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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8

이글루스에 바랍니다.

제가 이글루스에 블로그를 개설한 날짜는 2003년 12월 7일로 이글루스 블로그 서비스가 2003년 6월에 시작되었으니, 거의 초창기 유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동안 블로그 서비스를 공짜로 거의 17년간 써 온 것에 대해서는 이글루스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글루스가 한창 인기있고, 유입자도 많았던 호시절이었던 2010년대 초반 역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뭔가 바꾼다고 해서 이용자가 늘어나고, 조회수와 트래픽이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이용자로서 상실감, 문제점을 느끼지는 않도록 지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몇 자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언급하고 싶은건 에디터입니다. 글을 작성해서 올려야 하는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한 툴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글루스 에디터는 멋대로 폰트 사이즈를 정해버리는 버그, 링크 경로를 멋대로 http를 한개 더 붙여 오류를 일으키는 버그와 같은 다양한 버그를 자랑합니다. 모바일 웹 버젼으로는 에디터 입력도 제대로 안되고요. 그 외에, 쓰지도 않는 포토로그 버튼이 아직도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가끔 싸이월드 공감 버튼이 표시되는 등 정말 기본적인 수정과 업데이트가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더해 에디터에서 광고 플랫폼도 잘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아마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은 대부분 구글 애드센스와 같은 광고 플랫폼 도입을 생각하고 있을텐데, 현재 에디터로는 구글 애드센스를 완벽하게 운영할 수 없습니다. 저만해도 크롬에서 쓰면 구글 애드센스 삽입이 불가하며, 기껏 삽입한 광고도 예전 글에서는 때때로 보이지 않는 등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요. 광고 플랫폼 운영만 반자동으로, 제대로 되도록 개편해도, 이용자가 조금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싶네요.
마찬가지로 모바일 앱도 지원할거라면 제대로 개발해서 서비스했으면 합니다. 베타라며 나온지 수년이 지나도록 베타라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모바일 앱을 설치할 이유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결과물이거든요.

밸리의 인기글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지켜보니 정치 관련 글은 꼬박꼬박, 특히 현재 집권 여당 욕하는 글은 한 번 빼먹지 않고 부지런히 인기글로 올라가더군요. 물론 집권 여당을 욕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조회수가 높아서 그 글이 인기글로 올라갈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밸리 인기글은 왜 안올라가나요? 제가 주로 이용하는 도서 밸리는 인기글이 선정된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밸리로 카테고리를 구분해 놓았으면, 밸리별로 조회수 높은 글이 자동으로 인기글이 되도록 시스템을 꾸미는게 당연합니다. 밸리 전체를 통틀어 인기글을 뽑기 때문이라면 밸리별로 인기글이 뜨는 기능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대충 살펴보니 인기글이 있는 밸리는 손에 꼽네요. 한 때 이글루스의 최대 장점이었던게 밸리인데, 이렇게 망해가니 서글프기까지 하지만 이럴거라면 인기글과 밸리를 아예 구분하는게 맞습니다.
덧붙이자면, 혐오스러운 인기글은 두 번 다시 보지 않도록, 보기 싫은 블로그를 차단하는 기능도 있었으면 합니다. 특정 블로그는 정말이지 썸네일조차 보기가 싫습니다.

그리고 추가를 원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백업 기능입니다. 글과 댓글까지 모두 일괄 추출하여 저장하는 형태로 백업했으면 하는데 왜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네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글루스 백업을 위해 개인이 만든 툴들이 몇 개 존재하던데, 저는 아쉽게도 백업에 성공하지 못했었습니다. 저처럼 역사가 오래된 사용자라면 누구든 원하는 기능이라 생각합니다. 이 기능을 위해 유료화가 필요하다면, 지불 용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나마 관심있는 연례 행사였던 올해의 블로거는 꾸준히 진행해 주었으면 하고, 줌 인터넷과 연계하여 좋은 글들은 홍보가 좀 되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운영자가 이 글을 볼 것 같지도 않지만...
마침 엊그제 뉴스를 보니, 줌 인터넷에 새로운 대표가 선임되셨더군요. 이글루스는 줌 인터넷 회사 소개에서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그리고 새 대표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는 블로그 서비스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 기회를 빌어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2020/07/16

어른의 맛 - 히라마쓰 요코 / 조찬희 : 별점 3점

어른의 맛 - 6점
히라마쓰 요코 지음, 조찬희 옮김/바다출판사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쓰 요코의 에세이집으로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다츠가 자신의 식도락 생활을 하이쿠가 아니라 일반 수필, 산문 형태로 써 내려간다면 이런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은근하면서도 섬세한 묘사도 돋보입니다. 특히 "혼자의 맛"은 작가가 리얼 소다츠라는걸 증명하는 글이에요. 자신만의 음식 조합이라던가, 서서 마시는 선술집에서 어른스럽게 술을 마시는 방법, 혼자서 이자카야를 즐기는 법이 실려있는데 각 방법들 모두가 "술 한잔 인생 한 입"의 에피소드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술집에서의 일화나 음식과 관련된 책을 소개하는 글들도 소다츠가 바로 떠오르고요.

그러나 단순한 술꾼, 먹보 미식가의 글만도 아닙니다. 깊은 연륜과 경험이 묻어나는 글들도 인상적입니다. "눈물나는 맛"이라는 제목의 글 구성이 특히나 마음에 듭니다. 글은 와사비 초밥과 고추가 들어간 김치 등 매운 요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소다츠가 먹음직한 아귀 간, 가라스미, 슈토 등 다양한 진미를 열거하며 어른이 되어 알고 먹게 된 맛에 대한 각별한 감정을 이어나가지요. 그 뒤는 어른이 되고 나서 알게된 여러가지 맛이 소개됩니다. 찜통에 찐 무화과에 참깨 소스를 얹은 일품 요리와 같은 대표적인 예가 등장하는건 물론이고요. 또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을 다시 맛볼 때 재회의 기쁨도 크다며 곶감, 톳 등의 맛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글의 마무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렸을 때 먹었던 엄마의 맛입니다. 어른이 조용히 흐느끼게 되는 맛은 바로 그 맛인거지요. 음식에 대한 맛있는 묘사에 살짝의 감동까지 곁들여진 좋은 글이라 생각됩니다.

"깊은 산의 맛"에서 료칸 우쓰오장의 음식을 소개하는 글도 대단합니다. 사진 한 장 없지만, 음식의 형태와 맛이 떠오를 정도로 잘 묘사한 글이기 때문이에요. 산촌의 맛을 표현하면서 '오독오독, 꾹, 섬벅, 바삭, 아삭아삭, 담백, 미끈미끈, 혹은 어떤 것은 쌉싸래하고 어떤 것은 은은히 달고 끈끈하고 아리다.'라고 설명하는 문장처럼요. 이 정도 글 솜씨면 오히려 사진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따라해보고 싶은 레시피도 실려 있습니다. 시금치를 데쳐서 서벅서벅 잘라 물기를 쫙 빼고 으깬 두부와 함께 무친 일종의 나물이 그러합니다. 간은 올리브오일과 소금, 간 후추가 전부라는데 쉽게 따라해 볼 만 하지요. 맛도 좋을 듯 싶고요.
해삼 손질법은 집에서 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억하면 좋겠더군요. 일본 전통 해삼 손질 방법인 '자부리'에 대한 소개인데, 뜨겁게 끓인 녹차에 채썬 해삼을 넣고 재빠르게 휘저어 살짝 데친 뒤 채반에 받치면 됩니다. 녹차 온도는 보통 80도 정도이고요. 이 뒤 유자 식초에 담가 손님에게 내면 됩니다. 이렇게 데치면 오독한 식감이 경쾌해지고 녹차가 해삼 특유의 알싸한 맛을 누그러뜨려 좋다는군요.

간간히 언급되는 음식 관련 정보도 볼만합니다. '로산진의 낫토 먹는 법'은 처음 알았네요. 일단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상태에서 305번, 그 다음 간장 넣고 119번, 이렇게 총 424번을 섞으면 낫토가 가장 맛있다는 설인데 솔직히 말도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저자가 여러 낫토로 실험해 본 결과로는 횟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답니다. 어떤 낫토냐가 더 중요한 거지요.
물의 경도에 따라 다른 맛이 나는 이유를 고찰한 "물의 맛"도 흥미롭습니다. 연수는 수용성 성분을 잘 유출하고, 경수는 미네랄 성분이 많아서 가교 결합이 이루어져 소재를 딱딱하게 만들기 때문에 연수는 일본 요리에, 경수는 유럽 요리에 어울린다고 하네요. 유럽에 스튜나 스톡이 많은 이유입니다. 경수라서 미네랄 성분이 소재와 더욱 잘 결합해서 진한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지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재미도 있으며, 음미할만한 글이 많은 좋은 에세이였습니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크고요.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 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1/02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김태권 : 별점 3점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 6점
김태권 지음/한겨레출판

"십자군 이야기"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김태권이 지은, 육식에 대한 에세이식문화사 서적입니다. 사람이 고기를 먹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왜 다른 생명을 빼앗아 가면서까지 고기를 끊지못하는지? 영양 때문에, 건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답하지만 사실은 맛이 좋다라는게 진짜 이유라는 작가의 말에는 저도 뜨끔했습니다.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으면 고기값이 엄청나게 비싸져서 서민들은 고기를 거의 못 먹게 될 거라는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글들도 인상적이었고요. 

이런 글들을 "오디세이아", "걸리버 여행기", "단테의 신곡"과 같은 서양 고전, "수호전", "청성잡기", "구지필기", "세설신어"와 같은 동양 고전, 토르 등의 신화,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간, 거기에 피터 래빗,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과 최규석의 만화, 현대 시트콤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글도 재미있고 직접 구글 등을 뒤져서 뽑아낸 데이터들도 충실합니다. 또 이야기마다 함께 실려있는 일러스트는 정말 최고입니다. 주제를 잘 나타내면서도 묵직하니, 완성도 높은 그림들이라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소장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주로 공장식 축산과 육식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글들이 많지만, 이와는 별개로 고기를 주제로 식문화와 식재료에 대해 다룬 글들도 제법 많습니다. 기독교도들은 사순절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고 물고기만 먹을 수 있었는데, 17세기 교회가 비버도 물고기라고 이야기하여 캐나다 비버 수가 크게 줄었다는 이야기,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만들 때는 몇 개월동안 닭의 간만 먹었다는 이야기, 일본식 돈가스는 도톰한 돼지고기를 깊은 튀김 그릇에 담가 된 덴푸라처럼 튀겨 내지만, 한국 분식집 돈가스는 재료를 아끼기 위해 프라이팬에 얇은 고기를 튀겨낸게 양국의 차이라는 이야기(증명된건 아닙니다), 고기국수와 돈코츠라멘의 차이, 곱창의 곱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등이 그러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코고'가 무엇인지에 대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시지에 튀김옷과 깍둑썰기 한 감자를 둘러 튀겨낸 감자 핫도그를 이야기하는데, 코고로 불리게 된 이유는 캐나다의 유명한 콘도그 브랜드 이름이 포고이기 때문입니다. 코리안 포고, 즉 코고가 되는 거죠.

방대한 자료 범위 덕분에 좀비가 사람 고기를 먹는 설정과 같이 생각지도 못한 주제도 등장하곤 합니다. 좀비에게 풀린 주술을 푸는 방법이 소금을 먹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소금간을 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인데, 영화에서 한 번 써 먹어 봄 직 해 보이더군요. 

사료를 토대로 한 게 아니라,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도 좋습니다. 미꾸라지와 두부를 끓는 물에 넣고 삶으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들어가 죽는다는 요리법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처럼요.
우리나라는 베트남 포 (쌀국수)가 익숙하고, 베를린에서는 분짜가 널리 퍼진 이유가 냉전 때문이었다는 것도 경험 기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자가 베를린 유학 시절 분짜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에서 글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분짜는 북베트남 음식이었고 포는 남베트남 음식이었는데, 베트남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베트남 청년들이 동베를린으로 유학갔고, 독일 통일 후 그 학생들이 눌러앉아 북베트남 음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외, 개인적으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24마리의 검은 티티새" 관련된 글이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제가 썼던 책 속에도 소개되었던 작품이라서요. 저와는 다르게 검은 딸기 파이가 아니라 소스에 주목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제 책을 김태권 선생님께 한 권 보내 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졸문이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반성도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저를 민망하게 만든건 구글 검색 키워드 등을 추출하여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해서 결론을 내리는 글들이었습니다. 자료를 찾고, 인용할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자료를 만드는 노력과 열의가 저에게는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거든요. 같은 책을 읽고 주제를 뽑아내었는데도 불구하고 글의 완성도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건 변명의 여지도 없는 부끄러운 사실이고요.

하지만 공장식 축산과 육식에 대해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연재물 1회 분량으로 동일 주제를 다루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텐데, 글들을 쪼개지 말고 묶어서, 큰 덩어리로 설득력있게 주장하는게 나았을거에요.
또 당연히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지만 인간이 자연을 잔인하게 대하는건 단지 '식육' 산업에 국한된건 아닙니다. 작게는 애완동물이나 동물원, 넓게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연을 희생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고기에만 집중해서 풀어나갈 필요도 없었고, 그러기에는 너무 비슷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글들과 멋진 그림이 함께 하는 좋은 책이지만, 이러한 이유로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9/26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 별점 3.5점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8점
고영 지음/포도밭출판사

'음식문헌 연구자 고영이 읽고 먹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대로, 음식문헌 연구자인 저자가 본인이 경험했고, 맛보았던 식문화먹거리에 대해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크게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 그리고 "온전한 밥 한 그릇"이라는 세 개의 대 분류로 구분됩니다.
이 중 "아, 침이 고인다"와 "떠나고 먹고 감각하다"에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에서 가치있는 글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인 "온전한 밥 한 그릇"은 주로 저자의 '느낌'과 단상이 가득한,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이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주제가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식문화, 먹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탓이지요. 단순히 이미 널리 알려져있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가 음식문헌 연구자인 덕분에 본인의 연구가 바탕이 된, 깊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오래전 한시와 옛 문헌의 한 토막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첫 글인 "융도, 두 자의 뭉클함"를 보자면, 김려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의 소개와 해설을 토대로 당시 먹거리에 대해 일람하다가 '융도'라는 두 글자에 주목합니다. 융도는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의 접경지대에서 나는 벼를 의미합니다. 이른바 조생종 벼인데, 보리를 먹어 치우고 벼를 수확하기 전 식량의 징검다리 역할과 냉해를 견디는 품종 확보를 목적으로 조선은 세종 때 도입 육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고 소개합니다. 시 한 구절에서 이러한 전문적인 역사 관련 지식까지 풀어내는 그 식견이 사뭇 놀랍습니다.

이 책 덕분에 옛 문헌 속 이런저런 몰랐던 식문화와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많습니다. 세종 때의 문헌 "산가요록"을 통해 우리에게는 일찍이 다양한 김치가 있었다는 소개처럼요. 복숭아 김치, 살구 김치, 수박 김치 등이 있었다는데,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네요.
일본 헤이안 시대 중기 수필집 "침초자"에 소개된 아마즈라와 13~14세기 원나라의 갈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빙수의 원형 이야기, 제빙 기술이 발달하여 1910년대 조선에서도 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나 빙수 먹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빙수 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광수 소설 "무정"에서도 빙수를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와인에 대해 최초로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는 1720년 북경 천주당에서 와인을 맛보고 "소림과 대진현이 또 나를 어떤 방으로 이끌었다. 탁자에 수정병이 하나 있는데, 높이는 세 자(약 30.3cm)쯤이고 술이 떠 있는 듯 담겨 있었다. 술을 따라 내게 권하는데 술맛이 감미로우면서도 상쾌하고 이채로운 향이 코를 찔렀다. 마시고 난 다음에는 그저 조금 취기가 오를 뿐이고 취하지는 않았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호기심이 왕성했던 이기지가 이후 와인 제조법을 물어보아 남긴 기록을 보면, 이 와인은 '포트 와인' 이었습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북경 천주당의 예수회 신부들이 먼 북경까지 포도주를 옮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설명됩니다. 도수가 높아야 쉽게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꽤 그럴듯하지요. 하지만 포트 와인은 높으면 도수가 20도를 넘어가는 제법 센 술이라 마시고 나면 취할텐데, 이기지는 술이 꽤 셌나 봅니다. 이 뒤 다른 자리에서 포도주 세 잔을 거푸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저자의 글은 뒤에 조선 땅에 상륙한 여러가지 외국 술에 대한 글로 이어집니다. 각 글이 항목별로 분리가 되어 있기는 해도, 와인과 브랜디 등 각종 서양 술, 맥주, 사케와 정종, 청주 등의 일본 술,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 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항목만 따로 떼어 놓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술에 대한 미시사 문헌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풍성한 사료를 통해 깊이를 더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냉면 먹방"에서 소개되는 냉면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이야기이기는 한데 당대 여러 기사들을 통해 냉면 먹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조망해 주기 때문입니다. 단지 '겨울에 평양 냉면'을 먹었다는게 전부가 아닌 것이지요. 1936년 "조선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냉면 미각의 절정은 삼복 (더위) 이전' 임이 이미 널리 알려졌습니다. "매일신보" 1936년 기사에서도 여름 관청, 회사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는 불이 날 지경이라고 소개되었다고 하고요. 그러나 지금과 다른 점은, '경성 냉면은 평양 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냉면을 주문하면 20분은 기다릴 각오'를 했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패스트 푸드가 아니었던 겁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을 통해 풀어놓는 우리나라 소금 산업의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굽는 방식의 제법을 사용하였는데, 일본이 조선 강점 시기에 한국 해안에 대단위 천일 염전을 조성한게 대단위 소금 산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금을 만드는 염호가 옛부터 고단하고, 노비나 군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산동 출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이후 중국 노동자들의 파업, 퇴사 이후 1930년대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요. 고되고 힘든데다가 사회적 인식까지 부족한, 지금의 염전 노예 사건의 단초가 이렇게 일본에 의해 강제된 천일염 제조 산업 초창기부터 있었다는게 참 가슴 아픈 사실이네요.

그러나 이렇게 정보 전달 측면에서 우수하며,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는 글들에 비해 저자의 느낌,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은 좀 별로입니다. 저자의 생각 - 식문화와 먹거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해야 한다 - 도 옛 문헌을 통해 먹거리가 빈부에 따라 큰 격차를 보였다는걸 소개하면서, 이런 격차가 그나마 평등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알려주는데 비슷한 주장의 반복이 많은 편입니다. 이러한 격차가 현대에도 이어지는걸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지나치게 과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보 전달 측면의 글들은 별점 4점도 아깝지 않으나, 비슷비슷한 에세이 류의 글로 약간 감점합니다. 저자의 음식 관련 미시사, 문화사 전문 서적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네요.

2016/05/18

SF 영화 - 김종철 외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별점 1.5점

SF 영화 - 4점
김종철 외 지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엮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사)

동서고금의 SF 영화의 대표작들을 시대순으로 훝는, SF 영화 소개 연대기입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엮음' 이라는 명칭 하에 김종철, 이용철, 김봉석, 듀나, 김도훈, 유지선, 이상호 씨가 저자로 참여하였습니다.

머리말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르별로 100여 편의 걸작들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책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은 88편입니다. 수록작 면면을 보면 100편을 채우기가 그리 어려웠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뭐 소개작 중 제가 본 영화는 32편에 불과하니 이래라 저래라 하긴 어렵지만요.

그런데 솔직히 기대에 전혀,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냥 피상적인 개인 감상에 그치는 글이 있는 식으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못한 탓이 큽니다. 개중 최악은 "사구"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냥 거대한 실패작이다라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낼 뿐이에요. 저는 아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거대한 실패작이 왜 SF 걸작이랍시고 소개된답니까? 책의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이 수록된건 필자가 여러 명 때문이다? 핑계에 불과합니다. 책의 취지에 맞게 왜 그 영화가 선정되었는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등 모든 글들이 동일한 포맷으로 작성하도록 명확한 가이드를 줬어야 했어요.

물론 소개된 영화가 왜 SF 영화사에서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짚어주는 글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이 역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의 재탕에 불과한게 많다는 점이지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가 노출된 유명 작품일수록 그 정도가 심합니다. "매트릭스"가 대표적입니다. 어떤 내용이 언급될지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더라고요. 스탠리 큐브릭, 제임스 카메론, 존 카펜터, 폴 버호벤, 뤽 베송의 작품들 소개들도 대체로 그러했고요.

마지막으로 도판이 부실하다는 점도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소개에서 작품의 아름다운 미술을 찬양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반드시 도판이 필요했다 생각되는데, 이 책에서는 영화 포스터조차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에요. 저작권 문제가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상상력을 비쥬얼로 표한한 시각효과가 SF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유사한 책의 사례를 볼 때 솔직히 직무유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참고할 수 있는 사진은 물론, 보다 상세한 소개에 무료 감상이 가능할 경우 방법까지 소개해주고 있는 몇몇 블로그들(이글루스의 예를 들자면 사자왕 님 등)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다행히 건질게 없는건 아닙니다. 영화제의 이름을 걸고 쓴 책다운 독특한 기획은 괜찮았거든요. 여러 거장들 - 린 타로, 가네코 슈스케, 더글러스 트럼블, 토미노 요시유키 장 지로 (메비우스) - 과의 인터뷰가 개중 백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더글러스 트럼블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어떻게 특수 효과의 세계에 뛰어들었는지, 어떤 영화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 왜 더 이상 영화를 감독하지 않는지 등이 담담하게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는 말에 "애니메이션을 절대 좋아해서는 안 된다. 좋아하면 그 틀 안에 갇혀 버리게 된다."라고 답한 것도 인상적이고요. 저는 절대 동의하진 않지만...
SF 영화에 대한 컬럼들도 꽤 재미있는 편입니다. 특히나 리메이크에 대한 글은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아울러 제가 보지 못했던, 그리고 잘 몰랐던 영화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긴 합니다. 개중 몇개 뽑아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환송대": "12 몽키즈"의 원형. 30분짜리 단편으로 스틸 사진을 연결해서 만들었다는 형식도 독특할 것 같이 기대되네요.
  2. "세컨드":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SF의 선구자적 영화라는데 엔딩이 무척 궁금합니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남자가 전 부인을 다시 만난 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3. "흡혈귀 고케미도로": 일본산 SF인데 소갯글만 읽어도 황당합니다. 당연히 관심도 가고요.
  4. "사일런트 러닝": 숨겨진 SF 영화의 걸작을 단 한 편만 꼽으라면 이 영화를 꼽겠다는 도발적인 서두, 만약 이 영화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SF 영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북 하나를 통째로 날린 것이나 다름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스타 워즈" 사이의 연결 고리다라는 마지막 글만으로도 흥미를 잡아끄는 작품.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군요.
  5. "죽음의 중계": 대부분의 병이 퇴치된 세계에서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을 TV로 생중계한다는 플롯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무려 1980년에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할 따름이에요. 스포일러이기 때문인지 엔딩이 소개되지 않았는데 결말이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6. "슈퍼 에이트": JJ 에이브럼스가 만든 스필버그 식 모험담이라죠? "구니스" 등과 비슷한 작품일 것 같은데 언젠가 때가 되면 딸아이와 보고 싶어집니다.

이렇듯 장점이 없지는 않으나 앞서 말씀드린 단점이 더 커서 좋은 점수를 줄래야 줄 수 없네요. 90년대 "키노"의 전성기처럼 책이나 잡지 외에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더라면 나름의 가치는 분명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책입니다. 웹진 컬럼으로 해당 영화 정보가 링크로 걸려있는 형태였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말이죠. 단지 영화 소갯글 모음에 15,000원이라는 가격도 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SF 영화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싶다! 정도의 매니아가 아니시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긴, 그 정도의 매니아시라면 이 책에 실린 정보들 정도는 이미 알고 계실테지만요.

2018/03/11

아주 오래된 서점 - 가쿠다 미츠요, 오카자키 다케시 / 이지수 : 별점 4점

아주 오래된 서점 - 8점
가쿠타 미츠요.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이지수 옮김/문학동네

원제는 "古本道場"입니다. 제목에 걸맞게 작가 가쿠다 미쓰요가 헌책 전문가 오카자키 다케시로부터 헌책에 대한 수련을 받는다는 에세이 모음으로, 오카자키 다케시가 지정한 특정 지역 헌책방에서 '미션' 에 따른 헌 책을 구입하는 여덟 번의 '수련'을 그리고 있습니다. 미션에 따른 가쿠다 미쓰요의 헌책방 투어와 그 결과를 평하는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이 한 세트이고요. 

가쿠다 미쓰요와 오카자키 다케시의 에세이들은 모두 재미있게 읽어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기사,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하필이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글을 써 버렸으니 이거 참,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죠.

두 명의 저자 중 오카자키 다케시는 헌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론과 의견을 전해주는 '선생님' 역할이고, 가쿠다 미쓰요는 가르침을 받아 따르는 '학생' 역할입니다. 그래서인지 헌책 관련한 이야기는 오카자키 다케시 쪽 글이 더 기억에 남는 게 많네요.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일단 헌책방에 있는 헌책은 '장서'라는 주장입니다. 일반 서점의 책은 반품이 되지만 헌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인이 한 권 한 권 구입한 그야말로 '남의 책'이라는 의미로요. 여태껏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딱히 신경 써서 책을 다루지도 않았었는데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또 헌책을 가격으로 보지 말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꾼이 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최우선으로 고르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인데 정말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요. 헌책방 투어를 실제 다녀본 경험으로는 절판된 책이나 비싸게 팔 수 있는 희귀본에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고, 그래서 결국 필요없는 책을 사곤 하니까요. 저도 집에 왠지 귀할 것 같아서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많은데, 이 역시 반성해야 할 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고 싶을 때 안 사면 다음은 없다!' 라고도 하니 결국 사는 사람이 신중하게 생각하여 판단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헌책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데, 사진집을 읽고 소장하는 이유를 설명한 글도 근사합니다. '다양한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더욱 올바르고 깊게 세계를 이해하려는 무한에 가까운 시도다'라는 소설가 겸 사진작가 가타오카 요시오의 글과 함께, 좁은 시야를 넓히기 위한 용도로 산다고 하는데 그럴듯했어요. 물론 이 정도 의도라면 요새는 인터넷으로 보아도 충분할 것 같긴 합니다만.

이러한 정보 중심의 오카자키 다케시의 글과는 다르게 가쿠다 미쓰요의 글은 헌책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 정보보다는 개인 감상 위주입니다. 그런데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묘하게 정확해서 놀랐습니다. 특히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는 데 능숙해서 확실히 작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어요.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지만 저 역시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 참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책들도 볼거리입니다. 일본에서도 오래전에 절판된 책들도 많은 등 국내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국내 출간된 책들도 절판 상태가 많고요. 하지만 소개가 멋진 몇몇 책들은 구해보고 싶어지더군요. 헌책방을 소개한 글에 소개된 헌 책을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야 한다는 것도 뭔가 낭만적이고요. 가쿠다 미쓰요가 구입한 대충의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표시가 제가 찾아본 국내 출간작인데, 8권이 전부입니다).

진보초 - 이구치 분슈의 그림책 2권, 에토 준 "개와 나", *"싫어싫어 유치원", *"꼬마 모모", 다나카 고미마사 "야시의 여행", 노사카 아키유키 "서서 읽으면 안 되는 책", "비록 가와시마 요시코"
다이칸야마, 시부야 - 노미야마 고지 "사백 자의 데셍", "셀피시", *"그레이엄 그린 선집 9 (제 3의 사나이, 떨어진 우상, 패자가 모두 가진다", *콜린 윌슨 "현대 살인 백과", 이토 히로미 & 우에노 지즈코 "노로와 사니와", 다네무라 스에히로 "사기꾼 칼리오스트로의 대모험"
도쿄 역, 긴자 - 팀 오브라이언 "실종", 홋타 요시에 "다리 위의 환상", 무라마쓰 쇼후 "여경", 기시다 리오 "롱 굿바이", 구사카베 엔타 "정말로 사랑했다면", 스다 사카에 "전후 풍속 천일 야화", 쿠사마 야요이 "신주 사쿠라가쓰카"
와세다 - 가이코 다케시 "베트남 전기", 요시다 겐이치 "기묘한 이야기", *하야시 후미코 "삼등 여행기", 단 가즈오 "풍랑의 여행", 고보리 진지 "요괴를 보았다", 다나카 고미마사 "간음문답", 한스 헤니 얀 "열세 가지 으스스한 이야기", *"엘리엇 시집", 가이코 다케시 "시부이", "대화록, 현대 만화 비가"
아오야마, 덴엔초후 - "인민 사원", 도요시마 요시오 "에밀리안의 여행", *앙드레 지드 "여인들의 학교", 기무라 모토노리 "영혼이 고요한 때에", *"타고르 시집", 오야 소이치 "세계의 뒷길을 가다 - 남북 아메리카편"
니시오기쿠보 - 세토우치 하루미 "다무라 도시코", *마르케스 "사랑과 다른 악마들", 다케다 유리코 "말의 식탁", "도시에 널리 퍼진 기묘한 소문", 아유카와 노부오 "시대를 읽다", "하쿠슈 가요집", 나카가미 겐지 "이야기 서울", 다나카 고미마사 "아아, 수면 부족이다"
가마쿠라 - 가이코 다케시 "최후의 만찬", 후카자와 시치로 "고슈 자장가", "브로마이드 쇼와사", 오카베 이쓰코 "부처님과의 대화", 다쓰미 하마코 "손수 기른 나의 요리", 다무라 류이치 "저스트 예스터데이", 나가이 다쓰오 "홍차의 시간", 오사라기 지로 "시인"
다시 한번 진보초 - 미시마 유키오 "무예를 숭상하는 마음", 쇼와 전쟁문학 전집 11 "전시하의 하이틴", 가미사카 후유코 "스가모 프리즌 13호 철문", 요시카와 에이지 "남방기행"
그 외에 확실히 '일반인' 으로서 헌책방을 대하는 시선도 남 같지 않아서 좋았는데, "노라쿠로" 전 권을 사는 노년의 신사를 보며, 늙어서 "유리 가면" 이나 "더 파이팅" 전 권을 한 번에 살 것을 꿈꾸는 장면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일반인 취향이 짙게 느껴져서 더욱 반가왔거든요.

이렇게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고, 무엇보다 헌책방과 헌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일본 도쿄 소재 헌책방을 주로 소개하고 있으며, 소개된 책방들도 지금은 문을 닫은 곳이 많다는 지역적, 시기적 한계와 소개된 책들 대부분이 미 출간작이라는 이유로 약간 감점했지만, 저와 같은 취향의 분들 모두에게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저 역시 한때 결혼 전에는 홍대 입구의 '숨어있는 책'을 비롯한 헌책방 투어를 정기적으로 떠났을 때가 있습니다. 당시 이런저런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많이 샀었죠. 지금은 결혼 후 이사도 했고, 근처에 헌책방도 없으며, 그나마 가는 곳도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알라딘 헌책방이 전부라 예전과 같은 보물찾기 느낌이 들기는 힘든데 옛날이 그립기도 합니다.

2023/03/18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공지.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안내

서비스 종료에 대한 소식은 알고는 있었지만 포스팅이 늦었네요.

2003년 12월 7일에 개설하였던 이 블로그의 수명도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군요. 그나마 다행인건 어느정도 이사가 완료된 상태라는 점입니다. 이미 2010년에 관리자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는 권한 오류 사고 때 의구심을 가졌었고, 2013년 SK에서 서비스가 독립한 이후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토로할 때 고민하면서 블로그 글을 조금씩 옮겨왔거든요. 현재 약 90% 넘게 글을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새 거처는 구글의 블로그스팟이며,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글 내부 deep link를 수정하지 못하는 점, 기존 댓글과 트랙백 등을 가지고 오지 못하는 점 등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원본 글이나마 살려 놓았습니다. 앞으로 제 글은 이글루스 폭파 시점까지 이곳과 블로그스팟 두 군데 모두 올릴 예정이에요. 100% 이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정리 등으로 새로 글을 올리기는 힘들겠지만요.

사실 이글루스의 서비스 종료도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위의 글들은 물론이고, 작년에 이런 글을 썼었지만, 아무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걸 보고 거의 확신했어요. 오래가지 못할거라는걸요. 오히려 제 생각보다는 서비스가 오래 버틴 편입니다.

물론 끝을 예감하고는 있었다고 해도, 섭섭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7천일이 넘는 기간 동안 3천 7백개가 넘는 글을 올린 이 블로그는 그야말로 제 인생의 한 축이나 다음이 없었으니까요. 

블로그를 운영하는 동안, 4개의 회사를 차례로 옮겼고, 결혼도 했고, 소중한 딸 아이도 만났으며, 형과 합작했던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의 발표와 출간이 있었고, 제 이름으로 된 첫 책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을 펴냈으며, 추리 소설 리뷰도 1,000편을 달성하는 등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글루스의 빅 웨이브였던 이글루땅 열풍 참여처럼 온라인 상으로 나눈 수많은 분들과의 이야기와 함께했던 경험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이전에 썼던 글처럼, 서비스를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해준다면 유료화에도 참여할 생각이 컸는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이미 서비스 종료는 결정된 사항이니 어쩔 수 없지만요(솔직히 일부 지저분한 정치 글을 밸리에서 더 안봐도 된다는 건 좋네요).

이글루스에 둥지를 트셨던 모든 분들께서 모쪼록 이사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EST님이 보내주셨던, 제 이글루스를 대표하는 이글루땅 홈즈 버젼을 올리며 글을 마칩니다.

2024/04/19

미술관에 간 과학자 - 미우라 가요 / 지종익 : 별점 3점

미술관에 간 과학자 - 6점
미우라 가요 지음, 지종익 옮김/아트북스

과학자가 쓴 미술 작품 해설(?) 책은 전에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 역시 유명 작품을 저자의 전문 분야로 분석하는 책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는건 맞습니다. 다만 그게 화학이나 물리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더라고요.

심리학으로 그림을 분석한 책은 처음 보았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사진 등을 통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장면의 묘사가, 실제 눈을 통해 지각할 수는 없다는건 놀라왔어요. '초점'이 빛나간걸 확인할 수 없다는 것처럼요. 상식적으로 바라보는 사물에 초점이 맞을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인데, 여태까지 생각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시간과 날짜 등에 따라 다른 색의 변화를 그려낸 아래의 모네의 루앙 성당 연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이걸 눈으로 확인하는건 무척 어렵다는군요. 인간의 눈은 조명이나 그림자를 배제하고 원래의 색으로 보게끔 만들어져 있는 탓입니다. 즉, 모네는 '뇌'로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입니다! 여태까지 빛의 변화를 인상파 작가들처럼 느끼지 못했던 저의 둔감한 센스를 탓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당연한거라니, 위안이 됩니다.
잭슨 폴록의 그림이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연구도 신기했습니다. 프랙탈 차원 값은 1에서 2까지로 2로 갈 수록 복잡해지는데, 폴록의 초기작은 인간이 가장 기분 좋음을 느끼는 1.45 정도였다가 말년으로 갈 수록 수치가 상승해서 1950년 작품은 최대치라 할 수 있는 1.9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냥 물감을 뿌린게 아니라 굉장히 고민하고 연구하여 그렸다는건데 어떻게 연구해야 저런걸 물감을 뿌려 완성할 수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니네요. 이를 통해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예술이 아닌 이유도 알 수 있었고요. 연구와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그림에서 안정, 불안감을 느끼는 요인 - 광원이 왼쪽에 있는게 안정적임 - 이라던가 그림속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 방향 - 왼쪽에서 오른쪽 -,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방향에 따른 감상자의 생각들, 광택이 나는 장식품을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에 따른 '투명시' 설명 등 그림의 여러 요소들을 이용한 연구들이 가득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예시 작품들이 흔히 보지 못했던 독특한 것들이 많아 좋았습니다. 인간의 시각은 복수의 정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콜라주해서 얻었다는걸 호크니의 사진 콜라주를 통해 알려주는게 대표적이에요. 호크니는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 콜라주 작품도 발표했는지 몰랐네요.

다만 도판이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어렵고, 어떤 내용은 정보와 내용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설명도 제법 되고요. '인간의 눈에는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에 반응하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있다. 이중 빨간색을 지각하는 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전형적인 빨강에 해당하는 파장 760나노미터가량의 빛에 대한 시세포의 반응은 거의 0에 가깝다. 빨강은 눈길을 사로잡는 색이지만 눈의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색이라는 것이다. 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의 절정은 656나노미터 정도로, 우리에게는 황색으로 보인다. 즉,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의 세 시세포는 청, 녹, 적이라는 빛의 삼원색에 반응하는 수용기가 아니다. 어떤 색으로 보일지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반응하는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그 결과, 보일 리 없는 빨간색이 어떤 색보다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는 글처럼요. 빨간색이 왜 선명하게 보인다는건지, 저는 이 글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글 자체가 친절하게, 쉽게 쓰여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목차 구성도 불만스럽습니다. 앞서 광원 등의 위치로 심리적 안정감과 시간의 흐름이 정해진다는 설명은, 글을 반대로 읽는 일본이나 아랍권에서의 예를 비교해주면서 설명해 주는게 당연히 좋았을거에요. 하지만 일본의 예는 한참 뒤에 따로 소개되어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워낙 좋은 내용이 많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서구권, 그리고 일부 일본 작품만 연구에 활용되었는데, 우리 작품도 이런 시각으로 연구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9/07/21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의 교과서 - 요시다 히로시 / 동소현 : 별점 3점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의 교과서 - 6점
요시다 히로시 지음, 동소현 옮김/다산4.0

일본의 기획자가 알려주는 책을 내는 방법론입니다. 왜 책을 써야 하는지?에서 시작해서 어떤걸 써야 하는지, 어떻게 출판사와 기획자를 설득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저도 그동안 책 한 권 내볼까 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린 적이 있는데 제 생각이 얼마나 짧고 어설펐는지 알게 되었네요. 이 책에 따르면 제가 어떤 걸 써야했는지부터 불분명했더라고요.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위해 나만이 가진 가치와 테마를 찾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로 시작하지만 상세한 방법론이 뒤를 잇습니다. 우선은 '책으로 쓸만한건 좀처럼 있을 법 하지 않은 일, 즉 'USP' (Unique Selling proposition)이며 나만의 USP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질문은 다음의 3가지'입니다.

  1. 어렸을 때 부터 좋아했던 일은? (지속성)
  2.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는 일은? (집중)
  3. 남들이 별로 하지 않는 일 중에 하고 있는 일은? (탁월함)

여기서 핵심은 세 번째 질문입니다.

쓰고 싶은 분야를 찾는 5개의 고리는 

  1. 돈 : 진귀한 수집품 관련 등
  2. 시간 : 오랜 시간을 들여 쌓은 경험
  3. 전문성 : 면허나 가업, 지역 정보 등
  4. 네트워크 : 정보와 인맥
  5. 라이프워크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 열정

이고요.

그리고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를 알아야 하며, 자신의 인생을 포지셔닝 해야 합니다. 현재를 알고 목표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으며, 내 위치를 알아야 어떤 글을 쓸지가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위치에 해당하는 타입은 카리스마 형, 대가형 (전문가 스타일), 장인형 (달인 스타일)의 세 가지가 있는데 전문가는 노하우를 갈고 닦으며 연구하는 연구자, 장인은 한 가지 일만 파고들어 목적을 달성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카리스마형은 자기계발서, 대가형은 비즈니스 관련 도서(수단이나 방법 방식, 실무, 학문, 정보를 알려주는), 장인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스킬이 담겨 있는 전문 서적이 어울리고요. 그럴듯하죠?

이에 따라 제가 쓸만한 분야, 방향을 뽑아본다면, 저는 어렸을 때 부터 추리 소설 읽는 걸 좋아했습니다. 또 남들이 별로 하지 않는 블로그에 서평 올리기를 16년 넘게, 매년 수 십권씩 꾸준히 하고 있고요. 즉, 저의 USP는 추리 소설 서평이 되겠지요. 쓰고 싶은 분야 항목에서도 오랜 시간을 들인게 각종 도서들의 서평입니다.
하지만 이를 자기 계발서나 정보서로 포장하기는 조금 힘들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스킬이 담긴 책으로 써야 할겁니다. 추리 소설 중심의, 다른 책들 서평을 결합한 그런 책이요. 예를 들자면 "추리 소설 속 요리" 같은 식이겠지요.

이렇게 쓰고 싶은걸 찾은 뒤, 어떻게 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집니다. 작가의 매력적인 프로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기획서"가 가장 중요하다는군요. 그리고 직접 "황금 기획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무려 17개 항목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죠.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 다음의 순서입니다.
'제목, 부제, 메인 카피, 책의 내용, 저자명, 저자 프로필, 감수자, 감수자 프로필, 기획 의도, 기획 배경, 예상 독자, 유사 경쟁도서, 유사 경쟁도서와의 차별 전략, 사양, 원고 마감 예정일, 기타 희망사항, 마케팅.'
여기서 제목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에요. 잘 나가는 책의 비결은 제목이 80%, 장정 (제본 + 디자인)이 20%라고까지 하니까요. 보다 자세하게는 '제목은 0.3초, 부제는 3초, 카피는 30초만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고 합니다.

그 뒤에도 글을 쓸 때의 법칙 등이 이어집니다. 여기서는 '처음과 마지막 세 줄을 정성들여 써라.' 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런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많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가장 큰 수확은 책을 쓰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여러가지 답이 있지만 '책은 공간적인 확장성 뿐 아니라 시간적인 확장성도 있다. 20년이 지나도 50년이 지나도 자녀와 손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게 가장 와 닿았습니다. 책을 통해 친지와 후손들이 저를 추억할 수 있다면, 책은 꼭 한 권 정도 쓸 만 할겁니다. 절판이 되거나 잊혀질 수 있지만, 최소한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계속 남아있을테니까요.

이렇게 책을 내야겠다는 의욕에 불을 지폈다는 점에서 별점은 3점입니다. 실용적인 가치도 높은 만큼 책을 내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정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9/12/21

몇 년 전의 크리스마스 이벤트 기록 발굴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리뷰를 쓰다가 이 책에 관련되었던 이벤트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당시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공식 페이지의 글은 이미 내려갔지만, 티스토리에는 아직 관련 글이 남아있더군요.

오토 펜즐러의 아이디어를 본 따 시작된 이벤트이기에, 참가 기준도 비슷합니다. 대상이 유명 작가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말이죠.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아요.

  1. 대상_미스터리를 즐겨 읽는 형제자매님이라면 누구나
  2. 분량_원고지 7매 이내('파일->문서정보->문서통계'로 확인)
  3. 조건
    1. 미스터리적 요소를 표함할 것
    2. 배경은 크리스마스 혹은 크리스마스 이브일 것
    3. 이야기에 미스터리 도서의 이름, 혹은 서점 이름이 들어갈 것(이때 ‘특색 있는 소규모 서점’일 경우 가산점 있음)
  4. 응모요령_작성한 글을 이 아래 댓글로 달면 됨.
  5. 마감_2016년 12월 25일 신데렐라 무도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당시 저도 졸문을 응모했었는데, 그랑프리는 아니지만 다행히 입선은 해서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선물로 받았었습니다. 참고로, 북스피어의 총수인 마포 김사장님의 단평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오에 공지를 올리려 했는데 다들 너무 잘 써주시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고심하느라 늦었습니다. 송구해요.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생각해 내다니’ 하고 솔직하게 감탄했습니다.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나무랄 데 없는 문장이나 구성을 따진다면 hansang 님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마땅하겠지만 막판 유머와 책 제목을 이용한 센스 면에서 김충현 님의 이야기가 제 마음에 쏙 들었어요.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웃게 되더군요.

그리하여 당 이벤트의 그랑프리는 김충현 님! 감축드려요. 2017년 내내 북스피어의 신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블로그 댓글로 응모하고, 분량도 원고지 7매 이내라는 초단편이라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데, 좋은 평을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렇다면 제 졸문은 과연 어떤 내용이었는지? 제가 응모한 글은 아래의 글이었습니다. 아주 조금 수정했지만 큰 틀은 같아요.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광호가 회사를 그만두고 추리 소설 전문 서점 '외천루'을 연지 1년여가 흘렀다. 그러나 서점 운영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다. 매월 매월 적자가 아닌 달이 없었다. 광호는 휴일도 없이, 거의 매일 새벽같이 서점에 나와 밤늦게 퇴근했다. 아내에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고객을 기다리고, 매출을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핑계였다. 광호의 꿈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아내, 유치원만 겨우 다닐 뿐 다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 하나 보내지 못하는 어린 딸아이를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국문학도 시절부터 연인으로, 함께 작가가 되자고 결심했던 아내만 보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티를"은 오래된 말일 뿐, 당연히 매출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광호는 어김없이 새벽에 출근하여 서점 문을 열었다. 서점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큰 덩치에 온몸을 둘러싼 듯한 긴 코트, 목 위까지 추켜올린 목도리, 마스크에 털모자라는 독특한 외모의 손님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걸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도 컸다. 긴 코트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코트 속 옷은 빨간색 계열이었고 구두도 징 박힌 장화였다. 손님은 서점을 잠깐 둘러보더니 곧바로 광호에게 다가왔다. 큰 덩치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는 상당히 중후해서 듣기가 좋았다. 가까이서 보니 상당히 연배가 있는 어르신이었다. 손님은 바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이 좋은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등등. 대화는 서서히 길어졌다. 광호는 손님이 어떤 책을 좋아할지 고민해서 답을 하였지만, 손님이 물어보는 것은 광호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광호가 지금 읽고 싶은 것이 어떤 책인지였다. 광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 그리고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드디어 광호는 깨달았다. 정말로 지금 원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손님이 마지막에 광호가 추천한 작품을 계산하며 한 말 때문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니 책보다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네"

손님이 떠난 후 광호는 서둘러 문단속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불필요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리라. 여유를 가지며 삶을 뒤돌아 보리라. 이건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깐.


오늘 소방서로 새벽 교대 근무를 하러 가던 중 옆집 아이 아빠가 한다는 서점에 들렀다. 한파 주의보가 발령된 추운 날씨였지만 아내가 아기 엄마 걱정이 많기 때문이었다. 싹싹하고 착해서 딸 아이 같아 가깝게 지내고 있던 차라 무시할 수 없었다. 혹 가게를 열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새벽같이 가게 문을 연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무리 책이 좋아도 가족만 하지는 않을 테니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더 좋을 나이라고 한마디 던지고 왔다.

어쩌다 보니 산 책은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줘야겠다. 제목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야기는 못 해 주겠지만 어르신 부부 사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나? 뭐, 아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2023/04/30

낮의 목욕탕과 술 - 구스미 마사유키 / 양억관 : 별점 2점

낮의 목욕탕과 술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지식여행

<<고독한 미식가>> 원작으로 유명한 구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 제목 그대로 낮에 목욕탕에 갔다가 술을 먹는 10군데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와 장단점은 같은데, 장점은 <<술 한장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를 연상케하는 인생관이 글에 잘 녹아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 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그야말로 소다츠스러운 생각이 담뿍 담겨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생각이지만 소다츠라면 그야말로 격렬한 동의를 보일 법한 발상이에요.
맛깔나게 잘 쓴 글이기도 합니다. 특히 비유가 아주 찰집니다. 한낮에 타는 완행 열차를 '어른용 원숭이 열차 (아마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유원지 코끼리 열차겠죠?)'에 비유하고, 목욕탕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들어가는건 '낯선 땅의 야만스러운 공기 속에 나 몰라라 하는 이방인이 되어 몸을 던져 넣는 스릴이 느껴진다'는 식이에요. 이 중에서도 최고는 오래된 목욕탕 안젠탕을 블루스에 비유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폐자재를 때는 목욕탕은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현재와 맞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갈 데 없는 괴로움, 끝도 없이 찢어지는 마음을 우스꽝스럽게 절규하는 블루스가 느껴진다는건데 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 비유가 직접 작사한 가사가 어우러지는데, 이 부분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음식의 군사>>에서 오뎅 먹는걸 제갈량의 진법에 비유하는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니까요.
벚나무들을 스쳐갈 때 차량 전체가 벚꽃색으로 물든다는 등 묘사력도 좋고, 특히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찰집니다. 이건 소개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장점, 비유와 묘사력, 그리고 소다츠스러운 감성이 잘 살아있는 명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을 타고 넘어간 맥주가 이윽고 위 안으로 스며든다.
아, 맛있어.
나는 지금, 온몸으로 맥주를 받아들이고 영혼을 다 바쳐서 맞아들인다.
사랑, 그런 느낌이다.
바보인가, 바보라도 좋아. 아니 바보라서 다행이다.
지혜 따위 필요 없다. 옳고 그른지 따질 것도 없어. 작전도 포기. 내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뭐.
꼰대 아저씨 주제에, 목욕탕에서 다시 태어나 신제품으로 변신한 내가 전면적으로 맥주를 맞이한다.
지금, 맥주는 내 몸 안으로 무혈입성을 달성했다.
나의 모든 세포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열광한다.
"맥주 만세!" "맥주 만세!"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물론 임금님은 나다. 어리석은 임금. 벌거벗은 채 왕관 하나 달랑 쓰고 당나귀 귀를 쫑긋 세워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백성을 향해 손을 흔든다.
다시 한 모금, 쭈욱 들이킨다.
황금빛 액체가 목을 치달려 내려간다. 이미 길은 닦였다.
취기라는 아련한 벛꽃색 공기가 머리 쪽으로 출렁 흐르기 시작한다.
행복하다. 이것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인생일꼬.

지극히 소다츠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에 더해 "술꾼이란 결국 마시고 만다. 반드시 마신다. 술집이 보이지 않으면 편의점 주류 코너라도 돌진한다."는 말까지 더하면 그냥 소다츠에요. 

목욕에 대한 찬양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반년 만에 목욕을 하게 된다면,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가 눈을 뜨면 빛이 있었다. 악마가 사라진 세계가 수증기 속에 펼쳐진다. 성스러운 탕 안에서 벌거벗은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묘사는 목욕을 부활과 천지창조에 비유한건데, 이거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싶네요.
만화가답게 같은 사물을 보아도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내는 것도 재미 요소입니다. 일본식 목욕탕이 옛날 신사 스타일 지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일본인에게는 목욕이 종교와 가까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요.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목욕탕에 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는데, 그럴듯합니다.

새롭게 알게된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상식들도 있습니다. 긴자에 목욕탕이 있다는 이야기처럼요. 작가가 전설의 만화잡지 <<가로>>에서 데뷰 후 겪었던 편집장 나가이 씨와의 에피소드 - 돈이 없으니 맛있는걸 대접할 수 없다. 그래서 목욕탕으로 먼저 데리고 가서, 싸구려 술집의 맥주를 몇 배 더 맛있게 마시게 하려고 했다 - 도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겠지요. 물론 원고료도 주지 않으면서도 힘들면 죽어버리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나가이 씨는 영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씁쓸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전 책처럼 자기 생각과 철학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도 여전합니다. 지극히 꼰대스러운 사고방식이 넘쳐나는데,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건 목욕탕 손님들을 관찰하며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는 부분입니다. 재미를 떠나서 그들을 폄하하는 듯한 - 예를 들어 '큰 인물이 될 것 같지 않은 느낌, 어딘지 모르게 좀스럽다' -설명을 덧붙여 조롱거리처럼 삼는건 솔직히 불쾌했습니다. 나이 좀 들었다고 남을 폄하할 권리는 없으니까요. 여러모로 배려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스러움 가득한 글이었습니다.
음악 파트너 구리 짱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로 비유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리 짱이 이 글을 읽으면 굉장히 불쾌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런 글을 서슴없이 쓴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본인도 바보로 비하하지만, 자신을 비하한다고 남을 비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기대했던 음식 측면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목욕'에 더 집중하는 탓입니다. 꼬치구이 가게 <<만페이>>의 고기가 들어있지 않다는 소프트 햄버그스테이크만 처음 들은 메뉴라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어육 소시지를 다져 만든 햄버그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한번 쓱 읽기는 괜찮은 에세이이지만 구태여 찾아 읽을만한 글은 아닙니다. 이와마 소다츠가 누군지 모르신다면 아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0/07/06

삼성 스마트폰은 승리자의 꿈을 꾸는가 - 경쟁자로는 가능하다

 저희 형이 쓴 글입니다.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 퍼 옵니다. 원문은 여기

삼성에서 신형 안드로이드 폰 갤럭시 S가 나왔다. 옴니아 1과 옴니아 2라는 초대형 자책골이 터진 게 엇그제 같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신문, 잡지, 그리고 파워 블로거들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아이폰 대항마가 나왔다며 난리 브루스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대항마 타령이야 어찌 됐건, 갤럭시 S가 괜찮은 제품이란 건 사실인 것 같다. 동시에 삼성 스마트폰에 대한 기대심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지금 이 정도 되는 제품을 만들었으니 다음엔 더 멋진 걸 만들겠지? 그래, 맞아, 조만간 아이폰 4를 떡실신시킬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 갤럭시 S는 SPC5111 CPU를 쓰고 있는데, 이건 애플의 A4 CPU와 사실상 같은 CPU다. ARM의 Coretex A8을 기반으로 인트린시티에서 설계한 것이다.
ARM의 coretex는 그 구조상 1Ghz를 넘기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인트린시티는 CPU 다이에 메모리 컨트롤러와 메모리를 내장시키 등의 개선을 통해 그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다. A4 CPU 개발 당시 5500만 달러를 애플과 삼성이 공동 투자했다고 한다. 삼성이 갤럭시 등 자사 스마트폰에 (A4와 동일한 설계의) SPC5111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7/5 일부 문구 수정)

문제는, 인트린시티를 애플이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그까짓 흔해빠진 ARM CPU 설계업체가 뭐 그리 중요하냐며 시큰둥하게 중얼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인트린시티 A4 CPU는 그 설계상 멀티 코어 확장이 가능하며, 최대 8개 코어까지 얹을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애플이 멀티 코어 CPU를 탑재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요란한 선전을 벌일 때, 삼성전자 마케팅 팀은 싱글 코어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썩혀야 하는 난관에 부닥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물론 그때까지 삼성전자가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을 것이다. Coretex A9이 됐든 뭐가 됐든 그만한 성능의 최신형 CPU를 수급해 와서 우겨넣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경쟁사도 다 사서 쓸 수 있는 CPU나 GPU를 이용해 봐야 무슨 특장점이 있을까?
글쎄, 별로 없을 것이다.

[소니 침몰]의 저자가 지적했듯이, 범용 부품을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수평 분업형 사업에선 가격 경쟁력 외에 다른 부가 가치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가격 경쟁력이라고 하면 중국 업체를 따라가기 어렵다. HTC 같은 데만 하더라도 엄청난 구매력과 저가 노동력을 무기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애플은 PC업계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했던 시절, 자신들만의 특장점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그리고 파워피씨 CPU, MacOS(클래식), MacOS X 등을 내놓았다. 이러한 차별점을 특장점으로 받아들이고 부가 가치로 인정한 사람들은 애플의 빠가 됐고,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윈도우 PC를 사거나 또는 애플의 까가 됐다.
몇몇 애플 까들은 애플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자사 OS를 고집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시시한 이유 때문에 몇 년이란 시간과 수억 달러의 개발비를 들여 OS를 만드는 멍청한 회사가 어디 있을까?
애플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는 확실한 부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다른 수평분업형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이 쓸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플은 모바일에 진출한 이후로도 이러한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독자적인 OS에, 독자적인 앱 스토어에, 독자적인 기타 등등...... 이젠 독자적인 CPU까지 만들어 넣으려 하고 있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경쟁사도 쓰는 CPU와 공짜 OS, 통신사가 만든 앱 스토어에 의지하고 있다. 애플은 고사하고 HTC와의 차별점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아, AMOLED 디스플레이? 확실히 눈에 띄긴 띈다. 하지만 그걸 넣으면 가격이 졸라 비싸지는데?
자칫 잘못하면 1, 2년 안에 삼성전자는 내세울만한 특장점이라곤 삼성 로고밖에 남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부닥칠지도 모른다.

피쳐폰 분야에서는 사소한 기능 추가나 사소한 부품 개선이나 사소한 UI 변경만으로도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선 그런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다. 다들 엇비슷한 부품을 쓰는 상황에서는 1) 가격 경쟁력 2) 부가 가치 중에서 하나라도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둘 다 있으면? 승리자가 된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아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글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한데..... 삼성이 애플보다 먼저 인트린시티를 인수했다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아졌겠지!

이 글에 덧붙이자면, 삼성이 다른 제조사에 비하면 비교 우위에 있는 부분은 있습니다. 상기 글에 따르면 애플은 독자적 OS, 독자적 서비스 플랫폼 (스토어)와 메인 CPU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은 낸드플래시와 LCD를 확보하고 있지요. 제조사에 다년간 근무한 경험으로는 낸드플래시와 LCD 단가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가장 원가 비중이 높은 품목이며, 이 두 가지 품목에서라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애플 수준의 강력한 경쟁력을 삼성폰이 확보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OS와 서비스 플랫폼은 구글과 MS라는 다른 경쟁사가 이미 잘 만들어 놓았잖아요? 메인 CPU까지 확보했더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삼성이 이 정도로 흔들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강력한 경쟁자로서의 지위는 계속 유지할 수 있겠죠.

물론.... 애플보다 "최적화" 측면에서 뒤지는 부분을 극복하기 위한 개발비 부담, 한발 늦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변수가 되겠습니다만...

2022/03/05

미스테리아 3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5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알라딘 온라인 중고로 미스테리아 36호를 사다가 곁다리로 구입하였습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관심이 없던건 '少年'이라고만 적혀있는 뭔지 모를 특집 때문이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였습니다. 제목의 소년은 "20세기 소년"에서 따온 것으로, "20세기 소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오사카 만국박람회, 그리고 올림픽과 1970년대 전기 소설의 유행을 다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잘 모를 정도로 두서없는 글들입니다. 전기 소설에 대한 부분만 괜찮았는데, 차라리 이 부분만 조금 더 깊게 파고드는 특집을 꾸미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뒤이은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라며 휴가 여행에서 생기는 사건들을 다룬 글은 완전 별로입니다. 앞의 글들과 맥락이 맞지도 않았을 뿐더러, 소개되는 작품 절반 이상이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들인 탓입나다. 소개라도 다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나마 여기까지는 추리 문학 애호가로서 참고 볼만한 내용이기는 했는데, 영화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27페이지에 달하는 리뷰와 분석은 지루함의 끝판왕이었습니다.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없는 영화 리뷰가 재미있을리도 없지만,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소개될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이 영화가 정통 추리물이거나, 혹은 그 쪽 장르에 부합하는 영화일까요? 그 외의 글들도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쓰는 글과 코드가 비슷해서 좋아하는 정은지 작가의 '미스터리 속 음식 이야기'가 이번에는 피터 윔지 시리즈 전반을 다루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많있습니다. 저도 미스터리 속 샌드위치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부자연스러운 죽음"에서 샌드위치가 결정적 단서라는 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자책으로 출간된 모양인데, 이번 주말에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특집과 인터뷰, 리뷰 등 기사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 정도? 중고책으로 저렴하게 구입해서 별다른 내상은 없기는 한데, 앞으로는 특집이 별로면 절대 구입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록 단편의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해피엔딩" 서미애

이트 폭력을 그린 단편입니다. 전기 충격기로 디지털 도어 잠금을 풀 수 있다는 생활 상식(?) 말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습니다. 전개가 너무 뻔한 탓이었습니다. 도무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이 살인하는 법을 배우다." 곽재식 

1949년, 탐정은 친분이 있던 이 선생님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이 선생이 완전범죄 비결을 탐정에게만 - 관객들에게 알려주면 완전범죄가 늘어날거라는 이유로 - 알려주고, 탐정이 비결은 그럴듯했다고 인정하며 마무리되는 행사였다. 그 뒤 누군가 탐정을 납치했다. 완전범죄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탐정에게 협박과 고문을 가했고, 탐정은 '거래'를 위해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유명한 해결사 황금지네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나타난건 복수를 위해 황금지네를 쫓던 사채업자 용산쌍룡이었다....

해방 직후를 무대로 해결사 황금지네, 황금지네에게 원한이 있는 사채업자 용산쌍룡, 정체불명의 남자와 탐정, 완전범죄에 대해 떠벌이는 전직 형사 이선생 등 기묘한 등장인물과 완전범죄 좌담회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뭔가 만화같은데, 이런 설정을 잘 살린 묘사만큼은 일품이긴 합니다. 특히 가난하지만 입담하나는 최고인 탐정 캐릭터 묘사가 괜찮았어요. 이 선생이 황금지네였다는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완전범죄 계획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 일종의 살인 대행업을 조금 키운 형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다크 웹 형태로 운영한다는 "디 아더 피플" 속 설정과 별로 다르지도 않고요. 양념 정도라면 모를까, 비중있게 가져갈 설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죄자들끼리 쫓고 쫓기는 구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배치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범죄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3시 정각" 코넬 울리치 

시계 장인 스텝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뒤, 그녀를 지하실에 설치한 폭탄을 터트려 죽일 계획을 꾸몄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조금씩 화약을 모으고, 장치를 만들어나간 끝에 마지막 D-day에 맞춰, 지하실에 잠입해 자명종을 셋팅했다. 그러나 스텝은 집에 들어온 강도들에 의해 지하실 기둥에 묶이는 신세가 되어버리는데....

스스로 설치한 시한 폭탄 타이머가 눈 앞에서 움직이는걸 보는 상황의 묘사가 실로 일품인 작품입니다. 왜 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시)가 서스펜스 스릴러의 제왕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명편이에요. 지하실에서 아내의 불륜이 사실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가스 검침원과 공놀이하던 꼬마를 통해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의 빌드업이 특히 대단했어요. 희망을 아주 약간 주었다가 곧바로 빼앗아버리는 장면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스텝이 급작스럽게 강도들에 의해 갇혀버린다는 작위적인 설정, 그리고 결국 스텝은 미쳐버렸고, 아내가 화약을 모르고 버린 탓에 폭발은 없었다는 다소 진부했던 결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2020/06/13

미스테리아 2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23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엘릭시르에서 출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추리 전문 잡지로 2019년 3월 출간된 과월호입니다. 특집이 "명탐정 코난"이라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알라딘에서 중고를 발견해서 저렴하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에 가깝습니다. 과월호로 산게 다행이다 싶더군요. 특집인 "명탐정 코난"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탐정 코난"이 "소년탐정 김전일"의 대 히트로 기획되어, 당시 신인 만화가였던 아오야마 고쇼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첫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는 구성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나무위키 등 인터넷 상에 있는 각종 정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코난" 속 주요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의 유래에 대한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마다 이 특집 전체 분량만큼을 할애하고 있는 나무위키에 비하면 턱도 없는, 그야말로 기본 정보만 알려줄 뿐이라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만화 속 에피소드를 클로즈드 서클,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독살, 마술사, 알리바이, 미스터리 투어, 물리 트릭의 8종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내용은 더 별로에요. 일단 분류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클로즈드 서클과 미스터리 투어는 이야기의 '상황' 이고,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알리바이, 물리 트릭은 '트릭' 이며, 독살은 방법, 마술사는 직업이라 아무리 보아도 동일한 수준의 분류가 아닙니다. 주요 소재를 끄집어 내었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키워드를 도출한 뒤 관련된 추리 소설 등을 풀어놓는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도 않고요. '마술사'를 이야기하는데 마술사 탐정인 그레이트 멀리니 인용이 없는 등 내용도 부실합니다. 이런건 아무래도 저자 편의에 따른 특집 기사 페이지 보충용 글 뭉치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듭니다. 저만 해도 이런 키워드에 '변장'이나 '축구' 를 추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건 금방 할 수 있거든요. 변장이 등장하는 범죄물은 수도 없고, 축구는 "파리의 밤은 깊어" 정도만 당장 떠오르지만, 다른 스포츠 물도 인용하면 충분히 한 꼭지 글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무의미한 키워드 도출말고 코난에 대해 의미있는 컬럼이나 분석이 실리는게 더욱 좋았을겁니다. 추리 만화계 전반의 흐름과 함께 코난이라는 작품의 위치를 짚어주어도 좋았을테고요. 이 특집은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특집 기사 외에도 책 소개라던가, 드라마 작가인 도현정 작가 인터뷰도 이번 호는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도현정 작가 인터뷰는 두 번째 핵심 기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이기는 한데, 드라마들 전부를 보지 못했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드라마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내용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기사와 글이 없는건 아닙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속 음식들을 작품과 함께 재미나게 소개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은 언제나처럼 포만감을 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법의학을 통해, 상세한 과학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 과거 사건을 소개해 준다던가, 옛 사건을 기록한 논픽션들도 마음에 드는데 이 중에서도 1950년대 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의 화재 사건은 몰랐던 사건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 방화인지, 정말 실수인지, 누군가의 음모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어요.
"겨울 여자"를 쓴 조해일의 범죄 소설 "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한 글도 인상적입니다. 대중 소설의 1인자가 추리, 범죄 소설의 수법을 차용하여 사회파스러운 작품을 일찌기 발표했었지만, 작가 스스로도 한계를 느낀 범작에 머무른 이유를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해방 후 20세기까지 한국 추리 소설의 한파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작가 송시우의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는 엄지 척! 입니다. 작가의 단편집에 등장했던 서행물산 총무부 과장 임미숙이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인데 일상 속에서 벌어진 비일상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빚어진 범죄를 일반인 임미숙이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행물산의 문제아 신입사원 추예나의 집을 찾아간 임미숙이, 그녀의 집에서 나타난 수상한 남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추예나의 건방진 전화를 받고 진상을 깨다는 부분이 백미에요. 간단한 암호 트릭인데, 그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득력은 충분했습니다. 다른 시리즈 작품을 꼭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실리아 프렘린의 "정말 필요한 경우"는 오싹, 불쾌하면서도 서늘한 반전이 있는 일종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입니다. 80이 넘은 독신 노처녀가 공짜 전화를 놓는게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를 그리고 있는데, 앞 부분의 복선과 함께 하는 반전은 꽤 그럴싸 했습니다. 빼어나지는 않아도, 평균은 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가스등"은 히치콕 영화로 유명한 작품 시나리오를 3부작으로 나누어 1부를 싣고 있는데, 영화를 한 번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진진하더군요.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서스펜스만큼은 명불허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다른 장점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특집 때문에 구입했는데, 특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음에 들었던 논픽션들만 별도로 출간되기를 기다리는게 훨씬 낫아 보이네요.

2016/06/29

이 사람을 보라 - 마이클 무어콕 / 최용준 : 별점 2점

이 사람을 보라 - 4점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시공사

어렸을 때부터 기묘한 관심병과 자기 비하로 점철된 찌질한 인생을 살아온 칼 글로거는, 서점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과학자가 타임머신을 만든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 여행자 지원 제안은 거절했지만, 오랜 시절 알아온 연인같은 섹스 파트너 모니카의 변절 후 즉흥적으로 시간 여행에 자원하여 예수가 십자가 형을 받기 1년 전으로 향하는데...

걸작으로 소문난 작품이죠. 이런 저련 소개 자료를 통해 관심이 가던 차에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카톨릭 -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이건 직전에 읽었던 "양심의 문제"와 비슷합니다. 허나 "양심의 문제"가 카톨릭 세계관의 확고부동함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어떻게보면 신성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정 반대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과학적 설정과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고요. 시간 여행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 등 과학적 설정은 작품의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거든요.

하지만 확실히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난 듯 싶습니다. 외계인이 인류를 창조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에서 '예수는 미래에서 시간여행을 한 관심병자 찌질이였다'는 내용이 충격적으로 다가올리 없지요. 작품이 발표된 1969년 당시였더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 때만큼 종교적 신념이 굳건하지도 않으며 더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에 딱히 대단한 이야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칼 글로거가 예수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것도 쉽게 예측 가능하기에 의외성을 찾기도 힘들었고요.

아울러 후대 전해진 성경 그대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건 오류라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을 구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성경 그대로야 하기 때문에 참수되도록 방치하고, 수제자들은 이름을 보고 뽑고, 제자 중 유다를 시켜 자기 자신을 고발케 하는 등의 모습이 그러한데 이는 타임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성경 그대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상식이기도 하고요. 외려 그가 역사를 바꾸었더라면 더 큰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칼이 정상인은 아니며 이 행동을 통해 그가 신이 아니라 가짜 흉내내기에 불과했다는 주제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번지수가 좀 틀렸습니다.
그나마도 완벽하게 성서 그대로도 아니에요. 특히 가장 어려울 부활을 대충 넘어간 것은 아쉽습니다. 그의 시체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는 사람들에 의해 시체가 도난당해 사라졌기에 생긴 소문이라고 설명되는데 많이 부족했습니다. 후대에 그렇게 받아들였을 과학적인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고전 걸작답게 의외성을 포기한다면 생각할거리가 많긴 합니다. 예수의 신성을 모욕했다기 보다는, 그도 그냥 인간이었을 것이다는 의견에 시간 여행을 접목한 새로운 견해로 볼 수 있으니까요. 칼의 전 연인 모니카의 다음과 같은 대사처럼요. "과학 의식이 훨씬 더 우월한데 그걸 제치고 종교 의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종교는 지식의 그럴싸한 대체물이야. 하지만 이제 그런 대체물이 더는 필요가 없어. 칼, 과학은 사고 체계와 윤리를 형성할 수 있는 굳건한 바탕을 제공해준다고. 과학은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자신들이 쉽사리 알 수 있어 이제 더는 천국에서 내려주는 당근이나 지옥에서 휘갈기는 채찍 따위는 필요 없단 말이야." 말 그대로 과학이 종교를 만든 것이나 다름 없다는 해석인데, 작품 설정과 연계해 보면 나름 새로운 맛이 느껴집니다. 과학이 세상을 지배했던 60년대의 분위기도 잘 알 수 있고요.

작가의 필력도 대단합니다. 특히 우울증과 자기 혐오에 사로잡힌 무능력한 관심병자 칼 글로거에 대한 장황한 서사와 묘사가 압도적이에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천박한 양 극단을 오가는 묘사는 확실히 영국 작품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시간 여행 후 칼 글로거가 예수로 거듭나는 과정과 칼 글로거의 일대기를 병행하여 전개하는데, 중간중간 심리 묘사와 대사를 적절히 끼워넣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요셉의 아들 예수는 정신지체아였고 마리아는 창녀와 다를바 없는 여자였는 식의 약간의 반전도 나쁘지 않았으며,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를 It's a lie, It's a lie, It's a lie로 풀어낸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현대의 랩으로 응용해도 라임이 딱딱 맞아 떨어지죠. "잇츠어라이, 잇츠어라이, 옐로이옐로이, 사박타니..."

결론내리자면 장, 단점이 명확한 작품입니다. 물론 단점의 가장 큰 요인은 늦게 소개된 탓이라 마냥 감점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심의 문제"보다 나은건 분명하고요. 허나 개인적으로는 "도라에몽"보다 나은 점을 모르겠더군요. 역사적 가치와 의의가 더 큰 고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SF 팬이시라면 한번 읽어봐야 할 작품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16/07/01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 강명관 : 별점 2점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 4점
강명관 지음/휴머니스트

안경, 망원경, 우리거울, 자명종, 양금의 다섯 가지 물건에 대한 미시사 서적입니다. 언론을 통한 책 소개도 마음에 들었고, 조선 미시사 서적 분야에서는 유명하신 강명관 교수의 책이기도 해서 집어들었습니다. 

책은 저 다섯 가지 물건이 조선에 어떻게 유래되었으며, 당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사료 중심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다섯 가지 물건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를 끌만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안경은 임진왜란 전후로 처음 수입되었으며, 조선시대 최초로 안경을 쓴 왕은 숙종이다("승정원일기"기준), 안경을 쓰고는 어른 앞에 나설 수 없는 법도가 생겼다는 등의 정보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는 덕분입니다. 이익이 안경을 만들어 자신에게 시력을 되찾아준 '구라파' 사람들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조선의 천재라 할 수 있는 홍대용의 여러 활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망원경, 거울, 자명종, 양금 항목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이며, 그 중에서 북경 천주교당을 방문해서 처음 본 파이프 오르간의 동작 원리를 곧바로 이해하고, 바로 조선의 음악을 연주해서 들려주었다는 에피소드는 통쾌함마저 느껴졌습니다(보아라! 이것이 조선 남아다!). 1640년 이민철(백강 이경여의 서자)이 10세 (혹은 9세)에 자명종의 이치를 깨우치고 대나무못과 기름종이로 자명종의 모형을 제작했다는 일화에서는 입이 떡 벌어졌고요. 지금으로 따지면 이쑤시개와 마분지로 자명종 모형을 만든 셈인데 참으로 대단합니다.

조선에서 이러한 문물에 대해 어떻게 분석했고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이후 어떤 조선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실생활에 도움이 된 안경 외에 실용화가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었어요.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고가의 사치품을 향유할 수 있는 경화세족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질 뿐더러 유학에서 이야기하는 완물상지의 도덕적 경계에 걸려 진지한 탐구를 하지 않은 것, 농업 외 생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현실, 중국에 의해 재정립된 서양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망원경은 천문 관측과 전쟁에 도움이 되지만, 조선에서는 천문 관측, 전쟁에 따른 수요가 없었기에 널리 퍼지지 못한 것이지요. 시계 역시도 농사가 주 산업인 조선에서 시간을 분초단위로 알 필요가 없었던 탓이 컸습니다. 농사 지으려면 절기만 알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사료 중심의 나열이라 읽기 힘들고, 재미를 느끼기도 어렵거든요. 예를 들면 '누구누구의 글을 보면 이 물건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글은 누구누구의 무슨 글을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꼬리를 물고 글의 유래를 찾아 나가는 식의 내용이 많습니다. 좀 더 요약해서 읽기 쉽게 정리했어야 했는데 나열 형식으로 이어 쓰고 있어서 분량도 많고 지루했습니다. 실생활과 관련된 에피소드라도 많았더라면 조금 재미있었겠지만, 실생활에 영향을 준 물건이 거의 없다보니 그렇게 쓰기도 힘들었을 테고요.

또 앞에 290여페이지에 걸쳐 다섯 물건에 대한 상세한 유래를 풀어내지만,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20여 페이지 남짓한 맺음말에 전부 요약되어 있다는 단점도 큽니다. 보고자료로 따지면 별첨이 앞에 있고 보고 핵심이 맨 뒤에 있는 느낌이에요. 앞부분의 사료적 가치가 빼어난건 분명하지만, 웬만한 일반 독자는 맺음말만 읽어도 내용 이해는 충분해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저자의 방대한 자료 조사에 따른 결과물은 분명 경이롭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책은 아닙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서 말씀드린대로 맺음말 정도만 읽어보셔도 충분할 것입니다.

2018/02/16

패러독스의 세계 - 다무라 사부로 : 별점 2.5점

패러독스의 세계 - 6점
다무라 사부로/전파과학사

오래전 사랑했던 추억의 전파과학사 문고가 저렴한 가격의 ebook 대여 행사를 하길래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행사가 끝났네요.

이 책에는 연인의 사고사 후 자살하려던 천애고아 미다 타로가 우연히 외계인 퀴리그인에게 납치된 후, 퀴리그 별에서 가정교사 및 기술자로 일하며 여러가지 수학 논리를 설명해 주었던 과거에 대한 일종의 수기와 "웃지 말 것 - 웃음과 패러독스", "읽지 말 것 - 수학과 패러독스" 라는 두 개의 챕터로 여러가지 패러독스 상황을 관련된 이야기들로 설명해 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미다 타로의 수기 부분은 솔직히 왜 이런 기묘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외계 행성 설정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설명 가능한 부분이었거든요. 그래도 초-중학생 수준의 외계인 아이들에게 수학과 논리를 가르친다는 설정 덕분에, 수학에 기반을 둔 내용이 많음에도 아주 어렵고 심오하지 않아서 이해가 쉽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가르치는 내용들이 제목 그대로 "패러독스" 관련된 역설 이야기가 많아서 퍼즐을 푸는 듯한 재미도 넘치고요. 각종 공작이나 퍼즐, 심지어 미다 타로가 외계인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요술' 관련된 도판까지 도판이 생각 외로 많은데 이 역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단순한 즐거움 외에도 현학적인,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 역시 컸습니다. "12 척의 배를 가진 부자가 장남에게는 1/2을, 차남에게는 1/4을, 막내에게는 1/6을 주기로 했는데 1척이 침몰해버렸다. 그런데 이웃에서 배를 빌려와서 장남에게 12척의 1/2인 6척, 차남에게는 1/4인 3척, 막내에게는 1/6인 2척을 주니 모두 11척이라 이웃에게 배를 돌려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라는, 오래 전부터 궁금했지만 답을 몰랐던 수학 문제의 답을 알게 된 것 처럼요. 정답은 애초부터 잘못된 유언이라는 것입니다! 1/2 + 1/4 + 1/6 이 "1" 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명이 여관에 숙박비로 1인당 1만원 씩 지불했다. 그런데 여관 주인이 서비스로 5천원을 깎아 주었다. 그러나 이를 돌려주던 종업원이 2천원을 슬쩍하고 3천원만 돌려주었다. 각자 1만원 씩 냈는데 1천원씩 돌려 받았으니 1인당 낸 돈은 9천원이고, 3명이서 2만 7천원을 내었다. 여자 종업원이 2천원을 슬쩍한걸 더하면 2만 9천원. 1천원은 어디로 갔을까?" 라는 문제도 이 책 덕분에 속 시원하게 정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관 주인이 받은 돈은 2만 5천원이고, 종업원이 가로챈건 2천원이라 이는 손님 세 명이 지불한 돈과 일치합니다. 여기에 깎아준 3천원을 더하면 처음의 3만원이 됩니다. 이 돈에 또 슬쩍한 돈 2천원을 억지로 더해서 발생하는 오류지요.

이러한 퍼즐같은 이야기 외에도 정통 수학에 기반을 둔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앞의 두개의 수의 합이 다음 수가 되는 피보나치 수열의 이웃한 3개의 수는 항상 한가운데 수의 제곱과 양 끝 두 수의 곱은 언제나 1만큼 다르다' 라는 사실 등 새롭게 알게 된 이론도 많고요.
'큰 원의 원 둘레와 작은 원의 원 둘레가 1:1로 대응하더라도 길이는 똑같다고 할 수 없다' 는 이유 등 몰랐던 수학 이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좋았습니다. "1/3 + 1/3 + 1/3 은 1인데 1/3은 0.333333333..... 이라 1/3을 더하면 완벽한 1이 되지 않는데?"라는 문제에 대한 답도 미력하나마 깨우칠 수 있었고요.

수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논리 퍼즐도 대미를 장식할 만 합니다. 아주 인상적이었기 상세하게 소개해 드릴께요. 일단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 개의 문이 있는 방이 있다. 한 방은 정답, 다른 방은 오답이다. 방에는 언제나 사실을 말하는 정직 족, 언제나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 족으로 이루어진 별에서 온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어느 부족인지는 모른다. 이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한번만 질문할 수 있다. 그들의 답은 "팔" 또는 "다아" 중 하나이다. 이 "팔"과 "다아" 중 어느 쪽이 yes이고 어느 쪽이 No 인지는 알 수 없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하고, 답은 어떻게 되는가?" 입니다. 논리 퍼즐로 한참 고민해도 됨직한 멋진 이야기죠? 이 책에서는 놀랍게도 이를 수학 공식화하여 설명해 줍니다! 내용 중 "동치" 개념과 교환율, 간략화 공식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공식으로 "왼쪽의 문이 정답입니까? 라고 질문을 받으면 당신이라면 "팔" 이라고 대답합니까?" 라는 답이 도출되는 과정은 놀라왔습니다. 수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지요. 여러분들도 이 답이 맞는지는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미타 타로의 수기와 비교한다면 이어지는 "웃지 말 것 - 웃음과 패러독스" 부분은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습니다. 여러가지 패러독스를 다양한 글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라쿠고나 잡지의 유머 등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는건 좋지만 너무 장황한 탓입니다.
물론 유머, 우스개 들에서 패러독스 이론을 끄집어 내는건 대단했고, 유머만 소개되는게 아니라 체스터턴의 단편과 "라쇼몽"이 인용되는 등 볼거리가 많긴 합니다. 그래도 글 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도판이나 다른 보조 장치가 필요했어요. 거짓말 관련된 패러독스가 내용의 대부분이라는 점도 아쉬웠고요. 마지막의 "읽지 말 것 - 수학과 패러독스"에 제목처럼 수학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기는 한데, 그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도입부에서 칸토어의 정리를 쉬운 집합 형태로 바꾸어 설명하는 부분은 재미있었지만, 이외에는 패러독스를 수학으로 설명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론 설명 비중이 더 크거든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읽을만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책의 가치를 번역이 반 이상 깎아먹고 있는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수학 이야기인데 어떤 항목은 번역된 글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책 자체는 별점을 3점 이상 주고 싶어도 번역 때문에 도저히 2.5점 이상은 주기 힘드네요.
수학을 공부하는 중학생 정도라면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라 생각되어 수학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리고 싶은데, 번역 때문에 선뜻 권해드리기 어렵군요. 조금 현대적으로 각색해서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2016/03/15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차양현 외 : 별점 2.5점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6점
차양현 외 지음, 서용남 그림/성안북스

딴지영진공 팟캐스트를 글로 옮긴 책입니다. 오랫만에 본가에 방문했는데 있기에 집어왔지요. 왜 있나 했더니 제 형님께서 저자 중 한명이시더군요.
하여튼, 총 8개의 테마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각 테마에 해당하는 영화들에 대해 다양한 저자들의 전문가 수준의 에세이가 실려 있고요. 일종의 영화 평론 에세이집이지요.
수록된 글들은 딴지일보 명성에 걸맞게 모두 기본은 해 줍니다. 저자들 모두가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전문가들인 덕도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헤비조의 O.S.T에 대한 글들, 짱가의 영화와 심리학을 엮은 글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헤비조의 글은 글로만 읽어도 음악이 듣고 싶게 만드는 대단한 내공의 글솜씨에 해당 분야 전문성이 잘 결합되어 있어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허나 재미라면 무언가에 대해 엄청나게 씹어대는 글들도 빼놓을 수 없겠죠. 수다도 뒷담화가 재미있듯 이런 류의 글들은 기본 재미가 보장되니까요. 대표적인 것은 "theme 2. 거장"입니다. 이 시대의 거장 서세원과 심형래를 다룬 글로, 거의 막장에 가까운 두 사람의 영화 인생과 몰락을 구 딴지일보 스타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작품들도 친숙해서 더 좋았습니다. 서세원의 "납자루떼"를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텐데, 그 중 한 명이 저랍니다! 기억나는 대사는 "보이스 비 엠비셔스! 젊은이여 엠비씨를 보라~!"였다는… (시시하죠?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theme 5. 방화"에서 "대한민국 방화 걸乞작선"이라는 주제로 "천사몽"과 "맨데이트"를 처절하게 뭉개는 글도 아주 즐거웠습니다. 두 작품 모두 실제로 감상은 안 했지만 익히 명성만 들어왔는데, 글만 읽어도 가관이더군요. "주글래 살래"나 "클레멘타인" 같은 전설급 작품들이 언급되지 않은 건 의외였지만요.

하지만 이러한 재미에도 불구하고, 몇몇 글은 현 정권과 엮어 까려는 의도가 지나쳐 조금 짜증났습니다. 슈퍼 히어로 이야기 속 정치적 함의를 찾아내는 글 정도까지는 괜찮았지만, 이후 글들은 억지스러웠어요. 예를 들어 "혹성탈출: 반란의 서막"에서 주전론자 코바를 극우에 빗대며 현 정권의 실책을 이야기한다던가, "겨울왕국"의 엘사 인기를 은둔형 외톨이와 연결하며 일베와 엮는 과정, "괴물"을 세월호와 엮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저도 현 정권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풍자와 억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이야기는 방송 당시 사고가 일어난 시점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글로 옮길 거라면 보다 상세한 설명이 덧붙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전문가들의 영화 관련 에세이라는 점에서, 특히 헤비조의 O.S.T 관련 글만큼은 추천할 만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게다가 이 책을 구해 읽을 정도라면 방송도 들었을 확률이 높은데, 방송 외의 가치는 잘 모르겠습니다.

덧: 살인마를 다룬 영화를 분석하는 글에서 "조디악"을 소설 원작이라고 설명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사실은 실존했던 조디악 킬러에 대한 영화죠.

2011/11/27

계간 미스터리 2011.가을 -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별점 3점

계간 미스터리 2011.가을 - 6점
청어람M&B 편집부 엮음/청어람M&B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 커뮤니티 "하우미"에서 진행한 이벤트로 당첨된 도서입니다. 먼저 이벤트를 주최한 황금펜클럽 편집부와 하우미 담당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드립니다.

"계간 미스터리"는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 잡지이며 제목 그대로 계간지인데, 이번 호 특집은 김내성 선생님에 대한 새로운 연구 자료들과 선생님의 미발표 논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시, 김내성"이라는 제목의 자료입니다. 이 자료 하나만으로도 이번 "계간 미스터리"에 대한 만족도는 아주 높았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단편들과 연재작이 실려 있습니다. 간단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일석간 - 김내성

거금 2천 원의 분실 사건에 얽힌 유쾌한 연애물. "연문기담"과 유사한 일상계 로맨틱 코미디 추리물입니다. 단서가 너무 명확하고 우연이 많이 개입된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범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와 동기가 확실해서 깔끔하다는 장점도 돋보입니다. 변격물로 유명한 김내성의 새로운 면을 느낄 수 있었던 수작입니다. 귀여운 악녀 이미지의 미망인 전혜봉 여사 캐릭터도 인상적이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킬힐 (Kill Heel) - 정석화

시체와 함께 발견된 여인과 그녀를 취조하는 형사, 두 명의 대화와 심리 묘사로만 전개되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설정은 평범하나 사소해 보이는 단서를 통해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위적인 알리바이 트릭, 경찰 수사로 비교적 손쉽게 드러난 범인들의 관계, 반전이기는 하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아버린 진짜 동기 등 자잘한 부분에서 정교함이 약간 아쉬웠어요. 특히 진짜 동기가 밝혀진 뒤가 그러합니다. "디아볼릭" 등 수십 년 된 작품과 유사했기 때문이죠. 또, 오타가 굉장히 많은데 거슬리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 동네 살인마 - 정명섭

동네에서 벌어진 한 일가족의 집단 음독 사건을 수사하는 청년 백수의 모험담.

추리소설가를 꿈꾸는 추리 애호가이자 청년 백수인 탐정 캐릭터와 더불어 시종일관 유쾌한 전개가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국내에도 이런 작품이 존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개인적인 이번 "계간 미스터리"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딱 한 가지, 진범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게 단점인데, 작품 길이를 늘리더라도 이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게 좋았을 것 같네요.

막다른 골목 - 김이제

한적한 시골 마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 있다... 라는 설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작품.

문제는 설정은 그럴듯한데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겠죠. 한국적 이차원 판타지랄까요? 나름 의미를 부여하자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장르문학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네요. 재미도 그닥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The Whisper of Blood - 미지의 속삭임 (2부)

1부를 읽지 않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세계 지능체와 엮여 고생길에 접어드는 주인공을 그린 SF입니다.

독특한 이세계 지능체 캐릭터는 괜찮았는데, 세계관이 이런 류 작품치고는 많이 뻔한 편이었어요. "기생수"를 비롯한 근미래 SF에서는 많이 보아온 설정이었거든요.

그러나 아직 완결된 것도 아니고 일부만 읽었기에 속단하기는 이를 것 같습니다. 별점은 완독할 때까지 유보합니다.

위험한 호기심 - 홍성호

펜션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 살인 사건 수사가 시작되고, 형사 준영은 펜션에서 사라진 충전기에 주목하는데...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 당선작입니다. 전개와 결말이 이치에 맞고,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추리를 거쳐 수사해 나가는 과정이 괜찮은 범죄-수사 스릴러물로, 첫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네요.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일단 지나친 성적 묘사가 거슬렸어요. 뭐, 사건이 성적인 관계에 기반한 만큼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외에도 의도하지 않은 알리바이의 작위성 등 우연이 많다는 점, 주인공 형사 캐릭터가 그야말로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데뷔작이기도 하고, 아이디어와 전개는 좋았던 만큼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정태원 추모글

한국 추리문단에 큰 공헌을 하신 고 정태원 선생님에 대한 추모글입니다. 소개된 선생님의 저작만 해도 정말 엄청나서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평이나 별점을 남길 글은 아니죠.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경의 부고 기사에서부터 시작되는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피터 웜지 경 시리즈 단편인데 "검은별"과 너무나 판박이였습니다. 설정부터 전개가 똑같아요.

덕분에 추리물이 아니라 모험물로 보일 뿐더러, 추리적인 요소가 거의 없고 아동 취향의 수준 낮은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작가의 명성과 시리즈의 후광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작품으로, 차라리 "검은별"을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그 외 노원 선생님의 장편 연재작은 연재물이라 이번 권만 읽어서는 이해가 힘들어서 뭐라 평가하기 어렵네요. 스케일이 큰 작품인데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추후 단행본이 나오면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별점은 그때까지 유보합니다.

이러한 단편들을 포함한 총 별점은 3점입니다.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 전문지답게 미발표 외국 단편이 한두 편 정도 더 소개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약간은 들긴 하나, 앞부분 김내성 선생님의 다양한 글들이 책의 가치를 높여주기에 큰 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한국 추리문학을 사랑하시는 몇 안 되는 모든 분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