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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0

귀등의 섬 1~4 : 산베 케이 : 별점은 2점. 앞부분은 4점짜리였지만...

귀등의 섬 1 - 4점 산베 케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코코로는 어머니를 잃고 눈에 장애가 있는 여동생 유메와 함께 귀등의 섬에 있는 고아원 학교 "귀등 학원"으로 전학왔다.  귀등학원은 아이들과 교사까지 전원 함께 사는 기숙학교로 교직원 4명, 학생은 6명이 전부였다...

주인공이 코코로와 유메인 데다가, 무대가 되는 학교 이름이 귀등 학원이라니 무슨 AV물 같기도 한데, 이 작품은 주인공 코코로를 비롯한 아이들이 섬과 학교에 대한 불편한 진실 - 학원이 아이들에게 걸려있는 보험금으로 운영된다는 것! - 을 눈치채게 된 뒤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면서 벌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다룬 정통 클로즈드 서클 스릴러 만화입니다.

고립된 섬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음모, 그것에 말려드는 주인공들을 다룬 소설은 많지만 일단 초등학생들로 구성된 멤버들은 분명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들 설정들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코코로는 곤충 박사, 유메는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귀가 밝음, 슈우는 뛰어난 두뇌 보유했다는 식인데, 이런 특기들이 탈주 과정에서 선생들과 벌이는 추격전에서 잘 활용되어 위기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묘사도 아주 좋습니다. 변태 선생을 대표로 하는 "어른들"의 혐오스러운 분위기, 배후에 숨겨져 있는 음모를 서서히 보여주는 디테일들, 예를 들면 들어가면 안되는 방에 적혀있는 무서운 경고문구 -"살려줘, "살해당한다" 등 - 라던가 열리지 않는 책상 서랍안에 가득한 핏자국 등이 그러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 역시 일품이고요. 한마디로 초반부에는 걸작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정말 두근두근하면서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지막 권에서 모든걸 망쳐버립니다! 결국 죽은 사람이 거의 없고 악당은 지옥으로 간다는 어거지 해피엔딩도 별로지만, 실제적인 음모나 공포는 전무한 단순한 착각에 의한 사고였으며 진정한 악인은 변태 선생 하나였을 뿐 나머지는 다 오해였다라는, 앞부분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전부 뒤집는 같잖은 결말은 제 인생 최악의 결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아... 정말 이게 뭔가요. 차라리 진정한 흑막은 정기선을 운항하는 할아버지라고 하던가...

작가의 동글동글하면서 육덕진 그림체도 좋았고 빠른 전개와 긴장감을 자아내는 연출도 높이 평가할 만 한데 마지막 권이 모든걸 허사로 만들어 버려서 별점은 2점입니다. 1~3권까지는 4점은 충분한데 마지막권이 빵점 그 이하로 완전 말아 잡순 케이스죠. 혹시 마지막권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봉인해두시고 앞부분의 좋은 기억만 간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2003/12/15

마지막 에이스 - 프레드릭 포사이스 : 별점 4점

"자칼의 날"등으로 유명한 첩보/스릴러 작가 F.포사이스의 단편집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증거", "목격자", "광고번호H331","마지막 에이스", "면책특권","아일랜드에는 뱀이 없다(이하 아일랜드)", "황홀한 죽음", "제왕","재수없는 날" 순입니다.
"목격자"와 "아일랜드.."는 이전에 다른 단편 앤솔로지에서 읽었었던 단편이니, 새롭게 접한것은 7편이네요.
첫 번째 작품인 "증거"는 걸작입니다. 독특한 설정, 계단을 올라가는 듯한 스릴, 반전까지 짧은 분량에서 더 이상의 이야기를 발견하기 힘들정도로 완성도 높은 단편입니다.

"목격자"는 예전에 다른 미스테리 앤솔로지에서 접했었던 이야기로("세계 미스테리 명작여행") 설정과 내용은 조금 뻔하지만 평작 이상은 됩니다. 킬러가 총을 반입하는 과정이 내용보다 오히려 흥미진진했습니다.

"광고번호 H331"은 한 중년남자의 일탈과 그것때문에 협박당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공포, 스릴 등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용이 역시 좀 뻔했다는 것이고요.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의 살짝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마지막 에이스"는 수록 단편들 중 추리 및 스릴러물 성향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데 왜 표제작인지 모르겠네요. 포커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의 묘사는 흥미진진하고 디테일하지만 결말은 다소 실망스럽습니다. 너무 익숙한 반전이었어요.

"면책특권"은 신문기사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한 주인공이 법률서적을 뒤진 끝에, 면책특권이라는 법률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는 이야기인데........., 일종의 콩트로 추리물이나 스릴러물의 요소는 별로 없습니다. 존 그리샴이 쓴 가벼운 단편물 같은 느낌입니다.

"아일랜드.."는 아마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포사이스의 단편이겠죠?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에 수록되어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좋은 작품이지요.

"황홀한 죽음"은 자신이 죽은 뒤 유산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인 한 자산가의 이야기인데, 이색적이긴 하지만 그다지 흥미롭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부자들 이야기를 싫어하나봐요. 
그래도 보기싫은 여동생 가족을 골탕먹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결국 이루어 낸다는 구성과 마지막 묘사까지 완성도는 대체로 높습니다.

"제왕"은 헤밍웨이를 다분히 의식하고 쓴것이 분명한 "낚시"단편입니다. 순문학에 가까운 단편이지만 감정의 변화와 막판 뒤집기 (반전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모자란)가 통쾌한 나름대로 멋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노인과 바다"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지요..

마지막 "재수없는 날"은 그야말로 모든것이 꼬여버린 한 도둑의 이야기인데 코믹한 분위기가 넘치는 소품입니다. 아일랜드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포사이스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 조금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범작과 수작이 골고루 섞여있고, 범작에서도 포사이스의 재능은 느낄 수 있는 꽤 괜찮은 단편집입니다. 모든 작품에서 포사이스 특유의 단계적으로 늘어가는 스릴과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코믹한 요소가 많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이야기가 나름대로 "해피앤딩"인것도 특이합니다.

이 책은 저같이 단편소설 매니아에겐 딱 알맞는 책인것 같아요. 단편 하나하나의 길이도 적당하고 쉽게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다면 강추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PS: 9편이 실려있는데 책 뒷커버에는 "F.포사이스의 전율적인 스릴러 10편이 들어있다"라고 되어있군요. 흠...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요리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각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리고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큽니다.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06/08/31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 제프 린제이 / 최필원 : 별점 1점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 2점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비채

마이애미,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살인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덱스터는 양부였던 헨리의 충고에 따라 사회악적인 존재만 골라서 처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본 직업인 경찰 혈흔 분석가로서의 이중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러나 덱스터와 유사한 연쇄살인범이 나타나 마이애미는 광란 상태에 빠지고 덱스터는 살인범과의 교감을 느끼면서도 의붓 여동생인 데보라의 소망에 따라 자신의 직감과 본능에 따라 살인범을 추적한다...

모던 스릴러 소설가이자 기획자라는 모중석씨가 선정한 스릴러 소설들을 출간하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4번째 작품입니다. 스릴러 소설은 별로 취향은 아니지만 평도 좋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그러나.. 읽어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실망!" 입니다.
일단, 대체 이 소설의 어디가 스릴러라는 것인지 저는 당쵀 알 수 없더군요. 살인범과의 몇가지의 단서를 놓고 벌이는 스릴 넘치는 두뇌게임이나 쫓고쫓기는 추격? 이 작품에서는 그런건 전혀 없습니다. 살인범의 추적은 덱스터가 같은 연쇄살인범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순전히 자신의 "본능"과 "직감"에 따를 뿐입니다. "단서" 이런건 전혀 없습니다. 단서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실제 수사에는 군더더기일 뿐이고요. 압권은 살인범이 덱스터를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히려 서서히 접근해 온다는 설정. 장난쳐 지금? 주인공은 하는게 하나도 없잖아!
혹 잔인한 장면의 나열만으로 스릴을 줄 수 있다고 작가가 착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구태의연하고 지루한 묘사였을 뿐입니다. 제임스 옐로이의 블랙 다알리아같은 숨이 콱콱 막히고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범죄소설 보고 연구나 좀 할 것이지... 작가가 본 건 헐리우드 영화들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의붓동생과의 관계나 직장 상사와의 관계 등 모든 다른 세부 설정들도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를 아주 충실히 모방하고 있거든요. 아, 주인공 직업에 대한 설정이나 몇몇 장면들에서는 CSI도 좀 본 티를 내긴 하더군요.
그리고 덱스터의 심리묘사에 너무 많이 치중하고 있는 것도 실수로 보입니다. 작가의 필력이 그닥 캐릭터의 심리묘사를 돋보이게 할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아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져서 소설만 불필요하게 길어질 뿐이었습니다. 이놈은 왜이리 잡생각이 많은지 원...

범죄자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이야기는 온갖 만화에서 써먹은 소재이니 별반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고 경찰과 범죄자의 이중생활 역시 뻔한 이야기고.... 잔인하면서도 완벽한 연쇄살인범을 "착한"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설정빼고는 건질게 별로 없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연쇄살인마가 경찰 업무를 수행한다는 이중생활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더라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최소한 웃기기는 했을텐데.
요새 이래저래 안좋은 일이 생겨 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라 이 작품이 좀 집중포화를 맞은 듯도 하지만 두번다시 손에 잡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뒷 커버에는 "리얼리티의 힘!" 이라는 카피가 나와있는데 이 소설의 어디가 리얼하다는 건지 대관절 알 수가 없네요. 보름달에 살인 충동을 이기지 못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게 리얼하다니... 보름달이 뜰때 주인공이 늑대인간으로 변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인하는 것이 리얼하다고 표현한 건가?

PS : 원제가 "Darkly Dreaming Dexter" 니 줄이면 "3D"군요. 전혀 상관없지만 더들리 보이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PS2 (2006.10.11) : 블로그를 둘러보다 보니 영상화가 끝난 모양이군요. 의외로 TV Series인 듯 합니다. 뭐 워낙 영상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다 보니 의외성은 없고 외려 보고싶어지네요.

2010/11/22

24시간 7일 - 짐 브라운 / 하현길 : 별점 2점

24시간 7일 - 4점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비채

다나는 미국 TV 리얼리티 쇼 "24시간 7일"에 참가하게 되었다. 쇼가 열리는 곳은 자메이카와 아이티 사이의 무인도 '바사섬'으로, 무인도였지만 쇼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쇼가 시작되자마자 참가자 12명을 제외한 모든 스태프가 괴바이러스로 사망하고, 참가자 12명도 시청자 투표를 통해 1명씩 바이러스에 의해 희생될 운명에 빠졌다. 방송은 차단되었지만, 인터넷과 위성방송 수신기를 통해 중계가 계속 되었고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이 사건의 추이를 검토하며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도서출판 비채의 트위터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작품입니다. 비채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줄거리 소개대로 무인도에 고립된 리얼리티 쇼 참가자들이 생존을 위해 싸워나간다는 내용은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의 공식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앞서 접했던 일본 작품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게임을 어떻게든 설득력 있게 만들려는 배경 묘사가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리얼리티 쇼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컨트롤'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과, 그가 이 게임을 진행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해 줍니다.

반면 이 장르의 핵심은 '참가자들이 어떻게 생존을 위해 싸워나가는지?'라는걸 잊은 듯합니다. 이 장르물은 대체로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보장하기 때문에, 이를 넘어선 무언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면 흥미진진한 두뇌 게임이나 참가자 간의 갈등이 잘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찾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참가자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투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시청률 경쟁이 낳은 비윤리적인 미디어의 행태를 비판하는 의도를 담고 있겠지요. 문제는 게임 참가자들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겁니다. 그래서 긴장감과 재미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게임 요소, 그리고 시청자를 현혹하기 위한 작전이 등장하지만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졌어요.

또한 지나치게 헐리우드스럽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등장 인물들과 스케일 모두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이거든요.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여주인공 다나(밀라 요보비치?)와, 전직 비행기 조종사로 뛰어난 육체와 지능을 갖춘 저스틴(매튜 맥커너히?)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설정은 진부합니다. 결말 또한 너무나 완벽하게 정리된, 그야말로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 같았고요. 거창한 스케일도 겉보기에는 화려할 뿐, 결국 속이 빈 강정처럼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사섬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이 '헬리콥터'로 미사일을 피한다는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거대한 작전이 미국 정부 모르게 진행된다는 설정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여러 복선과 단서들이 단순한 '떡밥'처럼 보인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이야기를 촘촘하게 구성한 후, 그에 맞춰 단서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로 넣은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컨트롤'의 계획 역시 허술합니다. 참가자 중 누군가가 섬을 탈출하거나, 미군이 섬을 초토화시키는 방식으로 개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고,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허점이 많았습니다. 전개에 중요한 요소였던 '컨트롤의 협력자'에 대해 방송에서 오판한 로릭 박사에 대한 후속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컨트롤'의 동기와 사건의 배경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퍼즐 천재로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터커는 매력적이었고, 기본적으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보장되는 장르물에 미디어 비판 요소를 결합하려 했던 시도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아무래도 작가의 욕심이 지나쳤던게 아닌가 싶네요. 장르물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미디어 비판에 집중하고 스케일을 줄여서 설득력 있게 진행하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현재의 결과물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헐리우드식 스릴러일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벤트로 읽게 된 도서라 보다 좋은 평을 남기고 싶었지만, 솔직한 리뷰를 남기는 것이 맞겠지요. 아마 앞으로 이벤트 당첨은 힘들 것 같습니다...

2011/07/04

사냥꾼의 밤 - 찰스 로턴 (1956) : 별점 2.5점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기꾼 전도사이며 결혼 사기꾼인 해리는 형무소에서 알게 된 사형수 벤이 은행에서 훔친 돈 1만 달러를 두 명의 아이들에게 맡겨 놓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해리는 출소하자마자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 나타나 벤의 아내로 과부가 된 윌라와 결혼했다. 그 뒤 그는 1만 달러를 숨겨 놓은 곳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데...

배우 출신 감독 찰스 로턴의 유일한 감독 작품인 고전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1956년도 작품임에도 20세기 초엽의 무성영화, 그중에서도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영향을 짙게 느낄 수 있습니다. 로버트 미첨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세트 중심으로 촬영되었는데 세트의 구도가 기이하고, 조명 효과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가 너무 과합니다. 공들여 연출했지만, 이미지 위주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강해요. 연기도 어색합니다. 로버트 미첨이 아무리 명배우라지만, 무성영화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는 살리기 어려웠나 봅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한 추격전은 어설픈 슬랩스틱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연기와 장면에 깔리는 뻔하면서도 과한 음악도 관객을 지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도 1만 달러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에 대한 서스펜스를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한 것이 이 영화 최대의 패착입니다. 중반부 펄이 돈을 꺼내 종이공작을 하는 장면에서 약간의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었을 뿐, 이후에는 완력과 우격다짐으로 숨겨진 장소를 알아내고 아이들을 끝없이 뒤쫓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 뒤의 추격전도 별다른 요소 없이 단조롭게 전개되면서 스릴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로버트 미첨의 찬송가를 이용한 연출은 인상적이었으나, 스릴보다는 은근한 분위기 정도였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영화를 구닥다리 영화라고 평가절하하기는 어렵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재평가를 받은 이유도 분명합니다. 사이비 전도사로 양손의 문신을 이용하여 카인과 아벨을 연기하는 로버트 미첨의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독특한 살인마 캐릭터로 길이 남을 만하니까요. 핸섬한 외모와 목소리는 그가 스무 명이 넘는 여자를 등쳐먹었다는 설정을 충분히 뒷받침 해 줍니다. 또 서스펜스 스릴러와 느와르, 아동 모험물 등 다양한 장르를 하나의 영화에 녹여 냈다는 점도 대단했습니다. 윌라의 사체가 낡은 포드 차에 태워진 채 물속에 잠겨 있는 등 인상적인 장면도 많았고요.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던 악역이 점점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며, 마지막에는 안쓰럽게 무너져서 황당했던 후반부만 좀 더 잘 다듬어졌더라면 걸작이 되었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7/10/22

걸 온 더 트레인 - 폴라 호킨스 / 이영아 : 별점 2점

걸 온 더 트레인 - 4점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북폴리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임으로 인한 알콜 중독 탓에 이혼과 퇴사로 인생이 엉망이 된 레이첼에게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듯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리고 기차가 정차하는 중간 지점에서 보이는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레이첼은 부부 중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가 실종되었다는걸 알게 되는데... 

"인어 다크, 다크 우드"와 동일한, 요새 유행하는 1인칭 시점의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영화화되었다는데, 영화화될 만큼의 재미는 충분히 전해줍니다. 사라진 메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누가 죽였는지?에 대해 계속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전개 덕분입니다. 이 중 메건이 실종된 날 필름이 끊긴 레이첼의 기억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은 특히나 일품이에요. 레이첼이 메건을 죽인걸까? 아니면 뭔가 중요한 것을 본 걸까? 등 오만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니까요.

이러한 전개가 모두 3명의 여성 - 레이첼, 메건, 애나 - 시점으로 진행되는 것도 독특합니다. 사실 다양한 인물들의 1인칭 시점이 교차되는 전개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읽은 이런 류의 전개 방식은 보통 서술 트릭을 위한 장치인 경우가 많았던 반면, 이 작품은 애나가 톰이 거짓말을 정말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 애나가 톰이 숨겨둔 전화기를 찾아내는 장면 등 레이첼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디테일을 보강해주는 장치로서, 또 톰이 원래 살던 집에서 계속 사는 이유에 대해 레이첼에게 한 말과 애나 시점의 심리 묘사가 반대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식으로 레이첼은 모르지만 독자에게만 해당 정보를 살짝 알려주는 식으로 사용되는 등 정직하게 전개를 위해서만 사용해서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레이첼이 메건을 엿보며 "제스"라고 혼자 부르다가 갑자기 "메건" 시점으로 넘어올 때의 기묘한 느낌도 나쁘지 않았고요.

아울러 "일상계" 느낌이 가득하다는 독특함 역시 큰 장점입니다. 정말 보통 사람(알콜 중독에 빠져 있고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현 상태만 보면 오히려 그 이하)인 레이첼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좌석의 기차를 타면서 똑같이 정차 하는 곳의 집을 쳐다보다가 사건과 관련된 무언가를 보게 된다는 설정부터 아주 매력적이지요. 게다가 그녀가 목격한 것은 정말 사소한 사항에 불과했고, 사건의 진실과도 동떨어져 있었다는 진상도 마음에 들고요. 우연히 찍은 사진에 거대 조직의 음모가 담겼다! 이런 것보다 여러모로 현실적이라 좋았습니다.

그러나 괜찮은 범죄 스릴러냐하면, 솔직히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으며, "서스펜스"나 "스릴"을 불러일으키는데도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추리적인 부분부터 보자면, 작 중 레이첼이 벌이는 일종의 탐정 활동은 모두 무의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진상은 등장인물들의 입으로 밝혀질 뿐이에요. 단지 메건 사건 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 마음 속에 있는 한가지 씩의 비밀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비밀들은 모두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메건의 비밀은 비교적 초반, 즉 심리치료사 카말과 면담 때 부터 중요하게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철없을 때 낳았던 딸을 부주의로 잃었다는건데, 이걸 아는 사람은 헤어진 아이 아빠 맥 밖에 없으므로 본 사건과 관계가 있을리 없으며, 심리치료사 카말이 이 것을 안다고 해도 딱히 뭘 할 리가 없지요.
레이첼이 술을 마시는 이유? 불임 때문에 알콜 중독이 시작되었고, 그 때문에 톰이 바람을 피워 이혼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 역시 본 사건과는 무관합니다. 그냥 분량 늘리기에 불과해요. 

톰이 진범임이 드러나는 장면도 황당합니다. 메건 시점으로도 작품이 교차 진행되기 때문에, 결국 메건 시점의 마지막 날 범인은 밝혀지게 됩니다. 때문에 최대한 레이첼, 애나 시점에서 범인을 제대로 드러냈어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정교한 맛이 없어서 설득력이 거의 없습니다. 결정적 단서는 애나가 우연찮게 발견한 톰의 또다른 휴대전화가 전부인데, 사건이 일어난지 오래 되었는데 왜 휴대전화를 버리지 않았을까요? 이래서야 톰이 뜬금없이 둘 앞에서 "내가 범인이야. 놀랐지?"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도 않지요. 이는 "톰은 거짓말을 잘한다"를 드러내는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를 범인으로 연결하는데 실패한 탓이 큽니다. 레이첼이 필름이 끊겼을 때 톰이 이야기 한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독자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고요.
이럴 바에야 레이첼 1인칭 시점으로만 작품을 전개하는게 더 깔끔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메건과 애나 시점의 전개는 실상 본 사건 해결에는 별 도움도 안되는데 장황한 묘사로 페이지를 낭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울러 서스펜스나 스릴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데, 레이첼 시점의 묘사가 너무 많은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정신적으로 불완전하고, 이혼에 대해 자책하고 항상 알콜 중독을 의식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혹은 도피처를 찾는 묘사들로 솔직히 짜증 났어요. 무능력한데다가 입만 열면 거짓말에, 오지랖은 넓어서 쓰잘데 없는 사건에 뛰어들어 일만 복잡하게 만드는 민폐 캐릭터 그 자체니까요. 경찰 라일리가 그녀를 못견뎌하는게 충분히 이해될 정도였습니다. 제대로 된 증인 역할도 불가능한 인물이 탐정역을 한다? 어불성설도 유분수여야지요.
레이첼 뿐만이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 모두 짜증나기는 마찬가지에요. 메건? 남편 덕에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당당하게 바람을 피면서 사람 가지고 노는게 취미인 유부녀로, 솔직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더해요. 카말은 자신의 환자와 바람을 피는 부도덕한 심리치료사, 스콧은 의처증 가득한 정신병자, 톰은 거짓말을 일삼는 살인자라는 점에서요. 등장인물 중에서 그나마 정상이 애나, 그리고 "좋은 사람"은 레이첼의 친구 캐리가 유일할 정도로 작품에 제대로 된 사람이 없습니다(아, 캐리는 거의 마더 테레사 수준입니다).

또 최근 접했던 이런 류의 여성 1인칭 시점의 스릴러물의 대부분이 "아이"와 "임신"이 핵심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 작품은 도가 지나칩니다. 레이첼이 알콜 중독이 된 이유는 그녀의 불임이고, 톰과 애나의 불륜과 재혼은 애나의 임신 때문이고, 메건의 불면증의 원인은 그녀가 출산한 아이가 죽은 탓이고, 메건이 살해당한 이유는 톰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고.... 모든 사건이 임신과 출산에 관련되어 있는데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는 그럭저럭인데, 최근 유행(?)에 편승한 작품으로 딱히 완성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특히 추리나 서스펜스 측면에서 말이죠.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걸"은 등장하지도 않는데 왜 제목이 "걸 온 더 트레인" 일까요? 이 역시 미스테리입니다...

2021/01/03

비숍 살인 사건 - S.S. 밴 다인 / 최인자 : 별점 1.5점

비숍 살인 사건 - 4점
S. S. 밴 다인 지음, 최인자 옮김/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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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드 교수 자택에서 조셉 코크레인 로빈이 화살에 찔려 죽었다. 범인이 비숍이라고 서명하여 보낸 마더 구스 동요 편지가 발견된 뒤, 동요대로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마저 살해당했다. 체스 연구가 파디가 자살하여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어린 소녀 매들린 모팻마저 유괴되자 파일로 밴스는 행동에 나서는데....

'마더 구스' 동요에 따른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내용으로 반 다인 최고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추리작가 협회가 선정한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9위,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는 18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밴 다인 (반 다인)의 파일로 밴스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기대치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몇 권 읽어 보기는 했는데, 명성과는 다르게 추리적으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던 탓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무려 다섯 번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만, 마더 구스 동요에 맞춰서 일어났다는 특징 외에는 별다른 트릭은 없습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진 건 범인이 지나치게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범인 딜러드 교수가 코크 로빈을 살해했을 때 드러커 부인에게 들키지 않은 것, 드러커를 살해할 때 미행하던 경찰에게 들키지 않은 것 모두 운에 불과하니까요.
드러커 부인 앞에서 드러커 살해를 이야기하여 심장마비로 사망케 한 것도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도박입니다. 부인이 큰 소리를 질러 교수가 범인이라고 외쳤다면, 아래 층에 있던 요리사까지 살해할 생각이었던걸까요?

범행 전개 과정도 정교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딜러드 교수는 드러커가 연구하던 노트를 훔치고, 아르네손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워서 전기 의자로 보내버릴 생각이었습니다. 젊은 아르네손의 재능에 질투를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코크 로빈과 조니 스프리그는 죽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드러커만 험프티 덤프티라고 해서 죽이고 '비숍' 이라는 서명을 남기면 되니까요. 왜냐하면 비숍이 헨리크 입센이 쓴 "왕위를 노리는 자들" 속 악당 니콜라스 아르네손에서 유래되었다는걸 경찰이 눈치챌 수 있고, 그렇다면 이후 드러커가 쓴 연구 노트를 훔치기 전에 아르네손이 체포되고 사건이 끝나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장은 증거가 없어서 풀려나더라도, 경찰이 엄중 감시했을테니 나중에 죄를 뒤집어 씌우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같은 이유로 코크 로빈, 조니 스프리그, 드러커, 드러커 부인을 살해한 뒤 파디가 자살한걸로 꾸며 살해할 이유도 없습니다. 범인은 아르네손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파디가 진범이라고 경찰이 착각했던 탓에 교수는 매들린 모팻을 유괴해서 죽이려는 번잡스러운 추가 범행을 벌일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아르네손에게는 드러커 부인을 비숍이 습격한 날,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동행했던 벨 양이 시계를 보지 않았어도, 연극을 봤다면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알리바이를 깨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 소거법으로 모든 피해자들 스케쥴과 집 안팎을 꿰고 있는건 범인 딜러드 교수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본격 추리물이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전개도 짜증납니다. 특히 수사, 심문 과정이 그러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제대로 경찰에게 협조하는 인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탓입니다. 딜러드 교수, 드러커, 드러커 부인이 모두요. 요리사 비들은 심문도 아니고 단순한 사정 청취에 지독한 반감을 드러낼 정도입니다.
게다가 드러커나 드러커 부인이 한 말은 거짓말 투성이인데, 이를 추궁하지 않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컴 검사와 경찰은 드러커 부인이 불쌍한 여자라며 그냥 수수방관합니다. 그녀가 범인을 목격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또 드러커 부인을 살해하려고 온 범인이 비숍 말을 남겨두면 부인이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할거라고 여겼다는 추리도 어처구니가 없어요. 매컴 검사가 이를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건 말이 안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컴 검사는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모르는 느낌입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탐정 역을 자처했던 아르네손은 입센의 광팬이라 비숍의 뜻을 처음부터 눈치챘을텐데,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은 이유처럼요. 파디가 루빈슈타인과 대국을 하던 중에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에요. 45분 정도 시간이 빈 틈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었겠지만, 루빈슈타인이 45분동안 숙고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루빈슈타인이 45분 숙고 시간을 요청했다는 설명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그나마 밴스가 인간 정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 범죄는 수학자의 범죄라고 추리하는 정도가 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거는 빈약하고 설득력도 낮습니다. '장기간 심하고 지속적인 정신 노동을 하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폭발을 낳으며, 아르네손은 균형 유지를 위해 항상 남을 비하하고 비웃는 식으로 감정 표출을 해서 범인이 아니니, 범인은 딜러드 교수일 수 밖에 없다'는게 전부거든요. 당연하게도, 스트레스가 심하면 가학적 본능에 따른 기괴한 범죄를 행한다는건 근거가 없습니다. 수학자들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주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그리고 이 논리라면, 항상 아이들과 놀고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드러커도 범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밴스는 드러커를 용의선상에 올려 놓았었죠. 자기 추리도 제대로 따르지 않는 행동이었어요. 

이외에도 파일로 밴스가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장황하게 떠드는 묘사도 너무 많고 지루합니다.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묘사로만 줄여도 길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이런 현학적 과시가 작품 특징이기는 한데, 저에게는 불필요하고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 아르네손을 몰래 살해하려던 교수를 술잔 바꿔치기로 대신 살해한 밴스의 행동만큼은 괜찮았어요. 매컴 검사는 "하지만 그건 살인이야!"라고 화를 내지만, 범인이 아르네손인지, 교수인지 증명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어요. 그리고 어차피 술은 둘 중 누군가가 먹게 될 테니, 이왕이면 범인이 먹는게 낫겠죠.
그러나 이 정도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절망적인 수준이며 마더 구스 동요를 잘 녹여내었다는 선구적인 아이디어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추리 소설 속 트릭의 비밀"에서 이 작품에 대해 '동요와 살인의 소름돋는 일치가 최대의 스릴이며, 그 절묘한 스릴을 제외하면 이 작품이 가진 대부분의 매력을 잃는다'고 말했는데, 그 말 그대로에요. 그러한 특이점 외에는 매력이 없습니다.

2020/08/30

이창 (Real Window) (1954) - 알프레드 히치콕 : 별점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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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제프리는 촬영 도중 다리에 부상을 당해 집에서 몇 주 째 깁스를 하고 지내게 되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창 밖 이웃들의 일상을 관찰하던 제프리는 어느 날, 스트레스 가득한 아내와 남편이 사는 집에서 수상한걸 발견했다. 남편이 새벽에 세 번씩이나 큰 가방을 들고 어딘가를 갔다 왔고, 그 뒤 아내는 사라진 것이었다. 제프리는 전쟁 때 전우였던 형사 도일에게 사건을 알려 주지만, 그는 남편 쏜월드와 아내가 역에서 목격되었다며 제프리의 추리를 일축했다. 

하지만 제프리의 연인 리사는 쏜월드가 아내 핸드백 속 보석을 정리했다는 제프리의 말을 듣고 아내의 죽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어딘가 갈 때 핸드백을 두고갈 리 없다, 보석을 핸드백 안에 넣어 놓을리도 없다, 무엇보다도 결혼 반지를 두고갈 리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간호사 스텔라와 함께 쏜월드를 더 철저히 감시하며 증거를 찾아내려 노력하는데....

히치콕 감독의 고전 명작이지요. "우먼 인 윈도"를 읽고 나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많네요. 윌리엄 아이리쉬의 소설이 원작인 덕분일까요? 하여튼, 쏜월드가 보석을 정리하는걸 보고 리사가 '여자라면 그럴리 없다!' 며 설명하는 장면, 동네에서 잘 노는 개가 죽었을 때 쏜월드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 개가 파헤치던 화단의 2주전 모습과 현재의 차이, 쏜월드가 욕실을 청소하고 짐을 싸는 것 등 설득력있는 단서들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요소요소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2주전 찍은 정원 사진의 네가티브 필름을 프리뷰로 본다던가, 쏜월드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스트로보를 터트리는 등 사진 작가라는 직업을 나름 활용하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쏜월드가 정원에 묻은건 아마도 아내의 머리(?) 였을거라는 마지막 대사도 섬찟하니 재미있었고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그레이스 켈리의 전설적인 미모라고 할 수 있어요. 그야말로 명불허전,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특히 첫 등장은 'rear window grace kelly entrance' 라고 자동 완성 검색어가 뜰 정도입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확실히 오래된 티가 물씬 나며, 이야기도 지나치게 길고 장황한 탓입니다. 초반의 약 30분이 대표적입니다. 사건과 관계없는 일상들, 특히 제프리가 리사와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길게 풀어낼 뿐이거든요. 솔직히 그레이스 켈리의 애절한 구애를 거절하는게 말이나 되나 싶기도 했고요. 

비교적 초반에 쏜월드가 수상하다는걸 알게 되지만, 증거를 잡지 못하고 그냥 관찰만 하는 과정도 지나치게 길어서 서스펜스가 쌓일 여지가 없습니다. 빠른 호흡의 전개가 일반화된 지금이라면 1시간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또 제프리가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설정을 그다지 잘 활용하지 못한 건 아쉽습니다. 오히려 이 핸디캡으로 리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경찰에 신고한 뒤 아무것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영 주인공스럽지도 못했거든요.

그리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쏜월드는 시체를 어디에 어떻게 버린걸까요? 그가 세 번에 걸쳐 밤에 가지고 나간 가방으로는 시체의 모든걸 담기는 아무래도 부족해 보이는데 말이지요. 또 중반부에 트렁크를 끈으로 묶어서 어딘가로 보냈는데, 제프리의 신고로 경찰이 조사한 결과로는 옷가지만 들어있었다는게 밝혀집니다. 하지만 트렁크를 보내는건 제프리가 자기를 엿본다는걸 알아채기 전이므로, 충분히 이 안에 시체를 넣어 옮기는게 마땅합니다. 이 부분은 너무 대충 넘긴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눈여겨볼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기대했던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끼기는 여러모로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지루할 정도로 길기도 하고요. 21세기에 볼 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2018/11/17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 서미애 : 별점 1.5점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 4점
서미애 지음/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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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딸을 잃은 우진은 깊은 슬픔에 빠진 채 간신히 삶을 지탱해 왔지만, 아내마저 갑작스럽게 떠나자 장례를 치르고 절망 속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우진은 누군가 남긴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건 "진범은 따로 있다"는 단 한 줄의 메모였다.
이후 우진은 딸과 아내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풀기 위해 그 한마디를 붙들고 다시 일어났다. 가슴에 묻어둔 딸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는데……

한국 추리, 장르 문학 암흑기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작가 서미애의 신작 장편입니다. 제목의 별은 주인공 우진의 딸 수정을 의미합니다. 딸이 고등학생 일당에게 살해 당한 후, 모든 것을 잃고 지옥에서 살게 된 우진의 심정을 잘 나타낸 제목이지요.

우진이 자살하려는 아내 혜인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뛰어가는 도입부, 그리고 아내의 자살 이후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처절한 고독과 새삼스러운 딸의 부재를 깨닫는 장면의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작가의 말의 따르면 친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후 쓴 작품이라는데, 확실히 이런 슬픔을 느껴본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묘사는,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 우진이 "진범은 따로 있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혼자만의 수사를 시작하는 전개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수사 초기, 아내 자살의 원인이 된 병원에서의 수모를 우진이 새삼스럽게 겪는 부분까지는 정말이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내용은 솔직히 엉망입니다. 어설픈 클리셰가 난무하고 캐릭터의 설정과 역할도 제대로 배분되어 있지 못하지만, 무엇보다도 추리, 스릴러물로 볼 수 없는 이야기 전개 때문입니다. 범죄, 사건은 등장하지만 추리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고, 스릴도 당최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진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우진이 사건에 뛰어든 직후, 3인조 윤기, 재강, 승찬의 대사를 통해 세영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3인조는 우진이 다시 추궁을 시작해서 세영을 만나려 한 것이고요. 그럼 진범은 누구겠어요? 당연히 세영이지요... 이렇게 이야기의 핵심이 초, 중반에 드러나 버립니다. 

또 사건의 진범을 쫓는 전개에서 우진이 하는 일은 세영의 아버지인 검사 출신(딸 사건 담당) 변호사 재혁에게 문자를 남기는 것 뿐입니다. 정작 독자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역할은 사건을 은폐한 핵심 인물인 재혁이 담당하니 이게 뭔가 싶더군요. 재혁도 검사 시절 연줄로 우진의 위치를 추적해서 뒤를 쫓는 것 외에 하는게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추리가 없으면 분위기라도 잡아줘야 하는데 우진과 세영은 평범한 부녀처럼 바다, 천문대 여행을 즐길 뿐이라 긴장감 역시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개도 작위적입니다. 세영과 우진이 엮이는 장면부터 그러합니다. 세영은 우진의 딸을 살해한 3인조에게 쫓기던 와중에 '우연히' 우진의 차를 타게 되고, 우진과 함께 '우연히' 바다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트럭 사고에 휘말려 응급실을 방문하고 여기서 '우연히' 우진이 세영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신분을 알게 됩니다. 도대체 우연이 몇 번 겹쳐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네요.

그리고 사건을 '우연히' 키우게 된 원인인 3인조가 세영을 만나려 한 의도도 전혀 설명되지 않아서 의아합니다. 진범이 따로 있다고 해도 3인조가 지금 시점에 안달이 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법의 심판은 받았고,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재강은 서울대 법대에 다닐 정도로 모두들 부모의 재력으로 잘 살고 있는 와중에 무얼 두려워 하는걸까요? 본인들이 저질렀지만 숨겨 놓은 죄가 밝혀지는게 아니라, 본인들이 저지르지 않았지만 뒤집어 쓴 죄가 밝혀진다는데,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그들을 단죄한 검사 재혁이 세영의 아버지로 일종의 딜을 통해 가벼운 형벌을 주었다 쳐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다시 법정에 세워 판결을 내리는 건 어렵습니다. 어차피 자기들끼리 여자를 보호하려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것이라고 입만 맞춘다면 무거운 형벌을 받지도 않을테고 부모들에게 피해가 갈 리도 없고요.
한마디로 쓰잘데 없는 행동입니다. 이를 3인조의 브레인같은 서울대 법대생 재강이 모른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무엇보다도 3인조가 내분을 일으키고 재강이 윤기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당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상황에서 재강이 당당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장면도 이해가 되지 않고 말이죠.
이러한 무리수는 제가 보기에는 독자는 다 알지만 작가 스스로만 세영의 정체를 잘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진정한 흑막은 3인조, 그 중에서도 재강이다! 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전형적인 추리 소설류에서 따온 뻔한 설정인데 정말이지 무의미했습니다.

아울러 캐릭터 설정과 묘사, 배분도 엉망입니다. 누가봐도 주인공 우진이 탐정 역할을 수행하며 악을 단죄해야 하고, 사건의 절대악은 진범인 세영과 이를 은폐한 재혁이어야 합니다. 허나 우진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하는게 없고, 세영은 마지막 부분의 묘사를 빼면 시종일관 가정 불화로 고통을 겪는 불쌍한 소녀로 그려집니다. 재혁도 세영 부분의 묘사와는 다르게 딸 바보 인격자로 묘사되고요. 3인칭 시점이었다면 단서가 복선처럼 등장했을지도 모르게지만, 세영과 제혁 모두 각자의 시점으로 묘사되어 이야기의 공정함이라던가 복선 모두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멉니다. 세영이 마지막에 절대악으로의 면모를 드러내며 범행을 고백하는 장면도 뜬금없기 그지 없고 무언가 깔끔하게 단죄하는 느낌도 들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요. 또 이를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 정도로 다 잘 해결될거라고 보는 것도 무리죠. 재혁과 세영을 감금, 포박한 상태에서 얻은 자백이 과연 증거 효력이 있을까요? 고문해서 증거를 날조한 거와 다를 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딸과 아내처럼 가족, 친지를 잃은 사람의 슬픔이 어떤지를 그리는 절절하고 먹먹한 묘사만큼은 일품입니다만 추리, 스릴러 장르물로서는 꽝이에요. 추리물을 표방하지만 신파 드라마 쪽 완성도가 훨씬 높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한국 장르물이구나 싶네요. 여튼,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절대로 아닙니다.

2023/04/30

낮의 목욕탕과 술 - 구스미 마사유키 / 양억관 : 별점 2점

낮의 목욕탕과 술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지식여행

<<고독한 미식가>> 원작으로 유명한 구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 제목 그대로 낮에 목욕탕에 갔다가 술을 먹는 10군데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와 장단점은 같은데, 장점은 <<술 한장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를 연상케하는 인생관이 글에 잘 녹아있다는 점입니다. '아직 밝을 때 목욕탕에 갔다가 또 아직 밝을 때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기분 좋고 또 얼마나 맛있을까"라는 그야말로 소다츠스러운 생각이 담뿍 담겨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만한 생각이지만 소다츠라면 그야말로 격렬한 동의를 보일 법한 발상이에요.
맛깔나게 잘 쓴 글이기도 합니다. 특히 비유가 아주 찰집니다. 한낮에 타는 완행 열차를 '어른용 원숭이 열차 (아마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유원지 코끼리 열차겠죠?)'에 비유하고, 목욕탕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들어가는건 '낯선 땅의 야만스러운 공기 속에 나 몰라라 하는 이방인이 되어 몸을 던져 넣는 스릴이 느껴진다'는 식이에요. 이 중에서도 최고는 오래된 목욕탕 안젠탕을 블루스에 비유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폐자재를 때는 목욕탕은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현재와 맞지 않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갈 데 없는 괴로움, 끝도 없이 찢어지는 마음을 우스꽝스럽게 절규하는 블루스가 느껴진다는건데 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 비유가 직접 작사한 가사가 어우러지는데, 이 부분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음식의 군사>>에서 오뎅 먹는걸 제갈량의 진법에 비유하는 실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니까요.
벚나무들을 스쳐갈 때 차량 전체가 벚꽃색으로 물든다는 등 묘사력도 좋고, 특히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맥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찰집니다. 이건 소개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장점, 비유와 묘사력, 그리고 소다츠스러운 감성이 잘 살아있는 명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을 타고 넘어간 맥주가 이윽고 위 안으로 스며든다.
아, 맛있어.
나는 지금, 온몸으로 맥주를 받아들이고 영혼을 다 바쳐서 맞아들인다.
사랑, 그런 느낌이다.
바보인가, 바보라도 좋아. 아니 바보라서 다행이다.
지혜 따위 필요 없다. 옳고 그른지 따질 것도 없어. 작전도 포기. 내일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뭐.
꼰대 아저씨 주제에, 목욕탕에서 다시 태어나 신제품으로 변신한 내가 전면적으로 맥주를 맞이한다.
지금, 맥주는 내 몸 안으로 무혈입성을 달성했다.
나의 모든 세포가 환희의 노래를 부르며 열광한다.
"맥주 만세!" "맥주 만세!" "임금님 만세!" "임금님 만세!"
물론 임금님은 나다. 어리석은 임금. 벌거벗은 채 왕관 하나 달랑 쓰고 당나귀 귀를 쫑긋 세워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백성을 향해 손을 흔든다.
다시 한 모금, 쭈욱 들이킨다.
황금빛 액체가 목을 치달려 내려간다. 이미 길은 닦였다.
취기라는 아련한 벛꽃색 공기가 머리 쪽으로 출렁 흐르기 시작한다.
행복하다. 이것을 행복이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한 인생일꼬.

지극히 소다츠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에 더해 "술꾼이란 결국 마시고 만다. 반드시 마신다. 술집이 보이지 않으면 편의점 주류 코너라도 돌진한다."는 말까지 더하면 그냥 소다츠에요. 

목욕에 대한 찬양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반년 만에 목욕을 하게 된다면,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다가 눈을 뜨면 빛이 있었다. 악마가 사라진 세계가 수증기 속에 펼쳐진다. 성스러운 탕 안에서 벌거벗은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묘사는 목욕을 부활과 천지창조에 비유한건데, 이거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싶네요.
만화가답게 같은 사물을 보아도 독특한 발상으로 풀어내는 것도 재미 요소입니다. 일본식 목욕탕이 옛날 신사 스타일 지붕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일본인에게는 목욕이 종교와 가까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요.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목욕탕에 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다는데, 그럴듯합니다.

새롭게 알게된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상식들도 있습니다. 긴자에 목욕탕이 있다는 이야기처럼요. 작가가 전설의 만화잡지 <<가로>>에서 데뷰 후 겪었던 편집장 나가이 씨와의 에피소드 - 돈이 없으니 맛있는걸 대접할 수 없다. 그래서 목욕탕으로 먼저 데리고 가서, 싸구려 술집의 맥주를 몇 배 더 맛있게 마시게 하려고 했다 - 도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겠지요. 물론 원고료도 주지 않으면서도 힘들면 죽어버리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나가이 씨는 영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서 씁쓸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전 책처럼 자기 생각과 철학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도 여전합니다. 지극히 꼰대스러운 사고방식이 넘쳐나는데,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건 목욕탕 손님들을 관찰하며 자기만의 생각을 펼치는 부분입니다. 재미를 떠나서 그들을 폄하하는 듯한 - 예를 들어 '큰 인물이 될 것 같지 않은 느낌, 어딘지 모르게 좀스럽다' -설명을 덧붙여 조롱거리처럼 삼는건 솔직히 불쾌했습니다. 나이 좀 들었다고 남을 폄하할 권리는 없으니까요. 여러모로 배려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스러움 가득한 글이었습니다.
음악 파트너 구리 짱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로 비유한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리 짱이 이 글을 읽으면 굉장히 불쾌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런 글을 서슴없이 쓴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네요. 본인도 바보로 비하하지만, 자신을 비하한다고 남을 비하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기대했던 음식 측면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목욕'에 더 집중하는 탓입니다. 꼬치구이 가게 <<만페이>>의 고기가 들어있지 않다는 소프트 햄버그스테이크만 처음 들은 메뉴라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어육 소시지를 다져 만든 햄버그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한번 쓱 읽기는 괜찮은 에세이이지만 구태여 찾아 읽을만한 글은 아닙니다. 이와마 소다츠가 누군지 모르신다면 아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8/03/09

Hot Trends 40 (눈으로 보는 글로벌 트렌드) - 국제 디자인 트렌드센터 / 한국 트렌드 연구소 : 별점 2.5점

Hot Trends 40 - 6점
한국트렌드연구소.국제디자인트렌드센터 지음/한국트렌드연구소

이 책은 미래에 성공할 만한 시장을 40개의 트렌드와 117개의 사례로 모아서 소개하는 책입니다.  크게 8가지 키워드로 40개의 트렌드를 묶어 놓았는데 각각 "생소한", "대신하는", "탈피하는", "재정의하는", "구석구석", "인상적인", "연결하는", "돌아보는" 이라는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카테고리부터 전형적인 트렌드 예측서와는 다른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단지 어떤 제품이나 상품의 아이디어가 아닌 "시장"을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포괄적으로 선정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카테고리 별로 자세히 설명하자면, "생소한" 이라는 카테고리는 고정관념을 가볍게 틀어 신선함을 창조하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상에 없던 것이 아닌 인간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는 것 들로서 "터처블 터치" "루미덕트" "이미지 투 사운드" "퍼스널 오아시스" "오션 라이프" "플러스 스릴 이라는 6개의 트렌드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신하는"은 큰 시장이 형성된 곳에서 그것을 새롭게 대신해 가는 것을 말하며 "솔라 라이프", "디지털 잔소리", "이웃집 전기차", "컬러풀 아카이브", "서번트 로봇", "쇼핑 큐레이터" 라는 6개의 트렌드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됩니다. 
"탈피하는"은 고유의 역할에서 벗어나 새롭게 바뀌는 것들을 말하며 "GLBT마켓", "코크리에이터", "아이들을 위한 그린 벨트", "어린 기업가들", "맥가이버 여성" 이라는 5개의 트렌드가 등장합니다. 
"재정의하는"은 최초 정의된 것에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수많은 기회와 트렌드가 탄생될 수 있도록 재정의 되는 것들을 총 6개의 트렌드로 소개하고 있으며 각각은 "생기발랄 도심", "정크 비즈니스", "머터니티 에스코트", "버틀러 서비스", "실무대학", "디지털 바비" 입니다. 
"구석구석"은 그동안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그늘속의 지식들에서 작은 변화만으로 참신하게 변모하는 것들을 말하며 "숨은 그림 찾기", "레스트 룸", "모바일 버스", "옥시노믹스"라는 4개의 트렌드가 등장합니다. 
"인상적인"은 아주 강한 자극으로 큰 의미를 남기는 인상적인 것들로서 "제스처 미믹"과 "페이크 디자인" "센서리 스테이", "고잉 백 투 멤피스"의 4개의 트렌드를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결하는"은 전통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로 새롭게 연결되는 것들로서 "마이크로 블로깅", "디맨딩 몹", "가든 코뮌", "복수세대 서비스", "이웃집 블랑카"라는 5가지 새로운 트렌드가 선택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돌아보는"이라는 카테고리는 뒤를 돌아보는 것 만으로 시작되는 변화라는 내용으로 "데이 위다웃", "책임여행", "재활용 패션" 이라는 3개의 트렌드가 소개됩니다.

아무래도 저야 디지털 디바이스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관심있게 본 분야도 주로 그쪽인데 그 중의 대표적 사례를 소개하자면, 애플의 아이폰은 물론 기본이고 태양에너지로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술로 특허를 얻은 모토로라의 솔라 엘시디, 애완동물을 원하지만 키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세가토이즈의 실제 애완동물을 꼭 닮은 장난감인 꿈의 애완동물 시리즈,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힘을 합친다는 코크리에이터 트렌드, 성냥으로 켜고 입으로 불면 꺼지는 촛불 조명 호노 등이 있었습니다. 

키워드 부터 시작해서 실려있는 트렌드와 사례들도 성장의 초기단계에 위치한, 막 산업화가 시작됐거나 그러한 징후를 보이는 시작 단계의 트렌드를 모아 놓았기 때문에 미래의 상품 아이디어를 찾거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상품기획 파트나 미래의 트렌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웹 사이트에서 유사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인데 가격은 좀 비싸 보이는군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0/03/30

종신검시관 - 요코야마 히데오 / 민경욱 : 별점 2.5점

 

종신검시관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사라진 이틀"과 "제3의 시효"로 접해보았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단편집. 종신 검시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검시관 구라이시가 주축이 되는 연작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총 8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각 단편별로 주인공은 모두 따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구라이시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제 3자로 머물죠.

그런데 작품은 그간 들어왔던 호평에 비하면 단점이 많더군요. 일단 뛰어난 감식관이자 한마리 외로운 늑대, 인망도 있지만 적도 많아서 야쿠자스럽다는 구라이시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지만 설정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이 노골적이라 거슬렸습니다.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추리적으로도 무리수를 너무 많이 두었고요. 단편들 대부분이 "누가 보아도 XX한 상황을 구라이시가 아주 사소한 단서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인데 사실 억지가 심하더라고요.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고 제각각인 것도 옥의 티였습니다. 좋은 작품들도 있지만, 처지는 몇몇 작품이 발목을 잡는 탓입니다. 그래서 전체 총 별점은 평작 수준인 2.5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전별"을 꼽습니다.

덧붙이자면, 캐릭터가 강하고 등장인물도 많으며 이야기는 풍성한 만큼 차라리 "강력1반"처럼 만화화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각 단편별로 짤막하게 소개하고 평가해 본다면,

<붉은 명함>
검시담당 조사관 대리 이치노세가 자신과 불륜관계였던 유카리의 사체를 검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이치노세가 불륜관계가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심리 서스펜스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정보도 공정한 편이라 추리적으로도 탄탄하고요. 
하지만 트릭 자체는 구라이시의 탁월한 검시능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무리수가 약간 보입니다. 그래도 재미와 스릴 모두 합격점이기에 별점은 3점.

<눈앞의 밀실>
현민 신문 기자 아이자키가 기사를 위해 오오시다 반장 자택 앞에서 잠복하다가 살인 사건과 만나게 된다는 내용.
기자들의 취재경쟁이 디테일하게 펼쳐지는 것과 동시에, 노파 살인 사건과 반장 부인 살인 사건이라는 두 개의 사건이 펼쳐져서 내용이 무척 풍성합니다. 하지만 노파 살인 사건은 현실성없는 추리퀴즈에나 쓰일법한 구닥다리 트릭(발레 슈즈?)이 거슬리고 반장 부인 살인 사건 역시 동기와 범행에 있어 납득하기 어렵기에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화분의 여자>
"눈앞의 밀실"처럼 불륜관계인 남녀의 음독 사체를 검시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향토 역사가를 자처하는 우에다 마사쓰구가 시체로 발견되는 두 가지 사건이 함께 진행됩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 모두 추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첫 번째 음독 사체 사건은 우연과 작위성이 지나치고, 두 번째 향토 역사가 사건의 경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자체는 괜찮았지만 가장 중요한 다이잉 메시지가 너무 억지스러웠으니까요 
그래도 트릭은 풍성하고 생각하지 못한 의외성이 돋보여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전별>
형사부장 고마쓰자키가 은퇴를 앞두고 자신에게 엽서를 보내온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해 구라이시와 상담한다는 이야기. 중간에 짤막한 살인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크게 비중은 없어서 한 개의 사건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잔잔한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사건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도 괜찮더군요. 별점은 3.5점.

<목소리>
실무수습생으로 지검에 온 사이다 리오의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사람들의 감정이 교차하는 작품. 발단과 전개는 독특한 맛이 있지만 결국 자살이기에 사건성이 높지 않고, 이야기의 설득력도 떨어져서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심리 드라마도 아니고 범죄물도 아니고 반전물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한밤중의 조서>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이야기의 무대가 형사들의 단골 Bar입니다. 이곳에서 자신이 막 해결한 사건에 대한 무용담을 늘어놓던 형사 사쿠라가 구라이시가 사건에 대한 반론을 재기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이유를 캐내려는 것이 주요 내용이죠. 혈액형과 DNA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핵심인데, 내용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구라이시가 사건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억지스럽다는 것은 확실한 단점입니다. 구라이시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지나쳤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실책>
전직 여경이었던 하루에의 자살 사체를 검시하게 된 구라이시가 다른 모든 이의 판단을 뒤엎고 살인이라 결론내린다는 내용으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구라이시의 실책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아주 중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별다른게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구라이시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려 한 의도가 너무 뻔해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17년 매미>
구라이시가 발탁한 조사관대리 나가시마를 축으로 17년마다 벌어지는 불량배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모든 면에서 억지가 심한 작품입니다. 사건의 동기와 범인 모두가 말이죠... 나가시마와 구라이시의 인연이 잘 녹아들어 있다는 것과 구라이시의 최후를 암시하는 결말은 인상적이지만 역시나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3/06/23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 에드 멕베인 외 / 홍한별 : 별점 3점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 6점
에드 맥베인 외 지음, 린다 랜드리건 엮음, 홍한별 옮김/강

EQMM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쌍벽을 이루는 미스터리 잡지인 AHMM (앨프리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의 50주년 기념 선집.

과거 엘리너 설리번이 엮었던 같은 잡지 걸작선은 이미 접해보았는데, 이 선집은 서문에서 밝히듯 독자 투표가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인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진이 정말로 화려해요. 헨리 슬레서, 에드워드 D 호크, 에드 멕베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빌 프론지니, 로렌스 블록, 새러 패러츠키 등의 작품들이 실려 있으니까요. 그것도 32편이나! 작품들도 작가들의 유명 시리즈들 중심이라는 점도 반가운 요소였고요. (제가 아는 시리즈는 매튜 스커더와 워쇼스키 시리즈밖에는 없었습니다만)

그러나 수록작 모두 수준이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추리와는 동떨어진 작품도 많았고요.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문체가 딱딱해서 쉽게 읽기 힘들었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에드워드 D 호크의 "긴 추락"이 "내려가는 동안"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제가 취미삼아 번역했던 결과물이 더 읽기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워낙 다양한 작품이 많이 실려 있기에 평균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히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도 볼륨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만큼, 관심 있으신 분들은 큰 부담 느끼지 말고 한 번쯤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헨리 슬레서 "사형 집행일"

아내를 죽인 범인에게 사형 선고를 받게 만든 검사 셸비 앞에, 그 사건의 진범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노인이 나타났다...

단편의 명수답네요. 깔끔하고 짤막한 분량 안에 스릴과 범죄, 동기, 반전까지 모두 들어 있거든요. 이런 쇼트쇼트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제임스 홀딩 "살인요리법"

은퇴한 요리사가 자신의 전설적 요리인 포타주 프랑수아 프르미에 비법을 노리는 조카 부부에게 맞서는 이야기. 짤막하지만 적절한 전개 및 반전이 잘 짜여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계획을 눈치챈 뒤에 벌이는 반격이 과연 프로 요리사! 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기발했어요. 마지막의 한마디 - "포타주 드 볼라유 귀스타프 – 쥐약으로 간을 한 스프"- 까지 요리사다움을 잃지 않고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윌리엄 브리튼 "역사적 오류"

옛 풍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을에 역사학자 노먼이 억류된 뒤 고난을 맞는다는 이야기. 

폐쇄된 마을에 찾아온 이방인이 겪는 기이한 경험이라는 소재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보통 "인스머스의 그림자"처럼 마을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설정이 많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마을이 고증에 집착하는 오타쿠스러운 곳이라서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을 가져다 주는 이색작입니다. 데미 무어가 출연했던 코미디 영화 "난폭한 주말"이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물론 영화는 망작이었지만...)

S.J 로잔 "바디 잉글리쉬"

중국계 미국인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가 돋보이는 본격물입니다. 한국 막장드라마 같은 설정도 꽤 인상적이었어요.

캐럴 케일 "하수구"

궁지에 몰린 남자에 대한 일상계 서스펜스 심리 호러물. 전개가 뻔할 뿐더러, ‘미쳐버렸다’는 결말은 너무 쉽게 간 듯해서 아쉽지만, 뭔가 꽉 막힌, 그야말로 탈출구 없는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가 제대로라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2019/05/11

모래톱의 수수께끼 - 어스킨 칠더스 / 사주영 : 별점 1.5점

모래톱의 수수께끼 2 - 4점
어스킨 칠더스 지음, 사주영 옮김/바른번역(왓북)

외무부 직원 커러더스는 옛 친구 데이비스의 초대로 늦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함부르크로 향했다. 젠틀맨에게 어울리는 우아한 요트 여행을 기대했는데, 데이비스의 요트 덜시벨라호는 선원 한 명 없는 작디 작은 요트였다.
독일 인근 북해 연안을 무모하게 누비는 몇일간의 요트 여행 후, 무엇을 위해서인지 커러더스가 궁금해하자 데이비스가 얼마 전 만났던 대형 요트 선장 돌만이 자신을 죽이려 했고 그는 독일의 스파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고백했다. 이유는 데이비스가 북해 인근 모래톱을 항해했기 때문으로, 데이비스는 모래톱의 수로는 초계정과 얼마전 들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어서 군사적 가치가 높다고 주장했다.
커러더스는 수로들을 조사하고 돌만의 음모를 박살내자는 데이비스의 부탁을 받아들이는데...

"블러디 머더"에서 스파이 소설의 원점이자 정점이라고 소개했던 작품입니다. 이렇게까지 소개하면 읽어 보지 않을 방법이 없죠. 셜록 홈즈를 읽어보지 않고 추리 소설을 논한다는게 말도 안되는 것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읽어보니 스파이 소설로는 합격점을 주기 힘듭니다. 우선 돌만이 '스파이' 이며 그의 음모는 이러저러하다! 는 두 청년의 확신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탓이 큽니다. 커러더스가 돌만과 폰 브뤼닝, 헤르 뵈메와 그림이 참석했던 회의를 몰래 염탐했을 때의 느낌처럼 그들은 정말 멤메르트 섬에서 오래전 난파선을 인양하려는 목적으로 뭉친 사람들일 수도 있어요. 진상은 결국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으니까요. 돌만이 과거 영국 해군 소속이었다는걸 숨겼다는게 과연 그리 대단한 비밀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설령 둘이 밝혀낸(것 처럼 보이는) 독일의 음모, 즉 독일이 자국 앞바다 수로를 영국과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항로로 개척하여 병력을 태운 바지선을 영국 해안에 상륙시키려 한다는게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러나 자국 앞바다에서 항로를 개척하는건 당연한 군사 훈련이자 작전입니다. 오히려 두 청년이 하는 짓이야말로 염탐이자 스파이 행위에요! 이러한 스파이 행위를 배신자 돌만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로 포장하는 행위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돌만이 배신자이건 아니건간에 둘의 스파이 행위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요?
게다가 이 음모도 둘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 근거가 없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지만, 둘의 모험담에서도 잘 알 수 있듯 아주 날씨가 좋고 물 때가 맞아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으니까요. 주위에서 보는 사람도 많고요. 이래서야 효과가 있을리 없지요. 차라리 멤메르트 섬에서 인양 회사를 가장하여 잠수함 기지를 만들고 있다는 처음의 가설 쪽이 더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이렇게 스파이 소설로는 여러모로 함량미달이라면 다른 재미라도 주었어야 하는데 건질게 없는건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요트에 의지해서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라면 최소한 해양 모험 소설로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두 청년의 모험이 너무나 보잘 것 없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위험이라곤 데이비스가 좌초할 뻔 했던 무모한 항해 뿐이며, 이는 돌만의 입을 통해 안전할 줄 알았다는 식으로 부정됩니다. 그 외에는 안개 속에서 적의 본거지로 노를 저어 간다던가, 몰래 창 뒤에서 대화를 엿듣는게 전부에요. 스파이 소설에서 기대해 봄직한 서스펜스와 스릴은 커녕 모험 소설로 최소한의 액션도 등장하지 않아서 무척이나 지루합니다.

애송이에 불과한 두 청년이 활약을 해 봤자 이 정도에 불과할 거라는건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킹스맨" 등이 날아다니는 시대에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따분했습니다. 항해와 배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지루함을 가중시킵니다. 디테일을 살리며 설득력을 높여주는 요소임은 분명하지만 재미와는 영 거리가 멀더군요. 게다가 번역도 좋지 못해서 읽다가 졸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후 발표된 다양한 스파이, 모험 소설의 원조라는 점에서는 높은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읽어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2/06/25

심야의 손님 - 오쿠라 데루코 / 이현욱 외 : 별점 1점

심야의 손님 - 2점
오쿠라 데루코 지음, 이현욱 외 옮김/위북

잘 모르는, 전전(戰前)세대 일본 추리 작가의 2차 대전 전~후를 아우르는 대표 단편 일곱 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나쓰메 소세키,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문하에 있던 작가로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득력 있게 파헤치는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 어쩌구 하는 홍보 문구에 낚여서 구입하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나 형편없고 졸렬했습니다. 최근 읽은 책, 아니 제가 읽어왔던 천 권이 넘는 책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졸작이었어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우선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심령 호러와 같은 작품도 있는데, 스릴이나 긴박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서 섬찟한 느낌도 전혀 받을 수 없었고요. 홍보 문구에서 이야기하는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있는 인과 관계 역시 단 한 작품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지금 읽기에는 의외성없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전개로 진행된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읽어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활동기에도 유명하지 않았으며 지금 시점에서 그 이름이 완전히 잊혀진 작가는 역시나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시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천식>>은 명문가 후지와라 가문의 후계자 기미타카가 사라져 버린 사건이 등장합니다. 알고보니 후계자 기미타카는 살해되었었고, 범인은 친모였어요. 친모는 후지와라 가문과 어울리지 않는 평민 출신인 탓에 친척들에게 멸시를 당해왔었는데, 기미타카가 성장하면서 범죄자가 되어가자 자신이 질타를 받을 걸 우려하여 살해했다고 하네요.
아니, 아들이 범죄자가 되건 말건 친모가 아들을 살해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살해한 뒤, 아들을 미이라로 만드려고 불상 속에 사체를 집어넣었다는 설정은 또 왜 들어간걸까요? 에도가와 란포를 따라한 유치한 발상에 불과합니다. 설득력이 없다는것도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이러한 진상은 기미타카의 친모가 남긴 편지로 드러날 뿐이라 추리의 여지도 전무합니다. 별점을 주자면 0.5점.

<<공포의 스파이>>에서는 구 백작 마쓰오카 본가에서 장남 가즈오가 사라집니다. 진상은 동생 가오루가 형수에게 반해서, 형수와 가문을 손에 넣기 위해 형을 납치했다는 겁니다. 가즈오는 시베리아 파병 당시 소련 스파이로 일할 걸 서약했었다는 약점이 있었다는군요.
소련 스파이 설정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전후에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진범을 밝히는 과정도 제대로 설명되고 있지 못합니다. 조사나 추리 없이 그냥 마지막에 "얘가 범인이에요"라는 식이거든요. 이 작가가 추리 소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글을 썼다는 확신이 듭니다. 역시나 별점은 0.5점.

<<요물의 그림자>>는 비밀 암호를 몸에 지니고 여객선을 타고 이동하던 화자가, 여객선에서 만난 중국인 부녀로부터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내용입니다. 아파보이던 딸은 원래 죽어서 장례까지 치뤘었는데, 하인이 손에 낀 반지를 훔치려 시체 손가락을 자를 때 깨어났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 중국인 부녀가 약을 써서 화자로부터 암호를 빼앗는 전개로 이어지고요.
왜 딸이 죽었다가 살아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 어떻게 암호가 화자에게 있는줄 알고 접근해서 빼앗는지, 그리고 무엇에 대한 암호인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등 이야기의 완성도 자체가 한없이 낮습니다. 그냥 중국인 부녀 이야기만 "공포 특급" 정도에 수록될 짤막한 1~2페이지짜리 괴담으로 풀어내는게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요 괴담만 그나마 읽을만해서 별점은 1점입니다.

<<마성의 여자>>는 특별한 능력으로 남편 혼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알아내는 야스코의 이야기입니다. 혼조는 야스코의 감시와 집착에 질려 그녀를 살해하지만, 야스코의 영혼이 혼조와 하나가 되어 발광한다는 결말입니다. 자기가 증오해서 죽인 피해자가 '초능력자'여서, 그녀의 영혼이 나의 영혼과 합쳐진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랄까... 하지만 이를 제대로 풀어내지도, 마무리짓지도 못해서 완성도는 낮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심야의 손님>>에서는 사립탐정 사쿠라이 요코가 부호 아리마쓰 다케오 살해 사건에 엮이는걸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아리마쓰 다케오를 죽였던 건 탈옥수인 의적 오고시였고, 그는 다케오의 양녀 미와코를 돕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던 거지요. 다케오가 과거 미와코의 친부 조지를 함정에 빠트렸었는데, 그 당시 상황이 담겼던 레코드가 남아있어서 오고시는 미와코를 도울 결심을 했다고 설명됩니다.
그런데 요코가 하는건 전혀 없습니다. 요코에게 '심야의 손님'인 의적 오고시가 찾아와 진상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왜 사립탐정이 등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 자체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아리마쓰가 이 레코드를 진작에 없애지 않은 이유도 도무지 모르겠어요. 누군가를 함정에 빠트린 범인이 그 핵심 증거를 집에 잘 숨겨두고 보관해 둔다? 설득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지요. 이 쯤 되면 작가가 도대체 생각이라는걸 하고 글을 쓰는지 의심이 될 정도에요. 별점은 0.5점.

<<일본 동백꽃 아가씨>>도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입니다. 과거 미모로 '일본 동백꽃 아가씨'라고 불리웠던 히가시야마 씨 부인이 실종됩니다. 부인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유명 가수가 제대로 간호받지 못하던 부인을 직접 돌보기 위해 납치했던 것이지요.
우선 추리의 여지는 전무합니다. 다른 사쿠라이 요코 시리즈와 마찬가지로요. 히가시야마 씨에게 그렇게 부인을 돌볼거라면 자기에게 맡기라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범인이었거든요. 이래서야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부인에게서 과거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절절했기에, 고풍스러운 로맨스물로서의 가치가 약간 있을 뿐입니다. 별점은 1점 정도?

<<사라진 영매>>는 가쓰다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내가 죽은 뒤 아내의 영혼을 불러오는 영매 레이코에게 푹 빠졌고 그러다가 아내가 과거에 썼던 별거아닌 편지를 발견한 탓에 폭주하여 레이코를 살해했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이 막장 단편집의 화룡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매 레이코의 능력, 가쓰다가 폭주한 이유, 사체를 은행 대여금고에 맡겼다는 설정 등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니까요. 당연히 무섭지도 않아서 심령 호러물로의 가치도 전무합니다. 가쓰다가 아내, 레이코와 화자인 S 부인 모두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는 반전이라도 잘 살렸더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연히 잘 살리지도 못했어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22/07/24

네 명의 의인 - 에드거 월리스 / 전행선 : 별점 2.5점

네 명의 의인 - 6점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양파(도서출판)

<<아래 리뷰에는 내용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악한 자들을 처단하는 자경단 네 명의 의인이 이번에는 영국 외무부 장관 필립 레이먼 경의 목숨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가 추진 중인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면, 부패한 정부를 쓰러트릴 영웅 가르시아가 죽게 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었다. 네 명의 의인은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보내며 압박하지만, 레이먼 경은 절대로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건 총 책임자 팰머스 형사는 레이먼 경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경은 결국 네 명의 의인이 경고한 시간에 자택 밀실 안에서 살해되고 마는데....

사회 정의를 위해 힘쓰는 4인조가 영국 총리를 암살한다는 내용의 모험물이자 범죄 추리물. <<킹콩>>의 원작자로 당대의 유명한 스토리텔러였던 에드거 윌리스의 작품입니다. 20세기 극초반인 1905년 발표된 작품인데 상당히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았고, 지금 시점에서 읽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라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 악을 처단한다는 '자경단' 설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재력과 변장 기술로 대표되는 특수 능력, 멤버 중 한 명인 테리가 조직의 기밀을 누설하려 하자 신문사로 복면을 하고 직접 찾아가 빼내온다던가, 팰머스 형사로 변장하여 총리에게 직접 협박장을 전달하는 등의 대범함, 그리고 빼어난 추리력 모두 후대, 아니 현재의 DC나 마블 히어로들과 비교해도 딱히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악당이지만 경찰과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며 매너까지 갖춘 안티 히어로적인 모습도 독특함을 더해주고요.'괴도 신사'의 영국 버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모험물적인 속성 외에도 추리적으로도 볼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니뭐니해도 레이먼 경이 수많은 경찰로 둘러쌓여 있는 밀실 안에서 살해된 트릭을 꼽고 싶습니다. 레이먼 경이 자주 누르던 부저에 전기가 통하게 하여 감전시켜 죽였다는 건데, 지금 보면 왜 경찰이 진작에 알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만,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꽤나 그럴싸하면서 효과적인 트릭이었다 생각됩니다. 손에 있는 얼룩 흔적라던가, 머나먼 이국 독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네 명의 의인이 도둑맞은 수첩 속에 표기되었던 지명이 전기가 통하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었고요.
모험과 범죄를 잘 결합한 전개도 좋았습니다. 좀도둑 빌리 마크스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빌리에게 호주머니를 털려 '4명의 의인'이라는게 드러난 네 명의 의인 중 한 명인 포이카르트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빌리를 찾아낸 뒤, 그가 자기들의 정체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아내고 처단하는 부분이지요. 포이카르트는 대놓고 빌리에게 얼굴을 드러내어 그가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가 보상금 때문에 일부러 경찰에 신고를 미루고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 뒤 다른 의인 맨프래드가 경찰을 사칭하여 빌리를 살해하게 되고요. 이 일련의 과정은 모두 합리적일 뿐더러, 추리는 물론 여러가지 디테일일들이 곁들여져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물론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부분, 작위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네 명의 의인의 활약 대부분은 변장 중심이며, 운에 많이 의지하고 있어서 딱히 스릴을 느끼기 힘들고 꽉 짜여진 정교한 이야기라고 하기는 무리였어요. 마지막에 테리가 왜 죽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네 명의 의인 캐릭터가 약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한 명은 화학 전문가라는 설정 정도에 그치는데, 리더이자 돈줄, 브레인, 행동대장과 같은 식으로 각각의 캐릭터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A 특공대>>처럼요.
트릭도 앞서 괜찮았다고 말씀드렸지만, 레이먼 경이 범행 예고 시각에 부저를 누른다는건 장담할 수 없었던 등 몇가지 디테일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고요.

그래도 100년이 넘은 고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확실히 당대의 인기가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어요.
설정은 정 반대지만, 비슷한 시기의 대흥행작이었던 <<팡토마스>>와 비교해보자면, <<팡토마스>>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2015/04/20

2015.4.14 ~ 4.19 한주간 두산베어스 단상

2015.4.7 ~ 4.12 한주간 두산베어스 단상

좋았던 점 :

1. 선발, 계투, 타선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잘 메꾼 점
2. 9회말 투아웃에서 끝내기 홈런! 아싸 조쿠나!

나빴던 점 :

1. KT 상대로 (KT 팬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엄청난 소모전
2. 1루수 자리의 모든 선수들 부진
3. 롯데만 만나면 부진한 장원준 선수. 징크스?

기타 감상 :

KT ~ 롯데와의 6연전. 비로 4경기만 진행되었는데 모든 경기를 잡은 아주 행복한 한 주였습니다. 일단 KT 상대로는 진야곱, 이현호 선수라는 임시 선발을 동원하였죠. 바로 전 주에 많이 던진 마야 선수를 한타임 쉬게 해 준 것은 아주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문제는 엄청난 점수차임에도 볼넷을 남발하여 4이닝을 버티지 못한 진야곱 선수의 투구였지요. 덕분에 오현택 선수 등 중간계투의 엄청난 소모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첫번째 경기는 타선 대폭발 덕에 일방적으로 이겼지만, 두번째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는 아주 어려운 경기였습니다. 다행히 수많은 위기를 잘 버틴 중간계투진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타선은 무사 만루에서 한점도 못내는 등 삽질의 연속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이어진 롯데전은 여러모로 추스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한 숨 돌렸습니다. 1차전은 1회부터 송승준 선수를 강판시키는 엄청난 공격력, 거기에 더해 컨디션 최고는 아니지만 6이닝을 1실점으로 버텨준 니퍼트 선수 덕분에 별 위기 없이 쉽게 잡았고, 2차전은 롯데만 만나면 유독 부진한 장원준 선수가 5이닝 5실점하고 상대팀 투수 린드블럼 선수에게 타선은 8회까지 1득점으로 꽁꽁 틀어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이현호 - 이재우 - 함덕주 - 김강률 선수로 이어지는 계투가 상대의 추가 득점을 봉쇄한 덕에 9회말에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잭 루츠 선수가 복귀해도 3루수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최주환 선수의 스리런이 화룡정점!

결론내리자면, 타선이 살아나고 중간계투가 슬슬 틀이 잡힌 한주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두산 베어스를 보는 듯한 끈질김도 좋았고 말이죠. 이제서야 제법 팀다운 팀 느낌이네요.

홍성흔 선수가 사구로 조금 쉬었지만 바로 복귀가 가능하고, 잭 루츠 선수도 1루수로 올라올 예정이라고 하니 타선도 더 기대가 됩니다. 허경민 선수가 올라오고 고영민 - 오재일 선수가 내려간 것도 호재라 생각되요. 선수들은 분하겠지만 지켜보는 팬 입장에서는 1%도 기대가 안되는 타격이라 더 봐 줄 수가 없었거든요. 차라리 배팅볼 투수라도 투수를 올리는 게 맞겠죠.

이번 주 히어로로 투수는 중간에서 듬직하게 버텨준 이재우 선수를, 타자로는 임팩트의 최주환 선수를 꼽습니다.

아울러 변진수 선수 사구로 인한 김사연 선수의 부상은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번 주 예상 :

이번 주는 넥센 - 기아와의 각 3연전이 펼쳐집니다. 선발진은 마야 - 유희관 - 니퍼트 - 장원준 - 진야곱 - 마야 순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목동 원정에 상대팀도 상위권 선발이 총출동하는 넥센전이 관건인데 2경기만 잡아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마야 - 벤 헤켄 선수가 재격돌하는 첫 번째 경기가 가장 중요해 보입니다. 기아전은 양현종 선수 경기가 관건일 테고요. 비 덕분에 계투진 휴식시간도 벌은 만큼 4승 2패로 마무리하는 한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주만 버티면 노경은 선수도 곧 돌아올 테니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겠죠!

2011/12/24

삼수탑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1.5점

삼수탑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하기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후, 이모댁에서 딸처럼 귀하게 자란 오토네 앞에 먼 친척이라는 겐지 노인이 무려 100억이라는 유산을 남긴다는 유언이 전해졌다. 조건은 다카토라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 그러나 백부의 회갑연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피해자가 정체불명의 정혼자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뒤 변호사에 의해 유산은 오토네를 포함한 사타케 가문 사람들 모두가 나누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가문 사람들이 차례로 살해되면서 오토네는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는데...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이지만 긴다이치의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오토네와 다카토의 모험담이 오토네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일단, 사타케 가문 사람들이 100억이라는 거액을 둘러싸고 한 명씩 죽어나가는 꽤나 큰 스케일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문도 모른 채 사건에 휩쓸리는 전형적인 피해자인 오토네의 시각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추리적인 요소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나마 추리적인 요소라고 할 만한 것은 후루사카 시로의 부서진 트렁크와 삼수탑 사진의 존재 정도인데, 이는 유카리와 쇼이치의 무고함을 약간이나마 증명해 주는 증거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결국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는 황당하기가 그야말로 서울역에 그지없을 정도고요. 지금까지 읽어본 추리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어요.

범행 동기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사건이라는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연쇄살인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의 유도 실력에 대한 복선이 살짝 등장하긴 하지만, 실로 초인적인 운동 능력과 결국 연쇄살인 자체가 순전히 운에 기인한 결과라는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뭔가 있어 보이던 "삼수탑"의 존재가 사실 별 의미 없고, 시로가 삼수탑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면 이미 관련된 증거는 챙겼을 것이라는 점에서 결말의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차라리 초반의 살인 하나만 범인이 저지르고, 유언장 발표 후에는 서로가 서로를 죽였으며, 마지막 삼수탑에서는 내분과 애정 싸움으로 모두가 목숨을 잃고, 범인은 오토네와 다카토의 관계를 알고 자살한다는 결말이 더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여왕벌"의 자가복제에 불과하다는 작품의 근본적인 단점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순진하지만 본의 아니게 사건을 일으키는 원흉인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미녀, 그리고 악인인지 선인인지 모호한 그녀를 중심으로 맴도는 남자라는 설정과 전형적인 사건 구도가 똑같거든요.

그래도 당대의 인기작답게 전혀 건질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각 단계별로 사건이 계속 일어나며, 다음 이야기를 빨리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전개는 연재물이라는 작품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서스펜스와 스릴이 전편에 걸쳐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과연 명불허전이라 할 만했습니다.

또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토네와는 정반대로, 신출귀몰하며 변장에도 능하고 다양한 신분을 가진 다카토라는 안티 히어로적인 캐릭터가 비교적 중심을 잡아주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였습니다. 비교적 현대적이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라 이 작품 한 편으로 끝나기에는 아깝더군요.

아울러, 통속적인 면에서는 지금 보아도 완벽한 작품이라 생각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점도 인상적입니다. 초반부터 펼쳐지는 찐한 애정 묘사, 사타케 가문 사람들이 모두 호색한 또는 호색녀이며 문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설정 등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실 이러한 설정들은 작품의 전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순전히 재미를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최근까지도 이 작품이 계속해서 영상화되는 주요한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형적인 통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참고할 만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추리소설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할 뿐 아니라 긴다이치마저도 별다른 역할이 없기에, 작가의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천하기 어렵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긴다이치 시리즈 중 최저점인데, 이후 작품들은 솔직히 별로 기대되지 않는군요.

2017/02/25

뮤지엄 1~3 - 토모에 료스케 : 별점 2점

뮤지엄 3 - 4점
토모에 료스케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자신의 범행을 예술이라 생각하는 쾌락 살인마 기리시마 사나에와 형사 사와무라의 대결을 그린 전 3권짜리 범죄 스릴러 만화입니다. 범행이 엽기적이고 잔혹하게 묘사된 점에서는 "고어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잔인하고 조금은 독특한 범행으로 흥미를 끄는 점 외에는 뻔한 설정이 반복되어 지루합니다. 무언가 잘못한 사람에게 독특한 형벌을 내린다는 설정은 "세븐"이래 흔하게 이어져 왔지요. 범인이 독특한 미학을 지닌 정신병자로, 범행이 이것에 기초한다는 설정도 흔하고요. 배심원 연쇄 살인 사건의 범행 동기인 "어떤 멍청이가 내가 저지른 범인으로 판결되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 역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보았던 것이에요.

추리적으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 기리시마가 범행을 저지르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한 것은 물론,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았을까?" 같은 작 중 의문조차 제대로 풀어주지 않는 탓입니다. 피해자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이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방법 등 설명되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단독으로 행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 범행들이기도 하고요. 사와무라가 마지막에 동료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기리시마 자택으로 잠입하는 행동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괜찮았던 부분은 사와무라가 범행 현장에 비가 오던 것, 그리고 첫 범인 목격 당시(니시노 살해 당시) 현장에 비가 내리다 그친 것에 범인이 긁적이는 행동과 내뱉은 말을 더해서 범인이 광선과민증이 아닐까?라고 추리하는 부분 정도입니다. 이후 전문 병원들을 순례하여 햇볕에 대한 극도의 병적 조건반사를 지닌 범인 기리시마를 알아낸다는건데 꽤 그럴듯했습니다. 기리시마에 의해 감금된 사와무라가 필사적으로 탈출을 위한 암호를 푸는 장면, 이어지는 기리시마의 잔혹한 음모도 괜찮았던 편이고요. 전 3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지요.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3권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단편 "우리는 친구 아니겠냐"가 훨씬 나았습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괴담인데 뺑소니, 시체 유기로 붕괴하는 거짓 우정의 연쇄가 잘 그려져 있는 덕분입니다. 본편도 차라리 더 짧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