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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사관장 - 미쓰다 신조 / 김은모 : 별점 2점

사관장 - 4점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의 도피를 한 뒤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죽자 '나'는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아버지와 함께 귀향했다. 그 뒤 다섯 살 '나'는 아버지의 옛 정혼자인 새어머니와 거의 노망이 든 할머니에게 기묘하면서도 가혹한 학대를 받았다. 나의 편은 아버지와 숙부들의 유모였던, 집 안에서는 존재감없는 다미 할멈 뿐이었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할머니가 쓰러진 어느 날, 나는 백사당에 갖혀 기묘한 존재의 추격을 받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그런 나를 구해준건 다미 할멈이었고, 그 때문에 다미 할멈은 십여년의 나이를 갑자기 먹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식 때 햐쿠미 가의 관례대로 홀로 할머니의 시신을 탕관하기 위해 백사당에 갇힌 아버지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미쓰다 신조의 시리즈물인 작가 삼부작 세 번째 작품입니다. 8년 전에 읽었던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이 시리즈 첫 번째인데, 두 번째를 건너뛰고 세 번째부터 읽게 되었네요.
그런데 주인공인 '나'가 작가라는 설명이 없어서 작가 시리즈가 맞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아직 편집자거든요. 스스로 작품 활동을 하는 묘사도 없고요. 오히려 작가 시리즈가 아니라 '집 시리즈' 였던 "흉가"와 더욱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괴이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무섭고 공포스러운 저택을 보유한 지역 명문가 '햐쿠미 가(家)', 햐쿠미 가와 관련된 괴이를 뜻하는 '마모우돈'은 명백히 "흉가"의 '타츠미 가(家)', 그리고 '뱀 신'과 겹치니까요. 그 외에도 무섭고 커다란 저택, 공포스러운 할머니, 공포와 괴이가 얽힌 산들과 여러가지 사당 등 비슷한 설정이 많습니다.

작 중 등장하는 공포스러운 소재, 설정이 특히 많은데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1. 햐쿠미 가에서 할머니에게 당했던 폭행과 학대
  2. 백사당에서 겪었던 무언가의 습격
  3. 아버지가 사라진 할머니 장례식 날 찾았던 도도야마 산에서의 기억나지 않는 체험
  4. 삼십 년 뒤 방문한 어린 시절 친구 스나가와가 살았던 흉가에서 만난 무언가
  5. 새어머니 장례식 날 백사당에서 진행한 탕관 의식과 무언가의 습격

이는 모두 주인공 '나'의 체험으로, 직접 겪은 듯한 묘사는 무척이나 생생합니다. 공포를 불러오는 공간들 - 햐쿠미가, 백사당, 도도야마 산 등 - 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섬찟함을 더해주고요. 이런 공간 묘사는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이 공포 체험 중 첫 번째인 어린 다섯 살 때 겪었던 할머니의 학대는, 말 그대로 '첩의 아이'에게 명문가 대가 이어진다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비정상적인 광기는 끔찍하기는 한데 괴담은 아니에요. 

두 번째 체험인, 백사당에서 '나'를 습격했던 '무언가'는 작 중 정체가 밝혀지는 유일한 마물인 '마모우돈'입니다. 다미 할멈의 말에 따르면 성불하지 못한 햐쿠미가 사람의 영혼이라지요. 뱀 요괴로 사랑했던 사람들을 사로잡아 함께 저승길로 간다고 하는군요. 햐쿠미가는 여자들의 힘이 강해서 마모우돈은 대부분 여성 혈족으로 짐작되고요.
이에 따르면 아버지 실종 사건의 진상은, '나'의 아버지가 할머니 장례식 날 제대로 탕관을 하지 않은 탓에 벌어진 일입니다. 성불을 하지 못한 할머니가 마모우돈이 되어 버린 후, 사랑하는 아들을 잡아간 거지요. 마지막에 백사당에서 새어머니의 탕관 의식을 진행한 '나'를 습격한건, 마모우돈이 된 새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똑 닮은 '나'를 잡아가려 한 것이고요.

하지만 이 두 가지 외 다른 괴이 현상, 체험에 대한 설명은 전무합니다. 도도야마 산에서의 체험과 스나가와가 살았던 흉가에서의 체험은 그 이유,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요. 이야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백사당에서 탕관을 진행하는, '장송백의례'라 불리우는 햐쿠미가 전통 장례 의식도 상세한 설명에 비하면 왜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요. 작 중 딱 두 번 - 할머니와 새어머니 - 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두 번 모두 당주를 '마모우돈'이 습격해버리니 이래서야 이 의식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거든요. 이럴거라면 당주가 산제물이라는 설명이 있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또 이렇게 자주 출몰한다면 구태여 사당으로 세워 모실 이유도 없잖아요? 퇴마사든 뭐든 불러다 빨리 제령하고 불태워버리는게 낫지요. 그 외에도 '나'의 목덜미에 있는 뱀 비닐 모양 반점은 무엇인지, 햐쿠미 가에 시집오려 한 미와코와 새어머니는 처음부터 뱀 요괴였는지, 스나가와의 신분은 무엇인지 등등 알 수 없는게 많아서 답답합니다.

대부분 '나'의 체험일 뿐이고, '나'가 더 이상 햐쿠미가와 얽히지 않는다는 내용이라 이야기도 완결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붉은 눈" 속 단편들같은 개인 체험 괴담류의 이야기에 가깝거든요. 문제는 괴담이라면 최소한 무섭기는 해야 하는데 별로 무섭지 않다는 점이지요. '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미 할멈이 나타나 구해주는 탓입니다. 다미 할멈은 '마모우돈'에게 십여년의 수명을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죽어버리지만 그래도 두 번이나 '나'를 구해내는데 성공하는 탓에 마모우돈의 공포와 강함이 상대적으로 퇴색해 버립니다. 이래서야 정과 사랑이 넘치는 할머니 히어로물이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소설로 읽지 않고 영상화한다면, 아이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될 정도에요! 아울러 여러가지 섬찟한 묘사들도 그 정도가 지나친 감이 듭니다. 반복적인 부분도 많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고, 일부 묘사를 제외하고는 무섭지도 않아서 감점합니다. 후속권으로 "백사당"이라는 책이 있는 듯 한데, "백사장"과 합쳐진 긴 '뱀 신' 괴담의 도입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설명이 부족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닌데, 빨리 "백사당"을 읽어봐야겠습니다.

2021/09/03

리처드 매시슨 - 리처드 매시슨 / 최필원 : 별점 3점

리처드 매시슨 - 6점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현대문학

호러,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시슨의 걸작선. 이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단편집은 거의 모두 읽어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수록작들 대부분이 좋은 작품들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무려 33편이나 되는 볼륨도 풍성하고요. SF, 호러, 범죄물,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장르적인 스펙트럼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전부 걸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별점 5점, 4.5점, 4점의 걸작과 수작도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작품들인지는 궁금하네요.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 중 분명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져있기도 하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 

흉칙한 무언가가 부모님에 의해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읽기에는 많이 뻔합니다. 괴물이 다음 번에는 지하실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덮친다는 여운을 남기지만, 명확한 결말이 더 낫지않나 생각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감" 

아멜리아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 기묘한 인형을 샀다. 인형을 구속한다는 금줄이 풀리자, 인형은 아멜리아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일종의 크리쳐물로 20cm밖에 안되는 나무 인형과 사투를 벌이는 묘사가 압권이에요.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멋집니다. 

하지만 결말과 담고 있는 주제가 제 기억과 사뭇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아멜리아가 처참하게 희생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가 인형을 처단한 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이더라고요. 착각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를 구속하는게 살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사적이면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을 발표 시점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시의적절한 메시지였다 생각되네요. 이런 메시지를 돌직구로, 매력적으로 한 가운데 꽂아넣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요.

단, 결말에서 어머니를 죽일 결심을 한 아멜리아가 문의 빗장을 쉽게 연 건 좀 안일했습니다. 인형에게서 도망칠 때에는 여러번 실패했던 걸로 묘사되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회파' 크리쳐 호러라는 신경지를 장르 문학 초창기에 개척한 명작입니다.

"마녀 전쟁"

군에서 키우는 일곱 마녀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마법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마녀들이 각자 특기로 소환한 불과 물, 거대한 암석, 사자 등으로 적을 잔혹하게 몰살시키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단지 이런 파괴적인 묘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외에는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파괴 묘사만큼은 확실히 볼 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판본보다 번역이 훨씬 좋은 덕분이지요. 약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느낌도 드는데, 이런 설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요.

"깔끔한 집" 

소설가인 나는 아내 루시와 함께 굉장히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왔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아파트 지하실에 거대한 엔진이 있고, 관리인은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인을 미행하여 이 모든게 사실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친한 이웃 필, 마지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아파트가 이륙을 준비할 때 탈출에 성공하는데....

아파트가 로켓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마지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그녀가 말했던게 모두 사실이라는게 드러나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던 SF 단편입니다. 서스펜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블록 전체가 우주선이라서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침략하는게 아니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보디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독특한 설정, 아이디어와 함께 전개에서 긴장감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걸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피의 아들" 

기묘한 아이 쥴스는 드라큘라가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졌다. 쥴스는 학교도 그만두고 배회하다가 동물원에서 흡혈 박쥐를 훔쳐내는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단편으로, 분량과 흡혈 박쥐가 진짜 드라큘라였다는 반전으로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뜬금없었고, 리처드 매시슨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는 찾아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이야기는 쥴스가 정신병자인지, 진짜 흡혈귀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나는 잠에서 깬 뒤, 관에 갖혀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게 적들의 수작이라고 믿은 나는, 관을 탈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관 뚜껑을 부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나'가 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7개월 전 죽었고, 거울로 본 '나'는 썩은 시체였다는 반전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환상특급" 등의 원작으로도 잘 어울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 전환되는, 그래서 거울 속 모습에 좀비가 보이는 식의 카메라 워크가 곁들여지면 아주 멋지지 않았을까요?

재미와 충격 외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사소합니다. 얼마 전 읽었었던 좀비물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흔해빠지고 수준 이하였던 작품들 보다는 몇 배 뛰어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사막 카페"

밥과 진 부부는 여행 중 우연히 사막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밥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외딴 마을에서 맞이한, 남편 밥의 실종과 그에 따른 위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행하던 외지인이 외딴 마을에서 겪는 위기를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았고요. 이전 스티븐 킹의 "밴드가 엄청 많더군" 리뷰에서 언급했던 적도 있는데, 보통은 외딴 마을의 기묘한 집단 광기를 그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통 범죄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 진의 심리 묘사를 통해 순수한 공포,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희생자를 화장실에서 납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범죄인데다가, 보안관 등장 후 별다른 위기없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장르물이 주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제대로 달려주는 수작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위조지폐"

생계에 지쳐 일탈을 꿈꾸던 윌리엄 O. 쿡씨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온갖 귀찮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놀 생각으로요. 그러나 쿡씨의 복제인간답게, 복제인간도 놀고 싶어해서 결국 복제인간이 급증하게 된다는 블랙 코미디 콩트입니다.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이기도 하고요. 설정은 재미있는데 기계가 폭발하고 복제인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결말은 시시했습니다. 뭔가 반전이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선" 

로스 선장과 메이슨, 미키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우연히 목격한 인공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 우주선으로 밝혀진 인공물 속에서 발견한 건, 그들 세 명의 시체였다...

일행들이 자기들의 시체를 목격하고 느끼는 공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잘 그려진 SF 단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는 이미 죽었고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은 유령이라는 걸 깨닫는다는 결말은,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설정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체의 춤" 

대학 신입생 페기는 나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적으로 금지된 루피 춤을 보러 갔다가 충격에 기절하고 마는데...

세기말 감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SF. 예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그 때와 평가는 거의 동일합니다. 페기 시점으로 묘사된 광란의 루피 춤 공연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순진한 신입생이 거부하고 싶은 방탕과 쾌락도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일종의 좀비인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의 발작을 '춤'이라고 이름 붙여 공연한다는 끔찍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페기도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방탕함에 빠져버린다는 듯한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이 결말이 루피 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페기가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가 되었다던가, 같은 반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호기심으로 좀비를 보러 갔다 왔다. 무서웠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몽둥이를 든 남자" 

타임스퀘어에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쏴서 겨우 원시인을 제압했다.

조금 무식하고 무례한 젊은 마초 양아치 1인칭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화자 설정도 진부했고, 결말도 뻔했습니다. 핵심은 원시인이 온 곳이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에 문명이 퇴화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는 고전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지적인 노인네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시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건질게 없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버튼, 버튼" 

영화까지 나왔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부부 사이도 서로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기묘한 설정에 더해 서늘하고 섬찟한 느낌과 반전이 있는, '기묘한 맛'류의 쇼트쇼트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박한 평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묘한 맛' 류로는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작품이네요. 왜 나쁜 평가를 했었을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영화 데뷰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 격렬한 카 체이스를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면,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트럭에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 등이 아주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트럭 운전사의 분노가 잘 이해되지는 않고, 마지막 트럭의 최후가 너무 뜬금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확실한 급커브였다던가 등 속도를 반드시 줄여야 했다는걸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심판의 날" 

루크는 심부름을 왔다가 목이 잘린 과부 블랙웰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들 짐은 시체를 본 뒤, 극심한 공포로 광란 상태였다. 루크의 아버지 샘은 현장 조사를 통해 과부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미치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편을 죽게 만든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죽었음) 아들을 증오했었다....

과부 블랙웰이 증오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들 짐이 자신이 없으면 미쳐버리도록 차근차근 준비한 뒤,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끔찍한 공포가 짧은 분량 안에 모두 포함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작이에요. 블랙웰 부인이 목을 멘 칼이 어디 갔을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건 약간 아쉽지만, 단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이 단편 하나를 읽은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덧붙이자면, 엄청난 의지로 저지른 자살이라는 설정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걸작 심령 서스펜스 호러물인 "네번째 남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었지요.

"죄수" 

1944년, 비밀 연구소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던 핵물리학자 필립 존슨은 폭발 사고 후 눈을 뜨자, 자신이 2시간 뒤 사형당할 1954년의 사형수 존 라일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핵폭발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SF적인 발상을 담은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과연 필립 존슨이 자신이 사형수 존 라일리가 아니라는걸 2시간 안에 증명할 수 있을까?가 서스펜스의 핵심이고요.

그러나 필립 존슨의 노력은 신부를 한참 설득하다가 아내 전화번호를 주는 것 뿥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요. 덕분에 긴장감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신부가 그의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애매했습니다. 진짜 필립 존슨의 아내가 없었는지, 아니면 신부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필립 존슨이 모든걸 체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 별로였습니다. 곧 죽을 상황인데, 어떻게든 발버둥 쳐 봤어야죠..

아이디어, 설정은 좋았지만 끌고가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 

세상을 떠난 엄마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가 친구에게 몰래 엄마 방과 드레스를 보여주다가 폭주한다는 내용의, 미치광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혼란스러운 심리극입니다.

그런데 익히 보아왔던 설정과 내용이라 진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백이 많아서 완성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엄마는 못생겼고 드레스도 피투성이에 총 구멍이 나 있었다는게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엄마 사인은 무엇인지, 아이는 지금 어디 갇혀서 어떻게 된건지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발"

더운 여름날, 조는 기묘한 손님을 맞아 이발을 해 주었다. 손님은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등 혼잣말을 읆조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손님이 죽은 사람이었다는건 에상 가능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설정이네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을 때 흙이 떨어진게 아니라, 손은 뼈 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신선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윌슨은 출장을 위해 탑승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괴물이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있는걸 발견했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숨어버려서 윌슨 눈에만 보였다. 비행기 엔진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 윌슨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을 여는데...

영화판 "환상특급" 에피소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공포심, 신경증을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괴물'로 형상화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윌슨이 커튼을 열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자기를 노려보는 괴물을 처음 보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압권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등의 묘사에서는 시대를 느낄 수 있고요.

괴물에게 결국 총을 쏜 윌슨이 승객들에게 제압 당한 뒤 비행기 착륙 후 옮겨지는 결말은 다소 시시하지만, 아이디어와 묘사력이 발군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례식" 

클루니스 장례식장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에게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찾아와서 최고급 장례식 준비를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자신이라고 말했고, 장례식 날에는 하인인 곱추 이고르, 마녀, 늑대인간과 다른 흡혈귀들이 찾아 오는데...

드라큘라를 연상케하는 뱀파이어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스스로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 다른 괴물 손님이 찾아온다는 반전도 좋아서 '쇼트쇼트'로는 더할나위 없었던 작품입니다. 장례식에서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코미디의 정체성이 잘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거장은 뭘 써도 거장인 법이겠지요? 오래 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역시나 그 때도 좋은 평가를 했었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에서 세번째" 

우주 비행사가 세계 멸망을 앞두고, 다른 행성으로 처자식과 이웃 사람들까지 우주선에 몰래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이었다...

화자인 우주 비행사와 그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 전 겪는 마음 속 불안과 혼란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그들이 있던 곳이 지구가 아니라 향한 곳이 지구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짤막한 쇼트쇼트.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쇼트쇼트로서는 우수한 수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최후의 날" 

최후의 날을 맞아 음주, 난교, 광기어린 파괴 행위 등을 즐기던 리처드는, 가족의 소중함을 께닫고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 한다.

리처드가 어머니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걸 깨닫는다는 드라마. 여동생 가족이 죽음을 택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은 찡하면서도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소설보다는 "환상특급"과 같이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거리 전화" 

몸이 불편한 미스 킨에게 어느날 한 밤중, 폭풍우가 불어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에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속삭임과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이어 상대방으로부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전화 회사의 조사 결과 이 전화는 묘지에서 걸려온걸로 밝혀지는데...

정체 모를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다른 이야기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미스 킨의 불안부터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간호사의 말대로 전화를 그냥 끊던가, 수화기를 내려 놓던가, 전화선을 뽑아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제가 댁으로 갈게요." 라는 마지막 전화 목소리로 알려주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묘지에서 걸려왔다는게 드러났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설득력 낮은 진부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행복한 가정의 아빠인 회계사 로버트 카터는 어느날 면도를 하다가 깊숙하게 베였다. 그리고 상처 속 전선과 기계 장치를 보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충격에 거리를 배회하던 카터는 도시가 로봇들로 가득차 있었고, 음식들도 모두 기름이었다는 걸 알아 채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통상적인 의미, 즉 이야기를 모두 해결해 버리는 전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인 "기계 장치의 신"에서 가져온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네요.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흔한 설정을 독보적인 로버트 카터의 심리 묘사로 차별화시킨 솜씨도 거장다왔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터가 진짜 로봇인지, 아니면 죽은 뒤 환상을 보는 건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열린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보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고 반전도 있는 결말을 기대했거든요. 물론 로버트 카터가 쓰러지면서 떠올리는 성경 구절 -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 - 은 그가 기계라는걸 연상케 합니다만, 명확하게 증명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라고 한다면, 그들을 만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기계라고 믿는 주인공 이름이 '로버트'라는게 의미심장하네요. 우리나라로 변주한다면 '노보두 씨'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요?

"기록적인 사건" 

가방끈 짧은 쉰 아홉살의 대학교 건물 관리인 프레드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건물 청소 및 수리를 하면서 대학의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되는데....

갑자기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외계인들이 지구의 지식을 손에 쉽게 넣고자 프레드 머릿 속에 대학교 지식을 집어 넣은 뒤 그걸 한 방에 빼 먹은 것이지요. 한마디로 프레드를 일종의 외장 하드로 사용한 셈입니다. 좋은 쇼트쇼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안에서 죽다" 

돈과 베티 부부에게 '돈 타일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돈은 자기는 돈 마틴이라고 주장히먀 화를 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부부의 집에 침임했고, 돈을 제압한 침입자는 돈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와 배신에 대해 추궁하는데....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서 발을 빼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온지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서스펜스 범죄물. 돈이 침입자인 심슨과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이고, 모든걸 알게 된 아내 베티가 경찰에 빈집털이가 들어와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하는 결말까지 깔끔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약한 편입니다. 악당 심슨이 침입한 뒤 하는게 없는 탓이에요. 총으로 부부를 위협하고, 과거 이야기를 떠벌이는게 전부거든요. 서스펜스를 끌어올릴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코넬 울리치가 썼더라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복자" 

1871년, 그랜트빌 잡화상 주인인 나는 남북전쟁 때 죽은 아들 루와 닮은 젊은 청년과 역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그랜트빌 최고의 총잡이와 싸울 목적이었다. 라이커라는 청년은 그랜트빌의 총잡이 바스 셀커크를 깔끔하게 사살했지만, 습격해 온 셀커크의 부하들에게 난사당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느낌이 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허무한 서부극입니다. 라이커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서부극 총잡이들이 영웅이 아니라 허깨비라는걸 잘 보여주거든요. 어릴 때 부터 총잡이를 동경하여 연습을 거듭한 끝에 빠른 속사와 사격술을 익혔지만, 정신적으로는 애와 다름없는 철부지로, 1대 1 결투에서는 이겼지만 여섯 명의 악당이 습격하자 울며 애원하다가 총에 맞아서 꼴사납게 죽기 때문이지요. 풍자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좋았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홀리데이 맨" 

데이비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출근길에 나선다...

데이비드가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직업이 끔찍했던 탓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지켜보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데이비드의 심리 묘사가 그닥이었고, 업무의 끔찍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입니다. 이 업무가 아무리 끔찍해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전개가 밋밋하고 반전도 그닥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예전에도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뱀파이어란건 없다" 

루마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 솔타에 사는 게리아 부인은 어느날 밤,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을 물어 뜯겨 피를 빨린채 발견되었다. 게리아 박사는 다음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부인을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게리아 박사는 후배 미카엘 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크리쳐 호러물로 시작해서 깔끔한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작품입니다. 왜 범죄물이냐 하면, 뱀파이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리아 박사가 커피에 아편을 타서 아내를 재운 뒤, 목에서 피를 뽑아냈던 거지요. 이유는 그녀가 후배 바레스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은 바레스가 뱀파이어인 것 처럼 꾸민 뒤, 그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을 거라며 마무리됩니다. 

기발한 소재와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의외의 반전, 내용은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비교적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 등 전형적인 미국식 쇼트쇼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트릭도 조금 유치했지만, 뱀파이어 전설이 살아있는 루마니아라는 설정이라서 나름 설득력있고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가 특유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깜짝 선물"

늙은 호킨스 씨는 집 앞을 지나는 어린 소년들을 부르곤 했다. 소년들에게 "땅을 파면 깜짝 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주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에게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깜짝 선물이 금괴라고 확신한 어니와 친구들은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물이 뭔가 나쁜거라는 짐작은 되지요? 어니가 찾은건 일종의 관이었고, 그 안에서 호킨스 씨가 튀쳐 나온다는게 결말입니다. 그러나 결말의 반전은 약했으며 설득력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한 등 설명까지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니가 땅을 파게 만드는데 까지의 전개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 

켄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 리처드와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 헬렌은 차에 남겨둔 채였다. 사실 켄은 이 기회를 빌어 헬렌을 죽일 생각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는 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가는 동안, 그는 죄책감, 양심 등으로 심하게 갈등하는데...

아내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순간이 되자, 켄이 겪는 극심한 마음 속 갈등과 혼란이 핵심인 심리 스릴러. 심리 묘사가 아주 빼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 묘사야 말로 작가의 특기 중 특기지요. 살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특히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는 산타클로스와의 약속을 결말에서 제대로 써 먹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켄의 삶이 조금 더 비참해 졌다는 결말이니까요. 켄은 선물 (아내의 죽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현실적이기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강남길 씨가 아내를 죽이려고 노력하던 TV 단막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켄과 리처드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도록 차를 옮겨 놓겠다는 아내의 말에 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에서요. 하지만 강남길 씨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켄에게는 지옥이 열릴 거라는 결말은 천지차이이기는 합니다만, 이런게 미국과 한국의 감성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춤추는 손가락"

장거리 버스 여행 중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돌보미 여성에게 끊임없이 수화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다가 장애인 여성이 내 자리를 빼앗았고,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녀 자리에 앉은 나에게, 옆자리 돌보미 여성이 해준 이야기는 자신과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화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해서, 장애인 여성의 수화 수다로 돌보미 여성이 그녀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돌보미를 놓아주기 싫었던 장애인 여성이 괜찮은 남자를 물색해서 노리개로 던져준다는, 일종의 '남자 사냥' 으로 이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좋았던 작품.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를 유혹하던 여성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남자 사냥은 돌보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남자를 잡아 먹기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은 기승전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결이 너무 급작스럽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벙어리 소년" 

시골 마을에 살던 닐젠 부부가 화재로 죽고, 부부의 아들 팔은 보안관 해리와 코라 부부에게 위탁되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도 못했던 팔을 코라는 사랑으로 돌보고, 죽은 자기 아들 대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라는 남편이 시도했던 닐젠 부부 지인에게의 연락을 훼방놓았다. 그래서 닐젠 부부가 죽은 뒤 한참 뒤에야 부부의 지인 베르너 교수가 팔을 찾아 왔다. 그러나 그 사이, 학교를 다녔던 팔은 그가 가졌던 독특한 텔레파시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은 벙어리가 아니라 부모의 텔레파시 교육을 받았던 텔레파시 능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는 텔레파시 능력이 훼손될까봐 특정한 이미지, 단어로 설명되는, '말'을 익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단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발상은 꽤나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닐젠 부부의 사고, 코라가 팔을 양자로 들이고 학교에 보낸 것, 베르너 교수의 방문 등 여러가지 사건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탓이 큽니다. 닐젠 부부가 죽은 화재 사고의 원인도 결국 밝혀지지 않고요. 또 팔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건 엄연한 아동 학대입니다. 팔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할 이유도 없어요. 실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말 없이 생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게 전부인데, 이러느니 말로 하는게 더 낫잖아요? 근거리에서만 가능한 듯 싶으니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려면 글을 익혀야 하는건 당연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팔을 옭아맸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학교 교육이 팔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묘사도 불필요했습니다. 

팔이 말을 하기 시작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사라졌다는 결말도 맥빠집니다. 어차피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아쉬운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팔에게는 코라의 사랑이 더욱 필요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을테고요.

차라리 '사랑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감정이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멋진 설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팔이 능력의 편린을 유지한채 성인이 되어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능력자가 된다는 식으로요. 지금은 설정,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파" 

교체를 앞둔 교회 오르간이 폭주해서 교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작품.

늙고 낡아버려서, 사랑했고 필요로 했던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교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폭주는 상식적인 선에 그쳐서 크리쳐물로 보기도, 재난물로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4/11/10

경성 모던타임스 - 박윤석 : 별점 2.5점

경성 모던타임스 - 6점
박윤석 지음/문학동네

수없이 읽어온 경성 관련 서적입니다. 특징이라면 픽션이라는 점입니다. 1920년대 경성을 "한림"이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 경성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제공이 주 목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당대 묘사와 소개에 주력합니다. 특히, 1920년대 경성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압권입니다. 이 책만 읽어도 경성 시내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질 정도니까요. 어디를 지나 어디를 어떻게 가고, 어디가 어떻게 변했고 등등등 실제 당시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함직한 대사와 상황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장소적인 디테일 외에도 심훈이나 김기진, 한규설 등 당대 주요 인물들도 자세하게 설명되며, 고종의 장례와 만세운동과 같은 중요했던 사건도 짚어줍니다. 손병희가 이완용을 만세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만났다는 일화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데, 개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독립운동 단체 내부의 내분 이야기입니다. 노론과 소론 등의 당파싸움이 독립이라는 큰 대의 앞에서도 우왕좌왕 파벌 만들기에만 급급하고, 해방 후에는 좌익이니 우익이니 편가르기하여 나라마저 쪼개놓는걸 보면 이게 정말 국민성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고종 승하 후 장례식에 대해 한국식도, 일본식도, 서양식도 아닌 기이한 형태의 장례식이었다고 묘사하는 것도 기억에 남고요.

이런 점들을 비추어 볼 때, 한마디로 픽션의 탈을 쓴 미시사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어딘가의 연재물을 모아 놓은 탓에, 하나의 이어지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한림이라는 인물도 뜨문뜨문 등장하고 그와 얽히는 것 같았던 여급 하나코 역시 단순한 주변인물일 뿐이라 별다른 이야기도 없다면 구태여 이들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때문에 반 쯤 픽션에 걸친 형식보다는, 정말 각잡고 주요 인물들 시점으로 나누어 논픽션처럼 쓰는 게 훨씬 좋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픽션으로서의 가치는 한없이 낮고 딱히 재미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우나, 자료적인 가치 하나만큼은 굉장합니다.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단순한 연구서들보다는 쉽게 읽히는 것도 분명하고요. 이 시대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08/17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 오카자키 다쿠마 / 민경욱 : 별점 1.5점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 4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소미미디어

후쿠오카 내 유치쿠 시에 위치한 도연사의 승려 가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은 굉장히 많습니다. 해당 분야의 지식이 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학적인 재미를 함께 가져다 줄 수 있고, 손님이 수수께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야기 전개를 쉽게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일상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하늘을 나는 말"의 탐정역부터가 '라쿠고가'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기도 했고요. 현재까지도 추리 소설계에서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로는 서점, 고서점, 화과자점, 바, 골동품점, 중고매장사진관, 수프가게, 초등학교 (선생), 시계방 등을 무대로 해당 분야 전문가나 업무 종사자가 활약하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아토다 다카시의 "A사이즈 살인 사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을 이미 읽어 보았고요.
이 작품도 배경 설정만 놓고 보면 절에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가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스님이 핵심 인물로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생각과는 다르더군요. 우선 화자인 도연사의 부지주 잇카이가 탐정역을 맡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 좋은 어른으로 갈등의 중재자이자 해결사 역할을 담당할 뿐입니다. 탐정 역할을 맡는건 제목의 쌍둥이입니다. 그래서 절이나 스님 관련된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로 쓰이는 전문가적인 이야기보다는, 학생들이 등장하는 학원 일상계 스타일 느낌이 강합니다. 네 편의 이야기 중 그나마 공양을 주요 소재로 삼은 세 번째 이야기 정도만 소재와 어울립니다.
물론 법사, 법요, 불경, 공양 등 디테일한 절과 스님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야기의 핵심, 추리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배경 묘사에 그칩니다.

그런데 이 쌍둥이 설정은 여러모로 거슬립니다. 남자아이 렌은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성악설 신봉자, 여자아이 란은 "불천인신천인(仏千人神千人)"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성선설 신봉자로 정반대인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해가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고 만화적입니다. 란이 단 것을 미친듯이 좋아한다는 설정도 과하고요. 다른 주요 캐릭터들 - 사투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버지인 주지스님 신카이와 절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먼 친척으로 잇카이를 가지고 노는 (?) 어린 처녀 고테가와 미즈키 - 은 상당히 괜찮았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차라리 쌍둥이없이 잇카이를 탐정역으로 내세워 절과 신도들에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추리면에서도 눈여겨 볼 부분은 없기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널리고 널린 일상계 물 중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1화. 절 옆에는 귀신이 살까?

마을 유지로 자산가인 오가미 집안의 장례식에서 오가미 집안 아들 딸들의 조의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스님이 주관하는 장례식에서 조의금이 도난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범인은 접수대를 맡았던 야스에로 그녀가 고인의 가족들 봉투를 다른 것과 바꿔치기 해서 넣었던게 진상이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봉투만 바꿔치기해서 가져갈 이유가 없는 탓입니다. 봉투째 가져가는게 당연하지요. 어차피 맨 밑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테고요, 봉투를 바꿔치기 하는 것 자체가 지문 등의 단서가 남을 수도 있고, 바꿔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평범한 조의금 도둑이 할 범행이 아닙니다. 차라리 조의금 도난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강했다는걸 부각했어야 하는데 이야기 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도저도 아닙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보다는 절을 방문했던 란의 동급생은 사실 새전함을 노리고 있었을거라는 서두의 추리가 더 재미있습니다. 

제2화. 할머니의 매화가지 떡

도연사 일행은 신도인 마쓰다이라 상점댁을 찾았다. 13주기 제사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법요가 끝난 후 할머니가 권한 상점의 명물 매화가지 떡을 중학생 손녀 유카리가 집어 던져 버렸다. 유카리가 반항(?)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매화가지 떡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이를 집어 던질 정도로 손녀 유카리가 비뚤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는 이야기인데 역시나 추리를 끌어내기 위한 단서가 너무 부족합니다. 단지 아침에 비닐 봉투 한 가득 청소를 했다는 정도로 무언가 결론을 끌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렌의 반에 전학온 다이손의 존재가 추리의 결정적 근거가 된다는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요. 

한마디로 여러모로 억지스러웠던 이야기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제3화. 아이를 생각하다

미즈키의 지인 유나가 유산된 아이 '미즈코'를 공양하며 임신을 기원하는데, 사실 그녀는 이미 임신을 하고 있었다. 한달 뒤, 유나의 임신을 알게 된 남편 슈운이치는 도연사로 찾아와 임신 기간 중 자신은 출장 중이었다고 말하며 잇카이와 유나의 관계를 의심한다...

절과 스님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유일한 이야기입니다. 불심이 깊은 시어머니와 틀어진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처님 덕에 임신했다는걸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동기 역시 사뭇 불자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력이 발휘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유나의 고백으로 모든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4화. 저 세상의 꿈, 이 세상의 생명

교통사고로 사망한 불쌍한 여인의 경야를 맡게 된 잇카이는 고인이 자신이 전날 꾼 꿈에 등장한 여인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잇카이는 그녀가 쌍둥이의 모친일 것이라 확신하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인의 경야, 법요가 소재로 등장하지만 핵심 내용은 사망한 여인의 아이를 찾는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수록작 중 가장 볼 만 합니다. 사고를 당한 여성은 열쇠가 없었으니 다이얼 식 열쇠였을 것이다, 어딘가 맡길 형편이 안되니 근처의 빈집일 것이다, 사고 장소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등 모든 추리가 이치에 맞는 덕분입니다. 아이를 빈 집에 몰래 두고 일하러 갔다는 진상도 쇠락해가는 시골 마을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좋은 아이디어였고요. 

문제는 아이의 실종을 잇카이가 꿈을 통해 알게된다는 오컬트적인 전개입니다. 망자가 잇카이에게 이를 전달할 이유도 딱히 모르겠고, 절과 스님이 등장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과했습니다. 이어지는 가족간의 사랑 어쩌구 하는 분위기도 영 닭살돋아서 취향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3/05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아와사카 쓰마오 : 별점 3.5점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구회사 해바라기 공예의 후계자인 마바리 토모히로는 아내 마사오와 함께 해외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중, 떨어지는 운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토모히로의 의뢰로 그 뒤를 쫓던 흥신소 사장 우나이 마이코와 조수 카츠 토시오의 바로 앞에서였다. 마이코와 토시오는 사고 당시 마사오를 구해준 인연으로 은근슬쩍 마바리 가문에 접근하는데, 장례식날 토모히로의 어린 아들 토우이치를 시작으로 뒤이어 토모히로의 동생 카오리, 소우지, 가문의 당주 테츠마까지 차례대로 살해되는걸 목격하게 되었다. 마사오에게 마음을 빼앗긴 토시오는 유력한 용의자 마사오와 함께 도주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만 소개되어 있는 아와사카 쓰마오의 미소개 장편. 1977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기도 하지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원서를 읽는건 언제나 힘든데, 이 작품은 기계장치 자동 인형에 대해 장황한 소개가 포함되어 있어서 더 힘들더군요. 그래도 완독을 하기는 했네요. 무려 4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해당할 뿐더러, 마바리 가문의 호도가 만들었다는 기묘한 나사 저택과 정원에 있는 미로, 그리고 여러 장난감과 기계 장치 인형 들이 중요하게 등장하여 흥미를 계속 자극하는 매력이 넘치는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번역기의 도움도 컸고요.

정통 본격물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 답게 굉장히 트릭넘치는 살인 사건들이 인상적인데, 우선 어린 토우이치의 수면제 과다 복용에는 뚜렷한 단서가 있지는 않습니다. 토모히로가 단 것을 주지 않는 교육을 했다는 등은 모두 정황 증거일 뿐이지요. 하지만 아무도 접근하지 않은 정자에서 눈에 총을 맞고 죽은 카오리, 기계에 장치된 독극물 주사로 살해당한 소우지,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던 약병 속 약을 독약으로 바꿔치기 당해 죽은 테츠마 사건은 모두 불가능 범죄로 추리 애호가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사용된 트릭도 기발했습니다. 카오리는 알고보니 총에 맞은게 아니라, 총알이 발사되도록 장치된 만화경을 들여다보다 죽었던 겁니다. 앞서 카오리가 만화경에 관심이 많다는 설명도 있고, 그녀가 죽기 전 '마른 우물 (카레이도)' 이라는 말을 남겼다는건 확실한 단서이기 때문에 - 카레이도스코프 (만화경) 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임 - 공정함 측면에서도 만점을 주고 싶네요.
소우지 사건은 거꾸로 서는 기계 인형 태엽 장치에 설치된 주사기가 금방 드러나는데, 이는 굉장히 기묘한 수수께끼로 이어집니다. 소우지가 마사오, 마이코와 토시오 앞에서 기계 인형을 조작하다가 죽지 않았다면, 인형 속에 설치된 주사기는 쉽게 발견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최소한 카오리 살해 직후에는 장치를 설치해서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저택 안에 경찰이 가득했으니까요. 이는 토모히로 장례식으로 관계자가 많았던 시점에 토우이치를 살해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추리로 이어져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테츠마의 약을 바꿔치기한 범행도 기발하다는 점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토시오는 알약 하나만 바꿔치기한 일종의 시한폭탄 장치라 생각했지만, 경찰 조사결과 약병 안의 캡슐 내용물은 모두 독약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즉, 약병 내용물을 통째로 바꿔치기했어야 했다는거지요. 하지만 테츠마는 연이은 살인 사건으로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기에 이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미로에서 이어지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던 마사오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게 되고요. 그녀가 비밀 통로로 밤중에 테츠마의 방에 몰래 침입해서 약을 바꿔치기했다는 거지요. 하지만 진상은 애초 -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 에 약은 바꿔치기되어 있었고, 다만 딱 한개만 몸 속에서 녹는 재질의 캡슐이었다는 겁니다. 다른 캡슐은 모두 녹지않는 플라스틱이었던거지요. 일종의 시한폭탄 장치는 맞는데, 그 발상을 한 번 더 꼬아 놓은 발상은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저택 내 오각형 미로에 얽힌 수수께끼도 볼만했습니다. 단순한 여흥거리가 아니라,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장치가 되어있었으며 이 비밀 통로는 실존인물 제니야 고헤에의 숨겨진 재산과 관련이 있었다는건데, 에도 시대 상인 제니야 고헤에, 그리고 에도 시대 일본 발명가인 오노 벤키치와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그럴듯하게 짜 낸 서사는 상당히 설득력있었습니다. 제니야 고헤에가 변화하는 시대에서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해 재산 일부를 은닉하려 했다는건 충분히 그럴싸했으니까요. 덕분에 <<다빈치 코드>>같은 팩션 보물찾기 모험물스러운 재미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토시오가 처음 미로에 들어갔었을 때 담벼락을 따라 갔지만 중심부에 갈 수 없었던건, 미로 내부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추론으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미로에 대해서도 기계 장치 인형만큼이나 상세하게 설명되는데, 이 역시 현학적인 재미는 충분히 충족시켜 주고요.

범인도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범인은 토우이치 군이 죽은 날 많은 사람들이 토모히로 씨 장례로 모일 줄 몰랐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토모히로 씨가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죠. 또 카오리 씨가 죽은 날, 카츠 일행이 나사 저택에 가는 것을 몰랐던 사람이며 같은 날, 마사오 씨가 소우지의 방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마지막으로 데츠바 씨가 살해당했을 때, 마사오 씨가 나사 저택에서 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즉, 범인은 토모히로였고, 토모히로는 알리바이를 위해 자기가 출장간 동안 사건이 일어나도록 정교한 장치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과연 장난감 전문가다운 발상의 범행이었달까요. 범행 동기인 제니야 고헤에의 재산과 친부 류키치 때문에 생긴 원한도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 많다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해가 안되는건 마바리 호도가 나사 저택과 미로를 만든 이유입니다. 호도는 제니야 고헤에의 숨겨진 재산을 이미 찾아내었던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재산을 모두 현금화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재산만 따로 숨기면 될 일이었어요.
게다가 미로는 비밀 통로 어디에 보물이 놓여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도 하는데, 도대체 뭘 위해서 이런걸 만들었을까요? 자식들에게 알려주려면 그냥 말로 설명해줘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지상에 거창한 미로이자 보물 지도를 만들 까닭은 없었습니다. 마이코는 나사 저택을 이상하게 만든건, 미로가 이상하다는걸 숨기려는 목적이었다는데 그럴거면 아예 안 만드는게 훨씬 낫잖아요?
그리고 토모히로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자동 살인 장치를 만들었다는건 합리적이지만, 카오리가 살해된 뒤에는 경찰이 저택에 깔리는건 마찬가지였을겁니다. 즉, 소우지와 테츠마마저 연이어 살해된다면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드네요. 이런 거창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 보다는 이미 위치를 파악한 보물을 그냥 빼돌리는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마이코의 과거 경찰 시절 누명을 증명해줄 사람이 마바리 테츠마였다던가, 카츠 토시오가 마사오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설정도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불필요한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이런저런 리스트 (이런 거라던가 이런거, 이런거....)에서 빠짐없이 언급될 정도의 재미를 안겨다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언젠가 국내 출간이 되어서 많은 분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오노 벤키치의 가라쿠리 인형 (기계 장치 자동 인형) 소개 동영상이 있더군요. 생각만큼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아니긴 한데, 에도 시절에는 충분히 먹혔음직 해 보입니다. 아울러 덧붙이는데, 발표 직후인 1979년에 영화화되었었는데 주연이 무려 마츠다 유사쿠! 낡은 느낌 가득하지만 영화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2023/06/27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3점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초창기 단편집. 1990년에 발표되었던 <<성>>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1981년부터 1985년 사이에 발표되었기에, 초창기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BS 망가 야화에서 소개되었을 정도니까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방주가 오던 날
  2. 난파선
  3. 진수의 숲
  4.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5. 늪의 아이
  6. 유사(流砂)
  7. 쿠로이시지마(黑石島) 살인사건
  8. 성(城)
  9. 파란 무리
  10. 그림자의 거리
이 중 앞의 두 편은 아주 짤막한 가벼운 개그물로 언급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크리쳐 호러(?)물 <<진수의 숲>>, <<늪의 아이들>>은 <<자선단편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이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리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 작품들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자신이 외계인이며 UFO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고 말하는 동급생 후리오와 어울리다가, 약간의 차원 뒤틀림(?)을 경험한다는 내용.
작가의 말에 따르면, 폴 사이먼의 노래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에서 제목을 따 와 만들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요. 


그런데 가사를 잠깐 찾아보니 '훌리오와 내가 교정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는데 엄마가 뭔가 법에 위배되는걸 봤고, 그래서 나와 훌리오를 잡으면 구치소에 집어 넣는다'는 내용이더라고요. 정확한 의미는 영 알 수가 없는데 (폴 사이먼 본인도 엄마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변했답니다.), 이런 노래의 모호함이 만화의 결말과 일치한다는게 재미있습니다. 후리오가 UFO를 타고 갔는지, 그냥 버스를 타고 평범하게 떠났는지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여운을 남기니까요.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일상 속에서 약간의 뒤틀림을 보여주는 일상계 SF물, 아니면 평범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성장기로 볼 수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SF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폴 사이먼, 그리고 모로호시 다이지로 스타일에 가까우니까요. 흥겨운 노래하고도 잘 어울리고요. 기껏 상상력을 발휘했는데 그냥 버스타고 이사간거라면 너무 슬프잖아요.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유사>>
주인공과 친구들은 사막과 엄청난 유사 폭포 탓에 감옥과 다름없는, 미래가 없는 별 볼일없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 모두가 합심해서 그들을 막아서는데....

SF의 탈을 쓰고 있기는 하나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고 위기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으려는, 그리고 젊은 청춘의 뒷다리만 잡는 기성 세대를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발표된 1980년대는 모로호시 다이지로도 기성세대보다는 청년에 가까운 나이라 그릴 수 있었겠지요? 사력을 다하는 청춘을 기성 세대가 뒤쫓는 결말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는 낡은 소재와 전개라는건 단점입니다. 불합리한 현실을 탈출하려고 애쓰는 청춘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예를 들어, 이런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면? <<총몽 (알리타)>>이 되는거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쿠로이시지마 살인사건>>
외딴 섬에서 젊은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어 형사가 파견되었고, 섬 사람 누군가의 딸로 여겨져 장례식이 열렸다. 그런데 장례식 와중에, 그 딸이 살아있다는게 밝혀진다.
다른 사람이 피해자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녀 역시 살아있었고, 바닷물의 영향으로 사체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형사에게 없었던 일로 하자며 반 쯤은 협박하듯이 부탁하는데....


우리나라 모 섬에서 일어났던 범죄가 떠오르는 작품. 폐쇄적인 공동체 안에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흔합니다.
그런데 전형적인 모로호시 다이지로 그림체인데다가, 전개 방식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호러물스타일이라서 기묘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그 콘서트 꽁트를 정극 배우들이 제대로 연기하는 느낌이랄까요? <<유사>>처럼 현실에 안주하려는 기성 세대에 대한 풍자로 볼 수도 있을테고요.
흔한 이야기인데 여러모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기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성>>
대기업에 서류 하나를 전해주러 왔던 사원의 출장은 서류에 관계된 회사간의 복잡한 정리, 대기업의 인사 이동 등으로 장기화되고 말았다. 팩스로 지시를 기다리는 자택 대기 명령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이 흘러 그가 죽었을 때 지시가 전달되었다. 일반 사원들은 1층 이상 올라가보는게 꿈이라는 본사 건물 15층으로 오라는 지시였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 지금 읽기에는 다소 뻔했습니다. 결말도 다소 뜬금없었고요. 왜 마지막에 15층으로 부른 걸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파란 무리>>
장기 매매가 일반화된 미래. 하층민은 장기를 팔고 인공 장기로 교체하여 삶을 이어나간다. 판매된 장기는 하나로 모아져 부자 노인의 뇌를 이식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장기를 팔아 인공 장기로 교체하는건 단순한 빈민 대책으로 무의미한 시술이었고, 이 모든건 권력자들이 권력을 쥐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80년대 유행했던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SF물.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이야기였습니다. 기묘한 세포 덩어리로 피해자들을 변질시킨다는 결말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 특유의 이형 생태 결합을 선보이기는 하는데, 장기 매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하더군요.  <<소일런트 그린>>정도의 충격적인 반전도 아니었고요. 지금 시점에서 다시 언급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자의 도시>>
한 초등학생이 모르는 아이에게 이끌려 낯선 골목길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과 건물을 잡아먹었다. 꿈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잡아먹혔던 아이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잡아먹힌 학원도 불에 타 버렸다.
괴물이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걸 깨달은 아이는 괴물에게 모델건을 쏘고 기절했다. 그리고 정신이 든 뒤, 싫은 일이 생길 때 마다 모르는 골목길로 항하게 되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영향을 주었다는걸로 유명한 작품. 아래의 장면 덕분일겁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소 뻔했습니다. 이세계에서 경험한 일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많으니까요. <<앨리스 죽이기>>가 떠오르네요. 때문에 지금 읽기에는 진부했습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화로는 작품의 분위기를 잘 시각화하지 못하고 있고요.

하지만 초등학생이 주인공이고 진짜 악당 - 싫어하는걸 없애버리는데 주저함이 없으니 - 이라는 점은 특이했습니다. 이 점 하나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3/05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츠하라 야스미 / 고주영 : 별점 1.5점

루피너스 탐정단의 우수 - 6점
츠하라 야스미 지음, 고주영 옮김/북홀릭(bookholic)

주의!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이 별로라 읽으셔도 상관 없겠습니다만...

츠하라 야스미의 루피너스 탐정 연작 단편집 2권.

전작이 비교적 긴 호흡의 중편들이라면, 이번에는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캐릭터나 배경 설명이 대폭 삭제되었기 때문일 텐데, 덕분에 읽기도 편하고 한 호흡으로 읽기에도 적당해서 1편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습니다.

첫 이야기의 시작이 졸업 후 10년 후 루피너스 탐정단 4인방의 한 명인 쿄노 마야의 장례식이라는 파격적인 구성은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만... 굳이 비교하자면 "명탐정 코난"이 갑자기 소노코의 장례식을 무대로 Season2가 시작되는 느낌이에요. 초반 내용도 졸업 이후 각자의 삶을 다루는 에필로그 느낌이 강했고요. 그래도 확실히 아이들이 성장한 덕분에, 전작에서 느꼈던 건방진 고등학생들의 철없어 보이는 추리 모험극 냄새가 덜하다는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전편의 문제점은 여전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별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어요. 사건의 동기와 증거가 엄청나게 취약하다는 점에서는 추리 소설로서의 가치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동기'가 취약하다는건 네 번째 단편 "자비의 화원"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꽤 오래 지속된, 옅어지는 종교색에 대한 반감이 왜 갑자기 폭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야기의 설득력이 전무하거든요. '마리아상의 위치'에 대한 기묘한 트릭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이야기를 짜 맞춘 느낌이에요. 수녀의 과거사가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대체 모르겠고요.

부실한 '증거'는 세 번째 단편 "첫밀실"이 대표적입니다. 4년 전에 벌어졌던 밀실 살인 사건의 진상을 다루는 작품인데, 이미 모든 관계자가 사망했고, 다른 누군가가 이미 죄를 뒤집어쓰고 잠자코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죄를 밝힌다는건 어려운데, 이를 추리쇼만 펼친 뒤 추궁을 통해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어 그걸 녹음하고, 마지막에는 '비겁하다' 운운하며 범인의 자수를 강요하는 희한한 결말은 전대미문이라 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등장하는 트릭도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살인을 저지른 다음에 밀실을 그 위에 짜 맞췄다니 작위적인 것도 유분수지... 하여간 트릭도 별로고 내용도 별로니 완전 최악이었습니다.

다행히 첫 번째 단편 "백합나무 그늘"과 두 번째 단편 "개는 환영하지 않아"는 일상계 느낌이 가득해서 읽을 만 했습니다. 이 중"백합나무 그늘"은 팬서비스적인 에필로그 형식의 후일담과 일상계적인 느낌 이외에는 별로 건질 게 없기는 합니다. 어렸을 적 약속을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한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고, 마야의 행동도 납득하기 어렵거든요. 평작 이상도 안 되긴 하지요.

그러나 "개는 환영하지 않아"는 아주 좋았습니다. 사건의 기이한 동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앞부분부터 설명해 주고 있는 점과 단서를 공정히 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하거든요. 시지마와 아오우를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진 이유 역시 나름 설득력 있고 요. 합리적이고 기발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 하나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 한 작품만으로는 역부족. 앞서 말했듯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덧붙여 번역 문제를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작에서도 '주인 住人'이라든가 '중정 中庭' 같은 일본식 한자 표현을 여과 없이 쓴 것이 눈에 거슬렸었는데, 이 책에서는 여러 명의 긴 대사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구분이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대체 누가 이야기하는지 혼란스럽게 만들어 책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전작도 같은 문제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이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강하게 남겨준다는 장점은 있군요...

때문에 별점은 1.5점.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구태여 찾아볼 필요는 없겠습니다. 특히나 책 뒷표지의 "거꾸로 가는 시간이 수놓는, 마법과 같은 노스텔적 연작 탐정 미스터리"라는 현란한 문구에 속지 마시길. 마법과 같은 노스텔적 미스터리 좋아하시네.

2006/12/06

나는 전설이다 - 리쳐드 매드슨 / 조영학 : 별점 3.5점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표제작 중편 이외에 10편의 단편이 같이 실려 있는 중단편집. 이 바닥에서는 유명하지만 호러 계열은 취향이 아닌지라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형의 지인이 대여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게된 책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재미있더군요! 제 취향때문에 안 읽었더라면 큰일날뻔 했어요.
일단 표제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한 뱀파이어 호러물 "나는 전설이다"는 정말 대단한 작품으로 여러모로 생각해 볼 부분이 많더군요.
중편이긴 하지만 하나의 긴 기둥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4개의 시즌으로 구분하여 각 에피소드별로 나뉘어져 있는 방식인데 개인적으로는 살아남은 강아지 에피소드가 제일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만 다른 에피소드들도 전부 보통 이상입니다.
바이러스가 일종의 공기로 전염되는 것이라는 것이라던가 주인공이 뱀파이어 바이러스에 어느정도 면역이 있다는 등의 설정부터 쓰여진 시기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획기적이고 특이하며 홀로 집을 요새처럼 꾸며놓고 거의 좀비와 같은-사고(思考) 없는- 뱀파이어들과 싸운다는 설정은 후대 다른 많은 작품들, 특히 좀비물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또한 혼자서 뱀파이어들을 퇴치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의 리얼함이 정말 생생합니다. 읽다가 어느새 감정이입하게 될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뱀파이어라는 이질적 존재에 대한 나름의 과학적인 전개도 곁들여서 재미를 더하는데 주인공이 뱀파이어를 퇴치하기 위해 마늘과 십자가, 햇빛에 대해 여러가지 연구를 하는 부분, 또 그들의 라이프사이클(?)을 파악하고 낮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생존과 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구하고 만드는 부분 등은 리얼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칩니다.

딱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마지막 에피소드, 즉 작품 후반부에 중간존재(?) 격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영화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이었어요. 이 여성이 등장하지 않고 더 묵직하게 끝나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모두가 비정상인 곳에서 혼자만이 정상이면 그 혼자가 결국 비정상, 괴물이라는 주제는 묵직하게 전달됩니다. 외눈박이 마을에 두눈박이가 가면 안되는 것 처럼요. 제목 그대로의 주인공 네빌의 독백이 정말로 와닿는, 재미도 있으면서도 작가의 철학과 주제가 잘 전달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다른 단편들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이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덧1 : 영화 "오메가 맨"의 원작인지는 몰랐는데 확실히 영화는 많이 달랐었죠. 영화에서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등장해서 주인공의 고독을 극대화시키지 못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이번에 다시 영화화 한다는데 주인공 네빌의 절망과 음울한 분위기를 얼마만큼 잘 살릴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주인공 역으로 윌 스미스는 영 아니라는 생각이...
덧 2 : 읽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이마 이치코의 걸작 단편선 3권 "외딴섬의 아가씨"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침묵"이 생각나네요. 정상인인 듯(?)한 한 마을에 동굴을 통해 찾아온 이웃 마을 마법사의 이야기인데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주제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던지기 놀이 :
작은 마을의 카니발. 탁구공을 던져 어항안에 집어넣으면 상품을 주는 코너에서 한 남자가 연달아 탁구공을 집어넣기 시작한다.
사소한 작은 일상에서 점차 커져나가는 스릴과 공포를 잘 나타낸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결말이 약간 황당하긴 하지만 전개가 상당히 매끄럽고 탄탄하네요.

아내의 장례식 :
굉장히 짧은 꽁트 형식으로 내용 요약이 어렵지만 유머러스하고 섬뜩한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른바 "기묘한 맛" 류의 단편입니다.

죽음의 사냥꾼 :
아멜리아는 서른이 넘어서도 어머니에게 속박당한채 자유스럽지 못한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 아서에서 선물하기 위해 골동품상에서 구입한 인형이 주술걸린 사슬이 벗겨져 그녀를 습격하는데...
스티븐 킹 느낌이 물씬 나는 호러물입니다. 약간의 배경 및 캐릭터 소개를 제외한다면 거의 전편에 걸쳐 주인공 아멜리아와 죽음의 인형의 사투를 다루고 있어서 깊이는 좀 없지만 내용 자체는 무척 재미납니다. 공포스럽기도 하고요. 그러나 마지막 결말에서의 반전은 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마녀의 전쟁 :
P.G 센터의 일곱명의 예쁜 소녀들은 사실 마녀로 적군을 마법으로 습격하는 작전을 시작한다.
굉장히 짧은 작품으로 마녀들의 저주와 술법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라 그다지 알맹이는 없습니다. 단지 아이디어만 좀 기발하달까... 작가의 이력에 TV시리즈 "환상특급" 원작을 여러편 썼다는 내용이 있는데 정말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영상화가 더 어울릴법한 소품이었습니다.

루피 댄스 :
순진한 소녀 페기는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건달인 버드와 렌, 그리고 렌의 파트너 바바라와 같이 금지된 우범지역 세인트루이스로 놀러가 "루피댄스"를 처음 접한다.
뭔가 전쟁이나 다른 이유로 약간 맛이간 세계를 무대로 해서 황폐하고 무절제한 젊은이들을 그린 작품. 초반부의 맛간 젊은이들 묘사는 스티븐 킹 작품의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데 괴물이 등장하는 등의 공포로 이어지지는 않고 "루피댄스"라는 기묘한 춤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끝납니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SF적인 몇몇 설정과 대사는 재치있지만 그다지 생각보다 재미있진 않았습니다. 어차피 제가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건지 무절제한 청춘 이야기는 식상하기도 했지만요.

엄마의 방 :
짧기도 하고 내용 요약이 힘든 작품이지만 나름 반전이 있는 소품입니다. 역시 "기묘한 맛" 류일까요? 루스 렌들 여사의 단편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드 하우스 :
한때 작가를 꿈꾸던 크리스는 허름한 집에서 결코 끝나지도 못할 소설을 붙들고 사는 말단 영어 강사로 삶에 대한 그의 분노가 너무 커져 그의 아내 샐리가 그를 떠난다고 통보한다.
분노와 성질이 누적된다는 굉장히 이색적인 아이디어로 설득력있게 쓰인 작품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말까지 깔끔해서 무척 마음에 드네요.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장례식 :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 앞에 에스퍼라는 작자가 나타나 최고급 관을 주문한다...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소재이긴 하지만 무척 유머러스할 뿐더러 끝까지 유머의 끈을 놓지 않아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역시 영상이 더 설득력 있을 것 같은 "환상특급"류의 작품 이었습니다.

어둠의 주술 :
의학박사 제닝스는 자신의 딸 패트리시아와 약혼한 피터가 광분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피터가 주술에 걸렸다고 이야기 한 덕분에 자신의 친구이자 주술의 권위자인 대학교수 하월박사를 불러 그를 치료하려 하는데...
주주 주술이라는 정체불명의 주술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주술에 대한 상상력과 그것을 묘사하는 내용은 리얼하고 생동감있지만 그다지 알맹이는 없는, 이색적인 소재에 많이 기댄 범작입니다. 괜히 길기만 기네요.

전화벨 소리 :
밀만은 새벽 3시에 걸려오는 전화때문에 미칠 지경. 그의 정신과 의사 팔머 박사의 조언대로 전화를 받아보지만 상대방은 정부 요원이니, 발명가니, 아버지니 하는 헛소리를 계속 해 대는데...
이 작품 역시 호러라고 보기엔 약간 썰렁하지만 나름 서늘한 맛이 있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이색적이고 기발하면서도 서늘한 소재와 전개, 그리고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23/09/15

꽃밥 - 슈카와 미나토 / 김난주 : 별점 2점

꽃밥 - 4점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예문사

공포 소설에 가까운 환상 소설 <<도시전설 세피아>>로 접했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 몰랐는데 나오키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수상 이력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흥미가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부 주인공 화자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오사카 변두리 어딘가에 있는 서민가 뒷골목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웃간 소통이 많고, 아이들끼리는 항상 어울려 놀곤 했던, 우리나라로 따지면 <<검정 고무신>>이 떠오르는 그런 시대 그런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가는 소년, 소녀들이 접하게 된 다소 기이하고 환상적인 경험들이 그려지는데, 환생, 성불하지 못한 영혼과 같이 뻔한 것도 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서정적인 묘사는 나오키 상을 수상할만하다 싶고요.

그런데 소년, 소녀가 묘한 경험을 한 뒤 한 뼘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은 기억에 깊숙한 자국을 남기기는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뻔하지 않아서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래서 어쩌라고?'처럼 기승전결없는 단순한 추억담이에요. 그들이 겪은 기묘한 경험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고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려던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했습니다. 별다른 설명없이, 기승전결없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미쓰다 신조의 괴담물과 별로 다를게 없어요. 결말은 명확해서 괴담물보다는 이야기로서 완성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결말은 모두 추억과는 별 관계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닙니다. 장르 문학 팬이 평가할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스포일러를 알아봤자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요.

<<꽃밥>>
초등학생인 여동생 후미코가 열병을 앓고 난 뒤, 스물 한 살 때 살해당한 시게타 기요미라는 여자의 환생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기요미의 집을 보러가자고 졸라서, 나는 후미코를 데리고 히코네라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요미의 아버지가 딸이 살해당할 때 튀김을 먹고 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곡기를 끊었다는걸 알게 된 후미코는 기요미가 어릴 때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밥을 기요미의 아버지에게 전해준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표제작. 후미코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 초, 중반부는 사뭇 흥미진진했습니다. 후미코가 노트에 시게타 기요미 가족 이름을 써 둔 것, 어린 아이임에도 보이는 기묘한 행동들로 공포물스러운 느낌을 전해주거든요. 약간 <<오멘>>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아직 어리지만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고 가족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가족과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이런 부분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하지만 환생임을 밝히고 난 뒤, 아버지에게 꽃밥을 전해준다는 최루성 가족 드라마스러운 전개는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너무 뻔했어요! 결말도 예상대로였고요. 뻔하고 무난한 탓에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도까비의 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쿄에서 오사카 서민촌으로 이사온 나 (유키오)의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중 모두가 은근히 따돌리던 한국인 형제가 있었다.
나는 형제 중 동생 정호와 친해졌지만 몸이 약했던 정호는 그 해 여름 죽고 말았다. 그리고 마을에 정호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한국인 형제가 있다는 설정은 반가왔습니다. 도까비 라는 제목도 도깨비에서 따 왔으며,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고추를 문에 걸어둔다는 한국적인 설정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실제 작가 유년 시절에 한국인 친구가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여튼 읽으면서, 정호 귀신 소동은 몸이 튼튼하고 강했던 정호의 형 준지가 자기들을 왕따시킨 마을에 대한 작은 복수극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호의 도까비가 소동을 일으켰고, 이유는 원래 정호의 몸 상태 - 몸이 아프고 약해서 방에만 있었다 - 때문이었다는건 의외였어요. 그래도 죽은 뒤 아프지 않고 자유로와져서 온 마을을 싸돌아다녔다는 건 꽤 신선했습니다. 유키오의 장난감으로 신나게 논 뒤, 드디어 성불하게 되었다는 결말도 그럴싸 했고요.

그러나 진짜 도까비였다는건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복수극으로 생각했던 탓입니다. 너무 추리, 범죄 소설에 뇌가 찌들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요정 생물>>
오사카 변두리 주택가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세쓰코는 정체불명의 상인으로부터 '요정 생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키우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말처럼, 아빠의 부하로 잘생긴 훈남 다이스케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엄마와 함께 도망가 버렸고, 세쓰코는 요정 생물을 죽여서 버렸지만, 그 뒤 아빠의 다른 부하 지로에게 강제로 몸을 빼앗긴 뒤,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


요정 생물이라는 기묘한 존재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환상 소설에 가깝습니다. 요정 생물의 계란 프라이같은 생김새와 키우는 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물은 사흘에 한 번 갈아줄 것. 물에 티스푼 절반 정도의 설탕을 풀 것. 강한 햇볕을 쬐면 안되고, 더운 곳에 두어도 안됨. 병을 바꿀 때는 같은 크기로. 병이 커지면 덩치도 커진다 - 등을 통해 <<그렘린>>과 비슷한 크리쳐 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데, 알고보니 어린 소녀가 '성'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요정 생물'과의 접촉에 직접적으로 비유하여 전개하는 작품이더군요.

디테일한 설정이 뒷받침된 요정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그 외에는 별로였습니다. 엄마와 다이스케가 불륜을 저지를거라는건 너무 뻔했으며, 성적인 소재를 일본 특유의 변태적인 상상력으로 풀어낸 느낌이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세쓰코가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는 결말도 와 닿지 않았고요. 왜 요정 생물이 세쓰코에게는 행운을 가져다 주지 않은걸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참 묘한 세상>>
아키라의 백수 삼촌이 죽었다. 술에 취해 육교를 건너다 계단에서 떨어진 탓이었다. 그런데 장례식 후 화장터로 향하던 영구차가 멈춰버렸고, 관을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영문을 모르던 어른들은 당황했는데, '나'는 삼촌의 애인이었던 가오루 씨를 부르면 될 것이라 여겼다...

장례식에서 난봉꾼 망자의 관 이동을 놓고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 사실혼 관계의 아내 외의 애인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는 반전은 살짝 깼고, 이 여자들이 모두 친구가 된다는 결말도 유쾌합니다. 제목 그대로 참 묘한 세상이에요. 하지만 딱히 재미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오쿠린바>>
40년 전, 나는 어린 나이로 '오쿠린바'인 먼 친척 할머니의 조수가 되었다. 오쿠린바는 주문으로 사람의 혼과 몸의 연결을 끊어 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임종하면서 나에게 주문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잇지 않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요약은 단순하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오쿠린바가 주문을 외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화가 여러개 소개되며, 주문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문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듣게 만들어야 효과가 있으며, 중간까지 들려주면 살아있지만 나머지를 듣게되면 바로 죽는다는 등으로요. 
하지만 일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고, 설정도 작 중 그렇게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합니다. 그냥 오쿠린바 할머니의 또다른 회고로만 설명되며, 주인공 화자 미사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로 끌고 나갈 수 있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얼음 나비>>
수십년 전, 오사카 변두리 거리 동네에 살았던 나(미치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왔다. 친구가 없는 탓에 묘지에 놀러갔다가 18살이라는 누나 미와와 친해졌다. 그녀는 아픈 동생을 구하기 위해 머나먼 타지로 나와 일하고 있다고 해다. 그리고 겨울에도 살아남는 신비한 나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울에도 살아있는 나비를 통해 어린 시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아픈 사랑(?)과 사라져버린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신비로운 상황이라는게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겨울 나비를 보고 미와와 헤어지는 미치오의 모습은, 청춘의 환영인 메텔을 떠나보내는 테츠로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서정적인 버젼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겨울 나비에 대한 묘사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미와가 유령이 아니라면 몸을 팔고 있을 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결말은 둘의 파국이라는게 너무 뻔해서 의외성도 없었고 진부했습니다.
환상 소설 측면으로 보아도 '겨울 나비' 자체는 실존하는 것이기에 딱히 언급할게 없네요. 마지막에 함께 본 나비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일 뿐입니다. 특별히 장르 문학적으로 바라볼 부분은 없어요.
그 외에도 미치오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 설명되지 않고, 미와와의 이별 후 급작스럽게 마사히코가 친구가 되자고 이야기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럴 바에야 왕따 설정은 빼고 그냥 외로운 아이였다고 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25/04/19

금병매 살인사건 - 야마다 후타로 / 권일영 : 별점 1.5점

금병매 살인사건 - 4점
야마다 후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스토리텔러

원제는 "妖異金瓶梅 (요이 금병매)". 중국 고전 "금병매" 속 인물들과 설정으로 본격 추리극을 만든 15편의 독특한 단편들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주로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을 질투하여 없애는 반금련의 계획이 그려지며, 탐정역은 서문경의 난봉꾼 친구인 응백작이 맡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리스트(대표적으로 이거)를 통해 언급되던 작품이지요. 국내에 출간되었다는걸 몰랐었는데, 얼마 전 알고 읽게 되었습니다. 

특징이라면 본격 추리물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역사 소설 느낌도 난다는 점입니다. "금병매" 세계관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 덕분이지요.

그러나 추리물로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수록작 거의 대부분의 동기가 "반금련의 질투"이며, 핵심 트릭 대부분도 "반금련의 변장"으로 의외성과 설득력도 거의 없는 탓입니다.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에 뒤로 가면 갈수록 지루해지고요. 

게다가 마지막 몇 작품은 아예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반금련이 서문경을 너무 사랑한 탓에 사건을 일으켰고, 반춘매와 응백작, 심지어 무송까지 금련 주변 인물들도 모두 금련을 사랑했다는 결말은 황당하고요. "메이지 단두대"에서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는데, 차라리 이게 추리 소설에는 더 어울렸습니다. '사랑' 때문이라는건, 호색한 서문경이 주인공인 "금병매"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대부분이 별로였고, 지루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금병매"와 "수호지"를 바탕으로 쓴 팬픽 정도에 불과한 느낌입니다. 다만 딱 한 작품, "인어등롱"만큼은 빼어납니다. 작품에 반복되는 반금련의 질투로 인한 살인과 억지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적당히 현실적이고 "금병매" 세계관과도 잘 어울리는 덕분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이 작품 한 편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는 "저택의 사육제" 정도 말고는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딱히 "금병매"의 애독자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이런 작품까지 꼼꼼하게 번역, 소개해 준 출판사와 번역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이 작품보다는 "메이지 단두대" 쪽이 훨씬 낫습니다. "메이지 단두대"가 제대로 소개되는게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붉은 신발"

서문경의 부인 둘이 다리가 잘려 죽었다. 범인은 또 다른 부인 손설화로 의심되었다. 몽유병 증세가 있던 설화가 과형이라는 다리를 잘라 집행하는 사형 집행 과정을 본 뒤, 원한이 있었던 두 부인을 살해했다고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문경의 친구인 난봉꾼 응백작은 여성 다리에 대해 성적 집착을 가지고 있는 하인 내왕야가 범인이라고 추리했다. 죽은 부인들의 다리를 가져다 놓고 옮긴 과정이 설화의 짓으로 보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러나 응백작은 장례식 날, 송 부인과 봉 부인의 발이 바뀐걸 보고 이 모든걸 꾸민 진범은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챘다.  

반금련이 자신을 얕잡아 보는걸 절대 용서하지 않는 독부라는걸 잘 알려주는 에피소드입니다. 동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은 송 부인의 발이 자기 발보다 작다는걸 공개적으로 과시해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송 부인의 발을 봉 부인 발과 바꿔친 후, 장례식에서 송 부인 발이 자기보다 크다는 말을 남기려고 다리를 옮겼던 겁니다.

그러나 범행이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반금련 혼자 다리를 잘라 옮기는게 가능했으리라 보이지도 않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미녀와 미소년"

서문경이 총애하는 두 명의 미소년 화동과 금동은 사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금동이 반금련과 정을 통하자, 화동은 이를 서문경에게 고해 바쳤다. 서문경은 반금련에게 탁랍형을, 금동에게는 궁형(거세형)을 내렸다. 형을 받은 금동은 동굴에 갇혀 화동을 원망했는데, 어느날 동굴 앞에서 화동이, 집 안에서는 금동이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서문경이었습니다. 발자국이 하나 밖에 없는건, 서문경이 사체를 업고 날랐기 때문이고요. 사체를 업고 옮길 수 있는건 서문경 밖에 없다는걸 밝혀내는 응백작의 추리는 괜찮았습니다.  전족을 한 여자들에게는 무리였으니까요.

하지만 반금련이 두 남자에게 질투하여 모두를 죽이려고 짜낸 계책이라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금동이 거세된 뒤에는 죽일 이유가 없어졌으니까요. 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반금련이 화동으로 변장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였습니다. 서문경이 이를 몰라보았다는건 말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반금련이 질투로 살인을 저지르고, 반금련이 먼저 상대방을 유혹하며, 반금련의 변장은 천하무적이라는 설정은 이후 모든 단편에서 반복되는데,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염마천녀"

양산박 도적 소탕 실패에 책임을 지게 된 사돈 양 제독 탓에, 딸과 사위 진경제는 서문경의 집으로 도피했고 서문경도 함께 근신하는 신세에 놓였다. 서문경은 이 와중에 사위 진경제의 몸종 주향란을 새로이 일곱번째 첩으로 들였다. 그러나 진경제와 주향란은 이미 정을 통하던 사이였다. 반금련은 잔경제를 유혹했지만 들통난 뒤, 진경제는 서문경의 저택 우리에 갖혔다. 그리고 도성의 일이 정리된 날, 누군가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었는데...

주향란의 혀를 물어 뜯은건 누구일까?라는 후더닛 물인데, 특별한건 없습니다. 당연히 반금련이니까요. 정액을 발라 남자 냄새를 풍겼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이 등장하지만, 변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자마다 유혹하고 다니는 반금련을 그냥 놔두는 서문경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저택의 사육제"

지현의 색기 넘치는 부인이 서문경 저택을 방문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였다. 반금련은 그녀를 덮칠 계획을 서문경에게 알려주었다. 연회에서 술게임을 해서 취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에 너무 취한 임부인은 2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임부인이 떨어져 죽은건 반금련의 계획이었고, 그녀의 시체를 지현의 부하들에게 고기 구이로 속여서 먹였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엄청나게 뻔하지요. 하지만 여러 음식 및 작가 특유의 광기어린 분위기의 묘사는 좋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란꽃 살인"

유명 화가 소용면이 서문경의 처첩 초상화를 그려주는 날, 새로운 일곱번째 첩 양염방이 벌에 쏘였다. 반금련이 건네 준 모란 꽃 때문이었다. 그 뒤 자기 때문에 자살한 소자허의 원혼이 보인다며 난동을 부리던 염방은 반금련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소용면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양염방이 독살당하는데...

스스로 벌에 쏘인 반금련이 양염방인 척 연기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일부러 벌에 쏘인 상처가 가라앉을 때까지 숨어 있으려고 머리카락이 잘린 척 했다는건 괜찮았어요.

그러나 변장 트릭이 너무 허황됩니다. 소용면만 있던 것도 아니고, 서문경과 응백작 및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변장한 반금련을 수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몰라봤다는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돈에 환장한 사내"

인색하기로 유명한 서문경의 생약가게 부지배인 한도국이 어느 날, 아내의 전남편 송철곤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송철곤은 납을 은으로 만드는 비법을 완성했다고 주장했고, 철곤에게 속은 서문경은 가마를 만들고 거액의 은도 투자했다. 그런데 가마에서 풀무질을 하던 중, 서문경은 한도국의 아내이자 유명한 추녀 요금에게 급작스럽게 음심을 품게 되었다. 그 뒤 한도국에게 요금을 아내로 달라고 제안했는데, 요금은 철곤 도사의 블꽃쇼 도중 화살에 맞아 죽고 도사도 가마 안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었다...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송철곤 도사의 연금술 사기,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 철곤 도사의 불꽃쇼와 새부인 요금 살해 사건, 철곤 도사 살해 사건, 한도국 살해 사건이 차례로 벌어지는 탓입니다. 

철곤 도사의 연금술 비법은 당연히 사기인데, 나름 기발한 점이 있습니다. 가마 앞에서 음탕한 행동을 하면 은이 납으로 변한다고 말한 뒤, 풀무질을 하는 사람들에게 미약을 탄 술을 먹여 음란한 짓을 하도록 유도했던 것이거든요. 이게 서문경의 새로운 부인 맞이로 이어지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전별금'이라는, 한도국이 송철곤을 죽인 이유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극히 수전노스러운 동기로, 제가 여태 보아왔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 없던 동기였던 덕분입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은 어처구니없네요. 삶은 달걀을 억지로 밀어넣어 목을 막아 죽였다는 방법도 황당하지만, 대충 만들어 자동으로 발사되게 만든 화살이 형편좋게 요금의 등에 맞았다는 것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에요. 도사를 살인범으로 모는 것도 과연 잘 되었을지 의문이고요. 한도국이 돌아온 뒤, 반금련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죽는 결말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도주해야 했던 사람이 구태여 반금련을 만나 사지로 걸어들어갈 이유는 없으니까요. 요금 이야기를 빼고 사기에만 집중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여인의 향기"

서문경과 반금련에게 원한을 품은 호걸 무송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문경 가족은 저택에 숨어있기로 했다. 심심했던 반금련은 향기로 여자 맞추는 게임을 제안했는데, 게임 도중에 무송이 쳐들어왔다. 서문경은 기생 이계저와 함께 관 속에 숨은 뒤 험한 꼴을 당한다... 

모든건 응백작과 반금련이 힘을 합처 꾸며낸 연극이었습니다. 소란 틈에 응백작은 돈을 훔치고, 반금련은 기생 이계저를 쫓아내기 위해서요. 거대한 무송은 응백작 어깨 위에 반금련이 올라타 연출했지요.

살인이 아니라 일종의 장난으로 경쟁자 이계저를 쫓아냈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보다는 조금 낫더군요. 무송이 엮이는 설정도 흥미로왔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 속 미녀"

여섯째 부인 이병아가 죽은 뒤, 서문경은 애틋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 편, 반금련은 금동의 여동생 춘연을 몸종으로 들인 뒤, 금동이 죽은 사건의 진상을 말해주는데....

춘연에게 옻독을 옮겨, 춘연을 덮치려 한 서문경이 혼비백산하게 만든다는 반금련의 계획이 등장합니다. 이병아 초상화에 장난을 쳐서, 이병아에 대한 마음을 없애려는 목적으로요. 

죽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동기는 독특했는데, 방법이 잔혹하고 유치해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자신이 죽인 남자의 여동생마저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요. 별점은 1점입니다.


"아름다운 눈동자"

새로 들인 여섯째 부인 유여화는 눈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유여화가 반금련과 서문경이 사랑을 나누는걸 엿보다 시력을 잃는다는 내용인데, 거울을 이용한 트릭이라는게 너무 뻔했습니다. 노골적으로 거울을 강조하고 있는 전개 탓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유여화의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이미 서문경은 흥미를 잃었다는데 그런 여자를 해할 필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질투심이라면, 왜 자기보다 먼저 처첩이 된 이전 부인들은 죽이지 않고 가만 두는지 납득이 되지 않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낙인 찍힌 미녀들"

새 부인 빙금보가 진주를 훔쳤다는게 밝혀져 쫓겨났다. 대식국에서 온 조오라 공주는 등에 십자가 낙인이 찍혀, 기독교를 포교하고 다니는 신하 알 무타츠와 함께 돌풍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두 개의 사건과 트릭이 등장합니다. 빙금보가 깜깜한 곳에서 진주를 훔친 방법은,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눈을 감고 있었다는게 전부라 시시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불에 달군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공주 등에 낙인을 찍은 트릭은 새로왔습니다. 화상이 아니라 얼음을 이용해 만든 동상이었다는게 진상이에요. 이를 풀어내기 위해 공주가 흠뻑 젖었다는 상황도 잘 설명되고 있고요. 대식국 출신 승려가 기독교를 포교한다는 독특한 설정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편을 섞은 술을 마셨다 하더라도, 동상을 입을 정도로 얼음 위에 오래 정자세로 누워있는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마지막에 급작스러운 돌풍이 승려와 공주를 데리고 갔고, 반금련의 몸에 십자가 상처를 남겼다는 결말도 억지스럽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검은 젖가슴"

반금련은 서문경이 눈을 가린 채 시력을 잃은 유여화의 몸을 탐닉하는걸 목격했다. 그 뒤, 반금련은 유여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서문경이 새 첩 갈취병에게 푹 빠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의 눈을 멀게한게 반금련이라는걸 알아챈 유여화는 복수에 나섰지만, 오히려 죽은건 갈취병이었다. 왜 갈취병이 반금련이 방에서 자고 있었고, 왜 그녀의 시체가 유여화 방에 나타났을까?

유여화가 실명했다는걸 이용해서 위치를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트릭인데 솔직히 너무 뻔했어요. 손가락 촉감에 자신있다는 서문경을 비웃듯, 반금련이 갈취병인 척 했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도 뻔한건 마찬가지였고요. 이젠 지겹기까지 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얼어붙은 환희불"

서문경이 자기 탓에 죽은 사람들의 귀신을 본다고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반금련은 서문경과 함께 퇴마를 위해 태산에서 수행 중인 수도승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무송이 이끄는 양산박 무리와 마주쳤다. 무송은 서문경과 반금련을 쫓아온 것이었다. 반금련의 활약으로 둘은 목숨을 건지지만, 여자로 변장한 낭자 연청의 화살에 죽을뻔한 서문경은 그 뒤부터 여자를 두려워하게 되는데...

죽음 앞에서 당당한 반금련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반금련은 모야차가 인정할 기개를 보여 목숨을 건지거든요. 이 부분은 수호지 설정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수호지는 억지로 끼워넣은 느낌이 강합니다. 게다가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네요. 여자에 흥미를 잃은 서문경과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낭자 연청을 가장하여 죽게 만들었다? 이젠 정말이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네요. 별점은 1점.


"여인 대마왕"

서문경의 장례식, 반금련은 불륜을 저지르던 첩 향초운과 상대남 유포를 잡아 죽이자고 제안했다. 이 기회에 유산을 노리는 버러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불륜남녀와 함께 서문경 사체가 목이 베인채 발견되는데...

불륜남녀와 서문경 사체의 목을 자른 이유가 기발했습니다. 반금련이 자기 혼자 서문경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꾸민 짓이었거든요. 처음 무덤으로 향한 서문경의 상여 속 사체는 서문경 머리와 유포의 몸이 붙어 있었습니다. 반금련은 무덤에서 나중에 서문경의 머리만 빼 온 뒤, 특별한 장례도 없이 매장된 유포의 몸으로 위장한 무덤에 합쳤고요. 

반금련이 서문경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중국 전통과도 잘 맞아 떨어지는 등, 이 작품만 놓고 보면 평작은 됩니다. 다만, 반금련의 서문경에 대한 '사랑'이 당쵀 납득이 되지 않는게 문제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연화왕생"

무송이 나타나 모야차와 함께 반금련의 몸종 춘매를 협박했다. 수비부 책임자 주수와 결혼한다는 반금련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반금련은 이 기회를 이용해 무송의 복수를 끊어버릴 계책을 짜냈다.

반금련의 죽음, 그리고 무송이 결국 반금련에게 반하고 만다는 최악의 설정이 등장합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네요. 별점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반금련"

방춘매는 주수비의 아내가 된 후, 주수비가 청하현 모든 남자를 양산박 토벌 작전에 징집하도록 만들었다. 모든건 반금련을 음탕하다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춘매의 계획대로 남자가 없는 귀부인들은 음탕한 축제에 빠져들었다. 결국 주수비가 토벌 작전에서 죽은 뒤, 거란군은 남자가 없는 청하현을 덮쳤다. 그러나 응백작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시체로 무송 일행을 꿰어내어 청하현을 구했다.

줄거리만 보아도 황당하기 그지 없지요? 춘매가 금련에게 이렇게까지 충성을 바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귀부인들이 남자가 없다고 삽시간에 음탕한 축제에 빠져든다는 설정도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얼음에 재워둔 반금련의 사체를 보고 아직 그녀가 살아있다 여긴 무송과 양산박 일행이 거란군을 물리친다는 마지막 장면은 제가 뭘 읽고 있는지도 모르게 만드네요. 역시나 별점은 없습니다. 아니, 별점을 준다면 마이너스에요.


"인어등롱"

앞서의 "낙인찍힌 미녀들"을 일부 수정한 이야기. 진주를 훔치는 트릭은 동일한데, 범인만 갈취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진주를 훔친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잔혹한 서문경이 갈취병 뱃속의 진주를 낚시로 꺼내려다 그만 낚시바늘이 취병의 위에 박히는데, 반금련은 갈취병에게 염주를 먹게 하여 그 무게로 바늘을 빼게 만드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또 이 모든 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부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금련이 갈취병의 아름다운 치아를 부수기 위해 꾸민 계획이라는 반전도 돋보였습니다. 새로운 처첩을 이 정도 계책으로 쫓아내고, 아름다움을 훼손시키는 정도가 확실히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새로 들어온 처첩이 계속 죽어나간다는건 말도 안되잖아요?

제 기준으로는 수록작 중 가장 빼어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7/10/26

슈퍼맨 둠스데이 (Superman Doomsday) : 별점 2.5점

렉스 루터가 발굴한 외계에서 온 캡슐에서 뛰쳐나온 궁극의 병사 "둠스데이"는 그 강력함으로 슈퍼맨을 압도한다. 슈퍼맨은 생명을 건 사투끝에 둠스데이를 제압하지만 그 자신도 생명을 잃고 만다. 하지만 렉스 루터는 슈퍼맨의 시체와 흘린 피로 슈퍼맨을 복제하여 그를 자신 마음대로 조정하려 하지만 자아를 각성한 복제 슈퍼맨은 외려 루터를 제압하고 스스로 메트로폴리스의 "법"이자 "신"이 되려 하고, 이를 막기 위해 진짜 슈퍼맨이 부활하여 한판 승부를 벌이는데...

제가 슈퍼 히어로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이전에 했었죠? 이번에 본 것은 슈퍼맨 최신 장편 애니메이션인 "둠스데이" 입니다.

만화책에서 슈퍼맨이 죽는 에피소드의 주요 악역이었던 둠스데이는 당시 우리나라 신문에도 "슈퍼맨이 죽었다!"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충격적인 에피소드였죠.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강함이 굉장히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슈퍼맨의 죽음 이후 렉스 루터가 복제한 가짜 슈퍼맨과 진짜 슈퍼맨이 부활한 이후의 대결 구도는 외려 둠스데이 이야기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복제와 진짜와의 싸움은 솔직히 자아에 대한 심각한 드라마를 펼치는 것이 더 좋았을텐데 뜬금없이 선악의 대결로만 몰아가서 깊이가 전혀 없는 활극으로만 전개되거든요. 
또한 메트로폴리스를 지킨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도시를 완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는 내용은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럴 바에야 범죄가 좀 많아지더라도 슈퍼맨이 없는게 메트로폴리스 주민들에게는 더 안전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유튜브에서 찾아본 캡틴 마블과의 한판 승부에서도 도시를 아작내는 등 슈퍼 히어로 들은 주민들에게는 재앙과도 같다고 생각됩니다. 인크레더블스의 슈퍼 히어로 통제 법안이 확~ 와 닿더군요.

그래도 아주 전형적인 미국식 슈퍼 히어로 물로 즐기기에는 충분한, 미국 슈퍼 히어로물의 팬이라면 킬링타임용으로는 아주 제격인 재미있게 즐길 거리는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슈퍼맨과 로이스 레인의 러브라인도 잘 재현하고 있고 슈퍼맨의 장례식 묘사 등 잔재미도 풍부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11/23

맥파이 살인 사건 - 앤서니 호로비츠 / 이은선 : 별점 3점

맥파이 살인 사건 - 6점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별고 없는 조용한 마을 색스비온에이번에서 대저택 파이 홀의 가정부 메리 블래키스턴의 장례식이 치뤄졌다. 추도식을 맡은 목사, 음흉한 앤티크 숍 주인, 고인과 갈등을 겪은 아들, 시신을 발견한 관리인 등 등장인물들의 미심쩍은 행동과 죽음을 둘러싼 소문들이 밀도 있게 흘렀고, 이후 파이 홀의 주인인 매그너스 파이마저 기이한 죽음을 맞았다. 소식을 접한 탐정 아티쿠스 퓐트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데... 라는 내용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최신작 "맥파이 살인 사건" 원고를 읽던 담당 편집자 수전 라일랜드는 소설의 결말이 누락된 것을 알아챘다.
원고를 전해 준 출판사 사장 찰스로부터 작가 앨런 콘웨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수전은, 사라진 원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앨런의 자택과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앨런 콘웨이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데...

작 중 최고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중 하나인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맥파이 살인 사건"과, 이 책의 출판을 담당하는 클로버리프 북스의 소설팀 팀장 수전 라일랜드가 저자인 앨런 콘웨이 사망 사건에 얽힌 진상을 추적하는 두 개의 소설이 함께 수록된 작품입니다.
본 이야기 속에 하나 이상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인 액자 소설이라기보다는 "맥파이 살인 사건"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완성된 추리 소설로 수전 라일랜드 이야기의 동기로 사용된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보통 액자 소설은 본편 주인공에게 소설 내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 작품에서의 "맥파이 살인 사건"은 강력한 동기 외에는 딱히 다른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인기 시리즈로 베스트셀러가 확실한 작품인데다가 수전 라일랜드부터가 굉장한 추리소설 매니아라서 안 찾고는 못 배겼을 거라는, 굉장히 확실한 동기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은 높습니다. 

문제는 "맥파이 살인 사건"이 앨런 콘웨이 사건에서 큰 단서가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앨런 콘웨이가 추리 소설을 싫어하고 증오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도구로만 사용될 뿐입니다. 딱히 대단한 단서나 트릭이 숨겨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도구로의 사용도 대부분 앨런 콘웨이의 장난에 불과해서 크게 와 닿지 않고요. 오히려 "맥파이 살인 사건" 이라는 추리 소설 자체만으로의 완성도가 높은 수준이라 이렇게 사용되는게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1955년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크리스티 여사님으로 대표되는 당대 본격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며 모든 등장 인물들이 동기가 있고 수상하다는 전개도 본격물스러우며,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도 무척이나 합리적이며 범인의 동기도 확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전 라일랜드의 활약을 그린 본 편도 흥미롭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대단한 능력은 없는 출판사 직원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전개도 좋으며 ,본격물답게 엄청나게 많은 용의자가 엄청나게 많은 수상한 점을 드러내지만 이 모든게 마지막에 제대로 밝혀지는 결말까지는 아주 완벽했어요.

하지만 범인이 드러난 직후부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일단 범인이 찰스였다는 진상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게 밝혀지는 이유가 잠깐 스쳐지나간 해고된 비서와의 대화에서 비롯된다는건 우연에 기댄 작위적인 전개일 뿐 아니라, 찰스의 행동이 너무나 허술해서 황당할 정도에요. 앨런 콘웨이을 사전에 만났고, 이미 완성된 원고를 전달받았다는걸 수전이 아는 순간 모든게 끝나 버리잖아요? 마지막에 수전을 죽일 생각이 들었다면 비서부터 죽였어야지요.
동기에 대한 설득력도 낮습니다. 앨런 콘웨이가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를 완벽한 조롱거리로 끝장내기로 작정했다 하더라도, 그의 계획과 인터뷰는 책을 화제로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의 수준도 높은 만큼, 판매에 지장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아요. TV 시리즈야 물 건너 갈 수도 있겠지만 판매량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증명한다면 영상화 판권을 소유한 업체가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요. 즉, 수전 라일랜드가 처음에 찰스를 의심하다가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리 없다'고 생각을 접은게 타당한 추리입니다. 수전만큼의 추리 소설에 대한 애정을 찰스가 보였다면 그나마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래서야 현실성이 없죠.
아울러 앨런 콘웨이가 시리즈 제목을 활용하여 '애너그램' 이라는 말을 만들어 안배한게 고작 '아티쿠스 퓐트의 이름을 풀어서 해석하면 욕이다'라는 핵심 동기는 물론, 앨런이 추리 소설을 우습게 보았다는 각종 설정(예를 들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하철 역 이름이나 만년필 회사 등으로 대충 지은 것)도 딱히 이상하다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우습게 보고 그것을 조롱하고자 했더라면 좀 더 거대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후 경찰에 체포되어 출판계 동료들이 수전을 배신자라 생각하여 등을 돌렸다는 후일담도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앨런 콘웨이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해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더라도,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배신자는 무슨 배신자입니까... 마지막 수전이 그리스로 옮겨가는 에필로그는 솔직히 완전한 사족이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두 편의 완성도 높은 추리 소설을 한 권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굉장하지만 위의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욕심이 좀 지나쳤달까요? 차라리 "맥파이 살인 사건" 만으로 출간되었더라면 더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한 부분이 많고, 현대에 전통 본격물을 제대로 복원한 공 만큼은 인정합니다. 추리 장르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9/10/16

도서실의 바다 - 온다 리쿠 / 권영주 : 별점 2점

도서실의 바다 - 4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호감이 생견 차에 알라딘 중고책으로 싸게 팔길래 구입한 책입니다. 사실 꼭 사고싶었다기 보다는 다른 책을 사는데 어차피 배송비를 내야 하길래 판매자의 다른 책을 더 살까 하고 보다가 충동적으로 구입한 책이죠.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읽고나니 실망이 더 큽니다. 충동구매를 하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알려주는 책이랄까요.

일단 "봄이여 오라", "수련", "노스탤지어" 같은 작품들은 내용을 일부러 이해하기 어렵게 꼬아놓은 듯 한데 영 적응이 되지 않더군요. 이야기의 맥락은 둘째치고서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행간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 제 잘못도 있겠지만 일부러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본편을 읽지 않으면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힘든 외전격의 작품인 ""수련", "도서실의 바다" 역시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품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성립하기는 하지만 세계관을 명확하게 알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애초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원체 "리세"라는 캐릭터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장편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 "피크닉 준비"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수준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예고편을 돈받고 판답니까? 똑같이 예고편격인 "이사오 오설리반을 찾아서"는 그나마 다행스럽게 이야기로 성립을 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돈주고 사서 읽기에는 힘든 성격의 작품이라 생각이 되네요. 이런 작품이 실려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제게는 크게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이 책의 꾸준한 인기를 대변하듯 작가의 잔잔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도 실려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영화의 기억"이라는 작품은 주인공이 작은 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뒤 "청환기"라는 영화와 더불어 초등학교시절 겪었던 바닷가에서의 숙모 익사사건을 떠올린다는 이야기로 "청환기"라는 실존하는 작품을 잘 인용하는 것과 더불어 정통 추리물의 형식을 띄면서도 독특한 작가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트릭이 현실성이 약간 떨어져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하죠. 비극적인 모자의 이야기로 실존한다는 "청환기" 영화와 소설도 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국경의 남쪽" 이라는 작품은 과거 한 카페에서 10년간 일하며 물에다가 비소를 풀어 손님들에게 대접한 웨이트리스에 대한 약간은 섬뜩한 이야기인데 치사량은 아니지만 많이 마시면 죽는다는 것, 그래서 웨이트리스가 "서비스"를 하면 할 수록 해당 손님은 죽어간다는 이율배반적인 설정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처럼 반 정도는 마음에 들고 반 정도는 그렇지 않았는데 문제는 마음에 안드는 반이 너무 심하게 마음에 안 들어서 전체적인 점수가 많이 낮아졌네요. 어쨌건 좋은 작품은 분명히 제 취향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셈이니 다음번에는 꼭! 이 작가의 장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PS : 장편 중 제 취향으로 보이는 작품 추천 부탁드립니다. 제 취향은 아무래도 추리물이겠죠?^^

2018/05/19

회랑정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임경화 : 별점 1.5점

회랑정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업가 이치가하라가 죽은 뒤, 유언장 공개에 참석하기 위해 이치가하라가 소유한 여관 "회랑정"에 일족이 모였다. 그런데 이치가하라의 친구 아내로 이 장소에 참석한 70대 할머니 혼마 기쿠요의 정체는, 반년 전 회랑정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연인을 잃고 자살했다고 알려진 기리유 에리코의 변장이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복수를 위해 이치가하라의 유언장 공개 시 반년 전 사건의 진상이 담겨있는 기리유 에리코의 유언장을 공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밤 유언장이 사라졌고, 이치가하라의 조카딸 유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국내 한정 일본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 작품으로 1991년에 첫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일본 고전 추리물의 형태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는 특징이 눈에 뜨입니다. 초기작이라도 '가가 형사 시리즈' 류와는 다른, "십자 저택의 피에로"나 "가면 산장 살인 사건" 과 유사한 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십자 저택의 피에로",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추리적으로는 꽤 볼만한 점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못힙니다. 이유는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완전히 잘못되어 있는 탓입니다. 우선 초반 기리유 에리코는, 화상에서 죽지 않고 깨어난 후 연인 지로의 사체를 확인하고 오열합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연인의 떠올리며 복수를 위해 회랑정에 다시 찾아왔다는걸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요. 독자들도 탐정역인 기리유와 함께 진범을 찾기 위해 이치가하라 일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동기를 고민하고, 몇 안되는 단서를 조합하여 머리를 싸맵니다. 중반 이후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아들임이 밝혀지면서 부터는 범행 동기가 유산임이 명확해져서 이치가하라 일족은 더욱 의심스러워 집니다. 친아들이 있다면 다른 형제, 친척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확인한 지로는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고, 그녀의 연인으로 알았던 지로가 사실은 진짜 지로를 죽이고 그녀까지 죽이려 했으며, 그 정체는 변호사의 조수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 모든게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지로라고 속이고 대신 유산을 상속 받으려는 아지사와 히로미의 음모라는 것인데, 도대체 장황하게 앞 부분에서 복수 운운하며 여러가지 단서와 동기를 던져 놓고 고민한 게 만든 건 뭐였나 싶네요. 게다가 기리유가 자신이 알던 지로가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걸 이미 오래전, 이치가하라의 장례식 때 알아챘다고 하는 장면은 정말 넋을 잃게 만듭니다. 흑막이 누구인지 아는데 복수 운운하며 200페이작 넘는 분량 동안 탐정 행위를 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독자를 속이려고 하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억지스러워서 짜증스러울 정도입니다. 상식적으로 아지사와 히로미의 정체에 대해 안 시점에서 진범이 누군지 뭐가 중요할까요? 구태여 회랑정에 일족이 모였을 때를 기다릴 필요도 없어요. 변장해서 찾아간 후 복수를 하는 게 당연하죠.

이렇게 이야기를 그려내려면 최소한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지로의 사체를 확인할 때 굉장히 많이 타서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관 지배인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것이 기리유의 추리에 의해 밝혀진 후, 그에 따라 왜 아무런 동기가 없는(즉, 유산 상속과는 무관한) 그녀가 왜 이전에 지로와 기리유를 동반 자살을 위장해 살해하려 했는지? 에 대해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고 설명한 뒤, 아지사와 히로미가 마지막 순간에 등장했다면 적당히 이야기는 성립됩니다. 여기에 더해 두 명의 화자를 두어(가장 상식인인 나오유키가 적합했을 듯 싶습니다) 탐정 역을 번갈아 하게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을 제껴두어도 전개에 있어 동기와 용의자 구성도 정교한 편이 못됩니다. 이치가하라의 유산이 거액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범행 동기가 일족 모두에게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소스케는 국회 의원 출마를 예정 중이라 돈이 필요하다, 요코 남편의 회사가 어려워 돈이 필요하다 등은 모두 추정일 뿐 사실로 밝혀지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일족 모두 그다지 돈에 궁핍하지 않다는 묘사만 있을 뿐입니다. 또 일족은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 까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입니다.

물론 속도감 있고 흡입력 있는 전개는 괜찮아요. 최소한 저 마지막 황당 장면 전 까지는 아주 흥미롭게 읽은 건 사실이거든요. 경찰이 기리유의 모발을 찾아낸 후 그녀가 점차 궁지에 몰리는 과정의 서스펜스도 좋고요. 추리적으로도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범인이며, 과거 사건에서 공범임을 알아내는 장면도 그런대로 쓸만한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숨어 있으려고' 그 방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왜 전혀 고민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이 정도 장점으로 단점을 덮기는 무리입니다. 탐정이 누가 범인인지를 이미 아는 상황에서 공범자를 알아내기 위해 벌이는, 무의미한 사기극에 불과하니까요. 제 별점은 1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4/28

도덕의 시간 - 오승호 / 이연승 : 별점 3점

도덕의 시간 - 6점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영상 저널리스트 후시미는 몇 개월째 백수 상태였다. 진행하던 작업 중 자신이 하는 일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도예 스승 난보의 장례식날, 아들 도시키가 친구 마코토를 때린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 급전이 필요해진 후시미는 오랜 지인 다나베의 소개로 신예 감독 오치의 프로젝트 Q.M (Question of Morality, 도덕의 문제)에 카메라맨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Q.M은 13년 전 일어났던 마사키 쇼타로 살인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초등학교에서 강연 중 마사키는 옛 제자 무카이에게 살해되었고, 무카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오치는 공개되지 않았던 사건 당시 현장을 찍었던 비디오 테이프, 그리고 무카이와의 인터뷰를 무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오치는 무카이가 진범이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으로 강연을 주도했던 미야모토가 진범일 수 있다는 식으로 끌고갔고, 후시미는 이를 반대했다. 그런 후시미에게 오치는 미리 찍어두었던 미야모토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었다. 무카이의 친구였던 미야모토, 가지무라는 미성년자로 매춘을 하던 무카이의 여동생 미유키의 손님이었고, 미유키가 바로 오치였다. 그녀는 Q.M을 만든건 둘에 대한 복수라고 했다.
후시미는 날조된 Q.M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개인적으로 오치 - 무카이 미유키 - 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무카이가 사건을 저지른 진짜 이유를 알아낸다. 그는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서, 유명해지기 위해 사건을 저질렀었다....

재일교포 오승호 (고 가쓰히로)의 데뷰작으로 제 6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입니다.
무카이가 과연 진범일까?에 대한 수수께끼를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장치로 서서히 풀어나가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에 미야모토의 증언으로 왜 미야모토가 무카이의 이상을 감지하고 서둘러 나섰는지, 왜 강연을 촬영하던 카메라가 쓰러졌는지, 미유키는 왜 사라졌는지 등이 극적으로 밝혀지는 장면은 오치가 날조한 현재를 보여주고, 후시미 단독 촬영으로 무카이의 진짜 의도가 드러나는 일종의 반전이 이어지면서 Q.M이 완성되는 과정은 잘 짜여져 있습니다. 왜 후시미를 카메라 맨으로 선택했는지? 등 소소한 수수께끼도 나름 설명되고요. 오치는 후시미가 자기를 조사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랍니다. 영상 저널리스트 후시미는 그런 인물이라서요
이 모든 과정이 다큐멘터리라는 설정에 맞춰,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명확한 증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잘 어울렸습니다. 이를 통한 무카이와 미유키의 끔찍했던 유년 시절의 건조한 묘사는 이질적이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와시로 기자가 초등학교 때 무카이가 썼던 연극 대본 내용을 말해주는 장면 - 개를 잡아 먹었다는 - 는 정말 소름이 쫙 돋았어요.
Q.M과 함께 나루카와 시내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졌던 경범죄와 난보 선생 사건에서 현장에 적혀있던 낙서, 그리고 후시미의 아들 도시키의 그림이 망가진 사건 등이 정리되고 해결되는 과정도 깔끔했습니다. 오히려 Q.M보다 이 사건 쪽이 추리적으로는 더 볼만합니다. 여러가지 단서가 비교적 공정하게 제공되며, 동기에 대한 설명도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덕분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이 망가진건 아이들이 난보 선생 집에서 놀았다는걸 감추기 위해서였다는 식으로요.

마사키 쇼타로의 교육론, 후시미가 실제로 고뇌하는 자식 교육 문제 등으로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담론을 전개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후시미가 동네 주민 고마이와의 대화가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었어요.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유토리' 교육 방침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유토리 교육 (예유있는 교육)은 학력이라는 획일화된 평가 기준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 각각의 다양한 특기와 재능을 살리자는 취지의 교육이었다고 합니다. 방침은 아주 좋죠. 그러나 실패는 필연이었습니다. 사회가 그런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기와 재능을 살려봤자, 사회에서 성공하는건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학력은 사회에서 부여한 과제를 잘 처리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기에, 당연하다고 설명하고요. 저도 오랜 직장 생활 경험자로서 많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화 <<신입사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회 (대표적인게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평가하려면, 가장 쉽고 일반적인 기준은 학력이지요.
마사키 쇼타로가 '모두 씨'라고 부른 '도덕' 개념도 그럴듯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항상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아요. 내가 하는걸 항상 누군가 지켜보니 행동에 조심하라는 뜻이지요. '신'의 존재를 초등학교 아이들 수준으로 알기 쉽게 해석한 듯 한데, 나쁘지 않았어요. 작품에서 잘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후시미가 좌절했던 계기였던 사건 이야기도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지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다 죽어가는 노인과 결혼하여 재산을 물려받은 여자를 취재했는데, 그 여자가 사는 아파트의 노인 주변은 화려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노인은 몸을 움직이지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심지어 마르거나 시든 꽃도 없었고요. 즉, 여자는 그 노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데, 후시미 혼자 멋대로 여자가 나쁘다고 단정짓고 악을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지요. 뭐든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범행을 저질러 유명해진 뒤, 그 명성으로 소설가가 되겠다! 라는 무카이의 동기는 잘 와 닿지 않더군요.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소설가로서의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걸로 보입니다. 본인, 그리고 동생의 끔찍했던 과거를 노출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요. 살인보다는 이런 노력들을 먼저 하는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현재의 전개로는 살인까지 저지렀어야 했던 절박함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살인 대상이 마사키 선생님이었던 이유도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한 목적 말고는 없었다는데, 저같으면 현장에서 미야모토를 죽였을겁니다. 그래야 가지무라를 - 그리고 미유키를 - 구태여 현장에 불러 촬영을 맡긴 이유가 설명이 되니까요. 미야모토는 줄일 예정이니 촬영을 맡길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친구인줄 알았던 가지무라와 미야모토가 여동생의 손님이었다, 여동생은 내가 지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죄인 둘에게 단죄와 경고를, 여동생에게는 내가 앞으로 지켜주겠다! 는 의지를 보여준거다... 같이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도 가능했고요. 아니면 인격자인줄 알았던 마사키 선생님마저도 미유키의 손님이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이라도 드러내는게 나았을겁니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강조되는 '도덕'에 대한 설정과 문답들은 작위적입니다. 마사키 쇼타로 선생의 모두 씨 개념, 저널리스트로서 날조를 막아야 하는 양심, 그리고 경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도덕에 관한 문장 등 '도덕'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야기 핵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무카이의 동기를 독자에게 숨기기 위한 추리적인 장치, 그리고 작품을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소재에 불과합니다. 괜히 머리만 아프게 만드네요.
아울러 후시미는 일본 사회파,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흔히 보는 고집 센 한 마리 늑대와 다를바 없습니다. 많이 뻔했어요.

그래도 데뷰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의 수작입니다. <<스완>>은 충격적인 설정에 비하면 다소 심심하고 억지스러운 전개로 실망했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작가가 최근 뜨거운지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