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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7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 - 문국진 : 별점 2점


법의학자인 저자가 여러 명화에 대한 법의학적인 의견과 함께 그림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에 대해 짤막하게 쓴 컬럼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하지만 제목과는 달리 그림 속 나체에 대한 법의학적인 의견은 별로 없습니다. 제목과는 다르게 그림 이야기보다는 다른 것들, 예를 들자면 문신, 여성 할례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심리학에 관련된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법의학자로서의 의견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고요. 전체적으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몇몇 이야기는 재미있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래 귀스타브 쿠르베의 "파도와 여인"에 대한 법의학적 의견이었어요.
그림 속 여성 가슴 유륜의 수축과 충혈, 유두 돌출, 유방 전체의 팽만으로 볼 때 오르가즘 상태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하네요. 그럴듯 하죠? 이런 의견이 책에 좀 더 많이 실려있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2점입니다.

2025/03/28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 강신몽 : 별점 2.5점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 4점
강신몽 지음/이다북스

국내 ‘법의학의 대부’로 불리는 강신몽 교수의 에세이 집. 15년 전 "타살의 흔적"이라는 책으로 접했던 분이지요.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실제 사례와 엮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 주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칼에 찔린 깊이나 칼몸의 전체 길이 중 얼마가 들어갔느냐 하는 것은 '힘껏' 찌르거나 '살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피해자 가슴에 칼몸이 25센티미터 박혔다고 5센티미터 들어간 것보다 다섯 배의 힘으로 힘껏 찌르거나 지속적으로 힘을 가한 것이 아니라는 실제 사례를 드는 식입니다. 

의료 처치가 사망 원인을 왜곡할 수 있는 경우도 소개됩니다. 대표적으로는 심폐 소생 중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례 등인데, 이렇게 응급처치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들이 오히려 폭행의 증거로 오해될 수 있고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정한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한 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를 의미하는 자세성 질식은 새롭게 알게 된 개념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화장실 변기에 앉은 채로 발견되었거나, 놀이기구의 쇠봉에 목이 걸려 있는 상태로 사망한 사례 등으로 겉으로는 타살의 흔적이 없다고 합니다. 추리 소설에 사용될 법한 내용이 아닐까 싶네요.

또한, 20세기 초, 한 남성이 세 명의 아내를 차례로 욕조에서 익사시킨 후 보험금을 타냈던 "욕조 속의 신부들 사건"처럼 법의학이 범죄 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례도 흥미로왔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단순 익사로 처리될 뻔했지만, 법의학적 검토를 통해 연쇄 살인이 밝혀졌다는군요.

이외에도 법의학적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 다양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건 아래와 같습니다.

  • 공기색전증: 자위행위를 하던 중 질 속으로 공기가 유입되어 혈관을 통해 심장으로 들어가 사망한 사례. 부검을 통해 원인을 밝혀내었음.
  • 건성 익사: 물에 빠졌지만 물을 거의 마시지 않은 채 사망한 사례. 갑작스러운 찬물의 자극이 미주신경을 통해 심장을 멈추게 했을 가능성이 제기됨.
  • 열사병: 핀란드의 ‘사우나 챔피언십’ 참가자가 사우나 안에서 장시간 버틴 후 사망한 사례와, 국내에서 술을 마신 후 찜질방 한증막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한 사례 등을 통해 고온 환경의 위험성을 경고함.
  • 황화수소 중독: 계란 썩는 냄새가 나는 가스에 노출되어 호흡 마비로 사망한 사례. 산업 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위험할 수 있음을 강조함.

다만 법의학자가 탐정이 아니라는걸 지속 강조하는건 좀 별로였습니다. 법의학자도 부검 결과를 통해 충분히 자신의 의력을 피력할 수 있을텐데, 그건 법의학자의 영역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거든요. 당연히 경찰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겠지만, 반대로 보면 좀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에세이라서 개인 감상이 많이 포함된 점, 사례들은 저자의 주장과 견해를 뒷받침하는 용도로만 인용되어 후일담이나 결말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점도 좀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보다 전문적인 법의학 사례집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20/01/09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유성호 : 별점 2.5점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6점
유성호 지음/21세기북스

법의학자 유성호가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해 '죽음'에 대해 서술한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저자가 "미스테리아"에서 연재하고 있는, 실제 사건 속 법의학 이야기를 펼쳐내는 컬럼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터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미스테리아" 연재 컬럼과 비슷한 내용의 책일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책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제 실수지요. 

그래도 다행히 총 3부 구성 중 1부인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는 비교적 기대에 값합니다. 여러가지 실제 사건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법의학 소견과 검시 결과 등이 소개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완전범죄를 꿈꿨던 범행들이 눈에 뜨입니다.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이라던가, '의사 만삭 아내 살인 사건' 처럼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왔던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를 더하고요.

그러나 2부인 "우리는 왜 죽는가"와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부터는 이런 실제적인 법의학 관련된 글은 없습니다. '죽음'에 대해 역사적, 철학적, 과학적 개념을 다루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2부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뇌사와 연명 의료 지속 여부, 그리고 안락사 이슈에 대해 심도깊게 접근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평상시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제라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특히 환자 자신이 연명 의료를 받을거라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연명 의료로 생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 결정을 정작 당사자인 환자는 하지 못한다는 이슈는 남 이야기 같지도 않더라고요. 법의학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이러한 이슈에 대해 국내에서 법제화되거나, 법원 판결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생기게 된 1997년의 '보라매병원 사건' 과 2008년 '세브란스 병원 연명의료 판결' 과 같이 실제 사례가 소개된 것도 이해를 돕습니다.
자살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부분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근거를 가지고 접근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잡지 《뉴요커 The New Yorker》가 금문교에서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행히 구출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리고 우리나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안용민 교수가 실제 자살 시도자를 진료하면서 들었다는 이야기 및 이를 연구한 내용들에서 자살자들 모두가 막상 죽으려는 순간에는 살고 싶었다고 생각했다던가, 자살의 원인으로 자살 유전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자살 유전자는 세로토닌이라는 뇌 신경화학물질과 관련되어 있다는군요. 물론 아직 명확하게 그 근거를 밝힐 수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자살의 원인 중 70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이고 나머지 30퍼센트는 유전적 요인일 것이라는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변에 자살자가 있는 가족은 보다 조심해야 할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설명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3부만큼은 영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한 설명들인데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죽음에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고, 저 역시 불필요한 연명 치료는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니까요. 하지만 저자의 약력이라던가, 다른 글들에서 기대했었던 실제적인 사건과의 연계라던가, 법의학자로서의 전문성이 묻어나는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마지막의 영생 등에 관련된 내용은 지금 시점에서는 많이 앞서간 측면이 없지 않아 보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러모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제 기대와는 다른 결과물이었습니다. 차라리 "미스테리아" 연재 컬럼이 단행본화되면 좋겠습니다.

2006/04/10

독살 - 우에노 마사히코 / 박의우 : 별점 2.5점

독살 - 6점 우에노 마사히코 지음, 박의우 옮김/살림

일본의 저명한 법의학자이며 작가인 우에노 마사히코 박사가 본인이 실제 담당하였던 사건들을 가지고 저술한 책입니다.

일단 전문 법의학 서적처럼 어렵고 자세하게 기술했다기 보다는 일반인도 쉽고 재미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저술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책도 작고 콤팩트 한 것이 이쁘장하기도 하고요. 또한 일본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훝어보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선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와카야마 현의 마을 축제 카레에 섞인 비소로 67명이 구급차로 실려가 그 중 4명이 사망한 사건이라던가, 전쟁 직후 제국은행 독살 강도 사건, 신주쿠 역 청산가스 사건, 글리코-모리나가 사장 납치 사건, 그리고 유명한 옴 진리교 사린 가스 사건 등 다채로운 사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또 전문 법의학자의 저서이니만큼 몇몇 사건에서의 추리적인 시각과 전개 과정은 꽤 괜찮았습니다. 자살인 것으로 알았지만 후에 타살로 판명된 사건, 사고사인줄 알았지만 결혼 사기범의 연쇄 살인극이었다는 사건 등이 있는데 개중 독특한 보험금 관련 사건을 하나 소개해 보죠.

"사업에 실패하여 거액의 부채를 짊어진 무역상이 미국 로스앤젤리스의 호텔 4층 발코니에서 혼자 술을 먹다가 떨어져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조사를 통해 그가 일본에서 거액의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저자는 시체 소견을 통해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가 실수로 떨어졌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다양한 증거 (상처의 위치등을 토대로 한 떨어질때의 자세 재구성 등)를 제시하여 자살임을 밝혀낸다..."

하지만 너무 쉽게 쓰려한 탓에 전문적인 내용이 희박해지는 단점도 있고 개인의 신변잡기적인 글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 부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전체적으로 법의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개인 수필집처럼 보이기도 해서 전문 도서를 원한 독자라면 실망할 책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저는 실망스러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그래도 CSI 의 인기 이전에 기획되어 국내에 출간되었다는 점은 어떻게 보면 반가운 일이기도 하고, 쉽게 쓴 점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도 하니 저자의 다른 전문 서적을 기대해봅니다.

2025/07/13

기암관의 살인 - 다카노 유시 / 송현정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매니아 프리터인 사토는 아르바이트로 카리브 해의 외딴 섬 저택 '기암관'으로 향했다. 정해진 설정에 따라 연기를 하며 3일간 지내면 100만엔을 준다는 아르바이트였다. 사토에게는 반 년 전 사라진 일용직 친구 도쿠나가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기암관은 부호 미에이도 하루사다의 저택으로, 사토는 하루사다의 친구로 방문했다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방문한 기암관에서의 첫 날 밤, 쾌활했던 손님 텐가와가 밀실에서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알고보니 이 모든 건 부자들의 유희를 위해 벌이는 진짜 살인 게임이었고, 사토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고전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작품입니다. 

특징이라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의 설정을 작품의 핵심 소재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실제 살인을 포함한 추리 게임을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는 설정입니다. 추리를 즐기고 싶어 하는 부유한 클라이언트가 거액을 지불하고 사건을 의뢰하면, 회사는 추리 소설가가 만든 각본을 준비하고 배우를 모집해 실제 살인을 연출합니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 지사가 있고요.

이야기는 영문도 모른 채 이러한 추리 게임에 참여한 뒤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토와, 회사측 운영 담당으로 도서 추리소설처럼 모든 범행을 지휘하며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하는 고엔마의 시선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사토는 평범한 프리터로, 3일에 100만엔이라는 고액 아르바이트로 고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설정된 조연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사람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부터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다행히 '추리 매니아'인 덕분에 여러 위기를 추리를 통해 해결하면서요. 여기서 생기는 딜레마도 재미있습니다. 직접 사건을 해결하면 고액을 지불한 클라이언트 탐정의 등장이 무의미해지는 탓에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딜레마지요. 때문에 조수 역할에 머무르며 단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마지막 날 밤에는 모두 함께 밤을 보내자는 현실적인 대응도 시도합니다.
반면 고엔마는 이 게임을 기획한 회사 직원이자 운영 총괄로, 작가가 쓴 각본에 따라 전체 사건을 총괄하며 참가자들의 돌발 행동과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해 나갑니다.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며, 기획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변수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요. 그래서 사토가 무대의 흐름을 바꾸려는 조짐을 보일 때마다 이를 조용히 차단하려 합니다.
이러한 두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둘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대립도 선명하게 만드는 전개는 인상적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일종의 암호를 통해 예고되는 살인과 선보이는 트릭들은 만화적이지만 재미있기는 하거든요. 텐가와가 사망한 밀실 트릭은 '인간 의자'를 응용한 방식이며, 시즈쿠 사건에서는 목각상 머리를 활용해 밀실을 구성하는데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사체의 목을 잘라낸' 분위기와는 잘 어울립니다. 여러 고전 추리를 패러디하면서 어떻게든 범행을 대본에 어울리게끔 저지르는 악전고투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사토가 기암관에서 벌어진 사건의 구조적 문제를 간파하고, 회사 관계자들 앞에서 그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결말도 볼거리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납득할 만한 주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작품 안에서 가장 논리적인 추리가 펼쳐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획된 시나리오가 실제 사건의 변수에 따라 계속 수정되며 혼선이 생기는 부분은 블랙 코미디같습니다. 원래 탐정 역할이었던 텐가와가 또 다른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살해당하고, 범인 역할로 설정된 시라이가 예기치 않게 죽자 급하게 고사카를 새로운 범인으로 설정하는 식인데, 특히 고사카가 법의학자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갑작스레 등장하는 장면은 제법 웃깁니다.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만화적인 설정에 더해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토가 마지막에 갑자기 천재 추리 작가로 변신하는 결말은 뜬금없고 어색합니다. 살인극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중계되고 있었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요. 이렇게 후반부에 억지스러운 장치들이 겹치는 탓에 몰입도가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시라이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선장이 언급만 되고 등장하지 않는 점 역시 이야기의 완성도를 저해합니다.

사토라는 인물도 영 별로입니다. 그는 이전 일용직 동료인 사토나가의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고, 히로인 시즈쿠에 대해서도 동경의 감정을 품는걸로 표시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을 알고난 이후에 특별한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복수심이나 애도는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오히려 회사의 전속 작가가 되기 위한 포부를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보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했어요. 사토보다는 차라리 고엔마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교차 시점 구성과 일부 트릭은 인상적이지만, 인물의 설득력 부족과 과도한 작위적 설정은 큰 감점 요소입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07/05/27

킬러, 형사, 탐정클럽 - 외르크 폰 우트만 / 김수은 : 별점 2점

킬러, 형사, 탐정클럽
외르크 폰 우트만 지음, 김수은 옮김/열대림

제목과 내용은 크게 연관은 없습니다. 킬러와 형사, 탐정클럽이 주로 등장하는 책은 아니거든요.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이 "다음날 아침 현장은 눈으로 덮였다 | 킬러와 형사" 이고 2장이 "셜록 홈즈에서 원초적 본능까지 | 픽션의 세계", 그리고 마지막이 "다행히 그녀의 머리는 일격에 떨어졌다 | 죄와 속죄" 편입니다. 

각 장 별로 여러가지 주제를 서술하는데 대체적으로는 살인과 수사, 재판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부터 O.J.심슨 사건에 이르기까지 살인사건을 둘러싼 오랜 과정을 서술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건 뿐 만 아니라 문학작품, 범죄 영화와 드라마 등 픽션의 세계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살인 사건을 비롯해 인류 최초의 증거 확보 수단인 고문, 경찰과 법의학자의 탄생과 발전, 여성 범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폭력범죄의 경우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것은 독살이라는 등 살인에 대한 다양한 탐색이 자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각 장마다의 구성이 애매하고 논지가 일정하지 않아서 보는데 좀 힘들었습니다. 1장은 살인 사건의 역사와 고문, 재판 등의 역사, 여러가지 사건들의 수사 과정 등 흥미진진한 요소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2장은 제목과는 다르게 현실과 픽션이 뒤섞여서 짜증이 났습니다. 차라리 사건들을 하나로 묶고 픽션을 따로 묶어서 편집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텐데, 픽션과 실제 사건의 비중이 반반에다가 사건과 연관없는 픽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왜 장을 나누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3장 역시 주제가 흐릿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또한 다른 책에서도 수도 없이 언급된 살인마 잭이나 리지 보든 사건 등에 대한 서술은 지루했습니다.

물론 아주 건질게 없는건 아닙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나 역사에 대한 부분은 꽤 재미있었고 추리 매니아로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아서 그런대로 수확은 있었어요. 예를 들자면 히치콕 영화 "로프"와 "프렌지"의 토대가 된 사건이나 걸작 도서 추리소설 "살의"의 오리지널 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대충대충의 정보만 알고 있었던 O.J 심슨 사건도 흥미진진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보와 자료 측면에서 추리나 살인사건 등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한번쯤 눈여겨 볼만하겠지만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콜린 월슨의 "잔혹" 에 비하면 양도 적고 디테일도 떨어지며 소설이나 영화같은 픽션에 대한 이야기는 비약이 심해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2017/02/19

풍미 갤러리 - 문국진, 이주헌 : 별점 2점

풍미 갤러리 - 4점
문국진.이주헌 지음/이야기가있는집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처럼 그림에 그려진 음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림과 그려진 시대, 화가 등도 같이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집어든 책입니다.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소개하면서 당시 유럽에서 일반적인 젖소는 어떤 품종이었고, 그 젖소에서 따른 우유의 맛과 특징은 어떠했으며, 우유를 왜 따랐으며 어떻게 해서 먹었는지 등을 정리한 후 대표적인 요리와 먹은 사람, 관련된 문화나 역사, 혹은 풍습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음식과 식문화는 중요하게 소개되지 않는 탓입니다. 음식은 음식물을 그린 정물화, 푸줏간이나 고기가 그려진 그림, 수확에 대한 그림, 부엌이 등장하는 그림 커피에 대한 그림, 빵이 그려진 그림 등으로 나누기 위한 카테고리 분류 기준에 불과해요.
물론 그림에 대한 미학적, 예술적인 분석 측면에서는 괜찮긴 합니다. 신선하게 느껴진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러나 미술평론가 이주헌씨 분량에 한합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법의학자 문국진씨 부분은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본인 주장이 많았던 탓입니다. 과일을 먹는 소년들을 그린 에스테반 무리요의 "과일 먹는 소년들"을 '식물의 카니발리즘으로 탄생되는 카니발 현장'이라고 주장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소박한 그림이 카니발리즘과 상관있다는 주장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어서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를 소개하며 식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전개로 이어지니 실로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몇몇 볼만한 부분은 있지만 제목과 제 기대에 어울리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이럴 바에야 문국진씨의 전문 분야를 살려 죽음에 대한 그림을 분석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눈 주변의 부종, 눈의 충혈, 술의 부작용으로 변형된 얼굴, 굳어진 표정'을 근거로 압생트를 과음한 것 같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훨씬 좋았거든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역시 소크라테스가 먹은 식사와 독에 관련해 상세하게 정리해서 전달해 주는 것이 괜찮았고요. 당시에는 독당근을 사용하여 사형을 집행했다, 독당근의 독성분은 코니인이다, 여름날 가뭄이 져 뜨거울 때에는 구름이 낀 날 보다 독성이 2배로 높아진다던가 하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합니다.

2020/05/30

콜드 문 - 제프리 디버 / 유소영 : 별점 2.5점

콜드 문 - 6점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뉴욕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에 시계, 기묘한 시와 함께 자신을 '시계공'이라고 서명한 범인을 찾기 위해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가 나섰다. 한편 색스는 이 사건 외에도 자살로 위장한 사업가 살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경찰 118번 지구대가 범행에 연루되어 있다는게 드러났으나, 당장은 내사과 투입이 어려워 부시장 월러스와 경정 매릴린 플레허티의 합의로 색스 혼자 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이었다.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과 그의 수족인 여성 경찰 아멜리아 색스 컴비의 활약이 그려지는 제프리 디버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30주년 기념 킹 오브 킹 순위'에서 해외편 6위에 당당하게 위치해 있는 탓에, 평소 궁금하게 여기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흡입력, 재미입니다. 거의 550여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인데 쉽게 읽힙니다. 시계공 던컨의 범죄 행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유행했던 "싸이코 연쇄 살인마와 천재 경찰의 대결"을 비튼 아이디어도 좋아요. 반전도 괜찮으며, 철저한 증거 위주의 수사로 수집한 증거를 통해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던져주고 그것들이 추리로 이어지는 과정도 마음에 듭니다.
새 캐릭터인 동작학 전문가 캐스린 댄스의 심문 과정에 대한 묘사도 그럴듯합니다. 거의 인간 거짓말 탐지기 수준으로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럴듯하게 묘사되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다른 링컨 라임 주변인물 묘사도 시트콤스러운게 유쾌했고요. 아멜리아 색스가 아버지의 추문, 경찰에 대한 신뢰 추락이라는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한다는 결말도 전형적이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좋은 사람은 잘 되고 나쁜 사람은 파멸하는 이야기가 감정이입이 잘 되더라고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걸 알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에서 지난 30년간 작품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으로 꼽을만하냐면, 그렇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의 여지가 많지 않은 탓입니다. 다음 단계로의 진행은 모두 주요 관계자의 증언에 따를 뿐입니다. 빈센트 체포 후 빈센트의 증언으로 다음 피해자 대상이 좁혀지고, 이는 베이커의 작전이었지만 베이커 체포 후 던컨 본인도 체포되어 연쇄 살인극이 아니라는게 그의 입으로 밝혀지고, 던컨이 풀려난 뒤 그의 다음 목표가 델파이 메커니즘이라는 것도 빈센트와 이전 시계점 증언으로 밝혀지는 식이거든요. 이래서야 링컨 라임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솔직히 링컨 라임이 없어도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또 지나친 반전과 어처구니없는 진상도 문제입니다. 초, 중반까지는 연쇄 살인극을 꾸미는 시계공 던컨과 조수격인 성범죄자 빈센트가 몇 명의 여성 희생자를 집요하게 노리는 묘사가 이어지죠. 그러나 빈센트는 그냥 미끼였고, 던컨의 진짜 목표는 118번 수사대 비리와 연류된 비리 경찰 베이커의 의뢰로 색스를 연쇄 살인범의 범행으로 위장해서 죽인다는 반전, 베이커 뒤에 흑막으로 부시장 월러스가 있었다는 반전, 시계공 던컨의 진짜 목적은 세슘 시계를 조작해서 이전부터 탐낸걸로 묘사된 '델파이 메커니즘'을 훔치려는 것, 인줄 알았지만 진짜 중의 진짜는 뉴욕 도시 개발 공사에서 뉴욕시와 국방부 등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사람을 다량으로 살상하는 테러였다는 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렇게 반전이 너무 많다보니 가면 갈 수록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90년대 후반부터 유행했던 '반전물' 들을 보고, "내가 진짜 반전이 뭔지 보여주겠다!"라는 결심을 하고 쓴 느낌인데, 지나쳤어요. 과유불급이랄까요....

게다가 '시계공의 목적은 무차별 대량 살상 테러였다!' 라는 진상도 너무 별로입니다. 작 중에서는 사람은 죽이지 않고, 이전에 사람을 죽였다고 언급헸던 범행의 대상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 안티 히어로 모습을 보여주던 천재 범죄자 시계공이 왜 무작위로 사람을 살상하는 테러를 선뜻 받아들이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계공의 캐릭터도 이상해져 버렸고요.
마지막 범행, 즉 테러를 위해 연쇄 살인 시도를 가장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입니다. 자물쇠를 따고 숨어드는게 쉽다면, 루시 릭터가 친구를 만나러 나갔을 때 집에 침입해서 필요한 서류를 찍어가지고 오면 되는거잖아요? 꽃가게 조앤의 화분 역시 마찬가지고요. 구태여 엄청난 숫자의 뉴욕 경찰이 동원될만한 살인극을 가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리 경찰 베이커의 의뢰를 받아들인 목적도 불분명합니다. 시계공의 범행이 가짜이고 해프닝에 불과했다는걸 구태여 드러낼 이유는 없어요. 테러를 위해서라면 그냥 연쇄살인극을 위장하는게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요? 구태여 아는 사람을 늘릴 이유도 없고, 베이커에게 복수하겠다는 가짜 동기 등 시계공의 모든게 가짜라는게 드러나는 것도 시간 문제인데 말이지요. 베이커의 의뢰를 받아들여 아멜리아 색스를 연쇄 살인범에 의한 것으로 가장하여 살해하려는 의도였다고 중간에 설명되지만, 이는 시계공이 베이커의 범행은 실패하게끔 총을 조작했다는 이야기 전개를 보면 역시나 합리적이지 않아요. 차라리 링컨 라임과의 대결을 위해 도전한다는걸 보다 명확하게 표현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만, 비리 경찰 베이커와 아멜리아 색스의 아버지 이야기를 빼고 350~400 페이지 정도로 이야기를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2006/08/10

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스캔들 - 전봉관 : 별점 4점

경성기담 - 8점
전봉관 지음/살림

 조선말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에 있었던 잘 알려지지 않았던 괴사건들을 모아서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역사와 추리를 모두 좋아하는 저로서는 흥미가 안갈래야 안갈 수 없는 책이었는데 마침 형이 구입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쌩유!)

책은 크게 2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1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미스터리 살인사건"이고 두번째가 "2부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입니다. 두가지 주제 모두 흥미롭고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어 지지만 역시 저같은 미스터리 팬에게는 첫번째 주제가 더 와 닿더군요.

1부에는 총 4개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사건인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대낮 경성거리에서 발견된 아이 머리를 둘러싼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이고 두번째 사건"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은 안동에서 피살되어 발견된 일본인 순사 가와카미와 용의자로 붙잡힌 조선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 세번째 사건은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으로 부산의 조선인 하녀 마리아가 주인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다루고 있고 네번째 사건은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으로 지금도 유명한 사교집단 백백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단순히 흥미거리위주로 수록된 사건들이라기 보다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역학관계를 논할만한 주제가 많아 의미 있는 선정이었다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사건"의 용의자인 조선 청년들의 억울함과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의 주요 용의자인 다카하시 부인에 대한 수사와 처우, 처벌이 너무나 달라서 한번쯤 비교해 보며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거든요. 특히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이끌어낸 순사 살해사건의 경우는 그 수사의 방법이 너무 원시적이고 황당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쩐지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용의자 동생의 증언인 "형이 목을 졸라 죽이고 어디론가 가는 것을 봤지만 그 다음은 졸려서 잤기때문에 모른다"라는 증언은 폭소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 남아들은 형이 살인해도 졸리면 잔다는 이야긴지 원...

또한"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은 "문둥이가 아기 간을 먹으면 낫는다"라는 토속적인 주술적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어서 역시 인상적이었고 법의학자로 경성제대 교수까지 등장하는 등 당시 수사 방식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상당합니다. 사건의 엽기성과 내용에서 최근 유명한 "프랑스 영아 유기 사건"을 떠올리게도 하더군요. (이 주술적 믿음을 소재로 퇴마록의 이우혁씨가 쓴 괜찮은 단편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1부의 마지막 사건인 백백교 사건은 다른 매체에서 많이 접해서 크게 새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역시 "역사적" 측면에서 선정한 것이겠죠? 이만한 대형 사건은 정말 드물테니 말이죠. 뭐 뻔한 내용이지만 그런대로 도판과 자세한 재판과정의 수록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2부는 "스캔들"이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내용적으로나 사건 측면으로나 1부에 비하면 아무래도 임팩트가 떨어지긴 하지만 역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전부 6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인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의 여제자 정조유린 사건"은 3.1 운동때 민족대표 중 한명이었던 교육자 박희도의 여제자 성추행(?)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두번째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 수난기"는 순종의 장인으로 매국노였던 윤택영 후작의 어마어마한 빚과 그 최후를 상세하게 그리고 있고요. 세번째 "이인용 남작 집안 부부싸움"은 역시나 매국노였던 이인용 남작 부부의 재산을 둘러싼 의미없는, 허무한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이화여전 안기영 교수의 애정도피행각"으로 조선 제일의 테너로 불렸다는 음악가 안기영 교수가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한 이야기, 다섯번째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 사건"으로 당시 국내 제일의 신여성이었던 박인덕의 이혼에 관련된 이야기, 마지막 여섯번째는"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로 최영숙이라는 스웨덴 유학생의 비참한 최후를 서술한 내용입니다.

제가 제일 흥미롭게 읽은 것은 매국노들 대부분이 가산을 탕진하여 외려 총독부에 구걸(?)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룬 두편의 이야기인 "채무왕 윤택영 후작" 이야기와 "이인용 남작 부부싸움" 이야기였습니다. 친일파들이 다 떵떵거리면서 한자리 차지하고 살아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부분 당대에 가산을 탕진했다는 통쾌한(!) 이야기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들끼리 싸우는 이야기도 신났고요. 특히 저자의 덧붙인 코멘트, 요사이 매국노들의 후손이 땅 반환 소송을 한다는데 과연 그들에게 남은 재산이 있었는지 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가장 와 닿았습니다.

그 외의 남녀간의 문제를 다룬 이야기는 요사이 연예면에 나올만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져 역시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여성과 전형적 조선 남자와의 결혼이 "돈"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사건"은 읽다보니 요사이 모 아나운서 결혼 이야기와 맞물리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 재미있더군요.

마지막 이야기인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는 당시 조선에서의 여자의 존재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으로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보아도 5개국어에 능통한 수재 여성이 국내에서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콩나물 장사나 하다가 혼혈아를 낙태한 것 때문에 외려 탕녀 취급이나 받다니....저자가 하인스워드의 예를 들어 설명한 것과 같이 지금도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안타깝네요.

기획만으로도 무척 특이한 역사-인문 서적이지만 읽는 재미도 충분히 전해주는 책이었습니다. 현재 30대 중반의 나이로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의 글 답게 고루한 역사관을 논하는 것이 아닌, 요사이의 시사적인 문제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재미난 내용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거든요. 저 스스로도 반성하고 한번 생각해 볼만한 주제도 많았고요.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의 또 다른 측면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울러 구상중인 일제 강점기 배경의 추리 소설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기쁨 두배였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단 가격이 12,000원이라는 것은 확실히 문제네요. 책의 내용은 재미있고 가치도 있지만 사진도 거의 없고 그다지 많은 분량의 이야기도 아닌데 솔직히 너무 비쌉니다! 한 8000원 정도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그날 까지 팍팍 밀어줄만 한 책인데 가격이 좀 많이 걸리네요.

2010/09/26

도박 눈 - 미야베 미유키 외 / 정태원 : 별점 3점

도박 눈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카파 노블스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9명의 작가들이 '50'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써 내려간 단편들을 모아 놓은 단편 앤솔로지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장식한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이렇게 여러 작가들이 하나의 키워드로 모인 앤솔로지는 이전에 "Y의 비극" 등을 통해 접해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래서 9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운, 드림팀이라 부를 만한 저명한 작가들이거나, 어떻게 보면 출판사 기획 도서에 가깝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정통 추리 단편이 아니라 작가들이 쓰고 싶은 장르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리뿐만 아니라 괴담이나 일반적인 드라마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거든요.

그러나 '50'이라는 키워드를 작품에 잘 녹여낸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더군요. 아야쓰지 유키토와 미치오 슈스케 작품만이 '50'을 이야기의 핵심 요소로 사용했을 뿐, 다른 작품들은 그냥 있으나 없으나 한 설정에 불과하니까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왕 쓴다면 좀 더 작품에 잘 녹아들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50번째 임무를 수행하면 자유의 몸이 되는 조직의 킬러' 같은 설정이 떠오르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반올림해서 3점. 베스트 작품으로는 재미 측면에서는 "도박눈", 추리 요소로는 "여름의 빛" 두 작품을 꼽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절단" - 아야쓰지 유키토

화자가 작가 아야쓰지 유키토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생각보다 심리 스릴러와 크리처물에 가까운 작품이라 무척 의외였습니다. '칼질 50번으로 *****의 사체를 50조각 냈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범인은 이미 잡힌 상황이며 단지 '왜 51조각이 아니고 50조각인지?'에 대한 의문만을 탐구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명성에 걸맞은 작품이었습니다. *****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이게 현실인지 정상적인 세계인지도 알 수 없는 비현실성 속에서도 느껴지는 서늘함이 일품이었습니다. '50'이라는 키워드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눈과 금혼식" -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가 아리스' 시리즈로 임상 법의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등장하는 단편이며, '50'이라는 키워드는 노부부의 행복한 금혼식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본격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트릭이 너무나 변변찮고, 추리라고 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다도코로 유지의 당일 행적만 경찰이 조사했더라도 금방 해결되었을 사건이라 왜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는지조차 알 수 없거든요. '50'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춘 설정에 불과합니다. 금혼식이 아니라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어도 무방하니까요.

한마디로 이 앤솔로지의 워스트. 별점은 1.5점입니다.

"50층에서 기다려라" - 오사와 아리마사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일종의 도시괴담을 이용한 범죄 사기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용은 약간 뻔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풀어나간 것 같습니다.

다만 제목 그대로 '50층'을 뜻하는 키워드 '50'이 다소 억지로 쓰인 감이 있습니다. 호텔 50층을 임대하는 비용으로 충분히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설정을 사용해야 했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영국 세필드" - 시마다 소지

작가의 명탐정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추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다룬 진지한 인간 승리 드라마인데, 이외의 다른 작품들이 장르 문학에 속하는 것과 달라서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재도 흔하고요.

하지만 '역도'라는 스포츠를 활용한 점이 독특했고, 나름 재미도 있었습니다. 키워드 '50'도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적절히 활용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름의 빛" - 미치오 슈스케

요즘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자주 읽게 되네요. 초등학생이 마을 들개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보다 밝은 분위기에 깔끔한 전개가 돋보이며, 초등학생은 알지 못하는 카메라 용어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이 재미를 더했습니다. 왜 미치오 슈스케가 요즘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단편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도박눈"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 정통 괴담에 가깝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간장 도매상 오미야에 찾아온 괴이한 요괴 '도박눈'을 퇴치하는 이야기인데, 에도 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구성력이 뛰어난 덕분입니다. 특히 요괴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끌고 가는 초반부 이후, 마을 신사의 고마이누를 통해 퇴치 방법을 알게 되고 마지막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했어요. 이런 유형의 이야기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 이 앤솔로지의 베스트입니다.

"미래의 꽃" - 요코야마 히데오

"종신검시관" 시리즈 단편으로, 병원에 입원한 구라이시 검시관이 협조 요청차 찾아온 경찰이 제공한 자료와 사진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50'이라는 키워드의 사용이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6/26

미스테리아 1호 - 엘릭시르 편집부 : 별점 1.5점

미스테리아 1호 - 4점 엘릭시르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장르문학 전문 레이블 엘릭시르에서 새롭게 미스테리 전문 잡지를 출간하기 시작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솔직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선 산만한 편집과 어수선한 디자인이 가장 거슬립니다. 엘릭시르 단행본 수준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편집 디자이너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이었어요. 내지에 있는, 일반 기사를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만든 이유는 누가 설명 좀 해 주면 좋겠네요.

수록 기사도 대체로 실망스럽습니다. 일단 앞 부분의 단순 리뷰들부터 문제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저런 책 소개와 하등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그나마도 최신작에 집중되어 있고요. 리뷰를 쓴 사람들도 애매합니다. 맥심 편집장이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리뷰를 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딱히 새로운 시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화보라도 같이 실어주었더라면 몰랐겠지만요. 다른 기사들도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획 의도부터가 잘못된 듯 합니다. 어차피 이 잡지를 구입한 사람은 정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일겁니다. 제목부터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보다 매니악한 주제로 기사를 썼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리뷰라면 "온라인 서점 장르문학 MD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 All-time best 10" 같은 주제로 책들을 선정한 뒤 소개하는 형식으로요. 이런게 한국 미스터리를 보다 성장시키고 싶다는 출간 의지와도 맞물리는 것이겠죠. 이런 점에서는 "판타스틱"의 김내성 특집호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주제도 매니악하고, 의미도 있으면서도 기사도 아주 좋았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SCREENSELLER"라는 주제로 영화화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작과 작품의 퀄리티에 상관없이 최신작 기준으로 대충 선정한 느낌인데, 데니스 루헤인 인터뷰도 실려있는만큼 "살인자들의 섬"을 가지고 "원작 VS 영화" 형식으로 심도깊게 파고드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물론 괜찮은 기사도 있기는 합니다. 기존 문학작품을 분석하여 숨겨져있는 추리소설 정서를 파헤쳐주는 "MISSING LINK 집 안의 괴물들" 이라던가 "MAZE 『밀실 입문』 (1), 밀실은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법의학자 유성호의 "NONFICTION 검은 집, 엄마의 비밀"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컨텐츠들이기도 하고요. 수록된 단편들도 읽을만 합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결론적으로는 기대이하였기에 별점은 1.5점. 2점을 줄 수도 있지만 14,000원에 육박하는 가격과 허술한 디자인과 편집으로 더 감점합니다. "판타스틱"은 5년전 출간물이기는 하지만 보다 두꺼웠는데도 불구하고 만원 이하였었죠. 2호째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절대로 구입해 볼 계획이 없습니다. 추리 매니아가 호구는 아니니까요.

수록 단편만 따로 짧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배신하는 별"

비밀리에 보호되던 인물이 암살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일기를 보고 창에서 보이는 "오리온 별자리"를 재구성한다는 내용.

상황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 완벽한 단편입니다. 배명훈 작가 소설은 처음인데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주 약간의 단점이라면, 비약이 심하다는 것과 시리즈물이라 모든 설정을 이 단편만 가지고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는 정도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누구의 돌"

사랑하던 동생이 실종된 사건을 추적해서 범인들을 알아내어 복수하고 남겨진 원수들은 사는게 지옥이 된다는 내용.

"나는 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설정인데 흡입력있는 전개와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범인들을 알아내는 과정이 작위적이라는 단점 - 몇년전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걸 찾아내고, 마침 주인이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고... - 이 있어서 감점하지만 재미만큼은 최고수준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구석의 노인"

정당 방위일 수 있는 살인사건의 재판을 참관하는 할머니가 제출된 몇몇 증거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

정당 방위와 과잉 방어에 대한 법리학적 설명 등 작가의 전문성을 발휘한 몇몇 디테일은 나쁘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국내 추리소설 작가 중 정교한 트릭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만한 도진기 작가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이유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탓이 큽니다. CCTV로 잡은 화면에서 손의 반지가 보인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설령 보였다 하더라도 드라마에 푹 빠진듯한 할머니의 추론일 뿐, 별다른 설득력도 없고요. 범인이 정말 스토커였을 수도 있는거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신드롬"

외따로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전염병이 닥치고, 그 와중에 아내가 사라진 상황을 그린 작품.

집단 광증에 대한 분위기, 세부 디테일 - 특히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 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앞집 남자와 화자인 "나"의 시점에서 각각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 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결말도 당쵀 이해가 안되고요. 열린 결말도 정도껏 해야 했을텐데... 별점은 2점입니다.

"말을 탄 사나이 켈러"

매튜 스커더 시리즈 작가 로렌스 블록의 단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싸구려 소설의 카우보이를 동일시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시작하는, 인물들을 드러내는 묘사는 역시나 대단하다 싶었어요. 매튜 스커더가 직업만 킬러로 바뀐 듯 싶긴 한데, 주변 인물들을 "배려"하고 소모적인 살인을 피하고자 흑막을 죽이기 위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왠지 바보같지만 멋졌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갈 뿐이라는 결말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거장이 심심풀이로 여유있게 써내려간 소품 느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2/07/17

지상아 - 문국진 : 별점 3점

지상아 - 6점
문국진/청림출판

국내 법의학자 1호라 할 수 있는 문국진 교수의 에세이집. 모 사보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문국진 교수가 맡았었거나 알게 된 기이한 사건들 이야기가 많아서 논픽션 성격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류의 책으로는 국내에서는 독보적인 높은 판매고와 인지도를 지닌 책이 아닐까 싶은데, 워낙 오래전에 발표되었기에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았을지는 모르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외국의 사건집 못지않네요.

많은 사건이 실려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은 중년 여성의 사체가 발견된 사건입니다. 처음에는 등에 생긴 큰 자창 탓에 살인사건으로 의심하나, 자창을 분석한 뒤 사후에 배의 스크류에 의해 생긴 것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후 사체의 짧은 음모 길이를 통해 자궁 수술을 받은 시기를 추리해내어 지병 때문에 비관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립니다. 이게 바로 CSI! 재미와 과학적 분석이 결합된 놀라운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얼마 전 읽었던 인터뷰집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뻔했다"에도 소개된 일본의 강간 살해 위장 사건, 청산염을 복용한 사체의 시반은 선홍색인데 냉동보관된 사체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는 것, 자살을 하기 위한 목 조르기와 타살의 차이점 등 추리소설에 사용해 봄 직한 소재가 다양하게 실려 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다만, 생활 속 단상이나 신변잡기를 기록한 짧은 에세이 부분은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국내 법의학 여명기를 증명하는 좋은 책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저는 과거 절판본으로 읽었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최근 복간되었다니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복간본에는 "새튼이"라는 책이 합본으로 되어 있는데,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새튼이"는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거든요.


지상아와 새튼이 - 6점
문국진 지음/알마

2012/04/27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 별점 3점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6점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알마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이신 문국진 교수 인터뷰집. 사실 인터뷰로만 이루어진 책은 처음 접해보네요. 그래서인지 큰 기대를 가지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왠걸! 서두에 인터뷰어 강창래 씨가 자신과 문국진 교수와의 인연을 말하며 언급하는 81년의 윤노파 살인사건부터 예상외의 재미를 가져다줘서 각 잡고 한 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문국진 교수의 위치, 그리고 경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의 하나로 언급된 것인데 사건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웠거든요. 이 부분에 등장하는 박원순 변호사의 "야만시대의 기록", 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덧붙이자면 조갑제가 '변신'하기 이전에 쓴 책들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통해 문국진 박사가 어떻게, 왜 법의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해서 박사가 관련되었던 다양한 사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하나둘씩 펼쳐지는 본편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만 몇 가지 뽑아보자면,

첫 번째는 "새튼이 무당" 사건. 새튼이라는 귀신과 대화한다고 주장하는 무당이 수사 대상이 되는데, "쏵~ 쏵~" 하는 이상한 소리가 정말로 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조사해도 그런 소리가 날 만한 장치가 없었는데, 우연히 보게 된 무당의 치아 구조가 특이했다고 하네요. 결국 알고 보니 특이한 앞니 틈새를 이용해서 소리를 낸 것이었다는데 희한하네요.

두 번째는 중년 부부의 성행위 도중 아내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 박사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새튼이"에 실려 있는 이야기로 영화 "용서는 없다"에도 언급되었다고 하네요. 이유는 남편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는데, 아내가 페니실린 과민성 체질이라 페니실린 쇼크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도 놀랍지만, 이 사건을 클림트의 그림과 함께 엮어 설명하는 것도 아주 좋았어요.

세 번째는 일본 동북지방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Y양이 성폭행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진상은 그녀와 연적이었던 M양이 교살하고 다른 남자의 정액을 바르고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대단한 사건은 아니나 "완전범죄는 없다"라는 명제에 충실한 이야기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여대생이 자기 하숙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 그녀의 연인인 의대생 출신 편집자 P군이 유력한 용의자. 그러나 사인이 될 만한 약물의 흔적도 없었고 단지 상·하지에 가벼운 압박 흔이 있는 정도. 결국 문초 끝에 밝혀진 진상은 수면제로 재운 뒤 상지·하지를 고무밴드로 묶었다가 푼 것이라고 합니다. 혈액순환 장애가 오래 지속되면 히스타민양 물질이 생겨 쇼크가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죠.
'문초'라고 점잖게 묘사된 부분은 고문임을 짐작케 해서 수사 과정 자체는 별로지만, 의대생 출신의 의학을 이용한 난생 처음 보는 기발한 트릭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 이야기 뒤로 이어지는, 문국진 교수가 은퇴 후 전념한 북 오톱시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유명인의 사인을 이후 남겨진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분석한 뒤 정확하게 규명한다는 것인데,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사인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집니다. 비슷한 유형인 동서고금의 명화를 통하여 그림 주인공의 병을 설명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라 예수님의 내장위역증에 대한 이야기나 밀레의 "괭이를 든 사람"은 전형적인 디스크 환자의 모양새라는 것 등의 새롭고 신기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여 정신없이 다 읽었습니다. 법의학 사건집이 아닌 인터뷰이기 때문에 각 사건들이 단지 한 예로만 이야기될 뿐이라 전체적인 과정과 결말이 없는건 아쉬웠지만, 한 분야의 시조이자 거목인 분의 생각을 온전히 접할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박사의 다양한 저작을 빨리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일단 "새튼이"와 "지상아"부터 찾아봐야겠네요.

2016/10/10

미스테리아 8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 / 엘릭시르 : 별점 3점

미스테리아 8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창간호를 읽고 실망이 커서 더 구입하지 않을리라 결심했었는데, 우연찮게 최신호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호는 아주 좋더군요! 이전 실망감을 모두 날려버리고 앞으로 계속 구입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았어요.

우선 1호에서 지적했던 편집, 디자인이 일취월장 했습니다. 구성 면에서 나무랄 데 없습니다. 매 호 이어지는 장편 연재물이 없고, 연재물들 모두 한 회 분량으로 마무리되는 점도 좋습니다. 잡지를 계속 사 보지 않고 한 권만 구입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니까요. 수록 기사들 역시 모두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기본은 해 줍니다.

도입부를 장식하는건 요네자와 호노부 심층 분석입니다. 작가의 작품을 시기별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집중 탐구에서 시작해 서면 인터뷰, "빙과"로 유명한 고전부 시리즈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걸작 9편에 대한 짤막하게 소개되는 마무리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자세하고 깊이 있는 내용도 많은 편이에요.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아홉 가지 레퍼런스" 중 7편을 이미 읽었는데, 남은 2편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기타무라 가오루의 "시간과 사람 3부작" "스킵", "턴", "리셋"과 히구치 유스케의 "나와 우리의 여름"입니다. 정확하게는 4편이군요.).

올림픽 시즌을 겨냥한 특집 기사도 볼거리입니다. 올림픽을 물들였던 도핑 스캔들에 대한 짤막한 논픽션, 그리고 스포츠 관련 추리 작품 소개가 이어지는데, 도핑 스캔들 기사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의 러시아 도핑 스캔들에 얽힌 뒷이야기라던가, 동독에서 약물을 복용했던 전 여성 투포환 챔피언이 성전환 수술을 받아 남성이 되었다는 등, 그간 몰랐던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포츠 관련 추리 작품을 다룬 글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선정된 작품들 대부분이 프로야구 관련 소설("마구", "최후의 일구" 등)이라 관련성, 의외성 모두 떨어지는 탓이에요.

이어지는 신간 소개도 좋습니다. 1호와는 다르게 잘 쓰여진 글들로, 한 편의 잘 된 리뷰로 보아도 손색없는 수준입니다. 도진기의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루스 웨어의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는 소개글만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뒤이은 논픽션 기사 3편도 기대 이상입니다. 법의학자 유성호가 쓴 "적과의 동침",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의 원형인 '엘리자베스 캐닝' 사건을 다룬 "나를 찾아줘", 소설가 곽재식의 우리나라 옛 괴사건을 다룬 "왜 머리카락을 잘랐을까?"인데, 특히 마지막 기사가 압권입니다. 1966년 발생한 6세 여아 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범행 동기도 짐작이 안 되어서 경찰의 다각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질 뻔합니다. 그런데 시체의 머리카락이 잘려 있던게 머리카락을 잘라 판 가출 소녀와 이어지게 되고, 그녀가 머리카락을 팔기 위해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것이 밝혀집니다. 아픈 시대의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에는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고전부 시리즈" 단편이 포함되어 서두의 요네자와 호노부 특집과 이어지는 수미쌍관식 구성에 눈길이 가네요.

전체 분량 중 2/3 이상이 평균 이상의 가치와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기사들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권도 구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록 단편들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울에는 비치지 않는다"

'고전부 시리즈' 단편으로 특이하게도 이바라 마야카가 주역입니다. 중학교 졸업 작품 제작 당시 벌어진 사건 - 단체로 거울용 테두리를 만들기로 했는데 오레키 호타로가 자신의 팀 파트를 엉망으로 제출하여 작품을 망쳤던 사건 - 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이바라 미야카가 호타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지요. 팬이라면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큽니다.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제공을 하지 않는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거울 테두리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독자가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또 덩굴이 S자라는 것을 수상히 여긴 오레키의 행동도 석연치 않습니다. A라면 모를까, 덩굴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면 S자가 될 수도 있잖아요? S를 뺌으로서 나름 정의구현을 한다는(아사미를 아미로 만드는 것) 결말로 가져가기 위함이었겠지만 억측이 지나쳐 보였습니다.

그리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가 모토인 호타로가 왜 직접 뛰어들어 욕까지 사서 먹었는지 역시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팬이라면 읽어봐야 하겠지만 추리적으로는 약한 편이라 감점합니다.

"사라진 앨리스"

갓 결혼한 남편이 호텔방을 구하지 못해 아내를 홀로 호텔에 남겨두는데, 다음날 아침 아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아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숙박계는 물론 호텔 매니저, 주유소 직원에 결혼식을 주관한 판사마저 모두 사실을 부정하고요.
그러나 손수건에 새겨진 이니셜 하나만을 믿고 형사 에인슬리가 캐넌을 도와 사건을 파헤치게 됩니다. 에인슬리의 논리는 확고합니다. "이 혼란의 핵심은 호텔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어. 실종의 과정보다는 이유를 밝혀내는 게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 모든 일을 거슬러 점점 앞선 시기로 돌아가는 거야." 
그래서 앨리스를 처음 만난 저택으로 돌아간 뒤,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내용으로 두말할 나위 없는 걸작입니다. 아내가 사라진 말도 안 되는 상황 묘사가 발군인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위기에 처한 여성을 구하는 모험극이기도 한데, 특히나 서스펜스 측면에서 ‘서스펜스의 제왕’ 코넬 울리치의 작품다운 남다른 몰입감을 자랑합니다. 상황 설정부터가 기가 막히잖아요?

아쉬운 점이라면 서스펜스 스릴러(아내가 사라졌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내의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에 비해, 어느 정도 진상이 드러난 이후의 모험극 쪽 재미가 조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단점은 아니지만, 아내의 존재를 돈으로 막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지 조금 의문도 들고요. 존재를 지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니까요.

그래도 작가 명성에 어울리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1908년산 포트와인 독살 사건"

몬터규 에그는 고객인 보로데일 경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이 독살되었다는걸 알았다. 독은 경이 마시던 포트와인에 들어 있었고, 경찰은 몬터규 에그에게 몇 가지 확인을 부탁했다. 에그는 간단한 조사와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낸다...

도러시 세이어스 여사의 초단편으로, 이름만 들어보았던 와인 판매원 탐정 몬터규 에그 시리즈입니다.

일단 몬터규 에그 캐릭터만큼은 좋았습니다. 약간 허세 끼 있는 떠벌이로, 그가 이야기하는 수다들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설정인데 밉지 않게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국적인 느낌도 한가득 전해주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완성도가 무척 낮습니다. 추리 자체가 비약이 심할 뿐 아니라, 범인과 경찰이 누가 멍청한지 경쟁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우선 범인들은 왜 희생양을 내세우지 않았을까요? 보로데일 경이 자살하지 않은 것이 밝혀진다면 범행이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였을 텐데요. 그리고 경찰 역시 멍청함과 무능함으로 이에 견줄 만합니다. 범행 현장에 있던 주요 인물들에 대해 신원조사조차 하지 않고 무슨 수사를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몬터규 에그 캐릭터 외에는 건질 게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은 조금 더 낫기를 바랍니다.

2010/12/06

타살의 흔적 - 강신몽 외 : 별점 2.5점

타살의 흔적 - 6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법의관들.강신몽 지음/시공사

현직 법의학자와 법의관들이 집필한 법의학 논픽션입니다. 우에노 마사히코의 "쥐똥나무", "독살", 그리고 브라이언 이니스의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와 유사하게 다양한 법의학 관련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국내에서 발생했던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정몽헌 회장 자살 사건, 고속도로 음독 변사 사건, 서래마을 프랑스인 부부 영아 살해 사건, 핸드폰 폭발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례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고속도로 음독 변사 사건의 결과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추리 소설에서 활용할 만한 독특한 사건들이 등장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강한 충격을 받아도 외상이 전혀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점, 자살을 위해 목을 맨 사람이 줄이 끊어지면 사망 직전 순간적으로 얼마간 움직일 수 있다는 점, 물과 소금을 다량 섭취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점 등은 충분히 트릭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한 흥미로운 정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다는 것은 좋지만, 문체가 지나치게 딱딱하고 법의학 용어를 여과 없이 사용하여 읽는 재미가 떨어졌습니다. 또한, 도판이 부족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도판이 있더라면 이해가 훨씬 쉬운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말이지요. 책의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한국 실정에 맞춘 법의학 사례집이라는 점에서는 추천할 만합니다. 다만, 법의학이나 범죄 관련 서적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몰라도,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12/20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 - 이창현, 유희 : 별점 2.5점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 - 6점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사계절

1권은 결말 등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없지는 않았기에, 만만치 않은가격에도 불구하고 2권도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1권의 단점은 조금 상쇄한 느낌입니다. "무간도"스러운 '경찰' 설정, 독서 클럽 멤버들이 모두 비밀 요원이라는 억지 설정은 거의 드러내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도서관 사서 "다크 섹시"를 새롭게 등장시켜서 보다 일반적인 독서 중독자, 애호가 시점으로 개그를 끌고가는 덕분입니다.
별로인 책은 주저없이 내려 놓으라던가, 목차에서 관심있는 부분만 읽어라, 책은 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라는 등 독서 중독자들에게 공감가는 이야기도 유감없이 담겨 있습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등장인물들처럼 읽고 있는 도중인 책을 한 번 꼽아보니 "화력" (폴 록하트), "검은 황무지" (S.A. 코스비). "딜리셔스" (롭 던, 모니카 산체스), "패자의 정신사 (야마구치 마사오), "Architecture Inside+Out" (John Zukowsky,Robbie Polley) 등이 있네요.
그 중에서도 가장 와 닿았던건 아래 대사였어요. 저도 추리 소설 애호가라서, 프로파일러나 법의학자의 인터뷰 배경의 책장을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거든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입니다!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어떤 배경 지식을 갖추었는지 정도도 주지않고 다짜고짜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은 억지라는 주장도 가슴에 꽂혔습니다. 저도 가끔 '추리 소설 추천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받지만 난감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책 추천도 마케팅, 상품 기획처럼 명확하게 사용자부터 정의해야 할 일입니다.
그 외에도 로렌스의 신작 "썰물에 죽다"도 1권의 작품보다는 훨씬 좋았고, 2부리그를 지옥이 아니라 연옥, 즉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장소가 아니라 천국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의 장소라고 언급하는 식의 재치있는 대사도 많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1권의 별 의미없던 컬러에서 흑백으로 작화가 변경된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고요.

그러나 좋았던건 중반부까지입니다. 그 뒤로는 '경찰'이 돌아와서 억지 설정 개그를 또 펼치고, 더 억지스러운 예티와 사스콰치의 등장 등 독서와는 무관한 캐릭터 개그가 반복되거든요. 웃기지도 않고, 의외성도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독서 중독자(?)라면 재미있을 요소가 많지만, 개그 만화로는 평이한 수준입니다.

2021/03/27

코핀 댄서 - 제프리 디버 / 유소영 : 별점 3점

코핀 댄서 - 6점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컬렉터' 사건 이후 뉴욕 시경과 FBI의 수사 자문으로 일하는 전신마비 범죄학자 링컨 라임은 시카고 외곽 상공에서 폭발한 민간 제트기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사망자는 거물급 무기상 필립 핸슨의 재판에 증언을 하기로 했던 조종사 에드워드 카니였다. 그러나 라임의 관심을 더더욱 끈 것은 이 사건에 청부살인업자 '코핀 댄서'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코핀 댄서에게 5년 전 부하들을 잃은 적이 있기에 댄서를 잡으려는 라임의 의욕은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이제 남은 핸슨 재판의 증인은 카니의 부인인 퍼시와 동료 헤일. 재판까지 정확히 45시간이 남은 상황, 링컨 라임은 최강의 암살자 코핀 댄서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한편, 자신의 손으로 댄서를 잡아들일 함정을 준비해야 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제프리 디버의 빅 히트한 전신마비 범죄학자 링컨 라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링컨 라임과 살인청부업자 코핀 댄서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데,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흥미를 자아냅니다.

특히 링컨 라임과 동료들 시점과 살인을 실행하는 청부업자 스티븐 콜 시점을 오가는 구성에서 전해지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스티븐 콜의 현재 행동을 통해 그가 앞으로 범행을 어떻게 저지를지?를 궁금하게 만든 뒤, 이를 알아챈 링컨 라임이 간발의 차이로 이를 저지하려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뻔하기는 하지만 몰입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스스로는 전화도 걸 수 없는 링컨 라임이 범행 수법을 알았지만 전화를 거는데 실패해서 타겟 중 한 명이 희생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입니다. 2000년대 이후 작품이었다면 Siri로 쉽게 전화를 걸 수 있었을 텐데("스마트 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처럼요), 당시 음성 인식 기술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기도 했고요.
스티븐 콜이 링컨 라임이 장애인임을 알아챈 뒤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장면도 아주 멋졌습니다. 왜 링컨 라임이 강한지를 잘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범죄학자, 법의학자이자 감식 전문가인 링컨 라임이 주인공다운 디테일도 압권입니다. 애밀리아 색스 등을 활용하여 수집한 미량 증거물들을 통해 스티븐 콜을 추적해 나아가는 묘사가 아주 빼어나요. 대체로 범행 과정을 검증하는 정도에 그치기는 하지만, 지문 인식이 불가능한 지문 조각을 긁어모아 하나의 지문을 만드는 등, 실제 수사에 활용하는 장면들도 제법 많은 편입니다. 스티븐 콜 범행에서도 폭탄의 디테일 등 볼거리가 아주 많고요.

허드슨 에어와 퍼시 플레이 시점으로 보여지는 여러가지 비행 관련 전문 정보들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공항의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폭탄을 비행기 외부에 부착한다는, 공항 구조를 잘 활용한 아이디어처럼요. 공항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도 숨어있는 파일럿을 끌어내기 위해 비행기를 쏜다는 발상 등에서 많은 연구와 조사가 뒷받침된 티가 납니다. 무엇보다도 퍼시 플레이가 고도가 낮아지면 폭발하는 폭탄 때문에 마지막 비행에서 겪는 고군분투는 정말이지 인상적이었어요. 범인이 설정한 고도보다 높은 공항 (덴버)으로 향한다던가, 부족한 연료를 근처 사막이 태양빛을 받고 만들어낸 상승기류로 해결한다는 등의 아이디어들도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이야기를 빛내 줍니다. 이 이야기만 가지고도 한 편의 이야기가 충분히 될 수 있을 정도에요. 그만큼 드라마와 긴장감이 잘 살아있었습니다.

약간은 서술 트릭을 갖추고 있으며, 두 개의 반전이 존재해서 추리적으로 풍성한 느낌을 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야기 구조에서 링컨 라임과 시종일관 대등한 대결을 펼치던 또 다른 주인공 스티븐 콜은 '댄서'가 아니라는게 나중에 밝혀지거든요. 이건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이외에도 악덕 사업가 핸슨이 아니라 허드슨 에어 멤버 론 탤봇이 청부를 의뢰했다는 반전도 놀라왔고요.

그러나 반전에 지나치게 집착한 느낌을 전해주는건 조금 아쉬웠어요. 스티븐 콜이 그냥 댄서였어도 이야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론 탤봇이 사장 퍼시를 비롯한 3명의 소유주를 없애고 회사를 가로채려고 했다는 청부 의뢰 동기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론 탤봇의 횡령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단순 횡령과 살인 청부는 급이 다른 범죄인데 말이지요. 잘나가는 항공사의 경영진 중 한명으로 이익을 나누는 것 대비해서 얼마나 큰 이익을 보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동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3명을 죽이려다가 경찰, 보안관을 포함하여 거의 20여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요. 미량 증거물로 그가 이 모든걸 꾸몄다는게 증명된다는 것도 무리였다 생각되고요. 끝까지 부인해서 법정까지 갔다면, 아마 무죄 판결을 받았을 겁니다.

또 이야기 전개에 억지가 많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댄서'가 색스에게 총상을 입고 체포되는 마지막 장면을 한 번 볼까요? '댄서'는 원거리 저격을 가장한 뒤, 뒤로 돌아가 기습하려는 작전이 들켜 체포되고 맙니다. 하지만 자리만 조금 높은 곳으로 이동해도 쉽게 색스와 퍼시, 롤랜드를 저격해서 쉽게 죽일 수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카드를 버리고, 질 수도 있는 별로 좋지 않은 카드를 선택할 이유는 없어요. '댄서'가 체포되게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합니다. 

댄서의 전지전능함을 과시하기 위한 설정들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댄서가 스티븐 콜에게 살인 청부를 재하청 준 뒤, 그를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댄서는 '조디'라는 약물중독 노숙자로 변장하고 스티븐 콜과 접촉하지요. 그런데 이 때 스티븐 콜이 만나자마자 그를 죽이지 않은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했었습니다. 이후, 조디가 배신한걸 알아챈 스티븐 콜의 저격이 실패한 것도 우연이고요. '댄서'가 체포된 뒤 "모험 없는 인생은 없다. 그래도 난 대응책을 강구했다. 스티븐 콜의 잠재적 동성애 성향을 이용했다." 고 링컨 라임에게 떠벌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조디'가 스티븐 콜의 동성애 성향을 알아챈 방법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가 스티븐 콜의 취향이었다는 정보도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되짚어 생각해보면, 에드가 죽은건 어쩔 수 없었지만, 누군가 자신들 생명을 노린다는걸 알고 난 뒤에도 비행에 집착했던 퍼시 플레이 탓에 사건이 커진 탓이 너무 큽니다. 경찰과 FBI가 시키는대로 안전 가옥에 얌전히 있었다면,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거에요. 퍼시는 회사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죽고 나서는 그런건 아무 필요가 없잖아요? 악당 론 탤봇이 회사를 차지했을 수는 있지만, 다른 친구와 경찰, 보안관 들의 희생은 없었겠지요. 그녀는 살아도 산게 아닐거에요.
링컨 라임의 말은 죽어도 안 듣는 아멜리아 색스의 무모함, 그녀가 느끼는 질투심과 링컨 라임과의 러브 라인 등도 이야기에는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 않네요. 지나치게 헐리우드 식이었달까요?

하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충분히 읽을만 하고, 링컨 라임이라는 캐릭터의 독특한 설정도 잘 써먹고 있으니까요. 영화화되기 좋은 내용인데, 영화 소식이 없는게 좀 신기하군요.

2021/10/15

미스테리아 34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4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아는 주제가 흥미로울때만 가끔 읽곤 합니다. 34호는 일본 본격 추리 소설이 특집이라서 읽게 되었습니다. 나름 고전 본격물의 팬을 자부하고 있으니까요. 표지부터 마음에 들어요. "니가 범인이야!" 라는 느낌이니까요. 강렬합니다.

특집은 일본 본격물의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본격과 변격이라는 말의 유래, 그리고 본격이라는 말의 정의, 최초의 본격물에서 신본격, 그리고 근래 라이트 노벨류까지 이어지는 역사와 대표작, 대표 작가들이 소개되지요. 큰 흐름으로는 본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고가 사부로에서 시작하여 에도가와 란포"D언덕의 살인사건", 하마오 시로의 "그 남자가 죽였을까", 요코미조 세이시"혼진 살인사건",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사회파 미스터리의 대 유행에 이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아야쓰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니시자와 야스히코"일곱 번 죽은 남자", 모리 히로시"모든 것이 F가 된다"신본격 전국 시대를 넘어 우타노 쇼고"벛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시인장의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식입니다. 

뒤로는 본격물이 일본에 받아들여진 당시 일본 추리 문단에 대한 상세 설명, 여러가지 유명 작품 속 트릭에 대한 소개, 점점 캐쥬얼화 되어가는 신본격 장르물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자료 조사도 탄탄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풍성한 편이었어요.

두 번째 특집 기사 '체인질링'은 인간의 아이와 바꿔치기된 요정 아이에 관련된 민담을 분석하는데, 중세 유럽에서 왜 아이가 바뀐 것에 대한 전설이 만들어졌는지를 당시 역사적 배경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기형일 수도 있고, 아이가 죽는 일이 다반사였던 탓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관련된 다른 전설, 우리 나라의 예도 들어서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홍한별 번역가와 곽재식 작가의 옛 사건 탐구도 흥미로왔어요. 특히 명동 한복판에 일제 강점기 시절 빼돌리지 못했던 보물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나 소설로 만들어도 손색없어 보였습니다. 레이철 쿠시너의 "마스 룸" 속 등장하는 요리들을 소개한 컬럼은 '추리 소설과 요리'에 대한 글을 써 온 저로서는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고요. 요리들도 아주 신기하더군요.

그런데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본격물 관련 특집은, 이미 대충 알고 있던 내용들로 새로운 건 없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저도 쓸 수 있었을 기사였달까요? 물론 캐쥬얼화 되어가는 최근의 흐름은 잘 몰랐던 내용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쪽 작품들 찾아 읽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거에요.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가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습니다. 

유성호 법의학자의 아동 학대 흔적에 대한 컬럼, 이은의 변호사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속 법적 대응 방법 등 다른 기사, 컬럼들은 볼륨이 대체로 빈약합니다. 인터넷 검색 결과와 별다를게 없는 수준이에요. 반대로 정성일 평론가의 영화 "포제서" 평론은 볼륭은 풍성했지만 글의 가독성이 너무 낮아서 지루했고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평론만 봐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렇게 가독성이 낮은 글은 이외에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짤막한 리뷰들 하나하나까지 모두요.

마지막에 수록된 3편의 단편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관심있는 특집이더라도 더 이상은 구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은지, 홍한별, 곽재식의 컬럼과 논픽션 기사나 추후 단행본이 출간되면 구입해 볼 생각입니다.

수록 단편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리뷰를 마칩니다.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콩알이를 지켜라!" 

자신이 창조해 낸 인기 동화책 콩알이가 인생의 전부인 일러스트레이터 지혜정의 남편 김진석 교수가 살해되었다. 범인은 제자 최은비였다. 진석이 그녀를 강간하려 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혜정은 은비를 꼬드겨 시체를 강원도 의천에 있는 별장에 유기하러 출발했다. 콩알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별장에는 진석의 변태 친구 한동철이 머무르고 있었고, 혜정은 동철마저 살해한 뒤 시체 두 구를 함께 유기해 버렸다.

듀나범죄 스릴러 단편인데 이야기할 가치가 없는 졸작입니다. 

우선 범죄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 낮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쓰레기였다 한들, 피해자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살인자와 함께 시체 유기를 한다는걸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못한 탓입니다. '콩알이'의 존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부족해서, 그다지 절박한 이유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혜정이 처음부터 한동철을 죽이려 했고, 이를 위해 앞서 시체 유기를 일부러 훤히 드러나게 시도했다는 식으로 범죄 계획을 정교하게 세우기라도 했다면, 범죄물로 볼 만한 여지가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전개도 혼란스럽습니다. 진석이 제자의 고백을 녹화하여 한동철과 공유하고,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다는 진상이 드러나는건 뜬금없었고, 이 때문에 한동철을 죽였다는 것도 급작스러워서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애초에 진석은 여태 은비의 고백을 녹화해서 잘 쓰다가, 왜 갑자기 강간을 저지르려고 한걸까요? 문학하는 남자들을 모두 성범죄자로 단정짓는 설정도 황당하기 그지 없더군요.

듀나의 특기이자 장점인 기발한 설정이 빠져버리니, 뭐 하나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웃는 탐정" 

초월탐정 김재건과 미소년 조수 마곤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집주인 여사와 김재건 사이에 택배로 인해 발생한 트러블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엉망진창이에요. 마곤이 초능력자로 일종의 투명 인간이 되어 집주인 여사가 가지고 있던 김재건의 택배를 훔쳐내는게 이야기의 거의 전부인데, 마곤이 이 택배를 왜 훔쳐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월탐정 어쩌구하는 김재건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경박하고 유치찬란한 김재건 묘사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초월 탐정' 이 뭘 뜻하는 별명인지 감도 오지 않지만, 별로 궁금하지도 않는군요. 서두의 시점을 가지고 독자와 장난치는 부분은, '메타 미스터리' 운운했던 앤솔로지 "Y의 비극"에서 니카이도 레이토가 썼던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도 엄청난 졸작이었지요.

마곤이 할머니와 김재건 사이에 있었던 일을 추리하는 일상계 추리스러운 부분은 괜찮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저 그랬어요.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세트장" 

배우 잭 하터가 영화 촬영용 세트장에서 살해당했다. 사건 당시 21번 방음 세트장 안에는 현장 제작자 조 캐츠키와 감독 샘 매스터퍼드 등 모두 열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1930년대를 무대로 하고 있는 단편인데 옛스러운 영화 촬영장 분위기를 상세하게 그려낸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잭 하터와 마리 플레밍, 두 주연 배우 간에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는 마지막 촬영 장면 묘사가 특히 그럴싸 했어요. 이 부분은 여배우를 연모하고 있었던 감독 샘의 살인 동기가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기도 했는데, 잘 그려냈습니다.

'스크립터'가 탐정역을 소화한다는 설정도, 과연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 썼구나! 싶더군요. 스크립터는 씬마다 있는 오류를 잡아내기 위한 사람으로, 당연히 관찰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관찰력을 바탕으로, 일종의 닫힌 공간인 촬영 스튜디오에서 소거법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 과정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거의 대부분 목격 증언으로 소거되는 덕분이에요. 결국 조 캐츠키와 샘 매스터퍼드만 남는데, 발소리를 듣지 못해서 샘이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조 캐츠키의 발소리는 독특했고, 샘은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별다르게 제공되는건 없어서 본격물로 보기 힘들며, 추리도 일사천리라 의외성은 없습니다. 사실 샘이 범인이라는 스크립터의 추리는 증거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어서, 경찰 수사가 추가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생각되네요. 그래도 다른 단편들에 비하면, 최소한 읽을만한 수준의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1/08

악마의 문장 - 에도가와 란포 / 주자덕 : 별점 1점

악마의 문장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주자덕 옮김/아프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제당 주식회사 대표 가와테 쇼타로 씨는 일족 모두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명탐정 법의학자 무나가타 류이치로 박사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두 딸이 차례로 살해당한 뒤 가와테 쇼타로 씨 마저도 은신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곳곳에 '3중 소용돌이 지문'의 흔적을 남긴 범인에 의해서였다. 특히 첫째 딸 다에코는 저택 주변에는 형사가, 잠긴 방 창문과 출입문은 박사와 조수가 직접 보초를 섰는데도 불구하고, 깜쪽같이 방에서 사라진 후 유령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령의 집에서 박사에게 쫓기던 범인은 박사의 조수 코이케도 살해했고, 출동한 경찰에게 완전 포위되었지만 끝내 거울의 방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스미다강에서 보트 놀이하던 남녀가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발견한걸 계기로, 박사는 기타조노 류코가 사건에 관계가 있다는걸 추리해 냈다. 도주한 그녀의 은신처를 밝혀낸 박사는 추격 끝에 그녀를 사로잡지만 결국 그녀는 물론, 진범으로 생각되는 안대를 한 남자 역시 자살해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수사과장, 나타무라 경감, 형사부장과 무나카타 박사, 아케치 코고로가 함께 한 사건 마무리 축하 연회에서, 아케치는 자신이 추리한 진짜 사건의 진상을 펼쳐 보이는데...

대담하면서도 스케일 크고, 기묘하면서도 변태스럽기까지한 범행이 연이어 등장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의 장편입니다. '3중 소용돌이 지문'은 이 작품을 읽기 전에도 워낙에 유명해서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불가능 범죄가 많이 등장하는 덕분에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부분이 제법 됩니다. 다에코 소실 사건을 빈 침대와 연결하여 풀어내는 과정이라던가, 거울의 방 소실 트릭을 통해, 무나카타 박사가 진범이라는걸 드러내는 것처럼 말이죠. 

무나카타 박사가 기타조노 류코를 포박하고 경찰에 연락한 뒤 돌아와보니 그녀가 끈을 끊고 자결했던 상황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던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끈을 먼저 끊었다면 도망치는게 타당했고, 누군가 살해했다면 끈을 끊을 이유는 없었다는건 당연하니까요. 박사가 손가락을 싸고 있는 신문지와 손수건으로 류코의 거처를 알아냈다던가, 류코가 도주 전 대량의 식재료를 배달받았다는걸 근거로 자택 다락에 은신하고 있다는걸 추리해내는 등의 소소한 추리들도 괜찮습니다. 

3중 소용돌이 지문을 일종의 아이콘처럼 활용하고 있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문이 찍힐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문이 발견되도록 만들어서 범인이 전능하다는걸 드러내는 연출도 좋았고, 무고했던 류코가 3중 소용돌이 지문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녀가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는 범인의 계획도 그럴듯했거든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의 활약도 팬으로서는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연극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많이 연출하고 있는건 문제입니다. 이야기에 별 상관도 없고, 설득력을 떨어트리는 요소들일 뿐인 탓입니다. 가와테의 두 딸 시체를 '인체 전시회'와 '유령의 집'에 각각 전시하듯 유기한 상황부터가 그러합니다. 범인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은 하나도 없는 불필요하며 불합리한 행동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유령의 집에 시체를 유기하려다가 경찰에 포위되었고, 그래서 정체가 드러날 빌미를 아케치 코고로에게 제공했을 뿐이니 이는 완전한 패착이었습니다. 완전 포위당한 거울의 방에 갖혀있던 범인이 사라지고, 박사 튀어나왔다는건 박사가 범인이라는거니까요. 이 소실 트릭이 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등장했더라면 그나마 괜찮았을텐데, 범인의 억지 연출로 자기 무덤을 판 것에 지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애초에 복수 대상이었던 가와테 쇼타로가 사건 수사를 범인인 박사에게 의뢰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완전범죄로 죽이면 되는데, 왜 자기 정체가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충직한 조수마저 죽게 만들면서까지 억지 상황을 연출하면서 복수를 질질 끌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이런 연출로 박사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표면적으로 아케치 코고로에 버금간다는 명탐정이었던 박사의 명성에 흠집만 났을 뿐이에요.

또 이 상황에서 묘사되는 유령의 집 가짜 시체와 여러 장치들은 당시 기술력으로는 재현이 불가했을 장치들이라 완전 억지에 불과했습니다. 거울의 방 묘사는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던 그대로라 지겨웠고요. 이야기와는 아예 상관없는 쓸데없는 내용이 이렇게까지 길게 묘사될 이유도 없었어요. 쇼타로의 은신처에서 그를 죽이기 전 복수의 이유인 쇼타로의 아버지 가와테 쇼베가 저질렀던 악행을 연극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묘사도 억지스럽고 불필요한건 마찬가지고요. 이런 묘사들은 아마 당시 잡지 연재를 하면서, 매 편마다 독자들의 흥미와 재미를 불러 일으키기위해 자극적인 묘사로 채우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은 됩니다. 연재 시 분량을 늘여 원고료를 더 받기 위한 얄팍한 술책도 한 몫했을테고요. 문제는 이걸 하나의 책으로 묶어 보니, 과하고 불필요한 묘사만 가득차 버리고 말았다는거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기만 했을 뿐, 특별한 가치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잊혀져도 무방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2017/09/03

미스테리아 1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5점

미스테리아 13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 장르문학 전문잡지 미스테리아 최신간입니다. 창간 2주년 기념호라 그런지 특별 보급가이기도 하고, 항상 관심있게 찾아보던 주제인 "경성"을 특집으로 하고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특집인 "경성" 관련 기사들은 기대에 값합니다. 1930년대 경성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장르 문학'과 관련된 시각으로 설명해주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던 덕분입니다. "별건곤"에 실렸다는 경성 7대 특수촌이나 5대 마굴에 대한 탐사기는 충분히 하나의 작품 소재가 될 만큼 재미있었어요.
경성을 탐정 소설의 배경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기사들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염마"에 등장하는 서광옥의 X별장은 "체신국 뒤로 해서 개천을 메워가지고 새로 낸 큰길을 단 후 누상동 큰거리에서 언덕 위에 지은 큰집을 찾았다"라는 묘사를 통해 '아방궁'이라 불렸던 친일파 윤덕영의 저택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여기에 더해 남촌과 북촌의 특수성과 같은 사회적인 부분, 아편굴과 같은 특수 장소와 같은 당대 경성에 대한 갖가지 디테일이 가득하여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박태원의 "최후의 억만장자"는 예전에 읽어봤던 작품으로 내용은 별 볼일 없지만, 삽화를 맡았던 월북 화가 정현웅의 그림은 마음에 들었어요. 목판화 스타일의 삽화는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수준의 완성도니까요.

물론 이런저런 한국 추리 소설 역사서에 실려있는 내용에서 불과한 기사들도 제법 됩니다. 김동인의 "수평선을 넘어서"에 대한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얼마전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에 수록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주제에 맞춰 "경성"이라는 공간, 배경에 집중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통틀어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렇게 풀어내면 다른 유사한 컨텐츠와 변별력을 가지기 힘들지요.

그러나 특집 외의 기사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이 많습니다. 홍보 문구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8인에게 가상 표지를 제안했다는 "세상에 아직 없던 책"은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박철희의 "환상의 여인" 정도만 괜찮을 뿐, 그외 표지들은 실제 책이 출간되더라도 구매 욕구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에요. 요새 대학생들 과제도 이것보다는 나을 듯 한데, 차라리 왠만한 미술 대학 디자인 학과와 연계하여 결과물을 수록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미스테리아"의 핵심 컨텐츠인 리뷰 형태의 새 책 소개도 이번에는 그냥저냥입니다. 그닥 끌리는 책이 없더군요. 게다가 리뷰어 중 한 분은 직업이 "인형사, 자유기고가"라고 되어 있어서, 대체 이 리뷰가 무슨 기준인지도 헛갈립니다. 꼭 전문가가 좋은 리뷰를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구입한 책의 리뷰라면 그만큼의 전문성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진 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당쵀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더군요. 이 분이 소개하는 기타무라 가오루,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도 구태여 리뷰가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심지어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소시민'시리즈 최신간!). 이 잡지를 구해 읽어볼 정도의 독자라면, 이 두 작품은 딱히 리뷰가 필요없을테니까요. 새책 소개는 다른 곳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 독특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뒤 이은 영화 "불한당"의 감독 인터뷰 역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감독이 SNS를 통해 실수했던 이력만 기억에 남을 뿐으로 이런 인물을 지면을 할애해가며 인터뷰를 한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불한당"이 국내 범죄, 느와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서 일까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별로 그랬을 것 같지도 않네요.

특집 외 기사들 중에서는 미스테리 속 음식에 대해 파헤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과 3편의 논픽션 정도만이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정은지의 컬럼에는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는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를 소개하며, 작 중 등장하는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들의 소개가 곁들여지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신선했습니다. 제가 준비 중인 '장르 문학 속 음식 이야기'라는 컬럼과 비교되어 자극도 되었고요.
3편의 논픽션은 법의학자가 분석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살인 매뉴얼, 한강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중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강렬합니다. 범인을 조작하려는 경찰의 노력에, 무고한 용의자가 겨우 혐의를 벗는 과정, 그리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범인은 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결말까지 모두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이전 호들과는 다르게 수준 이하의 작품이 더 많네요. 우선 로스 맥도널드의 "사라진 여인"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루 아처 시리즈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점이 전무한 소품입니다. 루 아처가 묶은 모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루 아처가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루 아처가 하나씩 손에 넣은 단서를 되짚어가면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라 추리의 여지도 없고 이야기도 원사이드하게 흘러갑니다. 선택지가 하나 뿐인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반전이 있는 진상도 아니고요. 이 정도면 평범 이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국내작가 차무진의 "비형도"는 전개는 흥미로우나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런 단서나 복선도 없이 귀신들 사이에 어울린다는 결말이 영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물론 조상병이 살의를 품은 순간, 그 장소에 있던 귀신들 속으로 들어가 귀신들의 역할극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되기는 합니다만... 개연성도 없는 역할극이 전체 분량의 90%에 달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생각한대로 현실이 바뀌는 "열린 우주"라는 핵심 설정 및 이를 통해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아쉽네요. 하기사 좋았던 부분들도 여러모로 애매하긴 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학예사의 뿔테 안경이 아니라 "껌"이었어야 할 것 같고, 학예사가 목을 메다는 장면은 이게 뭔가 싶으니까요. 여튼, 이 역시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도 피터 러브시의 "오이스터 브라운이 저지른 범죄"는 아주 괜찮습니다. 펄, 오이스터 자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트리거의 의심을 독자에게 공유하게 만드는 전개는 정말로 일품이에요. 분명 언니가 사라졌는데 애써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오이스터의 행동의 이유는?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퇴비화 속도가 빨라지는 발효 촉진제를 산 이유는?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질문들은 가장 설득력 있는 추리, 즉 "펄은 죽었고 오이스터가 그녀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로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정말로 터무니없었고 황당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뒷통수를 칩니다. 거장다운 장난스러운, 그렇지만 또 서늘한 결말도 매력적이에요. 트리거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지, 그리고 트리거의 차가 집 앞에 있으므로 완벽한 인멸은 불가능 했으리라는 점에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만, 거장의 실력만큼은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기사, 읽을 거리로 가득차 있는데 특집과 정말로 몇 안되는 기사, 한 편의 단편만이 기대에 값하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면 2점 이상 주기는 힘들었을거에요. 식민지 경성, 그리고 그 공간을 무대로 한 장르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드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