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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2

메이지의 도쿄 - 호즈미 가즈오 / 이용화 : 별점 2.5점

메이지의 도쿄 - 6점
호즈미 가즈오 지음, 이용화 옮김/논형

저는 우리나라 구한말,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본의 메이지 시대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고요. 마침 일본 메이지 시기 도쿄에 대해 방대한 그림 자료와 함께 소개한 책이 출간되었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책은 총 8개의 대주제하에 365페이지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메이지 시기의 개막에서부터 도쿄가 어떻게 발전되어 나갔는지를 그림과 함께 차분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지 그 형태, 구성이 궁금했던 각종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특히 인상적으로 쓰키지 호텔관, 긴자 벽돌거리, 서양 요리점 세이요켄, 정부 주도의 각종 공장과 관공서, 은행, 학교, 기차역, 로쿠메이칸, 민간 사진관, 각종 다리, 료운가쿠 등 종류도 방대합니다. 도쿄 도심을 일러스트로 지도처럼 표기한 삽화도 이해를 돕고요.
새로운 건물과 새로운 직업군의 출현 뿐 아니라 실제 서민들의 삶과 문화도 쉽게 알 수 있게 도와줍니다. 서민들이 살던 곳은 심지어 슬럼가까지 소개되고 있으며, 당시 유행하던 옷과 헤어스타일, 여가를 위한 여러가지 문화와 풍물, 아이들의 놀이까지 소개되거든요. 깔끔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삽화가 포함된 것은 물론입니다. 그림은 정말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정도로 괜찮네요. 단지 잘 그렸을 뿐 아니라 정보 전달 역할에도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가지 램프에 대한 상세한 일러스트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보죠.

당연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료운가쿠와 더불어 아사쿠사에 파노라마가 설치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던가 유명 가부키 레퍼토리, 당대 아이돌이었다는 무스메 기다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메이지 10년에 요코하마에서 프랑스 자전거를 수입해서 팔았는데 가격이 200엔으로 엄청난 고가였다는 것 (당시 순사 첫 급여는 8엔), 도쿠가와 요시노부도 시즈오카에 은거하며 자전거에 푹 빠졌다는 등의 소소하면서도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해요.
심지어 당시 일어났던 여러가지 유명 범죄에 대해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유명한 여성 살인범 오키누와 오덴, 하나이 오우메 사건 등에서 어딘가에서 읽었던 노구치 오사부로의 엉덩이 살 사건 등으로 이어지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되어도 좋겠다 싶었어요. 지금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이 제법 있더라고요.

단점이라면, 당시의 문화를 전해주는 것에만 치중하여 실제 역사의 흐름을 알기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비슷비슷한 건축물 그림이 많다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단점이 될 수도 있을테고요. 무엇보다도 분량에 비하면 가격이 너무 과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아무리 일러스트가 괜찮다 하더라도 전부 흑백인데 17,000원이나 할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메이지 시대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내용이 많다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림만 일람해도 여러모로 도움이 될 정도니까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도쿄를 중심으로 메이지 시대를 보여주는 도감이랄까요?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25/01/10

메이지 단두대(明治斷頭台) - 야마다 후타로 : 별점 3점

明治斷頭台 山田風太郞ベストコレクション (角川文庫) (文庫) - 6점
山田 風太郞/角川書店(角川グル-プパブリッシング)

아래 리뷰에는 트릭,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이지 단두대"는 일본 소설가 야마다 후타로가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쓴 단편집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메이지 시대의 사회적 혼란과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탐구합니다. 일본 플레이보이지 선정 "미스테리 - 철야본을 찾아라!"에서 당당히 1위로 선정되었기에 계속 궁금했던 작품인데, 이번 기회에 원서를 ChatGPT의 도움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호평에 걸맞는 장점들이 눈에 띕니다. 첫 번째 장점은 실존 인물과 메이지 시대 풍광을 활용한 팩션적 재미입니다. 츠키지 호텔관, 에이타이바시 다리, 코덴마초 감옥 등 메이지 시대의 상징적인 장소들이 사건 속 배경으로 등장하고, 사회적 변화와 증기선같은 기술 발전이 트릭의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주역 중 한 명으로 근대 경찰의 아버지 카와지 토시요시가 등장하고, 그 외에도 사이고 다카모리라던가 '마지막 사무라이' 키리노 토시아키, 일본 육군 창설자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실존 인물들이 다수 등장해서 독자들에게 현실감과 역사적 몰입감을 전해줍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가공의 이야기와 결합해 당시 시대적 풍광을 생생히 재현하며, 작품의 팩션적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두 번째 장점은 추리적 재미와 정교한 트릭의 사용입니다. "괴담 츠키지 호텔관"에서는 일본도 양 끝에 게다를 고정시키고, 게다 굽을 나선형 계단 난간에 걸쳐 위에서 미끄러트린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범인 나카사카 큐우치는 이를 이용해 자신은 옥상 전망대에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아래층에서 올라오던 피해자를 공격해 살해했지요.
"미국에서 보내는 사랑"에서 범인은 인력거를 혼자서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진상은 인력거 두 대를 묶어서 일종의 4륜 차량으로 만들었던 겁니다. 이를 언덕 위에서 밀어서 굴러내려가게 한건데, 굉장히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트릭이었다 생각됩니다. 다만 라소츠(나졸)들의 위증(?)과 마지막 현장에서 인력거가 묶여 있지 않았던 점(얇은 끈으로 묶여 풀렸다?) 등이 애매했던 점인데, 이는 라소츠들이 진범의 도우미였다는 마지막 단편을 통해 잘 설명되고요.
"에이타이바시의 교수형"에서는 밧줄과 배의 움직임을 이용해 자살로 위장된 사건이 등장합니다. 범인 테라니시 진주로는 피해자를 강 위 증기선으로 유괴한 뒤, 미리 에이타이바시에 설치해 두었던 밧줄 고리에 목을 밀어넣고, 반대쪽 끝을 자신이 잡아당겨 자살처럼 보이게 위장했습니다. 증기선을 타고 있어서 당시 상식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도 만들 수 있었고요. 앞서 설명드렸던 사회적 변화와 기술적 발전이 사용된 멋진 트릭입니다.
"자신의 목을 안고 있는 시체"에서는 범인이 아리사카 이헤이를 살해한 뒤, 그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의 몸과 처형된 죄수의 목을 붙여 위장한 사건입니다. 핵심은 '어떻게 죄수의 목을 빼돌렸는지?'인데, 이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라소츠의 속임수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앞서 모든 작품에서 라소츠가 한 몫했다는 걸 결정적으로 증명하게 됩니다.

세 번째 장점은 충격적인 결말입니다. 마지막 단편 "정의로운 정부는 존재할 수 있는가"에서 '탄정대 대순찰 케이시로가 모든 사건의 흑막이었다'는 놀라운 반전이 드러나는 덕분입니다. 그는 정의를 위해 악인들을 처단하는 계획을 세웠고, 이를 위해 라소츠들의 협력을 얻었던 겁니다. 사실 사건 대부분에서 라소츠들의 부정부패와 속임수가 바탕이 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답답함을 유발했는데, 알고 보니 과거 무사였던 라소츠들은 탄정대 대순찰 케이시로의 이상에 공감하며 범죄에 협력했고, 케이시로는 이들의 범죄를 묵인하며 자신의 계획을 이어갔던 것이었지요. 모든 걸 밝힌 케이시로가 스스로 단두대를 사용해 자살하는 장면도 충격적이며, 정의와 권력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전해줍니다. 이후 체포하는 척했던 라소츠들이 에스메랄다를 탈옥시키며 막을 내리는데, 이 역시 괜찮은 결말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작품의 배경인 일본 메이지 시대는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츠마와 조슈번의 갈등과 같은 역사적 맥락이 주요 요소로 등장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추리 소설로 기대했는데, 실제로 트릭이 활용된 본격 추리 단편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이야기 "탄정대 대순찰"은 케이시로와 라소츠들, 탄정대와 단두대의 배경 설명에 치중되어 있고, 이어지는 "무녀 에스메랄다"는 에스메랄다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이거든요. 마지막 "정당한 정부는 가능한가"는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는 자백을 통해서일 뿐입니다. 그리고 추리보다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있고요. 따라서 본격적인 추리 요소는 부족한 편입니다.

케이시로가 정의를 추구하며 폭주하는 이유, 라소츠들이 케이시로에게 충성을 바치며 목숨까지 거는 이유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합니다. 이는 작품 전체의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소소한 악행을 저지르는 평균 이하 범죄자들인 라소츠들의 심경 변화가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떤 식으로든 설명이 필요했어요. 반대로 에스메랄다가 프랑스의 사형 집행인 상송 가문의 후예로, 일본에서는 '무녀'로 활약한다는 설정은 너무 과했고요. 만화적이라서 영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 팩션으로서의 재미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바실리스크"같은 닌자 액션물(?) 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작가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대로 된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2016/04/16

도련님의 시대 - 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나쓰오 / 오주원 : 별점 3점

『도련님』의 시대 1 - 6점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세미콜론

나츠메 소세키와 그가 맥주집에서 난동을 부렸을 때 같은 유치장에서 신세를 진 인연으로 알게 된 협객 호리 시로, 노동운동가이자 시인인 아라하타 간손, 학생 모리타 요네마쓰, 학생 오타 주자부로 네 명과 함께하는 격변의 메이지 시대를 그린 작품입니다. 나츠메 소세키가 "도련님"이라는 작품을 쓰려고 한다는 것을 네 명에게 밝힌 후, 소세키의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하나씩 구체화되는데, 마침 그 이야기가 소세키가 바라보는 현실과 교차되어 전개되는 구조이지요.

메이지 38년, 즉 1905년 급속히 서구화되는 일본에서 지식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한다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허황된 픽션이나 if물이 아니라 실제로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데,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으로 표현된 덕에 그 위력이 배가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등장인물과 배경의 디테일 모두 뛰어나서, 쉽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와 닿습니다.

실존 인물을 대거 등장시켜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것도 장점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할 정도니까요. 그 외에도 모리 오가이, 라프카디오 헌, 시마자키 도손, 도조 히데키(!) 같은 수많은 메이지 시대 유명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솜씨는 감탄이 나옵니다. 특히 모리 오가이와 라프카디오 헌의 에피소드는 작품의 핵심을 제대로 짚기도 하고요.

아울러 존경해 마지않는 블로그 이웃이신 대산초어님의 번역 역시 빼어납니다. 주석도 충실하게 달려 있습니다.

다만 몇몇 역사적 실존 인물들이 병풍에 가까운 배경으로만 그려진 점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주요 네 명 중에서도 실존 인물인 아라하타와 모리타는 이야기의 현실성을 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보였고, 핵심 인물은 작가의 창작으로 보이는 구 아이즈 번사 출신의 협객 호리와 대학생 오타 주자부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작품들이 대부분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뚜렷한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문예 만화’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지적인 작품입니다. 메이지 시대와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 그리고 다니구치 지로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이 작품은 전 5권이더군요. 1권만으로도 완결성 있는 이야기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다음 권도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물론 "도련님"도 반드시 읽어야 할 테고요.

2020/05/16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야마모토 요시타카 / 서의동 : 별점 4점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8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과학기술이 주요 축의 하나였던 일본의 근대화 150여년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메이지 초기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뒤 전쟁을 거쳐 현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 일본 내에서의 과학 기술의 역할과 '총력전' 이라는 형태의 방식에 대해 7장, 400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조망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유익했던 독서였습니다.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여러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었고, 잘 몰랐던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은 물론, 일본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비롯된 것인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요.

궁금했었던 의문이 해결된 것 중 가장 대표적인건 "일본은 고작 몇 년 정도 앞서 개항한 걸로 어떻게 20세기 초중반,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는지?" 입니다. 그 해답은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는 것이네요. 서구에서도 물리학에서 신학적 내용과 같은 불필요한 내용이 추방되고, 수학도 정리되어 세련되어 갔으며, 과학 연구와 연구자 양성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어 학문의 습득이 쉽고 체계적이 된 19세기 후반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인겁니다. 여기서 조금만 빨랐어도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을테고, 50년만 늦었어도 양자역학, 상대성 이론이 태동한 뒤라 습득 장벽이 높아서 서구 물리학과 관련 학문을 쫓아가는건 굉장히 어려웠을거라는군요.

그리고 흔히 이야기하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과학은 순수한 학문적 영역이었으니 두 단어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19세기에는 여러가지 과학 분야의 연구가 실제 기술 개발에 적용되는 사례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쳐서 받아들였습니다. 어떻게보면 '과학' 보다 그 결과물인 '기술' 분야에 집중했고, 과학이라는 학문 영역도 '기술'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보다 촛점을 맞추었고요. 한마디로 과학은 기술을 위한 보조학인 셈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일본의 과학 교육은 세계관, 자연관 함양보다는 실용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고요. 덕분에 일본이 근대화에 빨리 성공하기도 했지만, 이는 일본 근대화의 바닥이 얕은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사농공상' 대신 학력에 의한 질서 형성을 추진하는, 이른바 '사민평등'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은 아니었습니다. 서구 과학기술 수입의 핵심기관인 공부성이 주도한 방침 자체가, 재래의 직인층을 독려해 종래 기술을 개량하고 발전시키는게 아니었던 탓입니다. 사족 중 유능한 자를 기술관료로 육성한 뒤 서구 과학기술을 그대로 도입하는게 핵심이었거든요. 그래서 상급학교에 진학한건 거의 사족의 자제였고, 메이지 시대 기술자의 태반이 사족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사족은 직인, 상인의 일을 경멸했던 터라 이런 계급적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술을 지배층만의 것으로 권위를 부여하고, 이들을 엘리트로 재래의 직인과 차별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거지요.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강렬한 엘리트 의식을 함양시켰다고 합니다. 국가와 나라를 위해 일하는걸 당연히 여겼고요.
이 탓에 상급 기술자들은 엘리트 의식 과잉에 배타적 성격을 지니나, 반면 관료적이고 조직과 국가에 순종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학제, 시스템을 식민지 시절 도입당한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는 이야기라 여러모로 와 닿네요.

책에서 소개하는 근대화와 함께 한 과학기술 진흥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면, 메이지 초기 해외 사절단 등을 통해 일본 지배층은 상공업의 발전이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며, 특히 과학이 기술에 직결되고 산업 발전과 군사력 강화의 불가결한 요소일 뿐 아니라 국가가 과학과 기술의 진흥과 혁신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막말 연달아 일어난 대지진으로 지배층의 권위 실추와 새로운 사정, 문물의 유입이 이루어지던 시기라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던 민중에게 합리적이면서 과학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궁리窮理학'이 대 유행하게 되고요. 이를 통해 서양과학기술 계몽서가 유행하는데, '궁리'라는 라쿠고까지 나왔다니 그 유행을 미루어 짐작할 만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목의 '총력전' 이 소개됩니다. 메이지 유신 후 국가 주도 개혁에서 군부 독재에 의한 제국 주의가 심화되며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무척이나 상세해요. 전쟁에 대비하여 총력을 다해 이를 준비한다는 '총력전' 체제로 모든 산업, 경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일부는 우리나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이더군요. 군부 독재에 의한 것이지만 미국의 뉴딜 정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시각도 흥미로왔고요. 또 이러한 '통제'는 좌, 우익 모두 찬성했다는데, 우익이야 그렇다쳐도 좌익은 좀 의외였습니다만 그 이유도 책에서의 설명으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좌익은 자본의 이윤 추구를 억제한다는 그 자체에 무조건 찬성한거라네요. 제목처럼 총력전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는 내용도 잘 알려줍니다. 군부 주도의, 군사 목적의 발전이면 기술 개발이 빠질 수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덕분에 과학기술 분야에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되고, 여러가지 혜택도 많았다고 하고요. 전후 과학자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시가 가장 연구 환경이 좋았다고 할 정도로요.

또 총력전을 통해 결국 빈부 격차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의외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징병제 때문에 농촌의 인구와 생활 수준을 유지시켜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의료 보험 등 복지에 대한 여러가지 제도가 만들어지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총력전 이전, 근대화 과정에서 있었던 일반 민중들의 희생도 잊으면 안 될 역사입니다. 이 책에서는 '기계화'가 생각했던대로 인간의 노동을 경감시킨게 아니라 오히려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야간 근무가 도입되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져서 민중은 그만큼 희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성공과 기적은 운이 좋았던 덕분인데다가, 효과적인 교육제도가 형성된 등의 이유도 크지만, 농촌 노동력의 가혹한 수탈과 농촌 공동체의 무참한 파괴가 불가결의 요인이었던거죠. 제국주의가 되면서 이러한 수탈, 파괴는 식민지로 옮겨지고, 우리나라는 그러한 수탈과 파괴, 희생의 직격탄을 맞있다는 점에서 더욱 뼈저린 역사입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의 이야기도 새롭습니다. 대표적인게 일본의 패배를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는 시각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군부 독재 시기에 총력전 체제에 의한 사회의 구조적 변경과 재편성이 이루어졌는데, 이 구조가 전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저자의 시각으로는 지금도 일본은 '전시 체제'인 셈입니다! 아직도 소수의 관료, 선택받은 엘리트들이 국가 주도의 정책을 세우고 이를 모든 사회에 강요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화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인거지요. 최근 드러나는 일본 정치의 후진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수의 관료, 엘리트들이 새로운 일본의 재건에 나서는데, 이 역시 총력전 체제와 다름이 없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또 여기에서도 일본은 운이 대단히 좋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전쟁 당시 추진해서 만들어놓은 생산 설비가 비교적 온존되어 있었고, 전시하에서 급성장하고 축적된 기술과 기술자층이 많아서 고도 성장의 주역이 되었으며, 은행과 군수 기업은 망하지 않은게 다시금 총력전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네요. 식민지 시절 수탈과 희생을 발판삼아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로 다시 고도 성장을 한 것이죠. 또 고도 성장의 핵심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한 시장의 급성장 덕분이었다니, 이 정도면 천운을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러한 고도 성장도 전전의 '총력전' 처럼 약자의 생활과 생명 경시를 동반한게 오늘날의 '후쿠시마' 사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니, 역시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에요. 이러한 고도 성장 과정에서 여러가지 환경 문제나 사고가 일어났지만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의 거짓말,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지식인들과 기술자들이 기업편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며 언론 역시 이에 동조하여 거짓 기사를 써 낸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의 과거가 겹쳐지기도 해서 조금 씁쓸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예를 보아도 "무슨무슨 5개년 계획" 등으로 국가 주도로 산업을 일으켰지만, 그 과실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은건 재벌과 권력자라는걸 부인하기는 어렵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의 문제점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이는 그냥 좌시하기 힘든 내용이었어요. 바로 원자력이 핵심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성장'에 모든걸 걸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시에서의 발상으로, 지금 시점에 맞는 방향은 절대 아닙니다. 기술 혁신만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 축소를 감당할 여지는 많지 않으니까요. 결국 일본은 가격이 유지되는 시장인 군수 산업에 올인해서 전쟁 유발을 획책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으며, 이를 위해 일본이 집중한게 바로 원자력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래서 과거 평화적 이용이라는 환상을 과대 포장하여 원자력 개발을 진행하였으나, 1980년대에 이르르면 이미 전력 수요는 넘어서는 원전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원전 비즈니스를 위해 원자력 개발을 하고 원전을 지은 것에 불과한거죠. 국가 주도의 총력전이 지금은 원자력에 집중되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러나 원자력은 수백년 사용하면 수십만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 문제가 더 큰, 무한한 미래를 희생하여 당장의 현재를 사는 굉장한 낭비에 불과하다는걸 통렬하게 알려줍니다. 원전 자체가 불완전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원전에 큰 투자를 감행했던 도시바의 몰락은 일본식 총력전을 무력하게 만들어, 조만간 '일본 주식 회사'의 실패를 불러올거라고 하니 무서울 정도네요. 우리나라 모 회사가 어려워진게 국가에서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분들께 이 책을 한 번 권해드리고 싶네요. 원자력은 현재라고 하기 어렵고, 미래는 더더욱 아닙니다. 후쿠시마의 예를 꼭 들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친환경,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더욱 시급한 시점이 맞습니다. 그리고 일본처럼 국가 주도의 비즈니스 드라이브를 걸다가 나라가 망해가는건 그 누구도 원치 않으실거라 믿고요.

결론과 후기를 통해 저자는 앞으로는 총력전 체제에 따른 경제 성장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라 합니다. 경제가 성장해봤자 국민 개인은 성장하지 않는다는게 이미 증명되었으니까요. 때문에 글로벌 교류를 통한 전쟁없으며 연대를 이루는 시민 사회의 성장, 이를 통한 실업없는 제로 성장 사회로 연착륙 하는게 맞는 방향이고, 여기에 과학적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이 생각에 100% 동의합니다. 문제는 최근의 코로나 사태가 시민 사회의 교류와 국가간 교류를 단절시켰다는 점이지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바뀔거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이제야 조금 와 닿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얻은게 많은 독서였습니다. 물론 저자 혼자만의 주장이 담겨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본 전시 체제를 뒷받침한 가장 중요한 동력인 식민지 수탈을 너무 짧게 짚고 넘어간 것도 적절치 못하고, 일본 원자력 산업도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자료가 필요해 보이고요. 과연 공평한 논리와 시각인지도 깊이 고민해 봐야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을 평가하고 검증해야 하는건 오롯이 독자의 몫일 겁니다. 새로운 시각만으로도 무척 반가왔으며, 현재의 일본과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네요. 심지어 가격까지 저렴한 편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0/09/13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6)

먹고 자는 마르타 1 - 4점
타카오 진구 지음/대원씨아이(만화)

포르투칼 대학원생 마르타는 석사 논문을 제출한 뒤에도 일본 도쿄가 너무 좋아서 떠나지 않고 머문다. 그러나 항상 가난뱅이 신세. 돈을 아끼기 위해 있는 재료를 최대한 아껴 쓰고, 비싼 재료는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든다!는 극빈 유학생의 혼밥 + 궁상 먹방 이야기입니다.
최대한 절약해서 먹는게 핵심으로, 고향 어머니가 보내준 바캴라우 (염장하여 말린 대구)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다던가, 100엔으로 생크림과 요구르트를 구입하여 사워크림을 만들고, 여기에 바칼라우를 미끼로 낚은 가재를 섞어 사워 크림 딥을 만드는 등의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카레 가게에서 주문할 때의 팁이었어요. 고기를 뺀 카레를 주문하면, 그만큼 카레의 양이 늘어난다고 하네요. 여기에 공짜 락교를 가득 담아 먹는데, 정말 생각도 못한 방법이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자급자족에 가까운 내용이니만큼 레시피도 꽤 많은데,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가 헤밍웨이를 초대한 파티에서 선보였다는 칵테일 '빌린' 제조법은 눈길을 끕니다. 복숭아를 자르고 씨와 껍질을 제거한 뒤 어항(또는 비슷한 통)에 담고 브랜디 절반, 샴페인 절반을 채워 만드는 칵테일로 맛있을 수 밖에 없어 보이네요.

그러나 있는 재료로 아는 요리를 최대한 비슷하게, 그럴듯하게 만든다는 내용은 "격식 파괴 요리책 한그릇 더!"와 같습니다. 최대한 근검절약해서 아껴 먹는다는 내용은 "빈민의 식탁"이고요. 때문에 그다지 새롭거나 신선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게다가 현대 일본 도쿄에서 자급자족은 말도 안되니 여러모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요. 

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뒤로 가면 갈 수록 옆집 아가씨가 재료를 준다던가, 도우미로 일하는 그림 교실에서 칵테일을 만든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갑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이래서야 취지에는 어긋나지요.
또 주 재료는 아껴서 산다 쳐도, 온갖 조미료와 도구가 갖추어져 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올리브유나 버터 정도는 포르투칼인이니 구입했다 쳐도, 간장과 미림까지 전부 갖추어 놓는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바닐라 에센스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죠.... 아울러 포르투칼 아가씨 마르타가 귀엽기는 한데, 민폐에 가까운 궁상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후속권을 더 볼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고화질] 삼국지의 밥상 01 - 4점
혼조 케이/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중화요리집 "누상촌"을 운영하는 삼국지 매니아 아타루와 그의 가족들이 가게를 방문한 신선 '좌자'의 영향으로 삼국지 속 요리를 현세에 재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원결의' 속 요리를 재현하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 (제민요술)를 찾은 뒤 새끼돼지를 통째로 튀길 수 없어서 돼지고기 덩어리를 사용하고, 천채를 우락으로 볶은 것은 말린 배추 등을 활용하여 재현한다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좋았습니다. 제 기대에도 부합했고요.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와 요리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일단, 삼국지 본편과 상관없는 요리가 너무 많은 탓입니다. 계륵 (닭갈비)로 만든 닭고기 수프는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타루의 오리지널이며, 유비가 칼과 바꿨던 낙양의 차는 중요 아이템이지만 마시는 장면이 삼국지에 등장하지는 않으니까요. 조비가 배와 포도로 시를 지었다는 이유로 배와 포도로 디저트를 만드는 등 삼국지에서는 그냥 소재, 재료만 따 온 것도 많습니다. 제갈량의 만두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래서야 제목과 취지에 걸맞는 이야기들로 보기는 힘듭니다.

또 좌자의 등장까지는 이야기 전개상 그렇다 쳐도, 그의 능력으로 삼국지 시대로 이동해서 당시 요리를 실제로 보고 온다! 는 설정, 그리고 심지어는 주인공 아타루가 실제로 전장으로 이동해서 요리를 만든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아타루가 삼국지 당시 재료와 도구로 최대한 현재의 맛을 재현한다는건 "노부나가의 셰프"와 다를 바도 없고요. 좌자의 말을 듣고 아타루와 가족들이 이런저런 고민 끝에 요리를 만드는 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문제가 많습니다. 삼국지의 내용과 본 편의 이야기를 엮는 부분은 억지스러우며, 전개에서도 등장인물들의 감정 과잉이 수시로 드러나는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이야기 전개와 소재들은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후속권 구입 계획은 없습니다.


전통의 시리즈도 이제 45권째네요. 이번 권에서도 언제나처럼 소소한 일상 속에서 소다츠의 술과 안주에 대한 개똥 철학(?)을 웃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꼬치 요리의 재료를 빼야 하는지 그냥 먹어야 하는지? 라던가 왜 이자카야는 월요일에 붐빌까?와 같은 주제에 대한 확고한 견해같은건 나름 그럴듯 했어요. 화이트 와인은 이탈리아, 레드 와인은 칠레 등 남미산이 좋다는 주장은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의견도 있구나 하는 측면에서는 볼 만했고요.
무엇보다도 소다츠의 절친인 타케노마타가 약혼하고 약혼자를 소개해주는 에피소드는 놀라왔습니다. 소다츠와 카스미도 빨리 진전이 있어야 할텐데 말이지요. 은근하게 분위기만 깔고 가는게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에키벤 투어 관련 이야기나, 오사카 타코야키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보아왔던 소재라 별로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소재 고갈 탓도 있겠지만, 이런 기행문스러운 이야기는 한 권에 한 편 정도로만 수록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타코야키는 무려 3편에 걸쳐 소개할 내용과 분량도 아니었어요. 다카키 나오코의 작품 어딘가에서 소개되었던 분량 정도 만으로 충분했을겁니다. 그 외의 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제는 재미보다는 팬심으로 읽는 작품이 되었네요. 그래도 소다츠의 개똥 (?) 철학은 언제나 재미있는 만큼, 다음 권은 그런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상계 식도락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고양이 맘마 - 6점
우오노메 산타 지음, 김진희 옮김/애니북스

다른 음식 만화로 접했었던 우오노메 산타의 작품입니다. 메이지 초기를 배경으로 하여, 당시 갓 들어왔던 새로운 음식들과 당대 풍물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단지 메이지 시기를 무대로 한 음식 만화라면 특별할게 없겠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을 미식가 고양이로 하여 고양이 시점에서 묘사한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입니다. 주인공인 이름없는 고양이가 소설가 메이지노 씨 집에서 함께 살면서 메이지노 선생님과 그 가족, 그리고 주변 식당 등에서 먹는 음식들을 소개하는데, 미식가라서 음식에 정통하고 심지어 반주를 즐기기까지 하거든요.

이야기들도 굉장히 짤막해서 대단한 내용은 없지만, 훈훈하고 잔잔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어서 마음에 들 뿐 아니라, 모리 소바와 자루 소바의 차이를 알려 주는 등 새로운 내용도 제법 많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참고로 두 소바의 차이는 쓰유에 있답니다. 자루 소바는 처음 우러낸 육수로, 모리 소바는 두 번재로 우려낸 육수로 조리한거라 면 자체는 동일해서, 직원이 잘못 나르지 않도록 자루 소바 위에 김을 뿌린거라는군요. 그 외 중간중간 '메이지 시대 미식 탐방기'라는 짤막한 한 페이지짜리 5편의 컬럼도 볼거리입니다. 미식, 요리 뿐 아니라 꽃놀이까지 소개하는 등 이런저런 소개가 많습니다. 오노메 산타의 포근한 그림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4/08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5. 오뚜기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5. 오뚜기

마이코가 사무실에 나타나자 정체된 방의 공기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마이코는 검은색 정장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검은색 옷은 몸매를 날씬해 보이게 했고, 빨간 스카프가 잘 어울렸다. 마이코는 토시오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신문을 읽고 있는 후쿠나가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운석이 차에 부딪히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 사고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사고 조사에는 많은 과학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 결과, 토모히로의 차를 불태운 것은 틀림없이 운석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현장에서는 무게 13kg, 지름 20cm 정도의 석철 운석이 수습됐다.

"운석이란 유성이 타다 남은 찌꺼기잖아요?"

"유성이 타는 것은 아닙니다."

후쿠나가는 신문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태양계에는 무수히 많은 고체 물질이 태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구에 닿으면 지구의 인력으로 끌어당겨지죠. 물질의 기세가 거세져 초속 수십 킬로미터의 속도로 공기 중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수천 도의 마찰열이 가해져 갑자기 기체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이를 증발이라고 합니다. 이 고온의 가스가 빛을 내는 겁니다. 불이 타오르는 것과는 다르죠."

"시골에 가면 맑은 밤하늘에 유성을 자주 볼 수 있잖아요."

"우다이 씨, 유성은 하루에 몇 개나 떨어진다고 생각하세요?"

"한 시간에 두세 개 정도일까요?"

"육안으로 볼 수 있는건 그 정도겠죠. 하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유성을 포함하면 하루에 지구로 날아오는 별은 대략 수십억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수십억 개라고요?"

토시오도 그 숫자에 조금 놀랐다.

"네. 그런 유성은 그냥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끊임없이 먼지처럼 지상에 떨어지죠. 그래서 지구의 질량은 매년 4백만 톤씩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떨어진 유성 먼지의 양은 지표면 3미터를 덮는다고 계산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운석이 되어 지상에 떨어지는 별도 꽤 많다는 얘기군요."

"그런데 또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유성이 되는 물질은 대부분 쌀알 정도, 설탕 한 알 정도 큰 것들만 떨어지거든요. 이건 아까 말했듯이 공기 중에 들어가면 금방 증발해버립니다. 드물게는 큰 물질이 운석이 되어 지상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 수는 극히 적습니다. 한 해에 오백 개 정도라고 하네요."

"그래도 오백 개나?"

"지구의 3분의 2가 바다니까, 지상에 떨어지는 건 백 오십 개 정도일겁니다. 확인된 숫자로 따지면 그보다 더 적고요."

"그중에는 꽤 큰 것도 있겠군요."

"그렇죠. 가장 큰 운석은 서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바 운석. 69톤이나 된다고 하니 대단하지요. 일본에서는 1885년 오쓰(大津)시에서 발견된 다카미(田上)운석이  가장 컸어요. 최근에는 1975년 오후 7시에 보름달의 몇 배나 되는 불덩어리가 세토나이카이로 떨어지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지요. 발견되면 1톤급 운석으로, 다카미시마 앞바다에 떨어져서 다카미시마 오키(高見島沖)운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상태로 현재 조사 중이에요."

"그런 것이 도시에 떨어지면 큰 재앙이 되겠군요"

"석유 공업 단지나 신칸센 열차에 떨어진다면 큰 사고가 나겠죠. 하지만 다행히 지금까지는 그런 대형사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예전에 이탈리아의 한 신부가 운석의 직격탄을 맞고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1954년 미국 앨라배마주에 떨어진 운석은 사람의 집 지붕을 관통해 그 집에 있던 여성이 부상을 입었고요. 기후에 떨어진 가사마쓰 운석도 사람의 집 지붕을 뚫고 들어갔었어요. 이번 사고도 그렇고, 어쨌든 정말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운석에 맞은 사람은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걸까요?"

후쿠나가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사람의 회사, 해바라기 공예는 어떤 회사일까요?"

마이코가 물었다. 후쿠나가는 조금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장난감 제조업이요. 저는 예전에 장난감 업계 신문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장난감 업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요."

"후쿠나가 씨는 어떤 업계든 잘 아는군요."

마이코가 칭찬한다.

"글쎄,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해바라기 공예는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지만 역사는 꽤 오래됐어요. 뭐, 전통 있는 노포 부류죠. 마와리 가문이 요코하마로 이주해 와서 농사를 짓는 한편 부부가 작은 인형 제작을 시작한 것이 가에이 말기였는데, 마와리 사쿠조(馬割作蔵)라는 남자였습니다. 아내는 요코하마 출신이지만, 사쿠조는 어디 출신인지 알 수 없어요. 마와리 가문에서 출생을 철저히 숨긴 느낌입니다. 나는 업계 인명록을 편집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는데, 해바라기 공예를 창립한 사람은 사쿠조의 아들인 도키치(東吉)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호도(蓬堂)라는 이름을 쓰게 되지요. 하지만 그 전에 아버지 사쿠조가 츠루슈도(鶴寿堂)라는 작은 장난감 가게를 운영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해바라기 공예에서 선대인 츠루슈도는 소개하고 있지 않나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잘 모르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쿠조 자신과 그의 아들 호도는 사쿠조를 은폐하려 했던 것 같지만요. 내 생각에 사쿠조는 어느 번(藩)의 하급 무사로, 어떤 잘못으로 번에서 쫓겨나서 아내의 생가로 이주한 것 같아요. 그 원인이 뭔가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을테고요. 그래서 숨긴 것이겠죠? 사쿠조는 아내의 땅으로 오자마자 아내의 생가 근처에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무사가 장난감을?"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무사와 장난감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어요. 센다이의 향토 장난감에 츠츠미 인형이라는 것이 있어요. 알고 있나요?"

"아니요."

"도호쿠의 대표적인 도자기입니다. 동북 지방의 풍토를 반영하는 애잔한 아름다움으로 인형 애호가들이 애지중지하고 있지요. 이 인형의 기원은 발꾼의 부업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다테라는 땅은 리쿠우(陸羽) 가도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었지요. 다테 가문에서는 이곳에 하급무사들의 집을 배치했는데, 봉록이 적었던 탓에 부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도공들과 함께 만든 것이 츠츠미 인형이라고 하고요. 이런 사례는 이 밖에도 있었어요.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여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면서 더 많은 궁핍한 무사들이 생겨났고요. 메이지 초년, 이미 무사들이 가진 물건을 팔기 시작했죠.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판다고 하면 뭘 내놓겠습니까?"

"사치품이겠죠."

"그렇죠, 무사의 아내의 혼수품, 값비싼 히나(ひな)인형 등이 거리의 대로변에 진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사치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습니다. 봉록이 적었던 하급무사들은 팔아먹을 물건도 없었으니까요. 결국 스스로의 손으로 장난감을 만들게 된거지요. 나고야에는 나고야 토인형이라는 향토 장난감이 있어요."

"그것도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건가요?"

"네. 오와리 도쿠가와번의 무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교토의 후시미 인형 기술을 배웠다는군요. 히나인형과 연극용 인형, 장식용 말과 토종 방울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어요. 메이지 말기에는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최근에는 만드는 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하네요. 관동지방의 인형으로는 사이타마현 이와쓰키(岩槻)의 이와쓰키가 유명하고요."

"알고 있어요. 히나 인형의 대부분은 이와쓰키에서 생산된 것이지요."

"이와츠키의 인형이 현재처럼 번영하고 있는 것은 메이지 유신 때문이기도 해요. 오쿠라 류지로라는 원래 무사였던 사람이 가문을 버리고 에도에 와서 인형에 손을 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메이지 유신 때 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와쓰키에 피신했는데, 이미 이와쓰키에는 인형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이 땅은 닛코 가도의 길목에 있어 닛코 도쇼구(日光東照宮) 건설을 마친 장인들이 이와쓰키에 정착해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하는데, 오쿠라 류지로(大倉留次郎)는 그 곳에서 인형의 옷 입는 기술을 가르쳤고, 오늘날에는 이와쓰키 인형의 공로자로 이름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대의 변혁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장난감을 만들어내는군요."

"재미있는건 이번 전쟁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이와쓰키에 피난을 오게 된 수많은 장인들이 이와츠키 사람들과 함께 군수 공장에 징용되어 일했는데, 이는 이와츠키의 인형계에는 행운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장인들은 본업으로 돌아갔지만, 이와츠키의 인형 기술은 여기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거든요."

"역사라는 것은 반복되는 것이군요."

"낙오된 무사들이 만들게 된 장난감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로 킨스케마리(金助毬, 금방울)가 있네요. 큰 공이 되면 6, 70센티미터나 되죠. 물론 손으로 잡고 노는 것은 아닙니다. 3월 3일 히나의 날 장식용으로 만들어졌어요. 홍백색 비단으로 꿰매고, 모란에 당사자, 마차, 송죽매 등을 금실과 은실로 수놓습니다. 실로 만든 공 중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것 중 하나입니다. 이 금방울은 가고시마번 하급 무사 부녀자들의 수공예품이기도 하지요. 절기가 다가오면 그녀들은 보라색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금방울을 팔러 다녔고, 이것이 명물이 되었어요."

"연극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네요."

"그림이 되지요. 어느 날, 부인이 불쑥 상대의 얼굴을 봅니다. 젊은 날의 연인으로 지금은 가게의 주인이 되었구나. 억지로 시집갔지만 남편은 폐번으로 인해 봉록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길거리로 나가 공을 팔아야만 하는 신세. 세상의 이치라고는 하지만 너무도 황당한 이 만남 ......"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한 장난감이 아직 남아 있나요?"

마이코가 말문을 막았다. 후쿠나가가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네, 아직 있어요. 야마가타의 이타지시(板獅子)는 쇼나이(庄内)번의 무사들이 만들기 시작했지요. 시코쿠의 다카마쓰하리코는 다카마쓰번의 가신인 카지가와 마사요시가 창시했고요. 마쓰에 번에서는 아네사마, 도야마 번에서는 흙인형......"

"그래서, 마와리 사쿠조는?"

"아, 그렇죠. 가에이 말기, 오노와에 정착한 사쿠조는 농사를 짓는 한편 작은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쿠조는 금세공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가자시(假裝師)의 하청으로 가쿠라스즈(神楽鈴)와 철제 비야봉 등을 만들었어요."

"비야봉이 뭐예요?"

"10센티미터 정도의 철제 장난감이지요. 머리는 고리 모양이고, 두 개의 다리가 나와 있습니다. 고리를 입에 물고 발을 손가락으로 튕기면 비야봉이라는 소리가 납니다. 분세이 연간에 유행해서 아이도 어른도 모두 비야봉을 가지고 놀았어요. 어른들을 위해서는 은으로 만든 고급품도 등장해 한동안 금지된 적도 있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도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만들어졌어요."

"옛날에는 신기한 장난감이 많았군요"

"네, 그런 장난감은 요코하마의 외국인들의 눈에 들어왔죠. 이국적이고 정교한 일본 장난감은 특히 외국 업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난감의 수출은 이렇게 해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죠. 죽방울, 수중화, 작은 우산 등이 수출 1호였다고 합니다. 사쿠조도 이런 와중에 '츠루슈도'라는 가게를 만들었습니다. 기우카아가, 코보시, 장난감 기츠키, 판카라쿠리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일부는 해바라기 공예에 그대로 옮겨져 지금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츠루슈도의 장난감은 모두 소품이지만, 고급스러운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기츠키는 용수철 스프링을 사용했고, 도금 기술을 장난감에 도입한 것도 츠루슈도가 가장 빨랐던 것 같아요. 해바라기 공예는 지금도 도금 공장을 가지고 있지요."

"기츠키? 지금도 달그락달그락 새라는 장난감이 팔리고 있어요."

"그건 기츠키를 개량한 거지요. 원래는 모래 같은 건 안 쓰고 그냥 스프링으로만 만들었어요. 이 장난감은 지금의 해바라기 공예 사장인 마와리 데츠바가 아이디어를 더해 부활시킨 거라고 하네요."

"마와리 데츠바는 호도의 손자죠?"

"맞아요, 그 전에 사쿠조의 아이, 도키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순서겠지요. 도키치가 해바라기 공예의 창시자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말했듯 도키치는 훗날 호도(蓬堂)라는 호를 쓰게 됩니다. 호도는 일대의 기인이어서 수많은 기행이 남아있습니다. 호도는 장난감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네요.”

"장난감 장사가 장난감을 싫어하면 곤란하잖아요."

"호도는 원래 장난감을 싫어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아버지가 한쪽 팔로 낑낑대며 장난감을 만드는걸 보아왔기에, 그에게 장난감은 고통의 상징이 되어버린거지요. 그런 경험이 있기에 본질적으로 장난감을 싫어하게 된 마음도 이해할 수 있어요."

"본업에 열중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 대신에, 돈 장사에 손을 대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돈 장사?"

"당시 멕시코에서 주조된 은화는 품질이 좋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막부에서는 대항 차원에서 양은과 동질의 안세이일분은(安政一分銀)을 주조했습니다. 이 질이 좋지 않은 은을 '도로은(ドロ銀)'이라고 불렀지요. 도로의 시세는 요코하마에서 형성되었는데, 호도는 이 도로 시세꾼으로서의 재주가 뛰어났답니다. 그래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군요. 호도의 기행 중 하나로 그렇게 벌어들인 돈을 텐포센 (천보전)으로 바꾸어 항아리 속에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텐포센이라고 하면 그, 놋쇠로 만든 돈을 말하죠?"

"네, 덴포 6년(1895년)에 처음 주조된 텐포 통보를 말합니다. 가치는 백문으로 당백전이라고도 불렸지만, 실제로는 그 액면 가치는 전혀 없어서 메이지 신통화 체계로는 8리로만 통용되었습니다. 한 푼에 2리 부족하다는 뜻에서 조금 모자란 사람을 텐포센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죠. 그런 가치없는 텐포센을 실제로 모았을리는 없으니, 저축했다기 보다는 텐포센이라고 불릴 만한 행위를 많이 저질렀던게 와전된게 아닌가 싶어요. 그 중 하나로 호도는 오와노 땅에 우스꽝스러운 집을 지었습니다. 서양식도 아니고 일본식도 아니고 중국식도 아닌, 형용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나쁜 취향을 가진 건물로, 현지 사람들은 나사 저택이라고 부르지요."

"나사 저택이라니........"

"호도는 어둠의 영역에서는 네지베에(ねじ兵衛 / 나사 아저씨)라고도 불렸기 때문입니다. 네지베에가 만든 뒤틀린 건축물이니 나사 저택인거지요. 현재도 오노와에 남아있고, 데츠바가 살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장난감 사업이 호도에게 적합했다고도 볼 수도 있어요. 즉, 전후의 훌라후프나 닥종이 인형 등의 광기 어린 유행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장난감 업계는 상당히 투기적인 성격이 강하죠. 호도는 그 투기성을 잘 포착할 수 있었어요. 다이쇼(大正)시대에는 도르래를 이용한 장난감이 기록적인 수출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판매 가격이 1달러로 속칭 '원달러 물건'이라 불리며 수출의 꽃이었던 셈입니다. 유명한 독일 라이오넬의 기관차는 당시 가치로 한 대에 천엔이었다고 하니 일본 장난감이 얼마나 저렴했는지 알 수 있을거에요. 호도는 그 흐름을 잘 올라탔죠.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도로은 시세에 정통했다 한들 나사 저택과 같은 자유분방한 집을 지을 수는 없었을거에요."

"호도에게 자식은 있었나요?"

"쇼이치로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해바라기 공예를 물려받았지만, 호도처럼 될 수는 없었어요. 어쨌든 해바라기 공예는 호도 혼자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호도가 죽으면 쇼이치로가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한편 장난감 업계는 쇼와(昭和)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호황을 누렸고, 양초를 응용한 폼폼마루, 용수철로 걷는 펭귄, 뒤집히는 쥐, 깡충깡충 뛰는 병아리 등 걸작이 속속 등장해 구미의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카니발용으로 활발히 수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해바라기 공예는 한 시대 전의 장난감을 세밀하게 만들어내는 방식을 택했죠. 쇼이치로는 일찌감치 일에서 손을 떼고, 젊은 두 아들이 해바라기 공예를 이어받게 되는데 그게 바로 마와리 데츠바(馬割鉄馬)와 류키치(龍吉) 형제였습니다."

"지금 사장님이신 거군요."

"네, 두 사람은 능력도 있고 일도 잘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어요. 그중에서도 쇼와 13년, 구리, 황동, 철강을 사용한 내수용 완구 제조가 금지된 것이 큰 타격이었지요. 수출액도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참담한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결국 백깨비도 도자기로 대체되고, 셀로판 풍선은 종이로, 고무공마저도 결국 사라졌으며, 두 사람은 군수 공장에 징용되어 종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장난감은 부흥했을텐데..."

"그렇죠, 하지만 수출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환율 변동과 불량 완구 등의 문제로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해바라기 공예의 첫 번째 히트작은 달가닥달가닥 새인데, 데츠바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그 전후로 동생 류키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류키치의 하나뿐인 외아들이 이번에 기적과 조우한 토모히로죠"

"후쿠나가 씨의 지식에 놀랐어요. 데츠바를 많이 찾아뵈었나 봅니다."

후쿠나가 씨는 겨우 웃었다.

"아니요, 그 할아버지는 고집불통이라서 좀처럼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뭔가 구멍이라도 찾아볼까 해서 연구 좀 했죠."

"구멍이 있었나요?"

"아니요, 완패입니다. 구멍은 커녕 티끌만한 허점 하나 조차 찾기 힘들었습니다."


마이코는 토시오를 우다이 경제연구회의 모회사로 데려갔다. 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상가 건물로, 1층은 중국 음식점이었다. 건물의 크기는 니시키 빌딩과 거의 비슷한 크기인데, 다이토 흥신소는 4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네, 다섯 명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마이코는 책상을 돌며 한 명 한 명에게 토시오를 소개했다. 모두 50~60대였다. 마이코는 마지막으로 층 안쪽에 앉아 있는 백발의 남자 앞에 토시오를 데리고 갔다. 다이토 흥신소의 요코누마 소장이었다.

요코누마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토시오는 그저께까지의 일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복서였어."

마이코가 대신 말했다.

"호오......."

요코누마는 다시 한 번 토시오를 쳐다보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 이상의 것을 이해한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더 강할까?"

요코누마는 두 사람을 비교했다.

"설마."

마이코가 웃었다.

"마이코는 유도 3단이었지?"

"그만해. 이런 곳에서."

"그런데, 어제 교통과 교도 형사가 전화가 왔다고 하지 않았어? 무슨 일이야?"

"내가 마와리 토모히로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그 사고와는 상관없겠지?"

"그래. 하지만 교도 씨는 변함없이 끈질긴 사람이야.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하니 앞으로 한번 들러볼 생각이야."

"그래. 만나면 잘 부탁해."

대동흥신소를 나오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마이코는 밥을 먹자며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카레라이스, 어때?"

어제 다방에서와 같은 분위기다. 토시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코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안돼."

토시오는 웃으며 카츠동 덮밥이 좋다고 다시 말했다.

"그럼 됐어."

마이코는 큰 소리로 주문한 뒤 가방을 열고 작은 인형을 꺼냈다.

"마사오의 가방에 들어 있었어."

"그 사람의 가방을 열어 보았어요?"

토시오는 마이코의 행동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래. 마사오는 동네 약국에서 수면제를 살 수 있는 처방전도 가지고 있었어. 나머지는 흔한 물건들이었는데, 이 인형이 특이하더군. 그래서 가져왔어. '마도죠'라는 장난감은 아무래도 이것인 것 같거든."

마이코는 인형을 토시오에게 건넸다. 마사오의 물건을 손에 넣는 것이 꺼려졌지만, 마도죠라는 말에 흥미를 느꼈다.

15센티미터 남짓한 여자아이 인형이다. 눈이 크고 뺨이 부풀어 올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양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에 빨간 드레스, 빨간 신발. 보기에는 어디서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형이었다. 토시오가 의기소침한 얼굴로 인형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이코가 말했다.

"등에 단추가 달려 있어. 그것을 눌러봐."

토시오는 인형의 등을 살폈다. 마이코의 말대로, 등짝의 옷감 아래에 작은 돌기가 느껴졌다. 토시오는 그 버튼에 힘을 주었다.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인형의 목이 빙글빙글 돌면서 뒤쪽을 향했다. 인형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싫다 싫다를 하는 인형이 있었다. 그런 종류일까. 그러기에는 뒤쪽을 향한 모양이 기괴했다. 토시오는 다시 한 번 등쪽의 버튼을 눌러 보았다. 그러자 인형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 얼굴을 보고, 무심코 인형을 떨어뜨릴 뻔했다. 토시오는 소스라치게 놀라 변해버린 인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이 귀까지 찢어지고 긴 독한 붉은 혀가 떨고 있었다. 두 눈이 2센티미터나 튀어나왔고, 게다가 한쪽은 빨갛고 한쪽은 흰 눈이었다. 머리는 대머리, 회색 두개골에 거미줄처럼 생긴 혈관이 거미줄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토시오가 버튼을 눌렀다. 인형이 다시 뒤로 돌아갔다. 계속 버튼을 누르자 원래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위로 향했다.

"악취미같은 장난감이야."

마이코가 비판했다.

"이 인형은 하나의 목에 두 개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하나는 소녀의 얼굴이고 하나는 해골의 얼굴이야. 해골의 얼굴은 목 밑부분에 아래쪽으로 숨겨져 있고. 처음 버튼을 누르면 소녀의 목이 뒤로 젖혀지지. 다음 버튼을 누르면 목이 위로 올라가고 숨겨져 있던 해골의 얼굴이 위로 향하게 돼. 동시에 여자아이의 얼굴은 아래쪽을 향하게 되어 숨겨져 버리고. 목은 인형의 몸통에서 지지대가 나와서 양 귀에 붙어있는데, 머리카락으로 잘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

"마도죠라는 것은 ‘마도녀’를 말했던거군요."

토시오는 인형을 마이코에게 돌려주었다.

"이런 인형, 팔릴 것 같아?" 

"안 팔릴 것 같아요. 모양부터가 보기 싫잖아요. 여자애들이 보면 울음을 터뜨릴 거예요. 기계적으로도 그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요."

"토모히로가 죽기 직전까지 이 인형에 대해 말한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아요.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인형의 몸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을지도…. 인형의 몸 안에 뭔가 소중한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재보의 행방을 기록한 고문서 같은거?"

마이코는 놀란 표정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재미있겠는데."


에노키마치서에 도착한 마이코는 마치 내 집에 온 듯이 편안한 발걸음으로 교도 형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교도 형사는 삐뚤빼뚤한 입을 크게 벌리고 마이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이코가 없어진 후로 외로웠다고."

마이코는 여기저기서 경찰관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나한테 반했나 봐."

"뭐야. 그냥 싸움이 부족해졌을 뿐이야. 요코누마 씨는 어떻게 지내?"

"변함없어. 교도 씨를 만나다고 했더니 안부인사 전해달라고 하더군. 어제는 카츠군을 잘 돌봐주었지? 고마와."

"그거 말이야."

교도 형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쪽에서 얘기하자"

그는 일어서서 계단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한 작은 방 문을 열었다.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허름한 방이었다. 교도 형사는 접이식 의자를 펴서 두 사람에게 권했다.

"마이코는 왜 마와리 토모히로를 쫓아다녔지? 일 때문인가?"

"그런 것도 있지. 하지만 진짜 목적은 그 사건을 명백히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 사건... 마이코가 그만두게 된 그 사건 말인가?"

"그래, 내 뇌물 사건"

교도는 괜찮냐는 듯이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이 사람한테도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알겠어, 그 사건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 에노키마치에서 마이코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차를 세웠었지. 그러자 차 안에 있던 남자는 갑자기 너에게 돈을 주고 달아났어. 마이코가 그 돈을 주머니에 넣는 것을 목격한 남자가 소란을 피우며 경찰차를 불렀었고."

"그래, 확실히 나는 돈을 주머니에 넣었어. 남편의 일이 마음에 걸렸던게 사실이었거든."

"우다이 군이 과격파의 돌팔매질로 다리에 부상을 입은 직후였으니까."

"나는 잠시 망설였었어. 망설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거야. 하지만 그 차를 놓칠 생각은 절대 없었어."

"그런데 지나가던 한 남자가 마이코에게 돈을 요구했다며 욕설을 퍼부었지. 마이코는 그 남자와 철저히 맞서 싸웠어야 했어."

"다들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나 자신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어. 나는 그 자리에서 사표를 썼고."

"마이코는 원래 생각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는 여자였으니까."

"지금은 달라졌어."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아직 고생이 뭔지 몰랐군, 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상태로 두면 안 되겠더라고."

"우다이 군을 위해서도 말이야."

"그래, 왜 그때는 그걸 몰랐을까? 나는 경찰을 불러 신고했던 남자를 만났어. 그 남자가 얼마 전에 교통법규 위반 때문에 벌금을 많이 낸 직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정말인가? 분풀이로 그런 증언을 한 거로군."

"그리고 최근에 우연히도 나에게 돈을 준 남자를 찾았어."

"그거 참 대단한데! 두 사람의 새로운 증언이라면 마이코의 억울한 누명도 깨끗이 벗겨질 거야."

"그런데 그게 안 되게 생겼어. 그 남자가 바로 마와리 토모히로였거든."

"......"

"대동흥신소에서 온 일 중에 토모히로가 의뢰한 신용조사가 있었어. 첫눈에 토모히로가 돈을 주었던 그 남자였다는걸 바로 알아보았지. 에노키마치도 해바라기 공예와 오노와를 잇는 길이었고. 나는 토모히로에게 칼을 들이댈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 조사 보고서를 전달한 후 추궁할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토모히로는 마사오를 데리고 갑자기 떠나려고 했어. 나는 깜짝 놀랐고, 어쨌든 비행장에서 그를 붙잡아 말만이라도 남겨두려고 했지. 그 여행길에 토모히로가 죽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

"벌금형에 처해진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불안한데."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구. 사실 다른 증인이 한명 더 있어."

"다른 증인?"

"토모히로의 차 뒷좌석에 한 노인이 타고 있던걸 봤어. 그 노인은 토모히로의 삼촌인 마와리 데츠바가 틀림없다고 생각해."

"노인이 그날 있었던 일을 기억할까?"

"기억하게 만들거야. 몇 번이든 찾아가서라도."

"호오, 오뚜기같군."

"내가 오뚜기라고?"

"이봐,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가나자와의 오뚜기는 미인이야.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신경 안 써. 나는 다시 복직해서 교도 씨와 맞붙을 생각이니까. 각오하라고."

"월급은 싸다구."

"알아. 지금 하는 일도 계속할 생각이야."

교도 형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마이코를 바라보았다.

"조금 만나지 않은 틈에 빈틈없는 여자가 되었네. 그나저나, 어제 사고는 신문에서 읽었어. 그 사고였구나."

"그래."

"오늘 밤이 토모히로의 철야네."

형사는 마이코의 검은 옷을 보았다.

"데츠바를 만나러 가는거야?"

"만날 거야. 하지만 철야 상황에서는 그 사건 이야기를 꺼내진 못하겠지. 그냥 얼굴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해줘."

"교도 씨, 조금 만나지 않은 틈에 인간적인 대사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2025/04/19

금병매 살인사건 - 야마다 후타로 / 권일영 : 별점 1.5점

금병매 살인사건 - 4점
야마다 후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스토리텔러

원제는 "妖異金瓶梅 (요이 금병매)". 중국 고전 "금병매" 속 인물들과 설정으로 본격 추리극을 만든 15편의 독특한 단편들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주로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을 질투하여 없애는 반금련의 계획이 그려지며, 탐정역은 서문경의 난봉꾼 친구인 응백작이 맡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리스트(대표적으로 이거)를 통해 언급되던 작품이지요. 국내에 출간되었다는걸 몰랐었는데, 얼마 전 알고 읽게 되었습니다. 

특징이라면 본격 추리물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역사 소설 느낌도 난다는 점입니다. "금병매" 세계관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그러나 추리물로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수록작 거의 대부분의 동기가 "반금련의 질투"이며, 핵심 트릭 대부분도 "반금련의 변장"으로 의외성과 설득력도 거의 없는 탓입니다.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에 뒤로 가면 갈수록 지루해지고요. 

게다가 마지막 몇 작품은 아예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반금련이 서문경을 너무 사랑한 탓에 사건을 일으켰고, 반춘매와 응백작, 심지어 무송까지 금련 주변 인물들도 모두 금련을 사랑했다는 결말은 황당하고요. "메이지 단두대"에서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는데, 차라리 이게 추리 소설에는 더 어울렸습니다. '사랑' 때문이라는건, 호색한 서문경이 주인공인 "금병매"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대부분이 별로였고, 지루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금병매"와 "수호지"를 바탕으로 쓴 팬픽 정도에 불과한 느낌입니다. 다만 딱 한 작품, "인어등롱"만큼은 빼어납니다. 작품에 반복되는 반금련의 질투로 인한 살인과 억지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적당히 현실적이고 "금병매" 세계관과도 잘 어울리는 덕분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이 작품 한 편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는 "저택의 사육제" 정도 말고는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딱히 "금병매"의 애독자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이런 작품까지 꼼꼼하게 번역, 소개해 준 출판사와 번역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이 작품보다는 "메이지 단두대" 쪽이 훨씬 낫습니다. "메이지 단두대"가 제대로 소개되는게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붉은 신발"

서문경의 부인 둘이 다리가 잘려 죽었다. 범인은 또 다른 부인 손설화로 의심되었다. 몽유병 증세가 있던 설화가 과형이라는 다리를 잘라 집행하는 사형 집행 과정을 본 뒤, 원한이 있었던 두 부인을 살해했다고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문경의 친구인 난봉꾼 응백작은 여성 다리에 대해 성적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하인 내왕야가 범인이라고 추리했다. 죽은 부인들의 다리를 가져다 놓고 옮긴 과정이 설화의 짓으로 보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러나 응백작은 장례식 날, 송 부인과 봉 부인의 발이 바뀐걸 보고 이 모든걸 꾸민 진범은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챘다.  

반금련이 자신을 얕잡아 보는걸 절대 용서하지 않는 독부라는걸 잘 알려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동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은 송 부인의 발이 자기 발보다 작다는걸 공개적으로 과시해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송 부인의 발을 봉 부인 발과 바꿔친 후, 장례식에서 송 부인 발이 자기보다 크다는 말을 남기려고 다리를 옮겼던 겁니다.

그러나 범행이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반금련 혼자 다리를 잘라 옮기는게 가능했으리라 보이지도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미녀와 미소년"

서문경이 총애하는 두 명의 미소년 화동과 금동은 사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금동이 반금련과 정을 통하자, 화동은 이를 서문경에게 고해 바쳤다. 서문경은 반금련에게 탁랍형을, 금동에게는 궁형(거세형)을 내렸다. 형을 받은 금동은 동굴에 갇혀 화동을 원망했는데, 어느날 동굴 앞에서 화동이, 집 안에서는 금동이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서문경이었습니다.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는건, 서문경이 사체를 업고 날랐기 때문이고요. 사체를 업고 옮길 수 있는건 서문경 밖에 없다는걸 밝혀내는 응백작의 추리는 괜찮았습니다.  전족을 한 여자들에게는 무리였으니까요.

하지만 반금련이 두 남자에게 질투하여 모두를 죽이려고 짜낸 계책이라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금동이 거세된 뒤에는 죽일 이유가 없어졌으니까요. 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반금련이 화동으로 변장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였습니다. 서문경이 이를 몰라보았다는건 말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이 질투로 살인을 저지르고, 반금련이 먼저 상대방을 유혹하며, 반금련의 변장은 천하무적이라는 설정은 이후 모든 단편에서 반복되는데,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염마천녀"

양산박 도적 소탕 실패에 책임을 지게 된 사돈 양 제독 탓에, 딸과 사위 진경제는 서문경의 집으로 도피했고 서문경도 함께 근신하는 신세에 놓였다. 서문경은 이 와중에 사위 진경제의 몸종 주향란을 새로이 일곱번째 첩으로 들였다. 그러나 진경제와 주향란은 이미 정을 통하던 사이였다. 반금련은 잔경제를 유혹했지만 들통난 뒤, 진경제는 서문경의 저택 우리에 갖혔다. 그리고 도성의 일이 정리된 날, 누군가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었는데...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은건 누구일까?라는 후더닛 물인데, 특별한건 없습니다. 당연히 반금련이니까요. 정액을 발라 남자 냄새를 풍겼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만, 변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자마다 유혹하고 다니는 반금련을 그냥 놔두는 서문경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택의 사육제"

지현의 색기 넘치는 부인이 서문경 저택을 방문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였다. 반금련은 그녀를 덮칠 계획을 서문경에게 알려주었다. 연회에서 술게임을 해서 취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에 너무 취한 임부인은 2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임부인이 떨어져 죽은건 반금련의 계획이었고, 그녀의 시체를 지현의 부하들에게 고기 구이로 속여서 먹였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엄청나게 뻔하지요. 하지만 여러 음식 및 작가 특유의 광기어린 분위기의 묘사는 좋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란꽃 살인"

유명 화가 소용면이 서문경의 처첩 초상화를 그려주는 날, 새로운 일곱번째 첩 양염방이 벌에 쏘였다. 반금련이 건네 준 모란 꽃 때문이었다. 그 뒤 자기 때문에 자살한 소자허의 원혼이 보인다며 난동을 부리던 염방은 반금련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소용면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양염방이 독살당하는데...

스스로 벌에 쏘인 반금련이 양염방인 척 연기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일부러 벌에 쏘인 상처가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있으려고 머리카락이 잘린 척 했다는건 괜찮았어요.

그러나 변장 트릭이 너무 허황됩니다. 소용면만 있던 것도 아니고, 서문경과 응백작 및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변장한 반금련을 수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몰라봤다는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돈에 환장한 사내"

인색하기로 유명한 서문경의 생약가게 부지배인 한도국이 어느 날, 아내의 전남편 송철곤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송철곤은 납을 은으로 만드는 비법을 완성했다고 주장했고, 철곤에게 속은 서문경은 가마를 만들고 거액의 은도 투자했다. 그런데 가마에서 풀무질을 하던 중, 서문경은 한도국의 아내이자 유명한 추녀 요금에게 급작스럽게 음심을 품게 되었다. 그 뒤 한도국에게 요금을 아내로 달라고 제안했는데, 요금은 철곤 도사의 블꽃쇼 도중 화살에 맞아 죽고 도사도 가마 안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었다...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송철곤 도사의 연금술 사기,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 철곤 도사의 불꽃쇼와 새부인 요금 살해 사건, 철곤 도사 살해 사건, 한도국 살해 사건이 차례로 벌어지는 탓입니다. 

철곤 도사의 연금술 비법은 당연히 사기인데, 나름 기발한 점이 있습니다. 가마 앞에서 음탕한 행동을 하면 은이 납으로 변한다고 말한 뒤, 풀무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약을 탄 술을 먹여 음란한 짓을 하도록 유도했던 것이거든요. 이게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로 이어지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전별금'이라는, 한도국이 송철곤을 죽인 이유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극히 수전노스러운 동기로, 제가 여태 보아왔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 없던 동기였던 덕분입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은 어처구니없네요. 삶은 달걀을 억지로 밀어넣어 목을 막아 죽였다는 방법도 황당하지만, 대충 만들어 자동으로 발사되게 만든 화살이 형편좋게 요금의 등에 맞았다는 것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에요. 도사를 살인범으로 모는 것도 과연 잘 되었을지 의문이고요. 한도국이 돌아온 뒤, 반금련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죽는 결말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도주해야 했던 사람이 구태여 반금련을 만나 사지로 걸어들어갈 이유는 없으니까요. 요금 이야기를 빼고 사기에만 집중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인의 향기"

서문경과 반금련에게 원한을 품은 호걸 무송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문경 가족은 저택에 숨어있기로 했다. 심심했던 반금련은 향기로 여자 맞추는 게임을 제안했는데, 게임 도중에 무송이 쳐들어왔다. 서문경은 기생 이계저와 함께 관 속에 숨은 뒤 험한 꼴을 당한다... 

모든건 응백작과 반금련이 힘을 합처 꾸며낸 연극이었습니다. 소란 틈에 응백작은 돈을 훔치고, 반금련은 기생 이계저를 쫓아내기 위해서요. 거대한 무송은 응백작 어깨 위에 반금련이 올라타 연출했지요.

살인이 아니라 일종의 장난으로 경쟁자 이계저를 쫓아냈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보다는 조금 낫더군요. 무송이 엮이는 설정도 흥미로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 속 미녀"

여섯째 부인 이병아가 죽은 뒤, 서문경은 애틋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 편, 반금련은 금동의 여동생 춘연을 몸종으로 들인 뒤, 금동이 죽은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는데....

춘연에게 옻독을 옮겨, 춘연을 덮치려 한 서문경이 혼비백산하게 만든다는 반금련의 계획이 등장합니다. 이병아 초상화에 장난을 쳐서, 이병아에 대한 마음을 없애려는 목적으로요. 

죽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동기는 독특했는데, 방법이 잔혹하고 유치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자신이 죽인 남자의 여동생마저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요. 별점은 1점입니다.


"아름다운 눈동자"

새로 들인 여섯째 부인 유여화는 눈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유여화가 반금련과 서문경이 사랑을 나누는걸 엿보다 시력을 잃는다는 내용인데, 거울을 이용한 트릭이라는게 너무 뻔했습니다. 노골적으로 거울을 강조하고 있는 전개 탓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유여화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이미 서문경은 흥미를 잃었다는데 그런 여자를 해할 필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질투심이라면, 왜 자기보다 먼저 처첩이 된 이전 부인들은 죽이지 않고 가만 두는지 납득이 되지 않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낙인 찍힌 미녀들"

새 부인 빙금보가 진주를 훔쳤다는게 밝혀져 쫓겨났다. 대식국에서 온 조오라 공주는 등에 십자가 낙인이 찍혀, 기독교를 포교하고 다니는 신하 알 무타츠와 함께 돌풍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사건과 트릭이 등장합니다. 빙금보가 깜깜한 곳에서 진주를 훔친 방법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게 전부라 시시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불에 달군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주 등에 낙인을 찍은 트릭은 새로왔습니다. 화상이 아니라 얼음을 이용해 만든 동상이었다는게 진상이에요. 이를 풀어내기 위해 공주가 흠뻑 젖었다는 상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대식국 출신 승려가 기독교를 포교한다는 독특한 설정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편을 섞은 술을 마셨다 하더라도, 동상을 입을 정도로 얼음 위에 오래 정자세로 누워있는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마지막에 급작스러운 돌풍이 승려와 공주를 데리고 갔고, 반금련의 몸에 십자가 상처를 남겼다는 결말도 억지스럽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검은 젖가슴"

반금련은 서문경이 눈을 가린 채 시력을 잃은 유여화의 몸을 탐닉하는걸 목격했다. 그 뒤, 반금련은 유여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서문경이 새 첩 갈취병에게 푹 빠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의 눈을 멀게한게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챈 유여화는 복수에 나섰지만, 오히려 죽은건 갈취병이었다. 왜 갈취병이 반금련이 방에서 자고 있었고, 왜 그녀의 시체가 유여화 방에 나타났을까?

유여화가 실명했다는걸 이용해서 위치를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트릭인데 솔직히 너무 뻔했어요. 손가락 촉감에 자신있다는 서문경을 비웃듯, 반금련이 갈취병인 척 했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도 뻔한건 마찬가지였고요. 이젠 지겹기까지 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얼어붙은 환희불"

서문경이 자기 탓에 죽은 사람들의 귀신을 본다고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반금련은 서문경과 함께 퇴마를 위해 태산에서 수행 중인 수도승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송이 이끄는 양산박 무리와 마주쳤다. 무송은 서문경과 반금련을 쫓아온 것이었다. 반금련의 활약으로 둘은 목숨을 건지지만, 여자로 변장한 낭자 연청의 화살에 죽을뻔한 서문경은 그 뒤부터 여자를 두려워하게 되는데...

죽음 앞에서 당당한 반금련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반금련은 모야차가 인정할 기개를 보여 목숨을 건지거든요. 이 부분은 수호지 설정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수호지는 억지로 끼워넣은 느낌이 강합니다. 게다가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네요. 여자에 흥미를 잃은 서문경과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낭자 연청을 가장하여 죽게 만들었다? 이젠 정말이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네요. 별점은 1점.


"여인 대마왕"

서문경의 장례식, 반금련은 불륜을 저지르던 첩 향초운과 상대남 유포를 잡아 죽이자고 제안했다. 이 기회에 유산을 노리는 버러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불륜남녀와 함께 서문경 사체가 목이 베인채 발견되는데...

불륜남녀와 서문경 사체의 목을 자른 이유가 기발했습니다. 반금련이 자기 혼자 서문경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꾸민 짓이었거든요. 처음 무덤으로 향한 서문경의 상여 속 사체는 서문경 머리와 유포의 몸이 붙어 있었습니다. 반금련은 무덤에서 나중에 서문경의 머리만 빼 온 뒤, 특별한 장례도 없이 매장된 유포의 몸으로 위장한 무덤에 합쳤고요. 

반금련이 서문경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중국 전통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등, 이 작품만 놓고 보면 평작은 됩니다. 다만, 반금련의 서문경에 대한 '사랑'이 당쵀 납득이 되지 않는게 문제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연화왕생"

무송이 나타나 모야차와 함께 반금련의 몸종 춘매를 협박했다. 수비부 책임자 주수와 결혼한다는 반금련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반금련은 이 기회를 이용해 무송의 복수를 끊어버릴 계책을 짜냈다.

반금련의 죽음, 그리고 무송이 결국 반금련에게 반하고 만다는 최악의 설정이 등장합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네요. 별점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반금련"

방춘매는 주수비의 아내가 된 후, 주수비가 청하현 모든 남자를 양산박 토벌 작전에 징집하도록 만들었다. 모든건 반금련을 음탕하다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춘매의 계획대로 남자가 없는 귀부인들은 음탕한 축제에 빠져들었다. 결국 주수비가 토벌 작전에서 죽은 뒤, 거란군은 남자가 없는 청하현을 덮쳤다. 그러나 응백작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시체로 무송 일행을 꿰어내어 청하현을 구했다.

줄거리만 보아도 황당하기 그지 없지요? 춘매가 금련에게 이렇게까지 충성을 바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귀부인들이 남자가 없다고 삽시간에 음탕한 축제에 빠져든다는 설정도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사체를 보고 아직 그녀가 살아있다 여긴 무송과 양산박 일행이 거란군을 물리친다는 마지막 장면은 제가 뭘 읽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드네요. 역시나 별점은 없습니다. 아니, 별점을 준다면 마이너스에요.


"인어등롱"

앞서의 "낙인찍힌 미녀들"을 일부 수정한 이야기. 진주를 훔치는 트릭은 동일한데, 범인만 갈취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진주를 훔친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잔혹한 서문경이 갈취병 뱃속의 진주를 낚시로 꺼내려다 그만 낚시바늘이 취병의 위에 박히는데, 반금련은 갈취병에게 염주를 먹게 하여 그 무게로 바늘을 빼게 만드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또 이 모든 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부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금련이 갈취병의 아름다운 치아를 부수기 위해 꾸민 계획이라는 반전도 돋보였습니다. 새로운 처첩을 이 정도 계책으로 쫓아내고, 아름다움을 훼손시키는 정도가 확실히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새로 들어온 처첩이 계속 죽어나간다는건 말도 안되잖아요?

제 기준으로는 수록작 중 가장 빼어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