 지극히 무난해서 새로운 점 역시 딱히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모조 진주탑을 만들어 달라는 우연한 의뢰가 겹쳐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 건 완전한 억지고요. 제 3의 인물이 개입한게 우연이라는 점에서 작위적인데다가, 사세 주임이 처음부터 진주 몇 개를 빼돌릴 생각을 하지 않고 우연에 기인해 거액을 들여 기묘한 사기를 치려고 한 건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렇게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촬영장 살인사건" 사카이 카시치

촬영장에서 동료 엑스트라를 죽인 남자는 미친 척을 한 것일 뿐이라는 내용의 단편. 의외성도 없고 추리물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망작입니다. 어차피 도주에 성공한 거라면 미친 척을 할 이유도 없잖아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미친 기관차" 오사카 케이키치

명탐정 아오야마 쿄스케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오사카 케이키치는 다른 단편집으로 이미 접했었던 작가인데 추리적으로는 반짝반짝했던 작품들이 많아서 기대가 컸습니다.

기차역 (W역)에서 가해자의 흔적이 전무한 사체가 발견된 불가능 범죄를 다루는데, 쿄스케가 광학 현미경을 요구한 후 피해자 상처의 모래의 재질에 대해 분석한 후 흉기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듯 "과학 수사" 가 핵심이라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내용도 단순하지만은 않아서 조면암과 석영조면암을 구분하여 설명할 정도로 깊이가 있는 편이에요. 

그 외에도 기관차와 선로. 열차 운행 시간, 물과 석탄의 보충, 운행 속도 등을 감안한 추리, 또 열차 내부 장치와 흉기인 곡괭이 자루 구멍을 연결하는 추리도 나름의 탄탄하고 깊이 있는 자료 조사가 뒷받침 된 덕에 굉장히 설득력이 높습니다. 초창기 기차와 기차역에 대한 묘사는 철덕들에게는 굉장히 사랑을 받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푸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리로 밝혀낸 진범인 역장의 동기가 장점을 다 잡아 먹습니다. 열차에 손을 잃은 후 그 열차를 바다로 밀어넣는 복수를 위해 두 명이나 되는 승무원을 죽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정차해 있는 동안 불이라도 지르는게 더 합리적이잖아요.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동기만 설득력 있었어도 조금은 높은 점수를 받았을텐데 아쉽네요.

"병사와 배우" 와타나베 온

병사 옹과 배우 하루는 친구로 옹은 옆나라 맘루크 술탄 왕국의 파르티잔 파업 진압 전쟁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하지만 실제 전투는 없었기 때문에, 이건 영화사의 속임수가 아닐까 의심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네요. 1928년이라는 발표 년도를 보면 체제 비판인 듯 싶은데, 거의 백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눈길을 끌 만한 요소는 전무합니다. 왜 이상한 판타지스러운 설정을 만들어 이야기를 전개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체제 비판이라서 설정을 틀었다고 보기에는 어차피 내용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그닥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거든요. 핵심 주제인 "전쟁은 추악하지만, 전쟁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영화야 말로 진짜 쓰레기다." 라는 주제도 그다지 설득력있게 드러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정말로 파르티잔 파업 진압 전쟁이 영화사의 속임수라는게 밝혀졌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검은 수첩" 히사오 주란

히사오 주란은 에도 시대를 무대로 한 "아고주로 체포록" 시리즈로 접해보았던 작가입니다. 모험물 성격이 강했던 아고주로 시리즈는 재미있게 읽었었죠. 이 작품은 근대를 무대로 일본인 파리 유학생 "나" 가 같은 건물에 살던 주민들과 얽힌 후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 가 허름하고 저렴한 하숙집으로 이사온 첫 날, 아래층 부부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미국 태생의 음악 전공인 일본계 이민자 2세 커플이지요. 그리고 우연히 친분을 맺게 된 윗층 남자는 룰렛 순열을 예측하는 공식을 알아낸 수학자고요. 그리고 유학 자금이 끊겨 한 방을 노리는 아래층 부부가 윗층 남자의 룰렛 순열 공식이 담긴 검은 수첩을 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법 탄탄한 설정으로 꽤나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 하나만큼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는 독자 심리를 자극하는 전개 능력이 탁월한 덕분일 뿐, 실제 그닥 깊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룰렛 순열 공식이 무엇인지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요. 이야기의 핵심인데 장황한 대사로 그럴듯하게 포장할 뿐, 결국 실체가 없는 이야기라 별로 설득력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등장인물들도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유학 자금이 끊겼다는 이유로 도박이나 하려는 철없는 부부는 볼썽사납기 그지 없어요. 도박에서 살인으로 흐르는 인과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함이라 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요. 단지 살인을 관찰하기 위한 주인공의 심리도 이해 불가입니다. 타인의 죽음을 방조하는 방관자는 또 다른 살인의 공범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그걸 정당화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캐릭터 설정과 묘사로 낯선 느낌과 불쾌함을 자극하는, 가학적인 분위기가 흥미를 자극하는 건 사실이지만 제 취향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결국 부부는 인간다움을 되찾지만 6층 남자는 실연과 잃어버린 젊음을 저주하며 자살하고, 도박 비법인 수첩은 주인공에 의해 난로로 향한다는 결말도 앞서 풀어나가던 과정에 비교하면 너무 쉽게, 대충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룰렛 시스템을 완성한 남자 수학자만큼은 나쁘지 않긴 합니다. 카리스마 있고 괜찮은 편으로, 그가 일부러 잃으려 했지만 따 버렸다는 중반부 반전도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뭔가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갔어도 훨씬 괜찮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펄프 픽션 이상의 결과물은 아닙니다.

"정의" 하마오 시로

옛 친구 키야가와 준이 키누가와 변호사에게 찾아와 키누가와가 맡고 있는 마츠무라 자작 살인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마츠누마 자작은 호텔 방에서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자세와 현장 상태를 미루어 자살이라 생각되었지만 유서가 없는 점과 왼손잡이인 백작이 오른손으로 총을 쏠 리가 없었기 때문에 호텔 종업원 모리키가 체포된 상황이었다...

표제작입니다. 하마오 시로의 작품은 역시나 페가나의 추리 단편 선집 "감방" 을 통해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감방" 에 수록되었던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도 아주 좋았는데 이 작품도 괜찮습니다. 모리키의 무고를 입증할 증인은 키누가와의 아내와 불륜 관계였다는 이야기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전개가 실로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뻔한 설정이지만 이를 법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논쟁을 벌이는 둘의 대화가 그야말로 압권이에요.

딱 한 가지, 증인인 A씨는 키요가와의 동생이 아니라 키요가와 준 본인이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선사하는 긴장감 넘치는 좋은 이야기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이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에요. 

2018/04/01

넘버스 - 케이스 데블린, 게리 로든 / 정경훈 : 별점 2.5점

넘버스 - 6점
케이스 데블린 & 게리 로든 지음, 정경훈 옮김/바다출판사

"넘버스" 라는 미드가 있습니다. FBI 요원인 형 돈을 수학 천재 동생 찰리가 돕는 내용인데, 이 책은 드라마 속에서 활용된 다양한 수학 이론을 소개해 줍니다. 범죄와 수학 이론의 결합은 제 영원한 관심사 중 하나라서 읽기 전 기대가 컸습니다.

13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모두 "넘버스" 속 에피소드에서 찰리가 설명해 주었던 수학 이론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는 구성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핫존'을 찾는 이야기로 저도 방영 당시 시청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연쇄 살인범이 다음에 어디서 범행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는 없다, 스프링클러의 물방울이 다음에 어디에 떨어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러나 물방울이 튄 자리의 패턴을 가지고 있다면 스프링클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있다!"는 이론이지요.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제가 "넘버스" 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이 에피소드가 아주 괜찮았던 덕분이기도 하고요. 드라마에서는 이 공식이 찰리의 창작으로 그려지지만, 책을 통해서 '지리적 프로파일링' 이라고 불리우는 기법으로 공식 원리에서부터 실제 범인 체포 사례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넘버스 속 스프링클러 비유 역시 이 공식의 창안자 로스모가 즐겨 애용하는 비유라고 하네요.

통계 분석을 범인 기소 및 각종 증명에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특히 이른바 '통계의 함정' 설명이 재미있었어요. 예를 들어 오클랜드 거주 인구의 35퍼센트만 차지하는 흑인이 교통 단속 건 비중에서 56퍼센트를 차지하는건 인종적 문제를 암시하느냐?는 연구가 있습니다. 답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경찰은 우범 지역을 보다 높은 비율로 순찰하는데, 우범 지역에 소수 인종 집단이 더 많이 밀집하기 때문에 당연히 더 높은 비율로 단속에 걸릴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집 근처에서 사고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역시 집 근처라 마음을 놓거나 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집 근처에서 운전을 할 일이 가장 많은 탓이지요. 이런 조작 아닌 조작을 많이 접하는 게 현실인데, 앞으로는 통계도 좀 더 면밀히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또 '연결 고리 분석' 은 최근 블록 체인 열풍과 맞물려 있는 부분이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데이터 마이닝, 신경망과 같은 친숙한 용어도 다수 등장하고요. 

변화의 조짐을 알아내는 '변화 시점 탐지'는 수학 이론보다는 "넘버스" 의 에피소드가 더 기억에 남네요. 수학자인 세이버 매트리션이 선수 자료를 분석하다가, 금지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을 알 수 있는 수학적 감시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이야기라는데 야구 팬으로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거든요. 이 수학적 감시 시스템은 실제로 존재하며, 현재 '증후군 감시' 등에 이용된다고도 합니다.
아울러 이 이야기는 '미래 예측'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수학은 테러리스트들의 위험 평가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통계 - 확률론입니다. 새로운 자료를 얻을 때 마다 확률이 변한다는 내용인데, 실제 범죄와 밀접하게 사용될 수 있어 보여서 재미있었어요. 이런 수학적 시스템이 실제로 적용되어 운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가 끊이지 않는걸 보면 과히 성공적인 시스템은 아닌 듯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완독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유는 너무 어려운 탓입니다. 이론과 설명 모두 어느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정확하게는 "넘버스" 속 에피소드와 관련된 소개 정도) 이해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어떤 이야기는 설명하고 있는 수학 이론이 어떻게 드라마 속 사건 해결에 이용되는지 그 연결 고리마저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건 책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이지요. 하지만 일반인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또 내용의 많은 부분이 통계, 확률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넘버스" 에 활용될 정도로 괜찮은 수학 이론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려운 수학 이론을 되도록 쉽게 설명하려는 저자들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그래도 어려웠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저같은 일반인보다 수학에 대해 이해도가 높으신 분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2016/07/31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 - 모리 히로시 / 이연승 : 별점 1.5점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 - 4점
모리 히로시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료 기타의 소개로 사이카와와 모에는 N 대학의 첨단 연구 시설인 ‘극지연’을 견학 방문하였다. 모든 실험이 끝나고 뒷풀이까지 마무리되는 시점, 완벽한 밀실 안에서 대학원생 니와와 다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모에가 단서를 잡고 극지연을 몰래 방문했지만 범인의 습격으로 실험실에서 동사할 위기에 빠졌다. 마침 네트워크를 통해 연락받은 사이카와가 그녀를 구해냈으나, 그 뒤 실험실에서 리더 기쿠마 교수의 시체까지 발견되며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한스미디어에서 새롭게 출간되는 모리 히로시의 사이카와–모에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그동안 딱 두 편 읽어보았습니다. 그 중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좋았지만 "웃지 않는 수학자"는 별로였었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작품은 아쉽게도 "웃지 않는 수학자" 쪽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더 못해요. 건질 부분은 공대 교수라는 작가의 배경을 살린 ‘극지연’과 연구에 대한 상세한 묘사밖에는 없는 탓입니다. 이 역시 불필요하게 분량만 늘이는 역할이라서 장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고요.

제목에서의 밀실 트릭은 장황한 묘사로 포장되어 있을 뿐, 내용은 별거 없습니다. ‘우주복’이라 불리는 방한복을 이용한 트릭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치노세–다마코의 실험 투입 장면만큼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나마 트릭은 합리적이고 제대로 설명되기는 합니다. 사이카와가 범인이 알 수 없었던 돌발 상황—셔터 고장—에 초점을 맞추어 추리를 진행하는 것도 괜찮았으며, 범인의 ID로 보이는 “Shika”의 의미도 그럴듯 하고요. 더 큰 문제는 소설로서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작가가 공들여 짜낸 트릭을 풀어나가는 것이 추리 소설의 핵심 요소이기는 합니다만, ‘소설’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상 소설로서의 재미도 독자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허나 이 작품은 그러한 점을 너무나 간과하고 있습니다.
우선, 거의 대부분의 진행은 사이카와, 모에 시점이며 이들의 일방적인 추리만 이루어집니다. 범인 시점에서의 이야기는 모두 사이카와의 추리와 관계자 증언을 통해서만 알 수 있어요. 즉, 범인과 동기에 대한 묘사는 거의 전무합니다. 추리소설에서 탐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범인이고, 트릭 외의 또 다른 한 축은 동기인데도 불구하고요. 범인이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과 그에 따른 드라마 없이 트릭만 풀어나간다면, 소설이 아니라 추리 퀴즈에 더 가깝습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동기도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이치노세가 ‘성폭행을 당했다’에서 ‘마스다가 자살했다’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도 이해할 수 없으며, 니와가 이러한 만행을 저지른 나쁜 놈이라 하더라도 다마코까지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니까요.
솔직히 마스다라는 놈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애인을 지켜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뭐 하는 짓인지.... 이러한 동기에 비하면 기쿠마 교수와 이치노세가 부녀 관계였다는 설정은 작위적이지만 차라리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데뷔작 한 작품 외에는 전부 별로인데, 시리즈를 더 읽어봐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되는군요.

2015/03/02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 전행성 : 별점 3점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6점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지음, 전행선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9년, 수학교사 스테파노스가 살해당했다. 유일한 친구였던 미카엘 이게리노스는 경찰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1900년 파리 수학자 대회를 떠올렸다.

1900년 파리 수학자 대회에서 힐베르트가 제시한 23개의 문제 중 2번 문제, "산술의 공리들이 무모순임을 증명하라"에 대한 해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20세기 초반 수학계의 주요 흐름을 짚는 수학 소설인 탓에, 당대 수학계의 핵심 이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주력하지만 단순히 수학 이론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건 아닙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리물로서의 수준도 높습니다. 힐베르트의 강의가 있었던 날부터 독자에게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는 복선에 더해, 범행의 진상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 - 스테파노스의 증명은 범행 직후 발표된 쿠르트 괴델의 논문을 통해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이게리노스의 범행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이 돋보인 덕분입니다.

여러모로 "장미의 이름"과 유사하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책을 숨기고 살인을 저질렀는데, 이 책에서는 이게리노스가 수학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스테파노스의 논문 발표를 막고자 살인을 저지른다는 동기가 매우 비슷하거든요. 다양한 수학 이론을 설명해 독자에게 현학적인 느낌을 제공하는 점, 주인공 외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실제 역사와 맞물려 전개되는 팩션이라는 점도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고요.

그런데 핵심 내용 몇 가지를 제외하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단점인 큽니다.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를 만난다거나, 이게리노스의 결혼과 이혼, 스테파노스가 우연히 그의 전처 및 정부와 엮이는 등의 설정은 핵심 이야기 전개와 별 관계가 없으니까요. 피카소가 기하학에 관심이 많다는 설정이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아비뇽의 처녀들"로 이어진다는 발상은 흥미롭지만, 수학자들이 피카소에게 기하학 강의를 해 준다는 내용은 수학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 작품은 추리, 미스터리물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학 소설"이기에 수학 이론 설명이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지식 전달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시도한 결과물인데 재미와 정보 전달 양쪽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장미의 이름"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레베르테의 작품들처럼 지식을 과시하는 데 치중하는 책들보다는 훨씬 낫네요. 수학에 관심이 있고 추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15/01/23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브렌다 랠프 루이스 / 이경식 : 별점 2점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4점
브렌다 랠프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이런 류 연쇄살인범 관련 논픽션은 그동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많이 읽어왔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의 흥미, 그리고 창작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자료 및 아이디어 확보 측면에서 말이죠. 허나 세계적인 연쇄살인마가 흔한 것도 아닌만큼 몇권 읽으면 충분하기는 합니다. 특히나 미국에서 발표된 책이라면 미국 중심이기에 미국의 유명 살인마들 - 에드 게인테드 번디, 샘의 아들, 나이트 스토커 등등 - 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 때문입니다. 연쇄 살인범의 범죄 행각을 지도에 매핑했다는 제목에서 뭔가 색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거든요. 미드 <넘버스>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수학자 동생이 무작위로 보이는 범죄 행위가 실제로는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수학이론을 통해 밝혀내고 (범인이 범행 장소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숨기기 위해 무작위적으로 범행 장소가 바뀌지만 이러한 무작위는 외려 작위적인 수열을 형성하므로 그 시작점을 수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 범인이 어디 있을지 추론하던 에피소드였죠.

그러나... 지도 매핑은 그냥 범죄 행위를 지도에 그려놓은 것일 뿐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지도가 실려있을 뿐 연쇄살인범들과 그들의 범죄행각을 요약해서 소개해주는 방식은 다른 책들과 대동소이해요.
물론 이 책만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가 별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없는 것 보다는 당연히 있는 것이 낫고 그 외의 도판들, 예컨데 피해자 사진들이 조금 더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괜찮았어요.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비키니 살인마 찰스 소브라즈, 트럭 운전사 연쇄 교살범 폴커 에케르트 등의 연쇄살인마들이 수록되어 있는 점에서는 나름 가치가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씌여졌기에 최근의 범죄, 배낭여행객 살인자 이반 밀라트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워싱턴의 저격수 존 앨런 무하메드와 리 보이드 말보, 베르사체 저격범 이야기가 실려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얼마전 보았던 영화 <툼스톤>의 원작 <무덤으로 향하다>의 범인들 모델로 생각되는 싸이코패스 컴비인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살인마 비태커와 노리스 이야기도 충격적이고 놀라왔습니다.


다른 책들에 비해 소설처럼 조금 더 생생하게 쓰여진 것과 체포와 수사 과정 및 범인들이 체포된 이후 사법거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던가,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던가, 사형을 당했다던가, 아니면 놀랍게도 해당 국가의 형법이 정해져 있어서 석방되었다던가! (안데스의 괴물 페드로 로페즈) 등의 후일담까지 꼼꼼한 것도 특징입니다. 이반 밀라트 차에 탔던 영국인 여행자가 가방과 여권을 모두 버려두고 달아난 사례처럼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경우 의외로 살아난 경우가 많거나, 최소한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허나 장점보다는 제목에 낚인 듯한 기분도 크며 내용도 아주 새롭거나 하지는 않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제 이런 책은 좀 많이 지겹습니다...

그나저나 외국 살인자들은 자칭이건 타칭이건 별명이 있는데 참 기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별명을 붙이면 장난스럽다고 엄청 공격받을 것 같은데 말이죠. 국가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요?

2014/02/10

Q.E.D 큐이디 4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Q.E.D 큐이디 44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튜바와 무덤"

탐정동호회 3인이 등장하는 작품. 그들이 엮인 사건 치고는 놀랍게도 살인 사건이 다루어집니다. 개그  담당인건 여전하지만, "탐정"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에나리의 모습은 나름의 성장이 느껴져서 좋았고요.

그런데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우선, 목격자가 확실한 상태에서 당장 시체만 발견되지 않는다고 범인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목격 증언이 있다면 아무리 알리바이가 확실하더라도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될테니까요. 물론 작품 내에서는 에나리 등의 실수로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설명되고는 있지만, 살인 사건은 경우가 다르죠.

또 트릭도 문제가 많습니다. 경찰이 현장 주변은 빼고 공장만 뒤진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범인이 잠깐의 시간을 이용하여 튜바와 시체를 바꿔치기 하고 튜바를 훼손하여 쓰레기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핵심 트릭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탓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말이지요. 튜바를 부수는 소음은 어떻게 했을지도 모르겠고요.

마지막에 "교살"이라는 살해 방법에 대한 범인의 증언 실수를 이용하여 옭아매는 모습도 발상은 나쁘지 않지만, 전형적인 함정 수사인데다가 딱히 강한 설득력을 지닐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 저는 탐정동호회의 소소한 일상계 이야기가 훨씬 더 마음에 드네요. 그들도 성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진지하고 묵직한 사건에는 별로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Question!"

이혼 조정 신청 중인 두 쌍의 부부와 토마 일행이 일종의 퀴즈쇼에 참가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Q.E.D 특유의 학습만화스러운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 "페르마의 정리" 및 그와 연관된 골드바하의 추측, ABC 예상, 타원곡선 등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으며, 참가한 사람들의 지식을 활용하여 단서를 제공하고 이것을 페르마의 정리와 엮어서 풀어나가는 전개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일종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의 흑막(?)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도 꽤 설득력 높았고요. 아울러 토마가 일종의 '조력자' 포지션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도 조금 이채로웠어요. 수학자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거겠죠.

그러나 기대했던 추리, 퀴즈와 퍼즐을 풀어나가는 재미는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려웠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학습만화로는 최고 수준이기는 한데... 뭔가 좀 아쉽네요. 똑똑한 귀요미 소녀 미오 캐릭터가 낭비된 느낌도 강하고요.

결론적으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재미가 없다고 하기는 뭐하나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추리적으로도 명성에 걸맞는 결과물이 나왔으면 합니다.

2012/11/15

혈액형 살인사건 - 고가 사부로 / 박현석 : 별점 2점

혈액형 살인사건 - 4점
고가 사부로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타이틀의 작가가 쓴 단편집.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초기 형태의 일본 추리 단편물을 접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기에 관심이 가던 책이었습니다. 국내에는 란포 이외에는 고사카이 후보쿠의 "연애곡선" 정도만 소개되어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나름 추리소설은 읽을만큼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추리소설 3대 거성 중 두명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니 많이 반성해야겠네요.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실망이 더 컸습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소설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특기가 과학이었기에 과학을 응용한 트릭을 만드는 데에는 제법 많이 공을 들였지만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대충 넘어간 느낌이에요. 한마디로 수수께끼에는 적합하나 소설로는 부적합한 그런 작가였달까요... 감히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 맞는지 의심까지 갖게 만들 정도로요. 그 외에 지나치게 직역스러운 번역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별점은 2점. 자료적으로는 가치가 있고 쉽게 접하기 힘든 당대 작품이기는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생각됩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혈액형 살인사건"

게누마 박사의 죽음과 가사가미 박사 부부의 자살 뒤 1년 후, "나" 우자와가 사건에 대해 공개하는 형태로 쓰여진 중단편 작품.

혈액형이 중요한 동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게누마 박사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트릭 (밀실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가스 흡입으로 사람이 사망할 수 있도록 한 장치가 무엇인지?)이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함을 풍깁니다. 그야말로 과학 추리 소설이랄까요?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면 초월적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일산화탄소를 액화한다는건 지금 읽어도 신선하고 좋은 아이디어였고요.

그러나 트릭에 비하면 작품 자체는 평균 이하입니다. 우왕좌왕하는 전개에다가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나버리는 탓입니다. 혈액형이라는 동기도 시대를 감안하면 특이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낡아빠졌을 뿐이죠. 작가가 너무 과학적인 설정과 트릭에만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순수한 선의에서 아기를 집에 데리고 오게 된 주인공과 그의 아내, 아기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사립탐정, 그리고 다시 아내와 주인공의 수기로 이어지는 작품.

아기가 왜 주인공과 닮았는지, 아기 어머니가 왜 아기를 열심히 찾지 않았는지 등 소소한 수수께끼가 잘 배치된 작품으로 괜찮은 일상계 소품이라 생각됩니다. 각각 1인칭 수기로 이어지는 전개도 낡은 방식이기는 하나 작품과는 잘 어울렸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

"푸른 옷의 사내"

자택에서 협심증으로 숨진채 발견된 오바마(!) 신조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이야기.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했습니다. 오바마 신조가 죽었다면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상속자 다쿠이치일테고, 그가 오바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는 설정까지 있으니 이야기가 길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다쿠이치가 상속세 때문에 시체를 방조했다는 진상 하나만큼은 조금 독특하나 그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는 평범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덫에 걸린 사람"

빚때문에 발버둥치는 도모키 - 노부코 부부가 각각 고리대금업자 다마시마를 죽일 결의를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무려 500엔이라는 거금을 갑자기 입수하게 된다던가, 지나가던 다케야마가 500엔을 분실한 뒤 우발적으로 다마시마를 죽이게 된다던가 하는 식의 우연치고도 너무 지독한 우연이 연달아 벌어지기 때문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김화백 작품을 보는 기분마저 들 정도에요. 막나가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되잖아요?

죄책감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마지막의 "운명이라는 녀석은 항상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운명이다" 라는 도모키의 대사는 멋지지만 그냥 그 뿐입니다. 별점 1점 이상은 주기 힘든 몹쓸 작품이에요.

"위조지폐 사건"

중학생 화자인 "나"와 동급생 모리 하루오가 친구 도비야마의 고향에 방문해서 그 마을에서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셜록 홈즈 느낌이 가득 나는,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 작품입니다.

탐정역의 모리 하루오가 강아지 발바닥의 잉크를 단서로 하여 절에 방문한 뒤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 진상을 알아낸다는 과정은 셜록 홈즈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쳤습니다. 만약 시리즈가 있다면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어요.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동용으로 창작된 듯한 조금 저렴한 문체와 묘사, 그리고 탐정역인 모리 하루오의 인간적 매력이나 개성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점 등이 점수를 깎아먹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진주탑의 비밀"

경찰과 협력하여 일하는 하시모토 빈이 감쪽같이 가짜로 바꿔치기 당한 진주탑의 행방을 밝혀낸다는 작품으로 역시나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의뢰인의 의뢰와 주요 단서를 놓고 벌이는 탐문 수사,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인물을 모두 모아놓고 벌이는 깜짝 추리쇼까지 완벽하게 고전적이기도 하고요.

허나 사세의 간단한 공작으로 이루어지는 트릭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좀 아쉽네요. 어차피 전문가들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면 사세 입장에서 진주탑을 만들 때 몇몇 진주만 바꿔치기 했다면 훨씬 용이하게 돈을 손에 넣었을 텐데 이런 공작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도 무려 7만 엔이나 되는 거금을 쓴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스타일은 잘 따라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거미"

쓰지카와 박사와 시오미 박사라는 두 박사 간의 알력 다툼과 그로 인해 비롯된 살의에 대한 이야기로 동기는 "혈액형 살인사건"과 좀 비슷하고 트릭은 "웃지 않는 수학자"와 동일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웃지 않는 수학자"에서는 나름 폐쇄 공간에다가 특정 시기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제한 조건이 있기는 하나, 이 작품에서의 연구실 회전은 상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정말로 트릭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인 거미에 대한 광기 묘사도 뭔가 2% 부족할 뿐더러 좀 뻔했고요. 그냥저냥한 당대 분위기스러운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꾀꼬리의 탄식"

명문 화족 후타가와 가의 후계자 시케유키의 죽음, 그리고 상속자 시케타케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써내려간 중단편. 제법 긴 분량인데 시케유키가 사망할 때까지의 전반부, 노무라의 아버지와 시케유키가 남긴 문서로 이루어진 중반부, 시케타케의 정체와 시케유키 죽음에 얽힌 트릭을 파헤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케유키가 일본 알프스를 파헤치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까지의 긴장감은 그럴듯하고, 시케유키를 독살한 트릭도 괜찮은 편입니다. 문제는 진상이 정말로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고 유력 용의자를 급작스럽게 단죄하며 끝내버리는 마지막 결말입니다. 작품을 망쳐버렸어요. 어차피 증거도 없고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겠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너무 안이한 처사였습니다. 최소한 진상은 밝혀줬어야죠. 때문에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호박 파이프"

한 집에서 피살된 일가족, 남겨진 방화의 흔적,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백주강도 사건의 관계자 이와미가 얽혀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본격 추리물. 간단한 암호 트릭, 그리고 방화에 이용된 염산가리와 설탕의 혼합물에 유산을 떨어트리는 장치라는 복잡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전개도 흥미로운 편입니다. 이와미라는 평범한 회사원이 범죄에 어떻게 관계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백주강도가 탐정역을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설득력이 전무하고, 트릭의 과학적 설명은 합당하나 범인이 그렇게까지 정교한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거든요. 그야말로 트릭을 위한 트릭일 뿐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니켈 문진"

묵직한 니켈 문진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된 시미즈 박사의 사인을 둘러싸고 그의 서생인 시모무라와 우치노가 두뇌 싸움을 펼쳐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녀인 야에코를 화자로 하여 전개하는 구조는 독특하긴 하나 이야기의 설득력이 낮습니다. 왜 시미즈 박사가 독가스를 연구했는지, 또 왜 독일어로 그 연구를 기록했는지도 설명되지 않고 비밀을 훔치려는 사람들의 공작도 너무나 허술한 탓입니다. 솔직히 어이가 없을 정도였어요.

순수한 니켈이 자석에 반응한다는 과학 상식을 알게 된 것 이외에는 건질 부분이 전무한, 그야말로 너무한 수준의 졸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2011/06/25

Q.E.D 정주행. 1권부터 30권까지 내맘대로 Best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한 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좋아하는 독서를 마음 편히 즐긴 것도 오래전 일인 것 같네요. 그래서 기분 전환 삼아 쌓아둔 "Q.E.D"를 1권부터 다시 정주행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장 어디를 펼쳐도 마음에 드는"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은 드니까요.

이왕 다시 정주행하는 김에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를 뽑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상계 작품이 적어서 좀 의외였어요. 다른 분들의 선택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베스트 5

4권 - 야곱의 사다리

오늘날 "Q.E.D" 장기 연재의 발판이 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캐릭터는 독특했지만, 다소 뻔했던 이전 에피소드들과 차별화되는, 이른바 수학·과학적 지식이 실제 사건과 잘 결합되면서 만화적 전개를 통해 그 시너지를 극대화시킨다는 "Q.E.D"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이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스케일도 적당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인공생명을 의인화하여 성경 속 이야기와 결합한 전개가 아주 절묘했어요.

10권 - 마녀의 손안에

역시나 "Q.E.D"스러운 명 에피소드입니다. 토마가 10살 때인 MIT 재학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인 샐럼 마녀재판과 현대의 살인사건을 접목한 전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범인이 1년여에 걸쳐 계획한 범죄와 트릭이 최고 수준입니다. 법정 드라마스러운 전개도 좋았고요.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도 최고로 꼽을 만 합니다.

16권 - 죽은 자의 눈물

핵심 트릭으로 시체 감추기 + 알리바이 위장 공작이 등장합니다. 본격물답지만 흔해빠진 설정인데, 트릭의 설득력도 높고 범인의 계획이 꼼꼼하게 짜여 있는 웰메이드 추리물입니다. 토마가 범인을 눈치챈 이유도 깔끔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만화로는 보기 드문 심리 서스펜스를 묘사가 베스트로 선정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마지막 토마의 '사기극(?)' 역시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20권 - 다망한 에나리 씨

탐정 동호회 회장 에나리의 할머니에게 닥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그린 전형적인 일상계 소품입니다. 정말로 별거 아닌 사건을 진지하게 본격 추리물로 구성한 일상계의 왕도! 그 와중에 웃음과 재치를 빼놓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베스트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한 에피소드입니다.

27권 - 입증 책임

학교 내 모의재판으로 배심원제도를 체험하는 행사에 참관하게 된 토마가 과거 실제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는 작품. 

배심원 제도를 이해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역시 "Q.E.D"의 장점인 학습만화스러운 전개가 빛나며, 사건의 맹점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법정물스러운 분위기도 합격점이고요. 마지막에 진상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검찰의 입증 책임 때문에 무죄 쪽에 힘을 실어준 토마의 행동이 역시나 토마답다는 것도 좋았어요. 캐릭터가 이렇게 일관되게 유지되기도 힘든 일이잖아요?

그리고 아래는 아쉬운 가작들. 좋은 작품들이지만 아주 약간 아쉬움이 남아 베스트 5에는 아깝게 선정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입니다.


아깝다, 가작!

9권 - 얼어붙은 철퇴

이미 잊혀진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밝혀낸다는 줄거리인데, 흡사 "용의자 X의 헌신"을 보는 듯한 두 천재 수학자의 대결이 볼만합니다(선·악의 캐릭터가 뒤바뀐 감은 있지만요). 특히 결말 부분에서 카치도키 다리가 다시 열리는 순간의 재회라는 극적 장치 덕분에 굉장히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핵심 트릭인 카치도키 다리 관 속에 시체를 넣는다는 트릭이 별로라서 가작이지만, 전개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11권 - 겨울 동물원

무명 추리작가가 자신이 고안한 트릭으로 사건을 저지른다는 일상계스러운 본격물입니다. 추리작가의 유령이 사건을 끌어가는 유머러스한 진행도 좋지만, 유치한 트릭을 한 번 더 포장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어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토마는 유령의 존재마저 눈치챘던 걸까요?

13권 - 재난의 사나이

로키와 에바 다음으로 출연 비중이 높은 토마의 대학 동기 알렌 브레이드와의 두뇌게임을 그린 에피소드.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장물이기도 한 그림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나 카이타니 시노부 같은 게임 만화 거장들의 작품처럼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17권 - 까마중

영화 촬영장을 무대로 한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트릭 자체는 경찰 수사로 밝혀질 수준이라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설정과 트릭이 작품 속 영화 "까마중"과 병렬로 진행되며 완벽하게 맞물리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트릭만 좀 더 정교했다면 만점을 받아도 될 만한 작품입니다.

24권 - 크리스마스 이브이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엄청나게 바쁜 노래방에서 벌어진 희한한 사건을 그린 일상계 에피소드. 소소하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와 함께 일종의 암호 트릭이 등장하는 등 풍성함이 좋았습니다.

25권 - 여름의 타임캡슐

가나가 초등학교 때 묻은 타임캡슐 속 보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사건의 동기가 설득력 있고,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추억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여운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2011/02/01

웃지 않는 수학자 1, 2 - 모리 히로시 / 윤덕주 : 별점 2점

웃지않는 수학자 2 - 4점 모리히로시/서울문화사

전설적인 천재 수학자 텐노지 박사가 자신의 저택 '삼성관'에서 가족들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모에와 사이카와는 모에의 아버지와 텐노지 박사와의 인연으로 초대받았다. 크리스마스 파티의 흥이 한껏 오른 저녁, 텐노지 박사는 저택 입구의 거대한 청동상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시연했고 참석자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풀기도 전에 텐노지 박사의 며느리 리츠코와 손자 순이치가 차례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사이카와 - 모에 컴비 시리즈입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죠. 국내에는 1996년이라는 국내 추리소설 시장 암흑기에 소개된 탓인지 광속으로 절판되었었습니다. 7~8년 전에 읽었었지만, 얼마 전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첫 완독한 책이기도 하네요.

그러나 예전 감상과 비교하자면 영 아니올시다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트릭과 동기, 그리고 모호한 결말의 세 가지죠. 그 외에도 이상한 번역 등 꼽고 싶은 게 많습니다만...

일단 트릭은 장치 트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교적 참신하고 스케일은 크지만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비현실적인 수준이 도를 넘었어요. 그러한 장치를 만든 이유도 불분명하고 말이죠. 만화였다면 어울렸을지 모르지만, 진지한 본격 추리물에는 그다지 어울리는 트릭으로 생각되진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무대가 된 '삼성관'이 원래 '천문대'였다는 중요한 단서를 너무 대충 넘겨 이야기를 모호하게 만든 것도 공정하지 않은 처사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트릭은 '왜 1호실의 리츠코가 밖에서 죽고 아들인 순이치가 헝클어진 침대 아래에서 죽어 있었나?'라는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는 딱 들어맞고,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동기에요. 범인이 왜 범행을 저지르는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어이가 없을 정도에요. 이후의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 단순한 미움으로 이렇게 오래 범행을 준비한다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지만, 이렇게 때를 기다려 왔다면 왜 불필요한 등장인물인 사이카와 - 모에 컴비가 초대되었을 때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설득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비하자면 완전 범죄에 희생양을 등장시키지 않는 범인의 실수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겠죠...

마지막의 모호한 결말은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의식한 탓일까요? 천재 괴물의 탄생을 알리는 결말로 보이는데, 괴물의 정체와 이러한 결말로 흐르는 이유 자체를 알 수 없기에 작위적으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냥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끝내는 것이 훨씬 좋았을 텐데, 괜히 뒷맛만 찜찜해져 버렸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실제 공학교수이기도 한 저자의 특기를 살린 수학자의 두뇌 배틀이라는 테마와 함께, 앞서 말한 주요 수수께끼의 전개 과정과 중간중간의 수학 퀴즈, 그리고 사이카와 - 모에의 알콩달콩 귀여운 밀당은 볼 만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평균 이하였습니다. 제가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은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예전의 좋았던 기억은 절판된 책을 구했다는 기쁨이 컸던 게 원인이 아니었나 싶군요. 절판된 지 한참 지났지만, 구태여 구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