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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9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타쓰미출판 편집부 / 수키 : 별점 3점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6점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클

제목 그대로 일본 전국 각지에 있는 여러 빵집들의 대표 빵과 특징적인 빵들을 모아 놓은 빵 사진 도감. 모두 264종의 빵이 소개됩니다. 맛있는 빵들이 가득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목차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울빵', 똑같은 빵이지만 지역별로 변주가 이루어진 빵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동네 빵집과 대표 빵,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일본의 대표빵으로요.

인상적이었던 건 일본의 크림 빵들은 크림이 정말 가득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식빵을 쓰는 크림빵들도 테두리까지 크림이 발라져 있던데, 이런건 많이 부러웠습니다.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 (?) 등 빵들의 역사가 소개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모리오카 시의 후쿠다 빵집에서는 50여가지의 크림을 가지고 주문을 받으면 바로 콧페빵에 발라 팔았는데, 어느날 따로 주문이 들어왔던 앙금과 버터를 실수로 함께 바른데서 탄생하게 유명한 '앙버터 빵' 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야키소바 빵의 유래도 비슷한데, 1950년대에 야키소바와 콧페빵을 동시에 팔던 도쿄의 한 빵집에서 손님이 '번거로우니까 안에 넣어달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카레빵은 도쿄 메이카도(현 카토레이)의 2대 점주가 1927년 실용신안등록한 양식빵이 원조로 추정된다는데, 이는 일본 카레빵 협회(별 협회가 다있네요)의 공식의견이라는군요. 그리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비닐에 넣은 삼각 샌드위치의 원조는 1967년의 산케이입니다. 대각선 45도로 컷팅했던 이유는 단면이 가장 길게 보이고, 양쪽 끝은 예각으로 먹기 편하며, 가운데 내용물을 듬뿍 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이게 이유가 붙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컬럼버스의 달걀같은걸 수도 있겠지요.

일본의 3대 간식빵도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단팥빵, 잼빵, 크림빵인데 이 중 단팥빵과 원조인 긴자 기무라야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긴자렌가 거리에 있던 점포 사진 등 도판이 충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잼빵도 기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초창기에는 딸기가 귀해서 살구잼을 넣었고, 원형의 단팥빵과 구별하기 위해 타원형으로 만든게 지금 모든 잼빵의 원형이 되었다는군요. 크림빵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창업자 부부가 슈크림을 먹고 그 맛에 감동하여 커스타드 크림을 빵에 넣은게 대성공을 거둔 것에서 시작되었고요.
그 외에 메론빵의 원조는 쇼와시대 초기 고베 빵집 긴세이도의 빵이었다는 등 다양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당연히 먹어보고 싶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힘들 뿐더러 일본 여행을 간다해도 일본 전역에 걸친 빵집이 소개된 탓에 찾아보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부분을 할애하여 '도쿄'에 위치한 빵집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쿄는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은 편이니까요. 소개된 빵집 중 아다치구 기타센쥬에 있는 '마루기쿠 베이커리'가 가장 땡겼습니다. 쇼와시대 레트로 빵 백화점 느낌이라는 말에 꽂혔거든요. <<맛의 달인>>에서 처음 접했던 시베리아(카스텔라 사이에 앙금을 샌드한 과자빵),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단팥빵이 끌리네요. 앞서 말씀드렸던 카레빵의 원조 카토레아의 카레빵도 놓칠 수 없고요. 여기까지 왔다면, 당연히 긴자 기무라야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도 가 봐야겠지요.

그런데 읽다보니 이전에 읽었던 <<오이시이 빵>>에 나온 빵들이 많은 것 같아서 찾아보니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비교해보니 재미가 더 쏠쏠했어요. 출판사도 다르고, 책 성격도 좀 다르지만 두 책을 합쳐서 정보를 좀 더 보강하고, 목차를 빵 종류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용어도 통일하고요. (같은 빵을 쿠페 빵 / 콧페빵으로 각각 소개함)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도감답게 딱히 남는건 없지만, 보기만 해도 즐거운 책입니다. 빵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20/04/18

오이시이 빵 - 판토타마네기 / 황세정 : 별점 2.5점

오이시이 빵 - 6점
판토타마네기 지음, 황세정 옮김, 오기야마 가즈야 감수/시그마북스

빵을 사랑하는 저자가 직접 그리고 쓴 개인적인 빵 사전입니다. 직접 먹어보고, 찾아보고, 조사해 본 범위 내에서의 여러가지 빵과 빵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가나다순서대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러스트와 짤막한 글이 전부라 깊이는 없고, 빵에 대해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도 부족합니다. 저자가 빵을 사랑하는 일반인일 뿐이며, 관련 정보를 접한 참고 서적이나 출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이게 정말 맞는 내용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 도넛 이름의 유래가 반죽 (Dough)에 견과류 (Nuts)가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영 미심쩍습니다. 빵과 별 관계가 없는 내용도 적지는 않은 편이고요. 그리고 중간중간 페이지를 오가는 부분이 많이 있는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좀 불편했었습니다. 일본어 원서도 이렇게 페이지를 오가는 부분이 많을지 조금 궁금해지네요.

그래도 이런저런 빵의 이름을 확실히 알게된건 수확입니다. '바타르'는 바게트보다 길이가 짧은, '중간'이라는 뜻의 이름이라던가, 치아바타는 슬리퍼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던가('치아바타'는 이탈리아어로 슬리퍼라는 뜻), 파운드 케이크는 밀가루와 설탕, 버터, 달걀이 각각 1 파운드 씩 들어가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등의 이야기들 덕분이지요.
또 일본 각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특산물' 빵에 대한 소개도 이 책만의 강점입니다. 직접 전국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결과로 보이는데, 이런저런 재미난 빵들이 많이 등장하거든요. 후쿠오카의 '긴초코', 초콜릿 빵 '맨해튼'. '멘타이 프랑스'. '소문의 빵'(후쿠오카 출신이라 그런지 후쿠오카 빵과 빵집 소개가 많습니다), 삿포로의 '지쿠와 빵', 도야마 현의 '비취 빵', 시가 현의 샐러드 빵, 기타큐슈 어묵집의 '카나페', 키타큐슈의 '킹 빵" 등은 소개만 보아도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어 보이고 내용도 재미있었어요. 비취 빵, 야키소바 빵과 메론 빵, 카레 빵, 크림 빵의 유래, 크로크 마담과 크로크 무슈의 차이 등 토막 상식같은 정보들도 값집니다. 

중간에 등장한, 세라믹이 붙어 있는 그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척 탐나네요. 숯불 위에서 빵을 굽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 왜 저는 몰랐을까요? 조금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카모메 그릴'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더라고요. "카모메 식당"에서 연어 구을 때 썼다나 뭐라나. 지금 집은 인덕션 구조라 당장 구입할 생각은 없지만, 이사가게 되면 구입을 고려해봐야 겠습니다. 

아울러 이런 글들과 함께하는 그림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그냥 일러스트만 보아도 높은 수준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아사오 하루밍 느낌도 살짝 나는, 간단하면서도 선 맛이 잘 살아있는 좋은 그림입니다. 이 정도면 그림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작업은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약간 의아합니다.

무엇보다도 읽는 내내 책 곳곳에서 빵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빵을 너무 좋아해서 후쿠오카에 살다가 빵 소비량이 일본 수위를 다투는 교토로 이사가서 수년 동안 살고, 빵에 대해 궁금한게 많아서 교토에서 빵에 대한 무가지를 직접 만들어 24호까지 배포하고, 생계 유지는 빵집 아르바이트, 여행은 빵집 위주로 다닌다는 덕력이 책 전체에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덕후의 덕력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보다는 일상계 에세이 만화에 가까운 느낌으로 읽는다면 더 좋을, 그런 책입니다.

2021/01/29

빵의 지구사 - 윌리엄 루벨 / 이인선 : 별점 2.5점

빵의 지구사 - 6점
윌리엄 루벨 지음, 이인선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얼마 전 "향신료의 지구사"를 읽고 탄력받아 한권 더 집어든 '지구사'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도 이제 여덟 번째 리뷰군요. 시리즈 완독까지는 두 권 남았네요.

그 동안 읽었던 '지구사'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커리의 지구사" 였습니다. '커리'가 무엇인지에서 시작해서, 커리의 역사와 세계화된 과정, 대표적인 커리 요리까지 화려한 도판과 함께 짤막하면서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리즈 다른 책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고요.

물론 아주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특히 빵이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마음에 듭니다. 어떤 빵을 어떻게 만들었을지에 대해 관련 사료를 통해 잘 알려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농경 생활을 택한 뒤 빵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수렵과 채집 생활에 비해 부정적이었다는 시각이 독특했습니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농경 도입으로 노예 제도가 생겨났다고 주장했고, 창세기를 다룬 구약 성경과 유대 신화에서도 농업은 부정적이었다고 하네요. 최초의 농부였던 카인은 가장 처음 살인을 저지르고, 하느님에게 거짓말을 하며, 비자발적 노역으로 도시를 세운 인물로 그려졌기 때문이랍니다. 유대 신화에서는 불신의 상징인 저울과 자를 끌어들였고요. 그럴듯하죠? 

하지만 농경 생활은 필연적이었고, 결국 이 덕분에 문명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를 '빵'과 연결하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우르크 발굴 결과를 토대로 한 설명입니다. 기원전 3200년경,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 농경지에 효과적으로 물을 대는 중앙관개농법이 발달하면서 '잉여 생산물'이 쌓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전 인구가 농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분업과 전문화가 진행되어 인구가 3만명에 달하는 대도시로 진화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고대 빵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서술에도 불구하고,밀의 종류, 배합, 이스트의 종류 등을 모두 정확하게 알아낼 수 없어서 현재 어떤 빵인지 재현하는건 어렵다고 하는 주장도 신기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 등 빵에 대해 많은 자료가 남아 있는 시대 모두 마찬가지라고 하니까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재현이 가능한 빵은 근세시대 (1500년 이후)에 처음 등장한다는군요.

이러한 빵의 탄생 이후는 부자와 빈자가 빵으로도 구분되는 시기에 대한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버스 마컴의 "영국 주부" (1615) 속 하류층 농장 노동자를 위한 갈색 빵 레시피가 아주 충격적이기 때문이에요. 특징은 완두콩 가루를 섞은 것인데, 놀랍게도 저자 마컴이 경주마에게 먹이는 빵보다도 못한 빵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뒤 재료, 맛 모두가 별로였던 하위 계층의 빵은 당연히 상위 계층은 거부해 왔는데. 이 현상이 빵의 역사를 이끌었다고 보는 저자의 주장은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16세기 ~ 18세기 흰 빵은 부의 상징이며 갈색 빵은 가난의 상징으로, 이런 상징은 저도 당시를 다룬 소설 등에서 많이 접해보았었습니다. "하이디"에서도 '하얀 롤빵'이 선망의 대상이었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호밀빵을 멀리하는건 현대도 마찬가지죠. 그러나 이건 모든 식품, 사치품, 기호품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닌가 싶어요. 구태여 '빵'에 한정지을 이유는 없습니다.

또 맛있는 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도 별로에요. 밀가루의 종류, 발효 방법, 설탕을 넣는지 소금을 넣는지 등 다양한 빵 제조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설명은 깔끔하지만 기대했던 지구사적인 설명은 아니었거든요. 좀 더 빵의 역사에 대해 파고들줄 알았는데 말이죠.

이어지는 세계의 빵 소개는 더욱 실망스럽습니다. 그냥 국가별 빵 몇 가지가 등장할 뿐이며, 미래의 빵도 자가 제조 기계가 발전하고 공장제 빵도 진화할거라는 일반적인 이야기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제 특성상 유럽 중심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약점이에요.

다행히 부록처럼 수록된 주영하의 한국 빵 역사가 실망을 조금은 만회해 줍니다.조선 시대 이기지가 청나라 연행길에 먹었던 카스테라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일제 시대 널리 퍼졌던 빵 문화가 해방과 6.25 후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잘 요약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제과제빵의 거목인 삼립 식품과 크라운 제과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주 나쁘지는 않고, 얻을게 없지도 않지만 제목처럼 빵의 범지구적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2016/11/27

역시 빵이 좋아! - 야마모토 아리 / 박정임 : 별점 1점

역시 빵이 좋아! - 2점
야마모토 아리 지음, 박정임 옮김/이봄

조리사 면허를 취득한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야마모토 아리의 빵에 대한 에세이 만화... 인 줄 알고 읽게 되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네요. 130여 종의 일본 빵집의 빵을 한 개 당 1~2페이지 분량으로 빵 그림, 재료와 맛에 대한 설명, 잘 어울리는 술이나 음료를 소개하는게 전부거든요.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에요.

1. 빵 소개 : 눈이 번쩍하는 매운맛, 캐슈너트와 블랙 페퍼.
2. 특징 소개 : 블랙 페퍼의 매운 맛이 찌릿찌릿! 수제 효모 베이스의 산미도 서서히 올라와! 이 맛 엄청 자극적!
3. 부가 정보 : 이건 틀림없이 육류와 어울리는 맛이야. 비엔나 소시지와 정말 잘 맞아! 화이트와인이랑 드세요.

이외에 중간중간 아주 약간의 개그나 아이디어가 들어간 정도입니다. 만화라고 부르려면 최소한의 이야기는 필요한데 이래서야 빵 소개 책자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작화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요.

빵집 순례를 위해서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주로 도쿄에 있는 빵집들이 소개되지만 빵집 이름 뿐, 상세 주소나 지도가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최소한 레시피라도 실렸더라면 좀 나았을 텐데, 빵의 특성상 집에서 만드는 것은 거의 무리이니 이 역시 기대할 게 못됩니다. 약간의 어레인지 정도(오븐 토스트에서 구워 먹는 게 좋다던가)만 실려 있는 수준이에요.

편의점에서 파는 빵인(세븐 일레븐) '버터 스카치', '휩크림 듬뿍 데니시' 소개 정도는 괜찮았는데 차라리 이런 소재로 끌고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빵이 아니라 '편의점이 좋아' 식으로 말이죠.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편의점 여왕 다인님이 한번 쓰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여튼, 빵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대가 컸는데 아쉽습니다. 차라리 우리나라에서도 구할 수 있는 빵 소개였다면 점수가 조금은 높지 않았을까 싶은데 정말이지 건질 게 없어요. 일본 맛집 소개 블로그를 보는 게 더 낫겠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4/01/12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아이스맨 후쿠토메 / 김정원 : 별점 1.5점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4점
아이스맨 후쿠토메 지음, 김정원 옮김/클

일본의 대형 제과사의 시판 제품이 아닌, 현지 밀착형 아이스크림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도감. 사진 중심이며 동일 제품의 다양한 변주를 함께 묶어 소개하는 구성 등 모든 점에서 같은 시리즈인 "일본 현지 빵 대백과"(이하 "빵 대백과")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빵 대백과"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소개되는 아이스크림들에 대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게 가장 큽니다. 빵은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들고, 맛이 궁금한 빵들이 많았는데 여기 소개된 아이스크림들은 대체로 맛이 예상이 되었던 탓도 큽니다. 예를 들어 아래 나가사키의 카스텔라와 아이스크림을 결합한 카스텔라 아이스크림은 분명 맛있겠지만, 그 맛은 충분히 짐작이 되거든요. 저렴한 카스텔라와 투게더 아이스크림으로 비스무레하게 만들 수도 있을테고요.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되는 아이스모나카는 '싸만코'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빙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맛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건 아래의 철 아이스 정도입니다만, 그리 먹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또 "빵 대백과"는 삼각 샌드위치를 대각선 45도로 컷팅한 이유 등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와 같은 역사와 정보도 여러가지 알려주었던 반면, 이 책은 단순히 지역 특산품 소개에 그칩니다. 기대했던 정보는 말차가 들어간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원조가 아래 스이교쿠엔의 '그린소프트'라는 것 정도 뿐이었습니다

소개되는 가게와 아이스크림들이 일본 지방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가고 싶어도 가기 힘든 곳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빵 대백과"처럼 도쿄 중심의 가게도 몇 군데 소개해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도감임에도 불구하고, 제공하는 정보가 별로 매력적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도 휴양지 오키나와라면 한 번 가 볼 만하다 싶은데, 언젠가 가게되면 아래의 히가시 식당, 후지야는 꼭 들려볼 생각입니다. 마리야 유업 제품도 먹어보고요. 그게 과연 언제가 될지.....

2021/02/19

빵의 역사 - 하인리히 야콥 / 곽명단, 임지원 : 별점 3.5점

빵의 역사 - 8점 하인리히 야콥 지음, 곽명단.임지원 옮김/우물이있는집

이전 올렸던 "빵의 지구사" 리뷰에 댓글로 홍차도둑님이 추천해 주셔서 읽게 된 세계사, 식문화 서적입니다. 새로 복간된 버젼은 아니고 예전에 절판되었던 버젼입니다. 

그런데 '빵의 역사'라는 제목과는 담고 있는 내용이 달라서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농사'와 '농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희생되고 숨겨진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부터 책이 쓰여진 2차대전 이후까지 주요 문명별로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담고 있는 내용이 무척 깊고 넓어서 간략한 리뷰로 정리하기는 불가능한 역작입니다만 저자 주장의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자면, 일단 처음 '빵'(효모로 부풀리는)과 '오븐'이 태어난 이집트는 모든게 신성화된 왕의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관료가 엄청 많을 수 밖에 없어서 농업에 기반을 둔 농업 국가였음에도, 모든 영광은 관료들이 차지했습니다. 농민들은 농노에 가까왔지만 신성화된 왕에게 소유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서 문명은 잘 유지되었지요.

반면 그리스 문명은 토지 특징 상 농업이 주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곡물은 주로 수입에 의존했어요. 저자는 '황금 양털 가죽'을 찾아 모험을 떠난 이아손과 영웅들은 곡물상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대신 목축이 주였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에서 소유한 가축의 양과 질로 부유한지 아닌지가 결정되었다는걸로 알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하룻만에 아우게이아스의 마굿간을 청소한 신화도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걸 의미한다네요. 농부였다면 소중한 퇴비의 재료가 되는 마굿간 퇴적물을 물로 씻어 버렸을리가 없다는 이유인데,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솔론의 개혁으로 토지가 분배되었고, 그 덕분에 농민들이 아테네를 다스리게 됩니다. 사유지 확장을 금하고, 정해진 이상의 개인 토지를 몰수한 이 법은 소농들 권한을 강화시켜 아테네를 농업 민주 국가로 변모시켰고, 농민 신분도 상승했습니다. 대지와 곡식, 그리고 '빵'의 여신 데메테르를 숭배하는 엘레우시스교가 아테네의 국교가 될 정도로요. 엘레우시스교는 뒤이은 로마에서도 나름 건재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이 토지를 점차 장악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농지 분배를 받지 못한 뒤 로마 토지는 이윤이 많이 남는 축산업에 활용되고,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정복지를 통해 수입되었죠. 그러나 반달족 습격으로 아프리카를 잃고, 유대 지방 곡물의 수탈이 시작되자, '농업인' 예수가 세력을 넓히지만 로마에 의해 살해당하게 됩니다.

로마가 식량 부족으로 동과 서로 나뉜 뒤, 북방 민족이 로마 제국 영지를 차지합니다. 목축 중심이었던 그들의 경제 활동이 농사로 바뀐 건 필연이었어요. 6인 가족의 중앙 아시아 유목민이 보통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가축 300마리가 필요하다니, 굶어죽지 않으려면 당연했겠지요. 그러나 농사를 싫어하는 민족 특성으로 로마식 노예 제도가 이 때부터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래도 중세 초기에는 지주는 농노를 잘 보살폈습니다. 일을 잘 하게 만들기 위함으로, 자유민들도 군복무를 하지 않고 안전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농노가 되었고요. 

농민들이 그나마 살 만 했던건 이 시기까지였습니다. 곧바로 가진자들의 수탈이 시작됐거든요. 도시 문명이 발달하며 도시민, 상인, 그리고 길드 소속 장인들 권리는 신장되었지만 농민들의 노동은 홀대받았습니다. 이는 '농사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저질러 낙원에서 쫓겨난 탓에 어쩔 수 없이 종사해야 했던 원죄'라는 기독교적 사고 방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탓으로 설명됩니다. 결국 13세기, 농민들에 의한 봉기가 일어났지요.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건 당시 종교 개혁이 이 농민 봉기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한 부분입니다. 교회의 토지 수탈을 비판하던 종교 개혁가들이 농민 편에 섰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러나 놀랍게도 종교 개혁의 핵심 인물 루터가 배신(?)한 탓에 봉기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루터의 교회도 수탈로 토지를 확보했을 뿐더러, 루터가 책임 전가를 겁내어 자기를 추종했던 농민 전쟁 참가자들을 배신했던 걸로 보입니다. 봉기 실패 이후 농민들은 더 가혹한 삶을 강요받게 되었고요.

저자는 농민들의 미대륙 이주를 이러한 처절한 삶을 탈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즉 독립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지주와 농민 세력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요. 다른 국가들의 군대는 농민이 아니었지만 미국 독립군은 사실상 농민군으로, 전쟁에서 질 경우 모든걸 잃고 다시 도망쳐 나왔던 대토지 소유 제도 하에서 고통받아야 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박에 없었다는 해석이지요. 이 해석이라면 13세기 농민 봉기가 실패한 이유가 잘 설명되지는 않지만, 꽤 그럴싸했습니다. 농민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은 광대한 땅에서 농사를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여러가지 참신한 시도로 세계 최대의 농업 생산국이 되었고, 결국 빵이 풍부해서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는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유럽 정국이 요동치고, 그들이 패권을 잃은 과정 역시 저자에 따르면 농민 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루이 14세 이후 농민을 포함한 민중이 이런저런 인쇄물과 매체를 통해 여러가지 '생각'을 접하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근대화에 접어듭니다. 그러나 일부 중농주의자들을 제외한 왕의 측근들이 농업보다는 상공업이 국가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탓에, 기근과 가뭄이 닥쳐 방앗간에서 밀가루 생산이 멈추자 시민들이 빵을 달라며 혁명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마찬가지로 공업을 신봉한 탓에 무너졌습니다. 그는 백성과 군대가 잘 먹어야 한다는 현실 자체는 인지했지만,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곡물 수입이 막히자 패망한 거지요.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들이 일으켰다는 차이가 있지만, 노동자들은 농민들과 타협했습니다. 1921년 농민들은 농작물 세금만 납부하면 남은건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요. 스탈린이 러시아를 공업 국가로 만들기 위해 모든 토지를 국영화하고 농민들을 집단 농장 소속 농부로 만들었지만, 이는 스탈린이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독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농민들보다 강했던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이렇게 세계 역사의 주요한 흐름을 농민들의 존재와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풀어내는게 아주 신선했습니다. 그동안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이었으니까요. 각 시기별로 주요한 에피소드, 인물, 콘텐츠를 인용하여 설득력도 높이고요. 

그러나 유럽 중심의 역사만 다룬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한계와 약점이 느껴집니다. "빵"이 아니라 농민 중심으로 흘러간 문명사를 쓰려는게 의도였다면 당연히 중국 역사도 포함시켰어야 했습니다. "고문진보"만 보아도 농부의 노고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노래한 고시 - “봄에 곡식 한 알 뿌리면, 가을엔 만 알의 곡식 거두네. 천하에 놀리는 밭이 없는데, 농부들은 굶어 죽는다네 (春種一拉東, 秋收萬顆子, 四海無閑田, 農夫餓死)." - 가 등장하는데 말이지요.

또 농민들의 존재, 그들의 위치로 큰 세계사 흐름을 설명하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점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미국 남북 전쟁은 북부가 곡물 생산량이 높아서 승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해석이에요. 유럽 역사에서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던 유대 민족에 대한 비중이 높다는 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저자가 유대인인 탓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엘레우시스교 축제에 대한 장황한 설명같이 지루한 이야기나 주제이기는 동떨어진 이야기 비중도 만만치 않다는 단점도 큽니다. 성찬 의식에 대한 견해 차이의 역사를 서술한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몰랐던 내용이라 신기하긴 했으나, 이 책 주제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생각되네요.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발표 시기가 오래된 탓에 최신 정보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약점이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사를 바라보게 해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추천해주신 홍차도둑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빵의 지구사 - 윌리엄 루벨 / 이인선 : 별점 2.5점

2017/03/30

피자의 지구사 - 캐럴 헬스토스키 / 김지선 : 별점 2.5점

피자의 지구사 - 6점
캐럴 헬스토스키 지음, 김지선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의 '~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권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치즈의 지구사"는 많이 실망스러웠었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이 책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피자라는 음식의 발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발전하여 세계화가 되었는지를 통사적으로, 시대순으로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거든요. 각 시대별 대표 피자와 주요 변곡점도 확실하게 체크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제목 그대로 이 책 한권만 읽어도 피자의 역사에 대해서는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피자의 시작과 초기 발전 과정을 다룹니다. 당연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요. 최초의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재료를 얹어 구워서 만드는 납작한 빵은 신석기 시대에서도 둥그런 반죽을 구워 먹었다고 할만큼 흔했으니까요. 그러나 누가 먼저 둥글납작한 빵을 그릇으로 만들고 그 위에 소스를 얹거나, 다른 음식을 담는다는 발상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나마 비슷한게 고대 그리스의 빵 '플라쿤토스'입니다. 토핑을 바로 빵 위에 올려 굽는 것이지요. 빵을 접시나 그릇으로 사용하여 요리를 담아낸다는 기본 개념은 피자와 같습니다.
이후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재배되고, 18세기에 드디어 피자에 토마토가 쓰이기 시작합니다! 나폴리에서 19세기에 빈민들을 위한 음식으로 인기를 끌게 되고요. 마침내는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에 방문해 '마르게리타' 피자를 대접받은 후 본격적으로 성장해서, 2차대전 후 인구 이동과 함께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나가게 됩니다.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잘것 없는 음식이었지만 이민과 관광이 붐을 이루며 널리 전파된 것이죠.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토핑으로 변주가 일어나자 피자의 기원을 자처한 나폴리의 전통 피자 요리사들이 정통 나폴리 피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통나폴리피자협회 (VPM)를 결성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VPN이 인정하는 정통 나폴리 피자는 마르게리타, 마리나라, 마르게리타 엑스트라 피자 뿐이라는데 엄격한 지침을 따라서 만들어야 한다니 꼭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2장은 미국으로 이주한 나폴리 이민자들을 통해 피자가 미국에 뿌리내리며 대중화되는 과정 - 2차대전 이후 군인, 이민자들에 이해 미국에서 피자 소비가 대중화되고, 피자헛과 같은 피자 체인점과 냉동 피자가 속속 등장하면서 거대 산업을 이루게 되는 - 을 담고 있습니다. 이민자 요리들을 자체적으로 재조형하여 미국 음식을 만들어 낸 방식이 피자에도 제대로 발휘되어 더 이상 이탈리아 전통 에스닉 푸드가 아니라 미국이 사랑하는 음식이 된 것이지요. 산업화되며 대량생산, 규격화, 지속성이라는 3대 원칙을 포함해서요.
하지만 1장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고 피자헛, 도미노 등 체인점과 냉동 피자 산업 등 산업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소개됩니다. 그래도 '시카고 피자'의 유래는 기억에 남네요. 텍사스 출신 아이크 슈얼이 오픈한 레스토랑 '우노'에서 선보인 딥디시 피자가 최초라고 하는데, 예전 삼성동 KOEX 우노에서 먹어본 적이 있기 때문으로 덕분에 아주 오래전 옛 추억이 잠시 떠올랐답니다.

3장은 피자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피자헛의 세계 진출, 각 지역별 특별식, 엔터테이먼트 ("닌자 거북이"와 같은)와 결합하여 피자 자체가 유행이 되는 과정 등이 소개되며, 마지막 4장은 피자의 미래라는 제목인데 별 내용은 없습니다. '토핑 재료에 제한이 없는 한 피자는 영원할 것이다, 그 독특한 특성과 함께'가 전부니까요. 페이지도 10페이지가 안 될 만큼 짤막합니다. 딱히 언급해드릴게 없네요.

그리고 주영하씨의 "피자, 한국 정복의 역사"가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처럼 한국에 피자가 진출한 과정을 통사적으로 상세하게 소개한 글입니다. 책 성격에도 부합할 뿐더러 내용도 충실하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형적인 주영하씨 음식관련 미시사 글이었어요. 뒤에 실린 진짜 부록인 다양한 피자 레시피도 집에서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내용이었고요.

이렇듯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있으면서도 식욕까지 불러일으키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3장, 4장 내용이 좀 부실해서 감점하지만 피자를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읽고나서 가장 안타까운건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피자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산업화한 미국식 피자라는 것입니다. 저렴하고 빠른, 패스트푸드 측면에서 피자 체인점의 역할은 분명 있겠지만 나폴리 사람들이 사랑한, 여왕에게 마친 마르게리타 피자만큼은 쉽게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식 요리점에서 퓨전 한식만 팔고 정작 김치는 내어놓지 않는 것과 다를게 없잖아요?

2011/12/03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 :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음식의 역사 - 윤덕노 : 별점 2점

제목과 책 소개만 보면 우리나라의 분식이나 거리 음식들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및 소개를 하는 책으로 생각되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빵과 과자는 물론 해산물과 주식까지 망라하는 포괄적인 음식 칼럼이었습니다.

물론 주제가 많고 방대한게 단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제에 명백하게 '한국인이 즐겨먹는 거리 음식의 역사'라고 적어 놓고, 정작 내용에는 땅콩버터, 오징어 먹물이나 빠에야, 리조또, 꾸스꾸스, 타타르 스테이크 등을 소개하는건 명백하게 독자를 기만한 것이지요. 또한, 각 주제별로 다루는 내용도 딱히 깊이가 없고 단지 유래만 다루거나,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만 곁들여 소개하는 수준이라 얄팍합니다. 단팥빵이나 카스텔라, 단무지, 오뎅처럼 간단하게 인터넷을 검색해도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구태여 소개하는 것도 페이지 낭비고요. 이럴 바에야 그냥 우리나라 거리 음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 음식과 관련된 사회적인 분위기와 현상까지 포괄적으로 묶어서 깊이 있게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돈가스의 탄생"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워낙에 방대하고 저자의 아시아 쪽 자료 조사 하나만큼은 확실하기에 생각과는 다르게 건질 만한 자료도 다수 있기는 합니다. 붕어빵의 원조는 1909년 도쿄 아사부의 나니와가 제과점의 도미빵 (다이야끼)이고, 도미빵의 꼬리에 팥을 넣는 것이 좋은지 아닌 것이 좋은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져 1953년 요미우리 신문에서 지상 중계까지 했다는 일화(결론은 꼬리에는 팥을 넣지 말자는 쪽이었다고 합니다. 손가락으로 집어먹기에 좋도록, 또 입가심하기에 좋도록) 등은 흥미로왔습니다. 또한, 소보로빵과 메론빵이 사실 같은 것이며, 메론빵은 1932년 일본 특허청에 실용신안이 등록된 아이디어 상품이었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엿을 소개하면서 조선에 엿장수가 굉장히 많았었다는 점, 그리고 정조 21년 황해도 황주에서 신착실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엿장수 박형대의 엿을 빼앗아 먹고, 엿장수가 엿값으로 두 푼을 달라고 하자 엿장수를 땅에 밀어 넘어뜨렸는데, 하필이면 지게의 뾰족한 부분에 넘어지면서 항문에 지게가 꽂혀 사망한 사건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기억에 남네요.

또한, 문어는 중국 북쪽 지방에서는 잘 먹지 않았는데, 임진왜란으로 어려움에 처한 조선에 파병 온 이여송을 접대하기 위해 정성껏 문어국을 내어놓았다가 명나라 장수들이 먹지 않아서 낭패를 보았고, 반대로 선조에게 명나라 장수가 "계두"를 바쳐서 선조가 당황했다는 고사도 소개됩니다. (계두는 계수나무속에서 자라는 벌레로, 한나라 역사서인 한서 남월전을 보면 남월의 왕이 중국에 공물을 바치면서 비취 40쌍, 공작새 두 쌍을 보낼 때 계두는 한 그릇만 바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음식에 대한 잡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저는 제목과 책 소개에서 좀 더 깊이 있는 자료를 접하리라 기대가 컸고, 제 기준으로 이러한 책에 반드시 소개되어야 할 거리 음식 – 닭꼬치, 번데기, 튀김 – 도 빠져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6/2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8) 카레가 건너 온 추리 소설

카레는 친숙한 요리입니다. 한국군 전투식량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요. 우리와 교류가 적었던 인도의 전통 요리가 이렇게 친숙해진 건, 영국의 인도 식민지 지배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 식민지에 진출했던 영국인들이 현지에서 고용했던 요리사들과 함께 귀국하면서 여러 인도 요리가 영국에 들어왔지요. 이후 이 음식들은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밀가루를 넣은 스튜 형태로 변형되었고, 때마침 영국 회사 C&B에서 인도 향신료를 배합한 가정용 분말을 출시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고기와 채소를 썰어 넣은 걸쭉한 스튜처럼 조리하되, 시판 향신료 분말로 이국적인 맛과 향을 더한 음식. 영국인들은 이를 인도 타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카리(Kari)’에서 따와 ‘커리’라고 불렀습니다. 정작 인도에는 없는, 영국에서 탄생한 인도 요리인 셈입니다. 참고로 커리라는 명칭은 카릴, 혹은 카리라고 불리던 매콤한 남부 인도 요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삶 속에 커리가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는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경주마 은점박이" 사건에서 마방 조교사 집의 저녁 식사로 양고기 카레가 등장하니까요. 범인은 마굿간 청년들에게 맛이 강한 아편 분말을 섞어 먹이기 위해 이 요리를 택했습니다. 커리의 강렬한 맛이라면 웬만한 약을 숨기기에 적절했을 테니, 범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지요.

"해군 조약"에서는 의뢰인 펠프스와 함께하는 식사 메뉴 중 하나로 닭고기 커리가 나옵니다. 허드슨 부인의 특기처럼 소개되는데, 이렇게 평범한 저녁 메뉴로 등장할 정도라면 당시 영국에서 커리는 우리나라의 김치찌개 정도 위치의 음식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영국에서 커리의 인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1년, 영국 외무부 장관 로빈 쿡은 인도 카레라이스의 일종인 치킨 티카 마살라를 ‘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선언했을 정도니까요. 2015년에 발표된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도 정통 인도 커리인 치킨 코르마가 자주 먹는 요리로 소개됩니다. 코르마는 주 향신료인 마살라에 버터와 크림, 요거트 등을 넣어 부드러운 맛을 내는 커리인데 여주인공 릴리는 단골집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치킨 코르마에 견과류를 갈아 넣습니다. 심한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연인 에릭을 살해하기 위해서요. 에릭은 예상대로 치킨 코르마를 먹은 뒤 발작을 일으키고, 릴리가 치료제를 숨긴 탓에 결국 질식사합니다. 약을 섞지도 않은, 그야말로 완전범죄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렇게 영국인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커리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카레는 단순한 서양식 요리를 넘어, 밥과 함께 먹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일본에는 1870년대 국비유학생 야마가와 겐지로가 최초로 영국식 커리를 전래했습니다. 이때 일본식 발음으로 ‘카레’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당시 일본에 여러 서양 요리가 전파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카레는 독보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때마침 일본 해군이 영국군을 따라 카레를 장병들에게 보급했던 덕이 컸습니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한 것이 주요했지요. 고기도 작게 썰어 넣어, 육고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대 일본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이쇼 시대에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이 들어가는 현대적인 레시피가 정착합니다. 영국 C&B 카레 가루를 국산화한 카레 가루 제조사도 등장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카레라이스’가 가정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3분 카레’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즉석 카레 역시 1968년 일본 오츠카식품이 레토르트 파우치에 카레를 넣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일본은 카레에 정말 진심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본에서 카레의 인기는 밥과 함께 먹는다는 개념을 넘어, 여러 음식으로 확장된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카레빵이 대표적입니다. 이름 그대로 속에 카레를 넣은 빵이지요. 도쿄 명화당이 1927년 특허 등록한 양식 빵이 원조라고 합니다. 라쿠고가 엔시 씨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소설 "가을꽃"에서 맛있게 빵을 먹는 삼원칙 이야기가 나올 때도 언급되었지요.

카레 우동은 1909년 와세다대학 옆의 오래된 소바집 ‘산초안’에서 개발한, 메밀국수 위에 카레와 파를 얹은 카레 남만이 발전한 음식입니다. "시인장의 살인" 도입부에서 낯선 여학우가 무슨 메뉴를 주문할지를 두고 아케치와 하무라가 추리 대결을 펼칠 때, 아케치가 선택한 메뉴이기도 합니다. 일본 전통 요리와 카레가 결합된 음식이라는 점에서, 좀비물과 본격 추리물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과도 잘 어울립니다.

이런 나라니 당연히 카레 전문점도 많습니다. ‘아비꼬’나 ‘코코이찌방야’ 같은 일본 카레 전문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영업 중이지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에는 ‘파라다이 로스트’라는 카레 가게가 등장합니다. 이 가게는 미나코가 중학생 때 교회 부설 고아원인 ‘성모의 정원’에서 임신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뒤 시작한 곳입니다. 그녀의 아들 분지는 정신지체아로, 성장한 뒤 가게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미나코는 성모의 정원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지만, 수녀들은 더럽다는 이유로 그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근처에서 실종된 어린아이를 찾기 위해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카레를 제공했을 때뿐이었지요.
그 뒤 죽어서도 교회 묘지에 묻히기를 거절당한 미나코를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분지는 먼저 어린아이를 유괴합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미나코의 사체로 만든 카레를 제공합니다. 고기의 특성을 지울 수 있는 카레였기에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영국에서 태어나 일본의 생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카레는, 카레는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곧바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컸을 것입니다.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윤봉길 의사도 경성지방법원에 호송된 뒤 법원 구내 식당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김치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는 후쿠신즈케가 곁들여지지 않은 것은 카레라이스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에게 김치도 한 번 권해 주고 싶네요.

하지만 카레가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슴 따뜻한 드라마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알려주듯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영양 균형이 좋은 음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향신료 요리는 영국에서 스튜가 되었고, 일본에서 밥과 만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치와 함께 먹는 일상식이 되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우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점만은 같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카레가 어떠신가요? 기왕 먹을 것이라면, ‘컨트리 캡틴 치킨’을 한 번 시도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요리는 1849년 출간된 책에 실린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레시피로 널리 알려졌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허드슨 부인이 홈즈를 위해 만들었던 닭고기 커리도 이와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로버트 플라워 리델, "인도 가정과 요리책", 1849

  1. 닭고기를 잘게 썬다. 
  2. 양파는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 
  3. 닭고기에 소금과 커리 가루를 뿌리고 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4. 스튜 냄비에 수프 1파인트와 재료를 함께 넣는다. 
  5. 국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뭉근히 끓인 다음 밥과 함께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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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3

오무라이스 잼잼 4 - 조경규 : 별점 3점

오무라이스 잼잼 4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1, 2, 3권을 모두 구입하기는 했습니다만, 2, 3권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할인 가격에 구입했었습니다. 그래서 4권도 중고 서점 입고를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도서정가제 이후에는 할인폭이 크지 않을테고 중고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새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이전 권 리뷰에서 '어차피 인터넷에서 모두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을 이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깝다'고 적었었는데, 생각이 바뀌기도 했고요. 공짜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2,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450페이지가 넘는 풀컬러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는 괜찮으며, 인터넷과는 다른 아날로그적인 정겹고 따뜻한 맛은 단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요리만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콘텐츠 자체의 가치가 무척 높다는 장점도 큽니다. 지금은 국내에도 요리 만화가 웹툰 중심으로 제법 많아졌지만, 단순히 요리가 등장하고 레시피가 나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과 전개를 통해 요리와 에피소드가 어우러지는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은 여전히 발군입니다. 이번 권 역시 그러합니다. 미국 거주 시절 "인큐버스"라는 밴드의 라이브를 보기 위해 톨리도라는 무척 한적한 도시를 찾아간 에피소드가 대게 이야기로 연결된다든가, 자기와 닮은 Sasa 씨 이야기에서 소보로빵, 멜론빵, 파인애플빵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과정이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요리에 대한 그림과 소개 모두 당장 먹고 싶게 만드는 요리 만화로서의 미덕도 충분하고요.
이러한 독특한 매력은 작가 조경규의 이색적인 이력 덕도 클 것입니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중국에서도 수년간 거주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인데, 이시카와 쥰이 "만화의 시간"에서도 이야기했듯, 조금이라도 특이한 인생을 산 사람이 만화가로 유리하다고 하지요. 그 말대로라면 조경규 작가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인생을 산 셈입니다.

또 다양한 음식 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부가적인 가치도 큽니다. 츄파춥스의 로고를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이나, 달리와 디즈니의 공동작업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외에도 닭갈비의 유래나 다양한 연근 요리 등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총 2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가장 구미가 당기던 음식은 "차계란"이었습니다. 계란 장조림을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소개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라 꼭 한번 따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이전 권들과 동일하게 명확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과 비교한 가치가 얼마나 크냐는 여전히 애매합니다. 이번 권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부록이 특히나 별로입니다. 본편에 소개된 내용의 보강이나 외전 형식의 이야기, 만화로 제작된 레시피 등이 훨씬 가치 있었을 텐데, 정작 수록된 것은 다른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맛집 소개나 재미없는 가족 만화가 대부분이니까요.

또 작가의 가족, 특히 아이들 소재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몇 안 되는 부록 페이지까지 아이들 사진과 그림으로 채워진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소재 면에서 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발상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책을 구입한 독자를 위한 서비스에도 더 신경 써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작화는 물론 내용과 재미, 소개되는 요리의 가치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국내 요리, 음식 만화의 대표작임은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번 다시 읽었기에 돈이 아깝지도 않고요. 1, 2, 3권 모두 열 번 이상 읽었으니까요. 요리, 음식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이만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2026/06/0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6) 맥주가 맛있는 순간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료 중 하나입니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닿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보리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고, 이 지역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보리와 밀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물에 젖은 빵이 발효된 것을 먹어 본 것이 맥주의 시작이었다고 하지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 문학으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맥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맥주는 중요한 음료였습니다. 음식을 대표하는 상형문자가 ‘맥주’와 ‘빵’이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피라미드를 맥주와 마늘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시원한 맥주와 강장제 역할을 하는 마늘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고대 이집트에 냉장고가 있었을 리는 없지만, 더위 속에서 마시는 맥주가 각별하다는 사실만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듯합니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린 뒤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힘드니까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닷쿠 & 다카치 시리즈 중 한 편인 "맥주 별장의 모험"에서 주인공 닷쿠 일행은 바로 그런 유혹에 빠집니다. 그들은 불의의 사고로 무더위 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별장에 몰래 들어갑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서 대량의 맥주를 발견하지요. 당연히 일행은 유혹을 참지 못합니다. 긴급 피난이라는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를 내세우며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몸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더위로 땀을 많이 흘려 체내 수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알코올의 이뇨 작용까지 더해지면 탈수 증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젊은 닷쿠 일행에게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유를 되찾은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텅 빈 별장 1층에 싱글 침대 하나만 놓여 있는 기묘한 상황에 대해 저마다 추리를 꺼내 놓기까지 합니다.

같은 작가의 단편 "맥주집의 문제"도 비슷합니다. 닷쿠 일행이 빈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마시며 그 이유를 추리하는 이야기거든요. 만화 단행본 표지에서도 닷쿠 일행은 맥주를 들고 있는데, 이쯤 되면 참 맥주를 좋아하는 일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작품 속 닷쿠 일행이 마신 것은 냉장고 속 캔맥주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캔맥주보다 병맥주 쪽이 조금 더 시원한 인상을 줍니다. 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 병뚜껑이 열릴 때 나는 소리, 잔에 따를 때 올라오는 거품이 캔맥주보다 조금 더 선명한 장면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즐겼던 맥주도 Remmers 병맥주였습니다. "독사"에서 그 상표명이 직접 언급되지요.

병맥주 하면 역시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병을 꺼내, “퐁” 소리와 함께 뚜껑을 열고, 살짝 얼음이 낀 잔에 거품이 올라오도록 따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데 아마노 세츠코의 "얼음꽃"에는 바로 이 습관을 이용한 살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노 쿄코는 냉장고 속 맥주를 냉동실에 얼려 둔 잔에 따라 마시는 남편의 습관을 이용해 남편을 원격으로 독살하고, 자살로 위장하는 데 성공합니다. 미리 잔에 청산가리를 발라 두었던 겁니다.

다만 이 방법은 보기에는 시원해 보여도, 과학적으로는 맥주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합니다. 맥주에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적정 온도가 있는데, 얼린 잔은 그 온도를 지나치게 낮춰 버리는 탓입니다. 또 잔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 때문에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이 제대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요. 가장 시원해 보이는 방식이 반드시 가장 맛있는 방식은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고 더위 속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만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테미스의 검"에 등장하는 사코미즈처럼, 2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뒤 맥주를 마신다면 어떨까요. 그 맥주가 맛없을 리 없습니다. 그는 탄산이 주는 청량감을 두고 “마치 목에도 미각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느끼며, 맥주를 “액체 모양을 띤 황금”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 마음이 너무나도 잘 와닿습니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영화 "쇼생크 탈출"의 지붕 공사 장면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앤디는 간수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동료들에게 맥주를 요구합니다. 그 덕분에 죄수들은 햇볕이 내리쬐는 지붕 위에 앉아, 차갑게 식힌 Stroh’s Bohemian 맥주를 한 병씩 나누어 마시지요. 특별히 고급 맥주는 아니지만,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교도소 안에서 잠시 자유를 맛봅니다. 죄수가 아니라 하루 일을 마친 평범한 노동자처럼요.

물론 차갑지 않아도 특별한 분위기가 함께한다면 맥주는 충분히 맛있을 수 있습니다. M. C. 비턴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에 등장하는 해미시 순경은 일부러 맥주를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마시곤 합니다. 미국 영화 속 탐정들이 책상 서랍에서 술병을 꺼내 드는 장면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 자신도 옛 하드보일드 탐정과 닮아진 듯한 짜릿함을 느낀다고 하지요. 이쯤 되면 맛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한 셈입니다.

스티븐 킹의 "여름 천둥"은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모든 것이 오염과 후유증으로 죽어 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로빈슨은 버려진 개 간달프와 함께 살아가고, 근처 고급 주택가에 홀로 남은 팀린과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결국 방사능 후유증이 심해져 죽음을 앞두게 된 팀린은 자살할 준비를 마친 뒤 로빈슨을 부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미지근한 Budweiser를 나누어 마십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맥주의 제왕”이라면서요. 차갑지도 않고, 세상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마시는 맥주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의 Budweiser는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맛보다는 마지막으로 나누는 시간, 그리고 맥주라는 너무나 평범한 물건이 만들어 내는 쓸쓸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만약 간달프가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의 파트너 조처럼 Budweiser를 좋아하는 개였다면, 그 자리가 더 빛났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사실 이 자리는 Budweiser보다 벨기에 맥주 Duvel이 더 어울렸을겁니다. 시원해야 제맛인 라거 계열의 Budweiser와 달리, 에일 계열 맥주는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왔을 때 본연의 맛이 살아나는데 그 중에서도 Duvel이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향과 맛을 즐기기 좋은 맥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Budweiser도 겨우 구했던 로빈슨과 팀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만요.

이처럼 맥주의 맛은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더위, 갈증, 자유, 고독, 동경, 마지막 순간의 체념 같은 것들이 맥주의 맛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떤 맥주는 차가워서 맛있고, 어떤 맥주는 오래 기다린 끝에 마셔서 맛있습니다. 또 어떤 맥주는 맛 자체보다 그 순간의 분위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시는 순간입니다. 뜨거운 날의 갈증이든, 하루 끝의 여유든, 이야기 속 인물이 느낀 자유든, 맥주는 그런 장면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맥주를 맛있게 따르는 방법인 ‘세 번 따르기’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네로 울프도 좋아하는 Remmers 병맥주를 전용 금도금 병따개로 딴 뒤, 정확하게 거품을 맞춰 따라 마시곤 했다고 하니, 미식가에게 검증된 방법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맥주에 잘 어울리는 잔까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세 번 따르기

1.
맥주병을 높이 들고 처음에는 천천히, 이어서 조금 세게 따라 거품을 만든다.

2.
거품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맥주와 거품의 비율이 1:1 정도가 되면, 병을 잔 가장자리로 가져가 천천히 따른다. 이때 거품이 잔보다 1cm 정도 높게 올라올 때까지 따른다.

3.
거품이 잔보다 1.5~2cm 정도 높아질 때까지 맥주를 조심스럽게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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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늑대를 요리하는 법 - M.F.K 피셔 / 김정민 : 별점 3.5점

늑대를 요리하는 법 - 8점
M.F.K 피셔 지음, 김정민 옮김/다른목소리

미국에서 태어난 M.F.K 피셔, 메리 프랜시스 케네디 피셔가 쓴 음식과 삶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1942년 발표된 고전으로 제목의 "늑대"는 위기 상황'을 의미하는 "문가에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문구에서 따 왔습니다. "늑대를 요리하는 법"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의미하지요.

제목 그대로 미국 대공황기 등 여러 힘든 시기를 보낸 저자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됩니다. 그 중에서도 물자, 재료가 부족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 먹는지에 대한 방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생선, 고기, 빵, 수프 등 생각할 수 있는 주요 재료별로 상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다양한 내용 중에서 우선은 눈물 겨울 정도의 절약 비법이 눈에 뜨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불 없이 요리하는 방법입니다. 건초 통을 감싸고 그 안에 음식을 넣은 뒤 통의 뚜껑을 덮는 방법인데, 발효(?) 열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또 당시 통화 기준이기는 해도 50 센트로 차리는 극빈 요리에 도둑질, 야생에서 얻은 식재료를 이용한 "나는 자연인이다" 스타일 요리, 심지어 음식 뿐만이 아니라 대체 커피라던가 술값 아끼는 비법으로 가짜 보드카 제조법까지 등장합니다. 가짜 보드카는 물 1쿼트, 글리세린이나 설탕 1 작은술, 레몬 1개의 껍질, 오렌지 1/2개의 껍질을 20분 동안 아주 약한 불에서 끓인 뒤 알코올 1쿼트를 더한 후 바로 뚜껑을 덮고 식힌 뒤 걸러서 만든다고 하는데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진짜 위기 상황, 즉 "등화관제" 상황에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가스가 전기보다 빨리 끊긴다는 등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려 동물들을 위한 절약 방법도 관심 가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되고요.

하지만 그냥 안 먹고, 아끼는 방법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워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저자의 철학이 가득 담겨 있는, 궁상맞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리 레시피도 많습니다. 단순한 미국 가정 레시피가 아니라 유럽, 심지어 간장과 누룽지 등 중국에서 비롯된 재료를 사용하는 요리를 가르쳐 주는 식이라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파리식 양파 수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만족을 주며 언제나 위로가 되고 마음에 남는 소박한 수프라는 미네스트로네 레시피는 꼭 따라해 보고 싶더군요. 집이나 시장에서 가장 흔하고 싼 재료로 만드는 게 최고라니 더할 나위 없죠. 가끔 집에서 궁상을 떨며 혼술을 즐기는 이와마 소다츠가 떠오르는 메뉴들도 좋습니다. 이런 저런 선반에 채운 통조림들을 결합해서 먹는 레시피들 처럼요.

이러한 레시피, 조리법 외에도 커피 찌꺼기를 바늘 겨레 안에 넣으면 바늘이 녹슬지 않는다, 핸드로션 대신 버터 포장지를 손에 문지르고 나서 버리라는 등의 생활 꿀팁도 많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시대 착오적인 내용들, 그리고 말을 타다가 생긴 타박상은 말 바로 옆 축축한 잔디를 상처 부위에 고정한다는 말도 안되는 민간 요법이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당시 시대상을 느끼게 해 주어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글의 흐름 속에서 저자의 여러가지 철학을 강하게 피력하는 장면들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개인적으로는 어린이도 사람이기 때문에 맛, 질감, 자극 면에서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것을 얻기 위해 "생각하며" 먹게 해야 한다는 교육 이론이 와 닿았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잘 먹는다" 는 중국 속담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는 현명하지 못하다!" 고 일갈하는 장면은 "맛의 달인" 의 지로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이렇게 재미있고 한 번 읽어보면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흰 빵을 증오하는 저자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에서 직접 빵을 구워 먹기 까지 해야 하는지 등 내용 모두를 동의하기는 어려우며,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더라도 많이 낡았고 번역 문제겠지만 문체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문제들, 무엇보다도 요리와 레시피를 소개함에도 불구하고 도판이 하나도 없다는 큰 문제는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3.5점인데, 도판과 번역만 충실했더라도 별점 4점이 아깝지 않았을 거에요. 요리, 음식 들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현대를 무대로 "좀비를 요리하는 법"과 같은 개정판이 나와 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았는데 이 책 발표 시점에서 저자 나이가 34살이라는 것에 크게 놀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의 잔소리 섞인, "옛날에는 이랬지" 스타일의 글들로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빅토리아 시대 할머니가 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요. 대체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을 한 건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또 아래와 같은 평균 이상의 미모도 놀랍고요.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볼 저자라 생각됩니다.

2015/01/19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카렐 차페크 / 정찬형 : 모비딕 : 별점 2.5점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6점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모비딕

카렐 차페크의 단편집. 고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단편집인데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쇼트쇼트'가 연상되는, 조금 희한한 상상력이 발휘된 초단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호시 신이치보다는 추리적인 색채가 짙다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이런 장르도 좋아해서 즐겁게 읽기는 했지만, 실려 있는 작품들의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전개가 낡고 지루하며 결말의 의외성이 없는 등의 단점은 아쉬웠습니다. 쓰여진 시기를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막 나가는 전개의 몇 작품은 의도인지 아니면 습작들이 이상하게 뭉쳐져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탈영병이 거름더미 속에 몇 달 숨어 있다가 잡혀온 이야기와,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상이용사 연금을 받던 로이지크가 양심 때문인지 정말로 불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 있는 "실종된 다리"가 좋은 예입니다. 어차피 초단편이라면 나누어 수록했어도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로 묶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쓰여진 시기 탓인지 "양심"에 대한 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들이 근본적으로 너무 선해서,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에 의해 갈등을 겪는 내용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좋았던 시기에 착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묘하고 기발한 발상은 좋지만, 지금 읽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수록작 일부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추리물 성향을 지닌 작품부터 소개해 드리자면,

"도둑맞은 선인장"

식물원에서 귀한 선인장이 도난당하자 선인장에 치명적인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조작하여 발표한 뒤, 약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잠복하다가 범인을 체포한다는 내용입니다. 식물원에서 훔친 방법도 기발한데, 나이든 여자로 변장하고 가슴에 화분을 숨겨 나왔다는 것이죠.

"하르쉬의 실종"

아르메니아인들이 하르쉬를 어떻게 죽이고 시체를 옮겼는지에 대한, 즉 시체의 순간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굉장히 쉬운 트릭이기는 하지만 범행 당일 비가 왔다는 점, 카펫 속에 시체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시체의 기묘한 반점을 연결하는 부분은 괜찮았어요. 명탐정 메이즈리크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고요.

"도난당한 살인사건"

범인들이 경찰로 위장한 뒤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뒷수습한다는 이야기. 목격자는 많았지만 경찰 복장을 한 범인을 보고는 단지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죠. "오터모울씨의 손"이 떠오르는데, 이런 트릭의 원조격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영아 납치 사건"

사라진 영아를 찾기 위한 바르토세크 반장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경찰들에게 아기를 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군요. 몇 개월 됐나요?"라고 말하라고 시키고, 그 말에 과민반응을 보인 어머니를 체포한다는 내용이지요. 모든 어머니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심리를 이용한 트릭과 전반적으로 유쾌한, 블랙 코미디스러운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정물도 있습니다.

"하브레나의 판결"

기자들이 법정 소식을 실으려고 노력하던 중, 실제 법정에서의 사건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창조하는 하브레나라는 인물에게 창작의 댓가를 지불하고 이야기를 전해받는다. 하브레나는 스스로 법에 대해 통달했다고 여기는데 어느날 그가 창작한 이야기, 즉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자를 볼 때 마다 "화냥년"이라고 말하게 만든 늙은 독신남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가 실제 법조인들에게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자 하브레나는 자신의 이야기 속 판결이 정당하다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인에게 욕설을 하게끔 만들고 법정에 서게 되는데...

설정부터 흥미롭지만 진행 과정 역시나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법의학물의 선구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바늘"

롤빵 속에 들어간 바늘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국립화학연구소의 우헤르 박사가 빵과 바늘에 대한 모든 상황을 검토한 끝에 롤빵이 만들어진 뒤에야 바늘이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 그리고 바늘을 누가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 빵을 찾기 위해 화학자들이 빵을 수도 없이 만들어본다는 과정에서 법의학물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반전이 괜찮은 작품도 있습니다.

"우표 수집"

한 노인이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하층민인 로이지크와 절친이 되었고, 우표 수집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성홍열로 앓아 눕고 얼마 뒤, 둘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둔 우표가 사라지자 로이지크를 의심하여 그와의 우정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도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표를 숨긴게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는 내용의 작품.

"고해"

너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탓에 마음이 무거워진 범죄자가 신부, 변호사를 찾아가 죄를 털어놓는다는 이야기. 신부와 의사가 이러한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죠. 반전은 마지막에 그에게서 고백을 들은 의사가 모르핀 주사 2방을 추가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게 말이죠.

블랙코미디 스타일의 유쾌한 범죄극도 있습니다.

"여의주와 새"

진귀한 카페트를 훔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엄청난 슬랩스틱으로 묘사된 작품입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의 연출감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발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도둑"

도둑이 범행 후 남긴 시가 지역 신문에서 극찬받자,  도둑의 창작욕이 폭발하여 도둑질은 시를 발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풍자와 유머가 돋보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영어를 못하는 지휘자가 영국에서 우연히 남녀의 대화를 몰래 듣게 되는데, 그 속에 담긴 범행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는 이야기. '남자의 사악한 말은 묵직한 베이스'같은 식으로 악기의 음색과 범행의 느낌을 연결한 설정이 대단히 인상적으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습니다.

2022/02/11

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 - 쿠스미 마사유키 / 박정임 : 별점 3점

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 - 6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박정임 옮김/살림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가로 잘 알려진 쿠스미 마사유키의 먹부림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총 3부 구성인데, 가장 비중이 높은 1부는 혼자서 혼술을 마실 때, 어떤 안주를 직접 만들어 어떤 술과 함께 먹는지에 대해 쓴 글들입니다. 2부는 혼자서 술집에 갈 때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고요. 3부는 술을 다 먹고 마무리로 어떤걸 먹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술과 안주를 사랑하는 작가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정말로 술과 안주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이채로왔습니다. 저자의 다른 에세이에서는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술과 안주를 사랑하고, 먹거리에 대한 특별한 고집과 집착을 보이는 모습을 접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술잔이라던가, 차림상의 구성을 꼬치꼬치 따지는 모습은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다츠와 별다를게 없어 보였고요. 얼마 전에 읽었던 "혼밥 자작 감행"의 쇼지 사다오도 그러했는데, 혼술하는 아저씨의 전형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먹는 방법에 대해 여러가지 '전략, 전술'을 고려해서 안배한다는, "음식의 군사"가 떠오르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돈가스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돈가스를 소금, 간장, 소스 순서로 찍어 먹는다던가, 마지막 두 조각을 미리 소스를 뿌려 절여두었다가 밥이랑 함께 먹는다는 등의 이야기는 "음식의 군사" 속 돈가스 에피소드와 거의 똑같았으니까요. 오뎅을 접시에 담을 때 색감을 고려해서 담는다는 등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쥬쿠 카페 베르크의 커피 역시 "음식의 군사"에서도 소개되었었지요,

그러나 돈가스 정식을 일종의 '코스 요리'라고 생각한다는건 기발한 발상이었습니다. 육류에 전채 (야채절임), 샐러드 (양배추), 수프 (미소시루), 푸짐한 채소 요리 (밥)이 곁들여 나오기 때문이라는데, 아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이왕 코스 요리니 주문할거면 값은 비싸도 히레가스 정식을 주문하자라던가, 맥주를 시킬 때 "이집 맥주는 어디 건가?"하고 브랜드를 물어보면 와인 느낌이 난다는 이야기에 이르르면, 이런걸 만화로 선보였다면 아주 좋았을텐데 좀 아쉽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음식의 군사" 속 돈가스 요리 에피소드보다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후지코 후지오의 "만화의 길" 속 추다와 멘치빵을 재현해 먹는 에피소드는 과연 만화가구나! 싶어서 기억에 남고요.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라 더 기억에 남은 것 같네요. 참고로 원작 속 '츄다' 레시피는 소주 3, 사이드 7의 비율입니다. 멘치빵은 아래와 같고요.

기요켄의 슈마이 도시락에 대한 글은 저자의 데뷰작 "스키야키"가 떠올라서 반가왔습니다.

혼자 안주를 만드는 이야기 속 레시피도 짤막하지만 충분히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충실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건 가다랑어 안주입니다. 조금 얇게 썬 가다랑어를 준비하고, 그 위에 대파를 잘게 다져서 듬뿍 올립니다. 다음은 양하도 잘게 다지고, 차조기나 깻잎 한 장도 채썰어 올립니다. 마지막이 비법이라 할 수 있는데 마늘 대신 편을 썬 마늘장아찌를 올리는겁니다. 생마늘은 맵고, 간 마늘은 느낌이 약하기 때문이랍니다. 이걸 레몬즙을 섞은 간장에 찍어먹는다는데, 반주로 니혼슈, 조금 비싼 사케가 제격이라네요. 가다랑어 회는 구하기 힘들겠지만 방어회로 다음에 도전해 볼까 합니다. 방어회는 먹다보면 물려서 남기기 십상이니까요. 

다른 먹부림 콘텐츠에서 탕두부라고 소개되는 물두부 레시피는 정말 쉬워 보여서 인상적입니다. 평범한 냄비에 다시마 한 장을 깔고 물을 담아 가스버너 등에 올리고, 한 입 크기로 자른 두부를 넣은 뒤 끓고 나면 간장과 가쓰오부시, 다진 파를 섞은 종지에 찍어 먹으면 된다니까요. 간단하기로는 '조야나베'도 만만치 않아요. 냄비에 물을 붓고 저민 생강 두 조각 정도를 넣은 뒤 끓이다가 큼직하게 썬 양배추, 기다란 삼겹살을 세 토막 낸 걸 넣고 갈은 무와 다진 파를 듬뿍 넣은 아지폰(감귤 과즙 폰즈 상품명)에 찍어 먹는게 끝입니다. 폰즈가 집에 없기는 한데, 그 외에는 재료나 조리법 모두 너무 쉬워서 당장 해 먹어도 됨직한 수준이네요. 심지어 우러난 국물은 제가 좋아하는 우동 사리를 넣어 먹으면 끝장이라니, 꼭 한 번 해 먹어 봐야 겠습니다. 

그 외에도 가열한 올리브 오일에 큼직하게 썬 양배추를 넣어 재빨리 볶은 후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먹는 양배추 볶음, 오니기리를 프라이팬에 올려 약한 불로 굽다가 간장과 미림, 미소 양념장을 발라 굽는 오니기리 구이, 간단한 여주 볶음밥, 통조림 참치에 잘게 다진 양파를 넣고 후추와 소금을 뿌린 후 마요네즈와 버무려 만든 속을 버터 발라 구운 식빵에 끼워 먹는 참치 토스트(굽지 않은 빵에 머스터드를 바른 뒤 슬라이스 치즈를 깔고, 그 위에 참치 마요네즈를 올려 구워도 맛있다네요) 등 대부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만 소개되고 있어서 아주 반가왔습니다.

뻔한 먹부림 에세이지만 재미도 있고, 레시피들도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는 적당합니다.

2004/01/01

절대미각 식탐정 - 테라사와 다이스케

절대미각 식탐정 1 - 6점
다이스케 테라사와 지음/학산문화사(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작가 테라사와 다이스케의 신작.
미스터 초밥왕은 제가 요리만화를 무척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정이 가진 않았었습니다. 설정에서부터 캐릭터들, 스토리라인 전체가 초밥이라는 소재를 놓고 벌어지는 오버의 극치들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었죠. 특히나 매번 감정에 북받치는 주인공들이나 "입안에서 터지는 어쩌구..."하는 맛에대한 묘사는 짜증날 정도였고요.

그래도 이 "절대미각 식탐정" 은 일단 그러한 감정 과잉이나 오버가 조금은 희석되어 있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림은 뭐 여전히 독특하지만 꽤 탄탄한 편이고요.

주인공 다카노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유유자적 하면서 역사 소설가와 탐정이라는 두가지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으로 이 두가지 직업을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은 비서인 교코 뿐이죠. 더군다나 그는 앉은 자리에서 도시락 10인분은 바로 먹어치울 정도의 굉장히 식탐이 심한 미식가입니다. 만화는 이 다카노가 경찰청 엘리트인 오카다의 요청으로, 또는 의뢰로, 또는 우연히 사건을 받아 해결해 나가는 추리만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이야기 전부가 "음식"과 연관되어 있는, 약간은 요리만화의 설정도 띄고 있습니다.

사건의 예를 들면 어떤 식당에서 벌어진 살인 현장에서 범인으로 심증은 가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살해당한 요리장은 머리를 강타당했는데 흉기를 찾지 못한 상태죠. 여기서 다카노는 주 메뉴였던 커틀릿을 먹어보고 커틀릿 빵가루가 일반적인 빵이 아닌 일종의 "단단한 빵"으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 요리사의 자백을 받아냅니다.... (1권 003 "남의 커틀릿을 먹다")

그러나 다카노라는 주인공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개인적으로는 "맛의 달인"의 지로같은 녀석이 이 만화 주인공으로 적당했을것 같습니다. 다카노의 너무 잘난척 하는 모습은 짜증날 정도였고, 비정상일 정도의 식탐이 현실성이 부족했거든요. 아울러 살인 현장에 음식이 중요한 증거로 남아있어 그 음식을 먹어보고 사건을 추리해 낸다던가(1-004 : 살인현장의 초밥을 먹다 편 등), 식당이 범행 장소라던가(2-012 : 라면집에 줄을 서서 라면을 시켜 먹는다 등), 음식의 특성으로 트릭이 이루어진다던가(1-005 : 독이 든 홍차까지 마신다 등) 하는 식으로 모든 사건이 음식과 관련되어 있는 만큼, 상당한 수준의 내용도 있지만 이야기의 소재와 설정이 아무래도 끼워맞추는데 문제가 좀 있는 편이라 전체적으로 그 추리의 깊이나 내용이 합리적이거나 치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즐겨 찾는 추리 동호회의 한 회원분은 거의 쓰레기급으로 분류하시더군요^^

하지만 요리만화를 좋아한다면 꽤 즐길 수 있는 만화입니다. 저도 추리만화와 요리만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런 형태의 만화를 만나니 꽤 신선합니다.

"추리" 보다는 "요리"만화를 좋아한다면 추천입니다.

2025/02/07

붉은 박물관 -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 별점 2점

붉은 박물관 - 4점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사 1과의 데라다 사토시 경사는 수사 중 실수를 저질러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붉은 박물관)으로 좌천되었다. 그곳은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일정 기간 경과 후 관할 경찰서에서 받아와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하여 향후 수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곳이었다.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수집된 미해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고, 데라다에게 직접 수사를 맡겨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정통 본격 추리 단편집. '붉은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안락의자 탐정으로, 기존 수사 기록과 데라다를 시켜 모은 정보로 미해결 사건을 추리해 낸다는 내용입니다. 모두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가 발표되었을 정도로 인기작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래 전 미해결 사건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부서에서 사건을 추리한다는 설정은 로이 비커즈의 "미궁과 사건부"와 똑같습니다. 딕슨 카의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과도 비슷하고요.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장르 성격도 동일합니다. 수록작들 모두 어느 정도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탐정이 독자들과 똑같이 단서를 제공받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인 덕분입니다. 덕분에 독자도 탐정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추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급해드린 고전 명작 수준은 아닙니다. 대부분 작품 속 트릭이나 범행 동기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고, 억지스러운게 많은 탓이 큽니다. 트릭도 5편 중 한 편("죽음에 이르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A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아니었다.'같은 사람 바꿔치기일 뿐이고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도 작위적이거나 우연에 기반한게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캐릭터들도 영 별로입니다. 탐정역인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일본 컨텐츠에 나오는 쿨 뷰티 안경녀의 전형으로, 생생함을 느끼기 힘든 인물이었습니다. 열혈도 아니고, 사명감도 딱히 없어 보이는 미지근한 초식남 데라다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을 다시 불러온 의욕은 좋았지만, 완성도는 고전 걸작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빵의 몸값

1998년 2월 일어났던 나카지마 제빵 사장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사장은 빵에 바늘을 집어넣은 범인에게 1억엔을 건네주려다 살해당했다. 밖에서 숨어있던 경찰들은, 현장인 저택 내부 방공호의 존재를 몰라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현장인 폐허로 들어갔던건 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위해 차 안에 숨어있던 경찰 도리이였습니다. 그는 출발할 때 차고에서 가발과 안경, 마스크를 착용하여 사장으로 변장했고, 차 안에서는 1인 2역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사장으로 폐가에 들어간 뒤, 변장을 풀고 수사관인척 나타났고요.
사장이 다른 사람을 살해할 때의 알리바이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는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사망케 했는데, 함께 있던 야스다가 자수하려고 해서 죽이려고 했던거지요. 하지만 사장은 야스다에게 반격당해서 죽어버렸고, 이 사실을 들은 도리이는 사장인 척 연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 경부가 바뀌었다는 트릭은 나쁘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 - 협박범에게 돈을 건네주기 위해 이동하던 - 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대부분 억지스럽습니다. 경찰이 뺑소니 사망 사고를 일으킨걸 숨기려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공범자 중 한 명을 죽이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무려 1억엔의 돈이 걸린 협박 사건을 꾸며냈다? 알리바이는 경찰인 도리이 경부가 거짓말로라도 증명해주면 됩니다. 이런 거대한 사건을 꾸며낼 이유가 없어요. 그야말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허무맹랑한 설정 놀음일 뿐입니다.

트릭도 운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저택 안에 방공호가 없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야스다가 자살같은 사고사를 당하지 않았더라면요? 여러모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보이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일기

데라다 사토시는 1993년 9월 하치오지시 살인 사건 범인 다카미 교이치의 일기를 읽었다. '헤어졌던 애인 마이코가 살해당했다. 나는 몇 가지 단서를 토대로 범인이 오쿠무라 교수라고 추리했고, 교수와 담판을 짓던 끝에 그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일기장은 도둑맞았었는데 도둑이 경찰에 신고했고, 다카미는 출동한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히이로 사에코는 일기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챈 뒤, 데라다 사토시에게 재수사를 명령했다. 데라다는 명령대로 마이코의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 오쿠무라 교수 살해 당시 알리바이를 물었다...

히이로 사에코가 일기에서 포착했던 '이상한 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꽤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웠음에도 흉기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의 페이퍼 나이프를 쓴건 확실히 이상했어요. 에어컨을 껐다는 묘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체가 일기 내용대로 범행 뒤 무더위 속에 방치되었던게 아니라, 시원한 실내에 놓여 있었다면 사망 시각은 훨씬 이전이 될 테지요. 

결론적으로, 오쿠무라 교수는 일기보다 이전에 살해당했습니다. 오쿠무라가 일기를 조작하여 경찰에 보내면서까지 진범을 자처했던건, 진범이 마이코였기 때문이고요. 이틀의 시차를 둔 건, 마이코의 알리바이(이미 사망했음)를 확실하게 만들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야 낙후되었다 하더라도, 90년대 과학 수사가 무려 이틀 이상의 사망 시각 차이를 밝혀내지 못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운에 의지하고 있는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마이코 자살 사체가 발견되기 전, 다카미가 마이코의 집을 방문했다는걸 아무도 몰랐고, 하숙집에서 가짜 도둑 소동을 일으켰을 때에도 들키지 않았고, 오쿠무라 집의 에어컨 조작을 들키지 않은 것 등은 모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에어컨 조작의 경우, 전기 사용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데라다 사토시는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피해자 도모베 요시오가 사망하기 직전에, 25년 전 교환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들었다. 조사해보니 실제로 25년 전,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확실하여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들이 있었다...

교환 살인을 소재로 한 작품은 흔한데("낯선 승객"), 데라다 사토시에게 죄를 고백한 도모베 요시오는 가짜였고, 도모베 마사요시 살인 사건의 진짜 청부인도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아내 마키코였다는 바꿔치기 트릭이 합쳐져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작품입니다. 마키코는 가짜 도모베 요시오인 사이토 아키히코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범행을 모의했습니다. 마키코는 2년 전 도모베 요시오를 살해한 뒤, 사이토 아키히코를 대역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데라다가 들은건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사이토 아키히코의 고백이었기 때문에, 25년 전 사건 조사를 할 때 혼돈을 일으켰던 것이고요.

진상을 드러내는 추리 과정도 매끄럽고, 단서 제공도 가짜 도모베 요시오의 면허 취득 기간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운전 실력, 폐업 후 지방으로 내려간 상황, 근육질인 마키코의 체형(그래서 25년 전 여성 한 명을 살해하기 용이했다) 등 과할 정도로 제공됩니다. 

때마침 데라다 앞에서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마침 피해자가 경찰에게 지은 죄를 고백한다는  상황은 작위적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통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

사진작가 에미리는 21년 전 부모와 이모를 잃었다. 세 명은 청산가리로 독살당했고, 집과 사체는 범인이 지른 불로 전소해버렸다. 이모의 연인이라는 남자 소행으로 보였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다. 사건에 대한 글을 잡지에서 읽은 히이로 사에코는 데라다에게 에미리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시했다. 

에미리의 친모 도모코는 친모가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동생 아키코가 불륜을 저질러 에미리가 태어났지요. 그런데 둘 사이에 또 애가 생기자 복수심에 범행을 저질렀던게 진상입니다. 에미리를 임신했을 때와 겹쳤던 아키코의 유학 및 실종 기간, 아키코의 애인 이야기는 도모코의 말 뿐이었다는 것, 도모코는 연장 보육 제도 이용도 고려했다는 등의 단서 및 이를 통한 추리도 깔끔합니다. 사건의 동기도 끔찍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요. 수록작 중에서는 범행 동기와 과정만큼은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증거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했다기 보다는, 그나마 말이 되는 추리를 추가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추리 퀴즈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질문

26년 전 발견되었던 피살체와 똑같은 상태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26년 전 사건의 피해자와 연령이 같았고, 사망 추정 시각 및 사체 유기 현장도 똑같았으며 심지어 흉기마저 일치했다. 이번에도 피해자 스웨터 소매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수사 1과는 동일범의 소행이라 여겨 자료관에서 26년 전 자료를 가져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사관이 범인일 수 있다는 감사팀의 지시를 받아 데라다는 홀로 사건 수사에 나섰다...

범인은 기자 후지노 준코였습니다. 그녀는 2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후쿠다 도미오를 살해했습니다. 후쿠다 도미오 소매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피였습니다. 준코를 학대하던 아버지는 후쿠다를 끌어들였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려 입을 다물게 되었고요.
그리고 26년 후,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친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소매의 피는 DNA 조사를 할 테고, 이를 통해 가족 관계가 드러날걸 노렸던 겁니다. 

이를 드러내는 '26년 전 피가 묻었던 소매와 지금 피가 묻은 소매의 위치가 다르다'는 단서도 좋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어느 쪽 소매에 피가 묻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아서, 범인은 이를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팀 생각대로 수사팀 관계자가 범인이었다면, 26년 전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을테니 위치를 틀렸을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범인은? 피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를 입수할 수 있는건 보도 관계자일테고, 관련되어 질문을 하는 관계자가 범인일거라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영 별로입니다. 비약이 심한 탓입니다. 보도 관계자가 범인일 수는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널려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DNA 분석 요원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기자회견을 맡는 수사관이 아닌 경찰 직원이라던가... 기자 회견장에서 후지노 준코가 DNA 조사를 물어본 것도 작위적이었습니다.

추리 과정보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동기와 범행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DNA가 범행 당시 핏자욱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자수하고 그 증거로 혈흔이 아버지 것이라는걸 증명하는게 훨씬 간단한 해결책입니다. 억지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인 '정통 본격 추리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망작입니다.

2013/01/22

전설 없는 땅 1,2 - 후나도 요이치 / 한희선 : 별점 2점

전설 없는 땅 2 - 4점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시작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지대, 말라버린 유전에서 희토류가 발견되었다. 땅주인인 알프레도 엘리손도는 일본인들에게 거액을 받고 땅을 넘기기로 결정했는데, 유전 지역에 살고 있는 400여 명의 콜롬비아 난민들이 문제였다. 그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려는 알프레도에게, 강도질로 얻은 2천만 불을 유전에 숨겨놓은 단바 하루히코와 가지 시로 일당이 맞서게 되는데...

1988년 발표된 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제4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제7회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을 수상한 후나토 요이치의 작품. "신주쿠 상어", "불야성"과 동일 유전자를 지닌 일본식 마초 액션 하드보일드 스릴러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었는지 모르겠네요. 상상을 뛰어넘는 마초적인 설정, 지나친 성적 / 폭력적인 묘사, 개연성 없는 작위적인 전개, 결국 허무한 결말이라는 쟝르 고유의 단점만 도드라지던데 말이죠.

물론 땀 냄새 가득한 남자 이야기일뿐더러 안티 히어로가 주인공인 만큼 마초적인 설정이야 이해할 수 있스빈다. 성적 / 폭력적 묘사는 마초 액션에서야 떼 놓을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요. 이 점은 "신주쿠 상어"라던가 "불야성" 역시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나 개연성 없고 우연에 가득 차 있을 뿐 더러 작위적이기까지 한 전개는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죽음의 9잡거방으로 이송된 단바가 "운 좋게" 흉기를 구해 숨기고 "운 좋게" 그레고리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살아남고 "운 좋게" 총기를 빼앗아 소장을 덮쳐 죽인다는 식으로 전개되어서 황당한데, 단바가 막달레나 마리아를 보자마자 "바리빠"라고 불리는 "신의 전사"로 거듭나는 장면은 정말이지 이게 뭔가 싶었어요. 사랑에 빠졌다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처지의 민중에게 감화된 것도 아니고,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으니까요.

또 아무리 부패한 국가라도 일개 목장주인 알프레도가 가족, 관할 지역 경찰서장, 경비대장 등을 모조리 죽이고, 사병집단을 고용하여 학살을 일으키려 하는데 무사히 넘어갈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도 이상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엘리손도의 땅에 무허가로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등 해괴한 논리를 들먹이며 더 나은 곳으로의 이주도 거절하는 난민들이야 말로 죽어도 싼게 아닌가 싶습니다. 뭐가 정의인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지진이 덮쳐 한 방에 끝내는 결말이야말로 작위적인 설정의 끝판대장이자 허무! 그 자체였습니다. 하필 모든 전투가 끝나고 상황이 종료된 직후 지진이 딱 맞춰 시작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될 뿐더러 900페이지에 이르는 대장편의 결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고 허무했어요.

그나마 베네수엘라를 무대로 한 디테일한 묘사는 발군이며 "혁명"에 대한 고찰이 덧붙여져 있다는 점은 괜찮았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불야성"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 일본 마초 액션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단점을 모두 보여줄 뿐 아니라 이국적이면서 디테일한 배경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그러하죠.
하지만 "불야성"은 전개만큼은 꽤 정교했는데, 이 작품은 어이없는 전개로 일관할 뿐이라서 수준 차이는 현격합니다. 맛없는 빵 위에 토핑 몇개 얹는다고 빵 맛이 달라지지는 않잖아요? 토핑은 고급스럽지만 걷어내고 남는 알맹이가 부실하니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맛은 제법 있는 편으로 아주 평가절하하기는 어려우나, 제게는 단점이 더 도드라진 작품이었습니다. 88년 당시에는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부족한 점만 눈에 많이 뜨이네요.

2025/01/05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사이토 미나코 / 손지연 : 별점 3.5점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8점
사이토 미나코 지음, 손지연 옮김/소명출판

이 책은 2차대전 당시 '주부의 벗' 등 일본 여성지에 실린 요리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이 일본 가정의 식탁에 미친 영향을 알려주는 미시사,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잡지에 실린 요리 정보로 그 시대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며, 전쟁 시기 일본인의 먹거리 변화도 굉장히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전쟁의 실상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시대 순으로 보자면 1940년부터 '절미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가뭄과 흉작 탓으로, 일본이 쌀을 절약하기 위해 대체 음식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흥아빵'이라는 레시피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빵은 밀가루에 콩가루, 해초 가루, 말린 생선 가루를 넣어 만들었는데, 맛이 있을리가 없지요=.

1941년에는 국민의 영양을 고려한 '국민식 운동'이 도입되었으나, 배급제가 본격화되면서 이상에 그치고 맙니다. 배급제에서는 단백질이 특히 부족했는데 오징어와 조개가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되었고, 콩비지도 다양하게 요리되었습니다.
과달카날 패전 이후인 1943년에는 생쌀을 볶아 양을 늘리거나, 겨를 사용하는 레시피까지 등장하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그런데 레시피에 설탕, 버터, 달걀과 같은 재료가 포함된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비현실적이었거든요.

1944년, 공습이 심화되면서 죽과 집에서 키운 고구마, 호박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길가의 잡초, 들풀, 곤충을 식용으로 권장하고, 심지어 차 찌꺼기를 채소로 먹으라는 권고까지 실리게 됩니다. 저자가 표현대로 '최후의 발악'이지요. 이런 쓰레기 레시피 중 하나가 '민들레 칼슘 무침'입니다. 

들풀 먹는 법 1 민들레 칼슘 무침

민들레 어린잎을 살짝 열탕한 후 물에 헹궈둡니다. 구운 생선 머리와 뼈, 달걀 껍데기 등을 갈아 으깨고, 다시마가 있으면 구운 후 갈아서 기호에 따라 맛을 내어 무쳐줍니다.

민들레의 쓴맛을 제거하려면 데친 후 얼마 동안 물에 담가 둡니다. 민들레의 쓴맛은 국화과 식물 특유의 영양소이므로 제거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전후에는 미국에서 제공된 밀가루 중심의 레시피가 많아졌고, 식량 사정이 안정되기 시작한 1949년 이후로는 점차 다양한 요리가 복원됩니다. 195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식탁은 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쟁의 실상을 독특하면서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독서였는데,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요리를 현재 구현한 컬러 사진이 몇 장 실려 있지만, 더 많은 요리를 재현하거나 당시 잡지 자체의 도판을 함께 수록했다면 책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실생활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1/05/0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1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1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도 40권을 넘어섰네요. 이번 권에는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록된 이야기 모두가 설득력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C.M.B의 또다른 매력인 현학적인 정보 제공 측면에서도 건질게 많지 않고요. 그래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운영위원" 

신라와 타츠키가 학교 운영위원을 맡은 날, 원예부원들은 이사장이 지시했던 화단과 백엽상 철거에 반대하며 철거업자와 대치했고, 화장실 변기가 막혔고, 학교 입구가 진흙 발자욱으로 지저분해졌고, 요코아리가 식사용 빵을 도둑맞는 등 학교 안에서 여러가지 사고와 문제가 잇달아 일어났다. 원예부가 화단 철거를 막은 이유였던, 원예부 아이돌 소녀가 맡긴 씨앗의 정체는 신라가 밝혀낸다. 그러나 검역 문제로 결국 철거가 수포로 돌아가자, 철거업자는 항의하는데...

신라는 철거업자 중 한 명이 학교에 있는 고가의 그림을 훔치기 위해 잠입해 있었다고 추리합니다. 진흙발로 학교로 들어와 변기를 일부러 막았던 거지요. 사용금지 팻말이 붙은 화장실 안에 숨어 있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요코아리의 빵은 먹으려고 훔쳤고요. 이렇게 별 거 아닌 걸로 보였던 디테일이 모여서,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는 꽤 볼만합니다.

그러나 원예부 소동은 예상할 수 없었기에, 이를 도둑과 엮는건 무리입니다. 애초에 무언가를 훔치려면, 소동이 일어난 날이 아니라 다른 날을 선택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오스트리아에서 허가받지 않고 들여왔다는 씨앗의 검역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라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어요. 

이렇게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봉인의 기담" 

메이지 시대 화족 부나가와 가문의 별장은 과거 2명이 죽고, 1명이 실종된 탓에 봉인되어 유령이 나온다는 전설 때문에 '봉인장'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현재에 이르러 철거를 앞둔 봉인장은 기록을 위한 건설회사 조사가 시작되었고, 신라도 부나가와 당주의 부탁으로 조사에 참여했다. 

지하에서 죄인을 가두어두는 시설을 발견한 조사팀은 비싼 장비를 이 안에 넣고 휴식을 취했지만, 잠든 과장을 제외한 조사팀원은 차례로 습격받은 뒤 장비마저 도난당하는데...

봉인장 지하의 '치도리 격자'라는 독특한 감옥 구조를 이용해서 탈출구를 만드는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CMB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를 잘 살리고 있어요.

그러나 다른 내용은 별로였습니다. 동기에 큰 문제가 있는 탓입니다. 특히 이렇게 용의자가 제한적인 상황에서까지 도둑질을 할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과장은 잠들어 있었고, 장비를 잃어버리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편의점에 심부름을 갔던 직원은 영수증이라는 증거가 명확하고요. 이 둘을 제외하면 용의자는 세 명에 불과해요. 이 정도라면 당장은 빠져나갈 수 있더라도 장치를 회수하거나,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드러났을겁니다. 

신라의 추리도 빈약합니다. 범인만이 얻어맞고 기절한 쿠로마츠라는 직원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었다는 증거가 대표적이에요.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었잖아요? 때문에 격자에서 지문을 채취한다던가 하는 보강은 필요했습니다. 

전개도 문제가 많습니다. 초반에는 과거 봉인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이 역시 치도리 격자 구조를 이용해서 일으켰던 거라고 짤막하게 언급될 뿐입니다. 이래서야 '봉인장' 어쩌구 하면서 거창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하마구리 가 사람들" 

경찰서에서 나오던 신라와 타츠키에게 하마구리 가 사람들이 자신들 아버지에 관련된 사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도내에 맨션 여러 채를 가지고 있는 부자 아버지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이웃집에 사는 수수께끼의 여자 마야에게 홀려 요가 강습료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현금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경찰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방관했지만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사라졌고, 타츠키와 하마구리 가 사람들은 미행을 통해 마야가 다치가와류라는 기묘한 불교 분파 수행자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 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는 유서를 남긴 채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시체로 발견되자, 유족은 경찰에게 책임을 물었고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기치사부로의 죽음을 사고사로 처리하는데....

신라가 추리한 사건의 진상은, 이 사건은 하마구리 가 사람들의 조작이라는 겁니다. 기치사부로가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으로 죽게 된게 이유였어요. 상속 확정까지는 기치사부로의 계좌가 동결처리되어 돈을 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치사부로의 돈으로만 먹고 살던 기생충들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사망 확인을 최대한 늦추면서, 서둘러 계좌 속 돈을 현금화한겁니다. 거액을 인출한걸 설명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여자에게 속아 돈을 건넸다는 이야기를 만든거지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핏빗(?)을 스마트폰에 동기화시키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치사부로가 매일 1만보 걷기 등을 실천하던 사람이라, 어느 시점에서 움직이지 않았는지가 동기화를 통해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떼어 놓을 수야 있겠지만, 이전 이력과 비교하면 이상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을테니, 확실한 증거는 아니더라도 참고 이상으로는 충분히 쓰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웨어러블 장치가 일상회된 현재라면 말이지요.

하지만 하마구리 가 사람들의 조작은 거창하기만 할 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수상한 옆집 여자 마야에게 현금을 주더라, 정도로 끝내는게 합리적이었어요. 돈을 건네 주다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는건 별로 이상하지 않잖아요? 사이비 종교를 엮어서 구원 어쩌구 하는 이유를 들먹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외려 다치가와 류는 살아있는 채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신라에게 의심을 사고 말았을 뿐입니다. 경찰도 아니고, 경찰 관계자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 신라와 타츠키에게까지 사건을 이야기할 이유도 딱히 없었고요. 

설명도 부족합니다. 기차사부로의 사체를 어디에 보관했는지부터가 애매해요. 부검에서 사망 추정시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경찰에 신고하며 소동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1주일 이상은 걸렸을 거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설득력만 높여 주었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돌과 사진" 

마추피추 유적에서 스페인 여성 관광객 알마가 낙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뒤 잉카의 저주라는 소문이 퍼졌다. 피해자가 잉카를 정복했던 스페인인이었고, 낙석은 다른 돌로 가로막혀 떨어질 수 없었던 위치에 놓여 있었던 탓이었다.

살인의 동기가 인스타그램일 수 있다는 전개는 꽤 시의적절했습니다. 피해자가 친구들 사진 아이디어를 도용해 사진을 올리고, 그걸로 인기를 얻었다는 내용이거든요. 물론 결정적인 동기는 따로 있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인스타그램 관련 내용 외의 모든 것입니다. 돌이 떨어진 진상부터가 허무하고 유치했어요. 가로막고 있던 돌을 피해서 굴린 뒤 피해자에게 떨어트린게 전부거든요. 밑에 굴리기 쉽게 태피스트리를 깔았다는데,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닙니다. 증거인 유리 구슬 파편도 너무 쉽게 드러나고요. 상식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낙석이 일어난 것으로 위장하는게 당연합니다. 이렇게 억지로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다른 친구 두 명이 범인 엘자가 위로 올라가 돌을 떨어트린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2007/11/16

돈가스의 탄생 - 튀김옷을 입은 일본 근대사 : 별점 3점

돈가스의 탄생 - 6점
오카다 데쓰 지음, 정순분 옮김/뿌리와이파리

오랫만의 포스팅이네요. 요새 하도 이런저런 일이 많아 심신이 피곤했던 차에, 저 자신에게 위로의 선물로 간만에 구입한 책 중 한권입니다. 관심은 있었지만 그다지 땡기지 않은 책이었는데 충동구매 해 버렸네요.

이 책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크게 두가지의 요리, "빵"과 "돈가스"를 가지고 일본 개화기의 근대사를 풀어나가는 일종의 역사책입니다. 단지 두가지 요리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고로케"와 "카레라이스" 등도 비중있게 다루어지고는 있지만, 이 책의 핵심인 일본의 근대화과정과 연관시켜 고찰하는 요리라는 주제에는 아무래도 "빵"과 "돈가스(육류요리)"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한 터라 비중이 훨씬 큽니다. 그런데 메이지 시대 개항 후 일본이 근대화 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음식 변천사와 유사해서 놀랐습니다. 육류 섭취를 불경한 것이라 여겨 피하던 중세적 사고관의 일본인들이 나가사키 등 개항한 항구를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는 양식 요리를 받아들이는 모습과 양식 요리를 "일본화" 하여 자신들만의 새로운 요리로 재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근대화 과정과 딱 맞아 떨어져 보여서 재미있더군요.

물론 몇가지 음식을 기준으로 급변하던 시대를 통찰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많겠지만 나름 공감가는 점도 많고,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역사와 설명이 흡사 "맛의 달인" 같은 만화를 보는 것 같이 디테일하고 자세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같이 요리에 관한 잡다한 지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딱 알맞게 당시 요리들의 해설과 레시피도 그런대로 충실하게 실려있는 편이고, 각종 자료들도 풍성하게 실려있다는 것도 일본 근대화 과정에 관련된 자료로도 요긴할 것 같아 마음에 드네요. 특히 여러가지 광고 전단 등은 정말 좋았습니다.

전체적인 문체가 좀 딱딱하고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긴 하나,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을 통해서 일본 여행갔을때 자주 스쳐지나갔던 신주쿠 "기무라야"가 단팥빵을 처음 만든 가게라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다음에 가면 꼭 단팥빵을 사 먹어야 겠습니다. 최초로 개발해 팔던 돈가스와 똑같은 돈가스를 팔고있다는 가게 등도 역시 꼭 체크해 놓았다가 다음에 일본에 여행가게 되면 가 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