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 강명관 지음/휴머니스트 |
안경, 망원경, 우리거울, 자명종, 양금이라는 다섯 가지 물건에 대한 미시사 서적. 언론을 통한 책 소개도 마음에 들었으며 조선 미시사 서적 분야에서는 유명하신 강명관 교수의 책이기도 해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저 다섯 가지 물건이 조선에 어떻게 유래되었으며, 당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사료 중심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입니다.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사료를 분석한 책은 정말이지 처음 접해보네요.
내용도 다섯 가지 물건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흥미를 끌만합니다. 안경은 임진왜란 전후로 처음 수입되었으며, 조선시대 최초로 안경을 쓴 왕은 숙종이다라던가 (<<승정원일기>>기준), 안경을 쓰고는 어른 앞에 나설 수 없는 법도가 생겼다던가 라는 정보들이 그러합니다. 이익이 안경을 만들어 자신에게 시력을 되찾아준 '구라파' 사람들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조선의 천재라 할 수 있는 홍대용의 여러 활약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망원경, 거울, 자명종, 양금 항목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이며, 그 중에서 북경 천주교당을 방문해서 처음 본 파이프 오르간의 동작 원리를 곧바로 이해하고, 바로 조선의 음악을 연주해서 들려주었다는 에피소드는 통쾌함마저 느껴졌습니다. (보아라! 이것이 조선 남아다!). 1640년 이민철 (백강 이경여의 서자)이 10세 (혹은 9세)에 자명종의 이치를 깨우치고 대나무못과 기름종이로 자명종의 모형을 제작했다는 일화는 입이 떡 벌어더군요요. 지금으로 따지면 이쑤시개와 마분지로 자명종 모형을 만든 셈인데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외 조선에서 이러한 문물에 대해 어떻게 분석하여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이후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실생활에 도움이 된 안경 외에 실용화가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분석도 볼거리입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고가의 사치품을 향유할 수 있는 경화세족의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질 뿐더러 유학에서 이야기하는 완물상지의 도덕적 경계에 걸려 진지한 탐구를 하지 않은 것, 농업 외 생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현실, 중국에 의해 재정립된 서양 과학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해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천문 관측과 전쟁에 도움이 된다는 망원경은 실제 조선에서 천문 관측, 전쟁에 따른 수요가 없었으며 농사가 주 산업인 조선에서 시간을 분초단위로 알 필요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농사 지으려면 절기만 알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마냥 추천하기는 무리가 따릅니다. 지나칠 정도로 사료 중심의 나열이라 읽기 힘들고 재미를 느끼기도 어려운 탓입니다. 예를 들면 '누구누구의 글을 보면 이 물건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글은 누구누구의 무슨 글을 이렇게 인용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꼬리를 물고 글의 유래를 찾아 나가는 식의 내용이 많아요. 좀 더 요약해서 읽기 쉽게 정리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나열 형식으로 이어 쓰고 있어서 분량도 많고 지루했습니다.
실생활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많이 실어 주었더라면 보다 재미있었을텐데, 뭐 실생활에 영향을 준 물건이 거의 없다보니 그렇게 쓰기도 힘들었겠죠.
또 앞에 290여페이지에 걸쳐 다섯 물건에 대한 상세한 유래를 풀어내지만,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20여 페이지 남짓한 맺음말에 전부 요약되어 있기도 합니다. 보고자료로 따지면 별첨이 앞에 있고 보고 핵심이 맨 뒤에 있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앞부분의 사료적 가치가 빼어난건 분명하지만 왠만한 일반 독자는 맺음말만 읽어도 내용 이해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저자의 방대한 자료 조사에 따른 결과물은 분명 경이롭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책은 아닙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서 말씀드린대로 맺음말 정도만 읽어보셔도 충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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