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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

몽환화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몽환화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키야마 리노는 올림픽 대표로까지 손꼽혔던 수영 선수였지만, 심리적 이유로 수영을 그만두었다. 그 뒤 리노는 사촌 나오토의 자살 후 가까워진 할아버지 아키야마 슈지의 꽃 사진들을 블로그로 만드는걸 돕게 되었다. 그러나 아키야마 슈지가 살해당했고, 경찰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리노, 리노를 우연히 알게 되어 돕기 시작한 가모 소타, 개인적 인연으로 아키야마 슈지에게 보은을 하려는 경찰 하야세, 소타의 형으로 수면 밑에서 은밀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요스케 등 여러 명이 사건 해결에 나섰고, 결국 그들은 사건에 정체불명의 '노란색 나팔꽃'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스탠드 얼론 작품입니다.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언급되기에 2010년대 이후 발표된 근작이라 생각했는데, 책 뒤 해설을 보니 10여 년 전부터 연재해왔던 작품을 수정·가필해 단행본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장점부터 말씀드리자면, 재미있고 속도감이 넘친다는 점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는 도입부로 시작해 여러 사건들이 계속 이어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흥미를 자아냅니다. 결국 하나로 모여 깔끔히 끝나는 마무리도 좋고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은 확실히 뛰어납니다.

주인공 커플이 몇 안 되는 단서를 가지고 진상을 파헤쳐 나가는 모험에 약간의 추리가 더해진, "부부 탐정" 스타일의 작품인 탓에 온전한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 와중에 등장하는 추리 역시 작가의 명성에 걸맞습니다. 현장에 남겨진 단서 — 젖은 방석, 페트병 차가 담긴 찻잔 — 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하야세 경부의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왜 시원한 페트병 차를 마시는데 유리컵이 아니라 찻잔을 사용했을까? 찬장에 근사한 유리컵이 있었는데?’라는 극히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되는 추리가 아주 설득력 있습니다. 아들 유타와의 인연으로 오갔던 연하장의 내용이 주요 단서가 되었다는 건 다소 작위적이지만, 독자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고요.(무언가의 성취를 기원해 차를 끊는다는 것이 일본에서 일반적인 문화인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또 아키야마 슈지가 개화시킨 노란 나팔꽃이 살인의 동기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었지만, 예상과 다른 결말이 독특했습니다. 보통 이런 설정이라면 거액의 돈이나 비밀 조직이 얽혀 있기 마련인데, 손주의 친구에게 살해당했다는 평범한 결말인데 오히려 신선했던 덕분입니다.

소타와 리노의 성장기적 서사도 작품과 잘 어울립니다. 리노의 심리적 약점 극복은 다소 상투적이지만, 소타가 원자력 전공자로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진로를 고민하다가 ‘빚도 유산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은 작품의 주제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재미와 흥미에 비해 진상이 다소 시시합니다. 제목 그대로 ‘몽환화’라 불리는 나팔꽃 씨앗에 환각 효과가 있어 에도 막부메이지 시대에 걸쳐 통제되었지만, 마취제로 활용했다는 가공의 역사 설정까지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범인이 단지 우연히 얻은 씨앗의 환각 효과를 지속시키기 위해 번식 의뢰를 한 마사야라는 점은 김이 빠집니다. 역사적 스케일의 설정은 결국 곁가지일 뿐이니까요.

현대 파트에서도 가모와 이바 가문이 대를 이어 비밀리에 나팔꽃을 쫓는다는 설정, 소타가 나팔꽃 사건 피해자의 후손이며 첫사랑이 그와 얽힌 이바 가의 딸이라는 설정은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이 정도면 ‘핫토리 가문이 아직 닌자 일을 한다’는 수준이니까요. 게다가 작품 속 수수께끼 대부분이 이 두 가문의 비밀스러운 행각 때문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요스케가 소타에게 진상을 숨긴 이유, 이바 다카미가 구도를 추적하며 가명을 쓴 이유, 다카미가 소타를 만나고 도망치듯 떠난 이유, 요스케가 리노에게 정체를 숨긴 이유, 하야세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않은 이유 모두가 그러합니다. 이 모든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요.
또한 뭔가 거대한 비밀에 휘말린 듯 보였던 리노와 소타 커플은 불필요한 ‘헛수고’를 했다는 뜻이기도 해서 허무합니다. 슈지 살인사건의 범인은 하야세가 밝혀냈고, 노란 나팔꽃의 진상은 요스케와 다카미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스터리를 만든 건 리노가 초반에 하야세 경부를 믿지 못한 탓인데, 그것조차 설득력 있지는 않습니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가모 소타보다는 경찰 하야세가 더 믿을 만한 인물이 아닐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무난하지만 단점도 뚜렷하여 감점합니다. 그래도 작가의 팬이라면 읽어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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