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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북로우의 도둑들 - 트래비스 맥데이드 / 노상미 : 별점 4점

북로우의 도둑들 - 8점 트래비스 맥데이드 지음, 노상미 옮김/책세상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대공황 직후 약 1930년대까지)까지 기승을 부렸던 책 전문 절도범들, 그리고 그들을 잡아 넣기 위한 도서관 특별 수사관들의 활약을 그린 논픽션입니다. 제목의 북로우는 맨해튼 애스터 플레이스에서 유니언 스퀘어까지 죽 이어진 4번가의 여섯 블록을 의미합니다. 책들이 늘어선 거리, Book Row라는 말에 걸맞게 책방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하네요. 도둑들은 북로우 일부 서적상들 및 그들이 지휘하는 도둑들(북 스카우트)을 의미하고요.

북로우에 터전을 잡고 활동하던 악덕 서적상 골드가 뉴욕 공공도서관 소장품인 에드거 앨런 포의 초판본 "알 아라프, 티무르" 초판본을 손에 넣은 뒤(정확하게는 골드 밑에서 북 스카우트로 일한 듀프리가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알 아라프, 티무르와 주홍 글씨 초판본, 백경 초판본을 훔친 뒤), 그를 잡기 위해 활약했던 공공도서관 특별 수사관 버그퀴스트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서적 절도 사건도 다수 언급되며, 희귀본 시장이 어떻게 커져갔는지와 그에 따라 도서관들이 어떻게 책 절도범들에게 노략질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배경 설명도 함께 합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논픽션다운 디테일입니다. 특히 당대 책 절도에 대한 설명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책 절도는 대단한 기술이나 전략이 필요치 않다, 도서관과 사서들의 부주의 탓에 절도가 쉬웠다, 필요한 것이라곤 훔친 책을 집어 넣을 수 있는 커다란 코트와 가끔 가다 쫓길 경우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다리 정도였다는, 시대를 연상케하는 언급부터 시작하여 책을 훔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눈에 띄는 마크나 도장 제거 등 - 와 북 스카우트라고 불리운 도서관 책 절도범들과 책서점 주인이 손을 잡고 사업을 키워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참고로, 이렇게 도서관 책 절도범이 기승을 부린 이유는 책 절도범을 잡더라도 치안판사들이 고소를 취하하는 등 심각하게 처벌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하네요. 리스크는 적고 수익은 높아지니 많은 사람들이 뛰어든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네 사고 방식인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과 서울대 출신 책도둑, 공시생 책도둑 등이 선처를 받고 훈방되었다는 뉴스가 떠오르네요.

도둑들을 잡기 위해 뉴욕 공공도서관 설립 된 후 특별 조사관으로 활동한 길야드, 버그퀴스트의 활약의 디테일도 못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면, 도서를 대출한 후 반납하지 않고 대출자가 사라진 사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길야드는 대출자가 살았던 우체국장에게 우편물을 전송하는 새 주소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개인정보 유출 방지 목적?), 옛 주소로 먹지 한 장을 숨긴 등기 서류를 보냈습니다. 등기 서류가 우체국에 도착하면 주소록이 고쳐질 것이라 생각하고, 봉투에 이사 간 곳의 새 주소가 쓰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송 되기 전 회수한다는 전략이었지요.
버그퀴스트는 뭐니뭐니해도 핵심 이야기인 골드 체포 작전의 활약이 가장 눈부십니다. 수사 권한이 없었기에 함정 수사를 펼치는 등 노력도 눈물겹지만, 끝까지 노력해서 결국 골드에게 실형을 선고받게 만드는 결말이 아주 통쾌한 덕분입니다. 그것도 싱싱 교도소에 수감시켰던만큼, 기쁨이 더 컸을 것 같네요. 이 과정에서(인간의 갱생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 태도를 갖추고 있는) 버그퀴스트의 진심어린 설득에 넘어가 책 절도 박멸에 동참하는 구 절도범 마호니, 윔스와의 인연은 시대를 느끼게 해 주고요. "자네도 볼장 다 봤잖아. 우리 쪽으로 오지그래?"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의리물이 떠오르는 낭만적인 이야기였거든요. 그런 시대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참고로, 후일담은 조금 씁쓸했습니다. 뻔뻔한 절도범 헤럴드, 절도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골드와 스미스 등 악덕 서적상들 모두 범죄가 밝혀진 이후 짤막한 재판과 수형 생활을 거치고나서 다시 떵떵거리면서 살았다니까요. 그나마 골드 사건이 마무리되고 희귀본과 값진 책들은 도난 당하지 않도록 따로 분리해 이용을 엄격히 제한하게 되었으며, 책을 수집하던 사람들도 죽으면서 소장품과 희귀본을 도서관과 대학에 기증하는 사람이 많아져 시장 자체가 사라진 덕에 현재는 이런 류의 절도가 거의 없어졌다고 하니 다행일 뿐입니다. 최근은 도서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는 것도 많이 어려워졌지요.

그 외에도 다양한 희귀본 관련 재미있는 이야기도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포의 작품 관련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뭉텅이로 팔린 책 더미에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 처음으로 발표된, 표지가 떨어져 나가고 없는 그레이엄스 매거진이 포함되어 있었다던가, 가난하게 살던 노파가 근방 서적상 존 루미스 씨에게 옛날 책을 팔려다가 포의 첫 시집 "알 아라프"를 팔게 되었다는 등입니다.

이렇게 햇수로는 40 ~ 50년에 걸친, 방대하고 자세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등장 인물과 사건도 많지만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내용도 재미있어서 쉽게 읽히는 멋진 책입니다. 잘 알지 못했던 20세기 초반 책 절도에 대한 지식도 상세하게 알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희귀본을 탐색하던 추억이 떠올라 더 공감이 갔습니다. 그때 구했던 책들 중 다수 - "점성술 살인사건", "불야성""석양에 빛나는 감""얼굴에 흩날리는 비""내가 죽인 소녀" 등등등 - 거진 다 복간되어 이제는 의미가 없습니다만ㅡ 괜히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아 그립습니다.

다만 수사관들이 도둑들에 비하면 열세라 밀고 땡기는 맛이 부족하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도둑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후일담 역시 씁쓸한데 이 모두 실화에 기초한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겠지요. 논픽션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14/09/11

아마추어 괴도 - 어네스트 윌리엄 호넝 / 최혜수 : 별점 1.5점

안녕하세요.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이래저래 바빠서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올립니다.

이 작품은 코난 도일의 매제이기도 한 어네스트 윌리엄 호넝이 발표한 신사도둑 래플스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국내에는 몇몇 앤솔로지에 단편 한두 편이 소개된 것이 전부였지요. 출간된 사실조차 몰랐는데, 우연히 이번 추석 연휴 때 리디북스 가입 후 검색하다가 발견하여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이용하는 알라딘에는 등록되지 않아서 놓쳤었습니다. 분량도 적절하고 가격도 저렴하며 번역도 괜찮습니다. 퍼블릭 도메인이 되어 번역 출간된 것으로 보이는데, 시도 자체만큼은 무척이나 반갑네요.

그러나 작품의 수준은 솔직히 많이 아쉬웠습니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 중 한 명이라는 유명세 때문에 기대가 높았던 탓도 있지만, 이 정도로 기대 이하일 줄은 몰랐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적으로 언급할 부분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괴도가 주인공이라 정교한 범죄 계획을 기대했는데, 실상은 래플스가 화자 역할인 버니에게 '기다리라'고만 하고, 막상 범행은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에 의존할 뿐입니다. 범죄의 치밀함은커녕 퍽치기 노상강도보다 못한 수준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당연히 추리적 쾌감도 없어요.

소설로서의 완성도 역시 부족합니다. 전개는 급작스럽고 허술하며, 캐릭터들의 매력도 살리지 못합니다. 예컨대 왓슨 역이라 할 수 있는 사이드킥 버니는 빚에 쫓겨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인데다가 지나치게 수다스러워서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역사적 의미와 함께 선과 악의 경계에 절묘하게 걸친, 겉으로는 크리켓 명수이자 부유한 신사지만 정체는 도둑이라는 래플스의 조금 독특한 설정 외에는 건질 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셜록 홈즈"보다는 "루팡 3세"에 가까운 모험물로,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망작입니다. 시리즈가 더 출간되어도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수록작별 간단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3월 15일"

시리즈의 시작으로 빚에 몰린 버니가 학창시절 선배인 래플스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그의 은밀한 직업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래플스라는 캐릭터가 유일한 장점이고, 그 외 모든 것은 단점입니다. 래플스가 보석을 훔치기 위해 세운 계획은 위층에 방을 얻는 것 뿐이고, 나머지는 범행 당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전개라 추리적 치밀함은 전무하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참고로,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소개된 것과 같은 작품입니다.

"시대극"

래플스가 미워하는 졸부 루벤 로젠탈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려고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계획도 유치할 뿐 아니라, 계획이 간파당해 체포당할 위기를 맞는다는 실패담입니다. 수모를 당하다 겨우 탈출하는 내용이 전부에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젠틀맨과 플레이어"

래플스가 크리켓 선수라는 설정이 부각되는 작품입니다. 보석을 노리는 프로 도둑과 경찰이 등장하는 설정도 흥미롭고요. 무엇보다도래플스 캐릭터만큼은 인상적이라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실제 범행은 우발적이라서 추리적 쾌감은 전무합니다. 

"첫걸음"

래플스의 첫 범죄를 다룬 이야기. 호주에서 무일푼이 된 래플스가 먼 친척을 찾아가던 중 산적과의 오해로 범죄에 휘말리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단서인 말과 관련된 인물이 진상을 왜 깨닫지 못했는지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낫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고의살인"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장물아비를 살해하려는 래플스의 모습이 그려지는 이색작. 괴도 신사가 냉혹한 살인자로 묘사되는 점이 신선하지만, 우연의 연속으로 내용이 흘러가는 점은 아쉽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법의 경계"

유일하게 합법적 절도를 다룬 이야기. 헐값에 팔린 그림을 되찾기 위한 의뢰지만, 특별한 작전도 없고 내용도 별다른 위기 없이 쉽게 전개됩니다. 다만 래플스가 해결사로 자리매김하는 설정은 꽤 매력적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리턴매치"

"젠틀맨과 플레이어"에서 등장한 프로 도둑 크로셰이가 탈출 후 도움을 청하러 래플스를 찾아온 이야기로 스코틀랜드 야드의 매켄지 경위가 다시 등장해 긴장감을 전해줍니다. 탈출 장면은 기대보다 밋밋하지만, 궁지를 타개하는 래플스의 모습은 볼 만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황제의 선물"

독일 황제의 진주를 훔치려는 일생일대의 작전을 계획하지만, 결국 체포당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래플스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체포 과정이 허무하고, 범죄 계획도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서는 아쉬웠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0/10/10

루팡의 딸 - 요코제키 다이 / 최재호 : 별점 1점

루팡의 딸 - 2점 요코제키 다이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으로 불리우는 수사 1과 형사인 카즈마의 가족은 모두 경찰이며, 심지어 키우는 개 까지 은퇴한 경찰견인 경찰 집안. 그와 교제하는 하나코는 도서관 사서로 위장했지만 가족 모두가 도둑인 도둑 가문의 딸이었다.

카즈마가 결혼을 전제로 하나코를 가족들에게 소개시킨 얼마 뒤, 카즈마와 수사 1과는 한 살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피해자는 처참하게 구타당해 죽은 고령의 노인으로 얼굴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단서로 경찰은 피해자의 신원이 '다테시마 마사오'라는걸 알아냈다. 이 사실을 뉴스로 접한 하나코 가족은 피해자가 신분을 감춘 할아버지 미쿠모 이와오라는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경찰은 피해자가 '다테시마 마사오'로 위장한 이와오라는걸 알아내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지만, 카즈마는 시체에 남겨져 있었다는 손수건을 단서로 진상을 알아냈다. 이 사건은 50년 전 성폭행 미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성폭행 미수범은 카즈마의 동료 마키 형사의 할아버지 에이스케였다. 이와오에게 쫓기던 에이스케는 손자 마키를 시켜 그를 죽이려 했는데, 마키의 착오로 진짜 다테시마 마사오가 살해되었다. 그래서 이와오와 와이치는 마사오의 죽음을 이용하여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웠다...

일본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만화적인 설정이 극대화된 작품입니다. 그냥 봐도 "세인트테일"이 바로 떠오르지요. 그래도 카즈마가 하나코를 소개한 날, 그녀가 며느리로 적합한지 아닌지에 대해 가족회의 하는 등 나름 설정을 살린 요소들은 재미있었습니다. 형사인 아버지는 감으로 그녀가 착해서 마음에 든다고 하지만, 과학 수사대 요원인 어머니는 '착하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설정에 따른 재미는 소소할 뿐, 전개와 내용 모두 지나치게 만화적이고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추리적으로도 건질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오를 죽인건 누구인가?' 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기는 하는데, 동기가 말도 안되고 제공되는 단서도 공정하지 못하며, 범인도 급작스럽게 드러나는 탓입니다. 동기는 이와오가 50년 전 성폭행 미수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성폭행 미수범이 자신의 손자를 시켜 이와오를 살해한 거랍니다. 증거는 이와오가 '범인의 눈을 보면 안다'라는 말 밖에 없는데 무려 50년 전 성폭행 미수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손자를 시켜서? 심지어 손자 마키도 능력있는 형사로 전통있는 경찰 집안 출신이라 나름대로 출세가 보장되어 있는데 할아버지가 시킨다고 살인을 저지른다? 뭐 하나라도 말이 되는게 있어야지, 이래서야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키가 범인임을 알아채는 과정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마사오를 살해한 마키 형사를 이와오가 쫓다가, 그의 손수건을 훔쳐 마사오의 시체에 남겨 놓은게 가장 큰 증거가 되는데, 손수건을 훔쳐낼 정도로 쫓았다면 지갑을 훔쳐내는 등으로 신원을 밝혀낼 수도 있던거 아닐까요? 왜 손수건을 훔쳐내는 정도로 만족했을까요?
그리고 성폭행 미수범이 마키 에이스케라는걸 안 이상, 이렇게 복잡하게 범인을 밝혀낼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마키 에이스케를 협박(?)하면 될 일이었어요. 

또 손수건에 'M'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게 단서라는 설정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카즈마는 신원을 감춘 미쿠모 이와오가 자신의 이니셜을 새길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테시마 마사오의 이름도 M으로 시작되니 별로 이상한건 아닙니다. 아울러 손수건에 지문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손수건이 마키 형사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도 없고요.

범행을 밝혀내는 카즈마 결혼식에서의 몰래 카메라 생중계 역시 지극히 만화적입니다. 촬영이 가능했다면, 구태여 생중계를 할 이유는 없지요. 이건 하나코와 헤어진 뒤, 충동적으로 선택한 에미리와의 결혼을 어떻게든 파토내려는 카즈마의 수작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카즈마는 솔직히 죽어 마땅한 나쁜 놈으로 이래서야 주인공으로는 실격이지요. 속편에서 에미리에게 처절하게 보복당해도 할 말이 없어요. 

그 외에도 카즈마가 하나코가 도둑 집안의 딸이라는걸 알게 되는 과정, 카즈마가 단 며칠 사이에 수십년 전 부터 활약해 왔던 천재 강도단 L을 사로잡을 증거를 모은다는 전개 등 모두가 작위적이며 어설프고, 만화적입니다.
 또 아무리 나쁜 사람들 물건만 훔치고 라며 포장하고 있지만, 도둑은 분명한 악당인데도 우리 편인양 포장이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반에 중국 강도단이 보석상을 턴 뒤, 그 강도단을 미쿠모 가족이 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간 과정이 하나 끼어 있을 뿐 보석상을 턴건 마찬가지잖아요? 할아버지 이와오가 죽은 걸로 알고 있는 가족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와 희희낙락하는 묘사도 이해가 잘 안되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입니다. 세세한 묘사는 전부 들어내고 캐릭터에 집중한 빠른 호흡과 전개 덕분에 읽기는 편했지만, 그 외에 건질건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읽어 볼 가치는 전무합니다. 작가가 쓴 다른 작품들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군요.

2015/01/19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카렐 차페크 / 정찬형 : 모비딕 : 별점 2.5점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6점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모비딕

카렐 차페크의 단편집. 고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단편집인데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쇼트쇼트'가 연상되는, 조금 희한한 상상력이 발휘된 초단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호시 신이치보다는 추리적인 색채가 짙다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이런 장르도 좋아해서 즐겁게 읽기는 했지만, 실려 있는 작품들의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전개가 낡고 지루하며 결말의 의외성이 없는 등의 단점은 아쉬웠습니다. 쓰여진 시기를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막 나가는 전개의 몇 작품은 의도인지 아니면 습작들이 이상하게 뭉쳐져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탈영병이 거름더미 속에 몇 달 숨어 있다가 잡혀온 이야기와,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상이용사 연금을 받던 로이지크가 양심 때문인지 정말로 불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 있는 "실종된 다리"가 좋은 예입니다. 어차피 초단편이라면 나누어 수록했어도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로 묶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쓰여진 시기 탓인지 "양심"에 대한 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들이 근본적으로 너무 선해서,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에 의해 갈등을 겪는 내용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좋았던 시기에 착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묘하고 기발한 발상은 좋지만, 지금 읽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수록작 일부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추리물 성향을 지닌 작품부터 소개해 드리자면,

"도둑맞은 선인장"

식물원에서 귀한 선인장이 도난당하자 선인장에 치명적인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조작하여 발표한 뒤, 약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잠복하다가 범인을 체포한다는 내용입니다. 식물원에서 훔친 방법도 기발한데, 나이든 여자로 변장하고 가슴에 화분을 숨겨 나왔다는 것이죠.

"하르쉬의 실종"

아르메니아인들이 하르쉬를 어떻게 죽이고 시체를 옮겼는지에 대한, 즉 시체의 순간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굉장히 쉬운 트릭이기는 하지만 범행 당일 비가 왔다는 점, 카펫 속에 시체가 들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시체의 기묘한 반점을 연결하는 부분은 괜찮았어요. 명탐정 메이즈리크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고요.

"도난당한 살인사건"

범인들이 경찰로 위장한 뒤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뒷수습한다는 이야기. 목격자는 많았지만 경찰 복장을 한 범인을 보고는 단지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죠. "오터모울씨의 손"이 떠오르는데, 이런 트릭의 원조격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영아 납치 사건"

사라진 영아를 찾기 위한 바르토세크 반장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경찰들에게 아기를 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군요. 몇 개월 됐나요?"라고 말하라고 시키고, 그 말에 과민반응을 보인 어머니를 체포한다는 내용이지요. 모든 어머니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심리를 이용한 트릭과 전반적으로 유쾌한, 블랙 코미디스러운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정물도 있습니다.

"하브레나의 판결"

기자들이 법정 소식을 실으려고 노력하던 중, 실제 법정에서의 사건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창조하는 하브레나라는 인물에게 창작의 댓가를 지불하고 이야기를 전해받는다. 하브레나는 스스로 법에 대해 통달했다고 여기는데 어느날 그가 창작한 이야기, 즉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자를 볼 때 마다 "화냥년"이라고 말하게 만든 늙은 독신남이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가 실제 법조인들에게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자 하브레나는 자신의 이야기 속 판결이 정당하다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인에게 욕설을 하게끔 만들고 법정에 서게 되는데...

설정부터 흥미롭지만 진행 과정 역시나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법의학물의 선구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바늘"

롤빵 속에 들어간 바늘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국립화학연구소의 우헤르 박사가 빵과 바늘에 대한 모든 상황을 검토한 끝에 롤빵이 만들어진 뒤에야 바늘이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 그리고 바늘을 누가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 빵을 찾기 위해 화학자들이 빵을 수도 없이 만들어본다는 과정에서 법의학물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반전이 괜찮은 작품도 있습니다.

"우표 수집"

한 노인이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하층민인 로이지크와 절친이 되었고, 우표 수집에 빠져 살았다. 그러나 성홍열로 앓아 눕고 얼마 뒤, 둘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둔 우표가 사라지자 로이지크를 의심하여 그와의 우정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도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표를 숨긴게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는 내용의 작품.

"고해"

너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탓에 마음이 무거워진 범죄자가 신부, 변호사를 찾아가 죄를 털어놓는다는 이야기. 신부와 의사가 이러한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죠. 반전은 마지막에 그에게서 고백을 들은 의사가 모르핀 주사 2방을 추가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게 말이죠.

블랙코미디 스타일의 유쾌한 범죄극도 있습니다.

"여의주와 새"

진귀한 카페트를 훔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엄청난 슬랩스틱으로 묘사된 작품입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정도의 연출감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발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도둑"

도둑이 범행 후 남긴 시가 지역 신문에서 극찬받자,  도둑의 창작욕이 폭발하여 도둑질은 시를 발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풍자와 유머가 돋보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영어를 못하는 지휘자가 영국에서 우연히 남녀의 대화를 몰래 듣게 되는데, 그 속에 담긴 범행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는 이야기. '남자의 사악한 말은 묵직한 베이스'같은 식으로 악기의 음색과 범행의 느낌을 연결한 설정이 대단히 인상적으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습니다.

2007/07/12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 박승애 : 별점 3점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박승애 옮김/노블마인

이곳 저곳에서 평이 좋길래 구입해 본 젊은 일본 작가의 청춘 추리물로 다섯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 연작집.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첫 에피소드에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뒤 두번째 에피소드부터 제목 그대로 "봄철 딸기 타르트"와 연관되어 전체적으로 통일성을 지니는, 그러면서도 각각 일상 속의 소박한 사건들을 다루며 한편으로 완결되는 스토리가 있는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책입니다..

일단 장점이라면 일상 속 사건임에도 추리적으로 괜찮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몇몇 부분에서의 트릭과 아이디어가 꽤 재미나더라고요. 그러니 2007년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순위에도 등장했겠지만요. 전부 비슷비슷한 수준이지만 연작성격을 떠나서 제일 마음에 들은 이야기는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였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사실 일상 생활속에서 사람들이 강력 사건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이렇게 일상 속의 자질구레하면서도 소박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외려 현대 추리 소설에 더욱 잘 어울려 보이기도 했고요.
아울러 탐정역을 소화하고 있는 주인공 커플 역시도 "소시민이 되고 싶다" 라는 장래희망마저도 소박한, 명탐정의 전형을 깨버리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것도 정감가는 요소였습니다. (참고로 소시민이 되고 싶다는 고바토의 꿈은 추리력 과시에 의해 외려 손해를 본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설정이던데 이 역시 QED의 한 에피소드와 상당히 유사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너무 만화적인, 그림이 훨씬 어울리는 트릭이 많다는 점입니다. 만화 버젼이 연재되고 있다는데 만화 쪽이 그림만 마음에 든다면 외려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정도로 만화에 더욱 어울리는 소재들이었거든요. 책 뒤의 해설에도 나오지만 고등학교 1학년 커플이 탐정역으로 등장한다던가, 학교 또는 일상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만화 "QED"와 굉장히 닮아 있기도 하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시리즈 첫 작품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기에는 좀 너무 어린 취향이 아닐까 싶어서 이후의 시리즈를 계속 사 볼지는 좀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추리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초심자, 그 중에서도 20대 아래의 나이층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그런데 표지가 너무 유치한 것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이거 무슨 아동용 동화책도 아니고...

1. 가방 찾기 대소동
고등학생이 된 후 진정한 소시민으로 거듭나려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 그러나 고바토의 초등학생 동창 겐고를 만나면서 그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겐고는 너무나 정의감이 투철한, 앞장서기 좋아하는 열혈남아였던것. 겐고가 한 여학생의 가방 도난 사건의 조사를 요청하면서 고바토는 다시금 추리의 세계로 뛰어든다.

2. 도둑맞은 딸기 타르트
오사나이가 너무나 좋아하는 봄 한정 딸기 타르트를 실은 자전거를 도둑맞은 뒤, 고바토는 오사나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신문부인 겐고가 의뢰한 미술부의 수상쩍은 그림의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한다.

3. 맛있는 코코아를 타는 법
주말에 오사나이와 만나던 고바토에게 겐고가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는 전화를 하고, 찾아간 둘에게 겐고는 맛있는 코코아를 대접하며 그 비결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겐고의 누나 치사토는 부엌에서 겐고가 어떤 방법으로 코코아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을 궁금해 하며 애를 태우는데...

4. 커닝페이퍼의 비밀
오사나이에게서 시험 도중에 깨진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고바토는 잠깐의 조사로 병이 깨진 이유를 알게 된다.

5. 딸기 타르트의 복수
자전거를 훔쳐간 이웃 고등학교 학생 사카가미를 우연히 발견한 오사나이와 고바토. 오사나이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고바토는 오사나이 신변을 걱정하여 겐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선뜻 도와주지 않으려는 겐고에게 고바토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추리한 자전거 도난 사건의 진상을 털어놓고 결국 사건을 해결한다.

2015/08/08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 릭 게코스키 / 박중서 : 별점 2.5점

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 6점 릭 게코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르네상스

도둑맞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파괴되고 소실된 여러 예술품들에 대해 쓴 책입니다. 해당 예술품에 대한 범죄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한 논픽션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내용은 에세이더군요. 희귀 초판본 거래를 업으로 하는 작가가 예술 작품들로 "상실", 그리고 "영원"에 대해 써내려간 것이 핵심이거든요. 예술 작품들이 사라진 과정도 상세하게 적혀있기는 하지만요.

예를 들면 <부재와 갈망이 주는 기쁨> 편을 보죠. 여기서 제임스 조이스가 아홉 살에 쓴, 최초의 인쇄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쇄물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으며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수집의 강박"입니다. 물건 자체의 가치는 0이지만 물신화된 가치에 의해 가격이 100만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이 인쇄물이야말로 수집의 강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며, 수집은 물건 자체의 가치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에요. 참고로 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마다라메도 말했죠. "가격만 비교해봐야 의미가 없어. 소프트의 재미는 결코 가격과 비례하지 않으니까.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하자. '이건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들면 돈을 내는 거야. 난 그렇게 선택해 온 것들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어. 왜냐하면 그건 내 것이니까! 그게 야겜이건 동인지건, 옷이건 마찬가지야!!"

또 바이런의 자서전과 키츠의 일기를 상속인들이 파기한 일화를 소개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예술 작품과 그 창조자의 개인적 사생활을 결부시키는 행위에 대한 의문을 표명하기 때문입니다. 작품 자체만 가지고 판단해야겠지만 쉬운 건 아니죠. 얼마 전 이병현 스캔들과 그 때문에 개봉이 연기된 <협녀> 사태가 떠오르네요.
폰트 "길 산스"의 창조자인 조각가 에릭 길이 사후 일기를 통해 딸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알려졌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이 정도 비밀이라면 일기에도 적지 말았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뭐 이런 썅놈이 다 있나...

이라크 전쟁에서 바그다드 이라크 국립 박물관에서 일어난 약탈 행위를 다룬 편도 인상적입니다. 부시 정권, 그 중에서도 국무부 장관 럼스펠드가 얼마나 무식한 인간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지거든요. 유적에 있던 문화재를 각 나라가 떼어가 전시하는 행위에 대한 긍정과 부정 역시 읽을 만한 내용이었고요. 파르테논에 있는 조상을 떼어간 영국의 "엘긴 컬렉션"을 다루며, 엘긴경이 아니었다면 파르테논에는 조상이 아예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인데 일부는 수긍할 만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남의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 외 다른 이야기들 모두 그동안 생각치도 못했던 색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모나리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나리자 앞에 모여든 인파는 그림을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유명 인사를 보는 것이 목적이다. 심미적 파파라치인 셈이다"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단점이라면 단순 흥미로 읽기 어렵다는 점이겠죠. 특히나 저와 같이 범죄 관련 논픽션을 기대한 독자들은 많이 당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담고 있는 주제에 걸맞는 도판을 갖추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이야기마다 한 개 정도 대충 실려 있는 수준이거든요. 언급되는 작품들이 방대하고 가격도 17,000원이나 한다면 도판도 그에 걸맞는 볼륨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네요.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로만 읽을 책은 아닙니다. 미술 역사, 아니면 예술품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20/03/23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모험 - G.F 포레스트 (1905)

문을 연 나를 맞은 건 황홀한 선율이었다. 워록 본즈가 몽환적으로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우면서도 단정한 얼굴은 몹시 더러운 브라이어 파이프에서 피어오른 자욱한 연기로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를 알아챈 본즈는 숨 막힐 정도로 흐느끼는 선율을 마지막으로, 환영의 미소를 담뿍 지으며 일어섰다.

"안녕, 고즈웰"

본즈가 쾌활하게 말했다.

"그런데 왜 침대 밑에서 바지를 다림질하는 거지?"

사실이었다, 명확한 사실. 놀라운 관찰자이자, 온갖 가공할 범죄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그리고 역사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두뇌의 소유자 본즈는 비정하게도 나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아,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놀랍고 멍한 표정으로 나는 물었다. 본즈는 내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바지에 대해 특별히 연구한 적이 있지. 침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잘못 볼 리가 없어. 하지만 그런 지식은 잠시 젖혀 두도록 하라고. 우리가 석 달 전에 함께 살았던 걸 잊었나? 그때 본 거야."

본즈는 그 날카로운 추리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의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도 낼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놀라고 감탄할 뿐이었다. 이 은혜로운 추리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아 양팔로 본즈의 왼쪽 다리를 열렬한 존경심과 함께 껴안고, 그의 지적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본즈는 소매를 걷어 올려 그의 가늘고 섬세한 팔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한 컵 분량의 청산을 단숨에 주사했다. 주사를 끝낸 후 그는 벽시계에 눈을 돌렸다.

"23분이나 24분 안에"

본즈가 말했다.

"한 남자가 나를 만나러 올걸세. 아내와 두 아이가 있고 의치가 세 개, 그중 하나는 최근에 교체했지. 또 그는 약 마흔 일곱 살쯤 된 성공한 주식 거래인으로 순모로 된 옷을 입고 있으며 '잃어버린 세계 대전'의 열렬한 후원자야."

"그 모든 걸 어떻게 알았나?

나는 숨을 헐떡이며, 애타게 조르는 심정으로 그의 무릎을 두드렸다. 본즈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오는 이유는 말이지."

본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지난 목요일, 그가 사는 리치먼드의 집에서 보석이 도난당했기 때문에 내 의견을 듣기를 원하고 있어. 도난당한 보석 중에는 정말 놀랄 정도로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있거든."

"설명해 줘"

나는 황홀함과 존경심에 사로잡힌채 벅차 울부짖었다.

"제발 좀 설명해 달라고!"

"친애하는 고즈웰군"

그는 웃었다.

"자네는 정말 어리석군. 자네는 내 방식을 잊어버렸니? 그 남자는 내 친구야. 어제 시티에서 만났을 때, 도난 사건에 대해 오늘 오전에 나에게 상담하러 오겠다고 말했지. 그게 전부라네. 추론이지, 고즈웰 군, 아주 단순한 추론이라고."

"하지만 보석은? 경찰은 수사에 나섰겠지?"

"완전히 속수무책이야. 우리 경찰은 세계 제일의 바보니까. 그들은 이미 아무런 죄도 없고 무해한 사람들을 27명 체포했어. 미망인인 공작부인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녀는 충격 탓에 아직도 몸져누워 있다더군. 게다가 내가 틀리지 않는다면, 경찰은 오늘 오후 내 친구의 아내를 체포할 생각이야. 친구 아내는 도난 사건 당시에는 모스크바에 있었지만, 그런 건 우리 사랑스러운 바보들에게는 하찮은 문제일 뿐이겠지."

"보석의 행방에 대해 뭔가 단서가 있나?"

"아주 유력한 게 하나 있어. 꽤 유력하지. 사실 목걸이를 지금 이 손에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이건 정말 간단한 사건이야. 내가 여태까지 다루어 왔던 사건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간단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렇다고는 해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점은 있어. 보통 관찰자에게는 어려운 점도 몇 개 보이기는 해. 우선 동기가 그렇지. 흔히 있는, 돈을 목적으로 한 범행은 아니거든. 자기 이름을 날리기 위한 목적이 아닐까 생각된다네."

"상상도 못 하겠는걸."

나는 놀라서 외쳤다. 도둑이, 도둑으로서 자신의 업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었단 말인가.

"맞아 고즈웰. 자네는 상식이라는 게 있지. 하지만 상상력은 가지고 있지 못해. 상상력은 탐정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인데 말이야. 자네는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지만, 우둔한 경찰과 다를 바 없어. 그들에게는 어떠한 사건도 쉽지 않겠지만, 나에게 이 사건은 그야말로 햇빛처럼 분명하다네."

"그건 이해할 수 있어."

나는 경건하게 본즈의 무릎을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이 도둑에게는 말이지."

본즈의 말은 계속되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다양한 동기가 있기는 해. 하지만 보석에 관해서는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바로 내 손에 쥐고 있다고 말해도 좋아. 바로 여기에!"

본즈는 그의 무릎을 감싸고 있던 내 팔을 풀고, 방구석에 있는 안전 금고로 걸어갔다. 그리고 금고에서 커다란 보석함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웅장한 목걸이 한가운데에서 겨울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 광경에 나는 숨을 삼켰다. 감탄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본즈 앞에 넙죽 엎드렸다.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나는 횡설수설하다가, 이윽고 나의 당황하는 모습을 본즈가 즐기고 있다는 걸 눈치챈 뒤 입을 다물었다.

"내가 훔쳤지"

워록 본즈는 말했다.

G.F.Forrest 'The Adventure of the Diamond Necklace'(1905)

출처는 여기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이제 번역까지 도전해 보게 되었네요. 의역을 넘어선 졸역이지만,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짧아서 다행이에요.... 부디,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2025/05/18

시계 도둑과 악인들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별점 2점

시계 도둑과 악인들 - 4점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방주", "십계"로 유명한 신예작가 유키 하루오의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 전직 도둑 하스노가 탐정역을 맡고, 그의 동료로 화가 이구치가 등장하는 다이쇼 시대 무대의 단편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 작품은 독립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등장인물과 배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느슨한 연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단편집의 가장 큰 장점은 기발한 트릭과 추리 구조에 있습니다. 불가능 범죄로 보였던 사건이 논리적으로 해결되는데, 이를 위한 단서는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말 그대로 '정통파 추리물'인 셈이지요. 유괴, 밀실 살인, 연쇄살인, 보석 도난, 일상계스러운 편지에 얽힌 과거의 비밀 등 사건의 종류도 다양해서 흥미를 더해주며, 다이쇼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린 묘사, 인물 간의 대화들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하스노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엘리트 출신의 전직 도둑으로, 굉장히 독특한 사고 방식을 갖춘 천재 탐정이라는 비현실적인 인물을 묘하게 현실적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단편 전반에 걸쳐 범인의 동기가 전반적으로 약한 탓에, 와이더닛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억지로 만든 설정이 눈에 띄며, 일부 트릭 역시 과정은 흥미로우나 실행 가능성이나 현실성 면에서 허술함이 느껴지고요. 또한 장황한 묘사로 인해 리듬이 끊기거나, 인물의 심리가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아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하스노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데, 화자가 이구치가 아닌 단편들에서는 하스노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도 아쉬웠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본격 추리물로 트릭과 분위기는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이야기 전체의 완성도는 다소 부족한 편입니다. 작가의 팬이시라면 추천드리지만, 그렇지 않다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에몬 씨의 미술관"

화가 이구치는 친구 하스노에게 시계 바꿔치기를 부탁했다. 이구치의 아버지가 자산가 가에몬 씨에게 판 시계가 사실은 모조품이었고, 가에몬 씨가 그것을 미술관에 전시하려 하자 일이 커지기 전에 진품으로 되돌리려는 목적이었다. 말로 설득하는걸 포기한 두 사람은 미술관에 잠입해서 직접 바꿔치기를 시도하는데...

이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도입부로는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전직 은행원이자 도둑 출신인 미남자 하스노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좋습니다. 다이쇼 시대를 충실히 그려낸 시대 묘사도 매력적이고요. 별 거 아닌 것처럼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모아 진상을 추리해내는 정통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도 괜찮은 편입니다. 가에몬 씨의 알 수 없는 언행 - 왜 미술관을 촌 동네에 만들었는지, 왜 미술관을 세우려는데 전시할 그림을 판매할 사람은 불신하는지, 본인은 그림을 보는 눈이 없다고 했으면서 왜 미술관에 소장품을 전시하려 하는지 - 와, 기묘한 미술관의 구조 - 긴 통로 위의 초가 지붕, 두꺼운 벽돌 담장, 화풍이나 시대순이 아닌 뒤죽박죽 전시 배치 - 등은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한 하스노의 추리도 합리적이에요. 미술관은 마음에 안 드는, 진위가 의심되는 소장품을 화재를 위장해 태워버리려고 만든 건물이었다는 것이지요. 하스노가 화재가 일어날 시점을 추리해내는 과정도 논리적이라 마음에 들고요.

하지만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진위가 의심된다면 단순히 폐기하거나 감추면 되는데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고 복잡한 과정을 택했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캐릭터, 추리는 나쁘지 않지만 동기 부분의 설득력이 낮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악인 일가의 밀실" 

미노다 가의 차남 아키마사가 밀실에서 살해당했다. 미노다 저택에는 장남 유키마사, 장녀 미치에, 막내 아쓰요시, 당숙 아키히코 등 가족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는 막장 가족이었다. 아키마사는 가족 중 유일하게 하녀 아쓰코와 함께 상식인처럼 보였으나, 실은 사기를 일삼던 악인이었다. 사기 피해 배상을 위해 저택을 찾은 하스노와 이구치는 하녀 아쓰코를 도와 밀실 살인의 진상을 밝혀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밀실 트릭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빗장으로 굳게 잠긴 문이지만, 사실 빗장은 애초에 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문은 밀실에 굴러다니던 공구(끌)를 열쇠 구멍으로 실을 넣어 끌어 올린 뒤, 고정쇠에 걸어 잠갔습니다. 문을 부술 때 공구는 바닥으로 떨어져 증거가 인멸되었지요. '고정쇠에 꽉 끼어 외부에서 실 정도로는 움직일 수 없는 빗장'이라는 맹점을 깨고 현실적으로도 구현 가능한 괜찮은 트릭이었어요.

또 하나의 장점은 피해자가 유키마사였던 이유입니다. 이 막장 가족 내에서는 죽었을 때 곧바로 신고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 유키마사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가족이라면 죽든말든 아침까지 내버려 두었을거라는 거지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증오로 뭉친 가족을 묘사한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 역시 동기의 설득력에 큰 결함이 있습니다. 범행 동기가 고작 '성질 고약한 아버지가 보낸 빗장을 망가뜨린 것을 숨기기 위함'이며, 이를 위해 문을 부술 때 망가진 걸로 위장하느라 밀실 살인을 저질렀다는데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문을 부수기 위해 밀폐했다'는게 목적이면, 그냥 불을 지르고 밀실을 만드는게 더 손쉬웠을거에요. 또한, 이따위 동기를 위해 이렇게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윤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워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인물 묘사도 지나치게 1차원적이라, 악한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만화 속 등장인물처럼 느껴집니다. 화자 역할을 맡은 하녀 아쓰코도 엿듣기 능력자라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개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해 존재 이유가 애매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은 인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동기와 평면적인 인물 묘사는 끔찍한 수준입니다.

"유괴와 대설 - 유괴의 장 / 대설의 장" 

이구치의 처형 부부의 딸, 미네코가 유괴되었다. 이구치는 하스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유괴범들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둘은 여러가지 단서를 확보하여 결정적 단서를 잡았다. 결국 둘은 미네코를 구해내고 범인 일당을 일망타진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의 백미는 하스노의 추리 과정입니다. 하스노는 범인들이 남긴 몇 안 되는 단서, 예컨대 은행 영업시간 이후에 편지를 보낸 점, 자정에 몸값을 요구한 점, 현금으로만 요구한 점 등을 근거로 범행의 목적이 ‘집에 있는 특정한 현금’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 결과 집안의 돈 중 위조지폐가 섞여 있음을 밝혀내지요.
범인들이 몸값을 받기 위해 장인을 커다란 굴뚝 위로 유도하고, 올라간 틈을 노려 짐을 훔쳐낸다는 설정은 몸값 회수의 현실적 대안으로 보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범인들이 숨겨놓은 돈을 위조지폐 사이에 넣기 위해 위조지폐를 직접 제작했다는 발상도 참신했고요. 

하스노와 이구치가 좁은 은신처 공간에서 강도 일당을 하나씩 제압해 나가는 장면도 긴장감과 함께 재미를 전해 줍니다. 제한된 환경 안에서 도구를 활용해 열세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은 영화 "나홀로 집에"를 연상케 하고요. 

하지만 동기에 대한 설득력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범인들이 유괴를 실행한 이유는 위조지폐의 출처가 드러나면서 은신처가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리에를 살해했고, 일본을 떠날 계획까지 세운 상황에서 굳이 유괴라는 위험한 수를 둘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강도 경험이 풍부한 일당이 원래 방식대로 범행을 저지르고 돈을 마련해 떠나게 더 자연스러운 선택이니까요. 
아울러, 위조지폐를 만들어 돈을 숨겼다는 것도 참신하지만 설득력이 낮습니다. 

또한, 범인 일당이 두 패로 나뉘어 있었고, 아키야마가 만다를 살해한 뒤 미네코가 범인인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이미 돈을 확보한 상황에서 만다 일당을 제거하려 했다면, 더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와 활극은 인상적인 부분이 있지만, 범행 동기와 일부 전개는 여전히 무리수가 많아 감점합니다.

"하루미 씨의 외국 편지" 

이구치와 하스노는 은인인 하루노 사장을 만났다. 하루노 사장은 하스노에게,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도착한 프랑스어 편지를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그는 자신과 자매 사이였던 세 명의 여자가 얽힌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하스노는 과거를 조사하여 편지에 담긴 진실을 밝혀낸다.

이 작품은 앞선 단편들과는 결이 다른, 잔잔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지닌 일상계 힐링물입니다. 사람 사이의 은혜와 보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 인상적이네요. 하루노 사장이 겪은 삶의 굴곡 — 처음 교제했던 하루미의 사고사, 이어 그녀의 여동생 쓰키요와의 결혼, 그리고 다시 쓰키요의 여동생 야요이와의 결혼 — 은 자칫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설득력있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하루미를 구하려다 불구가 되어버린 프랑스인 샹플랭에게 하루미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하루미의 동생들이 하루미의 삶을 대신 살아갔다는 이야기인데 아주 그럴싸했습니다. 다이쇼 시대라면 더욱 '보은'에 신경썼으리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루노 사장이 쓰키요 사후 겪었던 도난 사건은 야요이와 결혼하려는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추리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역할을 해 줍니다.

다만, 아무리 보은이라도 일생을 바쳐 편지를 보냈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죽기 직전까지 야요이가 하루미인 척하며 샹플랭에게 편지를 썼다는건 감동적이기보다는 억지로 보였고요. 야요이가 하루노 사장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를 조금 더 뚜렷하게 드러냈더라면 감정선이 훨씬 명확해졌을 겁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따뜻한 이야기와 독특한 진상 설정은 좋았어요. 마무리만 여운을 남겨주었더라면 더 좋은 점수를 주었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미쓰카와마루호의 요사스러운 만찬"

전쟁통에 돈을 번 졸부 히로카와는 '흑조회'라는 괴상한 회합을 열어 왔는데, 이번에는 화물선 미쓰카와마루호에서 호랑이를 요리해 먹기로 했다. 만찬 직전에 고용인 데루에는 손님 미나미의 처참하게 훼손된 시체를 발견하고 히로카와에게 알렸지만, 사체는 사라졌고 히로카와는 이를 함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데루에는 하스노 일행에게 사실을 고백했고, 이들은 함께 배 안을 재조사해 나갔다. 

그들은 미나미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던 신문기자로, 손님 중 누군가를 체포하려다 오히려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또 다른 손님 히라이가 살해된 후 하스노는 히라이의 시체 유기 방식을 단서로 삼아 범인을 밝혀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수수께끼 풀이의 정석을 따르는 정통 추리물로서의 재미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스노와 독자 모두에게 동일한 단서가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호랑이가 있는 창고를 여는 열쇠 주머니를 옮길 수 있었던 인물, 그리고 사체를 끌어올릴 수 있는 쇠밧줄의 위치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 진범이라는건 독자들도 모두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의미해 보였던 요소들이 모두 퍼즐의 일부였다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예를 들어, 미나미의 시신에서 살덩이를 베어낸 행위는 단순히 연쇄살인의 특징으로 여겨졌지만, 실은 그것으로 호랑이를 유인해 창고 안 석탄 자루를 꺼내기 위한 장치였거든요. 배라는 폐쇄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사건 전개와, 배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비들을 트릭과 연결시킨 설정은 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빛을 발하고요.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밝혀지는 구리야마의 의도 — 승객 전원을 살해한 뒤 인육으로 식량을 조달하며 도주할 계획이었다는 설정 — 는 작품에 섬뜩한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화가 이구치와 그의 친구 오쓰키가 나누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대화도 이 작품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입니다. 여성 시신을 훼손해 예술품처럼 연출한 범인을 예술가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이구치는 '예술은 완전히 무의미하면서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오쓰키는 여성 시신을 훼손한 결과물이야말로 '무의미하고 가치있는 물품'이라서 예술일 수 있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구치는 성적 욕구 때문에 이렇게 저지른거라면, 배가 고파서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만든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고 대꾸하지요. 목적이 있는건 예술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요. 그리고 성욕과 외설과 예술과의 관계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끝나기는 다소 아깝다 싶을 정도로 괜찮았습니다. 아예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리야마의 범행 계획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전원을 한꺼번에 죽이려 했다는 설정은 독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인육을 식량으로 삼으려는 계획과는 모순됩니다. 굳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었는지도 설명이 부족해요. 추리적으로는 공정함 측면에서는 완벽하지만, 이 탓에 범인을 특정하기 쉬워진다는 약점도 존재하고요. 

아울러 전반적으로 묘사가 장황하게 이어지는 구간이 많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밀도에 비해 분량이 과도하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완벽한 구성과 재미있는 주제의 대화는 돋보이지만, 범인의 계획과 이야기 구성의 일부는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보석 도둑과 괘종시계"

이구치는 집에서 괘종 시계를 도난당하고 친구 하스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최근 주변에서 일어난 루비 도난 사건과 이 사건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 전말을 들려주었다. 하스노는 이구치의 설명을 바탕으로 관계자들을 만난 뒤, 치밀한 추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전작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사건이 펼쳐지는 작품으로, 장점이라면 많은 수수께기가 등장한다는 겁니다. 첫째, 범인은 어떻게 이구치가 철저히 숨겨놓았던 괘종시계의 위치를 알 수 있었는가? 둘째, 범인은 어떻게 미쓰에의 드레스 세 벌 중 진짜 루비가 달린 드레스만을 알아냈는가? 셋째, 수많은 꾸러미 중 어떻게 루비 팔찌가 들어 있는 꾸러미만 골라서 훔쳐낼 수 있었는가?인데 마치 불가능 범죄처럼 보이지만, 모두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트릭이 밝혀지며 독자에게 추리의 쾌감을 선사합니다.

가장 인상 깊은 트릭은 루비 팔찌를 훔친 방식입니다. 범인은 팔찌가 들어 있는 상자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자 하나만 강제로 열린 것처럼 만들어 미쓰에의 눈에 띄게 했습니다. 이를 보고 미쓰에는 팔찌가 도난당했다고 착각했고요. 이후 고리짝 안에서 상자가 담긴 귤색 꾸러미가 사라졌다고 매니저 미즈타니가 보고했으니, 결국 그가 범인이라는 결론까지 깔끔하게 이어집니다.

또한 이전 단편에서 등장했던 괘종시계나 인물 미네코가 다시 등장해 연작의 흐름을 이어가는 느낌도 좋습니다. 단편집 안에서 세계관이 공유되는건 확실히 읽는 재미를 더해주니까요.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괘종 시계를 발견한 방법입니다. 옷본을 찾다 우연히 시계를 발견했다는게 진상이라 시시했어요.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고요. 거대한 시계를 훔치는 것 보다 루비만 떼어가는게 빨랐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드레스에 달린 진짜 루비를 판별한 트릭도 역시 완성도가 부족합니다. 해당 드레스만 기장을 늘렸다는 트릭이 핵심인데, 범인이 옷본을 바꿔치기한 방법이나 드레스 수선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무엇보다 범행 동기가 약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범인 미즈타니는 대신 보관하던 귀중한 루비를 가문 장남이 팔아치워서 루비를 훔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비의 디자인과 크기까지 완전히 똑같지 않다면, 단순히 같은 보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진짜 루비만 골라 훔친 이유도 불명확해요. 겉으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면, 가짜 루비로 대신해도 되잖아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수수께끼와 트릭의 구성은 기발했지만, 동기와 설정 면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해 완성도를 떨어뜨립니다.

2020/05/10

깃털 도둑 - 커크 월리스 존슨 / 박선영 : 별점 3점

깃털 도둑 - 6점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흐름출판

이라크 난민 재정착을 돕던 조정돤 커크 월리스 존슨은 휴가 차 뉴멕시코 북부에서 플라이 낚시를 즐기다가 놀라운 도난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다. 2009년 6월, 미국인 에드윈 리스트가 플라이 제작용 희귀 깃털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트링 박물관의 희귀 조류 컬렉션 260점을 훔쳐낸 사건이었다.

트링 박물관의 희귀 조류 컬렉션 도난 사건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극락조로 대표되는 희귀 조류 탐사, 그리고 희귀 조류 깃털 시장에 대한 배경 설명으로 시작한 이후, 미국인 청년 에드윈 리스트 이야기와 저자 커크 월리스 존슨의 추적기를 나누어 소개해 줍니다.

에드윈 리스트 이야기에서는 한 미국 청년의 생애를 디테일하게 그려냅니다. 홈 스쿨링을 통해 이런저런 교육을 받은 영재로,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때문에 플라이 제작에 빠져들어 그 세계에서 유명해지는 과정이 첫 번째입니다. "플라이 타잉의 미래" 라고 불릴 정도였다니 말 다했지요. 그리고 희귀 깃털의 매력에 사로잡힌 나머지 박물관을 털어 조류 표본을 손에 넣은 후, 그것을 팔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두 번째입니다. 이 두 번째 부분이 핵심인데 한 편의 잘 짜여진 범죄 수사물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트링 박물관의 허술한 방범 체제 덕분이기도 했지만,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다윈이나 오듀본의 표본, 컬렉션이 아니라 평소에는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는 "깃털이 화려한 조류 표본" 을 훔쳐낸 덕에 도난 사실이 늦게 발견되었으며, 때문에 동기도 파악이 어려워 체포까지 500여일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거든요. 소수의 매니아들에 의해서만 거액이 오가는 틈새 시장이라 일반인들은 쉽게 인지하지 못했다는(물론 에드윈이 의도한건 아니었습니다만) 기발함에 무릎을 쳤습니다. 도서관에 누군가 침입했지만, 가장 중요한 장서는 무사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알고보니 도둑은 절판된 만화를 노린 것이었다는 상황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네요. 바로 얼마전 읽은 "머드맨"은 1, 2권 합쳐 10만원 정도에 중고 가격이 형성되어 있거든요. 물론 에드윈이 훔쳐낸 새 깃털은 훨씬 비싸긴 합니다만.

그러나 이후 에드윈이 아스퍼거 병 진단을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조류 표본도 60여마리는 결국 회수하지 못했다는 후일담과, 바로 이어지는 커크 월리스 존슨의 추적기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잃어버린 60여마리의 회수는 약간의 단서도 찾지 못한채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깃털을 추적하면서 만나는 플라이 타이어들의 뻔뻔함은 짜증만 불러 일으킵니다. 대체로 '박물관에서 캐비닛에 귀한 깃털을 처박아 놓느니, 그걸 유용하게 쓰는게 낫다' 라는 논리인데, 컬렉션을 만들고 보존하며, 다양한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몰상식한 발언인데다가, 최소한 이걸 훔쳐내어 영리 목적으로 활용하는 인간들이 할 말은 아닙니다. 이렇게 플라이 타이어들이 워낙 뻔뻔한 탓에 희귀 깃털 시장도 없애지 못한다는 현재는 더욱 씁쓸하고요. 에드윈에게 이용당한걸 알고 개과천선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깃털만 사용하는 롱 응우옌같은 플라이 타이어가 많아지면 좋겠지만, 기대하기 힘들테니 이런 범죄도 아동 성범죄처럼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깃털 뿐 아니라 희귀 동물에 대한 범죄 모두에 대해서 말이죠.

또 이런 명백한 절도 행각이 정신 감정 덕분에 집행유예를 받는건 황당했습니다. 에드윈은 범행을 오래전부터 계획했으며, 훔쳐낸 조류를 해체하여 값나가는 깃털을 이베이 등에서 팔아 거액을 손에 넣습니다. 계획된 범행에다가 충분한 영리 목적이 있었던거지요. 그러나 에드윈을 달랑 몇 시간 인터뷰한 전문가가 - 코미디언 사챠 배런 코언의 사촌이라는 - "돈이 목적이 아니었고, 사회적인 규범을 따르기 힘들어 법적인 면에서 취약한 상태였다"라며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도 판정했다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사회적 규범을 따르기 힘들면 더더욱 격리시켜야지 이게 뭐하자는 이야기랍니까?
게다가 사건을 수사했건 경찰과 박물관 모두 회수하지 못한 조류 컬렉션을 포기한 것도 까닭을 잘 모르겠습니다. "수사는 종결되었고, 그건 내 일이 아니다"라는 논리인데,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문제는 이게 깃털이 예쁜 새가 아니라, 정말 인류사에 중요한 유물이었어도 이 작자들은 이렇게 행동했을게 뻔해 보인다는 겁니다. 코로나 등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선진국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 역시 한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후반부는 에드윈의 범죄 행각을 다룬 전반부에 비하면 재미와 가치가 덜합니다. 그나마 후반부에서 흥미로왔던건 에드윈과의 인터뷰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놈도 정신 못 차리고 자기 변명과 비슷한 논리로 일관해서 화를 돋울 뿐이에요.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님을 증명하는 행동들은 덤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전반부는 압도적으로 재미있습니다. 잘 모르는 신기한 세계와 전대미문의 기묘한 범죄에 대해 알게 된 기쁨도 굉장히 컸고요. 전반부만 별점을 준다면 4점이상도 충분합니다. 후반부가 다 깍아 먹어서 문제지... 그래도 범죄 관련 논픽션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여, 책에서도 등장한 플라이타이 커뮤니티 소개해드립니다. http://www.classicflytying.com/ 입니다. 방문하시면 플라이타이가 무엇인지, 이해하실 수 있으실겁니다.

2025/02/07

붉은 박물관 -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 별점 2점

붉은 박물관 - 4점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사 1과의 데라다 사토시 경사는 수사 중 실수를 저질러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붉은 박물관)으로 좌천되었다. 그곳은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일정 기간 경과 후 관할 경찰서에서 받아와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하여 향후 수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곳이었다.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수집된 미해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고, 데라다에게 직접 수사를 맡겨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정통 본격 추리 단편집. '붉은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안락의자 탐정으로, 기존 수사 기록과 데라다를 시켜 모은 정보로 미해결 사건을 추리해 낸다는 내용입니다. 모두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가 발표되었을 정도로 인기작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래 전 미해결 사건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부서에서 사건을 추리한다는 설정은 로이 비커즈의 "미궁과 사건부"와 똑같습니다. 딕슨 카의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과도 비슷하고요.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장르 성격도 동일합니다. 수록작들 모두 어느 정도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탐정이 독자들과 똑같이 단서를 제공받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인 덕분입니다. 덕분에 독자도 탐정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추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급해드린 고전 명작 수준은 아닙니다. 대부분 작품 속 트릭이나 범행 동기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고, 억지스러운게 많은 탓이 큽니다. 트릭도 5편 중 한 편("죽음에 이르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A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아니었다.'같은 사람 바꿔치기일 뿐이고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도 작위적이거나 우연에 기반한게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캐릭터들도 영 별로입니다. 탐정역인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일본 컨텐츠에 나오는 쿨 뷰티 안경녀의 전형으로, 생생함을 느끼기 힘든 인물이었습니다. 열혈도 아니고, 사명감도 딱히 없어 보이는 미지근한 초식남 데라다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을 다시 불러온 의욕은 좋았지만, 완성도는 고전 걸작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빵의 몸값

1998년 2월 일어났던 나카지마 제빵 사장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사장은 빵에 바늘을 집어넣은 범인에게 1억엔을 건네주려다 살해당했다. 밖에서 숨어있던 경찰들은, 현장인 저택 내부 방공호의 존재를 몰라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현장인 폐허로 들어갔던건 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위해 차 안에 숨어있던 경찰 도리이였습니다. 그는 출발할 때 차고에서 가발과 안경, 마스크를 착용하여 사장으로 변장했고, 차 안에서는 1인 2역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사장으로 폐가에 들어간 뒤, 변장을 풀고 수사관인척 나타났고요.
사장이 다른 사람을 살해할 때의 알리바이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는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사망케 했는데, 함께 있던 야스다가 자수하려고 해서 죽이려고 했던거지요. 하지만 사장은 야스다에게 반격당해서 죽어버렸고, 이 사실을 들은 도리이는 사장인 척 연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 경부가 바뀌었다는 트릭은 나쁘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 - 협박범에게 돈을 건네주기 위해 이동하던 - 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대부분 억지스럽습니다. 경찰이 뺑소니 사망 사고를 일으킨걸 숨기려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공범자 중 한 명을 죽이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무려 1억엔의 돈이 걸린 협박 사건을 꾸며냈다? 알리바이는 경찰인 도리이 경부가 거짓말로라도 증명해주면 됩니다. 이런 거대한 사건을 꾸며낼 이유가 없어요. 그야말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허무맹랑한 설정 놀음일 뿐입니다.

트릭도 운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저택 안에 방공호가 없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야스다가 자살같은 사고사를 당하지 않았더라면요? 여러모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보이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일기

데라다 사토시는 1993년 9월 하치오지시 살인 사건 범인 다카미 교이치의 일기를 읽었다. '헤어졌던 애인 마이코가 살해당했다. 나는 몇 가지 단서를 토대로 범인이 오쿠무라 교수라고 추리했고, 교수와 담판을 짓던 끝에 그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일기장은 도둑맞았었는데 도둑이 경찰에 신고했고, 다카미는 출동한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히이로 사에코는 일기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챈 뒤, 데라다 사토시에게 재수사를 명령했다. 데라다는 명령대로 마이코의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 오쿠무라 교수 살해 당시 알리바이를 물었다...

히이로 사에코가 일기에서 포착했던 '이상한 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꽤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웠음에도 흉기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의 페이퍼 나이프를 쓴건 확실히 이상했어요. 에어컨을 껐다는 묘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체가 일기 내용대로 범행 뒤 무더위 속에 방치되었던게 아니라, 시원한 실내에 놓여 있었다면 사망 시각은 훨씬 이전이 될 테지요. 

결론적으로, 오쿠무라 교수는 일기보다 이전에 살해당했습니다. 오쿠무라가 일기를 조작하여 경찰에 보내면서까지 진범을 자처했던건, 진범이 마이코였기 때문이고요. 이틀의 시차를 둔 건, 마이코의 알리바이(이미 사망했음)를 확실하게 만들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야 낙후되었다 하더라도, 90년대 과학 수사가 무려 이틀 이상의 사망 시각 차이를 밝혀내지 못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운에 의지하고 있는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마이코 자살 사체가 발견되기 전, 다카미가 마이코의 집을 방문했다는걸 아무도 몰랐고, 하숙집에서 가짜 도둑 소동을 일으켰을 때에도 들키지 않았고, 오쿠무라 집의 에어컨 조작을 들키지 않은 것 등은 모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에어컨 조작의 경우, 전기 사용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데라다 사토시는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피해자 도모베 요시오가 사망하기 직전에, 25년 전 교환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들었다. 조사해보니 실제로 25년 전,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확실하여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들이 있었다...

교환 살인을 소재로 한 작품은 흔한데("낯선 승객"), 데라다 사토시에게 죄를 고백한 도모베 요시오는 가짜였고, 도모베 마사요시 살인 사건의 진짜 청부인도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아내 마키코였다는 바꿔치기 트릭이 합쳐져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작품입니다. 마키코는 가짜 도모베 요시오인 사이토 아키히코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범행을 모의했습니다. 마키코는 2년 전 도모베 요시오를 살해한 뒤, 사이토 아키히코를 대역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데라다가 들은건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사이토 아키히코의 고백이었기 때문에, 25년 전 사건 조사를 할 때 혼돈을 일으켰던 것이고요.

진상을 드러내는 추리 과정도 매끄럽고, 단서 제공도 가짜 도모베 요시오의 면허 취득 기간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운전 실력, 폐업 후 지방으로 내려간 상황, 근육질인 마키코의 체형(그래서 25년 전 여성 한 명을 살해하기 용이했다) 등 과할 정도로 제공됩니다. 

때마침 데라다 앞에서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마침 피해자가 경찰에게 지은 죄를 고백한다는  상황은 작위적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통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

사진작가 에미리는 21년 전 부모와 이모를 잃었다. 세 명은 청산가리로 독살당했고, 집과 사체는 범인이 지른 불로 전소해버렸다. 이모의 연인이라는 남자 소행으로 보였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다. 사건에 대한 글을 잡지에서 읽은 히이로 사에코는 데라다에게 에미리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시했다. 

에미리의 친모 도모코는 친모가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동생 아키코가 불륜을 저질러 에미리가 태어났지요. 그런데 둘 사이에 또 애가 생기자 복수심에 범행을 저질렀던게 진상입니다. 에미리를 임신했을 때와 겹쳤던 아키코의 유학 및 실종 기간, 아키코의 애인 이야기는 도모코의 말 뿐이었다는 것, 도모코는 연장 보육 제도 이용도 고려했다는 등의 단서 및 이를 통한 추리도 깔끔합니다. 사건의 동기도 끔찍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요. 수록작 중에서는 범행 동기와 과정만큼은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증거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했다기 보다는, 그나마 말이 되는 추리를 추가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추리 퀴즈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질문

26년 전 발견되었던 피살체와 똑같은 상태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26년 전 사건의 피해자와 연령이 같았고, 사망 추정 시각 및 사체 유기 현장도 똑같았으며 심지어 흉기마저 일치했다. 이번에도 피해자 스웨터 소매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수사 1과는 동일범의 소행이라 여겨 자료관에서 26년 전 자료를 가져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사관이 범인일 수 있다는 감사팀의 지시를 받아 데라다는 홀로 사건 수사에 나섰다...

범인은 기자 후지노 준코였습니다. 그녀는 2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후쿠다 도미오를 살해했습니다. 후쿠다 도미오 소매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피였습니다. 준코를 학대하던 아버지는 후쿠다를 끌어들였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려 입을 다물게 되었고요.
그리고 26년 후,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친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소매의 피는 DNA 조사를 할 테고, 이를 통해 가족 관계가 드러날걸 노렸던 겁니다. 

이를 드러내는 '26년 전 피가 묻었던 소매와 지금 피가 묻은 소매의 위치가 다르다'는 단서도 좋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어느 쪽 소매에 피가 묻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아서, 범인은 이를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팀 생각대로 수사팀 관계자가 범인이었다면, 26년 전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을테니 위치를 틀렸을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범인은? 피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를 입수할 수 있는건 보도 관계자일테고, 관련되어 질문을 하는 관계자가 범인일거라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영 별로입니다. 비약이 심한 탓입니다. 보도 관계자가 범인일 수는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널려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DNA 분석 요원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기자회견을 맡는 수사관이 아닌 경찰 직원이라던가... 기자 회견장에서 후지노 준코가 DNA 조사를 물어본 것도 작위적이었습니다.

추리 과정보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동기와 범행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DNA가 범행 당시 핏자욱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자수하고 그 증거로 혈흔이 아버지 것이라는걸 증명하는게 훨씬 간단한 해결책입니다. 억지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인 '정통 본격 추리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망작입니다.

2015/03/17

던전 밥 1- 쿠이 료코 : 별점 4점

던전밥 1 - 8점
구이 료코 지음, 김완 옮김/㈜소미미디어

던전 심층부에서 드래곤과 승부를 벌이다가 간신히 탈출한 주인공 라이오스 일행은 곧바로 던전에 복귀했다. 그들을 구하고 드래곤에게 잡혀버린 여동생 파린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짐을 잃어버려 곤경에 처했다. 그래서 식비를 줄이기 위해 라이오스는 던전 내의 마물들을 사냥해 먹자고 제안하는데!

쿠이 료코의 만화. 일전에 "서랍 속 테라리움"을 재미있게 읽어서 바로 구입해 본 작품입니다.

전사, 드워프, 엘프, 도둑(열쇠사)으로 이루어진 파티가 던전을 공략한다는 점과 기본 세계관은 이제는 상식처럼 되어버린 전형적인 RPG 판타지의 룰과 설정을 따릅니다. 하지만 이들이 마물을 사냥해 먹는 이야기를 요리 만화 스타일로 풀어낸다는 아이디어가 탁월했습니다. 재료가 되는 마물들과 요리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돋보였고요.

어떻게 보면 뻔한 판타지와 뻔한 요리 만화의 결합인데, 서로의 장점과 재미를 극대화시켰기에 단순히 구루메 만화 붐에 편승한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장르라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판타지 세계에 어울리는 식재료와 요리를 정말로 있음직하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 재미있지만 그중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에피소드를 꼽자면,

첫 번째는 만드레이크와 바실리스크의 알로 만든 오믈렛 이야기입니다. 만드레이크를 채취할 때 비명을 들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드워프 전사 센시는 소리를 지르기 전에 목을 베어버리는 방식으로 채취해서 멀쩡하죠. 그러나 엘프 마법사 마르실은 책에서 배운 대로 개와 연결된 밧줄로 만드레이크를 묶고 개를 달리게 해 채취하는 방법(그리고 개는 죽게 되는)을 쓰고자 합니다. 던전에는 개가 없으므로 박쥐 마물을 대신 사용해서요. 자신이 파티의 짐 같은 존재로 여겨져, 파티에 기여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탓입니다.

하지만 박쥐가 폭주하면서 되려 죽을 뻔하게 되고, 더 큰 실의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때 드워프 전사 센시가 바실리스크의 알에 만드레이크를 섞어 만든 오믈렛을 맛보고, "비명을 지른 쪽"이 더 맛있다고 인정하면서 훈훈한 결말을 맺습니다. 센시가 마르실에게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는 만드레이크의 머리 부분을 특별히 챙겨주며 마무리되고요(이건 정말 만화를 봐야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는 움직이는 갑옷 에피소드입니다. 이 이야기는 요리보다는 판타지 설정 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움직이는 갑옷이 실제로는 갑옷처럼 생긴 일종의 조개라는 설정은 정말 기발하더군요.

게다가 주역 캐릭터들도 전사 - 엘프 - 드워프 - 도둑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기는 하지만, 약간의 개성을 더해 각자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에피소드마다 번갈아가며 주역을 맡는 방식으로 비중 배분도 확실해서 좋았습니다. 쿠이 료코의 뛰어난 작화와 독특한 개그 센스 역시 더할 나위 없습니다.

동어 반복적인 요소가 조금 있으며, "죽음"을 가볍게 다루는 설정(죽어도 마법으로 소생 가능하다는 설정)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이세계 구루메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신경지를 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4점. 판타지와 구루메, 요리 만화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21/05/05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1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1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도 40권을 넘어섰네요. 이번 권에는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록된 이야기 모두가 설득력 측면에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C.M.B의 또다른 매력인 현학적인 정보 제공 측면에서도 건질게 많지 않고요. 그래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운영위원" 

신라와 타츠키가 학교 운영위원을 맡은 날, 원예부원들은 이사장이 지시했던 화단과 백엽상 철거에 반대하며 철거업자와 대치했고, 화장실 변기가 막혔고, 학교 입구가 진흙 발자욱으로 지저분해졌고, 요코아리가 식사용 빵을 도둑맞는 등 학교 안에서 여러가지 사고와 문제가 잇달아 일어났다. 원예부가 화단 철거를 막은 이유였던, 원예부 아이돌 소녀가 맡긴 씨앗의 정체는 신라가 밝혀낸다. 그러나 검역 문제로 결국 철거가 수포로 돌아가자, 철거업자는 항의하는데...

신라는 철거업자 중 한 명이 학교에 있는 고가의 그림을 훔치기 위해 잠입해 있었다고 추리합니다. 진흙발로 학교로 들어와 변기를 일부러 막았던 거지요. 사용금지 팻말이 붙은 화장실 안에 숨어 있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요코아리의 빵은 먹으려고 훔쳤고요. 이렇게 별 거 아닌 걸로 보였던 디테일이 모여서,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는 꽤 볼만합니다.

그러나 원예부 소동은 예상할 수 없었기에, 이를 도둑과 엮는건 무리입니다. 애초에 무언가를 훔치려면, 소동이 일어난 날이 아니라 다른 날을 선택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오스트리아에서 허가받지 않고 들여왔다는 씨앗의 검역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라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어요. 

이렇게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봉인의 기담" 

메이지 시대 화족 부나가와 가문의 별장은 과거 2명이 죽고, 1명이 실종된 탓에 봉인되어 유령이 나온다는 전설 때문에 '봉인장'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현재에 이르러 철거를 앞둔 봉인장은 기록을 위한 건설회사 조사가 시작되었고, 신라도 부나가와 당주의 부탁으로 조사에 참여했다. 

지하에서 죄인을 가두어두는 시설을 발견한 조사팀은 비싼 장비를 이 안에 넣고 휴식을 취했지만, 잠든 과장을 제외한 조사팀원은 차례로 습격받은 뒤 장비마저 도난당하는데...

봉인장 지하의 '치도리 격자'라는 독특한 감옥 구조를 이용해서 탈출구를 만드는 설정은 재미있었습니다. CMB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를 잘 살리고 있어요.

그러나 다른 내용은 별로였습니다. 동기에 큰 문제가 있는 탓입니다. 특히 이렇게 용의자가 제한적인 상황에서까지 도둑질을 할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과장은 잠들어 있었고, 장비를 잃어버리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편의점에 심부름을 갔던 직원은 영수증이라는 증거가 명확하고요. 이 둘을 제외하면 용의자는 세 명에 불과해요. 이 정도라면 당장은 빠져나갈 수 있더라도 장치를 회수하거나,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드러났을겁니다. 

신라의 추리도 빈약합니다. 범인만이 얻어맞고 기절한 쿠로마츠라는 직원이 어디있는지 알 수 있었다는 증거가 대표적이에요.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었잖아요? 때문에 격자에서 지문을 채취한다던가 하는 보강은 필요했습니다. 

전개도 문제가 많습니다. 초반에는 과거 봉인장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지만, 이 역시 치도리 격자 구조를 이용해서 일으켰던 거라고 짤막하게 언급될 뿐입니다. 이래서야 '봉인장' 어쩌구 하면서 거창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하마구리 가 사람들" 

경찰서에서 나오던 신라와 타츠키에게 하마구리 가 사람들이 자신들 아버지에 관련된 사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도내에 맨션 여러 채를 가지고 있는 부자 아버지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이웃집에 사는 수수께끼의 여자 마야에게 홀려 요가 강습료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현금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경찰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방관했지만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사라졌고, 타츠키와 하마구리 가 사람들은 미행을 통해 마야가 다치가와류라는 기묘한 불교 분파 수행자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 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는 유서를 남긴 채 하마구리 기치사부로가 시체로 발견되자, 유족은 경찰에게 책임을 물었고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기치사부로의 죽음을 사고사로 처리하는데....

신라가 추리한 사건의 진상은, 이 사건은 하마구리 가 사람들의 조작이라는 겁니다. 기치사부로가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으로 죽게 된게 이유였어요. 상속 확정까지는 기치사부로의 계좌가 동결처리되어 돈을 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치사부로의 돈으로만 먹고 살던 기생충들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사망 확인을 최대한 늦추면서, 서둘러 계좌 속 돈을 현금화한겁니다. 거액을 인출한걸 설명하기 위해서, 아버지가 여자에게 속아 돈을 건넸다는 이야기를 만든거지요.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핏빗(?)을 스마트폰에 동기화시키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치사부로가 매일 1만보 걷기 등을 실천하던 사람이라, 어느 시점에서 움직이지 않았는지가 동기화를 통해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떼어 놓을 수야 있겠지만, 이전 이력과 비교하면 이상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을테니, 확실한 증거는 아니더라도 참고 이상으로는 충분히 쓰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웨어러블 장치가 일상회된 현재라면 말이지요.

하지만 하마구리 가 사람들의 조작은 거창하기만 할 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수상한 옆집 여자 마야에게 현금을 주더라, 정도로 끝내는게 합리적이었어요. 돈을 건네 주다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는건 별로 이상하지 않잖아요? 사이비 종교를 엮어서 구원 어쩌구 하는 이유를 들먹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외려 다치가와 류는 살아있는 채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신라에게 의심을 사고 말았을 뿐입니다. 경찰도 아니고, 경찰 관계자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 신라와 타츠키에게까지 사건을 이야기할 이유도 딱히 없었고요. 

설명도 부족합니다. 기차사부로의 사체를 어디에 보관했는지부터가 애매해요. 부검에서 사망 추정시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경찰에 신고하며 소동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1주일 이상은 걸렸을 거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설득력만 높여 주었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돌과 사진" 

마추피추 유적에서 스페인 여성 관광객 알마가 낙석에 맞아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뒤 잉카의 저주라는 소문이 퍼졌다. 피해자가 잉카를 정복했던 스페인인이었고, 낙석은 다른 돌로 가로막혀 떨어질 수 없었던 위치에 놓여 있었던 탓이었다.

살인의 동기가 인스타그램일 수 있다는 전개는 꽤 시의적절했습니다. 피해자가 친구들 사진 아이디어를 도용해 사진을 올리고, 그걸로 인기를 얻었다는 내용이거든요. 물론 결정적인 동기는 따로 있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인스타그램 관련 내용 외의 모든 것입니다. 돌이 떨어진 진상부터가 허무하고 유치했어요. 가로막고 있던 돌을 피해서 굴린 뒤 피해자에게 떨어트린게 전부거든요. 밑에 굴리기 쉽게 태피스트리를 깔았다는데, 이건 트릭도 뭐도 아닙니다. 증거인 유리 구슬 파편도 너무 쉽게 드러나고요. 상식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낙석이 일어난 것으로 위장하는게 당연합니다. 이렇게 억지로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다른 친구 두 명이 범인 엘자가 위로 올라가 돌을 떨어트린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4/06/10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2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24권 리뷰입니다. 최신권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25권이 나와있네요.

여튼, 24권에는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잔잔한 일상계 없이 네편 모두 사람이 죽는 등 심각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점은 동시기 발표된 "Q.E.D 45"와 같군요. 작업 당시 작가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고보니 수록작 2편의 "Q.E.D", 3~4편의 "C.M.B"로 목차도 굳어져가는 느낌이네요.

전체 별점은 반올림해서 2.5점. 두편은 괜찮고 두편은 평범했습니다.

상세한 에피소드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니쇼테이"

"니쇼테이"라는 실존했던 기묘한 건축물을 재현하는 괴짜에 대한 이야기. 진상은 과거 있었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였는지를 밝히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니쇼테이를 재건하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아서 본 줄거리와 그렇게 잘 연결된다고 볼 수 없고 내용도 작위적인 부분이 한가득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니쇼테이 재건은 단지 "돈을 물쓰듯 쓰는" 행동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라도 상관없는 것이니 별 관계도 없고, 진범이라는 이모부부가 구태여 그 건축물안에서 여보란듯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당쵀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니쇼테이라는 건축물에 대해 접한 작가가 기묘한 부분이 좋아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야기를 잘 마무리 짓지 못한 느낌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이상의 독특한 시를 주제로 추리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까지는 좋았으나 그 결과물은 실제 시와는 유기적으로, 논리적으로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희대의 졸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 떠오릅니다.

그래도 아예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니쇼테이는 지금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영화 세트"로 허가를 받았다는 것을 추리해내어 곁가지 진상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 하나만큼은 괜찮았고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의 전달 측면에서도 니쇼테이라는 건축물을 알게 해 주었다는 점은 좋았으니까요. 관심이 생겨서 자료를 조금 찾아보았는데 확실히 신기하긴 하군요.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충분히 나올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여튼, 별점은 2점입니다.

"다이아몬드 도둑"

미술관에서 사라진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찾는 이야기. 도둑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전개도 깔끔하고 진상도 그럴듯합니다. 마지막에 진범이 새롭게 드러나는 반전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신라가 진범을 깨닫게 되는 사소한 범인의 실수가 저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더군요. 자포자기를 했을 수도 있고 다른 경로로 명확하게 진품이 아니라는 정보를 이미 입수한 상태일 수도 있는데 너무 지레짐작이 심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확실히 깔끔해서 이번 권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을 만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레이스"

아버지와 삼촌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내용만 놓고보면 추리물로 보기 어려운,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딱히 재미가 없어요. 막장드라마의 제국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 정도야 뭐 장난 수준이니까요. 총을 쏘았던 경비원의 증언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너무나도 쉬운 전개라는 것도 불만이고요,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평균 이하의 졸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옷장 속의 유령"

C.M.B가 아닌 M.A.U로 제목이 달려있는, '암시장의 마녀' 마우가 주인공인 사건목록 번외편입니다. 마우가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강령회 도중 쇠사슬로 묶인 옷장 안에서 영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지요. 

조작된 랩소리라던가 강령회에서 들려왔던 유령의 목소리, 어떻게 밀실과 같은 옷장 문을 열었는지 등 트릭만큼은 풍성합니다. 대저택, 강령회, 밀실 등의 고전적인 설정과도 잘 맞물려 있어서 고전 본격물을 즐기는 기분이 들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괜찮았어요. 구태여 이런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설정상의 헛점과 랩소리, 빗을 이용한 유령 목소리 등이 실제 가능했을지와 같은 장치 트릭의 문제점까지도 고전적이라 저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마우를 주인공으로 또 스핀오프를 벌려놓느냐는 겁니다. 솔직히 마우라는 캐릭터는 너무 만화적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지요. 차라리 타츠키를 더욱 잘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이래서야 진히로인은 마우라고 해도 할말 없겠어요.
게다가 이 작품에서 마우의 활약은 나쁘지는 않지만 "고전적"이라는 설정에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니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토마가 주인공이었으면 훨씬 나았을 거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4/08/21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 애거서 크리스티 / 황해선 : 별점 3점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해문출판사

네, 바로 이어서 또다른 단편집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을 읽었습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읽기는 했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어차피 단편집은 좋아하니 소장용으로 구입해도 괜찮다 싶어 구입하게 되었네요.

첫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은 크리스티 여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춰서 쓴 듯한 경쾌하고 유쾌한 단편입니다. 한 외국 왕자의 스캔들을 해결하기 위해 왕자가 도둑맞은 보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포와로가 도둑이 초대받았다는 영국 시골의 킹스 레이시 저택에 찾아가 레이시 가문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사건 자체가 살인사건이 아니라 소박하기도 하고, 아무도 죽지 않으며 악당만 손해보는 전형적인 권선징악형 스토리 구조로 이루어져 추리소설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포와로의 캐릭터도 잘 살아있어서 아주 유쾌하고요. 특히 아이들과 벌이는 두뇌게임(?)이 재미있습니다.
"완전범죄"형 사건이 아니라서 트릭이랄게 별로 없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별다른 사건과 트릭 없이 복잡한 복선들과 대화들만을 가지고 하나의 수준높은 단편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크리스티 여사의 거장으로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두번째 단편 "스페인 궤짝의 비밀"은 밀실에서의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퍼즐 미스터리 본격 추리물입니다.
리치 대령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 예정이다가 급한 일로 스코틀랜드로 가게되어 불참하게 된 클레이턴씨가 다음날 리치 대령의 집 거실에 놓여있는 스페인 궤짝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클레이턴 부인의 도움을 요청받은 포와로가 "회색의 뇌세포"를 이용하여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낸다는 내용이죠.
살인사건의 트릭 자체도 괜찮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레몬양의 캐릭터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사건의 해결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 라는 것 정도가 유일한 약점이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세번째 단편 "꿈"은 매일 특정시각에 자살하는 꿈을 꾸는 백만장자의 상담을 받은 포와로가 실제로 그 시간에 백만장자가 자살하게 되자 참고인으로 불려언 뒤,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포와로의 추리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죠.. 트릭 자체야 신선할게 없지만 독자와의 두뇌게임이 비교적 공정한 편이고 사건의 해결도 깔끔한 우수한 단편입니다. 역시나 별점은 3점.

마지막 작품 "그린쇼의 아방궁"은 마플양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입니다. 부유한 노부인 그린쇼 양의 의문의 살인사건을 현장 한번 방문하지 않고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만으로 진상을 짚어내는 마플양 특유의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죠. 다만 트릭면으로는 "꿈"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꿈"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린쇼 양의 의미없어 보이는 말들과 마플양의 사소한 주변 사건들이 결국 진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역시 명불허전이에요. 역시 별점은 3점입니다.

결론 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포와로와 마플양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정말 십년이상 된 듯 하고 그래서인지 트릭이나 내용이 모두 신선하게 느껴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해문측의 편집인지, 아니면 전집에서 원래 그렇게 편집을 했는지 전부 6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단편집이 4편만 실려있는 것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네요. 모처럼 크리스티 여사가 요리에 비유하며 소개글까지 써 놓았는데 2편이나 빠지다니... "패배한 개"는 이번에 단편집을 구입했지만 24마리의 검은 티티새때문에 "쥐덫"을 또 살 생각은 없으니 이빨을 맞추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2020/05/01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구리하라 유이치로 / 문승준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6점
구리하라 유이치로 엮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제목 그대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저런 곡들에 대해 해설해 주는 책입니다.
몇 년 전 "애프터 다크"를 읽었을 때, 이런저런 곡들이 무척 많이 소개되어 리뷰에 따로 적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이런 책이 나올 정도로 다른 작품 역시 많은 곡들이 쓰였네요. 하긴,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제목부터가 비틀즈의 곡 제목일 정도이니 당연하겠지요? 책은 1960년대적 가치관 소멸을 상징한다는 1980년대 이후의 음악들 (주로 팝), 록, , 클래식, 재즈의 5가지 장르로 하루키 작품 속 곡들을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는 곡 역시 그리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짤막한 해설들이 꽤 재미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는 작품, 아는 곡의 경우는 더욱 반갑더군요.

특히 좋았던건, 곡이 특별한 '상징'이나 '메타포'로 사용된 경우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이었습니다. 냇 킹 콜이 불렀다는 'South of border'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노래 속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멕시코'가 실재하지 않듯이, 이 노래를 냇 킹 콜이 부른 버젼도 실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지만 이상하게 현실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판타지를 상징한다는데 이 정보를 알고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부분은 팝 보다는 클래식, 재즈 쪽 소개에 많은 편입니다. 클래식은 저자의 전공 분야인듯 싶고, 재즈는 하루키가 소싯적, 재즈 카페를 운영했을 정도의 재즈 매니아인 덕분이겠지요.

특히 클래식은 곡 마다의 소개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비교적 긴 편이며 내용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일례로, "태엽갑는 새" 1부의 부제인 "도둑까치"를 통해, 까치의 장난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마지막에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오페라 "도둑까치"와 작품의 내용이 연결되며, 각 부마다의 부제 모두 해당되는 오페라와 일맥상통한다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단지 곡 뿐만이 아니라, 누가 연주했는지에 따라 각 버젼별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디테일도 아주 좋았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속 호시노가 듣고 반한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제 7번 대공"은 야샤 하이페츠 등 '백만불 트리오' 세 명이 조화따위는 무시하고 제멋대로 연주하는 버젼인데, 오시마 씨가 좋아하는건 앙상블에 주축을 둔 수크 트리오의 잘 정돈된 연주라는게 대표적이지요. 정말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네요.

재즈의 경우는 곡 자체보다는 그 곡의 발표된 배경이나 연주자의 특징 등 좀 더 깊고 디테일한 정보를 작품과 엮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깊이가 느껴집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A gal in calico'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하지 않은 1950년대 (1955년) 앨범의 유명하지 않은 곡으로,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배경인 1970년대에서는 이미 잊혀진 앨범입니다. 때문에 이 앨범을 찾는 '나'의 모습은 '나'의 허영심과, 1970년대 은퇴 선언 후 칩거에 들어간 마일스 데이비스의 모습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대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정말 작가의 의도인건지, 꿈보다 해몽이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은 참 좋네요. 저도 음식과 추리 소설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런 내용을 많이 담고 싶었습니다.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 외에도, 하루키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이런저런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하루키 작품에서 유독 많이 등장했다는 보비 다린이라는 가수는, 이 책에서 소개한 가정사가 아주 놀라왔어요. 키워준 어머니가 사실은 외할머니이고, 누나가 친어머니였다는데, 하드보일드 막장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설정이지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등 그 자신의 인생도 파란만장해서, 이 책에서 소개된 대표곡 'Beyond the sea'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게 당연하다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듀란듀란과 보이 조지에 대한 신랄한 비평 - 특히 "댄스 댄스 댄스"에서 '끔찍하다'의 대명사처럼 인용되었다니 - 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밴드이고, 특히 컬쳐 클럽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는 많이 들었던 곡이었기 때문이거든요. 진짜 팝 애호가라면 좋아하기 힘든 곡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신랄한 평을 들어야 할 밴드는 아닐텐데, 조금 슬펐습니다.

아는 가수와 곡으로는 밥 딜런, 비치 보이스 소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밥 딜런이야 시대의 총아였으니 그렇다 쳐도, 비치 보이스는 좀 의외죠? 비치 보이스의 최고 명반인 'Pet sounds'의 일본 소개 당시 야마시타 타츠로가 라이너 노트를 썼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싶네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공통점이 느껴진다며 시작된 소개와 해설은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비치 보이스의 음악은 죽음, 상실과 연관되는 내용이 많다는데, 이는 밴드의 운명과 브라이언 윌슨의 생애와는 별로 관계없는 작가의 기호일 뿐이라 생각되니까요.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비치 보이스의 곡에 관련된 작품으로는 도리 미키의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단편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비치 보이스의 불운한 싱글인 'Child of winter'를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비치 보이스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계기로 대학교 동창과 썸을 타는 관계가 되는데, 그녀는 다른 친구의 연인이 됩니다. 그 뒤 졸업을 앞 둔 겨울 방학의 어느날, 그녀가 자취방에 찾아오지만 나는 그녀를 내쫓습니다. 오해받기 싫다는 이유로요. 떠나면서 그녀는 "비치 보이스는 별로 좋아한게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는, 83년도 단편입니다.

당연히 하루키 작품에 대한 소개, 평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이 멋지게 마무리된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사랑이 이루어졌는지, 아니 '나'의 미도리에 대한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를 애매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하루키 작품 속 이런저런 곡들을 100곡 채우겠다! 는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무리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보비 비의 'Rubber ball'에 대한 설명은 지나쳤어요. "1973"에서 이 노래가 1960년을 상징하는 것 처럼 - 1960년, 보비 비가 'Rubber ball'을 부른 해다' - 언급되지만, 1960년 최대의 히트곡은 다른 곡이라고 알려주죠. 이로써 객관적인 의미의 히트곡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적인 선곡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는 독자가 각자의 경험에 근거한 곡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여 공감의 회로가 발생한다는데, 설명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을 뿐더러, 이렇게 오타쿠, 매니아만 알 수 있는 기호가 어떻게 공감을 일으킨다는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배경 음악에 지나지 않는 곡에 대한 침소봉대식 소개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곡들은 그냥 제목, 아티스트만 소개하고 작품 소개 및 기타 주변적인 요소에 집중하는데 책의 취지에는 벗어나는 듯 하여 여러모로 별로였습니다. "춤추는 난쟁이" 속 프랭크 시나트라의 "Night and day'가 대표적이죠. 곡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도 없이 4줄 정도의 소개로 그치고, 나머지는 전부 작품에 대한 줄거리와 인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에서 나쁘지 않고,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설명도 적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절반 정도 됩니다. 설명도 곡의 장르에 따라 편차가 있는 편이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셔야 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애매한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곡들이 궁금해서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곡들의 연주자, 발표 버젼이 일치하는건 아닙니다만 대체로 비슷은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링크는 여기 입니다.

2011/07/16

헤드헌터 - 요 네스뵈 / 구세희 : 별점 3점

헤드헌터 - 6점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살림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업계 최고의 헤드헌터 로게르 브론은 사실 자신에게 찾아온 고객의 정보를 이용하여 그들이 가진 귀한 그림을 훔치는 도둑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익이 시원치 않아 고민하던 그는 GPS회사 CEO로 영입대상인 클라스 그레베가 루벤스의 그림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엇다. 곧바로 그림을 훔치기 위해 클라스 그레베의 집에 잠입한 로게르는 그림을 훔쳐내는데 성공했는데, 그의 귀에 아내의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보기 힘든 북유럽,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범죄 스릴러 소설입니다. 도서출판 살림에서 좋은 기회를 주셔서 읽게 되었네요. 리뷰에 앞서 살림 출판사와 담당자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노르웨이 작품이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 형식이기에 북유럽이나 노르웨이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려웠어요. 작가 이름과 무대만 바꾸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요.

물론 '전형적'이라는 말은 그만큼 잘 먹히는 요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한 편입니다. 그야말로 불쾌지수가 높은 여름에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로게르 브론이 점점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 숨 쉴 틈 없이 진행되며, 사건의 진상이 중반부에 밝혀짐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로게르 브론의 두뇌 싸움이 살벌하게 펼쳐져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거든요.

이러한 스릴러적 속성과 함께 정교하게 짜인 구조는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전개 도중에 별것 아닌 것처럼 던져진 단서들이 모두 의미가 있고,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두뇌게임도 적절하게 구성되어 결말도 무척 깔끔했습니다.

또 로게르 브론이라는 초엘리트 헤드헌터이자 미술품 절도범이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잘 형상화한 점도 작품의 재미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부유한 시내 거리를 바라보며 "이것이야말로 산업노동자들을 짓누른 서비스업의 승리, 주택 부족 현상을 덮어 버린 디자인의 승리 그리고 현실을 가린 허구의 승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를 만나는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홍대 거리에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나는 내 시각대로 삶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 그러니까 파울로 코엘료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솜씨가 꽤 좋았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조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짜증만 안겨주는 그런 식 말이다."라는 대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헤드헌터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하는 다양한 심문 기술, 미술품 절도 행각에서의 세세한 묘사는 굉장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반면 단점도 확실합니다. 클라스 그레베가 로게르를 옭아매는 이유가 영 현실성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로게르가 변심했지만, 클라스 그레베의 능력이라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또한, 우연에 의지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초·중반부 두 번의 위기(우베의 외딴 은신처와 도로에서의 교통사고)에서 로게르가 살아남은 것은 정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마지막 반전에서 로게르가 클라스 그레베를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클라스 그레베가 전날 디아나를 찾아갔다는 점과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에 기초한 것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이야기 구조 자체가 너무 의도적으로 짜였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앞서 정교하게 짜인 구조가 좋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완벽한 구성을 만들기 위한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몇몇 단서는 너무 노골적으로 배치되고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게르 브론이 그림 도둑이라는 설정은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디아나의 불륜을 눈치채는 계기가 된 것 외에는 딱히 필요한 설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잘 짜인 두뇌 싸움이 서스펜스 스릴러와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별점은 3점. 이번 휴가 때 챙겨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6/01/09

앤트맨 (2015) - 페이튼 리드 : 별점 3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또 다른 시리즈. 작년 개봉작인데 감상이 늦었습니다.

다른 마블 작품들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스케일의 이야기라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회사와 가정집 아이방에서 대부분의 액션이 이루어지니까요. 하지만 이야기의 밀도나 재미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코믹하게 풀어나가는 전개가 인상적이에요. 조사해 보니 에드가 라이트 감독이 초기부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데, 확실히 그런 감성입니다.

또 잘 몰랐던 앤트맨(스캇 랭)도 매력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토니 스타크 류의 천재도 아니고, 캡틴 류의 정의감 넘치는 군인도 아닌 일반인에 가깝지만, 똑똑한 도둑이라는 직업적 특성을 잘 살린 덕분입니다. 스캇 랭이 행크 핌의 저택에 숨어들어 금고를 털려는 장면을 통해 이러한 특성을 부각시키는 — 도둑으로서의 몸놀림은 물론, 몰래 침입해서 금고를 여는 과정에서 똑똑함을 드러내는 — 연출도 좋았고요. 앤트맨의 능력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작아지는 것에 대한 묘사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제목 그대로 "개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장면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행크 핌과 호프의 개미 조종 장면과 개미의 여러 능력을 활용하여 연구소를 공략하는 장면처럼요.
아울러 팔콘과의 액션씬이 의외로 비중 있게 펼쳐지는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팬으로서는 즐거웠습니다.

마이클 더글라스의 묵직한 행크 핌 연기도 반가웠고, 스캇 랭의 소악당 친구들도 작품을 유쾌하게 만들어줍니다. 지나칠 정도로 스테레오 타입이기는 하지만 감초 역할로는 충분했어요. 스캇의 딸 역시 무척 귀여웠고요.

하지만 악당인 옐로우 재킷이 그다지 부각되지 못한 건 좀 아쉬웠습니다. 완력이나 능력이 앤트맨과 거의 동일하고 화력면에서만 앞설 뿐인데, 이래서야 특수무기(원반)는 물론 철저한 훈련을 거치고 개미까지 조종할 수 있는 스캇 랭이 훨씬 우위에 있는 게 당연하잖아요.

앤트맨이 왜 작아지는 원반을 던지지 않았을지, 옐로우 재킷은 왜 스캇 랭 딸이나 협박하는 찌질한 짓을 하고 있는지 등 이해되지 않는 점도 제법 있었고요.

그래도 단점은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스케일이 컸던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보다도 훨씬 말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2019/09/20

일러바치는 심장 - 에드거 앨런 포 / 박미영 : 별점 3점

일러바치는 심장 - 6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미영 옮김/스피리투스

에드거 앨런 포단편집은 그동안 굉장히 많이 소개되어 왔습니다. 저 역시 "우울과 몽상" 이라는 완전판을 가지고 있고요. 하지만 장황한 문체, 그리고 비슷한 작품들이 많고 모든 작품이 전부 빼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얇고 가벼운 책은 에드거 앨런 포 입문용으로 상당히 괜찮습니다. 수록 작품은 모두 아래의 11편인데 에드거 앨런 포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엄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어셔가의 몰락
  •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
  • 붉은 죽음의 가면
  • 구덩이와 추
  • 검은 고양이
  • 일러바치는 심장
  • 도둑맞은 편지
  • 긴 상자
  •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
  • 아몬틸라도 술통
  • 절름발이 개구리

물론 워낙 유명한 작가인 탓에 기존에 접했던 작품이 많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누가 편집을 하더라도 "어셔가의 몰락", "붉은 죽음의 가면", "검은 고양이"를 빼기는 힘들었을테니까요.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도둑맞은 편지" 역시 지나칠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이고요.
그 외의 작품들도 포하면 바로 떠오를, 음산한 분위기의 친숙한 (고딕) 호러물이 대부분이기는 합니다. 솔직히 표제작 "일러바치는 심장"은 "검은 고양이"와 너무 비슷하면서도 의외성이나 반전의 묘미는 부족한 범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같은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밝고 경쾌한 소품인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이 좋은 예입니다. 날짜 변경선을 따라 세계일주를 했을 때 요일이 바뀌는 설정을 잘 써먹은게 인상적입니다. 특히 "80일간의 세계일주"보다 30여년 앞서 발표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정신병자들의 세계를 그린 블랙 코미디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도 눈에 띕니다. 독특한 치료법을 시행하고 있다는 정신병원을 견학하려는 평범한 방문객이 광인들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겪는 대소동이 끔찍하면서도 웃기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킹이라면 고어 파티가 펼쳐졌을텐데, 그래도 나름의 해피 엔딩이니 다행이긴 합니다.
호러물이기는 하지만 가슴아픈 비련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기도 한 "긴 상자"도 아주 유명하다고 보기 어려운 괜찮은 작품이고요.
번역도 이전 번역본들과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깔끔합니다. 작가 특유의 장황한 문체를 잘 살리기도 했고요. 장황하다 못해 지나치게 길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포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추리 소설의 시조새격인 작품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이 더 나았을테고, 다양한 작품을 싣자는 취지라면 모험물 성격을 띈 "황금충"도 수록해 주는게 더 나았겠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에드거 앨런 포'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휴대하면서 읽기에 부담없는 크기와 두께, 만원 초반이라는 비교적 상식적인 가격도 마음에 듭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7/12/28

2017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6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4차, 열 네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열네살이라... 블로그 생활도 이제 중학생 레벨에 진입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7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2 (53)권, 기타 장르문학 3 (8)권, 역사서 15 (18)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2 (4)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9 (9)권, 기타 도서 20 (15)권으로 모두 101 (107)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100권은 넘겼으니 만족합니다.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7년 베스트 추리소설 : 

"올빼미의 울음" 

단평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 재미와 함께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는 보기드문 수작.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단 한편도 없습니다. 이 작품 홀로 별점 3.5점을 받았을 뿐이죠. 전반적으로 흉작인데, 내년에는 좀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2017년 워스트 추리소설 : 

"나를 사랑한 스파이" "후쿠오카 살인" 

단평 : 과연 바닥은 어디인가? 

올해 별점 1점을 받은 쓰레기는 이 두 편입니다. 뭐라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망작들입니다. 꼭 피해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수상작 없음"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딱 3권밖에 읽지 않아 선정할 작품이 없네요.

2017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보석 천 개의 유혹" 

단평 : 첫번째 장은 별점 5점도 아깝지 않음. 

올해는 역사 도서 중에서 "대지를 보라" "북로우의 도둑들" "보석 천 개의 유혹" 이 별점 4점이었습니다. 무려 세 권이나 별점 4점이라니 대단하지요.
전부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지닌 좋은 책들이지만 이중 한 권을 꼽는다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가 크게 작용한 "대지를 보라", 특정 특정 소재에 집중한 "북로우의 도둑들" 보다는 재미와 대중적인 측면에서 앞서는"보석 천 개의 유혹"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7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수상작 없음" 

역사 도서는 좀 가려읽는 편이라 워스트가 대체로 없습니다. 올해 별점 2점 짜리 책은 두 권인데 "워스트"라고 할만한 책들은 아닙니다.

2017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수상작 없음" 

읽은 책이 2권 밖에 안되기에 평가가 불가하네요.

2017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수상작 없음" 

올해 읽은 10권 모두 고만고만해서 딱히 베스트는 없습니다. 별점 3점짜리 책은 4권인데 이 정도 별점은 베스트로는 좀 애매하죠.

2017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진짜? 가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 음식 이야기" 

단평 : 전반적으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다. 

온갖 잡다한 정보를 담아내어서 주제에 걸맞지도 않았고, 깊이있는 내용도 부족한 등 총체적 난국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e-book 으로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2017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작가의 수지" 

단평 : 이쪽 바닥에 속한, 관심있는 사람들 모두의 필독서.

작가로서의 벌이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전달은 물론 여러모로 허투루 듣기 어려운 프로 작가의 의식이 선명히 빛나는 멋진 에세이입니다. 재미까지 있으니 별점 4점을 받는건 당연하지요. 이 쪽 바닥 (출판)에 어떤 식으로든 속해 있거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2017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윤광준의 신 생활명품" 

단평 : "생활 명품"과는 몇 광년 멀어지다. 

올해 기타 도서 중 별점 1.5점을 받은 책은 이 책과 "학교 출입 금지" 의 두 권입니다. 그래도 "학교 출입 금지" 는 애초부터 제 취향은 아닌, 아동용 성장기 비스무레한 책이라 그렇다 치더라도(딸이 골라줘서 억지로 읽었을 뿐입니다...) 이 책은 너무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당한 올해의 워스트에요. "생활 명품" 이라는 말이 아까운, 그냥 비싼 명품 소갯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널리고 널린 광고가 태반인 명품 소개 잡지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오히려 최신 트렌드나 신상을 소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잡지보다도 못합니다.

그 외 만화는 "피너츠 완전판 5"가 별점 4점으로 올해의 베스트이며, 다른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습니다. 딱히 소개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결산평 : 

순수한 책만 따져서 올해도 완독한 책이 100 권이 넘네요.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했기에 만족스럽습니다. 추리, 호러 등 장르 문학은 최근 점수가 별로 좋지 않지만, 그래도 작년 보다는 조금 나은 듯 해서 다행이고요. 내년에는 보다 재미있고 가치있는 작품을 많이 읽게 되면 좋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9/12/12

Q.E.D. iff 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1.5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03 - 4점
MOTOHIRO KATOU/학산문화사

연달아 읽은 Q.E.D season 2인 iff 시리즈의 세 번째 권입니다. 살인 사건일상계라는 두 종류의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는 전통적인 구성입니다. 

그러나 전 권과 마찬가지로 이번 권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한두 가지 눈에 뜨이는 트릭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설득력이 결여된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바닥 밑에 지하실로 향하는 형국이네요.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세 명의 자객"

사기꾼 야마구치에게 원한을 품은 쿠로츠 유이, 오카다 미키, 후지시마 아키코는 야마구치가 연 파티에 참석하여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각자 계획을 실행하고, 야마구치는 시체로 발견되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세 명의 범인이 각각 살인 계획을 실행하지만 정작 피해자는 엉뚱하게 죽는다는 내용으로, 범인이 짠 계획 모두 완전 범죄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는 정통 본격물 느낌을 전해 줍니다. 범행 계획과 그 과정이 먼저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도서 추리물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세 명의 계획 모두 실망스럽습니다. 특히 후지시마 아키코의 계획은 최악이에요. 독사를 이용하는 계획인데, 그녀가 펫샵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용의자를 특정하는건 너무나 쉬워서 알리바이 트릭 따위는 소용 없을 정도거든요. 단지 칼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는 이유로 오카다 미키가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그나마 쿠로츠 유이의 계획의 핵심인 야마구치의 사체를 테이블 사이에 숨긴다는 트릭 하나만큼은 그럴듯했습니다만, 시체의 무게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으니 계획대로 잘 되었을 것 같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야마구치가 수영장에서 금괴를 꺼내려다 힘이 다해 죽었다는 결말이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걸 알면, 보통은 경찰을 부르거나 최소한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할텐데 아무리 봐도 현실적이지가 못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Q.E.D 최대의 장점인 즐거운 일상계 이야기도 아니고, 수학이나 과학적인 지식 전달과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도 아니라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는 망작입니다.

"자전거 도둑"

토마가 초등학교 때 일본 시골에 잠시 머무르면서 학교 친구 아키유키의 형인 다카히코의 심부름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자전거 도둑으로 몰렸었던 사건을 다룬 일상계입니다.고등학생이 된 토마에게 누군가 오래된 심부름 센터 건물의 철거 대리인을 맡긴 뒤 진상이 드러나게 되지요.

진범이 토마일리가 없으니 범인은 누군가 다른 사람입니다. 읽으면서는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구입하고 떠날 세계 여행을 말리기 위해 어머니가 자전거 도난 사건을 일으켰고, 토마를 범인으로 몰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상은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손에 넣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는 것으로, 이렇게 독자를 함정에 빠트리는 전개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얻기 위해 벌인 트릭의 현실성이 많이 낮다는 점입니다. 자전거 발주 팩스를 조작하여 공짜로 한 대의 자전거를 더 얻어내는 조작이 과연 그렇게 쉬웠을까라는 상황은 둘째치고라도, 당시 돈으로 2만엔이 넘는 자전거의 발주 실수를 그렇게 쿨하게 주인이 넘겼으리라고 예측하는 건 무리니까요.
이야기의 설득력도 낮습니다.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손에 넣었지만, 세계 여행을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계속 복수하며 살아간다는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말 실수 하나가 십여년을 옭아맬 족쇠는 될 수 있지만, 부모 자식간에 그렇게 오랜 기간 족쇠가 될 정도의 말 실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다카히코가 심부름 센터 직원들에게 가장 힘든 잡초 뽑기가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조작한 트릭은 괜찮아서 약간의 점수를 주지만, 이야의 완성도는 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